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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젠 포스트 BRICs] (17) 취재기자 방담

    [이젠 포스트 BRICs] (17) 취재기자 방담

    서울신문은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기획물 ‘포스트 브릭스(Post Brics)’를 연재,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칠레 등 신흥국가로 성장하고 있는 8개국을 소개했다. 현장 취재에 나섰던 기자들은 방담을 통해 이제 우리나라도 우리가 최고라는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서로를 인정하고 공생하는 지혜를 익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취재기자들의 방담 내용을 간추린다. -무엇보다 이번 취재는 동남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의 힘이 놀랄 만큼 폭발적으로 늘고 있음을 확인한 계기가 됐습니다. 세계는 이들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에 깜짝 놀라고 있고 어떻게 하면 이들 시장을 더 확보할까, 어떻게 투자하고 이들의 부상에 어떻게 대응할까에 머리를 싸매고 있습니다. 기자 스스로 세계 경제와 지구촌 부의 지도를 역동적으로 재편하고 있는 나라들의 변화에 너무 무지했구나 하는 반성도 했습니다. 이번 기획이 이들의 놀라운 성장과 부상을 확인하고 한국경제 활력의 방안을 궁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취재를 통해 느낀 것은 한국사람들 스스로 좀더 겸손해져야겠다는 것, 그리고 한국에 대한 홍보가 더욱 강화돼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멕시코와 칠레의 경우 한국을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삼성과 LG의 첨단제품을 사면서도 한국이란 나라를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LG란 회사, 삼성이란 회사의 물건을 사는 것일 뿐인데도 일부 한국 기업인들은 그들을 한수 아래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대도시는 땅투기하는 한국인들로 넘쳐났습니다. 한국 식당에서 한국인들끼리 즉석에서 거래가 되기도 하더군요. 성공한 한국인은 땅장사 잘한 사람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입니다. 그런 한국인들의 속성을 이용해 “대통령과 친하다, 총리랑 친하다.”면서 한국인에게 접근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남아공 한인사회에 나도는 소문중 하나는 움베키 대통령이 한국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부통령 시절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괄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한국인들의 남아공 및 아프리카에 대한 태도와 시각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국제사회에서의 매너, 그리고 길게 보고 장기적으로 임하는 자세가 아쉽습니다. ●태국 장관급인사 홀대하다 되레 당해 -우리나라가 겉모습만 따지다가 큰코를 다친 적도 있답니다. 몇 년전 태국 장관급 인사가 우리나라를 방문했다가 공항에서 쫓겨났답니다. 그 인사가 점퍼에 청바지 차림이었는데, 공항에서 불법노동자라고 판단, 입국이 거부된 것이지요. 그후 태국에서 한국기업이 활동하는 데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베트남은 사정이 좀 다릅니다. 베트남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미국, 일본, 중국보다 훨씬 좋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국의 경제성장을 매우 부러워하고 아직도 하노이에서는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이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LG, 삼성, 포스코, 오리온제과 등이 다른 외국브랜드를 제치고 한국 브랜드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다만 앞으로도 선두를 유지하기 위해선 정부가 장기적인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동남아 진출시 우리와 불가분 맞부딪치는 일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일본이 없으면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일본과 엮여 있습니다. 예속이라기보다는 함께 성장한다는 의미가 강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봉제, 원목가공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이제 IT(정보기술)산업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을 원하고 있지만 우리는 저임금으로 원하는 것만 빼먹으려는 게 눈에 보이더군요. 분석적인 접근도 배울 점인 것 같습니다. 제트로(JETRO·일본무역진흥공사)에서 얻은 자료가 코트라나 대사관,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준 자료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자세했습니다. -태국에서는 외국인 소유주식의 지분·의결권을 50% 미만으로 제한하는 외국인 기업법을 개정할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에 JETRO는 태국에 진출한 일본기업 7000여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대다수 기업들은 외국인 기업법이 개정되면 태국에서 사업을 확장하기 어렵다고 응답했습니다. 결국 설문조사로 태국정부에 보이지 않는 압력을 행사한 셈이지요. 반면 우리 기업들은 “외국인 기업법을 개정하지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외에는 별다른 대응 전략이 없더군요. 위기 대처법도 한국과 일본이 상당히 달랐습니다.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려는 현지화의 노력도 중요합니다. 상당수 멕시코인들은 ‘빨리 빨리’로 대표되는 한국인의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국인 주재원으로부터 업무와 관련해 채근을 당하면 돌아서서 “인생을 즐길 줄 모르는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혀를 차곤 한답니다. -베트남은 유교권 국가인 데다가 얼핏 한국과 많이 비슷하기 때문에 쉽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베트남 사람만큼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도 없습니다. 전쟁의 기억 때문인지 동포애, 민족애도 매우 강합니다. 만만하게 봤다가 큰코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게 현지인들의 이야기입니다. -한 나라를 접근할 때 한덩어리로 보면 안 됩니다. 종족이 다양하고 소득수준과 성향도 다릅니다. 기업가들은 우리의 사고방식을 그들에게 주입하려고 하기 보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기반을 다지는 작업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외국진출때 위축도 문제지만 과신도 문제 -현지 진출때 해당국 정보가 너무 없어 지레 위축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잘 안다고 과신하는 것도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컨대 터키는 한국전 참전국가로, 우리나라와는 ‘형제의 나라’라고 불립니다. 그러다보니 터키 사람들의 ‘선호 외국인 1위’도 한국인이지요. 문제는 한국사람들이 이를 악용, 터키와 터키사람들을 은근히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사업이든, 이민이든, 별다른 준비도 없이 “형제의 나라인데 (터키에) 가면 어떻게 되겠지.”하며 만만하게 보고 덤빈다는 겁니다. 터키의 한인협회장은 “그러다가 쓴맛을 본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며 “그래놓고는 터키의 행정절차가 복잡하다느니, 취업 허가증을 잘 안내준다느니 터키 탓만 한다.”고 혀를 찼습니다.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가들은 하나같이 수하르토 군부정치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민주화과정은 부정한 채 “옛날엔 군부만 잘 다루면 쉽게 성공했는데….”라면서 옛 군부세력과 결탁해 노조를 억압한다든지, 시대에 뒤떨어진 행동을 하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기업가들의 생각은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취재대상이 됐던 대부분의 국가들은 양극화 현상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우선 빈부격차가 극심했고 교육기회의 불평등도 심각했습니다. 나라가 좀더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현지의 지식인들이 한목소리로 주장하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기업이 진출할 때 이런 방식으로 현지 사회 공헌도를 높이는 것이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차이를 우리 기준으로 볼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 등 보편화된 가치 방향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한 듯합니다. 짧은 시간 안에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육이나 의료분야에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진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와주는 한국에 고마워하면서 같이 성장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협회의 안내를 받아 도서관에 갔더니 ‘한국에서 보내주었다´면서 자랑하듯 책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80년대에나 봤음 직한 책들인 데다 워낙 자료가 빈약해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양극화는 터키에서도 심각한 문제였습니다.CJ의 사료공장이 있는 이네겔을 방문했을 때 건너편 섬유공장의 사장만 해도 자가용 헬기를 두 대나 갖고 있을 만큼 부자들은 돈이 넘쳐납니다. 인구가 7500만명이나 되는 데다 부유층이 이렇듯 확실하다 보니 터키가 매력적인 투자처로 떠오른 거지요. 하지만 중산층이 상대적으로 빈약해 약점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각국의 빈부격차 해소에 도움주길 -카자흐스탄도 대도시를 조금 벗어나면 아스팔트길이 흙길로 변하고 담이 없는 양철지붕집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빈부격차 현상을 보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20년 가까이 집권 중입니다. 일부에선 부정축재를 많이 했을 것이라는 의혹도 보내고 있는데 현지인에게 ‘왜 대통령을 바꾸지 않느냐?´고 물어보자 “새 사람을 세워서 또 부정한 부를 축적하느니 현재 대통령을 일하게 하는 게 낫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의식이 참 신기했습니다. -맞습니다. 빈부격차보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더 재밌습니다. 태국에선 에어컨 없는 300원짜리 버스에서부터 3000원짜리 지상철, 더 비싼 택시까지 각자 주머니 사정에 따라 골라 타고 다니는데 이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없었습니다. 태국인들이 분노할 때는 오로지 국왕을 모독할 때뿐이라고 합니다. -인도네시아는 좀 다릅니다. 수하르토 이후 부정부패와 싸워가며 여러번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공공의 문제에 대해서는 엄격하지만 개인적인 문제로 돌아서면 낙관적입니다.30평이 넘는 집에 하인이 먹고 자는 방은 2평 남짓했습니다. 한국인 집 주인이 큰 방을 사용하라고 했지만 스스로 거절을 하더랍니다. -종교의 영향도 큰 것 같습니다. 대부분 동남아는 이슬람국가인데 이들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지 않고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역시 베트남은 좀 다르다는 얘기인데 유교국가인 덕분에 열심히 일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의식이 매우 강합니다. 부모들의 뜨거운 교육열은 마치 우리나라 1960∼70년대를 방불케 합니다. 젊은이들은 회사를 다니면서 야간대학, 어학학원을 다니면서 자기개발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런 부분은 베트남의 성장가능성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터키 등 이슬람국 투자의 가장 큰 애로점은 역시 ‘인샬라(신의 뜻대로)’로 모아지더군요. 투자협상을 진행할 때나, 현지 근로자들을 다룰 때나, 뭔가 일이 꼬이거나 벽에 부딪친다 싶으면 어김없이 이 인샬라를 외치는 통에 복장이 터진다고 합니다. 오죽했으면 터키에서 만난 한 자영업체 한국인 사장이 이슬람권 적응과정은 곧 인샬라 적응과정이라고 했겠습니까. ●이슬람국가선 ‘인샬라(신의 뜻대로)´가 애로점 -아프리카의 경우 가장 특징적인 것은 검은 자본가, 검은 중산층, 검은 기업 등 블랙파워의 빠른 성장과 확산입니다. 시장확보는 물론 전략자원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도 현지 흑인기업들과 전략적인 제휴관계를 만들어 나갈 때라고 이구동성으로 강조합니다. 눈에 띄게 성장한 블랙파워의 부상은 아프리카 지역뿐 아니라 지구촌 차원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블랙파워의 부상에 어떻게 편승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미국 같은 큰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을 게 아니라 우리와 가까이 있는 동아시아, 그 다음 큰 나라로 확대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우리가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으면 합니다. -남아공을 취재하면서 우리 경제, 우리의 생존이 상당 부분 해외에 의존해 있으면서도 이를 절실하게 느끼지 않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특히 자원전쟁시대 아프리카의 중요성과, 그 관문이자 교두보인 남아공의 위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국가적인 장기계획이나 대책이 정말 있기나 하는지 반문하게 됐습니다. -한국의 베트남에 대한 투자가 다른나라를 제치고 올해 1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시장이 개방되면서 각국이 앞다투어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이미 보이고 있습니다. 현지 기업인들이 베트남을 ‘엘도라도(황금의 나라)’라고 칭송하면서 우르르 몰려오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기회의 땅인 것은 맞지만 시장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열려 있는 만큼 경쟁은 더욱 격화될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포스트 브릭스(Post Brics) 국가들의 성장은 장기적으로 한국의 경쟁상대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기도 합니다. 어느새 급속도로 성장해 한국을 일본과의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처럼 만든 중국의 예에서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해당 국가들이 어떤 방향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발전노력을 기울이는지를 면밀히 분석해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이를테면 칠레의 경우 핀란드를 모델로 해서 IT 생명공학(BT)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네트워크 연동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들과 경쟁관계가 되든 협력관계가 되든 상대국가들의 발전모델을 우리나라의 이익에 어떻게 접목시킬지에 대한 분석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스포츠 라운지] 시니어 데뷔 앞둔 ‘포스트 조윤정’ 한성희

    [스포츠 라운지] 시니어 데뷔 앞둔 ‘포스트 조윤정’ 한성희

    ‘한국 테니스의 메카’로 떠오른 경북 김천 종합스포츠타운의 테니스장 센터코트. 김천국제여자챌린저대회 본선 1회전을 치르던 한성희(17·중앙여고2)가 마지막 3세트를 2-3으로 뒤지다 역전의 기회를 잡은 게임스코어 4-4 직후 코피를 터뜨렸다. 한낮 기온 섭씨 30도에 육박하는 ‘반짝 무더위’에다 그 못지않게 달궈진 접전 때문. 그칠 줄 모르던 코피는 20분이 지나 간신히 멎었지만 최주연(33) 코치는 “스코어로 보나 몸상태로 보나 고비임에 틀림없다.”고 근심어린 눈길로 코트를 내려다 봤다. 그러나 한성희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포핸드와 백핸드를 번갈아 상대 코트에 퍼부으며 짜릿한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그제서야 최 코치는 “역시 깡다구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요.”라며 한숨돌렸다. ●내 별명이 깡다구라고요? 한성희의 대담함은 코트 안팎에서 정평이 나 있다.“고교 2학년생치고는 앳된 얼굴이지만 코트에서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승부욕이 강하다.”는 게 대한테니스협회 이진수(44) 홍보이사의 전언.“평소 내성적이고 별로 말도 없는 편이지만 라켓만 들면 내 딸이 아닌 것 같다.”는 게 어머니 박애숙씨의 말이다. 9살때 초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고 있던 아버지 한현진씨의 학부모가 사준 라켓을 잡은 지 불과 6년 뒤 한성희는 한국 여자테니스의 기둥이 될 떡잎의 모양을 갖췄다. 중3때인 2년 전 전국종별대회 여중부 우승으로 두각을 나타낸 뒤 지난해에는 장호배와 제주국제주니어, 중국·말레이시아국제대회 등 각종 주니어대회를 휩쓸었다. 한성희는 “와일드카드로 첫 참가한 한솔코리아오픈 예선 2회전에서 추아 치아정(태국)을 꺾은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비록 주니어 세계2위였던 캐롤라인 보즈니아(러시아)에 패해 본선에 오르지 못했지만 투어급 성인무대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소중했다.”고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사실 한국테니스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김소정 이예라(이상 한솔제지) 이후 여자 주니어 가운데 딱히 눈에 띄는 기대주가 없었기 때문.“더욱이 세계여자테니스(WTA) 최고 랭킹을 보유했던 조윤정을 이을 재목감을 찾기 힘든 한국 여자테니스로서는 한성희의 출현은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라고 전영대 협회 전무는 평가했다. ●스기야마·힝기스 닮고 싶어요 한성희는 키가 작다. 늘 ‘단신 콤플렉스’로 고민한다. 스기야마 아이(일본)를 좋아하는 이유도 자신과 체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이제 더 크려야 클 수가 없잖아요. 내 몸에 맞는 테니스를 할 수밖에요.”한성희는 “스기야마의 부지런함과 겸손함을 함께 닮고 싶다.”고 말을 보탠다.“어릴적 우상이던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와 호주오픈에서 만나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자랑도 빼먹지 않는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한성희는 주니어의 옷을 벗는다. 그에 앞서 일찌감치 세워둔 그의 목표는 메이저대회 우승. 지난 1월 그는 처음으로 호주오픈 주니어부 본선 무대 맛을 봤다. 그동안 자신의 세계 주니어랭킹을 최고 44위까지 꾸준하게 끌어올린 덕이다.“2주 뒤 프랑스오픈 등 올해 4대 메이저대회 출전을 통해 화려한 시니어 데뷔의 터를 닦고 싶다.”고 당찬 의지를 드러냈다. 최 코치는 “성희는 호주오픈에서 비록 1회전 탈락했지만 발군의 포핸드와 타이밍은 물론 끈기와 집중력, 승부욕까지 뛰어나 언젠가는 메이저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천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시론] 거인의 분노/김서정 아동문학가·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시론] 거인의 분노/김서정 아동문학가·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병속에 갇혔다가 수백 년 만에 어민에게 구조된 거인의 이야기를 아시는지. 거인은 자기를 구해 준 어민을 죽여 버리겠다고 을러댄다. 어민이 이유를 묻자 거인은 대답한다. 처음 백 년은 나를 구해 주는 사람을 세계 제일의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백 년은 최고 권력자. 그 세월이 헛되이 지나자 나는 화가 치밀어 결심했다. 이제야 나를 꺼내는 자는 죽음을 맞으리라. 겉보기에 너무나 배은망덕하고 위협적인지라 이 이야기는 아이들용 책으로 그리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분노에 관한 인간의 내면 심리를 이해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소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조승희를 들먹일 것도 없이, 어린이날 한 특집 TV프로그램이 소개하던 ‘문제아’들을 보면서 나는 그 거인을 떠올렸다. 피 터지는 컴퓨터 게임에 하루 종일 매달리고, 상담 의사와도 “싫어요, 말 안 해요.” 외의 대화는 없고, 집을 뛰쳐 나가고, 엄마에게 욕을 퍼부으며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어른을 죽이고 싶어 하는, 분노에 찬 거인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저런, 쯧쯧!” 하고 눈살을 찌푸릴 게 아니라 그 아이들을, 거인의 분노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거인이 처음부터 화를 낸 것은 아니다. 수백 년을 바다 밑 병에 갇혀 있으면서 자신을 꺼내 주는 은인에게 어떻게 보답할까 궁리하고 있었다. 그 절망감, 외로움, 슬픔, 간절함이 얼마나 컸을까.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고 모든 기대와 희망이 물거품이 됐을 때 거인에게 남은 것은 분노뿐이었던 것이다. 어떤 이성도 감성도 제어할 수 없는 분노…. 아이들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따뜻한 보살핌과 이해, 격려와 사랑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혼자 버려졌다고 느꼈을 때, 처음에는 아마 필사적으로 도움을 원했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구해 주면 얼마나 고마울까 상상하면서 하루가 백 년 같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 시간이 아무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고 마침내 한계에 이르렀을 때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닫아 걸고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아이들에게 ‘말 잘 듣고 공부 잘 해라.’ ‘약속을 지켜라.’ ‘폭력을 쓰면 안 된다.’라는 설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른들은 아이들의 성적 이전에 그들의 감정, 특히 ‘부정적’ 감정에 더 민감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슬픔이나 공포 같은 감정을 마치 전염병처럼 여기면서 막아 세운 채 사랑이나 노력이나 친절 같은 긍정적인 가치만을 쏟아 붓는 자세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 아이들이 맞닥뜨린 부정적인 감정들을 우선 인정하고 표현하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런 뒤 어른들이 그것을 겸손과 인내와 배려로 풀어 주는 모습을 실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으로 극복하는 표본이 되어야 한다. 분노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동화들은 많다.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엄마는 “엄마를 잡아 먹어 버릴 테야!”하고 소리치는 아이에게 따뜻한 저녁밥을 슬그머니 가져다 준다.‘아빠는 전업주부’의 아빠는 자기에게 침을 뱉고 발길질하는 아들을 끌어 안고 뱅뱅 돌려 결국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분노 이전의 감정, 외로움과 슬픔을 달래 주는 일도 중요하다. 그 모든 감정들이 결국에는 아이를 분노로 치닫게 만들기 때문이다.“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도 있지 않은가. 김서정 아동문학가·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 어린이가 되는 행복이 있는 5월의 소식

    어린이가 되는 행복이 있는 5월의 소식

    # 사실은 먹고 살기 바쁜 때일수록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 책 속에 제대로 먹고 올바로 사는 길이 다 나와 있다. 훤히 뚫린 그 길은 거들떠도 안 보고 공연히 딴 데만 기웃대다 청춘을 탕진하고 인생을 허비한다. 책 속에는 없는 것이 없다. 삼라만상이 다 들어있다. 그래서 책 읽기는 세상 읽기다.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세상 읽기도 엉망이다. 생각의 힘이 책에서 나온다. 삶의 깨달음이 책에서 나온다. 성공한 사람들 곁에는 늘 책이 있다. 그들은 아무리 바빠도 책을 달고 산다. ..........책을 제대로 읽으면 중심이 딱 잡힌다. 눈빛이 깊어지고 마음속에 샘물처럼 차오르는 것이 있다. 책 한 권과 만나 인생이 뒤바뀐다. 책 한 권 때문에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책의 한 대목 앞에서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고, 감전된 것처럼 전율을 느낀다. 그 책을 읽기 전의 나는 읽은 후의 나와 완전히 다르다. 한 권의 책으로 인해 존재 차원의 업 그레이드가 이루어진 것이다 ◈ 정민교수의 <스승의 옥편>에 들어있는 ‘독서의 보람’(마음산책)에서 정민 교수의 글을 읽고 아직 할 수 있을 적에 독서를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사실 요즘은 깊이 공들여 읽는 책 보다는 대충 눈도장만 찍으며 가볍게 보는 책이 더 많은 것 같아 저도 걱정입니다. 5월의 나무 아래서든, 홀로 머무는 방에서든 좋은 책을 많이 골라 읽는 여러분의 모습을 기대 해 봅니다. TV 보는 시간을 1시간만 줄여도 책을 읽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거에요. 주부 여러분들은 따로 서가가 없으면 부엌 한 모서리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책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면 합니다. ▶ 요즘 제 책상 위에 있는 책들은: <세계5대종교 개관>(박양운/가톨릭 신문사), <삶의 지혜를 나누는 40가지 멘토링>(로버트 J. 윅스.황진아 역/바오로 딸), <40대여 숲으로 가자>(안미경.공선옥 외/바오로 딸), <섬에서 보낸 백년>(조용미/샘터), <세계의 명언1.2>(이동진 편역/해누리), <위대한 결정>(앨런 액셀로드. 강봉재 역/북스코프), <오늘은 맑음>(박경학 외21인/샘터), <안중근>(이상현 글. 노희성 그림/영림 카디널), <빨간 양철지붕 아래서>(화가 오병욱 산문집),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에프라임 키숀. 반성완 역/마음산책), <상실수업>(A.퀴블러로스. 김소향 역/이레), <바다를 품은 책>(정약전의 자산어보를 시인 손택수가 풀어씀/아이세움), <홀로 앉아 금을 타고>(이지양/샘터), <호랑이 발자국>(손택수/창작과 비평사), <둥글이 누나>(권영상 소년소설/사계절), <지금은 공사중>(박선미 동시집/21문학과문화), <영원한 아이>(필립 포레스트. 이상해 역/열림원)등입니다. ▶ 포도나무 뒤에는 포도주 빚는 이가 있고/그 뒤에는 세월을 이어 온 그의 기술이 있고/그 모든 것 뒤에는 포도나무를 키우는/햇빛과 비 그리고 창조주의 뜻이 있노라 -작자 미상-<복있는 사람>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올 조이스 럽 수녀의 <느긋하게 걸어라>는 책에서 소개된 글인데 좋아서 나눕니다 ▶ 지난 4월은 참으로 ‘잔인한 달’이라고 명명하고 싶을 만큼 안팎으로 안 좋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렇듯 아프고 어둡고 고통스런 체험을 통하여 우리는 인간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식하며 좀 더 겸손해 질 수 있고 다시 삶의 의미를 배울 수도 있다고 봅니다. (구체적 예들을 여기서 다시 되풀이하지 않아도 제가 종종 게시방에 올린 내용들로 짐작하시리라 믿어요) ▶ 올 봄에는 지난 일 년 간 밀린 편지 회신을 쓰기 시작했답니다. ‘비록 늦었지만 안 하는 것 보다는 낫다’고 자위하며 지인의 도움을 받아 우선 봉투 작업을 하였는데 시일이 너무 지나 이미 제대를 한 군인도 있고, 병원에서 퇴원을 한 독자도 있고, 교도소에서 출소를 한 재소자도 있고... 더러는 때를 놓쳐버려 안타깝기도 하였는데 전화번호가 적힌 곳은 전화로라도 잠시 인사를 하니 매우 놀라는 눈치였지요. 불의의 사고로 장기 입원한 청년에게 답을 보내도 되돌아올 것 같아 겉봉에 적힌 손전화로 연락을 하며 편지 속의 여자 친구 안부까지 물었더니 너무 감동하면서 ‘바로 2달 전에 헤어져 괴로워하고 있는 중’이라기에 주소를 물어 책 2권을 작은 위로로 보내 준 일도 있답니다. 편지쓰기가 저에겐 언제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걸 보면 이 일을 통하여 사랑의 사도직을 하도록 부름 받은 것으로 제 나름대로 해석해 보기도 합니다. ▶ 곤지암에 있는 성분도 복지관 20주년 기념 도예전(2007.5.2-8)에 이어 6.15일에는 요즘 부쩍 사랑 받는 가수 바비킴(김도균 안토니오)의 컨서트를 복지관 잔디밭에서 하기로 하였으니 그 근방에 사시는 분들은 오셔도 좋을 것 같네요. KBS ‘낭독의 발견’에서 이분이 해인의 시 ’나를 위로하는 날’을 낭송하면서 실의에 빠졌을 적에 이 시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미국에서의 이민생활 체험과 10년간의 무명시절을 돌아보며 서울 주보에 이 가수가 쓴체험담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 가수의 파랑새라는 노래를 다들 좋아 하는 것 같고,<하얀거탑>이라는 드라마의 주제곡이기도 했던 ‘소나무’라는 노래로인기를 끌었다고 하네요. ‘Follow your soul’이라는 2집 앨범발매 기념 컨서트도 성황리에 마쳤다고 하던데... 공교롭게도 (제 어머니가 머무시는) 여동생 집과 본당이 같아서 바비킴의 어머니와 먼저 전화하고 만남을 약속하였지요. 여러분도 관심 갖고 노래를 한 번 들어보세요. 지난번에는 <부활>을 소개하더니 이번에는 바비킴을... 제가 무슨 가수 소속사의 홍보대사 같기도 하네요. 호호호... 참 5월19일 오후 4시에는 안양 성 라자로 마을 25주년 기념 자선 음악회 ‘그대 있음에’가 서울 세종 문화회관에서 있는데 마침 특강으로 서울에 있을 무렵이라 가 보려고 합니다. ▶ 4월 24일 부산 시민회관에서 있었던 ‘휴 컨서트’ 후반부에 소리꾼 장사익님이 노래를 하여 해운대해변 관광도서관 주부들과 같이 감상을 하러 갔었답니다. 수녀원의 조팝나무 꽃으로 저의 시집 두 권을 장식하여 선물로 들고 갔더니 매우 기뻐하시며 ‘고마워유! 한 달 간 미국에 잘 다녀 올게유 ‘하셨지요. 시인들의 시가 이분의 목소리를 통하여 아름답고 깊이 있고 구성진 울림으로 살아나는 목소리의 예술! 계속 좋은 노래를 많이 불러야하는데 이분도 건강이 안 좋다니 걱정입니다. ▶ 기도청합니다 ♥ 성주간에 화재가 나 많은 것을 잃어버린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원의 빠른 안정과 재건을 위하여... ♥ 결혼식 준비를 다 마치고 갑자기 예비사위가 죽어 실의에 빠진 화가 박윤숙(베아타) 모녀를 위하여... ♥ 그리고 며칠 전 난소암 수술 받고 입원 중인 화가 김점선(글라라)님을 위하여... ♥ 그리고 나날이 힘들게 야위어가시는 저의 모친 김순옥(펠리치따스)님을 위하여서도... 동생이 미국에 가 있는 동안 별 일 없도록- ▶ ‘사람이란 무릇 사람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아프고 가난한 자에게 자신을 낮출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은 높아진다’ <자산어보>에 나오는 정약전의 이 말에 한참 동안 마음과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노력한다고 해도 저 역시 부족함이 많지만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몫만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돌보려는 섬김의 사랑을 실습하기로 해요. 늘 감사하는 마음 5월의 눈부신 신록 안에 기도와 함께 담아 드립니다. 5월엔 모처럼 부산 바위섬 소모임도 고즈넉한 전통찻집 <나비춤>에서 할 것입니다. 저의 동시 한 편으로 5월 소식을 마무리 합니다. <해인 글방>에서 안녕히! ♡ 엄마를 부르는 동안 - 이해인 - 엄마를 부르는 동안은 나이 든 어른도 모두 어린이가 됩니다 밝게 웃다가도 섧게 울고 좋다고 했다가도 싫다고 투정이고 변덕을 부려도 용서가 되니 반갑고 고맙고 기쁘대요 엄마를 부르는 동안은 나쁜 생각도 멀리 가고 죄를 짓지 않아 좋대요 세상에 엄마가 있는 이도 엄마가 없는 이도 엄마를 부르면서 마음이 착하고 맑아지는 행복 어린이가 되는 행복!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데뷔 41년 괴짜가수 조영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데뷔 41년 괴짜가수 조영남

    경우에 따라 군대 시절의 ‘보따리’가 무척 흥미진진하다. 그 주인공은 오늘날의 인기가수 조영남(62)이다. 대학 시절 그는 ‘딜라일라’를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자 꾀가 생겼다. 군 복무를 계속 연기했다. 여차 하면 ‘안가는 방법’까지도 궁리했다. 그러던 1970년 4월8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의 와우아파트가 무너졌다. 세상이 요란스러워졌다.20여일 후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 무대에서 김시스터즈의 귀국공연이 열렸다. 김시스터즈는 국내 여성보컬 1호로 당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이 때문에 정권 고위층도 참석할 만큼 관심이 높았다. 여기에 조영남은 찬조 출연한다. 무대에 선 그는 무심코 노래 한소절을 바꿔 불렀다. ‘신고사니이∼우르르르 함흥차 떠나는 소리에∼’라고 해야 하는 데 ‘신고사니이 와르르 와우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 얼떨결에 깔린 사람이 아우성을 치누나∼’라고 했다. 요즘 같으면 별 일이 아니겠지만 그때는 달랐다. 특히 다음해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와 일전을 치러야 하는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와우아파트 사건으로 심기가 매우 불편해 있었다. 이런 판에 조영남이 고춧가루를 뿌렸으니 분위기가 험악할 수밖에. 겨우 눈치를 챈 조영남은 무대 뒤로 간신히 빠져나와 평소 안면이 있던 서울신문사 사장 방에서 잠시 피신해 있다가 그날 늦게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 4시에 두명의 형사가 집으로 들이닥쳐 “병역기피로 재판을 받아야 한다.”며 끌고갔다. 졸지에 재판에 회부된 조영남은 이화여대 법정대학장이자 최초 여류변호사인 이태영 박사의 도움을 받는다. 즉 이 박사가 조영남을 재판에서 빼내주었고 대신 군 입대를 조건으로 내세웠다. 평소 조영남이 이 박사가 잘 가는 소년원에서 무료로 위문공연해 준 인연이 작용했다. 결국 조영남은 이 박사의 보증아래 훈련을 받은 뒤 육군본부 합창대에서 근무했다. ●가사 바꿔 불렀다 여러번 ‘혼쭐´ 군복무 시절 다시 한번 아찔했던 순간을 겪는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였다. 조영남은 나름대로 민족의 애환이 깃든 노래를 한답시고 ‘각설이 타령’ 한곡을 ‘쭉∼’ 뽑았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얼씨구씨구 들어간다∼’. 노래가 끝나자 마자 조영남은 모처로 불려가 혹독한 ‘취조’까지 받았다. 비슷한 사연은 또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는 노래 도중 하모니카를 빼다가 경호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또 노태우 전 대통령 앞에서 영부인 김옥숙 여사를 향해 ‘나 하나의 사랑’을 열창했다가 눈총을 받아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하지만 그의 대표곡 ‘화개장터’는 공교롭게도 1997년 대선 때 선거바람을 타고 빅히트를 쳐 ‘운때 맞았던’ 경우도 있었다. 이 노래의 작사자는 김대중 정권 때 문화부장관을 지낸 김한길 의원이다. 조영남은 원래 즉흥적으로 가사를 바꿔 부르는 재치와 끼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탈리아 칸초네 ‘카사 비안카(Casa Bianca)’를 ‘하얀 집’으로 바꿔 부른 것도 여전히 회자된다. 닉슨 미국 대통령 시절(재임 1969∼74년)이다. ‘시커먼 하얀집/어쨌든 하얀집/누가 뭐래도 하얀집/좌우지간 하얀집/불이 나면 빨간집/꺼지면 까만집/∼/닉슨이 사는 The White House’. 결국 그가 지칭하는 하얀집은 ‘백악관’이었다. 지난 2일 서울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조영남씨를 만났다. 올해로 데뷔 41주년이 된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한달에 한번꼴로 콘서트를 가진다. 얼마 전에는 다시 방송에 복귀, 최유라와 함께 ‘지금은 라디오 시대’(MBC-FM 오후 4∼6시)를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가수이자 문학인, 화가, 전방위 예술가로 푸짐한 삶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따뜻한 봄날, 문득 선문답을 나눠보고 싶다는 당돌한 생각이 들었다. ●음악·문학·그림? 그건 그냥 취미야 “노래는 왜 합니까?” 우문이었을까, 뿔테 안경너머로 살짝 째려보더니 “밥벌이”라고 소리지른다. 갑자기 오기가 생긴다. “그렇다면 시는 왜 씁니까?” “암호해독이지, 진실의 핵심을 푸는 재미라고나 할까.” 내공의 깊이가 이 정도?. 고개를 약간 갸우뚱거렸다. 노려보던 시선을 흐트려뜨리며 “보들레르, 랭보, 예이츠, 에드거 앨런 포, 결국 아무것도 아냐. 인간 존엄성이지.”라고 뱉는다. “하지만 한 가지 못 푼 게 있어, 이상의 ‘날개’, 음 정말 암호가 많아.” 이때 MC 임백천씨가 나타났다. 귀엣말을 주고받더니 잠시 일어선다. 저쪽 방에 정대철 열린우리당 고문 등 몇몇 정치인들이 눈에 띄었다. 정 고문의 어머니 고 이태영 박사가 앞서 언급된 병역기피 재판 때 조씨를 도와주었다는 사실이 잠깐 오버랩됐다. 인터뷰가 다시 진행된 것은 20여분 후. “인간 조영남은 음악인, 문학인, 화가 중 과연 어느 쪽을 좋아합니까?” “아무 것도 아냐, 그냥 취미일 뿐이지.” “그렇다면 사는 재미를 어디에서 찾나요?” “재미의 순서? 젊은 여자들과 밥먹고 수다 떠는 것이 제일 재밌지.” “수다가 가능합니까?” “가능하기 위해서 무진장 노력하고 공부하지. 공부 안하고 연구없이 재미있게 살 수는 없어.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하고 다 재미있게 살려는 것이지.” “젊은 여자를 만나면 어떤 내용으로 수다를 떠나요?” “그날 그날 다 달라. 어제는 여름 이불이 어느 정도 얇아야 하느냐, 어떤 천이 좋으냐, 이런 주제로 2∼3시간 수다를 떨었어.” ●젊은 여자랑 밥먹고 수다떠는 게 제일 재밌어 “그렇다면 인생은 수다인가요?” “재미있게 수다 떨다가 죽는 것이 최종목표지 뭐.” “수다 뒤에 찾아오는 허무는 무엇으로 채우나요?” “무엇을 해도 허무해. 허무는 가만히 있으면 지나가고, 잠들면 되고, 책 읽고, 그림 그리고, 또 수다 떨고….” “주변에서 인간 조영남은 고독하고 쓸쓸한 팔자가 아니냐고 합니다.” “말 같지 않은 얘기야, 고독하지 않은 것이 없어. 고독 반, 고독하지 않은 것 반, 기쁨 반, 슬픔 반, 인간사 다 그렇지 않은가.” “고독이 몸부림칠 때 음악을 만드나요?” “몸부림친 적도 없어…, 다 구라치는 얘기야.” 조씨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툭툭 내뱉는 단어들이었지만 조합을 해보면 매사에 솔직하고 일관된 소신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최종답을 위해 인생철학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정운찬·정동영·손학규, 삼두 정치 어떨까 “주변에 대통령이 될 법한 친구들이 많아서 기분이 좋아. 정운찬, 정동영, 손학규…. 그러나 그 중 한명(정운찬)이 떨어져 나가 승률이 줄어들었어.”이어 “정운찬은 쓸 만한 물건이고, 정동영은 잘 만들어진 물건이고, 손학규는 쓰기 편한 물건이고, 다 괜찮아. 말 나온 김에 옛날처럼 삼두(三頭)정치를 제의하면 어떨까.”라고 되묻는다. 왜 혼자 사느냐고 다시 직설적으로 물었다. “여자를 구하는 데 큰 문제는 없어. 같이 살자고 하면 살아줄 여자도 몇명 있지. 안 하는 이유? 두번씩이나 둘이서 살아봐서 아는 데, 혼자 살아보니 훨씬 재미있어. 난 역시 독립군 체질이야. 성격이 변태 같은데 감당하고 들러붙어 살 여자가 쉽게 나타나겠어?”그는 자신이 불렀던 곡 가운데 가장 아끼는 노래에 대해 이제하씨가 가사를 쓴 ‘모란동백’, 그리고 방송작가 김수현씨의 시에 곡을 붙인 ‘지금’이라고 대답했다.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 선언’ 파문을 언급하자 “많이 아팠다.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고 했다. 인생 앞날의 계획을 재차 물었다. “죽기 직전까지 산다는 것이야.”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5년 황해도 남천 출생. ▲51년 1·4후퇴때 월남. ▲64년 서울 용문고 졸업. ▲66년 서울대 음대 시절, 미8군 무대데뷔로 노래인생 시작. ▲68년 첫음반 ‘딜라일라’ 발표. ▲74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권유로 미 트리니티침례신학대학 입학. 이후 목사자격증을 받고 미국 생활. ▲81년 귀국후 가수활동 재개. # 대표곡 딜라일라, 제비, 물레방아 인생, 각설이 타령, 별은 빛나건만, 신고산타령, 화개장터, 웰컴투코리아, 사랑했기에, 겸손은 힘들어, 늘푸른 마을, 인생은 요지경, 무너진 사랑탑, 보리수. 내고향 충청도 등. # 주요 저서 어느 한국 청년이 본 예수(82년), 놀멘놀맨(95년), 조영남 예수의 샅바를 잡다(2002년), 길에서 미술을 만나다(03년),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05년). # 그외 영화 서울에비타 등 출연.1990년 LA개인전을 시작으로 매년 미술 전시회를 갖는다.
  • [서울광장] 회장님 주먹이 날린 것들/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회장님 주먹이 날린 것들/육철수 논설위원

    홍콩재벌 리자청(李嘉誠)은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갑부다. 자선사업과 엄격한 자녀교육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두 아들에게 입버릇처럼 “먼저 인간이 되라.”고 했다. 아버지의 사업을 이으려면 우선 돈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아야 하고, 예의바르고 겸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이들이 왕자처럼 행동하고 안하무인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돈보다 인간의 도리부터 가르친 덕분에 두 아들은 미국 유학시절 갑부의 아들이란 사실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들은 맥도널드에서 아르바이트하고 골프연습장에서 공 줍는 일을 하면서 학비를 보탰다. 리자청이 사업을 번창시키고 자식교육도 성공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남과 비교하는 게 언짢을지 모르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을 지켜보면서 진정한 자식사랑이 뭔지 다시 생각해 본다. 워낙 믿을 수 없고 상상을 뛰어넘는 사건이라, 아직도 영화나 소설을 보는 것 같다. 남한테 손찌검을 당해 피투성이가 돼서 돌아온 아들을 보고 격분하지 않을 아버지는 이 세상에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평범한 아버지라도 이미 저질러진 일에 대해서는 대개 이성적인 해결책을 찾는다. 그런데 김 회장이 대기업을 이끄는 총수로서, 사회지도층으로서 지위를 깡그리 망각하고 이렇듯 비이성적으로 대응한 이유는 뭘까. 김 회장의 성격과 처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소문이 많으나, 희대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그 일면을 접하게 된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어쨌든 김 회장은 감정통제의 실패와 주먹 한 방으로 너무 많은 것을 날려버렸다. 가장 큰 손실은 자식교육의 소중한 기회를 놓친 게 아닌가 싶다. 김 회장은 이런 행동으로 아들에게 뭘 가르치려 했을까. 아들은 용감무쌍한 아버지에게서 뭉클한 사랑을 확인했을까. 속 시원하게 복수해준 아버지를 존경하고 고마워할까. 자신 때문에 아버지는 하루아침에 만신창이가 됐는데도…. 김 회장이 아들에게 돈과 특권과 폭력의 위력을 가르치려 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다. 김 회장은 자신의 명예도 한평생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훼손했다. 그에겐 앞으로 유능한 경영자가 아니라 ‘폭력 재벌’이란 무시무시한 꼬리표가 늘 따라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글로벌 궤도에 진입하기 시작한 기업 이미지는 엉망이 됐다. 한화그룹 계열사에 몸담고 있는 임직원 2만 5000명에게도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그들은 어디 가서 “한화 직원”이란 말도 못 꺼낸다고 한다. 먹고사는 게 더 중요한 그들이기에 “(회장이) 부끄럽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더욱 갑갑할 것이다. 김 회장의 주먹은 유형의 가치도 적잖이 날렸다.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지난달 25일 이후 7일(거래일 기준)만에 상장 한화 계열사의 시가총액은 3295억원이나 증발했다. 상당부분은 김 회장 사건의 영향일 것이다. 사건현장이자 한화 직원들이 애용한다는 서울 북창동 상가의 상인들은 이 사건 이후 더욱 썰렁해졌다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다는 소식이다. 김 회장은 경찰 조사에서 폭행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얻어맞은 사람들의 진술과 정황으로 미루어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김 회장은 법 앞에서 비신사적인 모습을 거두고 당당하게 양심을 걸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남은 양심마저 주먹으로 날려 버릴 수야 없지 않은가.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미국 한인 ‘SAT∙ACT’ 동시 만점 화제

    미국 한인 ‘SAT∙ACT’ 동시 만점 화제

    미국 대학입학시험 SAT와 ACT에서 모두 만점을 기록한 한인 학생이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화제의 학생은 유타주 팀뷰고등학교(Timpview High School)의 이형 군. 9년 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5세다. 이형 군은 작년 12월 ACT 만점에 이어 한달 후 SAT도 만점을 받아 두시험 동시 만점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이군은 “ACT는 SAT에 대비한 예비 시험”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이어 “내게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다. 운이 좋았다.”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의 평가는 달랐다. 지도교사 린다 뱅크스는 “정말 똑똑한 학생이자 열정적인 노력파”라고 칭찬했다. 또 다른 교사 오스텐슨은 그와의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던 것을 떠올리며 “매우 지적인 학생”이라고 밝혔다. 음악을 좋아하고 학보사에 글을 기고하는 등 교외 활동도 열심히 하는 이군은 “배움 자체가 좋다. 높은 지위나 돈에는 관심 없다.”고 말해 순수한 학구열을 드러냈다. 이 소식을 전한 미국 유타주의 데저트뉴스(desertnews)는 “이군은 아직 지원할 대학을 정하지는 않았다.”고 보도했다. * SAT∙ACT란? SAT와 ACT는 미국 대학입학 전형에 쓰이는 양대 대입 평가고사다. 사진=데저트뉴스(desertnews)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
  • 이해인 녀 ‘해인글방’ - 4월소식

    이해인 녀 ‘해인글방’ - 4월소식

    봄길과 동행하다 - 이기철 - 움 돋는 풀잎 외에도 오늘 저 들판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꽃 피는 일 외에도 오늘 저 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종일 풀잎들은 초록의 생각에 빠져 있다 젊은 들길이 아침마다 파란 수저를 들 때 그때는 우리도 한번쯤 그리움을 그리워해 볼 일이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가 좋아하는 이기철 시인의 시로 인사드립니다. 부활축제가 있는 4월 우리 수녀원은 온통 영산홍 꽃무리로 가득 할 것입니다. 3월 24일부터 30일엔 집중적으로 사순절 특강을 하고는 4월 한 달은 집에 있을 것이니 특히 부산에 계신 분들은....우리 수녀원의 봄꽃들이 보고 싶으시면 4월 8일일 부활절 지나고 (미리 연락하시고) 우리 수녀원을 다녀가셔도 좋습니다. 아래의 글은 “친구야 너는 아니”라는 록그룹 부활의 노래 (11집)뮤직 비디오의 마지막에 부분적으로 들어갈 글이랍니다.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굶주리는 세계의 어린이들, 전쟁에 이용 당하는 어린이들의 희생 등을 영상으로 담았는데, 4분짜리 비디오를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프네요.1) 나는 눈을 뜨고도 보지 못했네/우리 함께 행복해야 할 아름다운 세상 굶주림에 괴로워하는 이웃 있음을/나의 무관심으로 조금씩 죽어가는/이웃 있음을 알지 못했네 오,친구여 이제 우리는/한 톨의 사랑이 되어/배고픈 이들을 먹여야 하네 언젠가 우리 사랑/나누어 넉넉한 큰 들판이 될 때까지,오,친구여 2) 나는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네/우리 함께 기뻐 해야 할 아름다운 세상 목마름에 괴로워하는 이웃 있음을/ 나의 무관심으로 조금씩 죽어가는/이웃 있음을 알지 못했네 오,친구여 우리는 이제/한 방울의 사랑이 되어/목마른 이들을 적셔야 하네 언젠가 우리 세상/흘러서 넘치는 큰 강이 될 때까지,오,친구여 지금 저의 책상에 있는 책들은: <처음처럼>(신영복/랜덤 하우스 코리아), <청소부 밥>(토드 홉킨스.레이힐 버튼.신윤경 역/위즈덤 하우스),<고양이 철학자 요미우마>(조안나 샌즈마크.부희령 역/실천문학사), <눈 이야기>(김도연/열림원), <스승의 옥편>(정민/마음산책), <나를 부르는 소리>(김영진/성서원), <집으로 가는 길>(지아오 보/박지민 역/다산초당), <천년학>(이청준/열림원), <우리 겨레의 위대한 스승 김구>(이상현 글.노희성 그림/열림카디널), <꼬마 천사 매티>(매티 스테파넥.지미 카터/이 진 역/예담), <중학생이 읽어야할 만화 국어교과서>(글 고흥준.그림 마정원/스콜라), <호미>(박완서.열림원),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자고 깨어나면 늘 아침/삼인), <사막 교부>(루시앵 레뇨.허성석 역/분도), <그 영원한 달빛 신사임당>(안 영/동이) 등입니다. <눈물꽃> 잘 울어야/눈물도 꽃이 됩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너를 위해 울 때 너무 오래 울지 말고/적당히 울 때 아름다움을 향한 그리움으로/감동하거나 안타까워서 울 때 허영심을 버리고/숨어서 울 때 죄를 뉘우치는 겸손으로/착하게 울 때 눈물은/진주를 닮은/ 하나의 꽃이 됩니다 세상을 적시며 흐르는 강물꽃/눈물꽃이 됩니다 기쁨꽃 대신 문득 눈물꽃이란 꽃시를 읽으면서 봄 인사 드리고 부활축제의 기쁨도 나누고 싶습니다. 아름답기 위해선 눈물이 필요하고 기쁨꽃을 위해서도 눈물꽃이 필요함을 다시 기억하면서... 평화를 잃어버린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몫을 각자의 삶의자리에서 더욱 열심히 찾아보기로 해요. 일상생활의 건강하심과 평화를 비옵니다. 사랑의 기도 안에 여러분을 기억하면서 안녕히! 이해인
  • [美 교포학생 총기난사 파문] “함께 손잡고 어려움 극복하자”

    |블랙스버그(미 버지니아주) 이도운특파원|17일 저녁 8시. 강한 바람이 부는 차가운 날씨 속에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정부 청사로 한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청사 로비에서는 버지니아공대에서 발생한 총기난동 참사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번 참사로 한인사회 전체가 거대한 충격에 휩싸여 몸을 움츠리는 가운데서도 적극적으로 희생자 및 미국인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기 위해 워싱턴 지역 한인회와 교회가 주최한 행사였다. 이날 행사는 오후 늦게야 결정됐지만 400명이 넘는 한인들이 참석,“힘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 이날 행사에는 톰 데이비스·프랭크 울프 하원의원과 제리 커널리 페어팩스 카운티 이사회 의장 등 미국측 관계자와 주민들도 참석, 한인들과 함께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커널리 의장은 인사말에서 “몇년 전 이 지역의 경찰관 2명이 백인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을 때 한인 커뮤니티에서 보내준 따뜻한 위로를 잊지 않고 있다.”면서 “오늘 한국인들과 함께 희생자를 애도하는 자리를 갖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느 민족, 어느 커뮤니티에서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며 “오늘은 누구를 비난하는 대신에 함께 손을 잡고 비극을 극복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 함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홍보하기 위한 투어에 나섰던 이태식 대사도 이날 휴스턴 방문 중에 급거 워싱턴으로 귀환, 이날 저녁 행사에 참석했다. 이 대사는 “충격적인 사건을 계기로 한인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며, 겸손한 마음으로 미국 주류사회와 다시 융합할 수 있도록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면서 희생자 32명을 기리기 위해 한국 교회에서 32일간 하루 한끼 정도를 금식하는 ‘금식기도’를 해달라고 제안했다.dawn@seoul.co.kr
  • 창립 10년 라오스 최대 민간기업 ‘코라오’ 오세영 회장

    창립 10년 라오스 최대 민간기업 ‘코라오’ 오세영 회장

    라오스 최대의 민간기업은 올해 창립 10년이 된 코라오(Kolao)그룹이다. 연 매출 1억 2000만달러인 이 기업의 회장은 한국인 오세영(45)씨다.Kolao는 한국(Korea)과 라오스(Laos)를 합친 이름이다. 재외동포재단에서 주최하는 ‘리딩CEO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오 회장은 지난 17일 서울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오 회장은 원래 대기업 상사맨이었다. 처음에는 베트남에서 사업을 시작했다.91년이었다. 베트남에서 막 자본주의가 꿈틀거리던 때 출장을 갔다가 그대로 눌러앉은 것이다. 당시는 한·베트남 관계가 꽃피기 시작할 때였다. 그러나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했던 베트남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외국인투자신청 허가도 받지 않고 92년에 봉제공장을 만들었다가 1년 뒤 약점을 잡은 합작파트너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다. 다시 손댄 게 7∼8년된 중고자동차와 오토바이를 수입해 파는 일이었다. 그러나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다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오 회장이 재기의 땅으로 삼은 곳이 라오스였다.97년 라오스 땅을 밟았을 때 베트남보다 더 후진국이었고 한국과 더 소원한 국가였다. 남한보다 북한과 더 가까웠던 라오스에서 일본 도요타는 자동차 시장의 77%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 한국차는 단 두대뿐이었다. 그런 현실에 오 회장은 통역과 달랑 둘이 도전했다. ●91년 베트남 첫 사업 실패후 라오스로 진출 라오스에서는 중고 자동차 판매사업부터 시작했다. 오토바이 제조·판매, 시멘트사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현재 직원이 7000명이 넘고 1만 50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중요 사업부문으로 삼고 있는 것의 하나가 바이오디젤 연료인 ‘자트로파’를 재배하는 사업이다. 오 회장의 세가지 사업 원칙은 빚없이, 동업하지 않고, 사회환원을 하는 것이다. 두번째 원칙은 지난달 굿모닝신한증권과 자트로파 재배사업을 함께 하기로 계약을 맺으며 깨고 말았다. 다른 두가지는 지키고 있다. 특히 순이익의 10%가량을 교육사업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주류 사회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기득권의 배척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기여와 봉사뿐이라는 생각에서다. ●투명경영으로 수십차례 세무조사 위기 넘겨 처음부터 투명경영을 고집한 것도 사업체를 키워낸 비결이다. 사업이 커지자 라오스 정부는 2000년부터 2년간 30차례 넘게 세무조사를 나왔다. 하지만 철저한 세금납부, 투명한 회계를 강조한 오회장의 경영방침 때문에 흠을 잡을 수 없었다. 라오스 정부도 투명 경영 기업으로 선정했다. 라오스 정부는 또 코라오를 외국인 투자 모범사례로 삼는다. 오 회장은 후진국에 진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겸손이라고 했다. 절대 현지인을 얕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후진국에 안주하지 말고 선진국을 다니며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오 회장은 서울사무소를 통해 신간 책이나 잡지를 40여권씩 다달이 구해 읽으며 새로운 경영감각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글 전경하 류재림기자 lark3@seoul.co.kr
  • “30년 바이올린 관록 들어보세요”

    “30년 바이올린 관록 들어보세요”

    “관록이라고 할까요. 젊을 때는 패기와 욕심으로 연주했다면 이제는 겸손과 자연스러움을 알게 됐지요.”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를 연다. 지난 12일 서울갤러리에서 만난 이성주는 “나는 지금이 전성기”라면서 “연주자로서 세계무대에 더 많은 도전을 하고 싶다.”며 50대답지 않은 의지를 다졌다. 이성주의 ‘데뷔’란 1977년 4월26일 미국 뉴욕의 카프만홀에서의 독주회를 말한다.‘영 콘서트 아티스트 오디션’에 뽑힌 부상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과 피아니스트 에마누엘 액스도 이 오디션 출신이다. 그는 “카프만홀 독주회는 프로 음악가로 첫선을 보이는 자리라는 점에서 정말 중요했다.”고 설명하고 “밤 12시에 지하철역을 찾아 뉴욕타임스 가판을 펼쳐 들었을 때 ‘이성주는 일급 바이올리니스트(First grade violinist,Lee)’라는 제목을 보고서야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며 웃었다. 그는 같은해 음악전문지 ‘뮤지컬 아메리카’가 선정한 미국의 최우수 젊은 연주자로 선정됐다. 이번 음악회의 레퍼토리는 헨델의 소나타 작품 5와 이자이의 소나타 4번,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2번,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 1번. 멘델스존을 제외하면 카프만홀의 프로그램과 같다. 당시엔 베토벤의 소나타 1번과 줄리아드음악학교 학장인 피터 메닌의 ‘듀오 콘체르탄테’가 더 들어 있었다. 이성주는 솔로이스트와 실내악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하다 1994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귀국이 세계 무대에서 활동을 넓히는데 장애가 되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연주자에서 교육자, 음악감독으로 활동범위가 넓어져 시간을 나누어 쓰기가 어려울 뿐, 미국에 있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줄리아드예비학교의 학생 수준보다 현재 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서 배우는 한국 아이들의 수준이 훨씬 높다.”면서 “고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주회에는 피아니스트 이경숙과 첼리스트 박상민이 나선다. 이경숙은 “빨리 돌아와 함께 연주하자.”고 그에게 귀국을 강권하다시피 했던 인물. 이성주는 “좋은 연주자와 만나면 연주하면서 배운다.”면서 “이경숙 교수가 바로 그런 음악가”라고 설명했다. 음악회 일정은 지난 13일 대전 문화예술의전당 공연에 이어 19일 서울 LG아트센터,28일 김해 문화의전당,5월25일 대구 문화예술회관.(02)780-5054. 글 서동철기자 사진 김명국기자 dcsuh@seoul.co.kr
  • “고국에 ‘스티브J& 요니P’ 선보여 기뻐”

    “고국에 ‘스티브J& 요니P’ 선보여 기뻐”

    긴 머리에 헌팅캡,‘포와르 형사’ 같은 콧수염, 보라색 벨벳 넥타이. 뽀글거리다 못해 파뿌리가 된 머리에 비스듬히 얹은 망사 레이스 모자. 한국에서 나고 자라 현재 영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부부 디자이너 정혁서(30)·배정연(29)씨는 이렇게 외모부터 독특했다. 유명 브랜드 ‘탑샵’ 런던 매장에 ‘스티브요니 스튜디오’를 개장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삼성패션 펀드도 수상한 패션계의 신성이다. 이들은 13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7회 ‘프레타포르테 부산 F/W’를 통해 한국에서 처음 자신들의 브랜드 ‘스티브J& 요니P’ 컬렉션을 선보였다. 패션쇼가 끝난 뒤 이들은 첫 쇼의 설렘 때문인지 무척 상기된 표정이었다. “초청받아서 아주 행복했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저희 옷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가 됐습니다.” 쇼에 선보인 옷들은 그들의 차림새만큼 남달랐다. 티베트란 나라에 푹 빠져있다는 이 커플의 옷에는 한국, 영국, 티베트 3개국의 문화가 다 녹아들어 있었다. 영국 신사풍의 재킷에 티베트의 전통 십자가가 새겨진 긴 털목도리를 두르고, 우리네 할머니들이 신던 겨울 털신에서 착안한 구두를 신는 식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이템들을 섞는 재주가 비상하다. “저희 옷을 보고 호주의 시드니헤럴드지가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경쟁할 만한 브랜드가 나타났다고 해서 깜짝 놀랐었죠.” 한성대 의상학과 1학년 때 만나 함께 브랜드 론칭의 꿈을 키우던 두 사람은 더할 나위 없는 파트너다. 아직 신인이라고 겸손해 하지만 이들의 옷은 현재 파리와 모스크바에서도 만날 수 있다. 최근 일본쪽 바이어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고. 물론 언젠가 한국에도 매장을 낼 계획이다. 부산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주몽의 사용’ 남자로 태어나다

    ‘주몽의 사용’ 남자로 태어나다

    연극 ‘다리퐁 모단걸’에 출연중인 배수빈(31)을 만났다. 그가 맡은 인물 광선태는 음악취조소(音樂取調所)의 군악대장이다.‘주몽’ 이전의 드라마 ‘결혼합시다’에서 연기했던 의사 역할처럼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섬세하고 감성적인 인물이다.“‘주몽’을 1년 동안 찍으면서 지쳐서 쉬려고 했는데, 같이 등산을 다니는 동숭씨어터컴퍼니 대표께서 제안을 하셨어요. 배우가 놀면 그냥 백수인데…, 연습이 고되기는 하지만 연극을 하면서 배우로서의 희열을 맛보고 있어요.” 국민드라마 이후 소극장 연극을 하게 된 이유도 담백하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조재현이 직전에 같은 극장에서 공연된 ‘경숙이, 경숙아버지’로 많은 인기와 화제를 모은 것도 자극이 됐다. 좋은 배우 한명과 좋은 연극 한편의 반향이 무척 컸던 셈이다. ‘다리퐁 모단걸’은 1902년 개화기 처음 전화기가 들어왔을 때, 텔레폰을 다리퐁이라고 불렀던 시절의 사랑 이야기다. 배수빈이 연기하는 군악대장 선태는 3년간 연락이 없는 천일은행 인천지점장 셋째딸 서연에게 매일밤 전화를 건다. 고종황제를 전화교환수로 착각해 호통을 친 뒤 3일 밤낮을 전화기 앞에서 근신하는 신하, 전화기가 사람을 삼켰다고 뱉어내라며 호통치는 늙은 선비 등 신문물인 전화기를 둘러싼 각종 에피소드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영화를 염두에 두고 쓰여졌던 극본이라 소극장 연극치고는 등장인물도 많고 공연시간도 2시간이나 된다. 처음에는 3시간 반이나 됐던 시간을 많이 줄인 것이라고 한다. 올 연말부터 ‘꽃섬’ ‘깃’ 등을 만든 송일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될 예정이다. 배수빈은 군악대장인 만큼 연극 중간에 트럼펫도 분다. 주몽 촬영 막바지부터 트럼펫을 연습했으며, 기실 그는 초등학생 시절 밴드부원을 했다고. 연극을 만든 극단 ‘신기루만화경’의 대표는 다름 아닌 배우 오달수이다. 영화 ‘괴물’에서 괴물 목소리를 맡았던 오달수는 이 연극에서도 목소리로 우정 출연을 한다. 고지식하고 호통치기 좋아하는 양반 교환수로 나와 단 7개의 대사만으로 관객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한다. 배수빈은 스스로 “그리 박력있지는 않다.”고 말하지만 단지 귀찮아서 내버려뒀다는 수염과 연극 연습을 할 때 타고 다닌다는 오토바이는 그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대극장 2층에서도 표정이 훤히 읽힌다는 대배우(얼굴이 커서 그렇다고 오달수 본인은 설명한 바 있다) 오달수에 비해, 요즘 배우답게 작은 얼굴의 배수빈. 그래서 소극장을 선택했다며 웃었다. 드라마에만 출연하다 처음 출연한 연극이라 아직 발성도 부족하고, 티켓 파워도 적다고 겸손해한다. 하지만 그의 부드러운 눈빛과 목소리는 ‘천천히 똑바로 걸어라.’라고 말하는 연극의 중심이 되고 있다. 오는 6월3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02)766-6007.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이모저모] ‘얼짱’ 차유람 vs ‘몸짱’ 자넷 리 대결 ‘후끈’

    10일 열린 여자 프로 포켓볼 인비테셔널 예선 경기 현장. 경기가 열린 센티널시티 분수광장에는 ‘얼짱소녀’ 차유람과 ‘검은독거미’ 자넷 리와의 재대결 여부로 일찍부터 많은 관중들이 모였다. 현장은 경기장이 분리되지 않은 ‘광장’이라 지나가는 사람들과 행사 진행 스탭들과의 마찰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또한 자넷 리와 차유람을 알아보면서도 경기 규칙을 몰라 서로에게 물어보며 답답해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이날 경기에서 차유람은 샤넬 로레인(괌)을 4-1로 꺾고 지난 2월 14일 미국 출국 이후 국내에서 첫 승을 올렸다. 관객들 “너무 예뻐요” “한번만 봐주세요” ‘얼짱 당구소녀’의 인기는 대단했다. 다른 경기에 비해 차유람의 경기에는 정작 공이 구르는 모습을 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팬들이 몰렸다. 관객들은 선수들의 집중을 위해 큐를 잡는 순간에는 조용했지만 잠시라도 경기가 멈추면 “예뻐요”라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졌다. 사진을 찍기 위해 팬들은 차유람의 대기석쪽에 집중적으로 몰리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도 역시 ‘얼짱’ 외모로 주목받았지만 정작 차유람 본인은 “남자친구는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며 “사생활에 신경쓰기 보다는 좀 더 성숙해진 기량을 갖춰야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또 자넷 리와의 재대결에 대해 묻는 질문에는 “(결승에서 만나려면) 내가 잘하면 된다. 하지만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디지털콘텐츠팀 글 :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 영상 :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프리미어리그] 겸손한 지성씨

    [프리미어리그] 겸손한 지성씨

    ‘이제 킬러라 불러다오.’ 박지성(26·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1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1라운드 블랙번과의 홈경기 후반 38분 2-1로 앞선 상황에서 시즌 5호골에 이어 종료 직전 올레 군나르 솔샤르의 쐐기골을 어시스트해 4-1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달 17일 볼턴전에서 골을 터뜨렸던 박지성은 이로써 잉글랜드 진출 이후 처음으로 두 경기 연속골을 폭발시켰다. 이날 1골1도움을 기록한 박지성은 이번 시즌 정규리그 14경기에서 공격포인트 7개(5골 2도움)를 뽑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데뷔 시즌 박지성은 ‘산소탱크’라는 별명에 걸맞게 48경기에 출전, 그라운드 구석구석을 누볐지만 골 감각은 처진다는 평과 함께 공격포인트 9개(2골7도움)에 그쳤다. 따라서 이번 시즌 내용적으로 달라진 박지성의 공격 포인트는 킬러 본능이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을 반증한다. 특히 지난 1월14일 애스턴 빌라전 1골1도움, 지난달 17일 볼턴전 2골 등 최근 들어 더블 포인트가 늘고 있는 점이 반가운 대목. 볼턴전 리바운드골에 이어 이날 골도 박지성의 위치 선정 능력이 일취월장했음을 보여준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프리킥을 날릴 때 수비벽과 나란히 서있던 박지성은 골키퍼 브래드 프리델이 공을 쳐내자 재빨리 몸을 돌려 밀어넣는 침착성을 보여줬다. 솔샤르의 편안한 쐐기골을 가능케 한, 자로 잰 패스도 문전을 열심히 파고든 끝에 나온 것이었다. 박지성은 정규리그 남은 7경기에서 공격포인트 3개만 올리면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첫 두 자리 공격포인트를 달성하게 된다. 그는 경기 뒤 “전반에 플레이가 좋지 않아 좋은 점수를 줄 만한 경기는 아니었다.”고 털어놓은 뒤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다 보면 골은 보너스로 따라온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며 골 욕심을 더 내겠다는 뜻을 비쳤다. 스포츠 전문 채널 ‘스카이스포츠’도 ‘활기넘쳤다(lively)’는 평과 함께 평점 7을 매겼다. 맨유는 전반 29분 블랙번의 매트 더비샤이어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폴 스콜스가 페널티지역에서 수비수 3명을 제치며 뽑아낸 환상적인 동점골로 포문을 열어 리그 7연승은 물론 14경기 무패를 이어갔다. 맨유는 25승3무3패(승점 78)로 선두를 굳게 지켰지만 2위 첼시 역시 꼴찌 왓퍼드를 1-0으로 꺾으며 7연승, 승점 6점 차로 1위 싸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비폭력 평화정신’ 함석헌 사상가 반열에

    ‘한국의 간디’ 함석헌(1901∼1989)의 철학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집 ‘씨알 생명 평화(씨알사상연구회 지음, 한길사 펴냄)’가 발간됐다. 이 책을 통해 우리 민족의 큰 스승인 함석헌의 철학이 다산 정약용에 이은 20세기의 한국철학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함석헌은 1901년 평안북도 용천의 독실한 개신교 장로교회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16살에 평양고등보통학교에 다니다 3·1운동에 가담한 연유로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오산학교로 편입한다. 함석헌이 평생동안 진리의 화두로 삼았던 ‘씨알(원래 알의 ㅏ는 아래아 ㆍ다)’사상은 이때 오산학교에서 싹텄다.일본의 동경고등사범학교에서 독창적인 민족사관을 형성하고, 이후 오산학교에서 10년간 역사 교사생활을 하게 된다.1938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탄압이 노골화되면서 학교에서 추방당한 함석헌은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했다는 죄목 등으로 일제시대에 모두 4번 감옥을 가게 된다. 47년 공산주의자들의 회유 정책을 피해 가족을 뒤로 하고 월남한 함석헌은 이후 수염을 깎지 않았다. 전쟁 중에도 성서 공부 모임을 계속했던 그는 56년 진보 월간지 ‘사상계’에 ‘한국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등을 발표하면서 큰 호응을 얻는다.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적극 참여해 70년 일흔살의 나이로 ‘씨알의 소리’를 창간한다. 진보적 기독교 지식인과 재야운동을 펼친 그는 76년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85년에는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다.87년 암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하던 중 89년 일흔여덟의 나이로 소천했다. 함석헌은 신앙과 교육을 비롯해 농사를 생의 지표로 삼았다. 씨알사상은 그가 농사꾼의 한 사람으로서 터득한 지혜 및 경험과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김명수 경성대 신학대학장은 판단했다. 스스로 ‘한국의 간디’라 불리는 것을 그리 싫어하지 않았던 함석헌은 24∼25년 로망 롤랭의 간디전을 읽은 이후 평생 간디가 간 길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가 간디를 사랑하고 존경한 이유는 “조직적인 악에는 조직적인 사랑으로 대항할 것과 그렇게 하면 반드시 이기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간디를 씨알 중의 씨알로 삼았던 함석헌은 ‘씨알의 소리’ 겉장에 “씨알은 자기 교육의 기구이자 어떤 종교, 어떤 정치 세력과도 관계가 없다.”며 “스스로 역사의 주체인 것을 믿고, 그 자람과 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악과 싸우는 것을 제 사명으로 안다.”고 천명했다. 종교는 정치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함석헌은 이를 평생 화두로 삼았다. 종교인이면서도 정치악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치는 나에게는 성가신 일입니다. 내가 정치를 털어버릴 수 있다면 기뻐 춤출 것입니다.”라고 간디봉사회 앞에서 연설했다. 일부 기독교는 ‘거대한 이기주의 집단’으로 비쳐지고 있는 한국의 종교 현실에서 함석헌의 겸손하고 진실을 추구했던 사상은 ‘큰 모순의 바위에 큰 쇠망치를 내린 것’과 같을 것이다.656쪽.2만원.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희망의 씨 뿌리기 귀농] (5) 실패에서 배운다

    [희망의 씨 뿌리기 귀농] (5) 실패에서 배운다

    성공한 귀농인도 많지만, 실패해서 탈농(脫農)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농림부 등에 따르면 귀농한 사람 3명 가운데 2명은 농촌 정착에 실패한다. 농촌에 정착하기는 그만큼 어렵다. 지금 귀농을 꿈꾸고 있다면 실패 사례를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앞서 귀농에 실패한 사람들이 겪은 경험은 새내기 귀농인들이 닥칠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데 훌륭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된다. 전문가들은 조급한 한탕주의와 무리한 투자, 지역사회 부적응 등이 귀농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생강·양배추만 짓다 2년만에 빚더미 A(43)씨는 지난 99년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서산으로 귀농했지만,2년 만에 1억원 가까운 빚만 지고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그의 사례는 노력 없이 ‘대박’만을 좇는 ‘한탕주의’ 농사로 ‘쪽박’을 찬 귀농 실패자의 전형을 보여준다.A씨의 잘못은 귀농을 농사꾼이 되기 위한 과정이 아닌 단순 ‘돈벌이’ 수단으로 봤다는 것.A씨는 귀농 당시 다른 귀농 준비자보다 무척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는 고려대 농과대 대학원을 졸업해 농업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갖춘 데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농지 5000평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A씨는 귀농 첫 해 농지 5000평에 모두 생강을 심었다. 당시 생강 가격이 큰 오름세를 보였기 때문에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귀농전 귀농교육단체 등에서 위험분산을 위해 소량다품종으로 재배할 것을 교육 받았지만, 돈 욕심에 무시했다. 그러나 그 해 생강 농사가 너무 잘되는 바람에 가격이 폭락,A씨는 귀농자금 5000만원을 고스란히 날렸다. 그러나 A씨의 ‘도아니면 모’식의 투기농업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듬해 양배추를 모두 심었고, 또 가격이 폭락하면서 수천만원을 잃었다.A씨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기보다 돈으로 밀어붙이면 농사도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잘못 생각했다.”고 후회했다. ●초기투자 2억… 주말 즐기다 ‘빈손´ B(55)씨는 6년 전 2억원의 여윳돈을 갖고 경기 이천 부근으로 귀농했다. 그는 한달에 최소 100여만원의 소득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3000여평의 땅을 구입하는 데 1억원 가까운 돈을 썼다. 게다가 전원 주택과 화훼용 비닐하우스를 짓는 데 또 1억원을 들였다. 그러나 B씨는 농사일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주말은 서울로 올라가 사람들을 만나거나, 집으로 손님을 불러 들여 즐겼다. 결국 비닐하우스 관리 소홀로 꽃들이 대부분 얼어 죽고 말았다. 이듬해 농협 등으로부터 5000여만원을 대출받아 다시 꽃을 키웠지만, 경험 부족으로 또 다시 실패했다. 결국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팔고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B씨는 “땅과 집을 사는 데 너무 많은 돈을 들여 정작 농사지을 돈이 부족했고, 농사 경험을 쌓는 노력도 게을리했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경기 분당에 사는 C(40)씨는 경기 용인 전원주택을 경매로 낙찰받고 귀농을 감행했다. 그러나 그 지역은 평소 귀농후 꿈꾸던 약초, 버섯, 삼 등은 재배가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그저 논·밭농사 정도만 가능했다. C씨는 가진 돈과 은행 대출금으로 만든 3억여원을 모두 1000여평의 논과 밭을 구입하는 데 썼다. 그러나 농사 경험이 없어 땅을 대부분 놀리기 일쑤였다. 겨우 앞 마당에 텃밭이나 가꾸는 정도였다. 소득이 거의 없자 서울로 올라갔고, 귀농전 하던 임시직 일을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기름값 부담에 몇달 만에 포기해야 했다. 그는 결국 용인의 집을 버리고 분당으로 돌아가 의료 기구 판매 일을 하고 있다.C씨는 “무계획·무대책 귀농으로 인한 무리한 초기 투자가 실패의 지름길”이라고 돌이켰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D씨는 지난 2001년 직장을 잃고 고향인 충북 청주로 귀농했다. 첫 해와 이듬해는 부모님이 마련해 주신 밭을 일구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다 욕심이 생기면서 단기간에 많은 양의 토마토를 수확할 수 있는 ‘양액재배’ 시설 등을 마련하기 위해 3000여만원을 대출했다. 그러나 토마토 가격이 하락하면서 대출금 갚기가 힘들어지자 결국 농사를 포기하고 말았다. ●도시서 출퇴근… 부인과 갈등 도시 U턴 지난 2002년 서울 직장을 그만두고 강원도로 내려간 30대 중반의 E씨. 그는 농촌관광 사업을 하겠다며 폐교를 임대해 숙박시설을 마련했다. 그러나 시설 관리를 몸소 하지 않고 서울서 온 또 다른 귀농자에게 관리를 맡겼다. 본인은 인근 도시에 집을 사서 출퇴근을 했다. 게다가 폐교를 주민들의 출입을 통제한 채 술을 파는 유흥음식점으로 개조했다. 결국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폐교 임대가 취소돼 적자 상태에서 사업을 접어야 했다. 30대 후반의 F씨는 2005년 4월 귀농을 결심, 아무 연고 없는 경북 영양에 둥지를 틀었다.2000평 고추농사로만 연간 20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렸고, 아내와 아이들 셋을 키우기에 크게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내와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아내는 농촌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해 외로움을 호소했다.30대 중반의 주부로서 대부분 60대 이상인 마을 여성 주민들과 쉽게 동화하기 힘들었다. 특히 농촌에서는 불가능한 아이들 학원 수강 문제를 놓고도 의견 대립이 심했다. 문화생활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의료 시설 부족에 대한 아내의 불평도 나날이 높아갔다. 결국 F씨의 가족들은 지난 2월 짐을 싸야 했다.F씨는 “가족 동의 없이 제 의지만으로 귀농을 고집, 아내가 농촌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실패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귀농사모’가 말하는 성공 수칙 “조그만 차이가 성공과 실패라는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정성근(43)‘귀농사모(귀농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대표는 귀농의 성공과 실패에는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다고 말한다. 귀농사모는 3만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국내 최대의 자발적 온라인 귀농동호회이다. 정 대표는 “도시 직장에 첫 출근하는 신입사원의 각오를 농사일에서 가지면 귀농 실패는 없다.”고 강조한다. 다음은 그가 현장에서 느낀 귀농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조건들. ●실패하는 귀농의 5대 조건 1. 공부안하기 영농기술과 시골·농촌 문화를 습득하는 데 소홀하면 할수록 농사일은 힘들고 지겨워진다. 2. 게으름 피우기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먹는다. 늦잠 자고 일 안하는 만큼 소득은 줄고 지역 주민들은 떨어져 나간다. 3. 잘난 척 배운 척 있는 척하기 귀농후 3년 동안은 시집살이하는 셈 치고 겸손하라. 농사일 만큼은 시골 사람이 한수위다. 4. 은둔하기 유유자적 한답시고 주민과 담 쌓으면 농사일과도 담을 쌓게 된다. 5. 자만하기 귀농 첫 해 만족할 만한 소득을 올렸어도 배우는 자세로 더 열심히 일하라. 아직 고비가 더 남았다. ●성공하는 귀농의 10대 조건 1. 귀농생활을 널리 알려라 주변 친구·친지에게 귀농 결심을 알려라. 기대 이상의 도움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2. 버리지 마라 도시에서 필요 없던 헌 옷도 농촌에서는 훌륭한 지하수 동파 방지용 덮개가 된다. 3.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라 귀농 동호회 등에 가입해 선배 귀농인의 조언을 구해라. 농협 직원과 공무원도 알아두면 좋다. 4. 적을 만들지 마라 시골은 익명성과 거리가 멀다. 튀는 행동으로 반감을 사면 곧바로 낙인찍힌다. 5. 동네행사에 적극 참석하라 주민들과 접촉 빈도를 높여 호의를 이끌어내라. 성공의 지름길이다. 6. 동네 일을 맡아라 ‘이웃 사촌’이 되면 주민과의 동화는 자연스레 이뤄진다. 7. 인사 잘해서 남주나 인사만 잘 해도 주민과의 관계에서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8. 지역사회에 기여하라 농사로 벌어들인 이익 중 일부는 지역 주민을 위해 환원하라. 9. 당당하게 행동하라 한 없이 저자세로 나가지 마라. 일단 무시당하면 회복하기 힘들다. 10. 교류하라 농업 관련 단체 등 지역 사회와 연결고리를 맺어라.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그의 삶 그의 꿈] ‘토마스 기차’가 달리는 가야공원

    [그의 삶 그의 꿈] ‘토마스 기차’가 달리는 가야공원

    글 최준 시인, 사진 한찬호 사진작가 올해는 정해년. 황금돼지 해를 맞아 맨주먹으로 1000억 땅을 일궈낸 《저질러야 성공한다》의 저자 가야공원 이옥진 회장의 삶과 꿈 그리고 부자가 되는 이야기를 들어 본다. 미사리의 명소 ’미사리’를 입안에서 공글리다 보면 ‘미나리’와 ‘국수’가 동시에 떠오른다. ‘미사리’를 찾아 올림픽 도로를 달리면서 ‘미사리’라는 지명과 언제부터 친숙해졌을까, 생각해 본다. ‘미사리’는 아무래도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처음으로 다가든 이름인 것 같다. 그랬다. ‘미사리’는 돛 없이 노 젓는 배,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만 앞으로 나아가는 조정경기가 열린 장소였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는가. 올림픽이 끝나고, 세계에서 몰려들었던 선수들이 노를 싸들고 돌아간 뒤 ‘미사리’는 잊혀졌는가. 아니었다. 정작 더 친숙해진 건 올림픽 이후. 미사리 조정경기장 주변에 라이브 카페촌이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유명가수들의 라이브 공연을 보러 몰려드는 사람들로 거리가 불야성을 이룬 것이다. 조정경기장은 올림픽 후에 말 경주 장소인 경마장이나 자전거 경주 장소인 경륜장과 같이 조정 경주 장소인 경정장으로 바뀌었다. 그럼 ‘미사리’는 단지 라이브 카페촌과 경정장으로 우리들에게 친숙하고 유명한가. 아니다. 여기에 반드시 추가해야 할 하나가 더 있다. 바로 ‘가야공원’이다. ‘가야공원’은 200만의 방문객이 다녀 간 미사리의 명소다. ’가야공원’의 역사 올림픽도로를 타고 가다 미사리 경정장 부근에 이르면 눈에 확 뜨이는 간판이 있다. ‘가야공원’ 안내 간판인데, 이 간판은 올림픽도로에 세워진 최초이자 최후의 개인 간판이다. 간판엔 환하게 웃고 있는 한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그 얼굴이 바로 ‘가야공원’을 만든 이옥진 회장이다. ’가야공원’은 그가 자신의 사유지에 조성한 개인 공원이다. 여러 개의 음식점이 있고 과수원이 있고 기차카페가 있다. 이러면 흔히들 장삿속이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공원의 내력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가볍게 치부해 버릴 노릇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이 공원은 이옥진 회장의 10년 간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다. 이옥진 회장은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에 이 땅을 샀다. 1만 평이 훨씬 넘는 넓은 땅이었다. 뒤엔 한강이 흐르고 앞엔 올림픽 조정경기장 호수가 있었으며 잠실에서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야말로 천혜의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땅이었다. 하지만 값이 너무 쌌다. 서둘러 사고 나서야 왜 그렇게 헐값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자신이 산 땅은 주인마저 마음대로 손댈 수 없는 땅이었다. 그린벨트로 개발을 할 수 없었고 군사보호구역에다 하천부지로 묶여 있었다. 후회했지만 늦었다. 이때부터 그는 국가를 상대로 10년 전쟁을 시작한다. 두 번 옥살이를 했고 벌금은 대체 얼마를 냈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언론을 등에 업은 막강한 국가 권력과 나약한 한 개인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그 10년 세월을 회상하며 그는 악법의 칼자루를 쥔 국가와 맨주먹으로 전쟁을 벌이게 된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하다고 한다. 긴 싸움의 와중에 부동산법과 그린벨트법 등 토지 관련법들에 도통했다. 10년에 걸친 악전고투 끝에 그는 그린벨트, 국사보호구역, 하천부지로 묶여 있던 자신의 땅을 온전히 되찾았다. 자신의 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10년이 걸린 것이다. 그는 이 땅에 자신의 꿈을 심는다. 그 결과물이 바로 ‘가야공원’이다. 그의 저서 《저질러야 성공한다》는 자신의 인생 역정을 담고 있는 자서전인 동시에 500만 국민이 관련되어 있는 그린벨트법의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제시한 지침서이기도 하다. ’토마스 기차’와 과수원 토마스 기차는 이 공원의 명물.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타던 전용열차의 식당칸을 샀다. 기관차도 구입했다. 그는 공원 방문객들을 태우고 실제로 이 기차를 운행했다. 그린벨트로 묶여 있던 때였으니 위법이었다. 당연히 제재가 따랐다. 운행할 수 없었다. ‘토마스 기차’는 비록 달릴 수는 없지만 지금도 ‘가야공원’의 상징으로 공원을 찾는 방문객들을 반기는 꿈의 열차로 서 있다. ’토마스 기차’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하다. 스스로 길을 내며 달리는 기차. 철로가 끊기면 철로를 놓고, 고장나면 고치면서 쉼 없이 달리는 기차는 그의 인생 역정을 빼닮았다. 오직 희망 하나로 무작정 상경했던 16살 가출소년이 이룬 꿈이 고스란히 실려 있는 ‘토마스 기차’는 그의 분신이다. 공원 방문객들을 위해 그는 공원 안에 과수원을 만들었다. 자두와 살구, 복숭아, 사과 등 봄부터 가을까지 철마다 열리는 무공해 과일들을 방문객들은 맛볼 수 있다. 입구에 서 있는 아기 코끼리는 과수원과 참 잘 어울린다. 코끼리는 순한 동물이다. 느림의 미학을 생을 통해 보여준다. 모두들 앞만 보고 내달리는 바쁘기만 한 세상에서 코끼리는 그런 것만이 삶은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한 소식 가르쳐 준다. 그리고 코끼리 옆에서 코끼리를 바라보고 서 있는 캥거루는 넓이뛰기의 명수다. 코끼리의 ‘느림’과 캥거루의 ‘도약’. 그게 바로 우리 생인지 모른다. 그의 꿈 나라를 상대로 10년을 싸운 끝에 문을 연 ‘가야공원’을 그는 자연을 잊고 사는 도시민의 휴식공간으로 만들었다. 현실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쉴 수 있는 더 편안한 장소로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이제야 자신의 꿈을 겨우 절반쯤은 이룬 것 같다고 한다. 그의 말이 겸손과 겸양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늘 실천하는 그의 꿈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영원한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월간 <삶과꿈> 2007.02 구독문의:02-319-3791
  • [이색&뜨는 新직업] (7) 컨시어지 레클레도르

    [이색&뜨는 新직업] (7) 컨시어지 레클레도르

    2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 1층 로비. 투숙객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로비 안내 데스크로 다가왔다. 이때 이 호텔 ‘컨시어지(Concierge)’인 남정희(46) 주임이 고객의 요청에 앞서 먼저 라이터를 건네 이 남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담배를 꺼냈다가 주머니를 뒤지는 손님을 멀리서 보고 데스크로 오실 줄 알았다.”고 말했다. ●고객을 위한 개인 비서 역할 남 주임과 같이 VIP고객 등 호텔 투숙객들의 곁에서 개인 비서와 같은 친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컨시어지는 다소 생소한 직업이다. 컨시어지는 중세 프랑스에서 귀족들을 보좌하며 뭐든 다 해주는 집사를 칭하는 것으로 ‘촛대지기(comte des cierge)’라는 말에서 유래됐다. 고급 호텔이나 휴양지 등에서 정보와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고객들에게 자동차 렌트부터 유명 식당 및 공연 소개, 항공권 예약, 관광지 안내, 우편물 발송 등의 폭넓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VIP 고객의 취향에 맞는 객실 배치와 기기 상태를 점검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남 주임은 ‘컨시어지의 꽃’으로 불리는 ‘레클레도르(프랑스어로 황금열쇠)’로 세계컨시어지협회가 공인한 국내에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이들에겐 제복 깃에 두 개의 황금열쇠 배지를 달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레클레도르는 전세계 560명, 우리나라에는 서울에 11명과 부산에 3명 등 14명밖에 없다. 서울 시내 17개 특급 호텔 중 레클레도르를 고용하고 있는 곳이 7군데밖에 없어 앞으로 고용 범위가 더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레클레도르는 다양한 지식과 폭넓은 인간관계를 갖춰야 한다. 신문과 잡지를 꼬박 챙겨 읽고 괜찮은 레스토랑은 직접 가서 맛을 보고 식당 지배인과 안면을 튼다. 공연기획사 직원들과도 인연을 터 둬야 한다. 손님이 미리 예약하지 못해 표를 구하기 어려운 공연 티켓을 알음알음으로 구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손님에게 법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 관할 경찰과 보험사 등에도 인연을 맺어둬야 한다. ●다양한 지식·폭넓은 인간관계 필수 남 주임은 18년 전 컨시어지가 됐고 5년 전 현재 국내 레클레도르 가운데 6번째로 황금열쇠를 달았다. 남 주임에겐 손님과의 추억이 하나 둘이 아니다.10여년 전에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국인 노신사가 찾아와 당시 친분을 쌓았던 한국 병사와 찍은 빛 바랜 사진을 내밀며 “이 사람을 꼭 만나고 싶다.”고 했다.‘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였지만 남 주임은 사진을 보고 자신이 군 생활을 했던 곳과 비슷한 풍경임을 떠올린 뒤 직접 이틀 동안 휴가를 내 전북 김제 일대를 훑은 끝에 50년만의 재회를 이끌어냈다. 대를 이어 손님이 찾아오기도 한다. 최근엔 한 손님이 오더니 대뜸 이름을 부르며 “아버지가 수년전 여기 와서 당신의 서비스를 받고 감동해 한국에 가면 꼭 찾아가라고 했다.”고 말해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처음에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보답도 기대했었는데 이젠 손님의 요구뿐만 아니라 먼저 알아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손님이 기뻐한다는 사실만으로 나도 함께 기쁠 수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글로벌 시대 수요 급증 레클레도르가 되는 길은 험난하다. 적어도 호텔리어 경력이 7년 이상이어야 한다. 여러 개의 외국어 구사능력도 갖춰야 한다. 남 주임은 영어와 일어 의사소통이 가능하면서도 요즘 중국어를 따로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우리말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남 주인은 “우리말을 조리있게 하지 못하면 외국어도 서투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말하기 연습을 통해 손님이 신뢰할 수 있는 어투를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레클레도르는 호텔리어의 상징이자 명예일 뿐 자격을 땄다고 해서 급여 수준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남 주임은 “레클레도르가 되고싶은 사람은 젊을 때 배낭여행을 다니며 전세계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의 사는 방식을 존중하며 겸손함을 배우하고 권하고 싶다.”고 설명했다.“글로벌 시대를 맞아 한국을 무대로 한 국제 비즈니스가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호텔 수요는 점점 더 늘어납니다. 외국인들이 머무는 숙소에서 한국의 진면목을 소개하는 ‘최일선 민간외교관’ 역할을 우리 레클레도르가 해야죠.” 글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CEO칼럼] 고통의 가시도 축복/박종원 코리안리 사장

    [CEO칼럼] 고통의 가시도 축복/박종원 코리안리 사장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이 암초에 걸려 있어 이를 극복하고 이겨내기가 힘들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인생의 긴 여정을 걷다 보면 가난, 질병, 실직 등 사람마다 제각기 자기 인생을 힘들고 아프게 하는 고통의 가시를 경험하기 마련이다. 인간의 존재는 나약하므로 그런 고난을 겪을 때마다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이 주어지는가.’하며 불평하거나 낙담하지만, 고난 뒤에는 반드시 축복이 오는 것이 신의 섭리이다. 하나님은 바울 선생의 육신에 가시와 같은 고통을 내려주어 그가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 그는 처음에는 육체를 찌르는 그 고통을 힘들어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겸손하게 기도했고 그 과정에서 믿음이 깊어져 나중에는 자기가 겪은 가시의 고통 속에 오히려 축복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이가 열병으로 밤새 부모의 애간장을 녹인 뒤 한 단계 성장하는 것처럼, 고난 속에서 더 겸허한 자세로 인내하여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면 이 고난이야말로 축복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시련이 있어야 자만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더욱 정진한다는 사실은 위인들의 생애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충무공은 과거시험에서 예기치 못한 낙마(落馬)로 낙방했지만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재도전해 32세라는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했다. 당시 군관(軍官)의 문란한 기강 속에서 소인배들의 모함을 받아 번번이 좌천당했지만 그 때마다 의지를 잃지 않고 백의종군해 민족을 구한 영웅이 됐다. 명의 허준 역시 한때는 ‘중인(中人)’이라는 신분상의 제약으로 실의에 빠지기도 했으나, 마음을 다잡고 의술에 전념하여 ‘한(恨)’을 박애의 정신으로 승화함으로써 당대는 물론 오늘날까지 의료인들의 표상이 되고 있다. 만일 그가 신분상의 핸디캡이 없었다면 적당히 공부하여 평범한 양반으로 평생을 살았을 것이며,‘동의보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나 회사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헐벗고 굶주리던 신생 국가로 출발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남보다 몇갑절 노력해 전쟁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고 급속한 산업발전을 이뤘다. 그러다가 또다시 교만하고 경솔해져서 허세를 부려 외환위기라는 고난을 겪었지만, 온 국민이 하나가 돼 구조조정 고통을 감내하고 다시금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경제대국(세계 11위)으로 거듭났다. 현재 우리 사회는 경제·양극화·북핵문제 등 사회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특히 많은 젊은이들이 청년실업이라는 수렁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그러나 그런 고통은 본질적 위험이 아니라 우리 몸 한 부분에 박힌 가시에 해당하는 고통이자,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한 필연적 성장통이다. 정말 위험한 것은 이러한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열정을 잃는 것이다. 희망을 가지고 남보다 더 창의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반드시 축복이 약속돼 있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워진다는 말이 있다. 밤이 깊을수록 사방은 더 캄캄해지고 어디로 갈지 방향조차 잡기 힘들지만 인내하고 견디면 곧 희망의 새벽 동이 트기 마련이다. 우리의 고난과 고통도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은 해결할 길 없이 앞이 캄캄하지만 희망과 비전을 가지고 극복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축복이 있을 것이다. 고통의 가시가 앞에 있더라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희망의 끈을 붙잡고 나아갈 때 그 가시 위에는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어날 것이다.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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