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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생방송 단축,대체프로 투입/KBS사태 악화

    ◎일부 지방국도 동참…비상체제로/부장단도 “서사장 퇴진”동조/기술국 파업땐 방송중단 위기 사실상의 파업 및 농성 이틀째를 맞은 KBS사태는 회사측과 노조측이 팽팽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13일의 TV방송은 평소보다 약 40분이상 일찍 종료됐다. 1TV는 평소 30분이상 방송하던 「보도본부24시」를 약4분간 KBS사태를 비롯한 몇가지 중요 뉴스만 간단하게 보도하고 11시35분쯤 방송을 끝냈으며 2TV도 11시40분쯤 마쳤다. 이에앞서 1TV의 9시 저녁 뉴스는 중단없이 20분간 단축진행됐으며 KBS사태의 배경과 진행상황에 관한 리포트도 3분간 방송됐다. 이날 KBS사태에 관한 보도는 회사측이 노조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보도국소속 노조원들이 직접 제작한 KBS사태에 관한 리포트 2개가 각각 1분30초씩 방송됐다. 이어서 나머지 뉴스시간은 30분짜리 다큐멘터리로 채워졌으며 일부 프로그램은 정상대로 방송됐다. 그러나 지방총국 사원들의 대거 상경에 따라 각 지방방송국은 12일 낮부터 자체방송을 내보내지 못한채 서울의 방송을 그대로 중계하는 등 유례없이 파행적인 진행을 보였다. KBS사태는 이날 상오 부장단 3백50여명이 서기원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한데 이어 지방총국에서 올라온 1천여명을 포함한 노조원3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긴급사원총회에서 노조원들이 12일의 경찰개입 및 무차별연행에 항의,무기한 제작거부및 농성을 결의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못한채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이들은 각국실 사무실에서 제작을 거부한채 서사장이 퇴진할때까지 무기한 제작거부 및 농성에 들어갔으며 이번 KBS사태에 동참한 부산 대구 창원 강릉 춘천 전주 대전 광주등 8개 지국을 비롯,농성이 장기화됨에 따라 KBS 전체의 방송에 큰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송출기술국이 파업에 참여할 경우는 북한방송이 국내의 라디오로 무제한 청취돼게돼 심각한 국면 또한 예상되고 있다.
  • 김영삼­김종필위원 4시간30분 대좌 안팎

    ◎내분진화엔 일치…방법엔 이견/냉각기간 갖게 당인면담 자제 YS/김종필위원,박장관 퇴진요구 동참엔 난색/각파 주장조정 뒤 청와대 갈듯 JP 민자당의 김영삼최고위원이 12일 당내분 진정의 중재역을 자청하고 나선 김종필최고위원과 4시간30분여에 걸친 마라톤회동을 가졌으나 구체적 해결의 실마리는 찾지 못한 듯한 인상이다. 이날 회동에서 김영삼최고위원은 박철언정무1장관 사퇴 및 당지도체제문제 등에 있어 김종필최고위원이 자신의 입장에 동조해 주도록 끈질기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김종필최고위원은 박장관 사퇴요구동참등에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영삼최고위원은 우선 대외적으로나마 내분진정의 모습을 보이자는 김종필최고위원의 간곡한 호소를 받아들여 당인면담을 자제하는등 냉각기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또 김종필최고위원은 박태준최고위원대행등 다른 인사들과 연쇄접촉을 갖고 중재노력을 계속할 예정이어서 그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이날 마라톤회동을 끝낸 두 최고위원은 비교적 밝은 표정이었으나 『특별하게 할 얘기가 없다』며 말문을 꺼내 이날 장시간 요담에도 불구,주요사안등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견차가 노출되었음을 시사했다. 김영삼최고위원과 김종필최고위원은 『기자 여러분들이 왔으니 사진이나 찍자』며 포즈를 취한 뒤 김영삼최고위원은 『내가 먼저 갈테니 김종필최고위원에게 얘기를 들어보라』며 먼저 자리를 떴다. 김영삼최고위원은 『언제 청와대로 들어갈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분간 당간부들이나 당원들과는 절대로 만나지 않을 것이라』며 구체적 언급을 회피,공식적인 회동등이 다소 늦어질 것임을 시사했다. 이어 김종필최고위원은 『기자들을 따돌리려 했던 것은 앞으로 하는일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그랬던 것』이라며 『앉아서 할만한 얘기는 없고 몇마디만 하겠다』면서 거듭 중요현안에 대한 합의내용 등이 없었음을 암시했다. 김최고위원은 그러나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 기탄없이 하고 싶은 얘기 다 하고 듣고 싶은 얘기 다 들었다』고 지적하고 『좋은 당을 만들어 제대로 일해 나가는 당을 만들자는 데는 인식이 일치했으나 현실적 방법에 대해서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고만 설명했다. 김최고위원은 이어 『오늘 몇사람 만났고 또 계속 대화를 통해 고민하고 있는 일들을 해결토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하고 『이런 일들을 한 연후에 대통령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최고위원은 이어 『우리 레벨에서 해야 할 일을 먼저 한 뒤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 도리』라고 거듭 강조하고 『박태준대행과도 금명 만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최고위원은 『박장관의 거취문제는 어떻게 얘기됐냐』고 묻자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었고 방법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었다고 얘기하지 않았느냐』며 두 김최고위원간에 박장관문제를 놓고 상당한 견해차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김최고위원은 김영삼최고위원이 당분간 아무도 안만난다고 말한 부분과 관련,『자꾸 만나고 같은 계파끼리 모이면 여러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있어 의도적으로 피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한다』고 말했다. 김최고위원은 이어 당내분의 진정시기와 관련,『가급적 빨리 수습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해 이날 김영삼최고위원과의 회동을 통해 표출된 계파간의 이견등을 자신이 중간에서 적극 나서 조정할 것임을 암시했다. 이에 앞서 김영삼최고위원은 회동장소를 떠나면서 『내가 한 얘기대로만 써달라』고 주문하고 『어제 아침 기자들을 만났을 때 「어떤 정권이든 김영삼을 잠시 속일 수는 있지만 영원히 속일 수 없고 국민들을 잠시 혹일 수는 있지만 속일 수 없다」고 말했는데 일부 달리 표현됐더라』고 말해 민정계에 대한 불만이 삭여지지 않았음을 거듭 나타냈다. 김종필최고위원은 이날 하오 김영삼최고위원과의 회동을 마친 뒤 박태준대행과 시내 롯데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됐으나 박대행측으로부터 『언론기관이 이미 저녁회동 사실을 알고 있다』는 연락을 받자 박대행과의 회동일시를 추후 결정키로 한 뒤 측근인 김용환정책위의장등과 향후 대책을 숙의. 김최고위원은 이날 밤 청구동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날 김영삼최고위원과의 회동 성과에 대해 『매우 어려웠다』며 양자간 견해차가 컸음을 거듭 지적하고 『주말까지 당내분이 진정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대답대신 고개를 가로저어 당내분이 장기화될 것으로 우려하는 눈치. 김최고위원은 이어 『김영삼최고위원과는 함께 걱정해야 할 처지』라고 전제,『서로 조금씩 참고 온당하게 수습됐으면 좋겠다』며 YS의 반발 양보를 기대. 김최고위원은 이날 회동 결과에 대해서는 발표를 자신이 맡은 이유에 대해 『김영삼최고위원은 될 수 있는 대로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기분인 것 같더라』고 말하고 『자신의 계보사람도 만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더냐』고 부연. 한편 김영삼최고위원은 김종필최고위원과 헤어진 뒤 신라호텔에 들러 이발을 하며 잠시 휴식을 취했는데 하오 7시쯤 호텔앞에서 기다리던 기자들과 만나 『어떤 정권도 잠시 나와 국민을 속일 수는 있으나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해 통합 과정에서 무엇인가 민정계에게 「속았다」고 느끼고 있음을 내비치기도. 김최고위원은 이어 시내 모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한 뒤 밤 11시40분쯤 귀가했다. ◎민자 내분수습 각파동향/타계파와 막후접촉…내부결속 병행 민정계/의총소집 결의등 반격수위 높여 민주계 박철언정무1장관의 발언으로 증폭된 민자당의 내부갈등은 12일 민주계 소장파의원들이 박장관의 공직사퇴를 공식적으로 거론하고 나옴에 따라 갈수록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이 사태수습을 위해 전격 회동한데다 민정계 중진의원들이 적극 진화작업에 나섬으로써 극적으로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윤환ㆍ이종찬ㆍ이춘구ㆍ이한동ㆍ심명보의원 등 민정계 중진의원들은 이날 상오부터 각자의 「연줄」을 동원,민주ㆍ공화계의 중진의원들과 만나 당내분규의 조기수습 필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각 지역별로 영향력이 있는 민정계 의원들과도 만나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하고 민정계 내부결속을 강조하는등 분주한 움직임. 김의원은 이날 상오 김동영총무와 접촉,『당헌과 당규에 규정된대로 최고위원의 역할과 권한만 정상화된다면 민주계에서 주장하는 정무장관의 「월권」행위는 자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특히 박장관의 거취문제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일임해 달라』고 촉구. 그러나 김총무는 박장관의 김영삼최고위원에 대한 「하극상식」발언을 해당행위로 규정하는 한편 박장관을 「공작정치」의 배후인물로 지목,장관직과 의원직 등 모든 공직에서의 퇴진을 요구함에 따라 의견조정에 실패. 이날 김총무는 3당합당이후 김최고위원에게 들어 오던 정치자금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불만을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져 김최고위원이 주장하는 공작정치가 결국 정치자금과 연관된 것임을 시사. 김위원은 이밖에 의원회관에서 민주계의 서청원ㆍ김동주의원과 접촉한 데 이어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민주계의 박용만ㆍ신상우의원과 공화계의 김용채의원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사태수습에 앞장서 줄 것을 당부했고 민정계의 김종호ㆍ권해옥ㆍ서정화의원 등에게도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며 당내결속을 당부. 이춘구ㆍ이한동ㆍ심명보의원 등은 전화접촉 등을 통해 민주계 설득에 나섰으며 종친회관계로 이날 상오 경주에 내려갔던 이종찬의원도 하오에 상경해 설득작업에 합류. ○…민자당내 민주계는 12일 중진및 소장파의원들이 잇단 모임을 갖고 박철언정무1장관의 사퇴를 관철시키기 위한 대책논의에 부심. 김영삼최고위원은 이날 상오 상도동자택에서 김동영원내총무를 비롯,김우석비서실장,박종률ㆍ김덕용ㆍ박용만ㆍ황병태의원 등 측근들과 잇따라 만나 박장관 퇴진문제를 포함한 당내분 수습방안을 숙의. 김총무는 김최고위원과의 면담이 끝난 뒤 『모든 문제를 일으킨 박장관이 일체의 공직에서 사퇴하는 것만이 수습의 길』이라고 박장관의 의원직사퇴까지 요구,민주계의 대박장관 공세의 수위가 한층 높아진 느낌. 김총무는 『각료직의 사퇴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에 속하지만 정국과 당을 수습하려면 박장관 스스로의 각오가 있어야 한다』며 박장관의 자진사퇴를 촉구. 서청원의원을 비롯한 민주계 소장파의원 10명도 이날 상오 서울 가든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박장관의 공직사퇴와 이번 사태를 논의키 위한 의총소집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 서의원을 비롯,강삼재ㆍ박태권ㆍ정정훈ㆍ김동주ㆍ신하철ㆍ김운항ㆍ최이호ㆍ이인제ㆍ조만후의원 등은 이날 발표문에서 박장관의 최근 일련의 언동은 해당행위차원을 넘어 국론분열은 물론,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 반국가적 행위』라고 주장하며 박장관의 사퇴를 강력 요구. ○…청와대측은 두 김최고위원의 회동결과에 촉각을 세우면서 박장관의 공직사퇴등 민주계의 요구에 일단 부정적 시각. 노재봉비서실장은 12일 박장관의 거취문제와 관련,『대통령중심제를 하고 있는 나라치고 당이나 국회에 대통령의 의지를 전달하는 대통령측근이 없을 수 없다』며 『박장관이 물러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느냐』고 말해 당내타협을 통해 조용히 수습되기를 기대. 최창윤정무수석도 『당내부에서 활발한 수습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니 두고 보자』면서 『정치적 경륜을 가진 최고위원들이 사태를 원만히 풀어 나갈 것』이라고 말해 박장관의 퇴진등 「극단조치」없이 사태가 진정되기를 바라는 눈치.
  • 민자조직책 인선불만/전북지구간부들 항의

    민자당의 구민정당 전북지역 지구당 사무국장및 연락소장 17명은 3일 중앙당으로 박준병사무총장을 방문,「각계파간 나눠먹기식 조직책배분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전달하고 일부 구민정당 원외지구당위원장의 조직책 탈락을 항의했다.
  • 외언내언

    1953년 한일회담 당시 일본측 대표였던 구보타(구보전관일랑)는 『한일 평화조약이 체결되기 전에 한국이 독립한 것은 국제법위반』이라고 내뱉는다. 한술 더떠 일본의 「조선통치」를 「시혜」였다고 한 그 한마디는 구보타 망언으로 기억된다. 『이등박문의 길을 따라 우리는 한국에 뿌리를 심어야 한다』는 말을 한 자는 전후 일본초대총리 요시다(길전무)였고 그 말에 대꾸하듯 한일회담 마지막 수석대표였던 다카스기(고삼진일)는 『일본이 한국을 20년 더 지배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그로부터 30여년이 더 지난 86년 당시 문부상이던 후지오(등미정행)는 『식민지 식민지 하고 떠들어대지만 일본은 좋은 일을 하지 않았는가』고 쏘아붙인다. 거침없이 내뱉는 섬나라 지도층 인사들의 언사와 행동이다. 한국에 대한 그런 착시와 독선과 오만은 일본 도처에 있다. 우리에겐 방자하고 터무니없는 망언이지만 그들은 시침떼고 있을 수 있는 「발언」이라고 넘겨버린다. 그리고 아직도 그쪽에는 그때보다 더 많은 구보타,다카스기,요시다,후지오들이 지도층과 지식인으로 버티고 있다. 대한문제와 시각에 관련해서는 그같은 고질적인 풍토에서도 군국주의 일본의 과거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일단의 계층은 있다. 며칠전 학자 변호사 종교인 의사 등 전문지식인 61명이 일본의 과거 한반도지배와 관련,대한사죄결의문을 국회가 채택할 것을 촉구했다. 그쪽 일부 지식인들의 이같은 태도는 평가되지만 일본의 대한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엔 변함없다. 그래서인지 한일 양국민들이 상대방을 보는 시각에는 여전히 뿌리깊은 감정이나 적대감이 존재한다. 일본인에 대한 한국인들의 첫인상은「간사하다」로 나타났고 한국인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대표적인 느낌은 「감정적」이라고 지적됐다. 그 「간사함」과 「감정」사이에는 정말 뿌리깊은 불신의 골이 패어져 있는 것이다. 불행했던 과거에 「유감」을 표할망정 사과는 안하는게 그들이다. 일본은 과연 선린인가 하는 해묵은 질문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 “고르비의 딜레마” 발트3국 독립 요구

    ◎확산되는 민족문제 어떻게 처리될까/「무력사용」 근본적인 해결책 안돼 전전긍긍/미소 정상회담 영향 우려,서방여론에 신경 연방공화국들의 독립요구로 발전한 소련의 민족문제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지난 11일 리투아니아 공화국이 소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뒤 무력대결이라는 「위험수위」까지 갔던 양측의 대치상황은 2주여만에 일단 고비는 넘겼으나 수도 빌나 일원에는 여전히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리투아니아와 함께 같은 발트해 연안국인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가 분리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법적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함으로써 이 지역의 독립 무드는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에스토니아 공화국 공산당은 25일 특별당대회를 개최하고 중앙당과의 결별과 독자정당 설립을 선언했고 라트비아는 오는 5월 공화국 최고회의에서 소연방으로부터의 분리여부를 결정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앞으로 2∼3개월 내 발트해 3개국 모두가 독립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이번 리투아니아사태에서 다시 한번 드러났듯이 소련 당국의 입장은 이런 식의 일방적인 독립요구는 절대 허용치 않겠다는 것이다. 리투아니아 정부가 자체 통화도입과 국경세관의 관할권 인수,연방군대 복무거부 등 독립에 따른 구체적인 조치에 들어갈 움직임을 보이자 소련 당국은 즉각 비상포고령을 발동하는 외에 수도 빌나 일원에서 대대적인 무력시위를 전개했다. 이에 당황한 리투아니아 공화국 정부는 연방정부의 무력위협에 대해 국제여론에 호소하는 한편 무력대결 불원과 대화를 통한 해결을 요구했다. 소련 당국도 무력시위는 하면서도 구체적인 무력사용 의사는 좀처럼 내비치지를 않았다.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을 비롯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측근참모들은 이 가운데서도 오히려 무력 불사용원칙을 계속 천명해 무력시위는 어디까지나 심리전용임을 짐작케했다. 계속되는 독립요구로 연방체제 자체가 위협받는 것을 방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력진압을 쓸 수도 없는 입장,이것이 바로 민족문제에 대해 크렘린이 처한 딜레마이다. 지난 15일 개정된 헌법에 따라 고르바초프는 각 연방공화국에 대해 해당 최고회의의 기능을 일시 정지시키고 직접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비상조치권 등 종전보다 더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무력동원 등 강경대응이 사태를 일시 진정시킬 수는 있겠지만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된다는데 크렘린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첫째 미국 등 서방국들의 반응을 무시할 수가 없다. 이번 리투아니아 무력시위때도 미상원의 항의결의문 채택 등 서방국들은 신속한 대응을 했고 리투아니아 정부도 즉시 세계 여론에 호소하고 나섰다. 현재의 경제난을 극복키 위해 무엇보다 서방의 원조가 긴요한 소련으로서는 이를 무시하고 무력사용을 강행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특히 소련은 오는 6월로 예정된 미소정상회담을 앞두고 전략핵무기감축협상(START)ㆍ재래병력감축협상 등 서방의 이해를 구해야 할 과제들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발트해 연안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연방공화국들의 독립요구가 무력으로 진압될 단계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역설적이지만 고르바초프가 취한 개방정책 덕분에 합병과정을 둘러싼 과거 역사의 재조명 작업 등이 활발해져 이지역 주민들 대부분이 소련은 「이민족」 「점령자」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민족전선」(사주디스) 등 일부 민족주의 단체 주도로 이루어지던 독립운동이 지방선거를 통해 새로 구성된 공화국 최고회의 등으로 통합,보다 단합된 함을 갖게 된 것도 중요한 변화이다. 지금까지 소련 당국이 내놓은 최종방안은 21일 최고회의에서 채택된 연방탈퇴법안이다. 독립에 관한 모든 논의와 절차는 이 법안의 범위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해당 공화국들로 부터 사실상 독립의 길을 막아놓은 악법으로 비난받고 있어 앞으로 크렘린의 양보없이 민족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다. 고르바초프의 대통령 취임 후 처음이 되는 이번 연방공화국과 크렘린의 정면대결이 과연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 것인지에 일단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개정 사립학교법 철회 요구/사대교수협

    ◎“자치권 위협 독소 조항 많다”/교총서도 재개정안 국회 제출키로 한국교원단체 총연합회(회장 윤형섭)는 22일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된 사립학교법 개정 법률안과 관련,성명을 내고 『이번 법률안은 교육계의 광범위한 의견수렴없이 졸속 처리됐다』며 『빠른 시일내에 교권옹호위원회를 소집,이 법의 합리적인 개정안을 작성해 다음 임시국회에 올려 통과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교총은 또 『이 법률안은 교총이 전교육계의 의견을 수렴,국회에 청원한 바 있는 사학교원의 신분보장을 위한 ▲교수재임용제 전면폐지 ▲사립학교의 폐교ㆍ폐과로 인해 남는 교사의 국ㆍ공립교 우선 특채 ▲사학교원의 보수 및 정년에 대한 법적보장 등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이 법의 재개정활동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전국 사립대학교 교수협의회연합회」(회장 박기서경희대교수)도 이날 하오 경희대에서 모임을 갖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개정된 사립학교법의 철회를 요구했다. 교수들은 결의문에서 『이 법은 평교수협의회가 대학운영에 참가하는 길을 막고있으며 교수재임용 제도를 강화시키는 등 대학의 자치권과 교수신분 보장을 위협하는 독소조항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각 대학별로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국민들에 대한 홍보를 위해 공청회와 심포지엄을 열어 이 법의 철폐운동을 펴나가겠다고 밝혔다.
  • 대구서갑ㆍ진천­음성/민자 지구당 개편

    민자당은 17일 대구서갑구와 충북 진천ㆍ음성지구당 개편대회를 각각 열고 보궐선거 공천자인 문희갑전청와대경제수석비서관과 민태구전충북지사를 지구당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대구=김경홍기자】 17일 하오 대구시 서구 내당동 황제예식장에서 열린 민자당 대구서갑구 지구당 개편대회에는 박태준최고위원대행등 중앙당당직자와 대구ㆍ경북지역의원 등 1백여명과 지구당대의원및 간부 4백여명이 참석,서갑구 보궐선거에서 문후보의 당선을 다짐했다. 이날 개편대회에서는 「노태우대통령ㆍ김영삼최고위원ㆍ김종필최고위원의 3당합당의 구국적 결단을 전폭 지지하며 문위원장의 보궐선거 필승」을 다짐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음성=김명서기자】 민자당 진천ㆍ음성지구당 개편대회가 17일 상오 음성복지회관에서 박태준최고위원대행ㆍ김재광국회부의장ㆍ박준병사무총장ㆍ김용환정책위의장 등 당직자들과 소속의원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대회참석자들은 지구당위원장으로 선출된 민태구후보를 당선시켜 정계개편의 당위성을 인정받고 정국안정에 기여할 것을 다짐했다.
  • 소,리투아니아에 연방 복귀 명령/고르바초프

    ◎3일내 독립선언 무효조치 요구/리투아니아선 독립협상 실무단 구성 【모스크바 AP DPA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16일 취임후 첫 대통령의 권한을 발동하여 최근 소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리투아니아 공화국에 대해 3일 이내에 연방에 복귀하도록 명령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고르바초프는 이날 리투아니아 최고회의 의장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에게 지난 15일 소련 인민대회가 리투아니아의 독립선언을 「불법이며 무효」로 규정한 결의문 사본과 함께 보낸 짤막한 전보형식의 서한을 통해 앞으로 3일 이내에 이같은 결의문 내용을 이행할 수 있는 조치를 자신에게 통보토록 지시했으나 리투아니아가 이를 거부할 경우의 대응방안에 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한편 리투아니아 지도자들은 15일 밤 고르바초프가 기자회견에서 리투아니아측과 대화를 가질 것이라고 밝힌데 따라 16일 상오 모스크바 중앙정부와의 협상을 위한 실무팀구성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리투아니아 최고 평의회의장(대통령) 란츠베르기스는 17일 『고르바초프가 전문을 보낸 것은 우리에 대한 압력인 동시에 협상과정의 시작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 소 리투아니아 무력개입 가능성 높다/미지가 내다본 「독립」전망

    ◎「아제르바이잔 사태」에 군투입이 선례/연방탈퇴 허용땐 고르비 실각 위험성 지난 11일 소련의 리투아니아 공화국은 소연방으로부터의 일방적인 독립을 선언했다. 15개 공화국으로 형성된 소연방에서 각 공화국이 독립을 원할때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아직 이 문제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할수 있는 사람은 이 세계에 없지만 전문가들은 제 나름대로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의 워싱턴타임스가 분석한 이 문제에 대한 해설기사를 옮긴다. 리투아니아 의회의 압도적 지지로 이루어진 이번 독립선언은 이웃나라인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에도 그 선례가 되어 이들 나라 역시 곧 독립을 선언할 것이다. 런던에 주재하고 있는 전 소련 인권운동가이자 분석가인 부코브스키는 『현재 소련이 처한 위기상황은 1905년 발생한 러시아 혁명에 비유될 수 있다』면서 『크렘린은 지금 통제력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하버드대학 역사학 교수이며 전 국가안보위원회 소련국장인 리처드 파입스도 얼마전에 민족주의운동이 점차 거세지는 공화국들의 가중되는혼란과 소요사태를 예견하고 『만일 고르바초프가 이들 공화국과의 관계를 청산하지 않으면 엄청난 폭력사태가 유발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국제전략연구소 연구원인 에드워드 루타크는 『소련의 군부 뿐만 아니라 당과 모스크바 정부는 소 연방의 분열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소련정부는 이런 분열을 막을 방안을 가지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 군부가 어느 순간 무력개입을 통해 지난 81년 폴란드사태와 같은 「야루젤스키식의 해결책」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 소련이 처한 위기상황은 비단 리투아니아의 독립선언만이 아니다. 라트비아의 민족주의운동 단체인 「인민전선」은 벌써부터 독립을 요구하고 있으며 라트비아공화국 의회는 지난달 1백48대 77로 이들의 독립요구를 지지했다. 또 에스토니아 공화국 의회는 지난달 자신들의 빼앗긴 주권회복을 위해 모스크바와의 협상을 요구했으며 그루지야 민족주의자들은 이같은 발트해3국의 독립을 지지해주고 있다. 그루지야공화국 의회는 이미 지난9일 소련이 러시아 내전기간동안 발트해 3국을 강제합병했던 사실을 비난하는 결의문을 채택했었다. 지난 1월 민족분규가 있었던 코카서스 지방 아제르바이잔지역의 긴장은 그 어느곳보다 높다. 지난 1월이후 1만7천여명의 소련군이 주둔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지역은 회교도인 아제르바이잔인과 기독교도인 아르메니아인들이 사실상의 전쟁상태에 놓여 있으며 아르메니아인들은 모스크바 정부가 아제르바이잔인과 터키인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주길 바라고 있다. 한편 인구가 5천1백만명인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독립움직임 또한 소련정부에 큰 짐이 되고 있다. 이같은 소련연방 각 공화국들의 독립움직임은 공산당의 보수세력들을 무력화시킨 탁월한 정치능력의 소유자인 고르바초프에게 큰 난관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 때문에 11일 모스크바에서는 기존의 헌법을 개정하여 강력한 권한이 보장된 대통령직의 신설을 승인하는 당중앙위 전체회의가 열렸다. 고르바초프는 이미 지난 1월 민족분규가 있던 아제르바이잔 지역에 군을 투입했던 것처럼 소련 연방내의 어느지역에서발생한 문제도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몸소 보여줬다. 만일 고르바초프가 공화국의 연방탈퇴를 허용할 경우 그는 군부와 KGB에 의해 실각될 것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고르바초프가 실각하게 된다면 동서관계의 데탕트 분위기는 크게 위협받게 될것이며 각 공화국간에는 심각한 내전이 벌어질 것이다. 부코브스키는 『지금 소련의 상황은 절망적』이라면서 『고르바초프는 이미 자유화 정책을 유보하고 무력을 통한 굴복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나머지 14개의 공화국들이 독립을 이루게 되면 인구 1억4천7백만의 러시아 공화국은 발트해에서 흑해에 이르는 가장 큰 땅을 지닌 나라로 홀로 남게될 것이다. 부코브스키는 『이제 붕괴되기 시작한 소련 공산체제는 적어도 앞으로 10년정도는 그 진행과정이 더 계속될것』이라고 전망했다.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도 『소연방내의 민족적 갈등은 이미 「대러시아 제국 건설」이라는 이름하에 억압되고 있으며 대제국 건설이란 차르시대의 깃발이 다시금 나타나고 있다』고우려를 표하고 있다.
  • 중요 법안 처리 앞둔 양당 의원총회 이모저모

    ◎여는 “동질성 확인” 야는 “강경파 무마”/“이젠 핵분열 아닌 융합을” 민자/“총사퇴 결행” 주장에 제동 평민 ▷민자당의총◁ ○…9일 상오 국회에서 열린 민자당 2차 의원총회는 회의시작 전 지난 6일 모임을 갖고 박철언정무1장관의 「독주」를 비난했던 민주계인사들을 중심으로 『의총에서 당지도노선을 신랄히 비판하겠다』는 예고가 나돌아 초반에는 상당히 긴장된 분위기. 그러나 막상 민자당 출범 후 의총 첫 토의에 들어가자 민주계의 황낙주의원,공화계의 구자춘 옥만호의원 등이 각종 법안처리에 있어 당의 개혁의지가 퇴색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야당이 반대할 경우 무리하게 법안을 통과시키지 말아달라』는 주문을 한 정도에서 일단락. 2시간10분여에 걸친 의총이 끝나자 박태준최고위원대행은 『오늘 의총을 보니 모두가 빠른 속도로 동질화되어가는 것을 느꼈다』고 이날 의총결과가 만족스러웠음을 피력. 박대행은 『거대여당이 되니 좋은 점이 많지만 모두가 참여하기 힘든 점등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일부 인사의 「소외감」을 상기한 뒤 『이제는 정치권이 핵분열이 아닌 융합을 할 때』라고 「단결」을 거듭 호소. ○…이날 의총에서 7명의 토론자중 가장 목소리를 높였던 인사는 민주계의 황낙주의원. 황의원은 『민자당이 아직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일부 평가도 있는데 이번 국회를 개혁의지 천명없이 이대로 끝낸다면 국민지지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면서 『국회운영이나 법안처리에 있어 민자당이 개혁의지를 분명히 보여야 한다』고 강조. 공군참모총장 출신인 공화계의 옥만호의원은 『국군조직법 개정안은 주한미군 문제와 연계될 수 있는 것이므로 충분히 시간을 갖고 논의하자』고 처리보류를 제의했고 민정계의 황병우,공화계의 구자춘의원은 『지방의회선거에서 정당공천배제를 법에 규정한 것은 자칫 정당무용론으로까지 비춰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지방의회선거에서 정당공천허용 문제와 함께 그 실시시기까지 재검토토록 요청. 이에 앞서 민정계의 이치호의원은 광주보상법 심의를 광주특위에서 법사위로 이전시킨 것에 대해 『광주특위는 국정감사조사법에따른 조사특위이므로 진상조사가 주임무이고 보상법제정은 권한 밖』이라고 주장. 회의말미 김동영총무는 『앞으로 원내대책은 세분의 최고위원과 당3역에 일임키로 하자』고 제의,참석자 모두가 동의함으로써 회의는 큰 잡음없이 종료. ▷평민당의총◁ ○…평민당은 이날 상오 국회에서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3당통합 이후 민자당이 개혁입법처리및 5공청산 후속조치 마련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강력히 성토하는 4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하는 한편 의원직총사퇴 결의안을 의결,국회에 제출. 약 2시간30분에 걸쳐 난상토론으로 진행된 이날 총회에서 문동환ㆍ박실ㆍ이해찬의원 등 15명의 발언자 대부분은 『13대국회가 종언을 고해야 할 때』라며 상임위 불참과 평민당의 독자적 의원직 사퇴 후 장외투쟁등 강경대응론을 개진. 그러나 3당통합 저지와 관련,단판승부가 아닌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대응전략을 짜놓은 김대중총재등 지도부는 『민자당이 바라는 것이 우리가 성급히 극한투쟁을 벌이는 것』이라고 강경론을 제어하며 사퇴결의안만 내고 평민당만의 독자적 의원직 사퇴문제는 『시기가 아니다』며 당지도부에 일임을 요구. 이해찬의원은 『정치는 말과 행동이 같아야만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는다』면서 『의원직사퇴에 대한 우리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의원직사퇴와 동시에 상위에 불참하고 세비와 국고에서 지급되는 모든 경비의 수령을 거부하자』고 제안. 그러나 김총재는 『국민들 가운데는 안정이 깨지는 것을 싫어하는 쪽도 있다』 『언젠가 국민들이 평민당에게 국회를 뛰쳐나오라고 요구할 시점이 오면 그때 사퇴해야 한다』면서 현시점에서 독자적 사퇴 후 장외투쟁이 무모하다는 속마음을 드러낸 뒤 『우리만 사퇴하면 옳지 않은 사람에게 나라일을 모두 맡기는 결과』라며 의원직 총사퇴결의안을 채택하는 선에서 「예정」 된 결론을 유도.
  • 대공산국 관계 개선/외교 최우선 과제로/공관장 회의 폐막

    90년도 재외공관장회의가 7일 상오 정부종합청사 19층 회의실에서 6일 동안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폐막됐다. 박동진 주미대사와 이원경 주일대사 등 94명의 재외공관장이 참석한 이번 회의에서 공관장들은 4차례에 걸친 전체회의를 통해 북방외교의 추진,유엔가입실현,북한 개방유도를 위한 여건조성등에 관해 폭넓게 논의하고 이러한 목표의 실현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공관장들은 또 공산권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우리 외교의 최우선 과제로 하고 유엔가입을 조속히 실현시키는등 6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 북한 기습남침 저의 다시 입증/제4땅굴발견 계기로본 속전속결 전략

    ◎시간당 수만명 후방 침투 가능/거의 대규모… 20여개 모두 DMZ에 판 듯 동부전선에서 북한이 판 남침용 땅굴이 또하나 발견돼 우리 국민은 물론,온세계에 다시한번 큰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잇단 무장공비의 침투,휴전선에서의 충격,푸에불로호의 납치,판문점에서의 도끼 만행 등 갖가지 도발을 일삼았고 그들이 판 땅굴 또한 이미 3개나 발견돼 우리들의 감각을 상당히 무디게 해온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6∼7년동안은 눈에 두드러진 도발 행위가 별로 없었고 때마침 공산권의 개혁바람을 타고 동서 화해분위기가 무르익고 우리 또한 북방정책의 성공적 진전으로 남북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터에 엉뚱하게도 제4땅굴이 발견된 것이다. 이번에 발견된 북한의 제4땅굴은 지금까지의 3개와 마찬가지로 병력과 장비 이동을 위한 남침용 땅굴로 북한군의 기습 침략 작전을 추측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국방당국은 이같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 1백55마일에 걸친 휴전선 남쪽 2㎞ 안에 모두 20여개가있는 것으로 추정,그동안 탐색작업을 꾸준히 벌여오다 이번에 하나를 찾아냈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은 남방 한계선까지 비교적 큰 규모로 판다음 그곳에서 여러갈래로 분산시켜 비무장지대 남쪽으로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투입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땅굴은 차량ㆍ탱크ㆍ야포 등 중장비까지도 통과시킬 수 있으며 중무장한 전투병력이 3∼4열로 행군할 수 있는 규모이다. 특히 철원의 제2땅굴은 한시간에 3만명의 무장병력을 침투시킬 수 있는 가공할 만한 규모이다.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 남침용 땅굴을 파기 시작한 것은 남북적십자회담 등 남북대화가 시작될 무렵부터였다. 71년 9월 김일성은 노동당 대남공작 총책 김중린과 북한군 총참모장 오진우에게 기습 남침용 땅굴을 파도록 지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일성은 이른바 「9ㆍ25교시」를 통해 『남조선을 조속히 해방하기 위한 속전속결법을 도입하여 기습공격을 감행할 수 있게하라』고 지시,1대에 40억∼1백억원에 이르는 스웨덴제 고성능 암반굴착기 16대를도입,72년 5월부터 각 군단별로 2∼3개의 땅굴을 파도록 했다는 것이다. 북한군은 남침용 땅굴을 파면서 지하에서 폭발음이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리가 나지 않는 중국산 고성능 폭약을 사용하기도 하고 콤프레셔 등으로 바위를 깨뜨려가며 굴을 뚫었다고 한다. 땅굴을 파면서 나온 흙과 바위 등은 야간에 포장트럭으로 운반,아군측의 SR71이나 U2기 등 고공정찰기나 인공위성의 감시망을 교묘하게 피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땅굴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4년 초 전방의 일산ㆍ문산ㆍ판문점ㆍ철원 부근에서 근무하던 병사들이나 민통선 북쪽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땅속에서 대포소리가 나며 화약연기와 안개 등이 피어오르는 등 비무장지대안 땅속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같다』고 전하면서 였다. 이때부터 우리군은 북한군측과 지상및 지하의 숨바꼭질을 벌이면서 그 정체를 밝히는데 온 힘을 다했다. 그때만해도 우리 군에는 굴착기나 착암기 등 제대로 된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국군장병들은 파이프를 가지고 다니며땅에 대고 소리를 듣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탐지할 수밖에 없었다. 남침용 제1땅굴이 처음 발견된 것은 74년 11월15일 상오 7시35분 경기도 고랑포 동북쪽 8㎞ 지점에서 였다. 휴전선 군사분계선 남쪽을 정기적으로 순찰하던 국군 민경대원들이 지상의 공기구멍에서 증기가 새어나는 것을 보고 구멍을 통해 46m 아래 지하에 거대한 땅굴이 있음을 찾아낸 것이다. 이어 제2ㆍ제3의 땅굴이 잇따라 발견됐고 마침내는 3일 네번째 땅굴이,그것도 내외신기자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그 정체를 드러냄으로써 북한측의 기습남침 의도가 다시한번 폭로되기에 이른 것이다.〈김원홍기자〉 □남침용 땅굴 관계 일지 ▲74년11월15일=중서부 전선 고랑포 동북쪽 8㎞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제1땅굴 발견 ▲74년11월19일=국회,비무장지대 땅굴발견과 관련 북한의 격화된 침략행위에 대한 결의문과 대유엔 메시지를 만장일치로 채택. ▲74년11월20일=유엔군,비무장지대 감시조가 북한 터널 정밀탐색중 북한이 매설한 부비트랩이 폭발. 김학철해병소령과 벨린저미해군중령 사망 ▲75년3월19일=중부전선 철원 북쪽 13㎞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제2땅굴 발견 ▲75년3월21일=귀순용사 김부성씨(전 남파간첩 호송원)와 류대윤씨(전 북한군 소위)가 육군회관 기자회견에서 북한 땅굴공사 전반에 걸친 진상 폭로 ▲75년4월1일=제2땅굴 내부전모 내외보도진에 첫 공개 ▲78년10월17일=판문점 남쪽 4㎞에서 제3땅굴 발견 ▲88년9월8일=한미합동 탐사팀이 7개 지역에서 땅굴 징후를 발견 시추를 했으나 자연동굴로 밝혀짐 ▲90년1월=동부전선 양구지역에 땅굴 징후 발견 ▲90년3월3일=국내외 보도진 참관아래 제4땅굴 발견
  • 프레스카드제 부활/기협,즉각 중지 촉구

    한국기자협회는 1일 최근 정부의 프레스카드제 부활움직임과 관련,『이는 양심적인 일선기자들의 사실취재를 통제하려는 발상』이라고 비난하고 이를 즉각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발표했다.
  • 혁명선동 책자 배포 대학생 보안법 구속

    서울시경은 24일 한성대학생 조영선양(23ㆍ사학과4년)을 국가보안법위반(이적표현물제작 및 배포) 등 혐의로 구속했다. 조양은 지난해 11월24일 단국대에서 열린 「11월총궐기 및 임시혁명정부 수립과 군사파쇼정권 타도를 위한 결의대회」에서 『임시혁명정부기치아래 반파쇼투쟁을 강화해 나가자』는 내용의 결의문을 작성,배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 민자당 등록,공식 출범/어제 현판식… 오늘 첫 의총

    민주자유당은 1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합당등록을 마침으로써 창당에 따른 모든 법적 절차를 마무리짓고 공식출범했다. 민자당은 이날 상오 9시 장경우의원을 통해 합당등록을 마친 뒤 임시당사인 서울 여의도 대원빌딩에서 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과 박태준최고위원대행 등 당직자ㆍ소속 국회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현판식을 가졌다. 민자당은 16일 상오 국회에서 첫 의원총회를 열고 김동영원내총무 내정자의 인준동의안을 처리한 뒤 임시국회대책을 논의하는 한편 신당 출범에 따른 결의문도 채택할 예정이다. 한편 민자당은 중앙선관위에 합당등록을 마침에 따라 다음주중 하위당직을 임명하고 이달말쯤 조직강화특위를 구성,당조직과 하부구조에 대한 정비작업에 착수한다.
  • 신야당 추진모임 5백명 결의대회

    신야당 추진모임은 7일 하오 서울 여의도 여성백인회관에서 「민주세력통합을 위한 신야당추진결의대회」를 가졌다. 민주자유당(가칭) 참여를 거부한 민주당의 일부 전ㆍ현직의원,원외지구당위원장,중앙상무위원 등 5백여명이 참가한 이날 대회에서 신야당 추진모임은 결의문에서 『신야당 창당을 추진하고 야권통합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 민정당 해체,합당 결의/임시 전당대회/중집위에 모든 권한 위임

    ◎창당 9년만에 막 내려 민정당은 1일 하오 2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에서 박태준대표위원을 비롯한 당직자와 소속의원ㆍ대의원 등 8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6차 임시전당대회를 열고 민주ㆍ공화당과의 합당을 결의했다.〈관련기사3면〉 민정당은 이로써 81년 1월15일 창당한 지 9년만에 막을 내리고 신설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가칭)으로 통합된다. 민정당은 이날 전당대회에서 신당창당을 위한 모든 권한을 중집위에 위임키로 결의했다. 이에 따라 민정당 중집위는 9일 민주당정무회의,공화당당무회의와 합당수임기구 합동회의를 열고 3당합당을 공식 결의한다. 이날 전당대회에서 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은 박대표가 대독한 치사를 통해 『지역으로 갈라진 4당체제는 국민의 분열과 갈등을 증폭해왔으며 이같은 정당체제를 혁파하지 못하면 정치의 불안이 모든 분야에 파급돼 국민통합에 있어 위기를 조성하고 나라의 앞날은 헤어나지 못할 수렁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고 『이념과 정책노선을 함께 하는 민주세력이 하나의 정책정당으로 뭉쳐 국민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정치,국민 각계각층의 자율과 참여를 폭넓게 수용하는 성숙한 민주정치를 실현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박준병사무총장은 당무보고를 통해 『민주ㆍ번영ㆍ통일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지역적이며 소모적인 4당구조는 사라져야 한다』고 밝히고 『15일쯤 중앙선관위에 신당창당을 등록함으로써 새로운 정당이 공식 출범한다』고 말했다. 민정당은 이날 전당대회에서 3당합당에 즈음한 3개항의 결의문을 채택,▲새로운 정치문화를 구현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며 ▲민주ㆍ번영ㆍ통일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 민주 전당대회 「통합」 의결/창당 33개월 만에 해체

    ◎김 총재에 전권 위임 민주당은 30일 상오 서울 마포 중앙당사에서 임시전당대회를 열어 민정ㆍ민주ㆍ공화당의 통합 신당인 민주자유당(가칭)으로의 합당을 의결하고 합당철차 수행을 위한 수임기구 결정권등 합당에 관한 모든 권한을 김영삼총재에게 일임했다. 이로써 민주당은 지난 87년 5월1일 창당한 후 2년 9개월만에 사실상 해체됐다. 이날 전당대회는 상오 9시에 시작돼 황명수부총재가 제의한 합당등에 대한 결의안을 토론없이 참석 대의원들의 박수로 채택하고 35분만에 끝났다. 그러나 이날 회의과정에서 정상구전당대회의장이 찬반토론을 생략하고 안건을 박수로 처리하며 일사천리로 진행하자 김상현부총재와 노무현의원 등은 「날치기」 「무효」라고 주장하다 청년당원들에 의해 대회장 밖으로 끌려나가는등 한동안 실랑이와 소란이 벌어졌다. 전당대회는 『우리는 대화와 타협의 민주적 정치문화를 정착시켜 민주화 완결과 개혁입법을 달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등 5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수임기구 지명을 위임받은 김총재는 정무회의를 수임기구로 지정할 것으로 보인다. 합당 반대파인 김상현부총재와 노무현의원은 대회가 끝난 뒤 『공식적인 의안상정과 토론절차 없이 이루어진 이날 전당대회의 의결은 무효』라고 주장하고 『합당결의 무효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대회에는 전당대회 대의원 1천1백64명 가운데 9백27명이 참석했다.
  • 통합 당내절차 착수

    ◎민정 “6ㆍ29선언 구체화” 지지결의대회/민주 정무회의,김영삼 총재에 전권위임/공화,중앙당 해체 실무작업 민정ㆍ민주ㆍ공화당은 23일 의원ㆍ지구당위원장ㆍ사무처요원대회를 잇따라 열고 3당통합 합의를 적극 지지할 것을 결의했다. 민정당은 이날 상오와 하오에 열린 사무처요원및 전국지구당위원장ㆍ국회의원 결의대회에서 당통합결정을 적극 지지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박태준대표는 『6ㆍ29선언이 민주주의의 제도적 정착을 위한 결단이었다면 이번 3당통합은 6ㆍ29선언의 구체적 실현』이라고 말하고 『우리 모두는 기득권이나 소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신을 불살라 대의를 좇는다는 희생정신으로 새로운 역사창조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자』고 호소했다. 민주당도 이날 상오 중앙당사에서 정무회의를 열어 민정ㆍ공화당과의 합당에 관련한 일체의 권한을 김영삼총재에게 위임,청와대회담의 합당합의를 당차원에서 공식 추인했다. 김총재에 대한 권한위임은 이인제의원의 동의에 따라 재적 34명중 참석자 29명 전원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한편 최형우ㆍ김정길ㆍ노무현ㆍ유승규의원 등 4명은 24일 상오 9시 의원회관에서 3당의 합당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공화당도 이날 상ㆍ하오 원외지구당 위원장간담회및 중앙위 운영위회의를 각각 열어 3당총재의 합당선언에 대한 추인을 받는 한편 당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공화당은 이에따라 2월말까지로 예정돼 있던 10여개의 지구당개편대회등 당조직과 관련한 일체의 행사를 중단토록 당해 지구당에 통보하고 중앙당 해체를 위한 실무작업에 착수했다.
  • 제주신문,폐업 철회/범도민 촉구대회

    【제주=김영주기자】 제주신문 폐업철회촉구 도민대회가 13일 하오3시 제주시 북국민학교 교정에서 도내 직장ㆍ단체노조원ㆍ학생ㆍ시민 등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주신문 정상화를 위한 도민협의회(회장 조문부제주대교수)주최로 열렸다. 이날 대회에서 참석자들은 「국회와 정부당국은 진상조사단을 구성,제주신문 사태를 원만히 수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는 등 4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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