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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똑똑 우리말] 반드시와 반듯이는 반드시 구별해야/오명숙 어문부장

    얼마 전 정치권에서 ‘반듯이’의 표기와 관련해 논란이 있었다. 우리말에는 발음은 같지만 표기가 달라 헷갈리는 단어들이 꽤 있다. ‘반듯이’와 ‘반드시’도 그중 하나다. [반드시]로 발음되는 ‘반듯이’와 ‘반드시’는 둘 다 부사어로 뜻에 따라 구별해서 써야 한다. 한글맞춤법 제25항은 ‘-하다’가 붙는 어근에 ‘-이’가 붙어서 부사가 되는 경우 그 어근의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고 돼 있다. 형용사 ‘반듯하다’의 ‘반듯’에 ‘-이’가 붙어 ‘모습이나 생김새가 비뚤어지거나 기울지 않아 반반하고 훤히’, ‘마음씨나 언행이 공손하고 바르게’, ‘격식이나 조건 등을 빠진 것 없이 잘 갖추고 있어 훌륭하게’를 뜻하는 경우에는 형태를 밝혀 ‘반듯이’로 적는다. “허리를 반듯이 펴고 앉아야 한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평생을 반듯이 살아가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위생병은 모자를 반듯이 고쳐 쓴 뒤 경례를 했다”처럼 쓸 수 있다. 한편 ‘반드시’는 ‘틀림없이 꼭, 또는 어김없이 꼭’을 뜻하는 부사어다. ‘반듯하다’의 ‘반듯’과는 무관한 말로 어근의 원형을 밝히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 “규칙을 반드시 지켜라”, “반드시 안전장구를 착용해야 한다”와 같이 사용하면 된다. 그래도 ‘반듯이’와 ‘반드시’가 헷갈린다면 ‘반듯하게’로 바꾸었을 때 뜻이 통하면 ‘반듯이’로 쓰고 아니면 ‘반드시’로 적으면 된다.
  • 한미군사위원회

    한미군사위원회

    원인철(왼쪽) 합동참모본부 의장과 마크 밀리(오른쪽) 미 합참의장이 1일 한미군사위원회 회의에 앞서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 연병장에서 열린 의장행사에 참석해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구멍 난 양말 신고 전두환 빈소에…진중권이 ‘이 사진’ 공유한 이유

    구멍 난 양말 신고 전두환 빈소에…진중권이 ‘이 사진’ 공유한 이유

    ‘구멍난 양말 조문객’ 공유 진중권“참 많은 걸 얘기해준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두환 전 대통령 빈소에 조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별다른 설명없이 전 전 대통령 빈소 현장 사진을 공유했다. 25일 진 전 교수가 공유한 글에는 “이 사진, 참 많은 것을 얘기해 준다”는 설명이 덧붙여있다. 이 사진은 한 조문객이 전투모를 쓰고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을 담겨있다. 특히, 이 조문객의 양말의 발 뒤꿈치가 해진 부분이 눈길을 끈다. 황교익 맛칼럼리스트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두환을 떠받들던 ‘지난 시절의 대한민국’을 양말에 구멍난 이 사내가 대표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날 빈소에는 5공 출신 인사들과 하나회, 군 장성 출신, 지지자 등이 조문했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 ‘신군부 막내’였던 강창희 전 국회의장,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 5공 때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김용갑 전 의원, 오일랑 전 청와대 경호실 안전처장, 이종구 전 국방장관,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 김동신 전 국방장관 등이 발걸음을 이어갔다. 이날 현역 국회의원 중에서는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과 김기현 원내대표가 발걸음했다. 한때 전씨의 사위였던 윤상현 의원이 전날 조문한 데 이어 국민의힘 의원 중에서는 2·3번째 빈소 방문이었다. 이외에 조문한 현역 의원은 현재까지 없다.45년 악연 마무리…전두환 빈소에 도착한 박근혜 ‘진짜 화환’ 앞서 전두환 전 대통령 빈소에 박근혜 전 대통령 명의의 근조 화환이 놓였다가, 뒤늦게 ‘가짜’로 드러나 빈소에서 치워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진짜’ 박 전 대통령 화환은 24일 오후 8시30분쯤에 도착했다. 이날 오전 9시 16분.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근조 화환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빈소에 배달됐다. 화환에는 ‘前(전) 대통령 박근혜’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전 전 대통령 유족은 황급히 박 전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화환을 치웠다. 알고 보니 오전에 배달된 화환이 ‘가짜’였던 것이었다. 박 전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사는 ‘진짜’ 화환이 오후 4~5시쯤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진짜 화환은 예정보다 늦은 오후 8시30분쯤 도착했다. 화환에는 별다른 문구 없이 ‘박근혜’만 적혀 있었다. ‘가짜’ 화환 발신자 정체에 대해선 아직 밝혀진 게 없다. 유 변호사 역시 “누가 보냈는지 모른다”고 전했다.
  • [데스크 시각] 풍자의 시간, 공감과 폭력 사이/최여경 사회정책부장

    [데스크 시각] 풍자의 시간, 공감과 폭력 사이/최여경 사회정책부장

    딱 9년 전 오늘, 한 그림이 세상에 나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분만실을 배경으로 한 그림에는 갓 출산한 여성이 아이를 보며 웃고 있다. 선글라스를 낀 아기에게 의료진이 경례를 붙이고 있는 것이, 딱 봐도 여성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아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골든타임-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라는 제목을 단 이 풍자화는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미술가로 꼽히는 홍성담 화가의 손에서 태어났다. 판화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세상에 알리면서 ‘5월 화가’로도 불리는 이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내 그림은 운동의 도구였다”고도 했다. 사실적인 판화로 세상에 진실을 알렸던 홍 작가는 ‘골든타임’에선 세간에 떠돌던 소문을 소재 삼고 “풍자 미학”이라고 자평했다. 노발대발한 새누리당을 향해 민주통합당은 풍자극(이라고 했던) ‘환생경제’를 꺼내 들었다. ‘골든타임’이 나온 시점으로부터 8년 전 한나라당이 호남 연찬회에서 올렸던 연극이다. 그 시절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거친 욕설과 낯뜨거운 성적 표현을 총동원해 내뱉고는, 박근혜 대표를 눈물겨운 노력 끝에 죽어 가던 아들 ‘경제’를 살린 현모양처로 그리며 대비시켰다. 풍자화나 풍자극을 두고, 한쪽에선 박장대소를 하고 다른 한쪽에선 도를 넘었다고 비난했다. 소수였지만 박수를 친 진영에 있던 몇몇도 “지나쳤다”며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치인은 숱하게 풍자의 대상이 된다. 공인으로 인식되고,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넉넉히 인정하는 분위기에서 선거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 이상 풍자의 주체가 법적 책임을 지는 일은 드물다. 설령 공격 대상을 향해 혐오 표현을 하고 성적 조롱을 해도 시사성이 짙은 인물들은 예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 ‘쿨하게’ 넘어간다. 다시 풍자의 계절이 돌아왔다는 걸 느낀다. 최근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한 중고서점 외벽에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벽화가 등장했다. 윤 후보가 그동안 보였던 말과 행동을 네 컷으로 그려 놨다. 넉 달 전 이 자리엔 윤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를 연상하게 하는 그림이 있었다. 두 벽화를 그린 그라피티 아티스트 닌볼트는 언론 인터뷰에서 “선거와 진영 논리로 그린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김씨와 관련된 그림은 더 큰 문제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근거였기 때문에 명예훼손 여지가 충분하다. 비방과 조롱이 난무한 풍자가 슬금슬금 피어나는 시점에 세계적인 거리 예술가 뱅크시의 작품 ‘주유소의 해바라기’(Sunflowers From Petrol Station·2005)가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460만 달러(약 173억원)에 낙찰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도시의 거리와 건물에 벽화를 그리는 뱅크시는 전쟁과 아동 빈곤, 환경 등을 풍자하면서 현실 문제를 환기한다. ‘주유소의…’는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가 시든 모습을 주유소 벽에 그려 넣어 자동차가 만드는 공해와 지구온난화 문제를 꼬집었다. 풍자가 힘을 얻는 건 이 시대가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 시대정신을 녹여냈을 때다. 해학보다는 공격성이 강한 풍자는 카타르시스를 줄 수도 있지만, 모멸감도 동반할 수 있다. 공감을 얻거나 불쾌감을 주는 것, 통쾌한 일침을 가하거나 감정학대를 하는 것, 풍자에선 한 끗 차이다. 정치 풍자의 시간이 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거는 갈수록 과열되고 점점 더 거칠어진다. 이기고픈 욕망은 이성적인 판단과 상대에 대한 배려 따위를 흐릿하게 만들 수 있다.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는 게 아니라 당사자도 웃어넘길 수 있는 ‘품격 있는 풍자’를 기대한다면 순진하다고 하려나.
  • [포토] ‘경례 받는’ 문재인 대통령, 준장 진급자 삼정검 수여식

    [포토] ‘경례 받는’ 문재인 대통령, 준장 진급자 삼정검 수여식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육군, 해군, 해병대, 공군 준장 진급자 삼정검 수여식에서 경례를 받고 있다. 삼정검의 ‘삼정’은 육·해·공군이 일치하여 호국·통일·번영의 3가지 정신 달성을 의미한다. 이날 문 대통령은 76명에게 삼정검을 수여했다. 2021.11.16 연합뉴스
  • 소방공무원의 희생과 헌신 잊지 않겠습니다

    소방공무원의 희생과 헌신 잊지 않겠습니다

    소방의날을 맞은 9일 충북 음성군 국립소방병원 건립부지에서 열린 제59주년 소방의날 기념식에서 소방공무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함께 만든 119, 함께 누릴 안전 한국’을 주제로 열린 행사에서 경남소방본부 소속 한중민 소방정 등 훈장을 받는 13명을 포함해 총 768명, 12개 단체가 정부포상을 받았다. 뉴스1
  • 제 92주년 학생독립운동기념식 개최

    국내 3대 독립운동으로 꼽히는 학생독립운동 92주년 기념식이 거행됐다. 국가보훈처는 3일 광주 서구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에서 유은혜 부총리 및 교육부 장관과 독립유공자,유족,학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진행했다.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라는 주제로 열린 기념식은 주제 영상,헌화·분향,기념공연,’학생의 날‘ 노래 제창 등의 순으로 40분간 진행됐다. 국민의례는 학생 독립운동에 직접 참여한 독립유공자의 후손과 학생 독립운동 참여학교 학생들이 함께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문은 육군 제2공병여단 나성원 상병이 낭독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나 상병은 외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가 모두 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한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지난해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고 군에 자원입대했다. 기념공연에선 학생독립운동이 발단이 돼 활동한 고 박준채 애국지사의 옥중수기를 광주제일고 후배 학생이 낭독하고,가수 이소정과 광주 학생연합 뮤지컬팀이 ’나의 영웅‘을 합창했다. 가족 6명이 독립운동을 했던 가문의 독립운동가 고 강해석 애국지사가 과거에서 돌아와 학생 독립운동 이야기를 미래세대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영상공연도 펼쳐졌다. 유 장관은 “이 자리에 서니 조국의 독립을 위해 결의를 다지던 그날의 함성이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다”며 “대한민국의 역사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청년들의 용기가 만들어낸 역사”라고 말했다. 학생독립 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광주-나주 간 통학 열차에서 일본인 학생들이 댕기 머리를 한 조선 여학생들을 희롱하자 광주 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 학생들과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교 학생들이 충돌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며칠 후인 11월 3일 일왕 생일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이 광주 시내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고,이듬해 3월까지 전국 300여 개 학교에서 5만4000여 명의 학생이 동맹 휴교와 시위 운동에 참여했다.
  • [취중생] 변희수 전 하사의 1년 9개월 투쟁기…軍 제도 개선 나설까

    [취중생] 변희수 전 하사의 1년 9개월 투쟁기…軍 제도 개선 나설까

    “저 하나로 성소수자들이 국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복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난해 1월 고 변희수 전 육군 하사는 처음으로 세상에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여군으로 군에 계속 근무하고 싶다며 경례를 외치던 그의 모습은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로부터 1년 9개월이 지난 지금, 변 전 하사는 세상에 남아있지는 않지만 커다란 울림을 줬던 그의 기나긴 투쟁기를 되짚어 보겠습니다. 1년 9개월의 길었던 싸움…법원 “전역 부당” 육군 5기갑여단에서 근무하던 변 전 하사는 2019년 11월 태국에서 성전환(성확정) 수술을 받았습니다. 변 전 하사는 지난해 1월 언론에 얼굴을 공개하고 여군으로 계속 복무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군은 변 전 하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시민단체 군인권센터는 육군 전역심사위윈회의 날짜를 변 하사가 신청한 성별 정정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나온 이후로 연기해 달라는 내용의 긴급구제 신청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습니다. 인권위도 변 하사에 대한 긴급구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전역 심사를 3개월 후로 늦출 것을 육군에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육군은 이를 거부하고 예정된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육군은 지난해 1월 22일 변 전 하사의 신체 일부가 수술로 크게 훼손됐다는 이유로 ‘심신장애 3급’ 판결을 내리고 강제로 전역 결정을 내렸습니다. 변 전 하사는 이에 불복해 지난해 2월 육군본부에 인사소청을 제기했습니다. 성전환 수술을 이유로 군이 강제 전역조치를 한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였습니다. 육군은 이에 따라 지난해 6월 외부 심사위원으로 구성된 인사소청심사위를 열고 변 전 하사의 전역 결정에 부당함이 있는지 살펴봤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당시 육군은 “현행 군인사법에 규정된 의무심사 기준 및 전역심사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진 것으로 전역처분의 위법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군내 복직 절차를 차단당한 변 전 하사는 지난해 8월 육군을 상대로 전역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군은 재판에서 방어적 태도로 임했습니다. 피고인 육군참모총장이 답변서 제출을 미루면서 소송 제기 반년이 지나도록 변론 기일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첫 변론기일을 한 달가량 앞둔 지난 3월 변 전 하사가 자택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돼 국민들에게 안타까움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법조계 원로들을 비롯해 4212명의 시민들과 22명의 현직 여·야 국회의원은 전역처분 취소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힘을 보탰습니다. 대전지법은 지난 7일 “전역 처분은 위법하다”며 변 전 하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변 전 하사가 성별정정을 이미 완료한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을 기준으로 심신장애를 판단한 전역 처분이 위법하다는 취지였습니다. 군은 항소를 할 듯 말 듯하면서 계산기를 두드렸고, 결국 상급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항소를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법무부의 항소포기 지휘로 육군참모총장이 항소 시한까지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으면서 변 전 하사의 기나긴 싸움이 마무리됐습니다.이제 군이 답할 차례…제도 개선 불가피 이제 우리 사회는 싫든 좋든 성소수자 군 복무 문제를 무작정 덮어놓기가 불가능해졌습니다. 재판부는 “남군으로 입대했다가 성전환한 여성의 현역 복무 적합 여부는 궁극적으로 군 특수성, 병력 운용, 국방 사회에 미치는 영향, 성 소수자 기본 인권, 국민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면서 성소수자 군인 복무 계속 여부는 국가적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판시했습니다. 이제 성소수자와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위한 입법적·정책적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앞서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 3월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변 전 하사와 관련해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문제에 대한 정책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습니다. 아직까지 관련 연구는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국방부는 트렌스젠더 군 복무 여부에 대한 정책적 검토 작업에 곧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행 병역법과 군인사법 등에 따르면 성전환자의 군 입대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번 법원 판결이 성전환 군인을 전역시켜서는 안 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 성전환자 입대를 막을 근거가 취약해졌다는 게 중론입니다. 때문에 남성 성기를 상실하면 심신장애로 규정해온 기존 규정들은 개선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더불어 이들이 영내에서 잘 조화될 수 있도록 군내 인식 전환을 위한 교육이나 캠페인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미 해외 20여국도 성전환자의 군 복무를 허용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성소수자의 복무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고민해봐야 할 때입니다.
  • [포토] 박인호 공군 참모총장, 국정감사에서 경례

    [포토] 박인호 공군 참모총장, 국정감사에서 경례

    박인호 공군 참모총장이 14일 오전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공군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경례하고 있다. 2021.10.14 연합뉴스
  • 中애국영화 ‘장진호’ 돌풍 속 한국전 참전 비판한 언론인 체포

    中애국영화 ‘장진호’ 돌풍 속 한국전 참전 비판한 언론인 체포

    중국에서 한국전쟁을 철저히 자국의 시각에서 그린 영화 ‘장진호’가 애국적 분위기에 편승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저명한 중국 언론인이 이 영화와 중국의 참전을 비판했다가 체포됐다. 10일 중국 온라인 매체 펑파이에 따르면 경제주간지 차이징의 부편집장을 지낸 뤄창핑은 최근 하이난성 싼야시에서 형사구류 처분을 받았다. 뤄씨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 등 고위 관리들의 부패 문제를 보도해 이들을 낙마시키는 등 비판적 보도로 이름을 알린 언론인이다. 뤄씨는 지난 6일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반세기가 지났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항미원조전쟁’이 정의로웠는지에 대해 거의 반성하지 않았다”고 썼다. 항미원조전쟁은 중국에서 6·25전쟁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조선(북한)을 도와 미국에 대항해 싸운 전쟁’이라는 뜻이다.중국은 학교에서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은 가르치지 않는다. ‘제국주의 침략자’인 미국이 남북 간 전쟁에 개입한 뒤 38선을 넘었기 때문에 중국도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할 뿐이다. 뤄씨는 이어 “마치 당시의 ‘모래조각’ 부대가 위의 ‘영웅적인 결정’을 의심하지 못한 것과 같다”고 썼다. 이는 6·25전쟁에서 중공군이 나선 결정적 전투 중 하나인 장진호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 ‘장진호’의 마지막 장면에서 병사들이 총을 들고 전투태세를 유지한 채 최저 영하 40도의 혹한에서 동사한 장면을 꼬집은 것이다. 이들은 중국에서 ‘얼음조각 부대’로 불리며 영웅으로 칭송된다. 영화 ‘장진호’의 관객 중 상당수는 해당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일부 관객들은 이 장면을 끝으로 영화가 막을 내리자 극장 내에서 기립해 스크린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이를 ‘모래조각’으로 비꼰 것인데, 이 표현은 중국 인터넷상에서 ‘바보’라는 뜻으로 통한다. 뤄씨의 웨이보 글을 본 중국 네티즌들은 그를 맹렬히 비난했다. 특히 미중 대립이 날로 심화하는 가운데 영화 ‘장진호’가 중국의 애국주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 터였다.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후시진 편집장까지 나서서 소수가 온라인에서 미국의 관점을 퍼뜨리며 이른바 ‘객관성’을 이용해 중국 사회 주류의 기억과 가치관에 대항한다면서 “이는 일종의 정신적 배반으로 역겹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비판에 뤄씨는 글을 올린 다음날인 7일 자신의 웨이보 글이 중대한 오류를 담고 있어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일으켰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이 그가 과거에 장진호 전투에서 사망한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의 사망일을 ‘계란볶음밥 희생의 날’로 묘사한 글을 찾아내면서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6·25전쟁에 참전한 마오안잉은 당시 사령부 막사에서 계란볶음밥을 해먹으려다 미군의 폭격에 휘말려 숨졌다는 설을 언급한 것이다. 영화 ‘장진호’에서는 마오안잉이 작전지도를 챙기러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막사에 돌아갔다가 폭사한 것으로 그려졌다. 경찰은 뤄씨가 웨이보에서 한국전 참전 군인들을 모독했다는 네티즌들의 신고를 받고 조사한 결과 그가 위법 사실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2018년부터 영웅과 열사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금지하는 ‘영웅열사보호법’을 시행하고 있다.뤄씨의 글은 현재 찾아볼 수 없으며, 그의 웨이보 계정은 접속이 되지 않고 있다. 웨이보는 뤄씨가 영웅과 열사를 모독한 잘못으로 사회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한편 뤄씨가 문제의 게시글을 올릴 때 또다른 이용자가 “이 전쟁에 관해 많은 평가가 필요하진 않다. 현재의 북한과 한국을 보면 답은 분명해진다”고 쓴 글을 인용하기도 했다. 즉 현재 한국과 북한의 상황을 보면 어느 쪽이 정당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지 않느냐는 뜻이다. 이에 중국 네티즌들은 현재 계정을 찾을 수 없는 이 이용자도 체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국군의날’ 마린원 타고 마라도함 도착한 文…‘피스메이커’ 상륙작전 시연

    ‘국군의날’ 마린원 타고 마라도함 도착한 文…‘피스메이커’ 상륙작전 시연

    제73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첫 해병대 주관 제73주년 국군의날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찾은 곳은 해병대 1사단이 있는 경북 포항 영일만 해상의 마라도함이었다. 해병대 주관으로 국군의날 행사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국민의 군대, 대한강군’을 주제로 열린 행사는 다양한 첨단 무기와 전력들을 동원해 시연함으로써 정예 강군으로 도약하려는 국군의 의지를 표현했다. 특히 이날 행사가 진행된 마라도함(LPH·1만 4500t급)은 해군의 두 번째 대형수송함으로, 이달 작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1호기 ‘마린원’을 타고 해병 항공점퍼 차림으로 마라도함에 내린 문 대통령은 해병 1기이자 6·25 참전용사인 이봉식 옹이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낭독하자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무적 해병’의 친필을 직접 받으신 이봉식 님께 존경의 인사를 드린다”며 예우를 다했다. 축사에서는 2018년 마린온 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장병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추모했다.문 대통령은 최첨단 국방과학기술을 강조하며 “국가우주개발 시대를 열기 위한 인공지능 기반의 사이버전 체계, 정찰위성, 우주발사체용 고체추진기관 기술 역시 거침없이 발전시켜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방위태세를 강조하며 “오직 우리 군 전력으로만 ‘피스메이커’ 상륙작전을 국민들께 선보일 것”이라고 소개했다.육·해·공군·해병대의 ‘피스메이커’ 합동상륙작전 시연에서는 해군의 해상초계기 P-3C와 ‘피스아이’로 불리는 공군의 E-737 항공통제기가 도구해안 상공을 가르며 나타난 데 이어 공군의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 KC-330(일명 시그너스)와 전술정찰기 RF-16, 핵심 표적에 나선 F-35A·F-15K 전투기가 차례로 등장했다. 이어 KAAV 48대와 고무보트(IBS) 48척, 공기부양정 2척의 해상 돌격이 이어졌다.도구해안에 상륙한 800여 명의 해병대원이 함성을 지르며 전방으로 달려가 대형 태극기를 게양했으며, 아파치(AH-64) 공격헬기와 수리온, 치누크, 블랙호크 등의 기동헬기가 공중에서 화력 지원으로 엄호했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의 축하 비행과 도구해안의 목표 지역을 확보한 제병지휘부가 마라도함에 있는 문 대통령에게 경례하면서 행사는 마무리됐다.이날 기념식에서는 해병대 사령부 김정수 소령이 현역 군인으로는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화랑무공훈장을 받는 등 연평도 포격전 유공자 18명이 훈장과 포장을 받았다. 또 아프가니스탄 조력자들과 가족들을 안전하게 한국으로 데려온 ‘미라클’ 작전과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등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공군 5공중기동비행단이 특별 부대표창을, 그 밖의 11개 부대가 대통령 표창을 각각 받았다. 아울러 육군 산악여단, 해군 해상초계기대대, 공군 탄도탄감시대대, 해병대 항공단 등 올해 창설되는 4개 부대에 부대기가 수여됐다.
  • 경북 어린이집에도 교육재난지원금 지급 추진

    道의회, 3~5세 아동 지원 조례안 발의지급 대상 확대 따른 재원 마련이 과제 경북도의회가 유치원뿐 아니라 어린이집에도 교육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서 이목이 집중된다. 이는 경북도교육청이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결손을 보상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교육재난지원금(유·초·중·고 1인당 30만원)을 지급하면서 대상에서 어린이집만 제외시켜 ‘형평성 행정’ 논란이 일고 있다는 <서울신문 9월 16일자 12면>에 따른 후속 조치로 해석된다. 27일 경북도 등에 따르면 김상조 경북도의원 등 13명 도의원은 지난 16일 ‘경상북도교육청 교육재난지원금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발의했다. 또 김희수 도의원 등 16명도 비슷한 시기에 ‘경상북도 보육재난지원금 지원 조례안’을 발의했다. 이는 유치원과 동일하게 누리과정으로 분류되는 경북지역 어린이집을 이용 3~5세 아동(2만 1875명)을 지급 대상에 추가로 포함시키겠다는 의도에서다. 따라서 경북도의회는 오는 30일부터 제326회 임시회를 열고 이들 조례안의 심사에 나설 예정이다. 이들 모두 소급 적용이 가능하다는 단서가 있어 조례안 제정 시 취학 직전 3년의 공통 교육·보육과정을 운영하는 어린이집과 이용 아동도 교육재난지원금을 받을 길이 열릴 전망이다. 다만 지원 대상 확대에 따른 재원 마련을 놓고 경북도와 도교육청, 시·군 간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김경례(해맑은어린이집 원장) 칠곡군어린이집 연합회장은 “경북도의회와 도교육청이 이해할 수 없는 기준으로 교육재난지원금을 지급해 어린이집 전체가 피해를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차별을 조장하고 갈등을 유발시키고 있다”면서 “이런 문제를 해소시키기 위해 경북도의회는 이번 2개 조례안을 반드시 가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보도 그후] 경북도의회, 어린이집에도 교육 재난지원금 지급 길 연다

    [보도 그후] 경북도의회, 어린이집에도 교육 재난지원금 지급 길 연다

    경북도의회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누리과정 만 3~5세 어린이에게도 교육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서 이목이 집중된다. 이는 경북도교육청이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결손을 보상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교육재난지원금(유·초·중·고 1인당 30만원)을 지급하면서 대상에서 어린이집 만 달랑 제외시켜 ‘형평성 행정’ 논란이 일고 있다는 서울신문 보도(9월 16일자 12면)에 따른 후속 조치로 해석된다. 27일 경북도 등에 따르면 김상조 경북도의원 등 13명 도의원은 지난 16일 ‘경상북도교육청 교육재난지원금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발의했다. 또 김희수 도의원 등 16명도 비슷한 시기에 ‘경상북도 보육재난지원금 지원 조례안’을 발의했다. 유치원과 동일하게 누리과정으로 분류되는 경북지역 어린이집 이용 3~5세 아동(2만 1875명)을 지급 대상에 추가로 포함시키겠다는 의도에서다. 따라서 경북도의회는 오는 30일부터 제326회 임시회를 열고 이들 조례안의 심사에 나설 예정이다. 이들 모두 소급 적용이 가능하다는 단서가 있어 조례안 제정 시 취학 직전 3년의 공통 교육·보육과정을 운영하는 어린이집과 이용 아동도 교육재난지원금을 받을 길이 열릴 전망이다. 다만 지원 대상 확대에 따른 재원 마련을 놓고 경북도와 도교육청, 시·군 간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김경례(해맑은어린이집 원장) 칠곡군어린이집 연합회장은 “경북도의회와 도교육청이 이해할 수 없는 기준으로 교육재난지원금을 지급해 어린이집 전체가 피해를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차별을 조장하고 갈등을 유발시키고 있다”면서 “이런 문제를 해소시키기 위해 경북도의회는 이번 2개 조례안을 반드시 가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 “미얀마 여대생, 체포돼 구타·고문 뒤 음독”…군정, 반군부 20대 총살

    “미얀마 여대생, 체포돼 구타·고문 뒤 음독”…군정, 반군부 20대 총살

    “심문 뒤 음독해 병원에 실려가”쿠데타 이후 민간인 1125명 피살미얀마 군사정권에 항거하다 체포된 20대 여대생이 구타 등 가혹 행위에 시달리다가 음독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얀마 군정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20대 반군부 시민 활동가를 총으로 쏘아 숨지게 하는 등 여전히 탄압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현재 군경에 살해된 민간인만 1125명에 이른다. 26일 현지매체 이라와디에 따르면 남부 타닌타리의 다웨이대학에 다니던 소 미 미 초는 지난 20일 군경에 체포돼 심문을 받던 중 최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미얀마 정부군에 맞서고 있는 시민방위군(PDF)에 기부금을 낸 것과 관련해 심문을 받던 중 구타 등 고문을 당했다. 다웨이대 학생회 측은 “심문을 받은 뒤 음독을 해서 병원에 실려 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소 미 미 초는 지난 20일 밤 다웨이에서 13세 소녀를 비롯한 다른 3명과 함께 체포됐다. 현재 소녀는 풀려났으나 나머지 2명은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고 지역에서는 반군부 시민 활동가인 시투 까웅 미얏(24)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이틀 전 숨졌다. 경찰은 집에 있던 미얏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실탄을 발사했다. 미얀마 군부는민주 진영의 전쟁 선포에 나서자 무차별하고 잔혹한 민간인 학살 행위를 서슴치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숨진 목사 손가락 잘라 반지 훔쳐가”잔혹한 군부, 가옥 불태우고 주민들 사살 현지 매체 미얀마 나우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 서부 친주 소도시 딴틀랑에서 주민들로 구성된 시민방위군(PDF) 및 친주 반군인 친국민군(CNA) 연합 세력과 미얀마군간 충돌이 발생했다. 연합 세력의 공격에 미얀마군 30명 이상이 사망하자 미얀마군은 대규모 포 공격으로 보복했고 이 과정에서 포 공격으로 발생한 불을 끄던 목사 쿵 비악 훔(31)이 총에 맞아 숨졌다. 1시간 가량 뒤에 주민들이 그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 왼쪽 손가락은 잘려져 있고, 거기에 끼워져있던 결혼 반지가 없어진 채였다. 쿵 목사는 아내 및 두 어린 아들을 두고 있다. 그를 발견한 목사 랄 욱 박사는 미얀마 나우에 “그들이 그가 끼고 있던 반지를 가져가기 위해 손가락을 자른 것으로 보고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그 반지는 결혼반지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매체 이라와디는 군인들이 목사의 시계와 휴대전화도 훔쳐갔다고 전했다. 미얀마군의 포격으로 딴틀랑 내 가옥 최소한 18채가 불타 파괴됐고, 정부 기관 건물 한 채도 포에 부서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약 8000명에 달하는 주민 중 대부분이 추가 공격을 피해 인도와의 국경 인근 난민촌이나 인도 국경을 넘어 미조람주로 피란을 간 상태라고 매체들은 전했다. 미얀마 민주진영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가 군부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뒤 닷새 뒤인 지난 12일 사가잉 지역 먀웅구에서 군인들이 주민 300여명이 사는 마을을 급습한 뒤 가옥들을 불태웠다. 이 과정에서 군인들이 불을 끄려는 주민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쐈다고 주민들이 전했다. 미얀마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연합(AAPP)에 따르면 올해 2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지금까지 1125명이 군경에 의해 살해됐고 6803명이 구금됐다.타임지, ‘영향력 있는 100인’에 반군부 미얀마 여성활동가 2명 선정 한편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은 지난 15일 쿠데타 군부에 저항해 반군부 시위를 이끌었던 미얀마 여성 활동가 2명을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에 포함했다. 주인공은 개척자(Pioneer) 부문에 선정된 잇 띤자 마웅 국민통합정부(NUG) 여성청소년아동부 차관과 시민단체 활동가인 에스더 제 노 밤보다. 이들은 미얀마 군부가 작년 11월 치러진 총선이 부정선거였다는 이유를 들어 쿠데타를 일으킨 지 엿새째인 지난 2월6일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첫 거리시위를 이끌었다. 소수민족 전통 의상을 입은 이들은 영화 ‘헝거 게임’에서 유래돼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세 손가락’ 경례를 한 채 시위대 맨 앞에 서서 쿠데타 규탄 구호 등을 외쳤다. 당시 양곤 시민사회 세력 등이 쿠데타 이후 닷새 동안 이렇다 할 저항 운동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두 사람이 앞장 선 거리 시위를 신호탄으로 양곤에서도 반군부 운동이 이어졌다.
  • [포토] 높이뛰기 우상혁, 청년의날 기념식 경례

    [포토] 높이뛰기 우상혁, 청년의날 기념식 경례

    도쿄올림픽 높이뛰기 선수 우상혁이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청년의 날 기념식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2021.9.17 뉴스1
  • ‘9·11 전쟁’서 스러진 9·11세대… 美, 추모곡도 울리지 못했다

    ‘9·11 전쟁’서 스러진 9·11세대… 美, 추모곡도 울리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자폭테러로 숨진 13명의 미군 유해는 침묵 속에서 옮겨졌다. 추모곡도 연주되지 않았다. 성조기로 덮인 채 수송기 C17에서 하나하나 내려진 유해함은 대기 중이던 운구 차량으로 이송됐다. 해병대 11명, 해군 의료진 1명, 육군 하사 1명의 유해 가운데 2구는 유족의 요청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일요일인 29일(현지시간) 오전 미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거행된 행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은 줄지어 서서 침통한 모습으로 이 과정을 지켜봤다. 기도를 위해 고개를 숙이거나 가슴에 손을 올려 경의를 표하기도 했고, 마크 밀리 합참의장과 데이비드 버거 해병대 사령관, 제임스 매콘빌 육군장관 등 군 장성은 거수경례를 했다. CNN방송 등 미 언론들도 이 침묵을 거의 그대로 전달했다. 희생자 가운데 5명은 9·11 테러가 일어난 2001년에 태어났다. 22세와 23세 각 3명, 25세 1명, 31세 1명 등이었다. 대부분 9·11세대인 셈이다. 워싱턴포스트는 “9·11의 아이들이 9·11로 시작된 전쟁에서 스러졌다”고 했다. 미국인이 느꼈을 특별한 참담함은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비난에 그대로 담겼다. 공화당은 ‘하야’ ‘탄핵’을 거론했다.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은 탄핵을 요구했고, 매디슨 코손 하원의원은 수정헌법 25조를 발동해 대통령의 직무를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프 밴 드루 하원의원은 10여명의 동료 의원과 함께 대통령 불신임 결의안을 제출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아프간 철수는 우리를 아프간에 처음 갔던 20년 전으로 다시 되돌려 놓았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일부 이에 가세했다. 민주당 수전 와일드 하원의원은 “아프간 대피 과정이 터무니없이 잘못 다뤄졌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애비게일 스팬버거, 마이크 레빈, 앤디 김 하원의원 등도 철수 시한을 연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행사 중 바이든 대통령은 손목시계를 보는 듯한 모습으로도 비난받았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개인적 슬픔을 환기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장남 보가 이라크에 파병돼 1년간 복무한 뒤 2015년 뇌암으로 숨지며 자식을 잃은 아픔을 겪었다. 미국에서는 이 침통함이 이날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군 철수 시한은 다가오고 현장은 일촉즉발 상황인데, ‘남은 자’가 너무 많다. 미국은 지난 14일 이후 미 시민권자 5500명을 포함해 약 11만 4400명을 대피시켰지만 여전히 미국에 협력한 수천명의 아프간 조력자와 외교관, 인도주의적 단체가 아프간에 남아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탈레반의 보복 위협에 노출된 채 남겨진 이들이 어떻게 되느냐에 비난 전선은 국제적으로 형성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태풍 아이다 브리핑에서 아프간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대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 [포토] “임관했어요”… 경례하는 신임 부사관들

    [포토] “임관했어요”… 경례하는 신임 부사관들

    27일 오전 전북 익산시 육군부사관학교에서 열린 ‘21-2기 부사관 임관식’에서 신임 부사관들이 경례하고 있다. 2021.8.27 연합뉴스
  • 탈레반 총격에 시위 군중 잇따라 희생…美부역자 색출 혈안

    탈레반 총격에 시위 군중 잇따라 희생…美부역자 색출 혈안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 탈레반이 자신들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이틀 연속 총격을 가해 사망자가 속출했다. 탈레반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을 점령한 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실에서는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아프간 독립기념일인 19일 전국 곳곳에서 아프간 국기를 든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소셜미디어에는 카불에서 시위대가 “우리의 국기는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올라왔다. 시위 참가자들이 탈레반을 상징하는 흰색 깃발을 찢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은 탈레반이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잘랄라바드에서 4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쿤나르주에서는 3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잘랄라바드에서는 전날에도 탈레반의 총격으로 3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다.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의 국외 도피 후 자신을 합법적인 대통령 대행이라고 칭한 암룰라 살레 제1 부통령은 트위터에 “국기를 든 사람에게 경례해 나라의 존엄을 세우자”고 썼다. 국제언론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CPJ)는 전날 잘랄라바드에서 취재 중인 언론인 2명 이상이 구타당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조사에 착수했다. 이런 가운데 뉴욕타임스(NYT)는 탈레반이 당초 ‘보복은 없다’고 했던 공개 메시지와 달리 그동안 서방에 협력했던 아프간인들의 색출에 나섰다고 보도했다.NYT는 국제기구에 위험 지역 정보 등을 제공하는 ‘노르웨이 글로벌분석센터’가 작성한 보고서를 인용해 “탈레반이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군대에 협력한 것으로 추정되는 현지인들을 찾고 있으며, 이들의 가족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전했다. 탈레반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부역자 명단에 오른 사람들이 자수하지 않으면 가족들을 샤리아법(이슬람 율법)에 따라 살해하거나 체포할 것”이라고 협박하고 있다. 아프간 정부군과 경찰 및 수사·정보기관 구성원들이 특히 큰 위험에 처한 것으로 전해졌다. NYT는 “이 보고서는 아프간 정부 측 인사들과 서방 협력자에게 보복하지 않겠다는 탈레반의 거듭된 공개 약속에 대한 의구심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 아버지 폭력 피해 도망다니다 성폭행 난무하는 ‘지옥원’으로...40년간 말 못한 한[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아버지 폭력 피해 도망다니다 성폭행 난무하는 ‘지옥원’으로...40년간 말 못한 한[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 13명은 지난달 20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 폭력·눈칫밥 도망 연속의 유년시절...종착지는 형제복지원 아버지의 손찌검을 피해, 작은집 눈칫밥을 피해, 보육원 선배들의 기합을 피해···. 박배용(59·가명)씨의 유년시절은 도망의 연속이었다. 친아버지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작은어머니댁으로 도망쳤지만 그곳에서도 박씨는 불청객이었다. 10살짜리 꼬마도 자신이 먹고 있는 게 눈칫밥이라는 것쯤은 알았다. 박씨는 그 집을 나와 중국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다 결국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당시 불과 13살이었다. 그러나 보육원에서도 박씨는 축구부 선배들에게 매질을 당했다. 결국 한밤 중 보육원 지붕을 가로질러 극적으로 탈출했고, 무작정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부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부산역에서 마주친 경찰은 다짜고짜 박씨를 탑차에 태워 형제복지원에 넘겼다. 어린 나이 폭력을 피해 도망다녔지만 1976년 박씨가 도달한 곳은 가장 끔찍한 ‘지옥원’이었다. 이른바 ‘칼각도’로 경례를 하지 못하면 죽도록 맞았다. 식사는 ‘쓰레기 된장국’이라고 할 정도로 형편없이 나왔고, 이마저도 시간제한이 있어 제대로 씹지 못하고 삼켰다. 가장 견디기 괴로운 것은 당시 소대장이 일삼은 성폭행이었다. 소리를 내면 죽여버리겠다는 소대장의 협박에 박씨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살아남을 길은 탈출뿐이었다. 형제복지원에 잡혀간 지 3년쯤 지난 1979년, 박씨는 다른 4명의 원생과 화장실 옆 흙벽에 몰래 물을 묻혀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조금씩 파내 탈출구를 만들었다. 탈출구를 빠져나온 박씨는 죽기 살기로 부산역까지 뛰어 기차에 탑승했다. 그렇기 지옥원을 탈출했다. 그 후 4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박씨는 자신이 형제복지원에 있었다는 사실을 가족을 비롯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혼자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기억은 박씨가 평생을 피해 다녔던 폭행의 굴레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별것 아닌 일에도 화가 나 가족에게 손찌검을 했고, 결국 아내와 헤어졌다. 박씨는 현재 술과 정신과 약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다. 형제복지원을 탈출하고서 부산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살았다는 박씨는 진술서를 쓰기위해 과거의 아픔을 다시 들여봤다. “나는 무슨 죄를 지어 지금까지 이런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가.“ 박씨는 국가에 그 이유를 묻고 싶다. 아래는 박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 등은 다듬어 옮겼습니다.[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박배용 진술내용: 저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을 못 이겨 작은 집에서 생활하던 중 어린 맘에 작은어머니의 눈칫밥을 먹는 것이 싫어 국민학교 3학년 때 가출했습니다. 중국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생활하다 남대문 근처에서 서울 소년의집에 잡혀 들어갔을 때가 13-14살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년의집에서 5학년으로 편입되어 축구부에 있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소년의집 축구부에서 선배의 기합과 폭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와 밤에 지붕 위로 올라가 탈출했을 때가 14~15살이었을 겁니다. 다시 잡혀가면 또 맞을 것 같아서 친구와 멀리 떠나자고 간 곳이 부산이었습니다. 부산에서 얼마간 생활하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고 부산역에 갔습니다. 그런데 부산역에서 경찰에게 잡혔습니다. 경찰이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기에 서울 소년의집으로 보내질까봐 “서울 ○○동 작은집에 살았고 ○○국민학교를 3학년까지 다녔다”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 담임선생님 이름과 작은아버지 연락처를 분명히 말하고 “작은집에 살다가 작은어머니의 눈칫밥이 싫어 잠시 가출했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파출소 순경이 잠깐 기다려보라고 하기 서울 가는 기차를 태워줄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탑차 같은 것이 오더니 건장한 어른 2~3명이 저를 차에 태웠습니다. 큰 철문을 지나 끌려간 곳에 이미 다른 곳에서 끌려온 수많은 사람이 있는 걸 보았습니다. 연병장에서 줄을 서있다가 그곳이 형제복지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가 1976-1977년일 겁니다. (소년의집에 제 기록이 1975-1976년도의 도망자 명단에 있습니다.) 형제원 입소하자마자 몽둥이질···성폭행도 난무한 ‘지옥원’ 형제복지원에 들어가자마자 “앉아 일어서”를 시키더니, 바로 몽둥이로 때리고 군대식으로 기합을 주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날 하루는 내가 살아온 세월 속에서 최고로 고통스러운 날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옷을 벗기고 소지품을 모두 압수한 뒤 머리도 박박 밀습니다. 10소대인지 11소대인지 부정확하지만 아동소대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아동소대에 배치되었는데 남자로서 너무나 수치스럽고 더러운 일을 당했습니다. ○○○ 소대장은 어느날 밤 제게와 “자그마한 키에 서울 말씨를 쓰고 예쁘장하게 생겼다”면서 옆에서 자라고 했습니다. 겁을 잔뜩 먹어서 반항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은 제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습니다. 이후에도 반항하거나 조용히 있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구강성교와 성폭행은 계속됐습니다. 이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침묵하고 버티며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형제복지원은 말이 복지원이지 내가 겪은 최악의 지옥원이였습니다. 나보다 어린 동생들도 많았는데 한 명이 잘못하면 단체 기합을 받았습니다. 일명 ‘나룻배’, ‘오토바이’, ‘한강철교’, ‘풍차돌리기’ 등의 기합을 받았는데 ‘원산폭격’(바닥에 머리 박고 열중쉬어 자세)이 코 골며 잠잘 수 있는 제일 편한 기합이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점호를 하는데, 처음에는 칼경례를 못해 죽도록 맞았습니다. 밥은 쓰레기 된장국에 생선(쥐고기)을 넣고 끓인 형편없는 음식이 나왔습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지만 죽지 않으려면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그나마 많이만 주면 고맙다고 먹어야 했습니다. 밥도 시간 내로 먹어야 하기에 제대로 씹지도 않고 그냥 입에 넣고 삼켜야만 했어요. 그래서인지 현재 60살이지만 사회에서도 밥을 씹지 않고 그냥 오물오물 삼킵니다. 이것도 트라우마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되네요. 그러다 보니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도 하고 갑상선암과 림프절암에도 걸려서 매일 약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탈출 성공했지만 폭력이 폭력을 낳아... 아내와 이혼, 극단적 생각도형제복지원을 탈출한 뒤 배운 것이 없으니 공장과 중국집 배달을 하다 한식 주방 기술을 배웠습니다. 나이 서른 살에 가정을 이뤄 아들 한 명, 딸 한 명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복지원에서 ’빨리빨리‘만 배워서인 분노조절장애가 생겨 시시때때로 제 의지와 상관없이 별것 아닌 일에도 화가 났습니다. 아이들과 아이들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하다 결국 아내와 10년만에 합의 이혼을 하고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며 살았습니다. 아들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전아내에게 갔고, 딸은 한부모 가족 수급자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함께 살다가, 나이를 먹고 직장 근처로 나갔습니다. 혼자 생활하며 매일 술에 찌들어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의 권유로 정신과 병원에 갔는데 현재 상태가 많이 안 좋다며 원장님이 약을 지어주셨습니다. 이 약에 수면유도제가 들었는지 약을 먹으면 사람이 착 가라앉으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다시 형제복지원 얘기로 돌아가자면 당시 소대장이 친구와 형, 동생들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호랑이, 드라큘라, 뺑코, 미사일, 깜상, 이노키, 찐따1, 찐따2, 땅콩, 서울내기···. 전 서울 출신이라 ’서울내기 다마내기‘로 불렸던 것 같아요.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하면서 살길은 오직 탈출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포함해 당시 원생 4명이 1979년쯤 화장실 옆 흙 벽돌에 몰래 물을 적셔서 손가락으로 조금씩 파낸 뒤 날을 잡아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형제복지원 뒷산은 험하고 풀숲이 깊어서 사람이 들어가면 보이지 않고 위험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잡혀가면 맞아 죽는다는 생각에 죽기 살기로 부산역까지 갔습니다. 역 앞에 파출소가 있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고발해야 했겠지만, 경찰이 우리를 잡아서 형제복지원에 보냈기 때문에 역 뒤로 몰래 들어갔습니다.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무임승차해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자식에게도 말 못한 아픈 기억···원통한 한 누가 풀어주나 그리고 나서는 한 20년 동안 부산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살았네요. 지은 죄가 아무 것도 없는데 형제복지원에 있었다는 것을 저 자신도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이 사회에 편견이 심해서 육십 평생을 지인들과 자식들에게도 말 못할 아픈 사연으로 여기고 고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제가 과연 무슨 죄를 지었을까요? 설사 중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가도 나올 날이 정해져 있는데, 형제복지원은 죽어서 뒷산에 묻히거나 운 좋게 집에 연락이 닿아 귀가하는 게 아니면 탈출만이 살길이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내무부 훈령 410호인지 뭔지 국민을 위한 법도 아닌 법을 만들어 무고한 시민을 불법 감금시키고 중노동을 시켰습니다. 무임금에 폭력을 행사하는 법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부랑인도 인권이 있습니다. 집과 부모님, 친척이 있는 사람조차 옷을 허름하게 입었다는 이유로 불법 감금에 폭행, 중노동, 기합, 성폭행 등 수없이 많은 인권 유린과 노동 착취를 당했습니다. 신고도 못 하고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곳에서 희망도 없이 살아야 했던 원생 중에는 맞아서 사망한 사람도 513명(공식 집계된 사망자 수만)이나 있지요. 대한민국 법조인에게 물어보고 싶네요. 역지사지라고 한 번쯤 생각해보세요. 내 가족을 잃어버렸는데 형제복지원 같은 곳에서 인권 유린에 성폭행에, 매일 맞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곳에서 기약도 없이 생활하고 있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정말 끔찍하지 않을까요? 보통 다녔던 학교에 연락만 해도 다들 고향에 갈 수 있었을텐데,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돈으로 보였을 것이며 노예나 다름없었을 겁니다. 1987년에 사건화되었을 때, 박인근 원장을 붙잡아 놓고도 검찰 수사에 외압을 가한 당시 부산시장, 검찰총장 등에게도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어느 누구도 책임지고 공개 사과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형제복지원에서 맞아 죽은 513명 원생들의 원통한 한을 어느 누가 풀어줄 건가요? 그 당시 정부에 협조해 부랑인이라고 형제복지원에 신고한 부산 시민들도 원망스럽습니다. 사회적 편견으로 죄 없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붙잡아 가서, 폭행과 기합, 성폭행, 심지어 공식 집계로만 513명의 죽음, 그 이상으로 많은 불법 감금과 노동 착취가 일어났습니다. 수백억, 수천억을 번 박인근 원장은 그 돈으로 호주에 골프장을 2개나 운영합니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는 국가가 어떻게든 환수하여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고있는 피해자들에게 배상과 보상을 해야만 합니다. 매일 맞지 않고 죽지 않으려고 바위틈에 초콜렛과 같은 흙을 파먹고 살아남았습니다. 자유를 찾아 끝없이 노력해 탈출에 성공하는 영화 ‘빠삐용’을 보면서 ‘나도 저런 식으로 탈출했는데’ 싶어 제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도 한때는 있었지만, 현실은 냉혹하고 힘들었네요. 이런 고통을 그 당시 정치인, 검찰총장, 경찰공무원 및 부산시청 공무원들은 알기나 할까요? 현재까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지요. 요즘 들어 옛일을 생각하며 글로 표현하려니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죽고 싶은데 더욱 가슴이 아프고 죽고 싶네요. 유년 시절의 아픔은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다는 외국 트라우마 치유 학자의 말이 있습니다. 어느 누가 내 인생을 책임져줄 건가요? 민주주의가 뭔가요? 공산 국가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대한민국이 땅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분명히 대한민국 국민입니다.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금요칼럼] 애국가 컬트/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금요칼럼] 애국가 컬트/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요즘 국민의힘 최재형 대선 예비후보가 가족이 다들 태극기를 향해 경례하며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 사진을 공개했다. 바로 구설수가 들었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느니, 강제와 자발의 차이도 모른다느니, 자기중심적 가부장의 독선이라는 등의 비아냥조 비판이 들끓었다. 30~40년 전만 해도 이렇게까지 논란이 되지는 않았을 테다. 그런데 왜 지금 2020년대에는 조롱과 패러디의 먹잇감이 됐을까?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신주처럼 그저 신성하게만 다루던 태극기를 청년들이 옷으로 만들어 입고 거리를 누비던 서울월드컵 때가 벌써 20년 전이다. ‘성스러운’ 태극기 문양을 각종 디자인으로 사용하는 데 우리는 이미 익숙하다. 그만큼 사람들의 의식이 자유롭게 진화했다. 그런데도 이런 변화를 전혀 모른 채 한물이 가도 한참 간 레퍼토리로 자신을 선전하려다 되레 역풍을 맞은 꼴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가 돌아볼 진짜 문제는 애국가 가사다. 가사의 내용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국가에 대한 충성만 강요할 뿐, 국가가 국민에게 어떤 존재인지는 일언반구도 없다. 1, 2절과 후렴은 추상적일지언정 대한의 영원무궁을 기리는 내용이라 그런대로 괜찮다. 하지만 3, 4절 가사는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만 강조한다. 특히 “일편단심일세”라거나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라는 데 이르면 무슨 종교집단의 맹세문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어떤 컬트 집회에서 불러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내용이다. 국가의 가사는 각 나라의 특별한 역사 경험에 따라 다양하다. 지금도 왕을 둔 나라의 국가는 국왕을 칭송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런 국가를 거부하는 국민도 적지 않다. 혁명을 거친 나라의 국가 가사는 대개 전투적이다. 또한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분명하다. 그 무엇이 바로 국가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예를 들어 프랑스 국가는 압제에 대한 저항과 자유를 위한 싸움으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국 국가의 요체 또한 독립과 자유다. 이는 내가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되 그 국가는 반드시 자유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국가여야 함을 전제한 셈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러나 국가 가사에는 ‘민주’나 ‘공화’(共和)를 연상할 만한 내용이 전혀 없다. 애국가를 아무리 소리 높여 부를지라도 내가 충성을 바칠 국가가 어떤 국가인지 알 길이 없다. 상대의 정체도 제대로 모른 채 무조건 복종하고 충성하는 현상은 주로 종교에서, 특히 컬트에서 흔하다. 그런데도 그런 애국가를 가족모임에서 4절까지 함께 부른다니, 정말 사실이라면 일종의 ‘애국가 컬트’에 가깝다. 1972년에 만들어 30년 넘게 국민에게 강요한 국기에 대한 맹세도 다를 바 없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여기서도 조국에 대한 절대적 충성만 강조할 뿐, 충성을 바칠 대상인 조국이 어떤 국가인지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그래서 2007년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고 ‘국가의 조건’을 명시해 수정했다. 맹세라는 것 자체가 여전히 좀 웃기지만, 그나마 고무적인 진일보라 할 수 있다. 예비후보 자신을 포함해 그 가족 구성원들, 그리고 최 예비후보와 생각이 같아서 캠프에 합류했다는 이들은 “자유롭고 정의로운”이라는 대한민국의 국가 조건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자유와 정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중시한다면, 애국가도 국기에 대한 맹세도 가족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 권유도 곤란하다.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가부장의 권유를 뿌리칠 가족 구성원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시대 흐름의 변화를 제대로 읽기는커녕 점차 컬트화(化)하는 예비후보가 한둘이 아니라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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