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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달러 환율 戰後 최저치

    엔·달러 환율 戰後 최저치

    일본 원전 사태로 엔·달러 환율이 전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엔화 가치가 최고치에 오르면서 일본은 수출 경쟁력까지 잃을 위기이고 세계경제성장 둔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17일 오전 6시 18분 일본환율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76.25엔이었다. 기존의 최저 수준인 79.75엔(1995년 4월 19일)보다 3.5엔이나 낮은 수치다. 제2차 세계대전 후(1945년) 가장 높은 엔고를 이끈 건 원전 방사능 누출에 대한 루머였다. 지난 16일 뉴욕시장에서 ‘공포 지수’로 불리는 변동성 지수(VIX)가 전날보다 5.08%포인트 오른 29.07%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7월 6일 이후 최고 수준이다. 복구자금을 위한 해외 투자자금의 회수는 아직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기대심리와 함께 이달 일본 내 회계결산 시즌을 맞으면서 엔화 환전이 많아진 것도 이유로 지적됐다. 또한 일본 당국이 원전 사태를 제어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감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뉴욕 장이 마감하고 일본 장이 열리는 이른 아침, 거래량이 많지 않은 틈을 타 투기 세력들이 손절매를 감행한 것이 직접적 이유라는 시각도 있다. 이날 일본은행(BOJ)은 5조엔(약 610억 달러)을 추가로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진 발생 이후 총 28조엔을 투입하고도 엔고가 지속되는 상황이어서 효과는 아직 미지수다. 씨티그룹은 75엔까지, 노무라홀딩스는 72엔까지 엔고가 심화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 경우 일본 기업의 수출경쟁력에 큰 타격을 줄 뿐 아니라 환율 변동성을 예측하지 못한 헤지펀드들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관건은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직접 개입 여부이지만 의견은 엇갈린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경제 브리핑]

    우수 향토사업에 최대 4억 지원 인삼쌀맥주 관광사업 등 지역의 특색 있는 농산물을 육성하기 위한 향토산업육성 우수사업에 최대 4억원이 지원된다. 반면 부진사업에 대해서는 페널티가 부여돼 예산이 삭감된다. 농림수산식품부는 16일 지난해 실시한 57개 시·군의 향토산업육성사업 심사 결과 인센티브 대상사업 16개와 페널티 대상사업 6개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헌재 “금리인상 대신 환율 내려라”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16일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 대신 환율 하락을 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전 부총리는 ‘신한 프라이빗 뱅크 그랜드 투자세미나 2011’에서 “가계 대출의 80%가 부동산 담보대출이어서 금리를 잘못 올리면 가계 부담이 커지면서 2003년 가계대출 파동과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면서 “저라면 금리 대신 환율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기업銀, 일본 지진피해 성금 3억 기탁 기업은행은 16일 일본 대지진의 피해 복구 지원 성금으로 3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일본 국민이 하루빨리 상처를 극복하고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금융저축銀·메리츠금융지주 인가 금융위원회는 16일 우리금융저축은행의 영업을 인가했다. 우리금융저축은행은 우리금융지주가 영업정지된 삼화저축은행을 인수해 자본금 120억원으로 설립한 저축은행이다. 금융위는 또 국내 최초의 보험지주회사인 메리츠금융지주의 설립도 인가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메리츠화재의 분할을 통해 설립되며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종합금융증권, 메리츠자산운용,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 리츠파트너스, 메리츠비즈니스서비스 등 6개사를 자회사로 둘 예정이다.
  • 공식 사망·실종 1만2000명 행불자 감안 11만 사망설도

    대지진이 일본을 덮친 지 6일째에 접어든 16일 일본 정부의 공식 집계로 사망·실종자 수가 1만 2000명을 넘어섰다. 일본에서 자연재해로 이 정도 규모의 희생자가 나온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라고 NHK방송이 이날 보도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는 행방불명자 수까지 감안하면 실제 사망자는 11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까지 나온다. 일본 경찰은 이날 오후 8시 현재 12개 현에서 확인된 사망자는 4255명, 6개 현의 실종자는 8194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다국적 팀의 구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은 점점 더 옅어지고 있다.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의 실종자는 1만명에 달한다고 시장이 이날 밝혔다. 게센누마에서는 지난 14일까지 전체 7만 5700명의 주민 가운데 6만명이 행방불명된 상태다. 미나미산리쿠에서도 마을 인구의 절반인 8000명의 소재가 아직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오나가와 마을에서도 주민 전체의 절반가량인 5000명이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와 오쓰치에서는 각각 1만 7000명, 1만명의 행적이 묘연한 상태다. 이들을 모두 합치면 11만명에 이른다. 혼슈섬 동북부 해안을 따라 5만 5380개에 이르는 저택과 건물이 파괴된 것으로 드러나는 등 심각한 손실을 감안했을 때 사망자 수는 급속히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이제 다시 일어설 때” 日 복구 사투 시작됐다

    ‘이제는 다시 일어설 때다.’ 강진과 쓰나미, 원전 폭발로 대재앙에 직면한 일본이 생존과 복구를 위한 사투(死鬪)를 시작했다. 동일본 대지진 나흘째인 14일 일본은 실종자 수색과 구조작업을 본격화하고, 전력 비축을 위해 제한송전을 실시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최악의 위기 속에서도 일본인들은 큰 혼란이나 동요 없이 고통 분담과 배려의 정신으로 정부의 재난 극복 노력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간 나오토 총리는 전날 밤 기자회견에서 “전후(戰後) 65년에 걸쳐 가장 어려운 위기”라면서 “우리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해외 각국에서도 지원의 손길이 이어져 88개 국가와 국제기구에서 온 구호팀이 일본 현지에서 재난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우리 정부는 공군 C130 수송기 3대를 이용, 구조지원 및 피해복구 활동을 벌일 긴급구조대 102명을 미야기현 센다이 등 피해 지역에 보내 본격적인 구조활동에 나섰다.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도 이날 일본 동북부 해안에 도착, 구조활동에 착수했다. 레이건함은 당초 이달 중 한·미연합 야외 기동훈련에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지진 구호활동에 긴급 투입됐다. 레이건함이 실어온 헬기 두대는 일본 자위대 소속 헬기 한대와 함께 3만명분의 긴급 식량을 운반하기 시작했다. 국제구호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잇따라 긴급모금 운동에 나섰다.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은 일본에 초기 긴급구호 자금 5만 달러를 지원했으며 40만 달러를 목표로 모금 운동을 시작한다고 이날 밝혔다. 월드비전은 이재민에게 담요 등 긴급구호 물품을 지급하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아동들의 쉼터를 설치하는 한편 일본 월드비전에서 지원을 요청하면 인력을 지원할 방침이다. 하지만 규모 9.0 강진의 여파는 이날도 계속 이어져 일본의 재활 노력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현지에 파견된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 관계자는 “강력한 여진과 쓰나미 경보, 화재 등으로 인해 구조활동이 지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사설] ‘일본 재앙’ 함부로 말하는 지도층 자성하라

    3·11 도호쿠 대지진과 쓰나미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실종자 수만 4만명을 넘는다는 보도도 있다. 교민 희생자도 나왔다. 일본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러시아도 지원에 동참하는 등 국제사회가 인종과 종교, 정치적인 이유를 떠나 어려움에 처한 일본에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 긴급구조대 102명도 어제 일본에 도착했다. 피해가 가장 심각한 동북부 지역에서 실종자 구조 및 탐사, 안전평가를 수행할 계획이다. 배용준, 김현중씨 등 한류스타들도 일본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도와주려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일본이 ‘과거’ 우리나라를 침략하는 등 아픈 역사가 있다고 해서 일부 누리꾼들이 일본의 현재 고통을 외면하거나 잘됐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더구나 장삼이사(張三李四)도 아닌 지도층 인사가 일본의 재앙을 놓고 함부로 말하는 것은 보편적 인류애마저 내팽개친, 부끄럽고도 몰지각한 행동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일본 대지진과 관련, “일본 국민이 신앙적으로 볼 때는 너무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으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 것으로 인터넷신문 뉴스미션이 그제 보도했다. 말문이 막힌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같은 날 트위터에 “일본 대지진으로 사망·실종만 2500여명, 연락불통만 1만여명입니다. 한반도를 이렇게 안전하게 해주시는 하느님께, 조상님께 감사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과거를 반성하지 못하는 일본 극우주의자들과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사람들이 아직도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대재앙을 당한 일본과 일본국민을 자극하는 식의 언행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하다. 구조대·의료팀 지원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일본이 대재앙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게 이웃의 도리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일본의 대재앙이 한·일 두 나라가 진정한 이웃이 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일본이 하루빨리 대재앙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거듭 기원한다.
  • [씨줄날줄] 내진설계/박홍기 논설위원

    2006년 1월 20일 일본 지바현 시로이시(市)에서 일어난 일이다. 역앞 광장에 갓 지어진 10층짜리 아파트 ‘라벨 두레’가 철거에 들어갔다. 입주 예정을 3개월 앞두고서다. 멀쩡한 겉모습과는 달리 진도 5의 지진에도 견디지 못할 만큼 내진 설계가 부실했던 탓이다. 건축사 아네하 히데쓰구가 건물이 받게 될 하중을 엉터리로 계산해 내진 강도를 조작한 것이다. 이른바 ‘내진 강도 조작사건’이다. 일본 열도는 발칵 뒤집혔다. 아네하가 거짓으로 꾸민 구조계산서를 토대로 설계된 아파트와 호텔은 95곳에 이르렀다. 정부는 입주한 아파트 주민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며 이사를 권유했고, 강도 조작이 심한 아파트에는 사용금지명령을 내렸다. 호텔 30여곳도 대부분 부쉈다. 평생 지진 공포를 안고 사는 일본인들에겐 생명선과 같은 내진 강도의 조작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일본은 대(對)지진 강국이다. 잦은 지진과 힘겨루기를 한 결과다. 자연 재앙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체념이 아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많다.’라며 도전했기 때문이다. 지진에 대한 철저한 대비와 기술의 집합이 내진 설계 및 기술이다. 내진 기준은 1923년 간토, 48년 후쿠이, 68년 도카치오키, 78년 미야기 등 굵직한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더 깐깐하게 바뀌었다. 1995년 한신대지진을 계기로 기준은 한층 강화됐다. 일본 주택은 목조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붕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고층 건물을 지을 땐 지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터파기 공사 직후 고무와 철근으로 짜여진 지진 격리용 방진(防震) 패드를 설치한 뒤 건축물을 올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건물의 흔들림을 자동으로 흡수하는 에너지 소산(消散)장치의 설치도 의무화하고 있다. 특히 건물을 다닥다닥 붙여 짓거나 지하로 연결한 것도 공간 확보뿐만 아니라 지진에 맞서 버틸 수 있도록 한 설계의 산물이다. 우리나라의 지진대비체제는 일본과 환경이 다르다지만 한참 미흡하다. 3층 이상, 총면적 1000㎡ 이상인 내진설계대상 건물 100만여채 가운데 84%가 무방비 상태다. 국민행동요령에 따른 지진대피훈련도 형식적이다. 일본 도호쿠 대지진은 철저한 대비에도 불구, 피해는 예상을 훨씬 초월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의 지적처럼 일본은 엄격한 내진 설계 등 건축 규제와 체계적인 대피훈련으로 더 큰 피해를 막았다. 자연 앞에 안전지대는 없지만 그나마 유비(有備)면 무환(無患)이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은행권 가계대출 1년만에 줄었다

    은행권 가계대출 1년만에 줄었다

    저금리 기조를 타고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은행권 가계대출이 1년 만에 줄었다. 설 명절에 따른 기업들의 상여금 지급과 이사철 비수기 등의 계절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한국은행이 14일 내놓은 ‘1월 중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431조 2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2000억원 감소했다. 은행권 가계대출이 줄어든 것은 지난해 1월(1조원) 이후 1년 만이다. 기업의 연초 상여금 지급 등으로 마이너스 통장식 한도 대출의 상환이 이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기타대출(주택대출을 뺀 대출) 감소액은 1조 4000억원으로 전월(1000억원) 대비 크게 확대됐다. 2009년 1월 2조 6000억원이 감소한 이후 2년 만에 최대폭이다.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증가 폭도 1조 5000억원으로 전월(2조 7000억원) 대비 절반 가까이 축소됐다. 비은행취급기관(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상호금융, 신탁, 우체국예금)의 가계대출 잔액은 164조 7000억원으로 3000억원 늘었다. 기타대출이 2000억원 줄었지만 주택담보대출은 5000억원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전체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은 1월 말 현재 595조 9000억원으로 전월보다 300억원 늘어났다. 증가액이 지난해 1월 1조원 감소 이후 최저 수준이다. 기타 대출은 전월 2조 3000억원에서 지난달 1조 5000억원으로 감소했고, 주택담보대출은 1조 9000억원 늘어나 증가액이 전월(3조 9000억원)의 절반 수준으로 축소됐다. 지역별로는 비수도권 가계대출이 5000억원 줄면서 1년 만에 감소로 돌아섰다. 수도권 가계대출은 5000억원 늘었지만 증가폭은 전월 3조원보다 크게 축소됐다. 한은 관계자는 “기업의 설 상여금 지급으로 마이너스 한도대출 상환이 이뤄지면서 기타 대출이 감소했다.”면서 “이사 비수기인 계절적 요인 등으로 주택담보대출 증가액도 축소됐다.”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또 불거진 이원수 친일 논란

    또 불거진 이원수 친일 논란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이원수 선생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을 놓고 경남 창원시와 시민단체가 새삼 ‘친일파 논란’을 재론하고 있다. 11일 창원시에 따르면 올해 이원수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원수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와 창원시는 그의 문학세계를 기리는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다음 달에는 학술세미나와 함께 ‘고향의 봄’ 어린이잔치를 개최한다. 10월에는 이원수 문학상 제정과 시상, ‘창원아동문학세계대축전’ 등 연중행사를 이어 갈 계획이다. 창원시는 기념사업에 2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기념사업회와 시는 앞서 이원수 선생 타계 30주기인 지난 1월 24일 의창구 서상동 ‘창원고향의 봄 도서관’에서 기념사업 선포식을 치렀다. 그러나 이런 기념사업 추진에 대해 민생민주창원회의, 마산진보연합,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창원 지역 21개 시민단체가 이원수 선생의 친일 경력을 문제 삼아 ‘친일작가 이원수 기념사업 저지 창원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기념사업과 창원시의 사업비 지원을 반대하고 있다. 대책위는 최근 창원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민 세금으로 누구를 기념하는 것은 신중하게 따져 봐야 한다.”며 기념사업 중단을 요구했다. 대책위는 1인 시위와 함께 기념사업 반대 서명운동도 할 계획이다. 민주당 경남도당도 최근 논평을 내고 “시민 혈세로 친일문인을 기리는 사업을 강력히 반대한다.”며 “창원시는 이원수 기념사업에 대한 재정지원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기념사업회는 “선생의 고향이자 문학관이 있는 창원에서 100주년 기념사업을 펼치면 창원을 문학 도시로 전국에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 기념사업을 추진하게 됐다.”며 사업을 계속 추진할 뜻을 밝혀 기념사업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박완수 창원시장은 최근 시의회에서 “이원수 개인에 대한 기념사업이 아니라 고향의 봄 동요를 창원시의 브랜드로 만들기 위한 접근이며 시민들의 여론을 수렴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원수 선생은 1911년 11월 17일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창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26년 방정환의 아동잡지 ‘어린이’에 동요 ‘고향의 봄’을 발표해 등단했다. 1935년 반일독서회모임 사건으로 체포돼 10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그는 1942년 조선금융조합연합회에서 발간하는 친일잡지 ‘반도의 빛’에 일제의 전쟁과 ‘황군병사’를 찬동하는 작품 ‘지원병을 보내며’ 등의 글을 발표해 친일 논란에 휩싸였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이슈 인터뷰] ‘한국 테크노크라트 효시’ 오원철 前 경제2수석

    [이슈 인터뷰] ‘한국 테크노크라트 효시’ 오원철 前 경제2수석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방위산업부터 중화학공업까지 경제계획을 입안, 집행했던 오원철(83) 전 청와대 경제2수석은 1977년 발행된 미국 뉴스위크지를 보 관하고 있다. ‘한국인이 몰려온다’라는 제목의 기사는 한국의 수출·중화학공업 위주의 성장을 다뤘다. 이 잡지는 지난해 9월에는 ‘한국은 진정한 기술강국이 됐다’는 특집기사를 다시 내보냈다. 기술을 해외에 전수해 먹고살 수 있는 나라. 오 전 수석이 팔십평생 꿈꾸던 나라가 실현된 셈이다. 10일 서울 서초동에서 만난 오 전 수석은 그래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정략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 대신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가 과학기술 정책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대담 박선화 경제에디터·정리 홍희경기자 →지난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이 그러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출이라는 열매를 맺었는데. -원전 수출은 사실상 40년 전에 기획된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동족을 죽이는 병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었다. 원자폭탄꽃 대신 산업성장의 기반이 되는 값싼 전기 생산과 원전 수출이라는 ‘무궁화 꽃’을 마침내 피워냈다. 당시 우리는 일본처럼 필요할 때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고, 10·26 이전에 박 전 대통령에게 우라늄농축용 분말인 ‘옐로 케이크’를 보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군부가 들어선 뒤 국내 원자력 기술개발은 사실상 중단됐다. →수출 위주 중화학공업 정책은 이제 개발도상국에 경제개발 교과서처럼 되었다. 핵심분야 가운데 가장 애착이 남는 부분은. -철강·석유화학·기계·조선 등 6대 분야 가운데 하나라도 빠졌다면 중화학공업 성장 역사는 없었다. 여기에 기초과학을 연구할 대덕연구단지까지 모두 7개 분야를 집중육성했다. 오로지 국토의 균형발전과 업종의 특성을 고려해 제대로 입지를 잡아 성공적으로 육성했다고 자부한다. 산업정책을 펴는 데 있어 정치권의 이해관계를 따르면 안 된다. →지방자치단체별로 과학벨트 유치 경쟁이 한창인데. -지금 정부에는 전문 기술관료가 발을 붙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과학벨트 논쟁에서도 과학기술자들은 소외됐다. 만일 1960~70년대 이렇게 했다면, 경제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조선업을 육성하려면 수심이 깊은 바다라는 입지를 찾아야지, 정치적인 표심을 계산해서는 안 된다. 과학벨트 선정은 과학기술자 집단에게 맡겨 놓으면 된다. 설령 그들이 싸우더라도 그 속에서 제대로 된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결정은 정치인인 대통령의 몫이 아닌가. -지휘관과 참모의 역할은 구분되어야 한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학공업 육성자금으로 100억달러를 빌려야 한다고 하자 재무부 쪽이 난색을 표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내가 전쟁을 하자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라고 설득해 정책을 강행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국민들은 전쟁에도 따라줬는데, 후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에 돈을 핑계로 주저하면 안 된다는 의미였다. 지휘관은 전체를 파악해서 방향을 정해야 한다. 물론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당시 박 대통령 집무실에는 대형 한반도 지도에 북한군과 우리군의 전력이 표시되어 있었다. 하루는 박 대통령이 불러 “적기가 뜬 뒤에는 이미 늦으니, 단추 하나로 적을 제압할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미사일 개발을 할 수 있었다. 만일 이 기술이 계속 유지발전됐다면, 북한은 연평도 도발을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지휘관이 방향을 제시하면, 참모인 기술관료는 계획서를 만들고 집행을 하며 지휘관의 머리와 손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에 힘이 실린다. 지휘관도 과학기술자를 우대하는 쪽으로 정책을 펴야한다. →테크노크라트가 역량을 발휘할 방법은. -정부에 테크노크라트가 들어가 국가계획을 세울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지금은 과학기술부도 없고, 청와대에도 과학기술자를 대변할 인물이 없는 같다. 새롭게 생긴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는 정책을 집행할 권한이 없지 않을까 우려된다. 기동타격대처럼 정책을 세우고 집행할 수 있는 태스크포스팀 같은 조직이 필요한데, 오히려 그런 팀이 너무 많고 컨트롤타워는 없는 게 현실이다. →한국의 압축성장 과정이 끝났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가. -흔히 한국의 성장방식을 ‘압축성장’이라고 한다. 일본 학자가 개발한 용어를 국내 정치권에서 사용했다. 그런데 ‘압축’보다는 ‘성장’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우리는 산업혁명을 이뤄냈다. 영국이 수공업인 방직공장에서 시작해 증기 동력을 통해 산업혁명 단계를 밟았듯이, 우리도 수출을 해야겠다는 인식을 갖게 된 뒤부터 산업혁명 단계를 밟았다. 1963년까지만 해도 생선·김·돼지털·인모 같은 것을 닥치는 대로 수출했다. 그러다가 교육도 못 받고 형편도 어려워 3~4명씩 좁은 방에 합숙하며 살던 여공들이 수출산업의 주역이 됐다. 다음에는 남성 기능사가 나섰다. 월남전 이후 미군 하청을 통해 경험을 쌓은 인력이 생기며, 중동 건설현장이라는 시장에 투입됐다. 당시 영어로 된 도면을 읽을 수 있는 인력을 키우려고 공고 3학년생 2000명을 교육시켰다. 이들을 소년병이라고 불렀다. 용접은 어른들이 해도, 도면을 읽고 지시하는 일은 소년병이 했다. 이들이 점차 성장해 경제발전의 역군이 됐다. →최근 공학한림원에서 받은 대상 상금을 기탁했는데. -여공들과 남성 기능사·기술자는 그야말로 한국 산업혁명의 주역이었다. 관료들도 열심히 했지만, 현장의 공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상금을 전부 기탁했다. →앞으로 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나. -한국 사람은 끈기가 부족하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러일전쟁 때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연구에 매진했다는 과학자의 일화가 있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자도 같은 얘기를 했다. 집적회로(IC) 기술을 들여오기 위해 한국 연구진에게 맡겼더니, 안 되는 이유만 설명하고 연구비를 더 달라고 요구했단다. 타이완 연구자에게 다시 일을 맡기자 근성 있게 매진하더니 6개월 만에 만들어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요즘 우리 젊은 세대는 끈기와 창의력이 뛰어난 것 같다. 최근 ‘위대한 탄생’이라는 프로그램과 비보이를 보면,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며 성공하려는 끈기를 발견할 수 있다. 다만 기능사·과학기술자들은 국익을 위한 사명감으로 임했으면 좋겠다. saloo@seoul.co.kr ■ 그는…박 前대통령이 국보라 부른 사나이 1970년대 후반 어느 날 저녁 서울 프라자호텔. 박정희 대통령이 창원공단 순시를 마친 뒤 오원철 청와대 경제2수석을 가리키며 “임자는 국보야, 국보.”라고 불렀다. 일순 오 수석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김정렴 비서실장 등 주변에는 침묵이 흘렀다. 오 수석은 우리나라 중화학정책을 입안하고 주도한 전문 기술관료의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공군 소령을 거쳐 국내 최초 자동차회사인 시발자동차와 국산자동차의 공장장을 지낸다. 이듬해인 1961년 5·16이 일어나 국가재건최고회의 기획조사위원회 조사과장을 맡은 이래 상공부 화학과장, 공업1국장을 맡으며 1차 5개년 개발계획과 수출제일주의 정책을 실행했다. 1970년에 차관보로 승진해 울산 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하고, 1971~79년 10·26이 날 때까지 청와대 경제2수석으로 일했다. 이때 조선, 원자력, 대덕단지 등 7개 중화학공업 정책을 주도하고 방위산업 육성을 총괄했다. 율곡사업 진행 시 깐깐한 결재 때문에 12·12 이후 신군부에 미운털이 박혀 13년간 은둔생활을 하기도 했다. 요즘도 백선엽 장군 등 지인들과 어울리며 과학기술 강국을 강조한다고. 팔순을 비켜가듯 젊은이를 혼내며 박장대소하는 게 건강 유지의 비결이란다.
  • 가계빚 어쩌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확고해지면서 가계빚 부담이 앞으로 서민층을 옥죌 전망이다. 가계빚 규모가 이미 800조원에 육박한 시점에서 금리 인상은 가계의 이자부담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합친 가계신용은 지난해 말 795조 4000억원으로 2000년 말(266조 9000억원)보다 198% 증가했다. 분기마다 14조 3000억원가량 늘어난 셈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면 가계신용은 조만간 8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가처분소득’(개인소득 중 소비·저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2000년 87.4%에서 2009년 143.0%로 뛰었다. 이에 따라 금리 인상이 가속화되면 가계의 이자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최근 시장금리와 대출금리는 가파르게 뛰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양도성예금증서(CD) 91일물 금리는 이날 연중 최고치인 3.39%로 마감했다. 연초 대비 0.59% 포인트, 2월 말 대비 0.22% 포인트 올랐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의 CD 연동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고 연 6.7% 안팎으로 인상되는 등 각종 대출금리도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11일부터 신규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고객들에게 5.27~6.77%의 대출 금리를 적용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9월 말 가계부채 기준으로 대출금리가 2% 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이자부담은 분기당 11조 7000억원에서 16조 1000억원으로 4조 4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은미 수석연구원은 “금리는 오르는 반면 증시의 변동성은 커져 가계부채를 둘러싼 여건은 나빠질 것”이라면서 “가파른 대출 증가에 금리인상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층 대출자들의 부담은 더욱 불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현재 가계부채는 고소득층이 많이 지고 있는 데다 금리를 0.25% 포인트 올린다고 해도 소득 대비 11%가량의 이자를 내고 있어 가계부채에 큰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가계부채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이달 중에 종합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기준금리 올려도 보금자리론 5% 유지할 것”

    “기준금리 올려도 보금자리론 5% 유지할 것”

    임주재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은 9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U보금자리론 금리(고정)는 가능한 한 버틸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의 예상대로 10일 기준금리가 오르더라도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연 5.0%대의 U보금자리론 고정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지난해 말 현재 가계빚 규모는 800조원에 이른다. 금리가 1% 포인트만 올라도 추가 이자부담액이 8조원이다. 금리 인상으로 가계의 이자폭탄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어서 관심이 집중된다. 임 사장은 “기준금리가 인상된다면 이후 시장금리 상황을 봐서 결정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아직까지 시장금리가 조금 더 올라도 현재 금리 수준을 유지할 여력이 있다고 보고, 당분간 안정적인 운용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준금리 인상→시중금리 인상→주택담보대출금리 인상’의 연쇄 반응이 하루나 이틀 만에 실현되는 은행 변동금리 체계와는 다른 방식의 금리 운용은 어떻게 가능할까. 임 사장은 “단기로 자금을 조달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유동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은행은 자금을 조달할 때 3분의2 이상을 예금이나 양도성예금증서(CD) 등에 의존하는데, 3~12개월짜리가 주를 이루는 단기성 자금으로 자금을 조달하니 시장금리 변동에 따라 대출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10년 이상 장기로 운용되는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하려면 대출 자산을 기반으로 주택저당증권(MBS) 등을 발행해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금융기관이 대출을 실행하고 나서도 자산으로 보유하는 등 외형만 키우는 몸집 불리기 경쟁을 해왔다. 이렇게 되면 변동금리 형태로 가계를 불안하게 만드는 대출구조 자체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나마 금리가 낮고 집값이 빠르게 상승하는 국면에서는 부동산을 처분해 은행빚을 갚아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큰 위기가 아니었지만, 주택시장 구조에 체질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임 사장은 지적했다. 그는 “만일 가계가 빚을 이기지 못해 은행이 담보로 잡은 집을 강제집행하게 되면 시장에 엄청난 파급효과가 발생해 부동산 시장이 더 침체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임 사장은 “MBS 발행 등을 통해 안정적으로 가계대출을 관리할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은행들이 지금까지처럼 시장금리 변화에 따라 오르면 오르는 대로 이자를 주고, 대출자에게는 오른 이자를 받는 식의 ‘전당포 영업’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은행은 금융 전문가로서 면모를 보여야 한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글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저축률 2.8% ‘美의 절반’… 미래 경제활력 위축 우려

    저축률 2.8% ‘美의 절반’… 미래 경제활력 위축 우려

    우리나라의 가계저축률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최대 소비국으로 인식되는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낮은 저축률은 빠르게 증가하는 가계부채와 함께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7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제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 저축률은 2.8%로 자료가 제시된 20개 회원국의 평균 저축률인 6.1%에 훨씬 못 미쳤다. 덴마크(-1.2%), 체코(1.3%), 호주(2.2%), 일본(2.7%)에 이어 다섯 번째로 낮은 비율이고, 미국(5.7%)의 절반 수준이다. 우리의 저축률은 2004년 9.2% 이후 계속 감소 추세에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미국과 우리나라의 저축률이 역전됐다. 2007년 저축률이 2.1%였던 미국은 2008년 4.1%, 2009년 5.9%로 올라섰다. 우리나라는 2006년 5.2%에서 2007년과 2008년 2.9%로 줄었다가 2009년 3.6%로 반등하는 듯했으나 지난해 2.8%로 내려앉고 말았다. 저축률 급감은 가계소득 증가는 둔화됐는데 각종 사회부담금 증가에 소비행태의 변화 등으로 씀씀이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의 분석에 따르면 연평균 가계소득 증가율은 1980년대 16.9%였으나 1990년대 들어 12.7%로 떨어졌고 2000년대에는 6.1%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가계소득 증가율은 5.8%였다. 반면 2010년 소득 대비 가계지출 비중은 전국 2인 이상 가구 실질 기준 82.2%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다. 노령화에 따른 보건비, 사교육 증가로 인한 교육비 외에도 생활양식 변화에 따른 통신비 및 오락·문화비가 가계지출 증가를 주도했다. 특히 세금, 건강보험료 등 마음대로 줄일 수 없는 비소비지출도 대폭 늘어나 가계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가계지출 중 비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3년 20.8%였으나 2010년에는 22.8%로 늘어났다. 비소비지출이 늘어 처분가능소득이 줄었지만 소비성향은 오히려 늘어났다. 소비성향은 2003년 74.1%였으나 지난해 75.3%를 기록했다.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 소비성향 증가는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진다.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합친 가계신용은 지난해 말 795조 3759억원으로 1년 사이에 61조 7159억원(8.4%)이 늘어났다. 저축률이 낮은 대신 가계부채가 많기 때문에 금리가 올라 이자부담이 늘어나면 가계에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저축률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저금리”라고 지적했다. 시중금리가 계속 떨어지면서 저축의 매력이 떨어졌다는 것. 강 연구원은 “우리 경제의 대표적 저축 주체가 가계인데 가계 저축률이 하락하면 투자여력이 줄어 잠재성장률을 잠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개인 저축과 국내 투자는 상관성이 높아 저축률이 낮은 수준에 머물면 미래 투자와 소비여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인구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의료비와 생활비 등으로 저축할 여력이 없어지는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주말 영화]

    ●싸움의 기술(OBS 일요일 밤 11시 20분) 우리 모두 배워야 할 싸움의 기술, 맞다보면 생각나는 싸움의 기술들이 있다. 아무 이유 없이 맞고 사는 게 일과이며 쉼 없이 구타를 유발시키는 소심한 ‘부실고딩’ 송병태(재희·오른쪽). 병태는 안 맞고 사는 평안한 삶을 꿈꾸며 온갖 책을 독파했으나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다. 그러던 어느 날 대명 독서설 특실 B호에 기거 중인 한 낯선 남자를 발견한다. 놀라운 어록들과 고수의 포스를 지닌 그분. 그의 이름은 오판수(백윤식·왼쪽). 15년 전, 전설적인 싸움실력으로 전국을 제패했던 고수 중의 고수. 모든 것에 무심한 듯 보이지만 병태의 숨은 재능은 그의 흥미를 자극한다. 하지만 맞고만 살아온 자의 두려움을 깨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응용력 부족, 경험 부족 속에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싸움의 연속인 세상에서 그렇게 초절정 부실고딩 병태와 전설의 은둔고수 판수가 만났다. 그분과 함께라면 두려울 게 없다. 과연 병태는 판수의 기술을 통해 진정한 고수로 거듭날 수 있을까. ●명화극장 엘 시크레토-비밀의 눈동자(KBS1 토요일 밤 12시 35분) 25년 전 잊을 수 없는 살인사건과 말할 수 없는 사랑이 동시에 시작됐다. 벤야민 에스포지토는 25년 전 목격한 젊고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강간살인 사건이 가슴깊이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다. 결국 이 사건에 대해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 기억의 편린을 쫓아 사건 당시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자신의 상사이자 사랑했던 여인 이레네가 떠오르고, 기억 속 사건은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을 예고하는데…. 1970년대 아르헨티나, 끔찍한 강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의 남편과 여검사, 검사보의 합심으로 범인은 잡혀 종신형을 받게 된다. 그러나 정부는 반정부 게릴라 소탕에 협력한다는 이유로 범인을 풀어주고,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된다. ●나바론 요새(EBS 토요일 밤 11시 00분) 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 2000명이 그리스 에게해에 있는 케로스섬에 고립된다. 독일군 최정예 부대는 영국군을 전멸시키기 위해 출전 준비를 끝내고, 영국군은 독일군의 대공세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케로스섬으로 가는 유일한 길인 나바론 섬에는 두 대의 거포가 버티고 있다. 최신 레이더 장비를 갖춘 이 거포는 어떤 전함도 거뜬히 폭파시키는 괴력을 자랑하며 나바론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 영국군은 독일군의 대공세를 불과 일주일 남겨놓은 시점에서 거포를 폭파하고 고립된 영국군을 구출하기 위해 일생일대의 작전을 세운다. 그리고 나바론 섬의 가파른 절벽을 오르기 위해 암벽 등반가 맬로리 대위와 폭파 전문가 밀러 하사 등 6인의 특공대를 급파한다.
  • 이동원 “새 시즌부터 메달 딸래요”

    영락없는 막냇동생이었다. 키가 한뼘은 더 큰 형들 사이에 선 소년은 거뭇거뭇한 수염으로 카리스마를 뽐냈다. 하지만 앳된 얼굴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아직 15세가 안 된 풋풋한 나이. ‘레퀴엠’에 맞춰 힘차게 링크를 갈랐지만 긴장감을 숨기지 못했다. 165㎝의 키에 조막만 한 얼굴과 길쭉한 팔다리가 인상적인 ‘피겨 소년’ 이동원(15·과천중) 얘기다. 이동원은 3일 강릉빙상장에서 계속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주니어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 남자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42.25점을 받았다. 지난해 9월 기록했던 시즌 최고점 52.11점에 한참 모자라는 점수다. 목표였던 ‘톱 10’은 물 건너갔고 이름은 순위표 맨 아래에 놓였다. 상위 24명에게 주어지는 프리스케이팅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걱정했던 왼쪽 무릎 통증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첫 과제였던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부터 꼬였다. 러츠를 아예 뛰지 못했고, 토루프도 더블로 처리했다. 스핀은 회전이 부족했다. 스텝도 레벨 2를 받았다. 결국 기술점수(TES) 20.43점에 예술점수(PCS) 21.82점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애초 이동원은 ‘피겨 천재’로 통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더블악셀을 성공시켰고, 이듬해 5종류의 트리플 점프를 모두 뛰었다. 국내 남자선수 가운데 처음으로 국제대회(트리글라프 트로피 2009)에서 우승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당연한 듯(?) 노비스 부문(13세 이하)을 평정했고, 올 시즌 주니어 무대에 뛰어들었다. 데뷔전이었던 지난해 9월 주니어그랑프리 2차대회에서 4위(165.12점)를 차지하며 파란을 일으켰고, 이어진 그랑프리 4차대회에서도 11위(154.07점)로 무난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러나 이번 세계대회에서는 경험 부족과 무릎 부상, 컨디션 난조가 발목을 잡았다. 이동원은 “많이 긴장했다. 점수가 높은 첫 점프에서 실수한 게 문제였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이 대회를 끝으로 이번 시즌을 마무리했다. 조금만 쉰 뒤 더욱 열심히 훈련해서 새 시즌 국제대회에서는 반드시 메달을 따겠다.”고 의욕을 다졌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금융당국, ‘신한’ 잇단 경고…은행 군기잡기?

    금융당국, ‘신한’ 잇단 경고…은행 군기잡기?

    금융당국의 ‘신한 때리기’가 계속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신한금융지주를 본보기 삼아 ‘은행 군기잡기’에 나섰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3일 신한금융에 대해 “조직과 인사에서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일갈했다. 김 위원장은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신한금융은) 국민에게 갈등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달라지는 모습이 없다면 신한금융의 미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도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은행장들과 조찬간담회를 가진 뒤 신한금융 이사회가 라응찬 전 회장에게 스톡옵션 행사를 일부 허용한 것과 관련,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게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질타했다. 이어 “라 전 회장과 이사회를 다 포함한 문제”라면서 “이사회가 기능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게 바로 이런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신한금융 이사회는 최근 라 전 회장에게 2005~2007년 스톡옵션 부여분(30만 7000주)의 행사 권한을 허용했다.  물론 신한금융에 대한 ‘옐로카드’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 1일 김 위원장은 신한금융 회장을 둘러싼 내부 파벌경쟁이 5개월 넘게 지속되고 있는 상황을 놓고 “당국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라.”며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하지만 이날 금융당국의 두 수장이 같은 날 동시에 신한금융을 질타한 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우선 금융당국이 신한금융의 새 경영진을 마뜩지 않게 바라보는 인식이 깔려 있다. 신한금융 회장 선출 결과에 대해 금융당국은 공식 언급을 피했지만 한 관계자는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평가했다. 신한금융을 시범 케이스로 느슨해진 은행권 전체의 분위기를 다잡겠다는 의도도 읽힌다.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최근 신한사태에 대해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견제받을 일이 없다고 다른 금융회사들이 착각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의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때문에 금융당국의 경고 메시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금융업계는 바라보고 있다.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의 경우 스톡옵션을 모두 취소당한 점에 비춰 라 전 회장의 스톡옵션을 용인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증가, 저축은행 구조조정, 전세난 등 난제를 안고 있는 금융당국 입장에서 은행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라면서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하지 않고 독주하는 신한금융에 경고를 보내 은행의 공익성을 환기시킨 측면도 있다.”고 풀이했다.  라 전 회장이 자진해서 반납하는 방안은 이미 물 건너갔다. 금융당국의 지적 이후에야 신한금융은 라 전 회장이 지난달 말 2005~2006년 스톡옵션 부여분에 대한 권한을 행사해 세후 기준으로 20억원의 차익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홍지민·홍희경기자 icarus@seoul.co.kr
  • [연극리뷰] ‘특급호텔’ -美 여성작가가 본 위안부의 삶·고통

    [연극리뷰] ‘특급호텔’ -美 여성작가가 본 위안부의 삶·고통

    힘들었다. 연극 ‘특급호텔’을 보는 내내 말이다. 금순, 옥동, 보배, 선희 등 작품 속 4명의 위안부 여성들이 토해내는 치욕의 경험은 관객에게 적나라한 고통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가슴에 묻어뒀던 한(恨)을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빌려 쏟아내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전해져 오는 무게감을 견뎌내기 어려웠다.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무대 위에 올려진 연극 ‘특급호텔’은 일본강점기 한국 위안부 여성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제목은 전쟁 당시 위안부 막사를 지칭했던 ‘특급호텔’(Hotel Splendid)에서 따왔다. 극은 위안부 여성이 느낀 분노보다 고통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극이 시작되자마자 관객은 위안부 여성들의 삶을 그대로 투영한 무대를 접하게 된다. 무대는 360도 회전하며 어느 순간 지그재그의 굽고 험난한 길을 만든다. 등장인물들은 이 무대 위를 거닐며 위안부의 삶과 전쟁에 의해 희생된 어린 일본 군인들의 이미지를 묘사해 나간다. 독백에 가까운 시적 대사나 자매애를 보여주는 그녀들의 수다로 위안부의 고통을 표현한다. 극에 등장하는 위안부 여성 선희, 금순, 옥동, 보배는 모두 10대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20만명에 달했던 위안부를 상징한다. 특히 위안부 가운데 80%가량이 집에서 끌려온 한국의 소녀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들은 고향의 모습과 가족의 얼굴들, 위안부로 끌려오게 되는 과정에 대해 생생히 증언한다. 특히 군인들에 의해 ‘꽃순(처녀성)이 짓눌리는’ 순간을 묘사할 때 객석에는 잔잔한 아픔이 전해진다. 금순은 위안소 탈출을 시도한다. 성공한다. 순간 짜릿하다. 하지만, 이내 붙잡혀 다리가 잘리고 만다. 금순의 탈출로 인해 옥동은 처참하게 고문당한다. 그 모습을 보며 힘들어하던 금순은 자살을 택하고, 보배는 사랑했던 가미카제 조종사와 이별을 맞는다. 극은 일본의 패전으로 막을 내린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녀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대사도, 배우들의 절규도 다소 고통스럽고 불편했지만 극은 그 고통을 감내할 만한 충분한 감동을 준다. 원작자는 라본 뮬러. 미국 여성 작가다. 위안부 여성을 소재로 했지만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제3국인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그려냈다는 평이다. 극단 초인이 만든 ‘특급호텔’은 6일까지 공연된다. 1만 500~2만 5000원.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러, 쿠릴열도에 미사일… 영토갈등 고조”

    “러, 쿠릴열도에 미사일… 영토갈등 고조”

    남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를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의 영토분쟁이 고조될 조짐이다. 러시아는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남쿠릴열도에 실효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미사일과 공격용 헬리콥터를 배치할 계획이라고 아사히신문이 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의 보도를 인용해 러시아군 참모본부 고위관계자가 쿠릴열도 연안에 초음속 대함 순항미사일인 야혼트를 장착한 이동식 미사일시스템을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은 대공 미사일과 신형 공격용 헬리콥터도 배치할 계획이다. 공격용 헬리콥터는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남쿠릴열도의 에토로후(러시아명 이투루프)에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쿠릴열도에 배치할 대함 미사일은 사정거리가 300㎞이며 200㎏ 이상의 탄두를 운반할 수 있다. 현재 쿠릴열도에 주둔 중인 제18 포병사단은 1970년대 실전배치된 소련제 방공 미사일 스트렐라10 12기, 50년 이상 된 소련제 탱크 T55 94대, 제2차 세계대전 때 생산된 122㎜ 대포 M30 18문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러시아는 1956년의 일본·소련 공동선언에서 남쿠릴열도 4개 섬 가운데 시고탄과 하보마이를 일본에 반환하는 대신 대규모 경제협력을 원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 일본과의 영토분쟁이 격화되면서 사실상 이를 백지화했다. 극동의 석유와 가스 등 천연자원 개발에 신경을 쓰고 있고 일본이 투자하지 않을 경우 한국과 중국을 끌어들인다는 방침이다. 일본 정부의 반응은 신중하다. 내각부의 시가타 노리유키 부홍보관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는 러시아의 미사일배치 상황을 매우 면밀히 살피고 있다.”면서 “지난달 일·러 외교장관회담에서 논의된 것처럼 양국 정부 관계자들 간에 원활한 대화뿐만 아니라 안보 분야에서의 양국간 상호 교환도 촉진해야 한다.”고 에둘러 말했다. 앞서 마에하라 세이지 일본 외상은 지난달 러시아를 방문해 양국 간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조건으로 쿠릴열도 4개 섬 반환 협상의 돌파구 마련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일본은 러시아 극동 개발의 주도권을 한국과 중국에 선점당할 가능성이 있어 러시아를 강력하게 몰아붙일 수도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미사일 배치 등 군사적 행동이 강화될 경우 보수세력 등이 위기에 처한 간 나오토 내각을 더욱 몰아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열린세상] 새 세상이 열리는 중동현장에서/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열린세상] 새 세상이 열리는 중동현장에서/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지난 두달 가까이 중동에서 현장연구를 하고 막 돌아왔다. 잘못된 정권을 뒤엎으려는 거센 분노와 새 세상을 만들려는 뜨거운 열기의 한가운데서 나도 새로운 공부를 하고 왔다. 9·11테러 이후 10년간 세상이 바뀌었듯이 중동의 아랍국가들도 엄청나게 변했음을 느꼈다.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이 이번 사태를 종파 간·부족 간 권력 갈등과 소외의 문제로 분석하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번 아랍 민주화 시위는 50년 동안 억눌려 왔던 민주, 인권, 복지, 삶의 질을 향한 근원적 변화의 문제이다. 아랍세계이니 다른 세계와 다를 것이라는 전제가 잘못되었다. 다만 독립 이후 최초로 경험해 보는 민주화 실험의 서투른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왜 튀니지에서 촉발된 정권 퇴진 시위가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42년 철권통치의 카다피까지 무너뜨리면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이웃 왕정 산유국으로까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고 있는가? 아랍은 80년 전만 해도 하나의 공동체였다. 아랍어를 사용하고, 이슬람교를 믿으며 아랍인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면서 1300년 동안 하나라는 집단의식이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런 아랍세계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서구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22개의 개별국가로 쪼개져 버린 것이다. 더러는 왕정을 유지하고 더러는 군사 쿠데타를 통해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거듭났다. 통치체제는 각각이지만 그들을 묶어 두는 아랍정신은 지금도 맥이 통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서로에게 영향을 받은 거대한 변화의 욕구가 이슬람식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부르짖고 있다. 첫째,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 중심에는 이념이나 종교 대신 철저하게 삶이 들어와 있었다. 치솟는 물가와 대학을 나와도 직장을 구할 수 없는 청년실업 문제, 30~40년 한결같이 억눌러 온 권위주의 왕정과 군사독재정권을 향한 극에 달한 불만과 분노, 자유롭게 말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은 희구가 자욱이 깔려 있었다. 둘째, 그들은 새로운 삶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소셜네트워크의 힘이고 인구의 60~70%를 차지하는 20대 후반 이하 젊은 층의 요구였다. 그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세상과 실시간으로 호흡하면서 자신들의 처지를 처절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유선전화 시대를 거치지 않는 파격적인 변화의 속도다. 록카페에서 몸을 흔들고 여성들의 히잡 색깔이 화려해졌다. 외국의 유명 브랜드 회사들이 연이어 명품 히잡을 출시하면서 이슬람 여성들의 패션도 첨단을 달리고 있었다. 셋째, 그들은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부르짖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1세대 지도자들은 비록 장기집권과 독재적 통치형태를 밟았어도 기본적으로 독립전쟁의 영웅으로서, 혁명 지도자로서, 국부로서 최소한의 국민 공감대와 신뢰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공헌도 못한 그의 자식들이 권력을 세습하고 호화로운 사치행각에 국가의 부를 탕진할 때 그들은 좌절하고 때로는 침묵으로 인내해야만 했다. 넷째는 미국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주문이다. 독재정권에 시달려온 아랍 민중들은 권력자들을 비호해온 미국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동시에 미국 주도의 새로운 세계질서 구도에 편승하고자 하는 욕구가 또한 묘하게 존재한다. 따라서 미국이 종래처럼 이스라엘 안보와 석유 이익이란 두개의 축을 지키기 위해 독재정권과도 협력하고 지원해 주던 중동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랍 국민들은 미래의 세계질서는 미국-서구, 중국-동아시아 축과 함께 중동-이슬람 축이 굳건히 자리잡아 함께 공존하며 협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 이제는 우리도 중동-이슬람 세계를 무지와 편견 속에 주변부로 몰아내기보다는 주류세계의 파트너로 인식하고 중심부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인구 15억에 57개국을 거느린 세계, 자원과 자본을 가진 거대한 시장을 버려두고 진정한 글로벌 경쟁을 논하는 것은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다.
  • [리비아 내전] 소련탱크 달리고, 佛전투기 날고…리비아는 지금 세계 무기전시장

    [리비아 내전] 소련탱크 달리고, 佛전투기 날고…리비아는 지금 세계 무기전시장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진영과 반정부군이 사용하는 무기들을 살펴보면 리비아가 전 세계의 무기 전시장이 된 듯한 느낌마저 든다. 굴곡 많은 현대사를 거쳐 온 리비아의 모순과 갈등이 이들이 손에 쥔 무기에 그대로 녹아 있다. 근대 이후 리비아군의 뿌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리비아에서 작전을 전개했던 영국군과 그 이후 리비아에 군사기지를 두었던 미국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옛 소련과 수십년간 맺었던 긴밀한 군사협력의 유산은 지금도 개인화기인 AK47 소총부터 T72 탱크, 주요 전투기 등에 그대로 남아 있다. 카다피가 정권 안위를 위해 넘쳐 나는 오일머니로 각종 무기를 사들이면서 브라질, 체코슬로바키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유고슬라비아, 심지어 북한산 무기까지 리비아로 흘러들어 왔다. 미국산 치누크 수송헬기와 허큘리스 중형 수송기, 프랑스산 미라주 전투기, 벨기에산 FNF2000 돌격소총 등이 대표적이다. 리비아 지상무기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옛 소련 무기 계열이라고 할 수 있다. 카다피가 1969년 쿠데타로 왕정을 폐지하며 강력한 반미노선을 견지한 데 따른 결과였다.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전략연구소(IISS)에 따르면 쿠데타 직후인 1970년부터 소련이 무너진 1991년까지 소련은 190억 달러나 되는 무기를 리비아에 판매했다. 1988년 로커비 민항기 폭파 사건으로 리비아가 유엔의 군사 제재를 받게 되면서 소련이 잃게 된 잠재적인 무기판매 수익만 해도 75억 달러나 될 정도다. 수많은 엘리트 장교들이 소련으로 유학갔다. 그 가운데 한명이 바로 시위대를 유혈진압해 악명을 떨친 카다피의 6남 카미스(33) 32여단 사령관이다. 정부군 일부가 이탈하면서 정부군이 보유하고 있던 무기가 속속 반정부군 손에 넘어가고 있다. 국경 밀무역을 통해 반입하는 무기도 상당한 수준이라는 외신 보도도 나온다. 초기에는 AK47 소총처럼 기본적인 소형 개인화기만 들고 있던 반정부군이 차츰 RPG7 대전차로켓포, PK 기관총, KPV 중기관총은 물론 리비아 공군의 폭격에 맞서기 위한 DShK 대공 중기관총 같은 중화기도 확보했다. 최근에는 BMP1 장갑차와 T72 탱크는 물론 대공미사일 같은 기계화 무기까지 손에 넣기 시작했다. 주전장인 지상전력에서는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무장 수준이 갈수록 비등해지고 있지만 아직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바로 공군 전투기를 이용한 폭격이다. 일부 대공화기로 감당하기에는 리비아 공군이 보유한 미그기와 수호이 계열 전투기들은 너무 강력하다. 하지만 전투기를 조종하는 군인들이 폭격 명령을 거부해 버리면 얘기는 달라진다. 리비아 공군 조종사 2명이 지난달 21일 폭격 명령을 거부하고 미라주 F1 전투기 두 대를 타고 몰타로 망명했다. 이틀 뒤에는 공군 조종사들이 벵가지 시내에 폭탄을 투하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수호이22 전투기를 고의로 추락시키기도 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금요예배 시민 최소 68명 사망”

    ‘수난의 도시’ 트리폴리가 또 한번 핏빛으로 물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과 독일·이탈리아군 간 격전으로 잿더미가 됐던 리비아의 수도는 25일(현지시간) 이후 불 붙은 정부군과 반(反) 카다피 세력 간의 충돌로 생지옥이 됐다. 벼랑 끝에 선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친정부 성향의 민간인에게 총과 돈을 나눠 주며 자신을 위한 ‘최후의 일전’을 독려하고 나섰고 반정부 시위대도 과도 정부를 구성, 배수진을 쳐 이번 주가 리비아 정국의 최대 고비가 될 듯하다. ‘피의 금요일’을 보낸 뒤 맞은 주말 동안 트리폴리 시내 곳곳은 무덤으로 변해 있었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카다피 친위부대인 혁명수비대와 용병 등으로 구성된 친정부 세력은 25일 금요일 정오 예배 뒤 시민들이 이슬람사원에서 거리로 몰려나오자 무차별 사격을 시작했다. 목격자들은 지붕 위에 배치된 저격수와 고사포 등으로 중무장한 정부 세력이 시위대를 향해 탄환을 빗발처럼 쏟아부었다고 전했다. ‘죽음의 목격담’도 곳곳에서 들려왔다. 자신의 이름이 ‘후세인’이라고 밝힌 한 시민은 “내 눈으로 68명 이상이 죽는 걸 똑똑히 봤다.”면서 “카다피 측이 시체를 싣고 갔는데 어디로 향했는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정부군이 사망자 수를 감추려고 시신을 해변가로 옮겨 태우고 있다는 얘기가 퍼지고 있다. 리비아 정부의 초청으로 트리폴리에 들어간 서방기자들은 수도가 폭풍전야의 고요함에 빠져들었다고 전했다. 카다피 측의 호위를 받으며 트리폴리 시내를 돌아본 뉴욕타임스(NYT) 기자는 “정부 근로자들이 ‘카다피는 흡혈귀’ 등의 담벼락 낙서를 허겁지겁 지우고 있었고 빵을 배급받으려는 마을 주민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고 보도했다. 반정부 시위대가 트리폴리 일부를 점령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마지막 요새’마저 함락 위기에 빠지자 카다피는 자신을 지지하는 시민들에게 총을 나눠 주며 내전을 부추기고 있다. 트리폴리의 한 시민은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카다피 지지자들이 26일 혁명위원회 본부에 들어가 총기를 받아 나오는 것을 봤다.”면서 “정부 측은 시위대 사냥에 나설 시민 3명을 데려오는 사람에게 자동차와 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또 리비아를 벗어나려는 외국인들의 ‘대탈출’ 행렬도 계속됐다. 제네바 소재 유엔 난민 최고대표사무소(UNHCR)는 27일 성명을 통해 “우리 긴급상황팀은 지난 1주일 새 리비아에서 튀니지와 이집트 등으로 탈출한 약 10만명의 난민을 지원하고 있다.”고 발혔다. 한편 제2의 도시 벵가지를 거점으로 리비아 동부를 장악한 반정부 시위대는 무스타파 압델 잘릴 전 법무장관이 이끄는 과도정부를 구성하기로 했다. 카다피에 항명한 뒤 시위대의 편에 섰던 잘릴 전 장관은 “3개월 뒤 선거를 치를 때까지만 과도정부가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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