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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상으로 은퇴… 선수들 고통 알기에 앱 만들었죠”

    “부상으로 은퇴… 선수들 고통 알기에 앱 만들었죠”

    프로 골키퍼로 선수생활… 2017년 은퇴 통증 데이터 수집해 맞춤 훈련 앱 개발프로 선수들에게 통증이 반복되는 건 부상의 전조 신호가 된다. 하지만 통증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부상으로 이어지는 지 알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잔부상은 있다’는 생각이 통용되는 스포츠계에선 통증을 참고 뛰다 결국 선수 생활을 일찍 접게 되는 불운이 종종 발생한다. 지난해 11월 스포츠 스타트업을 설립한 이상기(32) QMIT 대표가 엘리트 선수들의 ‘부상 데이터’를 독특하게 사업 아이템으로 생각하게 된 이유다. 이 대표는 22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QMIT 사무실에서 신체 부위별 통증 강도를 입력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 스크린을 보여 주며 “어디가 어떻게 아파서 어떤 부상이 됐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갖고 있으면 선수마다 맞춤형 관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가 그동안 수집해 축적한 국내 부상 데이터는 60만건에 달한다. 이 대표는 2년 전까지 프로축구 구단에서 골키퍼로 뛰던 선수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고 성균관대를 거쳐 2010년에 성남 일화에 입단하며 나름 성공적인 축구 인생을 펼쳤다. 이듬해에는 수원 삼성으로 이적했고 상주 상무에서 제대한 2013년에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수원FC, 서울 이랜드FC 등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 갔지만 예상치 않은 ‘치골 피로 골절’이라는 일격을 맞고 2017년 12월 은퇴를 선언했다. 이 대표는 은퇴의 수렁으로 몰고 간 자신의 부상을 기회로 바꿨다. 그는 “해외 구단들이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는 이유를 분석해 보니 코치들이 선수들의 통증 내용을 엑셀로 정리해 개인별 맞춤 훈련을 진행하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부상 데이터를 디지털화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업을 구상하게 됐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부상 관리가 국내 스포츠 비즈니스의 새로운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는 데 눈을 뜬 셈이다. 그가 개발한 QMIT의 ‘플코’(플레이 코치) 앱을 통해 선수들이 통증 부위와 강도를 입력하면 QMIT 소속 코치들이 상담을 한다. 소속 코치들은 빅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선수들에게 통증이 어떤 부상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는지 경고하고 이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팀 단위로 쓰는 경우 선수들이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면 감독, 코치들이 데이터를 보고 맞춤형 훈련을 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코칭스태프들이 선수들의 몸 상태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해 주먹구구식 훈련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면서 “플코 서비스를 이용하면 빅데이터 부상 정보를 통해 맞춤형 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신생 서비스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고객도 늘기 시작했다. QMIT의 ‘스마트 스포츠 닥터’ 솔루션을 받은 고려대 여자축구부와 성균관대 남자축구부는 부상자 없는 팀 운영에 성공하면서 올해 대학춘계대회에서 나란히 우승을 수확했다. 이 대표는 “선수들이 제대로 된 코칭과 관리를 받으면서 스포츠 교육 현장의 혹사 논란 등 불합리한 상황들이 해소되는 게 바람”이라면서 “무엇보다 예상하지 못한 부상으로 이른 나이에 은퇴하는 선수들이 없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글 사진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코발트 빛 바다 위 하얀 공연장…‘죄수의 나라’서 문화의 나라로

    코발트 빛 바다 위 하얀 공연장…‘죄수의 나라’서 문화의 나라로

    남반구에 위치한 호주는 우리와는 정반대인 것이 많다. 지금 호주엔 따뜻한 봄이 오고 있다. 별자리도 다르다. 크리스마스엔 민소매 옷을 입은 사람들이 산타 모자를 쓰고 거리를 활보한다. 세계지도도 재미있다. 호주를 세계의 중심으로 놓으니 당연히 남반구가 위쪽에 자리한다. 남한이 위에, 북한이 아래에 그려져 있는 한반도를 보면 우리가 봐 왔던 시선이 반드시 정답일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광활한 대지와 청정한 자연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나라, 호주. 하지만 1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호주는 멀고 황폐한, 죄수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호주엔 5만년 전부터 원주민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이 1770년 호주의 동부해안에 닿으면서 유럽인의 이주가 시작됐다. 1778년에는 영국계 선원과 이주민 1500여명이 시드니 하버에 닻을 내렸고 그중 반이 죄수였다. 이들은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이 모여 살던 바닷가에 터를 잡았는데, 이 지역이 바로 ‘더 록스(The Rocks)’다. 바위가 많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 죄수들이 일일이 바위를 깨 골목을 만들고 교회와 집을 지으면서 지금의 고풍스러운 모습을 갖추게 됐다. 해방된 죄수들은 농장을 일구기 위해 내륙으로 들어갔고, 사유지 개념이 없던 애버리지니 원주민 땅을 빼앗았다. 원주민을 탄압한 잔혹한 역사는 오랜 시간 이어졌다. 애버리지니 자체를 멸종시키기 위해 1900년부터 72년간 원주민 아이들을 강제로 백인 가정에 입양시키고 찾지 못하도록 했다. 불과 반 세기 전까지 호주에서 실제 벌어진 일이다. 호주에서 ‘토끼 울타리’(Rabbit Proof Fence)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애버리지니 아이들이 탈출해 집으로 돌아가는 스토리가 어찌나 슬픈지 내내 훌쩍였던 기억이 난다.죄수, 원주민 탄압 등 역사적 배경 때문에 호주는 오랫동안 어두운 이미지를 갖고 있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몰라보게 달라지게 된다. 오페라 하우스는 국가 재건 사업의 일환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1973년 완공된 후 호주는 오페라하우스를 아이콘으로 삼고 국가 이미지 홍보에 나섰다. TV, 영화, 책, 잡지, 엽서, 우표에 하얀 오페라 하우스를 등장시켰다. 넘실대는 코발트 빛 바다 위에 떠 있는 하얗고 거대한 공연장. 이 깨끗하고 세련된 이미지는 호주를 한순간에 세련된 문화 중심지로 바꿔 놓았다. 오페라 하우스를 활용한 국가 홍보 전략은 심플하고 전달력이 좋았다. 결국 호주 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상징이 됐으며, 2007년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국가 이미지가 최대 관광 수입원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는 과연 어떨지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나라의 랜드마크는 무엇일까? 김진 칼럼니스트·여행작가
  • 75년 전 네덜란드 아른헴 ‘머나먼 다리’ 재현 97세 노병도 ‘점프’

    75년 전 네덜란드 아른헴 ‘머나먼 다리’ 재현 97세 노병도 ‘점프’

    올해 아흔일곱 살이 된 노병(老兵)이 2차 세계대전 때 네덜란드 아른헴 상공에서 펼쳐졌던 마켓가든 작전을 기념해 20일(이하 현지시간) 같은 곳에서 다시 낙하산을 펼쳤다. 영국과 미국, 폴란드 병사들은 1944년 가을 이날 여덟 개의 교량을 확보해 독일로 침투하는 길을 열기 위해 3만 5000명이 낙하산을 펼치거나 글라이더를 탄 채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공수 낙하 작전를 펼쳤다. 하지만 에인트호번과 니메겐, 아른헴의 교량과 운하 건널목을 확보했지만 독일군의 대응 공격을 받고 1500여명의 연합군 병사들이 목숨을 잃고 6500명 가까이가 생포되며 확보한 다리 등을 모두 내주고 퇴각해야 했다. 연합군이 거둔 패배 가운데 가장 참담했던 이 작전은 1977년 리처드 애튼버러 경이 메가폰을 잡고 숀 코너리, 로버트 레드퍼드, 로렌스 올리비에, 마이클 케인 등이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 ‘머나먼 다리’로 제작돼 우리에게도 낯익다. 몽고메리 장군이 패튼 장군과의 자존심 다툼 때문에 벌인 작전에 애꿎은 병사들만 죽어나는, 어처구니없는 작전이었다. 애버딘 출신으로 올해 아흔일곱 살인 샌디 코트먼도 이날 긴켈 히스 평원에서 1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마켓가든 75주년 기념 낙하에 영국 육군 레드 데블스 시범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1944년 9월 이곳 하늘에 낙하산을 펼쳤을 때 그의 나이는 스물둘이었다. 그 역시 독일군에 포로로 붙들렸다. 코트먼은 이날 연령 탓에 혼자 점프하지는 못하고 현역 병사의 보살핌을 받았다. 그가 무사히 지상에 발을 딛자 수천명의 관람객이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코트먼은 “진짜 무서웠다”며 “문이 열렸을 때 난 ‘주여, 얼마나 떨어져야 합니까’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그곳 땅을 지금에라도 다시 본다는 게 대단한 일이었다. 오 주여”라고 덧붙였다.75년 전 점프했을 때와 똑같더냐는 질문에는 “1944년의 점프에 대해 많은 기억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그저 젊은 녀석들 한 무리였을 뿐이다. 하지만 곧바로 총과 포, 모든 것들이 불을 뿜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퍼부었다”고 말했다. 찰스 영국 왕세자와 베아트리체 네덜란드 공주도 이날 참석해 노병들을 격려하고 네덜란드 해방을 위해 희생된 이들의 원혼을 달랬다. 데니스 콜리어(95)와 스티븐 모건(93) 등 최근 사망한 영국군 노병들의 유해가 오스터빅 묘지에 뿌려져 그들의 값진 희생을 기리기도 했다. 또 브런섬에서 독일군의 대응 공격에 희생돼 그곳에 묻힌 영국군 병사 328명을 명예 시민으로 위촉하는 행사도 열렸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단교 도미노’ 언제까지…외교 고립 가팔라진 ‘위기의 대만’

    ‘단교 도미노’ 언제까지…외교 고립 가팔라진 ‘위기의 대만’

    중국이 ‘차이나 머니’를 앞세워 대만의 외교적 고립을 가속화하고 있다. 태평양 지역에 있는 대만의 전통 우호국들을 잇따라 단교시켜 자신의 편으로 돌려놓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홍콩 시위로 흔들리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하고 태평양 지역에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대만을 지지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지난해 6월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호주와 일본, 대만, 동남아시아, 인도를 연결해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에 균열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AP는 남태평양의 소국 키리바시 공화국이 대만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중국과 수교하기로 했다고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자오셰 대만 외교부장(장관)도 “키리바시 공화국이 대만과 외교 관계를 끝낸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중국과의 수교는 건국 70주년인 다음달 1일 이전에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키리바시 공화국의 이번 통보는 지난 16일 솔로몬제도가 대만과 단교한 뒤 불과 나흘 만에 나왔다. 대만은 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미국, 러시아 등과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위상이 커지면서 미국이 수교에 나서려 하자 1971년 자의반 타의반으로 유엔에서 탈퇴했다. 이후 시간이 갈수록 외교적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미국은 대만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는 국가를 제재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비공식적 동맹을 지켜주고자 노력하지만 성과는 크지 않다. 그간 중국은 경제력을 앞세워 대만 수교국을 상대로 자국과 국교를 맺자고 제안해 왔다. 특히 2016년 반중 성향의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취임한 뒤로 이런 압박이 더 강해졌다. 실제로 차이 총통 취임 이후 엘살바도르와 도미니카공화국, 부르키나파소, 상투메프린시페, 파나마, 솔로몬제도, 키리바시 등 7개국이 대만과 단교했다. 현재 대만과 외교 관계를 맺은 국가는 15개국으로 대부분 정치적 영향력이 크지 않은 나라들이다. 대만의 외교적 고립이 갈수록 가팔라지는 모양새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대만 언론은 중국의 다음 목표는 남태평양의 투발루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자유시보 인터넷판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만의 우방국 빼앗기를 직접 챙기고 있다고 전했다. 대만을 국제사회에서 외톨이로 만들어 차이 총통을 다음 대선에서 낙선시키기 위해서다. 홍콩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와 미중 무역전쟁의 압박 등에서 중국인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의도도 담고 있다고 자유시보는 분석했다. 대만 연합보는 우방국인 태평양 도서국가 투발루의 국회의원 선거 결과 친대만파인 에넬레 소포앙아가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카우사 나타노가 새 총리로 선출됐다고 전했다. 새 총리는 대만에 대한 입장이 불문명해 외교적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차이잉원 총통은 “현재까지 투발루 상황은 정상적”이라고 밝혔다. 우자오셰 외교부장 역시 “대만과 국교를 맺고 있는 남태평양 우방국(팔라우, 마셜 제도, 투발루, 나우루 등)과의 관계는 양호하다”며 이들과 지속적인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중국은 중남미 카리브해의 아이티에도 수교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아이티에서 중국 관련 업무를 관할하는 ‘중국·아이티 무역발전 판사처’ 왕샹양 대표는 최근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이티 정부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인정한다면 중국 정부는 아이티와 정상적인 국교를 수립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만에서는 중국의 ‘금권외교’로 남태평양 우방국에서 ‘도미노 단교’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빈과일보는 “최근 대만과 단교한 솔로몬제도에서 한 의원이 중국으로부터 100만달러(약 11억 9000만원)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세종대,‘2020 THE 세계대학평가’국내 10위

    세종대,‘2020 THE 세계대학평가’국내 10위

    세종대학교가 영국 고등교육평가 기관인 THE(Times Higher Education)가 발표한 ‘2020 THE 세계대학평가’에서 작년 대비 한 단계 상승한 국내 10위를 차지했다고 20일 밝혔다. 연구중심대학을 제외한 국내 종합대학 순위에서는 7위를 기록했고 세계 대학 순위에서도 처음으로 401~500위권에 진입했다. THE 세계대학평가는 전 세계 92개국 상위 1396개 대학 순위를 선정한다. △교육 여건 30% △연구실적 30% △논문 피인용도 30% △국제화 7.5% △산학협력수입 2.5% 등 5개 평가 항목으로 세부항목 포함 총 13개 지표에 대한 평가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THE 세계대학평가 등급은 수업·연구·영향력·국제 전망 등을 바탕으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세계적으로 공신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세종대는 논문의 질적 측면을 측정하는 논문 피인용(Citations)에서 국내 2위를 기록했다. 논문의 질적 우수성을 반영하는 논문 피인용 지표는 우수한 교수진을 채용하고 연구에 많은 지원을 쏟은 세종대의 수년간 노력이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라는 게 세종대 측의 설명이다. 또한 국제화 항목에서도 세종대는 작년과 같은 국내 10위를 기록했다. 현재 57개국에서 온 2218여 명의 외국인 유학생이 세종대에 재학 중이며 매년 약 500여명의 세종대생을 해외 대학에 파견하고 있다. 또한 외국인 전용 8개 트랙 운영, 해외 어학당 개설, 해외 학생 유치단 파견 등을 통해 국제화에 힘쓰고 있다. 배덕효 세종대 총장은 “우리 대학은 우수한 교수 영입에 꾸준히 노력해 왔으며 그 노력의 결실이 여러 분야의 평가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이러한 성과가 나올 수 있게 헌신적으로 연구에 매진해 주신 교수님들과 행정적 지원을 해 준 직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서울비즈 biz@seoul.co.kr
  • [금요칼럼] 수시와 정시/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금요칼럼] 수시와 정시/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외국의 어떤 제도가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것을 도입해 시행할 때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게 마련이다. 같은 과거제도라 해도 중국과 한국에서 서로 다르게 작동했다. 중국의 과거제도가 혈통에 기초한 귀족정치를 붕괴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데 비해 한국에서는 오히려 귀족적 지배층의 기득권을 굳히는 쪽으로 작동했다. 대간제도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는 대간제도가 황제를 위해 백관을 감찰하는 사정기구로 발전한 데 비해 한국에서는 국왕을 견제하는 간쟁기구로 발전했다. 2차 세계대전 후 많은 신생독립국이 미국식 민주주의를 수입했으나, 민주주의 모습은 그 제도를 수입한 나라 개수만큼 다양했다. 이처럼 같은 제도를 시행하더라도 각 나라의 풍토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켜켜이 쌓인 역사적 경험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식 로스쿨제도를 수입한 법학전문대학원도 같은 예다. 사법시험의 단점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버지가 대법원장일지라도 스스로 사시를 통과해야만 법조계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로스쿨제도를 도입하면서 법조인의 직업 대물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 중에 법조계 인물이 있는 로스쿨 재학생 비율이 60%를 넘는다는 한때의 통계가 이제는 차라리 자연스러울 지경이다. 한번 법조계에 자리를 잡으면 웬만하면 자기 자식을 법조계에 진입시키는 대물림 현상이 구조화했다. 이것이 바로 같은 로스쿨제도를 시행하지만, 미국과 한국의 서로 다른 민낯이다. 수시전형을 고려한 입학사정관제도도 수입품이다.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도는 1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대학들도 천차만별이며, 명문대들도 각기 건학 이념이 다양하다. 엇비슷한 최고 A급 명문대도 최소 20개가 넘기에 대학 서열화도 강하지 않다. 대학에서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되 이왕이면 자기 학교의 건학 이념이나 학풍에 부합하는 학생을 뽑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사정관제가 강하게 뿌리를 내렸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경험과 필요의 산물이다. 한국은 1000년 가까이 과거시험에 익숙했고, 20세기에도 국가고시가 곧 출세의 관문이었다. 대학 입시도 시험을 통해 성적순으로 사정했다. 이런 역사공동체에 미국식 사정관제도(수시)를 무리하게 이식할 때 명분은 그럴듯했다. 획일적 교육의 지양, 사교육 문제 완화, 대학 서열화 완화, 입시지옥 완화 등의 효과를 기대했다. 그러나 내신 성적을 위한 획일적 암기식 교육은 여전하고, 사교육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입시지옥은 여전하고, 대학 서열화는 오히려 더 심해졌다. 예전에는 우수 학생을 서울대가 독식하지 못했다. 한 예로 동일 계열 서울대 최하위권 입학생의 학력고사 성적이 연세대 상위권 입학생의 성적보다 낮은 게 일반적이었다. 그만큼 우수 학생들이 서울대뿐만 아니라 여러 대학에 퍼졌다. 그런데 미국식 복수 지원제도를 도입한 결과는 어떤가? 서울대와 연세대에 모두 붙는 학생이 적지 않은데, 그럴 경우 거의 100% 서울대로 진학한다. 이런 식으로 전국의 모든 대학들이 숨 막힐 정도의 일렬종대로 서열화했다. 한국의 대학들은 건학 이념이 사실상 없다. 그러니 학풍에도 거의 차이가 없다. 성적에 따른 서열화만 우심하니 대학교 학력 신분이 사회생활을 좌우할 정도로 강고하다. 이런 한국 사회에서 미국식 입학사정관제도(수시전형)는 오히려 불공정의 온상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대학 스스로 다양성을 갖추지 못했는데, 다양한 재능의 학생을 서류심사로 뽑겠다는 발상부터 설득력이 떨어진다. 조선의 위정자들이 바보라서 과거제(정시)를 끝까지 고수한 게 아니다. 천거제(수시)의 폐단과 불공정성이 전자보다 더 심한 점을 잘 알고 있었다.
  • “참전용사는 말합니다… 빚진 것 없으니 자유를 전달하라고”

    “참전용사는 말합니다… 빚진 것 없으니 자유를 전달하라고”

    ‘현장’과 ‘사람’에는, 책과 자료로 걸러지지 않은 것들이 남겨져 있기 마련이다. 인천상륙작전 때 뻘밭에서 죽어간 군인들에 관한 이야기, 전장에 투입되는지도 모른 채 한국 땅을 밟은 사연들이 그런 것이다. 현효제(40)씨가 이런 이야기들을 줄줄 내어놓을 수 있는 건, 그가 ‘현장 속 사람들’을 직접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6·25 참전용사를 찾아다니며 무료로 사진을 찍어 주고 있는 사진작가이다.엔젤 에세베도 버나드는 다른 6만 1000여명의 푸에르토리코 출신처럼 반바지 반팔 차림으로 참전했다가 제대로 된 군복 없이 헝겁과 붕대로 몸을 감싸며 난생처음 눈을 맞고 혹한을 겪었다. 눈, 비, 배고픔은 푸에르토리코 출신 참전용사들에게 6·25에 대한 기억의 대부분이다. 상륙정의 문이 열린 뒤 그에게는 가장 큰 비극이 펼쳐졌다. 아무도 그곳이 뻘밭이라고 미리 말해 주지 않았고, 앞서 먼저 내린 전우들은 한국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익사했다. 그 자신도 고향 친구들의 어깨와 몸을 밟고 밟아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뻘밭에서 몸부림쳤던 너무 많은 친구들과, 살기 위해 그들을 밟고 나가야 했던 기억이 아직도 그를 괴롭힌다.미 해병대 출신 살 스칼라토는 장진호 전투 때 정찰 중 쏟아진 포탄에 부모는 죽고 손목이 절단된 채 누나 품에서 울던 5살쯤 된 어린아이를 발견했다. 아기를 안고 뛰어 병원에 데려다주고 나왔는데, 가슴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끊어진 아기 손목을 다시 전달해 주려 들어갔더니 이미 아이는 죽어 있었다. 안을 때 자신의 목덜미를 잡았던 아이의 손이 2019년 88세 나이에도 느껴진다 했다. 17세에 참전한 영국 리버풀 출신 앨런 가이는 미국령 버뮤다로 가는 줄 알고 군에 지원했는데,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부산항이었다. “북진 때 탔던 미군 기차에는 고기, 치즈, 빵, 우유, 초콜릿이 있었는데 나중에 탄 영국군 기차에는 딱딱한 빵에 햄 한 장 들어간 샌드위치에 물도 주지 않아 ‘미군에 입대했어야 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다.윌리엄 웨버 미국 예비역 육군 대령은 그에게 “고조선의 역사를 아느냐”고 물었던 미국인이었다. 2차 세계대전 말기 소위로 참전, 첫 부임지인 필리핀에서 맥아더 사령관으로부터 “일본에 가서 조선소, 비행장 등 군수공장의 ‘조선인 노예’를 해방하고 본국 송환을 도우라”는 첫 명령을 받았다. 자신이 담당한 곳의 자료를 찾아 700여명을 안전하게 귀국시켰고,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인과 결혼하는 등 남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핍박을 면하게 하기 위해 안전지역으로 옮겼다. 종전 이후에도 일본에 남아 한국인 관련 업무를 담당하면서 그는 한국 역사를 꿸 정도가 되기에 이르렀다. 6·25 때는 대위로 참전했다. 전투 중 포탄에 오른쪽 팔이 절단돼 후송되다 호송 차량이 포탄을 맞아 같은 날 오른쪽 다리가 절단되었다. 미군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그를 살려냈는데 “감각이 없을 정도로 모르핀을 많이 맞았다”고 한다. 워싱턴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의 ‘수색하는 병사’ 19명 중 하나가 그다. 1000여명의 외국인 참전용사를 만났다니, 현씨는 6·25전쟁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그는 한양대 사학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카데미예술대학(AAU)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2010년 귀국해 ‘라미스튜디오’를 차렸다.-언제부터 참전용사 사진을 찍기 시작했나. “2013년 육군 모 사단 홍보 동영상 작업을 하게 됐다. 그때 군생활 28년간 사진첩 반 권을 채우지 못했다는 한 원사의 가족사진을 찍어 주고 큰 보람을 느꼈다. 이를 계기로 다른 군인들과 그 가족들의 사진도 찍게 되었다. 2014년 ‘육군지상군 페스티벌’ 영상 작업을 하면서는 군복에 관심을 갖게 됐다. 스웨덴은 2년마다 남녀 모델을 써 계절과 용도, 상황에 맞는 군복 착용법을 다룬 책자를 낸다. 다른 선진국들도 그렇게 하는데 우리 군은 그런 게 없다. 군복의 연원과 변화와 종류를 알기 어려웠고 사진도 없다. 2014~2016년 3년간 60여개 군 부대를 돌며 육군 군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군 단체, 군 가족, 한국전쟁 참전용사 개인 및 단체 사진을 찍으며 5000여명의 군인을 만났다. 그중 1000여명은 외국인 참전용사들이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나. “많이 들었다. 처음부터 돈을 받을 생각도 없어지만 초기부터 ‘사진 찍어다 어디에 팔려 하나?’거나 ‘군을 팔지 말라’ 등 오해하는 분들이 있어 더욱 생각을 굳히게 됐다. 방위산업전 군복시리즈 전시, 국군의날 특별사진전 등을 거치며 ‘나도 찍혀 봤으면’ 하는 마음에 연락 오시는 분들이 늘면서 편지로 사연을 받기 시작했다. 정말 모든 편지가 마음을 움직이고 발길을 이끄는 사연들을 담았다. ‘나는 군인이다’에서 ‘우리는 군인이다’, ‘우리는 군인가족이다’ 등으로 프로젝트가 진화했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 참전용사들을 알게 됐고, 영국과 미국을 20번 정도 오가게 됐다.”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나. “학교를 졸업하고 나무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이것들을 팔아 돈을 마련했다.”(그는 초기에 나무 사진작가로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4850세 ‘므두셀라 나무’, 가장 부피가 큰 ‘제너럴셔먼 나무’, 가장 키가 큰 종인 자이언트세콰이어의 ‘쓰러진 모나코 나무’ 등 유명한 나무들을 찾아가 앵글에 담았다.)” -그래도 비용 감당이 어려워 보이는데. “2억원쯤 썼는데 스스로도 버틴 게 신기하다. 정작 어려움은 액자 비용이었다. 사진은 액자로 전달될 때 완성된다고 생각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SNS 등을 통해 사연을 접하고 액자비를 후원해 주시는 분들이 생겨났다. 현지에 가면 차량, 숙박 등을 제공해 주시는 분들도 늘어 가고 있다. 참 감사하다. 참전용사들이 액자를 전달할 때면 꼭 ‘얼마냐’고 물어온다. ‘69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라고 하면 꼭 껴안아 주신다. 그런데 윌리엄 웨버 대령은 ‘그게 아니야. 너는 틀렸어. 모든 자유를 가진 사람은 자유를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자유를 전달하는 의무가 있어. 우리는 그 의무를 다한 것뿐이고, 너희는 우리에게 빚진 것이 없다. 다만 우리 덕분에 자유를 얻었다면 너희들도 의무가 있다. 북에 있는 너의 동족, 동포들에게 자유를 전달하는 게 너희의 의무야’라고 했다. 웨버 대령은 ‘우리 때문에 분단의 비극이 왔다’면서 ‘통일을 보는 것이 소원’이다.” 현씨는 내년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2년간 미국을 누비며 참전용사들을 만나 사진을 찍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죽기 전에 빨리 와 달라”는 연락들이 많아져 마음이 급하다. 미국에서만 날마다 대략 400명꼴로 세상을 뜨고 있다. 작년에만 18만명이 작고했다. 그들 대부분이 다른 누구로 남기보다 6·25 참전용사로 기억되고 싶어 하는 것을, 현씨는 잘 알고 있다. jj@seoul.co.kr
  • 美글렌데일 소녀상 또 훼손… “증오범죄 가능성”

    美글렌데일 소녀상 또 훼손… “증오범죄 가능성”

    7월엔 ‘배설물 테러’… 경찰, 용의자 추적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북동쪽의 소도시 글렌데일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훼손한, 후드를 입은 남성을 현지 경찰이 추적하고 있다. 글렌데일 소녀상은 2013년 미국에서 가장 먼저 설치된 것이다. 글렌데일 경찰은 지난 16일(현지시간) 글렌데일 중앙도서관 시립공원 내 평화의 소녀상이 낙서로 훼손되고 주변에 놓인 화분이 쓰러지는 사건이 벌어져 조사에 들어갔다고 LA타임스 등이 19일 전했다. 글렌데일 경찰서의 댄 서틀스 경사는 “후드를 입고 백팩을 멘 사람이 동상에 접근해 마커로 낙서를 하는 모습이 근처 폐쇄회로(CC)TV에 포착됐다”며 해당 사건을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증오범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면서도 현재로선 범행 동기를 짐작할 만한 징후는 없다고 덧붙였다. 평화의 소녀상에 그려진 낙서에는 의미를 알아볼 만한 부분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평화의 소녀상은 지난 7월 26일에도 얼굴 부분에 개의 배설물로 추정되는 오물이 묻힌 채 발견됐고, 현지 경찰은 해당 사건과 관련해서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아라 나자리안 글렌데일 시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글렌데일시는 이 사건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용의자를 체포해 법정에서 책임을 묻기 위해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시의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여러 국가의 여성과 소녀들이 겪은 고통에 대한 영속적인 헌사로서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공공 기념물을 훼손하는 반달리즘(공공기물 파손) 범죄는 중범죄에 속한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美, 대만과 단교한 솔로몬제도 제재 검토…中 “내정간섭 말라”

    美, 대만과 단교한 솔로몬제도 제재 검토…中 “내정간섭 말라”

    美 “내년 솔로몬제도 대한 원조 재검토” 펜스, 이달말 예정된 총리와 회담도 취소 수교 조건으로 100억원 제공 약속한 中 태평양 요충지 확보…“작은 전투서 승리”남태평양의 소국 솔로몬제도가 미중 갈등의 새로운 불씨가 되고 있다. 대만과 단교한 솔로몬제도를 미국이 강력히 비난하며 사실상 제재를 검토하자 중국이 “내정에 간섭 말라”고 반발했다. 두 나라가 무역전쟁과 홍콩 시위에 이어 대만 문제로 힘겨루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대외 원조기구인 국제개발처(USAID)의 글로리아 스틸 아시아국 부국장 대행은 미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2020 회계연도에 솔로몬제도에 대한 원조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나라에 대한 지원을 줄이거나 없애겠다는 것으로 사실상의 제재 조치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머내시 소가바레 솔로몬제도 총리와 이달 말로 예정된 회담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솔로몬제도 측 요청으로 다음주 열리는 유엔총회 기간에 맞춰 워싱턴DC에서 회동할 계획이었다. 대만 주재 미국대사관 격인 미국재대만협회(AIT)도 성명을 통해 “미국은 크게 실망했다. 중국이 대만과의 단교를 압박하는 것은 역내 안정을 해친다”고 지적했다. 솔로몬제도가 중국과의 수교를 선택한 것에 대해 강한 배신감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무슨 자격으로 중국과의 수교에 대해 왈가왈부하는가”라면서 “세계에는 오직 ‘하나의 중국’만 있다. 대만은 중국 영토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반박했다고 인민일보는 전했다. 화춘잉 대변인도 “우리는 솔로몬제도가 대만과 외교적 관계 단절을 결정한 것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 솔로몬제도가 역사적 기회를 잡은 것을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대만은 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위상이 커지자 1971년 유엔에서 탈퇴했고, 시간이 갈수록 외교적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SCMP에 따르면 미국은 대만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는 국가를 제재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비공식적 동맹인 대만의 위상을 지키고자 노력하지만 성과는 크지 않다. 솔로몬제도는 인구 63만명, 1인당 국내총생산(GDP) 2130달러의 빈국이다. 중국은 수교를 조건으로 개발기금 850만 달러(약 100억원)를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으로서는 홍콩 시위로 흔들리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하고 태평양 지역에 전략적 요충지도 확보했다. 미국과의 패권전쟁의 작은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으려고 지난해 6월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호주와 일본, 대만, 동남아시아, 인도를 연결하는 전략)에 균열이 생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데스크 시각] #AsiaHakenkreuz/안동환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AsiaHakenkreuz/안동환 체육부장

    일본 하시모토 세이코(55) 신임 올림픽장관이 지난 12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욱일기는 정치적 의미의 선전물이 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동메달리스트 출신의 하시모토 장관은 2014년 회식 자리에서 스물 살 연하의 남자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성추행해 비난받았던 극우 성향의 정치인이다. 욱일기는 단순한 깃발이 아니다. 일본 메이지 시대(1868~1912년) 군기(軍旗)로 사용된 후 태평양전쟁 패전 때까지 육해군의 최전선에 내걸린 군국주의 상징물이다. 아케도 다카히로 도쿄대학원 특임조교수는 “일장기보다 위험하고 강력한 아이콘으로 사용된 인상이 강하다”며 “올림픽에 들고 나가면 (다른 국가) 선수들과 관중들에게 피해 감정을 일으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9월 6일자 도쿄신문). 2020 도쿄올림픽의 슬로건은 ‘미래로 나아가자’(Discover Tomorrow)다. 일본이 나아가자는 ‘미래’에서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의도까지 감지된다. 도쿄올림픽 폐막일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일인 8월 9일이다. 연중 가장 더운 폭서기에 잡은 대회 기간(7월 24일 개막)에 히로시마 원폭 투하일(8월 6일)까지 포함된 건 의도적이다. 일본은 태평양전쟁과 중일전쟁의 참상이나 잔학한 행위는 축소하고 패망 직전 연합군에게 입은 피해를 교묘히 강조하는 ‘역사 편집’을 해 왔다. 원폭 역시 자국민 피해를 부각하며 가해국 이미지를 희석하면서 전체 피폭자의 10%(약 7만명)에 달하는 한국인 피해는 은폐했다. 만약 독일의 올림픽 경기장에 다시 ‘하켄크로이츠’(나치기)가 나부낀다면 유럽 각국이 가만히 있을까. 욱일기는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 피해국들에 나치 못지않은 고통과 만행을 상기시키는 정치적 상징물이다. 올림픽 사상 첫 TV 생방송으로 중계된 1936년 베를린올림픽 개막식은 나치 깃발이 펄럭이는 주경기장에서 독일 관중들의 나치식 경례를 받으며 등장한 아돌프 히틀러가 괴벨스가 쓴 개회사를 낭독한 나치 선전장이었다. 올림픽에서 평화를 외쳤던 히틀러는 3년 뒤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홀로코스트의 광기를 선동했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의 욱일기 응원 장면에서 84년 전 나치기로 덮였던 올림픽의 오명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연상이다.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인 헥터 맥도널드는 저서 ‘만들어진 진실’에서 “역사를 조작하는 가장 간단한 행태는 ‘편향적 선택’”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편향된 역사 교육 등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사실을 오도하는 진실에는 소셜미디어에 ‘#조작된 진실’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자고 제안했다. 프랑스 배우 마리옹 코티아르(44)는 지난 7월 파리 승마대회에서 욱일기가 그려진 모자를 썼다. 코티아르는 한국 팬이 전한 욱일기의 의미를 듣고 협찬받은 그 모자를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그의 매니저는 “우리에게 욱일기에 대해 알려 줘 감사하다. 프랑스인들이 욱일기의 의미도 모른 채 쓰는 건 제정신이 아닌 행동”이라는 정중한 답장을 팬에게 보냈다. 욱일기의 실체를 알게 된 사람들은 코티아르처럼 나치 독일의 하켄크로이츠를 떠올린다. 아베 신조 정부가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을 통해 자국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현재의 ‘경합하는 진실’인 양 프레이밍하며 국가적 선전장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의구심이 점점 커진다. 거짓과 경합할 때 맞서 싸우는 방법은 더 많은 사람들과 진실을 공유하는 것이다. 지금 그대가 올린 한 줄의 ‘해시태그’가 시작이다. ipsofacto@seoul.co.kr
  • 베테랑 인명구조견 케빈, 세계대회 첫 입상 노린다

    베테랑 인명구조견 케빈, 세계대회 첫 입상 노린다

    중앙119구조본부 소속 인명구조견 ‘케빈’이 17~22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제25회 세계인명구조견 경진대회에 출전한다. 인명구조견들의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대회에서 케빈이 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상을 안겨 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16일 소방청에 따르면 케빈은 올해 아홉 살 된 벨기에 마리노이즈종 수컷이다. 지난 4월 열린 전국 인명구조견 경진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구조견 최고의 영예인 ‘탑독’으로 선정됐다. 핸들러(구조견을 운용하는 소방대원)인 박해영 소방위와 세계무대에서 호흡을 맞춘다. 케빈은 명실공히 베테랑 구조견이다. 국내외 현장에 100여 차례나 파견됐다. 2013년 필리핀의 태풍 ‘하이옌’ 피해지역과 2015년 네팔 대지진 현장에서 활약한 바 있다. 전국 인명구조견 경진대회에서도 올해 우승에 앞서 2017년에도 우승을 차지해 탑독에 올랐다. 세계인명구조견 경진대회는 1995년 체코에서 처음 열렸다. 한국은 2010년부터 올해까지 8회째 참가하고 있지만 아직 입상한 적은 없다. 이번 대회에는 국가별 예선평가를 거쳐 20여개국 100여개 팀이 출전한다. 복종심, 장애물 통과 능력, 산악·붕괴·추적 등 평가 등을 거쳐 순위를 가린다. 케빈은 올해에만 각종 재난현장에서 실종자 3명을 발견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소방청은 “케빈이 다양한 경험을 살려 이번 대회에서 국제대회 출천 최초로 입상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독일 베를린에 위안부 소녀상 상설 전시

    독일 베를린에 일본군 위안부 등 전쟁 피해 여성을 주제로 한 작품과 기록물을 상설 전시하는 공간이 마련됐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국 관련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사무실에 전시관 ‘무언 다언’을 개관했다. 전시관에는 ‘평화의 소녀상’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된 작품들이 전시된다. 소녀상은 김운성·김서경 작가의 올해 작품이다. 지난달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출품됐다가 현지 정치인들과 극우 세력의 압박 때문에 전시가 중단된 소녀상도 이들의 작품이다. ‘무언 다언’에서는 또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성폭력, 연합군의 성폭력,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과 미군의 성폭력에 대한 작품과 기록물도 선보인다. 이와 함께 무장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의해 납치돼 성폭력을 당한 이라크 소수민족 야지드족 여성들의 이야기 등 현재 전 세계 분쟁 지역에서 발생하는 성폭력도 고발한다.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현지 언론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의 문제를 넘어 전쟁에서 발생하는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를 보여 주는 것”이라며 “현대사에서 여성들이 입은 전쟁 성폭력 피해를 관람객들과 소통하면서 함께 알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향수와 현실도피’...음악영화 신드롬 이유는

    ‘향수와 현실도피’...음악영화 신드롬 이유는

    퀸, 비틀스, 주디 갈랜드 등 뮤지션 소재 영화 잇따라 개봉 BBC보도, “올해는 음악영화의 해, 음악 자체가 캐릭터”퀸, 엘튼 존, 브루스 스프링스틴, 주디 갈랜드, 비틀스… 세계 대중음악계에 이름을 남긴 이들이 또다른 공통점은 바로 최근 영화를 통해 재탄생·재조명됐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최근 큰 인기를 끈 음악영화으로 퀸 열풍을 일으킨 ‘보헤미안 랩소디’가 떠오르지만, 올해는 이밖에도 뮤지션을 소재로 한 많은 영화가 관객을 찾고 있다. 영국 BBC는 최근 보도에서 이미 상영됐거나 곧 상영 예정인 음악영화들을 소개하며 이들의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 ①음악 자체가 ‘케릭터’다 BBC는 영화 관객들에게 2019년은 ‘음악영화의 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개봉한 ‘보헤미안 랩소디’가 전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해를 넘기며 인기를 이어갔고, 이후 음악영화들이 줄줄이 개봉했다. 한국 개봉을 기준으로 세계적인 팝 가수 엘튼 존의 생애를 다룬 ‘로켓맨’, 비틀스의 명곡들을 스크린에 녹여낸 ‘예스터데이’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미국 고전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부른 배우 주디 갈랜드를 소재로 한 영화 ‘주디’,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데뷔 싱글 제목이기도 한 ‘블라인디드 바이 더 라이트’, 고(故) 조지 마이클의 노래에서 영감을 받은 ‘라스트 크리스마스’ 등이 해외에서는 올해말 상영이 예정돼 있다.음악영화의 장점은 무엇보다 음악이 하나의 ‘캐릭터’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국내 개봉은 미정인 ‘블라인디드 바이 더 라이트’는 영국계 파키스탄 청소년의 성장기를 다루는데, 스타 배우가 출연하지는 않지만, 대신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멋진 음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작품의 대본을 쓴 사르프라즈 만주르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스타는 바로 스프링스턴이고, 이것이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온다”면서 “우리는 음악이 영화의 등장인물이 되도록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②음악은 향수를 자극한다 음악영화가 인기를 얻는 또다른 이유는 바로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10대 때 즐겨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옛 시절을 ‘소환’한다. 중장년층들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서 자신들이 학창시절 열광했던 퀸과 프레디 머큐리를 떠올린다. 해외 팬들은 영화를 보며 30여년전 ‘팝의 성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실제 퀸을 봤던 옛 추억을 스크린을 통해 다시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 관계자는 “최근 음악영화의 인기는 복고 트랜드와 연관이 있다”면서 “음악이 향수를 자극한다는 것은 우리 자체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고 말했다.③음악은 현실을 잊게 한다. 영국영화협회(BFI)에 따르면 과거 미국에서 뮤지컬 영화가 큰 인기를 누렸던 때는 역설적으로 1930년대 대공황과 2차세계대전 전후였다. 1933년 개봉한 ‘42번가‘, 1952년 제작한 ‘사랑은 비를 타고’ 등이 대표적인 예다. 경제불황이나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기에 음악과 영화가 모두 녹아든 음악영화, 뮤지컬 영화가 대중에게 잠시나마 현실을 도피할 수 있도록 하게 한다는 것. 부족한 게 없는 풍요의 시대 때 음악과 영화 등을 즐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인 셈이다. 이같은 분석은 최근 음악영화의 인기가 결국 우리가 지금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음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BFI 영상자료원의 헤드 큐레이터 로빈 베이커는 “최근 음악영화가 다시 인기를 끄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며 “기후 변화 문제나, 도널드 트럼프, 정치적 불안정, 나라가 둘로 쪼개진 것 같다는 등 뉴스 속에서 사는 지금 시대에 사람들은 이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고 진단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열 일’ 다한 CIA, 비둘기 까마귀 개와 고양이 돌고래까지 스파이로

    ‘열 일’ 다한 CIA, 비둘기 까마귀 개와 고양이 돌고래까지 스파이로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냉전 시대 별 일을 다 벌였다. 물론 1차 세계대전 때의 영국 첩보부, 옛 소련이나 소련의 영향력 아래 있던 나라들, 지금의 러시아도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CIA가 최근 기밀 해제한 문서에 따르면 비둘기 몸에 작은 카메라를 달아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부두에 정박한 소련 잠수함을 자동으로 촬영하게 만든 타카나 작전이 대표적이다. 영국 BBC의 고든 코레라 안보 전문기자는 CIA가 비둘기들을 대상으로 정교한 훈련 과정을 운영했으며 비둘기 뿐만아니라 까마귀를 이용해 도청 장치를 낙하하게 하거나 돌고래를 수중 염탐에 활용하곤 했다고 소개했다. 동물들 각자가 신성한 작전을 위해 독특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는 것이다. 버지니아주 랭글리의 CIA 박물관에는 카메라를 장착한 비둘기 인형이 있다. 영국이 2차 세계대전 중 비둘기를 스파이로 활용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책을 펴낸 코레라 기자는 비둘기를 서신 교환에 쓴 것은 훨씬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첩보전에 처음 활용한 것은 1차 세계대전 때부터라고 했다. 비둘기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물건을 떨어뜨릴 수 있고 나중에 그곳을 찾아 가서 되찾아올 수 있는 초능력 같은 것을 지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영국 첩보기관 MI14는 독일 등 주축국에 점령당한 유럽 지역에 낙하산을 매단 컨테이너 안에 비둘기 1000마리를 넣어 지상에 떨어뜨렸다. 비둘기 몸에는 편지가 붙어 있었는데 독일군의 V1 로켓 발사 장소와 레이더 기지에 관한 정보를 적어달라는 내용이었다. ‘레오폴드의 앙심(Leopold Vindictive)’이란 레지스탕스 조직이 작성한 12쪽의 보고서는 직접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에까지 전달됐다. 전후 영국 합동정보본부는 냉전시대에 어울리는 비둘기 활용법을 찾는 비둘기 소(小)위원회를 구성했지만 흐지부지됐지만, 대신 CIA가 1960년대 바통을 넘겨 받으면서 다른 동물에게로 시야를 넓혔다고 코레라 기자는 소개했다. 까마귀들에게 유리 창틀에 40g 밖에 안 되는 작은 물건을 내려놓고 나중에 찾아오게 하는 훈련을 시켰다. 실제로 유럽의 어느 특정 장소에 도청 장치를 떨어뜨리는 작전에 성공했지만 어떤 내용도 녹음으로 담기지 못했다. CIA는 또 소련이 화학무기를 실험했는지 감지할 수 있는 센서를 철새들이 갖다 놓을 수 있는지 알아봤다. 나아가 개들의 뇌를 전기로 자극해 원하는 곳에 가게 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고양이 귀에 녹음 장치를 심는 ‘어쿠스틱 키티’ 작전이 있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 돌고래를 사람과 함께나 아니면 돌고래 혼자만 적진에 침투시킬 수 있는지 살펴봤다. 돌고래를 현장 요원으로 일하게끔 훈련시키는 조련사를 어떻게 통제할지가 관건이었다. 지난 2001년 태평양 병코돌고래가 수륙양용 구축함 USS 덜루스 호에 승선해 물 속 기뢰를 탐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서는 아예 병코돌고래에게 적군의 선적 작업에 타격을 주기 위해 수중 공격을 시도하게 하는 훈련도 실행했다. 또 소련 핵잠수함의 기계음을 탐지하는 센서를 운반할 수 있는지, 방사능이나 생물학 무기의 흔적을 찾는 임무를 맡기려 했다. 1967년에 CIA는 돌고래 담당 옥시개스(Oxygas), 조류 담당 액시오라이트(Axiolite), 견공과 고양이 담당 케첼(Kechel) 등 세 파트에 60만 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나온다. 1970년대 중반 CIA는 한 교도소와 워싱턴 DC의 해군기지 마당에서 여러 차례 실험을 실시했다. 카메라는 2000 달러 짜리였으며 무게는 35g 밖에 안 됐다. 140장 정도의 사진을 찍었는데 절반 가량은 화질이 괜찮았지만 산책하는 사람들이나 주차된 차량 등 의미없는 정보를 담은 사진만 그런대로 볼 만했다. 전문가들은 위성 사진이 훨씬 쓸 만하다고 판단했다. CIA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비둘기 스파이 요원에 대해 알면 오히려 자신들을 염탐하는 데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서 입을 꼭 다물었다. 모스크바로 비둘기 상자를 비밀리에 운송해 레닌그란드 항구를 염탐하기 위해 비둘기를 어떤 방법으로 풀어놓을 것인지까지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예를 들어 시속 80㎞로 달리는 차의 창문을 열어 비둘기를 날리는 방안까지 거론됐다. 하지만 최근 기밀 해제된 문서는 딱 여기에서 멈춘다고 코레라 기자는 아쉬워했다. 얼마나 많은 비둘기가 실제로 염탐 임무를 띠고 하늘을 날았는지, 그들이 수집한 정보는 얼마나 되고 어떤 수준인지는 여전히 기밀에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日 신임 경제산업상, 취임하자마자 “일본, WTO 위반 전혀 아니다”

    日 신임 경제산업상, 취임하자마자 “일본, WTO 위반 전혀 아니다”

    스가와라 잇슈(57) 경제산업상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등 경제 보복조치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2일 NHK 등에 따르면 스가와라 경제산업상은 전날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WTO에 제소한 것과 관련해 “WTO 위반이라는 지적은 전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각국이 노력해서 국제적인 합의에 기초해 수출 관리를 진행해 왔다”면서 “(WTO 위반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일본의 입장을 확실하고 엄숙하게 밝히겠다”고 강조했다. 자민당 재무금융부 회장, 후생노동성 정무관 등을 거친 그는 2차 아베 내각에서 2012~2013년 경제산업성 부대신(차관급)을 역임한 바 있다. 지한파 일본 의원들의 모임인 일한의원연맹 회원이지만 개헌을 추진하는 극우 단체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와 ‘다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의원 모임’에 속하는 등 극우 정치인의 행보를 보여왔다. 또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한 안보법제에 찬성했고, ‘일본 위안부’ 문제를 사과했던 고노 담화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 규제 법안에는 반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차기 총리 후보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측근인 스가와라 경제산업상은 최근 일본 정부의 대대적 개각에서 입각했다. 일본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인 강제징용자에 대한 보상 문제로 외교 분쟁이 있은 후 지난 7월 4일부터 불화수소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한국으로의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전에는 주문 후 해당 소재에 대한 1∼2주내에 조달이 가능했으나, 이제는 90일까지 소요되는 일본 정부의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며 임의로 거부될 수도 있다. 수출 제한 조치 이후 2개월이 지난 현시점까지 단 3건만 수출 허가가 나왔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지난 11일 일본의 전략적 물자 수출통제가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며 “차별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번 사안을 WTO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양자협의 요청 서한을 일본 정부(주제네바 일본대사관)와 WTO 사무국에 전달한 뒤 2개월 동안 일본과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WTO에 재판부에 해당하는 패널 설치를 요청하게 된다. 최종심에서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 2∼3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日, 차별금지 의무 ‘최혜국 대우’ 위반… 자유무역 철칙 깨뜨렸다

    日, 차별금지 의무 ‘최혜국 대우’ 위반… 자유무역 철칙 깨뜨렸다

    한국만 특정해 포괄허가를 개별로 전환 수출입에서 수량 제한 일반적 폐지 못해 협의없이 규제… 절차적 정당성도 무시 WTO ‘안보 예외’ 신중 적용 한국에 호재 최종심까지 진행 땐 판결 4년 걸릴 수도우리 정부가 11일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것은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가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난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치적 이유로 경제 보복을 단행하지 않는다’는 자유무역의 철칙을 일본이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정부는 제소장에 해당하는 양자협의 요청서에서 일본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제1조 최혜국 대우와 제11조 수량제한의 일반적 폐지, 제10조 무역규칙의 공표 및 시행 등의 규정을 위반했다고 적시했다. 최혜국 대우는 두 국가 사이의 관계에 대해 제3국에 부여하는 모든 조건보다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하는 것을 말한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이 3개 품목 수출에 대해 한국만을 특정해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로 전환한 것은 WTO의 근본 원칙인 차별금지 의무, 특히 최혜국 대우 의무에 위반한다”고 지적했다. 수량 제한의 일반적 폐지는 수출입에서 할당제나 수출입 허가를 통해 수량을 제한할 수 없는 규정이다. 일본 정부는 기존에 자유롭게 교역하던 3개 품목에 대해 계약 건별로 반드시 개별허가를 받도록 규제하면서 사실상 수량을 통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 기업들은 이전에는 주문 뒤 1~2주 안에 조달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90일까지 소요되는 일본 정부의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 한 국가가 다른 나라 무역에 영향을 주는 조치를 취할 땐 공평하고 합리적인 방식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과의 협의나 대화 없이 불과 사흘 만에 규제를 단행했다. 유 본부장은 “이웃 나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보여 주지 않았음은 물론 절차적 정당성도 무시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제소는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본격화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제소가 됐다고 일본이 기존 조치를 철회할 가능성은 적지만 규제를 오용하기는 어려워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한일 양국은 WTO를 통한 분쟁해결 절차의 첫 단계로 양자 협의를 갖게 된다. 이를 통해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은 WTO 재판부에 해당하는 패널 설치를 요청하고 본격적인 분쟁해결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제소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일본 조치에 따른 피해가 아직까지 크지 않은 상태에서 조치 자체만을 대상으로 소송을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WTO가 매우 신중하게 안보 예외를 적용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호재다. 일본이 수출 규제의 이유로 내세운 ‘안보 이슈’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WTO 체제를 출범시킨 당사자임에도 정작 WTO에 부정적이다. 지금까지 ‘안보상 이유’로 WTO가 금지하는 각종 무역보복 조치를 취해 온 데다 중국이 WTO 체제로 이득을 봤다고 보고 있어서다. WTO 패널 판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사건을 맡게 될 상소기구(최종심)의 상소위원은 미국의 충원 반대로 전체 7명 중 4명이 결원 상태다. 남은 위원 3명 중 2명도 연말에 임기가 끝난다. 한일 수산물 분쟁의 경우 상소기구까지 이어지면서 약 4년이 걸렸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상소기구가 유명무실화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소송의 가장 큰 난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시위 참석 14살 여학생, 홍콩 시위대에 性 제공”

    “시위 참석 14살 여학생, 홍콩 시위대에 性 제공”

    홍콩의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14주째로 접어든 가운데 한 친중파 고위 인사가 “일부 미성년 여성이 시위대에 성을 제공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시위대에 ‘폭도’라는 프레임을 씌워 시민들과의 정서적 유대를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홍콩 최대 재벌이자 ‘재신’(財神)으로 불리는 리카싱 전 CK허치슨홀딩스 회장은 “(중국과 홍콩의) 지도자들이 젊은이들에게 출구를 열어 줘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시위대 측 “증거 없는 가짜뉴스” 반발 10일 홍콩 명보 등에 따르면 교육부 장관을 지내고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자문역인 패니 로 선임고문은 전날 RTHK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다. 한 청취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면 14살 여학생이 시위에 나서는 이들에게 위안부처럼 성을 제공했다. 이 학생은 결국 임신까지 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로 고문은 “우리도 이것이 사실임을 확인했다”고 답했다. 그의 발언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시위를 주도하는 시민단체 ‘민간인권진선’은 즉각 대변인 성명을 발표하고 “정부 관리가 증거도 없이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야당 정치인 애버리 응만 의원도 “최루탄이 난무하는 시위 현장에서 어떻게 성관계를 가질 수 있겠느냐”고 일축했다. 로 고문은 발언의 진위를 묻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내 친구의 지인”이라면서 “(정보 제공자의) 딸이 실제로 시위대와 성관계를 했다. 여성들이 시위에서 만난 남성들과 술과 대마초를 하며 함께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주장했다. ●리카싱 “홍콩 젊은이에게 출구 열어줘야” 이런 가운데 SCMP는 시위가 장기화하자 리 회장이 지난 주말 한 사찰 법회에서 작심한 듯 “정부가 시위대를 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이날 보도했다. 리 회장이 공개석상에서 홍콩 시위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홍콩 역사상 최대의 위기”라며 “젊은이들은 대국적 관점에서 생각하기를 바란다. 정부 역시 미래의 주인공에게 출구를 내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박철현의 이방사회] 입시제도 자꾸 바꾸지 말아야

    [박철현의 이방사회] 입시제도 자꾸 바꾸지 말아야

    큰딸은 지금 도쿄의 공립중학교 2년생이다. 부모들이 벌벌 떤다는 중2라고 해서 겁을 먹었는데 실제 그 시기를 지내 보니 별 게 없다. 그는 소프트볼부 주장과 학교 학생회장을 하고 있다. 일본 중학교의 학생회장은 중2 가을부터 중3 여름까지 한다. 그 이후엔 고입 수험공부에 매진한다. 서클 활동도 하계대회가 끝나면 중3들은 은퇴한다. 역시 입시 때문이다. 몇 개월 전 아이가 책을 한 권 사왔다. 2019년 고교수험안내다. 혼자 식탁에 앉아 골똘히 책장을 넘기더니 “아빠, 난 고가네이기타고등학교 갈까 봐”라고 말한다. “그래? 좋은 학교니?”라고 물어보니 “응. 서쪽 지역에서는 위에서 다섯 번째. 편차치는 64로 나와”라고 답한다. 그러자 주방에 있던 아내가 “야, 니가 무슨 고가네이기타냐? 공부를 안 하는데. 이대로 가다간 내가 나온 고다이라고등학교 정도밖에 못 가”라고 일침을 놓는다. 편차치를 보니 고다이라는 53, 즉 중위권이다. 두 가지 점에서 놀랐다. 먼저 모든 고등학교가 공립, 사립 가리지 않고 서열이 나뉘어져 있고 그것을 당연한 듯이 공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뿐만 아니라 인터넷 웹사이트 ‘민나노 고교정보’에 가면 전국 1만여개 고교 서열이 매년 경신된다. 참고로 고가네이기타는 이 사이트에서 전국 758위, 도쿄도 내에서는 634개 학교 중에서 90위로 나온다. 두 번째는 아내가 고등학교 입시시험을 치렀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고교입시제도가 바뀌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내친김에 찾아 보니 대학입시제도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 지금 현재 통용되는, 이른바 ‘대학입시센터시험’은 1990년부터 지금까지 실시돼 왔다. 센터시험 점수를 토대로 각 대학에 지원하고 도쿄대학 등 유명 대학은 2차 시험(본고사)를 치른다. 이 전통은 30년간이나 이어져 오고 있다가 2021년부터 대학입학공통테스트시험이라는 이름으로 바뀔 전망이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과목 수가 차이 나고 주관식 필기가 도입된 것을 제외하면 시험 형태 및 그 방식은 기존 센터시험과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개정 논의를 2013년부터 장장 7년간 했다. 물론 일본의 학교교육을 보면 엘리트를 위한 초중고대학 혹은 중고대학 일관교 제도도 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 근처에 와세다실업학교가 있는데, 이 학교가 초중고대학 일관교의 전형적 예다. 와세다실업초등학교에만 들어가면 일본의 명문대라 불리는 와세다대학까지 바로 들어간다. 100% 추천제도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비스에 있는 게이오기주쿠요치샤도 마찬가지다. 여기도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와세다와 쌍벽을 이루는 사립 명문 게이오대학까지 무난하게 진학할 수 있다. 이해 가지 않는 불평등한 교육제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금수저’들을 대놓고 용인한다. 반면 이러한 상위 1%를 제외한다면 99%는 평등한 환경에서 실력을 겨룬다. 고교ㆍ대학 입시제도가 거의 바뀌지 않기 때문에 수험생들이 얻는 정보는 거의 동일하다. 큰딸처럼 이런 책을 사봐도 되고, 인터넷만 접속해도 공개 페이지를 통해 수험 정보나 학교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원을 한 번도 다니지 않았다는 지방 학생이 도쿄대, 교토대 등 일본 최고의 명문대에 입학한 사례를 빈번하게 확인할 수 있다. 수험생 자신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머리가 똑똑하다면 충분히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다는 당연하고 기본적인 원리가 일본에서는 실현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이 얼마 전 대학입시제도의 전반적 개선을 지시했다고 한다. 어떻게 바뀌어도 상관없는데, 다만 이번에 바꾸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냥 놔두면 어떨까 한다. 제도가 바뀌면 그 바뀐 정보를 손쉽게 체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서 사회적 자본의 강자과 그렇지 않은 부류가 확연히 갈린다. 하지만 바뀌지 않은 채 계속 간다면 적어도 정보에 관해서는 언젠가 평등해질 것이다. 큰딸한테 다시 “너, 그 고등학교 들어갈 수 있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귓속말로 “공부 안 해도 돼. 나 학생회장이잖아. 후훗”이라고 답한다. 추천입학 정보를 스스로 파악한 네가 엄마나 나보다 훨씬 낫구나. 힘내라.
  • 신의 계시로 지어진 바다 위 1000년의 역사

    신의 계시로 지어진 바다 위 1000년의 역사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뚝 떨어진 작은 섬이자 수도원, 몽생미셸. 이곳 바다는 조수간만의 차이가 무척 커서 간조 때 6시간 동안 15㎞ 넘게 바닷물이 빠져나간다. 빅토르 위고는 이를 보고 ‘도약하는 경주마’에 비유했다. 몽생미셸은 파리에서 차로 4시간 넘게 걸린다. 대부분 파리에서 새벽에 출발해 낮에 둘러보고 떠나곤 한다. 하지만 1박 이상을 하는 여행자에겐 아침과 저녁 해무에 싸인 신비로운 몽생미셸을 볼 수 있는 행운이 있다. 이 수도원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708년, 주교 오베르의 꿈에 대천사 미카엘이 나타나 명령을 남겼다. ‘큰 돌 위에 예배당을 지어라.’ 오베르는 처음에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세 번이나 같은 꿈을 꾸고 나서는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 솟아 있는 휑한 바위섬에 작은 예배당을 지었다. 몽생미셸의 시작이다. 프랑스어로 몽(Mont)은 산을, 생(Saint)은 성자를, 미셸(Michel)은 대천사 미카엘을 뜻한다. 몽생미셸에서 2㎞ 떨어진 라케세른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 여장을 풀었다. 마을에서 몽생미셸까지 가는 방법은 세 가지다. 마을에서 운행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하거나 자전거를 빌려 타거나 40분 정도 걸어가는 것. 길이나 다리가 없던 중세, 순례자들은 질퍽거리는 갯벌을 맨발로 걸었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 데크가 매끈하게 깔린 다리 위를 걸었다. 소금기 머금은 풀을 뜯어먹는 양떼들과 갯벌에 내리 꽂히던 햇살은 길동무로 완벽했다. 뾰족한 몽생미셸에 가까워질수록 두 가지 마음이 생겼다. 빨리 다가가서 속속들이 알고 싶기도 하고, 신비로운 자태만 멀리서만 담아두고도 싶다. 늘 동경해왔던 여행지였다. 오랜만에 큰 떨림을 느꼈다. 성벽 안으로 들어가니 좁은 골목길 양쪽으로 수백 년 된 레스토랑과 상점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얼마나 많은 순례자들이 이 길을 걸었을까? 그 옛날 가난한 순례자를 배불리 먹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두툼한 수플레 오믈렛을 먹고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따라 올랐다. 숨이 가빠 더이상 오르지 못하겠다 생각이 드니 수도원 꼭대기다. 노르망디 바다가 아득하게 펼쳐진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십만 명의 병력이 상륙했을 정도로 길고 너른 해안이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회갈색의 갯벌을 보니 면적 0.97㎢에 불과한 작은 수도원에 갇혀 살았던 수도승들의 외로움이 전해진다.몽생미셸은 처음에 초라한 목재건물이었으나 점차 돌을 쌓아 견고하게 지었다. 8세기부터 18세기까지 천 년에 걸쳐 규모가 커지면서 완성돼 로마네스크부터 고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재돼 있다. 12세기에는 성벽을 쌓아 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 요새 역할을 했고 1789년 프랑스 혁명 후에는 정치범들의 감옥으로 사용됐다. 몽생미셸은 197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김 진 칼럼니스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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