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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분야 통해 또다른 세상에 도전”/스포츠 기고가 변신 ‘오체불만족’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

    |도쿄 황성기특파원|통유리의 탁 트인 창밖으로 차가운 가을비가 추적추적 뿌리는 24일 오후 도쿄 시부야의 호텔 5층 카페는 빈자리 하나없이 사람들로 붐볐다.하필 왜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했을까.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주차장이 카페와 이어지는 같은 층에 있었다.차에서 내리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도 곧바로 올 수 있는 편리함이 시끄러운 이 곳을 그가 인터뷰 장소로 지정한 이유일 터이다.이런 곳을 찾아내기까지 얼마나 ‘시행착오’를 겪었을까. 약속보다 5분쯤 늦게 나타났다.예의 전동휠체어를 타고.대단히 죄송하다는 표정이다.인사를 나누자 “30분 정도 다른 일을 먼저 봐도 괜찮느냐.”고 이쪽이 황송할 정도로 미안한 얼굴로 동의를 구한다. 새롭게 원고를 쓰게 될 회사 관계자와의 협의가 있다고 했다.얼핏 보니 몇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서류를 놓고 (그의 표현에 의하면)10㎝ 밖에 되지 않는 양 손을 흔들어가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얼굴을 알아본 중년부인들이 힐끗힐끗 그를 쳐다보기 바쁘다. 1시45분부터 45분간으로 예정된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乙武洋匡)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해서 30분 가량 늦어진 2시15분쯤 시작됐다. “하루를 보내는 패턴은 세가지 있는데,첫째가 오늘같은 일 협의나,인터뷰 같은 것이고 둘째가 취재하러 가는 날,셋째가 전혀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원고를 쓰는 날입니다.” 기자를 기다리게 한 원고협의,기자와의 인터뷰를 포함해 아침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5건의 일이 있다고 했다.행동이 불편한 그로서는 가급적 이동을 줄이고 한 곳에서 몇가지 일을 처리하는 것이 당연한지 모른다. ●작년 운전면허 따 한달에 두번쯤 운전 그는 작년 여름 운전면허를 땄다.그 면허로 차를 몰고 왔을까. “한달에 2번쯤 운전하는 정도입니다.휴일이 그렇게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은 매니저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다닙니다.오늘도 매니저 신세를 졌구요.”그는 손수 운전하면서 과거에는 몰랐던 운전의 위험을 비로소 깨닫게 됐다고 했다.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한 2000년 오토다케는 스포츠 전문잡지 ‘넘버’에 선수 인터뷰 연재를 시작하면서 스포츠 라이터의 길을 걷는다.작년 한·일 월드컵 때에는 두 나라를 오가며 TV 리포터로도 꽤 얼굴을 비쳤으나 올들어 TV 활동은 뜸하다. “쓰는 일을 제대로 몸에 익히려고 TV쪽은 삼가고 있습니다.잡지 기고에 힘을 쏟고 있어 상대적으로 TV 출연은 많이 줄었습니다.” 500만부를 넘은 초대형 베스트셀러 주인공의 자유 기고가로의 변신,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 3학년(1998년) 가을 ‘오체불만족’을 낸 뒤 놀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어요.책의 저자라는 이유로 여러 매스컴에서 저를 다루어 주었구요.의외였습니다.나쁘게 말하면 주위에서 추어올려 준거죠.굉장히 무서웠습니다.그때도 이미 언론이라는 것이 금방 달아오르고 금방 식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요.영화화하자,입사해라,CD를 만들자는 얘기들이 많았어요.그 물결을 탔으면 재미는 있었겠지만,그냥 그렇게 흘러가 버리면 언제가는 질리는 날이 반드시 올거라고 생각했어요.그런 날이 됐을 때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몸에 익혀두지 않으면 나만 혼날 거라고 판단했습니다.몇가지 책을 낸 경험을 살릴 수 있는 것이 바로 라이터였습니다.” ●한·일 월드컵때 TV리포터로도 활동 스포츠를 택했던 것은 “나를 바라보는 세상의 이미지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는 뜻밖의 대답. “장애자 운동의 기수라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실은 그런 운동에는 별 흥미가 없었습니다.그냥 전동의자를 타고 22년을 살아왔을 뿐이었거든요.그러면 장애자 운동의 정반대에는 무엇이 있는지,했더니 스포츠였습니다.어릴 때 부터 좋아해서 관심도 지식도 있어서 스포츠 분야에서 승부를 내볼까 생각했습니다.” 축구와 야구가 메인이지만 특정종목을 전문으로 취재한다기보다 특정 선수에 흥미가 생기면 그 선수를 인터뷰하기 위해 해당종목을 공부하는 그런 패턴으로 지금은 유도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해준다. 화제를 돌려본다.2001년 3월 대학후배인 히토미(당시 22세)와 결혼했다는 보도가 나왔다.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는 짤막한 보도였다. “집 사람은 기본적으로 집안 일을 합니다.경리라든가 그런 부분에서는 제 일을 도와주고 있지만 바깥 일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전업주부인 셈이다. “와세다 대학의 어떤 서클이 개최한 세미나에 제가 강사로 불려갔는데 그때 만났습니다.21살 때였으니까,1997년 알게 돼 4년 만에 결혼한거죠.” 결혼한 지 2년 반.아직도 신혼이라고 할 수 있는 결혼생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결혼을 정했을 때 결혼한 선배들이 ‘너무 빠른 것 아니냐,결혼 그거 그렇게 좋은 게 아닌데’라고 충고는 해줬어요.그렇지만 나는 결혼생활을 꽤 좋아합니다.야구선수들이 결혼 문제로 상담을 해 올 때마다 꽤 권유합니다.”(그는 이 대목에서 ‘꽤’라는 말을 두 번이나 사용했다) 결혼이 글쓰기에 변화를 주었냐고 묻자 그는 “그런 건 없지만 인생의 시점이 하나 늘어난 것은 분명 메리트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혼 전 TV에 출연했을 때의 에피소드.그에게 사회자가 ‘거리에서 느끼는 불편'을 물었다.그는 “러브호텔의 엘리베이터는 (좁아서)전동 휠체어로는 타기 힘들다.”고 대답했다.짓궂은 사회자가 “러브호텔에도 가느냐.”고 재차 질문하자,그는 “가지요,23살의 남자인데요.”라고 응수해 좌중을 웃기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얘기를 꺼내자 오토다케는 깔깔거린다.당시 그의 대답이 진실이라면 러브호텔에 같이 간 상대가 부인이라는 심증이 짙었으나 그는 교묘하게 피해나간다. “장애자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일반적 생각 때문에 (실제로 장애인들도 많이 찾는)게임센터,노래방 같은 곳에 의외로 장애자를 위한 시설이 되어 있지 않다.”는 말로 대신한다. ●결혼한지 2년반 “꽤 즐거워요” 한국 선수로는 축구의 홍명보,이동국,박지성,안정환을 취재했다는 오토다케.“홍명보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는 그는 “무거움이라고 할까,인간으로서의 깊이가 느껴졌다.”고 덧붙인다. ‘넘버’(576호)에 실린 안정환 인터뷰 기사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상대와의 거리감을 잘 재면서 깊이 들어오는 것을 절묘한 타이밍으로 피해간다.그것이 후천적으로 익힌 재능이라면 분명 슬프다.”인터뷰 내내 마음을 열지 않는 축구스타 안정환의 심리분석이 독특하다. “스타가 되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면서 마음에 벽을 쌓는다면,원래 천진하고 순수한 청년이던 안정환은 좀 아깝고,불쌍한 것 아닌가요.자기만의 자유대로 살아가면 보다 매력적이지 않은가 생각했어요.”분야는 다르지만 ‘오체불만족’으로 유명인이 됐던 자신은 벽을 쌓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지. 27살의 청년,오토다케는 만 3년이 된 스포츠 라이터로서의 자신을 어떻게 채점하고 있을까. “글쎄요.처음 30점이던 것이 70점이 됐다고 할까요.지금부터 (점수를 올리는데 시간이)오래 걸리겠지요.” 모자라는 30점이라면.“기자로서의 착안력,취재력,문장력 3가지 능력이 있다고 할 때 취재력은 다른 사람보다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첫째와 셋째,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셋째(문장력)”라고 말한다. ●“글쓰기가 재미있어 정치 관심 없어요” 2년간의 산고 끝에 따낸 운전면허와 같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생각은 아직 없다고 한다.“기본적으로 기자로서 미숙하니까,더 힘을 쏟고 싶습니다.혹시 여유가 생기면 스포츠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기자로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싹튼 것은 사실입니다.”예를 든다면 기타노 다케시(한국에 ‘하나비’로 알려진 영화감독)에 수개월간 밀착해 어떤 발상으로 영화를 만드는지 그 과정을 취재하고 싶다고 했다. 얼마 전 어떤 주간지가 11월로 예상되는 일본 총선거에 오토다케가 공명당(연립여당) 후보로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을 보도했었다.‘정치가 오토다케’ 과연 사실인가.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글쎄요,그런 기사가 왜 나왔을까요.”거세게 부인한다.“어쨌건 지금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다.”는 오토다케.어엿한 가장으로 성장한 그에게서 글쓰기에 온몸을 던져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열정과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marry01@ ●오토다케는 1976년생.팔다리가 없는 ‘선천성 사지절단’ 장애를 안고 태어난 그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일반 초·중·고교를 거쳐 와세대 대학을 졸업했다.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감동적인 삶을 다룬 ‘오체불만족’이 한국,중국,미국 등에도 번역돼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오토다케 리포트’,‘월드컵 전사×오토다케 히로타다’ 외에 그림책 ‘선물’ 등의 저서가 있다.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시리즈를 마치며

    지난 7월18일 ‘북의 최인훈’을 시작으로 일성을 터뜨린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시리즈가 25일 ‘남의 박경리’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현재를 전환기 혹은 과도기라고 합니다.낡은 것과 새것이 공존하는,완전히 낡지도 전적으로 새롭지도 않은 이 ‘지나가는 시대’는 그래서 혼란스럽습니다.이번 시리즈에서 우리 시대의 대표적 문학지성 10인이 들려준 목소리는 사회 여러 분야에 나타나는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패러다임이나 그 단초가 될 것입니다. 이 작업은 그 발판이 문학이기에 가능했을지 모릅니다.문학은 사회문제·철학·역사·경제·정치 등 모든 것을 끌어안기 때문입니다.무엇보다 문학은 총체적 삶에 관한 것으로서 삶의 본질을 다룹니다.그래서 늘 시대정신의 진실을 추구하고 억압과 질곡과 싸워왔습니다. 시리즈에 참가한 10명의 문학지성들은 평생동안 문학이란 넓고 깊은 사색의 바다에서 닦아온 지혜로 혼미한 시대를 헤쳐나갈 고견들을 들려주었습니다.한 분야에 일가를 이루면다른 분야가 보인다는 말이 있듯 당대 최고의 문학지성들의 화두는 단순히 문학 그 자체에 멈추지 않고 시대의 본질을 꿰뚫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나아가 차가운 이성만으로 무장하다 보면 자칫 딱딱하고 난해해지기 쉬운 사상이나 분석틀을 문학 특유의 상상력과 감성으로 부드럽게 감싸주면서 이해하기 쉽게 들려주었습니다. 그 속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사의 흐름을 진단한 뒤 현실적 과제로 젊은 세대들의 자율과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원로 소설가의 화두를 접했습니다(최인훈).세계의 관심이 언어와 문화로 이동하고 있다며 동북아시아 전체를 하나의 문화틀로 보라는 당대 최고의 평론가의 당부도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김윤식).동서고금 사상을 넘나든 뒤 ‘붉은악마’와 ‘촛불 시위’에서 새세대의 문화적 창조의 싹을 보는 논리는 황홀했습니다(김지하). 한 우물만 파고 한 마리 토끼만 쫓으라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뒤흔든 문명비평가의 발상의 전환(이어령),시대를 초월하여 중심을 잡아야 하는 지성의 역할을 강조한 비평가의 낮지만 소중한의견(김우창),새로운 의미의 민중이 존재하기에 여전히 평등의 가치를 되새겨야 한다는 시인의 충고(신경림),남북한 문제를 형과 아우로 비유하며 보듬고 가야 한다는 소설가의 진단(현기영) 등 현대의 혼란한 항해를 비추는 등불은 시리즈 어느 곳에서나 발견됐습니다. 우리가 만난 문학지성은 자신의 방법론에 바탕하여 늘 새로운 삶의 방식과 해석을 꿈꾸고 있었습니다.그것은 제 자리에 머무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세계와 가능성의 그림을 그리는 문학의 정신이기도 했습니다.시리즈를 마치며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혼돈의 시대일수록 연륜에서 묻어나는 지혜로움이 빛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바쁘고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문학지성과 그들의 값진 말씀을 하나라도 더 담기 위해 동분서주한 방민호 교수의 노고가 없었다면 이 시리즈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독자 여러분께도 그동안 뜨거운 호응을 보여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종수기자 vielee@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못다 쓴 이야기

    열 분의 문학지성을 만나는 일은 어렵고도 신이 나는 일이었습니다.무엇보다 저의 경험 폭으로 전혀 얻을 수 없는 사상과 지식과 지혜를 얻어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돌이켜보니 가파른 두 달이었습니다.숨가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밝히지 못한 얘기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최인훈 선생과의 만남은 연재 첫 회가 되다 보니 여러모로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김윤식 선생 댁에 갔을 때 여름이라서 소나기가 내리는데 장대비가 밑도 끝도 없이 죽죽 쏟아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이청준 선생을 어느 구민회관 앞에서 만나 뵙기로 하고 우리 일행이 오히려 늦어 선생을 기다리시게 한 일도 있었군요. 김우창 선생의 낡은 승용차를 보고 일순 감동했던 일도 있었고요.신경림과 현기영 선생께 염치 불구하고 갈비를 배불리 얻어먹고 즐거워했던 일이 떠오릅니다.주머니 생각 안 하시고 후배를 아껴주는 자상하신 분들입니다. 이어령 선생을 만나 누구보다 참신한 전후세대의 현주소를 목격한 일도 있었지요.조동일 선생을 만나 뵙고 인터뷰를 한 녹음테이프를 도둑 맞는 바람에 선생께 어렵게 다시 부탁을 드렸으니 밤손님도 이 연재에 참여하신 셈입니다. 김지하 선생과 박경리 선생께서는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많이 수척해 보이셨습니다.오래 좋은 작품 많이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사진을 맡아주신 김상영 선배,녹취하느라 여름 다 보낸 김신우씨,대한매일의 기자님들 고생하셨습니다.저도 이제 얻어들은 이야기를 새기는 시간을 마련해야겠습니다. 방민호(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10)박경리-물질문명 시대, 생명의 가치 회복

    진영은 연기가 바람에 날려 없어지는 것을 언제까지나 쳐다보고 있었다.“내게는 다만 쓰라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무참히 죽어버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 진영의 깎은 듯 고요한 얼굴 위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겨울 하늘은 매몰스럽게도 맑다.잡나무 가지에 얹힌 눈이 바람을 타고 진영의 외투 깃에 날아내리고 있었다.“그렇지,내게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다.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 진영은 중얼거리며 잡나무를 휘여잡고 눈 쌓인 언덕을 내려오는 것이었다.-소설 ‘불신시대’중에서 혹시라도 선생을 그냥 찾아뵙는 것이 결례가 될 것 같아 근방에서 슈퍼마켓을 찾는데 퍽이나 외진 곳이라 그런지 갖추어 놓은 게 없다.선생은 당뇨가 있다고 했던가.단 것을 드시지 못한다니 무과당 음료수 박스를 사들고 결전의 준비라도 마친 양 용감하게 토지 문화관으로 들어섰다. 선생의 집 문턱이 높은 것은 어제 오늘 소문이 아닌데 미리 약속을 얻은 탓인지 선생은 무척 친절하게 일행을 받아주신다.감읍할 지경이다. ●생태계 문제가 오늘의 중심화두 “건강이 안 좋으시다고 들었는데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소설을 쓰시다 무리하신 것은 아닌지요.” “내가 ‘현대문학’ 잡지를 참 곤란하게 하고 있어요.‘나비야,청산 가자’ 연재를 시작해서 석 달,3회까지 연재했거든요.한 회 한 회 원고 분량이 많아서 3회까지 하니까 무척 힘들었어요.재작년에 넘어져서 다친 허리가,연재 시작하면서 더 안 좋았어요.절실하게 써보려 했는데.이걸 쓰면서 혈압이 200까지 올라갔어요.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요.결국 쉬고 있어요.독자들에게 제일 죄송해요.” “…….” 나는 선생의 무릎 위에 앉은 고양이를 바라보면서 선생의 다음 말씀을 기다린다. “몸이 그러니까 의욕이 없어지고,그러면서 내 존재가 뭔가,굉장히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새삼스럽게 문학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도 들고.” 선생을 만나는 자리에서 우연히 새로운 문학지 ‘숨소리’를 편집하고 계신 연세대학교의 최유찬 교수를 만나뵙게 되었다.두 분에게 번갈아 시선을 옮기는 나로 인해 설명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셨는지선생은 ‘숨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신다. “문학이라는 것도 인류 전체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생태계 없는 문학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지요.최유찬 선생에게 부탁 드려서 ‘숨소리’라는 책을 내는 까닭도 그런 데 있어요.지금 이 토지 문화관도 다른 분들은 다 문학관으로 오해하고 있어요.내가 문학을 하니까 문학관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나는 처음부터 그건 반대고 문화관으로 하자고 했어요. 생태계,환경이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요.생태계 문제가 오늘의 중심이 되어야 해요.거기에서 문학도 있고 모든 게 있을 수 있는 거죠.작년 초엔가,‘자연과 시인’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했을 때 제가 이런 말을 했어요.시인 선생들이 환경 문제에 대해서 선도가를 불러 달라,그런 의식을 가져 주셨으면 한다고 내가 당부를 드렸어요.예술가들이 그렇게 해야 되지 않을까요? 무슨 정치적인 문제 같은 것은 사람들 임의에 따라서 참여도 하고 안 할 수도 있지만 환경문제라는 건 예외가 있을 수가 없잖아요. 모든 사람들과 관련이 되니까.하다못해벌레 한 마리나 풀 한 포기도 다 관련이 있잖아요.지구의 생명을 받은 것은 다 의무가 있는 거지요.” “예전에 손수 농사를 지으시는 걸 보았습니다.여기로 옮기고 나서도 계속하고 계신지요.” “물론이에요.여기는 농사가 더 많아요.밑에 밭뙈기가 상당히 있고 산 안에도 밭이 있어요.여기로 와서는 농사가 더 절실한 게,작가들 와서 묵는 창작실에 부식을 대야 하니까요.전부 다 댈 수는 없지만 대체로 야채는 내가 농사지어 대고 있어요.금년에는 부토를 했는데 흙이 잘 안 맞아서 농사가 좀 시원찮게 됐어요.여기 와서도 농약과 화학 비료는 절대 안 쓰고 작으면 작은 대로 땅 힘을 기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기왕이면 작가들도 공기 좋고 풍경 좋은 데서 먹거리도 무공해로 먹는 게 좋지 않겠어요. 감자와 옥수수를 많이 하는데 올해는 옥수수와 배추를 실패하고.그래서 토마토,고추,상추 이런 것 좀 더 대고 했어요.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대줄 수 있을 것 같아요.또 자연적으로 나는 것들이 있거든요.두릅이라든지.산에 도라지도 많이 심어놨어요.더덕,취나물,이름도 모르는 다른 나물들도 많아요.봄에는 냉이나 두릅 등 계속 농사지은 걸 먹죠.” 선생의 말씀에는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리듬과 흥취가 있었다. 이 글을 쓰려니 며칠 전 멕시코의 칸쿤에서 농민운동가 이경해씨가 심장에 칼을 꽂고 자결하던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우리들은 모두 땅의 자식들인데 내가 무관심하던 사이에 농민들의 삶은 나날이 수척해지고 있었던 것이다.인터뷰를 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지만 선생의 말씀과 정신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배고플 때 다이아몬드나 화폐를 먹을 순 없어 “선생님께서 농사를 지으시는 것은 자연과 접촉을 유지하기 위한 작가적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한데요.” “그게 우리 삶의 본질 아니겠어요? 땅에서 가꿔서 우리가 존재한다는.농부를 찬양하는 말이 될지도 모르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보면 생산성이 아니고 전부 소비성이거든요.땅을 가꾼다는 것은 규모가 손바닥만 하더라도 거기에는 생산이 있어요.그건 뭐냐면,생산하지 않으면 살수 없는 땅의 본질적인 속성 때문이에요.지난번에 내가 여기 중·고등학교 캠프에 갔었어요.사실은 내가 어디 나가서 얘기를 잘 못해요.어지러워서.그래도 애들이니까 한마디 필요하겠다 싶어서 나가서 이야기를 했어요.첫마디는 예절에 대한 것이었어요.예절이라는 것은 휴머니즘이다,상대방을 배려하는 거다,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정제된 데서 나오는 아름다움이다.그리고 또 하나가 이것이에요.옛날 농부들이 말하기로 내 자식 목에 젖 넘어가는 소리하고 내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가 제일 좋다고 했는데,그것은 땅도 내 자식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땅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땅을 사랑하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기본이고 본질적인 거예요.지금 지구 온난화 현상도 있고 지구가 사막화되는 현상도 나타나는데,앞으로 곡식이 참 귀하게 되면 배고플 때 다이아몬드나 화폐를 먹고 배를 불리겠어요? 한줌의 쌀이 있어야만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거죠.그런데도 없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옛날 말로 사람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한다고,많은 분들이 그저 설마 설마하면서 남은 죽어도 나는 살아남겠지,내 당대에는 괜찮을 거야,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계신데,하지만 우리 자손들이 있잖아요. 프랑스에서는 이례적인 폭염으로 사람들이 죽고 스위스에서는 만년설이 몇년도에 가면 다 녹는다고 그래요.이거 다 녹으면 노아의 홍수 일어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도 그런 소식을 들으면서 남의 일 같이 생각들 하신단 말이에요.들으면 그때뿐이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단 말이에요.일반 대중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도자들부터 인식을 해야 되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끌고 나가야 할 지도자들이 일반 대중들보다 더 못해요.대중들은 절실히 인식하는데 지도자들은 표밭만 생각하니까.사람이 먹고 사는,곡식 나는 밭 생각은 안 하고 표밭만 생각하거든요.그렇게 생존하고 관계 없는 일이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생존해야 할 일은 뒷전에 밀리고 어떤 때는 그런 일이 아무 것도 아닌 무관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거든요.” 나는 연방 머리를 끄덕일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가 시장을 가봅시다.둘러보면 직접 생존하는 데 필요한 물건보다도 없어도 되는 게 더 많아요.없어도 되는 게 더 많다는 것은 말도 못할 낭비예요.낭비하면 쓰레기가 나와요.낭비와 쓰레기 이중적인 문제지요.쓰레기는 뭡니까.숨통을 막는 거예요.새만금이나 시화호,이런 문제는 그렇게 야만적일 수 없는 일이에요.나 혼자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해요.몇 사람의 이득,화폐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명을 학살하는 겁니까.그렇게 많은 생명을 학살하고 그것을 영구히 없애버리면 다시 재생을 할 수도 없는 거잖아요. 대한민국이 얼마나 야만국인가를 입증하는 것이죠.지금 있는 농지도 농사 안 짓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서 새만금,그걸 죽여서 농지를 만든다는 이런 모순이 어디 있어요.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내가 살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또 사람만 살자는 이야기도 아니에요.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이 다 살아야 해요.”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면 세상 일을 소상히 알고 계신데요.어떻게 이렇게 먼 곳 원주에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다 듣고 보시는지요?” “서울이 시골보다 더 좁아요.직장이라든지 아파트라든지 하는 공간은 넓어도 좁아요.나는 공간이 없으니까 산 보고 하늘 보고,그러니 알죠.” “옛날에는 물질이 없어서 고통을 겪었다면 요즘에는 오히려 물질이 더 많아져서 고통인 것 같습니다.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에서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생명이란 가두지 않고 풀어주는 것 “그렇죠.모든 생명이라는 것은 하나의 순환이거든요.순환이라는 것은,먹이사슬도 하나의 순환이지만 우리 한 개인으로 보아도 일을 하고 또 그렇게 해서 먹고 하면 이게 순환이거든요.그럼 일은 뭐냐? 이렇게 물을 수 있는데,증권 주식 한다고 앉아서 하루 종일 컴퓨터 보고 있는 것,그것도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그것은 엄격히 말해서 죽어 있는 일이지 살아있는 일이 아니에요.살아 있는 생명을 다스리는 일,그것이 일이에요.예술가도 생명이 주예요,사실은.문장 하나,상황 하나,인물 성격 하나,이게 살아 있어야 하거든요.정치라는 것도 살아있는 게 보장되는 방향으로 나가야지 죽음의 방향으로 가면 안 되죠.이 시대엔 전쟁과 핵무기가 있어요.이건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에요.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모든 게 죽음으로 몰려가고 있어요.모두 다 잘 살려고 한다는데 과연 그게 잘 사는 건지 모르겠어요.농약 주고 화학비료 주고 해서 질적으로 망가진 음식을 먹는 게 잘 사는 건지……모든 걸 가둬 놓는 것…… 생명이라는 건 가두는 게 아니라 풀어주는 거예요.이런 제도 속에서 사람들이 생존한다는 게 정상일 수가 없죠. 농촌에도 얼마나 이상한 병들이 많은지 몰라요.농약 때문에 그러는지.지금 이런 상황의 먹거리가 절대 좋은 게 아니거든요.그런데도 잘 산다는 게 이게 전부 양(量)으로 말하는 거죠.사람이 원래 추구해야 하는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거든요.행복의 축이라는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에요.그런데 지금 질은 점점 나빠지고 마치 옛날의 그 질을 옆으로 펴다 보니까 얇아져서 그게 양이 된 거예요.어떤 면에서 보면 더 생겨나는 건 없어요.있는 것에서 얇아지면양이 늘어나는 거고 양이 좁아지면 질이 좋아지는 걸 보여주는 거고.” 나는 사투리 억양이 강한 선생의 말씀을 교정하는 지금의 내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선생의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은 앞으로 나갔다 뒤로 가고 중복되거나 건너 뛰면서도 살아 있는 생생한 감동이 있었다. “선생님 옛날의 초기 작품을 읽어보았습니다.창작집 ‘불신시대’,장편소설 ‘시장과 전장’…… 그런 작품들을 읽다 보면 선생님 작품의 여주인공이 아주 결백한 성격을 갖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그것은 마치 선생님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데요.”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기는 싫어요.결백하다기보다는 자유롭고 싶은 거죠.얽매이기 싫고.” 이하의 내 물음과 선생의 말씀은 생략이다.안타깝게도.그러나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그렇게 많이 서운해하지 않으셔도 된다.내가 여쭈어 본 것은 더 내밀한 선생의 과거며 인생살이 같은 것이었으니까.선생의 사상에 관한 것이 아니니까.그러나 나는 선생의 사상만큼이나 선생의 인생을사랑하는 것 같다.그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다 듣고 기록하고 싶은 것은 나의 감상벽인지? 탐구벽인지?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작각 박경림 ●가혹한 운명 딛고 선 문학사 거봉 박경리는 1920년대가 낳은 가장 대표적인 한국의 작가이자 광복 후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높게 빛나는 설봉(雪峰)이다. 1927년 통영에서 출생,진주고녀를 졸업하고 잠시 후 결혼,황해도 연안에서 교사로 재직하기도 하였으며 1950년에 ‘계산’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했다. 박경리를 오늘의 박경리로 만든 하나는 선생의 작중 인물만큼이나 결벽하고 의지적인 선생의 성품이며 다른 하나는 가혹한 운명이다.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남편을 잃고 이후 아들을 잃고 다시 생명의 위기를 넘기면서 여성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문학의 길을 걸어왔다.가혹한 고통은 선생 문학의 산실이다. 창작집 ‘불신시대’(1963)와 장편소설 ‘표류도’(1959),‘김약국의 딸들’(1962)‘시장과 전장’(1964),‘성녀와 마녀’(1967),‘파시’(1967) 등으로 이어지는 선생의 초기 소설은피폐하고 불순한 현실을 배경으로 결벽성 있고 의지가 강한 여성 주인공의 삶을 그려나가면서 운명과 맞서는 삶의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1969년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1995년에 이르기까지 5부작으로 완성을 본 대하소설 ‘토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선생의 대표작이자 한국소설의 한계를 시험하는 의지의 극점이다.세대를 누적하면서 생을 이어가고 새로운 생을 모색하는 ‘토지’의 인물들은 삶의 만화경이자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다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반영한다. 생명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 같은 질문에 대해 인간은 속수무책의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피안의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박경리의 근본적인 사상은 모든 살아 있는 것의 근원인 우주를 향해 열려 있는 구경적 세계관이다.그것은 종교가 아니되 감히 종교와 ‘맞먹는’ 힘을 갖는다. ●시집에 담긴 또렷한 이미지 박경리 선생 댁은 몇 년 전에 찾아 뵈었을 때는 허허벌판 가운데 있었는데 이번에는 토지문화관 바로 옆에 있어 한결 찾기가 쉬웠다.그때 허허벌판 가운데 약간 둔덕진 곳에 덩그러니 서 있는 선생의 자택을 찾아갔을 때 나는 그것이 평생 외로운 삶을 살아온 선생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었다. 보통 사람들은 선생을 소설가로 생각하고 또 인정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시인으로서의 선생의 이미지가 또렷하다.나는 선생의 시의 애독자여서 몇 권 안 되는 선생의 시집을 새책방,헌책방에서 다 사보았고,그 간결한 어휘,담담한 어조,비약의 미(美),삶의 태도를 절절한 심정으로 내 것으로 만들었다.사상가이자 소설가인 박경리가 아니라 인간 박경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생의 시집을 읽어야 하리라. 몇 년 만에 뵙는 선생은 무척 힘들어 하셨지만 연세에 비해 정정하시다.예전보다 따뜻해 보이는 실내가 나로 하여금 안도감을 갖게 한다.나는 선생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의지적이고 결벽성이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타는 한 여인을 사랑하는가 보다.
  • 순종女와 악착女의 사랑 방정식/MBC 새 아침극 ‘성녀와 마녀’ 박경리 소설 원작 22일 첫 방송

    MBC 소설극장 ‘성녀와 마녀’(연출 강병문 백호민,극본 소현경)가 22일 오전 9시 첫 전파를 탄다.‘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의 후속작이다.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성녀’ 하란(서유정)과 적극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마녀’ 형숙(최유정)이 수영(정찬)을 사이에 두고 보여주는 사랑이 기둥 줄거리다. 얼핏 전형적인 여성상 이분법에 기대는 통속 드라마 같지만,작가 박경리가 1960년 여성지 ‘여원’에 연재했던 같은 이름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1년 정도는 멀리서 바라만 보는 성녀 같은 사랑을 할 수도 있겠죠.상황에 따라서는 남의 애인을 뺏을 수도 있겠고.”(서유정)“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게 마녀라면 저도 그렇게 할 수 있어요.”(최유정) 실제로는 어느쪽이냐는 질문에 두 여자 주인공은 모두 “당연히 섞였다.”고 입을 모은다.“대부분 여성들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어느 한쪽만 단순화시켜서 말할 수는 없죠.”(서유정) 게다가 캐릭터들이 그냥 단면적으로 끝까지 가진 않는다.원작처럼끝부분에서는 ‘성녀’와 ‘마녀’가 각기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라는 것. 정인 책임 프로듀서는 “주인공들이 모두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스스로도 행복한 사랑,상호 보완 관계에서 출발해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사랑이 가장 옳은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사실상 묻혀 있던 박경리의 첫 연애소설 ‘성녀와 마녀’는 최근 43년만에 책으로 나왔다.발표됐을 당시 파격적 자유연애 스토리로 화제를 모으며 영화화되기도 했지만,정작 단행본으로 출간되지는 않았다. 채수범기자 lokavid@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中國고학력 열풍

    고학력 ‘숭배증’이 중국의 새로운 사회 문제로 등장했다. ‘학력이 높을수록 능력이 있다.’는 맹신이 중국사회를 휩쓸면서 대졸자들이 취업 대신 석·박사,심지어 외국 유학으로 몰리는 기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대학에 못가면 출세를 못한다.”는 말은 구문(舊聞)이 됐고 “최소한 연구원(대학원) 문턱에 가야 사람 구실을 한다.”는 말이 새롭게 유행하고 있다. 과거 같으면 직업학교나 전문대,4년제 정규대학 학력이면 충분한 일자리도 지금은 석사·박사·박사후 등의 고학력을 요구하고 있다.학력 인플레이션은 취업난과 맞물리면서 웬만한 세일즈맨 모집에 대졸자들이 수십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기현상이 벌이지고 있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베이징 서부 하이덴(海淀)구,중국인민대학 앞 버스역에서 내려 20∼30m만 걸어가면 누군가 말을 붙여온다.30∼40대 허름한 차림의 중년 남녀들로 학력증서 위조증을 파는 ‘영업사원’들이다. “졸업장이 필요합니까.”라는 말을 걸고 상대방이 관심을 보이면 근처 아파트 단지나 뒷골목으로 가 흥정이시작된다.거래가 성사되면 50위안(7500원) 안팎의 계약금과 관련 서류를 주고 받고 휴대전화 연락처를 남긴 후 사라진다. 지나가는 ‘영업사원’을 잡고 “누가 위조 학력을 원하느냐.”고 묻자 “번듯한 대기업이 아니라 대학 간판을 중시하는 중소기업의 세일즈맨이나 경리사원이 되려는 사람들”이라고 응수한다.“위조 졸업장이 뒤늦게 발각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일단 들어가서 능력을 보이면 큰 문제가 안된다.”고 일축했다.베이징·칭화(淸華)대학교 등 명문대 가짜 졸업장은 300위안(4만 5000원) 안팎에 거래된다. 하지만 가짜 졸업장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대학 당국에서 인터넷에 졸업 확인 사이트를 만들자 2001년 졸업장은 1500∼2000위안까지 위조가격이 폭등했다. 급기야 대학당국이 2002년 졸업자부터 아예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위조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중국 언론들은 “빨간증서(紅證·졸업장)로 인재를 식별하고 우대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경종을 울리고 있지만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고학력 열풍이 쉽사리 사그라지기어려운 분위기다. ●대학 졸업 후 취직보다 석사나 유학길 택해 수치상으로 봐도 10만명당 대졸자(전문대 포함)가 지난 90년 1422명에서 2000년 3611명으로 2.5배나 늘었다. 올 6월 대졸자는 지난해보다 67만명이 증가한 212만명이다.하지만 명문 대졸자들도 취업 대신 석사나 외국 유학을 택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베이징대학교 쉬칭(徐靑·수학과 3년)은 “대학 졸업 후 2000위안(30만원)∼3000위안(45만원)의 월급을 받는 것보다 힘들더라도 석사를 따거나 미국 유학을 다녀오면 확실한 장래 보장이 된다.”고 최근 대학 분위기를 전했다. 베이징대에서 가장 ‘잘 팔리는’ 금융학부의 경우 대학 졸업자는 3000∼5000위안(75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지만 대학원(3년)을 나오면 8000(120만원)∼1만위안(150만원)까지 2배 이상이나 임금이 뛰어오른다. 유학생 박태웅(28·베이징대 금융학부 3년)씨는 “미국 유학을 갔다 오거나 박사 학위를 받으면 부와 명예를 거머쥘 기회가 더욱 많아진다는 믿음은 중국 학생들에게 거의 절대적”이라며 “주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기보다는 거의 80% 이상이 석사를 노리거나 유학을 선택하고 있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대졸 실업자 수두룩… 또 다른 사회문제로 “학사는 개보다 못하고 석사는 거리에 널려 있어 줍는 사람도 없다.”는 말이 요즘 고학력 인력시장에서 유행되는 말이다. 천안문 동쪽 둥청취(東城區) 안딩먼와이다제(安定門外大街) 베이징 런차이다샤(人才大廈) 2층에는 경력직 사원을 구하는 인재시장이 부정기적으로 선다. 신문 광고로 구인이 있는 날이 발표되면 인재를 뽑아가려는 회사들과 구직을 원하는 사람들로 로비가 꽉 찰 지경이다.구인회사 카운터마다 상담을 기다리는 인재들이 줄지어 섰다.자신의 이력서를 접수하고 회사 담당자와 진지한 면담이 이어지는 모습을 로비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이런 인재시장은 중관춘(中關村)과 융허궁(壅和宮) 주위 곳곳에 산재해 있다. 석사 학위 취득 후 IT업종에서 직장을 찾는다는 장융신(張勇新·27)은 “제네럴 모터스나 필립스 등 외자기업을 선호하고 있으나 정작 이들은 미국 유학생들을 찾고있어 몇 달째 실업자 신세”라며 “그렇다고 지금 대졸자 월급을 받고 중국 기업에 들어갈 수는 없다.”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어렵사리 석사 학위를 취득해도 미국 유학생들에게 설 자리를 빼앗기고,국내 박사보다 미국 박사가 더 가치가 높다.그렇다고 대졸 임금에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것이 고학력자 실업자들의 고민이다. 후이루이(惠銳) 인력회사 양샤오촹(楊小創) 고문은 “맹목적으로 고학력을 추구하는 것은 시간낭비”라며 “아주 특별한 직책 이외에 회사에서는 협조의식을 갖춘 성실한 사람을 더 선호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인력시장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전문대와 대졸자에 대한 수요가 각각 41%,32%로 나타났다.석·박사 학력은 1%에 불과하다.일부 박사 출신의 경우 지나친 자존심 때문에 현실 적응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9세의 명문대 경제학 박사 출신 류추밍(劉楚明)은 학위를 취득한지 2년밖에 안됐지만 벌써 7개 회사를 전전했다. 다섯번은 스스로 사표를 냈고 두번은 회사에서 해고됐다.사표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고,해고는 동료들과의 불화와 업무 수행시 적응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중국인민대학 노동대학원 류얼시(劉爾錫) 부원장은 “고학력 실업의 원인은 학생들이 배우는 것과 시장의 수요가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고학력이 고능력과 동일하지 않다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고학력 부추겨 사실 과열된 고학력 추구 현상은 정부가 부추긴 측면이 크다.시장경제시대에 있으면서 아직도 계획경제시대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중국청년보는 최근 “정부가 관료를 선발할 때 학력에 따라 임금·주택·승진,나아가 세수 혜택 등이 결정되는 관행을 만들어 사회 전체적으로 고학력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학력 인플레이션’ 현상은 인력 배분에 심각한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대도시에서는 고급 실업자들이 득실거리는 반면 지방도시나 시골에서는 인력난에 허덕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산당 인재과학연구소 왕퉁쉰(王通迅) 소장은 최근 인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힘들여 키운 인재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라고 한탄했다. 최근 중국 정부가 대졸자들이 기피하는 서부지역으로 고급 인력을 보내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서부 대개발 지원 명목으로 3년 정도 이곳에서 근무할 경우 대학원 시험시 우대점수를 주지만 이 또한 학력주의를 조장한다는 비난도 없지 않다. oilman@ ■中대학생 직업 선호도 변화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의 대학생들은 어떤 직업을 선호하고 또 얼마의 임금을 원할까. 베이징르바오(北京日報)가 최근 전국 대학 재학생 2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전문기술직(26%)→관리직(24%)→기획(19%) 순으로 직업 선호도가 조사됐다. 이들 직업은 중국에서 가장 우대받고 앞으로 발전 가능성도 상당히 높은 직업들이다.과거 인기가 높았던 관료직(행정직) 선호도는 8%로 집계돼 중국 대학생들의 의식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줬다.권력보다는 돈을 선택하는 최근 분위기다. 중국 대학생들의 직업 선택 기준으로 ▲발전 전망(19%) ▲재능 발휘(18%) ▲임금과복지(16%) ▲근무환경(13%) 등의 순으로 선호했다. 졸업 후 취직을 할 경우 가장 가고 싶은 도시로 중국 경제의 심장인 상하이(上海·32%)가 1위를 차지했다.수도인 베이징(北京·27%)에 이어 개혁·개방의 상징인 선전(深·12%)과 광저우(廣州·6%),다롄(大連·5%),시안(西安·1%) 순으로 조사됐다. 대졸자들의 한달 임금에 대한 요구는 500위안(7만 5000원)부터 4000위안(60만원) 이상까지 다양했다.전공·학력·지역간 차이를 고려하면 문과생보다 이과생이,학사보다 석사,중소도시보다 대도시 출신들이 더 많은 임금을 요구했다. 56%가 1000위안(15만원)∼3000위안(45만원) 선을 최저 임금으로 요구했고,평균 희망임금은 2244위안(33만 6000원)이다. 25% 정도가 2000위안(30만원)∼3000위안(45만원)을 희망했고 20%가 1500∼2000위안의 월급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3000위안(45만원)∼4000위안(60만원)까지를 희망하는 사람도 17%였고 4000위안 이상의 고수입을 희망하는 대졸자도 15%를 차지했다.반면 조사자의 9.4%는 1000위안(15만원) 이하의 월급에도 만족했다. 임금 격차가 가장 많이 나는 곳은 IT업계다.베이징 외국업체 관리 고문 유한공사가 최근 조사한 결과 첨단기술업체에서 빈부 격차가 명확했다. IT업체의 최저 연봉은 2만 2111위안(330만원)이고 최고 연봉은 80만 3142위안(1억 2000만원)으로 40배 가까이 격차가 났다.
  • 마산 해운프라자 안타까운 사연들

    “이승에서 못다 이룬 꿈 저승서라도 이뤄야죠.” 발레리나의 꿈도,선박왕의 희망도 태풍 ‘매미’가 몰고온 수마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14일 마산 삼성병원 영안실에는 지난 12일 마산시 월영동을 덮친 해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 8명의 빈소가 마련됐다. ●엄마 약값 마련하려던 산동네 발레리나 지망생 김다정(20·여)씨는 사고 당시 해운프라자 지하 2층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변을 당했다.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당뇨와 천식으로 고생하는 어머니의 병원비를 대겠다며 생업전선에 뛰어든 김씨였다.어머니 주점이(52)씨는 “엄마 병을 고쳐주겠다며 대학진학도 포기한 착한 딸이었다.”며 오열했다.김씨는 사고가 난 12일에도 “돈 많이 벌어올 테니 엄마도 아프지 마.”라는 말을 남긴 채 집을 나섰다.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김씨 가족은 사고 현장에서 500m쯤 떨어진 월영동 산동네에 산다.일용직 근로자로 공사판을 전전하는 아버지와 선창가에서 생선을 손질하는 어머니와 함께 보증금 500만원짜리 단칸방에서 고단한 살림살이를 꾸려왔다. 고교를 졸업한 뒤 잠시 어머니가 일하는 생선유통회사에서 경리일을 보기도 했다.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월급으로 어머니의 약값과 병원비를 감당하기는 무리였다.지난달 초 월급이 많은 지금의 일터로 옮겼다.10일 뒤면 첫 월급을 받기로 돼 있었다. 고교 시절 김씨의 꿈은 발레리나였다.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해 강수진 같은 발레리나가 되겠다며 입버릇처럼 말했다.주씨는 “유난히 키가 크고 몸도 유연했다.”면서 “발레학원을 보내다 가정형편 때문에 포기시킨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저승에서 부부의 연 맺기를” 지하 3층 노래방에 들렀다가 변을 당한 정시현(28)·서영은(23·여)씨는 내년 5월 결혼을 약속한 예비부부였다.말없이 영정만 응시하던 정씨의 아버지 계환(64)씨는 “선박업에 뛰어들어 한국의 오나시스가 되겠다던 아들이었는데…”라며 눈물을 떨궜다.함께 빈소를 지키던 서씨의 아버지 의호(51)씨가 “하늘에서나마 못다한 꿈을 이루겠지요.”라며 위로했지만 정씨의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정씨와 서씨가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월.호주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귀국해 아버지의 사업을 돕던 정씨와 서울의 브랜드 컨설팅 업체에서 일하던 서씨는 지난 8개월간 서울과 마산을 오가며 사랑을 키워왔다.지난 12일 밤 일주일만에 만난 두 사람은 노래방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 바닥에 물이 차오르는 것을 알고 대피를 서둘렀다.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 때문에 서씨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고,연인을 구하러 다시 지하로 뛰어든 정씨마저 물길을 헤쳐나오지 못했다. 계환씨는 “올 가을에 결혼하겠다는 것을 사회경험이 더 필요하다며 내년으로 미루게 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면서 “저승에서나마 부부의 인연을 맺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마산 이세영기자 sylee@
  • 한가위 특집 / 가족과 들른 古宅고향 정취 물씬~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란 말이 있다.한가위가 품은 풍성함을 이르는 것이리라.그래선지 지옥같은 교통체증을 겪었음에도 고향을 찾은 이들의 표정엔 보름달 같은 여유로움이 넘친다.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엔 예전의 정겹던 운치를 맛볼 수 없는 고향의 모습에 서운함이 느껴지기 마련.이번 추석 연휴엔 ‘지금의 내 고향보다 더 고향같은 고택과 생가’를 찾아보자.어릴적 고향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고택과 생가들을 소개한다. ●정지용 생가(충북 옥천군 하계리) 옥천은 우리나라 현대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정지용이 태어난 곳.그렇기에 지용 생가를 찾는 여정은 그의 대표작 ‘향수’가 주는 감동만큼이나 가슴 설렌다. 경부고속도로 옥천 IC에서 나와 지용생가 안내판을 따라 37번 국도를 타고 보은 방면으로 가다보면 생가 입구에 도착한다. 생가엔 초가집 한 채와 헛간 한 채,그리고 마당에서 7∼8m 길이의 너럭바위 두개가 다리처럼 놓여 있다.마당 한 편에 새겨진 ‘향수’ 시비가 지용 생가임을 알려준다.초가집 주위로 민가들과 5층 건물까지 들어서 운치를 반감시키는 것이 흠.생가 앞으론 시에서처럼 실개천이 흐른다. 옥천군청 직원이 상주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생가에 드나들 수 있다.인근에 장룡산 자연휴양림,옥천향교,옥천 5일장 등에 들러볼 만하다.문의 옥천군청 문화관광과(043-730-3544). ●지례예술촌(경북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안동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수몰지에 있던 의성김씨 지촌파 종택을 종손인 김원길씨가 마을 뒷산 자락에 옮겨 지었다.종택과 함께 서당,제청 등 건물 10여채가 들어서 있다.1990년 정부로부터 예술창작마을로 지정받아 예술인들의 창작과 연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청마루,돌계단,장독대,화장실 등 옛 모습에서 고향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고택 앞으로 펼쳐진 호수 풍광이 그림같다.예술인이 아닌 일반인들도 이곳에서 숙박과 함께 전통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안동의 전통 반가음식도 맛볼 수 있다. 워낙 외지고 길이 험해 버스는 들어가지 못하며,승용차 또는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안동시내에서 영덕방면 34번 국도를 따라 30분쯤 가다가 길을 꺾어고천리 입구를 지나 산자락으로 난 길을 넘어야 지례예술촌에 닿는다.안동시내에서 약 50분 거리.(054)857-5553. ●평사리 최참판댁(경남 하동군 악양면)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 나오는 ‘최참판댁’을 섬진강변 전망 좋은 곳에 재현했다.지리산 남쪽 자락 아래 자리잡은 평사리는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 몸에 받은 땅.마을 아래 섬진강까지 펼쳐진 너른 들판은 만석지기 서넛은 낼 만하고,들판과 강이 어우러진 풍광은 마냥 평화롭다. ‘최참판댁’은 아직 재현중이다.3000여평의 부지에 안채와 사랑채,행랑채,초당 등 10여동의 건물과 연못이 들어서 있어 나들이객들이 꾸준히 찾아온다. 평사리가 위치한 악양면은 중국 호남성의 악양과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중국의 지명을 따라 평사리 강변 모래밭은 ‘금당’,모래밭에 갇힌 호수는 ‘동정호’라고 했다. 인근에 화개장터와 쌍계사,구례 쪽으로 올라가면 화엄사 등 둘러볼만한 곳이 지천이다.호남고속도로 전주IC에서 빠져 17번 국도를 타고 구례까지 온 다음 19번 국도로 갈아타고, 섬진강변을 따라하동 방면으로 가다보면 왼쪽으로 ‘최참판댁’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문의 하동군청 문화관광과(055-880-2341). ●운림산방(전남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로 불리는 소치 허유(小痴 許維)가 그림을 그리던 화실의 당호(堂號).소치는 말년에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이곳에 내려와 거처하며 그림을 그렸다.소치의 3남인 허형과 손자 허건도 이곳에서 남종화의 대를 이었다. ‘ㄷ’자 모양의 기와집인 운림산방과 그 뒤편의 초가로 된 살림채,소치의 유품과 작품을 전시한 기념관이 있다.운림산방 앞에 펼쳐진 널찍한 연못엔 요즘 연꽃이 피어 있다.연못 가운데의 인공섬엔 ‘나무 백일홍’으로 불리는 배롱나무가 빨간 꽃을 피우고 있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것을 1982년 손자 허건이 지금과 같이 복원했다.운림산방(雲林山房)이란 이름은 첨찰산을 지붕으로 하여 사방으로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는 산골에,아침 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서해안고속도로 목포IC에서 빠져 2,13,18번도로를 차례로 갈아타면 진도대교에 진입할 수 있다.다리를 건너 진도읍까지 가서 9번 군도로 갈아타면 운림산방에 닿는다.(061)543-0088. ●영랑생가(전남 강진읍) 한국의 순수시를 대표하는 영랑 김윤식이 자란 곳.1906년 영랑이 어렸을 적에 건립되어 지금까지도 거의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원래 정면 5칸 측면 1칸의 팔작 초가지붕집이었으나,지난 92년 강진군이 대부분의 기둥과 석축을 옛 모습 그대로 남겨둔 채 정면 5칸,측면 2칸의 초가집으로 복원했다.본채 옆의 사랑채는 1930년대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며,정면 4칸,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이다. 생가엔 모란꽃을 심어놓아 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심에 젖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꾸며놓았다. 강진읍 버스터미널 네거리에서 서쪽 길로 200m쯤 가면 영랑생가 입구가 나오고,안내판을 따라 골목길로 150m쯤 가면 생가가 나온다.문의 강진군청 문화관광과(061-430-3223·4. 임창용기자 sdargon@
  • [中서부 대개발 현장을 가다](7)서부개발 뛰어든 한국기업들

    21세기 초입에 불붙기 시작한 서부대개발은 황무지를 개척하려는 한국인들에게 새로운 도전의 장이다.‘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의지를 바탕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는 한국인들이 중국의 서부를 뛰고 있는 것이다.이들은 광활하게 펼쳐진 서부지역에서 시장선점과 내수시장 확대를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굴착기 판매 1위인 대우종합기계를 선두로,화학공장인 한화염호화공,고기능안테나 생산업체인 화천통신 등이 서부개척에 나서고 있다. |시안 우루무치 옌타이 오일만특파원|서부대개발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 있다.삼성이나 LG,SK 등 한국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도 낙후된 서부 진출을 꺼려할 때 야심찬 도전장을 던진 기업이 바로 대우종합기계 중국 법인이다. 서부대개발의 출발지인 시안(西安)에서 종착역인 신장성 우루무치는 물론 청두와 쿤밍,우한에까지 지사망을 갖춘 한국 기업으로는 대우종합기계가 유일하다.산하 영업소까지 합치면 서부지역에 15개가 넘는 사무소가 있다. 우루무치나 광시(廣西))자치구,칭하이 등 서부지역의 웬만한 대형 건설 현장에 주력 상품인 대우 굴착기가 눈에 띄는 것도 이 때문이다.대우 굴착기가 서부는 물론 중국 전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시 개발구에 위치한 대우종합기계 중국법인을 가보면 그 비밀이 풀린다. ●공격경영으로 승부,적중 한여름 육중한 기계가 오르락내리락거리며 발산하는 뜨거운 열기와 체온까지 더해져 조립공장 내부는 사우나실을 방불케 한다.조립공장 옆 출고장에는 갓 생산된 굴착기들이 굉음을 울리며 시운전에 들어가고 1시간가량 각종 테스트를 거친 후 판매 공터로 집결한다.15명의 한국 주재원은 물론 중국인 직원 모두가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는 느낌이 와닿는다. 대우 종합기계도 장밋빛으로 시작하지는 않았다.96년 공장을 가동하자마자 닥친 IMF 외환위기와 연이은 대우 부도사태 등으로 이곳 사정도 최악의 국면을 맞았다.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위기까지 몰렸다.벼랑끝에 선 대우종합기계는 2000년 1월 채규전 총경리(사장)를맞으면서 전환점을 맞았다.채 법인장은 외환위기로 수출길이 막힌 동남아 시장을 과감히 포기하고 중국 내수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우선 당시 중국시장에서 금기시하던 할부판매로 승부수를 던졌다.현금 회수율이 극히 낮은 중국시장 관행을 감안할 때 당시로서는 도박에 가까웠다. 때마침 중국 정부가 서부대개발 등 사회간접자본에 집중 투자하면서 ‘공격 경영’전략이 맞아떨어졌다.2000년 대우종합기계는 중국전체 시장의 20%를 점유,업계 1위로 올랐다.97년 1억위안(150억원)의 매출에서 올해는 40억위안(6000억원)을 거쳐 2007년 100억위안(1조 5000억원) 달성이 목표다.최근 5000만달러를 투자,공작기계 생산 라인 증설에 들어갔다. 이러한 저력은 서부대개발의 종착역인 신장에서도 마찬가지다.우루무치 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하탄(河灘) 북로에 위치한 신장대우기계유한공사는 지난 99년 설립,한국기업 2호가 됐다.지금은 칭하이(靑海),간쑤(甘肅)성으로 판매망이 확대되는 중이다. ●소금 호수에 던진 승부수 서부대개발의 종착역으로 불리는 신장(新疆)성 우루무치 시내에서 서쪽으로 3시간가량 자동차로 달리면 중국에서 두번째로 큰(17㎢) 거대한 염호(鹽湖·소금 호수)가 나온다.이 염호에서 고부가가치의 의류 염색 및 합성세제의 원료를 캐내는 기업이 있다. 96년 9월에 설립,신장성 진출 기업 1호를 기록한 한화 염호화공유한공사다.지난해 매출액은 1000만달러(120억원)다.염호에서 캐내는 원료는 한국에서 80%가 소화되고 나머지는 일본에 수출한다.내년부터는 동남아 등으로 수출지역을 확대할 예정이다.소금 대신 ‘황금’을 캐내는 셈이다. 7년 전 우루무치에 온 김경환(金慶煥) 부총경리는 “처음 이곳에 진출했을 당시 외국투자 제조업체는 전무했다.”며 “서부대개발과 함께 최근 자원개발을 위해 퉁쾅(銅鑛) 등에 서구기업들이 노크하고 있다.”고 최근 투자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우루무치에서 톈진(天津)까지 3500㎞에 달하는 수송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하루 뒤 떠나기로 한 화차가 아무 통고없이 1주일씩 연기되고 잦은 고장으로 출발이 지연되는 것이 다반사였다.그러나 4년 전서부대개발과 함께 투자 유치 열기가 이곳에도 전해져 지금은 성 정부가 앞장서서 문제점을 해결해 준다고 한다. 고대 실크로드의 출발지인 산시(陝西)성 시안에는 한국투자 기업 1호가 진출해 있다.무선통신 설비 분야의 정보기술(IT)기업인 화천통신(華天通信)유한공사가 시안에 첫발을 디딘 것은 지난해 3월이다.시내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하이테크 개발구에 위치한 화천통신은 코스닥 상장회사인 KMW사가 모 회사다. 간판 상품인 고기능성 안테나로 중국 대륙을 휩쓸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이 안테나는 이동통신의 서비스 질을 극대화시키는 첨단 기술로 제작되며 미국 앤드루사나 오스트리아 아구스사 등 전세계적으로 3∼4개 기업이 상품화에 성공했을 정도다.최근 시안을 벗어나 처음으로 산둥성 제남시에 신규 건설되는 128개 기지국에 전량공급(348개) 계약을 따내 상당히 고무돼 있다. 한일수(韓鎰洙) 총경리는 “1년간 적응기간을 거쳐 올 매출목표는 3000만위안(45억원)이지만 3년 후 10배인 3억위안(450억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청사진을 제시했다. 군수용 레이더 생산업체인 창림과 천룽 등과 합작회사로 직원 65명 가운데 연구개발 인력만 18명이다.화천의 지분은 총투자액(1000만달러) 가운데 35%에 불과하지만 경영 전권을 위임받았다.한 총경리는 내년부터는 일본시장에,2년 후 미 앤드루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OEM)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며 2008년 중국 증권시장에 상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oilman@ ■ 대우綜機 中법인 채규전사장 |옌타이(산둥성) 오일만특파원|대우종합기계 중국법인 채규전(蔡奎全·사진·54) 총경리(사장)는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영업 분야의 야전사령관으로 통한다. 76년 대우 중공업 입사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과 일본,중국 등 해외 영업현장에서 뛰었다.부하 직원들은 그를 가리켜 “현장에 강하고 아이디어가 풍부한 전략가”라는 표현을 쓴다. 채 총경리는 98년 중국 영업총괄 본부장을 거쳐 2000년 중국 총괄 사령탑에 올라 중국 시장 굴착기 1위를 달성한 장본인이다.특히 과감한 공격경영을 앞세워 중국 시장에서 금기시된 ‘할부판매’를 전격 실시,20년 역사의 일본·미국기업들을 따돌린 것은 아직도 업계에서 회자되는 일화다. 중국 시장을 공략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98년 6월 중국에 첫발을 디딘 후 시장조사차 3개월 동안 중국 전역을 다니면서 ‘막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대우 굴착기를 사겠다는 사람도 안나타나고 대우 본사는 무너지고 정말 ‘처절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위기상황을 돌파하고 굴착기 1위 기업으로 떠오른 비결은. -3개월 동안 중국을 돌아다니다가 너무 무리를 해서 황달에 걸렸다.1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하면서 불현듯 할부판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당시 수요는 중국의 국유기업과 개인 수요자로 양분된 상황인데 개인들은 고가의 굴착기를 전액 구입할 능력이 없었다.결과적으로 할부판매는 잠재 수요를 확실한 수요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경쟁사들은 ‘대우가 망하려고 기를 쓰고 있다.’고 비아냥거렸지만 결국 그들도 2년 후 우리의 방식을 따라왔다.발상의 전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중국 직원들을 다루면서 어려웠던 점도 많았을 텐데. -공장 경영은 처음이라 부담도 컸지만 평생 영업을 하면서 터득한 고객 중심이란 원칙을 공장 운영에 적용했다.직원들을 현장에서 보내 ‘고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집중 연구토록 해 품질 제고에 많은 도움이 됐다. 중국의 서부대개발은 한국기업들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중국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는 대역사인 만큼 단기적으로 서부대개발의 열매를 따려고 하지 말고 일단 참여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50년 정도 지속될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앞으로 무궁무진한 비즈니스 찬스가 우리에게 오게 돼 있다.서구기업들이 당장 돈이 안돼도 서부대개발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단기적으로 투자효율이 없다고 기피할 경우 중국정부는 서부대개발의 노른자위를 절대 한국기업들에 나눠주지 않을 것이다. 중국 진출을 꿈꾸는 한국기업들에 조언을 한다면. -단기적인 과실을 따먹기 위해 중국에 진출해서는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싼 인건비를 이용해 단기적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치고 재미본 사람이 없다.20년이고 30년이고 중국에서 제2의 창업을 한다는 생각으로 들어와야 한다.제품과 관련된 유통과 고객구조 등 철저한 시장조사가 필수적이고 최소한 알아들을 정도의 중국어 실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 물류대란 또 오나/휘영청 한가위 중소기업 휘청

    화물연대의 운송거부 12일째인 1일 오후 수도권의 대표적 수출입 공단인 경기 안산의 반월·시화 공단은 대형 컨테이너 차량들이 쉴새없이 오가던 한달여전에 비해 한산했다.운송거부 초기에 비해 화물운송 물량은 다소 늘었으나 중소기업은 대신 높아진 물류비용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물류대란’ 여전 공단에 입주한 업체는 현재 5882개.대한전선,삼보컴퓨터 등 20여개의 대기업을 빼면 중소기업들이 공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반월·시화 공단의 기업 활동을 지원·총괄하는 한국산업단지공단 서부지역본부측은 “공단 전체 생산액 15조원의 60%를 담당하는 20여개의 대기업들은 자체 물류팀을 가동하거나 대한통운 등 큰 규모의 운송 업체들을 이용하기 때문에 물류 수송에 큰 어려움이 없다.”면서 “‘물류대란’의 큰 고비는 넘긴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소업체에서 느끼는 현장 체감도는 달랐다.‘울며 겨자먹기’로 평소보다 3∼4배 많은 운송비의 출혈을 감수하고 있다.자금 회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터라 부도의 위기감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반월 공단 18블록에 위치한 섬유 원단 가공업체 Y실업은 대낮인데도 조용했다.부산항을 통해 지난 28일 수입한 실 원단을 실은 40피트짜리 컨테이너 박스 4개가 차량을 구하지 못해 5일째 의왕내륙컨테이너기지(경인ICD)에 묶여 공장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이 회사 경리부 김모 대리는 “원사가 제 날짜에 도착하지 못하는 바람에 섬유가공 작업을 못하고 있다.”면서 “경기 침체까지 겹쳐 늦게 작업을 마치더라도 추석 보너스는 고사하고 작업 지연에 따른 손실을 만회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양피 제조업체 S피혁 총무팀 강모 과장은 “양피 원자재가 실린 10여개의 40피트짜리 3개가 운반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운송비가 예전보다 3배 올라 대기업은 중소업체보다 형편이 낫기는 하지만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자금력을 바탕으로 높아진 운송비를 막고 있다. 업계 1,2위를 다투는 J화학회사는 컨테이너 차량을 구하지 못해 육로수송비보다 2∼3배 높은 비용을 주고 배편으로 부산까지 물건을 보냈다.관계자는 “수출은 신뢰가 중요한데도 계약대로 물량을 못 내보내 외국 바이어로부터 소송에 걸릴 판국”이라고 말했다. H종합상운 양모 차장은 “운송거부가 계속되면서 50피트짜리 하나에 파업 전보다 3배 이상 높은 150만원을 줘야 한다.”면서 “영세 업체들의 어려움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한편 산자부 유통서비스산업과 관계자는 “부산 등 항만을 중심으로 한 수출입 물량 수송은 위기를 벗어났지만 아직 내륙 수송에는 문제가 많다.”면서 “운송방해 행위에 대한 철저한 단속 없이는 당분간 완전 정상화는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반월·시화 이두걸 김기용기자 douzirl@
  • [나의 건강보감] 지식산업사 대표 김경희

    “단전호흡,이거 자식들에게 물려줄 유산목록 1호요.낼 모레 일흔인 내가 무슨 욕심이 있겠어.정말 사람들이 다 이 운동 했으면 좋겠어요.” 올해 예순 여섯.그의 목소리는 아직도 칼칼했다.안색은 익은 누에처럼 맑았고,몸은 마치 꿩의 다리뼈처럼 단단하고 꼿꼿해 보였다.지식산업사 김경희 대표는 단전호흡의 전도사를 자임했다. “중학교 3학년때부터 2년 남짓 결핵을 앓았고,대학 들어가서는 한 7년쯤 위·십이지장 궤양을 심하게 앓았지.그뿐인가.30대 초반에는 간영양결핍증이 왔어.이게 간경화로 된답디다.좀 나아지나 했더니 당뇨가 와요.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힙디다.” 젊은 시절의 그는 병을 달고 살았다.“80년대 초반에 세상 어수선했잖아.그때 출판사 힘들었어요.신산(辛酸)의 삶이랄까.그랬어.그 와중에 당뇨가 온거야.” 그가 겪은 병증이 모두 그랬지만 특히 당뇨는 그의 삶을 바꾼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어릴때부터 병약… 당뇨까지 생겨 “다들 아는 얘긴데,당뇨가 오면 성기능이 무뎌져요.한마디로 안돼.내가 마흔에 결혼을 했는데 당뇨가온게 마흔 대여섯 무렵이란 말야.큰일이지.양의,한의 다 찾아다녔지만 안돼.그때 만난 게 국선도 단전호흡이야.이런 말 하면 믿을까? 단전호흡 시작한지 5일만에 내 자신이 달라졌다는 것을 확인했어.”그때부터 그는 단전호흡에 몰입했고,몰입은 곧 심취로 이어졌다.86년 초의 일이었다. 국선도에서 그의 요즘 지위는 최고위 선사(仙師) 다음의 법사(法師).그러나 공력이나 이론은 누구 못지 않다.만나자마자 수련복을 갈아입고 보여주는 고난도 시범은 ‘이래도 단전호흡 안할거야?’라는 시위같았다.“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고대부터 우리 조상들이 양생법(養生法)으로 삼았던 배냇호흡이 바로 단전호흡입니다.” 그가 설명하는 단전호흡의 원리와 기원은 이렇다.진화 이전의 인간은 다른 동물처럼 네 발로 활동하고 복식호흡을 했다.자연 인체의 장기는 척추에 메주처럼 매달렸고,잠을 잘 때도 지금처럼 등을 바닥에 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두발로 서는 직립이 문제가 됐다.앞발을 손으로 쓰게 되면서 태생의 섭리가 왜곡되기 시작한 것.척추에 매달려야할 장기는 아래로 쏟아질 듯 위태롭게 됐고,그 결과 단전은 장기의 압박을 받아 위축됐으며,사람들은 직립에 거추장스러운 복식호흡 대신 간편한 폐호흡을 택했다. 그러나 폐호흡이 인체의 운기(運氣)를 막아 숱한 부조화를 낳고,부조화는 병을 만들며,병은 고뇌를 낳고,고뇌는 사람을 더욱 거칠고 병약하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동인도회사를 만든 유럽인들이 인도에서 요가를 목격하고는 이를 유목민 체형에 맞게 변조한 것이 바로 우리가 어렸을 때 배운 국민체조의 원조인 덴마크체조였어요.이에 비해 단전호흡은 백두산 언저리에 터를 닦은 우리 조상들이 찾아낸 참으로 값진 유산입니다.도수체조는 좋다는 사람들이 단전호흡을 어렵다거나,낯설게 느끼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요.” ●폐호흡이 부조화 부르고 병 만들어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한 뒤 문학평론가이자 손위 형인 김우정씨가 지난 69년 설립한 지식산업사에 전무로 입사해 일하던 그는 지난 83년 된서리를 맞았다.광주민주화운동과 KAL기 폭파사건,아웅산 사건 등으로 전쟁위기가 고조되면서 돈줄이 막혀 거액의 부도를 낸 것. “지금으로 치면 부도액이 50억원쯤 될건데,죄책감과 부끄러움 때문에 살 수가 없더라고.죽으려고 했는데,죽으란 법은 없나 봐.바깥에서 지식산업사 살려야 한다며 당대의 지식인들이 후원회를 만든 거예요.변형윤·민두기·박경리 선생 등 내로라하는 인사 40명이 참여했어요.그래서 이 회사가 주식회사로 되살아난거요.그때부터 몸 안사리고 일했지.운동을 못하니 체중이 69㎏까지 붑디다.지금 55㎏이니 어땠겠어요.당뇨도 그때 왔어요.” “살펴보자니,단전호흡이 국운의 성쇠와도 무관치 않은 것 같아요.국선도의 다른 이름이 풍류도,화랑도였는데,화랑을 앞세워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나중에 화랑도 즉,국선도를 폐기하면서 망했거든.어디 그뿐인가.어려서부터 병약했던 퇴계 이황 선생은 단전호흡에 심취해 일흔까지 장수했어요.죽을 때도 ‘나를 일으켜 앉혀라.’하고는 가부좌한 채 운명하셨고,성철스님도 ‘나 갈란다.’하시고는 결가부좌를 튼 뒤 입적하셨는데,나도 그렇게 죽고 싶어요.옛날 선비들 하루종일 가부좌 틀고 단정하게앉아 독서하고 토론한 것이 바로 단전호흡의 전통이거든.” 그는 10년 전부터 사무실로 쓰는 종로구 효자동의 저택 3층에 15평쯤 되는 수련장을 마련해 매일 단전호흡을 지도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시인 황지우씨와 중앙대 강내희 교수,서울컨벤션의 이수연 사장 등 숱한 사람들이 그에게서 단전호흡을 익혔다. “내가 단전호흡을 시작한 이후 당뇨는 물론 감기약 한번 먹어본 적이 없어요.이런 좋은 운동을 나만 가질 수 있나.나눠야지.국민들 모두 나서 단전호흡 했으면 좋겠어요.이것이 내가 사회에 베풀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단전 시작후 감기약 한번 안먹어 그의 단전호흡 찬양은 끝이 없다.“현대인들이 이런저런 병고에 시달리는 것도 다 타고난 섭리를 무시하고 조화를 깨뜨려 빚어진 일입니다.그 뿐입니까.정신이 육체를 지배하지 못하면 젊은이들은 불량배가 되고,나이 든 사람은 치매를 맞습니다.이런 부조화,여기서 비롯된 모든 병증을 극복하는데 단전호흡만한 비방(方)이 없다고 봐요.” 그는 지금도 두좌(頭座·물구나무서기)해 세상을 본다.거꾸로 된 세상을 바로 보는 그만의 관조법이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남상인기자 sanginn@ ■단전호흡 건강론 “완전한 건강은 몸과 마음이 합일해 하나의 유기체로 작동할 때 이뤄지는 것입니다.육체의 단련만을 건강의 완성이라고 여기는 일부의 시각은 이런 점에서 잘못된 것이지요.” 김경희씨의 건강론은 ‘조화의 건강론’으로 요약된다.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뤄야 사람이 건강하고 사회도 바르게 된다는 의미다.“사람을 보세요.뱃속의 태아는 복식호흡을 하다 세상에 나오면서 비로소 폐호흡을 시작합니다.태어나서도 심상이 편할 때는 곧잘 복식호흡을 합니다.그러다가 죽음에 가까울수록 폐호흡을 하게 되는데,숨이 얕아져 목호흡을 하면 그것은 곧 죽음입니다.” 단전호흡 경력 20년이 돼가는 그는 지금도 거의 매일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운동법은 간단합니다.복식호흡으로 단전에 기를 모아 온몸으로 순환시키는 원리지요.그 과정에서 인체의 365경락을 모두 돌아 놀라운 집중력과 지구력이 생성되는 겁니다. 그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해야 하는 운동이지만 특히 청소년과 사회를 이끄는 지도급 인사들에게 단전호흡을 권하고 싶다.”고 했다.“이유야 많지만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호연지기와 결단력,멀리 보는 지혜와 매사 공정하게 읽어내는 균형감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순을 훨씬 넘긴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물구나무 선 뒤 거꾸로 선 몸통을 머리와 양쪽의 가냘픈 검지손가락 하나로 지탱했다.그러고는 “모든 사람이 희구하는 파라다이스는 바로 모태(母胎)인데,단전호흡은 이미 세상에 던져진 사람을 그 모태,즉 파라다이스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경희대한방병원 신경정신과 김종우 교수는 “단전호흡은 인체의 운기를 활성화해 우리가 에너지라고 일컫는 정(精)을 충족시키는 유용한 건강법”이라며 “호흡뿐만 아니라 체조까지 해야 하므로 심신의 이완과 안정을 가져오고 성별,나이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점도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심재억기자
  • ‘굿시티’특혜분양 정·관계 수사착수

    굿모닝시티 분양비리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특수2부(부장 蔡東旭)는 21일 정치인과 공무원,검·경 관계자 등을 상대로 한 특혜분양 의혹에 대한 본격수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로비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들의 친인척 명단을 확보하고 있다.”면서 “다음주부터 고액 할인을 받은 계약자 명단과 대조해 특혜분양 여부를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굿모닝시티 부지 안에 있는 파출소 이전 등 청탁 대가로 특혜분양과 함께 금품을 수수한 당시 서울 중부경찰서 을지로6가 파출소장 손모(46) 경위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구속했다. 손 경위는 2001년 9월 굿모닝시티측으로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경우 잘 처리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2개 점포를 인척 명의로 할인 분양받아 1억 2600만원을 챙기고 지난해 7월 굿모닝시티 부지내 파출소 이전 청탁과 함께 1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또 지난해 한양의 건설면허 회복에 대한 건설교통부의 유권해석과 관련,건교부 공무원과 주택공사 임직원 등 5∼6명이 한양측으로부터 각각 200만∼400만원씩 모두 2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포착,해당 부처에 통보하고 징계토록 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4∼5월 허위 분양계약서로 분양대금을 완납한 것처럼 전산내용을 조작한 뒤 계약을 해지하는 수법으로 3억 5100만원을 가로챈 굿모닝시티 경리이사 이모(50)씨 등 3명을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했다.지난 6월 검찰 수사망을 피해 도주하던 윤창렬 회장에게 도피자금 등을 제공하고 지난해 8월 모보험사 대출로비 명목으로 5000만원을 받은 굿모닝시티 사외이사 홍모(48)씨도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 이로써 이 사건과 관련,사법처리된 사람은 체포영장이 청구된 정대철 민주당 대표를 포함,22명으로 늘어났다.한편 검찰은 계약금을 수표로 직접 납부했던 굿모닝시티 계약자 550여명으로부터 수표번호를 받아 수백억원대의 수표 1만여장을 추적하고 있다. 홍지민기자 icarus@
  • [中서부 대개발 현장을 가다](6)다국적기업들 각축장

    산악과 사막으로 뒤덮인 불모의 땅 서부는 중국 역사에서도 늘 주변부의 설움을 겪어왔다.개혁·개방 이후에는 낙후된 경제때문에 국내총생산(GDP)의 평균치를 갉아먹는 ‘천덕꾸러기’로 취급받을 정도였다.하지만 4년 전 서부대개발을 계기로 서부는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 경쟁장으로 바뀌면서 서서히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지금까지 서부의 대표적 거점도시인 청두(成都)와 충칭(重慶),시안(西安) 등 3개축으로 몰렸던 다국적 기업들은 현재 신장(新疆)·윈난(雲南)·광시(廣西) 등 외각지역으로 투자 범위를 확대 중이다.대부분 지역이 교통 인프라가 구축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동부같은 열풍의 수준은 아니다.그럼에도 시장 선점과 내수시장 확대를 위해 다국적 기업들은 투자의 시동을 걸면서 암중모색하고 있다. |청두 충칭 시안 오일만특파원|일본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도요타가 중국 서부에 진출한 것은 1998년.서부대개발의 거점인 쓰촨(四川)성 정부의 끈질긴 요구를 받아들여 95년부터 3년 동안 시장조사에 착수,합작회사인 쓰촨펑톈치처(四天豊田汽車)유한공사를 설립했다. 성도(省都)인 청두(成都) 외곽지역에 자리잡은 도요타 공장은 정문부터 일반 중국 공장과 다르다.시원한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일본 특유의 깔끔한 인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2층 사무실에는 직원들이 컴퓨터와 전화통에 매달려 업무에 열중이고,사무실앞 흡연실에는 중국어와 일본어가 뒤섞여 흘러나와 50 대 50 중·일 합작회사임이 실감난다. ●“서부를 잡아라” 도요타는 1998년 서부대개발 직전에 청두에 진출했다.매년 30% 안팎의 판매 신장률을 기록중이다.톈진(天津)·청두의 완성차 공장을 비롯,중국 전역에 40여개의 부품공장이 있다. 도요타의 서부지역 공략은 서부대개발 시점과 공교롭게 맞물려 순항중이다.이소가이 마사시(磯貝匡志) 총경리(사장)는 서부대개발로 교통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자동차 수요가 증가 일로에 있다며 “2000년대 들어 불기 시작한 관광붐도 일조하고 있다.”고 최근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소가이 총경리는 수요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모델들을 계속 개발 중이라며 “산악지대가 많은 서부에서는 승용차보다 미니밴이나 버스가 더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곽복선 청두 코트라 무역관장은 “다국적 기업들의 초기 진출시 투자유치에 혈안이 된 성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을 받았다.”며 “청두만 해도 500대 다국적기업들이 선점의 효과를 노려 경쟁적으로 진출중”이라고 밝혔다.투자의 60∼70%가 홍콩·타이완의 자본이지만 미국과 일본·독일 등 대기업들이 앞다퉈 문을 두드리는 상황이다. ●타이완 기업들의 본토 공략 청두는 교통 요충지이자 서부 거점도시답게 타이완이나 홍콩 자본들의 투자 열기도 뜨겁다.90년대 중·후반부터 충칭직할시(3000만명)를 포함,쓰촨성(1억 1500만명)의 내수시장을 겨냥한 투자가 활발했다. 청두 시내에서 자동차로 한시간 거리의 해협양안(海峽兩岸) 기술산업개발구에 위치한 퉁이(統一)식품유한공사도 비슷한 케이스다.타이완 7대 재벌인 퉁이그룹이 청두에 진출한 것은 지난 1993년이다. 음료수와 간이국수 등 식품 종합회사인 퉁이그룹은 80년대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본토 투자를 시작했고 현재 50개의 생산기지에 모두 18억달러(2조 1600억원)를 투자했다.청두 공장만 1년 매출액이 10억위안(1500억원)에 달한다. 타이완인인 저우창잉(周長盈) 관리부장은 “현재 쓰촨 음료수 시장의 40%,편의국수는 30%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며 “타이완에서 최고의 기술을 가져와 품질에는 손색이 없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퉁이도 초기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공장 설립부터 관여했다는 저우 부장은 “5년 동안 수익이 없다가 6년째 비로소 이익을 남겼다.”며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고 시장에서 호평을 받은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뤄훙빈(羅洪斌) 판공실(홍보실)직원은 “지금은 중국 가짜 제품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귀띔했다. ●세계적인 IT기업들 다투어 진출 IT 분야의 다국적 기업들은 서부지역 정중앙에 위치한 시안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지난해부터 미국 IBM은 2000만달러(240억원)를 투자, 시안소프트웨어 연구소를 합작 설립했고 미국 HP사는 5000만 달러(600억원) 규모의 전자비즈니스 기술센터를 세웠다. 시안시 판공실 청리쥐안(成麗娟·여) 주임은 “시안을 서부의 IT 중심기지로 육성한다는 것이 중앙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라며 “시 정부도 세금 우대는 물론 물류비 지원까지 외국자본에 대해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2∼3년전부터 다국적 기업들이 청두 등 중점도시에 IT 공장 설비를 세우기 시작해 최근에는 연구개발기지 건설 붐이 유행처럼 일고 있다.미국의 모토롤라와 일본 도시바·산요 등 인터넷 시스템 연구 등 첨단기술 개발에 시동을 걸었다. ●IT 연구개발기지 이전 가속화 네덜란드 필립스사는 최근 본부의 기초실험실을 아예 시안으로 옮겼고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사 등은 현재 이전을 전제로 시장조사에 착수했다. 서부에 진출한 한국 IT기업 1호인 시안화천통신유한공사 한일수 총경리는 “시안이나 청두·충칭 등은 50년대 말부터 중국이 국방 과학 연구기지로 육성했던 곳”이라며 “현재 과학기술 전문인력이 130만명이 넘고 인건비도 상하이 등과 비교해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시안의 경우 현재 50여개의 전문대·대학교,140여개의 과학기술연구소가 있다. 최근 들어 투자 유치에 기를 쓰는 다른 서부지역에도 서서히 열기가 전해지고 있다.윈난의 경우 산악지대에 산재한 약초산업을 바탕으로 미국이나 스위스 등의 제약회사들이 합작투자를 진행 중이고 광시의 경우 동남아 진출을 위한 홍콩기업들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서부지역이 동부 연안지역처럼 투자에 불이 붙으려면 경제 인프라가 어느 정도 구축된 4∼5년 이후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물류중심 기지로 몰리는 외국 자본 인구 3000만명의 충칭시는 최근 싼샤(三浹)댐 개통과 함께 동·서를 잇는 물류 전략기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1998년 이곳에 진출한 프랑스 자본의 충칭 자러푸(家樂福)는 중산층의 성장과 함께 대형 슈퍼마켓으로 확실하게 자리잡았다.자러푸는 21개 도시에 36개 체인점을 갖고 있으며 서부에만 4개의 지점이 있다.지난해 매출액은 110억위안(1조 6500억원)에 달했다. 충칭시 중심가 맨화제(棉花街)에 위치한 자러푸는 평일에도 북적거릴 정도로 성업중이다.허페이룽(何沛溶) 총경리는 “싼샤댐 건설로 인한 물류비용이 30% 이상 절감돼 보다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공급하고 있다.”며 “서부 대개발로 인민들의 소득이 올라갈 것에 대비해 우루무치 등 각성의 거점도시에 지점을 신설,중국 전역에 70개의 체인점을 세울 것”이라고 청사진을 밝혔다. oilman@ ■이소가이 ‘도요타 청두’ 사장 |청두 오일만특파원|서부대개발의 핵심 거점도시인 쓰촨(四川)성 청두는 다국적기업들의 경쟁장으로 변한 대표적 도시다.쓰촨펑톈치처(四天豊田汽車) 유한공사의 이소가이 마사시(磯貝匡志·사진) 사장은 “아직 미개척지인 만큼 동부보다 서부가 빠른 속도로 자동차 소비가 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이소가이 사장은 현대 쏘나타가 중국에 입성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앞으로 좋은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부에 투자한 이유는. ­쓰촨성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약속과 회사의 종합적인 전략이 서로 맞아떨어진 결과다.동부지역에로의 몰림 현상을 해소하고 내수시장을 보다 확대한다는 것이 회사 전략이다.50대 50의 합작회사를 세워 역할 분담이 잘 이뤄지고 있다. 소기 목표는 달성했는지. ­2001년 2000대를 팔았고 올해 목표는 3300대다.내년에는 5300대가 목표다.서부지역이 차지하는 GDP(국내총생산)는 14%에 불과하지만 도요타의 중국 전체 판매량중 26%에 해당된다.서부대개발과 함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관광사업이 활발해지면서 자동차 수요도 함께 늘고 있다. 도요타의 성공비결은. ­(웃으면서)아직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이른 것 같다.판매가 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품질이 좋아졌기 때문이다.고객들의 입을 통해 우리 차가 광고됐고 판매 실적도 향상됐다.판매망(대리점)을 34개에서 64개로 늘린 것도 주효했다. 현재 자동화율은 10% 미만이고 앞으로도 늘릴 계획은 없다.이 때문에 중국 근로자에 대한 교육 훈련이 가장 중요하다.우리는 매년 일본 본사로 중국 직원들을 보내 교육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앞으로 치열한 각축장이 될 텐데. ­업체끼리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지만 수요자들의 품질 요구도 높아지는 추세다.우리는 차종을 늘리고 시장조사를 통해 수요자들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 원주 토지문화관 작가 요람으로

    “당신 말이 맞아.작은 천국같은 집이야.글도 시작했어.아이디어가 샘솟는데.” “즐겁다니 기뻐.밖엔 나가봤어?” “고요한 평화를 즐기는 중이야.”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영화 ‘스위밍 풀’에서 영국의 성공한 미스터리 소설가와,그에게 프랑스 별장을 빌려준 편집장이 나누는 대화다.작가에게 창작공간이 절실함을 잘 보여준다.우리나라도 개인 창작실을 갖고 있는 이들이 더러 있지만 일부 이름있는 경우이고 대다수 작가들에겐 요원하다.더구나 신인작가에겐 그림의 떡이다. 그러나 2년 전 강원도 원주시 토지문화재단(이사장 박경리)이 무료로 운영하는 창작실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양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매년 20∼25명의 작가들이 토지문화관의 13개 창작실에서 작품을 쓰거나 구상한다.방 2개로 된 창작실엔 늘 작품을 곰삭이는 진지한 열기가 넘친다. 국내 최초로 ‘작가들의 천국’을 구상한 박경리 이사장은 “문인들의 연구와 창작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 마련했다.”며 “깨끗한 공기와 조용한 환경 등 창작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려고 최선을 다한다.”고 말한다.그는 감자 옥수수 등 손수 지은 무공해 부식을 작가들에게 제공하면서 작가 사랑을 실천한다. 당연히 창작실은 작가들에게 ‘꿈의 공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지금까지 다녀간 소설가 박완서 강석경 김영현 김남일 정도상,평론가 도정일,시인 이재무 고진하 등 원로·중견작가는 물론 신인작가들까지 한결같이 만족스러운 감상문을 남겼다. 지난해와 올해 머물렀던 소설가 윤성희는 “개인 작업실 없이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나같은 작가에겐 맞춤”이라며 “책도 읽고 산책을 하다보면 영감이 떠오르고 창작속도가 붙는다.”고 말한다.그는 지난 4∼5월 입주해 단편 1편을 써냈다.지난해에도 단편 ‘그 남자의 책’을 마쳤고 장편 ‘너도 못 생겼어’(가제)의 초고까지 완성했다. 2주일간 입주할 요량으로 들어와 100장 분량의 단편 1편을 막 끝냈다는 소설가 박정애는 “애 둘 키우랴 가사에 신경쓰랴 공부하랴 집에 있으면 산만해 작업에 몰두하기가 어려운데 이곳에선 잠깐이지만 모든 것에서 해방된 채 작업할 수 있어 효율성이 높다.”고 밝힌다. 또 시인 임동확은 “글쓰기엔 최적의 조건”이라며 “창작과 그 밑거름이 되는 사색과 공부도 병행할 수 있어 작가로서의 생산성을 최대로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엔 박 이사장이 사재 2억여원을 들여(본인은 “그저 기부”라고 말한다) 지난 6월30일부터 토지문화관 오른쪽 아래 창작실 전용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방 2칸이 붙어 있는 창작실을 대개 1명이 쓰다보니 효율성이 낮은 데다가 다른 문화행사며 대관 탓에 약간 시끄럽고 때론 작가들이 방을 옮겨야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박 이사장이 창작실 전용건물을 세우기로 한 것.현재 창작실은 매년 3월까지 신청을 받은 뒤 4월부터 입주할 수 있는데 1인당 100일까지 사용할 수 있다.문화관광부가 첫해엔 3000만원,2002년과 올해엔 5000만원을 지원했다.내년 지원은 어떻게 될지 미지수다.소설가 박정애는 “작가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면서 알차게 지원하는 흔치않은 공간인 만큼 계속 지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033)762-1382 원주 글·사진 이종수기자 vielee@ ●토지문화관은 토지공사가 40억원을 들여 1999년 6월9일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회촌마을 오봉산 기슭 3000여평에 연건평 800평의 4층 건물 2개동으로 문을 열었다. 앞건물 1,2층에는 동시통역시설을 갖춘 대회의실을 비롯 3개의 세미나실,식당과 사무실 등을 갖췄다.본관 뒤 건물 3개층이 창작실이다.문화관의 주요 활동은 연구 및 창작활동 지원,국제학술교류,문화운동 및 교육운동. 운영비는 박 이사장이 토지문화재단을 만들 때 쾌척한 10억원의 이자와 대관료 등을 보태 연 5000만원.박경리 이사장의 생태철학에 대한 소신으로 인해 단순히 한 작가,작품기념의 차원을 넘어 환경과 생명을 생각하고 지구를 살리려는 사람들의 터전으로 자리잡았다.
  • [세계일류 中企](9)㈜ 청풍

    음이온 공기청정기 생산업체 ㈜청풍은 20여년간 외길을 걸으며 쌓은 기술력과 공격적인 인터넷마케팅을 결합해 업계의 선두에 오른 중소기업이다. 청풍은 음이온을 이용한 특허기술로 1993년 스위스 국제환경전에서 환경부문 금상을 수상한 이후 국내외에서 37개의 각종 상을 휩쓸었다.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실내용 공기청정기 25만대를 판매,국내 시장점유율(60%) 1위에 올랐다.공기청정기 시장이 국내 유수의 대기업 및 전문업체의 제품,외국의 내로라하는 수입품이 뒤섞여 시장다툼이 치열하다는 점을 감안하면,아무리 기술력이 우수해도 임직원이 120명에 불과한 중소기업으로선 쾌거가 아닐 수 없다. 4일 서울 강서구 등촌2동 5층짜리 건물의 청풍 본사에 들어서자 젊은 여성이 자신을 사장이라고 소개하며 반갑게 맞아주었다.앳된 얼굴이지만 강단 있는 느낌을 주는 최윤정(31) 사장.이 ‘30대 여성 CEO’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청풍을 몇년 만에 1등 기업으로 끌어올린 주인공이다. 발명가이자 창업주인 최진순(62) 회장의 4녀중 셋째인 최 사장이 회사에몸을 담은 것은 대학졸업을 하던 96년 2월.그녀는 교사발령을 기다리다 아버지의 권유로 입사해 경리,영업사원,배달 등을 군소리 없이 해냈다.중소기업청이 무료로 제공한 인터넷 홈페이지를 혼자 관리하면서 욕심이 생겨 컴퓨터학원도 다녔다.게시판에 오른 글에 정성껏 답변을 하자 글을 올린 이들이 그녀의 고객이 되고 말았다.고객의 요구를 세심하게 헤아려 전자결제시스템도 갖췄다.고객의 감성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마케팅이라는 점을 깨닫고 브랜드와 디자인에 눈을 돌렸다. 성능은 우수한데,디자인이 투박하고 광고를 전혀 하지 않는 청풍의 이미지를 바꾸기로 한 것이다.2000년 40억원에 그치던 매출액이 지난해 200억원(순이익 18억원)으로 5배나 뛰었다.인터넷을 통한 매출이 10여곳의 대리점을 통한 매출을 앞지르더니,이내 대리점이 30여곳으로 늘었다.잠실직영점의 경우 월 매출이 7000만원에 이를 정도로 판매가 급증했다. 최 사장은 “마케팅과 영업망을 강화하면서 판매가 급증했으나 진정한 청풍의 힘은 기술력에서 나왔다.”면서 아버지의 노력을 성공의 비결로 돌렸다. 아버지 최 회장이 음이온 공기청정기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대학졸업 후 섬유공장을 운영하다 40대 초반에 당뇨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부터다.음이온이 건강에 좋다는 일본인 바이어 충고에 따라 음이온 기기 개발에 나섰고,마침내 89년 세계 최초의 음이온 공기청정기 개발에 성공했다. 음이온 정수기도 선보였다.99년 국내 최초로 공기청정기를 외국에 수출,지난해 중국 등 10여개국에 300만달러 어치를 수출했다. 공기청정기 시장에 200여개의 경쟁업체가 난립하자 지난해 항균·면역 기능이 있는 키토산과 나노실버 성분의 필터를 채용,신제품 ‘청풍무구’를 내놓았다. 최 회장은 자신을 사업가 대신 발명가로 불러주길 원한다.임직원의 10%인 12명이 연구인력이고 매출의 10%를 연구개발(R&D)에 투입한다. 최 사장은 “대기업의 거센 견제를 물리치고 작은 기업이 건실하게 사는 길은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길뿐”이라고 말했다.청풍은 올해 매출 500억원에 순이익 45억원을 기대하고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
  • 박경리씨 첫 장편동화 출간

    ‘토지’의 작가 박경리(77)씨가 첫 장편동화 ‘은하수’(이룸어린이 펴냄)를 출간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을 배경으로 한 동화는,전쟁의 상처와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의 참상과 잔인함을 고발하는 데 초점을 맞춘 책은 1950년대 말 월간 ‘새벗’에 연재된 글들을 다시 묶은 것이다.
  • [中서부 대개발 현장을 가다](3)잠에서 깨어나는 실크로드

    서부대개발은 서역,즉 지금의 신장(新彊)성의 생활터전과 사람들의 의식까지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1999년부터 시작된 개발 열기가 중국의 오지,고대 실크로드를 서서히 달구고 있는 것이다.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동부 연안도시와 비교하면 거의 10년 이상 늦은 셈이지만 변화의 파장은 대단하다.개혁·개방과 더불어 급속히 유입되는 서구 문화가 중국 동부를 거쳐 서부대개발을 통해 서서히 서진하고 있는 것이다. |시안 우루무치 오일만특파원| 저녁 8시 우루무치의 한 위구르 식당에는 배꼽춤으로 알려진 전통 민속춤이 한창 열기를 뿜고 있다.1300여년전 당(唐)나라 시인 리허(李賀)가 읊었던 ‘푸른 눈의 곱슬머리 아가씨’,바로 그 호희(胡姬)가 열정적인 춤을 선보인 뒤 위구르 주민들이 너나할 것 없이 무대로 나와 멋드러진 집단 춤사위로 이어가는 흥겨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밤 10시가 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음악은 격정적인 팝송으로 바뀌면서 중앙 무대는 삽시간에 디스코 장으로 변했다.젊은 남녀는 물론 중년까지 가세한 디스코 파티는 자정이넘도록 끝날 줄을 몰랐다.이곳 주민들은 시내 중심지에 대형 나이트 클럽이나 노래방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것도 불과 1∼2년 사이의 일이라고 했다. 런춘메이(任春梅) 신장발전위원회 부처장은 “서부대개발이 시작되면서 위구르인들도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다.”며 “지금은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이 돈버는 일”이라고 말했다. ●졸부들 겨냥 호화아파트 신축 붐 우루무치 시내 곳곳에 들어서는 톈산(天山) 백화점 등 대형 쇼핑몰과 중앙아시아 접경지역에서 변경무역으로 떼부자가 된 신장인들이나 외국인들을 겨냥한 호화 아파트 건설 등은 40%에 이르는 한족(漢族)은 물론 40여개의 소수 민족들까지도 서부대개발이 몰고온 현대화의 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구르 도시로 불리는 투르판에도 변화의 바람은 마찬가지다.우루무치에서 동쪽으로 자동차로 2시간 30분 정도,막막한 사막을 달리면 멀리 톈산산맥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투르판 시가 나온다.포도밭이 도시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인구 25만명의 이 도시는 변변한 제조공장 하나 없어 90년대만 해도 주민들 대부분이 농사나 상업에 종사했다. 하지만 중국 동부의 높아진 소득수준 덕에 관광 붐이 거세게 불면서 투르판 경제는 관광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창고성(高昌古城) 등 곳곳에 널린 고대 유적지와 위구르 전통 문화를 보기 위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 명소로 떠오른 것이다. 5년째 투르판에서 관광 가이드로 일하는 조선족 김철(金哲·31)씨는 “서부대개발이 가속도가 붙으면서 중국 동부의 자금은 물론 서구적 문화가 투르판에도 몰려오고 있다.”며 “최근 생겨난 나이트 클럽에 젊은이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들뜬 분위기를 전했다. 90년대 후반까지 거세게 불었던 위구르 독립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최근 들어 힘을 잃고 있는 것도 서부대개발이 몰고온 경제주의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투르판 시청 옆 먹자시장에서 만난 40대 주인은 “아직까지 위구르인들이 소박한 전통문화를 고수하고 있지만 경제개발이라는 최근 분위기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가 최대의 관심사가 됐다.”고 변화의분위기를 전했다. “너의 면사포를 들어 올려라.너의 눈썹을 보자.너의 눈썹은 가늘고 길어 나무가지 위의 반달과 같구나.너의 면사포를 들어 올려라.너의 눈을 보자.너의 눈은 맑고 파래 가을의 파도와 같구나….” ●패스트푸드점 속속 문 열어 서역(西域) ‘민가(民歌)의 아버지’로 불리는 왕뤄빈(王洛炙)의 대표작인 ‘서역 아가씨’의 가사다.하지만 광대한 사막이 가로 막았던 서역,실크로드를 따라 어렵게 접했던 위구르 아가씨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이러한 신비감은 어느덧 옛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사실 실크로드의 출발지인 시안에서 시작됐다.1000년 고도(古都) 창안(長安)의 자존심 때문인지 보수적으로 유명한 시안의 주민들에게 KFC와 맥도널드 햄버거가 인기가 높다.20여개에 달하는 KFC 체인점들은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중산층들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됐다. 38도가 넘는 살인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12㎞에 달하는 격자형 성벽안 시내를 둘러보면 곳곳에 영자 간판이 눈에 띈다.성벽 북문과 남문을 잇는 시내중심가 종루(鐘樓)에는 고풍스러운 기와집 백화점들 사이로 최첨단 현대식 빌딩들이 속속 들어서는 중이다. 밤이 되면 번쩍거리는 네온사인들로 베이징이나 상하이에 온 것으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본토로 몰려드는 홍콩·타이완 자본과 미국·독일 등 서구자본들,서부대개발과 함께 밀려드는 동부 연안의 내지 자금이 어우러져 시안을 새로운 도시로 변모시키는 중이다. 시안 첨단개발구 초상국 김영식(金永植) 경리(經理)는 “과거 중국의 중심이라는 자존심과 마오쩌둥(毛澤東) 혁명의 근거지라는 자부심이 산시,나아가 시안의 경제 발전을 가로막은 것도 사실”이라며 “지금은 서부대개발의 호기를 놓치지 말자는 분위기가 저마다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전통 고집하는 카자흐족 이런 변화의 와중에서도 세태와 무관한 듯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다.신장성 소수민족 가운데 두번째로 인구(110만명)가 많은 카자흐족들이 바로 그들이다.신장성 내 초원지대에 방목하는 양떼들과 소,말 등이 보이면 그 옆에는 어김없이 둥근 천연색 텐트들을 발견하게 된다.바로 이들의 생활터전이다.이들은 여름에는 주로 톈산 북부와 동부의 초원지대에 퍼져 살고 있다.이들은 위구르족과 같은 터키계 민족이나 터키인과 몽골인의 혼혈의 특징을 갖는다.독자적인 카자흐어를 사용하고 종교는 이슬람교의 수니파이다. 봄에서 가을에 걸쳐 양과 말을 몰고 초원을 이동하고 강가와 호숫가에 천으로 만든 이동식 주택에 거주한다.겨울에는 도시로 내려와 생활한다. 양목축과 유제품을 만들어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으나 최근에는 밀려 드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음식점 등 관광산업에도 많은 카자흐족들이 진출하고 있다.최근 서부대개발과 현대화의 바람 속에서 많은 카자흐족들은 중국 정부의 한화(漢化) 정책에 상당히 동화된 상태다. 톈산 산맥 기슭 초원지대에서 만난 카자흐족 정링(26)은 “우루무치 전문대학을 나와 호텔에서 5년간 근무했다.”며 “복잡한 도시가 싫어 다시 초원으로 왔지만 젊은층을 중심으로 따분한 유목 생활보다는 쾌적한 도시생활을 더 선호하고 있다.”고 최근 카자흐족 내부의 분위기를전했다. oilman@ ■시안市 리잔수 당서기 |시안 오일만특파원| 중국 대륙의 동·서 교차로에 위치한 시안(西安)은 서부대개발에 도시의 사활을 걸고있다.산시(陝西)성의 성도(省都)로서 앞으로 50년간 지속될 서부대개발의 핵심 거점으로 성장하기 위해 파격적인 투자유치 정책을 내놓으며 외국기업을 손짓하고 있다. 시안시 공산당 청사에서 만난 리잔수(栗戰書) 당서기 겸 산시성 부당서기는 “시안에 진출한 외국기업에 대해 수출 또는 내수 물류비용을 지원해 중국 연안지역의 외자기업들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경쟁력을 갖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리 당서기는 다양한 경제발전 청사진을 제시하며 “고급 과학인력이 풍부한 시안의 장점을 살려 앞으로 IT 첨단 도시로 육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부대개발에 발맞춰 경제육성 방안은. 750만명 인구인 시안의 올 대학졸업생은 8만 5770명이다.이 가운데 석사학위가 7000명이나 된다.중국에서도 한 도시에서 중국에서도 한 해에 이렇게 많은 고급 인력들이 배출되는 것은 보기 드문 현상이다.시안은 국가 중점 실험실 55개와 전문기술 인력이 60만명이 넘는다.풍부한 인력을 바탕으로 IT와 생물 화학 제약 등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지로 육성할 계획을 갖고있다. 시안이 내세울 장점은 무엇인가. 서안시는 중국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동서남북으로 뻗어갈 유리한 요지인 것이다.한국기업들이 이곳에서 창업을 하면 중국 연안지역보다 우수한 과학인재와 인력을 보다 저렴하게 제공할 것이다.서안은 연안지역과 비교하면 임금 수준이 3분의 1 수준이다.시안이 거리상으로 한국과 다소 먼 감도 없지 않지만 철도 도로 항공 등 투자 인프라가 잘 정비돼 별 문제가 없다.항공 수송능력은 한 해 450만명이지만 올 10월 국제공항이 새로 들어서 900만명으로 확대된다. 한국기업 입장에서 동부 연안지역보다 물류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는데. 우수하고 저렴한 노동력은 물류비용을 보완할 수 있다.시안은 첨단기술 제품들의 물류비용의 일정액을 부담해 외국투자기업들의 경쟁력을 돕고 있다.제품에 따라 물류비용을 차별적으로 지원한다.10월에 완공될 국제공항에 대규모 창고를 건설해 물류비용을 최대한 적게 들도록 노력하겠다. 한국과의 경제교류 계획은. 시안에서는 남녀노소 모두 김희선이 나오는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산 휴대폰을 사용하는 등 친근감이 높다.나도 지난 3월 경제대표단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해 많은 한국기업인들과 만나 좋은 논의를 가졌다.서안시는 국가급 첨단산업개발구와 경제개발구를 갖고 있다.한국의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이 시안에 와서 발전하기를 희망한다.최대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 마카오 카지노서 16억원 한국인관광객 잭팟 대박

    |홍콩 연합|한국인 관광객(50)이 26일 마카오의 리스보아호텔 카지노에서 1018만 8000홍콩달러(16억원)의 대박을 터뜨렸다.리스보아호텔 SJM카지노의 고급경리는 한국에서 온 남자 관광객이 이날 73번 슬롯머신에서 잭팟(JACK POT)을 터뜨려 16억원의 거액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00년 홍콩 남성이 1900만홍콩달러를 터뜨린 이후 마카오의 카지노 재벌 스탠리 호가 운영하는 SJM카지노에서 사상 두번째로 상금액이 많은 것이다.
  • 수능 100여일 앞으로/영역별 체크 포인트

    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 이제 100일 가량 남았다.올해 초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 책상에 앉았던 마음가짐도 서서히 약해지는 시점이다.쉼없이 달려온 수험생들에게 초조와 불안감도 더욱 커질 때다.하지만 수능 D-100일을 맞아 목표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면서 마음을 다져야 한다.특히 여름방학을 활용,부족한 부문을 보완하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 힘써야 한다.수험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마무리 100일 학습 전략을 소개한다.또 영역별 입시전문가들에게 시험 전에 반드시 점검해야 할 부분도 들어보았다. 언어 듣기와 쓰기는 실생활과 관련된 ‘생활밀착형’ 문제,문학은 다른 장르로 변형을 시도하는 ‘장르변용 문제’,독해는 를 활용한 문제가 출제되는 추세다.최근 3년간의 기출문제를 통해 취약점을 확인한 뒤 매일 3∼4지문씩 빠지지 않고 문제풀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듣기는 뉴스나 TV토론 등을 메모하면서 듣는 연습이 필요하다.시는 백석과 박두진,김수영,조지훈,신동엽 등 문학사적으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는 시인들의 작품을 엮어서 감상할 필요가 있다.근·현대사의 주목되는 사건들을 다루는 소설도 출제 가능성이 높다.소설에서는 김원일의 ‘어둠의 혼’,오상원의 ‘유예’,선우휘의 ‘불꽃’,하근찬의 ‘수난이대’,이청준의 ‘서편제’‘줄’‘매잡이’‘선학동 나그네’,황순원의 ‘독짓는 늙은이’,박경리의 ‘토지’ 등을 권한다.극문학에서는 이근삼의 ‘원고지’,천승세의 ‘만선’,오태석의 ‘춘풍의 처’ 등이 주목할 만하다.이양하의 ‘신록예찬’‘나무’,피천득의 ‘은전 한 닢’‘황포탄의 추억’,이어령의 ‘폭포와 분수’ 등 수필도 일독이 필요하다. 도움말 종로학원 강사 전승복 수학 최근 수능과 모의고사의 출제 경향은 수학 내·외적 문제해결능력을 묻는 문제가 전체의 40% 수준까지 출제되는 점이다.‘다음 보기 중 옳은 것을 모두 고르면?’과 같은 문제 유형은 꾸준히 출제될 것으로 예상된다.때문에 부족한 단원에 대해서는 문제풀이 위주로 공부하지 말고 그동안 공부해온 교재로 기본 개념과 법칙을 철저히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수학적으로 새롭게 정의된 함수 문제는 배점이 높게 출제되고 있다.역함수의 그래프,절대값 그래프,그래프의 변환과 주기성,그래프를 이용한 방정식·부등식 문제 등을 충분히 연습해야 한다.중학교에서 배웠던 삼각형의 성질,닮음,원에 관한 문제도 자주 등장한다.생활 속의 소재를 활용한 문제도 꾸준히 출제된다.로그와 결합된 비율 문제,속도 거리의 문제,이자 계산하는 방법 등은 반드시 점검하는 것이 좋다. 도움말 대성학원 강사 손광균 사회·과학 사회탐구에서는 도표나 그림 등 교과서에 실린 시각 자료를 응용한 문제가 자주 출제된다.특히 예년까지 5∼8문제에 불과하던 시사 문제가 올해 모의고사에서는 무려 16문제나 출제되고,질적으로 심화된 문제도 다수 출제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일반 사회의 경우 주5일 근무제,집단갈등과 노사문제,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사교육 경감문제 등의 쟁점을 정리해보는 것이 좋다.지리는 새만금 간척사업,그린벨트 해제문제,행정수도 이전문제가 출제 가능성이 높다.윤리에서는 공직자 윤리 및 정치자금,북한 핵문제,샴쌍둥이,신용카드와 신용사회 등을 점검해야 한다.국사는 고려와 발해의 중국사 편입문제,일본역사왜곡 등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과학탐구는 개념과 원리,법칙을 기본으로 도표와 그림,그래프 등 다양한 자료를 해석할 수 있는지를 묻는 해석형 문제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교과서에 나온 다양한 자료와 실험 등도 꼼꼼히 이해해 두자.공통과학 교과서 마지막 단원인 ‘환경과 현대과학’은 대부분의 시사적인 문제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꼼꼼히 살펴야 한다. 도움말 고려학원 강사 권오경 외국어 듣기 평가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여가활동 등 주로 학생들의 일상 생활이 자주 소재로 등장한다.음악회나 전시회,영화,스포츠,컴퓨터 사용 등 일상 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을 익혀야 한다.듣기 공부를 할 때는 일단 외국인의 대화를 듣고 문제를 푼 뒤,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대본을 보고 내용을 확인한 뒤 다시 대화를 듣는 방법으로 반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어휘는 그동안 공부했던 참고서에서 혼동되거나 몰랐던 것을 따로 정리해 암기장을 만들어서공부하는 것이 좋다. 문법은 병렬구조,동사의 시제와 일치,부정사,동명사,분사,관계대명사 등 항상 출제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익혀야 한다.문법은 무조건 암기하기보다는 왜 그렇게 써야 하는지 이해하면서 외워야 기억할 수 있다. 도움말 에듀토피아중앙교육 영어팀장 천은옥
  • [中企를 살리자](1)자금도 인력도 없다

    정부가 지원하는 한해 6조원 규모의 정책자금이 중소기업들엔 ‘그림의 떡’일 뿐이다. 기업지원 대출을 늘렸다고 하지만 실제 은행들은 부실채권 부담을 우려해서인 지,대출 문턱을 더욱 높였다는 게 중소기업인들의 지적이다.이들은 시중에 돈이 넘쳐도 이자율이 턱없이 높은 사채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하소연한다.인력 문제도 마찬가지다.경기침체 장기화로 실업률은 치솟는데,중소기업인들은 되레 사람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고 호소한다.‘자금난과 구인난’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기협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5월 중소기업의 생산직 인력부족률은 12.2%,20만여명에 달했다. ●정책자금의 행방은 대구시의 S의류업체는 최근 중국으로부터 15억원대의 수출주문을 받고 원부자재 구입에 필요한 7억원을 급히 신용대출 받기로 했으나 무산되고 말았다.이 회사 김모(56) 사장은 10년 동안 거래한 은행으로부터 “연체가 없고 매출도 견실한 업체인 만큼 10억원 정도는 신용대출이 가능하다.”는 평소의 말을 믿고 대출을 신청했다.하지만 거래은행은 “지난 5월부터 본점 지침에 따라 우량기업에 대한 영업점장의 전결 한도가 40억∼50억원에서 5억∼30억원으로 줄었다.”는 이유를 들어 대출을 거절했다.김 사장은 “은행측이 신용대출 대신 부동산 담보나 보증기금대출을 제안했으나 웬만한 중소기업치고 공장 부지를 담보로 잡히지 않은 곳이 몇 곳이나 되느냐.”고 되물었다. 경기도 안산의 D기계공업.지난해 받은 부동산 담보대출의 담보 인정비율이 80%에서 60%로 낮아졌다며 추가로 보증인 확인을 요구받았다.김인철 (47)사장은 “새로 보증인을 세우자니 거래업체 등으로부터 경영 위기에 몰린 것으로 오해를 받을 게 뻔하다.”고 말했다.시중은행들은 매출이 20억원 이상인 기업중 금융기관 차입금이 연매출의 75% 이상인 기업을 ‘조기경보 대상기업’으로 지정한 뒤 여신규모 축소,추가담보 요구,조기상환 독촉 등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전국 중소기업 269곳을 대상으로 자금사정을 조사한 결과,42.4%가 “곤란한 상황”이라고 대답했다.“원할하다.”는 응답은 10.8%에 그쳤다.사채이용률은 29.2%로 지난해 평균 6.9%를 훨씬 웃돌았다.자금사정이 곤란한 업체 가운데 82.7%는 외상대금 지불을 못했고,27.3%는 임직원 월급도 주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렵다.”는 대답(38.5%)이 “쉬워졌다.”는 대답(17.0%)의 2배를 웃돌았다.시중은행들이 올 상반기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중소기업대출을 줄이고,자금회수에 나선 점도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부추긴 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해지자 박승(朴昇)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5일 열린 국책·시중 은행장들과의 금융협의회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요청했다.박 총재는 “신용도가 좋은 기업에 높은 금리를 받고 대출하면 은행들은 위험도를 줄일 수 있어 좋고,기업들은 다른 금융권보다 상대적으로 싼 이자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중소기업에 지원하는 연간 6조원대의 정책자금 가운데 직접자금은 올해 산업자원부가 지원하는 산업기술개발자금 5446억원,산업기반자금 3637억원,중소기업청이 지원하는 대출금리 연 5.1∼5.9%의 정책자금 2조 5000억원 등이다.기협중앙회 장지종(張志鍾) 상근부회장은 “무작정 대출을 늘려 달라는 것이 아니라 개별기업의 신용평가를 제대로 해서 우량기업은 살려 달라는 주문”이라고 말했다. ●인력난의 원인은 경북 구미산업단지의 S전자부품업체는 지난 2월 자동화설비 숙련공 5명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 모집했다.순식간에 50여명 이상이 지원했으나 막상 면접을 본 사람은 7명에 그쳤다.대부분의 지원자들이 ‘월급여 기본 200만원,시간외수당 및 숙련수당 별도지급’ 등의 조건을 전화로 물었으나 생각보다 적다고 판단해서인 지 지원을 포기했다.그나마 7명중 채용된 3명도 이런 저런 이유로 2개월여 만에 그만두었다. 전기설비기기 생산업체를 운영하는 최모 사장은 “여성 경리직을 구하기는 정말 하늘에서 별따기”라면서 “솔직히 월급도 적은 편(150만원 기본)이지만 요즘 젊은 여성들은 함께 몰려다닐 수 있는 생산직이나 백화점 영업직을 선호하는 것같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인력난의 원인을 대기업의 무분별한 노무관리 때문이라고 볼멘 소리를 하는 중소기업인들도 많다.대기업들이 2000년 이후 노조의 압력에 굴북,임금을 올려줘 동종의 중소기업보다 50% 이상 더 많이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미상공회의소의 한 직원은 대기업 계열사인 L사의 5년차 생산직 가정주부의 연봉이 4000만원 정도인 반면 남편인 중소기업 관리직 부장의 연봉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그는 “연말에 성과금을 받은 아내가 직장 회식 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와도 정기 보너스조차 챙기지 못한 남편은 기가 죽어 불평도 못한다고 들었다.”고 소개했다. 근로자들도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출근길 구미단지에선 45인승 근로자 출근버스가 거의 텅 빈 채 운행되곤 한다.반면 공장 주변에 가면 골목마다 승용차들이 줄지어 주차돼 있어 원자재 운송 화물차가 진출입에 애를 먹는 장면도 목격됐다. 근로자들이 주차한 차량들로 골목길이 메워져 있기 때문이다.한 업체 간부는 “주 5일 근무를 앞두고 근로자들이자가용 기름값을 요구하는 곳도 있어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경운 기자 kkw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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