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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1
  • 교원의 지위는 보장돼야 한다(사설)

    교원단체총연합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전국 37만 교원의 연합체가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 이 집회의 직접목표는 교원지위법 제정의 촉구였다. 새롭게 태어난 교총의 단결력과 조직력을 과시하고 교원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이 목소리에 우리도 깊은 관심을 표명한다. 무엇보다도 정치사회적인 부당한 제물이 되어 상처입고 표류해온 한때의 일그러진 면모를 바로잡아 당당하고 실속있는 교원세력의 주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성원과 기대를 함께 보낸다. 그런 뜻에서 교총이 그들의 총의로 마무리해 놓은 교원지위법과 교육관계법의 제정도 이제는 서둘러 결실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세속적인 영화나 권세를 보장받는 길에서는 제외된 채 정신적 노고가 극한에 이르도록 시련을 요구하는 「천직」이 교직이고,그것을 선택한 사람들이 교원이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국가사회는 그 권익과 지위를 확보하는 데 충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므로 원칙론으로서의 이 제안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법의 제안과정에서 몇가지 이견들이 노정되어 있는것이 현실적인 장애를 만들고 있다. 교총의 주장은 교원지위법에 단체교섭권이 확보되기를 바라고 있고 입법기관이나 행정부측에서는 이 권리는 「건의」와 「협의」라는 온건한 기능으로 대체시키도록 조정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 특히 권력의 부당한 개입에 의한 피해의식이 뿌리깊게 박혀있는 교총으로서는 강력한 실력의 창출을 법에서 기대하기 위해서도 「단체고섭권」이라는 구체적 권한을 체념하지 못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단체교섭권」이란 결국 학생의 「학습권」을 볼모로 함으로써 성립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학부모와 사회전반의 인식에도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법제도 중요하지만 지난날의 실패가 제도적 부실에만 모든 원인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의 인식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원들이 자율적 집단에 스스로 힘을 부과해 주는 노력을 다하지 못했던 것이 더 많은 이유였다는 사실을 자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속하여 외부로부터의 용훼와 간섭에서 자신을 지키는 노력을 거의 다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결집된 목소리로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하면 「건의」나 「협의」만으로도 「단체 교섭」 같은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교총은 교육의 전문직을 수행하는 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기능을 다하는 것만으로 존재의 의미가 충분하다. 「선생님」들의 단체행동은 「제몫 찾기」에 열을 올리기보다는 「제자리 찾기」에 성의를 다하는 것이 보기에 존경스럽다. 경의를 품게 되면 표경의 예는 저절로 따르게 마련이다. 정부나 사회 또한 교원지위법의 제정에 좀더 전향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가장 거대하고 정신적인 집단인 「교원」이 중심을 잡고 나라를 생각한다면 많은 문제는 해결된다. 그들을 필요없이 노엽게 하고 수모스럽게 하고 고깝게 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사려와 순리적인 자세가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게 하는데 모든 제도가 인색해서는 안된다. 서로 대결하는 국면이 전개되지 않는 방법으로 풀려가기를 진심으로 당부한다.
  • 대만의 변화(사설)

    이등휘 대만총통은 20일의 제8대 총통 취임연설을 통해 중국을 반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초헌법적인 전시비상조치법의 폐기를 선언하고 중국과의 모든 관계를 거부하는 「3불정책」의 포기를 분명히 밝히는 한편 20여명의 정치범 사면ㆍ복권과 함께 과감한 민주화개혁을 약속했다. 한마디로 대만의 큰 변화를 보여주는 획기적인 선언이요 조치들이라 하겠다. 2년내의 민주화 헌법개정까지 약속하고 있는 이번 조치는 우리의 6ㆍ29민주화선언 및 7ㆍ7대북선언을 종합한 것 같은 인상으로 대만의 민주화는 물론 중국과의 관계 내지는 통일문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은 전시비상조치법으로 헌법에 우선하는 사실상의 헌법역할을 해온 「동원감시기임시조관」(공산반란진압동원령)의 폐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민당이 대만으로 패주하기 1년전인 47년 선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이 법은 공산당과의 싸움에서 이길 때까지 헌법을 포함,일체의 민주적 기본권리를 유보시키는 특별법으로 그동안 대만의 대륙정책과 국내정치의 구심적 역할을 해왔다. 이 법의 폐기는 중국 공산정부에 대한 42년만의 실체 공식인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중국과의 전쟁상태 공식 종결선언으로 대만의 대륙정책을 보다 자유롭게 하고 전쟁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제반 민주화개혁을 가능케 하는 법적 기반의 마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로써 집권2기를 맞는 이총통 지도하의 대만은 국내적으로 민주화를 가속시켜 나가면서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보다 현실적인 바탕위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접근을 시도해 나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도 그동안 경제적 성공에 수반되는 민주화 욕구분출의 국내 정치적 압력을 받아왔으며 국제적으로는 거대한 중국의 존재에 대한 세계 각국의 현실인정 대세로 고립을 면치 못해왔다. 최근에는 민주화개혁이 공산권을 휩쓸 정도의 세계적 추세로 발전하게 된 시대적 상황의 변화 등이 대만의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들었으며 이총통은 이런 변화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나선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총통의 이같은 새로운 변화의 의지가 앞으로 어떻게 구체화되고 발전해 나가며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는 천안문사태이후 개혁이 중단된 중국의 정치ㆍ경제적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총통으로서는 중국의 민주화개혁 재개 역시 불가피한 추세로 믿고 있을 것이 틀림없으며 그럴 경우 이번 조치는 중국통일의 과정에서 대만의 국민당정부로 하여금 유리한 고지를 확보할 수 있게 해줄 중요한 포석이 될지도 모른다. 전후 4개의 분단국중 베트남이 무력적화통일을 달성했다. 그 희생과 갈등 그리고 오늘의 현실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제 독일이 전후 최초의 민주화 평화통일을 달성해 가고 있다. 이제 아시아의 중국ㆍ대만과 남ㆍ북한만이 남아 있다. 중국과 대만의 통일 노력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통일의 모델이 동일할 수는 없다. 베트남을 염두에 두고 독일ㆍ중국의 경우를 바라보면서 우리나름의 실현가능한 가장 바람직한 통일모델 개발의 노력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 무의미한 파업과 시위(사설)

    전면파업과 격렬시위의 확대가 우려되고 있다. 답답한 일이다. 무엇보다 확대되어야 할 어떤 이유나 명분마저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현대자동차 파업만 하더라도 노조집행부 자신이 과격한 행동만의 장기화가 노사 어느 쪽에도 희생만 가져올 뿐 얻을 것이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면서도 사태는 더욱 커지기만 하고 있다. 높은 목청과 거친 행동의 관성에 붙들려 이제는 본질마저 잊고 있다고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전대협이 다시 준비하고 있다는 20일 광주에서의 대규모 시위계획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지난 5ㆍ9시위로 1차 시도해 보았지만 아무리 격렬함을 확대해 보아도 그 호응을 얻을 수 없음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조직을 해가고 있는 것을 보면 시위 그 자체를 하나의 업으로 간주하고 있다고밖에는 판단되지 않는다. 이것이 무엇보다 답답한 일이다. 우리는 물론 우리의 가장 바람직한 민주화 체제의 성립을 위해 이러한 현상을 한번은 앓고 지나가야 할 열병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다. 또 이미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견딜수 없을 만큼 혼란된 일상의 삶마저 양해해 왔다. 시위속에 타고 깨어진 사재의 손실마저 민주화를 위한 시민의 부담쯤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가 무조건 끊임없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무엇인가 가야할 방향이 분명하며 이 방향을 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조그마한 것이나마 믿고 지켜가야 할 가치나 지표들이 형성되어야만 우리는 이에 심정적만이라도 동의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협량의 개별적 이익들이거나 무의미한 질서의 파괴들일 뿐이다. 운동의 입장에서는 혹시 기존질서의 보다 강력한 대응을 유도하여 이로써 운동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역시 이슈가 분명하고 목표가 설득력을 가질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 가능성마저 반복적으로 성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화라는 국민적 가치의 설정은 이미 그 출발점이 마련되었고 이제는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는 신념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오늘에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이슈란 오직 민주적 과정일 뿐이다. 얼마쯤 지루할지는 모르지만 민주적 절차가 지켜져야 하고 어느 누구의 지배도 아닌 모든 견해의 견제와 균형을 통한 합의의 결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민주적 권위의 회복도 바라고 있다. 어느 체제만의 공권력이 아닌 한 국민적 공권력은 오히려 그 권위를 확고히 해야 마땅하고,일단 지키기로 한 질서의 위배일 때는 그 벌과에 있어서도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민주적 사회라는 것이 실은 별것이 아니다. 하나의 주장이나 체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집단과 조직체들이 평등한 관계속에서 상호견제와 경쟁을 하면서 균형을 만들어내는 다원화 사회를 말할 뿐이다. 바로 이점에서 우리는 이 시점에서의 전면파업과 격렬시위야말로 비민주적 과정의 확대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리고 또 이로써 국민적 삶의 환경을 불안정하게 하는 거대한 손실까지 주고 있다. 여기에는 자제라는 표현마저 부적절하다.이제는 전면적이며 격렬한 형식의 행동은 끝내야 한다. 이것이 실은 바른 전기의 마련이다.
  • 과거사 매듭… 한일 새협력관계 정립/노대통령 방일의 함축

    ◎첨단과기 이전등 경제실리 추구/교포1ㆍ2세 지위개선에도 성과기대 노태우대통령의 오는 24일부터 2박3일간에 걸친 방일은 한마디로 양국간의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일 우호협력관계를 정립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노대통령은 당초 일본 뿐만 아니라 캐나다 미국 멕시코 등 4개국을 순방하려 했으나 「총체적 난국」으로 규정되고 있는 국내사정을 감안,나머지 3국 방문을 연기했던 것이다. 그러면 왜 유독 일본방문만은 그대로 실행하기로 했느냐는데는 대충 4가지의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는 과거의 불행했던 앙금을 씻어내는 대일협상의 지렛대로 방일카드를 구사했기 때문에 이제 양국 외상회담등을 통해 상당한 진전을 본이상 일본을 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둘째는 우리경제의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첨단과학 기술분야에서 일본과의 실질협력관계를 강화,기술이전을 통한 실리를 확보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국제환경적인 요소를 감안,우리의 북방외교추진,일본의 대북한관계등 한반도 주변정세에 대비한 양국간의 긴밀한 협조관계 구축이 요구된 것이다. 특히 다가오는 21세기는 세계의 중심이 아시아ㆍ태평양지역으로 옮겨 올 것으로 예견되는 상황에서 한일 두나라는 아태협력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실정에 있다. 네번째는 노대통령의 취임이후 일본총리(다케시타 총리재임시)가 두번(취임식,서울올림픽 개막식)에 걸쳐 방한했고 노대통령의 방일계획이 두번(88년 11월 히로히토 일왕 위독,89년 5월 일 정계가 리크루트사건으로 혼란)이나 일본측 사정으로 연기된 점을 고려한 때문이다. 지난 84년 9월 5공당시 전두환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이래 6년가까이 한국 대통령의 방일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대외적으로 한일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인상을 줄 우려가 있고 이는 우리의 국제무대에서의 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방일이 반드시 구체적인 현안의 타결을 위한 것은 아니라 해도 「과거문제」에 대한 상당한 성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의견접근을 본 재일한국인 3세이하 협정영주권 자동부여,이들에 대한 지문날인제 폐지,외국인등록증 미소지 처벌조항 배제,그리고 재입국기간의 3년에서 5년 연장,강제추방요건을 7년이상의 실형에서 내란 외환죄의 국사범 경우로 한정한 것등은 완전타결을 볼 것으로 보인다. 또 교포1ㆍ2세에 대한 지문날인이나 외국인등록증 휴대문제.지방자치단체 공무원및 교사채용문제,재일한국인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정부가 전향적인 조치를 해줄 것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밖에 원폭피해자 지원기금설치,사할린교포 모국자유왕래 지원확대도 아울러 요청,일본측의 성의를 끌어낼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청산문제와 관련,아키히토 일왕의 사과발언도 전 전대통령의 방일 당시의 『한일 양국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수준보다 다소 강도가 높은 내용으로 끌어내 「과거」 매듭의 상징으로 역사에 기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양국간의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 구축문제에 대해서도 몇가지 가시적인 결실이 예상은 되고 있으나 아직 단정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양국의 공동번영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협력사업이 구체화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첨단기술의 신소재,기초과학분야에서의 상징적인 공동협력 프로젝트가 추진될 것 같고 양국간 인적교류가 연간 2백만명에 이르는 점을 감안,상호장기복수비자 발급을 위한 각서교환이 이번 방일을 계기로 이뤄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노대통령이 방일 이틀째인 25일 일본국회에서 연설을 하고 이 자리에서 새로운 한일 협력동반자관계의 출발을 선언할 예정인데 이는 한일 관계가 과거매듭위에서 새로운 역사전개의 장으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노대통령 「5ㆍ7담화」에 담긴 뜻(난국극복의 길:1)

    ◎“총체적 시국대처” 결연한 의지 표명/시한부 대국민약속… 비상한 각오 천명/현상황 굴절없이 진단… 국민협조 강조/부처별 후속조치로 「안정」가시화 할듯 정치ㆍ경제ㆍ사회 전반의 「총체적 난국」극복을 위한 6공정부의 돌파신호탄이 7일 노태우대통령의 시국특별담화문 발표로 올려졌다.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와 방향제시에 이어 8일의 경제부처장관들의 후속조치발표,그리고 10일엔 업계의 호응노력이 가시화될 것으로 알려져 난국극복을 위한 범국민적 분위기 조성이 빠른 속도로 이뤄질 것 같다. 앞으로 4회에 걸쳐 정치권의 반성 및 공직기강 확립,기업ㆍ근로자의 자세,과소비 자제 등 정치ㆍ경제ㆍ사회분야에 있어 난국극복의 과제를 점검,시리지로 엮어 본다. 노태우대통령의 7일 시국관련 특별담화는 「총체적 난국」에 대처하는 통치권자의 결연한 의지표명과 함께 총론적 방향제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노대통령이 오늘의 현실과 관련,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송구」 「깊은 책임」을 가식없이 토로한 뒤 『늦어도 연말까지는 정치ㆍ경제ㆍ사회의 안정을 이루도록 비상한 각오와 자세로 국정을 이끌겠다』고 천명함으로써 이번 담화가 온 체중을 실은 배수진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총론적 처방제시는 지금의 현실이 6공출범이후 민주화과정에서의 전환기적 현상지속과 민자당에 대한 국민실망,전ㆍ월세값 폭등,주식폭락,부동산등귀,물가불안에 겹쳐 KBS사태,불법파업등 산업현장의 불안요소가 가중되어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킨 데서 비롯되었다는 진단에서 나오고 있다. 이같은 현실진단은 현재 나타나고 있는 사실들을 비교적 굴절없이 그대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바탕에는 지난 2년여에 걸쳐 보여준 6공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나아가 현정권,대통령에 대한 기대감 상실이 깔려있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담화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국정처방은 대충 ▲단호하고 엄정한 법집행 ▲기업의 부동산투기 근절및 불로소득중과 ▲노동운동의 정치투쟁화 강력대처 ▲기업의 투자의욕 고취ㆍ경쟁력 향상,기술개발 지원 등으로 되어 있다. 이와함께 장기적으로 근로자ㆍ서민의 주택건설,농어민과 저소득계층의 복지정책추진을 다짐하고 있다. 이러한 국정처방은 일견 총론적 방향제시에 그친 감이 있어 다소 아쉬운 점이 있으나 내각차원에서 가시적인 후속조치가 뒷받침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 행간에 담겨있는 의미를 곱씹어 보면 상당한 정책의 무게를 알 수 있게 한다. 첫째,노조의 정치투쟁에 대한 강력한 대처의지는 KBS사태,현대중공업사태 등에 대해 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를 선명하게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정부는 이들 사태의 본질이 노사간의 문제가 아닌 노조의 정치투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통치권자의 이러한 의지천명은 정부가 이 문제를 적당히 넘기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대기업과 증권ㆍ보험회사등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비업무용은 물론 「과도한」 부동산은 강제매각해서라도 처분토록 하여 기업이 생산활동보다 부동산투기를 통해 이익을 챙기는 풍조를 고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강제매각」을 직접 언급한 것은 지금까지정부의 행정적ㆍ정책적인 유도와는 그 강도를 크게 달리하고 있어 매우 주목된다. 이는 6공이후 지속되어온 기업의 자율성,금융의 자율화 정책노선에 비추어 보면 대단한 선회라고 할 수 있으며 앞으로는 기업과 금융의 국민경제성을 강조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판정기준 강화,그리고 기존보유분에 대한 재판정에 이어 재무구조 불량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은 일단 「과도한」 부동산으로 분류될 것임을 예고해 주고 있다. 강제매각은 결국 해당기업이 부동산을 처분하지 않을 경우 모든 금융ㆍ세제상의 제재조치를 가차없이 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번 담화는 대통령의 총론적 처방제시와 함께 그 어느 때보다도 대국민협조를 강도높게 호소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앞날은 정부와 기업,근로자와 소비자등 모든 경제주체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있다면서 경제는 정부의 힘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러한 노대통령의 호소는 경제제반문제를 재정ㆍ금융을 통해 해결하려는 정부의 정책수단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며 권위주의체제 시절의 통치자가 사용하던 충격적인 비상조치는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우회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정부의 힘이나 지시로 모든 것을 해내라는 것은 또다시 권위주의체제로 돌아가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 대목이 바로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이번 담화는 전체적으로 보아 시국상황이 경제난국과 겹쳐 심각한 상황에 와있다는 대통령의 시국인식이 솔직하게 나타나 있고 이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앞으로 6개월여 남은 금년말까지 무언가 보여주겠다는 것을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날 상오의 담화문발표에 이어 하오에 있은 노대통령과 민자당의 김영삼ㆍ김종필 두 최고위원,박태준최고위원대행의 청와대 4자회동에서 그동안 실추된 집권여당의 대국민신뢰를 끌어낼 수 있도록 결속하고 단합키로 다짐한 것도 이같은 약속의 추진력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총체적 난국」상황에 통치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뛰어들어 「시한부」로 대국민약속을 했음에도 상황의 개선이 국민들의 피부에체감되지 않는다면 6공정부는 최대의 시련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의 담화는 스스로에게 난국극복의 책임과 의무의 굴레를 씌웠다고 할 수 있으며 현내각과 9일 창당전당대회를 갖는 집권여당 민자당의 앞길도 노대통령과 함께 공동운명체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담화문발표로 국정최고책임자의 난국극복을 결연한 의지표명과 총론적 방향제시가 이루어진 만큼 앞으로 그 성패는 내각을 중심으로 한 관계부처의 확실한 후속조치와 그 실천력여부,그리고 각 경제주체의 협조등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노대통령 시국관련 담화 전문 우리나라가 정치ㆍ경제ㆍ사회 각분야에 걸쳐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때문에 국민의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대해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6ㆍ29선언이후 지난 3년동안 이 땅에 민주주의를 열고 새로운 질서를 정착시키기 위해 온 국민이 노력해 왔습니다. 우리의 민주화과정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으며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도 아직까지 진통이 따르고 있습니다. 요즈음 국민의 불안이 높아진 것은 민생치안ㆍ법질서의 문란 등 전환기적 현상이 가시지 않은 데다 최근의 몇가지 사태가 상승작용을 한 데서 빚어지고 있습니다. 3당통합으로 정치적 안정의 바탕이 마련되었으나 체질이 다른 정치세력을 통합하여 새로운 여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에 대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국민은 정부의 안정의지조차 믿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집값이 올라 내집마련의 꿈이 멀어진 수많은 국민들의 허탈감,전ㆍ월세값이 뛰어 이사를 해야 하는 서민의 고통이 컸습니다. 여기에 물가가 불안하고 한때 주식값이 크게 떨어져 경제에 대한 불안심리도 높아졌습니다. 올들어 국민여러분의 새로운 인식과 근로자들의 자세로 노사분규는 크게 줄어들고 노사관계가 크게 안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방송인 KBS의 장기 불법 제작거부사태와 이에이은 현대중공업의 불법파업이 사회불안을 확산시켰습니다. 이같은 모든 현상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깊은 책임을느낍니다. 저는 늦어도 금년말까지는 국민여러분이 안심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ㆍ경제ㆍ사회의 안정을 이루도록 비상한 각오와 자세로 국정을 이끌 것입니다. 정부는 이 기간안에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가려 이를 강력히 추진하고 특히 다음과 같은 노력을 집중적으로 벌여 나갈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실효성을 나타내고 정착될 때까지 앞장서 독려하고 필요한 조처를 취해 나갈 것입니다. 첫째,법을 어기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엄정한 법집행으로 이 사회의 질서를 바로세울 것입니다. 법질서 파괴해행위를 방치할 경우 경제가 제대로 될 수 없고 민주발전의 기틀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도 법질서를 확립할 것입니다. 둘째,대기업과 증권,보험회사 등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비업무용 부동산과 과다한 부동산은 강제매각을 해서라도 처분토록 하고 기업이 생산활동보다 부동산투기를 통해 이익을 챙기는 풍조는 고치겠습니다. 이미 공포된 토지공개념관계법과 4월13일발표한 부동산 투기억제대책을 통치권 차원에서 강력히 실천토록 할 것입니다. 불로소득에 대해 세금을 더욱 중과하고 땀흘려 일하여 얻은 소득과 이윤은 더욱 보호받을 수 있도록 세제를 개혁할 것입니다. 셋째,합법적인 노동운동은 최대한 보장하겠지만 불법분규나 노사관계를 이탈한 정치적 목적의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처하겠습니다. 넷째,기업의 투자의욕을 고취하고 제조업의 경쟁력 향상과 기술개발을 최대한 지원하여 우리 경제의 안전성장을 이루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근로자와 서민을 위한 주택건설,농어민과 저소득층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집권당의 책임자인 저는 민주자유당이 하루빨리 단합된 모습을 갖추도록 하고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씻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경제가 경쟁력이 떨어지고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되는 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경제는 현재 7% 내외의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고 고용과 경기도 나쁜편이 아닙니다. 수출도 완만하나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올들어 물가가 4.7%로 다소 높게 올랐으나 연말까지 7∼8% 수준에서 그 고삐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사회에 짙게 깔린 불안심리가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 데 있습니다. 우리 경제의 앞날은 정부와 기업ㆍ근로자와 소비자,모든 경제주체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자신을 갖고 노력하면 우리 경제는 건실한 성장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경제는 정부의 힘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물가만 해도 그렇습니다. 정부의 실책도 없지 않았지만 지난 3년간 임금이 1백% 가까이 오르는데 물가가 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가가 오르면 서민과 근로자가 먼저 피해를 입고 우리 경제의 경쟁력도 약화되게 마련입니다. 스스로는 사치한 생활로 과다한 소비풍조를 조장하면서 다른 사람을 탓하고 정부의 책임만 추궁하는 데 그친다면 우리 모두의 고통만 더해질 뿐입니다. 지금은 모두가 자기의 직분을 다하고 있는지 성찰할 때입니다. 우리 사회성원 각자가 해야 할 일,자기가 맡은 몫을 다해야 잘 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정부의 힘이나 지시로 모든 것을 해내라는 것은 또다시 권위주의체제로 돌아가자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민주주의 사회는 국민의 뜻과 국민의 힘으로 운영되는 사회입니다. 각계 국민 여러분이 이 나라의 주인은 바로 국민 스스로라는 민주시민의식을 갖고 맡은 바 자기의 직분을 다해 주어야 합니다. 지금은 나라가 어려운 때입니다. 발전의 길로 나갈 수도,또한 혼란의 길로 떨어질 수도 있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정부가 할 일은 대통령인 이 사람이 책임지고 하겠습니다. 기업인ㆍ근로자ㆍ소비자인 국민 여러분 모두 우리 경제를 일으키고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앞장서 주셔야 합니다. 저는 특히 다음 사항에 대하여 각계 국민 여러분께 각별한 협조를 구합니다. 발전의 혜택을 더 입은 기업인과 경제계 여러분은 오늘 이 시각 국민의 바람이 무엇인지 직시하여 이 사회의 안정기반을 튼튼히 할 수 있는 일을 자율적으로 해주기 바랍니다. 갈등의 소지가 되고 있는 토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활동에 꼭 필요하지 않은 부동산은 스스로 처분하고 노사와 국민화합을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주어야겠습니다. 근로자 여러분은 이제 더 열심히 일하고 생산성을 높여 주어야 합니다. 임금인상을 생산성 향상의 범위내로 자제해 주어야 합니다. 임금과 근로조건은 최근 2∼3년간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우리 경제를 키우면서 어려움을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지금 근로자와 서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집문제도 92년까지 짓는 2백만채의 주택이 본격적으로 공급되면 크게 호전됩니다. 이처럼 과감하게 집을 지어가면 앞으로 10년안에 누구나 손쉽게 내집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어려움을 맞을 때마다 우리 국민은 단합하여 그 고비를 슬기롭게 극복해 왔습니다. 이 사회에 큰 영향력을 가진 언론과 지도층은 정부의 잘못도 비판하지만 이 사회의 그릇된 풍조를 바로잡는 데도 소신있게 나서 주어야 합니다. 여유있는 계층은 과도한 소비와 사치를 자제하고 화합하는 사회를 이루는 데 더 큰 책임을 져 주어야 합니다. 이와같이협조해가면 현재의 국면은 머지않아 극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이기며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없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냉전의 벽이 허물어지고 동서독일이 사실상 한나라가 되고 있는 세기적 변혁을 맞고 있습니다. 반세기동안 우리에게 금단의 땅이었던 북방세계도 열렸습니다. 변화의 큰 물결은 한반도에 밀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룩한 민주발전과 번영,북방정책의 결실을 바탕으로 이제 통일의 길을 본격적으로 열어가야 합니다. 민족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시기입니다. 저와 정부는 비상한 자세로 나갈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의 협조를 호소합니다.
  • 김용갑씨 헌신적 중재/정부가 결실을 못맺어/민개협 성명

    민주개혁범국민협의회는 1일 「KBS사태에 대한 입장」이라는 성명을 통해 『우리 민개협은 투쟁보다는 타협을,충돌보다는 대화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임을 확신하고 창립준비위원장인 김용갑씨가 KBS사태수습에 나섰다』고 밝히고 『정부당국이 김씨의 자격운운하는 등의 발언으로 헌신적인 중재의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한데 대해 심히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사설)

    현대중공업 파업으로 시작된 노사분규사태는 지금 우리 사회를 대혼돈의 상태로 급격히 이끌고 있다. 현대계열사 동조파업,전노협 총파업에 노학연계까지 이어져 쉽게 그 앞을 볼수 없는 격동의 불안을 만들고 있다. 이와 줄기는 다르지만 증시의 파국과 공영방송의 파행까지 겹쳐 평범한 시민의 일상적 삶의 질서마저 순조롭게 운행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우리는 지금 어떤 착란상태에 있는 것인가를 진심으로 묻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답답한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라는 느낌이다. 노사분규에 의한 파업만 해도 우리는 4년째를 맞고 있는 충분한 경험의 과제이다. 따라서 적어도 쟁점의 성격과 규모에 있어서는 그 분별력이 생겼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 이 분별력에서 보자면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시작한 오늘의 이슈가 과연 전국적 파업으로까지 가야하는 것인가에 대한 설명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이만한 혼란상태를 만듦으로써 궁극적으로 얻고자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무엇인가를 우리는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되묻는다는 것 조차 어이가 없다. 노조가 아니더라도 민주사회에 있어 집단행동이나 그 압력의 유효성은 단순히 겁주는 힘으로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건전한 요구와 그 요구에 의한 구체적 개선의 효과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명백한 효과에 의해서도 집단압력은 언제나 압력의 일방적 승리가 아니라 그 사회체계와의 균형상태를 유지하는 한계에서 질서를 가질 때에만 존립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찍이 해리 트루먼이 지적했듯이 어떤 집단이든 모든 국민과 그 사회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포괄적 이익이란 갖고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 우리의 집단행동과 압력에서는 마치 그 모든 것이 국민을 대변하고 국민을 위하는 유일한 일이며 방법인 것처럼 쓰이고 있다. 그러면서 또 그렇게 하여 얻고자 하는 것의 실체마저 불투명하다. 그렇다면 왜 이 사회 전체에 충격을 주고 혼란으로 이끄는가에 대한 논리나 가치를 먼저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포괄적으로 민주화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민주화라면 그 행동과 압력의 끝에 남는 것이 바로 민주적 가치나 규범이나 또는 민주적 윤리의 재건이 되어야만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점에 있어서도 우리는 아직 어떤 결실을 보고 있지 못하다. 어느 파업에서도 공공적 가치나 더불어 같이 사는 삶의 형식을 얻어내지 못했고 아직도 보다 개인적 차원에서 대단히 부분적인 시한적 이익들만을 챙겨 왔다. 그렇다면 또 이 반복되며 더욱 악화되는 집단행동의 누적은 무엇을 위한 과정인가가 더 애매해 질 수밖엔 없는 것이다. 혼란이 없는 질서만이 높은 질의 가치는 물론 아니다. 혼란과 혼돈의 상태에도 질적측면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오늘 우리의 혼돈과 혼란속에는 한번 더 사람에게 생각을 하게 하는 질감이 없다. 무엇보다 새 가치를 지향하는 창조성이 찾아지질 않는다. 단지 한쪽의 잔학한 행위를 비난하면서 다른 한쪽의 잔학한 행위는 모르고 있거나 또는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선별적 휴머니즘경향만이 강할 뿐이다. 그러므로 진실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를 다시 물을 수밖엔없다.
  • 자성 바탕,집권당면모 새로이/민자 최고위원 청와대회동의 의미

    ◎여론의식… 분파행동 자제 다짐/역할분담ㆍ서열등 명확히 정리 26일의 청와대 4자회동이 그동안 당내분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던 당지도체제문제를 해소함으로써 민자당은 집권당으로서 면모를 새로이 했다.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김종필 두 최고위원,그리고 박태준 최고위원대행은 이날 회동에서 총재단일지도체제로 당의 지도체제를 결정하는 등 국정현안 및 당운영방안에 대해 7개항의 합의를 끌어냈다. 민자당수뇌들은 박철언 정무1장관의 발언파동에 이은 「대권밀약설」로 합당정신이 크게 훼손되었고 국민에 대한 집권당으로서의 신뢰감을 크게 실추시켰다는 공동인식아래 자성을 바탕으로 이러한 합의를 도출한 것이다. 지도체제문제와 관련,『지도체제는 총재제로 하며 총재는 당을 대표한다』고 못박음으로써 오는 5월9일 창당전당대회에서 민자당은 총재단일지도체제임을 천명할 것 같다. 또 「총재는 최고위원과 협의하여 당무를 통할하고 대표최고위원은 최고위원들과 합의하여 당무의 집행을 총괄한다」고 합의한 것은 총재­대표최고위원­최고위원으로 그 서열을 확실히 하는 한편 대표최고위원과 최고위원간의 관계는 당무집행의 권능면에서는 수평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최고위원의 당무집행은 최고위원들과 「합의」에 의해 이뤄져야 하므로 대표최고위원의 독주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더욱이 합의발표문에는 없지만 총재와 대표최고위원ㆍ최고위원의 선출방법에 대한 4자의 합의는 이를 더욱 뒷받침하고 있다. 즉 총재와 5인이내의 최고위원은 전당대회에서 선출하지만 대표최고위원은 총재가 최고위원중에서 지명,임명하거나 최고위원끼리 호선하여 총재가 임명토록 한 것이다. 따라서 대표최고위원 선출 또는 선임이 전당대회를 거치지 않는다는 것은 대표최고위원과 최고위원의 권능이 동격이란 점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대권밀약설」파문이 한마디로 김영삼최고위원의 당권장악 및 향후 대권후계구도를 어느 수준으로,어떤 문구로 당헌에 담보하느냐에 연유된 것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이날 4자합의문제에서 그가 얻은 것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민주계는 지금까지 총재가 대표최고위원을 임명할 경우 논리적으로 면직권도 갖게 되고 따라서 대표최고위원의 권능과 위상이 다른 최고위원과 동격이라는 점을 들어 반발하면서 「전당대회선출」 또는 「총재지명­전당대회인준」 방식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민정계에선 이왕 대표최고위원을 별도로 전당대회에서 선출(인준)하려 한다면 차라리 경선제를 채택하자고 역공,여차하면 김영삼최고위원과 민정계후보를 경쟁시켜 다수대의원의 힘을 과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것이다. 이번 회동에서는 92년 14대총선후의 당권문제등 「장래」문제는 거론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의견교환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김영삼최고위원은 이번 4자회동에서 많은 것을 양보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후퇴한 것으로 평가되는데 그 이유는 민주계의 「대권밀약설」 발설등이 여론의 비판을 집중적으로 받은데다 「구국적 결단」에 의한 합당이 고작 당권과 대권을 염두에 둔 야합으로 비치는 데 따른 정치적 변명을 행동으로 보이지 않을 수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날 회동은 당지도체제문제 뿐만아니라 현대중공업파업사태를 비롯한 대기업노조의 연쇄파업움직임,KBS사태,연일 폭락하는 증시,물가불안,부동산문제 등 당면 국정현안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하고 집권당 수뇌부로서 문제해결의 결연한 의지를 보인 것은 모처럼 보는 생산적 결실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불법노사분규에 대한 단호한 대처,KBS의 무조건 조속한 방송정상화,대기업의 비업무용 토지처분유도 및 신규취득억제,그리고 이를 어기는 업체에 대한 강력한 제재조치강구 등을 강조한 것은 정치안정,민생안정의 안전판으로서의 집권당의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다짐으로 평가된다. 또한 전당대회를 단합된 모습으로 치르고 계파중심의 당운영 인상을 불식하며 최고위원과 주요당직자들이 이를 솔선수범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그동안의 민자당내분에 수뇌부의 책임도 있다는 것을 반증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번 회동을 계기로 집권당의 정치역량이 국정현안과 과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데 집중돼야 할 것이며 그렇게될 경우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해결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청와대 4자회동은 적지 않은 성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 4자회동 합의발표문 전문 ①당이 전당대회를 단합된 모습으로 치름은 물론 민생경제문제 등 현안과 국정과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여 국민의 기대에 적극 부응할 것을 다짐했다. ②물가,전ㆍ월세 등 민생문제와 수출,부동산,증시 등 당면경제문제의 해결에 당정이 협조하여 총력을 기울여 나가기로 했다. 특히 부동산문제와 관련,대기업의 비업무용 토지는 조속한 처분을 유도하고 이의 신규취득을 억제토록 하는 한편 이를 어기는 업체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조치를 강구키로 했다. ③현대중공업등에서 불법적인 노사분규가 일어나고 있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이러한 불법노사분규는 가뜩이나 침체된 국민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인식아래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기로 했다. ④KBS사태에 대하여 KBS는 국민의 방송이며 국민의 것이므로 무조건 조속한 방송정상화가 이루어져 국민의 방송으로서 그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⑤박태준 최고위원대행의 방일결과를 보고받고 한일현안에 관한 일본정부의 태도를 주시키로 했다. ⑥전당대회를 앞두고 당의 새로운 지도체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가)지도체제는 총재제로 하며 총재는 당을 대표한다. (나)총재는 최고위원과 협의하여 당무를 통할한다. (다)최고위원은 5인이내로 두되 그중 1인은 대표최고위원이 된다. 대표최고위원은 최고위원을 대표한다. (라)대표최고위원은 최고위원들과 합의하여 당무의 집행을 총괄한다. ⑦당이 계파중심으로 운영되는 인상을 불식하도록 최고위원 및 주요 당직자들이 솔선수범키로 했으며 당내 융화와 결속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로 다짐했다.
  • 동구변혁과 북한의 딜레마/서병철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세평)

    공산권의 공동번영을 위하여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강력히 촉구 하는 개혁정책의 바람이 아직까지 북한과 알바니아에만 눈에 보이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으나 공산권의 최근 정세는 이 두나라로 하여금 나무의 뿌리가 뽑히기 전에 가지를 휘어 순응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인식을 갖게할 것이다. ○국내외서 개혁 압력 나라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천지개벽에 비유될 만한 근본적인 변혁이 보도관제로 봉쇄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소련이 북한에 신예무기를 제공하면서 고성능기계를 착오없이 다루도록 기술지도를 하기 위하여 군사고문단을 파견하면 이들은 소련과 동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소식을 북한 군부에 전달하는 매체가 될 것이다. 외부로 부터 들어오는 소식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가 완전무결할 수는 없으며 단편적으로 입수되는 정보는 오히려 실제보다도 부풀리어 확산된다. 따라서 국민들의 요구가 표면화되기 전에 개혁추세에 동조하려 할 것이다. 낙후된 경제도 개혁을 촉진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국가가 국민을 잘 살게 해 주어야 한다는기본적인 존립 목적 조차 저버릴때 국민들은 집권층에 등을 돌리고 축적되는 불만을 기회만 있으면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위험을 인식한 알바니아의 예를 들어보자. 사회주의체제를 채택하고도 소련 및 중국과 국교를 단절하고 미국과는 수교조차 하지 않은 이 나라는 1976년 개정된 헌법에서 외국으로 부터의 차관도입까지 금지하였다. 이 알바니아에서 최근에 우선 헌법에 저촉 안되는 무상원조를 서방으로부터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경제 상황이 비슷한 북한이 알바니아의 예를 따를 가능성을 점칠 수 있다. 북한의 변화는 국내상황에서도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생존하고 있는 동안에 주석직을 맡는 등 후계자로서 권력기반을 굳히는 것이 세습통례상 안전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는 정치적 카리스마도 없고 혼자의 힘으로 거센 바람을 막아내기도 어려워 부친의 후광을 최대로 이용하기 위하여 수렴청정을 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이때 그는 혼자서도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하며 이를 위하여 대세에 동조하는과감한 개혁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수렴청정 바랄지도 다당제를 채택하여 민주주의적 선거를 실시하면 공산주의 정당은 비공산세력과 경쟁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정권을 상실한다는 사실이 폴란드ㆍ동독 및 헝가리에서 확인되었다. 작년 6월 공산주의 국가에서 처음 실시된 폴란드의 제한된 자유총선거에서 자유노조가 허용된 하원 35%의석을 석권하였으며 그 결과 비공산정권이 창출된 이변이 발생하였다. 금년 3월18일 동독 총선거에서도 「사회주의」라는 명칭을 당의 이름에 붙이고 있는 모든 정당이 보수세력에 의하여 밀려나는 결과가 나타났다. 헝가리에서도 지난 4월8일 실시된 선거에서 공산주의 통치원칙을 포기하고 새롭게 변모한 사회당이 불과 8%의 득표에 그쳤으며 마르크스 주의를 고집한 공산당은 완전 탈락하였다. 동유럽 국가들의 잇단 선거에서 예외없이 나타난 국민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감은 현 집권당으로 하여금 탈바꿈을 유도하고 있다. 이는 공산주의를 고수하려고 버티는 북한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며 동시에 북한이 늦기전에변화하도록 자극을 주는 요인이다. 공산권의 수많은 변화중에서도 북한에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동독의 정권교체와 루마니아 「피의 혁명」이었을 것이다. 동독의 호네커는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채택하도록 강력히 권유하였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독자노선을 고집하는 오만을 보이다가 정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는 공산권 최대의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코메콘(공산권 상호경제원조회의)내에서 발언권을 강화하여 왔으며 17년에 걸친 장기집권중 카리스마까지 구축하여 북한으로부터 가장 성공적인 사회주의 성취자로 평가받았었다. 김일성은 「주체사상」과 호네커의 독립노선을 기꺼이 비유하면서 동독모형을 표준으로 삼았었다. 결코 개혁하지 않겠다는 호네커의 옹고집이 결국에 가서는 정권을 교체시켰고 이제는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형태의 통일로까지 연결되었다. 다음으로 공산권에서 발생하는 심상치 않은 사태에 관한 소식이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집안단속을 철저히 하는데 뜻을 같이했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밑으로부터의 혁명에 의하여 무너지고 처형된 사실도 북한을 초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양국은 공산권 개혁은 사회주의를 욕되게 하는 일이므로 공동으로 이를 저지해야 한다고 선언하였으며 소련에 대한 독자성을 바탕으로 이념적 동맹관계를 굳혀왔다. 차우셰스쿠도 족벌정치와 정권세습을 시도하여 사회주의의 이단자로 빈축을 사오기도 했다. 루마니아 혁명당국이 차우셰스쿠를 실각시키고 군법재판에 회부하여 신속히 처형함으로써 추종자들의 반발을 봉쇄해버린 기민성을 보인 것은 소련 KGB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보도된 바도 있다. 이와같이 개혁에 소극적인 정책을 추구하다 불행을 자초한 나라들의 예는 비록 동유럽국가들과 북한과는 지정학적인 위치와 국민들의 정치문화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북한으로 하여금 적합한 개혁방도를 찾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북한의 변화가능성을 열거하면서 한국은 이에 대비한 조치를 서둘러야 할 것이라는 느낌을 갖는다. 더구나 70년대초의 독일의 여건이 90년대초 한국의 상황과 흡사하기 때문에 20년전 서독이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기선을 잡아 오늘날 통일에까지 이르게 된 것과 같이 한국이 노력하면 결실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한국이 작년 헝가리ㆍ폴란드 그리고 유고슬라비아와 수교한 이래 금년에 체코슬로바키아ㆍ불가리아 및 루마니아와도 국교를 수립하여 북방정책에 결실을 가져온 것은 1970년 8월 서독이 소련과 무력행사포기조약을 체결하고 이어 12월에 폴란드와 관계를 정상화한 동방정책의 결실과 비유된다. 또한 국제정세면에서도 1970년은 동서진영간의 데탕트가 이루어진 해였으며 두번째로 미소간의 대화와 타협에 의한 긴장완화가 1990년에 되풀이되고 있다. ○독일 본받을 필요성 1971년 동독에서는 울브리히트에서 호네커로 정권교체가 있었으며 1991년안으로 북한에서는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정권이양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와같이 20년의 시차를 두고 동ㆍ서양에서 전개되고 있는 분단국간 상황의 유사점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따라서 국력을 바탕으로 동독을 대화에 유도하여 통일을 달성하는 서독의방법을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 “북방정책 목표는 통일에 둬야”/안병준교수,학술회의서 주장

    ◎한ㆍ소정식 수교땐 중국도 대한접근/정책혼선 막게 전문기관 설립토록 동유럽에 지각변동을 초래한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는 아시아의 오지인 네팔ㆍ몽고에 이르기까지 이제 그 개혁물결의 파장을 넓혀가고 있다. 이와 때맞춰 활기차게 추진되고 있는 한국의 북방정책도 사회주의국가들의 변혁과 88서울 올림픽이라는 호재가 어우러져 이들 국가와 수교관계를 맺는 결실단계에 이르렀다. 이러한 한국과 공산권국가들과의 관계정상화를 맞아 서울대부설 소련ㆍ동구연구소(소장 이인호교수)가 「소련ㆍ동구의 변화와 한국의 대응」이란 주제로 20,21일 이틀간 서울 힐튼호텔에서 학술회의를 개최,주목되고 있다. 이 회의에서 안병준교수(연세대)가 21일 발표한 「북방정책의 평가와 향후방향」이란 제목의 논문을 요약,정리한다. 북방정책의 내용과 방법은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하여 「정경분리」에서 「정경연계」로 전환되고 있다. 원래 공산국가들은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정경분리를 선호했고 주로 한국과의 경제관계만을추구했으나 한국은 정치와 경제를 연계시켜 그들이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해 남북관계개선과 긴장완화에 기여할 것을 촉구해왔다. 지난해 동구 및 소련의 변화로 인해 공산국가들이 한국과의 수교에 응하게 되어 교차승인이 성립되고 있으며 한국은 경제진출에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방정책의 성과를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공산국가들이 한국을 실질적으로 승인했다가 법적으로 승인하고 있는 점이다. 현재 알바니아를 제외한 모든 동구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했거나 할 예정이며 소련과도 수교가 성사될 전망이다. 원래 공산국가들은 한국에 대해 경제교류를 우선적으로 원했고 한국도 미국ㆍ일본 및 서구에서 일고 있는 보호주의 경향으로 또다른 시장이 필요했기에 경제교류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공산국가들과 무역 투자 기술협력을 확대해가고 있으며 한국의 대공산권국가 교역량은 지난 87년의 21억달러에서 지난해에는 42억달러로 급신장하고 있다. 또한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과 공산국가간에 체육 문화 및 인사교류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소련과는 연구소와 대학간에 학술ㆍ체육교류협정이 체결되고 있다. 북방정책의 성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련 동구 중국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도움이 되고 한국의 통일정책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의 수교관계를 맺거나 경제 및 문화교류를 하고 있는 공산국가들은 평화와 안정을 지지하고 나아가서 북한에 대해 취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을 이해할 뿐 아니라 공식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체제의 변혁 및 신데탕트(화해),한국의 경제력,서울올림픽,진취적인 한국의 북방정책 등이 이러한 성과를 얻는데 기여했다. 한국이 중국 동구 소련과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사회주의체제가 개혁 또는 변혁됐고 그결과 동서간에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데탕트가 냉전을 종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해의 천안문사건이후 국내정치가 보수화했기 때문에 김일성과 제휴해 사회주의 고수를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이 한국과 정식수교관계를 갖게 되면 중국도 이런 방향으로 노력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공산국가들은 88올림픽에 참가,한국의 경제력에 대해 목격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들은 한국과 교류함으로써 경제적인 이익을 획득할 수 있고 한국의 경험을 배울 수 있게 됐다. 지난 88년 노태우대통령이 중국 소련 및 다른 공산국가들과 관계개선을 위한 「7ㆍ7선언」을 발표한 뒤 한국이 취해온 북방정책은 공산국가들이 한국과의 접촉을 쉽게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북방정책이 이처럼 상당한 성과를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북방정책은 북한에 대한 통일정책과 미국에 대한 안보협력,그리고 통상정책과 잘 조정된 체계적 전략이 결여돼 있는 실정이다. 또한 정책을 연구,기획,조정,평가하는 활동을 제도화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정치적인 시각에서 북방정책을 공작적으로 취급하는 면이 있고 언론과 기타관계자들은 과도한 보도와 과시적인 행동으로 불필요한 경쟁을 표출,북방정책 당사자들간에 반목과 혼선을 빚고 있는 점도 지적된다. 또한 중국 소련 동구국가들과 접촉하는데 있어서 전문가와 깊은 지식을 갖춘 인력이 부족하다. 북방정책의 중요성만 강조됐으며 이에 상응하는 연구 훈련 및 토론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고 보다 효과적인 북방정책을 앞으로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략적 사고와 정책결정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북방정책은 전쟁을 억지하고 긴장을 완화해 궁극적으로 남북대화와 통일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전략에 근거해야 할 것이다. 정부에서는 국가안보회의가 본연의 임무를 활성화해야 할 것이며 민간에서는 국제민간경제협의회(IPECK)가 강화되고 종합적인 연구소와 연수계획이 시급히 보강돼야 한다.
  • 네팔,민주화의 구심” 가네시 만 싱

    ◎비폭력 저항운동에 앞장…15년간 옥고/75세 노구로 야연합 결성,민주화결실 네팔의회당(NCP)의 지도자 가네시 만 싱은 네팔의 민주화대장정을 선도하고 있는 최고 반체제인사. 15년간 옥고를 치른 싱은 75세라는 고령과 병으로 쇠약한 몸이지만 히말라야 산록을 휘몰아친 민주화바람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네팔의 호메이니옹이자 국민들로부터 「철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싱은 요즘 자신의 몸을 던져 네팔의회당과 7개 좌파공산세력을 연합,국왕을 헌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비렌드라의 절대왕정에 도전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대대로 총리자리를 세습해오던 라나족의 한 아들을 구타해 퇴학당한 일도 있긴하지만 싱은 비폭력 저항운동을 민주화투쟁의 기조로 하고 있다. 그는 인도에서 대학시절 인도의 독립운동을 체험하며 『악에 대해서 싸워 이길 수 있으며 평화적 저항을 통해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신념과 영감을 깨달았다』고 밝힌 바 있다. 싱은 1940년 방학을 이용,카트만두로 돌아와 라나족의 족벌통치체제에 저항하는 운동에 가담했으나 곧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그는 4년간의 감옥생활후 극적으로 탈출,인도로 건너가 네팔의 반체제운동 영웅 코이랄라가 이끄는 민주화운동에 가담했다. 코이랄라와 함께 47년 네팔의회당을 창설한 싱은 50년부터 59년까지 네팔의회당이 연정에 참여하자 한때 각료직을 맡기도 했다. 싱은 79년 정당정치가 중단되고 왕정이 실시되면서 지난 10년간 야인의 길을 걸아왔으나 네팔의 민주화운동이 점화되면서 노구를 무릅쓰고 그 선봉에 나서고 있다. 그는 한국기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이룩한 민주정치의 발전이 네팔의 다당제 민주주의 실현에 자극과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재야세력을 대표하는 싱은 지난 13일 비렌드라 네팔국왕과 단독회담을 갖고 과도정부수립 등의 많은 양보를 받아냈다. 그러나 살아있는 신으로 군림해온 비렌드라국왕이 진정한 다당제 허용,국왕의 정치권력 포기 등 획기적 개혁까지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돼 네팔의 민주화와 그의 투쟁 전도는 매우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 「단일체제」 카드로 불협화 일단락/민자내분 조기수습 국면의 배경

    ◎민정계,“「중대결심」선언하면 자해” 설득/민주계요구 수용… 회동은 모양갖추기/민주게,당내소외 벗고 야당기질 발휘 잦을듯 김영삼최고위원의 공개적인 불만표시로 내분양상을 보였던 민자당내의 계파간 갈등은 민정계의 신속한 수습안제시에 따라 「단발성」으로 마무리될 조짐이다. 8일 밤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이 상도동 김최고위원의 자택을 방문,김최고위원과 단독면담을 가진끝에 노태우대통령과 김최고위원의 청와대회동을 갖기로 한 것은 민정계의 민주계에 대한 설득작업이 어느정도 결실을 거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민정ㆍ민주 양계파의 수뇌부급인사들은 7일 김최고위원의 청와대 당직자 회의 불참이후 다양한 막후접촉을 갖고 전당대회후 당의 지도체제를 형식상으로는 집단지도체제이나 대표최고위원에게 당무통할권을 줌으로써 사실상의 단일지도체제로 정비키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사태해결의 결정적 고비가 지나간뒤 이뤄진 노실장의 상도동방문 및 11일 하오,또는 12일 있을 예정인 노ㆍ김청와대회동은문제매듭의 마지막 수순이며 내분표면화로 야기됐던 당내외의 파문을 다분히 의식한 의전절차라고 할 수 있다. 조기수습이 가능케 된 가장 큰 원인은 당지도체제문제등과 관련한 민주계의 요구를 적극 수용한 때문으로 전해지고 있다. ○단발성으로 끝날 전망 ○…민정계가 조기 수습에 나선 것은 우선 김최고위원이 10일 부산으로 출발하며 11일에는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어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11일까지 김최고위원의 불만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그로서도 기자회견을 통해 「중요한 결심」의 일단을 밝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이럴 경우 민자당내분은 보다 심각하고 해결이 어려워지는 국면에 접어들어 갈 가능성이 컸다. 이와함께 통상적으로 사회불안이 1년중 가장 고조되는 봄 정국을 앞두고 당외에서 가해질 각종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우선은 당의 단합이 중요하다는 거시적 판단도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또 민자당내분이 최근 보선에서 나타난 민심의 이반을 가속화시키지 않겠느냐는 우려는 계파를 초월해 당전체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김최고위원에게 당무통할권을 준다는 것도 당헌의 관계조항을 「대표최고위원은 당을 대표하고 당무를 통할한다」는 요지의 내용으로 바꾸는 것일 뿐 이로인해 당내 최대계파인 민정계의 세가 삭감되거나 민주계가 당운영을 주도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고려됐음직하다. 김최고위원이 당운영권을 가진다고 할지라도 민주계에서 주장하는 개혁에 대해서는 공화계가 민정계를 능가하는 생리적 거부감을 보이고 있고 당의 최고의결기구인 당무회의 위원구성비율에서 민정계가 과반수를 확보하고 있는 점때문에 그의 「전횡」은 불가능할 것 같다. 민정계는 당헌개정소위의 절충과정에서 총재인 노대통령이 대표최고위원에게 중요당무에 관한 협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하는등 그외의 제도적 견제장치 마련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박장관 위세 꺾일 듯 ○…김최고위원의 청와대당직자회의 불참이라는 강수처방으로 그동안 당운영에서 소외되고 김최고위원의 방소활동에서 보여진 박철언정무1장관의 「일탈」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 민주계는 상황이 급전되면서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해결이 이뤄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7일 김최고위원의 대리역인 고위측근과 민정계최고위층과의 7일 청와대 당직자회의직후 면담을 통해 「상황호전」의 청색신호를 감지한 민주계는 8일부터는 김최고위원의 당무집행거부가 갖는 의미를 축소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민주계측은 7일 청와대당직자회의후 민정계와 청와대측의 핵심간부들로 구성된 대책회의에서 일부의 「강력한 대응」 주장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한 당사자인 박장관등의 중재로 자신들의 요구가 상당부분 수용됐음을 청와대측으로부터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계측은 이번 파동으로 인해 통합후 자신들의 위상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계보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동시에 김최고위원의 「정치력」을 당내외에 과시할 수 있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민주계소식통에 의하면 김최고위원이 말했던 「중요한 결심」의 구체적 내용은 노대통령에게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되는 모종의 행동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소식통은 『사태가 악화됐을 경우 노대통령은 야당총재로서의 김영삼씨보다 현재의 김최고위원을 대하기가 더욱 거북스럽게 됐을 확률이 높았다』고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계도 이같은 「제2탄」을 터뜨릴 경우 민자당전체가 입게되는 피해의 규모가 엄청나고 자신들도 아무런 득이 없는 일종의 자해행위밖에 안된다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조기수습을 내심 강력히 희망해 왔다. 민주계가 민정계에서 제시한 수습안이 단지 환부의 거죽만을 덮어주는,즉 선언적 의미밖에 없음을 잘 알면서도 선뜻 받아들인 것은 파국에 대한 두려움을 민정계 못지않게 갖고 있음을 반증한다 할 수 있다. 민주계는 이번 파동을 통해 앞으로 자신들이 당내에서의 입지를 넓혀나가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보고 야당기질을 적극 발휘해 가며 각종현안문제 해결에 대처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계가 막후접촉등을 통해 제시했던 불만의 내용은 ▲민자당의 개혁의지 부족 ▲박철언장관의 독주 ▲당운영에서의 민주계 소외 등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같은 다양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민주계가 지도체제에서의 「양보」로 만족하는 것은 개혁의지 부족이나 당운영에서의 소외 등은 지도체제문제 해소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박정무장관에 대한 견제도 비록 2선으로 물러나게 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기세를 꺾는데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불만에 대한 한가지 양보만으로 수습의 길이 보이는 보다 큰 배경은 불만표출이 여러가지 표면적인 것들을 나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장래입지에 대한 불안이 주요인이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민정계도 안도의 한숨 ○…김최고위원의 청와대회의 불참사태에 대해 원인제공자인 박철언정무장관과 김최고위원 모두를 비난했던 민정계는 최고위층의 조속한 단안으로 사태가 수습국면을 맞은 것에 대해 안도하는 표정이다. 민정계는 김최고위원의 「무례」가 겨냥하고 있는 장단기목표의 괴리로 인해 처방전 마련이 쉽지 않다는 데 인식을 같이해 왔다. 특히 김최고위원의 반발이 지극히 공개적인 형식을 취함으로써 노태우대통령의 처방전 마련에 대한 운신폭이 지극히 좁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 김최고위원의 불참사태를 놓고 민정계는 두가지의 대책을 비교ㆍ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첫째는 타깃이 된 박정무장관을 2선으로 돌리는 방법이고 두번째는 막후절충을 통해 인사조치없이 김최고위원측을 무마한다는 쪽이었다. 박정무장관의 독주는 민정계를 사분오열시키는 주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따라서 민정계 평의원들의 인식은 박정무장관을 차제에 2선으로 후퇴시키면서 김최고위원의 「야당성행위」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반박하는 정공법의 사용이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던 편이다. 그러나 박정무장관의 2선퇴진은 ▲김최고위원의 공개적인 불만표시에 노대통령이 굴복하는 형식이 됨으로써 통치권손상을 가져오게 된다는 점과 ▲박장관에 대한 노대통령의 의존과 신임이 워낙 두터운 점 등이 고려돼 막후절충을 통해 지도체제문제를 양보하는 방안이 수습책으로 채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막후접촉을통한 수습에도 불구하고 박정무장관의 활동영역은 그 이전보다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민정계의원들이 이번 사태로 민정계의 결속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점과 결속을 위한 전단계조치로 박정무장관의 2선후퇴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청와대회의 불참의 여진이 없어지는 전당대회 전후를 맞취 2선후퇴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키 어렵다. 박정무장관은 지금까지 ▲당무에 있어서의 노대통령대리인 ▲북방정책에 관한 정부책임자 ▲정부정책입안ㆍ집행에 있어서의 노대통령 핵심측근이라는 3∼4가지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번 사태로 박정무장관은 노대통령대리인으로서 당무에 간여했던 역할을 일단 자제하거나 노대통령으로부터 자제를 요구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최고위원이 방소에서 돌아와 노대통령에게 박정무장관과의 불편을 호소한 이후 박장관은 이미 민정계조직강화특위위원에서 물러났고 또한 본인 스스로도 7일 밤 사석에서『당분간 조용히 지내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민정계는 결과적이지만 김최고위원이 이번 청와대 불참을 통해 자신의 정치스타일의 일면을 내보여 민정계에 대비할 시간을 준 것이 다행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최고위원이 민정계의 단결을 결과적으로 촉구한 셈이며 단결의 장애물이었던 박장관의 위세를 꺾어준 것도 민정계에 마이너스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은 민자당내 각계파들이 내부결속을 강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모든 당무가 대권경쟁의 연장선상에서 협상되고 처리될 가능성도 커졌다. 결과적으로 민자당은 창당전당대회도 하기전 계파간 밀월관계를 끝내고 공개ㆍ비공개경쟁시대로 돌입하게 된 셈이다. 민정계는 보선패배로 내각제개헌 가능성이 적어진 데 이어 이번 사태로 계파간 경쟁이 공개화됨으로써 당장 「차기준비」에 착수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김영만ㆍ김교준기자〉
  • 한ㆍ루마니아 대사급수교/의정서 서명/통상ㆍ투자 보장협정도 합의

    우리나라와 루마니아가 30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최호중외무부장관과 방한중인 미르차 미트란 루마니아 외무차관은 30일 상오 8시50분 외무부 조약체결실에서 한­루마니아 수교의정서에 서명했다. 양국은 이에따라 이른 시일내에 서울과 부쿠레슈티에 각각 상주대사관을 교환설치키로 했다. 우리나라와 루마니아는 또 양국간 실질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통상협정ㆍ투자보장협정ㆍ이중과세방지협정 등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헝가리 폴란드 유고 체코 불가리아에 이어 동구 사회주의 국가와는 6번째로 수교하게 됐으며 총수교국 수는 1백40개국으로 늘어났다. 이번 루마니아와의 수교로 동구권에서는 동독과 알바니아만 미수교국으로 남아 있으나 동독측은 이미 우리측에 수교교섭을 제의해 놓고 있어 사실상 알바니아만 제외하고 대동구권 외교는 사실상 마무리된 상태이다. ◎인구 2천3백만 1인소득 2천불 ▷루마니아 개황◁ 면적 23만7천5백여㎢,인구 2천3백만여명(87년 기준),민족은 루마니아인(88%)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언어는 루마니아어가 공식어다. 1인당 국민소득은 2천2백44달러(86년 기준)이며 수출액은 1백21억달러,수입액은 1백억달러. 지난해 12월22일 24년간 철권통치를 해오던 차우셰스쿠정권이 붕괴된 뒤 구국전선평의회 일리에스쿠 의장이 4월 총선까지 임시대통령을 맡아 다당제,언론자유보장 등 민주개혁을 실시해오고 있다.
  • 당정「동반외교」로 한ㆍ소 공감대 확충/모스크바 여로 이얘기 저얘기

    ◎준국가원수급 예우… 인식변화 실감/사안별이견ㆍ「공다툼」인상준것은 흠 7박8일간에 걸친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 일행의 모스크바 방문은 한소 양국의 공식수교를 향한 상호 교감대를 크게 넓힌 성공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소련측은 야당총재에서 집권여당대표로 변신한 김최고위원의 정치적 위상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를 준국가원수급으로 예우,사실상 한소 양국간 고위레벨의 공식 정치교류가 이루어졌다. 더욱이 박철언정무1장관을 중심으로 정부대표 성격의 수행팀에 의해 소정부당국과의 직접교섭이 진행됨으로써 일부에서 혼선이 일었다는 지적도 있으나 전체 구도면에서는 정치ㆍ실무레벨의 접촉이 어우러진 외교활동이 수행됐다고 보여진다. ○…김최고위원의 이번 소련방문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전격회동. 당초 우리 정부측은 대내외 현안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고르바초프가 북한의 격렬한 방해에도 불구,김최고위원을 만나줄 것인가에 회의적 시각이었던 것이 사실. 그럼에도 고르바초프와의 만남에 대한 기대를버리지 않았던 방소단은 회동이 이뤄질 경우 모스크바방문 막바지인 26일쯤에야 면담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었으나 도착한지 하룻만에 크렘린 내실의 굳게 닫힌 철문이 열린 것. 지난 21일 고르바초프가 김최고위원을 만나고자 한다는 연락을 한 인사는 마르티노프 세계경제및 국제문제연구소(IMEMO) 소장. 김최고위원은 이날 하오 6시10분쯤 숙소인 옥자브라스카야 호텔에서 소정부기관지인 이즈베스티야지와 회견 도중 마르티노프소장의 전화연락을 받고 황급히 크렘린으로 출발. ○정치ㆍ실무접촉 병행 김최고위원과 고르바초프의 면담에 대해서는 「상당한 얘기가 오갔다」 「3∼4분에 걸쳐 인사만 나눴다」는 상반된 관측이 엇갈리고 있으나 면담시간에 관계없이 만났다는 것 자체가 한ㆍ소 관계변화에 중요한 이벤트가 됐다는 평. 이번 김ㆍ고르바초프 면담성사는 정재문ㆍ황병태의원 등 측근수행 인사들의 숨은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고 볼 수 있으나 한국과의 교류증진을 바라는 소련측의 태도변화도 상당한 뒷받침이 된듯. 정ㆍ황 두 의원은 프리마코프 연방회의의장ㆍ부르텐스 공산당중앙위국제부 부부장,마르티노프 IMEMO소장 등 「고르바초프 직계라인」과 연쇄접촉을 갖고 김ㆍ고르바초프 면담을 강력 요청했다는 후문. ○…박철언정무1장관을 중심으로 한 실무팀은 부르텐스 공산당중앙위 국제부 부부장 등 소련측의 당정인사들과 연쇄 접촉을 갖고 김최고위원의 정치적 외교활동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뒷바라지. 박장관은 김ㆍ고르바초프 회동이 황망중에 성사돼 자신이 소지하고 있던 노태우대통령의 친서가 고르바초프에게 직접 전달되지 못하자 브르텐스를 통해 친서를 전달하고 답신을 요청. 박장관은 또 김최고위원이 한소간 총영사관을 우선 설치하자는 소련측의 제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자 이는 「중간단계없이 직접 수교이룩」이란 우리 정부 방침과 다르다는 점을 설명,외교의 혼선을 방지했고 결국 준공식관계수립을 의미하는 상호 대표부설치 합의를 도출. ○친서전달 혼선 유감 ○…소련측은 북한등의 입장을 고려,아직 선경제교류확대 후국교수립의 공식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김최고위원은 비정치적 활동에 있어 보다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는 것. 김최고위원의 모스크바대 초청연설시에는 4백여명의 청중이 몰려 한ㆍ소관계 진전에 대해 열띤 질의ㆍ응답을 벌였고 IMEMO와의 합동세미나도 성황리에 진행. ○…소련측의 방소단에 대한 예우도 국가원수급에 준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현지 언론들도 김최고위원 및 한국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표시. 김최고위원에게는 소련의 최고급 승용차인 차이카가 제공되었으며 공식일정에는 경찰차가 선두에서 안내했고 대표단이 묵었던 옥자브라스카야 영빈관의 경비도 소련측이 전액 부담.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는 1면 박스기사를,노보스티통신은 김최고위원 인터뷰기사를 게재했으며 일본등 외국 언론들도 열띤 취재경쟁. ○비정치분야 적극적 북한측도 김최고위원의 동정에 깊은 관심을 표시,연일 소외무성에 방소단 일정을 문의했고 특히 김ㆍ고르바초프 회동확인에 굉장한 노력을 경주하는 모습. 북한 중앙통신의 모스크바 특파원인 장공섭은 계속 대표단 행사장에 모습을 나타내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체크. ○…김최고위원 일행의 이번 방소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속에 대표단 내부적으로 「공다툼」이 일었다는 인상을 준 것이 「옥의 티」였다는 지적. 정치인으로서 김최고위원의 언행이 북방비밀 외교를 주도하는 정부대표로서의 박정무1장관의 입장과 다소 상충되는 바람에 갈등이 표출됐다는 것. 이에 따라 노대통령의 친서전달과정,총영사관 설치문제 등을 둘러싸고 잡음이 있었을뿐 아니라 박정무1장관측은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할 북방외교가 정치이해 때문에 모두 드러나 정부측의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 KAL 모스크바 취항「이후」(사설)

    한소간 항공교류의 막이 올랐다. 대한항공 903편이 우리나라 정기여객기로는 사상 처음 28일 상오 모스크바에 착륙함으로써 서울∼모스크바 직항시대가 열리게 됐다. 30일에는 소련국영 아에로플로트기가 김포에 도착하고,31일 승객을 태운 대한항공기가 모스크바에 취항하게 되면 그날부터 두 나라간 항공교류는 본궤도에 오르게 된다. 공산권과의 교류ㆍ수교가 예측을 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고 때마침 김영삼 민자당최고위원의 소련방문에 뒤이은 이번의 항공교류는 본격적인 민간교류의 시작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이같은 결실은 그동안 우리가 추진해온 북방정책이 가져온 것이고 서울올림픽이 큰 힘이 됐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이다. 여기에다 대한항공과 아에로플로트 등 두 나라 항공관계자들의 끈질긴 노고가 있었음을 우리는 들어 알고 있다. 북방외교의 착실한 진전과 민간외교의 성과라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나아가 이번의 항로개설은 한소 두 나라의 관계개선은 물론 동구권 국가들과의 협력증진이외에 앞으로 서울이 아시아 교통요지로 부상하고 무역중심지로 발돋움 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에 의의가 있다. 이번의 서울∼모스크바 직항운항으로 우리는 서울∼파리간 항로에서 종전보다 거리와 시간단축ㆍ기름절약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게 됐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에 소련 영공통과 유럽항로가 개설됨으로써 서울이 극동ㆍ구주간 항로의 중심이 돼 거점공항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발판을 우선 마련했다고 하는 사실이다. 이번의 항공교류가 주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우리가 바라고 있는 기대에 못미친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북경취항과 중국영공 통과라는 과제가 해결될 때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 중국과의 관계개선이 이루어져 중국및 소련을 경유하는 노선이 개설될때 서울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통의 중심축으로,국제적 관문으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까지 이를 때 우리의 북방외교는 큰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항로개설에 따라 앞으로 두 나라간 인적ㆍ물적 교류가 본격적으로 증대되는 그만큼 또한 문제점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 하나가 서로를 잘 알지 못하고 있는 데서 오는 여러가지 오해와 마찰이 있을 수 있다. 오랜 세월 접촉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할지 모르나 이제 본격적으로 민간교류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서로를 알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여긴다. 지난 83년 9월 소련의 미사일에 KAL보잉747기가 격추돼 승객ㆍ승무원 2백69명이 목숨을 잃은 대참사에 대한 기억을 이제 굳이 되살릴 필요는 없다고 해도 소련은 서방의 한 나라가 아니고 여전히 사회주의국가라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안및 안전사고에 대한 대비를 보다 철저히 해줄 것을 당부한다. 또한 지나친 기대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것도 명심해 주길 바란다.
  • 한ㆍ몽 수교의 의미(사설)

    북경과 평양ㆍ하노이를 잇는 아시아공산국가들은 동구공산국들보다 그 체제나 사회주의 이념노선이 보다 교조적이고 수구적이었다. 따라서 좀처럼 개방으로의 변화가 어려울 것처럼 여겨져 왔다. 최근 동구권 변화의 속도와 개혁추세에 비추어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번 한국과 몽고인민공화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은 그 여건상 조속한 관계개선이 힘들 것으로 보였던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와의 중간단계를 생략한 첫 공식수교라는 사실측면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몽고는 역사적으로는 물론 지리ㆍ인종적으로도 우리 민족과 유난히 공통점이 많아 친밀감을 가져온 터였다. 그런데도 몽고가 그간 국제사회에서 「은둔국」으로 일컬어질 만큼 폐쇄적이어서 상호접근과 관계개선이 쉽지 않았다. 이번 한몽수교는 그간의 여러 여건과 국제정세변화 추세를 주시하면서 꾸준한 북방외교를 펴온 우리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오랜 은둔과 폐쇄를 벗고 국제사회에 동참하려는 몽고측의 적극적인 정책선택의 소산이기도 해 한몽 관계개선의 앞날을 더욱 밝게 해준다. 몽고와의 수교로 이제 우리가 외교관계를 맺어야 할 아시아 사회주의국가는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ㆍ라오스ㆍ캄보디아 등 4개국이다. 북한과의 관계개선은 우리 민족내부의 문제이고 우리가 지금 펼치고 있는 적극적인 북방외교의 궁극 목표가 또한 그것인 만큼 아시아 사회주의국가와의 수교라는 차원과는 다른 것이다. 다만 이와관련하여 동구권국가들의 개방과 개혁에 이어 아시아쪽 공산국의 변화추세마저 외면하려는 북한의 수구ㆍ폐쇄적인 자세가 안타까운 것이다. 북한은 작금년에 걸친 동구권 변화와 개방ㆍ개혁을 외면하려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사회주의 이념의 고수,그들의 이른바 주체사상의 강화,보다 배타적인 대외정책 등으로 폐쇄의 자물쇠를 더욱 죄고 있다. 아시아공산권의 종주국이라고도 할 중국과 직접 간접으로 유대를 더욱 강화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북한당국자들은 이번 한몽수교가 갖는 국제정치적 의미를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한반도 문제를 생각하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몽고야말로 모두 15개 공화국으로 구성된 다민족,「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의 제16공화국이라 지칭될 정도로 소련과 밀착돼 있는 나라이다. 바로 그곳에서 최근 잇따라 시위가 일어나 69년간의 공산당 통치가 휘청거리다가 드디어는 공산당 일당독재를 포기하고 국제무대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와 유럽은 그 역사와 문화 전통이 다르다. 유럽 공산주의가 공산화이전 민주시민의식과 계몽주의 기독사상을 경험했다면 아시아공산주의는 유교적 전통과 문화가 뿌리깊이 남아 있다. 그들이 오랜 몽매와 침체와 낙후를 벗어나 개방과 개혁이라는 세계사적 변화와 시대적 추세를 인식했을 때 오히려 변혁의 발걸음은 더욱 빠를 수 있다. 몽고는 특히 지난 48년부터 북한과 돈독한 우호관계를 지속해 왔다. 따라서 우리는 한몽수교가 북한의 개방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냉전없는 미국」… 미지 편집인 메인즈의 전망(해외 논단)

    ◎“미국은 「민주주의 십자군 역활」 포기해야”/「평화적 동반시대」에 걸맞는 정책수립 시급/마약문제 등 외엔 「제3세계 개입」 줄여야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신사고 외교에서 비롯된 냉전체제의 종식은 이제 도처에서 새로운 세계질서의 개편으로 결실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후 40여년 동안 반 공산주의를 외교정책의 유일한 방향타로 삼아왔던 초강대국 미국이 이같은 데탕트시대를 맞아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점고 하고 있는게 사실. 미국의 계간지 포린 폴리시는 90년 봄호에서 「냉전없는 미국」(필자 찰스 윌리엄 메인즈)의 대응이 어떠해야 하는 가를 여러측면에서 조명,관심을 끌고 있다. 자유진영에서는 동구의 민주화를 서방이념의 승리로 간주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승리감이 널리 퍼져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럴 정도로 지금 세계는 역사상 매우 희귀한 순간에 와 있다. 모든 것이 급속히 변해가는…. 그러나 이 상황에서 까딱 정책을 오판하게 되면 냉전시대보다 더욱 불안정한 사태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아무튼 이제는 탈냉전시대를 맞아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활발한 논의를 벌이고 이같은 중대변화에 따른 미국 외교정책의 결과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고려해야 할 때다. ○소,냉전 복귀 불가능 과거 전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을 때 오히려 적개심과 불안정을 야기했던데 비하면 오늘날의 상황은 훨씬 더 안정된 미래를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 또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뤄볼 때 소련이 혁명적 추진력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혁명의 기운 없이는 냉전으로의 복귀가 있을 수 없다. 테러리즘이나 제3세계 급진주의,일본의 거대한 경제력에서 새로운 안보위협 요인을 찾으려는 노력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별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이들은 경제ㆍ군사ㆍ정치 모든 면에서 동시에 미국의 우월성에 도전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냉전시대가 끝남에 따라 미국은 지난 45년 이후 외교정책의 방향을 이끌어왔던 길잡이 역할을 잃게 됐다. 미국 국민들은 철저한 권력분립제도가 국내에서는 자유와 힘의 원천이 되지만 해외에서는 일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점이 된다는 점을 인식,이를 보완하기 위해 상당수준의 자유에 대한 제약도 감수해왔다. 안보문제에 한해서는 정파를 초월해야 한다는 무언의 합의가 지켜졌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정수는 국민의 생명과 복지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릴 때 국민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는데 있다. 따라서 냉전종료에는 이같은 논의의 활성화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우선 탈냉전시대에는 안보정책보다는 경제ㆍ환경정책과 인권문제 등이 더욱 관심을 끌 것이기 때문에 행정부와 의회간의 권력균형에 변동이 생길 것 같다. 의회는 이같은 국민들의 주요 관심사에 있어서 안보문제에 관해서 보다는 훨씬 더 많은 역할을 맡을 수 밖에 없다. 이제까지 미국 외교정책의 절대근본원칙은 반공산주의였다. 이를 대체할 새로운 반석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국익,민주적 가치,범세계적 동반관계 등이 제기되고 있다. 철저하게 국익을 바탕으로 하는 외교정책을 펴다보면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존재를 줄여나가게 될 것이다. 미국과 함께 5대세력을 구성하고 있는 중국 일본 소련 서유럽중 그 어느 하나도 미국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위협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제3세계에의 미국 개입도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미국이 베트남 뿐 아니라 차드 그레나다 라오스 등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될 만한 나라에 마저 개입한 것은 도미노 이론을 앞세워 전 지구상에서 벌인 소련과의 세력다툼 때문이었다. ○최소한의 전력유지 앞으로는 마약이나 AIDS같은 미국의 관심분야에서 제3세계 국가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계속 기울이는 것 외에는 제3세계 문제는 유엔의 관심사나 해당 국가의 국내 정치문제로 간주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또 이제 거의 제로상태에 이른 소련의 서유럽 공격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 국방예산의 절반 이상을 계속 할애하기 보다는 해외거주 미국인의 생명보호와 테러리즘에 맞서 싸우는 일,돌발사태에 대비한 최소한의 억제전력을 유지하는 것 외에는 국익차원에서 병력을 대폭 감축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분석가들은 민주주의 수출이 반 공산주의 대신 미국 외교정책의 기본원칙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국의 민주적 지도자들에게 정치적 지지와 재정적 지원을 보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외교ㆍ경제적 측면에서 만의 지원은 군사적 지원만큼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미국이 민주주의의 십자군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군비를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가 국민들에게 먹혀들 것인가. 대개의 미국 국민들은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 국제법을 어겨가면서 까지도 군사력 사용을 지지할 것이다. 별다른 손실없이 성공리에 끝난 미국의 그레나다 및 파나마 침공이 국민들 사이에서 찬사를 받았던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별다른 피해없이 성공적 침공의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 거의 없고 ▲성공한다 해도 후속조치로서의 경제지원부담이 과중하며 ▲미국이 지원한 정파가 추진하는 정치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피상적 민주주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민주주의의 십자군으로 자처하기 위해서는 전지전능에 가까워야 하는데 미국인들은 외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무엇보다도 소련이 국제법을 지키는데 반해 미국이 국제법을 어긴다면 심각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의 민주주의 십자군 역할에 대한 국민의 지원획득 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무장해제ㆍ경제개발과 민주화를 요체로 하는 평화를 위한 동반관계는 모두가 필요로 하는 이상의 실현을 가져다줄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88년 유엔 연설에서 개인의 권리와 법의 지배 개념을 포용할 것을 선언함으로써 2차 새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미소간의 협력관계를 가능케 했다. 동서진영이 90년대에 직면할 문제는 공산진영의 생활수준을 서방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 뿐 아니라 범세계적 발전계획을 수립하는데 필요한 매우 어려운 개념적인 작업을 시작하는 일이다. 지난해 말 지중해 몰타에서 열린 미소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는 부시에게 공산진영이 서방이념을 채택하기 시작했다고 발언하는 일을 중단해 주도록 요청하면서 동구의 민주화 개혁노력은 서구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이제는 동서진영이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굳게 뭉쳐야 할 때다. 정기적으로 비밀선거를 치르기만 하면 민주주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지적한 4가지 자유 즉 언론ㆍ신앙의 자유와 결핍ㆍ공포로부터의 자유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외교정책의 변화는 강조하는 정도의 차이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여러가지 새로운 외교정책의 방향타들은 한가지만이 아니라 모두가 동시에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동서,협력 강화해야 미국이 민주주의의 수출에 집착하다 보면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파워를 높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해외에서 우쭐대는 결과를 초래한다. 범세계적 동반관계를 바탕으로한 외교정책은 미국인들의 최대 관심사에 있어서의 협조노력을 증대시키지만 비용이 많이 들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부시행정부가 초기에 추구했던대로 외교정책의 현상유지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평화배당금은 돈 뿐 아니라 사상의 개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의외교정책에 관해 대토론을 벌여야 할 때이다. 가장 값진 평화배당금은 이같은 토론의 합법성이다. 우리는 이 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이다.
  • 서울ㆍ모스크바 교류의 파장 긴급진단

    ◎“「한ㆍ소 접근」 동북아 냉전구조 와해에 기여”/구체적 「방소결실」 조만간 가시화 확실/“「두개의 한국」 노선 채택” 대북압력 효과/소,「통독」 여세 몰아 「한반도」 카드 제시 가능성/북의 「하나의 조선」 정책 포기 여부가 변수로/일본도 「북방섬 문제」 해결되면 시베리아 진출 서둘 듯 한국과 소련의 관계가 최근들어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다. 이미 적지 않은 규모의 경제교류가 이루어지고 있고 서울과 모스크바에 영사처가 개설된데 이어 김영삼 민자당 최고위원의 방소를 계기로 수교문제가 본격 거론되는 등 한소간의 정치 경제관계가 한 차원 높아지고 있다. 이같은 한소관계의 급속한 개선은 동북아 세력균형의 중심고리로 간주되는 한반도와 그 주변의 중국ㆍ일본ㆍ미국간의 상호관계에도 미묘한 파장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오는 4월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앞두고 권력승계설까지 나돌고 있는 북한측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되고 있다. 급변하는 한소관계의 배경과 전망 그리고 주변국가들에 미치는 영향등을 종합진단하기 위해 이기탁 교수(연세대),최종기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김부기 교수(외교안보연구원) 등 소련 및 국제정치 전문가들의 좌담을 마련했다. ◇특별좌담: 이기탁(연세대 교수) 최종기(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부기(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이기탁 교수=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거치며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낸 북방정책은 6공화국에 들어서면서 중요한 정책으로 부각됐습니다. 지금 모스크바에는 김영삼 민자당 최고위원과 그동안 북방정책을 실제로 담당했던 박철언 정무제1장관이 함께 가 있으며 김최고위원이 고르바초프와 회담을 가졌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한소양국은 현재의 영사처 관계를 총영사관으로 격상시키기로 합의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한소관계에 관한 이같은 보도만으론 그 외교적 틀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같은 사실은 지금까지의 비공식적 차원의 한소관계를 공식적 차원으로 끌어 올리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종기 교수=김최고위원의 이번 소련방문은 여러가지를 시사하고 있습니다.그중에서도 가장 큰 의미라면 소련이 자국의 국가이익을 위해선 이념을 초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점입니다. 소련은 지금 국내적으로 심각한 생필품 부족현상에 직면하고 있어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기존의 군수공장을 민영화하여 민간 소비제품을 생산하는 등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한 생필품의 해결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번에 소련이 김최고위원을 초청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자국의 경제난 타개를 위해 우리나라를 경제협력의 파트너로 지목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경협 파트너로 지목 ▲김부기 교수=소련이 우리나라와 경제협력을 바라는게 한소관계 진전의 동인이라는 말씀에 덧붙여 이번 소련 초청의 몇가지 배경을 살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동유럽의 대변화,그리고 공산주의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소련자체의 변화는 냉전체제하의 「구사고」로 부터 몰타회담 이후 국제적 화해 분위기 속에서 「신사고」로의 전환을 가능케 했습니다. ○남북관계 악화위험이같은 사고의 전환은 소련으로 하여금 더이상 냉정의 산물인 북한을 의식하지 않게 만든 요인입니다. 또 몰타회담 이후 증대된 미소협조관계는 한반도외교를 적극화하려는 소련의 생각을 가속화 시켰으며 대통령제를 도입하는 등 자신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다진 고르바초프는 과감한 방향설정이 가능케 됐습니다. ▲이교수=김최고위원의 이번 모스크바 방문은 앞으로 한소양국관계 뿐만 아니라 한반도 주변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단순한 의사 타진 단계가 아닌 양국관계 공식화의 첫걸음이라 해석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최교수=이번 모스크바 방문은 궁극적으로는 한소국교 정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소련으로 하여금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소련은 지난 88년 9월 크라스노야르스크 선언을 통해 한소양국간의 경제문제를 처음 언급한 뒤 올림픽을 계기로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왔습니다. 북방외교의 목적이 북한 배후세력과의 관계증진을 통한 대북관계개선이라면 이는 이번 방문을 통해 어떤 형태로든구체적 결실을 조만간 거둘 것으로 기대됩니다. ▲김교수=북한은 현재 동유럽 민주화라는 커다란 충격파에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북한은 오는 4월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기점으로 체제내부를 단속하고 이를 통해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대응코자 하고 있으며 현재는 정책조정기간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이번 소련 방문을 통해 한소관계가 증진되면 이는 북한에 압력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며 소련은 이를 이용,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몰타회담 이후 국제관계가 우호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련은 그동안 한국이 정치적으로만 접근하지,자신들이 필요한 경제문제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불평해왔습니다. 따라서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은 소련에 경제협력을 해주는 대신 소련은 한반도에는 2개의 국가가 존재한다는 「한반도의 현실적 노선」을 북한이 깨닫게 하도록 만들 것 입니다. ▲이교수=북한은 지난 45년부터 「하나의 조선정책」을 권력체계의 아킬레스건으로 삼아 줄곧 남조선해방을 주장해 오고 있는데,한소 양국의관계개선은 이 정책에 악영향을 끼쳐 남북관계의 악화를 초래할 위험성도 없지 않습니다. 물론 북한이 자신들이 고수해오던 「원 코리아」 정책을 포기하고 「투 코리아」 정책을 받아들이는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남북관계가 더 악화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최교수=소련은 동서독문제에 있어 양국을 모두 승인했으며 한반도에서도 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을 통해 「투 코리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로 보아 소련은 장차 동북아의 평화정착을 위해 헬싱키조약과 같은 카드를 아시아에서도 던질 것이며 이로 인해 남북대화의 가능성은 높아질 것입니다. ▲김교수=북한은 오는 4월 최고인민회의 선거를 계기로 상당한 지도부 개편을 단행할 것입니다. 젊은 신세대의 부상을 통해 사고의 개방성이 이루어지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현실주의태도가 늘어나면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죠. ▲이교수=소련이 우리나라에 대해 갖는 기대는 크게 정치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것은 앞에서 지적됐지만 정치적인 문제,특히 미군주둔문제는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탈냉전화 목표 ▲김교수=소련의 한반도에 대한 외교목표는 탈냉전입니다. 한반도의 탈냉전화로 동북아시아의 냉전구조 와해를 기대하고 있으며 탈냉전을 통한 군비축소로 경제재건을 꾀하는 것입니다. 소련은 북한의 주한미군철수를 지지하고 있지만 군사적 팽창주의는 포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한반도의 탈냉전은 해외주둔기지의 철수와 함께 자연스럽게 주한미군의 철수를 유도할 것입니다. ○한중 관계 영향없어 또 한소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건으로 소련은 원칙적으로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할 것이지만 이를 전제조건으로 고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교수=이번의 김영삼 최고위원과 고르바초프 대통령간의 회동 등을 통해 한소관계가 급진전되고 있으며 수교단계가 임박했다는 느낌까지 갖게 됩니다. 그런데 지난해 중국의 천안문사건 이후 소련이 한국에 접근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데 대해 중국이 심한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중소에 대한 관계가 최근 들어 역전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최교수=지난해 중국에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한국은 소련보다 중국과의 관계가 밀접했으며 무역고도 30억달러로 소련과의 무역고인 5억달러를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안문사건으로 최근 분위기가 「중국바람」에서 「소련열기」로 갑자기 바뀌었지만 한중관계에 그렇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북한이 「하나의 조선」 정책을 고집하듯이 중국은 대만관계 때문에 「하나의 중국」이라는 주장을 포기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딜레마에 빠져 있는 중국으로서는 소련이 먼저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하면 그 뒤를 이어 따라가는 것이 수월하기 때문에 한소관계 개선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한국이 너무 서둘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올 가을 북경에서 열리는 아시안 게임을 계기로 한중관계는 한 차원 높은 발전을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교수=소련의 적극적인 대한관계 전환은 중국으로 하여금 대한관계 증진에 적극 나서도록 자극할 것이며,중국을 자극하는 만큼 소련의 정책전환은 북한에 압력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지난해 12월의 미소정상회담 이후 미소의 협조분위기가 상당히 무르익어 있고,지난해 5월의 중소정상회담을 통해 두 나라의 관계가 정상화되었기 때문에 한반도문제에 대한 외부적 압력이 가중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즉 중소관계 정상화가 한반도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협조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므로 한소관계의 정상화가 한중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의견입니다. 또한 곧 개최될 미소외무회담ㆍ정상회담을 통해 소련은 동서독 문제를 해결한 여세를 몰아 한반도 문제를 푸는 자세로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 움직임 주시해야 ▲이교수=일본이 한국의 북방정책에 「의외로」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한국이 동구권 국가들과 국교수립을 맺을 때 일본인의 도움이 있었다는 말이 있고,김영삼 당시 민주당총재 및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방소 등도 일본인의 협조가 큰 힘이 되었다고 하는데 왜 이처럼 일본이 한국의 북방정책에 「우호적」으로 나오는 것일까요. 또한 소련은 일본이 시베리아 개발에 참여하는 것을 유도할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일본이 시베리아로 진출하여 일소관계가 완화될까요. ▲최교수=일본은 지난 50년대부터 시베리아로 진출한다고 말은 했지만 실제로는 진출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소련과 북방도서문제가 남아 있고 미국의 눈치를 무시할 수 없어서 결단을 내릴 수 없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일본의 시베리아개발 참여문제는 일본이 미국안보체제를 중요시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과연 미국이 이를 묵인,협력할 것이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미국은 일소관계개선을 좋아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련에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북방도서문제도 시베리아 진출의 큰 걸림돌로 계속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김교수=동감입니다. 일본은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며 북방도서문제도 난제로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의 미소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대소강경정책이 후퇴하고 있는 분위기이므로 일본은 미국을 덜 의식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며 소련이 북방도서문제에 대한 「제3의 길」을 모색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일본의 시베리아진출 전망은 밝다고 생각합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일을 전후하여 장애물이 해결되면 일소관계는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지요. 한소관계는 일본이 한편으로는 견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장려하는 측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소관계가 진전된 만큼 일본은 미국을 의식하지 않고 소련에 진출하는 것이 쉬워지는 면이 있지요. 그리고 한국의 기업이 소련에 진출하는 것은 일본과 충돌되는 면도 있지만 한일 두나라의 경제력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므로 양국의 소련진출이 상충되는 범위는 넓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이 먼저 소련에 진출할 경우 이러한 「선례」를 미국의 눈치를 덜 의식하고 일본이 따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이 소련진출을 견제하는 것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사실을 일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교수=북방정책은 미국ㆍ일본ㆍ서구와의 남방정책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 서방을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미국ㆍEC(유럽공동체)의 시장을 기반으로 소련ㆍ동구에 진출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요. 또 일본이 그들의 막대한 저축을 시베리아개발에 투하할 것인가,아니면 지금처럼 「소련의 실질적인 아시아 군사력 감축이 없다」며 방위예산증액에 힘을 기울일 것인가에 따라 동북아의 정세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이점 우리로서는 일본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입니다. ○서방정책 너무 소홀 ▲김교수=현재 세계질서는 탈냉전화로 나가고 있으며 제로섬게임이라는 냉전시대 유물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세계가 공존적 협력시대로 구조적인 변화를 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대소관계 개선으로 한미우호관계가 나쁜 영향을 받으리라는 것은 기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서구의 대소경제협력도 활발해지고 있으니까요. ▲이교수=현재의 움직임을 보면 한국이 북방정책을 너무 급속히 추진하여 오히려 남북관계가 악화된 것 같습니다. 헝가리와의 수교를 계기로 남북한의 통로가 두절되어 남북한의 평화와 안전보장이라는 북방정책의 목표가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북한 정권이 「하나의 조선」 정책을 포기하게 되면 한반도의 현실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어 자연스럽게 남북한 교차승인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북방정책의 종착역은 평양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의 대소관계개선으로 북한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김교수=소련이 한국과의 정치관계를 가속화시키려고 한다는 것은 현재 정책을 조정하는 과정에 있는 북한이 한반도에 두나라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현실적인 노선을 택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즉 한소관계 정상화는 북한이 냉전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도록 인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한소관계의 압력속에서 북한은 신사고로의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이같은 움직임은 올해초 동구공관장회의때 나타난 바 있습니다. ○정부간 공식화 필요 ▲최교수=북한은 지난해 12월 말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정권 전복 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인정하고 나왔습니다. 따라서 한소관계정상화는 북한에 선의의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으며 폐쇄체제가 완화될 것 같습니다. 한국이 소련과 가까워질 수록 북한이 불장난을 하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북한은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 밖에 없겠지요. ▲이교수=그동안 우리는 비공식외교채널을 통해 소련과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이제는 외무부 등 공식채널이 기능을 발휘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고르바초프­김영삼 회동을 통해 한국의 외교사상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되었으며 이제 비공식외교는 마무리하고 외무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한소관계를 공식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 대한 안보공약 확고/부시,미 의회 보고서

    【워싱턴=김호준특파원】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20일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안보공약은 확고하다』고 재확인하고 『미국은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추구하며 결실있는 남북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한국정부의 노력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부시대통령은 이날 의회에 제출한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이같이 강조하고 『재래식 전쟁을 억제하는데 있어 미군의 주둔만큼 확고한 미국의 안보공약은 없다』고 말했다.
  • 김영삼 최고위원,모스크바에 왜 또 가나

    ◎“한ㆍ소수교 촉진”… 첫 국정분담의 여로/고르비 면담여부가 최대 관심사/소의 대한시각 호전… 가시적 결실 기대/박 정무는 대북관계 개선에 초점 맞출 듯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의 이번 두번째 방소는 지난해의 방문이 제3당총재로서 미수교국 소련에 대한 탐험여행이었던 데 비해 집권당의 공동대표로서 수교촉진특사로서의 성격을 지닌다고 해야할 듯 싶다. 특히 정부의 북방정책을 실질적으로 주도해온 박철언정무1장관이 동행함으로써 이번 방문을 통해 한소 관계개선을 위한 실질적이고 「격」있는 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방소를 앞두고 다양하게 나타난 일련의 양국간 관계개선 징후들은 그의 방문기간중 수교로 가는 큰매듭이 풀리는 것 아닌가하는 희망적 관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지난 16일 취임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양국간의 관계개선은 『매우 좋은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소련 최고지도자가 직접 한소 관계개선에 관해 이를 호의적으로 평가한 것은 처음있는 일일 뿐만 아니라 빠른 시일내의 수교를 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서 지난 5일 방한중이던 아나톨리 로구노프 모스크바대총장이 노태우대통령에게 임기중 소련을 방문해달라고 초청한 바 있다. 특히 최근들어 소련의 유력지 노보에 브레미아가 북한의 권력세습을 비판하고 나선것 등은 소련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한수교를 희망하는 외교적 시사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소 관계는 그동안 소련측이 북한의 반발등을 고려해 경제협력강화를 우선시킴으로써 외교적으로는 여전히 상당한 거리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달들어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이 방소를 통해 20억달러짜리 공사에 참여키로 합의한 것을 비롯,외교적 뒷받침이 필요한 단계로 경협규모가 커졌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고르바초프의 대통령 취임으로 한소 수교 견제세력이라할 당내보수파의 입김으로부터 정치ㆍ경제개혁의 운신이 한결 자유로워 졌다는 점도 한소 수교를 앞당길 수 있는 긍정적 여건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최고위원의 방소결과를 예측케할 모스크바에서의 1주일간 체류일정은 상당부분이 미정상태에 있다. 또한 일부 일정은 「보안」에 붙여지고 있다는 추측도 있다. 소련측이 발표한 김최고위원 모스크바 일정에는 소련최고회의 외교분과위에서 「한소 관계와 동북아의 평화」를 주제로 연설하는 것 외에 예고르 리즈코프총리,예브게니 프리마코프연방회의의장 등을 만나는 것으로 짜여 있다. 아직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면담일정은 예정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모스크바에 체류하는 1주일 동안 계속 면담노력이 있을 것으로 보여 그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면담이 성사될 경우 일종의 한소 간접정상회담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김최고위원의 모스크바 일정외에 박정무장관의 모스크바 일정도 관심을 끌고 있다. 박정무장관의 측근들은 그가 김최고위원과는 별도의 일정으로 움직이게 될것이며 「정부대표」로 모스크바에 체류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특히 그의 측근들은 『한소 수교는 어차피 시간상의 문제인 만큼 박장관이 모스크바에서 그릴 행적은 한소 관계개선보다 남북 관계개선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망해 관심도를 높이고 있는 상태다. 박장관 측근들의 전망과,그가 청와대를 물러난 이후에도 여전히 남북관계의 막후채널로 활동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모스크바에 체류하는 동안 북한측 고위관계자의 비밀접촉 가능성은 어렵지 않게 점쳐볼 수 있다. 때문에 모스크바에서는 김최고위원이 소련과의 공식대화 창구로,박정무가 대소 및 대북한 막후창구로 활동하는 역할 분담을 할가능성이 큰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정부 입장에서 고르바초프의 대통령 취임은 한소 관계는 물론 동북아정세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큰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대통령 취임직후에 이뤄지는 김최고위원과 박정무장관의 방소는 이 사건의 파장과 의미를 직접 파악하고 새로운 지도체제하의 소련과의 수교시간표를 확정하거나 기존의 시간표를 앞당기는 기회가 될 것이 틀림없다. 김최고위원의 방소는 국내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여러가지 의미를 지닐 수 있고 여권내 김최고위원의 향후 위상을 점칠 수 있는 또하나의 계기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김최고위원으로서는 북방외교 개척자중의 1인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함으로써 정계개편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훼손된 그의 이미지를 고양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처음으로 구체적인 국정의 일부분을 자신의 책임과 지휘아래 분담하게 됨으로써 노대통령과의 동지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미래 집권담당자로서의 비전을 보여주는 계기로 삼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김최고위원으로서는 그러한 긍정적인 측면 외에 별다른 방소성과가 없었을 경우의 여론에 대해서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다. 방문단만 공식ㆍ비공식을 합쳐 40명선에 이르고 있고 대구서갑 보궐선거 기간중에 치러지는 장기외유라는 점에서 뚜렷한 성과가 없을 경우 당내외로부터 비난을 받을 소지도 없지 않다. 방소를 전후해 일본에 들러 가이후수상 및 도이사회당 위원장등과 잇단 접촉을 갖기로 한 것은 이런 불안에 대한 대비로 볼 수 있다. 정부는 김최고위원의 방소에 앞서 준비기획단을 만들어 준비작업을 진행시켜 왔다. 노대통령이 17일 청남대에서 김종필최고위원까지를 포함해 환송회동을 가져준점,박정무장관을 동행케 한 점 등도 김최고위원의 방소와 관련,위상제고를 위한 적극적 지원이었다. 그러나 박장관의 모스크바일정이 분리되는 점등은 향후 기존여권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주목을 끌 수도 있는 부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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