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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드­미쓰다/자동차합작 “유일한 성공

    ◎다른 커플 잇단 실패속 「13년 밀월」의 비결은/인적교류 확대로 「문화벽」 극복에 성공/「포드 시장개척」·「마쓰다 제조」 분업 철저/머큐리·페스티바등 10여종 개발때마다 “대히트” 자동차메이커들은 국제간의 합작이 많다.새로운 차종 개발에 보통 20억달러가 넘게 드는 등 엄청난 투자비용을 분담하고 협력관계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새로운 기술을 서로 나누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작은 기업의 경우는 외국기업과의 합작,협력관계로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는 이점도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동안 세계적인 유명 자동차 업체들간의 합작이 계속되고 있지만 대부분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한채 실패로 끝나고 있다.오랫동안의 의견대립끝에 GM이 최근 대우자동차와 결별직전에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며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삼릉),크라이슬러와 마세라티,피아트와 닛산(일산)자동차의 합작 및 기술제휴 등도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무역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업계 합작은 특히 긴장된 상태를 보이고 있다.그러나 미일간의 미묘한 관계에도 불구,포드­마쓰다(송전)의 합작은 예외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미국자동차업계 2위인 포드와 일본자동차업계 4위인 마쓰다의 합작성공은 합작기업의 모범이라는 극찬까지 받고 있다.지난 79년 포드사가 제1·2차 석유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마쓰다의 지분 25%를 1억3천만달러(현재는 10억달러)로 인수하면서 이루어진 13년간의 결합은 미일간의 무역분쟁,신차 개발을 둘러싼 의견불일치 등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포드와 마쓰다의 합작이 성공한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두 사의 철저한 역할분담을 들 수 있다.포드사는 주로 시장개척과 재정을,마쓰다사는 제조를 담당한다.또 포드사가 차의 스타일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반면 마쓰다사는 중요한 제작기술을 제공하고 있다.두 회사의 합작으로 선보인 포드자동차의 에스코트 신형,머큐리 트레이서,페스티바,스포츠카인 프로브 등과 마쓰다의 MX6·나바호 등 10여종의 차종이 모두 히트를 치고 있다.지난해 미국에서 팔린 포드자동차의 25%는제조방법에서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마쓰다의 도움이 있었으며 또한 마쓰다자동차의 40%는 포드사의 도움을 받을 정도가 되었다.포드사는 마쓰다에 소음과 진동을 측정하는 정교한 컴퓨터 프로그램과 전자시스템을 제공하는 등 두 회사는 기술협조를 비롯한 공조체제를 갖추고 있다.또한 마쓰다사는 포드사의 시장조사 기술을,포드사는 마쓰다의 세심한 제작기술을 배우는 등 서로의 장점을 습득하는데 분주하다.또 포드사 직원 25%가 마쓰다사로 옮기는 등 인적교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두 회사의 합작이 처음부터 수월했던 것은 아니었다.초창기에는 국가·기업의 문화적인 차이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쓰다 없는 포드를 생각할 수도 없듯이 포드 없는 마쓰다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두 회사는 합작의 묘를 살려 성공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포드와 마쓰다가 성공적인 합작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중 가장 중요한 것은 두 회사의 최고경영진으로부터 일반직원에 이르기까지 임직원들이 공식·비공식적으로 자주 만나 자유스럽게 대화하고 접촉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또 합작상황을 수시로 점검하는 고위경영전략그룹(SMSG)이 활성화되어 제 역할을 한 것도 주요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요시히로 와타 마쓰다사장을 포함한 4명의 고위경영진은 SMSG모임을 8개월마다 3일씩 갖고 있다. 또한 중요한 직책에 상대방의 문화를 잘 이해하는 임원을 배치하는 세심한 노력이 문화상의 차이를 극복해 성공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 베를린의 「반한조직」이 흔들린다(특파원코너)

    ◎사회주의 퇴조로 노선정립 못하고 갈팡질팡/민건협·민협등 해체… 전체회원 50%로 줄어 지난해 8월10일 전대협대표로 입북했던 성용승군(23·건대 행정과)과 박성희양(22·경희대 작곡과)양이 최근 독일에 망명신청서를 제출해 그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성군과 박양이 망명신청을 한 것은 지난해 연말. 이들은 평양에서 재독 작곡가인 윤이상씨와 함께 베를린으로 돌아온후 지난해 11월2일 범민련사무실에서 「범청학련결성 선포식」을 가진후 베를린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때 지지세력을 확보하려 했으나 호응을 받지 못했다. 베를린 유학생 7백여명중 선포식에 참석했던 학생들은 20여명에 불과했으며 이들조차도 두사람이 귀국하지 않고 베를린에 남아있으려는데 대해 비판적이었다. 성군과 박양이 베를린에 머물고 있는 것은 베를린이 한때 해외 반한활동의 근거지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 베를린이 반한활동의 무대가 된 것은 64년이후 독일로 온 광원과 간호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2만여명의 한국근로자를 중심으로한 교민사회가 당시 어려운 상황에서 반정부적인 성격을 띤데다 67년 동백림 사건을 계기로 그 연루자들이 남아서 활동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또 독일이 역사적으로 사회주의 이념이 강한데다 동베를린주재 북한대사관이 반한활동을 부추겨 일부 인사들은 노골적으로 친북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당시 윤이상씨를 중심으로 한 반한인사들의 활동은 전체 교민사회의 분위기를 주도했으며 73년 유신후 3공퇴진을 주장한 민주사회건설협의회(민건협)가 유학생을 중심으로 구성돼 절정기를 이뤘다. 민건협 등 반한단체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80년대 조직을 일원화,「재유럽 민족민주운동협의회」(민협)를 구성해 활동을 벌였으며 90년 12월16일 범민련 해외본부가 구성되어 윤씨가 의장에,이민자씨(47·이빈인후과 의사)가 부의장직을 맞는 등 핵심 반한인사 20여명이 범민련에 관여하게 됐다. 90년 여름 임수경양과 함께 밀입북했던 황석영씨도 평양에서 베를린으로 와 범민련 해외본부 대변인 역할을 맡아 왔으나 그의 독선적인 언행때문에 충돌을 빚어도다 지난해 12월 미국으로 건너갔다. 또 범민련 부의장이었던 이민자씨는 독일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사람중의 한 사람이었으나 범민련 노선에 환멸을 느끼고 지난해 조직과의 결별을 선언,최근 20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다녀온뒤 병원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범민련 해외본부가 결성된지 1년도 되지않아 간부들간의 반목과 이탈로 조직이 마비되고 있는 것은 국내외적인 여건변화로 분석되고 있다. 해외본부의 한 간부는 『조직내의 정신적인 지주들이 노환과 이견 등으로 떠나버린데다 북한이 범민련과는 한마디 상의도없이 정책변경을 하는 바람에 조직의 존재근거가 흔들려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라며 북한이 종전의 태도를 바꾸어 유엔에 동시가입한 예를 들었다. 범민련의 활동만 위축되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독일내의 반한단체들도 90년대 들어 속속 해체되고 있다. 민건협이 지난해 해체된데 이어 민협은 지난해 11월 총회에서 활동을 중지하기로 결의했으며 이들 단체 회원들도 속속 조직을 이탈하고 있다. 반한활동에 참여하는 인원수는 정확히 파악되고 있지 않지만 그 수가 50%정도 줄어들었으며 유럽지역 반한활동의 근거지로 알려진 베를린의 경우 모임에 참가하는 인원은 1백여명이며 이중 절반이 적극 참가자,절반이 동조자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마디로 독일통일뒤 베를린은 이제 반한 활동의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으며 베를린에서 발을 붙이려던 황석영씨가 떠나고 성군 등이 망명신청을 하게된 것도 그들이 기대했던 절대적인 호응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망명신청은 한국이 독일의 망명허용 대상국에서 제외되어 있는데다 지금까지 독일이 한국인에 대해 망명을 허용한 일이 한건도 없어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 “현대를 정치도구로” 국민당의 문어발식 정경유착

    ◎지구당 창당행사에 현대인력 대거 차출/임직원 잇단 입당 “전사원의 당원화” 우려/전국지사에 적극지원 지시… 부·과장급 30명 당서 일해 가칭 「통일 국민당」의 정주영씨가 최근 각 지구당 창당대회에 현대그룹 사원들을 대거 동원하는가 하면 입당을 종용하는 등 현대그룹을 정치적 기반 구축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어 「재벌당」의 정경유착이라는 당초의 지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0일 발기인대회를 치른 「국민당」은 지난달 26일 정씨의 아들 정몽준의원의 울산지구당창당대회를 비롯,31일까지 모두 40여개 지구당창당을 강행했다. 불과 20여일동안 전국지역의 지구당을 창당하는 「속전속결」의 각 행사장마다 정씨는 현대인력을 차출하는가 하면 임직원들로부터 입당원서를 받아 「국민당원화」를 꾀하면서 그룹 직원들 사이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정씨가 지난 1월초 현대그룹 종합기획실과 현대건설 문화홍보실에 근무하던 과장급이상 직원 20여명을 국민당 창당준비요원으로 차출,인물영입과 행사·당사확보 등에 노력한 일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정씨는 또 지난달 20일쯤 그룹내 부장급이상 간부를 중심으로 한 60여명을 추가로 차출해 창당작업실무를 담당시키라고 지시했다. 이에따라 이모 사모씨 등 정씨의 비서진이 그룹내 부장급이상 간부들을 개별접촉,당사무국요원으로 일해줄 것을 요구했다.이에따라 현대건설의 김모부장이 지난 24일부터 「통일국민당」총무부장직을 맡는 등 부·과장급 30여명이 국민당에 파견돼 정씨를 돕고 있다. 또한 1월중순이후 현대증권의 부사장급이하 간부진들은 전국 지사를 방문하며 『당분간 국민당을 지원하라』고 독려했으며 현대그룹본사측은 지난달 27일 전국지사에 『국민당 창당에 따라 모두 총선지원체제로 돌입하여 지역별로 적극 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더욱이 정씨는 지난달 28일 현대그룹 소속 헬기(11인승)2대를 이용,청주 갑지구당(위원장 김진영)창당대회에 참석하는가하면 행사장 주변 식당에서 아무에게나 식사를 대접하는 등 재력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정씨는 창당대회장에 임직원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동원,지난달 26일 울산지구당창당대회때 그룹사원부인들로 구성된 50여명의 어머니합창단을 배치했고 28일 서울 종로지구당창당대회때는 그룹직원 7백50여명이외에 식권소지여부를 불문하고 구경꾼 2백여명에게도 식사를 제공했다. 또 지난달 10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진빌딩에서 열린 창당 발기인대회때는 한복차림의 여직원 20여명을 동원,참석자 안내는 물론 꽃다발을 증정케 하는등 행사진행을 맡겨 회사내 행사인지 정당행사인지를 분간할 수 없도록 했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단2대의 엘리베이터중 한대를 행사종료시간에 맞춰 「정회장님이 타시게」문을 열고 고정시켜 놓는 바람에 많은 방문객이 계단으로 걸어내려가며 불평을 터뜨리기도 했다. ◎현대그룹의 딜레마/「대주주의 막강한 입김」 외면못해 어정쩡/북한 진출·자금동원등 어려워져 이중고 현대그룹은 정주영 전명예회장이 사장단을 비롯한 임·직원들에게 통일국민당에의 입당을 요청하는가 하면 지구당 창당대회에 지원을 요구하는 등 그룹을 정치에 끌고 들어가려하고있어 진퇴양난의 고민에 빠져있다. 신당창당에 앞서 현대그룹과 완전 결별을 선언한 정씨이지만 창업주·대주주로서 그의 영향력이 아직도 막강하기 때문에 그의 요청에 따라 정치활동을 도와주자니 기업이 여러가지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그렇다고 완전히 모른척할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에 놓여있다. 정세영현대그룹회장은 이같은 현대의 고민과 관련,31일 기자간담회에서 정전명예회장의 통일국민당과 현대그룹과는 완전히 별개라고 다시한번 선언하고 『그러나 정전명예회장이 고향에 돌아와서 도와달라고 할 수도 있는 문제 아니냐』고 밝혔다.정회장은 『현대 사장급 임원들이 처음 회사에 입사할 때 정치를 하겠다고 온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며 그룹의 임원및 간부들이 절반 또는 3분의1이 국민당에 입당할 것이라는 소문은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했다. 정회장은 이어 『그룹 임원중 몇사람이 국민당원이 되는가를 지켜보면 현대그룹과 국민당과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회장의 이같은 무관설 해명에도 불구하고 아직 현대그룹의 경영에서 정주영씨가 완전히 손을 끊었다고 믿는 사람은 그룹내에도 드문 것같다. 이같은 사실은 정회장이 이날 자신이 『창업주도 2세도 아닌 1·5세』라면서 『내가 아마 현대그룹의 마지막 그룹회장이 될것』이라고 말한데서도 잘 나타나 있다. 현대그룹회장이 정세영회장으로서 끝날 것이라는 것은 정전명예회장도 그동안 공·사석에서 여러번 강조해 왔었다. 현대그룹은 정씨의 정치참여로 정부의 공사입찰 및 자금동원에서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회장은 『명예회장이 정치활동을 시작한 이후 정부로부터 압력이나 자금봉쇄를 당한 적은 전혀 없다』면서도 『다만 일부 관청이 지레 선입견을 갖고 현대그룹을 견제하는 경우는 있다』고 말해 음성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시사했다. 또 대북한 진출과 관련해서도 정전명예회장이 추진해온 금강산개발과 원산조선소건립 등을 『정치적 분위기가 완화되면 추진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정씨가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추진이 어렵다는 점을간접적으로 비추었다.
  • 옷은 「국민당」 몸은 「현대당」/최철호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정주영씨의 통일국민당은 결국 「사당」「재벌당」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가 없는가. 현대그룹이 계열기업 사장단은 물론,일반 직원들에게까지 통일국민당 입당원서를 배포한 사실은 「국민당=현대당」이라는 일반의 의혹을 더욱 깊게 해주고 있다. 현대측은 이것이 강요가 아닌 권유였다는 해명으로 비난의 화살을 피하려하고 있다.그러나 우리 사회 통념상 직장상사가 내미는 입당원서를 뿌리칠만한 직원이 과연 얼마나 될는지….이는 현대라는 거대조직을 십분 활용해 당원수를 일시에 부풀리려했다는 말로 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정씨는 지난 10일 국민당 창당발기인대회를 끝내면서 『나는 현대그룹에서 가졌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겠다』고 힘줘 말한바 있다. 그런데 단지 20여일만에 그의 이같은 발언이 구두선에 불과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사소한 일로 넘겨 버릴수도 있겠지만 지난 28일 국민당 종로지구당 창당대회에는 현대그룹 여직원들이 꽃다발부대로 동원되기도 했었다.국민당과 현대그룹과의 끈끈한 관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당 출범의 토대가 현대그룹이었다는 점에서 이제와서 양자의 결별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할 수도 있다.정당설립을 위해 오래전부터 그룹 기조실직원 20여명을 동원,「별동부대」를 만들어 준비해 왔고 계열사의 문화홍보실을 통해 창당작업을 뒷받침해 온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같은 배경에서 많은 사람들은 국민당이 공당으로서의 기본목표인 국리민복을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심을 품어왔다.42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17만명을 지시하던 거대재벌의 총수가 정당의 총재로서 변신한 것은 보다 큰 자기 몫을 챙기려는 「장삿속」때문일 것으로 여기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기성정치에 환멸을 느껴 당을 만든다는 그는 이미 기성정치인 뺨치는 수준으로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는 비난이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비난은 부를 가진 자가 정치에 나선데 대한 질시에서 바롯된 얄팍한 차원의 것이 아니다.자기자본 비율이 26.9%밖에 안되는 「속빈 강정기업」들을 더욱 충실히 다져나가야할 그가 정치에 뛰어들어 또 얼마만큼 속빈강정의 정치를 할 것인지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 새한·국민 합당 불만/박찬종씨,신당 추진

    박찬종의원이 중심이 된 「정치개혁협의회」는 23일 김동길전연세대교수와 함께 추진해오던 가칭 「새한당」과 사실상 결별을 선언,독자적 신당을 창당할 방침이다. 박의원은 이날 서울 종로구 「정개협」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전교수가 당초 약속했던 5공과의 단절및 재벌신당과의 제휴거부 약속을 깨고 정주영씨주도 가칭 「통일국민당」과의 합당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오는 25일까지 김전교수가 이에대한 입장표명이 없을 경우 재벌신당과 합작할 수 없는 「정개협」은 독자적으로 정당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동길 전교수측이 주축이 된 「새한당」은 24일 상오 여의도 63빌딩에서 창당발기인대회를 개최한다.
  • 정주영씨,곧 신당창당/“올해부터 그룹서 손떼… 새일 하겠다”

    ◎이달중순 구체일정 발표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이 3일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정명예회장은 이 날 42개 계열사 사장단이 참석한 시무식에서 『지난 12월 31일자로 그룹의 경영에서 완전히 떠나 새로운 일을 하겠다』고 공식발표했다.현대측은 앞으로 현대그룹은 정세영회장 책임하에 경영될 것이며 정명예회장은 현대그룹 경영과 결별하게 된다고 밝혔다. 현대측은 또 정회장이 하려는 새로운 일이란 정치참여라고 밝히고 그가 직접 새로운 당을 만들지,또는 참신하다고 생각하는 인사들을 뒤에서 후원하는데 그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계에서는 정회장이 곧 신당을 창당,오는 3∼4월경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내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한 20명 이상의 당선을 겨냥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 출마까지 신중히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명예회장은 이날 하오 퇴근중 엘리베이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신당창당 여부에 대해 『이달 중순쯤 사무실을 따로 낸뒤 구체적인 계획과 일정을 자세히 밝히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단행된 현대그룹 임원인사에서는 지난 연말부터 서울 강남을구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검토한다고 밝힌 이명박현대건설회장이 현대엔지니어링회장·현대종합목재산업회장·현대자원개발사장등 그가 맡아온 4개직을 모두 내놓고 퇴임함으로써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 “금권정치 배격”… 국민적 바람과 먼거리

    ◎「현대신당」 창당을 보는 부정적 시각/신뢰­비전 없이 돈으로 승부거는건 노욕/“기존 정치·경제계 불신 가중”… 공감 우려 그동안 말로만 떠돌던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의 신당창당설이 사실로 확인됨에 따라 정치권이 긴장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회장이 신당을 창당할 경우 기존의 정치권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면밀히 분석하는 등 벌써부터 대응전략을 마련하는데 부심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정회장의 신당이 실패할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민자당에서는 우선 정회장이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국민들의 정치인과 정치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겠지만 정회장 역시 국민들의 눈에는 정경유착의 온실 속에서 커온 재벌회장으로 비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의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신뢰와 비전을 주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국민들이 참신한 인사들로 구성된 신당창당을 희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회장과 같은 구시대의 인물이자 재벌이 주도하는 신당을 바라는 것은 결코아니라는 지적이다. 정회장은 현 정치권을 불신하는 국민여론에 편승해 자신의 6공화국에 대한 불쾌한 감정,그리고 돈밖에 내걸고 있는 것이 없다는 의견들이다.재계에서도 정회장에 대한 눈초리가 곱지만은 않다는 분석이다. ○…정회장은 강원도와 경기도등 중부권을 중심으로 영호남권이 함께 참여하는 범지역정당 결성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현대그룹산하 노동조합연합체로부터 지원을 받기로 약속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정회장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강원도민들이 영호남권의 사람들이 양금씨를 지지하듯이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대산하의 노조연합체도 기본적으로 조합원들의 복지향상등 노동운동을 위한 단체이기 때문에 정회장을 돕는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민자당은 특히 정회장이 영입인사가 적어 애를 먹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양순직전의원과 현대정공 고문인 윤성민전국방부장관,현대사회연구원회장인 최순수전외무부장관,이명박현대건설회장 등이 거론되고 있을뿐 그밖의 인사는 거의 마치 안개에 싸여있는 형국이다. 이는 정회장과 접촉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우선은 집권당인 민자당이나 통합야당인 민주당의 공천을 희망하면서 만약에 낙천할 경우를 대비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회장이 대권후보가 되지 못할 경우 탈당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김영삼대표와 연계할 수도 있다고 점치고 있지만 대부분의 정치권인사들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대표가 대권후보가 되지 못해 탈당한뒤 정회장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권력을 잡기위해,즉 대통령이 되기 위해 3당합당을 했다가 그것이 안되니까 재벌과 다시 손을 잡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그럴 경우 김대표는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잃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간간이 흘러나왔던 정주영씨의 정계진출설 및 신당 창당설이 3일 상당히 구체화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자 민주당에서는 일체 공식적인 언급을 삼가며 정씨의 행보가 정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정씨의 신당이 창당될 경우 다소간 친여세력의 집합체일 것으로 분석해 야권보다는 여권에 타격이 갈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재벌의 정치참여」라는 유례없는 행태가 정치불신이라는 국민일각의 비판을 증폭시킬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특히 민주당은 정씨가 막대한 자금력으로 여권의 영입대상인사들을 끌어모으거나 또 현재까지 미미했던 「정치개혁협의회」나 「태평양시대위원회」와 연대할 경우 강력한 야권의 도전세력으로 부상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까지 가지는 상태이다. 한 당직자도 『정씨가 당을 만든다고 하니 여든 야든 어느쪽에 도움이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재벌이 정치를 한다는 것이 엄청난 국민적 비난을 받을 것이며 이 사실은 여든 야든 정치불신의 비난에 휩싸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 당직자는 『정씨가 개인재산이 수조원이나 되고 당장 주식을 매각해 손에 쥐고 있는 돈만 1천4백억원이나 된다』면서 『정씨 그룹이 선거에 나서 돈을 뿌려 댄다면 죽어나는 것은 돈없는 야당이 될 것』이라며 기존정치질서 파괴를 우려했다. ◎정 회장,정말 「현대」 손뗄까/「은퇴」 대신 「결별」 용어 사용/언제든 복귀여지 남겨둬 현대그룹 정주영명예회장이 3일 그룹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새로운 일」을 하겠다고 공식 발표함으로써 그동안 끈질기게 나돌던 그의 정치 참여가 거의 확정적인 것으로 돼가고 있다. 정회장의 한 측근은 『정명예회장이 기회있을 때마다 「새로운 일을 하겠다」고 말한 것은 그동안의 정황으로 미루어 볼때 바로 정치참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신당창당설에 대해서는 『정회장이 아무리 지역사회를 위해 활동을 많이 했지만 새로운 정당을 만들만한 조직은 못되며 직접 참여보다는 일부 「참신한」정치인을 돕는 선이 될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또 다른 측근은 정회장이 직접 신당을 창당,정치일선에 나설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수 없다고 말하고 있어 정회장 자신이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기 전까지는 어떤 형태의 「정치참여」가 될지는 알수 없는 상태이다.지난 87년 그룹회장을 동생 정세영씨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이후에도 그룹경영의 대소사를 모두 직접 처리해왔던 정회장이 앞으로 과연 그룹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뗄것인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그러나 현대그룹측은 정회장이 명예회장자리를 내놓고 3일자로 단행된 그룹 임원 인사에서도 일체 관여하지 않았으며 현재 서울 종로구 계동 본사사옥 12층에 있는 사무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문제까지 검토하고 있을 정도로 이번에는 완전히 그룹경영에서 손을 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현대그룹의 다른 임원은 『정회장이 재계「은퇴」란 단어 대신 굳이 「결별」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다시 경영에 참여할 여지를 남겨 둔 것이 아니겠느냐』고 완전 결별에 대한 회의를 보이기도 했다.
  • 미 KKK보스 미 주지사에 도전

    ◎공화당 듀크후보,루이지애나주서/“놀고 먹는 흑인” 노골적 인종차별 발언/“세금감면” 공약으로 남부 백인들 지지 백인우월주의자가 미국의 주지사에 당선될 수 있을 것인가.16일 실시되는 루이지애나주지사 선거는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평가라는 점에서 미국인 뿐 아니라 전세계인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번 결선투표에서 주지사 3선 경력의 에드윈 에드워드 후보(64·민주당)와 백중세를 보이며 대결하고있는 데이빗 듀크후보(41·현주하원의원)는 백인우월주의 비밀결사단체인 쿠 클룩스 클랜(KKK)지도자와 나치주의자 경력을 갖고있어 흑인과 유태인들로부터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고있는 인물.중학교때부터 백인우월주의와 순수혈통보존에 관한 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한 이래 대학시절에는 나치제복을 입고 시위를 하며 자신이 나치주의자라고 공언하고 다녔고 졸업후에는 KKK단원으로 활동,75년에 최고지도자가 됐다.그러나 그해 주상원의원선거에 출마,낙선하면서 인종차별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79년 KKK와 결별한 뒤 89년 마침내 2백27표의 근소한 표차로 주하원의원에 당선됐다.그후에도 의원사무실에서 백인우월주의 및 나치관련서적을 판매하고 『백인들만 사는 나라는 지구상에 아이슬란드밖에 없으나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백인우월주의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듀크는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밝혔으나 선거참모였던 보브 호크씨는 그가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고 그가 다닌다는 교회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아직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간주할 수 밖에 없다며 듀크와의 결별을 선언했다.인종차별주의에 대한 비난여론이 비등함에 따라 조지 부시대통령은 공화당원인 듀크를 공화당원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듀크후보는 록음악 연주회같이 떠들썩한 선거유세를 통해 「놀고먹는 흑인들」같은 용어를 서슴없이 구사해가며 이들에 대한 사회복지를 낭비라고 비판하고 세금 감소를 선거공약으로 내걸고있다.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세금감소 공약에 솔깃해하거나 체질적으로 흑인들에 대한 반감을 갖고있는 미국남부백인들의 지지를 받아 에드워드후보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 소,KGB해체 결정/정보기구 3개 새로 창설

    ◎국가평의회/경제협정 초안도 승인 【모스크바 AFP AP 연합】 소련 과도기 최고 통치기구인 국가평의회는 11일 국가보안위원회(KGB)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다고 비관영 인테르팍스통신이 보도했다. 독립적인 논조를 견지해온 인테르팍스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 주재로 10개 공화국 지도자와 주요 연방 각료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날 개막된 국가평의회가 이같이 표결했다고 전하면서 첩보 및 국경수비 등 안보업무를 관장할 새로운 기구들을 창설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소 연방 과도기 내각을 이끌고 있는 이반 실라예프 러시아공화국 총리는 이날 소련의 장래를 결정할 경제협정이 오는 15일 서명된다고 밝힘으로써 「새로운 소련」이 곧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임을 예고했다. 인테르팍스도 이와 관련,국가평의회가 경제협정 초안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소 연방조약과 함께 향후 소련을 이끌어갈 근간이 될 경제협정 체결과 관련,일부 공화국이 금융 등 주요 부문에 대한 중앙의 통제에 불만을 품고 이를 받아들일 수없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등 마찰이 적지않아 서명에 앞서 상당부분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인테르팍스는 또 국가평의회가 KGB를 해체하고 이 기구가 그동안 관장해온 첩보 및 국경수비 업무를 관장할 독립적인 성격의 3개의 중앙정보기구와 공화국간의 문제를 담당할 위원회 등이 설치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회의에는 이미 독립한 발트3개 공화국을 제외한 나머지 12개 공화국중 그루지야 및 몰도바(구 몰다비아)를 제외한 10개 공화국 지도자와 실라예프 총리,가브릴 포포프 모스크바 시장,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전 외무장관 및 경제협정 초안작성을 주도해온 급진 경제학자 그리고리 야블린스키 등이 참석했다. 한편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은 협정안을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그러나 공화국들에 대한 중앙은행의 통제와 외채분담문제 등 장애요인이 『조속히 제거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공화국 최고회의 의장(대통령)도 이날 국가평의회 회동후 기자들에게 경제협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관측통들은 러시아공이 앞서 협정내용이 중앙의 통제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서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위협해 왔음을 상기시키면서 옐친의 「태도 변화」등이 경제협정 실현에 부심해온 고르바초프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숙청·암살·테러… 「공포의 권부」/해체되는 KGB 「어둠의 역사」/레닌이 반혁명분자 제거위해 창설/스탈린시대엔 2천만명 숙청… 악명 떨쳐/케네디·지아 대통령 암살등 연루 혐의 볼셰비키혁명 이래 「공포의 권부」로서 소련국민은 물론 전세계를 무대로 테러,암살,음모 등 온갖 악행을 저질러온 KGB(소련국가안보위원회)가 마침내 그 오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이끄는 국가평의회는 11일 KGB의 해체를 공식 결정하고 독립적인 성격의 중앙정보기구와 첩보 및 공화국간 국경문제 등을 담당할 위원회를 새로 설치해 그간 KGB가 맡아온 업무 일부를 맡길 것으로 알려졌다. KGB의 해체는 공산당의 해체와 공산주의의 몰락,그리고 소 연방의 해체 등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KGB의 가장 큰 임무가 바로 공산당으로 대변되는 구체제 가치를 수호하는데 있었고 이제 더 이상 지킬 가치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직후인 8월28일 KGB의 최고기구인 간부협의회를 해체하고 KGB의 주력부대인 국경수비대 20여만명을 국방부로 이관하는 등 KGB를 사실상 해체하기 위한 첫 조치를 취했었다. 그보다 이틀전인 26일 소련 국민들은 KGB본부앞 광장에 서있던 KGB 창설자 제르진스키 장군의 동상을 끌어내려 이 기구에 대한 소련국민들의 증오심이 얼마나 깊은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레닌은 볼셰비키혁명 직후인 1917년 12일 반혁명 음모에 대항한다는 목적으로 KGB 전신인 체카를 창설했다. 당시 체카는 「반혁명」분자들을 재판에 회부하지 않고 처형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그리고 1919년말까지 1년 남짓 혁명수호라는 미명하에 1백만명 이상의 소련국민들이 정식재판 없이 처형됐다. KGB가 소련국민들에게 진짜 공포의 대상으로 등장한 것은 스탈린의 철권통치를 거치면서부터이다. 스탈린은 자신의 독재권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이 조직을 이용,내외국민에서 정적에 이르기까지 상대를 가리지 않고 테러를 자행했다. 1935년부터 3년여 동안 합동국가정치보안부(OGPU)라는 이름하에 KGB는 악명높은 베리야의 지휘아래 전국민을 대상으로 피의 숙청을 단행했다. 이렇게 숙청된 사람이 2천만명. 당간부만 해도 수십만명이 숙청당했다. 지금도 KGB의 규모는 국내 사찰요원 4만명,해외 공작요원 2만명,국경수비대 20여만명,기타병력을 합쳐 약 6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불과 얼마전까지 이들은 소련국민들을 대상으로 철저한 사찰활동을 벌이는 외에 국제무대에서 쿠데타,요인암살 등 공포의 막후역할을 맡아왔다. 멀리는 스탈린의 정적 트로츠키 암살,케네디 암살,81년 교황암살기도,가까이는 88년 8월 파키스탄의 지아 대통령 암살사건에 이르기까지 숱한 국제적 음모사건에는 항상 KGB의 「검은 손」이 연루혐의를 받았다. 8월 쿠데타에 크류츠코프 KGB의장이 주모자로 가담한 것은 수년간 계속된 페레스트로이카정책에도 불구하고 이들 조직이 얼마나 뿌리깊게 구습에 젖어있었는가를 보여준 좋은 예였다. 국가평의회가 밝힌 새 정보조직이 과연 어느 정도 과거 KGB와 다른 모습을 보일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하지만 KGB의 해체는 소련의 국가권력이 미행,음모,테러 등으로 대변되는 어두운 과거와 진정으로 결별하는 또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 “「USSR」는 지도서 사라졌다”/소련 「과도체제」출범의 의미

    ◎연방가입 여부는 각 공화국에 일임/주권따로·경제는 연합… 어색한 살림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이 세계지도상에서 사라졌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바탕으로 한 공산종주국 소련이 74년간의 생애를 일기로 목숨을 거두고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새로 태어날 나라는 아직 이름도 정해지지 않았고 형체도 명확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도기를 거치면서 모습을 드러낼 신생국은 인권불가침,사회정의와 대의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국가로서 예전보다 훨씬 느슨한 형태의 「주권국가 연방」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소련 인민대표대회가 4일 공화국들의 의사에 바탕을 둔 새로운 국가간 체제를 만들기 위한 과도기를 선포하면서 국가존립형태의 변형을 내용으로 한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바로 「소련」의 사망신고를 의미한다. 이로써 지난 8월19일 발생한 불발쿠데타 이후 혼미를 거듭해오던 소련정국은 과도체제를 출범시키면서 일단 급격한 연방붕괴위기를 넘기고 수습의 가닥을 잡게 됐다. 각 공화국들이 주권국으로 독립하면서아예 확실하게 결별을 선언하지 못하고 주권국가 연방이라는 역사상 유례없는 애매한 개념을 도입해 어색한 한집살림을 꾸려가기로 결정한 것은 과거 74년간에 걸친 공산당 1당독재치하에서 시행된 철저한 중앙통제식 계획경제의 후유증을 하루아침에 씻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각 공화국들은 편중된 산업특화정책 때문에 당장 자급자족하거나 경제독립을 이룩할 형편이 못되는 것이다. 새로운 국가의 형태는 주권국 연방이지만 정회원국과 준회원국으로 나뉘어져 사실상 국가연합과 경제공동체의 혼합형태에 가깝다. 연방가입 여부가 전적으로 공화국의 결정에 달린 가운데 10개 공화국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함께 주권국 연방을 공동발의했고 13개 공화국이 급진적 자유시장경제학자인 샤탈린으로 하여금 새로운 경제공동체 창출계획을 수립하도록 승인한 상황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발트3국의 독립을 허용하는 포고령을 발표했기 때문에 발트3국은 거의 완전히 독립하면서 주권국 연방의 준회원국이 됨으로써 경제공동체의 일원으로 남게될 것으로 보인다. 라트비아는 독립이 인정될 경우 주권국 연방에 합류할 뜻을 밝혔다. 나머지 공화국들은 주권국 연방의 정회원국이 되지만 내정과 외교에 있어서 자율성을 보장받고 국내법을 상당부분 우선시하게 된다. 군사분야에 있어서도 핵무기 통제권은 연방이 갖되 연방합동군과 공화국군이 병존하는 양상을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화국간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경우에 한해 경제문제는 공화국간 경제위원회에서,나머지 제반문제는 연방대통령과 공화국 지도자로 구성되는 국가평의회에서 조정하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정회원국과 준회원국의 역할구분이 아직도 불분명한 상태이고 얼마나 많은 공화국이 주권국 연방에 가입할지도 미지수인 상태다. 실라예프 연방총리는 소련의 공화국 뿐만 아니라 체코·헝가리·폴란드 등 동구권 국가들도 경제공동체에 동참할 수 있다고 밝혀 구체적인 연방형태가 확정되기까지는 앞으로도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고르바초프는 연방의 와해를 방지하고,비록 약화된 것이기는하지만 일단 권력유지에 성공한 셈이다. 연방전체 면적의 70%를 차지하는 러시아공화국의 옐친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게 됐다. 소련을 대체할 신생국은 인민대표대회 결의안에도 명시돼 있듯이 자유시장경제로의 전환과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 경제·정치적 개혁을 가속화시킬 것이 확실하다. 경제난 해소를 위해서는 군비증강에 힘을 기울일 여력이 없는 데다가 서방세계의 지원이 필수부가결하기 때문에 페레스트로이카 추진이후 조성된 국제정세의 데탕트 기류는 완전히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소련의 경제상황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서방의 지원도 여의치만은 않을 전망인 데다가 소수민족의 독립연쇄반응 우려마저 현실화되고 있어서 상당기간의 혼란이 불가피하다. 연방최고회의의 폐지와 핵무기 일방감축을 저지시킨 보수파 잔재들의 세력도 아직 무시못할 정도다. 결국 이 나라의 안정여부는 소련 국민들이 나면서부터 이제까지 적당히 일하는데 익숙해져 있는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고난을 감수하면서끝까지 개혁을 추진할 의지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달렸다.
  • 옐친의 소련/공산독재 막 내리다:8

    ◎본사 해외특파원 다각 진단/“국제공산주의운동 이젠 소멸 단계”/친소 국가들 약화,미의 신질서 주도 가속/소 권력 주체 모호… 시장경제 정착 미지수 소련공산당의 몰락은 사필귀정이라는 말로 대신된다.74년동안을 국민위에 군림하며 1당독재를 펴온 공산당은 당초부터 허물어질 수 밖에 없는 허망한 이론의 모래성에 불과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종주국 소련에서 까지 공산주의가 몰락해가는 현상은 바로 구시대를 마감하고 인류의 새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서울신문사특파원들의 다각전화대담을 통해 소련공산당의 종언에 대한 세계각지의 분석과 전망을 종합해 본다. ▲이기동모스크바특파원=쿠데타 다음날인 20일 상오부터 러시아공화국의사당 주변에 몰려들기 시작한 시민들의 표정을 보고 공산당의 운명은 이미 끝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소련 국민들에게 있어서 공산당은 부정 부패 무능 억압 경제난등 모든 재앙을 가져온 주범으로 인식돼있으며 공산당의 해체는 곧 어두운 과거와의 결별을 뜻합니다.공산주의라는 74년에 걸친 실험의 실패선언을 하지않을 수 없었던 거죠. ▲최두삼홍콩특파원=중국에서도 소련 쿠데타의 실패로 이제 국제공산주의운동이 단순한 퇴조기가 아닌 소멸단계로 접어들었음을 감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하지만 중국지도층은 공산주의의 몰락원인이 체제자체의 모순이라기 보다는 서방측의 집요한 파괴공작 때문으로 보고 중국공산당만이라도 보존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김영만모스크바특파원=이제 소련 정국의 주도권은 옐친러시아공대통령이 쥐고 고르바초프연방대통령은 그저 옐친이 하는대로 따라가는 양상입니다.그러나 고르바초프가 다시 기력을 회복한뒤 두사람이 계속 협조관계를 유지할지는 의문입니다.이번 쿠데타에서 드러났듯이 군 KGB내 사람들의 의식도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설사 제2의 쿠데타가 일어나더라도 성공하기는 어렵다고 보여집니다. ▲김호준워싱턴특파원=부시 미대통령은 공적으로 소련의 지도자와 정책은 소련국민이 선택할 일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적으로는 소련을 민주주의의 길로 이끈 고르바초프를 선호하고 있는 반면 옐친에 대해서는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국제적으로 입증되지 않은데다가 사적인 친분관계가 없다는 점등을 들어 탐탁치않게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이기=소련의 경제문제는 정치문제보다 훨씬 심각합니다.실제로 이번 겨울 기아와 혹한피해의 우려가 도처에 나타나고 있습니다.새경제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있지만 묘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시장경제화라는 대전제는 서있지만 금융 기술 인력등 하부구조가 전혀 없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계획도 실행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남보다 더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는 사회에서 70여년을 살아온 소련국민들의 소위 사회주의의식 청산도 큰 과제입니다. ▲임춘웅뉴욕특파원=그같은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미정부는 소련에 현금지원을 않기로 한 지난 7월 G7 정상회담의 결정사항에 관한 변경논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입니다.부시대통령은 식량과 같은 인도적인 원조의 즉각증대에도 반대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미의회의 민주당 지도부는 미국방예산에서 10억달러를 떼어내 이번 겨울소련에 대한 식량·의약품및 기타 인도적 원조에 전용하자고 주장하고나서 워싱턴의 대소원조정책이 어떻게 변화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변우형도쿄특파원=일본은 소련국내가 여전히 유동적인데다가 북방영토문제마저 걸려있기 때문에 대소원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기백베를린특파원=소련의 올 국민총생산이 15% 감소하고 인플레가 2백5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6백40억달러나 되는 외채를 상환할 능력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강문파리특파원=서방측이 새로운 차관보다는 식량·육류등 소비재 위주의 긴급처방에 중점을 두면서 소련의 개혁조치의 진행상황에 따라 지원하겠다는 기본자세를 취하는 것은 대소지원을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고 보는 시각때문입니다. ▲김영=소련에서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은 신연방조약 체결인 것 같습니다.국가의 틀이 빨리 잡혀져야 공화국간 경제협력과 서방세계의 대소지원등 제반조치들이 뒤따를 수 있는데 지금은 국가의 주체가 모호한 상태입니다. ▲김호=부시미행정부관리들은 『소련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문제는 무엇이 그자리를 메우느냐』라고 말합니다. ▲최=소련의 격변을 계기로 중국 북한 베트남 쿠바 등 잔존공산국들이 어떤 변화를 보일 것인지도 관심거리입니다.이들 국가는 주민들의 의식과 경제수준이 낮고 혁명1세대가 집권하고 있는게 특징입니다.이 3가지가 개선될 때까지는 집안단속만으로도 현체제를 유지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역사의 흐름이 타게될 것 같습니다.아마도 북한이 이 지구상 최후의 공산국가가 될 것이라는 흥미로운 전망도 나오고 있어요. ▲김호=소련의 붕괴는 모스크바가 지난 50년대부터 전세계에 구축해온 친소정권망의 최종해체를 가져올 것이고 이에따라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이 냉전이후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처한다는 구실로 추진해온 군비증강의 정당성이나 군사동맹·해외기지유지등의 논거는 파괴될 것입니다.미국은 소련이 배제된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신세계질서를 주도해 나갈 것이 확실시됩니다. ▲변=한반도정세에 있어서도 소련사태는 궁극적으로 북한의 개방을 통한 긴장완화에 이어 통일로 나가게 하는 중요한 촉매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 “열심히 일하는 한국인상 복원해야”/정 총리 「국민과의 대화록」

    ◎소 사태로 북한지도부 인식변화 기대/총리회담 통해 평화통일 새 전기 마련/농산물 수입억제로 농가피해 최소화 ▲정원식국무총리 국정보고=이제까지 6공화국정부가 해온 일에 대해 국민들이 미흡하게 생각하는 점도 없지 않았으나 정부로서는 노태우대통령의 6·29선언으로 큰 물꼬가 트여진 민주·통일·번영이라는 역사적 소명완수에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특히 말없는 대다수 국민이 폭력과 혼란을 거부하고 사회안정과 계속된 번영을 희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방의회 선거결과를 통해서 확인됐다. 요즈음은 소련이 74년동안 유지해온 공산주의 체제로부터 결별을 해 전세계가 놀라고 있다.여기서 우리가 새롭게 인식할 것은 해방이후 남북분단의 비극적인 상황속에서 남쪽의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택하여 대한민국을 수립한 것이 매우 다행스럽고 또한 역사적으로 정당하여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한자리수 물가안정을 유지한다는 목표아래 통화가 늘어나는 폭을 17∼19%범위에서 억제하고 부동산투기가 조절되도록 토지초과이득세를 올 가을부터 과세하겠다. 이제 정부와 국민은 민족사의 큰 전환기에서 국민적 저력을 한데 모아 한국경제의 제2도약을 제창해야 하며 이를위해 과거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하는 한국인상을 복원해야 한다. ­4차남북고위급회담이 콜레라를 이유로 무산됐다.앞으로의 회담 전망과 이 회담이 통일에 어느정도 기여할 것인지(연천군 의회의장 이상천·45). ▲정총리=남북관계가 하루아침에 해결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정부는 양측간 화해와 신뢰회복에 역점을 두고 있다.화해와 협력을 통한 민주적인 방법으로 통일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기본틀이 마련될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평화통일의 새로운 전기를 이룰수 있게 될것이다. ­미군 전지역이 군사시설보호법과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저촉돼 건물의 신·증·개축과 공업단지 유치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군사지역 보호구역 축소로 지역개발이 요망된다(바르게살기운동 포천군협의회회장 이길세). ▲이종구국방부장관=국방부는 이미 동두천시 일대 3백20만평과연천·전곡등 7개지역 1백20만평을 군사시설 보호구역에서 해제한 바 있다.정부는 앞으로 보호구역을 축소해 나갈 계획이며 방어진지 개념을 수정,경직된 방법에서 탈피해 평소에는 시민들이 생활하고 전시에는 방어진지개념이 도입될수 있는 지역을 늘려 나가겠다. ­수입자유화에 따른 국내 축산농가보호대책에 대해 설명해달라. ▲조경식농림수산부장관=수입 급증으로 농가피해가 우려되는 품목에 대해서는 대외무역법에 의한 산업피해 구제 제도와 관세제도를 적극 활용,수입을 억제하고 농가피해를 최소화하겠다.또 국내 축산농가보호를 위해 육성시책을 적극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소련의 급진개혁이 한반도 통일에 미칠 영향은. ▲송한호통일원차관=단기적으로 북한은 더욱 움츠려 들 것이나 장기적으로 민주화 및 개혁·개방을 촉진하게 될 것이다.그러나 북한은 군사적으로는 소련무기 체계에 의존하고 있어 군사·과학기술차원에서는 소련과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정치·경제적으로는 중국을 모델로 해 제한적인 개방을 시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만약 이번 사태 영향으로 북한 지도층이 인식을 전환하거나 온건·개혁그룹이 부상하게 된다면 남북간의 평화정착은 예상보다 빠를 수도 있다고 본다. ­지방자치제실시에 따른 지방의 재정적 확충방안은(양주군 여성단체협의회장 홍점분·55). ▲최인기내무부차관=지방의 세수확대를 위해 신세원의 발굴및 수수료의 현실화,민자유치,공영개발사업확대등 세외 수입증대를 꾀하고 있으며 지방채 발행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역개발금융금고」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의정부∼동두천간의 전철화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이에 대한 정부측 입장은(동두천국교교장 심상옥·60). ▲장상현교통부차관=의정부∼동두천간 전철화계획에는 총 1천2백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내년도에 철도청으로 하여금 본격적인 타당성 조사를 실시토록 해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면밀히 검토토록 하겠다. ­양주군 지역에는 1천47개의 중소기업체에서 2만5천여명의 근로자가 있으나 공업계 고등학교가 없어 인력난등 불편을 겪고있다.설립을 허가할 계획은 없는지(양주군 석정국교교장 이주용·62). ▲조규향교육부차관=양주군내에 공고를 설립할 것인지 또는 기존학교를 확대할 것인지를 경기도 교육감으로 하여금 검토토록 하겠다.
  • 고르비,신당후보로 출마 유력/소 새 연방대통령 선거 전망

    ◎신연방조약 내용따라 위상 크게 변화/“명목상 원수” 확실… 후보난립 없을듯/민주진영 셰바르드나제·보수파선 리슈코프 물망 새로운 소연방대통령의 조기선거는 새 연방조약의 체결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새 연방조약이 어떤 모양으로 체결되느냐에 따라 연방대통령 선거의 양상도 달라질수 있기 때문이다.연방정부의 권한이 축소될수록 연방대통령은 입헌군주제하의 왕과 비슷한 기능만을 수행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그렇게 되면 연방대통령의 선거 자체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수 밖에 없게 된다. 현재 소련의 상황으로 볼때 연방정부의 권한이 점점더 개별 공화국들로 이전될 것이란 점은 거의 확실하다.이같은 전망을 바탕으로 많은 소련문제전문가들은 앞으로 소련의 정치구도에 대해 옐친이 정책안을 제시하고 고르바초프의 추인을 받아 옐친이 이를 집행하는 양상으로 정착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이는 소련정치가 연방대통령과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라는 2중구조하에 펼쳐질 것임을 의미한다. 이처럼 연방대통령이 명목상의 국가원수로 전락할때 연방대통령직이 갖는 매력은 크게 감소할수 밖에 없다.따라서 연방대통령에 출마할 후보의 범위도 상당히 좁혀질수 있을 것이다. 연방대통령에 누가 출마할 것인가를 점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그러나 현재까지의 소련정황을 종합해보면 연방대통령에 출마할만한 인물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할수 있다.이제까지 소련개혁의 상징인물이었던 고르바초프,급격히 부상하는 새 별 옐친,민주개혁진영에서의 후보로서 셰바르드나제등이 연방대통령후보로 거론되고 있다.해체의 길을 걷고 있는 공산당등 보수세력에서 리슈코프 전총리등을 후보로 내세울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수만은 없다.그러나 보수진영에서 후보가 나온다 해도 승리할 가능성은 전혀 기대할수 없는만큼 이는 논외로 쳐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알렉산드르 루츠코이 러시아공부통령은 26일 고르바초프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표명하고 옐친이 고르바초프에 도전,새 연방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데 관심이 없으며 현재 옐친과 고르바초프간의 좋은 관계가 향후 5년간 계속 유지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이는 옐친의 불출마를 시사한 것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사실 옐친으로선 실권도 없는 명목상의 연방대통령에 취임,험난한 소련경제개혁의 앞날에 대한 책임을 지는것보단 강력한 권한을 보유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책임이 적은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훨씬 매력적일지도 모른다. 고르바초프의 출마가능성에 대해서도 엇갈린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일부 관측통들은 고르바초프가 26일 연설에서 이번 쿠데타에 자신도 책임이 있음을 시인한 점을 들어 고르바초프가 연방대통령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소련개혁의 창시자이고 독재하에서 숨죽이고 있던 소련을 오늘의 시민사회로 변모시킨 장본인이다.또 소련이 어떤 급격한 변혁을 겪는다 해도 아직까지는 고르바초프의 힘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르바초프도 26일 연설에서 자신이 시작한 개혁을 완결시키겠다는 강력한 희망을 피력한 만큼 공산당을 대신해 새로 창설될 신당의 후보로 고르바초프가 연방대통령에 출마할 것이라는데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할수 있다. 고르바초프가 개혁파와 보수파간에서 확고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개혁을 지연시켰다는 비난과 함께 고르바초프 진영에서 이탈한 민주개혁진영에서 후보를 내세울 가능성도 점칠수 있다.민주개혁진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셰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을 들수 있다. 민주진영에서 후보가 나오느냐의 여부는 연방대통령 선거일이 언제로 결정되는냐에 따라 달라질수 있을 것이다.이미 공산당과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한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선거까지의 남은 기간동안 이제까지 소련개혁의 상징이었던 자신의 이미지를 회복할만큼 적극적으로 개혁을 추진해 나가고 옐친과의 원만한 협조관계를 유지할수 있다면 이들이 자신들의 후보출마를 포기할수도 있다.그럴 경우 고르바초프의 단독출마로 연방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도 매우 크다. 쿠데타로 정치적 위상에 큰 타격을 받은 고르바초프에겐 이번 선거가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판가름할 중요한 선거가 될것이다.
  • 옐친에 사실상 대권 이양/“공산당 해체” 무엇을 의미하나

    ◎반공 대세에 고르비 “정치적 패배”/개혁발걸음·공화국독립 가속화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이 공산당서기장직 사임을 선언하고 공산당 중앙위의 해체를 촉구하면서 공산당 재산 몰수를 선언한 것은 이미 몰락의 길로 접어든 공산당이 최후의 보루마저 상실하는 동시에 고르바초프의 입장에서도 앞으로의 어떤 상황도 감수하겠다는 정치적 패배선언을 의미한다. 고르바초프는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뒤 공산당 반대 분위기가 팽배한 가운데 대통령직에 복귀하면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보수반동세력을 제거해 공산당으로 하며금 페레스트로이카의 중추역할을 맡도록 하겠다고 서슴없이 밝혔었다.공산당이 민주적인 국민정당으로 변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까지 남아있다고 믿었고 이제 개혁의 대세가 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에게 넘어가 버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그의 유일한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공산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불과 이틀만에 사실상 공산당과의 결별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할 수 밖에 없었던 데는 급격히 확산되는 공산당에 대한 소련국민들의 거부감과,특히 이같은 기류를 등에 업은 옐친의 거센 압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핵심각료 인선과정에서 옐친에게 끌려다니며 그의 요구에 전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었고 러시아공화국의회에서 연설을 마치고 나오다 군중들에게 야유를 받는 등 수모를 겪고있는 고르바초프로서는 더이상 버티기에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공산당원 전체가 무차별적으로 비난받아서는 안된다』고 말해 여운을 남기기는 했으나 그의 의도에 관계없이 공산당은 이미 붕괴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이제 소련 공산당은 더이상 집권당이 아닐 뿐 아니라 일부 동구권국가에서 처럼 불법화될 위기에 직면해있으며 소련의 실질적인 대권행사는 사실상 옐친의 손으로 넘어간 셈이다. 칼자루를 손아귀에 쥔 옐친은 시장경제로의 점진적인 전환을 추진해오던 고르바초프와는 달리 급진적인 전환을 추진하고있다.옐친의 측근인 실라예프현러시아공화국총리가 연방총리로 임명돼 정부구성위원회와 경제계획위원회를 이끌고 확고한 시장경제 신봉자들이 경제계획위원에 포함된 것은 향후 소련경제개혁의 가속화를 짐작케한다.소련의 보수회귀 가능성을 우려해 대소경제지원을 머뭇거려오던 서방세계의 태도도 적극적인 방향으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개혁 이외의 다른 대안도 없지만 그렇다고 소련경제의 앞날이 장미빛만은 아니다. 경제보다도 당장 더욱 큰 혼란에 휘말리게 되는 문제는 연방체제의 변화이다.과거 고르바초프의 연방정부는 발트3국 등 산하 공화국들의 독립추진에 대해 어떻게 해서든지 연방으로부터의 이탈을 저지하려는 입장을 취해왔다.그러나 옐친은 실세로 부상한 뒤 발트3국의 독립을 승인한다고 입장을 밝혔다.일부 공화국들의 탈소독립이 기정사실화단계에 들어간 것이다.이에 자극받아 2번째로 규모가 큰 우크라이나공화국도 24일 독립을 선언하는 등 소연방에서의 독립이 유행처럼 번질 전망이다.옐친이 이같이 여유있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자신이 이끄는 러시아공화국이 소련전체면적의 3분의2를 차지하는 등 대세를 좌우하고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다.그러나 독립열기가 군소자치주로까지 파급돼 걷잡을 수 없는 연쇄반응을 일으킬 경우 이 또한 만만치않은 문제로 대두될 수 밖에 없다. 소련은 비공산정권시대를 맞음으로써 개혁에의 최대장애물을 일단 제거하기는 했으나 개혁의 앞날은 아직도 험난하기만 하다. □소 공산당 약사 ▲1898년=러시아 사회­민주 노동당(RSLDP),민스크에서 1차 당대회 개최. ▲1903년=RSLDP 2차 당대회.레닌당이 직업적 혁명가로 철저하게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자신이 소속한 볼셰비키(다수파)와 멘셰비키(소수파)의 분열을 주도. ▲1917년=RSLDP,11월7일의 혁명에서 볼셰비키가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권력을 장악함. ▲1918년=RSDLP,러시아 공산당으로 개칭. ▲1921년=레닌,10차 당대회에서 민간기업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신경제정책(NEP) 제안. ▲1924년=레닌 사망.이후 수년간 당내투쟁이 전개되나 스탈린이 당권을 장악,트로츠키는 망명길에 오름. ▲1929년=스탈린,신경제정책 폐지.공업화및 농업의 집단화 운동에 착수함. ▲1934년=스탈린,17차 당대회에서 독재통치 강화. ▲1964년= 흐루시초프가 실각.레오니드 브레즈네프와 알렉세이 코시긴의 집단지도 체제 시작. ▲1982년=브레즈네프 사망.유리 안드로포프가 권력승계. ▲1984년=안드로포프 사망.브레즈네프의 측근이었던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권력승계. ▲1985년=체르넨코 사망.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권력 승계. ▲1986년=고르바초프,27차 당대회에서 조심스런 개혁과 당지도부 개편 시작함. 보리스 옐친,정치국 후보위원에 오름. ▲1987년=옐친,고르바초프및 정치국원들과의 불화끝에 당직 사임. ▲1990년=대통령제가 신설돼 고르바초프 인민대표대회에서 새로운 대통령에 선출됨.
  • 신민호/양분 위기 가속화/조 부의장 「자격정지」 이후의 기류

    ◎겉으론 일단 진화… 속으론 첨예 대립/주류/야권통합 논의 가시화… 추문탈출 모색/정발연/당 개혁 지켜보며 집단행동 명분 축적 남원지역공천비리설로 불씨가 댕겨진 신민당 내분사태는 발설자인 조윤형의원이 1년간 자격정지 처분을 받음으로써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주류측은 일단 제명조치에서 일보후퇴한 자격정지처분을 내려 선택의 공을 정치발전연구회측에 넘겨버렸고 정발연측은 이같은 조치에 크게 반발하면서도 집단탈당 등 즉각적인 대응은 유보하고 있어 물리적인 충돌은 피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징계파동의 근인인 공천관련비리설에 대해서는 서로가 납득할수 없는 수준에서 징계가 매듭됐기 때문에 당내분은 수습됐다기 보다는 일시 미봉책으로 그친것이 분명하다. 주류측은 조의원이 명확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감정의 앙금을 남겨놓고 있고 정발연측도 『제명조치나 1년간 정직이나 효과는 같다』고 반발하고 있어서 쟁점을 야권통합및 당내개혁문제로 옮겨 일대 결전을 벌일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내분의 불씨였던 『김대중총재의 가족이 남원지역 공천과 관련해 조찬형씨로부터 금품을 받았고 증거인 수표사본까지 있다』는 설에 대해서는 정발연측이 해명하지 않았고 주류측도 진의를 규명하지 못하고 결론을 내린 셈이됐다. 다만 공천추문과 관련한 갈등은 피차 명분면에서 불리하다는 일부의 공감대 때문에 한발짝씩 양보해 갈등사태를 봉합한것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최악의 상태인 「결별」은 막았지만 내분의 불씨였던 공천비리설에 대한 진상규명도 불투명하게 넘긴데다 주류측과 정발연간 갈등의 본질인 「당내개혁문제」「야권통합」「김총재 측근의 전횡」등에 대한 결말을 짓지 못했기 때문에 분쟁은 재연될 소지가 크다. 주류측이 당초 제명방침에서 자격정지쪽으로 선회한 배경은 두가지로 짚어볼수 있다.하나는 공천비리설과 관련해 조의원을 제명할 경우 조의원은 물론 일부 정발연멤버가 탈당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볼수 있다.또 확대해봤자 아무런 이득도 없는 공천추문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정발연의 집단행동을 유보시켜 명분을회복하겠다는 시간벌기 전략으로 이해된다. 정발연으로서도 공천비리설만으로는 집단행동의 명분이 약한만큼 주류측의 야권통합을 지켜본뒤 집단행동의 명분을 축적하겠다는 의도에서 제명조치와 별반 다름없는 정직조치에도 불구하고 집단대응을 유보한 것으로 보인다. 양측의 입장을 볼때 공천비리설을 둘러싼 양자간의 대립은 「징계조치 일부완화」와 「포괄적인 사과」로 일단락됐다고 보이지만 야권통합 문제및 당내개혁문제에 대한 대립은 더욱 첨예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류측은 비록 의도했던 공천비리설의 무혐의는 입증되지 않았더라도 예상되는 정발연의 조직적인 반발을 와해시킬 시간은 벌었다고 평가하는듯 하다.그동안 물밑대화를 계속해왔던 민주당과의 통합협상을 가시화시키는 한편 신민당의 통합안을 공개해 「야권통합의 의지가 없다」는 정발연의 공세를 무력화시켜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과정에서 정발연측 멤버들과 개별접촉해 당내통합협상에 끌어들인 다음 설사 야권통합이 되지 않더라도 정발연의 집단행동으로 인한 당의 상처는최소화 하겠다는 속셈이다.주류측이 「조의원의 태도여하에 따라 자격정지조치를 해제할 수도 있다」고 강조한 것은 정발연내에서도 통합문제나 집단대응시점 등에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 분위기를 겨냥한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이번사태는 주류측이 요구했던 「정발연의 백기투항」이나 정발연측의 「당내개혁」주장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휴전상태로 돌입했기 때문에 내분은 장기전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 정발연측으로서는 야권통합이 가시화될 경우 더이상 주류측에 대한 공세의 명분을 잃어버리겠지만 통합불가능쪽으로 결론이 내려진다면 어떤 형태로든 행동방향을 결정해야되기 때문이다.
  • 민중당,현실적 개혁노선으로 선회/오세철교수등 3명 제명 안팎

    ◎「실무자회의」등 좌파세력과 잇단 결별/총선 앞두고 대중성 확보 노린 자구책 민중당이 현실에 기초한 개혁노선 정립을 위해 껍질을 벗는 아픔을 감내하며 「거듭나기」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창당이래 당강령 해석문제를 둘러싸고 이념갈등을 겪어왔던 민중당은 최근 당의 노선을 「사회민주주의에 입각한 민주적 개혁노선」으로 확정하고 당내 좌파세력과의 결별을 선언했다.민중당은 지난15일 당내 좌파세력인 「실무자회의」의 핵심멤버 6명을 제명한데 이어 25일에는 이같은 조치에 불만을 품고 탈당계를 제출한 오세철씨(교수위원회위원장·연세대교수)등 교수위원회 소속 인사 3명을 사실상 제명,좌파세력에 대한 「가지치기」작업을 마쳤다. 당초 기존정당에 대해 양비론적인 비판을 하며 「한국적 상황에 맞는 진보정당」을 목표로 출범했던 민중당이 이렇듯 과감하게 변신하는 것은 2차례에 걸친 기초 및 광역의회 선거결과 안정속의 점진적 개혁을 지향하는 국민층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현실적 판단과 「혁신」의 이미지가 주는 부정적 선입관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민중당은 현재 다음 14대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국민 이미지 쇄신을 통한 대중성 확보가 급선무라고 판단하고 있어 이같은 변신은 또한 총선에 대비한 자구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민중당은 지난 5일 열린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합법적 방법과 선거를 통해 의회에 진출할 것임을 선언한바 있다. 그동안 「운동권정당」이란 꼬리표가 붙어다니던 민중당이 제도권 정당으로 모양새를 다지고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는 최근 정치쟁점을 다루는 각종 정책토론에 참가하고 있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민중당은 이미 선거제도와 관련,현행 소선거구제 대신 중대선거구제와 후보­정당 연기명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확정했으며 다가오는 총선에 대비,「당발전위원회」를 신설했다.민중당의 이재오사무총장은 『민중당은 참신하고 양심적인 진보세력을 규합,한국적 상황에 맞는 정치정당으로 태동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재야 뿐만 아니라 기존 야당및 여권인사도 자격만 되면 받아들일수 있다』고 밝혔다.이말은 「범진보세력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민중당이 앞으로는 보다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제도정치권 속으로 진입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중당의 앞날은 이같은 변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코 순탄할 것 같지는 않다.우선 민중당에 대해 갖고 있는 국민들의 기존 이미지가 하루 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더욱이 일부에서는 민중당의 이같은 변신이 「전술적」차원의 대증요법이 아니겠느냐는 의구심마저 갖고있어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또 민중당은 창당 당시 다양한 세력이 규합되어 만들어진 만큼 이번의 좌파세력 제명조치가 하나의 불씨로 작용,당내분란을 고조시킬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오세철교수가 탈당성명서에 밝혔듯이 당내 일부 인사들은 『민중당이 창당 초기의 목표에서 벗어나 보수야합에 참가하는 일개정파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어 완전한 변신을 위해서 극복하거나 해결해야할 일이 산적해 있다는게 주위의 분석이다. 보수정당에 대해 실망하고 있는 계층을 등에 업고 결성됐던 민중당이 불과 7개월 만에 그 방향을 수정한다는 사실은 한국적 정치상황에서 앞으로 「진보정당」이 어떠한 정치적인 의미와 평가를 받을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와 관련지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소 「반공연합당」 결성 추진”/러시아민주당 당수

    ◎“민주 신당에 참여 않겠다” 【도쿄 연합】 소련 최대 야당인 러시아 민주당(당원 3만6천명)의 니콜라이 트라프킨 당수는 셰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등이 창설한 「민주개혁운동」과는 별도로 반공산 연합정당인 「통일민주당」을 결성할 방침임을 밝혔다고 일요미우리(독매)신문이 4일 보도했다. 트라프킨 당수는 2일 요미우리신문과의 회견에서 야코블레프 대통령 수석고문과 셰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등이 창설한 「민주개혁운동」에 대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결별할 수 없는 공산당의 변종에 지나지 않는다』고 신랄히 비판했다. 그는 이어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종래의 야당들은 민주개혁운동과는 별개의 반공산 연합정당 통일민주당을 결성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는 「민주개혁운동」이 종래의 야당과 의견대립을 극복하지 못한채 시작부터 공산당 개혁파에 치우친 외날개 비행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은 풀이했다.
  • 크렘린 권력판도 대변혁 예고/소 「민주신당」 결성되면…

    ◎정망작성 구체화… 7월 출범 가능성/범급진세력 결집… 「개혁목소리」 거세질듯 소련공산당에 필적할 수 있는 전국단위 새 민주정당의 탄생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26일 모스크바 소식통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신당참여 인사들의 인선과 조직구성은 물론 정망작성 단계에까지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지난주 두 차례 회합에서 정강작성까지 논의된 셈이어서 이런 속도로 작업이 진행될 경우 오는 7월이면 신당이 출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신당 창당과 관련,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참여인사들의 면면이다. 현재 거명되는 인사로는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전 외무장관을 비롯,전 정치국원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전 내무장관 바딤바카틴,급진파 경제학자인 스타니슬라프 샤탈린 등 과거 고르바초프 정권에 몸담았다 개혁을 둘러싼 이견으로 그의 곁을 떠난 사람들이 총망라되다시피 하고 있다. 현직 고위관리로는 지난 12일 재선된 가브릴 포포프 모스크바시장과 아나톨리 소브차크 레닌그라드시장이 포함돼 있다. 조직면에서 신당은 공산당에 맞먹는 전국단위 정당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 24일 2차회담이 끝난 뒤 러시아민주당 집행위의 발레리 호미아코프 의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러시아공내 민주개혁세력 모임인 「민주러시아운동」을 다른 공화국의 민주운동단체와 연결시켜 정당으로 전환시키는 방안을 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경우 앞서 거명된 전직 고위관리 출신 인사들과 소련내 각 공화국에 포진돼 있는 제민주개혁세력이 손잡게 되는 결과가 돼 공산당에 필적할 명실상부한 전국정당의 출현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90년 2월 소련 헌법에서 공산당의 권력독점 조항이 폐지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소련에선 거의 정당조직을 갖추지 못한 소규모 정당들만 일부 공화국 단위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들 소규모 정당조직도 신당에 흡수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창당돼 3만6천명의 당원을 확보한 러시아민주당은 신당의 실질적인 중추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산당의 반발 등을 고려해 현재 신당참여파로 거명된 인사들 중 일부는 참여사실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야코블레프는 26일 자신의 공산당 탈당­신당참여설에 대해 이를 터무니없는 날조라고 부인했고 신당창당의 실질적인 주역으로 알려진 셰바르드나제도 당 보수파들로부터 당의 분열을 획책한다는 비난을 받고 일시 침묵하는 상태이다. 러시아민주당의 키라 울리아노바 대변인은 이러한 외압을 의식,『현재로서는 신당 창당이 언제 이루어질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계자들이 새 민주정당 창당에 관한 성명이 금명간 모스크바에서 발표될 예정이며 앞서 거명된 인사 다수 공산당과 결별하여 신당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당이 내세울 강령으로는 시장경제화,정치적 민주화를 토대로 과감한 개혁정책을 주장하는 외에 창당과 함께 현 크렘린 지도부에 연정을 제의할 것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창당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돼 내년 실시예정인 총선에서 신당이 후보를 내세울 경우 소련 권력판도에 일대 파란이 일 것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이 때문에 이들의 움직임에 벌써부터 내외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 페레스트로이카의 열매/이기동 국제부기자(오늘의 눈)

    옐친이 러시아공화국 주민들로부터 받은 인기와 기대를 생각한다면 당초 다른 5명의 후보 가운데 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개표결과가 나오기 직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공산당이 내세운 리슈코프 후보와 그가 시소게임을 벌일 것으로 내다봤었다. 1차에서 과반수 득표를 못해 2차 결선투표까지 갈 경우 리슈코프에게 승산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었다. 이러한 전망이 나온 배경에는 리슈코프,다시 말해 공산당·KGB·군으로 대변되는 보수조직의 힘이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옐친의 당선을 저지시킬 것이라는 막연한 예감도 분명 작용했을 것이다. 그의 승리는 바로 소련사회에 대해 갖고 있던 이런 막연한 공포감을 일거에 씻어내 주는 세척제 역할을 해주었다. 러시아 유권자들은 고르바초프식의 개혁이 미진하다고 옐친을 지지했지만 옐친의 승리는 역설적으로 고르비가 추진해온 페레스트로이카가 맺은 열매라고 말하고 싶다. 정적에 대한 음모와 암살·미행·테러로 대변되던 그 땅에서 옐친 같은 사람이 승리할 수 있게 된 것은 소련이 그만큼 민주화,다원화 됐다는 증거가 아닌가. 87년 정치국원일 때 보수파의 거두라는 리가초프에게 개혁의 장애세력이라며 면전에서 삿대질을 했다가 정치국원직에서 쫓겨났고 지난해 공산당을 탈당하고는 당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환수하라는 등 반공산당투쟁을 벌였고,툭하면 고르바초프 물러나라는 소리를 하고 다닌 사람이 옐친이다. 스탈린·브레즈네프시대에 당서기장과 당에 이렇게 대든 사람의 운명이 어떠했는가. 금년초 고르바초프의 특별지시로 설치된 한 특별조사위의 보고서에 스탈린 때 반당 인사들의 암살유형 중 전형적인 수법 중 하나가 교통사고로 위장해 죽이는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옐친도 지금까지 4번 교통사고를 당한 것으로 조사돼 있다. 옐친 자신의 주장이지만 89년 겨울에는 KGB요원들에게 끌려가 강물에 수장당할 뻔한 일도 있었다. 그를 「교통사고로 죽이지 않고」 대러시아의 대통령으로 선출한 날을 바로 소련이 이러한 과거의 악령들과 진실로 결별한 기념일로 기억해도 좋을 것 같다.
  • “일 자민­사회당 연정 가능”/사회당 좌파와 결별 조건

    ◎가네마루발언 파문 【도쿄 연합】 일본 정계의 최고실력자인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는 10일 『사회당이 좌파와 손을 떼고 현실정책에 눈을 돌린다면 올 가을 새정권 발족시 자민당과의 연립내각 실현은 가능하다』는 대담한 견해를 밝혔다. 자민당내 중심세력 다케시타(죽하)파 회장인 가네마루씨는 이날 도쿄도내에서 열린 전국부동산정치연맹 회합에 참석,인사말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현재의 정치체제로는 격동하는 국제정세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없는 만큼 자민당뿐만 아니라 제1야당인 사회당도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가네마루씨는 『사회당 좌파는 회색정치를 하고 있다』고 호되게 비판하면서 『사회당의 우파가 진심으로 좌파를 잘라내고 금년 10월27일 자민당 총재선거일 전에 당대회를 열지 않으면 위원장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자민당 총재(총리)선거날인 10월27일을 정계 개편의 시기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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