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경련
    2026-06-13
    검색기록 지우기
  • 로드맵
    2026-06-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527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환그룹-최종환 명예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환그룹-최종환 명예회장家

    올해로 건설 외길 60주년을 맞는 삼환기업은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1세대 건설기업이다. 대림산업·삼환기업·삼부토건 3개사만 명맥을 잇고 있지만 창업주가 살아 있는 곳은 삼환뿐이다. 대부분의 건설기업은 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전후에 부도가 나 좌초됐다. 삼환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갈린다.70∼80년대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빌딩을 지은 주인공이자 중동에 처음 진출해 중동 붐을 일으킨 기업이지만, 최근엔 80년대에 비해 해외 수주액이 급감하는 등 예전보다 인지도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부침이 심한 건설업계에서 꾸준한 수익성을 유지하며 ‘환갑’의 값진 전통을 이어간다는 데 이견이 없다. 삼환은 올해 창업 60년을 맞아 국내외로 외형을 확장, 건설 명가로서 제2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창업 60년 맞아 제2의 르네상스 꿈꾸는 삼환 삼환기업은 올해를 제2 해외 르네상스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공항 확장공사 입찰에서 최저가를 써 1순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계약을 협의 중이다. 건축비가 지난해 삼환기업 해외 매출(600억원)의 4배 규모인 2500억원이다. 해외유전 사업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연 100억원대 수익을 올린 마리브 유전 투자에 이어, 지분투자(4.9%)로 참여한 베트남 가스전 개발사업이 올해 하반기부터 수익을 낸다. 이밖에 지분투자(1.6%)를 한 예멘 마리브 LNG 개발사업도 오는 2009년부터 수익을 낼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3조원대 규모의 대우건설 인수전에도 참여, 건설기업 전통 명맥을 잇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 창립자인 최종환(82) 삼환그룹 명예회장은 1924년 12월29일 최상림씨와 김림자씨의 5남2녀 중 4남으로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종로의 종(鍾)자에 돌림자인 환(煥)자를 붙여 지은 이름이다. 양반이 광화문 중심에서 사대문 밖으로 쫓겨나 사는 것을 몰락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사대부 출신인 그의 집안은 가세가 기울면서 광화문 중심에서 다동으로, 이어 효자동, 종로4·5가 등으로 밀려났고 그는 종로 4가에서 태어났다.‘종환’이란 이름에는 사대문 안은 벗어나지 않았다는 안도의 뜻이 담겨 있다는 회고다. 훗날(1980년) 창덕궁이 내려다 보이는 종로구 운니동에 20층 규모의 삼환사옥을 세운 것을 두고 그가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제 점령기에 초등학교(어의보통학교·현 효제초등학교)를 다닌 그는 글재주가 뛰어나 졸업할 때까지 각종 작문 대회에서 1등을 휩쓸었지만 학업에 뜻을 두진 못했다. 열 살이 되던 해에 궁핍한 살림에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일찌감치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건설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의 형들과의 연관이 깊다. 큰 형인 고 명환씨와 둘째 형인 고 영환씨가 졸업 이후 수도·난방공사 자재를 생산·시공하는 스기야마 제작소에 들어갔는 데 회사에서 쓰다 남은 자투리 파이프를 집에 가져와 가공, 다시 납품하는 식으로 돈을 벌면서 1933년 경동기계제작소를 설립했다. 그는 어의보통학교에 이어 2년제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뒤 18세가 되던 1940년 형들의 회사인 경동에 합류했다. ●약관의 나이에 창업…미군 공사로 국내 기반 삼환은 설립 이후 60년대 초반까지 줄곧 주한미군에서 수주한 공사에 전념했다.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국 공병대에서 크고 작은 공사를 발주했는데 토목·수도·난방 등 업종별로 공사를 따로 주지 않고 한 업체에 모든 공사를 맡기는 식이었다. 그는 경동기계제작소안에 공사부를 설립해 영업부장으로 뛰며 미군 공사를 수주했다. 한발 더 나아가 하청업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물 한 살이던 1946년 3월15일 오늘의 삼환그룹 효시인 삼환기업공사를 설립했다. 큰 형과 둘째 형, 그리고 최 명예회장 삼형제가 합심해 만든 회사란 뜻에서 지은 이름이지만 실질적인 소유주나 최고경영자는 최 명예회장이다. 회사 설립후 8개월 동안 이룬 공사실적만 총 26건 130만원이다. 당시 공무원 월급이 1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1948년 가을 을지로 2가 119번지 53호를 매입해 신사옥도 마련했다. 1949년에 착공한 강원도 영월 등 7개 광산지역의 미국인 광산기술자용 주택공사는 당시 업계의 부러움을 산 초대형 공사였다.1950년 6·25로 공사는 중단됐고 건물은 불에 타버렸지만 이 공사는 훗날 새옹지마격으로 그에게 전쟁 이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계기가 됐다. 서울 수복후 미군 공사 관계자는 그를 반도호텔(현 롯데호텔)로 불러내 큰 궤짝 하나를 내놓았는데 그 속에는 당시 2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불에 타버려 흔적조차 사라진 건물의 공사비를 뒤늦게 받은 것이다. 주식회사로 전환한 것은 전란 이후 1952년 9월의 일이다. 서울 수복후 전후 복구공사에 힙입어 사세를 키워나가던 중 삼환은 당시 주주 10명이 총 주식 2만주를 발행하면서 주식회사가 됐다. 그 중 최 회장이 1만주, 둘째 형 영환씨가 5000주, 큰 형 명환씨가 500주를 가졌다. ●국내 ‘중동 붐’ 조성…횃불신화로 국제 명성 쌓아 1961년 ‘5·16’은 새 전기를 가져왔다. 수의계약으로 이뤄지던 관급공사가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신문에 종종 입찰공고가 나는 일이 생겼고 삼환은 국내 주요 공사를 맡는 ‘건설 명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5·16 이후 삼환이 따낸 최초의 관급 공사는 1962년 발주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 호텔이다. 이어 경부·호남·영동·남해·동해고속도로 등 각종 토목 공사에 참여했고, 국립극장, 삼일빌딩, 조선·프라자·신라 호텔, 지금은 사라진 남산외인아파트, 여의도 전경련 회관, 국립묘지 현충탑, 포항제철(현 포스코) 공장 등을 지으며 주택·오피스빌딩·토목·플랜트 등 각 분야에서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삼환은 국내사업에 만족하지 않았다. 해외진출 가능성을 계속 탐색하던 최 명예회장은 1963년 월남 사이공(호찌민)에 지사를 설립하면서 첫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 정국 혼란으로 4개월 만에 철수했지만 이후 196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한국 업체 최초로 지사를 설립한 데 이어 1973년 국내 업계 최초로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했다. 삼환은 사우디에서 네번 연거푸 고배를 마신 뒤 다섯번째 카이바∼알울라고속도로(175㎞) 입찰에서 2400만달러 규모의 공사를 따내며 국내 중동 진출 1호 기업이 됐다. 완공 때까지 3년간 자재 공급난, 종교 문제 등 시행 착오로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이어 사우디 최대 규모인 제다시(市) 전체를 뜯어고치는 미화사업을 맡으면서 행운을 잡았다. 미화공사를 메카순례기간 전까지 끝내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횃불을 켜놓고 야간공사를 강행하던 것을 파이잘 국왕이 보고 감동을 받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삼환은 6000만달러 규모의 대형 공사를 수의계약하게 됐고 ‘횃불신화’라는 말을 남기며 국내 건설업체의 중동 진출 붐을 조성하는 등 명성을 널리 알리는 개가를 올렸다. ●해외 프론티어의 꿈…정체된 90년대 80년대 들어서는 해외시장에 더 집중했다.1978년 미수교국이던 예맨에 진출했고 이를 계기로 1984년 북예맨 마리브 유전개발에 참여하면서 원유사업을 시작했다. 이어 요르단, 파푸아 뉴기니아, 알래스카, 방글라데시, 사할린 등 시장을 개척했다. 국내 기술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국제 모임에 적극 참여,1982년 아시아 서태평양 건설연합회인 아이포카(IFAWPCA) 5대 회장에 추대됐고 재임시절 세계건설인대회도 제창했다.1990년대 들어서는 회사 일 보다 민간 외교에 시간을 쏟았다.1992년 한·소 경제협력회 2대 회장으로 선임됐고 재차 연임됐다. 러시아의 정치·경제 여건이 성숙되지 않아 성과를 이루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아 있다. 이런 탓에 90년대 들어 삼환의 해외 실적은 급감했다. 건설협회에 따르면 삼환의 해외공사 수주액은 1982년 당시 5억 8834만 8000달러(한화 6000억원)였지만 10년 후인 1992년에는 10분의1 수준인 624만 4000달러에 그쳤다. 국내 건설 업계의 주요 테마인 아파트 실적도 많지 않다.90년대 후반부터 업계가 경쟁적으로 환상을 담은 아파트 브랜드와 광고에 집중하며 수주전에 열을 올릴 때에도 삼환은 아파트 광고를 하지 않았다. 최 명예회장은 오히려 당시 시류에 대해 자서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를 통해 “안쓰럽다.”는 평을 내놓았을 뿐이다. 한 때 9개에 달하던 계열사는 현재 6개로 정리됐다. 키친아트로 유명한 양식기 제조업체 경동산업(60년)과 코카콜라 등 청량음료 제조업체인 우성식품(69년)은 모두 1990년대 말 정리됐다. 태양관광(관광·77년)은 삼환엔지니어링(기술용역·76년)에 통합돼 삼환기술개발이 됐지만 설계 업무는 거의 하지 않고 관광업도 계열사 직원 출장을 위한 발권 업무 정도만 한다. 이밖에 우성개발(67년), 삼환까뮤(78년), 삼환종합기계(79년), 신민상호신용금고(78년), 회현상사(78년) 등은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건설 명가로서의 국내 입지와 안정적인 매출은 줄곧 유지하고 있다. 건설 계열사를 가진 한화그룹의 1000억원대 대한생명 리모델링 공사를 지난해 수주했고,2007년 준공되는 건축비 595억원 규모의 팬택계열 서울 상암동 R&D센터도 짓고 있다. 삼환기업은 2005년 기준 매출 6612억원, 당기순이익 5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종합 수주액은 1조 5000억원 규모다. 삼환그릅 기준 2005년 매출은 1조 1000억원, 당기순익은 650억원이다. ●교사 부인과 1남1녀의 단촐한 가정 1947년 봄. 삼환기업공사의 30대 청년 사장으로 뛰면서 당시 숙명여학교 교사이던 고 채광영 여사와 2년여 열애 끝에 1949년 4월 결혼했다. 최 명예회장은 부인을 만났을 당시 “‘아!이 여자다.’라는 느낌이 퍼뜩 들어 프러포즈를 했다.”고 언론을 통해 회고한 바 있다. 부인 채씨는 그를 홀로 남겨둔 채 1999년 노환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부인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가업을 승계한 외아들 최용권(56) 회장은 동갑내기로 고 한정대 전 대한페인트잉크(DPI) 회장의 3녀인 봉주(56)씨와 1974년 결혼해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미 보스턴대를 나온 용권씨는 미 유학중 같은 유학생 신분이던 봉주씨를 만나 결혼했다.1975년 삼환기업 기획조정실장으로 입사해 8년 만인 1982년 32세 나이에 삼환기업 사장에 취임했다. 이어 삼환이 창립 50주년을 맞은 1996년 9월 회장으로 등극,2세 경영 체제를 굳혔다. 선친인 최종환 명예회장은 ‘바늘로 찌를 구멍’은 있어 보였던 데 비해 최용권 회장은 ‘찌를 구멍’조차 없는 사람이란 평이 임원들 사이에서 나온다. 최 명예회장의 손녀이자 최용권 회장의 장녀 영윤(31)씨는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의 며느리가 됐다. 이 회장의 3남 해창(35)씨와 1999년 3월 결혼하면서 국내 두 전통 건설기업은 사돈관계를 맺게 된 것. 대림의 창업주인 고 이재준 선대 회장과 최 명예회장은 건설 1세대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해창씨는 현재 대림산업 계열사인 종합물류회사 대림H&L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아는 사람 소개로 만나 2년여 교제끝에 결혼했다. 다른 손녀·손자들은 아직 모두 학생이다. 장손주 최제욱(29)씨는 예일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고, 최지연(26)씨는 세계 최고의 미술대학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RSID에서 공부 중이다. 막내 최동욱(22)씨도 콜롬비아대에서 학부 과정을 밟고 있다. ●형제들과의 인연…삼환에 친인척 1명도 남아 있지 않아 삼환은 인척들의 경영 참여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없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우지만 친·인척이 맡았던 경동산업과 우성식품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리고 지금은 친·인척 중 단 한 명도 삼환에 적을 두는 이가 없다. 맏형 고 최명환씨는 6·25 당시 자신이 설립한 삼환기업의 모체인 경동기계가 잿더미로 변하자 동생 최 회장과 함께 삼환기업공사를 설립한 뒤 주주와 이사로 활동했다. 그의 아들인 동국대 출신의 용근(67)씨는 계열사인 우성식품 이사, 삼환기업 사장 등을 맡다가 1996년 삼환까뮤 사장직을 끝으로 삼환을 떠났다. 둘째 형인 고 최영환씨는 국내 최초 강관회사인 한국강관의 3인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삼환을 떠났는데 한국강관의 부회장까지 맡은 바 있다. 이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의 차녀 계자(64)씨는 18대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권숙일씨와 결혼했다. 장남 용재(56)씨는 1993년 삼환의 계열사로 지금은 사라진 키친아트 등 양식기를 제조했던 경동산업의 사장을 맡은 바 있다. 차남 용진(53)씨는 ㈜유창 사장으로 삼환과는 무관한 사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 형 고 최경환씨는 1958년 삼환의 관계사로 설립된 양식기 제조업체인 경동산업의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다. 이 회사가 정리되기 직전인 1999년까지 재직했다. 그의 아들 최용철(60)씨도 이 회사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냈다. 경동산업은 인건비 상승과 경쟁 심화로 자금난을 겪다 94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0년 다시 법정관리 퇴출 명령을 받으면서 정리됐다. 그의 장녀 최형인(57)씨는 한양대 인문과학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고 최경환씨의 사위이자 최형인씨의 남편이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이끌어온 이윤우(60) 삼성전자 기술총괄부회장이다. 막내 동생인 최정환(73)씨는 삼환이 코카콜라 부산·경남지역 판매권을 가진 우성식품을 1969년 창립하면서 이 회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연간 매출 1300억원대로 한 때 부산지역 대표 식품회사로 명성이 높았지만 방만경영과 과다 부채를 이유로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최정환씨는 형인 최 명예회장으로부터 1997년 4월 경질됐다. 이 회사는 1997년 코카콜라 부문을 매각한 뒤 같은해 말 부도처리됐다. 최정환 전 회장은 서울대 상대, 산업은행을 거쳐 1968년 삼환에 입사했다. 이 회사 사장을 지낸 최정환 회장의 장남 최용석(47)씨는 회사가 문을 닫은 뒤 새천년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활동하는 등 한 때 정치에 뜻을 두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리하고 지성산업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장녀 영혜(45)씨는 건설부 장관, 상공부 장관을 지낸 고 장예준씨의 차남 동욱(48)씨와 결혼했다. jhj@seoul.co.kr ■ 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형님-아우’ “아, 이리도 황망히 가셨습니까? 아직도 회장님이 하셔야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데 무얼 그리 급히 가셨습니까? 여든 여섯의 춘추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경제의 영원한 등불로 언제나 함께하시기를 기도했는데 이리 가시니 이별의 안타까움과 아픔이 너무도 시리게 느껴집니다. 정주영 회장님.” 최종환 명예회장은 2001년 3월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타계한 직후 당시 서울신문을 통해 이같은 조사를 남긴 바 있다. 두 사람은 생시에 형님-동생으로 서로를 부르며 경쟁보다는 조언을 구하고, 돕고 의지하는 형님과 아우로서의 정이 돈독했다. 그는 건설 1세대 중에서도 특히 고 정 명예회장, 고 이재준 대림산업 명예회장, 그리고 조정구 삼부토건 명예회장을 존경하면서도 가깝게 지낸 인물로 꼽았다. 자서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없이’에서 고 정 명예회장에 대해 “타고난 능력과 자질 이외에 뛰어난 판단력과 결단력, 저돌적인 돌파력에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평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전경련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최 명예회장에게 부회장을 역임토록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최 명예회장에게 처음 소개시켜준 사람도 고 정 명예회장이라고 덧붙였다. 고 조정구 삼부토건 회장에 대해서는 “나는 상대방의 잘못이 보이면 즉석에서 쏘아대는 성격이지만 그 분은 어떤 경우에도 참고 있다가 나중에 조용한 목소리로 상대방이 스스로 깨닫도록 설명해 주는 등 깊은 인내의 미덕을 갖춘 분”이라고 회고했다. 고 조 회장이 건설협회 회장을 맡을 때 최 명예회장은 이사로 그를 도왔다. 최 명예회장은 이들과 함께 황무지나 다름없던 이 땅에서 건설업을 일궈냈다. 그러나 지금은 마지막 남은 건설 1세대로 원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 가회동 자택에서 지내고 있으며, 건강이 예전같지 않다. 수십년간 매일 30분씩 해온 ‘대나무 밟기’를 건강 비결로 소개했던 그였지만 요즘은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1996년 아들에게 모든 경영을 물려주고도 일주일에 최소한 사흘은 회사에 나왔지만 올들어선 일주일에 병원가는 날 하루 정도만 오전에 회사에 들른다. 평상시처럼 직원들과 지하 구내 식당을 찾는 등 검소한 모습은 그대로라는 평이다. ■ ’60년전통’ 삼환을 만든 사람들 삼환이 60년 건설 명가의 전통을 지켜올 수 있었던 데에는 전문경영인들의 공이 컸다는 평이다. 최종환 명예회장이 꼽는 최고의 CEO는 경성공업학교(현 경기공고) 출신의 고 이창호 사장이다. 부사장직으로 순직한 뒤 사장으로 추서됐고, 최 명예회장으로부터 ‘고락을 함께한 벗’으로 불리기도 했다. 최 명예회장은 지난 1977년 회사장으로 치러진 고 이 사장의 영결식 조사에서 “지금 내 오른팔이 떨어져 피가 흐르고 여며드는 것만 같은 아픔이 밀어 닥치는군요. 그러나 당신의 유지를 받들어 나는 기어코 우리 삼환을 세계 속의 삼환으로 만들고야 말겠습니다.”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격무로 일관하다 신병을 갖게 되어 휴양을 하다가도 중동 현장으로 달려가는 등 투철한 사명감은 지금도 귀감이 되고 있다. 그가 사망한 이듬해에는 ‘회사를 위해 노력한 사원에게는 응분의 보상이 꼭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연금제도와 사원주택단지조성사업이 시작되기도 했다. 전동진(74) 사장도 삼환에서는 전설로 불리는 CEO중 한 사람이다.1975년 월남이 패망할 당시 월남지사장으로 근무하던 중 하청업자 공사대금 지불 등 잔무 처리를 위해 남아 있다 8개월간 공산 치하에 억류된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968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삼환기업 중기부 과장으로 입사한 이후 1996년까지 삼환기업·삼환엔지니어링·삼환까뮤 등 계열사 사장을 두루 역임했다. 지금은 삼환의 육영재단인 우성문화재단에서 이사로 재직중이다. 행정고시 출신의 최석원(75) 고문은 내무부 치안본부장, 노동청장, 부산시장, 건설부 차관 등을 역임한 뒤 삼환의 해외사업이 꽃을 피우던 1982년 사장대우 상임고문으로 영입됐다. 지금도 우성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노년까지 삼환과의 인연을 지키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SKT·삼성, 소비자선정 광고 대상

    SK텔레콤의 ‘생활의 중심 캠페인’과 삼성전자의 ‘우리의 자부심’이 올해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 대상 수상작으로 각각 선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20층 난초홀에서 열린다. 한국광고주협회가 주최하는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은 소비자들이 직접 심사에 참여해 좋은 광고를 선정, 시상하는 유일한 상으로 올해 14회째를 맞았다. 최종 본심사를 맡은 소비자단체 대표들은 전파부문 대상작인 SK텔레콤의 ‘생활의 중심 캠페인’이 유비쿼터스의 개념을 생활속에서 쉽게 풀어내 소비자의 공감대 형성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또 인쇄부문 대상작인 삼성전자 ‘우리의 자부심’은 우리 민족의 독특한 문화와 그 속에 숨겨진 민족의 저력을 보여주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다고 밝혔다. 한편 환경보존과 인간관계 개선, 삶의 질 향상 등이 심사의 기준이 되는 특별상의 전파부문에는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의 ‘이 땅 위에 자존심 한우 캠페인 시리즈’가, 인쇄부문에는 대한생명의 ‘Change The Life 캠페인’이 각각 선정됐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사설] 의원·총리 막말 문답 지나치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야당 의원과 이해찬 총리의 막말 문답이 용인할 수준을 넘어섰다. 안면경련을 일으킬 정도의 적개감을 공공연히 표출해서야 정상적인 국정답변이 될 리 없다. 대정부질문에서 정례행사처럼 벌어지는 막말 공방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대화정치를 어렵게 하고 국민의 정치불신을 심화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 총리가 먼저 반성해야 한다. 야당 의원이 정치공세에 치우친다 해도 너그럽게 받아넘기는 포용력을 보여야 했다. 총리가 한술 더 떠 의원을 공격하니 사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이 총리는 2004년 10월 한나라당을 ‘차떼기당’이라고 비난해 국회를 2주일간 공전시키는 빌미를 제공했다. 지난해에도 “그런 사안에 대답하는 게 창피하다.”“별꼴을 다 보겠다.”라는 냉소적 답변으로 야당과 언쟁을 벌였다. 엊그제는 “홍준표 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라며 질의에 나선 의원에게 면박을 주었다. 이런 식의 대응은 당장 분풀이는 될지 몰라도 여권의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고, 지지도를 떨어뜨린다고 본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변해야 한다. 충분한 사전공부와 함께 증거자료를 갖고 따끔하게 정책질의를 할 때 정부 답변자들이 두려워한다. 구체적 내용 없이 흠집내기로 일관한다는 인식을 주니까 오만불손한 대응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이 총리에게 수차례 당하고도 지나가면 그뿐인 상황이 반복되면서 제1야당의 위상이 땅에 떨어지고 있다. 차라리 대정부질문을 없애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현실을 한나라당은 명심해야 한다. 국민 대표인 국회의원의 권위는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이다.
  • 미스아닌 미스코리어 金志娟

    미스아닌 미스코리어 金志娟

    『저도 떳떳이 새 생활을 열어보기 위해 영화계에 나가렵니다. 너무나 암울한 나날만 보냈읍니다』- 연기인지 꾸밈인지는 모르겠으나 금년도「미스·코리어」진(眞)을 「미스」가 아니란데서 실격한 - 말하자면 「미스·코리어」를 「미스」한 「미스·코리어」- 불운의 「퀸」김지연(金志娟·21)은 영화계에「데뷔」 하는 심경을 털어 놓았다. 김지연(金志娟)양은 요즘 한강변의 시영 H「아파트」에 살고 있다. 동거인은 오빠 김광수(金光洙·28)씨 부부. 약 1개월 전에 서울 시내 갈월동94의 집을 나왔다. 부모님 곁을 떠나 비교적 자유로운 오빠부부의 감독 밑에서 살아 보기 위해서란다. 그녀의 출연작품은 태창(泰昌)흥업의『상해(上海)의 방랑자(放浪者)』 (전우열(全右烈)감독). 지난 7월 2일부터 뚝섬의 촬영장에 나가고 있다. 계약금은 50만원. 이 중 20만원은 이미 받았단다. 金양은 허장강(許長江)군과 공연, 그의 외동딸 역을 맡게 됐는데 42「신」에 나오는 완전 주역. 열심히 일해서 훌륭한 배우가 되겠단다. 『저로서도 무엇인가 해야 하지 않겠읍니까? 집에서 부모님의 신세만 지고 놀 수는 없으니까요. 「패션·모델」과 영화계의 두 길을 일단 생각해 보았읍니다. 그 중 「모델」에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읍니다. 이번 기회를 잡아서 저는 저대로 자기자신의 앞날을 걸어 보는 것입니다』 金양은 미인 탓인지「미스·코리어」眞 에 실격하면서 구설수가 따랐다. 고급 「바·걸」 이라는둥 비밀요정의 「호스테스」라는둥 그럴싸한 소문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뒤따랐다. - 金양이 나가는 요정에서는 줏가가 더 올랐다는 소문이던데? 『그 일(실격된 것)이 있은후 저는 집 안에 박혀 있었어요. 그 난리를 치러 놓고 제가 아무리 뻔뻔스럽기로서니 그런데 나갈 수가 있겠어요?』 - 소문은 상당히 구체적인걸요. 가령 「팁」이 얼마에서 몇만원으로 뛰어 올랐다느니 혹은 남자손님들이 金양의 실격을 위로해 주는 위로잔치를 베풀어 주었다느니 해서 말입니다. 『아이 참 멋대로 쓰세요. 그렇지만 「팁」이 몇 만원으로 뛰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룻밤에 몇만원 벌 수 있다면 정말 나가 보겠어요. 그런데 한 군데 소개해 주세요. 영화계 보다 그 쪽이 낫겠어요』(똑 바로 쳐다 보던 얼굴을 옆으로 숙이고 눈을 내려 깔더니 오른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이마에 경련이 스친다) 『기자들을 만나면 사형선고를 받는 것 같았어요. 오늘은 옛날의 제가 아니고 영화계에 나가는 병아리 김지연(金志娟)으로서 만나고 있읍니다. 옛날 일은 너무 들추지 말아 주세요』 金양은 그동안 거리를 나다니는 것도 무서웠다고 실토한다. 『「미스·코리어」가 된 뒤부터 (실격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남의 눈이 두려워서 행동을 더 조심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동거하고 있는 올케와 같이 남대문시장에 갔을 때 그녀의 움직이는 곳마다 인파가 쏠렸다. 그것도 여자 구경꾼들. 그 여자들 사이에서는 별의 별 소리가 다 나왔다. 『저게 실격한 「미스·코리어」래!』하는 소리에서 『뻔뻔스럽지』라느니 『「미스·코리어」를 어떻게 알고 있는거야』하는 따위, 돌멩이가 날아 올까 봐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녀에게 반갑지 않은 말을 던지든지 눈을 흘기고 지나가는 사람은 모두가 모두 여자들. 남자들은 의외로 관대하더란다. 한번은 반도·조선 아케이드에 「쇼핑」을 갔을 때의 일. 金양을 한번 보기 위해 남녀 가릴 것 없이 온통 사람 울타리를 이루어 빠져 나오지를 못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목욕도 집에서 하든가 언니와 독탕을 이용했다. 복장학원으로 나가 「디자인」을 공부할 생각도 해 보았지만 사람 눈이 무서워 그만 두었단다. 되도록 조용히 지내려고 했는데 영화계의 등쌀로 그만 또 세상에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金양이 「미스·코리어」에 실격되자 모친은 고혈압으로 성모(聖母)병원에 열흘동안 입원을 하는 소동도 빚었다. 그러한 난리 속에 끈질기게 영화계인사들이 출연교섭 공세를 펴왔다. 출연교섭을 해 온 영화사가 열 손가락은 넘는다. 실격 첫 날부터 전화「벨」이 울리면 영화사에서 온 것 이었다. 계약금도 경쟁의 도에 따라 20만원에서 30만원, 40만원, 50만원으로 껑충껑충 뛰어 올랐고 50만원 보다 더 내겠다는 제작자도 있었다. 영화출연 교섭경위에 대해 오빠 김광수(金光洙)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받으면 많이 받든지 안 받으면 아예 안받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하기로 우리들은 마음 먹고 있었읍니다. 그래서 출연영화의 「시나리오」를 사전에 읽어 보기도 했고 누가 감독을 하느냐를 검토하기도 했읍니다. 너무 어려운 역을 맡아서 「데뷔」와 동시에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고 여동생을 잘 키워 주는 믿을 수 있는 감독을 고르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말은 제1회 작품의 연기에서 성공을 거두면 「스타돔」으로 향해 발돋움해 보겠다는 金양의 마음가짐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해 준다. 『전(全)감독이 제 친구입니다. 그래서 여동생을 한 번 맡겨 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것도 좋든 나쁘든 「매스콤」에 알려진 허명(虛名)을 선전으로 한번 이용해 보겠다는 속셈인지도 모르죠.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믿고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옆에서 金양이 말을 이었다. 『모든 것이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저는 실격사건을 통해 세상공부를 많이 했읍니다. 새 인생의 「스타트」를 끊으려는 것입니다. 저를 좀 도와주세요』 21세의 젊은 나이치고는 파란 많은 인생을 살아왔다. 金양이 부모에게 끼친 심려의 횟수만해도 첫 번째가 65년 5월 시내 P여고를 3학년에서 퇴학당했을 때였다. 두 번째가 아직 법률상의 남편이 되어있고 한 때는 함께 살림을 한 김태문(金泰文·23)씨 와의 결혼식(67년 10월 31일)때. 이 때도 金양의 가정에서는 모두가 결혼에 반대했다. 그것을 무릅쓰고 김태문(金泰文)씨와 결혼했다. 세 번째가 반년도 못가서 결혼에 실패하고 친정으로 돌아 왔을 때. 이번에는 결혼에 반대하던 부모와 오빠들이 이혼에 반대했다. 일단 시집간 여자는 그 남편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 완고한 가풍으로. 이 때도 金양의 모친은 집안체면이 망했다고 앓아 누웠다. 그리고 네 번째가 「미스·코리어」실격사건. 그때의 「쇼크」는 새삼 말할 것도 없겠다. 게다가 본인의 완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고급요정에서 인기를 독점하는 일류 「호스테스」가 되어 있다는 입방아는 여전 가시지 않고 있다. 『저는 저대로 이번 출연을 앞두고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했읍니다. 이번에는 꼭 성공해서 부모님들을 안심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에 말하고 싶은 것은 저에게 꼭 한번의 기회를 달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미스·코리어」로 뽑힌 미녀 중 김미정(金美貞),손미희자( 孫美喜子), 서양희(徐良姬) 의 3명이 영화계에 요란스럽게 「데뷔」했지만 3명이 모두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고독하게 사라져 갔다. 심지어 이중 한명은 현재 비밀 고급요정의 「호스테스」로 나가고 있다고 한다. 金양이 이러한 선배들의 선례를 깨뜨리고 우리나라 영화계의 빛나는 성좌의 일각을 차지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선데이서울 69년 7/6 제2권 27호 통권 제41호]
  • 정세균 산자 “대기업 임금인상 자제 유도”

    현대차그룹이 과장급 이상 임직원의 임금을 동결키로 하는 등 임금인상 억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도 이에 앞장서기로 했다. 정부와 경제계는 27일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제2회 민관투자협의회’에서 임금인상 억제 분위기 조성 필요성에 공감하는 한편 올해 5%대의 경제성장률 달성과 일자리 40만개 창출을 위해 투자증가율을 7%대로 끌어 올리는 데 주력키로 뜻을 모았다. 이승철 전경련 상무는 이날 회의가 끝난 뒤 가진 브리핑에서 “자동차 업계가 국내 투자의 가장 중요한 요인인 생산 원가를 낮추기 위해서는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분위기가 돼야 하며 정부가 이를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했다.”면서 “이에 대해 정세균 산업자원 장관이 ‘적극 공감한다. 공무원 임금인상도 가능한 한 최소화되도록 분위기를 잡는 데 노력하겠다. 이로 인해 인상 자제 분위기가 민간까지 확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산자부 김호원 산업정책국장도 “대중소기업 상생이나 노사 선진화 로드맵 등의 분위기속에서 임금인상 자제의 분위기가 확산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투자활성화를 위해 재계가 제시한 80건의 애로사항 중 시급한 과제부터 우선 해결키로 했다. 류길상 김경두기자 ukelvin@seoul.co.kr
  • [부고]

    ●윤영길(자영업)위홍(전 대우 이사)씨 모친상 유이준(대동산업 대표)강대승(카프로락탐 감사)조철(미국 거주)홍순용(신한회계법인 회계사)씨 빙모상 윤원균(카프로락탐)씨 조모상 2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5일 오전 8시 (02)3010-2237●조희숙(숙명여중 교사)정숙(서울대병원 응급간호팀장)문숙(분당서울대병원 물류팀장)운주(청주과학대 교수)선영(안산 와동중 교사)씨 부친상 김지수(전 한국보증보험 지점장)이기영(태화일렉트론 대표)김동기(산업기술시험원 안전인증센터장)김영철(유클릭 경영기획부장)정성욱(AIG생명보험 차장)씨 빙부상 23일 서울대병원, 발인 25일 오전 9시 (02)2072-2018●정지덕(사업)지철(인삼공사 생산관리부장)씨 모친상 함호철(농업)이상구(전 한국화약)전기래(농업)한봉희(인천계양우체국 영업과장)박명수(사업)김효식(한국전력 사원)씨 빙모상 22일 청주의료원, 발인 25일 오전 8시 (043)263-4723●김부원(제일경제신문 기자)씨 모친상 전정한(볼보건설기계코리아 과장)씨 빙모상 23일 의왕시 선병원, 발인 25일 오전 10시30분 (031)459-3073●권광택(자영업)정택(대덕전력 부장)씨 부친상 이만구(서초구청 건설교통국장)씨 빙부상 23일 서울의료원, 발인 25일 오전 6시 (02)3430-0397●추광호(전경련 기획조정실 과장)씨 빙모상 23일 보라매병원, 발인 25일 오전 6시 (02)831-2899●유수남(전 LG백화점 사장)씨 모친상 2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4일 오전 10시30분 (02)3010-2294●유해윤(전 강동구 통장협의회 회장)씨 모친상 병화(서울아산병원 홍보팀 전임)씨 조모상 장형임(서울아산병원 연구실)씨 시조모상 2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5일 오전 10시30분 (02)3010-2233●남궁련(전 한국일보 사장·전 대한조선공사 회장)씨 별세 욱강(오리엔탈코 사장)호(메트로신문사 사장)씨 부친상 22일 서울대병원, 발인 26일 오전 8시 (02)2072-2011●김광규(서인 대표)동민(국립의료원 진단방사선과 실장)원규(오브코스 대표)씨 부친상 23일 국립의료원, 발인 25일 오전 (02)2262-4812●권장호(전 경북 약·탁주협회장)씨 별세 태은(청산개발 대표)태원(두레조경 〃)현섭(양양정형외과 원장)씨 부친상 이강현(꽃다모아 대표)씨 빙부상 23일 경북 경주 동국대병원, 발인 25일 오전 7시30분 (054)776-9429●안성봉(한국은행 외화자금국 계량분석반장)씨 상배 21일 서울 강남성모병원, 발인 25일 오전 9시 (02)590-2560
  • 전경련 “위원회 활동 강화”

    전경련 “위원회 활동 강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위원회 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조건호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21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전경련 활동의 중심이었던 월례 회장단 회의를 격월제로 변경하는 대신 회장단 회의가 열리지 않는 달에는 위원장단 회의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 부회장은 “위원회 회의가 끝난 후 위원장이 브리핑을 하는 등 위원회 활동에 대한 대국민 홍보에도 역점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에는 현재 경제정책위원회, 금융조사위원회, 기업정책위원회, 환경위원회 등 19개 위원회가 활동 중이다. 조 부회장은 또 “최근 여당의 ‘경제통’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여당 의원들이 경제실정을 잘 모른다.’는 이야기가 오갔다.”면서 “여당 386의원들과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이들과 자주 모임을 갖겠다.”고 덧붙였다. 주요 현안별로 재계의 여론을 수렴하고 바람직한 정책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대외 활동을 적극 펼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대기업들이 경제 어려움을 협력업체에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에 협력업체도 상응해야 한다는 취지이지, 무조건 어려움을 떠넘기는 일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 부회장은 저조한 참석률과 특정 그룹 총수가 참여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온 회장단 회의에 대해 “참석률 자체가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매월 회장단이 도열해 기념사진이나 촬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 앞으로 이런 방식은 지양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강신호 회장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경제단체의 정치자금 제공 허용 검토에 대해 조 부회장은 “강 회장이 원론적인 언급을 한 것으로 생각하며, 전경련 차원에서 준비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희범 전 산자부장관의 한국무역협회 회장 추대를 계기로 불거진 관료 출신의 경제단체 ‘낙하산’ 인사에 대해서는 “경제 현안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행정 경험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조 부회장은 “다리 부상으로 치료중인 이건희 삼성 회장을 문병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요즘 기업 2題] 환율 떨어져 채산성 갈수록 악화

    “환율 하락에 따른 채산성 악화를 메워줄 방안 없나요.” 대기업들이 달러에 대한 원화 가치 하락을 감내하지 못해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원가절감 부담을 고스란히 협력업체에 전가한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어 냉가슴을 앓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최근 600대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환율하락에 따른 경영 효과에 대한 조사 결과 상당수의 기업들이 이미 채산성 악화 등의 타격을 입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평균 손익분기 환율이 982.8원은 돼야 하는데 지난 20일 현재 967.20원으로 손익분기점 아래로 내려갔다.응답 기업의 58.9%는 “달러당 970원 안팎을 유지할 경우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올해 경영계획을 세울 때 예상한 평균 환율을 980∼1020원으로 전망한 기업이 60%를 차지했다.전경련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환율부담을 협력업체에 전가하고 있다.”는 비난에 대해 “기업들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행동일 뿐 환율하락 부담을 협력업체에 모두 전가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아울러 정부에 대해선 자본유출 규제 완화와 외환시장 규모 확대 등 시장의 자생력 강화와 적극적인 외환시장 개입을 통한 환율변동 속도조절을 요구했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산그룹-류진 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산그룹-류진 회장家

    ‘풍산’하면 어떤 회사인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소비재를 만들지 않는 회사인 까닭이다. 하지만 풍산은 이미 생활속에 깊이 스며있다. 누구나 사용하는 동전에 무늬를 넣기 이전 상태인 소전(素錢)을 생산한다. 그래서 ‘돈을 만드는 회사’라고 하면 ‘들어봤다.’는 사람이 많다. 군대 갔다온 남자들은 ‘총알 만드는 회사’로 알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방위산업체라고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이런 것으로 풍산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반도체 칩에 전기를 공급하고 이를 지지하는 역할을 하는 리드프레임 등 기초소재를 생산하는 등 첨단기업으로 변신 중이다. 이 모든 것을 꿰뚫는 것은 구리 합금기술이다. ●한 손엔 돈, 다른 손에 총알을 2세 경영인 류진(48) 회장이 이끄는 풍산은 ‘동전의 왕국’으로 불린다. 지난 1970년 4월부터 한국조폐공사로부터 소전 생산업체로 지정된 풍산의 기술력은 세계적이다. 오는 2008년까지 호주에 1억달러어치의 소전을 공급하기로 최근 계약을 맺었다. 유럽연합(EU) 동전의 소전도 공급하고 있다. 풍산의 소전은 세계 시장의 5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73년 타이완 수출을 시작으로 세계 60여개국에서 30억여명이 풍산의 소전으로 만든 동전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생산했던 소전을 이어면 지구를 40바퀴 돌 수 있는 분량이다. 소전은 구리를 기본으로 한다. 기원전 6000년경부터 사용해왔던 케케묵은 소재다. 하지만 동에 니켈 등을 적당히 합금만 하면 되는 그렇고 그런 굴뚝산업이 아니다. 까다로운 제조기술이 요구되는 첨단산업이다.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지난 73년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방위산업에 진출했다. 소구경 총탄뿐만 아니라 포탄까지 국군이 쓰는 탄약 국산화를 시작했다. 이후 모든 탄약을 국산화했다. 수입대체 효과를 매우 높였다. 지능화와 정밀화 등을 통한 첨단 탄약 개발에도 적극적인 국내 대표적인 방위산업체로 성장했다. 창업자 류찬우(1923∼1999) 회장이 ‘방위산업의 대부’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풍산의 출발은 미미했다. 눈에 띄지도 않았다. 풍산은 지난 1968년 10월 창업주 류 회장이 일본에서 번 1000만달러로 출발한 신동(伸銅·구리가공산업)업체다. 창업주 류회장은 기업을 일으키지만 돈을 벌기보다도 당시 허약했던 국가 산업발전에 힘을 쏟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비철금속소재 가운데서도 구리를 골랐다. 현대문명에서 구리가 들어가지 않는 제품은 없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창업 다음해인 1969년 부평공장 준공과 함께 정부의 5대 핵심업체로 지정되면서 사업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73년 경북 안강공장을 준공하면서 방위산업을 통한 자주국방의 의지를 실현했다. 방위산업 진출에는 조선시대의 명재상인 그의 조상 서애 류성룡(1542∼1607)의 징비록(懲毖錄·국보 제132호)을 읽고 유비무한 정신에 감명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에는 온산신동공장을 세워 한국을 세계적인 신동산업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아울러 92년부터 미국 현지공장,2000년 12월 태국 현지법인을 가동하면서 풍산은 연산 46만 5000t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다국적 신동기업인 KM유로파 메탈에 이어 세계2위이다. 쉽게 설명하면 비철금속에서 풍산의 위상은 철강에서 포스코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첨단업종으로 변신중 구리가공산업이란 한 우물을 파던 풍산은 지난 79년 서울 퇴계로 극동빌딩에 세들어 사무실을 마련한 뒤 지금까지 본사로 사용하고 있다. 방위산업체인 까닭에 군관련 인맥 네트워크가 해외까지 탄탄하다. 풍산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지난 97년부터 2세 류진 회장 체제가 구축되면서 풍산은 기업변신을 꾀하고 있다. 류 회장은 벤처기업에 투자를 하는가 하면 첨단 통신사업 등에도 조금씩 발을 담그고 있다. 이문원 풍산 사장은 “정보기술(IT)과 자동차·가전 등 전기가 통하는 곳은 어디나 동 압연재가 필요하다.”며 주력인 신동산업을 통한 사업 다각화 가능성을 강조했다. 현재 풍산그룹의 계열사는 핵심기업인 ㈜풍산을 중심으로, 풍산마크로텍, 풍산산업 등 16개(해외법인 포함)에 이르고 있다. 특히 류 회장이 경영을 맡은 이후 일본, 미국, 상하이 등지에 법인을 설립했다. 풍산이 안고 있는 과제 중 하나는 점차 줄어드는 방위산업을 첨단산업에 어떻게 접목시켜 나가느냐 하는 점이다. 이런 고민의 중심에 선 류 회장은 해외시장 개척을 통해 타개하는 것과 신사업 진출을 통해 기업변신을 꾀하는 두 가지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핵심사업인 동, 스테인리스, 티타늄 분야에서 신기술, 신제품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 새로운 첨단소재산업 분야로 진출할 도모하고 있다. 또 방위산업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정밀 지능탄 개발을 통해 세계 최고의 탄약 전문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이와 함께 항공기와 유도무기에 필수적인 가속도계, 속도 및 고도측정센서 등 정밀 센서류와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등 정밀산업분야에서도 영역을 확대하는 등 첨단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류 창업주의 4남매 가운데 막내인 류 회장은 82년에 풍산에 입사한 지 15년 만인 97년 풍산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지난 2000년 4월 회장에 올랐다. 일본에서 아메리칸 고교를 거쳐 서울대 영문학과를 마쳤다. 미국 다트머스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수료한 류 회장의 영어 구사력은 재계의 누구 못지않게 훌륭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동전의 제왕’ 류 회장은 미국통 류 회장은 ‘미국통’이다. 김대중 정권 이후 대통령의 방미에 단골로 수행하는 경제인 가운데 한사람이다. 특히 지난 2003년 초 출범한 노무현 정부의 대미외교와 관련해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그는 그해 4월 W 부시 대통령의 부친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국내에 초청하는 일을 맡았다.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의 방한은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의 전초전 성격이 강했기에 큰 관심을 모았다. 공식적으로 부시 전 대통령의 방한은 전경련 초청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경련 부회장인 류 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 회장은 7월28일 전경련 주최로 열린 한국전 참전용사 환송 만찬의 사회를 보는 등 단순히 경제인 차원을 넘어서 민간외교 분야에서 큰 활약을 보였다. 앞서 지난 2002년 12월 국내에서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고로 인해 촛불시위가 연일 이어질 당시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과 전화를 한 것도 류 회장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후문도 있다. 이런데서 보듯 류 회장은 부시 공화당 행정부 인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지난 92년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풍산의 미국법인 PMX인더스트리의 공장 준공식에서 바버라 부시 여사가 기념 테이프를 자르면서 직접적인 인연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풍산이 방위산업체라 일찍부터 대미관계에 공을 들였고, 미국의 거대 방위산업체 인맥은 물론 정계 인맥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류 회장은 일년 중 반 이상은 미국 등 해외에 머물며 사업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활약에도 국내에는 풍산이나 류 회장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류 회장이 매우 겸소한 성품이라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질 기회가 없었던 것. 유교적 가풍이 심한 집안에서 차남으로 가업을 이어받은 부담도 한 몫하고 있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족보상 명문가의 후손인 풍산의 류진가는 재계의 혼맥에서도 확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풍산 류씨 서애종파의 류 회장은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의 13세손이다. 바로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류씨 가문의 후예다. 류 창업주는 회사 이름을 풍산 류씨인 자신의 본관을 따서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류 창업주는 병산교육재단을 세워 고향인 풍산에 풍산중·고등학교를 세웠다. 이 재단에 서애가 후학을 양성했던 병산서원과 그 일대 땅을 기증하기도 했다. 류 회장이 지난 99년 11월 숙환으로 별세한 뒤 풍산그룹의 경영권은 차남 류진 회장으로 이어졌다. 류 회장은 풍산그룹 계열의 ㈜풍산과 풍산마이크로텍 등 주요 계열사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풍산의 공익법인인 병산교육재단과 93년 설립된 학록장학재단(학록은 류 창업자의 호)와 서애기념사업회의 이사장으로 명실상부하게 풍산가의 대표자 역할을 하고있다. ●대통령가에 닿았던 화려한 혼맥 류 창업주는 부인 배준영(79) 여사와의 사이에서 2남2녀를 두었다. 배씨는 한국여자테니스연맹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 1969년 풍산의 첫 공장인 부평공장을 지을 당시 배 여사는 동대문시장에서 장을 봐 부평 공장의 종업원들의 음식 뒷바라지를 할 정도로 창업고생이 많았던 것으로 전한다. 이문원 사장은 “모든 직원들을 따뜻하게 감싸줄 정도로 온화한 성품”이라고 치켜세웠다. 장남이자 류 회장의 형 류청(57)씨는 풍산의 미국 현지법인 PMX인더스트리 사장을 지냈다. 지난 198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딸인 박근령(53·당시 이름 박서영)육영재단 이사장과 결혼해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대통령 딸과의 결혼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은 1년도 못돼 파경을 맞아 더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류청씨는 미국을 오가며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배 여사는 여전히 박씨를 “큰 며느리”로 부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류 회장의 큰 누이인 류지(54)씨는 서울 강남에서, 작은 누이 류미(52)씨는 미국 LA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류진 회장은 노신영(77·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전 국무총리의 딸과 혼인했다. 류 회장의 부인인 노혜경(47)씨는 노 전 총리의 딸이다. 노씨는 미국 스탠포퍼드 법대 출신에 두 개의 석사학위와 한 개의 박사학위를 갖고 있으며, 김수환 추기경의 주례로 서울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이들 부부는 성왜(17)양과 성곤(14)군을 두고 있다. 이들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풍산의 류진가는 노 전 총리와의 통혼을 통해서 재계 혼맥의 중심부에 진입하게 됐다. 노 전 총리의 장남 노경수(53)서울대 교수는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작고)의 딸 숙영(47)씨와 결혼했다. 노 교수는 정몽규(44)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매형이 된다. 류 회장은 노신영가를 통해 현대가와 순환혼맥을 이룬다. 노 전 총리의 둘째아들 노철수(51)씨는 P.Wian&Associate 대표이사 사장. 그의 부인은 홍진기 전 내무장관의 막내 딸인 홍라영(46)씨로 삼성그룹 비서실을 거쳐 레오버넷 코리아 사장을 지내고 삼성리움미술관 부관장이다. 이건희 삼성회장의 부인 홍라희의 동생이기도 하다. 이로써 풍산의 류진가는 이건희 삼성 회장,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과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노 전 총리 셋째아들 노동수(48)는 고려서적 사장을 맡고 있다. chuli@seoul.co.kr ■ ’동전 왕국’ 일군 숨은 일꾼들 신동(구리가공산업)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 오늘의 풍산은 창업주 류찬우 회장이나 2세 경영인 류진 회장 못지않게 숨은 공로자들이 많다. 풍산은 대표적으로 정훈보(68) 전 사장, 류민하(78) 전 부사장, 이진우(72) 전 부사장, 김사철(70) 전 감사, 류인한(79) 전 부사장 등을 꼽고 있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농협 중앙회 금융계획과장을 지냈던 정 전사장은 지난 78년 풍산의 전신인 풍산금속공업에 이사로 입사했다. 타고난 기획통으로 사세 확장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 특히 지난 80년대 초 중동건설 붐이 일어났을 당시 바닷물을 담수화하는 플랜트를 수출할 때 백동관을 자체 기술로 개발, 공급함으로써 회사가 한 단계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97년 풍산 부회장을 거쳐 99년 한국철도차량 사장을 지냈다.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거쳐 농협중앙회 자금부장을 지낸 류민하 전 부사장은 지난 73년 풍산금속공업의 상무로 입사, 류 창업주와 함께 초창기의 회사 기틀을 다졌다. 회사가 해마다 2배씩 성장을 거듭할 70∼80년대 자금과 인사 등 회사의 안살림을 두루 맡았다.80년 부사장을 거쳐 90년 감사를 지냈다. 풍산의 후배들은 학자풍인 그를 ‘선비형 매니저’로 기억하고 있다. 역시 고려대를 거쳐 농협 중앙회 출신인 이진우 전 부사장은 지난 75년 회사에 합류했다. 그는 80년대 초 회사의 경영정보관리시스템(MIS)을 도입, 당시로서는 국내의 어느 회사보다 빨리 선진적인 경영관리시스템을 받아들였다. 특히 90년 노사대립이 한창일 때 헌신적인 대화를 통해 노사관계 증진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후 정부로부터 노사협력우수기업으로 인정도 받았다. 지난 97년 중앙노동위원회 사용자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서울대 상대 출신의 김사철 전 감사의 경우 뛰어난 분석력과 판단력을 가진 타고난 최고재무관리자(CFO)이다. 세무사·공인회계사·공인감정사 자격을 갖춘 그는 재무부·국세청·총무처 등 정부의 여러 부처를 거쳐 76년 풍산금속에 이사로 들어왔다. 재무업무의 기본 프로세스를 조성했으며 시설·자재·감사 등에서 회사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정부로부터 녹조근정훈장도 수상했다. 한양대 공대 출신의 류인한 부사장은 세계 최상급의 품질과 능력을 자랑하는 동제품을 만들기 위해 기계설비와 생산프로세스의 토대를 구축한 산증인으로 전통적인 엔지니어 출신의 임원이다. 지난 73년 부평공장 공무부장으로 입사, 동제품 생산기술과 공정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78년 온산공장 건설본부장으로 온산공장 건설의 총책임을 맡았으며 온산공장장을 지냈다. 풍산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토대가 됐다. 88년 온산공장 제2공장을 준공해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연간 25만t 생산능력의 신동공장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온산공장 건설경험을 바탕으로 90년대 이후 풍산의 세계화 전략에 따라 건설한 미국 현지법인 PMX사와 태국 공장건설에도 공헌했다. chuli@seoul.co.kr ■ “선조에 누 되는 일 하지 마라” 풍산의 창업주 류찬우 회장은 조선시대 명재상으로 임진왜란을 넘긴 서애 류성룡의 12세손이다.“선조에 누가 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게 류 창업주의 확고한 인생관이다. 이런 정신이 2세 경영인 류진 회장에게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지난 68년 순수민족자본에 의해 창업, 세계적인 신동기업으로 발전한 풍산은 전통 문화의 계승에 남다르다. 풍산이 유비무환과 자주국방이라는 방위산업에 참여하게 된 동기이다. 서애의 가르침이자 영향이다. 풍산의 기틀이 잡힌 지난 76년 12월 류 창업주를 중심으로 서애의 후손들과 학자들이 ‘서애선생기념사업회’를 설립했다. 서애가 징비록에서 남긴 유비무환과 자주국방의 뜻을 계승하고 역사왜곡을 바로 잡는다는 뜻에서 기념사업회를 세웠다. 또 류 창업자는 지난 80년 4월 사재를 출연, 육군사관학교에 서애관이라는 체육관을 기증했다. 지난 일을 되살려 앞날을 대비하자는 서애의 가르침을 호국 간성에게 일깨우고자 건립된 상무의 도장이다. 지난 91년 5월 서애의 정치·경제사상과 애국애민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서애전서 전4권을 출간했다. 일본 도쿄대 종합도서관, 미국 하버드대 동아시아연구소, 러시아 과학대 동방연구소, 중국 베이징대 등 30여개국 50여개 대학과 연구소 등에 흩어져 있었다. 약 10년 동안의 편찬사업 끝에 서애의 저술과 관계자료를 수집, 망라한 것으로 그동안 흩어져 있던 자료를 규합해 완성한데 의미가 깊다. 이로부터 10년 뒤인 2001년 7월 서애전서 국역본을 발행, 일반인들도 쉽게 볼 수 있도록 새롭게 했다. 특히 지난 2003년 임진왜란의 극복 경험과 교훈을 적은 ‘징비록(The Book of Corrections)’ 영역본을 출간, 세계화시켰다. 호남대 최병현 교수가 6년에 걸쳐 번역한 것으로, 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 동아시아 연구소에서 출간됐다. 기념사업회는 특히 내년 서애 서거 4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또 범유림기념사업회에서 당파를 초월해 서애 서거 400주년 기념행사를 계획중이다.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보수·진보 ‘교과서 충돌’

    보수·진보 ‘교과서 충돌’

    진보진영 학계가 중·고교 교과서 제작에 나서기로 한 것은 ‘현행 교과서는 편향적’이라는 보수진영측 공세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의 ‘교과서포럼’에 일부 정치권이 호응하고 경제계가 정부를 등에 업고 교과서를 입맛에 맞게 고치려는 움직임에 교과서 개선안 제출 혹은 대안 교과서라는 대응 카드를 꺼낸 것이다. ●교과서를 탈환하라 지난해 1월 출범한 ‘교과서포럼’은 창립총회에서 고등학교용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6종을 분석해 ▲지나친 민족주의 ▲여전한 수정주의 역사관 ▲북한을 이해하자는 내재적 접근법 등이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자학사관’,‘친북좌파사관’에 바탕을 뒀다는 것이다. 이들은 4차례 심포지엄을 열고 ‘한국 현대사의 허구와 진실’,‘경제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 등의 책도 펴냈다. 이어 “반기업 정서를 부채질한다.”는 재계의 불만을 대변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나섰다. 재정경제부는 지난해 10월 114가지 초·중·고등학교 경제교과서를 분석, 무려 446곳에 이르는 대목을 고쳐야 한다는 결과를 내놨다. 수긍할 만한 지적도 있었지만 시장경제에 반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런데 “분석 용역을 맡은 학자들의 개인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며 불쾌해하던 교육인적자원부마저 입장을 바꿨다. 경제5단체 의견을 반영하는 교과서를 만들겠다며 전경련과 ‘경제교육 내실화를 위한 공동협약’을 체결했다. ●충실한 ‘대안교과서’를 선보이겠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진보진영의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 이재승 국민대 교수는 “어쨌든 사회를 다양하게 본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어느 학단협의 학자는 “사실 교과서포럼이니 뭐니 해도 실체가 모호해 뜨악했는데 정부가 나서는 바람에 대응해야 한다는 학자들이 늘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문제는 진보진영이 어떤 내용을 교과서에 담고, 이들의 교과서를 일선 학교가 채택할 것인지이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현행 경제교과서에 대해 “적은 분량에 한계효용이론 같은 낡은 신고전학파 얘기만 밀어넣다 보니 지나치게 어렵다.”면서 “다양한 학파의 다양한 시각을 담되 분량이 늘더라도 쉽게 풀어써야 한다.”고 말했다. 홍순민(한국역사연구회장) 명지대 교수 역시 기본기에 충실한 역사교과서를 강조하면서 “교과서포럼에 대응한다기보다 정말 아이들에게 어떤 교과서를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장기적인 고민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2010년 검정교과서 체제 준비 현행 교과서는 국정과 검정이 혼재해 있는 데 교육부는 2010년 국정을 전면 폐지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중학에선 사회, 고교에선 국사의 근현대사와 사회과목이 검정 체제로 돼 있어 서둘러 교과서를 제작한다면 일선 학교에서 내년 중에 진보진영의 교과서가 선보일 수도 있다. 교육부가 올해 안에 국정폐지에 따른 검정교과서의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한 만큼, 진보진영의 교과서 제작 속도는 빨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과 관련해 보수진영도 맞대응에 나설 것으로 예상돼 진보·보수진영의 대립에 교과서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전망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진보도 교과서 만든다

    진보진영이 중·고등학생용 교과서 제작에 착수할 움직임이어서 이르면 내년 중에 역사, 경제과목 등에서 독자적인 검정 교과서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뉴라이트 진영 학자들이 지난해 만든 교과서포럼이 기존 역사·경제교과서를 문제삼은 데 이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재정경제부와 교육부 같은 정부기관을 앞세워 새 경제교과서를 제작하겠다는 데 따른 대응이어서 교과서에서도 보수·진보진영간 충돌이 본격화할 조짐이다. 진보진영 20여개 학술단체가 모여 만든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는 지난 1월 운영위원회를 열고 현존하는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분석하고 개선안을 내거나 새 교과서를 내기로 결정했다고 17일 밝혔다. 학단협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재승 국민대 교수는 “학단협은 올해 주요 사업으로 교과서문제를 다루기로 하고 일단 관련 학회를 중심으로 관련 과목 교과서의 실태를 파악하는 데 착수키로 했다.”면서 “구체적인 방향은 다음달 4일 열리는 운영위원회 정기모임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학단협 차원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교수노조’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등에도 공동작업 제안서를 보내는 것도 4일의 운영위 회의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단협은 가칭 ‘대안교과서편찬특별위원회’를 꾸려 그 아래 사회(정치·경제 등)·국사·도덕·윤리 교과목 등을 다루는 ‘개별교과소위원회’를 두고, 이 소위는 소속된 관련 학회가 담당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학단협은 이미 사회과목은 한국산업사회학회, 경제는 한국사회경제학회 등 학회별로 담당 과목을 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승욱 중앙대 교수는 “일단 기존 국내 교과서의 내용과 편제는 물론, 외국의 교과서까지 분석한 뒤 보충하고 고칠 내용이 있는지 판단하는 작업이 먼저 이뤄질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과목별 관련 학회에 따라서는 작업 속도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전 대통령 평가문제 등 첨예한 사안이 몰려있는 근현대사, 경제과목 쪽에서 가장 먼저 대안교과서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관광·레저 기업도시 SW개발 주력해야”

    박병원 재정경제부1차관은 16일 “관광·레저 기업도시는 서비스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되는 것”이라며 “인프라나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박 차관은 이날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전경련이 주최한 제2회 관광·레저도시 정책포럼에 참석,“관광·레저가 과거처럼 단순한 ‘사이트시잉’(sightseeing)에 그쳐서는 안된다.”며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징과 분위기를 창출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단순 인프라와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건물은 2∼3년이면 짓지만 똑같은 시설을 만들어서는 해외 관광·레저산업과 경쟁이 될 수 없으며 고객 유인도 어렵다.”면서 “사람을 끌어들이려면 런던의 공연산업처럼 특징적인 것을 제공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중국전문가로 ‘제2인생’ 홍인기 전 증권거래소 이사장

    중국전문가로 ‘제2인생’ 홍인기 전 증권거래소 이사장

    “한국기업들은 중국의 ‘제2 골드러시’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중국 은행시장에서는 서구 은행들에 선수를 놓쳤지만 개방이 본격화된 증권시장에서는 기회를 선점해야 합니다.” 중국 전문가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홍인기(68) 전 증권거래소 이사장은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에 대한 조언으로 말문을 열었다. 홍 전 이사장의 설명은 이러했다. 중국은 2006년 말 은행시장의 완전개방을 앞두고 2003년부터 은행개혁을 단행했다. 미국과 유럽의 유수 은행들에 중국 은행들의 지분 일부 인수를 허용했다. 규제는 심했지만 20개 은행이 200억달러를 투자했고, 이후 해당 은행의 주가가 50∼300%나 치솟아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그뿐 아니라 중국이라는 엄청난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은행시장 개방이 제1 골드러시라면 올해부터 본격화될 증권시장 개혁이 제2의 골드러시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중국은 앞으로 2∼3년안에 1370개 상장기업들의 비유통주식을 유통주로 전환할 예정”이며 “지난 2월1일부터 특정 자격을 갖춘 외국기업들에 이들 상장기업의 주식을 최대 10% 살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급변하는 중국 상황을 설명했다. 단 3년 이상 보유라는 단서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대한 새로운 중·장기 투자전략을 세울 때는 지금이 최적기이다.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 기업의 지분을 인수, 전략적인 제휴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은행처럼 한국기업들이 중국시장에서 소외당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글쓰기는 뒤처지지 않기 위한 노력” 홍 전 이사장은 2월 초 서울 동작구 상도동 중앙대 후문 근처 오피스텔에 마련한 사무실로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한다. 출근하면 일단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신문들부터 읽기 시작한다. 국내 신문들은 물론, 파이낸셜 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아시아판, 해럴드 트리뷴, 차이나데일리,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어지간한 영자신문과 일본경제신문을 꼼꼼히 읽어나간다. 국내외 연구소들에서 내는 보고서도 챙긴다. 증권거래소 이사장에서 물러난 뒤 6년째 이같은 생활을 해 오고 있지만 힘들다거나 귀찮게 느낀 적은 한번도 없단다. 신문을 읽다 중국 관련 기사가 있으면 스크랩을 해두는 것도 새로 생긴 버릇이다. 홍 전 이사장은 요즘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통한다. 거래소 이사장(1993∼99년) 시절부터 중국 증권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중국 알기’에 뛰어든 것은 현직에서 물러난 뒤부터다. “연구라기보다 자료를 수집해서 분석하는 수준”이라고 겸손해했다. 하지만 2003년부터 중국 관련서를 매년 1권 꼴로 지금까지 4권이나 냈으니까 그의 말처럼 자료수집 수준은 분명 아니다. 지난 13일 네번째 중국 관련 책인 ‘중국의 금융시장론(박영사)’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앞서 지난 2000년과 2001년에는 일본 금융관련 책 2권도 펴냈다. 집필 활동을 계속할 것이냐는 질문에 (중국내 상황이 변하는 한) “책은 계속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자도 아닌 분이 이렇게 왕성하게 전문서를 내면 주위에서 ‘눈총’을 주지 않느냐고 묻자 “글쎄”라며 웃음으로 대신했다.“글쓰기는 시간을 보내고 뒤처지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란다.“이 나이에 중국어를 배우기가 쉽지 않아 중국어로 된 자료는 주위의 도움을 받는다.”며 아쉬워했다. 완벽함에 대한 욕심이 묻어났다. 홍 전 이사장은 이렇게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젊은 세대들에게 전수하는데서 보람을 느낀다.6년째 서강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 경영대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맡고 있는 그는 “젊은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저절로 젊어지는 것 같다.”며 파안대소했다. ●“책쓰기와 노래는 영원한 애인” 책을 쓰고 연구하는 것 이외에 다른 ‘소일거리’는 없는지 궁금했다.“별다른 취미가 없다.”는 홍 전 이사장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6시까지 장로로 있는 소망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 다음 헬스클럽에서 아침 운동을 한 뒤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개인사무실로 출근한다. 워낙 일찍 하루를 시작하다 보니 밤 10시면 잠자리에 든다. 자타가 인정하는 수준급의 노래 실력도 요즘은 별로 발휘할 기회가 없다.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CD 3장을 냈을 만큼 성악에 대한 홍 전 이사장의 애정은 각별하다. 저술 활동과 성악 사이엔 비슷한 점이 있단다.“둘 다 혼자하는 작업이고, 책임도 전적으로 혼자 진다는 점이 같다. 그러다보니 고독하고,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60대여, 세상을 밝게 보자” 홍 전 이사장은 고령화 문제가 불거지면서 많은 ‘젊은 노인’들이 ‘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고민인 이들의 심정을 공감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흔히 우리를 ‘지공세대’라고 합디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만 65세가 넘은 사람들인데 우리는 공부하고 일하는 것 이외에 달리 취미나 재주가 없는 세대”라면서 “나도 비슷하지만 우리 세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모든 걸 회색으로만 보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보상이 있든 없든 바쁘게 삽시다. 자기를 독려하면 뭔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못해봤던 일들을 해보고, 감정을 갖도록 합시다.”여전히 쩌렁쩌렁한 목소리에는 홍 전 이사장 특유의 낙관론이 배어있었다.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출범 1주년 행사에 갔다 옛 식구들과 함께 한 저녁자리에서 노래 ‘한자락’을 뽑았다. 오랜만에 스트레스를 풀었다며 웃는 홍 전 이사장의 얼굴에서 나이보다 젊게 사는 그만의 ‘비결’이 엿보였다. 글 김균미 사진 이호정기자 kmkim@seoul.co.kr ■ 홍인기 전 이사장은 ▲1938년 서울 출생 ▲1956년 서울고 졸업 ▲1960년 서울대 법대(행정학) 졸업 ▲1960∼1973년 재무부 이재2과장, 증권보험국장 ▲1977년 동양증권 사장 ▲1978년 대우조선 사장 ▲1988년 동서증권 사장 ▲1991년 한국산업증권 사장 ▲1993∼1999년 한국증권거래소 이사장 ▲1999∼2005년 한국증권연구원 고문 ▲현재 서강대·중앙대 겸임교수, 전경련 차이나포럼 경제산업분과 위원장
  • 경총 연찬회서 본 한국경제의 갈길

    환율불안, 고유가 등으로 인해 그 어느 해보다 경제전망이 불투명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8일 서울 조선호텔에 가진 ‘제29회 전국 최고경영자 연찬회’에서 한덕수 경제부총리,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볼프강 클레멘트 전 독일 경제노동부 장관이 제시한 국가·기업·노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소개한다. ■ 클레멘트 獨 前경제장관 “獨, 건보료등 고용비용 낮추기 나서” 한국이 분단으로 인한 긴장과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해 나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독일의 ‘상호접근을 통한 변혁 정책’을 상기하게 된다. 독일도 이 과정에서 많은 참을성을 가져야 했지만 결국 성공했다. 독일은 15년 전에 통일을 이뤘지만 옛 동독지역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재건을 위해 옛 동독에 투자하는 비용은 연간 국민총생산(GDP)의 4%인 800억유로에 달한다. 이런 배경에서 독일은 매우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올해도 1.5% 성장에 그칠 전망이다. 때문에 ‘어젠다 2010’ 개혁프로그램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데 폭넓은 합의가 이뤄졌고, 어젠다 2010을 통해 국민과 기업의 세부담이 대폭 경감됐고 건강보험과 연금보험에서 가입자의 자기부담률을 높여 임금외 비용의 상승을 막았다.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근로시간이 다시 유연하게 조정됨으로써 주당 근로시간이 최고 42시간까지 늘어났다. 독일정부의 새 과제는 2008년부터 기업들에 최대 30%의 과세기준을 도입하고 고용보험료 및 건강보험금을 인하해 임금외 비용을 총 급여의 40% 미만으로 낮추는 것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과 기업에게 신뢰할 수 있으면서도 경제적이고 또 친환경적인 에너지 공급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국내총생산 중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는 것도 더없이 중요하다. 중국은 매년 연구개발비를 20%씩 늘리고 있는 반면 EU회원국들의 연구개발투자 비중은 국내총생산의 0.2%에 불과하다. ■ 한덕수 부총리 “국민연금 적정부담·급여체제로” 최근 세제개편 방향과 관련해 양극화 해소와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들어가는 비용을 국민과 기업에 넘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과거의 정부주도 개발연대 이후 유지돼온 재정지출 구조를 먼저 조정할 계획이다. 세입에서도 여러가지 조세감면 제도를 재검토하고 음성 탈루소득에 대한 세정을 강화하며 현행 조세체계 내에서 세목을 신설하거나 세율을 올리지 않고도 미래의 재정소요를 충당할 수 있는 방안을 금년 중 마련하겠다.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서는 투자가 활성화돼야 하는데, 정부는 올해 6.5%의 투자 증가를 예측하고 있으나 두 자릿수 이상을 기록했던 과거 성장기에 비해서는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투자부진이 문제인데,3월과 5월에 성장 가능성이 높은 혁신형 중소기업을 중점 지원하는 내용의 단계적인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교육의 경우 공영형 혁신학교 제도를 도입하고 자립형 사립고의 시범운영을 확대하고 의료 역시 영리법인의 필요성과 보충형 민간건강보험의 가능성을 검토하는 등 교육·의료·보육 등 사회서비스업의 성장동력화를 촉진할 계획이다. 국민연금은 현재 ‘저부담·고급여’ 체제를 ‘적정부담·적정급여’ 체제로 바꿔나갈 것이다. 경제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이 필요하지만 시장친화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채택할 방침이다. ■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기업 사회적 책임·윤리경영 해야”포천이 존경받는 기업을 선정할 때 빠뜨리지 않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윤리경영을 하면 종업원들의 존경심과 충성심이 강해진다. 소비자들도 윤리경영으로 이미지가 좋은 기업의 제품을 선호한다. 사회적 책임, 윤리경영은 또 기업의 이익과도 연관이 있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 조사 결과 사회적 책임을 다한 기업의 주주이익이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우리나라도 전경련 조사결과 윤리헌장을 가진 기업의 1999∼2002년 주가상승률이 46%인 반면 윤리헌장이 없는 기업의 주가상승률은 22%에 그쳤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우리 사회는 가끔 너무 지나치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할 때가 있다. 과거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데도 학교에 거금을 기부하는 기업을 본 적이 있다.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금방 부도가 났다. 유럽이나 미국·일본기업과 우리기업의 사회공헌도를 비교하는데, 미국이나 영국은 개인주의 영향으로 기업보다 개인 기부가 많고 유럽은 과도한 조세부담으로 기업이나 개인보다 국가가 책임지는 부분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 대기업들의 사회공헌비는 경상이익의 3% 수준이다. 요즘 재벌에 대한 비판은 지배구조문제, 분식회계, 협력업체 관계 등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반기업 정서에 따른 비판 측면도 있다. 대선자금 수사 때 나타났듯이 윤리경영은 기업에만 강조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정리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태광그룹-故 이임용 창업주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태광그룹-故 이임용 창업주家

    태광그룹은 겉의 화려함보다 내실을 추구한다. 재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사옥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서울 중구 장충동 옛 동북고등학교 교사(校舍)를 30년여년 동안 그룹 사옥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타 재벌과 달리 초고층 호화 사옥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재계 서열 30위권이면 서울 광화문 한복판이나 강남에 번듯한 빌딩을 사옥으로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룹 관계자는 “6층짜리 학교 건물이지만 아직 쓸 만하다.”고 말한다. 겉보다 속을 중시하는 태광의 사풍이 여실히 읽혀진다. 이같은 경영철학은 국내 재벌 가운데 재무구조가 가장 탄탄한 그룹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이는 창업주인 고(故) 이임용 회장 때부터 관통하는 ‘내실경영’이 면면히 이어진 결과다. ●대쪽 같은 선대 회장의 결혼과 창업, 그리고 성장 창업주인 고 이 회장은 지난 1921년 경북 영일군에서 중농이었던 부친 이우식씨와 모친 정막랑씨 사이의 3남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이 창업주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간조(簡井)실업학교를 졸업한다. 그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 등으로 일본의 정세가 혼란스러워지자 이듬 해인 42년 귀국길에 오른다. 이후 부친의 권유로 당시 22세 청년이던 그는 동네에 사는 이선애씨와 혼례를 올렸다. 신부 이씨는 이 창업주의 부친과 친분이 두터웠던 한동네 유지인 이송산씨의 맏딸이다. 민주당 총재를 지낸 이기택씨와 ‘창업 동지’ 이기화(태광그룹 회장까지 지냄)씨는 이씨의 남동생이다. 이기화씨는 부산고·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한 뒤 이 창업주와 오늘의 태광그룹을 일궜다. 이 창업주는 야당 거물이던 이기택씨와 처남매부지간이란 이유로 군사정권 시절 여러차례 세무조사를 받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처남이 유명한 정치인이었던 게 이 창업주에게는 결코 득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는 “기업은 절대 정치와 연결돼선 안 된다.”며 사업 외에는 한눈을 팔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찍히면 죽던 서슬퍼런 군사정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정경 분리를 평생의 신조로 삼았기 때문이다. 베테랑 세무조사 요원들을 투입, 몇 날 며칠을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 기업사에 전례없는 일이다. 이씨와 중매 결혼한 이 창업주는 공직(면사무소) 생활을 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그러던 그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왔다. 바로 6·25전쟁이다. 1951년 공직을 접은 이 창업주는 전쟁 이듬해인 1954년 부산 문현동에 모직 공장을 차리고 태광산업사를 설립한다. 이 회사가 바로 태광그룹의 모체다. 이후 1961년 전 삼호그룹 조봉구 회장과 동업을 시작했으나 동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 창업주는 조 회장과 결별한 뒤 부산 가야동에 새로운 공장을 신설하며 태광산업사를 주식회사로 출범시킨다. 초기 태광은 이 창업주와 이선애씨가 함께 일궈냈다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이선애씨가 부산에서 소규모 직물공장에 손을 댔고 기업이 커지면서 이 창업주는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기업경영에 합류했다. 이후 태광은 섬유를 기반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 개발과 수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아크릴을 생산하던 태광은 눈부신 호황을 누렸다. 당시 아크릴은 양모 대체품으로 수요가 많았고 경쟁업체가 적어 태광의 고속 질주를 견인했다. 이 창업주는 스판덱스·나일론 등으로 품목을 다양화했다. 섬유 호황기인 1970년대까지 내놓은 제품마다 시장의 돌풍을 일으켜 국내 최대의 섬유업체로 성장했다. 태광은 이 시기에 동양합섬, 고려상호신용금고, 흥국생명, 대한화섬, 천일사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 나갔다. 화섬·석유화학에 금융이 붙으면서 태광은 본격적인 성장과 함께 그룹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도약기를 맞은 셈이다. ●휴일에도 은행 이자는 큰다 태광그룹은 은행돈을 거의 안 쓰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타계한 이 창업주의 근검절약과 소탈함은 재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타계하기 전까지 이 창업주가 살던 서울 장충동 2층 양옥집은 지금도 부인 이선애(78)씨가 지키고 있다. 이 집에는 30∼40년 된 옛 가구들이 그대로 있다. 회사 관계자는 “현대 정주영 회장에 버금갈 정도로 검소했다.”고 이 창업주를 회고한다. 그는 해외이든 국내이든 출장길에는 새로 지은 고급 호텔을 이용하는 법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십년 동안 단골로 다닌 낡은 호텔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점심도 설렁탕 한 그릇으로 후다닥 끝낼 정도로 무척 소탈했다. 이 창업주는 “은행돈을 빌리면 토·일요일 등 은행이 쉬는 동안에도 이자는 불어난다.”며 무차입 경영을 추구했다. 돈을 빌려 문어발식으로 확장하지도 않았다. 번 만큼 투자한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매출 규모 1조 3000억원인 모기업 태광산업의 부채 비율이 거의 제로인 것도 이같은 경영철학에서 비롯됐다. 절약 경영과 남의 돈을 빌려 쓰지 않고 수익만큼 투자하는 실속경영은 그룹을 더욱 튼튼하고 알차게 만들었다. 인수한 부실기업도 얼마 지나지 않아 건실한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창업주는 또 외부에서 전문경영인을 영입하지 않고 공채 출신을 키워 경영진으로 기용했다. 기획력과 업무 추진력을 인정받은 그의 처남 이기화씨는 이 창업주의 사후 태광그룹 회장에까지 올랐다. 또 공채 출신인 류석기·강석명·최운형씨 등이 중용됐다. 그의 이런 원칙적이고 대쪽 같은 성품은 자녀들의 혼사로도 이어진다. ●화려한 혼맥…‘연애결혼은 없다´ 이 창업주는 생전에 모두 6명의 자녀를 뒀다. 그러나 그는 자녀들의 연애결혼을 절대 허용치 않았다. 그는 평소 사대부가의 유교적인 면을 강조해와 전통 관습을 무척 중시했다. 재벌가의 혼사가 연애결혼보다 중매에 무게를 두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3남3녀를 하나같이 중매결혼시켰다는 것은 가풍을 짐작케 한다. 이 창업주는 집안 어른이나 친지들이 지체 있는 가문의 훌륭한 배우자를 찾아내 중매를 넣어 혼사를 성사시키는 방식으로 자녀들의 혼사를 치러왔다. 이처럼 중매 일변도로 자녀 혼사를 치른 것은 중매야말로 좋은 가문의 좋은 배우자를 폭넓게 고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태광그룹 2세들의 혼맥은 서민의 가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울 정도로 격이 높고 화려하다. 태광의 사돈가가 사람들은 당시에 내로라 하는 정·관·재계의 유력 인사다. 하지만 이 창업주는 자녀들 혼사로 정·관·재계의 거물들과 사돈이 되었지만 이들을 경영에 끌어들이는 법은 결코 없었다. 지금도 모기업인 태광산업의 사장은 태광 신입사원 출신인 이화동(62)씨다. 이 창업주는 이선애씨와의 사이에 식진(사망)·영진(사망)·호진(44) 3형제와 경훈(52)·재훈(50)·봉훈(48) 세 자매를 뒀다. 이 창업주의 개혼(開婚)인 식진씨의 혼사는 비교적 평범한 집안과 이뤄졌다. 그러나 이후로는 모두 유력 인사와 사돈을 맺는다. 이 창업주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태광산업 영업과장으로 있던 장남 식진씨를 1975년 개인사업을 하던 진재홍씨의 맏딸 임순(54)씨와 결혼시켰다. 식진씨는 태광산업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식진씨의 장인 진씨는 면방업체인 경방에서 일하다 독립했다.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공대 동창회장을 맡기도 했다. 식진씨 부부는 정아·성아·원준 등 1남2녀를 뒀다. 장녀 정아(31)씨는 결혼했다. 연세대 상대를 나온 차남 영진씨는 어머니 이선애씨 친구의 중매로 장상준(전 동국제강 회장)가의 4남2녀 중 막내딸인 옥빈(54)씨와 1976년 결혼했다. 태광산업에 입사한 뒤 계열사인 대우파일, 흥국생명, 고려상호신용금고 등에서 중역으로 활동했다. 이들 사이에는 성준·성은 남매가 있다. 현재 그룹 회장을 맡고 있는 호진씨의 부인 신유나(42)씨는 롯데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신선호(71·일본 산사스식품 회장)씨의 맏딸이다. 호진씨는 대원고·서울대 경제학과(81학번)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코넬대 경영학석사(MBA), 뉴욕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슬하에 현준·현나 남매가 있다. 이 창업주의 세 딸은 모두 재원으로 꼽힌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세자매 모두 이화여대 선후배이라는 점이다. 이는 유교적 관습을 중시하는 이 창업주의 독특한 자녀 교육관이 스며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태광의 혼맥은 이대 출신의 세 딸을 출가시키면서 보다 화려하게 뻗어 나간다. 장녀 경훈씨는 진주의 대지주이자 LG그룹의 창업 멤버인 허만정가의 막내 며느리가 됐다. 경훈씨의 남편은 유통전문기업 GS리테일 대표인 허승조(56)씨다. 이들의 결혼은 경훈씨 친척 할머니의 중매로 이루어졌다. 이임용가에서 허만정가로 이어가면 조홍제-송인상-신덕균가와 만난다. 이연두-박치현-김준성-김우중가와도 연결된다. 경훈씨는 남편 허승조씨와의 사이에 지안·민경 자매를 두고 있다. 이 창업주는 차녀 재훈씨를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장남 원용(56)씨와 결혼시켰다. 원용씨는 현재 경희대 의대 교수로 있다. 이 창업주는 재훈씨를 양택식가로 출가시키면서 정·관계 유력인사와 연결된다. 양택식가를 통해 홍진기-노신영-정주영가로 연이 닿는다. 김한수-김복동가로도 이어진다. 특히 이 창업주는 이 결혼을 통해 업계의 라이벌인 한일합섬의 창업주 김한수가와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된다. 재훈씨 부부는 서윤·서정·서인·혁준 등 1남3녀를 두고 있다. 3녀 봉훈씨는 한국베링거인겔하임 한광호가의 외아들 태원(49·한국베링거인겔하임 회장)씨와 결혼했다. 이들 사이에는 동우·상우·정우 3형제가 있다. ●뉴미디어·금융으로 21세기를 준비 태광은 1996년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그 해 11월 창업주인 이 전 회장이 75세를 일기로 타계하면서 3남 호진씨가 경영 전면에 부상한다. 호진씨는 이 창업주가 그룹의 후계자로 일찍 점찍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태광산업 사장에 이어 2004년 태광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호진 회장은 섬유가 주력인 태광의 업종에 메스를 댄다. 추진력에 관한 한 부친 못지않은 ‘신형 엔진’ 이 회장은 ‘조용한 기업’ 태광에 거센 변화의 바람을 불어 넣었다. 변화의 추동 세력은 MSO로 표현되는 종합유선방송과 금융 등 두 갈래다. 이 회장은 미래 태광의 신성장 동력이 여기에 있다고 확신한다. 따라서 1조 5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진 막강한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과감한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이는 섬유와 화학 중심에서 뉴미디어와 정보기술(IT), 금융기업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미디어 기업으로의 급성장이다. 이 회장은 케이블TV 회사인 ‘태광 티브로드’를 세웠다. 티브로드는 태광, 미래, 통신 등의 앞글자 ‘T’와 브로드 캐스팅, 브로드 밴드의 ‘브로드’를 합성해 지은 이름이다. 티브로드는 지역 케이블TV 20개를 거느리고 있다. 가입자 300만명, 시장 점유율 24∼25%로 명실상부한 국내 1위다. 아직까지는 많은 수익을 내고 있진 못하지만 뉴미디어는 태광의 미래를 밝혀줄 한 축임에 틀림없다. 이 회장이 2003년 이후부터 미디어 부문에 집중 투자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다. 뉴미디어는 진헌진 티브로드 사장과 이상윤 안양방송 및 수원방송 사장이 이끌고 있다. 진 사장은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이 회장의 대학교 동창이다. 2002년 이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했을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다. 금융 쪽도 더욱 살을 붙여야겠다는 게 이 회장의 전략이다. 현재 흥국생명, 고려상호저축은행, 태광투자신탁운용으로는 아무래도 무게가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쌍용화재와 예가람상호저축은행, 피데스증권 등의 인수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태광산업은 지난달 쌍용화재와 신주인수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태광산업은 쌍용화재 지분의 50% 이상을 확보했다.‘흥국생명+쌍용화재’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의 근거는 생명보험·손해보험 상품의 교차 판매다. 태광은 쌍용화재 인수 열기가 식기가 무섭게 피데스증권 인수에 나섰다. 피데스증권은 현재 주식거래 업무만 하는 중소형 증권사지만 태광은 이 회사를 인수해 종합 증권사로 변신시킬 계획이다. 예가람상호저축은행은 서울·경남에 기반을 둔 저축은행이다. 이들 기업의 인수작업이 순조롭게 매듭지어지면 태광그룹은 생보, 손보, 증권, 투신운용, 저축은행까지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금융 쪽은 류석기 흥국생명 부회장과 김성태 흥국생명 사장의 투톱 체제다. 김 사장은 씨티은행 출신으로 LG증권 사장을 지냈다. 태광산업 출신인 오용일 흥국생명 전무도 눈여겨 볼 전문 경영인이다. 이호진호(號)의 태광은 대변신을 꿈꾼다. 현재의 청사진이 조만간 구체화되면 태광그룹은 화섬 석유화학, 금융, 미디어, 레저(태광관광개발), 육영재단(일주학술문화재단, 일주학원)으로 새 틀을 짜게 된다. ykchoi@seoul.co.kr ■ 정도·신의는 기업의 생명 ‘정도’와 ‘신의’.50여년 전 부산의 한 작은 시장에서 출발해 오늘의 태광그룹을 일군 창업주 고 이임용 회장이 금과옥조처럼 여긴 명제다. 이를 지키지 않는 거래처와는 두번 다시 거래를 이어가지 않았을 정도다. 정도와 신의를 기업의 목숨이자 기업의 자격이라고 늘 강조했던 이 전 회장은 한눈 팔지 않고 기업 경영에만 충실했던 기업인이다. 태광은 이 전 회장의 타계 10주년을 맞아 그의 기업·국가관 등을 조명하기 위한 자서전 출간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어록 정리에 신경쓰는 눈치다. 그의 어록에서는 경영관이 그대로 묻어난다. 지난 1973년 단 닷새 만에 흥국생명을 인수한 이 전 회장은 첫 임원회의에서 “보험회사의 재산은 보험가입자의 재산”이라며 “흥국생명의 돈을 태광에서 가져다 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지켜졌다. 이 전 회장은 ‘오래된 만남’을 중시했다. 태광의 주거래 은행은 조흥은행. 양자의 관계는 5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오직 하나의 은행만을 고집한 이 전 회장은 1975년 대한화섬 인수 후 많은 임원들이 복수은행 거래를 건의했지만 “새 친구 열 명을 사귀기 위해 헌 친구 한 명을 안 버린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용은 이임용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자신의 입으로 말한 약속은 반드시 지켰으며 계약서는 단지 둘 사이에서 오고 간 이야기를 정리해 놓은 종이에 불과했다. 타계 몇해 전 신입사원 특강에서 신용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닷새 만에 서는 장에 못가는 사람이 장에 가는 친구에게 무엇 무엇을 사다 달라고 부탁을 한다. 부탁을 받은 사람은 혹 자기 물건 사는 것은 잊어버리더라도 결코 친구의 부탁을 잊어서는 안된다. 만일 그 물건이 제수용품이었다면 남의 집 제사를 망치는 격이 돼 옛날 말로는 사람 같지 않은 꼴이 된다. 그래서 약속은 무서운 것이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ykchoi@seoul.co.kr ■ 베일에 싸인 오너一家 재계에서 태광그룹만큼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오너 일가’도 없다. 창업주인 이임용 전 회장은 물론 후계자인 이호진 현 회장 역시 언론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취재를 위해 이 회장 면담을 요청했으나 ‘불가하다.’는 단호한 한마디였다. 오너 일가가 이처럼 몸을 꽁꽁 숨기는 데에는 격동기를 헤쳐온 태광그룹의 기업사와 유교적 관습이 맞물려 있다. 태광에 있어 정치는 짐이었다. 창업주인 이 전 회장은 야당의 거목인 처남(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을 두면서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으로부터 강도 높은 세무사찰을 받았다. 고속성장을 질주한 태광이었지만 그럴수록 기업경영만큼은 살얼음판을 걷듯이 할 수밖에 없었다. 한눈 팔면 죽는다는 것을 절감한 이 전 회장은 정치는 물론이고 언론에도 자연히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유교적 관습을 중시하는 이 전 회장의 짙은 보수성도 중요한 부분이다. 이는 태광 일가의 여성들에게서 쉽게 발견된다. 태광가(家)의 여성들에게서는 다른 재벌가와 달리 우먼파워를 찾아볼 수 없다. 여성으로서 적합한 문화계나 학술계에는 진출해 있을 법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구도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 이 전 회장의 세 딸도 그렇고 며느리도 마찬가지다.3형제 못지않게 똑똑한 것으로 알려진 세 딸 중 남녀공학 대학을 나온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큰딸 경훈과 둘째 재훈, 막내딸 봉훈씨 모두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이들 모두 다른 대학은 생각지도 못한 게 아닐까. 경훈·봉훈씨는 남편이 재계의 실력자들이지만 외부활동 대신 살림을 하고 있다. 태광가의 며느리들도 전혀 노출돼 있지 않다. 삼성·현대가 등 재벌들의 며느리들이 문화·재계의 저명인사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40대 중반인 이 회장도 전경련 활동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외부 노출을 기피하고 있다. 선친 스타일을 빼닮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래서 ‘은둔의 경영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현장에 매우 충실한 CEO다. 캐주얼 차림으로 불쑥 현장을 찾아 임직원들을 놀라게 한다. 이 회장은 기업경영 못지않게 예술에 조예가 깊다.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사옥도 사실상 이 회장 작품이다. 바닥재부터 인테리어, 사무실 소품 등에 이르기까지 이 회장의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다. 회사 관계자는 “CEO가 안됐으면 예술가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ykcho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대기업 체감경기 5개월째 ↓

    대기업 체감경기 5개월째 ↓

    대기업 체감경기가 5개월 연속 하락세다. 수치상으로는 호전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지만 미지근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매출액 상위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2월 BSI가 102.4로 기준치(100)를 소폭 넘겼다고 2일 밝혔다.BSI가 지난해 9월 111.4로 정점을 찍은 이후 10월 110.2,11월 107.8,12월 103.8, 올 1월에는 102.6 등으로 5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여 경기에 대한 기업들의 기대감이 둔화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BSI는 10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전월보다 경기를 밝게 보는 기업이 많다는 것을,100 미만이면 그 반대를 뜻한다. 부문별로는 내수(100.2)와 투자(104.6), 자금사정(103.0)은 100을 넘어서 전월 대비 호전이 전망됐다. 그러나 수출(98.0)과 고용(98.2), 채산성(97.8)등은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102.3, 비제조업이 111.8을 각각 기록했다. 비제조업에선 그동안 부진했던 건설업이 110.5를 기록하며 경기가 호전쪽으로 급반전해 눈길을 끌었다. 전경련은 “명절 특수와 완만한 내수회복, 일부 업종의 계절적 성수기 도래 등에 힘입어 기업의 체감경기는 전반적으로 나아지고 있지만 지수상으로는 100을 소폭 상회하는 데 그쳐 획기적인 경기회복을 기대하기란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강신호 전경련회장 ‘나눔경영’ 촉구

    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설을 앞두고 회원사에 ‘나눔경영’을 적극 실천해줄 것을 촉구해 눈길을 끌고 있다.강 회장은 23일 회원사들에 전달된 서한을 통해 “양극화 해소를 위해 무엇보다 적극적인 투자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투명경영, 정도경영을 실천하고 사회공헌을 확대해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국민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당부했다.강 회장은 ▲협력업체에 대한 조기 대금결제와 판로 지원 ▲소외된 이웃 지원과 지역사회 봉사 ▲농촌 지원 차원에서 설 선물로 우리 농산물 애용 ▲투명경영과 정도경영 실천 등을 호소했다.
  • 템스강 돌고래 ‘비운의 죽음’

    |파리 함혜리특파원·서울 안동환기자|93년만에 런던 템스강에 나타나 영국 전역을 흥분시켰던 청백 돌고래가 끝내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채 생명을 잃었다.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22일 “고래는 해군의 비밀 음파탐지기(sonar)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전 세계 고래의 집단자살은 인간의 음파탐지기가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몸길이 6m의 청백 돌고래는 지난 20일 런던 남서부 템스강에서 처음 목격됐다. 구조대원들이 고래를 바다로 되돌리려 시도했으나 이 수컷 고래는 강을 역으로 헤엄쳐 영국 국회의사당 부근까지 왔다.21일 구조당국에 인양돼 바다로 보내질 예정이었으나 도중에 스트레스와 근육경련을 일으킨 뒤 죽었다. 전문가들은 템스강에 온 돌고래가 해군의 음파탐지기에 의해 방향을 잃었거나 청각을 상실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음파탐지기가 고래의 죽음과 연관이 깊다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지난해 1월 미 해군이 음파탐지기를 사용한 뒤 노스캐롤라이나 해변에서 39마리의 고래가 죽었다.2004년 7월 카나리 제도에서 고래가 집단자살했을 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해군 작전을 펼쳤다. 카나리 제도에서 85년,88∼89년,91년,2002년 등 해군 훈련이 벌어질 때마다 고래가 떼죽음을 당했다. 영국에서 고래가 해안가에 상륙해 죽는 건수도 증가하고 있다.94년에는 360건이었으나 2004년에 782건으로 두배 이상 증가했다. 소음이 180㏈이 넘으면 고래는 심한 고통과 공포에 휩싸인다고 한다.lotus@seoul.co.kr
  • 정기조사 줄이고 집중조사 늘려

    정기조사 줄이고 집중조사 늘려

    국세청의 기업 세무조사 방식이 크게 바뀌게 됨에 따라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금까지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는 세금을 제대로 내는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4∼5년마다 어느 기업이든 때가되면 정기조사를 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정기세무조사는 줄여나가는 대신 ‘표본조사’를 거쳐 신고를 불성실하게 하거나 탈루 혐의가 드러난 기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집중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사전 스크린을 한 다음 선택적으로 집중조사하는 세무조사 비중을 점차 높여 나가겠다는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국세청은 정기조사는 기업들이 일정기간을 두고 주기적으로 세무조사를 받는다는 점에서 신뢰성은 높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세금탈루 혐의가 없어도 모든 기업이 자동으로 조사 대상이 되고, 기업들의 성실신고를 유도하기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비슷한 규모의 대기업들중에서도 추징세액이 20억∼30억원에 그치는 곳이 있는가 하면,2000억∼3000억원대인 곳이 있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모든 기업에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국세청은 이런 문제점을 개선, 세무조사 선정의 과학화를 꾀하기 위해 세금탈루 혐의가 짙은 기업을 선정해 이를 집중조사하는 방식을 점차 늘려나갈 방침이다. 정기조사도 병행해 나가지만 비중은 점차 낮아질 수밖에 없다. 국세청이 세무조사의 패러다임을 바꾸기로 한 것은 과거 ‘표적조사’라며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오해를 불러 있으키고, 기업들의 반발을 샀던 풍토가 참여정부 들어 사라졌다는 자신감도 작용했다. 국세청은 탈루혐의가 있는 기업들을 골라 집중조사를 하기에 앞서 우선 표본조사부터 한다. 이번 116개 기업에 대한 법인세 세무조사가 표본조사의 첫번째 사례다. 미국의 표본조사 방식인 납세성실도조사(NRP)를 따랐다. 새해 벽두인 1월부터 세무조사를 하는 것은 대부분 12월 결산법인인 기업들이 부가가치세 신고마감(1월25일)을 앞두고 가결산이 거의 끝났기 때문에 지금이 매출 등을 조작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점을 감안했다. 또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사전에 탈루혐의가 포착된 몇 가지 업종을 선정, 혐의가 실제로 맞는지를 조사한다. 조사 결과를 토대로 앞으로 어느 업종, 어느 유형을 집중적으로 조사할지 조사 방향과 강도 등을 결정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추상적인 세금탈루 가능성을 놓고 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앞으로는 탈루 혐의가 짙은 업종별로 1년에 한번씩 표본조사를 하게 된다. 향후 3∼5년간 조사 결과를 모아뒀다가 세무조사 매뉴얼을 만들어 이를 바탕으로 집중적인 조사를 하겠다고 국세청은 밝히고 있다. 표본조사를 통해 탈루 혐의가 없는 업종과 유형에 대해서는 순환조사 성격의 정기조사는 면제된다. 더구나 이미 지난해말 고소득 전문·자영업자 422명에 대해 표본조사를 했기 때문에 개인뿐 아니라 법인도 과세 형평성을 실현하는 차원에서도 예외는 없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국세청이 밝힌 원칙에는 동의하면서도 소비심리가 겨우 살아나는 시점에서 자칫 기업들의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글로벌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뛰는 기업들에 세무조사가 결코 기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은 “세무조사가 기업활동을 위축시키지 않고, 최근 진행되는 경기활성화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성수 김경두기자 sskim@seoul.co.kr
  • 나라경제 ‘장밋빛 청사진’ 봇물

    나라경제 ‘장밋빛 청사진’ 봇물

    새해 벽두부터 정부발 ‘장밋빛 전망’이 국민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청와대가 한국경제의 경쟁력과 ‘희망’을 강조한 주요 해외 경제기관들의 전망을 설파한 데 이어 정부와 관련기관들이 연달아 ‘청신호’를 밝히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개원 30주년을 기념해 19일 서울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한국산업의 발전비전 2020’을 주제로 한 국제세미나를 개최하고 앞으로 15년간 우리 경제는 연평균 4.6%씩 성장해 오는 2020년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만 5000달러에 달하고 GDP 규모는 세계 11위(2004년)에서 8∼10위로 올라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역액(상품교역액)은 1조 4000억달러로 세계 7위로 부상하고 일자리는 2020년까지 약 360만개가 새롭게 창출될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원은 2020년까지 실제 GDP 성장률을 4.6%(2005∼2010년 연평균 5.3%,2011∼2020년 4.1%)로 추정했지만 고성장시에는 연평균 5.1%도 가능해 1인당 GDP가 5만달러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소득수준 향상으로 내수도 확대돼 내수·수출 양극화가 해소되고 고용률도 2004년 60%에서 2020년엔 67%로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제조업의 세계수출시장 점유율은 2004년 3.5%(8위)에서 2020년에 4%로 높아져 7위로 올라서고 고성장시에는 영국, 이탈리아를 제치고 6위로 부상할 것으로 봤다. 이에 앞서 산업자원부도 최근 전경련,AT커니와 공동으로 펴낸 ‘2015년 산업발전 비전과 전략’에서 2015년 GDP 세계 10위권,1인당 국민소득 3만 5000달러 등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청와대도 지난 17일자 ‘청와대브리핑’에서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를 인용,1인당 GDP가 2025년 5만 1923달러,2050년에는 8만 1462달러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예상대로 됐으면 얼마나 좋겠나.”는 쪽에 가깝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