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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파탄 책임자 처벌 촉구

    ◎‘98민중대회’ 60개 단체 2만여명 참석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등 60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한 ‘98민중대회’가 회원 2만5,000여명(경찰 추산)이 참석한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이날 대회에서 ‘민중 10대 요구’를 통해 △경제파탄 관련 재벌총수·정치인·관료 처벌 △부당한 IMF협약 철폐 및 외채탕감 실현 △정리해고 중단과 주 40시간 근무 실현 △군비축소로 실업기금 확보 △농가부채 해결과 농축산물 가격 보장 △무주택 철거민 주거권 확보와 노점상 합법화 실현,장애인 생존권 보장 △교원노조 법제화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대회에는 민주노총을 비롯해 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빈민운동연합,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한국청년연맹,전국철거민연합회,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등 노동,인권,법조,의료,학계 등 각 분야의 사회단체들이 대거 참여했다. 범국민운동본부 李昌馥 상임대표는 개회사를 통해 “개혁을 부르짖고 나선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개혁은 후퇴하고 노동자 등 민중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면서 “정부가 진정한 개혁을 바란다면 경제파탄 책임자를 처벌하고 부정하게 모은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석자들은 결의문에서 “정부의 사회개혁 약속에도 불구하고 재벌은 구조조정이란 미명 아래 부실채권을 국민에게 떠넘기고 부패정치인들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면서 “개혁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다면 각계 민주세력들은 생존권 확보와 경제주권 회복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오후 5시 행사를 마친 뒤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까지 가두행진을 했으나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다. 이에 앞서 각 사회단체 소속 회원 7,000여명은 7일 오후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대회 전야제를 가진 뒤 이날 아침 여의도 행사장까지 거리행진을 했다. 한편 경찰은 대회장 주변에 86개 중대 1만여명의 병력을 투입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한편 교통 소통 및 질서 유지를 지원했다.
  • 교육계의 개혁 반발(사설)

    교육개혁 정책에 대한 교육계의 집단반발은 충격적이다.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29일 서울에서 전국교육자대표자대회를 갖고 교육개혁 정책이 “교사들을 경시하고 있으며 비현실적인 졸속 정책”이라고 교육부를 집중 성토했다. 전국 초·중·고 교사 2,000여명이 참석한 이날 대회에서는 ▲교원 정년단축 ▲시·도 지사의 교육감 임명제 ▲교원노조 법제화 추진등을 반대하는 결의문이 채택됐다.교총은 이날부터 40만 교원을 상대로 교육개혁 정책 반대 서명운동에 들어 갔으며 30일 일부 신문에 ‘졸속 교육정책 시정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광고를 게재했다. 교총이 정부의 교육정책에 이처럼 강경하게 정면대결 자세로 나오기는 처음이다.교원노조의 법제화에 맞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선명성 경쟁을 벌이는 측면이 보인다는 분석도 있지만 어찌됐건 주목되는 현상이다.교사가 흔들리면 교육개혁은 공염불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교사의 참여 없이 교육개혁은 성공하기 어렵다.지난 문민정부의 교육개혁이 실패한 것도 교사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지 못한탓이었다. 따라서 당국은 교육계의 집단반발 원인을 면밀하게 분석해 적극 대처해야할 것이다.교육개혁의 필요성과 개혁의 방향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와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각론에 있어서 부작용을 초래하고 오해를 빚는 점이 있다면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특히 교사들이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그 대상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자조감을 씻어주어야 할것이다.서울지역 사범대학 학생 대표자 협의회는 30일 수습교사제 철회를 주장하는 ‘예비교사 결의대회’를 가졌고 교원노조도 지난 9월부터 ‘교육개혁과 올바른 교원정책 수립을 위한 전국 10만 교사 서명운동’을 펴고 있어 교육개혁에 대한 반발은 전 교육계로 확산될 조짐이다. 그러나 교육계도 개혁에 대한 반발이 기득권을 지키기위한 집단이기주의로 비칠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이날 대회에서 김민하 교총회장도 말했듯이 “교직사회가 가장 정체와 안일에 빠져있다”는 사회와 국민의 따가운 비판 여론이 상당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교총과 전교조 모두 교원 정년단축에 반대하고 있지만 사회 전반의 구조조정 바람속에서 65세 정년을 고집하는 것은 무리다.교직의 안정도 중요하지만 격변의 시대상황 속에서 모든 국민이 고통을 겪고 있는 만큼 교육계도 고통분담을 피할 수 없다.교육개혁의 성공이 제2건국의 밑바탕이 될 것이다.
  • “교육감 임명­정년 단축 재검토를”/교총 대표자회의

    ◎‘학생이 담임선택’ 학교교육 정상화 역행/교육세 존속·지방교부금 상향조정 요구 교육부가 최근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내놓은 ‘교육비전 2002­새 학교문화 창조’ 방안 등 일련의 개혁안에 대해 교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金玟河)는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교사,학부모,정·관계 인사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교육 발전과 교직 안정을 위한 전국 교육자 대표자회의’를 열고 “정부는 교원 경시하는 각종 정책을 즉각 시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교육재정 대폭 삭감,정치·경제논리에 의한 시책 남발 등이 교육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면서 “교육부가 잇따라 내놓고 있는 개혁안은 교단에 과열경쟁을 조장하고 교사들에게 획일적 변화를 강요하는 등 교원 압박정책으로 일관,교원들의 사기를 땅에 떨어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교육세 존속 및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상향조정 △교원 권익 및 교육 자주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교원단체 설립 및 단체교섭에 관한 법률’ 제정 △시·도지사 교육감 임명제 등 교육자치제 말살 기도 중단 등을 촉구했다. 자유토론에 나선 朴熙正 교사(50·서울 중경고 체육담당)는 “경제 악화를 이유로 그동안 박봉에 시달려온 교원의 정년을 단축하려는 것은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교총은 이날부터 전국 40만 교원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에 들어가는 한편 사회단체 등과 연대해 정부의 개혁안 저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 野 내주 등원 가능성/한나라 李총재 “상황 바뀌면 언제든 등원”

    ◎與선 “13일부터 국회 단독운영” 최후통첩 한나라당내에서 ‘원내외 병행투쟁론’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다음주중 국회정상화 여부가 주목된다. 국민회의·자민련의 여권은 8일 한나라당에 “등원을 거부할 경우 13일부터 본격적인 국회 단독운영을 하겠다”는 朴浚圭 국회의장 명의의 ‘최후통첩’을 보냈다.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도 “등원에 어떤 조건이나 형식,명분은 필요치 않다”는 입장을 제기,빠르면 다음주 중반인 14∼15일쯤 국회가 정상화 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이날 오후 朴浚圭 의장 사회로 국회 본회의를 열어 소속의원들의 5분발언을 통해 야당의원들의 조속한 국회복귀를 촉구했다. 양당은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 아들의 병역비리(兵風),국세청 불법모금사건(稅風),판문점 총격요청사건(銃風)등 이른바 ‘삼풍 사건’에 대한 한나라당의 사과와 등원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한나라당 李총재는 8일 의원총회 인사말을 통해 “국민의 대변기관이 될수 있다는 상황이라고 생각할 때는 언제든지등원할 것이며 등원에 어떤 조건이나 형식적인 명분은 소용이 없다”고 말해 등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야당총재를 국정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 정권을 국정의 책임자로 인정할 수 없고,나아가 정권의 퇴진운동까지 연결될 수 있다”고 주장,대여(對與)강경투쟁 노선을 견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 與,단독국회 본격 운영/한나라 의원 등원 압박… 본회의 속개

    ◎국감·예산안처리 등 의사일정 마련 여권은 8일 오후 본회의를 속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단독국회 운영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이날 법안처리 등은 하지 않고 산회했다. 한나라당내 일각에서 국회등원론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경색정국이 풀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은 하지만 한나라당이 국회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오는 13일부터 여당 단독으로 국회를 정상화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이에따라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이날 본회의에 앞서 국회에서 합동의원 총회를 열어 단독국회 운영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한나라당이 시급한 개혁과제를 외면하고 거리정치에 몰두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야합의에 의한 국회운영은 불가능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국회에 등원,국정심의에 동참해 줄 것”을 한나라당에 촉구하는 ‘정기국회에 임하는 결의문’도 채택했다. 국민회의 金榮煥 의원은 합동의원 총회에서 “세풍과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은 국기문란 사건으로 타협과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이들 사건은 검찰에 맡기고 민생현안처리를 위해 국회를 열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앞서 국민회의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당무위원·지도위원·의원 연석회의를 열어 ‘세풍(稅風)’과 ‘판문점 총격 요청 사건’과 관련,한나라당에 대한 공세의 목소리를 높였다. 朴光泰 의원은 “적과의 내통을 통해 선거에서 이기려했던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는 무조건 국민앞에 사과하고 정치권을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권은 이미 단독국회 운영을 위한 일정을 잡아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안은 ▲오는 13일 본회의를 속개,국정감사 시기 결정 ▲16일 본회의에서 국정감사 대상기관 승인 ▲17일부터 25일까지 상임위활동 ▲26일부터 11월7일까지 13일간 국정감사 ▲11월9일 정부측의 예산안에 대한 시정 연설 ▲11월10일부터 12일 교섭단체 연설 ▲11월13일부터 18일 대정부질문 ▲11월19일부터 30일 상임위및 예결위활동 ▲12월1일부터 2일 예산안처리로 짜여있다. 물론 한나라당이 등원한다면 의사일정은 새로 짜여질 것이다.
  • “정치 공백 우려”/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

    전국 시장 군수·구청장협의회는 23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회장단회의를 갖고 여야간 공방으로 빚어지고 있는 정치공백 현상에 우려를 표명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경제회복에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점에 정치권에서 공방이 그치질 않아 산적한 민생현안법이 제때 처리되지 못하는 등 개혁의 법적 뒷받침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 우려를 금치 못한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제2의 건국운동’에 적극 동참하고,경제난국 타개와 실업자 구제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지방자치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와 재정확충을 위한 세제개편을 추진할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지금까지 임의단체였던 ‘전국 시장·군수 구청장협의회’는 행정자치부가 추진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통해 법적 단체로 인정을 받게 돼 앞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의 공식 협의창구 역할을 하게 된다. 이날 회의에는 鄭興鎭 종로구청장(서울지역 구청장협의회 회장),柳德烈 동대문구청장,金忠環 강동구청장,黃大鉉 대구 달서구청장 등 지역대표 13명이 참석했다.
  • 親日의 군상:7­2/尹致暎家의 빛과 그림자(정직한 역사 되찾기)

    ◎독립협회 회장 尹致昊/현실 비관… ‘대세 순응주의’ 빠져 민족 외면/日·中·美 유학한 대표적 선각자의 한사람/105인사건 연루뒤 ‘친일전향’ 조건 출옥/日 귀족원 의원까지 역임… 끝내 반성 안해 좌옹(佐翁) 尹致昊(1865∼1945년·창씨명 伊東致昊)는 개화기의 대표적 지식인 중 한 사람이다.그는 조선인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자 중국·미국에서 유학한,당시로선 드문 식견가였다.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그는 조선(한국)의 잠재역량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데다 식민지라는 ‘상황논리’에 빠진 나머지 결국 일제와 타협하고 말았다.그의 친일은 갑작스런 변신이 아니라 해외유학 경험을 통한 자기확신에서 비롯한 것이다.그의 친일 행적보다도 친일 논리에 눈길이 쏠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尹致昊는 신식군대 별기군(別技軍) 창설의 주역 尹雄烈(1840∼1911년)의 장남으로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본관은 해평(海平).부친은 무관이었지만 일찍 개화에 눈뜬 사람으로 그의 진로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尹致昊의 첫 유학지는 일본.1881년 일본의 신문물 견학차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의 일원으로 파견된 것이 계기였다.그는 조사(朝士) 魚允中의 수행원으로 따라갔는데 당시 나이는 17세로 일행 62명 중 막내였다.3개월간의 시찰을 마친 후 그는 귀국치 않고 兪吉濬 등과 함께 일본에 남아 신학문을 공부하였는데 이들이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 된다. ○신사유람단 따라 日 시찰 그는 일본 외무경 이노우에(井上馨)의 소개로 중등 과정의 사립학교인 동인사(同人社)에 입학하였다.그는 여기서 일본어와 영어를 공부하였다.이 시절 金玉均 등 국내 개화파 인사는 물론 일본인 개화파 인사,재일 외국인 외교관들과도 교류하며 국제 정세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2년간의 일본생활은 그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아! 슬프다.조선의 현상이여,남의 노예보다 더 심한 처지에 있으면서 어찌 진작(振作)하려 하지 않는가” 당시 그의 눈에 비친 조국의 현실은 이러했다. 1883년 5월 그는 초대 주한 미국 공사(公使)로 부임하는 푸트의 통역관으로 귀국하였다.그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주사(主事)로 임용돼 통역과 공문서 번역 일을 보면서 개화파 인사들과 친분을 쌓아갔다.하지만 개화파 인사들의 급진적 개혁론에는 찬동치 않는 입장이었다.그러나 이들과의 친분 때문에 갑신정변 실패 후 공모자로 몰려 상하이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1885년 상하이로 간 그는 현지 미국 총영사의 알선으로 중서서원(中西書院)에 입학하였다.이 학교는 미국 감리교 선교사 알렌이 설립한 미션 스쿨로 그는 여기서 3년반 동안 수학했다.그러나 원치 않았던 상하이생활 초창기 그는 한동안 술과 여자로 방황의 세월을 보냈다.망명객의 울분과 20대 초반 객지생활의 외로움이 겹친 것이었으리라.그의 방탕한 생활은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막을 내렸다.상하이에서 3년반을 보낸 후 그는 청나라를 ‘더러운 물로 가득 채워진 연못’으로 비유했다.반면 일본은 그에게 ‘동양의 한 도원(桃 園)’이었다. 미국 유학은 그에게 또 하나의 자극이었다.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미국의 ‘위대함’을 목격하고는 미국은 일본보다도 한수 위의 나라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같은 생각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로 깨지고 말았다.그가 강대국 미국·러시아를 제치고 친일로 나선 데는 미국에서 경험한 인종적 편견이 작용한 면이 없지 않다.러일전쟁 무렵 그는 ‘황인종단합론’을 들고 나오는데 이는 당시 일본의 대륙침략자들이 주창한 ‘아시아주의’‘동양평화론’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민족패배주의에 빠져 尹致昊가 친일로 나선 것은 ‘105인사건’(소위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사건’)이 계기다.한일병합 2년 뒤인 1912년 일제는 식민통치의 걸림돌인 민족운동세력과 기독교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이 사건을 조작했었다.그는 이 사건에 연루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15년 2월13일 친일 전향을 조건으로 출감했다.출감 후 첫 기자회견에서 그는 ‘일선동화(日鮮同化)’를 부르짖었다.“…이후부터는 일본 여러 유지 신사와 교제하여서 일선(日鮮)민족의 행복되는 일이든지 일선 양민족의 동화(同化)에 대한 계획에는 참여하여 힘이 미치는 대로 몸을 아끼지 않고 힘써볼 생각이다”(‘매일신보’,1915년 3월14일) 그가 변절한 직접적 요인은 가혹한 고문과 일제의 강요였다.그러나 그 내면에는 오랜 사상적 기반이 모태가 됐다고 볼 수 있다.‘개화기의 尹致昊 연구’의 저자 柳永烈(숭실대 사학과) 교수는 “개화기 이후 그의 의식 속에 잠재돼 있던 ‘민족패배주의’와 현실적으로 일본의 조선 통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대세순응주의’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충량한’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 변신한 尹致昊의 친일 행보를 따라가보자. 1919년 ‘3·1만세의거’ 직전 그는 민족대표로 참여할 것을 제의받았으나 거절했다.그리고는 의거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강자와 서로 화합하고 서로 아껴가는 데에는 약자가 항상 순종해야만 강자에게 애호심을 불러일으키게 해서 평화의 기틀이 마련되는 것입니다”(‘경성일보’,1919년 3월7일)라며 약자인 조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제에 순종하는 길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일제가 선전하던 ‘조선독립불능론’‘투쟁무용론(無用論)’ 등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그의 친일논리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다. 1920년대 들어 그는 일제의 ‘문화정치’ 선전과 청년층의 반일 동향을 억제하는 데 이용된 교풍회(矯風會)의 회장을 맡는 등 각종 친일단체에서 일제의 식민정책 선전에 주력했다.당시 그는 민족개량·애국계몽운동을 펼치고 있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는 일제 통치를 수용하는 범위 내에서의 타협적 민족운동이었다. ○학병 참가 전국 순회 강연 그의 친일은 중일전쟁 발발(1937년 7월7일)을 계기로 강도를 더해갔다.총독부 주최 시국강연반의 연사로 전국을 돌며 순회강연을 하는가 하면 이듬해 1938년 육군특별지원병제가 실시되자 이는 ‘내선일체(內鮮一體)에 합당한 조치’라며 환영하였다.또 그해 7월 ‘황국신민화’의 실천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상무이사로 선정돼 창립총회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삼창(三唱)하기도 했다. 1941년 ‘대동아전쟁’ 때는 전시결전단체인 임전대책협의회에 참가하여 ‘우리는 황국신민으로 일사보국(一死報國)의 성(誠)을 맹서하여 협력할 것을 결의함’이라는 결의문을 낭독하였다.징병제에 이어 1943년 학병 동원이 시작되자 ‘조선 학도들에게도내지(內地·일본)동포들과 어깨를 겨누어 싸움터로 나설 수 있는 영광스런 길이 열렸다’(‘매일신보’,1943년 11월18일)며 학도들의 출진을 촉구하였다.이같은 공로로 45년 2월 그는 일본 귀족원의원에 선출돼 부친에 이어 2대에 걸쳐 ‘일본 귀족’ 반열에 올랐다. “…(일제하)조선인은 좋든지 싫든지 일본인이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일본 속국의 상태에서 그가 한 일로 누군가를 비난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질 않습니다….”사망(1945년 12월16일) 2개월 전 그가 남긴 글의 한 구절이다.지식인으로서의 ‘반성’은 차치하고 기독교인으로서의 ‘참회’ 한마디도 없다.독립협회 회장과 ‘독립신문’ 사장을 지낸 그가 해방 후 남긴 ‘자기 고백’은 겨우 이런 모습이다. ‘일본의 스코틀랜드화(化)’가 조선이 살 길이라며 일제의 ‘우호적인 식민통치’를 기대했던 그의 나약한 역사관이 결국 그를 친일의 길로 안내하고만 것이다. ◎尹致昊 일기/60년간 쓴 일기 시대상 상세히 담아/사생활도 솔직히 기록 ‘윤치호 일기(尹致昊 日記)’는 한말의 선각자 尹致昊가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60여년간에 걸쳐 기록한 개인적 메모.초창기 일기는 한문·국문으로,1889년 12월 이후부터는 영문으로 기록돼 있다. 일본·청국·미국 등 해외유학 시기의 ‘일기’에는 당시 그 나라의 발전상과 시국 상황,그리고 그곳에 체류중이던 한국인들의 동정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국내 체류기인 1883∼84년 당시의 ‘일기’에는 자신이 목격한 갑신정변과 개화당의 활동이 소상히 기록돼 있다.특히 일제 강점기 그가 국내에서 활동할 당시의 ‘일기’에는 자신의 입장과 국내 지식인들의 동향 등도 담고 있다. 이‘일기’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특히 尹致昊 인물연구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한 사람의 ‘일기’치고는 방대한 분량도 놀랍지만 자신의 행적도 비교적 솔직하게 기록했다. ◎‘尹致昊 일기’에 나타난 親日 어록 “만일 내가 살 곳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면 일본이 바로 그 나라일 것이다.…오,축복받은 일본이여!동양의 파라다이스여!세계의 정원이여!”(1893년 11월1일) “나는 국경일에 일장기의 게양을 반대하지 않는다.왜냐하면 우리가 일본의 통치하에 있는 한 우리는 그 통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1919년 10월1일) “일본은 동양에 있어서 백인 지배의 마력(魔力)을 깬 데 대하여 모든 황인종의 영원한 감사를 받을 만하다” (1941년 12월26일) “우리는 조선의 청년을 영광스런 일본 해군의 자랑스런 대열에 받아들인데 대해 감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1943년 5월12일)
  • 美,전략 폭격기 6대 괌 급파/‘北 미사일’ 초강수 대응

    ◎日 “재발방지 강력 외교 전개”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미국과 일본의 대응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상원이 2일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엄격히 제한하는 결의안을,일본 의회는 북한에 강력 대응할 것을 내각에 촉구하는 결의안을 각각 채택했다. 이는 양국의 북한에 대한 초강경 자세를 예고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미 상원은 이날 공화당의 존 맥테인 의원이 발의한 ‘북한 재제결의 수정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의결했다. 수정안은 북한이 핵무기의 획득과 개발을 추구하지 않고 국무부의 테러 명단 국가에게 탄도 미사일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행정부가 입증해야만 3,000만달러 규모의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 예산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북한이 핵시설 의혹과 미사일과 관련,가시적인 조치를 보여주지 않는 한 연간 50만t의 중유 공급 등 KEDO 지원이 중단돼 제네바협정 이행이 어렵게 된다. 일본 중의원과 참의원은 3일 각각 “북한의 (미사일 발사)행위는 일본의 안전보장상 지극히 중대한 사태로 정부는 북한이 이런 행위를 반복하지 않도록 강력한 외교를 전개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한편 미 공군은 B2 스텔스 폭격기 3대와 B52 폭격기 3대 등 6대의 전략 폭격기를 일본의 괌기지로 파견키로 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폭격기들은 공중 급유기와 함께 5일쯤 괌기지에 도착해 30일가량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NBC TV는 이번 폭격기들의 이동은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북한에 대한 경고용이라고 보도했다. ◎美 상원 결의안 파장/미·북 ‘핵동결 협정’ 파기 가능성/KEDO관련 예산 핵·미사일까지 연계/클린턴행정부 대북정책 경직 우려 【워싱턴=崔哲昊 특파원】 미국 상원의 북한에 대한 제재 결의안은 의회 차원의 응징이 본격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94년 체결된 미국과 북한간의 제네바 핵동결 협정의 이행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된다. 결의안은 3,000만달러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예산을 승인하면서 지하 핵시설과 미사일에 대한 의혹과 미국 등의 요구 수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특히 이를 입증하기 위해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의회에 출석,북한의 핵동결협정 이행상황 등을 브리핑하도록 하고 있다. 의회의 이번 제재안은 미·북 핵합의 이행과 관련한 예산 지원을 미사일에까지 연계시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언젠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지도 모를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대한 의회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제재안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앞으로 하원의 독자안 채택과 양원 합동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상·하원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클린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미국 의회의 분위기가 급속히 경직되고 있다는 점이다.상원의 결의안은 공화당 뿐만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도 전원 동참해 초당적 지지속에 통과됐다. 하원의 경우에는 대북 제재문제에 대해 상원보다 더욱 강경한 분위기라고 관측통들은 전하고 있다.이미 봅 리빙스턴 세출 위원장과 벤저민 길먼 국제관계위원장 등은 미·북 핵합의이행 파기와 대북 예산지원중단 등을 주장하면서 클린턴 행정부에 강력한 북한 정책을 촉구하고 있다. 때문에 행정부로서는 앞으로 의회 강경론을 누그러 뜨리면서 북한과의 핵합의가 파기되지 않도록 설득해 나가야 하는 부담을 안게됐다. ◎日 정부 제재 어디까지/최악경우 조총련계 자산 동결/항공기이어 선박도 운항금지 검토/북 왕래 제한땐 경제적고립 불가피 【도쿄=黃性淇 특파원】 일본 정부의 북한에 대한 갖가지 제재조치의 수위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최악의 경우 일본내 조총련계의 자산을 동결하는 방안까지 점쳐지고 있다. 이같은 전망은 우선 북한에 강력 대응을 촉구하는 의회의 결의문 채택에서 감지된다.일본 정부는 실제로 2일에는 북한을 이어 주던 전세기 직항 항공편의 운항을 전면 중단시켰다. 일본이 다음 단계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북한 선박의 입항제한.운수성은 이미 항만법 등 관련 법령을 검토,제재 방법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과의 왕래를 크게 제한하려는 의도다.일본에서는 매년 1,600여명이 북한을 방문하고 있고1,000명정도는 항공편을 이용하지만 600여명은 선박편을 이용하고 있다.같은 맥락에서 북한 입국자들의 재입국을 제한하는 방안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위력을 발휘할 초강경조치는 조총련계의 북한 송금 금지와 자산 동결.북한은 당장 경제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힐 것이다.조총련계는 매년 100억엔에서 많게는 600억엔까지 북한에 돈을 보내온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 시행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94년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유력하게 제기됐을 때도 검토되었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북한이 이날 미사일 발사는 ‘자주권의 문제’라고 성명을 발표하자 일본은 더욱 발끈하고 있다. 뉴욕의 유엔 대표부를 통해 북한에 엄중 항의했다.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관방장관은 “지극히 성의없는 견해”라며 “다시금 실험을 실시하지 않는다고 약속하고,미사일의 개발과 수출을 중지하도록 엄중하게 촉구한다”고 공언하고 있다.일본의 제재의 폭과 범위가 확대될 것을 점치게 한다.
  • 민주열사 열전:5/金景淑 YH무역 사원(정직한 역사 되찾기)

    ◎자본·독재 억압에 처절히 항거/빈농의 딸… YH무역 폐업 맞서 몸던져/노동자 권리 확보 ‘값진 희생’으로 빛나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던 79년 8월 11일 새벽 2시.세번의 자동차 경적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깼다. 순간 마포 신민당사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1,000여명의 경찰들이 4층 농성장으로 진입,곤히 잠들었다가 깨어 황망히 대피하려던 YH노조원들을 에워쌌다. 경찰은 여공들과 신민당 당직자들을 무차별 구타하며 한명씩 대기중인 ‘닭장차’에 쑤셔넣었다. 그러나 2시간여 전까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정상화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결의문을 읽던 金景淑 노조 상임집행위원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후 당사 뒤편 지하실 입구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을 거뒀다. 경찰은 그녀가 전경들이 진입하자 왼팔동맥을 끊고 투신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확한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경찰은 도시산업선교회를 사건 배후세력으로 지목하고 文東煥·印名鎭·徐京錫 목사,李文永 전 고대교수,시인 高銀씨 등을 구속했다. YH사건은 70년대 노동운동의 정점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金景淑 열사가 있었다. 70년대를 열며 全泰壹 열사가 노동운동의 암흑기를 깨고 그 싹을 틔웠다. 그 위에 70년대 노동운동의 기틀이 다져졌고 이를 지키려는 민주노조의 치열한 저항의 절정이 바로 YH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사건은 여야의 극한 대립을 불러와 당시 金泳三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 제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부산·마산사태,10·26사건이 터지며 유신독재는 막을 내렸다. YH노조 농성의 직접적 원인은 회사의 일방적인 폐업방침을 철회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YH무역은 66년 재미교포 張龍虎씨가 100만원의 자본금과 10명의 종업원으로 시작한 가발수출업체였다.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70년 4,000여명의 종업원을 둔 국내 최대 가발업체로 성장했다. 한 밑천 잡은 張씨는 동서 秦東輝씨에게 사장자리를 물려주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미국 지사를 통한 무역을 구실로 여공들이 피땀흘려 만든 가발 300만달러어치를 미국에서 처분,그 대금으로 현지에서 백화점과 목장,빌딩 등을 구입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秦씨도 YH무역에서 얻은 수익금으로 해운회사를 차려 회사를 떠났다. 거기에 가발수출업이 사양화하고 석유파동이 겹치면서 회사는 79년 4월 폐업공고를 내기에 이르렀다. 76년 결성된 YH노조는 청계피복노조,동일방직노조 등과 함께 몇 안되는 ‘민주노조’중 하나였다. 당시 사회운동의 큰 쟁점거리이기도 했던 ‘민주노조’는 대부분의 산별·단위노조가 어용화한데 비해 노동자 권리를 위해 독자적 활동을 하는 노조를 의미했다. 金景淑씨는 YH무역에 민주노조가 있는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景淑이처럼 똑부러지게 일하고 노조활동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어려운 생활중에도 항상 명랑했고 후배들이 무척 따랐지요” 당시 노조사무장이던 朴泰連씨(44·주부)의 회고다. 그녀는 전형적인 빈농의 딸이었다. 세마지기의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빚보증을 잘못 서 그나마 날려버리고 광주시내에서 행상을 하다 그녀가 8세때 세상을 등졌다. 어머니가 날품을 팔아야 했기에 그녀는 세살 터울의 남동생 俊坤씨(38)를 돌보며 자랐다. 국민학교 5학년부터 방학때면 누에고치 공장에 다니며 돈을 벌다가 73년 15세가 되던 해 상경했다. 그녀는 일기에서 “내가 배우지 못한 공부를 가르쳐서 동생만은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었다”고 당시의 심경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기대했던 서울생활은 한낱 꿈에 불과했다. 지독한 저임과 그나마도 떼어먹는 악덕기업주들이 많았던 것. 그때부터 모순덩어리의 사회에 눈을 뜨기 시작한 그녀는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젊고 싱싱한 나이에 우리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공장 안에서 여러 형태의 억압을 받으며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혼탁한 먼지 속에 윙윙거리는 기계소리를 들으며 어언 8년동안 남은 것은 병밖에 없다.…” 20여년이 지난 오늘 YH사건과 金景淑 열사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당시 석유파동으로 인한 극심한 불황과 오늘의 IMF사태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긴 경제적 고통의 터널은 닮은 꼴이다. 그때 자본세력과 결탁한 독재정권은 폐업·해고 등으로 그 부담을 주로 노동자들에게 지우려 했다. 金景淑씨는 그것에 저항한 격렬한 투쟁 속에 희생된 ‘한떨기 꽃’이었다. 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오늘의 자본세력도 임금을 낮추고 정리해고를 실시하고 있다. 고도성장을 위해 희생한 노동자들은 오늘의 IMF위기에서도 가장 큰 희생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YH사건과 金景淑 열사의 죽음은 결코 지나간 과거의 일일 수만은 없다. ◎유가족·동료들은 지금…/모친 최영자씨=아직도 딸 가슴에 묻고 ‘회한’/동료 최순영씨=법률상담소 내 권익보호 앞장 “아무것도 모르고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해부렀지” 어머니 崔英子 여사의 회한의 넋두리다. 崔여사는 딸이 죽고 이틀후 강남시립병원에서 죄인마냥 ‘3분만’에 장례를 치러야 했다. 뼛가루마저도 무등산자락에 뿌렸다. ‘딸이 큰 죄를 지었다’고 하는 경찰이 시키는 대로 한 것. “너무 억울하고 불쌍하게 갔어요. 야무지고 착해 모두들 며느리 삼고 싶다고 했는데…” 崔여사는 지금도 돈많이 벌어 동생 학비 대려면 서울로 가야한다고 말하던 딸의똘망똘망한 눈망울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야 딸이 월급을 제대로 못받아 풀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동생학비와 생활비를 보냈다는 것을 알고 통곡했다고. 누이가 보내준 돈으로 전남기계공고를 다녔던 俊坤씨는 “그때는 잘 몰라 누이가 불쌍하기만 했지만 지금은 자랑스럽다”고 했다. 결혼해 딸 셋을 두고 있으며 광주 금호타이어에 다니고 있다. 당시 구속됐던 노조지부장 崔淳永씨와 사무장 朴泰連씨는 부천지역 여성노동자회 회장을 차례로 맡는 등 노동운동가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崔씨는 또 부천시의회 의원을 지내고 현재 가정법률상담소를 내 여성노동자들의 권익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강제 귀향조치됐던 230여명의 여공들은 대부분 가정주부가 됐고,87년부터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 당시 배후 ‘불순세력’으로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던 徐京錫·印名鎭·文東煥·高銀·李文永씨는 그 이후에도 활발하게 인권·통일·민주화 운동을 벌였으며 다시 감옥에 가기도 했다. ◎동료 崔淳永씨 인터뷰/“모순된 시대상황 고발”/독재정권에 우리 힘 과시… 민주노조 존재 확인/“폐업 철회 아니면 죽음을” 혈서 보고 모두 놀라 “景淑이의 죽음은 모순적 시대상황에 대한 고발이었고 민주노조의 존재 확인이었지요” 당시 노조지부장이었던 崔淳永씨(46)는 “독재정권이 그렇게도 깨뜨리려는 민주노조의 힘이 결코 약하지 않음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YH사건에 의미를 부여했다. 崔씨는 당시 농성하는 노조원들도 이미 폐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면서,“그러나 민주노조를 깨뜨리기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金景淑 열사의 투혼은 무서웠다고 한다. 4월 농성을 처음 시작할 무렵 그녀는 ‘폐업철회 아니면 죽음을’이란 혈서를 써서 노조회의에 들고 나와 모두를 놀라게 했다고. 또 “어차피 깨지는 싸움이지만 우리를 주목하고 있는 다른 민주노조들을 위해 순순히 물러나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농성장소를 신민당사로 옮긴 것도 사건을 최대한 공론화하여 정권에 큰 부담을 주려는 의도였다고 했다. 崔씨는 경찰이 배후세력으로 도시산업선교회를 지목하고 그들의 지시를 받아 자살조까지 만들었다는 등 터무니 없는 사실을 조작해 순수한 여공들을 욕보였다고 분개했다. 또 여공들을 각 도별로 버스에 태워 강제 귀향시키고 부모에게는 협박조로 ‘딸조심’을 시켰다고. 이로 인해 얼마간 대다수 여공들이 ‘가택연금’을 당했고,부모에 의해 ‘강제로’ 결혼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崔씨는 뒷얘기를 소개했다. □金景淑 열사 연보 ▲1958년 전남 광산군 비야면에서 출생 ▲1965년 아버지 김용귀씨 병으로 사망 ▲1972년 광주 남국민학교 졸업. 누에고치 공장에서 일함 ▲1973년 상경. 한풍섬유 태진산업 등 봉제공장에서 미싱사로 일함 ▲1976년 YH무역 입사 ▲1977년 노조가 세운 야학 ‘녹지중학’입학해 2년후 졸업. 검정고시 준비 ▲1978년 노조 소그룹 ‘차돌이’ 그룹장으로 활약 ▲1979년 8월11일 새벽 농성 진압중 신민당사 뒷편 지하실 입구에서 쓰러진채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2시30분 쯤 숨짐.
  • 金 전 대통령·전 부총리 등 42명/청문회때 증인채택 건의키로

    ◎국민회의 당무위 결의 국민회의는 26일 문민정부의 경제실정과 방송정책의 난맥상을 규명하기 위한 경제청문회와 방송청문회를 10월 중순부터 1개월간 실시키로 하고 당무위원 명의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국민회의는 이날 결의문에서 “현재의 국난을 초래한 책임소재를 성역없이 밝혀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이와관련,국민회의 경제청문회 실무팀은 ‘경제파탄 국정조사계획안’을 작성,金泳三 전 대통령,高建 전 총리,姜慶植 林昌烈 전 경제부총리,金仁浩 金永燮 전 청와대경제수석 등 문민정부 경제팀 수뇌부,金瑢泰 전 청와대비서실장,李經植 전 한은총재 등 전현직 고위공직자,金善弘 전 기아그룹회장,趙東晩 전 한솔PCS부회장 등 42명을 청문회 증인으로 선정토록 건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팀은 또 鄭周永 현대,李健熙 삼성,具本茂 LG 등 주요 재벌의 총수들도 참고인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했다. 방송청문회 실무진들도 문민정부 당시 청와대 공보수석,공보처장관,신문방송국장,담당과장 등 방송허가정책 결정권자,방송허가 심사위원,방송사업자 신청업체,로비의혹이 있는 정계,재계,학계,방송계 관계자들을 청문회의 증인 또는 참고인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견해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문민정부 방송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金泳三 전 대통령의 둘째아들 賢哲씨의 증인출두 여부가 주목된다.
  • ‘군대위안부’ 처벌지침 내년 마련/유엔인권소위

    ◎맥두걸보고서 국제기구 배포 제 50차 유엔 인권소위는 22일 “전시에 행해진 성폭력행위를 비롯해 강간 및 성적 노예행위는 비난받고 처벌해야 한다는 일반적으로 인정된 견해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결의문은 군대위안소를 ‘강간센터(rape center)’로 표현할 만큼 일제의 군대위안부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던 맥두걸 최종보고서의 내용에 비하면 우리에게 실망스런 면도 없지 않다. 맥두걸 보고서가 제출된 직후 인권소위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일본이 맥두걸 보고서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아무리 민간전문가로 구성돼 정부의 입김을 최소화했다는 인권소위이지만 일본정부의 이같은 반발과 다각도 로비공세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96년 이후 국제사회의 관심에서 멀어져왔던 군대위안부 문제를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려 놓았다는 점으로도 이번 인권소위는 충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對北 인권조사 허용 촉구/유엔인권소위 결의문

    유엔 인권위원회 소위는 19일(현지시간) 제네바에서 국제 인권감시기구가 북한의 인권상황을 조사하도록 북한 당국이 허용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고 외교통상부가 밝혔다. 李揆亨 국제기구정책관은 20일 “국제인권소위의 결의문은 프랑스 출신인 루이 주아네 위원의 주도로 발의됐으며 전체회의에서 찬성 19,반대 4,기권 1표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채택됐다”고 전했다. 유엔 인권소위가 북한 인권상황과 관련한 결의문을 채택한 것은 작년에 이어 두번째다.
  • 日 위안소 운영 조직적 전쟁범죄/유엔인권위소위 보고서

    ◎日 정부·방치한 고위인사 법적 책임져야 2차대전 당시 일본 정부의 군대위안소 설치문제가 2년만에 다시 유엔 차원에서 다뤄지게 됐다. 외교통상부는 13일 군대위안부 문제가 포함된 ‘전시 조직적 강간,성적 노예 및 이와 유사한 행위에 관한 게이 맥두걸 특별보고관의 최종보고서’가 이날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 차별방지·소수자보호 소위(인권소위)에 제출됐다고 밝혔다. 유엔에서 군대위안부 문제가 논의된 것은 96년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특별보고관의 보고서에 따라 인권위에서 결의문을 채택한 이후 이번이 두번째다. 미국의 여류 인권변호사 맥두걸의 이번 보고서는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 비해 강도 높게,또 포괄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접근했다. 맥두걸은 일본의 군대위안부 동원 행위를 명백한 강간으로 규정,‘위안소(Comfort Station)’라는 명칭을 ‘강간센터(Rape Center)’로 바꿨다.이와 함께 군대위안부 동원에 대해 인도에 반한 범죄라고만 지적한 쿠마라스와미와는 달리 맥두걸은 노예제 및 노예거래,전쟁범죄로서의 강간이란 죄목을 추가했다.또 이런 범죄는 국제관습법상 보편적 관할권을 가지므로 일본이 아닌 다른 국가도 재판권을 가지며 시효도 없다고 밝혔다.그리고 정부와 범죄를 저지른 개인,이를 방치한 고위인사도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보고서의 가장 큰 의미는 무엇보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의 개입을 권고한 부분이다.다시 말해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이 일본 정부와 함께 국제패널을 설치,피해자 확인과 배상수준 결정 등 군대위안부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나서라는 것이다. 유엔인권소위는 맥두걸 보고서에 대한 토론을 거쳐 빠르면 다음주 초 결의문을 채택할 예정이다.하지만 맥두걸의 강력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인권소위 결의문의 수위가 과연 어느 정도일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 강간 센터/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 인권위원회에 13일 제출된 맥두걸 보고서는 일제(日帝)의 군위안부 동원문제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평가할 만하다. ‘전시 조직적 강간,성적 노예 및 이와 유사한 행위에 대한 최종보고서’란 제목의 이 보고서는 일제의 군대위안소를 ‘강간센터(rape center)’라고 규정했다.기왕의 관련보고서나 언론보도의 영어 표현이 ‘매춘집(brothel)’이었던 것에 비하면 일제 군위안부 문제의 핵심을 이해한 명료한 용어선택이다. 보고서는 또 일본정부는 법적 책임을 지고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하며 국제적으로 끝까지 책임자를 체포,처벌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촉구했다.“유엔은 군대위안소 문제와 관련해 책임있는 모든 사람들을 끝까지 찾아내 기소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일본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체계를 정비하고,배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패널을 설치해야 하며,일본정부는 1년에 두차례 유엔 사무총장에게 구제조치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이 직접 나설 것을 권고했다.피해자에 대한 경제적 보상으로 문제를 얼버무리려 하고 있는 일본 여성기금의 부적절성도 지적했다. 일본은 이 보고서의 정신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지난 96년 유엔차원에서 처음으로 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와 유엔인권위의 결의안을 유야무야 넘겼던 것처럼 이번에도 적당히 피해가려 해서는 안된다.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책임있는 국가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맥두걸 보고서의 권고를 따라야 한다. 최근 나카가와 쇼이치 일본 농수산부 장관의 위안부 관련 망언과 이를 둘러싼 일본 보수언론의 태도를 보면 일본의 성실한 자세를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따라서 유엔은 맥두걸 보고서를 원안 그대로 채택하고 군위안부문제 해결에 적극 개입해야 할 것이다.지난 96년 일본의 강력한 로비에 밀려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유엔인권위의 위안부 관련 결의문이 부속문서 형식으로 채택됐을때 일본이 ‘승리자’인양 하고 있다고 제네바 발(發) 외신이 보도했음을 기억해야 한다.당시 일본 외무성은 결의문에 ‘만족’을 표시했고 일본의 일부 언론은 “유의한다”는 표현을 들어 “사실상 불채택”이라고 해석했다.이번에도 그와 같은 결과를 빚어서는 안될 것이다. 전쟁중 성적노예 범죄는 지나간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문제임을 유엔과 국제사회는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끔찍한 집단강간이 자행된 알제리 내전과 동티모르사태는 일제의 군위안부 문제가 철저하게 청산돼야 하는 이유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 “금품수수·브로커 고용 않겠다”/변협 자정결의

    ◎전관예우 금지 등 모든 법조비리 추방 변호사들이 최근 잇딴 법조계 비리에 대한 반성과 함께 IMF 체제에서의 위상 재정립을 선언했다. 10일 서울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대한변협(회장 咸正鎬)의 ‘제10회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에 참석한 변호사 550여명은 “신뢰받는 변호사로 거듭나기 위해 자기 정화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IMF라는 총체적 위기를 초래한 요인 가운데 변호사를 포함, 사회지도층의 이기주의와 안일한 타성 등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에 통감한다”면서 “뇌물·향응·급행료 등의 금품수수 비리,브로커 고용,불성실한 변론과 과다 수임료 등 법조 부조리 일체를 추방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전관예우 금지,변호사등록 거부사유확대,징계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변호사법과 변호사 윤리규칙 개정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힘쓰기로 했다. 비리 법조인의 영구추방 등 자체 정화활동도 강화할 방침이다. 이날 대회에는 咸회장을 비롯,윤관 대법원장,金容俊 헌법재판소장,韓勝憲 감사원장서리,朴相千 법무부장관 등 각계인사와 변호사 등이 참석했다. ◎변협 자정결의문 요지 1.뇌물·향응·실비·촌지·급행료 등 일체의 금품수수비리,사건수임 과정에서의 브로커 사용 등 수임비리,불성실한 변론과 과다 수임료 등 법조 부조리 일체를 철저하게 추방할 것이다. 2.전관예우 금지,변호사등록 거부 자유 확대,징계강화 등을 포괄하는 변호사법 개정,변호사 윤리규칙개정 등 관계법령의 개폐를 적극 추진하고 비리 법조인의 영구추방 등 자체 정화활동을 더 한층 강화,법조비리가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3.최근 빈발하고 있는 화의·회사정리·파산 등 도산관련 사건,부당노동 행위구제 등 노동관련 사건,임대차 분쟁·부도 등 민생관련 사건 등에 관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법적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4.소외된 사람들의 인권과 삶의 질을 먼저 생각하는 공존의 사회를 이룩하는데 항상 앞장설 것이다. 5.이러한 노력을 총체적 부패구조 추방운동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사회·시민단체 등과 연대,지속적인 노력을 펼쳐 나갈 것이다.
  • 국회정상화 해법찾기 여야 표정

    ◎野 비난 의총·단독국회 소집 힘겨루기/국민회의­野 국회 불참… 일괄타결 원칙 재확인/자민련­빅딜 보류… 총재단회의서 당론 확정/한나라당­국회 열어 불법선거사례 등 총공세 ‘7·21 재·보궐선거’를 마친 여야는 23일 ‘국회 정상화’를 위해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여야간 힘겨루기의 기운도 물씬 느껴졌다. ▷여당◁ 여야 총무회담을 하루 앞두고 의원총회를 열어 당의 입장을 최종 정리했다. 韓和甲 총무는 “늦어도 8월초 국회 문을 열어 국회의장단 선출 등 원구성을 하겠다”고 밝혔다. 의원들도 결의문에서 “야당이 의석의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국회를 범죄인 도피처로 악용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25일 개회되는 한나라당 단독국회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韓총무는 의원총회 후 자민련 具天書 총무와 비공식 접촉을 갖고 의장단선출과 총리 인준안 처리 등 쟁점의 일괄처리 원칙을 재확인했다.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은 의총에서 “金大中 정부가 추진해온 개혁이 한나라당의 조직적 방해로 국민들에게 혼선을 준 측면이 있다”며일관성 있는 개혁을 역설했다. 의원들도 “국민회의가 개혁추진에 박차를 가하여 가시적인 결과를 반드시 도출하겠다”고 개혁의지를 가다듬었다. 자민련은 ‘국회의장’을 주고,총리인준을 받는 이른바 ‘빅딜’전략을 외견상 보류했다. 24일 총재단회의에서 결정하는 당론을 토대로 원내 전략을 확정,여야 총무협상에 나설 방침이다. 이에 따라 具天書 총무는 이날 국민회의 韓和甲 총무나 한나라당 河舜鳳 총무와의 공식 접촉을 자제했다. 그러나 具총무는 이날 하오 朴泰俊 총재에게 내부적으로 세운 원내 전략을 보고하는 등 당론 조정 작업을 벌였다. 이어 국회에서 원내 대책을 숙의하는 등 총무협상에 대비했다. ▷야당◁ 한나라당은 이번 임시국회를 위상강화의 계기로 삼는다는 복안이다. 국회 정상화에는 최대한 협조하되 ‘따질 것은 따지겠다’는 것이다. ‘여당 길들이기’의 성격이 짙게 배어 있다. 23일 재·보선 후 처음 열린 총재단회의에서 원내 대여 공세의 가닥을 잡았다. 총재단은 국회가 열리면 여권의 불법·부정사례 등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강력히 추궁키로 의견을 모았다고 金哲 대변인이 전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통합선거법 개정 작업에도 적극 반영할 방침이다. 총재단은 특히 “부산 해운대·기장을 보궐선거에서 자민련 朴泰俊 총재의 주도 아래 포항제철이 조직적으로 선거 운동에 개입했다”며 포철에 대한 국회의 국정조사권 발동을 요구키로 했다. 이와 함께 재·보선 직후인 22일 金寅基 동해시장 등 강원지역 4개 기초단체장이 탈당한 것과 관련,“여권의 명백한 야당파괴 공작”이라며 시·도별 규탄대회와는 별도로 국회 차원에서도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 “한국영화 홀대 극장엔 배급중단”/제작가협회 19개회원사 결의문

    ◎평일­방화 주말­외화 갖가지 편법행위 기승/스크린쿼터제 준수하라 영화제작자들이 한국영화를 홀대하는 영화관에는 앞으로 영화를 배급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회장 이춘연 씨네2000 대표)가 지난 6일 결의한 데 따른 것이다. 제작가협회는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평일에는 한국영화,주말에는 외국 영화라는 기이한 상영 방식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편법상영을 자행하는 극장에는 협회 19 회원사가 제작하는 모든 영화를 배급하지 않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제협은 이어 “대기업이 극장업에 참여하면서부터 시작된 이같은 횡포에 전 영화인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비판하고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관객 들과 함께 끝까지 싸워나가겠다”고 천명했다. 제협이 ‘영화배급 중단’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놓은 까닭은 일부 극장이 스크린쿼터제(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를 지키는 시늉만 하고 사실은 온갖 편법을 동원,외화 상영에 매달리기 때문. 대우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 씨네하우스 극장의 경우 지난달 26일 ‘고질라’를 개봉하면서 손님이 많은 토∼일요일에는 ‘고질라’를,평일에는 ‘여고괴담’을 상영하려고 했다. 그러나 ‘여고괴담’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가 그런 조건이라면 아예 상영을 중단하겠다고 해 양쪽 관계자간에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다. 현대가 운영하는 서울 명보플라자는 지난 5월16일부터 ‘찜’과 ‘바이 준’을 잇따라 개봉하고도 주말에는 ‘딥 임팩트’‘터뷸런스’등 외화를 집중 상영하는 얄팍한 상술을 발휘했다. 제협에는 1∼2년새의 흥행작인 ‘접속’과 ‘조용한 가족’(명필름)‘투캅스’시리즈(시네마서비스) ‘편지’(신씨네) ‘여고괴담’(씨네2000) ‘비트’와 ‘8월의 크리스마스’(우노) ‘창’(태흥) 등을 만든 영화사들이 모두 속해 있어,이번 사태의 결과가 주목된다. 한편 제협은 지난달 29일 문화부에 공문을 보내 영화관의 외화 편법상영 행위를 중단시키고 스크린쿼터를 준수케 하도록 각 지방자치단체에 촉구해 줄 것을 요청했다.
  • 재계,자율적 빅딜 결의/全經聯회장단

    ◎“구조조정 내년 상반기까지 매듭”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빅딜(대기업간 사업맞교환)을 포함,진행 중인 구조조정 작업을 늦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마무리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이날 하오 서울 힐튼호텔에서 金宇中 회장 주재로 가진 회장단 임시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현재 다양한 형태로 진행 중인 구조조정 작업을 늦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마무리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고 덧붙였다. 전경련의 이같은 입장 표명은 18일 정부가 대출 중단 방침을 밝히며 신속한 빅딜을 촉구한데 대해 기업 중심의 자율적인 빅딜을 주장한 것이아서 앞으로 정부와 재계간의 조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회장단은 이날 8개항의 결의문을 통해 ▲정부와 협력해 경제난국 극복에 솔선하고 ▲金大中 대통령과 합의한 5개 사항을 강도높게 추진하며 ▲늦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구조조정을 가시화해 새로운 기업상을 정립하고 ▲대량 실업과 기업의 부실화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전경련 孫炳斗 상근부회장은 간담회가 끝난 뒤 “빅딜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시너지 효과를 불러온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그러나 빅딜은 해당 기업이 결정할 문제이며, 시장경제원리와 기업의 자율에 따라야 한다”고 못박았다. 간담회에는 金 회장을 비롯해 15개 그룹 회장이 참석했다. 삼성 李健熙 회장과 현대 鄭夢九 회장은 선약,방북 등을 이유로 불참했다. ◎8개항 결의문 요지 1.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위한 대통령의 국가경영에 적극 동참하고 정부와의 협력, 재계의 화합을 바탕으로 경제난국 극복에 솔선한다. 2.대통령과 합의한 5개 사항을 충실하고도 강도높게 추진한다. 3.기업 구조조정의 성과를 금년 하반기, 늦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빠른 시일내에 가시화해 국민과 정부의 기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기업상을 정립한다. 4.시장경제의 원리와 기업자율의 원칙 하에 기업간 사업교환 및 합작, 인수·합병(M&A) 등을 적극 추진하다. 5.수출 증대와 설비 가동율 제고로 대량 실업과 기업의 부실화 방지에 최선을 다한다. 이를위해 금융기능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6.대·중소기업 협력 강화와 노사정 위원회의 대타협을 통한 사회 안정과 생산성 증대에 기여한다. 7.5대 기업이 중심이 되어 전경련이 선도적 역할을 수행한다. 8.향후 전경련은 국민과 정부의 요망 및 의견을 수렴해 새로운 진로와 방향을 모색한다.
  • 對與 전열 “이상없다”/한나라,합숙토론회뒤 원구성 촉구 결의

    ◎‘의원 빼가기’중단 요구… 여당전략 성토 한나라당이 대여(對與)투쟁의 전열을 가다듬었다. 천안 중앙연수원에서 합숙 토론회를 가진 한나라당은 18일 상경 직후 국회 본회의장에 다시 집결했다.15대 국회 후반기 원(院)구성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갖기 위한 모임이었다. 당초 본회의를 열어 원구성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여당이 거부하는 바람에 무산됐다.대신 본회의장은 여당의 ‘선(先)여대야소,후(後)원구성’전략을 성토하는 자리로 변했다. 특히 한나라당은 여당쪽이 오는 7월 임시국회를 다시 열어 후반기 원구성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자 “야당을 무시하고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처사”라며 강력 반발했다.단독으로라도 원구성을 강행하겠다는 태도다.시기는 이번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는 오는 23일 이전이다. 소속 의원들은 결의문에서 “여당의 원구성 거부로 국회는 20여일째 표류하고 있다”며 “현 정권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이며 도를 넘는 파렴치한 정권”이라고 비난했다.의원들은 ▲여권의 즉각적인 원구성과 민생법안 처리 ▲입법부 공백상태와 경제위기의 책임에 따른 여권의 대국민 사과 등을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앞서 중앙연수원에서 소속 의원 전원의 명의로 ‘정당정치 수호와 구당(救黨)을 위한 선언문’을 채택했다.선언문에서 한나라당은 “金大中정권이 반민주적 헌법 파괴적 독선과 독재를 중단하지 않으면 민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국민과 함께 총력 투쟁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한나라당은 주가 폭락 등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극한 투쟁은 가급적 자제한다는 생각이다.그러나 여권이 ‘의원 빼내가기’를 중단하지 않으면 의원직 총사퇴나 국회내 무기한 농성 등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 당선자대회 이모저모/대통령 “국정 총체적 개혁” 거듭 강조

    ◎朴泰俊 총재 賀客 참석 2與 공조 과시 국민회의는 16일 하오 서울 올림픽 펜싱 경기장에서 당 총재인 金大中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6·4 지방선거 당선자대회’를 열고 선거 승리를 자축하면서 정국안정과 경제난 극복을 위해 힘을 모을 것을 다짐했다. 金대통령은 특히 개혁의지를 강도 높게 거듭 천명, 눈길을 끌었다. ○…대회는 하오 1시55분 金대통령의 입장과 함께 시작됐다. 金대통령이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대회장에 입장하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힘찬 박수로 金대통령을 맞이했으며,金대통령은 오른손을 흔들며 참석자들의 환호에 답한뒤 천천히 단상으로 걸어가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대회는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을 비롯한 지도부,高建 서울시장 당선자,林昌烈 경기지사 당선자 등 당선자 1,500여명을 포함,4,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 30여분 동안 열띤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특히 자민련 朴泰俊 총재도 축하인사로 참석,‘여·여(與·與)공조’를 과시했다. 행사는 趙대행의 대회사,金대통령의 치사,자민련 朴총재의 축사,高서울시장 당선자의 인사말,林경기지사 당선자의 ‘국민에게 드리는 글’낭독,趙대행의 당선자 꽃다발 전달식의 순으로 진행됐다. 金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이번 미국 방문의 성과를 바탕으로 경제 구조조정을 비롯한 국정의 총체적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고 “지방선거 당선자들이 개혁에 앞장서 경제위기 극복과 지방자치 발전에 기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趙대행은 대회사에서 “이번 선거결과는 국민들이 金大中 정부에 대한 신임을 다시 보여준 것”이라면서 “선거결과에 안주하지 않고 金대통령의 개혁정책 노선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더욱 단결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참석자들은 林경기지사 당선자가 낭독한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국민에게 봉사하는 지방행정 실현 ▲金대통령의 국정운영 이념 구현 ▲투명하고 책임지는 지방행정 실현 ▲경제회생과 국민통합 노력 등 4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대회에는 지방선거 운동에 기여한 인기 탤런트 金수미씨 등이 趙대행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으며,가수 崔진희씨가 축가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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