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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남북정상회담] 노대통령 언급 ‘불신의 벽’은?

    역시 ‘불신의 벽’이 높았나? 3일 첫번째 단독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뒤 노무현 대통령은 옥류관에서 수행원들과 점심식사를 하기 전 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불신의 벽’과 ‘역지사지’라는 말을 썼다. 남한에 대한 북한의 불신이 크다고 판단하고, 경협 등에 대해 역지사지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는 뼈 아픈 소회를 내비쳤다. 노 대통령은 “남측이 신뢰를 가지고 있더라도 북측은 아직도 남측에 여러가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불신의 벽을 허물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예를 들면 개혁과 개방이라는 용어에 대한 불신감과 거부감을 어제 김영남 상임위원장과의 면담, 오늘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느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밝힌 북한의 불신감과 거부감은 경협 등 우리 정부의 화해·협력 정책이 북한을 개혁·개방시켜 결국 체제 붕괴를 노린 것 아니냐는 북한 지도부의 의심이 계속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예를 들며 이를 둘러싼 불신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역지사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개성공단을 아주 만족하는 성공적인 사업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북측이 속도의 문제에 대해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우리는 개성공단을 ‘개혁과 개방의 표본’이라고 많이 얘기했는데 우리식 관점에서 우리 편하게 얘기한 것이 아니었냐. 북측이 볼 때 역지사지 하지 않은, 그런 것이다.”고 말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하루 빨리 확대, 성공시켜 경제 발전의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남측이 분양에 주춤거리는 등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은 개성공단에 정보기술(IT) 등 첨단산업 진출을 원하지만 남측은 제조업 중심의 중소기업 위주로 운영하고 있는 점 등도 불신의 벽을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노 대통령은 “개성공단의 성과를 얘기할 때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는 용의주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며 “북측의 입장과 북측이 생각하는 방향도 존중해서 불신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함께 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수행원들에게 당부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정상회담 합의용 경협 확대를 위한 포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남북간 인식의 차이가 있는 부분을 솔직하게 설명했지만 북측의 입장만 너무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노 대통령의 옥류관 발언은 적절치 않은 면이 있다.”며 “개성공단에 대해 북측이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을 대통령이 여태 몰랐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사설] 의미있는 남북 정상선언 기대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어제 가진 두 차례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사항을 오늘 오전 발표키로 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선언 형식의 발표를 예고했다.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이어 2007년 10·4 평화선언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 정상간 의견을 모은 내용을 실무선에서 충분히 조율, 내실있는 선언문을 내놓길 바란다. 노 대통령은 “회담 결과가 만족스럽다.”면서 “평화에 대한 김 위원장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도 앞서 “노 대통령께서 군사분계선을 넘어 육로로 오셔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정전체제 해체에 관심을 표명했다. 두 정상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나 단순한 선언을 넘어 평화지대 설정 등 실천이 담보된 평화선언이 나와야 할 것이다. 두 정상은 경협확대 방안도 집중 논의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놓고 양측간 불신과 거부감이 존재함을 인정했다. 대화를 통한 신뢰구축으로 북한 경제특구 확대 등 경제공동체를 구현하는 구체안이 합의되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 공동번영의 전제 조건은 비핵화 달성이다. 어제 6자회담 공동문건이 최종타결됨으로써 연내 북핵 불능화라는 또 한번의 큰 발걸음을 떼게 되었다. 나아가 김 위원장이 모든 핵물질과 핵무기까지 포기하는 결단을 내린다면 한반도 평화와 공동번영은 급물살을 탈 것이다. 김 위원장의 현명한 판단을 거듭 촉구한다. 정상회담 도중 김 위원장이 노 대통령에게 평양 체류 일정을 하루 연장하는 방안을 제안해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예정대로 오늘 귀환하기로 결정했고, 아리랑 공연 관람을 비롯해 정해진 일정을 소화했다. 북한측이 수시로 스케줄을 변경하는 처사는 국제관례에 맞지 않지만 회담 과정보다는 성과를 보고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 [2007 남북정상회담] 탈북 김병욱 “희생자 더 없길”

    [2007 남북정상회담] 탈북 김병욱 “희생자 더 없길”

    “북한 주민들의 의식주와 인권을 외면하고 있는 김정일 정권이 너무도 밉습니다. 그래도 지금 평양에서 진행 중인 남북정상회담은 반드시 성공적으로 마무리돼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뿐 아니라 남한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에게는 이번 회담이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기 때문이지요.” 함경북도 공무원 출신으로 2002년 9월 북한을 탈출,2003년 남한에 정착해 북한 경제학을 연구하는 김병욱(44)씨는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다. ‘통일이 성큼 다가왔다.’는 감상에 젖기보다는 ‘이제야 통일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냉철한 판단이 앞서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회담이 대선을 앞둔 이벤트 아니냐.’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제가 보기엔 두 가지 성과를 거뒀다고 봅니다. 하나는 남북 사이에 정상회담을 정례화하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이죠. 북한 체제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실상 전권을 행사하는 만큼 그를 자주 만난다는 것 자체가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있다는 의미죠. 또 하나는 대북관계의 동력이 북·미관계에서 남북관계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입니다.1994년 남북정상회담 준비 당시만 해도 북·미관계 개선이 전제 조건이 됐지만 지금은 남북정상회담이 북·미관계를 개선시키는 동인이 되고 있어요.1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죠.” ●“동생과 살고싶다” 탈북했던 친형 강제소환후 사망 김씨는 탈북과 관련한 가슴 아픈 사연을 갖고 있다.2005년 친형인 병철(당시 51세)씨가 “동생과 함께 살고 싶다.”며 탈북했다가 중국 공안에게 붙잡혀 북한으로 강제 송환됐다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이 때문에 지난 2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는 장면을 보면서 북한 정권에 대한 원망과 북한 주민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고 한다. “아직도 형 생각만 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래서인지 두 정상이 만나는 장면을 TV로 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과는 별개로 남북회담은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이번 회담은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북한 정권에 대한 호감 같은 선입견으로 평가할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북한 주민들의 직접적인 삶뿐 아니라 남한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의 사회적 지위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당장 생각해 봐도 회담이 잘 진행돼 우리 형 같은 희생자가 더이상 나오지 말아야죠.” ●“관광 산업등 새로운 남북경협 모델 필요해” 김씨는 북한 내 엘리트 출신 경제학자답게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에도 새로운 남북 경협 모델의 필요성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북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의 성과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북한의 싼 노동력을 토대로 남한 내 사양산업을 유치하는 현 방식은 몇 년 못가서 한계에 이를 것으로 봅니다. 관광산업이나 대체에너지 산업 등 북한이 남한보다 더 큰 잠재력을 갖고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새로운 남북경협 모델을 시도해 보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북한에는 기암괴석의 절경 속에 지은 고찰들이 많습니다. 경제특구인 나진·선봉지구만 해도 바람이 셉니다. 이런 풍력 자원 등을 잘 개발하면 남한 입장에서는 기존에 없던 새 자원을 확보하게 돼 북한 주민들에게까지 그 혜택이 돌아가 일석이조이지요. 앞으로 지향해야 할 경협은 이같은 ‘원-윈’모델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글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통큰 투자를” “3通해결부터”

    [2007 남북정상회담] “통큰 투자를” “3通해결부터”

    “통 크게 대북 투자를 늘려주시라요.”(북측) “자유로운 통행과 통신 보장을 해야 투자를 더 할 수 있지요.”(남측) 남북 경제인들이 경제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등 6명의 국내 기업 대표들은 3일 오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북측 한봉춘 내각참사 등 6명의 경제인과 1시간30분여 동안 간담회를 가졌다. 남측에서는 정 회장 외에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구택 포스코 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재계 실세들이 참석했다. 북측에서는 한봉춘 내각참사를 단장으로 남북 경협을 주도해 온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협) 출신들이 대거 모였다. 장우영 민경협 부회장 겸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장, 리철·한인덕 민경협 참사, 계봉길 민경협 연구원이 배석했다. 조현주 민경협 책임참사는 간사역할을 맡았다. 이날 1시간여 동안 진행된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대북경제협력, 투자확대 방안 등 남북 경제협력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 청사진 마련에 의견을 모았다. 남측은 통행, 통관, 통신을 일컫는 이른바 ‘3통(通) 문제’가 향후 대북사업 확대 및 남북 경협 강화를 위한 필수 선결과정임을 강조했다. 북측 대표단은 “이제는 경협의 수준이 한 차원 높아져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1차 산업과 임가공 중심의 경제협력을 생산적인 투자협력 단계로 올려야 하며, 민족 공동번영과 이익을 고려해 투자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측의 한 대표는 “통 크게 사업을 추진해 주길 바란다.”면서 대기업의 전향적인 대북투자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남측 대표단은 “투자 확대를 위해서는 북측의 제도적 조건과 투자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한호 광업진흥공사 사장은 “북측에 풍부한 지하자원이 매장돼 있으나 세계적 수준의 제조기술을 보유한 남측은 자원의 대부분을 해외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며 “지하자원 개발이 민족경제협력에서 실현 가능성이 높고 양측 모두에 이익이 되는 좋은 분야”라고 말했다. 김재현 토지공사 사장은 “개성공단 2단계 사업의 조기 착수를 위해 사전 준비를 완료한 상태”라며 “개성공단 1단계 탈락기업 200여개 업체의 입주 수요와 4년여의 공사기간을 감안할 때 사업의 조기 착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추가적인 경제특구 개발과 관련한 당국간 협의가 성과있기를 기대한다.”면서 “토지공사는 개성공단 개발 경험과 북측의 신뢰를 바탕으로 공단 2단계와 추가 특구 건설에 참여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권홍사 대한건설협회 회장은 건설분야의 별도 협의채널 구성을 제안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회단체·언론분야 - 베이징 올림픽 남북 단일팀 합의 남북의 사회단체·언론인들은 사회단체·언론분야 간담회를 열고 내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남북단일팀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정세현 민화협 상임의장은 간담회 직후 “남과 북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남북단일팀을 5대5 원칙으로 구성하되 선수들의 능력을 감안해 구성하자는 데 의견을 접근을 보았다.”면서 “실무적인 문제는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남측은 또 개성에 남과 북이 공동으로 영화 방송 세트장 혹은 영화 제작센터를 만들자고 해 긍정적인 답을 얻었다. 언론부문에서 남측은 서울과 평양에 상주 특파원제도를 도입하는 방안과 함께 평양에 프레스센터를 건립하자고 제안했지만 결론은 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정치분야 - 남북국회회담 정례화 등 논의 정상회담 정치분야 특별수행원인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 국회·정당 관계자들은 3일 만수대 의사당에서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등 북측 정당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남북 국회회담 정례화 문제 등을 논의했다. 남측 단장을 맡은 김 전 의장은 기조발언에서 남북 국회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요청했다. 김 전 의장은 “이번 정상회담에 맞춰 남북 관련 제반 법제 제·개정 요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남북 국회회담에서 남북관계 발전에 부합하는 법제 현안들을 시의적절하게 조율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측 단장인 최태복 의장은 6·15공동선언에 대한 남북 국회의 공동지지 선언을 제안했다. 양측은 자주 만나 신뢰의 폭을 넓혀 가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했으나 각자의 제안에 대해서는 결론 없이 회담을 마쳤다. 간담회에는 남측에서 김 전 의장과 배기선 국회 남북평화통일특별위 위원장, 김낙성 국민중심당 정책위의장, 문희상 대통합민주신당 남북정상회담지원특위 위원장, 이상열 민주당 정책위의장, 천영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 등이 참석했다. 북측에서는 최태복 의장과 김완수 조국전선중앙위 서기국장, 성자림 김일성대 총장, 리경훈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부장, 김지선 사민당 중앙위 부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종교 분야 - 평화주간 공동행사 제의 북측 긍정 반응 남북의 종교인들이 모인 종교분야 간담회에서 남측은 평화주간을 정해 남북의 문화·예술·체육 행사 등과 함께 종교별 공동행사를 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북측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간담회에서 남측은 종교단체간 인적 교류와 북측의 종교시설 복원 등을 의제로 삼았고, 북측은 민족성과 민족문화 전통을 고수할 것을 강조했다. 남측 종교인들은 올해 안에 남측에서 ‘종교인 평화대회’를 열어 종교인 평화선언을 채택할 것과 남북 종교시설 상호방문과 확충 필요성을 제기했다. 남측에서는 이성택 원불교 교정원장, 장익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 권오성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등이 참석했다. 북측에서는 유영선 조불련 중앙위원장, 강지영 카톨릭교연맹 중앙위 부위원장, 오경우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중앙위 서기장, 김영철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중앙위 부원 등이 참석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여성분야 - 북 “남측의 탁아 지원사업 동의”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여성분야 간담회에서 남측 단장인 김화중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은 “다른 분야에 비해 여성 교류가 상대적으로 미진해 구체적 사업을 통해 여성교류를 정례화하자.”고 제안했다. 김 회장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여성교류가 다시 가속화되면서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에 남북이 공동으로 일본 천황을 기소하는 성과와 함께 올 7월에는 미국 하원에서도 일본군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됐다.”며 “여성과 아동의 영양, 건강관리 등 의료를 포함해 사회, 문화, 예술분야 등 전문분야별로 교류하고 협력해 상호협력과 통일과업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북측 단장인 김영옥 여맹 중앙위 부위원장은 “6·15선언 이후 북남관계가 큰 전진을 했다.”며 “남측의 탁아지원 사업 등에 대해 동의한다.”고 말했다. 간담회에는 남측에서 김화중 회장과 정현백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김홍남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북측에서 김경옥 부위원장과 서옥선 조선여성협회 상무위원, 정명순 중앙방송위 국장, 김인옥 6·15북측위 여성분과위원, 박영희 민화협 여성부장이 참가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문화·예술분야 “백두산 소나무를 광화문 기둥으로”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문화·예술·학계 간담회는 의미있는 합의는 없었지만 각종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남측 간사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북한에는 있지만 남측에 없는 이만희 감독의 ‘만추’ 필름을 교환하자는 문성근씨의 의견에 북측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조선 소나무를 백두산에서 베어 뗏목을 만들어 압록강에서 서해까지 가지고 오는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북측은 좋은 생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 같은 소식에 문화재청 관계자는 “백두산 소나무를 광화문 기둥으로 쓸 수 있다면 상징적 의미가 대단할 것”이라며 반겼다. 이수훈 동북아시대위원장은 남북간 국책연구소장 교류를 제안했다. 이날 행사에는 남측은 단장인 이세웅 예술의전당 이사장 등 10명, 북측에서는 단장인 리종혁 조선통일연구원 원장 등 총 8명이 참석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4일 ‘남북공동선언’ 발표

    [2007 남북정상회담] 4일 ‘남북공동선언’ 발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두 차례 걸쳐 도출해 낸 남북정상회담의 합의 사항을 4일 공동선언 형식으로 발표한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3일 저녁 평양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혔다. 두 정상은 합의문안에 서명한 뒤 함께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형식은 지난 1차 정상회담의 합의문이던 ‘남북공동선언’과 같은 ‘남북공동선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남북공동선언’에는 한반도 평화정착, 남북경제협력, 남북 화해와 협력을 위한 제반 조치 등에 대한 두 정상간 합의 사항들이 3∼5개항으로 포괄적으로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노 대통령은 만찬에서 인사말을 통해 “정상회담은 시간이 아쉬울 만큼, 평화와 공동번영, 화해협력 문제에 이르기까지 유익하고 진솔한 대화가 이루어졌다.”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이어 “남쪽의 투자가 북쪽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고, 그것이 남쪽 경제에도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되는 방향으로 협력의 차원을 끌어올려야 한다.”며 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한 폭 넓은 의견 개진이 이뤄졌음을 밝혔다. 구체적으로 “경협이 단순 교역이나 개발 사업 위주의 산발적인 협력을 넘어서, 장기적인 청사진과 제도적 기반 위에서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에 따라 남북 양측은 남북정상 간의 합의 내용을 토대로 실무진 간에 선언 내용과 문안 조율에 착수했다. 천 대변인은 “선언문안 협의는 장관급에서 할 수도 있고 또는 그것보다 좀 낮은 급에서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날 아리랑 공연과 만찬에 모두 불참했다. 앞서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9시34분부터 오전 11시45분, 오후 2시45분부터 4시25분까지 백화원 영빈관에서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4시간가량 의제에 대해 논의했다. 회담에는 남측에서 권오규 경제부총리,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정원장,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이, 북측에서 김양건 통일전선부 부장이 각각 배석했으며 조명균 청와대 안보정책조정비서관이 기록을 위해 회담장 뒷줄에 배석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회담 배석자 면면은

    3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단독 정상회담에는 남측에서 권오규 경제부총리와 이재정 통일부장관,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등 4명이 배석했다. 북측에서는 대남전략을 총괄하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단독 배석했다. 남북 배석자 면면으로 보면 2000년 정상회담 때와 비슷하다. 당시 남측 배석자는 임동원 대통령 특보와 황원탁 안보수석, 이기호 경제수석 등 3명이었다. 북측에서는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에 이어 오후 회담에는 림동옥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이 추가로 참석했다.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가 한반도 평화정착과 경제공동체 구축임이 배석자 진용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백종천 안보실장은 참여정부의 통일·외교·안보정책 분야에서 노 대통령을 보좌하는 최측근 참모라 필수 배석자로 꼽혀 왔다. 백 실장은 북핵 문제와 서해북방한계선(NLL) 문제 등 한반도 평화관련 의제에 대해 노 대통령의 판단을 도왔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만복 국정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라 배석자 1순위로 거론됐다. 오랫동안 대북 정보 파트에 몸담아 온 전략가로, 공식 수행원 중에서 북한의 ‘속내’를 가장 잘 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권오규 부총리는 한반도 경제공동체와 관련한 논의에 적극 참여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 차관급인 이기호 경제수석이 배석했던 것과 비교하면 남북경협에 대한 노 대통령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배석은 노 대통령의 회담 전략을 비롯해 이번 정상회담의 후속조치를 추진해야 한다는 점이 고려된 조치로 풀이된다. 전날 환영식에서 김 국정원장과 달리 ‘꼿꼿한 자세’로 눈길을 끈 김장수 국방부 장관은 배석자에서 제외돼 또 다른 주목을 받았다. 북측 배석자인 김양건 부장은 김만복 국정원장과 함께 이번 회담의 개최를 이끌어낸 주역이다. 전문 외교관료 출신으로, 핵문제로 북·미 갈등이 불거질 당시 국방위원회 참사를 맡아 6자회담 대책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당 국제부장을 지내고 김 위원장의 대중국 라인 역할도 하는 등 한반도와 국제 정세에 해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팔도 대장금 요리’ 북측에 대접

    노무현 대통령은 3일 밤 10시가 넘어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답례만찬을 주최했다. 당초 기대를 모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불참했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고위인사들만 자리를 함께 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치른 2차례 정상회담에 대해 “시간이 아쉬울 만큼 유익하고 진솔한 대화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또 “김 위원장의 평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기회가 됐다.”고 소개했는데, 이는 남측 수행원들과의 오찬에서 이미 언급했던 내용이다. 노 대통령은 특히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과 관련해 “서로의 장점을 살려 개성공단과 같은 협력 거점을 단계적으로 넓혀 나간다면 남북 모두에 이익이 되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경제공동체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공동체는 평화의 공동체이기도 하다.”며 “경제 협력이 평화를 다지고 평화에 대한 확신이 다시 경제 협력을 가속화하는 선순환적인 발전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김 상임위원장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해 온갖 도전을 이겨내고 격변하는 정세 속에서 역사의 기회와 민족의 진로를 자주적으로 열어나가야 한다.”면서 “모든 장벽을 초월해 민족 대의를 앞에 놓고 북남이 뜻과 힘을 합쳐 나가자.”고 화답했다. 이어 “남측의 대통령이 육로로 분계선을 넘어 평양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고, 대통령이 자기 차를 타고 오신 것도 처음이다.”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것은 6·15공동선언 이후 또 하나의 경이적인 현실로서 온 겨레에 커다란 기쁨과 희망을 안겨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노 대통령의 평양 체류 기간은 비록 짧았지만 이번 걸음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좋은 걸음으로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답례만찬 메뉴는 ‘팔도 대장금 요리’라는 주제로 남측 각 지방의 토속 식재료를 이용한 특색있는 향토음식으로 구성됐다. 영덕게살 죽순채, 봉평 메밀쌈, 흑임자죽, 완도전복과 단호박찜, 제주흑돼지 맥적과 누름적, 고창 풍천장어구이, 횡성·평창 너비아니 구이와 자연송이, 전주비빔밥과 토란국, 호박과편, 삼색매작과와 계절과일, 안동 가을 감국차 등이 상에 올랐다. 건배주와 식사주로는 부산의 천년약속, 경기 화성의 백세주, 전북 고창의 선운산 명산품 복분자주가 올라갔다. 앞서 노 대통령은 이날 낮 평양 옥류관으로 남측 수행원과 기자단 등 200여명 전원을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메뉴는 평양냉면이었다. 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오전에 (김 위원장과)숨김없이 진솔하게 얘기를 나눴다. 분명하게 확고한 평화의지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래를 위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합의했다. 논쟁이 따로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솔직하게 말하면 ‘벽’을 느끼기도 했다.”며 “남측은 신뢰하고 있는 사안에 북은 의심을 가지고 있는 불신의 벽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오전에 대화를 나눴지만 세세한 얘기는 오후에 하겠다.”면서 “차비가 많이 들었다.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인사말을 맺었다.강국진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지자체 남북교류사업 재개

    지자체 남북교류사업 재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자치단체들의 남북교류사업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전남·북, 경북, 제주 등 지자체들은 지난해 10월 북한 핵문제로 일시 중단됐던 남북교류사업을 일제히 재개했다. 전남·북지사와 시장·군수 등은 이달 하순 북한을 방문, 각종 지원사업 준공식을 갖는다. 경북도는 ‘남북경협 조례’를 제정해 지자체 차원의 교류사업을 제도화하기로 했다. 제주도 역시 제자리걸음만 했던 ‘한라-백두 교류사업’을 다시 추진키로 했다. ●전남·북 단체장들 하순에 북한 방문 박준영 전남지사를 비롯해 전남지역 단체장들은 오는 26일부터 29일까지 북한을 방문한다. 이번 방북에는 시장·군수, 지방의원,(사)전남도민남북교류협의회 관계자 등 130여명이 참여한다. 이들은 북한어린이들의 영양 보충을 위해 (사)전남도민남북교류협의회의 지원으로 지난 4월 평양시 만경대구역 칠골동에 착공, 설립한 콩 발효식품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다. 하루 2만명에게 청국장 등을 공급할 계획이다. 이 협의회는 북한측 민족화해협의회와 협력해 2003년 평남 대동군에 농기계 수리공장을 세우고 지난해에는 평양에 1만 6500㎡ 규모의 친환경 남새공급소를 조성했다. 전북도 역시 23일부터 25일까지 북한을 방문한다. 김완주 전북지사와 도내 시장·군수, 지방의원, 농어민단체 관계자등 100여명은 평남 남포특급시 대대리에서 열리는 축사 준공식에 참석할 계획이다. 이 축사는 전북도가 지난해부터 11억원을 투자해 건립한 것이다. 김지사 일행은 이번 방북기간에 축사에서 기를 종돈 250마리도 전달키로 했다. 이 종돈은 전북도와 도내 14개 시·군의 공동 지원으로 최근 남포특급시 대대리에 설립된 축사에서 사육된다. 전북도는 2004∼2006년 20여억원을 들여 남포시에 농기계와 농기계수리공장, 농자재 등을 지원했다. ●경북, 자치단체 차원 남북교류 제도화 경북도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경협 조례 제정’ 및 ‘우선 사업 선정’ 등 도 차원의 남북교류협력사업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1단계로 문화, 관광, 체육, 학술 등 민간교류 중심의 만남으로 이해의 폭을 넓히기로 했다. 이를 위해 경북에서 태어나 북한지역에서 활동한 영천 출신의 최무선 장군과 정몽주 선생, 울릉도·독도를 지킨 안용복 장군 등 역사적 인물을 함께 재조명하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안동 하회탈춤과 북청 사자놀이 교류, 신라·고구려사 공동연구, 경주∼개성 왕조 유적 발굴조사,21세기 새마을운동 보급, 독도를 포함한 동해안 역사·생태자원 공동연구조사, 금강산∼울릉도 관광루트화 등도 검토하고 있다. 2단계로는 남북한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사업을 추진한다. 전국 최고 경쟁력을 갖춘 경북 사방(沙防)의 노하우를 전수해 홍수나 남벌로 헐벗은 북한의 산을 복구하는 사업이 검토되고 있다. 남북합작의 키 낮은 사과원 시범조성과 벼 육묘공장 설치 및 기술 지원, 우수 한약재 생산·가공단지 조성도 검토 대상이다. 경북도는 포항 영일만 신항을 중심으로 동해안 일대를 남북교류의 중점 항만으로 육성해 환동해권 물류·교통·산업교류 거점지역으로 개발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도는 현재 입법예고 중인 ‘경북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조례(안)’가 제정되면 각계 전문가를 중심으로 남북교류협력위를 구성, 운영할 계획이다. ●제주, 한라-백두 교류사업 재추진 제주도는 ‘한라-백두 교류사업’을 다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라-백두 교차관광’이 합의돼 제주도민 등의 백두산 탐방 등은 이루어졌지만 아직까지 ‘한라-백두 교류사업’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도는 2003년 8월 북한을 방문, 백두산에서 한라산연구소와 백두산연구소가 자료교환 등 ‘한라-백두’ 공동 학술탐사 등을 협의하기도 했다. 도 관계자는 “이번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한라-백두 교류사업을 다시 재개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국종합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두 정상 의기투합 ‘평화선언’ 낼까

    [2007 남북정상회담] 두 정상 의기투합 ‘평화선언’ 낼까

    ‘평화’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집약된다.2일 대국민 메시지와 평양 도착 성명에서 노 대통령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라면서 “지난날의 쓰라린 역사는 우리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고 강조했다. ●평화가 가장 중요한 의제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간에 최우선적으로 다뤄질 의제가 바로 ‘한반도 평화체제’다. 노 대통령은 그 이유를 방북 하루 전인 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도 “평화에 대한 확신 없이는 공동번영도, 통일의 길도 기약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평화가 민족 공동번영과 통일의 필수조건이라는 것이 노 대통령의 생각이다. 두 정상이 이 문제에 ‘의기투합’할 경우 남북간 ‘평화선언’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노 대통령이 지난달 부시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미리 거론한 것도 남북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다. 당시 노 대통령은 회담을 끝낸 부시 대통령이 언론 브리핑에서 평화체제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내놓지 않자 외교적 결례일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우리 국민은 그 다음 얘기를 듣고 싶어한다.”면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만족’할 만한 수준의 답변을 요구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과의 연계의 뜻도 밝힐 것으로 보인다.“6자회담의 성공을 촉진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에 기여하는 회담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협력 문제도 핵심 의제임을 강조하고 있다.“그동안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도 장애가 있다.”고 언급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번 회담에서는 통행·통관·통신 등 이른바 3통 문제 등 기술적인 장애물의 해결에도 노력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개성공단 외에 새로운 공단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기 때문에 대규모 경협 문제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군사적 신뢰구축’문제도 빠질 수 없다.DMZ의 평화생태공원 활용, 서해북방한계선(NLL) 재설정 문제 등이 남북간 협상 테이블에 오를 전망이다. ●실사구시의 회담 성과 낼 것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 임하는 자세는 ‘실용’이다. 그가 말하는 ‘실용’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정상회담에 대한 보수층 일각의 우려를 의식해 보수와 진보를 다 아우르는,‘실용’적으로 정상회담 내용을 꾸려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의견이 있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보수층에서 보면 다소 앞서는 의제들이 다뤄질 수 있는 만큼 보수와 진보의 색깔을 이번 회담에 다 낼 수 있다는 점을 대국민 메시지에서 밝히고 있다.”고 해석했다. 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몸을 사리거나 금기를 두지도 않을 것’이라는 다소 모순된 화법을 쓴 것을 예로 들었다. 반면 거대담론이 아닌, 그야말로 실사구시 차원의 정상회담 성과를 내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대국민 메시지에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통일문제를 비롯한 남북간의 거대담론을 논의하는 것보다 남북관계가 실질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쪽 모두 한반도 평화체제를 목표로 군사적 긴장완화를 이끌어 내고 나아가 남북경제공동체를 건설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일각에서는 대국민 메시지가 어떤 의미에서는 북한을 향한, 노 대통령의 목소리가 담겼다고 보기도 한다. 경협 부문과 관련해 북측의 전향적인 태도를 촉구한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美·日·中·獨·佛 언론 반응

    |워싱턴 이도운·도쿄 박홍기·파리 이종수특파원|미국, 일본 등 지구촌 언론들은 2일 남북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주요 뉴스로 전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 환영집회에 직접 나와 영접하는 모습을 방영하는 등 집중 조명했다. 북핵, 경협 등에서 어떤 결론을 이끌어낼지에도 조심스러운 전망과 함께 관심을 보였다. 독일언론들은 남북 정상회담을 “마지막 냉전의 경계를 넘는 역사적인 발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시사주간지 슈피겔 인터넷판은 “노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어간 것은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상징한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CNN은 노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는 장면 등을 아시아 지역에 생방송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레임 덕(임기말 권력누수)’에 빠진 노 대통령이 ‘예측불가능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갖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한에 대해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 결정을 하려는 시점에 회담이 열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금으로부터 1년 전에는 북한이 핵 실험을 위협하는 시점이었다고 상기시키며, 현재는 ‘외국 지도자’(노 대통령)를 초빙해 ‘상냥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대비시켰다. 일본 언론들은 이날 ‘한국 대통령이 육로로 북한에, 김 위원장 환영 마중’이란 제목 등을 써가면서 주요 뉴스로 다뤘다.NHK 등 방송들은 시간대별 뉴스에서 머리 뉴스로 내보내면서 “두 정상이 핵문제 등에 대해 어떤 대화를 나눌지 관심이 집중된다.”고 밝혔다. 중국 언론들은 국경절을 맞아 1일부터 7일 동안의 연휴에 들어갔지만 회담 소식을 자세히 전했다.‘두 정상의 악수,7년만의 속편’ 등의 제목으로 동포애적 결합에 초점을 맞췄다.2일 관영 신화통신은 ‘노무현, 걸어서 군사분계선 넘어 방북’이란 제목을 뽑기도 했다. 중앙방송(CCTV)도 노 대통령이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을 자세히 방영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등 주요 신문들도 노 대통령의 방북 기사를 국제면 머리기사로 다뤘고 포털 사이트들도 주요기사로 취급했다. vielee@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경협 법률 어떻게 돼가나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제기된 남북경협의 법적인 틀은 어느 정도 진행됐을까. 2일 법무부에 따르면 7년 전 제기됐던 법률 문제들에 대해 남북이 그동안 다양한 합의서 체결을 통해 합의점을 이룬 것으로 평가됐다. 당시 국내 법조계는 정치논리에 기반한 일시적이고 호혜적 경협에 우려를 표명하며 ▲투자보장협정 ▲이중과세방지제도 ▲결제제도 ▲지적재산권제도 ▲상사(商事) 등 민사분쟁 해결제도 ▲기업가들의 안전보장 등을 거론했는데 4대 경협합의서 체결로 이 가운데 상당부분은 진전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4대 경협합의서는 ‘남북교류와 협력이 민족 내부의 거래임을 확인하고 상대방 투자자의 자산을 보호한다.’는 원칙에 따라 투자보장, 이중과세 방지, 청산결제 등을 보장한 합의서들이다. 북한도 2003년 최고인민회의에서 개성공업지구법과 하위규정을 통해 광고·부동산·보험·자동차관리 등에 대한 남측의 요구를 수용하는 식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법무부 전현준 특수법령과장은 “민사분쟁 해결제도와 남측 기업가·노동자의 안전보장 등에선 아직 보완점이 남았다.”면서 “2차 정상회담 과정에서 합의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남북상사중재위원회 설치를 위한 합의서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잠정 연기된 상황이고 개성공단·금강산관광지구 내 ‘엄중한 위반행위’를 저지른 남측 체류자에 대한 부속합의서도 아직 체결되지 않았다. 남포·평양 등지의 남측 체류자에 대한 신변 보장도 마련돼야 한다. 한국외대 이장희(법학과) 교수는 “남북 경협을 위한 법률 인프라가 상당히 구축되긴 했지만 정치·군사적 분야에서도 법률적 합의가 이뤄져 관계 정상화를 위한 평화협정이 맺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사설] 7년만의 만남, 평화의 새 장 열기를

    남북의 두 정상이 7년만에 다시 만났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평양에 도착,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은 한반도 평화를 향한 메시지를 지구촌에 전하는 ‘사건’이었다. 두 정상의 첫 회동 분위기는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얼싸안았을 때에 비해 차분했다. 하지만 남북 정상의 만남이 이어진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본다. 들뜬 겉모양보다는 내실 있는 성과를 거두는 정상회담이 되도록 남북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노 대통령을 맞아 북측은 나름대로 성의 있는 의전을 준비했다. 김 위원장이 공식환영식에 미리 와서 기다렸고, 노 대통령은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무개차 퍼레이드를 벌였다. 노 대통령을 첫 대면한 김 위원장의 표정이 활기차지 않았다고 해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를 미리 걱정할 이유는 없다. 또 평양시민들의 환호가 당국의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하더라도 폄하하지는 말아야 한다. 남북의 공동번영과 발전을 바라는 민족애가 담겨 있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앞서 대한민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남북 군사분계선(MDL)을 걸어서 넘었다. 이 장면은 전 세계로 생중계됨으로써 한반도에서 냉전의 틀이 깨지고 평화와 화해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노 대통령은 대국민 인사를 통해 “2000년 정상회담이 남북관계의 새 길을 열었다면 이번 회담은 장애물을 치우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회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군사분계선을 넘은 발걸음이 남북간에 남아 있는 장애물을 시원하게 치우는 지렛대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남북 정상은 오늘 두차례에 걸쳐 공식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노 대통령이 여러 차례 언명한 것처럼 평화정착과 경제발전을 함께 가져가기 위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합의문이 나와야 한다. 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평화선언을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정부 당국자가 전했다. 남북 정상이 평화체제 수립을 향한 의지를 공동으로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실천이 담보되지 않은 평화선언은 공허함을 남길 뿐이다. 북핵 폐기의 확고한 약속 등이 포함되어야 평화선언이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노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아울러 노 대통령의 방북과 관련해 비무장지대(DMZ)와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평화지대화, 군축, 그리고 남북 경협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어떤 의제든 허심탄회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과욕을 부려선 안 된다. 미국·중국 등 주변국과 사전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 있고, 막대한 재원이 드는 사업도 있다. 국내외 공감대를 얻지 못할 합의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고위급회담 정례화 등 분야별 후속회담을 통해 공동번영과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는다는 심정으로 회담에 임해야 할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을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일원으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김 위원장이 외부세계에 이처럼 여러 차례, 오랜 시간 모습을 드러낼 기회는 없다.2000년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스스로 ‘은둔’의 이미지를 벗었다고 했다. 노 대통령과 이번 만남을 통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북한 주민을 잘 살게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김 위원장이 전면 핵폐기의 결단을 확실히 한다면 남측은 연말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북한을 도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은 평양 도착 성명에서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이 땅에 평화의 새 역사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는 김 위원장의 결단을 끌어내는 담판이 필요하다. 잠시 휴회한 북핵 6자회담이 막바지 합의문 채택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감안할 때 김 위원장을 설득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민족의 장래만을 바라보는 진심을 갖고 김 위원장을 설득하고, 김 위원장은 ‘통 큰 결단’으로 호응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새 장이 열리길 간절히 기원한다.
  • [시론] 남북 두 정상이 맞잡은 손/ 이수훈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

    [시론] 남북 두 정상이 맞잡은 손/ 이수훈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일 정오 평양 모란봉구역 4·25 문화회관에서 두 손을 굳게 잡았다. 남북 정상의 만남은 2000년 첫 정상회담이후 7년만이다. 회담 성사만큼, 이루어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기대도 있고 다소 염려도 있다. 그래서였을까, 두 정상은 7년전에 비해선 조금 굳어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 주변을 둘러싼 정세 변화는 두드러진다. 북핵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전되고 있고 북·미관계 정상화 논의도 급진전중이다. 일본에선 아시아를 중시하며 북한에 대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후쿠다내각이 출범했다. 납치문제 해결과 북·일관계 정상화 논의도 이전과 다른 국면으로 한발을 내디뎠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안보협력 메커니즘 형성 관련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반도 주변 정세 급변은 냉전질서의 해체와 평화공존의 새 질서 수립에 대한 요청으로 요약된다. 동북아의 새 질서는 한반도 분단구조의 완전 극복을 요구한다. 이번 회담에서 남북의 두 정상은 이런 변화에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해 민족의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의견을 교환하고 성과를 내놓으려고 애쓸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2000년 정상회담이 화해협력 시대를 열었다면 2007년 정상회담은 평화정착 시대를 여는 돌파구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를 가져다 줄 체제 구축에 의견을 접근하는 일이다. 비핵화, 군사적 신뢰구축, 평화체제 구축 등이 포함된다. 평화가 중요한 만큼 북한은 경제문제가 한층 절박하다. 북측 당면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하겠지만 중장기적 해법에도 남북이 의견을 모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남북경제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기본 방향에 대해 깊은 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진전중인 경협사업들을 확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과제도 있다. 이를 토대로 남북간 경제적 연계를 한층 강화해 나가는 데 대한 방안들이 검토될 것이다.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경협이 남북 모두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방향에서 추진될 수 있도록 새 틀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북측의 절박한 요구를 수용하되 남측이 투자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안들이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이들 사업을 통해 경협이 가져다준 실질적 혜택에 대해 점검하고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측이 이런 과정을 통해 개방에 대해 얼마나 자신감을 얻었고, 남측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높아졌는가 하는 점도 평가되어야 한다. 유럽통합 사례에서 참고해야 할 교훈은 경제공동체 형성이 평화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장치라는 점이다. 이번 회담을 관통하는 화두는 신뢰의 문제다. 남북이 진정한 동반자관계가 될 수 있다는 상호이해를 마련하는 것은 향후 남북관계 발전의 단단한 초석이 될 것이다. 이번 회담은 노무현 대통령이 하는 일이지만 그 성과는 다음 정부로 넘어간다. 이번 회담이 국민과 함께하는 회담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면 결과를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정부가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평양까지 가는 데에는 4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남북공동체 건설의 길에 많은 장애물이 있지만 화해협력을 향한 강한 동력을 이번 정상회담에서 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수훈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
  • [2007 남북정상회담] 盧대통령 “금단의 선 넘어간다. 장벽은 무너질 것이다”

    [2007 남북정상회담] 盧대통령 “금단의 선 넘어간다. 장벽은 무너질 것이다”

    “여기 있는 이 선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장벽입니다. 이 장벽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우리 민족들은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군사분계선을 10m 남짓 남겨두고 승용차에서 내려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에선 “여기서 한마디 하고 넘어가는 거죠.”라며 웃음 짓던 조금 전의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역사적 순간’의 감격을 다스리기란 산전수전 다 겪은 노 대통령으로서도 감당하기 버거운 듯했다. ●“제가 다녀오면 더 많은 사람들 다녀올 것”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입니다.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환송단을 향해 손을 흔들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노 대통령은 몸을 돌려 ‘금단의 선’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평상시 아무런 표지도 없는 군사분계선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도보 월경’을 앞두고 50㎝ 폭의 굵은 노란색으로 표시가 돼 있었다. 노 대통령이 잠시 멈춰 호흡을 가다듬는 듯하더니 성큼 노란 선을 넘어섰다. 노 대통령이 방북을 위해 특별히 착용한 개성공단산 시계의 시침은 정확히 9시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는 역사적 순간은 CNN 등 외신의 생중계를 통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타전됐다. 이날 노 대통령의 도보 월경은 전 세계에 한반도 평화의 메시지를 극적으로 전달하는 효과를 발휘했다는 게 정부측 평가다. ●방북길은 한국전 당시 남침·북진로 노 대통령 일행이 군사분계선을 거쳐 평양으로 가기 위해 이용한 경의선 남북연결 도로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의미를 더했다. 과거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침공로이자 유엔군의 북진로이기도 했던 이 길은 지뢰제거 작업 등을 거쳐 2002년 9월에 착공,2003년 10월 개통됐다. 이후 도로는 개성공단 입주기업뿐 아니라 각종 민간교류의 물류 통로로 활용되면서, 대립의 상징물에서 화해와 협력의 소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1948년 4월 백범 김구 선생이 단독정부 수립을 저지하기 위해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하면서 38선을 넘을 때도 이 육로를 이용했다. 한편 방북단은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는 것을 기념해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우리측 제2통문 앞에 3.6m 높이의 표지석을 세웠다. 표면에는 “평화를 다지는 길, 번영으로 가는 길.2007년 10월2일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란 문구가 새겨졌다. 김정석 청와대 부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직접 문구를 지어 친필로 기록했다고 전했다. ●“욕심 안 부리겠지만 몸 사리지도 않을 것” 이날 오전 노 대통령은 출발에 앞서 청와대 본관에서 국무위원 및 청와대 수석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대국민 인사를 통해 회담에 임하는 자세와 각오를 밝히는 것으로 역사적인 하루를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푸른 빛 넥타이에 감색 양복을 입고 있었고 표정도 비교적 밝았다. 권 여사는 자주색 정장을 입었다. 노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역사는 단번에 열 걸음 나아가기가 어렵다. 이번에 한걸음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며 회담에 응하는 소감을 밝힌 뒤 “지금은 한걸음 더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때이고 6자회담 진전을 위해 남북정상회담과 잘 맞춰줘야 하는 때”라며 회담의 배경을 설명했다.10여분 간의 간담회를 마친 노 대통령은 본관 앞에 준비된 연단에 올라 5분간 방북에 앞선 ‘대국민 인사’를 발표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도열해 있던 한덕수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고, 태극기와 봉황 문장 깃발이 달린 전용차에 올라 7시55분쯤 청와대를 나섰다. 이날 노 대통령은 청와대 앞 효자동 길을 지나 시청앞∼서소문∼마포∼강변북로∼자유로 코스로 방북길에 올랐다. ●시민들 차분… 보수단체 반대성명도 서울시민들은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하는 노 대통령 일행을 차분한 기대 속에 환송했다. 방북단을 태운 차량 행렬이 도라산 남북 출입사무소(CIQ)로 향하는 연도에는 출근길 시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손을 흔들며 회담의 성공을 기원했고 가정이나 직장에 있는 시민들도 TV를 통해 출발 모습을 지켜봤다. 이날 아침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중앙청사 앞 인도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방북단을 환송하기 위해 ‘참여정부 평가포럼’ 회원과 시민 등 수백명이 몰렸다. 이들은 오전 7시쯤부터 세종문화회관 앞에 ‘5천만개의 마음이 당신과 함께 갑니다.’라고 적힌 노란색 현수막을 걸고 회원과 시민들에게 한반도기와 색색의 풍선을 나눠주기도 했다. 반면 선진화국민회의 등 보수단체 소속 50여명은 이날 노 대통령 차량 행렬이 통과하는 시간에 맞춰 정부중앙청사 앞 네거리에서 집회를 열고 ‘북핵폐기 없이 평화 없다’,‘서해북방한계선 그대로 유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성명서를 배포했다. 이들은 “남북정상회담이 국민적 합의와 진정한 화해정신에 입각해 진행되지 않고 정권 차원에서 정략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면서 “대선에서 유리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개성공단産 로만손 시계 착용 눈길 노 대통령이 이날 방북을 위해 특별히 착용했다는 손목시계도 눈길을 끌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국산 로만손 시계로 시중에서 19만 8000원에 판매되는 제품이다.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산 제품을 일부러 선택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귀띔했다. 방북단은 노 대통령이 착용한 것과 같은 ‘TM7238L’ 모델을 9세트 더 구입해 김정일 위원장 등 북측 회담 관계자들에게 선물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회담의 공식수행원 13명 전원은 방북 기간 왼쪽 가슴에 회담을 위해 특별 제작한 휘장을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금색 테두리를 두른 무궁화 모양으로 흰색 바탕 위에 왼쪽에 태극기, 오른쪽에는 한반도기를 배치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이세영기자
  • [2007 남북정상회담] 노대통령·김위원장 오늘 두차례 정상회담

    노무현 대통령은 방북 이틀째인 3일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회담은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오전과 오후 2차례에 걸쳐 노 대통령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방안과 경협문제,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 등에 대해 포괄적인 의견 교환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 결과에 따라서는 두 정상이 ‘평화선언’ 형태의 합의문을 채택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노 대통령의 적극적인 자세와 김 위원장의 ‘통큰 스타일’에 미뤄볼 때 두 정상간에 전격적인 합의가 도출될지 주목된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공식환영식 북측 인사 면면

    [2007 남북정상회담] 공식환영식 북측 인사 면면

    노무현 대통령을 맞는 평양 4·25문화회관 공식 환영식에는 북한 권부의 핵심들이 총 출영했다. 고위 인사만 23명으로,2000년 순안공항 영접 행사 때의 12명에 비해 2배나 늘었다. 김영일 내각 총리,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 김영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 박순희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 중앙위원장 등을 망라했다. 이들 중 ‘경제사령관’격인 김영일 내각 총리가 눈에 띈다.2000년 당시 홍성남 총리는 불참했었다. 이번 회담에 경협이 주요 의제로 올라 있는 것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의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2004년 초 “권력욕에 의한 분파행위” 등의 이유로 업무정지 처벌을 받았다가 2005년 12월 말 현 직책으로 복귀했다. 대남사업 총책임자인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대미 외교를 총괄하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도 노 대통령에게 환영인사를 했다. 군부에서는 차수인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국방위원회의 리명수 대장, 인민무력부 부부장인 김정각 대장이 모습을 보였다.2000년 때 참석하지 않았던 김일철 차수가 나온 것은 김장수 국방장관의 상대역으로 보인다. 앞서 군사분계선에서 노 대통령을 영접한 최룡해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와 최승철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은 둘다 김 위원장의 신임이 두텁다. 최 책임비서는 김일성 주석의 절친한 빨치산 동료인 최현(사망)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다. 대남사업을 실질적으로 관장하고 있는 최 부부장은 김 위원장에게 직보가 가능한 ‘실세’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中 전문가가 본 정상회담

    [2007 남북정상회담] 中 전문가가 본 정상회담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학 조선문화연구소장은 2일 열리는 남북정상회담과 관련,“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는 1992년에 이뤄진 남북기본합의서를 실천할 수 있는 방안과 일정표를 마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1일 말했다. 그는 “북·미 관계가 급진전되고 있는 등 이번 회담은 1차 때보다 주변 상황이 크게 좋다.”면서 “동북아 평화 촉진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떤 내용이 논의될까. -평화체제나 평화협정 등을 주요 의제로 꼽기도 하지만, 핵심 의제가 되기는 어렵다. 어느 정도 논의를 하게 되겠지만 평화체제 논의 등에는 중국, 미국 등 다른 당사자가 있어 구체적으로 의논하더라도 남북만으로는 해결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도 6자회담이란 큰 틀에서 돌아가고 있고 ‘북·미간 문제’란 측면도 있어 남북간 논의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래도 남북 경협 쪽에 비중이 쏠릴 것이다. ▶무엇이 중점 논의돼야 하나. -실질적인 것들이다. 예컨대 이산가족 상봉이다. 가장 큰 인권문제 가운데 하나 아닌가. 경협 문제도 일방적인 퍼주기 논란이 일지 않도록 걸림돌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 제2의 개성공단이든, 북의 광산개발이든 상호보완적으로 틀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협과 경제지원을 큰 틀에서 길게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한국의 재도약에 필요한 가장 큰 시장이 될 수 있다. ▶어떤 공동성명이 나올까. 남북 연방제 논의도 가능한가. -지금까지 남북 관계가 정치적 선언이 없어서 더 발전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실천의 문제다. 연방제 틀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협력 틀이 없으면 무너지기 쉽다. ▶평화체제가 진전된다면 중국에는 어떤 영향이 있나. -중국으로서는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한 동북아 평화안정이란 큰 의미가 있다. 남북관계가 화해로 나가고 정상회담을 함으로써 동북아 긴장을 완화시키는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 중국이 반길 일이지 우려하지는 않는다. ▶한국과 미국, 북한간의 3각 협력 및 협상통로가 강화되고 있다. 중국이 소외되는 것은 아닌지. -중국의 대북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한반도 평화·안정’이다. 북의 경제발전에 중국은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류샤오밍(劉曉明) 북한주재 중국대사가 나진·선봉을 비롯해 동북지역을 시찰, 북·중간 협력강화 움직임이 거론되고 있다. -상호 경제협력은 얼마든지 여지가 있다. 대사가 이런 면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전임 대사들도 다 그렇게 돌아다녔다. 요즘 좀 민감한 시기니까 더욱 부각됐을 뿐, 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핵 문제와 6자 회담은 어떻게 전망하나. -북핵 문제는 총체적으로는 긍정적인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북·미관계의 순조로운 진전은 북한의 핵포기를 가능케 할 것이다. jj@seoul.co.kr
  • 盧대통령 오늘 걸어서 군사분계선 넘어… 남북정상 7년만에 ‘포옹’

    노무현 대통령은 2일 평양에서 열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2박 3일 일정의 방북길에 오른다.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 회담 이래 7년 만에 열리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북한 방문에 임하는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한 뒤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전용차를 타고 청와대를 출발, 도라산 남측 출입소에서 대기 중인 공식수행원 13명과 함께 걸어서 오전 9시쯤 군사분계선(MDL)을 넘을 예정이다. 현직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건너는 것은 처음으로, 이 장면은 TV로 전 세계에 생중계될 예정이다. 노 대통령은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이용해 낮 12시쯤 평양에 도착한 뒤 숙소인 백화원 초대소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첫 만남을 갖고 환담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방북 이틀째인 3일 김 위원장과 오전,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공식 정상회담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두 정상은 아리랑공연 공동관람, 오·만찬 행사 공동참석 등도 감안하면 6번 정도 만나서 환담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남북공동번영 ▲한반도 평화 ▲화해와 통일이라는 큰 틀의 의제를 놓고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회담 결과에 따라 2000년 6·15 공동선언과 같은 선언 형태의 합의문을 채택될지 여부도 관심사다. 정상회담에서 합의사항이 도출될 경우 두 정상은 3일 밤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리는 노 대통령의 답례 만찬 행사에 나란히 참석, 선언 형식의 합의문을 공동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노 대통령은 3일 오후 대동강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열리는 아리랑공연을 관람할 예정이다. 북측 요청에 따른 공연 관람에 김 위원장도 참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남북 경협 부문을 강조하기 위해 경제관련 시설인 평양시내 3대 혁명전시관 내 중공업관과 남포의 평화자동차 공장, 서해갑문 등도 참관한다.4일 귀환길에는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시찰할 예정이다. 한편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1일 오후 서울 롯데호텔에 설치된 남북정상회담 프레스센터 개소식 브리핑에서 “정상회담에서 북핵 6자회담의 합의 내용들이 원만하게 이행될 수 있도록 촉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2000년 합의 내용 이행 여부

    [2007 남북정상회담] 2000년 합의 내용 이행 여부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통일방안 논의에서부터 당국간 대화 정례화, 이산가족 상봉 등 정치·경제·군사·문화 각 분야에서 다양한 합의를 이끌어냈다.6·15공동선언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남북 정상간 직통전화 설치 등 남북간 긴장 완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공감한 대목도 상당수에 이른다. 하지만 합의사항 가운데 많은 부분이 7년 동안 이행되지 못한 채 후속 정상회담과 실무회담의 과제로 남겨졌다.2002년 미국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나 2004년 서해교전,2006년 북핵사태 등이 합의사항 이행 과정에서 악재로 작용했다. 남북은 1차 정상회담 직후 적십자회담과 장관급회담, 국방장관회담을 잇따라 열어 두 정상의 합의사항에 따른 이행계획을 잡아갔다. 인적·물적 교류가 따라왔다.2000년 8월1일 이후 7년 동안 20여 차례에 걸쳐 이산가족 1만 6000여명이 상봉했다. 상호비방 중지와 군사 핫라인 개설, 비전향장기수의 북송, 남북경협 활성화도 진행됐다. 반면 남북정상 사이 ‘핫라인’을 설치하자던 논의는 서해교전으로 남북이 냉각기를 맞으며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산가족 상봉사업도 ‘1회성 만남’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로의 생사와 주소 확인, 고향 방문이 아직도 요원한 상태인 탓이다.2차 회담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북을 방문키로 함에 따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아직 미완의 약속으로 남아 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독일의 정상회담 과정·성과

    [2007 남북정상회담] 독일의 정상회담 과정·성과

    |파리 이종수특파원|‘6차례 정상회담 하고 나니 통일이 이뤄졌다?´ 독일 통일 전 6차례 이뤄진 옛 동·서독의 정상회담은 통일의 물꼬를 트고 마무리를 지은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신동방 정책’으로 촉발된 화해의 움직임은 1970년 두 차례의 정상회담으로 이어졌고 관계 정상화의 토대를 놓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전환기적 사건 이후 통일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두 차례 정상회담을 열면서 동·서독은 통일로 나아갔다. 이런 공식적 정상 회담 외에도 동·서독 정상들은 80년대 3차례의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 장례식 참석을 징검다리로 해서 비공식 접촉을 이어가면서 ‘통일 염원’의 터를 다져나갔다. ●1차 입장차 확인·2차 공동성명 없이 막내려 1969년 10월 브란트 총리는 취임 연설에서 “동·서독 관계는 특수관계”로 규정하고 동독측에 협상을 제안했다. 콘라드 아데나워 전 총리의 ‘단일 국가’ 원칙에서 벗어나 한층 유연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에 발터 울브리히트 동독 평의회장이 정상 회담을 제안하고 브란트는 수락의사를 표명했다. 이어 양측은 4차례의 실무회담을 거쳐 입장을 조율했다. 1970년 3월 첫 만남은 양측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선에서 그쳤다. 두 정상은 3개월 뒤 서독 카셀에서 2차회담을 갖기로 하고 간단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2차 정상회담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서독은 여전히 동독을 국제법상 국가로는 인정하지 않았다.2차회담은 공동성명 없이 막을 내렸다. 베르너 페니히 전 베를린자유대학 교수는 “빌리 스토프 총리가 실질적 권한이 없었기에 상징적 정상회담이었다.”며 “엄밀한 의미에서 실질적 권한을 지닌 정상간 회담은 4차 정상회담 한번뿐이었다.”고 설명했다. ●3차 협력 합의·4차 경협 강화 한번 트인 물꼬는 3·4차 회담을 통해 다져졌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폴란드 노조 사태 등으로 신냉전 기운이 고조됐다. 안보 위협을 느낀 동·서독은 양자 관계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서독의 슈미트 콜·동독의 에리히 호네커 총리는 1981년 12월 동베를린 인근 도엘렌세에서 3차 정상회담을 갖고 긴장완화 및 유럽평화를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장관급 회담을 통해 ▲청소년·체육·학술·문화·언론 분야 교류 ▲여행·방문 조건 완화 ▲무역·경제·기술 협력 확대 ▲각료급 상호방문 등 실질적인 관계 개선의 터전을 닦았다. 4차 회담은 1987년 9월에 열렸다. 서독 여행자의 동독 검문소 고문 치사 사건과 공산권의 맹주인 소련의 견제 정책 등으로 동·서 관계는 한동안 멀어졌다. 그러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등장으로 화해 분위기가 높아졌다. 콘스탄틴 체르넨코 소련 공산당 서기장 장례식장에서 비공식적으로 만나 화해 분위기를 조성한 동·서독 정상은 4차 정상 회담에서 ‘원자력안전을 위한 정보·경험 교환협정’ 등 3개 협정에 서명했다.4차 회담으로 경협 강화와 인적교류 확대, 정치적 접촉 강화 등 양측 관계는 실질적으로 밀접해졌다는 평가다. ●5·6차 통일문제 공식 논의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지자 동·서독의 통일 분위기는 고조됐다.5·6차 정상회담은 공식적으로 통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렸다. 두 차례 회담에서 양측은 ▲경제·환경·교통·통신분야 공동협력 ▲여행 자유화 ▲경제공동체 형성 등에 합의했다. 이어 화폐 통합과 경제공동체 구성을 위한 전문위원회를 구성했다. 페니히 전 베를린자유대 교수는 “유럽에서 독일 통일은 힘들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 이었다.”면서 “주요 전환점은 미·소 관계 등 국제정세 변화와 동독 라이프치히 촛불 시위 등 평화혁명 등이었다.”고 지적했다.5·6차 정상회담은 이런 상황속에서 마침표를 찍는 작업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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