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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전승절때 선보인 ICBM은 가짜 모형”

    “北 전승절때 선보인 ICBM은 가짜 모형”

    전승절(정전협정 체결 기념일) 60주년에 북한이 선보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실제 미사일 크기와 같은 가짜 모형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14일(현지시간) NBC방송에 따르면 미국 정부와 민간 군사 전문가들은 지난달 27일 북한이 전승절 기념 군사퍼레이드 때 공개한 ICBM ‘화성 13호’의 사진을 정밀 분석한 결과 ‘가짜’ 미사일로 추정되는 몇 가지 근거가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22년간 근무한 제임스 오버그 NBC방송 군사전문기자는 “탄두의 표면이 매끄럽지 못하고 물결치듯 두둘두둘하다”며 “진짜 탄두라면 대기 재진입 시 공기저항 등을 고려해 아주 매끄럽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국방·행정 분야 민간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 출신인 독일의 북한 미사일 전문가 마르쿠스 쉴러는 “ICBM에 필수적인 역추적 로켓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며 “궤도 진입을 하려면 비행체를 감속시키는 역추진 로켓을 이용해 추진체를 분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북한이 미사일 보유 대수를 과장하려는 의도로 표면에 적힌 번호만 바꿔 열병식에 내놓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의 한반도 전문가인 알렉산더 만수로프 연구원은 박도춘 북한 군수담당 비서가 최근 종적을 감춘 것을 언급하며 “북한이 (미사일 개발 등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해 북한의 로켓기지를 방문해 직접 확인한 오버그는 “북한의 위성 광명성 3호가 궤도 진입에 성공한 것은 사실인 만큼 북한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최훈진 기자 choigzia@seoul.co.kr
  • 독일의 끝없는 반성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역사 왜곡이 계속되는 가운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슈피겔 등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슈테판 자이베르트 총리실 대변인은 메르켈 총리가 오는 20일 뮌헨 남부에 있는 다하우 나치 강제수용소 기념관을 찾아 헌화하고 연설도 할 예정이라고 이날 밝혔다. 독일 수장이 나치 수용소를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다. 메르켈 총리의 이번 방문에는 홀로코스트(2차 대전 당시 벌어진 유대인 대학살) 생존자와 뮌헨 바이에른주 교육부 장관 등이 동행할 예정이라고 대변인이 전했다. 메르켈 총리가 다하우 수용소를 방문한 뒤에는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이 나치가 학살을 벌였던 프랑스 북부 오라두 쉬르 글란 마을을 방문해 희생자를 추모할 예정이라고 DPA통신이 보도했다. 다하우 수용소는 2차 대전 발발 전인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후 만든 정치범 수용소다. 1945년 미국이 수용소를 장악하기 전까지 히틀러는 유대인과 전쟁 포로,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등 20만명을 이곳에 가뒀다. 이 과정에서 질병과 기아로 숨진 사람만 4만 1000여명에 이른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사설] 가난한 독립유공자·유족 생계대책 절실하다

    광복절 68주년 아침에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친 유공자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다. 그러나 많은 유공자들이 힘든 삶을 살고 있고 후손들에게까지 가난이 되물림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해마다 3·1절이나 광복절이 되면 독립유공자에 대한 지원이 미흡한 점을 지적하지만 정부가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다. 국가보훈처가 조사한 결과 독립유공자와 유족 10가구 중 4가구가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거나 생계에 곤란을 겪고 있다.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독립유공자 후손의 80%가 고졸 이하의 학력이며 60%는 수입이 없다고 한다. 독립유공자는 가난한 이유가 있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그나마 있는 집과 재산도 운동 자금으로 사용했거나 일제에 강탈당했기 때문이다. 자녀들을 공부 시킬 여력도 없었고 가난만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정부는 독립유공자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생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유공자와 유족들은 서훈 등급에 따라 매월 수십만원에서 150만원 정도를 받지만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친다. 더욱이 기초생활수급자인 유공자의 유족은 유공자 보상을 동시에 받을 수 없게 돼 있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유공자 연금이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액보다 적을 수도 있다. 또 광복 이후 사망한 애국지사는 배우자나 자녀 1명만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손자·손녀는 연금을 받지 못한다. 증거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유공자의 후손임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광복회에 따르면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300여만명이고 독립운동을 하다 옥사·병사·전사 등으로 숨진 순국선열은 15만명에 이른다. 이 중에 유공자 지원을 받는 이들은 생존자 102명과 유족 7100여명에 불과하다. 이는 전체 보훈대상자의 1%에도 못 미친다. 정부는 독립유공자 지원 정책을 다시 점검해 적절한 보상책을 강구해야 한다. 친일활동을 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부를 축적해 떵떵거리며 사는 반면 독립유공자들은 생계조차 잇기 어려운 현실이 개탄스럽기만 하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 유공자들을 더는 소홀히 대우해선 안 된다. 그래서야 앞으로 누가 위기 상황에서 국가를 위해 몸을 던지겠는가.
  • 15일 ‘아베각료 4인’ 야스쿠니 참배…우경화 치닫는 그들은 누구

    15일 ‘아베각료 4인’ 야스쿠니 참배…우경화 치닫는 그들은 누구

    한국의 광복절이자 일본의 패전기념일인 15일은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동북아 긴장이 최고조로 높아지는 날이다. 특히 올해는 일본의 초당파 의원연맹인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을 비롯해 중·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자민당 출신 젊은 의원들이 가세해 참배 인원은 예년보다 다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들의 참배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아베 신조 정권의 각료 참배다. 각료 18명 중 14일 현재까지 참배 의사를 직간접으로 밝힌 각료는 후루야 게이지(61) 납치문제담당상 겸 국가공안위원장, 이나다 도모미(54) 행정개혁담당상, 신도 요시타카(55) 총무상, 다무라 노리히사(49) 후생노동상 등 모두 4명이다. 참배 의사를 밝힌 각료 중 가장 중량감 있는 인사는 후루야다. 자치대신(현 총무상)을 지낸 외삼촌인 후루야 도루의 양자로 입적돼 1990년 그의 선거구를 물려받아 중의원에 처음 당선된 뒤 현재까지 7선의 중진이다. 후루야는 자민당 내에서도 강경파로 분류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해 일본 정부의 시인과 사과를 요구하며 2007년 미국 하원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결의안에 대해 철회를 요구하는 광고를 워싱턴포스트에 낸 의원 중 한 사람이다. 아베 총리와는 세이케이대학 선후배 사이인 데다 후루야가 아베 총리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당시 외무장관)의 비서(1984년)를 지내 매우 가깝다. 변호사 출신인 이나다는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세워왔다. 2006년 우익단체인 ‘일본회의’가 주최한 집회에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저지하려고 하는 망은의 무리에 도덕 교육 등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이나다는 2011년 8월 1일 울릉도를 시찰하러 한국에 왔다가 김포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됐다. 이때 이나다와 동행한 인물이 신도다. 신도는 특히 주변국과의 영토 분쟁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표명해왔다. 2010년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독도 문제에 대해 공개 질의를 했고, 지난해 8월 18~19일 ‘일본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의원 연맹’의 이름으로 센카쿠열도를 시찰했다. 신도의 경우 외할아버지가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이오지마 전투를 지휘하다 전사한 구리바야시 다다미치다. 이 때문에 신도는 지난 4월 야스쿠니 신사의 춘계 대제에 개인 자격으로 참가했다. 가장 늦게 참배 의사를 밝힌 다무라는 정치가 집안 출신으로 1996년 고향인 미에현에서 은퇴한 삼촌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중의원에 당선된 6선의 정치인이다. 2002년 고이즈미 내각에서 후생노동성 정무관 등을 지냈고 2006년 제1차 아베 내각에서는 총무 부(副)대신을 맡았다.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에 가입해있는 다무라는 지난 4월에는 공물을 봉납했다. 다만 네 각료는 공식적으로는 “(신사 참배가)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밝히고 있어 15일 참배 여부가 주목된다. 야스쿠니 신사 관계자는 “15일에 몇명이 올지 알 수 없지만 국회의원단이 오전 11시쯤 참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함께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사무국 관계자는 “총 회원은 244명인데 해마다 그러했듯 50명 이상은 참배하러 갈 것 같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15일에는 55명이, 2011년에는 52명, 2010년 41명이 참배해 최근 3년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들의 숫자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도쿄 황성기 특파원 marry04@seoul.co.kr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지상파 하이라이트]

    ■생로병사의 비밀(KBS1 밤 10시) 현재 치매 인구는 54만명.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급격히 늘고 있는 치매환자가 2025년이면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70%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 치매는 과연 어떤 병일까. 환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도 함께 고통받고 있다. 배회, 불결행동, 망상, 공격성 등으로 심각한 알츠하이머 치매 중기 환자들을 만나본다. ■특별기획 드라마 칼과 꽃(KBS2 밤 10시) 연충은 감옥에 갇힌 소사번을 자기편으로 회유하려 하고, 연남생(노민우)은 연충을 의식하고 소사번을 죽이려 한다. 한편 온사문이 경질되어 공석이 된 대대로 자리를 놓고 대신들이 신경전을 벌인다. 양진욱은 연개소문의 공덕비를 세우겠다며 백성들을 쥐어짜 내 큰 공사를 벌인다. 금화단은 양진욱의 만행에 분노한다. ■수목미니시리즈 투윅스(MBC 밤 10시 55분) 태산(이준기)은 호송차가 교통사고가 난 틈을 타 탈주를 감행한다. 미숙(임세미)을 살해한 범인이 태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재경(김소연)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태산의 탈주 소식을 전해 들은 승우(류수영)는 분노한다. 한편 미숙의 유품을 정리하던 재경은 미숙의 속옷에서 디카의 행방을 알려주는 단서를 찾게 된다. ■주군의 태양(MBC 밤 10시) 한 발엔 구두, 다른 한 발은 맨발인 채 쩔룩대며 기괴한 몰골로 자신을 쫓아오는 분홍신 귀신 때문에 태공실(공효진)은 두렵다. 매번 주군(소지섭)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매몰차게 거부당한다. 한편 공실의 몸속에 들어온 차희주는 주군 앞에 찾아가 주군이 자신에게 던졌던 말을 그대로 전하고, 이에 놀란 주군은 굳어서 공실을 경계한다. ■특선다큐멘터리 히로시마 1, 2부(EBS 밤 12시 5분)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미국은 포츠담 선언을 통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지만 일본 지도부는 이를 묵살한다. 결국 1945년 8월 6일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히로시마에 투하된다. 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쟁에서 사용된 원자폭탄이었는데…. ■리얼대탐험(OBS 밤 9시 50분) ‘문명의 붕괴’, ‘타이태닉 호의 뒷이야기’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고립되어 있는 신비의 섬, 이스터 섬으로 향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장소로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가지고 있는 이스터 섬. 무분별한 어획으로 점점 파괴되어 가는 해저 생태계의 현주소와 이를 복원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을 담아본다.
  • 미친 전셋값에 전세대출 88% 급증… 가계부채 새 ‘뇌관’

    미친 전셋값에 전세대출 88% 급증… 가계부채 새 ‘뇌관’

    전세가격이 치솟으면서 전세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국민, 신한, 우리, 하나은행의 전세자금 대출 잔액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 1월 4조 9138억원에서 올 7월 9조 2435억원으로 88.1%나 늘었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은 198조 1110억원에서 209조 2480억원으로 5.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전세대출의 급격한 증가가 가계부채의 새로운 ‘뇌관’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KB부동산 정보 사이트 ‘알리지’에 따르면 아파트 전세가격은 연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7월 들어 그 폭이 커졌다. 전국을 기준으로 6월까지만 해도 전 주 대비 0.1% 이하였던 상승률은 7월 들어 0.2%까지 치솟았다. 특히 서울은 7월 셋째주 전세가격이 0.25%나 오르기도 했다. 전세 수요가 몰리면서 전세대출도 최근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대출 잔액이 국민은행 1조 7732억원, 신한은행 3조 2649억원, 우리은행 2조 261억원, 하나은행 2조 1793억원으로 집계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1~2년 전부터 전세 수요는 많아지는데 은행이 전세대출을 잘 해주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어 대출 자격을 완화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도 “과거에는 수천만원대에 불과했던 전세대출액이 요즘은 건당 1억원이 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사회 분위기도 달라졌다. 과거만 해도 집주인이 세입자의 전세대출을 꺼렸지만, 요즘은 전세가격이 워낙 높다 보니 용인하는 분위기다. 회사원 이모(33)씨는 지난해 결혼하면서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1억 6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전세로 구하면서 4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신혼부부 대출상품이라 금리도 저렴해 당시 4.0%에서 1년 만에 3.3%로 내렸다. 이씨는 “집주인도 ‘요즘에 대출 안 받으면 전세 못 구할 것’이라면서 우리가 빚을 내는 걸 전혀 꺼리지 않았다”면서 “신혼부부 상품이라 금리도 낮아 이자만 매달 11만원씩 내면 돼 전혀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세대출이 늘면서 높은 금리에 신음하는 사람도 많다. 저금리 기조로 많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주택담보대출이 연 3%대인 것에 비해 전세대출은 4%가 대부분이다. 5%대도 많다. 회사원 김모(41)씨는 최근 분당에 3억원짜리 전세를 구하면서 전세대출을 7000만원 받았다. 김씨는 “이자가 연 4.7%로 높아 부담되지만 전세가격이 치솟으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세대출이 급증할 경우 가계부채의 새로운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월 639조원이었던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은 지난 5월까지 659조원으로 3.1%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비슷한 기간 전세대출은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세대출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보증금’을 담보로 하는 만큼 은행-세입자-집주인 관계가 얽혀 있어 각종 변수가 많다”면서 “세입자가 대출금을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는데 집값까지 하락하면 대출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세대출은 주택을 담보로 하는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대출 자체가 불안정하다”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경우 자금 시장에 혼란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한·중·일 전문가가 본 야스쿠니 신사 참배

    한·중·일 전문가가 본 야스쿠니 신사 참배

    한국의 광복절이자 일본의 패전기념일인 15일을 앞두고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겠다는 일본 정치인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일본과 한국, 중국 등 관련국들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서울신문은 야스쿠니신사 참배의 문제점과 한·중·일 관계에 미칠 영향 등을 진단하기 위해 3국 전문가들을 만나 이들의 의견을 들어 봤다. ■ “강제동원 韓피해자 강제합사 치욕… 합사취소 집단적 대응을” 한·일 관계 전문가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 “전범과 한국인을 합사한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참배는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과거 식민지 시대 지배자(일본)·피지배자(한국) 구도를 현재에도 적용하려는 의도입니다.” 한·일 관계 전문가인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1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야스쿠니신사가 A급 전범들과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합사해 한국에 치욕을 주고 있다면서 피해자 후손들만 법적 대응을 할 게 아니라 집단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252명은 2001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합사 철회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다음은 조 교수와의 일문일답. →야스쿠니신사에 어떻게 한국인이 합사된 건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가족에게 연락도 없이 합사된 경우가 허다하다. 야스쿠니신사는 전범과 강제동원 피해자의 혼을 하나로 합쳐 제사를 지내고 있다. 피해자의 후손들이 합사 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있지만 일본 측은 한 번 합사된 혼은 분리할 수 없다는 논리를 들이대고 있다. 후손의 입장에서는 강제동원도 억울한데 그 혼마저 가해자인 전범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에 갇힌 셈이 됐다. →한국 국적이니 정부가 나서서 요구해도 되지 않나. -야스쿠니신사는 민간 종교시설이기 때문에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이 적다. 자칫 내정간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악용해 일본 정부도 야스쿠니는 민간 시설이라며 번번이 빠져나가고 있다. →해결 방안은. -야스쿠니신사를 국가 추도시설화하면 방법은 있다. 국가 추도시설로 만들면 헌법과 배치되는 전범들은 야스쿠니신사에서 빠진다. 이념 성향이 없는 ‘무색무취’의 추도시설이 되는 것이다. 일본의 양심세력들이 야스쿠니의 국가 추도시설화를 요구해 왔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법적 대응 방안은. -일본 정치인이 야스쿠니 참배를 하는 것 자체가 헌법에 위배된다. 일본 헌법에는 정치·종교 분리 원칙이 규정돼 있는데도 일본의 우익 정치인들이 이를 무시하고 있다. 신사참배가 정교 분리에 위배된다는 비난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일본 자민당이 개헌을 추진 중이다. 공직자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확대한다는 식으로 개편하려는 것 같다. 1980년대만 해도 이런 움직임이 일본 내에서 힘을 받지 못했지만 일본 사회가 우경화되면서 일본 국민들도 신사참배를 한다든지, 학생들에게 기미가요 제창을 강요하는 것에 더 이상 거부감을 갖지 않게 됐다. 대동아 사관의 부활이다. →일본 정치인들이 신사 참배에 집착하는 이유는 뭔가. -‘나는 과거 일본의 빛나는 역사를 승계하는 정치가다.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라는 정치 이념을 선전하고 ‘인증샷’을 찍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수 표를 결집시키기 위한 선거 전술인 셈이다. 만약 한 정치인이 ‘총대’를 메고 야스쿠니를 민간 시설에서 국가 추도시설로 바꾸려 한다면 많은 보수 표를 잃을 각오를 하고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전쟁 때 정신적 지주로 삼으려 우경화 집착… 국제적 고립 초래” 중·일 관계 전문가 칭화대 당대국제관계학원 류장융 부원장 “군국주의적 야망을 가진 일본 우익 세력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향후 전쟁 상황에서 정신적인 지주로 삼으려 한다.” 중·일 관계 전문가인 칭화(淸華)대 당대국제관계학원 류장융(劉江永) 부원장은 12일 “개인 자격이든 공물봉납 방식이든 일본 지도부의 신사 참배는 침략역사에 대한 부정 행위로 한국과 중국, 미국으로부터 일본을 고립시키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은 류 부원장과의 일문일답. →일본 각료들이 신사 참배 의사를 밝히고 있는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아소 다로 부총리 등 중국이 (신사 참배 여부에) 촉각을 세우는 인사들은 불참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신사에 화환, 공물 등을 보내는 식으로 ‘편법 참배’를 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모든 형태의 참배에 반대하며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본이 신사 참배에 집착하는 이유는. -제대로 된 역사 인식 부재 탓이다. 일본은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이 주변국과 국민에 재앙을 안기고 원폭 투하 등으로 자신에게도 피해를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경화도 문제다. 전쟁을 미화하는 우익 세력은 야스쿠니 신사를 통해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전쟁 상황에서 정신적 지주로 삼으려 한다. →일본 우경화의 원인은. -일본은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지 않아 침략 역사를 미화하는 우익 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풍부하다. 여기에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 경기 침체와 중국의 부상 등에 따른 위기감을 토대로 우익 세력이 민족주의를 부추기면서 우경화가 주류가 되고 있다. 우익을 이용해 중국에 대항하려는 일부 국가의 중국 견제 전략도 이를 부채질한다. →우경화의 결과는. -동북아의 평화·안정 위협이다. 우익 세력은 중·일 충돌의 순간만을 고대하고 있다. 아베 내각과 우익 세력은 이미 일본에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을 개정하려 하면서 평화 발전으로 향하는 자숙의 길을 포기하고 있다. →우경화는 국제적 고립을 초래하는데. -중국을 공격할 수 있고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을 연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은 고립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동맹인 미국이 일본의 과격 행위를 견제할 텐데. -아베 내각은 군국주의 목표를 실현하는 범위 내에서만 미국의 말을 듣고 미국을 이용한다. 미국이 중·일 간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문제를 대화의 방식으로 해결하라고 하지만 영토 분쟁이 없다며 대화의 창을 닫고 무력 증강에만 몰두한다. 미·일 관계도 순탄치 않을 것이다. →중국의 해양 진출 전략이 일본의 우경화를 부추기나. -일본이 중국과 우호적인 전략적 호혜 관계를 갖고 싶다면 방위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해양 전략이 일본에 위협으로 작용한다고 상정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이미 2004년 ‘방위계획대강(大綱)’ 개정 때부터 중국을 주요 위협으로 지목했다. 최근에는 댜오위다오가 있는 동해 지역에서의 해상 및 영해 자위대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개정 중이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자민당,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고 야스쿠니 상징성 이용”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 & 우쓰미 아이코 게이센여대 명예교수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인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일왕과 국가를 위해 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이들을 신으로 모심으로써 전쟁을 정당화하던 야스쿠니 신사는 표면적으로는 1945년 패전 이후 종교시설로 바뀌었다. 그러나 집권 자민당을 비롯해 일부 일본인에게는 야스쿠니 신사가 아직도 패전 전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 일본의 소장파 지식인 다카하시 데쓰야(57) 도쿄대 교수의 주장이다. 다카하시 교수는 지난 1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평화의 촛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 행사의 심포지엄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이날 발표문을 통해 다카하시 교수는 “야스쿠니 신사는 집권 자민당이 일왕을 일본의 원수(元首)로 칭하면서 헌법 9조 개헌을 노리는 것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헌법 9조는 일본의 전력(戰力) 보유 금지와 국가 교전권 불인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데, 1946년 11월 공포돼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헌법 9조를 고쳐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명시하겠다고 공약했고, 헌법 해석을 고쳐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그는 “지난해 4월 발표된 자민당의 헌법개정 초안을 보면 일왕을 나라의 제1인자라고 설명했다. 요컨대 주권자인 국민 위에 일왕을 받드는 국가가 있다는 것”이라면서 “자민당은 헌법개정 초안을 통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데, 패전 후 평화에 익숙해진 지금의 사회문화에서 전쟁의 목표를 설정한다면 나라의 1인자인 일왕과 그것을 떠받드는 국가로서의 일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즉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자민당이 다시 야스쿠니 신사가 갖고 있는 상징성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이날 다카하시 교수와 함께 패널로 참석한 일본의 시민단체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공동대표이자 게이센여대 명예교수인 우쓰미 아이코(72) 역시 야스쿠니 신사의 상징성이 가지는 위험성에 대해 경계했다. 우쓰미 교수는 “‘야스쿠니에서 만나자’고 하는 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병사들에게 포로가 되거나 후퇴함으로써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지 못하는 불명예스러운 전사를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이었다”면서 “심지어 1941년 12월 진주만 공격에 참가한 한 장교는 동료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군신(軍神)이 되지 못했는데, 이 사람이 46년 귀국해 주변인에게서 받은 편지에는 ‘바로 할복해 세상에 속죄를’이라고 돼 있었다”고 전했다. 우쓰미 교수는 또 야스쿠니 신사를 통해 ‘강한 일본’을 구현하려는 보수 세력에 일침을 가했다. 우쓰미 교수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고통을 맛본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에게 일본 총리나 정치가의 야스쿠니 참배는 일종의 트라우마”라며 “이런 참배는 다시 침략당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을 준다. 이런 참배는 나치의 침략과 학살의 과거를 청산한 유럽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뒤틀린 역사·끝없는 영토 싸움… 한·중·일의 과거와 미래

    뒤틀린 역사·끝없는 영토 싸움… 한·중·일의 과거와 미래

    오는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기로 했지만 우익세력을 중심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올해도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 중국은 침략과 전쟁, 위안부와 강제 징용 등의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분노하는 등 3국 간 역사왜곡 논란과 영토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아리랑 TV는 14일부터 매주 수요일 오전 9시에 다큐멘터리 ‘한·중·일, 미래를 여는 역사’ 3부작을 방영한다. 3국을 둘러싼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과 반성을 조명하며 3국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미래상을 제시한다. 14일 방영되는 1부 ‘위대한 유산, 문화교류’에서는 3국 간 문화교류의 역사를 되짚는다. 이미 3000년에 가까운 교류역사를 가진 3국이지만, 19세기 근대화를 전후해 양상이 달라졌다. 영화는 일본의 촬영 기술이 한국과 중국에 전파됐고, 1930년대에는 한국의 김영과 중국의 롼링위(완영옥)가 국적을 초월해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만주국을 세운 일본은 영화를 전쟁의 선전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한국과 중국의 영화인들은 영화에 항일 메시지를 담아냈다. 오늘날에도 일본에서는 한류스타에 대한 극우세력의 반대 시위가 계속되고, 중국에서는 한국의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무대에 올리면서 극 중 일본인 배역을 태국인으로 바꿔놓기도 했다. 2부 ‘단절의 역사에서 화합의 역사’는 3국의 역사적 갈등과 대립의 배경,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조명한다. 일본 교토에서 진행되는 ‘한·중·일 청소년 역사캠프’는 3국이 13년째 진행하고 있는 청소년 교류 행사다. 캠프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교토의 니켈 광산을 직접 찾아 일본의 강제 징용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다. 또 3국의 역사학자들은 청일전쟁의 유적지를 복원하고 이를 연결하는 평화역사벨트를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이들 학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자국 중심의 선택적 기억을 역사로 인식하는 오류를 극복하고 진정한 역사 인식을 공유하는 길을 모색한다. 3부 ‘미래의 리더, 동북아 공동체’는 3국 간 협력의 성공 사례를 조명한다. 제작진은 일본 오키나와를 찾아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댜오위다오) 분쟁이 양국 간 무력충돌과 경제협력 중단으로 이어지는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또 한·중·일 FTA의 과정과 의미, 그 밖의 경제협력 사례를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개최되는 제5회 역사 NGO 세계대회에서 만난 NGO와 석학들에게 3국이 미래의 리더가 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 들어본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운명의 8·15… 朴대통령 경축사 vs 日각료 참배 강행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독도를 방문한 지 지난 10일로 꼭 1년이 됐다. 당시 우리 외교백서에 독도를 영토에 포함한 당연한 사실에 대해 일본 정부가 이례적으로 문제 삼는 등 공세 수위를 높인 데 대한 대응이었다. 물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깜짝 방문이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등 일본의 국제분쟁화 시도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MB 독도방문 1년째인 지난 10일 NHK 등 일본 언론들은 불편해진 한·일 관계를 한국 탓으로 돌리면서 독도영유권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당사자인 이 전 대통령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독도 경비대원들을 격려했다. 어긋난 두 나라 관계는 지난해 말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선 이후 복원될 조짐이 없다. 일본군 위안부 및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과거사 관련 일본 고위층의 망언이 잇따르면서 더 냉각된 모양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한·미·일 공조가 일시적으로 강화됐지만 지난 4월 아소 다로 부총리 등 각료 3명이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면서 갈등은 다시 불거졌다.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일본의 일부 각료는 8·15를 맞아 야스쿠니신사 참배 의사를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이번에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하지 하겠다고 밝혔지만, 오는 10월 추계대제 때 참배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일본의 왜곡된 역사 인식에 대해 경고할 가능성이 높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잘못했다’ ‘다시 한번 반성한다’는 식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역사는 보는 사람의 시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사과할 만큼 하지 않았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면서 “일본은 (더이상 가해자가 아닌) 대등한 관계에서 접근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사에 대해 일본이 전향적 태도를 취해야 실마리가 풀릴 텐데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당이 승리한 데다 일본내에서 강경 대응을 원하는 세력이 늘고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그림엽서로 하루벌이 하던 청년, 어쩌다 ‘나치 괴물’이 되었나

    그림엽서로 하루벌이 하던 청년, 어쩌다 ‘나치 괴물’이 되었나

    1889년 4월 20일 출생, 1945년 4월 30일 권총 자살. 출신조차 불분명한 이 오스트리아 사람이 어떻게 전란 속의 독일을 휘어잡을 수 있었을까. 그가 뿌린 분노와 폭력의 씨앗은 인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나치스와 함께 인류를 파멸의 일보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아돌프 히틀러 이야기다. EBS ‘다큐 10+’는 12일과 13일 밤 11시 15분에 2부작 ‘히틀러’편을 연속 방영한다. 나치 못지않은 침략 전쟁으로 100여년 전 주변국을 전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일본이 다시 우경화의 폭주기관차를 탄 상황에서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이다.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은 지금도 주변국들의 반발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욱일기를 앞세워 편협한 민족 우월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제1부 ‘나치스의 탄생’에선 1889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제국의 작은 국경마을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히틀러의 어린 시절을 짚어본다. 초등학교에서 모범생으로 불렸고, 수도원에선 복사로 일했던 그가 어떻게 ‘괴물’로 변신한 것일까. 히틀러는 19세 되던 해 어머니를 여의고 빈으로 향한다. 빈은 상류층의 태평가와 그들에 맞서는 노동계층의 붉은 노랫소리가 함께 울려 퍼지고 있었다. 히틀러는 이곳에서 하숙을 하며 그림엽서를 베껴 근근이 살아간다. 초라한 그의 인생에 전기가 되어 준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바이에른의 제16보병연대의 연락병으로 복무하며 철십자훈장을 받는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을 일컬어 그때까지 그가 본 것 중 가장 강렬하고 장엄한 광경이었다고 회고한다. 전란 이후 패전 독일의 피해는 컸고 군주제를 포기하고 공화국이 들어선다. 피폐해진 경제는 국민의 마음을 불만으로 채웠고, 이 틈을 비집고 들어선 것이 히틀러가 당수인 파시즘 정당 나치스였다. 히틀러는 뮌헨의 맥주홀에서 반유대주의를 주제로 강연을 하며 첫 정치 데뷔 무대를 갖는다. 소규모 극우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점차 세를 불려 독일노동당을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당, 이른바 나치스로 개명한다. 제2부 ‘전운 속으로’에선 나치스의 돌격대를 활용, 의사당을 장악하고 총리 자리에 오르는 히틀러의 일대기를 조명한다. 그가 절대 권좌를 차지하면서 독일은 기나긴 암흑 속으로 빠져든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The city lives by remembering)고 미국의 시인 랠프 왈도 에머슨은 읊었지만, 서울은 600년 고도의 기억이 별로 없다. 마치 신흥도시 같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통에 불타고 약탈당했으며, 일제강점기 도읍에 대한 자취는 강제적으로 지워졌다. 조선총독부-경성시청-남산 조선 신궁을 상징 축선으로 하는 식민 도시로 치장됐다. 한국 전쟁통에 그나마 남은 것 대부분이 파괴됐다.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시대의 무지막지한 개발 광풍을 타고 또 한 번 뭉개졌다. 역사의 향기는 흩어졌다. 한강 이남으로 영역을 확대한 서울은 사실상 한국전쟁 이후 새로 건설된 신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대문 안에는 표지석만 어지럽게 남았을 뿐이다. 전쟁과 대사건은 도시를 재건한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 폭격을 앞둔 맥아더는 “원래 도시란 천재지변이나 전쟁을 겪고 나면 그전에 비해 몇 곱절 더 크고 좋은 새 도시로 부흥된다. 미국이 재건을 도울 것이니 서울은 앞으로 이상적인 현대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실제 1644년 대화재로 도시의 80%가 타 버린 영국 런던은 옥스퍼드대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교수에 의해 오늘의 런던으로 재건됐다. 일본 도쿄도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잿더미가 됐지만 탁월한 도시계획가 고토 신페이(後藤新平) 도쿄시장의 주도로 세계 도시계획 사상 유례가 없는 시가지 개조를 통해 새로 태어났다. 런던과 도쿄는 세계대전으로 또 한 번 타격을 입었지만, 옛 도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의 재건은 성공작일까? 서울을 역동적인 현대 도시로 평가할 수는 있지만, 역사 도시로 평가하기엔 머쓱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꽤 혼란스럽다. 서울은 네 번 결정적인 상처를 입었다. 16세기 일본과 중국 군대에 의해 약탈당했으며, 근대 일제강점기엔 성곽을 허물고, 상징 축을 강제로 바꾸는 방법으로 도시 형태가 조작됐다. 한국전쟁기 유엔군과 한국군의 청야(淸野)작전(적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농작물이나 건물 등 지상에 있는 것들을 말끔히 없애는 작전)을 통해 철저하게 파괴됐다. 1960~70년대 우리 손으로 남은 문화재를 헐어서 치워 버렸다. 맥아더의 말처럼 기회는 있었다. 1952년 전후 복구 차원의 첫 도시계획안을 마련하면서 세종로 등 39개의 큰길을 확장하거나 신설하고, 광화문광장·서울시청광장·남대문광장 등 19개의 광장을 만드는 과감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재정부족 등을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처럼 구도심(사대문 안)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사대문 밖이나 강남 신시가지를 개발하겠다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 ‘광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서울 집중이 기회를 날려 버렸다. 집중을 막으려고 온갖 정책을 동원했지만 약효가 듣지 않았다. 해방 전후 100만명대였던 서울 인구는 1966년 380만명, 1970년 540만명을 넘어서더니 1990년 1000만명을 돌파해 버렸다. 수도 서울 행정은 집 지을 땅을 확보하고, 도로를 넓히고, 교통수단을 늘리고, 수돗물을 공급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에 매달렸다. 만약 그때 인구의 서울 집중을 막을 수 있었더라면 서울은 한가롭게 전차가 다니며,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정겨운 기와집이 빼곡한 도시로 남았을 것이다. 한강과 북한산이 주는 자연의 세례를 맘껏 누리는, 풍광이 뛰어난 성곽 도시로 유지됐을 것이다. 1950년대 서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손정목 전 시립대 교수의 ‘서울도시계획이야기’를 기본으로 사대문 밖 풍경을 상상해 보자. 동쪽으로 동대문을 나서면 신설동 큰 길가까지 집이 들어 차 있지만, 바깥은 논밭 천지다. 신당동에 집이 드문드문했을 뿐 금호동·옥수동 일대는 산이었다. 왕십리를 지나 한양대 일대는 미나리꽝이었고 성동교의 나무다리가 삐꺽거렸다. 남쪽 한강대교에 이르는 동빙고동과 서빙고동 주민은 1000명 안팎이었고, 원효로 일대는 대부분 논밭이었다. 노량진, 상도동, 대방동, 영등포는 큰 길가조차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연출했다. 서쪽으로 신촌을 지나 마포 전차 종점을 벗어나면 벌거숭이 산과 논밭이 펼쳐졌다. 동북쪽은 미아리고개, 서북쪽은 독립문과 현저동이 경계였다. 지금의 강남·서초·송파·강동·강서·관악·구로·금천·도봉·노원·은평구 등은 모두 경기도였다. 서울의 고층 건물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최고층 건물은 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8층짜리 반도호텔이었다. 이웃 조선호텔과 한국은행 모두 일제가 남긴 건물이었다. 1955년에 종로 사거리에 2층짜리 신신백화점이 신축됐고, 1957년 광화문 사거리와 을지로 1가에 3층짜리 국제극장과 5층짜리 개풍빌딩이 각각 들어섰다. 1958년 남대문에 7층짜리 그랜드호텔이 문을 열자 구경 인파가 몰렸다. 당시 서울 도심부의 평균 층 높이는 2층이 채 되지 않았다. 도심부를 고층화하려고 주요 간선도로변의 건물 높이를 3~5층 이상으로 정할 정도였다. ‘한강의 기적’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부터 약 20년간의 고도성장기를 일컫는다. 이 기간 서울은 경천동지할 변화를 겪는다. 서울의 공간 변화는 1966년부터 1980년까지 15년간 거의 이뤄졌다. 주택지·도로·상하수도·지하철 등 현대 서울의 하부구조가 이때 거의 갖춰졌다.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자의 ‘분부’를 이행한 김현옥·양택식·구자춘이라는 3명의 ‘충복’ 서울시장이 재직한 기간과 일치한다. 서울의 얼개는 박 대통령의 구상과 지시에 의해 거의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6년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이 세워졌다. 서울의 균형 발전을 꾀하려고 사대문 안에 집중된 입법·사법·행정부의 기능을 분산시키려는 계획이 눈에 띈다. 입법부는 남서울(강남·서초구), 사법부는 영등포, 행정부는 용산 일대, 세종로 지역은 대통령 관저 및 직속기관 배치 지역으로 정했다. 지금 와서 보면 입법부와 사법부의 입지가 맞교환됐고, 서울시청이 용산으로 옮겨가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교통계획을 보면 서울역~청량리(1호선), 서소문~을지로~성동(2호선), 갈현동~종로2가~을지로2가~퇴계로~천호동(3호선), 우이동~종로4가~퇴계로~말죽거리(4호선) 등의 지하철 4개 노선 건설계획이 잡혀 있다. 10년 뒤 구자춘 시장에 의해 2호선이 을지로와 영등포~영동을 잇는 순환선으로 변경되는 등 엄청난 노선 변화가 일어났지만, 지하철 4개 노선에 대한 기본 구상이었다. 이 밖에 4개 순환선과 14개 방사선을 간선도로망으로 7개의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계획과 노면 전차는 철거하고 광화문 사거리와 시청 앞 광장에는 지하차도를 만들고, 시청 앞 광장 지하는 지하도시화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도심 재개발과 강남·송파 등 남서울개발, 뚝섬·창동·망우 등 동서울개발, 불광·성산·김포·시흥지구의 서서울개발 등 신시가지개발 계획이 들어 있다. 1년 예산이 170억원에 불과한 서울시가 20년 앞을 내다보고 인구 500만명을 예상해 3235억원의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언론으로부터 ‘즉흥계획’ ‘실현성 없는 독단’ ‘재무계획 없는 무지개’ 등등 융단폭격을 맞았다. 그러나 격변의 15년 중 7년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지내며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한 손정목 전 교수는 “꿈도 환상도 아니었다. 최초의 기본계획이었다는 점, 도심부 재개발이니 고도지구, 미관지구 개념이 도입돼 일반에 공개됐다는 점, 70~80년대 전국 모든 도시가 수립한 도시계획의 모델이 됐다는 점 등에서 의미가 있다”고 회고했다. 불완전하나마 서울시 장기계획의 틀이 된 것이 사실이다. 일제 말기인 1940년부터 1965년까지 서울은 잠자는 도시였다. 1937년 중·일 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이 터져 건축자재를 구할 수 없었고, 한국전쟁이 이어지면서 건축 행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건물이 목조건물 수명 30년을 다한 상태였다. 장충동, 신당동 일대와 남대문로, 충무로, 을지로 등 일본인 주거지에 정원이 딸린 일본식 저택과 주택이 밀집해 있었다. 가회동·명륜동·동숭동·북아현동 일대에는 한옥촌이 빼곡하게 형성돼 있었다. 마포, 왕십리, 동대문을 벗어난 지역은 논밭이었다. 사대문 안과 독립문, 신촌, 신설동, 돈암동, 신당동, 용산이 서울의 전부였다. 노면 전차 노선을 기준으로 보면 동쪽으로 청량리·왕십리, 남쪽으로 노량진·신길동·영등포, 서쪽으로 마포·신촌, 서북쪽으로 독립문, 동북쪽으로 돈암동 전차 종점까지가 서울이었다. 지방에서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의 주거인 무허가 판잣집이 도심에서 가까운 하천변이나 산비탈을 차지했다. 1966년 당시 13만여채의 판잣집이 서울 곳곳에 달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서울은 개발행 특급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의 폭풍전야였다. joo@seoul.co.kr
  • 美 밀피타스 시의회도 日위안부 결의안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소도시 밀피타스 시의회가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했다.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등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밀피타스 시의회는 7일(현지시간) 미국과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위안부 결의안’(8285호)을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하시모토 도루 일본 오사카 시장의 망언 등에 대한 샌프란시스코 결의안과 과거 역사 등에 대해 검토했다”며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에 의해 자행된 위안부 문제와 이에 대한 망언,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 등에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시의회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의회에 위안부 관련 주장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고, 조사 결과 사실로 확인될 경우 그 같은 만행을 저지른 일본 정부와 오사카 시장의 망언에 대해 비난하고 일본 정부의 사과와 피해자 보상 등을 요구할 것을 요청했다. 시의회는 이 결의안을 오바마 대통령과 존 케리 국무장관 등에게 보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피플 인 스포츠] 삼성이 일찌감치 찜한 대구 상원고 좌완투수 이수민

    [피플 인 스포츠] 삼성이 일찌감치 찜한 대구 상원고 좌완투수 이수민

    “17개를 잡았을 때 감독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20개를 잡아서 기록 한번 써 보라고요. 그래서 계속 힘껏 던졌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야 알았어요. 제가 신기록을 세웠다는 것을요.” 지난주 서울의 한 고등학교 야구 연습장에서 만난 이수민(18·대구 상원고)은 수줍음을 많이 타는 소년이었다. 앳된 얼굴을 붉히며 조곤조곤 질문에 답했지만 야구 이야기가 나오면 눈빛을 반짝였다. 지난 4월 7일 포항구장에서 열린 고교야구 주말리그 동일권(경상 B권역) 대구고와의 경기에서 좌완 이수민은 깜짝 놀랄 만한 대기록을 세웠다. 10이닝 동안 무려 26개의 탈삼진을 잡아 2006년 정영일(당시 진흥고)이 13과 3분의2이닝 동안 기록한 23개를 7년 만에 갈아치웠다. 9이닝(24개) 기록으로도 최동원(작고·1976년)과 임선동(은퇴·1991년), 류제국(LG·2001년)의 20개를 넘어섰다. 이수민의 기록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98년 역사의 일본 고교야구(고시엔) 최고 기록은 마쓰이 유키(도코학원)가 지난해 작성한 22개(9이닝)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 반도 에이지(당시 도쿠시마상고)가 1958년 18이닝 동안 25개를 잡았다는 기록이 있다. “야구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했어요. 5살 많은 친형이 야구부였는데 날마다 캐치볼을 하며 놀았죠. 전 투수에 더 매력을 느꼈어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이수민도 정식으로 야구부에 입단했다. 형은 고교를 끝으로 야구를 접었지만 이수민은 일취월장했다. 지난해 청소년 국가대표로 뽑힌 이수민은 이에 대해 “깜짝 놀랐어요. 따로 연락받지도 않았는데 국가대표 명단에 제 이름이 있더라고요. 2학년인 저를 뽑으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라고 했다. 지난해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25회 세계대회에서 이수민은 선발진 한 축을 맡아 유일하게 2승을 따냈다. 이수민은 올해도 대표로 발탁돼 오는 30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타이완에서 열리는 제26회 대회에 출전한다. 삼성으로부터 신인 우선지명을 받은 이수민은 벌써부터 푸른 유니폼을 입을 생각에 들떠 있다. 한때 미 프로야구(MLB) 구단이 그를 노린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그는 삼성에 입단해 하루빨리 1군에 서는 게 목표다. “삼성 같은 명문 구단에 지명돼 너무 설레요. 롤 모델로 삼고 싶은 선수요? 삼성에서는 오승환, 다른 팀까지 말해도 된다면 당연히 류현진(LA 다저스) 선수죠.” 이수민의 주 무기는 최고 145㎞의 직구와 예리한 슬라이더다. 직구가 빠른 편은 아니지만 공 끝이 워낙 좋아 엄청난 수의 삼진을 잡아낸다. 그러나 “프로에서 살아남으려면 147~148㎞까지 구속을 끌어올려야 된다”며 매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새로운 구질도 연마 중이다. “포크볼과 너클커브를 연습하고 있어요. 특히 너클커브 던지는 재미에 푹 빠졌어요. 그립을 처음 잡는 순간 딱 느낌이 오더라고요.” 너클커브는 커브 그립에서 검지의 관절(knuckle)을 구부린 채 던지는 구질이다. 공에 회전이 많이 걸려 일반 커브보다 떨어지는 각도가 크다. 봉중근(LG) 등이 잘 구사한다. 이수민은 김형준 전 상원고 코치에게서 그립을 배웠다고 했다. 투수가 강타자와 붙어 보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이수민은 두산의 김현수를 콕 집으며 “정확도와 힘을 모두 갖춘 정말 완벽한 타자 같아요. 1군에 올라가면 김현수 선배님과 꼭 대결해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수민에 대한 박영진 상원고 감독의 믿음은 대단하다. “이수민의 최대 장점은 강한 승부근성”이라면서 “장래성이 아주 뛰어난 선수”라고 평가했다. 글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프로필▲1995년 9월 17일 대구 출생 ▲키 180㎝, 몸무게 88㎏ ▲구미 도산초-구미중-대구상원고 ▲2012~13년 제25, 26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대한야구협회(KBA) 특별상(한 경기 최다 탈삼진) 수상 ▲프로야구 삼성 우선지명
  • 美공화당 “힐러리 띄우지마”

    美공화당 “힐러리 띄우지마”

    미국 공화당이 CNN, NBC 등 방송사에 ‘힐러리 띄우기’를 멈추라고 경고했다. 5일(현지시간) AP 등에 따르면 공화당전국위원회(RNC)는 미국 방송사 NBC와 CNN 임원진에게 보낸 서한에서 “2016년 대선의 민주당 유력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홍보하는 영화, 드라마 등의 제작을 강행한다면 공화당 프라이머리(예비경선) 토론방송에서 두 방송사를 제외시키겠다”며 “14일 RNC 하계대회 때까지 제작을 철회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방송사의 대선 예비경선 토론방송 참여 여부는 광고 수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NBC 방송이 지난달 27일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주인공으로 한 미니시리즈 ‘힐러리’를 제작한다고 밝힌 지 이틀 만인 29일 CNN 방송은 그의 삶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내년에 개봉할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었다. 레인스 프리버스 RNC 의장은 “미국 방송사들은 각 사의 기호에 따라 방송을 제작할 권리가 있지만 미국 시민으로서 2016년 대선에 정치적으로 영향을 미치려는 행동에 많은 시민들이 왜 놀라는지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NBC는 공개적 입장표명을 자제하고 있다. 척 토드 NBC 정치담당 국장은 트위터에 글을 올려 “NBC의 뉴스 부문은 교양·예능 부문의 프로젝트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그보다 가까이서 전장을 본 눈은 없었다

    그보다 가까이서 전장을 본 눈은 없었다

    “그의 죽음은 모두에게 불운이다. 카파에게는 더욱 그렇다. 생전 그는 아주 활기찬 사람이었기에, 그가 죽었다고 생각한 하루는 너무나 길고 힘들었다.”(어니스트 헤밍웨이) 1954년 5월 25일, 베트남 독립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전장에서 비보가 날아왔다. 후퇴하던 프랑스군의 호송차량에 타고 있던 로버트 카파(1913~1954)가 차량을 벗어나 수풀 속을 걷던 병사들을 취재하다 대인지뢰를 밟고 숨졌다는 소식이었다. ‘차량을 떠나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한 그는 한 걸음이라도 더 병사들 곁으로 다가가려 했다. 생전 그의 좌우명은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서지 않아서다’였다. 카파는 베트남에서 죽은 최초의 미국 종군기자로 기록됐다. 스페인 내전을 시작으로 중일전쟁, 2차 세계대전, 1차 중동전쟁, 인도차이나전쟁 등을 누비던 카파는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사진기로 담아낸 유일한 사진기자이기도 했다. 로버트 카파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사진전이 오는 10월 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디지털 프린트가 아닌 오리지널 프린트로 출력된 첫 전시로, 160점이 나왔다. 카파는 191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앙드레 프리드먼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1931년 좌익 학생운동으로 헝가리에서 쫓겨났고, 베를린으로 건너가 사진작가의 심부름꾼으로 사진계에 입문했다. 1933년 히틀러의 독재를 피해 파리로 건너온 그는 평생지기인 앙드레 카르티에 브레송, 데이비드 시무어를 만나 교류한다. 1936년부터 ‘로버트 카파’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팔기 시작했는데, 그해 10월 스페인 내전이 한창이던 코르도바에서 찍은 ‘한방’의 사진이 그를 스타덤에 올려놨다. 전선에서 막 돌격하려던 병사가 머리에 총알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아직까지 진위 논란이 이어지는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이다. 23세 때 찍은 이 사진은 여러 신문에 실리며 호응을 얻었다. 카파의 동생인 코넬 카파가 1974년 설립한 뉴욕 국제사진센터(ICP)의 크리스토퍼 필립스(61) 수석 큐레이터는 “이 사진을 놓고 지금도 단순히 넘어지는 모습을 찍은 것이란 주장부터 조작된 것이라는 얘기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면서 “향후 100년간 궁금증이 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학자, 스포츠운동학자 등이 모여 사진 속 병사의 근육 움직임까지 분석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카파가 생전에 꼽은 가장 안타까운 사진은 1945년 4월 18일 찍은 ‘독일 저격수에게 희생된 미군 병사’. 종전을 앞둔 라이프치히의 아파트 발코니에서 기관총을 장전하던 어린 병사가 앳된 웃음을 품은 채 독일군 저격수의 총탄에 거꾸러진 사진이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언한 듯하다. 7000~1만 2000원. (02)3701-1216.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18세 프랭클린, 6번 가른 金물살

    ‘여자 펠프스’ 미시 프랭클린(18·미국)이 금메달 6개를 따내 국제수영연맹(FINA) 세계선수권 여자 최다관왕에 올랐다. 3관왕 쑨양(중국)은 남자부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고 2019년 대회를 유치한 한국은 씁쓸하게 빈손으로 돌아섰다. 프랭클린은 5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막을 내린 대회 마지막 종목인 여자 혼계영 400m에서 미국의 첫 번째 배영자로 나서 금메달(3분53초23)을 합작했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4관왕(동메달 1개)에 올랐던 프랭클린은 이번 대회에 출전한 7개 종목 중 자유형 100m(4위)를 제외한 전 종목에서 정상에 섰다. 배영 100m·200m, 자유형 200m, 계영 400m·800m에 이은 대회 6번째 골드. 프랭클린은 5관왕을 차지했던 트레이시 컬킨스(미국·1978년), 리비 트리켓(호주·2007년)을 넘어 세계선수권 한 대회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딴 여자 선수가 됐다. 남자 중에는 마이클 펠프스(미국)가 2007년 멜버른대회에서 7관왕에 오른 적이 있다. 쑨양(중국)은 이날 자유형 1500m 결승에서 자신의 세계기록(14분31초02)에 크게 뒤진 14분41초15로 금메달을 챙겼다. 자유형 400m·800m에 이어 아시아 선수 최초로 3관왕에 올라 남자 MVP를 꿰찼다. 세계대회에서 남자 자유형 중장거리 세 종목을 석권한 선수는 그랜트 해킷(호주·2005년 몬트리올) 이후 쑨양이 두 번째다. 한국은 백수연(강원도청)과 양지원(소사고)이 여자 평영 200m 준결승에 진출해 각각 10위와 14위를 차지했을 뿐 나머지 종목에선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헌재 “일제 작위만 받아도 재산환수 합헌”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았다면 친일행위와 관계없이 재산을 국가에 귀속토록 개정한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친일인사로 지목된 조선왕족 이해승씨 손자의 신청을 받아들여 서울중앙지법이 제기한 위헌법률심판제청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된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고 4일 밝혔다. 헌재는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았다면 반민족적 정책 결정에 깊이 관여했을 개연성이 있고 그 자체로도 일제강점 체제의 유지·강화에 협력한 것”이라며 “한일합병에 공을 세운 다른 친일 인사와 다르다고 볼 수 없어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을 금지한 헌법 조항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번 결정은 이씨 손자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소송 항소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철종 생부인 전계대원군 5대손인 이씨는 1910년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와 현 가치로 수십억원에 달하는 은사금 16만 8000원을 받은 것이 드러나 친일인사로 지목됐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글로벌 시대] 전쟁의 추억/배종하 국제식량농업기구 베트남국가사무소장

    [글로벌 시대] 전쟁의 추억/배종하 국제식량농업기구 베트남국가사무소장

    베트남은 거의 40년 가까이 전쟁을 치른 나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5년 9월 독립선언을 계기로 10여년간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치러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프랑스를 물리쳤다. 그러나 제네바협정에 따라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북이 갈라졌고 1965년 미국이 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1975년까지 10년 동안 베트남전을 치른 후 마침내 통일을 이룬다. 1978년에는 캄보디아를 침공해 폴포트 정권을 붕괴시켰고, 국경분쟁으로 거대한 중국과 전쟁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60년이 흘렀음에도 3년의 전쟁이 남긴 상처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데, 베트남은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하도록 전쟁을 했으니 국민들이 겪은 정신적·물질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전쟁이 종식된 지 30년이 지났고 한창 뻗어나는 젊은 세대들은 전쟁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지만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가정이나 집안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1972년 12월에는 B52 폭격기가 보름 동안 밤낮으로 하노이를 폭격했다. 그 속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공포가 어떠했을까. 말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희생되어 거의 모든 국민들이 부모 또는 친척이나 가까운 친구를 전쟁에서 잃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직도 전쟁의 그림자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깊게 드리워져 있다. 베트남에 오면서 궁금했던 것 중의 하나가 이 사람들은 과거 비참하고 힘들었던 전쟁의 역사에 대해서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베트남 사람들은 전쟁 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난 수 십년 동안 전쟁이 그들의 삶이었기에 무슨 대화를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전쟁이 화제에 오르리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렇지 않다. 한국도 베트남전쟁의 가해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정부 관리들도 과거를 얘기하거나 베트남 전쟁에 대해 사과한다고 얘기하면 일관되게 그건 지나간 일이고 지난 일은 더 이상 논하지 말자, 앞으로 잘하자는 얘기만 한다. 더구나 베트남은 전쟁 피해에 대해서 배상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누구에게도 사과를 요구한 적도 없다. 위안부, 강제징용 문제 등이 일본과 아직도 큰 외교 현안이 되고 있는 우리와 대비가 된다. 우리보다 엄청나게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과거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는 꼿꼿함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국가 통치의 핵심에 있는 공산당 정부 때문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베트남의 국민성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재미있는 일화 하나. 베트남전 당시 미국에도 반전운동이 심했고 영화배우 제인 폰다, 가수 조앤 바에즈와 같은 반전운동가들은 전시에 하노이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하노이 유명호텔을 리노베이션하다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지하 방공호를 발견했는데 그 방공호에서 그들이 남긴 메모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수년 전에는 전쟁 중에 희생된 젊은 베트남 여인의 일기가 알려져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전쟁에 대한 원망, 비참한 조국의 운명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이 일기는 한 미국인이 간직해 오다가 수년 전 책으로 출판되었다. 전쟁의 상흔은 이렇게 아직도 여기저기 남아 있다.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남아 있다. 그러나 베트남 사람들은 그걸 드러내지 않는다.
  • [당신의 책]

    승부의 세계(포 브론슨·애쉴리 메리먼 지음, 서진희 옮김, 물푸레 펴냄) 베스트셀러 ‘양육쇼크’의 저자들이 ‘경쟁의 과학’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했다. 최첨단 과학을 동원한 저자들은 서열 심리, 실수에 얽힌 신경과학, 두려움이 없는 DNA 등의 전문지식은 물론 조종사 비행훈련, 자동차 경주, 스파이 세계 등 다양한 경쟁 상황을 소개한다. 356쪽. 1만 5800원. 부서져야 일어서는 인생이다(엘리자베스 레서 지음, 노진선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미국의 저명한 치유 전문가로 미국 최대 성인 교육 센터 오메가협회의 공동설립자인 저자가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고된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라고 조언한다.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460쪽. 1만 4000원. 무엇이 우리를 일하게 하는가(한호택 지음, IGM북스 펴냄)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가치관 경영’의 핵심 원리를 소설로 풀어 썼다. 주인공 ‘가한’이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답을 찾는 모습을 통해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사람답게 사는 것’에 대해 자문할 기회를 준다. 408쪽. 1만 6000원. 신데렐라가 내 딸을 잡아먹었다(페기 오렌스타인 지음, 김현정 옮김, 에쎄 펴냄) 언제부터 세상의 모든 소녀들이 공주님이 됐을까. 소녀 문화와 딸 양육에 대해 20년간 글을 써온 저자가 ‘여성스러운 소녀’(girlie girl) 문화 속에서 딸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방법을 제시한다. 아름다움과 섹시함이 아이들을 어떻게 아프게 만드는지 이야기한다. 336쪽. 1만 5000원.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다니엘 튜더 지음, 노정태 옮김, 문학동네 펴냄) 한국 생활 6년차인 영국 출신의 저널리스트가 한국의 속살을 낱낱이 파헤친 책. 지난해 11월 영어판으로 먼저 나온 이 책에는 푸른 눈의 이방인이 본 한국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정치, 경제, 문화, 역사 등을 넘나들며 촘촘하게 분석돼 있다. 456쪽. 1만 7000원. 아파트 한국사회(박인석 지음, 현암사 펴냄) 한국의 ‘아파트 불패 신화’는 왜 꺼지지 않는가를 돌아본 책.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인 저자가 수십년 만에 한국인의 삶의 방식을 바꿔버린 ‘아파트 미스터리’에 대해 ‘단지 개발 전략’을 토대로 답을 내놨다. 모두가 아파트에서 탈출할 순 없지만, 좀 더 살맛 나는 아파트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넌지시 묻는다. 400쪽. 2만원. 까치 이현세의 골프가 뭐길래(박순표 글 이현세 그림, 새론피앤비 펴냄) YTN의 정치부 기자인 박순표가 골프를 담당하면서 많은 프로선수들에게 레슨을 받고 현장에서 겪은 경험담을 수록했다. 소문난 골프광인 만화가 이현세가 삽화와 에피소드 만화를 곁들여 초보자는 물론 중상급자들에게도 꼭 필요한 테크닉과 노하우를 알기 쉽게 전해준다. 내용을 보강해 완전개정판으로 새롭게 선보였다. 335쪽. 2만원. 미국 외교 50년(조지 F. 케넌 지음, 유강은 옮김, 가람기획 펴냄) 저자는 1, 2차 세계대전을 관통하는 현대사의 격동 현장을 지켜보고 국제 정세 흐름을 주도했던 ‘제국의 책사’로 불린다. 이 책은 그의 강연과 논문을 모은 고전이다. 한국어판은 이번이 첫 출간. 20세기 국제 정세에 대한 케넌의 통찰, 대외정책 분석 등이 실려 있다. 376쪽. 2만원. 마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제리 포더 지음, 김한영 옮김, 알마 펴냄) 저명한 철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저자가 기존 인지과학의 패러다임을 비판한 책. 역시 유명한 인지과학자인 스티븐 핑커의 저서 ‘마음은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한 반론 형식을 띠고 있다. 포더는 단순한 가설을 전체 맥락과 엮어 이끌어 내는 식으로 인지가 이뤄진다는 ‘귀추 추론’ 이론을 내세운다. 228쪽. 1만 5000원. 강신주의 다상담(강신주 지음, 동녘 펴냄) 1권인 ‘사랑·몸·고독’편과 2권 ‘일·정치·쫄지마’가 나왔다. MBC라디오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 코너에서 시작해 ‘벙커1’의 ‘벙커1 특강’ 간판 프로그램이 된 ‘강신주의 다상담’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폐부를 찌르는 돌직구와 인문학을 종횡무진하며 뼈와 피가 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268쪽, 294쪽. 각권 1만 3500원.
  • 세계인이 감탄한 대한민국 ‘산림 녹화’의 기적

    세계인이 감탄한 대한민국 ‘산림 녹화’의 기적

    한국은 과거 민둥산 비율이 50%에 이를 정도로 산림이 극도로 황폐한 나라였다. 유엔조차 “산림의 황폐화가 고질적이라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는 평가를 내렸던 터였다. 이랬던 나라가 어떻게 불과 수십년 만에 산림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걸까. 세계인들이 기적이라며 감탄하는 대한민국 산림 녹화 성공의 역사를 KBS 1TV ‘다큐극장’에서 되짚어 본다. 3일 밤 8시 방영되는 ‘민둥산의 기적, 산림녹화’ 편이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흔히 흰색과 붉은색으로 표현됐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붉은 땅에서 흰옷을 입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당시 황폐한 산림은 육안으로 보기에만 비참한 것이 아니라 그 땅을 터전으로 사는 국민들의 삶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비가 조금만 와도 산에서 흙이 씻겨 내려와 하천과 강바닥이 높아지면서 홍수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전답이 매몰되면서 폐농이 속출했다. 반대로 조금만 가물어도 하천과 강의 발원지인 산과 계곡이 순식간에 마르면서 시도 때도 없이 흉년이 찾아왔다. 산의 저수 능력도 지금의 10분의1에 불과해 국민들은 일상처럼 물 부족에 시달렸고 생태계는 사막화 직전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승만 정부는 매년 식목일 행사를 주도하며 조림사업을 수도 없이 구상하고 실시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게다가 나무를 한 토막이라도 내다 팔면 현금을 쥘 수 있는 시절이었으니 생계형을 넘어 기업형 도벌까지 기승을 부렸다. 마침내 ‘한반도의 허파’라 일컬어지던 지리산마저 폐허의 민둥산이 될 위기에 놓인다.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산림 강국이다. 1969년 한국의 산림 황폐화는 고질적이라서 치유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내렸던 유엔에서도 1982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 복구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라고 했다. 전 세계 환경정책의 대부라 불리는 레스터 브라운은 자신의 저서 ‘플랜B 2.0’을 통해 “한국의 산림녹화는 세계적 성공작”이라며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는 세계적 임목육종학자 현신규 박사 등 대한민국 산림 녹화의 선각자들, 그리고 녹화 조림에 열과 성의를 다한 국민들이 합쳐 만들어 낸 승리의 역사였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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