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겸재
    2026-01-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57
  • 올여름 겸재 예술 배워 보세요

    조선 후기 최고의 산수화가 겸재 정선(鄭敾·1676~1759)의 예술세계에 젖어 무더위를 날려보낼 수 있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강서구 가양1동 겸재정선기념관은 다음 달부터 3개월 동안 미술 애호가와 화가지망생을 대상으로 겸재문화예술 아카데미 특별과정을 개설한다고 21일 밝혔다. 주민과 어린이를 위한 한국화, 서양화, 서예, 어린이 미술, 유아창작미술 등의 강좌도 선보인다. 아카데미는 매주 한 차례 열리며, 수강료는 궁중진채·민화 15만원, 한국화·서양화·서예 6만원, 어린이·유아창작미술 4만원이다. 또 다음 달 7일부터 9월 7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에는 문화예술인문교실 ‘명화로 보는 서양미술사’ 강좌가 마련된다. 수강료는 2만원이다. 참가를 원하는 주민은 다음 달 5일까지 기념관 홈페이지(www.jeongseon.gangseo,seoul.kr) 또는 전화(2659-2206~7)로 신청하면 된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기고] ‘세종마을’을 아세요/김영종 종로구청장

    [기고] ‘세종마을’을 아세요/김영종 종로구청장

    경복궁 주변의 마을들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북촌이 서울 관광의 1번지가 되면서 이제는 다른 지역으로까지 내외국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경복궁 서쪽은 북촌에 못잖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북촌이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들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인 반면, 서쪽은 중인인 역관과 의관·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의 삶의 터전이었고 근대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시인 윤동주·이상 등도 이곳에서 꿈의 날개를 펼쳤다. 다시 말해 이곳은 양반층보다는 전문직 종사자와 문화예술인 마을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서 골목 하나만 지나면 동네 이름이 바뀌는 곳이다. 골목 어귀마다 숱한 이야기와 전설을 안고 있기도 하다. 지난 15일 통인시장 입구에서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세종마을’ 선포식이었다. 사단법인 세종마을 가꾸기회가 이끈 행사는 경복궁 서쪽의 15개 동네를 세종마을로 명명하는 한편 세종대왕 탄신일에 걸맞게 세종마을 문화축제로 펼쳐졌다. 북촌이 서울관광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경복궁 서쪽의 마을 주민들은 그동안 뜻하지 않은 ‘고통’을 겪었다. 북촌에 빗대어 일부 인사들이 ‘서촌’이라고 부르는 결례를 저지르고 있어서다. 조선시대의 서울은 동서남북과 중촌의 5촌으로 관리됐다. 북악산 밑을 북촌이라 했고 남산자락 아래는 남촌, 낙산 근처를 동촌, 서소문 안팎을 서촌, 그리고 수표교 주변을 중촌이라 했다. 서촌은 분명 정동·서소문 일대인데 경복궁 서쪽이라고 서촌이라 불렀으니 마음이 상할 만도 했다. 일찍이 공자는 사회 혼란의 원인을 정명(正名)의 부재, 즉 이름이 바르게 되지 않음에서 찾았다. 이름이 바르지 않다는 것은 명목과 실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명목과 실체가 일치하지 않으면 각자 맡은 이름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사람 이름을 잘못 부르면 큰 실례가 된다. 하물며 땅의 이름, 특히 역사성이 깃든 지명을 잘못 부르는 것은 역사에 대한 결례이자 자신의 무식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행위이다. 효율과 편리를 중시하는 요즘 기준으로 생각하면, 지명이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우면 됐지 이름 붙여진 이유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내일을 사는 후손들에게 올바른 과거를 이야기해 줄 의무가 있다. 특히 길 하나하나에도 역사가 깃들어 있는 600년 수도 서울의 중심인 종로는 더욱 그러하다. 이곳 주민들이 ‘지명 바로잡기 운동’에 나선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지난해 가을,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새 이름이 논의되었다. 주민들은 세종대왕이 탄생하신 이곳이 전문직 종사자와 문화예술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는 점에서 세종마을이란 명칭을 대안으로 마련했다. 행정동이나 법정동 이름은 아니지만 경복궁 서쪽 인왕산 일대의 넓은 역사적 마을을 통칭하는 이름으로 탄생한 것이다. 세종대왕 탄신 614주년을 맞이하여 세종마을이 탄생했다는 것은 지역민의 자랑이자 한국사의 새로운 한 장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세종마을이 서울 관광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른 점은 그래서 반갑다.
  •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15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이라는 시간의 흐름. 찬란했던 르네상스의 중심지 이탈리아 피렌체와 일제 강점기 아시아의 소국(小國) 조선이라는 공간과 위상의 차이. 이 시대를 살았던 두 명의 사람이 있었다. ‘위대한 메디치’로 불리며 이탈리아, 아니 중세 유럽을 통틀어 가장 화려했던 가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로렌조 메디치(오른쪽·1449~1492)와 자국의 역사책에조차 등장하지 않는 간송(澗松) 전형필(왼쪽·1906~1962). 겉으로 보이는 배경으로는 너무나 다르지만 이들에겐 엄청난 ‘돈’과 예술을 알아보는 ‘혜안’(慧眼)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공통점은 각각 피렌체 우피치미술관과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형태로 오늘날 우리에게 ‘인류의 유산’을 향유할 기회를 남겼다. 만약 그들이 막대한 재산을 흥청망청 쓰는 데만 골몰했다면, 또는 재산을 늘리는 데만 관심을 가졌다면 중세미술사와 한국미술사는 다시 쓰여져야 했을지도 모른다.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주의 주인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꼽히는 로렌조 메디치와 전형필이다. 막대한 재산을 문화유산에 아낌없이 쏟아부은 이들의 노력이 어떻게 시작됐으며,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그 결과로 우리는 어떤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서양미술사에만 관심을 갖다가 지난주 간송미술관을 다녀온 후 한국미술의 전통과 매력에 흠뻑 빠진 직장인 윤정은(33·여)씨가 궁금한 점을 모아 인터뷰에 나섰다. →<윤정은> 두 사람 모두 젊은 나이에 상상을 초월하는 재산을 물려받았다. 도대체 어떤 가문이었고 재산 규모는 얼마나 됐나. -메디치 내 증조할아버지인 토스카나 대공(大公) 코지모는 피렌체인들 사이에서 ‘국부’라는 명예로운 호칭으로 불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은행업을 통해 그야말로 돈을 긁어모으다시피 했다. 가문의 수장이 됐을 때 내 나이 고작 20세였다. 당시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 특히 우리 가문은 직물산업의 핵심이었던 ‘백반’(양모 세척제)을 움직였고 메디치 은행의 주요 고객은 유럽 각국의 왕실과 교회였다. 당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갖고 있었는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냥 피렌체가 메디치였고, 피렌체의 모든 것은 메디치 가문의 재산이었다고 이해하면 된다. -전형필 일제 강점기에 와세다대 법대를 다니던 중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서울 일대는 물론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를 지나면서 우리 집안 땅을 밟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만석꾼 집안이었다. 미곡상을 했는데 내가 24세에 물려받은 논은 4만 마지기(800만평)에 달했다. 1년에 소작농으로부터 쌀 2만 가마니(1만석)를 거둬들였는데, 이를 당시 기와집 값으로 환산하면 150채 정도였다. 현재 서울 아파트 가격으로 환산하면 매년 450억원이 들어왔다는 얘기다. 논을 몽땅 판다고 가정하면 6000억원 정도였는데, 이건 그냥 단순한 수치 환산이고 당시 논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훨씬 더 가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1년에 나만큼 버는 조선인은 43명에 불과했다. →<윤정은> 역사적으로 많은 재산이나 권력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흥청망청 쓰다 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한국의 재벌 집안만 봐도 그런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실패하지 않았고, 젊은 나이에도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 -메디치 할아버지 코지모의 영향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피렌체에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모여 있었고, 난 그들과 토론하는 법을 배웠다. 10대 때부터 이미 유럽 각국에서 피렌체를 대표하는 외교관 역할을 수행한 덕에 외국어에도 능통했다. 로마어에 비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리스어까지 능통하게 구사했을 정도였으니. 내 신분은 공식적으로는 돈이 많은 시민이었지만 피렌체 안팎에서 피렌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인식됐고, 그렇게 살았다. 물론 금욕적인 삶을 지향하지는 않았다. 난 바람둥이였고, 수많은 애인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권력자에게는 그런 게 큰 흠이 되지 않았다. -전형필 난 원래 경성에서 대학을 다니며 조선어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변호사가 될 것을 강권하셨고, 그 덕분에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만든 법을 연구한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가업인 장사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무엇보다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해도 부모의 상을 당한 상황에서 본인이 즐기는 데 그것을 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윤정은> 두 사람 모두 예술을 사랑했는데 특히 수집(蒐集)에 관심이 많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메디치 ‘위대한 로렌조’라는 호칭과 달리 난 콤플렉스가 많았다. 심한 주걱턱이었고, 아랫입술이 윗입술을 덮었다. 코도 낮았고 목소리는 거칠었다. 하지만 난 비올라와 류트(당시의 현악기), 승마술, 매사냥까지 섭렵했고 유려한 글솜씨로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예술에 대한 조예는 못난 겉모습을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특히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은 예술가를 지원해 그들의 작품이 자신을 찬양하도록 했는데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난 할아버지나 아버지, 다른 귀족들과는 좀 달랐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일 이외에 고대 미술품을 수집하고 동양의 예술품에도 관심이 많았다. -전형필 일제 강점기라는 당시 사회상에서 난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무엇보다 휘문고보 시절 은사였던 고희동(1886~1965·서양화가) 선생과 3·1 만세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었던 위창 오세창(1864~1953·서예가) 선생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두 분은 내가 어릴 때부터 책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내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고 선생은 나에게 “글을 읽으면서 학문을 닦는 선비가 아니라, 조선의 문화를 지키는 선비가 되라.”는 조언을 해 주셨다. 그 결과 나는 왜놈들 손으로 넘어가는 우리 서화와 전적을 지키는 선비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위창 선생은 나에게 ‘간송’이라는 호를 주셨고, 내 수집활동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어떤 작품을 모아야 하는지, 어떤 눈을 갖춰야 진품을 구분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말이다. →<윤정은> 돈으로 물건을 수집하는 것은 사실 취미로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재산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는데, 다른 목적은 없었나. -메디치 (웃음) 난 상인이었지만 정치인이기도 했다. 정치인에게 100% 순수한 호의라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1482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밀라노에 보내고 1488년 안토니오 다 산갈로를 나폴리에 보냈다. 그 공국들에 내가 후원하던 예술가를 보내는 게 좋은 작품을 선물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호의를 베풀면서 실은 정치를 한 거였다. 솔직히 내가 예술가를 후원한 돈은 대부분 내가 피렌체의 공직을 겸하면서 공금으로 썼다. 내 재산은 오로지 내 수집품을 모으는 데 집중적으로 썼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에 대한 환상이 좀 깨지지는 않았나. -전형필 왜 수집에 나섰느냐고 위창 선생이 물었을 때 난 “서화 전적과 골동은 조선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조선이 언젠가 독립될 것이란 믿음이 없었는데도 수집을 계속했을지는 나도 자신이 없지만, 난 반드시 독립될 것으로 믿었다. 1933년 성북동에 터를 구해 미술관을 지은 것도 독립이 됐을 때 후손들에게 우리 문화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팔려 갔던 고려석탑을 다시 사 오면서 난 한번 유출된 문화재가 고국으로 돌아오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해방된 후에는 이전처럼 문화재를 수집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일제에 더 이상 빼앗길 염려가 없어진 후에는 조선 사람이 모은 것은 모두 조선 것이기에 해방 후에는 문화재를 찾아오는 일에만 전념했다. →<윤정은> 소장품들에 대해 묻겠다. 두 사람의 노력은 우피치와 간송 미술관으로 남았지만 두 사람 모두 박물관의 개관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메디치 우피치는 영어로 하면 ‘오피스’(사무실)를 뜻한다. 그곳은 내 증조부 코지모의 집무실이다. 물론 내가 가장 주목받기는 하지만 우피치 수집품은 우리 가문 전체의 공이다. 14~16세기 르네상스 화가부터 17~18세기 바로크와 로코코에 이르기까지 소장 규모 자체는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다. 조토의 ‘성모자’, 다빈치의 ‘수태고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 도록으로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우피치를 박물관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 이후로 200여년이 지난 후 메디치가 최후의 후손이었던 안나 마리아 루드비카가 가장 큰 공을 세웠다. 그녀는 모든 재산을 토스카나 공국에 기증하면서 단 하나의 조건만을 남겼다.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피렌체에서 메디치가의 보물을 볼 수 있도록 어느 것도 피렌체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형필 간송미술관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청자운학문매병’ 등 12점의 국보와 10점의 보물이 있다. 1937년에는 영국 변호사 개스비에게서 청자 20점을 40만원에 사기도 했다. 당시 서울 기와집 400채 값이었다. 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가격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 가치는 후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고, 그것이 원래 내가 수집을 시작한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잡스러운 그림을 그린다고 폄하됐던 겸재 정선(1676~1759)을 화성(畫聖)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을 내 최대의 성과로 생각한다. 그럼 내가 묻겠다. 지금 간송미술관에서 당신은 어떤 기분을 느끼나. →윤정은 당대 최고의 좋은 자재로 지었다는 미술관이지만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1930년대의 근대식 2층 건물과 창틀에는 현대미술관처럼 멋진 조명도 없고 첨단 잠금장치도 없다. 화장실 냄새도 코를 찌른다. 아이들이 유리에 온갖 손자국을 내며 코를 박고 보는 모습은 유럽 미술관의 풍경과 너무나 달랐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들을 전시하지 않아서 좋았고, 온전히 우리 것이라는 것이 더 좋았다. 내가 보고 있는 전시품이 엄청난 가치가 있다는 생각보다는 조상의 것이라는 사실이 먼저 느껴졌다. 바티칸이나 루브르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친구들에게 꼭 말해 주고 싶다. 간송미술관에 가면 간송이라는 사람과 그가 남긴 뜻이 마음으로 전해진다고 말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그래픽 이혜선기자 okong@seoul.co.kr ■ 참고서적 간송 전형필/이충렬/김영사 조선의 그림수집가들/손영옥/글항아리 간송 선생님이 다시 찾은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최완수·한상남/샘터 조용헌의 명문가/조용헌/랜덤하우스코리아 메디치 머니/팀 팍스·황소연 옮김/청림출판 메디치‘의 음모/피터 왓슨·김미형 옮김/들녘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의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 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 사군자 400년 역사 총정리

    사군자 400년 역사 총정리

    봄가을 딱 두 차례 전시를 여는 간송미술관이 올해 봄 전시 주제를 ‘사군자대전’으로 잡았다. 사군자는 유학자들이 앞다퉈 그렸지만 잦은 전쟁 등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작품은 드물다. 특히 임진왜란 이전 작품은 없다. 15일부터 29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에는 임진왜란 직후 탄은 이정(1554~1626)이 남긴 작품에서부터 옥봉(1913~2010) 스님의 작품까지, 60여 명 작가들이 남긴 100여 개 작품이 내걸린다. 최완수(68)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1976년과 2005년 비슷한 주제로 전시했지만 그때는 소규모 전시에 불과했다.”면서 “이번에는 대전이라는 말에 어울릴 정도로 사군자 400여년 역사를 총정리했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전시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작품으로 이정, 유덕장(1675~1756), 김정희(1786~1856)의 작품을 꼽았다. “사군자는 단순히 잘 그린다고 되는 게 아니라 선비의 정신세계가 드러나야 하는데 그 선비정신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이들 세 작가가 최고”라고 설명했다. 가령 김홍도(1745~?)와 비교하자면 김홍도도 난을 잘 그리기는 했으나 기교 면에서 능숙했을 뿐, 아무래도 선비정신 자체는 뛰어나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어몽룡(1566~1617)이 남긴 묵매, 겸재 정선의 제자 심사정(1707~1769)이 남긴 국화 그림 등도 추천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명작·서화, 픽셀로 다시 태어나다

    명작·서화, 픽셀로 다시 태어나다

    황인기(60) 작가는 디지털 산수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던 작가다. 옛 산수화들을 디지털 화면으로 되새김질하는 작품들을 주로 선보여왔다.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에 선정됐고, 2003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때 한국관 대표작가로 나서기도 했다. 때문에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은 황 작가를 ‘올해의 대표작가’로 선정,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황 작가는 서울대 공대 응용물리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한 뒤 미대로 재입학해 미술의 길로 접어들었다. 디지털 산수와 어울려 보이는 이력이지만 정작 자신은 “돈 벌어 재미나게 살겠다는 생각에서 공대에 갔는데 돈 벌어 봤자 별로 재미날 것이 없어보여 그만뒀다.”고 말했다. 디지털 산수는 옛 서화들을 ‘픽셀’(pixel)로 바꿔 독특한 느낌을 준다. 이 픽셀을 어느 수준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자그마한 못에서 큼지막한 레고 블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들이 동원된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이런 옛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픽셀로 되살아난 안견의 ‘몽유도원도’,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재미있다. 2층에서는 최신작을 만나볼 수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인상파 명작들을 재해석한 ‘플라-세잔’ 시리즈와 아프리카 어린이의 기아문제, 이라크 전쟁, 어린이 성범죄 등 사회적 이슈를 다룬 현장 기록 사진을 해체한 ‘플라-차일드’ 시리즈들. 작가는 “중국 작가들은 서양회화 전통에서 자기네들이 써먹을 만한 요소들을 다양하게 빼서 쓰는데 일부 한국 작가들은 서양회화를 주인처럼 섬기거나 홈쇼핑 채널에서 신상품 팔 듯 소개하는 데 머물고 있다.”면서 “세잔, 고흐 같은 서양회화 거장들의 작품에 대한 비틀기, 응용 같은 게 요즘 나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이런 작가의 말을 뒷받침하는 것이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 시리즈다. 지금 괜찮은 것이라 칭송하는 것들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페라리 등 해외 명품 상표를 응용한 작품들인데 석회 반죽에 메주, 우유, 계란, 바나나 등 상하기 쉬운 재료들을 엄선(?)해 만들었다. 그래서 작가는 이들 작품을 ‘프로세스 아트’라 이름 붙였다. 29일까지. (02)760-4850~2.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어린이날 낀 5月 자치구마다 행사 풍성

    어린이날 낀 5月 자치구마다 행사 풍성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서울시내 곳곳에서 온 가족이 신나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쏟아진다. 도봉구는 다음 달 5일 어린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도록 ‘차 없는 거리, 아이들 세상’ 행사를 개최한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쌍문동 도당길 발바닥공원 앞 도로 400m 구간의 차량을 통제해 놀이마당과 체험마당, 먹거리마당, 공연마당 등을 열 예정이다. 강서구는 5일 박물관 특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가양2동 허준박물관에서 오전 10시 한방과자 만들기와 인형극, 한방차 무료시음 등이 준비된다. 가양1동 겸재정선기념관에서는 손수건 염색과 내 그림으로 부채 만들기, 겸재와 사진 찍기, 겸재현장답사 등이 열린다. 앞서 4일엔 우장산공원에서 글짓기와 그림 그리기, 동요 부르기 등 어린이 솜씨 경연대회가 열려 재롱을 뽐낼 수 있다. 성동구는 5일 오후 2시 왕십리 광장에서 ‘꿈나무 축제, 와글와글’ 행사를 진행한다. 꿈나무 체험부스에서는 딸기우유 만들기와 솜사탕 만들기, 비눗방울 체험 등 신나는 체험을 할 수 있고, 오후 3시 30분 청소년 동아리단의 댄스와 노래, 비보이 공연이 ‘우리들 세상’을 꾸민다. 식구끼리 함께할 수 있는 가족 레크리에이션과 게임 등 재밌는 공연도 준비했다. 영등포구는 5일 어린이 경제교육 뮤지컬 ‘재크와 요술 저금통’을 공연한다. 10세 이하 어린이를 위한 뮤지컬로 춤과 노래,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하고 집중할 수 있도록 웃음코드를 접목한 구성이 돋보인다. 당산동 3가 영등포아트홀에서 5일 오후 2시와 4시 공연한다. 양천구는 5일 양천·신월·목동 구민체육센터 수영장과 계남다목적체육관 배드민턴장을 무료로 개방한다. 수영장은 오전과 오후로 나눠 보호자를 동반한 어린이 70명씩 선착순으로 이용할 수 있다. 중구는 5일 오전 10시부터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지역 어린이집 어린이와 학부모 9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어린이날 대축제’를 연다. 구는 만화주인공 캐릭터와 사진 찍기, 나무 호루라기 만들기, 널뛰기와 윷놀이 등 9개 놀이마당을 마련했다. 먹거리 장터와 알뜰장터를 마련해 수익금을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5~6일 강동구청 앞 디자인서울거리에서는 인형극과 캐릭터퍼레이드 등 ‘착한놀이&박람회’가 열린다. 3000㎡에는 15개 부스의 놀이체험관이 조성돼 상상자동차 만들기, 낚시놀이, 인형극, 나무창작놀이 등을 즐길 수 있다. 주변 음식점 50여곳에서는 어린이 메뉴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한다. 또 암사동 선사주거지에서는 어린이 물놀이와 마당극 등 ‘어린이날 기념 축제’가 개최된다. 전쟁기념관에서는 5일 13세 이하 어린이 2500명에게 입장 순으로 장난감과 책, 문구 등을 선물하고 특전사 장병들의 특공무술 시범과 군악대와 의장대 행사, 연예병사 사인회 등 ‘나라사랑 어린이 문화축제’로 하루를 달군다. 서울시는 미래의 주역인 어린이와 함께 보신각 타종을 하는 ‘어린이날 희망타종’을 5일 오전 11시 종로구 관철동 보신각터에서 개최한다. 인터넷 접수자 12명과 현장 접수자 12명 등 24명에게 타종 기회를 준다. 시는 다양한 인기 공연을 50%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하는 ‘여성행복객석’도 운영한다. 판타지 댄스 뮤지컬 ‘프린세스 콩쥐’가 4일 오후 8시와 5~8일 오후 2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A석 입장료는 5000원이다. 또 마술과 그림자쇼인 ‘찰리아저씨의 매직 콘서트’가 5일 오후 2, 4시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에서 열린다. 입장료는 1만원이다. 시청팀 huyn68@seoul.co.kr
  • 조선후기 회화 한자리…15일부터 인사동 동산방화랑

    조선후기 회화 한자리…15일부터 인사동 동산방화랑

    박우홍 동산방화랑 대표가 1년간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 온 ‘조선 후기 회화전-옛 그림에의 향수’전이 오는 15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인사동 동산방화랑에서 열린다. ‘심혈’이 들어간 이유는 두 가지다. 첫번째 이유는 1983년 조선 후기 회화전 이래 20여년 만에 열리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난리가 나면 도자기는 땅에 묻으면 되지만 그림은 불타거나 물에 젖어 찢겨버려요. 그러다 보니 기본적으로 수량에서 한계가 있고, 그나마 있는 것도 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어가 있어요. ” 맥을 잇기 위해서는 젊은 연구자나 후속 작가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이들조차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다며 박 대표는 탄식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탄은 이정(1541~1622)에서부터 운미 민영익(1860~1914)에 이르기까지 조선 후기의 거의 모든 작가들이 망라된 데다 최초 공개작도 두루 섞여 있어서다. 박 대표는 “창업주인 아버지(박주환)의 덕을 많이 봤다.”면서 “아버지와의 인연을 생각한 소장가 분들이 전시의 뜻을 믿고 작품들을 맡겨주셨다.”고 밝혔다. 우선 이정의 ‘니금세죽’(泥細竹)에 시선이 간다. 이정은 세종대왕의 현손(손자의 손자)이었으나 왕위 세습에서 제외돼 묵죽화를 주로 남겼던 화가다. 박 대표는 “먹이 아니라 이금(아교를 섞어 갠 금가루)이라서 농담(濃淡)이나 필치의 맛이 색다르다.”면서 “격식과 운치를 한번에 맛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새 정자를 지은 백사 이항복에게 이금으로 써서 건네준 축시 ‘니금시고’(泥詩稿)도 함께 전시된다. 전시를 도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조선 후기 서화라 하면 겸재 정선부터 시작하는데 이번 전시는 탄은 작품까지 모셨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라면서 “왕족이라 그런지 굳세면서도 능숙한 필치에서 기품도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명작이라 요즘 중국 현대작가들하고 맞짱을 떠도 될 정도”라고 말했다. ‘조선의 3원 3재’라 불리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관아재 조영석의 그림도 빼곡하다. 특히 김홍도의 게 그림은 일제 강점기 때 경매에서 한 차례 선보인 뒤 80여년 만에 다시 나왔다. 스스럼없는 필치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게의 모양새가 재밌다. (02)733-587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Seoul 요모조모-만원의 행복] 가양동 겸재 정선기념관

    [Seoul 요모조모-만원의 행복] 가양동 겸재 정선기념관

    ‘눈이 비가 되어 내리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된다.’는 우수(雨水·2월 19일)가 성큼 다가왔다. 겨울의 끝자락을 뒤로하고 17일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을 만나러 강서구 가양동 궁산(宮山)으로 발길을 옮겼다. 궁산은 겸재가 65세 때인 1740년(영조 16년) 양천현령으로 5년간 재직하면서 그린 수많은 산수화의 배경이었다. 먼저 정상으로 향했다. 궁산은 높이 75.8m로 나지막하지만 서울에서 한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궁산에서 내려다본 한강은 겸재의 그림처럼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풀어내면서 시리도록 푸른 물빛을 쏟아냈다. 정상 한강 조망대에 걸린 그림 한폭이 눈길을 끈다. 겸재가 그린 옛 한강과 오늘날을 비교해 감상하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260여년 전 겸재가 궁산에 앉아 현재 월드컵공원이 들어선 난지도와 한강, 소악루를 ‘금성평사’(錦城平沙·금성의 모래펄)라는 제목으로 화폭에 담았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자 소악루(小岳樓)가 낯선 손님을 반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화강석 8각 주춧돌에 민흘림 원기둥을 세운 5량집 겹처마 구조이다. 소악루 안에도 겸재의 작품인 ‘안현석봉’(鞍峴夕烽)과 ‘목멱조돈’(木覓朝暾)이 걸려 발길을 붙든다. 안현석봉은 겸재가 소악루에서 안산(이화여대 뒷산) 봉화불을 바라보고 그렸고, 목멱조돈은 목멱산(남산)의 일출에 흠뻑 빠져들어 그린 것이다. 겸재의 세계에 빠져 산 아래 있는 겸재정선기념관을 들렀다. 2009년 4월 문을 연 기념관은 1000원(청소년 500원)의 저렴한 입장료로 121점의 겸재 문집과 책자, 그림을 만날 수 있다. 1층 양천현아실에서는 궁산 아래 있던 양천 현아를 작은 모형으로 복원해 놓았다. 2층 겸재정선기념실에는 겸재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조명하고, 겸재와 관련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바로 옆 진경문화체험실에서는 터치스크린을 이용하여 겸재의 그림에 색을 칠해 나만의 산수화를 완성해 볼 수 있는 ‘내가 그린 산수화’, 진경속 여행(움직이는 산수화)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기념관은 3~10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열고, 매월 둘째·넷째 토요일에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그림이 된 詩

    그림이 된 詩

    옛 선비들은 시와 그림을 하나로 보았다. 그림이란 붓으로 쓴 시이고, 시는 글로 그린 그림이라고 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은, 강은교, 김지하 등 시인 74명의 시를 두고 화가 43명이 그림을 덧붙인 ‘시화일률’(詩畵一律)전이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재홍과 미술평론가 윤범모,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정지용문학상 등을 받은 작품을 엄선해 뽑은 뒤 작가들에게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 미술로 표현해보라고 주문했다. 시와 그림이 함께 있다고 하니 언뜻 수묵화가 연상될 법도 한데, 극사실주의에서 추상화, 비디오 아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향의 작가들을 섭외한 덕분에 이채로운 작품이 눈에 많이 띈다. 가령 ‘긴 강을 헤엄쳐 온 내 안의 상처들은/ 어느덧 하늘의 가슴에 밀물지는데/ 길게 꼬리 진 노을 속에 젖은 외로움 하나/ 아직도 솟대처럼 우두커니 서있다.’고 읊은 ‘강변에서’(백수인 시인)를 맡아 그린 이는 한국 팝아트의 기수로 꼽히는 권기수다. 시는 전반적으로 우수에 찬 느낌인데 그림은 권기수의 특징으로 꼽히는 강렬한 빨간색과 ‘동구리’ 캐릭터가 등장해 묘한 느낌을 낳는다. 김남조 시인의 ‘면류관’은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이 표현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화려한 4계절 동영상 버전의 ‘신인왕제색도’로 제작해 화제를 모았던 이이남답게, 알프레드 뒤러의 ‘자화상’ 그림을 동영상으로 처리했다. 자화상에 면류관이 얹어지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다음 달 6일까지. (02)720-1020. 2월 23일부터는 부산 중동 가나아트로 자리를 옮겨 전시될 예정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울시 “의회 증액·신설예산 집행 안해”

    서울시 “의회 증액·신설예산 집행 안해”

    서울시는 시의회가 수정 의결한 2011년도 예산안이 위법이므로 재의를 요구하고 실집행예산을 편성해 운용할 계획이라고 4일 밝혔다. 시는 재의를 요구한 예산을 시의회가 재의결하면, 대법원에 재의결 무효 확인 소송을 내겠다는 방침이다. 실집행예산이란 서울시가 편성한 예산으로 원안 통과되거나 시의회가 감액한 예산만을 말한다. 즉 시의회가 마음대로 증액하거나 항목을 신설한 예산은 전액 집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시는 무상급식 695억원과 학교시설 개선 248억원,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200억원, 경로당 현대화 사업 30억원 등 시의회의 예산 신설 및 증액 사업은 불법적이므로 집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최항도 시 기획조정실장은 이날 시청 기자실에서 간담회를 열어 “시의회가 무상급식과 학교시설 개선 등의 예산을 서울시장의 동의도 없이 증액하는 등 지방자치법 제127조 3항을 위반했고, 지난해 시의회에서 의결돼 외상으로 사용한 서해뱃길의 채무부담행위 30억원을 2011년도 예산에 반드시 편성해야 하는데도 전액 삭감해 지방재정법 제44조 2항을 어겼다.”고 설명했다. 최 실장은 “예산 삭감이 법령에 위반될 때 무효라는 대법원 판례(전북 무주군 추가경정예산안 삭감조정 재의결 무효확인 소송)가 있으며, 증액 및 신설은 불법이므로 무효하다는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시는 예산 삭감으로 차질이 우려되는 사업들은 직접 수혜자와 시민단체 등을 상대로 이해와 협조를 구했다. 최 실장은 “시의회의 예산 삭감으로 푸드마켓 물품을 가전제품으로 확대하는 ‘서울희망마켓’ 사업 구상이 무산됐으며 ‘서울형 그물망 복지’ 실현을 위한 그물망복지센터 등 3개 센터가 폐쇄될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또 “한강예술섬과 서해뱃길 조성 사업이 좌초됐고 서울광장 문화예술공연과 국내 유일의 가족영화제가 전면 중단되고 하이서울페스티벌은 초라한 축제로 전락하게 됐으며 서울관광대상도 계속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역시 도시고속도로 정비 예산 삭감으로 도로 정체 해소는 1년 이상 기다리게 됐고, 겸재교 건설 현장이 흉물스레 방치될 위기에 처했다고 시는 호소하고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내가 꾸민 담장’ 낙후지가 예술마을로

    ‘내가 꾸민 담장’ 낙후지가 예술마을로

    낙후되고 삭막한 서울 소외지역이 지역주민들의 손을 거쳐 개성미 넘치는 예술마을로 탈바꿈됐다. 서울시 서울문화재단은 시민에 의해, 시민을 위한 공공미술프로젝트 ‘예술마을가꾸기’사업을 마무리짓고 다음달 7일부터 차례로 공개한다고 28일 밝혔다. 예술마을가꾸기는 2005년부터 진행해 온 ‘우리동네 문화가꾸기’에 시민참여를 높여 확대한 사업으로 지역주민들이 작품 제작의 전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어르신부터 어린이, 청소년들까지 남녀노소가 폭넓게 참여해 지역의 역사, 지명, 추억, 이야기 등 다양한 소재를 작품에 반영해 눈길을 끈다. ●청파동 노인 70명 조형물 제작 지난 3월부터 용산구 청파동, 성북구 정릉동·돈암동, 서대문구 홍제동, 종로구 청운효자동에서 사업이 진행됐다. 우선 청파동은 어르신 70여명과 아동 20여명이 도자기·칠보를 활용해 제작한 ‘연어 비란이의 생명 회귀 루트-푸른 파도’라는 제목의 벽 조형물을 다음달 7일 서계동 259-4 일대에서 선보인다. 시대를 거슬러 살아온 청파동의 여정을 연어라는 물고기 형상의 창작물로 표현해냈다. 정릉동은 ‘우리 아이들의 꿈이 자라는 시간 3분 45초’라는 제목답게 청덕초등학교 학생 850여명이 타일도자기와 추상화로 등교길 150m구간에 벽화를 완성했고, ‘ABC’예술단체 예술가들이 작품지도를 했다. 같은 달 8일 공개된다. 이 벽화에는 지역주민들이 말하는 정릉의 역사이야기도 함께 투영돼 있다. 홍제동 홍제천 홍은대교 인근에는 주민이 각자 바라는 지역의 모습을 담은 ‘예술이 숨쉬는 해피로드’ 벽화를 그렸다. 가족 위주로 50여명이 참여했으며 주민들이 바라는 지역이미지를 대형 걸개그림에 그리도록 한 뒤 이들의 의견을 수렴해 벽화·벽조형물로 완성한 것이 특징이다. 9일 아트거리로 새롭게 변신한 거리를 만날 수 있다. ●홍제동, 바라는 지역모습 벽화로 이어 22일 공개되는 돈암동은 주민들이 미아리고개 곳곳을 찍은 사진을 오브제 형식으로 ‘스토리텔링이 살아있는 지도’를 만들어 ‘미아유랑기’라는 벽조형물과 바닥화로 구현해냈다. 한편 내년 1월 초 선보일 청운효자동은 겸재 정선이 살았던 옥인동 옛 ‘인곡정사’(현재 옥인동 군인아파트단지 내 위치) 자리에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예술체험이 가능한 서촌마을 쉼터로 탈바꿈시킨다. 안호상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주민이 주체가 되는 사업을 통해 파괴된 도심공동체가 회복되길 바란다.”며 “문화소외지역 주민들이 자발적 참여로 만든 공간이 아름다운 명소로 거듭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공민왕 등 선조들 동·식물화 한 곳에

    공민왕 등 선조들 동·식물화 한 곳에

    화훼(花卉)는 꽃과 풀, 영모(翎毛)는 새와 짐승을 그린 그림이다. 해마다 봄, 가을 두 차례 전시회를 여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올 가을 전시 주제로 화훼영모를 택했다. 오는 17일 개막하는 전시는 미술관이 소장한 동식물 그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고려 공민왕(1330~1374)의 그림부터 이당 김은호(1892~1979)의 작품까지 600년의 세월 동안 각 시기를 대표하는 그림 100점을 추렸다. 공민왕의 ‘이양도’(二羊圖)는 배경 없는 비단 바탕에 얼룩 무늬 양 두 마리가 걸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터럭 한올의 질감까지 살린 섬세한 필치는 전문 화가의 솜씨 못지않지만 당시 우리나라에 양이 들어오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실제 양이 아닌 상상 속의 양을 그린 셈이다. 조선 전기 김시(1524~1593)의 ‘야우한와’(野牛閒臥)를 비롯한 소 그림 역시 우리나라에 없는 남중국의 물소를 그리고 있다. 여말선초 주자성리학의 도입 시기에 중국 남방 화풍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퇴계와 율곡이 조선 성리학을 완성하면서 우리 주변의 새와 짐승, 꽃들을 그리려는 변화가 시작됐다. 겸재 정선의 진경 시대에 이르면 독자적 사생기법이 틀을 갖추는 한편, 심사정처럼 실제 사생보다 중국 남종화의 화보를 묘사하는 경향도 드러난다. 가령 정선의 ‘추일한묘’(秋日閑猫)와 심사정의 ‘패초추묘’(敗蕉秋猫)는 모두 가을날의 고양이를 그렸지만 묘사의 정교함이나 배경의 구도에서 뚜렷한 차이를 엿볼 수 있다. 겸재 풍의 사생기법을 계승한 조선 고유의 화훼영모 화풍은 변상벽, 김홍도, 김득신 등에 의해 절정을 이루다 추사 김정희 이후로는 청나라 문인화의 영향이 더해지면서 함축적 생략기법의 추상적 표현으로 점차 생기를 잃게 된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시대이념의 변화에 따라 반복기멸하는 문화현상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31일까지이며, 관람료는 없다. (02)762-0442.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서촌도 북촌처럼 가꾼다

    서울의 한옥보존지역으로 지난 6월 지정된 경복궁 서쪽지역을 일컫는 ‘서촌(西村)’이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으로 거듭난다. 특히 서울시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 그려진 모습 그대로 인왕산 수성동 계곡을 빠르면 내년 6월까지 복원하기로 함에 따라 유흥가와 ‘먹자골목’으로 알려진 이 지역 이미지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서촌을 ‘북촌(北村)’과 함께 국내외 관광객을 위한 명품 지역으로 만들겠다고 작심하고 있다. 서촌은 경복궁 서쪽에 있는 종로구 체부동을 비롯해 옥인동, 통인동, 누하동, 누상동, 효자동 일대와 인왕산 자락을 일컫는다. 경복궁 북쪽과 동쪽인 종로구 가회동과 삼청동, 계동, 안국동, 원서동, 재동 일대를 북촌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서촌의 면적은 약 58만㎡로, 한옥 668채가 들어서 있다. 113만㎡에 1233채의 한옥이 자리잡은 북촌과 비교하면 2분의1 수준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명승지로 이름이 높아 당대 권문세가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고, 세종대왕 탄신지와 사직단이 있다. 근대에는 시인 윤동주나 화가 이중섭과 시인 노천명 등 많은 예술가가 거주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특히 소설가 현진건, 화원 겸재 정선, 작곡가 현제명 등 문학·미술·음악 분야의 역사적 인물을 주제로 탐방로를 조성할 예정이다. 김효수 서울시 주택국장은 23일 “북촌에 조선의 상류층이 살았다면 서촌에는 역관 등 중인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북촌에 비해 적은 한옥이 밀집돼 있지만 잘 활용하면 경복궁과 연계한 새로운 서울의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국장은 “올해 북촌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9만 4000명과 비교할 때 2배 이상 늘어난 20만명으로 추산된다.”면서 “문화역사 관광명소로서 서촌이 발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좁은 골목길의 정취를 살리면서 역사와 과거가 살아있는 지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원래 체부동 등 서촌지역은 2004년 재개발예정구역으로 지정돼 주민들이 한옥을 헐어 아파트를 짓자는 결정을 해 놓았다. 조합설립추진위원회 구성까지 마쳤지만, 올해 한옥보전 수복형 재개발정비사업지구로 결정됐다. 이런 서울시의 결정에 주민들이 한동안 반발했지만, 지금은 한옥의 재산상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시의 결정에 협조하고 있다. 현재 서촌지역의 주택매매가는 평당 2000만~3000만원으로 올랐다. 서울시는 한옥보존지구의 한옥을 개·보수할 경우 보조금 6000만원과 3년 거치 10년 상환의 무이자 융자 4000만원까지 최대 1억원을 보조하고 있다. 양옥을 한옥으로 신축할 때도 보조금 8000만원에 융자금 2000만원을 지원한다. 서촌지역에서 지난 6월 이래 한옥으로 복원하겠다며 지원을 신청한 가구가 7건이다. 한옥으로 등록한 가구는 20건에 이른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겸재 산수화 속 수성동계곡 市기념물로

    겸재 산수화 속 수성동계곡 市기념물로

    겸재 정선(鄭敾·1676~1759)의 진경산수화에 등장하는 인왕산 수성동(水聲洞) 계곡이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됐다. 시는 14일 계곡 상류부터 하류 복개도로 전까지 190m 구간의 계곡과 일대 1만 97.2㎡, 옥인아파트 옆의 길이 3.8m 돌다리 1개를 서울시 기념물 ‘인왕산 수성동 계곡’으로 공고했다고 밝혔다. 건물이나 수목, 공예품 등이 아니라 자연지형이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처음이다. 수성동 계곡은 조선시대 사대문 안에서 백악산 삼청동과 함께 주변 경관이 빼어나기로 유명한 곳이다. 조선 후기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 ‘한경지략’(漢京識略) 등에도 명승지로 소개됐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이자 당대 명필이었던 안평대군의 집터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추사 김정희와 존재 박윤묵 등 조선 후기 문인들이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시로 남기기도 했다. 현재 수성동은 인근의 옥인시범아파트 건립 시 계곡 암반부 일부가 복개도로로 변하는 등 경관이 다소 훼손됐지만 그림 속 인왕산과 계곡부의 전체적 풍경을 매우 양호하게 유지하고 있어 전통적 경승지로서 보존할 가치가 크다고 시는 설명했다. 또 이 일대가 조선 후기 중인층을 중심으로 한 위항문학(委巷文學)의 주무대라는 점, 사대문 안에서 유일하게 원위치에 원형이 보존되고 있는 가장 긴 통돌다리가 있다는 점도 가치를 인정받았다. 인왕산 수성동 계곡은 1개월간의 의견수렴 기간과 문화재위원회의 최종 심의를 거쳐 시 기념물로 고시될 예정이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한국현대미술 뿌리를 찾아서…

    한국현대미술 뿌리를 찾아서…

    신학철의 ‘유월항쟁과 7, 8월 노동자대투쟁’ 작품 옆에 작자 미상의 조선시대 그림 ‘명부시왕오도전륜대왕도’가 걸려 있다. 민중미술의 대표작가 신학철의 그림은 기득권자들의 탐욕과 눈먼 권력 아래 신음하는 민중의 애환과 희망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명부시왕오도전륜대왕도’는 지옥의 재판을 형상화한 그림. 현세의 업보가 내세를 결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란히 걸린 두 그림을 보노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시공을 초월해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춘추(春秋)’전은 한국현대작가 11명의 작품과 고미술 작품 12점을 짝지워 보여준다. 공자가 편찬한 노나라의 역사서 ‘춘추’에서 빌려온 제목에서 드러나듯 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과 독자성을 역사적 맥락에서 찾아보려는 시도다. 학고재갤러리 김지연 큐레이터는 “고미술을 통해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찾는 한편 박제된 고미술을 미술현장으로 불러내 현재성을 획득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고미술과 현대작가를 묶는 연결 고리는 작가의 작업 태도나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주제의식 등 형식과 내용 모두에 주목했다. 조각가 정현의 인물 조각은 몽인 정학교(1821~1914)의 ‘죽석도’와 형태상으로 놀랄 만큼 닮았는가 하면, 차고 이지러지는 달빛을 받으며 밤바다 위로 미끄러지듯이 흘러가는 배 모습을 담은 한계륜의 영상 작업에선 조선후기 황산 김유근(1785~1840)이 먼 산을 바라보며 배를 타는 강태공의 모습을 그린 ‘소림단학도’의 정서가 그대로 배어난다. 전통 산수화의 다시점과 전체 시점을 사용해 붉은색 산수화를 그리는 이세현의 그림은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와 묶였고,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고려시대 ‘암굴수월관음보살도’는 이용백의 그림과 쌍을 이뤘다. 전시는 10월31일까지.(02)720-1524.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서울 구청장 새꿈새구정]③ 문병권 중랑구청장

    [서울 구청장 새꿈새구정]③ 문병권 중랑구청장

    “무상급식도 중요하지만 강남·북의 교육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원어민 교사 배치 등 공교육발전을 위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문병권(60) 중랑구청장은 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낡은 컴퓨터를 최신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듯이 학교시설이나 장비등 학교환경개선에 앞장서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3선 성공, 발로뛰는 ‘예산유치의 귀재’ 6·2지방선거에서 강남을 제외한 지역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문 구청장. 지역주민들에게 ‘일 잘하는 구청장’ 이란 이미지를 심어 당선될 것을 일찌감치 예감한 그 역시 이번 선거에서 힘겹게 3선에 성공했다. “엎치락 뒤치락할 때 어떤 심정이었나.”라는 우문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는 관록이 묻어나는 여유있는 답변이 날아왔다. “지난 8년간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중랑구가 서울시 청렴도 평가에서 항상 1위했듯이 자신있었습니다. 그리고 상대후보와 4년전 맞부딪친 적도 있기 때문에 일로 승부를 걸면 당선될 거라 믿었습니다.” 3선에 성공했지만 문 구청장은 고립된 섬에 홀로 살아남은 듯 외로워 보인다. 여소야대 틈바구니에서 그가 펼쳐나갈 앞으로의 4년행정이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문 구청장은 8년전 처음 구청장에 당선되기 전에 썼던 휴대전화 번호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당선되면 누구나 휴대전화 번호부터 먼저 바꾸는 게 일이다. 이런저런 민원이 밀물처럼 쏟아지고, 난처한 전화를 받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왜 안 바꾸느냐는 질문에 당선될 때 가졌던 초심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란다. 3선에 성공한 노장의 초심은 “매사에 최선을 다하자.”는 소박한 결의였다. 그는 민선5기 역점사업으로 면목동 뉴타운 지정을 맨 먼저 꼽았다. 1960~7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완료된 저층주택 밀집지역인 면목동은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는 등 기반시설이 절대적으로 취약하다. 특히 사가정역에서 면목역 구간은 2차선으로 지역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서울시와 지속적인 협의를 거쳐 뉴타운으로 지정하는 게 구민들에게 던진 가장 큰 공약이었다. 문 구청장에게는 주민들과 다른 구청장들이 지어준 닉네임이 있다. ‘예산유치의 귀재’라는 소리를 듣는다. 예산확보를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다니는 그에게 적합한 별명이다. 그래서 이번 정책사업 유치도 자신한다. 중랑발전에 필요한 정책사업이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부와 서울시 관계자를 몇 번이라도 찾아가서 설득했고 예산을 따냈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1조 963억원이란 엄청난 투자사업 예산을 유치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서울의료원 유치, 면목선 경전철 유치, 이화교 확장, 겸재교신설, 사가정길 확장, 면목체육관 건립 등은 그가 발로 뛰어 일궈낸 성과다. 그렇다고 8년을 돌아보며 아쉬움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43만 중랑구민의 꿈과 여망이었던 북부지방법원·검찰청사 유치가 바로 눈앞에서 물거품된 일은 두고두고 가슴에 남아 있다. 법원청사건축위원회의 심의가 있었던 당일 유치신청에 나섰던 다른 자치구에서는 실무직원만이 참석하였으나 그는 달랐다. 43만 중랑구민의 유치염원을 전하기 위해 직접 참석해 이전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던 기억이 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부지방법원·검찰청사는 도봉구로 넘어갔다. ●명문학원 유치 등… 교육메카로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사업이 물거품된 것이 지금은 전화위복이 됐다. 법조타운 부지에 서울 동북권 거점병원인 서울의료원을 유치하고 자율형 사립고 부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열악한 교육환경에 놓여있던 중랑구가 교육메카로 부상할 수 있는 디딤돌을 하나 쌓은 것이다. 그는 ‘교육없이는 지역발전도 없다’는 신념을 가졌을 만큼 교육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옛 강원산업 연탄공장 부지에 건립중인 지상 48층의 초고층 명문학원 유치에서 그 신념을 엿볼 수 있다. 교육 문제에 관심이 깊은 구청장에게 자녀교육관을 묻자, 온화한 얼굴에 불그레 홍조를 띤다. “일에 빠져 정신없다 보니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많이 못썼죠. 하지만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믿음인 것 같아요. 아이들 스스로가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한몫한 것 빼고는 한 일이 없어요.” 문 구청장은 얼마전 입적한 법정스님의 잠언집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앞으로의 4년행정 각오를 대신했다.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는 것, 이것이 세상 사는 지혜의 전부이다.” 그가 3선에 성공한 것도 바로 이 외유내강 덕분은 아니었을까.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문병권 중랑구청장 자타가 공인하는 행정 전문가이다. 30여년간 국무총리실과 서울시, 영등포구, 중랑구에 재직하면서 국가행정과 지방행정을 두루 경험했다. 1200여명의 직원들과 1년에 한번은 꼭 함께 식사할 정도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한나라당 출신으로 3선에 성공한 만큼 중랑구를 동북권 르네상스의 중심도시로 만들겠다는 각오다.
  • 서울에도 향교·서원 남아있다

    서울에도 향교·서원 남아있다

    “서울에도 향교와 서원이 남아 있다고?” 서울시는 10일 시내에서는 유일한 향교인 양천향교와 도봉서원을 소개했다. 조선시대 지역 인재를 육성하고 유학자의 제사를 올리기 위해 관(官)에서 만든 향교와 사림(士林)이 세운 서원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서울에서는 대부분의 향교와 서원이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소실됐기 때문이다. 양천향교와 도봉서원은 건립 당시에는 경기 김포군과 양주군 소재였지만 196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들 지역이 서울에 편입되면서 서울의 향교와 서원이 됐다. 양천향교는 겸재 정선이 양천현감으로 있으면서 진경산수를 그릴 정도로 풍경이 빼어난 지역인 가양동 궁산 아래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태종 11년인 1411년 건립됐으며, 1909년 보통학교령이 반포됨에 따라 교육 기능을 잃고 제사나 교화 사업만 담당하게 됐다. 1914년엔 김포향교에 통합됐다가 해방 후 다시 분리됐으며, 1981년 소실된 일부 건물을 새로 세우는 등 복원작업이 이뤄졌다. 서울시는 1990년 양천향교를 시 기념물 제8호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으며, 내년 600주년을 앞두고 오는 13일 ‘양천향교 창건 600주년 기념사업단 출정식’을 열 예정이다. 도봉산 계곡에 있는 도봉서원은 양주목사 남언경이 조선 전기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조광조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선조 6년인 1573년 세웠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과 6·25전쟁으로 제사가 중단된 적이 있다. 1972년 도봉서원 재건위원회에 의해 복원됐으며, 서원 주변에 당대 명필들이 빼어난 풍광과 학자로서의 이상과 다짐을 새긴 바위 11개가 흩어져 있다. 서울시는 서원과 주변 바위들을 시 기념물 제28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양천향교와 도봉서원은 주변 풍광이 뛰어난 곳에 자리잡은 중요 문화유적”이라며 “서울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조선 선비들의 기상과 품격을 느낄 수 있는 역사문화의 장으로서 충분한 보존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중랑구 사통팔달 교통중심지 된다

    중랑구 사통팔달 교통중심지 된다

    서울 중랑구가 사통팔달 교통망 구축에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중랑구는 11일 신내IC 입체시설 신설과 신내동 능산삼거리~구리시계 간 도로확장공사를 이달 말 끝내고 이화교 건설공사도 올해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내동 능산삼거리~구리시계 간 도로확장공사는 513억여원을 투입해 폭 25~35m, 길이 1.4㎞ 규모로 현재 98% 공정률을 보이고 있어 서울시와 구리시계 간 병목구간이 다소 해소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북부간선도로 진출입 또한 훨씬 수월해져 시외곽으로의 교통접근이 보다 용이해질 뿐만 아니라 지역균형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더불어 신내IC 서측부 배수관 부설과 옹벽구조물 설치공사도 마무리단계에 있어 이달 말 개통될 것으로 보인다. 이화교 건설공사도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가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2차로인 이화교를 철거하고 4차로로 확장해 재설치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재호 도로과장은 “총 399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폭 19.5~35m의 V자형 아치교로 건설된다.”면서 “이 공사가 완료되면 중화동과 이문동 주변의 만성적인 교통 정체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화교와 함께 중랑천에 돛단배 모양의 국내 최초 보차도 분리교량인 겸재교(조감도) 건설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교량은 엑스트라도즈교(Extradosed Bridge) 공법을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사장교의 변형된 형태로 주탑을 낮게 하여 하중의 70% 정도를 주탑의 케이블이 분담하고, 나머지 30% 정도를 슬래브가 분담하는 구조로 야간조명 장치가 설치된 돛단배 형상을 채택, 완공 후에는 중랑천의 새로운 명물로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총사업비 600억원을 투입해 2012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현재 교각공사가 완료됐다. 구는 또 사업비 1172억원을 민간자본으로 추진하는 용마터널 개설공사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첫삽을 뜬 이 터널공사(길이 3.5㎞, 왕복 4차선)는 사가정길에서 강동구 암사동까지 개통, 강동·송파지역은 물론 구리시와 중랑구가 곧바로 연결돼 서울 동북권 교통여건이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2013년 말 완공과 함께 터널로 이어지는 길이 2.74㎞의 암사대교도 개통될 예정이다. 철도교통망 구축도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 과장은 “경춘선 복선화사업이 올해말 완공되면 신상봉역~춘천 간 1시간30분에 갈 수 있게 된다.”면서 “2011년 말에는 25회선 연장운행 및 고속형 전동차로 대체해 40분대로 운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청량리~신내동 간 9.05㎞ 경전철 사업도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구축하는 데 한 몫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안에 민간사업자 선정을 거쳐 2015년 개통할 예정이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겸재의 산수화 배경이 문화재로

    겸재의 산수화 배경이 문화재로

    겸재 정선이 1751년에 그린 진경산수화의 배경이 된 인왕산 수성동(水聲洞) 계곡이 문화재로 지정된다. 서울시는 29일 수성동 계곡을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건기 시 문화재과장은 “회화 속 풍경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이를 계기로 문화재 지정 범위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성동은 현 종로구 누상동과 옥인동에 걸쳐 있는 인왕산 기슭 계곡이다. 물소리가 유명해 조선시대부터 수성동이라 불렸다. 겸재는 평생을 백악산과 인왕산 아래 장동(壯洞) 일대에서 거주하며 이 일대 풍경을 여덟 폭의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으로 남겼다. 수성동 풍경은 그 중 한 폭에 담겨 있다. 추사 김정희와 규장각 서리 박윤묵 등 조선 후기 문인들은 수성동 풍경을 시로 남겼다. 문화재 지정 대상은 인왕산길 아래 계곡 상부에서 하부 복개도로에 이르는 계곡 190m 구간과 옥인아파트 옆에 있는 길이 3.8m의 돌다리다. 이곳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이자 당대 명필이었던 안평대군(1418~1453)의 집터로도 유명하며, 지금은 철거 예정인 옥인아파트가 자리하고 있다. 옥인아파트 옆 돌다리는 한때 안평대군 집에 있었다는 ‘기린교(麒麟橋)’로 추정됐지만 최근 정밀감식에서는 기린교로 단정할 만한 근거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안 과장은 “이 다리는 겸재의 그림에 등장하는 데다 사대문 내 유일하게 원래 위치에 원형 그대로 보존된 통돌다리라는 점에서 문화재로 지정하기로 했다.”면서 “다음달 27일 문화재 지정안 열람공고를 해 7월 중 지정고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책·미술·인문학으로의 초대

    “책을 쓴 저자와 만나니 궁금했던 게 확 풀리네.” 강서구는 오는 30일 겸재정선기념관에서 ‘책읽기와 함께하는 미술·인문학 강좌’를 연다고 21일 밝혔다. 매월 이달의 책을 선정, 관련 전문가 초청강연을 통해 문화와 미술·인문학적 정신을 익히고 지역 주민들의 지적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자리다. 4월의 책으로는 지난달 입적한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선정했으며, 특강에는 개화사 주지 송강 스님이 나와 ‘법정스님 저서를 통한 삶 만나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다. 다음달 28일에는 안휘준의 ‘안견과 몽유도원도’를 선정, 저자가 직접 나와 겸재 정선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조선시대 미술사를 아우를 수 있도록 매달 선정된 책을 통해 기회를 제공하고 미술과 사상, 역사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또 저자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심도있게 재정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주민이 책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기 위해 독후감 공모도 하고 있다. 오는 29일까지 4월의 책 ‘아름다운 마무리’를 읽고 난 독후감을 겸재정선기념관으로 제출하면 된다. 5월의 책 ‘안견과 몽유도원도’에 대한 독후감은 다음달 11~23일 접수 가능하다. 접수는 전화 또는 이메일, 방문을 통해 할 수 있으며, A4용지 2장 이상 4장 이내, 글자크기 10포인트 줄간격 160%다. 매달 우수 독후감상 1명을 뽑아 문화상품권 10만원을 부상으로 주며, 활발히 토론에 참여한 주민에게는 다음 선정도서를 증정할 예정이다. 지난달에는 유홍준의 ‘화인열전-내 비록 환쟁이로 불릴지라도’를 선정, 도서평론가인 송광택 시인이 강사로 나서 주민 100여명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석우 겸재정선기념관장은 “책을 읽어도 그 배경이나 시대적인 상황을 이해하기는 힘든 경우가 많다.”면서 “책과 글쓴이를 다각도에서 이해하고 인접학문과의 소통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