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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위대한 재즈 피아니스트 맥코이 타이너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위대한 재즈 피아니스트 맥코이 타이너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미국 재즈의 황금 시대를 일군 피아니스트로 전설의 밴드 존 콜트레인 쿼텟 멤버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던 맥코이 타이너가 81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유족들은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소셜미디어에 배포한 성명을 통해 고인의 운명을 전할 뿐 어떤 다른 구체적인 내용도 알리지 않았다고 AP 통신이 7일 전했다. 성명은 “재즈 레전드 알프레드 맥코이 타이너의 부고를 알려 무거운 마음이다. 고인은 온 생애를 예술과 가족, 영성에 바친 영감 넘치는 뮤지션이었다”며 “맥코이 타이너의 음악과 유산은 팬들과 미래의 재주 많은 세대에게 계속 영감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인은 1938년 12월 11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열세 살에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20대 초반 재즈계에 발을 들여 1960년 콜트레인을 만나 이듬해 그의 앨범 ‘마이 패버리트 딩스’부터 합류했다. 이 앨범은 대단한 성공을 거둬 존 콜트레인 쿼텟을 결성하는 전기가 됐고, 1998년 그래미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색소포니스트 콜트레인을 비롯해 베이시스트 지미 개리슨, 드러머 엘빈 존슨, 피아니스트 타이너였다. 쿼텟은 나중에 특정 뮤지션을 초청해 더불어 연주하는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하며 국제적으로 유명해졌고, 재즈 역사에 한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열일곱 살 때 아마디야 이슬람 공동체를 통해 이슬람으로 개종, 자신의 이름을 술리에만 사우드로 바꿨다. 미국 공산당 활동에 형제가 연결된 일도 있었다. 쿼텟 활동을 하면서 네 멤버 모두 개인 활동을 꾸준히 했다. 타이너도 자신의 앨범을 70장 이상 발매했고, 다섯 차례나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2002년에 그는 국립예술공헌 아카데미의 재즈 마스터로 지명됐다. 음악 잡지 ‘롤링 스톤’은 모든 음악 장르를 통틀어 가장 뛰어나고 빼어났던 밴드의 마지막 생존 멤버가 삶을 다했다고 의미를 전했다. 어떤 음악 장르이건 시간이 지나면 개인의 영광이 도드라지곤 하는데 이 밴드는 글자 그대로 밴드로서 위대했다는 것이다. 고인은 2003년 재즈 전문 기자 테드 판켄과의 인터뷰를 통해 쿼텟 멤버들이 “서로의 음악 어휘를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2007년 콜트레인의 음악 여정을 돌아본 책 ‘콜트레인, 스토리 오브 사운드’를 쓴 재즈 평론가 벤 라틀리프는 마지막에 “재즈의 진실은 이 밴드에 있다”고 적었을 정도였다. 라틀리프는 일간 뉴욕 타임스(NYT)에 실린 장문의 타이너 부음 기사를 통해 각자 솔로로 연주할 때는 분명한 자신의 색깔을 분출해내면서도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읽어내며 종국은 하나의 밴드 음악을 들려주는 데 이 밴드의 위대함이 있다고 짚었다. 잡지는 오늘날 재즈계는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는 풍조에서 많이 멀어졌다며 타이너의 죽음은 마음을 합쳐(mind-meld) 업적을 이루는 시대가 끝났으며 우리에게 재즈는 늘 머릿수 싸움이었음을 새삼스럽게 일깨운다고 달콤쌉싸래하게 지적했다. 2008년 공영 NPR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장수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당근 주스를 좋아해. 정말로 몸에 좋다. 당근과 샐러리, 잊지 마라 샐러리도 있어”라고 답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는 “내게 사는 일과 음악은 완전히 똑같다. 연주하므로 살아간다. 앞으로 어떤 경험을 할지 예측하지 못하며 내 음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상할 수도 없다. 느낀 대로 곡을 쓰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북한의 빗장 걷어낸 젊은 개척자 트로이 콜링스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북한의 빗장 걷어낸 젊은 개척자 트로이 콜링스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북한에 저가 패키지 관광을 소개한 뉴질랜드 청년 사업가 트로이 콜링스가 서른셋 짧은 삶을 마쳤다. 그가 공동 창업하고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YPT)는 6일 성명을 내 지난주 그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2008년 그가 개러스 존슨과 손 잡고 창업한 이 여행사는 비밀스러운 공산국가를 여행하고 싶어하는 세계 각국 젊은이들의 발길을 북녘으로 인도하는 데 앞장섰다. 북한 여행 중 감금돼 미국으로 귀국한 뒤 2017년 6월 세상을 떠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북녘 여행에 이용한 패키지 상품이 바로 YPT 것이었다. 이 여행사는 성명을 통해 “고인은 북한 여행을 선도하는 여행사 가운데 하나인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를 설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 YPT 사람들은 여행산업에 전망을 던졌던 진정한 개척자를 잃었다. 트로이에 이끌려 여행에 대해 알게 되고 눈을 뜬 우리는 진짜 친구를 잃었다”고 애석해 했다. 2018년 고인은 BBC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집단체조 ‘마음의 조국’을 담은 2004년 다큐멘터리를 보고 북한 여행을 전문화한 여행사 설립의 영감을 얻었다고 털어놓았다. 그 뒤 북녘 여행을 통해 “여행의 잠재력이 북녘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이 나라의 발전에 도움을 준다는 점을 깨달았다. 조금 더 중요한 것은 내게 심오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 사이에 정말로 인간적인 연결 고리를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해서 여행 중에 내가 인생을 바치고 싶어하는 것이 이것이라고 마음먹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 관광 패키지를 설계하기 시작해 여러 단체 여행객을 모집했는데 기존 여행사가 요구했던 가격의 거의 절반 정도를 제시했다. 수도 평양을 둘러보고 평양 마라톤에 함께 하고 시골 곳곳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이어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어려움은 많지 않았지만 평양을 찾을 때마다 좋은 인간관계, 좋은 협력 관계를 구축한 덕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북한 전문매체 NK 뉴스의 채드 오캐롤 국장은 “YPT가 개척한 염가 모델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북조선인민공화국(DPRK)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BBC에 털어놓았다. 얼마 전까지도 북한 여행은 당국의 면밀한 감시를 받으며 진행돼 여정마다 북한 안내원이 따라 다니며 여행객 스스로 일정을 짜는 자유여행은 꿈도 꾸지 못한다. 현재 이 회사는 웜비어 사망 이후 북한 여행 상품을 판매하지 않고 대신 벨라루스 체르노빌, 동티모르처럼 역시 좀처럼 다른 여행사들이 내놓지 못하는 관광상품을 내놓고 있다. 2018년 그는 털어놓길 “많은 것을 배웠지만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아마도 내 스스로의 편견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일이며 모든 것을 정확한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라며 “사람들은 늘상 북한의 선전선동에 대해 얘기하지만 우리 역시 스스로에 갇혀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진함이 있더라. 모든 일은 흑백이 아니며 선전선동은 어느 곳에나 있다. 당신이 가장 최근에 읽은 책과 논문에 터잡아 의견을 내놓지 않고 진실로 어떤 상황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북한 여행은 여전히 틈새가 많이 남아 있지만 이 나라의 외환을 서서히 늘려주고 있다. 얼마나 수입을 올리고 있는지 통계를 내기도 어렵고 믿을 만하지도 않지만 대략 매년 10만명 정도가 북한을 찾는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90% 가까이는 중국 사람이며 나머지 나라 여행객들은 8000~1만명 수준으로 어림된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험지 도전 천하람 “호남의 보수정당 될 것”

    험지 도전 천하람 “호남의 보수정당 될 것”

    “호남 이해 못하는 반쪽 정치인 안 돼 2022년 지방선거 전지역 후보 내야”“호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정치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로 전남 순천에 도전장을 낸 천하람(34) 후보는 5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험지’ 호남을 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천 후보는 “호남분들이 정책적으로는 영남보다 보수적”이라며 “젊은 우리가 통합당을 잡아먹겠다, 호남에서 보수를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호남을 가르쳐 달라고 호소하려 한다”고 말했다. 천 후보는 대구 출신 변호사로 자신이 조직한 ‘젊은보수’라는 청년 정치그룹을 이끌고 통합당에 합류했다. 이번 총선에서 인천 연수을에 처음 도전했다 떨어진 뒤 공천관리위원회가 수도권 8곳을 묶은 ‘퓨처메이커 청년벨트’ 도전을 제안했지만 결국 호남행을 택했다. 천 후보는 “(청년 그룹 내에서) 너의 목표가 국회의원이냐, 아니면 전 국민을 통합하는 멋진 보수 정치인이냐는 질문이 나오더라. 그래서 우리가 호남의 보수정당이 되자, 2022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모든 지역에 후보를 내는 정당을 해보자고 답했다”고 전했다. 천 후보는 순천을 택한 이유에 대해선 “12년 동안 더불어민주당이 당선되지 못했고 당만 보고 묻지마 투표를 하지도 않는다”며 “호남에서 가장 위대한 유권자들이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천 후보는 지난 3일 순천시 남정동에 전입신고도 마쳤다. 그는 “4월 15일까지는 저의 진정성을 알리기에 시간이 촉박하지만, 제가 바른 뜻을 갖고 왔다는 점을 2022년까지 겸손한 자세로 알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숱한 분쟁의 ‘해결사’ 데케야르 전 유엔 총장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숱한 분쟁의 ‘해결사’ 데케야르 전 유엔 총장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하비에르 페레스 데케야르 제5대 유엔 사무총장이 4일(이하 현지시간)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아들 프란시스코가 페루 총리를 지내기도 했던 부친이 “어려운 시간을 견뎌내고” 이날 오후 8시 9분 페루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현지 라디오 방송 RPP에 알렸다고 영국 BBC가 5일 전했다. 사인은 밝히지 않았다. 다음날 곧바로 장례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한 차례 연임해 1981년부터 1991년까지 유엔을 이끈 데케야르는 8년을 끈 이란-이라크 전쟁을 종전으로 이끈 것을 비롯해 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의 숱한 평화협상을 주도했다. 8시9분에 숨을 거뒀다“고 현지 RPP라디오에 밝혔다고 AFP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현 사무총장은 성명을 내 부고를 듣고 무척 슬펐다고 밝힌 뒤 “고인은 성취를 이룬 공직자였으며 충실한 외교관이자 유엔과 우리 세계에 혁혁한 영향을 미친 열정 넘친 인물이었다”고 애석해 했다. 마르틴 비스카라 페루 대통령은 “온 삶을 바쳐 우리 나라를 뻗어나가게 헌신한 진심을 다한 민주주의자였다”고 돌아봤다. 라틴아메리카 출신 첫 유엔 사무총장으로 1981년부터 1991년까지 두 번의 임기를 채운 데케야르 전 총장은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페루 외무부에 들어가 외교관 경력을 쌓았다. 유럽과 남미 지역 대사관에서 근무한 뒤 유엔 주재 페루 대사로 유엔 총회에 데뷔했다. 1973년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을 1년 동안 맡아 1974년 터키군의 키프로스 침공 이후 그리스와 터키의 화친 조약을 중재해 외교 수완을 인정받았다. 미소 냉전 초기의 위험천만한 유엔을 그나마 잘 이끌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1991년 두 번째 임기를 마칠 때까지 사하라 서부의 적대 종식, 엘살바도르와 캄보디아, 니카라과 내전 종식에 힘썼다. 아울러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옛 소련 군의 철수, 아프리카의 마지막 식민지 나미비아가 남아공으로부터 독립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했다.이런 국제적 업적에도 그는 1995년 페루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가 일본계 알베르토 후지모리 후보에게 패배하는 좌절을 맛봤다. 5년 뒤 후지모리가 뇌물 추문에 연루돼 사임한 뒤 외교부 장관 겸 총리로 짧게 활약하며 과도정부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준비하는 데 힘을 보탰다. 그 선거 결과 집권한 알레한드로 톨레도 대통령은 고인을 프랑스 주재 대사로 임명해 노고를 보상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서영석 민주당 부천오정 예비후보 본선 확정

    서영석 민주당 부천오정 예비후보 본선 확정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경기 부천오정 예비후보가 김만수·정은혜 두 후보를 누르고 본선진출이 확정됐다. 민주당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는 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부천 오정지역 후보로 서영석 전 경기도의원을 제21대 총선 국회의원 후보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1일부터 3일까지 사흘간 권리당원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화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부천 오정은 원혜영 의원의 불출마로 전략지역으로 지정됐다가 경선지역으로 전환된 지역이다. 서영석 후보가 비례대표 현역인 정은혜 후보와 부천시장 출신의 김만수 후보를 제치고 경선 1위를 차지했다. 서영석 후보는 선거사무소에서 “원혜영 의원의 정신을 이어받아 잘 소통하며 겸손한 자세로 오정의 변화를 이끌겠다”며 “21대 국회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와 문재인 정부 성공을 위해 열심히 일해 달라는 명령이라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부천시 원미갑·원미을·소사구·오정구 선거구가 ‘부천시갑·을·병·정’ 선거구로 명칭이 변경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4·15 총선 선거구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는 오는 5일 본회의에서 이를 처리할 예정이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지금의 뉴욕 지하철 노선도 그린 마이클 허츠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지금의 뉴욕 지하철 노선도 그린 마이클 허츠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세상에서 가장 오래 되고 규모가 큰 대중교통 체계 가운데 하나인 미국 뉴욕의 지하철 노선도를 지금의 형태로 그린 마이클 에드워드 허츠가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가 26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하루 전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고인의 아들 유진이 지난 18일 롱아일랜드 이스트 메도우의 자택에서 부친이 숨을 거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해줬다고 보도했다. 다만 사인은 밝히지 않았다. 뉴욕 지하철은 1868년 7월 3일에 고가 철도가 개통했고, 지하 구간이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은 1904년 10월 27일이었다. 468개의 역과 총 연장 337㎞에 이른다. 2011년 기준으로 도쿄, 모스크바, 베이징, 난징, 서울, 광저우에 이어 일곱 번째로 많은 승객을 자랑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것은 물론이고, 워싱턴 도시철도, 시카고 도시철도, 뉴저지 허드슨 도시철도(PATH), 필라델피아 PATCO 선과 함께 24시간 운행한다. 브루클린 출신으로 퀸스에서도 어린 시절을 보낸 허츠는 1954년 퀸스 칼리지 예술학 석사학위를 딴 뒤 육군에서 2년 복무하고 월트디즈니 컴패니에 취직했다. 영화 광고 만드는 일을 10년 정도 하고 1960년대 말 손수 마이클 허츠 어소시에이츠란 회사를 차렸다. 휴스턴과 워싱턴 지하철 노선도, 뉴욕 주변의 지도, 공항 지도 등을 제작하며 명성을 쌓아 뉴욕 지하철 노선도를 새롭게 꾸미고 싶은 시 교통국 관리들에게 고용됐다. 당시 범죄율이 치솟고 지하철 이용률은 1910년대 말 이후 최저 수준이었다. 소수의 관광객들이 경치를 즐기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하는 정도였다. 1958년에 만들어진 기존 노선도는 직선으로 돼 있는 부분들이 있어 승객들이 불편해 했다. 1972년과 1979년 사이에 메트로폴리탄 수송청(MTA)에서 발행된 이탈리아 디자이너 마시모 비넬리의 노선도는 훨씬 보기 좋다는 평가를 들었지만 땅 속의 노선과 땅 위 것들을 연결짓는 데 무리가 있었다. 비넬리의 여러 노선도는 지금도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돼 있어 관람할 수 있다. 위 사진에서 보는 대로 허츠는 혼자 끙끙대지 않고 많은 이들의 협업을 이끌었다. 심지어 정신과 의사 아를린 L 브론자프트의 지혜도 빌렸다. 일본인 디자이너 시라이시 노부유키에게 모든 노선을 눈 감고 타보라고 했다. 그래야 노선의 곡선 구간을 훨씬 더 잘 묘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그의 팀이 1979년에 내놓은 노선도는 자신의 회사에 의해서도 여러 차례 변형됐지만 기본 디자인은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하지만 허츠의 노선도도 맨해튼 지역은 지하철이 가장 많이 지나가는 곳이라 작은 지역이지만 노선도에 넣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축척을 무시하고 더 크게 그렸다. 2010년 6월 27일부터 쓰이기 시작한 최신 노선도 역시 맨해튼을 더 크게, 스태튼 섬을 실제보다 작게 그렸다. 2004년 NYT 인터뷰를 통해 허츠는 뉴욕 지하철을 처음 이용하는 관광객들이 노선도를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며 기쁨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난 여전히 지하철 역에서 레더하우젠(독일 바바리아 지방 사람들이 즐겨 입는 무릎까지 오는 가죽 바지)을 걸친 누군가가 노선도를 들여다보는 모습을 볼 때 즐거움을 얻는다.” 고인의 혈통이 그쪽임을 짐작하게 한다. 허츠 렌터카의 창업자 존 허츠와의 관계가 궁금했지만 찾지 못했다. 현재 MTA에서 노선도를 관장하는 찰스 고다니어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모든 뉴요커는 마이크의 노선도를 머릿속에 일정 부분 담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월드스타가 된 방탄소년단이 전한 진심은?

    월드스타가 된 방탄소년단이 전한 진심은?

    정규 4집 앨범 ‘맵 오브 더 솔:7’으로 돌아온 월드스타 방탄소년단. 그들이 지난 24일 열린 글로벌 기자간담회를 통해 자신들의 진심을 솔직하게 전했다. 3가지 키워드로 그들의 이야기를 요약했다. 가장 첫번째 키워드는 ‘BTS의 그림자’다. 이번 4집 앨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그림자’다. 전작인 페르소나 앨범에서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나’를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외면하고 싶은 내면의 그림자를 표현했기 때문. 방탄소년단은 이번에 앨범을 통해서 글로벌 슈퍼스타의 자리에서 느끼는 현재 BTS의 생각과 고민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약한 부분을 숨기거나 회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더욱 성숙해지고 단단해진 면모를 뽐냈다. 이번 앨범을 통해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 두번째 키워드는 ‘시대정신’이다. 방탄소년단은 자신들의 인기 요인 중 하나로 동시대 사람들과 공감하는 ‘시대성’을 꼽았다. 리더인 RM은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범 세계성을 띌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느끼는 고민이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대의 사람들이 느끼고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BTS는 문학, 영화, 미술, 무용 등 다양한 예술 장르와 접목하면서 대중가요의 수준을 예술의 경지로 한단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RM은 “언어의 형태가 다를 뿐 현대미술과 음악은 동등하게 시대성, 소통 등의 가치를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난 7년을 단단한 팀워크를 다져온 BTS의 다가올 7년은 어떨까. 이들은 앞으로 ‘BTS의 스타일’로 헤쳐나가겠다고 말했다. 제이홉은 ”7년을 함께 하다보니 방탄소년단만의 스타일이 생긴 것 같다. 어떤 음악이든, 장르든 방탄소년단의 느낌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성장”이라고 말했다. ‘장르가 BTS’라고 말하는 이들은 겸손한 자세로 앞으로의 7년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방탄소년단의 신보는 세계 팝 양대 차트인 미국 빌보드와 영국 오피셜 앨범차트 동시 1위를 예약한 데 이어 일본 오리콘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영상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봉쇄 논란’ 홍익표 후임 대변인 “겸손한 마음으로”

    ‘봉쇄 논란’ 홍익표 후임 대변인 “겸손한 마음으로”

    홍익표 후임에 초선 강훈식초선에 수석대변인 이례적‘대구·경북 봉쇄조치’ 발언 논란으로 26일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전 수석대변인의 후임으로 초선 강훈식(충남 아산을) 의원이 내정됐다. 민주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쏟아지는 가운데 대변인을 맡게 된 강 의원은 “겸손한 마음으로 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강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당으로부터 요청을 받아서 민주당 수석대변인직과 선거대책위원회 수석대변인을 맡게 됐다”며 “엄중한 시기, 무거운 직책을 맡은 만큼 겸손한 마음으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강 의원은 이어 “선거운동에 지장이 되지 않느냐며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계시다”며 “우한 교민의 아산 이송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2월 중 예정했던 후보 등록과 선거운동도 잠정 연기하고 있던 터라 고민이 깊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하지만 코로나19를 이겨내는 일이 시급하고 당의 요청에 응하는 것이 정당인의 당연한 책무라고 생각해 어렵게 임무를 맡았다”며 “당의 입장을 국민께 알리고 국민의 목소리를 당에 전달하는 소통의 매개체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여당 수석대변인을 초선 의원이 맡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수석대변인은 당의 얼굴로 대변인단 전체를 이끌며 대국민 소통 업무를 해야 한다. 특히 총선 체제의 수석대변인은 선거 여론전의 최전선에 있기 때문에 그만큼 업무 부담도 크다. 그럼에도 강 의원이 원내대변인 등 소통 업무를 여러 번 맡았다는 점이 이번 인선에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강 의원은 원내대변인과 전략기획위원장, 총선기획단 대변인 등을 역임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방탄소년단 “성과 보다 성취가 중요...우리는 앞으로 갈 길 멀다”

    방탄소년단 “성과 보다 성취가 중요...우리는 앞으로 갈 길 멀다”

    정규 4집 앨범 ‘맵 오브 더 솔:7’으로 돌아온 월드스타 방탄소년단이 자신들의 세계적인 영향력에 대해 겸손한 면모를 보였다. 방탄소년단은 24일 열린 글로벌 기자간담회에서 “봉준호 감독이 방탄소년단의 영향력은 자신의 3000배가 넘는다고 말한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슈가는 “너무 과찬이다. 저희가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방탄소년단의 이번 앨범에 글로벌 슈퍼스타가 된 내면의 그림자를 솔직하게 담았다. 전작 ‘페르소나’에서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나’를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외면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까지 받아들인다는 가사를 노래한 것. 슈가는 “데뷔 후 내면의 그림자와 두려운 마음이 커졌는데 무게 중심을 잘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게, 상처, 슬픔, 시련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싸워내겠다”고 말했다.리더인 RM은 자신들이 세계적으로 소통하게 된 이유로 ‘시대성’을 꼽았다. 그는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세계성을 띄게 되었고, 자신들의 고민이 비단 한국의 고민이 아니라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앨범은 선주문만 410만장에 달할 정도로 국내외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기록 소년단’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전세계에서 거두게 될 성과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는터. 하지만 멤버들은 “압박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기록으로 인한 성과 보다는 성취가 중요하다”는 성숙한 답변을 내놨다 방탄소년단의 이번 앨범은 세계 양대 팝 차트로 꼽히는 미국 빌보드와 영국 오피셜 차트 동시 정상을 예약하며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빌보드는 24일(현지시간) 예고 기사와 SNS를 통해 방탄소년단이 다음 주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 1위로 데뷔할 것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편 방탄소년단은 26일 미국 CBS ‘더 레이트 레이트 쇼 위드 제임스 코든’의 인기 코너 ‘카풀 가라오케’에 출연하며 27일 Mnet ‘엠카운트다운’을 통해 국내 컴백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영상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베트남 공산 정권에 맞선 반체제 승려 틱 쾅 도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베트남 공산 정권에 맞선 반체제 승려 틱 쾅 도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베트남의 공산 정권에 대항해 종교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싸워 여러 차례 노벨 평화상 후보로도 천거됐던 반체제 승려 틱 쾅 도가 열반에 들었다. 세속 나이 92. 지난 2003년 이후 사실상 호치민의 투 히유 탑에서 연금 생활을 견뎠던 스님이 지난 22일 밤 입적했다고 고인이 창건한 베트남 연합 불교 교회(UBCV)가 밝혔다고 AFP 통신이 23일 전했다. 1928년 11월 27일 북부 타이 빈 지방에서 태어난 고인은 생애 대부분을 공산 정권에 맞서 싸우는 데 보냈다. 지난해 4월 고인은 미리 유서를 작성했는데 “간단한 장례를 사흘을 넘기면 안된다. 화장 후 재를 바다를 흩뿌려 달라”고 주문했다. 이 나라에서는 조문객들이 부의를 전달하는 것을 관례로 여기는데 UBCV는 그러지 말라고 당부했다. “유언도 없으며, 생애를 요약한 추모사도, 어떤 감정을 드러내는 몸짓도 하지 말고 오직 기원만 해달라.” 그가 공산주의에 반감을 갖게 된 것은 10대 시절 그에게 가르침을 준 고승들이 인민법정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면서였다. UBCV 파리 지부가 펴낸 전기에 따르면 스님은 “당시 그곳에 난 광신과 불관용에 최선을 다해 싸우고 폭력을 쓰면 안된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좇아 정의를 추구하는 데 온 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고 적었다. 30년 가까이 감옥을 들락거리고 연금 당하며 감시 당하며 지냈다. 공산 정권은 그를 “반혁명적 행동”을 한다고 낙인 찍었다. 그는 국가의 통제 아래 두려는 정권의 제안을 뿌리쳤다. 정부가 통제하는 베트남 불교 교회에 가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UBVC는 1980년대 초반부터 불법 단체로 규정됐다. 2001년 그는 ‘민주주의를 위한 청원’이란 글을 썼는데 다른 종교적 배경을 지닌 30만명 이상이 지지한다고 공표했다고 국제 종교자유의 미국위원회(USCIRF)는 전했다. 나아가 4년 뒤에는 남북 반체제 인사들의 대동단결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 공로를 인정 받아 이듬해 노르웨이 라프토 인권상을 수상했는데 선정 이유로 “베트남 공산 정권에 맞서 30년 동안 평화적인 야당 운동을 펼쳐온 용기와 지속적인 노력”이 꼽혔다. 이렇게 완고한 그의 성품은 기성 종교와 불편한 관계를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USCIRF는 미국 국무부에 베트남을 “특정한 걱정을 안기는 나라”로 규정할 것을 요청했지만 미국 국무부는 응하지 않았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박상혁 김포을 예비후보 재심인용 통과

    박상혁 김포을 예비후보 재심인용 통과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경기 김포시을 예비후보는 24일 “중앙당에서 제가 신청한 재심이 최종 인용됐다는 결과를 통보 받아 경선 후보로 다시 선택됐다고 밝혔다. 박 후보는 재심 결과에 대해 “이 모든 것은 김포 시민 여러분들과 당원 동지들의 성원과 지지 덕분”이라며, “특히 박상혁은 음주운전 전력 하나 없이 깨끗한 사람이고 박원순 시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실력을 보증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중앙당에 호소를 해준 당원 동지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이어 그는 “하지만 제가 기뻐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선거운동보다 중요한 게 대한민국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우리 김포에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우리가 힘을 모으고 서로를 믿고 이겨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박 후보는 “국가적 위기 상황을 대통령과 정부를 흔들려는 기회로 삼으려는 일체의 정치적 음해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때”라고 말하고 “박상혁은 서울특별시와 청와대에서 일했던 사람으로 더 책임감을 가지고 한없이 겸손하게 임하겠으며 엉뚱한 음해와 정치 공세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로써 민주당 김포을 예비후보 경선은 이회수·김준현·박진영·박상혁 등 4명의 후보가 오는 3월 초에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지난 15일 민주당은 김포을 경선자로 김준현, 박진영, 이회수 등 3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낙선한 3명의 후보가 재심을 청구해 민주당 중앙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재심위원회가 지난 19일 오전 심의위원회를 개최했다. 이날 재심위원회에서 김포을 지역을 보류지역으로 결정하고 이후 재심의를 진행해 박상혁 후보가 인용통과됐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손수 제작 로켓 추락사 마이크 휴스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손수 제작 로켓 추락사 마이크 휴스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 미국의 데어데블 모험가 마이크 ‘매드’ 휴스가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사막 근처 바스토우에서 손수 제작한 로켓에 몸을 실어 발사됐으나 로켓이 낙하산 없이 추락하는 바람에 산화했다. 항년 64.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면 증기 동력의 로켓이 발사된 직후 공중에서 불이 붙어 곧바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낙하산이 이륙 직후 몇 초 만에 너무 빨리 펼쳐지는 바람에 로켓에서 떨어져나갔다고 영국 BBC는 23일 전했다. 그는 늘 지구는 편평하다고 확신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우주로 가고 싶어했다. US 사이언스 채널에서 방영되는 아마추어 로켓 제작자들을 소개하는 새 시리즈 ‘홈메이드 아스트로넛’의 일부분으로 이날 발사 장면은 카메라에 담겨지고 있었다. 늘 그의 모험에 함께 해 온 왈도 스테이크스의 도움을 얻어 휴스는 자신의 증기 동력 로켓으로 해발 고도 1525m까지 이를 계획이었다고 스페이스 닷컴은 전했다. 사이언스 채널은 꿈을 이루려 애쓰던 고인이 세상을 떠나 안타깝다고 애도했다. 샌버나디노 카운티 보안관실은 22일 오후 2시쯤 로켓이 발사된다는 통보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며 “한 남성이 로켓이 광활한 사막에 떨어지는 바람에 사망이 선고됐다”고만 밝혔다. 신원은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예 전문 매체 TMZ 닷컴은 숨진 이가 휴스라고 보도했다. 전에 그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대런 슈스터는 “조물주가 마이크를 빚은 것은 그에게 틀을 깨부수라고 한 것이다. 그 남자는 진짜 ‘물건’이었고, 한계에까지 삶을 밀어붙였다. 그는 이 길 말고 어떤 다른 길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영면을 빈다”고 말했다. 애플 밸리에 살고 있었던 휴스는 지구가 편평하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며 계속 로켓 실험에 나서 국제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지난해 3월에는 손수 제작한 로켓에 실려 570m까지 올라갔다가 낙하산을 펼쳐 지상에 돌아왔다. 당시도 등을 약간 심하게 다쳐 다른 이의 부축을 받아 로켓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는 뒤에 “그렇게 하니 좋냐고? 응 그런 것 같다. 아침에 통증을 느껴 침대를 나올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집에 돌아가 저녁을 먹고 밤에 고양이들을 볼 수는 있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는 2002년 리무진을 개조한 링컨 타운 카를 몰아 31m를 뛰어넘어 기네스 월드 레코드에 최장 리무진 점프 기록을 수립한 일이 있다. 미국 CBS 뉴스는 “휴스가 손수 만든 증기 동력 로켓에 몸을 실어 스스로 천국으로 날아갔는데 지구가 프리스비 접시처럼 편평하다는 이론을 증명하겠다는 것이었다”고 알렸다. 고인은 생전에 같은 방송 인터뷰를 통해 “난 사람들이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길 원한다. 당신 지역구의 의원님이 하는 일과 당신 시의회가 하는 일을 궁금해 하라. 남북전쟁 때 진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9·11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라고 털어놓았다. 당시 로켓 제작과 관련해 늘 시행착오가 있다고 인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켓 일에 관련해선 생각만 오래 해선 되는 일이 없다”고 덧붙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존경 받은 장 바르니에 죽은 지 일년 만에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존경 받은 장 바르니에 죽은 지 일년 만에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 잘 살아야 한다. 죽은 뒤 하늘에도 화살이 날아올 수 있으니. 캐나다 남성 장 바니에르는 1964년 프랑스에서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는 자선단체 라르쉬(L‘Arche, 방주)를 설립해 평생을 존경 받고 살다 지난해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 단체는 배움에 장애가 있는 이들이 장애가 없는 이들과 어울려 살아가도록 가정과 센터를 제공하는데 38개국에서 1만명 가량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154개의 센터가 들어섰다. 그는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나 1950년 해군 복무를 마치고 신학을 공부하며 “예수를 따르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파리의 구휼소를 방문한 뒤 그곳에서 배움 장애를 갖고 있는 남성들과 생활하며 궁핍한 일상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고 이것이 라르쉬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됐고 캐나다 최고 훈장을 목에 걸었다. 2015년에는 영국 템플턴상을 받았는데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완전히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그가 저세상으로 떠난 뒤 의혹이 제기되자 라르쉬 인터내셔널은 조사 위원회를 꾸려 조사했는데 프랑스에서만 6명의 여성을 성적으로 괴롭힌 것으로 드러났다고 영국 BBC가 22일(현지시간) 위원회의 보고서를 토대로 보도했다. 조사는 영국의 독립 컨설턴트 회사 GCPS가 수행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1970년부터 2005년까지 이들에게 영적 안내를 한다는 명목으로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LI는 성명을 통해 “이들 여성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흔치 않은 영적, 환상적인 설명들을 늘어놓았다”고 밝혔다. 그가 유린한 여성 가운데 장애인은 한 명도 없었다. 라르쉬 인터내셔널의 지도자인 스테판 포스너와 스테이시 케이츠 카니는 라르쉬 재단에 쓴 편지를 통해 “새롭게 발견된 사실들과 이런 행동들을 가차없이 비난해야 한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장 바니에르가 주장해 온 가치들과 완전히 상충되고 사람들을 존중하고 순수하게 대했던 기본 원칙들과 일치하지 않고 라르쉬가 터잡고 있는 근본 원칙들과도 정반대”라고 개탄을 금치 못했다. 이어 “우리는 이들 여성의 용기와 고통을 잘 알고 있으며 다른 이들은 그렇게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지도 못했을 일”이라면서 “라르쉬의 맥락에서 이런 일들이 발생한 것과 그들 중 어떤 일들이 우리 창업자로부터 비롯된 일인 데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덧붙였다. 사지마비 기업인 필리페 포조 보르고와 함께 장애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던 바니에르는 “이들 여성을 심리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완전히 장악한 상태여서 이들의 관계는 개인적 삶이나 다른 이들과의 삶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바니에르는 입을 다물어달라고 여성들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이 문제를 처음에 폭로한 캐나다 신문 글로브 앤드 메일은 피해 여성들이 자원봉사 요원, 수녀들이라고 보도했다. 바니에르는 또 성직에서 파문된 토마스 필리페가 만든 소규모 집단 멤버였으며 그가 주도한 성적 모임에 구독도 하고 참여도 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 모임이나 단체가 가톨릭에서 배척하는 “환상적인”이나 “영적인” 믿음들에 기초해 하는 것도 물론이다. 바니에르는 1993년 세상을 떠난 필리페를 자신의 “영적 스승”이라고 인정했지만 그런 성적 훈련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잘라내기, 복사, 붙여넣기 만든 래리 테슬러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잘라내기, 복사, 붙여넣기 만든 래리 테슬러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오늘날 우리가 무심코 편리하게 쓰는 컴퓨터의 ‘잘라내기, 복사, 붙여넣기’를 고안한 래리 테슬러가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973년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는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센터에서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했는데 제록스는 19일(이하 현지시간) 성명을 발표해 “‘잘라내기, 복사, 붙여넣기’와 ‘찾기/바꾸기’ 등을 고안한 전직 연구원 래리 테슬러의 혁신적인 아이디어 덕분에 여러분의 작업이 훨씬 쉬워졌다”면서 안타깝게도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AFP 통신은 그가 지난 17일 세상을 떠났다고만 전했는데 어디에서 어떻게 운명했는지는 전하지 않았다. 1945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난 고인은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한 뒤 이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연구했다. 다시 말하자면 컴퓨터 시스템을 조금 더 이용자 친화적으로 만드는 일을 했다. 1979년 제록스 파크를 방문한 스티브 잡스가 테슬러에게 “당신은 금광 위에 앉아 있군요. 그런데 왜 이 기술로 뭔가를 하지 않나요? 당신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데”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듬해 제록스를 떠나 애플에 합류해 17년을 근무하며 수석 과학자까지 승진했다. 수석 과학자란 직위는 잡스와 애플을 공동 창업한 스티브 위즈니악이 맡을 정도로 높은 직책이었다. 1997년 애플을 퇴사한 뒤에는 교육 스타트업 사업체를 꾸렸고, 아마존과 야후에서도 짧게 일한 적이 있다. 유전자 검사 서비스 ‘23andMe’를 개발하는 데 힘을 썼고 나중에는 독립 컨설턴트 일을 했다. 2012년 실리콘 밸리에서 BBC와 인터뷰를 갖고 “거의 일종의 경로 같은 게 있다. 돈 좀 벌고, 은퇴하지 말고, 다른 회사를 펀딩하는 데 시간을 쓰라 등등. 그런데 다음 세대와 함께 배우는 것을 공유하는 것이야 말로 굉장히 강력한 흥분을 일으킨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일으킨 혁신 가운데 가장 도드라진 것은 역시나 잘라내기/ 붙여넣기였는데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인쇄된 텍스트를 잘라내고 붙여넣는 행위를 대체하는 것이었다. 1983년 애플의 리사 컴퓨터에 처음 이 기능을 넣었고, 이듬해 매킨토시 오리지널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고인의 확고한 믿음 하나는 당시 소프트웨어 디자인에 공통적인 모즈(Modes) 기능을 쓰는 걸 그만 둬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프트웨어와 애플리케이션 기능을 바꿀 때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오죽했으면 테슬러의 홈페이지 제목을 노모즈 닷컴(nomodes.com)이라고 붙일 정도였고, 트위터 계정 역시 ‘@nomodes’, 자동차 번호판에도 이 문구가 새겨졌다. 실리콘 밸리 컴퓨터역사박물관은 고인이 “컴퓨터가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대안문화에 대한 전망을 컴퓨터 과학 훈련과 결합시켰다”고 삶을 짧게 요약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15년 만에 광주 방문한 윤석열 “5·18정신 새겨 공소유지에 최선”

    15년 만에 광주 방문한 윤석열 “5·18정신 새겨 공소유지에 최선”

    수사·기소 분리 관련된 질문엔 말 아껴오월 어머니들, 대화 시도하다 한때 충돌 광주지검 앞에선 환영·규탄집회 동시에수사·기소 검사 분리를 놓고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이 재차 불거지면서 양 기관 수장의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이유로 21일 예정된 전국 검사장 회의를 돌연 연기한 반면 윤석열 검찰총장은 20일 일정대로 광주 방문을 강행했다. 윤 총장이 광주고검·지검을 찾은 것은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처음이다. 윤 총장은 이날 오후 광주지검에 도착한 뒤 “15년 전 이맘때 이 자리에서 전출 행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주변이나 건물이 그대로 있어 너무 반갑다”고 말했다. 청사 앞에서 열린 검찰총장 환영·규탄 집회와 수사·기소 분리 방침에 대한 견해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오월 어머니들이 광주고법을 찾은 윤 총장을 향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견해를 묻다가 법원·검찰 관계자들로부터 제지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지며 금세 아수라장이 됐고, 고령인 일부 어머니가 넘어지기도 했다. 윤 총장의 광주 방문에 찬반 입장을 보인 단체 관계자들이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현장에서 침묵을 지킨 윤 총장은 직원들과의 간담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 정신을 깊이 새겨 현안 사건의 공소 유지에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줄 것”을 주문했다. 현안 사건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 전 대통령 사건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사·기소 주체 분리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비친 윤 총장은 법원의 공판중심주의 등 사법개혁 흐름에 맞게 수사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검사장 회의를 연기하며 한발 물러선 추 장관은 검찰 관련 법령 정비에 나섰다. 다음달 5일까지 입법예고된 ‘검사정원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대검에 고위직 검사들에 대한 감찰 강화를 위해 ‘감찰3과’가 신설된다. 검사 복무평정에 국민에 대한 겸손, 경청, 친절 등 근무 자세를 반영하는 내용의 개정 ‘검사복무평정규칙’도 이날 공포·시행됐다. 검사의 기강 강화 차원으로 풀이된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상징도 감동도 없는 ‘밋밋한 민주 선대위’ 리더십 발휘할까

    상징도 감동도 없는 ‘밋밋한 민주 선대위’ 리더십 발휘할까

    당내서도 “올드하고 새로운 감흥 없다” 이낙연 “오만과 독선 기울지 않게 경계”더불어민주당 4·15 총선 선거대책위원회가 20일 출범했다. 이해찬 대표와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투톱’으로 세우고 각 지역 대선주자 및 중진 등 11명을 권역별 선대위원장으로 배치했다. 선대위를 대표하는 이들 13명의 평균 나이는 62.6세이며 모두 남성이다. 또 눈에 띄는 상징적 새 인물도 보이지 않아 전반적으로 ‘밋밋한 선대위’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첫 선대위 회의에서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은 “국민과 역사 앞에 훨씬 더 겸손한 자세로 선거에 임하겠다”며 “오만과 독선에 기울지 않도록 늘 스스로를 경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권역별 선대위원장은 이인영(수도권), 김진표(경기남부), 정성호(경기북부), 송영길(인천), 이개호(호남), 박병석(충청), 김영춘(부산), 김부겸(대구·경북), 김두관(경남·울산), 강창일(제주) 의원, 이광재(강원) 전 강원지사가 맡았다. 여기에 최고위원들이 당연직으로 포함됐고 영입인재 1호인 최혜영 교수, 황희두 공천관리위원, 김주영 전 한국노총 위원장, 조희경 사단법인 동물자유연대 대표 등이 임명돼 선대위원장만 총 22명이다. 그럼에도 감동을 줄 만한 인물은 없다는 평은 당 내부에서도 나왔다. 당 관계자는 “선대위가 올드한 느낌”이라면서 특히 “추미애, 박영선 등 여성 중진들은 장관으로 있고, 다른 여성 의원들은 당내 경선을 하는 처지라 권역별 선대위원장에 여성이 한 명도 없게 됐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상대 진영에 있던 김종인 전 의원을 전격 영입해 선대위원장을 맡겨 충격을 줬다. 2012년 총선은 한명숙 전 총리가 이끌었다. 권역별 선대위원장을 두는 건 지난 총선에는 없던 전략이다. 권역별 선대위원장이 지역 이슈를 장악해 본인의 지역구부터 권역 전체로 바람을 일으킨다는 작전이다. 하지만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선대위는 전국으로 유세를 다녀야 하는데, 왜 권역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이 전 지사가 수도권에서 지원을 하면 안 되는 것이냐”고 말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민주당은 김남국 변호사, 추미애 법무장관의 공소장 비공개 등 문제들이 부각되는 형국”이라면서 “선대위가 중도 유권자들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 비례공천관리위원회는 이날 비례대표 후보 공모 분야를 제한경쟁과 일반경쟁으로 나누고 제한경쟁 분야 비례 1번은 장애인, 2번은 외교·안보 전문가에게 할당한다고 밝혔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사매2터널 사고에서 아이 구한 트럭 운전기사

    “찌그러진 차 문을 뜯고 아이를 꺼내 사력을 다해 뛰었습니다” 40여명의 사상자를 낸 순천∼완주 고속도로 사매2터널 다중추돌 사고에서 화물차 기사가 위험을 무릎쓰고 인명을 구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다. 주인공은 이종태(44)씨. 그는 당시 사고 현장 모습과 구조 상황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지난 17일 낮 12시 23분 순천~완주간 고속도로 사매2터널은 다중추돌 사고로 불길이 치솟았고 차량 30여 대가 추돌해 아비규환의 상태였다. 이씨가 운전한 코일을 실은 25t 트럭도 이 중 1대였다. 그는 다행히 터널 속 사고를 미리 알고 차를 세웠지만 뒤따르던 5t 윙바디 트럭이 승용차 2대와 이씨의 차를 덮쳤다. 이씨는 사고 직후 직후 바로 내려 가까스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터널 안과 밖이 아수라장이 됐던 그때 이씨는 대형 화물 트럭이 미끄러지면서 터널 바로 앞 1, 2차로 사이의 승용차를 덮치는 장면을 목격했다. 사방이 찌그러진 승용차 조수석에서 겨우 내린 여성은 울부짖으며 주변에 도움을 호소했다. 이씨는 주저하지 않고 승용차를 향해 달려갔다. 차에서 내린 여성은 “뒷좌석에 있는 우리 아이 좀 구해달라”며 애원했다. 아우성을 전해 들은 주변에 있던 장정 2명이 더 달라붙었다. 이씨를 포함한 남성 3명은 온 힘을 다해 맨손으로 찌그러진 문짝을 뜯어냈다. 뒷좌석에 있는 10살쯤 되는 아이를 차에서 꺼냈을 무렵 이씨는 매캐한 검은 연기를 조금 들이마셔 정신이 순간 몽롱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터널 안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탱크로리에서 나온 질산 등이 포함된 유독가스였다. 애써 정신을 차린 이씨는 아이를 업고 터널 반대 방향으로 힘껏 뛰었다. 사고 현장에서 어느 정도 멀어진 지점에 멈춰선 그는 10∼15분 정도 아이를 품에 안고 있다가 부모에게 인계했다. 아이는 부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나 큰 부상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씨는 사고를 당한 다른 승용차에서 빠져나온 이들을 가드레일 밖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기도 했다. 뒤늦게 살펴보니 자신은 슬리퍼 한짝만 신고 있었다. 이씨는 “아이가 찌그러진 차 안에 있다는데 그냥 지나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내가 사고를 당해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텐데…”라고 겸손해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이낙연 “민주당, 오만·독선 기울지 않도록 늘 경계하겠다”

    이낙연 “민주당, 오만·독선 기울지 않도록 늘 경계하겠다”

    “싸우는 정치·네거티브 선거 하지 않겠다”이낙연 더불어민주당 공동 상임선대위원장은 20일 “국민과 역사 앞에 훨씬 더 겸손한 자세로 선거에 임하겠다”며 “오만과 독선에 기울지 않도록 늘 스스로를 경계하겠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선대위 출범식에서 “품격과 신뢰의 정치를 4·15 총선부터 실천하겠다. 그것이 단번에 완성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지치지 않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의 ‘민주당만 빼고’ 칼럼 고발 논란과 최근 각종 공천 잡음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그는 “4·15 총선을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기를 바란다”며 “분열과 정쟁으로 일그러진 소모의 과거를 딛고 화합과 협력으로 창조의 미래를 열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실을 개선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비전과 정책을 잇달아 내놓겠다”며 “그런 비전과 정책을 놓고 여야가 선의의 토론을 벌이기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또 “저희는 싸우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 네거티브 선거를 하지 않겠다”며 “다만 가짜뉴스와 허위 비방에는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과 경기 위축이 겹친 시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선대위를 가동한다”며 “이런 중대과제들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는 선거가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염병과 경기 위축에는 여야와 정부가 협력해 대처하라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믿는다”며 “여야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쟁을 자제하고 이 위기의 극복에 협력할 것을 정중히 제안한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곽병찬 칼럼] 표현의 자유, 지식인의 공깃돌이 아니다

    [곽병찬 칼럼] 표현의 자유, 지식인의 공깃돌이 아니다

    임미리씨가 ‘국민 앞에 사과하라’고 했고, 이낙연 전 총리가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 내정자 자격으로 사과를 했고, 임씨가 ‘수용한다’고 했다. 그러면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는 임씨의 칼럼으로 말미암은 표현의 자유 소동은 종결된 걸까. 임씨가 말하는 ‘국민’은 누구이고, 이 전 총리가 사과했다는 ‘국민’은 누구인가. 소동을 일으킨 건 민주당이다. ‘민주당만 빼고’라는 대목만 빼면 지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판 혹은 비난인데도 ‘고발’했다. ‘협량하다’느니 ‘오만하다’느니 ‘겸손하지 못했다’느니 따위의 말들이 논란의 키워드가 된 것은 그 때문이다. 사실 그런 말은 표현의 자유 침해를 따질 때 쓸 것은 아니다. 임씨가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전국적 망을 가진 대형 스피커로 거두절미하고 ‘민주당만 찍지 말라’는 소리가 퍼지는데 침묵할 정당이 어디 있을까. 당장 표 떨어지는 소리 때문에 후보자들이 당 지도부를 비난했겠지만, 후보가 확정된 뒤라면 그들이 먼저 흥분했을 것이다. 임씨의 글은 상식적으로 보아도 현행 선거법 위반 소지가 크다. 후보자 확정 여부를 따지지만, 이번 선거법 개정과 함께 자유한국당이 비례대표 과점을 위한 ‘위성정당’을 창당할 정도로 정당은 그 자체로 후보자가 되었다. 문제는 ‘국민’이다. 임씨가 지목한 국민은 참으로 곤혹스럽다. 그는 정당과 정치인이 국민을 농락하는 이유를 ‘국민’이 ‘최악을 피하려 차악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 국민이란 ‘민주당 지지자’일 것이다. 임씨는 그들에게 이번엔 ‘민주당만 빼자’고 했다. 민주당은 ‘최악’이다. 나름대로 수많은 고민 끝에 결정한 선택인데 나라를 그르치고 또 그르칠 죄인 취급을 당한 이들에게 임씨의 ‘말’은 살아온 삶, 인격, 양식에 대한 모욕이다. 동의할 수도 없는 이유로 훈계까지 들어야 했으니 더욱 그렇다. 검찰 개혁, 노동 여건 악화, 재벌 개혁 포기, 정권 이해 골몰 등. 설사 동의한다 해도 ‘도로 새누리당’이나 ‘떴다방 정당’이 왜 민주당보다 나은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다짜고짜 ‘민주당만 빼고’ 하자는 요구만 있다. 그런 ‘민주당 지지자’를 위로하는 말이 공교롭게도 임씨를 지지하는 홍세화씨의 칼럼에 한 대목 있다.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민족해방전선에 군자금 전달을 마다하지 않던 장폴 사르트르를 단죄해야 한다는 측근에게 드골이 ‘그도 프랑스야’라고 만류했다.”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지식인의 역할을 존중한 것’이라는 필자의 엘리트주의적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저 드골의 말을 있는 그대로 임씨에게 전하고 싶다. ‘지식인 임씨’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임씨가 자괴감을 강요한 민주당 지지자들도 드골의 말처럼 대한민국이고 그 국민이다. 그들은 어쩌면 2016년 겨울부터 2017년 봄까지 어쩌면 ‘그런 지식인들’보다 더 열심히 거리에서, 삶터에서 정상국가를 염원했다. 함부로 조롱해선 안 된다. 그런 일에 쓰라고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지식인들을 자극한 것은 검찰 고발이었다. 솔직히 말해 보자. 여당이 고발한다고 겁먹을 검찰인가. 여권을 잡는 데 혈안이 된 게 검찰이다. 그리고 말을 일삼는 지식인이라면 그 ‘말’에 대해 책임도 져야 한다. 1997년 대통령선거일 하루 전인 12월 18일치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은 선거운동 기간 중 여론조사 결과의 추이를 분석한 기사를 게재했다. 유권자가 가장 목말라했던 정보였다. 그러나 선거법에 금지된 것이었으니 고발은 당연히 예상되는 것이었다. 김종철 기자는 이후 김대중 정부 아래서 수사, 기소, 재판 등 법정 절차 외에 헌법소원까지 제기하며 왜 ‘선거법이 부당하고 보도가 정당한지’ 세상에 알렸다. 그는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고, 공민권 제한을 당했지만, 2005년 선거법 관련조항은 개정됐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국민의 알권리를 넓히는 데는 그런 희생이 있었다. 멕시코의 비폭력 민족해방군(신사파티스타) 지도자 마르코스는 ‘말은 민중의 무기’라고 했다. 약자들의 유일한 무기가 ‘말’이다. 그런 ‘말’을 몇몇 지식인들이 고성능 스피커를 가진 집단(언론사)과 결합해 독과점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표현의 자유가 이들의 무분별한 감정이나 배설하고, 책임은 모면하는 수단이 돼서도 안 된다. 표현의 자유는 지식인의 공깃돌이 아니다.
  • ‘물어보살’ 서동주, 이상형은 “아빠와 반대”…김영철 ‘광속 탈락’

    ‘물어보살’ 서동주, 이상형은 “아빠와 반대”…김영철 ‘광속 탈락’

    서정희 딸 서동주가 ‘무엇이든 물어보살’을 찾아 고민을 털어놨다. 미국 변호사이자 방송인 서동주는 17일 방송된 케이블채널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을 찾아 서장훈, 이수근과 고민 상담을 나눴다. 이날 서동주는 “연애 기간이 짧아져 고민”이라며 “커리어는 잘 풀리고 있는데, 연애가 문제”라고 털어놨다. 이어 “예전에는 길게 잘 만났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자꾸 치고 빠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상형에 대해서는 “다정다감한 남자”라면서 “아빠가 되게 불같지 않나. 그래서 정반대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다정다감한 사람을 눈여겨 본다”고 밝혔다. 이에 서장훈은 “이상민이 딱이다! 굉장히 다재다능하다. 요리하고 그런 거 잘해. 그리고 내가 볼 때 빚은 2년 안에 갚는다. 지금 그 많은 빚(약 70억 원)을 갚았다는 건 그만큼 많이 번다는 거다. 또 미국을 엄청 좋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수근은 “한국 생활 다 접고 갈 사람이 아니거든”이라고 난색을 표했고, 서장훈은 “간다니까! 빚만 끝나면 갈 사람이야. 샌프란시스코에도 살았었다. MC해머랑. 잘나갈 때 그룹 제작을 했는데 프로듀싱을 그 사람한테 맡겼어”라고 밝혔다. 서장훈은 이어 이상민에게 전화를 걸어 “서동주가 따뜻한 남자를 만나서 진득이 연애하고 싶대”라고 상황을 설명한 후 “만약 소개팅 상대가 서동주라면 솔직히 어때?”라고 물었다. 이상민은 “당연히 서동주 씨를... 싫어할 남자가 있어?”라고 긍정적인 답을 내놨고, 서장훈은 휴대전화를 서동주에게 건넸다. 이에 이상민과 서동주의 전화 소개팅이 성사됐다. 이상민은 “아이... 그... 서동주 씨... 내가 그... 워낙... 그... 좋...”이라며 수줍어했다. 서장훈은 “이 형님 반응이 평소랑 다르네!”라고 돌직구를 날렸고, 이상민은 “내가 단점이 많다...”고 갑자기 고해성사를 해 웃음을 자아냈다. 서장훈은 “서동주가 얘기하는 것도 굉장히 소탈하고 내가 볼 때는 형이랑 굉장히 느낌이 잘 맞아”라고 거들었다. 하지만 이상민은 “아니 서동주 씨 방송을 많이 안 하셔서 이게 또 혹시나 잘못돼서...”라고 조심스러워했다. 이수근 또한 “서동주 이틀 있다가 미국 간대. 형한테 주어진 시간은 이틀밖에 없어”라고 부추겼지만, 이상민은 “그런데 서동주 씨는 충분히 좋은 남자 만날..”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서동주는 소개팅 후보로 개그맨 김영철이 다정다감하다고 말하자 “너무 아빠 닮았다”며 단칼에 거절해 웃음을 안겼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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