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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세대 감정 건드린’ 김현철 보좌관 사표 전격 수리

    ‘전 세대 감정 건드린’ 김현철 보좌관 사표 전격 수리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의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 전날 대한상공회의소 조찬간담회에서 50~60대를 겨냥해 “할 일 없다고 소셜네트워크(SNS)에서 험한 댓글만 달지 말고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처럼 아세안으로 가라”는 취지의 표현을 비롯한 전 연령대를 겨냥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논란이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현 정부들어 ‘설화(舌禍)’를 일으킨 참모의 경질은 처음이며, 이처럼 신속하게 이뤄진 것도 이례적이란 점에서 ‘문책’의 성격이 짙다. 김 보좌관은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 등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오늘) 출근하자마자 사의를 표했고, 문 대통령이 조금 전 사의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김 보좌관에게 “초기 경제정책의 큰 틀을 잡는 데 크게 기여했고, 경제보좌관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며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발언 취지를 보면, 신남방정책의 중요성 강조하다 보니 나온 말”이라고 밝혔다고 김 대변인은 전했다. 인사에 관한 한 극도로 신중한 문 대통령이 하루 만에 경질한 것은 김 보좌관 발언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엄중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김 보좌관이 청년층을 향해 “취직 안 된다고 ‘헬조선’이라 하지 말고, 신남방 국가를 (가)보면 ‘해피 조선’이라고 느낄 것”이라고 했고, 자영업자들에게 “한국 식당수는 일본의 3배에 가깝다. 힘들다면서 국내에서만 경쟁하느냐. 해외에 왜 안 나가느냐”고 말하는 등 전 세대의 감정적 임계점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제지표 악화와 특별감찰반 비위 및 민간인 사찰 의혹 등으로 지지율이 내리막길을 걷다가 최근 경제·민생 행보를 통해 힘겹게 반등시키는 국면에서 ‘대형악재’로 판단한 것이다. 여론 구전력이 강한 설 연휴를 앞두고 ‘밥상머리 화제’에 오르는 걸 차단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언론 보도를 주의깊게 보신다. 의도야 어쨌든 지극히 부적절했고, 여론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정무적 보고가 복수 경로로 올라간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한편, 청와대는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의 사표를 사실상 수리했다. 김 대변인은 “아직 수리가 안 됐다.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지만, 행정 절차만 남았다. 탁 행정관은 페이스북에 “수리 소식을 들었다”며 “길었고, 뜨거웠고, 무엇보다 영광스러웠다. 지난 일에 대한 평가는 칭찬이든 비난이든 달게 받겠다”고 밝혔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문대통령, 김현철 경제보좌관 사표 수리

    문대통령, 김현철 경제보좌관 사표 수리

    “헬조선이라지만 아세안에 가면 해피조선” 등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신남방정책특별위원장)의 사표를 문재인 대통령이 수리했다고 청와대가 29일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김 보좌관이 출근하자마자 사의를 표했고 문 대통령이 조금 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김 보좌관을 만나 “우리 정부 초기 경제정책의 큰 틀을 잡는데 크게 기여하고 경제보좌관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해 너무 안타깝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이어 “김 보좌관 발언의 취지를 보면 신남방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나온 말”이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고 김 대변인은 말했다. 김 보좌관은 전날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간담회에서 “50~60대는 SNS에 험한 댓글을 달거나 은퇴 후 산으로 가지 말고 아세안으로 가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김 보좌관은 즉각 사과했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은 국민을 모욕하는 오만한 언행이라며 경질을 요구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의약품 부작용 피해, 6월부터 비급여 진료비도 보상

    오는 6월부터 의약품 부작용 피해를 입은 환자가 입원 진료를 받는 동안 발생한 비급여 진료비까지 보상받을 수 있게 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8일 이런 내용의 ‘2019년도 주요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 제도는 의약품을 정상적으로 복용했는 데도 부작용이 발생해 피해를 본 환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거나 진료비를 지원하는 제도다. 지금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항목에 한해서만 진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약품 부작용과 관계가 미약한 것은 제외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비급여 비용으로 지원을 확대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3월부터 뇌전증 등 희귀난치질환 환자들이 허가된 대마 성분 의약품을 해외에서 들여와 자가 치료용으로 쓸 수 있게 된다. 대마 성분을 함유한 ‘칸나비디올’(CBD) 오일이 뇌전증 등의 신경질환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간 수입을 허용해 달라는 환자들의 요구가 많았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오사카, 크비토바 2-1 누르고 우승, 아시아 최초 세계 1위 예약

    오사카, 크비토바 2-1 누르고 우승, 아시아 최초 세계 1위 예약

    오사카 나오미(4위·일본)가 일본은 물론 아시아 선수 최초로 세계랭킹 1위에 오른다. 오사카는 26일 호주 멜버른의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끝난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여자단식 결승에서 페트라 크비토바(6위·체코)를 2시간 27분 만에 2-1(7-6<7-2> 5-7 6-4)로 누르고 지난해 US오픈에 이어 메이저 두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2세트 상대 서브 게임을 처음 브레이크하며 2-0으로 앞선 크비토바는 내리 네 게임을 내줘 2-5까지 몰렸지만 마지막 평정심을 되찾아 4-5까지 쫓아갔다. 챔피언십 포인트를 세 점수 남겨 절대 유리했던 오사카는 10번째 게임을 브레이크당해 5-5가 되자 신경질적으로 라켓으로 공을 튀겼다. 열한 번째 게임을 챌린지 판독 끝에 0-30으로 몰린 오사카는 듀스 접전 끝에 5-6으로 역전을 허용했다. 열두 번째 게임 0-15에서 자신의 공이 네트에 맞고 안에 떨어지자 울먹이며 기함하는 등 멘탈이 무너져 결국 더블폴트로 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3세트도 기세가 오른 크비토바에게 첫 게임을 내줬으나 내리 세 게임을 따내 3-1를 만든 오사카는 4-2로 맞선 일곱 번째, 크비토바의 서브 게임을 40-0까지 앞서며 브레이크하는 가 싶었지만 오히려 게임을 내줘 4-3 추격을 허용했다. 두 포인트 연속 서브 에이스가 먹혔다. 하지만 크비토바가 에러를 남발하며 5-3이 됐고, 오사카가 마지막 서브 게임을 에이스로 시작해 서브 에이스로 마무리하며 감격의 두 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현재 1위 시모나 할레프(루마니아)는 이번 대회 16강에서 세리나 윌리엄스(16위·미국)에게 져 탈락한 상황이라 이날 어느 쪽이 우승하더라도 28일자 순위에서 생애 처음 세계 1위에 오르는 것이 예정된 상황이었다. 절대 강호 윌리엄스가 2017년 9월 출산을 전후로 자리를 비우면서 춘추전국 시대가 된 여자테니스계를 호령할 새로운 강자로 우뚝 서게 된다. 메이저 두 대회 연속 우승은 2015년 윔블던의 윌리엄스 이후 약 3년 반 만이 된다. 2015년 US오픈부터 지난해 US오픈까지 13개 메이저 대회 여자단식 우승자의 얼굴은 매번 바뀌었는데 오사카가 처음 그 징크스를 끝냈다. 또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챔피언에 오른 뒤 곧바로 다음 메이저 대회를 거푸 우승한 선수로는 2001년 제니퍼 캐프리아티(미국)에 이어 18년 만에 대기록을 쓰게 된다. 1990년생 크비토바는 2011년과 2014년 윔블던 우승을 경험한 뒤 4년 반 만에 나선 메이저 결승에서 완패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하지만 2016년 12월 체코 자택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아 왼손을 크게 다치면서 선수 생명이 끊길 뻔한 위기를 이겨내며 4년 반 만에 다시 메이저 준우승을 차지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박수를 받을 만하다. 윔블던 챔피언 출신 마리온 바르톨리는 이날 경기에 앞서 둘다 “절정의 기량을 보인다”면서도 “가장 최근 그랜드슬램 대회를 우승한 선수가 작지만 더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해야 할 것 같다”고 오사카의 우승을 점쳤는데 적중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나는 스포츠로 사람의 콘텐츠 창출하는 개발업자”

    “나는 스포츠로 사람의 콘텐츠 창출하는 개발업자”

    20대 증권맨, 스포츠 매니지먼트로 전향 쯔엉 인천 입단 계기 베트남협회 朴 소개 “박 감독의 온정과 배려… 영웅 대접 이유”사계절이 뜨거운 베트남은 요즘 ‘박항서 신드롬’으로 더 뜨겁지만, 박항서 감독의 뒤에 아들 뻘인 이동준(34)씨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공식 직함은 디제이매니지먼트와 인스파이어드 아시안 매니지먼트(IAM), 두 회사의 대표이사. 그는 박 감독을 베트남축구협회에 ‘헤드헌팅’한 주인공이다. 그는 박 감독 이전에도 홍명보 감독의 중국 슈퍼리그(항저우 그린타운) 진출을 비롯해 전 북한대표팀 감독이었던 욘 안데르센 감독을 K리그 인천 사령탑으로 불러들였다. 이 대표는 2010년에만 해도 젊은 ‘증권맨’이었다. “평생의 꿈이 스포츠 마케팅”이라며 호기롭게 면접을 통과해 M자산운용에 입사한 이 대표는 3년 동안 신지애를 비롯해 회사가 후원하는 골프 선수들을 돌봤다. 2012년 런던올림픽 축구 동메달을 계기로 에이전트 인생을 본격 개척하기 시작한 이 대표는 K리그 최초의 베트남 선수이자 현재 박항서 대표팀의 주축인 쯔엉 뜨엔 아이를 인천에 입단시켰다. 이 대표는 “축구 한류를 동남아시아에 수출하기 위해선 그들의 콘텐츠를 수입하고 이를 우리의 콘텐츠로 가공해 다시 수출한다는 ‘역발상’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쯔엉의 해외 진출을 눈여겨본 베트남축구협회는 이 대표에게 한국인 감독을 의뢰했다. 2017년 9월 당시는 협회가 국제대회 성적 부진으로 코너에 몰려 있던 때였다. 이 대표는 2시간 만에 ‘박항서’에 대한 자료를 만들어 이메일을 보냈고, ‘수출 오퍼’는 성공했다. 한 달 뒤 베트남을 찾은 박 감독에게 50명의 전·현 대표팀 명단을 건넸다. 그러나 그는 비행기는 물론 버스와 승용차를 타고 베트남 전역을 훑어 후보명단을 90명으로 늘렸다. 한 주에 베트남리그 경기를 7개씩 거르지 않고 ‘직관’한 결과였다. 이때 발굴한 선수 가운데 한 명이 스즈키컵 결승전 당시 선제 결승골을 넣어 MVP에 오른 33세의 응우옌 안둑이다. 이 대표는 “박 감독은 평범하지만 특별한 사람”이라면서 “소외된 이의 등을 쓰다듬는 온정과 아량, 배려는 베트남이 그를 영웅으로 생각하는 이유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박 감독이 부임 2개월 만에 경질될 위기에 처할 뻔한 일도 소개했다. 지난해 12월 U23(23세 이하) 대표팀의 M-150컵 2차전에서 우즈베키스탄에 2진급을 대거 출전시켜 1-2로 졌다. 더 중요한 대회인 U23 챔피언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선수들을 확인하려는 실험이었지만 베트남축구협회의 시선은 싸늘했고, 경질론까지 흘러나왔다. 이 대표로부터 분위기를 전해 들은 박 감독은 다음 경기에서 ‘라이벌’인 태국을 10년 만에 이기는 쾌거를 거뒀고, 이후 ‘박항서 매직’은 순탄한 길을 걷게 됐다. 그는 스스로를 ‘스포츠 개발업자’로 자처한다. 그의 일은 스포츠를 통해 사람의 콘텐츠를 창출하고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그는 “정확한 수익모델과 가능성을 제시한다면 투자를 아낄 사람은 없다”고 강조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4차 산업혁명시대 이끌 ‘브레인 사이언스 파크’ 등 뇌관련 인프라 구축 필요

    4차 산업혁명시대 이끌 ‘브레인 사이언스 파크’ 등 뇌관련 인프라 구축 필요

    전 세계적으로 1억명 이상이 앓고 있는 치매나 뇌졸중 등 뇌신경질환의 진단및 예방, 치료기술 개발을 실용화하기 위해서는 뇌관련 첨단산업과 의료기관이 한곳에 결집해 협력할수 있는 클러스터 조성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7일 수원 라마다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뇌 과학-ICT-의료융합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컨퍼런스’에서는 이를 포함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이날 컨퍼런스는 신약개발업체인 (주)지엔티파마가 주최하고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한국뇌신경과학회, 뇌질환연구협의회가 후원했다. 지엔티파마는 난치성 질환인 뇌졸중·치매 치료제를 개발해 국내·외에서 임상시험 중에 있으며 국내 최초의 뇌 관련 의료복합단지인 ‘브레인 사이언스파크 조성 사업’을 추진중이다. 이날 컨퍼런스에서 세계신경과학회 회장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장을 지낸 데니스 최(한국명 최원규) 미국 뉴욕스토니브룩의과대 석좌교수는 기조 강연을 통해 “급속히 발전하는 뇌과학에 힘입어 뇌·척수 등 신경질환의 치료 기술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뇌기반 인공지능이 4차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면서 “한국은 의료 수요와 함께 관련 기업의 연구개발 역량이 잘 갖춰져 있고 정부도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펴고 있는 만큼, 뇌관련 의료융합 클러스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교수는 또 “20년전에는 글로벌 뇌질환 신약개발 연구비가 한해에 약 100억달러(12조원)에 달했으나 시기적으로 너무 앞선 바람에 성과가 미흡했다”며 “이제는 실험실의 연구결과를 뇌질환 환자의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과 임상연구가 가능해 지면서 한국에서도 세계가 주목할 만한 결과물이 속속 개발되고 있어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관련, (주)지엔티파마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보건복지부,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치매치료제(AAD-2004)가 중증 치매에 걸린 반려견에서 치료 효과를 보였으며 뇌졸중 치료제(Neu 2000)는 중국에서 임상 2상 환자(237명) 등록을 끝내고 올 하반기 임상 3상에 들어간다. 지엔티파마는 이같은 성과물을 기반으로 수도권 지역에 브레인 사이언스 파크를 조성해 신약개발및 뇌질환 전문 의료시설, 뇌 연구원, 의료기기 기업, 로봇및 인공지등 등 혁신기술 개발업체를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최 교수는 “브레인 사이언스파크 조성 사업은 한국의 뇌산업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멋진 비젼이다”면서 “이 계획이 완성된다면 삼성전자나 SK 하이닉스 등 IT산업 생태계와 바이오 기업이 만나 융복합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성오 한국뇌신경과학회장(한림대의대 교수)은 “현 정부는 2019년도 국가 R&D 예산을 전년도 대비 4.4% 증가한 20조 5000억원을 배정하는 등 신약개발을 포함한 미래 성장동력 창출에 힘을 모으고 있다”면서 “특히 뇌과학-ICT-의료융합클러스터 구축과 같은 인프라 구축사업은 무한 경쟁체제에 돌입한 글로벌 신약개발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데 필수적인 핵심 전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두번째 세션에서 지엔티파마 곽병주 대표도 ‘4차산업혁명과 치매’란 주제강연을 통해 “전 세계는 1억명이 넘는 치매와 뇌졸중 환자로 심각한 사회·경제적인 부담을 안고 있다. 이같은 문제는 4차산업혁명으로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로, 뇌과학·정보통신기술·의료기관이 긴밀히 협력할수 있는 브레인 사이언스 파크 조성 사업 등이 기반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컨퍼런스에서는 이밖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좌용건 전문위원(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의료클러스터 육성정책)과 한국 자산관리연구원 고종완 원장(지역경제및 향후 전망) 등의 주제 강연이 있었다. 한편 이날 컨퍼런스에는 노웅래 민주당 국회의원, 김종천 과천시장, 이건한 용인시의회 의장 등 정치인과 학계및 의료계 관계자, 기업인, 지역 주민 등 400여명이 참석해 지엔티파마가 추진중인 브레인 사이언스파크 조성사업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황성기 칼럼] 한·일은 파탄을 두려워 말라

    [황성기 칼럼] 한·일은 파탄을 두려워 말라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2008년 금융위기 때 얘기다. 위기의 불똥이 독감 백신 원료를 일본에서 수입하던 국내 업체에까지 튀었다. 2007년 100엔에 700원대이던 엔·원 환율이 그해 연말 사상 최고치인 1600원대까지 치솟은 것이다. 일본에 지불해야 할 대금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업체 대표는 발만 동동 굴렸다. 수입을 줄이면 되지만,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독감 백신 대란이 일어날 것은 불 보듯 했다. 결국 대표는 일본으로 달려갔다. 사정을 털어놓자 백신 원료를 공급해 주던 일본 업체는 흔쾌히 가격을 깎아 줬다. 당시 일본에는 독감 백신을 제조하는 업체가 6곳 있었다. 5곳이 일본 국내 공급을 전담하고 1곳만이 한국 등에 원료를 공급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 업체는 거래처인 한국 업체와의 수십년 신의를 고려해 값을 내려 주고, 원료 공급에도 차질이 없도록 해 줬다. 백신 원료를 전량 수입하던 시절이다. 대표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도 제약업계에서는 한·일 간의 정치적 위기에도 상관없이 상생하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의 “한국 대법원 징용 판결은 국제법 위반” 발언(1월 1일)에 외교부가 유감을 표명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일본 정부는 좀더 겸허해져야” 언급(1월 10일)에 외무성 부대신이 “심히 유감”이라고 되쳤다. 양국 정상의 발언에 대해 외교 당국자가 신경질적으로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근래에 드문 일이다. 서로 대포만 안 쐈지 ‘할 테면 해봐라’ 식의 전쟁 일보 직전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지난해 10월 강제징용 판결이 지금 한·일 위기를 불렀지만, 뿌리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있다. 1951년부터 시작된 한·일의 국교정상화 협상은 근본적인 문제는 외면한 채 정치 타결로 끝났다. 일제 식민지배가 합법(일본)이냐 불법(한국)이냐를 협정에 분명히 하지 못했다. 한국이 첫 회담부터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제기하자 일본이 맹반발하고 미국이 얼른 개입해 봉인해 버렸다. 외과 수술로 치면 몸 안에 메스를 놔두고 봉합한 것이다. 한·일의 지난 54년은 청구권협정이란 부실한 불쏘시개로 일제 강점이란 역사 문제를 강제 소각시키려 한 과정이었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대법원 판결이 보여 주듯 결코 태울 수 없는 불완전 연소였는데도 말이다. 한·일이 식민지배의 불법·합법성, 개인청구권의 소멸 여부를 명명백백 가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 타지 못한 역사 문제로 언제든 불타오를 수 있다. 한·일이 65년 이전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고 그래서 파국을 맞을 수도 있지만, 각오를 해야 한다. 일본은 링에 올라와 있다. 법원이 배상판결의 강제집행 신청을 받아들이자 분쟁 상태라 보고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끌고 가기 위한 전 단계로 우리 측에 외교 협의를 요청했다. 우리는 총리실 주도로 관계 부처 대책을 짜고 있다고 하나 두 달 넘게 감감무소식이다. 한국 정부 책임하의 징용 피해자 보상, ICJ 회부 등의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으나 이참에 협정의 근본을 따져 화근을 남기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양국의 포털 사이트를 보면 반일에 비해 반한·혐한 보도가 압도적으로 많은 데 놀란다. 2000년대까지 한국의 반일 보도가 양적에서 우세했으나 지금은 한국은 무관심에 가깝고 일본 혼자서 지글지글 들끓는다. 2002년 김정일·고이즈미 평양 정상회담 이후 일본에 불어닥친 ‘북한 때리기’가 십수년 지나 ‘남한 때리기’로 바뀐 느낌이다. 한국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증식되는 게 남의 나라 일이라고 방치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1000만명이 왕래하고 물건, 돈이 자유롭게 오가는 21세기에 외교 대립이 뭔 대수냐 할 수 있다. 그러나 양국의 정치 갈등이 앞서 든 제약회사 사례와 같은 풀뿌리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옳지 않다. 파탄과 관계 회복의 갈림길에 왔다. 단기처방, 백약이 무효한 시대다. 파탄을 두려워 말고 한·일이 끝까지 싸워 보기를 권한다. 파탄 뒤의 후유증이 두렵거나 역사에 오명을 남길 것 같다면 두 지도자가 무릎을 맞대는 길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나 아베 총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북·일 정상회담에 관심이 팔려 있다. 현해탄을 끼고 번지는 가까운 불부터 끄는 게 순서다. 정상의 셔틀외교가 7년간 중단된 지금의 한·일은 정상이 아니다.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막말 판사’ 5명 중 2명이 상습범

    “왜 이렇게 더러운 사건” “변론은 1분만” 판사들 고압적인 태도 개선 없이 여전 “왜 이렇게 더러운 사건들이 오지?” “네, 아니오로만 대답하세요.” 법정에서 막말을 하거나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등 무례한 태도를 일삼는 판사들이 아직도 제법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16일 발표한 ‘2018년 법관평가’ 결과에 따르면 변호사 5명 이상의 평가를 받은 전국 법관 1111명의 평균 점수는 80.22점(100점 만점)으로 나타났다. 이번 평가에는 전체 회원 1만 5900명 중 2132명(응답률 13.4%)이 참여했다. 이 중 하위 법관으로 선정된 5명의 평균 점수는 58.14점으로 우수 법관 21명의 평균 점수(96.02점)보다 37.88점이나 낮았다. 하위 법관 5명 중 2명은 과거에도 5차례 이상 하위 법관으로 지목됐다. 하위 법관들은 대개 사건 당사자 또는 변호인을 상대로 고압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거나 충분히 변론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 A판사는 재판정에서 고함을 지르거나 변호인에게 면박을 주고 비꼬는 듯한 발언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 변호사는 A판사로부터 “거의 왕을 대하는 신하처럼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는 충고를 들었다”고 털어놨다. B판사는 변론 시간을 1분으로 한정하고, 1분이 지나면 발언을 강제로 중단시킨 것으로 파악됐다. 이 판사는 재판부가 주도하는 조정에 불응하면 판결에 반영하겠다는 의견을 대놓고 드러내는 등 조정을 사실상 강요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최하위 5명에 포함되지 않은 판사들 중에도 피고인이나 변호인을 가르치려 든다거나 재판과 관련 없는 말을 쏟아내는 법관들이 다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한 판사는 피고인이 억울하다고 항변을 하는데도 “무슨 말 할지 알 것 같다”며 말을 끊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느냐?”, “참, 이해 못하시네.”, “나(재판장)는 소주 몇 병 먹어도 안 취한다” 등의 말을 들었다는 변호사들도 있었다. 서울변회 관계자는 “2008년부터 11년째 대법원에 평가 결과를 전달하고 있지만 매번 반응이 없다”면서 “지적을 받은 하위 법관들도 고치려는 노력을 안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윌리엄 바 법무장관 지명자 “뮬러가 ‘마녀사냥’에 관여하고 있다고 믿지 않아“

    윌리엄 바 법무장관 지명자 “뮬러가 ‘마녀사냥’에 관여하고 있다고 믿지 않아“

    “밥(로버트 뮬러)과 저는 사법부에서 30년간 동고동락한 동료이자 친구로서, 그가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하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윌리엄 바 미국 법무장관 지명자는 15일(현지시간) 열린 상원 법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러시아의 2016년 미 대선 개입 의혹인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 중인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에 대해 “공직에 헌신한 그를 존경한다”면서 “(법무장관으로서)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밥이 자신의 일을 마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 지명자가 과거 뮬러 특검 수사를 공개 비판했다는 전력을 들어 민주당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중단시키거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입맛대로 수사 방향을 뒤흔들 위험이 있다고 공세를 높이자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정면 돌파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공화당 중진 린지 그레이엄 의원이 ‘특검이 어떤 사람에 대한 마녀사냥에 관여할 것이라고 믿느냐’고 묻자 바 지명자는 “로버트 뮬러가 ‘마녀 사냥’에 관여하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서면 답변서를 제출하면서 뮬러 특검 수사를 매카시즘에 빗대어 “무고한 많은 사람을 산산조각 낸 불법적인 마녀사냥은 언제 끝날까, 아니면 영원히 계속될 것인가“라고 노골적인 불만을 성토했다. 바 지명자는 또한 “어떠한 ‘외압’이 닥치더라도 사법부의 독립성을 유지할 것”이라며 “뮬러 특검이 자기 일을 완수하게 해서 이 일을 해결하는 것이 대통령, 의회, 미국인 모두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1·6 중간선거 직후 경질된 제프 세션스 전 법무장관은 러시아 스캔들 특검 수사에 대해 스스로 감독권을 행사하지 않는 제척 결정을 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운털이 박혀 모욕에 가까운 질타를 숱하게 받았다. 바 지명자에 대한 청문회는 16일까지 이틀간 진행된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미세플라스틱 독성 이 정도일줄이야...태아 신경계 교란 가능성 커

    미세플라스틱 독성 이 정도일줄이야...태아 신경계 교란 가능성 커

    최근 치약, 각질제거를 위한 세안제는 물론 공업용 연마제에 사용되는 미세플라스틱이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군다나 여기저기 버려진 폐플라스틱이 햇빛이나 마모로 서서히 부서져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다로 흘러들어간 미세플라스틱을 해양생물들이 먹고 먹이사슬을 따라 최종 소비자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미세플라스틱이 축적될 가능성도 높다. 문제는 미세플라스틱의 위험성은 알려져 있으나 구체적인 위험에 대해서는 명확히 분석돼 있지 않다. 국내 연구진이 실험동물을 이용해 실험한 결과 미세플라스틱이 세포는 물론 태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내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환경질환연구센터와 질환표적구조연구센터 공동연구팀은 5㎜ 이하의 미세플라스틱이나 1㎛(마이크로미터) 이하의 초미세플라스틱(나노플라스틱)이 체내에 흡수될 경우 태아에게까지 전달될 뿐만 아니라 몸 속 세포의 에너지공장인 미토콘드리아에도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나노분야 국제학술지 ‘나노스케일’ 최신호에 실렸다. 연구팀은 제브라피쉬라는 실험동물에 초미세플라스틱을 흡입하도록 한 다음 형광분석과 전자현미경으로 체내 흡수와 복합독성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초미세플라스틱은 난막을 통과해 제브라피쉬 배아의 체내에 쌓이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새끼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난황에 대부분 축적돼 신경이나 각종 기관으로 확산된 것이 관찰됐다. 미세플라스틱이 체내에 남아 각종 이상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또 연구팀은 전자현미경으로 세포수준에서 관찰한 결과 세포 에너지공장인 미토콘드리아도 손상시킨다는 것을 확인했다.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될 경우 약한 독성을 가진 물질이 함께 흡수될 경우 치명적인 급성독성이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연구팀은 금이온을 초미세플라스틱과 함께 흡입하도록 한 다음 미토콘드리아를 관찰한 결과 미토콘드리아가 심각하게 깨지거나 망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진영 박사는 “초미세플라스틱이 몸 속에 축적될 경우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에 영향을 주고 다른 물질에 의한 독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며 “이번 연구는 미세플라스틱과 초미세플라스틱의 체내 흡수와 분포, 잠재적으로 심각한 독성 유발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미세플라스틱 안전성과 관리방안 마련에 중요한 기초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佛 작가 모아 “50세 이상 말고 젊은 여성, 특히 한국 여성 좋아”

    佛 작가 모아 “50세 이상 말고 젊은 여성, 특히 한국 여성 좋아”

    2013년 공쿠르상을 수상하고 지난해 9월 영화배우 제라르 드파르듀와 함께 북한을 방문했던 프랑스 작가 얀 모아(50)가 또래나 그 이상 나이를 먹은 여성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해 입길에 오르고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여성들과 데이트를 하고 싶다는 취향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모아는 여성 잡지 ‘마리 클레르’와의 인터뷰를 통해 50세 이상 여성들은 너무 늙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더 어린 여성들의 육체가 낫다. 그게 전부다. 그 나이면 끝난다. 25세 여성의 몸은 각별하다. 50세 여성의 몸은 도대체 각별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당연히 소셜미디어에선 난리가 났다고 영국 BBC가 7일(현지시간) 전했다. 프랑스 희극배우 마리나 포아는 이제 곧 49회 생일을 앞두고 있으니 이 작가와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1년 하고 14일 남았네”라고 비꼬았다. 한 트위터리언은 오히려 모아의 발언을 듣고 50세 이상 여성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 같다고 놀려댔다. “50세 이하 여성들은 그의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 수는 없는 건가요? 제발”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이도 있었다. 모아의 발언에 항의하는 뜻에서 자신의 몸 사진을 올리는 50세 이상 여성들도 있었다. 콜롬베 슈넥 기자는 자신의 몸 사진을 올리고 “이봐요, 52세인 여자 엉덩이들이에요. 얼마나 당신이 멍청한지 알겠어요. 당신이 뭘 놓쳤는지도 모르잖아요”라고 적었다가 나중에 삭제했다. 할 베리, 제니퍼 애니스톤 등 50세 이상 된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사진을 올려 모아의 발언이 틀렸다고 반박하는 이들도 있었다. 또다른 프랑스 희극배우 안느 루마노프는 유럽 라디오1과의 인터뷰를 통해 로망스란 “엉덩이의 빵빵함이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언급한 뒤 “언젠가 그가 이런 행복을 알게 됐으면 하고 바란다”고 말했다. 모아는 이런저런 문학상도 많이 받았고 영화감독에 방송 진행자로도 활동했지만 늘 독선적이고 직설적인 발언으로 논란을 샀다. 같은 잡지 인터뷰에서도 아시아 여성들과 데이트하고 싶다며 콕 집어 “한국과 중국, 일본” 여성들과 사귀고 싶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랑 데이트했던 여자들에겐 슬프고도 기운 빠지는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내게 아시아 여성들은 충분히 풍족하고 크고 무한한 만족감을 줬는데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RTL 라디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런 반발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여성에 대한 취향 때문에 “책임 질” 일은 없다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고, 그 취향에 대해 답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 역시 여성들에게 최선의 선택이 아닐 것이라고 농을 했다. “50세 여성들도 날 쳐다보지 않는다. 종일 뭔가를 쓰고 책을 읽는 나처럼 신경질적인 남자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과는 다른 일을 하고 싶어한다. 나랑 함께 지내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월드 Zoom in] 빗장 풀린 마리화나 산업…‘나홀로 성장’ 이어가나

    [월드 Zoom in] 빗장 풀린 마리화나 산업…‘나홀로 성장’ 이어가나

    美, 연간 11조여원 규모… “시장 급팽창” ‘반대파 ’ 세션스 前법무장관 경질 호재로 변심한 베이너는 대마 기업 자문위원에 태국, 의료용 허용 등 亞도 합법화 움직임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마리화나 합법화는 ‘뜨거운 감자’였다. 기호용 마리화나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낸 지 1년이 지난 미국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우루과이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기호용 마리화나를 전면 합법화한 캐나다, 멕시코 등 각국이 줄줄이 규제 문턱을 낮췄기 때문이다. 금기시되던 마리화나에 빗장을 푼 국가·도시들이 빠르게 늘고는 있지만 마리화나 기업의 실적이나 정부 당국이 거둬들이는 세수는 예상에 못 미친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 등의 여파로 어두워진 세계 경제 전망 속에서도 마리화나 산업의 급성장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라고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 AP통신 등 미 언론이 최근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서명한 농업 법안은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법안은 환각을 일으키는 향정신성 성분인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의 농도가 0.3% 미만인 대마(헴프)를 합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이 법이 헴프를 규제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의료 목적을 비롯한 마리화나의 상업적 재배·개발이 전면 허용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등 여당인 공화당이 이를 강력하게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기호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미국 내 주 또는 특별구는 미시간, 콜로라도, 워싱턴, 오리건, 알래스카, 네바다, 캘리포니아, 워싱턴DC, 매사추세츠, 버몬트 등 10곳이다. 미주리, 유타 등 32개 주 또는 특별구에서는 의료용 마리화나가 허용되고 있다. 미국의 연간 마리화나 산업 규모는 100억 달러(약 11조 7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AP통신은 “마리화나 산업이 양성화되면서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6 미 중간선거 직후 제프 세션스 전 법무장관이 경질되면서 트럼프 정부 내 마리화나 합법화 추진이 더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세션스 전 장관은 공화당 소속이지만 마리화나 합법화를 강력히 반대하며, 연방정부가 주정부 정책에 개입해 마리화나 관련 범죄를 기소할 수 있도록 지시했던 인물이다. 존 베이너(공화당) 전 미 하원의장 등 마리화나 기업체에 취직한 정치인들의 행보도 눈에 띈다. 세션스 전 장관 못지않게 마리화나 합법화에 반대했던 베이너 전 의장은 지난해 4월 트위터를 통해 “마리화나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세계 최대 마리화나 재배·가공 기업인 ‘에이커리지홀딩스’ 자문위원회에 합류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빌 웰드(공화당)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브라이언 멀로니 전 캐나다 총리도 베이너 전 의장의 뒤를 이었다. 아시아 국가들도 마리화나 산업을 겨냥해 관련 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태국은 지난달 25일 아시아 지역 최초로 의료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중증 환자들에게 마리화나 오일을 판매한 남성이 사형을 선고받은 것을 계기로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 논의에 불이 붙었지만 아직 법 개정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트럼프 ‘재선 모드’… 미·중 무역협상 띄워 증시 살리기 올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중국과 무역 협상을 낙관하며 ‘증시 살리기’에 나섰다. 미국의 증시 활황을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자화자찬 해온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지난해 연말에는 증시 폭락으로 체면을 구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중국과 무역 협상이 매우 잘 진행되고 있다”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켜볼 것”이라며 ‘낙관론’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지난해 말 뉴욕증시가 하락세였던 것과 관련해 “주식시장에 약간의 결함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무역 문제만 해결되면 주식은 오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증시 사랑’은 그동안 증시의 호황을 자신의 주요 성과로 꼽아왔기 때문이다. 이날도 그는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16년 말부터 주가가 꾸준히 올랐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16년 8월 이후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각각 27.3%, 32.3% 상승했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 뉴욕증시 주요 지수가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유럽과 아시아 경기 둔화 우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장 경질설 등으로 급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재선’의 열쇠가 될 ‘증시 살리기’에 올인하는 모습을 연출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증시와 반대로 가는 ‘금리 인상’에 대한 비판을 또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식 상승을 위해) 우리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도움이 조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를 “미국 경제의 유일한 문제”라고 비난하며 증시 부진의 원인으로 여러 차례 지적해왔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무기는 증시 활황과 경제성장률 두 가지”라면서 “앞으로도 주식시장 부양을 위해 여러 정책적 지원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새해 첫 미국의 증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등으로 소폭 상승했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0.08%(18.78포인트) 오른 2만 3346.24로, S&P500 지수는 0.13%(3.18포인트) 상승한 2510.03으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0.46%(30.66포인트) 뛴 6665.94로 거래를 마감했다. 하지만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이례적으로 심각한 매출 부진을 실토하면서 애플의 주가는 시간외 거래에서 최대 8% 급락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효과를 하루를 넘기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미·중 무역협상 좌장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이날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가 필요할 수 있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등 ‘낙관론’에 제동을 걸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중국이 일시적으로 미국산 콩이나 소고기 수입을 늘리는 것과 같은 별 의미 없는 공허한 약속을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들이는 것을 막고자 한다”면서 “공허한 약속을 피하기 위해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추가 관세를 부과해야 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오는 7일 제프리 게리시 USTR 부대표가 이끄는 미국 대표단이 중국 베이징에서 휴전 후 첫 무역협상에 나설 예정이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빛·미세전류로 뇌·신경계 질환 치료한다

    빛·미세전류로 뇌·신경계 질환 치료한다

    생쥐에 바이오 광전자시스템 삽입해 조절기능 잃은 방광에 빛 흘려 정상작동 파킨슨병 등 뇌질환 치료 기술도 개발현대 과학기술은 가장 작은 미립자의 세계부터 그 끝을 상상할 수 없는 광대한 우주까지 감춰진 비밀을 밝혀내고 있다. 그렇지만 ‘뇌’와 ‘신경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말이다.연구자들은 몇 년 전부터 ‘광유전학’이라는 새로운 도구로 뇌가 어떤 일을 하고 기억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각종 뇌 신경계 질환은 어떻게 발생하는지 등의 비밀에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다. 광유전학(optpgenetics)은 빛(opto)과 유전학(genetics)을 결합한 용어로 뇌 신경세포를 빛에 반응할 수 있도록 유전적으로 조작한 뒤 세포의 생리를 연구하는 분야다. 광유전학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인간 수명이 늘어나면서 뇌와 신경계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미주리주 워싱턴대 의대, 일리노이대, 중국 베이징항공항천대 등 공동연구팀은 광유전학과 생체 전기자극을 통해 신경활동을 제어하는 바이오 전자 시스템을 만들어 방광기능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3일자에 발표했다. 특히 이번 연구에는 미국에서 연구 중인 한국인 과학자가 9명이나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암컷 생쥐에게 약물을 주입해 방광의 조절기능을 상실하도록 만들었다. 사람으로 치면 요실금 증상이 나타나도록 한 것이다. 연구팀은 체내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물질을 이용해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발광다이오드(LED), 전력공급용 무선장치, 데이터 모니터링 장치가 하나로 구성된 바이오 광전자시스템을 생쥐에게 삽입했다. 방광에서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삽입된 장치가 빛과 미세전류를 흘려 방광이 정상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방광 부근에 장치를 삽입한 생쥐는 방광조절기능상실 약물이 주입되더라도 방광이 일반 생쥐처럼 정상 작동하는 것이 확인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UC버클리) 전기공학 및 컴퓨터과학과 연구팀도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뇌신경질환이나 뇌전증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치료하고 상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치료기술을 개발해 생체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 지난해 12월 31일자에 발표했다. 연구진이 개발한 ‘WAND’란 장치는 뇌의 128개 부위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움직임을 모니터링하면서 비정상적 전류가 흐를 경우 이를 차단하거나 줄일 수도 있다. 실제로 히말라야 원숭이의 머리에 이 장치를 부착한 뒤 팔과 손의 움직임을 제어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관계자는 “최근 들어 뇌과학 분야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광유전학과 미세전기자극 기술이 결합돼 뇌신경질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며 “특히 광유전학 기술은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우울증, 불면증, 강박증, 기억상실, 거식증 등의 원인과 치료법 개발에도 널리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트럼프 비판 퇴역 장성에게 “개처럼 잘린 사람”

    트럼프 비판 퇴역 장성에게 “개처럼 잘린 사람”

    도널드 트널프 미국 대통령이 새해 벽두부터 막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자신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퇴역 장성에게 “개처럼 잘린 사람”이라며 독설을 퍼부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스탠리) 매크리스털 장군은 (버락) 오바마에게 개처럼 잘린 사람”이라며 “(매크리스털의) 지난 임무는 완전히 실패작이었다. 입이 싸고 말을 못 하는 걸로 알려진 사람이고 힐러리 애호가!”라는 글을 올렸다고 미국 USA투데이 등이 보도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사령관을 지낸 매크리스털 예비역 육군 대장은 지난달 30일 ABC방송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부도덕하다고 보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가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쓴소리했다. 그는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트럼프 대통령과 시리아 철군 등으로 갈등을 빚다 물러난 데 대해서도 “매티스처럼 사심 없고 헌신적인 사람이 물러난다면 우리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가 왜 그랬는지 물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매크리스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1월에도 CNN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미국은 리더십 위기를 겪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한 바 있다. 그는 당시 CNN에 출연해 “대통령은 그저 틀렸다. 그는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도움이 되지 않는 아이디어를 밀어붙인다”고 비난했다. 매크리스털 전 사령관은 앞서 2010년 잡지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당시 대통령 등 정부 최고위층을 공개 비판했다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매크리스털 전 사령관에 대한 경질스토리는 지난해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영화 ‘워 머신’으로 제작해 화제를 모았다. 브래드 피트가 매크리스털 전 사령관을 연기해 호평 받았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앙상블/채기성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앙상블/채기성

    사실 경희를 만나려고 만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먼저 경희를 봤다면 나는 아마도 버스에 타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J가 그녀의 어머니를 논현동 게장 집으로 퇴근 시간에 맞춰 모셔 오지 않았더라면 굳이 몸을 구겨 가며 버스를 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경희를 만나고 나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체 탓에 긴 행렬로 이어진 차들 사이를 뚫고 버스는 간신히 일 차선으로 빠져나와 정류장 쪽으로 겨우 몸을 돌렸다. 출입문 앞 쪽까지 가득 찬 사람들의 무게를 견디며 몸을 늘어뜨리고 천천히 기어 오는 버스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일찍 나오지 그랬어. 조금 늦을 것 같다는 내 문자에 대한 J의 회신에도 한숨이 생략된 것처럼 느껴졌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남들보다 도로 쪽에 위태로울 정도로 바짝 붙어 섰다. 버스 앞문이 열리기는 했지만 입구까지 막아서 있는 사람들을 어깨로 밀어내며 올랐다. 내 바로 뒤에서 어깨로 등을 떠밀던 한 남자는 문이 닫히지 않자 결국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낭패한 표정이 나에게는 왠지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버스 문이 겨우 닫혔다. 수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몰려들었지만 선택받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근래 들어 가장 운이 좋은 순간이었다.다음 정거장에서 앞쪽으로 몇 사람이 내리면서 문이 열렸다. 출입구 난간에 서 있던 나는 다시 사람들을 밀치고 버스 안쪽으로 올라섰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좁은 버스 출입구로 몰려들었지만 탈 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 없었다. 출입구 쪽의 사람들에게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거기에는 퇴근 때보다 더 짙어진 어둠이 있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무표정하게 저마다의 핸드폰을 보며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버스 창에 반사되어 보였다. 차례로 사람들을 훑어보다 버스 중간 즈음에서 나처럼 창밖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낮은 조도의 등 아래에서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경희였다. 오래전부터 나에게 닿아 있었던 것 같은 무거운 시선. 사람들을 비집고 버스에 탈 때부터 나를 알아봤을 것 같은 시선. 아니면 그전부터. 우리가 서로 보지 않았던 시절부터 그래 왔다고 하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경희의 무겁고 오래된 시선에 사로잡혀 나는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무표정한 사람들의 흔들림을 사이에 두고, 경희와 나는 창을 통해 비친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 내려도 되죠?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이 기사 쪽을 향해 몸을 치켜세웠다. 버스 기사는 대답이 없었다. 버스 앞쪽으로 끼어들어 미적거리는 차량 때문에 예민해졌는지 기사는 후미 등을 반복해서 껐다가 켜 댔다. 버스 기사는 앞쪽 출입문은 되도록 열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앞쪽으로 내리는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줄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한두 명 탈 수 있는 공간이라도 타기 위해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이 몰리면서 어깨로, 등으로,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을 밀어냈다. 버스 기사는 혼잡을 피하기 위해 뒷문을 먼저 열어 사람들을 그쪽으로 유도한 다음 앞문을 열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뒤쪽이든 앞쪽이든 누군가 탈 만한 공간은 없었다. 일단 버스 앞쪽 난간에 매달린 다음, 문이 닫힐 수 있도록 까치발을 하고 몸을 앞으로 밀어대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위험하다는 기사의 만류로 내려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타겠다며 몸을 구겨 넣다가 버스를 출발조차 못 하게 만들었던 나를 경희가 봤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얼굴에 열이 올랐다. 고개를 쭉 뻗어서 경희가 있는 쪽을 보려고 했지만 그렇게 해서는 경희를 볼 수 없었다. 다시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 움직이지 않고 내게로 향해 있는 경희의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 경희를 마지막으로 봤던 것은 그녀가 독일로 떠나기 바로 전날이었는데, 그날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나는 경희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먼저 연락하지는 않았다. 매년 경희의 생일을 챙겨 온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때만큼은 그녀의 생일을 챙길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연락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경희였다. 독일로 떠나기 전에 꼭 나를 보고 떠나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러마 했다. 신용카드 연체 독촉 전화와 문자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외출을 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 됐다. 수개월간 회사의 급여가 체납된 끝에 회사를 그만둔 상태였다. 밀린 임금과 퇴직금이 언제 들어올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한동안 내지 못했던 월세 비용과 저축, 보험, 통신 요금의 더미에 묻혀 나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그 더미를 뚫고 나가 경희를 만나 웃으며 생일을 챙겨 줄 수 있을 만한 여력이 전혀 없던 것이었다. 그녀를 만나는 시간만큼이나 연체된 카드 대금이 불어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돈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커피 한 잔은 사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비참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오늘은 내가 살게. 함께 밥을 먹거나 술을 먹고 나서 경희가 보통 그렇게 얘기하면 나는, 배우가 무슨 돈이 있어, 하고는 늘 그렇듯이 그녀보다 한발 앞서 호기롭게 계산을 하고는 했다. 정말 유명한 배우가 되면, 그때야말로 나를 잊지 말고. 그리고 내가 다짐하듯이 경희의 눈을 보며 얘기하면, 보통 그녀는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한 배우라는 말이 낯간지럽다는 듯이. 오늘은 내가 살게. 경희가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하게 내버려 두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나서야 나는 옷을 챙겨서 나갈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늘 만나던 홍대입구 8번 출구에서 만나 경의선 숲길 쪽으로 걸어가면서 경희는 딱히 어디를 가자거나 뭘 먹고 싶다고 선뜻 말하지 않았다. 둘이 자주 가던, 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듣기에 괜찮고, 또 무엇보다도 술이며 안주가 그리 비싸지 않은 익숙한 곳 몇 군데를 얘기해 봤지만 경희는 하나같이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면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와인을 마시고 싶어. 그럼 어디? 뭘 하고 싶은데. 그렇게 물으려던 참이었다. 와인. 경희를 따라 입 밖으로 뱉어진 단어의 모음 두 개가 허공에서 공허하게 떠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두 개의 원 안으로 와인이 무한대로 부어지고 있는 게 떠올려졌다. 경희와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함께 와인을 마셔 본 적이 없었다. 가자, 안 그래도 생일인데. 그건 비싸잖아. 사실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결국 나에게 향한 말일 뿐, 경희에게 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경희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가지 않을 수는 없어 나는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 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와인과 곁들여져 나올 샐러드와 안주 같은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낼게. 와인을 다 마시고 나서 자리를 뜰 때 경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그저 작은 위안이 되었다. 경희가 그 말을 할 때면 아주 단호하고, 무엇보다 진짜 멋있어 보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좋아 보인다며 경희가 앞장서 들어간 곳은 이층짜리 주택을 개조해 만든 건물이었다. 그냥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건물 앞에 주차된 차들은 거의 대형 수입차 세단이었다. 광택이 도는 창문 안쪽으로 와인을 마시며 앞에 앉은 남자를 그윽이 바라보는 여자가 보였다. 푸른색을 띠는 롱 드롭 귀걸이가 여자가 웃을 때마다 흔들렸다. 거기 안쪽에 있는 여자와 양복을 입은 남자,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어쩐지 다른 세상의 사람들 같았는데 그래서 그 안쪽으로 들어간다는 게 여간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진짜인 사람들은 저기에 있는데, 여기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저기 있는데, 그 사람들을 따라 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사람처럼 스스로 여겨져서 그랬다. 와인을 좋아하는 줄 몰랐네. 경희는 그 말을 듣고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옷가지들을 풀지 않고 걸치고 있던 머플러를 더 조여 맸다. 춥기도 하고. 와인을 마시면 몸이 좀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고 경희는 익살스럽게 웃었다. 마음도. 그 말과 동시에 머금고 있던 웃음이 바람에 꺼진 촛불처럼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 순간, 경희의 표정은 차갑고, 두 눈은 아래쪽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일 것이라고 나는 직감했지만 그에 대해서 바로 묻지는 않았다. 경희는 나와 대화 중에도 반복해서 몇 번쯤 웃다가 다시 떠오르는 생각을 제어하지 못하겠는지 허공에 떠 있는 생각들을 겨냥한 채 눈을 겨눴다. 경희는 내가 한 말을 자주 놓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반복해서 물었다. 경희와 나 사이의 대화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계속 어긋나고 있었다. 딱히 서로에게 닿을 만한 대화가 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건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내적 요구가 가장 큰 마음속의 것들을 꺼내 놓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경희가 와인 한 병을 더 마시자고 하기 전에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고, 경희는 와인을 마실 때마다 잔을 비웠다. 처음에는 와인 잔에 반쯤 따르던 나도 양을 삼분의 일로 줄였다. 와인의 건조한 습기가 그녀의 입술에 붙어 입술 틈 사이로 갈라졌다. 깊숙이 몸 안으로 채워 넣을 것이 필요한 사람처럼 경희는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잔으로 담은 붉은색 와인을 몸속으로 들이부었다. 미처 저어할 틈도 없이 경희는 추가로 와인을 주문했다. 경희처럼 단번에 와인을 마셔 버려도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그곳을 나올 때 경희보다 앞서 나오면서 신용카드로 결제한 금액이 이십오만 원쯤이었는데, 내가 낼게, 라고 경희가 나선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네 생일이니까, 이 정도쯤 괜찮아. 내가 먼저 그렇게 얘기하자 경희는 고맙다는 말을 했다. 평소보다 돈을 더 많이 쓴 게 아니냐며 한 번쯤 얘기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나도 위로받고 싶다고. 와인을 마시는 내내 대화가 엇갈린 경희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 마음속에서 웅얼거렸다. 내가 힘들 때도 타인을 챙겨야 한다는 모순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경희가 독일로 떠난 이후, 우리는 만난 적이 없었다. * 팔꿈치로 등을 짓이기는 듯이 세게 문질렀다가 신경질적으로 툭툭 치는 사람은 내 뒤에 서있던 중년의 여성이었다. 등을 마주 보고 서 있었는데 등을 찌르듯이 뾰족한 팔꿈치로 계속 찔러서 나는 최대한 여자의 등과 멀어지려 앞쪽으로 몸을 바짝 당기고는, 등을 활자로 폈다. 상대적으로 배가 앞쪽으로 들이밀어지는 바람에 이번에는 바로 앞에 서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흘겨봤다. 배를 살짝 집어넣자 다시 여자의 팔꿈치 찌르기가 계속됐다. 내가 앞쪽으로 바짝 다가설수록, 그렇게 해서 생긴 빈 공간을 여자가 오히려 좁혀오는 것 같았다. 앞 남자는 몸이 닿는 게 싫은지 어깨춤으로 나를 살짝 밀쳐냈다. 하는 수 없이 활자로 핀 등을 일자로 세우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의 날카롭고 뾰족한 팔꿈치와 닿았다. 왜 자꾸 밀고 그러냐는 여자의 거친 음성과 얼굴이 동시에 나에게 쏟아졌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내 쪽을 쳐다봤다. 저도 계속 밀려서요. 여자에게 따지려 들면 더 싸움이 날까 봐 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젊은 사람이 싸가지가 없긴. 여자는 그렇게 자기 말만 하고는 몸을 획 돌렸다. 결국 그 말을 타인, 상대방에게 던지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의도한 사람처럼 여자는 그 말을 던지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여자의 팔을 붙잡고 지금 뭐라고 한 거냐며 따지며 물었을 텐데 나는 일부러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저 뒤쪽의 경희도 여기를, 지금 나를 보고 있을 것이었다. 여자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방어하는 내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었다. 버스에 탈 때부터, 여자가 팔꿈치로 나를 찌르고,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듣고 있는 순간까지 전부 그대로를 경희는 다 보고 있는 것이었다. 경희와 친구로 지내면서 보여 준 적이 없었던 민낯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만 있는 것 같았다. 버스에 타지 말았어야 한다니까. 나를 탓하는 목소리가 뇌에서 진동 주파처럼 반복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거기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아주머니. 경희의 목소리였다. 아주머니, 방금 뒤에 있는 남자한테 소리 지르신 아주머니요. 차들이 밖으로 늘어서 있었다. 옆 차선으로 옮기려는 차들이 켠 주황색 방향지시등이 깜빡이고, 좁은 틈 사이로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거나 끼어드는 차선을 막아서는 차들의 붉은 후미등이 헤드라이트 불빛과 뒤섞여 흔들리고 있었다. 여자는 사람들로 가려진 버스 뒤쪽을 고개를 돌려가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뭐야, 누구야. 방금 전의 격앙된 목소리보다 누그러진 신중한 목소리로 여자는 중얼거렸다. 그런 사람 아니라구요, 아주머니 옆에 있는 남자. 싸가지 없는 사람 아니에요. 김이 서리기 시작한 창 위로 희미하게 얹힌 도로의 풍경이 캔버스에서 흘러내린 물감들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만들어 낸 그림 같았다. 경희의 목소리가 내게는 비현실적으로 들렸기 때문인지 바로 앞의 풍경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뭐야, 누구야. 누군데 그래 지금. 여자는 연신 뒤쪽을 쳐다보다가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아줌마, 이제 조용히 좀 하세요. 여자 앞쪽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가 여자를 향해 말했다. 아니, 내가 괜히 그래요? 여자가 정색을 하고 남자를 내려 봤는데 동시에 여자의 목소리가 버스 기사의 욕설에 묻혔다. 버스 기사는 이제는 참기 힘들다는 듯이 운전석 옆의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버스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싸가지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뚫고 경희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사람들의 고개와 시선이 다시 버스 뒤쪽으로 향했다. 경희의 그 말이 귓속에서 울리더니 가슴으로 내려와 울렸다. * 경희와 만나지 않고 지내던 시간 동안 나는 딱 한번 그녀의 연극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을 시작했다며 한번 보러 오라는 문자를 받고 나서였다. 경희가 독일로 떠난 이후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언제 한국에 돌아왔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이후에도 몇 번쯤 경희가 먼저 연락을 해 왔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한동안 일을 하지 않고 있다가 다시 들어간 직장에서의 일이 절실하기도 했고, 그만큼 일상과 일과 중에는 일보다 중요한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책상 한쪽에서 진동으로 울리고 있는 휴대폰 액정 화면 위에 경희라는 이름이 몇 번인가 떠 있었고,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은 채 나는 그것을 무심하게 지켜보았다. 진동이 그치고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 매번 무표정한 내 얼굴 표정이 비쳐 보였다. 다시 전화가 오면 받아야겠다고, 아마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았다. 그러나 경희가 두 번 연속으로 전화를 하는 일은 없었다. 경희에게 연락도 없이 소극장으로 향한 건, 한 번도 그녀가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시작할 만큼 간절히 원하던 뮤지컬을 떠나 갑작스럽게 다른 장르의 무대로 간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고, 연극 무대에 선 경희가 어떤 모습인지 멀리서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나는 애써 그녀의 변화를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그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독일로 그녀가 떠난 뒤로 내게 몇 번이나 연락했는지, 언제 연락했는지를 모두 세고 있었던 것처럼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회사 휴게실에서 커피를 내릴 때, 누군가 뒤에서 손으로 등을 짚을 때, 차를 운전하다가 커브를 돌 때 같은 평범한 순간들의 틈을 타고 떠올려지는 기억들이었다. 나랑 사귀자. 농담이라며 경희가 무심코 던진 말이 한동안 얼마나 나를 들뜨게 했는지, 처음 뮤지컬 무대에 선 그녀를 단순히 객석에서 바라보던 일이 그렇게나 떨릴 만한 일이었는지를 재차 묻는 것 같은 기억들이었다. 기억들은 금세 사라졌다가 다시 불현듯 나타났다. 그래서 경희와 멀어지기 위해서는 갖고 있던 기억들이 완전히 소진되어 떠올릴 거리가 없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한때 삶의 중심과 사건들을 나누고 공유했던 경희와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이상할 것도 없었다. 어떤 시절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관계의 인과와 고리가 있는 것일 뿐이고, 우리는 지금 막 그 인과를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완전히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그 힘에 저항하는 관습과 기억의 뜨거운 층위를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경희의 연극을 보러 온 것은 그런 생각의 연장이었다. 연극 무대에 선 경희를 확인하면 끝내 그 층위를 완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내가 그 기억들의 저항에 설득되었기 때문이었다. 중년 남자의 독백으로 시작된 연극의 삼분의 일이 지나갈 무렵까지도 경희는 무대에서 보이지 않았다. 진한 화장을 하고 등장한 중년 남자의 딸이 경희일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중년 남자의 내연 관계인 직장 후배도 아니었다. 극의 중반 즈음을 지나서 등장한 중년 여성이 경희였다. 앞서 등장한 여성들이 모두 경희가 아닐까 생각했던 탓인지 중년의 여성으로 나타난 경희가 뜻밖에도 낯설게 느껴졌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게 분장을 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동안 경희가 뮤지컬에서 맡아 왔던 역할들에 비하면 지나치게 정적으로 보였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와 유행이 지난 옷들을 차려입은 그 역할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중년의 역할은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적정하게 소화해 낼 수 있는 게 아니냐며, 연극이 끝난 후에 찾아가 경희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그런 나이가 되면 말이야, 표현하지 않으려 해도 연기가 자연스러워질 텐데 굳이 왜. 나는 경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거기까지 떠올리다가 멈췄다. 넌 내 말을 들은 적이 없지. 정작 내가 경희에게 하고 싶던 말은 그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사실은 그 말 안에 내가 경희를 미워하는 감정이 얼마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 감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이상하게도 경희가 독백을 할 때마다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일부러 무대 뒤편으로 자리를 잡아 놓기도 했고, 소극장이지만 그래도 무대 조명이 밝아서 어두운 객석의 사람들을 쉽게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음에도, 경희의 시선이 내게로 고정되어 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경희를 외면하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 그때 혹시 말없이 소극장을 찾아가 공연을 보고 있던 나를 경희가 알아봤는지, 그리고 그녀가 뮤지컬에서 연극무대로 전향한 이유 중에 어떤 것을 먼저 물어볼지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경희네가 했던 연극 공연을 보러 갔었다고, 차라리 그렇게 말을 시작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경희는 알아, 혹은 그랬어? 그렇게 둘 중에 하나로 대답하고, 나는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먼저 알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다시 관계가 시작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145번 버스는 여전히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정체가 심한 신사동 고개에서부터 가로수길 입구를 거쳐 신사동 사거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차들이 어지럽게 엉켜 있었다. 신사동 고개에서 정차했다가 출발한 버스는 그나마 정체가 덜한 좌회전 차선으로 옮겨 갔다가, 신사역이 가까워오자 사 차선에서 일 차선으로 한 번에 가로질러 갔다. 그사이 각 차선에 겹쳐 있던 차들 몇 대가 신경질적으로 클랙슨을 울려 댔다. 버스 기사의 거친 운전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리에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사람들 모두 금요일 퇴근길의 정체가 지겨운 표정이었다. 이번 정류장에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과 앉으려는 사람, 내리기 쉽도록 문 옆으로 가 있으려는 사람들이 뒤섞이는 동안 사람들에게 밀려났는지 경희의 모습은 창에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느릿하게 가는 동안 나는 자주 버스 뒤편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의 등과 머리 사이 틈새 어딘가에 경희가 목에 두른 파란색과 검은색 도트 무늬가 새겨진 스카프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버스는 신사역 정류장 바로 앞에 차를 대지 못하고, 조금 미치지 못한 곳에 정차한 상태에서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앞 뒤 문 밖으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내리려는 사람들을 먼저 비집고 들어가 버스 뒤편으로 향했다. 이제는 텅 비다시피 한 버스를 아무리 찾고 둘러봐도, 경희는 없었다. * 아마도 신사역에 도착하기 전이나 아니면 그보다 전 정류장에 내렸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혹 다른 사람을 경희로 착각한 것이 아니었는지 의심도 해 보았지만 그건 분명히 아니었다. 그렇게 깊고 말간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은 경희밖에 없었다. 화가 렘브란트는 자신의 연대기에 따라 자화상을 그려 냈는데, 청년기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은 비록 달라졌어도 눈빛만큼은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진다. 육체는 사라져도 눈빛만큼은 영겁의 시간을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나는 한눈에 경희의 눈빛을 알아볼 수 있었다. 경희의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해도 눈빛 하나로 그녀를 구분해 낼 자신이 있었다. 그녀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 창을 통해서였지만 서로를 알아보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랬으므로 버스에서 내려 신사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집에 도착해서도, 날이 지나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며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그녀가 있었으나 사라졌던 자리와 음성을 지우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있었다. 몇 번쯤 핸드폰을 들고 경희의 연락처를 훑다가 말고,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멈추고를 반복했다. 갑자기 사라진 그녀에게 집중되는 생각의 관성이 오히려 나 자신을 괴롭힐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버스에서 경희를 만나기 이전으로 그저, 돌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그녀와 연결된 세계에 살고 머물게 될 것이었다. 그녀와 단절된 삶으로서의 세계. 그것이 내가 원하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그날의 일을 기억 속에서 정리하기로 했다. 버스에서의 만남과 기억에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버스에서 경희가 사라진 이유도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음먹은 대로 경희가 정리가 된 적은 없었다. 삶의 어디선가 경희는 꼭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145번 버스에서처럼. 전우영씨죠. 굵고 낮은 목소리 톤을 가진 한 남자의 전화를 받은 것은 내가 어느 정도 경희에 관한 일을 어느 정도 잊고 있을 때였다. 회사 연수원에서 승진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받다가 밀려오는 졸음 때문에 잠깐 교육장을 나와 라운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던 때였다. 그렇습니다만. 차경희씨의 오랜 친구라고 들었습니다. 남자의 입에서 경희의 이름이 불려졌을 때, 그녀를 생각지 않고 지내던 시간들은 금세 증발되고, 애써 한쪽에 치워 놓고 쌓아 두려 했던 경희의 기억들이 눈앞으로 함몰되어 쏟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자의 음성에서 느껴진 알 수 없이 무겁고 감당하지 못할 어떤 예감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남자가 전한 것은 경희의 죽음이었다. 그저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우영씨가 가장 친했던 친구라고 해서요. 마지막에 경희는 우영씨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지만요. 제가 대신이나마 한번 만나 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남자의 무거운 목소리는 내 무의식의 심연보다 깊어 그곳에서 나를 끌어내리는 소리 같았다. 온 힘을 다해 끌어내리는 목소리. 반드시 나를 만나야만 한다는 의지와 무게로 나의 목을 끌어안는 목소리였다. 그건 그래서 남자의 목소리라기보다 내 목소리인 것 같았다. 남자를 통해서라도 경희를 알아내야만 한다는 목소리. 그런데 혹시, 전화를 주신 분은 누구시죠. 아, 제 소개를 하지 않았네요. 남자가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다듬었다. 경희의 소식이 믿어지지 않았으므로 나는 섣불리 어떤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남자의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반쯤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저는 김재철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굵은 톤으로 지금까지의 조심스러운 말투와 다르게 기운차게 자신을 소개했다. 남자의 이름이 상당히 낯익다는 생각이 들어 기억 속 어딘가 존재하는지 떠올려 보고 있었는데, 남자가 이어 꺼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경희와 같은 배우였습니다. 뮤지컬을 오래 같이 했습니다. *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지만 나는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남자의 얘기를 듣고, 동창들이나 친구들을 수소문해 경희가 안치되어 있는 납골당을 찾아갔다. 그리고 근 한 달 동안 계속 술을 마셨는데 그때마다 경희에 대한 모든 사소한 기억까지 기억해 내려고 애를 썼다. 경희에 대한 기억을 꺼내면 꺼낼수록 그 기억들의 중심에는 어떤 죄책감이 놓여 있었다. 그녀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기억들을 끊어 내려 했던 죄책감을 희석시키고자 나는 끊임없이 그녀의 기억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이상했던 것은, 오 개월 전에 이미 떠난 그녀가 어떻게 불과 이 개월 전에 버스 안에서 나를 마주칠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나는 술을 마시면서도, 출근을 하면서도 서류 더미 위로 떠올려지는 그 물음에 대해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본 것은 경희, 차경희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남자에게 먼저 연락을 한 것은 그 일에 대해 한 번쯤 말해 보고 싶어서였다. 내가 본 것이 경희에 대한 일종의 환영이었는지, 아니면 착시였는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고백하자면 내가 그녀에게 갖게 된 어떤 죄책감이 버스 안에서의 기억과 강하게 밀착되어 내게서 한시도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있음이 괴로워서였다. 남자는 예상대로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경희가 했던 한 뮤지컬 공연에서 수도 없이 그녀를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리던 상대 남자 배우. 남자는 그때처럼 팔 근육이 여전히 우람했다. 콧수염뿐이었던 수염이 턱 밑까지 깊고 거칠게 길러져 있었다. 더 달라진 게 있다면 한데 묵어 허리까지 내렸던 긴 머리를 잘라내 버린 것이었다. 그가 자신을 들어 올리기 쉽도록 해야 한다며 경희 스스로 다이어트와 금식을 하면서 몸무게를 조절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분명히 버스 안에 있었던 겁니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남자는 경희가 버스 안에 있었던 게 분명하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버스에 없었던 게 아니구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어긋난 겁니다. 그런 일이 종종 있어요. 과거의 시간에 놓여 있던 어떤 순간의 지형이 어긋나거나 뒤틀려서 현재의 시간 어딘가에 다시 배치가 된 겁니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우영씨가 본 건 경희가 맞아요. 그럼, 시간의 잘못된 인과다? 그렇다기보다 찢어 붙이기 같은 거죠. 저쪽 시간에서 잘못 끼워진 시간이 현재의 어떤 시간에 다시 조합된 거예요. 껴 맞춰진 거죠. 그런들 어쩔 수가 없어요. 그건, 시간이 하는 일이니까. 깨진 거울의 한쪽 면에 새 거울 조각을 맞추듯이. 가급적 오류를 그런 방식으로 해결해 가면서, 되도록 완벽한 시간성을 구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그러나 모든 것들을 통제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니 우영씨가 본 건 그와 같은 통제에서 벗어난 시간의 왜곡으로 일어난 일이다, 이겁니다. 이 세상에 없는데도 나타날 수 있는? 내가 반문하자 남자는 한쪽 눈으로 윙크를 하며 한 손으로는 엄지와 검지를 ㄴ자로 만들어 나를 쏘는 흉내를 냈다. 쿨. 언제나 만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돌이켜 보면, 내가 경희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언젠가부터 그림자처럼 그녀 곁에 붙어있는 남자가 같이 떠올려졌다. 그 남자에 대해 아직도야? 그렇게 물으면 경희는 다른 얘기를 하고 싶어 했다. 왜 대답을 안 해? 그렇게 다시 경희에게 물으며 본론으로 돌아가면, 네가 싫어하잖아. 경희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 깊고 비어 있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런 대화는 경희와 만날 때마다 반복이 됐다. 나 역시 경희가 싫어할 것을 알면서도 그게, 매번 집요하게 그 남자에 대해 물었다. 그 사람. 그 사람 뭐? 취기가 볼에 붉게 오른 경희의 오른쪽 눈가가 엷게 떨렸다. 이런 얘기를 더 이상 주고받고 싶어 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 사람 만나러 가지 말라고, 독일에. 독일로 떠나기 전 만났던 그때를 생각해 보면 그래서, 내가 잔인하게 느껴졌다. 언제까지 아내가 있는 사람을 만날 건데, 너. 그래도 그 정도는 늘 경희에게 하는 얘기였으니 어쩌면 거기까지만 말하고 멈췄어도 괜찮을 법했다. 경희는 내가 연이어 던진 말을 듣고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너지는 것 같았다. 너는 그 사람의 아내까지 망치려는 거야. 그때, 경희에게 그렇게 소리치며 화를 내고 짜증스럽게 말한 게, 오랜 실직 상태로 지쳐 있던 나 자신에 대한 분노였는지, 아니면 정말 경희가 나의 상태와 상관없이 자신의 생일만 챙기려 드는 것 같다고 여긴 것 때문이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건 내가 오랫동안 그녀의 편이 돼주기보다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며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어쩌면 경희는 내가 자신을 혐오스럽게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에게 실망하며 마음을 닫아 버리려 노력했던 나와 달리, 이제는 세상에 없는 경희에 대해서도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말하는 남자에게서 나는 어떤 종류의 패배감을 느꼈는데, 자세히 그 감정을 살펴보니 더 깊은 안쪽에는 경희에 대한 부채의 감정이 거기 머물러 있었다. 나를 실망스럽게 쳐다보는 것 같은 경희의 얼굴처럼. * 경희는 그즈음 자주 뮤지컬계를 떠나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그럴 때마다 그렇게 사랑하는 뮤지컬을 떠날 수 있겠냐고 농담조로 말하면 경희는 별 말없이 허공을 쳐다보고는 했다. 그제야 그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있다는 듯이. 더 큰 박수를 받는 건 주연급뿐이잖아. 그래서 경희가 그렇게 덜컥 그 얘기를 꺼냈을 때, 정말 그녀에게 뮤지컬에 대한 권태로움이 심각하게 찾아왔구나 싶었다. 경희는 수년째 뮤지컬 무대에서 코러스와 춤을 뒷받침하는 앙상블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했기 때문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출연 배우들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박수를 받는 주연의 뒷모습을 같은 무대에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고 했던 그녀였다. 주연에게 기립 박수를 치는 사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처럼 경희가 말했을 때, 경희에게는 뮤지컬을 더 이상 할 수 있는 어떤 동력도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주연을 맡는 사람은 따로 있더라고. 경희의 그 말이 내게는 인생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될 일은 없는 것 같다고 토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자조 섞인 말투로 뮤지컬을 떠나야 하는 이유들을 말하던 끝에, 경희는 그 남자, 김재철이라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는 최근에 막을 내린 뮤지컬에서 경희의 파트너 역할을 했던 남자 배우라고 했다. 경희의 뮤지컬을 빠지지 않고 보던 나에게도 익숙한 남자 배우였다. 한데 묶은 긴 머리와 양 팔의 근육을 드러낸 화려한 의상을 입고 경희와 호흡을 맞추던 강한 인상의 그를 나도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무대에서 경희를 몇 번씩이나 어깨 위로 들어 올리고, 경희의 두 손만을 잡고 몸을 쭉 뻗은 경희를 회전시키는 등의 고난도 동작을 소화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남자가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은 서울 공연이 끝나고 시작한 지방 투어 때, 회식이 끝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기 전, 자신에게 입맞춤을 하고 난 다음에야 알았다고 했다.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마음을 돌리기에는 그때는 이미 늦었었다고 경희는 고백했다. 경희는 남자의 아내가, 그 공연을 주최한 뮤지컬 회사의 안무가라는 사실은 남자와 조금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한 후에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남자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경희는 매일 남자와 공연 연습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묘해. 경희는 남자와 남자의 아내 앞에서 연습을 하고 있던 순간을 그렇게 묘사했다. 미쳤어?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듯이 경희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아내와 나를 부서질 정도로 사랑하는 남자 사이의 중심에 내가 있는 거잖아. 그런 셋을 단원들이 바라보고 있고 말이야. 너와 남자의 관계를 단원들이 알아? 아내도? 알고 있는 것 같아. 경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내가 이 극의 주인공이야. * 경희가 뮤지컬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것이 한정된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뮤지컬에 대한 권태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남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경희를 버스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먼저 그 이유를 묻고 싶었었다. 사실 나는 경희가 뮤지컬을 떠난 이유보다 남자와의 관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지를 묻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걸 더 궁금해할 것이라는 것을 경희는 아마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버스에서 사라진 걸까. 나는 오래 경희의 곁에 머물러 있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의 편에 서있던 순간들은 많지 않았다. 내가 경희에게 던지고 싶던 질문들은 그래서 수거되어야 할 것들이었다. 더 이상 경희에게 닿지 말아야 할 것들이었다. 퇴근 시간 무렵 145번을 탈 때면, 발뒤꿈치를 들고 버스 안쪽을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가만히 서서 고개만 돌려가며 사람들 사이 틈으로만 봐서는 경희를 찾아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어 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경희를 다시 만난다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함께 춤을 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버스 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 편을 들어 주는 경희의 목소리가 가끔 환영처럼 들렸다.
  • 자만하면 왕이 될 수 없다

    자만하면 왕이 될 수 없다

    한국, 1956·60년 정상에 오른 이후 무관 무조건 조 1위로 16강 가야 비교적 꽃길황금돼지의 해를 맞아 벤투호가 59년 만에 아시안컵 트로피를 들어 올릴까.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궈 내면서도 한국축구는 그보다 작은 무대인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우승컵을 들어 올린 건 1956년 홍콩에서 열린 1회 대회, 그리고 4년 뒤인 1960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2회 대회 등 두 차례였다. 그러나 당시는 고작 4개국이 참가한 ‘미니대회’였다. 지금처럼 16개국 이상이 본선 조별리그와 이후 토너먼트로 우승을 다툰 건 2004년 중국대회부터다. 이때부터 한국은 한 번도 정상을 밟지 못했다. 1972년 태국 대회부터 1980년 쿠웨이트, 1988년 카타르까지 ‘징검다리’ 준우승만 세 차례 했을 뿐이었다. 한국은 1972년 태국에서는 12년 만에 다시 결승에 올라 이란과 연장 혈투를 펼쳤지만, 1-2로 무릎을 꿇었고, 1976년 대회에선 아예 예선 탈락했다. 4년 뒤 쿠웨이트에서는 홈팀 쿠웨이트와의 결승에서 0-3으로 완패해 또 준우승. 1988년 카타르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사우디아라비아에 우승컵을 내줘 통한의 아픔을 곱씹었다. 특히 12개팀이 참가한 1996년 아랍에미리트(UAE) 대회 때는 8강에서 만난 이란에 2-6으로 참패해 당시 박종환 대표팀 감독이 경질됐다. 16강 본선 체제 두 번째 대회인 2007년 대회에 나선 한국은 준결승에서 이라크에 승부차기 끝에 무릎 꿇었다. 2011년 대회도 4강에서 일본에 승부차기로 졌다. 직전 대회인 2015년 호주에서도 한국은 호주와의 결승을 1-2로 내주면서 또 한 번 아시안컵과의 악연을 절절히 느꼈다. 한국은 이번 대회를 통해 두 번째 정상을 밟았던 1960년 이후 59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고 있지만 사실상 첫 정상 도전이나 다름없다. 파울루 벤투 대표팀 감독은 신년사를 통해 “한국 축구팬들의 열망을 알고 있다. 새해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염원을 담아 아시안컵을 잘 치르는 것”이라며 우승 의지를 다졌다. 이어 “대표팀 모두가 아시안컵 우승이란 하나의 목표를 이루려고 같은 배를 탔다”면서 “자만이 아닌 희망을 갖고 우승 후보다운 장점을 살려 사실상의 대회 첫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이라크 깜짝 방문한 트럼프 “美는 호구 아냐… 세계 경찰 그만”

    이라크 깜짝 방문한 트럼프 “美는 호구 아냐… 세계 경찰 그만”

    “이라크 철수는 없다” 시리아 철군 달래고 매티스 경질·셧다운 등 국내 혼란 수습용 “美가 싸워주길 원한다면 대가 지불해라” 세계경찰 중단 선언… 동맹에 방위비 압박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이라크의 미군 부대를 방문하는 ‘깜짝쇼’에 나섰다. 시리아 철군과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등으로 수세에 몰린 국내 정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국면 전환’용으로 풀이된다. 특히 전날에 이어 ‘세계 경찰을 계속할 수 없다’며 시리아 철군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한편 동맹들의 방위비 분담에 대한 압박 수위도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 오후 부인 멜라니아와 함께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출발, 26일 오후 7시 16분 이라크 바그다드 서쪽 알아사드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는 3시간 37분 동안 장병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그들을 격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장병들 앞에서 역풍을 맞고 있는 ‘시리아 철군’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는 “시리아에 주둔한 미군의 임무는 처음부터 이슬람국가(IS)의 군사 거점을 제거하는 것”이라면서 “영구적인 주둔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은 이라크에서 철수 계획이 전혀 없다. 시리아에서 무언가 하기를 원한다면 이라크를 기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철군 결정에 따른 후폭풍 달래기에 나섰다.또 이번 깜짝 방문은 연방정부 셧다운과 증시 폭락 등 혼란한 국내 상황을 국외 이슈로 해소하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철군과 아프가니스탄 병력 감축, 매티스 장관 조기 경질 등 혼란한 날들을 보낸 뒤 긍정적인 뉴스의 헤드라인을 찾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세계의 경찰’이라는 개입주의 외교의 ‘배지’를 던지고 ‘고립주의’로 돌아갈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동맹들에 방위비 분담 압박뿐 아니라 다른 파병 국가의 추가 철군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는 “미국은 전혀 보상받지도 못하면서 지구상 모든 나라를 위해 싸워서는 안 된다”면서 “미국이 계속 싸워 주기를 원한다면 그들도 대가를 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어 “때때로 그건 금전적 대가를 가리킨다”면서 “우리는 세계의 호구가 아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호구로 보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AF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이라크 깜짝 방문을 자신의 시리아 철군 방침 방어와 ‘세계의 경찰’ 역할론의 종식을 선언하는 기회로 활용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전 세계 많은 매우 부유한 국가의 군대에 실질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24일),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 될 수 있지만 다른 나라들도 우리를 도와야 한다”(25일)고 잇달아 강조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미 의회의 승인 없이 주한미군 병력을 2만 2000명 이하로 줄일 수 없도록 제한하는 미국 국방수권법(NDAA)이 지난 10월 1일 발효됐기 때문에 주한미군 철군 문제는 거론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으로 미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비율 인상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文대통령 부정평가 첫 50%대… 민생경제 실망한 ‘오경자’ 이탈

    文대통령 부정평가 첫 50%대… 민생경제 실망한 ‘오경자’ 이탈

    긍정평가도 3주째 하락해 43.8% 집계 부정평가가 긍정 앞서는 ‘데드크로스’ 지지 밀도 낮은 중도층 떨어져 30%대 자영업 비중 높은 50대 9.4%P나 빠져 朴정부 기저효과 없어져 현 정부 ‘채점’ 적폐 프레임 피로도·경제적 요인 등 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에 대한 부정평가가 취임 후 처음으로 50%를 넘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27일 나왔다. 긍정평가도 3주째 하락해 취임 후 처음 45% 아래로 떨어졌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를 받아 지난 24일과 26일 전국 유권자 1003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 포인트)한 결과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는 지난주보다 5.5% 포인트 오른 51.6%로 나타났다. 긍정평가는 3.3% 포인트 내린 43.8%로 집계됐다.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서는 ‘데드크로스’ 현상이 나타난 것은 리얼미터 기준으로는 처음이다. 격차도 오차범위 밖인 7.8% 포인트다. 중도층(36.7%·11.3% 포인트 하락)에서 큰 폭으로 내려 처음 30%대로 주저앉은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진보층(73.2%·1.1% 포인트 상승)과 보수층(23.5%·5.3% 포인트 상승)에선 소폭 상승했다.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지지율이 70~80% 갔을 때를 생각하면 민주당 지지층에 중도층이 더해졌던 것이니까, 밀도 낮은 지지층이 먼저 떨어지는 상황”이라며 “특정 정책에 대한 반대 때문이라기보다 정권 초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교우위가 확실했는데 기저효과가 사라지고, 오로지 현 정부에 대한 점수만 매겨지는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또 “‘적폐 프레임’에 대한 피로도가 쌓이고, 남북 관계도 처음에는 감동했지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다”며 “민생 경제가 벽에 부딪힌 상황과도 맞물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령별로는 50대(32.1%·9.4% 포인트 하락)와 30대(49.6%·7.1% 포인트 하락), 지역별로는 경기·인천(39.7%·10.5% 포인트 하락)과 광주·전라(60.2%·5.3% 포인트 하락)와 부산·울산·경남(34.2%·5.0% 포인트 하락)에서 낙폭이 두드러졌다. 지지층 가운데 이탈이 두드러진다고 해서 이른바 ‘이영자’(20대·영남·자영업자)란 조어를 낳았던 20대는 48.2%(1.4% 포인트 상승), 자영업자는 37.1%(1.7% 포인트 하락)로 큰 변화가 없었지만 여전히 약세였다. 김미현 알앤서치 소장은 “50대의 하락폭이 큰 것은 경제적 요인으로 본다. 자영업 비중이 높다는 점과 맞물려 있다”며 “전체적으로 보면 사무직을 제외한 자영업자들과 무직자, 농림어업 쪽에서 돌아서고 있는데 이들이 전체 유권자의 40% 정도”라고 했다. 이어 “20대도 한창 높을 때는 긍정평가가 70%까지 갔는데 20~25%는 빠졌다”고 덧붙였다. 리얼미터는 “‘(특별감찰반) 김태우 폭로’ 사태와 보수 야당의 청와대 민정수석 경질 공세, 법정 주휴일 최저임금 산정 논란이 이어지고,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공항 갑질’ 논란이 확산됐던 지난 24일 긍정평가(45.7%)가 부정평가(48.4%)에 역전됐고, 청와대 특별감찰반 압수수색 소식이 알려지며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정당지지도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1.7% 포인트 하락한 36.3%를 기록했다. 민주당 지지율이 30%대 중반으로 떨어진 것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자유한국당은 0.2% 포인트 오른 25.6%에 머무른 반면 바른미래당은 2.6% 포인트 오른 8.2%를 기록했다. 자세한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美 불이익 보며 부자나라 보조금 안 돼” 트럼프 ‘세계경찰’ 역할까지 포기하나

    “美 불이익 보며 부자나라 보조금 안 돼” 트럼프 ‘세계경찰’ 역할까지 포기하나

    연일 동맹국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 우리 정부 방위비 협상 전망 어두워져도널드 트럼프(얼굴)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이 불이익을 보면서 부자 나라들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중동 경찰’에 이어 ‘세계 경찰’ 역할도 여차하면 포기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전날 트위터 발언에 이어 동맹국을 대상으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에 나선 것이지만, 경제적 손익을 우선시하는 고립주의로 복귀하겠다는 특유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탄절인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해외 파병 장병들과 가진 화상 통화에서 이렇게 말한 뒤 “이 점이 나와 (이전의) 다른 대통령들과 차별화된 점이며 그 누구도 이 같은 질문들을 (동맹국에) 던지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지금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며 그에 대해 돈을 내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 될 수 있지만 다른 나라들도 이제 우리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한국 등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해 왔다. 특히 이날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개입주의 외교를 상징하는 세계 경찰론까지 꺼낸 것은 미군의 존재로 혜택을 보는 동맹들이 제대로 비용을 내지 않으면 고립주의로 회귀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나 다름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시리아 철군 결정이 러시아, 이란만 이롭게 한다고 비판받자 “미국은 더이상 중동의 경찰이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철군에 따른 중동 정세 불안은 더이상 관심사가 아니라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과의 관계마저 ‘비용’의 관점에서 접근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데다, 최근 경질된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등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 결정을 제어했던 동맹 중시파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방위비 협상 전망은 어두워졌다. 국방장관 대행으로 지명된 패트릭 섀너핸 부장관은 직원들에게 “국방부는 노(No)라고 말하는 부서가 아니다”라고 발언할 정도로 ‘예스맨’으로 알려져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한국 등 동맹들을 더욱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 진행 상황과 맞물려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대북 문제와 관련된 카드로 써가며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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