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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중종의 시대(계승범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16세기 전반 중종 대에 발생한 사림과 사화 등 여러 가지 변화 속에서 유교라는 소프트웨어가 정착되어 간 과정을 살핀다. 1392년 새 왕조 건국과 동시에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사회혁명에 준하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고려의 체제가 상당 부분 지속됐다. 저자는 조선이 조선다워진 시기는 16세기 전반부터라며 조선왕조의 상부구조에서 발생한 주목할 만한 변화의 실제와 의미를 살핀다. 특히 국내 정치무대의 주체세력으로 등장한 사림이 성리학적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고 현실사회를 변화시키려 했던 정풍운동을 집중 조명한다. 성종~중종 연간에 발생한 사림과 훈구의 정치충돌에 대해 저자는 이질적 사회계층 간 충돌이 아니라 일종의 정치 쇄신 운동이었으며 이후 사대와 유교가 실질적 합체를 이뤄 조선다운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다고 강조한다. 336쪽. 1만 8500원. 사물과 마음(살만 악타르 지음, 강수정 옮김, 홍시 펴냄) 정신분석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시거니상 수상자이자 미국 제퍼슨의대 정신의학과 교수인 저자가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했다. 300여권의 책을 집필한 그가 펴낸 유일한 대중교양서. 우리의 생애주기를 따라 변해가는 사물의 의미와 사물이 지니는 정서적 가치를 깨우쳐 준다. 우리는 사물의 습득과 사용법을 배우고, 수집하고 쌓아 놓으면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물건들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삶이 저무는 시기가 되면 최소한의 사물들에 의지해 남은 생을 살다 사라진다. 하지만 우리가 지녔던 물건들은 우리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뒤에도 살아남는다. 책은 저자가 “우리네의 삶을 든든하고 흥미롭고 즐겁게, 그리하여 의미로 충만하게 만들어 주는 크고 작은 모든 사물들에 보내는 찬사”다. 204쪽. 1만 2000원. 역사 앞에 선 미술(엘루아 루소·니콜라 마르탱 지음, 이희정 옮김, 솔빛길 펴냄) 절대왕정 체제에서 화가들의 주임무는 권력자의 치적을 그리고 부유층의 재력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19세기 초·중반 고야, 제리코, 들라크루아 등 몇몇 화가들은 역사의 희생자들과 패배자들의 시각을 화폭에 담았다. 책은 프랑스혁명부터 스탈린의 몰락, 1·2차 세계대전, 9·11테러 등 근현대사의 결정적 사건 50가지를 마주한 대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시대를 읽었으며 미술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 준다. 1816년 7월 2일 모리타니 근해에서 난파한 군함 메두사호에서 생존한 사람들의 고뇌와 절망을 그린 제리코의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은 낭만주의를 알리고 역사를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선보였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등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한다. 94쪽. 2만원. 구중궁궐 여인들(시앙쓰 지음, 신종욱 옮김, 미다스북스 펴냄) 아름답고 화려해 보이는 구중궁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터였다. 전쟁의 주인공은 황후와 비빈들. 여기에 황제와 그의 여인들의 시중을 드는 환관들까지. 중국 최고의 황실역사 전문가인 저자는 구중궁궐 한복판에서 벌어진 인간 본연의 관능과 권력에 대한 욕망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처절하게 투쟁하는지를 실감나게 보여 준다. 이복동생 문강화 태자시절부터 정을 통한 제나라 양공, 궁녀의 수를 역사상 처음으로 1만명 넘게 늘리고 양이 끄는 마차를 타고 가다 멈춰선 곳에서 침소를 정했다는 양 무제, 연적의 눈과 귀, 입, 사지를 자르고 고통 속에 죽게 만든 여 태후, 궁녀의 두 손을 잘라 찬합에 담아 황제에게 보낸 남송 광종의 황후 이봉낭 등 구중궁궐 잔혹사는 납량특집 못지않다. 480쪽. 1만 9800원.
  • 교황, 하늘 아래 가장 오래된 군주

    교황, 하늘 아래 가장 오래된 군주

    교황 연대기/존 노리치 지음/남길영 외 옮김/바다출판사/872쪽/3만 8000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교황 관련 서적들이 잇따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신간 ‘교황 연대기’는 교황권의 시초로 알려진 성 베드로에서 시작해 현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2000여년간 이어진 방대한 교황사를 한 권에 정리한 책이다. ‘비잔티움 연대기’로 잘 알려진 외교관 출신 영국 작가이자 역사가인 존 노리치가 25년 이상 구상해 집필한 역작이다. 교황직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군주제로 280여명이 그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 저자는 초대 교황으로 추앙받는 성 베드로의 정통성부터 추적한다. 마태복음 16장에는 “예수가 시몬에게 이르기를…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운 터인즉…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적혀 있다.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성당 천장에도 새겨진 그 몇 말씀이 모든 가톨릭교회 조직의 근간이 된다. 저자는 “베드로가 로마에 와서 바티칸 언덕 부근 어디선가 죽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면서도 “베드로가 하지 않은 일 중에 가장 확실한 것은 로마교회를 세우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노리치는 베드로가 사후에 이렇게 떠받들어진 확실한 이유를 “2세기에 로마교회가 다른 교회들에 대해 우월적인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기 때문이며 우월성을 정당화할 훌륭한 명분을 마태복음 16장에서 찾았다”고 설명했다. 교황의 권위를 확고하게 다진 인물은 그레고리오 1세(590~604)였다. 로마의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30대 초반에 로마시 지사 자리에 올랐던 그는 아버지의 사망과 함께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면서 자기 가문의 성을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바꾸고 자신도 수사로 입문했다. 초기 중세시대 가장 위대한 교황으로 꼽히는 그는 역병으로 선종한 교황 펠라치오 2세의 뒤를 이어 수도사 출신으로는 최초로 교황에 올랐다. 뛰어난 행정가, 기획자, 선교사였던 그는 교회의 질서를 바로잡고 체제를 정비해 로마의 가톨릭교회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임을, 그리고 그 조직 내에서 교황권이 최고의 권위임을 사람들의 생각 속에 심어 주었다. 레오 3세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었지만 서기 800년 성탄절 아침에 샤를마뉴에게 황제의 관을 씌워줌으로써 황제 위에 있는 교황의 위상을 세웠다. 레오 4세의 뒤를 이어 2년 7개월 4일 동안 교황직을 수행했던 조안이 여성이었다는 것은 교황 역사상 가장 진부한 헛소문으로 꼽힌다. 조안(855~857) 교황이 여자였다는 주장에 따르면 영국인인 조안은 남장을 하고 아테네에 들어와 다양한 학문에 통달했으며 로마로 가서 인문학을 가르치다 만장일치로 교황에 선출됐다. 교황직을 수행하던 중 동료 수사에 의해 임신을 하게 된 그녀는 정확한 출산일을 알지 못하고 지내다가 베드로 대성당과 라테란 궁으로 이어지는 행렬 중에 출산했다. 그녀가 성난 군중들에게 죽임을 당해 그 자리에 매장됐다는 설, 수녀원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설 등이 전해지지만 교황 목록에서 그녀의 이름은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믿기 어려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실존했을 가능성을 입증하는 증거들은 더러 있다. 그중 하나가 400년간 교황의 즉위식에 사용됐던 구멍 뚫린 의자다. 변기처럼 생긴 이 의자는 추기경의 성별을 확인하는 데 쓰였다고 하며 지금은 바티칸 박물관에 있다. 이 밖에 십자군 원정을 이끌고 중세 교황권력의 정점을 찍은 인노첸시오 3세 교황,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의 알렉산데르 6세와 율리오 2세 등 세속권력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던 교황들, 반종교 개혁의 선봉에 섰던 바오로 3세, 나폴레옹과 투쟁했던 비오 7세, 이탈리아 통일운동 속에서 교황권을 이끌며 많은 변화를 도모했지만 실패한 비오 10세의 이야기도 다룬다. 20세기에는 두 번의 세계대전 중에 교황직을 수행한 베네딕토 15세와 반유대주의자를 혐오했던 비오 12세, 33일간 교황에 재임한 요한 바오로 1세의 미스터리를 풀어본다. 교황의 통치권, 신품권, 교도권을 상징하는 삼중관을 없애고 군중 사이에서 어깨 높이로 교황을 태우고 운반하는 교황의 가마와 같은 모든 과시적 요소를 없앤 요한 바오로 1세는 1978년 9월 29일 새벽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66세로 무척 건강했던 그가 살해된 것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들은 존재하지만 검시나 부검은 없었다. 노리치는 “오늘날 전 세계에 불가지론이 퍼져 있는 상황에도 로마가톨릭교회가 번영하고 있다는 것을 성 베드로가 보았다면 실로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적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스포츠 돋보기] ‘징계대장’ 박항서는 억울하다

    [스포츠 돋보기] ‘징계대장’ 박항서는 억울하다

    상주 박항서 감독이 또 프로축구연맹(이하 연맹)의 징계를 받았다. 이번엔 제재금 700만원이다. 지난 23일 FC서울 원정경기 1-2 역전패 뒤 기자회견에서 “누군가에 의해 경기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벤치에 있는 의무까지 퇴장시키는데 무슨 이야기를 더 하겠는가”라면서 “옐로카드를 7~8개 받은 것 같은데 심판이 (카드를) 더는 꺼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라며 작심하고 심판 판정을 비꼰 것이 화근이었다. 연맹은 31일 “박 감독은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과도한 판정 항의로 퇴장 처분과 징계를 받았다. 가중 제재에 이의를 달지 않겠다고 약속한 후에도 불미스러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징계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지난 4월 9일 서울전에서도 판정에 대해 욕설과 항의를 퍼붓다 5경기 출전 정지와 제재금 50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일차적 책임은 다혈질인 박 감독에게 있다. 그는 2003년 포항 코치 시절부터 이번까지 모두 15회 징계를 받았다. 한 번만 더 받으면 이 부문 최다 기록(16회) 보유자인 박종환 전 성남 감독과 같아진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박 감독에게만 미뤄야 할까. 그는 11년의 프로팀 지도자 경력 가운데 절반 가까운 7번의 징계를 상주 감독이 된 2012년 이후에 집중적으로 받았다. 무슨 연유일까. 올 시즌 K리그 클래식 17라운드까지의 기록을 보면 상주는 17경기에서 35장의 옐로카드를 받았다. 12개 구단 가운데 포항(38장)에 이어 2위다. 특히 경고 누적이 아니라 곧바로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한 경우는 4차례로 부산, 인천(이상 2회)을 제치고 단연 1위다. 군인 특유의 투혼을 과하게 발휘했다 해도 지나친 수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경고 두 번 받고 퇴장당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은 한국의 특수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채 군·경팀(상주·안산)을 K리그에서 배제할 것을 연맹에 지적해 왔다. 축구계 안팎에도 이에 동조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박 감독 입장에서는 심판의 레드카드가 나올 때마다 ‘피해의식’이 더 강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불평과 징계의 악순환을 더 강한 징계만으로 끊을 수 있을까.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나도 스커드 미사일·전투기 ‘주인’ 될 수 있다?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나도 스커드 미사일·전투기 ‘주인’ 될 수 있다?

    -일반인 대상 온라인 경매 후끈- 지난해 가을 뜨거운 이슈였던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선정과 관련하여 뉴스를 접한 국민 가운데 대부분은 천문학적 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전투기 가격에 혀를 내두른 기억이 있을 것이다. 3종류의 후보기종 모두 대당 가격이 국산 중형차의 5,000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사실, 무기라는 것은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인 군대만이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구매자가 한정되어 있어 일반 공산품처럼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어렵다. 또한 각종 첨단 부품들이 대량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대부분 일반인들이 구매하기에는 너무도 비쌀 수밖에 없다. 물론 유럽과 미국, 일본 등지에서는 전투기와 전차, 장갑차를 구매해 전쟁놀이를 할 때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 리인액터(Reinactor)라고 불리는 무기 동호인들이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구매할 수 있는 무기들은 대부분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것들로 현용 군사장비들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주요 강대국들이 현재도 운용중인 진짜 무기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시장에 나온다면 어떨까? -’중형차 가격’에 토네이도 전투기 낙찰- 영국의 인터넷 경매업체 실버스톤(Silverstone)은 최근 인터넷 경매를 통해 2대의 최신 전투기를 일반인에게 판매했다. 판매주는 영국공군이었고 구매자는 신원을 밝히지 않은 민간인들이었는데 심지어 낙찰자 가운데 한명은 여성이었다. 판매된 전투기는 영국공군이 최근까지 운용하던 해리어(Harrier) GR.3 전투기와 토네이도(Tornado) F3 전투기였다. 해리어 GR.3 전투기는 영국공군이 1976년부터 운용했던 기체로 공대공 미사일과 폭탄 등을 운용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테니스 코트에서도 뜨고 내릴 수 있는 수직 이착륙 전투기다. 영국 에섹스 지방에 사는 한 남성은 이 전투기를 10만 5,800파운드, 우리 돈으로 1억 8,840만원에 낙찰 받아 가져갔다. 고급 외제승용차로 불리는 BMW 7시리즈나 벤츠 S클래스 가격에 수직 이착륙 전투기가 판매된 것이다. 여성이 낙찰 받아 화제가 된 토네이도 F3 전투기는 최근까지도 영국공군의 주력 방공전투기로 운용된 기체로 1988년에 생산된 매물이었다. 영화 ‘탑건’을 통해 유명해진 F-14와 마찬가지로 가변익 형상을 하고 있으며, 마하 2.2까지 초음속 비행이 가능하고, 각종 정밀유도무기를 운용할 수 있다. 낙찰자 여성은 이 전투기를 36,800파운드, 우리 돈 6,414만원에 받아갔다. 신형 제네시스나 K9 수준의 가격이다. 실버스톤사는 이번에 경매로 팔린 전투기들은 아직도 비행이 가능하며, 현역 시절과 같은 완벽한 상태였다면서 낙찰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경매에 참여해 열기가 뜨거웠다고 전하고 있어 전투기를 구매하고자 하는 민간인들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수준보다 굉장히 많았음을 짐작케 한다. -전투기 타고 출장? ‘비즈니스 제트기’ 출시- 한술 더 떠 미국의 한 항공기 제조업체에서는 전투기 형태에 초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이 가능하고, 사출좌석까지 갖춘 2인승 ‘비즈니스 제트기’를 개발해 곧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기 때문에 장거리 출장을 위해, 혹은 단순히 취미를 위해 전투기를 타고 다닐 민간인들이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돈만 있으면 인터넷 경매로 살 수 있는 물건은 전투기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인터넷 경매업체인 옥션스 아메리카(Auctions America)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군용 사륜구동차부터 전차, 장갑차, 심지어 스커드 미사일까지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오파드 전차·스커드 미사일도 매물로- 현재 나와 있는 매물은 6.25 전쟁에서도 쓰였던 M4 셔먼 전차부터 핵포탄 발사에 쓰였던 소련의 203mm 2S7 자주포, 심지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썼던 4호 전차와 같은 반세기 전의 장비들은 물론 우리 군이 현재도 대량으로 운용하고 있는 M48 전차와 아직도 유럽 여러 나라가 쓰고 있는 레오파드 전차에 이르기까지 무려 120종이 넘는다. 특히 세계적으로 희귀한 4호 전차는 현용 주력전차들의 가격과 맞먹는 260만 달러, 우리 돈 27억 원 가량에 매물로 올라와 이목을 끌고 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스커드 미사일이다. 소련군이 실제로 운용했던 실물에서 탄두만 뺀 이 미사일은 북한도 보유하고 있는 사거리 300km짜리 스커드 A형인데, 이 미사일은 불과 35만 달러, 우리 돈 3억 6천만 원에 매물로 나왔다. 돈만 주면 소총부터 전투기, 미사일까지 민간인이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대부분 전시용이나 리인액트먼트와 같은 여가생활용이겠지만, 이들 전투기나 탱크에 공포탄을 넣을지 실탄을 넣을지는 순전히 구매자 마음이다. 민간인들에게 판매된 살상무기들이 테러나 범죄에 악용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안젤리나 졸리 “브래드 피트와 자필 러브레터 주고받아”

    안젤리나 졸리 “브래드 피트와 자필 러브레터 주고받아”

    안젤리나 졸리가 브래드 피트와 직접 쓴 러브레터를 주고받으며 애정을 이어간다고 밝혀 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졸리는 호주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영화 촬영 때문에 서로 지구 반대편에 떨어져 있을 때에는 손으로 직접 쓴 러브레터를 주고받는 구식 방법을 쓴다”면서 “우린 서로 친필 러브레터를 쓰며 강한 연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피트는 멀리서도 내게 힘을 준다. 정말 로맨틱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팬들의 부러움을 샀다. 현재 졸리는 영화 ‘언브로큰’(Unbroken)의 감독을 맡아 호주에서 촬영하고 있다. 피트는 호주와는 멀리 떨어진 영국 런던에서 영화 ‘퓨리’(Fury)를 촬영 중이다. 졸리는 두 번째로 메가폰을 잡은 영화 ‘언브로큰’에 집중하기 위해 여섯 아이와 함께 호주로 이사까지 한 상태다. ‘언브로큰’은 올림픽 육상선수이자 2차 세계대전 포로였던 전쟁영웅 루이스 잠페리니의 삶을 담았다. 졸리는 잠페리니와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해왔으며, 지난 7월 초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언브로큰’의 일부를 미리 보여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화는 올해 12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사진=TOPIC / SPLASH NEWS(www.topicimages.com)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인사]

    ■안전행정부 △윤리담당관 신병대△창조정부기획과장 이정민△조직기획과장 김성중△조직진단과장 김정기△시험출제과장 방순동△중앙공무원교육원 스마트교육과장 임병근△국가기록원 정책기획과장 강성기△국가기록원 공개서비스과장 유환석△이북5도 황해도 사무국장 최장관△정부통합전산센터 사이버안전과장 김기원△광주정부통합전산센터 정보시스템1과장 김재열 ■문화체육관광부 ◇과장급△국립중앙박물관 기획총괄과장 김언환△한국정책방송원(과장직위) 장영화△2015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조직위원회 파견 장사성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관 김덕중 ■농촌진흥청 ◇승진△전북도 농업기술원 현장지원국장 곽동옥△충남도 농업기술원 연구개발국장 윤영환 ■세종특별자치시 △보건소장 박항순△농업기술센터소장 신은주△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장 박종구△농업기술센터 미래농업팀장 이현학 ■강원도 ◇과장급 승진·전보△관광시설인허가지원팀장 박재복△교육지원과장 김수산△DMZ정책담당관 안덕수△교육운영과장 이흥철△강원랜드협력관 김왕제 ■KBS △부사장 금동수 ■KDB산업은행 ◇단장급 <개인금융부문>△영업부 손은숙△여의도 강미란 ■인천대 △부총장 남호기△대학원장 이구표△동북아물류대학원장 안승범△인문대학장(문화대학원장 겸임) 김용민△자연과학대학장(기초과학연구소장 겸임) 홍종달△사회과학대학장(행정대학원장 겸임) 권정호△법과대학장 이충훈△공과대학장(공학대학원장 겸임) 황상순△정보기술대학장(정보기술대학원장 겸임) 김익수△경영대학장(경영대학원장 겸임) 주현태△예술체육대학장 이은주△사범대학장(교육대학원장 겸임) 신원태△도시과학대학장 신은철△생명과학기술대학장 배양섭△입학학생처장(사회봉사센터장 겸임) 김용식△기획예산처장 박동삼△연구산학처장(산학협력단장 겸임) 홍윤식△대외교류처장 이호철△제물포캠퍼스 운영본부장 박재세△도서관장 최은미△평생교육원장 박정훈△국제교육원장(외국어교육센터장 겸임) 김정태△체육진흥원장 한상철△취업경력개발원장(학생생활상담소장 겸임) 홍선표△생활원장 여운호△대학출판부장 조사옥(일어일문학과)△교육방송국주간 이기영△인천학연구원장 박진한 ■이화여대 △대외부총장 박영일◇대학원장△정덕애△의학전문(의과대학장 겸임) 김경효△법학전문(법과대학장·감사실장 겸임) 오수근△사회복지전문(사회복지대학원장·사회복지관장 겸임) 정순둘△신학(목회상담센터소장·여성신학연구소장 겸임) 박경미△정책과학(정보과학대학원장 겸임) 최대석◇대학장△인문과학 오정화△사회과학 함인희△자연과학(세포항상성연구센터소장 겸임) 윤영대△사범(교육연수원장·영재교육원장 겸임) 김성원△건강과학 김경숙◇처장△교무 서혁△기획 박선기△학생 석인선△입학 남궁곤△총무 조미숙△재무 이외숙△연구(산학협력단장 겸임) 오억수△국제교류(국제하계대학원장 겸임) 박인휘△정보통신 채기준△대외협력 오진경◇원·관장△평생교육원(원격평생교육원장·문화예술교육원장 겸임) 채현경△중앙도서관 정연경△교양교육원(이화RC센터장 겸임) 장미영 ■씨네21 △대표이사 김충환
  • [사설] 이스라엘 가자지구 공습 즉각 멈춰야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습이 이어지면서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이 급증하고 있다. 그제는 가자지구의 한 공원 놀이터에 포탄이 떨어져 어린이 9명이 숨지는 비극도 발생했다. 날아든 미사일에 목숨을 잃은 엄마 뱃속에서 한 생명이 의료진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태어났다는 소식은 전쟁이 빚어내는 참극의 끝이 어디일지 가늠하기조차 힘들게 만든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그 뿌리가 깊은 만큼이나 해법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멀리 보면 지난 28일로 발발 100년을 맞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씨앗이 잉태된 이-팔 분쟁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팔레스타인인 80만명이 추방당하고 1만 5000명이 학살되는 비극을 시작으로 21세기 오늘날까지 숱한 살육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8일부터 시작된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만 해도 20일 남짓 만에 1200명이 넘는 사망자와 7000여명의 부상자를 냈다. 400여명이 희생된 2009년 공습을 크게 웃도는 규모의 인명 피해다. 내세운 명분이 무엇이든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은 그 행태가 야만적이라는 점에서 일말의 정당성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를 공격목표로 삼았다지만 정작 그들의 미사일과 포탄은 학교나 병원처럼 최악의 사태에서도 보호돼야 할 시설까지 가리지 않고 있다. 희생자의 80%가 민간인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자국 청소년 3명 살해 사건을 명분으로 들고 있으나 이는 가자지구가 아닌 이스라엘 서쪽 요르단강 서안지역에서 벌어진 일이다. 가자 공습의 명분으론 군색하기 짝이 없다. 차라리 의도적 분쟁 강화를 통해 팔레스타인의 정치 통합과 이를 바탕으로 한 이-팔 평화협상 재개를 저지하려는 목적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갖고 있다 할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엊그제 “하마스의 지하터널이 모두 파괴될 때까지 우리 군은 가자지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90%가 넘는 이스라엘 국민들도 정부의 가자 공습을 지지한다고 한다. 이에 하마스 측도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있다. 양측의 의지로는 결코 지금의 살육이 끝나지 않을 것임을 말해준다. 안 될 말이다. 지구촌이 힘을 모아야 한다. 보복이 보복을 낳으며 무고한 희생을 늘려가는 이 참극을 당장 끝내야 한다. 유엔은 지금의 무기력을 떨쳐내야 하며, 미국은 보다 강력한 의지로 이스라엘에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 은행권 가계대출 평균금리 사상 첫 3%대

    은행권 가계대출 평균금리 사상 첫 3%대

    은행권 가계대출 금리가 사상 처음 3%대에 진입했다. 한국은행이 30일 내놓은 ‘6월 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은행권의 가계대출(신규 취급액 기준) 평균금리는 연 3.94%로 전월보다 0.08% 포인트 떨어졌다.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9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08년 연 7%대였던 가계대출 금리는 2009년 5%대로 떨어진 뒤 2012년 8월 4%대에 진입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돈이 많이 풀리면서 약 2년 만에 3%대로 내려앉았다. 은행권이 혼합형(고정금리+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늘리면서 금리 경쟁에 나선 것이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이주영 한은 금융통계팀 차장은 “은행들이 6월 실적 평가를 앞두고 우량 고객에 대한 저금리 대출에 나선 것도 가계대출 금리가 떨어진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예금 금리도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은행의 저축성수신 평균 금리는 연 2.57%로 한 달 전보다 0.02% 포인트 하락했다. 역시 역대 최저 수준이다. 1년 만기 정기예금 이자는 이미 연 1%대까지 떨어졌다. 한은이 다음달 기준금리를 내리면 예금·대출 금리는 더 떨어질 전망이다. 안미현 기자 hyun@seoul.co.kr
  • [열린세상] 시진핑의 한국 방문이 남긴 여운/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시진핑의 한국 방문이 남긴 여운/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다녀갔다. 한국은 지정학적 여건상 주변 국가들 모두와 화평스럽게 지내는 것이 상책이라서 중국과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시진핑이 한국을 다녀가고 나서 머리는 이래저래 복잡해진 느낌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과의 관계를 맺으면서 역사상 가장 가까운 한·미동맹으로 발전한 지금 한국은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역사 이래 가장 풍요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 국제적 위상도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지켜주고 평화의 60여년을 지날 수 있었기에 한국은 세계의 무역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에 성공하고 막강한 경제력을 근간으로 동북아의 최강자로 군림하고자 하는 야망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한국 주변의 안보 역학구도는 빠른 속도로 대립의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중국이 이제 때가 됐다는 결심을 하고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센가쿠 열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본격적으로 거론하자 일본은 집단자위권을 해석변경하며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나라로 변모하고 있다. 중국은 센가쿠 열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기에 앞서 동중국해, 남중국해를 중국의 내해(內海)로 만들기 위한 역사적인 작업을 착착 진행시켜 왔다. 여기에는 황해도 포함돼 있다. 중국 대륙 최남단의 해남도를 남해함대 본거지로 삼고 1000㎞나 남쪽으로 떨어져 있는 남사제도의 영유권을 1988년부터 거론하기 시작했고 그 중간에 위치한 서사제도는 1974년에 베트남으로부터 탈취해 군사 요새화했다. 이제는 해남도에 탐지가 쉽지 않도록 물밑으로 드나드는 잠수함기지를 건설했고 항공모함 부두도 마련 중이다. 대륙간탄도탄을 발사할 수 있는 원자력 잠수함도 배치돼 있다. 미국 항공모함보다 허술하기는 하지만 항공모함 랴오닝호가 실전 배치됐고 차기 항모도 배치할 예정이다. 시간을 두고 이런 준비를 해온 중국이 드디어 일본의 센가쿠 열도의 영유권을 주장하자 일본은 잠수함 16척 체제에서 22척 체제로 전환해 중국에 맞서기 시작했고 이지스함도 6척에서 8척으로 증강됐다. 그 와중에 한국도 군비증강에 동참해야 하니 눈덩이 같은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한국 경제의 앞날은 불안하기만 하다.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하겠지만 국방만큼은 더욱 굳건한 한·미동맹으로 바닥을 다져야 한다는 것을 실감케 된다.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용인하면서 군사력 확장과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나라로 변모하는 현실을 견제하고 경계해야 하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북아의 안보평형 상태를 뒤흔들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란 사실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급속히 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세계를 지배하는 G2 체제를 미국과 중국으로 각인시키며 서태평양 제해권을 미국에 양보하도록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국가도 국력이 강해지면 그에 걸맞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국제정세지만 1970년대부터 중국이 보여준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갈등은 지역패권주의의 모습이 강해 안보불안이 증폭돼 왔다. 동북아시아에는 당사국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영토분쟁으로 불리는 사례가 몇 곳 있다. 한국은 전혀 인정하지 않지만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일본은 러시아에 홋카이도 북쪽 북방영토를 돌려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센가쿠 영토를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중·일 군비경쟁이 촉진되고 있는 중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고 그나마 조용했던 영토분쟁의 갈등을 중국이 본격적으로 거론하면서 영토분쟁은 해결책도 없이 무기 사재기로 돌변해 가고 있다. 중국이 걱정스러운 것은 서해바다뿐만 아니라 동해바다에도 수백척의 어선을 보내 한국의 수산업을 위협하고 있으니 중국의 힘이 더 강해지면 어떻게 나올지 짐작이 간다. 시진핑이 한국에 와서 친척집에 온 것 같다는 말이 어째 친근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중국이 한국의 형님”이라는 말로 들려 섬뜩하다. 21세기 개명천지에 국가 간의 관계는 친구로 불리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어둠에 묻힌 20세기… 미래는 더 어둡다

    어둠에 묻힌 20세기… 미래는 더 어둡다

    재평가/토니 주트 지음/조행복 옮김/열린책들/616쪽/2만 8000원 지난 세기가 막을 내리고 불과 10여년이 지났을 뿐인데 아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그토록 빠르게 망각 속으로 사라져도 될 만큼 20세기가 무미건조했는가 하면 그 반대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이념 갈등, 대공황과 두 번의 세계대전, 나치의 인종청소와 대학살, 그리고 공산주의의 몰락 등이 모두 20세기에 벌어졌다. 인류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재앙’으로 점철된 극적인 한 세기였다. 역사학자 토니 주트는 20세기가 끝나고 21세기가 열리는 즈음 사람들이 과거를 보는 관점에 주목했다. 사람들이 과거를 망각한 채 새로운 세계에 이끌리고 있을 때 그는 “사람들은 대체로 기억하기보다는 잊고, 야만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신간 ‘재평가’(Reappraisals·2008)는 전후 유럽에 관한 최고의 역사서로 평가받는 ‘포스트워 1945~2005’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주트가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여러 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것이다. 12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집필된 글들은 모두 장문의 서평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얼핏 보아선 각 주제들이 서로 개연성이 없어 보이지만 방대하고도 개별적인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글들은 지나간 한 세기를 예리한 시선으로 꿰뚫고 있다. ‘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의 서문에서 주트는 “우리는 20세기를 떠나보내며 지나치게 자신만만했고 성찰은 너무 부족했다”면서 “우리가 과거를 너무 쉽게 잊어 과거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고 개탄한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들부터 미국의 외교정책까지, 세계화의 경제학에서 악에 대한 기억까지 매우 다양하다. 지리적으로는 벨기에에서 이스라엘까지 포괄한다. 사상의 역할과 지식인의 책임, 망각의 시대에서 최근 역사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가 주된 관심사였던 만큼 주트는 20세기의 지식인에 대해 많은 장을 할애했다. 알베르 카뮈가 1960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지 30여년 만에 출간된 소설 ‘최초의 인간’ 서평을 통해 주트는 카뮈가 “매우 비열한 시대의 가장 고귀한 증인”이었으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함을 논해 유대인들의 분노를 샀던 해나 아렌트는 “큰 문제를 옳게 이해했고, 그렇기에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주트는 “20세기를 이해하기 위해선 사상의 힘, 특히 마르크스주의가 20세기의 상상력에 행사한 놀라운 힘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지금은 잊혀진 폴란드 철학자 레셰크 코와코프스키를 재조명했다. 반면 평범한 철학자에 불과했던 루이 알튀세르와 60년 동안 공산당원이었던 에릭 홉스봄은 혹독한 비판을 받는다. 20세기 국가의 역할에 대해 그는 “제일 먼저 의지할 자연스러운 후원자가 아니라 경제적 비효율과 사회적 간섭의 원천으로서 가능하면 시민의 일에서 배제해야 할 대상으로 일반화됐다”며 비판적인 평가를 내렸다. 유대인인 주트는 “오늘날 극소수의 외부인만 이스라엘 사람들을 희생자로 본다. 그러나 진짜 희생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미국의 대외정책과 신자유주의의 위험에 대해서도 여러 장에 걸쳐 다루고 있다. 미국은 점령당한 적이 없으며 월남전과 같은 신식민지 전쟁에서 굴욕을 맛보았지만 패배의 결과로 고초를 겪기는커녕 부유해졌기 때문에 미국 정부에 전쟁은 여전히 선택 범위 안에 있는 수단에 속하며 그중에서도 최우선으로 쓸 수단이 됐다고 적었다. 그는 또 1차 세계대전에 앞서 몇십년간 자본주의가 전례 없이 팽창하자 사람들은 그것이 무한한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넘어가는 문턱이라고 가정했음을 상기시키면서 21세기 자본주의의 찬란한 번영이 영원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과 기대를 경고했다. 주트는 “새로운 시대를 떠받치는 굵직한 토대들의 대부분은 20세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며, 현재는 과거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라며 “잃어버린 세계의 핵심을 놓치면 미래도 없다”고 강조한다. 토니 주트는 1948년 런던에서 동유럽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대 킹스칼리지와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하고 케임브리지대, 버클리대, 옥스퍼드대, 뉴욕대에서 역사를 가르쳤다. 불의를 목격할 때마다 지식인의 시각에서 그것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그는 명성이 정점에 달했던 2008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2010년 8월 사망했다. 몸이 거의 마비된 상태에서 동료학자의 도움을 받아 펴낸 책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는 그의 사회적 유언이 됐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대재난에서 배운다] ‘도심 대재앙’ 막아라…문부성 산하 지진본부 매월 대책회의

    [대재난에서 배운다] ‘도심 대재앙’ 막아라…문부성 산하 지진본부 매월 대책회의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해 있어 대규모 지진을 여러 차례 겪은 일본은 많은 이의 생명과 재산을 순식간에 앗아 가는 지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을 거듭해 왔다. 일본 지진대책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지진조사추진본부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이달 초 이곳을 찾아 일본 정부의 지진대책 현황에 대해 알아봤다. 일본 도쿄 가스미가세키에 있는 지진조사추진본부는 1995년 1월 17일 발생한 한신·아와지대지진을 계기로 설립됐다. 당시 6434명의 사망자, 건물 10만채 이상 파손이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피해를 가져온 한신·아와지대지진을 계기로 일본은 지진방재대책특별조치법을 제정하고 내각부 직속으로 본부를 만들었다. 현재 문부과학성에 설치돼 있으며 내각관방부·경제산업성·국토교통성·기상청·해상보안청·방재과학기술연구소 등 유관기관에서 파견된 인원을 합쳐 총 143명으로 구성돼 있다. 본부는 정책위원회와 전문위원회인 지진조사위원회로 나뉘는데, 전국의 현장에서 보내온 지진관측 데이터와 연구 조사 결과를 근거로 지진대책을 수립한다. 지진조사위원회는 매월 한 번씩 회의를 열어 지진대책을 점검한다. 총리가 의장을 맡아 방재 기본계획을 작성하고 중요 사항을 심의하는 내각부의 중앙방재회의가 헤드쿼터 격이라면, 이곳은 브레인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지진대책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일본이지만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자연재해에는 필패할 수밖에 없다. 본부 사무국에서 일하는 구리스 세이코 문부과학성 지진방재과 기획조정계장은 “본부가 설립된 이후 가장 큰 지진이었던 동일본대지진의 대책에 대해서는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일본은 전국 2000개 지점에 지진 관측기를 설치해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진 발생을 예측하는데,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경우 진원이 육지가 아닌 해저인 데다 잇따라 일어난 연동형 지진이었다. 과거 데이터상으로는 이렇게 큰 지진이 올 거라고 예측할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동일본대지진에도 속수무책이었고, 근처 후쿠시마현에 있는 후쿠시마 제1원전의 수소 폭발이라는 전무후무한 사고도 미리 막을 수 없었다. 동일본대지진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어 본부는 사고 발생 직후인 4월 지진대책을 재검토하고 6월 해구형지진 장기관측 분과와 쓰나미 평가부를 새로 만들었다. 현재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시코쿠 남쪽의 ‘난카이 트라프’ 지역과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도호쿠 지역이다. 난카이 트라프는 해저 4000m에서 진도 8~9 정도의 강진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곳으로, 100~200년 주기로 큰 지진이 관측됐다. 2000년대부터 이슈화되기 시작했고 이에 본부에서는 2006년~2008년 1차, 2010~2015년 2차로 난카이 트라프 지역에 해저 지진 관측점 설치를 진행하고 있다. 동일본대지진 이후에는 홋카이도에서 도호쿠 지역을 아우르는 곳에 관측점을 설치하고 있다. 본부가 중앙방재회의와 함께 집중하고 있는 사안은 최근 일본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수도직하지진’이다. 수도직하지진은 도쿄 수도권의 바로 아래에서 발생하는 지진을 일컫는 말로, 본부는 수도직하지진이 일어날 확률을 ‘30년 내 70%’라고 관측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앙방재회의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도쿄 도심 남부에서 진도 7.3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사망자 2만 3000명, 부상자 12만 3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건물이 완전히 무너지거나 전소하는 숫자는 61만채, 총 720만명의 이재민이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에서 발생한다. 또한 지진으로 인한 경제 피해도 95조 3000억엔(약 950조원)으로 어림된다. 구리스 계장은 “이런 데이터를 국민들에게 공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각 기관마다 따로 실시했던 연구나 실험을 한데 모아 관측계획을 공유하고 연구가 겹치지 않도록 조정해 결과를 국민에게 보여 주는 본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금융위 “가계빚 급증 없을 것”… 일각 “시한폭탄 건드렸다”

    가계부채 관리의 ‘마지막 보루’인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이 완화되면서 금융당국이 1024조원을 넘는 가계부채를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010년과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LTV·DTI를 한시적으로 완화했지만 일괄 완화로 후퇴한 것은 2002년 9월 LTV 도입 이후 처음이다. 일각에서는 가계부채의 시한폭탄을 건드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도 이에 대한 부담 탓인지 이번 조치를 ‘규제 합리화’라고 애써 강조했다. 금융위는 일각의 비판적 시각을 우려해 이번 완화가 가계대출 증가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금융위는 24일 “가계부채가 크게 늘 것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면서 “주택 구입 수요자의 자금 제약 요인이 크지 않고 과거 투기지역 해제 때를 고려하면 증가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다만 “현재 가계부채 증가와 관련해 가장 큰 위험 요인인 제2금융권 대출 증가 속도를 중점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긍정적 효과를 되레 부각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LTV·DTI에 대한 업권별, 지역별 차등을 폐지하면서 제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이 은행권의 저금리 대출로 이동해 가계의 이자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면서 “특히 내수 활성화와 가계소득 확충 방안이 차질 없이 추진되면 가계부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 소득은 늘리고 부채는 질적으로 개선해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을 적절하게 관리할 계획이라는 얘기다. 당장 이런 효과가 예측됐다면 왜 진작 LTV·DTI 완화를 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조복현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는 “빚을 늘려서 주택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것이 부동산시장 활성화의 정책 목표인데 (금융위의 말대로) 가계대출이 늘지 않으면 정책 효과가 없는 것이고, 그런 정책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순수하게 집 구매를 위해 제2금융권에서 대출받았던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금융당국의 정책 합리화가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씨줄날줄] 제노사이드/문소영 논설위원

    제노사이드(genocide)는 라틴어로 인종을 나타내는 제노스(genos)와 살인(cide)을 합친 단어로, 특정 집단이나 종족을 절멸시킬 목적으로 그 구성원을 대량 또는 집단 학살하는 행위를 말한다. 종교적 갈등이나 인종 우월주의, 이념 문제 등으로 인해 발생한다. 제노사이드를 반인륜적인 범죄로 규정해 기소한 최초의 사건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영국·소련·중국이 참여한 국제군사재판에서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전범을 기소한 것이다.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전범 기소를 위한 국제군사재판에서 나온 판결은 흔히 ‘뉘른베르크 원칙들’이라 불린다. 뉘른베르크 원칙들은 1946년 12월 국제연합에서 확인됐다. 특히 제노사이드에 대해서는 “인간의 양심과 충돌하며 인류에게 큰 손실을 초래하고 도덕률 및 국제연합의 정신과 목적에 위배한다”는 점에서 ‘문명세계가 비난하는 국제법상의 범죄’임을 분명히 했다. 제노사이드의 역사는 기원전 13세기로 추정되는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3세기 해상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시작된 로마제국과 카르타고 사이의 전쟁과 1099년 중세 유럽 십자군에 의한 예루살렘 유대인 대학살 등도 대표적인 사례다. 프랑스 영화 ‘여왕 마고’로 잘 알려진 1572년 성바르톨로메오 학살사건 때는 위그노라 불리는 신교도 5000명이 죽었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미국이 19세기 북미 대륙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원주민인 인디언을 몰아낸 과정, 소련이 공산당 일당 독재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2000만명의 반대자를 숙청한 일, 1970년대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정권이 200만 양민을 학살한 킬링필드, 1998년 세르비아의 코소보 인종청소 등도 모두 제노사이드 범죄다. 제노사이드는 지금도 여전한 현재 진행형 비극이다. 겨우 반세기 전에 제노사이드의 비극을 겪은 민족이 세운 신생국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향해 대량 학살극을 벌이고 있어 국제사회의 비난이 높다. 미국의 방조도 맹비난받고 있다. 지난 20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지상작전을 벌여 이날 하루만 89명이 죽었다. ‘피의 일요일’이다. 팔레스타인 사상자는 어린이를 포함해 약 600명에 이른다. 이스라엘은 폭탄 안에 수천개의 쇠화살이 들어 있는 치명적인 대량살상 무기도 사용했다. 인류의 원한은 쌓여만 간다. 문명에 물들기 이전인 석기시대에 인류는 평화로웠을 것이라는 기존의 학설을 뒤엎고 폭력적인 ‘원시전쟁’의 가능성을 제시한 로렌스 H 킬리의 주장처럼 인류는 구제 불능의 야만인인가.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대한민국 혁신 리포트] 美 19세기부터 허위청구방지 소송… 연방정부에 손해 입히면 배상 청구… 낭비된 예산 25년간 21조원 환수

    국민소송제와 관련해 가장 눈여겨봐야 할 사례는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은 연방정부에 부당하게 손해를 입힌 자(사람이나 기관)를 대상으로 한 허위청구방지 소송이 19세기부터 활발하게 진행됐다.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에도 단체소송, 월권소송, 시민소송이란 이름의 비슷한 제도가 있다. ●환수액 중 소송 낸 사람에게 최대 30% 보상 허위청구방지 소송은 주로 연방정부에 사기 납품으로 손해를 끼친 기업이나 이를 공모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손해배상 소송이다. 남북전쟁(1861~1865년) 당시 군수품 납품업자들이 불량 군수품을 납품해 폭리를 취하자 링컨 대통령이 주도해 1863년 허위청구방지법(FCA)을 제정했기 때문에 ‘링컨법’이라고도 부른다. 이 법은 소송 남용이 사회 문제가 되고 군수업자들의 로비로 규제가 약화되는 바람에 20세기 들어 한동안 유명무실해졌지만 1980년대 들어 군납비리가 증가하자 1986년 법 개정을 통해 다시 규제를 강화했다. 1987년부터 2011년까지 25년 동안 허위청구방지 소송 건수가 7843건이나 됐고 국고로 환수한 예산액이 203억 달러(약 21조원)나 될 정도로 예산 낭비와 부정부패를 막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피고는 패소가 확정되면 정부에 입힌 손해의 3배에 해당하는 금액에 더해 부정청구 건당 최소 5000달러에서 최대 1만 달러에 이르는 민사상 벌금을 추가한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환수액 중 최소 10%에서 최대 35%는 소송을 제기한 사람에게 보상금으로 지급한다. 허위청구방지 소송은 ‘퀴탐(qui tam)소송’이라고도 하는데, ‘자기 자신을 위해서일 뿐 아니라 왕을 위해서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이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은 주로 공익제보자가 많기 때문에 공익제보자 소송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연방·주정부·기초단체 단위로 납세자 소송 미국에선 연방정부와 주정부, 기초자치단체(카운티·타운)를 상대로 한 납세자소송도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이 제도는 1847년 뉴욕시장을 피고로 하는 납세자소송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같은 해 매사추세츠 주정부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남용에 대한 납세자소송을 인정하는 법을 제정한 게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1968년 연방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연방정부의 재정지출이 적법한지 다툴 수 있는 납세자소송도 가능하게 됐다. ●독·프·영, 단체·월권 ·시민 소송 제도 비슷 미국 납세자소송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사령부가 1948년 이 제도를 주민소송이란 이름으로 도입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 제도를 본뜬 제도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미국·일본과 비교하면 소송 요건을 너무 까다롭게 규정하는 바람에 실효성이 극히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세계의 창] 이·팔 전쟁도 우크라 사태도 100년 전 잉태됐다

    [세계의 창] 이·팔 전쟁도 우크라 사태도 100년 전 잉태됐다

    1914년 7월 28일,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길어야 반년이라던 전쟁이 ‘4년간 36개국 6500만 군인이 참전해 850만명이 죽은’ 총력전이자 참호전으로 변했다. 1차 세계대전이 ‘대(Great) 전쟁’, 혹은 ‘모든 전쟁을 끝낸 전쟁’(the War to end all wars)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가장 큰 변화는 홀대받던 하층노동자와 여성들이 전방 전쟁터와 후방 군수공장에서 흘린 피와 땀의 대가로 ‘신민’(臣民)이 아닌 ‘국민’(國民)으로 거듭났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제 몫이 돌아갈 수는 없는 법. 제 몫을 챙기지 못한 이들 사이에 불만이 일었고 이는 오늘날 다양한 국제분쟁의 뿌리가 됐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등이 1차 대전 발발 100주년을 기리며 내놓은 보도를 통해 1차 대전이 남긴 유산을 짚어봤다. 키워드는 4대 제국의 몰락이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1. 중동 분쟁의 뿌리 - 오스만 제국의 몰락 독립을 미끼로 분할통치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오랜 수법이다. 영국·프랑스는 독일·오스트리아 편에 가담한 오스만제국을 해체하기 위해 1916년 ‘사이크스 피코 협정’을 맺었다. 오스만제국 내 소수민족의 독립 열망을 부추겨서 제국을 붕괴시킨 뒤 분할통치하자는 것이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바로 이 임무를 수행하는 영국 첩보원 얘기다. 아랍세계의 크고 작은 종족분쟁이 여기서 출발했다. 요즘 뉴스를 장식하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충돌도 마찬가지다. 1917년 아서 밸푸어 영국 외무장관은 오스만제국의 일부였던 팔레스타인에다 유대인 국가를 허용한다는 발언을 언론에 흘렸다. 아직 참전하지 않은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미국계 유대인에게 당근을 던져 주자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 건국은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희망사항’ 정도로 치부됐다. 그러나 밸푸어의 발언 이후 현실이 됐다. 반면 오스만제국의 배후를 교란하는 대가로 독립을 약속받은 팔레스타인은 충격에 빠졌다. 양측 대립이 격화되면서 영국은 뒤늦게 “가장 큰 외교적 실수”라고 한탄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이스라엘은 끝까지 건국을 고집했고 1949년 이를 인정받았다. 오랜 분쟁의 시작이었다. 2. 차르가 되고픈 푸틴 - 러시아 제국의 몰락 서구 언론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흔히 차르라 부른다. 음험한 권력자의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다. 푸틴의 정책 자체가 러시아제국 시절에 대한 향수를 내포하고 있어서다. 러시아제국 시절과 지금의 국경선을 비교해 볼 때 가장 극명한 차이는 러시아와 유럽 사이의 완충지대다. 북유럽에서 중부유럽에 걸쳐 핀란드, 발틱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등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중부유럽은 예부터 곡창지대여서 늘 주변국들이 탐내는 대상이었다. 산업화로 발전해 나가던 서유럽국가들의 텃밭이자 유럽 진출을 도모하려는 러시아의 전진기지이기도 했다. 요즘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둔 미국과 러시아 간 다툼도 여기에서 기원한다. 18세기 이후 우크라이나 서부는 독일·오스트리아 쪽에, 중부와 동부는 러시아 쪽에 속했다. 1차 대전 때 독립을 시도했으나 곧 소련에 합병됐다. 공산권이 붕괴하자 바로 독립을 이뤄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1차 대전 당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 이후 지금까지 서구의 모든 중부유럽 정책이 러시아를 겨냥하는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1차 대전 당시의 지정학은 지금도 여전한 셈이다. 3. EU 출범의 씨앗으로 - 대영제국의 몰락 20세기 초 모든 분야에서 미국은 영국을 거의 다 따라잡았다. 그럼에도 식민지, 해군력, 금융시스템으로 무장한 영국은 최강제국의 위엄을 잃지 않았다. 1차 대전은 여기에 결정타를 날렸다. 전쟁 때문에 돈이 부족해진 영국은 1917년 4월 미국의 지원 없이는 3주도 버틸 수 없다며 미국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야 했다. 1차 대전 기간 미국이 연합군에 빌려 준 돈만 해도 모두 71억 달러였다. 1차 대전은 유럽연합(EU)의 씨앗을 뿌려 놓기도 했다. 1919년 파리강화회담 중 프랑스 장교 장 모네는 ‘경제적 통합을 통한 전쟁의 종식’이란 아이디어를 내놨다. 독일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던 연합군은 이를 무시했다. 기회는 몇 차례 더 있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오스트리아의 백작 리하르트 니콜라우스 폰 쿠덴호프 칼레르기도 ‘변덕스러운 정치 대신 지속적인 경제교류가 평화를 보장한다’고 주장했다. 당대 유럽의 지식인들은 열렬히 지지했으나 일반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2차 대전을 겪고 나서야 유럽인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경제적 통합을 통한 영구평화의 달성’이란 꿈을 1, 2차 대전에 책임 있는 독일이 이끌고 있다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다. 4. 귀족 세계의 종말 -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몰락 1차 대전이 드러낸 구세계의 빛과 그림자는 단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다. 근대민족국가 설립이라는 열풍을 차단하기 위해 합스부르크 왕가를 정점으로 결성된 귀족 연합체다. 민족의 이익보다 신분의 이익을 앞세운 것이다. 그만큼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성격이 강한 지배체제였다. 근대화 바람을 마냥 피할 수는 없었다. 1914년 산업화에 착수하면서 민족 갈등이 불거져 나왔고 이는 곧 1차 대전의 촉발 원인으로 꼽히는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저격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전후 제국은 철저히 해체됐다. 땅은 빼앗겼고 나라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로 삼등분됐다. 반면 민족보다 신분을 앞세웠기에 다른 유럽 지역에 비해 유대인 탄압이 덜했고 이 때문에 20세기 초 경제학, 심리학, 철학 등에서 뛰어난 역량을 선보인 유대계 지식인들이 수없이 배출됐다. 나중에 이들이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미국은 세계패권뿐 아니라 학문의 패권도 거머쥐게 됐다.
  • [기고] 창조경제시대의 기축통화/이정환 LG전자 특허센터장

    [기고] 창조경제시대의 기축통화/이정환 LG전자 특허센터장

    1964년 개봉된 영화 007시리즈 대표작 ‘골드핑거’는 미국연방준비은행(FRB)의 금괴 저장소인 켄터키주 포트녹스가 배경이다. 금만을 사랑하는 악당 골드핑거는 지하에 보관된 1만여t의 금괴를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골드핑거는 왜 금괴를 훔치지 않고 오염시켜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을까.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 모인 연합국 대표들은 당시 가장 많은 금을 보유한 미국의 35달러와 금 1온스를 교환비율로 정하고 각국의 통화가치를 달러에 고정시키는 새로운 ‘금본위제’를 체결한다. ‘브레턴우즈 체제’로 미국의 달러만이 금과 교환이 가능한 ‘기축통화’가 됐고 세계경제는 미국 중심으로 재편된다. 악당은 포트녹스의 금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면 달러의 가치가 상실돼 세계경제가 혼란에 빠질 것으로 본 것이다. 1971년 미국이 달러와 금의 교환 중지를 선언하면서 달러의 패권시대를 열어준 브레턴우즈 체제는 막을 내렸다. 세계는 산업경제를 거쳐 창조와 혁신을 통해 시장을 창출하는 창조경제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는 지금, 제2의 골드핑거는 무엇을 대상으로 음모를 꾸밀 수 있을까. 존 홉킨스는 “창조경제를 위한 유통화폐는 지식재산이고, 지식재산이 없는 창조경제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과거 금이라는 물질의 가치로 만들어진 ‘기축통화’로 세계경제의 패권을 잡았다면 창조경제시대에는 창의성이라는 무형의 가치로 만들어진 ‘지식재산’이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의미다. 지난 6월 부산에서 열린 선진 5개 특허청장 회담의 주된 관심사는 지식재산 경쟁력이었고, 심사 품질과 심사인력 증원에 관한 논의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선진기업들은 국제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아이디어의 신속한 권리화와 불필요한 특허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심사 품질을 주문한다. 특허심사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심사관 증원과 우수인력 채용이 관건이다. 우리나라는 상황이 좋지 않다. 선진 특허청 수준으로 심사처리기간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선진국과 비교해 1인당 처리 건수가 최대 5배가 많지만 심사관 증원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심사부담이 늘면 심사 품질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가까운 미래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장 빠르고 높은 품질의 심사를 통해 권리로 창출시킬 수 있는 나라가 창조경제의 ‘기축’이 되는 지식재산분야 ‘브레턴우즈 체제’가 만들어질 것이다.
  • [세계의 창] 전투기로 대량 살상… 드론으로 일상 전쟁

    1차 세계대전은 근대전에서 현대전으로 넘어가는 첫 번째 전쟁이었다. 산업혁명으로 발전된 기술이 신무기들을 잇따라 탄생시켰다. 벌판에 도열한 보병들이 총을 마주 쏘고 진격하는 방식에서, 참호를 파고 기관총을 내거는 형태로 전쟁은 바뀌었다. 참호전 중심의 전쟁이 소모적인 장기전으로 흘러가는 것을 타개하기 위해 다시 신무기가 나왔다. 영국은 기관총과 철조망을 제압하기 위해 탱크를 처음 개발했다. 현대식 박격포가 등장하고 항공기의 군사적 활용도가 높아졌다. 독일은 1915년 벨기에의 이프르에서 처음 염소가스를 사용해 9만여명을 죽게 했다.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만 같았던 문명은 오히려 시체의 산을 높이 쌓았다. 선진국이라고 문명과 미개의 선을 분명히 그으며 콧대를 높이던 유럽의 엘리트들도 지루한 살육전에서 무차별 살상의 대상이 돼야 했다. 당시 전쟁기술의 목적이 ‘대량살상’이었다면 현재는 반대로 ‘살상 최소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쟁기술은 한때 막대한 화력을 탑재한 최첨단 전투기, 한 나라를 지도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을 병력이 실린 항공모함을 향해 치달았다. 그러나 지금은 공격용 무인기(드론)로 대표되는 무인화, 소형화 기술, 고도의 해킹 기술이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면서 전쟁은 보편화, 일상화됐다. 드론 한 대가 조용한 주거 지역으로 날아가 테러단체 지도자만을 제거할 수 있게 됐다. 군 소속 해커들이 선전포고 없이도 상대국의 경제, 산업체에 침투한다. 전쟁이 옆집에서도 일어날 수 있게 됐고, 이미 민간 영역에 스며든 세상이 온 것이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씨줄날줄] 한은 독립, 당위와 한계/손성진 수석논설위원

    미국에서도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RS)의 독립성을 놓고 논란이 많다. “FRS는 아무런 부작용 없이 내일이라도 재무부와 합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금리운용에 의한 통화량 조절로 물가를 관리하는 중앙은행이 국가 경제 전반을 돌보는 정부와 다른 길을 갈 수는 없다. 근본적으로 중앙은행의 역할이 정부와 다를 게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물가 억제의 사명을 띤 중앙은행은 외형적인 성장에 목말라하는 정부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다소의 인플레를 감수하더라도 가능하면 시중에 돈을 풀어 가시적인 성장을 추구하려는 정부와 물가안정을 위해 돈을 틀어쥐고 있으려는 중앙은행은 자주 대립한다. 정부 관리들도 한국은행의 금리정책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곤 한다. 내부 승진한 이성태 전 총재 시절엔 더욱 그랬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장관은 “한은도 정부와 보조를 맞춰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낀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이 중요한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빵을 사려고 지폐를 수레로 실어날라야 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었는데 그 원인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없었기 때문임이 사후에 입증됐다. 배상금을 지불하려고 정부가 돈을 마구 찍어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중앙은행의 독립에 대한 일치된 견해는 없다. 역사적으로도 한은의 독립은 강조되기도 했고 훼손되기도 했다. 한은의 독립 요구는 줄기차게 이어졌다. 17대 김건(1988~1992) 총재는 ‘한은 독립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1997년 한은법 6차 개정으로 한은의 중립성이 법률로 보장되고 금융통화위원회 의장 자리를 장관 대신 한은 총재가 맡게 됐다. 그랬다가 기재부 차관의 금통위 열석발언권(의결 권한은 없으나 발언권을 가짐)이 2010년 1월부터 부활하는 등 통화정책에 대한 정부의 입김이 세지고 있다. 청와대 경제수석을 거친 김중수 전 총재는 “한은의 정치적 독립이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등 독립을 스스로 부정하기도 했다. 경제학자들도 정부나 한은 중 어느 쪽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진 않는다. 국민으로서는 성장과 고용도 소중하지만 정부의 무분별한 경기부양책을 견제할 기능도 필요하다. 결국, 원칙적으론 한은의 독립을 보장하되 정부 정책과 조화를 이루는 유연한 통화정책이 요구된다 하겠다. 어제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이주열 한은 총재가 만난 후 “경제 인식을 공유했다”고 한 것도 그런 뜻일 게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우크라 반군부대서 25㎞ 지점 추락… 신냉전 비극이 서린 곳

    우크라 반군부대서 25㎞ 지점 추락… 신냉전 비극이 서린 곳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피격 추락 사건의 책임 소재를 두고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정보 당국과 우크라이나 보안 당국의 말을 종합해 보면 우크라이나 반군이나 러시아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친러 반군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 우크라이나 친러 반군, 러시아 중 누구의 소행이든 이번 사건은 지난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지속된 ‘신냉전’으로 인해 무고한 민간인 298명이 희생된 비극적인 사건으로 남게 됐다. 17일(현지시간) AP, AFP통신 등은 미국 정보 당국이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지대공미사일에 격추된 것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어느 나라가 미사일을 발사했는지 발표하지 않고 있지만 러시아제 이동식 중거리 방공시스템인 ‘부크’(Buk) 미사일에 격추됐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은 우크라이나 반군이 여객기의 블랙박스를 회수했다고 보도했다.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안드레이 푸르긴 제1부총리는 “러시아의 연방항공위원회(IAC)에 블랙박스를 보내 내용을 분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지난 3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합병하면서 미국, 유럽연합(EU)과 각을 세우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갈등에 이은 ‘신냉전’ 체제를 구축해 왔다. 도네츠크, 루간스크 등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도 분리 독립을 주장하면서 우크라이나 내전은 계속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사실상 우크라이나 반군을 지원하며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미국과 EU가 일부 경제 제재만 가한 채 우크라이나 내전을 관망하면서 우크라이나 동부에는 무정부 상태가 지속됐고, 결국 민간 여객기가 격추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BBC는 누가 미사일을 발사했는지 입증할 수 있는 정확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정보기관이 확보한 반군 전화 통화 도청 자료를 근거로 반군이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도청 자료에는 반군 지도자인 이고리 베즐레르가 러시아군 정보장교에게 반군이 항공기를 격추했다고 보고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또 다른 자료에는 반군 부대가 여객기 추락 지점에서 북쪽으로 25㎞ 떨어진 지역에서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는 내용이 있다. AFP통신은 우크라이나 반군이 정부군 수송기로 오인해 잘못 격추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이고리 스트렐코프 반군 사령관은 소셜미디어사이트 ‘VK닷컴’에 “우리가 막 An(안토노프)26 수송기를 토레즈 근처에서 떨어뜨렸다”는 글을 올렸다가 바로 삭제해 의혹을 키웠다. 반면 인테르팍스통신은 러시아 항공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말레이시아 여객기를 격추한 세력이 푸틴 대통령의 전용기를 노렸으나 오인 사격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했는데 말레이시아 여객기와 푸틴 전용기가 37분의 시차를 두고 서로 엇갈려 지나쳤다는 것이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김정은의 새로운 장난감 ‘방사포’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김정은의 새로운 장난감 ‘방사포’

    지난 11일 해군 부산작전기지에 미 해군의 초대형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USS George Washington)이 입항을 전후로 방사포와 미사일을 번갈아가며 쏘던 북한이 지난 14일 일을 냈다.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 휴대전화 카메라로도 촬영이 가능할 만큼 가까운 금강산 구선봉에서 무려 100여 발 이상의 방사포를 동해상으로 쏜 것이다. 미사일이나 방사포 한 두 발로는 우리나 미국이 별다른 관심을 가져주지 않자 김정은은 북방한계선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최전방 진지를 직접 찾아 100여 발의 방사포탄을 바다로 날리는 화려한 불꽃놀이를 벌인 것이다. 이날 발사한 방사포탄 1발이 평균 100~120만 원 선이니 관심을 끌기 위해 1억 원을 허공에 날린 것이다. ▲왜 이렇게 방사포에 집착하나? 김정은은 자칭 포병전문가다. 김일성군사종합대학 포병학과를 졸업했고, 북한 최고의 포병 전문가라는 리영호 전 총참모장에게 2년간 개인 교습을 받기도 했다. 대학 졸업 논문 주제 역시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을 활용해 포 사격 정밀도를 높이는 방안’이었고, 후계자 수업을 받는 중에는 연평도 포격 도발을 일으키고 이를 승전이라 선전하면서 ‘불세출의 포병 천재’라는 자아도취에 빠지기도 했다. 군종(軍種) 간에도 서열을 매기던 공산권 국가, 특히 북한과 소련은 유독 포병에 집착했다. 스탈린(Joseph Stalin)은 생전에 “전쟁의 신은 포병이다”라는 말을 종종 했었고, 실제로 소련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막강한 포병왕국이었다. 이 같은 ‘포병사랑’은 공군력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소련 지휘관들은 소련공군이 독일공군에 맞서 제공권을 장악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아무리 불러도 언제 올지 모르는 공군기가 퍼붓는 화력을 기다리기보다는 언제든지 옆에 두고 쓸 수 있는 포병이 더 쓸모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북한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6.25 전쟁 당시 연합군의 압도적인 공군력 앞에 항상 공습에 대한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김일성에게 ‘조선인민군 공군‘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공중 화력지원이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었다. 한반도에 미군이 존재하는 한 북한은 한・미연합군에 대해 공군력 우위를 점할 수 없고, 당연히 뜨는 족족 격추당할 것이기 때문에 지상군이 공군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우리가 ’비대칭 전력‘이라고 규정할 만큼 기형적으로 커진 북한의 포병 전력 탄생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북한의 포병전력은 가히 가공할만한 수준이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 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에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21,000여문의 각종 화포를 보유하고 있는데, 사거리가 짧은 박격포 7,500여 문을 제외하더라도 견인포와 자주포 8,500여문과 방사포 5,100여문 등 세계 최대 규모의 포병전력을 자랑한다. 김정은은 자신의 대학 졸업논문에서 포병 사격, 특히 방사포 사격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한 위성항법장치 활용 방안을 언급하며 방사포에 대한 ‘전문성’을 과시했는데, 그래서인지 집권 이후부터 방사포 전력에 대한 투자를 점차 늘려가고 있다. 집권 3년만에 방사포 200여 문을 늘렸고, 예비군 격인 노농적위대에조차 방사포를 배치했을 정도다. 특히 자신이 숙청한 포병전문가 리영호를 대신해 포병 전문가지만 정치 감각이 없어 야전을 맴돌던 박정천을 기용하여 상장으로 진급시키고 포병사령관에 이어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겸 화력지휘국장에 앉힌 것은 그가 얼마나 방사포에 심취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방사포는 장난감이자 히든카드 김정은은 집권 이후 방사포 전력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방사포에 대한 그의 사랑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집권 3년차인 지난 2013년 7월 27일, 전승 60주년 기념식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신형 방사포들이 대거 등장시켰다. 2013년 열병식에서 등장했던 방사포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신형 122MM 40연장 방사포였다. 이 방사포는 체코슬로바키아의 RM-70 다련장 로켓과 매우 흡사했다. RM-70은 발사관 앞쪽에 40발의 예비탄 컨테이너를 휴대하여 발사 직후 5분 만에 40발을 재장전해 사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북한이 이 무기를 보유했다는 것은 10분 안팎의 짧은 시간에 80발의 방사포탄을 퍼부어 축구장 6~7개 면적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급 무기인 우리나라의 K136 구룡 다련장 로켓의 2배 이상의 화력이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위협은 최근 동해상에서 수차례 시험발사를 하면서 존재감을 알린 신형 300mm 방사포, 즉 KN-09이다. KN-09는 작년 6월에 처음으로 한미정보당국에 식별되었으며, 4연장 발사관과 중국제 차량에 탑재된 형태로 개발되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전체적인 형상은 중국국영정밀기계수출입공사(COMIEC : China National Precision Machinery Corporation)가 수출용으로 개발한 WS-1B과 유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KN-09의 원형이 되는 WS-1B는 사거리 180km, 탄두중량은 150kg 수준이기 때문에 고폭탄뿐만 아니라 이중목적고폭탄(Dual-Purpose Improved Conventional Munitions), 화학탄 등 다양한 탄두의 탑재가 가능한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180km에 달하는 긴 사거리이다. 기존 240mm 방사포는 60km 정도의 사거리를 가져 한강 이남 수도권 지역에 대해 제한적인 공격만 가할 수 있었지만, 신형 300mm 방사포는 수도권은 물론 충청권 이남까지 공격할 수 있는 180km 이상의 사거리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북한이 이 방사포를 이용해 육해공군본부가 있는 계룡대는 물론 대구 기지를 제외한 우리 공군의 핵심 공군기지를 모두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스커드 미사일은 발사 차량도 많지 않고, 발사 전에 징후를 탐지하여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하지만, 신형 방사포는 언제 어느 곳의 지하 갱도에서 나와서 우리 공군기지를 향해 수십 발의 포탄을 퍼부을지 예측할 수가 없다. 우리가 북한의 전면 남침에 대해 승리를 자신할 수 있는 것은 북한에 비해 압도적인 공군력 우위가 있기 때문인데, 개전 초반 전투기가 뜨지 못한다면 수도권 지역을 불바다로 만들 적 장사정포를 파괴할 수도, 물밀 듯이 밀고 내려오는 북한의 대규모 기계화 부대를 막을 수도 없다. 때문에 김정은이 수 차례 이 방사포의 시험 사격을 참관하고 북한 매체에서 이 방사포를 띄우고 있는 것은 이를 통해 전면전이 발발하더라도 자신들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우리 군은 지난 1994년 서울 불바다 쇼크 이후 20여 년간 북한 포병을 잡기 위해 수십조 원을 투자해 이제 겨우 대화력전 전력을 갖췄지만, 300mm 방사포의 등장으로 이제는 새로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어 우리 군이 어떤 대응 카드를 꺼내들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위에서부터 ▲ 14일 김정은이 직접 지도하는 가운데 금강산 구선봉 진지에서 발사되는 122mm 방사포 ▲ 2013년 열병식에서도 공개된 바 있었던 122mm 40연장 신형 방사포▲ 북한 장사정포 전력의 핵심으로 평가받는 240mm 방사포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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