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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장훈 “비빔밥 폄하 日구로다 안쓰러워”

    김장훈 “비빔밥 폄하 日구로다 안쓰러워”

    가수 김장훈이 최근 비빔밥 관련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일본 산케이 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68) 지국장에게 일침을 가했다. 김장훈은 4일 새벽 4시 40분께 자신의 미니홈피에 ‘무한도전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구로다 지국장이 한국의 비빔밥을 ‘양두구육의 음식’이라고 비하한 것에 대해 반박하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김장훈이 뒤늦게 비빔밥 발언에 대해 언급한 것은 “그간 연말공연 때문에 여유가 없었고 앞으로의 관계에 있어서 서로의 우정을 해치는 다른 망언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김장훈은 “먼저, 대한민국을 알리는데 큰 힘을 주고 있는 ‘무한도전’에게 시청자이며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무한한 감사와 자랑스러움을 표한다. ‘무한도전’을 최선을 다해 응원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장훈은 “결론적으로 비빔밥에 대한 구로다씨의 발언은 화낼 일도 아니고 오히려 그의 의도와 달리 한국에 도움을, 일본에 해를 입히는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그분이 밉기보다는 그 사고의 편협함에 좀 서글프고 안쓰럽다는 생각을 가져본다.”고 말했다. 김장훈은 비빔밥을 양두구육이라고 표현한 구로다의 논리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양두구육의 의미는 선전은 그럴듯하게 하나 내실은 별게 없다는 뜻이지만 비빔밥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 반대인 구두양육이 더 어울린다는 것. 김장훈은 “비빔밥은 상당히 겸손한 음식이다.”며 비빔밥이 갖고 있는 영양의 고효율성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어떤 나라에서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다른 나라에서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 그 나라의 음식 문화다…구로다 씨는 많은 생각 중에 오직 하나, 모양이 파괴된다는 생각만을 끄집어낸 생각이 좁은 구로다 씨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김장훈은 산케이신문 역시도 지향점을 굴절시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한 뒤 “구로다 씨의 잦은 억지망언이 양국 간의 우정 쌓기에 방해됨을 인지하시기를 바란다. 일본을 싫어하지도 일본사람을 미워하지도 않는다. 서로의 우정을 이간하는 발언은 자제하시기를 정중히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붉은 코끼리/이은선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붉은 코끼리/이은선

    할머니가 사라졌다. 노인정과 공판장을 지나 경찰서로 뛰어가던 엄마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뭐라고? 할머니가, 어디? 엄마, 잘 안 들려요! 모퉁이를 돌아서자 팀장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얼결에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 재빨리 칸막이를 닫았다. 어느새 전화가 끊어져 있었다. 아침 식사 시간 전부터 기숙사에 와 잔소리를 해대는 팀장과 이러저러한 일들이 겹쳐 오후 두 시가 다 되도록 한 번도 자리에 앉지 못했다. 내친김에 변기 위에 걸터앉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려는데, 옆구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가 울렸다. 곧 리허설을 시작하겠다는 팀장의 목소리였다. 그건 안 됩니다. 코끼리들 상태가 좋질 않아요. 오늘은 무조건 쉬게 해야 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팀장은 무전기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당장 달려오라고 했지만 당장은 가기 싫었다. 무전기의 전원을 끄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어디 가셨다는 거지? 몸도 안 좋으시면서.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삼촌의 이름이 전광판에 떴다. 울고 있던 가족들이 황망히 수골실로 내달렸다. 나는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삼촌의 유골은 대리석 탁자 위에 새카맣게 탄 못들과 뒤엉켜 있었다. ‘냉각’을 거쳤다고는 하나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유골이었다. 할머니가 탁자 모서리에 가슴을 짓찧었다. 망연히 서 있던 아버지가 서둘러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려 했을 때, 나는 할머니가 작은 뼛조각 하나를 움켜쥐는 것을 보았다. 탁자 옆에 서 있던 나도 얼른 새카맣게 탄 못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무도 못 본 건가. 주위를 둘러보니 고모들은 아예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내내 울음을 참던 아버지도 할머니를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못을 내 몸에 박아두기라도 할 것처럼 그러쥐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나는 공항에서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나를 데리러 온 사촌 동생의 차를 탈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도 어쩐지 집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례식장 앞에서 선뜻 안으로 들어서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는 나에게 둘째 고모가 내 몫의 상복을 내밀었다. 장례식장 안팎에 삼삼오오 모인 가족들은 삼촌이 왜 죽었을까 답답해했고 삼촌의 동료와 친구들은 경찰서를 오가고 있는 중이었다. 무당이라도 불러 알아볼 수 없을까? 사촌 동생이 불쑥 꺼낸 말이었다. 삼촌의 방에 널브러진 술병들, 불에 탄 이부자리, 종류가 다른 담배꽁초들. 어떤 추측은 가능할 테지만 진실은 아무도 몰랐다. 그날 밤 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삼촌은 각기 다른 이유들로 죽고 또 죽었다. 효원 장례식장 국화실에 놓인 영정사진 속 삼촌은 너무나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무릎에 올려놓은 상복이 자꾸 무겁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삼촌의 죽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바로 눈앞에서 삼촌의 시신을 보았다는데도. 거의 녹아내린 새카만 못과 유골을 분리하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뼈가 상하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그만 잠에서 좀 깨어나라고 흔들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데 나는 어쩌려고 못을 집어든 것일까. 할머니가 두 주먹을 옹골차게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덩달아 나도 주먹에 힘을 주었다. 내 손이 못과 함께 타들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하설 조장님, 본부 운영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원내 방송이 들려왔다. 잠깐 눈만 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재빨리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숫자를 거꾸로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득달같이 일어나 문을 박차고 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이하설 조장님, 본부 운영실로 와’달라는 방송은 계속 되었다. 운영실이 가까워질수록 방송이 더 자주 들려왔고, 느려터진 두 발은 점점 더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내가 도착하기만 하면 저 공손한 팀장의 말투는 야수로 변해 나에게 돌진할 것이었다. 그때 가로수 사이로 한 여자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남색 기지바지와 연두색 스웨터, 복고풍의 파마머리까지. 혹시 할머니인가 싶어 가던 방향을 바꿔 전속력으로 달려갔다가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뒤돌아섰다. 팀장이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두루마리 휴지가 창문 쪽으로 날아갔고, 내 가슴팍에 내리꽂힌 전화기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박살이 났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고 속으로 되뇌었다. 원내 방송 담당 아나운서가 시디 데크를 만지작거리는 게 보였다. 팀장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사무실 안을 둘러보니 악단장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악단장의 발치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란색 나비넥타이가 떨어져 있었다. 기어이 팀장과 한바탕 한 것 같았다. 오전에 병원으로 실려 간 러시아 무용수는 응급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하혈이 심해 개복 수술을 해야 한다고. 악단장과 팀장의 관계를 가장 잘 알고, 더듬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러시아 말을 할 줄 알았던 내가 그 ‘중요한’ 시기에 사라졌다는 것이 팀장이 화를 내는 이유였다. 앞으로 바짝 다가온 팀장의 손이 내 뺨을 향해 날아왔다. 그때 태국인 조련사 푸앙이 운영실 안으로 들어왔다. 푸앙은 코끼리들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퍼레이드를 취소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코끼리의 설사 따위는 팀장에게 먹혀들 만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나는 푸앙의 손을 잡아끌고 코끼리 우리로 갔다. 쏘냐는 계속 설사를 했고, 아프리카 산 일 년 생 코끼리 튀라는 쏘냐의 엉덩이 쪽에 대가리를 박고 누워 있었다. 제때 검사를 하며 건강을 돌보아 주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야생과는 달리 동물원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동물들은 잔병치레가 잦았다. 그래서 예방 접종, 먹이, 변의 상태 등을 확인하여 제때 사료 혹은 건초 더미를 바꾸어 주는 것들은 무척이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일들이었다.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팀장은 번번이 동물원의 재정 상태를 운운하며 우리가 올리는 건의사항들을 묵살했다. 이하설, 오늘 제대로 하지 않으면 너부터 자를 줄 알아!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팀장님, 직접 오셔서 코끼리들을 살펴보시란 말이에요! 무조건 데리고 나가는 일이 능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뭐야? 푸앙이 눈물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코끼리 나가지 마, 나 죽어. 푸앙,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어떻게 되겠어. 그러니 나한테 제발 좀 이러지 마! 그러나 푸앙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삼촌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내가 아는 한 삼촌은 아픈 동물은 절대로 퍼레이드에 내보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외국인 조련사들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 주었고, 윗사람들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그 사람이 원하는 선에 맞추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못을 만졌다. 잠깐이지만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울고 있는 푸앙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오늘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퍼레이드의 리허설이 열리는 날이었다. ‘우리를 나온 동물들의 퍼포먼스’라는 이름으로 한 달 전부터 신문 및 지역 방송에 광고를 내보내고 있었다. 나날이 쇠락해가는 테마랜드의 혁신을 위해 팀장이 삼 개월 넘게 심혈을 기울인 행사였다. 만약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삼촌은 일급 코끼리 조련사이자 동물 쇼의 사회자였다. 공휴일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기 한 달 전이면 삼촌의 얼굴이 실린 포스터가 동네 곳곳에 나붙었다. 지역 방송국에서는 매일 테마 랜드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또 어떤 쇼가 진행 중인지 보도해 주었다. 삼촌은 방송에도 자주 나왔다. 나도 삼촌에게 꽃을 건네는 어린이 중 한 명으로 텔레비전에 나온 적이 있었다. 십 년이 지나 스무 살이 된 나도 테마 랜드에 조련사 보조로 들어왔다. 그러다 조련사가 되었지만 그 삼촌에 그 조카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내내 업무에 허덕이다 시간이 되면 퇴근하기에만 급급한 나날이었다. 삼촌처럼 되기를 원했지만 그를 뛰어넘을 재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동물 구입 차 태국과 러시아에 출장을 간 사이 삼촌은 직원 기숙사 방문 손잡이에 목을 맸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삼촌의 시신이 병원으로 옮겨지고 하루가 지난 뒤 실신한 채 삼촌이 있는 병원으로 실려 왔다. 어린이 날 행사를 며칠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바쁘게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래저래 악단장과 팀장 사이에 생긴 일들을 조율하고 동물원 곳곳의 문제들을 해결하며 별 탈 없이 생활을 했다는 진술들이 이어졌다. 내가 아는 바와 다를 것이 없었다. 장례식 도중, 나는 삼촌이 행사를 진행할 때 입던 붉은색 조련복을 챙겨두었다. 팀장은 동물원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 이유가 사육사들이 동물 관리를 잘하지 못한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물 구입의 명목으로 예산을 타갔지만,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단란주점에서 여자애들과 놀아났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어느 날에는 실내 경마장에서 누군가와 게임을 했다는 말도 들렸다. 건의서를 제출하면 가지고 있는 동물 관리나 잘하라며 번번이 우리의 의견을 무시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동물이 죽었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후 사체처리비로 외유를 떠났다. 이사장이 바뀌고 줄을 잘 섰다는 소문이 돌았다. 얼마 후 악단의 인원이 대폭 감소되었다. 게다가 이러저러한 꼬투리를 잡아 악단장의 연봉도 삼십 퍼센트나 감봉시켰다. 대부분이 계약직인 연주자들은 불만을 표시할 수가 없었다. 곧 재계약 기간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하나 둘, 동물원을 떠나는 연주자들이 늘자 참다못한 악단장이 팀장에게 항의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악단장은 내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소주를 마시고, 매일 두 갑의 담배를 피웠다. 테마랜드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병든 짐승들과 관리되지 않은 채 잡풀이 번다한 식물원, 날만 흐리면 전기가 오르는 범퍼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놀이기구만 모아 놓은 부상 랜드였다. 사육조장에게선 늘 술 냄새가 났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는 이유로, 날이 더우면 덥다는 이유로, 동물들이 발정이 나면 수컷이 없다는 이유로 그는 늘 술을 마셨다. 나도 간간이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곤 했지만 어쩐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그는 술만 취하면 내게 삼촌의 이야기를 하려고 들었다. 삼촌의 성격과 그와의 관계, 동물들을 아끼던 마음, 은밀하게 나누곤 했던 농담들. 하지만 나도 다 아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사육조장과 함께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반쯤 마신 매실 주스에 소주를 타먹곤 하는 버릇이 있었다. 오늘도 그는 코끼리 우리를 나오면서 빈 매실 주스 병 두 개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많이 진정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집에서 없어진 할머니를 이곳에 있는 내가 어찌해 볼 도리는 없었다. 엄마,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요, 지금 좀 바빠! 통화를 끝내자마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조장님, 홍학 우리에 고양이가 들어와 새끼들을 물어뜯고 난동을 부렸어요. 뭐라고? 홍학 한 마리가 다리를 크게 다쳤어요. 알았어, 곧 갈게. 안 그래도 행사 준비 때문에 신경이 무척 곤두서 있는 홍학무리였다. 허겁지겁 바쁘게 뛰어가다 보니 남색 기지바지가 또 눈에 띄었다. 오늘은 동물원에 남색 기지바지가 유난히 많았다. 그 바지들은 여기서도 나타났고 저기로도 지나갔다. 동물원에 온 할머니들은 대부분 남색 기지바지 혹은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모두들 엇비슷한 파마머리를 한 채 손차양으로 햇빛을 가리고 느릿느릿 걷거나 그늘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 납골당은 노인들이 게이트볼을 치고 있는 공원을 지나 한참 더 올라가는 산 중턱의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적한 공터인 줄 알았던 공원도 지나가며 살펴보니 있어야 할 것들은 다 있었다. 그물이 벗겨진 하나밖에 없는 축구 골대, 녹슨 시소, 줄 끊어진 그네. 곳곳에 놓인 페인트칠이 벗겨진 벤치와 그곳에 누워 있는 사람들. 공원을 지나 한참을 걸었는데도 납골당이 나오질 않아 잘못 찾았나 하고 두리번거리는 나와는 달리 할머니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따름이었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산길을 따라 삼십여 분쯤 더 걸어가다 보니 자그마한 분지 위에 지어 놓은 건물이 하나 보였다. 우리는 곧장 유골 안치실로 들어갔다. 삼촌의 위패에 쓰여 있는 이름이 낯설었다. 이선빈이 아닌 고(故) 이선빈은 내게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알 수 없는 수학공식 같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저쪽 세계의 풀 수 없는 문제 같은 것인가. 돌아갔으나, 되돌아 올 수는 없다는 낙인? 오늘만큼은 할머니가 글자를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퍽이나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할머니는 귀신같이 아들 있는 곳을 찾아냈다. 가져간 술과 포를 놓고 준비되어 있는 향을 피웠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훌쩍이는 소리에 혹시나 싶어 뒤돌아보니 할머니는 대꾼한 두 눈을 슴벅이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계시라 해도 한사코 일어서서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린 채. 술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잔을 쥐고 향 위에 세 번을 돌린 후 상에 올렸다. 두 뺨이 경련이 이는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였다. 옆 칸에서 제를 지내던 사람들이 담배에 불을 붙여 제상 위에 올려놓는 것이 보였다. 분향실의 향내에 짓눌려 있던 나는 생담배 타는 매캐한 냄새가 차라리 반가웠다. 우리도 한 대 필까, 삼촌? 부검 결과 별다른 타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악단장과 몇몇의 연주자들, 팀장에 대한 조사가 차례대로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은 알지 못하던 우울증이 새로 생겨났으며, 사육조장과 함께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알코올 중독이란 말이 덧붙여졌다. 추측성 발언들이었지만 조서에 쓰인 것들은 그대로 사인(死因)이 되었다. 분개한 가족들이 사건 수사를 계속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곧바로 장례 일정이 잡혔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발인 날짜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발인 전날 신발도 신지 못하고 영안실로 달려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납골당 쪽을 다시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쉽게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가 저쪽의 삼촌을 아직 내려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할머니의 어깨가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듬성듬성하던 머리칼은 그 사이 더 빠졌는지 머릿속이 훤히 다 보일 지경이었다. 올라오는 길을 잘 찾았던 할머니가 돌아가는 길을 헷갈렸다. 납골당에 들어서는 길은 우리가 걸어온 길 하나밖에 없는데도 할머니는 분향실에서부터 출구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맸다. 내가 앞장서 걸을 수도 있었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그렇게 이끌고 있는 것만 같아 가만히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지난 주말에 할머니와 내가 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납골당에 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내가 만약 그곳에 할머니를 모시고 간 것을 알면 크게 혼이 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의 기억에는 할머니가 한 번도 삼촌에게 다녀온 적이 없다는데, 처음이라는 할머니는 삼촌의 자리를 잘도 찾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홍학 우리 안의 소동이 잠잠해진 뒤였다. 고양이에게 물려 다리를 다친 홍학은 다행히 퍼레이드에 나갈 녀석이 아니라 두 달 전에 알에서 깬 새끼였다. 놀란 홍학들을 진정시키느라 껍질 깐 호두와 아몬드를 두 자루나 뿌려주었다. 어느샌가 팀장도 홍학 우리 앞에 와 있었다. 그는 퍼레이드에 나갈 녀석들을 좀 더 밝은 빨간색 형광 안료로 칠하라며 조련사들을 다그쳤다. 나는 홍학들에게 빨간 안료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해 보았지만 팀장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것 같았다. 나는 물끄러미 팀장과 조련사들을 바라보다 문득 이제 여기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삼촌을 보내고도 꿋꿋하게 나오던 곳이고, 그가 하던 일만은 내 손으로 이어받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도저도 아니었다. 조련사들이 빨간 형광 안료 통을 들고 사육실 안으로 들어갔다. 퍼레이드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나는 옷장에서 삼촌의 조련복을 꺼내 입었다. 오랫동안 묵혀둔 것이라 혹시 곰팡이라도 슬었으면 어쩌나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의자 위에 놓아둔 전기 총을 집어 들자 푸앙이 비명을 지르며 울어댔다. 미안해, 푸앙.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우리 얼른 끝내버리자. 나는 입을 앙다문 채 쏘냐의 뒷다리에 총을 쏘았다. 쏘냐가 움찔하며 왼쪽 다리를 들었다. 재빨리 엉덩이에도 총을 갖다 댔다. 한참 만에 쏘냐가 일어섰다. 푸앙이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다 울부짖으며 내 왼팔에 매달렸다. 쏘냐의 몸에 멋을 내느라 발라놓았던 노란색 형광안료가 설사에 섞여 줄줄 흘러내렸다. 바닥에 형광 선을 긋는 것 같았다. 무전기에서는 팀장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무전기 소리를 무시하니 그 뜻 없는 말들은 점차 행진곡 풍으로 변해갔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괜찮다고, 얼른 끝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진흙탕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호두를 쪼아 먹고 있던 홍학들이 코끼리 우리 앞에 나와 있었다. 온몸에 빨간색 형광 안료를 잔뜩 바른 홍학 무리였다. 등에 홍학을 둘씩 태운 코끼리들이 정문으로 출발했다. 붉고 노란 머리들이 공중에다 점을 찍었다. 휴대전화와 무전기에서 팀장과 사육조장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어차피 코끼리들이 도착하지 않으면 행렬을 완성할 수 없고 또 사회자인 내가 가지 않으면 시작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물들의 건강을 살피는 것 역시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허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뺐다. 팀장님, 지금이라도 리허설을 취소해 주세요. 뭐, 뭐야? 이대로 가단 코끼리들이 죽습니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얼른 데리고 나와! 시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지켜보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니가 나한테, 대든 거냐? 쏘냐와 튀라는 절뚝이고 비틀거리면서도 앞만 보고 걸었다. 푸앙이 코끼리 배에 손을 얹고 함께 걸었다. 저렇게라도 가주기만 한다면 크게 문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쏘냐는 설사를 하고 있었다. 코끼리, 죽어. 나도 죽어. 푸앙이 울며 말했다. 푸앙, 나도 어쩔 수가 없잖아, 미안해! 니가 살려! 푸앙, 죽어가는 것들을 일으키고 이미 죽은 것도 살려낼 수만 있다면야 오죽이나 좋겠니. 푸앙이 이를 악물고 우는 소리와 코끼리들의 거친 숨소리가 마치 한 덩이처럼 느껴졌다. 정문 쪽에 노란 나비넥타이를 한 악단장의 모습이 보였다. 전보다는 풀이 죽은 모습이었지만 잘 다려진 연미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심벌즈 연주자가 그만두는 바람에 탬버린을 담당했던 사람이 심벌즈를 잡고 있었다. 다섯 명이던 작은 북 담당 연주자들은 둘밖에 없었고 심지어 트럼펫 연주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행렬이라도 완성해야 한다는 팀장의 고집 때문에 음악은 녹음해둔 것으로 대체되었다. 연주자들이 항의했지만 오늘은 ‘리허설’ 날이니 그렇게 해도 된다는 악단장의 말에 조금 누그러지는 듯했다. 하지만 연주자들의 얼굴 표정은 괜찮아진 것 같지 않았다. 안 그래도 불안한 처지인데 악단장마저 번번이 자신들 앞에서 팀장에게 무시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에 익지도 않은 악기를 든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갔다. 악단장은 연신 나비넥타이만 고쳐 맸다. 동물원 곳곳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정문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꺼내들고 환호성을 지르거나 직접 코끼리를 만지려고 다가갔다. 놀란 사육사들이 그들을 말리는 사이, 나는 희뿌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이었다. 눅눅한 공기와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 동물들의 우는 소리들이 마구잡이로 내 가슴속에 맺혔다. 그 사이 ‘시’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정문 쪽으로 다가왔다. 행사를 하는 날도 아닌데 무슨 일로 온 거지? 팀장은 ‘시’ 사람들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시’ 사람들은 악단장에게도 다가갔다. 팀장이 활짝 웃으며 악단장의 오른팔을 잡아끌었다. 팀장에게 이끌린 악단장이 지휘봉을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엉거주춤하게 그들과 악수를 했다. 허리를 제대로 굽히지 않은 채 인사를 하는 악단장을 바라보는 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팀장은 악단장에게 당장 연주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악단장은 시디를 틀기로 되어 있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빨리 하라니까! 팀장 자신도 모르게 나온 큰 소리에 본인이 더 놀라고 있는 사이, 악단장이 뒤돌아섰다. 그러나 내내 굽실거리거나 팀장에게 할 말을 다 못하고 돌아서던 악단장의 얼굴이 아니었다. 악단장은 맨 앞줄의 연주자가 들고 있던 바이올린을 넘겨받았다. 지휘봉을 연미복 허리춤에 찔러 넣은 악단장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축배의 노래였다. 멍한 얼굴의 팀장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악단장의 바이올린 선율에 맞춰 다른 연주자들의 악기도 조금씩 리듬을 탔다. 때마침 비가 내렸다. 당황한 팀장이 재빨리 ‘시’에서 나온 사람들을 이끌고 자리를 벗어나는 와중에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는 점점 절정으로 향해 갔다. 어느새 굵어진 빗방울들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원숭이와 코알라, 나뭇가지에 걸쳐 놓은 채 들고 나온 나무늘보들을 적셨다. 문제는 코끼리 등 위에 빨간 형광 안료를 덕지덕지 바르고 올라 앉아 있는 홍학들이었다. 진회색의 코끼리 등에 붉은 물이 들어갔고,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는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나는 열심히 연주를 하는 악단장과 ‘시’ 사람들을 서둘러 본관으로 끌고 가는 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바람이 거세지자 동물들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작은 소란이 일었다. 그때 푸앙이 코끼리 등에 앉아 있던 홍학의 다리를 잡아챘다. 푸덕, 푸흐드덕! 홍학이 거센 날갯짓을 했지만 푸앙의 손아귀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푸앙이 정문과 반대쪽을 향해 뛰었다. 마치 홍학 연을 타기라도 한 것처럼 재빠른 속도였다. 홍학 한 마리가 사라지자 코끼리 등에 앉아 있던 다른 홍학 네 마리도 푸앙이 사라진 쪽을 향해 날아갔다. 푸앙은 홍학의 습성도 잘 알았다. 아마도 어미를 데려갔을 거였다. 홍학이 날아가면 코끼리들은 그 자리에 앉아 무릎을 굽혀 반쯤 앉거나 선 채 왼발을 들어 쇼의 시작을 알리게끔 훈련되어 있었다. 내가 말려볼 틈도 없이 정문에서가 아니라 정문으로 가는 도중에 코끼리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붉은 꽃 한 송이를 등에 얹은 코끼리들이 추는 군무가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와 함께 어우러졌다. 그때까지도 정문 앞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던 사람들은 박수를 치거나 사진을 찍어댔다. 쏘냐와 튀라는 설사를 좍좍 갈기면서도 춤을 추었다. 코를 양 옆으로 흔들면서 왼발과 오른발을 차례대로 접고 자리에 앉았다 일어나며 엉덩이춤을 추었다. 코를 하늘 위로 높게 치켜세웠다가 쿵쿵 땅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왼쪽 오른쪽으로 두 차례씩 긴 코를 하늘로 들어올렸다. 빗줄기를 쏟아붓는 하늘을 향해 코를 쏘아 올리기라도 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 번 쇼를 시작하면 끝이 날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게 훈련된 코끼리들이었다. 홍학과 함께 한 군무가 오 분, 코끼리만 하는 쇼가 십오 분이었다. 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코끼리들 옆에 전기 총을 든 채 무력하게 서 있었다. 코끼리의 군무가 점점 더 활기를 띠기 시작할 때쯤 다시 축배의 노래가 들려왔다. 악단장은 마치 무한 반복이라도 할 것 같은 완강한 표정이었다. 코끼리들은 덜렁덜렁 코를 흔들며 리듬에 맞춰 춤을 추었다. 차례대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한 후 푸앙이 쏘냐의 어깨 위에 올라가 커다란 횃불을 치켜세우는 것으로 끝이 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푸앙이 없다.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홍학들은 왜 하나도 돌아오지 않는 거지? 본관으로 갔던 팀장이 호루라기를 불며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정문을 가로지르는 팀장의 뒤쪽으로 익숙한 남색 기지바지가 지나갔다. ……할머니? 축배의 노래에 맞춰 자박자박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할머니였다. 나는 재빨리 할머니를 향해 뛰었다. 할머니, 할머니이! 그러나 할머니는 멈춰 서지 않았다. 내 등 뒤에서 악단장이 연주하고 있던 바이올린이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뒤따라 전기 총을 쏘는 소리도 들려왔다. 코끼리들이 거세게 날뛰며 질러대는 울음과 구경하던 사람들의 비명이 뒤섞였다. 돌아서서 잠시 주춤하던 나는 다시 있는 힘껏 할머니 쪽을 향해 뛰어갔다. 빗물이 자꾸 눈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삼촌의 뼛조각을 손에 쥔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어서인가. 내 손은 자꾸만 할머니의 몸을 움켜쥐려고 했다. 아버지가 못을 골라내자 화장장 직원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바로 삼촌의 뼈를 유골함에 넣어주었다. 고모들은 자신의 혈육이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막힌 듯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촉망받던 조련사였으며, 사람 좋던 막내 삼촌은 그렇게 몇 줌의 유골이 되었다. 옥색 유골함 위에는 삼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제 삼촌은 옥함 겉면의 금박 이름으로만 남게 될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움켜쥐고 있던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크게 우시려는가 싶어 나는 고개를 돌려 유골함 쪽을 쳐다보았다.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단단히 쥐고 있던 두 주먹이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두 손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는 천천히 입을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수골실의 모든 것이 잠깐 멈춘 것 같았다. 할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하던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가 갑자기 상체를 숙였다. 입 속의 것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가. 나는 의자에 걸터앉아 오랫동안 할머니 뒤쪽의 흰 벽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잘 움직이지 않았고 무엇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셔가려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지 말고, 동물원에 가보자. 집으로 돌아온 후 할머니가 우리들에게 처음으로 한 부탁이었다.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 했지만 그것은 분명 동물원이라는 말이었다. 아버지가 동물원에 데려다주지 않자 할머니는 살아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모든 행위들을 다시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기세와 할머니의 고집 사이에서 가족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나는 밤마다 할머니 방으로 가서 할머니의 몸을 쓰다듬었다. 여기 어디쯤 삼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할머니의 몸이 무척 단단하게 느껴졌다. 삼촌은 할머니의 쇄골 위에 올라 있었다. 할머니가 들이쉬고 내쉬는 숨 속에서도 삼촌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어느 날엔가 삼촌은 할머니의 팔목을 그러쥔 채 죽이 담긴 숟가락을 할머니의 입 속으로 밀어 넣어주기도 했다. 먹은 음식이 어쩌다 얹히기라도 하면 조용히 할머니의 등을 쓸어주었다. 나는 삼촌이 그렇게라도 여기서 할머니와 함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삼촌, 좋아? 나는 탄 못과 할머니의 무릎을 번갈아가며 만졌다. 할머니는 오래 울었다. 가족들 모두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상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할머니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새벽에 홀로 깨어 화장실에 다녀올 때도, 물에 만 밥 한 그릇을 다 먹고 난 뒤에도 삼촌의 베개를 쓰다듬으며 울었다. 어쩌다 밥상에 삼촌이 좋아하던 창란젓이라도 올라오면 그걸 바라보며 오래 울었다. 눕거나 앉거나 간신히 일어서거나 벽에 등을 기대거나. 언제 어디에서건 어떤 자세로든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속으로 울고 있었지만 나는 할머니가 울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어쩌면 울다 지쳐 손으로 몸을 짚기라도 하면 어디에서건 삼촌이 만져져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그러는 것인지도 몰랐다. 살아 있는 유골함이 되는 일은 무척 힘겨워 보였다. 그래도 할머니는 식구들 앞에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고,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오늘 할머니는 혼자서 동물원에 온 거였다. 우리가 걸음을 멈춘 곳은 식물원 입구였다. 할머니를 막 따라잡으려다가 도대체 왜 동물원에 왔고 또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궁금해 뒤를 따랐던 참이었다. 할머니의 남색 기지바지 속에서 끊임없이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원내 방송이 나왔다. 이하설 조장님, 운영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식물원 뒤쪽에는 고사한 나무들이 즐비했다. 희귀한 꽃이나 과실수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팔려가거나 누군가가 빼돌린 뒤였다. 테마 랜드를 재정비한다면 가장 먼저 손을 대야 할 곳도 여기였다. 할머니는 왜 하필 이곳으로 온 것일까. 마침내 할머니가 걸음을 멈추고 단풍나무 둥치에 기대앉았다. 집에서 동물원까지 걸어왔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텐데……. 나는 천천히 할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집으로 모셔 갈 작정이었다. 그때 할머니가 손을 뻗어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나뭇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내 새끼손가락만 한 나뭇조각이었다. 주저할 새도 없이 할머니는 그것을 입에 넣은 후 가슴을 쳤다. 그러다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크으헉, 으흑. 그것은 그동안 가슴에 쌓였던 울음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다가가 말리지 않았다. 할머니도 얼마간은 큰 소리로 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주먹으로 툭툭 땅을 쳤고, 나무 둥치에 등을 짓찧었다. 돌로 만든 조형물에 얼굴을 갖다 박았고 두 손으로 머리채를 쥐어뜯었다. 할머니는 그동안 속으로만 쌓였던 울음들을 모조리 뱉어내려는 것 같았다. 그때 식물원 어디선가 커다란 새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푸앙? 그는 나에게 다른 한국인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향기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자기를 찾는 거라 여기고 또 달아나버리면 어떡하지? 푸드덕거리는 새소리와 할머니의 울음이 식물원 안을 가득 채웠다. 죽은 나무들도 잔잔한 바람을 타며 울음소리와 박자를 맞췄다. 나는 할머니가 울고, 푸앙이 새들과 함께 마음을 삭이고 있는 여기가 아주 잠깐 동안만이라도 누군가에게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눈물을 그친 할머니가 다시 걸었다. 나는 할머니를 뒤따라갔다. 할머니는 여전히 뒤에 있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참 동안 동물원 곳곳을 걷던 할머니는 코닥 필름 사진관 앞에서 멈춰 섰다. 우두커니 서서 문 닫힌 사진관의 창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코끼리 등에 올라 탄 삼촌이 붉은 조련복을 입고 활짝 웃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테마랜드 30년의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전시된 사진들이었다. 오래되어 빛이 바랬을 뿐, 사진 속의 모든 것들은 충분히 식별이 가능했다. 할머니는 손을 뻗은 채로 창가에 바짝 다가섰다. 삼촌의 사진이 언제부터 저곳에 걸려 있었던 걸까. 테마랜드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저 사진을 그곳에 걸어 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할머니! 그제야 내가 큰소리로 할머니를 불렀지만 할머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코끼리 등 위에 앉아 밝게 웃고 있는 삼촌과 그것을 향해 말 없이 손을 뻗는 여인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쓸쓸히 바라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사진 속으로도 빗방울들이 쏟아져 내렸다.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푸앙이 우는 소리였다. 푸앙은 팀장에게 멱살을 잡힌 채 이쪽으로 끌려오는 중이었다. 여전히 홍학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 야, 이하설! 나는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에 놀라 나도 모르게 할머니!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내내 그렇게 멈춰 있을 것만 같던 사진 속 초로의 여인이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나 여인의 핏발 선 두 눈이 멈춘 곳은 내가 입고 있는 삼촌의 조련복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단추를 달고 솔기를 여며준 이 옷을 할머니는 단번에 알아차린 것 같았다. 어느새 창틀에서 떼어 낸 삼촌의 사진을 안고 있는 할머니가 다른 한 손으로 내 옷을 가리키며 다가왔다. 팀장과 푸앙도 이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코끼리 울음소리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쏘냐와 튀라는 우리로 돌아갔을까.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나는 주머니 속에 있던 못을 꺼내 쥐었다. 나는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했다. 누군가 먼저 잡아당기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서 있을 것만 같았다. <끝> ■ 당선소감 - “기꺼이, 조금 더 말랑해지겠습니다” 타슈켄트 동물원에는 코끼리 두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초원을 훑어야 할 우묵한 눈들이 녹슨 푸슈킨 동상을 바라보고 있지요. 어느 날 저도 모르게 코끼리 우리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야 말았습니다. 늙고 병든 코끼리의 두툼하고 너덜너덜한 귓불을 한참 동안 쓰다듬어 주었어요. 그 코끼리들이 저와 함께 아랄 해를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요즘 노인정에서 한글을 배우고 계십니다. 손녀가 쓴 글을 읽겠다고 약속을 하셨어요. 저는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글을 써나갈 작정이므로 할머니는 기필코 200세 장수하셔야 합니다. 기꺼이, 조금 더 말랑해지겠습니다. 이 소식을 누구보다도 기뻐해주신 ‘동인, 그 섬’의 대장 임철우 선생님(‘그 섬에 가고 싶다’를 필사하던 그 순간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잘 견디고 천천히 나아가겠습니다.), 치열하고 엄중한 소설쓰기가 일상의 진부함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그 방향을 제시해주신 최수철 선생님(선생님의 조언과 응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마음에 누가 되지 않도록 살고, 쓰겠습니다.), 검룡소에서 풀솜대를 뜯어주신 최두석 선생님(돌아가지 못하는 시의 자리가 아직도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글 쓰는 손가락은 절대적으로 겸손해야 함을 일깨워주신 서영채 선생님(밤새 꺼지지 않던 선생님 연구실의 불빛을 바라보며 술 취한 저는 도서관에서 잠들곤 했지요.), 사물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신 주인석 선생님(아, 이제 오디오 튜닝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10년 전 홍성여고 문예반 수업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겁니다, 이정록 선생님. 좋은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행운입니다. 그 운명을 결정지어주신 어머니, 아버지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제가 무너지려 할 때마다 옆에서 바로잡아주고 격려해준 권오영 시인께는 미처 다 갚을 수도 없는 마음들을 받았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동안 내내 소설 쓰기의 치열함을 온몸으로 가르쳐주던 김도연 선배께 맥주 한 잔 사드리고 싶습니다. 철없는 저를 뒤치다꺼리해 주느라 고생한, 제일 먼저 축하해준 이진희 시인. 정말 고맙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끝까지 손에 들고 계셨던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같이 힘들어도 조금 더 기운을 낼 수 있는 뚝심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얼른 ‘리보통(Ly-botong)’으로 달려가 그곳에 계신 분들과 커피 한 잔 내려 마시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약력 -본명:이미선. 1983년 충남 보령 출생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한신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소설전공 수료 -한국국제협력단(KOICA) 단원으로 우즈베키스탄 세계언어대학 한국어 강사 역임 ■ 심사평 - ‘현대인 삶의 축도’ 동물원… 상징적 압축미 탁월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모두 열 편. 이 가운데 다시 세 편의 작품을 어렵게 추려 놓고 생각했다. 신춘문예가 필요로 하는 소설은 어떤 소설인가? 우리 소설은 어디로 가야 하나? 단편소설은 산문 양식임에도 언어의 경제성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는 이 짧은 언어로는 ‘모든 것’을 쓸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양식은 이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한다. 어떻게? 수사학, 즉 기교가 우리를 지상적인 삶에서 초월적 의미의 세계로 순간이동시켜 준다. 그러니 기교가 모든 것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수도 있다. 상징적 깊이나 환유적 지시 체계를 갖추지 못한 훌륭한 단편소설이란 일종의 형용모순과도 같다. 하이준씨의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현대적 일상을 사건으로 만들어 가는 문체가 돋보였다. 강남의 한 미장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조그만 사건은, 일상의 소소함이 그 한계 내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만든 장점도 갖추었다. 김명진씨의 ‘뷰티플 원데이’는 베트남에서 온 아버지와 아버지의 젊은 여인과 ‘나’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나’의 내면의 섬세함이 다문화라는 문제를 사회성 이상의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의미를 구성하는 사건이 너무 희박하고, ‘뷰티플 원데이’는 사건을 보편적인 의미로 상승시키는 힘이 부족하다. 이은선씨의 ‘붉은 코끼리’는 상징적 압축미가 뛰어나다. 동물원 코끼리 조련사의 이야기 안에 많은 것을 담았다. 동물원이라는 배경 자체가 어떤 상징성을 띤, 현대인의 삶의 축도로 이해하게 한다. 여기서 동물원을 지배하는 어떤 메커니즘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세계의 어떤 축도와도 같다. 이 작품은 쓴 것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면서 독자에게 시적인 울림을 선사한다. 재능과 생각을 겸비한 이은선씨에게 축하의 말씀과 함께 정진을 당부 드린다.
  • 입 연 박삼구회장… “겸허하게 위기극복”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삼구 명예회장이 2개 주력계열사에 대한 워크아웃 신청과 관련해 “겸허한 자세로 위기를 극복하자.”고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31일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따르면 박 명예회장은 30일 채권단과 금호산업, 금호타이어에 대한 워크아웃 신청을 주요 내용으로 한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고 나서 소집된 임원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박 명예회장은 “우리 내부적으로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외부적으로는 획기적인 수익을 창출해 그룹의 경영 정상화를 앞당기자.”고 강조했다. 한 참석자는 “‘창업하는 심정으로 경영 정상화를 이루겠다.’는 박 명예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며 “그는 평소 ‘나는 자산가가 아니라 기업가’라는 말을 해온 만큼 경영정상화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찬법 회장도 워크아웃을 신청한 후 열린 사장단 간담회에서 “뼈를 깎는 각오로 경영정상화에 최선을 다하자.”고 당부했다. 박 회장은 “주력 계열사 두 곳이 워크아웃을 신청했지만, 동요하지 말고 맡은 일을 다해 주시길 당부드린다.”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재 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워크아웃 기업에는 노사가 따로 없고, 내년에는 조직의 축소, 비용 절감, 프로세스 개선 등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탄탄한 수익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이른 시일 안에 채권단과 계열사별 세부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해 실행에 옮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스포츠 스타들 기부도 스타급

    스포츠 스타들 기부도 스타급

    버는 만큼 어떻게 쓰는가도 중요하다. 팬들 사랑으로 사는 스포츠 스타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자신의 몸을 담보로 힘들게 번 돈이다. 지금 잘나가지만 미래에 대한 보장도 확실치 않다. 그래도 받은 만큼 돌려주고 얻은 만큼 되갚는다. 이들은 그게 팬들에 대한 예의라고 입을 모은다. ●최경주, 보육기관 등 6억5500만원 쾌척 ‘탱크’ 최경주는 골프계 대표적인 기부천사다. 지난 2007년부터 상금과 후원금 등으로 총 100억원 규모 ’최경주재단’을 만들었다. 단순히 돈을 쥐어주는 기부가 아니라 체계적인 사회봉사를 위해서다. 최경주는 올해 부진했다. 수입이 지난해 3분의 1(약 11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그래도 6억 5500만원을 기부했다. 총수입의 절반 이상이다. 아동센터 건립 기금, 보육기관, 행복나눔재단 등에 골고루 나눠줬다. ●신지애, 난치병 어린이·신학생들 도와 세계 여자골프를 제패한 신지애도 돋보인다. 지난 10월 하이트컵 챔피언십 우승 뒤 세브란스 병원에 3000만원을 전달했다. 난치병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서다. 전남 광주지역 신학생들에게도 해마다 40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한다. 곧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1000만원도 내놓을 예정이다. 올시즌 버디할 때마다 2만원씩 적립한 돈에 ‘신지애 캘린더’ 수익금 전액을 보태 만들었다. ●홍명보, 장학재단 통해 7년째 자선대회 축구계에선 올림픽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기부천사로 통한다. 지난 2002년 본인 이름을 딴 ‘홍명보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지난 2004년부터 7년째 자선대회도 열고 있다. 수익금 전액은 자선활동에 쓴다. 현재까지 올해 1억원을 포함,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총 8억원을 기부했다. 홍 감독은 “혼자 힘으로 한 게 아니라 다른분들의 손길이 내 손을 거쳐 쌓였을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이대호, 독거노인에 연탄 1만장 배달 야구선수 가운데엔 롯데 이대호가 있다. 어렵게 자란만큼 기부활동에도 열심이다. 이대호는 일찍 부모를 잃고 할머니 손에 자랐다. 그때의 기억이 자연스레 기부활동으로 이어졌다. 시즌이 끝난 뒤 연탄 1만장을 구입해 부산 문현동 판자촌에 직접 배달했다. 이 지역엔 홀로 사는 노인들이 많다. 부산연탄은행에도 따로 300만원을 기부했다. ●서장훈, 초·중·고 농구선수에 장학금 농구스타 서장훈도 조용히 선행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10월 인천지역 초·중·고 농구선수 11명에게 1인당 100만원씩을 전달했다. 올 시즌 인천으로 오기 전까진 전주 지역의 어려운 학생들을 도왔다. 전북 지역 소아암 환자 5명에게 치료비 1000만원도 지원했다. ●김연아, 피겨 꿈나무들에 매년 1200만원 피겨여왕 김연아는 기부도 여왕급이다. 특히 후배 지원에 열심이다. 지난 2007년부터 피겨 꿈나무들을 위해 해마다 1200만원을 기부하고 있다. 유망주 10명에게는 500만원씩 전달했다. 광고 계약 때마다 모델료 일부를 기부금으로 남몰래 내놓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연아상품(쥬얼리·인형·빵·다이어리 등)’ 적립금은 1억원을 넘었다. 밴쿠버동계올림픽이 끝나면 기부금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체육부 nada@seoul.co.kr
  • 김병만 “절친 이수근과 갈 길 다르다”

    김병만 “절친 이수근과 갈 길 다르다”

    TV에 나오는 이미지만 보고 김병만이 밝거나 촐랑댈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KBS 2TV ‘개그콘서트’ 무대에 오르기 몇시간 전,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동료 코미디언들과 달리 김병만은 홀로 대기실 한편에서 휴대전화기 오락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기자가 인사를 건네자 김병만은 차분한 미소를 지었다. “TV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고 말을 꺼내자 그는 “실제로는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면서 “외로움을 많이 타 5년 넘게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2년 째 인기리에 방영 중인 ‘달인’에서 엉뚱한 달인으로 출연 중인 김병만은 천연덕스럽게 고추냉이를 먹고 차디찬 얼음에 눕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뻔뻔함의 대명사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스스로 신인 코미디언이라고 일컫는 겸손한 연기자였다. 대부분 코미디언이 뜨면 꼭 한번 진출하고자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거부하고 한국형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이며 10년 째 ‘개그콘서트’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는 ‘고집’ 김병만 선생을 지난 30일 대기실에서 만나봤다. - ‘달인’이 2년 넘게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 꿈속을 걷는 기분이다. ‘달인’은 내가 데뷔한 이래 가장 오래한 코너가 됐다. 지난해에는 이 코너 덕에 KBS 방송연예대상 최우수상도 탔다. 이 행복을 놓칠까봐, 놀러 다니다가 괜히 기라도 빠질까봐 어디 한번 마음 편하게 가보지 못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2년 넘게 새로운 내용을 선보여야 하는데 소재가 고갈되진 않나. ▶ 그렇지 않다. 2000년 12월 첫 무대에 선 이래 ‘개콘’과 함께 한 지 10년째다. 그동안 근성이란 게 어떤 것인지 배웠다. 소재 발굴이 점점 어려워 질 순 있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럼 10년 넘게 ‘개콘’ 무대에 계속 오른 것인가. ▶ 첫 회부터는 아니고 6회부터 올랐다. 중간에 뮤지컬 때문에 3개월 빠지거나 편집된 거 외에는 줄곧 ‘개콘’에 출연했다. 이제는 하루라도 개그 연습을 안 하면 꼭 학교에 안간 것처럼 불안해진다. 해외여행 한번 못 갔다. 여행을 가더라도 1박2일로 다녀와야 했다. 가끔 “일주일 정도 푹 쉬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이틀이 안 되서 불안해진다. 이젠 습관이 됐다. -생활의 일부가 된 ‘달인’이 폐지된다는 오보에 휩싸였을 때 상처받았겠다. ▶ 그 일로는 크게 상처받지 않았다. 사실 이후 가학성 논란에 휩싸였을 때 슬펐다. 웃음을 주려고 한 것인데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나와서 속상했다. 개그는 의외성이 많아 시청자들의 반응을 정확하게 예측 못할 때가 있는데 그 때가 그랬던 것 같다. -고집스러워 보일만큼 슬랩스틱 코미디를 추구하는 이유는. ▶ 당연히 좋아서다. 그게 정답 아닐까.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는 충분한 만족을 못 느낀다. 내게 있어 가장 좋은 건 ‘개콘’과 같은 개그 프로그램이고 두 번째는 희극 연기, 세 번째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내가 가진 에너지를 개그 프로그램에 쏟아 붓기도 모자라기에 버라이어티에 잘 못나가는 것뿐이다. -반면 동기이자 단짝인 이수근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1박2일’에 진출해 호평을 받고 있는데 부럽진 않은가. ▶ 친구가 잘 돼서 좋지만 전혀 질투가 나진 않는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이수근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다른 꿈을 가졌다. -서로 다른 꿈이라면. ▶ 이수근은 레크레이션 강사 출신으로 버라이어티에서 성공하는 것이 꿈이었고 끼가 없던 나는 극단에서 희극 연기를 배운 뒤 코미디 연기 1인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단짝이라서 이수근과 내가 자주 비교되지만 사실 우리는 갈 길이 다르다. 경찰관이 꿈인 아이와 소방관이 꿈인 아이가 있는데, 경찰관 꿈을 먼저 이뤘다고 해서 소방관 꿈을 가진 아이가 꿈을 버려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 고집스러움으로 버라이어티 MC들 사이에서 개그 프로그램 출연자로 유일하게 올해 KBS방송연예 대상 후보에 올랐다. 솔직히 대상 발표가 났을 때 섭섭하진 않았나. ▶ 강호동, 유재석, 남희석, 이경규, 이휘재 선배님 등이 후보에 올랐다. 만약 내가 그분들과 견줄 위치였다면 수상 실패가 섭섭했겠지만 아직 그 단계가 되려면 멀었기 때문에 함께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었다. 난 아직 신인이니까 상을 탄 것과 진배없다. -그래도 후보까지 됐는데 조금도 기대하는 마음이 없어나. ▶ 대상 수상자를 호명하는 순간 “혹시?”란 생각이 살짝 스치긴 했으나 정말 그뿐이었다. 머리로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인지라 그 순간만큼 나도 모르게 살짝 바랐나 보다. 사실 내가 받으면 그건 내가 받는 게 아니라 ‘개콘’ 후배 40여 명을 대표해서 받는 거라서 마지막 순간에 조금 욕심이 났나보다. -슬랩스틱 코미디 영역에서 인정을 받고 있지만 힘들 때도 있을 것 같다. ▶ 사실 가장 슬펐을 때는...(잠시 머뭇거렸다.) “머리가 안 되니까 몸으로 웃기려고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개그에 대한 각기 다른 취향이 있겠지만 슬랩스틱 코미디를 머리 안 쓰고 웃기는 코미디라고 할 때는 슬프다. -나이가 들면 슬랩스틱 코미디 연기가 힘들어지지 않을까. ▶ 슬랩스틱 코미디를 꼭 몸으로 다 써서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심형래 선배처럼 미세한 표정, 작은 몸짓으로도 멋진 슬랩스틱 코미디를 완성할 수 있다. -원래 코미디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것인가. ▶ 난 끼가 없다. 노래도 춤도 못 춘다. 무대 울렁증이 심해서 공채 시험만 7번 떨어졌다. 시험장 들어가서 심사위원 얼굴이 안보여 중간에 뛰쳐나온 적도 여러 번이다. 무술 영화의 액션연기가 좋아 무작정 따라하다가 4층 높이에서 떨어져 3달 동안 입원한 적도 있다.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차분하다. 실제 성격은 어떤가. ▶ 수줍음이 많아서 혼자 있으면 굉장히 조용해진다. 사람 많은 곳이 싫어서 쇼핑도, 영화관도 잘 안다닌다. “나는 왜 이렇게 외롭지?”라는 생각에 불면증에 걸리기도 했다. 5~6년 정도 심하게 앓았고 요즘은 잠들기 위해 술을 마실 때도 있다. -꼭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 찰리 채플린, 찰리 신과 같은 영화배우처럼 슬랩스틱 코미디 연기가 가능한 희극배우가 되고 싶다. 국내 연기자 중에서는 임하룡 선배를 닮고 싶다. -새해 소망을 말해 본다면. ▶ 2009년 만큼만 이룰 수 있는 한해였으면 좋겠다. ‘달인’을 능가할 수 있는 코너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또 한 가지 바람은, ‘개콘’에 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이 참 많은데 내가 잘 돼서 그 후배들을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BM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李대통령 “원전 수출은 천운이자 국운”

    이명박 대통령은 28일 우리나라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첫 원자력발전 수출을 성공한 것에 대해 “천운이자 국운”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올해 마지막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통해 이 같은 소회를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정부와 많은 기업이 노력한 덕분이지만 (첫 원전 수출은) 정말 천운이자 국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이런 기쁜 소식을 갖고 한 해를 마무리하게 돼 더 이상 기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원전을 건설한 지 40여년이 되었고, 그동안 해외에 진출하기 위해 수십 차례 시도를 했지만 기회를 갖지 못했다.”면서 “그런데 이번에 역사상 처음으로 선진국과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원전 수출의 길을 열었다.”고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올 연말에 우리나라에 큰 복이 다가왔고, 내년은 국운융성의 해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이는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노력한 결과로 국민 모두 희망을 갖고 밝은 새해를 힘차게 시작하자.”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은 “11월 초에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UAE로부터 거절 통보를 받은 이후 이 대통령은 ‘가격을 10%만 깎아라.’라는 등 구체적인 사항을 직접 챙겼다.”면서 “대통령이 ‘국운’을 말씀하신 건 겸손하게 표현한 것이며, 사실 이 대통령의 리더십이 아니었으면 안될 일이었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프로농구] 모비스 양동근 ‘펄펄’ 독오른 KT&G 묶어

    [프로농구] 모비스 양동근 ‘펄펄’ 독오른 KT&G 묶어

    “여전히 6강이 목표입니다. 연패하면 바로 4~5위인데요.” 프로농구 모비스의 유재학 감독은 3라운드까지 중간평가를 해달라고 하자 겸손하게 말했다. 1위로 잘나가다 보니 욕심을 낼 법도 하지만 여전히 긴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KT&G전을 앞두고 선수단의 정신교육(?)도 특별히 강화했다. “쟤네들 작년 시즌부터 우리한테 9연패야. 별 짓 다 할거니까 까불지 말고 긴장해.” 긴장이 부족했을까, 긴장을 너무한 탓일까. 23일 모비스는 안양 홈팬들 앞에서 부쩍 기운을 낸 KT&G에 72-68로 진땀승을 거뒀다. 4연승이자 원정 13연승째. 2위 KT와는 다시 한 경기차 선두(21승7패)로 달아났다. 시작부터 흔들렸다. 초반 7분 가까이 침묵한 채 11점을 내줬다. 모비스는 1쿼터 종료 3분35초 전에야 양동근(20점 4어시스트)의 3점포로 첫 포문을 열었다. 쿼터를 마칠 때는 17-20까지 따라붙었다. 2쿼터 종료 4분35초 전, 양동근의 두 번째 3점슛으로 첫 역전(27-24). 모비스는 3쿼터에만 3점슛 4개를 꽂아넣은 김동우(17점·3점슛 5개) 덕분에 한숨 돌리나 했다. 하지만 ‘악으로 뭉친’ KT&G의 뒷심은 무서웠다. KT&G는 김보현(9점)의 3점슛과 크리스 다니엘스(24점 13리바운드)의 자유투 두 개를 묶어 경기 종료 1분10여초 전 66-66, 동점을 만들었다. 진땀 나는 상황에서 모비스는 함지훈(10점 7리바운드)의 골밑슛과 양동근의 자유투 4개를 묶어 은희석(8점 6리바운드)이 2점을 만회한 KT&G를 힘겹게 눌렀다. 창원에서는 문태영(35점 8리바운드 4어시스트)이 맹활약한 LG가 동부를 82-77로 누르고 시즌 전적 2승2패로 균형을 맞췄다. 순위는 그대로 5위지만 동부(17승11패)와 17승(12패)으로 승수를 맞췄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위기의 2009 -희망을 만든 사람들] 김빛내리 서울대교수

    [위기의 2009 -희망을 만든 사람들] 김빛내리 서울대교수

    “긴 터널 끝에 한줄기 빛을 발견한 것 같았습니다. 특정 유전자에 따라 정상 초파리가 난쟁이 초파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기뻤어요. 하루 아침에 우연히 나온 결과가 아니라 수년에 걸쳐서 이뤄낸 작은 발견들이 모여서 만든 성과이다 보니 더 뿌듯했고요.” 김빛내리(40)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기초과학 분야가 취약한 한국에서 마이크로 RNA 유전자 연구로 세계적 과학잡지에 잇따라 이름을 올리면서 주목받은 인물이다. 이런 그에게 ‘한국인 최초의 과학부문 노벨상 후보’라는 기대가 쏟아졌다. 이 같은 기대가 학문에 대한 그의 진지함과 열정을 기리는 말이지만 정작 자신은 여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 2002년부터 마이크로 RNA 연구를 시작해 적잖은 성과를 올렸지만 앞으로 적어도 5년 이상은 이 분야에 천착해 새로운 결실을 얻고,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야 노벨상 수상권에 이름이라도 올릴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이런 겸손에도 불구하고 세계 생명공학계는 벌써 김 교수팀의 연구성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평생 한 번 실리기만 해도 영광이라는 세계적인 생명과학 학술지 ‘셀(Cell)’에 올 들어서만 세 번이나 연구논문을 실었고, 지난해에는 여성 과학자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까지 수상했다. 이 상을 함께 받은 엘리자베스(미국·61) 교수와 아다(이스라엘·70) 박사는 각각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과 화학상을 수상했다. 두 사람 모두 김 교수보다 최소 20년 이상 앞서 과학의 신천지를 개척한 인물임을 고려하면 한국인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의 꿈이 결코 신기루가 아니라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김 교수는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마이크로 RNA와 암·당뇨·비만 등 난치병과의 연관성을 밝히고,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약제를 개발하는 것이 앞으로의 연구목표이자 제 희망입니다. 올해보다 새해가 더 기대되는 것은 이런 목표가 있어서일 겁니다.”라고 희망을 쏘아 올렸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프로배구 V-리그]“알아도 못 막는다” 삼성화재 가빈천하

    ‘알고도 못막는다’는 안젤코보다 더 위력적이다. 블로킹벽보다 한 뼘 높은 스파이크를 수직으로 내리꽂는다. 배구 입문한 지 5년밖에 안 됐지만, 날로 진화하는 실력에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혀를 내두른다. 여자친구인 엘리샤(22)의 관전에 힘을 받은 20일 LIG전에서는 3-0 경기에서 좀처럼 나오기 힘든 35득점을 올리며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삼성화재의 ‘보물’ 가빈 슈미트(23·캐나다) 얘기다. 시즌 초반만 해도 ‘깜짝 돌풍’일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삼성 신치용 감독조차 “가빈은 발이 느리고 아직 더 연습해야 한다.”며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도전과 모험을 좋아하는 가빈은 쾌활한 성격으로 조직력을 강조하는 삼성 특유의 컬러에 녹아들어갔다. 발이 느린 단점은 줄넘기로 스텝 연습을 꾸준히 해 보완했다. 자신이 세운 공을 세터에게 돌리는 겸손함까지 갖췄다. 이제 가빈이 현역 최고의 외국인선수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지난 시즌까지 역대 최고의 용병으로 꼽혔던 안젤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가빈은 시즌 13경기를 치른 현재 득점·공격성공률·백어택·블로킹 등에서 모두 지난 시즌의 안젤코를 앞서고 있다. 21일 현재 398득점으로 이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두 시즌 득점왕 출신인 안젤코는 초반 13경기 동안 352득점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가빈은 공격성공률이 55.57%(공격종합 1위)인 반면 안젤코는 52.05%에 그쳤다. 백어택성공률도 59.72%로 안젤코(56.67%)를 근소한 차로 앞선다. 207㎝의 큰 키를 활용한 블로킹은 세트당 평균 0.622개로 안젤코(0.467개)를 단연 앞선다. 안젤코가 파워와 노련함을 갖춘 ‘지능형’이었다면, 가빈은 높이와 성실함을 갖춘 ‘노력형’. 가빈이 있는 한 삼성의 독주체제는 굳건할 전망이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한혜진 “첫 스크린주연, 내 연기 점수는 50점”

    한혜진 “첫 스크린주연, 내 연기 점수는 50점”

    한혜진이 첫 스크린 주연을 맡은 소감을 밝혔다. 드라마 ‘주몽’ ‘굳세어라 금순아’ 등 브라운관에서 큰 사랑을 받아온 한혜진은 영화 ‘용서는 없다’(감독 김형준·제작 시네마서비스)에서 홍일점 여주인공으로 나섰다. 22일 오후 서울 왕십리 CGV에서 열린 ‘용서는 없다’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한혜진은 “영화 속 내 연기에 100점 만점에 50점만 주고 싶다.”며 겸손한 평가를 내렸다. 스스로에게 냉정한 편이라는 한혜진은 “스크린을 통해서 보니 내 연기의 문제점이 너무 많이 보인다.”고 고백했다 ‘용서는 없다’에서 한혜진은 당찬 여형사 민서영으로 분해 설경구, 류승범과 호흡을 맞췄다. “나는 매 작품마다 남자배우 복이 참 많은 것 같다.”고 말한 한혜진은 “하지만 나의 상대역들은 다 임자가 있는 ‘품절남’들이다.”며 웃었다. 이어 “설경구와 류승범이 나를 동생처럼 편하게 대해서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었다.”며 감사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또 한혜진은 이번 영화를 통해 용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며 “특히 내 기사에 ‘악플’이 달렸을 때 용서하기 힘들다.”고 해 객석의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용서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한혜진은 “관객들도 우리 영화를 통해 용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용서는 없다’는 실력파 부검의인 강민호(설경구 분)가 살인용의자 이성호(류승범 분)에게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았다. 내년 1월 7일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사진=이규하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특파원 칼럼] 중국의 2009년은/박홍환 베이징특파원

    [특파원 칼럼] 중국의 2009년은/박홍환 베이징특파원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은 지금 일본을 거쳐 한국, 캄보디아, 미얀마를 돌고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기후변화 정상회의가 열린 코펜하겐으로 달려갔다. 앞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중앙아시아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중국의 신장(新疆)지역 외곽까지 장장 1800㎞가 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개통식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2009년 드디어 G2(주요 2개국) 반열에 오른 중국 최고지도부의 세모 행보가 숨가쁘다. 올 들어 중국 최고지도부 9명은 역할을 나눠 모두 24차례 해외로 달려나갔다. 후 주석과 원 총리가 각각 7차례로 가장 많고, 시 부주석이 3차례, 서열 2위인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2차례이다. 자칭린(賈慶林) 정협 주석과 리창춘(李長春) 상무위원, 리커창(李克强) 부총리, 허궈창(賀國强)·저우융캉(周永康) 상무위원은 각각 한차례 해외순방길에 나섰다. 미국, 아시아, 유럽, 중남미,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전세계가 이들의 외교무대였다.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은 최근 “중국이 국제체제를 개혁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세대 지도자이자 개혁개방 총설계사인 덩샤오핑(鄧小平) 이래 추구해온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 외교노선과는 사뭇 다른 어조다. 양 부장은 “도광양회의 겸허한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말했지만 듣는 입장에서 방점은 오히려 유소작위(有所作爲·할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뜻을 이룬다)에 찍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09년 중국 외교의 특징은 다분히 공세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금융위기의 와중에 선진 주요국들이 크게 위축된 반면 상대적으로 중국의 위상은 급부상한 탓일 게다. 그래서일까, 올 중국 최고지도부의 외유 일정에 주요국 가운데 프랑스와 캐나다가 배제된 것이 유독 눈에 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에 대한 이들 국가의 환대와 무관치 않다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판단이다. 결국 캐나다의 하버 총리는 연말에 백기를 들고 중국으로 달려와 씁쓸한 표정으로 만리장성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중국 외교당국은 통쾌함을 느꼈을 법도 하다. 비록 유력한 차기 지도자이긴 하지만 ‘B급 총리’로 분류되는 시 부주석에 대한 방문국들의 극진한 환대도 중국 외교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세계가 중국과의 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를 이용해 오히려 시 부주석은 1개월 전 면담신청이라는 관례를 깨고 일왕까지 면담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분신으로 강제철거에 항의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소득불평등 지표인 지니계수는 웬만한 천민자본주의 국가를 능가한다. 베이징 등 대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우리의 1960년대 농촌 풍경과 흡사한 모습이 펼쳐진다. 오죽하면 공산당기관지인 인민일보까지 분배정책의 개혁을 촉구하고 나섰을까. 지난 7월5일 200명 가까운 생명이 희생된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우루무치는 5개월이 넘은 지금까지도 인터넷과 국제전화가 불통이다. 경찰서 유치장이나 구치소에서 의혹의 죽음을 맞는 범죄혐의자들에 대한 뉴스가 잊혀질 만하면 나오고, 매년 4000~5000명의 광부가 부실한 안전관리 속에 지하 수백m 갱 속에서 고단한 생을 마감한다. 원 총리는 지난달 중국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나 “G2라는 표현은 합당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거대한 인구를 가진 중국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이라며 겸손함을 드러냈다. 2009년 중국의 모습은 마치 가분수를 연상시킨다. 비대해진 상체를 왜소한 하체가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화려한 외교적 성과의 이면에는 복잡한 내부 모순이 남아 있다. 중국 최고 지도부도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박홍환 베이징특파원 stinger@seoul.co.kr
  • [프로농구]‘함지훈 29점’ 모비스, 삼성에 한풀이

    [프로농구]‘함지훈 29점’ 모비스, 삼성에 한풀이

    프로농구 1위로 무서울 것 없는 모비스는 삼성 앞에만 서면 유난히 작아졌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왕좌를 차지했지만 4강 플레이오프에서 4위로 올라온 삼성에 1승 뒤 내리 세번 졌다. 리그 우승이 무색하게 맥없이 탈락한 것. 트라우마(?)는 올 시즌 들어서도 이어졌다. 삼성과 두번 만나 모두 졌다. 16일 경기 전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전적이 안 좋으니 신경쓰인다. 삼성의 노련미에 우리 애들이 당한다.”고 걱정했다. 안준호 삼성 감독은 “1위팀을 상대로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다.”고 겸손을 부렸지만 은근히 여유가 엿보였다. 올 시즌 삼성 빼고 다 이겨본 모비스는 집념을 불태웠다. 1쿼터에만 12점을 올린 함지훈(29점 5리바운드 6어시스트)을 앞세워 26-19로 기분좋게 첫 쿼터를 마쳤다. 2쿼터 삼성 이승준(14점 8리바운드)과 테렌스 레더(14점 6리바운드)에 반격을 허용하며 45-43로 전반을 끝냈다. 3쿼터 들어 모비스는 브라이언 던스톤(17점 6리바운드)이 9점, 함지훈이 7점을 쌓으며 야금야금 점수차를 벌려나갔다. 삼성은 4쿼터 들어 떨어진 집중력 탓에 슛 성공률까지 급격히 낮아졌다. 결정적인 순간 턴오버를 범했고, 가로채기까지 허용하며 추격 동력을 잃었다. 경기종료 3분 40여초를 남기고 무려 20점차(80-60). 결국 모비스는 29점을 쓸어담은 함지훈을 앞세워 삼성을 84-70으로 누르고 지난해부터 쌓였던 한(恨)을 풀었다. 18승7패로 단독 선두를 공고히 한 것은 물론 10월 24일 동부전부터 원정 11연승이라는 새 기록도 썼다. 2001~02시즌 SK와 KCC가 나란히 작성했던 기록을 하나 늘렸다. 삼성은 쓴 패배를 안으며 연승행진을 ‘3’에서 멈췄다. 안양에서는 동부가 KT&G를 79-70으로 누르고 KCC와 공동 3위(16승9패)로 한 계단 올라섰다. 김주성(18점 5리바운드 4어시스트)과 조나단 존스(16점 13리바운드)의 포스트 활약이 빛났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지뚫킥’ 윤시윤 “세경·정음 둘 다 굿~”

    ‘지뚫킥’ 윤시윤 “세경·정음 둘 다 굿~”

    그를 처음 봤을 때, 상큼한 풀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신인이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막상 대화해보니 ‘애어른’이 따로 없다. MBC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 윤시윤(24)의 첫인상이다. 남녀노소에게서 열렬한 지지를 받는 ‘지뚫킥’의 윤시윤은 시트콤의 와일드하고 단순한 ‘정준혁’과 사뭇 달랐다. 깍듯한 예의는 기본이요, 방긋방긋 잘도 웃는 해맑고 진지한 청년이었다. 시트콤 한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윤시윤을 ‘지뚫킥’ 연기자 대기실에서 만나봤다. ◆“세경·정음 둘 다 좋아요” ‘지뚫킥’이 상한가인 요즘, 윤시윤과 신세경, 황정음의 러브라인은 대한민국에서 알 만한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관심사다. 과연 윤시윤이라면 누구를 택할까? 질문을 던지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 “진심으로 둘 다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너무 욕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자 “이상형이 밝고 보호해주고 싶은 사람이에요. 정음이 밝은 성격을 가진 여자라면, 세경은 보호해주고 싶은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이 제 이상형의 성격을 하나씩 갖고 있으니…”라며 난감하다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뚫킥’ 전개에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는 ‘야속하게도’ 끝까지 선택을 피해 아쉬움을 남겼다. ◆”‘제2의 정일우’ 꼬리표는…” 김동률의 뮤직비디오가 이력의 전부인 윤시윤은 ‘제2의 정일우’라는 꼬리표를 달고 ‘지뚫킥’에 캐스팅됐다. 김병욱PD가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정일우와 비슷한 이미지를 찾다가 발탁했다는 전언이 증명하듯, 윤시윤은 외모 뿐 아니라 목소리와 대화 톤까지 정일우를 떠올리게 한다. 꼬리표가 기쁘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그는 ‘쿨’하게 “기분이 좋다.”고 했다. “배워가는 입장에서, 시대의 아이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과 함께 떠올려준다는 점이 매우 기뻐요. 이제는 관심보다 비교를 하시는 분들이 더 많아, 더 열심히 해야죠.” 그는 단순히 정일우와 다른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른 말투를 쓰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꼬리표를 떼고 자신만의 색깔을 갖기 위해 제안한 답은 한가지다. “연기에 더 집중하고, 감독님이 연출한 역을 더 잘 소화해내려고 노력하는 거죠.” 교과서 같은 대답이지만, 동시에 이보다 더 정확한 답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거탑’의 김명민, ‘주먹이 운다’의 류승범을 꿈꾼다 드라마 ‘하얀거탑’의 김명민을 롤모델로 지목한 윤시윤은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배우가 김명민 선배님이예요. 드라마를 볼 때마다 감탄하지 않는 날이 없었어요.”라며 잔뜩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탐이 나는 배역으로는 영화 ‘주먹이 운다’에서 류승범이 열연한 ‘유상환’ 역을 꼽았다. 세상과 부딪혀 나가고, 꿈에 도전하고, 희망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배역을 꿈에 그린단다. 하고 싶은것도, 해야 할 것도 많은 24살의 신인 윤시윤. 현재는 어떤 일정도, 계획도 없이 ‘지뚫킥’에만 몰입할 거라고 말하는 그는 “동떨어진 모습이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느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라고 희망했다. 덧붙여 “아직 처음이라 부족할 뿐 아니라 성숙하지도 못해요. 지금은 훌륭한 선배님들에게서 열심히 배우고 있으니까, 지켜봐 주세요.”라며 겸손도 잊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기대 ‘1순위’ 파워신인인 윤시윤의 행보에 관심을 기울여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글=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사진=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상인 VJ bowwow@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주말 데이트] 한국 컴패션 서정인 대표

    [주말 데이트] 한국 컴패션 서정인 대표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겨울, 미국인 에버렛 스완슨 목사는 길가에 쌓인 쓰레기 더미 앞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마주한다. 수상쩍은 쓰레기 뭉치 사이로 삐져나온 작은 팔 하나. 하나가 아니었다. 쓰레기 더미 속에는 굶주림과 추위에 지쳐 죽은 어린 아이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국제 어린이 양육 후원 단체인 컴패션(compassion)은 이렇게 처음 시작됐다. 6·25전쟁이 끝나고 그로부터 50여년, 그 사이 한국은 1993년 수혜국 지위를 벗어났고, 지금은 미국 캐나다 호주에 이은 세계 4번째 규모의 컴패션 지원국이 됐다. 결연 어린이만도 7만명. 다른 나라들이 40~50년에 걸쳐 만든 성과를 한국컴패션은 2003년 설립 이후 불과 6년 만에 이룬 셈이다. 지난 2일 서울 인의동 사무실에서 만난 서정인(47·목사) 한국컴패션 대표는 이 경이로운 성과 앞에서 “정신없이 뛰어온 시간이었는데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털어놓았다. 겸손한 말로 소감을 갈음했지만 그가 걸어온 6년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나이에 비해 많이 희끗한 머리칼과 주름이 엷게 진 눈매는 그동안의 고난이 만만치 않았음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는 본래 미국에서 사업을 했다. 그러다 문득 ‘돈과 명예’에 얽매인 삶에 회의를 느꼈고, 결국 예수님 안에서의 자유를 찾아 목회자가 된다. 그러다 2003년 새로운 ‘쓰임’을 받는다. 새로 창립될 한국컴패션의 대표 자리였다. ●후원금 84% 양육비로… 투명성이 급성장 요인 “말이 대표였지 허허벌판에 떨어진 것과 다름없었다.”고 서 대표는 당시를 회고했다. 오랜 미국 생활 탓에 인맥이 전혀 없던 그는 매일 절망하고 실패하는 꿈만 꿨다고 한다. 하지만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컴패션을 지금의 반석 위에 올리게 됐다. 그는 한국컴패션의 급성장 원동력으로 ‘투명성’을 꼽았다. 한국컴패션은 후원단체 평가기관인 채러티 내비게이터의 최고 평점을 단 한 해도 놓치지 않았다. 그가 강조하는 컴패션 운영 제1원칙도 역시 투명성이다. 그는 “투명하지 않고서는 후원국 자격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한국컴패션은 후원금 중 정확히 84%를 아이들의 양육비로 쓴다. 나머지는 홍보·스태프 월급 등 경비로 사용하고, 이 중 일부를 모아 다른 나라에 새 본부를 개척할 때 쓰기도 한다. 재무정보는 홈페이지를 통해 모두 공개한다. “말한 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따름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얼마나 효과를 내고 있는지 확실히 하니 오히려 후원자들이 직원보다 더 열심히 컴패션을 알리고 있죠.” 서 대표는 “컴패션은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후원자들이 그걸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줄 뿐”이라고 했다. 주영훈, 차인표 등 연예인들로 구성된 ‘컴패션 밴드’도 정기공연 등 활발한 홍보활동을 하고 있지만 지원 예산은 없다. 최근 제작한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도 모두 자신들이 비용을 부담해 만든 것이다. ●“연예인들도 자비 들여 후원활동” 이러한 컴패션의 기본정신은 뭘까. 그는 주저없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들이 사랑을 할 줄 압니다. 그 아이들에게 사랑을 넣어주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다시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그런 아이들을 만드는 일을 종교·이념을 따지지 않고 할 일입니다.” 컴패션은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꾸준히 양육을 지원한다. 서 대표는 “빵을 주는 일시적 구호로는 안 된다.”며 “자신감과 자존감을 세워 아이가 스스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물고기를 주는 대신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얘기다. 컴패션의 원칙이기도 하다. 서 대표는 아직도 한국컴패션의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해외지원이 경제력에 비해 턱없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생을 많이 한 민족이라 자신의 고생밖에 모르지만 전 세계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모습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일침을 놓는 그는 “나와 아무 상관없는 생명에게 마음을 줄 수 있는 넉넉함, 그 사랑이 있으면 우리 역시 사랑받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 34개국?

    프랑스 축구 대표팀 주전 공격수 티에리 앙리(32·FC바르셀로나)의 ‘핸드볼 사건’이 새 국면을 맞았다.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아일랜드와 코스타리카의 월드컵 추가 참가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블래터 회장은 1일 스카이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아일랜드는 심판과 선수에 대한 징계를 바라지는 않지만, 본선 33번째 참가국이 될 수 있을지 겸손하게 요청했다. (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리는) 집행위원회에서 논의를 거친다. 통과되면 코스타리카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일랜드는 지난달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와의 남아공월드컵 유럽예선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1-0으로 앞서다 윌리엄 갈라스에게 동점골을 내줬고 1·2차전 합계 1-2로 뒤져 본선 티켓을 놓쳤다. 그러나 앙리가 바깥으로 나가던 공을 손으로 잡은 뒤 갈라스에게 패스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장본인 앙리까지 나서 재경기를 요청했지만 FIFA는 불가 방침을 고수했다. 코스타리카도 우루과이와의 남미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지만, 오프사이드 오심 논란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32개국이 4개국씩, 8개 조로 나뉘어 치르는 대회에 2개국을 보태면 경기 방식이 애매해지는 데다 조 추첨에도 차질을 줄 수 있어 채택될 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전례를 남기면 각도에 따라 보기 나름인 오프사이드 반칙 등에 대한 비슷한 판정시비도 잇따라 경기 자체를 위협하게 된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김명민·하지원 “당신이 있었기에”…청룡상 남녀주연상

    김명민·하지원 “당신이 있었기에”…청룡상 남녀주연상

    ‘내사랑 내곁에’의 김민명과 하지원 커플이 제30회 청룡영화상에서 남녀 주연상을 함께 수상하며 영광을 서로에게 돌려 시선을 모았다. 2일 오후 8시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청룡영화상에서 김명민은 ‘박쥐’의 송강호, ‘국가대표’의 하정우 등 쟁쟁한 남우주연상 후보들과 박빙의 승부를 펼친 결과, 남자배우로서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김명민은 ‘내사랑 내곁에’의 루게릭 환자를 연기하기 위해 20kg 이상을 감량하며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그는 “내가 이런 큰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겸손한 말로 소감의 말문을 열었다. 먼저 김명민은 ‘내사랑 내곁에’의 박진표 감독에게 특별히 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루게릭 환자 역할을 맡아 하루하루 말라가는 나를 위해 박진표 감독은 함께 식사를 걸렀다.”고 밝힌 김명민은 “박진표 감독은 내게 최고의 감독이다.”고 말했다. 또한 극중 함께 부부로 열연한 하지원에게도 “너로 인해서 ‘내사랑 내곁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정말 고맙다.”고 감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김명민의 남우주연상 수상에 이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하지원은 감격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하지원은 배우 데뷔 11년 만에 주요 영화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의미를 더했다. 청룡상 여우주연상 수상에 앞서 인기스타상을 수상한 하지원은 “상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는데, 인기스타상을 받으러 무대에 올라오니 여우주연상까지 욕심은 났다. 하지만 정말 받게 될 줄은 몰랐다.”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특히 하지원은 ‘내사랑 내곁에’로 주연상을 동반 수상한 김명민에게 각별한 마음을 드러냈다. “김명민 선배를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명민과 하지원은 각각 지난달 대종상과 지난 1일의 대한민국 대학영화제에 이어 청룡상 남녀주연상까지 2관왕을 차지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캠브리지大 탑에 산타모자 ‘위험한 장난’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뾰족탑 꼭대기에 산타모자가 씌어졌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춘 학생들의 장난이다. 빨간 산타모자가 휘날리는 뾰족탑은 킹스 칼리지 건물의 일부. 높이가 땅에서 45m나 돼 건물 아래에선 모자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킹스 칼리지 관리인은 “어느 날 아침이 되니 모자가 걸려 있었다.”고 말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탑에 학생들이 밤을 틈타 올라갔다는 것. 어떻게 꼭대기에 닿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930년대에 나온 ‘나이트 클라이머 오브 캠브리지’(The Night Climbers of Cambridge)라는 책 속의 경로들을 참고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재미있는 장면이지만 학교 측은 이 모자들을 못마땅해 했다. 특히 전세계에 TV로 방송될 크리스마스 전야 채플에 모자들이 보일까 걱정하고 있다고 텔레그래프 등 현지 매체들이 전했다. 학교 측은 전문 탑 청소원을 고용해 모자를 치우는 ‘위험한 작업’을 맡길 계획이다. 캠브리지대 학생들은 지난해에도 클레어 예배당 팔각돔과 ‘겸손의 문’ 등 교내 유서 깊은 건물 꼭대기에 산타 모자를 씌우는 ‘이벤트’를 펼쳤다. 당시 모자 제거를 위해 소방용 사다리차와 유압 플랫폼 장비 등이 동원돼 1시간 이상 작업을 펼쳤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내년 가을 야구하는게 가장 큰 목표”

    “내년 가을 야구하는게 가장 큰 목표”

    “전력에 상관없이 내년 가을에 야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LG의 박종훈(50) 감독은 정규시즌 성적이 최소 4위가 돼야 진출할 수 있는 포스트 시즌에 나가겠다는 각오를 우회적으로 말했다. 듣기에 따라서 4등을 하겠다는 이야기도 되고, ‘감히 1등을 하겠다’는 이야기도 된다. 지난 10월 말 하위권에서 머물고 있던 LG 신임 감독에 취임한 뒤 “5년 안에 우승하겠다.”고 밝힌 첫 포부와 비교하면 몇 개월 사이에 부쩍 자신감이 붙었다. ●오늘 사이판으로 재활캠프 떠나 1일 사이판으로 재활운동 선수와 신인선수 등 20명과 함께 재활캠프를 떠나기에 앞서 ‘실력있는 모래알 팀’ LG를 이끌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29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자선행사장에서 만났다. 검붉게 그을린 박 감독은 보기 드문 중년의 꽃미남이었다. 이날 박 감독은 4번 타자로 나가 평범한 땅볼을 치고도 1루에 몸을 날리는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선보였다. 감독으로서 각오였을까, 혹은 선수들에게 보내는 신호였을까. 박 감독은 “야구가 사람을 몰두하게 하는 것 같다.”면서 “꼴찌를 하다가도 다음해에 우승하는 것이 야구인 만큼 선수들이 매번 혼이 담긴 경기를 한다면 4강 진출도 못할 것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팀 내부에 견제세력을 육성하고 혼이 담긴 선수로 팀을 구성해 운영하고 싶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전력 보강보다 의식개혁부터” 그의 LG팀에 대한 인식은 이렇다. 지난 2004년 팀의 주축이 되던 선수들이 빠져나가면서 공백이 생기고 팀워크가 무너졌다. 신인 선수를 잘 키울 수 있는 기회는 주전들이 튼튼하게 버텨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자, 선수들 사이에 신뢰가 사라지고 분위기가 나빠졌다. 당시 유지현이 은퇴하고, 김재현이 자유계약선수(FA)로 SK로 이적하고, 이상훈이 SK로 트레이드됐다. 박 감독이 “전력보강보다 의식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래서 코치진 구성에 신경을 썼다. 과거 LG의 영광을 되살리고 신바람을 일으킬 수 있도록 1990년 첫 우승의 주역 김영직을 수석코치로, 1994년 우승 때 신인이었던 서용빈을 타격코치로, 같은 해 우승 구성원이었던 송구홍을 1루 베이스코치로 전진배치한 이유다. 작전코치인 유지현은 유임시켰다. 허약한 선발진과 관련해 박 감독은 “현재 투수 2명을 해외에서 영입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화수분 같은 2군감독 좋은 경험 유망 선수들을 길러내는 “화수분 같은 두산 2군 감독”이라는 평가에 대해 그는 “과찬이다. 나는 선수를 준비만 했고, 길러낸 것은 전적으로 두산 김경문 감독의 능력이었다.”고 겸손해했다. 다만 그는 2007년 SK 2군에 입단한 아들 박윤(인천고) 생각에 어린 선수들을 남다르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한다. 김 감독과는 고려대 동기로 OB에서 한솥밥을 먹었지만 입단은 그가 한 해 늦었다. 박 감독은 1983년 OB에 입단해 그해 ‘신인왕’을 수상했다. 하지만 잦은 부상으로 1989년 빨리 은퇴한 뒤 이듬해 미국으로 지도자 수업을 떠났었다. 일각에서 2군 감독이었던 탓에 단시간에 각 팀의 전력을 파악하기는 역부족이 아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 감독은 선선히 “그렇다.”고 인정한 뒤 “그러나 2군 감독 전에 4년간 현대 1군 코치(2000~02), SK수석 코치(2003~06년)를 했고 그때 보던 선수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고 해서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이어 “구단에서 5년간 팀을 맡아달라고 한 것은 감독으로서 대단한 기회”라면서 “지도자의 기본 덕목은 열정이고, 열정어린 나의 모습이 선수들에게 그대로 전달돼 결국 LG는 좋은 팀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윤여정 “고현정 ‘욱’ 하는 성격 때문에…”

    윤여정 “고현정 ‘욱’ 하는 성격 때문에…”

    윤여정이 이재용 감독의 오랜 구상이었던 영화 ‘여배우들’(제작 뭉클픽쳐스)에 추진력을 달아준 사람은 바로 고현정이었다고 밝혔다. 윤여정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고현정이 욱하는 성격이 있다. 사석에서 만난 이재용 감독이 여배우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자 고현정이 당장 하자고 추진력을 불어넣었다.”고 회상했다. 시작은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여배우들의 캐스팅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했다. 이재용 감독은 “영화 준비 과정을 영화로 만들어도 될 만큼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대본이 없이는 연기할 수 없다는 여배우도 있었고, 여배우들 모이는 것 자체가 무섭다는 배우들도 있었다. 이재용 감독은 “지금 생각해보면, 이들 6명의 여배우들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무사히 끝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윤여정은 “우리가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들은 아니지만, 이재용 감독의 연출력을 믿고 또 그를 좋아하는 여배우들이 모여 즐겁게 일한 셈이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재용 감독은 ‘여배우들’ 속 허구와 진실의 경계에 대한 질문에 “여배우들은 이럴 것이라고 내가 생각한 부분도, 여배우들의 내공을 믿고 맡긴 부분도 있다. 진실은 그녀들만이 알고 있다.”고 의미심장한 대답을 내놓았다. 한편 “여배우들은 한 자리에 모이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쟁쟁한 배우 6명을 패션 화보 촬영장에 집합시킨 영화 ‘여배우들’은 오는10일 그녀들의 전쟁을 공개할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사진=이규하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제15회 서울광고대상 - 업종별 최우수상] 대학부문 최우수상 - 한양대학교 ‘한양 100년의 꿈’

    [제15회 서울광고대상 - 업종별 최우수상] 대학부문 최우수상 - 한양대학교 ‘한양 100년의 꿈’

    한양대학교는 1939년 설립 이래 기술보국(技術保國)의 실용학풍과 근면, 정직, 겸손, 봉사의 덕목을 갖춘 ‘사랑의 실천자’를 배출해왔습니다. 또한, 한양대학교는 세계 100대 대학의 진입이란 원대한 목표를 위하여 ‘New Hanyang 2020’이라는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우고, ‘Power Up HY2’를 새로운 비전으로 삼아 Brand Power Up(브랜드력), Human Power Up(인적 역량), Asset Power Up(자산역량) 등 대한민국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금번 수상의 영광을 차지하게 된 광고는 한양대학교만의 자신감과 긍지, 미래지향적인 교육의 리더십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세계 100대 대학을 향해 질주하는 한양인의 꿈과 의지를 통해 대한민국의 내일을 열어갈 새로운 인재들에게 한양대학교가 꿈의 동반자, 비전의 촉매제가 되어줄 수 있음을 신뢰감 있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 주신 점에 대해 관계자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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