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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홈리스 대학생’ 늘어난다/IMF후 첫 여름방학… 캠퍼스는 지금

    ◎학생회관서 자고 식사는 학교식당서 해결/부업은 야간경비·중국집 배달원 등 안가려/취업난속 도서관 자리잡기 새벽부터 ‘전쟁’ 전주가 고향인 건국대 3학년 金모군(26)은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 20여일이 됐지만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학생회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업하다 부도를 낸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다.잠은 학생회관 동아리 사무실의 소파에서 잔다.식사는 학교식당에서 해결하기도 하고 동아리사무실에서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한다.빨래는 학생회관 화장실을 이용한다.金군은 2학기 등록금을 벌기 위해 서울 성수동의 빌딩사무실에서 월 35만원을 받기로 하고 야간경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IMF사태 이후 첫 여름방학을 맞아 金군처럼 대학 캠퍼스에서 숙식하는 ‘대학생 홈리스’들이 늘고 있다.대부분 지방학생들이지만 갑자기 집안이 기운 서울 학생들도 적지 않다. ‘홈리스’들은 학교측이 학교비품 도난 및 화재 우려,경비문제 등을 들어 단속할 움직임을 보이자 ‘대학생 홈리스연합’이라는 동아리를 결성,공동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자세다.오히려 학교측이 ‘학교규찰대’ 대원 등 아르바이트 자리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올 초 K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崔모씨(27)는 직장을 구했다가 ‘대학생 홈리스’ 대열에 합류했다.입사시험에 합격한 H전자가 얼마 전 발령을 보류했기 때문이다.그는 다시 직장을 구할 때까지 집에 손을 벌리지 않고 학생회관에서 숙식하며 버티겠다는 각오다.그는 정보를 먼저 얻기 위해 하루에도 몇번씩 취업상담실을 찾는다. 이들에 비하면 전남 고흥 출신의 국민대 張모군(26)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방학동안 월 80만원을 받기로 하고 학교 인근의 중국집에서 배달을 한다.숙식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새벽에는 신문배달을 해 20만원의 과외 수입을 올리고 있다. 강릉이 고향인 건국대 공대 3학년 金모군(25)은 방학이 시작되면서 하숙짐을 강남구 역삼동의 한 빌딩사무실로 옮겼다.빌딩관리와 야간경비를 동시에 맡아야 하는 고된 아르바이트지만 잠자리와 식사도 해결되고 월 30만원의 수입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IMF시대를 이기려는 대학생들의 몸부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아르바이트자리라면 ‘3D’ 업종도 마다하지 않는다.식당에서 음식나르기,일용직 퀵서비스,전단지 배포,행사 도우미,영세사업장 근무,신문배달 등 일거리가 주어지는 대로 매달린다.보수라고 해야 1시간에 기껏 2,000∼3,000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가 하면 ‘취업전쟁’에 대비한 대학 도서관 행렬은 새벽부터 이어진다.이 행렬에는 1,2학년생까지 가세하고 있다. 연세대 도서관 金慶基 과장(57)은 “4,500석인 중앙도서관에 하루 2만여명이 몰리면서 새벽부터 ‘자리싸움’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 전교조 교사 복직/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강산도 변한 10년 세월을 보내고서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활동으로 교단을 떠나야 했던 해직교사 문제가 해결됐다. 16일 교육부가 아직까지 교단에 돌아가지 못한 해직교사 148명을 오는 2학기부터 복직시키기로 했다. 우리 사회의 해묵은 상처가 이제 비로소 아무는 셈이다. 전교조는 지난 87년 6월항쟁의 열기속에서 결성된 전국교사협의회를 모태로 하여 89년 출범했다. 교사들의 노동조합은 당시로는 충격적인 행위로 받아 들여졌고 당국은 출범과 동시에 전교조를 불법단체로 규정했다. 따라서 1백여명의 관련교사가 구속되고 1500여명이 강제 해직됐다. 그중 1342명이 지난 94년부터 단계적으로 복직했으나 끝까지 전교조 탈퇴를 거부한 148명이 이번에 복직되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들이 전교조를 탈퇴하지 않더라도 국가공무원법등 관련법 준수를 서약하면 복직시키기로 했다. 교육부의 이 조치는 지난 2월의 노사정위원회 결정에 따라 오는 99년 7월부터 전교조가 합법화되므로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전교조 파동으로 우리 사회가 겪은 상처의 깊이를 생각하면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상처가 아물기 위해서는 관련당사들의 노력과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10년만에 제자리를 찾은 해직교사들을 현직교사들은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하고 감싸안아 주어야 할 것이다. 방식이 서로 달랐을 뿐 교사로서의 사명감과 교육개혁 의지는 떠난 사람이나 남은 사람이나 똑같이 지녔을 터이다. 전교조 활동으로 우리 교단이 엄청난 홍역을 치렀지만 그로인해 얻은 것도 없지 않다. 교단 및 학교운영의 민주화와 교원처우개선,교육환경개선등 지금 진행되고 있는 교육개혁은 전교조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복직되는 해직교사들도 겸허한 마음으로 옛동료와 학생들을 대해야 할 것이다. 바른 뜻에서 시작한 행동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민감한 나이의 학생들을 희생시킨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깊이 성찰하고 더이상 교단에 불신과 반목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해직교사 복직과 전교조 합법화에 아직도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전교조에 무조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일반의 시선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26개국중 교원에게 노동기본권을 인정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뿐이다. 무엇보다 화해와 화합의 자세만이 전교조 파동으로 인한 상처를 아물게 해 줄것이다.
  • 서양화가 李大源(이세기의 인물탐구:175)

    ◎빛을 데생하는 화단의 신사/때묻지 않고 따뜻한 성품 작품에 그대로/화폭마다 생명력 약동 축제분위기 넘실/‘물방울처럼 영롱한 화경’… 독자 영역 이룩 만약 벚꽃이 만개한 눈부신 봄날에 함박눈처럼 떨어지는 꽃잎을 본 사람이라면 서양화단의 원로 李大源 화백의 그림을 아는 사람이다. 그의 쏘는듯한 붓길은 비로드에 싸인 보석더미와 그 보자기를 펼치는 순간의 차갑고도 투명한 광채(光彩)의 이미지다. 겨울에는 오색 찬란한 꽃망울이 예감되고 무더운 장마에는 무지개빛 서광이 번뜩인다. 눈송이도 빗방울도 온통 색채의 의장(意匠)이 장식되어 못위에 내리는 빗줄기가 송곳처럼 수면에 꽂히는가하면 색채의 향연이 옥구슬처럼 농원에서 굴러다닌다. 광활한 공간에 만약 그의 그림이 한점만 걸려 있어도 그곳에는 생명의 결실과 축제의 분위기가 넘칠 것이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그림은 미술’ 임을 확고히 지켜나간다. 아무리봐도 지루하지 않고 아무리 봐도 행복감에 젖어 그림속에서 흘러나오는 탐미적 향기에 도취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 초기의 여거도(與居島)등 섬이나 산그림을 보면 웅걸(雄傑)한 호방함과 분방함이 도사리지만 그림의 내면은 오늘의 별빛 미래를 산뜻하게 예고했다고 할수 있다. 예를 들어 야트막한 산야와 그 아래 펼쳐진 과수원풍경,수목에서 솟아나는 활기와 생동감은 하루의 아침과 저녁이 다르듯이 ‘늘 같은 것을 보아도 화가의 눈에는 항상 다르게 보인다’는 말대로 가장 신선한 그림을 탄생시킨다. 그가 그림을 통해 추구하려는 것은 자연의 일부를 화폭에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지니고 있는 생명의 가능성과 미묘한 조율(調律)을 변주로 뿜어내는 것이다. ○자연의 생동감 變奏 그러기 위해서 그때마다 떠오르는 영감과 감상에 의존하기보다 다시한번 새롭게 사물을 관찰하여 이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관용으로 작가의 내면까지 화면에 담아낸다. 이른바 살아있는 힘으로서의 자연을 포착하기 위해 스스로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 연못에 이는 잔물결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자연은 무의미하게 멀리 서있는 부동의 풍경화가 아니라 햇빛에 찰랑거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살아숨쉬는 소우주로서 재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만큼 그의 붓길은 속도감과 운동감으로 쉴새없이 움직이고 짧은 사선과 직선과 곡선이 그때마다 의외성을 다양하게 표출해 낸다. 평론가 박래경은‘상식적이지 않은 시선과 범상치않은 구도설정은 단순하면서도 참신한 맛을 추가하여 추상화된 그림세계에 연결되고 있다’고 예언한바 있다. 예를들어 지난 60년에 그린 ‘담쟁이’는 불꺼진 창과 밋밋한 벽으로 기어오르는 메마른 덩굴에 머물고 있으나 그로부터 2년후인 62년에는 같은 벽으로 기어오르는 덩굴이라도 빨강과 황금색등 색채의 축연을 조직하는 것이 남다르다. 이른바 12계절이라해도 좋을만큼 시절따라 시간따라 환상적인 보랏빛이 발휘되고 같은 유형의 색깔이 변조되어 맨 마지막 단계에서 오리지널리티의 완결성과 정신적 탐구를 성취해낸다. ○59년 첫 개인전 열어 이경(二耕) 이대원, 가장 흔히 회자되기는 그는 화단의 신사요 멋쟁이다. 그의 그림세계에는 예술가들이 자칫 가질수 있는 퇴폐적인 낭만이나 고뇌나 파토스 대신 아파테이아의 초연(超然)이 깃들여 있다. 그와 경복고 동문에다 절친했던 고고학자 김원룡박사에 따르면 ‘말쑥한 성품으로 태어나서 평탄한 청춘시절을 보내고 만년소녀로 소문난 아름다운 미인의 내조를 받으며 정상의 예술가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의 총장을 거쳐 집에서는 딸들과 훌륭한 사위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과연 이대원은 팔자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여기에다 ‘항상 멋있는 옷을 입어 화단의 드레서로 소문나 있고 미식가애 주가에다 집과 학교와 파주농원에까지 화실이 세군데나 되어 화단의 귀족’ 같은 존재지만 그의 어느 일면에도 ‘속물취(俗物臭)’는 찾아볼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예술가적 면모는 어느장소에서나 시와 정취와 인간미를 잃지 않는다. 지성적 풍모에 단정한 매너로 인해 언뜻 보기엔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그와 사귄 사람들은 ‘볼수록 때묻지 않고 따뜻한 성품’ 에 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평소에는 화단의 김흥수 권옥연과 잘 어울리고 최기원과 이만익, 삼성문화재단의 손기상 상무와도 각별한 사이다. 경기도 문산에서 농림회사에다니면서 그 일대 꽤큰 과수원을 가지고 있던 一耕 李鍾林씨와 金善伊씨 사이에서 삼남중 막내. 파주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서울로 이사해서 청운공립보통학교에 다닐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중학교 3학년때 선전에 연속 입선, 경복고를 졸업할때까지 미술공부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던 부친이 미술학교만은 강경하게 반대하여 지금의 서울대인 경성제국대 법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림만을 그렸고 59년에 첫개인전, 한때는 우리나라 화랑의 효시로 기록되는 반도화랑을 운영한 적이 있다. 가족은 의사이던 부인 李鉉金 여사와의 사이에 딸 다섯, 63년간 살고 있는 유명한 혜화동집은 지난 89년 출간된 ‘혜화동 50년’의 바로 그 무대다. ○한때 반도화랑 운영 그의 미술역정은 파리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에 의하면 ‘출중하고도 예외적인 인물’로서 ‘이대원은 빛을 그린다기보다 빛을 데생하는 화가’란 말로 압축된다. ‘선과 점과 조직을 사용해서 그것으로부터 그의 붓은 그가 창출한 수많은 색채로 형태를그려내기’ 때문이다. 그의 엄청난 재능들은 레스타니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의 그림속에 있는 모든 것은 화사함과 고요함과 기쁨’에 틀림없다. 현대작가중에서 이러한 자연적인 교훈을 자신의 창작으로 성취한 사람은 별로 흔치않다. 물방울처럼 튀기는 영롱한 화경에서 그가 이룩한 이대원식 표현이란 바로 ‘이대원 자신의 화창한 인생의 음률’일 것이다. 거기에는 국경이 없으며 범우주적인 진솔한 정서와 삶의 즐거움만이 투영되어 날이 갈수록 싱싱하고 청청한 빛을 발한다. 사람을 반기는 그의 색채점묘화는 보는 이의 가슴에 루비나 사파이어같은 보석의 광채를 언제까지나 눈이 부시게 비춰주게 될것이다. ◎그의 길 ▲1921년 경기도 문산 출생 ▲1938­40년 선전 출품 ▲1945년 경성제대 법과졸업 ▲1959년 첫개인전(중앙공보관화랑) ▲1959­60년 국제자유미술전출품 ▲1962­68년 신상전·동인전출품 ▲1967­86년 홍대 미술대 교수·대학원장·학장·총장 ▲1971년 개인전(반도화랑) ▲1973년 한국근대미술 60년전·한국현역화가 100인전(국립현대미술관) ▲1975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위원 ▲1977년 개인전(현대·신세계) ▲1978년 중화민국 중화예술원 명예철학박사,영국국제하계미술전 출품 ▲1979년 뉴욕 한국화랑초대개인전 ▲1981년 회갑기념전, 성균관대 명예철학박사, 파리 살롱도톤느 출품 ▲1983·85년 현대화랑 개인전 ▲1986년부터 홍대 명예교수 ▲1987년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 한국박물관회회장,개인전(강남현대) ▲1988년 부산개인전 ▲1988­91년 국제현대미술제 및 아시아국제미술전 출품 ▲1989년 개인전,대한민국예술원회원 1993년 대한민국 예술원회장 ▲1995년 ‘이대원 1990­95년’개인전(갤러리 현대) 국민훈장목련장(73년) 5·16민족상(88년) 대한민국예술원상(91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94년) 오지호미술상·대한민국금관문화훈장(95년) 역서 柳宗悅저 ‘한국과 그 예술’(74년)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96년) 화집 ‘이대원’(81년) ‘이대원,혜화동 50년’(89년)
  • “小상공인 연합체 설립”/金 대통령 국민회의에 지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입장를 대변하는 전경련·중소기협처럼 소 상공인의 이익을 대변하는‘소상공인 연합체’(가칭)가 설립될 전망이다. 金大中 대통령은 9일 청와대에서 국민회의 3역으로부터 주례 당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종업원수가 적은 소상공인들은 연합회가 없어 정부의 지원이나 혜택을 제대로 못받는 경우가 적지않다”며 “소상공인들의 연합회 결성을 도울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鄭均桓 사무총장이 전했다.
  • 8·15축전 성사 가능성 ‘흐림’

    ◎北 ‘범민련·한총련 주도’ 조건 제기/판문점행사 불발책임 전가 수순 분석 북한측이 제의한 ‘8·15 판문점 통일대축전’행사에 참여하기 위한 정부와 각종 사회단체의 움직임이 분주하다.새로운 민간단체도 곧 구성될 전망이다.하지만 8·15 대축전의 성사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분위기다. 북측이 계속 무리한 주장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康仁德 통일부장관은 6일 송현클럽에서 정당과 민간단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졌다.薛勳 국민회의 기조위원장,鄭一永 정일영 제3정조위원장,諸廷坵 한나라당 제1정조실장 등 정당대표와 李長熙 경실련 운영위원장,宋榮大 민족통일협의회 의장,趙誠宇 자주평화통일 민족회의 집행위원장 등이 참석했다.간담회는 ‘민족화해협력 범(汎) 국민협의회’를 결성키로 했다. 이 협의회는 8·15 대축전행사 뿐 아니라 앞으로 민간통일운동의 구심적인 역할을 하게된다.정부는 불법단체인 한총련과 범민련도 단체자격이 아닌 개인자격으로 8·15 대축전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하지만 북한의 생각은 다르다.북한은 지난 달 10일 대축전을 제의할 때에는 한총련과 범민련에 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지난 달 18일 정부가 예상과는 달리 대축전을 수용하겠다고 선언하자 북한은 새로운 조건을 들고 나왔다.범민련과 한총련이 참석해야 한다는 ‘단골 메뉴’다. 또 정부가 범민련과 한총련도 개인자격으로 참석할 수 있는 쪽으로 전향적으로 나오자 북한은 한 술 더 떴다.북한 중앙방송은 5일 “범민련과 한총련이 남측 대표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북의 일련의 반응을 두고 볼때 북측은 8·15 대축전의 ‘판’을 깨 불발책임을 우리측에 넘기려는 수순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 汎 민간통일단체 결성/與野·사회단체 등 합의

    여야 정당과 보수·진보 단체를 포함한 각계 사회단체가 참여하는 ‘민족화해협력 범(汎)국민 협의회’가 결성된다. 민간기구인 이 협의회는 ‘8·15 판문점 대 축전’행사 준비와 더불어 남북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각종 활동을 하게 된다. 이와관련,康仁德 통일부장관과 국민회의를 비롯한 4개 정당,8개 주요 사회단체 대표들은 6일 송현클럽에서 오찬 간담회를 갖고 민간차원의 협의회를 구성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지난 4일 자주평화통일 민족회의를 중심으로 결성된 남측추진본부 준비위원회가 8·15대축전의 대표성이 있는 지를 놓고 이견을 보여 10일 간담회를 다시 열어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 汎 민간통일단체 결성 추진/南北 민간교류 활성화위해

    정부는 남북 민간교류 활성화를 위해 여야 정당과 보수·진보 단체를 포함한 각계 사회단체들로 ‘민족화해협력 범(汎) 국민협의체’(가칭)라는 범 민간차원 통일운동기구를 결성토록 유도하기로 했다. 통일부는 5일 북한이 당국간 대화재개를 피하면서도 민족대단결을 내세운 민간차원의 접촉과 교류를 강조하는 만큼 민간교류 활성화를 위해 정당과 사회단체를 망라한 민간차원의 통일운동 중심체를 만들 방침이라고 밝혔다.
  • 여검사 19명의 사랑나누기/지난달 여검사회 조직 소년가장 돕기로

    현직 여자 검사 19명이 ‘대한민국 여자검사회’를 만들었다. 여검사회가 공식 결성된 것은 지난 달 13일. 현재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회칙 등을 준비중이다. 회장은 법무부 여성정책담당관인 趙嬉珍 검사(사법연수원 19기)가 맡았다. 趙검사는 회원 가운데 기수가 가장 빠른데다 연장자이다. 부회장은 법무부 崔允姬(〃 20기),총무는 서울지검 李英珠(〃 22기),간사는 수원지검 성남지청 姜修眞(〃 24기)·서울지검 洪蓮淑(〃 26기) 검사이다. 趙검사는 “여검사가 4∼6명 있을 적에는 달리 모임이 없이도 종종 만날 수 있었지만 20명 가까이 되다보니 만남 자체가 힘들어졌다”며 모임의 배경을 설명했다. 여검사회는 회원간의 친목은 물론 어려운 이웃과 소외계층을 돕는 일에 회의 목적을 두기로 했다. 이에따라 일정액의 회비를 내 소년소년가장 등을 선정,지원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 南北교역 보고의무 폐지/통일부 국정보고

    하반기부터 남북교역에 관한 보고의무가 폐지되는 등 남북 경제협력을 제약하는 각종 규제가 완화된다. 康仁德 통일부장관은 4일 金大中 대통령에게 국정과제 추진 상황을 보고한 자리에서 “남북교역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교역 당사자간 직접계약,수송,대금결제를 위한 남북당국간 협의도 추진하겠다”며 이같이 보고했다. 그는 또 “대북(對北)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나진·선봉 지역에 시범 공단을 설립하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사무소 개설을 추진할 방침”이라며 “대북 농업협력을 위한 민간차원의 ‘남북농업 협력협의체’ 결성을 지원하겠다”고 보고했다.
  • 통일축전 南측 추진본부 결성/민간단체 주축

    ◎한총련 등 참가… 北 대응 주목 북한이 제의한 8·15 판문점 통일대축전을 준비하기 위해 민족회의 등 진보적인 단체를 중심으로 한 남측 추진본부가 4일 결성된다.현행법상 이적단체로 된 범민련과 한총련 출신도 개인자격으로 참여한다. 李昌複 민족회의 상임의장은 2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민족회의를 비롯한 민간단체 대표들로 구성된 남측 추진본부를 결성하기로 했다”며 “정부가 대표 선정과 관련해 주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남측본부는 민간단체가 주축이 된데다 범민련과 한총련도 포함돼있어 북측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 주목된다. 남측추진본부는 다음 주 쯤 이번 행사를 위한 실무접촉을 북측에 제의할 방침이다.공동준비위원장은 姜萬吉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통일협회 이사장과 具仲書 민족예술인 총연합 이사장,金祥根 민족회의 감사,金重培 참여연대 대표,李愚貞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대표,李昌複 민족회의 상임의장,韓完相 전 통일원장관 등이다. 통일부는 지난 달 22일 북한측에게 8·15행사와 관련된 실무접촉을 제의했으나 북한은 정부개입을 비난하며 거부했었다.
  • 파업현장서 勞­學 투쟁 선동/‘안민청’ 조직원 9명 구속

    ◎노동자 대상 사상학습도 경찰청 보안국은 1일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목표로 파업현장과 각종 불법시위에 참가,노동자 계급투쟁을 선동해온 ‘안양민주화운동 청년연합’(약칭:안민청)의 핵심 조직원인 金鍾博씨(38) 등 9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洪모씨(26·여) 등 3명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金씨 등은 88년 3월 경기도 안양시 안양동 J교회에서 ‘안민청’을 결성한 뒤 기관지 ‘안양두꺼비’ 등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사회주의 혁명투쟁을 선전·선동해온 혐의다. 이들은 매년 민중학교를 개설,노조간부와 학생 노동자들에게 ‘변증법적 유물론’ ‘혁명사’ ‘조직론’ 등을 가르치며 사상학습을 시켰다. 경찰은 이들의 주거지와 사무실 등에서 ‘안민청 사냥1호’ 등 809종 1020점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 오늘 창립 ‘국민화합시민연대’ 토론회 주제 발표

    ◎“지역화합은 총체적개혁 선결 조건” 지역갈등 해소를 통한 지역화합을 지상목표로 삼은 범국민운동 단체인 ‘국민화합시민연대’(약칭 화합연대)가 27일 창립대회를 갖고 정식 출범한다. 화합연대는 지난 2월말 대학교수들이 주축이 돼 모임을 결성한뒤 7차례의 추진위원회를 거쳐 지난 5월30일 발기인대회를 갖고 창립을 보게된 시민단체. 이 땅의 고질인 지역갈등을 전문적인 시민운동으로 풀어나간다는 목표아래 閔丙天 서경대 총장과 黃惠仁 동국대 교수,金世悅 한남대 총장,李正熙 한국교민연구소장,金麟濟 대전대 총장,朴龍壽 강원대 교수,金三雄 서울신문 주필 등이 공동대표로 참여하는 등 대학교수 법조인 전직 언론인 등 유력인사 495명이 뜻을 같이 하고 있다. 27일 창립대회에 이어 동국대 문화관 예술극장에서 열리는 토론회 주제발표 내용과 사무총장 인터뷰,창립선언문을 소개한다. ◎金大中 정부 인사정책/구여권 개혁인사 널리 등용을/金昊均 명지대 교수·경제학 金大中 정부의 인사정책을 평가함에 있어 감안되어야할 사실은 한국사회가 안면사회라는 점이다. 새 인물을 발굴하고 평가하기까지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평소 잘 아는 인사를 기용하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불가피한 현실이다. 金大中 정부도 한국사회의 이러한 관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총체적 개혁작업에서 정부가 가장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여론에 비춰볼 때 金大中 정부는 향후 인사에서 안면사회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더욱 숙고해야 한다. 경쟁이 계속되는 한 이해당사자는 물론이고 국외자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인사란 불가능하다. 金大中 정부는 50년만의 정권교체에다 경제위기가 가중되면서 역대 정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사정책의 실행에서 커다란 모순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국민통합에 의한 정국안정과 경제위기 대책의 신속한 수립 및 집행을 위해서는 구여권인사의 전문성을 살릴 필요가 있다. 반면 정권교체는 과거 정부와의 차별성과 참신한 개혁인사의 중용에 대한 국민의 요구라고 평가된다. 최근의 경제위기의 원인이 과거 정부의 국정전략 부재에 있는 한,이에 책임이 있는 인사의 중용은 피해야할 것이다. 이같은 모순된 요구를 지역문제와 관련시켜 본다면,구여권이 지역패권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여권인사는 압도적으로 영남출신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정권교체의 의미를 살린다면 그동안 권력에서 소외되었던 지역출신 인사가 많이 중용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구패권지역과 구여권인사가 일치하지 않듯이 구소외지역과 개혁인사층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구패권지역에서도 개혁을 추진할 인사는 얼마든지 동원 가능하다. 그러므로 金大中 정부의 바람직한 인사정책은 구소외지역의 구여권인사는 사양하고 구패권지역의 개혁인사를 널리 수용하는 방향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 경우에 인사정책은 지역화합과 개혁을 동시에 달성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지역화합을 위한 인사결정을 위해서는 해당 지역을 대표할 수 있고,또 해당 지역주민의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인사가 기용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편중 인사 원인과 재인식/지역할거 정치구조 타파 급선무/盧秉萬 경북대 교수·정치학 金大中 정부의 출범 초기부터 논란이 되는 지역편중 인사 문제를 규명하기 위하여는 朴正熙 정권 이래의 지역편중 인사에 대한 실태와 원인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朴正熙 정권에서는 경상도 출신의 지역편중 인사가 나타났으나 최고집권자의 출신지역에 따른 충원이 일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없는 반면 全斗煥 정권 이후부터는 최고집권자의 출신지역에 따른 충원이 일정하게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원인으로는 朴正熙 정권에서는 최고집권자의 자의적 충원이 지역연고에 의한 편중인사로 나타난 것으로 분석되나,全斗煥 정권에서는 신군부 집권세력의 취약한 권력기반이 지역성을 담보로 한 충원이 되게 만들었다. 盧泰愚 金泳三 金大中 정부에서는 지역할거적 정치구조에 기인한 지역정권의 성립이 지역편중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게한 것으로 나타났다. 全斗煥 정권 이래 지역편중 인사가 구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그러나 우리들은 지역편중 인사가 지역감정·갈등의 본질적 원인이 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 지역감정·갈등의 진정한 원인은 지역편중 인사나 지역간 경제적 차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할거적 정치(정당)구조와 지역정권의 성립에 있는 것으로 재인식되어야 한다. 이렇게 문제의 원인이 지역할거적 정치구조와 지역정권의 성립에 있으므로 金大中 정부에서 호남편중 인사가 이뤄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역편중 인사가 문제시되는 것이 무의미함에도 불구,이슈화되는 이유는 지역편중 인사에 대한 우리들의 잘못된 인식과 정당·정치인의 정략적 지역감정 이용,또한 언론의 흥미위주 보도 때문이다. 따라서 정계와 언론계는 지역편중 인사 문제를 이슈화하여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언행을 자제해야 하고 金大中 정부는 부적절한 지역편중 인사가 되지 않도록 더욱 신중히 인사를 해야 한다. 정치권은 문제의 본질인 지역할거적 정치구조를 형성시킨 주된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국민의 지역감정이나 지역연고 의식을 이용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 지역할거적 정치구조를 해소하는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할 것이다. ◎‘화합연대’ 사무총장 黃台淵동국대 교수/“현장중심 동서화합 운동 앞장”/정치인 지역감정 조장 언행 언론에 공개 27일 창립대회를 갖고 공식 출범하는 ‘국민화합시민연대’(화합연대·상임공동대표 張潤煥)의 사무총장 黃台淵 교수(동국대 정치외교학)는 이 단체 태동부터 창립까지 줄곧 관여해온 주역중 한 사람이다. ­화합연대의 활동방향은. ▲각 개인의 개성과 지역의 고유성을 최대한 살려낸다는 방침이다. 온 국민의 화합을 이뤄내기 위해선 지역과 개인의 목소리를 고루 포용하면서 하나로 모아가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각 요소들을 결집한 시민운동의 첨병역할을 철저하게 해낼 것이다. ­가장 큰 목표는. ▲구체적이고 전국적인 활동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간다는데 있다. 지역문제에 대한 시민의식 계몽과 함께 언론·국정에 대한 비판·감시 등 전문적인 시민운동을 통해 완전한 국민화합의 초석을 다질 계획이다. ­화합연대가 보는 현 상황은. ▲정권교체가 지역화합의 전기이면서도 지역갈등이 더 격화될 수 있는 분수령이 되고 있다. 심화되고 있는 지역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화합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현재 한국사회가 당면한 가장 절박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정권교체가 됐는데도 지역갈등은 해소될 전망이 없나. ▲지역감정이 언제든지 분출할 수 있는 현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지역화합 문제가 경제위기를 맞아 국정의 주변으로 밀려나고 국민화합을 이룩하려는 정치적 의지 자체가 여야대결 구조로 인해 무력화되는 상황에서 지역화합 노력은 배가돼야 한다. ­종전에도 지역화합을 위한 운동들이 적지않게 진행돼 왔는데. ▲물론 동·서화합을 이끌어내기 위한 크고 작은 단체와 운동이 간헐적으로 있어 왔다. 하지만 전문성 결여와 전국적인 조직 부족으로 모두 실패했다. 특히 대부분의 시민운동이 반(反)지역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엄연한 지역차별을 사소한 문제로 여겨 추상적 운동에 그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구체적인 활동계획은. ▲다른 시민운동단체의 전철을 밟지않기 위해 현장활동을 중심으로 철저한 비판·감시운동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우선 일상사업으로 정당·정치인들의 지역감정 조장발언을 정도와 빈도수를 파악해 언론에 공개하겠다. 매 선거때마다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 낱낱이 파헤칠 생각이다. 지역화합에 앞장선 인물도 언론에 공개해 바람직한 방향을 유도하면서 지역감정 조장 발언을 청원 입법을 통해 뿌리뽑아 나갈 것이다. 북한 이탈주민과의 대화나 영호남 주민이 교환방문하는 은행나무심기같은 이벤트를 마련하고 지역문제해결을 위한 외국사례연구를 병행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조직운영은. ▲발기인들을 각 지부장으로 삼아 이들을 주축으로 한 지부제로 운영하겠다. 500여개의 촘촘한 지부를 중심으로 모든 시민들이 고르게 역할을 분담해 체계적인 운동을 벌여나갈 것이다. ◎창립선언문 요약 우리는 경제위기 극복과 21세기 국가발전을 위해 지역대결 구도를 반드시 해소하고 국민화합을 실현해야 할 시대적 요청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역문제에 대한 시민의식을 계몽하고 언론과 국정을 비판 감시해야 할 전문적인 시민운동의 출현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각 지역의 차이를 말살하는 추상적 중앙통합과 지역패권은 지역차별과 문화말살,독재권력의 원천이었습니다. 개성과 차이의 존중에 굳게 발디딘 구체적 연대정신만이 사회발전과 문화창조의 원천입니다. 우리는 이 ‘차이의 철학’에 대한 확신 속에서 지역적 문화·기질의 차이를 존중하고 나라의 영원한 발전의 동력으로 받드는 자세로 국민적 시각전환을 꾀할 것입니다. 지역과 지역출신들의 구체적 소외와 차별에 대해 눈감은채 추상적 민족단결만을 외치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지역간 정치·경제·문화·사회적 차별과 특권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모든 지역의 공동발전을 추구하는 ‘구체적인 정의와 연대’에 헌신할 것입니다. 지역등권적 공동번영과 국민화합의 고귀한 목표는 ‘체념의 미학’과 ‘차이의 철학’,그리고 ‘구체성의 철학’을 결합한 우리의 정치철학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민들은 그같은 방향에서 정부·정당의 정책집행과 언론·정치인의 언행을 압박·감시하고 비판·항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역등권적 국민화합의 최종적 완성은지역화합적,전국적 민주정당 편제를 달성하고 궁극적으로 각 지방의 고유한 지역정서를 상호존중,이해하면서 독특한 지역문화를 경쟁적으로 발전시켜 국민적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철학을 가진 전문성에 기초하여 국민화합의 의지로 조직된 중립적인 시민운동체의 출현이 절실합니다. 이에 지역등권적 국민화합의 바람과 지혜를 모은 각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은 민주발전과 지역등권의 상관관계에 대한 확고한 인식아래 지역문제에 대한 일대 각성을 촉구하며 지역화합을 촉진하기 위해 ‘국민화합시민연대’를 창립합니다.
  •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생긴다/산자부,법안 마련

    ◎채권 발행 허용·稅감면 등 적극 지원/불황업종 사업전환때도 세재 혜택 빠르면 올 하반기에 기업의 구조조정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생긴다. 부실기업을 인수,증자나 외자 유치,부동산 매각 등을 통해 기업경영구조를 건실하게 만든 뒤 제3자에게 되파는 이른바 ‘기업병원회사’다. 산업자원부는 23일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산업구조고도화촉진법 제정안을 마련,7월 임시국회에 내기로 했다. 산자부는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를 적극 육성하기 위해 채권 발행을 허용하고 구조조정조합을 결성,금융기관을 포함해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또 구조조정회사가 기업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증권거래세와 특별부가세,등록세,취득세를 면제해주고 구조조정조합에 대한 외국인 출자를 외자도입법상의 외국인 투자로 간주,법인세와 소득세를 감면해주는 등 지원책을 펴기로 했다. 이 회사의 등장으로 그동안 침체돼 있던 기업간 인수·합병(M&A)이 활발해 질 전망이다. 설립 요건으로 100억원이상의 자본금을 시행령에 규정하는 한편 5년내 재매각을 의무화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산자부는 불황업종을 조기에 퇴출시키기 위해 사업전환을 추진하는 불황업종 업체에 대해 세제 및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미래 유망 신산업을 적극 육성하는 차원에서 중장기 발전기본계획을 세워 금융 지원을 펴기로 했다. 이밖에 민·관 합동의 공업발전심의회를 순수민간자문기구인 산업구조고도화심의회로 개편하기로 했다. ◎구조조정 전문회사란/부실기업 회생 시켜 제3자에 다시 매각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는 부실기업을 사들여 각종 회생조치(Restructuring)를 써 회사를 건실화한 뒤 제3자에게 되파는 기업이다. 한마디로 ‘중고기업수리판매회사’라고 할 수 있다. 부실기업을 되살리는 방법으로는 경영진 교체와 인원 감축,자산 매각,증자,외자 유치,업종 전환 등이 망라된다. 이 회사가 인수할 대상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퇴출되는 대기업 계열사나 채권은행단이 경영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기업,부도기업,파산·화의·회사정리절차에 들어간 기업 등이다.
  • 아래아한글 살리기 ‘십시일반’ 확산/벤처기업協

    ◎1만원 모으기서 국민주 운동으로/“포기땐 1조원 손실… 살리는데는 250억” 한컴의 ‘아래아한글 살리기 운동’이 국민운동 차원으로 번져나갈 태세를 보이고 있다. 국민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경영난에 처한 ‘한글과컴퓨터사’를 살려 토종 소프트웨어인 ‘아래아한글’의 명맥을 지켜나가자는 취지에서다. ‘1만원 모으기 운동’으로 시작된 운동은 ‘국민주 운동’으로 스케일을 넓혔다. 벤처기업협회(회장 李珉和)가 주도했다. 협회는 22일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에서 ‘아래아한글 지키기 운동본부’를 결성하고 사용자를 중심으로 ‘국민주 운동’을 전개키로 했다고 밝혔다. 李燦振 사장을 비롯한 한컴 경영진에게도 ‘백의종군’을 전제로 모금운동에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협회는 아래아한글 포기에 따른 국가적 손실이 1조원으로 추정되지만 한글을 살리는 데는 불과 250억원이 든다고 주장했다. ‘국민주 운동’은 개개인에게 최소 거래단위인 10주(5만원) 이상의 국민주를 판매,한컴을 사용자 중심으로 재탄생시킨다는 목적으로 추진된다. 한컴을 명실공히 국민기업·민족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뜻이다. 협회는 또 우리나라 정부와 공공단체에 대해 금년 예산에 반영된 소프트웨어 구입비를 조기 집행해줄 것도 촉구했다. 협회에 따르면 선진국 정부의 소프트웨어 구입비는 하드웨어 구입비의 160%인데 반해 우리 정부의 경우는 10%에 불과하다. ‘운동본부’에는 용산전자단지 상점가 진흥조합,한국 대학생 벤처창업 연구회,사단법인 한국청소년학회,고구려연구회 등이 참여키로 했다.
  • 재야원로 姜希南 목사 36년만에 주민증 발급

    ◎“박정권 인정못해” 찢은후 ‘국민의 정부’때맞춰 신청 “국민의 정부를 믿어요. 새 정부마저도 재야단체를 탄압한다면 또 주민등록증을 찢어야지요” 우리나라 대표적인 재야 운동가 姜希南 목사(77·본명 姜在禹·전주시 덕진구 인후동)가 36년만에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姜 목사는 지난 92년 故 文益煥 목사와 함께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을 결성,남측본부 의장을 맡는 등 통일운동을 주도해오다 4차례나 투옥됐었다. “총칼로 정권을 탈취한 朴正熙정권을 인정할 수 없었어요.이 나라의 국민노릇 한다는 것이 창피하고 분해서 주민등록증을 아예 찢어 버렸어요” 全斗煥과 盧泰愚,金泳三 정부 역시 군사정권의 연장인만큼 결코 인정할 수 없다며 이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로 지금까지 36년 동안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 않았다. 그런 그가 국민의 정부 탄생과 함께 지난 5월 말 주민등록증을 다시 만들었다. 주민등록번호 200113­1543157.
  • ‘미인’ 신중현:상(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2)

    ◎“어느새 耳順… 난 美人을 사랑할뿐”/50곡 금지 탄압 분명… 대마초는 그저 핑계/대통령찬가 작곡 주문 거부한게 빌미인듯/反戰·사랑메시지 우리가락 접목이 내꿈 1975년 12월 겨울 바람이 매섭던 어느 날,서울 서대문 구치소의 차가운 골방 구석에 낯익은 30대 인기 가수가 쭈그리고 앉아 한 숨을 내쉬고 있었다.대마초 사건에 연루된 록 가수 신중현(申重鉉·당시 37세)씨 였다.작곡관계로 만났던 히피족이 선물로 준 마리화나를 피운 것이 꼬투리가 돼 인기 절정에서 한 순간에 죄수로 추락한 몸.자신의 앞날이며 문화 예술계에 떨어질 불벼락이 모두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60∼70년대 신들린 사람처럼 무대를 오가며 팬들의 혼을 빼앗았던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그는 트로트,포크송,록으로 대별되던 대중음악 세계를 송두리째 흔들어 ‘이단아’로 눈총을 받았다.젊은이들의 음악세계를 주도했던 장본인 이던 그의 운명을 갑자기 바꾸어 놓은 것은 무엇일까.흔히 알려진 대로 대마초 때문일까.아니다.‘대마초 가수’로 낙인 찍힌지 23년이 지난 지금 그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다르다. 인기 절정이던 72년 가을 어느날,서울 신촌 집으로 운명의 전화가 걸려왔다.느낌이 좋지 않은 벨 소리였다.수화기를 들자 청와대라고 칭한 30대 남자가 박정희 대통령 찬가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해왔다.그는 “정치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서민의 한 사람으로 내 길을 가고 싶다”는 말로 거부의사를 밝혔다.5분뒤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이번엔 당시 공화당의 유력 인사였다.역시 같은 주문이었다.“독재정권도 싫은데 그런 것까지 주문하려 드느냐”며 강도높게 반발하고는 전화를 끊었다.앞으로 자신의 음악인생에 드리워질 어두운 그림자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신씨가 대마초를 알게 된 것은 60년대말 록 음악을 하던 히피족들과 어울리면서부터.음악인으로서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록에 당연히 관심이 쏠렸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에 들어와 있던 히피들과 친분을 다지게 됐다.그중에서도 ‘환각음악’이라는 것에 빠졌고 함께 어울리던 히피들의 생활을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남겨진게 바로 대마초(마리화나)다. “작업을 하다가 틈틈이 피웠는데 한번씩 피우면 1주일간 머리가 멍한 상태로 곡을 못 쓸 정도가 됐어요.그러다 보니 자연 끊게 됐지요”. 그때만해도 일반인들은 마리화나 등 환각제가 무엇인지도 모를때 였다.소문을 들은 음악인들이 “집에 마리화나가 있느냐”고 물어오면 법 위반이나 위험성도 모른채 “우리 집에 산더미처럼 많다”며 나눠줄 정도였다.대마초를 피운 유명 음악인들이 하나 둘씩 묶여 들어가고 추궁 끝에 시발점인 신씨에게 화가 미쳐왔다.보건사회부와 검찰 합동수사반에 덜미가 잡혔고 남대문옆 건물 지하로 끌려가 이틀 동안 감금된채 혹독한 취조를 당했다. “구타에 물고문까지….견딜 수가 없더군요.사실대로 불었지만 막무가내였어요.취조의 목적이 엉뚱한데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겠더군요” 신씨의 구속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고 연행 이틀째 새벽에 검사가 취조실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국가 방침이니까 들어가 있으라”는 말을 전했다.정신병동에 1주일 입원해 있은 후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노래와 인생이 모두 묶이는 신세가 됐다.박대통령이 담당 검사 어깨를 두드리면서 격려했다는 소문을 후에 들었다고 한다. 신씨는 당시 정황을 볼때 박정희 정권이 저지른 문화탄압의 첫 표적이 자신과 자신의 노래였음을 확신한다고 말한다.“60년대말부터 월남전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어갔습니다.세계적으로 반전(反戰)무드가 강했고 록 음악은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강하게 담아 전했지요.그같은 록을 따랐던 제 노래가 금지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당시 히트했던 ‘미인’이나 ‘봄비’‘미련’‘저 여인’‘생각해’‘그 누가 있었나봐’ 등이 모두 현대감각을 살려 사랑을 표현한 노래들인데 모두 금지곡이라니요.평소 잘 알고 지내던 평론가들이 앞장서서 내 노래에 칼질을 해대더군요” 4년전에 피운 대마초를 핑계 삼아 75년 족쇄를 채웠고 87년 완전 해금될때까지 50곡이 금지곡으로 묶였다.“제가 구속된뒤 가요뿐 아니라 문학 등 문화예술 각 장르에서 구속과 금지의 회오리가 거세게 일었지요.당시 대중음악으로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던 저를 희생양으로 삼은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릅니다.대마초가 핑계로 작용했구요” 그저 음악이 좋아 혼자 기타를 배웠고 우리 것이 우러나는 음악 만들기에만 몰두했다는 신씨.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의 대마초 사건이 우습기만 하다.대마초가 무언지도 모르고 피워대던 일이며 대마초 가수란 오명을 낳은 시대적 상황들….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기억 속에만 있다.그러나 어쩔수 없이 치러야만 했던 과정 치고는 그 댓가가 너무 컸다는 것이다. ◎사연들/골목길에 울려퍼진 ‘한번하고 두번하고’ 독재연장 삐꼰다나?/단순한 리듬에 쉬운 가사/改詞曲으로 인기 ‘눈엣가시’/혐오감·폭력성 씌워 금지 ‘한번 보고 두번 보고/자꾸만 보고 싶네/아름다운 그 모습을/자꾸만 보고 싶네/그 누구나 한번 보면/자꾸만 보고 있네/그 누구의 애인인가/정말로 궁금하네/모두 다 사랑하네/나도 사랑해/나도 몰래 그 여인을/자꾸만 보고 있네/그 모두 넋을 잃고/자꾸만 보고 있네”(미인). 1974년 발표,레코드 1백만장이 팔려나갈 정도로 크게 성공을 거둔 노래다.그러나 첫 구절 일부가 ‘한번 하고 두번 하고 자꾸만 하고 싶네’로 바뀌어 당시 독재정권의 정권연장을 빗댄 노래로 대학가에서 번져나가자 금지곡이 됐다.동네 꼬마들의 입에까지 자주 오르내리게 된 대표적 금지곡이다. 신씨의 노래는 우리 가락조의 록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평이한 가사와 리듬이 특징이다.대부분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분위기의 가사들을 담고 있다.그래서 그런지 그의 노래들은 대학가와 노동현장에서 흔히 개사(改詞)곡으로 애용되곤 했다.‘미인’은 그 대표적인 예.원 노래의 가사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개사곡이 널리 퍼지자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금지곡 딱지를 붙이게 된 것이다.이후 신씨가 만든 노래는 가사가 조금만 자극적이어도 ‘혐오감을 준다’‘폭력적이다’‘너무 슬프다’ 등등의 금지사유가 여지없이 따라 붙었다. “형광등이 비추는/천장을 보면서/눈을 떴다가 감았다/밤을 새우네/그 여자는 지금쯤/무얼하고 있을까/이리둥굴 저리둥굴/혼자 생각하네”(긴긴 밤)“저 여인은 왜 홀로 앉아 있나/저 여인은 무엇을 생각하나/그 옛날에 그 사람을/잊지 못하고 있나봐/그 여인∼아름다워”(저 여인)“웃으면 웃었지/울으면 울었지/왔으면 왔지/갔으면 갔지/나는 몰라/알게 뭐야/그 누가 웃으랬나/그 누가 울으랬나/그 누가 오랬나/그 누가 가랬나/아 그렇게 하면 어떻게/그렇게 노래 부르면/애인이 싫어하잖아(나는 몰라). □그의 길 ▲38년 서울 출생. ▲41년 만주 신경으로 이주. ▲45년 해방 맞아 귀국. ▲57년 서라벌고 2년 중퇴. ▲62년 한국 최초의 그룹 사운드 ‘애드4’ 결성. ▲75년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미인’‘거짓말이야’‘그사람 아니야’‘바람’ 등 무더기 금지곡 판정. ▲79년 부분(활동)해금. ▲87년 전면(금지곡)해금 ▲89년 서울 송파구 가락동 작업실 ‘우드스탁’ 입주. ▲92년 15분짜리 대작 ‘너와 나의 노래’ 작곡. ▲94년 실험적인 앨범 ‘무위자연’ 출반. ▲98년 음악인생 결산 대규모 록 콘서트 IMF로 무산. ▲현재 수원여대 출강.
  • 납치·폭행·생매장… 경영난 기업인 ‘두번 울리기’

    ◎청부폭력조직 무더기 검거/9개파 67명… 조직강령 만들고 합숙훈련/검찰,기업폭력 신고센터 설치… 강력 단속 IMF 시대를 맞아 실직자 등이 포함된 새로운 ‘기업형 청부폭력 조직’이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지검 강력부(朴英洙 부장검사)는 16일 ‘봉영파’ 두목 林憲福씨(44)등 청부폭력조직 9개파 67명을 적발해 林씨 등 48명을 범죄단체조직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韓年熙씨(51·여)등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李모씨(27) 등 15명은 수배하고 생선회칼 석궁 등 흉기 38점을 압수했다. 林씨는 지난 해 1월 경기 일산 신도시 주변에서 폭력배와 실직자 등 16명을 끌어들여 기업형 청부폭력 조직을 결성한 뒤 채권자 韓모씨의 청탁을 받아 李모씨를 납치한 뒤 “빚 2,000만원을 빨리 갚지 않으면 가족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등 폭력을 일삼은 혐의를 받고 있다. 봉영파는 지연이나 학연으로 뭉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권에 개입할 목적으로 결성됐다.조직폭력배·마약판매책·폐기물 불법매립조직 등을 조직원으로 삼았으며 조직강령을 만들고 합숙훈련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기동성을 위해 중형차 3대도 마련했다. 특히 행동대원 金大植씨(22)는 전국 폭력배 200여명의 연락처가 적힌 ‘깡패수첩’까지 가지고 다니며 필요할 때마다 폭력배를 동원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기창파’ 吳기창씨(26)등 3명은 4월 채무자로부터 300만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채무자에게 돈을 빌려주도록 소개한 金모씨(45)를 잠실대교 부근 한강 공사장으로 끌고가 마구 때린 뒤 한강에 던져 빈사 상태에 빠뜨리기도 했다. 경기 남양주지역의 ‘동문파’ 林東文씨(33)등 3명은 건설공사 하청업자로부터 사무실 임대료를 받지 못하자 하청을 주고 있는 金모씨(47)를 찾아가 “임대료를 대신 갚으라”며 공사용 망치로 머리를 내리 쳐 뇌와 눈에 치명적 상처를 입혔다.金씨를 때린 崔모씨는 실직을 당한 뒤 동문파에 가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학봉파’ 두목 金옥식씨(50)등 8명은 지난 4월 도박빚 2,000만원을 받아내기 위해 姜모씨(52·여)를 한 밤중에 공동묘지로 납치,집단 구타한 뒤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하겠다고 협박했다. 서울지검 강력부는 이날 경제난을 틈타 기업 등을 상대로 한 청부폭력이 조직화·흉포화함에 따라 ‘기업폭력 상담·신고센터’(536­3333,FAX 536­9327)를 설치했다.
  • 알맹이와 찌꺼기의 하나됨/재독조각가 강진모씨 전시회

    ◎‘재료 파괴=창조’ 전통적 조각에 반기/‘남과 북’ 두 요소간 해체­통합 묘사/기술공학·조각 접목시도 최근작 소개 ‘전통적 조각의 조형요소와 공간으로부터의 일탈’‘해체와 조합’.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성곡미술관이 기획한 ‘내일의 작가전’에 네번째로 초대된 재독 조각가 강진모씨의 작품세계에 대한 평단의 논평이다.전시기간 30일까지. 이번 작품전은 국내에서 열리는 그의 첫번째 개인전이다.그 때문에 전시에 대한 관심이 크다.그의 작업은 재료를 깎아냄으로써 물질속에 갇혀 있는 존재를 해방시키는 전통적 방식에 의존하지 않는다.물질에서 그가 의도하는 새로운 형태를 꺼낼 때 나오는 ‘폐석’을 창조된 형태와 동등하게 배치한다. 전통적 조각에서는 작품을 만들고 남은 파편들을 모두 폐기했다.그러나 그는 재료에서 꺼낸 형태는 물론 그 과정에서 나온 찌꺼기들까지도 작품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한국의 지도를 연상시키는 작품 ‘남과 북’을 예로 들면 기존의 조각에서는 지도나 토끼 모양의,재료속에서 캐낸 형태외에는 모두가폐기됐다.그러나 그는 기존 조각에서는 폐기처리될 부분을 그가 의도한 원래의 형태와 함께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도록 배치함으로써 재료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놓는다. 그는 기존의 전통적 조각행위는 재료쪽의 처지에서 보면 ‘파괴행위’요,재료에 형태를 부여하기 위해 ‘재료의 완결성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새롭게 만들어진 형태는 양(陽)이요,알맹이를 뽑아내고 남은 재료는 음(陰)으로 보는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건 잘라내고 남은 음(원석)과 잘라낸양 사이의 긴장과 화해다.그의 이같은 방식은 해체와 재통합이라는 ‘합일의 세계’를 지향한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기존의 ‘돌’연작과 함께 ‘4차원 형태의 실험’ ‘자기찾기,외계인 찾기’ ‘심장’ ‘수평의 상대성’등 기술공학과 조각의접목을 시도한 신작들을 내놓았다. 강씨는 국내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더 잘 알려진 작가다.87년 홍대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뮌헨 미술대학원에 유학한 뒤 지금까지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다.파리 피악을 비롯,스위스 바젤아트페어,독일 쾰른화랑제,프랑크푸르트 아트페어,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아트페어 등에 매년 초대되고 있다.개인전은 유럽에서만 13차례 가졌다.지난해 광주 비엔날레에 초대돼 ‘자기 찾기,외계인 찾기’란 제목의 설치작품을 보여준 바 있다.12년만의 귀국전이다.
  • 하비비 내년 大選 출마 시사

    【도쿄 AFP 연합】 B.J. 하비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지지자들이 원할 경우 내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일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11일 보도했다. 하비비 대통령은 그러나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발적으로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거나 새 정당을 결성해 총선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의 정치일정은 내년 5월 총선으로 구성될 국민협의회가 같은 해 12월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2000년 1월에 새 정부가 출범하는 것으로 돼 있다.
  • ‘해태 살리기’ 운동 확산/잇단 후원행사·캠페인

    ◎연예인 등 ‘운동본부’ 결성… 내주부터 가두 홍보/제과 매출액 최고 기록… 종금사 회생방안 모색 민족기업인 ‘해태 살리기’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유명 연예인들이 내주에 대거 가두 캠페인에 나서고 종금·보험사 등 제2금융권은 은행권의 ‘공중분해’ 방침과 달리 해태의 회생을 거들고 나섰다. 호남출신 연예인 13명은 ‘배추머리’로 유명한 코미디언 김병조씨를 본부장으로 한 ‘해태 살리기 운동본부’를 11일 결성했다.17일에는 광주 충장로에서 가두 캠페인을 벌인다.가수인 남진 장미화 송대관 김국환 정애리 김창남 현숙씨와 탤런트 백일섭 민욱 김종섭씨,국악인 신영이씨가 참가한다.해태 제품을 하나라도 더 사 먹자는 가두 홍보를 편다.해태 제품을 무료로 시민들에게 주고 성의껏 값을 내도록 하기도 한다.“해태없는 타이거즈는 없다”며 애향심에 호소할 예정이다. 이를 기폭제로 서울에서는 날을 잡아 대규모 후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광주·전남지역 주민들도 범국민적인 해태 살리기 캠페인을 벌이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1조여원이물린 종금사 사장단은 오는 15일 모임을 갖고 해태제과 회생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다.해태제과의 빚을 출자로 전환해 영업을 정상화한 뒤빚을 차근차근 받아내겠다는 생각이다.이 방안을 갖고 은행권과 협상에 나서기로 했다.주 채권은행인 조흥은행도 종금사 사장단의 요청이 있으면 협상에 나설 참이다.여전히 朴健培 해태회장의 경영권 배제를 전제로 깔고 있다. 해태 제품을 팔아주는 산매점들도 50년 전통의 해태를 살리기 위해 하나라도 더 팔고 판매대금도 앞당겨 갚아주는 성원을 보내고 있다.협력사들도 차질없이 원료를 대주기로 결의했다. 소비자들의 성원도 대단해 해태제품인 ‘맛동산’의 매출액은 지난 해보다 배나 늘어 2∼4월 매출액이 50억원을 넘었다.부라보콘 역시 최근 매출이 20%나 급증했다.이 바람에 해태제과의 지난 달 매출액은 창사 이래 최대규모인 750억원을 기록했다. 해태의 관리직 직원들은 지난 해 11월 부도 이후 너나없이 소매를 걷어 붙였다.1주일에 3일은 판매 현장을 누비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노조는 임금교섭을 전적으로 회사에 위임하고 보너스를 전액 반납하기도 했다. 꺼져가던 해태가 ‘회생의 불씨’를 되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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