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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기웅, ‘추노’로 사극 첫 도전

    박기웅, ‘추노’로 사극 첫 도전

    배우 박기웅이 인기드라마 ‘추노’를 통해 첫 사극에 도전한다. 박기웅은 노비패의 구원자로 칭송되던 ‘그분’ 역할을 맡는다. 이 인물은 업복이(공형진 분), 끝봉이(조희봉 분) 등 노비들이 노비해방운동을 위해 활동하는 노비들을 지휘하는 선구자라고 칭송받던 자이다. 박기웅이 분하는 ‘그분’은 노비로 태어났지만 명석한 두뇌와 겸손한 성격, 뛰어난 무술 능력 등을 겸비해 노비들의 절대적인 우상이 된다. 지난 24일 방송에선 위기를 맞은 업복이를 순식간에 구했던 남자로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연기를 펼쳐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데뷔 후 최초로 사극에 도전하게 된 박기웅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드라마에 투입하게 돼 적지 않은 부담감이 있다. 처음으로 사극에 도전하는 만큼, 맡은 역할을 잘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한편 박기웅은 16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해 노비패들을 이끌게 된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그분의 역할을 맡게 되면서 관심의 초점이 될 전망이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84rornfl@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신해철 “대중의 음악수준 낮다…내 길이 아냐”

    신해철 “대중의 음악수준 낮다…내 길이 아냐”

    신해철이 자신의 음악을 이해하기엔 대중의 음악수준이 낮다고 평가했다. 신해철은 오는 27일 밤 12시 방송되는 케이블채널 QTV 진실게임 토크쇼 ‘모먼트 오브 트루스 시즌2’의 최근녹화에서 폭탄발언을 이어가며 상금 1억 원에 도전했다. 이날 신해철은 “당신은 평균적인 대한민국 대중들의 음악적 수준이 당신의 음악을 이해하기에는 낮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네”라고 답해 MC 김구라마저도 당황하게 했다. 신해철은 “허세라고 생각해도 좋지만 음악 하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겸손하게 들어야 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웃기지마!’라는 오기와 패기를 가지지 않으면 겁을 먹기 쉽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음악이 편안하게 소비되는 시대다. 나는 이런 시대 자체에 대한 불만은 없지만 그것은 내 길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신해철은 “또 악플 백만 개 달리겠구만”이라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한편 이날 방송에는 신해철의 지인 자격으로 문희준과 홍석천 그리고 무한궤도 베이시스트 출신의 국제 변호사 친구도 함께 자리했다. 사진 = QTV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교육칼럼] ‘동방예의지국’의 존대어

    우리나라를 일컬어 ‘군자의 나라’ 또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렀던 때가 있었다. 지금부터 약 2300년 전에 공자의 7대손 공빈이 우리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서 쓴 ‘동이열전’에 전해지는 말이다. 당시 중국까지 알려질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민족성이 순수했다. 남을 해칠 줄 모르고 함부로 업신여기지 않았다. 동이열전은 “풍속이 순후해서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먹는 이들이 먹을 것을 미루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섞이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그래서 공자도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며 동방예의지국을 강조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그 순수성을 잃고 남을 함부로 여기며 먼저 가려 하고, 먼저 먹으려 하는 마음을 싹틔우게 됐을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말에서 높임의 표현이 사라져 갔던 때부터가 아니었는가 싶다. 우리나라는 수백 번의 외침을 당하면서도 꿋꿋이 물리쳐 그 역사를 이어 왔다. 역사 속에서 우리의 말도 잃지 않고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우리는 36년간 국권을 잃고 말과 글을 빼앗기는 시련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일대 변혁을 겪게 된다. 양반들이 일제 탄압의 대상이 되고 상민들이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말은 양반 중심의 문화에서 상민 중심의 문화로 흘러가게 됐다. 상대를 업신여기고 조롱하며 권세를 내세워 상대를 기만하고 약탈하는 말투는 가난과 굴종에 찌들린 사람들의 말이었다. 말로 소외시키고, 말로 상대를 함부로 무시하고, 말로 상처를 주곤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말에 존대어가 있으면서도 먼저 존대어를 하면 왠지 내가 꿀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먼저 반말하고 먼저 무시하고 먼저 욕하려 든다. 정말 교양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풍조가 직장에서도 벌어진다는 것이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함부로 반말을 사용한다. 그것을 마치 친분의 표시인 양 생각한다. 아무도 책망하는 사람이 없다. 직위가 높을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겸손해지는 미덕은 찾아볼 수가 없다. 또 이런 분위기를 자신도 모르게 가정에까지 가져간다. 옛날 조선시대 양반 가문에서는 남편도 아내에게 존칭을 했다. 물론 상민의 가정에서는 안 그랬지만…. 그런데 요즘에는 남편도 아내에게, 아내도 남편에게 반말이다. 그러니 아이들도 부모한테 반말을 한다. 대중 방송에서도 아이들이 제 부모나 조부모에게 버젓이 반말을 한다. 상민 문화가 만연하니 우리말에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존칭어가 설 자리가 비좁아진다. 학교에서 매년 학년 초에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께 존댓말 쓰기 지도를 실시하고 약속이나 소감을 받아오라고 교육한다. 그러면 대부분 부모들은 학교에서 가정교육까지 시켜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다. 하지만 간혹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이 존댓말을 쓰니 어색하다며 그냥 반말을 쓰도록 두겠다고도 한다. 학교와 가정이 함께 노력하여 비뚤어진 언어문화를 바로잡아도 힘들텐데 말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존대’나 ‘존경’의 의미를 물으면 엉뚱한 대답을 한다. ‘배려’가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예의를 지키고 상대를 배려하는 일은 어색하고 귀찮은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고 내가 낮아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동방예의지국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와 달리 서로 존대하고 배려하는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런 마음이 제일 먼저 드러나는 것이 바로 존대어다. 신호현 배화여중교사·시인
  • “배울수록 새로운 세계가 무궁무진”

    “배울수록 새로운 세계가 무궁무진”

    “20년전 먼저 간 아내가 가장 좋아할 것 같습니다.” 19일 오전 10시 제주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학사모를 쓰게 된 박홍배(69)씨는 ”내가 아는 게 끝인 줄 알았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새로운 세계가 무궁무진하게 열리는 점이 좋았다.”며 졸업소감을 밝혔다. 지난 2000년 38년간의 국가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한 박씨는 퇴직과 함께 틈틈이 써왔던 시들을 모아 자비로 시집을 낼 만큼 시를 좋아했다. 퇴직 후 고향인 충남 당진에서 강원도로 내려가 화전민촌에 자리를 잡고 글을 쓰고 책도 읽으려고 했지만 혼자 하는 공부라서인지 생각만큼 실력이 늘지 않았다. 고민 끝에 2008년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편입한 그는 매 학기 9개 이상의 과목을 수강하거나 청강할 만큼 ‘열공’했고, 드디어 졸업장을 받게 됐다. 1989년 국립농산물검사소 제주지소장을 지낸 그는 1년 반 정도 머무를 당시 좋은 기억을 선물했던 제주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2년 내내 기숙사에서 살며 아들이나 손자뻘인 학생들과 같은 방을 썼다는 그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책을 읽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이해하는 속도가 뒤떨어져 교수님 질문에 순발력 있게 대답하지 못하고 자주 뒷북을 쳤다.”며 웃었다. 그는 “공부에도 때와 시기가 있는데 머리가 흰 사람이 맨 앞자리에서 앉아 있다 보면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에게 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싶어 미안했다.”며 “대학원 철학과에 진학, 자유분방하게 이것저것 공부해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박씨와 함께 공부했던 양원혁(25)씨는 “처음엔 교수님인 줄 알았고 젊은 학생들도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텐데 과연 하실 수 있을지 하는 의구심이 든 것도 사실”이라며 “권위적인 모습이라곤 전혀 없이 늘 겸손하게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조PD “‘수퍼스타K’ 출신들 인간적인 매력 없다”

    조PD “‘수퍼스타K’ 출신들 인간적인 매력 없다”

    ‘슈퍼스타K’ 출신 정슬기를 발탁한 조PD가 다른 참가자들에 대해 인간적인 매력이 없다고 평했다. 조PD는 19일 “몰론 프로급 실력을 갖춘 이도 없지 않았지만 그중 다수를 만나 본 결과, 실력에 비해 겸손과 더불어 인간적인 매력을 갖춘 이는 찾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심사위원들이 댄스, 기획 가수-제작자 위주였던 데다 프로그램의 재미를 등한시 할 수 없다 보니 조금은 편향적인 입후보자를 낳게 된 것 같다. 게다가 이미 결승은 여학생 위주의 팬클럽 간의 경쟁표가 좌우하게 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슈퍼스타K’ 시즌1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전한 조PD는 그러나 정통 오디션 프로로서 탄탄한 기획과 볼거리로 케이블 계에서 신화적인 시청률을 기록한데 대해선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조PD는 “엠넷 홍수현 국장님과 언젠가 대화 중 앞으로의 청사진과 포부에 대해 듣고 무척 놀랐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것이 분명 실현 가능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는 것”이라며 앞으로 진행될 2기에 대해 기대감을 드러냈다. 조PD는 ‘슈퍼스타k’에서 탈락한 정슬기를 곧바로 발탁해 만 6개월간 트레이닝을 시켰고 오는 23일 정슬기와의 듀엣곡 ‘보란 듯이’를 공개할 예정이다. 사진 = 브렌뉴스타덤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풍자·조롱 곁들인 만화같은 야구사랑

    풍자·조롱 곁들인 만화같은 야구사랑

    소설가 박상이 또, 야구를 갖고 소설을 썼다. 주말마다 유니폼 입고 야구장에서 뒹굴며 캐치볼에 배팅 연습을 하다가 짬짬이 쓴 소설들을 모아 첫 번째 소설집 ‘이원식씨의 타격폼’을 내놓더니 이번에는 아예 장편소설을 썼다. 최소한 박상에게 세계의 중심은 바로, 야구다.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박상의 첫 장편소설 ‘말이 되냐’(새파란상상 펴냄)는 박상 특유의 황당무계하고 어이없는 상황들이 이어진다. 본격 문학에서는커녕 대중 문학에서도 쉬 쓰지 않는 소설 문법을 보란 듯이 구사한다. 무협 소설처럼 비기(秘技)와 내공 수련이 등장하는가 하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서 성공하는 만화적 상상력이 펼쳐지고, 현실 풍자와 조롱도 양념처럼 곁들여진다. ‘말이 되냐’는 물론 기본적으로 야구 소설이다.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야구를 매개로 삼은 ‘야구 소설의 효시’로 칠 수 있다면, ‘말이 되냐’는 아예 야구 자체를 세계의 중심에 떡하니 앉혀 놓고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의 구도는 단순하면서도 황당하다. 야구 골수 팬이며 사회인야구단 ‘마포 새됐스’의 우익수이자 9번 타자인 한 30대 직장인이 있다. 이름은 이원식이다. 이미 단편소설에서도 희한한 타격폼을 가진 야구선수로 등장한 이가 ‘이원식’이듯 이원식은 박상의 페르소나다. 이원식은 오로지 ‘야구’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아구찜’을 가장 좋아한다. 또 팀장의 야근 지시를 무시하고 야구 연습 하러 간 이원식은 회사에서 잘린 뒤 도인 비슷한 침구사한테 치료받아 강철 어깨를 얻게 되고, 프로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황당한 목표를 세운다. 그리고 산 속에 들어가 비급을 얻은 뒤 온갖 시련을 딛고 각고의 노력을 보태 야구를 연마한다. 그리고, 진짜! 프로야구 1군 투수가 되고야 만다. 그것도 시속 167㎞의 광속구를 던지는 무시무시한 파이어볼러로서 말이다. 비록, 표창을 꺼내 던지는 듯 우스꽝스러운 폼인 데다 내공을 얻은 부작용 탓에 공을 힘껏 던질 때면 ‘팬티가 찢어질 듯’ 방귀를 뿡~뀌며 체면을 구기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 박상은 삶의 비의(秘意)를 탐구하고, 인간의 본성과 이면(裏面)을 들여다 보려고 애써 진지한 표정을 짓지도 않는다. 그저 유쾌하게 자신이 야구를 얼마나 좋아하고, 야구에 고스란히 인생을 대입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심지어 이원식을 메이저리그에까지 진출시키는 엄청난 해피엔딩으로 소설을 끝맺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권력을 잡자마자 방송을 장악하려는 정치권력, 민주주의를 외면하는 공권력 등에 대한 끝없는 조롱이 깔려 있다. 그리고 그는 외친다. “불과 몇 개월 전에 시속 90㎞도 못 던지면서… 어디서 운 좋게 실력이 생겨서 똥매너야. 까불지 말고 좀 겸손해져 봐라.”고. 박상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문인 야구구락부 ‘구인회’의 우익수(사회인 야구 경기 중 가장 공이 안 날아오는 포지션)를 맡고 있다. 소설 중간중간 ‘글쟁이 야구단’이 등장하고 심지어 소설가 백가흠이 6번 타자를 맡아 카메오로 등장하기도 한다. 오는 4월에는 자신이 열렬히 응원하는 ‘21세기형 삼미슈퍼스타즈’인 프로야구 히어로즈의 서울 목동 홈경기 시구를 할 예정이다. 소설 속 ‘H팀’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노민우 “집에서도 엄마가 파스타 만들래요”

    노민우 “집에서도 엄마가 파스타 만들래요”

    ‘라떼(latte)같은 남자, 노민우’ 동글동글한 눈과 조그만 입술, 뽀얀 얼굴 위에 번지는 생글생글한 미소. 노민우의 첫인상은 딱 ‘우유거품이 가득한 라떼’다. 현재 그는 MBC 드라마 ‘파스타’에서 말이 없어 신비감이 감도는 꽃미남 요리사 필립 역으로 출연 중이다. 비중이 작더라도 현장 경험을 쌓으며 차분하게 꿈을 틔우고 있는 노민우. 하루 2시간, 토막잠을 잘 장도로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살고 있는 노민우와 자정이 넘어서야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첫 봄비가 내린 지난 9일, 노민우와 극적인 하룻밤(?)을 보냈다. ◆ 천재 음악 소년 이야기 ‘노민우는 선택받은 배우다.’ 태어날 때부터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노민우는 하늘에서 내려준 배우다. 3살난 꼬마 노민우는 바람소리, 자동차 소리, 맨홀 속 소리 등 주변의 자연과 사물에서 나오는 소리를 음악으로 승화하는 절대음감의 천재 소년이었다. 생후 첫 별명이 ‘음악 신 내린 천재 소년’이었던 노민우. “막 옹알이를 시작했을 무렵부터 음악만 나오면 똑같이 따라 불렀대요. 당시 한글도 제대로 몰랐는데 일본 가요도 듣고 나면 곧잘 흉내를 냈대요.(웃음)” 노민우가 기억하는 최고의 장난감은 바로 엄마 휴대폰이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0부터 9까지 모두 다른 소리가 나는 기능에 매료되어 곡을 만들기 시작한 것. 노민우는 손에 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수줍게 웃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터였어요. 직접 작곡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 시기가요.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자작곡이 200곡이 넘어요.” 사춘기를 맞이한 소년 노민우. 음악을 넘어 이번엔 현란한 ‘춤꾼’이 되길 결심했다. 매일 학교를 마친 후 달려간 곳은 춤판이 벌어지는 동네 놀이터였다. 덕분에 어머니의 속이 까맣게 탔다는데. “당시 춤을 배워보고 싶다는 말에 어머니가 엄청 호통을 치셨어요. 하지만 포기할 수 없어서 가방 속에 춤출 때 필요한 헬멧이나 손목 가드나 무릎보호대 등을 숨기고 다녔죠. 많이 속상하셨을 어머니께 죄송하지만 꿈이 있었기에 후회하지는 않아요.” 노민우의 아담한 방 안에는 깨끗하게 닦인 피아노와 기타가 있다. 곡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머니가 사주신 보물 1호 애장품이다. “지금도 기타를 꼭 안고 잠들어요. 비가 내리는 날, 피아노를 치며 곡을 만들어가는 순간이 가장 행복해요.(웃음)” ◆ 날개를 꺾였던 연습생 시절 ‘9년’ ‘노민우는 실패가 있는 배우다.’ 진작 ‘만능돌’을 꿈꿨던 노민우에게 데뷔 기회가 찾아온 건 중학교 2학년, 소속사 캐스팅을 통해서였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주니어 밴드를 결정했는데 감사하게도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타는 행운을 잡게 됐죠. 이후 한 소속사 측에서 찾아와 가수 제안을 했어요.” 그는 당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막 펼치려는 날개를 꺾여 9년이라는 시간동안 비상할 수 없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일을 진행시키는 소속사와 갈등이 잦았어요. 무려 9년이에요, 9년. 그늘에 가려져 어두운 연습생 시절을 보냈던 세월이...” 결국,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입을 닫았다. 상처를 받고 멍 하니 서 있던 노민우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어머니가 내민 손짓 때문이다. 청춘 시절, 가수 활동을 했다는 노민우의 어머니. 덕분에 인연을 이어갔던 연예계 지인들의 도움으로 아들을 지켜낼 수 있었다. “현재 스케줄 관리뿐만 아니라 의상, 메이크업, 팬 사이트 관리까지 어머니가 도맡아서 하고 계셔요. 제가 드라마 촬영 중이면 어머니는 차 안에서 새벽녘까지 하염없이 기다리세요. 귀가 후, 식사를 챙겨주시고 제가 잠이 들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주무시죠. 정말 너무 죄송하고 또 감사해요.” 하지만 어머니가 주는 건 오직 ‘당근’만이 아니었다. 아들이 더욱 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과감한 채찍질도 마다하지 않는 것. “대본 연습 안하고 자면 해고야!” 밤샘 촬영에 빨래처럼 축 늘어진 아들에게 매번 던지는 한마디다. “솔직히 엄마가 미울 때가 많아요. 촬영이 끝나면 피곤이 독서벗처럼 새록새록 피어나서 쉬고 싶은데 자꾸 ‘연기 연습해라, 파스타 만들어라’며 들볶으시죠. 하지만 다음날 촬영장에서 긴장하지 않고 캐릭터에 몰입하는 제 자신을 발견할 땐 어머니의 잔소리가 너무 고마워요.(웃음)” ◆ 불현듯 찾아온 운명 ‘파스타’ ‘노민우는 무서운 배우다.’ 노민우에게 ‘파스타’는 젖줄이다. 배우라는 직업의 매력에 빠질 수 있었고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늘한 카리스마를 가진 ‘꽃쉐프’ 필립으로 살아가는 노민우는 인터뷰 내내 해산한 미소를 뽐냈다. 천성이 유쾌한 긍정주의자인 노민우는 ‘파스타’를 떠올리면 마냥 즐겁고 감사하다. 또 아직도 완전한 필립이 되지 못했다며 겸손한 욕심도 드러냈다. “‘파스타’를 만난 건 기적 같은 일이에요. 훌륭한 작품과 함께 사람들을 얻었죠. 아직 한없이 부족한 저를 권석장 감독님과 서숙향 작가님을 비롯해 많은 스태프 분들이 넘치도록 사랑을 주세요.” 노민우의 연기 지도는 이선균과 공효진, 그리고 극중 ‘설사장’ 역으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이성민 몫이다. “여러 선배 연기자들이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세요. 촬영 중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대본을 들고 선배께 달려가는데, 언제나 정확히 짚어주세요. 정말 그분들은 내공이 장난 아니라니까요.(웃음)” ‘의리파’ 노민우는 ‘파스타’에 과감히 올인했다. 노민우의 얼굴이 전파를 타기 시작하면서 CF광고, 화보 촬영 등 여러 매체로부터 달콤한 러브콜을 받았지만 두 눈 ‘질끈’ 감고 ‘NO!’를 외치며 거절했다. 도대체 왜?! “제 주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거죠.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신인 배우가 한 가지도 잘 해내기 어려운데 여러 분야에 도전한다는 건 무리이자 민폐에요. 솔직히 광고 제안이 들어오면 군침이 돌지만 참고 또 참아요. 첫 사랑이 ‘쉬이~’ 이루어지진 않자나요. 아직 짝사랑 중인 ‘파스타’에만 매달려서 반드시 제 인연으로 만들고 말겠어요.” 노민우는 욕심을 숨기지 않는 배우다. 그가 바라듯이 한 작품 안에서 그 인물과 함께 성장하길 바란다. 3월 ‘파스타’의 모든 촬영이 마무리된다지만, 노민우의 성장은 쉼표 없이 쭉 이어질 거라 믿는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rornfl84@nate.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교육칼럼] 백범정신과 교육자

    [교육칼럼] 백범정신과 교육자

    몇 해 전 겨울, 교내 교사 20명이 중국 상하이임시정부청사를 방문했다. 빨래가 길가에 널려 있는 허름한 골목길을 지나 도착한 상하이임시정부청사는 낡은 3층집이었다. 임시정부 요원들이 사용했던 물건, 그들의 사진, 침구들이 잘 보존돼 있었다. 일제시대에 우리는 남의 나라 한 구석, 보잘것 없는 곳에 임시정부라고 차려놓고 독립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 곳에는 김구 선생님의 집무 모습 사진도 있었다. 백범 김구 선생은 18세 때 동학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나라를 위한 걱정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그의 나이 43세가 되던 1919년, 3·1운동이 발발했고, 그 후 백범은 상하이로 망명가 다음달 4월 13일에 임시정부를 설립했다. 그의 독립을 위한 노력은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32년 이봉창, 윤봉길 의거를 지휘했고, 우리 힘으로 독립을 얻기 위해 난징에 한국인 무관학교도 설치했다. 1944년에는 상하이임시정부 수장이 되었고, 마침내 1945년 광복을 맞이했다. 임시정부 책임자였던 그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당시 열강들의 ‘정치게임’에 휘말려 힘을 잃게 됐다. 또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던 우리나라는 임시정부로부터 이어진 ‘정통성’이라는 명맥을 이어가지 못했다. 백범의 ‘나의 소원’ 중 일부 대목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었기 때문이다. (...)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이 글을 보면 백범은 그 시절부터 물질의 힘이 아니라 문화의 힘이 세계를 움직일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그의 정신은 일제 침략에 반대하는 정의로운 독립 투쟁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문제와 미래에 대한 선견지명까지 닿아있었다. 정의로운 일, ‘한민족다운’ 일이 아니면 결코 하지 않은 이른바 ‘백범의 정신’은 어디서 길러진 것일까. 어린시절 황해도 신천 청계동에서 유학자 고능선(高能善) 선생을 만나 한학의 가르침을 받고 평생 이를 지켰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최근 교육계에서 발생하는 비리들을 보면 ‘교육자답지’ 못한 일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모든 사람들조차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다. ‘~답다.’는 것은 그 직종이나 그 계층에 부여하는 자격 요건이거나 기대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자리를 잘 유지하려면 그런 기대치에 부응하는 사고와 행동을 해야 한다. 기대치에 최소한이 아닌 최대한으로 가까울수록 그 사람은 ‘~답다.’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생긴다. 교육자에게 특히 ‘교육자다움’을 요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겸손한 자세로 막중한 자기 무게를 다시 가늠해볼 일이다. 백범은 정부 없는 시절 수장이었음에도 막일꾼같은 자세로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필자도 백범처럼 교육자로서 훼손된 자존심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한 마디 소원으로 표현하고 싶다. “우리나라가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하는 ‘~다운’ 사람들로 가득찬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나라는 분명 아주 아름다운 나라일 것이다.” 이홍자 서울사대여중 교장
  • 존 듀어든 “축구협회 요직? 현실성 없어요” ①

    존 듀어든 “축구협회 요직? 현실성 없어요” ①

    마니아가 많은 축구는 팬들 사이의 논쟁이 유독 격렬한 스포츠다. 이런저런 의견이 난무하다보니 인터넷에선 입으로 축구한다는 의미로 ‘입축구’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다. ‘너도나도 국대(국가대표팀) 감독’이란 말도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영국 출신 축구 칼럼니스트 존 듀어든(38)의 글 밑에는 네티즌들의 격론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듀어든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라는 ‘절대 추종’이 이어진다.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팬들도 그의 설득력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플’을 남긴다. 듀어든은 그 비결을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하고 다른 의견들을 잘 들으려 할 뿐”이라고 밝혔다. AP통신, 가디언, CNN 등 해외 유력 매체에서 활동하는 칼럼니스트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듀어든은 겸손했다. 대한축구협회 요직에 임명돼야 한다는 일부 네티즌들의 요구는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위치보다는 크게 보면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지금의 일이 좋다.”고 웃어 넘겼다. ▲ 한국에서 축구칼럼을 쓰게 된 계기는 - 2002년 월드컵 당시 유럽에선 일본 관련 기사들이 많이 나왔다. 균형을 맞춰 다른 기사를 쓰려다보니 한국 기사를 쓰게 됐다. 그러다가 한국에 애정을 가졌고 결국 아예 여기에 자리를 잡았다. ▲ 칼럼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 새로움. 다른 사람이 쓰지 않은 것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어서 다른 기사들을 보면 ‘이런 건 왜 안 쓰지?’라는 부분이 있다. 다행히 한국 출신이 아니라서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많다.  또 객관적으로 편견 없이 쓰려고 하는데, 사실 불가능하지 않나. 때문에 다른 의견을 많이 들으려 한다. ▲ 재미있는 표현이 많다. 한국적인 비유를 보면 토종 한국인 같을 때도 있는데 - 독특한 나만의 은유를 생각해내려 고민한다. 한국을 좋아하고 오래 살다보니 한국적인 표현들을 쓰게 된 건데… 사실 잘 모르겠다. 스스로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직접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글과 달리 지루해서 실망하는 경우도 많다. ▲ ‘영국 명문대 출신 축구 기자’. 독특한 이력이다. - 물론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SE)에서 많은 에세이를 쓰고 토론을 한 경험은 지금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 대학교에 입학한 1991년에는 신문방송학이나 언론학을 학부에서 전공하는 일이 많지 않았다. ▲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걸로 안다. 평소 일과는 어떻게 되나 - 집에서 하루 종일 글을 쓰거나, 관련된 모임에 나가는 게 전부다. 바쁘고 힘들지만 즐기는 일이라서 할만 하다. 지난해 가을에 딸이 태어나서 아이 보는 일이 추가됐다. ▲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듀어든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등 좋은 댓글들이 많다. - 좋은 얘기들을 들으면 좋기는 하지만, 진지한 의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의견에 동의하는지가 중요한 것 아닐까. ▲ 실제로 대한축구협회나 구단에서 요직 제안이 온다면 - 일단 현실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상황이기는 한데,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위치보다는 크게 볼 수 있는 지금이 좋다. 만약 구단에 가게 되면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독자들에게 하고픈 말 - 글 전체를 읽어줬으면 좋겠다. 헤드라인만 보고 쓰는 댓글도 많던데, 사실 헤드라인은 내가 쓰는 게 아니다. 가디언과 같은 외국 매체에 쓰는 글에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한국에만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 <2편에 계속>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양서류’ 적 사유로 ‘지금, 여기’ 가치 찾기

    꼬박 10년 만에 다시 책을 내놓았다. 변화된 개정증보판을 내놓는 것이 출판계에서 밥먹듯 이뤄지는 일인데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철학에세이를 표방한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김용석 지음, 푸른숲 펴냄)이 새천년의 첫 10년 한 토막을 보낸 뒤 2010년 2월, 다시 선보이게된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새천년이 막 시작되는 2000년 1월, ‘열림과 닫힘’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 땅의 철학도, 사회과학도, 인문학도들, 심지어 건축, 디자인 분야 연구자들에게 지적(知的) 충격을 던져줬다. ‘피노키오’, ‘미운 오리새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익히 알려진 동화를 재료로 삼아 칸트와 헤겔은 물론, 19세기 후반 독일 문화철학자 게오르그 짐멜, 오스트리아의 과학철학자 파울 파이어아벤트, 그리고 칼 마르크스 등까지 넘나들며 깊이있는 사유를 선보인다. 저자의 첫 저작이었지만 입소문을 타며 여기 저기 대학의 철학과 강의 교재로 쓰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절판됐고, ‘지금, 여기’의 학문적 과제에 대한 ‘순결한 책임’을 내세운 저자의 반대로 이 책을 더이상 서점에서 찾기 어렵게 됐다. 김용석 영산대학교 학부대학 교수는 “책으로서 현재적 가치가 살아있어야 재판을 찍고, 개정판을 내는 등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재판을 내는 것을 반대하다가 이번에 동의한 것은 10년 전 책을 통해 내놓았던 전망이 상당히 맞아떨어졌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덕분에 미래 예측적 표현들은 현재 확인적 표현으로 바뀌었다. 또한 재판 책의 서문은 어지간히 얇은 책 분량에 가까울 정도로 두꺼워졌고, 여기에 친절한 주석까지 덧붙여졌다. 서문의 주석이라니…. 김 교수는 일러두기를 통해 “주석의 중요성은 정보의 원천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라면서 “관심이 있으면 주석의 보충 설명을 읽어도 좋고, 본문만 읽고 넘겨도 무리없이 이어지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가 10년을 관통하는 동안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은 ‘양서류적인’ 글쓰기와 ‘양서류적인’ 독서다. 두꺼비나 개구리 등 양서류가 물과 뭍 양쪽을 넘나들 듯 문화담론, 인간론을 갖고 철학·사회과학을 조화롭게 얘기하고 사유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책은 의도적으로 개념의 모호함을 드러낸다. 헤겔이 던진, ‘황혼에 날개를 펼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로 상징되는 철학자들의 겸손한 천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명에까지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 성실함’으로 연결됨을 강조한다. ‘열림과 닫힘’에 대한 통찰이다. 이렇듯 책을 관통하는 개념의 일관성은, 끊임없이 앞 장의 내용을 확인하며 무릎을 치게 만드는 절묘함이 있다. 근대 서구 철학의 기계적인 적용 또는 좌절로 고민하던 이들에게 진정한 ‘지금, 여기’의 가치를 알려주는 철학적 사유, 인문학적·자연과학적 사유를 가능케 한다. 민족에 머무르지 않으며, 무작정 서구에 손 벌리지 않는 ‘우리식 철학’의 맹아가 김용석 교수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함께 출간된 ‘메두사의 시선’(푸른숲 펴냄) 역시 신화와 과학, 철학이 한 뿌리를 갖고 엉켜있음을 보여준다. 1만 7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샤이니’ 온유가 밝히는 공부잘하는 비법은?

    ‘샤이니’ 온유가 밝히는 공부잘하는 비법은?

    그룹 샤이니의 멤버 온유가 공부 잘 하는 비법을 공개했다. 온유를 비롯해 샤이니 멤버들은 오는 7일 방송되는 SBS ‘퀴즈! 육감대결’에 출연해 ‘학교생활’을 주제로 거침없는 입담을 자랑했다. MC 이경규는 온유에게 “온유는 공부 잘 하는 가수로 유명하다. 특히 집중력이 높았던 시간은 언제였나.”라고 질문했다. 이에 온유는 “특히 여러 시간대 중 새벽에 공부가 잘됐다.”며 “수면을 취하지 못해서 학교에 가서는 잠만 잤다.”고 답해 주변을 폭소케 했다. 또 함께 출연한 다른 게스트들은 온유를 향해 “공부도 잘하지만 겸손하고 예의바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온유는 고등학교 시절 전교 2등의 높은 성적을 유지해 지적인 아이돌로 화제가 된 바 있다. 사진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rornfl84@nate.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스타 이상형②] 커플매니저가 보는 스타 ‘궁합도’

    [스타 이상형②] 커플매니저가 보는 스타 ‘궁합도’

    누구에게나 이상형이 있다. 이는 연예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상형 월드컵’ 등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들이 밝힌 이상형은 과연 누구일까. 남자 연예인 중 배우 강동원과 2PM의 택연이 김아중, 태연, 구하라 등의 지지를 등에 업고 여자 연예인의 이상형 1순위에 올랐다. 탤런트 공유는 이수영, 가희 등의 호감을 얻으면서 그 뒤를 바짝 쫓았다. 여자 연예인은 걸그룹 소녀시대 윤아가 이승기, 조권, 닉쿤 등이 이상형이라고 밝히면서 이상형 1위에 등극했다. 또 배우 손예진은 김제동, 지상렬 등이, 그룹 에프터스쿨의 유이와 탤런트 이연희·이민정은 천정명, 김태균, 박진영 등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각각 2, 3위에 올랐다. 이와 관련, 결혼정보업체 ㈜좋은만남선우의 스페셜 멤버 담당 강현주 매니저와 닥스클럽㈜ 매칭팀의 임은주 팀장을 만나 이상형으로 지목된 스타6인의 성향을 바탕으로 이들간의 커플궁합을 알아보았다. 강동원·공유, 연령·성격 뛰어 넘는 폭넓은 매칭 가능 강동원과 공유는 윤아, 이연희, 손예진 등 연령대와 성격을 넘어 폭넓은 매칭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81년생 강동원은 연예인 전후의 생활이 별반 차이가 없는 몇 안 되는 연예인 중의 하나. 지인들에 따르면 성격이 조용하고 겸손하다. 이에 대해 강 커플매니저는 “연예인이 되고도 변함없는 성향을 볼 때 여성에게도 한결 같은 모습을 보일 것” 으로 예측했다. 강동원과 가장 이상적으로 매칭되는 이는 82년생 손예진. 이 커플매니저는 “두 분의 차분한 성격이 결혼 생활을 기본 틀을 마련해 줄 것” 이라면서 “강동원의 진중하고 한결같은 모습이 손예진의 꾸밈 없는 성격과 조화가 잘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 밝혔다. 또 남성의 진중함이 여성을 넓은 맘으로 포용할 수 있다는 것도 매칭의 한 이유로 들었다. 성격이 너무 같아도 커플이 될 확률이 떨어진다고. 가정사를 함께 의논하고 결정할 수 있는 ‘여장부’ 형 이민정과의 매칭도 추천했다. 여장부성격이 결정적인 순간 강동원을 리드할 수 있어 교제의 지속성이 좋을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임 팀장은 손예진보다 이연희(88년생)가 좀 더 어울릴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손예진은 보호본능이 좀 더 강하다” 면서 “이연희는 좀 더 세심해 친구 같은 연인으로 지낼 수 있을 것” 으로 예상했다. 79년생 공유는 선이 굵고 남성미가 넘치는 스타. 이에 대해 강 커플매니저는 “약간의 무명시절을 거쳤으며 이미지 등 자기관리도 잘해 결혼하면 편한 스타일이다. 차분하면서 믿음직스런 이미지로 귀엽고 애교 있는 순수소녀 윤아(90년생)와의 매칭이 적합할 것” 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나이차이가 크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강 커플매니저에 따르면 공유는 유이와 공동순위에 오른 이연희와도 잘 어울린다. 이연희는 순수하고청순한 이미지로 사랑받고 있는 배우. 그는 “이연희는 의외로 활발하고 털털한 성격으로 알려져있다.” 며 “평소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는 수수한 이미지다. 또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해 여성스러우면서도 성격이 소탈해 공유와 잘 어울릴 것” 이라고 평했다. 반면 임 팀장은 손예진을 꼽았다. 공유는 “선이 굵고 남성적인 이미지로 남성을 잘 챙기고 배려심이 깊은 여성과 어울릴 것” 이라는 게 그 이유다. ‘남성미’ 물씬 택연-‘카리스마’ 유이 어울려...상대방의 성향 비전 중시 88년생 택연은 활발한 성격과 수려한 외모로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매칭 1순위는 88년생 동갑내기 유이. 강 커플매니저는 “뚜렷한 이목구비로 남성미가 느껴지며 성격이 재치있고 쿨해 털털한 성격의 유이와 잘 어울린다.” 고 밝혔다. 유이는 연기를 통해 보여준 카리스마와 섹시미로 많은 여성들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재밌는 평을 내놓기도. 임 팀장도 “똘똘하고 당찬 여성이 잘 어울린다.” 며 유이와 이민정을 꼽았다. 또 여성들로부터 인기가 많은 만큼 택연을 강하게 잡아줄 수 있는 연상녀도 괜찮다는 데에도 의견을 같이했다. 또 직업군으로 살펴보면 “강동원은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같은 계통의 여성이, 공유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CEO형 여성과 잘 매칭된다.” 고. 또 “유이는 사업가, 윤아는 전문직 남성, 이민정은 스포츠 스타가 어울릴 것 같다.” 고 분석했다. 이들 커플 매니저들은 “나이나 외모 등 기본 조건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성향이 얼마나 나와 잘 부합하느냐’ 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며 “남녀모두 비전이 있고 준비된 사람을 선호하는게 현 추세”라고 말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백영미 기자 positiv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문학은 여전히 인류의 가장 훌륭한 예술”

    “문학은 여전히 인류의 가장 훌륭한 예술”

    문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을 축복하는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상식이 20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한국 문단을 새롭게 빛낼 6명의 당선자들을 비롯, 심사위원들과 가족·친지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동화 서울신문사 사장은 축사를 통해 “올해 61년이라는 서울신문 신춘문예의 연륜은 서울신문사가 그동안 한국 문단에 주요한 자양분 역할을 해왔다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면서 “서울신문은 평생동안 성실한 독자이자 든든한 후원자, 또 서늘한 평가자가 돼 당선자들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심사위원들의 축하도 이어졌다. 소설가 현기영, 방민호 서울대 교수, 문학평론가 백지연(이상 소설 부문), 황지우·안도현·손택수 시인(시 부문), 김종회 경희대 교수, 문흥술 서울여대 교수(이상 평론 부문), 이근배·한분순 시인(시조 부문), 조대현·원유순 동화작가(동화 부문) 등이 참석해 자신들이 뽑은 당선자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심사위원 대표로 격려사를 건넨 현기영 작가는 “심사를 하면서 아무리 영상예술이 발전해도, 인류가 가진 가장 훌륭한 예술인 문학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메마른 우리 삶과 인간 정서에 풍요로움을 주는 문학의 본래 역할을 잊지 말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 출신 문인 모임인 서울문우회의 간사장 조대현 동화작가도 “그동안 서울신문을 통해 등단한 문인이 240명”이라면서 “당선자들은 혼신의 노력을 다해 자기계발을 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장애(뇌성마비)를 극복하고 동화 부문에 당선돼 뭉클한 감동을 줬던<서울신문 1월5일자 14면> 이나영(30)씨는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고 소감을 밝혀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소설 당선자 이은선(27)씨는 “앞으로 무너지려 할 때마다 당선을 통보받던 순간을 기억하겠다.”고 했고, 시 당선자 이길상(38)씨는 “진정성이 느껴지며 신선하다는 평을 받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다짐을 전했다. 희곡 당선자 이시원(37)씨는 “희곡을 쓰며 사람을 좋아하고 삶에 감사하고 살았는데, 이번을 계기로 삶이 더 고맙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평론 당선자 남승원(36)씨는 “겸손한 자세로 문학, 또 독자와 소통하는 평론가가 되겠다.”고 했고, 시조 부문 배경희(43)씨도 “진실한 마음으로 인생의 빛과 어둠을 담아내는 글을 쓰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김지석 “이나영! 너 진짜 많이 컸다”

    김지석 “이나영! 너 진짜 많이 컸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이나영’ 바로 다음에 ‘김지석’이 있더라구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와, 너 진짜 많이 컸구나.’” 김지석은 들뜬 목소리로 언론 시사회 당시의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영화 ‘국가대표’로 800만 관객을 동원하고, 올해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에서 이나영과 투톱으로 나선 배우가 너무 겸손한 것 아니냐고 묻자 김지석은 손사래를 쳤다. ◆ ‘국가대표’의 최대 수혜자 김지석 “크레딧에는 이나영-김지석-김희수 순서로 이름이 올랐지만, 저는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의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부터 이나영과 김희수 주연의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에서 김지석은 비중이 꽤 큰 조연이죠.” 김지석의 말처럼 엄밀히 따지자면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의 주인공은 부자 관계로 나오는 이나영과 아역배우 김희수다. 하지만 김지석은 극중 트렌스젠더로 분한 이나영이 과거를 숨기고 아빠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핵심 요인으로서 영화 전반의 흐름을 좌지우지한다. “거의 데뷔 10년차가 됐지만 저는 아직 단독 주연이 부담스러워요. 그래서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를 선택한 겁니다. 이나영과 함께 한다는 부분이나, 이렇게 큰 비중의 역할은 처음이라서 욕심이 나기도 했구요.” ‘국가대표’의 청년 가장 칠구로서 주연을 연기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김지석은 “‘국가대표’는 하정우와 4인방이 모두 함께 뛰면서 영화”라고 답했다. ‘국가대표’에서는 모두가 주연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모두가 서로를 위해 한 발자국 물러선 조연이었다는 대답이다. “물론 전 ‘국가대표’의 최대 수혜자에요. 자칫 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칠구를 잘 잡아주신 ‘국가대표’의 김용화 감독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미우나 고우나’가 대중들에게 김지석을 알린 시발점이었다면, ‘국가대표’는 절 배우로서 영화에 입문시켜준 작품이니까요.” 김지석은 ‘국가대표’ 덕분에 ‘여신’ 이나영과 함께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냐며 웃었다. ◆ 차기작·군대·서른살…하지만 서두를 것 없다 올해 김지석은 영화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와 드라마 ‘추노’를 통해 각각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두 작품 속의 김지석은 그가 연기해온 캐릭터의 대부분이 그랬듯이 장난스럽고 유쾌한 청년이다. “사람들이 ‘김지석’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아마 한정적일 겁니다. 장난기 있는 호감형 남자애 같은 거요. 하지만 배우 김지석이 아닌 인간 김보석(김지석의 본명)에게는 다른 모습이 꽤 많아요.” 이미지가 굳어지거나, 비슷한 성격의 캐릭터를 연달아 맡는 것이 걱정이 되느냐는 질문에 김지석은 서두를 것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보다 주변에서 더 걱정을 해요. 캐릭터가 고정된다거나, 빨리 주연을 맡아야하는 게 아니냐구요. 하지만 저는 원래 낙천적인 성격입니다. 게다가 아직 젊은데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엘리베이터로 빨리 올라가면 그만큼 빨리 내려오게 된다는 김지석은 계단으로 천천히 올라가서 내려올 때도 아주 천천히 내려오겠다고 했다. 올해 입대를 앞둔 군대 역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솔직히 말하면, 아쉽죠. 막 숟가락을 뜨려니까 빨리 나오라고 성화부리는 것 같기도 하구요. 하지만 선배인 장혁이 군대는 빨리 갈수록 좋다고 하시더군요. 어찌나 군대에 관한 조언을 많이 해주던지 마음속으로는 벌써 상병 달았습니다.”(웃음) 20대의 전부를 바쳐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를 위해 살았다는 김지석은 군대라는 쉼표를 통해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겠다고 한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 배우들의 연기가 한층 깊어지는 것처럼, 김지석은 “나 역시 또 한 번의 변신을 앞두고 있는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사진=이규하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피플 인 스포츠] ‘2009 바둑대상 MVP’ 부활 날갯짓 이창호

    [피플 인 스포츠] ‘2009 바둑대상 MVP’ 부활 날갯짓 이창호

    “바둑에서 중국의 실력이 한국과 비슷해졌어요. 어느 나라가 우위에 설 지는 앞으로 몇 년이 중요합니다. ” ●추락하는 日-물오른 中 지난 8일 ‘2009년 바둑대상 최우수기사상’을 받은 이창호(35) 9단. 그는 특유의 조용하고 무심한 어조로 세계 바둑계의 새 강자로 떠오른 중국 바둑에 대한 경계심을 나타냈다. 30~40년 전만 해도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떠났지만, 일본 바둑은 하강세. 대신 중국에 구리 9단, 창하오 9단 등과 같은 신예들이 나타나 세계 바둑계를 독주해온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바둑이 광저우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금 3개를 놓고 중국과 경쟁해야 한다. 국내랭킹 1위인 이창호 9단의 역할에 기대가 모아지는 이유다. 이 9단은 “체력에 문제가 없다면 아시안게임에 나가고 싶다. 침체를 겪는 한국 바둑에 새 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5년간 세계대회 7연속 준우승 그쳐 소년 같은 이미지가 강한 이창호 9단은 8살부터 올해까지 28년째 바둑을 두고 있다. ‘돌부처’라는 별명답게 시종일관 무표정하게 단답형으로 답변한다. 그는 “현재 사귀는 연인과는 올해 안에 결혼할 것이냐.”와 같은 당황스런 질문 앞에서야 소년같이 수줍게 웃었다. 이 9단은 11살에 최연소로 한국기원에 입단하고, ‘천재 바둑 소년’의 잠재력을 인정받아 그해 조훈현 9단의 내제자가 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고향 전주에서 서울로 초등학교도 옮기고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조훈현 사범 집에서 가족처럼 지내며 바둑을 배웠다. 조 사범과 집에서 대국은 1년에 1판꼴. 2점을 깔고 약 7~8번 정도 대국을 했는데 승수는 반타작이었다고 기억했다. 10대 중반 이후 15년 가까이 세계 바둑계를 호령하던 이 9단은 최근 5년 동안 세계대회에서 7연속 준우승에 그쳤다. 이창호가 슬럼프가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왔다. 바둑도 20대 중후반이 최전성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30대 중반의 나이도 걸림돌이다. 이창호의 기보로 공부해온 후학들이 모두 끝내기에 강해지면서 이창호의 독보적인 강점이 사라지기도 했다. ●“후반 실수 잦아… 초중반 변화 시도” 이에 대해 이창호는 “내 바둑 스타일을 다 파악했다고 해도 나보다 상대가 더 실력이 뛰어나서 승리하는 것”이라고 겸손해 한다. 이창호는 “다만 예전에는 끝내기에 강했는데, 후반에 실수가 나오기 때문에 초중반에 잘 두려고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면서 “연습대국보다는 실전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승에 꾸준히 올라가지만 최근 우승에까지 이르지 못하는 것은 이런 변화의 시도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는 “바둑을 무척 좋아해서, 수학여행 같은 학교생활을 못한 것이 아쉽다.”면서 당시에는 귀찮았는데,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에 제프리 재슬로 교수의 ‘마지막 강의’ 를 재미있게 읽었다. 인터넷 바둑도 가끔 20~30분씩 둔다. 물론 이창호임을 밝히지 않는다. 이 9단은 현재 사귀고 있는 연인에 대해 “1년 정도 사귀었고, 잘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습생 출신으로 프로입문을 코앞에 뒀다가 바둑전문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이 9단은 10년 이상의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 길에 서 있는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까. 그는 “자연스러운 것이라서. 아쉬워할 일은 없다.”고 말했다. “바둑만큼 정직한 게임이 없어서, 우수한 후배들을 이긴다는 것은 때론 욕심이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돌부처답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名士의 귀향별곡]제천의 오탁번시인

    [名士의 귀향별곡]제천의 오탁번시인

    고향은 어머니 품과 같다고 했습니다.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고향은 말만 들어도 정겹고 가슴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 또한 아름답겠지요. 신년기획으로 매주 수요일자에 ‘명사의 귀향별곡’을 마련했습니다. 첫 번째 순서로 고향인 제천에서 지내고 있는 오탁번 시인을 만났습니다. 영화 ‘박하사탕’의 명장면인 ‘나 다시 돌아갈래~’를 촬영한 곳으로 유명한 충북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 오탁번(67·전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 한국시인협회장이 30여년간 살았던 서울을 버리고 정착해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는 이곳은 그의 고향이다. 12일 만난 그는 고향을 이렇게 표현했다. “야생화가 나비와 벌을 유혹하고 제비가 날아와 새끼를 치는 곳, 반딧불이가 밤하늘을 수놓고 백로가 산허리를 베며 날아가는 곳, 박달재와 천둥산 사이에 수줍은 야생화가 숨어 있는 곳”이라고. 고향의 아름다움에 반한 듯 오 시인은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던 2003년 폐교된 모교 백운초등학교 애련분교를 매입해 원서문학관을 차렸다. 말 그대로 애련한 마을의 적막하고 조용한 작은 폐교에 마련된 문학관이다. 이때부터 그의 낙향 생활이 시작됐다. 그는 “‘먼 서쪽’을 의미하는 ‘원서’는 백운면의 조선시대 지명”이라면서 “‘제천에서 서쪽으로 가장 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30여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고향의 옛 이름을 찾아준 셈이지.” 원서문학관에선 매월 마지막 토요일 제천·충주·단양·음성·영월지역 시인들이 모여 시를 낭송하고 월례회를 갖는다. 해마다 가을이면 전국에서 시인들이 모여 ‘시의 축제’도 연다. 축제 기간 중에는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제천지역 농산물을 홍보하기 위해 장터가 열린다. 김남조·신달자 시인 등 국내 유명 문인들이 모두 다녀갔다. 오 시인의 명성을 입증이라도 하듯 원서문학관은 문인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곳이 돼 버렸다. 오 시인이 고향을 찾은 것은 겸손한 삶을 살고 싶어서다. “옛날 선비들은 한양에서 벼슬을 한 뒤 고향에 내려가 서당을 차리고 아이들을 가르치곤 했어. 율곡 선생도 그랬지. 그러나 요즘은 지식인들이 장관 같은 자리에 가고 싶어 안달인 것 같아.” 그는 그릇된 지식인들의 모습에 일침을 가한 뒤 “나이가 들면 겸손해하며 자연을 벗삼아 살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과거를 돌아보면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자연과 친구가 됐다. 길 건너 텃밭에서 옥수수와 고구마를 심어 뽑아 먹고, 앞마당에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 한때 그에게 고향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고향에서 찢어지는 가난을 경험하면서 한국전쟁까지 치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고향은 자신에게 겸손한 삶을 가르쳐줄 수 있는 ‘인생의 스승’ 같은 곳으로 변해 갔다. 그는 “원서문학관이 한국문학 발전에 작은 힘을 보탰으면 한다.”면서 “시인협회 일로 가끔 서울 나들이를 하지만 3월이면 임기가 끝나 고향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화려한 전원주택 대신 폐교의 허름한 사택을 꾸며 생활하고 있는 그는 분명 겸손한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글 사진 제천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

    [한·일 100년 대기획]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

    꼬박 100년이 흘러갔다. 아시아의 평화와 대한 독립을 간절히 원했던 안중근은 옥중에서 미완성 수고(手稿) ‘동양 평화론’을 쓰다가 형이 집행됐다. 머리말과 목차만을 남겼을 뿐이다. 일련의 상황들은 얼핏 역설 또는 가치의 전복에 가깝다. ‘동양 평화’ ‘대동아공영’을 주창했던 일본의 정치인 이토 히로부미를, ‘동양 평화를 원하던’ 안중근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총살했으니 말이다. 안중근의 의거 10개월 뒤인 1910년 8월 일본은 한국을 병탄(倂呑)한다. 100년이 지났건만 평가는 엄정하고, 치밀해야 한다. 새로 오는 100년을 준비하기 위해서 더더욱 냉철하고,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 또한 지난 역사의 평가작업으로서 제기되는 몇몇 의문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필요하다. #장면 1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10분 중국 하얼빈 기차역. 일본의 전 총리이자 조선 통감부 제1대 통감(총독)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탄 기차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러시아 군복 스타일의 옷을 입은 한 청년이 대합실에서 일어나 천천히 플랫폼으로 걸어나갔다. 만 서른 살의 청년, 대한의군(大韓義軍) 참모중장 안중근이다. 이토는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68세의 노정객 이토는 기차 안에서 러시아 재무상 코코프체프와 20분 남짓 대화를 나눈 뒤 모습을 드러냈다. 안중근은 러시아 사열병 바로 뒤쪽까지 다가섰다. 신문기자로 위장했기에 접근에 어려움은 없었다. 이토가 사열병 앞으로 다가서는 순간 안중근은 앞으로 뛰쳐나가 품 속에서 권총을 빼내 세 발은 이토에게 명중시키고, 나머지 세 발은 수행원들을 쐈다. 그리고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우레 코레아!(한국, 만세!)”를 외쳤다. 이토는 30분 뒤인 오전 10시 사망했다. 현장에서 붙잡힌 안중근은 일본 법정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 평화의 교란자이므로 개인자격이 아닌 대한의군 사령관으로서 처형하였다.”고 밝힌 뒤 사형을 선고받았고, 항소를 포기하며 죽음을 선택했다. 1910년 3월26일 오전 10시, 뤼순(旅順) 감옥에서 형이 집행됐다. 그가 마지막 남긴 말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였다. 뤼순 감옥 뒷산에 묻힌 그의 유해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찾지 못했다. 지난해 9월 동상으로나마 돌아온 안중근은 여러 논란 속에서 제자리를 못 잡다가 두 달 가까이 지나서야 경기 부천 안중근 공원(구 중동공원)에 어렵사리 정착할 수 있었다. #장면 2 이토 히로부미는 1905년 일방적 을사늑약 체결, 1906년 조선 1대 통감으로서 펼친 각종 조선 말살 및 식민지화 정책,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 등 일제가 벌인 동아시아 침략에 주도적 역할을 맡는 등 씻을 수 없는 죄과를 남긴 인물이다. 크고 작은 저항은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 그는 안중근에 4년 앞서 또 다른 대한제국 청년의 의거로 중상을 입었다. 이토는 초대 통감으로 부임(1906년 3월)하기 직전 수원으로 사냥 나들이를 나서는 등 여유 있는 한때를 보냈다. 해 저물녘 안양을 들러 서울행 기차를 타기 위해 자리에 앉았는데 을사늑약 체결에 비분강개하던 스물 세 살 원태우가 돌멩이를 여러 개 던져 유리창을 깨뜨렸고, 이토의 얼굴에는 파편 여덟 개가 박혔다. 원태우는 징역 2개월에 장형(곤장 100대)을 받았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과 일본 역사 안에서의 평가는 또 다른 극점에 놓여 있다. 그는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 격(格)으로 평가받는다. 빈농의 아들에서 출발한 그는 일찍이 영국 런던대학으로 유학해 화학을 전공하는 등 서구 문물과 근대 교육을 받아들였고, 일본 메이지 헌법의 초안을 마련했으며, 내각제 등 일본 정치제도의 근간을 만들었다. 초대 총리와 5·7·10대 총리를 지냈고, 추밀원 의장, 귀족원 의장을 맡는 등 36년 동안 일본의 최고 핵심권력에 있었다. 하지만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총리에서 몸을 한껏 낮춰 조선의 초대 통감을 자처했으니, 일본에서는 개인의 욕망보다는 겸손하게 대의에 충실한 인물, 동양 평화를 추구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토의 장례는 1909년 11월4일 히비야공원에서 국장(國葬)으로 치러졌다. 1963년 발행된 일본의 천엔(円)권 화폐 속 인물이 됐을 정도로 지금도 국민적 추앙을 받고 있다.
  • [밴쿠버 별을 향해 뛴다] (3) 최연소 출전 16세 곽민정

    [밴쿠버 별을 향해 뛴다] (3) 최연소 출전 16세 곽민정

    ‘2010년에는 밝은 하늘 위에서 날고 있을 것이다. 포기는 절대 NO.’ 초등학생 소녀는 침대맡에 이 글귀를 큼지막하게 붙여놨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써붙였다. 잠에서 깨면서 봤고, 잠들면서 봤다. 과천 할아버지 댁에 가는 길에 우연히 스케이트장을 보고 홀딱 마음을 빼앗겼다. 그렇게 시작한 피겨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줄 그 때는 몰랐다. 피겨를 타면서 올림픽은 소녀의 로망이 됐다. 힘들고 지칠 때도 많았다. 하지만 ‘밝은 하늘에서 날고 있을’ 2010년을 생각하며 매일매일 스케이트를 신었다. ●“연아 언니의 자신감 본받고 싶어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리틀 김연아’ 곽민정(16·군포수리고)은 결국 꿈에 그리던 올림픽 출전권을 손에 쥐었다. 우상으로 생각하는 김연아(20·고려대) 언니와 함께라서 더욱 들뜬다. “올림픽 출전이 확정되고 연아언니한테서 ‘민정아!! 축하해! ㅋㅋㅋ 최연소 출전이다. 준비 잘해서 잘하장~’이라는 문자가 왔어요. 진짜 감동적이었어요.”라고 볼이 발그레해진다. 처음 스케이트를 신을 때부터 롤모델은 언제나 김연아였다. “표현력이나 기술은 물론이고 긴장을 떨쳐 버리고 시합 때 100%를 다 보여주는 연아언니의 자신감을 본받고 싶어요.” 김연아의 발자취를 더듬더듬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올림픽까지 왔다. 이제 올림픽 개막까지 한 달 남짓. 곽민정은 오늘도 어김 없이 빙판을 가른다. 올림픽 대표로 뽑힌 지 두 달여가 흘렀다. 곽민정은 “올림픽에 나가게 된 것만으로도 목표는 이뤘어요.”라고 겸손을 떨었다. 재차 목표를 묻자 슬그머니 “쇼트 컷 통과(24위)가 목표예요. 프리연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눈을 빛냈다. 물론 부담도 있다. 올림픽은 그동안 출전했던 대회와 레벨(?)이 다른 ‘별들의 전쟁’이기 때문. “큰 무대에 선 경험이 없기 때문에 얼마나 떨릴지도 모르겠어요. 최대한 긴장을 안 해야 좋으니까 국내대회처럼 생각하고 나서려고요.”라고 담담하게 웃었다. ●전주 4대륙대회… 아사다와 같은 무대 설레요 밴쿠버의 주인공으로 낙점됐지만 스케줄은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민정이는 ‘짧고 굵게’ 한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결코 짧지 않다. 링크에 살다시피하면서 프로그램을 익히고, 마사지와 스트레칭·체력운동까지 뭐 하나 빠뜨릴 수 없다. 제일 고통스러운 건 의자 두 개 사이에 앞뒤로 다리를 벌리고 앉아 스트레칭하는 시간. 다리가 180도 이상으로 벌어진다. 우아한 비엘만스핀을 떠올리며 꾹 참아 본다. 유연성을 위해 필수지만 아파서 ‘악’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래도 즐겁다. “올림픽을 생각하며 훈련하니 예전보다 즐겁다. 물론 긴장을 늦춘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부상도 없고 오로지 컨디션 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당장 보름 뒤엔 전주 사대륙대회(25~30일)에서 아사다 마오(일본)와 맞닥뜨린다. “작년 관중석에 앉아서 지켜보던 아사다와 대회에서 실력을 겨룬다고 생각하니 영광이다.”라고 말할 만큼 아직까지 배운다는 자세가 더 크다. 더구나 사대륙대회는 곽민정의 시니어 데뷔무대다. 그만큼 부담도 덜하다. 큰 대회가 처음이라 변수도 크지만 겁 없이 들이댈 수 있으니 기대도 할 수 있다. 밴쿠버를 향한 만 15살 소녀 곽민정의 ‘위대한 도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글 사진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밴쿠버 별을 향해 뛴다]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샛별 이승훈

    [밴쿠버 별을 향해 뛴다]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샛별 이승훈

    “더 놀라운 일을 하고 싶어요. 스피드 스케이팅 역사에 한 획을 긋겠습니다.”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의 샛별로 떠오른 이승훈(22·한국체대)이 이야기하다 말고 갑자기 진지해졌다. 아이돌 부럽지 않은 잘생긴 외모에, 몇 마디 만에 기자를 ‘누나’라고 부르는 싹싹함을 갖춘 막내동생 같은 그였다. 올림픽 다녀오면 인기몰이 좀 하겠다는 농담에 “팬클럽이 있긴 있어요.”라며 수줍어하던 모습은 ‘꿈’을 말하는 순간 깡그리 사라졌다. ●쇼트트랙에서 스피드 국가대표로 “아시아에서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승훈이 주력하는 5000m는 그동안 서양선수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종목. 이승훈은 작년까지 쇼트트랙 선수였다. 2005년 대표팀 막내로 세계쇼트트랙선수권에 출전, 세대교체의 선봉에 섰다. 2009 하얼빈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는 한국에 금메달 3개(1000m·1500m·3000m)를 안겼다. 하늘이 또 다른 재능을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이승훈은 지난해 4월 쇼트트랙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충격적이었다. “선발전 첫 경기에서 넘어졌어요. 이건 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더라고요. 하늘이 무너진다면 바로 이런 느낌이겠다 싶었죠.” 대표선발전이 끝나고 세 달 동안 마냥 쉬었다. 너무 간절했던 태극마크였기 때문에 스케이트를 신을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절망했다. 대표가 되려면 꼭 1년 뒤인 4월 선발전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러기엔 너무 힘들었다. 올림픽에 꼭 나가고 싶었다. 방황하는 이승훈에게 새 기회가 찾아왔다. “주변에서 스피드 대표선발전이 10월에 있으니까 그냥 운동하는 셈 치고 스피드를 타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7월부터 쇼트트랙하고 스피드 스케이트를 번갈아 신으면서 마음을 비우고 훈련했죠.” 처음엔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 “국가대표만 되자는 마음이었어요. 근데 대표가 되니, 올림픽에 가고 싶은 거예요.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니, 꿈이 더 커지더라구요.” 내심 메달권도 기대한다는 소리. 갈 데까지 가 보자는 심정이란다. ●탈 때마다 역사가 된다 실제로 이승훈의 신기록 행진은 멈출 줄 모른다. 지난해 10월 월드컵 파견선수 선발전에서 대회기록(6분49초78·2006년 최근원)을 1초78 앞당기며 화려하게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후 2009~10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시리즈에서 무려 세 개의 한국신기록을 갈아치웠다. 한 달간 월드컵 시리즈를 치르면서 6분29초99였던 기록이 6분14초67까지 줄었다. 월드컵 1차 대회 직후 디비전A로 승격해 이후 3개 시리즈 연속 ‘톱10’에 들었다. 단거리에선 이규혁(32·서울시청)과 이강석(25·의정부시청)이 1위를 다투지만, 5000m에서 아시아선수가 ‘톱10’에 든 건 이승훈이 최초. 아시아 선수에게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치부되는 장거리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가진 게 체력뿐이다.”라며 겸손을 떨었다. 작은 트랙을 쉴 새 없이 도는 쇼트트랙에서 다져진 몸이 스피드에서도 통한다나. “쇼트트랙을 하다 보니 코너워크에서 훨씬 유리하다. 악명 높은 체력훈련을 해온 것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는 설명. ‘첫사랑’ 쇼트트랙이나 ‘현 애인’ 스피드 스케이팅 중 하나만 선택하기는 힘들단다. “쇼트트랙은 상대선수를 제치고 나가는 쾌감이 있다면, 스피드는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정정당당하고 신사적이라는 것이 편안하다.” ‘첫사랑’에 대한 미련이 진하게 남아 있지만, 이젠 “스피드 장거리에서 이례적인, 아시아에서 다시는 찾기 힘든 선수가 되고 싶다.”는 야망을 품었다. “저보다 잘 타는 선수를 정신없이 쫓아가다 보면 기록이 줄어 있던데요.”라고 웃는 모습은 마냥 천진난만하다. 한바탕 얼음을 질주하고도 팔팔한 이승훈의 기록행진이 밴쿠버까지 쭉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 글 사진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씨줄날줄] 따뜻한 원조/육철수 논설위원

    2004년말 인도양의 쓰나미로 주변 12개국에서 23만명이 숨지고 재산피해는 107억달러에 이르렀다. 선진국들은 원조와 구호를 앞다퉈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60만달러를 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국제 여론이 여간 따가운 게 아니었다. “먹고 살 만한 나라에서 그게 뭐냐?”는 비판이 일자 원조금을 두어 차례 올리다가 마지막에 5000만달러로 결정했다. 당시 미국도 우리와 처지가 비슷했다. 미국은 처음에 1500만달러를 내겠다고 밝혔다가 3500만달러로 높였다. 그래도 시원찮다는 반응이 나오자 3억 5000만달러로 올리고서야 여론을 무마시킬 수 있었다. 원조 약속의 이행 과정도 세계 여론의 감시망에 걸려 시빗거리가 됐다. 당초 7900만달러를 내놓겠다던 프랑스와, 6000만달러를 약속한 스페인은 쓰나미 발생 후 2년 동안 각각 100만달러 정도를 지원했다. 유럽연합(EU)은 7000만달러를, 영국은 1200만달러를 덜 내 곤욕을 치렀다. 다행히 한국은 착실하게 원조금을 내놓고 현지 민관 지원에 물심양면으로 노력해 수혜국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국제사회에도 이렇듯 보는 눈이 많고 따지는 사람들이 많다. 잘살수록 나라의 품격을 유지하기가 그래서 어려운 모양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연말 외교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원조는 한 손으로 주지 말고 두 손으로 줘야 한다.”면서 “주고도 욕먹는 일이 없게 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바뀐 만큼 우리의 옛날 처지를 생각해서 ‘따뜻한 원조’가 되게 해달라는 주문이다. 대통령의 언급대로 도움을 주는 게 받는 것보다 어려운 게 사실이다. 돈을 주는 건 쉽지만 마음까지 주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겸손 겸손, 또 겸손이 국가 간에도 미덕으로 통하는 세상이다. 한국은 현재 40여개 나라를 돕고 있다. 원조금액을 2015년까지 지금보다 3배 수준으로 높여야 하며, 그러려면 해마다 3조원씩 늘려야 한다. 원조정책 또한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한 무상원조에 비중을 두는 선진국형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공여국이 되었다고 요란 떨 게 아니라 수혜국에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국민 사이에 인정이 오가는 원조를 차분히 구상할 때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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