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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의원들 당적교체의 이유/나윤도 워싱턴 특파원(오늘의 눈)

    그동안 잠잠하던 민주당의원들의 당적 바꾸기 움직임이 남부주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다시 꿈틀대고 있어 올 워싱턴의 여름정국은 조용하지 않을성 싶다. 지난 연초 당지도부의 지도노선에 불만을 표출한 뒤 민주당의원 선거위원회 위원직을 떠났던 미시시피주 출신 마이크 파커 하원의원이 지난주 당을 떠나는 마지막 수순인 정치자금 반납까지 마침으로써 탈당이 기정사실화 됐다. 파커의원은 당으로부터 받은 1만6천달러를 반납하고 당과의 사실상 결별을 시사함으로써 지난해 11월 민주당의 참패 이래 당을 떠난 5번째 의원이 될 것임이 확실해 졌다.선거직후 앨라배마주 리처드 셀비 상원의원을 비롯,콜로라도주 벤 캠프벨 상원의원,조지아주 나단 딜,텍사스주 그레그 로글린 하원의원 등이 공화당으로 옮겼다. 파커의원은 당과의 결별 이유로 『의회내에서 지역구민을 위한 독자적인 투표권 행사를 위해』라고 내세우고 있다.그러나 미시시피주 두명의 상원의원과 주지사 등이 모두 공화당 출신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지적도 있다.의사당 일각에서는 파커 의원에 뒤이어 루이지애나주의 빌리 타우진,지미 헤이스 두 하원의원도 곧 탈당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각 주의회 의원을 비롯한 주나 카운티 단위의 선출직 기관장들의 당적바꿈으로 클린턴 행정부 출범 이래 1백7명의 선출직 민주당원들이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꿨으며 지난해 선거 이후에만 67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이로 인해 펜실베이니아주주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주의회는 다수당이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넘어가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러나 이같은 탈당 사태에 대해 민주당 지도부는 우려는 표명하면서도 적극 만류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지난 6월 4선의원인 로글린 의원이 23명의 선출직 당원들을 이끌고 대거 탈당할 때도 하원 지도자인 리처드 게파트 의원은 그에게 깨끗하게 의원직을 사임하고 공화당으로 출마,유권자들의 심판을 새로 받을 것을 촉구한 정도였다. 「소신」을 내세워 가끔 당의 방침과 어긋나는 투표를 하기도 한다는 미의원들.그러나 그들의 당적 바꾸기가 진짜 소신 때문인지 아니면 실리를 찾기 위해서인지 하는 궁금증은 여전히 떨칠 수 없다.
  • 미,「10대 신흥시장」 공략에 총력/한국 등 겨냥 「상무외교」기치

    ◎94수출 1천5백억불… 대일·구실적 맞먹어/「수출촉진위」등 활성화… 민간기업 적극 지원 「거대신흥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미국정부의 노력이 한층 집요해지면서 전술 또한 정밀해지고 있다. 로널드 브라운 미 상무장관은 19일 워싱턴 외신기자클럽 회견에서 『「거대신흥시장」에 대한 주목은 미국으로선 과거정책과의 진정한 결별이었으며 새로운 노선채택의 터닦기였다』고 강조한뒤 『이 시장에 효과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미국 외교정책에선 낯선 「상무외교」란 기치가 새로 세워지고 이 아래 다수 정부부처가 힘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거대신흥시장에 대한 주시와 진출노력은 상무부가 지난 93년1월 BEMs(빅 이머징 마켓)라는 약어를 통용시키면서 시작됐다.경제활성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클린턴 신정부의 출범과 함께 미국무역 현황과 전망을 심도있게 분석한 결과 몇몇 특정 해외시장이 미국수출을 극적으로 증가시킬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파악된 것이다.포화상태에 빠진 미국경제에 신선한 돌파구를 열어줄 수출의 「신세계」로 점찍힌거대신흥시장은 중화경제권(중국·홍콩·대만),인도,인도네시아,한국,멕시코,브라질,아르헨티나,남아공,폴란드,터키 등 10개국이었다. 목좋은 시장을 추려내는데 미국의 안목이 탁월했다는 점과 한번 눈독들인 시장들에 대해선 미국이 대단한 수출공세를 편다는 사실은 2년반 사이를 둔 브라운장관의 다음 두 통계수치를 비교하면 잘 드러난다.지난 93년1월 브라운장관은 10개 「벰즈」에 대한 미국의 수출총액은 2000년도에 대일본이나 대유럽 수출총액과 「각각」 같아질 것이라고 말했다.2년여가 지난 이날 브라운장관은 미국의 벰즈에 대한 지난 94년 수출총액은 1천5백90억달라로서 미 총수출의 30%를 차지하며 『일본과 유럽 수출분을 합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거대신흥시장의 국내총생산 합계는 이미 9조달러를 넘어서 전세계 생산총액의 30%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선진공업국 총액의 절반까지 따라왔다. 이 10개국들이 세계수입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지금도 13%에 달하나 15년 사이에 이 비율이 두배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브라운장관은 이 황금시장에 보다 더 넓고 깊게 진출하기 위한 미국정부의 총체적 노력은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부처별 각종 시장진출 프로그램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수출촉진조정위원회」,거대시장 발주 공사에 입찰한 미 민간기업을 측면지원하는 「간접지원센터」 등의 역할이 한층 커지며 결코 「스무스」하지만은 않는 이들 시장과의 외교현장에서도 통상중시의 원칙이 장기적 안목에서 존중된다는 것이다. 브라운장관의 말처럼 과거엔 「문제를 터뜨릴 때」만 미국의 이목을 끌던 이들 국가들이 이제 21세기 미국경제의 활기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범생이 됐다.
  • 「5대 개혁과제」 복귀용 구호 인상/DJ 회견 내용속의 「비논리」

    ◎정국 위기론­뚜렷한 근거없이 아전인수식 진단/민주당 내분­상당부분 자기책임… KT에 떠넘겨/통일의 주역­지역 등권론 외치며 민족통합 될까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의 18일 기자회견내용은 2년7개월만에 대국민약속을 뒤엎고 정계에 복귀,민주당을 깨고 신당을 창당해야만 하는 불가피성을 국민에게 이해시키기에 미흡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반응이다.「솔직하고 진솔한 자세」를 다짐했지만 정작 회견의 많은 부분은 아전인수식 변명으로 일관한 인상이 짙다는 지적이다. 김이사장은 정계은퇴 번복에 대한 사죄대목은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한마디로 넘어가고 은퇴당시와 현재의 상황변화가 엄청나 번복이 불가피하다는 점만 강조했다.현상황을 「심각한 국가적 위기」라고 진단하는 그는 『은퇴당시 기대대로 정부와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을 다하고 있었다면 정계에 복귀할 엄두도 낼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말하자면 정부와 야당인 민주당이 모두 잘못해 국가적 위기상황을 초래,그 해결을 위해 자신의 정계복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현시국을 국가적 위기라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그의 인식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런 상황이 곧바로 자신의 정계복귀를 정당화하는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각론으로 들어가 민주당의 난맥상과 관련,김이사장은 「9인9색」의 계파정치를 문제삼았다.그러나 그 원인의 대부분을 그 자신이 제공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즉 은퇴이후에도 권노갑 부총재를 대리인으로 하여 당무에 대한 수렴청정을 계속해왔으며 이것이 곧 이기택총재의 지도력 약화,민주당의 분란으로 연결돼왔다는 것이다. 이총재측은 『김이사장측이 이총재와 당을 흔들어 내분을 일으켜놓고 그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다』며 적반하장이라고 비난하고 있다.「한지붕밑 아홉가족」이 된 것도 김이사장의 원격조정을 위한 「분리·견제」전술의 결과라는 주장이다.또 총재를 「얼굴사장」으로 격하시키고 「오너」가 설쳐댄 결과 이총재가 대통령의 대화상대가 될 수 없었다면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느냐고 따진다. 경기지사 선거패배의 책임을 묻는 것 또한 명분이 약하다는 분석이다.서울에서 승리한 것은 오로지 김이사장의 공로이고 경기도 패배는 이총재만의 책임이라는 것도 자연스럽지 못하며 책임을 묻더라도 당헌·당규절차에 따라 전당대회를 통해 해야 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전당대회에서의 폭력사태등 불상사가 우려된다고 했지만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은 일체 생략한 채 신당을 창당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김이사장이 제시한 신당의 5대개혁과제에도 모순이 적지 않다.우선 젊은 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정치를 표방했지만 정국을 「후(후)3김시대」로 역류시킨 그가 과연 이런 역할을 자임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또 개혁과제로 「단계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의 주역」을 자임하고 나선 데 대해서도 지역등권론을 들고나와 지역분할구도를 더욱 강화시킨 그가 민족의 대통합을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체적으로 김이사장이 제시한 신당의 개혁과제는 앞으로의 추진과정을 지켜봐야겠으나 자신의 정계복귀를 정당화하는 구호에 불과한 인상이라는 게정치권의 중론이다. ◎「대권 4수의 길」 DJ의 정당편력/87년 평민당 창당… 두번째 대권도전 고배/「꼬마 민주당」과 합당… 92년 대선 패배후 은퇴 「대권4수」의 길로 다시 들어선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은 40여년동안 숱한 정당생활을 거쳤다. 김이사장은 30살 때이던 지난 54년 목포에서 무소속 후보로 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원내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김영삼대통령이 25살의 나이로 최연소 당선기록을 세운 때였다.58년 4대 총선에 민주당후보로 나섰으나 낙선했고 5대 때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으나 5·16으로 며칠만에 내놓았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정당에 참여한 전력은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광복직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와 좌익정당인 신민당에 잠시 참여했다.좌익에 환멸을 느껴 탈퇴했지만 이 경력은 그에게서 평생 「색깔론」의 꼬리를 떼어놓지 못하게 한 빌미가 됐다. DJ(김이사장)는 첫 소속정당인 민주당에 입당하면서부터 장 면박사의 총애를 받아 민주당 구파의 맥을 잇게 된다.60년 신구파의 대립으로 구파가 분당,신민당을 창당할 때 그는 민주당에 남아 있었다. 그러다 「5·16」으로 정치규제에 묶여 있던 인사들과 63년 민주당 재창당에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다.65년에는 민주당이 윤보선총재가 이끄는 민정당과 통합,민중당을 창당할 때 합당 중재역을 맡았다. 그는 67년 양대 선거에 대비해 야권 통합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민중당과 신한당이 통합된 신민당에 참여했다.김대통령과의 경쟁은 원내총무 경선에서 처음 시작됐고 그는 패배했다. 이어 71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 대선 첫 패배를 맛보게 된다.72년 유신이후 망명생활을 하다 73년 일본에서 납치사건을 겪고부터 「재야」에 몸담게 된다.80년 「서울의 봄」 때도 김영삼총재의 신민당에 입당하지 않고 재야에 남아있었다. 80년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은뒤 무기징역,20년형으로 감형되는 과정을 거쳐 82년 도미,민주화 투쟁을 계속했다. 3년 뒤인 85년 2·12 총선 직전 귀국,김대통령과 함께 민추협공동의장 자격으로 신민당 돌풍을 일으키며 정치재개의 발판을 마련했다. 87년 이른바 「이민우구상」 등과 관련,김대통령과 함께 신민당의 대다수 의원들을 이끌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했으나 야권 대통령후보 단일화 문제로 김대통령과 결별,제갈길로 나섰다.이 때 평민당을 창당,대선에 두번째 도전해 다시 실패하지만 이듬해 여소야대 정국아래 제1야당의 총재가 됐다.그러나 90년 「3당통합」으로 하루아침에 소수야당의 총재로 전락했고 몇차례의 재야인사들을 흡수하면서 당명을 신민당으로 바꾸었다.이어 14대 총선에 대비,이기택 총재의 「꼬마민주당」과 합당,이총재와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듬 해인 92년 대통령선거에 세번째 도전하게 되지만 또다시 패배한 뒤 93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 “이몽동거” 3년10개월만에 “파경”/김대중­이기택의 결합과 결별

    ◎“지역할거 청산” 내세운 정치적 실험 실패/「6·27」계기 감정 폭발… 명분 버린채 등돌려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과 민주당 이기택총재의 정치적 동거가 막을 내리게 됐다.지역할거구도의 청산과 수권정당 건설,정권교체의 실현을 목표로 내세웠던 이들의 통합은 3년 10개월만에 미완의 정치실험으로 끝나고 말았다. 지난 91년 9월 김이사장의 구신민당과 이총재의 「꼬마」 민주당은 3당통합에 따른 민자당 출범 1년 9개월만에 전격적으로 통합을 선언했다.눈앞에 닥친 14대 대선을 앞두고 지역당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김이사장과 「포스트 DJ(김이사장)」의 당권·대권을 염두에 둔 이총재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두 사람은 이후 한동안 밀월관계를 유지했다.김이사장은 차기당권을 약속했고 실제로 대선패배후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93년 3월에 실시된 전당대회에서 이총재를 적극 지원,새 대표에 앉혔다. 그러나 두 사람의 동거는 정치행보에 대한 「동상이몽」을 바탕으로 한 데 불과했다.그리고 서로의 엇갈린 이해는 김이사장이 93년 7월 영국에서 돌아와 12월 아태재단을 설립하면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이총재가 12일 토로했듯이 이총재는 그 무렵 어렴풋이나마 김이사장의 정계복귀를 점쳤다.이어 동교동계가 「내외문제연구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세확대에 나서자 이총재도 「통일산하회」라는 사조직을 만들어 홀로서기에 들어갔다. 두 사람의 갈등기류는 해를 넘겨 94년을 맞으면서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이총재의 당운영 방식에 대해 동교동계가 제동을 걸기 시작했고 「월급사장」이라는 이총재의 별명도 이 때 생겼다.김이사장의 표면적인 은퇴에도 불구하고 동교동계는 김이사장의 지시에 의해 움직였고 이에 이총재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특히 지난해 12월 이른바 「12·12투쟁」과정에서 돌출된 두 사람의 갈등은 결별의 전주곡이었다.장외투쟁이라는 극약처방으로 당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던 이총재의 기도는 김이사장의 국회등원 주장으로 무산됐다.이 과정에서 이총재는 김이사장의 발언을 『당원중 한사람의 의견일 뿐』이라고 치부했고 권로갑부총재 등 동교동계는『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다』고 반발,결국 이총재가 의원직 사퇴의사를 표명하는 사태로 치달았다. 곧 이어 전당대회의 시기를 둘러싸고 두 사람은 또 다시 충돌했다.이총재가 2월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강화를 요구하자 김이사장은 동교동계를 통해 지방선거후 실시하자고 맞섰다.이에 이총재는 당무를 거부한 채 제주도로 내려가 세대교체를 주장하는 「태양론」을 내세워 김이사장을 공격했다. 우여곡절 끝에 전당대회를 8월로 연기하고 지방선거를 맞았으나 경기도지사 후보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두 사람은 회복불능의 결별수순에 들어갔다.두 사람의 감정섞인 힘겨루기는 결국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대회를 돈봉투사건과 폭력사태로 얼룩지게 했고 김이사장은 『40년의 정치인생에서 저런 사람은 처음 본다』며 결별의 뜻을 드러냈다. 지역분할구도의 극복과 수권야당 건설이라는 기치로 포장된 두 사람의 정치동거는 결국 각자의 정치적 최종목표를 위한 경유지에 불과했다. ◎「DJ·KT 동거와 결별」 일지 △91년 9월 10일=김대중(DJ) 신민당과 이기택(KT)의 민주당 통합 △92년 5월25∼26일=전당대회서 DJ 대통령선거 후보로 선출. DJ·KT 공동대표 선출 △92년 12월 19일=DJ 정계 은퇴선언 △93년 1월 26일=DJ 영국으로 출국 △93년 3월 11일=KT 전당대회서 당대표 선출 △93년 7월 4일=DJ 귀국 △93년 9월 4일=DJ 직계 한국정책개발 연구회와 새정치문화 연구소가 통합,내외문제 연구회로 출범 △94년 12월 2일=민주당,KT의 등원거부 결정에도 불구하고 등원결정 △95년 1월 9일=KT,전당대회 조기개최 수용안되면 대표사퇴 언급 △95년 2월 24일=KT,전당대회서 총재로 선출 △95년 4월 26일=DJ,지자제선거 경기지사 후보로 이종찬고문 추대. KT는 장경우공천 강행 △95년 5월 9일=DJ,이 고문카드 철회 △95년 5월 13일=경기지사 선출과정서 돈봉투시비로 개표중단 △95년 6월 5일=DJ­KT회동,경기지사로 장경우 공천 결정 △95년 7월 11일=DJ측 신당창당 추진 밝히며 신당 창당중지 조건으로 KT사퇴 요구 △95년 7월 13일=DJ,사실상 정계복귀 선언
  • 분당 임박 민주당 각파 움직임

    ◎“약속 깬것 변명 않겠다”… 비난 감수 각오­김대중씨/중도파에 잔류 설득… 당 수호대회 준비­이총재/그룹별로 합동회견… 분당 막기에 부심­중도파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이 13일 정계복귀를 공식 선언하고 이기택총재와의 결별의사를 분명히 한 반면 이총재는 기자회견을 통해 분당불사 의지를 강조,민주당의 분당이 본격적인 초읽기에 들어갔다.이에 맞서 이총재의 사퇴 촉구와 신당창당에 반대하는 「중도파」들의 목소리도 더욱 높아가고 있다. ▷김대중 이사장◁ ○…김이사장은 이날 상오 범동교동계 의원 모임인 내외문제연구회 원내이사회를 소집,정계복귀를 선언한 데 이어 낮에는 신당에 소극적인 중도파 의원들과 오찬을 갖고 신당참여를 설득했다. 57명의 소속의원중 51명이 참석한 가운데 여의도 삼환까뮤빌딩 사무실에서 열린 내외연 이사회에서 김이사장은 『사실 정치를 재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민과의 약속을 못지키는 것이 되지만 어떤 변명도 하지 않겠다』고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담아 정계복귀를 선언했다. 김이사장은 이어 『비록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건을 버리고 일시적으로 비판을 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국정혼란과 마비된 제1야당의 기능을 그대로 바라만 볼 수 없다』고 피력했다. 김이사장이 정계복귀의 뜻을 밝히자 참석자들은 김인곤의원의 제청에 따라 정계복귀를 박수로 결의했으며 김봉호 최락도의원등은 『창당은 빠를 수록 좋다』며 김이사장에 대한 지지를 거듭 다짐했다.참석자들은 이어 이기택총재의 사퇴 요구서에 전원 서명한 뒤 회의를 마쳤다.김이사장측은 이날 하오 현재 모두 62명의 소속의원이 서명했다고 밝혔다. 김이사장은 이어 이날 낮에는 중도파의원 12명을 서교호텔로 불러 신당참여를 설득했다.이철 장석화 장기욱 제정부 원혜영 유인태 김충현 문희상 양문희 하근수 조순형 박은대의원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이사장은 『이총재는 이제 자기반성을 하고 당을 나가야 한다』고 결별의 의사를 분명히 했다.참석자들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전당대회를 주장하고 있지만 지금 상태에서 무사히 마칠 수 있겠느냐』고반문했다. 김이사장은 이어 『이총재가 백의종군한다면 15대 국회 때 전국구를 주겠다』고 밝혔다.그러나 참석자의 다수는 또다른 내분 가능성을 들어 이에 반대했다는 후문이다. 김이사장은 이총재의 사퇴거부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서명작업을 계속하면서 소속의원들과의 접촉을 통해 신당참여를 권유한 뒤 15일 신당추진회의를 통해 창당을 확정한다는 방침. ▷이기택 총재◁ ○…이날 상오 국회 총재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다소 비감한 어조로 김이사장의 퇴진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신당창당작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이총재는 『총재로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전당대회를 통해 하면 되는 것』이라면서 『신당은 김이사장 자신의 권력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라고 반박했다.이총재는 이어 『정치지도자의 약속은 붓을 꺾은 시인이 다시 시를 쓰는 경우나 은퇴한 가수가 다시 무대에 서는 것과는 다르다』고 김이사장의 정계복귀를 비난하고 『정녕 정치를 다시 하려면 국민들에게 정계복귀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지자기가 만든 당을 깨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공격했다. 이총재의 기자회견에는 측근인 강창성·장준익 의원만이 배석,초라해진 그의 위상을 드러냈다. 한편 이총재는 기자회견에 이어 하오에는 서울의 한 호텔에 머물면서 측근의원들을 중심으로 중도파를 상대로 한 잔류설득작업과 함께 향후 대응방안을 검토했다.이총재는 김이사장이 창당방침을 선언할 것으로 보이는 15일을 전후해 사조직인 통일산하회 소속 원외지구당위원장들을 소집,「당수호결의대회」를 열어 김이사장에 대한 공세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중도파◁ ○…김이사장과 이총재의 정면충돌로 분당이 가시화하자 이총재의 퇴진과 창당작업의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한층 높였다.전날 개혁모임 소속의원 8명과 노무현부총재등이 이총재의 사퇴와 김이사장의 창당작업 중지를 요구한데 이어 13일에는 김원기·조세형·김근태부총재등이 가세했다. 김·조 두 부총재는 이날 아침 국회에서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이총재는 최근 당의 위기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 당을 살리는 길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책임있는 결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이들은 또 김이사장의 창당작업에 대해 『통합야당인 민주당에 분당·분열을 초래할 위험이 있으므로 중지돼야 한다』면서 8월전당대회에서 지도체제와 지도부 구성등 당 개혁문제를 논의할 것을 주장했다. 김근태 부총재도 김희선·방용석 당무위원등 「통일시대 국민회의」출신의 지구당 위원장들과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이총재 퇴진과 창당작업 중지를 요구했다.이밖에 중앙당의 중하위당직자 28명도 성명을 내고 이들의 요구에 동참했다.
  • “DJ사당 못벗어날것”… 대반격 모색

    ◎신당창당 지켜보는 이기택 민주당 총재/“정계은퇴 약속 파기” 집중공격 준비/“비호남 야당 맥 잇자” 세력결집 총력 민주당 이기택 총재는 요즘 고민이 많다.김대중아태재단이사장과 동교동계가 신당 창당작업을 본격화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총재의 얼굴표정은 여느때와 다르지 않다.한 측근은 『예정된 수순아니냐』며 『이총재의 심경은 명경지수』라고 전했다.결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분주하다.수시로 강창성·이장희 의원등 핵심측근들과의 구수회의를 통해 자파 의원들의 동향파악등 집안단속에 여념이 없다.그냥 앉아서 죽지는 않겠다는 뜻이다.한발 더 나아가 이총재는 신당이 실패할 것으로 전망한다.그는 『신당세력이 5·6공세력을 포함한 구여권세력을 영입하려고 야단이지만 「김대중당」「호남당」의 이미지를 탈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총재는 11일쯤 기자간담회를 자청,동교동계의 신당추진에 대한 소회를 피력할 예정이다.당연히 주제는 신당의 반역사성,반민주성이다.그는 특히 김이사장이 오는 18일 정계복귀를 선언할 경우 대대적 반격을 하려 준비중이다.김이사장의 정계은퇴 약속파기와 특정인에 의한 전근대적인 이합집산에 초점을 맞춰 집중포격을 가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을 깨지 말고 김이사장이 총재경선에 직접 나서 한판승부를 겨루자는 제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총재 주변에선 그의 새출발을 위해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반응도 나온다.이총재가 새 깃발을 들면 오히려 과거 통일민주당이후 비호남권 야당의 맥을 이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다.JP가 팽 당한 후 동정심으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약진을 이뤘듯이 이총재에 대한 동정론도 만만찮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총재측은 동교동계와의 갈라서기가 확정될 경우 힘을 다해 DJ의 대권도전만은 막겠다는 자세다.그의 위상자체가 극도로 위협받는 상황에서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 모를 얘기지만 흠집내기를 계속하겠다는 경고다.이날 총재단회의에서 신당창당을 맹비난한 이부영·노무현 부총재등도 당에 남겠지만 장기적 시각에서 이총재와 한몸이 될 가능성은 희박한 실정이다.아무래도 이총재가 외로운 신세가 될것 같다는게 일반적 시각이다.
  • 민주당/신당창당설로 뒤숭숭

    ◎KT등 반DJ파 제거 노린 승부수/당내반발 만만찮아 실현은 미지수/16일 김대중씨 회견… 중대기로 될듯 DJ(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신당창당설로 민주당이 중대기로에 처해 있다.동교동계가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한편으로 신당창당을 비판하는 목소리들도 적지 않다.정치권도 정계개편의 서막으로 이어질지 온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신당 창당은 아직 확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개연성이 많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결국 신당은 김이사장의 의중에 달려 있다.9일로 예정했던 제주 휴가를 돌연 취소한 김이사장의 「주말구상」이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김이사장은 오는 16일쯤 자신의 구상을 밝힐 예정이다. ○…신당 구상은 DJ가 6·27지방선거기간중 반DJ 깃발을 든 이기택 총재 및 이부영·노무현 부총재등과 결별하기로 마음을 굳히면서 여러 방안의 하나로 검토돼 왔다.이 과정에서 지금의 단일지도체제 유지와 이총재 배제를 전제로 단일성 집단지도체제·공동대표제·3인 지도체제·당고문체제등 많은 시나리오가 그것들이다. 이종찬·정대철 고문중 한명을 차기총재로 한다든가 김상현 고문을 이들중 한명과 함께 공동대표로 할 것이라는 얘기들이 당사를 맴돌았다. ○…신당문제는 지난달 30일 서울 서교호텔에서 열린 동교동계 참모회의에서 처음 거론됐다.이 자리에는 DJ와 권노갑·김근태 부총재,정대철·이종찬 고문,이해찬 서울시부시장,임채정 의원등이 참석했고 임의원이 문제제기를 했다고 한다.그러나 김부총재와 정고문은 명분이 약하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했고 나머지 4명은 찬성했다는 것이다.이때부터 신당설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김이사장의 일부 측근들은 늦어도 10월초까지 매듭짓는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흘리기도 했다. 이와 관련,아태재단을 축으로 민자당과 자민련의 수도권지역 의원을 비롯,전직 고위공무원,재계·법조계·학계 인사,군장성출신 등 구여권세력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포섭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DJ는 특히 신당의 총선승리에 최선을 다한다는 차원에서 신당의 고문을 맡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으며 신당의 대표에는 이종찬 고문을 사실상확정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교동계는 당내인사들에 대한 「줄서기」작업도 본격화해 이총재계라 하더라도 수도권출신 의원들은 모두 신당행에 동참할 것으로 판단,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총재는 「제2의 이민우」로,민주당은 미니정당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지난 87년 「이민우 파동」 때 양 김(김영삼·김대중)은 신민당을 버리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동교동계 내부에서도 반론이 적지 않다.신당은 DJ가 대권도전을 위해 또다시 사당을 만드는 것이고 「호남당」의 색채를 더욱 뚜렷이 한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명분도 약하다고 지적한다.특히 몇몇 호남출신 의원들은 『국민들이 민주당에 표를 줬지 신당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다.김상현 고문은 『신당창당은 최악의 상황』이라고 전제,『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의 결정에 따르는게 순리』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김원기 부총재도 『신당문제를 논의하는데 참여한 적이 없다』고 가세했다.두사람은 임시국회가 끝난뒤 당권도전을 공식선언하겠다고 밝혔다. 김근태 부총재는 『정권교체를 위해서도 신당창당은 저지되어야 한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정대철고문도 『신당문제로 DJ와 논의한 적은 없으나 정도는 아니다』라고 역시 반대입장을 개진했다. 개혁그룹은 신당설을 이총재와 김상현고문을 겨냥한 「협박용」으로 해석한다. ○…이총재측은 신당창당에 몹시 비판적이다.하지만 이총재는 이날 측근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그러나 『동교동계가 당을 떠나면 당을 지키는 명분이 생긴다.비호남권인사 영입작업을 잘하면 이총재가 정치적 구심점이 될 수도 있다』고 오히려 은근히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총재는 이와 관련,『DJ가 민주당에 복귀할 경우 반DJ인사들의 돌출행동등 장애물이 많고 구여권세력의 결집을 위해서는 간판으로 볼때 민주당보다는 신당이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신당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나름의 대책을 강구중임을 암시했다.그러나 이총재 진영은 아직까지 「벼랑끝」은 아니라는 생각이다(강창성 의원).자파세력 결집만 확실히 하면 동교동측과의 「마지막 협상」도 가능하다는 것이다.일각에서는 총재에서 공동대표로 「강등」되더라도 타협의 여지는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 민주 분당 급속 가시화/동교계 “호남·수도권 중심 신당검토”

    ◎이 총재측,비호남권 결집 착수 지방선거 이전부터 예상됐던 민주당의 내부 갈등에 따른 분당이 급속히 가시화하고 있다. 오는 8월 정기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최대계파인 동교동계가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을 따르는 호남권 및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신당창당을 본격 검토하고 있고 이에 맞서 이기택 총재측은 비호남권 세력결집에 나설 태세여서 정계 및 야권재편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동교동계 일각에서는 지역분할구도가 심화된 가운데 신당을 창당한다면 「호남당」이나 김이사장의 정계복귀를 위한 사당이란 부정적 이미지를 강하게 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어 아직 신당창당은 유동적이다. 김이사장은 그러나 신당이 「지역당」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자신의 정계복귀에 피해를 줄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이종찬·정대철 고문과 김원기 부총재 및 비주류 김상현 고문간에 후보단일화를 이뤄 전당대회를 치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으며 김이사장은 이고문을 의중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동교동계의 권노갑 부총재는 8일 『더이상 이총재와 당을 함께 할 수 없다는게 김이사장의 확고한 방침』이라면서 『현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중의 하나로 신당창당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박지원 대변인도 『동교동계는 전당대회에서 경선을 통해 당권을 장악하는 방법과 신당을 창당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중』이라면서 『신당창당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총재 진영은 동교동계의 신당창당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비호남권과 개혁그룹등을 결집해 민주당을 재건하는 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총재는 이와 관련,『지금의 상황은 지난 87년 「이민우파동」때와는 분명 사정이 다르다』며 『아직은 좀더 지켜보겠다』면서 구체적인 언급을 유보했으며 측근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이총재의 한 측근은 『동교동계가 우리와 결별하기 위해 검토중인 신당창당은 결코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신당창당을 강행할 경우 비호남권의 강력한 야당을 구축하는 방향으로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 동교동계/신당창당 모색/이 총재 배제… 후임인선 착수

    ◎“비주류 반발땐 결별”… 15일께 윤곽/이종찬 고문에 당권 맡길듯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이 민주당 이기택 총재를 차기당권에서 배제하기로 결심을 굳힌 가운데 후임자에 대한 물색작업을 본격화하고 있어 주목된다. 김이사장은 특히 이총재 후임자에 대한 인선작업이 진통을 겪을 때는 신당창당도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져 경우에 따라 정치권 전체의 판도에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김이사장의 이같은 정국구상은 임시국회가 폐회되는 오는 15일쯤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알려졌다. 김이사장의 한 측근의원은 7일 『김이사장의 의중에 따라 동교동계의 권노갑 부총재가 이총재 후임에 대한 인선작업에 나섰다』고 전하고 『현재 그 대상으로 이종찬·정대철 고문이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김이사장은 1차적으로 이들 두 고문 가운데 구여권을 끌어들인다는 차원에서 이고문을 차기 당권주자로 굳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김이사장은 그러나 이같은 구상을 매듭지은 단계는 아니며 경우에 따라 현재의 단일성집단지도체제를 공동대표제로 전환,김상현·정대철 고문을 공동대표로 내세우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동교동계의 다른 의원은 『김이사장이 이총재 교체를 전제로 단일성집단지도체제의 유지와 공동대표제의 도입을 우선 검토중인 것은 사실』이라고 전하고 『그러나 이같은 방안이 이총재나 비주류측의 반발로 진통을 겪을 때는 과감히 신당을 창당하는 방안을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에 따라 이달 중순까지 후임인선작업이 매듭지어지지 않을 때는 신당창당을 적극 모색할 것』이라고 말하고 『이 경우 창당시기는 오는 9월 정기국회 전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민주당의 내부 갈등(「6·27」이후 정국:5)

    ◎DJ­KT “당권쟁탈” 정면충돌 조짐/결별 기정사실화… KT 고사작전 준비­동교계/탈당 유보… 동교동계와 한판승부 벌러­이 총재 6·27지방선거는 민주당의 당권을 포함한 역학구도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당장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과 이기택 총재의 엇갈린 명암은 민주당의 대변화를 예고하는 징후라고 할 수 있다. 서울과 호남을 장악한 이번 선거결과를 통해 당의 실질적 소유주인 김이사장은 당 안팎에서의 위상과 영향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반면 「민주당의 전국당화」 기치를 자신의 역할과 연결지어 온 이총재는 당의 지역적 한계만 더욱 부각된 이번 선거결과로 자칫 「용도폐기」될 위기에 놓이게 됐다. 더욱이 지난해 12·12 관련 투쟁 이후 지난 5월 경기지사경선파동을 거치면서 악화일로로 치달아 온 김이사장과 이총재의 갈등·불신은 더이상 두사람의 「동거」를 어렵게 하고 있는 형국이다.실제로 김이사장은 이미 결별의사를 굳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결별시기는 다음달 말 전당대회가 되리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그러나 정면대결의 양상은 이미 시작됐다.5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동교동계의 한화갑 의원은 지방선거 과정에서 이기택 총재와 이부영·노무현 부총재 등이 김이사장의 「지역등권론」을 비판한 것과 관련,『여당의 잘못된 비난에 대해 야당의 일부 인사가 부화뇌동한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직접화법으로 비난했다. 이에 발끈한 노부총재는 기자들과 만나 『이용가치가 없어졌다고 해서 정치적 동지를 일거에 적과 내통한 사람으로 모는 것은 정부 여당의 용공조작과 다를 바 없다』고 맞받았다.그는 이어 『김이사장은 지난 92년 대선을 앞두고 선거결과에 관계없이 당을 떠나겠다고 약속했다』며 김이사장의 정계은퇴를 촉구했다.서로가 해 볼테면 해보자는 식이다. 이총재도 한의원의 발언을 전해듣고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한 뒤 측근들에게 6일 국회 정당대표연설 내용에 지역할거주의에 대한 공격수위를 강화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되고 있다. 하지만 당권향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이사장은 계속 침묵하고 있다.장고에 들어갔다고 측근들은전한다.내년의 총선과 97년 대선까지로 이어지는 정국구도에 대한 밑그림을 활발히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여기에는 내각제개헌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에서부터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의 연대문제,정계복귀의 시점과 방법등이 망라돼 있으며 차기당권 역시 이런 장기구상의 범주 안에서 검토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때문에 민주당의 차기당권은 김이사장이 앞으로의 정국을 어떻게 내다보고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것이냐는 상황인식에 따라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다만 내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는 등의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되기 전에는 그가 전면에 나서지 않으리라는 것이 당안팎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런 관점에서 차기당권과 관련해 김이사장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대략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전당대회를 통해 이총재를 눌러 앉히고 새로운 「대리인」을 총재직에 앉히는 것이다.이와 관련해 당주변에서는 김상현·이종찬·정대철 고문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런 반면 동교동계 일각에서는 전당대회 연기론이 심도있게 거론되고 있다.섣부르게 차기주자를 낙점해 나머지 당권후보들이 연합전선을 구축토록 하느니 총선전까지 이총재체제를 유지하면서 서서히 「이총재 고사작전」을 펴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다. 「반DJ 연합전선」을 막기 위한 다른 방편으로는 당지도체제를 공동대표제로 전환,이·정고문 가운데 한명과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부총재 또는 김상현 고문을 공동대표로 앉히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이총재는 그러나 김이사장이 어느 방안을 택하느냐와 관계없이 정면 대응한다는 방침을 굳히고 있다.취약한 지역기반을 감안할 때 탈당은 자칫 「정치미아」가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우선은 당내에서의 한판승부에 전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그러나 현실적으로 독자세력만으로 승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데 그의 고민이 있다.김상현 고문의 비주류측과 당권·대권의 분리를 통한 연대도 검토하고 있으나 김고문이 이를 수용할 지는 극히 미지수다.
  • DJ·JP 연대여부 최대 관심/여소야대 지방구도속 야권 향방

    ◎내각제·등권론 공감확산 판단/총선 겨냥… 민정계 영입 꾀할 듯/결별설 KT 당내 비호남계와 자구책 강구 「여소야대」의 지방정치구도를 태동시킨 6·27 지방선거는 야권의 향후 진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그리고 이같은 야권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일정에도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과 김종필 자민련총재의 향후 행보와 연대여부다.김이사장이 정치생명의 사활을 걸었던 서울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둠에 따라 당안팎에서 그의 입김은 한층 강화될 게 분명하다.그리고 이같은 입지확대는 김이사장의 정계복귀 수순 및 시기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지방선거의 승리가 곧바로 김이사장의 정계복귀로 이어지지는 않으리라는게 당 주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이런 맥락에서 김이사장은 코앞에 다가온 8월 전당대회에서 전면에 복귀하기 보다는 제3자를 내세워 친정체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이와 관련해 이미 김이사장은 전당대회를 전후해 이기택 총재와의 결별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리고 이총재의 대안으로 중부권 인사인 이종찬 고문과 정대철 고문을 놓고 저울질이 한창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이사장의 결별에 대비해 이총재는 비호남권 당내인사,특히 개혁모임측 소장의원들과의 연대를 자구책으로 강구하고 있다.이미 이부영·노무현 부총재등은 세대교체론을 내세워 김이사장의 정치재개를 강력 비난하고 나선 상태다.이들의 연대가 성사된다면 민주당의 계파구도는 김이사장을 중심으로 한 주류와 이총재를 축으로 한 비주류로 새로 짜여질 공산이 크다.다만 향후 정국구도를 이부총재등이 어떻게 전망하며 행동을 취하느냐가 연대의 관건이다. 지방선거를 통한 지역할거구도의 강화는 필연적으로 김이사장과 자민련 김총재의 제휴로 이어질 전망이다.양 김씨는 이미 지방선거과정에서 지역등권론과 내각제개헌론등을 통해 공감대를 이루면서 거리를 상당히 좁힌 상태다.문제는 이들의 공조가 정계개편을 위한 세의 확보로 이어질 것이냐는 점이다.비록 지방선거를 통해 여소야대의 정국을 만들었다고 하나 중앙정치에서는 여전히 여대야소의 형국이다.때문에 내각제 개헌등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월등한 세확보가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양 김씨는 앞으로 여권내 보수성향의 인사들,구체적으로는 민정계를 향해 활발히 손짓을 할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여권인사 「빼내기」작업은 15대 총선을 앞둔 올 하반기를 1차시한으로 정할 가능성이 높다.민자당내 공천작업이 활발해 지면서 민정계의 불만이 고조될 개연성이 높은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와 병행해 「무주공산」으로 일컬어 지고 있는 대구·경북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자민련 김총재와 민주당의 이총재가 열띤 경합을 벌일 전망이다.김이사장과의 대등한 연대를 위해서나 장기적으로 불가피한 한판승부를 위해서는 충청·강원지역 외에 대구·경북지역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 김총재의 판단이다.이총재 역시 민주당내에서 활로를 찾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지역기반을 확보해야 하고 결국 그 지역은 대구·경북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 당내서 DJ퇴진론… 민주 곤혹/이부영 부총재 공개촉구 파문

    ◎“권력욕에 눈먼 사람… 역할 끝내라” 포문/동교동계 발끈 “적전분열… 선거뒤 보자” 민주당의 이부영 부총재가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나서 정가에 파문이 일고 있다. 이부총재는 지난 19일 저녁 부산에서 열린 노무현 부산시장후보의 지원연설에서 『지역등권론은 손바닥 하나만 뒤집으면 지역할거주의』라고 전제,『김이사장 주장대로 하면 각 구마다 정당이 하나씩 생기게 될 것』이라고 직격탄을 쏘아올렸다.그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북통일을 하겠느냐』고 반문하고 『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단정했다.이부총재는 또 김이사장과 김종필 자민련총재를 싸잡아 『대통령이 안되니까 내각제를 추진해 형님,아우하면서 권력을 주고 받으려 하고 있다』고 양김을 「권력욕에 눈먼 사람」으로 몰아붙였다.그는 『DJ(김이사장),JP(김총재)라는 이름을 부르면 마치 외국정치인을 부르는 심경』이라고 꼬집었다. 이부총재의 비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김대중·김종필씨는 지방선거를 통해 시대적 역할을 끝내고 뜻있는 젊은 정치인들에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며 급기야 퇴진을 촉구했다.그의 발언은 일단 반DJ정서가 강한 부산지역의 선거를 감안한 전략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풀이보다는 그의 본심이 드러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특히 비판강도가 오히려 여권을 앞지를 정도라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무엇보다 남북문제에 관해 최고권위자라고 자부하는 김이사장에게 통일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비난한 것은 김이사장이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과의 결별을 각오한 느낌마저 강하게 든다. 동교동계는 이부총재 발언에 몹시 불쾌한 표정들이다.일각에서는 여권핵심부와 교감이 있는 것으로 의심하기도 한다.권노갑 부총재는 20일 『이부총재가 김영삼 대통령과 김덕룡 민자당사무총장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선거전략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케 했다』면서 『등권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비판해야지 상황에 따라 발언한다면 지도부의 태도가 아니다』고 거듭 유감을 표명했다.박지원대변인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매진하고 있는때 왜 그같은 발언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가세했다. 하지만 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동교동계는 악재가 분명한 이부총재와의 확전은 피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이 문제는 선거가 끝난직후 당내 갈등의 최대이슈가 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특히 지역분할 구도를 막기 위해 총재직 사퇴를 철회한다고 밝힌 이기택 총재와 이부총재의 연대도 관심거리다.
  • DJ유세/수도권 고전우려 정치행보 당겼다/정치활동 재개 안팎

    ◎6·27선거 발판 정계복귀 수순/지역감정 자극 유세 득될지 의문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이 14일 지난 92년 12월 대선패배 후 정계은퇴를 선언한 지 2년6개월만에 정치활동을 사실상 재개했다.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유세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이다.본인은 정치재개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선거유세 자체가 가장 분명한 정치활동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은 없다.이번 지원유세가 지방선거 이후 명실상부한 정계복귀로 이어지리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 이사장이 국민에 대한 약속위배라는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직접 선거를 챙기고 나선 데는 우선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위기감이 작용한 때문으로 풀이된다.당초 김 이사장은 이번 선거를 통해 서울과 수도권,호남을 장악함으로써 중부권의 자민련과 함께 여소야대의 「반민자」연합전선을 구축하는 정국구도를 짜놓았었다.그러나 경기지사 경선파동 등으로 자신이 구상했던 조순­이종찬 「환상의 콤비」 포진계획도 무산되고 또 선거전열이 흐트러지면서도저히 「이기택체제」로는 안되겠다는 판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서울과 수도권에서 패배한다면 당의 승패를 떠나 자신의 향후 행보가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자민련의 부상도 김 이사장의 전면복귀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김종필 총재가 충청권의 지역정서를 업고 나오면서 상대적으로 김 이사장이 호남정서에 기대기가 수월해졌다는 풀이다.김이사장이 얼마전 주창한 「내각제개헌 검증론」과 「지역등권론」도 장기적 포석일 뿐 아니라 이번 선거를 철저히 지역대결구도로 몰아가겠다는 전략이 깔린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김 이사장의 지원유세는 결국 지난 대선 때 얻은 8백만표를 고스란히 챙기겠다는 「내표 지키기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자신의 전면 등장에 대한 반발표를 감안하더라도 서울과 수도권에서 30% 안팎의 고정지지표만 확실히 얻는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인 것이다. 김 이사장은 앞으로 서울과 수도권,특히 한강 이남의 경기지역을 집중 지원한다는 방침이다.하지만 김이사장의 이런 판단이 선거에서 현실로 나타날지는 미지수다.호남표의 결속으로 비호남표의 이탈이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민주당에 쏠리던 「반민자」야권표의 상당수도 돌아서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당장 서울시장선거에서도 김이사장의 행보에 대한 비호남지역 유권자의 반감이 무소속후보에 대한 지지로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이사장의 지원유세로 이번 지방선거는 불가피하게 「3김대결」의 성격을 띠게 됐다.그리고 민주당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선전한다면 김이사장의 향후 행보는 대권 도전 또는 내각제 개헌 등의 수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정치관측통들은 전망한다. 이와 함께 민주당의 역학구도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지방선거 이후 김 이사장이 당의 전면에 나서고 이 총재는 이에 반발,그와 결별하는 상황을 쉽게 그려볼 수 있다.이 총재가 김이사장의 지원유세에 대해서는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지역등권론과 내각제 문제 등을 강력히 비난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김대중씨 유세 아태재단 발표문 김대중 이사장은 오늘로써 지자제 선거유세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김 이사장이 이같이 결정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34년만에 부활된 지자제의 중요성이 너무나 크고 앞으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각 지역의 등권실현,통일기반조성에 절대적 필수요건이라고 판단되어 유세에 나서게 된 것이다. 둘째,민주당의 어려운 당내 사정과 후보자들의 빗발치는 요청에 대해 당원으로서 도리를 다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셋째,정부가 지금 조성하고 있는 자유로운 선거분위기 저해,야당탄압 등에 비추어 적은 힘이나마 보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넷째,김대중 이사장은 30여년에 걸쳐 지자제 실현을 위해 분투했으며 13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까지 했다.그와 지자제는 분리할 수 없는 일심동체이다.그러므로 성공적인 지자제 실현을 위해 유세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다섯째,김 이사장의 지자제 선거유세 참가는 1992년 12월19일의 정계은퇴 성명,즉 『앞으로도 내가 몸담았던 민주당의 발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 범위내에서행해지는 것이다. 여섯째,김 이사장의 지자제 선거운동 참가는 요즈음 논의되고 있는 「정계복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지금은 오직 민주당의 승리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훌륭한 지자제 실현을 위해 정성을 다 바치겠다는 것 이외에 아무런 계획도 없다. ◎92년 정계은퇴 선언 저는 또다시 국민여러분의 신임을 얻는데 실패했습니다.저는 이것을 저의 부덕의 소치로 생각하며 저의 패배를 겸허한 심정으로 인정합니다. 저는 김영삼 총재가 앞으로 이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성공하여 국가의 민주적 발전과 조국의 통일에 큰 기여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로써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평범한 한 시민이 되겠습니다.이로써 40년의 파란많았던 정치생활에 사실상 종막을 고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기택 대표와 당원동지 여러분께서는 오랜 세월동안 저에 대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협력과 성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당원 여러분이 베풀어준 태산같은 은혜를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앞으로 한사람의 당원으로서 힘닿는 데까지 당과 동지 여러분의 발전에 미력이나마 헌신협력할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이제 저는 저에 대한 모든 평가를 역사에 맡기고 조용한 시민생활로 돌아가겠습니다.국민여러분과 당원동지 여러분의 행운을 빕니다. ◎은퇴서 「유세」까지/김대중씨 발언록/이제 정치선 떠났다… 돌아오지 않는다­93년1월/민주당일에 개입하는 것은 주제넘는일­93년7월 ▷92년◁ ▲12월19일.대선종료후 민주당사 기자회견에서 정계은퇴 선언 ▷93년◁ ▲1월26일.영국출국에 앞선 김포공항 환송연 및 기자간담회=이제 정치는 떠났다.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6개월 후가 아니라 영원히 정치는 하지 않을 것이다. ▲2월24일.베를린에서의 세미나=선거 패배 이후 정계를 은퇴한 것은 잘했다.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6월2일.영국에서 새정부 1백일 평가=몇몇 분야에서 성과가 있다.국내정치는 더 이상 개입하지 않겠다. ▲7월5일.동교동 자택=민주당의 운영에 다시는 개입하지 않겠다.민주당 일에 개입하는 것은 주제넘는 일이다. ▲12월10일.자서전 에세이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다시 돌아올 뜻을 감추고 작전상 은퇴한 게 아니다.그런 생각이 있다면 국민을 속이고 역사를 속이는 것이다. ▷94년◁ ▲5월10일.대전일보 회견=정치 안한다는 생각은 변함없다.만약 정치를 다시 한다고 해도 민주당이나 계파를 등에 업고 하지는 않겠다.언제까지 침묵할지 나도 잘 모른다. ▷95년◁ ▲4월16일.일본에서의 기자간담회=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원하겠다.그러나 당내 경선에는 개입하지 않겠다. ▲5월27일.여수강연=각 지역마다의 권리를 찾는 등권주의,대등한 권리를 갖고 서로 협력하는 지방화시대로 가고 있다.(지역등권론 제기) ▲5월31일.시사저널 인터뷰=내각제 개헌과 관련,여론의 검증이 필요하다.내년 총선에서 권력구조 문제가 큰 이슈가 될 것이다. ▲6월14일.아태재단=김이사장이 서울과 수도권 선거 유세에 나선다고 발표.
  • DJ/KT/“마이웨이”시나리오 준비/「민주당 동거」청산수순 밟는다

    ◎「동교동 핍박」 명분쌓은후 떠날 듯­이 총재/지역당 탈색·정계복귀 차질 우려­동교동 화염에 휩싸인 민주호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권노갑 부총재의 2선후퇴를 요구한 이기택 총재나 이를 자신에 대한 「비수」로 여기는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 모두 서로를 포기한 인상이 역력하다.더구나 두 사람이 이미 결별에 대비,「마이 웨이」를 위한 시나리오를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강하게 갖게 한다.결국 이총재가 총재직 사퇴이후 어떤 수순을 밟을 것인지,그리고 동교동계의 대책은 무엇인지가 최대의 관심거리다.하지만 이 총재가 독립변수라면 동교동계는 종속변수인 형국이다. 이 총재는 29일 총재직 사퇴선언을 하더라도 곧바로 탈당을 감행하지는 않을 것 같다.동교동계와의 「한시적 동거」인 셈이다.지방선거 패배에 따른 책임추궁을 뒤집어쓰지 않겠다는 계산도 적지 않게 배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그는 평당원으로 남아 자신의 지지기반인 비호남지역의 선거지원유세에는 적극 나선다는 생각이다.김 이사장이 정계은퇴에도 불구,지방선거를 겨냥한 호남행을 강행하는데 이 총재라고 못할게 뭐 있느냐는게 측근들의 설명이다.이 총재는 비호남지역에서 예상밖의 성과를 거둔다면 이를 발판으로 삼아 8월 당권경쟁에 도전할 마음도 있는 것 같다.그러나 당내 역학구도상 현실성은 매우 희박하다는게 중론이다.따라서 지방선거후 이총재는 탈당을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크다.물론 그는 이때까지 동교동계로부터 핍박받는 모습을 확대시켜 탈당에 대비한 명분축적에 힘쓸 것으로 예상된다.또하나 이총재는 사퇴후에도 동교동계가 계속 자신에 대한 흠집내기를 계속하면 직접 김이사장의 도덕성을 겨냥해 포문을 열 것으로도 짐작된다. 동교동계는 이총재의 사퇴와 이에 따른 당지도부의 유고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일단 총재권한대행과 선거대책위원장을 별도로 두는 2원체제를 생각하는 것 같다.이때 권한대행은 김원기수석부총재가 맡고 선대위원장은 정대철고문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동교동계는 그러나 이총재가 사퇴후 당에 남아 김이사장과 권부총재를 공격할 가능성에 대해매우 걱정하는 눈치다.이른바 이총재의 「재뿌리기」이다.그럴 경우 지방선거는 그야말로 끝장일 수 밖에 없다. 결국 뿌리가 다른 이 총재와 김 이사장의 동거생활은 멀지 않아 청산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그러나 이런 상황은 두사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것 같다.김이사장은 끝내 「지역당」탈색에 실패,정계복귀 구도에 엄청난 차질을 빚게 되고 이총재도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당권만을 의식,당을 파국으로 이끌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민주내분 이모저모/“내가 총재이냐”… 동교동과 일전불사­이총재/“40년 정치했지만 저런 사람은 처음”­김대중씨 ○수습노력 볼수 없어 이기택 총재의 총재직 사퇴카드가 던져진 민주당은 27일 이 총재와 동교동계의 결별을 향한 수순밟기에 들어간 듯한 모습을 보였다.29일 총재직사퇴를 선언할 계획인 이 총재는 서울의 모처에서 사퇴 이후의 행보를 구상했다.동교동계 역시 권노갑 부총재에 대한 퇴진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하면서 수시로 대책회의를 열어 이총재 이후의 당운영방안을 논의했다.사태수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어느 쪽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고문 재추대 검토 ○…권노갑·김근태 부총재와 김상현·이종찬·정대철 고문,홍사덕·이해찬 의원 등 범동교동계 의원들은 이날 상오 신라호텔에 모여 이총재 사퇴이후의 대책을 숙의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이 총재의 사퇴를 계획된 수순으로 단정짓고 그의 행태를 맹렬히 비난했다.이 총재를 「토라진 여인」으로,총재직사퇴를 「가출」로 비유하며 『더이상 그의 사퇴를 말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이와 함께 이총재 이후의 당체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일단 29일 이총재의 회견 뒤로 미루되 총재권한대행과 선거대책위원장을 별도로 두는 이원체제로 하기로 대체적인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또 장경우의원을 사퇴시키고 경기지사후보에 이종찬고문을 추대하는 방안을 재추진하는 문제도 적극 검토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논의와는 별도로 동교동계 일각에서는 『아예 이총재를 사퇴와 동시에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심지어 한 관계자는 『결국 이총재가 여권으로 가는 것은 아니냐』며 이총재와 여권핵심부의 교감 가능성에 의구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할것 다해줬다 불쾌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은 27일 하오 전남 여수에서 여수고총동창회 초청으로 특별강연을 하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나로서는 할 일을 다했다.이제는 당에서 알아서 할 것이다』라고 말해 이총재와의 결별도 불사할 뜻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앞서 김이사장은 이날 아침 동교동자택을 찾은 권부총재와 정고문으로부터 이총재의 요구를 전해 듣고 격앙된 모습으로 『40년동안 정치를 했지만 이총재같은 사람은 처음』이라고 혀를 찬 뒤 총재직 사퇴문제에 대해 『그가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이사장의 발언요지. 『오랫동안 정치를 하면서 (여러 사람을) 모셔오기도 했고 같이 (정치를) 하기도 했지만 이총재 같은 사람은 처음이다.해달라는 것은 다 해주었다.권부총재를 어떻게 하라는 말이며 동교동창구를 일원화하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그것(권부총재에 대한 당직사퇴요구)은 요구조건도 아니다.(이총재의 사퇴를 그대로 둘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모든 것은 당에서 알아서 할 일이고 이총재가 결정할 일이다』 ○“이총재 심각한 고민” ○…이 총재는 이날밤 귀가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30일 공천장 수여식이 있는데 참석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총재 없으면 총재단이 하면 되는 것이고…』라고 뇌인 뒤 『내가 총재냐,한번(동교동쪽과)해보지 뭐』라며 격앙된 표정이었다. 그러나 측근인 김정일 전최고의원은 『총재가 심각한 고민에 빠진 듯하다』면서 『어제까지 심경은 분명사퇴였는데 지금은 판단을 못내리고 상당히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 이 총재가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음을 시사했다.
  • 민주/내분 폭발점 “분당” 위기감/「권 부총재 퇴진공방」 안팎

    ◎이총재­“경선파동 배후” 겨눈 최후통첩/동교동­“총재권한대행체제 불사” 반격 민주당의 내분이 폭발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이번에는 그야말로 분당으로 달리는 긴박감마저 느끼게 한다.이기택 총재와 동교동계가 한 살림을 차린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총재는 칩거 이틀만인 26일 칼을 빼들었다.그는 이날 두가지 요구를 당에,아니 동교동계측에 통보했다.첫째는 권노갑 부총재의 당직사퇴이고 둘째는 동교동계의 창구일원화였다. 이총재는 27일까지라는 시한까지 제시했다.이날중 이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총재직을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사실상 동교동계에 대한 최후통첩인 것이다. 이총재의 이같은 요구의 밑자락에는 경기지사 경선파동의 핵심이 폭력사태인데 당 진상조사위가 이는 외면하고 반대로 이총재측의 돈봉투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 배후에 동교동계의 입김이 서려있다는 강한 불만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결국 이총재는 당무포기쪽으로 기운 인상이 짙다.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분신이자 대리인격인 권 부총재의 퇴진은 동교동계가 받아들일리 만무한 일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동교동계는 즉각 이총재의 이같은 요구에 반발하고 나섰다.권 부총재의 사퇴는 절대 받아들일수 없는 일이며 『이총재가 정 사퇴를 하겠다면 총재권한대행 체제로 갈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맞받아 치고 나왔다. 이총재가 이런 반응을 예상치 못했을리 없다.그럼에도 초강수를 쓴 까닭은 우선 동교동계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때문으로 여겨진다. 겉으로는 이총재를 감싸는 체하면서도 「이총재 목조르기」를 은밀하게 진행시키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지방선거만 끝나면 자신을 「용도폐기」할 것으로 믿고 있다. 단적인 예가 경기지사후보와 관련된 김 이사장의 최근 발언이라는 것이다.김 이사장이 기자들과의 잇단 접촉에서 이종찬고문의 추대가 무산된데 대해 지나칠 정도로 아쉬움을 표시한 것은 『이제 이총재와는 끝이다』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주장이다.특히 이총재는 김이사장이 이날 아침 국민대 행정대학원 강연에서 지역당을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한것도 무척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지역당 탈피를 위해 민주당에 합세한 자신의 취지가 완전 백지화됐다는 낭패감마저 느끼고 있다는 것이 이총재 측근의 전언이다.또 전국적인 정당을 목표로 비호남권의 세확대를 추진하는 자신의 전략을 동교동계가 정면으로 분쇄하는 것은 김이사장의 정계복귀를 가시화해나가겠다는 시그널이 아니냐며 강한 의구심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진다. 경기지사후보문제만 해도 동교동계는 이총재 뜻대로 장경우후보를 밀겠다고 되뇌어놓고 이면으로는 진상조사위 활동에 개입,자신에 대한 흠집내기에 열을 올렸다고 판단한다.한마디로 동교동계의 이중플레이라는 것이다. 이총재는 제2,제3의 강수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여기에는 폭행피해자인 이규택의원의 권부총재에 대한 고발도 포함되어 있다.결국 이총재는 「마이웨이」를 위한 시나리오를 실행해가고 있는 것으로 읽혀진다. 현재로서는 갈등의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하지만 결별은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잃게 한다는 점에서 벼랑끝에 가서는 미봉책으로나마 봉합을 하게되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총재단회의에 보낸 이총재 서한 전문 나는 우리당이 민자당과는 달리 6·27지방선거 후보추천과정이 완전한 자유경선으로 이루어져 우리당내에 당내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그러나 최근 당내에서 만연하고 있는 폭력사태에 대해 당을 책임지고 있는 총재의 입장에서 국민에게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완전 자유경선으로 이루어진 경기도지사 경선대회가 폭력에 의해 불법적으로 중단된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반민주적인 행태이다. 당 진상조사단의 조사활동이 문제의 본질인 폭력사태를 외면하고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규정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현역 국회의원이 폭력배들에 의해 구타당하고 단상에서 끌려 나오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반민주적인 행태이다.더욱이 선거관리위원장에게 폭력이 행사되고 선거관리위원회의 기능이 마비된 것은 민주적 절차의 본질을 마비시킨 것이다.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이다.폭력으로 대의원들의 의사를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은 청산되어야 할 구시대의 잔재이다.분명히 말해 나는 야당사가 다시는 폭력에 의해 얼룩지지 않게 하기 위해 나의 모든 것을 걸 각오이다. 당의 총재가 이를 못막는다면 어느 누가 이를 막을 수 있겠는가. 경기도지사 경선이 폭력에 의해 중단되고,총재실이 무참히 유린되고,당이 수시로 점거당하고,국회의원이 당직자들에 의해 폭언을 당하고,동원된 전화부대에 의해 총재를 비롯한 당관계자들의 집에 협박전화가 다반사로 행해지고,안산의 김동현위원장은 자녀들이 학교에 가지 못할 정도로 출입이 봉쇄되는 이러한 폭력의 배후에 당내 인사들이 개입해 있다면 어느 누구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일련의 사태속에서도 참으면서 견뎌 왔지만 이제 당내 폭력이 우발사건으로 취급되는 이러한 상태에서는 더이상 인내만 할 수는 없다.당내 실세의 방해에 의해 당이 폭력사태에 대해 더이상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경기도지사 경선대회장의 폭력사태에 배후책임자가 있다는 것은 그 대회를 지켜봤던 모든 당원들이 이를 알고 있다.그들은 자진해서 당직을 사퇴해야 한다. 나는 이제 더이상 이들과 함께 당무를 의논할 의사가 없다. 최근 당내에서 행해진 감금 폭력 점거의 당사자들은 반드시 응분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이러한 조치가 이루어질수 없다면 나는 총재직을 더이상 수행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총재단회의에서 밝히는 나의 공식적인 입장은 두가지이다. ①경기도지사 경선대회의 폭력을 배후에서 조종한 당내인사는 자진해서 당직을 사퇴해야 한다. ②정상적인 당운영을 위해 동교동측의 창구일원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나의 견해가 5월27일까지 수용되기를 기대한다.야당사에 얼룩진 당내폭력의 근절을 위해 나는 나의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 민주 내분/앙금남긴채 수습국면 돌입/경기지사후보경선 파문 임시봉합

    ◎양계파 반목 여전… 「선거책임론」까지 제기/진상조사 결과따라 대위 증폭 가능성도 민주당 경기도지사후보 경선파문이후 계속돼온 이기택 총재와 동교동계간의 내분이 19일을 고비로 수습의 실마리를 찾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이날 총재단회의를 열어 경기도지사후보 선출대회장에서의 돈봉투및 폭력사태에 대해 조세형 부총재 주도로 당차원의 진상조사활동을 벌이기로 했다.이에 발맞춰 동교동계는 진상조사가 끝날 때까지 이 총재의 지원을 받는 장경우 의원의 후보사퇴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내부방침을 세웠다.소모적인 공방을 계속하기보다는 제3자(당)의 진상조사결과를 명분으로 삼아 이번 사태를 봉합하자는 데 양측이 의견접근을 본 셈이다.이에 따라 이번 사태는 3∼4일간의 진상조사활동을 통해 결과가 나오는대로 진정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진상조사결과가 이번 사태로 빚어진 양측의 감정대립까지 해소하기는 어려우리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오히려 사태의 봉합과는 반대로 양측의 대립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당주변에서는 보고있다.이날 총재단회의에서 벌인 이 총재와 동교동계 권노갑 부총재의 설전은 이같은 관측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이 총재는 회의에서 『대의원 합숙과 돈봉투사건을 밖에 알리고 TV를 통해 매일 보도되도록 한 게 누구냐』며 권 부총재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묻고 나섰다.측근들을 통해서는 그의 공개적인 사과까지 요구하고 있다. 이에 맞서 권 부총재는 『내가 폭력을 조장했다고 하는 모양인데 사실이 그렇다면 정치도,의원직도 떠날 각오가 돼 있다』고 흥분했다.「돈봉투사건이 이번 사태의 원인인데도 마치 폭력사태가 본질인 양 이 총재가 호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 있다.권 부총재는 나아가 『금품수수와 호텔투숙·향응제공·폭력사태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관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계를 떠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서로가 정계은퇴까지 들먹이며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양측간에 누적된 앙금은 언제라도 내분을 재연시킬 「불씨」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동교동계가 장 의원 후보사퇴요구를 집어넣은 것도 「백기투항」이 아니라 이 총재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해석이 더욱 유력하다.『끝내 장의원을 고집하겠다면 그를 내세워 선거를 치르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라』는 최후통첩의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다. 일각에서는 지방선거이후 양측의 결별가능성에 여전히 무게를 두고 있다.
  • 민주내분/「물귀신 사퇴」…계파불신 심화/민주「돈봉투 몸살」언제까지

    ◎동교계 「안의원 카드」로 이 총재 압박/표수에 상관없이 경선무효화 속셈 경기지사후보 경선에서의 돈봉투사건과 폭력사태로 빚어진 민주당 이기택총재와 동교동계의 갈등이 비등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민주당은 15일 「공멸」위기의식에 따라 황급히 대국민사과,진상조사,중단된 개표의 완료 3개항을 결정하는등 외형적 응급조치를 취해 일단 폭발은 면하는 양상을 보였으나 이날 하오 개표문제를 놓고 후보사퇴등의 최악의 사태가 벌어져 오히려 갈등의 진폭을 더욱 넓혀버렸다.동교동계는 이총재와의 「선개표 후진상조사」합의에도 불구,자파의 안동선후보를 전격 사퇴시켜 이총재측에 대한 압박공세를 본격화했다.장경우후보의 동반사퇴를 유도해 이종찬고문을 추대하려는 의도가 배어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총재측은 개표 결과 장후보의 당선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후보사퇴는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전면전도 불사한다는 각오로 계속 밀어붙일 기세다.안후보의 사퇴도 패배가 분명하다고 판단,「물귀신 작전」을 편 것으로 풀이한다. 거기다 양쪽은 돈봉투사건과 폭력사태에 대한 인식과 해법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노정하고 있다.이총재측은 개표결과에 모두가 승복해야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들 사건의 책임소재를 철저히 가리자는 입장이다.특히 이총재측은 돈봉투사건을 돈봉투 「조작사건」이라며 역으로 동교동계를 겨냥한다.무엇보다 이총재측은 안 후보측의 이규택 의원(경기도지부장) 폭행사태를 중대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동교동계는 사태의 조기진화와 함께 정치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안후보 사퇴에 따라 장후보도 매표행위와 향응제공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이다.아울러 장후보측의 매표행위의 전말을 철저히 밝혀내 이총재측에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때문에 매표여부등을 다룰 진상조사단 구성문제에서부터 양쪽의 감정대립이 폭발할 가능성이 많다.이처럼 양쪽은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한 접점찾기가 좀처럼 어려울 것 같다.그럼에도 두 진영은 결국 봉합되리란 전망이 우세하다.결별은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잃게 하기 때문이다. ◎장경우 의원 주장/“물의 일의켜 죄송… 「돈봉투」와 무관” 장경우 후보는 15일 『이유야 어떻든 정치적 물의를 일으켜 국민과 당원동지들에게 송구스럽다』고 사과하면서 『그러나 개표 결과 민주당후보로 나서 여당후보를 반드시 꺾으라는 대의원들의 뜻이 드러난 만큼 이를 겸허히 따르겠다』고 사퇴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기택 총재의 지원을 받는 장후보는 이날 하오 기자실에 들러 『중앙당 당무회의의 공식후보 추인을 받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돈봉투사건 「혐의」에 대한 중앙당의 진상조사문제에 대해 『적법절차에 따른 결정이라면 정치인으로서 당연히 승복할 것』이라면서도 『돈봉투사건은 전혀 모르는 일이며 꿈도 꾸지 않은 일』이라고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경기도지부 선관위가 이날 개표가 끝났음에도 자신을 당선자로 선포하지 않은데 대해 『중앙당의 철저한 입회아래 개표가 진행됐고 아무런 이의제기도 없었다』며 자신의 승리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장 후보는 안동선 후보의 전격사퇴에 대해『같이 경쟁한 입장에서 개표 결과를 기다려 보는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그는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이라는 소문에 대해서는 『대의원이 아닌 사람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안동선 의원 주장/“불법 명백… 이 총재 언행달라 실망” 15일 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후보를 사퇴한 안동선 의원은 『경선대회에서 빚어진 일련의 사태는 전적으로 대의원들을 호텔에 합숙시켜 향응을 제공하고 대회장에서까지 금품을 살포한 장경우의원과 이기택총재에게 있다』고 비난했다. 안 의원은 『불법선거가 명백한 만큼 결선투표의 결과에 관계없이 이번 경선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경선무효를 주장했다.그는 이어 『백주에 투표현장에서 불법과 부정을 저지르고도 도리어 내게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 당내 일부 인사들의 행태를 개탄한다』면서 『이런 풍토에서 경선에 임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 후보사퇴를 결심한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명확한 불법·부정을 눈앞에 두고 총재단이 진상조사에앞서 개표를 실시한 것은 부정을 덮어두고 선거를 하겠다는 뜻으로 매우 유감스럽다』고 덧붙였다. 안 의원은 『기회있을 때마다 지자제의 중요성과 깨끗한 경선을 강조해 온 제1야당의 총재가 실제로 보여 준 모습은 정반대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가슴아프다』며 『특히 국민을 위하고 민주당을 생각하기보다는 오로지 자신의 계파만을 위하는 소승적 행동에 대해 실망감을 감출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 총재단회의 표정/동교계/KT계/원색전 설전… 전면전 불사 태세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서의 돈봉투사건과 폭력사태에 따른 민주당의 이기택 총재측과 동교동계의 내분은 15일 양측이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듯 강경한 자세를 굽히지 않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두 진영은 이날 총재단회의에서 「선개표 후진상조사」의 수습방안에 일단 의견을 모았으나 개표결과 이총재의 지원을 받는 장경우 의원이 앞선 것으로 나타나자 동교동계는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고 개표에 앞서 동교동계의 안동선 의원은 경선무효를 주장하며 후보를사퇴하는등 진통이 계속됐다. ○…이날 상오 총재단회의에서 이총재와 동교동계는 원색적인 말까지 서슴지 않으며 설전을 벌였다. 동교동계의 좌장인 권노갑 부총재는 『총재측이 대의원들에게 향응과 금품을 제공해 대회 분위기를 과열시켰다』고 사태의 책임을 이총재에게 돌렸다.그는 『총재단에서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금품살포와 폭력사태에 대한 진상규명과 응분의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총재는 『단상을 점령하고 폭력을 행사,경선이 안되도록 한 사람이 누구냐』고 맞받았다.이총재는 또 『자파 대의원들을 단속하는 것도 잘못이냐.다 해왔던 일이고 정도가 문제지 10만∼20만원씩 주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 아니냐』고 흥분했다. 양측은 그러나 『당부터 살려야 할 게 아니냐』는 나머지 참석자들의 권유에 따라 「선개표 후진상조사」의 수습방안에 합의했다.이에 따라 회의에서는 먼저 개표를 실시한 뒤 진상조사위를 구성,금품수수와 폭력사태에 대한 조사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회의장 밖에 있던 이총재 진영과 동교동계 인사들의 「막후설전」도 치열했다.이총재의 한 측근은 『동교동계가 주도한 호남지역 경선에서도 돈이 돌았다』고 주장했다.이에 맞서 동교동계의 한 관계자는 『이총재가 지방선거는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당권경쟁에만 혈안이 돼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비난했다.
  • 48년 UN임시위원단 활동(새로쓰는 한국현대사:17)

    ◎소군이 입북막아 남북한 총선거 계획 무산/「단독선거」 이승만 적극환영… 김구·김규식은 반대/단정수립 5·10선거 감시 1948년 1월8일 군용 비행장인 김포공항에 비행기 한대가 착륙했다.이윽고 유엔 한국임시위원단(UNTCOK)위원인 KPS 메논 인도대표를 비롯한 오스트레일리아·시리아등 3개국 대표가 트랩을 내려 한국땅에 첫발을 디뎠다.위원단 일행은 서울로 들어오는 동안 길가에 늘어선 25만∼30만명의 한국인들에게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가능하면 3월31일까지 남북한 전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국회나 중앙정부를 수립하도록」감시하는 역할을 맡은 유엔한국임시위원단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대표환영 시민대회 열려 이어 캐나다·프랑스·필리핀·엘살바도르 대표가 29일까지 모두 한국에 왔다.중국대표는 호세택 서울총영사가 그 임무를 맡았다.당초 유엔총회가 선정한 위원국에는 우크라이나사회주의공화국이 포함됐으나 소연방국인 우크라이나는 참여를 거부했다. 서울 수도호텔에 숙소를,덕수궁에 사무실을 정한 위원단은 12일 첫회의를 열어 메논을 의장으로 선출했다.이틀 뒤 이들을 환영하는 시민대회가 서울운동장에서 열렸고 밤에는 덕수궁에서 리셉션이 개최됐다.극진한 환대 분위기 속에서 위원단 활동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당시 메논 의장은 『우리 위원단은 38선을 인정하지 않으며 한국은 결코 분단돼서는 안될 나라』라고 강조하고 『미·소의 양 제도를 체험한 한국인은 그 장점만을 살려 한국적인 정치체제를 육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자신만만하게 피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난관은 곧 닥쳤다.위원단은 1월30일 미군정 연락장교를 평양에 보내 소련군정측에 입북(입북)을 신청했다.이에 대해 소련군사령관 참모장인 샤닌소장은 『우리는 위원단을 인정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소련정부의 입장은 유엔총회 토의과정에서 분명히 밝혔으므로 위원단 입북을 주둔군으로서는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임시위원단은 입북에 실패하자 유엔 사무총장에게 소련측의 비협조를 제소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소련정부의 「부정적 입장」뿐이었다.위원단은북한지역에 들어갈 수 없음을 2월6일 공식발표한다. ○“식민지화 음모” 매도 이에 앞서 김일성은 유엔임시위원단을 극렬하게 비난함으로써 애당초 위원단 입북을 허용치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1월12일 발표한 이 성명에서 김일성은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미 제국주의자들의 심부름꾼으로 왔다』고 매도하고 『한덩어리로 뭉쳐 열렬히 투쟁하자』고 선동한 바 있다. 소련의 거부로 「남북한 전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처음 계획이 틀어지자 위원단은 남한에서만이라도 단독선거를 실시해야 하는지를 놓고 미군정,남쪽의 정치지도자들과 연속회담을 벌였다.우파들은 대부분 적극 환영하며 즉시 선거를 실시하라고 요구했다.그러나 우파인 김구의 한국독립당과 좌파세력,김규식을 비롯한 중도파는 통일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맹렬히 반대했다.미군정은 물론 단독선거 실시에 찬성했다. 이를 계기로 이승만과 김구·김규식은 정치적으로 완전결별한다.결과는 물론 실패로 돌아갔지만 김구와 김규식은 남북협상에 정치적 운명을 걸었다.해방공간에 돌아온 직후부터 미군정과 마찰을 빚어가면서 공산주의를 통렬히 비난한 이승만은 우파진영을 이끌고 단선 참가로 나아가는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위원단 내부에서도 「남한 단독선거」가 유엔 결의에 부합되는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결국 위원단은 단독선거 실시에 대한 결정을 유엔 소총회에 넘겼다.2월19일 열린 소총회에서 미국대표는 『예견하지 못한 사태가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위원단은 접촉이 가능한 지역(남한)에서만이라도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한국인 가운데 3분의2가 선거에 참여해 중앙정부를 성립하면 북한도 이에 참여하기 위해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소총회 투표에서는 미국의 입장이 찬성 31,반대 2,기권 11로 채택됐다.반대표를 던진 오스트레일리아 대표는 『남한에 수립되는 정부는 북한과 대립하게 될 위험성이 짙다』고 지적했다.그는 만약 북한이 한국정부에 위협을 가하게 되면 유엔은 스스로 수립한 한국정부에 대해 적극 원조하든가,모든 책임을 포기하는 난처한 처지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소련은 이 회의에 아예 불참했다. 유엔 소총회에서 단독선거의 합법성을 인정하자 한국임시위원단은 선거준비에 박차를 가한다.2월28일 위원단은 『접촉이 가능한 지역에서 늦어도 5월10일까지는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성명서를 발표했다.그러나 임시위원단에게는 선거를 주관할만한 능력이 현실적으로 없었으며 스스로도 선거를 감시하고 그 결과를 총회에 보고하는 정도를 가능한 일로 받아들였다.이는 곧 선거를 관리하는 주체가 미군정임을 인정한 것이었다. 미군정은 위원단 발표에 이어 『총선을 5월10일 실시하겠다』고 공표했고 위원단은 이를 추인했다.선거는 1947년 8월 과도입법의원이 통과시킨 선거법에 따라 시행하기로 했다.위원단은 선거기간동안 30명의 인원으로 전국을 돌며 선거과정을 감시했다.「5·10선거」가 끝나고 위원단은 6월25일 선거결과를 평가하는 회의를 열었다.그들은 『1945년 5월10일의 선거결과는 한국민의 3분의2를 차지하는 주민들이 자유의사를 합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렸다. ○북도 서둘러 단정 구성 위원단은 이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그해 9월 파리에서 열린 총회에 보고했다.회기 막바지인 12월12일 총회는 보고서를 승인,대한민국의 합법성을 인정했다.이와 함께 한국의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임시위원단의 업무를 대신 수행할 「유엔 한국위원단」을 설치한다고 결정했다.이로써 유엔 결의에 따라 남한의 단독선거를 감시·평가한 「유엔한국임시위원단」활동은 1년여만에 막을 내렸다. 한편 북한은 임시위원단 입국후 단독정부 구성을 서둘렀다.1948년 5월1일 조선인민위원회는 「헌법」을 발표하고 8월25일에는 최고인민회의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를 치렀다.이어 9월7일 북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스스로 전한국을 대표하는 정부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한국내 활동을 개시한 뒤 정국은 「유엔 감시아래 남한 단독선거­남한 단정 수립­이에 대응하는 북한정권 등장」이라는 예정된 수순을 밟아나갔다.이는 한반도를 점령한 미·소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일찍부터 예견된 이데올로기적 정치구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북,인민정부 세우려 민의조작/「유엔한위문서」가 밝힌 단선저지 움직임/“남한단독선거 반대 349만 시위” 주장/“「소련식 헌법」추천서 4만건 접수” 선전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이 한국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서자 북한정권은 이를 저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다.1948년 미군 정보부대가 작성,기밀문서로 보관돼 오다 지난 85년 비밀해제된 「유엔 한국임시위원단 관계문서」는 당시 북한 내에서 벌어진 일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북한당국의 의도는 임시위원단으로부터 주도권을 빼앗고 남한 단독선거 실시를 막자는 것이었다.이에 따라 한반도 전역에 소련식 인민정부를 수립하고자 조작된 민의를 총동원했다.평양방송이 3월 한달동안 대남방송한 내용을 보면 ▲남한 단독선거에 반대해 이북에서 3백49만9천4백63명이 시위등 항거에 나섰고 ▲항의편지가 1만6천3백57통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달성하는 유일한 길은 전국에 걸쳐 소련식 인민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라는 주장 아래 소련것을 본떠 마련한 「헌법」에 대한 추천서가 4만건이나 접수됐다고 선전했다.이밖에 인민군이 「임시위원단 반대」행진을 벌였다거나,남한에서 단독선거를 반대한다는 단체 그리고 북한에서 「헌법」을 토의·찬성했다는 집회 명칭을 쉴새없이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서 끝에 붙은 미군 971방첩대(CIC)보고서는 이같은 선전들이 북한주민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크게 다르다고 보았다.이 보고서는 『북한 사람 대부분은 임시위원단에게 큰 기대를 가졌다.이 기대는 비록 위원단의 입북이 거절된 뒤 많이 사라져가긴 했다.그러나 일부에서는 아직도 유엔임시위원단 또는 남한 단독정부가 한국 전체를 통일하리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 다국적 위스키사/국내시장 점령 “양면공세”

    ◎원액값 인상… 완제품은 인하/1년새 매출 10배 이상 신장 세계적인 다국적 주류회사들이 국내 위스키 시장에 본격 진출하기 위해 원액 가격은 올리고 완제품 가격은 대폭 내리는 「샌드위치 전략」에 돌입했다.그 결과 올들어 석달 만에 국내 위스키 시장의 10% 이상을 이들 회사의 수입 완제품이 점령했다. 시그램,UDG(유나이티드 디스틸러스),IDV(인터내셔널 디스틀러스 앤드 빈트너스)등 세계 3대 메이저가 주역들이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시그램사는 12년산 시바스 리갈을 국내에만 있는 7백㎖ 용량까지 만들면서 92년 7만2천원에서 4년 사이에 가격을 절반인 3만5천원으로 내렸다.최근 들어 백화점에서는 2만5천원까지 판다. 반면 OB시그램의 패스코트 섬씽스페셜 원액 공급가격은 91년 19.8% 올린데 이어 계속 인상 4년 사이에 ℓ당 3.98파운드에서 5.35파운드로 34.4%를 올렸다. UD사는 12년산 조니워커 블랙과 15년산 딤플의 가격을 역시 대폭 내렸다.판매 대행사인 리치몬드 코리아와 UDK를 설립했다.반면 진로에 수출하는 원액 가격은 최근 4년사이에 30% 가까이 올렸다.진로가 지난 해 UD사와 결별하고 스코틀랜드에 원액 공장을 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IDV사도 J&B 레어 용량이 50㎖ 더 많은 데도 불구하고 비슷한 가격으로 내렸고 티처스,카나디안 클럽의 하이램워커사나 코냑으로 유명한 레미마땡사도 공세에 나설 전망이다. 이같은 시장 잠식의 우려는 1·4분기부터 현실로 나타나 수입 위스키의 판매량이 12만 상자(7백㎖ 6병)로 시장 점유률이 10.2%로 치솟았다.93년까지만 해도 0.8%에 불과했다. 특히 시바스 리갈은 93년 전체 판매량의 10배가 넘는 8만3천상자를 파는 기염을 토했다.국산위스키는 임페리얼과 패스포트를 뺀 전 상품의 판매량이 감소했다.
  • 일「독가스 테러」의 교훈/김원치 서울지검 동부지청 차장검사(기고)

    최근 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사건에 이어 이 사건 수사를 총지휘하고 있던 구니마쓰 다카지(국송효차)일본 경찰청 장관이 지난달 30일 상오 출근 도중 자택앞에서 피격된 사실로 일본국민이 엄청난 충격을 받고 있다는 보도이다. 현재 총격을 한 범인과 배후가 누구인가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지하철 독가스 테러사건 수사로 그 실체가 벗겨져 궁지에 몰리고 있는 오우무 신리쿄(진이교)가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한다. 앞으로 철저한 수사에 의하여 범인과 배후가 밝혀지겠지만 지하철 독가스 테러가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한 것임에 비하여 경찰청 장관에 대한 테러는 그 대상이 국가 치안 유지의 책임을 맡은 기관,즉 국가공권력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원래 테러는 그 목적이나 입장에 따라 개념이 다르나 공포와 충격이 따르는 폭력행위의 조직적 사용을 수단으로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극단주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이번 경찰청장 테러가 노리고 있는 숨은 목적은 무엇인가.즉 공포와 충격을 수단으로 파괴하려는 것은 무엇인가.그것은 바로 국가이며 국가의 권위,국민의 국가에 대한 신뢰인 것이다.즉 폭력행위를 통하여 국가권력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 하여 국가의 치안유지세력을 묶어놓음으로써 국가권력을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 국민의 국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자는 것이다. 70년대 서독의 안전을 크게 위협하였던 테러조직 바더 마인호프 그룹의 이론적 지도자 울리케 마인호프는 「도시게릴라 개념」이란 문건에서 이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도시 게릴라는 국가적 지배도구를 면밀하게 파괴하고 때때로 무력화시키는 것,체제의 무량성과 그 불가침성의 신화를 파괴하는 것이다』 또한 같은 그룹의 이론적 지도자이며 나중에 테러리즘과 결별한 호르스트 말러도 「서유럽에서의 무장 투쟁에 관하여」라는 문건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국가는 모든 노동자 뒤에 감시병을 두어 그들의 동향을 감시할 수 없고,개개 자본가·정부 공무원·판사·장교들을 위하여 무장 초소를 설치하여 보호할 수도 없다』 특히 경찰에 대한 울리케 마인호프의 증오는 충격적이다.『우리는 경찰을 소와 돼지들이라고 말한다.우리는 정복을 착용한 타입은 돼지라고 말한다.따라서 우리는 그들과 투쟁하지 않으면 안된다.그리고 당연히 그들을 사살할 수도 있다』이번 사건이 시사하는 것은 우선 테러리즘이 서구형의 범죄만은 아니라는 사실과 그것이 우리와 가까운 나라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테러리즘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테러리즘의 유형이 다양한 만큼 그 해답을 한마디로 끌어내기는 어렵다.다만 테러행위에 대한 세계각국의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얻은 결론 중 중요한 것은 폭력주의에는 결코 굴복할 수 없다는 국가 차원의 결연한 의지와 용기 및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강력한 물리적 강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테러리즘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미리 제거하는 일이다.오우무 신리쿄 사건에서와 같은 광신과 사이비 신앙,적군파 등 과격파의 예에서 보이는 편협된 이데올로기와 도그마주의,일본에서만 예외일 수 없는 마약이나 환각물질 탐닉 등 이른 바 현대산업사회의 일부 부정적 현상들이야말로 이번 사건과 같은 폭력주의가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이다.그것을 극복하고 도덕성 높은 사회가 되어야만 테러리즘은 종식될 수 있다. 나아가 이른바 보수와 진보 등 세계관의 차이나 냉전에서 탈냉전으로의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의 기본적 가치,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해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이견이 없는 절대다수 국민들의 단결된 힘이 필요하다. 이렇듯 국가의 의지와 힘,사회구성원들의 도덕적 자각과 결집,폭력주의에 대한 지속적인 경계를 통하여 『테러리즘에 관한한 국가와 국민은 잠자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이야말로 이번 사건이 우리들에게 주는 귀중한 교훈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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