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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당, 임미리 교수 고발 역풍에 당혹…이낙연까지 고발 취소 요청

    민주당, 임미리 교수 고발 역풍에 당혹…이낙연까지 고발 취소 요청

    더불어민주당이 민주당에 비판적 칼럼을 쓴 교수를 검찰에 고발했다가 비판 여론이 당 안팎에서 쏟아지자 고발 취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이 문제 삼은 칼럼은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가 지난달 28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민주당만 빼고’라는 제목의 칼럼이다. 임 교수는 이 칼럼에서 “촛불 정권을 자임하면서도 국민의 열망보다 정권의 이해에 골몰하고 있다”면서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고 제안했다. 또 “자유한국당에 책임이 없지는 않으나 더 큰 책임은 더불어민주당에 있다”면서 “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분노로 집권했으면서도 대통령이 진 ‘마음의 빚’은 국민보다 퇴임한 장관에게 있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이에 민주당은 지난주 이해찬 대표의 명의로 임 교수와 경향신문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민주당 외 다른 정당들과 시민사회는 물론 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정의당과 대안신당 등은 민주당에 고발 취소를 촉구했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한 권경애 변호사도 “나도 고발하라”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고, 이낙연 전 국무총리까지 나서 “바람직하지 않다. 당이 즉시 고발을 취소하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민주당 관계자는 “어떤 식으로든지 수습해야 한다. 깊이 있게 검토를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이낙연 전 총리까지 나서서 이야기했는데 다른 방법이 있겠느냐”면서 “오늘 회의에서 지도부 논의를 거쳐 취소하는 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는 확대간부회의에서 고발 취소를 포함해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본격 논의할 방침이다. 당내에서는 이날도 강도 높은 비판과 자성이 터져 나왔다. 정성호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오만은 위대한 제국과 영웅도 파괴했다”며 “항상 겸손한 자세로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가치의 상대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구 북을을 지역구로 둔 홍의락 의원 역시 “오만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민주당 이야기”라며 “어쩌다 이렇게 임 교수의 작은 핀잔도 못 견디고 듣기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민심은 민주당을 자유한국당과 비교하지 않는다. 민주당에 온전하고 겸손하기를 원한다”면서 “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민주당 지도부가 안타깝다. 더구나 스스로 검찰을 하늘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우주를 보다] 그저 한 점 티끌일 뿐…30년 전 오늘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지구

    [우주를 보다] 그저 한 점 티끌일 뿐…30년 전 오늘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지구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인 지난 1990년 2월 14일, 인류 역사상 ‘가장 철학적인 천체사진'이 촬영됐다. 바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는 과학서적 ‘코스모스’의 저자이자 미국의 유명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1934~1996)은 당시 명왕성 부근을 지나고 있던 보이저 1호의 망원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지구의 모습을 찍어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날 태양계 바깥으로 향하던 보이저 1호는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지구-태양 간 거리의 40배인 60억㎞ 거리에서 지구의 모습을 잡아냈다. 그 사진 속에 담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저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했다. 칼 세이건 박사는 이에대해 “지구는 우주에 떠있는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는 명언을 남겼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 항공우주국(NASA)은 '창백한 푸른 점' 촬영 30주년을 맞아 이에대한 경의를 담은 리마스터 사진을 공개했다. 원본사진이 세가지 다른 컬러 필터를 사용해 촬영한 이미지를 편집한 반면 새 이미지는 이를 더 선명하게 보이도록 재조정됐으며 지구를 둘러싼 태양 광선은 하얗게 보이도록 했다.NASA 측은 "업데이트 버전의 ‘창백한 푸른 점’은 현대적인 이미지 처리 소프트웨어와 기술을 사용해 제작됐으며 원본 데이터와 촬영 당시의 의도에 대한 존중을 담았다"고 밝혔다. 물론 업데이트 버전의 이 사진 역시 지구는 그저 작은 점에 불과하다. 30년 전 당시 보이저 1호는 지구 뿐 아니라 해왕성과 천왕성, 토성, 목성, 금성도 같이 찍어 가족사진을 완성했지만 이 모든 태양계 행성들은 우주 속에서는 역시 먼지 한 톨에 불과했다.칼 세이건 박사는 저서 ‘창백한 푸른점’에서 다음과 같은 육성 소감을 남겼다. “다시 저 점을 보라.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아는 모든 이들, 예전에 삶을 영위했던 모든 인류들이 바로 저기에서 살았다.우리의 기쁨과 고통의 총량, 수없이 많은 그 강고한 종교들, 이데올로기와 경제정책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최고 지도자들, 인류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햇빛 속을 떠도는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막한 공간 속의 작디작은 무대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 속의 한 조각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장군과 황제들이 흘렸던 저 피의 강을 생각해보라. 이 작은 점 한구석에 살던 사람들이, 다른 구석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그 잔혹함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자주 서로를 오해했는지, 얼마나 기를 쓰고 서로를 죽이려 했는지, 얼마나 사무치게 서로를 증오했는지를 한번 생각해보라. 이 희미한 한 점 티끌은 우리가 사는 곳이 우주의 선택된 장소라는 생각이 한갓 망상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가 사는 이 행성은 거대한 우주의 어둠에 둘러싸인 한 점 외로운 티끌일 뿐이다. 이 어둠 속에서, 이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지구는,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에서, 삶이 깃들일 수 있는 유일한 세계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해 살 수 있는 곳은 이 우주 어디에도 없다. 갈 수는 있겠지만, 살 수는 없다. 어쨌든 우리 인류는 당분간 이 지구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천문학은 흔히 사람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인격형성을 돕는 과학이라고 한다.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인간의 오만함을 더 잘 드러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자각을 절절히 보여주는 것이 달리 또 있을까?”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애국가 외워 부른 여자축구 벨 감독 “존중의 표시…가사 의미 깊어”

    애국가 외워 부른 여자축구 벨 감독 “존중의 표시…가사 의미 깊어”

    9일 베트남 3-0 완파하고 A조 1위로 올림픽 아시아 PO 진출“오늘 행복해. 오프사이드 판정 잘못으로 두 골 취소 아쉬워”“지소연 월드클래스, 그런 선수 지도하고 함께 훈련해 영광”다음달 6·11일 중국 또는 호주와 올림픽 본선 진출 다툴 예정콜린 벨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 감독은 9일 도쿄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A조 1위를 확정하고 플레이오프(PO에 진출한 뒤 “나는 이기는 걸 사랑한다”며 올림픽 본선 진출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경기 전 애국가를 직접 불러 눈길을 끌기도 했던 그는 “맷 로스 코치와 며칠 연습했다. 아름다운 나라에서 좋은 스쿼드와 함께 하는 데 대한 영광스러움과 존중의 표시”라면서 “가사의 의미가 깊은 것 같다. 입이 아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벨 감독은 9일 서귀포의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베트남과의 최종예선 A조 2차전을 3-0 승리로 끝낸 뒤 기자회견에서 “오늘 나는 많이 많이 행복해요”라는 한국 말로 경기를 평가했다. 그러면서 “오프사이드로 판정된 2골은 하프타임 비디오 분석 결과 오프사이드가 아니었다. 제대로 판정됐더라면 우리가 더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A매치 58호골을 터뜨린 지소연에 대해서는 “경기장 안팎에서 ‘월드 클래스’다. 인간으로나, 선수로나 현명하고 똑똑하다. 그리고 우리가 하고자 하는 축구 스타일, 만들고자 하는 팀 분위기를 잘 대표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가장 주목받고 인기 많은 선수임에도 겸손하고, 동료들을 배려하는 점도 보기 좋다. 그런 선수를 지도하고 함께 훈련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한국 여자축구가 사상 처음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PO에서 B조의 호주 또는 중국을 꺾어야 한다. 벨 감독은 “(누구를 만나든) 모두 힘든 상대일 것”이라면서 “우리만의 철학으로 공을 빨리 돌리고 공격적으로, 적극적으로 경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 좋은 축구를 위해선 조직력을 더 갖춰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PO를 앞두고 이번 승리가 자신감을 높였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승리보다 기분 좋은 건 없다. 저는 이기는 걸 사랑한다. 선수들도 같은 감정을 느끼며 대비를 잘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PO는 다음달 6일과 11일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열린다. 대표팀 선수들은 2주 정도 소속팀에 복귀했다가 이르면 22일쯤 다시 소집될 예정이다. 그는 “단기적 목표는 올림픽 본선 출전이지만 장기적으론 차기 월드컵을 위한 스쿼드를 만드는 게 목표”라면서 “오늘 추효주가 골을 넣고, 강지우가 좋은 기회를 많이 만들었는데, 대표팀에서는 경험이 많은 선수와 아직 배가 고픈 선수와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도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줄 것이고, 선수들이 잘 살렸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물 오른 천기범 “천재가드는 잊었다… 할 일만 할뿐”

    물 오른 천기범 “천재가드는 잊었다… 할 일만 할뿐”

    8일 경기서 15득점 8어시스트 활약“6강에 모자란 것 알아 다들 더 뛰어”“SK, DB전 다 잡을 것 같다” 자신감‘천재가드’ 천기범이 최근 물오른 경기력에도 겸손함을 보였다. 천기범은 8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9~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서울 삼성과 안양 KGC의 경기에서 15점을 넣으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25점을 몰아넣은 닉 미네라스에 이은 팀내 득점 2위의 기록이었다. 경기 후 천기범은 ‘천재가드 소리 들었던 과거가 있는데 의식하진 않나’는 질문에 “과거는 생각 안 한다. 잘 하는 선후배와 함께 있다보니 할 일 하자고만 생각한다”고 밝혔다. 천기범은 과감한 돌파와 3점슛, 외국인 선수와의 2대2 플레이로 이날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3쿼터엔 미네라스와 앨리웁 백덩크 플레이를 펼치기도 했다. 천기범은 “선수들이 6강을 가기 위해 승수가 조금 모자라다는 걸 다 의식하고 있어 한 발 더 뛰려고 한다”면서 “모든 선수가 더 뛰어주다보니 포인트 가드 입장에서 패스 주기가 편하고 경기가 잘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의 상승세에 대해 천기범은 “시즌 전부터 감독님이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라고 했는데 막상 잘 안됐다”면서 “미네라스도 해보려고 독려해서 하다보니 자신감이 올랐고 그러면서 기록이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선수들과 평소 경기에 대해 어떤 의견을 주고받냐’는 질문에 천기범은 “다른 선수들에게 조금만 더 움직여달라고 하고, 슈터들에겐 공을 잡으면 무조건 던지라고 주문한다”고 밝혔다. 삼성은 브레이크 기간까지 선두 원주 DB, 공동 2위 서울 SK와 1경기씩 남겨두고 있다. 6강 싸움을 벌이는 팀으로선 부담스러운 상대지만 천기범은 “지금처럼만 해줘도 두 팀 다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너무 늦은 ‘르네상스 맨’ 조지 스타이너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너무 늦은 ‘르네상스 맨’ 조지 스타이너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홀로코스트에서 살아 남았고, 문학평론가 겸 수필가로 명성을 드날린 프란시스 조지 스타이너가 아흔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름에서 비치듯 국경을 넘나들었다. 1929년 프랑스에 머무르던 오스트리아 유대인 부모 아래 태어난 고인이 최근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3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아들 데이비드의 말을 빌어 AP 통신이 전했다. 데이비드는 존스홉킨스 교육정책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유족으로는 1955년 결혼한 아내 Zara Shakow와 데이비드, 컬럼비아 대학 교양학부 학장인 딸 데보라가 있다. 오스트리아 명문가 출신인 부모의 영향으로 그는 어릴 적부터 프랑스어와 독일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자랐고 나중에 이탈리아어까지 배웠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A.S. Byatt 은 ‘늦은 늦은 늦은 르네상스인’이라고 그를 소개했다. 도무지 경계가 없는 것처럼 그는 시, 수필, 엄청 긴 저작, 소설, 예술평론 등 실로 다방면에 걸쳐 저작 활동을 했다. 194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와 시카고 대학을 졸업한 뒤 영국으로 다시 돌아와 1950년대 4년 동안 잡지 이코노미스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원자폭탄 설계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인터뷰한 뒤 “등골이 오싹해지는 공포를 느꼈다”고 썼고, 나중에 그를 프린스턴 대학 첨단연구소에 근무하게 다리를 놓아준 일로도 유명하다.스타이너는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닐 때 단 둘이었던 유대인 학생 가운데 혼자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았다. 여섯 살 때 파리의 아파트 아래 길거리에 모여든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죽여라”고 외치는 것을 봤는데 아버지가 “이런 게 역사란다. 넌 결코 겁 먹으면 안된다”고 말했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어두웠던 유럽 역사가 자신의 저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답을 수필 ‘어떤 종류의 생존자’를 통해 들려줬다. ‘유럽에서 일어난 일에 관한 캄캄한 미스터리는 내 자신의 정체성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하지만 동료 유대인들과의 불화도 상당했다. 먼저 1981년 소설 ‘The Portage of San Cristobal A.H.’를 통해 아마존 정글에서 히틀러 사냥을 묘사했는데 그는 히틀러의 공포가 나치즘을 형성했다고 정당화한 데다 현대 이스라엘이 건국하게 된 것을 연결했다는 의심을 자초했다. 유대인들이 먼저 “선택된 민족”이라고 선언한 것을 히틀러가 그대로 따라 했다는 것이었다. 존 레너드는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에 기고한 글을 통해 “유대인들이 최고의 아이디어를 히틀러에게 제공했고, 그 대가로 히틀러는 이스라엘을 선물했다는 논리”라고 적었다. 그는 종교 지도자들을 영웅으로 여기진 않았지만 마르셀 푸르스트, 프란츠 카프카, 칼 마르크스 등을 영웅으로 떠받들었으며 이스라엘을 “대체 불가능한 기적”이라고 묘사해 여러 독자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본인도 예술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고, 그에 대해서도 폭넓은 비평을 남겼지만 그는 예술이 홀로코스트의 공포에 맞서 보호막을 제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1967년 발간한 책을 통해 “이제야 깨달았다. 저녁에 괴테와 릴케의 작품을 읽고 바흐와 슈베르트 작품을 연주하던 이가 아침에는 아우슈비츠에 출근하러 갈 수 있다는 것을”이라고 지적했다. 스타이너는 스위스 제네바 대학에 20년을 몸 담는 등 수많은 대학에 방문교수 등을 지냈고 프랑스 레종도뇌르 훈장 등 많은 명예를 누렸다. 문학 평론가 마야 자기는 “폴리글롯(polyglot, 여러 나라 말을 할줄 아는 이)이자 박식한 사람(polymath)”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언어학, 철학, 문학 비평 등 손을 대지 않는 분야가 없었다. 2009년 NYT에 기고한 한 문학평론가는 “그의 상큼한 미덕은 피타고라스로 시작해 아리스토텔레스와 단테를 거쳐 니체, 톨스토이에 이르기까지 단 한 문단에 녹여낼 수 있는 능력에 있다. (반대로) 성나게 하는 악덕은 피타고라스로 시작해 아리스토텔레스와 단테를 거쳐 니체, 톨스토이에 이르기까지 단 한 문단에 녹여낼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알듯 모를 듯하게 지적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고전과 창신이 농울치는 모국어의 연금술사

    고전과 창신이 농울치는 모국어의 연금술사

    내 기억에 이근배 선생은 신춘문예 다관왕으로 가장 선명하다. 신춘문예는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문청들의 최고 로망이다. 선생을 이야기할 때마다 늘 따라다니는 이 화려한 이력은, 한국문학사 전체에서 한 천재 시인의 탄생을 예고한 전무후무한 기록임에 틀림없다.●천재 시인의 탄생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벽’으로 당선된 1961년 경향신문 시조 ‘묘비명’으로 2관왕에 올랐다. 이듬해 동아일보(시조 ‘보신각종’)와 조선일보(동시 ‘달맞이꽃’), 1964년엔 한국일보(시 ‘북위선’) 신춘문예에 줄줄이 당선됐다. 다른 신인상까지 살피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불어난다. 선생은 약관의 나이인 1960년 3월에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를 냈다. 표지는 빨간 빛깔이고 속표지에는 스무 살 ‘청년 이근배’의 사진이 수줍게 들어 있다. 1960년 3월 25일 출간이니까 4·19혁명 한 달 전쯤이다. 서문은 미당 서정주가 썼는데 은사로서 제자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고 있다. “경자년(庚子年) 3월 3일”에 썼으니 미당 서문도 곧 회갑을 맞는 셈이다. 이근배 선생은 백지를 꺼내더니 붓펜으로 멋있게 ‘回榜宴’이라고 썼다. 회방연이란 예전에 과거에 급제한 지 예순 돌을 기념하는 잔치를 이르던 말인데, 면앙정 송순이 회방연을 치렀다고 한다. 말하자면 올해는 첫 시집이, 내년은 신춘문예 등단이 회방연을 맞는 셈이다. 선생은 194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으니 올해 여든하나이다. 하지만 여전히 열정적인 활동으로, 누구보다도 정확한 기억으로, 내내 자신이 걸어온 한국문학의 숲길을 풍요롭게 열어 보여 주었다. ●이근배 시의 뿌리, 아버지 이근배 선생에게 아픈 가족사가 있었고 그것이 선생 시의 원형이 됐다는 것은 알 만한 분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선생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에 몸담았던 아버지에 대해 깊은 자랑과 연민과 원망을 동시에 가지고 살아왔던 것이다. 김종길 시인은 “일제강점기부터 ‘사상가’였던 부친에 대한 이 시인의 ‘아버지 콤플렉스’가 그로 하여금 조국 분단의 비극을 유난히 뼈저리게 겪게 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선생은 최근에 그 ‘사상가’ 아버지를 독립운동가 유공자로 신청해 놓았다. “할아버지는 유학자셨고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셨어요. 당시 국내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는 사회주의 계열이 많았습니다. 아버지께는 독립운동 근거 자료가 워낙 많아 인정받으실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신청을 겨우 했으니, 그동안 자식 노릇 제대로 못했던 거지요.” 소년 근배에게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나라 찾는 일 하겠다고/감옥을 드나들더니 광복이 되어서도/집에는 못 들어오는”(‘자화상’) 분이셨다. 선생은 자신의 ‘자화상’을 전문 암송하면서 탄복할 만한 기억력을 다시 보였다. 당연히 어머니는 “사상가의 아내가 되어서/잠 못 드는 평생”(‘냉이꽃’)을 보내셨을 것이다. 그리고 기억나는 대로 이근배 선생과 가까웠던 세 분을 여쭈었다. 공초 오상순, 미당 서정주, 무산 조오현이다. 두 분 스승에 대한 애착과 오현 스님에 대한 애틋함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공초는 무장무애, 미당은 천의무봉, 오현은 능소능대였어요. 공초 선생은 제게 정말 많은 사랑을 주셨어요. 그분이 남기신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와 ‘자유가 나를 구속하는구나’ 하는 말씀은 지금도 ‘우주의 지휘자’로서 그분을 기억하게끔 해줍니다. 문학사에서 그동안 저평가됐는데, 유 교수 같은 분이 정확하게 평가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공초가 지어 준 이근배 선생의 아호 ‘사천’(沙泉)은 ‘오아시스’라는 뜻이다. 시인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을 때도 이 이름을 썼다. ‘사천’은 이근배 시의 본령을 풀어 가는 데 상징적 열쇠가 돼 준다. 스스로도 “사막 같은 세상을 잘 건너가라고?/오아시스 같은 사람이 되라고?”(‘사막 타클라마칸’)라고 노래한 바 있듯이, 그의 시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불우한 역사에서 솟구쳐 오른 모국어의 샘이었기 때문이다. “미당 선생은 한국어가 어떻게 그리 아름답고 풍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살아 있는 현대시의 고전이지요. 제가 선생님 돌아가시고서 쓴 조시가 ‘미당경전’이에요.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작년에 펴낸 시집 ‘대백두에 바친다’에 실린 ‘미당경전’에서 선생은 21세기 첫 성탄전야에 돌아간 미당을 그리워하는 음성을 처연하고도 감동적으로 들려주었다. 스승의 시를 ‘경전’으로까지 명명하는 선생의 마음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그러고 보니 미당과 사천은 등단작 제목이 같다. 1936년에 미당도 신춘문예에 ‘벽’으로 당선했으니 말이다. 스승과 제자는 나이도, 신춘문예 등단도, 모두 스물다섯 터울이다.●이근배 시의 메타포, 벼루 이근배 선생은 시를 일러 “사람의 생각이 우주의 자장을 뚫고 만물의 언어를 캐내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렇게 커다란 스케일과 촘촘한 밀도로 쓰인 그의 시는 사라져버린 것들의 아름다움을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되살리면서 펼쳐져 왔다. 그 은유적 육체를 시인은 ‘벼루’에서 찾아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단단한 돌의 질감과 예술적 조형미를 아울러 갖춘 벼루는 이근배 시의 상징적 메타포로 충분할 것 같다. “할아버지 방에서 나오던 먹 냄새가 원체험이지요. 저는 불가사의한 신의 예술품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옛 벼루를 비롯한 선현들의 유묵 또는 청자, 백자 등 유물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에 지금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연벽’(硯癖)이라는 말도 있듯이 선생은 세계 제일의 벼루 컬렉터로 유명하다. ‘시행일여’(詩行一如)라고 했거니와 ‘연행일여’(硯行一如)라도 되는 듯이 선생은 벼루에서 삶과 우주, 시간과 예술을 바라본다. 귀하기 짝이 없는 수백 년 묵은 벼루들을 낱낱이 보여 주면서 스스로도 예술가로서의 존재 방식을 묻고 있는 듯했다. ●대한민국예술원 원로들에 대한 예우 지난해 말 선생은 제39대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으로서 임기를 시작했다. 시인으로는 조병화 선생에 이어 두 번째이고 문인으로 치면 일곱 번째다. “1964년 탄생한 대한민국예술원은 김동리 선생이 추진해 만든 국가기관입니다. 누가 변형시키거나 축소할 수 없지요. 회원 수는 100명으로 정해져 있어요. 이분들은 평생을 예술에 헌신해 온 원로이지만 여전히 쟁쟁한 현역들입니다. 이분들이 국가 위상을 높이는 실질적 역할을 하도록 예술원에 대한 예우 제고가 필요합니다.” 예술원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일에 대한 계획도 촘촘하게 세웠다. “제 임기 동안 ‘회원’이라는 명칭을 ‘종신회원’으로 바꾸고 국가적 차원의 예우를 통해 예술원의 위상을 높여 가려고 합니다. 또 예술원 단독 청사 입주를 꾀해 보려고 해요.” 예전에 “남들이 막장에 들어가 모국어의 보석을 캘 때 갱구 앞에서 부스러기 돌이나 줍고 있었다”(‘문학적 자전’)라고 겸손해한 그였지만, 이제는 그 선두에 서서 예술의 도약을 꿈꾸는 역할을 맡게 됐다. 그리고 선생은 개인적으로도 고향 당진에서 ‘이근배문학관’을 세우기로 했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곳이 우리 문학의 분열을 통합하는 큰 둥우리가 되리라 상상해 본다. 그러고 보니 선생의 시는 순수나 참여를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가는 우리나라의 산수를 빼닮지 않았는가. 선생은 ‘추사를 훔치다’(2014)에서 성현과 예인들의 흔적을 통해 공동체적 기억을 통합적으로 구축했는데, 거기서도 지금은 사라져간 것들의 품격과 위의를 통해 한국문학의 모뉴멘트를 이루어 가려는 의지를 강렬하게 보여 주지 않았던가. 만물의 언어를 캐내는 일을 시라고 했던 이근배 선생은 스스로도 “스며 나오는 전시대의 전아한 향기, 한지에 진한 먹으로 쓰이고 몇 세대를 넘겨도 여전히 오히려 더욱 은근하게 풍겨오는 선비 시절의 문향”(김병익)을 선사해 왔다. 비록 “글자를 읽을 줄도 모르고/붓을 잡을 줄도 모르면서/지가 무슨 연벽묵치라고/벼루돌의 먹 때를 씻는 일 따위에나/시간을 헛되이 흘려버리기도 하면서”(‘자화상’) 살아왔다고 고백했지만, 우리는 선생이 서재인 ‘신연재’(神硯齋)에서 더 웅숭깊어진 이근배 문학을 완성해 갈 것이라고 믿는다. 고전(古典)과 창신(創新)이 힘차게 농울치는 모국어의 연금술을 보여 주면서 말이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법인의 활발발] 적명 스님에 대한 기억

    [법인의 활발발] 적명 스님에 대한 기억

    깨달음이란 지금, 여기, 나를 떠나 별도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별스러운 것도, 별스러운 짓도 아니다. 내 마음의 눈을 가리고 있는 무언가를 벗겨내고 사물을 보는 일이다. 늘 보고 듣는 것들이 매 순간 새삼스러운 모습으로 내게 오는 것, 이것이 깨달음과 환희장 세계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성공과 속도에 눈이 멀어 방향을 잃고, 온갖 근심 걱정으로 살맛을 모르고 있다. 평범 속에 깨달음을 생각할 때 떠오른 분이 있다. 적명 스님이다. 겸손하면서 당당하고, 논리적이면서 직관적이고, 소박하면서 빛나는 스님이다. 그 적명 스님이 작년 세수 80세로 사바의 인연을 접었다. 스님은 그 흔한 방장이니 조실이니 하는 그런 직책이 주는 권위로 사신 분이 아니었다. 또 그런 권위로 선승들의 믿음과 존경을 받은 분이 아니었다. 그저 수행자 적명으로 권위를 인정받으신 분이다. 필자는 적명 스님을 모시고 공부하지는 못했다. 다만 온몸으로 감동한 한 번의 만남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아마 2012년 가을로 기억한다. 어떤 인연으로 서울에서 적명 스님을 모시고 공부하는 모임이 열렸다. 하늘은 맑고 볕은 고운 날, 성북동 전등사에 수도승(서울 거주하는 스님)과 산승들이 모였다. 간단한 점심공양을 마치고 차 한 잔 곁들이며 공부를 시작했다. 그날 공부는 누가 발제하고 토론한다는 그런 약속도 없었다. 그저 모여서 평소 나름대로 하고 싶은 말, 서로에게 묻고 싶은 말을 중구난방으로, 횡설수설하면서, 그야말로 야단법석을 펼치고자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적명 스님께서 몇 권의 책과 문서를 꺼냈다. 이어 모임에 참여한 각묵 스님에게 말했다. “제가 스님이 번역한 ‘청정도론’을 정밀하게 거듭 읽었습니다. 읽고 나니 수행하면서 평소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이 풀리고, 석연하지 않은 점도 확연해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책의 주요 핵심 내용을 나름대로 간추려 정리했습니다.” 적명 스님은 그날 참석한 공부 대중들에게 간추린 내용을 나누어 주었다. 분량은 아마 50쪽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500쪽의 내용을 그렇게 요약한 것이다. 옆에서 책을 보니 형광펜으로 밑줄이 곳곳에 그어져 있고 포스트잇도 수없이 붙어 있었다. 모두가 내심 놀랐다. 연배도 높으신 분이, 선수행자를 지도하는 봉암사의 수좌 스님이, 북방불교의 간화선 수행을 하는 어른이 우리와는 사뭇 풍토가 다른 남방불교의 논서를 정독하고 요약해 오신 것이다. 아마 세속의 분들은 절집의 흐름과 분위기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놀람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이어 적명 스님이 각묵 스님에게 다음과 같이 요청했다. “제가 ‘청정도론’을 읽어가면서 북방의 간화선과 남방의 위빠사나 선수행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몇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각묵 스님께서 내가 공통점이라고 말한 부분이 맞는지를 말해 주십시오. 그리고 차이점에 대해서도 스님 나름대로 견해를 말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적명 스님의 요청에 각묵 스님은 훗날 내게 말했다. “그때 정말 놀랐고, 송구스러웠고, 기뻤고, 감격했다”고. 어찌 그렇지 않았겠는가. 또 그 자리에서 누가 그렇게 느끼지 않았겠는가. 여하튼 공부거리를 착실히(?) 준비해 오신 스님 덕분에 대중들은 그날, 밤을 세워 가며 진지한 경청과, 날카로운 질문과, 성실한 답변을 주고받았다. 수행승들이 해야 할 일은 오직 ‘고요한 침묵’과 ‘의미 있는 대화’라는 붓다의 말씀을 실감하는 환희로운 법석이었다. 그리고 지금, 새삼 ‘배움’에 대해 생각한다. 배운다는 것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일깨움일 것이다. 그러나 일깨움 이전에 배움에 대한 마음가짐과 태도일 것이다. 자신의 향상을 위해 누구에게나 물을 수 있는 마음가짐, 설령 그 대상이 아랫사람이라 하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물을 수 있는 그 마음(不恥下問), 그 마음씀이 수행의 결실이고 경지가 아니겠는가. 예전에 절집의 대 강사들은 제자의 공부가 무르익으면 자리를 바꿨다. 제자가 강단에 올라가 강의하고 스승이 밑에서 듣고 물었다. 허튼 권위와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경지에서 나올 수 있는 태도다. 그해 가을날의 적명 스님에 대한 기억은 더 뚜렷하다. 하심과 배움의 아름다움이야말로 멀리 가는 향기일 것이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조코비치의 코비 추모가 특별한 이유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조코비치의 코비 추모가 특별한 이유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사람들은 매일 죽어나간다. 제 인생에서 가까운 존재로 여겼고 내게 멘토였던 한 사람, 코비 브라이언트가 딸과 함께 저세상으로 떠났다. 우리 모두에게 이전보다 더 많이 어울려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고 말하고 싶다.” 힘겨웠던 4시간의 싸움 끝에 도미니크 팀(오스트리아 세계랭킹 5위)을 3-2로 물리치고 2일 호주오픈 남자단식 우승을 차지한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2위)가 코트 인터뷰를 통해 헬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코비 브라이언트를 추모했는데 조금 색달랐다. 시상식에 나타난 그의 옷차림부터 남달랐다. 오른쪽 가슴에 ‘KB, 8, 24’가 적힌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였다. 전날 그는 경기를 마친 뒤 잘 싸운 팀을 격려하고 대회 주최측에 감사를 표한 뒤 호주 산불에 대한 얘기에 이어 브라이언트 얘기를 꺼냈다. “가족과 함께 지내고, 여러분을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과 가까이 지내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기는 게 전부가 아니란 얘기도 했다. 그는 “물론 프로 선수로서 경쟁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삶에는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의식하고 겸허한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코비치는 “난 1990년대 세르비아에서 전쟁을 겪으며 자랐다”며 “수출입 금지 조처가 내려진 고단한 시기여서 우리는 빵과 우유, 물 등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고 돌아봤다. 옛 유고 연방 시절인 1987년에 태어난 그는 “그런 일들이 날 더 배고프게 만들었고 성공하기 위해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끼게 했다”며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시작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노력하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사실 세르비아 내전이 종식된 1999년 이후 20년이 더 흘렀지만 지금도 그의 조국이 완전히 평화로워진 것은 아니다.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학살했다는 이유로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군이 코소보에서 세르비아 군대를 몰아내기 위해 11주 동안이나 폭격을 해대 여전히 긴장이 감돌고 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팀이 한창 기세를 올리던 2, 3세트만 해도 패배를 피할 길이 없어 보였으나 막판 짜릿하게 승부를 뒤집은 조코비치는 “내가 필요할 때 정신적으로 강해지고 여러 도전을 이겨낼 수 있는 것에는 그런 배경이 있는 것 같다”고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일부에서는 일부러 팀의 체력을 소진시키려고 2, 3세트를 크게 진 것 아니냐고 추측했는데 조코비치는 “3세트 도중 트레이너로부터 ‘탈수 증세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때는 정말 상태가 안 좋았다”며 “거의 패배 직전까지 몰렸지만 일단 정신적으로 버텨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메이저 대회 단식에서 17번째 우승을 차지, 로저 페더러(20회)와 라파엘 나달(19회)을 추격 중인 조코비치는 “그랜드슬램 대회는 내가 테니스를 하고, 풀 시즌을 치르는 이유”라고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도 관중석을 내내 지키며 열띤 응원을 보내준 가족과 (죽음으로) 작별하기 전에 충분한 사랑을 나누고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도 테니스를 하는 이유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용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마이클 호어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용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마이클 호어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용병이라면 한낱 돈에 팔려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며 아무에게나 총부리를 겨누는 무뢰한으로 여기기 쉽다. 그런데 그런 허접한 생각을 바꾸게 한 용병이 있었다. 보통 ‘미치광이 마이크’란 별명으로 유명했던 마이클 호어가 남아공 더반의 요양원에서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아들 크리스의 성명을 영국 BBC가 3일 대신 전했다. 아들은 “마이클 호어는 위험하게 유지되는 삶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내겠다는 철학을 갖고 살아왔다. 그게 100년 넘게 산 것보다 훨씬 돋보이는 대목”이라고 기렸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용병이었던 그는 말년을 남아공에서 지내며 세 권의 회고록 ‘용병’ ‘칼라마타로 가는 길’ ‘세이셸 사건’을 집필했다. 대관절 그가 누구인데, 한다면 로저 무어, 리처드 해리스, 하디 크루거 등과 공연한 1978년 전쟁영화 ‘지옥의 특전대(The Wild Geese)’에 앨런 포크너 대령으로 열연한 리처드 버튼을 떠올리면 된다. 포크너 대령이 바로 호어의 회고록 ‘용병’을 토대로 창조한 캐릭터였다. 2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으로 복무한 뒤 대위 계급까지 달고 전후 회계원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나중에 남아공으로 건너가 작은 기업을 운영했다. 1961년 콩고의 정치인 겸 기업인 모아제 촘베와 안면을 텄는데 3년 뒤 콩고 총리에 취임한 촘베가 공산당이 뒤를 봐주는 심바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 호어를 고용했다. 임무를 18개월 만에 마치자 호어와 그의 부대원들은 ‘기러기’란 별명으로 국제적 명성을 떨쳤다.공산당이라면 치를 떠는 그의 신념 때문에 여러 나라들에서 좋지 않은 말을 들었다. 사실상 콩고에 억류됐던 유럽인 수천명을 구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부하들과 난 콩고에서 20개월간 반군 5000~1만명을 죽였다”면서도 “그것 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콩고인 2000만명 중 절반은 한때 반란군이었던 걸로 짐작한다”고 말했다. 옛 동독 라디오에서는 그를 ‘미친 블러드하운드(냄새로 추적하는 사냥개의 원조 종) 호어’라고 불렀는데 고인은 생전에 이 별명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1960년대 콩고 전쟁에서 명성을 떨쳤으나 그 뒤 쌓은 명성을 모두 한꺼번에 무너뜨렸다. 1980년대 초 군 경력을 끝내고 은퇴한 듯 보였으나 갑자기 1981년 세이셸 제도의 쿠데타 시도에 몸 담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의 경력은 황당하게 막을 내렸다. 그는 세이셸 제도를 잘 안다고 믿었지만 알베르 르네 대통령 치하의 사회당 정부를 끔찍하게 증오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남아공과 케냐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하자 호아는 쿠데타 계획을 짰다. 1981년 10월 그는 숨어 지내던 남아공의 한 방갈로에 무기들을 보내달라고 하고 46명의 남성을 선발해 전직 럭비 선수로 뛰다가 지금은 은퇴해 술이나 마셔대며 기부하는 클럽으로 변장시켜 무기들을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마헤 공항 세관을 통과한 뒤 한 부하가 엉뚱한 줄 뒤에 서 있다가 세관원과 말다툼을 벌이는 바람에 가방을 뒤지게 만들었는데 분해한 AK 47 소총 등이 적발됐다. 그 바보 같은 부하는 너무 놀라 밖에는 더 많은 무기들이 있다고 고변했다. 호어는 근처에 계류해 있던 에어 인디아 여객기를 탈취해 남아공까지 달아났다. 공항 도착 후 엿새 동안 구금됐다. 그리고 “패키지 휴가로 벌인 쿠데타”란 각국 언론의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일년 뒤 그들은 에어 인디아를 공중 납치하려 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그는 20년 징역형에 10년 유예 판결을 받았다가 나중에 33개월만 복역하고 석방된 뒤 남아공으로 건너가 조용히 말년을 보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총선 출마’ 고민정 민주 입당 “국민 편에서 목소리 내겠다”

    ‘총선 출마’ 고민정 민주 입당 “국민 편에서 목소리 내겠다”

    언론인 출신 4명 민주당 입당식4·15 총선을 앞두고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을 비롯해 언론인 출신 4명이 2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고민정 전 대변인과 박무성 전 국제신문 사장, 박성준 전 JTBC 보도총괄 아나운서팀장, 한준호 전 MBC 아나운서의 입당식을 개최했다. 고 전 대변인은 입당 소감 발표를 통해 “심장이 가리키는 곳, 국민과 함께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저에겐 수많은 만남이 있었다”고 소개한 뒤 “721번 버스기사님과의 만남, 정치인의 길을 거부하려 떠났던 여행길에서 사람들과의 만남, 청와대 부대변인·대변인으로 매일 부대꼈던 기자 여러분과의 만남, 새로운 시도엔 응원을, 안주하려는 마음엔 행동으로 가르침을 대통령과의 만남”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만남이 운명인 듯 저를 이곳까지 이끌었다”며 “수백 년의 역사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따라 굽이쳐 흘러가듯 모든 만남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저는 지금 또 다른 만남이 시작되는 곳에 와있다”며 “저를 통해 새로운 만남, 새로운 꿈,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고 전 대변인은 “더 나은 정책과 제도로 청춘들에게 꿈을 꿀 수 있게 해주고 무엇이든 국민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감의 정치인이 되겠다”며 “여성들의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회가 되도록 길을 더욱 탄탄히 다지고 국정 참여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와 국민의 편에서 목소리를 높이겠다”고 말했다.고 전 대변인은 또 “당당하게 맞서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겠다”며 “저를 믿고 아껴주신 분들의 심장과 저의 심장이 가리키는 곳으로 함께 나아가보려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고 전 대변인은 2004년 KBS 아나운서로 입사한 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방송사를 퇴사한 뒤 문 대통령 캠프에 합류했고 청와대 부대변인과 대변인을 맡았다. 고 전 대변인은 이번 총선에서 서울 광진·서초·동작, 경기 고양·의정부 등 수도권에서 출마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밖에 박무성 전 국제신문 사장은 입당식에서 “민주당이 건강성과 유연성을 담보하면서 외연을 더욱 확장해 나가는 데 제가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성준 전 JTBC 보도총괄 아나운서팀장은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과 대화하고 그 만남과 대화 속에서 국민과 함께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비서관실 행정관을 지낸 한준호 전 MBC 아나운서는 “새로운 정치보다 필요한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英 펑크록 밴드 ‘갱 오브 포’ 원년 멤버 앤디 질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英 펑크록 밴드 ‘갱 오브 포’ 원년 멤버 앤디 질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영국의 포스트 펑크록 밴드 ‘갱 오브 포’ 원년 멤버이자 기타리스트인 앤디 질이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그의 스크래치 강하고 스타카토 기타 리프 연주는 밴드의 상징과도 같았으며 너바나, 푸가지(Fugazi), 프란츠 퍼디난드 같은 밴드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밴드 멤버들은 1일(현지시간) 성명을 내 “대단한 친구이자 빼어난 지도자가 오늘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고 BBC가 전했다. 밴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아시아 순회공연을 다녀온 뒤 “순환계 질환”과 투병해왔다. 아내 캐서린 메이어는 트위터에 “이 고통은 엄청난 기쁨의 대가다. 30년 가까이 세상 최고의 남성과 함께 지냈다”고 작별을 아쉬워했다. 밴드의 현재 멤버는 토머스 맥니스, 존 스테리, 토비아스 험블인데 “앤디의 마지막 투어는 그가 손을 떼고 싶어했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를 목에 둘러대고 관중의 피드백에 소리를 질러대 앞좌석은 귀가 멍멍할 정도였다”고 적었다. 이어 “가장 좋았던 일 중의 하나는 기타 음악과 창조 과정에 미친 그의 영향력이 그의 주변에서 일하고 그의 음악을 들어준 모든 이들 뿐만아니라 우리에게도 영감을 줬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1976년 리즈 대학 동창생인 질과 보컬리스트 존 킹 등이 어울려 결성해 첫 싱글 ‘Damaged Goods’부터 지난해 스튜디오 앨범 ‘Happy Now’까지 44년 한우물을 팠다. 1979년 ‘At Home He‘s A Tourist’로 톱 60에 들었는데 콘돔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BBC 방송금지가 된 일이 있었다. 같은 해 9월 데뷔 앨범 ‘Entertainment!’를 발매했는데 많은 음악인들에게 영감을 안겼다는 평가와 함께 롤링스톤 잡지의 역대 500대 명반에 이름을 올렸다. 잡지의 평가는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을 펑크와 디스코에 녹여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냈다고 극찬을 했다.고르지 못하고 펑키하며 엄청난 노이즈가 폭발하는 그의 독특한 기타 리프는 지미 헨드릭스, 윌코 존슨, 팔리아먼트-펑카델릭의 에디 해이즐 같은 다양한 범주의 기타리스트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2015년 잡지 더스키니 인터뷰를 통해 “윌코와 닥터 필굿의 연주를 본 것은 형광등이 반짝인 것 같았다”며 “내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그는 관중을 보지도 않고 많은 시간을 들여 자신의 기타를 보지도 않았다. 난 늘 기타를 더 큰 악기, 예를 들어 밴드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해왔다. 항상 바람직하지 않게 여기는 것이 기타리스트가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밴드의 나머지를 마치 배경처럼 다루는 일”이라고 밝혔다. 갱 오브 포는 히트 싱글 하나 만들어내지 못했다. 1982년 ‘I Love A Man In Uniform’이 거의 근접했는데 마침 발발한 포클랜드 전쟁 때문에 방송 금지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의 초기 세 장의 앨범들은 모두 대체 불가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1984년 원년 멤버는 뿔뿔이 흩어져 여러 해 동안 여러 멤버가 들락거리게 됐고, 질 혼자만 44년 가까이 몸담았다. 맨체스터 출신인 그는 존경받는 프로듀서이기도 해 스트랭글러스, 킬링 조크, 레드핫 칠리 페퍼스 같은 밴드들과 작업을 함께 했다. REM의 마이클 스티프는 갱 오브 포의 음악에서 많은 것을 훔쳐 썼다고 털어놓았고 갱 오브 포야말로 “내가 진짜로 연결짓고 싶어하는 첫 록 밴드”라고 말했다. U2의 보노는 “똑똑한 문자 폭탄”이라고 표현했고,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머신의 톰 모렐로는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통해 질이 “내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이 가운데 한 명”이라며 “반영웅적인 음향공학과 날카롭고 시적이며 급진적인 지성이 내게 일러준 바가 많았다”고 추모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캐서린과 동생 마틴, 그를 끔찍히 그리워할 가족들을 남겼다. 밴드는 나아가 새로운 스튜디오 앨범 작업도 마친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진중권, 김의겸 공천 읍소에 “저렴하게 산다…너절하게 굴지마”

    진중권, 김의겸 공천 읍소에 “저렴하게 산다…너절하게 굴지마”

    “누가 환원에 진정성 있다 하겠느냐”“죽을 때 잘 죽어야 다시 살아날 수 있어”“공천 달라 질질 짜는 삼류 신파극”김의겸, 페북에 “예비후보 달라” 공개 호소金 “가혹…검증위서 물러나면 두 번 죽어”“공천위서 정무적 배제시 토 달지 않겠다”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1일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더불어민주당에게 4·15 국회의원 선거의 예비후보 자격을 달라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 읍소한 데 대해 “김의겸, 참 저렴하게 산다”면서 “너절하게 굴지 말고 이쯤에서 깔끔하게 내려놓으라”고 비판했다. 김 전 대변인은 청와대 대변인 재임 당시인 2018년 7월 서울 흑석동 재개발 상가주택을 25억 7000만원에 매입해 ‘부동산 투기 의혹’이 일었다. 이후 청와대 대변인직에서 하차한 김 전 대변인은 주택을 매입한지 1년 5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8억 8000만원의 시세 차익을 올리며 34억 5000만원에 집을 매각했다. 진 전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동산 투기를 해놓고 이제 와서 환원할 테니 공천 달라고 하면 누가 그 환원에 진정성이 있다고 하겠느냐”면서 “정치인에게는 ‘삶의 기술’ 못지 않게 ‘죽음의 기술’이 필요하다. 죽을 때 잘 죽어야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어 “이 나라 정치는 왜 이렇게 멋이 없냐”면서 “어쩌다 공천 달라고 질질 짜는 삼류 신파극만 남았는지 정말 눈물 없이는 못 봐 주겠다”고 일갈했다. 김 전 대변인이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해찬 대표님께’라는 제목의 장문의 글에서 “지난해 12월 19일 출마선언을 했지만 민주당이 예비후보로 받아들여주지 않아 45일째 군산 바닥을 표류하고 있다”면서 “그저 예비후보로 뛸 수만 있게 해달라”고 읍소했다. 김 대변인은 4·15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북 군산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이는 예비후보 자격을 검증하는 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검증위)가 김 전 대변인에 대해 3차례 ‘계속 심사’라는 보류 결정을 내리며 적격 여부 결정을 미룬데 따른 것이다. 검증위가 ‘적격’ 판정을 내리더라도 이후 공천관리위원회에서 정무적인 사항까지 고려해 공천 여부를 판단한다. 김 전 대변인은 “다 제 부동산 문제 때문이다. 민망하고 송구하기 그지없다”면서도 “법적인 문제를 다루는 검증위 단계에서 제가 스스로 물러난다면 저는 두 번 죽는 셈이다. 청와대에서도 물러나고 당에서도 버림받는 것이니 한 사건으로 두 번 교수형 당하는 꼴이 되고 만다”고 호소했다.이어 “당이 저에게 가혹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나름대로 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약속대로 집을 팔았고 매각 차익 3억 7000만원을 어느 재단에 기부했다”고 해명했다. 김 전 대변인은 지난해 12월 1일 부동산 투기 의혹 논란이 일었던 흑석동 상가 건물을 매각하겠다고 밝히면서 매각 차익을 전액 기부하겠다고 밝혔었다. 이 가운데 일부를 기부했다는 의미다. 김 전 대변인은 당이 자신에게 가혹하게 하는 이유를 언론 탓으로 돌렸다. 김 전 대변인은 “아마도 언론, 특히 조중동과 종편을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짐작해본다”면서 “저는 기자 시절 ‘최순실 게이트’의 서막을 열어 수구세력의 미움을 샀고, 대변인 때는 몸을 사리지 않고 대통령을 방어하다 보수언론과 척을 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3일 열리는 (검증위) 회의에서는 최종 결정을 내려달라고 촉구하면서 “공천관리위원회에서 영 부담이 돼 저를 경선에서 배제하고자 정무적 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때는 한마디도 토를 달지 않겠다”고 강조했다.한국, 金에 “지긋지긋한 피해자 코스프레”새보수, 조국 빗대 “조뻔뻔에 김뻔뻔되려 하나” 이에 대해 보수 야당도 비판의 대열에 합류했다. 황규환 자유한국당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부동산 투기 혐의로 국민들의 공분을 산 김 전 대변인이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항변한 꼴”이라면서 “자신이 좋아서 출마하는 마당에 지긋지긋한 피해자 코스프레야말로 오히려 국민에게 가혹하다”고 비판했다. 황 부대변인은 “아무도 김 전 대변인에게 출마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면서 “그렇게 예비후보로 뛰고 싶고, 그렇게 고향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면 당당히 무소속으로 출마하시라”고 지적했다. 이종철 새로운보수당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겸손과 반성이라는 DNA가 없는 것 같다”면서 “김 전 대변인이 조국 교수의 ‘조뻔뻔’에 이은 ‘김뻔뻔’이 되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변인은 김 전 대변인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편지글을 보낸 것을 언급하면서 “‘조국 편지’에 이어 ‘이해찬 편지’도 크게 보도됐으니 김 전 대변인이 오히려 선거운동을 독점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독일을 이야기하다 3(한독경제인회 지음, 새녘 펴냄) 창립 8주년을 맞이한 한독경제인회가 독일 통일 3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저작. 앞선 1·2권에서 다루지 못했던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 산업, 문화 이야기를 다양하게 담았다. 독일 출신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특별 기고부터 홍건희 전 한국타이어 부회장의 독일 체류기 등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360쪽. 1만 8000원.젊은 과학자에게(피터 메더워 지음, 조호근 옮김, 서커스출판상회 펴냄) 196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던 생물학자의 후배들을 위한 제언. 젊은 과학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세상과 맺어야 하는 바람직한 관계, 연구의 주제 선정부터 논문 작성과 프레젠테이션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조언한다. 212쪽. 1만 3000원.여행 말고 한달살기(김은덕·백종민 지음, 어떤책 펴냄) 부부 여행작가의 한 달 살기 지침서. 장소 고르기, 항공권을 경제적으로 구입하는 방법, 여행지에서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는 법 등 실질적인 조언을 더했다. 그들이 말하는 한 달 살기의 좋은 점은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을 피할 수 있다는 것과 저렴한 비용, 체력 안배 등이다. 416쪽. 1만 8800원.인문학자가 보여주는 새 이야기, 인간 이야기(서정기 지음, 지식의날개 펴냄) 불문학과 교수로 30년을 지낸 저자가 직접 탐조한 새 이야기. 중국과 동남아, 유럽과 아프리카, 파푸아뉴기니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넘나들며 찍은 250컷 이상의 새 사진을 담았다. 한국에서 공인된 명칭이 없는 외국 새의 경우 새의 특징을 살려 이름을 붙이고 번역했다. 240쪽. 1만 6000원.향모를 땋으며(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펴냄) 북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식물생태학자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며 겪고 깨달은 것들을 썼다. 식물학적 지식, 원주민의 신화와 문화, 삶의 지혜와 철학, 자연을 대하는 겸손한 과학자의 언어와 태도가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572쪽. 2만 5000원.맨 얼라이브(토머스 페이지 맥비 지음, 김승욱 옮김, 북트리거 펴냄)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화한 트랜스젠더 남성의 회고록. 기자이자 방송작가로 활동하는 저자는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와 자신을 죽이려다 살려 준 강도 등 두 남성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무엇이 남자를 만드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권위 있는 LGBT 문학상인 람다 문학상을 수상했다. 240쪽. 1만 5000원.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2차대전 참전 108세 할머니 앤 롭슨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2차대전 참전 108세 할머니 앤 롭슨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영국군 출신 가운데 가장 오래 생존한 여성으로 여겨지는 앤 롭슨이 10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고인이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 저녁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의 한 요양원에서 눈을 감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고 BBC가 23일 보도했다. 다음달 말 추모식이 열리길 희망하고 있다고 유족들은 밝혔다. 2018년 성탄 전야에 덤펌린에 주둔하고 있는 154 왕실 병참 대대에 초대돼 자신의 나이 ‘107’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제식 훈련을 받는 모습을 병사들과 함께 보여줄 정도로 정정했다. 1911년 9월 14일 스코티시 보더스의 던스에서 태어나 글래디스 앤 로건 맥와트로 불리던 그는 원래 물리치료사로 일하다 나중에 교사가 됐다. 1942년 여군 의용대(Auxiliary Territorial Service)에 입대해 체력훈련 조교로 소령까지 진급했다. 그는 2018년 12월 인터뷰를 통해 “전쟁이 시작된 뒤 곧바로 참전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한 몇 년 있다가 했다”며 “군에서도 이제 막 여성들의 체력훈련을 시작하고 있었다. 일등병으로 입대해 물밑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 수 있는 장교가 됐더라면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하지만 그는 재빨리 장교가 됐다. 첫 근무지는 런던 지구였다. 공습이 여전했고 ‘두들버그(doodlebug, 런던 시민들이 독일군의 V1 로켓에 붙인 별명)’가 떨어지는 것을 처음으로 봤다. “그게 뭔지 몰랐지만 창문 밖으로 쳐다봤다. 번쩍하자 갑자기 몸을 던져 엎드렸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2년을 더 복무하다 전역해 런던에 있는 애브리 힐 사범대학에서 일했다. 1953년 결혼해 뉴캐슬로 이사 와 롱벤튼 중등학교 교감을 맡았다. 남편 잭이 1972년 먼저 세상을 떠나자 세인트 앤드루스로 옮겨왔다가 다시 에딘버러 요양원으로 옮겼다. 롭슨의 여조카 캐서린 트로터는 이모가 전쟁 경험을 얘기하며 매우 행복해 했다면서도 “결코 뻐기지 않았다”고 했다. 힘을 북돋는 친척이었다며 오랜 세월 힘들게 살았지만 한 번도 불평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유머 감각도 유지하고 있었고, 내 생각에 그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영국 왕립여군단협회(WRACA)는 생전의 롭슨과 자선 활동을 많이 펼친 것이 아주 자랑스럽다고 애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이낙연, 종로출마·선대위원장 수락 “책임 기꺼이 떠안겠다”

    이낙연, 종로출마·선대위원장 수락 “책임 기꺼이 떠안겠다”

    “정쟁 삼가고 성실히 선거 임하겠다”“황 대표와 신사적으로 경쟁하겠다”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23일 서울 종로 출마와 공동상임선대위원장직을 공식 수락했다. 이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은 당연직으로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을 맡는 이해찬 대표와 함께 총선 ‘투톱 체제’를 갖추게 됐다. 이 전 총리는 이날 용산역에서 당 지도부와 함께 귀성인사를 한 뒤 가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이 대표의 제안을 엄숙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이 전 총리는 “우리의 역사와 얼이 응축돼 숨 쉬는 ‘대한민국 1번지’ 종로에서 정치를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은 크나큰 영광”이라며 “역사의 또 다른 분수령이 될 4·15 총선의 최고책임을 분담하게 되는 것도 과분한 영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지만, 영광스러운 책임”이라며 “그 영광과 책임을 기꺼이 떠안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께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오히려 불안만 드리는 저급한 정쟁을 삼가겠다”며 “신뢰와 품격을 유지하며, 겸손하고 성실하게 선거에 임하겠다. 국민 여러분의 꾸지람과 가르침을 늘 겸허하게 받겠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문재인 정부는 현직 대통령 탄핵 이후 표출된 국민 요구를 이행해가는 숙제를 태생적으로 안고 출범했다“며 ”이번 선거는 이 과제 이행을 앞당길 것인가, 지체되게 할 것인가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종로 출마 결심의 배경을 질문받자 “당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여러 차례 말씀드렸다”며 “숙고한 끝에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종로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맞붙는 ‘빅매치’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대 당의 결정에 대해 제가 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면서도 “제 개인의 마음을 말하자면, 신사적 경쟁을 펼치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이 전 총리는 전국을 돌며 지원유세에 나서야 하는 공동상임선대위원장으로서 지역구 선거운동에도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물음에 “선거 상황에 따라 최선의 지혜를 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선거 목표에 대해서는 구체적 의견을 나눈 적이 없으나 가능한 최대한의 의석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로 지역구 전임인 정세균 국무총리와 대해서는 “현직 총리와 선거에 대해 말씀을 나누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임명동의안 의결 직후 축하전화를 드리고 ‘제가 종로로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미리 신고드린다’고 말씀드렸다“고 언급했다. 이 전 총리는 “당내 경선과 공천과정이 얼마나 순탄하냐가 선거 초반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준다”며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공천은 없으나, 규칙과 원칙에 따라 최대한 많이 승복하는 공천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검찰 인사로 인한 논란에 대해선 “수사는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이뤄지는 게 당연하다”며 “권력 집행은 국민 인권과 기본권의 제약이 따를 수 있기 때문에 절제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애인단체가 이 대표의 장애인 비하 발언을 비판한 것과 관련해서는 “본인이 여러차례 사과드렸고, 저도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누구든 국민의 아픔에 대해 훨씬 더 민감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출정식 방불케한 與 교육연수…이낙연 “복학생 심정으로 열심히 잘 하겠다”

    출정식 방불케한 與 교육연수…이낙연 “복학생 심정으로 열심히 잘 하겠다”

    “복학생 심정으로 열심히 잘 하겠다”22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1대 총선 입후보자 교육연수는 ‘총선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이날 교육장을 찾은 이해찬 대표는 이낙연 총리에게 상임선거대책위원장과 종로 출마를 권유하며 사실상 ‘총선 수장’을 맡아줄 것을 제안했다. 이 대표는 김두관 의원에게 경남 양산을에 출마를 다시 한 번 했고, 김 의원은 “금명간 고민을 마치겠다”고 말했다. ‘총선’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이 오가는 사이에도 의원들의 표정은 밝았다. 최근 당으로 복귀한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본격적인 교육에 앞서 “저는 복학생 심정으로 열심히 잘 하겠다”면서 “여러분도 나이먹은 복학생왔다, 이렇게 받아주시고 동급생으로 여겨주시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이날 교육 연수에는 100여명의 출마자들이 모여들었다. 의원들은 저마다 “고생이 많다”, “총선 화이팅” 등을 외치면서 ‘친목’의 시간을 가졌다. 박용진 의원에게 전해철 의원이 인사를 건네자 박 의원은 “아이 실세께서 왜 이러십니까”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원내 뿐 아니라 원외 출마자들도 이날 교육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청와대 출신 중에는 전북 익산을에 출사표를 던진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충남 공주·부여·청양에서 출마하는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도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에서 아직 ‘적격’판정을 받지 못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교육 연수 신청을 하지 않았다. 성추행으로 1심에서 무죄 받았지만 재판 중인 정봉주 전 의원도 이날 교육을 찾았다. “성인지 교육도 반드시 받으셔야 한다”는 사회자의 말에 정 의원은 무표정한 채 묵묵히 고개만을 끄덕이며 앞을 지켜봤다. 교육이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나 쉬는 시간은 사실상 이 전 총리의 ‘사진촬영’시간이었다. 원외 출마자를 중심으로 이 전 총리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줄이 늘어섰다. 이 전 총리는 3~4명과 사진촬영을 이어갔다. 원불교 예방을 다녀온 이해찬 대표가 때마침 도착해 이 전 대표와 덕담을 주고받고 나서야 다시 교육을 받으러 들어갈 수 있었다. 의원들은 대부분 한껏 밝은 표정으로 백범 기념관을 돌아다녔지만, 대화의 주제는 조금씩 달랐다. 지역에서 여론조사가 좋게 나온 의원은 목소리에 한껏 힘이 들어가 “경쟁후보보다 20% 정도 앞선다”는 이야기를 늘어놨다. 으슥한 곳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최근 언급되는 하위 20%에 대해 이야기하는 출마자도 눈에 띄었다. 이날 교육을 시작으로 민주당은 본격적인 총선 채비에 나설 예정이다. 이날 교육에 참여한 이인영 원내대표는 “많은 선배님 의원님 한분한분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겸손하면 그럴수록 4월에 우리국민 격려와 응원으로 우리손잡을 것”이라며 총선에 임하는 자세를 말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김선영의 의(醫)심전심] ‘대단한’ 여성들

    [김선영의 의(醫)심전심] ‘대단한’ 여성들

    “선생님 정말 대단하세요. 환자 진료하면서 연구와 각종 학회 발표, 교육까지 하시는데 가정까지 챙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이런 말을 나를 비롯한 기혼 여성 의사들은 자주 듣는다. 이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최대한 겸손해 보이려고 애쓴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이런 칭찬에 도리어 억하심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기혼 남성 의사에게 ‘가정까지 챙기시느라 정말 힘들겠다,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정을 돌보는 것, 가사와 육아는 그들이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기혼 남성 직장인들은 가사와 육아를 분담해서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보통 2차 책임자, 즉 부 (副)이다. 정(正), 1차 책임자는 여성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우리 집 역시 그렇다. 아이들의 학교나 학원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빠가 아니라 엄마를 찾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선망받는 직업인 의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여성도 일단 결혼을 하면 가정에서 정(正)의 위치는 피할 수 없다. 물론 누군가 일차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누가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이 생략된 채 너무도 당연하게 여성의 일이 된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육아휴직을 하는 여의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사실은 3개월의 출산휴가도 실질적으로 다 쓸 수 있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여성 의사의 대부분은 그나마 결혼을 해도 경력단절 여성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성 의사에 비해 그 경력은 확장된다기 보다는 정체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 의사에게서 시간 활용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파트타임 봉직의의 비율이 남성에 비해 높은데,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사 중 파트타임 근무자의 비율이 여성은23%였던 반면 남성은 4%에 불과했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배우자가 교수나 연구자로서의 경력을 쌓고자 하는 남성 의사인 경우 동등한 경력을 쌓는 여성 의사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남성이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 대신 가정을 지키는 것은 여성의 몫이 된다. 결국 그녀는 보수나 발전 가능성이 적더라도 시간을 많이 쓸 수 있는 직장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일반 직장인에 비해 더 많이 벌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일이 처음 가졌던 꿈에 맞는 크기일 가능성은 어떨까. 아마도 남성 의사보다는 낮을 것이다. 화제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마지막 부분에는 화자인 정신과 의사의 아내인 안과 의사가 등장한다. 그녀는 학창시절 남편보다 뛰어난 우등생이었지만, 결혼 후 교수가 되기를 포기하고 페이닥터로 일하다가 결국 아이의 정신건강 문제로 일을 접게 된다. 그녀는 “내 뜻대로 되는 게 이것 하나밖에 없거든”이라며 초등학교 수학 문제집 풀이에 빠져드는 이상증상을 보이는데, 사실 나는 그녀와 비슷한 심정을 느껴 본 적이 있다. 아이의 숙제를 도와주며 보게 된 초등수학문제집에 나온 도형과 숫자들은 명쾌하고 아름다웠다. 의사, 엄마, 아내, 딸,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다 해내는 ‘대단한’ 사람이어야 하는 나를 내려놓고 소박한 논리와 추론의 세계에 침잠하고 싶었다. ‘82년생 김지영’은 형식상의 남녀평등이 보장된 사회의 평범하고 선량한 가정에서도 여성의 존엄성과 독립성은 좀처럼 지켜지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 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여성 의사의 이야기를 통해 소설의 메시지에 쐐기를 박는다. 여성이 아무리 뛰어난 실력으로 상당한 성취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가부장제에서 자유로워질 길은 좀처럼 찾기 어려운 게 맞다고. 성별격차, 즉 임금과 사회경제적 지위의 남녀 차이는 여성의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한 사회의 구조와 인식의 문제이며, 숨쉬듯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더 문제라고 말이다.
  • [김선영의 의(醫)심전심] ‘대단한’ 여성들

    [김선영의 의(醫)심전심] ‘대단한’ 여성들

    “선생님 정말 대단하세요. 환자 진료하면서 연구와 각종 학회 발표, 교육까지 하시는데 가정까지 챙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이런 말을 나를 비롯한 기혼 여성 의사들은 자주 듣는다. 이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최대한 겸손해 보이려고 애쓴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이런 칭찬에 도리어 억하심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기혼 남성 의사에게 ‘가정까지 챙기시느라 정말 힘들겠다,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정을 돌보는 것, 가사와 육아는 그들이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기혼 남성 직장인들은 가사와 육아를 분담해서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보통 2차 책임자, 즉 부 (副)이다. 정(正), 1차 책임자는 여성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우리 집 역시 그렇다. 아이들의 학교나 학원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빠가 아니라 엄마를 찾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선망받는 직업인 의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여성도 일단 결혼을 하면 가정에서 정(正)의 위치는 피할 수 없다. 물론 누군가 일차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누가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이 생략된 채 너무도 당연하게 여성의 일이 된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육아휴직을 하는 여의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사실은 3개월의 출산휴가도 실질적으로 다 쓸 수 있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여성 의사의 대부분은 그나마 결혼을 해도 경력단절 여성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성 의사에 비해 그 경력은 확장된다기 보다는 정체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 의사에게서 시간 활용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파트타임 봉직의의 비율이 남성에 비해 높은데,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사 중 파트타임 근무자의 비율이 여성은23%였던 반면 남성은 4%에 불과했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배우자가 교수나 연구자로서의 경력을 쌓고자 하는 남성 의사인 경우 동등한 경력을 쌓는 여성 의사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남성이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 대신 가정을 지키는 것은 여성의 몫이 된다. 결국 그녀는 보수나 발전 가능성이 적더라도 시간을 많이 쓸 수 있는 직장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일반 직장인에 비해 더 많이 벌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일이 처음 가졌던 꿈에 맞는 크기일 가능성은 어떨까. 아마도 남성 의사보다는 낮을 것이다.  화제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마지막 부분에는 화자인 정신과 의사의 아내인 안과 의사가 등장한다. 그녀는 학창시절 남편보다 뛰어난 우등생이었지만, 결혼 후 교수가 되기를 포기하고 페이닥터로 일하다가 결국 아이의 정신건강 문제로 일을 접게 된다. 그녀는 “내 뜻대로 되는 게 이것 하나밖에 없거든”이라며 초등학교 수학 문제집 풀이에 빠져드는 이상증상을 보이는데, 사실 나는 그녀와 비슷한 심정을 느껴 본 적이 있다. 아이의 숙제를 도와주며 보게 된 초등수학문제집에 나온 도형과 숫자들은 명쾌하고 아름다웠다. 의사, 엄마, 아내, 딸,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다 해내는 ‘대단한’ 사람이어야 하는 나를 내려놓고 소박한 논리와 추론의 세계에 침잠하고 싶었다.  ‘82년생 김지영’은 형식상의 남녀평등이 보장된 사회의 평범하고 선량한 가정에서도 여성의 존엄성과 독립성은 좀처럼 지켜지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 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여성 의사의 이야기를 통해 소설의 메시지에 쐐기를 박는다. 여성이 아무리 뛰어난 실력으로 상당한 성취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가부장제에서 자유로워질 길은 좀처럼 찾기 어려운 게 맞다고. 성별격차, 즉 임금과 사회경제적 지위의 남녀 차이는 여성의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한 사회의 구조와 인식의 문제이며, 숨쉬듯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더 문제라고 말이다.
  • [데스크 시각] ‘아빠찬스’가 쉬워진 세상/박상숙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아빠찬스’가 쉬워진 세상/박상숙 국제부장

    세계에서 ‘아빠찬스’를 가장 잘 쓰는 사람은 아마도 이방카 트럼프일 것이다. 아버지가 미국 대통령이 된 뒤 맏딸 이방카는 모델과 패션사업 스펙만으로 백악관에 책상을 하나 얻었다. 무급 보좌관이지만 행보는 국가원수급이다.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아버지 대신 자리에 앉아 빈축을 샀고,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의 판문점 회동에도 동행하면서 자격시비를 불렀다. 낄 데 안 낄 데 가리지 않자 미국에선 얄타회담이나 마틴 루서 킹의 연설 등 역사적 사진에 이방카를 합성해 넣는 패러디가 잇달았다. ‘누군가의 딸이라는 게 자격조건이냐’는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초부터 광폭 행보다. 이달 초 미국에서 열린 국제 가전 전시회(CES)의 기조연설자로 화려하게 새해를 열었다. 희색만면한 이방카와 달리 분위기는 싸늘했다. 그동안 CES 행사는 여성 도우미를 행사장의 눈요기로 활용하는가 하면 남성 경영자만 부각하는 등 성차별적 요소가 많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랬던 주최 측이 이번엔 여성을 챙기겠다며 내세운 인물이 이방카였으니 실리콘밸리 여전사들이 뒤집어질 만했다. IT쪽 경험도 지식도 없는 그녀의 초청에 항의해 트위터에서 보이콧 시위가 벌어졌고 “그동안 푸대접하던 여자들을 여전히 푸대접했다”는 격한 반응이 쏟아졌다. 비난은 한 귀로 흘리면 그만, 이방카는 오늘부터 열리는 다보스포럼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등장할 예정이다. 자식을 근사한 자리에 앉히기 위해 부모가 자신이 가진 막대한 힘과 부를 쓰는 게 점점 남세스럽지 않은 일이 되고 있다. 트럼프가 이런 트렌드를 주도한다. 작년에 그는 이방카를 무려 세계은행 총재나 유엔주재 미국대사에 앉히려다 사나운 여론에 부딪혀 포기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에 칼럼을 쓰는 파리드 자카리아는 진작에 이런 경향을 우려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에서 혈연과 연줄을 ‘멤버십’으로 특권을 누려 온 계층은 늘 있었다. 와스프(WASP·앵글로색슨계백인신교도)로 불리는 주류지배계급은 ‘귀족’이나 다름없다. 그는 이들이 편견을 조장하고, 인종주의를 강화하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한편으론 요즘 엘리트에게서 보기 어려운 절도와 겸손, 공익의식 등의 덕목을 갖추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와스프는 자신의 힘과 지위가 ‘출생에 의해 우연하게 주어진 것’이라는 자각이 있었기에 사리사욕보다 국가와 사회를 우선해야 한다는 불문율을 상식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금수저지만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고, 재선의 유혹도 뿌리치면서까지 증세를 관철시킨 조지 H W 부시를 대표적 인물로 삼는다. 지금의 엘리트는 교육이라는 민주적이고 자발적인 방법을 통해 얻은 높은 신분과 지위를 당연시한다. 자기 능력으로 일궈낸 근사한 인생이기에 대물림에 대한 사회적 부채의식이 덜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능력주의(meritocracy) 사조는 의사 딸과 변호사 아들을 만들고자 온갖 ‘아빠찬스’를 구사한 전직 장관에게서 보듯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국회의장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으려는 아들이 ‘이 나이에 아빠찬스를 쓰겠냐’며 오히려 더 당당할 수 있는 이유다. 오십이 되도록 별다른 이력 없이 출마할 자신감과 수천명이 몰린 출판기념회를 열 수 있는 재주는 ‘탯줄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걸 누구나 안다. 차라리 우연히 주어진 특권인 만큼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빈말일지언정 고개를 숙였다면 어땠을까. 갈수록 노골화하는 엘리트의 뻔뻔함에 성난 민심이 어디로 튈지 두렵다. 지난 한 해 유럽과 남미에서 벌어진 반정부 폭력시위가 ‘강 건너 불’이 아닐 수도 있다. okaao@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무대에서 노래 부르다 떠난 데이브 올니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무대에서 노래 부르다 떠난 데이브 올니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 죽는 일처럼 행복한 일이 있을까 얘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미국의 포크 싱어 송라이터 데이비드 올니가 공연 도중 쓰러져 생을 접었다. 향년 71.  올니는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플로리다주 샌타 로사 비치 워터칼라 보트하우스에서 30A 송라이터 쇼 도중 노래를 부르다 말고 객석을 향해 미안하다는 말을 던진 뒤 눈을 감고 침묵에 빠졌다고 영국 BBC가 20일 전했다.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처럼 고통스러워 했다.  옆에 있던 뮤지션 가운데 한 명인 에이미 릭비는 다음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올니는 자신의 세 번째 노래를 부르다 멈췄는데 사과하더니 눈을 감았다”며 “그래도 똑바로 앉아 기타를 맨 채였다. 가장 멋진 모자를 쓴 채로 아름답게 닳은 스웨이드 재킷을 걸친 채였다”고 말했다.  역시 무대에 함께 있었던 스콧 밀러는 소생술을 시도하려 했다고 했다. “데이비드가 노래를 멈추더니 ‘미안합니다’라고 말한 뒤 턱을 끌어당겨 가슴에 붙이려 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편안하고 다정한 모습이었다”고 최후를 돌아봤다. 이어 “우리는 그를 눕힌 뒤 응급의료팀이 올 때까지 그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세계는 어제밤 좋은 사람 하나를 잃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가 하던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영감을 준다”고 덧붙였다. 객석의 의사 한 분도 뛰어올라 소생술을 시도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내시빌 음악계에 없어선 안될 존재였던 그는 에밀루 해리스, 린다 론스타트, 스티브 영을 비롯해 여러 컨트리뮤직과 포크 스타들의 녹음 작업에 함께 했다. 원래 로드아일랜드주 출신이었으나 1973년 내시빌로 이주하면서 내시빌 음악의 세례를 받았다. 1980년대 초 엑스레이란 이름의 로큰롤 밴드를 결성해 활동한 뒤 솔로로 활동하며 20장 이상의 앨범을 발표했다. 솔로 데뷔곡은 ‘아이 오브 더 스톰’이다.  그의 세 번째 앨범 ‘로지즈’에 속지 해설을 쓴 싱어송라이터 레전드 타운스 반 잔트는 “언제라도 내게 가장 좋아하는 작곡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난 모차르트, 라이트닝 홉킨스, 밥 딜런, 그리고 데이브 올니라고 답할 것이다. 데이브 올니는 내가 들어본 최고의 송라이터다. 정말이다. 진심에서 하는 말”이라고 적었다.  1990년대 해리스의 ‘예루살렘 투모로’, 론슈타트의 ‘위민 크로스 더 리버’가 그의 작품이었고 1999년 둘의 듀엣 앨범 ‘웨스턴 월-투손 세션스’에 수록된 ‘1917’이 그가 쓴 곡이었다. 2018년에 낸 ‘디스 사이드 오어 디 아더’가 마지막 앨범이 됐다.  컨트리뮤직 명예의전당 입회자인 해리스는 올니의 홈페이지에 “사랑의 지속성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캐릭터로 놀라운 얘기들을 들려주는” 그의 능력을 안타까이 여기는 글을 올렸다.  유족으로는 부인 레진, 딸 릴리언, 아들 레딩을 남겼다. 아래 최후의 순간을 맞기 나흘 전에 촬영된 동영상을 봐도 그는 노래 네 곡을 거뜬히 소화하며 많은 얘기를 진행자와 남길 정도로 건강에 문제가 없었다. 그의 명복을 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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