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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소의 휴전협상계획(모스크바 새 증언:23)

    ◎북측의 모든 휴전협상전략 모택동이 직접 지시/모,스탈린에 전과정 보고… 주요이슈 조언구해/「38도선 기준 완충지대 설치·외국군 철수」 제시 북한측 휴전협상 전략은 모택동이 직접 지시했다.물론 모는 스탈린에게 협상 전과정을 상세히 보고하며 주요 이슈에는 반드시 그의 조언을 구했다.스탈린은 기본적으로 모택동의 입장과 생각에 이견이 없었다.김일성은 휴전협상이 시작되면서 이전보다 더 부차적인 조역역할에 머무르며 어쩌다 한번씩 사소한 문제에 대해 모택동에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정도였다.그러면 모택동은 이를 스탈린에게 전달할 때도 있고 그냥 묵살하기도 했다. 협상에 임하며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38도선 비무장화 등 처음부터 무리한 요구를 내놓았다.이는 한편으로는 자신감의 일단을 피력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가능한 한 더 많은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협상전략의 일환이었다.하지만 분명한 한가지는 중국·북한은 최소한 휴전에 관심이 있었다는 점이다.결코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수 없다는 자각과함께 더 많은 희생을 줄이자는 희망 때문이었다. ○애초부터 무리한 요구 휴전회담이 시작되기 얼마 전인 51년7월1일 새로 평양에 부임한 라즈바예프 소련대사는 다음과 같은 전문을 스탈린에게 보고했다.북한의 협상기본 전략을 담은 내용이었다(전문번호 N501869sh). 『1.김일성은 51년7월2∼3일중 적에게 협상개시 시기를 제시할 예정임.모스크바의 긴급한 동의가 필요 함. …중략… 3.남일이 이끄는 북조선대표단은 다음 사항을 발표할 예정임. (a)전투행위 중지시기 (b)38도선 남북으로 각각 5∼10㎞씩 병력철수 (c)전투중지와 함께 38도선 상공의 비행월경 금지 (d)조선영해에서 해군력 철수 및 봉쇄해제 (e)2개월내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f)포로교환,강제 이주주민 귀환. 김일성동지는 필리포프동지의 적절한 응답을 기다리고 있음』 그러나 이 전문보고를 받은 스탈린은 이튿 날인 7월2일 이 제의내용이 모택동과 사전협의를 거쳤는지 물으며 이를 되돌려보냈다(전문번호N101529). 『전문에서 밝힌 북조선정부의 협상제의 내용은 중국정부와의 합의를 거쳐 공동작성돼야한다는 점을 김일성에게 전할 것.앞서 보고한 김일성의 제의 내용은 모택동과 합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임』 휴전협상에서 절대 전면에 나서지 않겠다는 스탈린의 의지는 확고한듯 했다.그러나 모택동은 7월3일 자신의 휴전협상전략 기본원칙을 스탈린에게 보내며 그의 의견을 물었다.다음은 모택동이 이날 스탈린앞으로 보낸 전문(전문번호N21405). 『다음의 5가지 기본원칙을 보고 함. 1.쌍방이 동시에 전투중지 명령을 내릴 것.이 조항은 적도 이의없이 동의할 것으로 보임. 2.쌍방 병력은 38도선을 따라 10마일씩 밖으로 철수할 것.그리고 38도선 기준 10마일 이내에는 완충지대 설치.적이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음.우리는 이 제의가 타당하며 적이 거부하기 힘든 사항으로 봄. 3.쌍방은 조선 외부로부터 무기·병력 반입을 통한 무력증강 행위를 중지할 것.조선영토내에서 전선으로의 병력이동도 중지함.우리는 적도 이 제의를 해올 것으로 생각 함.따라서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잡아 먼저 제의하자는 것임.다음의 마지막 제의는하는 게 좋을지,하지 않는 게 좋을지 애매 함. 4.중립국감시위원회 구성.적들도 이와 유사한 제의를 해올 것으로 예상해 우리가 먼저 이 제의를 하고자 함.하지만 이 제의를 실행에 옮기는 데는 수많은 난관을 겪을 것임.적들이 추천한 중립국 감독위 회원국들은 중국­조선국경의 병력이동과 북조선내 중요 통신시설들을 사찰하게 될 것임.따라서 우리가 먼저 이 제의를 할 것인지,아니면 적이 먼저 제의해오기를 기다렸다가 이를 받아들이는 게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음. 5.쌍방 모두 전쟁포로를 송환해야 함.아마 적들은 포로의 1대1 교환을 제의할 것이나 우리는 모든 포로의 일괄교환을 고수해야 함.그러나 적은 북조선군 포로숫자가 우리보다 많음.북조선군 포로중에는 남조선군 출신 포로도 포함돼 있음.따라서 이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큼.위에 언급한 5개 사항은 군사대표단 회의에서 해결돼야 할 것임. 이밖에도 몇가지 문제가 더 있음. 1.모든 외국군대는 일정기한내(예를들면 3∼4개월안에)남북한을 완전히 떠나야 함.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임.그러나적군 대표들은 이것이 정치적 문제라며 회담 의제에 포함시키지 않으려할지도 모름.우리가 이 문제를 제기해야할지,말아야할지 말해주기 바람. ○이극농 파견 임무 지시 2.피란민들은 일정기한내(예를들면 수개월내)원래의 거주지로 귀환해야 함.김일성동지는 이 문제를 반드시 제기하자고 주장 함.이 문제도 많은 이견과 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큼.자칫하면 다른 중요한 문제의 해결에도 영향을 미칠수 있음.어제 우리는 외교부 부부장 이극농과 그의 보좌관들을 조선에 파견했음.이극농은 개성외곽에 머무르며 비밀리에 휴전협상 전략을 지시할 것임』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극농이란 인물의 등장이다.그는 휴전협상 내내 회담장 외곽의 비밀장소에 머무르며 모택동과 계속 전문연락을 취했고 모택동을 대신해 협상을 총지휘했다.모택동으로부터 이 전문을 받은 스탈린은 바로 같은 날인 7월3일 곧바로 답전을 띄웠다. 『첫번째 두가지 제안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음.세번째 제안의 후반부(조선영토내 전선으로의 병력이동을 가리킴=편집자주)는 삭제바람.그러나 미군측이 이를 제의하면 받아들여도 좋음.4번째 제안은 하지 말 것.만약 미군측이 유엔군 군사정전위 설치를 제의하면 유엔은 전쟁당사자라는 점을 들어 이를 거부할 것.대신 중립국 감독위 설치를 제의할 것.5번째 안은 제의한 뒤 반드시 이를 관철할 것.나머지 두가지 사안(외국군대 철수 및 피란민 문제)은 제안한 뒤 이를 관철할 것』 이렇게 북한측 휴전협상은 모택동·스탈린 두사람의 철저한 지시 아래 시작됐다.개성으로 간 이극농 외교부 부부장은 7월8일 열린 회담부터 관련보고서를 모택동앞으로 보내오기 시작했다.이극농은 이날 회담보고를 이튿 날인 7월9일 모택동에게 보내왔고 모택동은 이 보고서를 이튿 날인 7월10일 스탈린앞으로 그대로 보냈다(전문번호N21632). ○“실패할땐 결사전투” 『적 연락장교들은 대표단 신변안전 및 준비사항에 협조해 준 데 대해 우리측에 사의를 표했음.회담중 양측은 서로 인사를 교환치 않았음.회담 뒤 미군측은 군대식 경례를 했고 우리도 이에 응답했음.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상오 10시경 미군기 2개 편대가 개성상공을 무력시위 비행했음.우리는 이에 개의치 않았음.비행기 1대는 회담장 상공을 선회했음.아마 지상과 연락을 취하는 것 같았음.미군 장교들이 도착하자 이 비행기는 곧바로 사라졌음.회담시작 뒤 2시간동안 분위기는 매우 긴장됐고 휴회 직전에야 조금 풀렸음.하오 회담은 매우 조용히 진행됐음.사소한 문제를 놓고 다소 이견이 있었음.우리측 연락장교가 상대방 대표에게 필요한 사항을 말하면 도와주겠다고 제의했음.분위기는 좋았음』 7월13일 모택동은 스탈린에게 회담진행 상황을 전달했다(전문번호N21756). 『2차에 걸친 회담에서 미군측은 대중 여론을 선동하고 우리측 의도를 간파할 목적으로 기자들을 회담장에 입장시키자는 제의를 했음.이는 어리석은 속임수이므로 우리는 단호히 거절했음.다음 회담에서 만약 미군측이 기자들을 데리고 입장하면 우리는 한발짝도 양보치 않겠음. 미군측이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를 의제에 포함시키는 데 찬성해야 함.그러면 우리도 38도선 군사분계선 설정문제를 추후로 미룰수 있음.김일성동지는 38도선 분계선 설정이 합의되면 외국군대 철수는 연기할 수 있다는 점을 이극농동지한테 분명히 밝혔음.우리는 단계적으로는 이 두가지 사안­38도선 설정과 외국군대 철수­모두 합의할 수 있다고 믿음.피란민처리문제는 김일성동지도 북조선에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에 제의할 방침임.이 문제들을 모두 검토한 뒤 지시를 내려주기 바람. 회담이 실패하면 우리는 결사적으로 전투에 임할 것임.이에 대비,전투준비를 계속하고 있음』 이 전문을 접한 스탈린은 바로 이튿 날인 7월13일 모택동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내용의 답전을 보냈다(전문번호.N4153). 이와같이 휴전협상에 임하는 북측전략의 가장 핵심은 38도선에 군사분계선 설치와 외국군대의 철수였다.이중에서도 38도선 설치가 긴박한 최우선 목표였고 외국군대 철수는 이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카드로 활용할 장기목표였음을 알수 있다. ◎새로 밝혀진 사실/51년 봄 이후 모가 실질적 전쟁주도 한국전쟁의 주도권은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져들고 특히 본격적으로 휴전협상이 시작되면서 모택동에게로 넘어갔다.이러한 사실은 이번 자료에서 비로소 처음으로,그리고 구체적으로 밝혀지는 내용이다.모택동은 비록 스탈린에게 자문을 구하고 또 그와 갈등하기도 하였지만 1951년 봄 이후 전쟁의 주도권이 그에게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었다.이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전쟁에의 표면적인 개입을 회피하려는 스탈린의 이중전술 때문이기도 하였고 또 실제로 병력을 파견하였느냐 아니냐의 현실적인 차이 때문이기도 하였다. 1951년 봄 이후 모택동이 실질적으로 전쟁을 주도하였다는 사실은 이번 자료에서 밝혀진 새로운 사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중의 하나라고 할수 있다. 흥미있는 사실은 자료에서 볼수있듯 모택동은 때로는 소련의 군사적 지원을 위해,때로는 책임 때문에라도 스탈린을 이 전쟁에 더욱 깊숙이 관여하게 하려하였다.이는 1950년 봄 전쟁을 결정할 때와는 완전히 전도된 현상이었다. 1951년 7월3일 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에는 향후 2년동안 견지된 휴전협상에서의 공산측의 기본원칙과 구체적인 전략이 이미 들어있었음을 알수 있다.이에 대한 스탈린의 답신 역시 직접적이고도 아주 구체적이어서 항목별 배제사항까지 들어있다.2년간의 전략전술에 대한 대략적인 합의가 이미 협상의 시각시점에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결국 2년간에 걸친 한국전쟁의 휴전협상은 이번 자료를 통해 새롭게 드러나듯이 협상테이블의 대표들을 「입」으로한 워싱턴과 모스크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이었던 셈이다.
  • 2차 대전/오늘 종전50돌… 되돌아보는 의미와 영향

    ◎5천만명 희생 교훈은 어디로/동서냉전 초래… 이젠 경제전쟁시대로/「민족」 앞세운 인종청소 등 유혈 아직도 1945년5월7일 독일이 연합군측에 항복을 선언하고 그 다음날인 8일 항복문서에 공식 서명함으로써 유럽에서의 2차대전은 막을 내렸다.그러나 5천3백만이 넘는 사망자와 약 1조6천억달러의 경제적 피해를 남긴 인류 최대의 비극이었던만큼 전쟁 자체는 끝났지만 2차대전은 아직도 세계질서 전반에 광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한마디로 2차대전은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살아있는 것이다. 중동분쟁의 근원인 이스라엘 문제만 하더라도 2차대전이 남긴 결과라할수 있다.2차대전을 전후해 6백만에 가까운 희생자들을 낸 유태인들에 대해 승전국들이 그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데 따른 반성과 사죄의 의미에서 생겨난 나라가 바로 중동의 이스라엘.그러나 이스라엘의 건국이 낳은 팔레스타인 문제는 결국 최근 급속히 확산되는 평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중동이 여전히 「세계의 화약고」란 오명을 벗지 못하게 하고 있다.이같은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2차대전이 끝남에 따라 과거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아시아·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에서 2차대전은 오늘의 삶을 형성하는 주요 요인일 수 밖에 없다.한반도의 분단 자체도 2차대전이 가져온 비극의 하나다. 초강국 미국의 탄생도 2차대전이 남긴 중요한 유산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2차대전 당시의 세계 열강들(주로 유럽 국가들)이 전란의 큰 피해로 인해 국력이 쇠퇴했을 때 유일하게 전란의 직접 피해를 피한 미국은 유럽의 경제재건에 대한 경제원조를 통해 미국의 영향력을 뿌리내렸으며 국제질서를 감시하는 세계의 경찰로서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지도국의 위치를 굳힌 것이다. 그러나 2차대전이 근대사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동서 냉전체제를 배태시켰다는 점이다.지난 45년간에 걸친 이념 대결의 시대도 미국과 함께 동·서 냉전의 나머지 주역을 차지했던 소련이 무너져내림에 따라 미국을 세계 유일의 초강국으로 만들면서 막을 내렸다.이제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경제전쟁을 통한 길 밖에는 없게 됐다. 이같은 측면에서 2차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반면 최대 승전국이라 할 미국이 정치부문에선 아직도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지만 경제분야에선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50년만에 세계가 2차대전의 그늘에서 조금씩 벗어나 새 차원의 질서를 모색하게 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갖게 해준다. 2차대전이 갖는 중요한 의미중 하나는 전쟁을 통해 이뤄진 가공할 무기체계의 발달로 그같은 대규모 전쟁의 발발을 더이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절 미국과 소련의 경쟁적 군비경쟁이 가져온 「공포에 의한 균형」은 또한번의 대전은 곧 인류의 멸망으로 이어질 것이란 보이지 않는 묵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뿐이지 소규모의 분쟁은 오히려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이 오늘날 국제사회의 현실이다.2차대전의 발발 원인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힘들지만 게르만민족 우월주의라는 히틀러의 광적인 민족주의가 이를 일으키는 주요 동인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그러나 오늘의 세계를 돌이켜보건대 민족주의는 여전히 세계 제1의 분쟁 요인으로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2차대전을 일으킨 당시의 전제정치에 억눌려 있던 목소리들이 2차대전이 끝남과 동시에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2차대전이 가져온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피해 규모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이같은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되겠다는 깊은 인식을 남긴 것은 틀림없다.승전국들은 전쟁이 끝나자 자신들의 승리를 전체주의자들과 인종차별주의자,그리고 살인적인 독재집단에 대한 승리라고 미화했었다.이같은 교훈은 언제까지라도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옛 유고연방에서 자행되는 인종청소가 나치가 저지른 유태인 학살과 조금도 다를 바 없고 르완다에서와 같은 만행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2차대전의 교훈을 잊고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5천만 희생자들이 얻고자 했던 것,곧 생명의 자유를 5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인류는 얻지 못하고 있다. ◎도쿄와 판이한 패전 50주의 베를린/독/과거반성·전범추적 끝없는 노력/솔직한 역사교육·언론보도 「국민 공감대」 주도/청소년 72% “패전 잘된일”… 신나치 극소수 불과 독일군 항복에 따른 유럽에서의 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패전국 독일의 분위기는 문자 그대로 엄숙하기만 하다.4월의 유태인 대학살 현장 아우슈비츠,다카우 강제수용소 해방행사나,지난 2일의 베를린 함락전투 기념행사가 모두 그런 분위기속에서 치러졌다.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은 기록사진전이 곳곳에서 개최되고,언론들도 연일 종전관련 특집기사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역시 패전국인 일본과는 달리,잘못된 과거라고 해서 이를 덮고 부인하려 하지 않고,역사를 솔직히 시인하고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독일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어 보인다. 물론 종전을 「나치폭압 체제의 종식과 독일인들의 해방」이라고 보는 공식적인 역사의미 해석에대해 이의제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전·현직 고위정치인을 포함한 보수우익인사 2백80여명이 지난달 중순 유력지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지에 낸 공동성명을 통해 「분단상황등 독일인들이 입은 피해의 시작이란 의미도 부각돼야 한다」며 역사 재해석을 요구하기도 했다.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은 비난의 화살을 자초했고 결국 자체행사계획도 유야무야됐다.콜총리는 종전의 중심적 의미가 「해방」이라고 독일의 책임을 다시 한번 강조,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와 관련,권위있는 여론조사기관인 포르자가 최근 독일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응답자의 72%가 독일의 패전이 잘된 일이라고 밝혔고,신나치주의자 등 극우파 세력에 동참하겠다는 청소년은 1%에 불과했다.전후세대가 총인구의 67%를 차지하는 시점에서 객관적이고 솔직한 과거사 교육의 결과다. 독일정부는 그동안 나치주의 부활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유태인 6백만명이 히틀러에 의해 학살당한 사실에대한 반론이나 나치식 경례를 불법화했다.전쟁 당시 탈영혐의로 처형된 독일병사 2만여명에 대한 명예회복 움직임도 일고 있다.근래에 들어 신나치주의자들의 과격행동이 있는것도 사실이지만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아돌프 히틀러는 패색이 짙어지자 45년 4월30일 권총으로 자살했고,조셉 괴벨스 선전상도 다음날인 5월1일 자녀 8명및 부인과 함께 자살하는등 전쟁주범들은 이미 사라졌다.독일이 5월7일 항복을 선언하고 그 다음날인 8일 항복문서에 공식 서명한이래 수많은 나치추종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전범으로 법정에 세워졌다.세월이 흐름에 따라 증인들이 사망하거나 대부분 70∼80대로 기억력이 쇠퇴해지고,나치협력자들이 이름을 바꾸고 얼굴도 성형수술한채 숨어살아가는등 어려움은 있으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전범추적 작업은 아직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어쨌든 히틀러가 꿈꿨던 독일의 세계제패와 유태인 말살은 이뤄지지 않았다.하지만 그 후손들은 전후 50년간에 걸쳐 「어두운 과거」를 거울삼아 경제적으로는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전쟁발발의 징벌격인 동·서독 분단상황마저 극복해내기도 했다. ▷2차대전 주요 통계◁ ▲총사망자수(추정치):5천3백47만7천여명. 이중 소련군및 민간인 희생자가 2천2백32만여명. ▲독일및독일 점령지역에서의 유태인 인구:전쟁전 8백85만1천8백여명에서 전후 2백91만7천9백명으로 급감. ▲각국 병력수(전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소련 1천2백50만,미국 1천2백36만4천여,독일과 오스트리아:1천만,일본:6백9만5천,프랑스·중국:각 5백만,영국:4백68만3천,이탈리아:4백50만.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세계 전체 1조6천억달러,나라별로는 미국 2천8백80억달러,독일 2천1백23억달러,일본 4백13억달러. ▲무기생산량:전투기 44만3천31대,총류(개인화기및 대포)4천9백31만9천4백62정,탄약(실탄 및 포탄):8백23억5천2백31만4천4백72발,함정(군용및 상업용 망라):7천9백만t, 차량(지프차부터탱크까지 포함):5백15만7천4백58대. ▲전쟁포로수:◇연합군이 잡은 포로:독일군 63만,이탈리아군43만,일본군 1만1천6백. ◇독일군이 잡은 포로:프랑스군 76만5천,영연방군 20만,유고슬라비아군 12만5천,미군 9만. ◇일본군이 잡은 포로:영연방군 10만8천,네덜란드군 2만2천,미군 1만5천
  • 김 대통령의 귀국 이모저모/“한국외교의 지평 넓폈다”강조

    ◎긴 여정 불구 밝은 표정으로 귀국인사 13박14일에 걸친 유럽순방을 마치고 15일 하오 귀국한 김영삼 대통령은 오랜 여정에도 밝은 표정으로 귀국인사를 했다. ○…김 대통령과 부인 손명순 여사는 이날 하오 특별기편으로 서울공항에 안착,이홍구 국무총리와 서석재 총무처장관의 안내로 공항 환영식장에 입장. 김 대통령은 군악대의 연주속에 의장대를 사열하고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한 뒤 단상에 올라 순방성과에 대해 5분 남짓 연설. 김 대통령은 귀국인사를 통해 『이번 유럽 순방은 그동안 이룩한 4각외교의 바탕위에서 우리 외교의 지평을 세계화 차원에서 크게 확장한 커다란 계기가 됐다고 믿는다』고 평가. 김 대통령은 『이번에 순방한 유럽의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우리 문민정부의 도덕성과 신장된 국력에 대해 놀라움과 경의를 표해 주었다』고 전하고 『참으로 뿌듯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피력. 김 대통령은 또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유럽 여러나라의 지도자들과 격의없는 의견교환을 통해 우리의 세계화 정책이 매우 시의적절한 것임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이번 유럽순방은 세계화 외교의 큰 발걸음을 내딛는 계기가 되었다』고 강조. 귀국인사를 마친 뒤 김 대통령과 손 여사는 서울사대부속국민학교 4학년 김동현군과 최수현양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뒤 하단. ○…김 대통령은 이어 황낙주 국회의장과 윤관 대법원장,김용준 헌법재판소장등 환영인사들과 악수를 나눈 뒤 청와대로 출발. 공항에는 민자당에서 이춘구 대표를 비롯,김덕룡 사무총장 이승윤 정책위의장 현경대 원내총무 등 3역들이 마중을 나왔으나 선거법 개정문제를 매끄럽게 마무리짓지 못한 탓인지 다소 굳은 표정. 민주당의 이기택 총재는 김 대통령이 출국할 때와 마찬가지로 나오지 않았고 최락도 사무총장 김병오 정책위의장 신기하 원내총무 등 3역이 나와 김 대통령과 인사. ◎김 대통령 귀국인사 요지 이번 유럽 순방은 그동안 이룩한 4각 외교의 바탕위에서 우리 외교의 지평을 세계화 차원에서 크게 확장한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이번에 순방한 유럽의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우리 문민정부의 도덕성과 신장된 국력에 대해 놀라움과 경의를 표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번 유럽순방을 통해 우리나라와 이들 국가와의 경제협력을 비롯한 다원적 협력관계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번 순방은 세계 최대규모의 단일시장인 유럽연합과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중심국가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간에 상호이해를 증진하고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획기적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순방에서 유엔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유럽국가들이 우리나라의 유엔안보리 진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북한핵문제와 통일문제에 관해서도 유럽의 우방들은 우리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며 앞으로도 우리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약속하였습니다. 독일 통일과 유럽 통합의 현장에서 저는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가 필요하며 역사의 거대한 힘이 우리의 통일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또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유럽연합의 지도자들과 격의없는 의견교환을 통해 우리의 세계화정책이 매우 시의적절한 것임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으며 앞으로 세계화 구상의 추진에 박차를 가해야 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했습니다. 이번 유럽순방은 「세계화 외교」의 큰 발걸음을 내딛는 뜻깊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가 세계 일류수준으로 균형있게 발전하지 않고서는 무한경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세계의 중심에 우뚝서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선도해 나가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화를 위한 개혁」을 더욱 힘차게 추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저는 국정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화 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앞장서 뛸 것임을 다시 한번 다짐하면서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를 당부드립니다.
  • 「일본개조론」의 표와 이(일본 「21세기 야망」:2)

    ◎「보통국가」 내세운 군사대국화 집념/“군 없는 경제력은 허상” 자위대 위헌론 종식/“「평화헌법의 구속」 벗어나자” 민족주의 대두/“힘 있을때 밝으로 뻗어야”… 섬나라 본색 드러내 일본의 21세기 구상.대학에서 첨단 과학·기술연구소에서, 정치판에서 열띤 논쟁으로 때로는 은밀한 전략으로 논의되고 있는 21세기 일본개조론.일본은 21세기를 앉아서 기다리지 않는다.경제신화로 세계정상에 올라서며 민족주의적 주체성과 자신감을 되찾은 새로운 일본은 21세기로 다가가 이를 자신들의 세기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불태우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국가개조론은 밖으로는 냉전의 종언이라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과 안으로는 38년간의 자민당 일당지배가 막을 내린 중대한 정치적 전환기를 맞아 활발해졌다.세계사 변화에 대응,새로운 일본을 만들어야한다는 대합창이다.그 대표적인 일본개조 구상이 주목받는 뉴리더 오자와 이치로 신진당 간사장의 「보통국가론」이다.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공헌하지 않으면 안될 일본이 안전보장을 국제공헌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안전보장면에서도 오늘의 일본에 어울리는 국제공헌을 할수 있도록 체제를 정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자와가 그의 저서 「일본개조계획」에서 말하는 보통국가론이다.일본도 평화헌법의 구속에서 벗어나 국익을 보호하는데 필요한 군사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논리다.경제력뿐만이 아니라 군사력도 외교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 변화하는 일본의 실체다. 그러나 국가개조론은 오자와의 전유물만은 아니다.「일본개조계획」은 그의 이름으로 발간됐지만 오자와는 서문에서 각 부문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책이 완성됐음을 밝히고 있다.보통국가는 많은 지식인·전문가들이 그리는 21세기 일본의 새로운 모습인 것이다.「일본개조계획」은 더욱이 정치서적은 팔리지 않는다는 출판계의 불문율을 깨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일반국민들에게도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일본서점에서는 그밖에도 「책임있는 변혁」,「21세기비전 일본의 개혁」,「하이테크국가 일본의 선택」등 일본의 대변혁을 역설하는 많은 책들이팔려나가고 있다. 일본개조론은 93년8월 자민당정권이 무너지고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의 연립정권이 들어서면서 일본열도의 거대한 흐름으로 나타났다.일본은 마치 국가개조라는 거대한 용광로로 빨려들어가는 듯했다.그러나 지금은 잠시 숨을 돌리고 있다.오자와가 창출해낸 연립정권이 무너지고 지난해 6월 자민·사회당 연립정권이 등장하면서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국가개조론은 잠시 잠복하고 있다.평화주의를 강조하는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위원장이 총리가 되고 「작은 일본」을 지향하는 고노 요헤이 자민당총재가 외상을 맡게 되자 일본은 마치 평화주의 유토피아로 회귀하는 듯하다.일본내에는 실제로 자위대가 해외에서 피를 흘리는 것보다는 「1국 평화주의」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게 현실이다. 그러나 무라야마 총리의 등장은 일본내에서 가장 강력한 평화주의 집단인 사회당의 몰락을 역설적으로 예고하고 있다.사회당은 학교에서 국가를 부르거나 국기에 대한 경례조차도 군국주의 망령의 부활이라고 강력히 반대했었다.그러나 무라야마 위원장은 총리가 되자 그토록 반대하던 자위대 존재에 대해서도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사회당은 전후 반세기 동안 맡아온 평화주의 지향의 역사적 임무를 마치고 이제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평화주의는 일본을 약하게 만들었다』 국가개조의 이론 제공자인 지식인들과 변혁의 선두에 선 정치인들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다.그러나 전후 일본의 시대적 흐름이었던 평화주의에도 그 밑바닥에는 민족주의가 면면히 흘러오고 있었다.평화주의와 「군사력 없는 경제발전」 모델은 일본의 궁극적인 국가 목표가 아니라 시대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에 지나지 않았다. 군사력 없는 경제발전 모델을 선택한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그의 저서 「세계와 일본」에서 『당시 일본이 재무장하는 것은 경제적·사회적·사상적으로도 불가능했다.그러나 국가의 안보를 언제까지라도 외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전후 일본이 경제부흥에 에너지를 집중투자하는 전략을 선택했듯이 전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세계에 퍼져있는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국가전략으로 대전환하고 있다.냉전후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족분쟁은 일본 안보와 자원 확보및 시장 접근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뉴리더들의 공통된 현실인식이다. 뉴리더들은 그러나 밖으로만 눈을 돌리는 것은 아니다.그들은 내부개혁도 병행하고 있다.자민당 장기집권아래 구축된 관·민협조체제의 이른바 「일본주식회사」의 부정적인 면을 개조하고 있는 것이다.생산자 중심의 관·민협조체제는 냉전시대에는 매우 유효한 냉전대응형 구조였다.그러나 막대한 무역흑자를 가져온 관·민협조체제는 냉전이 끝나고 경제가 세계질서의 중심이 되면서 일본 폐쇄성의 상징으로 미국을 비롯한 무역적자국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철저한 실용주의자들인 뉴리더들은 미국등과의 더이상의 마찰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 좀더 열린 「일본주식회사」를 지향하는 몸짓을 하고 있다.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내부개혁은 더욱 강력한 세계전략을 위한 준비라 할 수 있다.일본은 힘이 있을 때마다 밖으로 눈을 돌렸음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일본의 외부지향 움직임은 미국이 경제적 자신감 상실로 국내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과 맞물려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일본은 미국과의 전략적 동맹관계를 중시하고 있지만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뉴리더들은 미국을 지원하는 지금까지의 「2차적 역할」에 만족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한 뉴리더들이 그리는 일본 개조의 완결편은 21세기 대국이다.국가개조는 일본이 아직은 강대국의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새로운 일본은 급변하는 세계변화에 대응할수 있는 기동력 있는 국가건설를 지향하고 있다.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일본은 21세기 어느때 아시아에서 중국의 가장 중요한 대항세력이 될지 모른다.그때 일본은 오자와가 구상하고 있는 보통국가가 될 것이다』라고 예측한다.일본의 보통국가는 군사대국으로 가는 길이다.
  • 창백하고 긴장한 표현/홀준위/홀준위 송환 이모저모

    ◎“미군,협상과정 설명 안해”… 국방부 분개 미군 헬기조종사 보비 홀준위의 인도식은 30일 상오 지난 22일 하일먼준위 유해 인도당시처럼 홀준위가 판문점 중립국감독위 회의실과 정전위회의실 사이에 설치된 군사분계선을 나타내는 폭 60㎝,높이 10㎝ 가량의 시멘트분리대를 넘어옴으로써 7분만에 종료. ○…이날 상오 10시58분쯤 미리 군사분계선 앞에서 대기하던 유엔 정전위 미측 비서장 슈메이커대령은 홀준위 인도예정 시간인 상오 11시를 4분가량 지난 11시4분쯤 허바드 부차관보일행이 군사정전위 북한측 전비서장 박임수대좌(대령)등 북한관계자들과 판문각을 나와 남측으로 내려오자 악수. ○…상오 11시10분쯤 박대좌와 슈메이커대령이 짤막한 대화를 나눈 뒤 사고당시 착용했던 조종사 복장차림의 홀준위가 곧바로 판문점 남측지역으로 걸어 넘어왔다.홀준위는 그동안 북한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아서인지 매우 창백한 안색에 긴장되고 지친 표정. ○…주한미군 게리 럭 주한미군사령관과 최근 북­미장성회담을 위해 갑작스레 정전위대표로 임명된스미스소장,홀준위 소속 부대인 17비행단 단장 엘더대령과 대대장 밀러중령등 주한미군관계자들과 함께 정전위수석대표 황원탁소장등 관계자들은 홀준위를 맞기 위해 미리 판문점에 나와 대기.홀준위는 군사분계선을 통과하자마자 군사분계선 앞에 서있던 슈메이커 대령에게 거수경례를 한뒤 게리 럭사령관·황장군·엘더대령·밀러중령순으로 거수경례를 하는 것으로 귀환보고를 대신.주한미군 공보관계자 짐 콜스씨는 『홀준위의 건강상태가 양호한 편』이라고 설명. ○…허바드 부차관보는 이날 상오 11시50분쯤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 사무실과 「자유의 집」사이에서 선채로 3분가량 짤막한 성명을 발표.허바드씨는 『우리는 지금 매우 기쁜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며 『북한에서의 이틀간에 걸친 어려운 협상 결과 북한이 홀준위를 무사히 송환해줘 기쁘다』고 만 언급.허바드씨는 성명 발표에 앞서 「자유의 집」사무실에서 전화를 이용,클린턴 미대통령에게 그간의 협상 과정과 내용을 보고. ○…국방부는 홀준위의 송환과 관련,주한미군으로부터 북­미 협상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자 크게 분개하는 표정.한 관계자는 『어느 나라 땅에서 벌어진 일인데 이럴 수 있느냐』며 미국을 맹비난. ○…클린턴 미대통령은 29일 저녁(현지시간) 북한측과 억류중인 보비 홀준위를 송환한다는데 합의하자 곧바로 홀준위의 부인 도나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다. 클린턴대통령이 이날 하오 5시47분 전화를 걸어 홀준위가 판문점을 통해 무사히 송환된다는 사실을 알리자 홀준위의 고향인 플로리다주 브룩스빌에서 그의 석방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들은 일제히 환호하는 모습. ○…홀준위의 석방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웃주민들은 홀준위의 집에 몰려와 가족들을 포옹하며 축하인사를 건네기도.
  • “「군사접촉」·「장기수 송환」은 한국 소관”

    ◎정부/“미의 대북 2개약속 수용못해”/홀준위 억류 13일만에 어제 귀환 정부는 30일 「미군헬기사건」과 관련,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북한측에 「적절한 군사적인 접촉」을 하기로 합의해준 것과 비전향장기수 조속송환문제에 대해 미국이 「배려한다」고 북측에 약속해준데 대해 미측에 공식적인 우려를 표명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날 『허바드 미국무부차관보가 송환협상에서 북한측에 합의해준 것은 허바드부차관보의 업무를 벗어난 일임을 지적,이같은 우려를 전달했다』고 말하고 『이같은 두가지 양해사항이 한국정부의 권한사항인 만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이날 판문점을 넘어 외무부를 방문한 허바드 부차관보에게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이어 양해사항과 관련,『정부는 허바드 부차관보에게 미국측의 분명한 입장을 요구했으며 앞으로 미측이 어떤 오해를 일으킬만한 발언이나 북한과의 접촉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에대해 허바드 부차관보는 『북한측이 평화협정문제를 집요하게 들고 나오며 직접 미국과의 군사접촉을 요구해와 「적절한 군사적 접촉」으로 북한과 타협을 보게 됐다』고 설명했으며 『판문점을 넘어오며 북한측 기자들에게 이 접촉은 기존의 정전위접촉을 의미한다고 분명히 말했다』고 밝혔다. 우리측의 비전향장기수 송환에 대한 미국의 「배려」문제와 관련,허바드 부차관보는 『이 문제는 한국의 주권사항임을 북한측에 강조했다』면서 『그러나 북한측의 태도가 집요해 한국측에 이 문제에 대한 북한측의 입장을 전달하겠다는 선에서 타협을 보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이날 상오 평양방송 보도를 통해 『미측은 양해문에서 영공을 불법 침입한데 사죄했으며 사건의 재발을 막기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다』고 주장했다.북한은 또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위협을 주는 사건을 막기위한 대책으로 판문점에서 양측간 군사접촉을 갖기로 동의 해줬으며 비전향장기수들이 빨리 송환되도록 필요한 배려를 하자는 우리의 요구에 응했다』고 밝혔다. ◎건강진단뒤 귀국 【판문점=박재범기자】 지난 17일 북한지역에 불시착한 미군헬기 조종사 가운데 북한에 억류됐던 보비 홀준위가 사건발생 13일만인 30일 송환됐다. 홀준위는 이날 상오 11시15분쯤 군사분계선을 통과,판문점 북측지역에서 남측지역으로 걸어내려와 게리 럭 주한미군사령관등 주한미군관계자들의 영접을 받았다. 이에앞서 상오 11시10분쯤 지난 28일 북한을 방문,홀준위의 송환문제를 협의했던 미국무부 허바드 부차관보와 크리스텐슨 한국과부과장도 판문점을 통해 한국지역으로 넘어왔다. 홀준위는 사고당시 입고 있던 조종사 복장이었으며 북한 억류생할로 초췌한 표정이었다. 홀준위는 남측으로 넘어온 직후 게리 럭 사령관,유엔사 군사정전위 수석대표 황원탁소장,소속부대 비행단장 엘더대령과 대대장 밀러중령에게 거수경례를 한뒤 곧바로 구급차에 탑승했으며 주한미군 병원에서 건강진단을 받은 뒤 이날 하오 미국 플로리다 맥딜공군기지로 출발했다. ◎“송환접촉 관련 양보 전혀없어”/클린턴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빌 클린턴미대통령은 29일 미군 헬기 조종사 보비 홀 준위의 석방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고,그의 석방을 위해 미국이 북한측에 양보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밤 북한측에 의해 풀려난 홀 준위와 전화 통화를 한 직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통상적인 비행훈련중 항로를 벗어나 북한에 불시착한뒤 너무 오랫동안 억류돼 있었다』면서 그가 석방돼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 유해 송환·영공 개방/북 「마음의 문」도 열까

    ◎유해송환 하던 날/「자유의집」에 돌아온 차가운 목관/시신인수 15분만에 끝… 미8군 이송/리처드슨의원,생존자 “곧 송환” 강조 22일 상오 판문점에서 있은 사망한 미군헬기의 조종사 데이비드 하일먼준위의 유해송환식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15분여만에 완료. ○…하일먼준위의 유해는 계획에 따라 이날 상오 10시쯤 판문점 군사정전위 회담장 건물 사이에 시멘트로 설치된 군사분계선을 넘어 주한미군측에 인도. 이날 상오 9시40분쯤 모습을 드러낸 북한측은 하일먼준위의 유해가 안치된 관과 유류품이 담긴 비닐가방 1개를 흰색 승합차에 실어 분계선 바로 앞 북측지역까지 옮겨놓고 대기. 한미연합사측은 15분쯤 지난 상오 9시55분쯤 정전위 일직장교와 중립국 감독위 관계자들을 분계선 바로 앞에 양쪽으로 나란히 도열토록 해 유해송환에 따른 의전을 준비. 이어 평양방문을 마치고 판문점 북측지역에 모습을 드러낸 미 하원 리처드슨의원은 북측 관계자들과 악수를 나눈뒤 곧바로 분계선을 넘어 남측지역으로 걸어와 유엔사 정전위 비서장 슈메이커대령과 악수. 슈메이커대령은 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북측 인민군판문점대표부 부대표 박임수대좌(대령)와 송환절차를 최종 협의. ○…유엔사측은 상오 10시 리처드슨의원과 슈메이커대령등 유엔관계자를 북측으로 보내 북한군 2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신을 확인. 슈메이커대령등 관계자들은 3분여동안 관뚜껑을 열고 시신을 사진으로 촬영. 시신확인 절차가 끝나자 북한측은 상오 10시5분쯤 북한군 사병 6명에게 길이 2m의 갈색관을 들려 분계선 앞까지 걸어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유엔측 운구의장대에 전달. 운구의장대는 관을 들고 도열해 있던 정전위대표등의 경례 속에서 10여m쯤 걸어 「자유의 집」팔각정 앞에 도착. 북한측은 뒤이어 유류품을 인도했으며 유엔군측은 관과 유류품위에 유엔기를 덮고 3분여동안 목사의 집례에 따라 하일먼준위의 명복을 기원. 하일먼준위의 관은 간단한 의전절차가 마무리되자 차에 실려 서울 미8군본부로 이동. ○…송환절차가 끝난뒤 팔각정 옆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한 리처드슨의원은 상오 10시25분쯤 팔각정 앞계단으로 나와 내외신보도진을 위해 3분여동안 방북기간중의 활동에 대해 발표. 리처드슨의원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어렵고 힘든 협상이었다』면서 『오늘 유해를 인도받는 것은 협상의 최선의 결과』라고 의미를 부여. 리처드슨의원은 이어 『홀준위도 곧(very soon)송환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곧」이라는 표현을 거듭해 주내 송환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 리처드슨의원은 통역없이 영어로 일방적으로 말하고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탑승. ○…이날 송환식에는 내외신기자 50여명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으나 북측에서는 기자완장을 단 4∼5명만이 나타나 대조. 유엔군측은 취재경쟁을 의식한듯 『엄숙한 자리이니 뛰거나 부딪치는등 행동을 자제해달라』면서 『이를 어길 경우 강제 퇴장시킬 것』이라고 엄포. ○…북한은 22일 판문점에서 지난 17일 북한지역에 추락,사망한 미군 헬기조종사의 시신을 미군측에 인도했다고 북한관영 중앙통신이 이날 보도. 미군측은 판문점 북측지역에 들어가 사망한 조종사 하일먼준위의 시신과유품을 확인,확인서에 서명했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하늘의 문」 왜 여나/개방의지 과시… 실제취항 “산넘어 산”/“서울∼북경 항로개설 대응 차원”분석도 22일 북한이 영공을 전면 개방하기로 한 것은 북한핵문제 타결 이후 급속도로 진행되는 한반도의 탈냉전기류 속에서 고립감을 탈피,개방의지를 내비침으로써 그들의 경제회생을 도모하려는 몸부림으로 보인다.특히 국제사회에서의 영공개방은 국가간 국교정상화의 전단계로 간주되고 있는데 북한이 이를 계기로 대외개방의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우리의 경우 구소련과 수교직전 양국간의 「양해각서」에 따라 상호간의 여객기가 먼저 취항한 전례가 있다. 이러한 평가와는 달리 일각에서는 이날부터 서울∼북경간 항로가 개설,북경∼서울∼도쿄노선이 뚫린데 대한 북한측의 단순한 대응조치의 하나라고 보고 있다.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지난 80년부터 일본과 중국간 직항로문제를 협의하면서 북경∼서울∼도쿄,북경∼평양∼도쿄항로의 동시개설을 추진해왔으나 북한측이 북한상공통과 만을 주장,일­중간 한반도통과비행이 이뤄지지 못해왔다.그러나 이날 서울∼북경간이 먼저 개설되자 북한은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됐고 이러한 고립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공개방을 천명한 것이 아니냐 하는 분석이다. 북한측의 영공 개방은 구체적으로 국제항로통과협정(IASTA)에 가입한다는 것을 말한다.협정가입국은 민간여객기에 대해 무착륙 영공횡단비행을 보장하거나 보장받을 수 있으며 운수목적이 아닌 급유,정비등 기술적인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도록 돼 있다.이 협정은 다른 체약국에 대해 영공을 개방한다는 선언적인 의미여서 실제로 북한측 영공을 통과하거나 「기술착륙」을 하려면 북한과 별도로 쌍무적인 항공협정을 체결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북한측이 IASTA에 가입하더라도 실제로 북한영공을 통과하거나 항공협정을 맺어 북한에 취항하려는 국제항공사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현재 북한 고려항공의 국제선은 북경·모스크바·하바로프스크·소피아노선이 전부이며 동유럽 일부 국가와 중동,아프리카지역은 부정기항로로 거의 운항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더욱이 북한의 국제공항시설및 규모,관제능력등을 감안하면 북한이 영공을 개방하더라도 다수 국가들은 북경∼평양∼도쿄항로 보다는 북경∼서울∼도쿄노선을 선호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지난 92년부터 항공노선개설 관심을 집중시켜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지난 92년 1월 북한은 일본과의 항공협정에서 평양과 나고야,니가타와 평양간 연80회까지의 전세기노선을 취항시키는 데 합의했으며 이어 8월에는 태국의 방콕과 정기항로개설을 성사시켰다.올해에는 독일,네덜란드등 유럽지역에 관심을 기울이며 관계정상화문제와 함께 항공협정을 추진중에 있다. 이러한 추세에서 본다면 북한도 개방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고육지책에서 영공개방노선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 아니겠느냐는 지적이다. 북한측이 영공개방에 실천적 의지를 가졌다면 지난 92년 북한과 합의한 통행교류협정에 따라 김포∼순안간 직항로개설,북한영공을 이용한 우리 여객기의 하바로프스크등 극동진출도 본격 논의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한편 북한은 현재 유일한 민항인 고려항공이 주기종 29대와 보조기종 35대등 모두 64대의 민항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입장/생존자 송환·「연락소」연계/“유해 송환 환영·헬기 격추는 부당” 북한이 미군 헬기조종사의 유해를 22일 송환한데 대해 미국은 「인도적 조치」로 환영하면서 생존 조종사의 송환도 성탄절 이전에 이뤼지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같은 입장 표시는 디 디 마이어스 백악관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북한에 대해 비교적 유화적 분위기를 깔고 있다.그러나 미국의 또하나의 분명한 입장은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의 『북한의 헬기격추는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 속에서 찾을 수 있다.페리 장관은 또 생존 조종사의 송환은 곧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무부의 마이크 매커리 대변인은 생존 조종사의 송환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유익한」 논의를 해왔다고 밝히고 북한측은 보비 홀 준위에 대한 북한군의 조사가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신병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이나 국무부의 공식입장은 하루전인 20일에 비해 상당히 완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크리스토퍼 국무장관만 해도 조종사의 송환이 곧바로 이뤄지지 않으면 앞으로의 북­미 관계증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었다.이는 이번 헬기조종사의 조속한 송환과 내년 봄 북­미간의 연락사무소 개설 등과 연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날 비록 유해만의 송환이 이뤄진 것이긴 하지만 매커리대변인은 이번 비극적인 헬기사건과 북­미 핵합의 이행과는 어떤 연계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해 조종사 송환 문제가 곧 해결될 수 있는 마당에 굳이 북한의 감정을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북한문제에 관한 한 클린턴 행정부내 매파에 해당하는 페리 장관은 『조종사가 실수를 했을 것으로 믿으며 또한 여러가지 이유에서 그같은 실수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그러나 그같은 사실이 격추를 정당화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이같은 견해 표명은생존한 홀 준위가 송환되면 미국 나름대로 조사를 편뒤 북한이 정말 격추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는가를 정밀 분석할 방침임을 보여준다.북한이 사과를 요구한다 해도 우선 이같은 확인·분석작업이 있은 뒤 그때 가서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북 속셈/선유해·후생존자 「송환 카드」 구사/대미관계개선 가속 노려 『현재 북한에 억류중인 미헬기 생존 조종사 홀준위는 극진한 환대를 받고 있을 것이다』 북측이 22일 리처드슨 미하원의원을 통해 사망한 하일먼준위의 사체를 미군측에 인도한 직후 한 정부관계자의 단정적 추측이었다.이같은 언급은 북측이 적절한 시점을 골라 생존 승무원을 미군측에 되돌려 보낸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정부측이 북한이 어번 미군헬기 북한영역내 불시창 사건을 대미 관계개선 촉진용으로 최대한 이용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대목이다. 이는 북한과 미국이 21일 하오 전격적으로 열린 「장성급회담」에서 「선사체인도,후생존자송환협상」에 합의함으로써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북한의 입장에선 이같은 「카드 세분화」전략으로 북­미관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지렛대를 확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북한으로선 일단 세체부터 인도함으로써 미국조야의 대북여론 악화를 막을 수 있게 됐다.동시에 생존자 송환카드로 미국과 줄다리기를 계속할 수 있게 되어 북한으로선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는」 형국인 셈이다. 당장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각종 경제규제 완화조치를 절실히 바라고 있으며 대체에너지 1차분도 받아야 할 형편이다.뿐만 아니라 북한 당국자들은 50억달러 이상을 목표로 하는 대일 배상금도 대미 관계개선이 선행되지 않으면 어렵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다. 때문에 북한측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적절한 시점에서 스스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우연히 영공내에 날아든 미군헬기야말로 북한으로선 처음부터 대미 관계개선 촉진을 위한 더 없는 호재였을 뿐이라는 게 통일원등 정부당국의 기본시각인 셈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북한은 그들이 인질로 잡고 있는 홀준위의 입을 활용해 대외적으로 평화이미지를 과시할 여지도 크다.북한이 지난 68년 납치한 미항공모함 푸에블로호 승무원과는 달리 홀준위를 적절히 예우하고 있다는 첩보에 근거한 분석이다. 북한측이 홀준위를 빠르면 오는 25일 성탄절 이전에 미군측에 되돌려 보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두가지 대내외적인 부수적인 효과까지 겨냥했다.우선 대내적으로는 미군헬기의 불시착을 굳이 영공침입에 대한 「격추」라고 주장한 대목이다.고의적인 긴장고조를 통해 주민결속을 도모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답습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둘째,이번 사건을 유엔사와 정전위 무력화에 철저히 활용했다는 점도 음미할 만하다.북측은 한국군이 참여하는 비서장회의 등을 철저히 배제한 채 「장성급회담」이라는 대미 직거래 채널을 성사시킨 것이다. 이같은 전후사정을 염두에 둔다면 북한은 체제결속 및 대미 관계개선이라는 다소 상충되는 목표가 접점을 이루는 시점에서 헬기사건을 둘러싼 미국과으 줄다리기를 끝낼 것으로 보인다.
  • 국군 자긍심 높인 작통권행사/44년만에 신고식 하던 날

    ◎“명 받았습니다”에 “지휘책임 막중”/별 1백1개참석… 작전협력 다짐 한국군이 44년만에 한미연합사로부터 평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한 첫날인 1일 국방부와 합참은 환수의 「역사적」의미에 걸맞는 각종 행사를 치르느라 온종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날 상오 10시 국방부 청사 2층 소회의실에서 열린 「작전통제 국방장관 신고식」은 엄숙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됐다. 이양호합참의장은 이병태장관에게 『합참의장 공군대장 이양호는 평시작전권행사를 명받았습니다』라고 거수경례와 함께 신고했다.이때 합참의장 뒤편에는 이준 1군·박세환 2군·윤용남 3군사령관과 도일규 수방사·장창규 특전사·안병태공군작전사·이상무 해병대사·배양일 공군작전사·김영식 항공사령관등 지휘관들이 도열했다. 신고가 끝나자 이장관은 합참의장을 제외한 지휘관들에게 지휘봉을 수여하면서 『44년만에 평시작전권을 환수,우리 국군에게 자긍심과 더불어 조국방위의 책임과 역할이 더욱 증대됐다』고 강조하고 『작전권 행사 역량을 축적함으로써 장차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효율적으로 대비토록 하자』고 당부. 이날 5분간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장관 옆에는 김동진육군·김홍열해군·김홍래공군총장을 비롯한 주요관계자들이 배석했다. ○…이날 낮 청와대에서 있은 김영삼대통령에 대한 우리 국군의 평시작전통제권 환수 신고식에는 무두 1백3개의 별이 참석. 이날 행사에는 육·해·공 3군의 현역 대장 9명 가운데 8명이 참석하고 작전사령관 9명,합참 주요대사령관 3명,공군지휘관 2명등이 참석,이들이 달고 온 별이 모두 1백1개이고 육군 소장인 국방비서관까지 정복차림으로 배석해 모두 1백3개가 된것. 김대통령은 이날 군령권의 상징인 합참의장 깃발에 「평시작전통제권 환수」라고 쓴 수치를 달아주면서 『오늘을 제2의 창군일로 삼아 새삼스런 각오와 결의를 다지자』고 강조. 이합참의장은 이 자리에서 『작장병을 대표해 무거운 의무를 실감하며 한미간의 작전협력을 추호의 차질 없이 수행해 나가겠다』고 다짐. ○…이어 이날 하오 2시쯤 국방부 청사 동측광장에서 열린 합참의장에 대한 작전통제 신고식은이양호합참의장에 대한 기수단의 경례에 이어 해당 사령관의 신고·합참의장 훈시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신고식에선 합참의 평시지휘를 받게된 3군과 1군사령관,해군과 공군작전사령관,해병대사령관등 5개사령부 지휘관들을 대표해 윤용남 3군사령관이 『작전권행사를 명받았음을 신고합니다』라면서 거수경례로 신고. 이합참의장은 이날 낮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자주색 수실의 지휘봉을 들고 단상에 올라 신고를 받았는데 단상에 배석한 군단급 이상 지휘관들은 우리손에 작전권이 돌아온 역사적 의미를 새기는듯 상기된 표정이었다. ○…이날 신고식에 참석한 대부분의 군간부들은 밝은 표정으로 하오 3시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작전권 환수에 따른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 참석했다. 합참측은 이날 이례적으로 지휘관 회의 시작후 5분여 동안 회의장을 공개.참석자들은 이합참의장이 『언론을 위해 회의를 하는 것처럼 하자』고 조크를 하자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는등 밝은 분위기속에 향후 평작권행사에 대비한 실무사항 논의에 들어갔다.
  • “중풍 10년째… 자식에 짐된다”/60대부부 자살

    ◎전세금은 빼내 딸 줘 지난 13일 서울 강동구 고덕1동 야산에서 목매 숨진채 발견된 노인부부는 서울 성동구 송정동 삼청연립 1층에 세들어 살던 김윤호씨(67)와 부인 허경례씨(64)씨로 15일 밝혀졌다. 김씨 부부는 슬하에 맏아들(47·대전 거주·운전사),둘째아들(40·분당거주·이발사),셋째아들(35·서울 노원구 월계동·무직)과 외동딸(31·경기 하남시)등 3남1녀를 두었으나 모두 살기가 어려워 거의 찾아오지 않았고 중풍과 요통에 시달리며 외롭게 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드러났다. 1년전에 송정동에 이사온 김씨 부부는 미리 죽음을 준비한 듯 지난달 30일 장농이며 이불·솥단지·숱가락 등 몇 안되는 세간살이를 이웃들에게 나눠주었고 이웃 사람들이 이때 『이제 자식들 집에 들어가시나 보죠.정말 잘됐네요』라며 기뻐했지만 노부부는 쓸쓸한 미소만 지었다는 것이다.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집을 나선 부부는 경기 하남시 신장동에 사는 외동딸(31) 집을 찾아가 하룻밤을 묵으면서 연립주택의 전세금 3천8백만원 등 모두 4천6백여만원을 딸에게 건네줬다. 김씨는 어머니·아버지가 『평소 신경을 써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돈을 건네주고 시골인 전남 곡성으로 간다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김씨는 10년전부터 중풍을 앓아왔다고 했고 부인 역시 허리가 굽어 잘 움직이지 못했지만 막내딸 이외에는 거의 찾아오지 않았으며 최근에는 자식들이 생활비를 보내주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 한·비 정상/조깅·농구 함께 건강외교 결실(김대통령 순방여로)

    ◎오찬엔 비상공인 3백여명 참석 성황/예정시간 넘기며 정상회담… 현안 조율/“비항만공사 참여” 소식에 교민들 박수 필리핀 공식방문 이틀째를 맞은 김영삼 대통령은 11일 말라카냥궁에서 라모스 필리핀대통령과 정상회담과 공동기자회견을 가진데 이어 상공회의소 주최 오찬에 참석했으며 하오에는 참전용사회 간부를 접견하고 교민리셉션을 여는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정상회담◁ ○…김대통령은 이날 필리핀의 독립영웅인 호세 리잘을 기리는 리잘기념탑에 헌화한뒤 승용차편으로 상오 9시30분쯤 말라카냥궁에 도착,라모스 대통령과 예정시간을 45분이나 넘기며 1시간35분동안 단독정상회담. 라모스대통령은 김대통령에게 『아주 건강해 보입니다.오늘 아침에 같이 운동을 해 더욱 건강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넨 뒤 2층 집무실로 안내.라모스대통령은 또 『오늘 아침 각하와 농구할 때 공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한골씩 넣었는데 이는 한국과 필리핀의 협력정신과 팀플레이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 단독회담에 이은 확대회담을갖기전 김대통령은 『단독회담에서 이미 충분한 얘기를 했다』면서 예정시간을 넘겨 진행된 단독회담에서 주요 현안들에 관한 의견조율이 사실상 매듭지어졌음을 시사. ▷공동기자회견◁ ○…정상회담이 끝난뒤 김대통령과 라모스대통령은 상오 11시45분쯤 말라카냥궁 공동기자회견장으로 나란히 입장,약 20분동안 회담결과를 설명하고 내외신기자들과 일문일답. 라모스대통령과 김대통령은 한국과 필리핀 기자 2명씩으로부터 번갈아가면서질문을 받았으며 라모스대통령과 필리핀기자의 답변과 질문이 우리말로 통역되지않아 의전상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또 내외신기자들이 회견장에서 두나라 정상을 기다리는 동안 회견장 연단 뒤편의 전구 1개가 터져 회견참석자들이 잠시 놀라기도. ▷교민리셉션◁ ○…김대통령은 이날 저녁 숙소인 마닐라호텔 1층 폴카발룸에서 교민 3백여명에게 리셉션을 베풀고 『한국인이라는 긍지를 갖고 살아달라』고 격려. 김대통령이 헤드테이블에서 교민회인사들과 간단한 다과를 나눈뒤 라모스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우리기업의필리핀 항만공사 참여와 필리핀근로자의 추가 송출등에 합의했다고 소개하자 교민들은 일제히 박수. 김대통령은 이어 『북한은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도와줄 나라가 없다』고 밝히고 『우리는 북한을 지원할 능력과 힘,성의를 갖고 있다』고 강조. 김대통령은 또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면서 취임후의 각종 개혁조치를 상세하게 소개한뒤 『부정의 세월을 청산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설명. ▷참전용사 접견◁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 숙소에서 필리핀의 한국전참전용사회 간부 5명을 접견하고 한국전 당시를 회고하며 이들을 격려. 김대통령은 참전용사들과 거수경례로 인사를 교환하고 일일이 악수를 나누면서 우리나라와 필리핀의 혈맹관계를 거듭 강조. 참전용사들은 자기들이 지키기 위해 싸웠던 나라의 대통령을 필리핀에서 만난데 대해 감동을 나타내면서 김대통령에게 기념패를 증정. ▷상공회의소 주최오찬◁ ○…필리핀상공회의소 주최로 마닐라호텔 만당고룸에서 개최된 김대통령 초청오찬은 우리측에서 수행기업인 22명,현지상사대표 40여명과 3백여명의 필리핀 상공인들이 참석해 성황. 김대통령이 오찬 연설에서 『민주화 과정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한국과 필리핀은 이제 경제발전 과정에서도 긴밀한 동반자』라고 말하자 참석자들은 열렬한 박수로 호응. 김대통령은 『우리 기업은 필리핀을 유력한 협력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필리핀 상공인들은 한국기업들과 힘을 모으라』고 당부. 연설을 마친 뒤 김대통령은 연단에 서서 몇가지 질문을 받았으며 답변을 통해 『경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도 기업 근로자 정부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 ▷아침조깅◁ ○…김대통령은 상오 6시 말라카냥궁 이웃 대통령 경호사령부에서 라모스 필리핀대통령과 구내골프장 주변로 5백m를 다섯바퀴 돌며 「조깅외교」를 전개. 라모스대통령은 김대통령이 20여년 넘게 새벽조깅을 하고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날 새벽 5시50분쯤 미리 조깅코스에 나와 김대통령을 맞고 특별히 함께 새벽운동을 하는등 우의를 과시. 김대통령은 평소 속도로 다섯바퀴 뛰었으나 라모스대통령은 평소 조깅을 하지않아 다섯바퀴가 다소 무리였던지 한바퀴 돌고 한바퀴 쉬는 방식으로 조깅에 동참. 그러나 김대통령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두나라의 우의를 위해서 이만치에서 조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해 폭소와 박수가 함께 어우러지기도. 이어 두나라 정상은 구내골프장 잔디밭을 5분남짓 걸으며 말라카냥궁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한 뒤 경호사령부 체육관에 들러 마무리운동. ▷손여사 일정◁ ○…대통령부인 손명순여사는 이날 상오 김대통령이 라모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동안 라모스 대통령부인 아멜리타여사의 안내로 말라카냥궁 본관 2층 박물관을 관람. 손여사는 역대 스페인·미국 총독과 필리핀 대통령이 쓰던 각종 집기,가구,식기,수집한 서화등이 전시된 14개의 전시실을 40여분동안 둘러보면서 아멜리타여사와 전시물에 관해 대화.
  • 김 대통령­이붕총리 회담 110분

    ◎한·중수뇌 “이웃사촌 우의” 거듭 강조/이붕총리,최근 북한정세 심도있는 브리핑/탁구커플 안재형·자오즈민 만찬초청 눈길 중국총리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이붕 중국국무원총리는 방한 첫날인 31일 김영삼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청와대 공식만찬에 참석하는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한·중회담◁ ○…김영삼대통령과 이붕총리의 청와대 회담은 단독·확대회담순으로 처음 예정보다 30분이 늘어난 1시간50분동안 진행. ○날씨 얘기로 시작 김대통령과 이총리는 회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지난 여름 한국의 가뭄과 중국의 홍수등 날씨를 화제로 잠시 환담. 이총리는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양국이 지난 2년간 대단히 빠르게 발전했다』고 평가.이에 대해 김대통령은 『바다라기 보다는 큰 강』이라면서 『지금 이렇게 날씨가 좋지만 지난 여름 우리는 가뭄으로,중국 남부는 홍수로 고생해 가까운 사이인데도 기후차가 심하다』고 설명. 이총리는 『태풍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없다』면서 『그러나 금년 농사는 대단히 좋고 특히 동북지역은 대풍』이라고 소개.김대통령은 『우리도 가뭄은 있었지만 평년작은 넘는다』고 화답. 회담에서는 『이총리가 북한정세에 관해 깊고 의미있는 브리핑을 했으나 자세한 것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정종욱외교안보수석이 소개. 이총리는 『북미간의 핵 합의서를 보았다』고 전제,『그대로 실시되도록 계속 노력하도록 하고 이것이 아시아와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을 확신했다』고 평가.그는 특히 『이 합의서가 실행되도록 한중양국이 긴밀히 협조해 나가자』고 말하고 『남북이 직접 대화로 협상해 나가고 평화통일을 이룩하는 것을 중국은 절대 지지한다』고 중국의 정책을 설명. 확대회담에 들어가서 이총리는 『한국의 투자는 산동성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나 다른 여러군데도 한국기업에 유리한 곳이 많다』고 밝히고 『다른 곳에도 투자를 분산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이총리는 특히 원자력건설시장에 한국의 기업이 참여하게 해달라는 김대통령의 요청에 대해 『중국은 지금 석탄과 수력발전에 의존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원자력개발에 힘을 쓸것이므로 한국도 참여해서 한몫을 해달라』고 답변. 이총리는 항공기개발사업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항공기는 미국과 유럽에서만 생산했는데 한국과 중국이 협력해 중형항공기를 생산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피력.WTO 사무총장 출마건에 대해서도 『아시아인은 아시아인을 지지해야 한다』고 김철수상공부장관에 대한 지지를 약속. 두사람은 회담을 모두 마치고 1층 인왕실로 옮겨 한승주 외무부장관과 전기침 중국외교부장의 한중항공협정·원자력협력협정·민간항공기개발양해각서 서명식에 임석. ▷공식만찬◁ ○…김영삼대통령이 31일 저녁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이총리를 위해 베푼 만찬에는 3부요인을 비롯한 우리측 인사 72명과 중국측 수행원 30명등 1백여명이 참석해 성황. ○1백여명 참석 성황 김대통령은 만찬에 앞서 세종실에서 이총리와 함께 만찬참석자들을 일일이 접견하고 국빈실로 옮겨 간단한 칵테일을 들며 양국의 날씨를 화제로 가볍게 환담. 김대통령은 만찬사에서 『중국속담에 「먼 친척은 가까운 이웃만 못하다」(원친불여근린)는 말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이웃 사촌」이라는 말이 있다』고 소개하고 『우리 두나라간의 관계야말로 이웃사촌과 같은것』이라고 강조. 이날 만찬에는 양국 경제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경제분야에 대한 양국의 공통관심을 반영했으며 한·중 탁구커플인 안재형·자오즈민(초지민)부부가 특별초청 인사로 참석해 눈길. ○수행인사들 소개 ▷이총리공항도착◁ ○…중국 최고위급 인사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이총리 내외는 31일 낮12시10분 중국 국제항공 특별기편으로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4박5일동안의 공식방문 일정을 시작. 이총리 내외는 화창한 가을 날씨속에 19발의 환영예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신두병 외무부의전장의 기내 안내를 받고 트랩을 내려와 한승주 외무부장관과 반갑게 인사한뒤 한장관에게 전외교부장,진금화 국가계획위원회 주임등 각료급 수행인사들을 소개. 이어 이총리는 한장관 안내를 받으며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과 애국가 연주속에 사열대로 이동,양국 국기앞에서 경례한뒤 황병태 주중대사와 유병우 외무부아주국장등 우리측 환영인사및 장정연 주한중국대사 내외 등과 일일이 악수.
  • “조소위 탈북은 조국애 실천의 표본”/김 대통령,조창호씨 위로방문

    ◎“자유의 소중함 일깨운 승전보” 격려/명예로운 전역식·생계보장 등 약속 김영삼대통령은 28일 상오 6·25사변 때 육군소위로 참전중 중공군에 포로가 돼 북한에서 억류생활을 하다 지난 3일 극적인 탈출에 성공한 조창호씨가 입원해 있는 국군수도통합병원을 찾아 조씨를 위문·격려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병원 특실에 들어가자 바로 병상에서 일어서 거수경례를 하는 조씨를 두손으로 뜨겁게 포옹하고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10여분동안 환담.김대통령은 조씨의 손을 따듯하게 감싸잡고 『건강이 어떠냐』고 물었고 조씨는 대통령의 방문에 감격한듯 눈물을 글썽이며 『많이 나았다』고 답변. 김대통령은 『조소위의 북한탈출은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인간승리의 표본이며 우리 국민들에게 조국과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고 높이 평가.이어 김대통령이 『조소위의 어머니께서 조국이 어려울 때 아들에게 군입대를 권유하고 평생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었다』고 고인이 된 조씨의 모친에 대해 언급하자 조씨는 『제가 살아서 돌아올 것으로 믿고 돌아 가셨을 것』이라고 눈물을 글썽. 김대통령은 조씨의 군적과 관련,『조소위가 아직 소위로 남아 있어 법적인 문제는 있지만 명예로운 전역식을 갖게 하라고 이병태 국방부장관에게 지시했다』면서 전역식 때 정부는 국가가 수여할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을 수여하도록 준비하고 있으며 생계나 모든 문제를 국가가 영원히 보장할 것이라고 약속.이에 조씨는 『바쁘신 중에 이렇게 와주셔서 뭐라고 얘기해야 될지 모르겠다』면서 『이처럼 발전한 조국의 건설에 저도 벽돌 한장이라도 쌓아야 하는데 아무 한일이 없어 마음이 무겁다』고 심경을 피력했다.그는 또 『북한에 있으면서도 가슴에 조국을 품고 있었으며 내가 조국이 아니면 어디에 묻히고 어디에 가겠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북한 억류생활을 회고. 조씨의 큰 누이인 창숙씨는 『어머니는 생전에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서 국가와 사회,그리고 아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불렀다』면서 『창호의 귀국은 어머니의 이같은 기도 덕분으로 감사한다』고 어머니를 회고.조씨도 『북한에 있을 때도 어머니가 새벽 4시면 일어나서 기도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조소위의 조속한 건강회복을 기원하는 뜻에서 조그만 선물을 마련했다』면서 홍삼 6백g과 손목시계를 전달하고 『이제 아무 걱정말고 빨리 건강을 회복하도록 해달라』고 당부. 김대통령은 병실을 떠나기에 앞서 조씨를 다시 한번 뜨겁게 포옹.김대통령의 이날 방문에는 이국방부장관과 김동진 육군참모총장이 수행.
  • 조창호씨/현역군인가 귀순동포인가/43년만의 생환… 군적 어찌되나

    ◎「포로」인정땐 원계급 회복,「최장수 소위」/단순 탈출… 「민간인」 간주땐 제대자 처리 6·25당시 포병소위로 참전했다가 중공군에 붙잡혀 북한땅에서 살아온 조창호씨(64)가 43년만에 북한을 탈출,생환해옴에 따라 조씨의 사망을 기정사실화하고 조치를 취했던 정부의 관련부처들이 조씨에 대한 대우등을 놓고 부심하고 있다. 국방부와 육군은 조씨를 「전사자」로 처리,중위로 1계급을 추서했으며 국립묘지측은 조씨의 위패를 봉안해놓고 있는 상태다.또 국가보훈처는 조씨를 국가유공자로 처리,가족들에게 일정액의 연금을 지급했었다. 조씨에 대한 처리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부분은 조씨의 군적문제이다.즉,조씨에 대해 북한생활을 포로생활로 인정하고 지난 43년동안 군적을 유지한 것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제대한 것으로 처리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이다.이 문제는 조씨가 앞으로 군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각종 혜택을 부여받을 수 있는지와 관련돼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씨는 포로상태가 인정되면 사망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지만 단순한 탈출로 간주되면 앞으로 실제 사망때에는 국립묘지안장이 불가능해진다. 현행 국립묘지령등에 따르면 현역군인등으로 20년이상 근무한 군인연금 수급권자등을 국립묘지안장대상으로 선정하고 있어 조씨는 자칫 생존시에는 국립묘지에 위패가 봉안됐다가도 실제 사망했을 때는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하게 될 우려도 있는 것이다.군인연금수혜여부는 조씨가 정상적으로 근무하지 않아 매달 연금갹출료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연금수혜는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와 육군은 따라서 조씨에 대해 북한생활이 포로생활이었는지를 앞으로 조사할 방침이다.이 조사에서 포로로 인정되면 당연히 지난 43년을 현역으로 근무한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이 경우 조씨는 전사를 조건으로 1계급특진,중위가 된 만큼 다시 원계급을 회복,「최장 소위근무자」가 된다.그러나 조씨가 북한에서 결혼을 하는등 포로생활에서 벗어난 민간인이며 북한을 탈출한 동포로 단순하게 보면 조씨는 군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게 된다.이때 조씨는 전사처리된 51년 9월 자동제대한 것으로 간주된다. 육군에 따르면 조씨는 51년 4월14일 임관,5월 실종돼 4개월후인 9월10일부로 전사처리됐다.병역법과 군인사법등 관련법규에서는 「전투중 행방불명자에 대해서는 2년 경과시 전사처리하고 생환시 전사처리일부로 제대처리한다」고 규정돼있어 조씨는 이 조항의 적용을 받게 되는 것이다.육군의 한 관계자는 『조씨의 사례가 처음있는 일이라 관련규정이 정비돼 있지 않다』면서 『조씨의 처리결과가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철저히 관련법규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적문제 다음으로 관심을 끄는 대목은 조씨의 가족들이 그동안 받았던 국가유공자연금의 환수여부다.국가보훈처는 조씨가 전사처리된데 따라 61년 8월 국가유공자등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조씨를 국가유공자로 등록,조씨의 부모인 조연국씨(사망)와 이곤옥씨(사망)에게 61년 당시에는 한달에 5백원씩을,연금수혜자인 부모가 모두 사망한 82년 8월에는 마지막으로 1만9천9백원을 연금으로 지급했었다.국가보훈처 관계자는 『국가유공자예우등에 관한 법률에서 본인이 거짓말을 하는등 본인의 귀책사유가 없으면 군기록이 변경되더라도 관계없다는 조항이 있어 조씨가 받았던 연금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조씨가 앞으로 정착금등을 받을 수 있을지의 여부도 관심거리다.보사부와 안기부등 관계당국은 조씨에 대해 귀순동포인지의 여부를 가리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현행 「귀순월남동포보호법」은 북한에서 출생해 귀순한 사람을 대상으로 최저임금의 15∼20배를 정착금으로 지급하도록 돼있어 조씨의 경우는 해석이 다소 다르다는 입장이다. 관계당국은 이에따라 국방부가 조씨를 현역군인으로 인정할 것인지를 지켜본뒤 조씨에 대한 처우를 결정한다는 생각이다. ◎“포병소위 무사귀환 신고합니다”/생환 조창호씨,방문한 이국방에 거수경례 북한을 43년만에 탈출,극적으로 조국의 품에 안긴 조창호씨(64)는 25일 하오3시쯤 이병태 국방장관이 위문을 위해 병실을 방문하자 불편한 오른팔과 다리에도 불구하고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크게 군번등을 외치며거수경례,군인정신을 보여줬다. 조씨는 당초 자신이 입원해 있던 서울중앙병원에서 이날 하오2시47분쯤 국군통합병원 5층 VIP실로 이송된 뒤 이장관이 자신을 방문하자 병상에서 일어나 부동자세로 『포병소위,군번 212966,국방장관님께 무사히 귀환했음을 신고드립니다』라며 신고한 것. 이어 이장관은 『선배님이 오랫동안 고생하시다가 돌아오시게 된 데 대해 우리국민과 국군이 환영하며 대통령께서 저를 대신 보내셨다』면서 김영삼 대통령명의의 꽃다발을 전했다. 한편 이장관의 조씨 방문에 동행한 군 관계자들은 『조씨가 귀환신고를 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콧등이 시큰했다』며 『신고를 하는 조씨의 눈에 생기가 도는 것을 보니 조씨가 그토록 고생했어도 군인정신만큼은 살아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 「태국기사랑」 시리즈를 마치며/전문가 좌담(태극기를사랑합시다:끝)

    ◎“「국민정신 구심점 찾기」 계기 마련”/국기·애국가 통한 청소년 선도 효율적/충효교육 강화… 도적성회복운동 함께/일선학교는 물론 공공기관도 적극 동참해야 □좌담 정여기 서울광희중교장 김성식 교육부 중등교육 장학관 김집 청소년연맹 총재 서울신문은 최근 일선학교와 민간부문에서 자생적으로 일고 있는 태극기사랑운동의 실상을 사례중심으로 9차례에 걸쳐 심도 있게 보도해 왔다.이는 우리사회에서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가치관혼란 현상은 국민적 구심점이 약해진데 따른 것이며 국기야말로 모든 계층의 부조화 요인을 한데로 조화시킬 수 있는 최적의 상징물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때마침 올 1학기부터 일선학교를 중심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부르기,국기 제대로 달고 보관하기 등의 태극기사랑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고 있던 터여서 서울신문사는 이에 호응,시리즈를 엮어 온 끝에 이번에 전문가들의 좌담을 통해 결말을 맺어 본다. ▲김집총재=우선 국민정신의 구심점을 찾기 위한 태극기사랑운동이 이제 어느 정도 궤도를 잡아가는 듯 합니다.현재 우리나라는 「지존파」연쇄살인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심각한 정신적 혼란상황에 놓여 있습니다.대부분의 국민들은 청소년기의 교육이 잘못된데서 이런 일이 비롯됐다고 분석하지요. 그러나 남에게 책임을 돌리기전에 각자 애국·애족심을 갖고 국민정신의 확고한 구심점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이를 위해 한국청소년연맹이 각급 학교와 협의,올초부터 시작한 태극기사랑운동이 대단한 호응속에 전국 각지로 확산되고 있어 국민정신 구심점 확립운동의 작은 전기가 마련됐다고 생각합니다. ▲김성식장학관=그렇습니다.구심점이 어느때보다도 필요합니다.지금 펼쳐지고 있는 태극기사랑운동을 청소년 선도의 좋은 방안으로 적극 활용해야할 것입니다.최근 잇따르고 있는 일련의 흉악범죄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청소년들이 현재 놓여있는 환경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결손가정의 증가와 핵가족화를 비롯,불량비디오및 불량서적,환각물질 등의 범람은 전체국민의 3분의1에 이르는 1천3백만 청소년들을 도처에서 위협하고있습니다.따지고 보면 「지존파」도 이런 분위기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청소년을 올바르게 지도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국가발전을 크게 위협할 것이 뻔하죠.이제야말로 모든 국민이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지도에 나설 때인데 학교위주의 청소년지도는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이번 기회에 「사회의 학교화」를 목표로 모든 국민이 청소년문제를 곧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지역사회전체를 청소년 교육공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정여기교장=우리나라 전체 복역자의 7.8%가 청소년입니다.30%선인 미국,20%선인 일본보다는 적지만 5%가 채 안되는 대만과 비교하면 높은 수치지요. 대만의 성공적인 청소년선도의 열쇠는 사회전체에 널리 퍼져있는 충효사상입니다.중국은 또 중화사상에서 우러나온 자긍심이 큰 역할을 하고있지요.우리도 그러한 자긍심을 학생들에게 심어주어야 합니다.그러기위해서는 우리민족의 희망찬 미래에 대한 확신을 줄 수 있는 구심점을 찾아야지요.이런 역할을 가장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것이 국기와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일선학교나 공공장소에서도 태극기에 대한 경례를 거의 하지 않고 있어요.앞으로 태극기·애국가를 도덕성·윤리의식회복 문제와 연계시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나가야 합니다.이에 따라 우리 광희중학교에서는 올해 다양한 실험들을 전개해나가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이의 실질적 효과를 측정할 계획입니다.태극기사랑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기성찰을 하도록 해주고 애국심을 길러준 뒤 학생들의 행동변화추이등을 면밀히 지켜보아 앞으로의 학생지도 자료로 널리 활용할 계획입니다. ▲김총재=현재 우리나라 청소년범죄는 발생건수도 날로 늘어나고 있지만 범죄자체가 대형화·흉포화하고 있다는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청소년범죄예방의 모범적 나라인 대만을 직접 방문해 그곳 교육부장관등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더니 그들은 우리나라의 도덕과목에 해당하는 수신과목의 교육을 철저히 한다더군요.실제로 수신과목이 상급학교 진학의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우리도 본받아야할 점이지요. ▲김장학관=일선학교에 장학지도를 내려가보면 과거 유럽·미국과 일본등을 차례로 휩쓸었던 반달리즘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즉 기존의 도덕과 사회문화에 무조건 반기를 들고 자기위주로만 즐기는 풍조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청소년을 자녀로 두고 있는 40∼50대 세대는 과거 6·25전쟁기에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헐벗고 굶주렸고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누리지 못했던 경우가 많습니다.여기서도 현재 잘못되고 있는 가정교육의 원인을 찾을수 있을 것입니다.따라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해야 자식도 역시 부모를 공경하게 된다는 부자자효의 정신을 되살려 가정에서부터 우선 도덕성회복운동에 나설때입니다. 아울러 효에 대한 포상제도를 널리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최근 일부대학에서는 효행표창을 받은 학생들에 대해서는 특례입학의 혜택을 줄 것도 고려하고 있을 정도로 효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되어가고 있습니다. ▲정교장=효사상과 아울러 충사상의 근간이 될 국기를 사랑하도록 하는데는 방법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추상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한다면 오히려 과거 군사문화의 잔재니,권위주의 시대로의 복귀니 하는 등의 반발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3·1운동 당시 온민족이 태극기를 들고 하나로 뭉쳐 일제에 항거했고 태극기를 품에 안고서 죽어갔다는 사실등 마음에 직접 와닿을수 있는 사례들을 발굴해 학생들에게 알려준다면 국기에 대한 존경심을 자연스레 유도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김총재=그렇습니다.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례중의 또다른 하나는 미국이 우주선 아폴로 17호를 발사할 때 우주선에 싣고갈 국기를 고르기 위해 세계 1백35개국의 국기를 모아 심사한 일이 있었습니다.이때 우리의 태극기가 그 아름다움이나 담긴 의미등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해 달까지 갔다가 온 적이 있었지요.이런 사례들을 묶어 학생들에게 알려주면 더욱 효과적일 것입니다. ▲김장학관=정부도 막연한 국기달기 권장방식에서 벗어나 태극기를 통한 청소년선도에 적극 동참할 것입니다. ▲김총재=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법중 가장 효과적인 것이국민정신의 구심점을 찾아나가는 것인데 태극기를 통한 방법모색이 가장 효율적임을 이번 운동을 통해 재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교육지도층과 일선학교가 합심해서 범국민적인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정교장=우리 태극기는 국권침탈과 동족간 상쟁등 근현대사의 숱한 시련기속에서도 한시도 우리 국민과 떨어져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앞으로 과제는 우리가 어떻게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태극기와 친해지고 존엄성을 느낄수 있도록 할 것인지를 연구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장교 명령 안먹히는 군기/장교탈영 계기로 본 문제점

    ◎엄격한 통솔 옛말… 하극상 잇따라/“인내심 부족” 신세대자질 한 몫 창군이래 처음 발생한 27일의 현역장교 무장탈영사건은 곤두박질치는 군기강을 대변해 주고 있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군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앞으로 군개혁이 「군다운 군 건설」을 위해 내실있게 추진돼야 하며 이를 위해 군 스스로 현재 안고 있는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점검,대책을 시급히 강구해야 할 시점에 도달해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신정부 출범이후 군개혁은 정치군인의 배제에 초점을 두고 추진돼 군기강확립,근무여건 개선등의 실질적 문제는 「찬밥신세」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이번 사고는 해안초소라는 특정근무환경에서 발생했으며 해안초소의 경우 병사들이 대부분 한고향출신으로 민간인과 접촉이 빈번해 각종 사고가 빈발,전방부대등과는 환경이 다른 것으로 알려져있다. 육군에 따르면 이번에 탈영한 육군 00사단 해안 4대대 13중대소속 조한섭소위(24·학군32기)와 14중대소속 김특중소위(22·육사50기)는 지난 7월 함께 첫 근무지로 이부대에 온뒤 병사들이 「말을 듣지 않아」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육군은 탈영소위들이 소대원들이 경례나 대답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지시를 충실히 따르지 않았으며 일부병사는 반말을 서슴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김소위는 이같은 군기문란을 수차례 소속 중대장 김모대위(28·학군 27기)에게 보고,시정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불만을 갖고 있던중 조소위 소속 14중대서 발생한 하극상사건을 중대장이 미온적으로 처리,탈영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23일 하오 14중대의 이모소위(24·학군32기)가 이등병을 구타하는 소대원 신모병장을 말리면서 『구타는 못하게 돼있으니 차라리 나를 때리라』고 하자 신병장이 『못때릴줄 아느냐』면서 이소위의 뺨을 한차례 때린뒤 이소위가 멱살을 잡자 다른 사병 3명과 함께 집단구타한 것이 하극상사고의 전말이다. 중대장 김대위는 이에 대해 이소위에게 『부대통솔을 잘하라』고 꾸짖는 한편 신병장은 군법회의에 넘기지 않고 얼차려조치만 내려 불만이 극에 달하게 됐다는 것이다. 군관계자들은 이같은 탈영사고에 대해 군의 낙후된 교육과 흐트러진 군기강,인내심없는 신세대장교의 자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현재 군은 사병들의 경우 50%가량이 전문대졸업이상의 학력을 지니고 있어 자존심이 강한데다 자기 주장이 강하다고 군고위관계자들은 지적한다. 따라서 과거 계급조직에서 명령과 지시로 규율이 엄격했던 장교들의 통솔방법이 먹혀들지 않고 있으며 최근들어서는 병사들이 일부장교의 지시에 걸핏하면 반발,하극상사고등이 많아지고 있다는게 군관계자의 설명이다. 하극상사고는 90년 1백13건이었으나 93년 1백32건이고 항명은 90년 2백59건에서 93년 4백13건으로 크게 늘고 있다. 이에 대해 군관계자는 『병사나 장교나 신세대들은 대부분 인내심이 부족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 군기문란과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군윤리나 합리적인 지휘관통솔기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이런 교육이 없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장교가 자기주장이 무시된다고 무장탈영의 방법을 택했다는 점은 있을 수 없으며 이들은 장교자질이 전혀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장교 무장탈영의 전말/“희생감수 병폐 근절”… 두소위 투합/소대원에 불만 많던 하사도 가담 「장교탈영」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빚은 조한섭소위는 지난 8월말 군부대를 찾아온 아버지 조철호씨(57·예비역 중령·창원시 용호동 롯데아파트 213동 201)등 가족들에게 군내부생활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었다. 조소위는 당시 지난달 8월23일쯤 인근소대에서 있었던 사병들의 소대장 구타사건과 이에 대한 상급 지휘관의 미온적인 처리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고 한다.조소위는 가족들에게 『인근 소대 소대원 사병 4명이 아들과 학군장교동기인 소대장을 집단으로 마구 구타한뒤 해당 소대장에게 식사도 챙겨주지 않는다』며 『장교로 군생활을 했던 군선배인 아버지는 이같은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군체질에 대한 어려움을 설명했었다. 실제로 23일 조소위 소대의 인 해안초소장 이모소위(학군 32기)가 부하인 신모병장이 한 이병을 구타하는 것을 보고 『이병이 뭘 알겠느냐 그러려면 차라리 나를 때리라』고 했다고 한다.그러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신병장이 이소위를 한차례 때린 것이다.이소위가 신병장의 멱살을 잡는 등 승강이가 벌어졌다.곁에서 구경하던 현역사병 4명까지 가세해 사병이 소대장을 구타하는 집단적인 하극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와관련,이소위와 그의 학군동기인 조소위,소대원들이 반말을 하는 등 통솔에 어려움을 겪어온 김특중소위 등 3명은 지난 21일 모임을 갖고 대책을 논의했었다.그 때 조소위가 우리가 희생되더라도 부대의 병폐를 근절시키자며 무장탈영을 제안,김소위가 즉각 동조했으나 정작 당사자인 이소위는 부정적이었다.이에 따라 조·김소위 두사람만 탈영하기로 하고 탈영차량확보를 위해 승용차를 가진 황정희하사(22)를 끌어들이기로 결정했다.의사타진 결과 평소 소대원들이 지시에 잘 따르지 않아 불만을 품고 있던 황하사도 쉽게 동의했다. 가족들은 이같은 정황으로 볼때 군기강해이등 문제가 군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낀 이들 젊은 장교들이 이같은 사실을 양심선언을 통해 외부에 알리기 위해 부대를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 성동구 광희중학교(태극기를 사랑합시다:6)

    ◎등교때 「국기에 대한 경례」 생활화/월요일 조회시간 애국가 4절까지 제창/새학기부턴 전담교사가 국기예절 교육 서울 성동구 응봉동 광희중학교(교장 정여기·62)의 1천7백여 학생들은 새학기들어 등교때마다 교문앞에서 「작은 의식」을 치르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하루한번 꼭 실천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바로 눈에 띄는 국기게양대 앞에 멈추어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국기게양대 앞을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지나치던 학생들이 이제는 하루에 한번씩은 꼭 태극기를 마주하고 나라에 대한 사랑을 다짐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광희중학교는 뿐만 아니라 이번 2학기부터 매주 월요일 조회때 애국가를 4절까지 모두 부르고 학급회의나 명상의 시간,대의원회의 등과 같은 공식적 행사에서는 반드시 국기에 대한 경례와 함께 애국가를 제창하고 있다. 광희중학교가 이렇게 태극기에 대한 사랑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게 된 계기는 『교육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올바른 국가관이 확립되어야 하며 국기에 대한 사랑은 곧 나라사랑의 바탕』이라는 정교장의 남다른 교육관에서 비롯됐다. 돈에 눈이 멀어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군 사건 등에서 보듯이 우리사회가 갈수록 물질만능주의에 젖어들고 인륜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늘 안타깝게 여겨온 정교장은 이같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묘안을 궁리하다가 나라의 구심체라 할 태극기와 애국가에 생각이 이르렀다고 한다. 교육의 최일선인 학교에서 주인의식을 길러주고 민족혼을 불어넣을 수 있는 지름길은 태극기와 애국가에 대해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해주는 것이라고 착안했다. ○자율적 동참 유도 적어도 하루에 한번은 학생들이 스스로의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을 마련해 주기로 했다. 정교장과 교사들은 새학기부터 본격적인 국기사랑교육을 하기 위해 「국기연구전담교사」를 두고 여름방학동안 국기예절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는 등 남다른 열성을 보였다. 학교측은 그러나 아무리 좋은 교육이라도 학생들에게 강요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에서 개학직후 열린 각 학급회의를 통해 학생들이 태극기에 대한 주제를자체적으로 다루도록 적극 유도했다. 학생들은 지난달 29일의 학급회의에서 국기사랑에 대한 세부적인 실천사항을 논의한 뒤 전체 대의원회의를 열어 등교때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것과 학급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애국가를 부를 것 등을 스스로 정했다. ○학생들 호응 높아 3학년 오민교군(15)은 『새학기들어 국기에대한 경례를 할 때마다 나라사랑은 곧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학생들의 반응이 예상외로 좋다고 말했다. 정교장은 『학생들이 스스로 결정한 일인 만큼 국기사랑에 대한 교육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만족스러워 했다.
  • 기념식 주악을 국악연주로 하도록/「오늘의 국가,기념일 음악」 출반

    ◎국악원,국경일노래서 경례음악까지 국립국악원은 정부의 모든 기념행사에 쓰이는 주악을 국악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음반「오늘의 국가,기념일 음악」을 펴냈다. 이 음반은 그동안 교향악단에 의해 연주되던 각종 기념식 주악을 국악연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한 것. 국기에 대한 경례음악에서부터 애국가,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위한 음악,삼일절노래와 제헌절노래 광복절노래 개천절노래 한글날노래 등의 국악반주가 담겨 있다.애국가 연주는 상황에 맞게 골라 쓸 수 있도록 전주가 있는 1절,전주가 있는 1·2절,전주없는 1절 등으로 나누어 따로 연주했다. 또 기념식 전후 장내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아리랑 및 민속음악의 접속곡 연주도 함께 담았다. 이 음반에 실린 국악 행사음악은 정부 기념식 뿐 아니라 학교나 각종 단체 등의 행사에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음반은 국립국악원과 서울음반이 함께 펴낸 콤팩트디스크 10개짜리 「생활국악대전집」의 하나로 낱개로도 살 수 있다.786­4521.
  • 대전고/수업전 “국기에 대한 경례”(태극기를 사랑합시다:2)

    ◎애국가도 제창,나라사랑 새롭게/수업분위기 개선… 비행학생 줄어 전국에서 수업시작전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부르기 운동의 효시가 된 대전고등학교. 전교생 1천8백명의 하루 일과는 태극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로 시작해 교가로 끝난다. 첫 수업을 시작하기 직전인 상오 7시58분 교실마다 일제히 태극기를 향해 애국가를 부르고 일과를 끝내기 바로전인 하오 5시10분 어김없이 교가를 부른 뒤 흩어진다. 「애국가와 태극기를 통해 국가와 민족에 대한 긍지를 심고 사랑을 다지자」는 이 학교 「태극기사랑운동」의 실제 모습이다. 대전고가 이같은 태극기사랑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26일부터. 물질문명 사회에서 갈수록 흐려져가는 애국·애족정신과 학생들의 단결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무엇일까를 궁리하던 끝에 윤석병교장(64)과 교사들이 이같은 방법에 착안,학생들과 함께 매일 일과시작전 교내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는 반주에 맞춰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곧이어 정규수업을 마치기전에는 교가를 불렀다. 이러다보니 애국심과 함께 애교심도 자연스레 일깨우는 운동으로 번졌다. 대전고는 이뿐만 아니라 윤리시간등도 적극 활용,태극기의 유래와 의미·제작방법등을 유인물에 담아 학생들의 태극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윤교장은 『이 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애국·애족정신을 북돋워주기 위한 것인데 시행한지 불과 몇달만에 예상외의 성과가 나타나 애국심과 애교심이 부쩍 강해졌다』고 자평했다. 처음에는 애국가와 교가를 부르는 것이 어색해 따라부르지 않는 학생들도 많았고 심지어 뒷자리에서 키득거리는 학생들마저 있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난 지금은 교실이나 복도·운동장등 교내 어느곳에서나 애국가반주가 흘러나오면 경건하게 따라부르는 것은 물론 교사들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나머지 성과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월중순에는 4·19혁명 당시 숨진 이 학교 출신 학생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교내 현정탑(현정탑)에 윤교장이 국화 2송이를 헌화했더니 다음날 학생들이 헌화한 꽃들이 탑주위에 수북이 쌓여 교사들은 전에 볼 수 없던 학생들의 행동에 크게 놀랐다고 한다. 또 최근 대통령배농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전례없이 높아진 애교심 덕분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3학년 이성규군(18)은 『바쁜 수험생활속에서 잊기 쉬운 애국·애족·애교심을 다시금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며 『특히 아침에 하루를 경건하게 시작함으로써 수업분위기와 수업능률이 훨씬 좋아졌다』고 말했다. 또 송윤현교사(50)도 『전체적으로 수업분위기가 차분해져 교사들이 학생지도하기가 쉬워졌고 술·담배·폭력등 비행을 일삼는 학생의 수도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현재 대전고의 이 운동은 대전중학교등 인근학교로 급속히 파급되고 있으며 각급 학교로부터 구체적인 시행방법등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 한국청소년연맹 김집총재(인터뷰)

    ◎“태극기는 우리민족의 구심체”/국기 경외심 길러주는 교육이 으뜸 『태극기는 단순한 국가의 상징이 아니라 우리 민족을 한데 묶는 구심체입니다』 태극기사랑을 통해 민족정신의 구심점을 찾기 위한 「태극기사랑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 한국청소년연맹 김집총재(69)는 『지난 7월부터 이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뒤 당초 예상보다 더 큰 호응과 성과를 얻고 있어 기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지난 58년 미국유학중 한 국민학교에서 그 나라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흘러나오자 운동장에서 놀기에 여념없던 어린이들이 일제히 성조기를 향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경례를 하는 것을 보고 충격과 함께 부러움을 느꼈던 기억을 평생 간직해왔습니다.국기에 대한 경외심을 길러주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짊어질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해줘야할 으뜸의 산 교육이라고 생각했지요』 소아과 의사출신으로 반세기 가까이 국민건강과 청소년 교육에 힘써왔던 김총재는 그동안 줄곧 생각해왔던 오랜 계획을 이제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뒤늦게나마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을 스스로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총재는 이를 위해 지난 3월말부터 지금까지 전국을 누비면서 이 운동의 참뜻을 알리는 한편 전액 자비로 애국가·태극기 관련 음악테이프와 자료집을 만들어 배포했다. 정부주도가 아닌 자발적인 민간운동이야말로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김총재는 『이 운동이 자칫 과거 권위주의시대의 유산으로 비쳐질까 염려됐지만 시행한지 한달여만에 전국의 초·중·고교에서 자발적인 호응이 일고 있는 것을 보며 그것이 기우였음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김총재는 또 『지난해 광복절에 전국 가정의 15%만이 태극기를 게양했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있은뒤 우리 연맹소속 35만 단원이 적극 계몽운동에 나서 달포뒤인 10월3일 개천절에는 태극기 게양률을 무려 37%까지 끌어올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김총재는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국기에 사용되는 염료의 색도를 법으로 규정해 반드시 이를 지키도록 하고 있다』면서 현재 제멋대로 만들고 있는 태극무늬의 색상표준을 정하기위해관계 전문가들에게 연구를 맡겨 놓고 있으며 연구가 끝나는대로 이를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 청소년연맹/「국기 바로달기」 앞장(태극기를 사랑합시다:1)

    ◎5천개교에 안내책자 배포/“우리것 알자” 국악반주 애국가도 배포 최근 우리 사회는 다양한 목소리와 가치관이 표출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겪고있는 반면 정신적인 구심점이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이에 따라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국민정신구심점 찾기 운동」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전국 5천여개 초·중·고교생 35만여명을 단원으로 갖고 있는 한국청소년연맹이 올해부터 실시하고 있는 「태극기사랑 실천활동을 통한 국민정신구심점 확립운동」도 그 일환이다.서울신문사는 이에 발맞추어 일선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태극기사랑운동의 모범사례를 소개한다. 「올바른 가치관은 태극기사랑에서부터」 한국청소년연맹(총재 김집)이 최근 태극기사랑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국민정신의 구심점 확립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애국심 결여,가치관 혼란,윤리의식 실종등의 문제를 청소년들이 태극기와 친숙해지고 존경심을 갖게 하는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이 운동은 전국의 모든 초·중·고교에서 수업시작 전에 반드시 국기에 대한 경례및 맹세·애국가제창등을 실시하고 국경일에는 태극기를 반드시,또 올바르게 게양하도록 계몽활동을 펼쳐나가는 것등이 주요 내용이다. 청소년연맹은 이를 위해 지난 4월부터 전국 15개 시·도협의회소속 2백50개 학교들을 대상으로 시범활동을 펼쳐오다 이달들어서는 전국 1만1천여개의 초·중·고교중 연맹에 가입한 5천여개 학교에 애국가 반주테이프와 태극기·애국가 관련 자료및 국기함등을 보급했다. 이번에 배포된 테이프에는 국기에 대한 맹세·애국가등이 녹음돼 있고 우리 것의 소중함을 알리자는 의미에서 국악으로 연주된 애국가반주도 넣었다. 또 태극기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위해 「태극기해설」이라는 소책자도 만들어 무료로 나눠주었다. 이 책자에는 국기의 정의를 비롯,국기의 종류,태극기의 구성과 의미,태극기의 역사,태극기 만드는 방법,국기게양법에 이르기까지 태극기에 관한 모든것이 알기쉽고 재미있게 실려 있다. 유주영사무총장(55)은 『청소년들에게 애국애족정신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태극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고취시키는 것이 생활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 생각해 전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같은 운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유총장은 또 『태극기사랑운동은 순수 민간운동으로서 민족정신 고양을 위한 것』이라며 『혹 이를 과거 군사문화나 권위주의의 잔재로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태극기사랑운동이 특히 잘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은 대전시를 비롯,인천·전북·경북·강원지역 등이다. 이 운동의 시발점이 된 학교인 대전고에서는 보충수업이 시작되기 2분전인 상오 7시58분에 교내방송으로 애국가 반주를 내보내 모든 학생들이 일어나 국기에 대한 맹세를 낭송하고 애국가를 제창하도록 하고 있다. 윤석병교장(63)은 『애국가를 부르면 자연스럽게 나라사랑의 마음이 우러난다고 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경북 상주시내 83개 학교에서도 매일 아침 조회시간에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있으며 미술시간에 태극기 올바로 그리기 대회를 실시,잘된 작품에 대해서는 시상을 하기도 한다. 또인천·전북에서는 거의 모든 학교로 이 운동이 확산돼 가고 있다. 오는 10월부터는 아직 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6천여개 학교에도 자료와 테이프를 배포,이 운동을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 또 지난해부터 시작한 「태극기 바로달기운동」도 아람단(국민학교)·누리단(중학교)·한별단(고등학교)등 35만여명의 소속단원을 통해 계속 벌여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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