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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주석의 마지막 외출?(이정연칼럼)

    북의 김주석은 지금 80노구에 각별히 반기는 동지도 없고 별로 즐겁지도 않은 39번째의 중국여행에 올라 9일엔 산동성의 공자묘(사당)를 찾아 공자에게 제사 지내는 전통의식을 주의 깊게 관람했다고 북경방송은 전했다. 그 미덥던 지난날의 크렘린 동지들은 그 막대한 핵,장비,병력을 정치수단으로 한번 써보지도 못한채,공산주의의 조종을 스스로 치고 자기가 그렇게 매도해 마지않는 한국에 손벌려 30억달러를 얻어가는 처지요,비록 한반도가 이미 열강의 이념의 대결장을 벗어나긴 했으나 그래도 의리있던 자금성의 주인공들마저 자기가 아직 중국지방을 여행중에 있음에도 「중국과 북한이 한국전쟁을 통해 우정이 맺어지긴 했으나 북한은 이제 중국에게 있어 동맹국이 아니다」고 말하는 이 차가운 현실속에서 그는 중국이 권하는대로 10일 강소성의 경제특구라는 곳을 둘러봐야 했다.그 경제특구란 바로 한국에서 모방해간 유사자본주의 방식들로서 중국 또한 손내밀고 배워가는 곳이 한국의 자본주의 방식들이고 보면 그의 심사는 미뤄 짐작할만 하다. 배고픈 군사강국은 싫다는 소련,우리도 좀 먹고 살아야겠다는 중국,배를 곪면서도 「우리는 행복합니다」는 저 북의 2천만 인민을 언제까지 환상적인 구호속에 묶어 둘수는 없는 현실,그의 딜레마는 거기에 있다. 김정일은 「외부의 잡음」에 개의치 말라고 당원들에게 교시를 내리고 있으나 그 「잡음」이 소련 동구는 물론 중국에서도 「희망의 복음」으로 여기고 그 길에 빨리 적응 못해 안달인데 김부자만은 아직도 「오판」「맹판」을 계속 일삼고 있으니 그들을 「맹신」하는 인민들만 불쌍한 처지다. 루마니아나 동독에서 배우기가 두렵거든 중국쯤에서라도 배우고,그보다는 「남」에서 직접 배우고 협력을 구하는것이 지름길임을 알것이나 스스로 쳐놓은 장벽을 거둘때 생길 불상사가 두려워 저 모양이니 또한 딱하다. 그가 이번 방중에서 새삼 확인한 것은 이제 별쓸모 없는 「이념적 유대는 재확인」해주면서도 경제적 지원이나 북의 핵사찰거부에는 뜻을 같이 할 수 없음을 나타낸 사실이다. 김주석은 핵으로 버텨보려 하나 중국도 이미 더 이상 핵무기개발을 추진할 여력이 없어 개발 초기단계에서 그대로 주춤하고 있는 상황속에서 북의 무모한 핵개발에 찬동 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북의 연간 원유 소비량은 1백47만t으로 이는 한국의 25일분의 소비량에 불과하다.그나마 연간 80만t의 원유를 국제시세보다 싼 바터 무역방식으로 팔아 주던 소련이 이제는 국제시장 가격에다 현금결제방식 요구로 수입량은 반으로 줄어든 처지요,기껏 자동차나 오토바이는 약 3천명의 특권계급만이 소유하고 있는 북한에서 핵개발이란 당치 않다는 것이 중국이 북한에 대한 기본인식이고 보면 김주석의 이번 여행은 대단히 불편한 행차가 될 수 밖에 없다. 소련 공산당은 가장 극적으로 끝장이 난 처지로 모스크바와 평양관계를 보면 소련은 북한에 경제 군사원조를 삭감하고 민주화 개혁을 보다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 김부자는 시베리아로부터 불어오는 때아닌 훈풍에 불안한 마음이고 보면 김주석의 초조한 마음은 북경보다는 공자묘에서 오히려 편안했을 수도 있을것 같다. 어쩌면 김주석은 이제야말로 자력경생과 내식대로의 길밖엔 없을 듯 싶으나 이미 이념적 사명감을 상실한 내부적 부패,석기시대의 사고를 가진 김에 맹종하는 사람으로 이뤄진 비전없는 무모한 모험주의로는 어떤 해결책도 기대되지 않고 있다. 김주석이 들으면 심히 불쾌할 것이나 일본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김일성정권이 쓰러지고 ▲한국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북한주민들이 알게되고 ▲수백만의 난민이 38선을 넘어 남으로 내려오고 ▲사실상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소멸하고 ▲북조선 지역이 대한민국 관할하에 들어 온다는 시나리오의 실현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에 우리는 결코 동의하고 싶지 않다는 사실 또한 이해해 주기 바란다. 김주석은 이제 해를 넘기면 80이요,중국의 장정세대가 아직 일부 남아있긴 하나 이념의 시대가 이미 끝나고 경제적 이해가 앞서는 냉혹한 현실주의 토대위에서 그를 접대한 지도층을 본 이상 다시 중국땅을 밟고 싶지도 않을 것이고 보면 이번이 그의 마지막 외출일 수도 있을 것같다. 그가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새로운 현실에 눈을 가리지 말고 엄청난 변혁에 대처,난파선의선장다운 자세를 크렘린과 자금성의 지도자들의 경험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길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밖에 또 하나의 유일한 길은 남북이 진지하게 마주앉아 민족의 장래를 서로 도와가며 협의해 나가는 길이다. 남과 북의 교역은 벌써 1억달러를 넘어섰다.이제 뒷구멍 말고 대문을 열고 떳떳이 나서는 길밖에 없다.한국에 먹힐까봐 겁낼 것도 없고 지금 어버이 수령을 따르는 북의 동포들이 공자묘에 제사를 지내듯 위대한 수령으로 사후에도 모셔주기를 바라는 허망한 꿈도 하루 빨리 버려야 한다.그것은 스탈린·모택동·차우셰스쿠를 보면 금방 알 것을 공연히 되지도 않을 희망사항에 매달려 꿈자리만 괴롭힐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아는 이 명명백백한 사실을 역사상 어느 독재자도 스스로 깨닫고 택한 일이 없다는 사실이 비극일 수밖에 없다.비민주적 방법으로 출범한 정부가 민주적 통치를 할 수는 없다는 것도 역사에 기록돼 있는 사실이고.
  • 공자묘등 참관/김일성 방중 6일째

    【내외】 중국을 방문중인 김일성은 9일 산동성 곡부시의 역사유적인 공자묘(사당)와 공부·공림을 둘러보았다고 북한방송과 북경방송이 이날 보도했다. 중국방문 6일째를 맞은 김일성은 이날 공자묘를 방문,공자에게 제사지내는 전통의식을 관람했으며 공자의 맏아들과 장손이 살던 집인 공부,공자와 그 자손들의 묘지인 공림도 참관했다고 이들 방송은 전했다.
  • 중·북한 이견 심각/우호관계에 상처/불지,김일성 방중 보도

    【파리=박강문특파원】 최근 김일성 북한주석의 북경방문을 계기로 중국의 대한외교정책과 북한의 핵기지 설치문제에 대한 양측의 견해차이가 드러났으며 이로 인해 「전통적 우호관계」에 틈이 벌어진 것같다고 8일 프랑스 일간신문 르 피가로가 북경발 기사로 보도했다. 「북경·평양,사이 나빠지다」라는 제목의 이 기사에서 르 피가로는 개방과 개혁권고에 귀를 막고 있는 김일성의 과대망상증에 대한 중국지도층의 초조감을 반영하는 듯한 일련의 이례적인 일들이 그의 북경방문기간중 일어났다고 밝혔다.
  • 강택민·양상곤·이붕/북경역서 포옹 영접/김일성 중국방문 이모저모

    ◎꽃다발·국기 든 7백명 동원/숙소는 조어대… 연도엔 환영시민 안보여 ○…김일성이 특별열차편으로 도착한 북경역 구내에는 외국기자들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아 대부분의 북경주재특파원들은 역주변에서 김의 차량행렬을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중국관영 신화사통신은 김이 4일 상오 10시에 북경역에 도착,영접나온 강택민총서기,양상곤국가주석,이붕총리등과 포옹하며 인사말을 주고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오성홍기와 인공기가 나부끼는 가운데 역 구내에서 환영식이 벌어져 김과 강택민·양상곤·이붕등이 중국인민해방군의장대를 사열했다.이날 환영식장에는 손에 꽃다발과 양국 국기를 든 약7백여명의 북한·중국주민들이 동원돼 김의 북경방문을 환영했다.이들중 북한 주민들은 약2백∼3백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경역에 나온 중국측 주요인사로는 이철영(정치국원) 오학겸(부총리) 진기위(국방부장) 유화청(당중앙군사위부비서장) 온가보(당서기) 진희동(북경시장)등이다. 김일성일행이 탄차량 행렬은 10시10분쯤 북경역을 출발,숙소인 조어대로 향했다.김이 강택민과 함께 탔을 것으로 짐작되는 세단을 선두로 약50대의 차량이 뒤를 이어 북경역을 빠져나갔으나 연도의 시민들은 손을 흔들거나 박수를 치지는 않았다. 차량행렬이 지나는 장안로와 복흥로에는 4일아침 일찍부터 군데군데에 5색의 천(깃발모양)을 걸어 환영을 표시했으며 천안문광장에는 북한의 인공기와 중국의 오성홍기를 꽂아 놓기도 했다. 이날 아침 북경주재 북한대사관 주변은 전에없이 한산하고 조용했다.모두들 김을 환영하기 위해 동원된듯 보였다. ○…중국외교부관리들은 김의 일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4일 하오 강택민총서기가 주최하는 환영연이 열리고 5일에는 이붕총리와 회담할 것이라는 내용만 밝히고 그외의 질문에는 일체함구.
  • “다음 세대에도 사회주의 고수”/김일성 강조

    【내외】 북한 김일성은 지난 21일 현재 북한의 노동당과 국내정세가 안정돼 있다고 호언하면서 앞으로도 사회주의체제를 계속 고수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일성은 이날 방북중인 중국 유색금속공업총회사대표단(단장 부총경리 오건상)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에 대해 『평화적 이행전략을 진행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생각은 잘목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가운데 이같이 강조하면서 북한이 다음 세대에도 사회주의를 견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북경방송이 22일 보도했다.
  • 한국과 유엔… 되돌아본 44년사

    ◎한반도 문제 57년 총회에 첫 상정/48년 총회서 유일 합법정부 결의안 통과/6.25땐 연합군 파견·재건단 창설 지원도 17일 유엔가입을 계기로 한·유엔관계를 되새겨 보면 우리나라가 유엔과 유지해온 관계는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유엔은 지난 47년 한반도문제가 2차 유엔총회에 상정되면서부터 관계를 맺기 시작해 48년 정부수립,50년 한국전쟁 발발,동서냉전체제하의 유엔가입 공방등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한반도문제가 미결과제의 형태로 54년부터 75년까지 계속해서 유엔총회의 자동안건이 되어야 했던 씁쓸한 과거사도 한·유엔관계를 들추다 보면 어김없이 반추되는 대목이다. 한국문제가 처음 유엔에 등장한 것은 47년 제2차 총회때 미국의 제안에 따라 유엔임시위원단(UNTCOK)을 구성,한반도 전역의 총선거를 감시하도록 했을 때이다.그러나 당시에는 이미 냉전고착화 조짐속에 미소간에 치열한 이념·체제 대립이 전개되고 있던 터라 UNTCOK는 입북을 거부당해 위원단은 접근이 가능한 남한에서의 총선거만을 지켜보게 됐다.유엔은 또 48년 3차 총회에서 『한국정부가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상설기관인 유엔한국위원단(UNCOK)을 구성,한반도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유엔은 즉각 안보리 회의를 소집,북한의 행위를 유엔헌장상 침략·파괴 행위로 규정짓는 결의안을 채택했다.이같은 결의안에도 불구,침공이 계속되자 16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연합군을 파견,한국에 유엔기가 나부끼게 됐다.이와함께 유엔은 한국재건단(UNKRA)을 창설,한국관련 연례보고서를 제출받아 한국문제가 총회에 자동 상정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설치된 주한유엔군사령부는 휴전협정체결의 한 당사자가 됐으며 협정 이후에도 지금까지 군사정전위등에 참여,한반도의 평화유지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다.정부도 51년 11월 6일 임병직씨를 초대 유엔주재상주대표부 대사로 임명,유엔과의 협조관계등을 강화시키기 시작했다.이후 유엔주재대사는 현재의 노창희대사에 이르기까지 14명에 이른다. 50년대 우리의 대유엔외교는 미국등 자유진영이 다수를 점한 유엔의세력분포를 배경으로 추진됐으나 6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었다.사회주의 성향이 주조를 이루는 비동맹국가들이 대거 유엔에 가입,「한표」행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이는 바로 북한의 선전공세 강화로 직결된다. 이같이 상황이 변하자 정부는 한반도문제의 연례적인 총회 상정이 득표노력등 외교적 소모를 가속화시킨다는 판단 아래 71년 「한국문제토의연기안」을 상정,총회에서 통과시켰다.북한은 당시 비동맹국가들을 등에 업고 「총회공세」를 계속 전개했다.이 기간이 우리의 대유엔외교사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라고 외교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키신저미국무장관의 북경방문등으로 데탕트시대가 열리고 비동맹국들의 온건화가 두드러지면서 75년 제30차 총회를 고비로 한국문제는 더이상 총회의 단골메뉴에서 사라지게 됐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북방외교의 결실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유엔가입을 추진한 결과 국제적 지지분위기가 확산되자 남북한유엔동시가입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역대 주유엔대사 1 임병직 51·11∼60· 9 2임창영 60· 9∼61· 6 3 이수영 61· 7∼64· 5 4 김용식 64· 6∼71· 1 5 한표욱 71· 7∼73· 5 6 박동진 73· 5∼75·12 7 문덕주 76· 3∼79· 4 8 윤석헌 79· 4∼81·12 9 김경원 81·12∼85·10 10 최광수 85·10∼86·10 11 박 근 86·10∼88· 3 12 박쌍용 88· 3∼90· 3 13 현홍주 90· 5∼91· 2 14 노창희 91· 3∼현재 *한병기 (75·7∼77·5문화담당유엔대사)
  • 「화평연변」 저지 특위 구성/중국

    ◎등의 개혁파기용 구상 난관에/“인권 개선 안되면 최혜국대우 철회”/방중 미의원단 【홍콩 연합】 중국 공산당 총서기 강택민은 내년에 열릴 당 제14기 전국대표대회(14전대회)의 준비를 총괄할 고위 공작소조를 구성했으며 최근의 소련사태는 당과 국가의 최고위직 인사 개편과 세대교체가 예상되는 14전대회에서 보수파 원로지도자들과 중앙계획경제를 옹호하는 강경파 지도자들이 현직을 고수하는데 유리한 작용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가 5일 보도했다. 포스트지는 또 중국 소식통의 말을 인용,소련사태 이후 당중앙위원회는 중앙위내에 중국의 사회주의체제를 평화적으로 전복시키려는 서방측의 평화연변 노력을 저지하기 위한 고위급 특별위원회(공작소조)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5일 배포된 홍콩의 시사월간 경보 최신호에 따르면 14전대회 준비·감독을 위한 공작소조(위원회)는 9명의 최고위 당간부와 정치국 상무위원 송평,정치국 상무위원 이서환,정치국원겸 전인대 상무위원장 만리,정치국원겸 국방부장 진기위,당중앙고문위 부주임 박일파,당중앙판공청(사무국)주임 온가보,당중앙조직부장 여풍,당중앙선전부장 왕인지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홍콩·북경 UPI 로이터 연합】 미의회 인권대표단은 5일 중국이 정치범과 종교범들을 석방하고 인권을 개선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중국에 대한 무역상 최혜국대우(MFN)를 철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3일간의 중국 방문을 마치고 이날 홍콩에 도착한 이들 대표단은 기자들에게 이번 북경방문이 중국 고위급 관리들에게 인권에 대한 우려를 표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면서 이같이 경고했다.
  • M·L주의 포기한 개혁의 주역/고르비 집권에서 실각까지

    ◎85년 서기장 피선·90년 대통령으로/신사고로 세계냉전의 흐름을 바꿔 집권 6년5개월만에 실각된 고르바초프는 세계정세의 흐름을 냉전에서 데탕트로 바꿔놓은 장본인. 체르넨코가 서거함에 따라 러시아혁명(1917년) 이후에 출생한 최초의 소련지도자로서 지난 85년3월11일 54세의 나이로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된 고르바초프는 집권직후부터 「인간적인 사회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신사고외교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및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을 추진,사회주의혁명 70년의 낡은 유물들을 몰아내기 위한 일대운동을 전개했다.총성없는 「제2의 러시아혁명」을 시작한 것이다. 사유재산제를 도입하는 등 소련경제를 철저한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시키고 공산당 권력독점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는 등 국내에서의 엄청난 정치·경제적 변화를 주도했다. 국제적으로도 지난 88년 브레즈네프독트린을 폐기하고 동유럽개혁 불간섭을 선언,동구전역을 휩쓴 민주화물결의 불을 댕겼다.독일통일도 고르바초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지난달 모스크바 미소정상회담에서 역사적인 전략무기감축협정에 조인하는 등 미소관계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에까지 화해의 대기운을 몰고온 것도 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거나 최소한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지난해 6월 노태우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한소수교를 맺고 지난 4월 방한했는가 하면 북한에 개방압력을 꾸준히 가하는 등 한반도의 해빙무드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있다. 이같은 국제무대에서의 빛나는 업적으로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는 격찬을 받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같은 급속한 개혁추진과정에서 정치·경제적 대혼란이 불가피하게 수반돼 인기가 곤두박질쳤다.식량위기 등 극심한 경제난에 따른 불만이 극에 달했다.지난달 런던에서 서방선진7개국 정상들과 회담을 갖는 등 서방세계로부터 대소경제지원을 얻어내기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한 채 국내에서는 오히려 구걸외교라는 비난을 사기도했다.발트3국을 비롯한 소수민족의 독립요구에 따른 연방해체위기로 골머리를 썩이면서 러시아공화국 등 9개공화국과 신연방조약 체결을 추진,20일 조인할 예정이었다. 급진개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있는 보수파와 더딘 개혁속도를 못마땅해하는 개혁파의 협공 속에서 어려운 줄타기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자신에게 도전한 보수파의 거두 리가초프를 제거하는데 성공하는 등 위기를 맞을 때마다 번번이 승리를 이끌어내 간간이 나돌던 실각설을 비웃으며 정치의 마술사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60세로 지난 31년 남부 러시아의 프리볼노예에서 출생,모스크바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78년 농업담당서기로 당중앙위에 진출,80년 정치국원이 됐다.헌법을 개정,지난해 5월 임기5년의 대통령직에 선출돼 공산당서기장과 겸직하던중 1년 남짓만에 도중하차하는 불운의 주인공이 돼버렸으나 고르바초프라는 이름은 세계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고르바초프 연보 ▲31.3.2 러시아공 프리볼노예에서 출생 ▲50 모스크바대 법학과 입학 ▲52 공산당 청년조직(콤소몰)에 가입 ▲78 공산당 농업담당 서기 ▲80 정치국정위원 ▲85.3.11 공산당 서기장 ▲85.8 핵실험 일방중지 선언 ▲85.11 레이건과 제네바에서 제1차 정상회담 ▲86.10 레이캬비크에서 레이건과 2차 정상회담 ▲87.12 워싱턴 방문,INF 폐기협정서명 ▲88.9 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 ▲89.5 북경방문,최고회의 의장 피선 ▲89.10 몰타정상회담,냉전종식선언 ▲90.3.15 5년임기의 초대대통령 취임 ▲90.5 워싱턴방문,미소정상회담,전략핵감축합의 ▲90.6 샌프란시스코한소정상회담 ▲90.10 한소수교 ▲90.10.15 노벨평화상 수상 ▲90.12 모스크바서 한소정상회담 ▲91.4.16 방일 ▲91.4.19 방한 ▲91.7.26 소련공산당 중앙위서 마르크스­레닌주의 포기,신강령안채택 ▲91.7.30∼31 모스크바서 미소정상회담,START(전략무기감축협정)조인
  • 베트남/쿠바/북한/중국 맹주로 다시 뭉친다

    ◎「소 민주화」 이후 남은 공산국들의 동향/대중전쟁 상흔 씻고 국교정상화 합의/베트남/88년부터 중국 접근,올 10월 수교할듯/쿠바/줄타기 외교 탈피… 세습 인정받고 밀월/북한/공통점/배신감속 체제붕괴 위기감 일치/혁명1세대가 집권… 경제난 심각/서방지원 절실… 동맹까진 안갈듯 전세계적인 탈공산주의 움직임에 강력히 저항하고 있는 이른바 잔존공산국가들이 중국을 중심으로 단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과거의 종주국 소련이 「변절」하자 새로운 맹주로 중국을 옹립하려는 것이며 중국 또한 이를 마다않고 세규합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 대표적인 나라로 쿠바와 베트남 북한을 꼽을 수 있으며 라오스와 캄보디아도 곧 이들과 행동을 같이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이들중 북한을 제외하면 모두가 몇년전까지만 해도 친소반중국국가들로 중국과는 적대관계를 유지해 왔었다. 이들 잔존공산국가들의 또다른 특징은 대부분 경제적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다 아직도 혁명 1세대 원로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중국의 사실상 최고권력층인 80대 혁명원로들을 비롯,쿠바의 카스트로나 북한의 김일성이 모두 혁명1세들이고 인도차이나반도 3국도 사실상 혁명1세들이 집권하고 있다. ○중국,세 규합 적극적 이들이 중국주변으로 모여드는 것은 물론 소련·동구국가들이 과거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팽개친채 모두 제갈길로 가고 있는데서 오는 외로움과 배신감,그리고 체제붕괴의 위기감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10여년전 중국의 침공을 받기까지 했다.월남전쟁을 승리로 이끈후 중소분쟁의 와중에서 소련과 손을 잡은 베트남은 철저한 반중국노선을 걸어왔다. 친중국계가 집권중인 캄보디아를 소련의 지원아래 침공,10년간이나 지배해 왔으며 캄란만등지를 소련의 군사기지로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던 베트남이 중국과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다.최근 북경에서 열린 양국 외무차관회담은 해묵은 난제인 캄보디아문제를 조속히 해결키로 합의했으며 국교정상화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이에 앞서 도 무오이에게 지난 6월 서기장직을 넘겨준 구엔 반 린 당시 베트남공산당서기장도 강택민중앙당총서기와 중국남부도시 남령에서 비밀회담을 갖고 중월양국 및 양당관계를 회복키로 하고 사회주의의 장래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눈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쿠바의 경우 중국과는 건국이래 줄곧 국교를 맺지 않았다.50년대말 카스트로가 집권한이래 당시부터 시작된 중소분쟁에서 철저하게 소련편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중­베트남 비밀회담 그러나 이제는 쿠바도 달라졌다.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에 배신감을 느껴 모스크바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 지난 88년부터 중국과는 당 관계의 교류를 시작했으며 오는 10월이나 11월쯤 강택민총서기가 쿠바를 방문하면 국교정상화를 선언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카스트로의 중국방문도 내년쯤에는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이미 북경방문 초청을 수락한 상태여서 내년중에 중국과 북한방문길에 오를 것으로 외교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북한의 경우 지금까지 줄곧 중소틈바구니에서 줄타기외교를 펴왔다.이제 소련이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있는 마당에 중국쪽으로 기우는 것은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 북한과 중국은 최근 몇년동안 공개 또는 비공개 수뇌회담을 수차례 열어 양국의 진로문제를 협의해온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특히 등소평 강택민등 중국지도층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합한이래 한반도에서도 그런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위해 끈질기게 김일성을 설득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쟁명은 8월호에서 중국은 한반도반쪽에서나마 사회주의를 지키기위해 북한의 일국이체제통일방식을 이국이체제 평화공존방식으로 바꾸도록 김일성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그결과 북한이 일본과 수교를 추진하고 남북한 유엔동시가입까지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이다. 대신 중국은 그동안 못마땅해하던 김일성·김정일 부자세습을 인정키로 확약했으며 경제·군사원조까지 약속한 것으로 이 잡지는 보도했다. ○생존위한 협력관계 이같이 잔존공산국가들이 불편했던 과거를 묻어버린채 조용히 유대를 다지고 있다.하지만 이들의 단합이 과거 냉전체제때와 같은 강력한 동맹조직으로 발전하기는 어려울것같다.그들은 힘이 부족하다.그래서 서방세계와 맞서려했다간 강력한 역공을 받게될지도 모른다. 뿐만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쿠바 베트남 북한등은 현재의 경제적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서방의 지원이 절대 필요하다.이 어려움은 잔존공산권 자체의 단합만으로는 도저히 풀수가 없다. 따라서 이들의 단결은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고 체제유지를 도와주는 자기방어적 협력관계를 벗어나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북한,주중대사 긴급소환/권력승계 관련 김정일 방중논의 예상

    ◎주창준 급거 귀국 북한의 주창준주중대사가 김정일의 중국방문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최근 북한당국으로부터 긴급 소환돼 본국으로 급거 일시 귀국한 것으로 31일 알려졌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날 『북한 주대사의 일시귀국 일자와 목적 등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을 눈앞에 두고 소환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말하고 『북한이 최근 김정일에 대한 권력승계작업을 강화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때 주대사는 평양에서 북한지도부와 권력승계문제에 따른 김정일의 중국방문계획을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지난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후계자로 정식 거론되기 시작한 김정일의 북경방문은 권력승계를 대내외에 공식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김정일의 중국방문시기는 오는 9월17일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을 전후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예상했다. 김정일은 지난 5월27일 노동당중앙위 행사에서 처음으로 당정책전반에 대해 연설을 했으며 지난 7월1일 인민경제대학 창립45주년 기념보고회에서는김정일에 대해 「위대한 수령」이라는 격상된 용어를 사용하는등 북한은 오는 92년 김일성주석의 80세 생일을 앞두고 권력세습작업을 강화해 왔다. 김정일은 지난 4월말 북경 방문을 추진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주북경 북한대사관은 배용재공사가 대리 대사업무를 맡고 있다.
  • 상습적 「법정소란」 발본 의지/「강군치사」공판 난동 구속방침 안팎

    ◎“더 이상 방관땐 국기 문란” 판단/검찰,「긴급 구속장」 발부등 강경 대응 검찰이 6일 강경대군 치사사건 공판에서 난동을 부린 5명을 구속한 것은 시국사건 재판에서 어김없이 벌어지는 법정소란행위를 더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검찰이 직접 법정소란행위에 대해 수사에 나서 관련자들을 구속하기로한 것은 지금까지 그 예가 없었던 일로 이는 법원의 자체적인 소란방지책에만 의존해서는 법정소란을 막을 수 없다는 뜻으로도 풀이되고 있다. 특히 검찰이 소란행위를 주동한 강군의 유가족3명과 「민가협」회원등 7명가운데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를 포함,5명을 구속대상자로 꼽은 것은 예상보다 숫자가 많은 것으로 사법제도를 부정하는 사람은 피해자의 가족일지라도 관용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검찰은 당초 그동안 시국사건의 재판정을 찾아다니며 상습적으로 소란행위를 일삼아온 「민가협」회원 오영자씨등 2∼3명을 구속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으나 강군 가족의 신병처리문제를 놓고는 고심을 거듭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4일의 법정난동사건이 알려진뒤 대법원과 법무부,검찰,변호사협회등 전법조계가 강력대응방침을 밝히고 국가의 기본질서를 뒤흔드는 행위로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강군의 가족을 비롯한 주동자전원을 구속한다는 방침으로 급선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관련자들을 검거하기 위해 검찰이 긴급 구속장을 발부한 것도 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영장이 발부되기까지 하루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언론보도를 보고 범인들이 달아나기전에 신병을 신속히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지는 이 제도는 인권침해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수사기관은 극히 신중을 기하는 것이 보통이다. 형사노동법의 긴급구속제도는 유신헌법에서 채택된 것으로 징역 또는 금고 3년이상의 죄를 저지른 사람을 긴급히 구속할 필요가 있을때 발부되며 신병을 확보한뒤 48시간안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검찰의 이같은 강경방침에 대해 법정소란을 막기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강군치사사건과 김기설씨 유서대필사건이후 정원식총리서리폭행사건과 맞물려 정국을 전환하기 위한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또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동정론도 일고 있으며 재판부가 난동을 충분히 막을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재판부는 법정안에 교도대원 30명과 정리·청원경찰·법원직원 10명등 40여명이 있었음에도 재판시작때부터 설득이나 주의·퇴정명령을 한번도 내리지 않아 재판운영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법정안에서 변호사를 폭행했으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검사와 재판부,변호인에게 퍼부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소란을 벌인 사람들의 행위는 처벌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덕주대법원장의 이례적인 특별담화나 변협의 긴급 이사회를 통한 유감표명등도 법정의 신성함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며 대다수 국민들은 이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 모택동,김일성의 남침 “원칙적 지지”(비사 중국의 한국전개입:1)

    ◎북경자료 분석 통한 진겸 교수(미 뉴욕주립대)의 추적/“아시아 공산화 기회” 판단/한국군 38선 돌파에 파병 결심/“10월15일 15개 사단 투입” 스탈린에 통보/낙동강전투 때 인천상륙 예상하기도 1950년 6·25 동란 발발 당시 북경정부는 중국의 국가안보와 한반도 공산화를 위해 유엔군의 반격이 개시되기 전부터 한국전 개입을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미 뉴욕주립대의 진겸 교수가 주장했다. 중국계인 진 교수는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미 대외관계 역사학회 제17차 연례회의에서 발표한 「한국동란중 중국의 목표변화」라는 연구논문에서 최근 공개된 중국 자료를 통해 베일에 싸였던 모택동의 개입결정과정을 소개했다. 이 논문의 요지를 5회에 걸쳐 소개한다. 1950년 6월25일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자 해디 트루먼 미 대통령은 남한 구출 결의를 즉각 천명하는 한편 대만해협에서 중국군를 견제하기 위해 미 제7함대를 이 수역으로 급파했다. 이러한 미국의 조치는 모택동과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충격과 더불어 몇 가지 심각한 도전을안겼다. 첫째,아시아 태평양에서 공산주의 팽창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신호인 미국의 강경대응은 「동아시아가 제국주의 국제전선의 취약지대」라고 믿어온 북경 공산정권의 전반적인 인식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둘째,7함대의 대만해협 이동은 중공당 군부가 1949년 가을 이래 준비해온 대만 해방계획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셋째,북한군과 미국 주도 유엔군의 군사대결은 중국의 국가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한국전은 중공당 최고의 과제인 아시아 공산화와 관련,중국 혁명의 영향확대 기회를 제공한 것이었다. 모택동과 중공당 지도부가 한국전에 대해 가졌던 인식은 미군 축출에 실패하면 중국에 위험하고 성공하면 아시아 공산혁명을 진전시킬 수 있다는 복합적인 것이었다. 최근 공개된 자료들에 따르면 김일성은 정확한 남침일자 등 세부계획을 중국에 알려주지 않았지만 중공당 지도부는 북한의 남침 의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며 원칙적으로 이를 지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중공당 지도부는 북한의 남침 전부터 남북한간에 군사대결이 불가피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한국전 발발 5일 후인 1950년 6월30일 중국정부 총리이며 중공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인 주은래는 김일성과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전쟁자료 수집을 위해 대부분이 군사정보요원으로 구성된 일단의 중국 외교관을 북한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7월7일과 10일 주은래는 모택동의 지시에 따라 한국전 관련 군사대비 문제에 초점을 맞춘 2개 회의를 주재했다. 이 두 회의에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졌다. 즉 인민해방군의 정예부대인 제4야전군 산하 13군단을 동북국경방위군으로 즉각 개편,필요할 경우 한국전 개입에 대비한다는 것이었다. 7월13일 중앙군사위는 동북국경방위군 창설 명령를 공식하달하고 인민해방군에서 가장 유능한 지휘관 가운데 한 사람인 15군단장 등화를 13군단장에 임명했다. 또 동북군구 사령관이며 정치위원인 고강으로 하여금 모든 준비업무를 지원토록 했다. 이리하여 8월초까지 25만명 이상의 중국군 병력이 한·만 국경에 포진했다.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갔을 때 중국군 간부들은주은래에게 북한군 후방에 대한 미군의 기습공격을 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미군 상륙이 가능한 지점으로 군산과 인천을 지적했다. 유엔군 증강과 더불어 중공당 지도부는 한국내 군사상황의 악화를 우려,한국전 개입 준비를 서두르면서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9월15일)하기 1개월 전인 8월에 이미 북한군 지원을 위한 9월초 파병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8월말까지 훈련과 그밖의 다른 개입준비를 마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너무 촉박하다는 이유를 들어 고강은 준비기간을 9월말까지 연장해주도록 건의했다. 중국은 또 파병 전에 소련의 협조와 김일성의 동의를 얻는 것이 필요했다. 두 개가 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9월17일 중앙군사위는 파병에 대비,한국의 지형을 조사하기 위한 일단의 군 장교들을 북한에 파견했다. 9월20일 주은래는 중국의 한국전 개입 기본원칙을 수립,모택동의 승인을 받았다. 중국정부는 또 한국전 개입시의 중·소 협조 가능성을 소련과 협의했다. 중국과 소련은 쉽게 일반적인 이해에 도달했다. 중국 지상군이 한국전에 투입되면 소련은 공군을 보내 중국군에 공중우산을 제공하기로 했다. 중국군 파병에 관한 최종결정은 10월1일과 2일 사이에 이뤄졌다. 이에 앞서 9월30일 한국군 제3사단이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진격했고 다음날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김일성에게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10월1일 김일성은 평양 주재 중국 대사 예지량과의 긴급회담에서 중국군 개입을 요청했다. 김일성은 또 부총리 박헌영을 모택동에게 보내 이같은 요청을 거듭했다. 10월2일 모택동은 중앙군사위 이름으로 13군단에 대해 임전태세를 완료하고 명령에 따라 언제든지 전쟁에 돌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같은날 모택동은 스탈린에게 전문을 보내 소위 「중국의용군」 파병결정을 통보했다. 당시 모택동의 계산은 중국의 병력과 소련의 무기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우선 중국군 12개 사단을 10월15일까지 북한에 투입,38선 이북에서 방어태세를 취하며 소련 무기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겠다고 스탈린에게 말했다. 또 1951년 봄엔 중국군 24개 사단을 추가 파병하면서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해 미군을 섬멸하겠다는 것이었다. 10월3∼5일간 중공당은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모택동의 파병결정에 대한 지도부내 이견을 해소하고 팽덕회를 중국 인민의용군 총참모장으로 선임했다.
  • 김일성·전기침 회동

    【서울 연합】 북한 김일성은 19일 평양을 방문중인 중국 외교부장 전기침과 만난 자리에서 통일문제와 관련,「1민족 1국가 2개 제도 2개 정부에 기초한 고려연방제 통일방식」을 거듭 강조했다고 북경방송이 20일 하오 보도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북경방송은 김일성이 북한의 「복잡한 정세」 아래서 북중간 단결과 협조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으며 전기침은 북한의 유엔가입 의사 결정이 한반도 정세 안정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 “6백년 전통 깨졌다”… 유림 속앓이/김양 시신 성대 운구의 파장

    ◎김 성균관장·장 총장에 해명 요구/청년유림,현 집행부 불신 움직임 성균관측의 반대를 무릎쓰고 김귀정양의 유해가 성균관대에 들어가 하루밤을 묵고 장례를 치른 데 대해 유림 쪽에서 강력히 반발,문제가 되고 있다. 전국의 유림을 관장하고 있는 성균관측은 재야운동권에 의해 교내로 운구가 강행되자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여 삼삼오오로 대책을 논의하고 있으나 묘방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유림들은 『성균관은 공자를 위시한 여러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초대 총장이자 유림의 거목이었던 심산 김창숙 선생의 유해조차 학교 안에 들이지 않았었다』면서 『6백년 동안 지켜졌던 이같은 전통이 무너진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개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당수 유림들이 이번 사건의 책임을 물어 현 집행부를 불신임할 움직임까지 보여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물론 집행부를 중심으로 한 일부에서는 『운구가 정문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으니 전통이 깨진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를 펴고 있기는 하다. 이들은 이번 사건을 확대하면 집행부에 득이 될 게 없다는 계산으로 지방유림들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 묘안을 찾느라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유림들은 11일에 이어 12일에도 속속 서울에 올라오거나 전화를 걸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성균관측으로서는 김경수 관장이 지병으로 입원하고 있는 데다 부관장 5명 또한 지난달말 임명이 됐을 뿐 아직 정식으로 취임도 하지 않은 상태여서 매우 딱한 입장이다. 이에 따라 김 관장이 퇴원할 예정인 이번주말이나 다음주초가 되어서야 시·도본부 위원장 및 재단이사장 등 50여 명으로 구성되는 대표자회의를 열어 향후 입장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성균관측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대표자회의에서는 서로 다른 견해가 백출,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끝나게 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대표자회의에서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 아직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는 임시총회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 임시총회는 성균관중앙임원과 유도회중앙위원 및 2백57개 지부장,전국의2백31개 향교 대표 등 7백50여 명으로 짜여진다. 이처럼 성균관측이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청년유도회(회장 최창학)를 중심으로 한 상당수 유림들은 성균관과 학교측에 계속 책임을 묻고 있어 어떤 방식으로라도 조만간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데 고민이 있다. 청년유도회 유림 20여 명은 교내 운구가 강행된 11일 밤 유림회관 2층에서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이 일이 『유교의 오랜 전통을 위배한 것』이라고 결론짓고 김 성균관장과 장을병 성균관대 총장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성균관측은 이같은 반발에 대해 『학생들이 다중의 힘으로 옆문으로 운구해가는 것을 더 이상 막을 힘이 없어 일이 그렇게 된 것이지 결코 우리가 허용해준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성균관측은 당초 유해를 학교 안에 들여올 경우 장 총장에 대한 사퇴압력 등 강경방침을 세웠으나 운구 당시의 분위기로 보아 「허용 반 포기 반」의 인상이 짙어 이같은 방침을 실행에 옮기는 데도 상당히 어정쩡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어쟀든 성균관측은 내부에서마저 『유해의 정문통과를 막았으니 더 이상의 거론은 이득될 것이 없다』는 실리론과 『성역 안에 유해가 들어온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명분론이 팽팽히 맞서 있어 앞으로 한동안 갈등이 거듭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 “한반도서 미­소경쟁시대 끝났다”/한·소 학술회의 소측 발표 내용

    ◎주한미군 급격한 감축은 안정 해쳐/「유럽안보협」과 같은 아태기구 필요/중­북한 「형제관계」 복귀땐 「모험」 부추길 우려 외교안보연구원(원장 임동원)과 국제무역경영연구원(원장 금진호)이 소련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한소학술회의가 10일 개막됐다. 다음은 12일까지 열리는 이번 학술회의에서 소련 관리 및 학자들이 발표를 위해 미리 배포한 주한미군 및 아태지역 안보문제에 관한 연구논문 요지이다. ◇한소 관계의 장래를 위한 제안(게오르그 쿠나제 러시아공화국 외무차관)=미국은 오랫동안 소련과 대결해왔으나 이제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미소 경쟁은 종식되었다. 한소 관계는 지역안정을 위하여 한미동맹이 지속된다는 전제 위에서 수립되어야 한다. 미국이 세계안보 차원에서 소련과 한반도 핵무기를 논의할 태세가 되어 있다면 미군 주둔이 문제되지 않는다. 즉 소련으로서는 주한미군의 핵무기가 소련 영토,특히 블라디보스토크에 위협을 주지 않는다는 보장이 필요하다. ○미군 주둔 문제 안돼 주한미군은남북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한반도 안정에 크게 기여하며,오히려 한국내에서 미군 주둔문제가 계속 논쟁거리가 되면 안정을 해칠 수 있다고 본다. 중국과 북한이 「형제」관계로 복귀된다면 북한의 모험주의를 부추길 우려가 있으므로 정세불안이 야기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종래의 실용주의 노선이 계속되면 한소 관계의 진전이 한중 수교를 촉진시킬 것이다. 소련은 일본의 대안으로 한국에 접근할 의도가 없다. 소련으로서는 한일간의 불편한 감정과 긴밀한 관계를 이용할 만큼 충분한 지식과 경험이 없으며 또한 지렛대도 없다. ○「힘의 공백」 예방해야 ◇새로운 국가체제와 아·태지역 안보문제(세르게이 블라고볼린 IMEMO 연구부장)=아태지역은 국제정치에 대한 영향력 면에서 대서양지역과 대등한 위치로 부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의미있는 변화의 징후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제정세의 긍정적 변화가 제공한 기회를 활용하여 CSCE(유럽안보협력회의)와 유사한 안보구조가 수립되어야 하며 이의 수립과정에 소련도 참가해야 한다.다만 CSCE 형태의 포괄적 안보체제의 도입이 기존의 정치·군사적 구조와 지역안정을 해쳐서는 안 된다. 아태지역 주둔 미군의 규모와 구조는 국제정세 변화에 맞추어 조정되어야 할 것이지만 유럽에서보다 아태지역에서 미국의 안정유지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미일 안보조약과 주한미군은 미국의 이러한 역할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미 국방예산 삭감과 여론의 압력에 의해 이 지역 주둔 미군이 급격히 감축되어 힘의 공백이 발생된다면 이는 아태지역 안보에 미묘한 문제를 발생시키게 될 것이다. 미소 관계가 보다 개선되면 군사협조 및 데탕트 추진상의 제반 난제들이 점차 해결되게 될 것이지만 미소 양국만의 노력으로 아태지역 안보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한소 관계발전은 새로운 아태지역 안보구조를 형성하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할 주요 요소 중의 하나이며 따라서 양국 관계발전의 심화를 위한 노력이 전개되어야 한다. ○중·소 밀착 경계해야 ◇중소 관계,화해로부터 전략적 동맹관계로(안드레이 쿠즈멘코 IMEMO 선임연구원)=아프가니스탄 주둔 소련군 철수,캄보디아 주둔 베트남군 철수,중소국경선 주둔 소련군 철수 등 이른바 3대 장애요인의 제거라는 중국의 요구를 소련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89년 5월 고르바초프의 북경방문이 이루어지는 등 중소 관계는 크게 진전되었다. 이와 같은 양국 관계의 개선은 아태지역내 안보환경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양국의 관계개선 및 국경선 주변 군사력의 상호 감군조치가 아태지역의 화해과정과 제3국의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이런 점에서 아태지역의 정치적 분위기 개선을 토대로 한 다자간 회담과 협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중소간 당대당 관계정상화와 양국간 군사적 접촉과 협조의 증대는 소련 대내외정책에 일련의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중소 이념적 협조의 강조와 군사적 협력관계의 긴밀화는 소련의 다당제 민주사회로의 전환과정은 물론 아태지역 전체의 전략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가하게 될 것이다. 소련의 정치혼란과 경제적어려움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산군복합체 및 당관료층의 단기적 이해관계가 소련의 아태지역 정책의 기본목표보다 우선하게 될 가능성이 존개하고 있다. ◇소련의 신외교정책,페레스트로이카의 소산(유리 파데에브 소련 외무부 부국장)=소련이 새로 채택한 안보개념은 외부위협으로부터의 보호,안정의 추구와 사회진보를 위해 바람직한 상황조건을 창조해나가는 것 등을 말한다. 소련은 이 개념을 실천하기 위해 합리적 충분성,포괄적 안보에 기반을 둔 새로운 군사독트린을 수립,다소 어려움이 수반됐지만 군사력 감축,국방비 삭감 등 군사부문을 줄이고 대신에 소비산업의 생산력을 증진시켜왔다. 소련의 신사고 외교정책은 특히 아태지역에 대한 외교정책에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소 군사력,감축 지속 소련의 대아태정책이 이 지역 국가에 다소 부정적인 인식을 주고 있기는 하나 국제상황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지금 소련의 「침략」적 이미지는 사라지고 있다. 해양세력인 미국이 이 지역에서 더욱 긍정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면 소련은 이 지역의 군사력 감축을 더욱 능동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소련은 아태지역의 미일,한미 군사동맹이 평화적 목적을 위한 건설적인 협력을 지향할 것을 바라고 있다. 소련이 한국으로부터 경제원조를 받기 위해 대한 적극외교를 펴고 있다는 지적이 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소련의 개혁의 논리가 그러한 결정을 가져온 것이며 그것은 소련내 여론이 대세이기도 하다. 한소 관계의 발전이 소련·북한간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데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해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한소 선린협력조약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 중국,대만에 「평화통일3항」 제안/통상등 3통 확대·상호교류 추진

    ◎대만선 중국 제의 거부 【도쿄 연합】 중국은 7일 성명을 통해 대만과 평화적 통일을 위한 3개항을 제안했다고 일본 교도(공동)통신이 북경방송을 인용,보도했다. 중국 공산당 중앙대만공작변공실은 이날 성명을 발표,▲대만해협 양안에서 권한을 위임받은 단체나 개인이 조속히 회담에 임해 3통(통상·통신·통항)과 상호 교류확대를 도모하고 ▲공산당·국민당 양당이 대표를 파견,정식으로 적대관계를 종식시켜 서서히 평화적인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교섭을 개시하며 ▲공산당 중앙은 국민당 중앙의 책임자 내지는 권한을 위임받은 인물의 중국방문을 환영한다는 것 등 평화통일방안 3개항을 대만에 제시했다. 이는 대만측이 지난 4월 하순 공산당 정권을 반란단체로 규정한 헌법의 임시조항을 삭제한 데 대한 반응으로 나온 것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이 성명은 평화적 통일에 대해 『무력의 행사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이는 대만 인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외국세력의 중국 통일에 대한 간섭이나 대만의 독립에 대항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북 AFP연합】 대만은 통일문제 협의를 위해 공산당 대표를 대만에 파견하겠다는 중국측의 제의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8일 밝혔다. 대만 관리들은 또한 대만이 제시해놓고 있는 전제조건들을 중국이 충족시키지 않을 경우 대만과 본토와의 직접적인 무역과 공해상을 통한 연결 및 우편교류를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대만 침공을 위한 무력사용을 포기하고 우리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노력을 중단하기 전에는 국민당과 공산당간의 회담을 위한 대표단 파견제의는 절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북한 유엔가입 발표… 각국 공식논평

    ◎“남북대화 한반도통일에 기여”/미/가입 후 남·북한 유엔활동 기대/영/“단독가입 지지” 국제여론 결과/독/한국의 긴장완화 노력에 부합/불 ▷미국◁ 국무부의 마거릿 터트와일러 대변인은 28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유엔가입신청 결정에 대해 『미국은 북한의 성명을 환영하며 보편성의 원칙에서 남북한의 유엔가입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터트와일러 대변인은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지난해 유엔총회 연설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엔가입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의 정책임을 분명히했다』고 상기시키고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남북대화와 한반도통일에 기여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그녀는 북한의 유엔정책변화와 관련한 미­북한 관계 전망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영국◁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28일 『북한의 결정은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한국과 우방을 위해 매우 좋은 징조로 보이며 앞으로 유엔회원국으로서 남북한의 활동을 기대한다』고 말하고 한국과 우방국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으로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의 가입시기에 아직 구체적 언급이 없으나 동시가입 또는 비슷한 시기의 가입 등 구체적 사항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북한이 유엔가입 신청을 계기로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외무부의 관계자는 28일 논평을 통해 『북한의 결정을 환영한다. 이는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한국의 노력과도 합치되므로 한반도 문제해결을 위한 진일보한 계기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의 이 같은 태도변화가 프랑스가 그 동안 부단히 노력해온 「대북한 설득을 위한 국제적 분위기 조성」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는데 프랑스정부측은 최근 뒤마 외무장관이 북경방문중 중국지도자들에게 대북한 압력·설득을 요청한 것이 주효한 것으로 간주,자국이 이번 북한의 태도변화에 일조를 한 것으로 자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정말 기쁜 소식』이라고 환영의 뜻을 표시하며 소기의 성과가 생각보다 빨리 달성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북한이 자신의 입장에 더 이상 동조하는 세력이 없다는 국제적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유엔가입을 결정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중국◁ 중국정부는 28일 북한의 유엔가입 신청 결정을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환영하면서 북한의 이 같은 결정이 앞으로 남북대화와 한반도의 평화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의 한 대변인은 『조선의 유엔가입 문제는 남북 조선 쌍방이 협상을 통해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 중국의 일관된 주장』이라고 말해 중국이 이 문제에 초연한 중립적 입장을 취해왔음을 강조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엔가입 신청결정은 앞으로의 남북대화와 반도의 평화안정에 「적극의식(긍정적 의미)」가 있다』고 논평했다. ▷소련◁ 비탈리 이그나텐코 소련 대통령대변인은 28일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이 유엔동시가입 신청방침을 밝힌 데 대해 『소련은 이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교도(공동)통신에 따르면 이그나텐코 대변인은 이날 『이번 북한의 결정은 건전한 사고의 발로』라고 평가하고 『앞으로 남북대화의 촉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의 유엔가입을 지지한다고 밝혀 온 오스트리아 외무부는 28일 북한의 유엔가입 신청방침 발표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궁극적으로는 통일에 기여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 북한측에 유엔동시가입 권유/마르코의장,28일 평양에

    ◎“한국 단독가입 지지” 국제분위기 설명/30일 서울방문,중·소의 입장 전달 지난 22일부터 소련·중국·남북한 등 4개국 순방길에 오른 기도 데 마르코 유엔총회 의장은 서울 및 평양방문시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을 권유할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정부의 한 고위소식통은 이날 『몰타의 외무장관인 데 마르코 의장은 모스크바 및 북경방문을 마치고 오는 28일 평양을 방문,최근 걸프전 이후 국제사회에서 유엔의 보편성 원칙의 중요성이 더욱 증대되었으며 이에 따라 한국의 유엔가입 지지분위기가 한층 성숙되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북한도 이번 46차 유엔 총회에서 한국과 함께 유엔에 가입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는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마르코 의장의 남북한 동시방문 및 유엔동시 가입권유는 지난 4월말 뉴욕의 유엔총회를 방문한 이상옥 외무장관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안다』고 밝히고 『마르코 의장은 지난 15일 모스크바 중소 정상·외무장관회담 이후 소련 및 중국을 공식방문한 최초의 국제기구 고위관리로 오는 30일 방한,한반도문제 및 남북한 유엔가입에 대한 중소간 협의 내용과 진전된 입장을 우리측에 전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마르코 의장은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노태우 대통령을 예방하며 이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진 뒤 6월1일 이한할 예정이다.
  • 중·소,내정불간섭·교류확대 합의/“남·북한대화 환영” 재확인

    ◎양국 정상 공동성명/“패권주의 반대”/고르비,강택민의 방중초청 수락 【도쿄 연합】 중국과 소련 두 나라는 19일 공동성명을 발표,양국 공산당이 「독립자주·완전평등·상호존중·내정불간섭」의 원칙에 입각해 교류를 확대할 것을 강조했다고 일 교도(공동)통신이 북경 방송을 인용 보도했다. 강택민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소련 방문을 끝낸 것을 계기로 발표된 공동 성명은 또 사회주의 노선이 차이가 나는 문제에 대해 「일부의 관점에 차이가 있고 방법이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쌍방의 관계발전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이를 극복해 항상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점에 일치했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개혁의 방법에 대해 「사회주의의 잠재력을 발휘토록 하기 위해 개혁은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개혁에 통일된 모델은 없다」며 각자의 길을 존중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특히 공동 성명은 한반도 정세와 관련,「남북한의 대화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확인」하는 한편 「각 방면에 걸쳐 한반도 정세의 긴장완화와 평화통일에 지장을 주는 어떠한 행동도 회피하도록 요청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성명은 국제 정세에 대해서는 「국제 정세가 불안정하다는 인식에 중·소가 일치했다」고 말하고 「중·소 양국은 세계에서 패권을 노리지 않으며 동시에 국제정치에서 어떠한 형태의 패권주의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강 총서기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형편이 좋을 때 중국을 방문해 주도록 초청,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를 수락했다고 북경방송은 보도했다.
  • “정치참여 교사 교단 떠나야”/윤 교육

    ◎“시국선언 주동교사 징계” 재확인/현재 4천7백여명 서명 윤형섭 교육부 장관은 16일 최근 잇따르고 있는 시국선언관련 교사들에 대해 가담 정도에 따라 엄격한 징계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장관은 이날 상오 중앙교육연수원에서 전국 시군교육장 및 초·중등 교육과장 연석회의를 갖고 시국선언사태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고 『교육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위해 정치에 관여하는 교사들은 교단을 떠나야 한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일선 초·중·고 교사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시국선언과 같은 정치성 짙은 집단행동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하고 『교원들의 서명행위를 정확히 파악하고 교장은 설득과 대화를 통하여 교사들이 본분에 충실하도록 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시군교육장 45명은 『교육부가 처리방침을 일관되고 확고하게 시행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해직교사들의 과격한 행동과 학교진입 등의 불법행동을 차단하는 방안을 범정부적 차원에서강구해줄 것』을 촉구했다. 한편 교육부의 이같은 강경방침에도 불구하고 이날까지 모두 4천7백44명의 교사가 시국선언에 서명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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