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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 게이츠 부부 전격 이혼…146조원 재산 분할은?

    빌 게이츠 부부 전격 이혼…146조원 재산 분할은?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와 그의 아내 멀린다 게이츠가 27년 만에 이혼하기로 했다. 그러나 게이츠 부부 세운 자선단체인 ‘빌앤드멀린다 게이츠재단’ 운영은 함께 하기로 했다. CNBC 등에 따르면 빌과 멀린다는 3일(현지시간) 트위터에 공동 명의로 올린 성명을 통해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오랫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우리는 결혼생활을 끝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27년간 우리는 놀라운 세 아이들을 키웠고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재단을 설립했다”면서도 “이제 우리 인생의 다음 단계에서 부부로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더는 생각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시작하는 동안 우리 가족에게 사생활을 보장해 달라”고 당부했다. 두 사람은 모두 MS에서 일했다. 빌은 자신이 설립한 MS의 마케팅 매니저였던 멀린다를 1987년 만났고, 1994년 하와이에서 결혼했다. 멀린다는 2019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빌 게이츠’(Inside Bill’s Brain:Decoding Bill Gates)에서 1년의 연애 이후 결혼을 결정해야 할 분기점에 이르렀을 때 빌이 침실에 있는 칠판에 결혼의 장점과 단점 목록을 빼곡히 적어놓은 것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고 회고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두 사람의 이혼 발표에 대해 “이 커플의 이혼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자선사업, 공중보건, 비즈니스 분야에서 ‘충격파’가 휘몰아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NYT는 “빌과 멀린다는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 비영리 분야의 최고위층에 접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민간인이었다”며 “이들이 만든 재단은 그동안 세계 보건에서부터 유아 교육에 이르기까지 500억 달러(약 56조원)를 기부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평가했다. 빌과 멀린다는 부부로서는 결별을 택했지만, 빌앤드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서는 앞으로 협력을 지속하기로 했다고 CNBC는 전했다. 두 사람은 “우리는 이 임무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고 있다”며 “재단에서 계속 함께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빌은 MS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2000년 멀린다와 함께 질병과 기아를 퇴치하고 교육을 확대하는 재단을 설립해 활동해 왔다. 이혼에 따른 재산 분할이 어떻게 이뤄질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게이츠 부부의 재산은 1300억 달러(146조원) 규모로 추정된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이번 이혼으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 분할이 뒤따를 전망이다. 하지만 게이츠 부부의 재산분할은 2019년 세간의 관심을 끈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와 그의 부인 맥켄지 스콧의 이혼 사례처럼 간단치가 않다. 재산의 대부분이 아마존 주식이었던 베이조스와 달리 게이츠의 재산은 여러 갈래로 쪼개져 있기 때문이다. 스콧은 2019년 베이조스와 이혼하면서 합의금으로 베이조스가 보유한 아마존 주식의 25%(아마존 전체 주식의 4% 수준(39조원 규모)를 받았다. 금융정보 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빌 게이츠는 260억 달러 규모의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 1.37%를 보유하고 있다. 빌은 재산의 대부분을 자신의 투자회사인 ‘캐스케이드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보유하고 있다. 이 투자회사는 캐나다 국영철도(Canadian National Railway)와 미 엔지니어링 업체 디어 앤 컴퍼니(Deere & Co)의 주요 투자자이며, 부동산과 에너지 기업에도 다수 투자했다. 다만 이러한 투자 지분에 대한 구체적인 재산 분할 방식이나 규모 등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2019년 빌이 올린 블로그 게시물에 따르면 부부는 200억 달러 규모의 MS 주식을 자신들의 재단에 넘겼다. CNBC가 인용한 세금관련 문서에 따르면 현재 재단의 자산은 510억 달러가 넘는다. 빌은 베이조스 아마존 CEO,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에 이은 전세계 네 번째 부자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빌 게이츠 큰딸, 부모 이혼에 “힘겨운 시간” 심경 토로

    빌 게이츠 큰딸, 부모 이혼에 “힘겨운 시간” 심경 토로

    빌 게이츠와 멀린다 게이츠 부부가 이혼을 발표한 가운데 두 사람의 큰딸 제니퍼(25)가 3일(현지시간)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심경을 전했다. 미 일간 뉴욕포스트 등에 따르면 제니퍼는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린 글에서 “안녕, 친구들. 이제 우리 부모님의 결별 보도를 많이 봤을 것”이라며 “우리 가족 모두에게 힘겨운 시간이 되고 있다”고 썼다. 이어 “이같은 시기에 난 아직도 내가 나만의 과정과 감정, 그리고 내 가족들을 가장 잘 지지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면서 “그럴 여력이 있다는 점에 매우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난 앞으로 개인적으로 부모님의 결별과 관련해 어떤 언급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렇지만 여러분의 친절한 말들과 지지가 나에겐 온 세상이라는 점을 알아주세요”라고 했다. 이어 “우리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동안 사생활을 지키려는 우리의 바람을 이해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제니퍼는 이 글에 이어 모친인 멀린다 게이츠가 이혼 성명을 올린 트위터 화면을 캡처해 함께 게시했다. 제니퍼는 게이츠 부부의 3남매 중 큰딸로, 2018년 스탠포드대에서 인간생물학을 전공한 뒤 뉴욕 마운트시나이 아이칸 의대에 재학 중이다.빌 게이츠 부부는 각각 31세, 22세이던 1987년 직장인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처음 만났다. 1964년 텍사스 댈러스에서 나고 자란 멀린다는 학창 시절부터 컴퓨터 게임과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키워오다 듀크대 졸업 후 MS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MS 직원 만찬에서 처음 만난 지 몇달 뒤 빌 게이츠가 멀린다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선 것은 몇 년 뒤인 1994년이었다. 빌 게이츠가 MS를 이끌면서 세계 최고 부자에 등극하는 가운데 멀린다는 빌 게이츠를 자선의 길로 이끌었다. 2000년 출범한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 설립자로 나선 두 사람은 이를 통해 지구촌 기아와 불평등 퇴치, 교육 확대에 힘쓰는 동지로 공식석상에 동반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에는 백신 개발 지원에 전념하며 ‘모범 부부’의 면모를 이어갔다. 빌 게이츠의 재산은 현재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1305억 달러(약 146조 2000억원) 정도다. 슬하에 제니퍼(25), 로리(21), 피비(18) 3남매를 둔 다둥이 부모이기도 하다. 부부는 서로에 대한 애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빌 게이츠는 2020년 밸런타인데이에 인스타그램에 멀린다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올리고 “이 여정에서 더 좋은 파트너는 없을 것”이라고 썼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 어려운 때가 없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멀린다는 결혼 25주년이던 2019년 인터뷰에서 남편이 하루에 16시간씩 일하느라 가족을 위한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고 언급하면서 때로는 결혼 생활이 “너무나 힘들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광에너지로 코로나19 치료-전북대 특허 출원

    코로나19 확진자 몸에 광 에너지를 쏘여 치료하는 기기가 세계 최초로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전북대는 의과대학 정환정 교수팀이 광 에너지 집적 조사기술을 이용한 근접광 치료기를 개발했다고 21일 밝혔다. 이 기기는 코로나19와 결별을 뜻하는 의미로 ‘바이 바이(Bye-Vi)’로 명명됐다. 기기는 특정 파장대 광 에너지를 확진자 코와 목에 조사해 바이러스를 사멸시키거나 극도로 억제하는 원리를 적용했다. 전북대는 원천·적용기술에 대한 국내 및 국제특허를 출원했고 제품화 과정까지 마치고 임상시험을 준비 중이다. 전북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실험 결과에 따르면 광 에너지를 감염된 숙주세포에 30분, 2회 조사하면 바이러스 80% 이상이 사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는 확인된 부작용도 없어 치료 횟수를 늘릴수록 치료 효과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를 이끈 정 교수는 “근접 광 치료 기술은 바이러스 질환에 대한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며 “생산 및 임상 적용에 제도와 재정 지원이 이뤄지면 검증 과정을 더 빨리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조영남 “바람 피워서 윤여정과 이혼, 후회…‘미나리’ 봤다”

    조영남 “바람 피워서 윤여정과 이혼, 후회…‘미나리’ 봤다”

    가수 조영남이 과거 결혼 생활을 했던 배우 윤여정에 대해 언급했다. 20일 오전 방송된 KBS 1TV ‘아침마당’에는 조영남이 출연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이날 조영남은 첫 번째 이혼이었던 윤여정과의 결별에 대한 물음에 “내가 뭐가 힘들었겠나”라며 “내가 바람 피워서 이혼을 한 거다”라고 얘기했다. 이어 “그때 내가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조영남은 “왜 아이들을 두고 바람을 피웠을까 이해가 안 간다”라며 “후회도 된다”고 털어놨다. 조영남은 두 번째 결혼에 대해서는 “두 번째는 동거 비슷하게 됐다”라며 “그 친구(두 번째 아내)가 아이를 가지고 싶어했는데 나는 배 다른 아이를 가지기 싫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미국 가서 어학원 다니면 세계에서 젊은 청년들이 오니깐 거기서 하나 골라서 결혼하라고 했다”라며 “그렇게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후 조영남은 즉문즉답 코너에서 ‘나는 배우 윤여정이 나오는 영화나 TV프로그램은 챙겨본다’라는 질문이 나오자 긍정하며 “‘미나리’는 개봉 첫날 봤다”고 답하기도 했다. 조영남은 윤여정과 1974년 결혼, 1987년 이혼했으며 슬하에 두 아들이 있다.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운구 중 떨어져 걸은 윌리엄·해리 왕자… 장례식 뒤엔 대화 나눠

    운구 중 떨어져 걸은 윌리엄·해리 왕자… 장례식 뒤엔 대화 나눠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 남편인 필립공의 장례식이 런던 근교 윈저성의 성조지 성당에서 엄수된 17일(현지시간) 찰스 왕세자와 앤드루 왕자,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 등 직계가족들이 랜드로버를 개조해 만든 필립공의 영구차를 뒤따르고 있다. 지난해 왕실과 결별한 데 이어 최근 왕실 내 불화를 폭로하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던 해리 왕자는 형인 윌리엄 왕세손과 멀찍이 떨어져 걸었지만, 장례식 뒤엔 두 형제가 편안한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다. 필립공은 성조지 성당의 지하 왕실 묘지에 안장됐다. 윈저 AP 연합뉴스
  • 장례식까지 기획한 필립공… 英여왕 ‘외조의 왕’을 배웅했다

    장례식까지 기획한 필립공… 英여왕 ‘외조의 왕’을 배웅했다

    17일(현지시간) 자신의 곁을 70여년간 지킨 남편 필립공의 가는 길을 홀로 지켜보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모습에 영국이 함께 슬픔에 잠겼다. 이날 장례예배가 거행된 런던 교외 윈저성의 성조지 성당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듯 긴 의자 끝 쪽에 구부정하게 앉은 여왕의 사진은 영국 주요 매체의 1면을 장식했다. 신문들은 ‘가장 외로운 작별인사’라거나 ‘홀로 견디는 슬픔’, ‘신이여, 여왕을 살피소서’ 등의 헤드라인을 달았다. 검은색 모자와 외투에 검은 마스크까지 쓴 여왕의 몸에서 반짝이는 것은 왼쪽 어깨에 착용한 다이아몬드 브로치가 유일했다. 여왕과 필립공의 약혼 시절 자주 착용했던 브로치라고 AP통신이 전했다. 왕립 해군대학에서 필립공을 만나 사랑에 빠진 여왕은 21세이던 1947년 7월 약혼하고 넉 달 뒤 결혼했다. 결혼 이후에도 해군장교 이력을 쌓아 가던 필립공은 결혼 5년 뒤 아내가 여왕에 즉위하자 외조에 전념했다. 여왕이 홀로 외딴 자리에 앉은 이유는 코로나19 봉쇄 때문이었다. 장례예배 참여 인원은 30명으로 제한됐고, 동거가족이 아니면 2m 이상 거리를 두어야 했다. 유일한 동거가족 필립공을 보내는 자리였기에 여왕은 홀로 앉았고 네 자녀인 찰스 왕세자와 앤 공주, 앤드루·에드워드 왕자의 일가는 여왕과 떨어져야 했다. 여왕의 장손인 윌리엄 왕세손은 왕실의 진주 초커 목걸이를 착용한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와 함께였다. 케이트 미들턴이 4년 전 여왕의 결혼 70주년 행사 때 했던 같은 목걸이이자, 고 다이애나비가 1982년 고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70번째 생일 파티 때 착용했던 목걸이다. 지난해 왕실과 결별하고 미국에 거주 중인 해리 왕자도 예배에 홀로 섰다. 임신 중 여행이 어려웠던 부인 메건 마클은 화환과 필립공을 애도하는 손편지를 전했다. 예배에 앞선 운구 과정에서도 여왕은 홀로 움직였다. 직계가족 9명이 군용차 색으로 도색한 랜드로버 영구차 뒤를 따라 걸었고, 여왕은 차량으로 그 뒤를 따랐다. 이날 장례식의 기획자는 지난 9일 99세로 영면한 필립공 본인이었다. 그는 20여년 전부터 자신의 장례를 준비했는데, 그의 기획엔 왕실에서의 삶이 켜켜이 녹아 있었다. 이를테면 필립공의 관을 감싼 그의 개인 깃발에는 덴마크, 그리스, 에든버러, 마운트배튼을 상징하는 그림이 새겨졌는데 상징 모두에 여왕과의 결혼으로 인해 일어난 삶의 변화가 반영됐다. 덴마크와 그리스는 결혼하면서 필립공이 포기한 자신의 혈통을, 에든버러는 결혼과 함께 주어진 작위를 상징한다. 마운트배튼은 영국 왕실과의 결혼 때문에 필립공이 선택한 어머니 쪽 성이다. 운구되는 관 위에는 해군 모자, 칼, 화환이 놓였다. 예포 발사와 영국 전역의 1분 묵념으로 시작된 장례식은 운구와 예배를 끝낸 고인을 지하 왕실 묘지에 안치하며 마무리됐다. 장례식 전 과정이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됐고, 코로나19 봉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윈저성 주변에 모였다. 그러나 최근 며칠 동안 필립공 관련 콘텐츠가 너무 많다며 영국 BBC에 10만건 넘는 항의가 답지하는 등 ‘21세기 현존 왕실’에 호오가 갈리는 모습이다. 왕실의 화합, 왕실과 국민 간 소통을 강조해 온 필립공의 장례식에서 해리 왕자와 왕실 간 극적 화해 여부도 주목받았다. 해리 왕자는 이날 운구 중 윌리엄 왕세손과 여러 사람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걸었지만, 식이 끝난 뒤 형 부부와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70년 함께한 여왕과 마지막 인사하는 ‘외조의 왕’ 필립공

    70년 함께한 여왕과 마지막 인사하는 ‘외조의 왕’ 필립공

    100세 생일을 약 두 달 앞두고 지난 9일 별세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공(에딘버러 공작)이 17일(현지시간) 윈저성 내 성조지 예배당 지하의 왕실 묘지에 안치된다. 이날 오후 3시 런던 교외 윈저성 예배당에서 치러지는 장례식에는 여왕과 자녀 등 직계 가족과 가까운 친척 30명만 참석한다. 행사는 일체 생략하고 장례식은 TV와 라디오로 중계된다. 장례식 시작에 맞춰 전국적으로 1분간의 묵념이 진행되고 행사가 끝나면 공식 애도 기간도 종료된다. 윈저 주임사제는 “필립공은 여왕을 향한 변함 없는 충성과 국가·영연방을 위한 봉사, 용기·강함·신앙으로 우리에게 영감을 줘왔다”는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 캔터베리 대주교도 필립공의 신앙과 충성심, 책임감과 지조, 용기와 지도력을 칭송하며 기도한다. 70여년간 여왕의 남편으로 살았던 필립공은 찰스 왕세자,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 앤 공주 등 자녀 4명, 윌리엄 왕세손 등 손주 8명에 여러 증손주를 뒀다.● 서열 1위 공주와 만난 몰락한 왕손 필립공은 1921년 6월 10일 그리스 코르푸섬에서 그리스 앤드류 왕자의 늦둥이 외아들로 태어나 그리스와 덴마크 양국에서 모두 왕위 승계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큰 아버지가 군부에 그리스 왕좌를 빼앗기고 필립공의 가족도 영국 해군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하게 됐다. 필립공은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 학교를 다니다 영국으로 옮겨 외가 친척들과 함께 지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거의 만나지 못했고 아버지는 모나코로, 누나들은 모두 독일인과 결혼을 해서 떠났다. 필립공은 다시 독일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또 스코틀랜드의 기숙학교로 가는 등 불안정한 생활을 계속했다. 그 와중에 독일에 있던 누나와 조카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여왕과 필립공의 사랑은 1939년 7월 다트머스 왕립해군학교에서 시작됐다. 아버지 조지 6세를 따라온 13세 공주는 잘생기고 활기찬 18세 필립공에게 반했다. 필립공은 졸업 후 영국 해군에 입대했지만 편지를 주고 받으며 애정을 키웠고 8년 만인 1947년 11월 20일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을 위해 그리스와 덴마크 왕위계승권을 포기했고 영국인으로 귀화했으며 성을 영국식으로 ‘마운트배튼’으로 바꾸고 성공회로 개종했다. 조지 6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1952년 2월 6일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에 즉위하면서 왕의 사위였던 필립공은 신분이 바뀌었다.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비와 결별하는 등 자녀들이 이혼하거나 구설에 휘말리고, 손자인 해리 왕자는 왕실을 뛰쳐나가는 등 바람 멎는 날이 없었지만 여왕 부부는 큰 분란 없이 지내왔다.● 은퇴까지 여왕 따라다닌 ‘외조의 왕’ 1997년 결혼 50주년 금혼식에서 필립공은 “내가 할 일은 첫째도, 둘째도, 그리고 마지막도 결코 여왕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필립공은 2017년 은퇴하기까지 여왕의 공식 행사를 따라 다니고 수백개 자선단체를 지원하며 외조에 힘썼다. 1999년 여왕 국빈 방한 때도 동행했고, 다이애나비 사망 때 어린 손자들을 보호하고 장례식 행렬에서 손자들과 함께 걸어주었다. 자신의 작위를 딴 ‘에딘버러 공작상’이라는 청소년 프로그램을 만들어 세계 100여개 나라에서 운영 중이고 환경운동에도 나섰다. 스포츠맨으로 유명한 그는 폴로 등 말을 타며 하는 운동을 즐겼고 항공기 조종 실력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97세에 운전을 하다가 전복사고가 나기도 했다.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나만의 향, 품격을 뿌리다

    나만의 향, 품격을 뿌리다

    일반보다 3배 비싼 니치향수개성 강한 MZ세대 성향 맞물려작년 프리미엄 향수시장 5300억조향사 조말론 복귀작 ‘조러브스’ 화제“높은 지위의 선택된 고객들에게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향수를 만들어 주려는 것이었다. 마치 재단한 옷감처럼 꼭 한 사람에게만 어울리기 때문에 그 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향수.” 늙고 한물간 조향사 주세페 발디니가 악마적 재능을 지닌 제자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를 이용해 이루고자 한 궁극적 목표는 ‘이것’이었다. 강렬하게 왔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향기. 이를 영원히 소유하려는 인간의 덧없는 욕망을 그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열린책들)에는 요즘 뜨거운 인기를 구가하는 ‘니치향수’를 암시하는 구절이 나온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향기는 고객에게는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이요, 조향사에게는 위대한 도전이다. 결국 그 경지에 오른 니치향수는 더이상 일개 화장품이 아닌,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된다. 니치는 이탈리아어 ‘니키아’(Nicchia)에서 유래했다. 우리말로는 ‘틈새’ 정도로 번역한다. 성당에서 마리아 상, 수호성인들을 모시는 벽 안쪽 움푹 들어간 곳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만큼 특별하고 소중하다는 뜻으로 현재는 개성이 강한 프리미엄 향수를 지칭한다. 일반 향수보다 2~3배 이상 비싸지만 가치를 중시하는 ‘MZ세대’의 소비 성향과 맞물려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프리미엄 향수시장 규모는 2013년 4408억원에서 지난해 5300억원까지 성장했다. 2023년에는 6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이런 성장세의 대부분은 니치향수가 견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니치향수 3대장 가장 대중적인 니치향수는 무엇일까. 사실 특별함을 강조하는 니치향수에 ‘대중적’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다. 그러나 국내에도 니치향수가 보편화되면서 업계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3대장’을 꼽는다. ‘딥티크’, ‘바이레도’, ‘조 말론 런던’이 여기에 들어간다. 딥티크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친구 셋이 모여 1961년 만든 브랜드다. 화가인 데스먼드 녹스 리트, 무대 디자이너 이브 쿠에랑, 건축가 크리스티앙 고트로가 모였는데 셋 다 향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라는 게 재밌다. 그들이 1968년 세상에 내놓은 첫 번째 향수 ‘로’(L’EAU)가 선사하는 특유의 예술적 감각은 유럽 상류사회를 열광시켰다. 단순히 향기뿐만 아니라 향수가 탄생하기까지 이야기를 표현한 일러스트가 담긴 향수병으로도 브랜드의 예술성을 더하고 있다. 2006년 스웨덴에서 시작한 바이레도는 절제되면서도 실용적인 스톡홀름의 분위기를 물씬 담고 있다. 복잡하지 않은 혼합법, 원료가 가진 고유의 향을 살리는 방법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조향사 조 말론은 니치향수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어머니의 피부미용 일을 도우면서 자신에게 향기에 관한 재능이 있음을 깨달은 조 말론은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내놓는다. 남다른 후각을 가진 그는 오이, 얼그레이 등 그간 잘 쓰이지 않던 독창적인 재료로 자신만의 향기를 완성했다. 1994년 론칭한 조 말론 런던의 시작이다. 영국 상류층을 시작으로 단숨에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1998년 미국에 진출, 이듬해인 1999년 글로벌 뷰티기업 에스티로더에 브랜드를 매각한 조 말론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을 이어 갔다. 그러나 2003년 유방암 진단을 받은 그는 2006년 휴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지분을 에스티로더에 넘기며 활동을 중단,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와 완전히 결별한다. 그래서 조 말론 런던에는 조 말론이 없다.그가 부활한 것은 정확히 5년 뒤인 2011년이다. ‘조 러브스’라는 브랜드로 다시 향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긴 투병 생활 끝에 암을 극복한 조 말론은 ‘5년간 동종업계에서 일하지 않겠다’는 에스티로더와의 약속을 지키고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가 처음 내놓은 것은 잃어버린 후각을 되찾기 위해 찾은 휴가지에서 영감을 얻은 ‘포멜로’다. 해변의 반짝이는 물결과 하얀 모래사장을 상큼한 시트러스 계열의 향으로 표현했다. 이 외에도 젤 형태의 향수를 브러시로 바를 수 있도록 하며 혁신을 일으킨 ‘프래그런스 페인트브러시’도 유명하다. 이렇게 조 말론은 향수사(史)에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2개나 남긴 거장이 됐다. 조 러브스의 국내 판권을 따낸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 6일부터 서울 가로수길에서 팝업스토어를 운영 중이다.●나만의 니치향수를 찾아서 애초 다양한 사람들의 욕구와 개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태어났다. 니치향수의 생명은 희소성이고 다양성이다. 그만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브랜드가 있다. 3대장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브랜드를 몇 가지 소개한다. 우선 1870년 창립한 뒤로 영국 왕실에 향수를 공급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은 ‘펜할리곤스’가 있다. 5년 이상 왕실에 제품을 납품한 경험이 있는 업체에 주어지는 ‘왕실 조달 허가증’(로열 워런트)을 3개나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왕실의 윌리엄 왕자, 영화배우 귀네스 팰트로가 즐겨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블렌하임 부케’ 등이 대표적이다.이탈리아의 ‘산타마리아 노벨라’는 브랜드 역사가 매우 깊다. 1221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정착한 도미니크 수도사들이 약초를 재배하고 이것으로 약국을 운영하면서 시작됐다. 항상 최고 품질의 원료만을 사용하며, 1600년대 전통적인 향수 제조 방식을 현대에도 고스란히 지키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 세계 매장은 50여곳에 불과하다. 이 외에도 18세기 후반부터 7대째 이어지는 조향사 가문 브랜드 ‘크리드’, 2006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했으며 실험정신을 강조하는 ‘르 라보’를 비롯해 ‘아쿠아 디 파르마’(이탈리아), ‘구탈파리’(프랑스), ‘메종마르지엘라’(프랑스) 등이 국내에 잘 알려졌다. 국산의 도전도 이어지고 있다. 서구 브랜드에 비해 한참 후발주자이지만, 니치향수의 정신이 독창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 만큼 완벽한 성역은 아니다. 현대백화점 패션 계열사 한섬의 브랜드 ‘타임’은 최근 프리미엄 향수 ‘세뜨’와 ‘두즈’를 내놓으며 향수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외에도 ‘향기의미술관’, ‘아프리모’, ‘백지’ 등이 니치향수 시장에 문을 두드리고 있는 국산 브랜드들이다. 업계 관계자는 “니치향수는 비교적 고가지만, 최근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 인지도가 꾸준히 올라가면서 가격에 대한 저항은 많이 줄었다”면서 “앞으로도 독창적인 향기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니치향수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국민의힘, 당직자 폭행 논란 송언석 징계 절차 밟는다

    국민의힘, 당직자 폭행 논란 송언석 징계 절차 밟는다

    국민의힘이 4·7 재보궐선거 당일 당직자 폭행으로 논란을 빚은 송언석 의원에 대한 징계절차에 착수한다.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은 11일 기자들과 만나 “(송 의원을) 이번 주 당헌·당규 절차에 따라 윤리위원회에 회부해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징계 수위는 윤리위의 결정에 따라 제명, 탈당 권유, 당원권 정지, 경고 중에서 결정될 방침이다. 송 의원은 지난 7일 재보궐선거 출구조사 발표를 앞두고 서울 여의도 당사에 마련된 개표 상황실에서 자신의 자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당 사무처 직원의 정강이를 여러 차례 발로 찼다. 송 의원은 처음에는 폭행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사무처 당직자들이 송 의원을 향해 사과와 탈당을 요구하는 성명을 내는 등 파문이 커지자 폭행 사실을 인정했다. 송 의원은 지난 8일 노조에 보낸 공식사과문을 통해 피해자에 대한 사과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사건 직후 “경위나 사후조치 파악 중”이라는 입장을 냈던 지도부는 빠르게 송 의원에 대한 징계 착수를 결정했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겨우 붙잡은 2030 젊은 세대들의 표심을 송 의원 사건으로 잃을 수는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국민의힘 홈페이지 등에는 “송언석 같은 꼰대와 결별해야 한다”, “제명하지 않으면 국민의힘에 표를 주지 않겠다” 등 엄중 징계를 요구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조경태 의원도 페이스북에 “송 의원의 잘못된 언행은 우리 당을 지지한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면서 “당에서는 신속하게 강력한 징계조치를 취해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적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여왕 곁을 74년 지킨 필립공 별세에 “꽃 바치러 오지 말아달라”

    여왕 곁을 74년 지킨 필립공 별세에 “꽃 바치러 오지 말아달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남편 필립 공이 100세 생일을 두 달 정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버킹엄궁에 몰려들고 있다. 여느 때 같으면 여왕의 곁을 73년 넘게 지킨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한 헌화 물결을 마다하지 않을텐데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이라 버킹엄궁은 특별히 헌화를 사양하며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발표했다. 에든버러 공작인 필립 공이 9일(현지시간) 오전 사망했다는 소식이 정오쯤 알려지자 BBC는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국가를 틀었다. ITV도 오후 방송 일정을 모두 변경했다. 곧 버킹엄궁 밖에는 공식 발표문을 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짓기 시작했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영국 왕실은 전통에 따라 버킹엄궁 문에 발표문을 붙여놓는다. 버킹엄궁에는 조기가 내걸렸고 사람들이 헌화하며 슬픔을 표했다. 왕실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지켜지지 않을까봐 발표문을 떼어내야 했다. 정부는 모이지 말라고 공식 권고문을 발표했고 말을 탄 경찰들은 버킹엄궁과 고인이 영면한 윈저궁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이지 않도록 경계했다. 런던 핌리코에서 자전거를 타고 꽃과 “편히 쉬세요”라고 적힌 메모를 두러 왔다는 리아 바르마는 BBC에 “우리나라에 큰 변화가 시작되는 것 같다. 필립 공 없이는 여왕이 더 다스리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참고로 왕위 계승 서열은 부부의 맏아들 찰스(73) 왕세자가 1순위, 그의 맏아들 윌리엄(39) 왕자가 2순위, 그의 맏아들 조지(8) 왕자 순이다. 장례식도 예년에 견줘 아주 작은 규모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소탈한 성품이었던 필립 공은 조문객을 800명 정도로 추려놓고 있었는데 코로나19 방역 수칙은 30명 이상 모이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 왕실의 권위를 따질 때 수칙대로 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고 800명을 고수하긴 어려워 왕실의 고민이 상당할 것 같다. 지난해 왕실과 결별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손자인 해리(37) 왕자가 귀국 채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의 아내 메간 마클은 출산을 앞둬 동행 여부가 불확실하다. 왕실의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해리 왕자는 할아버지와 아주 가까워 다른 이들과 서먹한 모습이 연출되더라도 장례식에 참석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관측이다. 영국 정치권은 여야 구분 없이 한 목소리로 애도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여왕의 곁을 지킨 필립 공을 치하하면서 “비범한 삶을 살았다”고 밝혔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영국은 비범한 공복을 잃었다”며 “그는 2차 세계대전 때는 영국 해군으로서, 이후엔 에든버러 공작으로서 나라에 일생을 헌신했다”고 말했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수반도 “여왕과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보낸다”고 했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필립공이 여왕을 오랜 세월 놀랍고 꾸준하게 지지한 것으로 인정받아야 하지만 선견지명과 의지와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서도 기억돼야 한다고 말했다.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도 필립 공을 만날 때면 인생을 즐기는 모습과 모든 배경과 계층의 사람들과도 소통하는 능력에 늘 놀랐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에서도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호주, 인도, 몰타 등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주축을 이룬 영연방 회원국과 한때 한지붕 아래 살았던 유럽연합(EU)에서 애도의 메시지가 잇달았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우리가 다시는 볼 수 없을 세대를 구현”한 필립 공의 업적을 치켜세우며 “영연방 가족은 필립공을 잃은 슬픔과 그의 삶에 감사를 함께한다”고 말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뛰어난 군 복무 경력을 갖고 있으며 지역사회를 위해 선봉에 섰던 공의 영혼이 “평화롭게 잠들길 바란다”고 밝혔다. 로버트 아벨라 몰타 총리는 해군으로 복무했던 몰타를 고향으로 여기며 자주 찾았던 필립 공의 별세를 안타까워하며 “우리 국민은 항상 그를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매우 슬픈 날”이라며 “여왕 폐하와 왕실, 영국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고 싶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부 장관은 “조국을 위해 오래 봉사한” 필립 공의 빈 자리를 슬퍼하며 “왕실과 영연방 국민, 그리고 그를 끔찍이 사랑한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적었다. 칼 구스타브 16세 스웨덴 국왕은 필립 공을 “오랫동안 우리 가족의 훌륭한 친구였다”고 기억하며 “조국을 향한 그의 봉사는 우리 모두에게 영감이 될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필립 공은 영국을 위엄있게 대표하며 군주에게 무한한 힘과 지지를 가져다줬다”며 “놀라운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한 공에게 경의를 표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여왕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다” 필립공의 70년 외조(종합)

    “여왕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다” 필립공의 70년 외조(종합)

    70여년간 여왕의 남편으로 살았던 필립공(에딘버러 공작)이 9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버킹엄궁은 9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필립공이 이날 아침 윈저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떴다고 밝혔다고 BBC 등이 보도했다. 오는 6월 100세가 될 예정이었던 필립공은 지난해부터 윈저성에서 여왕과 함께 지내다 최근 감염증 치료를 위해 입원 후 심장수술을 받고 퇴원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찰스 왕세자,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 앤 공주 등 자녀 4명, 윌리엄 왕세손 등 손주 8명에 여러 증손주를 뒀다.● 서열 1위 공주와 만난 몰락한 왕손 필립공은 1921년 6월 10일 그리스 코르푸섬에서 그리스 앤드류 왕자의 늦둥이 외아들로 태어나 그리스와 덴마크 양국에서 모두 왕위 승계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큰 아버지가 군부에 그리스 왕좌를 빼앗기고 필립공의 가족도 영국 해군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하게 됐다. 필립공은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 학교를 다니다 영국으로 옮겨 외가 친척들과 함께 지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거의 만나지 못했고 아버지는 모나코로, 누나들은 모두 독일인과 결혼을 해서 떠났다. 필립공은 다시 독일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또 스코틀랜드의 기숙학교로 가는 등 불안정한 생활을 계속했다. 그 와중에 독일에 있던 누나와 조카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여왕과 필립공의 사랑은 1939년 7월 다트머스 왕립해군학교에서 시작됐다. 아버지 조지 6세를 따라온 13세 공주는 잘생기고 활기찬 18세 필립공에게 반했다. 필립공은 졸업 후 영국 해군에 입대했지만 편지를 주고 받으며 애정을 키웠고 8년 만인 1947년 11월 20일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을 위해 그리스와 덴마크 왕위계승권을 포기했고 영국인으로 귀화했으며 성을 영국식으로 ‘마운트배튼’으로 바꾸고 성공회로 개종했다. 조지 6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1952년 2월 6일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에 즉위하면서 왕의 사위였던 필립공은 신분이 바뀌었다.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비와 결별하는 등 자녀들이 이혼하거나 구설에 휘말리고, 손자인 해리 왕자는 왕실을 뛰쳐나가는 등 바람 멎는 날이 없었지만 여왕 부부는 큰 분란 없이 지내왔다.● 은퇴까지 여왕 따라다닌 ‘외조의 왕’ 1997년 결혼 50주년 금혼식에서 필립공은 “내가 할 일은 첫째도, 둘째도, 그리고 마지막도 결코 여왕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필립공은 2017년 은퇴하기까지 여왕의 공식 행사를 따라 다니고 수백개 자선단체를 지원하며 외조에 힘썼다. 1999년 여왕 국빈 방한 때도 동행했고, 다이애나비 사망 때 어린 손자들을 보호하고 장례식 행렬에서 손자들과 함께 걸어주었다. 자신의 작위를 딴 ‘에딘버러 공작상’이라는 청소년 프로그램을 만들어 세계 100여개 나라에서 운영 중이고 환경운동에도 나섰다. 스포츠맨으로 유명한 그는 폴로 등 말을 타며 하는 운동을 즐겼고 항공기 조종 실력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97세에 운전을 하다가 전복사고가 나기도 했다.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결혼 7년만 파경 소식 전한 배우 엄지원, 혼인신고는 안해

    결혼 7년만 파경 소식 전한 배우 엄지원, 혼인신고는 안해

    배우 엄지원(44)이 결혼 7년 만에 파경 소식을 전한 가운데, 전 남편 오모씨와 혼인신고는 하지 않아 사실혼 관계였던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6일 엄지원의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측은 “엄지원씨가 결혼 후에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 맞다”라고 밝혔다. 엄지원과 전 남편 오모씨는 사실혼 관계를 유지해오다 법적 이혼 절차 없이 결별하게 됐다. 앞서 이날 엄지원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배우 엄지원’을 통해 남편 오모씨와의 파경 소식을 직접 전했다. 엄지원은 글에서 “함께 한 시간 감사했고 행복했지만, 저희 두 사람은 부부보다는 친구로서의 관계가 서로에게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아 있는 시간들을 위해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가 됐다”라고 밝혔다. 엄지원은 “여전히 서로의 일을 응원하고 안부를 물으며 좋은 관계로 지내오고 있지만 그분은 현재 베트남에, 저는 지금 서울에 떨어져 지낸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라며 “여러분에게는 조금 갑작스러운 소식일 수 있을 것 같지만, 저에게는 조금 오래된 일이고 한 사람이자 배우 엄지원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 부디 지금처럼 변함 없는 시선으로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린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엄지원은 지난 2014년 5월 건축가 남편 오모씨와 2년 연애 끝에 결혼했으나 7년 만에 파경 소식을 전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다. 엄지원은 최근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통해 워킹맘이 아기를 낳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진솔하고도 코믹하게 그려 호평을 받았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지연수 “전 남편 일라이, 전화로 이혼 통보...재결합 무산” [EN스타]

    지연수 “전 남편 일라이, 전화로 이혼 통보...재결합 무산” [EN스타]

    레이싱모델 출신 방송인 지연수가 아들을 만나지 못할까 봐 공포에 시달렸던 사연을 공개한다. 29일 방송되는 SBS플러스 ‘강호동의 밥심’에는 이혼 후 화려한 싱글로 돌아온 이수진, 유깻잎, 김상혁, 지연수가 출연해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이혼 스토리를 공개한다. 녹화 당시 이들은 같은 아픔을 겪은 만큼, 서로의 상처에 공감하고 위로하며 묵혀둔 설움을 털어냈다. 결혼 1주년에 이혼 소식을 전한 김상혁은 ‘헤어지긴 했지만 이혼남은 아니다’라는, 과거 자신의 발언과 관계된 말이 나오자 당황했다. 이어 사람은 어록대로 사는 것 같다며 당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서 결별은 했지만 서류상 싱글인 건 맞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이를 듣던 지연수는 “되게 똑똑하신 것 같다”고 부러움을 전했다. 전 남편에게 전화로 이혼 통보를 받았다고 밝혀 충격을 안긴 지연수는 아들이 남편과 미국에 있는 두 달 동안 아들을 만나지 못할까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지연수는 아이를 위해 재결합을 고민했지만 충격적인 전 남편의 제안에 재결합은 무산됐다고. 지연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무너졌다”고 덧붙여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증을 일으킨다. 한편, SBS 플러스 ‘강호동의 밥심’은 29일 오후 9시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라면왕’의 마지막 당부는 “최고의 품질”… 농심-롯데 화해할까

    ‘라면왕’의 마지막 당부는 “최고의 품질”… 농심-롯데 화해할까

    라면 사업 갈등으로 롯데와 결별日 체류 신동빈 회장 빈소에 조화2세들은 친목 모임도 만들어 교류장남 신동원 부회장이 회장 승계‘라면왕’으로 통하는 농심 창업주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이 지난 27일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8일 농심에 따르면 고인은 임직원에 “거짓 없는 최고의 품질로 세계 속의 농심을 키워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몇 달 전 마지막 출근 당시 임직원에게 업무 지시로 50여 년간 강조해온 품질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이 같이 강조했다고 한다. 유족에게는 ‘가족 간에 우애하라’는 말을 남겼다.1930년 울산에서 태어난 신 회장은 1965년 농심을 창업해 56년간 이끌어왔다. 농심 창업 후에는 신라면(1986년)과 짜파게티(1984년), 새우깡(1971년) 등 장수 제품들을 개발했다. 농심의 지난해 라면 매출은 2조868억원이며, 이 가운데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는 신라면 매출만 4400억원이 넘는다. 고인은 1992년까지 대표이사 사장을 맡다가 농심이 그룹 체제로 전환하면서 그룹 회장직을 맡아왔고 별세 이틀 전인 지난 25일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에 재선임되지 않으면서 경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났다. 차기 회장에는 고인의 장남인 신동원(63) 부회장의 승계가 기정사실화돼 있다. 1997년 농심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데 이어 2000년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사실상 농심 경영을 맡아왔다. 신 부회장은 지난 주총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됐다. 장례 이틀째인 이날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범롯데가를 비롯한 재계 주요 인사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오전에는 정몽규 HDC회장, 송용덕 롯데지주 부회장 등이 빈소를 찾았고, 전날에는 최태원 SK 회장, 황각규 전 롯데 부회장 등이 다녀갔다. 고인의 영정사진 옆에 조카인 신동빈(66)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67) SDJ코퍼레이션 회장의 조화가 나란히 놓였다. 이에 반세기에 걸친 농심과 롯데 간 갈등이 2세대에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지 주목된다. 두 사람은 현재 일본에 체류하고 있어 코로나19로 인한 자가격리 기간을 고려하면 장례 참석은 불가능하다. 농심-롯데 간 갈등은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인은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으로 일본에서 활동하던 신격호 회장을 대신해 국내 롯데를 이끌었다. 1965년 라면 사업 추진을 놓고 신격호 회장과 갈등을 겪은 끝에 독립 그룹인 롯데공업을 창업했으나 신 회장이 롯데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고 해 사명도 1978년 농심으로 바꾸고 롯데와 완전히 결별했다. 이후 형제는 선친 제사도 따로 지낼 정도로 반목을 이어갔다. 지난해 1월 신격호 회장 별세 당시에도 고인은 빈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이 조문했다. 고인은 생전 서울대병원에 10억원을 기부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노환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며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오는 30일 오전 5시. 장지는 경남 밀양 선영이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라면왕’ 故신춘호 농심 창업주 마지막 당부는 ‘품질 제일’

    ‘라면왕’ 故신춘호 농심 창업주 마지막 당부는 ‘품질 제일’

    ‘라면왕’으로 통하는 농심 창업주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이 지난 27일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8일 농심에 따르면 고인은 임직원에 “거짓 없는 최고의 품질로 세계 속의 농심을 키워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몇 달 전 마지막 출근 당시 임직원에게 업무 지시로 50여 년간 강조해온 품질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이 같이 강조했다고 한다. 유족에게는 ‘가족 간에 우애하라’는 말을 남겼다.1930년 울산에서 태어난 신 회장은 1965년 농심을 창업해 56년간 이끌어왔다. 농심 창업 후에는 신라면(1986년)과 짜파게티(1984년), 새우깡(1971년) 등 장수 제품들을 개발했다. 농심의 지난해 라면 매출은 2조868억원이며, 이 가운데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는 신라면 매출만 4400억원이 넘는다. 고인은 1992년까지 대표이사 사장을 맡다가 농심이 그룹 체제로 전환하면서 그룹 회장직을 맡아왔고 별세 이틀 전인 지난 25일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되지 않으면서 경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났다. 차기 회장에는 고인의 장남인 신동원(63) 부회장의 승계가 기정사실화돼 있다. 1997년 농심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데 이어 2000년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사실상 농심 경영을 맡아왔다. 신 부회장은 지난 주총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됐다. 장례 이틀째인 이날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범롯데가를 비롯한 재계 주요 인사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오전에는 정몽규 HDC회장, 송용덕 롯데지주 부회장 등이 빈소를 찾았고, 전날에는 최태원 SK 회장, 황각규 전 롯데 부회장 등이 다녀갔다. 고인의 영정사진 옆에 조카인 신동빈(66)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67) SDJ코퍼레이션 회장의 조화가 나란히 놓였다. 이에 반세기에 걸친 농심과 롯데 간 갈등이 2세대에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지 주목된다. 두 사람은 현재 일본에 체류하고 있어 코로나19로 인한 자가격리 기간을 고려하면 장례 참석은 불가능하다. 농심-롯데 간 갈등은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인은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으로 일본에서 활동하던 신격호 회장을 대신해 국내 롯데를 이끌었다. 1965년 라면 사업 추진을 놓고 신격호 회장과 갈등을 겪은 끝에 독립 그룹인 롯데공업을 창업했으나 신 회장이 롯데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고 해 사명도 1978년 농심으로 바꾸고 롯데와 완전히 결별했다. 이후 형제는 선친 제사도 따로 지낼 정도로 반목을 이어갔다. 지난해 1월 신격호 회장 별세 당시 고인은 빈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이 조문했다. 고인은 생전 서울대병원에 10억원을 기부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노환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며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오는 30일 오전 5시. 장지는 경남 밀양 선영이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님아 청바지 살펴보소, 50만 위구르인의 피 묻은 솜 들어 있는지

    님아 청바지 살펴보소, 50만 위구르인의 피 묻은 솜 들어 있는지

    미얀마 군부의 불법무도한 쿠데타를 규탄하며 국내 기업의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이라면 지금 청재킷과 청바지에 들어 있는 솜이 어디에서 왔는지 한번쯤 살펴봐야 한다. 세계 면화 생산량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인들이 가시에 손이 찔려 피를 흘리며 모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영국 BBC가 27일(현지시간) 전했다. 신장의 면화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섬유 가운데 하나다. 중국 생산량의 85%를 이곳에서 공급한다. 세계인들이 입는 모든 의류에 이곳 솜이 쓰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하지만 원산지를 소비자가 직접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수많은 농가들에서 딴 솜을 중개상이 가공공장에 넘기면 이를 의류업체가 공급받기 때문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농가들이 제공한 솜은 모래시계처럼 가공공장들에 집중됐다가 다시 셀 수 없이 많은 의류업체들에 공급되기 때문에 원산지를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도움을 주는 인터넷 웹사이트가 있다. ‘윤리적이며 지속가능한 실의 출처(Yarn Ethically & Sustainably Sourced)’는 강제노동으로 채취하는 신장산 솜을 공급망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당장 청바지를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이에겐 제한적인 도움만 제공할 수 있을 따름이다. 해서 지속가능한 패션 원산지를 알려주는 플랫폼인 ‘커먼 오브젝티브(CO)’의 클레어 리사먼은 “당신의 청바지에 들어간 솜이 어디에서 왔는지 확신하고 싶다면 유기농 솜을 소개하는 ‘소일 어소시에이션’이나 ‘공정무역’을 찾아보면 된다”고 조언했다. 미국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와 스웨덴 브랜드 H&M이 50만명의 위구르인들이 수용소에 불법 감금돼 강제노역으로 모은 솜을 앞으로 쓰지 않겠다고 하자 중국 누리꾼들이 ‘애국적인’ 불매 운동에 나섰다. H&M은 중국의 이커머스 업체인 알리바바, 핀두오두오, JD 닷컴, 티몰 등에서 제거됐다. 버버리 역시 제품 홍보대사로 영입한 여배우 저우 동유로부터 결별 통보를 받았다. 이틀도 안돼 27명의 유명인이 아디다스, 캘빈클라인, 나이키 등과 결별을 선언했다. 한족을 대거 신장으로 이주시키는 것으로 모자라 위구르인들을 재교육 시설에 입소시켜 테러에 맞서 싸우게 재교육시키고 직업 훈련을 시킨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중국 정부는 27일 미국과 캐나다의 개인과 단체를 제재하며 보복에 나섰다. 최근 미국이 유럽연합(EU) 등 동맹들을 총동원해 신장과 홍콩 문제 등을 거론하며 대중국 압박에서 나섰던 터라 중국의 이번 미국 제재로 두 나라 갈등이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미국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 회장과 부회장, 캐나다 의원 마이클 총과 캐나다 의회 내 국제 인권 관련 소위원회를 제재 명단에 올렸다. 이들 및 단체는 중국 본토와 홍콩·마카오 입국이 금지된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 정부가 국가 주권과 안전, 발전 이익을 지키겠다는 결심이 확고하다”면서 “중국은 관련국들이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잘못을 바로잡으며 신장 문제에 대한 정치적 조작을 중단하고 어떤 형식으로든 내정 간섭을 중지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영국, EU, 캐나다는 지난 22일 신장 인권 침해를 이유로 중국 관료들에게 제재를 부과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의 동맹들이 처음으로 함께하는 대응이었다. 이에 중국은 곧바로 보복에 나서 EU뿐만 아니라 영국 정치인들까지 제재 명단에 올린 데 이어 미국과 캐나다 개인 및 단체에 보복 제재를 가하는 한편 외교 및 국방 장관까지 동시에 해외 각국을 돌며 신장 문제에 대한 중국의 정당성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이 책을 추천합니다. <혹시 안 보이시면 https://brunch.co.kr/@kwansooko/261>
  • ‘신라면 신화’ 농심 신춘호 회장 별세...최태원 등 조문 발길 이어져(종합)

    ‘신라면 신화’ 농심 신춘호 회장 별세...최태원 등 조문 발길 이어져(종합)

    27일 세상을 떠난 고(故) 신춘호 농심 회장의 빈소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가운데, 농심 임직원과 재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고인의 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이날 일찍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도했다. 황각규 전 롯데지주 부회장,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전 한진해운 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등도 조문했다. 오후 9시쯤에는 최태원 SK 회장이 빈소를 방문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이날 빈소에는 고인의 장남인 농심 신동원 부회장을 비롯해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 신현주 농심기획 부회장 등 자녀들이 자리를 지켰다. 고인의 차녀인 신윤경 씨와 사위인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도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을 맞았다. 빈소에는 고인의 형인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아들, 즉 조카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의 조화가 놓였다.고인은 1960년대 초 일본에서 활동하던 신격호 회장을 대신해 국내 롯데를 이끌었다. 그러나 1965년 라면 사업 추진을 놓고 신격호 회장과 갈등을 겪고 라면 업체 롯데공업을 설립하며 독립했다. 이후 1978년 롯데공업의 사명을 농심으로 변경하면서 롯데와는 완전히 결별했다. 형제는 이후 결국 화해하지 못한 채 1년여 간격을 두고 세상을 떴다. 지난해 1월 신격호 회장 별세 당시 신춘호 회장은 끝내 형의 빈소를 찾지 않았다. 신동빈 회장은 현재 일본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직접 빈소를 찾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귀국한다 해도 2주간 자가격리 때문에 조문은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롯데그룹 관계자는 “아직 조문 일정 등은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美, 중국산 없이 살 수 있나… 바이든 ‘反中 딜레마’

    美, 중국산 없이 살 수 있나… 바이든 ‘反中 딜레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2035년까지 전력 분야 탄소 배출을 ‘제로’(0)로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뜻밖에도 이 약속이 중국 인권 문제 해결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장 위구르족이 강제노동으로 생산하는 태양광 관련 제품 수입을 금지하면 자신의 핵심 대선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돼 재선이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미국이 정말로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 수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경제를 재건하고 지구온난화에 빠르게 대처하려는 바이든 대통령의 열망이 국제 무역의 암울한 현실과 충돌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줄곧 “중국이 이슬람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을 수용소에 가두고 강제노역을 시킨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올해 1월 신장에서 생산하는 면화 제품에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렸다. 바이든 대통령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향해 “중국은 (인권유린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태양광 협회는 “신장에서 생산하는 폴리실리콘을 자발적으로 사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폴리실리콘은 태양광 패널의 핵심 소재다. 미국 노동계도 바이든 행정부가 공식적인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신장이 전 세계 폴리실리콘의 절반 가까이 생산하는 ‘태양광 산업의 메카’라는 점이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폴리실리콘의 80%가량이 중국에서 생산되는데, 이 가운데 50% 이상을 신장 지역이 맡는다. 미국에는 제대로 운영되는 태양광 관련 공장이 없다시피 하다. 태양광 산업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처럼 이미 ‘규모의 경제’로 들어섰다. 바이든 대통령이 신장산 제품을 쓰지 않고 미국의 패널 수요를 충당하려면 인도나 베트남 등에 공장을 지어야 하는데, 이는 나중에 골칫거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워서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에너지 고문을 역임한 마이크 매케너는 블룸버그에 “미국이 신장산 제품을 쓰지 않으면 ‘2035년 탄소배출 저감’ 목표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그렇다고 이 지역 폴리실리콘 수입을 허용하면 대중 인권 압박을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돼 정치적 타격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그간 미국은 중국의 저렴한 공산품에 기대 거대한 소비경제를 구축했다. 하지만 중국과의 결별을 앞두고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있다. ‘원숭이 꽃신’의 우화가 그대로 들어맞는 상황이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타임 표지 등장한 엘리엇 페이지 “이젠 완전한 내가 됐다”

    타임 표지 등장한 엘리엇 페이지 “이젠 완전한 내가 됐다”

    “나는 온전한 내 자신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최신호 표지를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배우 엘리엇 페이지(34) 사진과 인터뷰로 꾸몄다. 타임 표지에 커밍아웃한 트랜스남성이 실린 것은 처음이다. 16일(현지시간) 타임은 페이지와의 인터뷰를 싣고 그가 어릴 때부터 느꼈던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배우 생활을 하며 겪은 어려움, 트랜스젠더 평등을 위한 투쟁에 대해 폭넓게 다뤘다. 지난해 12월 그가 트랜스남성이라고 커밍아웃 한 이후 처음 이뤄진 인터뷰다. “소녀로 보는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인터뷰에서 ‘그’(He/him)로 지칭되는 페이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받아들이는 모습과 남들이 인식하는 모습 사이 괴리가 컸다고 돌아봤다. 그는 “9살 무렵 머리를 짧게 자른 뒤 처음 느낀 성취감을 기억한다”며 “다른 사람들이 보는 소녀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하지만 아역 배우로 데뷔하면서 자주 ‘여성스러운’ 모습을 강요당했고, 이때마다 불편함을 느꼈다. ‘엑스맨’ 시리즈와 ‘인셉션’ 등 블록버스터 영화를 촬영할 때는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너무 커 우울증, 불안, 공황 장애까지 앓을 정도였다. 그는 “오랜시간 나는 사진 속 내 모습을 제대로 못봤다. 내가 출연한 영화도 보기 힘들었다”며 “그저 존재하는 것(just exist)에 너무 지쳐 연기를 그만두는 것까지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SNS로 ‘첫 폭로’···실제 일어난 엄청난 증오 그가 성정체성을 드러내기로 결심한 건 지난해 연인 엠마 포트너(26)와 결별하고, 코로나19로 집안에만 갇혀 지내면서다. 그는 지난해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트랜스남성임을 밝혔다. 페이지는 “많은 지원과 사랑, 그리고 엄청난 증오와 트랜스포비아를 예상했다”며 “그리고 그게 실제 일어났다”고 돌아봤다. 그가 예측하지 못한 건 파장이 얼마나 커질지였다. 그는 발표 이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트랜스젠더 중 한명이 됐고, 20개국 이상의 국가의 트위터에서 그의 소식이 빠르게 퍼졌고, 그날 하루에만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40만명이 늘었다.“가슴 수술도···내 몸, 똑바로 볼 수 있어” 각종 연기 제의도 들어왔다. 트랜스젠더 역할뿐 아니라 친근한 ‘남자’(dude) 역할로도 러브콜이 쏟아졌다. 인터뷰에서 그는 가슴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그는 “트랜스젠더에게 수술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도 “내가 수술한 건 사춘기 시절 ‘완전한 지옥’이라고 여긴 몸을 드디어 똑바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미국, 영국 등 서구 사회는 물론 한국 등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심각한 차별에 대해 경각심을 드러냈다. 페이지는 “매일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트랜스젠더에 대한 잘못된 신화를 퍼뜨리고 있다. 우리는 매일 우리 존재에 대한 논쟁을 보고 있다”며 “트랜스젠더는 정말, 진짜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백인이며 경제적으로 부유한) 특권을 통해 자원을 얻고 현재의 위치에 있게 됐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른 성소수자들에게도 도움주고 싶다”며 “우리가 사람들의 놀라운 복잡성을 축하할 수 있다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메날두, 라리가서 재회할까…호날두는 복귀설, 메시는 잔류설

    메날두, 라리가서 재회할까…호날두는 복귀설, 메시는 잔류설

    이탈리아 유벤투스에서 뛰고 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6)의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복귀설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지네딘 지단 레알 마드리드 감독은 이와 관련 “사실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FC바르셀로나와 결별하며 스페인을 떠날 것으로 보였던 리오넬 메시 또한 재계약 협상에 변곡점을 맞았다. 호날두와 메시가 라리가에서 재회할 수 있을지 눈길을 끈다. 15일(현지시간) 스카이스포츠 이탈리아에 따르면 지단 감독은 호날두 복귀설에 대해 “사실이 될 수도 있다”면서 “우리는 호날두를 잘 알고 그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이룬 업적을 모두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호날두가 현재 유벤투스에서 뛰고 있다는 점은 존중해야 한다”며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지켜보자”고 여운을 남겼다. 지단 감독은 호날두의 복귀 가능성을 단정하지는 않았지만 가능성은 열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2009~10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을 입고 9시즌을 뛴 호날두는 특히 지단 감독과 함께 유럽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일궜고 2018~19시즌을 앞두고는 1억500만파운드(약 1650억원)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유벤튜스는 호날두 영입으로 챔피언스리그 정복을 꿈꿨으나 세 시즌 째 성과가 없다. 첫 시즌 8강, 최근 두 시즌은 16강에서 연속 탈락했다. 조반니 코볼리 질리 유벤투스 전 회장은 “호날두를 존경하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호날두 영입이 실수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호날두 이적설이 흘러나왔다. 스페인 매체 아스 등은 레알 마드리드와 호날두가 최근 몇 달 동안 복귀를 논의해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파비오 파라티치 유벤투스 최고경영자(CEO)는 “호날두는 유벤투스의 미래”라며 이적설을 일축했다. 호날두와 유벤투스의 계약 기간은 내년까지다. 오는 6월 바르셀로나와의 계약이 끝나는 메시의 경우 잔류 가능성이 조금 높아진 상황이다. 최근 선거를 통해 바르셀로나의 새 회장으로 메시가 지지한 후안 라포르타 회장이 복귀했기 때문이다. 라포르타 회장은 2003~2010년 바르셀로나 회장을 지내며 바르셀로나 전성 시대의 토대를 쌓은 인물이다. 메시는 2020~21시즌 개막을 앞둔 지난해 8월 말 바르셀로나를 떠나겠다고 선언하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액수의 바이아웃 옵션 발동 시한에 대한 구단과의 입장차로 법정 공방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자 일단 남은 계약 기간 1년을 채우기로 하고 이적 추진을 중단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이 끝나면 잉글랜드 맨체스터 시티나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으로 떠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자신의 최우선 업무가 메시와의 연장 계약이라고 밝힌 라포르타 회장은 조만간 메시의 부친이자 에이전트인 호르헤를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담에서 메시의 미래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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