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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직형사 Q&A

    Q 운전중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는 이유로 딱지를 끊었습니다.그런데 황당하게 단속이후 경찰관이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채 순찰차를 몰고 현장을 떠나더군요.그래도 됩니까? A 경찰 순찰차량은 긴급차량으로 본래의 임무가 교통단속이나 방범순찰 입니다.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24조에 따르면 긴급자동차가 본래의 용도로 운행되고 있을 때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도 됩니다.경찰 순찰차량의 탑승자는 몸에 권총,가스총,수갑,경찰봉,음주감지기 등 많은 장비를 착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순찰차량 옆으로 용의자가 달아날때 신속히 추적 검거해야 합니다.안전벨트를 풀다가 용의자를 놓쳐서는 안되겠지요.또 피해자 보호를 위해 신속한 조치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물론 경찰관도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부상하거나 사망하기도 합니다.그러나 경찰관은 자신 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입니다.범죄자가 흉기를 들고 있다고 해서 경찰관이 돌아서 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경찰관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보다 희생과 봉사에 주력하고 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 성북경찰서 교통지도계 경장 이태호
  • [Seoulites]“習射無言” 374년 명맥 석호정 국궁

    [Seoulites]“習射無言” 374년 명맥 석호정 국궁

    흔히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다.”고 말한다.서울 남산 기슭에서 만난 ‘21세기 활잡이’의 말처럼 활쏘기에는 인생이 담겨 있는 지도 모른다. 4세기 전 선조들의 정신을 오롯이 내려받은 이들이 1000만의 도시 서울,그것도 도심 한복판인 중구에 있어 눈길을 모으고 있다. ●남산타워가 손에 잡힐 듯 지난달 30일 오후 3시 장충동 2가 산 14의 21 국립극장 뒤편에 자리한 석호정(石虎亭)에서는 시민 8명이 더위를 손부채로 쫓아가며 활을 쏘고 있었다.앞마당에 선 습사무언(習射無言)이라는 돌 표지판은 활쏘기 하나에도 말을 앞세우지 말라는 충고를 담고 있는 듯했다. 살포시 앉은 어머니의 치마폭인 양 폭 꺼진 지형에 정자 하나가 우뚝 서 있었고,앞마당 저 멀리로 과녁 3개가 눈에 들어왔다. 석호정은 원래 조선 선조 때인 1630년 도성 아래대(下村),오늘날 장충단 뒤편에 들어선 활터다.아들의 아들,손자의 손자를 거쳐 후손들 힘으로 어언 374년째 꿋꿋이 대를 이어오고 있다.외국 침략과 전쟁으로 몇 년간 명맥이 끊긴 적도 있긴 하다.1894년 갑오경장 때 옛 풍습이라는 이유로 폐쇄됐다가 1899년 고종 지시로 부활했다.1940년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으로 다시 폐쇄됐다가 광복 직후인 1945년 재건,회장 격인 사두(射頭)를 지명하며 얼을 이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석호정이라는 이름 자체가 활쏘기에 얽힌 옛 얘기와 맞닿아 있다.중국 한나라 문제(文帝) 때 이광(李廣)이라는 장군이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큰 호랑이를 보고 활을 쏴 적중시켰다.가슴을 쓸어내리며 가까이 가서 보니 호랑이가 아니라 바위였다고 한다.의문이 들어 다시 활을 쐈으나 이번엔 화살이 튕겨나왔다는 데서 교훈을 얻었다.매사에 신경을 써서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는 깨달음이었다.심혈을 기울이면 바위도 움직인다는 뜻이다. 요즈음 말로 동아리 회원을 이들은 사원(射員)이라고 부른다.여성 10명을 포함해 10대에서부터 86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60여명이 뜻을 모았다.매일 적어도 7∼8명은 꼭 이곳에 들러 연습에 매달린다.신수진(75) 고문은 “90세 된 사원도 있는데 움직이기 어려워서인지 근래엔 잘 나오지 않는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요행을 바라지 말라” 강동구 천호동에서 산다는 사원 호미숙(42·여)씨는 어떤 점에서 좋으냐는 물음에 “화살이 시위를 떠나는 순간 모든 게 이미 결정나는 것처럼,인생살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활쏘기에서 배운다.”고 답했다.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자세가 완벽하지 않으면 결과는 좋을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호씨는 “IMF 때 사업에 어려움이 닥쳐 남편과 함께 정신건강에 좋겠다고 여겨져 수소문한 끝에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이곳을 찾았다.”고 덧붙였다.양궁은 조준기나 진동방지 장치가 달린 기계식 경기인 반면,국궁은 오로지 정신력 하나만으로 하는 싸움이라고 예찬론을 늘어놓기도 했다. 옆에 있던 다른 사원은 “활시위를 당길 때 몸 전체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근육발달에도 이 이상 없을 것”이라면서 활을 잡고 시늉을 해보이는 방문객에게 엉덩이에 힘을 ‘확’ 주라고 활짝 웃어 보였다. ●첫째도 예의,둘째도 예의 사대(射臺)에 나란히 올라선 호씨 등 사원들의 팔뚝에 잔뜩 힘이 들어가는가 했더니 작은 점으로 떠 날아간 화살이 145m 떨어진 과녁을 맞히는 소리가 ‘딱’ 하고 들려왔다. 전통방식에 따르면 과녁을 맞혔다는 소식은 건너편 시동(矢童)이 수신호로 알려온다.실패해도 빗나간 방향으로 빨간 깃발을 흔들어 조준 기회를 준다.그러나 석호정도 세월을 못 이긴 듯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옛날엔 시동이라는 이름에서 엿보이는 대로 심부름꾼이 화살을 일일이 날랐으나 지금은 ‘컨베이어 벨트’가 대신한다. 광복 뒤 부활해 올 21대 사두로 뽑힌 김태우(63)옹의 말에서 물질만능인 현대사회의 변화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꼬장꼬장함’이 드러난다.“무엇보다 예의범절이 중요합니다.절대 다른 사람을 겨누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사대에 서지 않는 이상 화살을 시위에 걸고 있으면 자격 박탈감이죠.” 국궁은 2000년 역사를 지녔는데 옛날 사냥을 하든,전쟁 때 적군을 겨냥하든 적당한 힘으로 화살이 다다를 수 있는 적정거리가 200보(步)였다는 데서 145m가 규정거리로 됐다고 귀띔했다.화살은 길게는 최고 400m까지 날아간다고 한다. 사원들은 개인연습에는 제한을 받지 않지만 매월 한차례 토요일 낮 12시30분부터는 자체 대회인 삭회(朔會)를 갖는다.사원이 되고 싶으면 2개월 동안의 훈련 뒤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전통 활쏘기 터는 전국에 320여곳 있다.회비가 한 달에 3만원이며 가입비는 남자 20만원,여성 10만원이다.(02)2273-2061.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Seoulites]“習射無言” 374년 명맥 석호정 국궁

    흔히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다.”고 말한다.서울 남산 기슭에서 만난 ‘21세기 활잡이’의 말처럼 활쏘기에는 인생이 담겨 있는 지도 모른다. 4세기 전 선조들의 정신을 오롯이 내려받은 이들이 1000만의 도시 서울,그것도 도심 한복판인 중구에 있어 눈길을 모으고 있다. ●남산타워가 손에 잡힐 듯 지난달 30일 오후 3시 장충동 2가 산 14의 21 국립극장 뒤편에 자리한 석호정(石虎亭)에서는 시민 8명이 더위를 손부채로 쫓아가며 활을 쏘고 있었다.앞마당에 선 습사무언(習射無言)이라는 돌 표지판은 활쏘기 하나에도 말을 앞세우지 말라는 충고를 담고 있는 듯했다. 살포시 앉은 어머니의 치마폭인 양 폭 꺼진 지형에 정자 하나가 우뚝 서 있었고,앞마당 저 멀리로 과녁 3개가 눈에 들어왔다. 석호정은 원래 조선 선조 때인 1630년 도성 아래대(下村),오늘날 장충단 뒤편에 들어선 활터다.아들의 아들,손자의 손자를 거쳐 후손들 힘으로 어언 374년째 꿋꿋이 대를 이어오고 있다.외국 침략과 전쟁으로 몇 년간 명맥이 끊긴 적도 있긴 하다.1894년 갑오경장 때 옛 풍습이라는 이유로 폐쇄됐다가 1899년 고종 지시로 부활했다.1940년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으로 다시 폐쇄됐다가 광복 직후인 1945년 재건,회장 격인 사두(射頭)를 지명하며 얼을 이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석호정이라는 이름 자체가 활쏘기에 얽힌 옛 얘기와 맞닿아 있다.중국 한나라 문제(文帝) 때 이광(李廣)이라는 장군이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큰 호랑이를 보고 활을 쏴 적중시켰다.가슴을 쓸어내리며 가까이 가서 보니 호랑이가 아니라 바위였다고 한다.의문이 들어 다시 활을 쐈으나 이번엔 화살이 튕겨나왔다는 데서 교훈을 얻었다.매사에 신경을 써서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는 깨달음이었다.심혈을 기울이면 바위도 움직인다는 뜻이다. 요즈음 말로 동아리 회원을 이들은 사원(射員)이라고 부른다.여성 10명을 포함해 10대에서부터 86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60여명이 뜻을 모았다.매일 적어도 7∼8명은 꼭 이곳에 들러 연습에 매달린다.신수진(75) 고문은 “90세 된 사원도 있는데 움직이기 어려워서인지 근래엔 잘 나오지 않는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요행을 바라지 말라” 강동구 천호동에서 산다는 사원 호미숙(42·여)씨는 어떤 점에서 좋으냐는 물음에 “화살이 시위를 떠나는 순간 모든 게 이미 결정나는 것처럼,인생살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활쏘기에서 배운다.”고 답했다.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자세가 완벽하지 않으면 결과는 좋을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호씨는 “IMF 때 사업에 어려움이 닥쳐 남편과 함께 정신건강에 좋겠다고 여겨져 수소문한 끝에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이곳을 찾았다.”고 덧붙였다.양궁은 조준기나 진동방지 장치가 달린 기계식 경기인 반면,국궁은 오로지 정신력 하나만으로 하는 싸움이라고 예찬론을 늘어놓기도 했다. 옆에 있던 다른 사원은 “활시위를 당길 때 몸 전체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근육발달에도 이 이상 없을 것”이라면서 활을 잡고 시늉을 해보이는 방문객에게 엉덩이에 힘을 ‘확’ 주라고 활짝 웃어 보였다. ●첫째도 예의,둘째도 예의 사대(射臺)에 나란히 올라선 호씨 등 사원들의 팔뚝에 잔뜩 힘이 들어가는가 했더니 작은 점으로 떠 날아간 화살이 145m 떨어진 과녁을 맞히는 소리가 ‘딱’ 하고 들려왔다. 전통방식에 따르면 과녁을 맞혔다는 소식은 건너편 시동(矢童)이 수신호로 알려온다.실패해도 빗나간 방향으로 빨간 깃발을 흔들어 조준 기회를 준다.그러나 석호정도 세월을 못 이긴 듯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옛날엔 시동이라는 이름에서 엿보이는 대로 심부름꾼이 화살을 일일이 날랐으나 지금은 ‘컨베이어 벨트’가 대신한다. 광복 뒤 부활해 올 21대 사두로 뽑힌 김태우(63)옹의 말에서 물질만능인 현대사회의 변화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꼬장꼬장함’이 드러난다.“무엇보다 예의범절이 중요합니다.절대 다른 사람을 겨누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사대에 서지 않는 이상 화살을 시위에 걸고 있으면 자격 박탈감이죠.” 국궁은 2000년 역사를 지녔는데 옛날 사냥을 하든,전쟁 때 적군을 겨냥하든 적당한 힘으로 화살이 다다를 수 있는 적정거리가 200보(步)였다는 데서 145m가 규정거리로 됐다고 귀띔했다.화살은 길게는 최고 400m까지 날아간다고 한다. 사원들은 개인연습에는 제한을 받지 않지만 매월 한차례 토요일 낮 12시30분부터는 자체 대회인 삭회(朔會)를 갖는다.사원이 되고 싶으면 2개월 동안의 훈련 뒤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전통 활쏘기 터는 전국에 320여곳 있다.회비가 한 달에 3만원이며 가입비는 남자 20만원,여성 10만원이다.(02)2273-2061.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당직형사 Q&A

    Q 운전중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는 이유로 딱지를 끊었습니다.그런데 황당하게 단속이후 경찰관이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채 순찰차를 몰고 현장을 떠나더군요.그래도 됩니까? A 경찰 순찰차량은 긴급차량으로 본래의 임무가 교통단속이나 방범순찰 입니다.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24조에 따르면 긴급자동차가 본래의 용도로 운행되고 있을 때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도 됩니다.경찰 순찰차량의 탑승자는 몸에 권총,가스총,수갑,경찰봉,음주감지기 등 많은 장비를 착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순찰차량 옆으로 용의자가 달아날때 신속히 추적 검거해야 합니다.안전벨트를 풀다가 용의자를 놓쳐서는 안되겠지요.또 피해자 보호를 위해 신속한 조치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물론 경찰관도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부상하거나 사망하기도 합니다.그러나 경찰관은 자신 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입니다.범죄자가 흉기를 들고 있다고 해서 경찰관이 돌아서 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경찰관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보다 희생과 봉사에 주력하고 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 성북경찰서 교통지도계 경장 이태호˝
  • [우리署명물] 강력1반 유종수 경장

    “강도,절도범은 내 손안에 있소이다.” 서울 수서경찰서 강력1반 유종수(28) 경장은 아직 새 계급장이 실감나지 않는 듯 멋쩍게 웃었다. 유 경장은 지난 2월17일부터 실시한 경찰청의 ‘전국 민생치안 100일 작전’에서 서울지역 강·절도 검거건수 1위를 기록,지난 22일 순경에서 1계급 특진했다.그는 “주변의 도움으로 뜻하지 않게 많은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진은 근성과 끈기의 결과였다.지난달 9일 발생한 강도·살인미수 사건을 밤샘 잠복과 탐문 수사 끝에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가출한 부인과 불륜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20대 노숙자를 고용해 가스총과 체인으로 전 직장동료를 살해하려던 60대 남성을 8일 만에 붙잡았다. 경찰에 입문한 이유를 묻자 유 경장은 “지금은 인상만 써도 사람들이 겁먹을 정도로 건장하지만,어렸을 때는 몸이 약하고 비실비실해 놀림을 많이 받았다.”면서 “그때 누구든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피해를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 경찰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털어놨다. 유 경장에게 아직도 가슴 아리게 남는 것은 2002년 1월 송파구 모 아파트에서 40대 가장이 부인과 자식 등 일가족 4명을 살해한 사건이라고 했다. 부인이 외도를 하는 데다 의붓딸과 짜고 자신을 파렴치한으로 몰아붙이자 홧김에 둔기로 머리를 때려 숨지게 했다.이어 “나같이 세상을 험하게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옆방에서 잠자던 초등학생 자녀 2명까지 살해했다. 비정의 40대 가장은 사건 직후 인적이 드문 경기 분당 모처에서 자살을 기도했으나,119구조대에 구조된 뒤 신원확인 작업 끝에 경찰에 붙잡혔다. 유 경장은 “처음으로 부검에 참관해 4명을 모두 지켜봤다.”면서 “시체를 보면서 말로 할 수 없는 참혹함을 느꼈고,‘이제 정말 형사생활을 시작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그는 “나중에 언론보도를 보고서야 사형이 집행된 것을 알았다.”고 씁쓸해했다. 아는 선배의 소개로 1년 교제 끝에 지난 2월 결혼한 부인 역시 경찰관으로,서울 종로경찰서 여경기동대에서 근무한다.유 경장은 “100일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나오거나,혼자 밥먹게 한 날이 많았다.”면서 “같은 경찰관으로 어려운 사정을 이해해 주는 집사람이 너무 고맙다.”고 환하게 웃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
  • [우리署명물] 강력1반 유종수 경장

    [우리署명물] 강력1반 유종수 경장

    “강도,절도범은 내 손안에 있소이다.” 서울 수서경찰서 강력1반 유종수(28) 경장은 아직 새 계급장이 실감나지 않는 듯 멋쩍게 웃었다. 유 경장은 지난 2월17일부터 실시한 경찰청의 ‘전국 민생치안 100일 작전’에서 서울지역 강·절도 검거건수 1위를 기록,지난 22일 순경에서 1계급 특진했다.그는 “주변의 도움으로 뜻하지 않게 많은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진은 근성과 끈기의 결과였다.지난달 9일 발생한 강도·살인미수 사건을 밤샘 잠복과 탐문 수사 끝에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가출한 부인과 불륜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20대 노숙자를 고용해 가스총과 체인으로 전 직장동료를 살해하려던 60대 남성을 8일 만에 붙잡았다. 경찰에 입문한 이유를 묻자 유 경장은 “지금은 인상만 써도 사람들이 겁먹을 정도로 건장하지만,어렸을 때는 몸이 약하고 비실비실해 놀림을 많이 받았다.”면서 “그때 누구든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피해를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 경찰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털어놨다. 유 경장에게 아직도 가슴 아리게 남는 것은 2002년 1월 송파구 모 아파트에서 40대 가장이 부인과 자식 등 일가족 4명을 살해한 사건이라고 했다. 부인이 외도를 하는 데다 의붓딸과 짜고 자신을 파렴치한으로 몰아붙이자 홧김에 둔기로 머리를 때려 숨지게 했다.이어 “나같이 세상을 험하게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옆방에서 잠자던 초등학생 자녀 2명까지 살해했다. 비정의 40대 가장은 사건 직후 인적이 드문 경기 분당 모처에서 자살을 기도했으나,119구조대에 구조된 뒤 신원확인 작업 끝에 경찰에 붙잡혔다. 유 경장은 “처음으로 부검에 참관해 4명을 모두 지켜봤다.”면서 “시체를 보면서 말로 할 수 없는 참혹함을 느꼈고,‘이제 정말 형사생활을 시작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그는 “나중에 언론보도를 보고서야 사형이 집행된 것을 알았다.”고 씁쓸해했다. 아는 선배의 소개로 1년 교제 끝에 지난 2월 결혼한 부인 역시 경찰관으로,서울 종로경찰서 여경기동대에서 근무한다.유 경장은 “100일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나오거나,혼자 밥먹게 한 날이 많았다.”면서 “같은 경찰관으로 어려운 사정을 이해해 주는 집사람이 너무 고맙다.”고 환하게 웃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
  • [인사]

    ■ 환경부 (서기관)△공보관실 정유순△기획관리실 혁신인사담당관실 홍정기△ESCAP 환경장관회의 준비기획단 파견 이민호△한강유역환경청 환경감시대장 김정호 ■ 한국자산관리공사 △감사 張光明 ■ 서울대병원 △의무기록실장 徐廷旭△홍보담당 權俊壽△진료협력〃 劉哲圭△전임상실험부장 金賢會△교육수련담당 金圭漢△의사보건직〃 方文奭
  • [인사]

    ■ 환경부 (서기관)△공보관실 정유순△기획관리실 혁신인사담당관실 홍정기△ESCAP 환경장관회의 준비기획단 파견 이민호△한강유역환경청 환경감시대장 김정호 ■ 한국자산관리공사 △감사 張光明 ■ 서울대병원 △의무기록실장 徐廷旭△홍보담당 權俊壽△진료협력〃 劉哲圭△전임상실험부장 金賢會△교육수련담당 金圭漢△의사보건직〃 方文奭
  • 조폭 뺨친 투캅스 이발소 빼앗아 경쟁업자에 팔아넘겨

    현직 경찰관 2명이 검찰 단속반을 사칭해 이발소 업주로부터 돈을 빼앗는 등 강도 행각을 벌여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24일 검찰 직원을 사칭,퇴폐업소를 단속한다는 빌미로 이발소 업주로부터 거액을 빼앗은 서울 B경찰서 소속 송모 경사와 심모 경장,경쟁업소 주인 전모씨,보험회사 직원 등 7명에 대해 강도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송 경사 등은 지난해 9월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이발소를 찾아가 업주한모(54·여)씨를 협박해 단속 무마비조로 3000여만원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이들은 알고 지내던 이발소 업주 전씨의 요청으로 “수원지검에서 퇴폐업소 단속을 나왔다.”며 한씨를 차에 태워 수원지검 앞까지 가 협박한 것으로 드러났다.경찰 관계자는 “이발소를 운영하는 전씨가 송 경사 등과 함께 한씨의 이발소를 빼앗기 위해 이같은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이들은 1억 5000여만원 상당의 이발소를 강제로 빼앗아 팔아넘겼다.”고 밝혔다. 송 경사와 심 경장은 같은 경찰서에서 퇴폐업소 단속을 주업무로 하는 생활안전과 소속이며 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다른 공범이 한씨에게 사실을 알리는 바람에 경찰에 적발됐다.경찰은 25일 이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진술조서 복사거부 알권리 침해”

    국가인권위원회는 18일 사건 당사자의 진술조서 복사 요구를 수사기관이 거부하는 것은 알권리 침해라고 밝혔다.인권위는 고소인 자격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던 박모(70)씨가 진술조서를 복사하려 했으나 거부당했다며 지난해 7월 부산 Y경찰서 정모(42) 경장을 상대로 낸 진정에 대해 이같이 결정하고,법무부와 검찰총장에게 관련 업무규정을 개정,복사권을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현행법은 공공기관이 법률이나 명령에 의해 비밀로 유지되는 정보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법무부령과 대검 예규 등에서도 사건 당사자가 수사기록 일부를 열람할 수는 있어도 본인의 진술조서를 복사하는 것은 제한하고 있다.인권위는 “이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 사건 당사자의 정보공개 청구를 인정하는 유사 판결이 내려진 데다,본인의 진술조서를 확보하는 것은 방어권 등을 보장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므로 공익에 장애가 되지 않는 이상 진술조서 복사는 인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우리署명물] 인명구조요원 박종원 경장

    “시신이 건져진 뒤 울부짖는 가족의 모습을 자주 봅니다.자살 전 슬픔에 빠질 가족들의 얼굴을 한 번 더 떠올린다면 쉽게 목숨을 버릴 수는 없을 겁니다.”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한강대교 옆 이촌초소.인명구조요원으로 근무하는 용산서 박종원(35)경장에게 경찰마크가 새겨진 빨간 티셔츠와 반바지는 근무복이다.다리에서 뛰어내린 사람을 살리는 데 주어지는 시간은 단 3분.3분이 지나면 대부분 숨을 거두거나 구조되더라도 심한 뇌손상을 입게 되는 탓에 물에 들어가기 편한 복장이 가장 모범적인 근무복이 라는 것이다. 박 경장은 “몇년 전까지 만해도 생활고에 지병까지 겹쳐 자살을 택하는 노인들이 많았던 반면 최근에는 20대 대학생까지 삶을 비관해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올 들어 6월 중순까지 한강,반포,동작대교 등 용산서 관내 6개 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65명이다.지난 해 같은 기간 45명이 자살을 시도했던 것에 비하면 눈에 띄는 증가세다. 그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마음 같아서는 모두 구하고 싶지만 실제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경우는 3명 중 1명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다.박 경장은 “물 속에서 건져내면 원망하는 이도 있지만 ‘다리 위에 놓고 온 물건 좀 갖다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다소 어이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적어도 또 자살은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 슬며시 미소 짓는다.”고 밝혔다. 구조 후에 다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적지 않다.박 경장는 “이런 일이 있으면 며칠 동안 죽은 이와 나눴던 대화들이 생각나 우울한 기분을 느낀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우리署명물] 인명구조요원 박종원 경장

    [우리署명물] 인명구조요원 박종원 경장

    “시신이 건져진 뒤 울부짖는 가족의 모습을 자주 봅니다.자살 전 슬픔에 빠질 가족들의 얼굴을 한 번 더 떠올린다면 쉽게 목숨을 버릴 수는 없을 겁니다.”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한강대교 옆 이촌초소.인명구조요원으로 근무하는 용산서 박종원(35)경장에게 경찰마크가 새겨진 빨간 티셔츠와 반바지는 근무복이다.다리에서 뛰어내린 사람을 살리는 데 주어지는 시간은 단 3분.3분이 지나면 대부분 숨을 거두거나 구조되더라도 심한 뇌손상을 입게 되는 탓에 물에 들어가기 편한 복장이 가장 모범적인 근무복이 라는 것이다. 박 경장은 “몇년 전까지 만해도 생활고에 지병까지 겹쳐 자살을 택하는 노인들이 많았던 반면 최근에는 20대 대학생까지 삶을 비관해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올 들어 6월 중순까지 한강,반포,동작대교 등 용산서 관내 6개 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65명이다.지난 해 같은 기간 45명이 자살을 시도했던 것에 비하면 눈에 띄는 증가세다. 그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마음 같아서는 모두 구하고 싶지만 실제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경우는 3명 중 1명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다.박 경장은 “물 속에서 건져내면 원망하는 이도 있지만 ‘다리 위에 놓고 온 물건 좀 갖다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다소 어이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적어도 또 자살은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 슬며시 미소 짓는다.”고 밝혔다. 구조 후에 다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적지 않다.박 경장는 “이런 일이 있으면 며칠 동안 죽은 이와 나눴던 대화들이 생각나 우울한 기분을 느낀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메트로 탐방 경찰서] 한마디-박종준 서장

    ‘범인 검거를 치하합니다.수고가 많으셨습니다.박종준’ 지난 3일 서울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강정영(32)경장은 휴대전화에 뜬 문자메시지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화면에 뜬 ‘박종준’은 다름아닌 서장이었기 때문이다.강 경장은 전날 절도범을 검거했다.목소리만 들어도 본능적으로 차렷 자세가 나오는 수직적인 경찰 조직에서 서장의 문자 메시지는 직원들에게 힘이 된다.그래서 직원들은 서장을 ‘응원단장’이라고 부른다. 서울지역 경찰서장 31명 가운데 가장 젊은 박종준(41)총경은 신세대 감각으로 직원들에게 다가간다.최일선에서 고생하는 젊은 순경급 직원들 8,9명과 중국음식점 같은 편한 장소에서 매주 ‘대화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처음에는 어려워 쭈뼛거리던 직원들도 “애인은 잘 있느냐.결혼은 언제 하느냐.아직까지 부모와 함께 집에서 살면 언제 독립할거냐.”는 등 시시콜콜한 고민을 캐묻는 서장에게 금세 마음을 연다.‘응원단장’의 격려에 힘입어 지난 해 7월 박 서장이 마포서에 부임한 뒤 현재까지 7명의 직원이 특진했다. 박 서장은 직원들을 지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포지티브’ 전략이라고 말했다.실적을 따지거나 잘못된 점을 야단치기보다는 작은 장점 하나라도 엉덩이를 두드려준다는 것이 신조이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메트로 탐방 경찰서] 한마디-박종준 서장

    [메트로 탐방 경찰서] 한마디-박종준 서장

    ‘범인 검거를 치하합니다.수고가 많으셨습니다.박종준’ 지난 3일 서울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강정영(32)경장은 휴대전화에 뜬 문자메시지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화면에 뜬 ‘박종준’은 다름아닌 서장이었기 때문이다.강 경장은 전날 절도범을 검거했다.목소리만 들어도 본능적으로 차렷 자세가 나오는 수직적인 경찰 조직에서 서장의 문자 메시지는 직원들에게 힘이 된다.그래서 직원들은 서장을 ‘응원단장’이라고 부른다. 서울지역 경찰서장 31명 가운데 가장 젊은 박종준(41)총경은 신세대 감각으로 직원들에게 다가간다.최일선에서 고생하는 젊은 순경급 직원들 8,9명과 중국음식점 같은 편한 장소에서 매주 ‘대화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처음에는 어려워 쭈뼛거리던 직원들도 “애인은 잘 있느냐.결혼은 언제 하느냐.아직까지 부모와 함께 집에서 살면 언제 독립할거냐.”는 등 시시콜콜한 고민을 캐묻는 서장에게 금세 마음을 연다.‘응원단장’의 격려에 힘입어 지난 해 7월 박 서장이 마포서에 부임한 뒤 현재까지 7명의 직원이 특진했다. 박 서장은 직원들을 지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포지티브’ 전략이라고 말했다.실적을 따지거나 잘못된 점을 야단치기보다는 작은 장점 하나라도 엉덩이를 두드려준다는 것이 신조이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독자의 소리] 걱정되는 ‘생명 경시’ 풍조/윤형근 (인천 중부경찰서 소연평경찰초소 경장)

    불량 만두를 만들었다고 지목받은 만두업체 사장이 국민에게 죄송하다면서 한강에 몸을 던졌다.근래에 들어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이가 늘고 있다.비리 혐의로 조사 받던 고위 공직자가 투신하고,빈곤을 이기지 못한 서민이 죽음을 선택한다.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가 자살률 1위라니 생명 경시 풍조가 어느덧 이 지경까지 됐나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자살하는 이들은 ‘용서해라,무거운 짐 때문에 간다.’라고 유언한다.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자살은 무거운 짐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남아 있는 자식과 부모,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그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자살은 결코 최선책이 아니라 책임회피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이라는 말이 있다.‘죽기를 각오하고 노력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는 뜻이다.죽을 힘을 다해 새 길을 모색하다면 자살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윤형근 (인천 중부경찰서 소연평경찰초소 경장)˝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8) 남한산성에 숨겨진 이야기

    경기도 광주 땅에 있는 남한산(南漢山)의 남한산성은 오늘날 서울 사람들에게는 다소 흥청거리는 유원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에는 주로 군대생활 중 과오를 범한 사람들을 격리 수용하는 뜻으로 ‘남한산성 간다.’는 말이 졸병들 사이에서 회자된 적도 있었다.실제로 서울 사람들은 휴일이나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여러 종류의 모임을 갖거나 특별한 만남을 위하여 남한산성 일대에 들어 서 있는 유흥 음식점을 많이 이용한다. 울창한 숲,사방으로 툭 트인 주변 풍광과 높다란 성벽 아래로 이어진 산길,군데군데 남아 있는 사찰들,천주교도 박해 현장,숲속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봄철의 연록색 숲과 가을철의 불타는 단풍은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남한산은 서울분지를 끼고 동쪽 지맥인 수락산 불암산과 동남으로 이어져 있고,서울의 북쪽 북한산과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지형이다. 삼국시대 때부터 천연요새지에 성을 쌓아왔기 때문에 산성(山城)의 산으로 잘 알려져 왔는데,신라가 백제 정복 후인 672년 기존하던 산성을 손보아 주장산성(晝長山城)이라 불렀다.이것이 오늘날 남한산성의 밑그림인 셈이다.본격적인 군사요새로서 서울의 임금까지 피신하여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기지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1624년(인조2)부터 2년 동안 대대적인 성벽 공사를 하고 난 뒤부터였다. ●1626년 日·청 침략대비 위해 축성 1626년(인조4)에 전혀 새로운 산성으로 완성된 남한산성은,1592년부터 7년여 동안이나 혹독한 일본군의 침략에 대한 때늦은 반성과 북쪽에서 무섭게 확장되고 있는 청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따라서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에 쌓은 어떤 성보다 국가가 위급할 때 국가의 존망을 결정짓는 역할을 하게되리라는 판단에 따라서 쌓은 요새였다. 이같이 중요한 군사시설을 설치하면서 조선 정부는 그 책임을 엉뚱하게도 당시의 군인이나 전문가들이 아닌 승려들에게 떠맡겼다.승려들이 사찰에서 종교적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요새를 만드는 중노동판에 끌려나와서 노예처럼 돌을 나르고 성벽을 쌓았다는 사실은 대부분 한국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비밀이자 조선 성리학 이데올로기가 낳은 종교탄압의 역사였다.이런 사실에 대하여 ‘인조실록’과 ‘정조실록’은 매우 상세하게 당시 사정을 기록하여 전하고 있다. 인조(仁祖) 임금은 남한산성을 쌓기 위하여 승려들을 강제 동원해야 한다는 대신들의 주장을 따랐다.정부의 모든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유생들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서울 방위를 맞게 될 남한산성을 새로 쌓아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유생들 자신과 그들 자식들을 성 쌓는 일에 내보낼 수는 없었다.군인과 승려들을 동원시키되 비용을 줄이고 불평을 없애기 위해서는 군인보다 승려들이 더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군인을 내보낼 경우에는 필요한 양식과 자재를 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모두 국가에서 책임져야 했다.또한 군인 중에는 양반 사대부와 끈이 닿는 사람도 있어서 온갖 청탁과 압력이 들어오게 마련이어서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승려들이라면 문제는 간단했다.불교와 승려는 유교 이념인 충(忠)과 효(孝)를 부정하는 중죄인이기 때문에 승려들은 아무리 학대하고 짓밟아도 괜찮다고 판단했다.승려들을 강제동원시키면서 각자 먹을 식량을 스스로 마련하게 하고,성 쌓는 데 드는 장비와 비용도 알아서 준비하도록 명령하면 그만이었다. 그 무엇보다 유생들의 관심을 끈 것은 성쌓기에 동원된 승려들이 자신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혼신을 기울여 일을 하기 때문에 작업 능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었다.승려들은 어느 곳에서든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했다.불교 계율을 위배하지 않는 한 중생을 위하는 일을 하는 것은 곧 진정한 보살정신의 실천이며 자기 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어차피 먹는 일은 하루 두 끼니면 족한 것이 승려의 계율이었다.아침에는 죽을 조금만 먹고,정오 무렵에는 허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음식만 먹으면 족했다.오후에는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옷과 잠자리는 수행에 지장이 되고,세상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한 괜찮았다.넝마 조각을 걸쳐도 되고,칼날 위에서 자도 괜찮았다.이런 배경으로 전국의 승려들이 동원되었다.승려들을 지휘하여 성벽 쌓는 일을 총책임지도록 하는 인물이 필요했다.적임자로 떠오른 사람이 각성(覺性·1575∼1660)이라는 승려였다.인조는 각성에게 8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란 직위를 주면서 조선의 모든 승려들을 동원하여 성을 쌓으라고 명령했다.‘총섭’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위기를 구한 서산대사에게 선조 임금이 승군의 총지휘를 부탁하면서 내렸던 데 기원을 둔 것이다. 남한산성 쌓는 공사가 시작되자 8도도총섭에 임명된 각성은 각 도마다 승려 숫자를 배정하고 정해진 날짜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공문을 각 도의 관찰사에게 보냈다.그러자 유생들이 즉각 반발했다.감히 승려 따위가 유생인 관찰사에게 명령하듯 한다는 것이었다.승려와 불교에 대한 차별의식과 유생의 자존심 때문이었다.유생들의 거듭되는 반대 앞에서 인조는 괴로워했다.언제는 승려들에게 책임을 맡기자고 하더니,이제 와서는 승려들은 노동만 하고 지휘는 유생들이 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이렇듯 유생들의 불교에 대한 증오심과 승려들을 탄압하려는 지속적인 편견 속에서 남한산성 공사는 강행되었다. 전국의 승려들은 말없이 공사를 해나갔다.만약 승려들이 이를 거부하면 농민들이 대신 끌려나와야 할 것이고,그리되면 가난한 농민들의 고통은 더욱 더 커질 것임은 분명했다.승려들은 이같은 미래의 일들까지 고려하면서 묵묵히 성 쌓는 일로 수행을 대신했다. ●유생들 불교 증오… 승려탄압 계속 성 안에는 장차 산성수비에 필요한 건물로 사용하기 위해 9개의 사찰도 지었다.망월사,옥정사,개원사,한흥사,국청사,장경사,천주사,동림사,영원사였는데,개원사는 도총섭이 머무는 지휘소였고 나머지는 전국에서 온 승군들 숙소로 썼다. 2년 동안의 쉼 없는 공사 끝에 성이 완성되었다.그동안 공사에 나온 승려들 중에는 질병과 배고픔 또는 사고 등으로 죽어간 사람이 적지 않았다.남한산성 곳곳에서는 죽은 승려들의 주검을 화장시키는 연기가 피어올랐고,비참하게 죽은 도반의 기구한 생애를 슬퍼하는 승려들의 염불 목탁소리가 거의 날마다 들려왔다.그렇게 성이 완공되고 나자 다시 문제가 생겼다.남한산성을 지키는 일이었다.유생들은 다시 승려들에게 남한산성 수비를 맡기자고 했다.그러면서 수비에 임하는 승려들로 하여금 수비에 필요한 식량,의복,땔감,의약품 등을 승려들의 책임으로 떠맡겨 버리자고 했다.결국 조선의 정치를 완전히 장악한 유생들의 뜻대로 결정되었다.식량은 군인들에게 먹이기 위해 농민들로부터 징수한 것을 나눠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불교탄압 정책을 밀어 붙여온 강경파 유생들은 그것마저도 나눠줄 수 없다고 결정했다.결국 남한산성을 수비하기 위해 승군(僧軍)이 조직되었다.각 도마다 승군으로 나갈 승려 숫자가 배당되었다.일 년에 여섯 차례씩 교대해야 하는 승려들은 식량,옷,약 등 생활비 전액을 승려 자신이 마련해서 두 달 동안 남한산성에 머물러야 했다.남한산성에 나가는 일을 번상(番上)한다고 불렀다. 큰 절은 4∼5명,작은 절은 1∼2명 씩의 승려를 내보내야 했다.한 명의 행장을 꾸리는 데 약 100금(金)이 들었다.결국 한 사찰에서 해마다 400∼500금의 비용을 책임지게 되자 그 폐단은 점점 커졌다.폐단이 커지자 승군이 직접 서울로 오는 대신 한 사람마다 돈 16냥을 내고,정부는 그 돈으로 사람을 사서 성을 지키도록 하는 ‘의승방번전(義僧防番錢)’이란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2년공사… 城곳곳에 승려 火葬 연기 그러나 이 돈 역시 극단적인 탄압을 받으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사찰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형벌이었다.승려들에게는 심각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뒷날 북한산성까지 승려들을 수탈하여 수비부담을 지우게 되자 전국의 사찰은 차츰 폐허로 변해갔다.의승방번전 부담을 견디다 못해 사찰의 재산을 처분하면서까지 의무를 다했지만 갈수록 중압감이 커지자 승려들은 머리를 기르고 환속해 버렸다. 이같은 제도는 결국 불교를 쇠퇴하게 하고 승려들을 세속으로 달아나게 만들었다.그런데도 1626년에 시작된 이 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까지 계속되면서 승려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고,조선에서 불교가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한 유생들의 종교탄압이었다.그후 조선 유생들은 조선이 일본의 노예국이 되는 데 앞장을 섰고 일본은 조선 불교를 철저하게 파괴했다.남한산성의 저 짙은 녹음 속에는 270여년간 계속된 종교탄압 정책 아래서 신음하던 승려들의,인간이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처절한 외침이 묻어 있을 것이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8) 남한산성에 숨겨진 이야기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8) 남한산성에 숨겨진 이야기

    경기도 광주 땅에 있는 남한산(南漢山)의 남한산성은 오늘날 서울 사람들에게는 다소 흥청거리는 유원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에는 주로 군대생활 중 과오를 범한 사람들을 격리 수용하는 뜻으로 ‘남한산성 간다.’는 말이 졸병들 사이에서 회자된 적도 있었다.실제로 서울 사람들은 휴일이나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여러 종류의 모임을 갖거나 특별한 만남을 위하여 남한산성 일대에 들어 서 있는 유흥 음식점을 많이 이용한다. 울창한 숲,사방으로 툭 트인 주변 풍광과 높다란 성벽 아래로 이어진 산길,군데군데 남아 있는 사찰들,천주교도 박해 현장,숲속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봄철의 연록색 숲과 가을철의 불타는 단풍은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남한산은 서울분지를 끼고 동쪽 지맥인 수락산 불암산과 동남으로 이어져 있고,서울의 북쪽 북한산과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지형이다. 삼국시대 때부터 천연요새지에 성을 쌓아왔기 때문에 산성(山城)의 산으로 잘 알려져 왔는데,신라가 백제 정복 후인 672년 기존하던 산성을 손보아 주장산성(晝長山城)이라 불렀다.이것이 오늘날 남한산성의 밑그림인 셈이다.본격적인 군사요새로서 서울의 임금까지 피신하여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기지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1624년(인조2)부터 2년 동안 대대적인 성벽 공사를 하고 난 뒤부터였다. ●1626년 日·청 침략대비 위해 축성 1626년(인조4)에 전혀 새로운 산성으로 완성된 남한산성은,1592년부터 7년여 동안이나 혹독한 일본군의 침략에 대한 때늦은 반성과 북쪽에서 무섭게 확장되고 있는 청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따라서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에 쌓은 어떤 성보다 국가가 위급할 때 국가의 존망을 결정짓는 역할을 하게되리라는 판단에 따라서 쌓은 요새였다. 이같이 중요한 군사시설을 설치하면서 조선 정부는 그 책임을 엉뚱하게도 당시의 군인이나 전문가들이 아닌 승려들에게 떠맡겼다.승려들이 사찰에서 종교적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요새를 만드는 중노동판에 끌려나와서 노예처럼 돌을 나르고 성벽을 쌓았다는 사실은 대부분 한국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비밀이자 조선 성리학 이데올로기가 낳은 종교탄압의 역사였다.이런 사실에 대하여 ‘인조실록’과 ‘정조실록’은 매우 상세하게 당시 사정을 기록하여 전하고 있다. 인조(仁祖) 임금은 남한산성을 쌓기 위하여 승려들을 강제 동원해야 한다는 대신들의 주장을 따랐다.정부의 모든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유생들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서울 방위를 맞게 될 남한산성을 새로 쌓아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유생들 자신과 그들 자식들을 성 쌓는 일에 내보낼 수는 없었다.군인과 승려들을 동원시키되 비용을 줄이고 불평을 없애기 위해서는 군인보다 승려들이 더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군인을 내보낼 경우에는 필요한 양식과 자재를 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모두 국가에서 책임져야 했다.또한 군인 중에는 양반 사대부와 끈이 닿는 사람도 있어서 온갖 청탁과 압력이 들어오게 마련이어서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승려들이라면 문제는 간단했다.불교와 승려는 유교 이념인 충(忠)과 효(孝)를 부정하는 중죄인이기 때문에 승려들은 아무리 학대하고 짓밟아도 괜찮다고 판단했다.승려들을 강제동원시키면서 각자 먹을 식량을 스스로 마련하게 하고,성 쌓는 데 드는 장비와 비용도 알아서 준비하도록 명령하면 그만이었다. 그 무엇보다 유생들의 관심을 끈 것은 성쌓기에 동원된 승려들이 자신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혼신을 기울여 일을 하기 때문에 작업 능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었다.승려들은 어느 곳에서든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했다.불교 계율을 위배하지 않는 한 중생을 위하는 일을 하는 것은 곧 진정한 보살정신의 실천이며 자기 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어차피 먹는 일은 하루 두 끼니면 족한 것이 승려의 계율이었다.아침에는 죽을 조금만 먹고,정오 무렵에는 허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음식만 먹으면 족했다.오후에는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옷과 잠자리는 수행에 지장이 되고,세상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한 괜찮았다.넝마 조각을 걸쳐도 되고,칼날 위에서 자도 괜찮았다.이런 배경으로 전국의 승려들이 동원되었다.승려들을 지휘하여 성벽 쌓는 일을 총책임지도록 하는 인물이 필요했다.적임자로 떠오른 사람이 각성(覺性·1575∼1660)이라는 승려였다.인조는 각성에게 8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란 직위를 주면서 조선의 모든 승려들을 동원하여 성을 쌓으라고 명령했다.‘총섭’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위기를 구한 서산대사에게 선조 임금이 승군의 총지휘를 부탁하면서 내렸던 데 기원을 둔 것이다. 남한산성 쌓는 공사가 시작되자 8도도총섭에 임명된 각성은 각 도마다 승려 숫자를 배정하고 정해진 날짜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공문을 각 도의 관찰사에게 보냈다.그러자 유생들이 즉각 반발했다.감히 승려 따위가 유생인 관찰사에게 명령하듯 한다는 것이었다.승려와 불교에 대한 차별의식과 유생의 자존심 때문이었다.유생들의 거듭되는 반대 앞에서 인조는 괴로워했다.언제는 승려들에게 책임을 맡기자고 하더니,이제 와서는 승려들은 노동만 하고 지휘는 유생들이 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이렇듯 유생들의 불교에 대한 증오심과 승려들을 탄압하려는 지속적인 편견 속에서 남한산성 공사는 강행되었다. 전국의 승려들은 말없이 공사를 해나갔다.만약 승려들이 이를 거부하면 농민들이 대신 끌려나와야 할 것이고,그리되면 가난한 농민들의 고통은 더욱 더 커질 것임은 분명했다.승려들은 이같은 미래의 일들까지 고려하면서 묵묵히 성 쌓는 일로 수행을 대신했다. ●유생들 불교 증오… 승려탄압 계속 성 안에는 장차 산성수비에 필요한 건물로 사용하기 위해 9개의 사찰도 지었다.망월사,옥정사,개원사,한흥사,국청사,장경사,천주사,동림사,영원사였는데,개원사는 도총섭이 머무는 지휘소였고 나머지는 전국에서 온 승군들 숙소로 썼다. 2년 동안의 쉼 없는 공사 끝에 성이 완성되었다.그동안 공사에 나온 승려들 중에는 질병과 배고픔 또는 사고 등으로 죽어간 사람이 적지 않았다.남한산성 곳곳에서는 죽은 승려들의 주검을 화장시키는 연기가 피어올랐고,비참하게 죽은 도반의 기구한 생애를 슬퍼하는 승려들의 염불 목탁소리가 거의 날마다 들려왔다.그렇게 성이 완공되고 나자 다시 문제가 생겼다.남한산성을 지키는 일이었다.유생들은 다시 승려들에게 남한산성 수비를 맡기자고 했다.그러면서 수비에 임하는 승려들로 하여금 수비에 필요한 식량,의복,땔감,의약품 등을 승려들의 책임으로 떠맡겨 버리자고 했다.결국 조선의 정치를 완전히 장악한 유생들의 뜻대로 결정되었다.식량은 군인들에게 먹이기 위해 농민들로부터 징수한 것을 나눠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불교탄압 정책을 밀어 붙여온 강경파 유생들은 그것마저도 나눠줄 수 없다고 결정했다.결국 남한산성을 수비하기 위해 승군(僧軍)이 조직되었다.각 도마다 승군으로 나갈 승려 숫자가 배당되었다.일 년에 여섯 차례씩 교대해야 하는 승려들은 식량,옷,약 등 생활비 전액을 승려 자신이 마련해서 두 달 동안 남한산성에 머물러야 했다.남한산성에 나가는 일을 번상(番上)한다고 불렀다. 큰 절은 4∼5명,작은 절은 1∼2명 씩의 승려를 내보내야 했다.한 명의 행장을 꾸리는 데 약 100금(金)이 들었다.결국 한 사찰에서 해마다 400∼500금의 비용을 책임지게 되자 그 폐단은 점점 커졌다.폐단이 커지자 승군이 직접 서울로 오는 대신 한 사람마다 돈 16냥을 내고,정부는 그 돈으로 사람을 사서 성을 지키도록 하는 ‘의승방번전(義僧防番錢)’이란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2년공사… 城곳곳에 승려 火葬 연기 그러나 이 돈 역시 극단적인 탄압을 받으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사찰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형벌이었다.승려들에게는 심각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뒷날 북한산성까지 승려들을 수탈하여 수비부담을 지우게 되자 전국의 사찰은 차츰 폐허로 변해갔다.의승방번전 부담을 견디다 못해 사찰의 재산을 처분하면서까지 의무를 다했지만 갈수록 중압감이 커지자 승려들은 머리를 기르고 환속해 버렸다. 이같은 제도는 결국 불교를 쇠퇴하게 하고 승려들을 세속으로 달아나게 만들었다.그런데도 1626년에 시작된 이 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까지 계속되면서 승려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고,조선에서 불교가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한 유생들의 종교탄압이었다.그후 조선 유생들은 조선이 일본의 노예국이 되는 데 앞장을 섰고 일본은 조선 불교를 철저하게 파괴했다.남한산성의 저 짙은 녹음 속에는 270여년간 계속된 종교탄압 정책 아래서 신음하던 승려들의,인간이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처절한 외침이 묻어 있을 것이다.
  • 이곳에선 조심조심

    서울 종로경찰서 관내의 교통사고 다발지역과 함께 주의점을 살펴본다. ●광화문 교차로·정부중앙청사 앞·세종문화회관 앞 U턴과 좌·우회전 하는 차량이 서로 엉키는 곳이다.U턴이나 좌회전하는 차량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또 세종문화회관 앞에 있는 지하도에서 나온 차량 등으로 차선 변경이 잦다.차선을 변경할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종로 1·2가 교차로,적선·광교 교차로 황색 신호가 끝날 때 교차로에 들어선 차량들과 신호가 바뀌자마자 출발한 차량들 간의 접촉사고가 예상된다.신호가 바뀔 때는 교차로에 진입하지 말고,교차로에서 출발할 때 급출발 등은 삼가야 한다. ●창덕궁 앞 삼거리 종로3가쪽에서 안국역으로 좌회전을 받는 차량은 신호를 두번삭제 받을 때가 있다.좌회전한 뒤 횡단 보도에서 멈춰야 할 때가 있는데 이를 무시하다가는 급정거 등으로 인한 사고가 우려된다. ●사직터널 안에서 휘어진 터널이다.금화터널에서 진행하는 차량들이 과속해 다른 차선을 침범하거나 터널 안에서 무리하게 차선을 변경하다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터널안 차선 변경이나 과속은 절대 금물이다. ●자하문터널 상명대쪽에서 진행할 때 터널을 빠진 뒤 바로 도로가 휘어져 주의해야 한다.중앙선을 넘는 경우가 많아 펜스까지 설치했지만 위험하다.아침에는 햇살이 정면에서 비쳐 눈이 부시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특히 초행자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서울 종로경찰서 교통사고조사계 최원석 경장
  • [세상에 이런일이]딱지 막다 딱지 맞아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점심 값이나 하시죠.” “뭐하시는 겁니까.신분증 제시하세요.” 교통단속에 적발된 수배자가 경찰에 뇌물을 주고 단속을 무마하려다 오히려 수배사실이 드러나 쇠고랑을 찼다.5월25일 오전 11시30분쯤 경기도 광주시 중부고속도로 경안요금소 부근에서 근무 중이던 고속도로순찰대 10지구대 소속 조민형(34) 경장은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이모(31)씨를 보고 트럭을 세웠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이씨는 조경장에게 “바쁘니까 번거롭게 ‘딱지’를 끊지 말고 좋게 해결합시다.”면서 지갑에서 1만 원권 몇 장을 건냈지만 조 경장에게는 먹혀들어가지 않았다.머뭇거리는 이씨를 수상하게 여긴 조경장은 끝까지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고 결국 실랑이 끝에 이씨의 주민등록번호를 조회해보니 이씨는 2002년 2월 사기혐의로 수배돼 2년 넘게 도피 중이던 것이 드러났다. 이씨는 현장에서 긴급 체포됐고 조 경장은 경기 광주경찰서로 이씨의 신병을 넘겼다.조 경장은 이일로 표창을 받게 됐지만 운전자 이씨는 사법 처리됐다.
  • [세상에 이런일이] 112 뒤지고 112 건지는

    ■112뒤지고 ‘발자국의 주인을 찾아라.’ 새벽 주택가를 돌며 강·절도 행각을 벌인뒤 유유히 근처 사우나에서 단잠을 청하던 40대 남자가 경찰에 붙잡혔다.지난달 21일 오전 1시20분쯤 경기 수원시 팔달구 홍모씨 집에 강도가 들었다.흉기를 든 남자는 홍씨를 위협하고 현금 4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1시간 뒤 인근 김모씨의 집에도 도둑이 들어 안방 옷장에 있던 현금 10만원과 신용카드 6장,휴대전화 등을 훔쳐 달아났다. 관할 수원 남부경찰서 매산지구대에는 비상이 걸렸다.신고를 받고 출동한 엄광영(32)경장과 김봉식(28)순경은 홍씨와 김씨의 집 창틀과 방바닥 등에서 같은 모양의 발자국을 발견,족적을 채취했다. 사건 당시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진흙이 묻은 발자국은 보통 때보다 선명하게 나타났다.엄 경장과 김 순경은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않은 범죄자들이 24시간 영업하는 대중목욕탕을 자주 이용한다는 점에 착안,족흔을 들고 범행현장 근처 사우나 신발장을 뒤졌다.이들은 “설마 범행현장 바로 옆에서 자겠어.”라면서도 혹시나 하는 심경으로 찾은 G사우나 신발장에서 족흔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운동화를 찾아냈다. 문제는 운동화 주인을 찾는 것.신발장 번호로 운동화 주인의 사물함 번호를 확인한 두 경찰관은 수면실 4곳에서 잠자고 있는 200여명의 손님 손목과 발목을 일일이 확인했다. ■112 건지는 자살을 결심하고 저수지에 들어갔다가 마음을 바꿔 다시 나온 60대 여성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잠수부 등이 자신을 수색하는 장면을 구경하다 발각됐다.지난달 25일 오전 3시쯤 “수원 하동 원천저수지로 사람이 걸어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되자 잠수부 5명,경찰 12명,119구급대원 3명,구급차 1대,경찰차 3대가 즉시 현장에 출동했다.경찰은 물속과 주변 수풀 등을 수색했지만 물에 빠진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단지 근처에선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이모(62·여)씨의 신분증,신발,가방만이 발견됐다.30분 넘게 수색작업이 진행되는 도중 수원남부경찰서 황모 경사가 주변을 서성이는 여성의 바지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경위를 추궁한 끝에 이 여성이 저수지에 들어간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씨는 “운영하는 이발소가 지난해 10월 영업정지로 손실을 봐 속상해 죽으려 했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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