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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우의 언파만파] 낮추는 말 ‘월급쟁이’

    [이경우의 언파만파] 낮추는 말 ‘월급쟁이’

    상대를 높이는 것도 소통의 한 방식이다. “선생님”이라고 높여 부르는 건 상대를 존중한다는 표시다. 동시에 나는 당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열어 놓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을 낮추는 것도 그렇다. ‘나’ 대신 ‘저’라고 자신을 낮추는 말은 반대로 상대를 높이는 게 된다. 이렇게 해서 소통을 시작하는 문이 열린다. 정도와 상황의 차이는 있겠지만, 언제 어디서나 그래 왔다. ‘미망인’(未亡人)이라는 기록이 처음 나오는 시절에도 그랬다. 중국 초나라 문왕의 부인은 문왕이 죽자 자신을 ‘미망인’이라고 낮춘다. 당시 최고위직인 영윤이 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행사를 치르자 “영윤은 적을 치는 데는 생각이 없나 보다. ‘미망인’ 곁에서 이러고 있으니”라고 말한다. ‘미망인’이 “아직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이니 지금 같으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미덕이었다. 자신을 낮춘 말로 당시 세상과 소통한 것이다. ‘장이’에서 나온 말 ‘쟁이’는 대상을 낮잡아 이르기도 한다.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얕잡아 부르거나 가리킬 때 ‘글쟁이’라고 한다. 화가에게는 ‘그림쟁이’ 혹은 ‘환쟁이’라고도 한다. ‘관상쟁이, 뜸쟁이, 이발쟁이, 갓난쟁이, 게으름쟁이, 멋쟁이, 겁쟁이, 수다쟁이…’의 ‘쟁이’들도 대상을 낮춘다. 많은 직장인들이 속한 ‘월급쟁이’의 ‘쟁이’도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더 자주 쓰여서 그런지 도처에서 ‘낮춤’의 의미를 의식하지 않는 듯하다. 때와 장소를 구별하지 않고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일상어처럼 돼 버렸다. 월급을 받는 자신은 물론 상대, 제삼자까지 흔하게 ‘월급쟁이’라고 말한다. 받아들이는 쪽에서도 겉으로는 별다른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월급생활자’나 ‘봉급생활자’ 같은 말들은 멀어져 간다. 스스로 ‘월급쟁이’라고 낮추는 것과 막역한 사이끼리 “월급쟁이가 뭐” 하며 주고받을 때 ‘월급쟁이’는 더 나은 소통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공식적인 공간에서 상대에게 전하는 ‘월급쟁이’는 거리를 두고 보면 적절한 말이 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상대를 중립적인 말로 대하는 것도 아니고 낮춰 말하는 것이다. 삼인칭으로 가리켜 말할 때도 달라질 건 없다. 역시 상대가 거리낌 없는 사이라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를 비하하는 말이 된다. 언론매체들도 월급을 받는 직장인을 가리켜 주로 ‘월급쟁이’라고 표현한다. 그렇다고 월급을 받고 생활하는 모든 이들과 막역해서는 아닐 것이다.
  • 국립극장 2020-2021 레퍼토리 공개… “오늘의 어려움을 내일의 희망으로”

    국립극장 2020-2021 레퍼토리 공개… “오늘의 어려움을 내일의 희망으로”

    국립극장이 음양오행을 춤으로 풀어낸 국립무용단의 신작 ‘다섯 오’를 비롯해 49편의 작품을 선보일 2020-2021 시즌 레퍼토리를 공개했다. 국립극장은 24일 달오름극장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올해 하반기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시즌의 세부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지난 2012년 시즌제를 도입한 뒤 9번째 시즌이다. 특히 올해 상반기 코로나19로 여러 공연들이 취소되거나 무관중 온라인으로 전해졌고 내년 4월에는 3년 만의 리모델링 작업을 마치고 해오름극장이 재개관하는 등 기다림 끝에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게 돼 기대를 모은다. 이날 공개된 국립극장의 2020-2021 레퍼토리 시즌은 다음달 28일부터 2021년 6월 30일까지 로 신작 23편, 레퍼토리 7편, 상설공연 14편, 공동주최 5편 등 총 49편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오는 9월 17일 국립무용단이 신작 ‘다섯 오’로 시즌의 막을 올린다. 해오름극의 재개관 기념작은 내년 4월 1일 개막하는 국립무용단의 ‘제의’다. 우리 민족의 의식무용을 총망라한 이 작품은 국립무용단 전원이 출연해 새롭게 문을 연 해오름극장의 힘찬 출발을 기원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국립무용단은 내년 6월 정구호의 연출과 최진욱의 안무로 ‘산조’를 공연하기도 한다. 다양한 가락이 모이고 흩어지는 전통 기악양식인 산조의 미학을 춤으로 펼쳐낼 예정이다. 국립창극단은 내년 6월 해오름극장에서 판소리 ‘수궁가‘의 근원이 된 삼국사기 ‘귀토설화’를 지금의 시대상을 반영해 풀어내는 ‘귀토’를 선보일 예정이다. 2014년 초연 이후 100회 이상의 공연을 인기리에 이어온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제작진인 고선웅 연출과 한승석 음악감독이 다시 모였다.국립국악관현악단도 국악과 클래식,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와 함께 전통음악을 새롭고 자유로운 시선에서 풀어낸다는 취지의 창작음악 축제 ‘이음 음악제’(내년 4월)를 비롯해 관현악시리즈 세 작품, 기획공연 여덟 작품, 상설공연 한 작품 등 총 32회의 풍성한 연주를 선보인다. 2011년 이후 9년 만에 국립극장 산하 단체인 국립무용단과 국립창극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모두 모인 기획공연 ’명색이 아프레걸(가제)‘도 올 연말 관객들을 만난다. 김철호 국립극장장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공연 관람과 제작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해 미래의 1년을 구체적으로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여러 경우의 수에 적절하게 대응할 것”이라면서 “합리적 준비 자세를 갖추고 빈틈없이 대응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19가 가져온 미증유 상태로 전세계 공연장이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도 오늘의 어려움을 내일의 희망으로 바꿔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첼시야, 2경기 다 이겨줘… 유로파 간절한 토트넘 ‘경우의 수’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가 마지막 38라운드 1경기만 남겨 놓은 가운데 다음 시즌 유럽클럽 대항전 진출 경쟁에 눈과 귀가 집중되고 있다. 국내 축구팬들의 관심은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의 행보에 쏠린다. 토트넘은 23일 현재 리그 7위다. 정규리그 1위~4위가 가져가는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출전 티켓을 이미 놓쳐 한 등급 아래인 유로파리그(UEL) 출전을 모색 중이다. EPL의 경우 유로파리그 본선(조별리그) 출전권은 리그 5위와 FA컵 우승팀, 2차예선 출전권은 리그컵(카라바오컵) 우승팀이 가져간다. 그런데 리그 2위와 UCL 진출을 확정한 맨체스터 시티가 지난 3월 리그컵을 제패하면서 UEL 2차 예선 출전권 수혜팀이 EPL 6위로 확대됐다. 따라서 승점 58로 7위에 머물고 있는 토트넘이 순위를 6위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27일 0시 최종전에서 승점 1차로 앞선 울버햄프턴(승점 59)을 첼시가 꺾어주기를 곁눈질하면서 크리스탈 팰리스를 상대로 추가 승점을 얻어내야 한다. 만약 토트넘이 뜻을 이루지 못해 7위에 머물더라도 다음달 2일 10위 아스널을 상대로 한 첼시의 영국축구협회(FA)컵 결승전에 남은 한 가닥 희망을 걸 수 있다. 현재 리그 4위인 첼시가 UCL 출전을 확정하고 FA컵까지 들어올리면 UEL 수혜 범위도 리그 6~7위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의 수들은 모두 첼시의 승리를 전제로 한 시나리오다. 사실 토트넘의 6위 경쟁보다 더 무게감이 느껴지는 건 UCL 출전 여부를 가늠할 4위 싸움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이상 승점 63), 레스터 시티(승점 62)는 승점 1점 범위 내에서 아슬아슬한 3~5위를 유지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3위 맨유의 27일 최종전 상대는 5위 레스터 시티다. 첼시가 울버햄프턴에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맨유마저 레스터 시티에 덜미를 잡힐 경우 골득실에 뒤진 첼시가 5위로 밀려나면서 토트넘의 시나리오도 말짱 헛 일이 되고 만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단독] ‘박원순 피소’ 누가 흘렸나… 늘어나는 경우의 수

    [단독] ‘박원순 피소’ 누가 흘렸나… 늘어나는 경우의 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실이 박 전 시장의 귀에 들어가게 된 경로를 놓고 경우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사건 초기만 해도 고소장을 접수받은 경찰과 청와대가 유출했을 것으로 의심받았으나 사전에 피해자 측 변호인을 접촉한 검찰을 비롯해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피해자의 지인까지 의심의 범위가 확대됐다. 23일 서울신문 취재에 따르면 남 의원은 박 전 시장이 실종된 9일 박 전 시장과 통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남 의원을 직접 부르는 대신, 통화 등의 방법으로 남 의원이 박 전 시장과 연락하게 된 경위와 통화 내용 등을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박 전 시장이 사망하기 전날인 8일과 사망한 9일까지 업무용 휴대전화로 통화한 인물들을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박 전 시장과 남 의원의 통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성노동 운동가 출신인 남 의원이 대표적인 박원순계 정치인으로 분류될 만큼 두 사람이 각별한 사이였던 점,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가장 먼저 인지해 보고한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가 남 의원의 전 보좌관이었던 점 등으로 볼 때 성추행 의혹과 관련한 얘기를 나누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 나온다. 남 의원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실을 먼저 알고 임 특보에게 전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남 의원은 박 전 시장 의혹과 관련해 함구하고 있다. 피해자의 지인들을 통해서 고소 사실이 유포됐을 가능성도 있다. 피해자는 모바일 메신저 등을 통해 확산된 ‘고소장 문건’ 찌라시가 자신의 어머니와 친분이 있는 교회 목사를 통해 유출된 것 같다며 지난 13일 그를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했다. 이 문건은 피해자가 경찰에 고소장을 내기 전 작성한 첫 진술서로 지난 5월 김재련 변호사를 만난 이후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도 유출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 변호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내기 하루 전인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부장검사에게 면담을 요청하면서 피고소인이 박 시장임을 알렸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은 즉각 “고소 사실을 상급 기관에 보고하거나 외부에 알린 사실이 일체 없다”고 밝혔지만, 고소사실 유출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내부자 조사를 피할 수는 없어 보인다. 대검찰청은 서울중앙지검이 면담 내용을 왜 상위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는지 등을 알아보고자 진상조사에 나섰다. 전날 피해자 측 제보를 통해 박 전 시장의 업무용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푼 경찰은 휴대전화 속 정보가 손상되지 않도록 통째로 옮기는 ‘이미징’ 작업을 먼저 수행했다. 다만 휴대전화 속 모든 데이터를 수사 자료로 사용할 수는 없다. ‘서울시의 성추행 방조 혐의’나 고소사실 유출 의혹 등에 활용하려면 추가 영장이 필요하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박원순 성추행 고소 유출 다섯가지 가능성…검경, 청와대, 남인순 의원, 고소인 지인까지

    박원순 성추행 고소 유출 다섯가지 가능성…검경, 청와대, 남인순 의원, 고소인 지인까지

    박원순 전 시장 성추행 고소 유출 경로 확대경찰·청와대 의심받았지만, 검찰에서 남인순 의원까지고소인 지인이 1차 진술서 주변에 유포…경찰 수사박 전 시장 휴대전화 비밀해제 성공한 경찰다른 성추행 의혹 수사 등에 활용하기엔 한계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실이 박 전 시장의 귀에 들어가게 된 경로를 놓고 경우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사건 초기만 해도 고소장을 접수받은 경찰과 청와대가 유출했을 것으로 의심받았으나 사전에 피해자 측 변호인을 접촉한 검찰을 비롯해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피해자의 지인까지 의심의 범위가 확대됐다. 23일 서울신문 취재에 따르면 남 의원은 박 전 시장이 실종된 9일 박 전 시장과 통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남 의원을 직접 부르는 대신, 통화 등의 방법으로 남 의원이 박 전 시장과 연락하게 된 경위와 통화 내용 등을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박 전 시장이 사망하기 전날인 8일과 사망한 9일까지 업무용 휴대전화로 통화한 인물들을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박 전 실장과 남 의원의 통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성노동 운동가 출신인 남 의원이 대표적인 박원순계 정치인으로 분류될 만큼 두 사람이 각별한 사이였던 점,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가장 먼저 인지해 보고한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가 남 의원의 전 보좌관이었던 점 등으로 볼 때 성추행 피소 사실에 관련한 얘기를 나누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 나온다. 남 의원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실을 먼저 알고 임 특보에게 전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남 의원은 박 전 시장 의혹과 관련해 함구하고 있다.피해자의 지인들을 통해서 고소 사실이 유포됐을 가능성도 있다. 피해자는 모바일 메신저 등을 통해 확산된 ‘고소장 문건’ 찌라시가 자신의 어머니와 친분이 있는 교회 목사를 통해 유출된 것 같다며 지난 13일 그를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했다. 이 문건은 피해자가 경찰에 고소장을 내기 전 작성한 첫 진술서로 지난 5월 김재련 변호사를 만난 이후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에는 피해자 주변인이라면 작성자가 누군지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특히 1차 진술서에는 피해자의 비서실 근무 기간이 오타가 나 실제와 다르게 적혀 있었는데, 찌라시에도 오타 난 기록이 그대로 적혀 있어 유출자를 특정할 수 있었다. 이 목사는 문건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했고, 이 과정에서 성추행 의혹이 알음알음 전해졌을 수 있다. 검찰도 유출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 변호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내기 하루 전인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부장검사에게 면담을 요청하면서 피고소인이 박 시장임을 알렸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은 즉각 “고소 사실을 상급 기관에 보고하거나 외부에 알린 사실이 일체 없다”고 밝혔지만, 고소사실 유출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내부자 조사를 피할 수는 없어 보인다. 전날 피해자 측 제보를 통해 박 전 시장의 업무용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푼 경찰은 휴대전화 속 정보가 손상되지 않도록 통째로 옮기는 ‘이미징’ 작업을 먼저 수행했다. 다만 휴대전화 속 모든 데이터를 수사 자료로 사용할 수는 없다. ‘서울시의 성추행 방조 혐의’나 고소사실 유출 의혹 등에 활용하려면 추가 영장이 필요하다. 경찰 관계자는 “향후 수사 진행 상황을 보고 영장을 다시 신청할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투자자 보호 못하는 특금법… ‘코인 시세조작’ 수백억 챙겨도 처벌 어려워

    투자자 보호 못하는 특금법… ‘코인 시세조작’ 수백억 챙겨도 처벌 어려워

    사실상 암호화폐 거래소 허가제에 준하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특금법 개정안)이 내년 3월 시행되지만 시세조작·횡령 등과 같은 거래소 불법 행위를 근절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암호화폐 거래소의 영업 행위 규칙을 마련하고,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특금법 개정안은 암호화폐를 가상자산으로 규정해 암호화폐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켰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거래소 등 가상자산사업자는 자금세탁방지(AML), 테러자금조달방지(CFT) 의무를 준수하고 이를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해야 한다. 이에 따라 반드시 시중 은행에서 실명확인이 가능한 입출금계정과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기업 주요 정보자산을 보호하는 관리체계) 인증을 받아야만 거래소 사업을 할 수 있다. 현재까지는 사업자 신고를 하지 않고도 누구나 거래소를 세울 수 있다. 국내에 부실 거래소가 난립하고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특금법 개정안이 자금세탁방지라는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라는 점에서 거래소의 불법 행위에 대한 규제는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지은 법률사무소 리버티 변호사는 “특금법을 통해 가상자산의 정의를 세웠지만 암호화폐를 금융상품으로 인정할지와 금융상품으로 편입될 경우의 모니터링 시스템 등의 방안은 정해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주식 시장에서의 시세조작이나 내부자 거래 등에 대해서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을 적용하면 되지만 암호화폐 사업자가 이 같은 행위를 저질렀을 때는 똑같이 처벌할 수 없다. 자본시장법상 암호화폐는 증권이나 파생상품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은 지난 1월 가짜 회원 계정을 만들어 거액의 자산을 예치한 것처럼 꾸미고 허위 거래로 약 1500억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업비트에 대해 1심에서 증거부족 등을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업비트가 직접 암호화폐 거래에 참여한 부분에 대해 “현행 법령상 거래소의 거래 참여 자체가 금지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자본시장법은 내부자거래나 시세조정 등의 행위 자체를 강력히 금지하고 처벌하며 손해배상 책임을 명시하고 있지만 암호화폐 사업자는 사기로 처벌해야 하는데 이 경우 기망 행위를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탐사기획부안동환 부장, 박재홍·송수연·고혜지·이태권 기자
  • [임창용 칼럼] 힘보다는 제구력이 필요할 때

    [임창용 칼럼] 힘보다는 제구력이 필요할 때

    정부가 서울 시내 그린벨트 해제 카드를 접었다. 반대 여론이 거세자 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정세균 총리와 회동을 갖고 보존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결국 최고 결정권자인 대통령이 나서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모양새가 됐다. 하지만 지난 며칠간 그린벨트 해제를 둘러싼 여권 내 파열음은 힘의 지형과 향후 문재인 정부의 정책 추진 좌표에 변화를 보여 줄 것이란 조심스러운 예감을 갖게 한다. 불과 며칠 전까지 그린벨트 해제 추진은 거칠 게 없어 보였다. 지난 15일 당정은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그린벨트 해제를 포함한 주택 공급 방안 논의를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를 구성했고,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17일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 “이미 당정 간 의견을 정리했다”고까지 했다. 이 정도면 문 대통령의 추인을 받았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했다. 그동안 “절대 반대”를 고수해 온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사망하면서 해제는 시간문제란 보도까지 나왔다. 그러나 정 총리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차기 대선 후보로서 여권 내 2강인 이낙연 의원과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반대 의견을 밝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까지 오지랖 넓다는 지적까지 받으며 해제 반대에 가세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당정청이 추진하려는 정책에 총리와 대선주자들, 일부 장관까지 반대 의사를 보인 것은 아마 처음이지 싶다. 여기에 국민의 60% 이상이 그린벨트 해제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지난 2~3일간 벌어진 이런 급박한 형세 변화에 문 대통령도 결국 그린벨트 보존을 결정했다. 문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 중이라도 이런 결과로 이어졌을까. 힘의 변화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하는 이들이 정치인들이다. 집값 폭등 사태, 박 전 시장 사망과 성추행 의혹 여파로 문 대통령 지지율은 40%대 중반까지 추락했다. 총선 때만 해도 60%를 넘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도 30%대로 떨어졌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꽉 막혀 있고, 경제상황은 악화일로다. 총선 압승을 임기 후반기 동력으로 삼으려 했던 문 대통령이지만, 반전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게 됐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여권 내 그린벨트 파열음은 결국 힘의 좌표가 서서히 미래를 향해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 주는 작은 신호라는 생각을 뿌리칠 수가 없다. 문 대통령과 여당은 정부 출범 이후 한동안 촛불혁명을 이룬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동력으로 남북 관계 개선과 적폐청산 작업을 거침없이 이끌었다. 소득주도성장론이나 대입제도 개편처럼 논란이 큰 사안도 높은 지지율을 지렛대 삼아 밀고 나갔다. 실패를 거듭한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힘이 부치는 상황에서 힘에 의존한 정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강속구 투수도 나이가 들면 정교한 제구력으로 타자들을 요리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젊었을 때 파이어볼러였던 그레그 매덕스는 나이가 들면서 ‘제구력의 마술사’로 거듭나 메이저리그의 전설이 됐다. 30대 중반의 류현진도 강속구보다는 자로 잰듯한 제구력으로 자신의 진가를 높이고 있다. 임기 말이 다가올수록 국정 동력이 떨어지는 건 필연적이다. 정책 추진에 힘보다는 제구력이 필요한 이유다. 부동산 정책처럼 이해관계가 복잡한 경우엔 더 그렇다. 정책 하나하나 수많은 경우의 수가 발생하고, 그에 따른 역작용을 수반한다. 대출을 과도하게 조이니 실수요자까지 피해를 보고, 임대사업자 등록을 장려하니 갭투기를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진 것처럼. 적폐청산은 피아 구분이 어렵지 않아 압도적인 힘으로 공세를 퍼부어 큰 효과를 낼 수 있었다. 한데 부동산 시장에선 아군(실수요자)이 적군(투기꾼)들 사이에 섞여 있기 십상이다. 적군들만 골라 제거할 수 있는 스마트폭탄이 필요한 이유다. 한데 정부는 지금까지 폭발력만 센 재래식 고폭탄을 고집했다. 결국 아군들까지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사태를 초래했다. 시간이 얼마 없다. 정부와 여권은 힘보다는 정교한 제구력을 앞세워야 한다. 그린벨트 파열음 같은 힘의 균열 사태는 갈수록 잦아질 것이다. 더이상 힘만으로 주요 정책을 관철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린벨트 해제 카드가 무산되자 여권에선 행정수도 이전이나 전월세 값을 정부가 정한다는 등의 설익은 카드를 던지려는 모양이다. 이런 카드들이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 숙고부터 하기 바란다. 힘만 믿고 강속구를 고집하다간 난타당해 강판당할 수 있다. sdragon@seoul.co.kr
  • [이경우의 언파만파] 서술어의 객관성

    [이경우의 언파만파] 서술어의 객관성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하려면 재고 또 재야 한다. 물리적 공간이야 수평계를 이용하면 된다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적 공간의 수평, 즉 공정성이나 객관성은 기계로 측정하지 못한다. 상황이나 관습,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 문화 같은 것들은 기계에 담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정과 객관을 유지한다고 기치를 내걸어도 거기서 그치고 말 때가 많다. 그런 공간도 곳곳에 있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말하기와 글쓰기도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때그때의 감정이나 시각, 태도를 말이나 글에서 지우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공정과 객관에 가까워야 설득하고 소통하고 공감으로 갈 수 있다. 그러려면 자신은 이해관계에서 멀어져야 하고 묻고 듣는 과정을 끝없이 거쳐야 한다. 이전의 관행, 관습들을 돌아보는 일 또한 중요한 과제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으레 그런 것’이어서 있는지조차 잘 모르고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인용하는 문장의 서술어들도 이런 영역에 들어 있다. 거의 정해져 있어서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고 했다’나 ‘~고 말했다’, ‘~고 밝혔다’ 같은 말들이 주로 쓰이고 ‘~고 덧붙였다’, ‘~고 전했다’가 같이 쓰인다. 무미건조하다고 여겨지면 ‘~고 강조했다’, ‘~고 지적했다’, ‘~고 주장했다’, ‘~고 토로했다’, ‘~고 비판했다’, ‘~고 비난했다’, ‘~고 일축했다’를 끼워 넣는다. 한데 무미건조함에서 변화를 주려고 한 서술어들은 문장의 맛에는 변화를 줬겠지만 공정성과 객관성은 잃고 말았다. ‘~고’ 앞에 인용한 말들에 대해 전달자의 생각을 넣은 것이다. ‘강조’, ‘지적’, ‘주장’ 등은 모두 전달하는 이의 판단이다. 사건이나 상황에 전달자가 개입한 것이 된다. ‘강조하다’는 ‘특별히 강하게 주장하거나 두드러지게 하다’는 뜻이다. 국어사전의 이러한 풀이는 일상의 쓰임새와도 다르지 않다. 일상에서도 가치중립적인 말은 아니다. ‘고 강조했다’라고 하면 사태를 잘못 읽게 한다. 누군가는 강조하지 않았는데 전달자 때문에 강조한 것으로 변한다. 강조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어도 ‘강조하다’에는 신중해야 신뢰를 유지한다. ‘지적하다’도 그렇다. ‘지적하다’는 단순히 가리킨다는 뜻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소설이 아니라면 “그는 창의성이 없다고 ‘지적했다’”가 아니라 ‘했다’, ‘말했다’가 객관적이다. ‘강조’나 ‘지적’, ‘비판’, ‘비난’인지는 청자와 독자의 몫일 때가 대부분이다. 더 본질적인 가치가 공정과 객관에 있다면 이를 먼저 살피는 게 중요하다. wlee@seoul.co.kr
  • 원희룡 제주지사 대권 도전 준비중,지사직 사퇴는 안해

    원희룡 제주지사 대권 도전 준비중,지사직 사퇴는 안해

    원희룡 제주지사가 14일 “대권 도전을 고민중이며 대권 도전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 구체화되면 도민들에게 소상하게 밝히겠다”고 말했다. 도지사직 유지 여부에 대해서는 “경선을 하면서 도지사직을 사직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일축했다. 원지사는 이날 제주도청 소통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4월 총선 이후 대선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국가의 위기, 정치의 위기가 도정과도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원 지사는 “대권 도전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식으로 도전하게 되면 어떤 비전과 전략을 가지고 어떤 프로그램으로 움직일지,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할 문제”라며 “현재 기초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어느 정도 비전과 전략이 갖춰지면 도민들에게 알릴 건 알리겠다”고 말했다. 또 “심각하게 고민하고, 준비를 도모하고 있는 단계라는 점을 말씀드린다”면서도 “때가 되면 더 상세히 말씀드리고, 준비하고 고민한 내용들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덧붙였다. 임기를 다 채울 것이냐는 질문에는 “대통령선거 본선에 가게 되면 달라지겠지만, 경선을 뛰면서 도지사직을 사직한 사례는 거의 없다. 경우의 수로서 미리 재단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원지사는 잦은 서울 출장 등 중앙정치 행보로 인한 도정공백 우려에 대해서는 “제주인으로서 큰 정치 도전할 수 있고, 또 한다면 제대로 잘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많다. 그런 점에서 한번 나서면 돌이킬 수 없고 대충 할 수 없다”면서 “다만 지금은 제주가 처한 코로나 위기극복, 미래를 준비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이경우의 언파만파] 낱말의 경직된 사용

    [이경우의 언파만파] 낱말의 경직된 사용

    ‘난리’(亂離)는 어수선하고 야단스러운 상태다. 난리가 나면 질서는 사라지고 어지러워진다. 작은 소동이 벌어지면 ‘난리’라고 비유적으로 말한다. “난리를 떤다”고 하고, “난리를 피운다”고 한다. 과장해서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야”라고 하는 일도 있다. 애초 ‘난리’는 소란스러움을 뜻하기보다 주로 ‘전쟁’을 가리켰다. “난리가 났다”, “난리가 터졌다”에서 ‘난리’는 전쟁을 뜻하는 것이었다. 오래된 국어사전에서는 ‘난리’를 “전쟁과 같음”(문세영, ‘조선어사전’, 1938)이라고 풀어 놓기도 했다. 전쟁이 나면 사람들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 간다. 난리를 피해 ‘피란’(避亂)을 가는 것이다. 한데 ‘피난’(避難)이라고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발음이 편한 것도 있다. ‘어지러울 란’(亂) 대신 ‘어려울 난’(難)을 쓴 ‘피난’은 “재난을 피한다”는 뜻이다. ‘재난’은 “재앙과 고난”이다. 그러니 전쟁도 재난에 속할 수 있다. ‘6·25 피난 시절’, ‘전쟁으로 인한 피난’, ‘전쟁 피난민 행렬’ 같은 표현들을 쓴다. 그러자 누군가 ‘피란’을 규정하고 나섰다. 전쟁 때문에 피하는 것은 ‘피란’이어야 한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움찔했고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친 해석이고 규정이었다. ‘멀다’는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말이다. “버스 정류장이 멀다”고 하고, “백화점이 멀다”고 한다. 모두 물리적 공간이 많이 떨어져 있음을 가리킨다. 뿐만 아니라 ‘멀다’는 시간적인 간격이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도 뜻한다.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다”, “겨울은 아직 멀었다”에서 ‘멀다’는 시간적 거리를 나타낸다. “멀지 않아 그가 올 것이다”에서도 ‘멀다’는 시간이다. 그런데 ‘머지않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얼른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멀지+않다’에서 왔다. 시점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을 때 사용한다. 당연히 여기에 물리적 공간의 의미는 없다. 그러자 또 누군가 나섰다. “멀지 않아 그가 올 것이다”는 잘못된 표현이니 “머지않아 그가 올 것이다”로 고치라고 한다. ‘멀다’에는 시간적 의미도 있다. 역시 지나친 지적이다. ‘쫓다’와 ‘좇다’에는 ‘따르다’는 뜻이 있다. 차이는 물리적 움직임이냐 아니냐에 있다. ‘쫓다’는 물리적, ‘좇다’는 추상적 움직임을 가리킨다. “그를 쫓아 방으로 들어갔다”, “관습을 좇다”처럼 쓴다. 그렇다고 이렇게 고정시키기는 어렵다. 경찰이 범인을 찾고 있다고 하자. 물리적인 움직임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경찰은 용의자를 쫓고(찾고) 있다”고 한다. 유연한 쓰임이다. wlee@seoul.co.kr
  • [이종수의 헌법 너머] ‘확립된 관행’이 아쉬운 의회정치

    [이종수의 헌법 너머] ‘확립된 관행’이 아쉬운 의회정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다르지가 않았다. 총선 이후에 개원 국회의 원 구성 협상이 순조로웠던 기억이 별로 없다. 애당초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어쨌든 여당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차지한 채로 원 구성이 일단락 지어졌다. 알려져 있듯이 이번 사달은 법제사법위원장 자리 때문이다. 미래통합당은 법사위원장을 양보받지 않으면 다른 상임위원장 자리까지 모두 포기하겠다며 배수진을 쳤고, 그 자리만큼은 내줄 수 없다는 여당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한 까닭이다. 그동안 원 구성 협상 결렬로 인해 국회가 수개월째 개점휴업 상태가 이어지면서 대법관 등의 인사가 지체된 적이 여러 차례 있었고,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에게 국민들의 세비 반납 요구가 드셌다. 법사위와 그 위원장 자리를 놓고서 그간 말도 탈도 많았다. 국회의 입법 절차상 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하고서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에 법사위의 체계 및 자구심사를 거치도록 하는데, 법사위가 권한 범위를 넘어서 사실상 법안 자체의 통과 여부를 결정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사위를 두고서 옥상옥(屋上屋)의 상원(上院)으로도 불러 왔다. 그런데 문제를 개선할 생각은 않고서 그저 서로 빼앗기지 않으려고만 한다. 원 구성과 관련해서 헌법과 국회법에서 대강은 정하고 있는데, 국회법 제41조 제2항은 상임위원장을 “본회의에서 선거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의회에서의 승자독식제나 독일 의회에서의 안배 모델 모두가 가능하다. 양당제인 미국에서는 의석수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다수당이 있기 마련이어서 승자독식제가 나름 수긍된다. 반면에 다당제인 독일에서는 특정 정당이 단독으로 과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은 물론이고 원 구성에서도 자연스레 정당 간 합의에 의한 안배가 이뤄진다. 헌법과 국회법에서 물론 의사(議事)와 관련한 주요 사항을 규율하지만 모든 사항을 일일이 다 미리 정해 둘 수가 없다. 특히 국회법과 같은 복잡한 조직법이 그렇다. 심지어 국회 규칙으로도 선거 결과에 뒤따르는 모든 경우의 수를 따지면서 미리 규정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각종 의사와 관련해 국회사무처에서 따로 선례집을 발간해 오고 있다. 그런데 두꺼운 선례집을 뒤져 봐도 정작 원 구성에 관한 내용을 찾기가 어렵다. 불과 4년 전에 당시 여당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맡았기에 그 자리가 야당 몫이라는 확립된 관행도 없는 셈이다. 결국 이번처럼 개원에 따른 원 구성 때마다 여야 간의 힘겨루기가 되풀이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오랜 의회주의 역사를 갖고 있는 영국과 독일 등에서는 이른바 ‘확립된 의회관행’이 정착돼 있다. 선거 결과가 어쨌든 간에 서로 지켜야 할 일종의 불문율이자 신사협정인 셈이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의사당 바닥에 붉은색으로 그어진 소드 라인(Sword Line)이 대표적이다. 2017년 9월에 독일에서 제19대 연방의회 선거가 있었다. 이어 원 구성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가 바로 예산위원장 자리였다. 연방의회에서 그간 확립된 관행에 따르면 중요한 대정부 통제 기능을 떠맡는 이 자리가 제1야당 몫이다. 이 내용은 연방의회의 공식 웹사이트에도 나와 있다. 문제는 과거의 나치 체제를 옹호하는 극우세력들이 모여서 만든 독일대안당(AfD)이 처음으로 연방의회에 입성하면서 원내 제1당과 제2당 간의 대연정 덕분에 어부지리로 바로 제1야당이 된 데에 있었다. 의회 내부에서 이 극우정당에는 도저히 예산위원장 자리를 내줄 수 없다며 반대가 있었으나, 결국 확립된 의회 관행이 그대로 지켜졌다. 이렇듯 국회가 새로 구성될 때마다 상임위원장 등 원 구성을 둘러싸고 여야 간에 볼썽사나운 힘겨루기를 거듭하기보다는 의회정치에서 합의된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 예컨대 어느 정당이라도 단독으로 과반 이상 의석을 차지한 경우에는 상임위원장직을 미국처럼 승자독식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안배를 하되 특정 상임위원장직을 야당 몫으로 미리 정해 두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패스트트랙 법안 사태에서의 몸싸움이 그렇듯이 국민의 대표들이 스스로 만든 국회법조차도 지키지 않으니 여기서 확립된 국회 관행 운운하는 것이 마치 ‘연목구어’(緣木求魚) 같은 일이 아니기를 바란다.
  • [이경우의 언파만파] 지방과 지역

    [이경우의 언파만파] 지방과 지역

    시골쥐의 초대를 받은 서울쥐는 시골이 지루하고 초라하게 보였다. 시골쥐가 먹는 음식은 허접했다. 서울쥐는 서울 가면 신기한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며 자랑스레 시골쥐를 초대한다. 서울에 도착한 시골쥐는 예상과 달리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음식을 먹으려고 할 때마다 도망치느라 바빴다. 음식은 풍성했으나 마음 편히 먹을 수 없었다. 시골쥐에게 서울은 살기 좋은 곳이 아니었다. 시골쥐는 곧바로 시골이 더 낫다며 서울을 떠난다. 서울쥐에게는 시골이 먹을 것도 부족하고 볼거리도 없는 곳이었다. 서울처럼 음식점도 보이지 않고 놀 만한 곳도 없었다. 그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이었다. 서울이 아니어서 보잘것없는 곳이란 의미를 가진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서울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서울을 중심에 놓고 생각했다. 말을 통해서도 드러냈다. ‘스가(아래아)올’이었고, ‘스굻’, ‘스굴’이기도 했던 ‘시골’은 ‘새로운 고을’을 뜻하는 말이었다. 좋은 의미의 ‘새로움’이 아니었다. 단지 본래 고을에서 떨어진 마을을 가리켰다.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지역을 뜻했다. 이곳은 발달이 덜 되고 부족한 곳처럼 여겨졌다. 이 시골은 곧 지방(地方)이기도 했다. 시골에는 그래도 정감 있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지방에는 그런 것도 없었다. 지방 위에는 늘 서울만 자리하고 있었다. 지방은 서울에 종속된 곳이어야 했다. 국어사전의 뜻풀이에도 ‘서울 이외의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새겨졌다. 서울 이외 지역의 도시들은 ‘지방 도시’가 됐고, 서울 이외 지역의 대학들에는 ‘지방 대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치를 낮추는 표지들이었다. ‘지방’은 서울이라는 ‘중앙’의 반대쪽 아래에 자리해 왔다. ‘지방’의 새로운 자리매김이 필요했다. ‘지방’은 구시대적인 표현이라는 주장들이 이어졌다. ‘지방’은 낮고 지도를 받아야 하는 곳이란 의식이 남아 있는 말이라고 했다. ‘지역’(地域)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지역’은 ‘지방’처럼 중앙에 속해 있는 개념이 아니었다. 일정하게 나눈 지역이고 영역이었다. 지방이 중앙의 통제를 받는 수직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지역은 수평적이라는 것이다. 서울에 ‘지방’이란 이름을 가진 행정기관들이 수없이 보인다. 서울지방경찰청, 서울지방국세청, 서울지방병무청,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지방’이 ‘지역’의 의미도 조금 가져갔다. 그래도 ‘지방’은 불필요할 때가 많다. 신중해야 한다. wlee@seoul.co.kr
  • 기로에 선 윤석열… 오늘 예정됐던 수사자문단 일단 취소

    기로에 선 윤석열… 오늘 예정됐던 수사자문단 일단 취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상대로 15년 만에 공개적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서 이제 ‘공’은 윤 총장에게 넘어갔다. 일단 윤 총장은 3일 예정된 전문수사자문단은 소집하지 않기로 했지만 수용 여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특히 윤 총장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이 연루된 ‘검언유착 의혹 사건’ 수사에서 “총장은 손을 떼라”는 장관의 지시는 총장의 지휘·감독권과 직결되기 때문에 윤 총장은 장고에 들어갔다. 검찰은 3일 검사장 회의 등 간부 간담회를 연 뒤 최종 결론을 내놓을 방침이다.추 장관은 2일 오전 법무부 검찰국 간부를 통해 윤 총장에게 수사지휘 공문을 직접 전달했다. 3쪽 분량의 공문에는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 조항인 검찰청법 8조 규정에 따른 수사지휘라는 점이 적시됐다. 2005년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이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서를 내려보낸 이후 15년 만이다. 당시 천 장관은 ‘6·25는 통일전쟁’이라는 발언을 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며 지휘권을 발동했다. 김 전 총장은 지시를 수용한 뒤 사표를 냈다.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대검의 자문단 소집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는 긴급 권고문을 내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이후 법무부는 오전 11시 50분쯤 이례적으로 윤 총장에게 보낸 수사지휘서를 언론에 공개했다. 전날 추 장관이 국회에서 “때로는 무력감을 느낀다. 더 지켜보기 어렵다면 결단하겠다”며 지휘권 발동을 시사했는데, 하루 만에 ‘결단’을 내린 것이다. 추 장관은 ▲자문단 소집 결정 등에 검찰 내부에서 이의가 제기된 점 ▲대검 부장회의에서 심의 중인 사건에 대해 자문단이 중복 소집된 점 ▲수사심의위원회 심의도 예정된 상황에서 결론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혼란이 예상되는 점 등을 지휘권 발동 배경으로 밝혔다.추 장관이 이날 ‘자문단 심의 절차 중단’, ‘수사팀의 독립성 보장’을 지휘했지만 윤 총장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대검은 긴급 부장회의를 연 뒤 오후 5시 40분쯤 “3일 자문단은 소집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현재 다양한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짤막한 입장을 밝혔다. 자문단을 열지 않는다는 소식이 ‘일부 수용’으로 해석됐지만 검찰은 아직 수용 여부를 정한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의견 수렴을 위해 3일 여러 차례에 걸쳐 간부 간담회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오전에는 고검장 회의, 오후 2시와 4시 각각 수도권 검사장, 지방 검사장들이 회의를 할 것으로 전해졌다. 윤 총장이 장관의 지시에 반발해 사표를 낼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윤 총장이 이 시점에서 물러나면 검찰 조직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어 끝까지 지킬 것이란 반론도 만만찮다. 남은 경우의 수로는 ▲장관 지휘를 전부 수용하고 확전을 피하는 안 ▲현 수사팀 대신 특임검사를 지명하는 식으로 일부 수용하는 안 ▲장관의 지시를 불이행하는 안 등이 있다. 그러나 지시 불이행 시 추 장관이 총장에 대한 감찰 지시 또는 추가 지휘 등 재압박을 할 수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장관의 지휘가 부당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인사권자의 개입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부 검사장은 추 장관의 지휘가 검찰 제도의 본질을 침해했다고 본다. 지휘권은 극히 예외적으로 검찰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수사를 할 때 발동하는 것인데 이번 사건으로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이다. 검찰의 한 간부는 “대통령의 사직 권고가 없는 이상 총장이 떠밀리듯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무력감 느낀다”던 추미애의 강공...선택의 기로에 선 윤석열

    “무력감 느낀다”던 추미애의 강공...선택의 기로에 선 윤석열

    15년만에 수사지휘권 발동문재인 대통령 당부에도6개월 만에 ‘파국’ 결말대검 “3일 자문단 안 열어”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5년 만에 공개적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서 법무부와 검찰은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확히 6개월 전, 추 장관에게 임명장을 전달하면서 “검찰총장과도 호흡을 잘 맞춰 달라”고 당부했지만 사사건건 맞부딪친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끝은 ‘파국’이었다. 장관의 지휘권 발동은 검찰 역사에 ‘불명예’로 기록되기 때문에 윤 총장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거취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추 장관은 2일 오전 법무부 검찰국 간부를 통해 윤 총장에게 수사지휘 공문을 직접 전달했다. 3페이지 분량의 공문에는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 조항인 검찰청법 8조 규정에 따른 수사지휘라는 점이 적시됐다. 2005년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이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에게 보낸 공식 수사지휘서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다. 법무부는 오전 11시 50분쯤 이례적으로 윤 총장에게 보낸 수사지휘서를 언론에 공개했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앞서 오전 10시 27분에 “검언유착 수사 관련 대검의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는 긴급 권고문을 냈다. 전날 추 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때로는 무력감을 느낀다”면서 “더 지켜보기 어렵다면 결단할 때 결단하겠다”고 지휘권 발동을 시사했는데, 하루 만에 되돌릴 수 없는 ‘결단’을 내렸다. ▲자문단 소집 결정 등에 검찰 내부에서 이의가 제기된 점 ▲대검 부장회의에서 심의 중인 사건에 대해 자문단이 중복 소집된 점 ▲수사심의위원회 심의도 예정된 상황에서 결론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혼란이 예상되는 점 등을 지휘권 발동 배경으로 밝혔다. 3일 자문단 소집이 예정돼 있어 “예상된 결과”라는 시각도 있지만, 검찰 내부에선 “자문단 결과가 ‘혐의 없음’ 의견이 나올까 봐 서둘러 지휘권을 발동한 것 아니냐”는 의심 어린 시선도 있다.지난 3월 31일 MBC 보도로 시작된 검언유착 의혹 사건은 추 장관의 지휘권 발동으로 중대 변곡점에 서게 됐다. 초기에는 ‘감찰 개시 일방 통보’ 논란으로 총장과 대검 감찰부장이 마찰을 빚더니, 수사팀의 MBC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뒤에는 총장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갈등이 불거졌다. 이후 잠잠해졌다가 자문단 소집을 놓고 수사팀이 반발했고, 결국 대검과 충돌했다. 추 장관이 이날 ‘자문단 심의 절차 중단’, ‘수사팀의 독립성 보장’을 지휘했지만 윤 총장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대검은 이날 오후 5시 40분쯤 “3일 자문단은 소집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현재 다양한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짤막한 입장을 밝혔다. 우선 윤 총장은 15년 전 김종빈 전 총장과 마찬가지로 사표를 내고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윤 총장이 이 시점에서 물러나면 검찰 조직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어 끝까지 지킬 것이란 반론도 만만찮다. 남은 경우의 수로는 ▲장관 지휘를 전부 수용하고 확전을 피하는 안 ▲현 수사팀 대신 특임검사를 지명하는 식으로 일부 수용하는 안 ▲장관의 지시를 불이행하고 자문단을 강행하는 안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지시 불이행 시 추 장관이 총장에 대한 감찰 지시 또는 추가 지휘 등 재압박을 할 수 있고, 이달 예정된 인사에서 ‘윤석열 라인’으로 불리는 후배 검사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윤 총장도 상당한 고심을 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안팎에서는 장관의 지휘가 부당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인사권자의 개입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검찰의 한 간부는 “대통령의 사직 권고가 없는 이상 총장이 떠밀리듯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이경우의 언파만파] 성씨, 직장, 직함

    [이경우의 언파만파] 성씨, 직장, 직함

    ‘성’(姓)은 혈연관계를 나타내는 이름이다. 혈연 공동체의 이름이고 가문, 가족의 이름이다. 높여서 ‘성씨’라고도 한다. 본관까지 더해진 상대의 성을 안다는 건 그에 관한 정보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어떤 이들은 성씨를 통해 상대의 집안 내력까지도 들여다본다.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낯선 누군가를 만나면 대부분 이름을 먼저 묻게 된다. 그러면 상대는 이름만 답하지 않는다. ‘김아무개’, ‘이아무개’라고 누구나 이름에 성까지 포함한 성명을 알려 준다. 누군가가 정말 이름만 알려 주면 다시 성씨를 묻는다. 그만큼 성씨는 낯선 상대에 대한 중요한 궁금증 가운데 하나다. 이름은 사실 그다음이다. 성씨에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아직은 조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전 시기에는 신분이나 사회적 위치 같은 것들도 성씨와 연결돼 있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성씨는 이제 그다지 큰 관심사가 아니다. 상대를 알거나 구별하는 데도 크게 유용하지가 않다. 대표 이름 정도로 여겨진다. 성씨보다 상대의 직장이나 직업, 소속집단에 더 관심을 갖는다. 다니는 직장이나 직업, 소속된 단체ㆍ기구ㆍ공동체의 이름이 성씨의 구실도 한다. 상대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소속 직장의 이름을 말하고 성명을 밝힌다. 명함에도 이런 순서로 자신을 알리는 글을 새긴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어쩌면 같은 성을 쓰는 셈이다. 새로운 성씨의 탄생이다. 혈연관계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란 점이 이전의 성씨와 다를 뿐이다. 직장의 이름들도 성처럼 얼마간의 정보를 드러낸다. 큰 곳이라면 어디에 있는지도 쉽게 알 수 있다. 또 어느 정도의 수입을 얻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부서나 직함까지 덧붙여진다면 본관을 아는 것과 비슷한 것이 된다. 이름을 묻는 건 형식적인 절차일 때도 적지 않다. 상대가 더 궁금해하는 건 그 사람이 다니는 직장이거나 직업, 소속집단 같은 게 됐다. 누군가 나타나면 먼저 떠오르는 건 ‘성이 뭘까’가 아니다. ‘뭐 하는 사람일까’이다. 자신을 밝힐 때 일하는 곳이나 직업 이름을 먼저 밝히는 일이 많다. 그리고 자신이 크고 이름난 성씨를 가졌을 때 폼을 잡던 이들처럼 이름난 직장에 속한 것에 대해서도 그러는 이들이 있다. 여기에 자신의 직함까지 이름 뒤에 덧붙여 말하기도 한다. 남이 자신을 제삼자에게 소개할 때 이름 뒤에 부장, 사장 등 직함을 붙이는 걸 따르는 것이다. 이러면 이건 존칭이다. 자신이 스스로 직함까지 붙이는 건 친절이 아니라 불친절이 될 수 있다.
  • [이경우의 언파만파] 북한의 막말

    [이경우의 언파만파] 북한의 막말

    그들의 말은 또 거칠었다. 섬뜩하고 자극적이면서 원색적이었다. 여기에 조롱과 힐난까지 섞었다. 내놓은 표현을 두고 스스로 ‘말폭탄’이라고도 했다. ‘오물’, ‘더러운 개무리’, ‘죽탕쳐(짓이겨) 버리자’, ‘철퇴로 대갈통을 부수겠다’, ‘입 건사를 못 하고 짖어 대는 똥개’, ‘맹물 먹고 속이 얹힌 소리 같은 철면피하고 뻔뻔스러운 내용’, ‘여우도 낯을 붉힐 비열하고 간특한 발상’…. 그렇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준비돼 있는 듯 내놓았고 스스럼없어 보였다. 그들의 선전, 선동은 본래 이러한 것이었다. 날카로운 말과 전투적인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 게 원칙이었다. 상대를 아프게 하고 그래서 내부의 분노를 높이 끓어오르도록 하는 게 기본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내부를 하나로 모으기도 한다. ‘선전: 일정한 사상, 리론, 정책 등을 … 이론적으로 파악하고 인식하게 하는 사상 사업의 한 형식’, ‘선동: 혁명과업을 잘 수행하도록 대중에게 호소하여 … 당정책 관철에로 직접 불러일으키는 정치 사상 사업의 한 형태’(조선말대사전). 북한은 이를 위해 이런 방식에 익숙해 있었고 체계적이었다. 이전의 ‘서울 불바다’ 같은 말부터 그 이후의 험한 말들까지 감정적이기보다 하나의 방식에 따른 것이었다. 북한 사회가 언어를 보는 시각 또한 다르다. 우리에게는 언어가 의사소통의 수단이지만, 북한에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언어는 혁명과 건설을 위한 힘 있는 무기이기도 하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은 ‘언어’를 “… 민족을 이루는 공통성의 하나이며 나라의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는 힘 있는 무기”라고도 풀이한다. 국립국어원이 내놓은 ‘북한의 언어 정책’(1992)에 따르면 남쪽에 대한 원색적 표현을 상스럽다거나 교양이 없다고 여기지 않는다. 적개심 고취나 극단적인 비하의 수단으로 본다. 일본이나 미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초등교육을 하는 인민학교의 교과서에서부터 원색적인 표현을 실어 익숙해지도록 한다. 최근 북한이 내놓은 막말들은 선전과 선동이었다. 여기서 말 자체를 보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 말 너머의 공간과 상황을 살피는 게 중요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2인자 지위를 굳혔다는 사실을 읽었다. 북한이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졌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남쪽에 불만을 쌓아 놓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최고 존엄’에 대한 주민들의 충성심을 이끌어 내려는 것도 보았다. wlee@seoul.co.kr
  • [이경우의 언파만파] 또다시 ‘삐라’

    [이경우의 언파만파] 또다시 ‘삐라’

    ‘삐라’는 붙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삐라’는 ‘뿌리다, 날리다, 돌리다’ 같은 말들과 더 익숙하게 어울린다. 삐라들은 오랫동안 이렇게 전달되고 떨어져 왔다. 떨어진 삐라들은 불온하고 수상쩍은 것이었다. 색깔로도 쉽게 구별되고 불온해 보이는 그것은 지니고 있을 게 못 됐다. 수상한 인물을 신고하듯 신고해야 하는 물건이기도 했다. 영어 ‘빌’(bill)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일본을 거쳐 들어오면서 ‘삐라’라는 형태가 됐다. 한때는 ‘삘’이라고 하기도 한 모양이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나온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은 ‘삐라’를 표제어로 올려놓고, 풀이는 “‘삘’에서 온 말”이라고 해 놓았다. 일본어 ‘비라’(ビラ)를 나란히 적어 놓았다. ‘삘’의 풀이에는 ‘계산서, 증권, 광고로 걸어 놓는 그림, 광고지’ 같은 말들을 옮겨 놓았다. ‘삐라’는 일본어 냄새가 물씬 나는 말이었다. 국어순화운동의 대상이어야 했다. ‘삐라’가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한국어 속으로 들어왔지만 불량식품처럼 가능하면 멀리하라는 신호들이 보내졌다. 정부는 ‘삐라’ 대신 ‘전단’을 쓰라고 권유했다. 규범 사전인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삐라’의 풀이에 ‘전단’으로 가라는 화살표(→)를 해 놓았다. ‘전단’이 표준어라는 의미다. 사전의 ‘전단’에는 ‘선전 전단’, ‘경찰의 수배 전단’, ‘전단을 돌리다’ 같은 예문들이 보인다. 이렇듯 단정한 ‘전단’은 ‘삐라’가 전하는 정치적 선동과 조작 같은 의미를 담지 못했다. ‘불온함’이나 ‘은밀함’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삐라’는 ‘삐라’일 수밖에 없었다. 사라져 가지 않았다. ‘삐라’가 “‘전단’의 북한어”라는 국어사전의 뜻풀이는 남한말이 아니고 북한말이란 의미가 아니다. 정확하게는 북한의 표준어인 ‘문화어’라는 뜻이다. 북한에선 ‘삐라’를 표준어로 받아들였다. 북한의 규범 사전이라 할 수 있는 ‘조선말대사전’은 ‘삐라’의 첫 번째 의미를 “선동을 위하여 종이에다 쓴 짤막한 글 또는 그러한 글이 담긴 종이장”이라고 해 놓았다. 삐라의 용도를 선명하게 밝혔다. 이 사전에는 ‘삐라공작’이란 말도 보인다. 삐라는 상대에겐 불온한 무엇이 될 수 있다. 마음을 뒤집어 놓기도 한다. 무기가 된다. 남북 정상은 2018년 판문점선언에서 전단 살포를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그렇지만 한 탈북자단체가 지난달 다시 북쪽을 향해 삐라를 날렸다. 북한 인권운동 차원이라고 하는데, 돈 때문이라는 의혹을 받는다. 북한이 남쪽을 향해 거친 말들을 쏟아낸다. 총탄과 폭탄 같은 말들이 날아온다.
  • 코로나 항체 치료제 1상 임상시험 돌입…3개월 만 신약 개발 비결은?

    코로나 항체 치료제 1상 임상시험 돌입…3개월 만 신약 개발 비결은?

    코로나19는 21세기 최악의 신종 전염병으로 막대한 인명 피해는 물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혔다.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은 이제 전 세계 제약회사와 연구 기관, 보건 당국이 최우선 과제가 됐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속도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진행되면서 이미 세계 각지에서 여러 종류의 백신과 치료제가 임상시험에 돌입한 상태다. 이런 신약 중 하나가 코로나19 항체 치료제다. 최근 미국 대형 제약회사인 일라이 릴리 사는 두 종의 항체 치료제가 1상 임상시험에 돌입했다고 발표했다. 만약 효과와 안정성이 입증되면 9월 정도에 사용승인을 받고 대량 생산에 들어가 올해 말부터 치료제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런데 빨라도 몇 년이 걸린다는 신약 개발을 어떻게 이렇게 빨리 진행할 수 있었을까? 비결은 빠른 속도로 중화항체를 추출해 약물로 개발할 수 있는 자동화 시스템에 있다. 일라이 릴리와 손잡은 캐나다의 앱셀레라는 지난 2월 25일에 코로나19 환자의 회복기 혈액 샘플을 공급받아 코로나19 항체 치료제 개발에 착수했다. 이 회사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인 칼 한센이 이끄는 항체 치료제 스타트업으로 2018년 미국 방위고등 연구계획국(DARPA)의 판데믹 예방 플랫폼인 P3(Pandemic Prevention Platform)에 참여해 신종 전염병 항체 치료제 기술을 상용화했다. 방법은 아래와 같다. 우선 코로나19 항체가 풍부한 회복기 환자의 혈액에서 항체를 만드는 면역 세포를 분리한다. 앱셀레라는 면역 세포 하나를 각각 분리해 작은 방안에 가둘 수 있는 미세 유체 시스템을 개발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코로나19 항체를 만드는 면역 세포는 일부에 불과하다. 따라서 앱셀레라는 코로나19 항체를 생산하는 면역 세포를 분류하는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런데 이렇게 분류한 코로나19 항체도 2000종에 달한다. 이 항체 가운데 일부만이 실제로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키는 중화항체다. 따라서 다시 중화항체를 선별한 후 500개의 항체를 추출해 데이터를 확보한다. 마지막 단계는 이 중화항체 가운데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을 선별하는 것이다. 앱셀레라는 500개의 항체에서 500가지 특성을 시각화하는 셀리움(Celium)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검증한 후 가장 치료 효과가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항체 하나를 선별했다. 이렇게 선별한 항체가 LY-CoV555이다. 앱셀레라는 6월 1일 이 과정을 마무리했다. 불과 3개월 만에 신약 개발을 완료한 것이다. 다만 실제 항체 치료제 생산 및 임상 테스트는 작은 스타트업이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릴리와 미 국립 알레르기 전염병 연구소(NIAID)가 협업해 진행한다. LY-CoV555는 미국 내 의료기관에 있는 참가자 32명에 투여된다. 만약 항체 치료제가 코로나19 치료와 예방에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나면 코로나19는 물론 다른 신종 전염병 치료제 개발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코로나19 사태는 인류가 첨단 의학 기술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신종 전염병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따라서 신속 치료제 개발 플랫폼은 반드시 필요하다. 항체 치료제가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이경우의 언파만파] 이용수 ‘할머니’

    [이경우의 언파만파] 이용수 ‘할머니’

    “부모의 어머니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할머니’는 이렇게 형식적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먼저 ‘친근함, 편안함, 따듯함, 아늑함, 정겨움’ 같은 감정과 이미지들을 전해 준다. ‘할머니’는 누구보다 살갑고 끈끈한 가족으로 떠오른다. 무엇을 요구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주려고만 한다. ‘할머니’의 어원이 ‘크다’는 뜻의 ‘한’과 결합한 ‘한+어머니’인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할머니’의 마음은 친손주들에게로만 향하지 않는다. 손주뻘 되는 아이들에게도 같은 손길이 건네진다. 그리고 할머니와 같은 항렬에 있는 집안의 여성들은 모두 ‘할머니’가 된다. 가족 관계를 넘어 나이 든 여성들도 젊은 사람들에게 ‘할머니’로 불린다. 친족 관계는 아니더라도 할머니는 그만큼 친근함의 대상이다. 친족어의 범위를 벗어나더라도 ‘할머니’는 따듯한 호칭이었다. 작은 공동체 혹은 개인 사이에선 관계를 도탑게 하는 말이 됐다. 나이 든 여성에게는 상대가 가족처럼 대한다는 안정감을 주었다. 하나의 대접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좀더 큰 공동체로 넘어가면 ‘할머니’는 이런 구실을 그대로 하지 못한다. 자칫 ‘늙은 여성’으로 전달될 수도 있다. 사적인 호칭으로 인식돼 특정인의 공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을 담지 못하기도 한다. 사회적인 호칭, 지칭이 된 ‘이용수 할머니’는 모두에게 만족스런 표현이 아니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 온 이들에겐 ‘할머니’가 괜찮은 호칭이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반드시 그런 건 아니었다. 사회적 인물에 대한 객관성이 확보된 호칭이어야 했다. 그럼에도 대부분 ‘이용수 할머니’란 표현을 받아들인 데는 역사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여성인권운동가로 활동하며 ‘이용수 할머니’로 불려 온 역사를 따른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가 주는 기본적인 의미는 공적이기보다는 사적인 부분이 강했다. 이름 뒤에 ‘여성인권운동가’, ‘인권활동가’, ‘고문’을 붙이기도 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씨’, ‘이용수님’이라고도 하는 표현도 보였다. 공적인 호칭, 지칭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결과들이다. ‘할머니’가 아니라 객관적 사실을 보이려 한 것이다. 국가나 사회, 언론이 가리키는 ‘할머니’는 친근함만 전하지 않는다. 연약함, 동정심,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의미도 묻어난다. 감성적인 지칭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늙었다’라는 표시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선의에서 출발한 것일지라도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상황에서는 가림막이 될 수 있다. wlee@seoul.co.kr
  • [이경우의 언파만파] 코로나19 이후의 언어생활

    [이경우의 언파만파] 코로나19 이후의 언어생활

    에드워드 사피어는 19세기 미국의 언어학자였다. 벤저민 리 워프는 사피어에게 언어학을 배운 제자였다. 두 사람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언어를 연구하면서 하나의 생각을 갖게 된다. 인간은 언어가 가리키는 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부족마다 다른 언어 체계가 다른 가치관과 세상을 만든다고 판단한다. 이른바 사피어워프 가설이고 언어결정론이다. 이 가설처럼 언어가 사고방식을 결정한다는 데까지 가는 건 지나쳤다. 하지만 언어가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건 사실이다. 영화 ‘컨택트’(2017)에는 사피어워프 가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한다. 알 듯 모를 듯한 영화의 전개는 이 가설을 염두에 두어야 제대로 들어온다. 영화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같은데, 이것은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의 언어 체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지구에 온 외계인의 언어는 처음과 끝이 없었다. 표기는 둥그렇게 했고 문자는 표의문자였다. 인간의 언어 체계와 완전히 달랐다. 인간의 언어가 ‘우리는 신문을 읽었다’처럼 일직선 형태로 나열되는 데 반해 외계인의 언어는 원형이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시간순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언어를 안다는 건 곧 미래까지도 아는 것이었다. 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스 뱅크스는 외계인이 지구에 온 목적을 알아내라는 임무를 받는다. 원제가 ‘어라이벌’(Arrival·도착)인 영화에서 세계 각국은 외계인의 ‘침공’에 커다란 혼란에 빠진다. 외계인을 공격하기 직전까지 이른다. 어렵게 외계인의 언어를 익힌 뱅크스는 그들과 소통한다. 외계인이 온 목적은 ‘무기’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말하는 무기는 ‘언어’였다. 언어는 분열과 전쟁을 낳기도 하지만, 화해와 연대를 이룰 수 있는 도구이자 무기이기도 했다. 그들은 무려 3000년 뒤에 도움을 받으려고 ‘연대’의 언어를 건넨다. 코로나19 이후의 언어도 ‘연대’였다. 비대면으로 대표되는 사회가 지향하고 원하는 언어는 ‘소통’과 ‘개방’과 ‘연대’였다. 분열과 경쟁으로 치닫게 하는 언어에서 벗어나자고 한다. 이것은 자본을 앞쪽과 중심에 두지 말자는 것이기도 하다. ‘산업 역군’이니 ‘인적 자본’이니 하는 말들은 인간을 한낱 자본으로 치부해 버리는 언어였다. 봉사를 하나의 스펙으로 둔갑시키는 것도 자본이었다. 비연대의 언어는 대학도 ‘주요 대학’을 만들었고, 순위를 매겼다. 분열을 낳는 서열 중심의 언어도 더이상 말하지 말자고 한다. 분열과 고립은 흥하는 길이 아니었다. 개방과 연대가 사는 길이다. w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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