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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야 ‘최연희파문’ 엇갈린 셈법

    최연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성추행 파문을 둘러싼 여야의 정치 셈법이 복잡하게 엇갈리고 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과 나라의 기강이 서야 한다.”면서 “지금은 공직자와 정치인이 모두 자숙해야 할 시기”라고 ‘군기’를 잡았다. 정 의장은 “당의 기강이 섰다는 믿음이 설 때 국민이 다시 한번 기회를 줄 것”이라면서 “민감한 시기에 초심으로 돌아가 겸손하게 국민을 하늘처럼 받들고 나가자.”고 강조했다. 성추행 파문을 섣불리 정치적으로 활용해서는 안된다는 당 지도부의 방침과 달리 일부 의원이 ‘옆길’로 새고 있는 것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한광원 의원이 최 의원을 옹호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정청래 의원이 성추행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등 악재를 자초한 언행을 겨냥한 것이다. 당 지도부가 이날 한 의원에게 최고위원 결의로 ‘구두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상호 대변인은 “한 의원의 글이 적절치 못했다고 최고위원들이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티끌을 모아 태산을 만들어야 하는데 부적절한 시기에 부적절한 방법으로 당에 부담을 준 것이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은 최 의원의 성추행 파문을 진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가 지난 1일 전국 성인남녀 37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당 지지율은 성추행 사건 발생 전보다 2%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특히 여성층의 지지율은 5%포인트 이상 빠졌다. 당 지도부는 이번 파문이 지방선거까지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판단에 따라 최 의원의 자진사퇴를 요구하고, 후보공천과정에서 성추문 전력자를 배제키로 하는 등 진화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최 의원의 자진 사퇴가 예상외로 늦어지면서 한나라당은 초조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특히 최 의원이 전날 당 차원의 고강도 사퇴압박에 대한 ‘서운함’을 지도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자 일각에선 “최 의원이 의원직을 내놓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돈다. 지도부도 ‘자진사퇴 불가피론’으로 압박하는 대신 ‘당을 위한 마지막 결단’을 주문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의원직 사퇴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압박했던 이재오 원내대표도 이날은 “어제 그제부터 연락이 안된다.”면서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을 아꼈다. 일각에선 최 의원을 감싸는 분위기도 감지되지만 결국은 최 의원이 당을 위한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박찬구 전광삼기자 ckpark@seoul.co.kr
  • “한국 특유의 예절 배웠죠”

    육군사관학교 제62기 졸업 및 임관식이 열린 3일 서울 태릉의 육사 연병장에서는 한눈에 보아도 확연히 다른 얼굴을 한 생도 한 명이 눈길을 끌었다. 사상 처음으로 우리 육사에서 4년간 위탁 교육을 받은 터키의 비르칸 생도가 주인공이다. 임관식에 맞춰 고국에서 날아온 가족들에 둘러싸인 비르칸 생도는 “낯선 새로움 속에서 동기생들의 고마움을 크게 느꼈고, 초코파이 하나에 행복을 느꼈던 훈련시절이 떠오른다.”면서 “터키로 돌아가려니 시원섭섭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특히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상급자를 존중하고 그들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해 한국 특유의 ‘예절’에 깊은 인상을 받았음을 내비쳤다. 비르칸은 터키로 돌아가 육군 장교로 복무하게 된다.●김장수 육참총장 장남도 임관 비르칸은 터키에서 우리 육사 입교 테스트를 받을 때부터 한국어 구사 능력을 인정받아, 육사에서 수업을 받을 때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외국인 생도로는 비르칸에 이어 지난해 터키인과 태국인 생도가 추가로 우리 육사에 입교해 교육을 받고 있다. 이날 졸업식에선 미국, 프랑스 등 해외 육사에서 교육을 받은 한국인 육사 생도 4명도 임관을 했다. 이중 프랑스에서 유학한 김용우 소위는 김장수 육군참모총장의 장남이다.●`부자 육사동기생´ 3쌍 탄생 유준호·서진석·양희식 소위는 각각 29년 선배인 육사 33기 유경빈·서한필·양윤모 현역 대령의 아들로,‘부자(父子) 육사동기생’ 3쌍이 탄생했다. 오동진 소위는 오동환 대위(육사 57기)의 동생으로, 형제 육사 동문도 4명이 배출됐다. 육사는 이날 임관식에서 총 214명의 신임장교를 배출했는데, 이중엔 여성 장교 17명도 포함돼 있다. 서동현 소위와 문권 소위가 각각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을 받는 등 모두 25명의 신임장교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與, 선거용 공세 비쳐질까 ‘조심’

    열린우리당이 최연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성추행 사건에 섣부른 정치 공세를 삼가고 있다.‘국회의원의 성추행’이라는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 의원직 사퇴 등을 촉구하면서도, 이번 사안을 5·31지방선거전에 이용하려는 움직임은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8일에는 최 의원 사건을 5·31지방선거와 맞물린 논평을 출입기자들에게 돌렸다가 부랴부랴 취소했다. 반사이익을 노리는 듯한 정치적인 ‘덧칠’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 지도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우상호 대변인도 이날 “단순히 한나라당에 악재가 되었구나 해서 좋아하고 있지는 않다. 혹시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지 않은가 겸손하게 돌아보고, 그런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스스로 옷깃을 여며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논평했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의 ‘치매’ 발언도 정동영 의장의 과거 ‘노인폄하’ 언급과 맞물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최근 들어서는 섣불리 도마에 올리지 않고 있다.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한나라당의 거듭된 악재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인상을 풍긴다면 우리당이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우리당의 신중한 기류에는 “굳이 여당이 나서서 무리하게 정치공세를 펴지 않아도, 한나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론의 뭇매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깔려 있다.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儒林(549)-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9)

    儒林(549)-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9)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9) 경(敬). 퇴계가 말하였던 대로 성리학은 이(理)를 깨닫는 것이고, 그 이를 깨닫기 위해서는 ‘마음이 한 가지 일에 집중되어 흩어지지 않는 주일무적(主一無適)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주일무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敬) 속에서 정제엄숙(整齊嚴肅)해야 한다는 것이 퇴계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경(敬)은 문자 그대로 사물을 공경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지극히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퇴계가 12살에 터득하였던 이(理)의 화두를 46년간 참구한 끝에 깨달은 진리의 골수였던 것이다. 퇴계는 죽기 2년 전 나이 어린 임금 선조를 위해 10가지 글과 그림의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써서 올린다. 이 성학십도는 퇴계의 대표적인 저술로 손꼽히고 있는데, 그 저술의 핵심은 ‘성학은 오직 경을 통해서만 그 근본정신을 체득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퇴계는 성학은 경학(敬學)이라고까지 결론을 내리고 ‘경이야말로 일심(一心)의 주재이며, 만사의 근본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또한 퇴계는 ‘지극한 섬김’, 즉 지경(至敬)을 통하여 인(仁)을 구함으로써 성인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고 경이야말로 성학의 처음이자 끝이라고까지 단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퇴계는 다시 말을 이었다. “잘 들으시오. 움직이지 않는(靜) 가운데서 ‘주일무적’한 것은 경(敬)의 체(體)요, 움직이는(動) 가운데에서도 온갖 변화에 대응하지 않고서 그 주재자(主宰者)를 잃지 아니하는 것은 경(敬)의 쓰임새(用)인 것입니다. 오로지 경이 아니면 지선(至善)에 머무를 수 없고, 경 가운데에 반드시 지선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靜)은 마른 나무나 죽은 재가 아니며, 동(動)은 분분(紛紛)하고 소란(優優)스러운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정(動靜)이 한결같고 체용(體用)이 서로 떠나지 않는 바로 그것이 지선인 것입니다.” 퇴계의 말은 율곡의 심장에 비수처럼 내리 꽂혔다. 그로서는 마침내 학문의 방향이 결정되는 운명적인 순간이었다. 훗날 율곡이 ‘내가 학문의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을 때 사나운 말처럼 이리저리 뛰고 하며 가시밭길의 거친 들에 있다가 방향을 고쳐서 옛길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이는 실로 퇴계 선생의 계발에 힘입은 것이다.’라고 술회하였던 것처럼 가시밭의 거친 들에서 학문의 본길로 돌아오는 엄숙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머물러 있거나, 움직이거나, 잠들거나, 깨어 있거나, 말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공부를 하거나 마음은 시종여일하게 지경에 머물러 있어야만 마침내 마음의 근본이 이성(理性)을 깨달을 수 있음을 느낀 것이었다. 그러므로 율곡이 금강산에서 의심하였던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이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의 불교적 화두는 스승 퇴계의 가르침에 의해서 유교식으로 다음과 같이 타파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이 하나는 바로 이(理)다. 그렇다면 이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그것은 바로 경(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공직45년’ 회고록 내는 이의근 경북지사

    ‘공직45년’ 회고록 내는 이의근 경북지사

    민선 3연임을 하고 오는 6월말 물러나는 이의근 경북지사는 22일 “단체장은 무엇보다 명확한 비전과 통합의 리더십, 도덕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전은 구성원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현실성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비전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이 지사는 “지시와 통제 위주의 리더십이 아니라 통합과 화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주민들의 주인의식이 높아져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리더십으로 지역의 발전을 이끌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덕성”이라고 단언했다. 이 지사는 “아무리 비전과 통합의 리더십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도덕성을 지니지 못하면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한순간에 모든 것이 허물어 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행정은 인간의 가치에 중점둬야” 이 지사는 이어 “행정은 인간의 가치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밝혔다.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가능하면 낮은 곳으로 임해 필요로 하는 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행정이어야 한다.”고 지론을 폈다. 이 지사는 공무원 9급으로 출발해 관선 한차례를 비롯, 모두 4차례나 경북지사를 역임한 ‘행정 달인’이다. 최근 지역신문 등의 여론조사에서 거물 정치인들을 제치고 대구·경북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한때 5월 지방선거에 대구시장으로 나온다는 소문이 지역에 나돌았다. 그는 오는 27일 오후 6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히말라야시다의 증언을 들으리라’(도서출판 한울)는 회고록의 출판기념회를 갖는다.‘이의근의 목민실서’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공직생활 45년, 도지사 재직 12년 동안 경험하고 실천했던 삶의 뒷이야기를 담고 있다. ●27일 세종문화회관서 출판기념회 그는 “개인의 삶보다는 45년 공직생활 동안 겪고 감당한 공적인 일들을 중심으로 썼다.”며 “이 글이 젊은이들이나 후배 공직자들에게 귀감은 못되더라도 앞날을 위한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고 겸손해 했다. 그는 이 책에서 가난한 산골마을의 소년으로 태어나 해방 전·후의 혼란 속에서 지낸 성장기의 고백과 4·19를 계기로 공직에 입문, 소용돌이치는 역사 속에서 공직자로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경험들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뜻하지 않게 민선 경북지사에 도전하게 된 과정,IMF체제란 어려운 상황에서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개최를 결정해야 했던 일, 동북아자치단체연합 창설을 주도하고 치열한 경쟁 끝에 사무국을 유치했던 과정 등도 들어 있다. 이 책은 ‘물을 차고 거슬러 오르리라.’ ‘바르게 가면 길이 된다.’ ‘변화와 혁신의 지도를 그리다.’ ‘아시아로, 그리고 세계로’ 등 8개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책 제목은 어느 날 집무실에서 도청 담을 따라 하늘을 향해 우람하게 서있는 히말라야시다를 보고 “곧게 뻗은 나무는 자신의 그림자가 굽어질까 염려하지 않는다.’는 ‘정관정요’의 한 구절이 떠올라 그 느낌을 적은 자작시에서 따왔다고. 이 지사는 “민선 10년째인 지난 해 지역의 한 신문에 삶의 뒷이야기를 연재한 것을 주위에서 책으로 엮으라고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됐다.”며 “공직생활 45년 동안 일선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적은 글이 후배 공무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임기가 끝나면 대구·경북지역에 남아 어떤 식으로든 지역발전을 위해 여생을 바칠 작정이다. 그동안 자신에게 보내준 지역민들의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서란다. 그래서 대구에 거처를 알아 보고 있다고 말했다. ■ 그가 걸어온 길 ▲출생 1938년 경북 청도 ▲학력 대구상고, 영남대 경제학과, 연세대 행정대학원 졸 ▲경력 대구 9급 공무원, 부천시장, 안양시장, 내무부 지방행정국장, 경북지사, 대통령 행정수석비서관 ▲좌우명 무실역행(참되고 실속 있도록 힘써 실행한다) ▲가족 이명숙 여사와 2남, 출가 ▲취미 독서, 등산 ▲애창곡 고향무정 ▲골프 핸디 18 ▲주량 소주 반병 ▲기호음식 된장찌개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구청장 현장인터뷰] 김현풍 강북구청장

    서울 강북구 우이동 삼각산(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솔밭공원’. 하늘로 뻗은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100년 넘은 노송(老松) 1000여그루가 모여있는 것은 서울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다. 세월의 향기만큼이나 고풍스러운 솔향이 배어나왔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라면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휴대전화 광고가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김현풍(65) 강북구청장이 한 손에 막걸리를 쥐고 나타났다. 김 구청장은 소나무와 막걸리에 대한 얘기부터 꺼냈다. “아프지 말고 잘 크라는 뜻에서 소나무에 막걸리를 부어주곤 하지요. 막걸리에는 소나무의 생육을 돕는 단백질, 아미노산, 유기산, 미네랄 등이 풍부하게 포함돼 있어요.” 실제로 오래된 소나무에 막걸리를 붓는 ‘막걸리 공양’을 통해 소나무의 기력을 회복시켰다는 기록도 있다. 김 구청장의 남다른 소나무 사랑에는 이유가 있다.2003년 소나무들을 베어내고 아파트를 지으려던 업자들을 설득해 솔밭공원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김 구청장은 직원들과의 회식에서도 각종 영양분이 함유된 막걸리와 소화를 촉진시키는 요쿠르트를 섞은 ‘김현풍표 술’을 권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옆에 있던 구청 직원은 김 구청장이 강북구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아닌게 아니라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한두시간 삼각산을 오르내리니 그럴 법도 하다. 평소에는 맨발로, 추울 때는 고무신을 신고 산을 탄다. 이런 습관 때문에 지난해 모 방송국의 ‘생로병사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산에도 산격(山格)이 있습니다. 삼각형으로 나란히 솟아 있는 백운봉·인수봉·만경봉 세 봉우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산격이 느껴집니다. 삼각산을 오르내리면 강하면서도 너그러운 산의 기운을 받는 것 같아요.” 인터뷰 도중 누군가 김 구청장에게 안부 인사를 건넸다. 우이동 토박이이자 소설 ‘해적’을 쓴 김중태 선생이다. 김 구청장이 1991년 도봉문화원을 설립할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김 선생은 “삼각산 주변에 살면서 아침에는 소쩍새 울음을 들으면서 잠을 깨는 것은 복받은 일”이라고 거들었다. 이런 이유에서 김 구청장은 지역 주민들과 함께 ‘삼각산 이름 되찾기 운동’을 줄기차게 벌이고 있다. 매년 삼각산 진달래축제, 삼각산 국제산악문화제, 삼각산 국제포럼을 연다. 다음달 개관할 ‘강북영어마을’의 프로그램에도 삼각산 탐방을 포함시켜 어린이들에게 삼각산의 아름다움을 알릴 예정이다. “서울시내 학교 교가 60여곡에 삼각산이라는 이름이 들어있고, 도선사·진관사·조계사의 이름 앞에도 꼭 삼각산이 들어갑니다. 고려시대 성종 무렵부터 1000년 동안 삼각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일제시대 행정구역 개편 때 북한산으로 바뀌게 된 것이지요. 이제는 일제의 잔재를 없애야 합니다.” 김 구청장은 삼각산을 관광문화특구로 지정해서 삼각산을 널리 알릴 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아·삼양선 지하경전철을 만들어서 접근성을 높이고 삼각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해서 장애인이나 노약자도 삼각산을 즐기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연을 잘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런 얘기를 듣는 사이 솔밭공원 너머로 보이는 삼각산이 ‘소중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 그가 걸어온길 ▲출생 1941년 충남 당진 ▲학력 서울대 치과대학 졸업, 서울대 치의학과 대학원 의학박사 ▲약력 서울시 치과의사회 회장, 대학치과의사협회 부회장, 서울대 치과대학 외래교수, 서울시 지방검찰청 의료자문위원, 도봉문화원장·강북문화원장, 전국문화원연합회 서울시회장, 자연보호중앙회 서울시협의회 회장 ▲가족 조길자씨와 2남 ▲종교 천주교 ▲기호음식 된장찌개 ▲주량 막걸리 3병 ▲좌우명 사랑, 겸손, 인내 ▲애창곡 너와 나의 고향 ▲취미 등산, 마라톤, 독서, 음악감상 ▲특기 맨발 등산하기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儒林(545)-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5)

    儒林(545)-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5)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5) 이제 남은 마무리는 율곡이 미래지향적으로 취해야 할 학문의 방향. 마침내 떠나기 전날 밤 두 사람은 계당에 마주앉아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감히 스승님께 묻겠습니다.” 오랜 침묵 끝에 율곡이 입을 열었다. “주자가 말씀하시기를 ‘정함(定)’과 ‘고요함(靜)’,‘편안함(安)’들은 비록 절차는 나누어져 있으나 이 모두가 학문에 대한 공부가 용이하게 진전되게 하는 필수적 요소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주자는 ‘마음이 편안한 이후라야 능히 생각할 수 있다.’라고 말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주자는 공자의 수제자인 오직 안회만이 이것을 실천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하오면 소인과 같은 사람은 학문에 정진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율곡은 유교의 4대 경전 중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여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대학의 제1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대학의 도는 ‘인간의 밝은 덕(明德)’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지극한 선(至善)’에 이름에 있다. 이를 안 뒤에 뜻의 정함(定)이 있으니, 뜻이 정하여진 뒤에는 마음이 능히 고요하고, 마음이 고요하여진 뒤에는 그 처한 바에 능히 편안하고, 편안함 뒤에 능히 사려가 깊고, 사려가 깊은 뒤에 능히 얻은 바가 있다.” 따라서 율곡의 질문은 대학에는 ‘마음이 편안한 이후라야 능히 사려할 수 있다.(安而後能慮)’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자신은 지금까지 한때 불교와 같은 외도에 마음이 빼앗기기도 하고 아직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여 평안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상태에 있으므로 과연 학문에 정진해 나갈 수 있겠느냐는 내용을 담고 있음이었던 것이다. 율곡의 질문을 들은 순간 퇴계는 곧바로 율곡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다. 퇴계는 율곡이 아직도 자신의 마음을 평안(平安)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불안(不安)하게 여기고 있음을 직감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퇴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주자께서 ‘평안한 뒤에 능히 사려하는 것은 실로 안회가 아니면 이것을 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진실로 그대가 의심한 바와 같소. 그러나 주자의 말씀은 위아래로 모두 통하고 정밀한 것과 조잡한 것이 다 갖추어져 있어서 어떤 사람의 학문이 낮고 깊은 정도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두루 ‘평안한 뒤에 능히 사려할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오. 즉 조잡한 쪽으로 말하면 보통사람이라도 힘써 나아갈 수 있고, 그 정밀한 것의 극치로 말한다면 큰 선비가 아니고서는 진실로 얻은 바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인 것이오. 주자의 말씀은 그 극치를 말씀하신 것뿐이오. 만약 공자의 수제자인 안회가 아니면 명덕(明德)을 밝힐 수 없다는 주자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나와 같은 노마(駑馬)는 어찌 학문에 정진할 수 있겠소. 아니 그렇소이까. 허허 허허허허.” 퇴계는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면서 크게 웃었다. 좀처럼 희언을 하지 않던 근엄한 스승 퇴계가 자신을 가리키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하였으므로 율곡도 따라 웃으며 말을 이었다. “스승께서 노마시라니요. 지나친 겸손의 말씀이시나이다.”
  •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16) 石工과 돌문화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16) 石工과 돌문화

    돌은 인간이 도구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사용한 재료 가운데 하나다. 녹슬거나 썩지 않고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돌은 인류 문명의 동반자로 함께 출발했다. 이 땅에는 유난히 돌이 많다. 눈만 뜨면 돌과 바위가 보인다. 우리 민족은 단단하고 거친 돌을 떡 주무르듯 매만져 부드럽고 담백한 조형으로 빚어낼 줄 알았다. 전국의 많은 석탑·부도·석불 등의 섬세한 조각을 보면 선조들의 빼어난 돌 다듬는 솜씨를 알 수 있다. 특히 단단한 화강암으로 불상을 쪼고 탑을 세운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한국을 석조미술의 나라로 부르는 것도 뛰어난 돌 문화 때문이다. 옛 조상들은 돌에 강인한 생명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굳세고 신령스럽다고 여겼기 때문에 돌로 기념물을 만들어 복을 빌었다. 돌을 생각하는 정서가 무한한 예술로 승화된 대표적인 예가 석불(石佛)이다. 석불은 어찌 보면 하찮은 돌이지만 바위라는 초월적 존재에 신상(神像)을 조각한 것이다. 숭고한 부처의 모습이면서도 온화한 인간의 미소를 띠어 평안함을 준다. 불변의 진리를 담은 석불조각은 우리의 꿈과 희망이었다. 돌은 자연의 일부분이다. 소박한 우리의 ‘돌문화’에서 조상들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미적 감성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선조들은 충족되지 않은 삶의 부족한 부분을 돌과 바위를 통해 얻고자 했다. 그것은 자연과의 내밀한 대화다. 강인함과 영원성의 상징물인 돌의 마음을 읽으며 인간의 보편적 희망을 완벽한 조형미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생활속 소도구로, 거대한 정신세계를 구현하는 종교와 예술의 소재로 돌은 우리 민족 문화를 담아온 그릇인 것이다. 글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돌 안에 숨은 부처 모셔오죠” 한 점 한 점 정을 맞는 커다란 돌덩이에 부처님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17살 때 석공이던 할아버지에게 돌담 쌓기부터 배워 46년간 한우물을 파온 배방남(65)씨. 그는 바위 속에 부처님이 살아 있다고 믿는다. “돌부처는 정으로 쪼아 모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숨어 계신 돌 속의 부처님을 모셔오는 겁니다.” 배씨에게는 돌속에 들어 있는 따뜻한 숨결이 느껴진다.“돌에 열을 가하면 따듯해지듯 석수장이의 손에 따라 돌도 숨을 쉬지요.” 그가 정을 쪼을 때마다 돌도 박자에 맞춰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화강암은 매우 단단해 섬세한 작업이 어렵다.“기계로 대량 생산된 석물은 오래 버티지 못해요.” 정으로 쪼아서 섬세함을 살리는 자기만의 고도로 숙련된 기술이 있어야 석공으로서 끝까지 살아남는단다. 평생 돌에 매달려온 배씨지만 작품을 대하는 자세는 한결같이 겸손하다. 그는 또 삼국시대의 석불과 석탑이 여전히 아름다운 것처럼, 영겁의 세월을 버틸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업할 뿐이라고 말했다. 사진 · 글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숙명의 새 천년을 위해 헌신할 것”

    국내 대학 역사상 첫 4선 총장이 나왔다. 학교법인 숙명학원(이사장 이용태)은 20일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을 제 16대 총장으로 다시 선출했다.1994년 13대 총장 취임 이후 선거를 통해 네 차례 연임하는 국내 첫 총장이다. 이 총장은 오는 3월19일부터 제16대 총장으로 일하게 된다. 임기는 4년이나 정년퇴직 시한인 2008년 8월31일까지 일하게 된다. 앞서 전체 교수회의는 지난 8일 교수 직선투표로 이 총장을 포함한 2명의 총장 후보를 선출했다. 이 총장 취임 이후 숙대의 변신은 놀라울 정도다. 지난 10여년간 캠퍼스 부지는 2배, 교사 연면적은 3배 가까이 늘었다. 재학생수도 1만 2750명(95년 당시 7917명), 전임 교원수는 523명(95년 당시 211명)으로 증가했다. 발전기금 모금액도 927억원에 이르는 등 100년의 역사 중 가장 급속한 발전을 이뤄냈고 다음 세기를 위한 든든한 초석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총장은 “창학 100주년을 맞는 중요한 시기에 다시 한번 총장으로 선출되었다는 것은 교직원과 재학생, 동문의 신뢰와 지원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숙명의 새 천년을 위해 헌신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총장 선출 방식이 ‘교황식 선출’로 3년 이상 재직한 교수는 모두 선출 대상인데다 사전 선거 운동이 불가능해 연임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재임기간 중 가장 달라진 변화에 대해 “숙대 하면 모두 조용하고 정숙한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글로벌 리더십 육성을 특성화하면서 학생들이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고 교풍이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분위기로 변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1965년 숙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미국 캔자스 대학과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아 1976년부터 숙대 교수로 재직해왔다.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중국전문가로 ‘제2인생’ 홍인기 전 증권거래소 이사장

    중국전문가로 ‘제2인생’ 홍인기 전 증권거래소 이사장

    “한국기업들은 중국의 ‘제2 골드러시’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중국 은행시장에서는 서구 은행들에 선수를 놓쳤지만 개방이 본격화된 증권시장에서는 기회를 선점해야 합니다.” 중국 전문가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홍인기(68) 전 증권거래소 이사장은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에 대한 조언으로 말문을 열었다. 홍 전 이사장의 설명은 이러했다. 중국은 2006년 말 은행시장의 완전개방을 앞두고 2003년부터 은행개혁을 단행했다. 미국과 유럽의 유수 은행들에 중국 은행들의 지분 일부 인수를 허용했다. 규제는 심했지만 20개 은행이 200억달러를 투자했고, 이후 해당 은행의 주가가 50∼300%나 치솟아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그뿐 아니라 중국이라는 엄청난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은행시장 개방이 제1 골드러시라면 올해부터 본격화될 증권시장 개혁이 제2의 골드러시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중국은 앞으로 2∼3년안에 1370개 상장기업들의 비유통주식을 유통주로 전환할 예정”이며 “지난 2월1일부터 특정 자격을 갖춘 외국기업들에 이들 상장기업의 주식을 최대 10% 살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급변하는 중국 상황을 설명했다. 단 3년 이상 보유라는 단서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대한 새로운 중·장기 투자전략을 세울 때는 지금이 최적기이다.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 기업의 지분을 인수, 전략적인 제휴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은행처럼 한국기업들이 중국시장에서 소외당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글쓰기는 뒤처지지 않기 위한 노력” 홍 전 이사장은 2월 초 서울 동작구 상도동 중앙대 후문 근처 오피스텔에 마련한 사무실로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한다. 출근하면 일단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신문들부터 읽기 시작한다. 국내 신문들은 물론, 파이낸셜 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아시아판, 해럴드 트리뷴, 차이나데일리,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어지간한 영자신문과 일본경제신문을 꼼꼼히 읽어나간다. 국내외 연구소들에서 내는 보고서도 챙긴다. 증권거래소 이사장에서 물러난 뒤 6년째 이같은 생활을 해 오고 있지만 힘들다거나 귀찮게 느낀 적은 한번도 없단다. 신문을 읽다 중국 관련 기사가 있으면 스크랩을 해두는 것도 새로 생긴 버릇이다. 홍 전 이사장은 요즘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통한다. 거래소 이사장(1993∼99년) 시절부터 중국 증권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중국 알기’에 뛰어든 것은 현직에서 물러난 뒤부터다. “연구라기보다 자료를 수집해서 분석하는 수준”이라고 겸손해했다. 하지만 2003년부터 중국 관련서를 매년 1권 꼴로 지금까지 4권이나 냈으니까 그의 말처럼 자료수집 수준은 분명 아니다. 지난 13일 네번째 중국 관련 책인 ‘중국의 금융시장론(박영사)’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앞서 지난 2000년과 2001년에는 일본 금융관련 책 2권도 펴냈다. 집필 활동을 계속할 것이냐는 질문에 (중국내 상황이 변하는 한) “책은 계속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자도 아닌 분이 이렇게 왕성하게 전문서를 내면 주위에서 ‘눈총’을 주지 않느냐고 묻자 “글쎄”라며 웃음으로 대신했다.“글쓰기는 시간을 보내고 뒤처지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란다.“이 나이에 중국어를 배우기가 쉽지 않아 중국어로 된 자료는 주위의 도움을 받는다.”며 아쉬워했다. 완벽함에 대한 욕심이 묻어났다. 홍 전 이사장은 이렇게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젊은 세대들에게 전수하는데서 보람을 느낀다.6년째 서강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 경영대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맡고 있는 그는 “젊은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저절로 젊어지는 것 같다.”며 파안대소했다. ●“책쓰기와 노래는 영원한 애인” 책을 쓰고 연구하는 것 이외에 다른 ‘소일거리’는 없는지 궁금했다.“별다른 취미가 없다.”는 홍 전 이사장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6시까지 장로로 있는 소망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 다음 헬스클럽에서 아침 운동을 한 뒤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개인사무실로 출근한다. 워낙 일찍 하루를 시작하다 보니 밤 10시면 잠자리에 든다. 자타가 인정하는 수준급의 노래 실력도 요즘은 별로 발휘할 기회가 없다.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CD 3장을 냈을 만큼 성악에 대한 홍 전 이사장의 애정은 각별하다. 저술 활동과 성악 사이엔 비슷한 점이 있단다.“둘 다 혼자하는 작업이고, 책임도 전적으로 혼자 진다는 점이 같다. 그러다보니 고독하고,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60대여, 세상을 밝게 보자” 홍 전 이사장은 고령화 문제가 불거지면서 많은 ‘젊은 노인’들이 ‘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고민인 이들의 심정을 공감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흔히 우리를 ‘지공세대’라고 합디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만 65세가 넘은 사람들인데 우리는 공부하고 일하는 것 이외에 달리 취미나 재주가 없는 세대”라면서 “나도 비슷하지만 우리 세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모든 걸 회색으로만 보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보상이 있든 없든 바쁘게 삽시다. 자기를 독려하면 뭔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못해봤던 일들을 해보고, 감정을 갖도록 합시다.”여전히 쩌렁쩌렁한 목소리에는 홍 전 이사장 특유의 낙관론이 배어있었다.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출범 1주년 행사에 갔다 옛 식구들과 함께 한 저녁자리에서 노래 ‘한자락’을 뽑았다. 오랜만에 스트레스를 풀었다며 웃는 홍 전 이사장의 얼굴에서 나이보다 젊게 사는 그만의 ‘비결’이 엿보였다. 글 김균미 사진 이호정기자 kmkim@seoul.co.kr ■ 홍인기 전 이사장은 ▲1938년 서울 출생 ▲1956년 서울고 졸업 ▲1960년 서울대 법대(행정학) 졸업 ▲1960∼1973년 재무부 이재2과장, 증권보험국장 ▲1977년 동양증권 사장 ▲1978년 대우조선 사장 ▲1988년 동서증권 사장 ▲1991년 한국산업증권 사장 ▲1993∼1999년 한국증권거래소 이사장 ▲1999∼2005년 한국증권연구원 고문 ▲현재 서강대·중앙대 겸임교수, 전경련 차이나포럼 경제산업분과 위원장
  • [반기문외교 유엔총장 출사표] 반기문후보 누구인가

    [반기문외교 유엔총장 출사표] 반기문후보 누구인가

    “솔직히 말하면 제가 한국안에서 가장 적절한 후보인지 장담 못 드리겠다. 다만 장관과 과거 유엔 경력을 봐서 정부가 추천한 것 같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후보자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소회다. 반 장관은 외교부에서 소위 가장 잘 나가는 관료 경력과 능력에도 불구, 위·아랫사람 모두에게 겸손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부드럽고 강인함, 철두철미한 업무능력이 국제무대에서 많은 친구들을 확보한 요소들이다.10여페이지에 달하는 외교 전문도 실무자를 무색할 정도로 쉽게 암기한다. 일이 취미란 우스갯소리도 따라다닌다. 반 장관은 충주고 재학 시절, 독학으로 갈고 닦은 영어실력으로 미 정부가 주최하는 영어대회에 나가 입상했다. 이로 인해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을 만날 기회를 갖기도 했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 제3회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40년 가까운 그의 외교관 생활 관운은 좋은 편이다. 북미국장, 차관보, 차관 등의 요직과 청와대의 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외교보좌관을 거쳤다. 주니어 외교관 시절부터 유엔 관련 업무를 많이 맡았던 것도 눈에 띈다. 국제연합과 차석, 주국제연합 1등 서기관, 국제연합 과장 등을 역임했고 북미국장, 주미 공사, 외교정책실장 등을 거쳤다. 차관을 지내고도 2001년 9월 한승수 당시 외교장관이 겸임하던 제56차 유엔총회의장의 비서실장으로 일했는데, 결국 이때 경험이 사무총장 지지 기반 확대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사무총장 선출 열쇠를 쥔 프랑스의 경우 후보 자격으로 프랑스어 구사실력을 요구할 가능성도 많다. 반 장관은 외무고시 시험을 불어로 봤고, 유엔 근무시절 점심시간을 활용해 불어를 익혔다. 지난해부턴 하루 1시간 개인 교습을 통해 불어 실력을 복원, 지난 3일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불어로 특강, 프랑스측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특히 “외교부 전직원 가운데 가장 체력이 좋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외교 일정 강행군은 유명하다. 미국과 유럽, 중동, 아프리카 출장 때 시차를 감안, 이동하는 시간에 비행기에서 숙박하는 일정을 잡는 게 다반사다. 반 장관은 충주고와 충주여고간 학생회장단 간부 교류로 만난 유순택 여사와의 사이에 선용과 현희, 우현씨 등 2녀1남을 두고 있다. 둘째 딸 현희씨는 유엔아동기금(UNICEF) 직원으로 아프리카 수단에서 일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열린세상] 하인스 워드와 “대∼한민국”/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 교수

    지난 6일 벌어진 40회 슈퍼볼 경기 이후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한국에서 하인스 워드 선수가 단연 화제다. 미국에서는 슈퍼볼 경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워낙 높다. 이에 따라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은 워드는 미국의 새로운 사회적 영웅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가 그에게 보이는 관심은 미국과 조금 다르다. 절반이 한국인이라는 인종적 배경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그와 그 어머니에 관한 기사를 연일 다루고, 인터넷에는 팬카페가 벌써 몇개 만들어졌다는 풍문이고 보면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운동선수로서의 환상적인 플레이보다는 그가 한국인 어머니의 헌신적 희생으로 훌륭하게 성장했다는 휴먼 드라마에 우리는 깊은 감동을 받는다. 특히 그의 팔에 문신으로 새긴 ‘하인스 워드’라는 한글 이름이 강렬하게 우리의 동종의식을 자극한다. 한국인들은 유난히 동종의식이 강하다. 문화적 고유성에 대한 자기방어의 방식뿐 아니라 혈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우리’를 확인하고 ‘우리 것’을 지켜낸다는 의식은 오랜 역사의 결과물일 것이다.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동화(同化)’의 유혹과 도전을 견디면서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생존력의 비법이기도 하다. 제국주의 침탈의 근대사를 겪으면서 그러한 의식은 민족주의라는 이념을 재생산해 온 기반이 되었다. 분단이후 남북한 통합이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은 지금, 한국인의 민족주의 정서는 특별히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오늘날 한국의 민족주의에는 실로 다양한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 자주와 주권의 문제, 대외적인 저항의식과 타민족에 대한 우월의식,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관심은 물론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기대감에도 민족주의가 작동한다. 그런가 하면 2002년 이후 한국인 자긍심의 표상인 “대∼한민국”이라는 구호에도 민족주의의 색조가 묻어 있다. 21세기는 정체성의 시대다. 세계화의 거대한 힘에 의해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어가는 시대에는 개체 존립을 위한 동력 또한 반작용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우리 것을 확인하려는 정서적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대∼한민국”이라는 외침이 더 큰 메아리로 가슴 속에 울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민족주의의 진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하는 것이 있다. 자긍심과 정체성의 강화가 자칫 타인에 대한 극단의 배타성으로 나타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배타적 민족주의가 증오를 낳고, 야만과 살육의 광기를 드러내던 시대를 우리는 목격하지 않았던가? 근대이후 민족주의는 주요 전쟁의 원인이 되어 왔다. 이러한 시대 유산이 강한 역사적 기억으로 남은 곳이 동북아 지역이다. 따라서 배타적 민족정서가 정치적 갈등으로 도발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동북아의 근대사는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왔고 그 과정에서 한민족이 가장 큰 희생을 치렀다. 동북아에서 불행했던 역사를 극복하고 상생과 협력의 지역질서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면 배타성을 강화하는 인식을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중요한 과제다. 동북아 중심국가로서 협력적 미래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면 우리부터라도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떡볶이를 좋아한다는 미셸 위도 사랑스럽고,4월에 한국인 어머니와 함께 서울을 방문한다는 하인스 워드도 기다려진다. 그는 역경을 딛고 자신의 꿈을 이룬 훌륭한 젊은이다. 그에게 늘 겸손을 가르쳤다는 한국인 어머니가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6월이 되면 독일 월드컵에서 우리 축구대표팀의 눈부신 활약을 기대하며 온 국민이 “대∼한민국”의 거대한 함성 속에 다져지는 정체성 재생산의 열기가 민족적 자긍심을 충족하는 도를 넘어 타민족에 대한 비하와 적대감으로 발전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어울리면서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해 나가는 것도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다.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 교수
  • “흑인이나 혼혈에 언제 관심가졌나”

    “흑인이나 혼혈에 언제 관심가졌나”

    |애틀랜타 이도운특파원|“축하한다, 자랑스러운 아들아!” “생큐 맘(고마워요, 어머니).” 한국계 풋볼 선수인 하인스 워드가 12일(현지시간) 미국프로풋볼리그(NFL)의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뒤 처음으로 어머니 김영희씨를 찾았다. 워드는 지난 5일 열린 NFL 결승전 이후 애틀랜타 근교 맥도너의 자택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어머니를 만나자마자 힘껏 끌어안고 볼과 입술에 뽀뽀를 하며 반가움과 기쁨을 표시했다. 김씨도 자랑스럽고 흐뭇한 표정으로 아들을 꼭 안았다. 워드는 ‘모자(母子)의 상봉´을 취재하려고 몰려든 한국 기자들에게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승리의 V자를 그려보였다. 촬영과 짧은 회견에도 응했다. 김씨는 “이틀전 욕실에서 미끄러져 팔을 다치는 바람에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지 못했다.”면서 “오늘은 할 수 없이 내 아들에게 짬뽕을 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워드도 “짬뽕 좋아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워드는 “어머니가 처음에는 풋볼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요즘은 일요일마다 경기를 시청하고 가끔은 코치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어머니로부터 배운 대로 나의 아들도 겸손하게 키우겠다.”면서 “아들의 첫돌 때 한국식으로 잔치를 했는데 아들이 반지와 돈을 집었다.”고 전했다. 워드는 “나는 못하지만 아들에게는 한국말을 가르치기 위해 한국어 책을 몇 권 사뒀다.”고 말했다. ●“아들관심 너무 과잉스러워 거북” 김씨는 기자들과 만난 뒤 집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한국에서 일고 있는 아들에 대한 ‘과잉 열풍’에 대해 쓴소리도 했다. 김씨는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좋은 일이고, 여러 사람이 찾아와서 고맙긴 하지만 너무 과잉스러워 거북하다.”면서 “내가 원래 나서길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라고 말했다. 김씨는 “과잉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국 사람들이 흑인이나 혼혈이라면 언제 사람 대접이나 해줬느냐.”면서 “어렵게 혼자 살 때는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잘되면 쳐다보고 그렇지 않으면 쳐다도 안 보는 것이 한국의 풍토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김씨는 기자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모자간 포옹을 거듭 요구하자 “동네 부끄럽다.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아들위해 한국어책 사뒀다” 워드는 이에 앞서 하루 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10년이나 15년 후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스포츠 해설가가 돼 TV에 나올 수도 있고, 고등학교로 돌아가 풋볼 코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운동과 함께 공부도 아주 잘했던 워드는 “요즘은 학문적인 것 대신 비즈니스에 대한 공부를 한다.”면서 “부동산 투자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만약 풋볼을 하지 않았다면 공부보다는 사업을 했을 것”이라면서 “어머니에게 배운 강인함 때문에 무엇을 해도 성공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워드는 그동안 집안의 법률 자문을 해주던 한국계 앤드루 리 변호사를 한국 언론 등과 관련한 창구로 지정했다. 따라서 워드가 한국에 투자하거나 한국과 관련한 사업을 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dawn@seoul.co.kr
  • 본지 특파원 워드 현지인터뷰 “피부색 부끄러워 말고 자기꿈 믿어라”

    본지 특파원 워드 현지인터뷰 “피부색 부끄러워 말고 자기꿈 믿어라”

    |애틀랜타 이도운특파원|2006년 미국 프로풋볼 리그 슈퍼볼의 영웅 하인스 워드는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인스 워드입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넸다. 워드는 9일(현지시간) 밤 미국 뉴욕에서 텔레비전 출연을 마치고 10일 오전 11시 30분쯤 조지아주 애틀랜타 인근 스머나의 자택에 도착, 기다리던 한국 특파원들을 만나자마자 특유의 밝은 미소를 지으며 심경을 밝혔다. 워드는 한국 특파원들을 만나는 것이 무척 반가운 듯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거나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등 갖가지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슈퍼볼 MVP가 된 소감은. -매우 기쁘다. 우리 가족은 물론 한인 동포 사회를 대표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한인 사회가 나에게 큰 관심을 갖고 공감을 보여준 데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토요일에 어머니와 MVP 수상 이후 처음 만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던 갈비와 김치 생각이 간절하다. ▶어머니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어머니는 나의 전부다(She is world to me).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어머니와는 바꿀 수 없다. 어머니가 내게 베풀어준 은혜는 평생 갚아도 다 갚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풋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어머니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이같은 성취를 이룰 것이라고 누가 기대했겠는가. 그러나 나는 이 자리에 서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슈퍼볼에서 승리한 것은 나와 어머니가 함께 이긴 것이다. 어머니는 내게 영감을 줬고 동기를 부여했다.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런 아픔을 느꼈나. -한국에서 여자가 외국인과 결혼해 고국을 떠나는 것은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미국에 도착한 뒤에도 하루 세 가지 직업을 함께할 정도로 많은 시련을 겪으셨다. 그러나 지금 보는 바와 같이 모든 것을 다 이겨낸 것 아닌가. 어머니가 뭔가 새로운 일을 찾으면 지금 하고 있는 학교 식당 일을 그만둘 수도 있을 것이다. 한번 심각하게 얘기해볼 생각이다. ▶어머니에게 구체적으로 배운 것은. -항상 겸손하라고 하셨다. 또 내가 대접받길 원하는 만큼 남을 대우하라고 가르치셨다. 어머니는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그런 고생들이 어머니의 정신을 꺾지는 못했다. 어머니는 무엇을 얻고 싶으면 남에게 부탁하지 말고 스스로 노력해 얻으라고 가르쳤다. ▶혼혈이라는 사실이 장애가 되지는 않았나. -나는 반은 미국인이고 반은 한국인이다. 이 둘의 장점을 갖고 있다고 본다. 어릴 적에는 반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싫었다.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니까. 그러나 지금은 나의 그런 장점을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오히려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더 알고 싶다. ▶한국에는 언제쯤 찾아갈 생각인가. 4월에 갈 거다. 나는 어머니가 어디에서 자라셨는지 늘 알고 싶었다. 또 젊었을 때 무얼 하셨는지도 알아볼 것이다.30년 만에 한국에 처음 가는 것이라 무척 기대된다. ▶한국의 혼혈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피부색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말라. 대신 자기 꿈을 믿고 실천하라. dawn@seoul.co.kr
  • 하인스 워드 경기전 예견 화제

    하인스 워드(30·피츠버그)가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슈퍼볼 MVP투표에 사상 최다 팬이 참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미국 UPI통신에 따르면 지난 6일 실시된 미국프로풋볼(NFL) MVP 투표에 65만 7217명이 참가해 사상 최다였던 지난해 슈퍼볼보다 40%나 많았다. 워드는 미디어 투표와 팬 투표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한편 워드는 슈퍼볼 경기전 자신이 MVP가 될 것을 예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전문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가 보도한 10일자 기사에서 워드는 “이번 시즌은 내가 터프 플레이어임을 증명할 기회”라면서 “최초의 아시아인 슈퍼볼 MVP가 될 기회를 가졌다.”고 말했다.SI는 “워드는 자신의 예언을 뛰어난 플레이로 성취했다.”면서 “감독과 동료들로부터 존경받는 스타”라고 전했다. 이어 “워드의 성품은 피츠버그가 어떤 팀인지를 상징하는 것”이라면서 워드의 성실하고 겸손한 성격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씨줄날줄] 절반의 한국인/육철수 논설위원

    혼혈인은 대개 전쟁과 사랑의 소산이다. 사랑이나 전쟁은 국경과 종교, 인종을 뛰어넘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다양한 인적 교류도 동반하게 마련이다. 타인종간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혼혈인이라면 축복받을 일이다. 인류평화와 인종간 이해증진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통 불가항력으로 세상의 빛을 봤다면 인생 또한 순탄한 경우가 드물다. 국가·인종간 교류가 흔치 않았던 시대, 혼혈인은 약소국 여성과 강대국 남성 사이에 태어나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민족간 교류가 많은 경우, 혼혈인은 민족단위로 형성되기도 한다. 메스티조(백인×인디오), 뮬레토(백인×흑인), 유레이지언(인니·말레이시아인×백인) 등이 대표적이다. 혼혈민족은 전쟁과 식민지배의 아픔을 딛고 어엿한 공동체로 성장한 케이스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도 광복 후 미군 주둔과 함께 원치 않은 혼혈의 아픔을 수도 없이 겪었다. 베트남전에서는 가해자가 되어 한인2세(라이따이한)를 양산했다. 최근에는 농어촌 총각들이 아시아권 여성을 신부로 맞아들이는 일이 성행해 ‘코시안’이라 불리는 2세도 늘고 있다.1999년 이후 이런 국제결혼은 11만 5000쌍이나 되고, 조만간 농어촌 초등학교는 재학생의 20% 이상이 이들 2세로 채워질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지금 한국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프로풋볼 선수 하인스 워드(30)가 온통 화제다. 어머니 김영희(55)씨가 언어장벽과 가난, 이혼으로 이어지는 역경 속에서 아들을 슈퍼볼 최고의 스타로 길러낸 스토리는 눈물겹다. 워드는 팔에 한글이름을 새기고,‘절반의 한국인’임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단다. 어머니한테 헌신·희생·겸손을 배웠고, 효성도 지극하다니 참으로 기특하다. 어머니의 강인한 의지와 뜨거운 애정, 그리고 미국땅에서 온갖 설움을 견뎌낸 눈물 덕분에 한국은 그에게 모국(母國) 대접을 톡톡히 받고 있다. 순수혈통을 고집하는 나라 안 분위기 탓에 수많은 한국계 혼혈인들은 사회 부적응과 냉대 속에 좌절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워드의 성공을 축하하기에 앞서 부끄러움이 앞선다. 이제 우리 이웃엔 어린 한국계 2세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들 ‘절반의 한국인’을 따뜻한 가슴으로 품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NFL 슈퍼볼] 한국계 워드 피츠버그 우승 견인 “한인공동체 위해 최선 다할것”

    [NFL 슈퍼볼] 한국계 워드 피츠버그 우승 견인 “한인공동체 위해 최선 다할것”

    “위대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랐던 꿈이 이루어졌다. 이제는 경기장 밖에서 이뤄야 할 것들을 찾아 의미있는 날들을 보내겠다.” 미국프로풋볼(NFL) 슈퍼볼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하인스 워드(30·피츠버그)가 6일 경기 직후 밝힌 소감이다. 워드는 ‘의미있는 날’들에 대한 정확한 뜻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오는 4월 최고가 되어 어머니 김영희(55)씨의 조국인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다. 실제로 워드는 슈퍼볼 직전에 가진 여러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한 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USA 투데이와 인터뷰에서 “나는 절반이 한국인인 만큼 한인공동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일 한국의 한 스포츠 케이블TV와의 인터뷰에서도 “한국을 위해 꼭 이기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지난달 31일 ‘미디어데이’행사에서는 “내 몸의 절반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며 “한국말을 배우지 않은 게 인생에서 유일한 후회”라고 고백했다. 워드는 이런 비장한 각오를 되새기느라 긴장한 탓인지 출발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0-3으로 뒤지던 2쿼터 시애틀 엔드라인 3야드 앞에서 벤 로슬리버거의 패스를 받아 역전 터치다운의 발판을 놓았다.14-10으로 쫓기던 4쿼터에는 동료 앤트완 랜들 엘의 43야드짜리 패스를 잡아 승부의 쐐기를 박는 터치다운을 찍고 포효했다. 결국 워드는 리시브 5개에 123야드를 전진, 한국인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워드는 겸손함과 희생 정신 등 한국인의 덕목을 풋볼에서도 가장 큰 덕목으로 여긴다. 그래서인지 이날도 모든 공을 코치와 동료들에게 돌렸다. 자신의 아들을 안고 시상대에 오른 워드는 “공격코치가 상황에 따라 정확한 공격법을 지시했다.”며 코치진에 감사한 뒤 “동료들이 기회를 줬고 나는 뛰기만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워드는 특히 “43야드 패스를 해준 앤트완 랜들 엘의 도움이 컸다.”고 말해 팬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한국계 하인스 워드 ‘美슈퍼볼 MVP’

    부모의 이혼, 극심한 가난,‘혼혈’에 대한 편견…. 정신적·육체적으로 인생의 쓴맛을 고루 경험했다. 미국 슬럼가 뒷골목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한국계 소년 하인스 워드(30). 그런 그가 미국프로풋볼(NFL) 최고의 별이 됐다. 워드의 영광 뒤에는 한국인 어머니의 한없는 눈물이 있었다. 6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제40회 슈퍼볼(아메리칸콘퍼런스-내셔널콘퍼런스의 챔피언결정전)은 하인스 워드(피츠버그 스틸러스)를 위한 자리였다. 와이드리시버 워드는 시애틀 시호크스와의 경기에서 5리시브,123야드 전진,1개의 터치다운으로 맹활약, 한국계로서는 첫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를 안으며 최우수선수(MVP)로 우뚝 섰다. 워드는 21-10의 승리를 견인, 통산 5번째이자 1980년 이후 26년 만에 팀을 우승시켰다. 워드에게는 MVP트로피와 캐딜락 승용차가 주어졌다. 최고의 별이 된 워드에겐 아프고 힘든 과거가 있었기에 이날 승리는 더욱 값졌다. 1976년 서울에서 아프리카계 주한미군 하인스 워드 시니어와 한국인 어머니 김영희(55)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후 5개월 만에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직업이 변변치 않았던 어머니에게 양육권은 주어지지 않았고 결국 할아버지에게 보내졌다.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워드는 8살 때 무작정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사랑 하나로 이를 악물며 일했다. 접시닦이, 호텔청소, 잡화점 캐셔 등으로 하루 18시간의 중노동을 했다. 자신은 남루한 옷을 입고 끼니를 거르는 일이 허다했지만 아들에게는 항상 깨끗한 옷을 입고, 운동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워드도 피부색이 다른 어머니의 존재가 부끄러웠다. 그러나 한없는 어머니의 사랑 앞에 새 눈을 떴다. 고교졸업 때 명문대학으로부터 입단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홀로 계실 어머니가 안타까워 집에서 가까운 조지아공대를 택했다. 프로팀 입단제의도 있었지만 “공부를 계속하라.”는 어머니의 뜻에 따른 것. 못 배운 설움을 되물림하기 싫었던 탓이다. 프로입단 뒤에도 화려하진 않았지만 묵묵히 자신의 몫을 해냈다.2001년부터 4년 연속 야구 3할 타율에 비유되는 리시브 전진 1000야드 기록을 세워 이날의 ‘영광’을 예고했다. 워드는 ‘성실’과 ‘겸손’을 강조한 어머니의 말을 가슴에 묻고 산다. 경기 뒤 “동료들이 기회를 줬고 나는 뛰기만 했을 뿐”이라면서 자신을 낮췄다. 어머니는 항상 “세상일이 맘대로 안 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면서 아들을 격려했다. 워드는 “어머니가 없었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오는 4월 우승컵을 안고 갈 어머니 나라로의 첫 효도여행에 벌써 설렌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이슬람 문명과 도시] 아랍세계 변화의 현장 이집트 카이로

    [이슬람 문명과 도시] 아랍세계 변화의 현장 이집트 카이로

    나는 현지조사를 위해 중동에 가는 길에는 거의 반드시 이집트의 카이로에 들른다. 아랍 세계의 생생한 변화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이집트인이 이룩한 건축예술의 위대성과 지칠 줄 모르는 창조정신에 인류는 고개를 숙이고 숙연한 존경을 표하지만, 오늘날 이집트의 모습에는 애써 얼굴을 돌린다. 그들이 이교도인 이슬람교를 믿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은 형편없이 못사는 경제적 낙후성 때문에 깔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집트의 과거보다는 오늘의 정겨운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난겨울에도 나는 박제된 과거가 아닌 그들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이집트로 달려갔다. 시내에서 일을 마치고 저녁 10시쯤 호텔에 들어 와 텔레비전을 켜니 익숙한 장면이 나를 반긴다.‘겨울연가’가 방영되고 있었다. 배용준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그의 팬인 아랍 여학생들은 배용준과 결혼해 그를 무슬림으로 개종시키겠다는 결의가 대단하다. 아랍인들은 한국의 아름다운 사계절의 변화에, 특히 눈 내린 남이섬에서 두 연인이 서로 뒹굴며 사랑하는 장면에 눈물겨운 감동을 느낀다.“아! 사람 사는 모습이 저런 것일 거야. 알라께서 약속하신 천국의 모습을 닮은 것은 아닐까?” 한류는 이미 중동전역을 휩쓸고 있다. 저들은 우리를 이토록 좋아하는데, 왜 우리는 그들을 온통 적대적 테러리스트로만 보려고 할까? 가슴이 답답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새삼 가슴을 누른다. 카이로에 오면 찾게 되는 단골 카페로 나왔다. 아라비아 모카 커피 향내가 자욱한 카이로 엘 칼릴리 골목의 엘 피샤위 커피하우스에는 하루 종일 움 쿨숨의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이집트에서는 움 쿨숨을 모르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 아랍세계가 배출한 전설적인 여자 가수다. 아랍의 짙은 향수와 영혼을 담은 그녀의 노래, 알필릴라 왈릴라(천일야화)를 들으며 이집트인들은 아랍인이라는 정체성을 수없이 확인한다. 그녀가 떠난 지 27년이 되었지만, 그녀의 콘서트나 생애가 드라마로 방영되는 시간, 아랍세계는 조용한 정적에 잠긴다. 몇 해전 카이로 시내에 새로 문을 연 움 쿨숨 박물관에 줄을 잇는 아랍인들을 보면서 깨어진 아랍민족주의에 대한 미련을 움 쿨숨이 채워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아랍지도자도 이루지 못했던 아랍의 정서적 통일을 움 쿨숨이 이루어 낸 셈이다. 이집트에는 피라미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피라미드는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고대문명의 금자탑이지만, 오늘날 이집트문화를 이해하는 전부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남부 룩소르의 고대신전만을 보고 이집트를 빠져나가는 과거중심의 문화읽기는 참으로 답답하다. 오늘날 이슬람에 바탕을 둔 이집트 전통문화와 정서는 엘 칼릴리 지구에 펄펄 살아있다. 수십만의 사람들이 운집해서 움직이는 거대한 삶의 공간이고 세계를 품어 안은 시장이다.‘눈(雪)’을 제외하고는 없는 것이 없다는 곳이다. 시장의 정취를 마음껏 느끼게 해주는 후세인 모스크 앞의 옥외 카페에서 민트 차 한잔 마시고 본격적인 흥정에 들어갔다. 팽팽한 긴장 속에 부른 값의 반을 깎고 심지어는 10분의1까지 깎을 때도 있다. 바쁜 사람은 부른 값을 그대로 주고 물건을 산다. 가격은 흥정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정확히 비례한다. 가게를 나오는 척할 때와 완전히 가게를 나왔을 때의 가격이 물론 다르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손해보는 사람이 없고 크게 이익을 보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행복하다. 엘 칼릴리 시장이 주는 융합의 문화이다. 지금 이집트는 세속과 전통이 빠른 속도로 충돌하고 화해하면서 새로운 민족적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나친 세속주의에 저항하는 이슬람원리주의의 이론과 정신적 요람이 알 아즈하르 대학이다.970년에 개교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학문전통이 말해주듯이 아랍의 지성세계는 실제로 알 아즈하르 출신이 이끌어가고 있다. 그들은 학부만 졸업해도 붉은 모자에 하얀 터번을 걸치고 셰이크로서 대단한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지금도 버스를 타면 셰이크에게는 서로 자리를 양보한다. 오후 3시, 대학 구내에 있는 알 아즈하르 대사원에 오후 예배를 알리는 아잔이 울린다. 신이 인간을 부르는 소리이다. 신과 인간이 허물없이 만나는 참으로 신성한 시간. 그들은 하느님(알라)의 집이 있는 메카를 향해 가장 겸손한 자세로 자신을 낮추며, 절대자와 자연에 대한 숙연한 순종을 체득한다. 인간의 오만함은 적어도 이곳, 이 시간만큼은 의미를 상실한다. 이슬람의 아름다움이고 힘이다. 나의 오랜 이집트 친구 오마르는 저녁 9시에 자기의 집에 초대했다. 아마 저녁초대일 것이다. 이웃친지들과 몇몇 친한 친구들도 불렀다. 여기서는 단 한 사람의 여자도 볼 수가 없다. 여성들의 공간은 남성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랜 친구에게 그의 두 아내마저 소개시켜 주지 않아 처음에는 은근히 화가 난 적도 있었다. 아직도 일부다처가 허용되어 있는 관계로, 그는 5년 전에 두 번째 아내를 얻었다. 첫 번째 부인이 병을 얻어 더 이상 자식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20년 아래인 자신의 대학후배를 부인으로 맞았다고 한다. 어렵게 첫 번째 부인의 동의를 얻었고, 두 번째 부인은 모든 재산의 공평한 분배를 법적으로 보장받았다. 이슬람 다처주의의 특징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일부다처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한다. 여성의 인식변화와 함께 경제사정이 나빠지면서, 여성에게 지불해야 하는 마흐르(결혼지참금)의 액수가 높아 한 번 결혼하기도 힘들게 되었다고 이집트 남자들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사하라의 아침 첫 햇살이 스핑크스의 두 눈을 비추는 시각. 벌써 기자지구의 피라미드에는 유럽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피라미드에서 이집트인들은 주변부에 불과하다. 그들의 원초적인 삶과 가난은 피라미드라는 거대한 인류 유산과 너무 적나라하게 대비된다.5000년 전 파피루스에 위대한 역사와 신화를 당당히 기록했던 이집트인들은 오늘날 뜻도 모르는 상형문자를 모사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피라미드 주변 마을 사람들은 피라미드의 돌조각을 가져다가 벽을 쌓고 집을 만들어 살고 있다. 지금 이집트인들은 역사 대신 현실을 택했다. 파라오는 알라로 바뀌고 이집트 문명의 요람이었던 아스완에는 댐을 쌓아 유적지를 수몰시키면서까지 농업혁명을 일구어냈다. 그러나 그들의 영광은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가난과 교육, 그리고 여성. 이집트가 과거를 딛고 오늘을 열어야 하는 과제이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 [로버트 김 희망메시지] 전화위복이 되길 바랍니다

    [로버트 김 희망메시지] 전화위복이 되길 바랍니다

    서울대 조사위가 지난 1월10일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에 대해 내린 결론은 과거 2년간에 걸쳐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그들의 논문이 모두 조작이었으며 줄기세포의 실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나는 아직도 이러한 일이 우리의 희망인 생명공학 학계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검찰 수사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황 교수팀의 사과성명을 통해 이 사건의 자초지종이 조금이나마 이해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왜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었을까를 해외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지금도 우리나라 어디선가 자행되고 있을 것 같아 걱정이 된다. 학계에서뿐 아니라 정치계, 경제계, 심지어는 어린 학생들간에서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두려워진다. 부정은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선진국으로 갈수록 이러한 부정의 빈도는 높지 않으며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부정을 큰 형사 사건으로 다루고 있어 형량도 매우 높다. 이번에 미국 정치계에 뇌물을 준 로비스트 잭 아브라모프는 22년의 구형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형량을 줄이기 위해 유죄를 인정하고 형을 낮추려는 모양이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거짓말을 했다고 대통령직을 사임할 정도로 부정에 대해서 엄격했다. 그래서 이 큰 나라가 유지되는 듯싶다. 부정이 횡행하는 나라 치고 후진국이 아닌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 밖에서 맴돌고 있던 날들이 얼마 전 일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완전한 선진국이라는 말이 아니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고쳐나가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중에 하나가 부정일 것이다. 이러한 숙제가 우리 자신들의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사회의 병폐를 개선하는 데 앞장설 분들이 아직도 감각이 무뎌져 있거나, 이런 것을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아 안타깝다. 조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 같은 해외동포들에게는 이러한 모순들이 너무나 명백하게 보인다. 이번 황 교수팀에게 일어난 일의 동기는 경험부족의 감독체계에서 온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많은 연구비를 받아서 일 하는 곳에 감독과 감사가 없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삼엄한 과학연구실이라고 하지만 감사와 감독은 있어야 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국가기관을 감사하는 독립적인 전문부처가 따로 있다. 아마 한국에서의 감사원에 해당할지 모르겠다. 내가 일하던 곳이 미국의 한 정보기관임에도 건물내에 감사원(IG)이 상주하고 있고 또 매년 외부에서 감사원들이 나와 감사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감독부재를 개탄하고 개선에 힘을 기울여야 할 시기에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도록 정부는 또 몇 명의 과학자들에게 아무 조건없이 많은 연구비를 준다고 하는데 이것은 국민의 세금을 너무나 쉽게 여기는 것이어서 납세자들을 슬프게 한다. 왜 연구비를 정부가 지불하는가 말이다. 연구원들이 학교와 연관이 있으면 그것은 해당 학교의 몫이다. 그리고 지난 몇년간 황 교수팀의 무절제한 예산지출의 지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교훈을 못 얻고 있다고 보여 매우 안타깝다. 이번 황 교수팀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겸손과 정직, 그리고 진실과 성실이 결여되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배우고 깨달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가 가까운 장래에 선진국의 반열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지도자들이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에게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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