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바람」 한반도 유도”신호/소 외무의 “장벽제거”발언의 의미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지난 10일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을 마친뒤 기자회견을 통해 한반도의 「장벽」 제거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촉구해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데탕트분위기가 무르익은 가운데 소련의 고위관리로서는 처음으로 한반도의 남북교류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일단 한반도평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언의 배경과 의미를 국내전문가들과 도쿄의 시각을 종합해 정리한다.
◎한국정부의 시각/「장벽」보도 엇갈려 공식적 논평유보/대소외교 강화… 새 대북채널도 가동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이 10일(현지시간)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과의 양국외무장관회담후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한반도장벽철거」를 촉구한데 대해 외무부와 통일원등 정부관계부처는 「장벽」의 의미가 확인안돼 일단 공식논평을 유보한 채 사태추이를 관망하고 있다.
현재까지 셰바르드나제외무장관의 정확한 발언진의를 알수 없는데다 「한반도장벽」에 대한 APㆍ로이터등 서방진영통신과 소련관영 타스통신의 보도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방통신은 단순히 「한반도장벽」이라고 표현했지만 타스통신은 『한반도를 두부분으로 분할하고 있는 군사분계선지역의 콘크리트장벽 해체와 주민의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하는데 대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의 제의에 적절한 반응이 없다』고 밝혀 북한측이 주장하고 있는 휴전선남쪽의 콘크리트장벽을 지칭했다.
그의 발언에 대한 정부의 시각도 크게 둘로 나뉘어지고 있다. 첫째로는 북한 김일성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혔듯이 휴전선남쪽에 콘크리트장벽이 존재한다는 북한측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시각이고,분단이후 40년 넘게 계속돼온 장벽을 단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분단」의 의미로 언급했을 뿐이라는 다분히 축소적인 해석이 두번째 시각이다.
전자의 경우는 미소 외무장관회담을 앞두고 북한측이 콘크리트장벽철거와 자유왕래문제에 대해 소련측과 사전협의를 거쳐 소련측이 앵무새처럼 북측입장을 대변한 것을 의미하며 국제적인 여론을 유리하게 전개시키기위한 북측의 술책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우선 셰바르드나제의 기자회견전문을 미국측을 통해 입수,「장벽」의 의미를 정확히 분석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상호 교환설치된 주소 한국영사처와 주한 소련영사처라는 한소간 공식외교채널을 통해 콘크리트장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사실을 소측에 납득시킬 방침이다.
또 소련의 고위관리가 때 맞춰 문익환목사,임수경양등 밀입북 인사에게 중형을 내린 남한정부를 비난한 사실도 한반도 문제해결에 대한 소측의 편향된 자세를 보여준다는 것이 정부측의 분석이다.
반면 정부내에서는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의 발언이 대체적으로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간의 직접대화촉구등 한반도문제해결에 적극성을 띠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기류도 많다. 즉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철수 문제에 대해 「완전철수의 분위기가 아직 조성되지 않았다」고 밝힌 점은 소측이 그전보다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균형을 찾아간다고 볼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이같은 관점에서 셰바르드나제의 발언은 북한개방을 유도하기 위한 대 한반도정책의 또 다른 표현으로 향후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결국 정부는 셰바르드나제의 이번 발언으로 한반도문제가 베를린장벽과 함께 국제적인 문제로 격상됐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남북관계의 정확한 현실을 알리는 홍보외교에 주력하는 한편 북한개방유도를 위해 기존의 대화와 함께 새로운 대화채널을 가동시키는등 남북회담에서의 이니셔티브를 잡아 남북관계를 주도해 나가기로 했다.
◎일본 언론의 시각/크렘린의 「정치ㆍ경제적 이해」직결/태평양지역서의 군축촉진도 겨냥
합의내용에 있어서 획기적 진전을 가져온 이번 미소외무장관회담에서 지역분쟁문제의 하나로서 한반도문제가 구체적으로 거론됐다는 사실을 일본외교소식통들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특히 공동성명에서 『미소 양국은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바라며 남북대화 지지를 표명했다. 소련측은 북한이 가까운 장래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보장조치협정을 맺을 전망이라고 말했다』라며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언급한 사실을 중요시하고 있다.
더구나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10일상오 모스크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재차 한반도긴장완화에 대해 소신을 밝힌 것은 소련의 한반도정책자체를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도쿄(동경)신문은 모스크바 특파원 해설기사를 통해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한반도문제에 관해 국제사회는 남북한간의 벽을 헐기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자유왕래 실현에 강한 의욕을 표명한 것은 한국과의 경제교류를 촉진하고 유럽군축의 흐름을 극동에 파급시키며 남북한의 국경개방,나아가 남북통일을 목표로 하는 소련정책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셰바르드나제외무가 미소 외무장관회담 석상에서 한반도의 벽철거구상에 지지를 요청했을뿐만 아니라 기자회견에서도 그 실현을 위한 여론조성을 당부한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배경에는 크렘린의 정치ㆍ경제적 이해관계가 한반도ㆍ극동지역과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상기시켰다.
고르바초프서기장의 아시아ㆍ태평양지역구상에 따라 시베리아극동부의 경제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소련은 경제대국 일본과의 경제ㆍ과학기술교류를 바라고 있으나 「북방영토 반환문제」가 장애로 되어있기 때문에 급진전의 전망은 없다. 따라서 소련은 극동제2의 경제대국인 한국과의 경제교류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더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사회주의동맹국 북한 김일성정권에의 정치적 배려가 필요하다.
만일 이벽을 헐고 남북교류ㆍ대화가 진행된다면 북한이라는 정치적 걸림돌은 없어지게 된다.
소련의 남북한장벽제거 주장에는 또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일본언론들은 지적한다. 그것은 미제7함대,필리핀,오키나와(충승)등 미측이 압도적 우세에 있는 극동ㆍ태평양 지역에서 긴장완화ㆍ군축을 촉진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베를린장벽의 철거등 동서유럽에서의 긴장완화는 유럽군축을 크게 촉진시켰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성공한 외교수법을 아시아에도 적용해 온 고르바초프정권은 이와 같은 한반도장벽의 철거에 의해 극동ㆍ태평양군축에 미치는 정치ㆍ심리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일본의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아사히(조일)신문은 11일자 사설에서 『종래 미소간에는 제안역제안비난결렬이라는 패턴이 많았으나 이번에는 그것이 무너졌다』며 양보에 의한 획기적인 미소대화의 전진을 높이 평가하고 한반도를 비롯한 독일재통일문제,아프가니스탄ㆍ중미ㆍ중동ㆍ일본의 북방영토문제등 세계의 지역문제를 또하나의 중요테마로 삼았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요미우리(독매)신문도 사설에서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관련,우려를 표명했다. 우리들은 이미 이 문제에 관해 북한이 하루빨리 국제원자력기구의 전면사찰을 받아들일 것을 당부했다. 새삼 북한의 조치를 촉구한다』며 북한측에 화살을 겨누었다.
◎미소외무 공동성명 한반도관련 부분
미소 외무장관회담에서 발표된 공동성명중 한반도 관련부분은 다음과 같다. 『미국무장관과 소련외무장관은 태평양 및 동북아시아문제를 논의했다. 이들은 이 문제들에 관해 조속히 미소협상을 벌이기로 합의했다. 양국 외무장관들은 한반도의 긴장을 줄이고 남북대화를 지지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소련측은 북한이 핵안전문제에 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정을 맺을 직전단계에 와 있다는데 유의했다. 미국측은 이 협정이 속히 체결돼 성실히 이행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표시했다』
◎국내 전문가들의 반응/대한교류 확대ㆍ대북 개방압력 시도/장기적으론 남북관계의 안정에 기여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한반도의 「장벽」제거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소련이 자유개혁 및 냉전종식의지를 극동으로 확산시켜보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미소간의 핵무기 감축 및 유럽주둔군 대폭 감축에 상당한 의견접근이 이뤄졌고 동구의 민주화개혁과 베를린장벽의 붕괴에 따른 동서독간의 통일논의가 한껏 무르익은 시점에서 이제 유일하게 청산돼야 할 냉전의 유산은 한반도문제 뿐이기 때문이다.
서울신문논평위원 서병철교수(외교안보연구원)는 『소련은 현상태에서 동서독의 경쟁상황이 동구동맹국들의 성장과 소련의 개혁진전에방해가 된다고 판단,통독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로 전환한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한반도에서도 동서독과 같은 진전을 기대하고 있다』고 이번 발언의 의미를 분석했다.
셰바르드나제의 발언은 소련의 최대 관심사를 유럽에서 극동까지 확대한다는 의미와 함께 유일하게 개혁을 거부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개방압력 시도라고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소련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한국과의 교류확대를 절실히 희망하는 소련의 속사정도 이번 발언의 의도에 내포돼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한반도의 긴장완화 및 안정을 통해 소련은 한국과의 교류확대 및 북한에 대한 경제ㆍ군사원조 부담 경감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소련은 이번 발언을 계기로 앞으로 북한에 대한 개혁ㆍ개방 압력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4월초로 예정된 김일성의 방소때도 이같은 문제가 주요관심사로 대두될 것으로 예상된다. 셰바르드나제의 이번 발언에 대해 로이터통신등 서방언론들은 한반도의 「장벽」을 상징적인 의미로해석,분단상황 그 자체로 전달하고 있는 반면 소련관영타스통신은 김일성이 올해 신년사에서 공세를 폈던 구체적인 콘크리트장벽을 지칭,셰바르드나제의 이번 발언이 북한을 거들어 주기 위해 사전협의를 거친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셰바르드나제가 설령 남한의 콘크리트장벽(실제로 있지도 않지만)을 지칭했다 하더라도 이는 북한의 반발을 다소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한 언어구사일뿐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북한의 개방과 무력도발의지 포기를 통한 한반도의 안정추구가 발언의 주목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의 향후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북한이 당장 개혁정책을 받아들이기에는 지난 40여년에 걸친 강권통치의 유산이 너무 뿌리깊이 박혀있어서 대혼란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단기간내에 북한의 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일단은 지배적이다. 북한이 소련의 예속국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발언을 계기로 오히려 중국과의 밀월관계 유지쪽으로 돌아서리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경제의정체,국제정치의 변화,김일성사후 격하운동의 소지를 사전에 예방하고 김정일에게도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게 대두되고 있다.
서울신문 논평위원 최평길교수(연세대)는 『이번 발언은 소련의 한반도개입 및 북한에 대한 개방압력의지를 보인 것이기 때문에 당장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안정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쨌든 이번 발언으로 한반도문제는 이제 국제적인 최대관심사로 부각됐다.
한반도의 긴장완화는 주변강대국들의 협조없이는 이뤄지기가 쉽지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남북한 양측의 성실하고도 적극적인 노력과 대화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