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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여행 | 라싸, 돌아서면 그리운

    해외여행 | 라싸, 돌아서면 그리운

    숨이 막혔다. 비행기는 아직 티베트 고원 위를 선회하고 있는데, 들이마시는 숨이 평소의 절반 수준이었다. 고산증 예방을 위해 하늘이 취하는 조치가 아닐까 싶었다. 하늘에서 느꼈던 호흡 곤란은 망상이 아니었다. 말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머리가 띵하게 저려 온다. 세계의 지붕, 티베트 고원에 들어왔다는 증거다.포탈라궁에서 만난 기도하는 티베트 할머니. 이 모습이야말로 티베트의 마음을 설명하는 완벽한 장면이었다고원지대에 위치한 라싸는 처음 찾아가는 여행객에게 가파른 호흡과 작열하는 태양을 선물한다 티베트는 중국어로 시짱西藏이라 불린다. 지리적으로는 중국의 서남부로 분류되며 티베트족이라 불리는 장족의 지역이다. 과거 투르판 혹은 토번吐蕃이라 불리던 민족이 바로 티베트족이다. 일설에 의하면 서구지역에 티베트가 알려지는 과정에서 영국인들이 투르판을 티베트라 표기했고, 그 후 이 명칭이 공식화됐다고 한다. 티베트 고원지대는 중국 당국의 소수민족 정책에 의해 자치구로 분류된다. 그래서 티베트 지역을 티베트자치구, 시짱자치구라고 부른다.가파른 호흡, 작열하는 태양 잘 알려져 있는 대로, 티베트로 들어가는 길은 엄격하다. 이것은 티베트와 중국 사이의 관계에서 기인한다. 티베트는 달라이 라마가 정치 수반의 역할을 하는 제정일치 사회였지만 1950년 중국에 의해 병합됐다. 이후 티베트 지도부는 인도 다람살라로 망명했고, 지금까지도 중국 당국과 미묘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독립과 자치 보장, 두 해법을 둘러싸고 아직도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이유로 중국 땅을 밟기 위한 비자를 받고도 외국인 여행객에게는 별도의 허가증이 필요하다. 도장 세 개가 깊이 새겨진 허가증은 쓰촨성 청두에서 비로소 손에 들어왔다. 청두는 티베트로 향하는 길목이다. 외국인이 티베트자치구에 오르기 위해서는 일단 이곳을 거쳐야 한다.라싸는 해발 3,670m의 고지대다. 최고 높이가 8,000m가 넘는다는 히말라야 고원에 비하면 별것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만한 고도는 아니다. 고도가 높아서 깨닫게 되는 것은 또 있다.땅이 높다는 것은 하늘과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더없이 아름답다. 그 하늘빛을 가르고 강렬한 태양이 쏟아진다. 검게 탄 얼굴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멀리서 순례를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선글라스와 천으로 얼굴을 몽땅 가렸다. 그들이 손에 들고 뱅뱅 돌리는 최고르(다라니 경전을 통에 넣고 추를 매달아 돌리는 성물. ‘마니차’라고도 부른다. 기도를 통해 손에 잡히지 않는 깨달음의 세계로 더 빨리 다가가기 위한 티베트인들의 물건이다)를 보니 다시 한 번 온몸으로 느껴진다, 이곳이 라싸라는 사실을.포탈라궁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왕궁이다라싸에서는 마니차를 돌리며 기도하는 티베트인들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포탈라는 왕궁이지만, 티베트인들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는 순례지이기도 하다강렬한 태양만큼이나 화려한 티베트의 색이 있는 곳이 포탈라궁이다티베트인들은 조캉과 함께 포탈라궁을 순례하기 위해 라싸로 향한다. 그들의 미소는 더없이 순수했다붉은 산 ‘포탈라’라싸의 태양은 게으르다. 일출이 늦다. 8시쯤이나 돼야 푸르스름하게 동이 튼다. 일몰 시간도 늦다. 저녁 8시 반에서 9시쯤 빠르게 저문다. 아마도 이것은 광활한 중국대륙의 동서를 표준시로 묶어둔 탓이리라. 몸으로 체감컨대, 라싸는 중국의 표준시에서 두 시간쯤 늦춰야 비로소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얼추 맞아진다.라싸를 대표하는 명소는 역시 포탈라궁이다. 달라이 라마의 겨울궁전이자 과거 티베트의 정치 중심지이기도 했던 곳이다. 포탈라궁은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도 훨씬 웅장하다. 궁성, 궁전, 뒷산의 조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남북의 길이가 200m, 동서 길이가 320m에 달한다. 가이드로 나선 티베트인 링첸 왕부에 따르면 ‘포탈라’라는 이름은 본디 산의 이름이다. ‘포탈’은 ‘붉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라’는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본래 투르판 왕국의 전설적인 왕, 송첸캄포가 처음 사원으로 건립했다. 1645년 5대 달라이 라마 때 본격적으로 증축되어 종교·정치의 중심지가 됐다. 포탈라궁의 가운데 붉은색 건물 홍궁이 바로 그때 지어진 부분이다. 이후 수세기에 걸쳐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1994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이른 아침부터 쏟아지는 태양을 뚫고 포탈라 궁전 곁의 광장으로 향했다. 이미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모여 있고, 음악에 맞춰 전통 춤을 춘다.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가 즐기기 위한 춤이다. 티베트족, 그들은 본디 이처럼 화사한 민족이었으리라. 강렬한 태양 아래 어울렁더울렁 어울리며 술과 음악과 춤을 사랑하던 민족이었음을, 그들의 아침이 충분히 보여 주고 있었다. 광장을 넘어 포탈라궁 쪽으로 다가가면, 성스러운 느낌이 물씬 배어난다. 곳곳에서 입으로 관세음보살의 진언인 “옴 마니 파드메 훔”을 외며 최고르를 돌리는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다.포탈라궁의 규모는 상당하다. 궁 안에만 1,000여 개의 방들이 있다. 그 방들은 법당, 침궁, 영탑전, 독경실, 요사채 등의 기능을 한다. 한정된 건축공간이 수많은 작은 공간으로 분화했다는 것은 ‘복잡하다’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내부는 미로와도 같다. 이 많은 공간들 중 관람객이나 순례객에게 허락된 공간은 20여 개소에 불과하다. 어쩌면 이처럼 폐쇄적인 관람정책이 ‘포탈라궁의 지하에는 샹그리라로 이어지는 비밀통로가 있다더라’ 같은 말을 생기게 했는지도 모른다.관람이 허용되는 공간들은 주로 역대 달라이 라마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들이다. 포탈라궁의 가장 큰 특징이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 ‘왕궁’이라는 공간은 왕위와 함께 후대의 왕들에게 물려 내려간다. 왕마다 별도의 왕궁을 마련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포탈라궁에는 역대 달라이 라마의 공간들이 모두 별도로 마련돼 있다. 5대 달라이 라마가 생활하고 기도하던 공간 그 너머에는 7대 달라이 라마의 공간이 존재한다. 그 다음은 8대 달라이 라마의 공간이다. 수많은 왕궁들이 포탈라궁 내부에 존재한다.아무리 웅장한 건축물이어도, 그 속에 역대 왕들의 왕궁이 각각 존재하려면 공간의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역대 달라이 라마가 생활하던 공간들은 그리 넓지 않다. 도리어 다른 나라의 왕궁들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일 정도로 작고 좁다. 그러나 비록 공간은 작더라도 내부에서 느껴지는 장엄한 기운은 그 어느 나라의 왕궁과 비교해도 우위에 있다.포탈라궁의 또 다른 특징은 건축물 내부에 스투파를 지어 놓았다는 점이다. 스투파는 부처님이나 고승들의 사리를 모셔 놓은 사리탑으로 보통 사리탑은 건축물 외부의 특정 공간에 세운다. 그러나 포탈라궁은 궁전 내부에 스투파를 지어 놓았다. 그 양식은 인도나 스리랑카, 동남아권과 다를 바 없지만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다. 내부에는 역대 달라이 라마의 스투파가 여럿 있지만, 규모 면에서나 화려함에서나 5대 달라이 라마의 것이 가장 눈길을 끈다. 5대 달라이 라마의 스투파는 높이만 12m에 너비가 7.65m에 달한다. 황금 3,721kg과 보석 1만여 개로 외부를 치장했으며, 희귀 보석 명주가 이 스투파를 치장하는 데 사용됐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준다. 5대 달라이 라마를 향한 티베트인들의 존경심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기도 하다.조캉에 들어서는 초입부터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다사원 입구에 매달린 타르초가 인상적이다오체투지 순례자들의 성지 외국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명소가 포탈라궁이라면 티베트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조캉이다. 이곳은 티베트 불교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성지가 된다. 무슬림들이 메카를 향해 가듯,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수천 킬로미터의 길을 따라 오체투지를 하며 라싸로 향하는 이유도 바로 조캉 때문이다.우리는 흔히 동남아로 전해진 남방 불교, 중국으로 전해진 대승 불교라고 배워 왔지만, 실제로는 또 하나의 흐름이 있었다. 바로 파드마삼바바가 히말라야 고원을 넘어가며 전한 밀교다. 8세기경, 당시 투르판 왕국의 33대 왕이었던 송첸캄포는 불교를 받아들여 통일왕국을 굳건히 다진다. 그는 군소 유목민들을 투르판이라는 왕국으로 통일한 최초의 군주였으며 히말라야 지역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권을 구축한 왕이었다.송첸캄포는 통일왕국의 위업을 달성한 후 당 태종의 조카인 문성공주를 후궁으로 받아들인다. 송첸캄포가 투르판 왕국을 세우고 수도를 라싸로 옮긴 후, 온갖 재앙이 끊이지 않았는데 주역과 천문에 밝았던 문성공주는 이것이 라싸의 지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라싸의 지형이 나찰녀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송첸캄포는 문성공주의 조언에 따라 만다라의 형상에 맞춰 방사형으로 사찰들을 건립한다. 특히 나찰녀의 심장에 해당하는 연못을 메우고 그 자리에 사원을 세웠는데, 이 사원이 바로 조캉이다.조캉이 중요한 이유는 이곳에 문성공주가 당나라에서부터 모셔 온 석가모니 불상이 봉안돼 있기 때문이다. 이 불상을 티베트인들은 조오jowo라고 불렀다. 조오를 모신 사원캉, khang이기에 이곳을 일컬어 ‘조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한 이곳에는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쫑카파의 상이 모셔져 있기도 하다. 쫑카파는 14세기에 존재했던, 당대 최고의 지성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는 타락해 가던 티베트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티베트 불교의 밀교 수행 체계와 핵심을 알기 쉽게 정리해 대중에게 뿌리내리도록 했던 장본인이다. 여기에 송첸캄포 왕까지, 조캉에는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 모두 모여 있다.조캉에서는 눈돌리는 모든 것에 티베트인들의 신앙이 깃들어 있다조캉의 이미지는 황금색이다. 그 찬란한 색감에는 여타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황금색과는 다른 깊이가 있다벽 속에 숨겨져 있던 ‘조오’조캉은 라싸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인 바코르 마켓 뒤편에 위치해 있다. 조캉 정문에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모인다고 했지만, 그날따라 순례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소문처럼 티베트인들은 사원 앞에 온몸을 던져 오체투지를 올리고 있었다. 남녀노소, 너와 나의 구별이 없었다. 티베트인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합장한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가 이내 두 팔과 이마, 다리를 땅 위에 길게 눕혔다. 이 모습은 종교를 불문하고 종교인이 몸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예경이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많지만 순례자들이 읊조리는 “옴 마니 파드메 훔” 구절 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성스러움은 모두의 입에서 쓸데없는 말을 지웠다.사원 입구에 들어서서 짧은 회랑을 가로지르면 또 다른 문이 자리한다. 그 뒤로 돌아나가야 비로소 조캉의 진면목을 마주하게 된다. 황금빛 지붕이 찬란한 사원의 모습. 회랑의 벽은 온통 벽화로 치장되어 있고, 야크버터가 황홀하게 타오른다. 사원 내부는 티베트 사원 특유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어둑한 실내를 밝히는 촛불과 비릿한 야크버터 냄새, 그리고 매캐한 향냄새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든다. 어두운 사원의 내부로 발길을 옮기며 기대감이 커지기 시작한다. 조캉이 티베트 불교 최고의 성지인 만큼 법당에는 라마 승려들이 가득 앉아 경을 읽고 있으리라. 낮고 느린 오묘한 소리가 끊이지 않으리라. 그러나 기대는 적잖게 무너져 내렸다. 승려들이 앉아 있어야 하는 자리에는 진보라빛 가사 무더기만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조캉의 내부를 돌다 보면 가이드가 하얀 벽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지금의 조캉 사원은 그 벽이 있었기에 최고의 성지가 될 수 있었다. 1960년대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은 우상숭배를 금지하며 전국의 사원과 불상들을 파괴했다. 당시 조캉의 고승 중 한 명이 문성공주의 석가모니 불상을 지키기 위해 사원의 어딘가에 숨겨 놓고 그 위치를 단 한 명의 승려에게만 전해 주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불상의 위치를 알고 있던 그 승려는 결국 불상을 다시 꺼내지 못하고 입적해 버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상을 찾았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한 승려의 꿈에 벽 안에 숨겨진 불상이 등장한다. 그 다음날 사원 관계자들은 그 꿈대로 벽 뒤에서 꽤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던 불상을 발견하게 됐다. 티베트 불교의 신비로움을 더하는 이야기다.사원의 3층은 라싸 최고의 전망대다. 동서남북으로 뻗은 라싸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에 보이는 포탈라궁의 위용도 함께 볼 수 있다. 눈에 들어오는 조캉의 모습은 어디를 둘러봐도 황금빛이다. 가히 티베트 최고의 성지다운 화려함이다. 조캉의 테라스에서 보이는 건물들은 지붕마다 타르초(경전이 쓰여진 오색 깃발)가 휘날리고 있다. 가만히 그 깃발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푸드득’거리는 소리가 난다. 바람에 깃발이 흔들리는 소리다. 티베트인들은 이를 두고 “바람이 경전을 읽고 갔다”고 말했다. 빛바랜 타르초 뒤로 어느덧 해그림자가 길어진 것이 보였다. 이렇게 라싸의 하루도 저물어가고 있었다.라싸 곳곳에서 순례자들을 만나게 된다. 마치 도시 전체가 순례지인 듯하다라싸의 하늘은 더없이 푸르다. 그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보는 사람의 마음도 파랗게 순수로 돌아갈 것만 같다10년의 기다림, 이틀간의 짧은 꿈 티베트를 알게 된 것은 10년 전의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땅을 밟고 돌아와 그네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텔레비전과 인쇄매체에서는 수시로 달라이 라마가 등장했으며, 서구에서는 ‘신비한 땅, 티베트’의 이미지를 끝없이 쏟아냈다. 한 번은 그 땅을 밟고 서서 그네들의 이야기를 톺아 보고 싶었지만, 두 발로 그 땅을 디디기까지 정확히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나마도 그 땅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이틀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긴 기다림, 짧은 꿈’이라는 문구가 실감날 수밖에 없었다.기다림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에는 괴로움도 함께 찾아왔다. 호흡의 어려움과 편두통이라는 고산증세다. 아침이면 간밤의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산증이 심한 사람들은 산소통의 힘을 빌어야 했다. 그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진정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순박한 티베트인들의 미소에는 누구든 감탄이 터졌고, 그래서 견딜 만했다.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들. 낯선 이를 경계하지 않으며, 민족의 아픔에 대해서도 오래 전 수많은 피를 불렀던 폭력의 업보라고 받아들인다는 그들. 빠르고 치열한 경쟁의 세상에 익숙한 도시인에게는 경외심마저 들게 하는 곳이 라싸였다.라싸 공항을 다시 찾았을 때는 숨쉬기 편한 곳으로 돌아간다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마치 다시는 그 땅을 찾지 않을 것만 같았지만, 그 생각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비행기에 오르자 이내 다시 그 땅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순박한 그 미소 때문일까. 아니면 강렬하게 찔러 오던 태양 때문일까. 딱 부러지는 이유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꼭 다시 그 땅을 찾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되는 묘한 땅. 그래,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의 바람소리를 그리워하나 보다. 라싸는 그런 땅이었다. 돌아서면 그리워지는.포탈라궁▶travel infoAIRLINE인천에서 쓰촨성 청두까지 2시간, 그리고 다시 라싸까지 3시간 반이 걸린다. 쓰촨성 청두까지는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국제항공, 사천항공, 동방항공 등의 중국 민항기들이 있다. 청두에서 외국인 출입 허가증을 받은 후 다시 국내선을 이용해 라싸로 들어갈 수 있다.TRANSPORTATION오프로드를 즐겨라 티베트 자치구로 향하는 여러 방법 중 험준한 비포장길을 따라 자동차로 이동하는 오프로드 여행이 인기다. 이동하는 구간의 자연경관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고 현지인들은 말한다. 주로 베이징, 칭하이성, 쓰촨성, 윈난성 등에서 출발하며, 라싸까지 들어가는데에 짧으면 3일, 길게는 5일에서 일주일 정도 걸린다. 크게 세 가지 루트 중 쓰촨성에서 넘어가는 구간이 가장 위험하지만 가장 아름답다. 외국인들은 이동 시 진행 방향이나 동선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관계로, 운전기사를 별도로 고용하는 것을 권장한다.FOOD당신의 입맛을 저격하다 티베트 음식은 대체로 한국인들에게 아주 잘 맞는다. 그만큼 한국 음식과 간도 비슷하고 맛도 익숙하다. 대표적인 음식은 뚝바, 텐뚝이다. 뚝바는 티베트식 칼국수, 텐뚝은 티베트식 수제비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외에도 초우민, 탈라 누들 같은 음식들도 권할 만하다. 다만 야크 특유의 냄새를 싫어한다면, 사전에 쇠고기나 양고기로 바꿔 달라고 주문할 것. 물론, 고기를 아예 빼고 조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라싸에서 꼭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또 있다. 티베트의 술 ‘창chang’이다. 곡주로, 그 맛은 마치 예전 우리가 집집마다 담가 먹었던 가양주와 닮아 있다.INFORMATION티베트의 깃발타르초는 불교경전을 새긴 오색 기도깃발들을 만국기처럼 줄에 매달아 놓은 것이다. 룽다는 하나씩 세워 다는 큰 깃발로 ‘바람의 말’이라고도 불린다. 타르초는 빨강, 파랑, 노랑, 초록, 하양으로 구성되는데, 각각 불, 우주, 땅, 공기, 물을 상징한다. 티베트인들은 타르초를 바람이 잘 부는 곳에 설치한다. 타르초가 바람에 휘날리는 만큼 그들의 불심도 멀리 퍼져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반 가정집의 옥상이나 마당에서도 타르초와 룽다를 쉽게 볼 수 있으며, 티베트의 설날인 매년 1월3일 새 타르초와 룽다로 바꿔단다고 한다.마니차PRAYER WHEEL티베트인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기도물품이다. 티베트인들은 ‘최고르’라고 부르는데 국내에서는 마니차라고 알려져 있다.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부터 높이만 수십 미터에 달하는 것까지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주로 원통에 추가 달려 있어 뱅뱅 돌리면서 들고 다니거나, 벽에 설치된 것을 돌리면서 지나간다. 내부에는 ‘다라니’라 불리는 경전이 들어 있다.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공부와 수행을 해야 하는데, 일반인들은 그 과정을 따라가기 어렵다. 그래서 일반인들도 쉽게 수행의 공덕을 쌓고자 만들어진 도구다. 마니차를 한 번 돌리면 다라니를 3,000번 읽은 공덕이 쌓인다고 알려져 있다. 불교의 종파 중 하나인 밀교 문화권에서 주로 볼 수 있다.에디터 손고은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정태겸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서울지국 www.visitchina.or.kr
  •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의 진화 밝힌 ‘철학자 ​칸트’...외계 생명체를 예언하다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의 진화 밝힌 ‘철학자 ​칸트’...외계 생명체를 예언하다

    -'천문학자' 칸트의 태양계 형성설 '순수이성비판'을 쓴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박사학위 논문이 철학이 아니라 천문학 이론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1755년에 발표된 칸트의 학위논문은 그 제목부터가 '일반 자연사와 천체 이론'이었다. 하긴 그 시대는 철학과 천문학 사이에 명확한 선이 없던 때이기는 했다. 하지만 칸트의 논문은 명확히 천문학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것도 우리 태양계의 생성에 관한 학설로, 흔히 성운설'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현대 천문학 교과서에도 ‘칸트의 성운설'(Kant’s Nebula Hypothesis)로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일찍이 뉴턴 역학에 매료되어 대학에서 철학과 함께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했던 칸트는 ​틈틈이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측하며 천문학을 연구한 천문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대선배인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이 뉴턴에 의해 붕괴되는 것을 보고 새로운 시대의 우주론에 깊이 빠져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체계는 세계를 달을 기준삼아 천상계와 지상계 둘로 쪼개고, 그 소통을 금지시켰다. 따라서 기왕의 천문학에서는 천상은 불변 완전한 세계이고 천체들은 올림포스 신들처럼 신성한 존재였다. 그러나 천상이든 지상이든 중력의 법칙이 온 우주를 관통한다는 것을 증명한 뉴턴의 역학 앞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뉴턴 물리학의 등장으로 천문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천상의 천체들 역시 지구처럼 질량을 가지고 중력으로 빈틈없이 묶여 있는 물체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즉, 지상의 물리학은 천상에서도 적용되며, 지상의 물리학을 통해 우주의 상황을 알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인간의 몸은 비록 지상에 매여 있지만, 우리의 지성은 온 우주로 확장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제까지 항성천구에 붙어 있는 점으로 간주되었던 하늘의 천체들이 질량을 가진 물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하나의 흥미로운 문제가 제기되었다. 천체들의 내력, 곧 우주의 역사라는 문제에 인류가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사실 태양계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태양계라는 개념이 생긴 것은 17세기 말에 이르러서였다. 그럼 이 태양계는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나? 세계의 탄생과 멸망에 관한 이론들은 고래로부터 각 문명권마다 있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인류는 이러한 생멸 이론을 태양계에 접목할 생각을 하지 못하다가, 뉴턴 이후에야 비로소 천체 형성에 관한 이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뉴턴 사후 22년이 지난 1749년,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박물학자인 조르주 드 뷔퐁이 태양계 형성에 대한 주목할 만한 이론을 발표했다. 뉴턴에 깊이 영향 받은 뷔퐁은 태양계는 공통의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그 기원은 혜성이 태양에 충돌해 거기서 물질들이 빠져나옴으로써 비롯되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물질들은 중력으로 인해 뭉쳐져 둥근 형태를 이루었으며, 서서히 식어 행성이 되었고, 더 작은 덩어리들은 위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두 개의 천체가 충돌하는 것은 우주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다. 심지어 은하들도 충돌하고 있다. 우리은하도 37억 년 후에 안드로메다 은하와 충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뷔퐁의 혜성 충돌설은 최초의 본격적인 태양계 형성설로, 이로써 그는 ‘우주 파국 이론’의 창시자가 되었다. -​칸트의 성운설과 섬 우주론 이 뷔퐁의 뒤를 이어 태양계 형성설을 들고나온 사람이 바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였다. 31살인 1755년에 발표한 '일반자연사와 천체 이론'에서 칸트는 뉴턴 역학의 모든 원리를 확대 적용하여 우주의 발생을 역학적으로 해명하려 했다. 이것이 바로 뒷날 유명한 ‘칸트-라플라스 성운설’로 알려진 우주 발생 이론이다. ​ 뉴턴이 생성 운동의 기원을 신의 '최초의 일격'으로 돌린 데 반해, 칸트는 우주의 생성과 진화에 사용되는 힘들을 물질에 내재하는 중력과 척력(반발 작용), 그리고 그 안에서 대립되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이 설에 따르면, 원시 태양계는 지름이 몇 광년이나 되는 거대한 원시 구름인 가스 성운이 그 기원이다. 천천히 자전하던 이 원시 구름은 점점 식어가면서 중력에 의해 중심 쪽으로 낙하하는 현상이 일어남으로써 수축이 이루어져 회전이 빨라지고, 마침내 그 중심부에 태양이 탄생되고 주변부에는 여러 행성들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행성들이 자전하면서 거기에서 떨어져나온 것들이 바로 위성이다. 칸트는 이러한 방식으로 진화론적 생각을 역학 법칙에 따르는 천제 운동의 과학적인 설명과 결합시켰다. 엥겔스는 바로 이 점에서 칸트가 형이상학적 세계상을 극복하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이라고 보고, "현재의 모든 천체가 회전운동을 하는 성운 덩어리로부터 발생했다는 칸트의 이론은 코페르니쿠스 이래 천문학이 이룩한 가장 커다란 진보였다"고 평했다. ​ 칸트의 성운설은 행성들의 동일 평면상에서의 운동, 공전방향과 태양의 자전방향과의 일치 등을 잘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초의 과학적인 태양계 기원설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칸트의 성운설은 한마디로, 태양을 비롯하여 행성, 위성, 혜성 들이 원초적인 근본물질들에서 분리되어 우주 공간을 채웠으며, 그 안에서 형성된 천체들이 태양계 공간을 운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칸트의 아래와 같은 추론은 현대 생물학자들의 견해에 접근하는 놀라운 예지의 소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채워진 공간에서 고요함이 지속되는 것은 일순간일 뿐이다. 원소들은 서로를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 자체가 생명의 근원이다. 물질은 형태를 이루려고 분투한다. 흩어진 원소들 중 밀도가 높은 것은 가벼운 원소들을 주위로 끌어들인다.” '정신과 자연'의 저자인 영국의 생물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그의 책 안에서 “원자는 스스로 생명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한 말과 너무나 흡사한 주장이 아닌가! ​ -'외계 생명체'를 예언한 칸트 원시 태양계 형성의 얼개를 만든 칸트는 별들에 대해서도 기왕의 이론들과는 사뭇 다른 주장을 펼쳤다. 직접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측하기도 했던 칸트는 별들 역시 태양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비슷한 체계 안에 들어 있는 중심‘이라고 보았다. 이로써 태양계와 별들 사이의 관계를 정립한 칸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원리를 은하계로까지 확대했다. 그는 은하계가 거대한 렌즈 모양을 하고 있으며, 별들이 은하 적도 부근에 밀집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리의 항성계가 다른 우주의 체계들, 성운들과 비슷하다고 보았다. 칸트는 자신의 우주론에 대해 갖고 있는 깊은 믿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나는 어떤 꾸밈도 없이, 운동 법칙대로 잘 정돈된 세계가 생겨나는 것을 보면서 만족한다. 그것은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우주와 아주 비슷해 보이므로, 나는 그것을 진실로 간주하지 않을 수 없다." 망원경으로 밤하늘에서 빛나는 나선 형태의 성운을 관측하기도 했던 칸트는 당시 성운으로 알려졌던 드로메다자리의 M31이 수많은 별들로 구성된 또 하나의 은하일 것이라는 구체적인 제안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나선형 성운에 ’섬 우주'(island universe)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주기까지 했다. 지금이야 이런 성운들이 외부 은하임이 밝혀졌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 은하 내부의 성간운이라는 주장이 널리 퍼져 있었다. 외계 생명체에 대한 칸트의 추론 역시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생명은 천체들이 진화한 결과 생겨난 것이지, 신의 창조 행위로 생겨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칸트는 19세기의 진화론자처럼 ‘생명체는 특정한 외적인 조건들과 연계되어 있다’라고 인식했다. “나는 모든 행성들에 다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또한 이것을 굳이 부정하는 것도 불합리하다. 태양의 티끌에 불과할 정도로 황량하여 생명체가 없는 지역들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모든 천체들이 미처 완전한 형태를 다 갖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거대한 천체가 확실한 물질상태에 도달하기까지는 수천 년에 또 수천 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 요컨대 외계 생명체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망원경을 통해서 우주가 점점 넓어져가고 새로운 별들이 계속 발견됨에 따라 다른 천체에도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 18세기 중반 이후로 점차 넓게 퍼져갔다.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속에 있는 도덕률" 칸트의 이러한 우주 진화론은 창조자로서 신을 중심으로 한 목적론적 질서와 조화라는 견해와 모순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칸트는 이러한 자신의 시도가 우주의 기계적 완벽성을 순수하게 역학적으로 설명한 것인만큼 신의 완전성과 합목적성의 증거가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칸트의 우주 진화론이 당시에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학자들은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 외에는 잘 인정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나은 시대를 위해 유보되었던’ 칸트의 진화론은 그들이 보기엔 너무 직관적이고 모호하게 비쳤던 것이다. 그러나 뒤이어 나타난 아마추어 천문학자 허셜이 놀라운 발견들을 거듭하면서 칸트의 진화론을 뒷받침했다. 150센티밖에 안되는 조그만 키에, 80평생 고향 쾨니히스베르크(오늘날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서 백 마일 이상을 나가본 적이 없으면서도 우주를 누구보다 멀리 내다보았던 사람,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오후 우주의 시계추처럼 일정한 시간에 산책을 다녔던 사람, 노년에 이르도록 깊이 우주를 사색했던 철학자- 이런 것들이 '천문학자 칸트'를 규정할 수 있는 몇 가지 요소들이다. 여담이지만,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칸트에게도 한번은 결혼할 뻔한 적이 있었다. 마을 처녀에게 청혼을 하여 승락까지 받았는데, 머리속엔 늘 생각으로 가득하고, 망설여지기도 하고, 또 깜박하기도 하여 세월을 죽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처녀와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껏 차려입고 처녀의 집엘 갔으나, 아뿔싸! 벌써 20년 전에 이사를 갔다는 것이다. 이것이 칸트 생애에 있었던 로멘스의 총량이다. ​1804년 2월 12일 새벽, 칸트는 늙은 하인이 건넨 포도주 한 잔을 마시고는 "그것으로 좋다”(Es ist gut.)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삶을 마감했다. 향년 80세. 끝으로, 놀라운 직관과 예지로 그 시대의 어느 누구보다 우주의 진면목에 다가갔던 칸트의 묘비명은 우주와 인간을 아우르는 아름다운 내용으로 다음과 같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 마음을 늘 새로운 놀라움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요, 다른 하나는 내 속에 있는 도덕률이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러시아’라는 세 글자가 내 속에서 퍼 올리는 건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음습하고 도덕적인 문학적 상념, 아침이면 의례처럼 볼륨을 높이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축축한 자조에 딱 들어맞는 ‘안나 게르만’의 로망스, 시적인 위로를 주는 ‘샤갈’의 그림들, 어감마저 차가운 ‘소련’이라는 이름, 저항의 로커 ‘빅토르 최’ 그리고 뜻도 모른 채 외던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과 무자비한 해체의 역사…. 그 거대한 땅덩이의 체취를 맡고서야 알았다. 러시아의 실체는 도표화된 관념보다 몽롱하고, 드물게 아름답다는 것을. 편협한 인식을 뒤로한 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심장 뛰는 일인지를.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러시아 “‘스파시바спаси?бо’라고 해요!”블라디보스토크 도착 사인이 떴을 때, ‘고맙습니다’가 러시아어로 무엇이냐고 묻는 타이완 승객에게 스튜어디스가 말했다. 그녀는 친절하게 ‘시’에 강세를 줘야 한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스파시바’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를 거쳐 이르쿠츠크를 지나 바이칼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는 유일한 러시아어가 되었다. 지도 위에서만큼 러시아연방이 기세등등해 보일 때도 없다. 호주보다 두 배 이상 큰,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이 나라에서 프리모르스키 지방을 찾을 때는 손가락 방향을 오른쪽으로 한참 이동시켜야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중심도시다. 분명 이국인데, 거리에는 늘씬한 금발의 미녀들이 넘치는데,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건 아마 DNA에 박힌 기억 때문일 게다.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시대를 지나고 1900년대 초 민족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도 여기니까.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에서 짐작하듯 작은 변방도시에 불과했던 블라디보스토크에 러시아가 부여한 의미는 노골적이다. 겨울에도 연안이 심하게 얼지 않는,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는 1년 내내 항만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 전략적 항구도시와 군항으로는 적격이었다. 극동함대 사령부 등 해군기지가 주둔하고,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원조물자가 옮겨지는 거점이기도 했으며, 극동 지역 외교와 상업의 중심지로도 활약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함정 10여 대를 격침시켰다는 잠수함 C-56(‘C’는 러시아어로 ‘에스’라고 읽는다. ‘중형급’이라는 표시)은 찬란했던 전장을 회고하는 구소련의 늙은 해군처럼 해양공원 앞 뭍에서 긴 휴식에 들어 있었다. 길이 77m의 이 강철 영웅에겐 엔진을 돌리던 승조원들의 함성은 사라지고 그들이 남긴 훈장과 어뢰, 기관총을 자랑하는 게 유일한 일과가 되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6.5m 좁은 폭, 그 안의 희박한 공기 탓인지 머리가 띵해져 잠수함에서 나왔다. 옆으로 용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영원의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붉은 카네이션을 놓고 머리를 조아리는데 마침 뒤편 기도소에서 종이 울린다. 1941년과 1945년을 오르내리던 그 소리는 전쟁이 가당키나 하냐는 듯 평화로웠다. 1891년,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2세의 황태자 시절, 그의 방문을 기념해 세웠다는 개선문은 불과 몇 걸음 뒤다. 왜소한 풍채를 화려하게 치장한 그 건축물은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천성을 숨기고 자신만만한 ‘척’했다는 황제의 운명과 닮아 보였다. 혁명 후 파괴된 것을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해도 원형을 되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제정러시아의 문장이던 쌍두 독수리는 개선문 꼭대기에서 볼 수 없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세련되고 번화한 스베트란스카야 거리Svetlanskaya Street. 횡단보도의 초록 불은 바뀌는 순간 이미 9를 세고 있다. 으름장 놓는 선생님 같은 신호등을 째려보며 잰 발길을 놀려야 하는 일이 잦았다. 100년도 넘는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이 자리한 가로수 길을 걷고 있자니 막연히 ‘여긴, 유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거만하리만치 딱딱한 표정의 러시아인들을 보고 그 생각은 접기로 한다. 유라시아주의를 바탕으로 강대국을 재건한다는 국가의 외교정책에 이바지하듯,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이곳은 오로지 극동 러시아라는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다. 스베트란스카야로부터 두 블록 떨어져 자리한 중앙광장은 소비에트 정권 수립을 위해 싸운 병사들을 기리는 동상만이 생생할 뿐, 혁명전사광장이라는 옛 이름은 의미 없어 보였다. 금요일이면 주말시장이 열리고 신년축제와 기념일 퍼레이드 등 이벤트의 무대가 된 지 오래다. 과거에도 지금도 이곳에서 집회는 계속되지만 혁명에서 놀이로 그 주제는 완전히 바뀌었다. 전설만 남은 영웅들의 흔적 블라디보스토크 둘째 날, 신한촌부터 찾았다. 신한촌은 일본에 의해 침탈된 국권회복을 위해 국내외 지식인들이 모여 결의를 다졌던 장소다. 고종이 파견한 헤이그 특사 중 한 명인 이상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동휘, 전설의 의병장이었던 홍범도를 비롯해 신채호, 안중근, 안창호 등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아파트촌 어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이 신한촌 터라는 것을 눈치 챌 길은 보호 철책에 둘러싸인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이 전부였다. 한인들이 살길을 찾아 연해주 땅을 처음 밟은 것이 1863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극동 해군기지로 부상하면서 그들은 군항에서 작업인부로 일했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시내 중심부였다. 하지만 콜레라가 발생하자 시당국은 1893년 서쪽 아무르만 해안가로 한인들을 이주시키고 그곳을 ‘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한인촌’, 우리말로는 개척리開拓里로 불렀다. 이후 1911년, 또 한 번의 위생 문제로 북쪽 2km 떨어진 라게르 산비탈로 이주한 한인들은 ‘노바야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신한촌’를 형성했고, 이전의 거주지는 구한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1914년, 신한촌은 3,000명이 거주하며 점차 자리를 잡아 갔지만 1937년, 스탈린이 극동에 살던 한인 17만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키면서 신한촌의 한인들 역시 카자흐스탄 등지로 이송되고 그 자리는 유럽과 러시아 노동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길이가 다른 커다란 세 개의 석조물. 가운데는 한국, 왼쪽은 북한, 오른쪽은 고려인을 포함한 해외 한민족을 상징한다는 기념탑 앞에서 조국의 미래를 밤새워 고민했을 독립 영웅들의 절절함을 가늠해 보기란 쉽지 않았다.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라는 기념탑의 글귀는 길 잃은 아이처럼 애처롭고 속상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블라디보스토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독수리 둥지’라는 뜻의 오리노예 그네즈도 산 정상은 214m에 불과하지만 도시에서 가장 높다. 계단을 올라서니 러시아의 키릴문자를 만든 아우 키릴로스와 형 메소디오스 형제의 동상이 십자가를 들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니 바다 위에는 2012년 APEC 정상회담에 맞춰 완공한 루스키섬까지 이어진 금각만 대교가 장쾌했다. 서울 남산에서처럼 연인들이 자물쇠를 걸며 사랑을 맹세하는 건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촬영이 한창인 신랑신부가 난간 틈을 비집고 자물쇠를 채우는 동안 신부보다 예쁜 들러리는 뭇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무르만 해변공원까지는 걸었다. 노천카페에 앉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명물인 메드베드카곰새우를 주문했다. 비릿하고 고소한 맛이 찬 맥주와 묘하게 어울렸다. 체 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에 네덜란드 맥주를 마시는 청년들, 일본산 오토바이를 타고서 CF의 한 장면처럼 등장한 처녀들, 낚시를 즐기는 부부…. 히죽대며 그들의 모습을 훔치는 사이 새우껍데기만 자꾸 쌓여 갔다. ●하바롭스크Khabarovsk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의 하룻밤 하바롭스크까지 가는 열차 출발 시간은 저녁 9시. 서둘러 짐을 챙기고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으로 향한다. 지는 해에 순종하며 기차역이 차분히 물들고 있었다. 1907년부터 5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기차역은 제정 러시아의 건축양식으로 제법 낭만적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다. 이곳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9,288km. 플랫폼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철로를 달렸다는 증기기관차도 보였다. 출발은 저녁 9시인데 플랫폼의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킨다. 철도역의 모든 시간표는 모스크바가 기준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난민처럼 바닥에다 가방을 열어 젖히고 주섬주섬 필요한 물건만 미리 챙겼다.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승무원은 여권과 승차권을 확인하고 탑승을 종용했다. 9번 칸, 객실번호 6호 23번. 4인 1실, 양쪽으로 2층 침대가 놓인 객실 ‘쿠페’는 좁았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서서히 열차가 움직이고, 시간이 지나야 시원해질 것이라는 차장의 말처럼 에어컨은 30분이 지나서야 제 기능을 발휘했다. 하바롭스크 도착은 내일 아침 8시. 무궁화호보다 더 느린 기차를 타고 밤새 11시간을 달려야 한다. 하얀 자작나무숲,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올 법한 눈보라, 잠들지 않는 백야. 시베리아횡단열차에 엄청난 로망을 품은 사람들은 흔히 이런 것들을 상상한다. 러시아에 오기 전, 몽골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탔다는 친구는 말했다. “러시아 애들은 책만 읽고 얘기도 가족들끼리 소곤소곤. 같이 보드카 마시자던 러시아 아저씨 아니었으면 심심해서 아마 미쳐 버렸을 걸!” 모스크바까지 꼬박 달리는 이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열차에서의 하룻밤만으로 그 기분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낮도 아닌 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래야 반사되는 객실 내부가 전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산 가이드북을 뒤적이다 음악을 듣고, 러시아 사람들은 무엇을 하나 복도를 기웃대다가, 키릴문자가 새겨진 맥주를 마시고 남은 소시지 3개를 승무원에게 내미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은 없었다. 다행히 수다 떨 일행들이 있어 시간은 잘 갔다. 잠자리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꺾이는 철로마다 침대가 심하게 덜컹대긴 했다. 하지만 낮에 흘린 땀이나 미처 못 지운 바지의 소스 자국, 떡진 머리도 문제될 게 없는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잠결에 2층 침대로부터 커튼콜처럼 내려왔다 올라가는 이불에 깜짝깜짝 놀라거나, 변기가 막힌 줄도 모르고 30분을 화장실 문 앞에서 참던 일만 빼면. 창문 너머 흘러가는 자작나무 사이로 스미는 햇빛을 보고 잠에 빠졌는데, 곧 정차한다는 소리에 허둥지둥 이불을 박차고 객실 문을 열어젖힌다. 열차가 멈춘 곳. 하바롭스크였다. 조금 더 머물고 싶던 도시 하바롭스크는 1991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개방되기 전까지 극동지역의 중심지였다. 이제는 그 영광을 물려줬지만 하바롭스크는 마치 권세를 내려놓은 자가 여유를 즐기듯 유유자적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레닌광장 북쪽에 자리한 청동 레닌상이다. 레닌이 사망한 이듬해인 1925년에 세워졌다는데 러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레닌의 동상이 철거된 데 반해 블라디보스토크와 이곳에서는 아직 건재하다. 레닌이 굽어보고 있는 광장은 하바롭스크의 행정 중심지다. 동쪽으로 하바롭스크주 정부청사가 보였다. 아침을 맞은 광장에는 벤치에서 조용히 휴식을 즐기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비둘기가 사람보다 많았다. 레닌광장 아래로 아무르스키 거리를 쭉 따라가면 길은 아무르 강변의 콤소몰 광장까지 잇닿는다. 콤소몰은 구소련 시절 공산주의 청년 정치조직의 이름이다. 광장에는 혁명 전사들의 모습이 조각된 오벨리스크가 굳건하고, 꼭대기에 소비에트를 상징하는 별이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광장 위 우스벤스키 성당이다. 성모승천성당으로 불리는 그곳은 소비에트 시절 파괴된 후 2001년 다시 동화 같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아무르강이 눈앞인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걸음을 재촉했다. 총 길이만 2,800여 킬로미터. 몽골에서 발원해 하바롭스크를 거쳐 오호츠크해로 흐르는 아무르강은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 부르는 그 강이다. 전망대 앞에는 강에 이름을 제공한 시베리아 초대 총독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의 동상이 있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아무르라는 이름들은 죄다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향토박물관은 잠시 비를 피하기에는 맞춤이었다. 연해주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박물관으로 본래 이름은 ‘그라제코프 주립 자연사박물관’. 이 역시 설립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122년의 전통이 축적된 내부에는 시베리아 메머드, 아무르 호랑이, 원주민인 나나이족과 우데게이족의 생활모습 등 하바롭스크주의 역사와 자연, 민속 등 자료 15만 점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구관에는 소비에트 시절과 관련한 물품들만 전시되어 있는데, 포스터부터 장신구까지 세월의 때가 묻은 낯설고 이색적인 소소함이 눈길을 끌었다. 강을 따라 북쪽에 다다르니 또 다른 아름다운 러시아정교회 성당이 자리했다.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은 황금색 돔과 새하얀 성당이 질서정연했고 내부는 황홀했다. 천장에 그려진 그리스도와 네 명의 사도, 정면 6층 제단의 성모와 성인들의 모습을 새긴 이콘(성상화)은 다른 세상의 것인 듯 신비롭고 이질적이었다. 이콘에 향했던 눈길은 머리를 가리고 촛불을 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 한참을 머물렀다. 진지하고 경건했다. 그 경배의 몸짓 뒤에서 할 것이라고는 숨소리를 죽이는 것 외에는 없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Trans Siberian Railroad시베리아횡단철도는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하는, 총길이 9,288km의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다. 1891년에 착공해 1916년에 완공됐다. 90여 개의 도시를 거치는 동안 시간대만 7번이 바뀌고, 지나는 역만 60여 개다. 급행열차를 타면 일주일이 걸린다. 열차의 출발과 도착시간은 모스크바가 기준이다. 열차의 객실 등급은 1등석인 2인 1실의 ‘룩스Lyux’, 2등석 4인 1실의 ‘쿠페Kupe’, 3등석 6인실의 ‘플라츠카르타Pratskartny’와 지정 번호가 없는 8인 좌석의 ‘옵스치Obschy’로 나뉜다. 룩스와 쿠페는 객실이 분리되어 있지만 3등석은 객실 구분 없이 개방되어 있다. 콘센트가 있는 것은 1등석 객실뿐이다. 2등석은 객실 내부 말고 복도에 네 개, 화장실 밖과 안에 각 한 개씩 있다. 멀티 탭을 가져가면 도움이 된다. 열차 칸마다 뜨거운 물이 비치되어 라면이나 커피를 먹을 수 있다. 열차 한 칸당 두 명의 승무원이 교대근무하며 객실을 살피고 간단한 먹을거리도 판매한다. 술과 담배는 규정상 금지되어 있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흡연자들은 보통 역에 정차할 때마다 내려 담배를 피우고 재빨리 오른다. 러시아 철도청 www.rzd.ru 러시아정교회 러시아정교회는 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에 의해 비잔티움의 동방정교를 받아들여 민족신앙과 결합한 종교다. 러시아정교회 건축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양파 모양의 돔 ‘루꼬비짜’다. 눈이 많이 오는 러시아에서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 외에도 기도가 하늘에 닿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흰색과 황금색은 러시아정교회 초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색채로 흰색은 평화와 순결, 황금색은 신성을 상징한다. 예배는 사제는 있지만 설교는 하지 않고, 의자 없이 서서 참여한다. 또 악기의 반주 없이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성가를 부른다. 러시아정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은 고르바초프에 의해 1990년 소련 최고회의에서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법을 의결한 후부터다. ●이르쿠츠크Irkutsk 아! 바이칼 비행기가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 무렵이었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호수를 가기 위한 관문. 둘러 볼 겨를 없이 아침이면 또 길을 떠나야 한다. 설렘과 염려를 교차시키느라 잠은 쉬 들지 못했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의 들머리까지는 버스로 3시간 반. 부리야트족 자치구인 우스찌아르다를 스치는 동안에는 가을을 준비하는 스텝짧은 풀로 뒤덮인 초원이 길게 이어졌다. 어렴풋이 호수가 시야에 들어올 무렵 버스가 멈춘 곳은 사휴르따 선착장이다. 목적지인 알혼섬을 가기 위해 철부선에 올랐다. 배는 물살을 가른 지 30분도 되지 않아 사람들과 자동차를 섬에 부려놓았고, 세상사 다 겪은 아이처럼 옹골찬 ‘우아직러시아 군용차량을 개조한 4륜 승합차’이 벌써 마중 나와 있었다. 운전기사 안톤은 숙소가 있는 후지르 마을까지 한 시간을 달려야 한다며 돌투성이 길을 망설임 없이 내달렸다. 요란한 진동 모터 위에 앉은 듯 엉덩이는 시종 덜덜거렸다. 바이칼 호수가 품은 22개의 섬 중 알혼은 가장 크고,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이다. 거제도의 두 배쯤 되는데, 다섯 개 마을의 주민 1,500명 가운데 대부분은 후지르 마을에 모여 산다. ‘알혼’은 부리야트 원주민어로 ‘태양이 비추는 땅’이라는 뜻이다. 연 강수량이 200mm에 불과해 스텝과 사막 그리고 화강암과 침엽수림이 전부다. 그 황량함을 심장처럼 품은 바이칼호수를 향해 원주민들은 ‘바이칼은 서 있는 불. 아직도 그 불은 식지 않고 있다’며 경외심과 두려움을 표현해 왔다. 숙소에 짐을 내리고 부르한Burkhan 바위가 보이는 언덕으로 갔다.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13개의 세르게 신목. 조상신들이 모이는 곳을 지나니 검푸른 호수 앞으로 정좌한 두 개의 지엄한 바위가 보였다. 샤머니즘의 성지로 알려진 바로 그 자리다. 주위에는 히말라야에서 방금 내려온 성자 같은 복장을 한 외국인들이 손을 맞잡고 명상에 잠겨 있었고, 가부좌를 튼 채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이도 보였다. 무엇이 그들을 이곳으로 이끈 건지 모르겠지만 초자연적 존재와의 교류도, 북방 몽골인종의 시원이 서린 곳이라는 학설도, 부리야트인의 피를 이어받은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도,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바이칼 호 자체보다 신성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아직은 섬의 가장 북쪽 하보이곶으로 달렸다. 날카로운 송곳니 모양을 한 절벽. 그곳에서 보는 바이칼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 그것도 대양이었다. 경계도 모른 채 펼쳐진 호수는 텅 빈 채 근원에 닿을 듯 아스라해서, 차라리 공허했다. 그날 밤, 호숫가에 앉아 마신, 수심 200m의 바이칼호 물로 만들었다는 보드카는 파도소리와 함께 목젖을 뜨겁게 타고 흘렀다. 떠나기 전 호수를 꼭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새벽 5시 혼자 숙소를 나섰다. 인기척 없는 마을을 두리번대며 방향을 가늠하고는 그 언덕에 다시 올랐다. 부르한 바위 앞, 잠이 덜 깬 호수는 몸을 뒤척였고 바람은 초연했다. 그리고…. 영원한 작별인 양 호수에 건넨 말은 이것뿐이었다. “스파시바… 바이칼.” ▶travel info AIRLINE대한항공에서 블라디보스토크와 이르쿠츠크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노선의 출발편은 매일 인천에서 오전 10시10분에 출발해 오후 1시50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오후 2시50분에 출발해 오전 7시10분에 인천에 도착한다. 이르쿠츠크 노선은 12월25일부터 1월15일까지 동계노선을 주 2회(월·금요일)씩 총 6회 운항할 예정이다. 출발편은 저녁 8시50분 인천에서 출발, 밤 12시5분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새벽 2시30분 출발, 오전 7시10분 인천에 도착한다.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2시간 10분, 이르쿠츠크까지는 3시간 40분이 소요된다. SHOPPING알까기 인형 ‘마트료시카’19세기 말에 탄생한 나무로 만든 러시아 인형으로 엄마를 뜻하는 러시아어 ‘마티’에서 유래했다. 일본 전통인형인 ‘다루마’에서 영감을 얻어 1891년 러시아 민속공예화가 세르게이 말루틴이 처음 디자인했다고 전해진다. 둥근 몸통 안에는 작은 인형들이 겹겹이 들어 있는데, 일본정부에 선물하려고 만든 1세트 72개가 들어있는 대형 마트료시카는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시대에 따라 외형도 변해서 만화영화의 캐릭터나 대중음악가, 스포츠 스타나 정치인의 얼굴을 담은 마트료시카도 볼 수 있다. 가격은 싼 것은 대개 400~700루블 정도이지만 디자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FOOD국민음식 ‘보르쉬’와 ‘샤슬릭’ 러시아의 음식은 슬라브 전통에 서유럽과 몽골,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지역의 영향을 받아 대개 짜고 달고 신, 자극적이고 복합적인 맛이다. 대표적인 슬라브 전통음식인 ‘보르쉬’는 감자, 당근, 양배추에 비트와 토마토로 색을 낸 스프다. 샤슬릭은 러시아어로 ‘꼬치구이’라는 뜻이다. 이름보다는 맛 ‘오물‘오물은 바이칼호에서만 서식하는 토착 물고기다. 생긴 것은 우리의 청어와 닮았다. 회나 탕, 튀김, 샐러드 등 다양하게 먹는 방법이 있는데 자작나무에 훈제한 오물이 가장 인기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항구 마을 리스트비얀카에는 오물을 파는 가게들이 잔뜩 있다. 가시가 적고 비리지 않아 담백하다. 39°도 41°도 아닌 40° ‘러시안 보드카’러시아를 대표하는 술, 보드카Vodka는 러시아어 ‘물voda’에서 유래되었다. 감자나 옥수수, 보리 등을 원료로 한 증류수로 무색, 무취, 무미다. 러시아 속담에 ‘4,000km는 길도 아니고 영하 40도는 추위도 아니며 40도가 아니면 술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19세기 후반,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가장 입맛에 잘 맞고 숙취를 일으키는 불순물이 제일 잘 걸러지는 최상의 알코올 도수가 40%라는 것을 발견했다.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에서도 밤 11시부터 오전 8시까지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를 금지하고 있으며,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는 도수 15% 이상의 주류 판매도 금하고 있다. MUSEUM연해주의 모든 것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1890년 개관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박물관이다. 1906년 구시베리아 상업은행 건물로 옮겨졌는데, 아르세니예프는 연해지방을 서방에 알린 탐험가의 이름이다. 3층 건물 안에 연해주의 자연과 지리, 민속학, 고고학 사료들과 동식물 표본집, 화폐 등 약 20만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주제가 딱히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한국관에서는 지역에서 발굴된 발해의 유물을 볼 수 있다.20 Svetlanskaya Str. Vladivostok +7 4232 414 082 100루블평일 09:00~18:00, 토·일요일 09:00~17:30 HOTEL바이칼호 바로 옆 ‘바이칼로프 오스트록’알혼섬의 후지르 마을 입구에 있는 나무로 된 시베리아 전통가옥 형태의 숙소다. 2013년 문을 열었는데 114개의 객실에 250명을 수용할 정도로 알혼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깔끔하다. 특히 바이칼 호수 바로 앞에 위치해서 객실과 레스토랑에서 호수가 보이고 새벽에도 밤에도 산책을 할 수 있는데다, 부르한 바위까지도 도보로 20분 거리다. 7, 8월 성수기 스탠다드 트윈룸의 경우, 아침식사 포함 1박에 4,500루블(약 8만원), 화장실과 샤워실은 객실 3개가 있는 한 층에서 공동으로 사용한다. 욕실용품은 비치되어 있지 않다. 호숫가에서 바비큐를 할 수 있도록 그릴과 장작, 숯 등 일체의 도구도 대여해 준다. 666137, Russia, Irkutsk Region, Olkhonskyi District, Village Khuzir, Street Pribreznaya, 3+7 3952 404 202 www.baikalovostrog.ru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 대한항공 www.koreanair.com 참좋은여행 www.verygoodtour.com
  • 서늘함 노린 ‘공포’

    서늘함 노린 ‘공포’

    ‘납량’(納凉)-더위를 잊고 서늘함을 맛봄. 심장의 두방망이질이 멈추지 않는다. 동공이 커지고 말라 가는 입술에 연신 침을 발라야 한다. 손바닥은 땀으로 서서히 젖어 간다.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비명도 어쩔 수 없다. 공포 영화다. 여름철이면 단골처럼 찾아오는 납량의 대명사다. 이런 긴장감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찾아보는 마니아들도 곳곳에 엄존한다. 영화 보는 내내 더위를 잊는 것은 물론 한동안 가시지 않는 서늘함까지 안고 극장을 나서게 된다. 하지만 이제 공포 영화는 더이상 납량 영화로 불릴 수 없다. 무더위가 한참 지나서야 극장을 서서히 찾아들고 있다. 지난 13일 ‘원령’이 첫 문을 열었다. 이어 오는 20일 ‘더 커널’, ‘헌티드 하우스’, 그리고 한국형 정통 공포 영화 ‘퇴마:무녀굴’이 개봉하고 27일 ‘오피스’가 선보인다. 다음달이 되면 본격적으로 봇물이 터진다. 3일 미국의 공포 영화 ‘갤로우즈’를 시작으로 10일 체코 공포 영화 ‘구울’, 영국산 호러 ‘블랙 인 우먼’ 등이 개봉한다. ‘원령’은 중국에서 촬영하고 한국 제작진이 결합한 한·중 합작영화다. 중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홍수아가 주연을 맡아 한국과 중국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극대화한 동양적 귀신 영화다. ‘퇴마:무녀굴’은 한국 현대사가 잉태한 제주도의 비극을 배경 삼아 제주 김녕사굴에 얽힌 설화와 함께 여전히 무속 신앙에 대한 경외심을 가진 현대사회의 모습을 투영시켰다. ‘이웃사람’을 연출한 김휘 감독이 3년 만에 선보이는 또 다른 형식의 공포 영화다. 김성균, 유선의 연기는 공포 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한국적 공포로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오피스’는 자신의 가족을 무참히 살해한 뒤 자취를 감춘 평범한 회사원이 다시 회사로 출근하며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들을 다룬 스릴러 공포물이다. 이 밖에도 공포 영화에서 빠트릴 수 없는 귀신의 집 이야기인 ‘헌티드 하우스’는 물론 식인 살인마가 등장하는 슬래셔 장르 ‘구울’, 피 한 방울 없지만 극도의 긴장 상태로 몰아넣는 ‘블랙 인 우먼’ 등 장르와 국적의 다양함을 맛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C급 공포물’ 또는 ‘괴작’으로 평가받는 ‘무서운집’은 공포 영화에 대한 또 다른 해석 및 접근을 가능하게 하며 특이한 역주행 현상을 보여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단 한 곳에서 개봉한 뒤 하루 만에 접고 바로 IPTV 서비스에 들어갔으나 네이버 영화 서비스 8위에 오르고 상영관을 늘려 달라는 예상치 못한 요구에 따라 지난 13일부터 4개관에서 재상영되고 있다. 감독의 GV(관객과의 대화)까지 열리는 등 반응이 뜨겁다. ‘황당하다 못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진정한 컬트 영화’ 등 관객 반응이 흥미롭다. 양병간 감독은 1980년대 ‘피조개 뭍에 오르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등을 연출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새 영화] ‘스트레인저 랜드’, 당신은 어떤가요? 부모로서

    [새 영화] ‘스트레인저 랜드’, 당신은 어떤가요? 부모로서

    낯선 공간은 불편하다. 낯선 이들에게 둘러싸인 낯선 공간은 불편하다 못해 두렵기까지 하다. 이런 환경은 가까운 이들을 더욱 결속시키곤 하지만 때론 익숙한 사람들조차 낯설고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예컨대 낯선 공간에 함께 머무는 가족은 그동안 미처 드러나지 않았던 오해와 불신으로 인한 갈등이 불거지면서 상처의 깊이가 더욱 커질 수 있다. 이 상처를 마주하며 잘 치유할 수 있다면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수도 있지만, 상처가 덧나면 회복할 수 없는 파멸의 종국을 피하지 못할 수 있다. 영화 ‘스트레인저 랜드’는 제목 그대로 낯선 공간에 던져진 위기의 가족들 얘기다. 그들은 부모의 역할, 자식의 역할, 부부의 역할에 대해 자기만의 기준을 갖고 있을 뿐, 상대방과 충분히 얘기 나누지 못했다. 오해와 불신이 빚어내는 여러 형태의 뿌리 깊은 갈등만을 확인할 따름이다.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 불화하는 속에서 치유와 파멸 사이의 벼랑 끝으로 스스로 몰고 간다. 매튜(조지프 파인스)와 캐서린(니콜 키드먼)은 열다섯 살 딸, 열 살 아들과 함께 도시에서 지내다 황무지로 둘러싸인 낯설고 외딴 마을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마을에 모래폭풍이 몰려온 날 밤 아이들이 돌연 사라졌다. 아이들이 사라진 뒤에야 부모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전혀 알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예의를 차린다는 명분으로 각방을 쓰며 거리를 두고 지내는 부부 사이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한 번 벌어진 틈은 쉬 메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틈 사이에서 비뚤어진 욕망이 기어나오고, 그동안 부모자식 사이가, 부부 사이가 편견과 불신 등으로 똘똘 뭉쳐 있었음을 확인한다. 넓고 황량한 호주의 황무지는 영화 속 주된 공간이다. 메마른 풀포기가 듬성듬성 나 있고 흙바람이 휘날린다. 그곳에 해가 뜨고 저물고, 그 옆에 사는 사람의 일상이 반복된다. 킨 파란트 감독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가족 관계 사이에서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그려냈고, 호주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그 배경으로 삼았다. 자연과 사람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처연한 아름다움과 경외심을 함께 품고 있다. 그는 첫 장편영화 연출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화의 미장센과 드라마를 탄탄하게 장악했다. 광각렌즈를 들이대듯 구름 위의 시선으로 광활한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또 때로는 땅 위에 바짝 엎드려 대자연 앞에 나약하고 초라할 뿐인 인간의 비루함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이면 문득 관객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얼마나 대화와 소통에 충실했는지, 늘 얼굴 맞대고 살면서 상대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말이다. 가족 구성원 모두 상실감과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마땅히 풀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집과 가족이야말로 다름 아닌 ‘낯선 땅’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6일 개봉. 청소년불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문화 유랑기] 퇴계 이황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비명‘

    [문화 유랑기] 퇴계 이황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비명‘

    '세상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라는 묘비명. 내가 본 묘비명 중에서 가장 위트가 넘치는 것 중 하나는 영국 작가 버너드 쇼의 묘비명이다. 아시다시피, “어영부영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라는 묘비명. 노벨 문학상을 받은 문호요, 100살 가까이 천수를 누린 이가 이런 말을 했다니, 나 같은 필부로서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경지다.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네”라는 헤밍웨이의 묘비명이나, “에이, 괜히 왔다”는 중광 스님의 묘비명도 재미있지만, 멋스럽기로는 영국 시인 예이츠의 묘비명이 인상적이다. "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삶과 죽음에 차가운 눈길을 던져라. 말 탄 이여, 지나가라)" 시인은 이처럼 아름답고 멋스런 표현을 좋아하지만, 나는 싱거부리한 산문투로 이렇게 풀이한다. -내 무덤에 넋 놓지 말고 담담히 보시게나. 자네 삶도 담담히 보고. 여기서 그만 얼쩡거리고 어여 가서 자네 일이나 보시게나. 철학자 칸트(1724~1804)의 묘비명도 음미할 만하다. 놀라운 직관과 예지로 그 시대의 어느 누구보다 우주의 진면목에 다가갔던 당대 최고의 우주론자이자 대철학자인 칸트의 묘비명은 우주와 인간을 아우르는 아름다운 내용으로, 다음과 같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 마음을 늘 새로운 놀라움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요, 다른 하나는 내 속에 있는 도덕률이다.” 하지만 이 모든 묘비명을 압도하는 것을 우연찮은 기회에 만나게 되었으니, 바로 조선의 유학자 퇴계 이황의 묘비명이다. 퇴계의 기록물을 찾아서 읽던 중 발견하게 된 것인데, ‘자작’ 묘비명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어 찬찬히 보게 되었다. 퇴계가 자신의 묘비명을 스스로 짓게 된 것은 자신이 죽은 후 제자나 지인이 쓸 경우, 꾸미고 과장되이 지어 남세스러움을 살까 저어한 때문이다. 묘비명은 대철학자답게 자신의 생애를 4언 24구, 96자로 압축한 것으로, '조그만' 돌에다 새기게 했다. 生而大癡 壯而多疾 中何嗜學 晩何叨爵 學求愈邈 爵辭愈嬰 進行之跲 退藏之貞 深慚國恩 亶畏聖言 有山嶷嶷 有水源源 婆娑初服 脫略衆訕 我懷伊阻 我佩誰玩 我思古人 實獲我心 寧知來世 不獲今兮 憂中有樂 樂中有憂 乘化歸盡 復何求兮 나의 짧은 한문 실력으로 완벽한 해석을 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노릇이라, 여러 사람의 풀이를 참고하고 나름대로 꿰어맞춰 보았지만, 몇몇 구는 끝내 만족할 만한 풀이를 얻지 못해, 혹 오자가 아닐까 싶어 몇 해 전 남행길에 안동 도산서원에도 들를 겸 안동까지 퇴계묘를 찾아 확인해보기도 했다. 특히 저 넷째 줄 '아회이조 아패수완(我懷伊阻 我佩誰玩)'이란 문구는 도저히 해석이 안되는 대목이었다. 문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내 회포 여기서 막히니 내 패옥을 누가 즐겨하리' 정도이지만, 이걸로는 앞뒤 문장이 잘 연결되질 않는다. 그래서 고심하며 여기저기 전공자들의 자료들을 뒤적여봤지만, 저 부분이 전혀 생경하게 따로 노는 해석뿐이었다. 예컨대, '나의 회포 여기서 막히니 나의 패옥을 누가 만져주리'라든가, '나의 품은 뜻 이로써 막힘에, 나의 패물은 누가 완상해줄까', 또는 '내 생각 제 모르니 내 즐김 뉘 즐길까 등등의 풀이다. 어느 것이나 앞뒤 문장의 뜻이 잘 연결되지 않는 것은 매일반이다. 나는 이 퇴계 묘비명 원문을 복사해 꼬깃꼬깃 접어서는 지갑 속에다 갈무리해 다녔다. 어디서건 한문 고수를 만나면 꺼내놓고 물어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수를 만난다는 것도 쉽지 않은 노릇이라, 종이는 몇 년째 세월과 함께 내 지갑 속에서 나달나달 해어져갈 뿐이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그 문장을 다시 꺼내 읽어보니, 비로소 딱 짚히는 바가 있었다. 아, '아회이조'는 퇴계가 가정법을 쓴 것이로구나! 그렇다면 이렇게 풀이되는 문장 아닌가. '내 품은 생각 여기서 막힌다면, 누가 내 패옥(학문)을 즐겨하리.' 아직은 자신의 학문이 미완이라는 뜻이 된다. 이렇게 하면 앞뒤 문장의 맥이 그대로 이어지지 않는가. 그래서 위 묘비명을 모두 풀이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된다. 편의에 따라 단락을 나누었다. 나면서 크게 어리석었고 자라서는 병이 많았다. 중년에 학문을 좋아하게 되었고 느지막에 벼슬길에 들었네. 학문은 갈수록 멀어지고 벼슬은 마다해도 자꾸 내려지네. 나아가기가 어려우매 물러나 은거하기로 뜻을 굳혔네. 나라의 은혜 생각하면 심히 부끄러우나 진실로 성현의 말씀이 두려웠네. 산 높디높고 물 쉼 없이 흐르는 곳. 벼슬을 벗어던지고 돌아오니 뭇 비방이 사라졌구나. 내 품은 생각 여기서 그친다면 누가 내 패옥을 즐겨하리오. 내가 고인을 생각하매, 고인이 먼저 내 마음을 얻었으니, 오는 세상에서 어찌 오늘의 내 마음을 모른다 하리. 근심 속에 낙이 있었고, 즐거움 속에 근심이 있었네.조화를 좇아 사라짐이여,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 대철학자 퇴계가 도달한 경지를 일개 필부가 헤아리기는 어려운 노릇이지만, 퇴계 묘비명의 마지막 구절은 두고두고 여운을 남기는 명문이라 하겠다. 조화를 좇아 사라짐이여,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 안심입명의 경지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종결미를 보여주는 묘비명이 다시 있을까. 퇴계는 임종 직전 일어나 기대앉아 자리를 정리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평생을 두고 사랑하던 매화를 보며 "매화분에 물을 주라" 하고는 앉은 채 숨을 거두었다 한다. 저물녘이었고, 어둑신한 하늘에서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1570년 12월 8일, 향년 70세. 임진란이 일어나기 22년 전이었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 [문화 유랑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비명 -퇴계 이황의 ‘자작 묘비명’

    [문화 유랑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비명 -퇴계 이황의 ‘자작 묘비명’

    '세상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라는 묘비명. 내가 본 묘비명 중에서 가장 위트가 넘치는 것 중 하나는 영국 작가 버너드 쇼의 묘비명이다. 아시다시피, “어영부영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라는 묘비명. 노벨 문학상을 받은 문호요, 100살 가까이 천수를 누린 이가 이런 말을 했다니, 나 같은 필부로서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경지다.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네”라는 헤밍웨이의 묘비명이나, “에이, 괜히 왔다”는 중광 스님의 묘비명도 재미있지만, 멋스럽기로는 영국 시인 예이츠의 묘비명이 인상적이다. "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삶과 죽음에 차가운 눈길을 던져라. 말 탄 이여, 지나가라)" 시인은 이처럼 아름답고 멋스런 표현을 좋아하지만, 나는 싱거부리한 산문투로 이렇게 풀이한다. -내 무덤에 넋 놓지 말고 담담히 보시게나. 자네 삶도 담담히 보고. 여기서 그만 얼쩡거리고 어여 가서 자네 일이나 보시게나. 철학자 칸트(1724~1804)의 묘비명도 음미할 만하다. 놀라운 직관과 예지로 그 시대의 어느 누구보다 우주의 진면목에 다가갔던 당대 최고의 우주론자이자 대철학자인 칸트의 묘비명은 우주와 인간을 아우르는 아름다운 내용으로, 다음과 같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 마음을 늘 새로운 놀라움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요, 다른 하나는 내 속에 있는 도덕률이다.” 하지만 이 모든 묘비명을 압도하는 것을 우연찮은 기회에 만나게 되었으니, 바로 조선의 유학자 퇴계 이황의 묘비명이다. 퇴계의 기록물을 찾아서 읽던 중 발견하게 된 것인데, ‘자작’ 묘비명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어 찬찬히 보게 되었다. 퇴계가 자신의 묘비명을 스스로 짓게 된 것은 자신이 죽은 후 제자나 지인이 쓸 경우, 꾸미고 과장되이 지어 남세스러움을 살까 저어한 때문이다. 묘비명은 대철학자답게 자신의 생애를 4언 24구, 96자로 압축한 것으로, '조그만' 돌에다 새기게 했다. 生而大癡 壯而多疾 中何嗜學 晩何叨爵 學求愈邈 爵辭愈嬰 進行之跲 退藏之貞 深慚國恩 亶畏聖言 有山嶷嶷 有水源源 婆娑初服 脫略衆訕 我懷伊阻 我佩誰玩 我思古人 實獲我心 寧知來世 不獲今兮 憂中有樂 樂中有憂 乘化歸盡 復何求兮 나의 짧은 한문 실력으로 완벽한 해석을 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노릇이라, 여러 사람의 풀이를 참고하고 나름대로 꿰어맞춰 보았지만, 몇몇 구는 끝내 만족할 만한 풀이를 얻지 못해, 혹 오자가 아닐까 싶어 몇 해 전 남행길에 안동 도산서원에도 들를 겸 안동까지 퇴계묘를 찾아 확인해보기도 했다. 특히 저 넷째 줄 '아회이조 아패수완(我懷伊阻 我佩誰玩)'이란 문구는 도저히 해석이 안되는 대목이었다. 문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내 회포 여기서 막히니 내 패옥을 누가 즐겨하리' 정도이지만, 이걸로는 앞뒤 문장이 잘 연결되질 않는다. 그래서 고심하며 여기저기 전공자들의 자료들을 뒤적여봤지만, 저 부분이 전혀 생경하게 따로 노는 해석뿐이었다. 예컨대, '나의 회포 여기서 막히니 나의 패옥을 누가 만져주리'라든가, '나의 품은 뜻 이로써 막힘에, 나의 패물은 누가 완상해줄까', 또는 '내 생각 제 모르니 내 즐김 뉘 즐길까 등등의 풀이다. 어느 것이나 앞뒤 문장의 뜻이 잘 연결되지 않는 것은 매일반이다. 나는 이 퇴계 묘비명 원문을 복사해 꼬깃꼬깃 접어서는 지갑 속에다 갈무리해 다녔다. 어디서건 한문 고수를 만나면 꺼내놓고 물어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수를 만난다는 것도 쉽지 않은 노릇이라, 종이는 몇 년째 세월과 함께 내 지갑 속에서 나달나달 해어져갈 뿐이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그 문장을 다시 꺼내 읽어보니, 비로소 딱 짚히는 바가 있었다. 아, '아회이조'는 퇴계가 가정법을 쓴 것이로구나! 그렇다면 이렇게 풀이되는 문장 아닌가. '내 품은 생각 여기서 막힌다면, 누가 내 패옥(학문)을 즐겨하리.' 아직은 자신의 학문이 미완이라는 뜻이 된다. 이렇게 하면 앞뒤 문장의 맥이 그대로 이어지지 않는가. 그래서 위 묘비명을 모두 풀이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된다. 편의에 따라 단락을 나누었다. 나면서 크게 어리석었고 자라서는 병이 많았다. 중년에 학문을 좋아하게 되었고 느지막에 벼슬길에 들었네. 학문은 갈수록 멀어지고 벼슬은 마다해도 자꾸 내려지네. 나아가기가 어려우매 물러나 은거하기로 뜻을 굳혔네. 나라의 은혜 생각하면 심히 부끄러우나 진실로 성현의 말씀이 두려웠네. 산 높디높고 물 쉼 없이 흐르는 곳. 벼슬을 벗어던지고 돌아오니 뭇 비방이 사라졌구나. 내 품은 생각 여기서 그친다면 누가 내 패옥을 즐겨하리오. 내가 고인을 생각하매, 고인이 먼저 내 마음을 얻었으니, 오는 세상에서 어찌 오늘의 내 마음을 모른다 하리. 근심 속에 낙이 있었고, 즐거움 속에 근심이 있었네.조화를 좇아 사라짐이여,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 대철학자 퇴계가 도달한 경지를 일개 필부가 헤아리기는 어려운 노릇이지만, 퇴계 묘비명의 마지막 구절은 두고두고 여운을 남기는 명문이라 하겠다. 조화를 좇아 사라짐이여,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 안심입명의 경지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종결미를 보여주는 묘비명이 다시 있을까. 퇴계는 임종 직전 일어나 기대앉아 자리를 정리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평생을 두고 사랑하던 매화를 보며 "매화분에 물을 주라" 하고는 앉은 채 숨을 거두었다 한다. 저물녘이었고, 어둑신한 하늘에서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1570년 12월 8일, 향년 70세. 임진란이 일어나기 22년 전이었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 “여행하면 ‘면역체계’ 건강해진다” (美 연구)

    “여행하면 ‘면역체계’ 건강해진다” (美 연구)

    미생이 휴가를 떠나야 하는 ‘진짜’ 이유가 있다? 여행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실제 신체의 면역체계를 건강하게 해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실험에 참가한 성인 200명에게 즐거운 놀이, 예술 감상, 경이로운 풍경과 만족감 등을 느낄 수 있는 여행 등의 경험을 하게 한 뒤 이들의 경구점막삼출액(잇몸 등의 조직)을 채취, 분석했다. 그 결과 긍정적인 경험을 통한 긍정적인 감정은 염증을 심화시키는 물질인 ‘전염증성 사이토카인’을 억제시키고 신체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경전달물질인 사이토카인은 신체의 면역체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이토카인은 ‘항염증성 사이토카인’, 체내 염증유발분자와 연관이 있는 사이토카인은 ‘전염증성 사이토카인’으로 구별한다. 연구진에 따르면 긍정적인 감정, 특히 여행을 통해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을 봤을 때 느끼는 경외심이 면역체계의 이상신호와도 같은 전염증성 사이토카인을 억제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함께 연구를 이끈 토론토대학의 제니퍼 스텔라 박사는 “긍정적인 감정은 실제로 건강한 신체와 연결돼 있다”면서 “우리 뇌에서 염증유발분자 및 전염증선 사이토카인이 분비되면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등 ‘행복물질’ 분비가 저하된다. 반면 멋진 풍경이나 좋은 그림, 좋은 음악 등을 들으면 전염증성 사이토카인이 줄어들고, 면역체계가 더욱 활발해져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전염증성 사이토카인은 우울증이나 만성관절류머티즘 등을 유발하는 자가면역질환과도 연관이 있다면서, 여행이나 도전, 예술 감상 등 긍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전염증성 사이토카인이 줄어들면 우리 몸은 외부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면역체계를 유지하거나 증강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여행하면 건강해진다…면역체계 강화”

    “여행하면 건강해진다…면역체계 강화”

    미생이 휴가를 떠나야 하는 ‘진짜’ 이유가 있다? 여행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실제 신체의 면역체계를 건강하게 해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실험에 참가한 성인 200명에게 즐거운 놀이, 예술 감상, 경이로운 풍경과 만족감 등을 느낄 수 있는 여행 등의 경험을 하게 한 뒤 이들의 경구점막삼출액(잇몸 등의 조직)을 채취, 분석했다. 그 결과 긍정적인 경험을 통한 긍정적인 감정은 염증을 심화시키는 물질인 ‘전염증성 사이토카인’을 억제시키고 신체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경전달물질인 사이토카인은 신체의 면역체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이토카인은 ‘항염증성 사이토카인’, 체내 염증유발분자와 연관이 있는 사이토카인은 ‘전염증성 사이토카인’으로 구별한다. 연구진에 따르면 긍정적인 감정, 특히 여행을 통해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을 봤을 때 느끼는 경외심이 면역체계의 이상신호와도 같은 전염증성 사이토카인을 억제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함께 연구를 이끈 토론토대학의 제니퍼 스텔라 박사는 “긍정적인 감정은 실제로 건강한 신체와 연결돼 있다”면서 “우리 뇌에서 염증유발분자 및 전염증선 사이토카인이 분비되면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등 ‘행복물질’ 분비가 저하된다. 반면 멋진 풍경이나 좋은 그림, 좋은 음악 등을 들으면 전염증성 사이토카인이 줄어들고, 면역체계가 더욱 활발해져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전염증성 사이토카인은 우울증이나 만성관절류머티즘 등을 유발하는 자가면역질환과도 연관이 있다면서, 여행이나 도전, 예술 감상 등 긍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전염증성 사이토카인이 줄어들면 우리 몸은 외부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면역체계를 유지하거나 증강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누우떼 대이동, 5일간의 생생 기록 영상 ‘장관’

    누우떼 대이동, 5일간의 생생 기록 영상 ‘장관’

    25일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누우떼 수만 마리가 이동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소개했다.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나 나올 법한 이 영상은 영국 출신의 사진작가 윌 버라드-루카스와 그의 동생 맷이 촬영한 실제 누우떼가 이동하는 장면이다. 이들 형제는 자신들이 5일 동안 촬영한 영상을 1분여 분량으로 편집해 공개했다. 이 영상은 케냐에서 마라 강을 건너 탄자니아 남쪽으로 대이동 하는 누우떼를 담고 있다. 영상을 보면 초원을 새까맣게 뒤덮고 있는 누우떼로 시작된다. 이어 누우떼들이 강으로 쏟아져 내려온다. 거대한 물줄기를 이룬 듯 보이는 누우떼가 거친 물살을 가르며 강을 건넌다. 누우떼들은 새로운 목초지를 찾기 위해 매년 3500㎞ 이동한다. 물론 이들의 긴 이주 여정에는 위험과 고난이 가득하다. 마라 강을 건너는 과정에 갈증과 배고픔, 피로, 포식자들을 피해 살아남아야 하는 과제 등 이들이 직면한 문제들은 매우 고되다. 하지만 그 지난한 과정을 견뎌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장관을 이룬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루카스는 “내가 목격한 모습 중 가장 경외심을 일으키는 장면이었다. 대이동을 하는 그들의 규모를 전달하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저속 촬영기법을 이용해 카메라에 담는 것이었다”며 “이 영상을 탄자니아 북부 세렝게티에서 5일간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최근 영국 자연사박물관과 BBC 방송이 수여하는 ‘올해의 야생사진가 상’에는 미국인 사진작가 마이클 닉 니콜라스가 선정됐다. 그는 탄자니아에서 포착한 암컷 사자무리의 흑백사진으로 이 같은 영광을 차지했다. 이에 루카스는 수상을 한 닉 니콜라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하며 “닉은 내가 사진을 시작할 때부터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인정받는(수상하게 된) 것이 매우 기쁘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사진·영상=유튜브, Will Burrard-Lucas 문성호 기자 sunghyo@seoul.co.kr
  • 탕웨이·김태용 스웨덴서 식 올려… 정식 결혼식은 음력 8월 비공개로

    탕웨이·김태용 스웨덴서 식 올려… 정식 결혼식은 음력 8월 비공개로

    김태용(45) 감독과 중국의 여배우 탕웨이(35)가 스웨덴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린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5일 김 감독의 소속사인 영화사 봄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2일 스웨덴 포뢰섬의 베리만 하우스 앞마당에서 결혼했다. 결혼식에는 베리만영화제 집행위원장 부부가 참석했으며, 다음날에는 현지 사람들과 조촐한 축하자리를 가졌다. 그 자리에는 스웨덴 가수 안드레아스가 나와 축가를 불렀다. 봄은 보도자료를 통해 “스웨덴 포뢰섬은 탕웨이가 오랫동안 방문하길 꿈꿔온 곳으로 스웨덴의 거장 감독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생지”라며 “김태용 감독도 감독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가지고 있어 베리만 하우스에 도착한 두 사람은 베리만 감독을 기리는 의미로 즉석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치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정식 결혼식은 양가 가족만 모여 음력 기준으로 8월에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고려시대 도예기술 ‘연리문’ 부활시킨 노경조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고려시대 도예기술 ‘연리문’ 부활시킨 노경조 교수

    보면 볼수록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다. 색깔이 다른 것 같지만 하나로 잘 어울려 은은함이 있다. 비색 유약 속에 대리석이 자유분방하듯 조용히 새겨져 있다. 여러 모양의 병(甁)도 있고 통(筒), 합(盒)도 있다. 이른바 연리문(練理紋) 기법으로 탄생된 도자기다. 연리문은 대리석 무늬를 의미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도예기술이다. 당나라 때 기원을 두고 있으나 고려시대에 등장했던 도자기법이다. 그러나 13세기 이후 거의 사라졌다. 백토, 흑토, 자토(紫土) 등 각기 다른 색깔의 흙을 사용해서 도자기를 빚어내는 제작과정의 어려움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전통 도예가 노경조(63) 국민대 교수는 그러한 연리문 도자기법을 부활시키고 40년 넘도록 일관되게 작업을 해와 연리문 도자기의 대가로 유명하다. 이론적 연구와 오래된 가마터를 찾아다니며 여러 도자 파편들을 채집한 뒤 고려시대의 전통 연리문 기법을 재현시키는 데 최초로 성공한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는 동안 영국과 미국 등 세계 20여개국 박물관에 자신의 작품을 보란 듯 전시할 정도로 해외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1982년 한·영수교 100주년 기념으로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첫선을 보인 뒤 1990년대, 2000년대 작품 등 10년 주기별로 그의 대표 작품이 이곳에 영구소장 됐다. 또한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에서는 1990년대 대표작이 영구 전시될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다. 보통 2년 주기로 주제를 바꿔 도자기를 전시하는 데 비해 노 교수의 작품은 보기 드물게 영구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한·독 수교 100주년, 한·미 수교 100주년 때에도 도자기를 들고 현지에 나가 한국 도자기의 강점을 알리기도 했다. 현재는 샌프란시스코 공항미술관에서 내년 2월까지 예정으로 성황리에 전시되고 있다. 도자기 작업이란 얼핏 보면 단순할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매우 어렵고 까다롭게 진행되는 일이다. 노 교수의 작품은 서로 다른 색깔의 흙을 사용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런 과정 속에 노 교수는 한국인의 감성, 한국의 산하를 담아낸다. 다시 말해 한국인의 감성으로 세계를 매료시킨다고 할 수 있다. 2001년과 2011년 세계 유명미술관 큐레이터 30여명이 한국에서 워크숍을 가진 적이 있다. 이때 대부분의 큐레이터들이 노 교수의 작품을 보고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한국의 유산을 이어주는 듯하다. 현대적이면서도 우아한 감성을 잘 담아내고 있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노 교수의 작품에 대해 “그의 연리문은 우리의 전통에서 터득한 여러 가지 맛을 자신의 조형감각에 호소해 새로 창조해낸 것이다”면서 “담담한 연리문 작업을 통해 흙의 참 아름다움과 흙의 참맛, 흙의 참 의미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렇듯 그는 연리문의 대가답게 천년 전의 도예기술을 습득하는 데 성공했고 이것을 현대 도자공예 분야에서 차별화된 스타일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래서 감상하는 이들에게 묘한 흙의 향수를 자극시킨다. 그는 도예뿐만 아니라 회화작품도 그리고 전시를 한다. 화가이자 도예가라는 이름을 듣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지난 7일 서울 정릉동 국민대 연구실에서 노 교수를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국 도자기의 우수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유럽은 18세기 돼서야 도자기를 자체 생산했고 일본은 17세기에 시작했습니다. 반면 조선은 15세기이고 고려는 더 앞서서 도자기를 생산했지요. 우리는 이러한 문화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도자기를 아주 귀중한 문화적 자산인데다 역사가 담겨 있어 황금보다 더 소중하게 여길 정도입니다. 일본은 도자기 때문에 임진왜란을 일으켰고 도자기를 유럽에 팔아서 2차 대전의 물자를 확보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도자기 강국답게 지금에라도 각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서 주제별로 정리를 잘해놓는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외국 미술관에 가 보면 역사의 흐름을 잘 조망할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돼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도자기는 썩지 않기 때문에 스토리에 따라 제대로 진열해 놓으면 오래도록 문화적 자긍심을 간직할 수 있으며 역사를 읽을 수 있는 단서를 오랜 세월동안 꾸준히 제공해줄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에게 연리문의 특징을 물었다. “연리문은 서로 다른 흙을 섞어 무늬를 만드는 것이지요. 소고기에 마블링이 있듯이 대리석 물결무늬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토, 백토 등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문양 유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당나라와 고려시대 때 사용됐는데 요즘 현대작가들이 즐기는 기법 중 하나가 됐습니다. 주로 철분이 많은 흙을 사용합니다.” 원래 도자기라고 하면 둥근 모양을 떠올리지만 그는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사각형 등 여러 모양으로 만들어내 마치 회화를 연상케 한다. 거치문 장식이 달린 도자기도 만들어내는 자유분방함이 있다. 그의 작업실은 경기 양평의 자작나무 숲이 있는 곳에 자리해 있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옹기들도 있다. 소주고리도 있고, 조선의 사방탁자도 있다. 이곳에서 자연의 놀라움, 생명에 대한 경외심 등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 또한 연작시리즈의 회화작품도 그린다. 전국의 도요지를 다니면서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자기의 파편들도 모았다. 그에게는 황금보다 더 귀한 파편들이다. 잠시 그의 손을 쳐다봤다. 나이에 비해 손이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태어날 때 손과 발만 있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흙에는 미백효과의 물질도 있지 않느냐”며 웃는다. 이어 “흙을 다루는 일은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모든 과정을 손으로 작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음식에서 할머니 손맛을 내는 것처럼 흙 반죽도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한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시간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1년 정도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만큼 도자기를 빚는 일은 기다림의 미학이요,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린아이는 울고 웃으며 신호를 보내지만 흙은 절대 말을 안 합니다. 흙은 아무 말 없이 스스로 깨지고 그러기 때문에 항상 정성껏 살펴야 하지요.” 그는 1951년 서울의 학구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친할머니는 일본의 우에노 음악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울대 약대를 나왔다. 아버지는 국립중앙의료원 창립 멤버로 병원에서 초대 약국장을 지냈다. 어렸을 때 손이 유난히 커서 할머니는 장차 피아니스트가 되라며 피아노를 가르쳐 줬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러나 부모는 외아들이 화가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그는 “피아노는 이성적이고 계산적이지만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아주 편안했다. 사춘기 방황도 그림으로 치유할 수 있었던 같다”고 회고한다. 그가 그림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미술을 공부하는 동네 형 집에 놀러 다니다가 그림 그리는 것이 재미있어 보여 따라 그리면서 시작됐다. 어릴 적 얘기가 나오자 추억 하나를 회고한다. 서울사범대 부속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이다. 하굣길에 그는 아버지가 일하는 국립중앙의료원에 자주 놀러 갔다. 당시 의료원에는 스웨덴과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에서 파견된 의사들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 의사들의 자녀와 만나 친하게 지냈다. 레고 같은 장난감도 선물 받았다. 이 레고는 지금도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소중히 간직하는 골동품이 됐다. 또한 아버지는 당시 스웨덴 등 유럽 출장을 갈 때면 그림엽서를 자주 보내왔다. 그는 이 엽서를 자랑삼아 학교에 가지고 갔고 환경미화 시간이면 그림엽서를 벽에 떡하니 붙이고 그 옆에 세계지도를 그려넣곤 했다. 그는 화가가 되려고 했으나 “그림보다는 도자기가 더 생산적이지 않느냐. 그리고 나중에 그릇이 부족한 아프리카에 거서 그릇을 만들어주면 추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할아버지 말씀’ 때문에 방향을 바꿔 대학에서 요업공예과를 선택했다. 대학에서는 원로 도자공예가 정규 선생을 스승으로 삼으면서 도자공예, 재료학 등을 섭렵하고 틈나는 대로 옹기가마에 가서 수련했다. 1973년 대학을 졸업하자 다시 대학원에 들어갔으며 논문 ‘고려 상감청자 연구’를 발표했다. 이때 연리문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 1979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서울 돈암동에 가스가마를 만들고 백자와 분청사기, 연리문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국내외 많은 전시를 통해 도예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자녀 얘기를 꺼냈더니 “아들 둘을 두었는데 다들 잘 자랐다. 학교 다닐 때에는 성적표 얘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다만 졸업할 때 ‘사춘기를 잘 보내줘서 감사하다’라고 했다”며 웃는다. 현재 디자인 계통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우리 도자기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세계 각국 미술관에 계속 전시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제자들도 그 뒤를 따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노경조는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동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영화배우 안성기와 가수 조용필이 중학교 동창이다. 원래는 화가가 되려고 했으나 경희대 입학 때 요업공예과를 택했다. 대학에서 원로 도자공예가 정규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다. 1973년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동대학 대학원에 들어가 졸업 때 ‘고려 상감청자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때 연리문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 1977년 일본에 가서 우리 도자공예와 다른 도자기 공예를 2년간 접했다. 1979년 일본에서 돌아와 서울 돈암동에 가스가마를 만들어 본격적인 연리문 작업을 시작했다. 그해 공간사 공모전에서 도예상을 시작으로 동아공예전대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개인전은 일본 가나자와 갤러리(1979년), 서울공간미술관(1981년), 미국 버밍햄 박물관 초대전(1982년), 미국 뉴올리언스 박물관(1983년), 노경조 도예 30년전(서울, 2005년) 등 수십여 차례 열었다. 영국 대영박물관, 미국 세인트 피터스버그 미술관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이탈리아 파엔자 도예학교, 중국 의홍박물관 등 해외 20여개국의 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국민대 조형대학장을 지냈으며 현재 조형대학 도자공예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기고] 자연, 반달가슴곰 그리고 사람/김종완 국립공원관리공단 자원보전처장

    [기고] 자연, 반달가슴곰 그리고 사람/김종완 국립공원관리공단 자원보전처장

    지난 6월 8일 오후 10시쯤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지리산 벽소령대피소 앞에 있던 탐방객 2명에게 접근해 이들이 갖고 있던 침낭을 물어뜯었다. 아마도 대피소 인근 음식물 쓰레기 냄새를 맡고 접근했으나, 전기펜스로 접근이 곤란하자 대피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배낭과 침낭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고 먹이로 오인해 충돌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다행히 인명피해 없이 상황은 종료됐으나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사실 야생 곰은 경계심이 매우 커 사람을 먼저 피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2004년부터 10년간 지리산에서 반달가슴곰이 활동했던 위치 정보 2만여건을 분석한 결과, 반달곰이 탐방로 변 20m 이내에서 머물렀던 비율은 0.8%에 불구하고 200m 이내가 약 9%, 500m 이상을 벗어난 경우는 약 70%에 이르렀다. 반달가슴곰은 탐방로를 벗어난 깊은 산 속일수록 활동 빈도가 높고 인적이 많은 탐방로는 피해서 활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간 반달곰에 의한 탐방객 피해가 없었던 점은 이러한 결과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지정된 탐방로가 아닌 샛길을 출입하거나 야간산행과 비박하는 경우에는 반달곰과의 조우 확률이 높아진다. 이 같은 불법행위는 개인의 안전에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반달가슴곰에 대한 복원사업을 어렵게 만든다. 야생동물들이 다녀야 할 이동로에 샛길이 만들어지고 그들의 잠자리까지 빼앗고 있으니, 좁아진 서식환경으로 인해 먹이를 찾아 민가로 내려가는 것은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어쩌면 당연한 자구책일 것이다. 곰은 한반도의 야생환경에서 살아가는 최상위 대형동물로서 곰이 서식하는 환경에서는 함께 사는 많은 소형동물들이 그물처럼 연결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먹이경쟁으로 멧돼지, 고라니 등의 숫자를 줄여 농작물 피해를 감소시키고, 희귀 멸종 위기식물들의 씨앗을 멀리 퍼뜨리는 역할도 한다. 즉 우산종(Umbrella Species)이자 생태계 조절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곰은 환경교육과 지역관광 활성화를 위한 훌륭한 아이템이 될 수도 있다. 곰이 살고 있는 지리산은 아이들에게 우리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호연지기를 키울 수 있고 곰을 주제로 한 다양한 생태관광프로그램을 개발, 환경교육의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려면 서로에 대한 약속이 지켜져야 한다. 약간의 인내와 양보도 필요하다. 자연에 대한 넓은 아량을 갖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지혜롭고 성숙한 우리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 [이슈&논쟁] 수학여행 폐지

    [이슈&논쟁] 수학여행 폐지

    교육부가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후속 조치로 지난달 22일 초·중·고교의 1학기 수학여행을 전면 중단시켰다. 이후 수학여행의 존폐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수학여행을 없애자는 쪽에서는 교육적 효과가 없는 위험한 여행이라고 주장했다. 대규모 학생들이 한꺼번에 이동하다 보니 대형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우르르 몰려가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보고 오는 여행이 소모적이라는 설명이다. 또 과거와 다르게 가족여행이 일상화됐기 때문에 여행 측면에서도 수학여행의 의미가 퇴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참에 업체와 학교 간 리베이트 문제 등으로 구설에 오르던 수학여행을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수학여행 중단 조치는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세월호 참사는 수학여행을 간 학교 측 때문이 아니라 무책임한 선원과 초기 구조 과정에서 우왕좌왕한 정부의 무능에서 비롯됐는데, 수학여행을 기다리던 학생들만 친구들과의 추억을 쌓을 기회를 놓치는 상황이 생겼다는 주장이다. 교육부가 수학여행 계약 파기에 따른 위약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지만, 학교와 영세업체 간 분쟁 파열음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교육부가 실제로 업체에 위약금을 배상한다면, 적절한 재정 투입인지를 놓고 새로운 논란이 제기될 판이다. 이창희 서울대방중학교 교무부장과 표혜영 인천부평동중학교 교감으로부터 수학여행 중단에 따른 찬반 의견을 들었다. <贊> 수학여행 교육효과 부실한 상황… 다른 체험 프로그램으로 대체를 세월호 참사 이후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슬픔으로 미어지는 마음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다. 이런 심정은 비단 필자뿐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자, 아니 국민이라면 모두가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번 사태를 냉정히 분석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관행적으로 실시돼 온 수학여행을 폐지해야 한다. 수학여행의 효과에 대한 회의와 우려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있어 왔다. 당초 수학여행을 통해 호연지기를 기르고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며 전인적 인격과 성품을 기르게 될 것이라고 기대해 왔다. 학생들은 부모를 떠나 친구들과 장시간 여행을 한다는 낯선 경험에 대한 설렘을 갖고 있고 많은 어른들 또한 학창 시절의 수학여행에 대한 추억을 갖고 여전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막상 학생들을 인솔해 보면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폐단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된다. 수학여행에 들인 비용과 시간에 비해 긴 이동시간을 제외하고 주어지는 볼거리와 활동거리들이 교육적 효과 면에서 튼실하다고 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규모 이동에 따른 안전 문제와 수백 명을 위해 제공되는 식사의 질도 빈약하기 그지없다. ‘단체’인 만큼, 귀한 남의 집 자식들이니만큼 더욱 긴장하고 존중해야 마땅함에도 어린 학생들의 귀중한 삶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기본적으로 결여돼 있는 데서 오는 현상이다. 부끄럽고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학여행이 본래의 정체성을 유지하기란 어렵다고 본다. ‘시스템을 개선하고 정비하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기에는 ‘진짜로 구석구석 개선할’ 그날이 너무나 요원하다고 본다. 물론 뚜렷한 교육적 소신을 가지고 내실 있게 운영하는 업체들도 있으나 극소수에 불과해 수학여행의 원래 목적에 맞추기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우리 사회 재난유형별 대응 시스템의 미성숙, 교육 관련 사업자들의 의식 부족 등도 심각한 문제다. 시대가 달라졌다. 문화예술 체험활동, 진로체험 활동 등으로 수학여행보다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들이 자유학기제와 맞물려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청소년활동진흥원, 지역문화재단 등 여러 공공기관과 단체의 지원을 통한 20~30명 단위의 소규모 그룹 체험학습도 상당히 활성화돼 가고 있다. 필자가 재직 중인 부평동중은 자유학기제 2년차 연구학교로 지난해 수학여행을 폐지했다. 수학여행을 존치하되 소규모로 하자는 의견도 있는데, 이 역시 비현실적이다. 우리 학제를 감안할 때 현행과 같은 수학여행에 적합한 시기는 5월과 10월이다. 한 학교에서는 한두 학급 소규모로 가더라도 같은 시기에 여러 학교가 몰리기 때문에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수학여행 매뉴얼이 빈약하고 학교가 잘 따르지 않는다는 비판도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현재 수학여행 매뉴얼은 굉장히 치밀하게 돼 있다. 현장학습 공개방을 마련해 현장학습에 대한 학생, 교사, 학부모 만족도 수치를 모두 공개하고, 부당 업체도 신고하고 조회할 수 있다. 학교에서도 수학여행 계획을 수립할 때 매우 신중한 절차를 거친다. 수학여행·수련활동활성화위원회가 의무사항으로 운영되고 있고, 답사는 물론 식단 하나하나까지 아주 까다롭게 점검한다. 그러나 막상 학생들을 데리고 가면 실제 업체의 태도가 경악할 만한 수준으로 떨어진다. 계약을 근거로 강력히 항의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 현장의 매뉴얼 부재를 탓하는 것은 옳지 않다. 수십 년간 관행적으로 실시돼 온 수학여행은 더이상 우리 현실에 맞지 않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근본적인 검토를 통해 수학여행을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 <反> 폐지가 근본적 처방 될 수 없어…감시·감독 강화 안전성 높여야 수학여행과 수련활동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과 청소년기본법 등 10개의 관련된 법적 근거를 기반으로 실시된다. 다양한 창의적 활동 중심 체험학습을 통해 교육 내용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 교육과정과 실생활의 연계를 통해 학습효과를 증진시키는 데 목표를 뒀다. 심신이 건강하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꿈과 끼를 키우는 청소년으로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학교마다 오래전부터 수학여행을 실시해 오고 있다. 활동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공통으로 지켜야 할 사항도 제시돼 있는데 허가·등록된 시설, 청소년활동진흥원 등이 인증한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게 그것이다. 또 시행 직전 사전 답사를 두 차례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교사와 학생 대상 사전 안전교육 실시도 의무 사항이다.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났던 학생들이 불의의 사고로 대거 희생되면서 수학여행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수많은 학생들의 희생을 지켜보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 원인을 제거하고자 함일 것이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한다고 해도 세월호 참사에 대해 위로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학교에서 사전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준수사항 등을 잘 지켰더라도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100% 인재였다. 어린 학생들이 대규모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학교는 사전에 충분한 교육과 점검을 했지만 운송업체의 시스템이 제대로 점검, 작동되지 않았기에 사고가 발생했고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이 따른 것이다. 수학여행을 존치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부분의 철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 즉 운송수단에 문제가 있다면 수학여행을 갈 때 쓰는 교통수단의 인적·물적 자격요건을 높이고 수학여행 참여 업체의 허가요건을 철저히 하는 등 관계 당국이 적극적으로 감시·감독해야 한다. 당장 수학여행 폐지를 주장하기보다 안전한 수학여행을 추진할 수 있는 제반 요건을 갖추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미 일부 시·도교육청에서는 주제가 있는 소규모 테마형 수학여행을 몇 년 전부터 시행해 오고 있다. 3~4학급, 150명 이내의 학생이 함께하는 수학여행을 실시하고 있다. 앞으로 학급별 수학여행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실제로 소규모 테마형 수학여행을 다녀온 학생들의 만족도가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수학여행이 나가야 할 방향 정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준비에서부터 담임교사 중심으로 추진돼 꼼꼼히 챙겨 볼 수 있고, 실시 과정에서도 수학여행 본래의 목적에 맞는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솔 교사의 어려움은 커질 수 있지만, 대규모 수학여행보다 교육적 가치가 높다면 소규모 수학여행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수학여행을 안전하게 하도록 답을 찾는 일이다. 국가수준 교육과정에서는 체험활동을 적극 권장하고 있으면서 다른 쪽에서는 수학여행을 폐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물론 이번 사고를 계기로 수학여행과 관련된 학교의 시스템을 재정비함은 물론 학생들의 수송과 숙박 등에 대한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교육계는 물론 국가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 사고가 나면 관련 논의가 활발해지다가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져 결국 예전의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하던 과거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문제와 원인이 명확히 드러난 상황에서 교육적 효과를 접어 두고 수학여행을 아예 폐지하는 게 근원적 처방이 될 수는 없다. 수학여행의 존폐를 논하기에 앞서 정부는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 그래서 수학여행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안전한 방안을 학생들에게 만들어 줘야 한다.
  • 생애 첫 비를 맞다…사랑스러운 여아 화제

    생애 첫 비를 맞다…사랑스러운 여아 화제

    태어나 처음으로 비를 보고 직접 맞는 경험을 한 어린 여자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화제다. 미국 뉴욕데일리뉴스 등 외신은 5일(현지시간) 최근 동영상 사이트 비메오에 올라와 주목받고 있는 케이든이라는 이름의 15개월 된 여아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소개했다. 가수 존 포어맨이 부른 ‘인 마이 암스’(In My Arms)라는 잔잔한 곡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시작되는 이 영상은 지난해 12월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에 있는 한 가정집에서 촬영됐다. 공개된 영상에서 촬영자가 아이를 향해 “케이든”이라고 부르자 아이는 신이 난듯 웃으며 카메라 앞으로 다가온다. 이어 촬영자는 “앗 차가워, 재밌어?”라는 우리말로 아이의 흥을 돋우는 것으로 보아 한국계 여성으로 추정된다. 아이는 손바닥을 편 채로 하늘로 팔을 쭉 뻗은 채 환하게 웃는다. 피부에 와 닿는 차가운 비의 느낌이 싫지 않은 모양이다. 케이든은 비를 맞고 느끼며 연신 “와”라는 감탄사를 내뱉는 모습이 내리는 비에 대해 경외심을 갖는 듯 보인다. 이후 촬영자와 다른 여성이 아이가 감기라도 들까 봐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자 울음을 터뜨려 아이를 놔주자 “엄마, 엄마” 부르며 다시 아장아장 걸어나와 내리는 비를 느낀다. 촬영자는 아이를 향해 “케이든 재밌어? 안 추워?”라고 말하며 영상은 끝을 맺는다. 이 영상은 촬영자이자 엄마로 추정되는 니콜 변이라는 여성이 지난달 29일 비메오를 통해 처음 공개했으며, 지금까지 조회 수는 130만 건을 넘은 것으로 확인된다. 사진=니콜 변/비메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생애 첫 비’ 경험한 어린 여아 사랑스러운 영상 화제

    ‘생애 첫 비’ 경험한 어린 여아 사랑스러운 영상 화제

    태어나 처음으로 비를 보고 직접 맞는 경험을 한 어린 여자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화제다. 미국 뉴욕데일리뉴스 등 외신은 5일(현지시간) 최근 동영상 사이트 비메오에 올라와 주목받고 있는 케이든이라는 이름의 15개월 된 여아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소개했다. 가수 존 포어맨이 부른 ‘인 마이 암스’(In My Arms)라는 잔잔한 곡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시작되는 이 영상은 지난해 12월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에 있는 한 가정집에서 촬영됐다. 공개된 영상에서 촬영자가 아이를 향해 “케이든”이라고 부르자 아이는 신이 난듯 웃으며 카메라 앞으로 다가온다. 이어 촬영자는 “앗 차가워, 재밌어?”라는 우리말로 아이의 흥을 돋우는 것으로 보아 한국계 여성으로 추정된다. 아이는 손바닥을 편 채로 하늘로 팔을 쭉 뻗은 채 환하게 웃는다. 피부에 와 닿는 차가운 비의 느낌이 싫지 않은 모양이다. 케이든은 비를 맞고 느끼며 연신 “와”라는 감탄사를 내뱉는 모습이 내리는 비에 대해 경외심을 갖는 듯 보인다. 이후 촬영자와 다른 여성이 아이가 감기라도 들까 봐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자 울음을 터뜨려 아이를 놔주자 “엄마, 엄마” 부르며 다시 아장아장 걸어나와 내리는 비를 느낀다. 촬영자는 아이를 향해 “케이든 재밌어? 안 추워?”라고 말하며 영상은 끝을 맺는다. 이 영상은 촬영자이자 엄마로 추정되는 니콜 변이라는 여성이 지난달 29일 비메오를 통해 처음 공개했으며, 지금까지 조회 수는 130만 건을 넘은 것으로 확인된다. 사진=니콜 변/비메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케이블 하이라이트]

    ■본 레거시(캐치온 밤 11시) 애론 크로스는 국방부에서 극비리에 진행 중인 아웃컴 프로그램을 통해 제이슨 본을 능가하는 최정예 요원으로 훈련받는다. 하지만 제이슨 본에 의해 CIA의 트레드스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고, 아웃컴 프로그램 역시 보안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또한, 프로그램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제거하려 한다. 이에 애론 크로스는 목숨을 건 반격을 시작한다. ■명탐정코난 미공개 X파일(투니버스 밤 8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일교포 꽃꽂이 예술가 추미향은 한국을 찾았다가 살해 협박장을 받게 된다. 그녀의 매니저 송채희는 걱정이 된 나머지 유명한 탐정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그렇게 그녀의 한국 방문을 기념하는 파티가 열리고, 그곳에서 호텔 사장인 백건수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와타나베의 건물탐방(홈스토리 밤 8시 30분) 일본 가나가와 현에 있는 야마가타 집을 찾아간다. 건축가인 집주인이 직접 설계해 지은 이 집은 산 바로 옆에 나지막이 자리한다. 산 옆에 있기에 집 안팎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건축가의 집이라 실험적인 면이 강할 것 같지만, 살기 편한 동시에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집을 소개한다. ■김지윤의 달콤한 19(tvN 밤 11시) 미치도록 사랑했던 사람. 사랑인지 집착인지 모를 우리를 힘들게 한 ‘미친 사랑의 노래’에 대해 들어본다. 한편 프로게이머 홍진호가 스튜디오를 혼란에 빠트린 첫 키스의 추억을 공개한다. 전국구 카사노바로 여자친구만 다섯 명이었던 그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또한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방법도 알아본다. ■구타유발자들(스크린 밤 11시) 카사노바 성악교수 영선과 제자 인정은 새로 뽑은 벤츠에 몸을 싣고 호젓한 교외로 드라이브를 간다. 그러나 교통경찰 문재에게 신호위반으로 걸리면서 억세게 재수 없는 불길한 하루는 서서히 예고된다. 게다가 인적 없고 바람 좋은 강가에 차를 세운 영선은 응큼한 속내를 드러내고, 놀란 인정은 벤츠에서 겨우 탈출해 숲으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BONES:갈고리 살인(FOX 밤 11시) 제퍼소니언 연구원들은 150여 년 전 침몰한 노예선에 있던 잔해 속에서 발견한 유골들의 신원 확인을 한다. 그러던 중 분홍색의 유골이 최근에 사망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조사를 시작한다. 그렇게 안면 복원을 통해 확인된 신원으로 피해자의 아내를 찾아간 부스와 본즈는 뜻밖에도 멀쩡하게 살아 있는 그녀의 남편과 마주한다.
  • 우리가 보지 못했던 곤충의 사랑, 알지 못했던 ‘처절한 생존’

    우리가 보지 못했던 곤충의 사랑, 알지 못했던 ‘처절한 생존’

    전 세계에 기록된 곤충은 약 80만종. 전체 동물 수의 4분의 3에 이르는 규모지만 우리는 곤충의 미세한 세계를 잘 알지 못한다. 우리에겐 그저 한 마리 벌레에 지나지 않았던 곤충들의 개성 넘치고 본능적인 삶을 포착해낸 대작 다큐멘터리가 안방극장을 찾는다. 29일 밤 10시, 다음달 13일 밤 10시에 1, 2부로 나뉘어 방송될 MBC 창사 52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곤충, 위대한 본능’이다. 700일의 제작기간, 1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고 6만 5430km를 이동해 빚어낸 이번 작품에는 2010년 ‘아마존의 눈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제작진(김진만 PD, 김정민 PD, 고혜림 작가)이 다시 뭉쳤다. 곤충 한 마리가 찬란한 성충이 되기까지의 힘겨운 변태 과정들, 먹으려는 자와 먹히지 않으려는 자의 전쟁과 공존, 종족 번식을 위한 처절한 유혹과 사랑을 담은 영상들이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안긴다. 장수말벌, 나나니벌, 왜코벌, 거미, 매미, 긴다리 소똥구리,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길앞잡이, 대왕박각시, 남가뢰 등 다양한 곤충의 모습이 고화질 최첨단 촬영 장비를 통해 손에 만져질 듯 실감 나게 담겼다. 김정민 PD는 “이전에 아마존 부족을 촬영할 때는 사람이라는 공통 범위 안에 있어서 서로 호응하는 게 있었다. 하지만 곤충은 아무리 아양을 떨어도, 좋아하는 환경을 아무리 만들어줘도 우리가 원하는 행동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특히 벌 촬영은 제작진에게 가장 힘든 과제였다. 김정민 PD는 실제로 장수말벌을 찍는 과정에서 벌에 쏘여 위험한 순간을 맞기도 했다. 김진만 PD도 “가장 힘들었던 건 벌 촬영이었다. 벌이 가장 활동적인 때가 7~8월이라 지난여름 황무지 모래사장에 사는 벌들을 찍었는데 낮 기온이 40도가 넘는 와중에 벌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엎드려서 배를 깔고 촬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특별히 전체 영상을 3D로 촬영했다. 최첨단 3D 카메라인 레드 에픽(Red Epic) 카메라를 비롯해 자체 개발한 3D 접사 카메라 등 8종류의 3D 카메라가 동원됐다. 손인식 촬영감독은 “아주 작은 곤충의 접사 촬영이 가능하도록 3년 전에 ‘MBC 손 인섹트(insect) 카메라’라고 이름 붙인 카메라를 우리가 직접 제작했다”며 “매미가 날개를 펴는 장면들을 3D 입체로 보면 상당한 감동이 전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외계인조차 없다… 소름이 끼쳐온다

    외계인조차 없다… 소름이 끼쳐온다

    “역대 최고의 우주 영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Gravity)를 두고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내린 평가다. 지난 8월 제7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그래비티’는 공개 직후 평단과 관객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하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지난 4일 북미 지역에서 먼저 개봉해 단숨에 흥행수익 1위를 차지했고, 로튼토마토 등 각종 평점 사이트에서는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기록하고 있다. 영화는 20분 가깝게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의 롱테이크(길게 찍기)로 관객을 우주에 초대한다. 지구를 비추던 카메라가 조금씩 뒤로 물러나면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고 있는 스톤(샌드라 불럭) 박사와 베테랑 우주 비행사 코왈스키(조지 클루니)가 시야에 들어온다. 한담을 나누며 우주 유영을 즐기는 코왈스키처럼 카메라는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광막한 우주를 자유롭게 헤엄친다. 카메라는 스톤을 비췄다가 스톤의 시점으로 우주를 바라본 뒤 다시 멀리서 우주에 떠 있는 스톤을 응시한다. 카메라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통해 관객은 실제로 우주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된다. 평화롭던 우주는 지구 반대편에 있던 구식 인공위성이 사고로 폭발하면서 공포의 공간으로 급변한다. 우주 파편들은 잔해 폭풍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지구 궤도를 순환한다. 이들이 타고 온 우주왕복선 익스플로러는 파편에 맞아 산산조각 난다. 익스플로러에서 분리된 스톤은 거대한 우주 공간 속으로 한없이 튕겨 나간다. 영화에 아름다움과 긴장을 동시에 가져오는 것은 우주라는 공간 자체다. 코왈스키는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모습을 두고 “세상의 절경”이라고 감탄한다. 무한한 우주는 경외심을 가지고 창조의 섭리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며 인간이 중력의 한계를 벗어나 부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똑같은 무한함이 조난자에게는 끝없는 공포를 가져온다. 산소는 없고, 온도는 영하 120도에서 영상 100도의 극단을 오간다. 중력이 없는 탓에 뜻대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다. 스톤과 지구의 통신은 두절된다. 아들 조나스 쿠아론과 함께 각본을 쓴 감독은 우주 미아의 표류기를 통해 2013년판 오디세이아를 들려준다. 서사는 단순하고 전체 등장인물도 3명에 불과하지만 영화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SF 재난 영화로 출발한 ‘그래비티’는 우주라는 마법 속에서 우리를 끌어당기는 중력과 이 땅 위에 발 딛고 사는 것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위대한 유산’과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등을 연출했던 감독은 무중력 상태의 우주를 재현하기 위해 각종 기술을 동원한다. 불럭은 12개의 와이어에 매달려 무중력의 느낌을 살려 냈고, 사람 대신 컴퓨터가 조종하는 카메라는 극단적인 화각으로 아득하게 넓은 우주 속 스톤의 고립감을 표현한다. 아이맥스와 3차원 효과의 결합도 성공적이다. ‘그래비티’의 단점은 현란한 카메라 움직임과 3차원 효과 탓에 물리적인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어지러움은 관객이 영화의 진경(眞景)을 바라보며 느끼게 되는 아찔함에 가까울 것 같다. 90분. 17일 개봉. 12세 관람가.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호킹까지… 별을 찾는 24인의 삶과 과학

    임마누엘 칸트가 한 말이다.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 깊게 생각할수록 이 두 가지가 더욱더 새롭고 경외심으로 마음을 가득 채운다.” 그렇다. 우리는 빛나는 별을 올려다보며 많은 이야기를 한다. 굳이 복잡하게 천문학을 논할 것도 없다. 남녀 간 사랑의 밀어에서도, 동심의 세계에서도 밤하늘의 별은 시대를 막론한 단골 메뉴다. ‘별밤의 산책자들’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잡아 끄는 것은 그래서다. 책장을 열면 인간의 온기가 배어 있는 천문의 역사가 펼쳐진다. 서구의 우주연구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전체적으로 살펴본다. 현재 눈에 보이는 우주를 넘어서 그 뒤편에 적충된 경이로움의 역사까지 두루 짚어볼 수 있다. 그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은 위대한 별 관찰자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스티븐 호킹까지, 즉 그리스 자연철학자에서 21세기 천체 물리학자까지 모두 24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책은 천문학사를 건조하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각자의 삶 속에서 천문학의 전개와 발전 과정을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당시 해당 인물이 처해 있던 천문학계의 지적 상황과 관측 능력을 비롯해 강렬하게 호기심을 자아냈던 밤하늘의 경이로움, 그리고 전기적 사실 등은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한다. 안드로메다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첨단 우주연구의 격조함을 인간적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동시에 밤하늘에 관한 소소한 호기심과 소박한 질문들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는 자상함 또한 책의 장점이다. 까닭에 우주모델과 이론을 성찰하게 하면서 나아가 그것이 인식의 테두리 안에서 존재하는 것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독자들이 우주와 인간 존재 간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밤하늘을 과학적 사실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는 대상이 아닌, 경이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유도한다. 별과 우주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력을 돕기 위한 안내서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우주모델과 최신 우주이론을 심층 비교해 볼 수도 있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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