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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우석 줄기세포’의 숨은 주역 안규리 서울대 의대 교수

    ‘황우석 줄기세포’의 숨은 주역 안규리 서울대 의대 교수

    연극이나 영화에서 때때로 주인공보다 빛나는 조연이 등장한다.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가 주도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서 안규리(安圭里·50) 서울대 의대 신장내과 교수가 보여준 역할이 이같은 ‘빛나는 조연’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좋아 의사의 길을 선택했고, 눈 앞의 환자가 아닌 미래의 환자를 위해 과학자로 나서게 됐다는 안 교수.‘50살 소녀의 수줍은 고백’을 들어봤다. ●사람이 좋아 선택한 의사 안 교수는 현재 신장질환 및 면역학 분야에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한대석 교수와 함께 국내 최고의 ‘명의’로 꼽힌다. 이런 그가 의사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안 교수는 “어린 시절 아버님 제자들이 집으로 많이 찾아 왔고 이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졌으며, 결국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의사의 길을 선택한 계기가 됐다.”라고 밝혔다. 안 교수는 이와 관련한 일화도 소개했다. 안 교수의 부친은 6대 상공부장관을 지낸 뒤 수십년간 대학강단에 섰던 고 안동혁 박사다. 이 때문에 설날이면 고 안 박사의 대문을 두드리는 제자들이 200명이 넘었다는 것. 고 안 박사는 이처럼 많은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애지중지하던 책을 팔기도 했으며 이때는 한참을 홀로 서재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아버님께서 과학자가 되라는 말씀을 꺼내지는 않으셨지만 과학자로서의 멋진 삶을 행동으로 보여주셨다.”면서 “하지만 과학자로서의 삶에 대한 호감은 의사가 된 이후 환자들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신부전증(콩팥기능저하증) 환자는 80여만명, 이중 신장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 중증 환자는 3만 900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신장질환 전문가인 그는 신부전증 환자들이 장기 이식을 받지 못해 죽음의 위기에 처한 경우를 수없이 지켜봐야 했다. 안 교수는 “당뇨병과 고혈압 등의 합병증으로 신부전증 환자가 늘고 있지만 장기 이식이 쉽지 않아 완치율은 20%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라면서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해결해 보고자 면역학 연구에 나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주인공보다 빛나는 조연 새로운 장기 이식 연구에 전념하던 안 교수가 황 교수팀에 가담한 것은 지난 2002년. 황 교수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당뇨병과 백혈병 등 난치병 치료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환자를 상대로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장기 이식 후 면역거부반응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이를 안 교수가 담당했다. 이 때문에 황 교수는 지난 5월 영국 런던에서 치료용 배아줄기세포 배양 성공 사실을 발표한 뒤 가진 귀국 기자회견에서 안 교수를 지목하며 “앞으로 연구방향을 쥐고 흔들 인물”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안 교수는 “이번 연구 성과에 대해 세계가 놀라고 있는 점은 배아줄기세포 성공 확률이 매우 좋아졌다는 것과 다양한 환자에게 실제 세포치료제로 사용할 가능성을 높였다는 것”이라면서 “고맙고 운 좋게도 황 교수를 만나 도움을 준 것만으로 행복해요.”라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무대의 전면이 아닌 뒤편에 서는 것을 꺼리지 않는 안 교수는 스스로를 ‘총무’ 체질이라고 밝힌다. 그는 “총무가 좋은 이유는 일을 마쳤을 때 뒷정리를 하면서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서포터가 제게 가장 잘 어울리고 편해요.”라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봉사는 젓가락 한벌 더 놓는 것” 안 교수는 이처럼 ‘안방마님’으로서의 역할을 ‘라파엘 클리닉’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라파엘 클리닉은 지난 1997년 4월 안 교수 주도로 서울대 의대 가톨릭 교수회 및 학생회가 참여해 설립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무료진료소다. 지금은 자원봉사자 수가 400여명에 달하고 이곳을 다녀간 외국인 노동자들이 6만명을 넘을 만큼 웬만한 종합병원에 맞먹는 규모로 커졌지만, 안 교수는 라파엘 클리닉에서 줄곧 총무직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안 교수는 환자 가운데 추가 진료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등 20여개 협력병원으로 이송,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협력 체계도 구축했다. 또 수술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들에게는 진료비 후원 등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안 교수는 지난 1986년부터 6년간 미국 스크립 연구소에서 연수를 하며 미국과 멕시코 접경지대에 있는 빈민진료소인 ‘멕시칸’에서 외국인 의사들과 함께 무료 진료봉사를 펼치기도 했다. 안 교수는 “학생들을 따라 농촌에 가서 배추를 심은 적이 있었는데 30분 만에 쓰러지고 말았다.”라면서 “이에 반해 의료 자원봉사는 차려진 밥상에 젓가락 한벌 더 놓는 것처럼 저에게는 어쩌면 단순하면서도 편안한 일”이라며 겸손해했다. ●데레사 닮은 퀴리, 퀴리 닮은 데레사 안 교수의 이름은 부친이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마리 퀴리 박사와 같은 훌륭한 과학자가 되라는 의미에서 지어준 이름이다. 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안 교수의 세례명은 ‘소화 데레사’이다. 특히 주변 사람들에게 안 교수는 3가지가 없는 ‘3무(無)교수’로도 통한다. 먼저 얼굴 표정이나 음성에서 구김이 없다는 것. 이 때문에 ‘소녀 같은 중년’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 격의없는 대화로 환자나 제자들과 벽이 없으며 독신이다. 안 교수는 “보살펴야 하는 환자들, 아름다운 후배들, 미래의 환자들을 위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으니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많다.”면서 “의사로서 꿈이 있다면 내 환자에게 충실할 수 있고, 나에게 찾아오지 못하는 환자들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희망했다. 입가에 걸린 미소가 화장기 없는 얼굴을 대신하고, 나지막하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우렁찬 외침을 압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수 있는 사람이 안 교수다. 그는 “지금까지 자유롭게 일했는데 (세상에 너무 알려져서)자연스러움이 없어질 것 같다.”면서 “언론이나 국민들께서 특정 과학자를 스타처럼 대접하기보다 과학자들이 클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줬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을 맺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황우석교수 관훈토론] “내년 후반 ‘줄기세포 연구’ 2막 시작”

    [황우석교수 관훈토론] “내년 후반 ‘줄기세포 연구’ 2막 시작”

    황우석 교수는 관훈클럽 조찬 토론회에서 자신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성과를 마라톤과 연극 등에 빗대어 설명했다. 그는 현재 줄기세포 연구 분야의 세계적 수준에 대해서는 “42.195㎞의 마라톤에 비유했을 때 지난 1998년 미국 위스콘신대의 제임스 톰슨 박사가 최초로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인공 배양하는 데 성공한 것이 출발점”이라면서 “치료용 분화세포는 25㎞ 지점, 치료과정의 표준화가 35㎞ 지점, 그 직후 환자대상 임상실험 등이 뒤따라야 결승선에 이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줄기세포 첫 배양은 20㎞ 지점에 해당할 것”이라면서 “최근 줄기세포의 인체 거부반응을 해결한 것은 마지막 단계에 들어가야 할 과정이지만, 하다 보니 빨리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연극을 보러 간 적이 한번도 없다고 밝힌 황 교수는 연구성과를 연극에 비유해 설명하기도 했다. 황 교수는 “대개 연극은 4막으로 이뤄지지만, 우리의 연구는 2막”이라면서 “이는 기계적 2등분이 아니고 의미있는 2등분”이라고 전제했다. 그는 “내년 후반기쯤 2막이 시작되면 국민들이 중간박수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면서 “1막이 끝나고 2막은 그리 길지 않고,2막에서는 감독이 지휘할 필요도 없고 지휘해서도 안 된다.”라고 내다봤다. 황 교수는 이번 연구성과와 관련,“하늘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이뤄질 수 없는 결과”라면서 “우리나라가 그동안 외국의 침탈과 동족상잔 등의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눌려 지냈으니 세계에서 어깨를 쭉 펴고 살아 보라는 천운을 준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겸손해했다. 노벨상 수상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노벨상을 어떻게 받는지 전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의 목표도 아니다.”면서 “역사에 ‘참과학도였다.’는 기록으로 남는다면 어느 가치보다 소중한 재산으로 여길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연구 활동을 그만둔 뒤 정치권에 진출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연구하는 능력은 다른 분들보다 조금 나을지 모르지만 이외의 다른 능력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면서 “제가 남을 곳은 실험실이고, 벗해야 할 것은 현미경”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참여정부 출범 당시 과학기술부장관 제안이 있었느냐는 물음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면서 ”내가 갔으면 큰일 날 뻔했고, 안 간 것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잘된 일”이라고 재치있게 답변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한노총 “하필이면… ”

    한국노총이 몸을 낮췄다. 노총은 3년간의 전셋집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 여의도 중앙근로자복지센터 6∼7층으로 이사해 7일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일이지만 정·관·재계 인사들이 초대된 성대한 입주식은 고사하고 현판식이나 개소식조차 뒤로 미뤘다. 이상연 홍보부장은 “현안인 비정규직 문제가 남아 있고 위원장도 해외출장 중인데 무슨 개소식이냐.”라며 “현안이 마무리되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다.”라고 말했다. 아마도 상반기에는 어려울 성싶다고 덧붙였다. 주말과 휴일 동안 이사를 지켜봤던 이용득 위원장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6일 출국하면서 ‘축하연’이나 ‘개소식’과 관련한 언급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장은 “노총 내부에서도 미묘한 분위기지만 일단 겸손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한국노총이 복지센터에서 업무를 시작한 이날은 공교롭게도 검찰이 한국노총 비리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이남순 전 위원장 구속파동을 몰고온 중앙근로자복지센터는 지상 16층 지하 6층 규모로 사업비 516억원(땅값 포함)이 투입됐으며 이중 334억원은 노동부가 지원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길섶에서] 곡천선생/이호준 인터넷부장

    석공예가 곡천선생이 세상을 달리했단다. 부음을 듣는 순간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하필 창밖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사실 그를 속속들이 안다고 할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내가 아는 그는 석공예가이기 이전에 도인이라는 것 정도다. 그를 보자마자, 득도한 사람의 모습이 이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처음 그를 만난 건 한 소설가의 집에서였다. 인사를 하려는데 벌떡 일어나더니 큰절을 하는 것이었다. 한참 어린 상대에게…. 얼떨결에 맞절을 했지만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사람을 대하는 그의 자세는 넓고도 진지했다. 말을 아꼈지만, 입가에 잔잔한 미소와 함께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는 끝내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가 생전에 했다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저는 돌이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부분만 드러내 보이고, 저 자신의 생각은 절대로 드러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가 깨우친 도는 ‘겸손’이 아니었을까. 상대가 돌이든 사람이든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이만 도달할 수 있는. 대서특필될 부음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예술가 하나를 잃은 것만은 분명하다. 이호준 인터넷부장 sagang@seoul.co.kr
  • [내인생의 등대] 신연희 서울시 행정국장

    [내인생의 등대] 신연희 서울시 행정국장

    신연희 서울시 행정국장은 여성 최초로 서울시의 안살림을 맡게 된 인물이다.‘최초’라는 수식어가 그렇듯이 겉으로는 ‘영광’이나 ‘영예로움’을 의미하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한 이면의 피나는 노력이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신 국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그동안 ‘여성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성공한 것’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면서 “하지만 장담하건대 스스로 노력하지 않았다면 오래 전에 도태됐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신 국장은 “지금까지 단 하루도 ‘인내’라는 덕목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알게 모르게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던 시절에 ‘사회적 모순’을 끌어안고 차분히 해결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 남성에 비해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면서 “그러나 순간순간 나타나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 만약 즉각적으로 반응했었더라면 ‘이유없는 적’들만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래서인지 신 국장은 인내에 관한 동양의 금언을 항상 가슴에 품고 있다. 그는 “명심보감에 忍一時之憤 免百日之憂(인일시지분 면백일지우)란 글귀가 있다.”면서 “‘한 때의 분함을 참으면 백날의 근심을 면한다.’는 뜻인데 30여년 공직에 임하면서 단 한 순간도 이 격언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인내’라는 덕목은 어쩌면 여성에게 차별적이었던 시대를 돌파하는 필수 덕목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신 국장은 ‘인내’가 여성에 대한 차별이 사라진 지금에도 필요하냐는 질문에 주저없이 ‘당연하다.’고 답한다. 그는 “현재는 자기PR가 중요하고 튀는 사람이 살아남는 시대이긴 하지만 ‘인내’와 ‘겸손’이 바탕에 깔리지 않은 ‘자기 주장’은 치기어린 행동에 다름 아니다.”고 강조한다. 스스로를 낮추며 참는 과정에서 합리적이고 공정한 문제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공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인내’와 ‘겸손’은 기본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 국장은 마지막으로 ‘겸손’을 강조하는 구절을 소개했다. “명심보감에 屈起者 能處衆(굴기자 능처중)이란 격언이 있는데 ‘몸을 낮추는 자만이 남을 다스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인내’와 ‘겸손’을 함께 갖춰야 하는 것이죠.”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여야 원내대표 인터뷰] ①정세균 열린우리당 대표

    [여야 원내대표 인터뷰] ①정세균 열린우리당 대표

    6월 임시국회가 여야간 상임위 정수 조정 문제로 샅바 싸움을 벌이는 등 진통 끝에 2일 개회됐다. 서울신문은 열린우리당 정세균,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와의 연쇄 단독 회견으로 이번 임시국회 현안 타결 전망과 향후 정국 기상도를 미리 짚어본다. “언론에서 (정부 여당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얘기 하지만, 잘 하려다가 과했다든지, 경계 선상에서 넘어선 정도지, 이권을 가지고 청탁을 하고 비리를 했다든지 하는 것은 아니다.” 정세균(55)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2일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여권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유전개발 의혹’과 ‘행담도개발 의혹’ 등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그러나 야3당의 ‘유전의혹 특검’ 주장에는 “야당과 빠른 시일 내 협상을 시작해 이달 말 국회 본회의에서 특검법을 처리할 것”이라고 말해 빠르면 7월부터 특검이 실시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일부에서 제기된 ‘월말 개각설’에 대해서는 “인적 쇄신은 위기에 써먹는 카드지만, 유전의혹 특검도 있고 행담도의혹도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장관 몇 명 바꾼다고 쇄신 분위기가 나올지 모르겠다.”고 비켜갔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이날 고위당정에서 ‘여당의 스펙트럼이 다양해 당정 협의가 어렵다.’고 지적한 데 대해 정 원내대표는 “총리도 150명짜리 당은 처음하는 것 아니냐.”면서 “150명 정당이 스펙트럼이 넓지 않을 수가 없고, 여당은 스펙트럼이 넓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초선들 개성이 강해서 아주 힘들다.”고 토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긴밀한 당정관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과거에는)여당의 경우 의원들이 총재인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했다. 이제 그런 것이 전혀 없으니까 정책중심의 당정협의가 훨씬 긴밀해져야 한다. 의원 개개인의 개성, 주장, 정책이 쉽게 포기되거나 제압되지 않는다. 외국의 경우는 각 부처에 국회담당 국이 별도로 있다고 한다. 정책이 중요해진 만큼 장관의 정책보좌관 2명 중 1명이 국회를 담당하게 하는 문제를 검토해보자고 했다. 더이상 ‘마당발’이나 스킨십 가지고 해결이 안된다. 한전 이전 문제는 어떻게 되나. -‘한전+2’로 결정된 후 지자체에서 입질을 하지 않는다. 정부가 당과 협의하지 않고 ‘자영업자 지원법’을 내놓았다.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제출한 것을 지적했다. 공급 과잉·과당 경쟁은 나쁘지만, 정부가 다 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시장에 맡기는 것이 더 현명한 경우가 많다. 정책을 만들 때, 정책의 수요자들과 협의하고 당과 협력해야 한다. 관료들이 이론으로 잘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정치인들이 더 앞선다. 참여정부 3년차다.‘3년차 증후군’ 극복방안이 있나. -이런 저런 의혹이 있어서 불편하다. 이광재 의원의 경우도 검찰이 의원회관이나 집을 압수수색했는데 기소 건수가 없다는 것이다. 봐줘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우리가 과반수 넘는 의석을 가지고, 오만하고 과신했던 적이 없는지를 살펴서 겸손하고 진지하게 이 어려움을 견디면 국민들에게 다시 신뢰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상임위 정수 조정은 10월 재·보궐 선거 뒤에도 하나. -10월에는 우리가 조정을 요구하게 될 지도 모른다(웃음). 국회법상 조정을 안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에 대한 평가와 한나라당에 대한 바람은. -강 원내대표를 신뢰한다. 신뢰관계가 없으면 협상이 안 된다. 훌륭한 카운터 파트다. 한나라당에는, 마냥 (법안)붙잡고 있지 마라, 처리해가면서 나가자는 얘기를 하고 싶다. 사립학교법이 지난해 12월에 상정됐는데 야당 위원장이 반년을 붙잡고 있다. 정치개혁 어느 정도 진행됐나. -내년 지방선거 관련한 부분은 6월 국회에 처리하려고 한다. 정치자금법도 개정하나. -정치자금법을 고치자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에게 욕먹고 되지도 않는다. 돈 조달하는 방법을 만들지 말고 돈 안 드는 정치를 하는 풍조를 만들어야 한다. 문소영 박지연기자 symun@seoul.co.kr 사진 최해국기자 seaworld@seoul.co.kr
  • [열린세상] 불멸에 대한 욕망/김민숙 작가

    요즘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황우석 교수의 얼굴을 자주 본다. 심지어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그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예상투표까지 하고 있다. 물론 그의 빛나는 업적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지금 난치병과 싸우는 사람들은, 그 연구결과가 가져올 기적을 얼마나 가슴 졸이며 기다릴 것인가. 거기다 그 연구가 우리 경제에 엄청난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니 별 뾰족한 자원이 없는 이 나라 전체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버릇처럼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나는 가끔 오싹한 공포를 느낀다. 과학에는 무지하지만 인간의 저 야만스럽고 자제할 줄 모르는 욕망에 대해서는 웬만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체세포로부터 줄기세포를 배양하여, 그 줄기세포를 손상된 장기에 투입해 거부반응 없이 원래 상태로 복구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것이 이번 황 교수의 업적이다. 인간복제에는 생식용 개체복제와 치료용 배아복제가 있는데 황교수는 치료용 배아복제의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줄기세포는 뼈나 뇌·근육·피부로 자랄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줄기세포가 치료용으로 이어지려면 멀고먼 길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시점에서 복제된 개체의 배아가 생명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로 그 업적의 중요성을 훼손할 생각은 없다. 1970년대 초반 무렵 텔레비전의 인기 외화시리즈로 ‘육백만불의 사나이’라는 게 있었다. 미국의 우주비행사 스티브 오스틴 대령은 사고로 빈사 상태에 빠졌지만 600만달러라는 거액을 들여, 최첨단 생체공학으로 양쪽 다리와 한쪽 팔, 한쪽 눈은 초능력을 보유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는 그 능력을 이용하여 OSI 비밀요원으로 활약하는데, 그 꿈같은 초능력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복제니 줄기세포니 하는 말을 들으면 이 ‘육백만불의 사나이’가 현실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난다. 신문에서는 날마다 저출산 현상을 걱정하고,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심지어는 독신에게 독신세를 부과하자는 기특한 안을 낸 경제연구소도 있었다고 들었다. 하도 이상한 세상이니 세금내기 싫어서 아기를 낳거나 미혼모가 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여자의 평균수명이 80.4세이고 남성의 평균수명은 73.4세라고 한다. 사실상 비교적 건강한 체질을 가졌고, 운이 좋아 암같은 병에 걸리지 않고, 의료 혜택을 잘 받고, 거기다 가족의 보살핌까지 충분히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균수명보다 훨씬 오래 산다. 고령화사회에 대한 우려는 충분히 그 이유가 있다고 보아진다. 태어나 죽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어서 그 불가능해 보이는 불멸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원초적 욕망이다. 진시황의 불로초 이야기는 그렇다 치고 종교 또한 불멸에 대한 꿈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닌가. 어쩔 수 없이 몸은 죽더라고 영혼만이라도 영생을 누리고 싶은. 무병장수는 소박한 인간의 소망이다. 장수에 대한 욕망은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는 노년에 더욱 절박해진다. 유전자의 기본목적이 바로 생존이라니, 유전자 덩어리인 인간의 좀더 오래 생존하고자하는 욕구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100세가 되고 120세가 될 거라는 미래 예측 기사를 읽을 때면 소름이 끼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말 무병장수가 좋기만 한 것일까? 병없이 건강한 사람에게 이제 90세이니 죽음을 준비하라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늙고 몸이 아플 때 죽음도 그저 순순히 수용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병들고 늙는 것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은 본래 겸손한 존재가 아니다. 힘이 있고 능력이 있으면 못하는 것이 없다. 좀더, 좀더…라고 외치는 인간의 욕망을 견제할 어떤 도구가 있을 것인가. 차라리 가능한 한 자연스레 살다 더이상 품위를 지킬 수 없을 때 좀더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 법과 의술의 발전을 기다린다면 너무 소극적이고 겁많은 인간인가. 황 교수는 이번 연구가 치료에 한한다고, 인간을 위한 일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핵폭탄과 노벨상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불멸에 대한 인간의 야욕이 얼마나 집요하고 끔찍한지 짐작하는 사람이라면 내 앞서는 두려움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김민숙 작가
  •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풍성주택 고담일 회장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풍성주택 고담일 회장

    “주택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입니다. 환경과 더불어 사는 가장 아름다운 집을 짓겠습니다.” 최근 수도권에서 100% 분양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풍성주택 고담일(67) 회장은 “포근하고 편안한 고향집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아파트사업을 펼칠 것”이라면서 “변화와 혁신을 통해 제2의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0년간 지어온 아파트로는 미래 수요를 따라갈 수 없다.”면서 “집은 가족들의 공동생활 터전이요, 편안한 휴식 공간이기에 쾌적하고 짜임새 있게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수도권에서 ‘신미주(新美住)’브랜드로 잇따라 100% 분양 신화를 이끌어가는 풍성주택이 업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대기업이 짓는 아파트도 아니고, 텔레비전 광고를 싹쓸이하다시피하는 유명 브랜드 아파트는 더더욱 아니라서 분양 성공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풍성주택 아파트 건설 현장을 방문해 보면 그 비결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신용으로 집을 짓는다 고담일 회장은 덩치를 키우기 위해 사업을 무리하게 펼치지 않는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스타일이다. 그는 “욕심을 냈다면 아마 큰 재벌이 되었을 것”이라면서 “20여년 동안 은행 융자 연장 한번 받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은행빚이 없는 회사다. 주위에서 사업확장 권유와 유혹을 많이 받았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입주자에게 내건 약속은 어떤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지킨다. 외환위기를 맞아 고 회장도 자금난에 빠졌지만 계약대로 말끔하게 공사를 끝냈다. 분양 당시 약속은 사운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하지만 신용을 쌓고 분수에 맞게 사업을 추진하던 그도 대기업 위주의 금융 관행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때가 많았다. 은행이 작은 회사라고 무조건 돈줄을 죌 때는 원망도 많이 했다. 사업장을 담보로 제공했음에도 돈을 빌려주지 않자 은행장을 찾아가 다투기도 했다. ●돈 되는 땅을 사둬라 아파트사업의 성공 열쇠는 빼어난 입지를 고르는 일이다. 아무리 설계가 뛰어나고 분양가가 싸더라도 변두리나 접근이 어려운 곳은 분양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고 회장이 고른 땅을 가보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입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20년 동안 땅을 보고 다녔으니 이제는 ‘고수’가 됐다. 그는 땅을 살 때 맨 먼저 분양성을 따진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지도 살핀다. 쾌적한 환경을 보장할 수 없는 땅은 아예 쳐다 보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업장이 경부고속도로 동탄 오산리 아파트 현장. 경부고속도로 기흥과 오산 인터체인지 중간 서쪽에 있다. 고 회장은 직감적으로 동탄 신도시와 가까워 신도시 후광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고속도로에서 환히 보이는 곳이므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신미주 아파트 브랜드를 알리는데 이보다 좋은 땅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들을 잠재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홍보 효과 또한 만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억원의 광고비를 쏟아부은 것보다 효과가 더 컸다. 인근 동탄 신도시에서 대기업들과 맞붙어 결코 뒤지지 않았던 것도 오산리 현장에 나부낀 신미주 아파트 브랜드 홍보효과가 크게 보탬이 됐다. 택지지구 땅이 아니고는 자체사업 부지를 마련하는데만 2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 땅을 살 때 한꺼번에 사들여야지, 시간을 끌다 보면 같은 지역 땅이라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만약 건설업체가 땅을 사들인다는 소문이 나면 지주들이 막무가내식의 버티기 작전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풍성주택은 주택사업의 원자재인 땅을 사는데 있어 모두가 전문가이다. ●차별화된 설계가 대박신화 불러 왔다 땅을 사고 나면 자체 직원들로 구성된 1차 설계팀이 부산해진다. 상품을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고민하는 동시에 유행하는 아파트 모델을 정리하고 다른 업체 모델하우스에 나가 ‘커닝’도 한다. 설계 방향이 서면 설계사무소와 함께 본격적인 상품 만들기에 나선다. 회사와 설계사무소의 아이디어를 종합, 교감을 구한 뒤 최종 평면을 결정한다. 고 회장은 “아파트 평면 설계는 소비자 욕구와 편리함을 우선해야 한다.”면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지 못해 완성된 설계를 뜯어 고친 것이 수십 번은 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설계비를 아끼지 않는 회사로 잘 알려졌다. 지난 3월 동탄신도시에 분양한 풍성 신미주아파트는 생활하기 편리하고 짜임새 있는 공간 구조로 모델하우스 방문객들을 홀딱 반하게 했다. 인테리어도 최고 수준급이다. 특히 소비자들이 여러 곳의 모델하우스를 둘러보기 때문에 금방 인테리어 차별화를 확인할 수 있다. 소문이 퍼져 이제는 동종 업체에서 인테리어 설계를 베껴 가기도 한다고 고 회장은 자랑한다. ●친환경 아파트로 승부건다 요즘은 소비자들의 아파트 선택 결정과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건강이다. 풍성주택이 앞으로 짓는 모든 사업에 ‘웰빙 아파트’를 접목하기로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동탄 신미주아파트의 경우 단지 앞 중앙공원 조망권을 최대한 살렸다. 전방 500m까지 센트럴파크를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아파트 단지에는 자동차가 없도록 설계했다. 대신 그 자리를 공원과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확보했다. 단지 녹지율이 무려 52.7%에 이른다.1층은 필로티와 개인정원이 조성된다. 동(棟)간 거리가 최대 68m에 이른다. 빼곡한 아파트라는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서다. 실내는 더욱 꼼꼼하게 설계한다. 층고를 기존 아파트보다 10∼58㎝ 높여 쾌적성을 살리고, 새 집 증후군을 없애기 위해 환경친화적인 자재를 사용한다. 습기를 빨아들이는 제오라이트 자연석 시공, 유해가스를 실외로 배출하는 인공지능 공기정화시스템 설치 등 웰빙아파트 기능을 살리도록 배려했다. 결국 수요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청약·계약 100%를 기록했다. ●현장을 지켜라 동탄신도시 아파트 분양 현장.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뒤섞여 아파트를 분양하는 자리였다. 마치 아파트 전시장과 흡사했다. 이 가운데 풍성주택 모델하우스도 끼여 있었다. 브랜드가 잘 알려진 대기업 모델하우스와 나란히 설치됐다. 그동안 여러 현장에서 아파트를 분양, 성공했지만 이번은 사정이 달랐다. 전반적인 주택경기 침체에 소비자들이 판교 신도시를 노리고 청약을 꺼릴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사실 몇몇 대기업조차 분양을 미룰 정도로 ‘시계’는 흐렸다. 하지만 풍성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장을 고 회장이 직접 지휘했다. 모델하우스를 찾은 주부들을 안내하고 평면을 설명했다. 모델하우스에서 소비자들에게 자사 아파트를 설명하는 그의 모습이 세련됨이나 유창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진실이 배어 있었다. 건설현장을 찾아 근로자들을 격려하고 안전을 살피는 일이 그에게는 일상 생활이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고 회장은 누구 전남 신안군 도초면 섬동네에서 태어나 20년 동안 주택건설 한 우물만 파온 주택전문업체 최고경영자.67세. 욕심을 내지 않는 사업가로 유명하다. 정작 자신은 20년이 넘은 서울 금천구 시흥동 관악산 아래 단독주택에서 산다. 쥐들이 달음박질하면서 돌아다닐 정도로 낡은 집이다. 얼마전 수리했다. 이사를 못하는 이유는 살고 있는 집이 정이 들기도 했지만 워낙 등산을 좋아해 산 아래에 그대로 눌러 살고 있다. 하루 2시간씩 꼭 등산을 한다. 목사를 꿈꾸고 감리교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을 정도로 신앙심이 돈독하다.‘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도를 밟아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누구와 대화하든지 겸손 그 자체다. 고 회장의 속마음을 모르는 사람은 그가 줏대없다고 흉을 보기도 하지만 사실은 외유내강형이다. 지난해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장을 맡은 뒤 주택산업 발전에 관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6000여 회원사를 아우르며 이끌고 있다. 고영성 사장이 아들이다. 경영학을 전공했다. 경영 수업을 쌓은 뒤 고 회장의 사업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며느리는 디자인을 전공한 재원. 이 회사 설계·디자인팀에서 아파트 상품 개발에 관여하고 있다. ■ 풍성주택은 어떤 기업 지난 1986년에 세워진 주택전문업체. 첫 사업으로 경기도 군포에서 90가구를 지어 팔았다. 처음에는 설움도 많았다. 중소업체들에 주택사업 면허를 내주지 않아 대기업 면허를 빌려 사업을 했다.87년 중소업체들에게도 아파트 시공권이 주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펼쳤다. 지금까지 공급한 아파트가 8000가구에 이른다. 주택산업이 호황일 때도, 다른 업체들이 발빠른 투자로 회사를 키울 때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지난해만 3000여가구를 분양했다. 연간 매출액은 1500억∼2000억원정도다. 사업장은 서울·수원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새로 개발한 ‘신미주’아파트 브랜드도 점차 소비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③-‘사업동지’ GS 허씨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③-‘사업동지’ GS 허씨일가

    지난해 발표된 국내 100대 부호 명단에는 6명의 허씨가 포함됐다. 허창수(57) GS회장이 316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허정수(55) GS네오텍 사장이 2530억원, 허광수(59)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이 1700억원, 허완구(69) 승산회장이 1510억원, 허남각(67) 삼양통상 회장·허진수(52) GS칼텍스 부사장이 각각 1390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가문 가운데 하나인 김해 허씨 문중인 이들은 경남 진주의 만석꾼인 고 허만정씨 자손들이다. 허씨가는 지난 세월 재계에서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올해 LG에서 분리, 재계 7위 규모의 GS그룹을 출범시키며 재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GS그룹은 삼양통상, 승산, 코스모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친족 회사들을 계열로 편입시키며 무려 5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 발표기준 자산규모는 18조 7200억원으로 한화(16조 2200억원), 두산(9조 7300억원) 등 전통을 자랑하는 그룹들을 압도할 정도였다. ●허씨의 핵, 허준구 일가 수백년간 이어졌던 구씨와 허씨의 관계를 ‘인척’에서 동업관계로 바꾼 사람은 고 허준구 회장이다.1946년 초 고 구인회 LG 창업회장 장인(허만식씨)의 재종(6촌)인 고 허만정씨가 3남인 준구(작고)씨의 ‘경영수업’을 부탁하면서 사업자금을 내놓은 것이다. 구 회장은 귀족적인 용모의 일본 간토중학교(5년제) 출신 사돈을 반갑게 맞이했다고 한다. 당시 허만정씨가 내놓은 자금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허씨가는 이후에도 고향마을(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의 땅을 처분한 돈으로 계속 출자를 했다. 이른바 해방정국의 ‘벤처캐피털’인 셈인데 허씨의 투자는 59년 만에 18조원이 넘는 자산으로 돌아왔으니 ‘대박’이 터졌다고 볼 수 있다. 허준구 회장은 당시 가내수공업 수준을 면치 못하던 락희화학의 영업담당 이사로 발을 디뎠는데 당시 공장에서 고생하던 구자경 이사를 부산 시내로 불러내 술을 사 주며 ‘위로’하기도 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내가 ‘비어홀’이라는 곳을 처음 가 본 것은 준구씨 덕분”이라고 회고했다. 허 회장은 반도상사(현 LG상사)·금성사 상무를 거쳐 62년 금성사 부사장으로 승진했다.68년 반도상사 사장을 시작으로 71∼82년 금성전선(현 LS전선) 사장,84∼95년 금성전선 회장 등을 지내며 LG그룹의 버팀목이 됐다. 구인회 회장은 68년 그룹체제를 출범시키며 허 회장에게 초대 기획조정실장을 맡길 정도로 무한한 애정을 보였다.69년 락희화학이 민간기업 최초로 기업공개를 실시한 것도 당시 기조실장이었던 허 회장의 ‘숨은 공로’다. 77년 하루 480㎜의 폭우가 쏟아져 금성전선 안양공장이 2m 가까이 침수됐을 때 허 회장은 예비군복에 장화를 신고 물속을 헤치고 다니며 공장 복구를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밤낮없이 꼬박 두달동안 계속된 복구작업끝에 안양공장은 주변 공장 중에서 가장 빨리 재가동에 들어갈 수 있었다. 2002년 7월29일 허 회장이 세상을 뜨자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회장 등 구씨들은 ‘5일장’ 내내 자리를 지키며 ‘사돈이자 동지’였던 허 회장의 타계를 안타까워했다. 허 회장은 구인회 회장의 첫째 동생인 고 구철회씨 장녀 위숙(77)씨와의 사이에서 5명(창수·정수·진수·명수·태수)의 아들을 뒀는데 모두 고려대 동문인 데다 대부분 해외유학파 출신이다. 특히 창수·정수·진수씨는 학과(경영학과)까지 똑같다. ●항상 공부하는 허창수 회장 장남인 허창수 회장은 그룹 회장을 맡으면서 지주회사인 GS홀딩스와 GS건설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경남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허 회장은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경영대학원(MBA)을 마친 77년 그룹 기조실 인사과장으로 입사했다.79년 럭키금성상사 해외기획실 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홍콩지사, 도쿄지사 등 해외근무를 오래하며 영어와 일어 실력을 쌓았다.88년 럭키금성상사 전무로 승진한 직후인 89년에는 LG화학 부사장을 지냈고 92년부터는 LG산전(현 LS산전) 부사장을 맡았다. 95년 구본무 회장이 3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아버지가 맡고 있던 LG전선 회장을 이어받았고 2002년부터는 LG건설(현 GS건설)을 지휘하며 분가를 준비해왔다. 허 회장은 첨단제품과 해외정보에 관심이 많은데 지금도 월스트리트저널, 비즈니스위크 등 해외 경제전문지들을 빼놓지 않고 보고 있다.2002년 LG건설 회장을 맡으면서 ‘건설부흥’,‘주간 다이아몬드’ 등 일본의 경제잡지에 나온 일본 건설회사의 현황 기사를 번역해 임직원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미국 건설산업 왜 강한가?’,‘영국 건설산업의 혁신전략과 성공사례’ 등을 필독서로 권유했다. 허 회장은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으로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전날 읽은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헬스장에서 1시간 정도 조깅을 한다. 허 회장은 조깅, 등산 등으로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운동량이 부족한 임직원들을 위해 ‘만보기’를 직접 사줄 정도로 자상한 면모도 갖고 있다. 골프는 80대 중반 실력이지만 라운딩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다. 주량은 양주 반병 가량으로 약하지는 않지만 맥주를 마시며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늘 구본무 회장 한발 뒤에 섰던 허 회장은 소탈하고 겸손한 면모를 갖고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타워에서 지하철 한 코스 떨어진 강남역 정도는 수행비서도 없이 걸어서 다닌다. 비서팀도 따로 없다. 탁월한 외국어 실력을 지닌 데다 젊은 직원들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첨단기기들에 관심이 많은 허 회장의 향후 행보는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허 회장은 지난 3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당대에서는 LG와 겹치는 사업에 진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지만 ‘슈퍼루키’ GS그룹의 펄펄 끓는 에너지가 어느 쪽에서 터져나올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허 회장은 고 이철승 전 상공부 차관의 딸인 부인 이주영(53)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아버지의 모교인 미국 세인트루이스대를 나온 아들 윤홍(26)씨는 지난 2002년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에 입사, 영업전략팀·경영분석팀 등을 거쳐 올 초 아버지가 회장으로 있는 GS건설 경영관리팀 대리로 입사했다. 구씨와 마찬가지로 허씨 역시 ‘장자승계’의 원칙을 따르고 있으므로 먼 훗날에는 윤홍씨가 허씨가의 대표로 그룹 회장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윤홍씨는 조만간 누나(윤영·29)가 공부중인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MBA 코스를 밟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GS경영을 책임지는 동생들 허창수 회장의 첫째 동생 허정수(55)씨는 GS네오텍(전 LG기공) 지분 100%를 보유하며 사장을 맡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인 허 사장은 90년대 LG전자에서 상무로 일하다 96년 LG기공으로 자리를 옮겨 독립했다. 당시 LG는 처음으로 계열분리를 시도하면서 구씨와 허씨 한 명씩을 분가시키기로 했는데 구씨 쪽에서는 고 구정회씨 아들인 구형우씨가 부민상호저축은행을 갖고 독립했고 허씨쪽 대표로 허 회장이 LG기공을 맡았다. 교환기 설치 및 부가통신공사, 유무선 통신케이블 및 전송공사, 전기전력 및 산업 플랜트 공사, 정보통신 및 인터넷사업을 영위중인 GS네오텍은 지난해 수주 2700억원에 매출 2250억원, 당기순이익 123억원을 냈다. 최근에는 반도체,LCD 공장에 필수적인 ‘클린룸’ 사업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부인 한영숙(51)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장남 철홍(26)씨는 GS홀딩스 지분 1.26%를 갖고 있는데 ‘홍’자 돌림 3세 가운데 가장 많다. 허진수(52) GS칼텍스 부사장은 고려대 경영학과와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을 마치고 주로 호남정유(현 GS칼텍스)에서 일했다.2000년에는 LG전자 중국지사 부사장을 거친 뒤 2001년부터 GS칼텍스 경영전략본부장·경영혁신본부장을 거쳐 지난해부터 생산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2003년에는 발전회사인 LG에너지 대표이사를 맡았지만 GS가 LG에서 분리되면서 자연스럽게 대표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LG는 LG에너지 지분을 GS에 매각하는 것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허 부사장은 부인 이영아(47)씨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허명수(50) GS건설 부사장은 경복고와 고려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LG전자 청소기공장장, 영국 뉴캐슬 법인장 등을 거쳐 2002년 허창수 회장과 함께 GS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재경본부장으로 회사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운동에 남다른 소질을 보여 고려대 ‘역도부’에서 활동했다. 허 부사장은 노재현 전 국방부장관의 딸인 부인 노경선(45)씨와의 사이에 2남을 뒀다. 노 전 국방장관은 ‘12·12사태’때 국방장관으로 말 못할 고초를 겪은 뒤 한국종합화학공업 사장, 한국비료공업협회 회장,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등을 지냈다. 허태수(48) GS홈쇼핑 부사장은 중앙고와 고려대 법대를 거쳐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MBA 코스를 밟았다. 이후 콘티넨탈은행, 어빙은행 등 금융권 경력을 살려 88년 LG증권 국제조사팀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런던법인 상무보 등 2002년까지 LG증권에서 일하다 LG홈쇼핑 전략기획부문 상무로 자리를 옮겼고 2003년 말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허 부사장은 중국 현지 법인인 ‘충칭GS쇼핑’ 설립을 주도하는 등 중국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허 부사장은 바로 위 형인 허명수 부사장과 함께 골프실력이 재계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싱글’ 수준을 넘어 ‘이븐’이나 ‘언더파’를 칠 정도로 프로 못지않다. 부인 이지원(43)씨는 이한동(71) 전 국무총리의 장녀. 한때 대권 후보로까지 나섰던 이 전 총리는 현재 법무법인 남명의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는데 아들 이용모(41)씨는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장남가의 화려한 혼맥 고 허만정씨의 장남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회장은 고 이병철 회장, 고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와 함께 삼성을 공동 창업했다. 보성전문 법학과 출신의 허 회장은 제일제당(현 CJ) 전무, 삼성물산 사장을 지낼 정도로 삼성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다 57년 삼양통상을 설립, 독립했다. 야구공·글러브와 나이키 신발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하는 삼양통상은 지난해 2121억원의 매출에 97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삼양통상은 또 수입담배, 골프용품, 윤활유 판매 등을 맡고 있는 삼양인터내셔널과 보헌개발, 경원건설 등 건설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허 회장은 권투협회장, 대한체육회장, 프로골프협회장, 골프장협회장, 아시아태평양아마골프회 회장 등 체육계와 남다른 인연을 쌓았는데 생전에 체육훈장 기린장을 받았다. 삼양통상은 허 회장이 99년 사망한 뒤 장남인 허남각(67) 회장이 이끌고 있다. 허 회장의 부인은 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를 지낸 구자영(68)씨다. 허 회장은 보성고와 서울대 상대,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을 마친 뒤 63년 삼양통상 시카고 지사장으로 경영에 뛰어들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시아태권도연맹회장을 지낼 정도로 스포츠와 인연이 깊다. 허 회장은 GS그룹의 주요 주주이자 ‘장손’ 자격으로 올 초 허창수 회장의 전남 여수 GS칼텍스 사업장 방문을 동행해 주목을 받았다. 허 회장의 장녀 정윤(34)씨는 정문원 전 강원산업 회장 아들 대호(37)씨와 결혼했고 아들 준홍(30)씨는 올해 GS칼텍스에 입사했다. 이로써 현대차 그룹 정몽구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씨와 사돈으로 연결된다. 의선씨가 정문원 회장의 조카사위가 되기 때문이다. 장녀 허영자(65)씨는 벽산그룹 김희철(68)회장과 결혼, 김성식(38) 벽산 사장, 김찬식(36) 벽산 상무 등 3형제를 낳았다. 차남 허동수(62) GS칼텍스 회장은 보성고와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화학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대표적인 ‘오너경영인’이다. 허 회장은 미국 셰브론 리서치사의 연구원을 거쳐 73년 호남정유(현 GS칼텍스)로 입사,33년째 ‘오일맨’의 길을 걷고 있다. 국내 최초로 휘발유에 브랜드(테크론)를 도입하는가 하면 전 세계 정유업계 최초로 ‘6시그마’를 도입해 혁신을 추구했다. 도시가스, 전력,LNG 등 사업다각화와 대규모 시설투자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허 회장은 지난 2000년 3월 국내 처음으로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KBCSD)를 설립,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아마 6단으로 바둑에 남다른 취미를 갖고 있는데 2001년부터 한국기원(총재 한화갑 민주당 대표) 이사장을 맡고 있다.GS칼텍스배 바둑대회를 신설해 바둑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젊은 시절에는 태권도 선수로도 활동했다. 김선집(86) 전 동양물산 회장의 장녀인 부인 김자경(60)씨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뒀는데 막내딸 지영(25)씨는 이병무(64) 아세아시멘트 회장의 차남 인범(34)씨와 결혼했다. 3남 허광수(59)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은 경기고와 고려대 상대를 거쳐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을 마쳤다. 삼양통상과 나이키의 합작사였던 한국나이키 대표이사를 맡기도 했다. 아시아태평양 골프연맹 부회장, 영국 로열앤드에인션트골프클럽 정회원으로 골프와 인연이 깊다. 허 회장은 사촌 동생(명수·태수)들에 못지않은 골프실력을 자랑한다. 고려대 아이스하키 대표선수로 활약할 정도로 ‘운동신경’이 남다르다. 부인은 고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딸인 김영자(55)씨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부인 김영명씨의 언니다. 허 회장은 지난 2000년 외동딸 유정(31)씨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아들 준오(31)씨와 결혼시켜 또 한번 화제를 뿌렸다. 삼양통상은 지난해 류근일(67) 전 조선일보 주필을 사외이사로 선임, 조선일보와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 허남각·동수·광수 3형제는 GS타워 인근에 ‘삼정빌딩’을 갖고 있는데 삼양통상 본사가 입주해 있다. 삼정은 3형제가 돈을 모아 세웠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3형제는 또 삼양통상 지분 17%,4.5%,3.1%를 나눠 갖고 있다. 허남각 회장의 아들 준홍(34)씨, 허동수 회장의 아들 세홍(36)·자홍(33)씨, 허광수 회장의 아들 서홍(28)씨도 각각 11%,1.7%,0.8%,1.7%를 갖고 있다. 삼양인터내셔널의 경우 준홍·세홍·자홍·서홍씨가 각각 37%,33%,11%,7.5%를 갖고 있어 사실상 2세들이 소유하고 있다. 차녀 허영숙(53)씨의 남편은 유명한 소설가인 윤후명(59·본명 윤상규) 한국문학원 원장이다. 윤씨는 연세대 철학과 재학중이던 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현대문학상(여우사냥), 이상문학상(하얀배), 이수문학상(나비의 전설) 등을 수상했다. 연세대 강사와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한국소설대학 학장도 역임했다. ●LG의 창업공신 허학구·신구가 고 허만정씨는 8형제 가운데 허준구씨의 경영수업을 사돈에게 부탁했는데 이후 준구씨의 형인 고 허학구씨와 동생 허신구(76) GS리테일 명예회장도 LG경영에 뛰어들었다. 학구씨는 고향마을을 지키다 51년 플라스틱 사업 진출을 준비하던 락희화학에 들어갔다. 부산 범일동에 공장 부지를 마련하고 사업진출을 서두르던 구인회 LG 창업회장은 학구씨를 불러들여 아들 자경씨와 함께 공장업무를 맡겼다. 이후 각각 전무와 상무로 승진한 뒤에도 둘은 공장이 완공돼 빗, 칫솔 등을 생산하기 시작하자 군용 슬리핑백에서 잠을 자며 현장 노동자처럼 일했다고 한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당시 함께 고생한 학구씨와 그의 자형인 이연두씨 등 ‘지킴이 삼총사’가 일은 물론 술로도 호흡이 잘 맞았다고 회상했다. 학구씨는 6척 장신으로 경기고보 시절부터 농구선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부친(허만정)이 공부해야 한다며 진주고보로 전학을 시켰다. 하지만 진주고보에서도 농구를 시키려고 하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야 했다고 한다. 학구씨는 LG전선 부사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1970년 구자경 회장이 2대 회장으로 취임하자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학구씨는 최필선(89)씨와의 사이에 1남3녀를 낳았는데 장남 전수(61)씨는 코스닥 등록기업인 새로닉스 회장을 맡고 있다. 새로닉스는 고 허학구 회장이 68년 설립한 ‘정화금속’이 이름을 바꾼 회사로 인쇄회로기판(PCB), 섬유강화플라스틱(FRP) 등을 생산하다 최근에는 LCD백라이트 부품인 도광판과 브라운관 전자총 부품 등 디스플레이 부품 사업으로 주력사업을 변경했다. 허 회장은 71년 미국 센트럴 미시간대를 졸업하고 74년 정화금속 총무이사로 입사,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았다.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은 부산대 상대를 나와 해운회사인 ‘조선통운’에 근무하던 시절 사돈어른인 구인회 창업회장의 부름을 받고 락희화학의 서울사무소 일을 맡았다. 허 명예회장은 처음에는 장사 경험이 없다며 사돈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자네 뒷조사는 다했다. 그만하면 일 하겠더라.”며 서울행 기차표를 쥐어주는 사돈의 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한다. 허 명예회장은 이후 동남아 출장에서 ‘합성세제’ 아이디어를 얻어 럭키 ‘하이타이’를 탄생시키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금성사 사장, 럭키 사장, 그룹 부회장, 럭키석유화학 회장을 지내다 95년 구본무 회장 취임과 함께 일선에서 물러났다. 허 명예회장은 윤봉식(74)씨와 2남2녀를 뒀다. 장남 경수(48)씨는 코스닥 등록기업인 코스모화학 등을 주력으로 한 ‘코스모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코스모그룹은 코스모정밀화학, 코스모앤컴퍼니, 코스모앤홀딩스, 코스모양행, 코스모아이넷, 코스모레저, 드림스포츠 등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코스모화학은 코스모산업이 2003년 이산화티타늄 독점공급업체인 ‘한국지탄공업’을 인수하면서 이름을 바꾼 회사다. 허 회장은 LG전자에서 이사로 잠시 일하다 87년 코스모산업 설립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동생인 허연수(44)씨는 GS리테일 상무로 삼촌인 허승조(55) 사장을 보필하고 있다. 보성고와 고려대 전기공학과를 거쳐 87년 LG에 입사한 허 상무는 LG상사 싱가포르법인장을 끝으로 상사를 떠나 2002년부터 LG유통(GS리테일)에서 일해 왔다. ●고향이름을 딴 승산가 허완구(69) 승산 회장은 미국 페이퍼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잠시 LG에서 일했지만 69년 ‘대왕육운’이라는 물류회사를 차려 일찌감치 독립했다. 허 회장은 이미 LG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형님들이 너무 많아 회사를 나왔다고 한다. 대왕육운은 이후 구씨와 허씨의 고향 이름을 따 승산으로 이름을 바꿨다. 허 회장은 한국올림픽위원회(KOC) 상임위원, 부위원장과 민속씨름협회장 등을 맡을 정도로 스포츠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아버지 허만정씨가 1925년에 설립한 진주여고(일신여고)에 100억원을 쾌척, 교사를 새로 짓는 등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96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장남 허용수(37) 승산 사장은 보성고와 미국 조지타운대를 마치고 뉴욕 및 홍콩 CS 퍼스트 보스턴 투자증권에서 일했다.98∼99년에는 국민은행 사외이사로도 활동했다. LG그룹의 육상 운송을 담당하는 승산은 허 사장이 58.55%, 여동생인 허인영(33) 승산레저 이사가 18.48%, 허완구 회장이 18.34%, 허 회장 부인 김영자(66)씨가 4.63%를 갖고 있다. 김영자씨는 ‘추일서정’,‘와사등’ 등으로 유명한 시인이자 사업가였던 고 김광균씨의 딸이다.‘매듭공예가’인 김은영(63) 녹미미술문화협회 이사장이 동생이다. LG는 친인척 소유의 회사에 물류업무를 맡기고 있는데 수출 관련 물류는 고 구정회씨 둘째 아들인 고 구자헌씨가 운영하던 범한종합물류가 담당한다. 범한여행을 자회사로 갖고 있는 범한물류는 구자헌씨의 미망인인 조금숙(55)씨가 54%, 아들 구본호씨가 46%의 지분을 갖고 있다. 승산은 물류회사인 에스엘에스·여수화물, 골프장·호텔사업을 하는 승산레저 등을 계열사로 갖고 있다. 국내보다 미국내 계열사인 철강회사 파웨스트스틸(Farwest Steel)의 규모가 훨씬 크다. 허 회장이 91년 인수한 파웨스트스틸은 지난해 2593억원의 매출에 183억원의 순이익을 거둬 모회사인 승산(매출 867억원, 순이익 183억원)보다 덩치가 크다. ●‘젊은 삼촌’ 3형제 허승효(61)씨는 조명전문업체인 알토 회장을 맡고 있는데 경남고와 경희대를 졸업하고 형님 회사인 정화금속 이사와 승산의 대표이사를 역임한 뒤 85년부터 알토를 이끌었다. 알토는 아셈타워 정상회의실과 인터컨티넨탈 호텔, 서울역사, 인천공항 여객터미널,GS타워 등의 조명시스템을 설계, 제작했다. 숭례문, 보신각, 비원, 동십자각 등 문화재 조명도 이 회사의 작품이다. 허 회장은 서울시 야간경관 개선 공로로 월드컵유공자, 모범시민상 등을 받았다. 그는 한국조명디자이너협의회 회장, 한국산업디자인협회 이사, 한국전기설비조명학회 이사 등을 맡을 정도로 조명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지난해 매출 311억원, 순이익 20억원을 낸 알토는 허 회장이 36%, 아들 영수(36)·윤수(32)씨가 각각 15%, 동생인 허승표(59) 인텍웨이브 회장, 허승조(55) GS리테일 사장이 각각 3.8%의 지분을 갖고 있는 ‘가족기업’이다. 영수씨는 현재 GS리테일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허승표(59) 인텍웨이브 회장은 기업인으로뿐만 아니라 ‘축구인’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 보성고와 연세대 상대, 서울은행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했고 74년 한국인 최초로 영국 프로축구 3부 리그에서 뛰기도 했다. 허 회장은 78∼90년 형님 회사인 승산에서 근무한 뒤 90년 방송 프로그램 제작, 미디어 유통,CF편집 등을 담당하는 미디아트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미디아트는 허 회장과 부인 조희숙(56)씨, 딸 서정(29), 아들 준수(28)씨가 지분 100%를 갖고 있다. 허 회장은 2000년에는 이동통신용 전력 증폭기, 유무선 통신용 부품 및 이동통신용 중계기 등을 제조하는 ‘인텍웨이브’를 설립,IT업종으로 발을 넓혔다. 인텍웨이브는 LG전자 등을 주 거래처로 지난해 1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허 회장은 90∼92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지냈고 97년에는 축구협회장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에도 회장 선거 출마설이 나돌았지만 올 초 한국축구연구소 이사장을 맡는 선에서 정리했다. 축구계의 ‘야당’으로 불리는 연구소는 이용수, 신문선씨 등이 책임연구원을 맡고 있다. 허승조(55) GS리테일 사장은 서울고와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마치고 78년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했다. 이후 패션본부장, 유통사업부문장, 마트부문장 등을 역임하다 2000년 LG백화점 사장으로 유통경영을 시작했다.2002년 LG백화점,LG상사 할인점 부문,LG유통이 LG유통으로 통합되자 초대 사장을 맡아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허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늘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10년 뒤의 장기 비전을 갖고 대비하라.”고 주문하고 ‘페어플레이’를 강조한다고 한다. 허 사장은 지난해 말 세계적인 헬스·미용 전문기업인 ‘왓슨’과 합작으로 ‘GS왓슨스’를 설립, 지난 3월 홍익대에 1호점을 내고 지난 2월에는 코오롱마트를 인수하는 등 신규사업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태광그룹 창업주 고 이임룡 회장의 장녀인 부인 이경훈(51)씨와 2녀를 두고 있다. 허 사장의 처가는 장상준 전 동국제강 회장, 양택식 전 서울시장, 한광호 한국베링거인겔하임 명예회장, 신선호(롯데 신격호 회장 셋째 동생) 일본 산사스식품 사장 등과 혼사를 맺었다. ukelvin@seoul.co.kr ■ 허씨의 남다른 축구사랑 GS그룹은 분리되면서 LG의 프로야구·프로축구·프로농구 등 스포츠 가운데 축구를 갖고 나왔다.‘안양LG’는 지난해 3월 ‘FC서울’로 이름을 바꿔 서울 입성에 성공한 뒤 거물 신인 박주영을 잡으면서 일약 명문구단으로 떠올랐다. FC서울의 눈부신 성장에는 허창수 회장 등 허씨 일가의 남다른 축구사랑이 밑거름이 됐다. 98년부터 LG축구단 구단주를 맡은 허 회장은 축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데 해외출장 중에도 FC서울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인터넷을 통해 경기상황을 직접 확인할 정도다. 뿐만 아니라 경기를 녹화해 나중에라도 꼭 챙겨 본다고 한다. FC서울은 박주영의 고교(청구고)시절인 2002년부터 영입에 공을 들였다. 비록 박주영이 고려대 진학으로 진로를 정하면서 영입에 실패했지만 이후에도 끈질기게 박주영측과 고대를 설득, 마침내 대어를 품에 안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허 회장이 모교인 고대에 7억원짜리 잔디구장을 기증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GS측은 “그런 사실은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허 회장 5형제가 모두 고대 출신일 정도로 고대와 깊은 인연이 어떤 식으로든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박주영의 유니폼에 광고를 하고 있는 GS건설은 박주영 신드롬으로 광고효과만 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GS리테일이 실시한 ‘박주영 경기 보러 가자.’라는 이벤트에는 3만 6000여명이 응모하는 대성황을 이뤘다.GS는 지난 5월10일 열린 ‘GS출범 이벤트’ 추첨자로 박주영을 내세우는 등 박주영을 그룹의 ‘얼굴’로 십분 활용하고 있다. 허 회장의 삼촌으로 연세대, 서울은행, 영국 아스날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한 허승표 인텍웨이브 회장은 축구계의 대부로 통한다. 그는 97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직에 도전한 데 이어 올 초 한국축구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축구계 개혁에 힘쓰고 있는데 경쟁 상대인 정몽준 회장이 조카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동서라는 점이 이채롭다. 사돈간의 ‘정리’도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막지 못한 것이다. 허씨들은 축구 외에도 아이스하키, 골프, 역도, 태권도 등 다양한 스포츠에 재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GS 관계자는 “허씨들이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데다 집안에 여유가 있어 일찍부터 스포츠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고 말했다. 허씨 3세 남자들 가운데는 아마추어 수준 이상의 축구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고 여자들도 열성 축구팬이 많다. ukelvin@seoul.co.kr ■ 계열사의 핵심인맥 GS그룹은 숫자에 관한 감각이 탁월하다는 오너 허씨 일가에 이어 각 계열사 CEO도 재무통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18조원이 넘는 그룹 자산을 관리, 운용하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야 하는 서경석(58) GS홀딩스 사장은 부산 출생으로 경남고를 졸업했다. 서울대법대 4학년이던 70년 행정고시 9회에 합격, 국세청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재무부 세제국, 국세심판소 조정실장, 간접세과장, 소득세제과장, 조세정책과장, 상임심판관, 주 일본 대사관 재무관 등을 역임하고 91년 LG그룹 회장실 재경 상임고문으로 옮겼다. 서 사장은 공직에서 쌓은 재무 경력을 바탕으로 LG에서도 회장실 재무팀장, 전략개발사업단 운영본부장,LG투자신탁운용 사장,LG종금 사장, 극동도시가스 사장,LG투자증권 사장 등을 거쳤다. 허창수 회장이 서 사장을 GS그룹으로 영입한 것도 그의 회계·재무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강말길(62) GS홈쇼핑 부회장 역시 재무통이다. 부산대 상대 출신으로 공인회계사이기도 한 강 부회장은 금성통신 재경본부장, 관리담당 이사를 거쳐 회장실의 관리담당 상무를 역임했다.89년 LG유통(GS리테일) 전무로 부임, 유통 전문가의 길로 들어섰고 95년 LG유통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 3년만에 만년 적자이던 편의점 사업을 흑자로 돌려 놓은 뒤 지난해 LG홈쇼핑으로 옮겼다. 김갑렬(57) GS건설 사장은 허창수 회장의 경남고, 고려대 경영학과 동기동창으로 74년 LG화학 입사 후 LG상사 등을 거쳐 93년부터 96년까지 LG건설 재경 담당을 역임했다. 이후 LG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과 LG화학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치며 대표적 재무 전문가로 부상했다.2002년 허 회장과 함께 LG건설로 옮겨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김 사장은 취임 당시 “2010년까지 양과 질에서 국내 1위 건설회사로 만들겠다.”던 약속대로 2002년 3조 6000억원이던 수주액을 2003년 5조원, 지난해 6조원으로 키워냈고 올해 6조 5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완경(51) GS스포츠 대표이사 부사장도 선린상고와 고대 경영학과를 거쳐 79년 LG그룹 기획조정실에 입사한 이래 줄곧 재경업무를 담당해 왔다.LG투자증권 부사장으로 서경석 사장과 함께 ‘LG증권 전성시대’를 연 주인공으로 GS홀딩스 재무팀장을 겸임하고 있다. 심재혁(58) 한무개발 사장은 연세대 상대, 미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출신으로 LG그룹 홍보팀장을 거쳤다. 인터컨티넨탈을 국내 최고 수준 호텔로 키워내 재계의 대표적인 ‘홍보맨 CEO’로 꼽힌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강혜정 “솔직·발칙한 연애 튀는 저랑 통했죠”

    강혜정 “솔직·발칙한 연애 튀는 저랑 통했죠”

    독특한 느낌의 친구다. 묘한 매력이랄까. 딱히 한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여러가지 기운이 이 사람 안에 들어있다. 하긴 본인 스스로도 “내 안에는 많은 기분과 감정이 있지만, 극단적으로 말해 하나는 ‘자뻑’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학’”이라고 말한다. 그녀 말마따나 ‘자뻑’(자기도취)은 요즘 젊은층이 즐겨 쓰는 말 ‘오바질’로,‘자학’은 ‘겸손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강혜정(23). 영화 ‘올드보이’의 미도역으로 친숙한 그녀를 만났다. 배우로서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그녀가 궁금해 인터뷰를 했는데, 기대를 충족시켰다. 약간은 정리가 안된 듯 난해하게 느껴졌지만, 꾸밈없고 거침없는 말투에서 인터뷰용의 의례적인 답변에선 찾아보기 힘든 솔직담백함이 묻어났다. “그냥 끌리는 대로 골라요. 스크린에 비춰지는 제 모습이 ‘세다.’‘어렵다.’고 하시는데, 캐릭터보다는 작품이 지닌 색깔이 그래서 그런거죠.” 납중독자(나비), 친아버지와 근친상간(올드보이), 손가락이 잘리는 피아니스트(쓰리-몬스터)…. 그녀의 연기 궤적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떻게 골라도 이런 비정상적인 캐릭터만 고를까?’라는 의문이 든다. 나름의 캐릭터 선택 기준이 있냐고 묻자,“작품을 먼저 보고, 캐릭터는 그 다음”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이번엔 비교적 정상적이지 않냐?”며 되받는다. 요즘 영화 ‘남극일기’와 ‘웰컴투 동막골’에 겹치기 출연하는 등 주가가 급등하고 있는 그녀는 새달 10일 개봉하는 영화 ‘연애의 목적’으로 첫 주연을 맡았다. 극중 이름은 최 홍. 노골적으로 집적대는 연하의 고교 영어교사 이유림(박해일)의 ‘작업’에 골치를 썩다 결국 사랑하게 되는 미술 교생 역을 연기했다. 최 홍은 유림에게 “나랑 자고 싶어요?그러면 50만원만 내요.”라고 말하는 당돌한 캐릭터다. “여지껏 사랑 이야기에만 출연했다.”는 그녀에게 작품 선택 이유를 물었다.“연애 영화에 상투적으로 들어가는 남녀 간의 ‘친절함’(그녀는 이것이 있는 연애 영화를 보면 화가 난다고 했다.)이 보이지 않더라구요. 솔직하면서 본능적, 직설적이었죠. 그러면서도 진정성이 있었어요. 한마디로 이기적인 영화라서 좋았어요.” 작품속 연기에 대해 스스로 점수를 매겨달라고 물으니, 이내 “형편 없지요.”라며 겸손해 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연기했고, 나 스스로 기특하고 만족스러웠다.”며 쑥스러운 표정과 함께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감초 역할없이 두 남녀 주인공만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품. 그녀는 “시사회를 통해 완성된 영화를 봤는데,90% 이상 내가 나와 기분이 얼얼했다.”고 말했다. 고교 2학년때 SBS 드라마 ‘은실이’에서 은실이의 의붓 언니 역으로 출연했던 그녀는 이후 3년간 공백기를 가졌다. 그러다 스무살때 영화 데뷔작 ‘나비’를 찍으면서 “진짜 영화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단다.“김호정(‘나비’의 주인공) 언니의 모습을 보고 ‘아 저 사람 진짜 배우구나, 저게 진짜 연기구나.’라는 느낌을 받게 됐죠. 굉장한 자극이었어요.” 욕심이 많은 건지, 아니면 지나치게 겸손한 것인지, 그녀는 아직도 ‘영화 배우’라는 말이 낯설단다.“영화 찍었다고 다 영화 배우는 아니에요. 제 자신이 인정할 때까지는 그래요.” 애인인 조승우에 대해 물었다. 이성이 아닌 선배 연기자로서 연기적인 도움을 주느냐고. 그녀는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상대역인 해일이 오빠랑만 연기 이야기를 했다.”면서 “나는 일(연기)을 사적인 공간으로 끌고 들어갈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연애란 “한없이 자유로운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 그러면 그녀만의 ‘연애의 목적’은 무엇일까.“연애에는 목적이 따로 있으면 안되죠. 서로 희로애락을 느끼며 성장해가는 ‘과정’ 자체가 연애의 의미인걸요.”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jawoolim@seoul.co.kr ●‘연애의 목적’은 어떤 영화 영화 ‘연애의 목적’(감독 한재림, 제작 싸이더스 픽쳐스)은 20대 남녀의 솔직담백한 연애담을 다룬 코믹멜로물. 남녀 주인공의 전라 연기 등 파격적인 베드신이 눈에 띄지만,“젖었어요?” “저 지금 섰단 말이에요.”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지만, 우리 같이 자요.” “혹시 마약 하세요?”“5초만 넣고 있을게요.” 등 대사는 더 노골적이다. 여친이 있는 이유림(박해일)과 아픈 사랑의 상처로 남친과의 관계가 소원한 최홍(강혜정)은 한 학교에서 교사와 교생의 관계로 만난다. 이유림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수도 없이 “같이 자고 싶다.”며 홍에게 다가간다. 처음엔 ‘방어적’이던 홍. 서로간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반복되면서 그들은 어느새 ‘연애’에 진입하게 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연애의 목적’이 생겨나면서 그들의 연애는 순탄치 않게 된다.18세 관람가.
  • MK 맏사위 “병원일만 전념할 것”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맏사위인 선두훈(48) 대전 선병원 이사장이 모처럼 그룹의 공식행사에 나타났다. 얼마전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열린 현대차 생산공장 준공식에서다. 영훈의료재단 설립자이자 저명한 정형외과 의사인 고(故) 선호영 박사의 둘째아들인 선 이사장은 부인 정성이씨와 함께 나란히 행사에 참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그룹 행사에 잘 참석하지 않으시던데. -저는 주로 (병원이 있는)대전에 있으니까요(부인 성이씨가 서울 한남동집과 대전집을 오간다). 앨라배마 공장 준공식은 워낙 의미가 큰 행사라 꼭 참석해야겠다 맘 먹었습니다. 장인어른을 도와 그룹 경영에 참여할 생각은 없으신지. -저는 의사인데요, 뭐. 대학교수 하다가 경영에 참여하는 분도 있잖습니까. -저도 나름대로 바빠요(웃음). 병원은 동네 구멍가게 수준이지만 할 일이 많습니다.(선 이사장은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영훈의료재단은 대전 목동의 선병원 외에도 중촌 선병원, 선치과병원, 건강증진센터, 유성 선병원 등을 거느리고 있다.) 부인께서 현대차그룹의 광고회사에 개인 대주주로 참여했는데. -전공은 행정학(이화여대)인데 그 쪽에 관심이 많아요. 이사 직함도 맡으셨던데 대외활동을 적극 밀어주실 의향은. -오랫동안 전업주부에서 갑자기 변화를 주는 거니까…. 아이들 교육문제도 있고 해서 전폭적으로 지원하기는 뭣하지만 그렇다고 (경영 참여를)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광고회사 지분의 자금 출처를 싸고 궁금증이 많은데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영훈의료재단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儒林(353)-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儒林(353)-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제자들이 스승의 운명을 점쳐 보았을 때 나온 겸괘는 ‘간하곤상(艮下坤上)’. 땅(坤)밑에 산(艮)이 있는 괘상이었다. 땅위에 산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땅밑에 산이 있다니 도대체 무슨 뜻일 것인가. 이 괘상에 대해 주역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겸(謙)은 형(亨)이니 군자유종(君子有終)이다.” 이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겸이란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진 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안에 그치고 밖으로 순한 것이 겸의 뜻이다. 산은 지극히 높고 땅은 지극히 낮은 것인데, 이에 높은 것이 굴하여 낮은 아래에 그쳤으니 이는 겸의 상(象)이다. 점치는 자가 이러하면 형통하여 끝이 있으리라. 끝이 있다는 말은 굴하다 뒤에 펴진다는 뜻이다.” ‘군자유종’ 퇴계가 종영하던 날 아침, 제자들이 주역을 통해 스승의 운명을 점쳐 보았을 때 나온 점괘. 문자 그대로 ‘군자에게 끝이 있다.’라는 뜻은 퇴계가 수를 다해 죽는다는 점괘이지만 그 뜻을 풀이해 보면 주자의 말처럼 지극히 높은 산이 지극히 낮은 땅 밑에 있으니 이는 ‘겸의 상’인 것이다. 그 괘상을 풀이하자면 이 점괘는 오히려 유종(有終)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뜻인 것이다. 덕이 있으면서도 있는 체 아니하고 항상 겸손하고 퇴양(退讓)하니 그럴수록 사람들은 도리어 더 존경하고 덕은 더욱 빛나서 크게 형통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이 점괘의 괘상인 것이다. 이 점괘를 정이천(程伊川:1033∼1107)은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정이천은 북송 중기의 유학자로 정주학(程朱學)의 창시자이다. 그는 훗날 퇴계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정이천은 주역에 관한 연구가 깊었고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철학을 수립하여 큰 업적을 남긴 거인이었다. 훗날 그의 철학은 주자에게 계승되어 집대성되었는데, 그는 사람은 이(理) 그 자체이고, 본래 선하지만 기질(氣質)의 성(性)은 실체를 구성하는 청탁에 의해서 선하고 악하게 나뉜다고 하였다. 그래서 학문과 수양이 필요하며 그 방법은 마음의 긴장상태를 정신통일의 경지로까지 유지하는 ‘거경(居敬)’과 사물의 이(理)를 밝히는 ‘궁리(窮理)’라고 하였다.‘거경궁리’를 통하여 이른바 도학자적인 몸가짐과 학문태도를 확립한 정이천의 학설은 남송의 주희에게 계승되어 주자학으로 발전되었는데, 주희가 수용한 것이 대부분 정이천의 학설이므로 주자학을 ‘정주학’이라고도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 정이천은 ‘군자유종’의 점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겸은 형이 있는 도(道)이다. 덕이 있으면서도 있는 체 아니하니 겸이라 이르는 것이다. 사람이 겸손으로 자처(自處)하면 어디를 간 듯 형통하지 않겠는가.‘군자는 유종하리라.’는 말은 이런 뜻이다. 즉 군자는 겸손에 뜻을 두고 이치에 통달하므로 천(天)을 즐기어 경쟁하지 아니하고 안으로 충실하므로 퇴양하여 자랑을 아니하여 겸손함을 편하게 지키어 종신토록 변치 않는다. 그리하여 스스로 낮추면 남이 더 존경하고 스스로 감추면 덕은 더욱 빛나게 드러나니, 이것이 이른바 군자가 끝(終)을 가진다는 뜻인 것이다.”
  • 독도수비대 서기종·정원도씨 국회 선행칭찬상 특별상 수상

    1953년 4월부터 1956년 12월까지 독도에 침입하는 일본 어선 등에 맞서 독도를 지켜낸 순수 민간 조직 ‘독도의용수비대’의 생존자 서기종(76)·정원도(76)씨가 24일 ‘선행칭찬상 특별상’을 받았다. 칭찬상은 국회칭찬포럼이 선행칭찬운동본부와 공동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귀감이 되는 인물을 선정해 시상한다. 최근 일본의 독도 망언 등을 계기로 의용수비대의 봉사 정신이 재부각되면서 서씨 등이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수상식에 앞서 김원기 국회의장의 초청으로 국회를 방문해, 김 의장과 열린우리당 이근식,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 등과 환담도 나눴다. 이 자리에서 김 의장은 “여러분은 위대한 애국자”“민간인 자격으로 독도에 들어가 국토를 지켜낸 사실이 참으로 장하다.”라고 한껏 치켜세웠다. 김 의장은 특히 의용수비대가 1952년 순수 민간인으로 구성됐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한국전쟁 등으로 어수선하던)당시에 자발적으로 조직을 만들어 독도를 지켰던 일 자체가 일본이 얼마나 억지 주장을 하는지 알 수 있다.”라면서 “독도는 틀림없는 우리 땅”이라고 말했다. 김 의장은 특히 “요즘처럼 독도 문제가 나오는 상황에서 여러분의 선각자적인 용기와 뛰어난 희생, 봉사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격찬한 뒤 “독도의용수비대원 33분 가운데 현재 12분이 생존해 있는데, 모든 면에서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국회가 잘 챙기겠다.”라고 강조했다. 국회칭찬포럼 회장인 열린우리당 이근식 의원은 “대원으로 활동하셨던 분 가운데 생존해 계신 나머지 10분은 앞으로 울릉도로 찾아가 만나 뵙고, 그 뜻을 소중히 받들 수 있는 행사를 열겠다.”라고 다짐했다. 서씨 등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독도의용수비대원은 두 차례의 전투로 일본 순시선을 격퇴했고,1953년 8월5일에는 동도 바위 벽에 ‘韓國領(한국령)’이라는 세 글자를 새겨 우리 영토임을 명확하게 한 공로 등을 인정받아 근무공로훈장과 방위포상 등을 받았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논술이 술술] 국화와 칼/루스베네딕트

    올해는 유독 일본과 관련된 문제들이 많이 일어났다.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여전했고, 독도와 역사 교과서 문제가 일본과의 갈등을 더욱 깊게 했다. 돌아보면 우리에게 일본은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임에 틀림없다. 이 때문인지 우리는 일본과 아주 오랫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왔지만, 실제 그들의 역사와 문화의 특징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주 적다. 근대 이전에는 해안을 약탈하던 ‘왜구’의 이미지로만 남아 있다. 근대 이후에는 우리 나라를 강점해 무자비하게 수탈했던 ‘침략자’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현대에는 ‘소니’와 ‘도시바’ 등 다양한 상품들의 이미지로서만 단편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영화 ‘러브레터’나 ‘이웃집 토토로’ 등에서 나타났던 따뜻하고 평화스러운 일본의 이미지와 ‘야스쿠니 신사’와 ‘이종격투기’가 보여주는 뻔뻔스럽고 호전적인 모습을 조화시키기가 쉽지 않다. 일본과 일본인들에 대한 우리의 지극히 피상적이고 낮은 이해는 그들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감정적인 거부감만을 키우며, 문제 해결의 방향을 찾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루스 베네딕트가 쓴 이 책은 일본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보아야 할 책 가운데 하나다. 베네딕트는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1944년 6월, 미 국무부의 의뢰를 받아 일본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일본이 전쟁 막바지에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충분히 예측할 수 없었다. 그들이 맞은 적은 미국인의 사고와 문화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척 낯설고 이질적인 상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네딕트는 일본인의 행동과 사고의 패턴을 탐구하기 위해 문화인류학적 연구를 진행한다. 이 연구는 1945년 ‘일본인의 행동 패턴’이라는 보고서로 나타났고, 이를 바탕으로 1946년 ‘일본 문화의 패턴’이라는 부제를 달고 쓰여진 것이 ‘국화와 칼’이다. 이 책은 외적인 생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 민족의 문화 패턴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전제에 기초한다. 베네딕트는 일본인의 문화 패턴을 찾아내기 위해 전쟁 중에 나타난 일본인의 행동은 물론 일본인의 계층구조 의식의 형성과 변화 과정 등을 분석하며, 일본인의 행동과 사고 방식의 특징을 살핀다. 이를 통해 일본인은 어떤 경우에 예의를 지키고, 어떤 경우에 수치심을 느끼는지 등 평균적인 일본인의 습관과 행동 양식을 설명하고 있다. 제목의 ‘국화’와 ‘칼’은 일본 문화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두 가지 상징이다. 그것은 서구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일본인의 ‘이중성’을 나타낸다. 매우 절제되고 겸손한 행동 양식을 지니고 있는 국민이 동시에 칼을 숭배하며 무사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리는 호전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은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베네딕트는 그러한 이중성이 모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이를 근거로 일본 문화의 패턴을 이해하려 한다. 한편 이 책은 당시까지 인디언 등 원시부족 생활을 주로 연구하던 문화인류학의 연구 대상을 산업사회로 넓히는 데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 베네딕트는 전쟁 때문에 일본을 직접 방문하지 못하고 여러 문서와 기록, 증언 등에만 의존해 연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해석 작업은 이후의 연구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물론 이 책은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여러 한계가 드러난다. 미국의 시각에서 바라본 동양의 모습으로 지나치게 단순화돼 서술한 경향도 없지 않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일본에 대한 실체적 이해보다 미국인의 사고 속에 자리잡은 일본관에 대한 서술로 읽히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일본인들의 사고 및 행동양식, 문화와 사회의 특징을 이해하는 데 나름의 구실을 충분히 하고 있다. 게다가 서구, 특히 미국의 일본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정세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미·일 동맹에 대한 미국의 접근 방식과 태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www.unidream.co.kr) ●독서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고1∼고3 -관련 교과:고등 사회, 사회문화, 윤리와 사상 -함께 읽어 볼 책과 고전:슬픈 열대(레비스트로스·한길사), 문화의 수수께끼(마빈 해리스·〃), 성과 속(미르치아 엘리아데·〃), 이미지와 상징(〃·까치글방) -기출논제:한국외국어대 2004학년도 정시 논술, 서울교대 2003학년도 정시 논술, 부산대 2002학년도 정시 논술 ●생각해보기 -이 책은 일본 문화의 특징을 어떻게 서술하고 있나. -일본과의 역사적·영토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의 생각을 써보자. -문화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보자.
  • 中 무협소설 대가 진융, 英 유학길

    |베이징 연합|중국 무협소설의 대가 진융(金庸)이 81세의 고령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23일 홍콩의 대공보(大公報)를 인용, 보도했다. 자신의 무협소설 천룡팔부(天龍八部)가 중국 고교 2학년 어문독본 교재에 실리기도 했던 진융은 케임브리지대학 박사과정에서 역사, 고고학, 세계사 등을 연구한 뒤 평생 염원인 중국사를 저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음달 영국으로 가 케임브리지대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는 진융은 “아직 학문이 부족하고 공부를 더 하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질 것”이라고 겸손을 보였다. 진융의 케임브리지 유학은 그의 무협소설 녹정기(鹿鼎記)에 열광한 이 대학 총장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성사됐다.
  • 儒林(351)-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儒林(351)-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그러나 퇴계에 있어 가장 큰 고통은 자신을 깨우쳐줄 스승도 벗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대해 퇴계는 언행록에서 다음과 같이 탄식하고 있다. “…나는 젊어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뜻을 깨우쳐줄 스승과 벗이 없어 헤매기를 수십 년이나 하였다. 어디서부터 착수할 줄을 몰라 헛되이 마음만 허비하여 사색하기를 마지않아 때로는 눕지도 않고 고요히 앉아서 밤을 새우기도 하여 이 때문에 심병을 크게 얻게 되어 여러 해 동안 학문을 중지하였다. 만약 스승과 벗을 일찍 만나 이러한 길을 지시해 주었더라면 어찌 심력(心力)을 헛되어 써서 늙도록 얻은 바가 없기에 이르렀겠는가.” 스승의 이러한 말에 제자 김성일은 ‘이것은 겸손한 말이지만 스승의 학문은 스승과 벗의 힘을 입지 않고, 초연히 독학으로 얻은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라고 촌평을 내리고 있다. 특히 퇴계가 항상 몸이 마르고 쇠약해지는 평생의 지병을 얻은 것은 20세 때 이르러 주역을 읽고 그 뜻을 강구하기에 거의 침식을 잊을 정도로 몰두하였던 데서 비롯된다. 연보에 의하면 퇴계는 용두산 용주사에서 역학 공부에 몰두하였다고 하는데, 퇴계가 침식을 잊을 정도로 몰두하였던 것은 마치 공자가 말년에 역(易)을 좋아하여 스스로 역경(易經)을 편찬했던 사실을 연상시킨다. 역에 심취한 공자를 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을 정도였다. “공자는 말년에 역을 좋아하여 역을 읽는 사이 책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 그리고 말하기를 ‘내게 몇 년의 여유만 더 주어져 이렇게 공부를 해나가면 큰 허물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옛날 중국에서는 종이가 나오기 전에는 주로 대나무에 글을 써서 그것을 끈으로 묶어 책을 만들었다. 이것을 죽간(竹簡)이라 하는데, 공자는 그 엮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주역을 탐독하였던 것이다. 위편삼절(韋編三絶). ‘책을 엮은 죽간의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진다.’라는 말은 사기의 공자세가에 나오는 고사를 성어로 만든 용어. 이는 곧 책이 닳도록 정독하였음을 뜻하는 말인 것이다. 공자가 책을 엮은 죽간의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주역에 열중하였다면 퇴계도 평생의 지병을 얻을 정도로 주역을 탐독하였던 것이다. 원래 역경은 팔괘(八卦)가 변화하여 이뤄지는 64괘의 변화를 따라 길흉을 점치는 점술책이었다. 역점은 본시 시초(蓍草)라 불리는 풀줄기로 만든 99개의 점가치인 서(筮)로 그때그때 괘를 이루어 역경에 있는 그 괘의 성격에 따라 길흉을 점치는 책이었다. 이것과 함께 말린 거북 껍질을 불로 지지어 생기는 균열의 모습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것을 복(卜)이라 하였는데, 이 거북점은 복서(卜筮)라고 불린다. 나라의 중요한 일은 물론 개인에 관한 중요한 일까지도 모두 이 복서를 통하여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옛 중국 사람들의 관습이었던 것이다. 말년에 공자는 역경에 심취하였다. 논어의 술이(述而) 편에도 다음과 같은 공자의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나에게 몇 년을 보태 주어 50세에 이를 때까지 역을 공부할 수 있으면 큰 과오가 없게 될 것이다.(加我數年 五十以學易 可以無大過矣)”
  • 내 손으로 만드는 사찰음식

    내 손으로 만드는 사찰음식

    서해 바다를 낀 경기 평택시 원정리의 야트막한 봉화산 기슭의 수도사.1300여년전 원효대사가 ‘시원한 냉수 한 바가지’에 큰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전해온다. 전통 사찰음식의 ‘법통’을 잇는 곳이다. 연녹색 버드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봉화산의 솔바람, 풍경소리가 수도사의 적막을 일깨웠다. 오색 연등을 따라 수도사에 들어서자 구수한 된장 냄새가 유혹적이다. 마당 한켠에 간장·된장·고추장·장아찌를 담은 항아리 수십개가 오월 햇살에 반짝거렸다. 불전의 향보다 여염집 같은 된장 냄새가 정겹다. 바로 옆 초옥에는 커다란 가마솥 5개가 걸려있다. 산기슭에서는 쑥을 캐던 아낙네들이 들어간 곳은 초가 옆의 한국전통사찰음식문화연구소. 테이블마다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등이 설치된 주방은 도심의 요리학원과 다를 바 없다. 모두 앞치마를 두르고 뭔가를 열심히 튀기고 붙여냈다. 사찰음식연구가 적문스님의 칼솜씨는 시원하다. 표고를 다지는 쾌도난마같은 솜씨에 녹록찮은 요리 내공이 느껴졌다. 부엌일도 수행인듯 딸그락거리는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아기와 남편,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사찰음식을 배웁니다.”서울 천호동에서 왔다는 박명연씨, 수원에 산다는 최문선씨가 사찰음식을 배우는 동기다. 칼질이며 전병을 붙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올해 쉰일곱이라는 박씨는 “수십년동안 솥뚜껑만 운전해 왔는데….”라며 웃어 넘겼다. 옆 테이블의 신조원(서울 방배동)씨는 “채식을 실천하면서 요가를 가르치고 있거든요, 요가와 사찰음식을 접목하려구요.”하지만 불린 표고를 잘게 채써는 칼질은 서투르다.“딸인데 아직 미혼이라….”대신 핑계를 대는 김인숙씨.“담백하고 깔끔한 맛에 이끌려왔어요. 천연 조미료 만드는 법을 알고싶어서요. 딸과 같이 음식을 하니 시집갈 준비를 그냥 시킬 수 있을 것같아 좋아요.” 신조원씨가 적문스님에게 사찰음식이 일반음식과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고기와 젓갈, 마늘·파·달래·부추·흥거(주로 인도에서 나는 마늘보다 강한 향신료)와 같은 오신채를 쓰지 않는 것을 모두 알지요. 하지만 사찰음식에는 3가지 원칙 청정(淸靜)·유연(柔軟)·여법(如法)을 지켜야 합니다.”라며 적문스님은 설명을 이었다. 청정은 오신채·인공조미료·색소를 쓰지 않고 계절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며, 유연은 수행에 도움이 되게 소화와 흡수가 좋게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란다. “오늘 만들 다시마부각을 예로 든다면 피를 맑게 하는 다시마는 보혈식품이지요. 그러나 소화가 잘 안되니 식초가 들어갑니다. 여기에 부칠 찹쌀은 기를 돋우고, 지방섭취를 위해 기름에 튀기는 것이랍니다.”그러면서 보음식품인 두부와 곁들이면 더욱 좋다고 덧붙였다. 여법은 법도대로 하는 조리법이다.“양념은 단것, 짠것, 신것, 장류의 순서로 합니다.”다시 말해서 설탕-물엿-소금-식초-된장-간장의 순서다.“이게 얽히면 맛이 제대로 안나지요.” 적문스님은 “이런 모든 것을 지켰을 때 사찰음식이 되는 것이지 푸성귀로 만들었다고 사찰음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설법(?)을 듣는둥 마는둥하는 ‘왕언니’이재임씨는 손이 정말 잽싸다. 다른 이들이 두부소박이를 만드는 동안 이미 다시마부각까지 마쳤다. “결혼 이후 45년째 부엌일을 하지만 요즘이 제일 재미있어요. 이런 재미 때문에 김포에서 평택까지 왔다가도 힘들지 않아요.” 법종이라는 스님은 “토굴에서 혼자 공부할 때를 대비해서 음식 만드는 원리를 배웁니다.”고 말했다. 다시마에 찹쌀을 붙이는 모습이 제법이다. 일산에서 왔다는 김명희씨는 “사찰음식이 가장 한국적인 맛으로 남아있고, 한국의 맛을 계속 공부하려고 사찰음식을 익힙니다.” 실속파도 있다.“아아들을 다 키우고 자격증 따서 개업을 하려구요.” 이선희(경기도 시흥).“조리사였는데 그만두고 사찰음식을 공부해요. 앞으로 크게 유행할 것 같아서요.” 이은정(서울 녹번동). “스님은 어떻게 사찰 음식을 배웠어요?”역시 미혼인 이은정씨의 부러움 섞인 질문이다. “스님이 되는 데는 ‘행자’라는 수행과정을 거칩니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도 포함되지요.”라며 적문스님이 설명을 잇댔다. 처음에 땔감을 구하고 허드렛일을 하는 불목하니, 큰스님과 신도들의 상을 준비하는 간상, 밑반찬과 나물을 준비하는 채공, 국을 끓이는 갱도를 거쳐 마지막에 밥을 짓는 공양주 소임이다. 이런 기초를 바탕에 두고 13년 전에 설립한 사찰음식연구소를 계기로 전국의 사찰을 돌면서 음식을 발굴, 직접 만드는 일을 했단다. 사찰 음식을 배우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하지만 공통된 점은 건강에 좋고 마음까지 개운하게 하는 웰빙음식이란 점이다. 도심의 사찰음식점은 그래서 발길이 끓이지 않는다. “자연주의를 실천하는 사찰음식은 바로 겸손과 절제의 음식입니다.”스님은 해맑은 웃음처럼 이 음식들을 먹으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질 것같다. 글 수도사(평택) 이기철·한준규기자 chuli@seoul.co.kr 적문 스님은 사찰 음식을 화두 삼아 수행의 길을 걷는 유일한 비구(남자)스님이다. 자신이 주지로 있는 평택의 수도사에 요리교실을 갖추고 사찰음식 보급에 팔을 걷어붙였다. 스님이 음식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것은 1992년 한국전통사찰음식연구소(02-355-5961)를 창립하면서부터. 선재 스님 등과 함께 전국의 사찰을 돌며 음식을 발굴, 정리했다. 이를 계기로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전통사찰음식’이란 책을 냈다. ●다시마부각 재료 다시마 100g, 찹쌀 1/2컵, 소금 약간, 식용유 5컵 만드는 법 (1)다시마는 얇은 것으로 선택해 젖은 행주로 깨끗이 닦아 5×5㎝로 잘라 손질해 둔다.(2)찹쌀은 씻어 불린 다음 소금을 약간 넣고 밥을 짓는다.(3)다시마에 (2)의 찰밥을 서너알씩 군데군데 붙여 말린다.(4)밥알이 바삭하게 마르면 160도의 기름에서 밥알이 붙은 쪽부터 빨리 튀겨낸다. 팁 식성에 따라 설탕을 뿌려도 좋다. ●두부소박이 재료두부 2모, 표고버섯 100g, 밀가루 1컵,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깨소금·물엿 1큰술, 진간장 조금, 식용유 적당량 만드는 법 (1)두부는 너비 4㎝, 두께 0.3㎝ 정도로 썬다.(2)말린 표고를 물에 불려 잘게 다져서 기름을 두른 팬에서 볶다가 후춧가루·깨소금·물엿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3)밀가루는 물로 걸쭉하게 반죽하여 소금으로 간을 맞춰 튀김옷을 만든다.(4)두부 위에 준비한 표고버섯을 얹고 또 하나의 두부로 덮은 다음 튀김옷을 입혀 180도로 튀겨낸다. ●메밀 부꾸미 재료 메밀가루 1컵, 밀가루 1/2컵(메밀과 밀가루 2:1비율), 물 2컵, 무 500g, 불린 표고버섯 100g, 빨간고추 2개,양념장(조리간장 1큰술, 무즙·통깨·참기름 약간씩), 들기름·후춧가루·참깨·소금 약간씩 만드는 법 (1)메밀가루에 밀가루를 넣고 소금으로 약간 간을 한 다음 묽게 반죽한다.(2)약한 불에서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숟가락으로 조금씩 반죽을 떠 넣어 지름이 8㎝ 정도로 동그랗게 부친다.(3)무는 채썰어 데친 후 보자기에 싸서 물을 꼭 짠다.(4)표고버섯·빨간고추를 채썰어 놓는다.(5)들기름을 팬에 두르고 (3)과 (4)를 섞어 소금으로 간을 보며 볶는다. 여기에 후춧가루와 통깨도 넣는다.(6)부꾸미로 (5)를 넣고 빠져 나오지 않도록 예쁘게 말아서 취향에 따라 양념장과 함께 먹으면 좋다. 팁 메밀은 열을 내려주고 독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몸이 차거나 위가 안 좋은 사람, 알레르기성 체질의 사람에게 맞지 않는다. ●연자죽 재료 연자 200g, 현미찹쌀 1컵, 현미 1/2컵, 율무 1/2컵, 대추 5개, 죽염 약간 만드는 법 (1)연자는 껍질을 벗기고 배아를 빼서 물에 2∼3시간 불렸다가 믹서에 간다. 연 특유의 비릿한 냄새를 없앤다.(2)현미찹쌀, 현미, 율무 역시 물에 불려 믹서에 갈아 약한 불에서 타지 않게 저으면서 끓여낸다.(3)죽염으로 간을 맞춘다.(4)고명으로 잘게 채 썰어 놓은 대추를 얹는다. 팁 연자죽은 여드름·주근깨·피로회복·소화기관을 보호하는 등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약리작용과 함께 식욕을 돋운다. ■ 속세에서 더 맛있게 저자로 내려온 사찰음식점으로 서울 인사동 4거리 세종화랑 골목의 산촌(735-0312)이 대표적이다. 한때 스님이었다가 환속한 김연식(59)씨가 운영한다. 점심 1만 8700원, 저녁 3만 1900원으로 부가세가 포함된 가격이다. 메뉴는 들깨죽·생두부·튀김요리 등 16가지가 나온다. 그러나 저녁에 한국전통무용과 승무 공연이 있어 점심보다 더 비싸다. 일반인을 위해 파·마늘·부추 등 오신채를 쓰지만, 원하지 않을 경우 하루 전에 미리 예약해야 한다. 또 직접 담근 된장·고추장·쌈장 등과 같은 장류와 장아찌·한과·공예품 등도 함께 판다. 외국인에게 한국의 맛을 자랑하기 좋은 곳이다. 경기도 고양시 벽제역에서 보광사 가는 길목에 고양점(031-969-9865)도 운영한다. 고양점의 공양상은 1만 5000원, 산채 비빔밥은 7000원이다. 서울 대치동 삼성역 4번출구에서 학여울방향으로 500m지점인 채근담(555-9174)은 사찰음식에 뿌리를 둔 채식전문 식당이다. 단조로운 채식 음식에 서양식 코스를 접목해 맛의 강도와 완급을 조절한 것이 특징. 이 때문에 조금은 단조로울 듯한 사찰음식을 일반인들에게 바짝 갖다붙였다. 음식 재료는 모두 유기농이고 천연조미료를 쓴다.15가지가 나온다. 오신채를 싫어할 경우 주문하면서 빼달라고 하면 된다. 인근 직장인들이 쉽게 먹기 어려울 정도로 가격이 만만치 않다. 채정식 2만 5000원부터 묘정식 5만 7000원까지. 일품으론 자연송이구이(5만원), 자연송이초밥(1개 2000원), 수수부꾸미(1만원) 등 단품 음식 가격도 싸지는 않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출구쪽의 디미방(720-2417)은 약선음식점에 가깝다. 약초전문가 최진규씨가 약초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담아 운영하는 음식점이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각종 약초를 이용해 담근 약술통들이 먼저 반긴다. 약초로 지은 밥과 반찬, 술이 주메뉴.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 바닷가에서 자라나 염분과 칼슘 마그네슘 등 무기질이 풍부한 ‘함초’를 이용해 만든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미용과 다이어트에 좋다는 함초수제비(5000원), 함초죽(6000원), 함초비빔밥(6000원) 등이 있다. 약초정식은 1만원부터.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옴부즈맨칼럼] ‘공직자 낙마’ 맥을 끊자/염희진 성균관대신문 前편집장

    바다와 산을 휩쓴 수마(水魔)-화마(火魔)와는 별도로 연초부터 정치권에는 또 하나의 ‘마’의 열풍이 불었다. 고위공직자들의 낙마(落馬) 바람이 그것이다. 지난 1월 이기준 교육부총리에 이어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도덕성 문제로 낙마하더니, 최근 홍석현 주미대사가 위장전입 사실을 고백하기까지 여러 명의 고위공직자가 옷을 벗거나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주인공과 연출이 각각 다른 단막극이었지만, 그 바닥에는 하나같이 공직자의 도덕성과 부동산 투기라는 코드가 숨어있다. 이런 고위공직자들의 낙마 사태를 다루는 언론의 보도행태 역시 공통점을 띠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공직자 인사검증 절차의 부재에 비판의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해당 공직자의 부도덕성에 대해 심판을 내리듯 준엄하게 꼬집은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사태는 그리 단순하게 바라볼 사안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한 개인의 과거 문제가 퇴진이라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은 도덕성에 대한 공직사회와 국민여론의 잣대 사이에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한번도 도덕성의 기준에 대해 사회구성원간의 합의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고, 공직자 윤리가 정착되기 위한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즉, 공직사회의 시스템과 의식은 아직 걸음마 수준인데, 공직자윤리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는 저만치 앞서있는 것이다. 이 괴리가 분명히 존재하는 상태에서 재산공개와 이에 대한 여론의 뭇매, 그리고 낙마로 이어지는 지금의 패턴이 계속된다면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해당 공직자는 과거에 비해 높아진 도덕성의 기준에 당혹스럽고 나름대로 억울할 것이고, 국민은 국민대로 상대적 박탈감과 도덕적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한편 언론도 이런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투기를 비롯한 각종 부조리가 묵인되다시피 하는 공직자 사회의 통념에 그동안 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듯한 보도를 일삼는 언론이(서울신문 4월26일자 ‘아파트값 부추기는 언론’) 공직자의 재산공개가 이뤄진 뒤에야 부도덕성을 비판하고 나선다면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위공직자 낙마 도미노에 관한 서울신문의 보도 행태를 보면 초반의 단선적 접근에서 벗어나 점차 국민의 달라진 도덕성 잣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도덕성 잣대 껑충, 공직자 윤리는 제자리’(3월23일자),‘인권위원장 사퇴부른 국민 눈높이’(3월21일자)에서 공직사회의 인사기준과 국민 기대치의 차이를 지적하며 공직사회 내부의 눈높이 조절을 주문했다. 하지만 공직사회와 국민간의 간극을 봉합하기 위한 심층적인 보도는 여전히 부족했다. 다만 청문회와 공직자윤리법 등과 같은 제도의 필요성과 제도 자체의 문제에 대해 연속적으로 지적한 점은 돋보였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공직자윤리법 가운데 백지신탁제의 허실을 지적한 기획 ‘공직자 백지신탁제 도입논란’(4월12일자),‘허점투성이 공직자 백지신탁제’(4월28일자)와 ‘검증자료 없는 청문회 의미없다’(4월2일자) 등의 기사가 그 예이다. 우리는 예부터 청백리 정신과, 청렴결백을 강조하며 공직자의 도덕성에 대해 절대적 기준을 부여해왔다. 하지만 급속한 경제성장, 사회변화와 맞물려 공직자에 대한 인식은 ‘철밥통’에 비유할 정도로 변질됐다. 공직사회의 비리 또한 어느 정도는 ‘그러려니’ 하며 체념해 온 것이 사실이다. 노무현정부가 출범한 이후 공직사회는 또 한번의 전기를 맞았다. 혁신과 부패척결을 공무원 사회에 대한 기치로 내걸면서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 또한 커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고위공직자 퇴진사태는 공직사회의 낡은 의식과 새로워진 국민의식간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신문은 행정면과 고시취업면을 통해 꾸준히 공직사회에 대해 관심을 보여 왔다. 앞으로도 이번 낙마사태와 같은 일이 재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서울신문은 크게 두 가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하나는 도덕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모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공직사회 내부의 의식개혁과 법제도를 마련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공직자의 도덕성과 관련하여 겸손하되 이면을 헤집는 날카로운 보도를 기대한다. 염희진 성균관대신문 前편집장
  •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이레전자 정문식 사장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이레전자 정문식 사장

    정문식(43) 이레전자 사장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그는 끊임없는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회사를 국내 대표적인 중견 영상가전 전문기업으로 키웠다. 칠전팔기의 인생을 살아온 만큼 그를 만나기 전 드센 사람이려니 상상했지만 차분하고 겸손했다. 회사의 비전을 이야기하는 그의 눈빛에는 열정도 가득했다. 이레전자의 올해 매출 목표는 2000억원이다. ●“너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동네에서 유일하게 수도가 있었던 전남 목포의 유지 출신이다.5·16 당시 아버지가 병역 기피자로 낙인 찍히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과음 탓에 10살이 되던 해에 간경화로 돌아가셨다.‘쾨쾨한 냄새, 뒹구는 술병….’그가 기억하는 아버지에 대한 전부다. 13살 나이에 어머니와 상경한 그는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학교에선 친구들 머리를 깎아주고 방학 때는 청계천 엠프 공장에 나갔다. 어머니는 식모살이를 하느라 일주일에 한 번만 집에 왔다. 동생을 돌보고 집안 일을 하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굶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시장에서 버려진 배춧잎을 가져다 먹는 일도 다반사였다. 한양공고 야간반에 진학한 뒤에도 신문 배달, 파출소 사환, 공장일 등 아르바이트는 계속됐다. 어머니 대신 생계를 책임지려는 다급한 마음으로 특전사에 지원했다.“공수부대에 가면 낙하산을 탈 때마다 1만원을 준다.”는 공장 선배의 농담을 믿고서다.1982년부터 5년간 복무하며 어머니 생활비와 동생 학비를 댔다. ●“정보는 생명이다!” 군인 시절 만난 부인 유청자(42)씨와 결혼해 1990년 ‘이레전자’를 창업했다. 살림 집인 연립주택 반지하 방을 공장 삼아 전선을 일정 길이로 잘라 단자에 연결하는 일을 재하청 받아 생업으로 삼았다. 직원이라곤 그와 부인 유씨 단 둘뿐. 아무리 치워도 구리선 부스러기가 방바닥을 기어다니는 어린 남매의 살갗을 파고 드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500만원을 선배로부터 빌려 월세로 지하 5평 창고를 얻어 공장으로 개조했다. 경쟁사 동향을 파악하러 밤에는 하청업자들이 벌이는 고스톱 판을 전전하며 담배나 술 심부름을 했다.1년여를 일해도 돈을 벌지 못해 나온 궁여지책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새 거래처나 기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위기는 기회다!” 위기는 새로운 기회다. 중국에서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덤핑 공세가 시작되자 하청일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됐다. 새 정보와 기술을 알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해외 전자박람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1993년 3월. 독일 하노버 전자박람회는 그에게 혁신을 가져다준 계기다. 국내에선 백만원이 훌쩍 넘는 휴대전화 단말기가 그곳에선 이동통신사의 보조금 때문에 단돈 1마르크(한화 2000원)에 유통되고 있었다. 이 시스템이 국내에 도입되면 휴대전화 수요는 폭발적이다.1994년 차량 내에 시거잭을 이용한 휴대전화 충전기와 핸즈프리로 사양업인 전선가공업을 대체했다. 이듬해 휴대전화 충전기도 개발했다.3개월간 이천 현대전자 연구소를 주기적으로 방문한 끝에 단말기 개발팀 담당자를 겨우 만났다. 당시 현대전자는 휴대전화 단말기만 자체 생산했지 충전기는 하청업체에 맡겼다. 단말기 출시를 앞두고 이레전자가 현대전자 하청업체중 충전기 테스트를 유일하게 통과했다.1996년 충전기만으로 연 8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외국에서도 통하는 불도저 열정 사실 핸즈프리를 처음 만들었을 때 불량품이 생산돼 전량 폐기처분한 경험이 있다. 아이디어만 있지 기술이 없던 게 문제였다. 교훈을 잊지 않고 언제나 우수한 파트너를 통한 아웃소싱을 추구한다. 현대전자에 납품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했던 것도 다른 기술자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다. 현대전자와의 물품 계약이 체결되면서 50평 공장만으로는 부족했다. 공장은 5평 창고에서 17평,30평,50평,150평으로 커지다 이윽고 1997년 지금의 구로공단 디지털 산업단지 한국전자협동 빌딩으로 이사했다. 당시 빌딩내 400평을 쓰다 계속 확장을 시도하면서 현재 전자협동 빌딩은 물론 인근 건물까지 총 6000여평을 쓰고 있다. 물론 이레의 오늘이 있기까지 현대전자와의 인연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협력업체가 계약을 중단하면 중소업체의 생사는 묘연해진다. 이를 극복하려면 새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휴대전화 충전기에 이어 900㎒ 무선전화기도 만들었다.1997년 미 라스베이거스 박람회내 미 최대 통신사인 벨 부스 앞에서 3일을 꼬박 기다렸다 사장 데니엘씨를 만나 900㎒ 무선전화기 10만대 계약을 따냈다. 그의 열정이 외국에서도 통한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이레전자’ ‘이레’는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말로 ‘예비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레전자는 하느님의 뜻에 의해 예비돼 있는 기업이란 얘기다. 어제의 고난은 오늘의 축복이 있도록 하기 위함일까? 그의 도전은 전화기에서 끝나지 않았다.2000년 지인으로부터 LCD 컴퓨터 모니터 사업부문을 인수했다. 사무실에서 책상의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둔탁한 모양의 모니터 아니던가. 선진국에서는 이미 날씬하고 화질 좋은 TFT-LCD 모니터를 사용하고 있었다.IT 선진국인 우리나라에도 날씬한 모티터가 유행할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국내 기업에서도 LCD 모니터를 만들었다. 이레는 차별화된 모니터 개발에 역점을 뒀다. 선명도와 속도는 물론 특수 제작된 강화 유리를 액정 모니터에 달았다. 후발 주자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지난 2002년 PC방 영업을 통해 총 8만여대를 판매했다. LCD모니터를 통해 디스플레이 분야에 대한 기술을 축적한 만큼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PDP TV를 양산해 그 해 매출 1000억원 돌파를 기록했다.1998년 라스베이거스 전자쇼에서 PDP 벽걸이 TV를 발견하고 다가올 디지털TV 시대를 준비한 데 따른 결과다. ●젊어서 고생, 사서도 한다 그는 “오늘날 여기까지 온 것은 내가 잘 났기 때문도 아니고 많이 배웠기 때문도 아니다. 남보다 하나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돌이켜보는 게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젊어서 고생’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젊어서 고생이 미래를 살찌우는 힘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딸 미성(19)과 아들 지복(17)을 각각 13세 때 홀로 외국으로 보낸 것도 이 때문이다. 딸은 뉴질랜드를 통해 미국으로, 아들은 인도네시아를 거쳐 뉴질랜드에서 유학 중이다. 부모 밑에서 호강하기보다 밖에서 남의 눈치도 보고 서러움도 맛보며 고생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용돈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벌어 쓰도록 하고 있다. 그의 다음 작품은 하반기 출시되는 인터넷 겸용 디지털TV ‘J2’다. 컨버전스 시대에는 모든 가전제품이 인터넷과 접목돼야 경쟁력이 있다는 게 그의 분석. 예컨대 냉장고에 계란이 떨어지면 스스로 알아서 인근 슈퍼에 주문하는 냉장고가 판매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이 시대가 2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는 “젊은 시절은 길지 않다. 어떤 일이든 적당히 하는 사람은 절대 미래를 보장받지 못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성공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정문식 사장의 이력서 ▲1962년 전남 목포 출생 ▲1981년 한양공고 전자과 졸업 ▲1982년 특전사 복무 ▲1987년 홍진전자 생산직 ▲1990년 이레전자 설립 ▲1996년 이레전자 법인 전환·대표이사 취임 ▲1999년 산자부 산업분야 신지식인선정 ▲1999년 한국전자산업진흥회 전자산업발전유공대통령표창 수상 ▲2000년 무역의 날 1000만달러 수출탑 수상 ▲2003년 무역의 날 2000만달러 수출탑 수상 ▲2004년 무역의 날 7000만달러 수출탑 수상 ▲2004년 무역의 날 동탑산업훈장수상 ■ 이레전자 변신의 15년 이레전자는 1990년 4월 5평짜리 창고에서 전선가공업으로 시작해 지금은 LCD모니터, 디지털TV 등을 생산하는 하이테크 전문 업체로 탈바꿈했다. 남들보다 한 발 빠른 아이디어로 위기를 기회삼아 성장해 왔다.1995년 휴대전화 충전기를 생산해 현대전자에 납품했고, 남들이 긴축경영을 하던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 당시 이레전자 정보통신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원 수는 현재 60여명. 1998년 900㎒ 무선전화기를 개발해 미국 최대 통신사인 벨에 수출했으며,2002년 이후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 모니터를 생산하며 디스플레이 전문 업체로 성장했다.2003년부터 PDP TV 양산을 본격화했고,LCD TV도 만들어 3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국내 대형 전자전문 매장에서도 대기업 제품들과 나란히 판매되고 있으며, 백화점에서도 조만간 팔릴 예정이다. 현재 시중에 42인치 HD급 PDP TV와 32인치 HD급 LCD TV를 판매 중이다. 하반기에는 50,60인치 대형 PDP TV도 내놓는다. 특히 최근 인터넷과 TV를 한꺼번에 즐기는 디지털TV ‘J2’를 개발, 하반기 이레전자 브랜드로 출시한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데스크시각] 빛을 감추고 힘은 길러야/구본영 정치부장

    어린이날인 5일, 푸르러가는 5월의 하늘을 보며 지난 4월 중순 제주도의 짙푸른 봄 바다를 새삼 떠올린다. 성산포의 유채꽃과 눈이 시리게 맑은 물은 보름도 더 지난 지금도 눈시울에 찍혀있다.‘상생정치와 언론’이라는 주제로 열린 관훈클럽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의 기억이다. 그러나 제주도의 풍광보다 더 선연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 화두가 있다.“한국적 정치풍토에서 상생(相生)이란 가당치 않다.”는 원로 언론인들의 빗발치는 이의제기였다. 세미나 분위기야 시종 화기애애했다. 주제발표를 한 정세균, 강재섭 두 여야 원내대표는 워낙 우리 정치판에서 합리적이고 유연한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어차피 다툴 수밖에 없는 여야 관계라면 페어플레이 속에서 상쟁(相爭)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게 다수 참석자들의 속마음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갖가지 정쟁과 입씨름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이 육군3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을 편 이후의 날선 공방이 대표적이다. 동북아 균형자론에 비판적인 이들은 “중·일 대결이나 미·중 충돌이 발생했을 때 한국이 중재역을 맡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비현실성을 지적한다. 한·미·일의 남방3각과 북·중·러의 북방3각이라는 냉전구도에서 탈피하려는 취지도 한·미 동맹의 포기나, 반미로 비쳐질 경우 또 다른 화를 부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이 남북통일 문제 등에서 한국 편에 설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자칫 게도 놓치고 구럭도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같은 비판이 꼬리를 물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측이 동북아 균형자론이 한·미동맹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공식 해명하고 나섰다. 중·미간이 아닌, 중·일 분쟁시 중재역을 하겠다는 취지였다.“동북아 균형자론은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 중견국가의 위상에 맞는 ‘평화의 균형자역’을 맡겠다는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민주주의 역량, 의제설정 능력, 문화 역량 등 이른바 ‘소프트파워’(연성국력)를 통해 추구하겠다는 부연설명이었다. NSC의 복잡한 설명이 아니더라도 기자는 동북아 균형자론이 결국엔 한국이 지향해야 할 큰 비전일 수 있다고 본다. 언젠가는 강대국들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판 자체를 주도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그 비전이 공허한 수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그만한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얼마전 원로인 강원룡 목사도 동북아 균형자론은 통일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고언했다. 역사 속에서도 국제 관계에서 외교적 슬로건에 앞서 내실을 다지고 국력을 키우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읽을 수 있다. 중국이 오늘의 미국에 비견될 초강대국격이던 시절 명·청 교체기를 맞자 조선에선 청에 대한 화친론과 주전론이 맞섰지만 어느 길도 자의로 선택할 수 없었다. 끝내 주전론을 고집했다면 사직과 백성의 공멸을 뜻하는 옥쇄외에 달리 길이 없었을 터였다. 마지못해 택한 화친론도 인조가 청태종을 향해 얼어붙은 맨땅에 머리를 찧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절을 하고 머리를 땅에 세번 부딪기를 세번 반복)’하는, 삼전도의 치욕으로 이어진다. 중국 여성의 전통 의상 중 치파오(旗袍)가 있다. 허리 아래로 옆이 터져 허벅지살이 허옇게 드러나는, 아름답지만 퍽 도발적인 옷이다.1972년 죽의 장막을 헤치고 미·중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을 찾았을 때다. 누군가 부인 패티 여사에게 치파오를 본 소감을 묻자 이렇게 응수했다.“중국 인구가 이렇게 많은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고. 패티 여사, 아니 미국은 당시 이미 인구 10억이 넘는 ‘공룡’ 중국의 잠재력을 예감했던 셈이다. 그러나 정작 중국의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은 ‘빛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는’ 대외전략, 즉 ‘도광양회’(光養晦)정책을 선택, 힘을 대외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현 시점에선 주변국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동북아의 균형자’가 아닌 ‘평화의 중재자’정도의 겸손한 수사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에 앞서 집권 3년차인 청와대가 해야 할 더 시급한 과제는 여야간, 세대간, 계층간 이해다툼을 조정하는 ‘내치의 균형자’를 자임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를 통해 우리의 단합된 힘부터 길러야 평화의 중재자역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뜻에서다. 구본영 정치부장 kby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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