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계대
    2026-02-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4,225
  • [이동구 칼럼] 멍석은 잘 깔려 있다

    [이동구 칼럼] 멍석은 잘 깔려 있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창시자 칼 볼프강 도이치는 “국가들 사이의 통신과 접촉이 빈번해질수록 통합의 지수가 높아진다”는 가설로 유명하다. 하지만 일본을 둘러싼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는 그의 가설이 성립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의 웬만한 나라들은 서로 활발한 무역과 인적, 경제적 교류에도 불구하고 정치, 역사 문제 등에서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한국, 중국 등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인한 아픔을 치유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2005년 8월 11일자)에서 과거사를 통한 정치적 화해 없는 아시아 공동체 논의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유럽은 두 번의 세계대전에도 불구하고 통합을 이뤘지만, 아시아는 50~100년 안에 겨우 경제공동체 정도만 가능할 것이다. 독일처럼 일본도 전쟁 행위의 모든 것을 인정, 사죄하고 개인이 입은 피해를 보상해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의례적으로 ‘사죄합니다’ 하고는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행위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올해도 일본의 나루히토 천왕은 “깊은 반성”의 뜻을 밝혔지만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에 공물을 보냈고, 의원들은 집단 참배했다. 최근 미국의 역사학자도 유사한 분석을 내놓아 관심을 끌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브래진스키 교수는 지난 11일 워싱턴포스트의 기고 칼럼 ‘일본이 과거의 죄를 속죄하지 않은 것이 어떻게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가’라는 글에서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 반성하고 이웃 국가들과 화해하지 않은 것이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으며, 이는 한일 갈등과도 연관된다”고 주장했다. 또 “1990년대 이래 일본 지도자들은 잘못을 사과하고 반성하는 성명을 수십 차례 발표했지만 그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같은 행동으로 이런 성명들을 훼손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기회주의적인 한국의 지도자들은 인기에 어려움을 겪을 때 일본을 공격하기에 편리한 목표라는 것을 발견했다. 역사적 분노를 살리고 유지하는 것은 유용한 정치적 무기가 될 수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일본은 내년 7월 도쿄올림픽을 정권 홍보의 기회로 삼을 계획이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가 성공적으로 복구됐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려고 방사능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곳에서도 올림픽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 등의 세계 언론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다. 우리 국민 중에는 올림픽 불참까지 주장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수사에 그친다. 오히려 일본 정부가 올림픽을 기회로 아시아와 세계인들에게 과거사를 반성하고 화해의 메시지를 남겼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8·15 경축사에서 “일본이 과거사를 사죄하고 새 시대로,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나서길 바란다”고 했다. “세계인들이 평창에서 ‘평화의 한반도’를 보았듯 도쿄올림픽에서 우호·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도쿄올림픽에서 과거사에 대해 사과의 몸짓을 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 준 셈이다. 히틀러처럼 올림픽을 정권 홍보에 활용치 말고, 아시아인을 향한 ‘과거사 사죄의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 등지의 피해자들은 수십년째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27년 동안 소녀상 앞에서 집회하는 고령의 피해자들에게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만약 아베 총리가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면 아시아인의 오랜 갈등이 화해의 역사로 바뀔 수 있는 성공적인 도쿄올림픽을 열게 될 것이다. 독일은 1970년 빌리 브란트 총리 이후 기회 될 때마다 과거사를 반성해 왔고, 나치 전범에게는 끝까지 죄를 물었다. 이달 초 ‘바르샤바 봉기’ 75주년을 맞아 독일은 또다시 과거를 반성했다. “일본이 아시아 두뇌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나 그것은 독일과 같이 과거와 결별했을 때 가능하다. 현재로서는 아시아의 지적 리더로 잘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다”라고 한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의 고견(니혼게이자이신문 2011년 1월 9일자)을 다시 새겼으면 한다. 아베 총리의 진심 어린 사죄는 한국과 아시안인, 세계인을 감동시킬 수 있다. 사과에 필요한 멍석은 충분히 깔려 있다. yidonggu@seoul.co.kr
  • 8년 만에 찾은… 금보다 값진 동

    8년 만에 찾은… 금보다 값진 동

    러 선수 3명 도핑 적발에 6위서 3위 상승 경보 20㎞ 銅… 세계대회 한국 최고 성적한국 육상 최초의 세계선수권 메달이 8년 만에 확정됐다. 한국 육상 경보의 간판 김현섭(34·삼성전자)은 오는 9월 27일 카타르 도하에서 개막하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뒤늦은 동메달을 목에 건다. 2011년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에서 받았어야 할 메달이지만 제 주인을 찾아오는 데 8년이 걸렸다. 김현섭은 당시 경보 남자 20㎞ 결선에서 1시간21분17초로 6위에 그쳤다. 금메달과 은메달을 목에 건 발레리 보르친과 블라디미르 카나이킨(이상 러시아)은 2016년 실시한 과거 샘플 추적검사에서 금지약물 양성 반응을 보였고 선수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의 기록도 삭제됐다. 이에 따라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그해 3월 김현섭의 순위를 4위로 정정했다. 그런데 IAAF는 지난 20일 대한육상연맹에 공문을 보내 “2011년 대구세계대회 경보 남자 20㎞ 경보 중 러시아의 스타니스라프 에멜야노프(종전 3위)를 도핑 위반으로 적발했다”면서 “따라서 4위였던 김현섭이 동메달리스트가 된다”고 통보했다. 해외 전지훈련을 마치고 20일 귀국한 김현섭은 대한육상연맹으로부터 ‘동메달리스트가 됐다’는 연락을 받은 뒤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도하에서 시상식까지 연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내가 메달리스트가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2011년 대회 때 시상대에 올랐다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메달을 받는 게 어딘가”라면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리게 돼 영광이다. 한국 경보가 힘을 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종전 한국 선수의 세계대회 최고 성적은 1993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대회 남자 마라톤에서 김재룡이 일궈 낸 4위였다. 도하세계선수권을 준비하고 있는 김현섭은 “내 생애 마지막 세계대회 출전이다. 예전에는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경기를 준비한다”면서 “좋은 소식을 들었으니 이번 대회 ‘톱10’을 목표로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2019 미스 인터콘티넨탈 코리아 우승에 조가비

    2019 미스 인터콘티넨탈 코리아 우승에 조가비

    ‘2019 미스 인터콘티넨탈 코리아’ 대회에서 조가비씨가 영예의 우승을 차지했다.서울신문STV가 주최하고 서울신문과 스포츠서울이 후원해 21일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린 한국대회 최종 결선에서 2등은 김새미씨, 3등은 오연희·김시인·손다솜씨에게 돌아갔다. 우승자 조가비씨는 올해 12월 인도에서 열리는 미스 인터콘티넨탈 세계대회에 출전한다. 올해 미스 인터콘티넨탈 코리아는 지난 5월 6일 서울을 시작으로 경북, 광주·호남·제주, 수도권, 대구 등 지역 대회를 치러 최종 출전자 26명을 가렸다. 결선 출전자들은 지난 1일부터 공식 합숙에 들어가 사전 평가와 사전 심사를 거쳤고, 중국으로 건너가 중화권 진출을 위한 프로모션을 펼치기도 했다. 미스 인터콘티넨탈은 미스 월드, 미스 유니버스, 미스 어스, 미스 인터내셔널과 함께 세계 5대 미인대회의 하나로 꼽힌다. 1971년 베네수엘라의 아루바에서 제1회 세계대회를 가진 이후 올해는 48번째 대회가 된다. 한국은 2011년부터 국가대회를 열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경북대,‘2019 CWUR 세계대학랭킹’국내대학 10위

    경북대가 세계대학랭킹센터(이하 CWUR)가 최근 발표한 2019년 대학평가에서 국내 대학 10위를 차지했다. 비영리교육단체인 CWUR에 따르면, 올해 평가에서 ‘상위 2000대 대학’에 진입한 국내 대학은 총 64개이다. 국내 상위 10개 대학의 세계대학 순위는 서울대(33위), 연세대(161위), 고려대(178위), 성균관대(192위), KAIST(199위), 한양대(326위), POSTECH(340위), 경희대(357위), 울산대(401위), 경북대(429위) 등이다. CWUR의 세계대학랭킹은 설문조사나 대학이 제출하는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교육역량, 논문실적 등 객관적 검증이 가능한 정량 지표만으로 평가한다. 평가지표는 ▲교육역량(25%) ▲동문취업(25%) ▲교원역량(10%) ▲논문성과(40%) 등이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제멋대로 트럼프, 그린란드 안 판다니까 “덴마크 방문 취소”

    제멋대로 트럼프, 그린란드 안 판다니까 “덴마크 방문 취소”

    무엇이든 제멋대로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2일(이하 현지시간) 예정됐던 덴마크 방문 계획을 취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트위터에 “덴마크는 기막힌 사람들이 사는 아주 특별한 나라지만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가 그린란드 매입을 의논하는 데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얘기한 터라 난 2주 뒤로 예정됐던 만남을 다른 때로 연기하기로 했다”고 적었다. 이어 “총리는 두 나라 모두 엄청난 돈과 노력을 아낄 수 있게 해줬다. 그녀에게 감사드리며 미래에 일정이 조정돼 만나길 기대한다”고 이죽거렸다. 얼마 뒤 저드 디어 백악관 부대변인이 덴마크 방문 계획이 취소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틀 전 트럼프 대통령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보도한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실제로 갖고 있지만 행정부의 최우선 사안은 아니라고 밝혔다. 덴마크는 그린란드의 자치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지만 국방, 외교 등을 책임지고 있다. 프레데릭센 총리는 “멍청한 논란”이라고 일축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그린란드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자신의 라스베이거스 호텔 사진을 합성한 사진을 올리고 “그린란드에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드린다”고 농을 하기도 했다. 백악관이 마그레테 덴마크 여왕의 방문 요청을 받아들여 프레데릭센 총리, 재계 지도자들과 연쇄 회담을 갖겠다고 합의해 발표한 것은 지난달 말이었다. 원래 2차 세계대전 개전 80주년을 맞아 폴란드 바르샤바를 찾는 일정과 엮어 이달 말 출발할 예정이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헝가리-오스트리아 ‘철의 장막’ 무너진 30주년, 소프론 찾은 메르켈

    헝가리-오스트리아 ‘철의 장막’ 무너진 30주년, 소프론 찾은 메르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9일(이하 현지시간) 헝가리 서부 소프론이란 국경 도시를 찾아 30년 전 이날 국경을 지키던 경비병들이 옛 동독인들의 월경 행렬을 방관한 데 감사를 표했다. 메르켈 총리는 1989년 600명의 옛 동독인들이 헝가리 영토를 통과해 오스트리아로 입경할 수 있었던 것이 옛 동독인들의 엑소더스 행렬을 불러와 같은 해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를 이끌었고, 1년 뒤 독일 통일의 결실을 맺었다고 높이 평가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나아가 중부와 동부 유럽의 옛 소련 지지 정권들이 도미노로 붕괴한 역사적 사변을 몰고 온 것은 물론이다. 그는 이 마을의 신교 교회 연설을 통해 “소프론은 나눠질 수 없는 것들을 용기있게 쟁취하는, 우리 유럽인들이 이룰 수 있는 것들의 본보기”라며 “그 범유럽 피크닉이 중요한 세계 이벤트가 됐다”고 단언했다. 사실 피크닉 한 달 전에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외무장관들은 서구와 소비에트 블록 사이 ‘철의 장막’을 이룬 두 나라의 담을 없애자고 합의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옛 동독인들은 여행의 자유가 없었다. 메르켈 총리 역시 옛 동독 출신으로 이 때의 경험이 자유민주주의를 확신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원래 피크닉은 유럽의 단합을 상징하는 제스처로 조직돼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대표단이 몇 시간만 국경을 넘나드는 것을 허용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옛 동독인들이 떼를 지어 월경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국경 경비병들은 제지하지 않았다. 기념 행사에는 많은 피크닉 참가자들이 참석해 그날을 돌아봤다. 부다페스트 학생이었던 디테 프레즈난츠키는 여름 캠프에 참가 중이었는데 ‘철의 장막을 끊는’ 이벤트 뒤에 국경을 넘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의 가족 역시 장막에 의해 갈린 상태라 국경 담을 허무는 목적이 “자유 유럽을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헝가리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1차 세계대전 전에는 자유 헝가리였으나 1956년 봉기가 소련군에 의해 진압된 뒤 그녀 가족 일부는 서구로 탈출해 영국에 정착했다. 디테는 “장막을 자른 것은 아주 상징적이었다. 자유롭게 문을 열라는 것이었다”면서 “내가 자른 펜스 조각을 20년 동안 보관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46세로 옛 동독 할레에서 온 베르너 미슈는 이곳까지 왔지만 돌봐야 할 부모가 있어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행렬에 함께 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은 기뻐 눈물 범벅이 됐고, 어떤 이들은 환호하며 서로를 껴안았다. 헝가리인들이 국경을 열었다는 사실에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국경을 열어 나중에 일들을 가능하게 만든 헝가리인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 역시 담장 조각을 기념품으로 소장했다. 요르그 메이스너는 슈피겔 홈페이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6주 전에 이미 피크닉 계획을 들었지만 의심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체포될 위험을 줄이기 위해 혼자 여행했던” 그는 탈출할 마음을 품고 있던 옛 동독인들을 휴일마다 만났다. 쉬쉬하며 텐트와 자전거를 준비했다. 문이 열리자 그는 앞장서 통과했는데 울지 않았다고 했다. 왜냐하면 “너무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옛 동독인들은 버스에 태워져 빈으로 갔다. 사람들은 옛 동독에 남겨진 가족 걱정, 오스트리아에서의 안전이 보장될 지 걱정해 국경을 무사히 넘은 기쁨은 잊고 조용하기만 했다. 요르그는 “의심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고 돌아봤다.이날 메르켈 총리와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30주년을 기념해 오찬을 함께 들며 회담했고 기자회견도 열었다. 공산주의에 반대해 싸웠던 오르반 총리는 유럽연합(EU)의 인권과 망명 정책을 둘러싸고 메르켈 총리와 대립하고 있다. 이날 한 기자는 장벽이 허물어진 것을 기념하면서 이민자들을 막기 위해 새로운 장벽을 세우려는 오르반 총리의 계획이 모순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오르반 총리는 모순되지 않는다며 새로운 장벽이 유럽의 평화와 안전을 존속시키려는 목적에 부합한다고 반박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그린란드/이지운 논설위원

    [씨줄날줄] 그린란드/이지운 논설위원

    그린란드는 1933년 4월 상설국제사법재판소(PCIJ)의 판결을 통해 덴마크 땅으로 명실상부 국제적으로 인정됐다. 유럽인에게 발견된 것이 9세기 말이고, 그린란드라는 이름으로 불린 것은 10세기 말이라고 한다. 노르웨이 출신으로 아이슬란드에 거주하던 에리크라는 사람이 3년간 이곳에 유배돼 생활한 뒤 되돌아가 섬에 관한 환상적인 얘기들을 주변에 전하면서 ‘그린란드’라 불렀다 한다. 이 입담으로 그는 사람들을 모아 그린란드에 정착촌도 건설했고, 노르웨이와 무역을 하게 됐으며, 1261년 노르웨이 조공 국가가 되기까지는 정치적 독립도 유지했다. 1380년 노르웨이와 덴마크가 연합 왕국을 구성한 이래 긴 시간이 흐르고 나폴레옹 전쟁 이후 이 땅은 주요한 사건을 맞는다.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들은 1814년 덴마크로부터 노르웨이를 떼어내 스웨덴에 병합시켰는데, 이 땅은 덴마크에 남았다. 킬조약 제4조에서 “덴마크왕은 노르웨이 왕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주장을 포기한다”고 했음에도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등이 예외였던 것은 “노르웨이 역사에 해박했던 덴마크 협상대표 덕분이며, 다른 강대국 협상대표들의 무지에 힘입은 것이었다”고 미 플로리다대 오스카 스발리엔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평했다. 1900년경 미국 사람 피어리가 그린란드가 섬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등 땅에 대한 본격적인 탐사가 진행됐고, 19세기 들어 덴마크도 땅에 대한 법적·행정적 조치를 강화했다. 노르웨이 역시 1889년 이후 정기적으로 원정대를 보내고, 무선송신소를 건설하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다. 덴마크가 영유권 소유를 작심한 것은 1차 세계대전 중이다. 미국이 1916년 덴마크령 서인도를 매입할 때 덴마크의 그린란드 영유권을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해 받아 냈다. 이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에 접근해 같은 성과를 거두었고, 이것은 1931년 일어날 일에 큰 대비가 됐다. 그해 7월 노르웨이가 동부 그린란드의 일부를 점유하고 소유권을 주장하자 덴마크는 상설국제사법재판소에 이 문제를 제소했다. 그리하여 그 유명한 ‘그린란드의 소속을 둘러싼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분쟁 판결’이 내려져 ‘실효적 점유’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일깨워 주었다. 중국이 최근 그린란드에서 새 공항 건설 수주를 시도하고, 석유 채굴권을 따내려 분주해지자 “그린란드가 ‘제2의 남중국해’가 될 수 있다”는 외신까지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매입 검토설도 그런 배경에서 나온 모양이다. ‘기후변화’란 단어 없이도 ‘그린란드’ 지명을 자주 듣게 될지 모르겠다. 지정학적 가치는 변한다.
  • “그린란드 사겠다는 트럼프 농담 아니다” 진지하게 알아본 값어치

    “그린란드 사겠다는 트럼프 농담 아니다” 진지하게 알아본 값어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매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보도가 나오자 그린란드가 분명한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백악관 고위인사가 트럼프 대통령이 농담을 한 것이 아니라 진지했다고 재확인해 눈길을 끈다. 미국 의회 전문 매체 더힐 등에 따르면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18일(현지시간) ‘폭스 뉴스 선데이’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의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 매입 검토를 두 차례나 참모들에게 지시했다는 월스트리트 저널(WSJ) 보도와 관련, “그것(구상)은 진전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덴마크는 그린란드를 소유하고 있고, 우리의 동맹이다. 그린란드는 전략적 장소”라면서 “부동산을 잘 아는 대통령(트럼프)이 살펴보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커들로 위원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해리 트루먼 미국 행정부가 덴마크로부터 그린란드 매입을 위해 1억달러를 제안한 적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당연히 덴마크는 미국의 제안을 거부했다.WSJ의 첫 보도에 그린란드 정부는 지난 16일 성명을 통해 “비즈니스에는 열려 있지만, 그린란드는 판매용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극우 성향 ‘덴마크 인민당’의 외교 담당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만약 그가 이 아이디어를 정말로 고려하고 있다면, 미쳤다는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라르스 로케 라스무센 덴마크 전 총리도 “만우절이 지난 지 한참이 됐는데 철 지난 농담이냐”고 비아냥댔다. 하지만 커들로 위원장이 2주 뒤 덴마크를 찾는 트럼프 대통령이 진지하게 관심을 갖고 있다고 표명함으로써 진지한 협상으로 이어질지 관심을 모은다. 북대서양과 북극해 사이에 자리한 그린란드는 약 210만㎢의 면적으로 이뤄진 세계 최대의 섬이다. (호주는 대륙으로 친다.) 인구는 약 5만 6000명이다. 18세기 초반 덴마크 영토로 편입된 그린란드는 주민투표를 통해 2009년부터 자치권 확대를 달성했지만 외교와 국방, 통화 정책 등은 여전히 덴마크에 의존한다. 덴마크는 매년 그린란드 세입의 3분의2에 가까운 5억 6000만 달러(약 6800억원)의 예산을 그린란드에 지원하고 있다. 국토의 80% 이상이 얼음으로 덮여 있었지만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녹고 있어 광물자원들에 대한 탐사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냉전 시대 미군 기지 여러 곳에서 묻어둔 핵폐기물들이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당연히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석탄, 아연, 구리, 철광석 등 풍부한 광물자원에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지정학적 이점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매입하고 싶어한다고 일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은 두 인사도 있었다. 이곳은 미국이 냉전 시대 공군과 레이더 기지로 활용했던 인연을 갖고 있다. 인구의 90% 가까이는 원주민 이누이트들인데 자살, 알코올 중독, 실업 등 사회 문제가 심각하다.역사적으로도 돈으로 영토를 사들인 적지 않은 선례를 찾을 수 있다. 1803년 미국은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주 210만㎢의 땅을 1500만 달러(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현재 가치 3억 4000만달러, 마러라고 리조트를 둘 살 수 있는 돈)에 매입했고, 1848년 캘리포니아와 유타, 네바다, 애리조나주를 멕시코로부터 사들인 가격도 1500만 달러였다. 오늘날 가치로 따지면 4억 8700만 달러나 된다. 67㎞에 걸쳐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데 필요한 돈과 거의 일치한다. 1867년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주를 720만 달러(석유 채굴권만 2억 달러 값어치)에 매입했다. 미국은 1917년에는 덴마크령 웨스트 인디스를 사들여 미국령 버진 제도로 개명한 일도 있다. 돈으로 산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 1819년 스페인으로부터 통치권을 넘겨 받은 플로리다주도 있다. 두 나라가 합의한 애덤스-오니스 협약에 따른 것인데 미국과 뉴멕시코(지금의 멕시코)의 경계도 이 조약에 의해 그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국이 매입한 영토는 1947년 마셜 제도였다. 그린란드의 1만 2000분의 1 밖에 안되는 작은 제도였다.하지만 듀크 대학 법학과 조지프 블로허 교수는 BBC에 그런 관행은 “이제 기본적으로 사라졌다”면서 “국가들은 주권 영토를 확대하지 않고서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또 사람들을 종 부리듯 사고팔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런 노골적인 매매는 미국과 덴마크, 그린란드 주민 모두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 확률은 사라질 듯 미미하다”고 덧붙였다. 사실 미국 정부가 그린란드를 사들이려 했던 것은 1860년대 앤드루 존슨 대통령 때였다. 1867년 미국 국무부는 그린란드의 전략적 위치, 풍부한 자원등을 고려할 때 굉장히 이상적인 매매가 된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리고 1946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1억 달러를 부른 것이었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루먼은 그린란드의 전략적 영토 얼마를 알래스카 땅과 맞바꾸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이종수의 헌법 너머] 광복절 그리고 두 나라의 헌법

    [이종수의 헌법 너머] 광복절 그리고 두 나라의 헌법

    광복절이 지난주였다. 이웃하는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는 즈음에 이번 광복절을 앞두고서는 자못 비장감마저 든다. 그래서인지 연일 계속되는 홍콩의 시위 현장에서 한 젊은이가 ‘광복’(光復)이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든 모습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서로 국경을 맞대고서 전 역사에 걸쳐서 전쟁이 잦았던 유럽은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꾸준히 통합의 길로 나아가는데, 동아시아는 패권과 영토를 두고서 국가 간의 반목과 갈등의 골이 여전히 깊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먼저 동아시아 국가들에 공히 강하게 남아 있는 국가주의에 그 이유가 있겠다. 우리도 예외는 아닐 터다. 그러나 우리는 그간의 민주화운동과 수년 전의 촛불항쟁에서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시민사회의 역량이 확인됐듯이 여느 나라들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그래서 아베 정부의 최근 조치와 개헌 시도에 저항하면서 시위하는 일본 시민들의 모습에서 앞으로의 희망을 내다본다. 독일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전범국가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또한 전후에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한 대표적인 나라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 나라는 통일 이후에도 기본법을 그대로 고수하려 하고, 다른 한 나라는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호시탐탐 헌법을 바꾸려고 시도한다. 독일은 동서독 통일 이후에도 여전히 헌법인 기본법을 내치지 않고 있다. 많은 독일인은 이 기본법과 더불어 비로소 민주법치국가로서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 그리고 민족의 재통일을 가져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앞으로도 기본법과 함께 독일의 미래를 펼쳐 나가려 한다. 여기에는 수백만명의 유대인이 희생된 나치 불법국가에 대한 청산 작업과 피해자인 여러 이웃 나라와 그 시민들에 대한 진솔한 사죄가 전제됐다.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다짐이 학교교육과 시민교육을 통해 독일 사회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에 일본의 경제 발전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눈부시다. 정치적으로도 나름 안정적이다. 과거에 군국주의 아래 제국주의적 야욕으로 자국 시민들뿐만 아니라 우리를 포함해 여러 이웃 나라를 고통스럽게 했기에 올곧이 지금의 ‘평화헌법’을 통해 이룬 성과임을 그 누구도 부인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방어력으로 자위대도 보유하고 있기에 딱히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일본의 보수세력은 줄곧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를 내세우면서 평화헌법의 개정을 꾀해 왔다. 미국 점령하에서 강제된 조항이라 설령 그들이 스스로 원했던 헌법이 아니더라도, 평화헌법의 개정에는 그것이 삽입된 전후(戰後)의 역사적·국제정치적 조건을 고려할 때에 적어도 우리와 중국 등 주변 국가들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게 뜻있는 일본 헌법학자들의 견해다. 우리와 일본, 두 나라가 전부터도 그리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으나, 그간 서로 선을 넘지 않은 채로 관계를 지속해 왔다. 최근에 불거진 갈등은 두 나라의 과거사가 제대로 매듭지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이 뒤섞여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로 인해 일본인들에게는 스스로 피해자라는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미국에게는 일본이 피해자일 수 있어도, 그렇다고 해서 난징대학살, 간토대학살,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서 저지른 갖은 잔혹한 행위들이 용서되지는 않는다. 논란이 되는 개인청구권을 포함해 강점으로 인해서 빚어졌던 모든 부채와 문제가 그간의 협정으로 일괄타결됐다고 강변하는 아베 정부와 이 같은 적반하장격의 주장에 동조하는 국내 일부 세력의 망발을 접하고 많은 이들에게는 가해자의 자기만족적인 용서가 황망하게 다루어졌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이 떠올랐을 법하다. ‘오모이야리’(思い遺り)라는 일본말이 있다.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기특한 마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대다수 일본 시민들도 언젠가는 이 마음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과거에는 ‘보호’를 앞세워 우리를 강점했고, 지금은 ‘(수출)관리’라는 미명으로 생뚱맞게 경제보복을 시도하는 그들 앞에 당당하게 맞서는 것 말고는 달리 무슨 도리가 있겠나. 아무쪼록 이번 일이 그간 우리가 놓친 것, 그리고 부족했던 점을 새삼 깨닫고서 채워 가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탱고는 내게 행복” 세계 대회 출전한 99세 할아버지 화제

    “탱고는 내게 행복” 세계 대회 출전한 99세 할아버지 화제

    탱고의 종주국에서 열린 세계 탱고 대회에 99세 할아버지가 출전해 탱고 팬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세계 탱고 대회 1차 예선전에 참가한 99세 아일랜드인 할아버지에 관중의 이목이 쏠렸다. 흰색 재킷에 검은색 바지, 그리고 넥타이로 멋을 낸 할아버지는 아르헨티나인 여성 파트너와 함께 탱고 음악에 맞춰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였고, 춤이 끝나자 관중석 곳곳에서 기립박수가 나오는 등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예선 이후 현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을 아일랜드에서 온 제임스 맥매너스라고 밝힌 할아버지는 “탱고는 내게 많은 행복을 준다”면서 “춤을 추는 것은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새 친구를 사귀는 등 사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이기도 한 맥매너스 할아버지는 자신이 탱고를 시작한 시기가 17년 전인 2002년으로 그때 나이가 이미 80대에 접어든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의 고향인 아일랜드의 탱고 팬들이 자신의 이번 대회 출전을 위한 대서양 횡단 여정을 위해 2500유로(약 340만원)를 모금해줬다고 덧붙였다. 맥매너스 할아버지의 소식은 본국 아일랜드에서도 나왔다. 아이리시 선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매주 화요일 댄스 수업에 참석하고 있으며 진저 맥주를 즐긴다. 비록 할아버지는 스코틀랜드 페이즐리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이 한평생을 지낸 아일랜드 워터포드를 고향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년 8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전 세계 탱고 챔피언과 탱고 댄서를 비롯해 수천 명의 탱고인이 참가하는 문화행사이자 큰 축제다. 이번 대회에는 36개국에서 744팀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아이리시 선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서울광장] 열린 사회와 그 ‘내부의’ 적들/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열린 사회와 그 ‘내부의’ 적들/박록삼 논설위원

    1960년대 미국 사회는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도 세대 간의 갈등, 이념 간의 대립이 제어할 수 없이 커 갔다. 소련과 좌우 체제 경쟁을 비롯해 쿠바 미사일 위기, 베트남전 패배, 흑인 민권운동과 같은 사회문제는 미국의 대문호 필립 로스(1933~2018)의 장편소설 ‘미국의 목가’ 속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인 성공한 중산층 가정은 반전운동과 극단적 생태주의에 빠진 딸과의 갈등 속에서 송두리째 파괴되고 만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열린 사회’로 가기에 당대 미국 사회가 극복해야 할 현실의 모순은 컸고, 희망을 찾는 몸부림에는 좌충우돌의 시행착오가 컸다. 칼 포퍼(1902~1994)의 ‘열린 사회 이론’은 헤겔, 마르크스 등의 역사주의, 사회주의를 철저히 부정하며 논쟁의 복판에 섰다. 포퍼는 그의 대표적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1945)을 통해 전체주의와 독재가 인류에 끼치는 해악을 낱낱이 지적하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열린 사회’로 규정했다. 이는 포퍼가 삶으로 깨달으며 이론화한 내용이기도 하다. 청년 포퍼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즈음 “평화와 인도주의를 위해 전쟁을 거부한다”는 트로츠키의 연설에 감명받아 사회주의자가 됐지만, 현실 사회주의 속 개인의 자유와 생명에 대한 존중 결여를 접한 뒤 돌아섰다. 한때 운동권 학생들을 점잖게 꾸짖는 내용으로 흔히 언급되던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 바보, 나이 들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 있으면 더 바보’라는 얘기도 포퍼가 남긴 말이다.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 포퍼는 철저히 왜곡됐다. 그가 그토록 부정했던 독재정권은 그의 이론을 체제 유지 수단으로 악용했다. 반면 그의 지향과 같이 자유와 민주를 위해 몸부림쳤던 대학생, 노동자, 농민들은 오히려 포퍼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반감을 가졌다. 물론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마르크스’가 언급됐다는 이유로 1982년 이전까지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5·18 학살과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씨가 외신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까이 두고 읽는 책을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라고 소개하던 시절이었고, 독립군 때려 잡던 일본군 장교 박정희가 대통령이 돼 사후까지 추앙받는 세상이니 더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온갖 부조리와 모순이 정상의 껍데기를 쓰고 행세하던 때였다. 독재에만 열린 사회일 뿐이었다. 2019년 한국 사회는 달라졌다. 전 대통령 이명박씨, 전 대법원장 양승태씨 등은 자신들이 유린했던 민주주의 질서와 제도에 의해 비교적 자유로운 몸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광복절에 버젓이 성조기를 흔들어 대거나 ‘안티 반일’ 깃발을 흔드는 이들이 서울 한복판을 자유로이 휩쓸고 있다. 시민단체를 자임하는 극우 인사는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아베 수상님, 죄송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일본에 사과하라”고 부르짖고 있고, 어떤 목사는 교단에서 “한국은 일본과 함께 전범국가이며, 일본이 한국을 독립국으로 인정해 줬다”는 희한한 주장을 펴고 있다.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관되게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도, 성노예화도 없었고 반인권적 반인륜적 만행 또한 없었다”고 역사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한 일베 회원은 대통령을 암살하겠다며 불법으로 총까지 구매했다는 글을 버젓이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공동체의 가치를 부정하고, 생명과 인권, 민주를 경시할 뿐 아니라 극우적 가치로 헌법을 부정하는 이들이다. 모두 형식과 절차를 뛰어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만끽하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의 수혜자들이다. 대통령 비판 포스터 하나 붙였다고 저인망식으로 경찰력 동원해서 체포하던 몇 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참으로 ‘활짝 열린’ 사회다. 민주와 정의, 이성과 합리의 가치를 공고히 하는 열린 사회는 바깥에서 교류할 뿐 결코 공격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하지만 ‘내부의 적’들이 발밑을 야금야금 갉아 먹을 때 그들과 교감하는 외부의 적은 이를 공격의 기회로 삼는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본격화하는 이 즈음 누가 한국 사회 내부의 적들인지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이들을 제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면 그들이 추앙하는 과거 정권처럼 붙잡아 고문하고 재판을 조작해 감옥에 집어넣으면 끝일 게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철저히 사법정의 차원에서, 정의로운 공공사회의 지속 차원에서, 열린 시민사회의 힘, 이성과 합리의 가치를 믿으면서 대응해야 한다. ‘내부의 적’ 없는 진짜 ‘열린 사회’를 만드는 기본이다. youngtan@seoul.co.kr
  • 외신 “日 달랜 文… 표현 수위 낮췄다”

    해외 주요 매체들이 15일 문재인 대통령의 제74돌 광복절 경축사에 대해 대일 발언 수위가 낮아졌고 유화적 태도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와 AFP 통신,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문 대통령의 이날 경축사 중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는 부분을 공통으로 인용했다. NYT는 ‘한국 대통령이 일본과의 갈등 속에서 회유 목소리를 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의 두 아시아 핵심 동맹국 사이에 쓰디쓴 대립이 몇 주간 이어진 후 문 대통령은 일본을 달래는 언급을 내놨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한국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에 일본에 대화를 촉구했다’는 제목을 달고 “일제로부터 독립을 기념하는 연설에서 문 대통령이 최근 일본을 향해 사용한 거친 표현에서 수위를 낮췄다”고 했다. AFP 통신도 “(문 대통령이) 일본을 향해 올리브 가지를 흔들었다”고 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일본이 앞서 소재 수출 1건을 승인한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신호’로 평가했다. 반면 북한은 이날 일본을 향해 “죄의식은 꼬물도 없이 시대착오적 망동을 하고 있다”고 맹비난하며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 북한 조선인 강제연행 피해자·유가족협회는 이날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에 대변인 담화를 내고 “우리 전체 조선의 과거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은 과거 죄악에 대한 죄의식은 꼬물만큼도 없이 대세의 흐름에 역행하면서 조선반도 재침 야망 실현에 피눈이 되어 날뛰는 일본의 오만하고 시대착오적인 망동에 치솟는 격분을 금치 못하면서 준렬히 단죄규탄한다”고 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손잡은 한일 시민·노동자 “아베 경제보복 규탄”

    손잡은 한일 시민·노동자 “아베 경제보복 규탄”

    日젠로렌 “한국 불매운동은 反아베 행동”…한일 노동자·시민 ‘성숙한 연대’ 오다가와 의장 “27일 아베 관저 앞 시위” 민주노총 김명환 “양국 노조 공동 행동” 한일 양국의 시민과 노동자들이 74주년 광복절인 15일 손을 잡고 일본 아베 정권의 역사 왜곡과 경제보복 조치를 규탄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배제’ 조치로 한일 갈등이 고조된 가운데 양국 시민사회는 성숙한 모습으로 연대 노력을 하고 있다.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이날 서울광장에서 ‘광복 74주년 일제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대회’를 열었다. 이날 시민대회에는 일본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야노 히데키 사무국장과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노총인 전국노동조합총연합회(全勞聯·젠로렌) 오다가와 요시카즈 의장이 참석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규탄하고 한국 시민사회와 연대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비 오는 날씨에도 집회에 모인 2000여명(주최 측 추산)은 “한일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야노 사무국장은 “일본 정부는 지난해 (강제동원 관련) 한국 대법원 판결 이후 9개월이 지나도록 사죄는커녕 배상 이행도 안 하고 있다”면서 “일본의 정치 상황이 간단하지 않지만, 피해자들이 35년 넘게 싸워 온만큼 함께 극복할 것을 약속하면서 싸우자”고 말했다. 일본 ‘공동행동’은 일본 내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동자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민단체들이 지난해 11월 모여 만든 연대체로, 이번 서울 집회와 평화행진을 한국 ‘공동행동’과 함께 준비해 왔다. 서울광장 집회에서는 일본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일본 오사카에서 온 하루유키 니이(68)는 “일본과 한국의 관계 개선을 위해 집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일본이 먼저 제대로 된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사카에서 한국인 친구들을 사귀면서 한일 관계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젠로렌의 오다가와 의장은 이날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간담회도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화이트리스트 배제’ 시행령 발효 전날인 오는 27일 아베 총리 관저 앞에서 항의행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또 “아베 정권은 일본 내 우파 세력의 지지와 관심을 끌어들이려고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이용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다가와 의장은 “한일 양국은 경제적으로 긴밀해 무역 마찰이 발생하면 (일본 제품을) 생산하는 곳에 여파가 생기고, 한국 관광객이 감소해 일본 노동자들이 직격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강하게 추궁하는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이 경영상 어려움을) 해고 등 ‘경영합리화’를 통해 해결할 수도 있어 이를 (노동조합이) 막아 내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오다가와 의장은 한국 내 일제 불매운동에 대해서도 한국 시민사회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한국의 불매운동을 ‘반일 행동’ 또는 ‘반아베 행동’으로 보는 견해로 나뉘는데, 젠로렌은 ‘반아베 행동’으로 본다”면서 “양국 노조가 더더욱 신뢰를 강화하고 연대의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74년 전 700만 조선 민중이 일본과 동아시아 각국으로 전쟁 물자를 대기 위해 끌려갔다”면서 “민주노총은 그 역사를 제대로 세우고, 평화헌법을 수호하려는 (젠로렌을 비롯한) 일본 양심세력과 공동행동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과거사 사죄 없는 일본, 이웃국가와 새 시대 못 열어”

    “과거사 사죄 없는 일본, 이웃국가와 새 시대 못 열어”

    2007년 美하원 위안부 결의안 초안 작성 전범국가인 日 2차대전 범죄 해결 못 해 한일 무역갈등 원인, 강제징용 배상 판결 ‘북핵 해결에 한일 협력 필수’ 美에 어필을 미국내 위안부 운동 역사 자료집 준비 중한일 과거사 문제 등에 목소리를 내온 데니스 핼핀 전 미 하원 전문위원은 “과거사의 진정한 사죄 없이 일본은 한국 등 이웃 국가들과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핼핀 전문위원은 14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독일, 이탈리아 등 다른 전범국과 달리 2차 세계대전의 범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것이 한국뿐 아니라 중국, 필리핀 등과의 관계에도 먹구름을 남겼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범 국가인 이탈리아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독재에 협력한 사보이 왕가를 폐지했고 56년간 이들 왕가 친족들의 이탈리아 입국을 불허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러한 ‘자기 성찰’이 없었습니다. 하루빨리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자기 성찰에 나서야 합니다. 그것이 과거 역사에 대해 속죄하는 길입니다.” 핼핀 전문위원은 2007년 7월 미국 하원에서 사상 처음으로 채택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HR121)의 초안을 작성하는 등 일제강점기 이슈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 온 인사다. 그는 “일본은 2017년 11월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과 함께 도쿄에서 국제여성회의를 열었지만, 위안부 문제를 외면했다. 이는 일본의 이중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이라며 “독일의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인정과 배상은 일본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이라고도 강조했다. 핼핀 전문위원은 최근 심화된 한일 무역갈등 역시 일본학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이언 부루마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인용하며 책임이 일본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베 신조 총리가 최근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이유로 국가 안보를 언급했지만 믿는 사람은 몇 명 없다. 지난해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한국 내 일본 기업 자산 압수가 결정적 원인’이라고 말한 부르마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핼핀 전문위원은 “미국의 적극적인 중재가 가장 좋은 해법”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 관계뿐만 아니라 국제 문제의 적극적인 개입을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북핵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 한일의 지속적인 협력이 필수’란 사실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강하게 어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핼핀 전문위원은 이정실 워싱턴 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정대위) 회장과 함께 27년 미국 정대위 역사와 미국 내에서 펼쳐진 위안부 운동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정리한 영문판 자료집을 만들고 있다. 그는 “올해 안으로 출간될 위안부 운동 자료집은 1992년부터 시작된 미국 내 위안부 운동을 총정리하는 작업”이라면서 “이는 위안부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정세 오판과 사욕이 빚은 비극. ‘자유시 참변’의 진실

    정세 오판과 사욕이 빚은 비극. ‘자유시 참변’의 진실

    ‘자유시 참변’ 또는 ‘자유시 사변’은 1921년 6월 28일 한인부대들과 극동공화국 인민혁명군이 자유시에서 무장충돌한 사건을 말한다. 이 결과로 수십명에서 수백명까지의 한인들이 사망했으며 독립운동이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냉전시기에는 이 사건이 러시아에서 발생하고 한 쪽이 주로 러시아인들로 구성된 부대이었다는 이유로 공산당이나 러시아가 한인을 속여 독립군을 죽였다는 주장이 강했다.하지만 1990년대에 러시아의 문서보관소가 개방됨에 따라 러시아 연구자들과 임경석, 윤상원 등 한국근대사 연구자들은 러시아 자료를 사용하여 자유시사변의 원인과 과정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넓혔다. 1990년대 이후 나온 연구에 따르면 자유시사변의 주요 원인은 민족해방운동 내부의 권력 투쟁 (특히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 공산당 간의 갈등)과 정치 조직 간의 소통 문제 등이었다. 이에 따라 오늘날 학계에서 “독립군을 공산당이 죽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잔재는 야인시대 같은 예술작품에도 나오고, 누리꾼들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애용하는 인터넷 백과사전에도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자유시 참변은 위키백과에는 “러시아 적색군이 대한독립군단 소속 독립군들을 포위, 사살한 사건”으로 규정되었고 나무위키에는 “독립군을 포함한 한인 무장 병력과 소련 적군이 교전을 벌인 사건”으로 나오며 심지어 신뢰성이 비교적 높은 한민족문화백과사전에도 비슷한 서술이 있다. 하지만 1921년에는 소련이 아직 설립되지 않았고 극동지역에는 붉은군대가 없었다. 하지만 자유시 참변은 무엇보다도 권력 욕심과 정세 오판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제1차 세계대전 도중 1917년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발생하였으며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를 비롯한 좌익세력들에 의해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었다. 1918년, 소비에트 정권을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백위파) 간의 내전이 벌어졌다. 러시아에 커다란 피해를 가져온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을 끝내려는 볼셰비키의 결정을 막기 위해 연합국은 군대를 파견해서 러시아 내전에 개입했다. 일본은 이를 구실로 내세워 1918년 4월 5일 밤 블라디보스토크에 파병함으로써 러시아에 쳐들어왔다. 일제의 시베리아 출병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 지역 한인들은 빨치산부대를 결성하여 볼셰비키의 붉은군대와 함께 항일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최신 무기로 무장한 전투력이 뛰어난 일본군을 무력으로 쫓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쟁으로 경제가 폐허가 된 상황에서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려는 소비에트 정부는 극동지역에서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1920년 4월 멘셰비키와 사회주의혁명당 등과 함께 극동공화국이라는 완충국가를 설립하기로 하였다. 극동공화국은 이에 극동에 있던 붉은군대의 부대들과 빨치산 부대, 그리고 극동공화국 정부 편으로 넘어간 전(前) 백위파 부대들으로 구성된 혼합 인민혁명군을 창설했다. 극동공화국은 극동지역의 대부분을 점령한 일본군의 철수에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일제가 지원하는 백위파 군대와 싸우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전략 때문에 일본은 극동지역의 군사 점령을 더 이상 정당화할 수 없게 되었으며 주둔군을 유지하는 것도 경제적 손실로 이어졌다.이와 동시에 무장부대 통합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봉오동 전투 이후 일제가 실시한 대대적 토벌작전 등으로 한인부대들이 간도에서 러시아령으로 넘어가기 시작하였다. 러시아공산당 극동국 한인부는 민족해방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1921년에 중국과 극동지역에서 무장투쟁 부대 대표 회의를 열어 단일 지휘체계의 구축, 군사학교 설립 등 문제를 논의할 것을 결정했다. 이와 동시에 1921년 1월 15일 코민테른은 극동지역대표부를 설치하고 보리스 슈먀츠키를 대표로 임명하였다. 슈먀츠키는 한인부대를 가능한 한 빨리 극동공화국으로부터 벗어나서 조선 쪽으로 이동할 계획을 세웠으며 무장부대들을 통합하기 위해 창설된 고려혁명군정의회의 위원장으로 조지아 출신인 깔란드라쉬빌리를 파견하였다. 깔란드라쉬빌리는 극좌 무정부주의자로서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것보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편이었다. ‘극동의 나폴레옹’을 꿈꾸던 그는 슈먀추키와 이르쿠츠크파 빨치산부대장 오하묵, 최고려 등과 함께 한국 국내에서 무장투쟁을 공공연하게 벌이려고 했다. 하지만 무기도 병력도 열세인 상태에서 조선을 향해 진격하는 것은 자살행위에 다름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통솔권을 독점하려던 깔라드라쉬빌리와 오하묵 등 사람들의 비타협적인 태도는 자유시에 집결한 빨치산 부대들의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에트러시아 외무인민위원장 치체린은 1921년 6월 9일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한인 빨치산들을 비밀리에 반드시 지원해야 하지만 지금은 (일제에) 공공연한 적대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였다. 6월 10일, 볼셰비키의 지도자인 레닌은 이 서한을 보고 당분간 공공연한 행위를 하지 말고 비밀행동에 초점을 맞추라고 하였다. 같은 날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한인부대들은 러시아 영토에 머물면서 적극행동에 나서기 위해 적절한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는 치체린의 제안을 채택했다. 다시 말하자면, 볼셰비키들은 한인빨치산들을 지원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일제가 극동지역에서 철수한 후에야 군사행동을 계획해도 좋다고 주장한 것이며 사실상 깔란드라쉬빌리의 모험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은 깔란드라쉬빌리 행동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며 참변은 불가피해졌다. 통솔권을 독점하려는 깔란다리쉬빌리는 최고려 등 사람들의 지도를 거부한 한인빨치산들로 구성된 사할린부대와 몇 차례의 타협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에 깔란다리쉬빌리는 6월 28일 극동공화국 인민혁명군 소속 자유시 수비대에게 사할린부대를 무장해제시킬 것을 요청하였다. 인민혁명군의 최후통첩을 받은 사할린부대 책임자들은 무장해제하지 않고 깔란드라쉬빌리 사령부에서 ‘미움받는 사람들’을 축출하면 항복하겠다고 대답했다. 양측은 7시간동안 동안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오후 2시 20분 인민혁명군 병력 1000명과 깔란드라쉬빌리 사령부에 속한 한인 병사 300명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30분만인 오후 3시쯤 전선은 평정되었다. 3시 50분 반항하는 병사들이 진압됐고 4시 사랄린부대의 한인들은 백기를 들고 항복하기 시작했다. 오후 8시 17분 전투는 거의 정리되었다. 자유시사변의 사망자는 최소 36명에서 최대 400명으로 추측되지만, 사상자에 대한 신뢰성이 높은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자유시 참변으로 빨치산부대 통합운동은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글 사진: 바실리 V 레베데프(고려대 사학과 석사)
  • [서울광장] 남·북·미·중·일, ‘위기의 사다리 게임’/장세훈 논설위원

    [서울광장] 남·북·미·중·일, ‘위기의 사다리 게임’/장세훈 논설위원

    ‘남한과 북한, 미국, 중국, 일본 사이에 얽히고설킨 난맥상을 누가 언제 어떻게 풀 것인가.’ 한반도 주변 정세가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으로 바뀌고 있다. 실마리부터 찾자. ‘낙엽이 지기 전에’라는 제목의 책은 1차 세계대전 발발 과정을 조명하고 시사점을 얻으려 했다. 저자인 김정섭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이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1차 대전은 왜 일어났을까”다. 이를 위해 저자는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의 사라예보 암살 사건이 터진 1914년 6월 28일부터 영국이 독일에 전쟁을 선포한 8월 4일까지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흔히 연합국(영국·프랑스·러시아 등)과 동맹국(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 간 대결이었던 1차 대전의 원인을 독일의 팽창주의 정책에서 찾는다. 하지만 책을 보면 독일은 전쟁을 막으려 부단히 노력했고, 심지어 전쟁이 터진 뒤에도 ‘방어 전쟁’으로 간주한다. 공교롭게도 이는 주요 참전국 모두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각국의 왕실은 혼인·혈연 관계로 얽혀 있고 상호의존적인 국제무역 체계를 갖췄음에도 어느 나라가 일으켰는지, 누구의 잘못인지 불분명한 전쟁이 결국 터져 버렸다는 것이다. 저자가 1차 대전을 ‘침략자 없는 전쟁’으로 규정한 이유다. 각국의 수많은 억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억제 노력이 가져올 위기 증폭의 효과에는 정작 무지했기 때문이다. 8월에 전쟁을 시작하면서 “낙엽이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한 독일 빌헬름 황제의 판단이 대표적이다. 프랑스를 제압한 후 러시아를 공격하는 속도전을 자신했으나 현실은 지루한 참호전 양상으로 전개되며 1000만명이 넘게 목숨을 잃었다. 계산되지 않은 위험, 조절할 수 없는 상황이 가져온 결과다. 여기에는 평화가 지속될 것이라는,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으로 모든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다는 집단적 오류와 잘못된 믿음도 깔려 있었다. 결국 1차 대전은 누군가 의도하고 준비한 전쟁이 아닌 위기관리 실패로 인한 전쟁인 것이다. 현 우리나라 주변 정세가 물리적·군사적 충돌을 우려해야 할 단계에 진입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적어도 1차 대전 당시의 전개 과정과 역학 관계를 보면 경제적 갈등을 촉매로 다양한 대립 구도를 낳고 있는 현 상황과 맞아떨어진다. 한국, 미국, 중국, 일본, 심지어 북한까지 모두 ‘피해자 코스프레’ 중이다. ‘누가 먼저 칼을 뽑았나’의 문제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갈등을 유발하는 대책, 갈등에 대비하는 대책 간 차이도 불분명해지고 있다. 자국의 자위적 조치가 상대국에는 위협적 행위로 인식되는 억제 전략의 딜레마, 억제 전략의 실패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7월 관세전쟁으로 표면화한 미중 무역분쟁은 지난 5일 중국에 대한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을 계기로 환율전쟁으로 번졌다. 또 미국이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탈퇴 후 중거리 미사일에 대한 아시아 배치를 추진하는 이유로 중국을 콕 집으면서 미중 갈등은 군사 분야로도 확대됐다. 두 차례 휴전을 거쳤음에도 치고받기식 난타전으로 상대국은 물론 스스로도 적잖은 타격을 입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비대칭적으로 기운 대미, 대중 관계는 우리의 생존 공간을 옥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이어졌다.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에 이어 한국을 안보 우방국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지웠다. 이에 우리 정부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 가능성도 열어 두고 있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지속적인 비핵화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25일 이후 다섯 차례나 미사일 도발을 강행했다. 이 와중에 미국은 우리 정부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 호르무즈해협 파병, 중거리 미사일 배치 등을 요구한다. 남·북·미·중·일 각국이 상대국을 의식해 ‘위기의 사다리’를 한 발씩 오르는 형국이다. 경제적, 외교적, 전략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한다. 원하지 않는 분쟁, 의도하지 않은 갈등이 속출한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희생이나 불이익은 감내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멈출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답을 내놓기 어렵다. 위기관리의 실패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숙제다. 단호한 대응과 상응적 조치가 해결책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그럼 위기의 사다리에서 먼저 내려올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shjang@seoul.co.kr
  • 지난달 가계대출 5조 8000억 급증

    올 최대 규모… 주택담보대출은 ‘주춤’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이 5조 8000억원 늘어나 올 들어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다. 주택담보대출은 주춤했지만 아파트 분양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신용대출이 크게 늘었다. 한국은행이 13일 발표한 ‘2019년 7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854조 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가계대출은 지난 한 달 동안 5조 8000억원 증가해 올 들어 최대 규모를 나타냈다. 가계대출 증가세는 지난해 12월 5조 4000억원에서 지난 1월 1조 1000억원으로 꺾였다가 점점 커지는 추세다. 그러나 한은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본격적으로 가계대출이 증가세로 전환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둔화한 반면 기타대출은 크게 불어났다. 주택담보대출은 지난달 3조 6000억원 늘어 전월(4조원)보다 증가폭이 축소됐다. 아파트 입주 물량이 감소하면서 잔금대출 등이 줄어든 영향이다.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은 6월 2만 6000가구에서 7월 1만 8000가구로 줄었다. 반면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대출 등 기타대출은 2조 2000억원이 증가해 전월(1조 5000억원)보다 크게 불어났다. 지난해 10월 4조 2000억원 이후 최대 규모다. 같은 기간 수도권 아파트 분양 물량이 1만 2000가구에서 2만 4000가구로 늘면서 분양주택 계약금 대출 수요가 집중됐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한은 관계자는 “주택 매매와 분양을 위한 대출 수요가 기타대출에 집중됐다”며 “정부 규제로 주택담보대출이 막혀 있어 기타대출 등 다른 쪽으로 대출을 받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기준 은행권의 기업대출 잔액은 853조 3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1조 5000억원 증가했다. 전월 증가 규모(2조 1000억원)보다 축소된 것으로 지난 5월부터 3개월 연속 둔화세를 이어 갔다. 대기업들이 회사채를 통한 자금 조달에 나서면서 대기업 대출이 1조 1000억원 줄어든 영향이 컸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자영업자 대출로 집 산 ‘용도 외 유용’ 검사

    금융 당국은 자영업자가 가계대출 규제를 피하기 위해 사업자금 명목으로 대출받아 집을 사는 데 쓰는 ‘용도 외 유용’ 실태를 점검한다. 금융감독원은 현재 저축은행들을 대상으로 개인사업자(자영업자) 대출의 용도 외 유용 사례를 검사 중이라고 13일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영업자 대출 규모가 큰 저축은행 7~8곳을 중심으로 검사하고 있다”면서 “자영업자 대출을 통해 가계대출 규제를 우회해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어 점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다음달부터 농협, 수협, 신협 등 상호금융조합의 자영업자 대출에 대해서도 검사에 나설 계획이다. 향후 은행권도 검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융 당국은 지난해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된 이후 자영업자 대출의 용도 외 사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금융사가 스스로 점검하도록 하는 모범규준을 만들었다. 현재 주택담보대출은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40%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임대업자를 제외한 자영업자 대출은 이런 LTV 규제를 피해 갈 수 있다. 검사 결과 용도 외 유용이 적발되면 대출자는 조기 상환과 신규대출 금지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용도 외 유용은 대출계약 위반이기 때문에 금융사를 통해 조기 상환을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美 “한일 갈등, 창의적 해법 찾아야”

    국무부 “두 동맹 대화 촉진 준비돼 있다” 일각 “美, 중간자 입장… 한일 협상 중요” NYT·CNN “한일 갈등 진폭 더 커질 것”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백색국가’ 제외 등 경제 보복에 대한 맞대응으로 한국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자 미국은 12일(현지시간) 한일 양국에 ‘창의적 해법’과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미 언론은 ‘한일 갈등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이날 한국이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에 맞불을 놓은 것에 대해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창의적 해법의 여지를 찾길 권고한다”면서 “미국은 이 사안에 계속 관여할 것이며 우리는 두 동맹 간 대화를 촉진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지난 2일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을 때와 같은 반응으로, 양국 간 자체적 해결이 최선임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는 악화일로를 걷는 한일 갈등 책임이 두 나라 모두에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양자관계가 악화하면 각각 대가를 치른다. 그리고 각자가 (양자관계) 개선 책임을 안고 있다”면서 “갈등이 한일 관계의 경제적·안보적 측면을 훼손하지 않도록 막는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미국은 한일 양국의 과거사 문제가 얽힌 이번 갈등에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기보다 중간자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양국이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와 CNN 등 미 주요 언론은 한국이 일본에 맞대응하기 위해 백색국가에서 일본을 제외하기로 한 소식을 전하며 ‘한일 갈등의 진폭이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NYT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일 양국이 잘 지내라고 촉구했음에도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한일 양국이 곧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새로운 증거”라고 분석했다. CNN은 “한국도 일본을 신뢰할 수 있는 무역상대국 명단에서 삭제했다”면서 “이미 대형 정보기술(IT) 업체들의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시키고 있는 이웃(일본)과 분쟁을 증폭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지난해 한국 대법원이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징용된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보상하라고 일본 기업들에 명령한 이후 수십년간 지속한 한일 간 긴장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며 갈등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혐한’ DHC, 제품 불매운동에도 정신 못 차리고 또 망발

    ‘혐한’ DHC, 제품 불매운동에도 정신 못 차리고 또 망발

    “한국, 독도를 멋대로 자기네 것으로 해버려”“한반도, 일본의 일부…2차대전과 관련없어”DHC코리아, 오늘 ‘혐한 파문’ 관련 입장 발표 일본의 화장품 기업 DHC가 혐한 발언으로 소비자 불매 운동에 한국 전속모델의 계약 해제까지 겪고서도 이번엔 독도와 관련해 망발을 반복했다. 13일 MBN에 따르면 지난 12일 DHC 자회사 인터넷 방송 채널인 ‘DHC텔레비전’에 출연한 아오야마 시게하루 일본 자민당 의원은 “1951년부터 한국이 독도를 멋대로 자기네 것으로 해버렸다. 위안부 문제도, 레이더 발사 문제도, 일본이 싸움을 건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시게하루 의원은 “한국은 사법 독립이 없는 나라”라고 조롱하기도 했고,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 제외를 막기 위해 거액의 로비를 통해 미국 정부에 중재를 시도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원래 2차 세계대전은 한반도와 전혀 관련이 없다. (한국은) 일본의 일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연합군(의 일원)이었다고 엉터리 주장이나 하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이 채널의 출연자들이 “한국은 원래 금방 뜨거워지고 금방 식는 나라니까 일본은 그냥 조용히 두고 봐야지”, “조센징들은 한문을 썼는데 한문을 문자화시키지 못해 일본에서 만든 교과서로 한글을 배포했다”고 발언한 내용이 여과없이 방송되면서 혐한 논란이 불거졌다. 이것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 DHC 제품 불매운동이 급속도로 확산됐고, 주요 유통 창구인 올리브영·랄라블라·롭스 등 거리 소매점에서 DHC 제품 판매 중단이 이어졌다. 또 DHC 한국 모델인 배우 정유미 측은 DHC에 초상권 사용 철회 및 모델 활동 중단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DHC코리아 측은 일본 본사와 협의해 13일에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