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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이리 아트밸리’ 회원 설명회

    2002년 상반기에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문화예술 테마도시 ‘헤이리 아트밸리’가 22일 오후 5시 통일동산 현장에서 마지막 회원모집설명회를 갖는다. 문화의 생산과 소비,생활,자연이 어우러지는 이상적 주거공간인 이아트밸리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 소재 15만4,000평의 부지에 들어선다.지난 97년3월 결성된 건설위원회의 공간조성계획에 따르면 박물관 및 기념관 30개,갤러리와 공방 25개,서점 20여개,아트숍 30여개,아틀리에 25개,작가 개인 스튜디오 20여개 그리고 각종 공연장이 들어설 계획이다.9월중 토목공사를 시작할 예정.(02)511-5642.
  • 기다려지는 들국화 ‘야외 콘서트’

    여기 헐렁한 고등학교 교복을 걸쳐 입은 채 꺼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세명의 남자가 있다.전혀 어울리지 않는 선글라스를 낀 최성원, 건방진 태도로 담배를 꼬나문 전인권,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소년같은 미소를 날리는 주찬권. 지난 83년 10월 전인권 최성원 허성욱이 결성한 우리 록그룹의 산 증인 들국화가 오는 9월 2·3일 오후8시 예술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콘서트 ‘안녕하세요,들국화’를 연다.(02)525-6929지난 87년 갑자기 해체한 뒤 97년 원년멤버 허성욱이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로 숨지자 이듬해 KBS홀에서 해후공연을 가지면서 팬들과 했던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당시 그들은 “앞으로는 팬들과 헤어지지 않겠다.앨범도 준비하고 매년 정기공연도 가지며 환갑때까지 공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동안 이들은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 주변 클럽 등에서 소규모 공연을 지속적으로 펼쳐온 ‘현역’인 셈. 이번 무대에는 세사람과 절친한 사이인 사랑과평화의 최이철이 무대에 오른다.80년 그때처럼 교복을 입고 관객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등의 무대매너를 고스란히 재현할 계획이다. 전인권의 내지르는 보컬이 인상적인 ‘행진’ 등의 히트곡과 10월에나올 앨범 수록곡들을 깜짝 공개한다. 또 이은미 김장훈 배우 최민식이 게스트로 ‘그것만이 내세상’ 등을함께 부른다.
  • 그룹‘퍼니 파우더’ 앨범‘더 그레이티스트 히츠’들고 데뷔

    참 재미있는 그룹 하나가 8월 무더위에도 연신 낄낄,깔깔대며 가요계에 나타났다. ‘퍼니 파우더’.이들의 음악을 접한 이들은 두가지 혼란을 느낀다. 힙합도 아닌 것이 테크노도 아니고 강렬한 기타연주가 돋보이는데 그렇다고 정통 록과도 또 한참의 거리를 둔다.모든 음악이 자연스럽게뒤섞여 있다. 외국에서 장르를 규정하기 힘들 때 흔히 뭉뚱그려 ‘하이브리드 록’이라고 통칭하는데 실은 그쪽보다 훨씬 복잡하다.그렇다고 리듬이나멜로디 라인이 두텁거나 어려운 건 절대 아니다.오히려 댄스음악에가까울 정도로 빠른 리듬과 속사포같은 랩이 흥겨움을 안겨준다. 두번째 혼란은 이들이 내뱉는 가사가 지닌 독설과 위트.국내에서 가장 솔직한 대사를 내뱉는다는 DJ.DOC보다 한 수 위일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예를 들어 ‘지구인 납치사건’에서 ‘한국인 지친 이의 안식처인 INCYBER 세상 채팅으로 사귐으로 질문으로 우리 번개할까요? 번개?’라고 떠들고 ‘스릴있게 살자’에선 ‘우린 우리 멋대로 그게 우리들의LAW 그래서 GRUNGE,이게 우리들의 모습자신의 자신에 주저하는 당신그러고 보니 얼떨떨 ADULT’하는 식으로 영어를 적절히 비벼 각운(脚韻·rhyme)을 맞추고 있다. 데뷔앨범을 ‘더 그레이티스트 히츠’로 붙여 황당함마저 엿보인다. 그런 자신감은 지난 97년 인터넷상에 ‘한방’이라는 사상 최초의 사이버 공연을 가져 25만건의 히트를 기록한 전력에 기인한 것이다.지금까지 두장의 싱글앨범을 발표했다. 서강대를 졸업한 이승복(드럼·미디), 각각 경희대와 연세대 휴학중인 홍기섭(기타)과 김호준(기타)이 결성한 퍼니 파우더는 자신들을외계인으로 착각(?)하고 있다.지구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하얀 가루를 발라야 하는데 하루종일 웃음이 터져나오는 부작용에 시달린다. 삐딱한 래핑은 기섭의 몫이고 낮고 무거운 톤의 랩은 승복이,힘있고스트레이트한 랩은 호준이 각각 맡는다.자신이 맡을 랩 부분을 따로따로 작사하는 것도 독특하다.세사람의 랩 색깔을 비교하려면 ‘지구인 납치사건’을 들으면 된다. 그루브한 느낌의 리듬이 들을만하고 직선적이고 공격적인 기타연주가돋보인다. ‘스릴있게 살자’에선 자우림의 김윤아가 특유의 약간 비아냥대는 듯한 보컬을 들려주는데 맛깔난다. 지금 인터넷에선 이들을 둘러싸고 찬양 목소리가 높다.‘여태 들어보지 못한 새롭고도 기발한 음악’이란 평이다.한켠에선 DJ.DOC흉내나낸다고 핀잔을 늘어놓는다.앨범의 균일도가 조금 떨어진다는 아쉬움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퍼니 파우더가 올 가을 가장 신선한 음악을 들고 나온 점만은분명하다. 참,이들의 라이브가 보고 싶은 이는 홍익대 앞 ‘마스터플랜’을 두드리면 된다. 임병선기자 bsnim@
  • 개그맨 지상렬 음주운전 영장

    인천 연수경찰서는 17일 음주단속 검문을 피해 차를 몰다 다른 차량을 들이받은 개그맨 지상렬씨(29·인천시 남구 용현5동)에 대해 특가법상 차량도주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씨는 이날 새벽 2시55분쯤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구 옥련삼거리 앞길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126%의 상태로 자신의 승용차 인천2로 9866호 스포티지 승용차를 운전한 혐의다. 지씨는 또 음주단속 검문을 피해 차를 후진시키다 뒤따라 오던 영업용 택시를 들이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지씨는 개그맨 염경환씨와 함께 ‘클놈’이란 팀을 결성해 SBS ‘멋진 만남’등 각종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해 왔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민족해커’ 기른다

    국내 독도 수호운동 단체들에 대한 일본 우익단체들의 해킹을 막아내는 ‘남벌(南伐)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해커코리아(www.hackerkorea.co.kr)가 ‘민족해커양성소’를 운영하기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해커코리아는 광복 55주년을 맞아 민족 해커를 양성하기 위한 기술지원과 교육을 담당할 민족해커양성소를 인터넷 상에서 개설하기로했다고 15일 밝혔다. 또 각 지방 및 해외교포 해커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민족해커 지부를 결성해 공익성을 띤 기관과 단체,조직의 사이트를 대상으로무료 보안진단을 실시할 예정이다. 해커코리아 관계자는 “사이버 영토 수호를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벌이기 위해 해커 양성소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이들은 그동안 100명에 가까운 국내·외 해커를 규합,국내 독도 수호운동 단체를 해킹하는 일본 극우단체들의 활동을 막아왔다고 소개했다.이들은 “사이버 세계에서 우리 영토를 지켜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해외항일전적지를찾아서](6)남만주 독립투사 양세봉 활동지 신빈

    ‘歷史名城 前淸故里’(역사명성 전청고리)라고 쓴 현판을 단 높다란 채색관문이 차창위로 휙 스쳐 지나갔다.현판은 이곳이 청태조 누루하치의 고향이어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고장이라는 뜻이었다.마침내남만주의 오지인 신빈현(新賓縣:항일전쟁 시기 지명은 興京縣)에 들어선 것이다.심양(審陽)에서부터 4시간 반동안 숨가쁘게 달려온 차가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신빈은 요녕성의 동쪽 끝에 위치한 만주족 자치현으로 길림성의 통화현과 닿아 있다. 양세봉(梁世鳳·1896∼1932)장군은 유해가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모셔져 있는 탓으로 남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항일투쟁의 명장이다. 남한에서는 김좌진이,북간도에서는 홍범도가 항일영웅으로 인구에 회자되듯이 심양과 남만주 일대의 동포들에게는 양세봉의 이름이 전설속에 칭송되고 있다.조선혁명군은 공산주의 깃발아래 싸운 부대가 아닌가 생각하기 쉽다.양세봉이 소년시절의 김일성을 도와주었고 김일성이 막 항일투쟁을 시작한 무렵 교류한 적이 있다.그러나 양세봉은처음부터 반공성향이 강했고,조선혁명군도 1920년대말 국민부 산하의무장조직으로 창건되어 1937년 해체될 때까지 민족주의 이념을 굳게지킨 독립군이었다. 양세봉은 서봉(瑞鳳)이라는 이름도 썼다.평북 철산 출신으로 스무살이 넘어 만주땅으로 건너가 중국인 점산호(占産戶.지주)의 소작농이됐다.기미년 4월 만세시위가 남만주 일대까지 퍼져 왔다.그는 시위에앞장섰고 그때부터 독립투쟁에 투신하게 됐다. 천마산대에 입대해 경찰서를 습격하는 등 무명 소졸로 투쟁하다가,참의부 중대장을 거쳐 1926년에는 남만주의 새로운 독립운동 단체 정의부에 들어갔고,1929년말 국민부 산하조직으로 조선혁명군이 창건되자 부사령(副司令)을 맡았다. 1932년 봄, 국민부와 조선혁명군은 간부들이 대거 체포되어 위기를맞았다.양세봉은 총사령으로 추대되고 즉각 왕청문(旺淸門)에서 무장봉기를 단행,지휘부를 왕청문에 두고 500명의 대원을 이끌고 무순(撫順)까지 진공해 일본군을 격퇴했다. 당시에는 흥경현의 일부,지금은 신빈현의 일부로 행정상 현(縣)보다작은 진(鎭)에 해당된다.양세봉은 흥경현의 쌍협하(雙峽河)에서 또다시 적을 격퇴하고 이름을 드날렸다.그는 영릉가(永陵街)에서 중국 의용군과 합세해 대대적으로 진공해온 일본군을 패퇴시켰다.그리고 흥경성에서 일본군과 만주군의 연합 공격을 받아 혈전을 치르고 사수했다.그 뒤에도 2차 영릉가전투,청원(淸原)전투,영릉가의 석인구(石仁溝)전투에서 승리했다.중국인 의용군과 연합한 전투도 있지만 조선혁명군의 단독전투가 더 많았다.양세봉은 한편으로 끊임없이 소규모 인원을 보내 국내 진공을 펼쳤다.기록을 보면 1932년 16차례에 걸쳐 100여 명이,이듬해는 10차에 걸쳐 140여 명이 압록강을 건너가 일본군진지와 파출소,우체국 등을 기습했다. 일제는 남만주의 영웅 양세봉을 제거하기 위한 계략을 짰다.1934년9월,일제의 지령을 받은 밀정 박창해(朴昌海)는 중국인 지주 왕가(王哥)를 통해 마적 두목 아동양(亞東洋)을 매수했다.아동양은 양세봉에게 중국인 항일부대와의 연합을 협의하자고 속여 환인현(桓仁縣) 소황구(小荒溝) 골짜기로 유인해 저격했다.온 몸에 집중사격을 받은 양세봉은 동포들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숨을 거두었다.동포들은일제의 손길을 피하려고 가까운 고려성(高麗城)에 평장했으나 통화현(通化縣)의 일본 경찰은 이를 탐지해 시신을 꺼내 목을 잘라 성루에걸었다. 취재팀은 시내로 들어가 조선족 원로들을 찾다가 운좋게도 최선주(崔善柱)선생(66)과 조만선(趙萬善)·김순화(金順化)·김순자(金順子)선생 등 원로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었다.현(縣) 인민위원회 부서기 등 고위 공직에서 은퇴한 이들은 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를 결성,조선족 사회의 발전과 모국과의 문화교류를 위해 애쓰고 있었다.1995년 조선혁명군의 주둔지 왕청문에 양세봉 장군 기념비를 세운 주인공들이다.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운 대낮이었으나 원로들은 취재팀을 안내하기 위해 앞장섰다.우리는 흥경성전투 현장부터 돌아보았다.네 분원로가 손을 들어 이곳 저곳을 가리켜 보였다. “일만(日滿)연합군은 서쪽에서 쳐들어오고 동쪽에서는 중국의용군이춘윤부대가 맞섰지요.양세봉이 이끄는 조선혁명군은 남쪽에서 협공했지요.대도회(大刀會)는 뒤에서 냅다 함성을 질렀구요.병력이야 이춘윤부대가 많았지만 적을 무너뜨린 건 양세봉부대였지요.참 대단했다 그래요.혼쭐나서 달아나는 왜놈들을 양장군은 무순까지 쫓아가며족쳤대요” 길목이나 구릉이 있어 실감은 났지만 이제는 모두가 시가지로 변해당시의 진지나 망루 따위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필자가 김순화 선생에게 물었다. “대도회는 뭡니까?” “2,000명쯤 되는 비무장 예비대였지요.배에다 부적을 뻘겋게 붙이고 죽창을 꼬나들고 함성을 올리며 돌진했지요.흥경성 2차전투에서많이들 죽었어요.이삼년 전까지만 해도 생존자 몇분이 있었는데 이젠안 계세요” 흥경성 2차전투는 양세봉이 조선혁명군의 주력을 이끌고 청원현에가 있을 때 적의 기습으로 시작되었다.혈전을 벌이던 중 일본군 비행기가 기총사격을 가했고 이춘윤부대는 속수무책으로 퇴각했다.대도회는 거의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취재팀은 그분들과 함께 차를 타고 왕청문진으로 향했다. 남만주 항일전쟁의 영웅 양세봉은 조선혁명군의 지휘부가 있었던 화흥(化興)중학교 안에 장려한 화강암 흉상으로 우뚝 서 있었다.6미터쯤 되는 높은 기단에 흉상은 1m65㎝,전면에는 ‘抗日名將 梁瑞鳳 將軍(항일명장양서봉 장군)’이라고 쓰여 있었다. 조선혁명군의 사령부이자 간부 양성소로 썼던 화흥중학교는 옛 자취는 사라지고 1960년대에 지었다는 교사만 덩그렇게 남아 있었다.조선족 학생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양세봉의 죽음과 관련해 잊을 수 없는 사실이 있다.일본경찰은 그의무덤에서 시신을 파내 김도선(金道善)이라는 조선족 농부에게 작두로 목을 자르라고 윽박질렀다.김도선은 ‘양세봉은 우리 조선민족의사령이다.내가 조선사람으로서 어찌 우리민족 사령의 목을 자른단 말인가’라며 거부하자 일경은 그 자리에서 그를 총으로 쏴 죽였다.양세봉 암살계략을 짠 조선인 밀정 박창해와 그의 시신의 목을 자르기를 거부하고 총살당한 농부 김도선.충성과 배반의 양극이다. 양세봉의 아내와 아들은 1946년 김일성의 각별한 배려속에 평양으로귀국했다. 북한당국은 그의 유해를 1961년에 모셔가 일단 평양 교외에 안장했다가 1986년 애국열사릉에 이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양세봉이 두 차례 대승을 거둔 영릉가를 돌아보니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취재팀은 분단모순 때문에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지 않은 항일전쟁의영웅을 취재했다는 보람에 가슴이 뿌듯해진 채로 심양을 향해 차를달렸다. 신빈(중국 요녕성) 이원규(소설가·동국대 겸임교수)
  • 시민단체 대응 방안 “진료거부 의사 왕따 시키자”

    “우리 사회에서 의사들을 ‘왕따’시키자.” 1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의약분업 정착을 위한시민운동본부’를 비롯,노동계·종교단체 등이 결성한 ‘국민건강권수호와 의료계의 집단폐업 철회를 위한 범국민대책회의’가 13일 의사들의 집단 폐업에 대응해 시민들에게 권하는 행동요령은 이같은 말로 요약할 수 있다.범국민대책회의의 대응방안과 시민 행동요령 등을 간추린다. ◆시민단체 대응=대책회의는 오는 16일 낮 12시 대한의사협회 및 각시·도의사회 앞에서 전국 동시 다발적으로 시민 항의집회를 가질 예정이다.또 의료계의 집단 폐업에 따른 물질적·정신적 피해에 대해적극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하고 정부와 의협,각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낼 청구인단 모집에 들어갔다. 대책회의는 이와 함께 의협과 의권쟁취투쟁위원회에 항의 전화와 팩스,항의 우편 보내기 운동을 펼치는 한편 지역별로 ‘지역시민 항의방문단’을 조직,폐업에 참가하고 있는 병·의원 및 시·도의사회를찾아가기로 했다. ◆시민 행동요령=대책회의는 시민들에게 ▲상점이나 택시·버스 등에 의료계의 폐업 철회를 촉구하는 스티커 및 안내문 부착 ▲건물에 폐업 철회와 의료비 인상에 반대하는 현수막과 깃발 달기 ▲매일 낮 12시 의료계를 향해 자동차 경적 울리기 ▲폐업 병·의원 문앞에 ‘폐업철회 요청 쪽지’ 붙이기 등을 촉구했다. ◆전망=시민단체들이 폐업 철회를 위해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방안들은 대부분 강제력이나 구속력이 없는 ‘구호성’에 가깝다.그러나 시민·사회단체가 노동계·종교계와 힘을 합해 폐업 철회를 위한 투쟁에 돌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료계 종사자들에게는 상당한 부담과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1차 의료계 폐업 때도 드러났듯이국민의 지지와 지원을 받지 못하는 단체행동은 결국 ‘고립무원’의상태로 빠져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영우기자 ywchun@
  • 팝계 10대요정 잇단 서울나들이

    팝계를 이끌어갈 10대 음악 ‘요정’들이 잇따라 우리나라를 찾는다. ‘스파이스 걸스’의 성공 방정식을 그대로 좇았다는 평을 듣는 영국의 파워걸그룹 ‘아토믹 파워’가 16일 오후1시 서울 청담동 하드락카페에서 기자회견 및 쇼케이스(음반 수록곡 등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행사)를 갖는데 이어 캐나다의 음유시인 타라 맥클린이 29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내한하는 것. 비틀스의 고향으로 유명한 리버풀 출신의 나타샤·리즈·케리 등 10대 소녀 세명이 모여 결성한 아토믹 파워는 데뷔앨범 ‘라이트 나우’에 수록된 타이틀곡과 ‘시 야’‘아이 원트 유어 러브’ 등 세곡이 모두 영국 팝차트 톱10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귀엽고 발랄한 소녀’ 이미지를 앞세운 이들은 15일에는 SBS 테마스튜디오 ‘아테크’에서 공연도 벌인다.문의 (02)547-5302지난 97년 캐나다 인디레이블 ‘넷베르크’를 통해 데뷔앨범을 발표,작사·작곡능력을 겸비한 ‘음유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타라는 미국시장의 10대 팬들을 사로잡고 있는 인물. 이번에 메이저레이블 데뷔작 ‘패신저’를 내놓았다.그의 꾸밈없는음색이 도드라진 ‘이프 아이 폴’을 비롯,트립합의 몽롱한 느낌이자극적이기까지 한 ‘디바이디드’ 등 그만의 감성이 감미롭다.‘이프 아이 폴’은 ‘스크림’이나 TV물 ‘도슨즈 크릭’으로 유명한 케빈 윌리엄슨의 영화 ‘팅글 부인 가르치기’에 삽입됐다. 임병선기자
  • 남대문 ‘라이브 메카’로 뜬다

    “제대로 된 라이브 전용극장 하나 있었으면…”록그룹이나 대중가수들의 공연장을 좇아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한번쯤 가졌을 법한 바람.가수의 노래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왕왕대는 음향시스템,정갈한 멋과는 거리가 있는 조명시스템,공기 정화마저 제대로 되지 않는 매캐한 실내 분위기 등등. 그러나 남대문시장의 엔터테인먼트 패션몰 ‘메사’ 10층에 자리한라이브 전용극장 ‘메사 팝콘’(MESA POPCON)이 오는 25일 문을 열면 이런 불만은 얼마간 수그러들 지도 모른다. 지난 10일 ‘팝콘’에 미리 들어가 보았다.우선 천장까지 확 트인 공간의 여유로움이 반갑다.최고의 시스템을 갖추느라 예산만 30억원이들었다.의자를 놓으면 750석,스탠딩 공연을 할 경우 1,300명이 입장할 수 있다. 메인 스피커(V-DOSC)와 48채널의 콘솔(마이더스 헤리티지 2000),영상시스템(바르코 그래픽 6300) 등을 최고의 시스템으로 갖췄고 무빙라이트(MAC250·300·575)를 32대 설치해 최고의 이펙트를 구현하게 했다. 이날 미국 록그룹 이글스의 CD ‘호텔 캘리포니아’를 들어본 결과,좌우 스테레오 사운드가 완벽하게 구현되었고 흡입재 등이 완비돼 음의 반사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또 하나.12층에 마련된 별도의 연습실에 드럼을 비롯,각종 앰프를 갖추어 가수 및 연주자들이 개인 악기만 들고 들어오면 완벽한 연습이가능하도록 한 점도 마음을 놓이게 한다. ‘팝콘’의 이제근 과장은 “일본의 브릿지홀을 모델로 최고의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청소년은 물론 30·40대를 위한프로그램,외국 관광객을 위한 국악공연,신인가수 무대의 상설화 등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최적의 조건에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대관료는 다른 공연장과의 차별화를 위해 다소 높은 선인 회당 550만원.문의 (02)2128-530025일부터 10월1일까지 이어지는 개관기념 무대 첫 테이프는 98년 영국유학을 떠나며 국내 팬들과 거리를 두어온 신해철이 끊는다. 그는 최근 자신이 ‘루키’로 명명한 형빈,데빈과 함께 새 그룹 ‘비트겐슈타인’을 결성,이날 내한공연의 보컬리스트로 나서 과거와는다른 면모를 선보이게 된다.앨범은 10월말 나올 예정.그는 16일 귀국한다. 임병선기자
  • 광복55돌 독립유공자 157명에 훈·포장

    국가보훈처는 11일 광복 55돌을 맞아 조선혁명당을 결성,항일투쟁을 벌인이호원(李浩源·1891∼1978)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는 등 훈·포장 대상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157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포상을 받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독립장 2명 ▲계몽소설 ‘상록수’의저자 심훈(沈熏·본명 沈大燮·1901∼1936) 선생 등 건국훈장 애국장 57명▲재미독립운동가 김용중(金龍中·1898∼1975) 선생 등 건국훈장 애족장 43명▲건국포장 16명 ▲대통령표창 39명 등이다. 포상식은 오는 15일 독립기념관에서 열린다. 애국지사중 생존자는 박찬규(朴贊圭·72·애족장) 선생 등 5명(애족장 3명,대통령표창 2명)이다.여성으로서는 근우회 등에 가입,독립운동을 편 박원희(朴元熙·여·1898∼1928.애족장) 선생이 대상자에 올랐다. 특히 민족대표 33인중 한 분인 김병조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사략’(1920)에 기초해 북한지역 3.1운동 순국자 27명이 포상자명단에 새로 포함됐다.건국훈장 독립장을 받는 의병장 이성화(李成化·1882∼1910) 선생은 전북 고부등지에서 항일 의병투쟁을 펼친 공로가 인정됐다.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조소앙 선생의 사위로 1926년 중국으로 망명,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광복군으로 활동한 최문용(1905∼1979.애족장) 선생과 임창열(林昌烈) 경기도지사의 조부로 조선독립청년단을 조직,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한 임기반(林基磐·1867∼1932·애국장) 선생에게도 포장이 수여된다. 이로써 정부수립이후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사람은 모두 8,855명이며이 가운데 ▲대한민국장이 30명 ▲대통령장 92명 ▲독립장 774명 ▲애국장 2,895명 ▲애족장 3,634명 ▲건국포장 363명 ▲대통령표창 1,067명 등이다. ■건국훈장 독립장(2명) 이성화 이호원 □건국훈장 애국장(57명) 강신경 고두일 김수성 김순영 김영국 김용담 김의홍 김인성 김찬두 김효운 김희국 맹달섭 박래준 박인찬 박치율 박홍지 방윤격 백신한 백의경 손몽상 송연근 송영광 송학묵 신제원 심대섭 심칠석 안상의 오병호 유심택 유진흥 유희선 윤낙구 음성국 이남기 이범진 이복근 이석중 이성덕 이성용 이중백 임기반 임도돌 임봉구 임영화 임일권 장봉규 장봉주 정낙중 조기섭 조민찬 최문용 최석철 최성세 최재유 최훈세 허 전 황순팔 ■건국훈장 애족장(43명) 강용운 곽덕산 곽병도 김명도 김문준 김병형 김용길 김용중 김형태 김홍이 김희중 남병우 남상순 박기석 박원희 박찬규 박천흥 박학순 방인철 방학연 부덕환 서상룡 손영술 심용철 안치서 이경응 이광우 이무선 이병선 이정의 장옥만 전원숙 정소수 정주영 주유만 최덕정 최윤창 최재소 최치환 피용학 홍진근 황정연 황태갑 □건국포장(16명) 강기수 고홍석 김광언 김시추 김영철 김지수 김후식 박태규 박태근 염택눌 윤삼업 이병화 이승정 장상흠 장석구 장용호 ■대통령표창(39명) 권중윤 권창수 김금영 김성수 김위창 김흥용 김희수 남병희 박봉래 박수봉 박유성 박창선 배영직 서정규 손석봉 송기주 승병일 신영경 오놀보 오주선 유재현 윤태완 이면우 이문천 이수봉 이수열 이회식 임병률 임창원 장호명 정경순 정상용 정인행 정학균 조재학 최규철 홍철수 황윤실 황재옥. 노주석기자 joo@kdail y.com
  • ‘꼬마악단’ 선율로 하나되는 세계

    만3세에서 15세까지 어린 바이올리니스트들로 이뤄진 ‘베티 하그 어린이 앙상블’이 12∼15일 전국순회공연을 갖는다.이에 앞서 11일 오후 6시에는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특별 초청공연도 열린다.국회초청 공연에는 이만섭국회의장과 여야의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45명으로 구성된 ‘베티 하그 어린이 앙상블’은 미국의 유명한 바이올린 교수 베티 하그가 결성한 ‘꼬마악단’.지난 76년 첫 유럽 투어를 시작한 이래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중국 장쩌민 주석,대만 리덩후이 전 총통 앞에서 초청연주회를 갖는 등 음악을 통한 ‘작은 외교관’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난 89년 유니세프 협찬으로 첫 내한 공연을 가진 데 이어 이번이 두번째한국 방문이다. 바흐의 ‘미뉴엣Ⅰ’과 헨델의 ‘부레’,슈만의 ‘두명의 영국 근위병’ 등다양한 레퍼토리를 선사한다.연주일정은 12일 광주대 대강당(오후7시30분),13일 부산문화회관 대강당(오후6시30분),14일 대전엑스포아트홀(오후7시30분),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02)780-5054허윤주기자 rara@
  • 광복55주년 학술행사

    광복 55주년을 맞아 각계에서 마련한 항일독립운동 관련 학술심포지엄이 눈길을 끈다.문화관광부가 ‘8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한 백야 김좌진(金佐鎭)장군의 항일투쟁사를 재조명한 학술회의(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주최)를 비롯해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의 현장인 서대문형무소와 항일운동사 심포지엄(서대문구청 주최),그리고 개항 이후 ‘한국 민족주의의 변천과 향후 전망’주제의 학술행사(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주최)가 그것.앞의 두 행사는 10일,마지막 행사는 11일 각각 마련됐다.각 학술행사마다 4건 정도의 학술논문 주제발표와 토론이 마련돼 있다.여러 논문 가운데 일부를 발췌,소개한다. 金佐鎭장군의 항일운동 노선과 정치이념 ‘청산리전투의 영웅’ 백야 김좌진 장군은 대종교(大倧敎)적 민족주의와대종교적 공화주의를 정치적 이념으로 추구하였으며,구체적으로는 단군(檀君)을 정점으로 한 ‘민주적 이상국가 건설’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아울러 김좌진은 대종교인으로 민족주의를 강조하여 국제성을 강조한 사회주의에는 반대했으며,그의 피살은 양대 세력의 분열을 책동한 일본의 계책에 의한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박환(수원대) 교수는 10일 개최된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주최 ‘김좌진 장군의 항일운동’ 주제의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북만주에서의 김좌진의 항일독립운동-투쟁노선과 정치이념을 중심으로’제하의 논문에서 이같은 주장을 폈다. 박 교수에 따르면,백야는 철저한 대종교주의자였다.1925년 그가 신민부(新民府)를 조직한 북만주지역은 대종교 신자가 많이 사는 곳으로 그는 대종교를 바탕을 두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같은 전통은 북로군정서 시절부터 계속 이어져온 것이었다.그러나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1926년 화요회파 중심의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이 북만지역 영안현(寧安縣)에 설치되자 민족주의 색채가 강했던 대종교 계열은 국제성을 강조한 공산주의 계열과 대결양상을 빚게 되었다. 한편 1925년 중국 군벌과 일본군간에 소위 ‘삼시(三矢)협정’이 체결된 후 대종교에 대한 포교금지령과 함께 대종교 세력이 약화되면서 이를 틈타 공산주의자들의 침투가 우려되자 대비책으로 무정부주의이념을 수용했다. 신민부의 후신으로 1929년 결성된 한족총연합회는 권력의 중앙집중을 부정하고 자주적 조직의 연합체를 지향하는 아나키즘 조직으로 공산주의를 반대했다.백야는 독립운동과 반공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무정부주의사회를 건설한 것이다.결국 그는 대종교적 민족주의에서 대종교적 무정부주의로 이념과 체제를 전환하였다.그의 죽음은 이같은 ‘노선변화’에서 이미에고된 것이었다. 구한말부터 1930년 그가 피살될 때까지 일생을 항일투쟁에 바친 그를 암살한 사람은 조선인 공산주의자 박상실(朴尙實)이었다.박 교수는 그의 피살은“하얼빈 일본 총영사관의 한족총연합화의 대종교적 민족주의 세력과 무정부주의 세력간의 분열 및 한족총연합회와 공산주의 세력 간의 분열책”이라고추정했다.즉 일제는 북만주지역 한인독립세력을 전멸시키기 위해 화요파의간부 김봉환(金鳳煥)을 사주,하수인 박상실을 이용해 백야를 살해했다는 것. 이를 두고 박 교수는 “일제는 화요파를 이용,백야를 처단함으로써 화요파와 한족총연합회를 이간시키고 아울러 한족총연합회의 무정부주의자와 대종교적 민족주의자의 분열도 촉진시키는 ‘이중효과’를 노린 계책을 꾸몄는데화요파 공산당이 바로 여기에 넘어간 것 같다”고 주장했다. 정운현기자 jwh59@. *국제화시대 한국 민족주의. 국제화·세계화시대에서 자칫 편협한 국수주의 정도로 몰리기 십상인 ‘민족주의’.근대이후 우리역사에서 민족주의는 어떻게 변전(變轉)돼 왔고,또앞날은 어떤 모습일까.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는 11일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국제화시대 한국 민족주의의 성찰과 전망’이란 주제로 학술행사를 가진다. 이날 행사에서 첫 주제발표자인 김도형(연세대) 교수는 미리 배포한 논문(‘개항 이후 세계관의 변화와 민족문제’)에서 “우리 근대사에서 민족문제는 봉건체제를 극복하고 제국주의의 침략으로부터 나라의 자주권을 유지하는 과정,즉 한국근대사의 전개과정에서 싹텄다”고 밝혔다.김 교수는 민족문제 인식의 논리를 주로 대외적인 관점을 중심으로 검토하면서,지배층 내부에서 전개된 근대변혁론을 흔히 척사론(斥邪論),양무론(洋務論),문명개화론,변법론(變法論)으로 구분하였다. 김 교수는 이 가운데서 척사론자·개화론자는 민족문제 인식에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척사론자의 경우 세계화를 거부한 한계,개화론자의 경우 사회진화론의 패배주의에 흘러 외세 의존적인 형태를 띠거나 계몽운동에서 동양주의에 함몰되는 위험성을 가졌다고 지적했다.반면에 변법론적 민족주의는유교를 개혁하고 서양의 신학문을 수용,근대적 개혁을 추구한 점에서 가장바람직한 모델이었다고 주장하고 대표적 인물로 단재 신채호를 들었다. ‘일제 지배하 한국 민족주의의 형성과 분화’라는 논문에서 박찬승(목포대) 교수는 “한국 민족주의는 초기 사회진화론·근대주의 등과 결합,국권회복을 위한 실력양성론을 주된 담론으로 시작하였으며 1910년대 들어 민족평등주의 사상이 싹텄고,이는 3·1운동기 민족자결론과 연결돼 확산됐다”고 주장했다.이어 “20년대 자치운동론을 놓고 찬반론이 난무한 가운데 좌우로 분열된 후 결국은 제국주의의 식민주의 논리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채 변질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특히 박교수는 “식민지하의 한국의 근대민족주의는 자유주의·개인주의와 제대로 결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체주의적 속성을강하게 띠었는데 이는 해방 이후 전제적인 정치권력에 의해 민족주의가 이용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강조했다. 해방후 민족주의와 관련,서중석(성균관대)교수는 ‘냉전체제와 한국 민족주의의 위상’이란 논문에서 “일제하 민족주의의 과제가 반제민족해방이었다면,해방후 민족주의의 주된 과제는 민족국가 형성과 식민체제 청산,즉 탈식민화에 있었다”며 “국가주의라고도 불리는 분단국가 의식이나 냉전이데올로기에 매몰된 것은 민족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주장했다.따라서 미국의 군사력에 전적으로 의존한 이승만정권의 반통일적 ‘통일론’은 민족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아울러 서 교수는 “민족 고유문화의 강조는 민족주의 현상으로 이해될수 있으나 1970년대 이후 유행된 대단군주의는 민족주의에서 일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한편 김영한(서강대) 교수는 ‘국제화시대 한국 민주주의의 진로’라는 논문에서 “한국의 민족주의가 나아갈 진로·방향은 ‘통일지향의 민족주의’가 돼야 한다”며 “통일은 민족과 국가가 하나됨과 동시에 냉전체제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을 의미하기 때문에 민족주의에 내포된 통합과 해방의 논리를 모두 실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운현기자. *한민족의 독립운동과 서대문형무소.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소재 구 서대문형무소(현 독립공원)는 한국감옥사의 대명사이자 한국 근현대사에서 우리 민족 수난사의 대명사이기도하다.일제 하에는 숱한 애국지사들이 이곳에서 옥고를 치렀으며,해방후에는반독재 민주투사들이 투혼을 삭여야했던 곳이기도 하다. 서대문구청(구청장 이정규)은 10일 오후 2시 독립공원내 독립관 지하강당에서 ‘한민족의 독립운동과 서대문형무소’라는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열었다.이번 학술행사는 서대문형무소의 역사적 의의에 대한 학술적 조명이 전무한 상황에서 처음 열린 행사로 의미있는 행사였다. 이날행사에서 남도영 동국대 명예교수는 ‘서대문형무소의 민족사적 의의’라는 기조발제 논문을 통해 “서대문형무소는 일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우리민족의 수난과 저항이 집약된 곳이자,일제의 잔학상을 세계만방에 고발한현장이며 민족정기를 보여준 성전,민족문화 수호의 생생한 현장”이라고 주장했다.남 교수는 1908년 서대문형무소가 이곳에 설치된 이후 1987년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되기까지 80년동안의 역사적 성격을 정리하면서 우리 근현대사에서 서대문형무소가 차지하는 의미를 재조명하였다. 순국선열유족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순국’에 ‘서대문형무소 근현대사를장기연재한 후 지난해 이를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한 바 있는 김삼웅 대한매일 주필은 ‘3·1독립운동과 서대문형무소’라는 논문에서 “3·1항쟁으로구속자만 1만8,000여명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서대문감옥에만 3,000여명이수감됐었다”고 밝혔다.김 주필은 3·1항쟁으로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거나 이곳에서 순국한 애국선열들을 중심으로 살핀 뒤 “이곳이 일제하 항일운동의 성지”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김 주필은 3·1항쟁 직후 서대문감옥의 간수를 지낸 권영준의 회고록 ‘형정(刑政)반세기’를 비롯하여 손병희 등 수감 애국지사들의 자서전,서대문형무소 전옥(典獄,교도소장)을 지낸 일본인의 회고기 등을 참고로 당시 수형자들의 참담한 감옥생활을 생생히 복원하였다. 이어 성신여대 이현희 교수는 ‘임시정부 수립 이후의 독립투쟁과 서대문형무소’라는 논문을 통해 임시정부 이후 8·15 해방까지 이곳에 투옥돼 옥고를 치른 애국선열들을 집중 조명하였다.이 교수는 “임정요인을 비롯해 독립군,6·10만세의거 주동자,수원고농학생항일운동 주동자,신간회사건 관련자,수양동우회사건,조선어학회사건,단파방송사건 등 국내외에서 전개된 항일투쟁 관련인사들이 이곳에서 옥고를 치렀다”며 “서대문형무소는 비탄의 역사로 얼룩진 현장”이라고 말했다. 애국지사로서 이날 학술행사에 참가한 이규창 선생은 ‘나의 서대문형무소옥중체험기’를 통해 자신의 옥중체험을 생생히 증언하였다.우당 이회영 선생의 자제인 이 선생은 1935년 3월 상해에서 친일파 이용로를 총살,처단한뒤 일경에 피체,본국으로 압송돼 1936년 4월 징역 1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마포형무소로 이감돼 복역중 8·15해방으로 출옥했다.이 선생은미결수로 서대문형무소 복역중 벽을 사이에 두고 옆방의 애국지사와의 통방(通房)통신법 소개를 비롯해 감방내에서의 애국지사와의 교류,재판과정 등 수형생활 전반을 증언했다. 정운현기자
  • 애국지사 李光雨씨 건국훈장 받는다

    독립운동 사실을 입증할 증거자료 부족으로 건국훈장 포상이 보류돼온 한애국지사가 자신을 체포,조사한 일제 경찰의 증언으로 뒤늦게 훈장을 받게됐다.애국지사 이광우(李光雨·75·부산시 동구 좌천동)씨의 경우다.독립운동 당시 동료들의 증언으로 포상을 받은 사례는 더러 있었으나 일경 출신자의 증언이 증거자료로 인정돼 건국훈장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대한매일1월17일자 참조). 이씨는 1942년 5월 부산에서 항일 비밀결사조직인 ‘친우회’를 결성,모두네 차례에 걸쳐 ‘불온전단’을 살포한 혐의로 일경에 체포돼 부산지법에서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단기 1년,장기 3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김천소년형무소에서 복역중 해방을 맞아 출옥했다. 이같은 항일운동 경력을 토대로 이씨는 89년 정부에 독립유공자 서훈신청을 했으나 관련자료 부족으로 심사보류 조치를 받았다.이씨는 자신의 항일운동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관련자료 수집을 위해 정부기록보존소와 자신이 복역한 김천교도소를 뒤졌으나 모두 허사였다. 이에 이씨는 경찰청에 자신의 전과조회를한 결과 자신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수형한 사실을 확인,이를 근거자료로 주장했으나 보훈당국은 “수형사실은 인정되나 구체적인 내용(죄명)을 알 수 없어 근거자료로는 부적합하다”는 입장이었다.이씨는 사건 당시 자신을 검거한 일경이 해방후 반민특위에 검거됐을 때 자신이 증인으로 출두한 사실 등을 관련자료로 제출했으나 이 역시 인정받지 못했다. 한편 이씨의 항일투쟁 공적을 입증한 것은 관련자료가 아니라 자신을 체포했던 일경의 ‘증언’이었다.1943년 3월 당시 경남경찰국 고등과 외사계 주임으로 근무했던 하판락(河判洛·88·부산 거주)씨는 올해 1월 본지와 단독인터뷰에서 “부하인 김소복(金小福)과 함께 ‘친우회 불온전단사건’ 관련,주동자 이광우씨를 검거,조사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본지 보도후 보훈당국은 “당사자의 증언이라 자료가치가 충분하다”면서이씨의 공적심사 의향을 밝혔고 이씨는 최근 공훈심사위원회의 공적심사에서 건국훈장 애족장(5등급) 서훈자로 최종 확정됐다. 보훈처 공훈심사과 오기택 과장은 “대한매일의 보도가 이씨의 공적 사실확인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이씨는 광복 55주년인 오는 8·15 광복절에 건국훈장을 받게 된다. 정운현기자 jwh59@
  • 공무원 직장협 행동반경 넓힌다

    서울시내 자치단체들에서 공무원직장협의회가 잇따라 출범하면서 공직사회의 분위기가 바뀌는 등 협의회의 영향력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서울시내에서 현재 종로·강남·서초·노원·성북·은평·관악구 공무원들이 협의회 발족을 적극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난해 출범한 서울시 본청과 강동·성동·도봉·송파구에 이어올해 말까지 적어도 서울의 25개 자치구중 10여곳에서 협의회가 결성되고 회원수가 지금보다 2배가량 늘어난 6,000∼7,000명에 이를 전망이다. 협의회 활동이 점차 활기를 띄면서 시·구 간부들도 과거처럼 무작정 군림하거나 고압적인 지휘행태를 고집하기보다는 부서내 여론 동향에 귀기울이는 하면 부조리한 관행이나 부당한 지시를 눈에 띄게 줄여나가고 있다는 게 서울시 직장협의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당초 우려와 달리 협의회 활동이 건전하고 전향적이어서 공직사외의분위기를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 직장협의회가 주축이 된 전국 직장협의회는오는 10일전교조,한국교원노동조합 등과 공동으로 ‘공무원연금법 개악 저지를 위한공동대책위원회(가칭)’ 결성을 선언하기로 하는 등 활동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시 직장협의회 대표들은 또 오는 17일 고건(高建)시장과 만나 경·평축구대회 등 남북교류사업 활성화 방안을 비롯,직장내 고운말쓰기,토요 휴무제,추가근무수당 차등 지급,목표관리제 개선방안,협의회 간부들의 전임 인정 등현안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다. 직장협의회의 노동조합 전환도 초미의 관심사.협의회측은 여건이 무르익으면 수년내 노조로의 전환을 적극 추진한다는 입장이다.우리나라가 가입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권고 등으로 미뤄 공무원노조의 결성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게 협의회측의 주장이다. 서울시 직장협의회 이희세(李熙世)회장은 “협의회 발족후 공직 내부의 부조리한 관행이나 행태가 크게 줄어든 것은 물론 상하간의 경직된 분위기가점차 개선되고 있다”면서 “공무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단체로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말했다. 공무원직장협의회는 공무원의 단결권 확보 등 권익보호 차원에서 98년 관련법 제정에 이어 지난해 4월 설립에 관한 조례와 규칙이 만들어졌으며 현재행정·입법·사법기관 등에서 130여개가 발족,활동중이다. 심재억기자 jeshim@
  • “조선일보 기고 거부”지식인 154명 선언식

    강정구(동국대·사회학),강준만(전북대 교수·언론학),김준태(시인),문규현(신부),진관 스님,성유보(민언련 이사장)등 학계 문단 종교계 시민운동권 인사들이 7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참여연대 건물 2층 느티나무카페에서 ‘조선일보에 기고와 인터뷰를 거부하는 지식인 선언식’을 가졌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반개혁적이며 무력 통일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수구 신문 조선일보의 행태에 주목한다”며 “이 시점에서 우리 지식인들이 해야 할 일은 조선일보 거부운동”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모임을 주도한 김동민 한일장신대(신방과)교수는 “조만간 공대위 결성과 함께 ‘조선일보 거부 서명운동’과 각종 토론회를 개최,이 운동을 각계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이날 1차 선언식에 동참한 지식인들은 학계 문인 종교계 시민운동권 등에서 모두 154명이 참여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부산시·의회 공무원 세금 ‘알뜰살뜰’

    대기업을 상대로 2년여간의 소송 끝에 수백억원의 세금을 되찾은 공무원들에게 포상금이 지급된다. 부산시는 3일 부산시의회 박영세(朴寧世·49·4급 의사담당관)·전경규(田敬圭.49·5급)씨와 부산시 권오일(權吳日·42·법무관실 6급)·박준우(朴浚佑·40·기획관실 6급)씨 등 4명에게 각각 500만원씩 포상금을 지급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96년 12월 부산정보단지(현 센텀시티)사업 참여업체인 SK그룹이 IMF사태를 이유로 일방적으로 사업참여를 포기,부산시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자대응팀을 결성해 본격적인 소송 준비에 들어갔다. 박과장 등은 증빙자료을 수집하는 등 2년여간의 준비 끝에 98년 11월 대한상사중재원에 383억원의 손해배상 중재신청을 청구했다. 이후 매월 1,2차례씩 서울을 오르내리며 10차례에 걸친 중재 심문에서 부산시의 입장을 적극적이고 논리적으로 대변,지난달 10일 113억5,600만원의 중재판정 선고를 이끌어냈다.중재판정은 법원의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박과장은 “소송 초기 부족재원 조달책임 및 조건부 참여문제 등쟁점사항에 대해 SK그룹의 책임을 입증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중재원이 결국부산시의 입장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SK그룹은 부산시와 96년 12월 부산시와 부산정보단지 개발계약을 맺었으나97년 12월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일방적으로 사업참여 포기를 통보했다. 이번 중재신청은 지방자치단체가 공동 출자로 사업을 추진하던 민간기업을상대로 제기한 첫 사례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출판단체 쌍두체제로 간다

    결성이후 임의단체에 머물렀던 한국출판인회의(회장 김언호 한길사대표)가최근 정보통신부 산하 사단법인체로 설립허가를 받아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그간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만이 업계 정식단체로 활동해왔다. 출판인회의는 금제금융 여파가 한창이던 지난 98년 11월 단행본 중심의 310여 개 출판사들이 모여 출판 시장의 불황을 타개하고 정보화 사회에서 새 방향을 모색한다는 취지 아래 결성된 단체.그간 문화관광부로부터 ‘단체의 중복등록 설립 불가’ 입장에 따라 임의단체로 활동해오다 열흘 전 정통부로부터 법인설립 허가증을 받았다. 기존의 출협(회장 나춘호 예림당대표)이 단행본 출판사를 비롯해 전집류를만드는 출판사,교과서나 학습서를 만드는 출판사까지 모두 망라된 반면 출판인회의는 단행본 출판사가 중심이다.출판인회의 소속사 가운데 120여 개는출협에도 소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언호 출판인회의 회장은 “사단법인 타이틀에 ‘지식정보화 사회 구현을위한’이란 구절이 들어가 있다”면서 “어느 정부 부처로부터 설립허가를받았는가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만 문화부가 아닌 정통부와 손잡고 일하게 된 것은 정보화 시대의 추세에 걸맞은 변화”라고 의미를 부여한다.출판인회의는 향후 활동방향으로 미래 콘텐츠산업의 중심역할 담당,출판업의사회적 의무중 핵심인 ‘정보복지’를 위한 노력,조직력과 실천력을 갖춘 조직으로서 출판현실 개선 노력 등을 꼽고 있다. 이와 관련 김회장은 “앞으로 고급 지식정보 산업으로서의 출판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전자책(e-book) 활성화와 출판 유통시장의 현대화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또입법 추진중인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정에주도적으로 나설 계획이며 소속사들이 공동설립한 인터넷 전자책 업체 ‘북토피아’의 본격 서비스를 다음달 하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이밖에 지난해4월 시작한 ‘이달의 책’선정 사업을 더욱 활성화하고 전문 교육기관인 한국출판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출판인 교육에 힘쓸 방침이다. 출판인회의의 김회장은 “출협과는 기본적으로 한식구”라고 말하고 있지만 출협과 경쟁관계에 돌입했다는시선이 한층 강하다. 김재영기자
  • 정부, 벤처기업 구조조정 지원 1,000억원 펀드 조성

    정부는 국내 벤처산업이 경쟁력있는 벤처기업 위주로 재편,지속 성장할 수있도록 1,000억원 규모의 ‘중소·벤처 M&A 전용펀드’를 조성,운용하기로했다. 김영호(金泳鎬) 산업자원부 장관은 1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장흥순(張興淳) 벤처기업협회장을 비롯한 벤처업계,벤처캐피털업계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벤처기업의 구조조정에 따른 M&A(인수·합병) 수요에 대비해 1,000억원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고 이날 밝혔다. 산자부가 선정한 구조조정전문회사가 민간과 투자조합을 결성해 운용하게되는 이 펀드는 정부재정 200억원,민간 800억원으로 구성되며 사업전환 또는영업수익이 취약한 벤처기업 인수에 지원된다. 산자부는 이와 함께 M&A 중개시장 활성화를 위해 한국기술거래소에 ‘벤처기업 M&A 지원센터’를 설치, 관련기관간의 종합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로했다. 중소기업청장을 단장으로 하는 벤처기업 세계화지원단을 운영,해외진출 대상기업을 선정해 자금을 집중지원하고 현재 실리콘 밸리에 한정된 실시간 벤처정보를 중국·유럽 등지로 확대할 계획이다. 함혜리기자 lotus@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3)金佐鎭장군 피살지 흑룡강성 海林

    청산리전투를 지휘한 백야 김좌진(金佐鎭·1889∼1930) 장군은 독립운동 공적이나 고매한 인품에 비해 한동안 적절한 평가와 대우를 받지 못했다.기념사업회는 그의 탄생 100주년인 지난 89년에 뒤늦게 결성됐고,충남 홍성군에있는 그의 생가는 92년에야 겨우 복원작업이 이루어졌다.학계의 평가 역시한동안 공백상태로 유보돼 왔었다.1962년 지도자급 독립운동가에게 수여하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을 추서받은 그가 그동안 홀대받아온 이유는 무엇인가.한마디로 말하면 그의 피살을 둘러싼 ‘의혹’ 때문이었다고 할 수있다.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남동쪽으로 12km 떨어진 곳에는 인구 43만의 해림(海林)이란 작은도시가 있다.취재팀은 이곳에서 백야 김좌진장군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원성희(元聖熙·61)씨의 안내로 백야 김좌진 장군의 흔적과‘최후’를 만날 수 있었다.원 회장은 해림 현장(縣長)과 시장·인민대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지난해 정년퇴직한 지역 유지출신으로 김좌진 장군의 기념사업·유적지 보호운동을 펴고 있는 중심인물이다.해림 시내를 빠져나와 비포장길을 1시간 정도를 달리면 우리나라의 면(面)에 해당하는 산시진(山市鎭)에 도착한다.이곳이 바로 김좌진장군이 암살자의 손에 최후를 마친 곳이다.그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한동안 묻혀 있었듯이이곳 역시 한국인들에게 한동안 낯선 곳으로 남겨져 왔다.그러나 지난해말이곳에 그의 유적지가 조성되어 문을 연 이후 최근까지 500여명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취재팀은 김좌진장군이 1925년 독립군을 이끌고 들어와 개척한 대황구(大荒溝)를 지나 신흥촌(新興村)에서 잠시 차를 멈추었다.원 회장이 우리 일행을안내한 곳은 그가 1930년 1월 24일 피살당한 뒤 임시로 묻혔던 옛 무덤터였다.그의 유해는 1934년 본부인인 오숙근(吳淑根·작고)여사가 고향으로 모셔가 지금 이곳은 묘소 흔적만 남아있다.묘소터 일대는 주변의 밭들과는 달리공터로 남아 있었는데 원 회장은 “이 일대를 꽃동산으로 꾸며 한·중 양국청년들의 우호증진과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흥촌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도남촌(道南村)에는 그의 유적지인 ‘백야 김좌진장군 구지(舊址)’가 단장돼 있다.이 ‘구지’는 지난해 11월 26일 한국측 (사)백야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와 중국측 백야 김좌진장군연구회가공동으로 단장해 개관한 것으로 대지는 500평 규모다.전통 한국식으로 만든대문을 들어서면 마당 한가운데에 대리석으로 만든 장군의 흉상이 나타나고그 뒤로 금성(金城)정미소를 복원한 건물이 보인다. 이 정미소는 그가 인근 농민들의 편의 제공과 한족총연합회의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동청철도회사의 창고를 빌려서 세운 것으로 처음에는 연자방아를사용하다가 1928년 여름 하얼빈에서 목탄 발동기 중고품을 구입해서 사용했다고 한다.금성정미소 자리가 바로 그가 좌익청년 박상실(朴尙實)에 의해 피살된 곳이다.현재 이곳에는 연구회측에서 세운 순국추념비가 그날의 비극의역사를 전해주고 있다.흉상 좌측에는 그가 순국 직전까지 거주하던 거처와‘팔노(八老)회의실’이 복원돼 있다.이곳 거처는 그가 1927년 7월 903명의독립군과 1,000여 명의 재향군인·가족을 거느리고 이곳에 진주한 후 이듬해 8월부터 피살될 때까지 머물던 곳이다.‘팔노회의실’은 신민부의 뒤를 이어 발족된 한족총연합회에서 그를 보필하던 8명의 원로들이 모여 독립운동을 논의하던 곳으로 1928년 10월 그가 자택 서쪽에 세웠던 것을 복원한 것이다.해림과 목단강 인근에는 ‘8노’의 후손들이 상당수 거주하고 있으나 근거자료 부족으로 한국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구지’내 그의 옛 거처는 2m50㎝,팔노회의실은 2m70㎝,정미소는 2m90㎝로 높이가 제각각인데 거기엔 나름의 까닭이 있다.이는 그가 주도한 신민부(新民部)가 창설된 연도(1925년),신민부 본부가 이곳 산시로 옮겨온 연도(1927년),그리고 신민부의 후신인 한족총연합회가 결성된 연도(1929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그는 신민부의 군사부 위원장 및 총사령관,한족총연합회의 주석을 역임했다. 히 그는 항일독립운동의 명장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그러나 좀더 다각적인면모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인물이다.충남 홍성지방의 유지 집안에서 태어나 3세때 부친을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란 김좌진장군은 15세 되던 해인 1904년 대대로 내려오던 노복(奴僕) 30여명에게 논밭을 나누어주면서 풀어주고이듬해 서울로 올라가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다.1907년 향리로 돌아와 호명(湖明)학교를 세워 90여칸의 자기집을 학교 교사로 활용하였으며,홍성에 대한협회지부와 기호흥학회를 조직,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그리고 1911년 북간도에 독립군사관학교의 자금조달차 족질의 집을 찾아갔다가 붙잡혀 2년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는데 1918년 만주로 건너간 이후 무장항일투쟁의 대역정에 돌입했다. 이런 그를 두고 원성희씨는 “김 장군은 항일 명장이기 이전에 반봉건 선각자이자 민족개명의 위대한 교육자”라고 평가했다.특히 그가 서명한 ‘무오선언’에서 ▲한국독립 주장 ▲일본침략 폭로 ▲무력투쟁 선언 ▲독립후 공화국 건립 등을 주장한 것은 그가 “근대적 민주주의의 신봉자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덧붙였다.김좌진연구회 부회장 겸 도남촌 당서기를 맡고 있는한족출신의 차유행(車有行·51)씨는 “김 장군은 한국과 중국 양 민족 모두의 영웅”이라며 “자금사정이 어려워 기념관 건립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편 김좌진 장군에 대한 평가는 국내와 북한은 물론 중국 조선족 자치지역에서 조차도 한동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중국과 북한에서 그를 낮게 평가한 것은 그가 사회주의자가 아닌,공화주의자라는 점,그리고 그의 말기의‘변절의혹’ 때문이었다.그의 ‘변절의혹’은 국내에서도 한동안 유포됐었고,그의 아들 김두한이 반이승만 노선을 걸은 점 등도 한국사회가 그를 홀대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물론 92년 그의 생가복원을 계기로 그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제자리를 찾았지만 그를 살해한 세력과 살해범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중이다. 만주 항일진영의 지도자였던 그를 살해한 사람은 조선인 박상실(朴尙實,본명 李福林)이었다.한때 신민부에서 활동한 이강훈(李康勳·98) 전 광복회장은 자서전에서 “일경에게 약점이 잡힌 김봉환(金奉煥)이 자기부하인 박상실을 시켜 김 장군을 살해했다”며 “당시 김 장군이 아나키스트들을 끌어들여공산주의자들로 부터 원망을 산 것은 사실이나 공산당측에서 김장군을 살해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연변대 박창욱교수의 견해 역시 이와 비슷하다.서울대 신용하 교수는 한 논문에서 “김좌진이 ‘적화방지단’이란 비밀조직을 결성해 공산조직의 침투를 막자 이들 단체의 공산화를 추진하던 공산단체 적기단이 비밀단원 박상실을 시켜 암살했다”며 “적기단이 김좌진을 암살한 뒤 ‘김좌진이 변절했다’는 일제의 모략정보를 빌려 ‘김좌진이 친일파로 변절해 처단했다’고 암살동기를 퍼뜨린 것”이라고 주장했다.그의‘친일변절’ 의혹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자료로 입증된 바 없다. ‘청산리대첩’의 영웅이자 시대의 선각자로 치열한 삶을 살다간 백야 김좌진.그는 92년 생가복원을 계기로 국내는 물론 옛 활동무대인 중국 흑룡강성해림에서 찬란하게 부활하고 있었다. 해림(중국 흑룡강성)
  • 남북 장관급회담/ 주요 합의내용 의미·전망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합의한 경의선 복원은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을 위한 경제협력의 상징성을 갖는다. ■철의 실크로드 남북한 첫 경협사업이다.경의선 단절구간이 복원될 경우 남북간 경제협력이 본격화,중국횡단철도(TCR)를 통해 유럽으로 이어진다.북한과 중국∼시베리아∼유럽을 잇는 ‘철의 실크로드’가 된다.문산∼장단∼봉동간 20㎞를 연결하면 운송비를 30% 줄일 수 있다. 투자비 1,500억원(추정)을 투입하면 남측은 물류비용을 줄이고 북측은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는 ‘윈윈 효과’가 기대된다.경의선이 복원되면 당장 삼성 전자복합단지(남포),현대 서해안공단(의주),대우합영공장(남포)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인적·물적 교류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추진방법 및 경비 정부는 일단 경의선 남측구간 연결사업에 19개월,북측구간이 3년 가량 걸릴 것으로 보고,우선 남측구간 소요예산 조달방안과 착공시기에 대해 계속 협의해나갈 방침이다.복구에는 남측구간 509억원,북측구간 936억원 등 대략 1,445억원이 들어간다. 정부는 경의선 단절구간연결사업이 이뤄진 뒤 군사분계선∼신의주간 389.7㎞를 대상으로 신호체계 개선 및 노후레일 교체 등 시설개량 사업을 추진할계획이다. 사업추진에는 모두 1조2,000억원에 4년이 소요될 전망이다. 정부는 북측이 경의선 복구에 드는 예산을 부담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공공자금을 투입하는 방안과,우리 정부가 보증을 서고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서 직접 차관을 도입하는 방법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원선 등 다른 철도는 정부는 경의선 외에 경원선 남측 단절구간인 신탄리∼군사분계선 16.2㎞도 조속히 연결하기로 하고,용지매입에 이어 곧바로사업에 착수할 계획이다.궁극적으로 북측 단절구간인 군사분계선∼평강 14.8㎞ 구간과 이어지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금강산선의 경우 남측 단절구간인 철원∼군사분계선 24.5㎞에 대한 기본설계와 실시설계가 마무리되는 대로 공사에 들어가 북측 단절구간인 군사분계선∼기성 50.8㎞와 연결할 계획이다.특히 삼척∼강릉간 57.5㎞ 복선전철화사업과 강릉∼고성(군사분계선)간 124.2㎞ 복선전철화사업 등도 교류 활성화 등 주변여건에 따라 사업추진 시기가 조절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정현 전광삼기자 jhpark@. *기타 남북관계 후속조치. ■남북장관급회담 정례화 오는 29∼31일 2차 남북장관급회담을 평양에서 갖기로 한 것은 남북 고위급 대화채널이 상설화될 것임을 예고한다.2차회담에서 주목되는 대목은 하위 대화채널의 구축 여부다.정부는 장관급회담과 함께▲경제협력 ▲사회·문화교류 ▲군사 등 3개 부문별 협의체를 가동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는 북측의 난색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대화가 지속되고 부문별 협력사업이 늘어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경협분야부터 하위 대화채널도 구축되리라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남북연락사무소 정상화 오는 15일부터 18일까지 남북적십자사가 주관하는남북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측면에서 지원할 수도 있을 전망이다.29일부터 열릴 2차 남북장관급회담과 관련한 연락업무도 앞으로 이 연락사무소를 통해이뤄지게 된다. 정부는 회담에 앞서 서울과 평양에 각각 연락사무소를 두는방안까지도 구상했으나 이번 회담에서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상주인력 경비문제 등의 이유를 들어 북측이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8·15행사 정부는 이번 합의에 따라 곧바로 구체적인 행사계획을 마련할방침이다.관건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가 준비하고 있는 ‘6·15선언 지지 통일대축전’이다.이 단체는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규정돼 있다. 따라서 이번 합의는 보안법상 이적단체에 대한 정부의 기조를 일정부분 수정토록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범민련의 통일행사를 정부가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이 한층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진경호기자 jade@. *고향땅을 밟게 됐다.냉전의 잔재를 해결하고 소외된 민족을 끌어안는 역사적 전기가 됐다는 평이다. 75년 조총련 소속 동포들의 ‘모국방문사업’ 이후 몇몇 재일 조총련 인사의 개별적 남한 방문은 있었으나 이를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가 전제됐다. 사상적 전향 요구가 있기도 했다.북한 국적을 포기하지 않던 조총련 동포들의 고향 방문은 여러모로 어려웠던 게 사실이었다.군사정권 당시의 ‘모국방문사업’은 남한에 고향을 둔 재일동포 사이의 이념적 균열을 조장하는 측면도 있었다. 남측이 고향인 조총련 구성원들은 “일본에 끌려온 뒤 남한의 역대 군사정권이 재일 조총련을 적대시하는 반공정책을 펼쳐 이산가족이 됐다”며 조총련 문제의 해결을 요구해왔다.북측의 경우에도 적잖은 조총련이 남측의 고향을 가기 위해 민단으로의 전향을 택하는 바람에 북한의 가장 큰 해외지지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만큼 이번에 이산가족 차원에서의조총련 고국방문을 강력히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때문에 조총련의 남한 방문 허용은 남측이 인도적 면모를 보였다는 것과 함께 북측의 해외 최대 지지기반을 유지시켜줬다는 점에서 민족상생의 틀을 마련했다고 평가된다. 주현진기자 jhj@. *조총련이란.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의장 한덕수)의 줄임말로 친북(親北)성향의 재일동포들이 모여 만든 조직이다.현재 재일 조총련 동포는 약 25만 정도로 추산되며,대부분 남한출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결성 당시인 지난 50년 조총련동포가 49만5,000여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정도로 위축됐다.53년 일본법무성 통계에 따르면 조총련계 동포의 98%가 남한출신인 것으로 나타났으나최근에는 통계자료가 없다. 조총련 고향방문은 지난 75년 추석 모국방문단 1,300명을 시작으로 매년 추진됐던 사업이다.사업초기 4,000∼5,000명의 조총련 동포들이 방문하는 등지난해까지 모두 6만여명이 남한을 다녀갔다. 오일만기자 oi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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