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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족 마을 지키기(송화강 5천리:3)

    ◎격변기마다 비적·만군·한족들에 수난/재산·식량 약탈표적… 자위대 결성해 저지/최근 이농 늘자 마을규약 만들어 타민족 유입막아/문혁때도 농사에만 전념… 정치적 희생 없어 송화강유역은 한때 비적이 날뛴 무법천지였다.당시 조선에서 소문난 마적이 그들이다.비적들은 떼로 몰려다녔을 뿐 아니라 한 지역을 통치할 만큼 비대해진 적도 있다.이들의 근거지는 사실상 청조의 치외법권지대이기도 했다. 청조는 1682년 오늘의 요령성 개원시로부터 길림성 이수현,이통현,장춘시,구대현을 경유하여 서란현 송화강변에 이르는 구간에다 버들울타리를 쳤다.장장 3백50㎞ 구간의 버들울타리 밖은 변외라 하여 봉금령에 따른 금구로 설정되었다.그러니까 변외의 금구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통행금지의 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람새지 않는 울타리 없다는 속담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울타리를 넘어들어갔다.특히 가경 연간(1796∼1820)에 더욱 심했다.그 무렵 산동성에서 부모를 따라 길림성에 와서 살던 한종헌은 울타리를 넘어 오늘의 화전현 협피구(겹피구)에 당도했다.비적들이 횡행하던 때라 그들을 설득시켜 금광판에 들어갔다.그러다 도금수령 마문량의 눈에 들어 그가 죽고나서 후계자가 되었다. 한종헌은 협피구에서 나는 황금을 독차지하여 송화강 양안에 세력을 확장했다.아들 수문을 비롯 손자,증손에 이르는 4대에 걸쳐 송화강유역을 물론 목단강 서안,휘발하유역의 광활한 지역을 독립왕국으로 만들었다.이른바 회방이라는 관리기구를 중심으로 각종 조세는 물론 채금업,임업,삼업까지 관할했다.심지어는 개인화폐 금사도 발행했다.그래서 송화강유역 사람들이 한씨는 알아도 청조는 몰랐을 정도로 엄청난 권세를 누렸다. ○송화강 양안 비적떼 세력권 한씨 일가와 같은 그들이 바로 청조가 쇠퇴하는 과정에 일어난 도적의 무리였다.그렇듯 비적들이 대물림하는 가운데 아직도 득실거리고 있을 때 송화강유역으로 이주해온 조선족들은 바늘방석에 앉기나 한 것처럼 늘 좌불안석의 삶을 꾸렸다.연변대 반용해(69) 교수는 어려서 부모들을 따라 길림성에 온 이주민 2세다.그의 말을 들어보면 비적은 떼강도들이었다. 『비적들은 뻑하면 조선족마을을 약탈했디요.조선족들에게는 후원세력이 없다는 거이 약점이었댔습네다.건드려도 뒷 근심이 없었으니끼 걸핏하면 쳐들어왔다 이겁네다.또 논농사를 주로 하니끼리 쌀을 빼앗을 수 있고,아무리 가난해도 이불 한 채는 가지고 있다는 것을 비적들이 잘 알고 있었디요.어느날인가는 비적들이 온다는 소식을 미리 듣고 동네사람들이 다 우리집에 모이지 않았겠습네까. 체녀들과 아주마니들은 숯검정을 얼굴에 발라댑데다.얼굴이 반반하면 겁탈을 당하니끼리 그랬디요.또 어떤 아주마니들은 검붉은 피가 묻은 월경대를 소랭이에 담아서리 문밖에 내놓기도 하고….비적들이 피를 보면 재수없다고 돌아간다는 말을 믿은 거디요.그런데 웬걸,우리집으로 들어닥치더니 돈이 될만한 물건은 다 챙겼습네다.심지어는 가축까지 끌고 갑데다.우리집은 얼마 있다가 다시 비적 꼴 안 본다고 장춘으로 이사를 했댔디요』 그 비적의 행패는 만주사변 이후 한 때는 수그러들었다가 광복이 나자 또 극성을 부렸다.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만주국이 무너지자 이번에는 만군들이 비적으로 돌아섰다.그리고 한족들은 그들 나름대로 조선족을 제2의 일본인으로 간주하고 조선족마을을 습격하기 시작했다.이는 일제가 통치수단으로 자행한 민족이간책에서 비롯되었다.한족들은 비적 못지않게 날뛰었다.도끼와 낫으로 수장하고 조선족을 예사롭게 죽이고 마을에 불을 질렀다. 조선족마을들은 자구책으로 자위대를 조직했다.마을이 똘똘 뭉쳐 스스로를 지켜냈던 것이다.그 단결력은 뒷날 순수한 조선족마을로 살아남는 원동력이 되었다.그래서 광복 이후 송화강유역 조선족마을들은 두만강이나 압록강유역 조선족들보다 정치운동의 풍파를 덜 겪었다.조선족들이 우루루 몰려와 사는 집거구 연변에서는 혁명을 한답시고 동족끼리 때리고 죽인 현실과는 사뭇 대조를 이루었다. 길림성 영길현 송화강유역의 조선족마을 아라저촌은 중국대륙을 바람처럼 휩쓸었던 문화대혁명을 무사히 넘긴 마을이다.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농자천하지대본의 길만을 걸었다.길림시에서 이러저러한 파벌들이 무장을 하고 마을에 와서 당총지 김용구의 매도를 선동했으나,아라저촌의 일은 마을이 알아서 처리한다는 뜻을 끝내 굽히지 않았다.이 마을에서는 문화혁명에서 투쟁을 맞았거나 감옥에 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신화를 창조했던 것이다. ○일제 민족 이간책에 속아 그런데 요즘와서 일부 조선족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들고있다.흑룡강성 학강시 단결향 화춘촌은 2백여가구의 순수한 조선족마을이었다.이 마을은 요 몇년 사이에 사정이 달라졌다.시장경제에 팔려 집과 도급농토를 헐값에 팽개치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 한족들이 야금야금 마을을 잠식한 것이다.한족이 벌써 30여가구가 마을에 들어와 떠나버린 조선족들 대신 농사를 짓고있다. 흑룡강신문보도에 따르면 흑룡강성 조선족촌에서 외지로 빠져나간 가구는 상당수로 밝혀졌다.한 마을에서 많게는 40%,적게는 20%가 도시로 진출했다는 것이다.어떤 조선족촌에서는 도시로 나간 빈자리를 한족들이 들어와 메꾸는 것을 막기위해 타민족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규약까지 만들었다.그래서 떠나는 사람들은 마을의 뜻을 차마 저버리지 못해서인지땅과 집을 그냥 두고 외지로 나가기도 했다.마을 전체가 1백가구가 채 안되는 화천현 성화향 요신촌에는 현재 여남은 가구가 비어있다. ○한족 30여 가구 들어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은 공민이면 민족을 불문하고 거주권이 있다고 규정했다.그러고 보면 조선족마을 자체가 만든 한족 이주금지규약은 사실상 헌법위반이다.순수한 조선족마을을 지키려는 노력은 조선족입장에서 보면 가상하나 한족 이주를 막는데는 도처에 장애요소가 깔려있다.나북현 동명향과 같은 조선족 밀집지역에서는 궁여지책의 묘안을 짜냈다.외지에서 들어오는 한족들은 조선족들의 주택을 사들이거나 토지를 양도받고자 할 때는 조선족들 끼리 거래하는 액수의 곱을 내야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던 것이다. 조선족들의 마을 지키기는 현명한 발상이었는지 모른다.도시로 나갔다가 거덜 난 조선족들에게 퇴로를 열어준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근년에는 폭락했던 쌀값이 크게 올라 농촌으로 다시 돌아오는 조선족들의 발길이 드문 드문 이어지고있다.이들의 귀환은 도시로 떠나면서 그냥 버려두었던 집과 도급농토를 마을이 지켜주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 내가 본 한국/풍옥충 지음(서평)

    ◎한­중 학술·인적교류 등에 얽힌 ‘비화’/중 5대일간지에 전재… TV작품화 추진도 중국 북경과 동북 3성인 요령,길림,흑룡강성 일대에서는 「내가 본 한국」이 출간되자마자 화제가 되고 있다. 저자는 한·중 양국간 물적 교류의 물꼬를 튼 주인공」으로서 한국을 무려 8차례나 방문한 적이 있다.그는 북경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요령대 총장직을 13년간이나 맡았으나,특히 중국에서 50년대 스탈린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비판하고 상품경제가 중국을 부유하게 할 것이라며 중국식 사회주의 모델을 주창했던 사람으로 더욱 유명하다. 한국을 방문한 첫 중국의 총장,한국의 7개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은 사람,중국 대학내에 처음으로 한국학과와 한국연구소를 설치한 사람 그리고 중국의 한국상업무역센터의 창의자가 바로 저자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책의 내용을 기행문,여행기,그리고 탐방기도 아니라고 스스로 언급하고 있지만 주된 구성은 한국과 한국인간에 얽힌 에피소드,한·중 양국간의 학술·인적 교류의 물꼬를 트게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설명 등으로이뤄져 있다. 총30절로 구성된 이 책은 주로 한·중 양국간의 학술교류에 얽힌 비화,중국 심양에서 남북학자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주선한 비화,한국의 경제발전과 사회현상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에게 진언한 서한 등에 대해 소신있게 논술한다.또 한·중 국교수교 이후 양국간의 경제문화교류가 필연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하고 다각적인 양국의 경제협력에 대한 대안도 제시한다. 어쨌든 저자는 중국의 전국인민대표회 대표(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 등소평의 개혁 개방정책을 대학현장에서 실현하는 교육자로서 평가받고 있는 중국내 개방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북한내 핵심 권력층과도 폭넓은 교류를 갖고 있다.그의 개방 개혁이론이 북한내 젊은층에 의해 은밀히 읽혀지고 있다는 귀띔도 하고있는 저자가 보는 한국은 대단히 온전주의적이다. 최근에는 중국 요령신문 등 5대 일간지에서 책의 전문을 전재하기 시작했고 요령 TV에서는 작품화를 구상하고 있을 정도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내가 본 한국」은 국내에서도 9월중 필자에 의해 완역출판될 예정이다.
  • 선상반란 주범 전재천 전직은 교사

    ◎길림성 조선학교서 13년간 음악 등 가르쳐/돈 많이벌려 전직… 조선족 선원 맏형 노릇 페스카마호 선상반란사건의 주범 전재천(38·중국 길림성거주)은 중국 천진의 중산사범대를 졸업하고 지난 80년부터 길림성 휘남현 조선중학교에서 음악과 한문을 가르친 엘리트였다. 전은 홀어머니 정혜수(71)와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는 부인 김순옥(37),북경대 1학년에 재학중인 맏딸 여혜(18) 등 1남2녀의 가족과 함께 생활해 왔다. 전은 월 중국돈 8백원인 교사 봉급으로 가족 부양과 자녀 학비 마련이 어렵자 월 평균수입 3천8백원이 넘는 원양어선 선원으로 전직키로 하고 93년부터 하급선원으로 배를 탔으며 96년 4월 길림성 대련수산학교의 6개월 전문코스를 수료,2등항해사 면허 취득과 함께 사관선원이 돼 페스카마호에 첫 승선했다. 전의 월급은 4백달러로 중국 선원 가운데 최고의 대우였다. 승선 뒤 전은 다른 조선족 선원에 비해 나이도 많고 유일한 사관선원이어서 자연스럽게 조선족 선원들의 리더가 됐으며 이 때문에 이번 범행을 주도했다. 전은 또 조사과정에서 『같은 동포를 죽여 대한민국 인민에게 죄송하다』며 『중국으로 송환하지 말고 이곳에서 죽여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 한·중·일 대규모 「불교회의」

    ◎10∼11일 서울서 3개국 750여명 회동/우호협력 증진·동북아 평화 등 논의 한·중·일 3국 불교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호협력증진을 논의하는 제2차 한·중·일 불교우호교류회의가 10,11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다. 「21세기에 있어서 한.중. 일 불교의 사명」을 주제로 한 서울대회에는 세나라의 대표적 스님들이 참가해 삼국불교역사의 「황금유대」를 오늘에 재현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이와 함께 동북아의 평화와 세계난민의 구제,환경보호,학술과 문화정보 교류에 대한 삼국불교계의 견해와 입장을 밝히는 한편 이를 추진하기 위한 방안도 협의할 예정이다.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 겸 종단협의회 회장이 대회장을, 방지하 종단협의회 부회장 겸 중앙승가대 학장이 집행위원장을 맡게 될 이번 대회에 국내 불교계에서는 윤월하 조계종 종정 등 30여개 종단의 종정과 총무원장 등 4백여명이 자리를 함께 한다. 중국불교를 대표해서는 조박초 중국불교협회 회장 등 1백50여명이서울에 오고 일본 측에서는 나카무라 고류(중촌강융) 전 일본불교회회장, 고바야시 류조(소림융창) 일·중·한 불교국제교류회 이사장 등 2백여명이 참가한다.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강원룡 크리스천아카데미 이사장, 최근덕 성균관관장,김재중 천도교 교령,조정근 원불교 교정원장,안호상 대종교 전교 등 종교계인사와 이수성 국무총리,김수한 국회의장,김영수 문화체육부장관, 조순 서울시장 등도 초청된다. 이번 대회는 10일 상오9시 워커힐호텔 무궁화그랜드룸에서 1천여명의 각계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을 갖고 하오 2시부터는 코스모스홀에서 한·중·일 대표가 기조연설을 하게 되며 하오6시부터는 무궁화그랜드룸에서 한.중.일참관단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환영만찬이 있게 된다. 대회 이틀째인 11일 상오9시에는 동국대 운동장으로 자리를 옮겨 세계평화기원법회를 갖고, 하오4시에는 다시 워커힐호텔 무궁화 그랜드볼룸으로 돌아와 서울선언문을 채택하고 폐회식을 갖는다. 서울대회조직위원회의 김도원 사무총장은 『지난해 중국 북경대회에 이어 두번째로 열리는 한·중·일 불교우호교류회의를 계기로 삼국불교가한결 가까워지게 됨은 물론 공동의 협력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만큼 발전하게 됐다』고 의미를 밝혔다. 과거 한·중·일 3국의 교류 중 가장 빈번했던 분야가 고승들의 구도행각과 불경과 문물을 비롯한 불교교류였으며 이를 매개로 삼국은 문화와 제도를 도입해 국가기반을 다졌다는 것이다.
  • 재계도 자유경제체제 지키기 나섰다/폭력시위학생 채용제한 배경

    ◎삶의 터전 직장·산업 보호필요 절감/취업후 악성 노조활동 가능성 차단 경제5단체가 정부의 폭력시위 엄단조치에 맞춰 폭력시위전과가 있는 학생에 대한 「채용제한」이라는 강수를 내놓았다. 경제5단체가 29일 내놓은 「최근 한총련사태에 대한 경제계의 입장」은 자유경제체제의 수호와 폭력시위의 근절을 위한 경제계의 강경대응책이어서 파장이 주목된다.재계는 그동안 사회참여기회차원에서 시위전력자에 대해서도 채용에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 경제5단체의 이번 결의는 처음 있는 일인데다 그간 정치·사회적 문제에 언급을 자제해온 재계의 풍토에 비춰볼 때 다소 의외라는 시각이 많다.따라서 이같은 경제단체의 결의가 실행에 옮겨질 경우 채용방식에도 적지 않은 파급효과를 몰고올 것으로 보인다.일각에서는 경제단체의 채용제한결의가 비교육적 발상에 근거한 근시안적 조치이며,실효성이 의문시된다는 지적도 있다.실제로 경제단체와 개별기업이 받아들이는 감은 다르다. A그룹 관계자는 『경제단체의 입장은 채용시 고려대상이 되겠지만 인력채용은 기업나름의 기준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어서 절대적인 영향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B그룹 관계자도 『한동안 운동권학생에 대해서도 채용에 별불이익을 주지 않았다』며 『그러나 인력채용을 시위전력 여부만으로 결정하기 어렵고 그 기준도 애매할 수 있어 오히려 혼돈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경제5단체의 입장발표엔 정부 생각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C그룹 관계자는 『한총련사태가 있고 난 뒤 정부쪽에서 몇가지 요청이 있었다』며 『운동권학생의 채용제한과 함께 회사직원으로 하여금 시위현장인 연세대 교정을 둘러보게 하라는 권유가 있어 직원들이 다녀왔다』고 했다. 한편 경제정의실천연합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한총련 학생의 주장이나 운동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경제5단체의 이번 조치는 시위학생의 선도나 교육적 차원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일부 학생을 벼랑으로 내몲으로써 학생시위를 격화시키고 장기적으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며 철회를촉구했다. □한총련사태 경제계 입장 전문 우리 경제계는 그간 우리의 선량한 절대다수의 학생이 민주화를 이룩하는 데 헌신하고 학업에 정진,다가오는 21세기를 준비하는 동량으로 그 사명을 다해온 데 대해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여왔다. 그러나 최근 이른바 한총련 학생에 의해 저질러진 불법폭력사태는 국법질서를 근본으로부터 뒤흔들고 자유시장경제발전에 중대한 위협을 주는 것으로 나라의 안정과 국가의 장래발전을 위해 이를 심히 우려치 않을 수 없다. 이에 경제계는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수호,발전시키고 온 국민의 삶의 터전인 직장과 산업의 보호를 위해 최근 한총련사태에 관한 우리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천명코자 한다. 1.경제계는 더 이상 국법질서를 파괴하는 반국가적·반지성적 학생시위가 있어서는 아니되겠다는 국민적 합의에 부응하여 앞으로 산업인력채용관리에 있어 시장경제체제의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반국가적·폭력적인 학생시위와 관련된 사람의 채용은 신중을 기하기로 한다. 2.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국시에 반하며 국가의 안전을 저해할 불온한 주장과 폭력적 행위를 일삼는 학생시위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집행을 하여야 할 것이며 절대다수의 선량한 학생을 보호하고 사회안정을 유지하는 데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 3.학생은 모든 국민이 자신들을 나라의 장래를 짊어지고 나갈 희망으로 여기고 있음을 깊이 인식하여 시대착오적인 주장이나 주의에 휩쓸리는 일이 없이 자중자애하여 학업에 정진,온 국민의 높은 기대와 여망에 부응하여야 할 것이다. ·1996년8월29일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 검찰의 수사 방향과 전망

    ◎“한총련수사 이제부터다” 지하배후조직 캐기 총력 연세대의 폭력시위현장에서 연행된 「한총련」소속 대학생에 대한 사법처리가 일단락됨에 따라 검찰과 경찰은 본격적인 한총련 와해작업에 들어갔다. 검찰은 단순가담자들에게는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관용을 베풀겠다는 당초 방침을 거두고 「4백62명 구속,3천3백41명 불구속 입건」이라는 초강수를 썼다. 검찰의 강경대응은 불법 과격시위 악순환의 고리를 단절하고 학원가의 좌경세력을 발본색원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검찰은 구속과 불구속, 즉심과 훈방 등 사법처리의 기준과 수위를 놓고 상당히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대규모 사법처리에 대한 일반의 반응에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결국 「사수대」등 극렬시위자는 구속, 과격시위의 심증은 있지만 입증이 어려운 시위자는 불구속, 반성의 빛이 뚜렷하거나 단순가담자에게는 정도에따라 즉심과 훈방조치를 내렸다. 최병국 대검공안부장은 이날 『연행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불법 과격시위에 대한 법의 집행』이라고 강경쪽으로 결론이난 배경을 밝히고 『한총련수사는 이제 첫발을 디딘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총련 핵심지도부검거와 배후세력 규명 등 남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의미다. 검찰과 경찰은 우선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한총련의장 정명기군 등 한총련 핵심간부들에 대한 검거에 주력하고 있다. 또 연세대 시위과정에서 검거돼 국가보안법 등 혐의로 구속된 한총련 「충청총련」 의장 설증호군(25·단국대 4년)의 핵심간부 5명을 상대로 한총련의 조직원과 배후관계,자금원 등도 집중 조사중이다. 한총련은 「범청학련」 남측본부를 맡는 등 단순한 학생단체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자연 핵심간부가 아니면 일반 조직원은 조직의 운영 등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 특히 검찰이 배후세력으로 지목한 「지하혁명조직」에 대해서는 한총련 의장이나 집행위·조통위·정책위 등 이른바 이적단체로 규정된 조직의 극소수간부만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검찰은 한총련의 자금과 관련,지난 93년 4월 한총련 출범식 때 2억5천만원을 사용했고 지금도 대형 행사에는 이 정도의 자금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금의 출처나 운영 내역 등은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학생회 수입사업 금지방안 등으로 학생운동의 자금줄이 상당부분 차단될 것으로 기대하는 정도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한총련 핵심 간부들이 쫓기면서 당분간 한총련의 활동이 추춤하겠지만 핵심간부들을 붙잡아 배후조직을 밝혀내지 못하는 한 한총련의 와해는 어렵다』며 『하지만 수사가 끝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것같다』고 말했다.
  • 국방대학원 「제네바 핵합의와 한·미·북관계」 주제 학술회의

    ◎“미 대북 유화정책은 남북관계 개선 장애”/핵합의 이행 주시·비무장지대 군사행동 응징/한국,조급한 접근보다 북실체 명확히 파악을 지난 94년 제네바 미·북 핵합의 이후 한반도문제를 짚어보는 국제학술회의가 국방대학원 안보문제연구소 주최로 22일 하오 국방대학원 세종대강당에서 열렸다.「미·북한 제네바 핵합의 이행과 한.미. 북한관계」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회의에서 한·미·일 주제발표자들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연착륙정책을 계속하는 한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찾기 어렵다』면서 『체제위기에 직면한 북한의 돌발사태에 대한 미국의 두려움과 경제적 혜택을 통한 미국의 개혁·개방정책이 4자회담에 대한 북한의 유보적 태도를 조장하고 있다』고 한결같이 주장했다. 다음은 주제발표의 요지이다. ■래리 닉시(미국 의회조사국 아시아문제담당)=북한과 핵 협정을 체결할때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북한이 핵 합의 이전에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핵 합의는 북한이 문호를 개방하고 고립에서 벗어나 「세계의 가족」으로나오는데 도움을 주며 이는 북한 정책의 「연착륙」을 가져올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같은 생각은 95년말과 96년초 북한이 식량난에 봉착하면서 갑작스런 붕괴에 대한 우려로 바뀌었다. 미 행정부는 북한의 위기가 한반도 평화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발전될 가능성을 걱정하게 됐다.때문에 미국은 지금 북한의 붕괴를 연기하거나 방지하는 것을 정책목표로 하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미국의 대북정책은 두가지 면에서 모순을 낳고 있다. 첫째, 94년 핵 합의가 이루어질 당시 북한의 붕괴가 미국의 전략을 성공시키기에 유리했다는 견해와 이제와서 북한의 붕괴가 위험하기 때문에 이를 막거나 지연시켜야 한다는 견해는 명백히 상충된다. 둘째, 붕괴이론에 사로잡혀 있는 미 행정부의 정책목표를 뒷받침하기에는 재정지원이 너무나 빈약하다. 클린턴 행정부는 미의회나 한국,일본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면 북한의 붕괴를 지연시킬 수단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국가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대북정책을 취해야 한다. 첫째, 미국은 북한에 경제적 혜택을 주는 전략을 버리거나 적어도 이를 북한 개혁의 제도화와 연계시켜야 한다. 둘째,북한이 받아들일 때까지 4자회담의 제안을 계속해야 한다.셋째,미·북간 판문점 군사접촉의 용의를 버리고 비무장지대에서의 북한 군사활동을 응징해야 한다. 넷째,97년말까지 핵합의 이행에 관한 북한의 전략을 예의주시하고 5년 시한에 따른 특별사찰의 지연이나 이 문제의 사태재발에 대비한다. 마지막으로 남북한 군사력 감축과 적대감 해소를 위한 평화협정 전략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정용석 교수(단국대 정경대학장)=미·북 제네바 핵 합의문에는 문제점이 있으며 이로 인해 한·미간에 불신이 조장되고 있다. 핵 합의문을 보면 먼저 핵 발전소 핵심부품을 인도할 때까지 북한이 특별사찰을 수락할 것인지 의심스럽다.합의문 발표 1개월 이내에 모든 핵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북한의 약속은 북한의 핵 관련시설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확인하기 어렵고 폐연료봉의 재처리문제가 투명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는 문제점도노출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이 남한과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이나 남북대화 재개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데도 적절한 대응책이 없고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완화 및 상호연락사무소 설치에 따르는 한국의 불안감을 해소할 방책도 없다. 이같이 불완전한 합의문이 나오게 된 것은 미국이 엄청난 정치적·경제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비확산조약(NTP)체제 유지를 위해 북한 핵문제를 외교업적으로 과시할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 또 남한의 핵 개발 억제책으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개방을 유도하려면 북한과 합의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미국은 차후 대외정책의 기본틀을 원대한 목표 아래 선명하게 설정, 대증적 요법으로 인한 혼란을 막아야 하며 김정일이 이성적인 지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해 그에게 힘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정책을 추진해야 하고 제네바합의를 정치적 이용대상으로 관리함으로써 조급하게 북한에 접근하는 경향을 배제해야 한다. 한국도 유화정책만이 아닌 「담력과 배포」로 북한을상대하고 확고한 원칙에 입각, 우유부단한 정책적 표류를 탈피해야 하고 북한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해 대응해야 한다.한국이 처음부터 김정일을 정확히 간파,확고부동한 자세로 임했더라면 미국도 유화일변도로 서둘지 못했으리라 추측된다.
  • 연대찾은 대학총장들 “망연자실”

    ◎전쟁터인가… 상아탑인가…/“아…” 절망의 탄식/“폭력현장 보존… 산교육장 활용” 이구동성 백발의 총·학장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굳은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했다.폐허처럼 변한 상아탑의 몰골에 넋을 잃은 듯했다.매캐한 최루가스냄새는 총·학장 3백여명 모두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만들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한 연세대의 시위현장을 눈으로 확인하려고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현장에 다가서자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수십년을 대학에서 보냈지만 이번처럼 심각한 상황은 처음이라는 표정이었다. 본관 오른쪽에 있는 인문관주변은 불에 타다 남은 쓰레기잔해와 깡통,부서진 책·걸상 등으로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온전한 것은 없는 듯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탄식과 분노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연세대의 김준석 입학관리처장은 『학생들이 건물 안의 교수실을 부수고 자료를 모두 없애 교수들이 난감해 하고 있다』는 설명했다. 총·학장들은 『도덕과 윤리마저 저버린 상식이하의 행동』이라는 정도의 반응만 보일 뿐 누구 하나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인문관과 이웃한 종합관은 더욱 처참했다.현관은 불에 그을렸고 유리창은 대부분 깨진 상태였다.기둥에는 「결사항전」 등의 구호가 적혀 있었다. 「화약고」로 불리던 과학관 방문은 취소됐다.더 보지 않더라도 상황파악은 충분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이렇게 했다니…』 『동경대처럼 불에 탄 현장을 그대로 보존,산교육장으로 삼아야 합니다』 『학원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지 않으면 이같은 일은 또다시 벌어집니다』 현장방문에 이어 하오2시40분부터 연세대 1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전국 총·학장회의에서는 폭력시위대책과 대학의 책임에 대한 발언이 잇따랐다. 대구 효성카톨릭대 김경환 총장은 『남의 대학을 이렇게 망쳐놓은 젊은이들이 학생인지를 묻고 싶다』고 흥분했다. 동신대 이상섭 총장은 『언론을 통해 듣던 것보다 너무도 엄청나 할 말이 없을 정도』라며 『이에 대한 책임을 모든 대학이 통감해야 할 것』이라고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연세대를 떠나는 총·학장들의 발걸음은 교내 곳곳에 완전무장상태로배치된 전경의 어깨만큼이나 무거워 보였다.
  • 대부분 시위 적극가담 부인/연행학생 조사 이모저모

    ◎“호기심에…” “친구 따라갔다” 등 발뺌/빨치산 용어 가득 「위문편지」 “섬뜩” 검찰과 경찰은 21일 한총련 시위와 관련,연행된 3천여명의 학생을 상대로 이틀째 조사하고 있으나 대부분 적극가담사실을 부인하는 데다 증거가 없어 애를 먹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48시간 안에 사법처리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시위가담정도 및 집회참가경위 등에 따라 연행자를 분류하는 데 일단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 그러나 경찰이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뿌린 형광최루액도 학생들이 옷을 갈아입어 증거로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다 사진자료 역시 수사에 별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 ○…1백9명의 학생을 조사하고 있는 영등포경찰서는 신속한 조사를 위해 관내 15개 파출소의 경찰관을 차출,경찰관 한 사람에게 평균 1·5명씩 배당했지만 21일 낮까지 절반인 50여명에 대한 1차조사만 끝냈다. 한 관계자는 학생들이 『선배가 놀러가자고 해서 따라갔을 뿐』 또는 『연세대 부근을 지나다가 호기심에 이끌려 행사에 참석했다가 떼밀려 들어갔다』고 주장하는 등 적극가담사실을 부인해 수사관을 골탕먹이기 일쑤라고 설명. 서울 송파경찰서는 잠실1파출소 직원 피습사건을 수사중인 강력반의 일부 형사까지 조사에 투입. ○…각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학생들은 오랫동안 몸을 씻지 못하고 옷도 갈아입지 못해 이들이 수용되어있는 식당·강당에는 악취가 진동. 또 연행학생의 가족은 각 경찰서를 돌아다니며 안부를 확인하느라 진땀.경찰은 민원실의 「사람·차량행방문의센터」(국번 없이 서울 182번)에서 컴퓨터에 입력된 학생들의 소재를 전해주고 있으나 전화폭주로 다른 업무를 못보고 있는 실정. ○…검찰의 고위관계자는 일본의 극렬학생운동이 지난 60년대 「동경대학 점거농성」을 끝으로 사실상 막을 내린 예를 들며 『우리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내부적으로 강력대응방침이 섰음을 시사. 서울지검 김원치1차장검사는 이와 관련,『수사본부장으로서 입건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엄정대처하겠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라고 단언.김차장검사는 『관용을 자꾸 강조하다보면 관용 그 자체가 없어진다』며 『관용에도 한계가 있으며 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강경입장을 피력. ○…검찰은 이날 단순가담자 등 8백66명을 귀가조치한 것과 관련,『훈방조치로 풀어준 것은 아니며 혐의사실이 인정되지만 사안이 경미해서 석방한 것』이라고 설명. 검찰은 이들로부터 모두 피의자신문조서를 받았으며 향후 채증작업을 통해 범법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다시 불러 엄중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부연.
  • 한총련·경찰 대치 장기화/애꿎은 피해로 속태우는 연대

    ◎2학기 학사일정 “올스톱”/과학관 전산실 사용못해/수강신청·등록 무기 연기/실험기기 파손… 정상수업 힘들듯 한총련 학생들의 농성이 장기화하면서 연세대의 2학기 학사일정에 차질이 예상된다. 연세대는 당장 20일로 일정을 잡았던 2학기 수강신청을 오는 26일부터 받기로 했다.학생들의 교내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데다 한총련 학생들이 점거 농성중인 이과대 과학관 지하1층 정보통신처 전산망 사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수강신청 접수가 더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학생들이 점거중인 과학관·종합관의 책·걸상 등 시설은 상당수 파손됐다. 연세대 김정길 수업과장은 『피해상황 파악과 비상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공통교양과목 수업이 많은 종합관에서는 지금처럼 대다수 책·걸상이 부서진 상황에서 수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강규영 관재과장은 『이과대의 실험기기는 주문제작해 쓰기 때문에 제대로 완비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려 시위가 빨리 끝난다 하더라도 정상적인 수업은 힘들 것』이라며 『주문제품이 아닌 기성품을 구입해 사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산 부족도 큰 문제다.예산조정과 권태진 주임은 『현재는 예비비도 바닥난 상태이기 때문에 예산을 어떻게 집행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강경대군 사망사건 때 명지대가 예산을 보조받은 것처럼 각 대학에 도움을 호소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세대는 다음달 2일 개강할 예정이지만 학생들의 규탄 집회나 시위의 재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 법정폭행 전씨 아들 사법처리 유보

    서울지검은 18일 12·12 및 5·18사건 첫 공판 때 법정에서 고 강경대군의 아버지 강민조씨(62)를 폭행한 혐의로 피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세 아들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유보키로 했다.
  • 활동양상(한총련의 실체:2)

    ◎「베를린 범청학련」 통해 북과 투쟁 협의/혁명가극 교내공연… 학생 친북의식 유도/죽창소대 등 군대식 행동대 무술훈련도 지난 5월23일부터 이틀동안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장 정명기 전남대 총학생회장) 출범식이 열린 전북대는 「범민련」과 연방제 통일투쟁을 옹호하는 대자보·포스터·플래카드 등 1천3백여장의 선전물로 뒤덮였다. 주최측은 행사장에 평양시가지 모형과 단군릉 모형을 설치하고 김일성 생가와 유경호텔,5·1경기장 등의 모습을 담은 컬러사진도 전시했다.대운동장에서는 북한의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를 공연했다. 「한총련」이 대북 연계활동에 대한 학생들의 거부감을 이완시키기 위해 채택한 이른바 「광장사업」의 일환이다. 이처럼 「한총련」의 각종 행사장은 친북 의식화를 위한 공간이 되고 있다. 북한과의 직접적인 연계활동도 강화하고 있다.지난 3월15일부터 강원대에서 열린 대의원대회에서는 팩시밀리를 통한 서면회의 방식으로 「범청학련」 실행위원회를 열었다. 이 때 통일대축전 및 국가보안법 철폐서명운동(4·19∼6·10),연방제 통일염원 나무심기(4·5),반미평화 월간사업(6·25∼7·27) 등을 공동 실시키로 합의했다. 베를린에 있는 「범청학련」 공동사무국(국장 최정남)을 통해 수시로 북한과 투쟁방향을 협의한다. 「강원지역 총학생회연합」은 5월7일 북한 「강원도 학생위원회」가 보낸 출범식 축하문을 받아 공개했다.「국가보안법 철폐와 미제축출 투쟁의 최선두에 나설 것」을 선동하는 내용이었다. 「전남지역 총학생회연합」(남총련)은 5월22일 반미의 날을 맞아 북한 「평안북도 학생위원회」와 공동투쟁 결의문을 채택했다.「한총련」 출범식에서는 북한에서 보내온 정치 연설문이 낭독됐다. 북한이 지난 93년 4월 제시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이 「한총련」 대의원대회장에 플래카드로 내걸렸고,4월13일 동국대에서 열린 통일전진대회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연방통일조국 건설의 방도」라며 통일운동의 지표로 규정했다. 특히 「한총련」산하기구인 「조국통일위원회」(위원장 유병문 동국대 총학생회장)는 북한의 정전협정 파기선언을 옹호하는 내용으로 「긴급 선전지침」을 각급 학생회에 내렸다.지침은 정전협정 파기선언을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유명무실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만들려는 자위적이고 주동적인 조치』라며 지지했다. 이같은 「한총련」의 투쟁 방식은 필연적으로 공권력과 물리적인 충돌을 낳을 수밖에 없다.이에 대항하기 위해 지난 5월 투쟁본부를 발족시켰다. 투쟁본부의 체제는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그동안 대학가 투쟁을 앞장서서 이끌어온 전투행동대 중심구조일 것으로 공안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행동대는 전남대의 오월대,조선대의 녹두대,중앙대의 의혈대,한신대의 강철대 등 대학별로 조직됐다.전남지역 5개 대학의 행동대는 「남총련」 산하의 「민족해방군」으로 통합되기도 했다.정예요원은 8백여명이다. 이들은 중대·소대·분대 등 군대식 조직으로 편성되며 전남대 중대는 죽창소대·불꽃소대·비호소대 등으로 구성돼있다. 각종 시위 현장의 선봉에서 무전기까지 동원한 일사분란한 행동으로 진압경찰에 타격을 준다.평소에도 조직적으로 체력단련과 무술훈련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중심이 된 과격시위는 올들어 지난 7월말까지 7백56차례로 지난해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화염병은 1백46차례에 걸쳐 6만4천5백여개를 사용했다.지난해의 11배 가량이다. 「한총련」은 지난해 「통일운동의 대중화」에 역점을 두고 서명운동 등 온건한 방식을 채택했으나 올들어 「정권타도·반미 투쟁노선」을 공식 천명하면서 과격한 투쟁 방식으로 급선회 했다.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에도 불구하고 「8·15 통일대축전」 행사를 강행한 것도 변화된 투쟁노선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폭력양상에 따른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 운동권 안팎으로부터 국민 정서를 무시한 돌출적인 좌경노선이라는 거센 비난만 받는 처지가 됐다. ◎“운동권학생에 북실상 직접 보게하라”/독지 과격시위 비판/빈곤 허덕이는 공산주의국 동조 이해못할 일 민주주의가 확고히 정착된 한국은 운동권학생들의 북한에 대한 호기심을 막기보다는 그들이 북한의 실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지가 15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최근 한국의 과격시위와 관련,『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이뤄졌고 경제적으로 번영된 한국의 대학생들이 빈곤에 허덕이는 공산주의 북한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들 모두가 좌익세력이라는 주장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운동권학생들은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애국자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통일이라는 문제가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하고 『이들은 정부가 통일을 얘기하면서도 통일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정부는 운동권학생들이 통일과 대북 찬양을 혼동하고 있다고 판단,이들의 북한 접촉이나 방문을 법으로 금지시키고 있다고 이 신문은 밝혔다. 이 신문은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태도는 북한에 대한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하고 학생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북한의 실상을 직접 보도록 하는 것이 이를 막는 것보다 효과적일 것이라고 충고했다.
  • 재앙가져올 쓰레기 침출수

    환경부가 조사한 전국 시·군·구 생활쓰레기매립장 운영실태는 놀랍고 두렵다.4백50개 쓰레기매립장중 침출수처리시설을 갖춘 위생매립장은 단15곳,3.3%밖에 되지 않는다.나머지는 전부 웅덩이나 계곡에 그저 쓰레기를 쌓아올리는 방법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행 폐기물관리법만 해도 침출수가 지하에 스며들지 않도록 바닥에 차수시설을 해야하고 이와 함께 침출수정화시설,유해가스 포집관,빗물방지시설은 필수적으로 구비토록 규정하고 있다.이렇게 하지않으면 당연히 매립장 토양오염만이 아니라 주변토양과 식수원에까지 광범위한 오염이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토양오염은 물오염이나 대기오염과 달리 가장 비가시적이라는 점에서 방치하기가 쉽다.그러나 인체에 주는 영향으로 보면 토양오염 위해도가 물·대기보다 치명적이다.예컨대 수은건전지는 토양오염을 거쳐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다시 인체로 되돌아와 수은중독 현상을 만들수 있다.미생물이 없는 죽은 땅을 만들고 농작물을 먹을 수 없게 할뿐 아니라 아예 생산량을 저하시킨다.그리고 이 오염토양을 회생시키는데는 1백년을 가지고도 불가능하다. 이점에서 침출수를 무방비로 방치하는것은 매우 중시해야할 위험이며 환경적으로도 대단히 큰 재앙을 전제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사실중에 이렇게 방치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예산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부분도 있다.좀 어이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그렇다면 이런저런 환경대책비를 줄여서라도 침출수시설을 먼저 만든다는 원칙이라도 세워야 한다.또 현재 어느 정도의 토양오염이 이루어졌고 그 영향은 어디까지 미쳤는지를 철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그래야 치명적 상황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를 예측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매립장마저 60%는 사용용량이 3년이내라고 한다.환경부는 광역위생매립장을 세울 계획이지만 이 또한 님비현상과 부딪쳐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따라서 지역단위로 작은 소각장 설치를 좀더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생활쓰레기줄이기운동 역시 더 강조되어야 한다.
  • 수하르토 “군 강경대처 하라”/민주화 요구 일축

    ◎인니 독립기념일 연설 【자카르타 UPI 연합】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16일 지난달 자카르타시내에서 발생한 유혈폭동이 「무정부적이고,비민주적이며,무책임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시위연루자에 대한 군부의 강경조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독립 51주년을 맞아 전국에 텔레비전으로 생방영된 연설에서 그는 모든 정부기관은 무정부적인 행동으로부터 사회를 방어하기 위한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이 폭동은 민주주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라며 일부 국내외 정치전문가들의 민주화요구시위라는 분석을 일축하고 『범죄자들과 시위참가자들은 법앞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하르토 대통령은 이와 함께 견해차와 정치적 투쟁은 민주주의체제아래서 정당한 것이지만 이는 합법적 테두리내에서만 정당성을 입증받을 수 있다면서 『건물과 공공시설물의 파괴,방화 등의 행동은 무정부적이고 비민주적이며 무책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 한총련 신종 화염병 사용/에나멜 페인트·설탕 혼합…불길 잘안꺼져

    ◎「머리 내리치기」 쇠파이프 사용법 훈련도 한총련 대학생들의 「연세대 시위 현장」에서는 종전의 화염병보다 위력이 강한 「강화 화염병」이 새로 선보였다.일부 학생들은 쇠파이프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과격 시위 자체가 「우연」이 아니라 치밀한 사전 준비에 따른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강화 화염병」은 휘발유에 4분의 1 분량의 에나멜 페인트와 설탕을 혼합,점도를 높였다.불길이 닿으면 옷이 쪼그라 들고 피부에 달라붙는다. 「강화 화염병」의 등장으로 이번 시위 과정에서 전경대원들의 상당수가 팔이나 얼굴에 수포가 생기고 허물이 벗겨져 흉한 상처가 남는 중화상을 입었다. 이른바 공격부대 격인 「사수대」가 경찰을 향해 쇠파이프를 머리로 내려치는 모습도 흔히 목격됐다.「통일선봉대」라고 신분을 밝힌 한 학생은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쇠파이프 사용법을 별도로 연습했다』고 털어놨다.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일부 학생들이 「진압봉」 사용법에 맞춰 훈련을 시켰다.군 교범은 진압봉을 「허리 아래」「어깨 부위」「머리 정면」 등 3단계로 노리도록 가르치고 있다. 쇠파이프에 맞아 머리가 함몰되거나 쇄골이 부러진 전투경찰이 어느 때보다 많은 것도 쇠파이프 훈련 때문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 여권 한총련시위 강경대응 안팎(정가 초점)

    ◎좌경폭력시위 국기수호차원 철퇴/“이기회에 뿌리뽑아야” 국미적 합의 확인/극력세력 선별 엄단… 학생운동 변화 유도 한총련의 친북적 폭력시위에 대해 여권이 국기수호차원의 대응을 선언했다.청와대와 정부·신한국당은 이번 한총련사태가 학생운동의 한계를 벗어난 국가질서유린행위로 규정하고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강력대응에 나섰다. ▷청와대◁ 전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한총련의 폭력시위를 뿌리뽑겠다는 「초강경」기류를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16일 상오 김광일 비서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 연세대 대치상황,수사상황,학내 움직임,국내외 여론동향 등을 분석하고 철저한 대응방침을 거듭 확인했다.김영삼 대통령도 수석회의가 열리기 전에 김실장의 보고를 받고 어떠한 체제도전세력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정부가 조금도 흔들리지 말고 의연히 대처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고위관계자는 『김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유민주체제 전복세력에 단호히 대처한다고 밝힌 기조에 따라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고위관계자는 『국민이 한총련의 과격시위에 등을 돌렸기 때문에 차제에 한총련내 좌경극렬세력이 뿌리뽑히고야 말 것』이라면서 『한총련 전체를 이적단체로 규정하는 것은 일부 선의의 가담자가 있을 수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과격시위도 문제지만 국민에게 이념적 혼란을 주는 점이 우려되므로 시위가 진정되더라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비서실장은 15일밤 경찰병원과 적십자병원에 차례로 들러 진압도중 화염병에 화상을 입거나 쇠파이프와 돌에 맞아 부상을 당한 전경을 위문,격려한 데 이어 연세대 대치현장에 들러 상황을 점검했다. ▷신한국당◁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일부 대학생의 친북적 주장과 극렬폭력시위를 근절해야 한다는 판단이다.여기에는 어떤 정치적 이해득실도 따질 계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신한국당은 이날 고위당직자회의에 김우석 내무부 장관을 출석시켜 시위상황과 정부의 대책을 보고받은 뒤 범여권의 총력대응방침을 재확인했다.신한국당은 단순히 한총련이 일으킨 폭력시위가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주장을 되뇌이면서 폭력을 써서 사회질서를 흔드는 한총련의 존재가 문제라고 보고 있다. 신한국당은 아울러 이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 국민적 합의가 이뤄졌다는 생각이다. 이홍구 대표위원도 이 점을 강조했다.『우리 국민은 국기를 뒤흔드는 사태를 엄단하기 바라면서도 불상사는 원치 않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전제,『그러나 이번만큼은 이 문제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성립된 상태』라고 지적하고 『정부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근원척결에 힘써달라』고 당부했다.회의에서는 특히 폭력시위와 맞물린 파출소습격사건 등 최근 빈발한 국가공권력 위협사건 전반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경찰의 인력 및 장비충원에 필요한 예산지원을 대폭 확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신한국당은 그러나 이런 단기처방에서 나아가 궁극적으로 이번 한총련사태가 학생운동의 변화를 유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시각이다.이를 위해 당 일각에서는 한총련 자체를 이적단체로 규정,조직을 와해시켜야 한다는강경론도 대두하고 있다.그러나 한총련이 일정부분 전국대학생의 대표성을 지닌 조직인 데다 내부에 다양한 강온세력이 존재하는 만큼 강경주도세력을 엄단함으로써 극렬친북행위를 무력화하는 쪽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 “뭇매 맞는 경찰관 상상못할일”/외국인이 본 폭력시위 현장

    ◎학생·전경대치 전쟁터에 온 기분/왜 평화적 해결 노력 않는지 의문 『왜 이렇게 과격한 폭력시위가 벌어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16일 하오4시 폭력시위가 닷새째 계속되고 있는 연세대 동문에서 만난 미국인 데이비드 페트리션씨(26)는 넋을 잃은 표정으로 시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 동양에 관심이 많아 지난해초 한국에 온 데이비드씨는 그동안 창원대 영어강사로 일하면서도 이런 과격시위는 보지못했다고 말했다. 『학생과 전경이 모두 비슷한 나이의 젊은이인 것 같은데 서로 저렇게 싸우다니….마치 전쟁터에 와있는 것 같아요』 데이비드씨는 『미국에서는 정부에 불만이 있으면 투표를 통해 의견을 밝히거나 다른 합리적인 방법을 추구하지,이렇게 과격한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는다』면서 연신 고개를 저었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불만이 있으면 대화 등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면 될 것같은데 왜 그런 좋은 방법을 택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통일문제는 정부의 정책에 관한 것이라면 대학생이 이런 의견에 대해 정부와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하고 정부도 이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다면 이런 과격시위가 일어나지 않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데이비드씨에게 한국의 과격시위 상황은 「한참이나 풀어도 해법을 알아맞히지 못할 수수께끼와 같다」는 표정이다. 『중요한 대학의 건물이 불타고 강의실이 파괴되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에요』 데이비드씨는 『되도록이면 학생을 이해하려고 한다』면서도 『학문의 전당이 무참히 파괴되는 한국의 현실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데이비드씨와 함께 시위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일본인 후쿠다 쿠미코씨(25·여)도 『한국인이 친절해 7번째 한국에 왔는데 이런 시위는 처음 본다』며 『미래의 지도자인 한국의 대학생이 경찰과 폭력을 주고받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한목소리다. 데이비드씨는 이날 과격시위 현장을 뒤로하고 홍콩으로 출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면서도 『내년에 다시 한국에 와 공부하겠다』는 말을 잊지않았다.
  • 북한군 하사 DMZ 넘어 귀순

    ◎어제 새벽 “보급품 끊겨 한달 2∼3명 아사”/23살 장철봉… 키 1백60㎝·몸무게 42㎏ 【연천=박성수 기자】 북한군 소속 장철봉 하사(23)가 16일 새벽 경기 연천군 북방 비무장지대를 넘어 귀순했다. 군 당국은 이날 상오 3시10분쯤 북한군 5군단 5사단 민경대대 7중대 소속인 장하사가 비무장 차림으로 연천군 북방 군사분계선을 넘어 육군 상승열쇠부대 전방초소쪽으로 귀순했다고 발표했다. 아군은 이날 상오 2시45분쯤 야간관측장비로 철책선에서부터 두손을 들어 귀순의사를 표시한 장하사를 발견,아군초소 전방 40m지점에서 상승열쇠부대소속 김정규 상병 등 2명이 25분만에 우리측으로 인도했다. 장하사는 지난 15일 밤 11시쯤 경계근무중 초소를 이탈,수해로 파손된 북한측 비무장지대 철책을 지나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장하사는 귀순 직후 상승열쇠부대에서 기자들과 만나 『6개월전부터 남한측의 대북방송을 듣고 남한사회를 동경해왔으며 부대에서 심하게 구타를 당한데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죽음을 각오하고 귀순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이번 집중호우로 보급품 공급이 끊겨 최근 강냉이로 죽과 밥을 만들어 먹었으며 반찬도 없어 소금국과 소금물에 절인 무로 끼니를 때웠다』며 『내가 소속된 사단에서도 한달에 2∼3명씩 굶어 죽어 나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귀순 당시 장하사는 인민군 전투복 차림에 단검 한자루와 군용 전화기 한대를 휴대한 비무장이었으며 키 1백60㎝,몸무게 42㎏의 몹시 야윈 상태였다.
  • 수레바퀴 선교회 홈페이지 개설

    ◎척수장애 관련정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재활교육·건강관리·치료자료·취업정보·해외사이트 등 소개 척수장애인들도 인터넷을 통해 우리말로 된 장애관련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당한 이들의 재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웹사이트는 「한국척수장애인 수레바퀴 선교회」라는 장애인단체가 개설했다. 수레바퀴 선교회는 「장애인에게 인터넷을」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척수장애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정리한 「한국척수장애인 사이버센터」(인터넷 주소 http://kscic.or.kr)라는 홈페이지를 인터넷에 구축해 최근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이 웹사이트에는 ▲척수장애에 대한 정의 ▲척수장애인과 인터넷 ▲한국척수장애인 사이버센터 소개 ▲척수장애와 관련된 용어와 정의 ▲척수장애인의 재활교육 ▲척수장애인의 건강관리 ▲척수손상에 대한 신경재생치료에 관한 연구 ▲국내 척수장애관련 연구자료 ▲외국에서 입수한 척수장애 관련 정보들이 실려있다. 또 척수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생활정보와 문화예술활동에 관한 정보도 제공한다. ▲척수장애인의 직업/취업정보 ▲척수장애인의 문화예술활동 ▲척수장애인의 스포츠 ▲척수장애인을 위한 재활용품 정보 ▲복지 및 재활정보 등을 일목요연하게 검색할 수 있다. 이밖에 ▲재활센터/재활병원 ▲척수장애인 동호회/단체 ▲주요장애인 단체 ▲재활상품 판매회사 ▲척수장애 관련 해외사이트 등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며 전자우편(kscic@nuri.net)을 통해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도록 했다. 홈페이지 개설은 선교회 김종배(35) 간사의 주도로 이뤄졌다.김간사는 연세대 상경대학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 84년 한국과학기술원산업공학과에 입학,올림픽 전산화 프로젝트에 참여하던 중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가 된 장애인. 누구보다도 장애인의 고충을 잘 아는 김간사는 『우리나라의 많은 장애인들은 재활정보와 단절돼 있다』고 지적하고 『간단한 건강관리 정보만 있더라도 척수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고통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 “대학생인가… 게릴라인가…”/한총련 극렬저항 “전쟁터 방불”

    ◎도심 곳곳 화염병 “아수라장”/전경 10여명에 무차별 폭행 한국 대학 총학생회연합(회장 정명기)이 주도한 「제6차 범청학련 통일대축전」마지막 날인 15일에도 연세대 안팎은 하루종일 최루가스가 자욱하고 화염병·돌이 난무했다. 캠퍼스 곳곳에는 최루탄과 화염병, 불에 탄 바리케이드의 잔해, 돌멩이, 찢어진 방석복과 헬멧·방독면 등이 널려있어 「무법천지」를 실감케 했다. 상오에 문을 열었던 학교 주변 일부 상가들은 하오에도 시위가 계속되자 모두 철시했다. 신촌 로터리 등 주변 도로는 14일에 이어 계속 통제돼 휴일인데도 교통이 큰 혼잡을 빚었다. 한밤중까지 학교안에 남아있던 학생 4천2백여명 가운데 2천여명은 이과대 건물 3·4·5층에서 농성을 벌였다. 3백여명 학생은 옥상에서 플래카드를 내걸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한 학생은 『건물 지하 1층에 실험용 원자로가 있고 3층에는 각종 화공약품과 프로판가스관이 있어 경찰이 쉽게 들어오지 못할 것으로 보고 이과대 건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과대에 방사성 동위원소와위험물질이 많아 진입하지 않았다. 학생 1천여명은 하오 5시40분쯤 경찰이 밀려나가자 교내 백양로에 농구대를 옮겨와 바리케이드를 치고 산발적인 시위를 하다 하오 8시쯤 흩어졌다. 하오 9시40분쯤 연대 정문에서 2백여m 떨어진 성산회관 인근에서 일부 학생들이 재집결, 기습 시위를 벌이자 경찰은 조명탄과 최루탄을 쏘며 해산시켰다. 학생들은 밤이 깊어지면서 각 대학별로 모여 대책회의를 열고 반정부구호를 제창했다. 경찰은 상오 10시10분부터 헬기로 연세대 상공을 선회하며 학생들의 자진해산을 권고하는 방송을 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행사를 강행하려 하자 상오 10시40분쯤 헬기 12대로 최루액을 뿌려 전열을 흐트러뜨린 뒤 전경 52개 중대 6천여명을 투입, 다연발탄과 최루탄을 쏘며 정문과 북문·동문등을 통해 동시에 들어갔다. 일부 경찰관들은 학생들에게 에워싸여 쇠파이프 등에 맞아 길에 쓰러져 무장해제를 당했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괴로워하는 경찰관도 간혹 목격됐다. 경찰이나 학생 양쪽 모두 부상자가 잇따랐다. 하오 5시40분쯤 경찰이 연세대에서 철수하는 과정에서 대열 후미의 전경대원 10여명은 학생들에게 붙잡혀 발에 밟히는 등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한 경찰 간부는 굳은 얼굴로 『게릴라전이야. 전쟁과 다름없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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