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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충돌…유민아빠 등 100여명 연행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충돌…유민아빠 등 100여명 연행

    ’광화문 집회’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광화문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하는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 등 100여명이 연행됐다. ’세월호 1주년’ 이후 첫 주말인 18일 저녁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참가자 수천명이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서울 광장에서 집회가 끝난 후 광화문 광장에 모여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누각으로 향했고, 경찰이 저지하자 차벽으로 사용된 차량을 흔들고 부수는 등 거세게 저항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과 물대포를 대량으로 살포하고 유가족과 시민 등 100명을 연행했다. 경찰은 이날 경력 1만 3700여명과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해 차량 470여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저지선을 쳤다. 또 경찰버스와 경력을 청계광장에서 광교 넘어서까지 청계천 북쪽 길가에 길게 늘여 세워 우회로까지 막아섰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 등 참가자 1만여명(경찰 추산)은 광화문 광장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청계천변을 따라 걸어간 뒤 낙원상가 방면으로 좌회전해 안국역에서 광화문 쪽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종로경찰서 앞 차로도 경찰에 막히자 집회 참가자들은 흩어져 지하철 등을 타고 광화문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오후 6시 20분쯤께 광화문 광장에 모인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광화문 누각 쪽으로 가려고 세종대왕상 인근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인도 쪽을 통해 광화문 광장 북쪽으로 이동하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하고 물대포를 쏘며 이를 저지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 모인 시위대 일부는 경찰 차량을 부수고 차량 안의 분말 소화기를 꺼내 뿌리거나 경찰 보호장구를 빼앗아 차벽 너머로 던졌다. 또 스프레이로 경찰 차량에 낙서하고, 경찰 차량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시위대 중 일부는 광화문 광장 북쪽 차벽을 뚫고 광화문 누각 근처까지 접근했으나 누각 바로 앞의 차벽에 막혀 더 전진하지 못했다. 오후 10시 20분쯤 누각에 있던 유가족들이 북측 광장에 있는 시위대에 합류해 정리 집회를 하고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경찰은 수차례 해산 명령을 내리고 광화문 광장에서만 79명을 연행했다. 앞서 오후 3∼5시 누각 앞과 북측 광장에서 검거된 21명을 더하면 이날 연행된 시민과 유가족 등은 모두 100명이다. 이중 ‘유민아빠’ 김영오씨 등 유가족은 20명이고, 학생 5명은 훈방 조치됐다. 이들은 금천, 성동, 마포 등 일선 경찰서 11곳으로 분산 호송돼 조사를 받았다. 집회 참가자와 경찰 간 몸싸움으로 유가족과 시민 등 9명, 의경 2명 등 모두 11명이 탈진 또는 부상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중 한 남성이 경찰과 뒤엉키면서 넘어져 복부 부분에 부상을, 의경 1명은 오른 귀 뒷부분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울역 광장에서는 ‘엄마의 노란손수건’ 등 21개 단체의 모임인 ‘대한민국 엄마들’ 주최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 등을 촉구하는 집회가, 광화문 광장에서는 ‘청소년공동체 희망’의 주최로 ‘세월호 1주기 416인 청소년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찰, 세월호 추모 집회를 “4·18 불법 폭력집회”라며… “주동자 전원 사법처리 계획”

    경찰, 세월호 추모 집회를 “4·18 불법 폭력집회”라며… “주동자 전원 사법처리 계획”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세월호 추모 집회가 열린 가운데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과의 충돌 사태에 대해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경찰청은 19일 브리핑을 갖고 지난 18일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 이후 광화문 일대에서 빚어진 집회에 대해 ‘4·18 불법·폭력 집회’라고 지칭하고 “시위 주동자와 극렬 행위자들을 끝까지 추적해 전원 사법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를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나머지 15개 지방경찰청에도 수사전담반을 편성하기로 했다. 경찰은 “집회 현장에서 경찰관과 의무경찰이 다수 다치고 경찰버스 등 장비가 파손됐다”며 주최 측인 세월호 국민대책회의에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방침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시위 사태로 의경 3명이 귀, 머리 등이 찢어지거나 의식을 잃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지는 등 경찰 74명이 다쳤다. 아울러 경찰 차량 71대가 파손됐고 채증용 캠코더와 무전기 등 경찰장비 368개가 집회 참가자들에게 빼앗기거나 망가진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경력 1만 3700여명과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한 차량 470여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시위대 저지선을 쳤다.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서울광장에서의 집회가 끝난 뒤 광화문 광장 방면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과 물대포를 대량으로 살포했고, 시위대 일부는 경찰 차량을 부수고 차량 안의 분말 소화기를 꺼내 뿌리거나, 유리창을 깨고 나서 밧줄을 걸어 잡아 당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뿐 아니라 유가족과 시민들도 병원으로 이송되는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경찰은 이날 집회 참가자 100명을 연행, 시내 경찰서로 분산 이송해 조사 중이다. 연행자 중 ‘유민아빠’ 김영오씨 등 유가족은 20명이며, 고교생 5명은 훈방 조치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화문 세월호 추모집회…경찰, 물대포·캡사이신 대량 살포 ‘충돌’

    광화문 세월호 추모집회…경찰, 물대포·캡사이신 대량 살포 ‘충돌’

    ’광화문 물대포’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세월호 추모집회’ 광화문 세월호 추모집회…경찰, 물대포·캡사이신 대량 살포 ‘충돌’ 광화문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하는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 등 100여명이 연행됐다. ’세월호 1주년’ 이후 첫 주말인 18일 저녁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참가자 수천명이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서울 광장에서 집회가 끝난 후 광화문 광장에 모여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누각으로 향했고, 경찰이 저지하자 차벽으로 사용된 차량을 흔들고 부수는 등 거세게 저항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과 물대포를 대량으로 살포하고 유가족과 시민 등 100명을 연행했다. 경찰은 이날 경력 1만 3700여명과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해 차량 470여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저지선을 쳤다. 또 경찰버스와 경력을 청계광장에서 광교 넘어서까지 청계천 북쪽 길가에 길게 늘여 세워 우회로까지 막아섰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 등 참가자 1만여명(경찰 추산)은 광화문 광장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청계천변을 따라 걸어간 뒤 낙원상가 방면으로 좌회전해 안국역에서 광화문 쪽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종로경찰서 앞 차로도 경찰에 막히자 집회 참가자들은 흩어져 지하철 등을 타고 광화문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오후 6시 20분쯤께 광화문 광장에 모인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광화문 누각 쪽으로 가려고 세종대왕상 인근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인도 쪽을 통해 광화문 광장 북쪽으로 이동하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하고 물대포를 쏘며 이를 저지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 모인 시위대 일부는 경찰 차량을 부수고 차량 안의 분말 소화기를 꺼내 뿌리거나 경찰 보호장구를 빼앗아 차벽 너머로 던졌다. 또 스프레이로 경찰 차량에 낙서하고, 경찰 차량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시위대 중 일부는 광화문 광장 북쪽 차벽을 뚫고 광화문 누각 근처까지 접근했으나 누각 바로 앞의 차벽에 막혀 더 전진하지 못했다. 오후 10시 20분쯤 누각에 있던 유가족들이 북측 광장에 있는 시위대에 합류해 정리 집회를 하고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경찰은 수차례 해산 명령을 내리고 광화문 광장에서만 79명을 연행했다. 앞서 오후 3∼5시 누각 앞과 북측 광장에서 검거된 21명을 더하면 이날 연행된 시민과 유가족 등은 모두 100명이다. 이중 ‘유민아빠’ 김영오씨 등 유가족은 20명이고, 학생 5명은 훈방 조치됐다. 이들은 금천, 성동, 마포 등 일선 경찰서 11곳으로 분산 호송돼 조사를 받았다. 집회 참가자와 경찰 간 몸싸움으로 유가족과 시민 등 9명, 의경 2명 등 모두 11명이 탈진 또는 부상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중 한 남성이 경찰과 뒤엉키면서 넘어져 복부 부분에 부상을, 의경 1명은 오른 귀 뒷부분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울역 광장에서는 ‘엄마의 노란손수건’ 등 21개 단체의 모임인 ‘대한민국 엄마들’ 주최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 등을 촉구하는 집회가, 광화문 광장에서는 ‘청소년공동체 희망’의 주최로 ‘세월호 1주기 416인 청소년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화문 등 세월호 추모집회…경찰, 물대포·캡사이신 대량 살포에 100여명 연행

    광화문 등 세월호 추모집회…경찰, 물대포·캡사이신 대량 살포에 100여명 연행

    ’광화문 물대포’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세월호 추모집회’ 광화문 등 세월호 추모집회…경찰, 물대포·캡사이신 대량 살포에 100여명 연행 광화문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하는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 등 100여명이 연행됐다. ’세월호 1주년’ 이후 첫 주말인 18일 저녁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참가자 수천명이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서울 광장에서 집회가 끝난 후 광화문 광장에 모여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누각으로 향했고, 경찰이 저지하자 차벽으로 사용된 차량을 흔들고 부수는 등 거세게 저항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과 물대포를 대량으로 살포하고 유가족과 시민 등 100명을 연행했다. 경찰은 이날 경력 1만 3700여명과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해 차량 470여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저지선을 쳤다. 또 경찰버스와 경력을 청계광장에서 광교 넘어서까지 청계천 북쪽 길가에 길게 늘여 세워 우회로까지 막아섰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 등 참가자 1만여명(경찰 추산)은 광화문 광장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청계천변을 따라 걸어간 뒤 낙원상가 방면으로 좌회전해 안국역에서 광화문 쪽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종로경찰서 앞 차로도 경찰에 막히자 집회 참가자들은 흩어져 지하철 등을 타고 광화문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오후 6시 20분쯤께 광화문 광장에 모인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광화문 누각 쪽으로 가려고 세종대왕상 인근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인도 쪽을 통해 광화문 광장 북쪽으로 이동하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하고 물대포를 쏘며 이를 저지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 모인 시위대 일부는 경찰 차량을 부수고 차량 안의 분말 소화기를 꺼내 뿌리거나 경찰 보호장구를 빼앗아 차벽 너머로 던졌다. 또 스프레이로 경찰 차량에 낙서하고, 경찰 차량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시위대 중 일부는 광화문 광장 북쪽 차벽을 뚫고 광화문 누각 근처까지 접근했으나 누각 바로 앞의 차벽에 막혀 더 전진하지 못했다. 오후 10시 20분쯤 누각에 있던 유가족들이 북측 광장에 있는 시위대에 합류해 정리 집회를 하고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경찰은 수차례 해산 명령을 내리고 광화문 광장에서만 79명을 연행했다. 앞서 오후 3∼5시 누각 앞과 북측 광장에서 검거된 21명을 더하면 이날 연행된 시민과 유가족 등은 모두 100명이다. 이중 ‘유민아빠’ 김영오씨 등 유가족은 20명이고, 학생 5명은 훈방 조치됐다. 이들은 금천, 성동, 마포 등 일선 경찰서 11곳으로 분산 호송돼 조사를 받았다. 집회 참가자와 경찰 간 몸싸움으로 유가족과 시민 등 9명, 의경 2명 등 모두 11명이 탈진 또는 부상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중 한 남성이 경찰과 뒤엉키면서 넘어져 복부 부분에 부상을, 의경 1명은 오른 귀 뒷부분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울역 광장에서는 ‘엄마의 노란손수건’ 등 21개 단체의 모임인 ‘대한민국 엄마들’ 주최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 등을 촉구하는 집회가, 광화문 광장에서는 ‘청소년공동체 희망’의 주최로 ‘세월호 1주기 416인 청소년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충돌…유민아빠 김영오씨 등 100여명 연행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충돌…유민아빠 김영오씨 등 100여명 연행

    ’광화문 집회’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광화문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하는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 등 100여명이 연행됐다. ’세월호 1주년’ 이후 첫 주말인 18일 저녁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참가자 수천명이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서울 광장에서 집회가 끝난 후 광화문 광장에 모여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누각으로 향했고, 경찰이 저지하자 차벽으로 사용된 차량을 흔들고 부수는 등 거세게 저항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과 물대포를 대량으로 살포하고 유가족과 시민 등 100명을 연행했다. 경찰은 이날 경력 1만 3700여명과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해 차량 470여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저지선을 쳤다. 또 경찰버스와 경력을 청계광장에서 광교 넘어서까지 청계천 북쪽 길가에 길게 늘여 세워 우회로까지 막아섰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 등 참가자 1만여명(경찰 추산)은 광화문 광장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청계천변을 따라 걸어간 뒤 낙원상가 방면으로 좌회전해 안국역에서 광화문 쪽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종로경찰서 앞 차로도 경찰에 막히자 집회 참가자들은 흩어져 지하철 등을 타고 광화문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오후 6시 20분쯤께 광화문 광장에 모인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광화문 누각 쪽으로 가려고 세종대왕상 인근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인도 쪽을 통해 광화문 광장 북쪽으로 이동하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하고 물대포를 쏘며 이를 저지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 모인 시위대 일부는 경찰 차량을 부수고 차량 안의 분말 소화기를 꺼내 뿌리거나 경찰 보호장구를 빼앗아 차벽 너머로 던졌다. 또 스프레이로 경찰 차량에 낙서하고, 경찰 차량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시위대 중 일부는 광화문 광장 북쪽 차벽을 뚫고 광화문 누각 근처까지 접근했으나 누각 바로 앞의 차벽에 막혀 더 전진하지 못했다. 오후 10시 20분쯤 누각에 있던 유가족들이 북측 광장에 있는 시위대에 합류해 정리 집회를 하고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경찰은 수차례 해산 명령을 내리고 광화문 광장에서만 79명을 연행했다. 앞서 오후 3∼5시 누각 앞과 북측 광장에서 검거된 21명을 더하면 이날 연행된 시민과 유가족 등은 모두 100명이다. 이중 ‘유민아빠’ 김영오씨 등 유가족은 20명이고, 학생 5명은 훈방 조치됐다. 이들은 금천, 성동, 마포 등 일선 경찰서 11곳으로 분산 호송돼 조사를 받았다. 집회 참가자와 경찰 간 몸싸움으로 유가족과 시민 등 9명, 의경 2명 등 모두 11명이 탈진 또는 부상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중 한 남성이 경찰과 뒤엉키면서 넘어져 복부 부분에 부상을, 의경 1명은 오른 귀 뒷부분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울역 광장에서는 ‘엄마의 노란손수건’ 등 21개 단체의 모임인 ‘대한민국 엄마들’ 주최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 등을 촉구하는 집회가, 광화문 광장에서는 ‘청소년공동체 희망’의 주최로 ‘세월호 1주기 416인 청소년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추모제, 경찰과의 충돌 장면 보니 ‘아찔’

    세월호 추모제, 경찰과의 충돌 장면 보니 ‘아찔’

    세월호 추모제, 경찰과의 충돌 장면 보니 ‘아찔’ 세월호 추모제, 광화문 세월호 참사 1주기인 지난 16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세월호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객들은 광화문 광장 방향으로 행진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곳곳에서 충돌했다. 경찰은 경찰버스 50여대를 동원해 동아일보 사옥∼동아면세점, 세종로사거리 누각∼새문안교회, 안국동사거리, 공평사거리, 동십자사거리, 경복궁역사거리, 종로1가 등지에 차벽을 설치했다. 경찰은 차벽을 파손하려 하거나 경찰관에게 격렬히 저항한 집회 참가자 10명을 연행했다. 기동대 소속 경찰관 한 명도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집회 주최측 추산 5만명(경찰 추산 9000명)의 시민들은 이날 오후 9시 15분쯤 추모제가 끝나자 국화꽃을 들고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세월호를 인양하라’, ’시행령을 폐기하라’, ‘박근혜는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차벽에 막힌 추모제 참가자들은 차벽을 밀거나 들어 올려 넘어뜨리려고 시도하다 일부가 청계천 우회로로 진입했으며, 9시 50분쯤에는 광교와 장통교, 삼일교 등지에서 경찰에게 계란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대치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대응했다. 이어 수표교를 통해 종로로 진입한 시위대 6000여명(경찰 추산)은 오후 10시 20분쯤 종로2가 사거리를 점거하고 광화문 방면으로 이동하다 YMCA 앞에서 차벽과 병력 등으로 막아선 경찰과 맞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광화문 광장 분향소 주변에 있던 유가족 50여명은 오후 10시 40분쯤부터 광화문 누각 앞에서 밤샘농성을 시작했다. 17일 오전 1시쯤 소강상태가 됐지만 여전히 900여명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의 저지를 받았다. 연행자 중에 세월호 참사 유족은 없다고 경찰은 밝혔다. 앞서 16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관련 시민단체, 일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규모 추모제가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1주기 광화문 집회, 경찰 충돌 “격렬한 몸싸움, 최루액 살포”

    세월호 1주기 광화문 집회, 경찰 충돌 “격렬한 몸싸움, 최루액 살포”

    세월호 1주기 광화문 집회 세월호 1주기 광화문 집회, 경찰 충돌 “격렬한 몸싸움, 최루액 살포 16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1주기 추모제 참석자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곳곳에서 충돌했다. 집회를 마친 유가족·참가자 주최측 추산 5만명(경찰 추산 9000명)은 오후 9시15분께 세월호 유가족을 앞세우고 ‘세월호를 인양하라’, ‘시행령을 폐기하라’, ‘박근혜는 물러나라’ 등 구호를 외치며 시청 앞에서 동아일보 본사 앞까지 행진했다. 경찰은 광화문사거리 동아일보 앞과 교보생명 앞에 경찰 버스로 차벽을 쳐 이들을 막았다. 이에 집회 참가자들은 차벽을 밀거나 들어올려 넘어뜨리려고 시도하다 일부가 청계천 우회로로 진입했으며, 9시 50분쯤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행진을 막는 경찰에게 계란 등을 던지며 광교·장통교·삼일교 앞에서 격렬하게 대치했다. 이어 수표교를 통해 종로로 진입한 이들은 오후 10시 20분쯤 종로2가 사거리를 점거하고 광화문 방면으로 이동하다 YMCA 앞에서 차벽과 병력 등으로 막아선 경찰과 맞서 몸싸움을 벌였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버스 위로 올라가 ‘세월호를 인양하라, 진실을 인양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 과정에서 일부 경찰이 경찰버스로 올라서려다 시위대에 제지당해 떨어지기도 했다. 경찰은 이들에게 3차례 해산명령을 내리고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는 경고 방송을 한 뒤 11시 2분쯤 캡사이신 최루액을 수차례 살포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고 참가자 3명을 종로경찰서로 연행했다. 한편 유가족 50여명을 포함한 시위대 100여명은 오후 11시 10분쯤 광화문 앞에서 철야농성을 시작했다. 경찰은 이날 집회에 차벽트럭 10대 등 모두 40∼50대가량의 차량을 동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추모제, 경찰 vs 시민 대치…최루액 살포

    세월호 추모제, 경찰 vs 시민 대치…최루액 살포

    세월호 참사 1주년인 16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한 5만여명(경찰 추산 1만명)의 시민들이 행사가 끝난 오후 9시부터 세종대로를 가득 메운 채 행진을 벌이며 밤늦게까지 서울시내 곳곳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경찰이 광화문 4거리에 경찰버스로 차벽을 세우고 50여m 앞인 청계광장 앞 16차선 도로에 높은 장벽을 세워 행진을 막자 일부 유가족들과 주최 측인 4·16국민연대, 시민들은 청계천으로 우회해 삼일교 등을 거쳐 광화문광장 쪽으로 접근했다. 일부 유가족과 시민들은 경찰버스 위로 올라가 ‘세월호 즉각 인양’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등을 외쳤다. 경찰은 두 차례 이상 “불법집회를 즉각 해산하라”는 경고방송을 내보낸 뒤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시민들을 제지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과 가수 김장훈 등은 “무엇이 두렵기에 추모의 발걸음을 막느냐”며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앞서 오후 7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 ‘4·16 약속의 밤’에 참석한 시민·학생들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정부 측에 세월호 선체 인양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를 촉구했다. 행사에는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출발한 세월호 유가족들과 낮부터 각지에서 집회와 문화제를 열었던 시민단체 회원과 대학생 등이 참석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 손에 엄마를 붙들고, 다른 손에 국화꽃을 든 어린이들도 눈에 띄였다. 추모제에 참석한 취업준비생 김지원(여·24)씨는 “다시는 세월호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동생 등 가족과 함께 참석했다”면서 “하루빨리 세월호를 인양하고 참사의 원인이 밝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남 장성에서 딸과 함께 참석한 윤두병(70·농업)씨는 “어른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나라를 만들지 못한 것이 죄스럽다”면서 “있는 그대로 진실을 밝히면 되는 것뿐인데 그게 안 되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과 온전하게 세월호를 인양해 실종자를 끝까지 찾아주겠다는 대답을 기다렸지만 끝내 답변을 듣지 못했다”면서 “대통령은 우리 가족들을 피해 팽목항에 잠시 머물렀다 대국민 담화문 발표만 하고 해외로 떠났다”고 비판했다. 분향소가 설치된 광화문 광장에는 오후부터 분향 행렬이 이어졌다. 김영인(32)씨는 “오늘 1주년 추모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과천에서 광화문까지 분향하러 왔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대학생들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행진과 퍼포먼스, 집회가 잇따랐다. 15개 대학 총학생회·단과대학생회 등으로 구성된 ‘세월호 대학생 대표자 연석회의’ 소속 1000여명은 각각 경희대·이화여대·남영3로터리·마로니에공원 등에서 오후 4시 16분 출발해 청계광장까지 행진한 뒤 추모집회를 열었다. 이화여대에서 출발한 서울 서부지역 대학생들은 단원고 2학년 1∼10반을 나눠 맡아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304명의 기억을 담은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오후 4시 16분 민주노총의 율동 퍼포먼스가 진행됐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오후 5시 추모 연극제가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선체 인양” vs 경찰 차벽… 또 부딪친 세월호 광장

    “선체 인양” vs 경찰 차벽… 또 부딪친 세월호 광장

    세월호 참사 1주년인 16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한 5만여명(경찰 추산 1만명)의 시민들이 행사가 끝난 오후 9시부터 세종대로를 가득 메운 채 행진을 벌이며 밤늦게까지 서울시내 곳곳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경찰이 광화문 4거리에 경찰버스로 차벽을 세우고 50여m 앞인 청계광장 앞 16차선 도로에 높은 장벽을 세워 행진을 막자 일부 유가족들과 주최 측인 4·16국민연대, 시민들은 청계천으로 우회해 삼일교 등을 거쳐 광화문광장 쪽으로 접근했다. 일부 유가족과 시민들은 경찰버스 위로 올라가 ‘세월호 즉각 인양’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등을 외쳤다. 경찰은 두 차례 이상 “불법집회를 즉각 해산하라”는 경고방송을 내보낸 뒤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시민들을 제지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과 가수 김장훈 등은 “무엇이 두렵기에 추모의 발걸음을 막느냐”며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앞서 오후 7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 ‘4·16 약속의 밤’에 참석한 시민·학생들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정부 측에 세월호 선체 인양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를 촉구했다. 행사에는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출발한 세월호 유가족들과 낮부터 각지에서 집회와 문화제를 열었던 시민단체 회원과 대학생 등이 참석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 손에 엄마를 붙들고, 다른 손에 국화꽃을 든 어린이들도 눈에 띄였다. 추모제에 참석한 취업준비생 김지원(여·24)씨는 “다시는 세월호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동생 등 가족과 함께 참석했다”면서 “하루빨리 세월호를 인양하고 참사의 원인이 밝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남 장성에서 딸과 함께 참석한 윤두병(70·농업)씨는 “어른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나라를 만들지 못한 것이 죄스럽다”면서 “있는 그대로 진실을 밝히면 되는 것뿐인데 그게 안 되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과 온전하게 세월호를 인양해 실종자를 끝까지 찾아주겠다는 대답을 기다렸지만 끝내 답변을 듣지 못했다”면서 “대통령은 우리 가족들을 피해 팽목항에 잠시 머물렀다 대국민 담화문 발표만 하고 해외로 떠났다”고 비판했다. 분향소가 설치된 광화문 광장에는 오후부터 분향 행렬이 이어졌다. 김영인(32)씨는 “오늘 1주년 추모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과천에서 광화문까지 분향하러 왔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대학생들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행진과 퍼포먼스, 집회가 잇따랐다. 15개 대학 총학생회·단과대학생회 등으로 구성된 ‘세월호 대학생 대표자 연석회의’ 소속 1000여명은 각각 경희대·이화여대·남영3로터리·마로니에공원 등에서 오후 4시 16분 출발해 청계광장까지 행진한 뒤 추모집회를 열었다. 이화여대에서 출발한 서울 서부지역 대학생들은 단원고 2학년 1∼10반을 나눠 맡아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304명의 기억을 담은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오후 4시 16분 민주노총의 율동 퍼포먼스가 진행됐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오후 5시 추모 연극제가 열렸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세월호 추모제, 참가자 계란 투척에 경찰 최루액까지 ‘아찔한 현장’

    세월호 추모제, 참가자 계란 투척에 경찰 최루액까지 ‘아찔한 현장’

    세월호 추모제, 참가자 계란 투척에 경찰 최루액까지 ‘아찔한 현장’ 세월호 추모제, 광화문 세월호 참사 1주기인 지난 16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세월호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객들은 광화문 광장 방향으로 행진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곳곳에서 충돌했다. 경찰은 경찰버스 50여대를 동원해 동아일보 사옥∼동아면세점, 세종로사거리 누각∼새문안교회, 안국동사거리, 공평사거리, 동십자사거리, 경복궁역사거리, 종로1가 등지에 차벽을 설치했다. 경찰은 차벽을 파손하려 하거나 경찰관에게 격렬히 저항한 집회 참가자 10명을 연행했다. 기동대 소속 경찰관 한 명도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집회 주최측 추산 5만명(경찰 추산 9000명)의 시민들은 이날 오후 9시 15분쯤 추모제가 끝나자 국화꽃을 들고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세월호를 인양하라’, ’시행령을 폐기하라’, ‘박근혜는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차벽에 막힌 추모제 참가자들은 차벽을 밀거나 들어 올려 넘어뜨리려고 시도하다 일부가 청계천 우회로로 진입했으며, 9시 50분쯤에는 광교와 장통교, 삼일교 등지에서 경찰에게 계란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대치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대응했다. 이어 수표교를 통해 종로로 진입한 시위대 6000여명(경찰 추산)은 오후 10시 20분쯤 종로2가 사거리를 점거하고 광화문 방면으로 이동하다 YMCA 앞에서 차벽과 병력 등으로 막아선 경찰과 맞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광화문 광장 분향소 주변에 있던 유가족 50여명은 오후 10시 40분쯤부터 광화문 누각 앞에서 밤샘농성을 시작했다. 17일 오전 1시쯤 소강상태가 됐지만 여전히 900여명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의 저지를 받았다. 연행자 중에 세월호 참사 유족은 없다고 경찰은 밝혔다. 앞서 16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관련 시민단체, 일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규모 추모제가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추모제, 참가자 계란 투척에 경찰 최루액까지 ‘아찔’

    세월호 추모제, 참가자 계란 투척에 경찰 최루액까지 ‘아찔’

    세월호 추모제, 참가자 계란 투척에 경찰 최루액까지 ‘아찔’ 세월호 추모제, 광화문 세월호 참사 1주기인 지난 16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세월호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객들은 광화문 광장 방향으로 행진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곳곳에서 충돌했다. 경찰은 경찰버스 50여대를 동원해 동아일보 사옥∼동아면세점, 세종로사거리 누각∼새문안교회, 안국동사거리, 공평사거리, 동십자사거리, 경복궁역사거리, 종로1가 등지에 차벽을 설치했다. 경찰은 차벽을 파손하려 하거나 경찰관에게 격렬히 저항한 집회 참가자 10명을 연행했다. 기동대 소속 경찰관 한 명도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집회 주최측 추산 5만명(경찰 추산 9000명)의 시민들은 이날 오후 9시 15분쯤 추모제가 끝나자 국화꽃을 들고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세월호를 인양하라’, ’시행령을 폐기하라’, ‘박근혜는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차벽에 막힌 추모제 참가자들은 차벽을 밀거나 들어 올려 넘어뜨리려고 시도하다 일부가 청계천 우회로로 진입했으며, 9시 50분쯤에는 광교와 장통교, 삼일교 등지에서 경찰에게 계란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대치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대응했다. 이어 수표교를 통해 종로로 진입한 시위대 6000여명(경찰 추산)은 오후 10시 20분쯤 종로2가 사거리를 점거하고 광화문 방면으로 이동하다 YMCA 앞에서 차벽과 병력 등으로 막아선 경찰과 맞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광화문 광장 분향소 주변에 있던 유가족 50여명은 오후 10시 40분쯤부터 광화문 누각 앞에서 밤샘농성을 시작했다. 17일 오전 1시쯤 소강상태가 됐지만 여전히 900여명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의 저지를 받았다. 연행자 중에 세월호 참사 유족은 없다고 경찰은 밝혔다. 앞서 16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관련 시민단체, 일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규모 추모제가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추모제, 경찰 vs 시민 대치…최루액 살포

    세월호 추모제, 경찰 vs 시민 대치…최루액 살포

    ‘세월호 1주기 추모행사’ ’세월호 추모제’ 세월호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과 경찰이 밤늦게 곳곳에서 충돌했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인 16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한 5만여명(경찰 추산 1만명)의 시민들이 행사가 끝난 오후 9시부터 세종대로를 가득 메운 채 행진을 벌이며 밤늦게까지 서울시내 곳곳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경찰이 광화문 4거리에 경찰버스로 차벽을 세우고 50여m 앞인 청계광장 앞 16차선 도로에 높은 장벽을 세워 행진을 막자 일부 유가족들과 주최 측인 4·16국민연대, 시민들은 청계천으로 우회해 삼일교 등을 거쳐 광화문광장 쪽으로 접근했다. 일부 유가족과 시민들은 경찰버스 위로 올라가 ‘세월호 즉각 인양’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등을 외쳤다. 경찰은 두 차례 이상 “불법집회를 즉각 해산하라”는 경고방송을 내보낸 뒤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시민들을 제지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과 가수 김장훈 등은 “무엇이 두렵기에 추모의 발걸음을 막느냐”며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앞서 오후 7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 ‘4·16 약속의 밤’에 참석한 시민·학생들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정부 측에 세월호 선체 인양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를 촉구했다. 행사에는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출발한 세월호 유가족들과 낮부터 각지에서 집회와 문화제를 열었던 시민단체 회원과 대학생 등이 참석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 손에 엄마를 붙들고, 다른 손에 국화꽃을 든 어린이들도 눈에 띄였다. 추모제에 참석한 취업준비생 김지원(여·24)씨는 “다시는 세월호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동생 등 가족과 함께 참석했다”면서 “하루빨리 세월호를 인양하고 참사의 원인이 밝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남 장성에서 딸과 함께 참석한 윤두병(70·농업)씨는 “어른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나라를 만들지 못한 것이 죄스럽다”면서 “있는 그대로 진실을 밝히면 되는 것뿐인데 그게 안 되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과 온전하게 세월호를 인양해 실종자를 끝까지 찾아주겠다는 대답을 기다렸지만 끝내 답변을 듣지 못했다”면서 “대통령은 우리 가족들을 피해 팽목항에 잠시 머물렀다 대국민 담화문 발표만 하고 해외로 떠났다”고 비판했다. 분향소가 설치된 광화문 광장에는 오후부터 분향 행렬이 이어졌다. 김영인(32)씨는 “오늘 1주년 추모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과천에서 광화문까지 분향하러 왔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대학생들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행진과 퍼포먼스, 집회가 잇따랐다. 15개 대학 총학생회·단과대학생회 등으로 구성된 ‘세월호 대학생 대표자 연석회의’ 소속 1000여명은 각각 경희대·이화여대·남영3로터리·마로니에공원 등에서 오후 4시 16분 출발해 청계광장까지 행진한 뒤 추모집회를 열었다. 이화여대에서 출발한 서울 서부지역 대학생들은 단원고 2학년 1∼10반을 나눠 맡아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304명의 기억을 담은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오후 4시 16분 민주노총의 율동 퍼포먼스가 진행됐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오후 5시 추모 연극제가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추모제…경찰, 추모객들에 최루액 뿌리고 차벽으로 광화문 막아 ‘충돌’

    세월호 추모제…경찰, 추모객들에 최루액 뿌리고 차벽으로 광화문 막아 ‘충돌’

    세월호 추모제…경찰, 추모객들에 최루액 뿌리고 차벽으로 광화문 막아 ‘충돌’ 세월호 추모제, 광화문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세월호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객들은 광화문 광장 방향으로 행진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곳곳에서 충돌했다. 경찰은 경찰버스 50여대를 동원해 동아일보 사옥∼동아면세점, 세종로사거리 누각∼새문안교회, 안국동사거리, 공평사거리, 동십자사거리, 경복궁역사거리, 종로1가 등지에 차벽을 설치했다. 경찰은 차벽을 파손하려 하거나 경찰관에게 격렬히 저항한 집회 참가자 10명을 연행했다. 기동대 소속 경찰관 한 명도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집회 주최측 추산 5만명(경찰 추산 9000명)의 시민들은 이날 오후 9시 15분쯤 추모제가 끝나자 국화꽃을 들고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세월호를 인양하라’, ’시행령을 폐기하라’, ‘박근혜는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차벽에 막힌 추모제 참가자들은 차벽을 밀거나 들어 올려 넘어뜨리려고 시도하다 일부가 청계천 우회로로 진입했으며, 9시 50분쯤에는 광교와 장통교, 삼일교 등지에서 경찰에게 계란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대치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대응했다. 이어 수표교를 통해 종로로 진입한 시위대 6천여명(경찰 추산)은 오후 10시 20분쯤 종로2가 사거리를 점거하고 광화문 방면으로 이동하다 YMCA 앞에서 차벽과 병력 등으로 막아선 경찰과 맞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광화문 광장 분향소 주변에 있던 유가족 50여명은 오후 10시 40분쯤부터 광화문 누각 앞에서 밤샘농성을 시작했다. 17일 오전 1시쯤 소강상태가 됐지만 여전히 900여명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의 저지를 받았다. 연행자 중에 세월호 참사 유족은 없다고 경찰은 밝혔다. 앞서 16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관련 시민단체, 일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규모 추모제가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광화문의 추억/김정현 소설가

    [열린세상] 광화문의 추억/김정현 소설가

    광화문 언저리,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종문화회관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가도 인근과 맺은 인연이 어느덧 40년이 되어간다. 사람을 만나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술잔을 나누며 정을 쌓은 대부분이 그곳이었다. 지척에는 인사동과 무교동이 있고, 조금 더 걸음을 옮기면 북창동, 남대문시장, 명동도 있다. 개발 바람 탓에 피맛골을 비롯한 옛 정취가 많이 사라지니 그 서운함을 삼청동과 서촌, 북촌이 대신 달래준다. 집이나 직장과 같은 특별한 근거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광화문 일대는 무시로 걸음하는 곳이다. 책 몇 권을 사는 걸음으로, 전시장을 둘러보러, 공연을 관람하러. 어린 시절에는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청년이 되어서는 연인의 팔짱을 끼고, 장년이 되어서는 벗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노년이 되어서는 추억을 가슴에 품고서.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꼭 광화문 언저리가 아니어도 이제 볼거리, 살거리, 먹거리 정도는 전국 어디에서나 넘쳐난다. 추억도 제각각 태어나고 자란 곳이 다르니 굳이 걸음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럼에도 한 번쯤 그 언저리를 거닐어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고, 이문세의 노래 <광화문연가>라도 읊조릴 때면 마치 자신의 추억인 양 아련한 그리움에 젖는다. 그렇다. 광화문은 그런 곳이다. 이 나라의 중심이자 이 나라 모든 사람의 마음 바탕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두 번의 발걸음에도 그처럼 아련한 추억을 만들어 간직할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광화문 일대를 지나자면 추억이 쌓일 수 없는 갑갑함이 어깨를 짓누른다. 하루가 빤하지 않게 길거리 양옆에 늘어서 장벽을 만드는 경찰버스. 새롭게 마련된 광장마다 빼곡히 늘어선 천막들. 몇 년째, 혹은 몇 달째 인도(人道)를 점령해 밤낮으로 드러눕기까지 하는 사람들…. 하긴 4·19혁명, 6·10항쟁, 심지어는 5·16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변혁을 이룬 분수령의 중심도 광화문이었다. 그러니 저마다 억울함과 분노를 품은 이들이라면 모두 광화문으로 모여들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광화문 언저리에 아련한 추억을 품어 다시 찾는 이들은 아무런 억울함도 분노도 없었을까. 아닐 것이다. 모두 저마다 품은 분노가 있고, 변혁의 분수령을 이룰 때는 함께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추억의 거리로 되돌려 아이의 손을 잡고 서점을 찾거나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을 것이다. 에둘러 말하자니 숨이 막혀 안 되겠다. 이제 그만 광화문 일대를 평화의 일상으로 돌려놓았으면 한다. 그곳은 대한민국의 심장이고 우리의 마음 바탕이다. 우리에게 분노가 아니라 평화가 가득해야 하지 않겠는가. 평화는 분노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제와 양보로 이루어가는 것이니 최소한 마음 바탕에서 분노를 일상화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언제나 소란한 가운데에서는 분노도 힘을 잃는다. 아무리 절절한 분노도 일상이 되어서는 폭발력을 잃는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에 한번 모이는 결집이 세상을 바꾸지 않았던가. 서울시청 앞 자동차 광장이 초록빛 광장으로 뒤바뀔 때 참으로 흐뭇했다. 2002년 월드컵 응원 열기가 초록광장을 붉게 물들일 때는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그래도 가장 보기 좋은 것은 그저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이 초록 광장 위를 제멋대로 뛰어노는 모습이었다. 소란하지 않은 그 평화로운 일상이야말로 모든 이들이 바라는 궁극의 꿈이 아닐 텐가. 언제부턴가 그 광장도 또 소음과 난장의 일상화로 바뀌고 있다. 무대가 설치되는가 하면 천막이 처지고, 스케이트장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장터가 되기도 한다. 이유야 매번 그럴 듯하고 그로 인해 이익을 보는 이들도 있으리라. 그러나 날마다 펼쳤다 접었다, 깔았다 거두는 그 비용은 모두 세금이 아니던가. 사람들을 들썩거리게 하면 그것을 주최하는 이의 지명도를 높이기는 한다. 그렇지만 이벤트의 진화는 광속이니 여간해서는 따라잡기 어려울 테고 결국은 돈을 퍼붓지 않으면 무리수가 되기 십상이다. 시청 앞 잔디광장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서울광장 아래 청계천변에서는 연인과 가족들이 산책하고, 광화문광장에서는 청년들이 제각각 놀이를 하는, 변하지 않는 오래된 모습이 추억으로 쌓였으면 한다.
  • “명절인데… 그동안 함께 버틴 유가족들 더 가족같이 느껴져”

    “명절인데… 그동안 함께 버틴 유가족들 더 가족같이 느껴져”

    추석 이튿날인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추석 연휴라지만 19일째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에겐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추석 연휴도 잊은 채 농성을 이어 가는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간간이 시민사회단체 관계자와 친척 등이 방문했을 뿐이다. 유가족 10여명은 이날도 주민센터 입구 옆 40㎡ 남짓한 공간을 지켰다. 경찰버스 2대도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노란색 플라스틱 바리케이드에는 ‘이 선을 넘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이 적혀 있었다.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고 오영석군의 어머니는 “어제 안산 하늘공원에서 우리 영석이를 만나고 왔다. 명절인데 친척보다 그동안 함께 버텨 온 유가족들이 더 가족처럼 느껴진다”며 힘없이 웃었다. 그는 전날 안산 합동분향소에 아들이 좋아했던 음식들을 놓고 왔다고 밝혔다. 이어 “함께 농성하는 유가족들이 없었다면 방에 틀어박혀 영석이 영정사진을 부둥켜안고 울었을 텐데 차라리 이곳에 나와 있는 게 낫다”고 허탈하게 말했다. 단원고 2학년 고 김주희양의 아버지는 “어른들 욕심 때문에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묻혀 가고 있다”면서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우리 아이를 위해, 또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단식 농성 천막이 세워져 있는 광화문광장은 막바지 연휴를 즐기려는 가족 단위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 등이 인근 고궁과 서촌, 청계천 등을 찾으면서 평일보다 더 붐볐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은 단식 농성 천막과 동조 단식하는 이들을 향해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기도 했다. 한편 추석인 8일 유가족 300여명은 안산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희생된 학생들이 좋아하던 음식을 올려놓고 ‘합동 기림상’을 차려 고인들의 넋을 위로했다. 유가족들은 아직 시신이 수습되지 않은 10명의 실종자 가족을 배려해 합동 차례를 지내지 않고 행사 직후 광화문광장에 모여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위헌 결정난 ‘차벽’ 남발… 인권 무시하는 경찰

    위헌 결정난 ‘차벽’ 남발… 인권 무시하는 경찰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 현장과 유가족 농성장을 경찰이 ‘차벽’(버스로 특정 장소나 시위대 봉쇄)으로 차단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1년 ‘차벽 설치’는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지난 30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와 국민대책위원회가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대회’를 열었다. 이날 경찰은 4000여명(경찰 추산 2000여명)이 모인 광화문광장을 차벽으로 봉쇄했다. 그리고 30개 중대 2400여명의 병력을 투입해 집회를 감시했다. 또 미신고 집회라며 해산 명령을 내렸다. 이에 대책위는 “서울시로부터 광화문광장 정식 사용 허가 공문을 받았다”며 집회를 강행했다. 앞서 지난 25일에는 광화문광장까지 행진한 서울대·경희대 학생 500여명 중 일부가 청와대 쪽으로 향하자 100여대의 경찰버스를 동원해 가로막기도 했다. 경찰은 세월호 유가족이 농성을 시작한 지난 22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을 경찰버스 10여대로 포위했다. 가족들은 “범죄자 취급하느냐”며 반발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항의가 잇따르자 지난 26일부터 차벽 일부가 사라졌다. 현재 낮에는 경찰버스 한 대만 주민센터에서 대기하고 밤에는 다시 차벽이 설치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인 2009년 6월 경찰이 서울광장을 차벽으로 둘러싸 시민 통행을 막은 것과 관련해 헌재는 “극단적인 조치로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이다. 불법 집회 가능성이 있다 해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는 최소한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지만, 경찰은 이후에도 시국집회 및 시위에 종종 차벽을 세웠다.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세월호 특위 위원장은 “차벽 설치는 위헌인 것은 물론 형법상 직권남용과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며 “민변 차원에서 대응팀을 꾸려 법적 대응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뛰쳐나오면 종로와 광화문 일대에 교통 대란이 일어난다”며 “집회에 참가하지 않은 일반 시민들의 통행권을 보장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여의도 블로그] 박원순 ‘보이지 않는 힘’

    [여의도 블로그] 박원순 ‘보이지 않는 힘’

    리얼미터는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2주 연속 1위에 올랐다고 27일 밝혔다. 지난 22일 한국갤럽 선호도 조사에서도 1위였다. 세월호 정국 복판에 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3위권이다. 정치권 이슈에서 한발 떨어져 있는 박 시장에 대한 지지가 강화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최근 대립과 불통으로 표상되는 ‘여의도 정치’에 대한 반감이 첫 번째 이유로 꼽힌다. 전면에 나서지 않되 가능한 행정력의 범위 안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측면 지원한 ‘절제’에 대한 호응이 높은 게 두 번째 이유로 제기됐다. 세월호 정국에서 박 시장의 역할이 없는 듯하지만, 실상 넉 달째 서울광장에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유지되고 최근 광화문광장의 십여개 천막에서 시민 단식농성이 가능한 배경에는 박 시장의 정치력이 미쳐 있다. 지난해 2분기 32건(1300여만원)의 실적을 낸 서울광장 대관을 분향소 설치 이후 중단키로 결정한 주인공이 박 시장이다. 박 시장 이전인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서울광장 주변엔 경찰버스로 차벽이 쳐졌고, 진입이 금지된 바 있다. 정책 측면에서도 박 시장의 행보는 여의도 정치권과 구별된다. 새정치연합 ‘1호 법안’이자 정부가 전날 담화문에서 “2300억원의 예산집행을 위해 법 통과가 절실하다”고 지목한 ‘송파 세 모녀 자살 방지법’에 대한 박 시장의 해법이 그렇다. 지난 2월 ‘세 모녀 자살’ 이후 서울시는 자체적으로 기초생활수급 탈락 가구를 조사해 선별한 뒤 예산 배정방식을 바꿔 선별된 가구를 지원하고 있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법 체계를 바꾸고 특별예산을 설치하며 법석을 떠는 ‘여의도식 정치’ 대신 박 시장은 기존 행정 역량을 활용해 이미 배정된 예산 안에서 문제해결력을 키우는 방식을 택한 셈이다. 6·4 지방선거 때 새누리당은 박 시장에 대해 “별로 한 일이 없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지방선거와 이후 지지율을 보면, 여론은 이 말을 “여의도 정치 관점에서만 한 일이 없다”고 해석하는 듯하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금수원 두엄마 체포 진입작전 어땠나…금수원 ‘김엄마’ ‘신엄마’ 어디 있나

    ‘금수원 두엄마’ ‘금수원 진입작전’ ‘금수원 재진입’ ‘김엄마’ ‘신엄마’ 금수원 두엄마 체포작전이 전격 집행됐다. 검찰은 금수원 진입작전을 위해 6000여명의 공권력을 투입했다. 11일 오전 전격 단행된 ‘신엄마’(64·여), ‘김엄마’(59·여) 등 체포작전은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하듯 이른 새벽부터 매우 긴밀하게 이뤄졌다. 경찰은 오전 4시 30분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상삼리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본산인 금수원 앞으로 경력을 집결시켰다. 동원된 인력만도 경기·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기동대 63개 중대와 정보형사 등 6000여명에 헬리콥터, 물대포, 소화기, 119구조장비, 응급차량까지 준비했다. 구원파 신도들이 영장집행을 거부, 저항할 경우 강제진입까지 고려한 포석이었다. 경찰은 또 오전 6시 30분쯤 금수원 앞 38번 국도 양방향 차량통행을 완전 차단하고 철제 도로 중앙분리대를 용접기를 이용해 50m가량 절단했다. 중앙분리대가 철거되자 경찰버스, 지휘차량 등은 반대차로를 이용, 경력을 이동시키는 등 본격적인 진입에 대비했다. 또 금수원 좌우측에 사복체포조와 119구조대원을 배치, 동시다발적인 진입과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신도들 역시 이른 새벽부터 정문 앞에 모여 찬송가를 부르며 진입에 대비했고 간간이 ‘종교탄압 중단’, ‘무죄추정 원칙 준수’, ‘종교탄압 유혈사태 검찰은 각오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또 방송을 통해 “이제 올 것이 왔다. 신도들에게 알려 최대한 막아보자고”라고 내부 결속을 다짐했다. 일부 신도들은 카메라에 부착된 노트북을 현장 이곳저곳으로 돌리며 기자들과 경찰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규모 공권력 투입소식을 사전에 파악했는지 일부 신도들은 승용차를 타고 금수원을 속속 빠져나갔다. 검찰은 오전 7시쯤 영장이 담긴 서류봉투를 들고 정문 앞에서 대기했고 경찰도 완전무장한 기동대원들을 정문 인근에 배치했으며 금수원 상공에는 헬기를 띄워 상황을 파악했다. 경찰이 본격 투입되기에 앞서 오전 7시 35분쯤 조계웅 구원파 전 대변인은 ‘우리가 바라는 건 세월호의 진실입니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뒤 질의응답 없이 돌아갔다. 그 뒤 검찰은 체포·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하며 합법적인 압수수색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고 거의 같은 시간대인 7시 59분쯤 금수원 정문에서 200∼300m가량 떨어진 좌우측 출입통로로 일부 경찰이 내부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이때 방패든 경찰 기동타격대원들도 정문 앞으로 이동했다. 이태종 평신도복음선교회 대변인은 경찰과 기자들에게 “이 안에 들어가 봤자 한 명도 체포 못 한다. 체포할 사람 이 안에 없다”면서도 “그러나 문을 열어주자고 신도를 설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구원파 신도들이 문을 열고 스크럼을 풀자 오전 8시 13분 경찰·검찰 체포조가 대거 금수원 안으로 투입됐다. 투입과정에서 신도들은 서로 “절대 흥분하지 마라. 돌발 행동하지 마라”라고 서로에게 당부했다. 이 때문인지 경찰의 진입은 별다른 저항없이 순조롭게 이뤄졌고 이어 검찰은 대강당에서 영장을 첫 집행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내란 음모’ 첫 공판 참석한 이석기, 여유있게 웃으면서 악수까지

    ‘내란 음모’ 첫 공판 참석한 이석기, 여유있게 웃으면서 악수까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에 대한 ‘내란 음모’ 사건 공판이 12일 오후 열렸다. 33년 만의 첫 ‘내란 음모’ 사건 재판이다. 이날 오후 2시 수원지법 110호 법정에는 이석기 의원을 비롯해 피고인 7명이 입장했다. 검은색 양복에 넥타이를 매지 않은 차림으로 법정에 출석한 이 의원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함께 기소된 다른 피고인들과 악수를 나누는 여유까지 보였다. 피고인 가운데 한명인 진보당 경기도당 김홍열 위원장은 방청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피고인 7명에 더해 김칠준, 이정희, 심재화 등 변호사 16명 등 23명은 피고인석이 모자라 법정경위석까지 차지해 자리를 잡았다. 재판이 시작되자 수원지법 형사12부 김정운 부장판사의 재판과정 설명이 진행됐다. 담담한 표정으로 재판과정을 듣던 피고인들은 검찰의 공소사실 진술이 이어지자 굳은 표정으로 아래쪽을 가만히 응시했다. 이날 재판에 앞서 수원지법 정문 앞에는 이른 시각부터 보수단체와 진보단체의 ‘맞불’ 집회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상황을 주시하는 경찰 기동대 등 수백명이 북새통을 이뤘다. 블루유니온 등 보수단체 회원 300여명은 수원지법 왼쪽 건너편 인도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이석기 엄벌’ 등의 구호를 외쳤고, 법원 오른쪽 건너편 인도에서는 진보당 당원 등 진보단체 회원 100여명이 정당연설회를 갖고 ‘국정원 규탄, 이석기 석방’ 등을 요구했다. 경찰은 이들의 대치상황에 따른 물리적 충돌이 빚어질 경우를 대비해 편도 2차로인 법원 진입도로 중 각 1개 차로씩을 경찰버스 10대로 막았고, 경찰 병력 9개 중대(여경 1개 소대) 등 800여명을 배치했다. 한편 재판에 앞서 오후 1시 방청권 배부가 시작되자 통일미래연대 소속 탈북회원 26명이 차례로 줄을 서 방청권을 받아갔다. 이들을 비롯한 탈북자 60여명은 방청권을 받기 위해 사흘 전인 지난 9일 오후부터 법원 앞에서 밤샘 대기를 해왔다. 형사 110호 법정 98석 가운데 취재진 방청권 30장과 수사 및 재판 관계자 42장을 제외한 26장만 일반에 배부됐다. 수원지법은 방청권 경쟁이 치열해 지자 2차 공판부터는 선착순이 아닌 추첨제로 배부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진주의료원 해산 조례 11일 표결

    폐업된 진주의료원을 해산하기 위한 조례가 11일 열리는 경남도의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새누리당 도의원들은 개회 첫 날인 11일 오후 2시 본회의에서 조례안의 표결 처리를 강행할 방침이다. 그러나 도의회 야권 교섭단체인 민주개혁연대 의원들은 조례안 처리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겠다며 맞서고 있어 충돌이 예상된다. 진주의료원 해산 조례안은 야권 도의원들과 보건의료노조 등이 강하게 반대하는 가운데 지난 4월 도의회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됐으나 지난 4~5월 본회의와 긴급임시회에서 처리가 보류돼 6월 임시회로 미뤄졌다. 새누리당과 민주개혁연대 의원들은 조례안 처리를 둘러싼 대립과 충돌로 11일 도의회 출입이 봉쇄되는 등의 상황에 대비해 이날 미리 등원해 의회 안에 머물며 대기하고 있다. 경남 창원시 중부경찰서는 보건의료노조가 경남도의회 앞에서 10일부터 오는 28일까지 집회를 하겠다고 낸 신고에 대해 폭력사태가 우려돼 금지통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 9일부터 도의회 주변에 1개 중대를 배치하고 도의회 출입구에 경찰버스 7대를 세워 차벽을 설치하는 등 경비를 강화하고 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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