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겸손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달러 조달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영해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개인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화단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367
  • 벤처CEO ‘칭찬 릴레이’ 눈길/ 온라인 등록기업종합센터에 글 올려

    “터보테크 장흥순 회장은 겸손하면서도 천부적인 유머감각을 지닌 벤처의 표상이라고 생각합니다.”“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대표는 사회참여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진 젊은 지도자입니다.” 코스닥증권시장이 지난달 22일 온라인에 개설한 ‘코스닥등록기업 종합지원센터’(www.kosdaqonline.com)의 기업 참여코너인 ‘코뮤니티’(Kommunity)에서 벤처기업 사장(CEO)들의 ‘칭찬릴레이’가 눈길을 끌고 있다.종합지원센터는 등록기업뿐 아니라 제3시장 지정기업 및 등록 준비기업의 재무 및 경영관련 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온라인 상담 및 서비스센터로 김&장,삼일회계법인 등 법률·회계전문기업 등과 제휴해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칭찬릴레이’의 물꼬를 튼 CEO는 코스닥시장의 신호주 사장.신 사장은 지난 4월부터 자신의 홈페이지(shinhojoo.pe.kr)에서 직원들에 대한 칭찬릴레이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종합지원센터를 시작하면서 칭찬을 주고 받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를 등록기업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같은 코너를 마련했다.기업회원 외에 일반인들도 코스닥시장 홈페이지(www.kosdaq.com)를 통해 ‘칭찬릴레이’ 코너를 접할 수 있다. 신 사장의 첫번째 ‘칭찬주자’는 벤처기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터보테크 장흥순 회장.신 사장은 “장 회장을 만나보면 ‘진지한 유쾌감’을 느끼게 된다.”면서 말문을 텄다.이어 “불황의 긴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벤처산업과 코스닥시장도 혼란과 어려움을 겪었지만 장 회장과 같은 분들을 보면서 한국경제에 대한 희망을 꺾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 사장의 배턴을 이어받은 장 회장은 안철수 대표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표현했다.장 회장은 “안 대표를 처음 보면 조용한 의사나 교수가 떠오르지만 대의와 사람을 중시하는 굳건한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벤처업계의 거물로 자리잡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아! 낙원에 살 천사가 없는지 천사가 살 낙원이 없는지/ 16년만에 중단편집 낙원?천사? 낸 윤흥길

    “지금까지는 과거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부터는 요즘의 현상이 과거의 어떤 일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를 아우를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분단과 민족’이란 두 화두를 업고 30여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해온 중견작가 윤흥길(61)이 작품집 ‘낙원?천사?’(민음사 펴냄)를 냈다.창작집 출간으로는 ‘꿈꾸는 자의 나성’이후 16년 만이고 신작으로는 장편 ‘꿈꾸는 자의 나성’이후 6년만이다. 작가는 예의 겸손함이 밴 느릿한 어조로 “사실 공백은 별로 없었다.”며 “80년대부터 장편을 주로 쓰느라(그의 대표 장편 ‘에미’‘완장’등은 이 시기 씌어졌다.)중·단편집을 오랜만에 내서 그렇게 보이는가 보다.”고 설명했다.독자를 위해 작품 세계를 좀 풀어달라고 부탁하자 “표제작 ‘낙원?천사?’는 사랑이 없는 비정한 세계를 살펴본 것이고 ‘산불’은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의 문제를 찾아본 것”이라고 말한다.“나머지 중편 ‘쌀’은 주식인 쌀이 알게 모르게 민족 정체성에 미쳐온 영향을 더듬어본 작품”이라고 덧붙인다. ‘낙원…’과 ‘산불’엔 대학교가 공간적 배경이다.95년부터 한서대교수로 재직한 그는 “학생과 접촉이 늘다 보니 캠퍼스 풍경이 관심사로 자리잡았다.‘낙원…’는 어느 지방대 단신뉴스가 모티프였는데 동료교수의 비슷한 경험도 살려 보편적 이야기로 만들었다.대학 안에서 기숙하다가 얼어죽은 ‘천사’라는 별명의 부랑 청소년 오군을 소재로 한 작품.오군의 죽음을 추적하는 학보사 기자가 담은 다양한 인물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으로서 그의 죽음을 방치했을지 모를 야박한 세태를 상징한다. ‘산불’은 한서대에 있었던 실화에 소설이라는 무늬를 씌운 작품 이라고 설명한다.고아 출신의 주인공이 학생운동을 하던 중 고문에 못이겨 친구들 이름을 자백한 죄의식에 시달리다 시골의 신흥 대학촌에서 숨어들어가 살면서 겪는 방화 누명 등을 다룬 것이다.‘쌀’은 월남한 장인·장모가 북한 쌀로 장모의 병을 치료하는 해프닝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환기시킨다. 이번 작품집엔 작가가 30년전 ‘장마’에서 탁월하게 조화시킨 분단과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애정이 그대로 배어있으면서도 문학적 절차탁마가 더해졌다.작가는 “조상의 해학미와 민족의 특성에 쏠리는 관심은 어쩔 수 없다.”라며 “젊은이들이 구질구질한 어려운 시절 이야기를 안좋아 한다고 소설로 쓰지 않을 수는 없잖아요.”라고 단호하게 말한다.그는 “반세기 동안 숱한 정책을 적용했지만 통일은 여전히 요원한 현실에서 문학을 매개로 민족 동질성을 회복할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10월경 창작과비평사에서 연작소설집 ‘때와 곳’(가제)도 펴낼 계획이다.초등학교 졸업후 40년만에 모인 동창생들이 회고하는 6·25전후의 이야기로 9편의 연작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보탠 11편의 소설집이다. 이종수기자 vielee@
  • ‘왕내숭·양다리’ 저랑 어울리나요? / SBS ‘요조숙녀’로 돌아온 김희선

    “엄마 엄마,나 대학 붙었어.”“그래 장하다,우리 딸.” 여느 수험생과 어머니의 대화같다.그런데 사실은 배우 박한별(19)이 중앙대 연극과에 합격한 날,과 선배인 김희선(26)에게 건 전화다.김희선은 “한별이 말고도 소이 등 ‘딸’이라고 부르는 후배들이 몇몇 있다.”며 웃는다.물론 나이 차가 큰 보아는 아예 ‘손녀’로 서열을 맞췄다. 이처럼 여자 후배들 사이에서 ‘의리파’‘조직’으로 통하는 김희선이 새달 13일 첫 방송하는 SBS의 16부작 수목드라마 ‘요조숙녀’(극본 이희명,연출 한정환)로 4년만에 안방극장을 찾는다.‘스타크래프트’게임을 좋아한다길래 주전략을 물었더니,“깡패 질럿으로 초반에 ‘작살’내죠.”라며 주먹을 쥐어보인다.이 사람,제작진이 기획할 때부터 염두에 두었다는 ‘요조숙녀’가 맞는걸까? “글쎄요,전 요조숙녀하면 내숭이나 가식이 생각나는데요.그리고 이번에 연기하는 하민경도 전통적인 이미지의 요조숙녀는 아니예요.”민경은 빼어난 미모를 바탕으로 부자와 결혼하는 것이 지상목표인 스튜어디스.“왕내숭,주도면밀이 특징인 여자죠.양다리,세 다리,네다리는 기본입니다.” 드라마에서는 ‘보증수표’였던 김희선은 그동안 주력한 영화쪽에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비천무’‘카라’‘와니와 준하’ 등이 관객들에게도,평론가들에게도 외면당했다. “스크린에서는 TV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너무 서둘렀고,너무 서툴렀죠.다시 스스로를 돌아보며 많은 것을 배웠어요.특히 겸손을….드라마든 영화든 새로 시작한다는 각오로 할 생각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뜻밖에 “결혼”이라고 답한다.“제 꿈이 사실 현모양처예요.스물 아홉되기 전에는 결혼하고 연예계 생활을 그만 두고 싶습니다.”어떤 신랑감을 바라느냐는 물음에 “이해심 많고,유머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영호의 순수함과 동규의 경제적 능력이 반반씩 섞인 남자.”라는 대답이 곧바로 튀어나온다. 최근 MBC의 ‘옥탑방 고양이’와 ‘앞집 여자’,KBS의 ‘보디 가드’와 ‘노란 손수건’ 등에 계속 밀려오던 SBS 드라마가 ‘요조숙녀’로 전환기를 맞을 수 있을까.이종수드라마 총괄CP는 “통상 제작비의 3배가 투입되는 ‘올인’ 이후 최대작”이라면서 “기대해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채수범기자 lokavid@
  • “결제라인 배제지침 시정돼야”장관 정책보좌관 워크숍 정부인사와 정례모임 요구

    “장관정책보좌관들의 활동반경을 위축하고 제한하는 조치들은 반드시 수정돼야 합니다.” 24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장관정책보좌관 워크숍에서 정책보좌관들은 정부개혁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자신들이 생각하는 문제점을 가감없이 밝히고 나름의 해결방안도 내놓았다.워크숍은 보좌관들이 국정비전과 운영방향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스스로 마련한 것이다. 환경부 양상현 보좌관은 “행정자치부의 보좌관 운영지침에는 보좌관을 결재라인에서 배제하고,일반직 직원을 보좌관 밑에 두지 말고,인사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항목이 포함돼 있다.”면서 보완을 주문했다.정보통신부 최수만 보좌관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정책 제안을 해도 답글이 오지 않는다.”며 청와대의 기능 보강을 요구했다. 해양수산부 윤후덕 보좌관은 “보좌관들이 참여정부의 개혁을 공동의 노력으로 이뤄내는 ‘개혁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정부 핵심인사들과의 정례모임을 요구했다.통일부 전봉근 보좌관은 “공무원들과 원만한 관계설정에 신경을 쓰더라도 개혁에 소극적인 공무원들을 때론 질책하며 이끌 수 있는 방안을 서로 공유하자는 의견들이 제시됐다.”고 말했다. 보좌관들의 요청으로 강연에 나선 정찬용 청와대 인사보좌관은 “요즘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면 노무현 대통령이 왜 이 모양이냐고 묻기도 한다.”면서 “하지만 사회가 소용돌이 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변화의 틀이 너무 커서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수용이 안될 뿐”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노 대통령은 내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도 자주 꺼내시는 등 아주 파격적인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서 “이럴 때일수록 변화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다.”며 보좌관의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했다. 정 보좌관은 “공무원들의 시선을 의식해 너무 겸손해하기보다는 세게 할 시점에는 반드시 쐐기를 박을 필요가 있다.”며 공직사회 개혁에 앞장서줄 것을 주문했다.이어 “(언론 등에) 두드려 맞더라로 장관이 흔들리지 않도록 초심으로 잘 보필해 달라.”고 말했다. 최양식 행자부 기획관리실장은 “보좌관들은 이제 공무원으로서 따가운 감시의 눈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게 됐다.”면서 “공무원 조직속으로 들어와 조직성원의 책임을 다해 달라.”고 말했다.보좌관들은 이날 밤늦게까지 토론을 벌였으며 25일에는 김병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으로부터 강연을 듣는다. 이종락기자 jrlee@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1) 최인훈

    최인훈이라는 한 사람의 작가 속에 20세기 한반도와 한국인의 운명이 거울처럼 담겨 있다.젊은 날의 최인훈을 사로잡은 고독이란 식민,분단,전쟁,냉전으로 얼룩진 20세기 한국인의 초상이 아니고 무엇이랴.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장강처럼 펼쳐간 사유의 대기록인 ‘화두’는 비극적인 운명을 초극하려는 노대가(老大家)의 몸부림이 아니었던가.이 시대를 묻기 위해서는,밤길처럼 어둡고 동물원처럼 혼탁한 이 시대를 헤쳐나갈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그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안녕하십니까? 대한매일과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읽고 쓰는 일 외에 별로 분주하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1980년 광주 특집 방송과 탈북자 관련 프로그램을 봤습니다.책보다 생생한 역사와 삶의 현장이 담겨있었는데 남과 북이 바뀌고 있음을 느꼈습니다.지금은 한민족이 과거를 딛고 새 시대로 가는 전환기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역작 ‘화두’(1994)는 바로 그와 같은 한민족 내지 한반도의 운명과 20세기말의 세계사적 변화에 대해 가장 넓고 깊게 사색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두’는 냉전의 종식,소련 체제의 붕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작품이었죠.20세기에 훌륭한 예술가·철학자들이 많았습니다만 불행하게도 20세기 말까지 생존한 분들은 적습니다.저는 20세기를 넘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까닭에 다른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각을 얻은 행운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 최근 들어 세계는 심각한 난제들에 직면해 있습니다.선생님께서는 이 시대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현재의 제 감각으로는,세계는 지금 19세기적인 국제 정치 환경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저는 이것을 상당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결과를 생각해 볼 때 20세기는 상당히 괜찮은 세기였다고 생각합니다.그 시대에 인간은 어느 때보다도 자기 존재에 대해서 높이 존경하고 그 존경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문명사는 인간에게 분수를 알라고 가르치지만 겸손이 지나칠 필요는 없습니다.20세기에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존의 우상이나 정해진 틀을 대담하게 넘어서려는 운동을 전지구적으로 전개했습니다.그런데 우리는 바라고 기대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환경,거꾸로 우리가 그런 대로 해결하면서 지나왔다고 생각하는 과거 상황으로 되돌아와 있지 않은가 합니다. 최근 사태를 보면 사담 후세인 축출 이후에도 미국과 아랍 문명권의 대립은 계속되고 있습니다.이 현상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인지요? -어떤 의미에서는 미국은 20세기 내내 성공적으로 자기 이미지를 관리했습니다.물론 많은 비판이 있었고 미국이 뼈아프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견해가 방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그러나 전문가가 아니라 지구상의 소박한 민중들 눈에 비친 미국은 훌륭한 나라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시 정권은 그런 이미지를 단번에 상실하고 말았습니다.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듯 항공모함으로서만 살 수 없고 미사일만으로서 세계를 만만하게 요리할 수도 없습니다.내가 아까 19세기 운운했지만 형국이 그렇다는 것이지 지구상에 현존하고 있는 민중들의 정치의식이 19세기로 되돌아간 것은 아닙니다.세계 민중의 의식은 21세기에 와 있습니다.이런 시대에 지금까지 국제 질서의 주역을 맡았던 미국이 이처럼 퇴행적인 행위를 보여준다는 것은 심각히 우려되는 일입니다.당장 우리 반도 남북의 거주자들한테 염려스러운 문제입니다. 북한 핵 문제 등 남북한을 둘러싼 세계사적 상황은 심상치 않습니다.한반도는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의 현장이라고 합니다.이 어려운 시대를 한국인은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지난 20세기는 우리 반도 거주자들이 한반도에 생활의 터전을 잡은 이래 최악의 세기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세기 전반에 국가 전체가 일제에 의해서 강제 납치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우리 역사에 이처럼 완전히 권리를 제약당한 적은 없었습니다.그런가 하면 20세기의 후반기에 우리는 끝나지 않은 전쟁 상태를 견뎌 왔어요.한 세기가 지났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태,어느 의미에서는 새로운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지점에 놓여 있습니다.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평화입니다.평화는 우리 전부의,최대의,인간으로서의 희망 사항이고복지라고 생각합니다.이것이 있어야 이런저런 설계도 할 수 있습니다.이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비극으로 되돌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50년 전,100년 전보다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러나 그런 우리가 느끼는 위기감은 50년 전,100년 전 사람들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우리 한국인의 미래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오늘의 동북아시아는 어떤 상태에 놓여 있습니까? -과거에 문명사적 기대를 한 몸에 안았던 구소련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은 러시아권·슬라브권이 인류사적 의미의 문명의 축적을 이루지 못했던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중국은 러시아가 갖지 못한 인류사적 문명의 전통이 있습니다.그들은 난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그들이 제공하는 방향은 그들 자신은 물론 우리 같은 이웃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일본은 중국과 다릅니다.일본은 20세기의 문명사에 커다란 오류를 범했습니다.그러면서도 명쾌한 과거반성이 없습니다.이러한 일본의 존재로 인해 동북아시아는 유럽과 상당한 격차를 가질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그들 또한 동북아시아의 중요한 일원입니다.앞으로 한 세기 동안 우리는 유럽에 비견될 만한 공동체적인 지역 환경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요. 노무현 정부가 탄생한 과정을 보면 새로운 세대의 역할이 두드러졌습니다.새롭고 젊은 세대의 구성원들을 위하여 당부의 말씀을 남겨 주시지요. -그들에 대해 전적으로 찬성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그들을 견제할 아무런 필요성도 느끼지 않습니다.자제하라느니 자기 검열을 하라느니 하는 말은 노파심의 소산입니다.선거가 없는 지경까지 몰고 가선 안 된다,판을 지켜야 한다는 말로 젊은이들을 말려야 하는 웃지 못할 시대를 우리는 지나왔습니다.바로 어제까지 그러했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야 합니다.소신이 있다면 책임지고 갈 때까지 가라는 이야기지요.갈 때까지 가고 결과는 본인들이 책임지라는 거지요.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하는 것은,험한 역사를 본 세대의 입장에서는 감히 뭔가 앞질러서 다 지혜롭게 꿰뚫어 보고서 충고를할 만한 저축이 없습니다.새로운 세대에게 한 번 기대를 걸어 봅시다. ■방민호가 본 작가 최인훈 ●최인훈 선생 만나는 날 ‘북(北)에는 최인훈이요 남(南)에는 박경리다.’.함경북도 회령은 반도의 북쪽 끝,경상남도 통영은 남쪽 끝이 아니던가.그러니 먼저 최인훈을 찾아 가리라.나는 이 막막한 시대를 헤쳐 나갈 지팡이를 얻기 위한 제일(第一) 행선지를 경기도 고양에 있는 최인훈 선생의 자택으로 정했다. 그를 만나는 길은 멀었다.선생은 여러 겹 문을 가진 성(城)처럼 깊은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처음 본 선생은 셔츠를 맨 위 단추까지 꼭 채워서 입고 있었다.그것이 내게는 선생의 작가적 성품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여러 번에 걸쳐 ‘광장’을 고쳐 쓴 선생은 완벽주의자다. ●최인훈의 문학세계 1936년에 국경도시 회령에서 태어나 원산을 거쳐 전쟁 중에 해군함정을 타고 월남한 가족의 한 사람,최인훈.부산과 목포 등지를 떠돌다 서울대 법대에서 수학했지만 그는 문학의 길을 선택했다. 그가 대형 작가임을 증명해준 ‘광장’(1961)과 ‘회색인’(1964)의 주인공들은 깊은 고독에 빠져 있다.극단적인 냉전의 시대에 남과 북을 모두 상대화시키고 절대적인 고독의 경지를 개척한 그들의 내성(內省)은 바로 최인훈 자신의 것이었으리라. 그의 문학을 새로운 차원에 진입시킨 것은 1973년부터 76년까지 계속된 미국 체류 경험과 거기서 얻은 새로운 생각들이었다.그는 한반도와 한국인의 운명은 어떠하며 한국문학의 길은 무엇인가를 더 깊이 고민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희곡과 소설을 시도해 간다. 1994년에 간행된 ‘화두’는 20세기 한국사를 그 자신의 삶 속에 응축시켜 기억과 회상의 형식으로 풀어낸 대작이다. 이를 통해서 그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반도와 한국인의 독특한 존재 의미를 건져내 보여주었다.이는 실로 오랜 세월에 걸친 탐색의 결과였다. ■방민호 교수는 문학 지성과의 인터뷰를 맡은 방민호 국민대 교수는 문단의 주목받는 신진 문학비평가로서 65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학위를 받았다.94년 ‘현실을 바라보는 세개의 논리’로 제1회 창비신인평론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비평집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서’,‘납함 아래의 침묵’,산문집 ‘명주’,산문선집 ‘모던 수필’을 펴냈다.
  • “盧대통령 파격話法 의도적·전술적 수단”

    “마음 속의 화를 잘 다스리라.” 파격적인 화법으로 종종 구설수에 휩싸이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정윤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의 ‘충고’ 가운데 하나다.정 교수는 정신문화연구원 주최로 26∼27일 열리는 학술대회에서 노 대통령의 화법을 정치학적으로 분석한 논문 ‘대통령과 한국의 정치문화’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 교수는 미리 공개한 원고에서 “노 대통령의 화법은 단순한 실수나 생각모자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전술적 수단이며,다분히 정치적 효과를 노리는 개인적 자산이자 정치도구”라고 분석한다.공고화된 ‘침묵의 문화’를 청산하고,부정적 정치문화를 혁파하며,정치적 기반이 미약한 상황에서 개혁 헤게모니를 장악하겠다는 전술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국가경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노무현 화법’은 권위주의 정치문화를 약화시켜 건강한 시민문화가 정착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정 교수는 전망한다. 정 교수는 그러나 “정치문화 개혁을 위해서는 각별히 고려해야 할사항이 있다.”면서 “대통령은 말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말하게 하는 존재임을 명심하여 발언 횟수를 줄이고 기회를 만들어 다른 사람의 지혜를 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권고한다. 그는 또 “노 대통령은 학력과 경력이 상대적으로 화려하지 못한 데다 한국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막내로서의 성장과정에서 비롯될 수 있는 ‘두고 보자.’는 식의 심리적 특성 탓에 마음 속에 화 혹은 한을 많이 담고 있는 정치지도자”라면서 “화를 잘 다스리면 자신감과 자부심은 겸손함으로 우러나고,보다 여유있는 가운데 장기 가운데 하나인 유머를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 교수는 언론과의 관계도 언급하면서 “언론이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여론을 형성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 “대통령이 언론사에 ‘대항’하여 다투는 것은 국민들을 짜증나게 하는 처사이므로 오로지 자신의 일에 무실역행(務實力行)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문한다.그리되면 언론도 결국 자연스럽게 노 대통령을 평가하는 상황이 온다는 것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만화와의 인연 어느덧 25년 서울을 애니메이션 메카로”2003 SICAF 총감독 박세형 교수

    8월 12∼17일 열리는 2003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위원장 심상기)을 앞두고 SICAF사무국은 요즘 마무리 작업으로 분주하다.올해 SICAF는 서울시가 10년간 100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약속해 참여하는 첫 행사인 까닭에 부담감도 적지 않다. 행사를 총지휘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박세형(51·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 SICAF 총감독을 서울 남산 애니메이션센터에서 만났다. ●SICAF를 한국의 대표브랜드로 “부산국제영화제처럼 ‘서울’하면 만화·애니메이션이 연상되도록 SICAF를 만드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지만,최종적으로는 한국이라는 총체적 브랜드의 경쟁력에 기여할 수 있는 행사로 일궈내고 싶습니다.서울을 동북아시아 만화·애니메이션의 인적·물적 네트워크 중심도시로 만들겠습니다.” 올해 SICAF 행사에는 현재까지 프랑스·영국·캐나다 등 애니메이션 강국을 포함해 짐바브웨·칠레 등 세계 40여개국이 참가를 신청했고 작품수만도 670여개에 이른다.이는 세계 최고 권위인 프랑스 안시와 일본 히로시마 페스티벌에 못지않은 규모.영화제 이름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영화제’의 뜻을 담아 ‘animasia(animation+asia)’라고 지었다.만화·애니메이션 전시회 ‘툰 파크’와,아시아 지역의 출판사·배급사 등 60여 업체를 엮는 전문시장인 ‘SICAF 프로모션 플랜’(SPP)도 마련했다. ●만화 인생 4반세기 박 감독은 지난 95년 당시 문화체육부의 지원으로 시작한 제1회 SICAF 때 아트 디렉터로 관여하는 등 7회째인 올해까지 빠짐없이 참여해왔다.지난해 말엔 전국 120여개 대학과 해외 450여 애니메이션 전문학교 학생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부천 국제대학애니메이션 페스티벌(PISAF) 조직위원장 겸 아트 디렉터를 맡았다.문화체육부 문화산업 위원,한국간행물 윤리위원회 위원,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장 등 그의 이력은 그대로 한국의 만화·애니메이션과 직결되어 있다. 만화·애니메이션과의 ‘연(緣)’은 50년대 출생지인 부산에서 시작됐다.초등학생 때부터 각종 미술대회에서 입상하는 등,미술에 재능을 보였으면서도 집안 어른들의 만류로 만화·애니메이션을 ‘업’으로 삼을 엄두는 내지 못했다.68년 부산고에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과 함께 입학했지만,뒤늦게 73년 홍익대 서양화과에 진학한 데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막상 어렵게 미대에 들어갔지만 미술,특히 ‘순수미술’에 흥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순수미술’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제가 단순한 탓입니다.구체적이고,한계가 명확하지 않으면 이해가 잘 가지 않았거든요.” 그러던 중 당시 미대생들이 몰래 돌려 읽던 멕시코 만화가 R 니우스의 ‘모택동 평전’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현실을 치열하게 반영하는 표현 양식으로서의 만화”에 매력을 느낀 것이다.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미술교육 석사과정 논문 주제도 만화를 택했고, 지난 90년 한국 최초로 만화학과가 개설된 공주전문대에서 강의를 시작,세종대 영상만화학과 교수를 거쳐 지금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까지 줄곧 관련 연구와 작품활동에 매달려 왔다.지난 95년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체육부장관 표창도 받았다.“거창한 명분보다는,제 개인적인 표현 욕구와양식에 만화·애니메이션이 들어맞은 것일뿐”이라고 겸손해하면서도 화제가 무르익자 열변을 토했다. ●“지금은 위기의식 느껴야 될 때”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신동우 화백을 떠올리며 손가락을 꼽던 기자에게 그는 8년 전이라고 잘라 말했다.“단일 종합예술 장르로 접근하기 시작한 게 95년입니다.안시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는 등 한국이 세계적인 만화·애니메이션 콘텐츠 생산국으로 인정받는 데 8년밖에 안 걸린 것은 기적입니다.” 박감독은 향후 5년이 콘텐츠 강국 한국의 위기이자 기회라고 강조했다.관건은 역시 인재다.“만화·애니메이션은 ‘아트&테크놀로지’의 장르인데 우리는 지금 현장기술 전문가 양성에 치우쳐 있어요.단기적으로는 채산성이 낮아도,멀리보면 ‘뜬구름 잡는’것 같은 공상가나,전위예술가,학계가 모두 중요합니다.바로 대학의 역할이지요.” 다양하고 풍부한 인재풀과,그들이 실험하는 선례·실패들이 축적되어야 비로소 그것들을 활용한 일본의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피라미드의 꼭대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 생산국 한국의 미래는 만화·애니메이션에 달렸다” 박 감독은 “만화·애니메이션이야말로 21세기 콘텐츠 생산국으로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임을 강조했다.만화·애니메이션은 게임·캐릭터 등 다른 매체로 다양하게 활용되며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쉬운 콘텐츠라는 것이다. 그런 중요한 시점에서 SICAF를 준비하는 만큼 총감독으로서의 부담이 크지만,이런 종류의 행사는 반드시 민간주도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SICAF가 끝난 후의 계획을 묻자 우선 총감독을 맡고 있는 ‘메리 크리스마스’(2002 한국문화콘텐츠 진흥원 HD 제작기술 개발사업 선정작)의 OVA 1차분을 새달 중에 내놓아야 한다며 부담스러워했다. “정말 하고 싶은 사업은 이원복 교수처럼 만화로 된 해설서를 내놓는 일입니다.미학을 쉽게 풀어쓴 만화책을 내고 싶어요.” 구체적인 계획을 설명하며 눈을 반짝이는 박감독의 모습은 한국 만화·애니메이션계의 중진이라기보다는,10살짜리 개구쟁이처럼 신이 나 보였다. 채수범기자 lokavid@
  • “지리산 품 속 27년 183명 구했습니다”/ ‘지리산 욕쟁이’ 김종복 산악구조대장

    큰 산,지리산에는 큰 사람이 있었다. 산 사람의 자긍심을 지키며 온몸으로 산을 사랑하고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조난자를 구해 내려오는 ‘지리산 지킴이’ 김종복(46)씨.산림훼손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해 ‘지리산 욕쟁이’로도 불린다.3개 도,5개 시·군에 걸쳐 있는 지리산 품(구례읍)에서 태어났다.1976년 19살에 제발로 지리산에 들어간 이래 27년 동안 산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냥 산이 좋고 편하다.”는 그는 89년,처음으로 ‘지리산 산악구조대’(대원 28명)를 만들었다.이후 그들이 구한 조난자는 183명에 이른다. 2001년 10월,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형제봉 아래 폐교인 문수분교를 빌려 지리산 산간학교도 열었다.이곳은 노고단 산장이 맺어준 부인(43)과 예쁘고 건강하고 예의바른 초등학생 두 딸이 ‘지리산 아빠’를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며 사는 보금자리다. ●왜 산에 사느냐고요 학교 주변은 조선조 화가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능가하는 무릉도원.노고단이 먼발치에서 병풍처럼 다가서고 눈앞엔 형제봉과 왕시루봉이 빚어놓은 수백길 낭떠러지,옹기종기 박혀 있는 다랑이(논),얼마 전 지리산 반달곰이 내려와 꿀통을 훔쳐 먹었던 문수골,면사포를 쓴 듯 수줍음을 터트린 밤나무꽃 군락이 어우러져 있다. “어릴 때는 산이 좋아 산에 갔고 철이 들면서 산이 나에게 찾아 들었지요.내가 좋아하는 산이기에 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찾아서 합니다.” 고교 2학년이던 76년,가방을 내던지고 지리산에 들어왔다.그리고 지리산에 인생을 걸었다.88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출범해 산장을 관리하면서 지리산에서 쫓겨났다.하지만 이듬해 호주머니를 털어 산악구조대를 창설,지리산에 기어코 다시 돌아왔다.1년이면 지리산 종주(2박3일)만도 평균 32번을 한다. 지리산 생활 27년이니 단순하게 계산해도 864번.그런 그도 얼마 전부터는 산이 두렵다고 했다. “그동안 정말로 지리산을 (손바닥처럼)잘 알고,자신 있다고 말했습니다.그런데 자연의 피조물인 인간이 감히 자연을 안다고 건방을 떤 거지요.”라고 털어놨다.산에서 해가 지는 걸 보면 괜히 눈물이 난다고 했다. “산은 자꾸 겸손하게 살라 말하는데 명예가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며 “내 만족감에 취해 산다.”고 웃었다. 86년 교통사고 때 친구 둘이 죽고 자신도 의사들이 포기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기억했다.“살려 주십시오.남을 위해 살아왔고 앞으로도 남을 위해 살겠습니다.” 이 일이 있고 3년 뒤 그는 산악구조대를 만든다. ●산에는 사랑이 있다 “산은 언제나 사람을 반깁니다.배신을 모릅니다.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주변을 배신하지요.” 노고단에서 인생을 배운다는 거다.정상에 오르려면 힘들고,오르면 허무하고 또 내려가야 하는 게 인생과 같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어느 날인가,그는 딸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아빠가 죽으면 화장해서 지리산에 뿌려라.너희들이 지리산에 아무데나 와서 산을 보고 절하면 된다.지리산만큼 좋은 명당이 어디 있느냐.제사지낼 음식 싸들고 와서 산새들에게 먹이로 줘라.” 3년 전 겨울,자연의 품으로 당당히 돌아간 수녀 2명을 그는 잊지 못한다.시신은 못 찾았지만 눈 속에서 찾아낸 일기장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기쁜 맘으로 구조대를 기다린다.자연이 주는 죽음을 받아들이겠다.” 노고단에 오르는 수학여행단 인솔교사에게도 한마디씩 늘 잊지 않는다.“지리산은 생태학습장입니다.사진찍거나 몇 시에 성삼재 주차장에 모이라고 큰 소리치지 말고 지리산 야생화 종류,한 때 삶과 죽음만이 존재했던 지리산의 역사 등 의미를 부여하는 자연학습을 해보세요.”라고. ●큰아이 아플 때 딱 한 번 후회 ‘왜 산에 가느냐.’는 질문에 머뭇거리던 김씨는 “산은 내가 사는 이유요,나의 생명”이라고 대답했다.산의 입장에서 산에 오르라고 한다.산악구조대 초창기에 먹을 쌀조차 없어 갈등도 많았다. “이 길이 걸어가야 할 길이 맞는가.내가 조금만 바깥 사람들을 편들면 쉽게 살 수 있을 텐데….”라고.하지만 “산의 자존심을 이렇게 망가뜨릴 수는 없다.누가 알아주든 말든 봉사하며 사는 그 자체로 만족하자.”는 쪽으로 이내 맘을 고쳐 먹는다고 한다. 지리산 산간학교(1일 80명 숙박 가능)를 기업이나 단체,개인에게 연수장소 등으로 빌려주고 자연보존 교육하고 받는 게 수입의전부다.그는 가난하지만 부자다.마음의 농장이 지리산이다.반달곰도 있고 산삼도 있다.맘에 들면 토끼봉도 주고 반야봉도 떼어준다. 하지만 지난해 큰 딸이 초를 다투는 큰 수술을 받을 때 병원비가 없어 애태우기도 했다.다행히 수술이 잘 됐다.처음으로 산에 들어온 걸 후회할 뻔 했다고 고백했다. “무능력한 아빠 탓에 혹시라도 딸에게 무슨 일이라도 나면….”하면서 눈시울을 적셨다.이 때 김씨를 다잡아 준 게 가족이었다.“우리는 아빠가 자랑스러워요.” 요즘 지리산을 글로 정리하고 있다.깊은 골짜기의 산 사람 이야기,산간마을 할아버지들의 언어,빨치산 이야기,뒷등골 큰 바위 이야기 등등. 글·사진 지리산 남기창기자 kcnam@
  • 전국 댐 고질민원 대해부 - 소양댐, 市와 10년이상‘물값 시비’

    전국에 산재해 있는 댐을 두고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수자원보호와 홍수조절,전력생산 등을 위해 물줄기가 있는 곳마다 만들어 놓은 크고 작은 댐이 민원의 온상이 되고 있다.장마철 범람위기에서부터 하류의 수질오염,부유 쓰레기처리,안개피해,각종 규제해제와 물값시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민원 당사자도 수자원공사와 자치단체간,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와 자치단체간,자치단체와 자치단체간으로 댐마다 사연도 제각각이다. ■지역별 민원 실태 강원도 화천댐 상류 파로호 주변 주민들은 지난 2001년 말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북한 금강산댐(임남댐)의 수공(水攻)에 대비해 정부에서 화천댐과 평화의댐 상류인 파로호 물을 대부분 방류해 버려 호수의 생태계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파로호를 낀 화천·양구지역에서 고기잡이와 매운탕집 운영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2년째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주민들은 “고기잡이를 포기하고 불법으로 하천변에 곡식을 심어 겨우 연명하고 있다.”면서 “수도권 안전을 위한정책으로 댐 상류지역인 화천·양구지역 주민들이 처절하게 고통받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 지역 주민들이 화천댐을 다목적댐으로 전환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서 또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다목적댐으로 전환되면 300억원의 지역 개발비를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춘천지역 주민들도 최근 몇년동안 북한강수계 화천,춘천,의암,소양강댐에 대한 안전대책을 마련해 달라며 정부차원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매년 홍수철이 되면 소양강댐 등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춘천지역 주민들이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집중폭우에도 안전이 확보될 수 있도록 철저한 진단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더구나 지난해 강원도 영동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든 태풍 ‘루사’내습 때와 같이 일시에 890㎜ 이상의 집중호우가 내리면 댐의 연쇄적인 붕괴와 함께 큰 재난이 우려된다며 ‘안전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건설교통부는 최근 소양강댐,광동댐,달방댐 등의 방류수로(水路) 및 수문 설치를 위한 조사설계를 올해 안에 마무리한 뒤 내년 초부터 본격 공사에 착수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주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소양강댐측과 하류의 춘천시가 10년 넘게 벌이던 ‘물값 시비’는 급기야 법정다툼으로 번졌다.하지만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소양강댐측은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댐 하류의 자치단체는 물값을 반드시 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춘천시는 “댐이 없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하류로 흐르는 강물을 취수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새삼스레 무슨 물값이냐.”고 반발하고 있다. 남한강수계인 동강 상류의 도암댐 존치를 놓고도 입씨름이 한창이다.청정했던 동강에 10여년 전 상류에 건설된 도암댐으로 인해 흙탕물 등 오염된 물이 흘러들면서 2급수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 영월·정선주민들의 반발이다.강릉시도 “도암댐의 오염된 물로 강릉시의 젖줄인 남대천이 죽어간다.”며 댐 폐쇄 주장에 가세하고 있다.최근 김진선 강원도지사까지 나서 “도암댐은 폐쇄하고 홍수조절기능만 해야 한다.”고 발표하는 등 일파만파로 공방전이 확산되고 있다. 안동,임하 등 2개의 댐이 있는 경북 안동지역 주민들도 댐으로 인한 불만이 폭발 직전이다. 댐 건설후 특산물인 사과 낙과와 기형으로 재배농민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잦은 안개로 인한 기관지 환자가 크게 늘어난 것도 불만이다.더구나 댐 주변지역인 임동면 수곡교 교각 상판이 내려 앉고 마령리의 마령교도 상판이 부서지는 등 피해가 잇따라 주민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댐건설로 인한 지반변동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전북 진안군에 건설된 용담댐은 상수원보호구역 지정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전북도는 도내 최대 상수원인 만큼 수질보전을 위해 만수위로부터 4㎞까지를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진안군은 도의 계획대로 보호구역을 지정할 경우 군 전체 면적의 3분의 1이 묶이게 된다며 취수지점에서 4㎞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순창군에 건설할 예정인 적성댐 수몰예정지인 순창,임실군 주민들은 아예댐건설 자체를 결사 반대하며 수년째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밖에 강원도 춘천시는 장마철 춘천댐 상류에서 떠내려오는 쓰레기 처리를 놓고 해마다 댐관리소측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의암댐은 춘천시 유역면적을 넓히기 위해 폐쇄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등 댐으로 인한 민원은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 ■김만기 수자원공사 부장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버릴 수 없는 것이라면,꾸준히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게 기본이자 원칙이다. 홍수와 가뭄이 바로 그러하다.태풍 ‘루사’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벌써 장마철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후·계절·지형적 특성으로 볼 때 주로 여름철에 집중되는 빗물을 적당한 크기의 물그릇(댐)에 모아 두었다가 물이 부족한 계절에 나누어 쓰고 홍수나 가뭄에도 대비하는 일은 여전히 물 문제를 대처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물론 대안으로 제시되는 물 아껴쓰기 등 수요관리나 녹색댐 등의 방법이 있지만,이런 방안은 물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지난해 ‘루사’로 인해 막대한 홍수피해를 겪었지만 전국의 다목적댐이 중요한 버팀목역할을 했다. 소양강과 충주댐은 한강 인도교의 수위를 3.7m,대청과 용담댐은 충남 공주지점의 수위를 7m 넘게 낮추는 대단한 효과를 발휘했다. 또 가장 피해가 컸던 낙동강 유역에서도 안동·임하·합천·남강 등의 다목적댐이 없었다면 하류지역의 피해는 상상이 어려울 정도로 컸을 것이다. 100년만의 왕가뭄으로 기억되는 2000년 봄만해도 다목적댐의 혜택을 누린 지역에서만은 가뭄피해가 전혀 없었다.가뭄과 홍수를 막아주는 최선의 방안이 댐임을 알 수 있다. 댐이 물 문제 해결의 훌륭한 해결책임을 무조건 부인하는 태도는 옳지않다.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지역발전과 삶의 질 향상에 충분히 기여하는 댐을 위해 지혜를 모을 때다. ■염형철 환경연합 국장 우리는 댐이 홍수를 막고,가뭄을 이기고,전기를 생산하고,물을 공급하는 만능의 존재라고 배웠지만 이는 허구일 뿐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대형댐 1214개 포함해 1만 8000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댐을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조밀한 ‘댐 공화국’이 됐지만 한국의 물 정책의 결과는 여전히 비참하기만 하다. 홍수피해는 갈수록 늘어 70년대 연평균 1323억원이던 피해액이 80년대엔 3554억원으로,90년대엔 6288억원으로 늘었다(95년 기준). 급기야 지난 여름에는 270명의 사망자와 6조 1000억원의 재산피해를 기록했다. 홍수 때 유출되는 499억t의 5%(23억t)에 불과한 댐의 조절량만 믿고 강변 습지의 90% 이상을 전용해 그곳에 도시와 농지를 만들었던 탓이다. 또 엄청난 댐건설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봄·가을엔 가뭄타령이 떠나지 않는다. 산지와 섬이 많은 우리 나라에서,댐으로 물을 댈 수 있는 곳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댐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환경파괴와 생태계의 교란,댐 이재민의 발생,지역공동체의 해체와 침체 같은 비극은 제쳐놓더라도,효과가 의심스러운 댐의 비경제성을 더 이상 용납할 이유가 없다. 자연의 이치를 존중하는 겸손,자연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려는 공존의 물 정책이 시급하다.
  • [길섶에서] 안개꽃

    ‘남의 허점을 감싸주며 즐거워하는 안개꽃’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최근 서울 갤러리에 전시됐었다.화가 김학두는 “다른 꽃들 사이사이에 있으며 전체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안개꽃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안개꽃은 이처럼 홀로 아름다움을 과시하지 않는다.다른 꽃들과 어울려 그 꽃들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며 존재감을 나타낸다.카네이션이나 장미꽃 한 다발도 안개꽃과 어우러져 있을 때 더욱 빛난다.안개꽃은 그래서 겸손의 꽃이다.수녀 시인 이해인은 그의 시 ‘안개꽃’에서 ‘…남을 위하여/자신의 목마름은/숨길 줄도 아는/하얀 겸손이여’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사회에는 남을 위하는 모습은 희미해지고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한 투쟁이 일상화되고 있다.집단 이기주의의 분출로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사회의 갈등이 커질수록 안개꽃이 그리워진다.자기 자신은 낮추고 다른 꽃들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안개꽃 같은 사람들이 많아져야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창순 논설위원
  • 월드컵 1주년 특집 / 월드컵 영웅 히딩크 이메일 인터뷰 - 2006 월드컵 감독? 글쎄요

    한반도를 뒤흔든 ‘오! 필승코리아’ ‘대∼한민국’의 함성이 울려퍼진 지 꼭 1년이 됐다.2002년 5월31일 막을 올려 6월 한달간을 뜨겁게 달군 한·일월드컵축구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일궈내며 세계를 놀라게 한 영웅들은 여전히 국민들의 가슴에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활화산 같은 모습으로 선수들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낸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히딩크 신드롬’을 일으키며 한국 사회에 새로운 지도자상을 심어준 그는 조국 네덜란드에 돌아가서도 한국축구에 대한 성원을 멈추지 않고 있다.월드컵 1주년을 맞아 그의 감회와 진솔한 속내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한·일월드컵의 성공은 어느 개인의 영광이나 공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모든 한국 국민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이며,그 한 부분을 담당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지금도 무척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2002월드컵 1주년의 감회를 묻는 질문에 그는 미리 준비라도 한듯 답했다.이미 많은 한국의 언론들이 자신과 접촉했고,앞으로도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줄 것으로믿는 듯 했다.자신을 성원한 한국민들에 대한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국민들의 성원이야 말로 진정한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광화문에서,시청앞에서,전국에서 펼쳐진 거리응원전을 뉴스에서 보고 무언가가 될거라는 확신이 들었다.다시 한번 국민들의 성원과 사랑에 감사한다.” 돌이켜보면 그에게는 한경기 한경기가 모두 소중한 순간들이었다.그래서 매 경기마다 최선을 다했고,선수들과 함께 모든 것을 집중시켰다는 사실을 여전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단다. 그러면서 “모두의 노력으로 4강을 이룬 것이다.나는 그 구성원들 중 하나일 뿐이다.”며 겸손함도 보였다.아마 한국 생활을 통해 배운 동양적인 미덕이리라.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한국 축구의 미래는 장밋빛이 아니다.1년전,아니 자신이 부임해 선수들과 함께 월드컵을 준비하던 그 이전의 시기를 되돌아보면 더욱 그런 걱정에 휩싸이곤 한다.오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한국이 기적을 재연할 수는 없을 것이란 전망도 그를 다소 우울하게 한다. “한국은 지금 세대교체라는 중요한 시점에와 있다.한·일월드컵 때 만큼의 성적을 기대하긴 힘들 것으로 본다.” 물론 그는 “한·일월드컵 때의 성원과 관심을 보인다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며,그 때의 성적이 앞으로도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곧 바로 자신의 속내를 정정했지만 다분히 덕담 수준 같아 보였다. “그렇다면 2006년 독일월드컵 때 한국에서 다시 부르면 올 것인가.”라는 질문엔 침묵했다.다만 “최근 한 방송 토크쇼에서 ‘한·일 월드컵 때와 같은 성적을 내긴 어려워 지휘봉을 잡는 게 부담스럽다.’고 한 표현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것”이라며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월드컵 이후 한국축구가 국민들로부터 그 때만큼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듯 했다. “프로구단이나 기업의 적극적인 마케팅은 물론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적극적인 지원없이 좋은 경기를 기대하기 힘들며 좋은 경기에는 많은 관중이 몰리는 법이다.” 그는 “지금 세계적인 불황으로 인해 유럽과 미국에서도유사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선수들에 대한 평가도 빠질 수 없는 질문.그는 우선 “해외에서의 성공은 실력과 능력 있는 에이전트 고용,외국어 구사 능력,상품성,적절한 몸값,약간의 운 등 몇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며 “한국 선수들은 좋은 기량과 여러가지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유럽의 스포츠시장이 얼어 붙어 있어 월드컵 직후와 같은 몸값만을 요구한다면 그리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자신의 팀(PSV에인트호벤)에서 뛰는 박지성과 이영표에 대해서도 “모두 훌륭한 선수이고 많은 장점을 지녔다.이번 시즌에 많은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지만 몇 년 뒤에 이들은 놀랄만한 성장을 이룰 것이며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며 당장의 평가를 유보했다. 다시 그의 신변에 관한 얘기로 돌려 최근 독일 레버쿠젠에서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사실이냐고 직설적으로 물어봤다.그는 “유럽에서의 스카우트 제의설은 매우 흔한 일이고 그리 큰 이슈가 되지도 않는다.물론 월드컵 직후 여러 클럽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고 지금도 들어오고 있지만 이적이란 것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겼다. 끝으로 그는 자신의 뒤를 이어 한국대표팀의 사령탑에 오른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취임 초기 부진한데 대한 해결책이나 조언할 것이 있느냐는 물음엔 “전직 감독이 현직 감독에게 충고를 한다는 표현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그를 믿고 따른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지금은 그에게 힘을 모아줄 시기”라며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한국 국민들에게 가장 친숙한 네덜란드인 히딩크,그는 여전히 한국축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곽영완기자 kwyoung@
  • [LOOK 아시아]3부 재정립돼야 할 한국의 정치적 역할 / 니시하라 前와세다대 총장 인터뷰

    |도쿄 황성기특파원|니시하라 하루오(西原春夫) 고쿠시칸대학 이사장은 일본인으로는 드물게 동북아시아에서 한국의 역할을 강조하는 인물이다.유럽연합(EU)과 같은 지역국가연합이 역사의 필연이라면,아시아에서도 언젠가 EU 같은 공동체가 탄생할 것이고 그 중심은 한국이 돼야 한다는 논리의 소유자이다. 그의 논지는 이렇다.“와세다대 총장을 마치고 1995년부터 3년간 독일의 본에서 와세다대 유럽센터 관장을 지내면서 유럽을 살펴봤다.몇 백년간 전쟁을 되풀이한 유럽이 왜 하나의 우산에 들어가,통화마저 단일화하려고 하는가.유럽만의 현상인가,아니면 역사의 선구자적인 현상인가.내가 내린 결론은 유럽은 인류 가운데 통합하기 쉬운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통합이 가장 먼저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경제·과학기술이 발달하면 사람·물건·정보가 국경을 넘나들고,국경이 낮아진다.그러다 보면 국가를 초월하는 행정기관이 필요하게 된다.인류의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결론내렸다. 그렇다면 이런 과정이 아시아에서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18세기부터 시작된 민족주의(내셔널리즘)는 1945년 끝났다.동북아의 한국·일본·중국은 세계 속의 한·중·일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이제는 타국을 무시하고 자국의 국익만을 꾀한다거나 식민지배를 할 수 없는 시대다.국경은 남아 있으나 그 국경도 점점 낮아질 것이다. 그러나 니시하라 이사장 눈에는 동북아 나라들에는 지역국가연합의 공통인식이 부족하고 국가별로 복잡한 사정을 안고 있다. “과거의 역사가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북한 같은 고립된 나라가 있는가 하면,중국·타이완의 정치적 대립이 있고,일본의 과거는 충분히 청산돼 있지 않다.본래는 공통부분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아직 공동체가 될 태세가 되어 있지 않다.그러나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결정함으로써 환경은 크게 변했다.” 역사의 필연과 함께 동북아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이라크 전쟁으로 불거진 세계의 대립을 해소하는 중개자로서이다. “이라크 전쟁은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대리전쟁 측면이 있다.문명의 충돌이라고 해도 괜찮다.일신교와 일신교의 대립은 원리주의에 빠지기 쉽다.한번 원리주의에 빠지면,얼마나 잔혹하게 대립하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이런 두 세계의 중재자로 제3세계가 나서지 않으면 인류는 위험하다.제3세계는 일신교이어서는 안된다.다신교이고 종교·종파에 구애받지 않고,하나의 국가가 아닌 지역국가연합의 형태가 바람직스럽다.그러면서도 세계의 경제·문화에 영향력을 주는 지역이어야 한다.호전적인 민족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화(和)의 정신,평화사상을 갖는 세계가 돼야 한다.이런 점에서 동북아시아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논리는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흐른다.그렇다면 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한가. 그의 논리는 이렇다.중국은 너무 대국이다.지금도 강하지만 인구와 자원뿐 아니라 우수한 민족인 중국은 더욱 대국이 될 것이다.중국이 지역연합의 주도권을 실질적으로 쥐겠지만 중국이 주인공이 되면 안된다.동아시아=중국이 되면 곤란하다. 일본은 어떤가 하면 아직 과거를 청산하지 않고 있다.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경제발전을이룬 나라인 점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배울 점이 있지만 그런 점만으로 앞에 나서면 안된다.일본은 아시아의 맹주로 대동아공영권을 생각했던 역사가 있으니까 가급적 몸을 작게 하고 겸손하게 아시아 발전에 공헌해야 한다.일본 외에 아시아에서 경제발전을 이룬 국가로 타이완도 있지만 중국과의 문제가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딱 알맞은 국가이다.EU를 보면 유럽의 통합을 만든 것은 독일과 프랑스가 중심이었지만 EU의 행정기관을 베를린이나 파리에 두었다면 다른 나라들이 따라갔을까.EU의 기관들이 벨기에 등에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치에서이다. 마찬가지로 동아시아를 생각할 때 통합 행정기관의 소재지가 베이징이나 도쿄에 있다면 제대로 굴러갈까를 생각하면 한국의 역할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중국은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가 나오면 그 중심을 베이징에 두고 싶겠지만 일본이 ‘우리도 도쿄에 두지 않을 테니까.’라며 중국을 설득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는 동아시아 연합체는 한·중·일 3국이 중심이 되지만이웃나라도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 공동체에는 몽골도 들어갈 수 있고,극동 러시아의 연해주도 가능하다.연해주는 분명 민족은 다르지만 경제문화권으로 보면 아시아이다.” 그렇다면 북한을 어떻게 할 것인가.공동체 논의에 북한을 끼워줄 것인가. “고립된 북한이 국제사회에 들어간 뒤에 하자는 것이 아니다.한동안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잠시 놓아두고 주변국가가 가능한 부분에서 논의를 해나가야 한다.” 니시하라 이사장은 그가 상정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는 한반도 통일 때에도 유효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북한은 그다지 정권이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막상 정권이 붕괴되면 엄청난 일이다.베를린 장벽 붕괴 후 서독의 부담은 지금도 크다.한반도 통일이 될 경우 한국경제만으로는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또한 아시아 거점을 위해 한반도를 이용하려는 이상한 대국이 나와서도 안된다.그런 점에서 한반도 통일의 처리는 이웃나라들이 국익차원이 아니라 이웃으로서 자기의 분수에 맞게 도와줘야 한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한반도 통일이라는 상황이 됐을 때 이웃끼리 얘기를 할 수 있는 기관이 없으면 느닷없이 돕기란 힘들다.그래서 동북아시아의 협의기구,지역연합이 필요한 것이다.한국의 부담을 경감하고 대국의 개입을 저지하기 위해 동북아시아의 통합이 있어야 하고 슬슬 그런 시기가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동아시아 연합체는 현실적으로 가능한가.가능하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노무현 대통령도 동북아시아의 협조를 얘기하고 있다.북한 문제를 제쳐놓는다면 그런 동아시아 통합의 시기가 오고 있다.처음은 비공식이라도 상관없다.‘아세안+3’도 좋지만 동북아시아의 조그만 협의기관으로 시작해서,그것이 경제 각료회의·외무 각료회의로 이어지고 결국 정상회의로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그 전 단계로 동아시아 지역의 대학들이 학문·문화·스포츠 같은 국경을 넘기 쉬운 분야부터 교류를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marry01@ ●니시하라 이사장은 75세.와세다대 법학박사.8년간의 와세다대 총장을 거쳐 1998년부터 고쿠시칸대학 이사장.아시아를 중시하는 그의 이념에 따라 지난해 ‘21세기 아시아학부’를 고쿠시칸대학에 설치했다.1985년에는 고려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韓·中·日 관계 현황 동아시아의 중심국으로 불리는 한·중·일 3국 관계의 ‘2003년 현재’를 묘사하는 단어는 ‘경쟁과 협력’이라는 다소 상치돼 보이는 단어다. 1990년대 이후 경제적으로 급부상한 중국과 상대적으로 퇴조해온 일본 두 나라는 군사·안보·외교적 측면에서 경쟁하고 갈등해왔지만 동시에 양국은 서로를 공동의 틀안에 담아두려 노력해왔다.견제를 위한 협력이라는 역설적인 논리로 설명된다.중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 확대를 견제,일본을 아세안(ASEAN)+3(한·중·일) 구도에 묶어둠으로써 미·일 관계의 ‘유착’을 방지하려 하는 것 등은 하나의 예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적인 견제와 협력에 상관없이,경제 자체의 논리와 필요성에 따라 한·중·일 3국 사이의 인적·물적 교류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한·중·일 3국간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움직임도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세계 경제에서 한·중·일이 차지하는 규모는 GDP 기준 5분의1에 이른다.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2002년 기준 한국은 1.7%,중국은 3·8%,일본 12.9%이다.3국을 합하면 18·4%다. ASEAN 10개국과 한·중·일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전체에서 3국이 차지하는 GDP 비중 역시 2001년 기준 89.5%이다.총 교역량도 68·9%를 차지한다.총교역·수입·수출 모두 일본이 가장 높고 다음이 중국,한국의 순이다. 3국간 경제·교류협력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나타내는 역내 교역 비중은 지난 90년 이후 10년 동안 큰 폭으로 증가했다.90년에는 전체 세계 교역액 중 11.3%였으나 96년에는 20.2%로 급격히 증가했다.아시아 지역의 외환위기 이후 잠시 주춤했으나 최근 20%대로 다시 올랐다. 3국 교역상 특징은 ‘무역불균형’ 현상이다.한국은 일본에 대해 지속적인 적자를 나타내고 있지만 중국에 대해선 63억 5000만달러의 흑자를 내고 있다.홍콩을 포함하면 최대 흑자시장이다.2002년 일본 재무성 발표에 따르면일본의 대 중국 수출액은 396억달러,수입은 615억달러로 216억달러의 무역 적자를 나타냈다.중국이 미국을 앞지르고 일본의 최대 수입국이 된 것이다.두드러진 것은 인적 교류다.3개국간 방문자 수는 지난 93년 380만명에서 2001년 815만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특히 한·중간에는 수교 초기인 93년 21만명에서 2002년 210만여명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2001년의 경우 한·일간 방문자 수는 354만 6941명,한·중간 방문자 수는 177만 9973명,일·중 간에는 282만 8941명이었다.한해 동안 815만여명이 관광,무역 등으로 3국을 드나든 것이다.상이한 정치체제와 이념,법 제도를 갖고 있는 한·중·일 3개국이 중심이 된 동북아의 번영은 경제적으로 얼마나 협력하고 통합하는가에 따라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김수정 기자 crystal@
  • “존경받는 배우 욕심 내볼래요”/ SBS 새드라마 ‘스크린’ 주연 맡은 김태희

    탤런트 김태희(사진·24).아직 익숙지 않은 이름이다.하지만 한 은행 TV광고에서 뉴욕 ‘자유의 여신상’으로 변신해 상큼하게 미소짓던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꽤 낯이 익다.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출연한 광고만도 8편.화장품,전자,음료,제과,의류 등 분야도 다양하다.CF계에선 이미 스타덤에 오른 김태희가 본격적인 연기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드라마 ‘천년지애’의 후속으로 오는 31일 첫 전파를 타는 SBS ‘스크린’(극본 임채준,연출 이승렬)의 주연 자리를 당당히 꿰찬 것.지난해 시트콤에 3개월 출연한 것이 연기 경력의 전부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캐스팅이다. “연기가 아직 서툴러서 오디션때 별로 기대를 안했어요.배역이 결정되고 나서도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네요.” 청순한 외모에 동양적 단아함이 돋보이는 인상이지만 또박또박 질문에 대답하는 입매가 야무지다. ‘스크린’은 영화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있는 남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이다.영화감독이자 극장주였던 아버지의 유작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시나리오 작가를 희망하는 소현,예쁘고 똑똑하지만 소현에 대한 열등감으로 영화 제작을 방해하는 유라(오승현),그리고 멀티플렉스 극장 사업가 태영(박정철)과 영화감독 준표(공유)가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 인물들이다.이중에서도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처럼 천부적으로 영화적 감성을 타고난 소현과 아무리 노력해도 소현을 따라잡지 못하는 유라의 대립구도가 갈등의 핵심이다. 김태희는 처음 유라역에 캐스팅됐으나 소현을 연기할 배우 섭외가 어려워지면서 대타(?)로 발탁되는 행운을 낚았다.김태희는 “대사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표정 연기와 동작이 어색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다.”면서 “그래도 (내가)아주 소질이 없는 것 같진 않더라.”며 살짝 웃었다.이승렬 PD도 “신인이지만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고 거들었다. 김태희는 현재 서울대 의류학과 4학년 휴학중이다.얼마 전까지 디자이너와 연예인 사이에서 갈등을 했으나 전공은 학문적 성취로서만 만족하기로 했다.“디자이너로서의자질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겸손한 이유를 댔지만 이왕 연기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존경받는 대배우’가 되겠다는 욕심이 더 커보였다.당찬 신인이다. 이순녀기자 coral@
  • 한국인 아내·프랑스인 남편 함께 노래한 ‘아리랑’

    최근 대하소설 ‘아리랑’이 프랑스어로 완역된 것은 두가지 면에서 뜻깊다.유럽에서 한국 대하소설이 완역된 것이 처음이란 것과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 한·일 관계의 진실을 알릴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주인공은 7년 동안 휴가 한번 가지 못하고 번역에 매달린 전 파리7대학 교수 조르주 지겔메이어(65)와 한국인 부인 변정원(53)씨.작가 조정래도 “방대한 분량에다 사투리도 많아 아주 힘든 작업을 꼼꼼히 마쳐 원작을 쓰는 것 못지않은 중요한 일을 했다.”며 사의를 표했다.그들이 묵고 있는 서울 플라자 호텔을 찾아 ‘아리랑’ 번역에 얽힌 얘기와 그들의 삶을 들어보았다. “24년 전 외국인과의 결혼을 고심 끝에 허락하신 어머니가 ‘한국과 프랑스를 위해 좋은 다리가 되라.’고 당부하셨는데 ‘아리랑’ 완역으로 보답한 심정입니다.” 외국인과의 결혼을 마뜩찮게 바라보던 시절,오빠들을 비롯한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반대할 때 지겔메이어를 만나보고 ‘사람이 진국’이라며 결혼을 허락한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恨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말이 유창한 지겔메이어는 “이 번역으로 36년 동안 나치 탄압 못지않은 수탈을 당했던 한국인의 생활상과 ‘한(恨)’이란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한국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다.”고 말했다. 선물로 받은 ‘아리랑’을 보고 감동한 변씨가 번역에 착수한 것은 96년.그해에 조정래씨,해냄출판사와 논의한 뒤 프랑스의 아르마탕 출판사와 계약까지 마쳤다.부인이 1차로 번역하고,남편이 재번역하는 등 부창부수(夫唱婦隨)하면서 7년을 내리 ‘아리랑 곡조’에 젖어 살았다. 이들의 결혼은 소설보다 더 극적이다.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74년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 유학길에 오른 변씨는 생면부지의 땅에 도착한 뒤 지겔메이어에게 편지를 보냈다.고교 시절 그에게 불어 그룹과외를 받은 기억을 더듬어 이름만으로 수소문해 주소를 알아낸 것.그러나 지겔메이어는 2년 뒤에야 그 편지를 받았다.편지를 받은 부모가 다른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주말에만 집에 오는 아들에게 깜빡 잊고 전해주지 못한 것이다. ●과외교사와 학생… 결혼도 극적으로 2년 뒤 서랍에서 편지를 발견한 지겔메이어는 ‘한번 만나자.’고 아주 늦은 답장을 보냈다.이후 1년 정도 연정을 키워오다 지겔메이어의 청혼으로 79년 10월 결혼했다. “66년부터 73년까지 경북 문경에서 사제로 활동하며 받은 한국 이미지가 너무 좋아 프랑스 여성과는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정원은 호기심 많고 매사에 열심이어서 한 여성이 아니라 ‘한국 이미지’와 겹쳐 보였습니다.”(지겔메이어) “서양이 오히려 배워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마음에 들었어요.특히 ‘한국은 가톨릭의 가르침 없어도 인간답게 잘 살고 있다.’고 평가하는 겸손하고 순박한 모습에 감동받았죠.”(변정원) 지겔메이어의 한국 생활 7년은 삶의 전환기였다.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간의 모습은 신에 귀의한 자신의 선택을 흔들었다.그는 귀국한 뒤 사제생활을 접고 속세로 돌아왔다.한국을 더 배우고자 파리7대학에서 ‘일본 강점기 시대의 한국 경제사’를 주제로 박사과정(DEA) 학위를 받고 한국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됐다.그는 당시 경험한 인상적인 일화를 들려주었다. “수업시간에 백제시대 과학자·기술자가 일본에 건너가 문물을 전했다고 강의하자 일본인 학생 몇명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어요.일본이 침략했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그들이 받은 교육과 정반대여서 그랬나봐요.” 이런 기억이 있는 그에게 ‘아리랑’은 한·일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깨달음을 주었다.“신라시대 불교부터 6·25까지 공부한 그였지만 일제 강점기는 빠져 있었다.”는 그는 “작품을 읽은 뒤 일본의 만행이 나치보다 더 심했다는 걸 알았다.”며 “한·일 관계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일본이 먼저 사과하고 한국이 받아들여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아리랑’에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잊어서는 안될 민족의 상처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꼽는 ‘아리랑’의 또 하나의 미덕은 한민족의 특성과 개성을 잘 그려냈다는 것이다.“계절의 변화 속에서 자연을 지배하려 하지 않고 동화되어 사는 모습,비록 못살더라도 이웃과 궂은 일을 함께하는 정겨움 등은 서양인이 배울 점”이라고 평가했다.소나무를 이용하는 세시풍속에 대한 것만 2쪽이나 나올 정도로 한국 농경문화를 풍부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라고 했다. ●한국인들 소중한 전통 쉽게 잊는 듯 이래저래 이들 부부의 ‘한국 사랑’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지난 2000년 2월 영화감독 변영주의 ‘낮은 목소리’가 파리의 ‘시테 유니베르시테르(국제대학생기숙사촌)’ 등에서 상영될 때는 프랑스어 자막을 무료로 번역해주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30여년 전 한국의 모습을 잘 아는 벽안의 이방인이 현대의 한국에 던진 메시지는 얼굴을 확 달아오르게 했다.“한국 문화가 너무 빨리 바뀐다.바뀌는 건 좋은데 머리에 물들이기 등 서양문화의 겉모습만 흉내내는 것 같다.그러면서 소중한 전통문화를 너무 쉽게 망각하는 건 아닌지….또 하나의 의문은 친일파 문제다.한국은,프랑스에서 나치 협력자에게 ‘반인류범죄’를 적용해 엄벌에 처한 것처럼 왜 친일파를 응징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글·사진 이종수기자 vielee@
  • 국세청 선정 ‘이달의 국세인’ / 대구지방청 고영일씨

    국세청이 5월부터 ‘이달의 국세인’을 선정해 각종 혜택을 준다. 이달의 국세인으로 선정되면 기념패와 국세청장 표창,격려금 100만원을 받는다. 인사에서도 우대해 특별승진 등을 시키고,상여금도 +a를 더 준다. 연말에는 금강산 부부여행이나 해외 배낭여행을 떠나게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국세청은 19일 ‘5월의 국세인’으로 대구지방국세청 7급 고영일(33)씨를 선정하고 이같은 혜택을 주기로 했다. 고씨는 세무대학 10기로,전산학을 전공하지 않았는데도 최근 3개월 동안 국세홍보 홈페이지(www.taxpr.net)를 직접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과로로 쓰러져 입원을 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현재까지 방문객수는 22만명에 이른다. 청내 ‘컴퓨터 도사’로 통하는 고씨는 “전산쪽에 관심이 많다 보니 주위에서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 공부를 많이 했다.”면서 “그렇다고 뛰어난 수준은 아니다.”라고 겸손해했다. 오승호기자 osh@
  • 기고 / ‘겸손’이 사라진 시대

    유학에서 돌아와 내가 받은 가장 큰 충격 중의 하나는 과거 주위에 흔하던 ‘겸손’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TV에 나오는 연예인을 위시한 각종 사람들이 어색해 하지도 않으면서 한결같이 자기자랑에 익숙해 있는 것은 꽤나 놀랄 일이었다. “이렇게 유명해지니 나로서는 불편한 점도 많습니다.”“나도 알려진 공인이지만 사생활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좀 알아주었으면 해요.”“뭐니뭐니해도 (나처럼)얼굴이 좀 반반해야 대접을 받는 것 아닙니까?” 이제는 그들의 막무가내 자화자찬에 어지간히 익숙해져 그러려니 한다. 과거에는 대(大)법관이라고 하지 않고 대법원 판사라고 했다.언제부턴가 언론에서는 대(大)기자가 생겼다.또 요사이는 대(大)PD도 있다.공정한 판결로써 소임을 다하는 것이고,정론직필이면 그만일 것 같고,그리고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으로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으니 딱하다.미구에 대학에 대(大)교수가 탄생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다들 허상과 미망 위에 군림하려는 기고만장함밖으로는 보이지 않는다.정말 왜들 이러는가. 최근에는 한 철학자가 대통령을 면담하고 나서 어느 신문에 대통령을 극찬하는 장광설을 늘어놓아 화제가 되었다.신문지상의 인터뷰기사 치고는 개인의 감정표현이 너무 절제되지 못했다는 점 외에도,그의 판단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지상절대명제인 것처럼 늘어놓아 독선으로 비친다. “노대통령이 첫 인터뷰 대상으로 나와 같은 부담스러운 상대를 선택하다니”“나의 세대의 엘리트임을 자처하는 모든 사람들의 노무현 인식론이 본질적으로 축적된 시대적 편견에 사로잡힌 결과라는”“시정잡배들의 쇄설에 괘념치 마시고 대상을 집하는 성군이 되시옵소서.”따위는 지나치다. 국가가 숭배하는 종교를 거부하는 불경을 저지르고 젊은이들을 정신적으로 타락시키는 일을 일삼는다는 부당한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2300년 전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는 가능한 망명길을 굳이 거부하였다.그를 키워준 아테네와 그 법의 절차에 최후까지 순명하고자 하였던 것이다.비장한 인간적 금욕이자 겸손이다. 2세기의 단정한 스토아 철학자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는 친절하고 겸손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 왔고 그래서 친절하고 겸손하게 행위함으로써 그 의무를 다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그런데 그는 다름아닌 무소불위의 대로마제국 황제였다.1921년 북경대학에 머무른 영국의 러셀은 서양사회가 잃어버린 겸손(understatement)이라는 소중한 덕목을 동양사회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데 큰 감명을 받았다. 세기의 사상가가 부러워 격찬한 그 겸손을 정작 우리가 잃어가고 있어 안타깝다.세대에 걸쳐서 이 땅에 오래 살아온 언더우드 집안의 한 후손이,물질적으로는 지금 많이 풍요해졌으나 그에 반해 과거 소박하고 친절하던,그래서 좋았던,한국인정은 날로 사나워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술회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많은 외국관광객들이 한국인은 불친절하다고 한다.외국노동자들은 우리의 눈빛이 무섭다고도 한다.그래도 우리 선배들은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자연의 질서를 본받아 자칫 자만과 방종에 빠지기 쉬운 인간본성을 부단히 질책하고 경계하지 않았던가. 희랍의 성인 소크라테스도,로마의 현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우리시대의 큰 스승인 러셀도 자기겸손을 지키려고 애썼다.그리고 반도를 살다간 우리 선인들도 겸손지덕을 배우려 쉼없이 노력하였다.이제 우리는 언행에 있어서 아무쪼록 삼가고 성찰하고 절제하여야 할 것이다.잃어버린 겸손을 회복하자. 황필홍 단국대교수 명예논설위원
  • 첫 애니콘서트 여는 성우 권희덕씨

    80년대 말 TV CF에서 당시 신인급 연기자인 최진실은 “남편은∼여자하기 나름이예요.”하는 깜찍한 눈웃음과 목소리로 전국의 남정네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그런데 그 여우처럼 애교스러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사실 ‘코끼리 같았던 중년아줌마’(본인표현)인 성우 권희덕이었다.당시 남자들이 느꼈던 배신감이 얼마나 컸던지,요즘도 만화 등에서 패러디되는 유명한 일화다. ●“남편은 여자하기 나름”으로 스타덤 오는 31일 첫 애니콘서트 ‘두비둥덕이둥’을 주관하는 권희덕(47) 소리사냥 대표는 그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하자 상당히 쑥스러워했다.“우연히 사석에서 말이 새어나갔다가 곤욕을 치렀어요.얼굴이 안 팔린다는 직업의 장점이 일순에 사라져버렸거든요.”권희덕은 “당시 PD나 알고있던 분들이 ‘남편은…’하던 그 목소리 좀 들려달라고 어찌나 조르던지 난감했다.”며 웃는다. 지금도 40대 후반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가 곱다.외화 등에서 주로 맡았던 배우도 멕 라이언이나 잉그리드 버그먼,카트린 드뇌브처럼 분위기 있고 촉촉한 목소리의 주인공들이었다.76년 동아방송에 입사한 이후로 30여년 동안 녹음한 CF는 3000여편,외화는 1000여편에 달한다. 일 욕심이 많아 99년 ‘목소리도 디자인하기 나름이죠!’라는 책을 냈는가하면,2001년에는 남북한 서정시 14편을 담은 시낭송 CD ‘늙지 마시라,어머니여’를 발표하기도 했다. ●‘덕이母 사랑모임' 통해 사회사업도 그래서인지 권희덕은 “나는 성우가 아니라 ‘보이스 탤런트’”라고 말한다.“‘보이스 탤런트’는 글자 그대로 ‘목소리의 재능’으로 더빙뿐만 아니라,성대모사·모창·시낭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한다는 점이 기존 성우와 차별화되지요.”그는 지난 98년부터 개최한 ‘슈퍼보이스 탤런트 선발대회’를 통해 배출한 개그맨 배칠수,‘음치가수’ 이재수 등을 예로 든다.지금까지 대회를 통해 40여명의 신인 ‘보이스 탤런트’들을 발굴해 냈다. 권희덕은 오는 31일 발족하는 ‘덕이모(母) 사랑모임’(www.덕이아줌마.com)의 ‘지킴이’이기도하다.‘덕이母…’은 현재 150여명의 전국 아줌마들로 이루어진 부모 없는아이 돕기 모임.‘한 자녀 더 갖기’ 운동 등을 통해 외로운 아이들과 아줌마들을 연결해줄 계획이다. 권희덕은 “지금껏 심장병 어린이 10여명을 치료해주었던 사회활동의 연장선”이라면서 “거창한 사회사업을 해보자는 것은 아니다.”라고 겸손해했다. “저를 비롯한 평범한 ‘아줌마’들이 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을 하자는 거지요.예를 들면 ‘비오는 날에 학교에 있는 외로운 아이들에게 우산 가져다주기’ 같은 거요.” 채수범기자 lokavid@ ■애니콘서트 ‘두비둥덕이둥' 지난 97년 겨울 국립극장 대극장.러시아의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피터와 늑대’ 해설을 진행하던 성우 권희덕은 문득 회의가 들었다.“내가 왜 알지도 못하는 피터 이야기나 오보에 등 서양악기를 해설하고 있을까.우리 악기인 아쟁이나 해금도 제대로 모르면서….” 오는 31일 세종대 대양홀에서 국내 처음으로 선을 보이는 애니콘서트 ‘두비둥덕이둥’(주최 한국보이스탤런트협회·후원 KBS)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스크린에서는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면서,성우들이 현장에서 동시에 목소리 연기를 하고,연주자들은 국악기가 등장할 때마다 연주를 하는 공연적 요소를 도입한 최초의 자리이다.공연 후엔 사물놀이 공연자들이 애니메이션에 나왔던 국악기와 경기민요처럼 조금 빠른 3박의 장단형(덩덕덕쿵덕)인 ‘세마치장단’ 등을 가르쳐주는 시간도 갖는다. 23분짜리 전체 애니메이션 총 13편 중 현재 제작된 1,2편을 상영한다.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과천,부산 등 전국 20개 대도시를 돌아다니며 총 60차례 순회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애니메이션 ‘두비둥덕이둥’(선민이미지픽처스 제작)은 아름다운 소리를 싫어하는 도깨비의 저주로 해금 속에 갇힌 소리나라 여왕 ‘덕이아줌마’와 고아소년 ‘두비’의 모험담.놀부전,춘향전,콩쥐팥쥐 등 전래동화 마을을 여행하면서 도깨비에게 소리를 봉인당한 소금,태평소 등 12개 국악기의 소리를 되찾아준다.마지막에 가서는 구출한 12개 국악기들의 합주로 도깨비를 물리친다는 내용이다.31일 애니콘서트에 나오는 것은 이중 도입부인 1편 ‘그럼 다쳐,놀부야!’와 2편 ‘은혜 갚은 두꺼비의 정체’이다. 애니콘서트를 주최하는 한국보이스탤런트협회의 권희덕 회장은 “전래동화를 바탕으로 우리의 악기를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애니메이션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했다.”며 “문화생활에서 소외된 시골 오지에서 우선적으로 공연하겠다.”고 밝혔다. 공연 수익금 중 일부는 고아들을 돕는 ‘덕이母 사랑모임’ 활동에 쓸 예정이다.(02)1588-7890. 채수범기자
  • 기업문화에 맞는 면접 공략법 / 학력·학점 보다 튀는 아이디어 ‘닷컴’ 취업 코드를 맞춰라

    지난 1·4분기의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경영실적을 냈던 우량 닷컴기업들이 사상 최대 규모의 인재 채용에 나서고 있다.새 서비스를 개발해야 하는데다 참신한 기술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한 닷컴업체 사장의 최근 일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것이 직원 면접일 정도다.닷컴기업들은 대규모 공채를 통해 토익점수,학점,직무시험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 뽑는 대기업과 달리 자사의 직장문화에 적응할 수 있는 이른바 ‘코드가 통하는’ 사람을 원한다.많은 닷컴기업들은 직위가 없는 평등한 기업문화를 자랑하며 영어점수나 학점보다 특이한 교외 활동경력을 중시한다.면접은 한번에 한시간씩,세차례 이상 치러지기 일쑤다.최근 수시채용을 하고 있는 우량 닷컴기업들의 기업문화와 수시채용 면접공략법을 소개한다.소개된 기업들은 개별협상 연봉제를 채택하고 있다며 연봉공개를 거부했다. ●팩스 전송법 모르는 사람은 ‘노’ ‘닷컴 황제’ NHN은 기획·개발·디자인 등 29개 분야에서 1∼2명을 수시로채용한다.지난 2년간 실시했던 두차례 공채에서는 모두 1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1차는 기술면접,2차는 경영진 면접으로 이뤄진다.포트폴리오를 내야 하는 디자이너나 개발자는 기술면접이 까다롭다. 신입사원의 경우 학점이 좋은 사람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이와 대학 생활을 활동적으로 보낸 사람을 선호한다.대기업 인턴사원,논문공모전 수상,네이버의 서비스를 평가하는 모니터 모임인 ‘네사모’ 활동,한게임 주최 게임공모전 입상 경험이 있으면 우선 고려 대상이 된다. 면접 때도 솔직하게 임하는 것이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NHN측은 “팩스 보내는 법부터 가르쳐야 하는 사람은 입사할 수 없다.”면서 “직원들의 공통점은 성품이 겸손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직무·인성·임원 면접까지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연구원·시스템개발·검색서비스 분야에서 100여명을 수시로 채용 중이다.원하는 인재상은 ‘적극적이고 창의적이며 자유롭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다음의 새 서비스를 평가하는 ‘다음캐스터’,깨끗한 카페 지킴이인 ‘캄’으로 활동하거나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수상하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토익점수는 제출할 필요 없으며 학력도 보지 않는다. 1차 직무면접,2차 인성면접 순으로 이뤄지며 3차 임원면접까지 가기도 한다. 1대1로 한시간 이상씩 진행된다.인성면접에서는 ‘본인과 잘 맞는 문화 키워드 10가지’ ‘인터넷 비즈니스의 비전’ 등을 묻는다.면접시 묻는 말에 대답만 하지 말고 입사 뒤에 어떤 성과를 내겠다는 구체적이고 확고한 계획을 적극적으로 소개해야 한다.회사내 호칭이 ‘OO님’으로 통일된 수평문화에 적응할 수 있는지도 입사의 관건.입사 확정 뒤에도 신입은 6개월,경력은 3개월의 수습 기간과 비슷한 ‘파운데이션 코스’를 거쳐 연봉 및 처우가 결정된다.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은 필요 없다.’ 아바타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시작한 네오위즈는 연말까지 직원숫자를 250명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아래 기획·프로그래머·게임 개발 등의 분야에서 수시채용을 하고 있다. 면접은 3차례가 기본이지만 뽑을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5∼6번도 한다.네오위즈 직원들은 1년에 두번씩 ‘목표기술서’를 작성,본인이 1년동안 일할 목표를 세워야 한다.적극적이며 회사와 함께 배우고 커나가겠다는 사람을 선호한다. 시키는 일만 하겠다는 사람은 회사를 나가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전직원 210여명에 평균 연령은 27세,박진환 대표는 32세이다. 최연소직원이 20살,최고령직원이 36살이며 26살의 팀장도 있다.직급은 없다.일의 성격에 따라 나이에 상관없이 팀장이 결정된다. ●군대식 문화를 강조하는 닷컴도 있다. 게임포털 넷마블은 매주 토요일 오후에 면접을 실시,마케팅·프로그래머·디자이너 등을 수시 채용한다.엔터테인먼트 포털로 성장한다는 계획 아래 연말까지 현재 140여명의 직원을 200여명으로 늘릴 예정이다.회사 내부에 ‘절대정숙’‘업무집중’이라고 써붙여 놓았다.기업문화가 다른 닷컴기업과 달리 군대식이다.업무 성과를 강조하고 튀는 행동보다 기업문화에 융화될 것을 강조한다. 학력,전공은 따지지 않아 직원들끼리도 서로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알지 못한다.면접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것은 일에 대한 열정.넷마블에 대해 궁금한 점을 꼭 물어보는데 이 때 한두가지 질문을 준비해 얼마나 넷마블에서 일하고 싶은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윤창수기자 geo@
  • 동판 위에 그린 혼돈과 질서 ‘源形’ 찾기/ 이종상 서울대 교수 초대전

    일랑(一浪) 이종상(65·서울대 미대 교수·박물관장).그는 우리 시대 화격과 인격을 함께 갖춘,몇 안되는 원로작가 가운데 하나다.화려한 이력만 믿고 홀로 고고한 경지에서 노니는 ‘앙천거사(仰天居士)’형의 원로들이 없지 않은 우리 화단이기에 그의 성실과 겸손은 더욱 빛난다.오는 8월 서울대 교단을 떠나는 그는 “이제 나도 비로소 전업작가가 되게 됐다.”며 화가로서의 새 출발을 다짐했다.많은 ‘교수작가’들이 전업작가를 보는 눈과는 사뭇 다른 따스함이 느껴지는 말이다. 일랑은 제2의 화업을 서울 인사동 선갤러리에서 시작한다.21일부터 새달 17일까지 이곳에서 열리는 ‘일랑 이종상 초대전’은 개인적으로는 물론 화단 전체로서도 뜻깊은 자리다.전시에는 일가견이 있는 그이지만 이번 전시를 앞두고 “데뷔하는 자의 설렘”에 빠져 있다. 일랑의 작업세계는 실로 광대무변하다.그림을 통해 역사의식을 강조해온 그는 왕조의 어진(御眞)이나 역사적 인물들의 초상제작에 관여해 적지 않은 표준영정을 남겼으며,역사적 의의가 담긴 독도 시리즈도애착을 갖고 그렸다.지난 77년부터 독도문화운동을 펼쳐온 그는 “민중화가는 다 어디 갔느냐.”고 일갈할 정도로 독도 사랑이 남다르다. ●질료가 사상과 철학을 낳는다 일랑 조형작업의 완결편은 단연 ‘원형상(源形象)’시리즈다.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원형상-흙에서’‘원형상-천지’‘원형상-기원’ 등 6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지난 10여년 동안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 온 ‘원형상’이란 무엇인가.평자들은 종종 그 발상의 근원을 태초의 혼돈,즉 카오스에서 찾는다.천지창조 이전의 혼돈,그 절대자연에 대한 원초적인 비전을 형상화한 것이 ‘원형상’그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카오스의 배후에는 질서,곧 코스모스가 내재한다는 점이다.그림의 철학적인 의미를 떠나 빼어난 현대 예술작품들에서는 흔히 카오스와 코스모스가 결합된 ‘카오스모스(chaosmos)’를 발견하게 된다.단순한 카오스에서 한걸음 나아가 이 ‘무질서 속의 질서’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원형상’그림 이해의 요체다.현대의 많은 예술가들이 카오스모스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은 세계관과 가치관의 중심을 잃어버린 오늘날의 혼돈상을 반영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수묵·채색·극사실에서 추상표현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형세계를 추구해온 일랑은 여러 재료와 매체를 활용해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판화·장지화(壯紙畵)·동유화(銅釉畵)·벽화 등이 그것이다.“질료가 사상과 철학을 낳는다.”고 믿는 그는 “재료와 기법은 먹이사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어 질료에 따라 기법이 달라지게 마련”이라고 말한다.그가 즐겨 사용하는 동유화 기법은 채색의 영구성을 모색한 끝에 얻어낸 것.그림의 박락현상을 막기 위해 접착제 없이 그릴 수 없을까 고민한 끝에 개발한 것이 바로 동유화다.그림의 질료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그는 ‘국민작가’ 박수근을 “질료를 완벽하게 해석하고,그것을 뛰어넘은 작가”로 평가한다. ●한국미술 단절 거듭… 안타까울 따름 한국미술의 원형이 벽화에 있다고 보는 그에게 벽화 연구와 제작은 필생의 화두다.고구려 벽화를 낳은 주인공들은 중세의 연금술사처럼 완벽한 쟁이였으며 철학·건축·화학 등 여러 학문에 통달한 ‘르네상스적 만능인’이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번에 출품하는 신작 ‘원형상-기원’(2003년)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삼족오(三足烏)의 형상을 슬쩍 옮겨놓은 것 같아 눈길을 끈다.굵직한 선이 일필휘지의 강렬한 힘으로 다가온다.“터럭 하나에 우주가 깃들어 있음을 보지 못하는 작가라면,대붓을 휘둘러 본들 헛손질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그는 “지극히 미시적인 것은 지극히 거시적인 것과 통하는 법”이라고 강조한다. 일랑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한국미술이 재료·기법적인 측면을 아우르지 못한 채 양식사에 치중,단절을 거듭해 왔다는 점이다.고구려 벽화는 고려시대를 통과하며 사라졌고,고려불화는 조선조 수묵화에 밀려 자취를 감췄다.조선의 미술은 다시 일제시대를 지나면서 일본화의 영향을 받아 기진맥진했으며,해방이 되자 ‘야마토에’,즉 일본화의 전통은 곧바로 퇴장했다.기존의 한국화 역시 서양화의 위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다.이런 상황에서 ‘한국미술의 자생성’이라는 문제를 누구보다 먼저인식,스스로 연구하고 실천해온 일랑의 업적은 적극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번 전시는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의 현대식 건물로 새 단장한 선갤러리에서 열리는 첫 전시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26년의 역사를 지닌 선갤러리는 앞으로 아트숍과 아카데미 공간 등을 확보,아트상품 판매와 미술교양강좌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02)734-0458. 김종면기자 jmkim@
  • “평범하게 키워야 특별한 아이되죠”/ 육아책 4권 펴낸 김순영·서진석 부부

    각기 육아에 관련된 책을 출간하고,주위 사람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나름의 특별한 육아법을 실천하고 있는 ‘별종 부부’가 있다.김순영(39·환경정의시민연대 조직위원장) 서진석(39·SK텔레콤 CR전략실 과장) 커플이 그 들이다. 김 씨는 유해식품에 관한 책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아토피를 잡아라’의 공동저자로 최근 자신의 아이들 먹거리 이야기를 공개한 ‘아이 밥상 지키기’란 또 한권의 책을 펴냈다.남편 서 씨는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논 경험을 담은 ‘얘들아∼ 아빠랑 놀자’라는 책을 펴내 “애들과 어떻게 놀아야 할 지 모르겠다.”는 부모들에게 그 비법을 제시했다.그러나 이들이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우리는 특별하게 아이들을 키우지 않아요.오히려 보통아이로 키우는 것이 진정 특별한 아이로 키우는 지름길이라 생각하니까요.”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전통식단으로 아이를 키우고 제철 음식이 아니면 되도록 먹이지 않으면서 한사코 “사교육은 싫다.”며 아이들을 마음껏 뛰놀게 한다.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시대부모라면 알 수 있다.이들 부부의 숨겨둔 육아법을 알기 위해 휴일의 느긋함을 즐기는 가족을 방문했다. 경기 과천의 18평 아파트.여느 집과 다른 점 두 가지.거실 한 가운데 놓여 있게 마련인 텔레비전이 안 보였다.갓 돌지난 아이만 있어도 냉장고나 책상 등에 붙어 있는 그 흔한 ‘낱말카드’도 없었다.텔레비전 대신 가족이 함께 하고,공부보다는 놀이가 중요하다는 신념이 읽혀졌다. 가족들에게 ‘채식을 해서 날씬한 모양’이라고 말했더니 남편 서 씨는 “우리도 고기 먹습니다.생활협동조합에서 삼겹살 600g,한 근 사면 세 번으로 나눠먹을 정도로 먹어요.”라고 얼른 받아 답했다.고기로 배를 채우지 않을 뿐,특별히 채식주의나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란다. 김 씨가 먹거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큰애 윤호(8·과문초 1)의 아토피 증세때문이었다 한다.피부가 발개지고 가려워지는 아토피에 나쁜 음식을 가려내기 시작하면서 유해식품연구가 시작됐고,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먹고 자란 동물성단백질 대신 유기농산물 위주의 식단으로 바꿨다.사탕이나 빵 등 군것질 거리도 감자와 고구마 등으로 대체했고 이것마저 식사시간 1시간 전에는 철저히 금지시켰다. 더욱이 윤호는 황달로 모유를 먹지 못한게 아토피 증세를 심하게 한 것 같아 둘째 윤하(5)는 18개월까지 모유를 먹였다.이유식은 된장국을 중심으로 전통식단을 따랐는데 그 결과 아이들은 김치를 좋아하고 마늘장아찌를 잘 먹고 돌나물을 초고추장에 푹푹 찍어 먹게 됐다.“가끔 아이들이 피자와 햄버거의 유혹에 빠졌지만 ‘건강한 맛’을 가르치려면 엄마가 아이에게 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원칙을 지켰어요.” 남편 서 씨도 아내와 같은 생각을 갖게 되는 계기가 왔다.지난해 둘째가 어린이 집에 다닌 지 불과 1주일만에 아토피 증세가 나타난 것이었다.평소 채식위주의 식생활을 해오다가 갑자기 동물성 단백질을 과다섭취해 그전에 없던 발진과 가려움 증세가 드러난 것이었다.“그때 확인했어요.다른 아이들이 먹는 맛있는 음식을 우리 아이들이 못 먹는 것이 안쓰런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빠인 제가 ‘독’을 먹여왔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이 교육에 관해 물었다.“책을 많이 읽게 하고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면서 올곧고,겸손한 사람으로 자라게 하고 싶습니다.”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평범한 대답이었다. 허남주기자 hhj@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