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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경 세계여성회의 기조연설/손명순 여사 새달 2일 출국

    대통령부인 손명순 여사가 중국정부의 특별초청으로 유엔이 주관하는 제4차 여성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9월3일부터 8일까지 북경을 방문한다고 윤여전 청와대대변인이 23일 발표했다. 손여사는 세계여성회의에서 한국대표단의 명예수석대표로 한국과 세계의 여성문제에 대한 기조연설을 한다. 손여사는 또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세계문맹퇴치의 날」개회식에서 축사를 하고 세계문맹퇴치 사업을 촉진하기 위해 우리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지난 90년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종대왕상」을 시상할 예정이다. 손여사는 북경방문에 앞서 9월2일 4백여개의 한국업체가 진출해 있는 청도에 들러 현지 주재원 가족들과 한글학교 관계자들을 격려할 예정이다.
  • 주세법 개정안 수용/정부/시행시기 연기 검토

    정부는 19일 자도생산소주의 의무구입을 규정한 주세법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까지 검토하던 강경방침을 바꿔 그대로 수용하기로 했다. 이는 민자당이 강력하게 제동을 건데 따른 것이다. 민자당의 박범진 대변인은 이날 상오 고위당직자회의가 끝난 뒤 『주세법 문제는 업계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므로 정부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업계분쟁에 개입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밝혔다. 박대변인은 『국회에서 통과된 주세법 개정안은 중소 주류업체를 보호하는 법』이라고 말하고 『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려는 재경원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비판했다. 민자당이 이같이 입장을 정리하자 재정경제원은 이날 하오 대변인을 통해 『재경원이 주세법개정안에 대한 재의를 요구한다는 일부 보도가 있었으나 재경원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정부는 다만 주세법개정안의 시행시기를 다소 늦추는 방안을 강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세법 개정안은 서울경기 인천 강원 등 4개 시도는 자유구입 체제로 하되 나머지 시도는 주류도매상들이 자도생산소주,즉 해당지역에서 생산한 소주를 전체구입 물량의 50% 이상 구입하도록 하고 있다.
  • 국제 쌀값 급등과 우리의 대비(사설)

    올들어 국제 쌀시세(선물가격)가 33%나 급등하는 등 심상치 않은 동향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국제 쌀가격의 폭등은 북한과 필리핀 등 아시아국가들의 쌀 부족사태가 표면화되고 있는데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쌀 생산국의 올해 작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아시아지역 쌀 부족사태는 미국 농무성과 국제쌀연구협회(IRRI)가 이미 예고한 바 있다.미 농무성은 지난 6월 세계전체 쌀 생산량의 34%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 농민의 이농현상과 고소득작물 전환으로 인해 올해 쌀 생산이 전년보다 3.5%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IRRI는 지난 11일 한국을 비롯,아시아 각국은 갑작스러운 쌀 부족사태에 직면할 수 있으며 세계시장에서 제한된 쌀 재고량을 확보하기 위해 심한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이 협회는 각국이 산업화에만 치중,쌀 생산투자를 소홀히 한 때문으로 분석했다. 올해 전세계 쌀 생산전망은 기상이변으로 불확실성을 더해주고 있다.최근 중국 남부지역의 홍수와 일기불순으로 곡물생산의 감산이 예상되고 있고 미국과 일본도 올해 쌀 생산이 줄 것으로 전망돼 국제 쌀 부족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쌀 생산안전지대는 아니다.지난해 남부지역에 심한 가뭄과 중부지방에 냉해가 들어 쌀 생산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우리의 벼농사에 기상변화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재배면적 확보다.해마다 벼를 재배하지 않는 휴경면적이 늘어 쌀 자급기반이 흔들리고 있다.지난 93년과 94년 논의 휴경면적이 3만㏊에 달했고 올해는 2만3천㏊에 이르고 있다. 이런 추세로 벼재배면적이 줄어들 경우 오는 2000년에 벼재배면적은 90만㏊이하로 줄어들 전망이다.우리가 쌀 자급을 위해서는 재배면적을 최소한 90만5천㏊는 유지해야 한다.따라서 정부는 쌀 자급기반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휴경방지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또 쌀 전업농가에 대한 간접지원확대를 비롯하여 다수확품종 개발과 기술영농 도입을 통한 쌀 생산비절감 등 쌀 증산을 위한 대책이 요구된다.
  • 백화점/중·하순에 일제히 세일/기간 닷새로 줄이고 세일폭 확대

    ◎신사­숙녀복·레저용품 최고 50%/무이자 할부·카드 특별할인 없애/삼풍붕괴로 안전점검 대폭 강화 삼풍 백화점 붕괴참사 여파로 위축됐던 백화점업계가 14일과 21일을 전후하여 일제히 여름 정기세일에 돌입한다.이번 세일은 대부분의 백화점들이 당초 예정보다 1주일 이상 늦어진데다 그 기간도 일부 중소형 백화점을 제외하면 대개는 예전의 열흘에서 닷새로 줄어 고객들이 한꺼번에 몰릴 염려가 있다. 이 때문에 백화점가에서는 요사이 매장내 안전대책 강구에 주력,철저한 시설점검과 함께 기존의 안전팀을 크게 강화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실제로 현대백화점은 최근 1백여명의 직원들을 육군특전사에 위탁교육,화재·도난·교통마비 등 세일기간 중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고에 대비하도록 했다.또 뉴코아는 세일기간 중 잦은 도난사고에 대비해 전직 경찰관 3명을 채용,이들을 중심으로 고객안심패트롤팀을 발족했으며 롯데는 사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재해대책본부를 만들었다. 그밖에 한화유통과 갤러리아는 전직원을 대상으로 「비상사태시 조치사항」이란 매뉴얼을 반복 교육시키고 있으며 신세계는 2백30여명으로 구성된 안전팀을 주축으로 시설과 고객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한편 올 여름 정기바겐세일은 백화점에 따라 입점업체의 세일 참여율이 90∼95% 안팎으로 다른 때보다 10%정도 높아진 것이 특징.또 국내외 신사·숙녀 유명브랜드를 비롯,가정생활용품과 레저바캉스용품에 이르기까지 세일폭이 예년에는 30% 안팎이었으나 올해는 40∼50%로 할인율이 높은데 이는 세일기간이 짧아 여름상품의 재고를 염려한 업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밖에 삼풍 여파로 자숙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백화점마다 집객성이 강한 이벤트는 자제하며 광고도 각 사별로 하지않고 백화점 공동광고로 대체하기로 했다.특히 백화점업계가 세일 때마다 매출확대를 위해 경쟁적으로 실시하던 6개월 무이자 판매라던가 자사카드 5% 할인 등의 판촉행위도 금지하기로 했다. 주요 백화점별 세일 일정은 다음과 같다. ▲7월14∼23일=진로유통·건영옴니·대구동아 ▲18∼24일=대전동양 ▲14∼25일=나산 ▲21∼25일=신세계·롯데·미도파·현대·갤러리아·뉴코아·그랜드·그레이스·애경·경방필 ▲21∼30일=안양본 ▲26∼30일=새로나.
  • 막오른 휴전협상(6·25내막/모스크바 새증언:21)

    ◎모,김일성에 「화·전 2중전략」 제시/공산측,회담초 위약한 공군력 보강에 안간힘/스탈린,부담 피하려 모의 「협상지휘」요청 거절 전쟁이 계속되는 내내 마찬가지였지만 휴전협상에 임하는 마당에서도 김일성은 스탈린·모택동 두 사람의 뜻에 철저히 모든 것을 맡겼다.김일성으로부터 긴급히 휴전협상 전략을 마련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모택동은 일단 두가지 기본전략을 마련해 주었다.한편으로 전투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상대방이 협상제의를 해올 경우 대표를 보내 협상에 임하라는 이중전략이었다. 그리고 모택동은 이 기본전략을 즉시 스탈린에게 보고해 그의 의중을 물었다.김일성이 협상자문을 구하며 보내온 전문 등을 첨부한 이 전문에서 모택동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낸 6월30일자 전문.전문번호 N21334). 『리지웨이가 제시한 협상조건이 입수되면 그 내용을 검토한 뒤 우리의 입장을 정해야함.일단 협상이 시작되면 스탈린동지께서 직접 나서서 우리가 난처한 입장에 빠지지 않도록 협상 전과정을 총지휘해 주시기 바람』. ○“김에 회담 직접 지시” 같은날 6월30일 리지웨이 장군이 휴전협상을 제의했다.모택동은 곧바로 스탈린에게 전문을 띄어 구체적인 협상전략을 새로 제시했다.모는 이 전문에서 협상장소·시기·구체적인 방안등을 조목별로 열거했다(전문번호 N 21340). 『리지웨이가 협상제안을 해왔음. 본인의 의견은 다음과 같음. 1.김일성동지는 7월2일 혹은 3일중에 리지웨이의 휴전제의에 응하는 답을 보낼 것.그리고 시간·장소·대표자 수를 제시할 것. 2.협상장소로 리지웨이는 원산을 제시했으나 이곳이 북조선의 군기지가 있는 곳이므로 응하지 말것.38도선 부근의 개성을 제의하는 것이 어떨지. 3.협상개시 시기는 7월15일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됨. 4.시간이 촉박하고 회담의 중요성에 비추어 스탈린동지께서 직접 김일성과 연락을 취하고,회담을 직접 지시해 줄 것을 요청함.동시에 본인과도 연락을 유지해 주기 바람』. 그러나 협상 전과정을 총지휘해달라는 모택동의 이 요청을 스탈린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스탈린은 모택동에게 대신 협상의 모든 책임을 맡으라고 요구했다.그러면서도 회담 장소·시간·기본전략에 대해 스탈린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다음은 6월30일 스탈린이 모택동에게 보낸 답전(전문번호 N 3917). 『리지웨이의 휴전제의에 대해서는 이를 받아들인다는 답을 라디오방송을 통해 즉시 내보낼 것.이 답신은 김일성과 팽덕회의 이름으로 내보낼 것.만약 중국 의용군 사령관의 이름이 들어있지 않으면 미군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임.회담장소는 38도선 개성을 절대 고수할 것. 귀하는 전문을 통해 모스크바가 휴전협상을 지도토록 요청했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며 또한 필요한 일도 아님.협상을 지도할 사람은 바로 모택동동지 당신임.우리는 기껏해야 몇가지 사안에 대해 조언이나 해줄수 있음.김일성과는 직접통신도 안됨.동지가 김일성과 직접 통신을 유지하기 바람』. 이어서 모택동은 7월2일 전선의 팽덕회·고강·김일성 3인에게 전문을 보내 협상시작 전 전선에서의 주의사항을 단단히 주지시켰다.그 주의사항은 첫째로 제1차 방어선 병력을 증강배치시키고 무기·탄약을 충분히 확보할 것.둘째,최상급 비상경계령을 발동할 것.제1차 방어선 부대들은 적의 대규모 공격과 협상을 전후해서 아군 후방에서 있을지 모를 적 공군기들의 치열한 공습에 대비할 것.셋째,서해안에 적이 상륙작전을 벌일 가능성에 대비,이를 격퇴할 준비를 갖출 것등이었다. 모택동은 이 지시문을 이튿날인 7월3일 스탈린에게 그대로 보고했다(전문번호 N 21412). 1951년7월10일 개성에서 마침내 휴전회담이 시작됐다.그러나 협상에 임하면서도 중국·북한군은 우세한 장비를 갖춘 유엔군에 대한 군사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협상 시작 뒤 군사력강화방안에 대해 모택동은 7월18일 스탈린에게 다음과같은 전문을 보냈다(전문번호 N 21646). ○대공포망 강화 제의 『전선에서 적극공격을 펴지 않고 방어전략만 계속하면 적은 우리에게 군사적 압력을 넣기 위해 계속 엄청난 공습을 해댈 것임.따라서 다음 사항을 제의함. 1.대공포 망을 강화할 것.2.공중전 강화.3.공군 지휘부 강화.4.공군기 작전반경을 압록강에 국한시키지 말고 평양까지 남진시킬 것.5.잘 훈련된 폭격기 편대를 적의 후방에 침투시킬 것,적극적인 공중전을 펼 것,여러 공항·군수창고·적군 막사를 적극적으로 공습할 것. 6.지상에서도 적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해 국지전 성격의 공격작전을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감행할 것』. 그러나 이같은 적극적인 군사작전 구상은 오히려 강화된 유엔군의 공습 때문에 큰 차질을 빚었다. 51년 8월11일 모택동은 스탈린에게 전문을 보내 사정이 매우 어려워진다고 호소하고 세만회를 위해 평양북쪽에 비행장 건설과 소련의 추가지원을 긴급요청했다(전문번호 N 22764). 『현재 활주로를 건설하고 있으나 밤낮으로 계속되는 적의 공습 때문에 공사를 마무리할 수가 없음.우리의 대공포는 8천m 상공에 있는 적 폭격기에 미치지 못함.공습을 받아 새로 보수해 놓으면 또 폭격을 받고…이런 식으로 계속 되풀이되고 있음.따라서 중국·조선군 비행단과 소련항공여단 4개 여단을 동시에 조선으로 이동시키기로 한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음.9월로 예정됐던 이들 비행단의 적전계획은 연기돼야함. 우리는 중·조선군 항공단의 조선진출 전초기지로 평양 북쪽에 비행장건설을 제안 함.이곳은 적공군 기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적 폭격기가 접근해도 쉽게 격퇴할 수 있음.소련정부에 대해 중국 안동에 주둔하고 있는 3개 대공포 여단을 조선으로 이동시키는 방안을 검토해 줄 것을 요청 함.이는 중국국경 지역 안수에 건설중인 비행장 방어를 위해서 임.동지의 지시를 기다림』. 이 요청을 받은 스탈린은 8월17일 모택동에게 답전을 띄웠다(전문번호 N 4757.대통령문서보관소).스탈린은 이 전문에서 안수지역 비행장건설을 10월20일까지 완공해 늦어도 11월 이전에 중·조 공군이 이곳으로 이동해 작전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스탈린은 이를 위해 소련의 2개 대공포 여단을 안수지역으로 보내 비행장 건설을 방어케 하겠다고 약속했다.스탈린은 이 대공포 여단은 안동지역에 배치돼 있는 병력을 빼내오겠다고 밝혔다. 이 무렵 모택동은 미군의 공습에 거의 속수무책이었다.모는 이밖에도 소련군사고문단의 추가파견을 줄기차게 스탈린에게 요구했다.그러나 스탈린은 고문단파견에 동의하면서도 가능한한 숫자를 줄이려고 해 두사람간 줄다리기가 계속됐다.다음은 9월8일 모택동이 스탈린앞으로 보낸 전문(소련군총참모부 제2총국.전문번호 N 23703). 『51년 7월27일자 전문에서 본인은 스탈린동지께 조선에서 싸우는 중국의용군부대에 소련군사고문단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음.이 문제와 관련,소련군사고문단장 크라소프스키동지와 협의한 결과,83명의 군사고문관이 필요 함. 1.의용군사령부에 10명의 고문관이 필요.인원내역=고문단장(1)참모총장고문관(1)작전분야(1)정보분야(1)통신분야(1)후방(1)탄약(1)포(1)탱크(1)엔지니어고문(1).이밖에 5개군에 각2명씩 총10명.그리고 21개 병단에 모두 63명. 이들 고문관들은 51년9∼10월 사이 북경을 거쳐 조선으로 보내주면 좋겠음』. ○「고문관 파견」 실랑이 9월12일 스탈린은 모택동의 군사고문단 파견요청을 숫자를 줄여 일부만 충족시켜 주었다.6억 루블의 추가군사차관 요청은 그대로 집행해주었다.스탈린은 중국의용군 사령부에 고문관 5명만 파견하겠다고답했다. 그러나 모택동은 9월20일 스탈린앞으로 전문을 보내 5개군에 각각1명씩 모두 5명의 고문관을 보내달라고 재차 요청했다.당초에는 각2명씩 모두 10명의 고문관 파견을 요청했다.모택동은 이들을 9월말 혹은 10월초순까지 북경에 도착토록 해주면 곧바로 전선으로 투입하겠다고 말했다.군사지원을 둘러싼 두 사람간의 줄다리기는 휴전협상 내내 이런 식으로 계속됐다. ◎새로 밝혀진 사실/중·소 협상장소·날짜까지 지시/김일성에 명령조로 전문 보내 19회에 나간 전쟁중의 김일성의 모스크바·북경방문 사실부터의 내용은 사실상 거의 전부가 새로운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새로운 발견사실의 의미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검토해 나가보자. 휴전협상이 시작되면서도 김일성은 주요전략을 스탈린과 모택동에게 자문하였고 모택동은 항상 스탈린과 상의하였다.따라서 한국전쟁에서의 휴전협상은 사실상 자본주의 최고 지도부와 사회주의 최고 지도부와의 전체 대 전체식의 협상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스탈린은 사실상의 주도자였으면서도 모택동의 이러한 요구를 거절하였다.그는 상세한 사항까지 깊숙이 개입하면서도 구체적인 협상의 과정에서 오는 책임과 부담을 지지않으려 하였던 것이다.스탈린은 또한 전쟁 진행중 모택동이 요구하는 군사고문단의 배치에 계속 신중하였다. 김일성에 대한 모택동이나 스탈린의 권고사항은 주권국가에서 제안하는 권고사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철저하고 구체적이고 명령적인 것이었다.즉 그들의 지시는 김일성이 움직이거나 변경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은 휴전협상의 응답 날짜,장소,개시시점까지 지시,마치 군대의 상관이 부하에게 내리는 지시와 같았다.(실제로 그들의 용어 역시 「지시」였다)이점에서 오늘에 반추컨대 미국과 유엔의 협상전략이 모스크바와 북경을 향했던 것은 틀린 전략이 아니었다.종전후 김일성이 주창한 주체사상과 제제는 사실상 이러한 극단적인 반주권성과 종속성의 역설적 반발이었다.
  • 주민과 함께 「열린 잔치」 한마당/민선단체장 취임준비 백태

    ◎지역 연예인 초청 야외서 조촐히/다과회 겸해 공약실천 재확인도 오는 7월1일 일제히 치러질 첫 민선 기초·광역단체장들의 취임식은 어떤 모습일까. 개표결과 당선이 확정된 단체장 당선자 대부분은 지역주민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 만큼 취임식부터 임명직 단체장들과 무언가 달라야한다는 생각을 갖고있다.아직 승리의 기쁨에 젖어있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당선자는 드믄 편이다.그러나 모두들 지역주민에게 깊은 인상를 남길 조촐하면서도 기쁨을 같이하는 「열린 만남의 자리」로 꾸미려 하고 있다. ○…유영(47) 강서구청장당선자는 다음달 1일 낮 12시쯤 강서구 우장산 축구장에서 3천여명의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열린 취임식」을 가질 계획이다.특히 이날 취임식에는 코미디언 이기철·전정희씨등 강서구 출신 연예인 6명을 초청,민선구청장과 주민과의 첫 만남을 흥겹게 꾸민다는 복안이다. 김두기(61) 영등포구청장당선자도 이날 하오2시쯤 그동안 임명직 단체장들이 즐겨 사용하던 구청강당등 밀폐된 공간이 아닌 가급적 많은 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곳을 물색하고 있다.가능한한 많은 주민들이 오가는 구청의 중심가에서 한다는 계획아래 관내의 경방필백화점등을 고려하고 있다. ○…박원철(61) 구로구청장 당선자는 구청 강당에서 5백명의 구민들과 다과회를 겸한 취임식을 가질 예정이다.특히 구청청사와 개봉동 네거리주변에 취임을 알리는 애드벌룬 2개를 띄워 민선구청장 시대의 개막을 널리 알린다는 계획아래 당선이 확정된뒤 곧바로 회사에 제작을 의뢰했다. ○…설송웅 용산구청장과 양재호(43) 양천구청장당선자는 행정공백을 최소화한다는 취지에서 간부들의 업무보고와 당장 처리해야 할 민원업무 파악에 더 신경을 쓰고있다.주민들에 대한 당선인사가 끝나는대로 간부들을 차례로 초청,미리 업무를 파악할 일정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설당선자측은 주민들에게 공약실천 의지를 확실히 심어준다는 의미에서 취임식장에 공약실천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고 주민들에게 낯익은 자기의 유세장비를 비치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있다. 설당선자는 『첫 민선단체장인 만큼 주민들을 위한 행정을 편다는 차원에서 가능한한 간소하게 치를 작정』이라고 말했다. 양당선자는 『위로 차원에서 선거운동을 도운 자원봉사자들을 취임식에 초청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중·러,경수로 합의 긍정평가/남북대화 재개전망 등에 촉각

    【내외】 중국과 러시아는 13일 미·북 콸라룸푸르 경수로 협상이 완전 타결된 사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대북 경수로 제공에 있어서의 한국의 중심적 역할과 남북대화 재개 전망 등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나타냈다. 중국은 이날 저녁 관영 북경방송을 통해 『미국과 북한 양측이 핵문제와 관련한 총체적 합의를 달성했다』며 회담 타결 소식을 즉각 보도,대체로 환영의 뜻을 표하고 한국과 미국등 관련국들이 『반드시 한국이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해야 하며 동시에 한국이 경수로 제공 문제에서 중심역할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방송은 특히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보장한데 대해 각별한 관심을 나타내고 『미국이 남북한 쌍방의 대화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을 밝혔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국영 러시아방송도 이날 저녁 『어렵게 진행돼 오던 미·북 회담에서 마침내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고 논평하고 공동 보도문 내용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러시아방송은 특히 그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해 오던 『북한의 러시아형 경수로 선호』주장에 대해 언급없이 『평양당국이 마침내 한국형 경수로를 받아들일 것을 승인했다』고 말했다.
  • 「한통사태」 다시 대결국면/경찰,“영장발부 노조원 연행협조”재요청

    정부와 종교계의 대화중재 노력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던 한국통신사태는 노사양측이 종전의 무리한 요구와 주장으로 맞서 또다시 팽팽한 대결국면을 보이고 있다. 명동성당에서 농성중인 노조간부 6명은 1일 상오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가 노조와의 대화의사를 밝힌 만큼 노조도 대화에 응할 용의가 있다』면서도 대화에 앞서 ▲협상기간중 수배노조간부들에 대한 사법처리유보 ▲구속자석방 ▲노조원들에 대한 징계조치철회등에 대한 회사측의 약속이 선행돼야 한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노조는 또 이날 하오 유덕상 위원장 명의의 기자회견문을 발표,정상적인 단체교섭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오는 8일부터 퇴근시간지키기등의 방법으로 준법투쟁과 단체행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통신은 『노조가 구속자석방등 회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내세우고 앞으로의 투쟁계획까지 밝힌 것은 사태해결을 위한 대화를 거부하는 것으로 봐야한다』며 종전의 방침대로 주동자처벌등 강경방침을 철회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명동성당·조계사 거부 경찰은 1일 하오 노조원 13명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명동성당과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 관할경찰서인 중부경찰서 최광현 서장과 종로경찰서 이택순 서장을 보내 구속영장이 발부된 노조원들을 연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 줄것을 관계자들에게 요청했다. 경찰은 이자리에서 『노사간의 대화를 통해 사태가 해결되기를 기다렸으나 별다른 해결기미가 없는만큼 노조원들을 연행할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 본격적인 전쟁준비(6·25내막 모스크바 새 증언:8)

    ◎새로 밝혀진 사실들/김,방중전에 “6월말 공격개시” 확정/조작논란 「3단계 작전」 6월 15일 수립 한국전쟁 발발직전의 상황을 담고 있는 이번 8회에는 여러가지 새로운 사실이 포함돼 있다.특히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한국정부에 넘겨준 문서에는 19 50년6월 상황을 담고 있는 문서가 거의 빠져있는 사실을 감안할때 긴박한 순간의 상황을 담고 있는 이번 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중요한 새로운 사실들중의 하나는 김일성이 50년5월중순 모택동을 만나기위해 중국을 방문하기전부터 공격개시일을 6월말로 잡고 있었다는 점이다.이는 남침에 임박해서야 전쟁개시일을 7월에서 6월로 앞당겼다는 그동안의 일반적인 주장과 해석을 뒤엎은 것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또하나의 사실은 6월15일에 확정된 3단계작전이다.그동안 오랫동안 조작논쟁을 불러일으켰던 3단계작전이 진실임이 밝혀졌다.일부에서는 전쟁후 한국과 미국에 의해 공개되어 남침의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된 3단계작전이 조작됐다는 주장이 있었다.그러나 3단계작전은 지금 워싱턴에 보관중인 러시아어로 된 인민군 작전명령서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이번 회의 내용으로 볼때 위싱턴에 있는 자료가 조작되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졌으며 6·25는 남침임이 결정적으로 증명됐다. ◎작전개시직전 국지전서 전면전으로 전환/김일성,50년 5월12일 방중전 공격일 소 통고/북­소 49년 6월4일 무기지원 「특별협정」 체결 전쟁개시에 대한 3자간 합의가 마무리되자 막바지 전쟁준비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전쟁준비의 두 축은 소련과 북한이었다.하지만 김일성의 전쟁준비는 이미 1년전부터 본격화됐다.소련에 대한 무기지원요청이 이어졌고 소련역시 이를 충실히 도와주었다.김일성은 49년5월1일자로 추가 무기지원을 요청하는 전문을 스탈린앞으로 띄웠다.그는 49년5월까지 기계화부대 증설을 비롯,공군을 제외한 모든 군의 개편문제를 마무리짓고 9월까지는 공군개편을 끝내고 싶다며 추가무기지원을 요청했다. ○추가 무기지원 요청 슈티코프대사가 보낸 이 전문에 의하면 김일성 ⓛ2개 탱크연대를 거느린 탱크여단 ②독립 탱크연대③각 사단에 박격포부대 추가창설 ④공군사단 ⑤엔지니어링 대대 ⑥박격포 여단의 창설을 건의했다.이와 함께 장문의 필요한 무기목록을 덧붙였다.스탈린은 이 요청을 90%정도 집행해 주었다.이를 위해 북한·소련 양국은 49년6월4일 『소련은 북조선정부의 무기 및 군사기술장비 지원요청을 전부 만족시키는 데 동의한다』는 요지의 특별협정을 체결했다.이 특별협정에는 북한에 제공될 소련무기 목록이 첨부됐다.주요목록은 다음과같다. ▲공군장비:IL­10기(30대) WIL­10기(4대) YAK­9기(30대) PO­2기(4대) YAK­18기(27대) YAK­11기(6대) ▲기갑장비:탱크 T­34(87대)장갑차 BA­64(57대)장갑차 SU-76(1백2대)모터사이클 M­72(1백22대) 이외에도 소련은 각종 포탄·대구경총·자동화기·저격용 소총·전함·상륙정·지뢰·도하장비·무전기·전화선·어뢰정·대잠함을 비롯,북한이 요청한 탄약 일체를 인도키로 약속했다.이들 무기원조에 대해 북한은 쌀을 비롯한 곡물과 광물로 갚기로 동의했다. 김일성은 49년12월말 슈티코프 대사를 통해 50년도분 추가무기지원 1억1천2백만루블어치를 소련정부에 요청했다.상환방법은 보석류 및 비철금속으로 갚는다고 했다.슈티코프 대사가 50년1월1일자로 본국에 보낸 전문에 나타난 추가요청내역은 다음과 같다.1개 모터사이클연대 창설,기존 1개 보병여단을 사단에 편입시키고 무기보강,최근 창설한 해군보강을 위한 전함 2척. 50년3월14일 김일성은 51년분 차관을 50년도에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모스크바에 요청했다.전용목적은 무기·탄약 및 군사기술장비 구입이었고 필요한 무기목록을 전문 뒤에 별첨으로 보냈다.육해공군의 각종장비,탄약을 망라,수백종에 이르는 물품이었다.김일성은 전문에다 별도로 『북조선인민공화국정부는 소련정부가 신생국 조선공화국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요청한 물품을 조속한 시일내에 보내줄 것을 기대합니다』라는 서신을 첨부시켰다.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중인 50년4월3일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은 남조선에서 빨치산으로 활약하던 김달삼이란 사람이 평양으로 넘어왔다는 전문보고를 본부에 보냈다.이 전문은 『남조선언론들이 정부군의 토벌작전중에 사망했다고 보도했으나 그는 지금 평양에 와있으며 방문목적은 남조선내 빨치산활동 계획을 협의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남침개시를 앞두고 남한내부 혼란을 가속화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김일성은 북경방문 출발 하루 전인 5월12일 슈티코프 대사를 불러 전쟁개시일을 6월로 잡겠다는 최초의 언질을 주었다.『본인은 이미 남조선에 대한 공격준비 명령을 총참모장에게 내렸음.전쟁계획은 이미 짜여졌음.준비가 예정대로 마쳐질지 모르지만 공격개시일은 6월로 잡겠음』.슈티코프대사는 즉각 이 내용을 스탈린에게 보고했다. 북경방문을 마치고 온 김일성은 전쟁준비를 예정대로 진행시켜나갔다.5월29일 슈티코프 대사는 스탈린에게 전쟁준비상황을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6월8일 병력이동 『김일성은 공격준비상황을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음.모스크바회담에서 지원키로 합의한 무기 대부분이 도착했다고 함.김일성은 새로 창설한 사단을 시찰한뒤 6월말 공격개시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함.김일성의 명령을 따라 인민군총참모장이 공격작전을 수립했음.인민군 총참모장과 소련고문단장 바실리예프 장군이 이 작전계획을 김일성에게 보고,승인을 받았다고 함.군편성은 6월1일까지 완료예정.6월 전투개시에 아무런 차질이 없다고 함.김일성은 작전개시일을 6월말로 잡고있다고 함.더 늦출 경우 첫째 작전계획이 남조선측에 유출될 우려가 있고 둘째 7월이면 장마가 시작되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했음.김일성은 6월8∼10일 사이 병력이동을 시작하겠다고 했음』. 같은날 슈티코프 대사는 소련군사고문단의 바실리예프·포스트니코프 장군과 만나 의견을 듣고 이를 스탈린에게 보고했다.두 장군은 처음에 김일성의 6월말 공격개시에 반대했다.작전준비가 제대로 갖춰지려면 7월이라야 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그러나 이 두사람도 결국은 장마 때문에 6월말외에 다른 방안이 없다는 데 동의했다.슈티코프 자신도 장마철 공격개시는 너무 위험하다며 김일성의 생각이 옳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이렇게 해서 공격개시일은 6월말로 확정됐다. 마침내 운명의 6월이 왔다. 북한은 3단계작전중첫번째인 평화공세를 시작했다.6월10일 북한은 남측에 대해 평화통일방안을 논의키 위해 전조선민주연합전선 중앙위를 개최하자고 제의했다.슈티코프는 이튿날 6월11일 남한의 반응이 나오자 스탈린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남조선이 이 제의를 거부했음.공격계획을 예정대로 진행시켜 나가야겠음.병력을 38도선부근으로 이동시키고 추가 평화통일제의를 하겠음』. 6월12일 슈티코프는 13일부터 38도선 10∼15㎞지역으로 인민군의 병력이동이 시작된다고 스탈린에게 보고했다.총참모장 주재로 사단장을 비롯한 각급 지휘관 회의가 열려 구체적인 임무가 하달됐다.6월15일 3단계로 나누어진 최종작전계획이 확정됐다.슈티코프는 6월15일 이 작전계획을 스탈린에게 보고했다. 『작전개시는 6월25일 이른새벽에 시작됨.1단계작전은 옹진반도에서 국지전형태로 시작한 뒤 주공격선은 서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해감.2단계 작전은 서울과 한강을 장악함.동시에 동부전선에서 인민군은 춘천과 강릉을 해방.이에 따라 남조선군 주력은 서울일원에서 포위당해 궤멸됨.마지막 3단계작전에서는 여타지역 해방.적의 잔여세력을 소탕하고 주요 인구밀집지역과 항구를 점령함』. 여기서 알수있듯이 김일성이 세운 당초 작전계획은 전전선에 걸친 전면공격이 아니라 옹진반도를 시작으로하는 단계적 공격이었다.이것이 그뒤 작전계시직전에 전면남침으로 바뀐 것이다. ○소련병력 승선거부 이렇게 최종작전계획을 수립해놓은 뒤에도 북한은 평화선전공세를 계획했다.6월16일 북조선인민최고회의가 남한국회앞으로 평화통일 제의를 내놓았다.이 평화제의의 허구를 그대로 드러내는 슈티코프의 전문보고를 인용해본다. (19 50년6월16일.슈티코프 대사가 스탈린앞으로 보낸 전문)『조선동지들은 이 평화제의와 이에 대해 남조선이 보일 부정적인 반응(반대할 것이 쉽게 예상됨)이 갖는 선전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예의주시하고 있음』. 6월20일 김일성은 슈티코프 대사를 통해 상륙작전에 쓸 전함의 추가지원을 소련측에 요청했다.동서해안에서 동시에 상륙작전을 감행,적을 포위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었다.김은 전함을 보내면서 『인민군내에 전함운용 요원이 없기 때문에 상륙선을 운행할 소련해군 요원을 함께 보내줄 것』도 요청했다.스탈린은 21일 답전을 통해 전함추가지원은 받아들이되 적에게 개입명분을 줄 우려가 있으므로 소련병력 승선은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6월21일 김일성은 슈티코프대사를 통해 중대한 메시지를 스탈린앞으로 보냈다.작전변경에 관한 건의였다. 『김일성은 남조선 방송청취 및 정보보고에 의거,남측이 인민군의 작전계획내용을 입수한 것같다고 말했음.이에 따라 남측이 전투력 강화,방어선 강화,옹진반도 방향에 병력추가배치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함.이같은 상황변화로 인해 원래의 작전계획변경이 불가피하다고 함.김일성은 전면공세 전 옹진반도를 기점으로한 국지전 시작 대신 6월25일 전전선에서 전면공격을 감행하자고 제의했음』. 스탈린은 이 작전변경 건의를 이의없이 승인했다.6월25일 새벽 전전선에서 공격개시로 최종확정된 것이다.
  • 미군 헬기 2대/DMZ 월경 “위기일발”/지형훈련중 실수로

    ◎아군측 신호탄 발사로 회항 지난 27일 상오7시40분쯤 동부전선 군사분계선 상공에서 주한미군 항공여단소속 UH­60 헬기 2대가 실수로 북측지역으로 월경하기 직전 아군측 경계병의 신호탄 발사로 회항한 사실이 29일 밝혀졌다. 이 헬기는 이날 상오 지형숙지 훈련을 위해 비행금지구역을 통과,계곡을 따라 군사분계선 쪽으로 접근하던중 우리측 철책 뒤쪽 1백m 상공에서 되돌아왔다. 군사분계선 주변 지역에는 헬기의 월경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철책선 이남 30∼3백m 지점에 5백m간격으로 노란색의 대형 월경방지판이 설치돼 있다. 그러나 이 헬기들은 이 방지판을 지나쳐 계속 비행하던 중이었다. 이 헬기에는 B모준위등 3명의 미군이 탑승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고는 지난 연말 미군 헬기의 북한지역 월경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생포됐던 이후 또 다시 월경 직전의 상황까지 되풀이됨으로써 미군 조종사들의 교육강화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 중국의 남침지원(6·25내막/모스크바 새증언:6)

    ◎모택동 “2개 조선인 사단 파병”약속/모­김일성 친서받고 탄약·식량지원 승낙/장교 200명 훈련… 전투력 증강 주문/“장기전은 불리”… 일 개입 대비 당부 김일로부터 김일성의 친서를 전달받은 모택동은 먼저 조선인 사단의 전출문제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3개 사단중 2개는 현재 목단과 장춘에 주둔하고 있고 1개는 공격작전에 참가중이다.따라서 앞의 2개 사단은 언제든지 조선정부에 돌려줄 수 있다.하지만 나머지 1개는 전투가 끝나야 하기 때문에 1개월 전에는 곤란하다』며 흔쾌히 전출을 승낙했다.이와함께 모는 이 조선사단들이 정규군이 아니라서 군사적인 면에서 볼 때 전투력이 약하다면서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훈련된 장교를 배속시켜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중국군 보낼수도 김일은 또한 조선인 사단이 일본군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중국이 탄약을 대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모택동은 『중국에서도 그런 탄약을 생산한다.얼마든지 주겠다』고 답했다.남침문제에 대해 언급하며 모택동은『군사작전은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게 됐다.김일성은 이 점을 감안해 신중하게 준비를 갖추고 있으라』고 주문했다.모택동은 이와함께 일본의 개입에 우려를 표시했다.『전쟁은 신속히 끝날 수도 있고 장기전이 될 수도 있다.장기전은 귀측에 불리하다.왜냐하면 그럴 경우 일본이 전쟁에 개입해 남조선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근에 소련이 있고 만주에는 우리가 있다.필요하면 귀측을 위해 중국군을 보낼 수 있다.우리는 모두 검다.미국 사람에게는 구별도 잘 안된다』 모택동은 이렇게 적극적인 지원의사를 밝히는 한편 가까운 시일내에 남침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덧붙였다.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국제정세가 좋지 않다.중국공산당은 장개석군과 싸우기에 바빠서 북조선에 충분한 지원을 해줄 수 없다.그러니 국민당을 완전히 몰아내고 중국이 공산당 기치아래 통일될 때까지 남침을 기다려달라』 ○“개전 보류”요구 이와함께 모택동은 김일성의 북경방문에 관해 상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고 물었다.모는 또한 인도네시아·미얀마·말레이시아·인도차이나 등지의 공산당 동지들로부터 아시아제국 코민포름를 만들자는 제의를 받았다고 김일에게 말했다.하지만 아직 코민포름 출범은 시기상조라고 모는 말했다.중국내전이 진행중이고 조선에 긴장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며 코민포름 창설이 자칫 군사동맹체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5월 17일 모택동은 소련대표단에게 김일의 중국방문에 대해 브리핑했다.당시 북경주재 소련대표부의 코발료프대사는 5월 18일 스탈린앞으로 모의 브리핑내용을 보고했다.다음은 코발료프가 보고한 모택동의 발언내용.『북조선에 장교와 무기지원을 약속했음.만주에 1백50만명의 조선인이 살고 있는데 이들로 2개 사단(사단병력은 1만명)이 구성돼 있다.이중 1개 사단은 전투경험이 있음.만주에서 국민당과 적극적인 전투를 벌였음.이들 2개사단은 북조선의 요청만 있으면 즉각 투입가능함.북조선이 투입요청을 하지 않더라도 이들을 훈련시키고 모든 보급품을 계속 제공하겠음.이외에도 우리는 장교 2백명을 훈련시키고 있음.1개월이내에 이들은 조선에 보낼 예정임.만약 남북조선간 전쟁이 일어날 경우 우리는 앞서 언급한 조선인 사단에 대한 식량·무기지원은 물론 모든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임. 북조선동지들은 조만간 미군이 남조선에서 철수할 것으로 믿고 있음.하지만 대신 일본군이 들어올까봐 두려워하고 있음.일본군의 도움을 얻어 남조선이 북침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임.남조선이 침공해올 경우 대응공격을 하되 남조선군에 일본군이 들어있는지 없는지 주의깊게 살피라고 했음.만약 일본군이 들어있고 적의 전투력이 우세할 경우 영토일부를 내주더라도 귀측의 전투력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했음.그래야 상황이 좋아질 때 적을 격퇴시킬 수 있기 때문임. 우리는 또한 이런 후퇴시에 대비해 당·군·인민들을 이념적으로 교육시킬 것을 북조선측에 권고했음.그런 후퇴가 민주조선의 완전한 패배가 아니라 일시 전략적인 후퇴라는 점을 주지시키라고 했음.설사 미군이 철수하고 일본군이 대신 들어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조선동지들이 너무 서둘러 남침을 시작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했음.왜냐하면 맥아더장군이 신속하게 일본군 병력과 무기를 남조선에 들여보낼 수 있기 때문임.반면 우리는 주력병력 대부분이 양자강 너머에 가있기 때문에 즉각적인 지원을 북조선에 해줄 수 없음. 따라서 남침은 1950년초,국제상황이 호전되기를 기다려서 시작하는 게 좋다는 생각임.그 때는 일본군이 침공해와도 중국군 엘리트부대를 보내 일군을 격퇴시킬 수 있음』 ○소련과 긴밀협조 이같이 말한 뒤 모택동은 『이 모든 조치는 모스크바와 협의하에 취해 나가겠다』고 코발료프 대사에게 약속했다.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남침불가를 통보한 직후인 49년 4월,5월.모택동과 김일성 두사람 사이에는 이미 남침시 병력지원에 대한 깊숙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50년 4월 김일성의 모스크바방문에서 스탈린이 남침을 승인한 점을 상기한다면 모­김 두사람간 남침에 대한 교감은 이보다 무려 1년이나 앞서는 것이다. 전쟁의 해인 50년 1월 1일.날이 밝자마자 스탈린은 평양주재 소련대사앞으로 다음과 같은 전문 1통을 보냈다.『임표가 모택동앞으로 다음과 같은전문을 보냈다.중국인민해방군 안에 1만6천명의 조선인 병력이 있는데 순수 조선인 부대도 있다.순수 조선인부대는 4개 대대,27개 중대,9개 소대임.중국군내에 3개의 조선인 지휘부가 있으며 그중 2명은 사단장급이고 5명은 여단장,대대장급 87명이다.중대장 5백78명,소대장1천4백명,분대장 1천9백명이다. 중국군이 중국남부로 이동했을 때 조선인 병력사이에서 조국으로 돌려보내달라며 소요가 있었다고 함.임표는 내전이 끝나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조선인 병력을 1개 사단 혹은 4∼5개 여단으로 묶어서 모두 조선으로 돌려보내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임표의 건의에 대한 김일성의 입장을 들어볼 것』 그러나 김일성은 평양주재 중국무역대표부를 통해 보낸 중국정부의 서신을 통해 이 사실을 먼저 알고 1월 9일 슈티코프 대사를 불렀다.다음은 슈티코프 대사가 1월 11일 스탈린 앞으로 보낸 보고전문.『김일성은 중국정부가 내전이 끝나가고 있어 중국군내 조선군 부대를 해산시키고 북조선이 원하면 모두 돌려보내겠다는 뜻을 알려왔다고 했음.김일성은 이들을 모두 받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했음.김일성은 ⑴이들로 1개 지상군 사단,2개 지상군 연대,그리고 1개 모터사이클 연대,기계화 여단을 만들 계획이라고 함.⑵김일성은 이 조선인 병력을 50년 4월까지 중국영토에 두고 싶다고 했음.북조선에 이들을 배치하는 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함』 ○회담의제 “통일”로 중국군내 조선인 부대를 놓고 북한·중국간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김일성은 50년 4월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그런데 김일성은 모스크바를 방문하기 전에 모택동에게도 면담신청을 해놓았다.김일성이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던 4월 10일 이그나티예프 평양주재 소련대사대리는 다음과 같은 전문을 크렘린으로 보냈다.김일성과 모택동의 회담에 관한 건이었다.『북경주재 이주연 북한대사가 3월말 모택동을 만났음.이주연대사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이 면담에서 김일성과 모택동의 회담문제가 협의됐음.모택동은 회담개최를 받아들이고 회담시기를 금년 4월말이나 5월초로 제의했음.모택동은 회담의제를 조선통일로 못박았음.그리고 김일성이 통일에 관해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면 비밀방문으로 하고 그렇지 않으면 공식방문으로 하라고 말했음.이주연대사는 회담시기나 회담의제에 대해서는 김일성이 현재 병치료중이라는 핑계로 구체적인 답을 피했음.(편집자 주:스탈린의 요청에 따라 김일성은 중국지도자들에게도 모스크바방문을 비밀로 했음)』 김일성이 모스크바방문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간 뒤인 5월 3일 스탈린은 모택동에게 김과의 회담사실을 통보했다.『조선동지들이 최근 우리를 방문했음.회담결과에 대해서는 조만간 알려주겠음』북경주재 소련대사를 통해 보낸 짤막한 전문통지문이었다.그리고 나서 10일이나 지난 5월 14일 스탈린은 회담결과를 모택동에게 통보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김일성은 남침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스탈린과 모택동을 교묘하게 이용했다.그의 능란한 처세술을 읽게하는 대목이기도 하다.그는 두 사람간의 코뮤니케이션을 가능한한 차단시켜 때로는 서로 경쟁시키고 때로는 협력시키며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켜나간 것이다.반대로 스탈린­모택동 두사람의 이러한관계는 전쟁의 이니셔티브를 김일성으로부터 뺏어가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 “한통사태 신속 대처”/김 대통령 지시

    김영삼 대통령은 『한국통신사태의 불법성과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이번 사태에 신속하고 기민하게 대처하라』고 내각과 청와대에 지시했다. 김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나는 대통령으로서 헌법에 명시된 책무를 완수할 것』이라며 한국통신사태에 대한 강경방침을 거듭 천명했다고 윤여전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김 대통령은 『청와대비서실부터 한국통신사태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김 대통령의 이같은 지시에 따라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긴급대책을 수립해 한국통신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때에 대비,군통신요원등 대체인력 즉각 투입등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는 한편 한통노조가 제의한 냉각기간에 상관없이 이번 사태 주동자에 대해서는 사법처리토록 할 방침이다.
  • 주동 20여명 곧 영장/현자·한통에 금명 공권력 투입

    ◎재야 노동단체 간부 9명도 검거령/검찰 대검 공안부(안강민 검사장)는 18일 현대자동차의 휴업사태및 한국통신 노조의 파업 움직임과 관련,금명간 주동자 20여명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미리 구속영장을 발부받는대로 해당 사업장에 공권력을 투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특히 현대자동차의 조업중단사태를 주도하고 있는 이른바 「분신대책위」 공동대표 이상범·이헌구·윤성근씨 등 전노조위원장 3명을 비롯,모두 13명에 대해 업무방해및 명예훼손 등 혐의로 19일 안에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서기로 했다. 검찰은 정보통신부와 한국통신이 고발한 한국통신 노조원 64명 가운데 유덕상 노조위원장등 강경 노조원 10여명에 대해서도 혐의사실이 확인되는대로 업무방해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현대자동차 사태는 조업중단 자체가 불법으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구속영장이 없더라도 언제든지 공권력을 투입할 수 있다』고 말해 공권력투입 시기가 더 앞당겨질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검찰의 이같은 강경방침은 현대자동차의 조업중단사태가 임금협상을 둘러싼 노사분규의 차원이 아니라 재야 노동단체인 「민주노총준비위」와 「현대그룹노조총연합」등의 조직적 개입에 힘입고 있어 이를 조기에 차단하지 않으면 전국적인 연쇄파업이 우려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앞서 검찰은 「민주노총준비위」가 산하 노조들의 임금협상을 다음달의 4대 지방선거와 연계하도록 지시한 것과 관련,핵심간부인 권영길·단병호씨 등 9명에 대해 특별검거령을 내린 사실을 상기시켰다.
  • 북경기상도(외언내언)

    북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요즘의 정정변화는 온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정도의 드라마틱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우선 가시적인 상황변화부터가 매우 심상치 않다.이른바 「북경방」의 실세라는 진희동시당서기가 숙청됐고 왕보삼 부시장이 자살했다. 최고지도자 등소평과 이붕총리의 아들들이 부패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으며 등의 부인 탁임의 자살미수설도 나돌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정치적 변화는 최고지도자 등소평의 후계자격인 강택민총서기겸 국가주석이 「포스트등시대」에 대비,겉으로 반부패운동의 기치를 내걸고 실제로는 권력기반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인 듯하다. 특히 중국에선 예전부터 최고통치자의 죽음과 함께 격렬한 권력구도재편의 천하대란이 흔히 있었던 만큼 등의 사망이 임박한 상황에서 강의 선수치기작전이 본격화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감히 강이 자신의 정치대부인 등까지 격하시키는 극한(?)의 방법으로 제1인자 굳히기의 목적을 이루려 할 것인지.물론 과거 등이 모택동사후에 그를격하시킨 실례가 있기는 하다.그러나 등과 모사이의 갈등이 적잖았던데 비해 강은 등이 설계한 개방·개혁의 충실한 전도사이며 두사람의 이념적 동지의 틀은 깨지기 힘든 것으로 보는게 보다 옳은 시각일 것 같다. 때문에 비리척결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등측근수사에 나서긴 했지만 이는 개방·개혁및 공직자부패등에 대한 국민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미리 계획된 각본에 따른 것이라는 풀이가 가능하다.더욱이 강으로선 국민불만에 편승한 정적들의 공격이 등의 죽음을 맞아 격화될 가능성을 사전에 무력화할 필요가 당연히 있지 않았을까. 권부움직임의 보도관제가 철저한 중국이어서 추측은 더욱 난무한다.
  • 「단독」으로 끝난 임시국회와 향후 정국

    ◎선거준비 일정 빠듯… 야의 「발목잡기」 차단/야서는 강공벼르지만 국민시선 냉담/여는 선거대비 독자행보 계속할 태세 임시국회가 대구가스사건의 불똥이 튀어 정상운행을 해보지도 못한 채 막을 내렸다.지난 1일 개회식만 끝낸 뒤 의사일정 줄다리기로 공전하던 끝에 4일 민주당의원들의 불참속에 선거법개정안 등을 처리하고 폐회됐다. 야당은 강경대여투쟁을 다짐하고 있다.두달이 채 남지 않은 지방선거를 의식,대구사건과 함께 이번 민자당의 일방국회운영을 최대한 쟁점화해보겠다는 계산이다.그러나 국민의 정치권을 향한 냉담한 시선으로 미루어 야당의 강성투쟁은 한계에 부딪칠 전망이다. 민자당은 당초 통합선거법 개정내용에 여야가 합의,이를 처리키 위해 이번 임시국회가 소집됐음을 강조한다. 민자당은 합의대로 선거준비를 위해 하루가 급한 통합선거법개정을 마무리하고 대구문제는 복구작업과 사고원인조사 등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뒤 다시 국회를 열어 다루자는 입장이다. 선거법개정은 특히 4개 선거 동시실시라는 헌정사상 제일 많은일손이 필요한 지방선거의 실무준비작업을 해야 하는 선관위와 내무부로선 촌각을 다투는 문제다.선거인명부작성기준일(6월5일)로부터 25일 전인 5월10일 이전에 선거구조정 등 법개정이 매듭돼야 빠듯하게 선거준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무려 3천97만여명의 선거인명부작성과 4종의 투표 및 개표준비는 그 어느 선거때보다 부담스러운 작업이 돼버린 형편이다. 이같은 실정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하는 민자당은 대구사고와 관련한 민주당의 대표발언요구등은 선거를 앞두고 국회에서 「판」을 벌이려는 정치공세라고 판단했다.때문에 더이상 야당에 끌려다니기보다 여야간 이미 합의된 개정안을 단호히 처리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민주당은 닫힌 국회도 열어야 하는 판에 민자당이 열린 국회마저도 외면했다며 대구사고를 물고 늘어지며 단독 임시국회소집으로 맞서고 있다.민주당측은 정당대표연설·대정부질문·국정조사등을 의사일정에 포함시켰어야 했다며 민자당의 「독주」를 비난하고 있다.장외투쟁을 경고하기도 한다.그러나 민자당은 앞으로 야당의 정치공세와는 상관없이 지방선거에 대비,독자행보를 계속하겠다는 자세다.대구사고는 일단 정부차원의 수습에 맡기고 복구작업과 보상등이 끝난 뒤 재발방지등을 위한 국회차원의 활동을 벌일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다음주 서울시장후보등이 확정되면서 「선거정국」이 본격화되면 국민의 관심권 밖인 여야갈등은 스스로 해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여권의 시각이다. ◎선거법 처리강행 안팎/막판 협상 깨지자 본회의 강행/두차례 총무접촉 무위… 민주선 강력 비난 지난 1일 개회식 이후 공전해온 임시국회는 4일 두차례에 걸친 여야 원내총무회담이 결렬된 데 이어 민주당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본회의를 열어 선거법개정안등을 처리하고 막을 내렸다. ▷본회의◁ ○…이날 하오4시15분쯤 민자당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입장하고 황낙주 국회의장이 개회를 선언하자 조순환 의원(무소속)은 4분 자유발언을 통해 『민자당이 야당의 정치공세가 우려된다 해서 반쪽국회를 여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이홍구 국무총리가 보고를 통해 대구사고에 대해 사과하고 철저한 조사및 대책을 마련할 것을 다짐했으나 최재욱 의원(민자당)등 5명은 긴급현안질문을 통해 당국의 관리·감독소홀 등을 한 목소리로 질책했다. 특히 서훈 의원(무소속)이 총리의 사퇴까지 요구하는등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붓자 일부 민자당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하기도. 한편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민자당의 권해옥 원내기획위원장등 총무단은 참석의원수가 의결정족수에 미달할 것을 우려,소속의원들에게 『자리를 지켜달라』고 독려했다. ▷총무접촉◁ ○…여야는 이날 상·하오 총무접촉을 갖고 벼랑끝 타결을 시도했으나 끝내 본회의 개회일과 선거법개정안 처리를 둘러싼 의견차를 넘지 못했다. 이날 상오10시 황낙주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1차회담에서 여야는 황의장의 적극적인 중재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정부질문을 이틀간 하자』는 민자당 주장과 『사흘로 해야 한다』는 민주당 주장이 맞서 절충에 실패했다. 이어 하오1시 다시 황의장실에서 열린 2차회담에서는민주당이 대정부질문을 이틀만 하기로 양보해 극적 합의에 이르는 듯했으나 돌연 대정부질문일자와 선거법개정안 처리문제가 걸림돌로 등장,2시간동안의 실랑이 끝에 결렬됐다. 이 자리에서 민자당의 현경대 총무는 당내일정을 이유로 6일과 8일에 대정부질문을 벌일 것을 요구했으나 민주당의 신기하 총무 역시 당내일정을 들어 8∼9일 실시하자고 맞섰다. ▷민자당◁ ○…이날 두차례의 총무회담이 결렬되자 하오4시쯤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국회 강행방침을 재확인했다. 이같은 강경방침은 선거법처리가 늦어지면 지방선거준비일정에 차질을 빚게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현 총무는 이날 총무회담이 결렬된 뒤 『광역의원선거구 및 정수조정문제는 선거일정상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설명하고 『오늘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본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국회 원내총무실에서 이기택총재 주재로 긴급의원간담회를 열어 민자당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앞으로의 대책을 숙의했다. 의원들은 이어 성명을 통해 『국회의 존재가치를 부인하는 현정권을 독재정권으로 규정한다』고 밝혔다. 의원들은 또 오는 8일 국회를 단독으로 소집하기로 하고 민자당이 응하지 않으면 소속의원 전원이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 중,북경 군·경에 비상령/지도부 경질 저항 대응/홍콩지 보도

    ◎신임 시서기에 위건행 임명/전서기 진희동 가택연금 【북경=이석우 특파원】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가 최근의 부패파문에 대한 책임을 물어 27일 진희동 북경시당위원회 서기를 전격 해임,가택연금시키고 위건행당정치국위원겸 당중앙기율검사위 서기를 신임 북경시당위서기로 임명함에 따라 중국 중앙정치무대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북경의 외교가에선 진희동의 전격 경질과 관련,현재 북경군구의 38집단군이 다른 파벌의 반발과 북경내에서의 군사적인 실력행사방지를 위해 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갔다는 설이 나돌고 있으나 공식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이와 관련,홍콩의 영자지 스탠더드와 이스턴 익스프레스도 중국은 북경시 지도부의 전격 경질후 인민해방군과 폭동방지경찰인 인민무장경찰에 북경을 보호하도록 비상경계령을 하달했다고 28일 보도했다. 스탠더드지는 강택민 당총서기겸 국가주석이 이끄는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북경시지도부 경질에 따른 「내부저항과 소요」를 막기 위해 이같은 경계령을 하달했다고 말했다. 북경외교계의 한 소식통은진북경시서기의 해임에 이어 북경시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경찰 최고수뇌인 장양기공안국장도 동반해임됐으며 차기 국장은 강택민 주석 등 친상해계열인사가 임명될 것이라고 밝혔다. ◎등 사후 대비 권력투쟁 점화/북경시 당서기 경질안팎/당권파,비리척결 내걸어 입지강화/북경방 큰 반발… 인사바람 거세질듯 진희동 북경시 당서기의 경질은 등소평사후를 향한 권력투쟁의 본격적인 막이 오른 것으로 해석된다. 그의 서기직 「인책 사직」(신화사 표현)조치는 외면적으로는 경제비리를 둘러싼 중앙지도자급에 대한 첫 사정성 문책 인사다.그러나 「이 사건」은 실질적으로 부패척결이란 외면적 명분 아래 당권장악을 위한 사정작업이 본격화할 것과 중앙의 지도세력 사이의 균열이 노출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중국최고 권력기구의 구성원인 당 중앙 정치국위원을 「죄를 물어」 사실상 쫓아냈다는 것은 중앙무대의 합의 메커니즘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진희동은 등소평과 같은 사천성 출신.등의 총애를 받아 중앙무대에서의출세를 거듭해 왔다.그는 북경대를 중퇴한 뒤 49년부터 지금까지 북경에서 잔뼈가 굵어온 북경시의 카리스마이기도 했다.이러한 그의 해임 소식은 반 상해방 연합세력에 충격파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북경시민들에겐 「닭모가지를 비틀어 원숭이를 겁주게 한다」는 경구를 되뇌게 하고 있다.강택민 주석 등 당권파가 사정을 무기로 지도급인사에 대한 숙청을 통해 입지를 강화한다는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 압도적이다. 올해초부터 북경은 이러한 맥락에서 대대적인 인사조치와 사정작업이 벌어질것이란 풍문으로 뒤숭숭했다.그러나 진희동이 제물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강택민 등 당권파의 힘이 여타 세력의 힘을 압도할 수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북경시 후임서기로 교석(전인대 상무위 위원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위건행 당 중앙기율검사위 서기가 임명된 것도 이러한 분석을 설득력있게 하고 있다.이 점에서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계파 사이의 이합집산과 이들을 다스리려는 강등 집권세력의 혼전도 가속화될 것이며 이러한 경향은 합의를 통한 문제 처리에서 상당방에 대한 상처주기와 목자르기 식으로 나타나리라는 불안이 북경 정치무대에 자리잡고 있다. 북경시 공안당국이 공안과 무장경찰에 1주일전부터 비상경계령을 지시한 것이나 강이 북경군구의 38집단군의 비상경계령을 지시했다고 알려지고 있는 것 등 모두 흉흉한 북경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것이다. 진희동에 대한 등소평의 신임은 대단한 것이었으며 그는 등의 가신그룹 또는 원로들의 수제자라는 칭호를 받아왔었다.이같은 그에 대한 경질인사는 한편 등이후의 권력·인사재편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앞으로 벌어질 편가르기와 인사재편 조치 등의 예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 요직 두루 거친 교석계 실력자/위건행은 누구인가 젱 올해 64세로 지난49년 공산당에 입당한 이래 공산당의 주요 요직을 두루맡아온 탄탄한 경력의 소유자로 청렴결백한 이미지를 풍긴다는 것이 북경외교가의 중평. 특히 84년부터 87년까지 당조직부 부부장·부장 등 당조직관리의 핵심역할을 맡았왔으며당감찰부장·전국총공회 집행위주석 등을 역임했다. 92년부터 당중앙기율위원회 서기직을 맡아 보는등 사정업무의 총사령탑역할을 해오고 있으며 같은해 10월 당중앙정치국위원으로 선출됐다. 강택민 주석의 최대라이벌인 교석전인대 상무위원장과 동향인 절강성 신창현 사람으로 교석이 당조직부장일때 부부장이었고 부장직을 승계한 인연이 있다.이붕 총리와는 같은 시기 소련유학한 친분이 있다.등사후 전환기에 넓은 대인관계와 탄탄한 조직력을 배경으로 주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 “「북·미 핵합의」위기 직면/북경방송/양보 어려워 이해 난망”

    【내외】 중국은 23일 북·미 경수로협상의 결렬로 미국과 북한 사이의 핵합의가 시련에 직면하게 됐으며 북한에 제공될 경수로 노형 문제는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어느 쪽도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중국관영 북경방송은 이날 베를린에서 열린 북·미 경수로 협상과 관련한 논평에서 미국과 북한은 경수로공급협정 체결 시한인 지난 21일까지 경수로 제공과 관련한 정식합의에 도달했어야 했지만 『쌍방간의 담판이 파탄을 맞았다고 선포했다』며 우려를 표시하고 『이로 인해 북·미 핵기본합의가 준엄한 시련에 직면하게 됐다』고 보도했다.이 방송은 또 경수로 문제는 북·미 기본합의문의 순조로운 이행과 직접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서 『이는 많은 문제와 관련되고 수십억달러의 자금과 국가안전이익에 관계되는 중대한 문제기 때문에 그 어느 쪽에서도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구본무 회장 취임인사 초청 오늘 곤지암서… 16명 참가

    ◎전경련 회장단 10개월만에 골프회동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을 비롯한 대그룹 총수들이 19일 낮 경기도 광주의 곤지암 골프장에서 친목을 도모하는 「골프회동」을 갖는다.전경련 회장단이 골프모임을 갖는 것은 지난 해 6월(은화삼 골프장)이후 10개월 만이다. 이번의 골프회동은 구본무 LG그룹회장의 취임인사를 겸한 초청으로 이뤄졌다.최종현 전경련회장과 최근 정계투신을 발표한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을 비롯,모두 16명이 참가한다.정오부터 가벼운 점심식사를 한 뒤 하오 1시 쯤부터 티업에 나설 예정이다. 나이를 「어느정도」 고려해 4팀으로 나눠 친목을 다진다.▲1조에 강신호 동아제약회장,강진구 삼성전자회장,양재봉 대신증권회장,이맹기 대한해운회장 ▲2조에 최종현 회장,김석원 쌍용그룹회장,구본무 LG그룹회장,조석래 효성그룹회장이 편성됐다. ▲3조에는 김각중 경방회장,이준용 대림그룹회장,변규칠 LG그룹부회장,성락정 한화그룹부회장 ▲4조에 박건배 해태그룹회장,박영일 대농그룹회장,황정현 전경련 상근부회장,이문호 LG회장실사장이다. 당초 이건희 삼성그룹회장도 참석할 예정이었으나,최근 「북경발언」의 파문에 따라,갑자기 불참을 통보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 백화점 세일 첫날/교통대란 없었다/대중교통 이용 늘어

    백화점 주차장 유료화 첫날이자 일제히 봄철맞이 세일에 들어간 14일 롯데 신세계등 서울시내 주요 백화점 주변 도로는 극심한 정체현상을 빚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었다. 명동 충무로 등 을지로입구와 남대문로 일대 유명백화점 앞에는 개점과 동시에 주부들이 몰려 한때 혼잡을 빚기도 했으나 과거 세일때마다 나타났던 극심한 차량 정체현상은 없었다. 신세계·롯데·애경·경방필 등 대형백화점이 몰려있는 영등포역 주변과 강남의 백화점 밀집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이같은 현상은 세일때마다 고질적으로 되풀이되던 교통대란을 의식,많은 고객들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데다 서울시와 경찰이 미리 지하철 시내버스 등을 이용해줄 것을 당부했기 때문인 것으로 백화점측은 풀이했다.
  • 정근모 장관에 듣는 과기정책(국정 어떻게 돼갑니까)

    ◎“정부출연연 경쟁체제로 자율개혁 추진㎕/「총연구 원가제」 도입… 연구소 생산성 제고/핵심·석좌 연구원제 통해 제도 급변따른 문제 보완/홍릉 기초과학센터 「노벨상 산실」로 육성 정근모 과학기술처장관은 『정부는 앞으로 훌륭한 연구업적을 내겠다는 의욕을 가진 과학기술자들이 먼저 정부출연연구소를 찾아올 수 있도록 정부출연연구소를 최고의 시설을 갖춘 초일류연구기관으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조남진 서울신문 생활과학부장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김영삼 대통령의 유럽순방을 수행하면서 WTO체제의 핵심은 과학기술이라는 인식이 선진국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하고 『우리나라가 이러한 세계적 변화에 동참,일류국가로 태어나려면 과학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연구소들이 열심히 움직여줘야 한다』며 연구소 개혁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22개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소에 대한 개혁작업이 관심속에 추진되던중 통·폐합은 없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연구소 개혁방향에 변화가있는 것입니까. ○질적 변화에 총력 ▲연구소개혁은 통·폐합 차원이 아니었습니다.이보다는 근본적인 것,질적인 개혁을 해서 세계적 현상인 개방과 경쟁의 파고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정부출연연구소가 생산성과 경쟁력을 갖추자는 취지였습니다.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는 연구원이 평가받고 인정받는 체제가 만들어져야 하겠고 총연구원가제(프로젝트베이스 시스템)는 바로 연구원이 연구소의 주인이 되게 하는 제도로서 추진됐던 것입니다.96년부터 총연구원가제를 도입한다는 원칙에 변화가 없습니다.그밖에 생산성향상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개혁은 연구소마다 연구소특성을 살리고 젊은 연구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자율적으로 추진한다는 것도 당초방침 그대로입니다. ­지금까지 정부출연연구소에 대해서는 연구비외에 인건비·운영비를 별도로 지원해 왔는데 이제와서 연구비에 모든것을 포함시켜 지원하겠다는 것은 너무 급격한 변화가 아닙니까. ▲총원가제는 선진 외국에서는 이미 상식이 되고 있는 연구관리제도입니다.국내에서도 이미 전자통신연구소가 별문제 없이 이를 시행하고 있고 기계연구원,과학기술연구원이 이를 도입하겠다고 나섰습니다.다만 제도변화에 따른 문제점이 있을 수 있는 만큼 보완적 조치로서 연구소의 기본연구를 보장하는 기본연구비제도를 검토하고 핵심연구원제도·석좌연구원제도를 도입해 이들에게 안정적인 연구비지원을 하도록 하는 등의 보완장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정부는 관련전문가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차질없이 이를 시행할 계획입니다. ­앞으로는 정부도 일종의 고객으로서 출연연구소뿐만 아니라 대학연구소,민간연구소 등에도 문호를 개방해 프로젝트수주경쟁을 시킨다는 것이 총연구원가제도와 함께 연구소 개혁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이렇게 되면 향후 프로젝트를 못따는 연구팀,연구소는 스스로 도태될 수 밖에 없는데 우리의 과학기술 연구개발 총역량이 가지치기를 해도 될만큼 충분하다고 보시는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한정된 연구개발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가장 중요하며 이는 프로젝트베이스 시스템 도입을 통해 실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열심히 연구하는 사람은 우대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도태되는 경쟁의 개념이 과학기술계에도 도입돼야 합니다.사실 연구소는 뜨거운 정열을 지닌 연구원들로 가득 차야 하는데 최근 15년간 그저 안정된 직장 정도로 여겨져 온 문제점을 갖고 있었습니다.따라서 이번 개혁을 통해 연구소의 생산성이 제고되고 경쟁력이 확대된다면 정부는 과학기술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므로 국가 전체의 연구개발역량은 오히려 늘어나고 강화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개편계획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세계 톱10수준 격상 ▲KAIST는 내년 설립 25주년을 맞습니다.그동안 국가발전에 필요한 고급과학기술 인재 양성이라는 설립목적을 충분히 달성했으므로 향후 25년의 비전을 새롭게 마련하고 있습니다.기본목표는 KAIST를 종합과학기술대학으로서 21세기 세계 톱­10 수준의 연구중심 교육기관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입니다.한편 서울 분원에는 홍릉의 역사적 상징성과 지리적 여건을 최대한 살려 우리나라 과학발전의 중심지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가칭)고등과학원을 설립할 계획입니다.이곳은 공학보다는 수학 물리 화학 생물 등 기초과학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과학자를 양성할 수 있도록 포스트 닥(박사후 과정)중심의 연구센터로 운영될 것입니다.연구원은 노벨상 수상자 또는 그에 상당하는 세계최고수준의 석좌교수 15∼20명,국내외 저명과학자(VisitingScholar)50명,포스트 닥 1백명 정도로 구성해 노벨상에 도전하는 초일류 연구를 수행하게 하겠습니다.사실 노벨상 수상자는 70%가 사제지간이거나 동료지간입니다.세계최고 두뇌들의 연구모습을 옆에서 보고 배우는 것은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정회원 5백76명으로 발족한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떻게 육성할 계획입니까. ▲선진국의 아카데미처럼 수월성·전문성·국제성을 인정받는 유수한 아카데미로 위상을 높여가겠습니다.현재 과총부설로 돼 있는 조직을 이달까지 사단법인 형태로 독립시키고 올해안에 과학기술진흥법을 개정해 법적 근거도 마련하겠습니다.이번 유럽순방때 요청을 해놓았습니다만 노벨상수상자등 외국의 유수한 석학을 회원으로 초빙하고 정책개발과 국가정책 자문을 정례화하는등 실질적인 기능을 강화하며 대한민국과학기술상 한국과학상 한국공학상 등 과학기술관련 시상제도에 대해서도 발전적 차원에서 한림원이 주관함으로써 시상의 권위를 제고시키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유럽순방 과학기술외교로 유럽과의 협력증진이 예상됩니다.구체적인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유럽과의 협력 강화 ▲사실 과학기술 국제협력은 전반적으로는 주로 미국과,산업기술은 주로 일본과 이뤄져 왔고 유럽과는 미약한 편이었습니다.이번 순방성과로 출연연구소 5곳,대학우수센터 8곳이 현지에 공동연구센터를 설치하는등 유럽과의 협력이 동등한 수준에 오른만큼 우리는 이를 지렛대로 활용해 자주적인 연구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과학재단 지원과 특정연구개발비를 대폭 늘려 첨단과학기술능력의 세계화를 뒷받침하겠습니다. ­8년동안을 끌어왔던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드디어 부지선정을 끝냈는데요. ▲옹진군 인천시 등 해당지역주민들이 의연한 자세로 합리적인 의견개진을 해준데 대해 감사드립니다.국제적인 기술진의 감리를 받아가면서 최대한 안전한 시설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굴업도 핵폐기장」 건립 절차/주민이해­안전성 확보… 98년 본공사/세부지질조사·환경영향평가 철저히 시행 경기도 옹진군 덕적면 서포3리 굴업도 일대 1백86만㎡(약56만평)가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지구로 공식 지정·고시됨으로써 굴업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건설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원전가동 개시(78년4월 고리1호기 가동)17년만에 처음으로 갖게 되는 시설인 굴업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은 ▲현재 각 원전에 분산 저장돼 있는 낮은 방사능의 폐기물을 영구처분할 중·저준위 폐기물 영구처분장(사용후핵연료중간저장시설은 추후 계획) ▲항만시설,전력공급시설,용수공급시설,관리동 등의 공통지원시설과 ▲홍보관,환경방사능 감시시설,체육시설,사택 등의 복지시설이 들어서는 종합관리시설.정부는 오는 96년 6월 부지조성공사를 착공,98년6월부터는 본공사에 들어가 2001년 12월까지 처분용량 10만드럼 규모의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완공한다는 목표아래 준비작업을 하나하나 진행시키고 있다. 우선 토지매수작업은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의 촉진 및 시설주변지역의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해당 지방자치단체인 옹진군과 위탁협약을 체결,옹진군을 통해 토지매수를 하도록 추진하고 있다.토지 물건 조사와 협상 매수작업을 올연말까지 완료한다는 계획. 세부지질조사와 환경영향평가,시설의 상세설계등을 위한 전반적인 실시계획도 수립중이다.세부지질조사는 육지 25군데,바다 10군데등 총 25군데에 시추공을 뚫어 물리탐사등 세부지질조사를 벌이며 환경영향평가는 해양·생태계기상조사 등의 환경영향 평가와 항만 매립피해 영향평가등을 수행하게 된다.정부는 오는 97년 6월까지 수행될 각 과정에서 세계수준의 기술감리를 받는 것은 물론 평가과정에 주민 및 시민단체가 추천하는 민간전문가등을 참여시켜 주민과의 신뢰분위기를 조성할 계획이다. 처분장 지역에 일시불로 지원되는 특별지원금 5백억원은 6월말까지 구체적인 지급방법을 확정해 집행할 수 있도록 작업중이다.법률에 따르면 특별지원금은 주민이나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등 3곳중에 지급하도록 돼 있으나 주민들의 의견이 직접 반영되도록 주민들이 참여하는 재단법인을 통하도록 방침을 확정했다. 정부는 오는 2001년 시설완공때까지 모든 단계마다 지역주민 시민단체등과 계속적인 대화를 통해 신뢰속에 사업을 추진할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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