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경선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 파행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 방송인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 을지로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 텍사스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4,756
  • 연말 특사 최소 100명선 될 듯…김우중·박지원·한화갑 포함

    연말에 실시될 참여정부의 마지막 특별사면·복권 대상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등 정·재계 인사를 비롯, 최소한 100명 이상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26일로 예정된 특사 시기는 27일 이후로 미뤄질 전망이다. 청와대 대변인인 천호선 홍보수석은 23일 “아직 연말 특사의 대상이나 폭이 최종 확정되지 않아 26일 국무회의에 특별사면안이 올라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은 특사의 기준과 인원이 확정되는 대로 이번 주중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특별사면안을 의결한 뒤 이번 주말이나 늦어도 31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특사에는 김 전 회장의 분식회계사건에 연루돼 사법처리된 대우그룹 계열사 전직 임원도 상당수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특사에서 사면된 박 전 실장은 이번에 복권되며, 당 대표 경선자금을 받은 혐의로 사법처리된 한 전 대표도 특사에 포함될 예정이다. 기업인으로는 정몽원 한라건설 회장과 문병욱 썬앤문 그룹 회장,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법 대선자금 사건에 연루된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도 거론되고 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신당 친노-비노 ‘파열음’

    대통합민주신당이 이번에는 지도부 구성방식과 지도체제를 둘러싸고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합의추대론과 경선론이 주된 전선이다. ●일부선 지도부 총사퇴 촉구 이번 대선이 사실상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임을 근거로 야기된 ‘친노 VS 반노’ 갈등 조짐이 확대된 형태다.23일 신당은 서울 당산동 당사에서 최고위원회와 상임고문단 간담회를 열고 지도체제 문제를 논의했다. 한 참석자는 “합의추대는 체력 소모가 덜한 반면 통합은 어렵다. 반면 경선은 당에 활력을 주지만 또다시 전투 모드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며 논의 뒷이야기를 전했다.24일 의원총회에서 격론이 예상된다. 당 지도부는 오는 26일 의원 워크숍을 필두로 늦어도 이번 주 내에 지도부 구성방식과 전대 체계 등을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부 중앙위원들은 성명을 내고 “중앙위원회를 소집해 ‘비상수임기구’를 구성하라.”며 지도부 총사퇴를 촉구했다. 지도부 구성방식의 경우, 합의추대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노진영과 손학규 전 지사 그룹, 중진그룹, 초·재선 의원 등이 동조하고 있다. 새 대표로 손학규 전 지사와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 거론된다. 정세균·문희상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거론된다. 이들은 당내 6개 계파가 지분을 나눠 갖는 집단지도체제를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물갈이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손 전 지사 합의 추대론을 펴는 초·재선 의원들은 손 전 지사 중심의 단일지도체제를 주장한다. 그러나 손 전지사가 1인 중심의 리더십을 담보할 만한 지분이 없다는 비판이 들린다. ●김 전 의장측 제3의 인물 영입 고심 반면 경선을 통해 치열한 노선투쟁을 벌이자는 의견도 있다. 정동영계·김한길 의원 그룹, 비노진영이다. 친노진영과의 노선 투쟁이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 친노와 결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동의하는 의원들은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 출신이고 강 전 장관은 참여정부 장관까지 했다. 이번에 확실히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근태 전 의장측은 “대선 결과를 봉합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원칙론만 내놨다. 경선과 제3인물 영입 등을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신당은 지난 22일 국회에서 최고위원·상임고문단 연석회의를 열고 내년 2월3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전당대회를 열기로 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대선 참패 3당 3색

    ■ ‘험로’ 민노, 혁신·단합론 등 백가쟁명식 처방전 민주노동당은 23일 현재까지도 ‘3% 지지율’이라는 대선 참패의 후유증에 휘청이고 있다. 지난 20일 최고위원회와 선대위 회의를 열고, 당내 ‘선거평가위원회’를 구성해 오는 29일 중앙위원회에 평가 초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오는 26일 확대간부회의에서 평가의 대략적인 내용이 잡힐 전망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대선 평가를 둘러싸고 정파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정파별 입장을 갖고 진로 논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현상 유지론부터 총선까지 단합론, 전면 쇄신론 등 다양한 처방전이 나온다. 당내 최대 정파인 자주파(NL)는 후보 책임론으로 평가를 마무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권영길 후보가 책임지는 선에서 내부 단결을 꾀하자는 입장이다. 김창현 공동선대본부장은 “총선이 눈앞에 있는 만큼 내부 단결을 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총선까지는 현 상태를 유지하며 대오를 정비하자는 ‘신중론’도 있다. 심상정·노회찬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심 의원은 “재창당의 각오로 자기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분당(分黨)론을 포함, 전면적 쇄신론을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범좌파 진영에서 흘러나온다. 김혜경 전 당 대표와 조승수 진보정치연구소 소장 등은 지난 21일 성명을 내고 “당의 근본적 쇄신을 위해 한 달 내에 임시 당 대회를 열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미로’ 민주, 김민석 앞세워 당 체질 바꾸기 17대 대선에서 참패한 민주당이 386 출신인 김민석 전 의원을 앞세워 당 재건에 나섰다. 민주당은 당 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김 전 의원에게 맡기고 주말에 연이어 여의도 당사에서 회의를 열어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쇄신 방안을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23일 회의에서는 조기 전당대회 개최 문제와 지도체제 구성, 당 쇄신을 위한 여론수렴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민주당이 전반적으로 노쇠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김 전 의원에게 쇄신특위 위원장을 맡긴 것은 당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돼 주목된다. 44세의 김 전 의원은 당내 경선에서 ‘민주당 적자(嫡子)론’을 주장하며 이인제 의원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지난 2001년 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 속에 민주당 총재직에서 물러났을 때 당 쇄신특위 간사를 맡았던 적이 있어 이번에 쇄신특위 위원장을 맡았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호남에서조차 외면 당한 현실과 인적 쇄신에 대한 중진들의 거부감 등을 고려할 때 획기적인 쇄신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기로’ 창조한국, 당발전위 구성 총선준비 돌입 17대 대선에서 문국현 후보가 5.8%의 득표율을 거둔 창조한국당도 총선체제 정비에 착수했다. 창조한국당은 성탄절 연휴가 끝난 직후인 26∼27일쯤 대선 평가와 총선 준비를 위해 당내에 당 발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총선이 당의 생사를 좌우하는 무대라고 보고 체제 정비와 진로 재설정 논의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선전을 거둬야 ‘독자세력’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원회 산하에는 ▲대선평가단 ▲전당대회 준비단 ▲총선준비단을 둬서 인재 발굴 및 영입 작업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문국현 대표는 지난 21일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큰 장정의 앞부분이 이제 끝났다.”며 “앞으로 모든 것을 잊고 충분히 쉰 뒤 새로운 모습으로 나서서 4월 총선에서 이번에 뿌린 씨앗을 수확하자.”며 총선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선대본부장을 맡았던 정범구 전 의원은 “대선이 끝난 지 불과 며칠이 안돼 아직 구체적인 당 발전위원회의 운영 방안을 세우지 못했다.”면서도 “참신한 인물을 발굴하고 영입하는 데 역점을 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노무현 ‘인파이터’ 이명박 ‘아웃복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당선 후 행보는 5년 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그것과 크고 작은 차이를 보인다. 그중에는 이 당선자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다. 노 당선자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당선 나흘 만에 만났으나, 이 당선자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동을 26일 이후로 미뤄 놓고 있다.‘정권연장’과 ‘정권교체’의 차이 때문인 것 같다.‘경제 대통령’을 내건 이 당선자는 또 당선 이틀 만에 주변 4강 대사 면담을 완료했다.2002년의 노 당선자보다 사흘이나 빠르다. 이 당선자는 당선 후 거처를 청와대가 제공해준 안가로 옮겼지만, 노 당선자는 혜화동 사저에서 취임 전까지 머물렀다. 이 당선자의 가회동 자택 골목이 좁아 경호가 어려운 점이 십분 감안됐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제부터다. 이 당선자는 당선 후 첫 내외신 기자회견을 여의도가 아닌 태평로의 프레스센터에서 가졌다. 노 당선자가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했던 것과 비교된다. 또 노 당선자는 경선에서 후보로 선출된 뒤 바로 금강빌딩의 캠프를 접고 민주당사에 ‘진주’(進駐)했지만, 이 당선자는 개인 사무실인 종로구 견지동의 안국포럼을 더 애용하고 있다. 이 당선자는 지난 21일 주한 중국 대사와 러시아 대사를 이곳에서 면담할 정도였다. 이 당선자의 이런 행보를 놓고 ‘탈(脫)여의도 노선’이란 분석이 나온다. 굳이 따지자면 이 당선자와 노 당선자 둘다 당내 비주류로 분류되는데, 당 장악 스타일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관측도 있다. 이 당선자보다 더 왜소한 비주류였던 노 당선자의 스타일이 ‘인파이터’형이라면 이 당선자는 ‘아웃복서’형이라는 것이다. 이런 국면은 다음의 공통점을 보면 더욱 그럴듯하다.2002년 대선 승리 직후인 12월22일 민주당 내에서는 신기남·추미애 의원 등 소장파들이 지도부 퇴진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당권 투쟁이 불붙었다. 이 당선자측 박희태 전 국회 부의장도 지난 21일 당·정 일체론을 천명, 논란이 일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올 한해 주목받은 ‘신조어’는 무엇?

    베전섹슈얼(vegan-sexual),이메일 뱅크럽시(e-mail bankruptcy)…. 뉴욕타임스가 23일(현지시간) 올 2007년 한해 새로 탄생한 신조어들을 소개했다. 베전섹슈얼 동물에서 나온 어떤 것도 먹거나 사용하지 않음은 물론,이에 반하는 사람과 성행위도 거절하는 채식주의(베전)의 극단.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주민들이 실천하는 것으로 알려져 세계적 용어가 됐다. 이메일 뱅크럽시 읽거나 답장을 보내지 않은 엄청난 양의 이메일 메시지를 무시하거나 삭제한다고 공언하는 것을 ‘부도’에 빗댔다.스탠퍼드 대학 법대 로런스 레시그 교수가 한꺼번에 200여통이 밀려들자 다른 방법으로 연락하라며 부도(bankruptcy)를 선언해 유명해졌다. 닌자 론(ninja loan) 고위험 채무자에게 이뤄진 대출.일자리나 자산,수입도 없는(no income,no job or asset) 사람의 머릿글자를 따왔다. 슈퍼듀퍼 튜즈데이(super-duper tuesday) 미국 23개 주에서 대선경선(프라이머리)가 열리는 2008년 2월5일을 이르는 말.기존 슈퍼 화요일에 비해 2배나 많은 곳에서 예비후보를 뽑는다고 한다.‘쓰나미 화요일(tsunami tuesday)’로도 불린다. 아이 리포터(I-reporter ) 사건현장에서 사진이나 기사를 언론사에 보내는 시민기자.UCC처럼 수요자(I)가 직접,본인의 시각(Eye)으로 뉴스를 전달한다. 고르노 ‘gore(핏덩이)’와 ‘porno(포르노)’의 합성어로 거의 미신적인 수준까지 이를 정도로 유혈이 낭자한 ‘엽기의 극치’를 달리는 폭력·공포 영화의 새 장르. 베이컨(bacn) 스팸처럼 귀찮지만 사용자가 수신을 허락한 이메일.개인을 상대로 한 게 아니라 언론사의 긴급뉴스 등을 말한다. CSO(Chief Sustainability Officer) 기업에서 환경 관련 업무를 맡아 환경친화적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고용한 지속가능형 최고경영자(CEO). 네이비 샤워(navy shower) 원래 물이 귀한 함정에서 짧은 시간에 적은 양의 물로 샤워를 하는 것을 말하는데 미국 남동부 지역의 극심한 가뭄으로 일반인에게 퍼졌다.반대말은 캘리포니아샤워.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명박 시대-대선후 정계] 정권교체정국-ⓛ탈여의도정치

    [이명박 시대-대선후 정계] 정권교체정국-ⓛ탈여의도정치

    성장 우선의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탄생은 10년 만의 정권교체와 맞물려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차기 정부의 명칭을 ‘실용 정부´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듯이 향후 5년간은 이념·세대·빈부간의 갈등을 뒤로하고 ‘생산´으로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이명박 시대’의 정치와 대외정책, 안보정책은 무엇이며, 향후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연속 기획물로 점검한다. ●여의도에 기업 조직·문화 접목 최초의 기업인 출신 대통령 탄생으로 한국 정치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예고된다. 이명박 당선자는 기업과 민간 부문이 이미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화했는데 정치만 유독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10년 만의 정권교체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변화를 이끌기 위해 제일 먼저 손질할 곳이 ‘여의도식 정치’라는 관측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당내 선거기간 내내 “‘여의도식 정치’를 확 바꾸겠다.”는 말을 달고 다녔다. 오랜 기업 생리에 몸이 밴 이 당선자에게 ‘여의도식 정치’는 아주 생소한 것이었다. 기업에서 효율과 합리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온 이 당선자에게 ‘여의도식 정치’는 말로만 하는 정치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정치가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양보 없는 정치공세로만 치닫는 배타적인 제로섬(zero-sum) 게임의 패러다임 아래 네거티브 공세와 지분 챙기기 등에만 몰두하는 것을 바꿔 놓겠다는 게 이 당선자의 생각이다. 이 당선자의 이같은 생각은 인적 쇄신과 정당체질 개선, 정치문화 변화를 통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의 이름을 ‘실용정부’로 명명하기로 한 만큼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대대적인 외부 수혈로 인적구성을 대폭 바꾸리라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이 당선자의 이런 구상은 선거기간 중 선대위 구성에서도 그 일각을 드러냈다. 기존 정치판의 선대위가 명망가와 유력 정치인 중심으로 구성된 데 반해 이 당선자는 기능별로 실무진 중심의 선대위를 구성했고, 정치와 일정 거리를 유지해온 전문가들로 채웠다. 특히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윤진식 전 산자부 장관, 강만수 전 재경부 차관 등 자신의 분야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낸 인사를 대폭 충원했다. 정당 체질 변화도 예상된다. 이 당선자는 당내 경선을 통해 한나라당 후보로 확정됐을 때 첫 일성이 “기업형 정당으로 바꾸겠다.”였다. 한나라당은 명실상부한 집권여당으로서 ‘민생정당’,‘정책정당’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일하는 정당’으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당 조직을 기능별로 슬림화하고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기업조직처럼 의사결정구조 간소화를 통해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정당체질 변화가 예고된다. ●정치공작 근절 법적대책 마련 이와 함께 이 당선자가 변화가 시급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한국의 정치문화다. 특히 그는 정치공작 근절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경선과 본선을 거치며 이 당선자 본인이 1년여 동안 온갖 의혹과 정치공세의 희생자로 생각하고 있다. 그는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2002년보다 올해 네거티브가 더 심했다. 이런 선거 문화를 갖고는 정치권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며 “법적 대책 마련을 검토하겠다.”고 말해 정치공작에 대한 대책마련을 강조한 바 있다. 한나라당도 그동안 관례적으로 선거가 끝나면 정당간 고소·고발을 취한 것과 달리 끝까지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측근은 “이 당선자가 무슨 일이 있어도 정치공작을 뿌리뽑아 새로운 선거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이명박 시대-국정 밑그림] “새정부는 매우 실용적·창조적”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20일 첫 내외신 기자회견 후 일문일답에서 경제·외교·안보 등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인수위원회의 구성에 대해서는 ‘실무형’으로 가겠다는 방향도 제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직선제 이후 최다 득표, 최대 표차로 당선됐는데 이번 대선의 의미는. -국민들께서는 지난 10년으로는 미래를 향해 더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새로운 시대는 낡은 사고를 떨쳐버리고 미래를 향해 국민이 희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새 정부는 매우 실용적이고 창조적인 정부가 될 것이다. ●기업 투자하기 좋게 규제 풀 것 ▶압도적 지지를 받고 당선된 이유가 경제 살리기 열망 때문인 것 같다. 경제 살리기를 위한 첫번째 조치는. -국민 다수의 여러 복합적인 요구가 있는 게 사실이다. 첫째로 경제를 살려달라는 것이 가장 큰 요구라는 것을 경선과 본선을 거치며 알고 있다. 경제가 산다는 것은 결국 기업이 투자하는 것이라고 본다. 기업이 어떻게 하면 투자를 할 것인가?저는 희망적으로 생각한다. 규제를 풀 것이다. 여러 가지 조건이 있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투자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10년 동안 규제가 더 많아진 것도 아니다. 분위기상 반시장적, 반기업적 분위기를 기업인들이 느끼고 그로 인해 투자를 꺼린 게 사실이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됨으로써 투자환경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수위가 발족하면 먼저 중소기업 단체와 직종별 경제인을 직접 만나 새 정부가 투자 분위기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설명하겠다. 새 정부 출발 이전부터 투자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외국인 투자를 위해 인수위 조직을 만들려고 한다. 외국인들에게 대한민국은 투자하기 좋은 나라라고 설명하며 구체적으로 접촉하도록 하겠다. ●인수위 정치인 배제… 실무형으로 ▶인수위 운영 방안은. 언제 어디서 인수위를 꾸릴 것이며, 인수위원장으로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은. -우선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실무적 인수위원을 선정하려고 한다. 형식적인 것보다는 실질적 인수인계가 되도록 할 것이다. 인수인계 과정을 통해 공직자들에게 과도기에 더 열심히 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일할 수 있는 안정적 분위기를 만들겠다. 노무현 대통령도 전화 통화에서 인수인계가 상당히 준비됐고 완벽히 인계하도록 협조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실무자형으로 하겠다. 정치인들은 내년 4월 총선 때문에 가급적 배제하겠다. ▶대북정책 기조는. 북핵 폐기 이전이라도 지원하나. -실용주의적 외교를 해야 하고 남북 협력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북간의 가장 중요 현안이 북핵 폐기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남북 경제 교류가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이 체제 유지와 북한 주민들 생활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을 설득하려 한다. 쉬운 것은 아니지만 강력하고 신뢰있는 설득이 필요하다고 본다. 6자회담을 통한 국제 공조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북·미회담도 성공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겠다. ●북핵 폐기해야 진정한 경협 시작 ▶북에 대한 발언의 성격이 바뀌나. 북한 문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는 낼 수 있나. -국민 소득이 100달러 전후였던 1960년대에도 한국과 경제협력했던 선진국들이 인권 문제를 많이 지적했다. 군사정권은 반대 입장을 가졌지만 선진국의 인권 언급이 한국 인권 진작에 도움이 됐다.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애정어린 비판은 북한 사회를 오히려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핵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고 인도적 지원 과정에서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북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지적하려고 생각한다. 인권도 피할 수 없는 문제 중 하나다. 북한도 그 점에 관해서는 바뀌어야 하고,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정리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中-印 첫 합동 군사훈련

    中-印 첫 합동 군사훈련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과 인도가 사상 처음으로 지상군 합동 훈련에 들어갔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0일 인민해방군 소속 육군 100명과 인도 육군 100명이 중국 윈난(雲南)성 쿤밍(昆明) 교외 산악지대에서 테러 진압을 위한 연합 군사훈련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작전명 ‘제휴 2007’인 이번 훈련은 오는 28일까지 계속된다. 두 나라가 지상군 훈련을 함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내년에는 인도에서 합동훈련을 갖기로 했다. 중국에게 이번 군사훈련은 미국의 군사적 포위 전략에 맞선다는 정치적 의미가 있다. 군사적 협력을 포함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인도를 중국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포석도 깔려 있다. 인도 국방부 수탄슈 카르 대변인은 “이번 훈련은 양국 관계 개선에 중요한 이정표”라고 말했다. 중국의 관영 언론 매체들도 이번 군사훈련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현재 미국은 일본·호주 등과 이른바 ‘삼각 동맹’을 형성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미국이 이 삼각동맹에 인도를 끌어들여 ‘아시아판 나토’의 구축을 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게다가 인도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어 중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인도는 지난 9월 미국, 호주, 일본, 싱가포르 등과 벵골만에서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으며 이 지역에서의 해군력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2005년부터 이어져오며 ‘반미 동맹’으로 발전 가능성이 엿보였던 ‘중국-러시아-인도’ 외무장관 회담도 현재 사실상 와해됐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의 미사일방어시스템(MD) 계획에 강력히 반대하는 중·러와는 달리 인도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중국은 러시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군사동맹 체제를 구축하는 등 지역에서의 군사 협력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한때 이번 훈련의 성사 여부에 회의적인 관측이 제기됐었다. 훈련을 앞두고 중국 티베트 남부와 인도 북부의 접경 삼각시대에 인도군이 설치한 요새와 초소 문제로 두 나라 사이에 빚어진 분쟁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훈련이 성사됨으로써 양국간 관계 개선의 의지가 확인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합동훈련에 참가한 양국군대의 수는 200명에 불과하지만, 두 나라가 국경 분쟁으로 수십년간 앙숙 관계였던 만큼 정치적 상징성이 높은 협력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1962년 히말라야산맥 국경선을 놓고 국지전을 펼친 바 있다. 중국과 인도의 군사력 규모는 각각 병력 250만(세계 1위)과 113만(세계 3위)으로 세계 최대 수준이다. jj@seoul.co.kr
  • [이명박 시대-대선후 정계] 朴, 국정 동반자 대접 받을까

    [이명박 시대-대선후 정계] 朴, 국정 동반자 대접 받을까

    다시 ‘박근혜’가 고민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스스로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지 고민하고 있고, 그런 그를 어찌 대해야 하는지 이명박 당선자측도 고심할 것 같다.17대 대선이 끝난 뒤 새로 떠오른 관전포인트다. 박 전 대표는 대선 이튿날인 20일에도 말을 아꼈다. 측근들 태도도 비슷했다. 박 전 대표가 먼저 나설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키는 승자인 이 당선자가 쥐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측근들 사이에선 일부 불안하다는 기운도 감지된다. 이 당선자가 대선을 이기면서 ‘살아 있는 권력’이 됐기 때문에 지금까지처럼 박 전 대표를 예우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 당선자가 당선 직후 박 전 대표에 대해서 딱 한 번 “고맙다.”고 공개적으로 말했을 뿐이란 점이 심상치 않다는 관측도 있다. 이 당선자가 BBK 정국 등으로 곤욕을 치를 때 박 전 대표를 ‘국정의 동반자’로 치켜세운 일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두 사람은 경선이 끝난 뒤 지난 9월 국회에서 한 차례 만났을 뿐 그 이후엔 같은 자리에 선 적이 없다. 따라서 ‘재회동’에도 관심이 쏠린다. 양측에선 올해가 가기 전 어떤 형태로든 두 사람이 만나지 않겠느냐는 느슨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대선 정국에서 꼭 해야 할 일만 화끈하게 하고 최대한 잠수모드로 지내온 박 전 대표는 결국 4월 총선을 앞두고 공천과정에서 기지개를 켤 수밖에 없다. 싫든 좋든 경선을 치르며 ‘박근혜 사람들’이 생긴 만큼 이들을 챙겨야 그 역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거다. 박 전 대표측 일부가 당 내홍이 한참 컸던 지난 10월 ‘패자로서의 설움’을 한참 토로하자 가만히 듣기만 하던 박 전 대표가 가만히 듣다가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요.”라고 달랬다는 일화는, 결국 총선의 중요성에 방점을 찍은 게 아니냐는 방증이라는 얘기다. 총선 공천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가시적인 움직임이 포착되면 박 전 대표가 활발하게 정치 행보를 재개할 것은 자명하다. 다만 그 모양이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택했던 ‘과격함’으로 표출될 것인지 아닌지는 이 당선자측의 선택에 달렸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이명박 시대-인수위 어떻게] 여의도 14번지 ‘王의거리’

    [이명박 시대-인수위 어떻게] 여의도 14번지 ‘王의거리’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4번지 양말산 3길. 이젠 이 거리를 한국의 ‘로열 스트리트’(royal street), 즉 ‘왕(王)의 거리’로 불러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폭 10여m의 이 좁은 길 양 옆에 늘어선 건물들에서 대통령들이 잇따라 배출됐기 때문이다. ●이명박당선자 낳은 한양빌딩 10년전 김대중 대통령 산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낳은 한양빌딩은 10년 전 이미 대통령을 만든 ‘귀하신 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대선에서 당선됐을 때 새정치국민회의 당사가 바로 이 건물에 있었다. 당시 야당 후보란 이유로 건물주들이 임대를 안해 주는 바람에 무슨 무슨 연구소라고 속이고 입주했다는 후문이다. 한양빌딩 바로 옆의 금강빌딩은 노무현 대통령을 배출한 곳이다. 노 대통령이 ‘그저그런’ 후보였을 때부터 이곳에서 그를 보좌하던 386그룹은 이른바 ‘금강사단’으로 불렸고, 이들은 참여정부 실세로 활약하게 된다. 금강빌딩 맞은 편의 용산빌딩은 한나라당 경선 때까지 ‘이명박 캠프’가 있던 곳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이곳에서 경선 승리의 기쁨을 맛봤고 바로 대각선에 위치한 한양빌딩에서 대선 승리의 영광을 차지한 셈이다. 이 당선자가 경선에 승리한 뒤 경선 캠프가 축소되면서 탈락한 일부 요원들이 용산빌딩 건너편 금강빌딩 2층의 맥주집에서 분루를 삼키며 권토중래를 꾀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극동VIP빌딩선 1992년 김영삼 민자당 후보로 당선 더 거슬러 올라가면,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도 양말산 3길의 왕기(王氣)를 받은 격이다. 한양빌딩 대각선 맞은 편의 극동VIP빌딩에서 민자당 후보로 당선됐기 때문이다. 이 길이 특별한 건 아니다. 차선도 없는 좁은 골목길에 가깝고 불법 주차 차량으로 혼잡을 이루기 일쑤다. 길에 서서 동쪽을 보면 빌딩 숲 사이로 여의도 공원이 어렴풋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국회 도서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여의도가 평지이다 보니 ‘배산임수’와 같은 풍수가 적용될 것 같지도 않다. 건물들 역시 평범하다. 한양빌딩 경비원은 “임대료 시세는 거의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이 곳에서 집중적으로 대통령이 배출된 것을 우연의 일치로 돌리기 힘들다는 얘기도 있다. 이회창씨는 1997년과 2002년에 여의도의 A빌딩에서 연거푸 대권도 도전했으나 고배를 들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같은 평지인데도, 그 건물은 이상하게 햇빛이 잘 안들었다.”고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이명박 시대-17대 대선 평가와 전망] 한나라,‘중도실용’ 각인 성과

    [이명박 시대-17대 대선 평가와 전망] 한나라,‘중도실용’ 각인 성과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압도적 승리로 막을 내렸다. 헌정 사상 두번째로 맞이한 수평적 정권교체이자 10년 만에 이뤄진 개혁·보수 진영 간의 권력이동이다. 서울신문의 대선 여론조사·분석을 전담했던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 소장 이남영 세종대 교수, 김형준 명지대 교수, 김욱 배재대 교수의 좌담을 통해 이번 대선이 한국 사회에서 던진 의미를 성찰하고 이후의 정국 흐름을 전망해 본다. 황진선 서울신문 정치담당 부국장이 사회를 맡았다. ■ 이명박 당선의 정치적 의미 ●이남영 교수 역사적으로 볼 때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해라는 의미가 있다. 이명박 당선자는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민주화 세대로 사회 진출 후 산업화 현장을 누볐다. 역사적 부담이 되어 온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갈등이 완화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김형준 교수 두번째 정권교체가 이뤄졌다.87년 이후 5번의 선거를 통해 보수정권 10년, 진보정권 10년을 거쳐 다시 보수정권으로 회귀했다. 좌·우로의 ‘진자운동’은 정치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이같은 교체주기는 앞으로 더 짧아질 수도 있다. ●김욱 교수 두번째 정권교체가 이뤄졌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정치의 일상화’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민주화에 대한 전통적 갈망이 표면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정치가 개혁·평화와 같은 거대 슬로건보다 일자리 등 일상적인 것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명박 당선의 핵심 요인 ●이남영 교수 실제 지표가 어떠했든 국민들은 경제·교육 등 국가 근간을 이루는 주요 정책들이 실패했다고 체감했다. 이같은 ‘체감의 벽’을 정동영 후보나 진보진영 후보들은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김형준 교수 우선 범여권의 안일함을 지적할 수 있다.2002년 후보단일화 같은 ‘한방 신화’에 젖어 있었다.BBK에 모든 걸 걸다 보니 국민에게 어필할 정책이 없었다. 다른 요인은 전통적으로 ‘도덕성’을 후보 선택의 주요 기준으로 삼아 왔던 유권자들이 이번엔 ‘업적’에 대한 평가와 기대치에 따라 투표했다는 점이다. ●김욱 교수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 덕분에 한나라당은 고공비행을 할 수 있었다. 범여권이 네거티브에 매몰돼 실패했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 말고는 의지할 수단이 없는 선거구도였다. ●김형준 교수 덧붙이자면, 지난번 한나라당 경선은 영남출신 주류가 아닌 비주류가 승리한 경선이었다. 이것이 한나라당에 수구가 아닌 중도실용의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중도와 보수를 결집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 ■ 이번 대선의 특징 ●이남영 교수 경선 과정에서 후보들의 도덕성에 대한 검증이 끝났어야 하는데 미진했다. 이 때문에 본선에 와서도 검증문제로 수개월을 끌었고 정책이나 이념이 선거구도의 변수가 되지 못했다. ●김형준 교수 역대 선거에서 힘을 발휘했던 세가지 프레임이 실종됐다. 첫째 노무현 대통령이 일찍 탈당해 여당이 없는 상태에서 선거가 치러지다 보니 ‘여야 프레임’이 사라지고 ‘이명박 대 반이명박’ 구도만 만들어졌다. 둘째 ‘진보·보수’ 프레임도 이회창 후보가 출마하면서 깨졌다. 셋째 ‘이슈 프레임’이 없었다. 경제살리기가 하나의 쟁점으로 합의된 상태에서 각자의 입장을 드러내는 대립쟁점이 형성되지 못했다. ●김욱 교수 더 큰 요인은 여야가 모두 분열되면서 선거가 다자구도로 짜여졌다는 점이다. 선거구도가 불안정하니 정책대결이 이뤄지기 어려웠다. ■ 이번 선거의 긍정적 측면 ●이남영 교수 지역주의가 완화되는 조짐을 보였다. 지역연고에 함몰돼 표를 던지던 유권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중도실용을 표방한 정권이 출현함으로써 통치스타일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김형준 교수 ‘돈선거’가 완화됐다는 점은 성과다. 지난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465억원을 썼다는데 이번엔 300억원대밖에 안된다고 한다. 조직보다 홍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나타난 긍정적 조짐이다. 또 지역·이념·세대가 아닌 실리에 따라 투표를 하게 됐다. ●김욱 교수 일상적인 정권교체의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을 꼽고 싶다. 또 문국현 후보 등 새로운 세력이 등장함으로써 한국의 정당정치가 다당제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점도 평가할 대목이다. ■ 대선 이후 정국전망 ●이남영 교수 범여권이 총선을 위해 이명박 특검을 집요하게 활용할 게 분명한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특검의 영향력을 차단·완화시키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다. 이회창 신당이 창당되는 데다, 한나라당 역시 박근혜 세력 포용이라는 난제를 안고 있다. 앞으로 2∼3개월이 이명박 정권 5년의 시험대가 될 수밖에 없다. ●김형준 교수 특검은 진보진영의 재편성도 가져올 것이다.520만표 차이로 패배했다는 것은 정동영 체제로는 총선을 치르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아 남으려면 신당과 민주당, 창조한국당이 뭉치는 수밖에 없다. 연결고리는 특검이 될 것이다. 한나라당으로선 특검이 있고 내부의 박근혜 세력과 외부의 이회창 세력이 건재하는 한 전당대회가 있는 7월까지는 당내 갈등을 최소화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안전운행을 할 수밖에 없다. ●김욱 교수 이명박 특검은 정치적으로 마무리될 가능성도 있다. 이 당선자가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범여권과 타협하면서 최악의 대결을 피해야 한다. ■ 박근혜·이회창의 진로 ●이남영 교수 총선을 앞두고 공천의 상당 부분을 박근혜 전 대표측에 할애해야 하는데 순조롭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새 대통령이 모든 세력을 끌어 안고 지분 나누기식으로 당을 재편하면 과연 국민의 지지를 얼마나 받게 될지도 의문이다. 이회창 후보가 15.1%를 얻었는데 상당한 규모다. 이 정도면 충남·대전권에선 영향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김욱 교수 이회창 후보는 충남지역에서 의미 있는 득표를 했다. 충남을 연고로 둔 국민중심당과 연합해 지역에 기반을 둔 새 정치세력의 등장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측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다양한 이념·지향을 가진 세력이 형성된다는 점에서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 범여권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남영 교수 대선 정국에서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세력은 문국현 진영이다. 갓 데뷔한 정치 신인이 10년 역사의 민노당을 제쳤다. 호남의 압도적 지지를 갖고도 26%의 득표율에 머문 정동영 후보로선 지역 기반도 없는 혈혈단신 후보가 5.8%를 얻은 사실을 곰곰히 새겨 봐야 한다. 총선 때 신당에 합류할 것이란 예상도 있지만 과연 새롭게 떠오른 세력이 낡은 배에 오르려 하겠는가. ●김형준 교수 만약 내년 전당대회에서 정동영 진영이 당권을 장악한다면 수도권의 개혁성향 후보들이 문국현 쪽과 결합할 가능성도 있다. 정동영 후보가 일선에서 퇴진한 상태에서 대통합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지금과 같은 소선구제 아래서는 수도권을 한나라당에 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욱 교수 다당제는 대통령 중심제와는 잘 안 맞는다. 소선거구제와도 안맞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화되고 있는 만큼 이를 반영하는 새 선거제도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 이명박 당선자의 과제 ●이남영 교수 싫더라도 참여정부와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 정책도 상당 부분 인수받게 된다. 재평가하면서 수정할 부분은 고치면 된다. 다만 대북관계 등 몇가지 대립되는 지점이 있다. 이 역시 연속성과 일관성을 추구하는 가운데 수정·보완하는 쪽으로 가야 할 것이다. ●김형준 교수 노무현 정부의 상징적 정책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문제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북핵과 평화체제,3불정책, 부동산정책 등이다. 만약 집권 초기부터 전임 정부의 정책을 청산하는데 매달리다 보면 경제살리기는 뒤로 밀리게 될 위험성이 있다. 전임 정부의 것이라도 정치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받아들여야 한다. ●김욱 교수 이명박 정부도 큰 틀에선 개혁세력이 지금까지 만들고 다져온 정책들을 흔들 수는 없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큰 성과가 복지확대인데, 성장을 중시한다고 이미 주어진 복지를 빼앗는 것은 국민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 차기정부 임기 초 최우선 과제 ●이남영 교수 업적·성과중심으로 치달아선 안 된다. 그러다 보면 허점이 생기고, 그걸 메우려다 보면 실책이 나오기 마련이다. 군사정권 시절처럼 ‘하면 된다.’식으로 밀어붙이면 국민은 지치고, 그것이 실패할 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청계천 신화’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 한반도 대운하도 조급하게 추진할 필요가 없다. ●김형준 교수 역대 대통령들이 실패한 가장 큰 요인은 집권 초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정치에 쏟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정치 전면에 나서면 안 된다. 정치는 당과 국회에 맡겨야 한다. 다음으로 합리적·화합적 인사가 중요하다. 야당에 국가적 과제에 관한 중요 정보는 기꺼이 제공하고 동조를 얻는 것도 필요하다. ●김욱 교수 이 후보의 당선은 국민들이 보수화됐기 때문이 아니라 두터워진 중도층이 보수쪽으로 잠시 이동한 결과다. 중도층의 특성상 정부 능력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실정이 이어지면 언제든지 지지를 철회한다. 승리에 도취되지 말고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 정리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이명박 시대-당선자 행보] 부시와 통화…訪美초청 수락

    [이명박 시대-당선자 행보] 부시와 통화…訪美초청 수락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20일 오전 국립 현충원 방문을 시작으로 당선 후 첫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 시게이에 도시노리 주한 일본대사와의 잇단 면담뿐만 아니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통화도 이어졌다. 대통령 당선자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실감케 한 하루였다. ●방탄차 안타고 승합차로 현충원 방문 이 당선자는 오전 7시50분쯤 가회동 자택을 나서며 “좋은 아침이군요. 늘 감사드립니다.”라고 주민들에게 밝게 인사했다. 그는 경호를 위해 제공된 방탄차량을 마다하고 경선 때부터 타던 검은색 승합차에 올랐다. 창문을 열어 짧게 손을 흔든 뒤 국립 현충원으로 향했다. 청와대 경호팀의 삼엄한 경호뿐만 아니라 이 당선자 차량의 진행을 위한 도로 통제까지 이뤄졌다. 현충원에서는 강재섭 대표를 비롯한 당 소속의원들과 지지자들 200여명이 이 당선자를 맞았다. 헌화 및 분향을 마친 이 당선자는 방명록에 “국민을 잘 섬기겠습니다. 국민에게 희망을 드리겠습니다.”고 적었다. 이어 종로구 견지동 ‘안국포럼’ 사무실로 이동한 이 당선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축하 전화를 받았다. 축하인사와 덕담을 나누며 이 당선자는 “노무현 대통령께서 국정을 잘 수행하고 마무리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 그렇게 함으로써 임기 말에 국정손실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호업무 인수인계식에 참석해서는 대선 기간 자신을 경호해준 경찰 경호팀의 노고를 치하하고 앞으로 자신의 경호를 책임질 청와대 경호팀을 격려했다. 이 당선자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당선 후 첫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성장의 혜택이 서민과 중산층에게 돌아가는 신(新)발전체제를 열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염창동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해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당 지도부를 비롯한 1000여명의 선대위 관계자들의 환호 속에서 이 당선자는 선관위에서 교부한 당선 교부증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며 기쁨을 만끽했다. 참석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연호하며 승리의 기쁨을 다시 한번 누렸다. ●선대위 해단식서 당개혁 시사 그는 이어진 연설에서 “우리는 이제까지 여당 같은 야당을 한 것도 사실”이라면서 “이제 새로운 여당 체질을 익혀야겠다.”며 당 개혁을 시사했다. 그는 특히 “시장에서 한 할머니가 끝까지 선거에 보태라면서 3만원을 줘 어쩔 수 없이 받았다.”면서 “5년 후 그 할머니로부터 ‘내 3만원 받은 놈 일 참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당선자는 오후부터는 차기 ‘외교대통령’으로서의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북핵 문제는 모든 문제의 시작이므로 완벽히 해결돼야 한다.”면서 “6자 회담의 틀 안에서 미국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미국 입국 비자 면제, 이라크 파병 연장 등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바로 이어진 시게이에 주한 일본대사와의 면담에서는 “양국이 협력하는 것이 양국뿐만 아니라 동북아에도 도움이 된다.”며 양국의 경제·문화 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게이에 대사는 당선을 축하하며 적극적인 협력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이 당선자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호세 마뉴엘 EU집행위원장, 미 상·하원 외교위원장 등으로부터 잇단 축하 전화를 받기도 했다. 이 당선자는 대사들과의 면담 후에는 경기도 이천의 선영을 찾아 성묘를 했다. 밤에는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의 축하전화를 받았다. 부시 대통령은 당선축하 인사를 전한 뒤 취임 후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미국을 방문해 줄 것을 제안했고 이 당선자는 이를 수락했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이명박 시대-막후 주역들] “연결 안된 곳 없다”…인맥 거미줄 네트워크

    ■ 정치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승리에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이들은 몇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당선자가 서울시장 시절 데려온 서울시청팀과 범서울시청팀, 안국포럼팀, 의원그룹 등으로 구별된다. 우선 당내 기반이 거의 없었던 이 당선자를 도와 경선 캠프 선대위원장을 맡은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과 친형 이상득 현 국회부의장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영남 출신으로 당내 신망이 높은 박 위원장의 지지 선언으로 당내 세력화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친형인 이 부의장은 이 당선자를 대신해 당협위원장과 국회의원들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이들과 함께 한국갤럽 전 회장인 최시중 상임고문을 꼽을 수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로서의 경력과 정치권의 폭넓은 인맥을 통해 이 당선자에게 수시로 자문을 해왔다. 최 상임고문은 이 당선자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인물 가운데 한사람으로 꼽힌다. 이들 외에 5선의 김덕룡 의원과 이재오 의원은 이 당선자와 함께 ‘6인 회의’를 이끌며 본선에서 최고 사령탑 역할을 해왔다. 김 의원은 경선 막판에 당선자 지지선언을 해 막판 세쏠림에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이재오 의원은 당내 갈등으로 최고위원직을 사퇴했지만 대선 레이스 초반부터 이 당선자측의 야전사령관 역할을 자임하며 전장의 장수로 나서 이 당선자가 당내 기반을 마련하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이방호 의원은 ‘수협의장’이란 전국 단위의 선거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을 이끌고, 권철현 의원은 단식 농성으로 옛 주군인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사퇴를 주장하며 지원 사격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과 함께 당내 경선 때부터 이 후보를 위해 뛰었던 박형준 주호영 정종복 진수희 차명진 의원 등도 공이 컸다. 박 의원은 경선 때부터 대변인을 맡으며 기획·전략도 함께 맡으며 ‘1인 다역’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주 의원은 불교 인맥의 마당발로 이 당선자의 종교색을 희석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정 의원은 사무 1부총장으로서 종합상황실장을 맡으며 핵심역할을 해왔다. 특히 ‘리베로’로 통한 정두언 의원은 최측근으로 불리며 기획·전략 등을 담당했고 경선 후 대선준비팀장을 맡으며 사실상 선대위를 꾸리기도 했다. 서울시청팀의 역할도 컸다. 이춘식, 정태근, 박영준, 조해진, 강승규, 윤상진씨 등은 서울시장 시절부터 이 당선자와 동고동락해 왔다. 핵심 측근인 김백준 전 서울지하철공사 감사, 경선 캠프 살림살이를 맡았던 백성운 전 경기도 부지사, 외교통인 박대원 전 서울시 국제관계 대사, 탤런트 유인촌씨 등 범서울시청팀의 역할도 컸다.‘집사’로 통하는 김 전 감사는 이 당선자와 현대그룹시절부터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 왔다. 이 당선자가 서울시장에서 물러나 만든 안국포럼은 선대위에서도 핵심 실무진을 형성하며 이 당선자 곁에서 보좌했다. 오랜 당 사무처 경험에 이어 국회도서관장을 지낸 배용수 공보단장과 신재민 메시지 팀장, 권택기 스케줄팀장 등이 그들이다. 특히 권 팀장의 경우 젊은 전략가로서 이 당선자가 삼고초려해 영입한 인재다. 이밖에도 이 당선자가 국회의원 때부터 호흡을 맞춰 온 김희중 비서관과 이진영, 김윤경 비서, 그림자 수행을 맡아온 임재현씨도 이 당선자를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해 왔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학계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경제·정치·외교·안보·복지 등 전분야에 걸쳐 ‘실용주의’에 입각한 교수진의 도움을 받았다. 류우익 서울대 교수와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가 주축이다. 두 교수는 이 당선자의 싱크탱크를 이끈다. 류 교수는 국제정책연구원(GSI) 원장, 백 교수는 바른정책연구원(BPI) 원장이다. 차기 국정 운영의 포인트인 경제 분야는 곽승준 고려대 교수가 정책기획팀장을 맡아 활약했다. 강명헌 단국대 교수, 박진근 연세대 교수, 이만우 고려대 교수 등이 각각 기업지배·외환정책·재정분야 등을 담당하며 구체적인 내용을 다듬었다. 이 당선자의 핵심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해서는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 정동양 교원대 교수 등이 도왔다. 김우상 연세대 교수, 남주홍 경기대 교수가 ‘한·미동맹’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고 남성욱 고려대 교수,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 등이 ‘비핵개방 3000’의 내용을 맡았다.‘신한반도 구상’에는 현인택 고려대 교수가 참여했다. 복지 정책의 틀은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잡았다. 김성이 복지분야 공동선대위원장은 사회복지사들과 이 당선자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했다.‘대학입시 3단계 자율화’,‘고교다양화300’ 등으로 관심을 끌었던 교육 공약은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가 이주호 의원과 함께 보조를 맞춰 입안했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관계 이명박 당선자의 관가 인맥은 외교안보 부처와 경제부처, 법조계, 서울시 출신 등으로 총망라돼 있다. 경제부처 인맥으로 분류되는 강만수 전 재경부 차관은 이 당선자의 관가 인맥의 대표주자로 볼 수 있다. 이 당선자와 소망교회를 같이 다닌 인연으로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에 중용되면서 측근으로 자리 잡았다. 이 당선자의 고려대 경영학과 후배로, 한나라당 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일찌감치 이 당선자를 도왔다. 재무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사공일 특위 고문과 이용만 전 재무장관, 강만수 전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청장도 전공을 살려 각종 경제 관련 자문을 했다. 유종하 전 외교부장관은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외교·안보분야를 총괄하는 등 1인 2역을 맡아 맹활약을 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이종구 전 국방장관과 선준영 전 외교부 차관이 도왔다. 법조계에서는 이 당선자의 후원회장을 지낸 송정호 전 법무장관을 필두로 김상희 전 법무차관, 이종찬 전 서울 고검장이 있다. 이들은 검찰의 BBK 수사가 진행될 때 검찰 수사 기류를 읽고 대응 논리를 개발하는 등 ‘방패’역할을 맡았다. 이 당선자가 서울시장 재직 당시 쌓아올린 서울시 인맥은 관가 인맥의 핵심축을 이룬다. 원세훈(행시 14회) 전 행정1부시장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원 전 부시장은 인사·재정 등을 총괄하며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절대적인 힘을 발휘했다. 이는 서울시 정무 부시장 출신인 정두언 의원이 한나라당 등 정치권과의 조율에 치중한 점과 대비된다. 이 당선자의 핵심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는 행정2부시장을 지낸 장석효 특위공동위원장 주도로 세부계획이 마련됐다. 장 위원장은 부시장 재직 당시 청계천 복원사업을 진두 지휘했다. 제타룡 전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은 이 당선자와 함께 버스중앙차로제 등 대중교통 정책을 입안한 인물로, 최근까지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을 지내다 이 당선자의 곁을 다시 찾았다. 김경운·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재계 재계·금융계 출신으로는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과 지승림 알티캐스트 사장이 일찌감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선거진영에서 함께 뛰었다. 황 전 회장은 경제살리기 특별위원회 부위원장, 지 사장은 미디어홍보분과 간사다. 공교롭게 두사람 모두 삼성 출신이다. 황 전 회장은 삼성증권 사장, 지 사장은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기획홍보팀장을 각각 지냈다. 황 전 회장은 우리금융 재직 시절, 자산을 72조원이나 늘렸다. 외환은행(73조원)과 맞먹는 규모다. 별명이 ‘검투사’이다.‘토종은행론’을 주창해 금·산분리 정책에 변화가 올지 주목된다. 지 사장은 기획통으로 꼽힌다. 선거 막판에 이 당선자를 지지하고 나선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도 눈에 띈다. 진 전 장관은 삼성전자 사장을 지냈다.SK텔레콤 상무 출신의 서종렬 비즈탤런트 대표(경제살리기특위 전문위원)도 당선자의 선거캠프 동지다. 고려대 교우회장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과 이내흔 현대통신 회장,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 노치용 현대증권 부사장 등도 이 당선자와 가깝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이명박 시대-승인과 패인] ‘역전 드라마’ 못 쓴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경선 직후, 정동영 후보측 관계자들은 느긋했다.“어차피 대선은 누가 되건 51대49의 싸움 아니냐.”고 했다.“때가 되면 진보 진영 지지자들은 결집하게 마련이고 승부를 결정짓는 건 결국 ‘한방’”이라고도 했다. 대선이 불과 2개월도 안 남았던 지난 10월이었다. 그러나 결국 한방은 없었다. 기대했던 ‘BBK의혹’은 검찰의 무혐의 발표로 김이 빠졌다.BBK에 몰두했던 정 후보는 자신의 장점을 내보일 기회조차 변변히 갖질 못했다. 범여권 후보 단일화도 끝내 무산됐다. 정 후보는 대선 기간 내내 이렇다 할 역전 계기를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패배의 서곡은 이미 지난해 5·31 지방선거 참패 이후부터 울렸다. 패배주의에 휩싸인 열린우리당은 ‘새판짜기’가 절실했다. 민주당 등과의 통합, 외부 인사 영입을 줄기차게 시도했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고, 분열에 따른 파열음만 컸다. 지지층의 이탈은 가속화됐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올 여름까지 범여권의 이합집산은 계속됐다. 복잡하고 어지럽게 지리멸렬했다. 유권자들은 치열하게 전개되는 한나라당 경선으로 시선을 돌렸다. 범여권은 언론과 유권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관심을 먹고 산다.’는 정치인들로서는 치명적인 시간이었다. 대선후보 선출 이후 시작도 좋지 않았다. 경선 후 ‘내상’이 컸다. 정 후보측 한 핵심 의원은 “조직·동원 선거 시비의 후폭풍이 아니었다면 후보 선출 직후 20%를 넘기며 분위기를 잡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슈 선점에도 실패했다.‘평화대통령’,‘개성공단’ 등을 화두로 내세웠지만 이명박 당선자의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선 3일 전 이 당선자의 ‘BBK동영상’ 공개로 정 후보측은 막판 뒤집기를 기대했다.“더할 수 없는 호재”라고도 했다. 정 후보는 마지막 3일간 ‘후보 사퇴’를 촉구하며 총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시간이 모자랐다. 정 후보측 한 핵심 관계자는 “일주일 전에만 나왔어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BBK동영상이 1992년 대선의 초원 복집 사건처럼 ‘역풍’을 불렀다는 분석도 나왔다. 오히려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위기감을 자극,‘정권교체 표’의 결집을 불렀다는 것이다. 이 당선자의 당선이 확실해진 19일 밤 8시20분쯤 정 후보는 “제가 부족해서 여러분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이명박 시대-승인과 패인] 군소후보들의 좌절

    이명박 당선자의 ‘경제 대통령’에 도전장을 냈던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결국 정치 신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새 시대를 열겠다는 저에게 많은 국민께서 지지를 보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문 후보는 특정 정당에 입당해 경선을 거치는 대신 따로 정당을 만드는 것으로 정치적 활로를 모색했다. 그러나 김영춘 의원 외에 기존 정치세력의 도움은 이끌어내지 못했다. 또 모든 정파를 싸잡아 비판하는 것으로 일관, 지나치게 네거티브에 치중한 것도 지지율 정체의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자신을 ‘제3지대 후보’로 규정했고 선거 전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켜세우면서 드러난 불분명한 정체성도 유권자의 호응을 얻지 못한 원인이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선거에서 이념 구도가 무의미해진 탓에 사실상 유일한 진보 정당의 후보임에도 진보계층의 표심을 잡지 못했다. 세번째 대권 도전이 유권자들에게 식상하게 비쳐진 것도 패인 중 하나다. 그는 “국민 여러분의 판단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짧게 소감을 말했다. 역시 삼수생인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열악한 조건에서 선거를 치렀다. 출신 지역인 충청 민심도 보수 진영에 밀려 얻지 못했고 민주당 텃밭인 호남 표는 대통합민주신당에 내줬다. 선거 막바지에는 당 대표까지 사퇴를 요구하는 등 단일화 압박에 시달렸다. 그는 “자랑스러운 민주당의 깃발 아래 당원 동지 여러분과 함께 국민의 뜻을 받들어 나갈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이명박 시대-승인과 패인] CEO 출신이 연 ‘국민성공시대’

    “국민의 뜻에 따라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경제를 반드시 살리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당선 소감은 역시 ‘경제 살리기’에 대한 다짐으로 시작했다. 대선의 당락이 판가름 난 19일 밤 10시 여의도 한나라당사를 찾은 이 당선자는 기자회견을 갖고 겸손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국민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분열된 우리 사회화합과 국민통합을 반드시 이루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무소속 이회창, 창조한국당 문국현, 민주당 이인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위로의 뜻도 전했다. 이날 승리까지 그에겐 호재보다는 악재가 더 많았다. 위장전입, 위장취업, 그리고 도곡동 땅,BBK 의혹 등으로 ‘지독한 경선’과 ‘더 지독한 경선’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악재의 힘은 호재에 비해 극히 미미했다.‘반노(反盧)·비노(非盧) 정서’로 국민 저변에 폭넓게 퍼진 ‘노무현 학습효과’는 국민들의 정권교체 열망을 키워 나갔다.‘범여권 분열’,‘경제 회생’ 등의 요소와 함께 3박자로 맞물리면서 대세론으로 이어갔고, 그 대세론은 압승으로 귀결됐다. ●승리 예견한 ‘이명박=경제´ 메시지 “경제 하나는 확실히 살리겠다.”는 이 당선자의 구호는 민심을 빠른 속도로 파고들었다.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이명박이 아닌 다른 후보였다면 열 번이라도 무너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의혹의 파고를 헤친 무기는 ‘이명박=경제’라는 메시지였다. 경쟁자들이 이 당선자가 ‘안 되는 이유’를 강조할 때 그는 꾸준한 메시지로 승부한 것이다. 이 당선자의 ‘반사이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경선이 끝난 뒤 예상됐던 후보 단일화가 끝내 무산됐다. 통합신당 정동영 후보, 민주당 이인제 후보,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의 각개약진은 이 당선자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8월의 열기만큼이나 뜨거웠던 박근혜 전 대표와의 당내 경선은 이 당선자에게 최대 고비였다. 선대위의 한 관계자는 “지금 와서 돌아보니 경선이 사실상의 ‘본선’이었던 것 같다.”며 대선판을 정리했다. 이 시기에 ‘BBK주가 조작의혹’과 ‘도곡동 땅’,‘다스 차명보유’ 등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졌다.“당심에서 지고 민심에서 이겼다.”는 경선 결과가 나온 이유다. ●‘BBK 무혐의´로 지지율 다시 급상승 ‘상처뿐인 영광’인 줄 알았던 경선 승리는 이 당선자에게 정통성이라는 명분과 ‘BBK예방주사’라는 두 가지 선물을 안겼다. 범여권의 ‘BBK공세’에 이미 국민은 식상하기 시작했고 이회창 후보에 대해서는 ‘명분 없는 출마’로 압박할 수 있었다. 이 당선자에게 결정적 힘을 실어준 것은 5일에 있었던 검찰의 ‘BBK의혹’수사 결과 발표다.BBK 실소유주 여부뿐만 아니라 다스에 관해서도 이 당선자의 무결함을 선언했다. 하락세의 지지율은 급반등했고, 통합신당이 ‘이명박 특검’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대세는 기운 뒤였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이명박 시대-당선자 가족들] 당선자 집안 사람들

    [이명박 시대-당선자 가족들] 당선자 집안 사람들

    이명박 당선자와 김윤옥 여사는 딸 셋, 아들 하나를 뒀다.4남매. 요즘 기준으론 대가족이다. 이 당선자가 ‘보물 1호’라고 첫손에 꼽는 손자 6명과 사위 3명을 합치면 직계가족만 15명인 대식구다. 이런 가족을 가리켜 이 당선자는 “내 가장 든든한 백”이라고 말한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시절부터 해외 출장을 나가도 자녀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챙기는 등 세심한 부정(父情)을 보였다는 게 김 여사의 설명이다. 돈독한 가족애 덕분에 이 당선자는 대선 본선은 물론, 한나라당 경선 때도 가족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를 받았다는 얘기다. 세 딸은 모두 전업주부다. 큰딸 주연(36)씨와 둘째딸 승연(34)씨는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서 음악을 전공했고 막내딸 수연(32)씨는 이화여대 미대를 나왔다. 다 출가했다. 아들 시형(29)씨는 미혼이다. 연세대 원주캠퍼스를 거쳐 미국에서 공부했다. 올 초까지는 외국계 회사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했지만 퇴직했다. 한때 그가 군대를 가지 않았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사실무근이다. 시형씨는 육군 전방부대에서 병역을 마쳤다. 사위 3명의 면면이 화려해 눈길을 끈다. 첫째사위인 이상주(37)씨는 검사 출신으로 지금은 삼성화재 법무팀의 상무로 있다. 둘째사위 최의근(34)씨는 서울대병원 내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다. 막내딸 수연씨의 배필인 조현범(35)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차남이다. 조 회장이 전경련 회장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친동생이니 이 당선자는 자식 혼사로 재벌가와 직접 인연을 맺은 셈이다. 조석래 회장은 한나라당 경선 직전에 “이번엔 경제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대식구라 ‘사고’도 몇 번 있었다.2002년 월드컵 직후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 당선자가 축구대표팀 히딩크 감독을 시청에 초청해 명예시민증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아들 시형씨와 셋째사위 조씨만 따로 기념촬영을 하도록 해 구설에 오른 전력이 있다. 이 당선자가 위장전입 파문으로 곤욕을 치른 것도 그동안 자녀들을 사립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주소지를 옮겼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나 당선자가 직접 사과해야 했다. 큰딸 주연씨와 아들 시형씨는 이 당선자 소유 건물을 관리하는 ‘대명기업’에 ‘위장취업’해 실제론 거의 출근하지 않고도 100만∼250만원씩 월급을 받았다. 탈세 의혹이 불거지며 파문이 확산되자 이 당선자는 뒤늦게 세금을 납부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이명박 시대-그는 누구인가] 이명박 그는 누구

    [이명박 시대-그는 누구인가] 이명박 그는 누구

    ■ 정치 입문~청와대 입성 ‘정치인 이명박’이 걸어온 길은 ‘기업인 이명박’과 달랐다. 현대그룹에서 ‘샐러리맨의 신화’를 창조하며 달려온 출세가도가 아니었다. 좌절을 맛보기도 했고, 그래서 다시 도전하기도 했다. 정치무대를 떠나 전공인 건설이 아닌 금융분야에서 제2의 신화를 꿈꾸다 여의치 않아 접고는 수도 서울의 수장으로 도약기를 거쳐 최고 권좌에 오르게 됐다. ●현대와의 결별… 정치 입문 그는 ‘왕 회장’으로 불리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하려는 것을 만류하면서 현대그룹과 결별하게 된다. 이후 왕 회장의 상대 진영인 김영삼(YS) 진영으로 합류, 지난 1992년 14대 총선 때 전국구(비례대표)로 국회에 등원한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1995년 지방선거 때 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YS가 밀던 정원식 전 국무총리에게 패하고 만다. 첫번째 정치적 시련이었다. 그 이듬해 15대 총선을 준비하며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에 출마한다. 여당의 중진 이종찬 국민회의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98년 이 당선자는 다시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도전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하지만 총선 때 적발된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아 피선거권까지 박탈당했다. 당시 비용 초과 지출을 폭로했던 김유찬 당시 비서를 해외로 도피시켰다는 혐의까지 유죄로 인정되면서 “이명박의 정치 인생은 끝났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서울시장으로 화려한 재기 이후 2년간 미국에서 ‘정치 방학’을 보내며 와신상담하다가 2000년 귀국해 정치 재개에 나섰다.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다시 도전했다. 한나라당에서 5선의 중진 홍사덕 의원과 서울시장 후보를 놓고 경쟁해 후보 자리를 거머쥐게 됐다. 본선에서는 여당인 민주당의 김민석 후보를 꺾으면서 세번째 서울시장 도전만에 입성에 성공했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 때 내건 청계천 복원과 시내 5개 간선도로에 버스전용중앙차로제 도입을 내걸었다. 막상 당선되자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주변에선 적잖이 만류했다. 하지만 특유의 뚝심으로 4년 만에 해결했다.‘제2의 신화’는 ‘청계천 신화’로 이어지면서 대선 주자로서 주목받게 된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지독한 경선 2006년 6월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이 당선자는 다시 여의도 정치로 들어온다. 하지만 여의도 정치는 그가 살아온 세상과 달랐다. 한나라당의 벽은 높고 높았다. 당시 박근혜 전 대표는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당내에서 철옹성을 세우고 있었다. 여론조사에서도 박 전 대표가 이 당선자보다 높게 나오던 시절이었다. 그는 높기만 하던 당심을 허물기 위해 민심을 공략했다.‘한반도 대운하’ 등의 공약과 성공한 경제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으며 높은 지지를 얻게 된다. 그 해 추석 전후로 북한의 핵 실험 후 지지율 40%를 돌파,‘이명박 대세론’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경선룰 등을 둘러싸고 박 전 대표측과 사사건건 갈등하며 극한의 대치에 이르기도 했다. 고비마다 특유의 승부수로 돌파해 나갔다. 이상득 부의장의 동생 평이다.“내가 명박이보다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다. 나도 대기업(코오롱) 최고경영자(CEO)까지 해봤다. 하지만 명박이에게는 나에게 없는 게 하나 있다.”며 “위기 상황에서 담대하게 보고 판단하는 것은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명박이는 그걸 가지고 있다.” 그는 땅 투기 의혹과 ‘도곡동 땅’ 차명 의혹,‘BBK 주가조작 의혹’ 등 ‘지독한 경선’을 거쳐 지난 8월 20일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에 올랐다. 박 전 대표와 불과 2452표차(1.5%)밖에 나지 않는 신승이었다. 그나마 현장 투표에서 500여표 뒤진 것을 여론조사에서 뒤집었다. ●더 지독한 본선…‘BBK 공세’와 김경준의 귀국 경선 후유증은 적지 않았다. 주요 당직을 놓고 친박(친 박근혜)과 친이(친 이명박)의 갈등은 계속됐다. 박 전 대표가 ‘오만의 극치’라고 직격탄을 쏜 최측근 이재오 최고위원은 물러나야 했다. 여권의 ‘BBK 주가조작’ 공세도 거셌다. 자녀들의 ‘위장 전입’과 위장취업으로 한때 이 당선자는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이 당선자와 박근혜 전 대표와의 틈새를 파고들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회창 후보는 “불안한 후보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며 박 전 대표에게 집요하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 당선자도 박 전 대표에게 끊임없는 ‘러브콜’을 보내며 “도와달라.”고 SOS를 보냈고 박 전 대표는 “당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이 당선자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의 BBK 수사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 당선자의 측근들이 검찰에 불려나가 수사를 받았고 본인도 서면조사를 받았다. 급기야 대선을 한달 앞두고 ‘BBK 의혹’의 당사자인 김경준씨가 범죄인 인도 송환에 따라 한국으로 송환됐다. 대선판은 요동쳤다. 검찰수사 결과 ‘BBK 주가조작’에 이 당선자는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여론은 냉정했다. 검찰의 무혐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국민들이 BBK와 이 당선자가 연관돼 있다는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여론이 출렁거렸다. 이 당선자는 다시 한번 승부수를 띄운다. 부부가 살 집 한채 빼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당선자는 “오랜 기업인 생활을 끝내고 공인으로 나섰던 10여년 전부터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작정했다.”며 “재산 환원은 가난한 살림에 고생하면서도 아들을 바르게 키워 주신 어머니와의 약속이자 국민 여러분과의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당은 소위 ‘이명박 특검’을 내세워 압박 강도를 최고조로 높였다. 여야는 물리적 충돌을 불사하며 극한 대치를 이뤘다. 대선을 불과 사흘 앞두고 밤 11시30분에 대선후보 TV합동토론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전격적으로 특검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고비와 시련마다 과감한 승부수로 87년 민주화 이후 최초의 과반 득표로 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19일은 공교롭게도 이 당선자의 생일이자, 결혼기념일이기도 하다. 그는 이날 대통령 당선으로 세번째 축하 케이크를 받게 됐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유년기~현대건설 회장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사상 처음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당선자는 만 35세인 1977년 현대건설 사장에 올라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며 ‘월급쟁이’들의 우상으로 통했다. 기업인으로 숱한 화제를 뿌렸던 그는 92년 정계입문 후 시련을 딛고 마침내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기업생활 27년, 정계입문 15년 만의 일이다. 그는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 상실 등으로 정치생명이 끝나는 듯했지만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며 마침내 청와대에 입성하게 됐다. ●가난과 싸웠던 소년 시절 소년 이명박을 키운 건 가난과 어머니였다. 목장 목부로 일하던 이충우씨의 4남 3녀 중 다섯째로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다른 형제들의 이름은 상(相)자 돌림이지만 본인만 ‘명박’인 이유는 “어머니가 보름달이 치마폭에 들어오는 태몽을 꾸시고는 ‘밝을 명(明), 넓을 박(博)’자를 넣어 지었다.”고 설명했다. 족보에는 ‘상정’(相定)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고 한다. 소년 이명박은 가족들과 함께 1945년 11월 귀국선에 오른다. 하지만 배는 쓰시마섬 앞바다에서 가라앉고 말았다. 가족들은 구조됐지만 살림살이와 짐은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 말 그대로 맨몸뚱이만 귀국했다. 고향에 대한 첫 기억은 포항 시장통의 가난이었다.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가난이 굴 껍데기처럼 우리 대가족에 들러 붙었다.”고 말했다.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이 했다. 학교 다니기도 쉽지 않았다. 중학교 때 영양실조로 쓰러져 넉 달간 일어나지 못한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 등록금을 가져오라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어린 이명박은 철들기도 전에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좌판을 벌였다. 김밥, 풀빵, 엿, 아이스크림, 뻥튀기 장사 등 닥치는 대로 생활비를 벌었다. 어머니는 엄격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가난했지만 자식들을 당당히 키웠다. 자식들에게 “정직하다면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새벽 4시면 가족들은 어머니의 새벽기도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심부름으로 이웃집 일을 하러 가더라도 어머니는 어린 이명박에게 “물 한모금이라도 얻어 먹으면 안 된다. 음식을 준다고 받아 와도 안 된다.”고 단단히 일렀다. 가난은 그의 몸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군의관은 “이런 몸은 군대에서도 안 받아 준다.”고 병역 면제 처분을 내렸다. 병명은 기관지 확장증이었다. 어머니는 다시 집에 돌아온 막내아들을 부둥켜 안으며 “내 자식이 이렇게 될 때까지 내가 팽개치고 있었구나.”하고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엄하신 어머니가 처음으로 보인 눈물이었다. 이명박은 그 때를 기억할 때마다 눈물로 말을 잇지 못한다고 한다. ●대학 시절 6·3사태로 옥고 그에게 대학 진학은 언감생심이었다. 집에서는 막내아들의 고교 진학도 말렸다. 집안의 기둥 작은형(이상득 국회부의장)의 학비를 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학비는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어머니에게 약속하고 동지상고 야간부에 수석 합격했다.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받았고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가족들은 상득이형 뒷바라지를 위해 서울 이태원으로 이사갔다. 이 당선자는 이태원 재래시장 환경미화원으로 돈을 벌며 살림에 보탰다. 하지만 학업의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는 “돈이 없어 중퇴하더라도 고졸보다는 대학 중퇴가 낫지 않겠나.”하고 생각했다. 청계천 헌책방에서 수험서를 사서 입시를 준비, 고려대 상대에 붙었다. 합격 소식을 들은 이태원 시장 상인들이 새벽에 쓰레기 넝마주이 일을 맡겨준 덕에 학비를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단과대 학생회장이던 64년 한일 국교정상화에 반대하며 6·3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6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다. 죄목은 내란선동죄였다. 어머니는 그가 구속됐을 때도 “소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라.”고 가르쳤다. 출소 후 한달 여 만에 인생의 스승이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슬픔을 겪는다. 그는 “돈 벌면 어머니에게 새옷 한벌 사드리고 싶었는데 못했다.”고 말하곤 한다. ●현대그룹 입사… 초고속 승진 거듭 청년 이명박은 여느 운동권 출신과 달리 정치권이 아닌 기업을 택한다. 운동권 출신의 취직은 쉽지 않았다. 중앙정보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 발목을 잡았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나라가 열심히 사는 젊은이 앞길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고 편지를 썼다. 결국 박 대통령의 배려로 그는 당시 중소기업이던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왕 회장’으로 불리는 오너 정주영 회장의 눈에 띄었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29세에 이사,35세에 사장에 오르며 ‘샐러리맨의 신화’를 써내려 간다. 그는 종업원 96명의 현대건설을 16만명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군 중심에 자신이 있었다고 말한다. 현대그룹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오너가 정해 주는 목표치를 항상 초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오너와 경쟁했다.”고 당시를 떠올린다. 기업인 시절 ‘왕 회장’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는 에피소드도 많다. 태국 고속도로 건설공사에서 각목과 칼을 든 폭도들에 맞서 금고를 지킨 ‘태국 금고 사건’은 그 중 하나다. 현대건설 과장 시절 경부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던 때였다. 불도저가 자주 고장을 일으켰다. 기술자들이 텃새를 부려 공사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이명박 과장은 밤새도록 불도저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면서 구조를 익혀 나중에는 불도저를 직접 몰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다 보니 오해도 많이 받았다. 이웃들은 현대건설 사장과 살고 있는 부인 김윤옥씨를 가리켜 “세컨드(둘째부인)아니냐.”고 뒷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현대건설 사장 시절 사업상 건설부 장관실을 방문했을 때다. 약속 시간이 지나도 이 당선자를 장관실로 안내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이 당선자가 따지자, 장관 비서는 “사장 비서를 어떻게 장관실로 모시냐. 빨리 사장 데려 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현대그룹에 27년 동안 몸담으면서 주요 계열사 10개사의 사장 및 회장을 역임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초·중·고 학적부 열어보니 궁핍했던 시절이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초·중·고교 성적은 좋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행동발달사항에 “그림을 좋아한다.”라는 평이 인상적이다.2학년 때는 담임교사로부터 “경솔하다.”는 평도 들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결석이 없었지만 4학년에서 6학년까지는 몸이 아파 결석하는 일이 잦았다.4학년 때 16일,5학년 때 5일,6학년 때 32일을 병으로 결석했다. 이 당선자측은 “가난으로 인한 영양실조 탓으로 누워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중학교 때도 질병으로 인한 결석이 많았다.1학년 때는 결석이 74일에 이른다. 담임 교사로부터 “명랑하고 온순하다.”는 평을 받았다. 동지상고 시절에는 지금처럼 석차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 당선자는 성적이 가장 안 좋았을 때가 3등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는 장래 희망으로 ‘관리’(官吏)를 썼고, 이 당선자의 부모도 ‘본인과 동일’이라고 기재했다.‘취미 또는 특기’란은 영어로 적었다. 영어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특기는 ‘체육(탁구)’이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이명박 시대-정국 어디로] 한나라당 앞날은

    이명박 후보가 19일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한나라당의 권력구도가 어떻게 재편될지 관심이 쏠린다. 10년 내내 정권을 잡지 못한 ‘불임 정당’으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여당(與黨)으로 신분이 높아지다 보니 ‘자리 싸움’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그 수위는 이 당선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어떻게 당을 이끄느냐에 따라 한나라당이 견고한 집권여당으로 거듭날 수도, 아니면 아예 이참에 ‘두 나라’로 분가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역시 시급한 것은 경선·본선을 거치며 서로 서운함이 쌓인 박근혜 전 대표측과 화합하는 일이다. 그동안 1년 가까이 서로 싸우느라 감정의 골이 깊은 상태다. 이 당선자가 승자로서 박 전 대표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화해의 제스처를 취한다면 의외로 당 상황은 조용히 정리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박 전 대표가 숱한 예측을 뒤엎고 화끈하게 지원유세를 했기에 이 당선자가 쉽게 홀대할 수는 없으리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렇게 되면 굳이 양쪽이 4월 총선의 공천을 놓고 신경전을 벌일 필요가 없다. 적정한 선에서 ‘딜’이 가능하단 얘기다. 박 전 대표측은 아직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측근들 사이에선 불만이 적지 않다. 이 당선자 자신보다는, 주변 측근들 태도가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는 이 당선자 측근들도 마찬가지다. 경선 후 양측간에 불편함이 노출됐던 ‘전례’는 물밑에 잠수해 있을 뿐 언제든지 물 위로 떠오를 수 있는 요인이다. 박 전 대표가 ‘오만의 극치’라고 일갈한 이재오 전 최고위원 등과 박 전 대표측은 여전히 껄끄러운 관계다. 당권의 향배도 유동적이다. 강재섭 대표가 오는 7월 말까지 임기를 지키겠다는 뜻을 몇 차례 밝혔지만 이 당선자의 구상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대표직을 제외한 나머지 주요 당직은 이 당선자측이 이미 쥔 상태다. 그럼에도 이 당선자측은 “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에 ‘박근혜 사람’이 너무 많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해왔다. 지명직 최고위원에 박 전 대표측 김무성 의원, 선출직 최고위원 김학원 의원 등이 포진한 것을 겨냥한 말이다. 선거 막바지에 전격 입당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나 정몽준 의원 덕분에 당의 권력구도는 훨씬 복잡해졌다. 김 전 총재는 이날 개표상황실에 직접 나갔을 정도로 적극적이고, 정 의원도 열성적으로 유세하며 당에 재빨리 적응하고 있다. 이들의 역할이 주목되는 이유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한나라당과 이 당선자에게 남은 과제는 내년 4월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일이다. 집권 2개월도 지나지 않아 치르는 선거이니만큼 과반 의석을 확보해야 ‘이명박식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 ‘당선 우선주의’라는 논리로 ‘피바람 공천’을 할 수도, 아니면 모두 안고 가는 ‘화합 공천’을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은 이 당선자의 손에 달린 것이란 관측이다. 대선을 며칠 앞두고 이 당선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행정하는 사람이 국회를 개혁시키고 변화시키는 것은 맞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정치는 정치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실용을 중시하는 이 당선자가 이런 그의 소신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지, 한나라당 안으로 다시 시선이 쏠린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이명박 시대] 선거법 위반 52% 줄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9일 제17대 대선과 관련한 선거법 위반 행위가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1267건보다 51.9% 줄어든 610건으로 집계됐다며 비교적 깨끗한 선거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특히 공식 선거운동 기간인 지난달 27일부터 선거 전날까지 위반 건수는 258건으로, 지난 대선의 1009건보다 무려 74.4%나 감소했다. 다만 공식 선거운동기간 전에 적발된 건수는 352건으로 지난 대선 258건보다 많았다. 공식 선거운동 전 선거법 위반 건수가 많았던 것은 대선을 위한 당내 경선이 치열하게 전개된 데다 후보등록 직전까지 다수의 입후보 예정자가 활발하게 활동, 각종 단체 등의 선거관련 활동이 많아진 데 따른 것으로 선관위는 분석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