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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함께살이성북, 공정무역 실천기관 협약 체결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함께살이성북, 공정무역 실천기관 협약 체결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대표 이강백)가 함께살이성북 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양현준)과 공정무역 실천기관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식은 지난 26일 성북구마을사회적경제센터에서 양사 대표, 이사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이강백 대표는 함께살이성북 사회적협동조합 양현준 이사장에게 공정무역 실천을 인증하는 현판을 전달하며 공정무역 사용을 실천하고 지지하는 사업을 펼치기로 약속했다. 함께살이성북 사회적협동조합 측은 이번 협약을 통해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와 함께 공정무역 제품 사용, 공정무역 워크숍 및 특강, 공정무역 캠페인 동참 등의 활동을 펼쳐나갈 예정이다. 함께살이성북 사회적협동조합은 마을전문가와 사회적경제 전문가들이 의기투합해 결성한 단체다. 지역중심의 풀뿌리사회적경제를 통해 지역 문제를 극복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는 2012년 소비자와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설립된 순수공정무역단체이자 사회적 기업이다. 베트남, 필리핀, 코스타리카를 비롯한 저개발국 생산자들과 공정하고 평등한 파트너십을 맺으며 소외되고 빈곤한 생산자들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이번 협력 체결에 대해 아시아공정무역 네트워크 이강백 대표는 “개발도상국 생산자들이 불공정거래로 인해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며 “동참해 준 함께살이성북 사회적협동조합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日 최대 야쿠자 조직의 잔인한 전쟁...‘피의 보복전’에 시민 불안

    日 최대 야쿠자 조직의 잔인한 전쟁...‘피의 보복전’에 시민 불안

    한동안 잠잠했던 일본의 법정 지정폭력단, 속칭 ‘야쿠자’의 세계에 피의 보복전이 격화돼 일본 치안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도심 한복판에서 자동화기를 난사해 적대세력 간부를 사살하고, 상대편 본거지에 쳐들어가 흉기를 휘두르고 달아나는 등 범죄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잔인한 테러가 잇따르고 있다. 일본 경찰은 문제의 폭력단에 대해 조직원 5명만 한자리에 모여도 바로 체포가 가능한 ‘특정항쟁지정폭력단’으로 규정해 단속하기로 했지만, 이들의 전쟁이 쉽게 종식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극한대립을 벌이고 있는 두 조직은 일본 최대의 지정폭력단 ‘야마구치 구미’와 4년 전 여기에서 떨어져 나간 ‘고베 야마구치 구미’. 야쿠자 명칭 뒤의 ‘구미’(組)는 한국으로 치면 ‘파’(派)에 해당한다. 27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지난 11월 27일 저녁 효고현 아마가사키시의 번화가 술집 앞에서 고베야마구치 간부 후루카와 게이이치(59)가 손님을 가장한 전 야마구치 조직원 아사히나 히사노리(52)에게 사살당했다. 아사히나는 M16 자동소총 계열 화기를 들고 와 실탄을 28발이나 난사했다. 그는 고베야마구치의 교토시 하부조직도 공격하려고 준비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앞서 같은달 18일 아침에도 야마구치 조직원 2명이 고베야마구치의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지부를 습격, 안에 있던 간부(50)를 흉기로 난자했다. 그 이튿날에도 역시 야마구치 조직원이 홋카이도 삿포로시에 사는 고베야마구치 간부(58)의 집을 자동차로 들이받는 공격을 가했다. 이런 식으로 지난 11월 한달 동안에만 고베야마구치 전체 간부 5명 중 3명이 야마구치로부터 습격을 당했다. 고베야마구치가 야마구치로부터 떨어져 나와 조직을 새로 결성한 것은 2015년 8월. 당시 야마구치 내 최대 파벌인 ‘고도카이’가 전체 조직의 넘버1과 넘버2를 독식한 데 반발, 경쟁파벌이었던 ‘야마켄구미’ 등이 이탈해 고베야마구치란 이름으로 독립했다. 여기에는 주부 지역(고도카이)과 간사이 지역(야마켄구미) 사이의 지역감정도 큰 요인이 됐다. 이후 양측은 원수 사이가 됐다. 현재 야마구치의 조직원은 약 4400명, 고베야마구치는 약 1700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양측의 분열 이후 지난 4년여 동안 상대에 테러나 린치를 가한 사건은 모두 121건에 달했고, 그 과정에서 9명이 목숨을 잃었다. 양측의 대립투쟁이 다시 점화된 결정적 계기는 야마구치의 2인자인 다카야마 기요시(72)의 조직 복귀. 공갈 혐의로 5년을 복역한 뒤 지난 10월 출소했다. 다카야마는 두목 시노다 겐이치(77) 체제에서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며 조직을 장악, 결과적으로 야마구치의 분열을 초래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일본 경찰 관계자는 “다카야마의 출소에 맞춰 그에게 잘 보이려는 야마구치내 하부 조직들의 충성경쟁이 치열해졌고 이것이 적대조직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고 아사히에 설명했다. 양측의 전쟁이 재연될 징후는 다카야마의 출소를 6개월쯤 앞두고 본격화됐다. 지난 4월 고베야마구치 간부가 야마구치 조직원에 의해 테러를 당했고, 8월에는 역으로 야마구치 측이 보복을 당했다. 이어 10월에는 다시 고베야마구치 소속 2명이 야마구치 조직원에 의해 사살됐다. 이러는 과정에서 목숨 부지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자 일부에서는 조직을 해체하고 야쿠자계를 떠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오사카시에 있는 한 고베야마구치 산하 조직은 지난 13일 경찰에 지정폭력단 해산 신고서를 냈다. 이에 야마구치 본부는 산하 조직들에 “해산하고 은퇴하는 고베야마구치 간부들은 건드리지 말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대립이 격화되자 일본 경찰은 두 조직을 내년 1월 7일부터 ‘특정항쟁지정폭력단’으로 지정해 관리하기로 했다. 이 조치는 폭력단들의 투쟁으로 일반시민들이 희생될 우려가 있을 때 취하는 것으로 ‘이동의 자유’ 등 기본인권의 제한도 가능해진다. 이를테면 해당 조직원은 5명 이상 모여 있는 것만으로 바로 경찰에 체포될 수 있다. 적대 조직의 사무소나 관계자의 집 근처에 접근하는 것도 일절 금지된다. 경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간부들이 연쇄테러를 당한 고베야마구치가 피의 보복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번 시작된 복수전은 쉽게 중단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아사히는 “복수를 하면 사법처리를 받지만, 복수를 하지 않으면 조직 전체가 구심력을 잃게 된다”는 고베야마구치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65년 전 내려진 한국 재건 처방…지금 빈부 간극 메울 퍼즐일까

    65년 전 내려진 한국 재건 처방…지금 빈부 간극 메울 퍼즐일까

    한국 경제의 재건을 위한 진단과 처방/조영준·류상윤·홍제환 역해/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544쪽/4만 5000원 “한국에서는 직간접으로 정부의 결정과 정부 행정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는 경제 분야가 거의 없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이 제한된 다른 국가보다 한국은 행정 책임이 더욱 크다. 한국 경제 재건의 진실한 성공은 근본적인 제도의 변혁으로써 성취될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1945년 일본인 축출과 1949년 농지 개혁으로 가장 큰 (소득과 부의) 불공평은 제거되었으나, 이 나라는 대규모 인플레이션을 겪었으며 이 인플레이션은 확실히 소득 분배를 더욱 왜곡시켰다. 한국 재정 정책의 즉각적인 목적인 소득 분배의 공평화 문제와는 별개로 한국 재정은 최부유층과 최빈민층 간의 간극의 확대를 방지해야 한다.” 1954년에 작성된 ‘네이선 보고’의 내용 중 한 대목이다. 얼추 70년 전에 내려진 진단이지만, 당장 오늘 적용해도 어색할 게 없는 분석이다. ‘네이선 보고’는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로 꼽히는 미국의 로버트 네이선(1908~2001)이 국제연합 한국재건단(UNKRA)에 제출한 보고서다. 신간 ‘한국 경제의 재건을 위한 진단과 처방’은 오류가 많고 접하기도 어려웠던 ‘네이선 보고’를 번역하고 해제를 붙여 새로 펴낸 것이다.‘네이선 보고’는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자원과 잠재력에 대한 평가와 분석, 경제 재건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현실적인 정책 제안에 주안점을 두었다. 당대 한국 경제에서 포착되는 각종 경제지표를 비롯해 여러 사회 현상, 산업 현황 등 거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저자들은 “전쟁의 참화를 겪은 직후의 한국 경제를 이처럼 체계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당시 이승만 정부는 ‘네이선 보고’에 담긴 정책 제안을 채택하지 않았고, 보고서는 사실상 사장되고 말았다. 왜 이 시점에 ‘네이선 보고’를 되짚어 봐야 하는 걸까. 우선 우리 경제사의 완결성을 구축한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나 분석을 하려면 과거 경제 발전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는 장기적인 시야 확보가 필수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 부분이 일정 기간 결여돼 있다. 태평양전쟁, 한국전쟁을 거쳐 이승만 정부에 이르기까지의 자료는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일부 남은 것도 통계 신뢰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저자 중 한 명인 조영준 서울대 교수는 “194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는 통계의 공백기로 장기적인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태였다”며 “당시 역사를 복원해 일제강점기와 고도성장기 사이의 공백기를 연결해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우리의 위상 변화에 대처하는 방식에도 ‘네이선 보고’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그동안 원조수혜국이었던 한국은 이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원조공여국 반열에 올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해 경제 발전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나눠 준다. 하지만 우리의 경제 성장 포맷을 동남아 국가 등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각 나라의 문화나 제도 등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이런 제반 상황들을 ‘네이선 보고’는 상세하게 담고 있다. 조 교수는 “선진국 입장에서 여러 여건들을 체크해야 후진국에 맞는 방향을 설정해 줄 수 있다”며 “‘네이선 보고’의 정책 제안이 당시엔 빛을 보지 못했지만 우리가 원조공여자의 역할을 수행할 때 중요한 경험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 욕망이 만든 공장, 괴물로 변한 공장

    욕망이 만든 공장, 괴물로 변한 공장

    더 팩토리/조슈아 B 프리먼 지음/시공사/512쪽/2만 6000원컨베이어벨트 앞에 서서 온종일 나사못 조이는 일만 하는 찰리. 급기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이는 강박에 빠지고 정신병원에 끌려간다. 찰리는 병원에서 나와 거리를 방황하다 노동자들의 시위에 휩쓸려 감옥살이까지 하게 된다. 대량생산 시대를 날카롭게 풍자한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 ‘모던 타임즈’(1936)다. 1923년 헨리 포드의 안내를 받아 미국 디트로이트 하이랜드파크 공장을 둘러본 채플린은 ‘컨베이어벨트’로 상징되는 포드의 공장을 떠올리면서 대공황 이후 미국인의 삶을 영화로 만들었다. ●18세기 공장에서 21세기 폭스콘까지 대량생산으로 물건을 만들어 내는 곳, 공장이라는 이미지의 대부분은 이런 경제적인 측면이 자리한다. 조슈아 B 프리먼 뉴욕시립대 퀸스칼리지 역사학과 교수는 역사 속 거대 공장의 발자취를 좇으며 이 질문에 답한다. 18세기 초 영국 더비 지역의 실크 제조 공장에서 출발해 21세기 애플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중국의 폭스콘까지 훑었다. 가내수공업이 일반적이던 시절, 사람들은 시간에 둔감했다. 시계를 가진 사람도 드물었다. 그러나 공장이 생겨나면서 시간의 개념은 구체화했다. 노동자는 공장에서 정해진 일과에 따라 움직여야 했고, 공장주들은 노동자를 더 많이 부리려 했다. 정해진 시간마다 종을 쳐서 알리는 ‘노커업’(knocker up)이란 직업도 생겨났다. 공장은 여성의 인권 신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여성은 적극적으로 사회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공장이 미친 큰 영향은 계급의 탄생” 저자는 “공장이 미친 가장 큰 영향은 ‘계급’을 탄생시킨 것”이라 말한다. 공장은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을 만들었고, 두 계급은 공장이 생겨난 때부터 지금까지 줄다리기를하고 있다.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내려 노동자를 다그치고,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 노조를 결성한다. ‘모던 타임즈’가 나온 그해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다. 애크런 지역의 타이어 공장 노동자들은 새벽 2시에 한데 모여 기계의 손잡이를 직접 내려 생산라인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저자는 공장이 만들어 낸 게 그저 물건이 아니라 시대가 원하는 미래였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근거를 공장의 핵심 속성인 ‘발전’에서 찾는다. 더 나은 것을 원하는 인류의 욕망이 공장을 세우고, 공장은 산업혁명 이후 욕구를 충족하는 물건을 생산했다. 그리고 다시 인류에게 영향을 미쳤다. 결국, 공장은 인류의 발전 욕망을 담은 집약체이자 현대 역사를 대표하는 상징인 셈이다. 다만 그 이면에 가려진 그림자도 잘 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예컨대 애플 아이폰을 생산하는 중국 폭스콘에서는 2010년대 중반 18명이 자살을 기도하고 14명이 사망했다.●아이폰 생산 공장 14명 극단 선택 왜 거대 공장은 여전히 매연을 뿜어내며 바쁘게 돌아간다. 우리는 공장을 바라보며 또다시 고민한다. 공장은 앞으로도 지속할 것인가, 그렇다면 공장의 미래는 어떠한가. 저자는 맺음말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300년 동안 이어진 공장의 역사에서 오롯이 살아남은 거대 공장은 거의 없다”고. 오늘날 거대 공장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 사이클은 이전보다 훨씬 빨라지고 있다. 예전 거대 공장은 100년을 넘겨 자리를 지켰지만, 이제는 더 싼값의 땅과 노동력을 찾아 베트남과 같은 곳으로 공장을 옮긴다. 남은 땅에는 몰락한 산업의 피폐한 흔적과 실직자, 그리고 어두운 기운만 남았다. 공장은 인류에 불을 선사한 ‘프로메테우스’ 같은 존재이자, 계급을 만들어 내고 인류를 피폐하게 만든 ‘괴물’이기도 했다. 책을 덮으며 미래의 공장이 앞으로 어떤 미래를 생산할지 궁금해진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②
  • 어려서 뭘 할 수 있냐구요? 교실 안 성불평등 당사자 넘어서 변화시킬 힘 키울 것

    어려서 뭘 할 수 있냐구요? 교실 안 성불평등 당사자 넘어서 변화시킬 힘 키울 것

    “우리는 청소년이자 페미니스트다. 청소년은 문제의 당사자는 될 수 있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여겨져 왔다. 누구도 청소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청소년 페미니스트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2018년 우리는 수십년간 은폐됐던 학내 성폭력을 고발했고, 일상적으로 요구되는 성역할을 거부했다. 우리는 당사자로 머무르는 것을 넘어 변화를 만드는 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지난 6월 출범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의 창립선언문 중 일부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여겨져 왔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혹은 ‘스스로 의사를 결정하기에는 어려서’ 청소년들은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는 존재로서 침묵할 것을 요구받는다. 지난해부터 그 오래된 침묵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청소년들은 목소리를 높여 교실 내 횡행하는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학교 문화를, 권력 관계를 악용한 성폭력을 낱낱이 고발했다. 피해자로만 머물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있었다.위티의 전신이자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이하 청페모)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과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조 모임 형태로 출발했다. 각종 세미나를 비롯한 학교 내 성평등 문화제를 여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데 이어 지난해 11월 3일 학생의 날을 기념해 전국 규모의 ‘스쿨미투’(학교 내 성폭력 고발 운동) 집회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를 개최했다. 지난 2월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사전심의에 참석해 한국의 스쿨미투에 대해 알렸다. 성폭력을 고발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지만 학교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불편한 현실을 꼬집는 학생들에게 ‘너도 미투할 거냐’는 조롱이 돌아왔다.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정부의 대응 역시 미진했다. 느슨한 연대체였던 청페모가 지난 6월 시민단체 위티로 거듭난 이유다. 청소년들이 단순히 피해자나 고발자로 머무는 게 아니라 변화를 이끌어내는 활동가로서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안전한 기반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 12개 지부와 분회를 두고 있는 위티의 현재 회원은 300여명으로 이 가운데 75%가 청소년이다. ‘말하기 시작한 우리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선언 아래 꾸준히 학교 내 성차별,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한 위티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6월 제16회 서울시 성평등상 최우수상, 이달 ‘6월 민주상’을 수상했다. 청페모의 운영을 담당하며 스쿨미투 집회를 기획했던 양지혜(22) 위티 공동대표는 25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이 선정한 ‘올해 아시아에서 변화를 일으킨 청년 운동가 5인’ 중 한 명으로 소개됐다. 양 대표와 최유경(18) 공동대표를 만나 위티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여성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느끼는 불편한 지점은 어떤 것인가요. 최유경 모든 면요(웃음). 예를 들면 남성 교사들과 남학생들 사이에 특유의 교감이 있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같은 느낌의 남성 간 유대감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길 원하는 성격이고 그러지 않으면 힘든 스타일인데 학교에서는 (그런 모습이) 남자에게만 허용되는 것 같아요. 남자에게는 그런 점이 오히려 권력이 되는데 왜 저는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으로 몰리는지 의문이 있었어요. 양지혜 중학교 1학년 때 일인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담임 선생님이 종례 시간에 여자아이들을 모아 놓고 3학년 남학생이 치마 속 사진을 찍는 것 같으니 계단에서 난간 안쪽으로 다니라는 식으로 훈화를 하셨어요. 늘 평가받고 품평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여성이고, 남자들은 그런 잘못된 일을 저질러도 여자들이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먼저 들을 수밖에 없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학교에서 처음 겪은 부조리함이죠.-여성 청소년들이 남성 청소년들과 달리 일상에서 겪는 차별 역시 적지 않을 것 같아요. 양지혜 여성 청소년들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더 많이 착취나 폭력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청소년들에게 성(性)은 금기어잖아요. 특히 여성 청소년들은 성에 대해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요구를 겪는 것 같아요. ‘소녀’를 떠올릴 때 보통 아무것도 모르고 순결하고 하얗거나 깨끗한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여성 청소년들을 성적 대상화할 때도 그 이미지가 기표로 쓰이거든요. 여성 청소년은 정숙한 존재여야 하는 동시에 누군가의 성적 욕망이나 성적 대상이 되는 존재죠. 최유경 한국의 페미니즘은 보통 20~30대가 중심이잖아요. 많은 단체에서 하는 여성주의 강연이나 모임을 가면 저는 늘 눈치가 보였어요. ‘내 나이를 물어보면 어떡하지’부터 시작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제가 성격상 말을 또박또박하고 말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제가 (위티의 공동대표로서) 발언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제 나이를 알고 난 뒤 ‘생각보다 어리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내가 어리면 뭐가 달라지는 건가’, ‘내 능력의 기준치가 달라지나’ 여러 생각을 하게 되죠. 양 대표는 그간의 성과 중 하나로 한국의 스쿨미투 운동을 국제사회에 알린 점을 꼽았다. 양 대표는 지난 2월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사전심의에 참석해 한국 학교 내의 성폭력 실태를 알렸다. 위원회는 9월 본심의 이후 10월 초 한국 정부에 대한 최종 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에는 ‘기밀 유지를 원칙으로 하는 아동 친화적이고 실질적인 성폭력 신고 창구를 마련하라’는 것부터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을 충분히 다루는 성교육을 도입하라’, ‘모든 아동이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학교 규정을 개정하라’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유엔에서 한국 교내 성폭력 실태를 보고한 프로젝트 ‘스쿨미투, 유엔에 가다’ 활동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양지혜 스쿨미투 이후 정부에서 대책을 내놓지 않는 상황에서 고발자들의 목소리를 (유엔에) 전하고 한국 정부의 대답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예요. 그 결과 학내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유엔의 권고안이 나왔어요. 저희가 보기에 유의미하고 중요한 것들이죠. 권고안처럼 학내 성평등에 대한 다양한 운동과 단순히 피해를 말하는 것을 넘어 변화를 만드는 운동을 만들어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어요.-앞으로도 지속적인 변화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스쿨미투와 관련해서 어떤 활동을 이어 나갈 예정인가요. 양지혜 결국 학교의 변화를 위해서는 학교 내에서 모두가 모두에게 배울 수 있는 성평등 교육이 필요한 것 같아요. 교단에서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교사가 정보를 주입하는 형태로 진행하는 게 아니라요. 특히 청소년 당사자들의 관점에서 성평등 혹은 성 자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과 교육이 학교 내에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미국의 한 주에서 청소년들이 교육을 15시간 이상 이수하면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에게 강연할 수 있는 과정이 있다고 들었어요. 현장을 잘 아는 이들이나 또래들의 언어로 성평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저희도 만들어 보고 싶어요. -현재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은 어떤 점이 문제인가요. 양지혜 30년 전에 배운 사람도, 10년 전에 배운 사람도, 지금 배운 사람도 성교육이라고 하면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금지주의적인 원칙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을 떠올리죠. 성교육이라는 것은 여전히 일상의 연장선상에서 사고되지 못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건전한 이성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손만 잡고 다니거나 되도록 둘이 폐쇄된 곳에 가지 않는 식의 방법을 권장하죠. 또 성교육을 1년에 일정 시간 가르쳐야 하는데 그 시간들이 시험 기간에 자습 시간으로 바뀌기도 하고요. 또 보건 시간에 배울 법한 생물학적 성기에 국한돼 설명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내용이 사회적 성이나 성별 권력을 은폐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존 성교육이 단편적인 사실만을 기반으로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건 기성세대들이 청소년은 성을 향유할 수 있는 존재라고 쉽사리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19금’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청소년에게 성은 알아서는 안 되는 금기어와도 같다. 위티는 이렇듯 성에 덧씌워진 포르노적 통념을 벗겨내고 청소년들이 자신의 성적 권리와 욕망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개개인이 지닌 욕망과 신체의 감각에 집중하도록 이끄는 대안적 성교육 강연을 열었다. -대안적 성교육 강연을 마련한 계기가 있나요. 양지혜 강연의 내용은 야설을 프린트한 것을 보면서 이 내용이 누구를 중심으로 쓰였고 어떤 이들을 배제하고 있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성을 묘사하고 있는지 분석하는 순서로 진행됐어요. 그 이후에 자기만의 섹슈얼리티 지도를 그렸는데 여기서 섹슈얼리티라는 것은 내가 테니스를 칠 때 숨이 가쁜 느낌이라거나 내가 무언가를 쥘 때 포근한 감촉과 같은 내 몸에서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감각과 연결된 개인의 욕망이죠. 우리는 이미 성에 대해 알고 있고 성에 대해 감각할 수 있지만 마치 이걸 몰라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면 청소년이 성에 대해 욕망하거나 실천하려고 할 때 스스로 불온한 감정을 가지게 되고 숨어서 하게 되고 그럼 더 불안하고 안전하지 않게 되죠. 청소년 스스로 성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구성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위티는 최근 선거 연령을 현행 19세에서 18세로 하향하는 내용이 담긴 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본회의 통과 촉구를 위한 활동에도 참여했다. 18세 선거권을 요구하는 청소년 1234명의 선언문을 국회 앞에서 발표했고 이후 관련 집회에도 여러 차례 참여했다. -기성세대는 교실이 정치화되는 것을 크게 우려하는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꼽자면요. 최유경 저는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이후에도 정치가 딱히 제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정치라는 건 너무 크고 거대하고 어렵잖아요. 내가 원하는 후보에게 투표하고 내가 원하는 공약에 표를 줘야 하는데 제가 당사자가 아니니까 관심이 없었던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이유로 주요하게 쓰이는 내용이 보통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감정적이고 공부를 소홀히 할 것이라는 이유들이에요. 생각하면 얄팍한 논리죠.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해 보면 이미 원하는 걸 다 가진 중년 남성보다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저희에게 가장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청소년을 시민으로 인정하는 첫걸음은 결국에는 선거권을 보장하는 거죠. -내년에는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이어 나갈 계획인가요. 양지혜 선거법 개정안 통과 여부를 떠나 내년 총선과 관련해서 청소년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혹은 청소년 페미니스트인 정치인을 만나서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해요. 또 여성 청소년의 삶이 다양한 만큼 저희가 지닌 청소년 페미니즘이라는 의제를 조금 더 많은 틀로 해석하고 전달하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가정 내에서 여성 청소년이 경험하는 억압과 통제 그리고 여성 청소년의 경제적 권리와 자립에 관한 것들요. 청소년에 대한 의제를 인식할 때 성폭력 문제만을 많이 떠올리는데 좀더 다양한 문제를 공론화하고 싶어요.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남북 형성의 뿌리는 홍익인간 정신… 한반도 평화통일 운동에 전념”

    2009년 문현진 의장이 창설한 글로벌피스재단(GPF)은 워싱턴D.C에 본부를 두고 23개국에서 활동 중인 비영리단체(NGO)다. 세계평화 실현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UN 경제사회이사회의 특별자문단체이자, UN공보국 협력단체다. 2009년 필리핀 종교분쟁지역인 민다나오의 문제 해결을 위해 민다나오 평화구축행동(MINPI)을 결성해 활동 중이다. 케냐에서는 청소년 인성교육과 실천교육을 병행해 종족과 부족간 갈등 해소에 기여한 공로로 UN으로부터 인정서(Certificate of Commendation)를 수여 받았다. 지난해에는 우간다 정부와 함께 동아프리카경제연합국의 항구적 발전을 위한 도덕적 원칙적 가치에 기반한 리더십 빌딩을 추진했다. 2013년 중남미 전직 대통령 21명이 참가하는 ‘중남미대통령사명’를 창설, 중남미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 포퓰리즘의 반성과 중남미 균형발전의 발판을 조성하는 활동을 한다. 한·말간 지도자 교류로 말레이시아 수상청으로부터 국가훈장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코리안드림’을 통일한반도의 비전으로 제시하고 950여개 시민사회 단체와 함께 One K 글로벌캠페인 활동 등을 하고 있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문현진(50) 글로벌피스재단(GPF) 의장은 국제적 평화운동가이다. 그는 1987년 美 해클리스쿨을 졸업한 후 국내에서 1992년까지 올림픽 승마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95년 컬럼비아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했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미국통일신학대학원(UTS)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1년 서비스포피스(SFP)를 창설하고 2009년에는 GPF를 창설했다. 대표 저서로는 역사와 문화에 근거를 두고 한반도 통일의 비전과 방법론을 제시하는 ‘코리안 드림’이 있다. 저서 ‘코리안드림’은 2018년 미 국방정보국(DIA)이 추천한 한반도 관련 유일한 필독서이기도 하다. 2012년 통일연대 단체인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을 주도적으로 설립했으며 2015년부터는 K팝을 활용한 통일문화운동 ‘원케이글로벌캠페인’도 창설해 후견하고 있다. 줄리아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문전숙 씨와 함께 9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문현진 글로벌피스재단 의장이 홍익인간 정신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문 의장은 “남한과 북한을 형성하게 한 뿌리가 된 것이 홍익인간 정신”이라며 “5000년 전에 그런 고귀한 이상을 가지고 세워진 나라나 문명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지난 8월 14일 ‘2019원코리아국제포럼’ 개회총회 성료 후 연설자 및 주요 인사들이 한반도 평화통일 지지 결의하며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 앞줄 7번째부터) 휴야 왕 중국과 세계화재단 회장, 문현진 글로벌피스재단 의장, 문전숙 글로벌피스우먼 회장, 윌리엄 파커 동서연구소 회장. 문현진 글로벌피스재단 의장
  • “남북 형성의 뿌리는 홍익인간 정신… 한반도 평화통일 운동에 전념”

    2009년 문현진 의장이 창설한 글로벌피스재단(GPF)은 워싱턴D.C에 본부를 두고 23개국에서 활동 중인 비영리단체(NGO)다. 세계평화 실현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UN 경제사회이사회의 특별자문단체이자, UN공보국 협력단체다. 2009년 필리핀 종교분쟁지역인 민다나오의 문제 해결을 위해 민다나오 평화구축행동(MINPI)을 결성해 활동 중이다. 케냐에서는 청소년 인성교육과 실천교육을 병행해 종족과 부족간 갈등 해소에 기여한 공로로 UN으로부터 인정서(Certificate of Commendation)를 수여 받았다. 지난해에는 우간다 정부와 함께 동아프리카경제연합국의 항구적 발전을 위한 도덕적 원칙적 가치에 기반한 리더십 빌딩을 추진했다. 2013년 중남미 전직 대통령 21명이 참가하는 ‘중남미대통령사명’를 창설, 중남미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 포퓰리즘의 반성과 중남미 균형발전의 발판을 조성하는 활동을 한다. 한·말간 지도자 교류로 말레이시아 수상청으로부터 국가훈장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코리안드림’을 통일한반도의 비전으로 제시하고 950여개 시민사회 단체와 함께 One K 글로벌캠페인 활동 등을 하고 있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문현진(50) 글로벌피스재단(GPF) 의장은 국제적 평화운동가이다. 그는 1987년 美 해클리스쿨을 졸업한 후 국내에서 1992년까지 올림픽 승마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95년 컬럼비아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했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미국통일신학대학원(UTS)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1년 서비스포피스(SFP)를 창설하고 2009년에는 GPF를 창설했다. 대표 저서로는 역사와 문화에 근거를 두고 한반도 통일의 비전과 방법론을 제시하는 ‘코리안 드림’이 있다. 저서 ‘코리안드림’은 2018년 미 국방정보국(DIA)이 추천한 한반도 관련 유일한 필독서이기도 하다. 2012년 통일연대 단체인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을 주도적으로 설립했으며 2015년부터는 K팝을 활용한 통일문화운동 ‘원케이글로벌캠페인’도 창설해 후견하고 있다. 줄리아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문전숙 씨와 함께 9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문현진 글로벌피스재단 의장이 홍익인간 정신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문 의장은 “남한과 북한을 형성하게 한 뿌리가 된 것이 홍익인간 정신”이라며 “5000년 전에 그런 고귀한 이상을 가지고 세워진 나라나 문명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지난 8월 14일 ‘2019원코리아국제포럼’ 개회총회 성료 후 연설자 및 주요 인사들이 한반도 평화통일 지지 결의하며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 앞줄 7번째부터) 휴야 왕 중국과 세계화재단 회장, 문현진 글로벌피스재단 의장, 문전숙 글로벌피스우먼 회장, 윌리엄 파커 동서연구소 회장. 문현진 글로벌피스재단 의장
  • “남북 형성의 뿌리는 홍익인간 정신… 한반도 평화통일 운동에 전념”

    “남북 형성의 뿌리는 홍익인간 정신… 한반도 평화통일 운동에 전념”

    서울신문은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세계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는 문현진 글로벌피스재단 의장을 만나 그가 생각하고 있는 남북한 통일방안과 그가 활동해온 글로벌 평화운동에 대해 들어봤다. 글로벌피스재단이 3·1운동 100주년과 광복 74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8월 14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개최한 ‘2019원코리아국제포럼’은 국내외 외교·통일·북한 전문가와 각계 단체 관계자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반도 통일의 역사적 기회 : 비전, 리더십 그리고 실천’을 주제로 성황리에 열리기도 했다. -글로벌피스재단(GPF)을 소개한다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하나님 아래 한 가족(One Family under God)’의 비전 아래 어떤 민족이나 국경을 초월해서 초종교적 협력과 봉사연대를 통해 보다 평화로운 사회 실현을 이루고자 만들었다. 인류 보편적인 이 비전은 선친(故 문선명 총재)께서 평생을 통해 실천하신 뜻이자 나의 비전이기도 하다. 한반도에서는 한반도 평화 통일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 ‘코리안드림’에서 “통일을 위해서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했는데. “한국인의 참된 정체성은 바로 모든 인류를 평화롭게,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홍익인간의 비전을 가지고 세계를 이롭게 하는 국가를 세우는 것이 한국인들의 그런 섭리적인 운명으로 본다. 민족의 역사라는 것은 바로 민족이 누구인지를 규정 해 주는 흐름이기 때문에 역사를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홍익인간’의 정신이 정수가 되어서 수많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올해가 3·1운동 100주년 되는 해다. 독립운동은 사실 홍익인간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염원을 가지고 진행된 것이다. 조선왕조나 대한제국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고, 홍익인간의 이상을 실현한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거다. 김구 선생의 여러 말씀 중에 잘 나타나 있다. 홍익인간의 그런 이상이 독립운동의 뿌리였고 그것이 남한과 북한을 형성하게 한 뿌리가 된 것이라 생각한다. 국명을 보더라도, 남북한 모두 ‘리퍼블릭(Republic)’이 들어 있지 않나. 5000년 전에 그러한 고귀한 이상을 가지고 세워진 나라나 문명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통일천사(AKU)’에 대해 소개한다면. “국내에서 통일 문제와 관련한 가장 큰 시민사회단체다. 종교, 시민사회, NGO, 정치 등등을 다 초월해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실현하고자 하는 연대단체로서 밑에서 위로, 민초들의 역량과 염원을 묶어서 통일을 지향하는 국민 주도의 풀뿌리 통일운동을 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동포들로 조직을 확대해가고 있다. 지난 8월 15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9 통일실천축제한마당’에 참석한 만 명의 사람들이 AKU 지도자들이며, 해외에서도 한 500여명의 지도자들이 참석하셨다. 그분들은 단순히 AKU만의 지도자가 아니라 교포사회에서 굵직굵직한 단체의 장을 맡고 있는 중요한 분들이다.”-종단이나 종파나 정치 성향을 떠나서 이 사람들이 연합할 수 있는 토대는 무엇인가. “비전 ‘코리안드림’의 힘이다. ‘홍익인간 정신에 기초하여 자유와 인권이 존중되는,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통일된 새로운 국가 실현’에 대한 열망의 힘이다. 대한민국 역사를 놓고, 특히 근대사를 놓고 봤을 때, 이렇게 광범위한 기반을 가지고 통일을 위한 시민사회단체가 형성된 적이 없다. 연대단체 중에 GPF도 있다. GPF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세계의 여러 싱크탱크하고 협력하는데, 전문가들은 “한국통일 문제에 있어 아주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비전을 가지고 실질 기반을 갖춘 조직은 ‘GPF’라고 얘기를 한다.” -파라과이가 지난 10년 동안 남미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로 성장하는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안다. 파라과이 변화 사례가 지금 우리 남과 북에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가. “북한은 어떻게 보면 문제점이 더 적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 남한의 경제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사실은 북한이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 비용이 많이 든다”는 말이 있는데 잘못된 관점이다. 남한에 필요한 노동력, 지하자원, 시장 등 모두가 북한에 있다. 남북이 하나 될 때 큰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다.” -남북통일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속마음은 어떻다고 보는지. “트럼프 대통령 측근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하겠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월) 방한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공존에 대한 진지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트럼프가 처음 대통령이 됐을 때는 남북한 통일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통일은 남북한 당사자들 문제다. 당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통일이 당장 가능할 것 같지는 않더라도 마음을 열고 대화를 이어가며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문 대통령의 의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우리 정부가 통일, 자유와 인권이 존중되는 새로운 국가를 실현하겠다는 최고 목표를 정하고 통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는 큰 방향을 세웠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도 협조하고 따라올 것으로 생각한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국제적 평화운동가…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 창설 문현진(50) 글로벌피스재단(GPF) 의장은 국제적 평화운동가이다. 그는 1987년 美 해클리스쿨을 졸업한 후 국내에서 1992년까지 올림픽 승마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95년 컬럼비아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했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미국통일신학대학원(UTS)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1년 서비스포피스(SFP)를 창설하고 2009년에는 GPF를 창설했다. 대표 저서로는 역사와 문화에 근거를 두고 한반도 통일의 비전과 방법론을 제시하는 ‘코리안 드림’이 있다. 저서 ‘코리안드림’은 2018년 미 국방정보국(DIA)이 추천한 한반도 관련 유일한 필독서이기도 하다. 2012년 통일연대 단체인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을 주도적으로 설립했으며 2015년부터는 K팝을 활용한 통일문화운동 ‘원케이글로벌캠페인’도 창설해 후견하고 있다. 줄리아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문전숙 씨와 함께 9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23개국서 세계평화 실현 활동 2009년 문현진 의장이 창설한 글로벌피스재단(GPF)은 워싱턴D.C에 본부를 두고 23개국에서 활동 중인 비영리단체(NGO)다. 세계평화 실현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UN 경제사회이사회의 특별자문단체이자, UN공보국 협력단체다. 2009년 필리핀 종교분쟁지역인 민다나오의 문제 해결을 위해 민다나오 평화구축행동(MINPI)을 결성해 활동 중이다. 케냐에서는 청소년 인성교육과 실천교육을 병행해 종족과 부족간 갈등 해소에 기여한 공로로 UN으로부터 인정서(Certificate of Commendation)를 수여 받았다. 지난해에는 우간다 정부와 함께 동아프리카경제연합국의 항구적 발전을 위한 도덕적 원칙적 가치에 기반한 리더십 빌딩을 추진했다. 2013년 중남미 전직 대통령 21명이 참가하는 ‘중남미대통령사명’를 창설, 중남미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 포퓰리즘의 반성과 중남미 균형발전의 발판을 조성하는 활동을 한다. 한·말간 지도자 교류로 말레이시아 수상청으로부터 국가훈장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코리안드림’을 통일한반도의 비전으로 제시하고 950여개 시민사회 단체와 함께 One K 글로벌캠페인 활동 등을 하고 있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4+1 협의체, 내일 선거법 본회의 표결

    4+1 협의체, 내일 선거법 본회의 표결

    선거법 처리 뒤 공수처법 바로 상정 한국 “반헌법적… 비례당 결성할 것”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이 지난 23일 상정된 직후 시작된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등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맞대결이 24일에도 계속됐다. 2~3일짜리 ‘쪼개기 임시국회’로 나머지 패스트트랙 법안을 모두 처리하려는 민주당과 선거법 개정안 본회의 통과를 대비해 ‘비례한국당’ 창당을 공식화한 한국당의 강대강 대치가 장기화될 전망이다. 4+1(민주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는 이날 검찰개혁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이 모두 처리될 때까지 공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26일 0시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자동 종료되면 그날 본회의를 열어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바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을 상정할 계획이다. 선거법 개정안 처리 방식과 마찬가지로 쪼개기 임시국회로 공수처법, 형사소송법 개정안, 검찰청법 개정안 등을 차례로 처리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늦어도 내년 1월 중순까지는 패스트트랙에 오른 모든 법안의 본회의 처리가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국회 본회의장을 국민에게 정치개혁,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알리는 공론장으로 만들겠다. 치열한 본회의 토론 대결을 통해 냉정한 국민의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한국당은 필리버스터가 지연책일 뿐 법안 처리를 막을 수는 없다는 현실을 직시한 만큼 실속 챙기기에 나섰다.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반헌법적 비례대표제가 통과되면 곧바로 비례대표 전담 정당(비례한국당)을 결성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당의 이러한 전략에 대해 4+1 협의체는 “반민주주의적 처사로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비례한국당’ 현실화 코앞…비례민주·비례정의당 ‘선점’ 가능성도

    ‘비례한국당’ 현실화 코앞…비례민주·비례정의당 ‘선점’ 가능성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허점을 노린 ‘위성정당’ 출현이 현실화할 전망이다. 자유한국당은 오는 26일 본회의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곧장 비례의석 확보를 위한 위성정당 ‘비례한국당’을 창당하겠다고 했다.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허점을 활용한 각종 전략도 검토 중이다. 한국당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당이 수없이 경고한 반헌법적인 비례대표제가 통과되면 곧바로 저희는 비례대표 전담 정당을 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미 알려진 ‘비례한국당’ 이름은 다른 분이 사용하고 있어 함께할 수 있다면 당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뜻이 같지 않다면 우리 당의 독자적 비례정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총선에서 이 해괴한 선거법이 반헌법·반문명적이라는 점을 만천하에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당은 지난 23일 본회의에 돌발 상정된 선거법 개정안에 필리버스터를 걸어 표결을 지연시키고 있지만 통과는 시간문제다. 국회법상 필리버스터가 적용된 안건은 다음 회기에서 바로 표결해야 한다. 민주당은 오는 26일 시작하는 임시회 소집 요구서를 이미 제출했다. 새 임시회가 열리면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의 공조로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비례한국당 카드가 현실화되면 선거판은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한국당만 위성정당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비례 47석 가운데 20석 이상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다른 정당에서 비례 전담 정당 카드를 꺼낼 때마다 의석 수는 크게 흔들린다. 보다 공격적으로 나설 경우 한국당이 ‘비례민주당’을 직접 만들 가능성도 있다. 한 한국당 관계자는 “한국당 측에서 비례한국당 뿐 아니라 비례민주당·비례정의당의 이름을 선점해 위성정당을 만들어 선거 운동에 나서면 더욱 선거판이 흔들릴 수 있다”면서 “그만큼 허점이 많고 위험한 제도”라고 했다. 한국당은 지난 16일부터 국회 안팎에서 규탄대회를 열며 보수 계층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주말인 오는 28일에는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문재인 정권 2대 독재악법·3대 국정농단 심판 국민대회’를 열 계획이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한국당 ‘비례한국당’ 창당 공식화…‘연동형 비례제’ 압박

    한국당 ‘비례한국당’ 창당 공식화…‘연동형 비례제’ 압박

    “민주당도 비례정당 만들 것…이상한 제도 전락”자유한국당이 24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비해 ‘비례대표정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김재원 한국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반 헌법적 비례대표제(연동형 비례제)가 통과되면 곧바로 저희는 비례대표정당을 결성할 것임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비례대표정당 명칭으로는 일단 ‘비례한국당’을 추진한다. 김 정책위의장은 “‘비례한국당’은 다른 분이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해) 사용하고 계시다”며 “그분과 정식으로 접촉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와 함께하실 수 있다면 비례한국당 창당준비위를 함께 해서 그 당명을 사용할 수도 있고, 뜻이 같지 않다면 독자적으로 우리 당의 새로운 비례대표정당을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례대표정당은 지역구 의석을 많이 확보하는 정당이 연동형 비례제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이 기존보다 줄어들거나 거의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한국당은 지역구 의석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정당득표율이 30%라고 가정하면 현재 본회의에 상정된 연동형 비례제를 적용하면 109석이 되지만, 비례한국당을 만들면 한국당(지역구 96석)과 비례한국당(비례 29석)을 더해 125석이 된다고 보고 있다. 김 정책위의장은 “민주당도 비례대표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부적인 보고가 있는 걸로 알고 있고 그런 보고서를 제가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도 (연동형 비례제에 따른 비례 의석수 감소에 대응해) 비례대표정당을 만들어서 임해야 하고, 우리 당도 비례대표정당 만들어서 임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정말 이상한 제도로 전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김 정책위의장은 비례한국당 창당에 대해 “비용은 얼마 안 들 것”이라고 했다. 비례한국당의 정당투표용지 기호에 대해선 “유권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방편으로는 적어도 기표의 상위에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실무적으로 진행해가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그동안 민주당의 책임 있는 당사자, 청와대 당사자까지 참여해서 사실상 많은 협의를 하고 의사를 주고받았다”며 “합의문에 준하는 문서도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민주당 주도의 ‘4+1 협의체’가 마련한 연동형 비례제가 한국당과의 합의 없이 상정된 데 대해 “막상 마지막 단계에 가면 그 합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합의에 참여한 당사자가 권한이 없는 자라고 들었다”며 “아마 제가 허깨비와 이야기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지역 특성 고려한 안양 4곳 도시환경 밑그림 나왔다.

    지역 특성 고려한 안양 4곳 도시환경 밑그림 나왔다.

    각 지역 특성과 계층별 의결수렴, 환경과 안전을 고려해 창의력까지 더한 안양지역 5곳 밑그림이 나왔다. 시는 오는 31일까지 ‘안양시 도시환경 설계 작품발표회’를 시청에서 개최한다고 24일 밝혔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와 학생들이 안양시와 협약에 따라 도시환경분야 조성과 재생안 연구 결과를 선보이는 자리다. 환경대학원은 경인교대 유휴부지를 활용해 염불암~삼막사~망해암을 잇는 자전거 길 조성안을 내놓았다. 폐 채석장의 독특한 경관이 안양예술공원과 연계해 관광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판단 삼막리아예술공원이라는 또 다른 구상안도 선보였다. 여기에 긴 동선을 따라가며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복합놀이공원 개념도 도입했다. 또 광명역과 인접한 석수3동에 대한 구상으로 입지 특성을 살려 하천, 마을, 산의 연결성을 강화한 계획안도 내놓았다. 자연환경 접근성과 활용도를 높이면 주민 삶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안양7동 덕천로 48길 일대는 구도심의 거점 활성화를 목표로 호안교와 안양천을 연결하는 열린공간 조성한다. 이를 통해 녹음을 향유하는 게획안이다. 평촌복합문화공원 조성은 ‘안양시민 옴파로스’를 주제로 ‘일상이 축제, 축제가 일상’인 축제도시로서의 개념을 도입했다. 시민이 주도적으로 공원문화를 만들어가는 미래상과 다양한 계층을 포용하는 공간전략도 포함한다. 시 관계자는 “안양을 더욱 아름답고 시민에 원하는 환경조성에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日·만주군과 전투 200여회 승리… 남북 국립묘지에 모신 유일 독립투사

    日·만주군과 전투 200여회 승리… 남북 국립묘지에 모신 유일 독립투사

    “조선의 독립, 자유를 완성하기 위하여, 조선 민족의 자유와 행복을 도모하기 위하여, 최후 성공이 있을 때까지 왜적과 계속 투쟁하라! ” 만주를 호령하던 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말했다.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혁혁한 전과를 거둬 군신(軍神)으로 추앙받았지만 양세봉을 모르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양세봉은 1896년 7월 15일 평북 철산군 세리면 연산동에서 소작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마을 서당 문지기로 일하며 귀동냥으로 천자문과 논어, 명심보감 등을 익힌 것이 배움의 전부였다. 훈장의 안중근 의사 이야기는 그에게 큰 영향을 줬다. 양세봉은 죽음을 앞둔 안 의사가 남긴 “슬퍼하지 마라. 대장부로 태어나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데 무엇이 슬프단 말이냐”는 말을 가슴 깊이 새겼다.1912년 아버지가 갑자기 병환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양세봉은 겨우 16세에 가장이 됐고 임재순과 결혼했다. 일제의 핍박이 심해지자 양세봉은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향했다. 흥경현(현 신빈현) 영릉가를 거쳐 한인 집단 거주지인 홍묘자 사도구에 정착했다. 1919년 4월 홍묘자에 있던 홍동학교 교장 이세일은 3·1운동 지지 시위를 주도했는데 양세봉도 동참했다. 이후 양세봉은 천마산대에 가입해 본격적인 독립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1920년 12월 최시흥이 청장년 500여명으로 조직한 천마산대는 경찰서, 면사무소를 습격하고 밀정과 일경을 처단하는 활동을 하던 항일 유격대였다.●“중국인, 관운장보다 유능한 장군으로 흠모” 천마산대는 일제의 공격을 받자 만주 유하현으로 가 광복군총영에 합류했다. 양세봉은 군기 검사관이 됐다. 그 뒤 만주 지역 독립운동단체들은 대한통의부로 통합, 무력 부대를 설치했는데 오동진이 사령장이었고 양세봉도 두령이라는 작은 자리를 맡았다. 1923년 5월 양세봉은 평북 창성을 습격하고 일본군 10여명을 사살하는 등 전투에 참여했다. 그 후 새로 출범한 참의부 소대장이 돼 압록강을 건너가 유격 투쟁을 이어 갔다. 평북 초산과 강계에서 일경 수명을 사살했고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경비선을 타고 압록강을 지나갈 때 저격을 지휘해 일제가 간담을 쓸어내리게 했다. 1924년부터 남만주에는 정의부가, 북만주에는 신민부가 설립돼 참의부와 함께 3부 체제가 됐다. 양세봉은 참의부 중대장으로 승진한 뒤 정의부로 옮겨 갔다. 3부는 1929년 4월 민족유일당 운동으로 우여곡절 끝에 국민부로 통합됐다. 흥경현 왕청문에 자리잡은 국민부는 조선혁명군을 창설했다. 국민부는 선민부 토벌에 나섰다. 조선민회라고도 불렸던 선민부는 한인 변절자들이 이끌고 있었다. 일제의 조종을 받아 독립군을 색출하고 가족을 살해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양세봉은 부사령을 맡아 선민부 지휘부와 지부를 습격해 우두머리와 일당을 모조리 죽여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1931년 9·18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일제의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이듬해 1월 조선혁명당과 군 간부 10여명이 회의 도중 습격을 받아 체포되고 이후 두 달 동안 간부 83명이 붙잡혀 혁명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지역 부대장들의 추천으로 양세봉은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에 임명됐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양세봉 장군은 부대를 재정비하고 속성군관학교를 세우는 한편 조직적인 항일 투쟁에 나섰다. 또한 왕동헌, 이춘윤, 양희부 등 중국 지도자들과 협력해 ‘요령농민자위단’을 결성했다. 당취오가 총사령인 ‘요령민중자위군’과도 힘을 합쳐 자위군의 특무대 사령으로서 대일 연합작전을 벌였다. 괴뢰정부인 만주국 군대가 흥경현을 점령하자 연합부대는 20여일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여 탈환했다. 일본군은 400여명의 사상자와 500명 가까운 실종자를 냈다. ‘제1차 흥경혈전’이다. 그 중심에 양세봉 장군이 있었다. 다음달 일본군은 비행기까지 동원해 흥경으로 돌진해 왔다. 2차 혈전에서도 연합부대는 악전고투 끝에 일본군을 물리쳤다. 연합부대는 1932년 8월 청원현을, 다음달에는 석탄 탄광이 있는 무순을 공격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연합부대가 지나갔던 평정산 마을 주민 3000여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932년까지 한중 연합부대는 일만 연합군과 200여 차례 전투를 벌였고 장군은 그때마다 크고 작은 승리를 거뒀다. 한편으로 멀리 경상도까지 소부대를 보내 경찰서 등을 파괴하고 악질 경찰을 살해했다. 1932~1933년 압록강 주변에서만 26차례 파괴 공작을 벌였고 일본 군경 243명을 사살했다. 1933년 5월 서원준을 황해도에 밀파해 사리원 경찰서 등을 습격한 것은 신문이 호외로 다룰 만큼 큰 사건이었다. 그럴수록 일제의 추격은 집요해졌다. 조선인 변절자를 이용해 혁명군을 체포하고 가족과 친구까지 살해했다. 혁명군 수백명을 처형해 머리를 매달았다. 장군의 체포에도 혈안이 돼 현상금을 걸었다. 1934년 3월 장군은 중국 동북인민혁명군 사령관 양정우와 연합했다. 장군은 공산주의에 적대적이었지만 항일을 위해 신념도 버렸다. 조선혁명군과 인민혁명군은 진주령 일본군 기차 습격, 노구대 격전, 쾌대무자 전투 등 연합작전에서 연전연승, 일본군에 엄청난 타격을 줬다. 그해 9월 18일 일제의 지시를 받던 박창해는 장군과 면식이 있던 압동양을 보내 “저희 부대가 양 사령관께 오려고 합니다. 함께 가서 무기를 받아 주시면 좋겠습니다”라며 유인했다. 장군은 경호대원만 데리고 따라나섰고 일행이 소황구에 이르렀을 때 어둠 속에서 압동양이 옥수수밭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매복하고 있던 일군들이 기습 사격을 가했고 장군은 가슴에 총탄 두 발을 맞았다. 장군은 “조선독립혁명을 완성하고 가지 못하는 나는… 민족의 죄인입니다”라고 자책하며 20일 오후 1시쯤 숨을 거뒀다. 15년 동안 풍찬노숙하며 일제와 싸웠던 영웅은 이렇게 희생됐다. 한인들은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며 슬퍼했다. 장군의 나이 38세였다.한인들은 시신을 위치가 드러나지 않게 평장(平葬)했다. 같은 달 26일 양세봉의 죽음을 알고 향수하자촌에 일군이 몰려와 한인 70여명을 모아 놓고 시신을 내놓지 않으면 다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하는 수 없이 마을 둔장(屯長)이 묘의 위치를 말하자 일군은 시신을 파내 놓고 마을 노인 김도선에게 작두로 머리를 자르라고 했다. 김 노인은 “나는 조선 사람이다. 조선 사람이 어찌 자기 사령관의 머리를 자를 수 있단 말이냐”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그 자리에서 김 노인의 머리를 베고 장군의 머리를 가져갔다. 마을 사람들은 머리 없는 장군의 시신을 다시 고구려산성 아래에 묻었다. 장군은 전투에선 호랑이 같았지만 마음은 너무나 따뜻했다. 계급을 불문하고 대원들을 평등하게 대했고 거친 밥을 똑같이 나눠 먹었다. 이불을 덮어 주고 발을 씻겨 주기도 했다. 배움이 부족한 ‘소작농 장군’이었지만 인격으로 감동시켰다. 장군의 비서였던 박윤걸(중국에서 작고)씨는 “중국인 이춘윤은 관운장보다 더 유능한 장군이라며 흠모했다”고 말했다.●김일성 아버지와 의형제… 가족들 평양에 정착 광복 후 북한은 장군의 가족을 평양으로 데려가 정착시켰다. 장군은 김일성의 아버지와 의형제 사이였다고 전해진다. 1961년 후손들이 유골을 북한으로 이장했고 장군은 애국열사릉에 옮겨져 묻혔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도 이회영 선생 묘소의 바로 왼쪽에 장군의 가묘가 있다. 남북 양쪽 국립묘지에 묘소가 있는 독립투사는 장군이 유일하다. 우리 정부는 1962년 장군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日·만주군과 전투 200여회 승리… 남북 국립묘지에 모신 유일 독립투사

    日·만주군과 전투 200여회 승리… 남북 국립묘지에 모신 유일 독립투사

    “조선의 독립, 자유를 완성하기 위하여, 조선 민족의 자유와 행복을 도모하기 위하여, 최후 성공이 있을 때까지 왜적과 계속 투쟁하라! ” 만주를 호령하던 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말했다.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혁혁한 전과를 거둬 군신(軍神)으로 추앙받았지만 양세봉을 모르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양세봉은 1896년 7월 15일 평북 철산군 세리면 연산동에서 소작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마을 서당 문지기로 일하며 귀동냥으로 천자문과 논어, 명심보감 등을 익힌 것이 배움의 전부였다. 훈장의 안중근 의사 이야기는 그에게 큰 영향을 줬다. 양세봉은 죽음을 앞둔 안 의사가 남긴 “슬퍼하지 마라. 대장부로 태어나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데 무엇이 슬프단 말이냐”는 말을 가슴 깊이 새겼다.1912년 아버지가 갑자기 병환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양세봉은 겨우 16세에 가장이 됐고 임재순과 결혼했다. 일제의 핍박이 심해지자 양세봉은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향했다. 흥경현(현 신빈현) 영릉가를 거쳐 한인 집단 거주지인 홍묘자 사도구에 정착했다. 1919년 4월 홍묘자에 있던 홍동학교 교장 이세일은 3·1운동 지지 시위를 주도했는데 양세봉도 동참했다. 이후 양세봉은 천마산대에 가입해 본격적인 독립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1920년 12월 최시흥이 청장년 500여명으로 조직한 천마산대는 경찰서, 면사무소를 습격하고 밀정과 일경을 처단하는 활동을 하던 항일 유격대였다.●“중국인, 관운장보다 유능한 장군으로 흠모” 천마산대는 일제의 공격을 받자 만주 유하현으로 가 광복군총영에 합류했다. 양세봉은 군기 검사관이 됐다. 그 뒤 만주 지역 독립운동단체들은 대한통의부로 통합, 무력 부대를 설치했는데 오동진이 사령장이었고 양세봉도 두령이라는 작은 자리를 맡았다. 1923년 5월 양세봉은 평북 창성을 습격하고 일본군 10여명을 사살하는 등 전투에 참여했다. 그 후 새로 출범한 참의부 소대장이 돼 압록강을 건너가 유격 투쟁을 이어 갔다. 평북 초산과 강계에서 일경 수명을 사살했고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경비선을 타고 압록강을 지나갈 때 저격을 지휘해 일제가 간담을 쓸어내리게 했다. 1924년부터 남만주에는 정의부가, 북만주에는 신민부가 설립돼 참의부와 함께 3부 체제가 됐다. 양세봉은 참의부 중대장으로 승진한 뒤 정의부로 옮겨 갔다. 3부는 1929년 4월 민족유일당 운동으로 우여곡절 끝에 국민부로 통합됐다. 흥경현 왕청문에 자리잡은 국민부는 조선혁명군을 창설했다. 국민부는 선민부 토벌에 나섰다. 조선민회라고도 불렸던 선민부는 한인 변절자들이 이끌고 있었다. 일제의 조종을 받아 독립군을 색출하고 가족을 살해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양세봉은 부사령을 맡아 선민부 지휘부와 지부를 습격해 우두머리와 일당을 모조리 죽여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1931년 9·18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일제의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이듬해 1월 조선혁명당과 군 간부 10여명이 회의 도중 습격을 받아 체포되고 이후 두 달 동안 간부 83명이 붙잡혀 혁명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지역 부대장들의 추천으로 양세봉은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에 임명됐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양세봉 장군은 부대를 재정비하고 속성군관학교를 세우는 한편 조직적인 항일 투쟁에 나섰다. 또한 왕동헌, 이춘윤, 양희부 등 중국 지도자들과 협력해 ‘요령농민자위단’을 결성했다. 당취오가 총사령인 ‘요령민중자위군’과도 힘을 합쳐 자위군의 특무대 사령으로서 대일 연합작전을 벌였다. 괴뢰정부인 만주국 군대가 흥경현을 점령하자 연합부대는 20여일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여 탈환했다. 일본군은 400여명의 사상자와 500명 가까운 실종자를 냈다. ‘제1차 흥경혈전’이다. 그 중심에 양세봉 장군이 있었다. 다음달 일본군은 비행기까지 동원해 흥경으로 돌진해 왔다. 2차 혈전에서도 연합부대는 악전고투 끝에 일본군을 물리쳤다. 연합부대는 1932년 8월 청원현을, 다음달에는 석탄 탄광이 있는 무순을 공격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연합부대가 지나갔던 평정산 마을 주민 3000여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932년까지 한중 연합부대는 일만 연합군과 200여 차례 전투를 벌였고 장군은 그때마다 크고 작은 승리를 거뒀다. 한편으로 멀리 경상도까지 소부대를 보내 경찰서 등을 파괴하고 악질 경찰을 살해했다. 1932~1933년 압록강 주변에서만 26차례 파괴 공작을 벌였고 일본 군경 243명을 사살했다. 1933년 5월 서원준을 황해도에 밀파해 사리원 경찰서 등을 습격한 것은 신문이 호외로 다룰 만큼 큰 사건이었다. 그럴수록 일제의 추격은 집요해졌다. 조선인 변절자를 이용해 혁명군을 체포하고 가족과 친구까지 살해했다. 혁명군 수백명을 처형해 머리를 매달았다. 장군의 체포에도 혈안이 돼 현상금을 걸었다. 1934년 3월 장군은 중국 동북인민혁명군 사령관 양정우와 연합했다. 장군은 공산주의에 적대적이었지만 항일을 위해 신념도 버렸다. 조선혁명군과 인민혁명군은 진주령 일본군 기차 습격, 노구대 격전, 쾌대무자 전투 등 연합작전에서 연전연승, 일본군에 엄청난 타격을 줬다.그해 9월 18일 일제의 지시를 받던 박창해는 장군과 면식이 있던 압동양을 보내 “저희 부대가 양 사령관께 오려고 합니다. 함께 가서 무기를 받아 주시면 좋겠습니다”라며 유인했다. 장군은 경호대원만 데리고 따라나섰고 일행이 소황구에 이르렀을 때 어둠 속에서 압동양이 옥수수밭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매복하고 있던 일군들이 기습 사격을 가했고 장군은 가슴에 총탄 두 발을 맞았다. 장군은 “조선독립혁명을 완성하고 가지 못하는 나는… 민족의 죄인입니다”라고 자책하며 20일 오후 1시쯤 숨을 거뒀다. 15년 동안 풍찬노숙하며 일제와 싸웠던 영웅은 이렇게 희생됐다. 한인들은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며 슬퍼했다. 장군의 나이 38세였다. 한인들은 시신을 위치가 드러나지 않게 평장(平葬)했다. 같은 달 26일 양세봉의 죽음을 알고 향수하자촌에 일군이 몰려와 한인 70여명을 모아 놓고 시신을 내놓지 않으면 다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하는 수 없이 마을 둔장(屯長)이 묘의 위치를 말하자 일군은 시신을 파내 놓고 마을 노인 김도선에게 작두로 머리를 자르라고 했다. 김 노인은 “나는 조선 사람이다. 조선 사람이 어찌 자기 사령관의 머리를 자를 수 있단 말이냐”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그 자리에서 김 노인의 머리를 베고 장군의 머리를 가져갔다. 마을 사람들은 머리 없는 장군의 시신을 다시 고구려산성 아래에 묻었다. 장군은 전투에선 호랑이 같았지만 마음은 너무나 따뜻했다. 계급을 불문하고 대원들을 평등하게 대했고 거친 밥을 똑같이 나눠 먹었다. 이불을 덮어 주고 발을 씻겨 주기도 했다. 배움이 부족한 ‘소작농 장군’이었지만 인격으로 감동시켰다. 장군의 비서였던 박윤걸(중국에서 작고)씨는 “중국인 이춘윤은 관운장보다 더 유능한 장군이라며 흠모했다”고 말했다. ●김일성 아버지와 의형제… 가족들 평양에 정착 광복 후 북한은 장군의 가족을 평양으로 데려가 정착시켰다. 장군은 김일성의 아버지와 의형제 사이였다고 전해진다. 1961년 후손들이 유골을 북한으로 이장했고 장군은 애국열사릉에 옮겨져 묻혔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도 이회영 선생 묘소의 바로 왼쪽에 장군의 가묘가 있다. 남북 양쪽 국립묘지에 묘소가 있는 독립투사는 장군이 유일하다. 우리 정부는 1962년 장군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택배노동자의 슬픈 연말…“난로없이 5~6시간 분류 핫팩·장갑으로 버틴다”

    택배노동자의 슬픈 연말…“난로없이 5~6시간 분류 핫팩·장갑으로 버틴다”

    혹독한 추위에도 장갑과 핫팩만 가지고 대여섯 시간의 바깥 노동을 버텨야 하는 택배·배달노동자들이 사측에 최소한의 난방기라도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택배 물류가 폭증하면서 추위와 싸워야 하는 노동자들의 고충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라이더유니온 등이 결성한 택배·배달노동자 캠페인사업단 ‘희망더하기’는 23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노동자는 영하의 추위와 미세먼지가 반복되는 가혹한 환경에서 오랜 시간 물품 분류 작업을 하는데, 택배사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화물차가 가져온 택배 물품을 분류하는 곳을 ‘터미널’이라고 부른다.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수시간씩 서서 일하면서 추위에 시달린다. 한 노동자는 “터미널은 물건이 돌아가는 레일 위에 지붕만 얹은 구조”라면서 “비나 눈이 오면 온몸이 다 젖는다. 냉난방 시설이 전혀 안 되어 있다”고 말했다. 물류 현장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스스로 마련한 장갑과 핫팩으로 추위를 버티고 있다. 개인 돈으로 난방기를 사더라도 회사 측이 작업장 전력 공급 문제와 화재 위험 등을 들어 켜지 못하게 한다는 게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희망더하기가 지난 10월 전국 일반택배업체 소속 택배 노동자를 대상으로 파악한 결과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2시간이었다. 응답자의 35%는 야외 물류 분류 작업을 하루 평균 5~6시간 한다고 답했다. 희망더하기는 “택배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월 300시간이 넘는다. 다른 임금노동자의 월간 근로시간의 두 배 길이”라면서 “지난해 택배 부문 매출액 합계가 3조 6000억원이 넘은 택배 3사(CJ대한통운·한진·롯데글로벌로지스)의 성장 이면에는 택배원들의 땀과 눈물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택배사는 난로 하나 없는 혹한기 야외노동에 대해 난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홍진영, 프로듀서로 ‘아이돌룸’ 출연 “마흔파이브 지원사격”

    홍진영, 프로듀서로 ‘아이돌룸’ 출연 “마흔파이브 지원사격”

    ‘갓데리’ 홍진영이 마흔파이브을 지원사격하기 위해 ‘아이돌룸’을 찾는다. 24일 저녁 6시 25분에 방송되는 JTBC ‘아이돌룸’에서 ‘스물마흔살’로 활동하고 있는 그룹 마흔파이브가 출연한다. 마흔파이브는 2020년 마흔 살이 되는 KBS 22기 개그맨 동기 허경환, 박성광, 김원효, 박영진, 김지호가 모여 결성한 그룹이다. 마흔파이브의 데뷔곡 ‘스물마흔살’의 작곡, 디렉팅을 맡은 홍진영이 프로듀서로서 함께 출연한다. 최근 진행된 ‘아이돌룸’ 녹화에서 홍진영은 마흔파이브를 ‘아픈 손가락’이라고 소개하며 “가요계에 이런 캐릭터들이 필요하다”라며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애정으로 소개한 것과 다르게 “처음 밴드 결성했다는 소식을 듣고, 현실적으로 빨리 콘셉트를 바꿔라”라고 충고했던 일화를 공개해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오프닝 녹화 내내 마흔파이브를 불신했던 MC 정형돈과 데프콘은 “프로듀서 홍진영을 믿고 오디션을 개최하는 거다”라며 사상초유의 프로듀서 책임제 오디션을 진행했다. 오디션이 시작되자, 홍진영은 마흔파이브 멤버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며 아낌없는 칭찬을 전했다. 의리 넘치는 홍진영이 응원하는 마흔파이브의 ‘아이돌999 오디션’ 현장은 12월 24일 화요일 저녁 6시 25분에 방송되는 JTBC ‘아이돌룸’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이해영의 쿠이 보노] 유엔사(司), ‘고스트 아미’?

    [이해영의 쿠이 보노] 유엔사(司), ‘고스트 아미’?

    영화 ‘반지의 제왕’에는 죽은 자들의 군대가 등장한다. 궁지에 몰린 주인공 아라곤을 도와 승리를 이끌었다. 아라곤이 명한다. “그대들의 맹세가 이행됐으니 이제 편히 안식을 취하라.” 그러자 이들의 왕이 앞으로 나와 아라곤에게 정중히 절을 한다. 그리고 ‘고스트 아미’는 아침안개처럼 사라진다. 유엔군은 1950년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자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참전했고 1953년 정전협정에 조인한 그 군대다. 그렇다면 이 유엔군이 왜 문제가 되는 걸까. 경의선 철도 연결을 위한 남북공동조사 때에, 남북한 군사적 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내에 경계초소를 없애고 긴장을 완화하자는 데에도 문득 유엔사가 등장해 제동을 걸었다. 이뿐이 아니다. 타미플루 대북지원사업에, 우리 통일부 장관이 고성 통일전망대를 방문할 때도 등장해 길을 막았다. 이제는 마땅히 안개처럼 사라져 안식을 취하고 있을 거라는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역사의 주역으로 전면에 나섰다. 역할도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그런 고스트 아미가 아니라 좀 막무가내다. 유엔군의 역할은 1953년 유엔군 사령관과 조선인민군, 중국인민지원군 간에 체결된 정전협정문에 나와 있다. 제1조 9항과 10항이다. “9.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의 집행에 관계되는 인원과 군사정전위원회의 특정한 허가를 얻고 들어가는 인원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군인이나 민간인이나 비무장지대에 들어감을 허가하지 않는다. 10. 비무장지대 내의 군사분계선 이남의 부분에 있어서의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이 책임진다.” 즉 유엔군 사령관은 정전협정에 근거해 일반인의 DMZ 내 군사분계선 이남 가로 248㎞, 세로 2㎞ 공간에 대한 출입통제권을 갖는다. 단 군사정전위 허가를 받은 자와 ‘민간행정 및 구제사업’ 관련 인원은 예외다. 유엔군 사령관의 이 ‘책임’의 범위 등에 대한 별도의 구체적 규정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제1조 17항을 보면 이렇다. “본 정전협정의 조건과 규정을 준수하며 집행하는 책임은 본 정전협정에 조인한 자와 그의 후임 사령관에게 속한다.” 곧 ‘정전협정의 조건과 규정을 준수·집행’하는 책임이다. 그런데 이 협정문의 전부에 적용되는 ‘서언’은 이렇다. “이 조건과 규정의 의도는 순전히 군사적 성질(purely military in characker)에 속하는 것”이다. 즉 유엔군 사령관의 책임과 권한은 ‘순전히 군사적 성질’의 것이다. 그렇다면 군사적이지 않은 것, 비군사적인 것은 어찌 되는가. 이 역시 서언에 실마리가 있다. “서로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무력행위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하는 것이 협정의 ‘목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정전협정문의 모든 조건과 규정의 목적은 무력행위의 완전 중단을 통해 최종적인 평화적 해결에 도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 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행위는 유엔군 사령관의 책임과 권한 범위보다 상위에 있는 것으로 그가 간섭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쉽게 말해 비무장의 통일부 장관이 수행원 및 해외 방문단과 함께 통일전망대를 방문하는 것이 ‘군사적’ 행위인가? 문제의 심각성은 또 있다. 2018년 9월 17일 유엔 주재 러시아대사가 유엔 사무국에 한국 주재 유엔사의 법적 지위와 역할에 대해 답변을 요구했을 때, 사무총장을 대신해 로즈메리 디카를로 사무차장은 아래의 취지로 답한다. 한국전이 발발했을 당시 유엔 결의에 의해 미군이 중심이 돼 유엔참전국을 지휘하도록 결의한 바는 있으나 유엔사는 미군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성됐으며, 휴전 이후 단 한 번도 미국으로부터 유엔사에 대해 보고를 받은 적도 없고, 협의를 요청받은 사실도 없다. 자신이 파악하는 한 유엔과 유엔사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즉 ‘현재’의 유엔사는 유엔의 ‘활동단체’도 ‘기구’(body)도 아니며, 유엔의 ‘지휘’나 ‘통제’하에 있지도 않고, 안보리의 ‘보조기구’(subsidiary organ)도 아니며 유엔 예산 지원도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주한 유엔군은 유엔군이 아니라는 이 지극히 불편한 진실을 직면해야 하는 우리 얼굴이 화끈거리거나 뒷목이 당길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 고스트 아미가 DMZ 이남에 대한 관할권(jurisdiction), 곧 주권을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의 민낯은 ‘주한유엔군 사령관=주한미군 사령관=한미연합사 사령관’이라는 거룩한 삼위일체를 직시할 때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 하늘길 여는 현대차, 미래 모빌리티 비전 공개

    하늘길 여는 현대차, 미래 모빌리티 비전 공개

    도심 항공·목적 기반 모빌리티가 핵심‘환승 거점’이 이 둘을 연결하는 허브 현대자동차가 내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가전박람회(CES) 2020’에서 인간 중심의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최초로 공개한다. 이에 앞서 현대차는 20일 티저 이미지를 먼저 공개했다. 현대차 미래 모빌리티 비전은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Urban Air Mobility)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 Purpose Built Vehicle) ▲모빌리티 환승 거점(Hub) 등과 같은 구성 요소의 긴밀한 연결성이 핵심이다. ‘도심 항공 모빌리티’는 하늘을 새로운 이동 통로로 활용해 도로 혼잡을 줄여준다. ‘목적 기반 모빌리티’는 한계가 없는 개인화 설계를 기반으로 하는 친환경 이동수단으로, 탑승객은 이동하는 동안 맞춤형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이 두 종류의 스마트 모빌리티를 보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시 전역에 ‘모빌리티 환승 거점’이 들어선다. 현대차 관계자는 “인류가 경험할 혁신적인 이동성과 이에 기반을 둔 역동적 미래 도시의 변화”라고 소개했다. 자세한 내용은 내년 1월 6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는 ‘현대차 CES 미디어 행사’에서 발표된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공정경제 실현 위해 서울·인천·경기 뭉쳤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결하고 공정경제를 뿌리내리기 위해 서울시·인천시·경기도가 뭉쳤다. 수도권 3개 광역지방자치단체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수도권 공정경제협의체 출범식’을 열었다. 지자체간 공정경제분야 상시협업체계는 최초다. 협의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불공정 거래를 끊어내고 소상공인, 전통시장 상인 등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3개 지자체는 다른 지자체와도 단계적으로 연대해 전국 단위 협의체를 결성할 계획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박남춘 인천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출범식에서 각 지자체가 보유한 행정자원과 정책수단을 연계해 지방 중심의 공정경제를 실현하자는 뜻을 담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3개 지자체는 더불어민주당과 ‘대규모점포 도시계획적 입지관리 개선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대규모 점포의 골목상권 출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 전통시장상인을 보호하고 무분별한 출점으로 인한 보행 단절과 교통 혼잡을 줄이자는 것이 주요 내용으로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서울과 인접한 수도권 내 초대형 복합쇼핑몰의 영향이 해당 지역은 물론 서울 전역까지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3개 지자체는 지역상권과 여건을 고려해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는 등 대규모 점포 입점요건을 마련, 유통산업간 균형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이들 3개 지자체는 또 중소벤처기업부, 민주당과 함께 ‘공정거래 정착과 중소기업 권익보호를 위한 협약’을 맺었다. 현재 중앙정부의 단속과 감독만으로 불공정거래를 감시하고 수십만 개의 하도급, 위탁업체를 보호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위탁분쟁조정협의회’를 설치해 불공정거래 감시활동, 합동실태조사,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신속한 피해구제에 힘쓰겠다는 것이 골자다. 3개 지자체는 오픈마켓, 온라인 플랫폼 등과 관련된 신종 불공정거래행위의 실태조사에도 나설 계획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수도권 공정경제협의체 결성은 지방정부의 상호협력을 기반으로 시민의 삶 곳곳에서 공정경제를 체감토록 하는 다짐”이라며 “실질적인 자치분권 실현을 위한 중요한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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