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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 오르記]홍천 팔봉산

    [산 오르記]홍천 팔봉산

    팔봉산 제 1봉은 들머리부터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쉬운길’과 ‘험한길’이라고 적힌 안내판 앞에서 선뜻 ‘험한길’을 택할 수 있는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다.각자 능력과 체력에 따라서 길을 고르도록 한다.대체로 걸어서 오르는 ‘쉬운길’에 비해 ‘험한길’은 바위 사이로 매어놓은 로프를 잡고 오르는 곳도 나온다. 제2봉 오르는 길 역시 가파르고 험하다.로프와 쇠난간을 잡고 암릉을 지나면 바위 봉우리 꼭대기에 작은 사당이 하나 보인다.삼부인당(三婦人堂)이다.400여년 전 조선 선조 때부터 어유포리에 살던 이씨,김씨,홍씨 등 세 며느리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마을의 평온과 풍년을 기원하고 액운을 막는 당굿을 올린다. 팔봉산 최고봉인 제3봉은 수직 철계단을 오른 후 암릉에서 거대한 바위를 만난다.이 바위를 돌아서 오르면 표지석이 있는 정상이다.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의 연륜이 만만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북서쪽으로 줄지어 선 다섯 봉우리는 마치 설악산 용아장성릉의 축소판 같다.철계단을 내려가면 3봉과 4봉 사이의 안부다. 제4봉은 팔봉산 등산로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곳이다.특히 철계단을 올라선 4봉 마지막 부분은 비스듬하게 수직으로 뻗은 굴이라서 침니등반 기술을 써먹기에 좋다.그러나 몸이 뚱뚱한 사람은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잘 살펴보면 돌아서 오르는 길도 있으니 절대로 무리하면 안 된다. 이 굴은 ‘산파바위’라고도 하는데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고통을 겪는 것만큼이나 통과하기 어렵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밑에서 받쳐주고 밀어주면 그만큼 빠져나가기가 쉽다.어려움 끝에 정상에 서면 기쁨도 그만큼 크다.팔봉산을 에돌아 흐르는 푸른 강물이 백사장과 어우러져 발 아래 한 폭 그림으로 펼쳐진다. 가장 어려운 4봉을 올랐으면 5,6,7봉은 문제없다.암릉길이 이어지며 가파르거나 위험한 구간에는 로프와 철계단이 있다.7봉에서 내려서는 길이 가장 길며 우뚝 솟은 8봉이 잘 보인다.팔봉산 등산로는 봉우리 꼭대기까지 올랐다가 다시 안부에 내려선 후 다시 봉우리로 오르는 길의 연속이다. 오르기 위해서 내려가는 몸짓을 되풀이하다 보면 우리네 인생길과 흡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마음을 비우고 겸손해야만 산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7봉과 8봉 안부에서 하산길을 잡는 게 보통이지만 암벽 등반 경험과 장비가 있으면 8봉에 도전해 본다.그러나 체력이 약하거나 노약자,부녀자는 등반을 삼가달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제8봉은 로프에 의지해서 수직 암벽을 오르기 때문이다. 8봉 꼭대기에 서면 널찍한 암반이 펼쳐져 있으며 산들바람이 시원한 그늘 드리운 노송과 더불어 반긴다. 8봉에서 하산은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급경사 구간인데다 미끄럽기 때문이다.그러나 로프가 설치돼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마지막 철계단에 이어 수직 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강변이다.암벽 밑으로 길이 나있는데 좁은 철판을 딛고 로프에 의지해서 강물 위를 건너는 곳도 있다.발판이 없어서 쇠줄을 디딘 채 로프를 잡고 건너기도 한다. 8봉까지는 총 4㎞에 3시간이 걸린다.경우에 따라서는 30년 같은 3시간 산행이 끝나면 팔봉산 여덟 봉우리가 오랜 벗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볼거리·먹을거리 홍천읍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있는 무궁화동산을 들러본다.남궁억 선생의 동상이 있으며 홍천이 무궁화의 고장이 된 유래를 알 수 있다.희망리 읍사무소 앞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보물 79호)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다.원래는 홍천초등학교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놓았다. 동면 덕치리 공작산 수타사 역시 홍천에서는 꼭 들러볼 만한 곳이다.대적광전,소조사천왕상,영산회상도 등이 강원도 유형문화재다. 홍천강을 따라서 모곡유원지 밤벌유원지 등은 가족이 함께 물놀이를 즐기기에 적합한 곳이다. 홍천강에는 견지낚시 명소도 즐비하다.팔봉산과 홍천강 일대에서는 잡고기매운탕 잘 하는 집이 여럿 있다.모래무지,꺽지,빠가사리 등 잡고기와 버섯,깻잎 등 야채를 넣고 펄펄 끓인 다음 수제비를 곁들인 매운탕을 뚝배기에 담아서 먹는 맛이란 정말 그만이다.4인분 3만원.홍천강 잡고기 매운탕은 팔봉산 산행과 더불어 오래도록 홍천강의 추억으로 남길 만한 별미로 꼽힌다. 윤정이네식당(033-434-3315),팔봉산시골집민박식당(434-0267),팔봉산민박호남식당(434-0678). ●가는 길 구리시 교문동 사거리에서 가평,강촌,광판삼거리와 남동진 거쳐 팔봉산까지 2시간 걸린다.홍천읍 거쳐 부사원검문소에서 좌회전,구만리 지나 팔봉산으로 가는 길은 40분 걸린다. 버스로는 상봉터미널(02-435-2129)에서 홍천을 거쳐 반곡리 팔봉산 입구까지 2시간50분 걸린다. 서울에서는 하루 40회,홍천(033-432-7893)에서는 하루 네 번 있다.팔봉산국민관광지 입장료 어른 1500원,어린이 500원.주차료 소형 3000원,중형 4000원. 산악문학인 안재홍
  • [김보일의 영화 속 수능잡기]‘트위스터’

    [김보일의 영화 속 수능잡기]‘트위스터’

    냄비의 물은 100℃에서 끓는다.물에 아무리 열을 가해도 온도는 100℃에서 더 올라가지 않는다.물론 기압이 낮아지면 물은 100℃보다 낮은 온도에서 끓는다.만약 압력솥에 물을 끓이면 어떤가.압력이 상승함에 따라 물의 비등점도 높아진다.따라서 조리하는 온도가 높아져 음식을 익히는 데 필요한 시간이 단축된다.보통 압력 밥솥은 내면의 1㎤당 1㎏의 압력을 받는데 이는 보통 기압의 두 배에 가깝다.따라서 물은 122℃에서 끓게 된다.그렇다면 물은 100℃에서 끓는다는 말은 수정돼야 한다.물이 끓는 데 영향을 주는 압력과 부피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실험을 할 때는 가급적이면 외부의 변수를 줄여가야 한다.실험을 하는 용액에 불순물이 가라앉으면 곤란하다.이 점을 고려해서인지 실험자들은 흰 가운을 입는다.침이라도 튈까 두려워 마스크를 착용하는 실험자들도 있다.고성능 먼지 집진기를 설치한 실험실도 있다.완벽하게 습기를 제거하면 정전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실험실 창 밖에서 굴착기의 소음이라도 들려오면 곤란하다.완벽한 방음시설을 갖춘다 할지라도 실험자의 숨소리는 어찌할 것인가.게다가 실험실 위로 고압선이라도 지나간다면 문제가 심각하다.이래저래 실험실은 외부의 변수가 적은 외딴 곳에 설치될 수밖에 없다.이제 모든 변수들로부터 해방된 공간을 마련했노라,자부할 수 있는 실험실을 지었다고 해도 중력이란 변수가 버티고 있다.지구의 어느 곳도 중력의 값이 다르지 않은가.결국 아무리 변수를 줄여간다 할지라도 완벽하게 변수들을 제거하기란 불가능하다. 변수가 달라지면 실험의 결과도 달라진다.A에서 실험한 결과가 B라는 곳에서의 결과와 다르다면 A란 곳에서 타당한 것이 B라는 곳에서도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언제나 오차는 존재한다는 것이다.과학은 객관적이다.과학은 완벽하다는 환상은 사실 이런 오차를 모르는 데서 오는 헛된 믿음인지도 모른다.세상에는 무수한 변수가 있다.나는 모든 변수를 고려해서 이론을 만들었노라 자부할 수 있을지 모른다.그러나 예기치 못한 변수는 있기 마련이다. 초대형 돌개바람 토네이도가 어느 쪽으로 진행될 것인가를 예측하고,그 예측된 결과를 사람들에게 알려 토네이도의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것이 영화 ‘트위스터’에서 주인공 과학자의 의도다.그러나 자연을 100퍼센트 이해하기란 곤란하다.토네이도의 앞길에는 무수히 많은 변수가 있고,아무리 엄청난 능력을 자랑하는 슈퍼컴퓨터를 동원한다 할지라도 인간은 존재하는 모든 변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오류가능성’이라는 사실 앞에서 과학자도 우리네 평범한 선남선녀들도 겸손을 배워야 할 듯싶다. 서울 배문고 교사 desert44@hitel.net
  • 아파트형 공장 활성화 공무원 석사논문 눈길

    아파트형 공장 활성화 공무원 석사논문 눈길

    한 지방 공무원이 아파트형 공장 운영과 활성화 방안 등을 심층 분석한 석사학위 논문을 제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 기획예산과 이장섭(44·7급)씨는 최근 가톨릭대학교 행정대학원(행정학 전공)졸업을 앞두고 ‘아파트형 공장의 운영현황과 활성화 방안에 대한 연구’를 학위논문으로 제출했다. 행정대학원은 이씨의 논문을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한 데 이어 전체 후기 대학원에 최우수 논문으로 추천했다. 논문(158쪽)은 부천시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역점적으로 추진한 아파트형공장인 ‘부천 테크노파크’(500여개 업체 입주)내 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향후 운영방안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씨는 논문에서 아파트형 공장이 공장용지난 완화,저렴하고 쾌적한 환경의 자가공장 확보,생산성 향상 등의 이점이 있으나,공장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면 확장이 어렵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또 아파트형 공장이 성공하려면 정보통신 시스템 구축 및 연구·개발 기능 입주,동종 업체의 집적화 등의 조치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중앙정부 차원의 ‘아파트형 공장 육성에 관한 특별법’과 지방정부 차원 관련 조례 등의 제정을 통해 각종 세제 지원 및 금융지원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그는 인하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88년 공무원이 된 뒤 행정관리사(3급),정책분석사(2급),인터넷 정보검색사(2급) 자격증 등을 취득한 데 이어 석사학위까지 수여받는 등 남다른 학구열을 보여 동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씨는 “우연히 아파트형 공장 설립 기획단계부터 일을 맡아 관심을 갖게 됐고 이러다 보니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 점이 있다.”면서 “공장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교통유발 정도,지역 주민과의 관계 등에 대한 연구가 더 있어야 할 것”이라고 겸손해 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월요테마기획-마케팅 산실] 삼성물산 래미안 마케팅팀

    [월요테마기획-마케팅 산실] 삼성물산 래미안 마케팅팀

    ‘최초’가 아닌 ‘최고’를 지향한다. ‘건설업계 최초의 마케팅팀 발족’,‘업계 최초로 브랜드 관리기법 도입’,‘업계 최초의 CRM 시스템 도입’…. 삼성물산 건설부문 ‘래미안’아파트 마케팅팀 앞에는 늘 업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하지만 직원들에게는 업계 최초라는 단어가 그리 달갑지 않다.그보다는 업계 최고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준비된 팀만이 최고의 브랜드를 만든다 1998년 7월,외환위기 이후 주택시장이 어둠 속을 걷고 있을 때 건설업계를 긴장시킨 팀이 탄생했다.주택업계 최초로 마케팅 전문가 집단이 만들어진 것이다.당시 건설사에는 분양업무 전담팀외에 마케팅팀이 따로 없는 상황이었다. 이상대 사장은 팀을 만들면서 “업계의 리더역할을 하라.”는 특명을 내렸다.이 사장은 팀을 진두지휘하면서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기획,소비자 조사,광고 및 브랜드 관리,CRM 등으로 업무 영역을 세분화했다.구성원은 회사 안팎 최고의 전문가로 채워졌다.팀원들은 ‘강력한 브랜드 자산의 구축’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두고 한 몸이 됐다. 팀원들의 의기투합은 주택업계 대표 브랜드 ‘래미안’이 짧은 기간에 최고의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김동욱(경영학 박사) 과장은 “삼성그룹 안에서 브랜드 가치가 ‘애니콜’ 다음으로 크다.”면서 “2002년 기준으로 1조 7000억원으로 추정됐다.”고 자랑한다. 한 검색엔진에서는 래미안 광고에 나온 열쇠고리를 사고 싶다는 요청이 등장하는가 하면,아직도 래미안 마케팅팀에 빈번하게 접수되는 고객들의 청탁(?)이기도 하다. 주택업계의 고객은 잠재 고객에서부터 청약,계약 및 입주 고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마케팅팀은 이러한 고객을 세분화해 1대 1의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객과 부딪치며 파악되는 욕구는 바로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데 반영된다. ●주택문화관 만들어 고객 마음 읽어 주택업은 다른 산업보다 고객과의 접점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다.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상설 주택문화관이다.고객 마인드를 수집하는 안테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첨단 미래주택을 홍보하는 마당으로 이용한다. 많은 업체가 삼성 주택문화관을 본떠 만들었다.서울 강남구 일원동 문화관에는 국내 경쟁 업체 최고 경영자가 몰래 다녀가고,중국 총리,일본 전자회사 사장 등이 둘러볼 정도다. 래미안 마케팅 팀의 ‘키워드’는 고객만족.팀원 모두가 고객을 어떻게 만족시키느냐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지난 5월 용인 에버랜드에서는 인기 가수들이 출연한 페스티벌이 열렸다.한밤의 축제에는 1만여명의 래미안 가족이 자리를 함께했다.고객의 입에서 래미안에 산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이야기가 절로 나왔다. ●마케터는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 업계 최고 자리를 지키고 나아가 업계를 이끌기 위해서는 쉴 틈이 없다.이 팀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시장 흐름이다.마케팅은 늘 ‘진행형(∼ing)’이다.앉아서는 진화하는 시장의 변화를 따라잡기 어렵다.시장 예측과 트렌드 분석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마케터만이 시장을 읽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성래(상무) 팀장은 팀원들에게 시장을 읽는 능동적인 자세를 강조한다.김 상무는 “마케터는 끊임없이 변해야 하고,현장을 접해야 한다.”고 독려한다.그래서 1주일 중 하루는 무조건 밖으로 내몰아친다.시장 흐름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타들어가는 주택업계의 목을 적셔주기 위해 어떤 새로운 상품을 내놓을지 기대된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내가 본 우리팀-끼 많은 ‘꾼’ 똘똘 뭉친 드림팀 종종 정보를 주고받는 같은 업계 담당자와 통화에서 각종 시상식에서 1위에 선정된 것을 부러워하기에 겸손함을 표현했다.그러자 당장 볼멘소리가 날아온다.“너무 얄밉게 잘하고 있으니까 욕심 좀 그만 내세요.”. 하지만 아무리 얄밉더라도 팀 자랑은 해야 할 것 같다. 래미안 마케팅팀은 주택업계 마케팅 역사라고 할 수 있다.그런 만큼 우리 팀원 모두 주택업계 마케팅 역사를 이끌고 간다는 프라이드를 갖고 있다. 생동감 넘치는 의욕으로 똘똘 뭉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바로 팀원 각자의 자긍심에서 나왔다. 막강 ‘드림팀’으로 구성됐다.구성원 모두 이론과 실무를 모두 갖춘 마케팅 최고의 전문가들이다.현장에서 부딪치며 체험한 경험,소비자들과 어울리면서 얻은 반응을 놓치지 않고 상품에 반영할 수 있는 ‘꾼’들이 모여있다.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끼’도 갖고 있다. 팀의 가장 큰 장점은 업무 스타일이 너무 자유스럽다는 것.톡톡 튀는 아이디어,업계를 이끌 수 있는 파워는 바로 창조적인 업무 스타일에서 분출되는 것 같다. 업계 최고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그러나 결코 우연이 아니다.구성원 모두의 한발 앞선 노력과 회사 차원의 지원이 오늘의 래미안 마케팅팀을 키웠다.소비자들이 원하는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데는 트렌드 분석과 함께 기술·설계·건강팀의 도움 또한 컸다.동종 업계의 시샘은 앞으로도 ‘쭈욱∼’ 계속될 것이다. 백선경 래미안 마케팅팀 대리
  • 儒林(153)-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儒林(153)-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노나라에서는 대대로 이 청동솥에 새긴 정고보의 명문을 공직자들이 지켜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하여 사표로 삼고 있었다.3대에 걸쳐 주군을 섬길 만큼 뛰어난 정치가였으면서도 특히 ‘여기에 범벅이라도 좋고,죽을 쑤어도 좋다.내 입에는 풀칠만 하면 그뿐이다( 于是 于是 以余口).’라고 기록한 정고보의 명문은 공직자가 지켜야 할 겸손과 청렴결백을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따라서 대대로 노나라에서는 새로운 벼슬아치들이 등용될 때에는 이 청동솥 앞에서 마음가짐을 다짐하는 불문율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공자가 바로 이 정고보의 후손이었던 것이다.공자는 비록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회에서 벼슬할 수 있는 계급 중 가장 낮은 계층인 사(士)에 속하는 계급에서 태어났지만 이토록 가문만은 명문이었다. 공자는 노나라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조상은 은나라 최후의 임금 주왕(紂王)의 서형(庶兄)이며,그 시대의 어진 신하로 알려진 미자계(微子啓)에 이르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공자의 계보는 이처럼 은나라의 왕들을 지나 탕(湯)임금에 이르고,송(宋)나라의 왕실로 다시 이어져 줄곧 왕실의 적자로 내려오고 있는데,불보하(弗父何)에 이르러서부터 왕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는 불보하가 임금의 자리를 다투지 아니하고 스스로 물러나 은둔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왕계로부터 갈라진 불보하의 후손은 솥에 명문을 새긴 정고보를 거쳐 그의 아들인 공보가(孔父嘉)에 이르게 되는데,이때 집안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대사건이 일어난다.공보가는 그 무렵 송나라의 장군격인 사마의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그에게는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다.어느 날 권신 화보독(華父督)이 길거리에서 공보가의 부인을 보고는 반해 버려 음모를 꾸민 뒤에 군대를 동원하여 공보가를 죽이고 부인을 빼앗아 버렸던 것이다.이로 인해 화보독이 보복을 두려워하여 계속 박해를 하자 할 수 없이 그의 아들 자목금보(子木金父)는 송나라를 떠나 노나라로 도망쳐 살게 되었으며,이때부터 자기 아버지의 자(字)인 공보(孔父)에서 공(孔) 자만을 따서 정식으로 성을 삼았던 것이었다. 그 뒤를 이어 하숙(夏叔),그리고 공자의 아버지인 숙량흘(叔梁紇)을 거쳐 공자에 이르게 되었는데,어쨌든 공자의 조상을 은나라에까지 계보를 끌어올리고 족보를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마치 ‘마태복음’에서 예수의 족보를 첫 장에 상세히 기록하고,‘누가복음’에서는 예수를 마침내 하느님에게 이른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무릇 인류가 낳은 성인을 신성시하려는 후세 사람들의 존경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사마천도 사기에서 공자를 ‘그의 선조는 송나라 사람으로서 공방숙(孔防叔)이라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비록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의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공자의 조상은 명문이었던 것만은 분명하게 보여지고 있다. 그 족보가 후세에 그럴듯하게 꾸며진 것이든 사실이든 간에 공자는 송나라의 명재상이었던 정고보의 후손으로 그 무렵 노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국어(國語)를 편찬한 민마보(閔馬父)란 사람이 쓴 기록에 의하면 ‘옛날에 정고보란 사람이 상나라의 노래 12편을 주나라의 태사혜에게 가서 교정을 하였는데,나(那)편을 첫머리에 놓았다.’고 하였다. 상나라의 노래인 상송(商頌)은 상나라 조정에서 쓰여지던 악가로 시경(詩經)에 전하고 있는데,훗날 공자가 시경을 편찬,정리하여 만인의 교과서로 삼으려 했던 것을 보면 정고보가 공자의 조상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 [보고싶은 그대] 꽃미남 이동건 변신하다

    [보고싶은 그대] 꽃미남 이동건 변신하다

    ‘파리의 연인’ 수혁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는데… 꽃미남 탤런트에서 진정한 연기자로 다시 태어난 이동건, 그가 궁금하다. 요즘 이른바 ‘뜨는 남자’ 이동건을 만나기 위해 두 시간을 꼬박 들여야 했다.지난달 29일 SBS 일산 탄현 스튜디오.세트 촬영을 위해 완벽한(?) 의상에 메이크업까지 한 채 약속시간보다 30분 늦게 나타난 그를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호∼그림 되겠는걸.’그러나 그의 대답은 ‘노’.인터뷰 전 그가 사진 촬영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말을 전해들었지만 50%의 가능성을 믿고 무모하게 덤볐다가 한방 먹은 셈이다.매니저를 통한 설득도 별무 소용.자신의 밴에서 나오는 그의 얼굴은 심하게 굳어있었고 기자 옆을 지나는 그에게서 찬바람이 불었다.결국 사진 기자는 돌아가고 예정보다 이른 촬영에 들어간 그를 오기(?)로 기다렸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이유를 물었다.“촬영현장에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드라마에 정신을 쏟느라)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진을 찍어야 하고 나중에 그 사진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요.” 이날 그는 주말분 촬영을 위해 새벽 4시부터 나와 쪽대본으로 주어지는 대사 외우랴 감정 잡으랴 도저히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할 수 없노라고 했다. 잘생긴 외모가 때론 핸디캡이 되기도 한다.이른바 ‘꽃미남’으로 불리는 남자 배우들은 이런 점에서 어쩌면 억울해 할지도 모른다.뽀얗고 곱상한 얼굴 때문에 선 굵은 연기를 펼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면 말이다.이동건이 그랬다.그래서 그에게 SBS ‘파리의 연인’의 수혁은 너무나 특별하다. ●변신,너무나 목말랐던 “시놉에서 다섯 줄로 표현된 수혁이란 인물을 보고 한방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밝고 순수한 인물이 상처 받아 변하고 악인이 되는 과정을 한 드라마 안에서 보여줄 수 있다는 건 어느 배우에게나 충분히 매력적이다. “수혁이를 통해 ‘아픔을 가진 캐릭터’에 대한 갈증을 완전히 해소했어요.저의 가벼운 모습을 무거운 모습으로 이겨낸 거죠.” 가수로 출발한 그는 몇몇 드라마에 기웃거린 끝에 MBC 시트콤 ‘세친구’에서 이의정의 남자친구로 나와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로 처음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이후 ‘네 멋대로 해라’‘상두야 학교가자’‘낭랑 18세’ 등에서 유학생,검사,기자 등 가방 끈 길고 부티 나는 역할만 주로 맡아왔다.“이제 이런 역 골치 아파서 안하고 싶어요.원래 짧고 단순한 놈인데…(웃음).” ●인기? 아직 실감 못한다 이동건을 인터뷰하러 간다는 말에 여성 동료들의 반응은 하나 같이 “나도 데려가 줘.”였다.여성들 사이에서 수혁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다는 말에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의외라는 듯 “제가요?”한다.“저보다 삼촌(박신양)이 인기가 많지 않나요? 그래서 은근히 질투를 하기도 했는데.(웃음)” 이 거짓말을 믿어야 할까. “사실 요즘 야외촬영에선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몰리긴 해요.그래서 ‘아!인기가 많구나.’하고 느끼긴 하는데 그게 어디 제 인긴가요?드라마에 대한 관심이지….(팬들이 몰려오면)저는 도망가기 바빠요.(웃음)” 그가 이렇게 겸손을 떨어도 그는 이제 예전의 그가 아니다.드라마 시작 이후 영화계 러브콜만 48건.드라마 초반 청춘멜로물이 대세였던데 비해 수혁의 변화 이후 액션물이 부쩍 많아졌단다.최근엔 일본쪽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얼마 전 후지TV와 인터뷰도 했다.한류 열풍과 더불어 몇년 전 한·일합작 드라마 ‘프렌즈’에 나왔던 그의 모습을 잊지 못하는 일본팬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연기? 나는 수혁이다 수염을 밀고 나서도 이동건의 매력은 죽지 않았다.날카롭게 드러난 턱 선은 오히려 남성적인 매력을 더욱 강하게 한다.“살이 빠진 건 꽤 오래 됐는데 그동안 관심이 없어 못 알아보신 거죠.”그는 드라마를 찍는 석 달 동안 수혁으로 살면서 그에 맞게 자신도 변하고 있다고 했다.배우에게 이보다 더 큰 장점이 어디 있는가. “20시간 촬영하고 4시간이 이동건 삶이에요.수혁의 잔재 속에 잠자고 대본 읽고 하는 거죠.저는 컷과 동시에 다시 제 삶으로 못 돌아와요.수혁이가 웃음을 잃어가면서부터 저도 식욕을 잃고 체중도 빠지더라고요.” ●휴식,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연기에 대한 욕심으로 지난 2년간 쉬지 않고 달려왔다.하지만 이젠 쉴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연기란 내 안에 있는 어떤 부분을 찾아서 그 걸 보여주는 거잖아요.이제 더이상 꺼낼 게 없어요.‘파리의 연인’이 당분간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아요.” 드라마가 끝난 후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원초적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란다.“빡빡은 아니더라도 머리를 아주 짧게 자를 거예요.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다 걷어내고 ‘벗겨진 이동건’으로부터 다시 나를 만들어 가고 싶어요.나를 찾는 기회를 갖는 거죠.잃어버렸던 제 성격도 찾고 싶고….” 원래 성격이 어떻냐는 질문에 “잃었으니까 모르죠.”라며 싱거운 농담을 던진다.“별로 특이 할게 없어요.활동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 정적이고 내성적이고…지극히 개인적이죠.” 낯가림이 심한 그는 연예계 입문 7년차지만 친구들을 그리 많이 사귀지 못했다.“초중고교 친구들을 계속 만나요.오래되고 깊은 사람을 좋아해요.많은 사람을 컨트롤할 능력이 못되거든요.(웃음)”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사진 김미성기자 492naya@sportsseoul.com
  • “국내 최대 ‘區자원봉사단’ 여기 있소이다”

    “국내 최대 ‘區자원봉사단’ 여기 있소이다”

    “봉사짱 모여라!” 남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강서자원봉사단을 찾아라.여기에는 현재 진행 중인 봉사 프로그램만도 880개에 이른다.봉사영역도 수화통역을 비롯 호스피스·집수리·차량지원·노인교통안내 등 수십가지로 웬만한 것은 모두 아우른다.지원자의 능력과 특성,가능한 시간대,거주지 등 제반사항을 모두 고려해 ‘맞춤 봉사 서비스’가 가능하다.시민들이 ‘봉사’라는 단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갖췄다. 유홍근 강서자원봉사단 소장은 “가입회원만도 3만 6000명을 넘으며 이는 강서구 인구가 53만명임을 고려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숫자”라면서 “봉사단은 이들이 꼭 필요한 곳에서 봉사하도록 연결해 주는 고리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봉사단의 임무가 자원봉사를 희망하는 사람과 수요처를 단순하게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자원봉사자가 체계적으로 봉사하도록 기본교육이나 봉사자 리더십교육 등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한다.일반기업이나 단체에서 교육받기를 희망하면 출장교육까지 해준다.방학기간에는 봉사의 새싹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봉사아카데미를 비롯,봉사캠프,가족봉사학교 등을 마련했다. 이런 잘 갖춰진 시스템 덕에 봉사짱도 다수 배출했다.시청 홍보관,종합병원 등에서 고령에도 불구,봉사활동을 이어온 이상현(79·여)씨는 봉사시간만도 1만시간이 넘는다.40여년의 교편생활을 마친 뒤 지난 1995년부터 봉사활동에 전념한 이씨는 자원봉사수첩만도 12권이 넘는다. 군생활 34년을 바탕으로 등촌3동 자율방범대장으로 활동하는 이만구(59)씨도 1만 봉사시간을 넘긴 봉사 베테랑.이씨는 “지역사회를 위한 일을 했을 뿐”이라면서 겸손하게 말했다. 지난 95년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최초로 자원봉사계로 출발한 강서자원봉사단은 지난해 6월 사단법인의 형태로 분리,독립했다.지자체가 직접 봉사단체를 운영하기에는 전문성 등에서 한계가 따르기 때문이다.종합복지관과 노인복지관,장애인복지관 등 사회복지시설을 중심으로 산하 14개 자원봉사단을 운영하며 이 외에 크고 작은 봉사커뮤니티를 다량 갖추고 있다.봉사를 희망하는 사람이나 수요처는 국번없이 1365이나 인터넷(www.gangseovc.or.kr)을 통해 접수하면 된다. 유영 강서구청장은 “누구나 손쉽게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면서 “자원봉사는 막연하게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김보일의 영화 속 수능잡기] ‘투모로우’

    세상을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면 우리는 태풍과 장마와 가뭄에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다.가뭄이나 폭우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어떤 식으로든지 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대비를 하려면 미래를 알아야 하는 법.그러나 현재를 헤아리기도 힘든데 미래까지 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신통력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조상들은 당장이라도 달려가 길흉화복을 점쳤을 것이다.열 중에서 넷은 맞고 여섯은 틀려도(즉 적중률이 4할이라도),미래에 대해 까맣게 모르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서 우리의 조상들은 점성술사나 무당에게 매달렸을 것이다.혹시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면 그 신에게 뇌물을 써서라도 액운을 막아보겠다는 염원으로 신께 제사를 지내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인간의 염원을 담아 시에게 기원을 해도 비 한 방울은커녕 푹푹 찌는 폭염은 무자비하게 농작물을 시들게 했고,매정한 메뚜기떼는 정성스레 가꾼 농작물들을 황폐화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대체 이 일을 어찌할까.혹시 자연을 잘 관찰하면 미래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의 선조들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아닌게 아니라 해결의 기미는 있었다.오호,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어쨌든 제비가 낮게 나는 사실과 비가 온다는 사실이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곤충의 날개는 날씨가 습해지면 대기중의 습기를 흡수해서 무거워진다.그래서 곤충들의 비행 고도가 낮아지게 된다.곤충들의 비행고도가 낮아지면 그것들을 잡아먹기 위해서 제비들의 비행고도도 낮아진다는 삼단논법식 추리를 하기까지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제비가 낮게 난다는 사실이 비가 온다는 사실과 항상 연결된 것은 아니었다.단지 무당의 예언보다는 조금 적중률이 높을 뿐이었다.어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없을까.조상들의 고민은 깊어갔다.바로 이 고민들이 만들어낸 것이 ‘과학’이었다.비가 온다면 그 이유를 밝혀라,장마가 진다면 그 이유를 밝혀라,태풍의 이유를 알아내고 그 경로를 예측하라.이리하여 인간은 태풍,장마,가뭄과 같은 자연의 불확실성 하나하나를 극복해가게 된다.위대한 과학이여,위대한 이성이여,사람들은 장밋빛 환상에 젖게 되었고 과학만이 살길이라고 부르짖었다.기차가 달리고 비행기가 날고 로켓이 치솟고 과학의 힘을 빌려 하루하루 눈부시게 세상은 달라졌다. 그러나 영화 ‘투모로우’가 보여주는 미래상은 어둡다.엄청난 기상재앙은 미래를 예측하겠다는 과학자들의 포부가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보여주고,폭설에 덮인 뉴욕의 거리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겠다던 과학자들의 믿음이 얼마나 교만했던가를 보여준다.영화 ‘투모로우’는 과학이 왜 겸손해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서울 배문고 교사 desert44@hitel.net
  • 儒林(148)-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현인을 사랑하였던 안영의 마음을 엿보게 하는 일화는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평소 생색내지 않는 성미의 안영인지라 월석보에게 아무런 말도 않고 그냥 안채로 들어가고 말았다. 얼마 후 하인에 의해 한 장의 문서가 안영에게 올려졌는데,펼쳐보니 월석보가 보낸 서신이었다.그 내용을 읽어보니 절교장이었다.깜짝 놀란 안영이 의관을 바로 잡은 뒤 황급히 객실로 나아가 월석보에게 물어 말하였다. ‘어디 화라도 나셨습니까?’ 월석보는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평소 월석보를 존경하고 있던 안영이 크게 놀라 말하였다. ‘비록 신이 어질지는 못하지만 선생을 재앙에서 구해 드렸습니다.그런데도 선생께선 이토록 급하게 절교를 선언하시다니요.’ ‘그렇지가 않습니다.군자란 대개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굴복하지만 자기를 이해해주는 자에게는 믿고 자기의 뜻을 나타낸다고 들었습니다.’ 월석보의 비난에 안영이 공손하게 물었다. ‘신이 선생을 이해하지 못한 점이라도 있었습니까?’ 그러자 월석보는 대답하였다. ‘들어보십시오.내가 죄수들 사이에 있을 때에는 그들 옥리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굴복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당신은 나를 이해하는 바가 있어 타고 있던 말 한 필을 풀어 속죄금으로 내고 나를 풀어준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이 틀렸습니다.’ 월석보는 안영을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당신은 모른 척 예를 무시하면서 곧바로 당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결국은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 것이 돼버렸습니다.나를 알아주면서도 예의를 무시하신다면 나는 차라리 죄수들 속에 있는 것이 낫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안영은 크게 뉘우치면서 말하였다. ‘결례를 용서하십시오.신이 거기까지는 생각이 못 미쳤습니다.앞으로 선생을 상객(上客)으로 모시겠습니다.’” 사기의 ‘안자열전’에 나와 있는 이 일화를 보면 안영이 선행을 베풀면서도 생색을 내지 않는 소탈한 성격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그러나 현인 월석보는 바로 이러한 형식적인 예의에 초탈한 안영의 태도를 오히려 비례(非禮)로 보고 있는 것이다. 과공비례(過恭非禮).‘지나친 겸손은 오히려 결례가 된다.’는 말은 이러한 안영의 태도를 표현한 말로 공자 역시 이를 경계한 일이 있었다. 논어에 실려 있는 공자의 말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침이 없이 중정(中正),즉 중용(中庸)의 도를 추구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설법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제자인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자장(子長)과 자하(子夏) 중 어느 쪽이 더 현명합니까?’ 공자는 두 제자를 비교한 다음 이렇게 말을 하였다. ‘자장은 아무래도 매사에 지나친 면이 있고,자하는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이 말을 들은 자공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자장이 낫겠군요.’ 자공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라는 공자의 말에서 나온 과유불급(過猶不及)은 결국 이렇듯 ‘과공비례’와 같은 뜻인 것이다.
  • 儒林(148)-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儒林(148)-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현인을 사랑하였던 안영의 마음을 엿보게 하는 일화는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평소 생색내지 않는 성미의 안영인지라 월석보에게 아무런 말도 않고 그냥 안채로 들어가고 말았다. 얼마 후 하인에 의해 한 장의 문서가 안영에게 올려졌는데,펼쳐보니 월석보가 보낸 서신이었다.그 내용을 읽어보니 절교장이었다.깜짝 놀란 안영이 의관을 바로 잡은 뒤 황급히 객실로 나아가 월석보에게 물어 말하였다. ‘어디 화라도 나셨습니까?’ 월석보는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평소 월석보를 존경하고 있던 안영이 크게 놀라 말하였다. ‘비록 신이 어질지는 못하지만 선생을 재앙에서 구해 드렸습니다.그런데도 선생께선 이토록 급하게 절교를 선언하시다니요.’ ‘그렇지가 않습니다.군자란 대개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굴복하지만 자기를 이해해주는 자에게는 믿고 자기의 뜻을 나타낸다고 들었습니다.’ 월석보의 비난에 안영이 공손하게 물었다. ‘신이 선생을 이해하지 못한 점이라도 있었습니까?’ 그러자 월석보는 대답하였다. ‘들어보십시오.내가 죄수들 사이에 있을 때에는 그들 옥리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굴복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당신은 나를 이해하는 바가 있어 타고 있던 말 한 필을 풀어 속죄금으로 내고 나를 풀어준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이 틀렸습니다.’ 월석보는 안영을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당신은 모른 척 예를 무시하면서 곧바로 당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결국은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 것이 돼버렸습니다.나를 알아주면서도 예의를 무시하신다면 나는 차라리 죄수들 속에 있는 것이 낫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안영은 크게 뉘우치면서 말하였다. ‘결례를 용서하십시오.신이 거기까지는 생각이 못 미쳤습니다.앞으로 선생을 상객(上客)으로 모시겠습니다.’” 사기의 ‘안자열전’에 나와 있는 이 일화를 보면 안영이 선행을 베풀면서도 생색을 내지 않는 소탈한 성격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그러나 현인 월석보는 바로 이러한 형식적인 예의에 초탈한 안영의 태도를 오히려 비례(非禮)로 보고 있는 것이다. 과공비례(過恭非禮).‘지나친 겸손은 오히려 결례가 된다.’는 말은 이러한 안영의 태도를 표현한 말로 공자 역시 이를 경계한 일이 있었다. 논어에 실려 있는 공자의 말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침이 없이 중정(中正),즉 중용(中庸)의 도를 추구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설법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제자인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자장(子長)과 자하(子夏) 중 어느 쪽이 더 현명합니까?’ 공자는 두 제자를 비교한 다음 이렇게 말을 하였다. ‘자장은 아무래도 매사에 지나친 면이 있고,자하는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이 말을 들은 자공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자장이 낫겠군요.’ 자공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라는 공자의 말에서 나온 과유불급(過猶不及)은 결국 이렇듯 ‘과공비례’와 같은 뜻인 것이다.
  • [법무·국방장관 교체] 장관급 3人 프로필

    ■ 김현종 통상본부장 매사에 정확한 성품.미국에서 대부분의 교육과정을 마쳤다.‘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활동했고 홍익대 겸임교수와 국내 ‘김신&유 법률사무소’ 변호사로 지내던 지난 95년 외무부 통상자문 변호사로 활동했다.이어 98년 통상교섭본부 통상전문관으로 발탁됐다.부인 강금진(41)씨와 2남. ▲서울(45)▲미 컬럼비아대▲WTO 법률국 법률자문관▲통상교섭본부 통상교섭조정관. ■ 윤광웅 국방장관 해군에서는 처음 국방부 획득개발국장을 거치는 등 육상과 해상의 핵심 보직을 두루 거친 작전·정책통으로,군 전체 사정에 밝다.온화한 성품에 일처리가 치밀하다. 지난 92년 해군 사상 처음 사관생도들을 이끌고 세계일주 항해를 마칠 정도로 모험심과 도전정신도 뛰어나다.권영기씨와 2남. ▲부산 동래(62)▲부산상고▲해사 20기▲해군 2함대사령관▲해군작전사령관▲해군 참모차장▲비상기획위원장 ■ 김승규 법무장관 온화하고 겸손한 성품으로 상하의 신망이 두텁다.지난해 3월 사법시험 동기 2명과 동반 퇴진하여 참여 정부 들어 ‘서열파괴’ 인사에 따른 첫 ‘희생자’가 됐다.대전 법조비리 사건 때는 대검 감찰부장으로 선후배 검사를 조사해야 하는 ‘악역’을 맡아 눈물을 쏟기도 했다.독실한 기독교 신자.부인 김미자(55)씨와 3남. ▲전남 광양(59)▲사시 12회▲서울대 법대▲대검 감찰부장▲법무부 차관▲부산고검장▲법무법인 로고스 대표
  • [법무·국방장관 교체] 장관급 3人 프로필

    [법무·국방장관 교체] 장관급 3人 프로필

    ■ 김현종 통상본부장 매사에 정확한 성품.미국에서 대부분의 교육과정을 마쳤다.‘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활동했고 홍익대 겸임교수와 국내 ‘김신&유 법률사무소’ 변호사로 지내던 지난 95년 외무부 통상자문 변호사로 활동했다.이어 98년 통상교섭본부 통상전문관으로 발탁됐다.부인 강금진(41)씨와 2남. ▲서울(45)▲미 컬럼비아대▲WTO 법률국 법률자문관▲통상교섭본부 통상교섭조정관. ■ 윤광웅 국방장관 해군에서는 처음 국방부 획득개발국장을 거치는 등 육상과 해상의 핵심 보직을 두루 거친 작전·정책통으로,군 전체 사정에 밝다.온화한 성품에 일처리가 치밀하다. 지난 92년 해군 사상 처음 사관생도들을 이끌고 세계일주 항해를 마칠 정도로 모험심과 도전정신도 뛰어나다.권영기씨와 2남. ▲부산 동래(62)▲부산상고▲해사 20기▲해군 2함대사령관▲해군작전사령관▲해군 참모차장▲비상기획위원장 ■ 김승규 법무장관 온화하고 겸손한 성품으로 상하의 신망이 두텁다.지난해 3월 사법시험 동기 2명과 동반 퇴진하여 참여 정부 들어 ‘서열파괴’ 인사에 따른 첫 ‘희생자’가 됐다.대전 법조비리 사건 때는 대검 감찰부장으로 선후배 검사를 조사해야 하는 ‘악역’을 맡아 눈물을 쏟기도 했다.독실한 기독교 신자.부인 김미자(55)씨와 3남. ▲전남 광양(59)▲사시 12회▲서울대 법대▲대검 감찰부장▲법무부 차관▲부산고검장▲법무법인 로고스 대표
  • [투르 드 프랑스] 암스트롱 6연패 신화

    “그는 다른 세계에서 홀로 경기를 하는 듯했다.” ‘영원한 2인자’는 인정을 해야 했다.누구도 따를 수 없는 강한 체력,한번 목표를 정하면 반드시 이루고야 마는 불굴의 정신력.그에게 막혀 5번이나 준우승에 머문 얀 울리히(독일)는 그를 다른 세계의 인물로 묘사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한 듯했다.암을 극복한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32·미국)이 2004프랑스도로일주사이클대회(투르 드 프랑스)에서 사상 첫 6연패를 달성했다. 암스트롱은 25일 몬테로에서 파리에 이르는 대회 마지막 20구간(163㎞)에서 4시간8분45초의 기록으로 114위를 차지했으나 종합기록에서 83시간36분2초로 정상에 올랐다.전날 브장송에서 열린 19구간(55㎞) 경기에서 1시간6분49초로 울리히를 1분1초차로 제치고 1위로 결승점을 통과해 자신이 이 대회에서 갖고 있던 4개 구간 우승 기록을 넘어서 5번째 구간 우승을 차지,사실상 종합우승을 확정한 암스트롱은 마지막구간에서 여유있게 레이스를 운영하며 정상까지 직행했다. 이로써 암스트롱은 지난 99년 이후 한번도 다른 선수에게 우승컵을 내주지 않으며 자신과 5연패 기록을 공유하던 미겔 인두라인(스페인·91∼95년 우승)마저 제치고 대회 사상 첫 6연패에 성공했다.23일간 총연장 3427.5km의 대장정을 끝낸 그는 “무난한 레이스였고,행운도 절반 정도 따라준 것 같다.”며 “오늘 우승은 나 혼자만의 노력이 아닌 팀워크의 결과”라고 겸손해했다. 세계 4대 스포츠이벤트(올림픽,월드컵축구,세계육상선수권,투르 드 프랑스) 중 하나를 개최한다는 자부심에 가득찬 프랑스인들도 생존율 40%도 안되는 고환암 판정을 받은 뒤 6연패를 일궈낸 그의 집념과 불굴의 의지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그가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세계선수권대회와 투르 드 프랑스 구간 우승을 차지한 93년.이어 95년 듀폰 투어에서 우승하는 등 승승장구하던 그는 96년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고환암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았다.폐와 뇌까지 전이된 암세포 때문에 생존율은 40%이하로 예상됐다.하지만 사이클에 대한 그의 열정은 기적을 일으켰다.항암치료와 재활훈련을 병행하며 재기를 모색하던 그는 99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리라 여긴 우승을 일궈냈다.모든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말했다.그리고 기적은 올해까지 6번이나 거듭됐다. 곽영완기자 kwyoung@seoul.co.kr
  • 환경파수꾼 자청 4인의 할아버지 기염

    최근 서울 관악구 봉천10동 동사무소에는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하는 방문객이 부쩍 늘었다.쓰레기를 함부로 버렸다가 단속에 걸려 과태료 고지서를 받아가는 이들이다. 쓰레기 무단투기는 동네 주변환경을 해치는 ‘경계대상 1호’지만,단속에 어려움이 적지 않아 동네마다 골칫거리로 등장한 지 이미 오래다.현장을 적발하거나 무단투기된 쓰레기를 일일이 꺼내어 확인한 뒤 버린 사람에 대한 단서를 찾아내야 한다. ●매일 동네 이 잡듯 뒤져 그러나 단속 인력과 방식에 한계가 있어 그동안 방치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대신 ‘CCTV 무인카메라 24시간 가동중’,‘적발시 100만원 이하 과태료’ 등의 위협적인 경고문만 동네 여기저기에 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봉천10동은 예외다.바로 쓰레기 무단투기를 막기 위해 자원봉사를 자청하고 나선 남장희(78),윤사중(78),이상학(78),윤정노(72)씨 등 할아버지 ‘4인방’이 있기 때문이다. 이상학 할아버지는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는 동네를 누가 좋아하겠냐.”면서 “주민 모두에게 득이 된다면 내가 좀 참고 치우는 게 뭐 큰 대수냐.”며 겸손해했다. 지난달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동네를 매일같이 ‘이 잡듯이’ 뒤지며 쓰레기 무단투기를 적발하고 있다.특히 집게 등으로 내용물을 일일이 확인하고 단서를 찾아내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흡사 전문 수사요원의 분위기마저 느껴진다.1차적인 관심대상은 우편물이나 약봉지 등 인적사항이 담긴 쓰레기.이어 특이한 내용물일 경우 인근 상점 등으로 직접 들고가 ‘탐문 수사’까지 펼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봉투속 내용물 일일이 확인 이같은 치밀한 조사 끝에 단서가 발견되면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뒤 해당 주민을 동사무소로 불러 과태료를 부과한다. 윤사중 할아버지는 “무단투기된 쓰레기를 담아 버리는 규격봉투 구입가격은 고작 하루 4만여원”이라면서 “1만 5000여명의 주민이 이 돈을 아끼기 위해 환경은 아랑곳 않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4인방의 이같은 노력 덕택에 올해 1∼5월까지 2건에 불과하던 단속 실적은 활동 개시 후 두달도 채 지나지 않아 20여건에 이르고 있다.게다가 과태료 부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주민은 단 한명도 없고,입소문이 번지면서 무단투기되는 쓰레기 양도 점차 줄고 있다. ●증거 확보… 과태료 부과토록 조치 진재길 동장은 “얼마 전까지 하루에 수거되는 생활폐기물은 5t,무단투기된 쓰레기는 10% 정도인 0.5t 정도였다.”면서 “하지만 할아버지들의 활동 이후 불법 쓰레기 양이 20∼30% 감소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들 4인방은 무단투기 주민에게는 ‘저승사자’와 같은 공포의 대상으로,일반 주민에게는 고마운 ‘환경 지킴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남장희 할아버지는 “무단투기된 쓰레기는 수거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환경문제때문에 치우고 있는 것”이라면서 “나 하나쯤이야 하는 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윤정노 할아버지도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은 내가 알아서 지킬 만한데도 단속이 뜸해지면 불법 투기가 기승을 부리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면서 “강제의 손길에서 언제쯤 벗어날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환경파수꾼 자청 4인의 할아버지 기염

    환경파수꾼 자청 4인의 할아버지 기염

    최근 서울 관악구 봉천10동 동사무소에는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하는 방문객이 부쩍 늘었다.쓰레기를 함부로 버렸다가 단속에 걸려 과태료 고지서를 받아가는 이들이다. 쓰레기 무단투기는 동네 주변환경을 해치는 ‘경계대상 1호’지만,단속에 어려움이 적지 않아 동네마다 골칫거리로 등장한 지 이미 오래다.현장을 적발하거나 무단투기된 쓰레기를 일일이 꺼내어 확인한 뒤 버린 사람에 대한 단서를 찾아내야 한다. ●매일 동네 이 잡듯 뒤져 그러나 단속 인력과 방식에 한계가 있어 그동안 방치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대신 ‘CCTV 무인카메라 24시간 가동중’,‘적발시 100만원 이하 과태료’ 등의 위협적인 경고문만 동네 여기저기에 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봉천10동은 예외다.바로 쓰레기 무단투기를 막기 위해 자원봉사를 자청하고 나선 남장희(78),윤사중(78),이상학(78),윤정노(72)씨 등 할아버지 ‘4인방’이 있기 때문이다. 이상학 할아버지는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는 동네를 누가 좋아하겠냐.”면서 “주민 모두에게 득이 된다면 내가 좀 참고 치우는 게 뭐 큰 대수냐.”며 겸손해했다. 지난달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동네를 매일같이 ‘이 잡듯이’ 뒤지며 쓰레기 무단투기를 적발하고 있다.특히 집게 등으로 내용물을 일일이 확인하고 단서를 찾아내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흡사 전문 수사요원의 분위기마저 느껴진다.1차적인 관심대상은 우편물이나 약봉지 등 인적사항이 담긴 쓰레기.이어 특이한 내용물일 경우 인근 상점 등으로 직접 들고가 ‘탐문 수사’까지 펼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봉투속 내용물 일일이 확인 이같은 치밀한 조사 끝에 단서가 발견되면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뒤 해당 주민을 동사무소로 불러 과태료를 부과한다. 윤사중 할아버지는 “무단투기된 쓰레기를 담아 버리는 규격봉투 구입가격은 고작 하루 4만여원”이라면서 “1만 5000여명의 주민이 이 돈을 아끼기 위해 환경은 아랑곳 않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4인방의 이같은 노력 덕택에 올해 1∼5월까지 2건에 불과하던 단속 실적은 활동 개시 후 두달도 채 지나지 않아 20여건에 이르고 있다.게다가 과태료 부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주민은 단 한명도 없고,입소문이 번지면서 무단투기되는 쓰레기 양도 점차 줄고 있다. ●증거 확보… 과태료 부과토록 조치 진재길 동장은 “얼마 전까지 하루에 수거되는 생활폐기물은 5t,무단투기된 쓰레기는 10% 정도인 0.5t 정도였다.”면서 “하지만 할아버지들의 활동 이후 불법 쓰레기 양이 20∼30% 감소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들 4인방은 무단투기 주민에게는 ‘저승사자’와 같은 공포의 대상으로,일반 주민에게는 고마운 ‘환경 지킴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남장희 할아버지는 “무단투기된 쓰레기는 수거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환경문제때문에 치우고 있는 것”이라면서 “나 하나쯤이야 하는 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윤정노 할아버지도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은 내가 알아서 지킬 만한데도 단속이 뜸해지면 불법 투기가 기승을 부리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면서 “강제의 손길에서 언제쯤 벗어날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노건평씨 자중자애하라”

    남상국 전 대우건설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고,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하지 않아 불구속 기소된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판결 후 이례적으로 대통령 친인척의 몸가짐에 대해 3분여 동안 ‘훈계’를 해 눈길을 끌었다.창원지법 형사합의3부(부장 최인석)는 21일 건평씨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나 관련자들의 진술을 종합해 볼 때 인사청탁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돼 유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최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읽은 후 “대통령 친인척을 비롯해 형(건평씨 지칭)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보좌하는 사람들,심지어 대통령조차도 피고에게 쓴소리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재판부가 적절한 훈계를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최 부장판사는 “선고 전에 실형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들었다.”며 “심지어 대통령 지지자들조차 ‘노 대통령이 개혁과 도덕성으로 당선이 됐는데 친인척의 잘못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며 실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또 “이전 정권들을 볼 때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발생하면 대통령의 리더십에 심각한 손상이 생기고,지위마저 손상돼 왔다.”면서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도 많이 남은 만큼 겸손과 인내로써 다시는 물의가 일어나지 않도록 자중자애하고 올바르게 처신해 달라.”고 당부하면서 훈계를 마쳤다.한편 건평씨는 법정을 나오면서 “본인은 대우와 무관하며 그들로부터 조작된 것”이라며 “조만간 기자회견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밝히겠다.”고 주장했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이해인의 기도문] 기도할 수도 없는 슬픔

    기도할 수도 없는 슬픔 - ‘증오살인’에 대한 기도문 봉숭아 백일홍 채송화가 고향의 꽃밭에서 정겹게 미소짓는 여름 매미 쓰르라미가 하루종일 삶의 열정을 노래하는 여름 더위를 식히려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바닷가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노니는 모습을 봅니다. 장마가 물러선 자리에 들어선 찜통 열기로 간밤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아니 더위보다는 들려오는 소식이 하도 끔찍해 잠을 잘 수 없었고 불안과 공포의 옷을 입은 악몽에 시달리며 몹시 괴로웠습니다. “기도할 수도 없는 슬픔만이 나의 기도”라고 힘없이 고백하며 눈물이 났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무참하게 살해 당한 우리의 가족들이 하도 가엾어서 눈물을 흘립니다. 악을 즐기는 듯 죄짓기를 작정한 듯 멈추지 않고 손에 피를 묻힌 잔인한 한 사람이 너무 밉고도 가엾어서 눈물을 흘립니다. 꽃보다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면 어찌되는 것일까. 참사랑은 가능한 것일까. 다시 한 번 숙고하며 진리를 의심하고 오늘의 삶에 회의를 느끼는 우리 자신이 가엾어서 눈물을 흘립니다. 진정 큰 사랑은 믿음이고 조건 없는 용서라고 배웠지만 때론 갈피를 못잡고 흔들리는 우리입니다. 어떻에 믿어야 할지 어떻게 용서해야 할지 답답한 마음엔 곰팡이가 피고 눈빛은 실망과 탄식으로 흐려져 맑은 기도가 되질 않습니다. 밖에서는 칼을 든 전쟁으로,안에서는 자신과 이웃과 화해 못한 전쟁으로 어둡고 괴롭고 무거운 우리에게 제대로 싸울 힘을 주십시오. 선으로 악을 이길 힘을 주시고 사랑으로 미움을 녹일 힘을 주십시오. 사실은 내가 잘못하고서도 모든 일에 늘 남의 탓을 하며 습관적으로 변명하며 살았습니다. 옆에서 어려운 일이 생겨도 체면 때문에 모른 척하거나 이기심 때문에 문을 닫아걸고는 한 발짝 더 밖으로 나갈 사랑의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웬만한 일에는 잘 놀라지도 않는 우리의 냉랭함과 무딤을 용서하십시오. 남의 불행과 비극을 곧잘 자신의 흥밋거리로 삼는 우리의 뻔뻔함을 용서하십시오. 이제 죽음의 냄새를 생명의 향기로 바꾸어야겠습니다. 무관심의 차가운 벽을 따뜻한 사랑의 웃음으로 허물어야겠습니다. 그 사람의 죄는 곧 우리의 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십시오. 남의 죄를 비웃기 전에 우리의 죄와 잘못도 반성하며 울 줄 아는 겸손을 배우게 해 주십시오. 생명을 그리워하는 마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기도의 시작임을 다시 알게 해 주십시오. 삶이 절망에 빠질수록 희망만이 생명입니다.사랑만이 살 길입니다. 우리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이해심과 자비심을 조금씩 더 키우고 가꾸어서 그 누구도 내치는 일이 없게 해 주십시오. 그 누구도 죄의 노예가 되지 않는 기쁨을 허락해 주십시오. “나는 내가 행하겠다는 선을 행하지 않고 안 하겠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로마7:19)”라고 한 사도 바울로의 고백을 묵상하는 이 순간.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촛불을 켜고 이렇게 기도해 봅니다. “제가 하고 싶지만 해선 안 되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고 하기 싫지만 꼭 해야만 되는 선을 실천하는 지혜와 용기로 저의 삶이 깨어 흐르게 하소서.선의 빛 안에서 행복하게 하소서.” 이해인(수녀·시인)
  • 서울신문 창간 100주년…숫자 100

    서울신문 창간 100주년…숫자 100

    숫자 100은 예사 숫자가 아니다.요즘이야 쉽게 백살까지 사시라는 말을 하지만 흔히 말하는 ‘백수(白壽)’라는 단어는 일백 백(百)자에서 한일(一)자를 빼 99세를 의미할 정도로 옛날 사람들은 숫자 100 앞에 겸손했다.그런 숫자 100을 감히 서울신문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100년전 구한말 올곧은 목소리로 민족을 일깨웠던 대한매일신보를 이어받은 민족정론지이기 때문이다. 올해가 100주년인 것은 서울신문((옛 대한매일신보) 창간만은 아니다.올해는 저항시인 이육사(陸史)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의열단 활동으로 옥고를 치를 때인 수인번호 ‘64’를 호로 사용한 이육사의 본명은 원록.‘청포도’와 ‘광야’ 등의 시로 민족의 자존심과 양심을 온몸으로 노래한 시인은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되던 1904년에 태어나 1940년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했다. 서울시민 중 2004년 1월 현재 100살인 사람은 여자 73명,남자 9명으로 모두 82명.10만명에 한명 정도가 서울신문과 함께 격동의 한세기를 보낸 셈이다. 국보 제100호인 남계원 7층석탑은 서울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에 있다.원래 신라탑의 전형을 계승·발전한 고려시대 탑으로 개성에 있던 것을 1915년에 현재 장소로 옮겨왔다.경복궁 경내에 있는 대부분의 석탑이 남계원 7층석탑과 함께 일제 식민지배 5년을 기념하는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때 전국 각지에서 옮겨진 것이다.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00호는 서울 성북구 보문동 보문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화 보문사지장보살도이다.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0호는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조선시대 과천현의 객사 온온사(穩穩舍)이다. 대중교통체계가 바뀐 7월부터 운행되는 100번 버스는 도봉산역∼종로3가를 운행한다.경기 성남시 소속 100번 버스는 성남시∼잠실역을 운행하고 있다. 14일 트리니다드 토바고와의 평가전에 출전한 축구선수 김태영씨는 국가대표급간 경기인 A매치 100경기 출장자들을 일컫는 ‘센추리클럽’에 한국선수로는 5번째로 이름을 올렸다.현재 센추리클럽에는 차범근,황선홍,홍명보,유상철 등이 가입한 상태다. 한편 100의 고지를 넘기 직전의 사람들도 있다.내년 한국야구도입 1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야구위원회는 올해 말 해외파 선수들을 불러들여 여는 기념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국민감독’ 임권택씨도 생애 100번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0주년…숫자 100

    숫자 100은 예사 숫자가 아니다.요즘이야 쉽게 백살까지 사시라는 말을 하지만 흔히 말하는 ‘백수(白壽)’라는 단어는 일백 백(百)자에서 한일(一)자를 빼 99세를 의미할 정도로 옛날 사람들은 숫자 100 앞에 겸손했다.그런 숫자 100을 감히 서울신문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100년전 구한말 올곧은 목소리로 민족을 일깨웠던 대한매일신보를 이어받은 민족정론지이기 때문이다. 올해가 100주년인 것은 서울신문((옛 대한매일신보) 창간만은 아니다.올해는 저항시인 이육사(陸史)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의열단 활동으로 옥고를 치를 때인 수인번호 ‘64’를 호로 사용한 이육사의 본명은 원록.‘청포도’와 ‘광야’ 등의 시로 민족의 자존심과 양심을 온몸으로 노래한 시인은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되던 1904년에 태어나 1940년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했다. 서울시민 중 2004년 1월 현재 100살인 사람은 여자 73명,남자 9명으로 모두 82명.10만명에 한명 정도가 서울신문과 함께 격동의 한세기를 보낸 셈이다. 국보 제100호인 남계원 7층석탑은 서울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에 있다.원래 신라탑의 전형을 계승·발전한 고려시대 탑으로 개성에 있던 것을 1915년에 현재 장소로 옮겨왔다.경복궁 경내에 있는 대부분의 석탑이 남계원 7층석탑과 함께 일제 식민지배 5년을 기념하는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때 전국 각지에서 옮겨진 것이다.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00호는 서울 성북구 보문동 보문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화 보문사지장보살도이다.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0호는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조선시대 과천현의 객사 온온사(穩穩舍)이다. 대중교통체계가 바뀐 7월부터 운행되는 100번 버스는 도봉산역∼종로3가를 운행한다.경기 성남시 소속 100번 버스는 성남시∼잠실역을 운행하고 있다. 14일 트리니다드 토바고와의 평가전에 출전한 축구선수 김태영씨는 국가대표급간 경기인 A매치 100경기 출장자들을 일컫는 ‘센추리클럽’에 한국선수로는 5번째로 이름을 올렸다.현재 센추리클럽에는 차범근,황선홍,홍명보,유상철 등이 가입한 상태다. 한편 100의 고지를 넘기 직전의 사람들도 있다.내년 한국야구도입 1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야구위원회는 올해 말 해외파 선수들을 불러들여 여는 기념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국민감독’ 임권택씨도 생애 100번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열린세상] 한·미관계의 지식 인프라/이근 서울대 국제정치학 교수

    우리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지식을 우리의 입장에서 체계적으로 분석하고,종합하여 활용하는 데 매우 약하다.이번 이라크 김선일씨 납치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정보력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한국에 장기적으로 진짜 중요한 것은 정보기관의 정보 수집 능력뿐만이 아니라 우리 정보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지식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앞으로 한국이 아랍세계에 더욱 깊이 관련하게 된다면 한국의 입장에서 정보처리를 가능케 하는 아랍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지식 인프라가 필요할 것이다.아랍세계의 테러리즘,종교,역사,국제정치,문화 등과 관련한 전문가들이 모여 총체적인 그림을 그려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설사 중요한 정보가 스쳐간다 해도,그것이 중요한지,그리고 정작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정보기관에 정보요원 몇 사람 있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취약한 지식 인프라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한·미관계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특히 지금과 같이 한·미관계가 중요하다고 인식되는 시기에도 지식 인프라는 전혀 가동되지 않고 있다.단적인 예로 한국에서 한·미간에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이에 대응하여 한·미간의 신뢰의 의미가 무엇인지,미국인이 생각하는 신뢰란 무엇인지,미국 사람과의 신뢰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깨지는지에 대한 연구가 단 한 건이라도 있었는가? 그러한 연구에 기반하여 한·미간에 신뢰를 회복할 방안과 정책을 만들거나 권고한 사례가 단 한 건이라도 있었는가? 신뢰는 인간관계의 다각적인 모습이 담겨있는 문제인데,한·미간의 신뢰문제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사회학자,인류학자,지리학자,교육학자,그리고 경제학자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가? 왜 한·미관계는 미국정치학자나 안보전문가,외교관,언론인,군관계자들만이 추상적인 국가이익이라는 개념만을 가지고 분석하고 처방을 내 놓아야 하는가? 한·미관계는 국가간의 관계이지만 실제로는 한국사람과 미국사람과의 관계이다.따라서 한·미관계를 잘 만들어 가려면 우리가 상대하는 미국사람을 잘 알아야 한다.이는 미국정치에 관련한 단편적인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국 신문과 TV 뉴스만을 열심히 본다고 알 수 있는 일도 아니다.미국의 사회,미국의 지리,미국의 문화,미국의 다양한 거시 및 미시사,교육 시스템,그리고 사회심리 등에 대한 총체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미국은 엄청난 경쟁의 사회이다.그야말로 최고의 베스트만이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다.그러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낙오자로서 매우 외롭게 살아가야 한다.말하자면 사람이 경쟁시스템이라는 사회적 구조 속에 매몰된 매우 잔인한 사회가 바로 미국이다.따라서 이러한 시스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엄청나게 전문적이지만 동시에 지독히도 경쟁적이다. 한국이 중요하게 상대하는 미국사람들은 주로 이러한 시스템의 한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이다.그래서 이들과 업무적으로 만나서 한국사람과 같은 인간미를 느끼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미국의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최고가 될 때까지는 겸손할 수 없다.” 이러한 미국 사람을 상대로 할 때 신뢰를 어떻게 쌓고,어떻게 유지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는가? 우리는 미국 사회에서 말하는 신뢰에 대해서 연구해 본 적이 있는가? 정치학자와 외교관 몇 사람이서 이러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한·미간의 신뢰를 말한다면 지금이야말로 미국에 대한 다각적인 지역전문가를 양성하고 모아서 미국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지식 인프라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정치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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