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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헤란 여행기 3] 토찰산 트레킹, 페르시아 문화의 향기를 설핏 맡다

    [테헤란 여행기 3] 토찰산 트레킹, 페르시아 문화의 향기를 설핏 맡다

    12일-토찰산 다라케 계곡으로의 짤막한 나들이  새벽 3시부턴가 시작한 허재 감독 인터뷰 기사를 끙끙대며 결국 낮 12시 조금 못돼 마쳤다.  약간 시장끼는 있는데 그렇다고 딱히 먹고 싶은 생각도 없어 택시 서비스로 가 말렉 라이브러리 앤드 뮤지엄 가겠다고 했더니 국경일이라 쉰단다. 이 나라 박물관은 오전이나 오후 한 차례만 열거나 아니면 쉬는 날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대안이 뭐냐고 했더니 산에 가란다. 케이블카도 있고 좋댄다. 시간은 44분 걸린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터무니없는 얘기였다. 결코 44분 걸릴 거리가 아니었으며 케이블카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사실 가동한다고 해도 탈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위험해 보였다.   택시가 멈출 때까지 1시간30분쯤 걸렸던 것 같다. 신호만 제대로 지키면 안 그럴텐데 서로 빨리 가겠다고 우겨대니 생기는 현상이다. 또 목적지 근처에 이르자 양쪽에 차를 모두 주차해 길이 좁아 옴짝달싹 못했다. 여튼 택시에서 내렸다. 이 자리에 서 있어 안 그러면 내 손전화로 전화해 어쩌구저쩌구. 기사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고 난 페르시아어를 하나도 못하니 이런 바보들이 없다. 택시 서비스 아자씨가 헤어질 경우에 대비해 내게 기사 전번을 적어 건넸다. 페르시아의 주인답게 아라비아 숫자 따위는 쓰지 않는데 일일이 숫자를 입으로 세면서 또박또박 ´09126336256´이라고 써줬다. 처음 편도에 40만리라라고 하더니 내가 왕복한다고 하자 잠깐 머리속으로 계산기를 돌리더니 대기시간 2시간 포함해 100만리라라고 했다. 30달러 정도의 왕복 차비에 2시간 대기가 포함됐으니 이런 호사가 따로 없다. 괜찮은 흥정이었다.  택시에서 내렸는데 100m쯤 나아갔을까. 선글래스를 뒷좌석에 놔두고 내렸다는 것을 알았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땡볕이 쏟아졌다. 헐레벌떡 달려가 움직이는 차를 붙잡았더니 이 기사는 내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뒷자리에서 선글래스를 꺼냈더니 그제야 ´투 아워스, 히어´라고 한다.  토찰산이다. 해발 고도 3972m로 카스피해를 넘은 구름이 부딪쳐 11월만 돼도 흰눈이 쌓인다. 스키장이 여러 군데 있는 것 같다. 내가 간 곳은 다라케 계곡인데 분명 택시 서비스 아자씨는 ´다르반´이라고 했다. 어느 게 맞는지 모르겠다. 땡볕 아래를 열심히 걸었다. 초반에 조금 무리를 했는지 숨이 차오르는 게 심상치가 않다. 제법 고산증세가 오는 듯 미식거리는 것도 같고 욕지기 같은 것도 올라오는 것 같다. 해발 2000쯤 되는 것 같았다.  여튼 간간이 하릴없는 청춘 남녀나 오래된 부부 같은 이들이 내국인 반, 외국인 반의 비율로 산을 오르내린다. 우리로 얘기하면 설악산 비선대산장과 비슷하게 절의 요사채처럼 꾸며놓은 공간에 톱질 소리가 요란하다. 그 위로는 길이 흐릿하고 더군다나 푹푹 미끄러지는 자갈길이라 자칫 큰일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택시 내릴 때가 오후 2시였는데 이 마을에서 시게를 보니 3시다. 얼추 됐다. 내려간다.  내려왔다. 기사가 탄 차가 안 보인다. 선글래스를 되찾은 지점에 있나 싶어 갔더니 없어 계속 내려가다 한 호텔 앞에서 남자 둘이 노닥거리고 있길래 사정을 설명했더니 친절하게도 전화를 걸어줬다. 기사는 아마도 전화기 건너편에서 자기도 내려온 지 얼마 안된다는 얘기를 하는 듯했다.  그 젊은이는 기사가 나보고 원래 내렸던 자리에 가있으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맙다고 말하고는 그 자리로 힙겹게 돌아 올라갔는데 또 없다. 그렇게 건너편으로 건너가 아까 호텔 앞보다 조금 더 내려간 다른 호텔 앞에서 이번에는 남녀 커플에게 염치 불구하고 부탁했다. 첫눈에 보기에도 남의 청 거절 못하게 생긴 녀석이 아 짜증나 하는 것이 분명한 여친을 달래며 전화를 건다. 여자는 내가 기분나빠 할수도 있겠다 싶었는지 눈을 내리깔았다. 엄청 더운 날씨에 선 채로 전화를 걸어 기사 아저씨와 통화하니 나로선 대단히 미안한 일이라 어쩔줄 몰라 했다.  10분인가 20분쯤 뒤에 감격의 상봉을 했는데 이 기사는 또 2시간 전에 헤어진 내 얼굴을 못 알아보는 것이 틀림없다. 연신 자기가 딱 두 시간에 맞추지 못하고 조금 늦었다고 미안해 한다. 아니 웬걸, 난 괜찮은데. 오케이 소리를 열번 이상 외친 것 같은데 그는 호텔에 택시가 도착할 때까지 쏘리쏘리를 해댄다. 속으로 난, 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했으니 팁이라도 좀 내놔 할까봐 나름 조마조마했는데 그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날 돌아보며 손을 꼭 잡으며 굿데이를 외쳐댔다.  씻고 침대에 누워 개기작거리다 오후 7시 식당에 갔더니 중국인 셋이 저녁을 먹고 있다. 내가 자리에 앉고 조금 이따 일본인 심판들이 들어와 한중일 삼국지가 다시 펼쳐졌다. 동료에게 문자를 보내 함께 먹자고 했지만 그는 일하면서 먹지 않는 습관이 들었다며 나중에 먹겠다고 했다. 오후 8시 시작한 카타르와의 경기를 그와 함께 취재했다. 마침 한국인 응원단이 옆 자리에 있길래 경기장 이름이 왜 ´1만 2000´이냐고 물었다. 교민 네 분이 계셨는데 잘 모르겠다고 했고 옆의 이란인 친구가 더듬거리는 우리말로 그만한 숫자가 들어와서 그런다고 답했다. 내가 어떻게 이 좌석에 그많은 숫자가 앉을 수 있느냐고 캐물었더니 교민들은 “이 나라에서 그렇게 따지면 안됩니다. 이 사람들이 그렇다면 그런 겁니다”라고 설명해 “아 네”라고 답했다.  호텔에 돌아오니 10시 30분쯤이었다. 동료 혼자 식사하겠다고 해 헤어져 기분좋게 잠에 들었다. 오늘은 잠깐이나마 이란의 척박하지만 나름 매력있는 산자락을 밟아본 행복한 하루였다.  13일-돌아오는 날 페르시아 문화의 향기를 설핏 맡아보다  새벽 4시 눈을 떴다. 양호하다. 어제 밤 10시 50분쯤 잠든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충분히 잤다. 발제하고 기사 쓰고 간간이 카톡 주고받으니 6시반쯤 됐다.  동료와 마지막 아침을 함께 먹는다. 택시 서비스 아자씨가 말렉 라이브러리 앤 뮤지엄 간다고 하니까 한참 검색한다. 결론적으로 여기는 아주 찾기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근처에 볼만한 라이브러리나 뮤지엄이 너무 많아서다. 모두 그게 그거고 비슷한 수준이라고 길 물어본 어느 인간이 얘기해준다. 택시는 부러 내리기 좋은 곳을 찾아 뱅뱅 돌며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방향 감각 없는 듯 이 사람 저 사람 라이브러리 안내하는 게 달라 혼란스럽다. 말을 끝까지 안 듣고 특정 단어만 꽂혀 안내하는 듯햇다. 예를 들어 라이브러리면 라이브러리, 뮤지엄이면 뮤지엄 한 단어에만 꽂히는 듯  결국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 남자가 따라오라고 해 내셔널 뮤지엄 오브 이란 티켓 창구 바로 앞 라이브러리를 알려준다. 한 중늙은이, 30대 초반에서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셋이 앉아 수다 떨다가 웬 동양 떨거지가 이런 데도 다 오는구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엔사이클로피디아 등 장서의 다양함이나 섹션 분류가 모두 훌륭하다. 사람의 손길을 잘 탔다. 특히 2층은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데 첫눈에 봐도 오래된 책들이어서 호기심은 발동했지만 궁금증을 풀 길이 없었다. 이런 때 써먹게 영어를 잘해야 하는데 싶었다. 책의 향기를 그리워 하는 사람이며 이왕 내셔널 뮤지엄에 들를 계획이라면 공짜이고 이슬람 책 사랑의 편린을 들여다볼 수 있어 강추할 만했다.  티켓 창구에서 20만리라-이슬람 시대, 30만리라-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까지-두 종류가 있길래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뭐 이런 바보같은 놈이 다 있냐 하는 표정으로 당연히 30만리라를 추천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 다음에 테헤란 들를 일 있으면 당연히 이슬람시대를 추가로 보겠지만.  선사 유적지 발굴 현장과 비화 등을 사진과 상상도 등으로 흥미롭게 꾸며놓았고 전시된 물품의 다양성이 뛰어나다. 페르시아 문명의 독창성, 풍부함을 느끼기에 손색 없었고 특히 이 뮤지엄의 1호 보물이라고 자랑하는 다리우스 황제 즉위식 부조는 정말 한번은 꼭 볼만하다.  1층과 2층으로 나뉘는데 1층이 조금 나중, 다시 말해 청동기와 철기이고 2층이 선사시대라 2층 먼저 보고 1층 내려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푹 빠져볼 만했다. 뮤지엄 나와 길 건너편 분수대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것도 좋았다. 이어 방향도 모른 채 의자상가, 전자기기 상가 등을 헤매며 과자 사고 과일 샀다. 과자는 공장에서 만들어낸 과자였는데 나중에 먹어보니 꽤 괜찮았다. 과일 장수는 고대 페르시아와 신라, 고려의 문물 교류에 대해 흥미있다며 한국인과의 만남, 특히 농구대회를 취재하러 온 한국 기자와 얘기를 나눈다는 데 대해 많이 들떠 했다. 그의 도움으로 즐거운 쇼핑을 했다.  슈퍼 바로 나와 택시를 탔다. 타고 나니 이 동네가 완전 청과상 골목이다. 꼭 뭐를 찾다가 어쩔 수 없이 하급품으로 만족하면 좋은 것을 파는 가게가 보인다. 역시 올림픽 호텔 하니 못 알아듣고 올람픽 호텔이라고 하니까 급반색, 40만리라쯤 나올 거라고 말한 것 같았는데 나중에 한 번 길을 묻고 도착한 뒤 미터기를 보니 31만리라쯤이었다. 10만 짜리 석 장 건네고 소액권 찾았더니 관두란다, 나름 길을 돌았다며 미안하다는 표시를 한 것 같았다.  낮 12시 15분쯤 호텔에 도착해 일행에게 과자랑 과일 한 보따리 넘기고 작별 인사하고 체크아웃, 택시 서비스로 가 신청했더니 80만리라, 엄청 비싸다니까 공항이 완전 외곽에 있어서라고 했다. 실제로 가보니 정말 멀었다. 한도 끝도 없이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는 느낌, 그렇다고 사막은 아니고, 황무지도 그런 황무지가 없다. 테헤란에 불어오는 모래바람, 전날 밤 호텔에 돌아가면서 봤던 다운타운 상공을 뒤덮은 연무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도로변 수박을 쪼개 파는 사람들, 참 힘들게 먹고 산다.  1시 조금 넘어 공항 도착해 체크하고 짐 부치고 과자 사고 캐셔는 유로로 계산해 신용카드 결제하려다 여의치않아힘들어 하길래 달러로 하겠다고 했더니 급반색, 100만리라가 넘었던 것 같은데 35달러라고 해서 50달러와 5달러 건네고 20달러 돌려달라고 했더니 계산 해보고 또 해보고, 애들 참 암산 같은 것 못한다.  카페 가면 와이파이 쓸 수 있을까 해서 커피 사먹으려는데 4달러란다. 웬 과자 봉지 둘을 건네길래 커피는 어디있느냐, 이래갖고 커피를 어떻게 먹느냐고 하니까 씩 웃으며 저쪽 가면 커피준댄다. 진작 얘기했으면 그렇게 정색하고 따지지 않았을텐데.  와이파이 비번 물어보니 다 모른댄다. 이 가게 종업원들인데 그런다. 누가 아느냐니까 밑에 어느 항공사 비즈니스 라운지 가보랜다. 그야말로 구걸을 하라는 얘긴데 커피맛이 좋고 과자맛도 좋아 용서해준다. 과자는 하이바이-HIBYE, 세상에 과자 이름이 독창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게 과연 무슨 뜻에서 붙인 이름일까, 고개가 갸웃거려지는데 투박한 모양치고는 적당히 달고 맛있었다.  시간은 정말 후딱 흘렀다. 어느 순간 불현듯 시계를 보니 얼추 보딩 시간이 가까워온다. 서둘러 비행기를 탔더니 에어버스인데 거진 사람들이 다 앉아, 네가 늦게 오는 바람에 우리가 못 가지 않느냐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게중에는 정말 태어나서 동양인 50대 남자를 처음 본다는 표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중동 촌놈들이 상당수 있다. 어느 눈 큰 여자도 지 옆에 남자가 찰싹 달라붙어 시종 뭐라고 촐삭대는데도 날 노골적으로 할끔거린다. 이래도 되냐고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는데 도대체 어느 언어로 쏘아붙여야 통쾌한 반응을 얻어낼지 자신이 안 서 참았다.  내가 앉고도 20명 정도, 특히 맨 마지막 나타난 190cm에 100kg는 돼 보이는 잘 생긴 40대-이 녀석은 도대체 국적을 가늠할 수가 없다. 생긴 건 할리우드 톱클래스인데 늦어서 마구 뛰었는지 땀을 연신 훔치며 숨을 거칠게 몰아 쉬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5분쯤 지나자 그제야 비행기가 움직인다.  점심도 안 먹고 커피 한 잔에 과자 두 개 주워 삼키고 비행기에 올랐는데 기내식이 너무 늦게 나온다. 정말 이란 떠난 기념으로 와인이나 맥주 있냐고, 없는 줄 뻔히 알면서 또 물었다. 역시나 없단다. 그냥 물달라고 해서 반쯤 남겼다가 양치에 쓰려고 아꼈다.  통로 건녀편 여자가 또 할끔거리다 이제는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남정네는 잠에 골아떨어졌다. 쯔쯔.  이스탄불에 오후 6시 내려 나갈까 말까 고민 한참 했다. 문제는 석양이었다. 낮시간이라면 황홀한 이스탄불 풍광을 즐기기 위해 용기를 냈을 것이다. 그런데 수속 받고 나가면 6시반, 어두워지기까지 90분, 이동하면 끝, 보스포러스 크루즈 탈까 했는데 그것도 너무나 많은 변수-예를 들어 쉬는 날일 수도 있고, 예약자가 너무 많아 대기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고, 테러나 강도당하거나 아니면 봉변 당할 수도 있으니  그냥 공항에 있기로 했다. 공항 내리니 역시나 사람 천지다. 휴대폰 충전하고 약 1시간 남짓 이 여행기를 대충 적었다.  와이파이 연결하려 했더니 위클리 120분이었단다. 7일 새벽에 사용했는데 13일 오후니 기간 만료라는 얘기다. 당시는 분명 원데이 120분이라고만 했던 것 같은데. 불편한 대합실 의자에 길게 누워 잠을 청했는데 환승 공항으로 유명한 이곳에서는 도대체 잠이 들 수가 없다. 어디나 사람이 많다. 저녁 시간 이 공항에 도착해 6시간 이상 환승해야 한다면 반드시 바깥 바람을 코에 불어넣으라고 권하고 싶다.  이렇게 이란 여행기를 갈무리한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취재 틈틈이 엿본 이 나라도 모순 투성이다. 반미 운동의 기지와 같은 곳이었지만 길거리에 영어 좀 하는 여성들이 넘쳐난다. 유럽 어느 여인네 못지 않게 명품 선글래스를 차도르나 히잡과 함께 보여주는 여성들이 많다. 그녀들이 운전하는 모습은 왜 그리 멋져 보이는지 모른다. 호텔 로비의 카페에서 남자와 찰싹 달라붙어 대화를 나누는 여성도 쉽게 눈에 띈다. 그런데 어렵지 않게 앞 자동차와 추돌하며 주차한 차들을 볼 수 있다. 사막으로 둘러싸인 나라에 멋진 분수와 나무들 사이로 지하수들이 흐른다. 길 한복판에서 달러화를 중개하느라 목청껏 소리지르는, 마치 뉴욕 증권거래소를 옮겨놓은 듯한 풍경도 충격적이었다. 한대 맞을까봐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지 못했는데 적잖이 후회된다.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의 향기를 품은 많은 박물관들, 나중에 세계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테헤란 근교의 토찰산 너머 카스피해 쪽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데 돌아봐야겠다. 출장이라 아스파한이나 페르세폴리스 같은 고대 유적 도시들을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분명 색다른 매력으로 반짝이는 이란을 다시 찾을 날이 올 것이다. 글 사진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테헤란 여행기 3] 토찰산 트레킹과 페르시아 문화의 향기를 설핏 맡다

    [테헤란 여행기 3] 토찰산 트레킹과 페르시아 문화의 향기를 설핏 맡다

    ◆12일 토찰산 다라케 계곡으로의 짤막한 나들이 새벽 3시부턴가 시작한 허재 감독 인터뷰 기사를 끙끙대며 결국 낮 12시 조금 못돼 마쳤다. 약간 시장끼는 있는데 그렇다고 딱히 먹고 싶은 생각도 없어 택시 서비스로 가 말렉 라이브러리 앤드 뮤지엄 가겠다고 했더니 국경일이라 쉰단다. 이 나라 박물관은 오전이나 오후 한 차례만 열거나 아니면 쉬는 날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대안이 뭐냐고 했더니 산에 가란다. 케이블카도 있고 좋댄다. 시간은 44분 걸린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터무니없는 얘기였다. 결코 44분 걸릴 거리가 아니었으며 케이블카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사실 가동한다고 해도 탈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위험해 보였다. 택시가 멈출 때까지 1시간30분쯤 걸렸던 것 같다. 신호만 제대로 지키면 안 그럴텐데 서로 빨리 가겠다고 우겨대니 생기는 현상이다. 또 목적지 근처에 이르자 양쪽에 차를 모두 주차해 길이 좁아 옴짝달싹 못했다. 여튼 택시에서 내렸다. 이 자리에 서 있어 안 그러면 내 손전화로 전화해 어쩌구저쩌구. 기사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고 난 페르시아어를 하나도 못하니 이런 바보들이 없다. 택시 서비스 아자씨가 헤어질 경우에 대비해 내게 기사 전번을 적어 건넸다. 페르시아의 주인답게 아라비아 숫자 따위는 쓰지 않는데 일일이 숫자를 입으로 세면서 또박또박 ‘09126336256’이라고 써줬다. 처음 편도에 40만리라라고 하더니 내가 왕복한다고 하자 잠깐 머리속으로 계산기를 돌리더니 대기시간 2시간 포함해 100만리라라고 했다. 30달러 정도의 왕복 차비에 2시간 대기가 포함됐으니 이런 호사가 따로 없다. 괜찮은 흥정이었다. 택시에서 내렸는데 100m쯤 나아갔을까. 선글래스를 뒷좌석에 놔두고 내렸다는 것을 알았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땡볕이 쏟아졌다. 헐레벌떡 달려가 움직이는 차를 붙잡았더니 이 기사는 내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뒷자리에서 선글래스를 꺼냈더니 그제야 ‘투 아워스, 히어’라고 한다. 토찰산이다. 해발 고도 3972m로 카스피해를 넘은 구름이 부딪쳐 11월만 돼도 흰눈이 쌓인다. 스키장이 여러 군데 있는 것 같다. 내가 간 곳은 다라케 계곡인데 분명 택시 서비스 아자씨는 ‘다르반’이라고 했다. 어느 게 맞는지 모르겠다. 땡볕 아래를 열심히 걸었다. 초반에 조금 무리를 했는지 숨이 차오르는 게 심상치가 않다. 제법 고산증세가 오는 듯 미식거리는 것도 같고 욕지기 같은 것도 올라오는 것 같다. 해발 2000쯤 되는 것 같았다. 여튼 간간이 하릴없는 청춘 남녀나 오래된 부부 같은 이들이 내국인 반, 외국인 반의 비율로 산을 오르내린다. 우리로 얘기하면 설악산 비선대산장과 비슷하게 절의 요사채처럼 꾸며놓은 공간에 톱질 소리가 요란하다. 그 위로는 길이 흐릿하고 더군다나 푹푹 미끄러지는 자갈길이라 자칫 큰일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택시 내릴 때가 오후 2시였는데 이 마을에서 시게를 보니 3시다. 얼추 됐다. 내려간다. 내려왔다. 기사가 탄 차가 안 보인다. 선글래스를 되찾은 지점에 있나 싶어 갔더니 없어 계속 내려가다 한 호텔 앞에서 남자 둘이 노닥거리고 있길래 사정을 설명했더니 친절하게도 전화를 걸어줬다. 기사는 아마도 전화기 건너편에서 자기도 내려온 지 얼마 안된다는 얘기를 하는 듯했다. 그 젊은이는 기사가 나보고 원래 내렸던 자리에 가있으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맙다고 말하고는 그 자리로 힙겹게 돌아 올라갔는데 또 없다. 그렇게 건너편으로 건너가 아까 호텔 앞보다 조금 더 내려간 다른 호텔 앞에서 이번에는 남녀 커플에게 염치 불구하고 부탁했다. 첫눈에 보기에도 남의 청 거절 못하게 생긴 녀석이 아 짜증나 하는 것이 분명한 여친을 달래며 전화를 건다. 여자는 내가 기분나빠 할수도 있겠다 싶었는지 눈을 내리깔았다. 엄청 더운 날씨에 선 채로 전화를 걸어 기사 아저씨와 통화하니 나로선 대단히 미안한 일이라 어쩔줄 몰라 했다. 10분인가 20분쯤 뒤에 감격의 상봉을 했는데 이 기사는 또 2시간 전에 헤어진 내 얼굴을 못 알아보는 것이 틀림없다. 연신 자기가 딱 두 시간에 맞추지 못하고 조금 늦었다고 미안해 한다. 아니 웬걸, 난 괜찮은데. 오케이 소리를 열번 이상 외친 것 같은데 그는 호텔에 택시가 도착할 때까지 쏘리쏘리를 해댄다. 속으로 난, 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했으니 팁이라도 좀 내놔 할까봐 나름 조마조마했는데 그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날 돌아보며 손을 꼭 잡으며 굿데이를 외쳐댔다. 씻고 침대에 누워 개기작거리다 오후 7시 식당에 갔더니 중국인 셋이 저녁을 먹고 있다. 내가 자리에 앉고 조금 이따 일본인 심판들이 들어와 한중일 삼국지가 다시 펼쳐졌다. 동료에게 문자를 보내 함께 먹자고 했지만 그는 일하면서 먹지 않는 습관이 들었다며 나중에 먹겠다고 했다. 오후 8시 시작한 카타르와의 경기를 그와 함께 취재했다. 마침 한국인 응원단이 옆 자리에 있길래 경기장 이름이 왜 ‘1만 2000’이냐고 물었다. 교민 네 분이 계셨는데 잘 모르겠다고 했고 옆의 이란인 친구가 더듬거리는 우리말로 그만한 숫자가 들어와서 그런다고 답했다. 내가 어떻게 이 좌석에 그많은 숫자가 앉을 수 있느냐고 캐물었더니 교민들은 “이 나라에서 그렇게 따지면 안됩니다. 이 사람들이 그렇다면 그런 겁니다”라고 설명해 “아 네”라고 답했다. 호텔에 돌아오니 10시 30분쯤이었다. 동료 혼자 식사하겠다고 해 헤어져 기분좋게 잠에 들었다. 오늘은 잠깐이나마 이란의 척박하지만 나름 매력있는 산자락을 밟아본 행복한 하루였다. ◆13일 돌아오는 날 페르시아 문화의 향기를 설핏 맡아보다 새벽 4시 눈을 떴다. 양호하다. 어제 밤 10시 50분쯤 잠든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충분히 잤다. 발제하고 기사 쓰고 간간이 카톡 주고받으니 6시반쯤 됐다. 동료와 마지막 아침을 함께 먹는다. 택시 서비스 아자씨가 말렉 라이브러리 앤 뮤지엄 간다고 하니까 한참 검색한다. 결론적으로 여기는 아주 찾기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근처에 볼만한 라이브러리나 뮤지엄이 너무 많아서다. 모두 그게 그거고 비슷한 수준이라고 길 물어본 어느 인간이 얘기해준다. 택시는 부러 내리기 좋은 곳을 찾아 뱅뱅 돌며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방향 감각 없는 듯 이 사람 저 사람 라이브러리 안내하는 게 달라 혼란스럽다. 말을 끝까지 안 듣고 특정 단어만 꽂혀 안내하는 듯햇다. 예를 들어 라이브러리면 라이브러리, 뮤지엄이면 뮤지엄 한 단어에만 꽂히는 듯. 결국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 남자가 따라오라고 해 내셔널 뮤지엄 오브 이란 티켓 창구 바로 앞 라이브러리를 알려준다. 한 중늙은이, 30대 초반에서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셋이 앉아 수다 떨다가 웬 동양 떨거지가 이런 데도 다 오는구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엔사이클로피디아 등 장서의 다양함이나 섹션 분류가 모두 훌륭하다. 사람의 손길을 잘 탔다. 특히 2층은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데 첫눈에 봐도 오래된 책들이어서 호기심은 발동했지만 궁금증을 풀 길이 없었다. 이런 때 써먹게 영어를 잘해야 하는데 싶었다. 책의 향기를 그리워 하는 사람이며 이왕 내셔널 뮤지엄에 들를 계획이라면 공짜이고 이슬람 책 사랑의 편린을 들여다볼 수 있어 강추할 만했다. 티켓 창구에서 20만리라-이슬람 시대, 30만리라-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까지-두 종류가 있길래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뭐 이런 바보같은 놈이 다 있냐 하는 표정으로 당연히 30만리라를 추천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 다음에 테헤란 들를 일 있으면 당연히 이슬람시대를 추가로 보겠지만. 선사 유적지 발굴 현장과 비화 등을 사진과 상상도 등으로 흥미롭게 꾸며놓았고 전시된 물품의 다양성이 뛰어나다. 페르시아 문명의 독창성, 풍부함을 느끼기에 손색 없었고 특히 이 뮤지엄의 1호 보물이라고 자랑하는 다리우스 황제 즉위식을 묘사한 부조 ‘알현’은 정말 한번은 꼭 볼만하다. 1층과 2층으로 나뉘는데 1층이 조금 나중, 다시 말해 청동기와 철기이고 2층이 선사시대라 2층 먼저 보고 1층 내려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푹 빠져볼 만했다. 뮤지엄 나와 길 건너편 분수대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것도 좋았다. 이어 방향도 모른 채 의자상가, 전자기기 상가 등을 헤매며 과자 사고 과일 샀다. 과자는 공장에서 만들어낸 과자였는데 나중에 먹어보니 꽤 괜찮았다. 과일 장수는 고대 페르시아와 신라, 고려의 문물 교류에 대해 흥미있다며 한국인과의 만남, 특히 농구대회를 취재하러 온 한국 기자와 얘기를 나눈다는 데 대해 많이 들떠 했다. 그의 도움으로 즐거운 쇼핑을 했다. 슈퍼 바로 나와 택시를 탔다. 타고 나니 이 동네가 완전 청과상 골목이다. 꼭 뭐를 찾다가 어쩔 수 없이 하급품으로 만족하면 좋은 것을 파는 가게가 보인다. 역시 올림픽 호텔 하니 못 알아듣고 올람픽 호텔이라고 하니까 급반색, 40만리라쯤 나올 거라고 말한 것 같았는데 나중에 한 번 길을 묻고 도착한 뒤 미터기를 보니 31만리라쯤이었다. 10만 짜리 석 장 건네고 소액권 찾았더니 관두란다, 나름 길을 돌았다며 미안하다는 표시를 한 것 같았다. 낮 12시 15분쯤 호텔에 도착해 일행에게 과자랑 과일 한 보따리 넘기고 작별 인사하고 체크아웃, 택시 서비스로 가 신청했더니 80만리라, 엄청 비싸다니까 공항이 완전 외곽에 있어서라고 했다. 실제로 가보니 정말 멀었다. 한도 끝도 없이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는 느낌, 그렇다고 사막은 아니고, 황무지도 그런 황무지가 없다. 테헤란에 불어오는 모래바람, 전날 밤 호텔에 돌아가면서 봤던 다운타운 상공을 뒤덮은 연무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1시 조금 넘어 공항 도착해 체크하고 짐 부치고 과자 사고 캐셔는 유로로 계산해 신용카드 결제하려다 여의치않아힘들어 하길래 달러로 하겠다고 했더니 급반색, 100만리라가 넘었던 것 같은데 35달러라고 해서 50달러와 5달러 건네고 20달러 돌려달라고 했더니 계산 해보고 또 해보고, 애들 참 암산 같은 것 못한다. 카페 가면 와이파이 쓸 수 있을까 해서 커피 사먹으려는데 4달러란다. 웬 과자 봉지 둘을 건네길래 커피는 어디있느냐, 이래갖고 커피를 어떻게 먹느냐고 하니까 씩 웃으며 저쪽 가면 커피준댄다. 진작 얘기했으면 그렇게 정색하고 따지지 않았을텐데. 와이파이 비번 물어보니 다 모른댄다. 이 가게 종업원들인데 그런다. 누가 아느냐니까 밑에 어느 항공사 비즈니스 라운지 가보랜다. 그야말로 구걸을 하라는 얘긴데 커피맛이 좋고 과자맛도 좋아 용서해준다. 과자는 하이바이-HIBYE, 세상에 과자 이름이 독창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게 과연 무슨 뜻에서 붙인 이름일까, 고개가 갸웃거려지는데 투박한 모양치고는 적당히 달고 맛있었다. 시간은 정말 후딱 흘렀다. 어느 순간 불현듯 시계를 보니 얼추 보딩 시간이 가까워온다. 서둘러 비행기를 탔더니 에어버스인데 거진 사람들이 다 앉아, 네가 늦게 오는 바람에 우리가 못 가지 않느냐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게중에는 정말 태어나서 동양인 50대 남자를 처음 본다는 표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중동 촌놈들이 상당수 있다. 내가 앉고도 20명 정도, 특히 맨 마지막 나타난 190cm에 100kg는 돼 보이는 잘 생긴 40대-이 녀석은 도대체 국적을 가늠할 수가 없다. 생긴 건 할리우드 톱클래스인데 늦어서 마구 뛰었는지 땀을 연신 훔치며 숨을 거칠게 몰아 쉬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5분쯤 지나자 그제야 비행기가 움직인다. 점심도 안 먹고 커피 한 잔에 과자 두 개 주워 삼키고 비행기에 올랐는데 기내식이 너무 늦게 나온다. 정말 이란 떠난 기념으로 와인이나 맥주 있냐고, 없는 줄 뻔히 알면서 또 물었다. 역시나 없단다. 그냥 물달라고 해서 반쯤 남겼다가 양치에 쓰려고 아꼈다. 이스탄불에 오후 6시 내려 나갈까 말까 고민 한참 했다. 문제는 석양이었다. 낮시간이라면 황홀한 이스탄불 풍광을 즐기기 위해 용기를 냈을 것이다. 그런데 수속 받고 나가면 6시반, 어두워지기까지 90분, 이동하면 끝, 보스포러스 크루즈 탈까 했는데 그것도 너무나 많은 변수-예를 들어 쉬는 날일 수도 있고, 예약자가 너무 많아 대기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고, 테러나 강도당하거나 아니면 봉변 당할 수도 있으니 그냥 공항에 있기로 했다. 공항 내리니 역시나 사람 천지다. 휴대폰 충전하고 약 1시간 남짓 이 여행기를 대충 적었다. 와이파이 연결하려 했더니 위클리 120분이었단다. 7일 새벽에 사용했는데 13일 오후니 기간 만료라는 얘기다. 당시는 분명 원데이 120분이라고만 했던 것 같은데. 불편한 대합실 의자에 길게 누워 잠을 청했는데 환승 공항으로 유명한 이곳에서는 도대체 잠이 들 수가 없다. 어디나 사람이 많다. 저녁 시간 이 공항에 도착해 6시간 이상 환승해야 한다면 반드시 바깥 바람을 코에 불어넣으라고 권하고 싶다. 이렇게 이란 여행기를 갈무리한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취재 틈틈이 엿본 이 나라도 모순 투성이다. 반미 운동의 기지와 같은 곳이었지만 길거리에 영어 좀 하는 여성들이 넘쳐난다. 유럽 어느 여인네 못지 않게 명품 선글래스를 차도르나 히잡과 함께 보여주는 여성들이 많다. 그녀들이 운전하는 모습은 왜 그리 멋져 보이는지 모른다. 호텔 로비의 카페에서 남자와 찰싹 달라붙어 대화를 나누는 여성도 쉽게 눈에 띈다. 그런데 어렵지 않게 앞 자동차와 추돌하며 주차한 차들을 볼 수 있다. 사막으로 둘러싸인 나라에 멋진 분수와 나무들 사이로 지하수들이 흐른다. 길 한복판에서 달러화를 중개하느라 목청껏 소리지르는, 마치 뉴욕 증권거래소를 옮겨놓은 듯한 풍경도 충격적이었다. 한대 맞을까봐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지 못했는데 적잖이 후회된다.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의 향기를 품은 많은 박물관들, 나중에 세계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테헤란 근교의 토찰산 너머 카스피해 쪽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데 돌아봐야겠다. 출장이라 아스파한이나 페르세폴리스 같은 고대 유적 도시들을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분명 색다른 매력으로 반짝이는 이란을 다시 찾을 날이 올 것이다. 글·사진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퇴색한 유원지에 화사한 공공예술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퇴색한 유원지에 화사한 공공예술

    경기 안양은 서울 남쪽의 위성도시다. 시흥시에 속한 한 촌이었다가 일제시대 경부선이 지나면서 급성장했다. 오랜 역사가 남아 있는 도시이긴 하지만 제지, 섬유 중심의 산업이 다소 발달했을 뿐 서울의 위성도시 외에는 별다른 특징을 꼽기 어려운 약점도 있다. 그러던 안양이 21세기 들어 새롭게 주목한 분야가 바로 공공예술이다. 2000년대 초 안양은 공공예술에 큰 관심을 갖고 ‘공공예술의 도시’를 꿈꿨다 그 첫 실행으로 2005년 ‘제1회 안양 공공예술 프로젝트’(APAP:Anyang Public Art Project)라는 공공예술 축제를 열었다. 이후 2~3년에 한 번씩 꾸준히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개최해왔다. 올해 제5회 안양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오는 10월 열린다. 순수 지자체 예산으로만 치르는 행사여서 2~3년에 한 번씩 개최하기도 쉽지 않지만 ‘국내 최초, 유일한’ 공공예술 축제라는 점을 강조하며 안양이 갖는 자부심은 대단하다. ●수도권 대표 나들이 명소, 노천 전시관 대변신 안양예술공원은 안양이 공공예술의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심이 되는 곳이다. 만안구 석수동 일대에 위치한 이 공원은 ‘안양유원지’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1960~70년대 수도권의 대표 나들이 명소였다.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에 흐르는 맑은 계곡을 중심으로 포도나 과수농원이 주를 이루던 곳이었다. 그러던 유원지가 난개발되고 무허가 주택, 음식점, 사행성 게임업소 등이 무분별하게 들어서면서 사회 환경적인 문제가 심각해지자 1980년대 이후로는 차츰 명성을 잃어 갔다. 2000년대 들어 공공예술에 큰 관심을 기울여 온 안양시는 안양 원지부터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5년 제1회 APAP를 안양유원지 중심으로 개최하면서 대변신을 서둘렀다. 하천과 주변 환경을 정리하는 한편 유원지의 이름을 ‘안양예술공원’으로 바꾸었다. 1회에만 공원 내에 국내외 유명 작가들이 참여한 예술작품 52점을 선보였다. 안양예술공원을 공공예술작품들이 즐비한 노천 전시관처럼 구상한 또 다른 목적은 과거 가족이나 청소년을 위한 나들이, 소풍 장소로 유명했던 공원의 기능을 되찾기 위함이기도 했다. 안양 유원지에 대한 추억 한 자락은 갖고 있는 60대 이상 장년층들처럼 오늘날 지역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도 안양예술공원이 추억의 명소가 되길 바랐다. 공원에 설치된 공공예술 작품들을 아이들이 부담 없이 만지고 놀 수 있도록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또한 산, 계곡이 아름다운 주변 환경과도 잘 어우러지도록 했다. ●안양 파빌리온·김중업박물관 개관으로 제2막 안양예술공원은 공공예술 전문 도서관인 안양 파빌리온의 탄생과 근현대 대표적인 건축가 김중업 박물관의 개관과 함께 제2막을 열었다. 예술공원 중심에 위치한 안양 파빌리온은 포르투갈 출신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으로 꼽히는 알바로 시자 비에이라가 아시아 지역에 처음 설계한 건축물이다. 2006년 설립되어 기획전시관으로 활용돼 왔으나 2013년 10월 안양 파빌리온으로 이름을 바꾸고 공공예술 전문 도서관으로 변신했다. 어느 한 곳에서도 같은 모양이 없는 건물 외관과 시원하게 뚫린 반구형 내부가 인상적이다. 무엇보다도 파빌리온 홀 한가운데 놓여 있는 원형 벤치가 눈길을 끈다. 종이로 만든 이 벤치에서 시민들은 제각기 편한 자세로 책을 본다. 심지어 가운데 공간에선 눕거나 엎드릴 수도 있다. 의자는 종이로 만든 것인지 의심이 들만큼 견고하면서도 치밀하다. 2000여권의 공공예술 및 관련 서적이 꽂혀 있는 책장도 모두 종이로 만들어졌다. 역대 APAP 관련 영상과 서류 기록, 설계도 등을 볼 수 있는 아카이브 장비도 갖추었다. 예술공원 입구의 김중업박물관은 안양시 문화예술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근현대 건축의 초석을 다진 대표적인 건축가인 김중업에 대한 전문 박물관으로 부산대 본관을 비롯한 서강대 본관, 주한 프랑스대사관, 옛 삼일빌딩(현 산업은행 본점) 등을 남긴 그의 작품과 건축에 관한 각종 자료를 열람하고 찾아볼 수 있다. 박물관의 모태가 된 건물 또한 김중업의 작품으로 제약회사인 유유산업 안양 공장 건물이었다. 폐공장이 공공건물인 박물관으로 변신한 공공예술의 또 다른 예시를 보여 준다. 이 부지 내에는 보물 제4호로 지정된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고려시대 삼층석탑 등이 있으며 개보수 중 4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안양(安養)이란 지명의 유래가 된 고려시대 안양사(安養寺) 명문기와가 출토됨에 따라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박물관과 전시관 등으로 사용되는 건물 2동은 김중업이 설계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공공예술작품 78점 설치… 가을 산책길로 좋아 공원의 공공예술작품들은 현재 총 78점이 설치돼 있다. 안양시 전체 140점의 절반 이상에 해당한다. 작품들은 공원 입구의 김중업박물관 부지에서부터 등산로 입구인 공영주차장까지 약 2㎞에 걸쳐 골고루 배치돼 있다. 삼성산의 등고선을 연장하기 위해 설치된 ‘전망대’, 외국인들도 일부러 보기 위해 찾아오는 아콘치 스튜디오의 ‘나무 위로 선으로 된 집’ 등이 대표적이다. 가을이면 더욱 산책하기 좋은 계곡 옆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술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10여년 넘게 공공예술의 도시로서 안양을 부각시키려고 해왔지만 정작 지역 내에서는 인지도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올해 5회째 열리는 APAP가 더욱 중요해진 이유다.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여행수첩 (지역번호 031) →가는 길:서울 지하철 1호선 안양역, 4호선 범계역, 평촌역에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 공원으로 갈 수 있다. 김중업박물관(687-0909)은 오전 9시~오후 6시 문을 연다. 매주 월요일 휴무. 입장은 무료다. 안양 파빌리온(687-0548)은 매일 오전 9시~오후 6시 오픈. 제5회 안양 공공예술프로젝트는 오는 10월 15일, 16일 안양 파빌리온과 예술공원, 평촌중앙공원 일대에서 개막행사가 열리고 12월 15일까지 지속된다. 안양의 지형, 문화, 역사를 기반으로 미술, 건축, 영상, 디자인, 퍼포먼스 등이 복합적으로 펼쳐지며 도시를 하나의 갤러리로 만든다. 홈페이지(www.apap.or.kr) 참조. 전문 도슨트 투어 프로그램(687-0548)도 평일 하루 2회, 주말 3회 진행된다. →맛집:김중업박물관 3층에 위치한 레스토랑 더 테라스(689-4540)는 합리적인 가격에 맛있는 양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식당의 야외 라운지에서 내려다보는 예술공원과 주변 전경도 일품이다.
  • ‘분단문학의 큰 별’이 지다

    ‘분단문학의 큰 별’이 지다

    함경남도 원산 출신 월남작가 ‘탈향’·‘판문점’ 등 작품 통해 전쟁·남북 분단의 아픔 다뤄 분단문학을 대표한 소설가 이호철씨가 별세했다. 84세. 뇌종양으로 투병하던 중 최근 병세가 악화된 고인은 18일 오후 7시 32분 서울 은평구의 한 병원에서 운명했다. 전쟁과 이산의 아픔을 직접 체험한 고인은 남북 분단의 비극을 압축된 필치와 자의식이 투영된 세련된 언어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작가다. 1932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0년 6·25전쟁 당시 북한군으로 동원되어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뒤 이듬해 1·4 후퇴 때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다. 1955년 문예지 ‘문학예술’을 통해 단편 ‘탈향’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약 60년간 장편 ‘소시민’, ‘서울은 만원이다’, ‘남풍북풍’, ‘門(문)’, ‘그 겨울의 긴 계곡’, ‘재미있는 세상’, 중·단편 ‘퇴역 선임하사’, ‘무너지는 소리’, ‘큰 산’, ‘나상’, ‘판문점’, 연작 ‘남녘사람 북녁사람’ 등 수십 편의 작품을 통해 전쟁과 남북 분단 문제에 천착했다. 고인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다 두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유신 개헌 반대 서명을 주도하다가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에 얽혀,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돼 투옥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야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대산문학상, 3·1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한 고인의 작품은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은 물론 독일, 프랑스, 폴란드, 헝가리, 러시아 등 유럽과 영미권으로도 번역, 출간돼 호평받았다. 특히 독일에 번역된 ‘남녘사람…’으로 2004년 독일 예나대학이 주는 국제 학술·예술 교류 공로상인 프리드리히 쉴러 메달을 받기도 했다. 고인은 또 미국 등 여러 나라에 초청돼 낭독회를 열고 한국의 분단 현실을 널리 알렸다. 2011년에는 팔순을 기념해 고인을 따르는 문인, 예술인 등이 주축이 된 사단법인 ‘이호철 문학재단’이 발족했으며 최일남, 이어령, 신달자, 김승옥 등 동료 문인과 지인, 제자 등 87명의 글을 모은 기념문집 ‘큰산과 나’가 출간됐다. 유족으로 부인 조민자 여사와 딸 윤정씨가 있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됐다.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21일 오전 5시. 장지는 광주에 있는 국립 5·18 민주묘지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큰 비에 놀랐던 남부

    큰 비에 놀랐던 남부

    추석 연휴 남부지방에 쏟아진 물폭탄으로 곳곳이 침수·고립되고 하늘·바닷길까지 한때 끊기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18일 기상청 등에 따르면 제14호 태풍 ‘므란티’의 영향으로 남부지방에는 최대 284㎜의 폭우가 내렸다. 지난 16일부터 누적 강수량은 경남 남해 284㎜, 전남 여수 184.2㎜, 부산 141.5㎜, 울산 139.9㎜ 등이다. 호우경보와 호우주의보는 모두 해제됐다. 낙동강 홍수통제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낙동강 경남 밀양 삼랑진 일대에 홍수주의보가 내려진 뒤 오후 들어서 홍수주의보 수위를 넘겼다. 부산에서는 부산진구 가야굴다리 도로 파손, 동래구 온천천 산책로 침수, 주택 침수 등 모두 28건의 피해가 접수됐다. 울산에서도 지난 17일 급류에 휩쓸린 차량에서 60대 남녀 2명이 구조됐고, 신불산에 고립됐던 관광객 4명도 고립 3시간 만에 구조됐다. 김해공항을 비롯한 지방공항의 항공기 이착륙 지연·회항 등이 속출했다. 전남에서도 집중호우로 계곡 야영객이 고립되고, 농경지와 도로 침수가 잇따랐다. 장성군과 담양군 등 26개 농가의 딸기, 고추 등 비닐하우스 91개 동 6.7㏊와 논 1.4㏊ 등이 침수됐다. 현재 목포와 여수, 완도항을 기점으로 운항하는 10여개의 뱃길이 통제돼 섬 귀성객 4800여명의 발이 묶였다. 긴 추석 연휴가 끝난 19일부터 이달 말까지는 큰 일교차를 보이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가 이어진다. 기상청은 “중국 북동지방에 위치한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어 전국에 구름이 많이 끼겠다”며 “경남 해안 지역과 제주도는 16호 태풍 ‘말라카스’의 영향으로 비가 내릴 것”이라고 이날 예보했다. 말라카스는 19일 오전 9시쯤 서귀포 남쪽 490㎞ 해상까지 접근해 제주도 해상과 남해, 동해에 강한 바람이 불고 물결이 높게 일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에 내리는 비는 19일 오후에 그치고, 경남 해안은 낮 한때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됐다. 말라카스는 21일 오전 9시 일본 오사카 남서쪽 해상에서 소멸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19일 전국의 아침 최저기온은 14~21도, 낮 최고기온은 20~27도로 예보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서울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태풍에 남부지방 물 폭탄…낙동강 하류 홍수주의보

    태풍에 남부지방 물 폭탄…낙동강 하류 홍수주의보

    추석 연휴 막바지에 찾아온 태풍으로 남부지방 곳곳이 물 폭탄을 맞았다. 집중호우로 경남 낙동강 하류에는 홍수주의보가 발령돼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지난 12일 역대 최대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경북 경주에는 150.5mm의 폭우가 쏟아져 복구가 지연되고 있다. 18일 기상청에 따르면 제14호 태풍 ‘므란티’의 영향으로 남부지방은 물난리가 났다. 지난 16일부터 누적 강수량은 경남 남해 284mm,통영 209.2mm,진주 181.6mm,거제 178.5mm,경북 포항 166.9mm,전남 보성 176mm,고흥 184.1mm,여수 184.2mm다. 전날 발효한 호우경보와 호우주의보는 모두 해제됐다. 지난 12일 진도 5.8의 지진이 난 경북 경주에도 150.5mm의 비가 내려 피해 복구 작업이 더뎌지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14호 태풍이 소멸하며 수증기가 유입돼 많은 비가 내렸다”며 “16호 태풍 ‘말라카스’의 진로에 따라 또 많은 비가 내릴 가능성이 있으니 저지대나 상습 침수지역은 비 피해에 대비해야 한다”고 알렸다. 낙동강 홍수통제소는 이날 오전 11시를 기해 낙동강 경남 밀양 삼랑진 일대에 홍수주의보를 내렸다. 삼랑진 지점은 수위가 5.0m(해발 기준 4.03m)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홍수주의보가 발령된다. 삼랑진 지점의 수위는 전날부터 낙동강 유역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계속 상승했다. 낙동강 홍수통제소 측은 “오후 1시쯤 홍수주의보 수위에 육박하거나 수위를 넘길 것”이라며 “삼랑진 하류 지역 주민들은 수위 상승에 따른 피해가 없도록 유의해달라”고 말했다. 전남에서는 시간당 70mm가 넘는 집중호우로 계곡 야영객이 고립되고 농경지와 도로 침수가 잇따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주·전남에 호우특보…계곡 고립에 주택·도로 침수까지

    광주·전남에 호우특보…계곡 고립에 주택·도로 침수까지

    추석 연휴 주말인 17일 광주·전남지역에 호우특보가 내려져 도로가 침수되는 등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이날 9시 1분쯤 전남 담양군 월산면 용흥사 계곡에 사람이 고립됐다는 신고가 들어와 119구조대가 구조에 나섰다. 현장에 출동한 119구조대는 사다리와 튜브 등을 사용해 30여분만에 계곡에 고립된 주민 2명을 구조했다. 이날 오전 6시를 기해 호우 경보 등 호우특보가 내려진 광주·전남지역에는 많은 비가 내리고 있으며 침수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광주 월곡동 우산시장과 영암군 삼호읍 상가에 침수 신고가 들어왔고 나주시 왕곡면 반남면의 한 주택도 침수돼 119구조대가 출동해 배수 작업을 벌였다. 도로 침수도 계속되고 있다. 강진군 성전면 풀치터널 앞 도로에 토사가 흘러내려 복구작업을 벌였다. 광주 하남산단 6,7,8번 도로도 침수돼 119 구조대가 출동해 배수 작업을 벌였다. 폭우로 여객선과 항공기 운항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이날 오전 8시5분 제주를 출발해 8시50분 광주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티웨이항공 여객기가 1시간 가량 늦은 9시50분 도착했다. 여수와 연도, 백야도 등을 잇는 16개 항로 가운데 13개 항로가 악천후로 운항이 중단됐다. 청산도와 여서도, 덕우도와 황제도를 잇는 일부 항로도 통제되고 있다. 이날 오전 9시를 기해 광주와 나주, 담양 등 전남 21개 시·군에 호우 경보가 내린 가운데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오전 10시 현재 강우량은 보성 157.5mm를 최고로 신안 압해도 157mm, 영광 140mm, 담양 134.5mm, 나주 132.5mm, 광주 120.9mm, 순천 105mm, 여수 40.9mm를 기록했다. 고흥은 오전 9~10시 1시간 동안 무려 95.5mm나 내리는 등 전남 동부권에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저기압의 영향으로 80~150mm의 비가 더 내릴 것으로 보여 안전사고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길섶에서] 시간여행/임창용 논설위원

    40년 만이었던 것 같다. 지난 주말 포천 국사봉 등산길. 고향 마을 뒷산이다. 해발 754m로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객기로 정상을 밟아 본 뒤 이번이 두 번째다. 비 온 뒤 계곡은 힘이 넘친다. 바위를 때리는 물소리가 우렁차다. 어릴 적 함께 산에 올랐던 친구들이 의기투합했다. 그땐 다람쥐처럼 날렵했던 시골 소년들이었다. 겁 없이 잣나무 꼭대기에 올랐고, 다래 덩굴에 원숭이처럼 매달려 열매를 따 먹었다. 깊은 소(沼)를 향해 너덧 길 바위 꼭대기에서 주저 없이 뛰어내렸다. 이젠 모두 오십 중반. 비탈만 만나면 성긴 머리숱 밖으로 비 오듯 땀을 쏟는다. 혹여 미끄러질까 더듬거리며 발을 딛는 모양이 우스꽝스럽다. 다래가 지천이다. 머루도 간혹 보인다. 잣이 벌써 여물었는지 바닥에 나뒹구는 잣송이에서 진한 향내가 난다. 나이를 잊고 다래 덩굴에 매달려 본다. 입안에서 터트린 다래의 진액이 달다. 한 친구의 장난기가 발동한다. 참나무를 칭칭 감은 다래 덩굴을 모아 쥐고 힘차게 점프를 한다. 덩굴이 끊어질까 조마조마하다. 무사히 착지하자 너나 할 것 없이 매달린다. 잠시나마 소년 시절로 돌아간 친구들. 참 유쾌한 시간여행이었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판소리로 뿌리 찾은 재일동포 소리꾼

    판소리로 뿌리 찾은 재일동포 소리꾼

    18년간 한국에서 국악 배워 국가 무형문화재 이수자 지정 “동포들 삶·정서 소리로 풀 것” “한국에서 판소리 공연을 한 뒤의 목표요? 저 같은 재일동포의 삶과 정서를 소리로 풀어낼 겁니다. 판소리는 소리의 힘으로 기쁨, 사랑, 갈등, 슬픔 등 인생사를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이거든요.” 오는 21일 서울 강남구 한국문화의집에서 ‘수궁가’ 완창 공연을 하는 재일동포 3세 안성민(50)씨는 “그간 해온 어떤 공연보다 긴장된다”면서도 “내 뿌리인 한국에서 당당하게 무대에 선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다. 18년간 판소리를 배운 그는 지난 1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가 됐다. 전통무용에는 재일동포 이수자가 있었지만 판소리 분야는 안씨가 처음이다. 그의 국적은 한국이지만 대학 입학 전까지만 해도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했다. 대학에서 ‘한국문화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선배의 권유로 판소리를 접하고는 매력에 눈을 떴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 일본공립초등학교에서 방과후 교사를 하다가 1998년 판소리를 제대로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한국에 왔다. 광주에서 1년 남짓 윤진철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운 뒤 1999년 한양대 국악대학원에 입학했다. 2001년 남해성 명창이 구룡계곡에서 여는 여름 산공부 캠프에 참가하면서 인연이 쌓았다. 그는 “선생님께 판소리를 가르쳐달라고 하자 ‘우리 소리를 사랑해 바다 건너에서 배우러 와주어 고맙다’고 하셨다. 한국어 발음이 좋지 않은 내게 ‘너만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있을 것’이라는 격려가 큰 힘이 됐다”고 떠올렸다. 안씨는 일본 오사카에서 3개월에 한 번씩 ‘판소리 라이브 공연’을 연다. 매년 여름엔 산공부 캠프도 참여한다. “판소리에 인생의 지혜는 문화나 국가를 뛰어넘습니다. 판소리의 힘을 일본에 알리며 소리꾼으로 우뚝 서는 모습을 모든 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이란 불참 속 막 오른 이슬람 성지순례

    이슬람 최대 종교행사인 하지(성지 순례)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10일(현지시간) 시작됐다고 알자지라 등이 보도했다. 하지는 이슬람 신자라면 지켜야 할 5대 의무(기도문 암송, 하루 5번 기도, 이웃 돕기, 라마단 금식, 성지 순례) 가운데 하나다. 이슬람력(歷)으로 12번째 달인 둘-히자의 8일째부터 12일까지 닷새간 열리며, 해마다 150여개국에서 200만명 안팎의 무슬림이 모여 의식을 치른다. 올해는 서양력으로 이달 10일이 공식 시작일이지만 8일쯤부터 성지 순례객이 이슬람교 선지자 무함마드의 탄생지인 메카에 모여들었다. 이슬람 양대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무함마드가 사망한 곳)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사우디는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압사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행사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성지 순례객이 몰리는 메카 대사원(마지드 알하람)을 비롯해 주요 장소에 폐쇄회로(CC)TV 수백대를 설치해 인파 이동을 감시하고 지난해 압사 참사가 났던 미나 계곡의 ‘악마의 돌기둥’에 돌을 던지는 의식 시간도 제한했다. 인원 통제를 위해 성지 순례객에게 다국어 안내방송과 위치정보시스템(GPS), 의료·신상 정보 등을 저장하는 전자팔찌를 지급했다. 하지만 올해 성지 순례는 이란이 불참을 선언하면서 ‘반쪽짜리 행사’가 됐다는 평가다. 이란과 사우디는 지난해 성지 순례 도중 발생한 압사 참사에 대한 손해배상 규모를 놓고 올해 4월 협상을 벌였으나 결렬됐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이란 불참 속 막오른 이슬람 성지순례

    이슬람 최대 종교행사인 하지(성지 순례)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10일(현지시간) 시작됐다고 알자지라 등이 보도했다. 하지는 이슬람 신자라면 지켜야 할 5대 의무(기도문 암송, 하루 5번 기도, 이웃 돕기, 라마단 금식, 성지 순례) 가운데 하나다. 이슬람력(歷)으로 12번째 달인 둘-히자의 8일째부터 12일까지 닷새간 열리며, 해마다 150여개국에서 200만명 안팎의 무슬림이 모여 의식을 치른다. 올해는 서양력으로 이달 10일이 공식 시작일이지만 8일쯤부터 성지 순례객이 이슬람교 선지자 무함마드의 탄생지인 메카에 모여들었다. 이슬람 양대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무함마드가 사망한 곳)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사우디는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압사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행사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성지 순례객이 몰리는 메카 대사원(마지드 알하람)을 비롯해 주요 장소에 폐쇄회로(CC)TV 수백대를 설치해 인파 이동을 감시하고 지난해 압사 참사가 났던 미나 계곡의 ‘악마의 돌기둥’에 돌을 던지는 의식 시간도 제한했다. 인원 통제를 위해 성지 순례객에게 다국어 안내방송과 위치정보시스템(GPS), 의료·신상 정보 등을 저장하는 전자팔찌를 지급했다. 하지만 올해 성지 순례는 이란이 불참을 선언하면서 ‘반쪽짜리 행사’가 됐다는 평가다. 이란과 사우디는 지난해 성지 순례 도중 발생한 압사 참사에 대한 손해배상 규모를 놓고 올해 4월 협상을 벌였으나 결렬됐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아름다운 석양 속 웨딩사진 주인공을 찾습니다”

    “아름다운 석양 속 웨딩사진 주인공을 찾습니다”

    장엄한 석양을 배경으로 벼랑 위에서 촬영된 아름다운 웨딩사진이 소셜네트워크를 타고 화제에 올랐다.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미 NBC뉴스 등 현지언론은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계곡에서 촬영된 한 장의 웨딩 사진과 이에 얽힌 사연을 보도했다. 오렌지빛으로 아름답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벼랑 위에 서있는 커플을 담고 있는 이 사진은 1일 촬영된 것이다. 당시 하와이 출신의 사진작가 마이크 카라스가 소문난 요세미티 계곡의 석양을 찍기위해 출사에 나섰다가 우연히 한 커플을 목격한 것. 카라스는 "사진 촬영 중 예복을 차려입은 신랑, 신부가 벼랑 끝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을 봤다"면서 "석양빛으로 물든 하늘과 계곡으로 펼쳐진 광경이 정말 숨막힐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내 인생 최고의 역작 중 하나로 평생 잊지 못할 사진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 사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카라스가 작품 속 주인공을 찾는다는 사연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다. 카라스는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장면의 모델이 되어준 커플에게 감사하다"면서 "꼭 주인공을 찾아 사진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길섶에서] 석파정(石坡亭)/손성진 논설실장

    가끔 유적지에 들르는 까닭은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자 함이다. 역사서를 읽으며 상상하던 인물들이 살아 있는 듯한 착각을 한다. 왕릉도 그런 곳이다. 선릉, 태릉, 공릉, 정릉, 홍릉, 헌릉…. 지하철 역명이나 지명으로도 익숙한 왕릉에 어느 왕이나 왕비가 잠들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숭인동의 비구니 도량 청룡사에는 비가 꽃처럼 내린다는 우화루(雨花樓)가 있다. 단종이 영월로 귀양 가기 전날 다시는 만나지 못할 정순왕후와 마지막 밤을 보낸 곳이다. 왕후는 밤새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인왕산 끝자락, 부암동 석파정에 가 보았다. 서울 도심에 이렇게 풍광 좋은 곳이 있었던가? 흥선대원군의 별장인데 원래는 영의정 김흥근의 소유로 이름도 삼계동정사(三溪洞精舍)였다고 한다. 흡사 대형 분재 같은 아름드리 소나무 고목은 수령이 630년이라고 하니 조선의 건국과 멸망을 지켜보았을 게다. 암반 계곡으로 물이 흐르고 안쪽에는 코끼리 바위로 불리는 커다란 암석이 있다. 대원군은 이곳이 마음에 들어 왕인 아들의 힘을 업고 반강제로 빼앗았다고 전한다. 방에 앉아 난을 치고 손님도 맞는 대원군이 눈앞에 그려진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바다로 달린 대지, 절경을 빚고…바다가 낳은 습지, 생명을 품고

    바다로 달린 대지, 절경을 빚고…바다가 낳은 습지, 생명을 품고

    일본 북방의 섬 홋카이도를 렌터카로 자유롭게 돌아보는 한국인 여행객이 늘고 있다. 많은 이들의 ‘로망’이 현실로 바짝 다가선 느낌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비용항공사(LCC)가 취항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지 싶다. 여행경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항공료가 큰 폭으로 줄어들게 됐으니 말이다. 홋카이도의 너른 들녘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려면 자동차가 제격이다. 오가는 여정 자체가 행복한 곳이어서 더 그렇다. 그렇게 홋카이도 동쪽부터 서쪽까지 훑었다. 10호 태풍 라이언록에 유린당한 탓에 간혹 도로가 끊기고, 여러 명소들이 출입 통제되거나, 아름다운 물빛을 잃기도 했지만 깊고 서정적인 특유의 풍경은 여전했다. 【신치토세공항→오타루】 ‘러브레터’ 도시 오타루… 운하·유리공예·초밥 ‘필수코스’ 신치토세공항을 나선다. 나무가, 실개천이 따라붙고 한없이 푸른 구릉과 자작나무 숲 같은 홋카이도의 전형적인 풍경들도 조금씩 펼쳐지기 시작한다. 도로 노견을 따라 빨간 화살표를 꽂은 철제 기둥이 끝없이 세워져 있다. ‘여기까지가 길입니다’라고 알려 주는 일종의 표지판이다. 겨울에 눈이 많은 홋카이도에서 화살표는 운전자의 안전을 담보하는 필수 설비다. 이 같은 이국적인 풍경들이 마치 고명처럼 여정 위에 얹힌다. 국도 위로 올라서면 슬슬 배가 출출해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얇은 지갑을 걱정할 건 없다. 휴게소가 있으니 말이다. 일본은 휴게소에서 먹는 밥이 맛있다. 현지인들은 휴게소를 미치노에키(道の?)라 부른다. 도로의 역이란 뜻인데, 철도역에서 파는 도시락 ‘에키벤’을 여기서도 판다. 소바나 라멘 등 간단한 먹거리도 어지간한 식당에 못지않게 싸고 맛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오타루다. 홋카이도 서쪽의 항구도시다. 2차대전 전까지만 해도 삿포로보다 더 번성했다던 곳이다. 중장년층에겐 일본 영화 ‘러브레터’(1999)의 주무대로 기억될 법하다. 영화를 못 본 이라도 여주인공 나카야마 미호가 애절한 목소리로 외치던 대사 ‘오겐키데스카?’는 한번쯤 들어 봤을 터다. 오타루의 낭만을 상징하는 최고의 포인트는 오타루 운하다. 길이 1300m, 폭 40m의 물길을 따라 늘어선 옛 건물들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운하를 따라 난 도로에는 가스등이 늘어서 운치를 더하고 있다. 오타루는 오르골과 유리 공예로 명성이 높은 곳이다. 오타루 운하에서 수백m 떨어진 골목길에 오르골당, 유리 공예품점 등 볼거리들이 밀집돼 있다. 맛있는 스시(초밥)로도 정평이 나 있다. 미슐랭 별을 받았다는 이세스시와 쿠키젠, 마사스시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오타루 복판의 스시거리에 있어 찾기도 쉬운 편. 다만 값이 녹록하지 않은 데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어 일반 여행자로서는 심리적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곳들이다. 이른바 ‘가성비’ 높은 곳으로는 와라쿠가 꼽힌다. 이 집 역시 회전초밥 맛집으로 소문나 20분 정도 기다려야 하지만, 예약이 필요 없고 값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오타루→샤코탄】 ‘원주민 아이누족 본거지’ 샤코탄… 망부석 ‘가무이미사키’ 절경 오타루를 지나 샤코탄으로 향한다. 홋카이도 서쪽 끝자락으로 오타루에서 대략 40분 정도 걸린다. 홋카이도는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본거지였다. 비록 5개월 만에 무너지긴 했지만 1869년 ‘에조 공화국’을 세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도 했다. 현재는 겨우 2만명 남짓 남아 있지만, 지금도 홋카이도 곳곳에 이들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샤코탄도 그중 하나다. 아이누어로 ‘여름의 마을’이란 뜻의 해안마을이다. 등위 매기기를 즐겨 하는 일본인들은 이를 ‘일본의 비경 100선’ 가운데 하나로 꼽기도 했다. 샤코탄의 바다는 파랗다. 얼핏 하늘과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다. 그 빛깔을 일본인들은 ‘샤코탄 블루’라고 부른다. 샤코탄에서도 서쪽을 향해 20분 남짓 더 가면 우리 동해 쪽으로 길게 뻗은 곶부리가 나온다. 샤코탄의 여러 절경 가운데 가장 이름 높은 ‘가무이미사키’다. ‘차렌카의 작은 길’이라는 절벽길을 따라 20분쯤 걸어가면 나온다. 붉은 절벽 위로 난 길엔 한 여인의 한이 서려 있다. 전설은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남자 주인공은 미나모토 요시쓰네. 다이라(平) 일족과 경쟁을 벌였던 미나모토(源) 일족 출신의 무사다. 당시 일본 본토에서 쫓겨난 미나모토 요시쓰네는 홋카이도 도카치 지방의 히다카란 곳에 몸을 숨겼고, 그가 의탁한 집의 딸이 차렌카였다. 이후는 누구나 짐작하는 그대로다. 미나모토 요시쓰네는 몸을 추스른 뒤 본토로 떠났고, 차렌카는 가무이미사키 끝자락에서 그를 부르다 바다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차렌카의 한이 서린 탓일까. 여성이 탄 배가 가무이미사키를 지날 때면 어김없이 난파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후 한동안 가무이미사키에는 여성이 출입할 수 없었다. ‘여인 금제의 땅 가무이미사키’란 팻말이 붙은 문이 산책로 초입에 세워져 있다. 지금도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엔 이 문부터 출입을 통제한다. 가무이미사키 뒤편 언덕에도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곶부리 전경을 굽어볼 수 있는 자리다. 인근의 시마무이 해안도 아름다운 물빛과 서정적인 풍경으로 인상적인 곳이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빠짐없이 돌아보길 권한다. 【샤코탄→소운쿄】 3만년 시간을 새긴 협곡지대 소운쿄… 산꼭대기 주상절리 장관 이제 홋카이도의 내부로 들어갈 차례다. 비에이의 시라히게 폭포가 목적지다. 도카치다케에서 흘러내린 물이 거친 암석을 따라 떨어진다. 여러 가닥으로 나뉜 물줄기가 이름 그대로 ‘흰 수염’처럼 보인다. 폭포 아래로는 에메랄드빛 계류가 흘러간다. 폭우 뒤라 이제 겨우 제 빛깔을 찾아가는 중이지만 그마저도 아름답다. 인근의 아오이케도 에메랄드빛 호수로 유명하지만, 출입이 통제된 탓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소운쿄는 이시카리강 위쪽에 형성된 협곡 지대다. 가래떡을 닮은 주상절리들이 산꼭대기마다 어김없이 펼쳐져 있다. 평지 아래, 혹은 강변 등에 주상절리 지대가 형성된 우리와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주상절리들의 크기는 들쑥날쑥이다. 아들을 당대의 명필로 키워 낸 한석봉의 어머니였다면 훨씬 가지런하게 정돈해 뒀을 듯하다. 협곡의 길이는 24㎞쯤 된다. 약 3만년 전 다이세쓰산 중앙 화구가 폭발을 일으키면서 엄청난 양의 화산 분출물이 이시카리강 유역을 뒤덮었고, 200m 두께로 쌓였던 퇴적물에 균열이 생기면서 4각, 6각 단면의 주상절리가 형성됐다고 한다. 계곡에 들면 차창부터 열 일이다. 계곡 풍경이 싱그럽고 공기는 청량하다. 빽빽한 숲 너머로는 세찬 계곡수가 흐른다. 산을 깎아 소운쿄를 만든 주인공이다. 태풍이 지난 뒤여서 물빛은 ‘다방 커피’ 같은 흙탕물이었지만, 품은 에너지만큼은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강렬해 보인다. 그 계곡을 10분 정도 달리면 두 개의 폭포와 만난다. 유성폭포와 은하폭포다. 선사시대 돌도끼를 닮은 ‘부동암’(不動岩)을 경계로 양쪽으로 나뉘어 쏟아져 내린다. 둘은 부부 폭포다. 유성폭포가 남편, 은하폭포가 부인이다. 안내판의 설명을 보지 않아도 단박에 알 수 있다. 유성폭포는 호쾌하다. 거침없이 드러내고 압도적으로 쏟아져 내린다. 은하폭포는 섬세하다. 남편의 어깨 뒤에 숨어 수줍은 자태로 물줄기를 펼쳐 낸다. 온천마을 가운데쯤 로프웨이가 있다. 다이세쓰산 국립공원의 제2봉인 구로다케 7부 능선까지 올라가는 로프웨이다. 먼저 로프웨이를 타고 5부 능선까지 오른 뒤 다시 리프트를 타고 7부 능선까지 간다. 산정의 전망대에 서면 소운쿄 계곡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예서 정상(1984m)에 오르려면 걸어서 1시간 반 정도 더 올라가야 한다. 【소운쿄→구시로 습원】5000년 전 바다였던 구시로 습원, 동식물 2000종 보금자리로 방향을 틀어 구시로 습원으로 향한다. 원시 대자연의 모습을 여태 간직하고 있다는 곳. 너른 평원에서 눈을 씻고, 그 안에 깃든 원시 생명들과 가까이서 교감하는 행운도 기대할 수 있다. 소운쿄 협곡을 지나 남쪽으로 10분 남짓 달렸을까. 멀리서 공사장 인부가 요란하게 붉은 기를 흔들어 댄다. 10호 태풍 라이언록이 홋카이도를 할퀸 이후, 복구공사 중인 도로를 종종 지나쳤지만 이번엔 뭔가 조짐이 이상하다. 아니나 다를까. 통행금지다. 교량이 무너져 오갈 수가 없단다. 도리 없다. 먼 거리를 돌아갈 수밖에. 구시로 습원은 홋카이도 동남부의 항구도시 구시로에서 내륙 쪽으로 펼쳐진 광대한 평원이다. 일본 최대의 습지로 수많은 호수와 하천들이 습지 생태계의 보물창고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1980년엔 습지 가운데 7863㏊가 국제 습지 보전조약인 람사르 협약에 등록됐다. 5000년 전의 구시로 습원은 바다였다. 그러다 물이 빠지고 해안선이 물러나면서 습지가 형성되기 시작해 3000년 전에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고 한다. 서식하는 동식물은 사슴과 두루미, 고니 등 무려 2000여종에 이른다. 습원 앞에 서면 눈과 가슴이 시원해진다. 그래, 바로 이런 느낌이었던 거다. 너른 원지 자연과 마주한다는 것은. 구시로 습원은 우리 수원과 안양을 합친 것보다 넓다고 한다. 습원 주변에 전망대가 몇 곳 있다. 구시로 습원 전망대가 대표적이다. 구시로 습원을 조망할 수 있고, 습원의 발달과정 등도 엿볼 수 있다. 호소오카 전망대도 이름났다. 뱀처럼 흘러가는 구시로 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트레킹을 즐기는 이가 좋아할 만한 곳은 온네나이 비지터 센터다. 구시로 습원 전망대에서 5㎞쯤 떨어졌다. 온네나이에선 습원 일대를 직접 발로 돌아볼 수 있다. 자연 산책로는 세 개 코스로 구성됐다. 총 길이는 3.1㎞. 가장 긴 코스가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산책로에 목재 데크를 깔아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돌아볼 수 있다. 다른 전망대는 건너뛰더라도 온네나이는 꼭 가보길 권한다. 실제 습원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구시로 습원→삿포로】걸쭉한 국물·굵은 면 ‘삿포로 라면’… 양고기 구이 ‘칭기즈칸’ 별미 일본 식객들이 즐겨 찾는 홋카이도에서도 삿포로는 핵심지역에 속한다. ‘칭기즈칸’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 화로에 채소와 양고기를 구워 먹는다. 1910년대 군대에서 양모를 얻기 위해 많은 양을 사육한 게 기원이라고 한다. ‘다루마’가 유명하다. 스스키노 지역에 지점이 여러 개 있다. 다만 어느 지점이든 길게 줄을 서 수십분은 족히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삿포로 특산의 미소 라멘은 걸쭉하고 기름기 많은 국물에 굵고 쫄깃한 면이 특징이다. 스스키노의 라면 거리 ‘라멘 요코초’ 등에서 맛볼 수 있다. 홋카이도는 게의 산지이기도 하다. 시내 곳곳에서 게를 맛볼 수 있는데, 지갑이 얇은 여행자에겐 난다(難陀)가 딱이다. 4000엔 정도를 내고 70분 동안 대게, 킹크랩 등의 해산물과 육류를 무제한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그야말로 ‘가성비’ 최고다. 스스키노에 있다. 삿포로의 온천 몇 곳 덧붙이자. 가장 이름난 곳은 조잔케이다. 노천온천으로 유명하다. 삿포로 시내에서 승용차로 40분 거리다. 호헤이쿄는 조잔케이보다 규모는 작아도 한결 조용하다. 글 사진 오타루·구시로·삿포로(일본)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제주항공이 인천~삿포로 구간을 매일 운항한다. 일본에서만 총 9개의 노선망을 갖춰 저비용항공사(LCC) 가운데 가장 많은 한·일노선을 보유하고 있다. 인천과 김포, 김해공항 등에서 자유여행객들을 위한 일본 온라인라운지(www.jejuair-japan-lounge.com)도 운영하고 있다. 현지 숙소와 렌터카, 1일 버스투어 등을 예약할 수 있고, 관광지 할인 등 정보도 제공한다. 가을여행 특가 이벤트도 진행한다. 6일~11월 30일 인천공항 탑승을 기준으로 삿포로 8만 8000원, 도쿄(나리타)와 오키나와 7만 8000원, 후쿠오카 5만 8000원 등이다. 유류 할증료 등이 모두 포함된 편도 항공권 기준이며, 예매는 26일까지 제주항공 홈페이지(www.jejuair.net)와 모바일 앱 등에서 할 수 있다. 탑승과 출국 수속을 할 수 있는 도심공항터미널도 서울역과 삼성동에서 운영하고 있다. -여정 중 하루는 호시노 리조트 도마무(www.snowtomamu.jp)에서 묵길 권한다. 이른바 ‘운카이(雲海) 테라스’를 보기 위해서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구름이 바다처럼 깔리는 장면과 마주할 수 있다. 대체로 9월까지 이 같은 현상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게 리조트 측의 설명이다. 운카이 테라스는 10월까지 오전 4~8시 운영된다. -구로다케 로프웨이(www.rinyu.co.jp)는 어른 왕복 1950엔이다. 리프트 요금 600엔은 별도다. -ETC카드는 반드시 신청하는 게 좋다. 우리의 고속도로 ‘하이패스’와 비슷한 개념으로, 일정액을 내면 신청기간 내내 고속도로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렌터카의 경우 경차는 대략 하루 5000엔부터다. 한국어 내비게이션과 보험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주유비는 ‘레귤러’ 휘발유 기준으로 ℓ 당 120엔 안팎이다.
  • “아름다운 석양 속 웨딩사진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아름다운 석양 속 웨딩사진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장엄한 석양을 배경으로 벼랑 위에서 촬영된 아름다운 웨딩사진이 소셜네트워크를 타고 화제에 올랐다.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미 NBC뉴스 등 현지언론은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계곡에서 촬영된 한 장의 웨딩 사진과 이에 얽힌 사연을 보도했다. 오렌지빛으로 아름답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벼랑 위에 서있는 커플을 담고 있는 이 사진은 1일 촬영된 것이다. 당시 하와이 출신의 사진작가 마이크 카라스가 소문난 요세미티 계곡의 석양을 찍기위해 출사에 나섰다가 우연히 한 커플을 목격한 것. 카라스는 "사진 촬영 중 예복을 차려입은 신랑, 신부가 벼랑 끝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을 봤다"면서 "석양빛으로 물든 하늘과 계곡으로 펼쳐진 광경이 정말 숨막힐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내 인생 최고의 역작 중 하나로 평생 잊지 못할 사진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 사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카라스가 작품 속 주인공을 찾는다는 사연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다. 카라스는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장면의 모델이 되어준 커플에게 감사하다"면서 "꼭 주인공을 찾아 사진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은행·금강송·주목… 대통령들이 심은 나무

    은행·금강송·주목… 대통령들이 심은 나무

    산림청은 세계기록총회(5~1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기간인 6~9일 진행되는 산업전 공공부스에 우리나라 산림녹화 역사 기록물 100여점을 전시한다. 6·25전쟁의 폐허 속 화전민, 송충이 잡기에 동원된 고사리손과 주민들의 모습 등 아픔이 담긴 사진도 만날 수 있다. 식목 행사에 참가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 모습도 정리했다. 식목일은 1949년 제정돼 서울시에서 행사를 주관하다 1970년 산림청이 정부 차원에서 기념식을 진행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0년 식목일 당시 광릉시험림에 ‘공손수’(公孫樹)로도 불리는 14년생 은행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심은 뒤 80∼150년 뒤에야 열매를 맺고 풍성해져 손자와 그 후대를 위한 나무라는 의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크게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며 1980년 11월 첫째 토요일로 지정된 육림의 날에 30년생 독일가문비(소나무과)를 심었다. 검푸른 색깔에 우뚝 솟은 모습이 군인의 위용을 닮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9년 식목일에 20년생 분비나무(소나무과)를 심었다. 분비나무는 한라산과 지리산 등 높은 산 정상 부근에서 자라 청초하면서 단정한 느낌을 주지만 대기오염에 약한 게 단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2년 식목일에 경기 포천군 소흘읍 국립수목원에서 ‘산림헌장’ 비석을 제막하며 17년생 금강송을 심었다. 숭례문과 광화문 복원에 쓰일 정도로 우량 품종인 금강송은 강원 금강산에서 경북 조령을 잇는 산맥, 특히 계곡 부위의 토양 수분이 좋고 비옥한 지역에서 잘 자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를 9개월 앞둔 2007년 5월 국립수목원에서 28년생 주목을 심었다. 이 나무는 1년가량 더딘 성장으로 수목원을 당황하게 하다가 회복돼 검푸른 잎과 원추형의 독특한 모양으로 자랐다. ‘경제 대통령’을 모토로 내걸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2년 식목일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에 ‘금빛노을’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신품종 황금색 주목을 식수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 식목일을 맞아 30년생 구상나무(소나무과)를 심었다. 국내에만 자생하는 특산수종이지만 최근 심각한 고사 상태를 보였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국립공원 5곳 탐방예약제 확대

    국립공원 5곳 탐방예약제 확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5일부터 10월 4일까지 지리산·오대산 등 5곳에서 탐방예약제를 시범 실시한다. 구간은 지리산 탐방지원센터~구룡폭포(3.1㎞), 오대산 진고개~동대산~동피골(4.4㎞), 속리산 첨성대~도명산~학소대(6.2㎞), 월악산 계란재공원지킴터~옥순봉·구담봉(2.9㎞) 등 4곳이다. 산림청에서 예약제를 시행 중인 설악산 강선리~곰배령(5.1㎞)도 포함됐다. 지리산 구룡폭포 구간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것으로 하루 탐방 인원이 300명으로 제한된다. 탐방예약제로 운영되는 국립공원은 지리산 칠선계곡과 노고단, 북한산 우이령 구간 등 8곳으로 늘었다. 지리산 칠선계곡(9.7㎞)은 5~6월, 9~10월 매주 2회 운영한다. 노고단(0.5㎞)은 7~10월 하루 3회 탐방 가능하다. 자연 자원 보호를 위해 북한산 우이령길(4.5㎞)은 탐방 인원을 하루 10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국립공원 탐방예약제는 해마다 탐방객은 증가하나 무계획 산행과 정상 정복형 산행 등으로 훼손이 심각한 생태계 보전과 슬로 탐방문화 확산 등을 위한 관리체계다. 구간별 허용 인원 등 탐방예약제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공단 예약통합시스템 홈페이지(reservation. knps.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시범 운영 구간은 전화나 현장 접수 등을 통해 예약 신청을 할 수 있고, 매주 일요일 레인저와 함께하는 산행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공단 관계자는 “국립공원 생태계 보전과 슬로 탐방문화 확산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탐방예약제를 전 국립공원에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보성 차밭·득량만 청정해역 근접… 자연체험·힐링·워크숍 명소 ‘각광’

    [명인·명물을 찾아서] 보성 차밭·득량만 청정해역 근접… 자연체험·힐링·워크숍 명소 ‘각광’

    전남 보성군이 직접 운영하는 제암산자연휴양림이 체험, 휴양, 힐링, 워크숍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한 장소에서 이 모든 즐거움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도록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진 국내 대표적 숲속 휴양지다. 보성차밭과 한국차박물관, 득량만 청정해역인 율포솔밭해변,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 등 주변 관광지와 함께하면 행복감도 갑절로 느낄 수 있다. 보성군 웅치면에 있는 제암산자연휴양림은 임금제(帝)자 모양의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제암산(해발 807m)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호남정맥의 한반도 남쪽 끝자락에서 휘감아 도는 제암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재상의 명당 터로 알려져 몸에 기운을 받고자 하는 관광객의 발길이 연중 이어지고 있다. 해발 500m 아름드리 편백숲길을 따라 물소리마저 시원하게 부서지는 자연휴양림 계곡은 섬진강의 발원지로 어린이를 위한 수심 50㎝의 안전한 물놀이장 2곳도 설치돼 있어 가족단위 관광객이 즐겨 찾고 있다. 1996년 개장 이후 소나무숲 야영장, 깨끗하고 맑은 물놀이장, 제암계곡 몽골텐트, 하이데크, 어린이 놀이터 등 매년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보완해 왔다. 숙박시설로 펜션형 숲속의 집 24동, 연립형 숲속휴양관 12실과 제암휴양관 11실 등 총 47실을 운영해 일일 최대 350명의 숙박이 가능하다. 제암산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자손 중에 제왕이 태어난다는 입소문으로 신혼부부나 아이를 원하는 부부들에게도 인기 장소다. 교육시설로는 3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다목적강당을 갖춘 숲속교육관이 있다. 대규모 행사가 가능한 7670㎡의 잔디광장이 있어 다양한 야외 행사를 할 수 있어 대학교 MT와 기업체 워크숍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일시에 5000명 이상 수용할 수가 있다. 담력과 체력을 키워 주는 숲속 에코어드벤처 모험시설도 있다. 어드벤처 시설은 길이 310m로 어린이·청소년·일반인용 등 3개의 체험 코스 40게임으로 구성돼 있다. 에코집라인 왕복 353m와 전용 집라인 왕복 637m 시설로 저수지 위를 나는 짜릿하고 색다른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전국 최고의 모험 시설도 갖춰져 있다. 2015년 3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숲속 어드벤처와 전용 집라인 시설이 점차 알려지면서 8월 현재 1만 5000여명이 이용할 정도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숲속모험시설 이용시간은 에코어드벤처는 매일 3회, 전용 집라인은 2회 운영되며 이용요금은 코스별로 비수기(5000~2만원)와 성수기(7000~2만 5000원)로 구분해 받는다. 제암산자연휴양림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된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혼자 산에 오를 수 없는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해발 500m 아름드리 편백숲까지 아무런 불편없이 오를 수 있는 무장애 데크로드(더늠길)와 흙길로 이루어진 숲속산책길 2.0㎞, 제암산 등산로 등 다양한 산책로와 등산길도 있다. 무장애 데크로드인 ‘더늠길’은 제암산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해발 500m에 위치한 아름드리 편백나무숲까지 경유하는 총 5.8㎞의 전 구간이 계단이 없이 나무데크로 만들어져 있다. 장애인 휠체어 이용자 등 보행약자들도 편안하고 안전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산책하면서 제암산 정상 임금바위를 바라보고 소원을 빌 수 있는 장소도 있다. ‘더늠’은 판소리 명창의 으뜸 재주를 일컫는 말이다. 인근에는 초록 물결 일렁이는 보성차밭을 비롯해 차에 관한 모든 것을 한눈에 알아보는 한국차박물관, 복합문화공간 봇재, 우리나라 최대의 철쭉군락지 일림산, 전국 3대 우수해변의 하나인 율포솔밭해수욕장과 해수풀장 등 주요 관광지가 자리하고 있다. 김모(45·광주광역시)씨는 “주변에서 제암산 휴양림이 유명하다고 적극 추천해 처음 왔는데 자연풍광이 빼어나다”며 “물놀이장과 모험시설도 있고 어른들이 좋아하는 데크로드가 갖춰져 온 식구가 한 장소에서 즐길 수 있어 아주 좋다”고 말했다. 이곳은 전국 최고의 체험·휴양·힐링 명소로 알려지면서 부지런하지 않으면 쉽게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자연휴양림 내의 각종 시설물 이용을 위해서는 홈페이지(http://www.jeamsan.go.kr)에서 사용일 기준 30일 전에 예약해야 가능하다. 비수기 주중 단체객 예약 등 문의는 제암산자연휴양림(061-852-4434)으로 하면 된다. 특히 제암산 자락에 지난해 3월 말 아토피 등 환경성질환의 치유와 휴양, 체험 시설을 갖춘 ‘전남권 환경성질환예방관리센터’가 문을 열 만큼 깨끗하고 맑은 공기로 유명하다. 광주·전남권에서는 유일한 시설이다. 환경성질환예방관리센터는 유해환경에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고 아토피 피부염, 천식, 알레르기 비염 등 환경성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치유·예방·관리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고자 설립됐다. 센터는 대지면적 8205㎡, 건축연면적 2123㎡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다. 기초검진과 식생활교육, 치유명상, 놀이체험 등 환경성질환 예방교육을 위한 교육관을 비롯한 황토·맥반석·산소찜질방, 녹차목욕탕 등 실내 건강증진을 위한 체험시설과 편안한 휴식과 휴양을 할 수 있는 숙박시설인 원기회복의 집(8실) 등을 갖췄다. 센터건물과 숙박동 모두 친환경자재로 만들어져 환경성질환에 대한 교육은 물론 친환경체험을 통해 힐링과 치유가 가능하며 제암산자연휴양림 내의 무장애 데크로드, 어드벤처 시설 등 다양한 시설을 함께 이용할 수 있어 시너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 초등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아동을 대상으로 환경생태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1박 2일 아토피 캠프는 환경성질환 예방관리교육, 녹차화분·EM비누·친환경음식 만들기 체험, 건강증진 체험 등을 실시하고 있다. 보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화려한 시절도 한 줌의 먼지로…화염 속 홀로 견딘 철불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화려한 시절도 한 줌의 먼지로…화염 속 홀로 견딘 철불

    남원 출신인 청계(靑溪) 양대박(梁大樸·1543~1592)은 아버지가 종3품 사헌부집의를 지냈지만 서자라는 한계로 벼슬길을 포기했다. 하지만 경제적 풍요를 바탕으로 명산대천을 유람하고 시를 쓰면서 유유자적 살았다. 한편으로 낮에는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히고 밤에는 병서를 읽었다. 남원부가 선조 16년(1583) 광한루를 중건하자 “십 년 안에 불타 버릴 테니, 성밑에 도랑을 파거나 진지를 쌓느니만 못하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의병 일으키고 허균 찬사받은 문인 결국 임진왜란이 일어나 영남 일대가 순식간에 왜군의 수중에 떨어지자 청계는 의병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담양의병장 고경명을 흔쾌히 상장군(上將軍)으로 세우고 스스로는 부장(副長)으로 몸을 낮추었다. 이들은 임실 운암에서 왜군과 대적해 무려 1300급을 베는 대승을 거둔다. 하지만 청계는 음력 6월 무더위에 병을 얻어 진중에서 세상을 떠난다. 정조 20년(1796) 병조참서가 추증되고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도 더해졌다. 뛰어난 문학적 감식안을 자랑한 교산(蛟山) 허균(許筠·1569~1618)으로부터 ‘시를 안다’(知詩)는 찬사를 받은 청계가 지은 시는 1만편이라고도 하고, 1000편이라고도 한다. 남원부윤으로 있던 남언경이 시첩을 빌려 갔다가 왜란통에 잃어버렸다. 아들 형제가 외우던 70수 남짓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작품을 모두 모았지만 320편에 그쳤다. 청계에게 지리산은 고향의 어머니품이나 다름없다. 지리산을 유람한 것은 모두 네 차례인데, 명종 15년(1560) 섬진강을 따라 화개로 접어들어 쌍계사와 청학동, 신흥사, 의신사를 돌아본다. 5년 뒤에는 백장사를 거쳐 천왕봉에 올랐고, 선조 13년(1580)에는 연곡사에서 출발해 지리산 일대를 둘러봤다. 선조 19년(1586)에는 곡성 청계동을 출발해 운봉과 황산, 인월, 백장사를 거쳐 실상사와 군자사, 용유담을 지나 천왕봉에 오르는 지리산 유람에 나선다. 친구인 춘간 오적과 삼촌인 양길보에, 소리꾼 애춘, 아쟁과 피리 잡이 수개와 생이도 11일 동안의 여정에 동행했다. 이때 ‘두류산기행록’과 다음의 ‘폐허가 된 실상사 옛터’(實相寺廢基)를 비롯한 일련의 기행시를 남겼다. 흥망은 한결같이 참 사유의 지침이요/밝고 어두움은 천 겁 세월의 먼지네 용천(龍天)들도 또한 사라져 없어지고/금지(地)는 이미 잡목 숲이 되었네 이끼 낀 비석에는 글자 하나 남지 않았고/텅 빈 산에 불상만 혼자 앉아 있네 흐르는 시내 다정도 하여/울며 불며 가는 길손 전송하네 ●한국 선풍 발상지… 부도·부도비 등 보물도 10점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우리나라 선종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세워졌다. ‘한국 선풍(禪風)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이 과장이 아니다. 중요한 문화재도 많다. 실상사 사역(寺域) 자체가 국가지정 문화재인 사적이다. 실상사를 창건한 증각대사 홍척의 부도와 부도비를 비롯해 보물도 10점에 이른다. 산내 암자인 백장암의 삼층석탑은 국보로 지정됐다. ●병화로 소실된 실상사… 옛 절터만 덩그러니 역사가 화려한 절이지만 ‘두류산기행록’에서 청계는 ‘실상사는 100년 전쯤 병화로 소실되었다고 하는데, 깨진 비석은 길옆에 쓰러져 있었고 전각은 모두 불타 버려 철불도 벌판의 대좌 위에 그저 앉아 있다’고 했다. 철불을 모신 약사전은 세조 14년(1468) 불탄 이후 효종 10년(1659) 중창됐고 숙종 27년(1701) 삼창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오늘날 실상사로 들어가려면 만수천에 놓인 해탈교를 건너야 한다. 만수천은 지리산 노고단에서 발원하여 달궁계곡을 거쳐 남강으로 흘러들어 낙동강에 합류한다. 폐허가 된 실상사를 안타까워하는 길손을 전송하던 만수천 물길은 지금도 여전하다. 청계가 묘사한 대로 벌판에 덩그라니 앉아 있던 실상사 철불은 보물로 지정된 철조여래좌상일 것이다. 높이가 269㎝에 이르는 당당한 모습으로 2014년 해체 보수한 약사전에 모셔졌다. 지난해는 ‘지리산 생명 평화의 춤’이라는 후불탱도 새로 조성했다. 기존 불교 미술의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난 후불탱의 불모(佛母)는 동양화가 이호신이다. 이 화백은 “아프고 병든 이를 치유하는 약사여래와 ‘내 손이 약속이오’ 하던 어머니 마음을 품은 지리산 마고할멈의 만남을 시절 인연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화개장터와 운조루, 서천리 장승, 산천재 같은 의미 있는 주변 지역 모습도 담았다. 새 후불탱은 전통을 잃어버린 시대, 불교 미술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 또한 작지 않다. dcsuh@seoul.co.kr
  • [新국토기행] 춘향의 고장 남원… 광한루엔 연인들의 ‘사랑가’ 한 자락

    [新국토기행] 춘향의 고장 남원… 광한루엔 연인들의 ‘사랑가’ 한 자락

    전북 남원시는 예로부터 ‘천부지지 옥야백리’(天府之地 沃野百里)라고 했다. 천부지지는 하늘이 고을을 정해준 땅이라는 뜻이고 옥야백리는 넓고 비옥한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다는 의미다.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했던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전북 5소경의 하나로, 고려시대는 남원부로, 조선시대에는 남원도호부로 전라도와 경상도를 아우르는 중요한 위치였다. 전북의 동남권으로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동으로는 경남 하동, 남으로는 전남 구례, 북동부는 경남 함양과 인접해 있다. 춘향전의 무대로 역사의 숨결이 담긴 문화유산이 풍부하고 먹거리도 풍성하다.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을 끼고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신명 나는 우리 가락 동편제의 본향이기도 하다. 현재 행정구역은 23개 읍·면·동(1읍 15면 7동)으로 구성돼 있고 인구는 8만 5000명이다. 볼거리 ●남한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지리산 지리산은 남한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산이다. 1967년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됐다. 해발 1915.4m의 천황봉을 중심으로 총면적이 440.4㎢이다. 능선의 길이가 동서로 40㎞에 이르는 거대한 산악군을 형성한다. 높이 1500m 이상 봉우리가 18개, 1000m 이상 봉우리는 40개나 된다. 큰 산줄기는 15개, 아름다운 골짜기가 20여개다.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피아골, 뱀사골, 칠선, 한신 등 4대 계곡은 저마다의 특색을 자랑한다. 국보와 보물을 간직한 대사찰과 수많은 암자가 지리산 자락에 안겨 있다. 화엄사, 쌍계사, 연곡사, 실상사 등 대사찰을 비롯해 많은 암자가 남아 있다. 문화재는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12호)을 비롯한 국보 8점, 보물 56점이 있다. 800여종의 식물이 분포하고 400여종의 동물이 서식한다. 천연기념물은 반달가슴곰(329호), 수달(330호), 하늘다람쥐(328호) 등이다. 지리산의 절경은 필설로 다하기 힘들다. 무수히 많은 비경이 사시사철 펼쳐진다. 지리산 둘레길은 3개도(전북·전남·경남) 5개 시·군(전북 남원시, 경남 함양·산청·하동군, 전남 구례군)에 걸쳐 있는 274㎞의 장거리 도보길이다. 정겨운 숲길, 논두렁길, 마을길을 환형으로 연결한다. 남원시에는 둘레길의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4개 구간이 있다. ●춘향전 배경·한국 대표 누각 광한루원 남원은 춘향의 고향이자 춘향전의 발상지다. 광한루원은 춘향전의 배경이 된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이다. 명승 제33호. 경회루, 촉석루,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누각에 들어갈 만큼 만듦새가 뛰어나다. 우리 선조들이 자연을 닮고자 하는 생각을 표현해 낸 정원으로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지상에 건설했다. 하늘나라 월궁을 광한루라 했고 그 아래 천상의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와 오작교를 놓았다. 오작교는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깃든 아름다운 돌다리다. 이곳에서 사랑을 약속하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다. 신선들이 산다는 전설 속의 삼신산을 연못 가운데 조성했다. 전체적인 구성이 천체우주를 상징한다. 인간이 천상의 세계를 꿈꾸며 달나라를 즐기려고 지었다는 완월정을 비롯해 춘향사당, 춘향관, 월매집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그네 등 전통놀이 체험장도 다양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남원 상징물·위락시설 모인 관광단지 한국관광공사가 남원의 모든 상징물과 위락시설을 모아 놓은 종합관광단지다. 남원시 어현동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춘향전과 관련된 춘향테마파크, 춘향문화예술회관, 국립민속국악원, 남원향토박물관 등 문화시설이 들어서 있다. 춘향테마파크는 춘향전의 스토리를 따라 5개의 장으로 꾸몄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곳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전’ 세트장도 이곳에 있다. 단심정에서는 남원시를 모두 조망할 수 있다. 숙박업소와 음식점도 잘 갖춰져 있다. ●천년 고찰 실상사와 중요 역사 유적들 남원은 역사를 품 안에 가득 채울 수 있는 여행이 가능한 지역이다.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민족정신이 응집된 역사의 고장이다. 천년 고찰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창건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종 사찰이다. 백장암 삼층석탑(국보 제10호)을 비롯한 국가지정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만인의총은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1만명의 넋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이성계 장군이 왜구를 물리친 황산대첩비와 피바위, 유구한 세월을 버티며 그 옛날 영화를 말해주려 하는 만복사지는 빼놓지 말아야 할 유적이다. 이 밖에도 용담사 석불입상, 대복사 동종, 선원사 칠조여래좌상 등 많은 유적이 보존돼 있다. ●정겨운 우리 가락 울리는 동편제 본향 우리 가락과 관련된 볼거리도 풍부하다. ‘남원 가서 소리 자랑하지 말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남원은 국악을 낳고 소리를 키운 고장이기 때문이다. 춘향가, 흥부가 등 판소리 동편제 본향으로 국악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보고 즐길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악성 옥보고는 지리산에서 거문고를 완성했다. 조선시대 가왕 칭호를 받은 송흥록의 생가도 보존돼 있다. 송흥록은 민속음악 가운데 가장 느린 진양조를 응용해 극적이면서 예술적인 판소리를 완성했다. 지방무형문화재 류명철씨의 전라좌도 남원농악관과 국립민속국악원이 있어 어딜 가나 정겨운 우리 가락과 풍류를 즐길 수 있다. 최명희의 장편 소설 ‘혼불’의 배경이 된 남원시 사매면 ‘혼불문학관’도 문학기행 코스다. 남원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먹거리 ●‘가을 보양식 으뜸’ 얼큰 구수한 추어탕 남원 먹거리의 으뜸은 추어탕이다. 광한루원 주변에 추어탕거리가 형성될 정도로 유명한 토속 음식이다. 남원 추어탕이 유명한 것은 섬진강 지류인 요천 등 청정 하천 곳곳에서 미꾸라지가 많이 잡혔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추수가 끝나면 통통하게 살이 오른 미꾸라지를 잡아 시래기와 토란대를 넣고 끓여 먹은 전통음식이다. 추어탕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새집’ 등이 각기 다른 조리법과 맛을 보여준다. 추어탕은 가을 미꾸라지를 최고로 친다. 미꾸라지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가을이면 몸속에 영양분을 가득 저장하기 때문이다. 여름 더위에 지친 원기를 회복시켜 주고 추운 겨울을 든든하게 버틸 힘을 주는 보양식으로 통한다. 남원 추어탕은 미꾸라지와 시래기 등으로만 시원하고 구수한 맛을 낸다. 된장, 들깨 불린 물, 다진 양념을 넣어 걸쭉하게 끓인다. 미꾸라지는 길이가 짧고 몸통이 동글동글한 ‘동글이’를 고집한다. 맛이 좋고 비린내가 적다. 지리산 고랭지에서 재배되는 추어탕 전용 무청도 남원 추어탕의 맛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입맛에 따라 향신료인 제피가루(초피가루)를 뿌려 먹는 것도 특징이다. 추어튀김, 추어숙회도 유명하다. ●‘탱글탱글 감칠맛’ 흑돼지 버크셔K 남원에서 생산되는 흑돼지는 ‘버크셔K’라는 특별한 품종이다. 미국계 버크셔 품종을 들여와 한국 기후에 맞게 육종했다. 2004년 미국에서 유전자원을 도입·개량해 국제식량기구(FAO)에 새로운 품종으로 등재했다. 해발 500m 고랭지에서 기르기 때문에 일반 돼지보다 육질이 부드러우면서 씹는 맛이 고소하다. 탱글탱글한 육질에 부드럽게 녹는 듯 씹히는 비계의 식감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낸다. 백색 돼지와 달리 근섬유의 단면적이 작으면서 수가 많아 촉촉하면서 탄력 있는 식감을 주고 감칠맛이 뛰어나다. 비계도 다른 돼지에 비해 수분이 20% 정도 적고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부드럽고 잡내가 없다. 운봉읍 등 4개 읍·면 흑돼지 사육농가들이 생산하고 있다. 농가들은 엄격한 품질 관리를 위해 법인을 설립하고 공동출하, 공동판매를 하고 있다. 관광산업과 연계시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지리산 나물 풍성’ 한정식·산채정식 남원은 예로부터 음식이 발달한 맛의 고장이다. 지리산을 끼고 있어 다양한 산채가 연중 생산되고 남해안에서 건져 올린 생선류도 전라선을 타고 곧바로 공급되기 때문이다. 한정식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30여 가지의 반찬이 상을 가득 채운다. 고기와 생선은 물론 나물류가 다양하다. 무·배추·파·고들빼기, 물김치 등 여러 종류의 김치와 꼬막, 새조개, 굴 등 다양한 어패류가 상에 오른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얇게 저며 석쇠에 구운 숯불구이가 유명하다. 산채정식은 지리산에서 채취한 향기로운 산나물이 주재료다. 고사리, 취, 미나리, 도라지, 뽕잎, 시래기, 명이, 쑥부쟁이, 곰취, 곤드레, 비비추, 원추리, 땅두릅, 엄나물, 두릅 등을 데치고 말려 고소하게 볶아낸다. 남원시 근교는 물론 지리산 자락인 주천면 고기리 일대에 산채정식 집들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건배 전통주 ‘황진이’ ‘황진이’는 각종 주류 품평회에서 크고 작은 상을 휩쓴 전통주다. 지리산 자락 농가에서 빚어 오던 오미자 약주를 발굴 계승한 순수 발효주다. 2006년 남북정상회담 건배주, 2007년 전통주품평회 대상, 2007년 제1회 대한민국주류품평회 금상, 2013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대상 등 화려한 수상 이력을 자랑한다. 청정지역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한 오미자와 산수유를 쌀과 누룩으로 발효시켜 빚는다. 깊고 풍부한 맛, 환상의 붉은색이 조화를 이뤄 남녀 모두가 즐겨 찾는 남원의 대표 전통주로 통한다. 남원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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