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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윤 경제팀의 컬러와 과제

    ◎“성장속 형평추구”… 「경제항로」 방향선회/수출ㆍ투자 활성화 대책 적극 추진할듯/정책자금 확대ㆍ대기업규제 완화 예상/물가안정ㆍ부동산 투기 봉쇄 여부가 성패의 변수 대폭적인 개각과 함께 이승윤경제팀이 모습을 드러냈다. 민자당출신인 이의원의 부총리기용은 개혁무드의 퇴조와 함께 정책기조가 성장쪽으로 전환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가 당정을 포함한 현재의 여권내부에서 대표적인 성장론자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출범하는 이승윤경제팀의 성격은 신임 이부총리의 개인적 성향이라는 측면과 3ㆍ17개각이 갖는 의미가 포괄적으로 파악돼야 할 것 같다. 이번 개각은 과거와는 달리 경제운용 기조를 둘러싼 당정간의 정책논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시기에 이뤄졌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책기조의 대전환 즉 전임 조순팀은 경기부양책의 사용문제와 관련,안정기조를 해칠 우려가 크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반면,신임 이부총리는 기업의 투자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으로 맞서왔다. 조부총리는 재임기간중 계층간의 불형평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으나 이부총리는 성급한 개혁이 기업의 투자의욕을 떨어뜨려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논리를 펴왔다. 따라서 이부총리의 기용은 「안정론」과 「성장론」으로 대비되는 정책논쟁이 「성장론」의 채택으로 일단락됐음을 의미하고 있다. 경제기획원ㆍ재무ㆍ상공ㆍ농림수산ㆍ동자부 등 주요 경제부처와 청와대경제수석이 한꺼번에 교체된 것도 지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5공에서 6공으로 넘어가는 정권교체기에도 정책의 계속성 유지라는 차원에서 일부 핵심경제부처의 장관들이 유임됐던 것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정책기조의 전면적인 수정을 의미하는 부분이다. 이승윤경제팀 안에는 이부총리 자신을 비롯,강보성농수산,이희일동자 등 3명의 현역의원들이 금배지를 단 채 입각하고 있는 것도 특이한 양상이다. 이는 앞으로의 경제정책 결정과정에 거대여당이 된 민자당의 입김이 강화될 것임을 말해준다. 조순경제팀은 자신들의 개혁정책을 뒷받침할만한 믿음직한 정치세력을 갖지 못했으며 이것이 개혁정책이 주춤거린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이에 비한다면 이승윤경제팀은 매우 유리한 정치적 환경에서 출범하는 셈이다. 새 경제팀은 성장정책을 지지해줄 매우 강력하고 확고한 정치적 후견인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의 입김 강화될 듯 이승윤경제팀이 내걸 경제정책의 방향이 「안정ㆍ개혁」에서 「성장」으로 바뀔 것이라는 점에는 이론이 없는 것 같다. 그의 평소지론인 성장론이 입각후 어떤 내용의 성장정책으로 구체화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부총리는 이에 대해 「물에 빠진 자식을 건지는 심정」으로 수출ㆍ투자 활성화를 통한 성장촉진에 최우선적으로 역점을 둘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표현의 강도로 보아 단기간 안에 경기부양효과를 가시화할 수 있는 모든 정책수단을 총동원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감지할 수 있다. 경제기획원은 이부총리의 기용이 확실시된 금주초부터 그의 성장지향적인 성향에 맞추어 경기부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들을 중심으로 한 보고자료를 준비해두고 있다. 이 보고자료에는 금리인하,각종 정책자금 확대,세계잉여금등 재정부문 지원확대,대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완화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가운데 상당부분이 투자와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희갑수석에서 김종인수석으로의 청와대경제수석의 교체도 부총리경질과 마찬가지로 개혁정책의 퇴조및 성장정책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부분으로 해석된다. 김수석은 70년대 이부총리와 함께 서강대에서 교수생활을 한 적이 있어 서강학파 출신의 성장론자 그룹으로 인식되고 있다. 다소 경제안정이 위협당하는 위험이 따르더라도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어 이부총리의 성장정책 추진에 좋은 팀웍을 이룰 수 있는 인물로 보인다. 김수석은 성장론자이기는 하지만 재정의 사회개발및 복지기능을 매우 중시한다는 점에서 이부총리와 구분지어 복지론자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김수석은 실제로 5공화국에서 민정당내의 정책파트를 맡아 최저임금제ㆍ의료보험제ㆍ국민연금제등 복지관련 시책을 입안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새로운 경제팀을 이끌어갈 이부총리­김수석라인은 성장추구에 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두면서 복지시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성장이나 복지 모두 금융정책면에서는 팽창ㆍ확대를 선호하는 경향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경제의 안정기조는 심대한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복지정책 지속 추진 경제기획원 관계자들은 현재의 안정기조를 유지해 나가려면 금융과 재정을 긴축적으로 운용해 나갈 수밖에 없으며 이 경우 새 경제팀이 사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물가ㆍ부동산투기 등 경제안정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새 경제팀의 성장정책의 성패를 결정짓는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측면에서 정영의재무장관의 역할이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전임 이규성장관에 비해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는 유형이라기 보다는 유연한 성향의 인물이라는 평을 듣고 있어 그에게 긴축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박필수상공장관은 지난 70년대에 상공부 상역차관보로서 3공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진두지휘했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개혁무드의 퇴조와 함께 출범한 새 경제팀은 당장 장기불황에 빠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소생시켜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정책수단은 제한돼 있고 경제의 밑바탕에 깔린 성장잠재력은 거의 고갈된 상태에서 단기간에 경제를 정상궤도에 올려놓기는 심히 어려운 일이다. ○성장책 구체화 관심 특히 새 경제팀이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는 금융실명제 추진에 관한 문제이다. 이부총리가 민정당정책위의장 시절부터 실명제의 실시연기론을 주장해왔기 때문에 그의 입각이 결정되자마자 실명제는 물건너간 게 아니냐는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명제의 실시 를 연기할 경우 민자당과 노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에 미칠 어떤 영향을 감안한다면 쉽게 실시연기를 결정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금융실명제가 예정대로 오는 91년 1월부터 시행된다 하더라도 그 내용은 현저히 완화될 것임은 분명한 것 같다. 새 경제팀이 할 수도 없고 안할 수도 없는 금융실명제 문제를 어떻게 결론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 가시화된「독일 재결합」을 보며/서병철 외교안보연 교수(특별기고)

    ◎「통독의 길」한반도까지 뻗치길… 민족자결원칙에 입각한 접근을 통한 점진적인 통일을 추구해온 서독은 미ㆍ영ㆍ불ㆍ소등 전승4대국과 주변 군소국가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급속한 통일을 기대하지는 않아 왔다. 그러나 서독은 동독내 사태가 급속하게 변화함에 따라 통일정책을 시급한 현안으로 인식하게 되어 콜총리는 작년 11월28일 국가연합(Confederation)형식의 10개항 통일안을 내놓았다. 한편 겐셔외무장관(자민당)은 콜총리(기민당)가 연립정부 구성 정당간의 협의없이 통일방안을 수립한데 대하여 「통일된 독일이 나토회원이 되고 미군과 소련군이 각각 현재의 동ㆍ서독지역에 계속 주둔한다」는 내용의 독자적인 통일방안을 제시하였다. ○미ㆍ소,기선잡기 바빠 통일논의는 선거를 앞두고 더욱 가속화되었다. 동독의 경우 3월18일 총선거에서 민주사회당(전사회주의통일당)과 「노이에스포룸」등이 집권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분당」에서 「통일」로 정책을 바꾸었으며 사민ㆍ기민ㆍ자민당도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통독논의에 열의를 보인다.서독에서도 국민의 주관심사가 통일문제로 되자 12월2일 실시될 예정인 12대총선거를 의식하여 각당이 통일문제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으며 동독총선거를 서독의 지방선거와 같은 형태로 간주하여 동독정당들의 선거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특히 정치지도자들이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주역이 되기 위하여 새로운 통독안을 제시하는등 기선을 잡으려 경쟁한다. 미ㆍ영ㆍ불ㆍ소 4대전승국은 독일의 통일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원칙적으로 통일을 추진한다는 정책을 채택하였다.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콜총리의 통일방안은 동구의 개혁을 방해하는 것이며 통독은 당장 논의해야 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작년 12월6일 불ㆍ소 정상회담에서 발언하여 작년말까지도 「2개독일정책」을 고수하였었다. 그러나 그는 통독문제의 긴급성을 인식하고 금년 1월29일 모드로브 동독총리와의 회담에 이은 2월10일 콜 서독총리와의 회담에서 독일통일에 찬성한다는 정책상의 변화를 보였다. 이로써 통독의 가장 큰 장애요인이 제거된 셈이다. 소련은통독이 「신사고」에 입각한 「유럽공동의 집」구성계획에 부합되고 붕괴직전의 동독을 양보하는 대신 중립화를 통하여 독일전체를 자국에 일보접근시키는 결과를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급선회하였다. 미국은 통일될 가능성이 높아진 독일문제에서 민족자결원칙에 따른 통독에 적극 협조하고 또한 소련과의 경쟁적 입장에서 기선을 잡으려 서독의 통일노력을 적극 지원한다. 미국은 통일된 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회원이 되고 체제도 자유민주화 된다는 전제아래 통일을 추진한다. 한편 프랑스 미테랑대통령은 『통일된 독일은 지나치게 강화되어 1차대전 발발직전인 1913년 상황에 도달한다』는 이유로 통독을 반대하였으나 민족자결에 의한 통일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협조지도 정책전환을 하였다. ○양동맹기구가 걸림돌 영국의 대처총리는 최근까지 『10∼15년 후에야 통독문제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했었으나 통독추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대세에 동조하고 있다. 통독이 이루어지기 위하여는 많은 문제점이 있으며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분란이도사리고 있다. 첫째,통독은 4대전승국의 동의를 반드시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승국들은 독일조약에서 통독문제에 대한 결정권과 추진책임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어 민족자결에 따라 양독이 통일합의에 도달하더라도 미ㆍ영ㆍ불ㆍ소의 동의는 필수적이다. 2차대전을 종결짓는 평화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상황을 변경하는 통일은 원칙적으로 종전 네나라 결정사항인 것이다. 둘째,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문제이다. 몰타 미소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군사블록을 해체하는 것이 긴급한 사항이 아니라는데 의견일치를 보았고 고르바초프는 『2000년까지 군사동맹을 해체하자』는 과거의 제의를 의식적으로 되풀이하지 않았고 부시도 유럽에서의 미군 주둔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소련은 동유럽 국가들이 바르샤바기구에 잔류할 것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어 중립화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한 동독을 동맹권에서 서방측으로 해방시켜 줄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11개주(서독)가 나토에 속하고 5개주(동독)가 바르샤바기구에 잔류해야하므로 이것이 가장 큰 난제이다. 셋째,주변국들이 통독에 대해 원칙적으로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독이 되면 7천6백만명의 인구(서독6천만,동독1천6백만)를 묶어 서독의 자본과 기술,동독의 숙련되고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제2의 경제기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주변국들은 유럽 중심부에 강력한 국력을 갖는 독일의 부상에 위협을 느껴 현상태를 선호한다. 통독이 이루어지면 군사동맹체제가 실질적으로 붕괴되고 강력한 중부유럽이 형성되어 현존하는 유럽질서가 크게 변화할 것이다. 즉 유럽을 가르는 바르샤바 나토 군사동맹의 군사적 성격이 약화되고 정치적 기구로 변질될 것이다. 통독은 사실상 유럽분단의 종결을 의미하므로 고르바초프의 「유럽공동의 집」달성이 가시화되어 소련의 적극적인 유럽사회 참여를 유도할 것이다. ○중부유럽 새질서 형성 한편 미소의 영향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독일의 비중이 커지고 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주변국가들의 구심점이 되어 중부유럽의 발언권이 강화된 새로운 국제질서가 조성될 것이다. 2차대전후 패전국으로서 독일이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오데르나이세 동독ㆍ폴란드 국경선은 이미 1950년 동독이,그리고 1972년 서독이 각각 인정한 바 있으나 통일된 후에 재론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현시점에서 통독가능성에 대하여 전망해 보면 동ㆍ서독은 경제면에서 통일을 먼저 달성할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양독은 2월13일 통화단일화 원칙에 합의하고 경제통화동맹 창설을 위한 합동실무위원회를 발족시킴에 따라 경제면에서의 통일이 향후 수개월안에 이루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독연방은행이 양국의 통화금융을 운영하고 하루 2천명 이상의 근로자들이 서독으로 이주하여 붕괴위기에 처한 동독경제를 서독이 흡수하게 된다. 동ㆍ서독간 최초의 합의도 경제에 관한 베를린협정(1951년 9월 체결)이었던 경험을 고려할 때 경제적 통일이 정치적 통일을 유도할 것이다. 동독총선거에서 사민당(당수­뵈메,명예당수­브란트)의 압승이 예상되며 이 당은 국민의 대다수(여론조사 결과 75%)가 희망하는 통일추진을 주요정책으로 내세우고 있어 통일논의는 선거후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마침 2월13일 오타와 나토ㆍ바르샤바조약기구 외무장관회의에서 미ㆍ소ㆍ영ㆍ불과 동ㆍ서독 6개국이 2단계의 통독방안에 합의하여 통독논의의 체계적인 추진이 제도화되었다. 이는 거쳐야할 과정과 순서를 명시적으로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통독전망을 밝게 한다. ○경제통합이 정치견인 끝으로 독일의 통일은 전후 형성된 불합리한 상황의 해결이라는 의미에서 한반도 통일에 대한 강대국의 협조의무를 상기시켜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또한 통독이 한반도 통일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북한을 대화에 응하게 하여 남북한간 접근을 촉진시킬 것이다. 북한은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을 분단을 영구화하기 때문에 거부한다고 하지만 1972년 12월 기본조약이 체결되고 1973년 9월 유엔에 동시가입하였으며 1974년 3월 상주대표부를 교환설치한 동ㆍ서독이 통일을 이루는 일은 대화조차 거부하는 북한의 이론을 오류로 만든다.
  • 경찰견에 물려 국교생 중태

    10일 하오6시20분쯤 경기도 고양군 신도읍 용두리 54 김건식씨(37ㆍ농업) 집앞에서 놀던 김씨의 아들 남일군(8ㆍ용두국교 1년)이 경찰견인 셰퍼드 5마리에게 머리를 마구 물어 뜯겨 중상을 입고 서울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중태다. 이날 사고는 김씨의 집 이웃에 있는 「임경찰견 훈련소」(소장 임영배ㆍ30)에서 사육중이던 경찰견 5마리를 이곳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생 김모군(18ㆍM고 2년)이 목걸이를 하지 않고 인근 야산으로 운동을 시키기 위해 데려가다 이 개들을 보고 놀란 남일군이 몸을 움츠리자 개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사고직후 남일군은 김군에 의해 가족들에게 넘겨져 응급치료를 받은뒤 서울적십자병원으로 옮겨졌다.
  • 「신사고」 앞세워 동서데탕트시대“견인”/고르바초프 집권5년의 평가

    ◎새로운 「자결원칙」 제시,동구 대변혁 “촉발”/강력한 대통령제 신설,개혁 가속화의 기틀 다져/“발등의 불”경제난ㆍ민족분규등 현안 “첩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겸 최고회의의장이 11일로 집권 5주년을 맞았다. 고르바초프는 그동안 사고의 대전환을 통한 대담한 개혁정책 추진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역사적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소연방내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민족주의 물결과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경제난 때문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르바초프는 12ㆍ13일 열리는 인민대표대회에서 비상대권 등 막강한 권한을 지닌 소련 최초의 서방식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취임 5주년 기념일인 11일에는 리투아니아공화국 최고회의가 독립국가를 선포하기 위한 표결을 준비하는 등 그에대한 도전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이같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는 개혁정책과 신사고외교를 성공리에 추진,소련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아니라 끝없는 군비경쟁으로만 치닫던 냉전체제에 종지부를찍으며 국제적인 데탕트 기류를 몰고 온 장본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대담하게 개혁 추진 지난 85년 체르넨코 서기장 사후 그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고르바초프는 지난 88년말 유엔총회연설에서 일방적인 국방비삭감과 50만명의 소련군 감축을 선언,세계의 군비경쟁에 결정적 브레이크를 걸었다. 또 소련의 동구개입을 뜻하는 브레즈네프독트린을 폐기하고 이른바 시내트러독트린(프랭크 시내트러의 히트곡「My Way」처럼 각국이 제갈길을 찾아가라는 의미)이라 불리는 새로운 자결원칙을 제시,지난해 동구의 민주화변혁을 가능케 했다. 고르바초프의 신사고가 없었다면 베를린장벽의 제거와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몰락도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함께 아프가니스탄 주둔 병력을 철수시키는등 지역분쟁 해결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ㆍ재편)와 글라스노스트(개방ㆍ정보공개)를 세계적인 유행어로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세계평화의 위협자에서 수호자로,동구제국의 지배자에서 해방자로,혁명수출국에서 분쟁중재국으로 소련의 역할전환을 이룩해낸 것이다. 시사주간 타임지는 고르바초프를 지난 8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플라톤의 정치의 도를 터득한 사람』이라고 극찬하면서 「80년대의 인물」로 선정했다. 지난달 미CNN방송이 고르바초프의 서기장직 사임설을 보도하자 뉴욕ㆍ도쿄등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 증권시장에서 주가폭락을 초래했을 정도로 그는 이미 전세계의 기대와 희망을 한몸에 받고 있다. ○군비경쟁에 쐐기 국내에서도 국제무대에서 만큼 가시적인 효과를 얻어내지는 못했으나 나름대로 소련의 정치체제를 뒤흔드는 일련의 개혁정책을 성공리에 추진하고 있다. 볼셰비키혁명이후 70년이 넘도록 유지돼온 공산당 권력독점을 포기,고질적인 관료제를 타파하고 정치적 다원주의의 물꼬를 텄다. 강력한 대통령직을 신설,개혁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기틀도 마련했다. 인민대표대회의 권한을 강화,자유로운 토론의 장으로 변모시켰는가 하면 각급 선거를 복수후보경쟁에 의한 비밀투표로 실시토록 했다. 정치범 석방,언론ㆍ종교ㆍ출입국 자유화 등의 민주화 조치도 취했다. 경제적으로도 관료적인 중앙집중식 계획경제의 비능률성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의 독립채산제를 채택하고 협동조합기업(코페라티브)설립과 합작을 통한 외국자본의 유입을 허용하는등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침체의 늪에 빠져든 소련 경제를 소생시키지는 못했다. 생산수단 사유화및 임금노동과 토지의 개인영구임대 및 상속을 허용하는등 보다 실질적인 조치들이 곧 입법화될 예정이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물자부족등 피부에 와닿는 경제혼란으로 인해 주민들의 불만과 급진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팽배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정보의 공개와 언론자유에 힘입어 소수민족공화국들의 민족적 자각과 그에 따른 분리독립요구가 높아져 연방해체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이같은 페레스트로이카와 신사고에 대해 고르바초프는 관료체제를 타파하고 「인간의 얼굴을 가진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발전을 위한 제2의 혁명이며 「보편적 인간 가치」를 위한 자본주의 국가와의 협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역 분쟁해결 앞장 일부 서방전분가들이 지적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마르크스­레닌주의의 포기」「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의 재생이라는 주장이다. 개정된 공산당 강령은 레닌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여도 안되지만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국유 또는 사회소유에 반하는 사적소유와 인간노동의 착취행위로 금지돼왔던 임금노동을 허용하는 문제들을 놓고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던 것처럼 아직도 사회주의적 「사회정의」와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상반된 개념중 어느 것을 취할 것인지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소련과 동구의 변혁이 일방적이 아닌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것처럼 소련내의 개혁도 집권층과 국민들간의 상관관계속에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에측불허인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개혁작업이 어떤 동기에 의해 추진됐건간에 전임자들도 똑같이 느꼈던 문제를 고르바초프만이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단 그의 대담한 실천력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고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제 대통령으로서 집권2기를 맞으며 앞으로 4년의 임기동안 실각의 우려를 덮어둔채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게 된다. ○부분적 시장경제로 개혁을 가속화시켜 국민들로부터 계속 지지를 받게될지 아니면 일부의 우려처럼 독재자로 변신할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오는 94년의 2대 대통령은 국민들의 직접비밀투표에 의해 선출된다는 점에서 스탈린식 강권통치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자유의 맛을 느낀 소련국민들도 두번다시 과거행 타임머신에 동승하기를 거부할 것이다. 강제이주 이전 거주지인 크림반도로 돌아가겠다는 타타르족등의 단순한 요구로부터 발트해연안 3국의 즉각 분리독립요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민족문제들이 고르바초프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또 루블화의 태환성 부여,가격ㆍ금융제도의 개선,완전자유시장의 도입등 근본부터 흔들어 놓아야 할 경제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세기의 영웅 고르바초프가 70년동안 타율성과 의욕상실증에 찌들대로 찌든 국민들을 다독거려 이같은 난제들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해나갈 것인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취임5돌 고르바초프 공과 ■외교 정책 ▲동구 각국에 대한 불간섭정책을 선언함으로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등 동유럽에 엄청난 변혁이 일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 ▲핵전쟁 발발 가능성의 공포와 유럽 및 중국에 대한 소련의 선제공격 우려를 현저히 불식. ▲국방비를 삭감하고 병력 50만명과 탱크 1만대 감축을 일방적으로 선언 ▲중부유럽 주둔 병력의 철수를 미국과 잠정적으로 합의 ▲미국과 중거리핵미사일 폐기를 합의한데 이어 오는 90년까지 장거리 핵미사일도 절반으로 삭감한다는 목표를 협상중. ▲아프가니스탄에서 병력 11만5천명을 철수. ▲앙골라ㆍ나미비아ㆍ캄보디아ㆍ니카라과 등 분쟁국에 대해 협상을 종용 ■민주화 ▲지난 89년 경선제를 도입하고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지도부를 설득,동의얻어냄. ▲강력한 대통령제 도입을 제안. ▲언론ㆍ집회ㆍ종교의 자유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법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 ▲정치범 수백명을 석방하고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에 대한 탄압을 종식 ■경제정책 ▲일반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생화수준 개선을 위한 노력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 ▲당지도부가 공장의 개인소유제도를 받아들이게 하는데 성공 ▲개인이 토지를 임대차하는 것은 물론 이 권리를 상속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으나 개인의 토지소유는 거부. ▲합작을 통한 외국자본의 유입을 대폭 완화. ▲90년도 적자가 1천5백억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함으로써 재정적자를 처음으로 공개. ■국내정책 ▲발트해연안 3개 공화국의 독립요구 운동을 묵인.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등 일부 공화국에서 민족분규가 발생해 진압군 수십만명을 파견. ▲관료들의 부정 근절 실패,폭력범죄도 계속 증가. ▲환경보호주의자들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환경개선에는 아직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음.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성과는 별로 나타나지 않았음.
  • 포철 명예회장제는 “다목적 카드”/직제개편의 배경과 과제

    ◎부회장에 박회장측근 앉혀 「원격관리」/정경유착 여론 벗고 후계자 육성 뜻도/일부 정치권선 「광양」분리 주장… 고민거리로 포철왕국의 후계구도가 직제개편을 통해 일단 정리됐다. 지난해말 박태준회장의 민정당대표위원 취임으로 지도 체제정비에 관한 논란이 계속되어온 포항제철은 6일 정기주총에서 명예회장제와 부회장 및 전무제도를 신설,부회장에 박회장의 측근인 황경노상임고문을 선임함으로써 외견상 황고문이 박회장의 대행역할을 맡는 체제로 탈바꿈하게 됐다. 박회장에 의해 포철왕국의 황태자격인 부회장에 발탁된 황고문은 그런 의미에서 이제까지 안개처럼 불투명했던 후계구도를 뚫고 처음으로 부상한 기린아로 평가하는 시선들도 적지 않다. 특히 황고문은 대한중석에서부터 박회장을 보필하다가 포철창립과 함께 박회장을 따라와 포항제철소 건설에 견인차 역할을 한 사이로 박회장의 「왼팔중 왼팔」로 꼽힌다. 때문에 박회장의 경영방식과 감각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황고문은 박회장이 직접 관여하지 않더라도 박회장의 체취가물씬 풍기는 포철경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포철이 이번 주총에서 명예회장제도를 신설했다는 점이다. 명예회장제는 일반적으로 회장에서 물러난 사람이 갖는 명예직에 불과하지만 포철의 경우 명예회장제는 대부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다른 국영기업들과는 달리 엄정한 인사관리 체제를 수립해 박회장 개인의 카리스마적 경영으로 이룩된 오늘의 포철풍토에서 장차 박회장은 명예회장으로 물러앉는다 하더라도 포철의 후견인 역할을 놓치지 않으리라는 분석이다. 포철회장임기가 아직 1년 더 남아있는 박회장은 여권핵심부가 자신을 민자당대표최고위원대행으로서 계속해서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집권당대표가 거대그룹의 총수를 겸임하는데서 오는 야당과 여론의 비판과 정경유착의 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척고심했었다는 후문이다. 그런면에서 박회장이 부회장제를 도입한 것은 이같은 겸임시비에 대한 여론을 식히고 사실상 포철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언젠가는 명예회장으로 포철의 후견인 역할을 계속하기 위한 위인설관으로 보는 견해도 많은 편이다. 그러나 만일 내년 주총에서 임기가 끝나는 박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물러선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황고문이 이끄는 포철에 어느 정도 자율경영이 정착될 것으로 전망된다. 포철이 이번 직제개편으로 경영에 새바람을 맞을 것임은 분명하지만 경영환경은 상당한 역풍에 직면해 있다. 포철의 지난 한햇동안의 당기 순이익은 1천4백45억원이며 매출액은 4조3천6백43억원,이같은 매출액은 국내기업중 단일기업으로는 삼성전자에 이어 2위이며 순익규모는 1위에 해당한다. 이러한 건실경영이 포철신화를 탄생시켰으며 지난해 포철을 국민주대상기업 1호로 뽑히게 했다. 그러나 최근 자동차ㆍ전자등 경기침체로 재고가 62만t(2천3백억원)이나 쌓여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으며 광양제철소 설비 증설 등을 위한 1천억원에 가까운 증자가 증시침체에 따른 재무부 측의 반대에 봉착해 포철의 자금사정을 악화시키고 있다. 특히 포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있는 것은 정치권과 민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광양제철을 포철에서 분리시키자는 논란이다. 광양제철소의 경영을 독립시켜 이른바 독점의 폐해를 없애고 호남권에도 번듯한 경제기반을 마련해 주자는 것이 일부 정가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포철은 펄쩍 뛰고있다. 포철은 건설비가 t당 4백22달러인 반면,광양은 8백32달러로 건설단가가 월등히 높아 광양을 분리시킬 경우 국제경쟁력이 약해 자립할 수가 없다는 반박이다. 현재로서 광양제철분리주장은 어떤 측면의 논리로도 공감을 받기에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왜 이같은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는지에 대해 포철측은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 것같다. 지난 3공에서 6공까지 포철은 정경유착의 한 예로서 거론돼 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사돈관계인 박회장은 5공시절 전 전대통령의 처남인 이창석씨가 세운 ㈜동일에 포철제품의 독점판매권을 주는등 특혜의혹을 샀고 박정희 전대통령의 아들인 박지만씨는 지금도 포철계열사인 삼양산업의 대표로 있는 것 등이 그 예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성장해온 포철이 국민을 주주로 한 기업으로 계속성장하기 위해서는 한 개인의 힘에 의존하는 타성을 벗고 정경유착의 소지를 줄여나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 「급등ㆍ급락」벗고 조정장세로(금주의 증시)

    ◎실명제등 악재 도사려 상승 주춤/증권주 불붙어 연일 상한가 행진/주말 거래는 활발… 2포인트 빠져 「8백81」 ○…증시에 불고 있는 봄바람을 얼마나 믿어야 할까. 아무리해도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증시의 장기침체가 이번주 소생하는 국면으로 바뀌었다. 봄이 다 그렇듯이 증시의 돌연한 입춘은 극적인 데가 있다. 15개월내 지수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대한」을 겪으면서 속으로 뿌리를 내렸고 당국의 중량급 부양책으로 움이 텄다. 지난주만 지난해 최저치 수준까지 밀려났던 종합주가지수는 이번주 첫날(26일) 88년 12월 수준인 8백33포인트까지 폭락,「증권파동」이란 말이 투자자들 사이에 들먹거려졌다. 그러나 이같은 하락은 오히려 주가상승을 위한 저력을 촉진시키며 국면전환의 발판이 됐다. 다음날 올 최대의 상승폭(26.02)과 함께 급등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12ㆍ12부양조치 이후 약간 되살아나던 주가는 해가 바뀌면서 약효가 소멸,곧 무기력 장세로 되돌아 갔는데 지난주까지 계속된 7주간의 약세국면은 「진정한 바닥권으로의 긴 여로」였다고 볼 수 있었다. 더이상 내려갈 길이 없는 바닥권에 도달하자 침체탈피의 스프링인 자율반등세가 생겨난 것. 바닥권에서의 도약은 증권주를 비롯한 금융주에 「사자」가 불붙으면서 이루어 졌다. 금융주는 시가비중이 큰(32%)데다 올들어 다른 업종보다 3∼4배나 더 빠져 종합주가지수 하락의 주범으로 찍혀왔는데,자율반등세력이 매수의 표적으로 삼음으로써 주가가 바닥권에서 탈출하는 구명대 노릇을 하게 됐다. 주가상승은 주 후반 들어서도 지속됐고 이때의 상승은 당국의 증시안정화조치 발표설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상승세 돌입 3일째인 2일,개장에 앞서 당국이 발표한 안정대책에서는 증권주에 대한 신용허용이 핵심이었다. 따라서 이번주의 장세전환은 어떤 면에서 「증권주적」 한계와 약점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일까지 8백84포인트가 회복됐고 거래량도 보기드문 활황 수준을 보였으나 증권주를 비롯한 금융업종을 제외하고는 주가가 오르거나 거래량이 크게 늘어난 업종은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주말인 3일 시장에서 주가는 하락세로반전,3일간의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개장초에는 증권주에 대한 높은 호가의 「사자」 주문이 전날과 마찬가지로 쏟아져 5포인트 정도 상승,8백90선에 육박했다. 그러나 증권주 매물이 달리고 제조업종주에서 금융주로 갈아타기 위한 매도물량이 쌓임에 따라 상승세가 주춤해 졌다. 여기에 시세차익을 노린 「팔자」 세력이 가세해 내림세로 돌아선 끝에 전일대비 2.63포인트 떨어진 8백81.44로 마감됐다. 상한가 63개 종목 가운데 증권주가 50개를 차지했으며 1백74개 종목이 오른 반면 4백67개 종목이 내렸다. 거래량이 1천3백29만주로 반나절장 최고수준인데 금융주만 9백90만주 가깝게 매매돼 금융주 일색이 계속됐다. 매매 형성률도 전주까지의 평균에 크게 못미치는 84%에 머물렀다. ○…요동치는 모습을 드러내며 장세전환을 이룩한 증시는 내주에 보다 차분한 모양새를 갖출 전망이다. 이번주와 같은 급등ㆍ급락을 예상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나 내주 주식시장이 꼭 상승세일 것으로 점치는 전문가도 드물다. 조정국면이 대다수 의견인데 이번 조정은보다 탄탄한 상승세를 위한 채비라는 것이다. 일방적인 상승세를 낙관 할 수 없는 것은 이번의 안정화조치가 발표이전 부터 상당히 주가에 반영된 데다 조치 내용 자체가 단기적이라기 보다 제도개선의 중장기적 방안이기 때문. 호재가 돌출되지 않는 한 정부당국이 증시부양의지를 굳건히 표명했다는 긍정적인 사실과 경기회복불투명,금융실명제 실시,부동산투기조짐등 기존악재간의 키재기 싸움에서 등락이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봄소식과 함께 노사분규 재연,정국불안등 반갑지 않은 계절적 악재가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 김경원 전 주미대사,미 국방대 연설

    ◎“「동구식 드라마」 북한선 쉽지 않다”/소 영향력 한계… 경제분야 변화 조짐/아태지역 묶는 안전보장 장치 필요 김경원 전 주미대사는 1일 소련군의 보호로 지탱해왔던 동구 공산정권들은 소련군의 개입포기의사가 천명되자마자 몰락,민주화 물결이 일고 있지만 아시아의 공산국가들은 자체적인 생존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동구권에서 처럼 쉽게 몰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에서 서구는 바르샤바조약기구라는 통합된 단 하나의 위협적인 존재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유럽에서 공산제국의 몰락은 서방측에 대한 위협을 직접적으로 감소시킨 이유이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처음부터 단일의 위협요소가 없었기 때문에 대칭적인 민주ㆍ공산진영간의 위협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위협요소가 다양한 점을 감안할 때 유럽에서 평화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감소한 반면 아시아에서는 불행히도 그러한 감소가 일어날 수 없었다. 단지 중소국경간의 긴장이 완화됐을 뿐이며 나머지 지역의 상황은 종전보다 더 불확실해졌다. 아시아의 공산정권들은동구 공산국가들과는 많은 차이를 갖고 있다. 반면에 중국공산당과 베트남공산당은 그들이 투쟁을 통해 정권을 잡은 것이지 소련군의 도움으로 정권을 잡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중국과 베트남이 폴란드 헝가리 체코의 전철을 따를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김일성은 초기에 소련군에 의해 정권을 잡았으나 잽싸게 자신의 위치를 굳히기 위해 친소파와 친중파를 제거하면서 소련과 거리를 두어 왔다. 소련이 북한의 후견인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김일성은 정권존립에 소련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 북한에서 동구식의 드라마가 쉽게 벌어지리라고 예측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차이점 때문에 아시아 공산정권들이 전혀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과 아시아 공산정권의 차이점이 의미하는 바는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이 곧바로 아시아 공산정권의 몰락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아시아 공산정권들 중에서도 북한이 가장 취약점을 안고 있다. 그 이유는 ▲국내기반이 가장 취약한 점 ▲한반도의 분단상태 ▲김일성 부자의 권력승계 등 때문이다. 북한은 동독이나 폴란드식의 개혁을 추진할 것 같지 않다. 북한이 그들의 경제문제에 대해 무언가 조치를 취하려는 조짐이 있으나 경제개혁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결론지은 것으로는 생각할 수 없다.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과 관련,미국이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할 3개항이 있다. 첫째는 유럽을 아시아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동구사태에서 오는 행복감과 평화의 분담금에 대한 기대치로 인해 미국내의 분위기가 유럽과 아시아의 차이점을 무시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둘째는 아시아 주둔 미군이 성급하게 대폭 감축되도록 해서는 안된다. 소련측의 감군조치에 부응,미군이 철수하거나 대규모 감축되면 판도라상자를 여는 것과 같아 일본의 재무장 등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둘러싸고 많은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셋째 아시아에서 안정된 미군사 태세가 필요하다고 해서 정치적 또는 군사적으로 현상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현상을 고정시키려는 정책은 소련의 평화공세를 거부하는 보수적인 태도로 간주될 우려가 있다. 미국이 대아시아 정책으로 추구해야 할 정책이 세가지 있다. 즉 첫째 미국과 아시아 우방들은 한반도와 캄보디아 등 역내의 안정에 위협이 되고 있는 지역문제들을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 둘째 미국과 그 우방들은 응집력 있는 군축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아시아는 유럽과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고르바초프의 아시아 군축제안은 시기상조다. 아시아에서 위협의 구조는 지역적인 것이 아니고 준지역적인 것이다. 셋째 동아시아의 안보를 제고하기 위해 아태지역을 하나로 묶는 제도적인 장치개발이 필요하다. 이러한 장치는 여러가지 기능을 갖겠지만 중요한 것은 미국의 아시아 개입을 안정시키게 될 것이다.
  • 노대통령 내일 취임2돌… 「청와대의 하루」

    ◎민의청취… 정책결단… 고독과 긴장의 24시/틈틈이 독서… 「페레스트로이카」읽어/결재 밀리면 퇴근뒤 서재로 옮겨 밤새 검토/휴일엔 영부인과 산책,서예ㆍ테니스등 즐겨 오는 25일로 취임2돌을 맞는 노태우대통령.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매일매일 결정을 해나가야하는 대통령의 청와대생활 24시는 어쩌면 고독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하루는 각료ㆍ참모들의 보고청취,주요인사접견,회의주재,오찬ㆍ만찬 등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비쳐지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청와대 24시 속에는 보통사람 노태우의 면모가 물씬하게 배어나온다. ○…노대통령은 침상맡에 자명종시계나 디지틀 라디오가 없어도 아침 6시만 되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기상을 하면 전날 청와대비서관들이 작성해 둔 그날의 일정과 접견자료,연설자료들을 세밀하게 읽어보면서 추가사항이나 검토사항이 생각나면 그때그때 메모를 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조간신문들을 훑어보면서 7시뉴스를 듣는다. 상오7시15분쯤에는 부인 김옥숙여사와 함께 본관아래쪽으로 약4백m가량 떨어진 체육관까지 심호흡을 하면서 산책을 한다. 체육관에 들어서면 사이클,역기 등 체력단련기구 등을 통해 20여분간 땀을 뺀다. 이어 길이 25m의 수영장을 4차례 왕복해 2백m가량을 수영한다. ○수영으로 체력단련 8시쯤 아침식사를 하지만 주로 잣죽,깨죽,호박죽등 가벼운 음식을 아침에는 즐겨든다. 출근은 9시. 출근이라야 본관 2층의 살림집에서 1층 집무실로 내려오면 된다. 정확히 말해 계단 30개를 밟고 내려오면 출근이 끝나는 셈이다. 출근을 하면 곧바로 경호실장과 의전비서관으로부터 간밤에 일어난 중요사항과 당일의 구체일정을 보고받는다. 상오의 공식일정은 9시30분부터 시작된다. 상오 일정은 대개 두세차례의 공식ㆍ비공식 접견이 있고 중간중간에 정부관계자 및 수석비서관들의 보고가 있다. 이어 낮12시에는 거의 매일 빠지지않고 외부인사들과 공식ㆍ비공식 오찬을 갖는다. 대통령의 오찬자리는 공식ㆍ비공식이 각기 반반씩 되지만 특히 비공식오찬은 정부기관을 통한 여론수집과는 전혀 별개의 민의를 은밀히 듣는 자리로 활용한다. 오찬이끝나면 대충 하오1시30분∼2시가 된다. 이때부터 서재겸 집무실에서 30∼40분간 휴식을 취한다. 대통령은 어릴적부터 음악을 좋아해 지금도 휴식시간에는 우리 가곡에서부터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다. 특히 좋아하는 노래는 우리 가곡 가운데 「그리운 금강산」,클래식가운데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이며 서울올림픽 주제가 「손에손잡고」도 애청하고 흥이 날때는 따라 부르기도 한다. 하오 2시30분부터 1시간동안은 적게는 10건,많을때는 30건의 보고서를 읽고 결재서류들을 점검,그때그때 서명,재가를 한다. 하오 공식일정은 일반적으로 3시30분부터 시작돼 공식만찬이 없을때는 6시30분에서 7시까지도 계속된다. 하오 일정은 주로 국무총리등 정례보고자,정부관계자들의 국정현안에 대한 보고가 주를 이루나 이따금 사회단체,협회,공로수상자,그리고 집단방문객들을 위한 다과가 베풀어지기도 한다. 만찬행사도 오찬과 마찬가지로 공식ㆍ비공식만찬이 거의 매일 들어있다. 부인과 2층 살림집에서 된장찌개에 우거지국으로 드는 저녁식사는 기껏해야 1주일에 1∼2차례뿐이다. 만찬행사가 끝나면 하오 8시30분전후가 된다. 2층 거처로 올라가 편안한 차림으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저녁9시 TV뉴스를 듣는다. 일정이 많아 각종 보고서나 결재서류가 밀릴 경우 퇴근시에 서류를 무더기로 팔에 끼고 2층 서재로 들어가 밤새 살펴본다. 밀린서류가 없을때는 조용히 독서를 한다. 주로 동서고금의 역사책을 많이 보지만 최근에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서상목박사(민자당의원)가 지난해말 쓴 「한국자본주의의 위기,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읽었다. ○…노대통령이 보통사람으로서 즐거워하는 시간은 일요일 아침의 청와대 경내 산책이다. 본관 뒤편 산책로를 따라 약1시간가량 산책한다. 산책때는 꼭 애견을 데리고 간다. 본래 애견은 연희동시절부터 그를 무척 따르던 누런색의 진도견 「진돌이」였으나 「진돌이」가 최근 6개월간 훈련을 가는 바람에 역시 진도견인 흰색의 「올리」(수컷)와 「피스」(암컷)를 데리고 다녔다. 「올리」와 「피스」는 88서울올림픽이후 청와대 식구가 되었는데그 이름은 올림피아에서 따왔다는 것. 일요일 낮에는 부인과 함께 서예를 한다. 작년에만 해도 서예가를 초빙해 지도를 받았지만 지금은 혼자서 연습한다. 한문 한글을 모두 쓰지만 주로 한문을 많이 쓴다. 즐겨쓰는 문구는 「강유득중」(강함과 부드러움의 좋은 점을 살려 중간을 취함이 좋다) 「필사즉생」 등이다. 노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를 돌에 새긴 곳은 3군본부 청사입구에 세워져 있는 「계룡대」가 있고 현판으로는 「청소년연구원」현판이 있다. 하오에는 부인과 함께 청와대참모들이나 각료들을 초청,테니스를 즐긴다. 대통령은 3∼4개월에 한번꼴로 골프를 나가기도 하지만 주변을 번거롭게한다고 해서 매우 자제하는 편이다. 골프 핸디캡은 18. ○노모계실땐 꼭 문안 ○…노대통령은 지난해 외손녀를 보아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가정적인 단란한 맛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딸 소영씨는 부군과 함께 미국에 유학중이고 아들 재헌군도 수학중이어서 청와대에서는 부부가 외롭게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올해 81세인 노모 김태향여사가 아들을보러 가끔 청와대에 들르는데 평균 한달에 6∼7일씩 머문다. 노대통령은 노모가 계실때는 퇴근후 꼭 노모방에 들러 문안을 드리고 출근 전에도 역시 문안을 드린다. 노대통령은 부인을 매우 사랑한다. 자신도 바쁘고 부인도 소리안나게 퍼스트 레이디로서 사회봉사활동을 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남편으로서 부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제대로 표시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부인생일에 중견여류시인 유안진씨가 쓴 시집과 수필집(「영원한 느낌표」「그리운 말한마디」인 것으로 전해짐)을 선물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대통령은 언젠가 「왜 시집을 선물했느냐」는 질문에 『시는 내가 가까운 사람에게 하고픈 말을 대신해주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 외언내언

    카톨릭 교계 내부에서 「함세웅신부파동」이 일고 있다. 주한교황청 대사인 디아스주교가 한국의 신문기자와 만나 한국의 교계 현실과 정치정황에 대한 자기 의견을 피력했던 것에 뒤늦게 비판을 가한 것이 빌미가 되었다. 언론들이 전하는 대로라면 「파문」이 들먹여질 만큼 심각한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사제가 교황청 질서를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하더라도,교황청 대사도 외교관이므로 주재국에 대한 예의는 외교관적 수준에서 고려해야 한다. 그런 뜻에서는 디아스주교의 조금 가혹한 듯한 한국에 관한 시각은 유감스럽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유치원생 정도」로 비유했다든지,「데모크라시」가 「데모크레이지」로 바뀐 것 같다는 대목 등이 특히 그렇다. ◆그렇기는 하지만 디아스대사의 대답은 「말」과 「활자」와의 사이에서 일으킬 수 있는 표현의 민감성 차이에 대해 좀 성숙한 배려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심증을 준다. 특히 「데모크레이지」라는 말은 「광적인 민주주의」라는 뜻이 아니라 「시위를 일삼는 것」이라는 뜻이라고 인터뷰 원문에서 밝히고 있다. ◆비록 그것이 우리의 자존심을 상처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한번쯤 진지하게 귀기울여 볼 만한 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카톨릭교가 가진 진정한 교리인,순명의 강조는 그의 사목적 시각이다. 사제직의 성직자라면 당연히 들어보게 되는 자연스런 의견인 듯하다. 그걸 꼬투리 삼아 뒤늦게 길게 개진한 것은,세속적 느낌으로도 매우 도전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 주고받음의 진말은 애당초대로라면 범상하게 진행되고 대화와 이해,용서의 순으로 끝나버릴 수 있었을 것 같다. 거기에 언론이 개입되니까 가속이 붙어서 불경스럽게도 「파문」까지 운위된 것 같다. 천주교가 세속사에 민감하게 들락거리니까 세상도 천주교의 「은밀한 지대」까지 대담하게 용훼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서로 달갑지 않은 결과다.
  • 불법주차 단속의 효과(사설)

    15일부터 서울시내에서 불법주차차량은 적발되는 대로 끌려가게 된다는 소식이다. 이번의 조치로 불법주차행위가 근절되게 된다면 그처럼 반가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불법주차행위는 우리사회에서 하루라도 빨리 시정되어야 할 문제로 누구나 느끼고 있다. 그것은 교통난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불편말고도 시민들의 질서의식 수준을 형편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의 일제견인조치를 두손을 들어 환영하면서도 과연 이것이 어느 정도의 효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몇가지 점에서 그 이유는 분명하다. 우선 당국의 행정자세를 지적할 수 있다. 늘 해오는 대로 「일제단속」을 벌이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당국의 안이한 사고방식이다. 이는 올들어 시작된 음주운전이나 술집 심야영업행위 단속에서도 볼 수 있고 최근 서울시의 승용차 함께타기운동에서도 비슷한 점을 찾게 된다. 처음에는 요란을 떨면서 일제단속에 나서는 것이나 얼마 안가 흐지부지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자주 보아왔다. 일시적인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승용차 함께타기운동도 언뜻 그럴 듯하게 여겨지나 실제로는 실효를 기대하기 힘든 「한번 해보았다」는 데에 그치고 마는 발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더욱이 일제단속의 문제는 서울시내에 주차시설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불법주차 차량이 모두 견인될 때 오히려 교통혼잡을 더욱 가중시킬 우려마저 없지 않다. 당국은 간선도로변과 이면소방도로를 대상으로 불법주차 차량을 끌어가겠다는 것이나 그에 앞서 이들 차량이 주차할 시설이 확보돼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현재 서울시내에서 매일 불법주차하는 차량은 모두 1만5천대나 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무조건 견인은 그리 쉽지 않은 문제이다. 더욱이 이들 차량의 대부분이 도심에 몰려있어 더욱 그러하다. 또 견인능력에 한계가 있다고 하는 점이다. 당국이 일제단속에 나서면 차량들이 얼마동안은 불법주차에 신경을 쓰고 그렇게 되면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당국은 만족할지 모르나 제대로 견인되지 않을 때 그 조치는 일시적인 단발성에 그쳐 행정력의신뢰성을 잃을 우려가 크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불법주차를 않겠다는 시민들의 질서의식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와함께 당국은 주차시설확보에 보다 힘을 기울여야 한다. 외국의 예를 빌리지 않고도 출퇴근시간의 일정시간은 장소를 지정해 주차가능지역을 확대함으로써 주차공간을 넓히는 방법,민간에 용역을 주어 견인효과를 높이고 면허시험때 주차방법을 강화하는 방안등이 고려될 사항들이다. 불법주차에 못지않게 불법정차문제도 시정되어야 한다. 불법주차행위를 근절시키겠다는 당국에 격려를 보내면서 엄포식의 단발용ㆍ과시용행정은 이제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해둔다. 당국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질서의식을 유도,이를 정착시켜 나간다는 차원에서 꾸준하고 지속적인 계몽과 단속을 펴나가기를 당부한다.
  • 소「민주사회주의 새 깃발」 올리다/고르바초프「도박」의 의미와 전망

    ◎정치개혁과 경제발전 연계 포석/재야흡수,온건진보정당 결성 가능성도/서유럽서 극동까지 대폭 군비축소 시도 1백40년 전에 카를 마르크스가 근로대중의 자기임금 되찾기 운동으로 제시한 공산주의 이념은 그로부터 70년후 소련땅에 현실로 적용됐다. 그런데 누구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의해 분배받는 공산주의 이념이 소련땅에 적용된지 정확히 73년이 지난 1990년,올해의 벽두에 그만 공산주의의 깃발을 내리게 됐다. 소련은 소수 민족자치령을 국가체제로 연합하면서 유럽국가중 후발대 국가로 형성된 제정러시아를 붕괴시키면서 시작됐다. 국민의 9할 이상이 저소득계층으로 구성된 농경사회였던 제정 러시아를 1917년 소수파인 볼셰비키가 과격 공산혁명으로 무너뜨렸다. 그후 토지 자본국가공영제,중앙계획경제와 통제배급제를 실시하고 서방세계와는 중공업위주의 군수산업으로 군비경쟁을 하면서 냉전구도를 이룩해 왔다. 레닌이 심장ㆍ뇌졸질환으로 조기에 사망하자 오히려 극단적 소수파로서 민주사회주의를 건국하려던 도덕성에서 정반대의 궤를그린 사회주의 파시즘을 만들었다. 마르크스가 역사발전의 맥락에서 가설적으로 제시한 근로자의 기대임금과 실질임금의 차액을 소수 자본가가 착취함으로써 빈부격차가 극대화된 자본주의가 성숙된 사회에 공산혁명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한 논리는 소련에서는 해당될수 없는 그 당시 상황이었다. 즉,극소수 상업가ㆍ지주 외에는 성숙된 자본주의사회의 지표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중산계층이나 활발한 상업활동이 소련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스탈린은 정체된 후진사회를 성장시키기 위한 신축적인 경제활성화와 생필품위주의 산업발전 대신에 군수산업 위주의 중공업 육성에 정책선택의 최우선권을 부여했다. 스탈린의 명령없이는 전 사회가 움직이지 않았으며 하부구조 구성원의 창의성은 본질적으로 봉쇄됐다. 이와같은 자기모순의 공포사회가 스탈린 이후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공산당 서기장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왔다. 말하자면 성숙된 자본주의 사회도 아니었던 후진국 러시아의 풍토속에서 다원적 공산주의 이상은 스탈린 이후의전체주의 지배자들에 의해 침묵과 복종만을 강조하는 관료적 동원체제를 구사해온 것이 핸재의 소련사회이다. 현재의 소련사회는 순발력없는 저능 거인이며 실질적 파산선고를 내린 회사와 같다. 중지한 부실기업이며 저능거인은 기초운동과 기초이론 학습부터 시작하여 거듭 태어나야 하고,부실파산회사는 처음부터 새로운 경영진에 의해 구조적으로 재조직ㆍ관리돼야 한다. 바로 여기서 개혁,재조직(Perestroika)과 만인에게의 공개성(Glasnost)을 강조하면서 정규교육을 받은 스탈린 후기세대의 대표주자로 새로운 사고를 가진 고르바초프가 통치권의 핵심으로 등장한다. 고르바초프에 의해 주도되는 소련사회의 변혁은 미시적으로 볼때 원초적으로 빈곤했던 소련이 군사대국 유지로 인해 더욱 피폐된 생필품 절대빈곤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시장경제원리 도입,사유재산의 인정으로 민중봉기 일보직전의 긴박한 경제빈곤의 고리를 풀자는데 있다. 그런데 그같은 경제빈곤 해결은 주민의 불만을 해소하고 국민전체가 새로운 생산기풍을 진작하는 자발적 노력의지가보여야 하는데 국민은 두려움과 의심의 눈초리로,그리고 지성인을 비롯한 여론주도계층에서는 공산당 통치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현상황에서 그같은 노력은 아무리 신사고를 가진 개혁의지에 불타는 개혁주의자가 있다고 해도 개혁은 무위로 끝날수 있다. 인구증가와 같이 서서히 로가리즘적으로 누적되어온 소련의 사회경제침체는 아무리 자유와 개방ㆍ개혁이 뒷받침돼도 하루 이틀에 성취될 일이 아니다. 여기에 고르바초프는 정치 개혁을 통해 국민의 자발적 총의를 민생문제 해결 위주의 경제발전에 연계하려는 전략포석으로 이미 동구에서 시행돼 오고 있으며 고르바초프가 원거리에서 보호해준 바 있는 다당제 도입ㆍ자유경선ㆍ시장경제 원리도입,그리고 국가원수의 직선제 등을 도입하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로서는 그의 정치적 주사위인 대통령 직선제에 출마하여 국민의 직접 신임을 얻음으로써 지속적 정치경제사회 개혁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90년 초인 이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85년에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한 이래 현재까지가 개혁의 신호탄을 올린 시기라면 90년대는 개혁의 실적을 경제사회적으로 보이는 행동단계라고 보겠다. 고르바초프는 미국이 응하든 않든 서유럽에서 이제는 극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군비축소를 국내정치맥락에서 자의적으로 실시할 것이다. 또한 조만간 28차 당대회를 치르고 난후 그는 공산당을 해체하거나 구조적으로 당의 체질을 개선하여 이에 걸맞은 당명 또한 새로이 변경하면서 어쩌면 수면위에 부상하는 재야조직을 흡수하여 의외의 인물로 충원하는 새로운 온건진보정당을 조직할지도 모른다. 볼셰비키 소수 급진공산당이 해체된다고 해서 공산당 통치의 러시아 역사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러시아 사회가 소수민족의 자치도 인정하면서 제국주의적 영토팽창에 눈돌릴 수 없는 내치의 민주화ㆍ경제활성화에 당분간,적어도 2000년 이후까지 정책집행에 우선권을 유지하는 역사의 긍정적 경각심을 늦추지 않는 노력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측근인 정치국원이나 참모들은 과거 공산당의 보수적 당관료가 아닌데 그들의 전직은 해외근무 특파원,대외경제 전문가,기타 국내 각분야에서 개혁에 불타던 깨끗한 도덕정치를 표방하는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당면문제를 다룰때 소련 역사의 방향을 다원화된 민주사회주의 국가로 그 키를 돌리는 역사의 견인차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믿고있다. 혹한기를 피할수 있으며 대서양과 발트해를 접하고 있는 정치ㆍ상업ㆍ관광도시인 레닌그라드의 옛 이름은 성 페테르스부르크시였다. 이 아름다운 도시는 공산혁명의 진원지가 된 이후로 레닌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레닌그라드(레닌시)라고 명명하였는데 이제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치가 90년에 정착돼 2000년이 되면 레닌그라드도 고르바초프의 이름을 본따 고르비그라드(고르비시)로 부를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또 이렇게 예상하는 서방인에게 소련인은 처음으로 빙그레 웃음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 소 공산당 중앙위 이모저모

    ◎「개혁함성」에 묻혀 보수파의 목소리 뒷전에/고르바초프 연설때 반발 안보여/리가초프 개혁 지지에 박수갈채/크렘린 권력 암투 표면화 조짐도 ○막판서 고르비 비난 ○…소련내 강경보수파들은 6일 이틀째 열린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막판 궁지에 몰렸음을 의식해서인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소련을 무질서와 무정부 상태로 몰아넣었다고 강도높은 공격을 전개. 특히 브로비코프 폴란드 주재소 대사는 『오늘날 모든 잘못을 과거로 돌리는게 유행처럼 돼 있는데 현재 우리가 처한 재앙은 과거의 침체 때문이 아니라 페레스트로이카가 가져온 것』이라며 『우리의 비극은 국가와 당의 모든 권한을 단 한사람에게만 의존하는데 있다』고 고르바초프를 간접적으로 지칭해 비난. ○…그러나 이같은 보수파들의 비난에도 불구,대다수의 관측통들은 고르바초프가 제안한 새 당강령이 무난히 채택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들의 전망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6일 등단한 대부분의 연사들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좀더 급진적이지 못한 점을 지적하면서 보다 빠른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이날 중앙위에선 또 그동안 보수파의 대표격으로 알려졌던 리가초프가 가장 강력한 논조로 공산당 일당독재 폐지를 지지하는 연설을 함으로써 많은 박수갈채를 받기도. 리가초프는 소련에는 이미 정치적 다양성이 존재하고 있는데도 이제와서 정치적 다원주의를 유지하느냐의 여부를 묻는다는 것은 너무 때늦은 일이라며 정치적 다원주의를 통해 소련의 역사와 사회를 바꿀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 ○회의 진행과정 순조 ○…소련 공산당중앙위 전체회의 5일 개막회동에서는 보수세력의 반발이 거셀것으로 예상됐으나 의외로 강도가 약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한결같은 전언. 익명을 요구한 한 참석자는 고르바초프가 1시간여 연설하는 동안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고 전하면서 회의가 당강령을 손질할 60인 특별위를 구성,고르바초프를 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과정도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설명. 브레즈네프 시대에 농업장관을 지낸 발렌틴 메시야츠가 『당이 이처럼 수세에 몰릴 이유가 뭐냐』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리는 등일부 골수 보수파들의 반발이 개진되기도 했으나 전체적인 분위기에 파묻혀 역부족이었다는 중론. 고르바초프는 이날 당 체질개선 불가피론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일부 동구국가식의 공산당 해체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크렘린의 마지노선을 분명히 했다는 분석. ○…고르바초프는 오는 10월로 이미 한차례 앞당겨진 당대회를 보다 조기 개최할 것을 제의,권력구조 개편이 시급함을 시사해 주목. 관측통들은 정치국 또는 당중앙위 등 당권력 중심부에 대한 중대변화는 오직 당대회를 통해서만 가능한 점을 상기시키면서 조기개최가 불가피한 만큼 권력상층부의 갈등이 심화돼 있다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분석. ○…동구개혁에서 소요 수습의 견인차가 돼온 이른바 「원탁회담」이 소련에서도 이뤄질 수 있을 가능성이 개진돼 주목. 고르바초프는 민족분규 진정을 위해 해당 공화국들의 다양한 정치ㆍ사회조직들과 접촉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한것. 그는 물론 『헌법을 부인하는 분리주의자들』은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으나 어쨌든 크렘린이 협상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는 점에서 고질적인 민족갈등이 해결될 수도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 일부의 긍정적인 평가. ○민주사회주의 강조 ○…고르바초프는 연설 말미에 당의장제 신설을 제의했으나 자신의 위상과 직결된 문제라서 그런지 권력구조 개편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내놓지 않았다고. 그는 그러나 프라우다를 통해 슬그머니 「높은분」의 의향을 제시하는 테크닉을 구사. 즉 『전환기에는 권력 양분이 바람직하지 않으나 결국에는 나눠 맡아야할 것』이라고 지적한 것.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위상에 대해 최고회의가 알아서 할 문제라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관측통들은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에 비해 권한이 대폭 강화된 당의장에 취임하는 등 권력기반이 대폭 강화될 것이라는 점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고 강조. 이와관련,당중앙위가 조만간 재회동,권력구조 재조정에 관한 중대결정을 내리게 될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
  • 연휴 교통사고 1,600건/작년보다 줄어… 1백여명 사망

    설날연휴귀성이 시작된 지난25일부터 28일까지 나흘동안 전국에서 모두 1천6백여건의 교통사고가 발생,1백여명이 숨지고 1천9백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동안 교통사고 1천7백64건에 사망 1백5명,부상 2천4백17명의 인명피해가 난데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다. 특히 고속도로에서의 교통사고는 모두 60여건으로 사망 10명,부상 90여명에 그쳤다. 서울의 경우 모두 4백여건의 교통사고가 발생,20여명이 숨지고 4백5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27일 하오8시30분쯤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185 잠수교 중간지점에서 반포에서 용산쪽으로 달리던 대성콜택시소속 서울4 파6380호 포니택시(운전사 김영환ㆍ31ㆍ부산시 사하구 감천2동 105)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교각을 들이받고 약 5m아래 한강으로 추락,운전사 이씨와 뒷좌석에 타고 있던 신혼부부인 박병진씨(33ㆍ서울 성동구 구의동 58의16)와 강미순씨(27) 등 3명이 모두 숨졌다. 사고는 운전사 이씨가 과속으로 반포에서 용산쪽으로 잠수교를 타고 달리다 빙판길에 미끄러지면서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잠수교 남단 1백여m지점에서 5개의 교각을 들이받고 강물로 추락해 일어났다. 사고가 나자 견인차 등 경찰차량 10여대가 출동,긴급구조작업을 벌여 2시간만인 하오10시30분쯤 사고차량을 물밖으로 끌어냈으나 이씨 등은 모두 숨진 상태였다. 승객 박씨부부는 지난해 12월5일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로 이날 경기도 용인부모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귀가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로 반포에서 용산쪽으로 향하는 잠수교 2차선도로의 차량통행이 완전통제되고 반대편의 2차선도로만 통행이 허용돼 2시간여동안 교통혼잡이 빚어졌다. ▲27일 상오8시30분쯤 서울 서초구 구반포동 올림픽대로에서 서울5 더1557호 베스타(운전사 주인곤ㆍ21)가 중앙선을 넘으면서 마주오던 경기8 러8007호 4.5t트럭(운전사 박철서ㆍ30)과 정면 충돌,주씨와 주씨의 형 신기씨(23)가 숨지고 박씨 등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사고로 김포공항과 여의도쪽으로 가는 도로가 1시간30분동안 체증현상을 빚었다. ▲26일 하오9시30분쯤 서울 마포구 도화동 176 가든호텔앞길에서 서울1 바5976호 중형택시(운전사 윤용현ㆍ44)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승용차 및 택시 4대와 잇따라 충돌,윤씨의 차에 타고 있던 승객 장세동씨(34ㆍ회사원)가 그자리에서 숨지고 장씨의 부인 박경순씨(33) 등 승객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는 마포대교에서 공덕동 로터리쪽으로 과속으로 가던 중형택시가 빙판길에 미끄러지면서 중앙선을 넘어 인천1 다9411호 포니2 등 자가용승용차 3대,영업용 택시 1대와 연쇄적으로 충돌해 일어났다.
  • 자동차 보험 심야 서비스제 인기

    ◎사고현장 즉시 출동,보상처리까지/차량 고장땐 견인… 정비공장 알선도/안국ㆍ현대 선두 주자… 11개 손보사 앞다퉈 추진 자동차보험 심야서비스제도가 보험가입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심야서비스제도는 한밤중에 교통사고를 당한 보험가입자가 계약보험사에 전화연락을 하면 보상직원들이 사고현장이나 경찰서로 직접 찾아와 사고접수 및 보상처리를 해주는 것. 보험사들은 또 가입자들이 차를 몰다 갑자기 생긴 고장으로 연락할 경우 가까운 곳의 정비공장을 가르쳐 주거나 견인차를 보내준다. 나아가 가입자가 화재ㆍ폭발등 예기치 못한 각종 위험에 닥쳤을 때도 안내 및 응급처치요령을 일러준다. 이 제도는 공휴일을 포함,하루 24시간동안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주간봉사와는 다른 특징을 지닌다. 한밤에 사고를 당해 어쩔줄 모르는 고객들에게 사고처리를 보다 빠르고 쉽게 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같은 대고객서비스가 늘고 있는 것은 심야교통사고율이 다른 시간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고 사고가 대형화추세를 띠고 있기 때문.지난 88년 치안본부 집계에 따르면 교통사고 발생건수 중 하오 8시30분부터 자정까지의 사고비율이 전체의 20.5%,자정부터 이튿날 상오 8시30분까지가 14%로 밤중에 일어나는 교통사고율이 전체의 34.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서울의 차량대수가 최근 1백만대를 돌파,교통사고발생의 위험이 높아지고 차량을 이용한 주말나들이 인구가 급증하면서 취약시간에 대한 보험서비스 수요가 늘고 있는 탓이다. 이에 따라 자동차보험을 취급하는 11개 손해보험사들은 앞다퉈 심야서비스 상품개발에 나서고 있다. 처음 개발된 상품이 지난해 11월 안국화재의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 안국은 본사에 서비스센터를 신설하고 전국 60개 보상사무소와 전산망을 연결,4명의 직원이 철야근무하며 고객에 대한 긴급보상처리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이 제도의 특색은 자동차보험가입자 35만명을 비롯,전국의 1백만 보험계약자에게 교통사고는 물론 각종위험에 따른 안내 및 보상까지도 맡고 있다는 점이다. 또 순찰승용차 2대가 항상 대기,서울지역에서 일어나는교통사고신고를 받는 즉시 현장에 달려가 사고처리를 도와주는가 하면 50만원이하의 보험피해자에겐 현장에서 현금으로 보상도 해주고 있다. 지난 10일 현재 이 서비스센터에 접수처리된 보험건수는 3백50건으로 하루 5건꼴. 회사원 오용훈씨(39)는 최근 이 서비스덕택을 톡톡히 봤다. 오씨는 아침 7시쯤 승용차를 몰고 무교동으로 출근하던중 서울 성북구 종암동 중앙병원 앞길에서 앞서가던 버스의 뒷바퀴에서 튕겨나온 돌멩이가 운전석에 날아들면서 앞유리가 깨지는 사고를 당했다. 차를 세운 오씨는 망설임끝에 공중전화통으로 뛰어가 이 서비스센터에 문의,『사고지점 이웃에 있는 삼영공업사에 차를 맡기면 차를 싼값으로 수리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고 차를 수리했다. 초보운전자인 회사원 윤응선씨(21)는 얼마전 초저녁무렵 중구 퇴계로5가 대한극장옆 골목에서 스텔라승용차를 몰고가다 앞서가던 봉고차를 가볍게 들이받았다. 윤씨는 사고처리를 위해 중부경찰서로 불려갔으나 곧 보험사에 전화,패트롤카를 타고 달려온 보험사 직원으로부터 보험가입사실을 확인받은뒤 증명서를 발급받아 경찰에 제출,그대로 나올 수 있었다. 윤씨는 『하마터면 보험가입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서에서 아침까지 기다릴 뻔 했다』며 보상직원들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현대해상화재도 지난 1일부터 「안심패트롤」이란 심야서비스제도를 실시,지금까지 하루 평균 7건씩의 보험사고를 접수 처리했다. 현대는 봉고차에 전화와 상담실,컴퓨터단말기를 설치한 패트롤카 3대를 서울시내 25개 경찰서에 보내 직접 가입자들에게 보상서비스를 베풀고 있다. 안국화재의 박종익전무는 『보험사들이 자동차보험 적자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경쟁력확보를 위해 체질개선에 힘써야 할 때』라고 지적하고 『심야서비스제도의 실시로 사업비를 절감하고 상품질을 개선하는 효과를 보고 있으며 안정적인 고객확보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 럭키해상화재와 대한화재등 나머지 보험사들도 심야서비스제도 실시를 검토하고 있어 앞으로 자보가입자에 대한 보험사들의 서비스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 정계개편과 경제안정(사설)

    정계개편은 위기적 상황의 우리 경제를 선순환으로 반전시키는 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이 주류적인 관측인 것 같다. 여소야대의 4당구조에 따른 당략차원의 소모적 대결이 우리 경제의 위기를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고 이것은 상당한 논거를 갖고 있다. 경제는 물의 흐름에 비유되며 체질적으로 충격을 거부하는 속성이 있다. 최근의 정국불안과 노사분규는 경제적 측면에서 볼때 분명히 악재이며 앞으로 더이상 악화되면 경제가 파국을 면치 못하리라는 견해가 팽배해 있는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서 정국안정의 전제인 여대야소의 정계개편이 합의됨으로써 경제 역시 불안요인을 제거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 우리 경제에서 나타나고 있는 리더십 결여에 의하여 경제가 표류하는 현상이 제거될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특히 야당의 반대로 인하여 법과 제도의 제정 또는 개편이 지연됨으로써 경제정책이 때를 놓치는 일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행정관료들이 지나치게 야당을 의식하여 정책개발을 기피하는 대신 무사주의에젖는 사례도 줄게 될 것이다. 야대의식의 불식은 정책개발에 활력을 불어 넣고 국회개회 기간동안 많은 공무원의 국회 대기로 행정공백이 생기는 부작용도 없어질 것이다. 증시에서의 주가폭등은 정계개편이 우리 경제에 호재임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호재뒤에는 악재가 있듯이 정계의 대변혁이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소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보수의 대연합은 첫째로 정경유착에 대한 연상작용을 일으킨다. 유착관계는 한편으로 가진자와 못가진 자로 구별되는 대립적 개념을 자극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보수와 혁신의 정치구도가 확연하게 그려지면 그려질수록 이념적 갈등과 마찰이 격화될 소지가 있고 이는 경제안정을 또다시 흔들어 놓을 우려가 있다. 둘째로는 일본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보수대연합은 경제계의 발언권을 증대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요즘 기득권층으로 표현되는 재계의 대정치권 발언강화는 우리 경제의 현안과제인 형평한 배분실현과 공정한 부의 축적을 위한 제도개혁에 제동을 걸 것이라는 걱정이 있다. 금융실명제와 토지공개념 등의 정책추진이 후퇴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로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지배할 소지가 다분히 있다. 당료의 입각으로 경제정책수립에서 당의 입김이 강화될 듯하다. 그렇게 되면 선거를 의식한 정치지향적 경제정책이 수립 또는 추진될 우려가 있다. 과거에도 선거때의 통화증발과 공약남발이 안정을 해친 사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치논리의 우위는 결국 인플레를 유발할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 다음으로 경제발전추진세력의 변화이다. 관료 엘리트 중심으로부터 당료중심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6차례에 걸친 경제개발과정에서 많은 노하우를 축적한 경제관료의 약화는 성장견인기능의 약화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통합정당의 주역들은 신당의 강령을 통해서 경제정책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선명하게 밝히는 동시에 제도적 보완책과 운영의 묘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 “일방통행ㆍ버스전용차선제 실시를”/설날 고속도 교통대책 토론회

    ◎단거리 구간은 진입로 차단토록/철도와 연계성 고려… 국도이용 권장 고속도로의 교통운영을 효율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공개토론회가 19일 교통전문가 및 교수ㆍ학생ㆍ시민 등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장에서 열렸다. 교통개발연구원이 주최하고 건설부와 한국도로공사가 후원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특히 설날을 앞둔 시점에서 「특별수송기간의 고속도로교통운영 효율화방안」이 발표돼 눈길을 끌었으며 참석자들의 열띤 토론이 있었다. ▷고속도로소통방안◁ 중부ㆍ경부고속도로 가운데 한 노선을 일방통행으로 하거나 대중교통수단인 버스의 전용차선제를 채택하는 방법이 있다. 중부선을 일방통행시켰을때 경부선 하행선은 교통량이 하루 6만8천대에서 5만4천대로 감소돼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평균소요시간이 지난 추석때의 8.2시간에서 6.2시간으로 단축되며 중부선은 6만4천대에서 7만8천대로 차량은 늘어나나 일방통행이기 때문에 평균소요시간은 8.6시간에서 6.8시간으로 단축된다. 경부선 또는 중부선의 하행 2차선에버스 등 대중교통수단만을 이용할 수 있게 하면 마이크로버스를 포함한 대중교통수단 2만5천대가 이용,대전까지 4시간30분에 주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대중교통수단이 아닌 승용차 등은 서울에서 대전까지 16∼20시간이 걸려 승용차 소유자의 저항이 클 것이다. 또 경부선의 서울∼판교구간의 한남대교입구와 반포인터체인지를 제외한 나머지 인터체인지를 교통상황에 따라 통제하는 방안이 있으며 단거리구간의 교통량을 국도로 전환시키기 위해 서울에서 수원까지 주요 인터체인지를 통제하면 설날 하루전의 예상통행량 12만8천대의 8%인 약 4천5백대의 교통량이 줄어들 것이다. 이밖에 국도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안도 있다. 안양ㆍ오산ㆍ평택의 국도 1호선과 구리ㆍ이천의 국도 3호선 등 경기도내 주요지역의 교통신호를 귀성객중심으로 조작함으로써 국도의 교통소통이 원활해지고 교통용량도 커지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인천 광명 수원 안양지역의 귀성객들은 인천∼안산∼온양구간의 국도 39호선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토론◁ ▲원제무교수(서울시립대)=고속도로의 소통대책은 차량의 공간분산도 중요하지만 시간분산도 중요하다. 이용객이 같은 시간대에 집중되지 않고 분산될 수 있도록 고속도로이용 정보가 이용자들에게 원활히 전달되는 것이 필요하다. 또 도로와 철도 등의 연계성을 고려하지 않고 별도로 대책을 세우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재열과장(치안본부 교통지도과)=당국의 대책과 더불어 이용자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명절기분에 따른 음주,난폭운전과 체증구간에서의 끼어들기가 없어지면 소통은 휠씬 원활해진다. ▲안종관과장(서울시 교통지도과)=고속도로 통행권예매제가 필요하다. 명절 1주일전쯤 이용자들에게 날짜와 3시간단위의 진입시간이 기록된 통행권을 미리 팔아 통행량을 예측할 수 있으면 대책을 세우기도 편해진다. ▲최동욱씨(교통전문가)=고장차량이 교통체증을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현재는 고속도로상에 비상정비소나 비상전화가 부족한데다 정비소나 전화의 안내판도 부족해 고장차의 수리나 견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또 고속도로출구 안내표지판도 부족하다.
  • 특별설비자금 1조원 앞당겨 집행/상공부 올 업무보고 내용

    ◎창업투자회사에 무담보융자 확대 ▷고도기술 산업 육성 기반의 구축◁ ◇고부가가치형 산업구조 확립 ▲1조원규모의 첨단산업 기술향상자금조성 ▲두뇌집약형 기업의 창업지원 ▲중국등 해외교포거주지역과 동남아에 해외공단조성 검토 ◇생산기술개발의 촉진 ▲대학부설 산업기술연구소 설립의 확대 ▲생산기술연구원의 기능을 활성화,오는 94년까지 고급중견인력 5천명을 육성 ◇생산성향상의 적극 추진 ▲기업자동화 설비투자자금의 지원을 1천억원으로 확대 ▲한국디자인의 포장센터를 디자인전문연구기관으로 개편 ◇업종별 구조고도화시책 강구 ▲철강 21세기 운동전개 ▲자동차부품연구단지 조성 ▲한국중공업의 조기 경영정상화 추진 ▷산업간 불균형의 시정◁ ◇활력있는 중소기업의 육성 ▲중소기업의 경영안정을 위해 올 중소기업구조 조정자금 3천4백억원을 적기지원 ▲창업투자회사의 무담보투자확대 등으로 창의적인 청년창업자가 기술 집약형 기업을 창업토록 유도 ◇지방화시대에 부응한 산업의 지역간 균형육성 ▲2천만평의 지방공단조성을통해 공업의 지방분산을 촉진 ▲생활여건의 개선을 통한 고급 두뇌의 지방정착기반 확충 ◇서민생활의 안정지원 ▲유통정보화의 확산과 물적 유통기반의 확충으로 유통산업의 효율성 제고 ▲고급의류ㆍ가구등 11개 수입공산품에 대한 원가표시제 실시 ▲할당관세의 적용,설비 능력의 확충을 통한 건축자재등 부족예상품목의 수급불안요인 해소 ▷공산품의 품질경쟁력 제고◁ ▲68개 품질관리추진본부를 중심으로 범산업적인 품질향상운동 전개 ▲중소기업 품질관리지원반 설치 ▲첨단분야에 대한 공업규격의 제정과 규격수준의 국제화 추진 ▷공업 소유권 행정의 효율성 제고◁ ▲정보종합전산망구축 계획의 지속적 추진 ▲공업소유권제도의 국제화를 위한 국제기구ㆍ공산권등과의 협력 강화 ▷수출회복과 투자의 활성화◁ ◇수출경쟁력의 회복 ▲중화학 제품의 수출증대를 위해 연불수출자금을 지난해 7천억원에서 7천5백억원으로 확대 ▲수출보험공사를 설립,위험부담이 큰 신시장 개척을 지원 ▲대기업에 대한 수출산업 설비금융 부활 ◇제조업 설비투자의 활성화 ▲설비투자 촉진을 위해 특별설비자금 1조원을 앞당겨 집행 ▲특별외화 대출의 지원규모를 70억달러로 확대 ▲수출 및 첨단산업에 대해 여신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 ▷산업평화 정착과 임금의 안정◁ ◇산업평화의 조기정착을 위한 여건조성 ▲종업원 1백인이상 전제조업체에 노무전담부서 및 노사상담실 설치권장 ▲무노동무임금원칙 실천을 위한 업계 전체의 대책강구 ◇생산성 범위내의 임금 안정유도 ▲대기업 중심으로 업종별 선도기업 선정 ▲자동차ㆍ철강ㆍ화섬 등 업종별 임금공동교섭 추진 ◇근로자의 의욕감퇴 고취와 기업인 윤리의 확립 ▲근로자 복지주택 마련지원등 평생직장의식 함양 ▲기업인의 부당노동행위 근절 ▷내실있는 확대 균형 무역의 추진◁ ◇선진무역기반의 조성 ▲서류없는 무역절차의 실현을 위해 무역전산화 전담회사 설립추진 ▲위조상품 수출근절 등 공정한 수ㆍ출입 질서확립 ▲남북한 직ㆍ간접 물자반ㆍ출입 촉진 ◇적극적인 통상외교활동의 전개 ▲90년말 종료예정인 우루과이 라운드협상에 적극 참여 ▲공산권별 특성에맞는 통상정책 추진
  • 경제의 향방은 어디로(90년대의 일본:상)

    ◎「고속성장」 막내리고 안정궤도 진입/실업 퇴조속 「허업」 번창… 증시등 붐 일듯/국제교역ㆍ소득 불균형 심화… 국내외 불만 고조/임금등 경영코스트 급상승… 기술혁신 불가피 1989년을 세계사에 길이 남을 정치적 격동기로 본다면 90년대는 모든 분야에서의 「전기」가 될 것으로 많은 연구기관들은 예측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두뇌 마키노 노보루(목야승)가 회장으로 있으면서 7백명이 넘는 정규 연구원과 3백여명에 달하는 비정규 직원을 거느린 일본 유수의 싱크탱크 미쓰비시(삼릉)종합연구소도 90년대가 89년에 못지않은 「전기의 시대」가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세계 초일류 경제대국 일본의 90년대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경제ㆍ기술 등 2분야에 걸쳐 「90년대의 일본」을 예측해 본다. 90년대를 또하나의 「전기」로 보는 견해는 다음 3가지 시사적 현상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첫째는 「실업」이 경시되고 「허업」이 번창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일본 사상 최장의 호경기였던 65년부터 79년 7월에 이르기까지의 57개월간의 소위 「이자나기경기」보다 더 호황인 현재의 경기는 87년부터 시작됐다. 그해의 경제실태는 불가해할 정도였다. 국민총생산(GNP) 3백51조엔에 대해 토지ㆍ주식의 가격앙등액이 4백76조엔에 이르렀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1억2천만에 가까운 일본 국민들이 땀흘려 얻은 수입의 총액보다 단지 전화 한통화,도장 한번 찍어 번 돈이 이것을 훨씬 웃돌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토지로 돈을 벌고 그 돈이 다시 주식이라는 형태로 변해 수천만엔이 세금없이 은행에 자동입금되는 「리쿠르트 도식」이 생겨났다. 과거에는 대학 공학부 졸업생의 90%가 제조업에 취업했었다. 그러던 것이 65년에는 3분의 2,현재는 3분의 1로 뚝 떨어졌다. 65년에 톱클라스였던 증권회사의 이익은 4억엔이었다. 증권회사의 올해 이익은 4천억엔을 넘어설 전망이다. 「실업이 쇠퇴하고 허업이 번성하는 시대」­90년대는 어떤 형태로든 하나의 「전기」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90년대의 전기를 시사하는 제2의 사상은 「불균형에 대한 문책」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것이다. 불균형은 국제적으로도 지역 및 국민사이에도 현재화하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예측에 의하면 1992년 미국의 대외채무는 1조달러를 넘는다. 그때에는 「달러의 폭락」,아니면 「초보호주의」의 어느 한쪽이 선택되게 된다. 소위 「악마의 선택」이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이때는 필시 초보호주의에로의 이행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으로서는 일본과의 무역을 단절한다하더라도 곤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식료품과 자원의 여유가 있고,자동차나 TV도 다소 고장나는 것만 참는다면 자급이 가능하다. 현재는 일본이 세계의 자본을 독점해 가는 기세이다. 일본의 고도성장지향이 계속됨으로써 이같은 비뚤어진 현상은 확대되고 있다. 중국의 고위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국가란 수천년이나 계속하는 것이다. 큰 강물과 같아서 표면은 흐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일본과 같이 불과 40년 사이에 실질가 20배이상의 경제성장을 한다면 지금부터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가』―일본인들은 이같은 불가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불균형은 국제관계뿐만아니라 일본 국내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도쿄도 및 인접 3개현을 관할하는 도쿄국세국이 일본 전국 세수의 거의 절반을 징수하고 있다. 정부기능,국제기능,금융기능,그 어느 분야를 예로 들더라도 도쿄에의 극심한 편재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국민 사이에도 불균형은 확대되고 있다. 일찍이 일본은 국민간 소득이 평준화되어 있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국민생활백서」가 지적하듯이 「새로운 불균형」이 발생,국민불만이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재화를 가진 자와 못가진 자와의 격차심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 불만이 계속 커질 경우 풍선이 부풀어 터지는 것처럼 언젠가는 파멸하고 말 것이다. 이 점이 두려운 것이라고 일본의 연구기관들은 지적한다. 「전기」의 제3은 「이노베이션(기술혁신)의 고양」이다. 90년대의 일본산업은 시장의 성숙화가 한층 더 진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1억2천만t을 초과했던 철강생산은 1억t대로 떨어지고 있다. 석유수입은 20여년간 정체를 계속해왔다. 나아가 노동ㆍ토지ㆍ에너지의 경영코스트는 국제치와비교,현저히 높아졌다. 이같은 냉엄한 산업환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이노베이션 즉 기업혁신 밖에는 없다. 이것은 조직ㆍ시장ㆍ생산ㆍ자원ㆍ기술의 변혁에 의해 새로운 성장기회를 포착하는 것이지만 이 가운데서 특히 중핵이 되는 것은 기술혁신이다. 90년대는 「기술의 시대」라고도 말할 수 있다.일본기술의 강점은 외국에서 발명ㆍ발견했으나 개발에 실패했던 아이템들을 「상품화」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미국에서 트랜지스터 및 레이저를 발명했으나 상품화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끝났다. 이것을 일본이 다시 손질해 트랜지스터 라디오 및 광디스크라는 상품을 개발했다. 이같은 「전기」가 되는 90년대에 있어서 일본의 경제는 전반까지는 GNP 4%대의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후반에 걸쳐 점차 낮은 안정성장기에 들어갈 것으로 예측된다. 90년대 일본 경제성장을 주도할 팩트는 역시 민간설비투자ㆍ민간최종소비이다. 설비투자는 기업의 사업전환,연구개발,합리화 등의 요인을 배경으로 앞으로도 활발한 양상을 보일 것이다. 나아가 서비스업의 정보화,도시 지역의 재개발을 베이스로 하는 건설투자도 민간설비투자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간소비도 다소비층의 확대를 통해 착실하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90년에는 임금등 경영코스트의 상승으로 인한 기업해외이전과 ECㆍ미국ㆍ캐나다ㆍ중국 등의 블록화가 성장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인플레 우려,초저금리ㆍ초완화금융시대의 종언,토지ㆍ주식의 이상 등귀현상으로 인한 자산효과의 감소,해외누적채무의 확대 등도 성장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것같다. 일본경제가 갖는 기술혁신 등의 잠재적 성장력은 강하지만 국제화 시대에 있어서 일본만이 변영을 계속 구가,재화를 끌어 모을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어렵다는 것이 일본경제연구단체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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