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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펜싱 여자 에페’ 최인정 “제가 망했어요”…자책

    ‘펜싱 여자 에페’ 최인정 “제가 망했어요”…자책

    “응원과 관심에 보답하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죄송스러워요.” 여자 펜싱 에페의 신아람(30·계룡시청)은 12일(이하 한국시간)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일정을 모두 마친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안타깝게도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6일 개인전에서는 32강전에서 발목이 잡혔고 12일 최인정, 강영미, 최은숙과 함께 출전한 단체전에서는 6위에 그쳤다. 단체전 5·6위 결정전에서 미국한테 18-22로 패한 직후 만난 신아람은 후련하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국은 8강전에서 에스토니아한테 26-27로 석패하고 말았다. 신아람의 리우올림픽 메달 꿈은 그렇게 날아갔다. 한국은 결국 6위로 대회를 마쳤다. 신아람은 “그동안 단체전에서 에스토니아와 많이 붙어봤지만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며 “말해봤자 다 변명이지만, 유독 에스토니아한테는 약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상대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분석도 많이 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전은 다 했다”며 “경기 중에 선생님(심재성 코치)이 판단도 빨리하셨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다”고 덧붙였다. 옆에 있던 최인정은 “제가 망했어요”라고 자책했다. 신아람은 21-19로 앞선 상태에서 최인정한테 바통을 넘겼다. 마지막 주자인 최인정은 26-27로 밀렸고, 경기는 그대로 끝나버렸다. 신아람은 “마지막 자리는 가장 부담스럽다. 막내한테 무거운 짐이 얹어졌는데, 잘 버텨줬다”고 최인정을 두둔했다. 신아람은 4년 전 국민과 함께 울었다. 아직도 스포츠 팬들의 뇌리에는 그때의 1초가 몇 시간처럼 길게만 느껴진다. 2012년 런던올림픽 펜싱 여자 에페 개인전 준결승에서 독일 선수를 상대한 신아람은 1초만 버티면 결승행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독일 선수가 네 차례나 공격을 시도하는 사이에도 1초는 끝내 흐르지 않았다. 신아람은 런던올림픽 최악의 오심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내는 신아람의 모습에 온 국민이 마음 아파했다. 그는 4년 전을 떠올리며 “그때 관심을 많이 받아서 이번에도 응원을 많이 받은 것 같다”며 “많은 분께 감사하다. 응원과 관심에 보답하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신아람은 올해 서른이다. 운동선수치고 적지 않은 나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그를 볼 수 있을까. 신아람은 “글쎄요”라며 답변을 미뤘다. “자기가 몸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선수 생명이 달라져요. 제 몸이 현재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아요.”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올림픽> 펜싱 신아람 “응원에 보답하고 싶었는데 죄송스러워요”

    “응원과 관심에 보답하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죄송스러워요.” 여자 펜싱 에페의 신아람(30·계룡시청)은 12일(이하 한국시간)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일정을 모두 마쳤다. 안타깝게도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6일 개인전에서는 32강전에서 발목이 잡혔고 12일 최인정, 강영미, 최은숙과 함께 출전한 단체전에서는 6위에 그쳤다. 단체전 5·6위 결정전에서 미국한테 18-22로 패한 직후 만난 신아람은 후련하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국은 8강전에서 에스토니아한테 26-27로 석패하고 말았다. 신아람의 리우올림픽 메달 꿈은 그렇게 날아갔다. 한국은 결국 6위로 대회를 마쳤다. 신아람은 “그동안 단체전에서 에스토니아와 많이 붙어봤지만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며 “말해봤자 다 변명이지만, 유독 에스토니아한테는 약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상대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분석도 많이 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전은 다 했다”며 “경기 중에 선생님(심재성 코치)이 판단도 빨리하셨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다”고 덧붙였다. 옆에 있던 최인정은 “제가 망했어요”라고 자책했다. 신아람은 21-19로 앞선 상태에서 최인정한테 바통을 넘겼다. 마지막 주자인 최인정은 26-27로 밀렸고, 경기는 그대로 끝나버렸다. 신아람은 “마지막 자리는 가장 부담스럽다. 막내한테 무거운 짐이 얹어졌는데, 잘 버텨줬다”고 최인정을 두둔했다. 신아람은 4년 전 국민과 함께 울었다. 아직도 스포츠 팬들의 뇌리에는 그때의 1초가 몇 시간처럼 길게만 느껴진다. 2012년 런던올림픽 펜싱 여자 에페 개인전 준결승에서 독일 선수를 상대한 신아람은 1초만 버티면 결승행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독일 선수가 네 차례나 공격을 시도하는 사이에도 1초는 끝내 흐르지 않았다. 신아람은 런던올림픽 최악의 오심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내는 신아람의 모습에 온 국민이 마음 아파했다. 그는 4년 전을 떠올리며 “그때 관심을 많이 받아서 이번에도 응원을 많이 받은 것 같다”며 “많은 분께 감사하다. 응원과 관심에 보답하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신아람은 올해 서른이다. 운동선수치고 적지 않은 나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그를 볼 수 있을까. 신아람은 “글쎄요”라며 답변을 미뤘다. “자기가 몸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선수 생명이 달라져요. 제 몸이 현재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아요.” 연합뉴스
  • <올림픽> 좌절된 메달 꿈…눈물 쏟아낸 여자 에페 대표팀

    경기가 몇 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과 에스토니아는 26-26로 맞섰다. 11일 오후(한국시간)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펜싱 에페 단체전 8강전이 열린 카리오카 경기장3. 이리나 엠브리치가 최인정(26·계룡시청)의 몸을 찌르는 순간, 대기석의 에스토니아 선수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한국 선수들은 얼음이 돼 버렸다. 여자 에페 대표팀의 단체전 메달의 꿈은 날아가 버렸다. 최인정도 최선을 다해 막판까지 분투했지만, 승리의 여신은 에스토니아의 손을 들어줬다. 경기를 마치고 공동취재구역을 통과한 최인정, 강영미(31·광주서구청), 최은숙(30·광주서구청)은 눈물을 쏟아내며 발걸음을 옮겼다. 신아람(30·계룡시청)은 비교적 차분했다. 4년 전 런던올림픽 개인전에서 오심으로 눈물을 펑펑 흘린 신아람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같은 팀(계룡시청) 동료이기도 한 최인정의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아”라는 말을 반복했다. 한국 여자 에페는 2012 런던올림픽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수확했다. 특히 리우올림픽 개인전에서 줄줄이 탈락해 단체전을 별렀지만, 아쉬운 결과를 받아들었다. 대표팀은 12일 오전 우크라이나와 5∼8위 결정전을 치른다. 연합뉴스
  • 펜싱 에페 女 단체, 4강 진출 실패…에스토니아에 26-27 ‘석패’

    펜싱 여자 에페 대표팀이 에스토니아에 아깝게 패하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신아람(30·계룡시청), 최인정(26·계룡시청), 강영미(31·광주서구청), 최은숙(30·광주서구청)으로 이뤄진 여자 에페 대표팀은 11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카리오카 경기장3에서 열린 단체전 첫 경기인 8강전에서 에스토니아에 26-27로 석패했다. 한국은 초반부터 뒤처졌다. 에스토니아가 한국 첫 선수로 나선 강영미를 상대로 잇따라 찌르기에 성공하면서 한국은 초반에 1-5로 뒤졌다. 바통을 이어받은 신아람은 7-7 동점을 만들었지만 이후 다시 10-13으로 뒤처지고 말았다. 최은숙은 17-17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신아람은 18-18에서 전광석화같이 팔을 뻗어 19-18로 역전에 성공했고 21-19로 점수 차를 벌린 뒤 피스트에서 내려갔다. 최인정은 막판까지 잘 싸웠다. 하지만 26-26에서 찌르기를 허용하면서 경기는 에스토니아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한국은 이날 오후 5∼8위 결정전에 나선다. 한국 여자 에페는 2012 런던올림픽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수확했다. 특히 리우올림픽 개인전에서 줄줄이 탈락해 단체전을 별렀지만, 아쉬운 결과를 받아들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도전은 계속된다… 메달은 덤일 뿐

    도전은 계속된다… 메달은 덤일 뿐

    7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사격 남자 공기권총 10m 결승이 열린 데오도루 올림픽 사격경기장. ‘사격의 신’ 진종오(37·KT)는 14번째 사격을 한 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앞선 13번째에서 만점에 가까운 10.6점을 쏴 3위로 뛰어오른 진종오는 통한의 실수를 하며 9.1점에 그쳤다. 낮은 점수를 기록한 선수가 1명씩 탈락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경기에서 8명 중 4번째 탈락자가 돼 쓸쓸히 사대에서 물러났다. 총점 139.8점을 기록, 5위로 경기를 마쳤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 이은 2연패의 꿈이 물거품이 됐다. 진종오는 경기를 마치고 믹스드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취재진에게 “죄송합니다”라는 짧은 한마디와 함께 손을 들어 보이고 조용히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예상치 못한 실망스러운 결과에 언론과 인터뷰할 힘도 없어 보였다. 진종오를 10년 넘게 지도한 김선일 대만 사격대표팀 감독 등은 “우승 후보라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우여곡절 끝에 4번째 올림픽 무대에 선 박태환(27·팀지엠피)도 자유형 남자 400m에서 결승 진출에 실패하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믹스드존에서 마지막 7조 경기 결과를 TV로 확인한 박태환은 “떨어졌네요. 어찌해야 하나…”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2년 전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큰 경기를 못 뛰어 긴장을 많이 한 것 같다“면서 “막판에 좀 더 스퍼트를 해야 했는데 처지면서 뒤늦게 터치패드를 찍었다“고 아쉬워했다. “한국이 지금 새벽인가?”라고 취재진에 물은 박태환은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줬어야 하는데 죄송스럽다”고 했다. 유도 남자 60㎏급 세계랭킹 1위 김원진(24·양주시청)은 8강에서 ‘복병’ 베슬란 무드라노프(러시아)에게 한판패를 당해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렸다. 패자부활전에서 천적 다카토 나오히사(일본)에게 패해 동메달의 꿈까지 날려버린 김원진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마지막 힘까지 쏟아내려 했는데…”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첫 두 판(32강, 16강)에서 체력을 많이 소진한 게 패인이지만 핑계를 대고 싶지 않다”며 “코치님과 부모님, 동료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런던올림픽에서 ‘1초 오심’으로 눈물을 흘린 신아람(30·계룡시청)은 펜싱 여자 에페 개인전 32강에서 올레나 크리비츠카(우크라이나)에게 연장 접전 끝에 14-15로 패했다. 신아람은 “크리비츠카가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선수였는데 대진운이 없었다”며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다”며 시원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첫날은 부진했지만 이들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종오는 11일 남자 50m 권총에서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 2008년 베이징과 런던 이 종목 금메달리스트 진종오가 금메달을 목에 걸 경우 1896년 사격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후 처음으로 3연패의 금자탑을 쌓는다. 박태환은 8일 새벽 자유형 200m에 출전한 데 이어 100m(10일)와 1500m(13일)에도 잇따라 출전한다. 신아람은 오는 11일 여자 단체전에서 최인정(26·계룡시청), 강영미(31), 최은숙(30·이상 광주시청)과 함께 ‘금빛 찌르기’에 도전한다. 리우데자네이루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탁구 영웅’ 유승민 IOC선수위원 도전장 이신바예바 등 넘을까

    ‘탁구 영웅’ 유승민 IOC선수위원 도전장 이신바예바 등 넘을까

    리우올림픽에서 경기 못지않게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있다. 한국의 두 번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의 탄생 여부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탁구 영웅’ 유승민(34·삼성생명 코치)은 문대성 위원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 선수위원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는 지난달 22일 출국해 열흘이 넘게 이곳에서 선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유승민은 2일(현지시간) 올림픽 선수촌에서 참가 선수들을 상대로 선거 활동을 하다 국내 취재진과 만났다. 하지만 언론을 통한 홍보 활동에 제한을 받는 탓에 말을 아꼈다. 유승민은 “쉽지 않다”고 운을 뗀 뒤 “어떤 선수는 표를 주겠다고 반갑게 맞아 주지만 또 다른 선수는 ‘쟤 누구야’ 하는 표정으로 지나치기도 한다”며 각국 선수의 엇갈린 반응을 짧게 전했다. 지난달 24일부터 시작된 선수위원 선거는 오는 17일까지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의 투표로 치러진다. 23명의 후보 중 상위 4명 안에 들어야 당선된다. 당선자는 18일 발표되며 폐막일 열리는 IOC 총회에서 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선수위원 자격을 확정 짓는다. 유승민의 경쟁자는 육상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전설’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를 비롯해 일본의 육상 영웅 무로후시 고지, 탁구 선수 출신의 장미셸 세이브(벨기에), 미프로농구(NBA) 선수 루이스 스콜라(아르헨티나), ‘인도의 김연아’로 불리는 배드민턴 선수 사이나 네와이 등이다. 이들의 인지도가 높아 유승민의 당선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런던올림픽에서 ‘멈춘 1초’로 불리는 최악의 오심을 겪은 여자 펜싱 신아람(계룡시청)은 오심의 수혜자인 브리타 하이데만(34·독일)이 이번 선수위원 후보로 나선 데 대해 “그 선수의 잘못은 아니다. 선수위원으로 뽑혔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의 IOC 위원은 2명이다. 하지만 이건희 위원은 건강 문제로, 문대성 선수위원은 직무정지 탓에 이번 올림픽 외교 무대에 나서지 못했다. 유승민이 선거에서 떨어지면 안방에서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까지 한국의 스포츠 외교 공백은 불가피하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동전 갑질 대응할 방법 있나? 노동부, “없다”

    동전 갑질 대응할 방법 있나? 노동부, “없다”

    고용주가 밀린 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직원에게 동전으로 주며 화풀이하는 ‘동전 갑질’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진 탓도 있지만 강자에는 약하고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겐 한없이 강한 우리 사회 풍토가 근본 원인으로 지적되면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일 경남 창녕군의 한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A 씨 등 외국인 노동자 4명은 건축업자 B 씨로부터 밀린 월급 440만원을 모두 동전으로 받았다. 동전은 100원짜리 1만7505개,500원짜리 5297개 등 무려 2만 2802개나 됐다. B씨는 자루에 담은 동전을 사무실 바닥에 쏟아 뒤섞이도록 한 뒤 ‘가져가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인근 상점 주인의 도움으로 은행 몇 군데를 떠돌다 한국은행을 찾아가서야 겨우 동전을 5만원권 지폐로 교환할 수 있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의 한 카페에서는 업주가 종업원에게 동전으로 임금을 지급한 뒤 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비방글을 올리고 맞고소까지 해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올해 3월 30일에는 성남시 중원구의 한 대학 앞 음식점에서 일하던 직원이 ‘밀린 임금을 달라’며 노동청에 진정을 내자 업주가 임금 17만4740원을 1000원짜리 지폐 4장을 제외하고 모두 10원짜리 위주의 동전으로 줘 여론이 들끓었다. 자루 2개 무게만 22.9㎏에 달했다. 업주들의 이 같은 횡포는 올해만의 일이 아니었다. 지난해 6월에는 울산에서 아르바이트하던 10대 여성이 밀린 임금 32만원을 받지 못해 노동청에 진정을 넣자 업주가 밀린 임금 중 10만원을 10원짜리 동전으로 줬다. 같은 해 4월에도 충남 계룡시의 한 음식점 업주가 종업원으로 일했던 중년 여성의 임금 18만원을 주지 않고 버티다 10원짜리 동전으로 지급했다가 누리꾼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이들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동전 갑질’은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나 아르바이트생 등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저질러졌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김윤태 교수는 “경기가 어려워지며 체불임금 문제가 일상화해 고용주와 직원 간 갈등이 커지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피해자들 대다수가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며 합리적이고 상생하는 노사문화가 우리나라에 없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현행 노동법상으로도 ‘동전 갑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피해자들을 법적으로 보호해줄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에는 주급, 월급 등 임금 성격에 따라 일시불로 지급하고 예외적인 상황인 아니라면 현금으로 주게 명시됐다”며 “그러나 지불 방식에 관해서는 따로 규정이 없어 동전으로 임금을 주더라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동전 월급은 상식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전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 것은 틀림없다”며 “그렇더라도 사람의 주관적 감정과 연관된 부분이라 이를 법제화해 제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경복궁 감싼 삼청동·백운동 물길, 한양 방어의 핵심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경복궁 감싼 삼청동·백운동 물길, 한양 방어의 핵심

    해자(垓子)는 자연 하천을 장애물로 활용하거나 땅을 파서 적이 접근하는 것을 막는 시설이다. 현재 발굴조사가 한창인 경주 월성을 보면 남쪽은 남천을 자연 해자로 활용하고, 이 밖의 방향에는 해자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한성백제의 도읍인 서울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역시 해자를 방어시설로 썼다. 평양의 고구려 안학궁도 해자가 있었다. 고려시대는 들판을 비우고 산성에 들어가 외적과 대치하는 이른바 청야입보(淸野立保) 전략을 쓰면서 산성을 중요시했다. 산성의 해자는 지형 특성상 물을 채우지 않고 내부에 장애물을 시설하기도 했는데 옛 역사서들은 지호(地壕)나 황지(隍池)라고도 적었다. ●왜구 침입 빈번했던 해안 읍성, 해자는 필수 조선은 읍성 중심의 방어전략을 수립했다. 산성 대신 견고하게 읍성을 쌓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였다. 세종은 읍성에 옹성과 치성, 해자를 시설하라는 명령도 내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따르면 당시 전국 330곳의 행정구역 가운데 160곳에 읍성이 있었다고 한다. 여러 개의 읍성을 가진 지역도 있어서 전체 읍성은 190곳에 이르렀고, 179곳은 석축성이었다. 모든 읍성이 해자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 평지 읍성은 해자를 팠다. 특히 왜구의 침입이 빈번했던 삼남(三南)의 해안 읍성은 대부분 해자를 두었다. 충남 서해안의 당진 덕산 해미 결성 보령 한산 서천, 전라도 서남해안의 무장 고창 남원 낙안 광양, 경상도 남해안의 고현 김해 웅천 하동 언양 동래 등의 읍성에는 해자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 가운데 해미와 낙안 읍성은 이미 상당 부분 해자의 복원이 이루어졌고, 강진의 전라병영성과 무장·남원 읍성은 현재 해자를 발굴하거나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역대 왕조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래 우리 조상들의 해자에 대한 인식이 매우 뚜렷했음을 보여 준다. 그러니 조선이 왕조를 개창하고 도읍과 왕궁의 입지를 새로 정하는 과정에서도 외침에 대비한 방어시설로 해자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다는 것은 당연하다. 조선은 도읍과 왕궁의 입지를 정하면서 세 차례 대대적인 논쟁을 벌인다. 개성의 왕도를 유지할 것인가, 옮길 것인가 하는 논쟁이 첫 번째다. 처음엔 지금의 충남 계룡시 3군사령부 터를 점찍고 궁궐공사를 벌이다 곧 한강과 북악산 일대로 위치를 바꾼다. 계룡산은 방어력은 뛰어나지만 주변에 강이 없어 세곡 수송에 어려움이 있고 용수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북악산 아래 한양(漢陽)과 신촌과 서강 일대 모악(母岳)을 놓고 벌인 논쟁이 두 번째다. 이후 태조의 왕사(王師) 격인 무학대사 자초와 태조의 총신(寵臣)인 정도전 사이에 한양에 들어설 왕궁의 위치를 놓고 논쟁을 벌인 것이 세 번째다. 무학대사는 정궁(正宮)을 인왕산 아래 동향으로 앉혀야 왕조가 무궁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도전은 북악산 아래 남향으로 궁궐을 짓는 것이 중국의 역대 왕조가 그렇듯 정도라고 주장해 관철시켰다. 그런데 200년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 임금은 피난을 떠나고 궁궐은 불타버리는 치욕을 겪자 무학대사의 안목이 옳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야사(野史)로 치부되는 오산 차천로(1556∼1610)의 수필집 ‘오산설림초고’에 나오는 이야기다. 차천로는 글 말미에 ‘정도전이 무학의 말이 옮음을 알지 못함은 아니었지만 다른 마음이 있어 듣지 아니한 것’이라고 했다. 차천로는 정도전을 역심(逆心)이 가득한 인물로 묘사한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시각이나 개인적 원한을 배제하면 정도전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북악산 아래가 옳았던 것은 궁궐 동쪽의 삼청동천과 서쪽의 백운동천이라는 자연 해자의 존재 때문이다. 오늘날 중학천으로 불리는 삼청동천은 삼청계곡에서 발원해 경복궁 담장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뒷길을 따라 흐르다 청계천에 합류한다. 백운동천은 자하문터널 쪽에서 시작되어 자하문로와 세종문화회관 뒷길을 지나 역시 청계천과 합쳐진다. ●정도전, 북악산과 자연 해자 감싼 요새에 궁 설계 정도전을 비롯해 한양도성을 설계한 사람들은 궁궐의 효율적인 방어가 가능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다. 그 결과 북쪽은 북악산이 가로막고, 동쪽과 서쪽은 깊이가 상당한 하천이 남쪽에서 합류해 자연 해자 역할을 하는 자리에 경복궁을 앉혔다. 궁궐 남쪽으로는 육조거리를 조성했다. 해자의 보호를 받는 곳에 국가의 중추기관을 집중시킨 것이다. 이런 상징성이 있는 ‘경복궁 자연 해자’를 일제강점기도 아닌 20세기 후반 우리 손으로 복개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삼청동길과 자하문로 아래로는 지금도 삼청동천과 백운동천이 흐른다. 복개가 이루어지기 전 삼청동천 사진을 보면 바닥은 깊고, 호안은 다듬은 돌을 수직으로 쌓아 궁궐을 방어하는 시설이라는 인식이 분명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가 수도를 개성에서 한강과 북악산 일대로 옮기겠다는 한 구상 자체가 효율적인 방어가 목적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도성은 북서쪽으로는 임진강, 남동쪽으로는 한강이 거대한 자연 해자의 역할을 한다. 한양파(派)가 모악파를 누른 것도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외적 방어에 이로운 한양의 지형적 특성이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다. 북악산파가 인왕산파를 누른 것은 자연 해자로서 삼청동천과 백운동천의 역할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새로운 도읍 및 궁궐의 입지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풍수지리적 견해차가 이유는 아니었다. 세 차례 논쟁에서 방어력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는 쪽이 언제나 승리했다는 것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서울포토] 박근혜 대통령에게 계급장 받는 임관장교

    [서울포토] 박근혜 대통령에게 계급장 받는 임관장교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충남 계룡시 계룡대에서 열린 ‘2016년 장교 합동 임관식’에서 가족과 함께 계급장을 달아 주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 [서울포토] 朴대통령, ‘2016년 장교 합동 임관식’ 메달 수여

    [서울포토] 朴대통령, ‘2016년 장교 합동 임관식’ 메달 수여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충남 계룡시 계룡대에서 열린 ‘2016년 장교 합동 임관식’에서 우등상 수상 장교에게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서울포토] 2016년 장교 합동 임관식, 인사말하는 박근혜 대통령

    [서울포토] 2016년 장교 합동 임관식, 인사말하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충남 계룡시 계룡대에서 열린 ‘2016년 장교 합동 임관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서울포토] ‘2016년 장교 합동 임관식’ 계급장 달아주는 朴대통령

    [서울포토] ‘2016년 장교 합동 임관식’ 계급장 달아주는 朴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충남 계룡시 계룡대에서 열린 ‘2016년 장교 합동 임관식’에서 가족과 함께 계급장을 달아 주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서울포토] ‘2016년 장교 합동 임관식’에서 인사말 하는 朴대통령

    [서울포토] ‘2016년 장교 합동 임관식’에서 인사말 하는 朴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충남 계룡시 계룡대에서 열린 ‘2016년 장교 합동 임관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커버스토리] 청와대 집무실·방탄 의전車… 여기선 누구나 ‘일일 대통령’

    [커버스토리] 청와대 집무실·방탄 의전車… 여기선 누구나 ‘일일 대통령’

    조선왕조 472년(태조~철종)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조선왕조실록이 세계에서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철저한 기록정신에 입각해 객관적으로 기술된 덕분이다. 사관의 정론직필은 물론 실록을 편찬할 때는 왕도 볼 수 없도록 했다. 사관들이 살아 있는 권력에 치우쳐 실록을 사실과 다르거나 편향되게 기술할 것을 우려해서다. 우리나라의 기나긴 기록의 역사는 6·25전쟁, 급속한 산업화 등을 겪으며 맥을 잇지 못했다. 1969년부터 정부기록보존소 공공기록물 관리가 시작되긴 했지만 대통령기록물이 본격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부터다. 이로써 체계적인 기록물 보존 관리의 기틀이 마련됐다. 이에 기반해 기록물을 수집·보존·활용 중인 대통령기록전시관이 일반인에게 최근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 개방 이틀째인 지난 17일 오후 2시 세종시 다솜로 250(어진동) 호수공원 옆. 용의 자태를 형상화한 정부세종청사 끝자락에 국새를 담는 함을 본뜬 투명한 유리 큐브 모양의 전시관이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천장이 24m 높이인 4층까지 뚫려 있어 조그마한 소리도 길게 울려 퍼졌다. 커다란 왼쪽 벽면에는 빔 프로젝트를 이용한 영상물이 잔잔한 음악과 함께 상연됐다. 전시관 개방 첫날 학령기 자녀를 데리고 온 가족, 노부부, 대학 입학을 앞둔 고등학교 졸업생 등 다양한 방문객이 호기심을 품고 문을 두드렸다. 종교단체 모임 신자, 인근 부대 군인 등 단체로 온 관람객도 적지 않았다. 눈길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것은 1층에 전시된 미국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의 캐딜락이었다. 1992년 노태우 전 대통령 때부터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 때까지 의전에 사용된 녀석이다. 전시 기획을 담당한 윤준희 사서사무관은 “5대 대통령의 체취가 느껴지는 차량이 실물로 전시된 것은 최초”라며 “대통령들이 외부 업무 때 쓰던 것으로 특수 방탄 처리를 해 10억원대를 호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대통령 경호실에서 기록관에 기증한 의전 차량 8대 중 나머지는 지하 2층에 보관돼 있다. 윤 사무관은 “BMW, 에쿠스, 벤츠 등 다양한 차종이 의전 차량으로 사용됐으며, 대통령마다 애용했던 차량이 다른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특히 BMW 차량을 애용했다”고 귀띔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기록관을 찾은 윤성호(19·울산)군은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이 세계에서 가장 길다고 해서 왔다가 우연히 들렀는데, 의전 차량을 가까이서 보니 신기하다”고 말했다. 전시관 1층에서는 높이 2.1m, 폭 1m 크기로 형상화된 역대 대통령 10명을 처음 만날 수 있었다. 멀리서 보면 유리에 투영시킨 흉상화에 지나지 않지만 다가갈수록 촘촘하게 새겨진 흰색 글자들이 뚜렷해졌다. 역대 대통령이 재임 기간 연설하면서 가장 많이 쓴 단어들을 추출해 자연스럽게 대통령들의 정치 철학과 신념을 엿볼 수 있도록 했다. 윤 사무관은 “처음에는 단순히 흉상화를 전시하려다가 기록물을 이용해 역대 대통령의 국정운영, 당시 시대상 등을 엿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이승만 초대 대통령 사진에는 ‘우리 사랑하는 국민’, ‘평화’, ‘새로운 정부’, ‘국회 성립’ 등 연설할 때 자주 사용한 말이 가장 큰 글씨로 적혀 있었다. 1층 전시관을 나와 엘레베이터를 타고 전시관 4층으로 올라갔다. 1층이 ‘대통령과의 만남’이었다면 4층부터 아래로 내려가면서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권한과 의무 등을 알 수 있게 했다. 4층 첫 순서는 역대 대통령의 ‘휘호’가 전시된 공간이다. 휘호는 대통령의 통치 철학, 국책 방향 등을 보여주기에 의미가 깊다. 전체 20점 가운데 2008년 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한 달 전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해 남긴 ‘기록은 역사다’라는 휘호에서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제정을 추진한 의지가 풍겼다. 20점은 원본이 아닌 복제 사본이다. 윤 사무관은 “기록물들이 빛과 산소를 만나면 ‘열화’될 우려가 있어 대부분의 전시품은 장기 보존을 위해 가능한 한 원본을 똑같이 복제한 사본”이라고 설명했다. 전시관 한쪽에선 대통령의 육성이 흘러나오는 영상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관람객도 눈에 띄었다. 4층 전시관에는 대통령 이름이 새겨진, 유리로 된 전자태그(RFID) 카드를 꽂으면 역대 대통령의 통일 의지가 담긴 휘호와 함께 1분짜리 영상이 흘러나오는 시스템을 갖췄다. 신자 80명과 함께 방문한 해인사 수완(62) 스님은 “대북 관계가 어려운 상황인데, 통일을 주제로 한 대통령들의 영상은 정말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역대 대통령이 해외 각국 정상과 주고받은 서신도 한자리에 모였다. 관람객 임숙희(75·여·대구 수성구)씨는 “역대 대통령 기록물들을 보니 지난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면서 살아온 지난 시절까지 되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관람객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끈 곳은 3층 전시관이었다. 청와대 집무실, 영빈관, 춘추관 등이 드라마 세트장처럼 실물 그대로 옮겨진 체험관에서 관람객들은 줄을 서서 사진 촬영을 했다. 스마트폰에서 ‘대통령기록관’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아 영빈관 의자에 부착돼 있는 QR코드를 비추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의 각국 정상 실물 이미지가 카메라에 나타난다. 김근화(43·여)씨는 “초등학생들은 대통령에 대해서도 추상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체험들을 하면서 설명을 들으면 훨씬 더 가깝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3층에는 기증자 전당도 마련됐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이 제정된 2007년 이전에 소장해 오던 기록물의 기증 인물 이름이 새겨진 곳이다. 기록관 관계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사진, 문서, 책, 동영상 등 트럭 2대에 실어 나를 정도로 다량의 기록물을 기증했다”고 말했다. 전시관 관람 순서나 콘텐츠와 관련된 아쉬운 목소리도 있었다. 가족과 함께 이날 기록관을 찾은 김희정(40·여·충남 계룡시)씨는 “기록물들이 다채롭게 전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동선이 눈에 잘 들어오게 표시돼 있지 않아 어느 곳부터 관람해야 하는지 알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록관 측이 야심차게 준비한 1층 ‘텍스트아트’가 관람객들이 보기에 난해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근화씨는 “1층 전시관 유리 사진 앞에 별도로 설명 자료가 붙어 있지 않아 무엇을 의미하는지 곧바로 와닿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세종 대통령기록관에는 기록물 보존·복원처리실 9실이 신설된다. 전문 인력 21명이 근무하게 된다. 아직 준비 단계다. 이번 전시용 기록물들은 모두 경기 성남시 국가기록원 서울기록관에서 보존·복원을 마쳤다. 기록물은 형태에 따라 다른 보존·복원 처리 절차를 거친다. 종이 기록물의 경우 장기 보존이 가능하도록 마이크로필름으로 찍는다. 원본은 별도로 보관된다. 디지털화 작업도 거친다. 디지털화된 전자기록물은 세종 대통령기록관 외에 다른 서고에도 이중, 삼중으로 안전하게 보존된다. 유실 방지를 위해서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상 비공개로 분류된 대통령기록물들은 이관된 날로부터 5년이 경과한 후 1년 내에 공개 여부를 재분류하고, 9명(민간 8명, 당연직 1명)으로 구성된 대통령기록관리전문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해 심의를 거쳐 공개 여부가 결정된다. 위원회 당연직 위원은 대통령기록관 관장이다. 민간위원들은 기록 관련 전공 교수, 법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다. 이 심의에서 비공개로 지정된 기록물들은 2년마다 정기적으로 공개 여부 재심사를 받는다. 물론 통상의 절차에서 예외인 기록물도 있다. 대통령 지정기록물이 그중 하나인데, 모든 대통령은 일부 민감한 사항과 관련한 기록물에 대해서 15년까지, 개인정보가 포함된 것은 30년까지 보호기간을 지정할 수 있다. 지정기록물도 보호기간이 만료되면 공개 재분류 과정을 거친 후 공개로 결정된 기록물은 국민에게 공개된다. 기록관 관계자는 “재임 기간이 최근인 대통령 기록물일수록 비공개인 기록물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역대 대통령 기념도서관에 대통령 기록물을 소장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기념도서관은 그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 지어질 예정이다. 국립기록청(NARA)에서 운영한다. 프랑스는 국립기록보존소에서 엘리제궁으로 대통령기록관리 지원을 위한 직원을 파견, 대통령 수상 기록물을 관리한다. 프랑스 대통령 지정기록물은 50년간 공개 유예가 가능하다. 글 세종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사진 세종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 늙어가고 사라지는 충남의 자연마을

    충남은 주민이 20명도 안 되는 마을이 3분의1쯤 되고 65세 이상 노인이 절반을 웃도는 마을이 5분의1을 넘었다. 충남연구원은 2000~2010년 인구센서스 자료를 바탕으로 동지역과 계룡시를 제외한 1만 1217개 자연마을을 실증분석한 결과 주민이 20명도 안 되는 자연마을이 2000년 2568개(22.9%)에서 2010년 3369개(30%)로 늘었다고 16일 발표했다. 65세 이상 노인이 절반을 넘는 마을도 456개(4.1%)에서 10년 후 2509개(22.4%)로 5배 이상 급증했다. 두 부분 서천군이 도내에서 가장 높았다. 서천군은 2010년 기준으로 과소 주민 및 고령화 마을이 각각 39.9%와 41%에 이르렀다. 이어 과소 주민 마을 비율은 공주시 36.7%, 서산시 36.1%, 청양군 35.6%이고 고령화 마을은 청양군 32.8%, 부여군 27.3%, 예산군 25.3% 등 순이다. 매우 낙후된 군지역이거나 오지가 많은 곳이다. 자연마을은 농어촌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살면서 만들어진 공동체 공간이다. 자연마을 이름 중에는 ‘아랫말’이 가장 많았고 ‘윗말’, ‘중뜸’, ‘새터’, ‘양지뜸’ 등이 뒤를 이었다. 윤정미 연구원 농촌농업연구부장은 “이는 전국 최초로 실시한 조사로 자연마을 단위 자료 구축은 새로운 지역분석 접근 방식”이라면서 “자연마을 생존이 이처럼 한계에 다다른 만큼 대안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주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37] 해자(垓子)로 기능한 중학천과 백운동천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37] 해자(垓子)로 기능한 중학천과 백운동천

     조선은 왕조를 열면서 지금의 충남 계룡시 3군사령부 터를 도읍으로 점찍고 궁궐공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곧 한양의 북악산 아래로 수도의 위치를 바꾸게 된다. 풍수지리를 공부했다는 사람 가운데 몇몇은 이 과정에 오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계룡산을 버리고 한양을 택한 것이 잘못이고, 인왕산을 버리고 북악산을 택한 것도 잘못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조선의 서울이 계룡산 어귀였다면 지금쯤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선은 임진강쯤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수도의 위치 문제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한양을 설계한 사람들이 궁궐 자리를 북악산 아래로 점찍은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흔히 경복궁은 해자가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해자란 외적의 방어를 위해 성의 둘레를 파놓은 시설이다. 중국 베이징의 쯔진청(紫禁城)과 일본 도쿄의 왕궁에는 모두 해자가 있다. 반면 경복궁 주변은 아무리 둘러봐도 해자는 찾을 수 없다. 경복궁 금천을 일종의 해자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담장 안에 있는 것을 해자라고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경복궁에는 자연의 조화를 거스르지 않고 실용성이 뛰어난 자연 해자가 있었다. 궁궐 동쪽의 중학천과 서쪽의 백운동천이 그것이다. 중학천은 삼청동에서 발원해 경복궁 담장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뒷길을 따라 흐르다 청계천과 합류한다. 백운동천은 자하문터널 쪽에서 시작해 자하문로와 세종문화회관 뒷길을 지나 역시 청계천과 합쳐진다. 이것을 20세기 후반 우리 손으로 복개했다. 삼청동길과 자하문로 아래로는 지금도 중학천과 백운동천이 흐른다.  도성을 설계한 사람들은 궁궐을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다. 그 결과 북쪽은 북악산이 가로막고, 동쪽과 서쪽의 하천은 남쪽에서 합류하며 세 방향에서 자연 해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에 경복궁을 앉힌 것이다. 궁궐 아래로는 정부기관을 한데 모은 육조 거리도 조성했다. 자연 해자의 보호를 받는 곳에 국가의 중추기관을 집중시킨 것이다. 복개가 이루어지기 전 중학천 사진을 보면 바닥은 깊고, 호안은 적이 오르기 어렵도록 돌로 쌓은 수직 벽이다. 궁궐을 감싸는 해자의 역할이라는 인식이 분명했음을 알 수 있다.  중학천과 백운동천을 옛 모습대로 복원하는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의 연장선 상에서 두 하천을 되살리고자 했지만, 길이 사라진다는 현실적 어려움에 부닥쳐 광화문 교보문고 뒤편의 중학천 일부만 상징적으로 복원했다. 물론 앞으로도 복원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복궁 복원 작업은 해자까지 살아나야 완성일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김재중 유노윤호, 군대에서 재회한 두 사람 ’두 사람 무슨 얘기 했나?’

    김재중 유노윤호, 군대에서 재회한 두 사람 ’두 사람 무슨 얘기 했나?’

    ’김재중 유노윤호’ 그룹 JYJ 멤버 김재중과 과거 동방신기서 활동했던 유노윤호와의 만남이 화제다. 2일 제13회 지상군 페스티벌이 충남 계룡시 계룡대 비상활주로에서 진행됐다. 지상군 페스티벌에는 군 복무 중인 유노윤호와 김재중이 참여했다. 두 사람의 참가 사실이 알려진 후, 유노윤호와 김재중이 한 무대에 오르게 될지 관심이 뜨거웠지만 이 날 두 사람은 함께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정윤호는 방송인 최송현과 함께 2일 개막식을 진행했다. 이후 축제 동안 주공연장에서 펼쳐지는 일부 행사 진행을 맡았다. 김재중은 보컬로서 프린지 공연 무대에 올랐다. 2015년 지상군 페스티벌은 10월2일부터 10월6일까지 진행된다. 김재중 유노윤호, 김재중 유노윤호, 김재중 유노윤호, 김재중 유노윤호, 김재중 유노윤호, 김재중 유노윤호, 김재중 유노윤호 사진 = 서울신문DB (김재중 유노윤호)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재중 유노윤호, 군대 재회 포착?

    김재중 유노윤호, 군대 재회 포착?

    그룹 JYJ 멤버 김재중이 과거 동방신기서 활동했던 유노윤호와의 만남이 이목을 끌고 있다. 2일 제13회 지상군 페스티벌이 충남 계룡시 계룡대 비상활주로에서 진행됐다. 지상군 페스티벌에는 군 복무 중인 유노윤호와 김재중이 참여했다. 두 사람의 참가 사실이 알려진 후, 유노윤호와 김재중이 한 무대에 오르게 될지 관심이 뜨거웠지만 이 날 두 사람은 함께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재중 유노윤호, 두 사람 군대에서 재회?

    김재중 유노윤호, 두 사람 군대에서 재회?

    ’김재중 유노윤호’ 그룹 JYJ 멤버 김재중과 과거 동방신기서 활동했던 유노윤호와의 만남이 화제다. 2일 제13회 지상군 페스티벌이 충남 계룡시 계룡대 비상활주로에서 진행됐다. 지상군 페스티벌에는 군 복무 중인 유노윤호와 김재중이 참여했다. 두 사람의 참가 사실이 알려진 후, 유노윤호와 김재중이 한 무대에 오르게 될지 관심이 뜨거웠지만 이 날 두 사람은 함께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재중 유노윤호, 두 사람 군대에서 만났나?

    김재중 유노윤호, 두 사람 군대에서 만났나?

    그룹 JYJ 멤버 김재중과 과거 동방신기서 활동했던 유노윤호와의 만남이 화제다. 2일 제13회 지상군 페스티벌이 충남 계룡시 계룡대 비상활주로에서 진행됐다. 지상군 페스티벌에는 군 복무 중인 유노윤호와 김재중이 참여했다. 두 사람의 참가 사실이 알려진 후, 유노윤호와 김재중이 한 무대에 오르게 될지 관심이 뜨거웠지만 이 날 두 사람은 함께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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