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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보통신발전 주역으로 자리/한국전자통신연구원 창립 20돌

    ◎광전송시스템·TDX교환기 개발/차세대이동통신 표준화에 주력 계획 국내 정보통신 신기술 개발의 산실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원장 양승택)이 최근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창립된 지 20돌을 맞았다. 정보통신 및 전자 분야의 첨단기술 개발을 위해 지난 77년 출범한 전자통신연구원은 지금까지 초고속정보통신망구축의 기반기술인 광전송시스템을 비롯,전전자(TDX)교환기·주전산기·CDMA방식의 휴대폰 칩세트 등을 개발해냄으로써 우리나라 정보통신분야 발전의 견인차역을 맡아 왔다. 초고속정보통신망의 핵심 기반기술인 전송분야에서는 세계적인 표준인 155Mbps 기본속도 수준을 훨씬 초월한 622Mbps,2·5Bps급의 광전송시스템을 개발했다. 교환기술분야에서는 전전자교환기 개발에 이어 소용량의 초고속 비동기 전송모드 교환기를 자체 개발해 전자교환기 분야 국내 기술진의 우수성을 세계에 과시했다.또 행정전산망용 주전산기 Ⅰ,Ⅱ,Ⅲ를 독자적으로 설계·개발,상용화에 성공하는 한편 반도체 분야에서는 4메가 D­램,16메가 D­램과 64메가 D­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특히 최근 이동통신기술 분야에서 CDMA방식의 이동전화기 칩세트를 개발한 데 이어 CDMA이동전화의 상용화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광대역 CDMA시스템을 선보였다.광대역 CDMA시스템은 올 연말쯤 시험서비스에 나서는 PCS의 핵심 기반기술이다. 전자통신연구원이 561억원을 들여 개발한 전전자교환기는 산업체 기술이전 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지금까지 국내에 이미 9백11만회선이 보급돼 파급효과는 1조6천4백억에 이르고 있다.반도체분야의 수출파급효과는 4메가 D­램이 11조 6천8백억원,16메가 D­램과 64메가 D­램이 11조 9천1백원을 기록했다.또 디지털 이동통신시대에 대비해 7백81억원을 들여 개발한 디지털 이동통신시스템의 파급효과는 국내 보급 1조5천2백억원,수출액 4천9백60억원에 이르고 있다. 양소장은 『앞으로는 고도 정보사회의 필수 기반기술인 차세대이동통신(미래공중육상이동통신)의 표준화와 무선접속 및 망 관련기술 개발에 주력할 방침』이라며 중소기업에 대한 첨단기술 이전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 시대의 화두 「벤처 창업」(지금은 창업시대:1)

    ◎불황없는 벤처기업 경제견인차로/명퇴바람속 고용 창출·두자리수 고성장/변화에 쉽게 적응… 순익률 일반기업 5배 추락하는 경쟁력,급증하는 실업자군….이제 기존의 산업정책으로는 우리경제의 성장점이 한계에 왔다.우리보다 앞서 저성장과 고실업을 겪었던 미국은 벤처기업을 대안으로 채택,유례없는 호황속에 있다.반면 일본은 대기업위주의 산업정책에 집착,장기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정부도 마침내 벤처기업의 창업활성화로 무한경쟁의 파고를 잠재우고 새 일자리를 만들어나가겠다는 원대한 「벤처드림」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서울신문은 이에 맞춰 저비용·고효율 산업구조를 위한 새 시리즈 「지금은 창업시대」를 6회에 걸쳐 내보낸다.〈편집자주〉 경기후퇴의 여파로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다.샐러리맨들에게 명예퇴직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2월중에만 실업률이 3.2%에 달해 실업자군단이 66만2천명으로 불어났다.한달새 11만2천명이 늘었다.하루 3천920명씩 실업자가 발생한 셈이다.특히 대졸실업률이 3.2%에서 3.7%로 높아진 것은 명퇴의 후유증이다.그러나 실업은 더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비상구는 바로 벤처기업의 창업이다. 모기업 경리부에 근무하는 김모씨(35)는 최근 명예퇴직을 결심했다.회사가 수익악화로 젊은 층에까지 명예퇴직을 시행한다고 했을때 갈등이 일었지만 마음이 흔들릴바에야 빨리 결정,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게 낫다고 생각했다.김씨는 일단 한국생산성본부 부설 「창업스쿨」에 등록키로 했다.퇴직금 8천만원을 밑천으로 대학전공(전기제어)을 살려 「경쟁력있는」 식품기계 제조업체를 세울 생각이다. 요즘 통상산업부와 중소기업청의 창업지원과를 비롯,정부기관의 창업관련 창구에는 하루에도 수십건씩 창업 문의전화가 온다.절차와 비용 등등….한국생산성본부 산하 한국기업상담의 창업강좌는 자리가 없을 정도다.소규모 점포에서부터 소시민들에게는 「거액」의 자본이 들어가는 중소기업 창업 등 강좌내용 역시 수요자 욕구만큼이나 다양하다.뿐만 아니라 명퇴자들의 고갈된 창의력을 충족시키기 위한 명퇴자들의 창업소재 찾기목적의 여행상품도 등장하고있다.창업관련 컨설팅업체는 물만난 고기처럼 생기를 찾고 있다. 컨설팅 전문업체들은 이 시대의 화두 「창업」이 난세를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처방이라고 입을 모은다.대기업들이 경영환경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손쉬운 명퇴를 선택하면서도 고용창출에 실패한 반면 벤처기업들은 고용을 창출하며 두자리 숫자의 고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벤처기업의 성공담은 많다.디지털 위성방송수신기 전문메이커인 (주)건인은 대기업 추종을 불허할 만큼 독보적이다.매출액이 지난해 67%나 증가한 데 이어 올해에도 증가율이 110%에 이를 전망.올해 38세인 변대규사장은 벤처기업을 창업한 뒤 매출액 대비 15%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오늘의 성공을 이뤄냈다. 국내 벤처기업은 1천여개로 중소기업 전체의 1.1%,매출액 5조2천억원으로 전체 3.7%,종업원수 4만7천명으로 전체 2.3%나 된다.그러나 당기순익율이 15%로 일반 기업체보다 평균 5배이상 높다.지난해 중소제조업체의 도산율이 3.8%인데 반해 벤처기업협회에 등록된 120개업체는 도산이 없었다. 정부는 벤처기업을 우리경제의 자생력 있는 토양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마련,시행한다는 계획이다.요즘의 창업러시와 맞물려 이들 시책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면 벤처기업은 2001년 2만개,2005년 4만개로 늘어 우리경제의 견인차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공직자 신뢰회복이 위기극복 지름길/이승범(공직자의 소리)

    현재 국내 여건은 노동법개정 논란·한보사건 등 일련의 정치상황으로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이와 더불어 수출부진·외채증가 등 경제 위기마져 감돌아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어려울때 일수록 공직자들이 중심을 잡고 자기의 맡은바 일에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공직자들마저 시류에 편승,부화뇌동하고 사익이나 챙기고 직분을 망각한 자세로 일한다면 국민의 분노 더욱 커질 것이다. 최근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근무시간중 무단이탈·도박행위 등 공직자로서 직분을 망각한 행태로 인해 국민들의 질책의 소리가 높다. 이와같은 질책은 국민들의 우리 공직자에게 거는 기대와 신뢰가 아직까지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공직자가 국민의 신뢰를 잃을때는 존재 의미가 없다.국민의 믿음과 기대는 곧 공직자의 생명과 같다.공직자는 주인인 국민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내무부는 요즘 국민들이 공무원들에게 보내는 「따가운 시선」을 「더욱 분발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공직사회에 열심히 일하는 새바람을불러 일으키기 위해 상·벌이 분명한 신상필벌의 원칙아래 각급 공무원들에 대한 복무기강 확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근무자세가 흐트러지고 국민에게 지탄받는 공무원은 공직사회로부터 단호히 추방하고,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은 지속적으로 발굴,표창함으로써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공직풍토를 조성하기 위함이다. 지금 국민들은 나라의 앞날을 깊이 걱정하면서 과거 어느때 못지않은 국가적 위기라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공직자 모두는 지금까지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한 견인차로써의 자긍심을 되찾아 국가경영의 중심축으로써 지성제민하는 자세로,청렴과 소신을 갖고 맡은바 소임을 묵묵히 해 나갈때 국민의 신뢰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공직자에 대한 신뢰회복만이 위기극복의 지름길임을 확신한다.하루빨리 정부의 공신력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
  • 여 중진의원 오늘 긴급회동

    여권은 신한국당 의원 및 지구당위원장 연찬회에서 경제위기 극복 등 민생현안 해결에 주력하기로 다짐한 가운데 당내 중립적인 중진의원들이 긴급회동을 갖고 당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개헌논의에 본격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을 보여 주목된다.〈관련기사 6면〉 신한국당은 29일 연찬회를 마치면서 「국민에게 드리는 우리의 다짐」을 통해 『깊고 어두운 터널속에 있는 국민경제 현실과 예측불허의 안보상황 등 현시국이 위기상황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했다』면서 『당의 모든 역량을 집중,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난국을 극복하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와관련,신경식 정무장관과 김종호·김영귀 의원 등 당내 4선이상 중립적인 의원들은 29일 상오 긴급 회동을 갖고 당의 화합과 한보사태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시국을 수습하고 김영삼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을 적극 지원한다는 중진의원들의 결의를 다질 방침이다.
  • 자동차보험 서비스경쟁 ‘점입가경’

    ◎요금할인은 기본… 차 무상점검·장학금 지급/고장­사고 긴급출동·해외여행 티켓도 증정 자동차보험 가입자에 대한 손해보험사별 서비스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손해보험업계는 최근 자동차보험 가입자에 대한 서비스 강화를 위해 ▲비상시 긴급출동 ▲자동차 무상점검 ▲엔진오일 교환권 증정 ▲장학금 지급 ▲해외여행 기회부여 및 각종 사은품 증정 등 무사고 운전자에 대한 다양한 보험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동차 보험 가입자에 대한 주요 서비스로는 우선 보험료 할인이 꼽힌다.손보사들은 무사고 기간에 따라 표준할인을 최고 60%까지 해준다. 자동차종합보험 가입자가 자동차의 고장 또는 사고 등으로 운행할 수 없을 때는 긴급히 출동,긴급견인이나 비상급유,배터리 충전,타이어 교체,잠금장치 해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동양화재에서 시행중인 「퍼팩트 카 서비스」,신동아의 「마스타카 서비스」,대한화재의 「해피 카 서비스」,국제화재의 「에이스 카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또 자동차 보험회사 협력업체 정비공장에서 자동차를 무상으로 점검받을수 있는 티켓을 보내 주기도 하고 장기 무사고 가입자에게는 엔진오일 교환권도 증정하고 있다. 10년 이상 무사고 가입자가 3급 이상 후유장해를 입었을때 그 자녀가 대학 또는 고등학교 학생이면 장학금도 지급하고 장기 무사고 가입자 가운데 추첨을 통해 하와이,사이판,유럽 등을 여행할 수 있는 해외여행 티켓도 마련하고 있다. 3년 이상 무사고 가입자가 보험대출을 받을 경우는 대출금리를 0.5∼3% 포인트 인하해 주는 등 다양한 보험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손보업계는 이와함께 고객서비스 창구 및 전화상담을 통해 상품안내,보험계약,보험보상 및 고객불만사항 등을 접수·처리하는 원스톱(One­stop) 서비스,야간·휴일 등의 교통사고 처리시 24시간 내내 사고접수 및 안내,기동처리반 운영 등 24시간 보상서비스 체제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동양화재의 텔레보이 24시(774­7711),신동아의 24시간 보상서비스(238­9121),대한화재의 핫라인 24시(754­6234),쌍용화재의 드래곤 24시(724­9700),해동화재의 바로처리서비스(080­909­8572),삼성화재의 미드나잇익스프레스(776­7114),현대해상의 안심다이얼센터(080­023­5656),동부화재의 콜 24시(262­1234) 등은 고객들이 언제라도 도움을 요청하면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보상서비스 제도들이다. 이밖에 쌍용화재는 특별서비스로 용평리조트 이용시 50% 할인권을 주고 신차 구입시는 최고 2천만원까지 대출도 지원해 주고 있다. 제일화재는 렌트카 할인서비스를 도입,지정 렌트카를 사용할 때 30% 할인해 준다.삼성화재도 신차 구입시 1천만원까지 대출해 주고 5년 이상 무사고 고객에게는 정기검사를 무료로 대행해 주고 있다.
  • 김정일 과도기적 체제 구축 가속/오코노기 마사오(지구촌 칼럼)

    ◎세대교체 급피치… 붉은기­군중시사상 강조 황장엽 비서가 북경을 떠나 필리핀에 머물고 있다.멀지않아 한국에 도착할 것이다.이 망명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두가지의 해석이 존재한다.즉,황비서에 대한 냉담한 견해와 동정적인 견해이다. ○냉담·동정 견해 엇갈려 냉담한 견해에 따르면 황비서는 김일성시대에 김일성종합대학의 총장 및 노동당 이데올로기 담당비서를 역임한 순수한 이론가로 관제 이데올로기를 창조한 「어용학자」인 셈이다.그 공적으로 최고인민회의의 의장을 경험하고 당서열 26위까지 올랐다.이 어용학자가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지도체제의 형성으로부터 배제돼 숙청을 두려워해 한국에의 망명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한편 동정적인 해석에 의하면 황비서는 지조가 굳은 조선의 전통적 지식인이며 무엇보다도 자신이 체계화한 주체사상이 독재정권의 정당화를 위해 왜곡되고 있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따라서 그는 민족적인 사명감을 갖고 국외로 탈출했다.주체사상을 바르게 전하는 것,전쟁의 참화로부터 민족을 구해 평화통일을 촉진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황장엽의 망명에는 이들 두가지 측면이 공존한다고 생각된다.그같은 관점에서 말하면 김정일시대의 이데올로기와 새로운 지도체제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며,또 그가 북한의 식량위기의 심각함을 지적하고 전쟁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러면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지도체제는 무엇일까.7월 이후 신체제 발족을 앞에 두고 윤곽을 드러낸데 불과하지만 이런 의미에서는 2월15일에 거행된 김정일 비서의 55세 생일 경축행사를 주목하는 것이 좋다.왜냐하면 그 경축행사에서는 선전·선동담당비서이며 황비서의 라이벌인 김기남이 중요한 보고를 담당했으며 부총리겸 외상이며 김정일의 후견인으로 주목되는 김영남이 축하문을 낭독했기 때문이다. 흥미를 끄는 것은 두 사람의 보고와 축하문 속에 붉은기 사상과 군중시사상이라는 두가지 사상이 김정일 비서의 독창적 이데올로기로서 공식화된 점이다.그 상세한 내용은 불명확하지만 붉은기 사상이란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심과 수령의 결사옹호 정신이다.군중시 사상이란 「군이 바로 당이며 국가이며 인민」이라고 하는 「위대한 혼연일체」인 듯하다.「붉은기 사상」이란 용어가 북한 미디어에 처음 나타난 것이 지난해 1월1일 노동신문 등 3개지 공동사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출현과 황씨의 망명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전쟁 위험성 경고 주목 다음으로 새로운 지도체제이지만 2월22일에 사망한 최광 인민무력부장의 장의위원회 서열에 그것을 알기 위한 힌트가 있다.그 장의위원회의 명단으로부터는 제6위의 강성산,12위의 서윤석,20위의 최영림,22위의 연형묵,28위의 서관희등 유력한 지도자들의 이름이 탈락돼 있어 이것이 이러저러한 억측을 부르고 있다. 사실,일본과 한국의 일부 주간지와 월간지 가운데는 최광에 이은 김광진 인민무력부제1부부장의 사인에 의문을 품거나 마치 북한 지도부내에 김정일파와 반김정일파 사이의 격렬한 권력투쟁이 발생하고 있는 듯이 전하는 기사도 있다.그러나 만일 그러하다면 인민무력부의 수뇌가 살해됐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엄령이 포고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또 이러한 수뇌가 반김정일파라면 배반자를 위해 국장이 거행된 셈이 된다. 따라서 현재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격렬한 권력투쟁이 아니라 오히려 김정일의 새로운 지도체제 형성이다.장의위원회의 명단으로부터는 신구세대교체,군대중시 경향,직무상의 실패에 따른 좌천등의 요소를 읽어내야 할 것이다.황씨의 망명과 최광의 사망은 7월 이후를 향해 이미 진전되고 있던 신지도체제의 형성을 가속화하고 있을 뿐이다. ○식량원조 획득이 관건 한편 황씨 망명후의 진술서와 그 이전의 서한 가운데 북한의 위기적인 상황이 식량사정 및 경제적 곤란을 들어 설명돼 있는 것도 주목되지 않으면 안된다.스스로의 망명에도 불구하고 황씨는 북한의 내부붕괴 가능성을 부정하고 오히려 전쟁의 위험성에 대해 되풀이해서 경고하고 있다.농민폭동이 불가능하며 북한 지도부의 정치적 단결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식량위기가 이대로 심각해지면 내부붕괴보다는 전쟁 시나리오가 나서게 된다는 주장에는 명확한 논리적 일관성이 존재한다. 만일김정일이 망명사건에의 보복을 주장하는 강경파를 억제하지 목하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기술자 파견도 4자회담에 관한 공동설명회도 실현 불가능했을 것이며,남북한간의 격렬한 소모전으로 김정일 비서의 최고지도자에의 취임마저 곤란하게 만들 것이다.이야말로 전쟁시나리오의 서곡이었다.이런 의미에서 북한 지도부가 감정적 반발을 억제해 외교의 유연성과 기동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특별히 강조해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사태를 전망하는 최대의 가늠자는 앞으로 한 두달 안에 북한이 식량원조를 획득하는데 성공해 7월이후 김정일이 정말로 국가주석과 노동당 총비서에 취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여부이다.북한의 연착륙이 가능한지 아닌지 여부와 같은 논의는 5년뒤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 신 신토불이(김호준 정치평론)

    신토불이­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이 용어는 지난 80년대말 농협이 우리 농산물 애용을 권장하는 슬로건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친숙해진 말이다. 직역을 하면 『몸과 흙은 둘이 아니다』인 것을 『태어난 곳에서 나는 농산물이 자기 몸에 제일 맞는다』는 뜻으로 토산품 선전에 원용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 말이 공직사회에 더욱 심화되고 만연된 눈치보기·무사안일을 일컫는 신종 유행어로 회자되고 있다. 공직사회의 「신토불이」란 공무원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채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어 땅인지 사람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비아냥을 담고 있다. ○공직사회 무사안일 빗대 사용 개혁의 서슬이 시퍼렇던 문민정부 초기에 잔뜩 움츠러든 공직사회를 풍자하던 유행어는 「복지부동」이었다. 「복지부동」은 그래도 땅위에 두꺼비처럼 엎드린 사람을 분간이라도 할 수 있다지만 「신토불이」는 땅속의 두더지처럼 숨어버려 아예 보이지도 않는 상황을 가리킨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했다고 할까, 집권초 경증)의 「복지부동」이 임기말에 이르자 중증의 「신토불이」로 바뀐 것이다. 임기말이 되면 권력누수와 더불어 공직사회의 기강해이가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요즘처럼 공직사회가 질타의 대상이 된 적도 없을 것이다. 눈치보기·일 안하기는 약과이고 차기를 겨냥한 줄대기와 돈 챙기기에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것이다. 멀지않아 윗사람이 바뀔 것이라는 빤한 예상 때문에 상부 지시가 제대로 먹히지 않을 뿐더러 근무시간중에 잡기를 즐기거나 개인 일을 보러다니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고건총리의 새벽 기습순찰에 흐트러진 근무자세를 여지없이 노출한 파출소라든가 야간근무중 업소에서 주민들과 도박판을 벌인 경찰관의 모습은 기강해이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노동법사태·한보대출비리·김현철씨 국정개입의혹 등 잇단 대형 악재가 온 나라를 분노와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면서 공무원의 사기와 의욕을 저상시킨 것만은 틀림없다. 잦은 개각도 공직기강의 해이를 부른 한 요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국가의 위기는 모른체 하고 권력싸움에만 열을올리는 정치권의 실망스런 모습도 공직자들의 일탈을 부채질했을 것이다. 관료주의가 강하게 확립된 나라로 흔히들 프랑스와 일본을 든다. 특히 프랑스 관료사회는 통치체제가 어떻게 바뀌든 그것 때문에 나라의 기본시책이 흔들리는 일이 없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 공직자들도 대통령과 정치권이 어떻게 돌아가든 좀 더 주인의식과 책임감에 투철했더라면 국정이 이렇게 표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한보사태를 공룡처럼 키운 책임도 따지고 보면 공직사회에 있다. 신한국당의 이회창 대표가 지적했듯이 정부의 한보사태 처리는 그 접근방법이 애당초 잘못된 것이었다. 한보그룹에 대한 제철소 인허가과정, 공유수면 매립과정, 은행대출과정, 기업운영의 성과등을 철저히 밝힌 뒤 사법처리에 착수했어야 옳았다. 그런데 이런 실질문제에 대한 조사없이 검찰수사부터 하는 바람에 비리만 부각돼 의혹과 불신을 증폭시킨 꼴이 되고 말았다. 정부가 한보에 대한 불가피했던 정책지원 내역만 밝혔더라도 국민들로 하여금 한보대출 5조7천억원을 몽땅 비리의대상으로 보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투철한 주인의식 확립 절실 그런 점에서 늦게나마 정부가 경제부총리 주도 아래 한보사태의 전과정에 대해 전면적인 재조사에 착수한 것은 다행이라고 하겠다. 한보사태의 종합적인 진상파악은 이수성내각에서도 거론됐지만 실행되지는 않았다. 해당 부처에서 기피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경제수석들이 관여한 문제라면 청와대가 풀어야지 왜 우리 손에까지 흙을 묻히려고 하느냐는 관료들의 회피주의가 사태확산을 방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마 임기말이 아니었다면 이런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헌법을 고쳐서 대통령 임기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임기말 현상은 주기적으로 오게 마련이다. 따라서 「복지부동」이라든가 「신토불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공직자들의 투철한 주인의식 확립뿐이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 근대화와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주역이 바로 공직자들이다. 요즘 일본에서는 관료망국론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튀어 나오지만 한국의 공직자들 앞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다. 공직자들이 다시 자긍심을 갖고 나라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난국극복의 주체로서 공직자들의 심기일전과 분발을 촉구한다.〈논설위원실장〉
  • 고건 총리와 위기관리(사설)

    김영삼 대통령이 내각을 통솔할 국무총리에 덕망이 높고 행정경험이 풍부한 고건 명지대 총장을 임명했다.온건하고 합리적이며 화합형일 뿐 아니라 새삼스러운 업무파악이 필요 없어 위기관리의 적임자로 평가된다.청와대개편과 더불어 민심수습과 국정쇄신을 위한 인사개혁에 걸맞는 선택이다.고총리는 국가적 난국의 극복과 경제 살리기에 최대의 역점을 두어 국민이 체감하는 가시적 결실을 이끌어내고 안정 속에서 첫 문민대통령의 임기말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가 고총리에 대해 각별한 기대를 갖는 것은 그가 정통관료출신으로서 내무·농수산 등 네번의 장관직과 서울시장직을 역임하면서 청렴성과 능력을 검증받은 행정의 달인이라는 점에 있다.고총리에게 있어 지금은 참으로 어렵고 괴로운 시기다.한보사태와 경제난으로 국정이 헝클어지고 위기의식이 커진 데다가 전환기의 기강해이와 사회불안이 예상되는 등 국정수행의 환경은 지극히 열악하다.그렇다고 주어진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2·25담화에서밝힌 부패척결과 경제 살리기,안보태세 강화,대선의 공정한 관리 등의 국정목표는 벅찬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전환기일수록 국정과제의 구현에 바탕이 되는 안정의 확보는 긴요하다.행정부가 어떤 정쟁에도 동요함이 없이 안정의 보루역할을 하면서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견인역할을 동시에 수행하지 않으면 안된다.정책집행과 내각관리에 명의와도 같은 그의 행정리더십의 발휘가 요청되는 대목이다.행정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안정감을 공고히 하는 것이 행정능력인 만큼 단시간에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는 내각으로 탈바꿈시켜야 할 것이다.내각을 확실히 장악하고 통합과 조정을 통해 부처이기주의와 무사안일을 차단하고 굳건한 단합을 이룩하면서 전행정조직과 공무원사회에 일하는 기풍을 불어넣는 고도의 수완과 정교한 수순의 발휘가 기대된다.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공직사회의 기강해이로 일어날 수 있는 돌출사고와 실정을 예방하는 한편 대선과정에서의 줄서기 등을 단속하여 국민의 신뢰를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무총리가 개인적인 명성과 인기에 구애됨이 없이 권한의 확대보다 책임의 완수를 선행하고 선택을 미루지 않는 사심 없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그리하여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구심력을 보강하면서 명예로운 임기마무리를 하도록 챙겨나가기를 기대한다.그런 점에서 고총리가 몸을 던지는 자세로 일하겠다고 밝힌 점을 우리는 믿음직하게 생각한다.아울러 행정의 낭비와 왜곡을 가져올 정치권의 외풍에는 단호히 대처하면서 초당적인 협력을 얻을수 있는 내각의 공정한 운용이 있어야 할 것이다.
  • 발로 뛰는 중소기업(무역구조 이대로는 안된다:4)

    ◎2만여 개미군단 수출증대 주역/작년실적 9.6% 증가… 대기업 0.1%와 대조/시장수요 탄력대응위해 정부 지원 늘려야 전자식전원공급장치(SMPS)전문업체인 두성전자의 김달호 사장은 지난해 수출시장 개척을 위해 20여개국을 직접 찾아다녔다.그의 가방속에는 두성의 주력상품인 다기능 볼트·너트 죄임기구인 소켓렌치 견본과 카탈로그들이 담겨져 있었다.발로 직접 뛴 덕택에 두성전자는 수출 1천만달러를 거뜬히 달성할 수 있었다. 두성전자는 수출전선에서 뛰고 있는 중소기업중의 하나일 뿐이다.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작년 수출에 직접 참여한 회원사 2만6천679개사 가운데 수출액이 1백만달러 이상인 업체는 6천474개이고 나머지 2만여개사는 수출금액이 1백만달러 미만이었다.5달러짜리 개스킷 5만여개를 수출한 코리아후지패킹에서부터 최첨단 초음파 진단기를 5천만달러어치 이상 수출한 메디슨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업체들이 포함돼 있다.무협 회원사업부 양승연 과장은 『2만여개의 「개미군단」 회원사들은 지난해 한국 수출증대의 견인차 역할을 해낸 중소업체들』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중소기업의 수출실적은 5백42억달러로 전년대비 9.6%가 증가했다.대기업의 수출증가율이 0.1%에 불과하고 총수출 증가율도 3.6%에 그친데 비하면 괄목할만한 성장률이다.이에 따라 총수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95년의 39.6%에서 41.8%로 높아졌다. 중소기업이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수출전선에서 대기업보다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은 이들이 순전히 발로 뛴 결과이다.70노구를 이끌고 뜨거운 사우디 아라비아 부품전이나 포연이 자욱한 사라예보까지 달려간 코리아후지패킹의 이종태 사장은 대표적인 예다.우리 중소기업들은 「바이어」가 있을 법한 전시회나 박람회라면 빠지지 않고 찾아갔다.지난해 우리중소기업들은 해외 전시회에 51회나 참가했고 각종 시장개척단이 69회나 파견됐다.그 결과 아프리카지역에 대한 중소기업의 수출이 88.4% 증가한 것을 비롯,중남미주 14.7%,아시아와 유럽이 각각 9.5%의 증가율을 기록했다.품목별로는 비금속광물이 83.1% 신장된 것을 비롯,기계류와 운반용기계(53.6%),중공업제품(18.7%),전자·전기(12.8%),1차산업(14.3%) 등이 눈에 띠게 수출이 늘었다. 중소기업들은 올해도 바쁘다.27일 6백여 해외바이어를 초청,한국종합전시장에서 상담을 벌인 중소기업들은 4월 도쿄에서 열리는 「일본부품조달전시회」를 비롯,올해 70차례의 각종 전시회에 참가하고 아울러 60차례의 시장개척단을 해외로 내보낼 예정이다. 이재길 통산부 중소기업정책관은 『수출부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시장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중소기업들에 대해 대대적인 수출촉진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며 『정부는 수출촉진을 위한 「환경조성」에 치중하겠다』고 밝혔다.
  • 선우중호 서울대 총장 졸업식사

    ◎“「큰 사람」 도량으로 시민사회 초석되라”/나를 지키고 우리것 키워 인류발전 기여를 오늘은 졸업생들이 각고면려 끝에 그 결실을 거두는 날일 뿐 아니라 대학이 기울인 노력의 열매를 수확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 대학으로서는 가장 뜻깊고 보람찬 날이며 기백이 넘치는 젊은 재사들을 사회에 내보내는 저 자신도 마음 뿌듯합니다.이제 현실사회의 주역이 될 여러분에게 간곡하게 몇마디 당부의 말을 하고자 합니다. 현대의 개인중심 민주사회에서는 개개인의 권리가 강조된 나머지 함께 정을 나누며 어울려 사는 「공화의 정신」이 소홀해지기 쉽습니다.이럴때 일수록 우리사회는 「대학공부를 한 사람」 즉,「큰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큰 사람」이란 자기를 다스릴 줄 알고 공동선의 원리에 따라 사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회적 공동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만에 하나 허물이 있을때 그것을 남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자신에게서 찾는 사람을 말합니다. ○자신의 허물 먼저 찾아야 또한 현대 물질주의 사회에서 사람은 자칫 물질에 매몰돼인격조차도 물건값으로 환산하고 당장의 이익에 급급하기 쉽습니다.이럴때 「큰 사람」은 사물에 부림을 당하지 않고 사물을 제어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리와 실리의 끊임없는 유혹이 있더라도 여러분은 부디 「큰 사람」의 도량을 보여 참다운 시민사회의 초석이 되기를 당부합니다. 굳건한 덕성을 바탕으로 여러분은 지성의 연마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21세기 선진사회는 복잡다기한 산업사회로서 사람들의 욕구가 다양해진 만큼 지식과 기술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또 그만큼 조화와 균형,합리의 정신을 절실히 필요로 할 것 입니다. ○나를 잃으면 종속만 남아 이제 미래사회를 주도하는 것은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여러분들의 몫입니다.여러분 어깨에 맡겨진 책무는 큽니다. 국제화·세계화의 대세 속에서 오늘날 우리는 세계 인류의 지구촌 시대를 실감하고 있습니다.한 개인이 남들과의 교제를 통해 원숙해지고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할 수 있듯이 한 사회,한 민족도 다른 사회,다른 민족과의 교류을 통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제와교류에서 자기를 키우지 못하고 잃어버릴때 거기에서 더이상의 교류는 없으며 오직 종속이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자기 계발과 민족문화를 계승,고양시킬 것을 강조하는 것은 『어떻게든 나를 지켜야 한다』,『우리의 것을 키워야 한다』는 독선이나 아집에서가 아닙니다.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의 다양화에 기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 문화의 폭을 증대시켜 인류의 삶 전체를 풍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학인은 그동안 선진문화를 취해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외국의 학설과 문물의 수용에 앞장서 왔습니다.그리고 그렇게 해서 우리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까지 수입과 모방만을 반복할 수 있겠습니까.이제 우리는 선진 외국 사람들에게 졌던 빚을 갚아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자연의 탐구,기술의 개발,사회운영 등에서 고유문화를 창달하여 인류문화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합니다.그 때문에 나는 우리 사회발전의 견인차인 여러분의 분발을 촉구하고 여러분에게 큰 기대를 걸뿐 아니라 그 성취를 확신합니다. ○패기·이상이 발전 밑거름 가끔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의 열등생」이라는 말을 듣습니다.교과서만을 박제화하여 습득한 사람들이 현실사회의 생동성을 올바로 파악하지 못함을 지적하는 말입니다.학교에서 습득한 지식을 낡고 빈 껍데기로 만들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알맹이를 받아들일수 있는 훌륭한 틀로 가꿀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현실 사회가 교과서적 원리가 적용되지 못할 만큼 왜곡돼 있다면 과감하게 그것을 바로 잡는데 정진하십시오.우리 사회는 여러분의 젊은 패기와 참신한 착상,타오르는 이상에의 열정을 공급받을 때만 진정한 발전을 이룰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안팎으로 불안,불신 그리고 혼란이 소용돌이 치고있는 학원 밖으로 진출하려 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거리를 단축시키고 있는 변화의 파도는 사회주의와 군부 권위주의를 붕괴시켰을 뿐 아니라 그동안 잠복해 있던 한국 정치사회의 병폐들을 노출시키고 있습니다.이러한 세기말적 도전에 직면해 여러분은 생활 보수주의에 안주해서도 안될것이며 불만을 토로하고만 있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또 무력감에 빠져만 있어서도 안됩니다. 여러분들은 21세기 입구에 선 지식인으로서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이상의 불꽃을 실현해야 할 시대적 사명감을 지니고 있습니다.여러분들은 한국적 병폐들을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제공자이어야 함은 물론 21세기한국 건설의 개혁 추진세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쪼록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우리 대학의 정신을 깊이 간직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닦아 온 누리를 밝히는 등불이 되십시오.여러분의 무궁한 발전과 영예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 서정화 내무장관에 듣는다(올해 국정 어떻게)

    ◎“북 테러 예방­대선틈탄 불법·무질서 척결”/경찰 장비 보강·요원 정예화로 체감치안 구현/지자체 발전 토대 「지역경제 활성화 운동」 전개 □대담=김만오 전국부장 서울 광화문의 정부종합청사 13·14층에 있는 내무부는 요즘 어느때보다 긴장된 분위기다. 한보사태로 전임장관이 물러난뒤 서정화장관이 전격 취임한데다 연이어 황장엽 북한 노동당비서 망명사건과 귀순자 이한영씨 피습사건이 터져 직원들은 정신없이 바쁘다.국내 치안유지가 첫번째 업무인 내무부로서는 대책을 수립하고 행정을 점검하고 일선공무원들의 기강을 다지는 등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이미 15년전에 내무장관을 역임한 바 있는 60대 중반의 서정화 국회의원이 내무장관에 임명된 것은 아마도 그의 경륜과 행정능력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위의 분석이다.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의 와중에서 눈코뜰새없이 바쁜 서장관을 김만오 전국부장이 만나 앞으로 내무부가 해야할 현안에 대한 처방을 들어봤다. ­먼저 장관취임을 축하합니다.15년전 장관으로 계실때와 비교해 시대상황이 엄청나게 달라졌습니다.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사회안정·경제회생 집중 ▲실로 오랜만에 내무장관직을 다시 맡게 돼 감회가 남다릅니다. 금년은 다가오는 21세기를 대비하여 국가적으로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 하는 중요한 해입니다.최근의 어려운 국내외사건과 경제문제,12월의 대통령선거 등으로 어느 해보다 사회기강이 이완되기 쉬운 때입니다.무엇보다도 사회안정을 도모하고 모든 힘을 경제회복에 집중시켜 다시 일어서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같은 중요한 시기에 내무행정의 중책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습니다.그간의 행정과 의정활동경험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황장엽 북한 노동당비서의 귀순에 이어 이한영씨 피습사건으로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대 테러대책은 어떻게 세웠습니까.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경찰 작전부대에 대한 교육훈련을 강화하고 비상출동태세를 엄중히 관리해오고 있습니다.아울러 작전장비보강예산 30억9천여만원을 확보,레이다·야간투시경·방탄조끼 등 장비(5종 126점)를 보강함으로써 경찰작전능력을 높여 나갈 것입니다. 국내외 주요행사시 안전활동을 강화하고 국가 중요시설과 다중운집시설 등 테러예상시설에 대한 경비도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공항과 항만 등 주요핵심시설에 대한 출입통제 및 보안검색활동을 철저히 하고 항공기·선박납치 또는 폭파방지에 주력하는 한편 경찰특공대 등 대테러요원들을 정예화하여 예방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북한주민 귀순에 따른 내무부의 대비책은 무엇입니까. ▲북한의 경제난이 심각해지면서 최근 이탈주민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우리 사회에 조속히 적응하여 안정되게 생활하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과제입니다.정부에서는 작년말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마련하여 국회를 통과시켰고 내무부를 비롯한 관련부처가 참여하는 「북한이탈주민대책협의회」가 구성·운영될 것입니다. 내무부에서는 본부내에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이북 5도에도 총괄부지사를 두어 통일대비업무를 전문적으로 맡게 하는 등 귀순자의 정착지원업무를 수행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이와 함께 지방행정연구원에 북한의 지방행정연구팀을 구성,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이북5도위원회도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단」을 중심으로 이탈주민의 생활안전과 통일에 대비한 연구·조사활동을 적극 전개하도록 지도해나갈 계획입니다. ­올해는 민족사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내무행정의 역점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봉사하는 공무원상 정립 ▲우선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참된 내무 공무원상을 정립하여 국민의 신뢰를 받도록 하겠습니다.공직기강을 확립,부정부패에 관련된 내무부산하 공무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단호하게 조치할 것입니다. 또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해 자치행정을 적극 지원하고 지방의 대변자·후원자·조정자로서의 내무부의 역할을 새로 정립,각종 제도와 관행을 개선해 성숙된 지방자치를 정착시켜 나가겠습니다.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한 시책도 적극 개발·추진하겠습니다.인적자원과 부존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생산활동으로 연결시키는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습니다.지역경제가 살아야 지방자치가 뿌리내리고 국가경제도 살아나지 않겠습니까. 아울러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치안질서확립에도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취임때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해 전국토의 생산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구체적인 방안을 설명해주시죠. ▲국민 모두가 우려하고 있듯이 우리 경제는 현재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난해 경상수지가 사상 최대의 적자폭(2백37억달러)을 기록한데 이어 올해에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또 고비용·저효율의 경제구조속에서 노동법 개정과 관련한 파업과 한보사태 등으로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어려운 국가경제의 책임이 자치단체에도 있다고 보고 지역경제활성화를 통해 이를 극복해 나갈 생각입니다. 지난날 내무부는 「새마을운동」을 전개,근대화위업을 이룩하고 국민을 가난에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데 견인차역할을 했습니다.앞으로 이와 유사한 「지역경제활력화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쳐 총력생산체제를 구축토록 할 계획입니다. ○총력 생산체제 구축토록 지방자치단체를 권역별로 묶어 지역특성에 맞는 경제활성화시책을 추진합니다.기존의 행정구역단위가 아니라 경제권역별로 분류,지역에 부존해있는 각종 생산요소와 유·무형의 자원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입니다.지방의 유휴인력을 자치단체별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이 자료를 통해 취업시킴으로써 일할 의욕이 있는 모든 국민에게 일터를 마련해줘 국민총생산을 높여 나갈 계획입니다. 또 기업과 공장의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직·간접 지원시책을 마련하겠습니다.재정투자의 기본방향을 지역경제활성화에 두고 유관기관·단체와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빠른 시일내에 우리의 여건에 맞고 전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지역경제활성화계획」을 수립하겠습니다. ­12월에 대통령선거가 있습니다.선거관리업무준비도 철저히 해나가야 할텐데요. ▲제15대 대통령선거를 헌정사상 가장 깨끗하고 공명정대하게 치러 선진선거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습니다.주민등록 일제정비와 담당공무원 교육 등을 철저히 하고 투·개표사무관리 등에 대해서도 선거관리위원회와 협조하여 차질없도록 하겠습니다.그리고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선거관리위원회 요청사항에 적극 협조토록 지시하고 검찰·경찰 등과 협조하여 공명선거분위기를 해치는 일체의 불법·타락행위가 발생되지 않도록 특별대책을 수립,실천해 나가겠습니다. ­선거가 있는 해는 관계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법과 무질서가 판을 치고 물가가 치솟아 국민들이 고통을 당해왔습니다. ○불법행위 방지 대책 수립 ▲선거철이면 그린벨트훼손,불법건축,환경오염,부당요금징수 등 불법·무질서행위가 증가되는 추세를 보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올해만큼은 이같은 현상을 없애 성숙된 우리의 모습을 세계만방에 소개될 수 있도록 내무부는 관계기관과 협조해 완벽한 대책을 마련해 나갈 것입니다.경찰이 지난 1월20일부터 2월2일까지 물가사범특별단속기간으로 설정,농수산물원산지 허위표시판매업자 20명을 구속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앞으로도 유관기관·단체간에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불법·무질서가 발붙일 수 없도록 계도·홍보활동을 활발히 펼쳐 나가겠습니다. ­민선 자치체제 3년동안 좋은 점도 많았지만 지역이기주의 등 문제점도 많이 노출됐습니다. ○지역이기 부작용 최소화 ▲민선 단체장체제출범이후 주민들을 위한 행정서비스가 대폭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그러나 규제와 단속의 소홀,지역이기주의에 의한 분쟁과 집단민원의 증가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내무부는 지역단위의 분쟁에 대해 자치단체 스스로 협의·조정해 나갈수 있도록 지도해나가되 분쟁의 장기화로 피해가 심각한 경우에는 직권으로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조정토록 하는 방안을 마련,국회에 「지방자치법」개정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입니다.또 중앙·지방간 갈등이 증가함에 따라 국무총리실산하에 「협의조정기구」가 설치돼 사법적인 조정이전에 문제가 해결되도록 방안이 마련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심성 경비 제도적 근절 ­일부 민선 자치단체장의 인기위주시책으로 자치단체의 재정상태가 나빠지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다고들었습니다. ▲일부 자치단체가 주민을 의식,각종 예산을 지역경제활성화사업에 투자하기 보다는 소규모사업에 분산투자하거나 지역안배적 차원에서 집행하는 등 재정을 불건전한 방향으로 운영한 사례가 없지 않습니다. 앞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예산편성과 집행시 경제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선심성 경비집행을 제도적으로 근절하기 위해 중기지방재정계획을 수립하겠습니다.또 업무추진비 등 경상경비절감과 각종 행사의 검소한 운영,에너지절약 등을 추진해 올 한해동안 3천6백48억원을 절감하여 사회간접자본사업에 집중투자토록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국가적 과제는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위해 국가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입니다.경제회복에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설 수 있도록 재정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치단체의 재정자립을 돕기 위한 지방세 확충방안은 무엇입니까. ▲지방세 과세대상 확대·세율인상,세목 신설·비과세 및 감면대상 축소 등이 있습니다.그러나 이는 국민부담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신중하게검토하고 있습니다.단기적으로는 현행제도의 불합리한 부분을 찾아 개선해 나가는데 주안점을 두고 중장기적으로 국세의 지방세 이양 등의 방안을 꾸준히 연구·검토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정리=박영효 기자〉
  • 중 대홍콩정책 유지해야(해외사설)

    등소평 동지의 사망이 중국 전역의 인민들을 비통함으로 몰아넣고 있다.그러나 중국의 밝은 전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인민들은 평온하다.강택민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중국 제3세대 지도자들이 등이 생전에 입안한 중국의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 이론과 개혁개방정책,정치·외교·군사·문화·교육 등 각 방면에 대한 방침을 반드시 견지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 11기 3중전회가 열린 이후의 18년동안의 세월은 중국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체험한 시기였다.이 시기에 추진된 개혁·개방정책과 현대화건설사업은 매년 10%대의 고도 경제성장을 이룬 데다 외국자본의 유입이 급증하며 아·태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이같은 경제성장의 혜택을 인민들에게 골고루 분배됨으로써 중국의 모습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때문에 등사망이후에도 등의 이같은 사업은 더욱 번성할 전망이다. 등이 건설한 중국의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의 주요 내용은 일국양제의 구상에 따라 중국을 통일하는 것이다.등은 비록 오는 7월1일 홍콩의 중국반환을 보지 못했지만 홍콩이 등의 구상에 따라 반환준비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어 별어려움없이 중국의 영토로 회복될 수 있다.특히 강택민 등 중국 지도자들의 동건화 홍콩 행정장관에 대한 특별한 신임과 지지는 중국 3세대 지도자들이 홍콩에 대한 방침과 정책의 집행에 있어서 변화가 없음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홍콩인들은 중국정부가 지난 13년동안 등이 건설한 홍콩에 대한 방침과 정책을 견지해오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봐 왔다.등은 사망했지만 중국의 홍콩에 대한 방침과 정책에는 어떤 변화도 있을수 없다.홍콩이 일국양제를 솔선수범하는 현대화건설를 위해 자금을 조달하고 과학기술을 끌어들이며 국제시장 개척을 위해 수출을 증가시키는 특별한 작용을 해야 하는 탓이다. 이는 중국의 개혁개방과 현대화 건설부문에 모두 유리하다.등의 홍콩에 대한 방침과 정책을 견지하는 것은 중국을 발전시키는데 유리할 뿐 아니라 홍콩인들에게도 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차세대 기술관료들(등 이후 중국대륙:5)

    ◎호요방­당 서열 7위… 4세대 선두주자/왕조국­자유주의 세력 희망/증경홍­상해방·태자당 핵심/온가보­조자양 계열 온건파/오방국­유력한 차기 총리감 중국 지도자들을 분류할때 모택동과 주은래,등소평 등 혁명원로들을 제1세대,호요방 조자양 등을 제2세대,현재 권력 핵심인 강택민 이붕 등을 제3세대라 부른다.제3세대인 주자들이 대부분 70대 초반의 고령인 점에 비추어 중국공산당 16차대회가 열릴 2002년에는 현 핵심지도세력보다 연배가 10수년이나 아래인 제4세대 인물들이 정권의 전면에 배치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1940년이후 출생해 강택민,이붕보다 한세대 이상 아래인 이들 제4세대핵심들은 당과 정부,군 요직에서 착실히 기반을 쌓아가고 있다.이들은 개혁개방후 지방 각 지역과 중앙의 주요 직책들을 거친 기술관료들이다. 개인별로 볼때 우선 제4세대중 선두주자는 호금도임에 이견이 없다.강택민이후 가장 유력한 후계자다.56세로 중국정치의 핵인 정치국상무위원으로 당서열 7위다.명문 청화대를 나와 9년간 빈곤지역인 감숙성에서 기술관료로 활약했다.85년엔 극빈지역 귀주성의 최연소 당서기로 능력을 인정받았다.88년엔 민족분규로 유혈사태가 악화되던 티베트 당 서기로 부임,사태를 진정시켰다. 한국인에겐 다소 낯선 왕조국은 중국정치에선 호금도에 앞선 대권주자였다.87년 호요방의 실각,사망으로 보수파의 공격목표가 돼 복건성 성장,서기로 밀렸다가 92년 중앙에 복귀했다.호보다 2단계 아래인 중앙위원이며 통일전선부장(장관)이지만 그의 미래는 자유주의 세력의 입지를 상징한다는 의미가 있다.호요방 총서기 시절 비서실장격인 당 중앙관공청 주임과 당의 일상활동을 조정,관리하는 중앙서기처 서기등을 역임했다. 증경홍은 강택민의 오른팔로 현재 비서실장격인 당 중앙판공청 주임이다.중앙위후보위원에도 들지못하는 등 당내 서열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실세중 실세로 꼽힌다.강택민,오방국,황국과 함께 80년대중반 상해시당 부서기를 지낸 상해방의 핵심이다.중국공산당의 원로인 증산의 아들로 태자당의 핵심이며 당원로의 지지를 받고 있다.올후반 15대 전당대회에서 고속성장이예견되며 그의 정치국 진입여부는 강택민의 힘을 재는 바로미터란점에서 주목된다. 정치국 후보위원인 온가보도 온건지도자로서 주목받는다.조자양 총서기밑에서 뛰어난 행정능력으로 신임을 받았다.89년 6·4사태때 교석,전기운처럼 시위 무력진압에 대해 미온적이었지만 정치무대에서 살아남을수 있었다.그의 진로도 당내 온건파의 입지를 재는 척도중 하나다. 부총리 오방국도 상해방 출신의 공업전문가인 기술관료로 유력한 차기 총리감이다.명문 청화대졸업후 상해 전자관공장 기술자로 출발,전자분야 국영기업의 부사장을 거쳐 강택민과 주용기의 신임을 받아 상해시 당서기를 거쳐 정치국원이 됐다.강택민,증경홍 등과 마찬가지로 상해파의 대부 왕도함,진국동이 후견인이다.85년중반부터 강택민,황국 등과 함께 상해시 부서기로 일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중국은 78년 당회의를 통해 차세대 양성을 공식화했다.65세면 장관직을 물러나야하는 것이나 40대의 국장및 40대의 핵심 차관을 선발하는 불문률의 관례도 이 때문에 세워졌다.이들 50대 지도자들이정권을 쥘때는 중국이 보다 개방되고 서구화 방향으로 나갈 것이 분명하다.
  • 서봉수 국제기전 9연승 위업/진로배/중국 마효춘에 불계승

    ◎일·중 대표 연파… 한국우승 견인 서봉수 9단이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파죽의 9연승을 기록하며 한국에 우승컵을 안겨줬다. 서9단은 23일 중국 북경 쿤룬호텔에서 벌어진 제5회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 제3차전 11전에서 중국의 마지막 주자 마 샤오춘(마효춘)9단을 225수만에 흑 불계로 꺾었다.우리나라는 서9단의 연승으로 진로배를 5연패했다. 서9단은 이날 승리로 마9단과의 역대전적을 4승1패로 바꿔놓았으며 이번 대회 최대 연승기록도 세웠다.종전 기록은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의전기기)9단의 5연승(2회대회). 서9단은 연승으로 기본대국료,8판 승리수당,최종승리수당,9연승 상금 등 모두 1억4천2백10만원의 상금을 챙겼다. 이날 바둑은 초반부터 흑을 쥔 서9단의 세력대 마9단의 실리양상으로 흘렀다.중반들어 우하귀에 백 82로 붙이면서 패가 발생,결국 흑 139까지 대바꿔치기가 이루어지면서 흑이 우세를 확보했다.수순중 백 98로 끊은 수가 대착각으로 중앙 언저리로 갔으면 긴 승부였다. 서9단의 연승으로 조훈현,유창혁,이창호 등 우리나라선수들은 대국도 하지 않고 우승하는 영광과 함께 기본상금 2천5백만원을 챙겼다.
  • 정치개혁 가능할까(등 이후 중국대륙:2)

    ◎경제제일주의… 탈이데올로기 확산/경제 자율권 확대로 통제여지 줄어/급성장한 중산층 민주화요구 커져/대체할 조직 미비… 당분간은 현체제 지속 등소평이후의 중국지도층은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라는 독특한 형태의 질서를 떠맡게 됐다.중국은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1당 지배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부문에서는 자율과 효율을 중시하는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있다.중국의 이러한 사회주의 시장경제 실험은 정치적 안정과 경제발전을 가져왔다. 중국의 경제는 지난78년 개혁개방이후 해마다 9.3%의 고속성장을 거듭했으며 무역총량이 3천억달러에 육박해가고 있다.일반국민들도 이러한 경제성과의 수혜자가 됐으며 개혁개방정책의 지지세력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의 결과로 한편에서는 사회구조 및 의식의 다양화와 공산주의 이념의 퇴색이 촉진됐다.경제부문의 자율권 확대는 정부의 통제와 계획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었으며 사회주의 특색인 계획경제의 여지를 점점 더 어렵게 하고 있다.경제적 성장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대외개방이 도리어 공산당의 집권과 안정에 영향을 끼치는 단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특히 중국사회의 통합을 이뤄나가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공산당 조직이 효율과 경제제일주의,탈이념의 분위기속에서 상당히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다.상업주의,배금주의의 거대한 물결속에서 이데올로기와 공동체의식은 빛바랜 유산이 되고 있으며 젊은 세대에게 선망과 출세의 지름길이던 공산당 입당과 당에 대한 헌신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공업발달로 인한 도시화는 1억명이상의 농촌잉여노동인구를 도시로 빨아들였다.도시에서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유랑인구층의 확대는 사회안정을 위협하는 도시문제를 일으키고 있을 뿐 아니라 지방 공산당조직의 해체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개혁개방이후 성장한 중산층과 서구 사상의 영향을 받은 엘리트계층의 민주화요구는 정부의 압력속에서도 커가고 있다.기존 이데올로기와 정치체제에 대한 정통성 약화와 불신이라고 요약되는 이러한 현상은 중국에서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난78년 개혁개방이래 등소평의 노선에서도 변하지 않는 4가지 전제조건이 있다.그것은 ▲사회주의 노선 ▲무산계급의 독재 ▲공산당 영도 ▲마르크스 레닌주의및 모택동사상의 견지였다.경제는 시장경제로 나가지만 정치는 공산당의 1당 지배체제를 변화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지난93년 8차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개정한 헌법에서도 인민민주주의 독재를 견지해야 한다는 조항은 여전히 살아있다. 공산당 독재를 특징으로 하는 정치분야에서의 현 정책기조는 등 사후도 변치 않을 전망이다.지난1월25일 중앙기율위원회에서 위건항위원장은 「자산계급의 자유화를 요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 처벌하겠다」며 정치적 다원화와 민주화 요구에 경고를 보냈다. 강택민 주석 역시 공산당의 우위체제에 대한 입장은 명확하며 다원적인 정치개혁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중국은 외부적으로도 아직 공산당을 대체할 조직과 역량이 미비하고 시민사회의 형성이 더디어 중국 지도부가안에서 분열하지 않는한 정치적 개혁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경제적 토대가 바뀌면 그 위에 세워지는 정치·사회·문화적 체제도 바뀌어가기 마련이라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자체의 주장이 맞는다면 시장경제의 도입으로 토대가 바뀐이상 장기적으로 정치체제도 바뀔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세계언론의 보도/LA타임스­누군가 강택민에 도전할수도/르몽드­천안문사태 풀어야 할 과제로/알게마이너­일관된 개방정책 추진 미지수 세계언론들은 20일 등소평 사망 뉴스를 대대적으로 다루면서 사설·해설 등을 통해 군과의 관계,점차 거세질 민주화 욕구 등의 이유로 강택민 체제의 앞날이 순탄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들을 내놓았다. ▲뉴욕타임스(미국)=「등소평의 유산」이라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등이 생존 당시 권력을 이양하지 못한 점과 그의 사후 닥쳐올 불안한 후계자문제 등은 그러한 개혁들이 여전히 불완전한 것으로 남아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강조. ▲워싱턴 포스트(미국)=등의 사망을 계기로 강택민국가주석은 이제 후견인없이 중국을 이끌어가야 하는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고 보도.강주석은 군을 모두 장악하지는 못하고 있으며,과거 주은래와 호요방의 사망후와 같이 대규모 시위에 시달릴 가능성도 안고 있다고 이 신문은 보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미국)=누군가가 강에게 도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지난 76년 민주화운동에 대해 훗날 공산당이 공식적인 비난을 철회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등이 「반혁명 소요」로 공식 비난한 천안문사태에 관한 재심요구로 내분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도.윈스턴 로드 전 동아시아태평양담당 국무차관보가 『천안문 문제가 등 생전에 재론될 가능성은 없었으나 앞으로 두세달은 지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이 신문은 보도. ▲르 몽드(프랑스)=천안문사태가 앞으로 강체제가 풀어야할 최대과제라고 지적.이 문제에 논의는 그동안 금기시돼왔으나 등의 사망으로 피할수없는 난제가 됐다고 보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독일)=등이라는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사라진 지금 그의 후계자들이과연 등처럼 일관되게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해나갈수있을지 매우 의문시된다고 지적.반면 게네랄 안차이거지는 『강주석·이붕 총리 등이 등의 개혁노선을 지속시킬 경우 중국이 21세기에는 초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분석.
  • 등소평 사망­중 이끌 5인의 실력자

    중국을 현대화한 카리스마적 지도자 등소평이 사망함에 따라 등없는 중국의 미래에 세계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강택민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지도자들은 등과 같은 지도력과 카리스마적 권위가 없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강을 중심으로한 집단지도체제가 유지되며 권력투쟁의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등이후의 정치역학 구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실력자들을 알아본다. ◎강택민/개방정책 지휘한 등의 적자/상해·기술관료 출신… 추진·포용력 돋보여/대중적 카리스마 부족… 군부기반도 취약 「강철 미소」.북경외교가에서 강택민을 평하는 말이다.부드럽고 여유있게 보이는 이면에 치밀하고 끈질긴 추진력을 평하는 말이다.각 부문을 통괄하고 무리없이 이끄는 포용력은 등소평도 크게 평가했다고 한다.문제를 파악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지도력도 그의 장점으로 꼽힌다.현재와 같은 중국의 집단지도체제에선 강과 같은 적격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다른 지도자들의 입지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점진적으로 지도력을 강화해 나가고있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강은 명문대(상해 교동대)를 졸업한 전형적인 기술관료(테크노크래트)다.지난 95년 한국방문때 삼성전자 등을 둘러볼때 전문지식과 식견으로 주위를 놀라게 할 정도다.그러나 특유의 인화력과 포용력으로 조정과 막후 교섭등 정치력이 돋보인다는 평이다.지난 89년 천안문사건으로 전국이 혼란에 빠졌을때 상해서기로서 유혈사태를 피하면서도 시위대를 적절히 제압하는 「성과」를 거두어 등소평의 점수를 얻었다.그는 강소성의 비교적 넉넉한 학자집안의 자제다.그가 영어·러시아어 등 외국어에 능통하고 서예와 그림,중국전통악기 및 피아노 다루기 등에도 조예가 깊은 것은 그같은 집안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이붕에 비길수 없지만 그의 양아버지인 숙부가 공산당원간부로서 이선념·장애평·진의 등 신4군 수뇌들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이같은 출신배경도 그의 능력과 함께 출세의 밑천이 됐다.인민해방군의 거목인 이선념은 생전 그를 적극 지원했었다.강택민은 상해시 당위원회 부서기·서기·시장 등을 거치면서 중앙의 인정을 받았다.상해가 권력의 기반일뿐 아니라 출세의 발판이고 그의 고향도 넓게 범상해권에 속하는 강소성이다.상해의 식품공장과 비누공장에서 기술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뒤 기계공업부와 전자공업부 부장 등으로 기술관료로서도 엘리트코스를 거쳤다. 그의 뒤에는 상해파벌의 대부격인 왕도극이 후견인 역할을 해왔다.오방국·황국·서광적 등이 다 그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하는 소위 「상해방」이다.그는 증경홍 당중앙판공실 주임을 정치국으로 끌어올리려는 등 계속 상해출신의 진용을 강화하고 있다.94년 14기4중던회 때 상해시장 황국과 당시 당서기 오방국을 정치국원으로 진입시키는 등 주위를 두텁게 하고 있다.등소평에 의해 뽑혀 올려왔지만 지난 8년동안의 최고지도자로서의 입지 강화해 모택동에 의해 선택된 화국봉처럼 쉽사리 뽑혀나갈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그러나 국가지도자로서 카리스마나 구체적인 치적이 없고 취약한 군부의 지지기반 등이 그의 아픈 곳이다. ◎이붕/보수파 대변 태자당의 리더/거미줄처럼 깔려있는 관료인맥이 강점/천안문사태 강경진압 지휘… 대중반감 커 이붕 국무원총리는 지난 8년여동안 강택민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쌍벽을 이루며 중국을 이끌어 오고 있다.이미 79년 국무원 전력공업부 부부장으로 중앙에 진출한뒤 국무원 부총리(83년),중앙위원 겸 정치국위원 등을 거친 기술관료로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중앙위원이나 정치국원도 강택민보다 먼저 올랐다.제3세대 기술관료들의 본산인 소련유학파의 수장격으로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관료인맥의 대부격이다. 87년이후 10년 가까운 총리직을 통해 각 지방에 자신의 인맥을 상당히 확보해왔다.정부를 통괄하는 국무원 판공실주임 라간 등도 그의 수하다.최근 그는 지난 95년 북경시의 진희동·왕보삼사건 등으로 곤경에 몰리는 등 강택민의 상해파에게 밀리는 듯 위축된 모습이다.그러나 그의 경력과 배경은 앞으로 전개될 권력투쟁에서 강점으로 꼽힌다. 그는 중국 공산혁명 제1세대의 적자로 비유되는 소위 로열패밀리의 성원이다.아버니 이석훈은 장개석 국민당군에게 처형된 「혁명열사」고 어머니 조군도도 열렬한 핵심당원이었다.그의 외가는 혁명1세대의 핵심성원이다.고아가 된 그는 혁명1세대들에게 「우리들의 아이」로 키워졌고 특히 주은래와 등영초의 양자로 성장했다.진운은 사망했지만 당원로 팽진·등력군 등은 그의 배경이 되고 있다.또 중국 정·관·군의 주류로 건재한 로열패밀리출신의 「태자당」들의 구심점이란게 무엇보다 그의 강점이다.이같은 배경은 그의 생각과 행동을 보수적인 성향을 갖게 한다. 이붕은 그러나 지난 89년 천안문사건때의 강경진압 주도자라는 부담을 지게하고 있다.진압의 총지휘자인 등소평이 사라진 마당에 천안문의 부담은 더할 것만은 분명하다.이붕은 연임제한규정에 묶여 오는 98년초 총리직에서 내려와야 한다.아직 그에게 마땅한 자리는 없는 듯하다.강택민·오방국·황국 등을 주축으로한 상해파가 계속 북진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의 입지가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시장개방정책과 국유기업개혁 등 경제체제개혁이 심화돼 부작용이 높아질수록 그의 발언권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중국의 방대한 관료체계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상층부 인사들과의 인적관계,총리 등 당·정 지도자로서의 엘리트코스 등은 그가 1인자는 될 수 없어도 영원한 2인자,견제세력으로의 위치를 지키게 할 것으로 보인다. ◎교석/온건·합리… 서열3위 중도파/개혁·보수파 조정역… 전면 나서진 않을듯 올해 74세의 교석은 당 공식서열 3위로 국회의장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맡고 있다.절강성 출신으로 대학시절(상해 동제대) 상해학생운동의 총지도자였다.당조직부와 정법부문에서 오래 근무해왔다.공안부 및 검찰·감찰업무를 총괄하는 정법위원회 서기 임건신,부정부패처벌 등을 총괄하는 기술검사위원회 서기 위건항 등이 모두 그의 직계로 꼽힌다. 천안문사건 당시 강경진압에 기권의사를 표시하는 등 온건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전인대 상무위원장직을 맡은 이후 전기운부위원장의 지지 아래 전인대의 정부에 대한 감독·비판역할을 강화하고 있다.또 법률정비 및 법치제도 완비추세 속에 각종 법률제정 등을 주도하며 보이지 않게 중국사회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강택민 서기의 선배격이며 당조직 부부장 때는 현재 중국지도부의 거의 대부분을 발탁,관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발이 넓다.빠른 판단력에 기분과 의사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 성격은 그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결정적인 순간 그의 동의는 더욱 무게를 갖는다.그러나 개인적으로 최고지도자의 자리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위사람의 이야기다.사실상 실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란 것이다.한때 「강락석출(강택민은 떨어지고 교석이 등장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일반의 인정을 받고 있다.「불편불기,심장불로」로 요약되는 그의 조심성과 균형 있는 처신은 전환기를 맞아 정치적 힘을 배가시킬 것으로 보인다.중앙대의연락부 부장,중앙당교 교장 등 당·정 핵심요직을 두루 거쳐 넓은 인맥도 강점이다.또 최근 해외나들이 등 국회외교를 보여 주목받기도 했다.실질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경제개혁·개방에 이어 정치적 개혁의 바람을 주도할지 그의 역할이 주목되고 있다. ◎조자양/개방의 전도사… 대중적 인기/천안문사태로 실각… 세력잃어 재기 의문 소년 홍군병사 출신으로 총서기에 올랐다가 「급진」자유주의적 견해 때문에 권좌에서 추락한 올 79세의 조자양은 개인적인 권력기반보다는 중국 자유주의사조의 부침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의 입지변화의 귀추가 주목된다.89년 천안문사건 당시 천안문광장에서 학생과 얼굴을 맞대며 설득을 시도하던 그의 실각도 8년여가 되지만 개혁·개방정책의 주도자로서의 그의 명성과 성취는 기존지도자들을 위축되게 한다.경제성장,개혁·개방의 전도사란 말은 늘 그의 성공을 수식하며 따라다니는 말이다. 그만큼 그는 지금도 요주의인물의 하나로 감시받고 있다는 것이 북경외교가의 이야기다.이미 정치의 꿈은 버렸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그의 복귀가 현정권 자체에 위협시되고 있는 것이다.그는 성장시절 빈곤에 찌든 사천성에 빈곤추방을 시작해 대성공을 거두었다.「곡식 먹고 싶거든 조자양에게로 가라」는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로 그의 경제개혁은 성공을 거두었다.그는 중앙무대에서도 혁명세대와 혁명후 전문기술관료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며 입지를 다져왔었다.그는 1932년 13살의 나이에 중국혁명에 참가한 소년병 출신이다.양상곤의 다음세대인 2.5세대로 평가된다.80년대 개혁·보수의 힘겨루기 속에 급진적 정치·경제개혁을 추진하다가 천안문사태로 「동란을 지지하고 당을 분열시켰다」며 정치적 매장을 당해야 했다. 그는 지방의 자율성과 중앙권력의 지방이양을 강조,지금까지도 지방세력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특히 80년대 호요방에 의해 형성된 기술관료층이 현집권세력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복귀를 두려워하는 현정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그러나 세력기반이 뿔뿔이 흩어져 재기는 의문시된다. ◎양상곤/군부 영향력… 킹 메이커 노려/「천안문」 강경진압 주역… 나이도 너무 많아 양상곤이야 말로 등소평없는 중국에서 당·정·군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로다.그는 인민해방군의 창설자의 한명이자 중국공산당의 원로며 전임 국가주석겸 권력의 핵인 당 중앙판공실 주임을 20년가까이나 맡았다.실권은 없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즉 중국국내의권력투쟁이나 분쟁이 가열되고 문제해결이 어려워질 경우 그의 발언권과 선택이 상당한 무게를 갖는다는 점에서 그의 향배는 앞으로의 주요 변수로 꼽히고 있다. 올해로 91살이지만 쉬지않는 지방시찰 등으로 정력적인 활동으로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그는 95년 광동성,96년 동북3성을 순회한데 이어 올해초에도 주해와 심천 등을 시찰하고 개혁개방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중국건립 당시 팽덕회가 지휘하던 제3군의 정치위원이었다.양상곤은 지난 93년10월 정치 연소화란 구실로 권좌에서 밀려났다.실은 그와 그의 이복동생 양백빙의 군에 대한 장악력등은 강택민정권의 가장 큰 위협세력이 된다고 판단한 등소평의 기습으로 군의 실세였던 양백빙과 함께 실권에서 밀려나게 된 것이다. 그 역시 이붕처럼 89년 천안문사건때 「손에 피를 묻힌」강경진압자중 대표인물이다.부담을 벗어버리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천안문사건의 강경진압주장과는 달리 그는 비교적 유연한 사고와 실용주의적 노선이 지지자로 평가된다.나이 때문에 권력의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없지만 유사시 「킹메이커」는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문화혁명때 주자파로 몰려 66년부터 13년동안 소련간첩 혐의를 뒤집어쓴채 감옥생활을 한 쓰라린 과거도 있다.등소평과는 고향도 갖고 깊은 친분을 갖고 있다.〈북경=이석우 특파원〉
  • 150㎝ 단구로 버틴 「개혁세월」 73년/등소평이 걸어온 길

    ◎20세 파리유학때 중 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혁명 1세대”/33년 첫 좌절후 3전4기… 78년 개방기치로 전권장악/사회주의 몰락 국제풍파속 말년엔 체제독려 지방순회 신장 150㎝정도의 땅딸막한 등소평은 외무부터가 오뚝이 같았다.부도옹이라는 그이 별명은 세력다툼의 와중에서 쓰러졌다가도 매번 다시 오뚝 일어섰울 뿐 아니라 마침내는 모택동 사후의 중국을 한손에 틀어쥔 탁월한 정치력에 대한 경탄을 담고 있다. 실용주의노선으로 12억 중국인민을 배고픔에서 해방시키고 최고 지도자이면서도 최고직책을 가져보지 않은채 중국을 15년 넘게 통치해온 등소평.하지만 그 역시 같은 세대의 거의모든 중국지도층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서사시적 삶을 살아왔다. ○맏아들로 본명 등희현 1904년8월22일 사천성 광안현에서 비교적 부유한 불교도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본명은 등희현.광안중학시절 그의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고 성격은 온순 참착했다.겉으로는 매우 산박했으나 「마음은 겨자처럼 맵다」는 평을 들을 만큼 결단력에 냉혹성까지 갖추며 자라났다.16세 되던 20년 10월 은등 고학생으로 프랑스에 유학간후 24년에는 주은래·이입삼·조세염 등과 파리에서 주국공산단 유럽지부를 창설함으로써 일찍부터 혁명에 가담했다.이 시절 르노자동차회사의 조립공으로부터 기차화부,식당보이 등 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스런 시절을 보냈다.뒷날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이때 길러졌다고 한다.그는 당면에 따라 26년초 파리를 떠나 모스크바로 향했다.여기서 중국인만을 대상으로 공산주의학습을 시키던 중산대학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공산주의이론을 학습하고 군사훈련까지 받은뒤 그해 연말 귀국했다. 귀국후 그는 곧바로 서안의 중산군사학교에 배치돼 이 곳에서 정치처장을 맡으면서부터 본격적인 중국혁명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이듬해인 27년 국공합작이 실패로 돌아간뒤 그는 중국공상당본부에서 일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이름을 등소평으로 개명했다.그해 겨울 중공중앙이 상해로 옮겨가자 함게 따라가 당비서장과 비슷한 역할을 맡으면서 최초의 부인 장서원과 결혼한다.하지만이장씨부인은 멀지않아 난산으로 사망하게 된다.등은 28년 당대회에서 당중앙부비서장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부턴 광서지역에 들어가 본격적인 게릴라활동을 벌였다. 31년에 들어서자 주덕이 이끄는 홍군제1군단에서 정치부주임을 맡게 되고 동시에 홍군총정치부부주임을 맡아 활동하던중 두번째 부인 김유영과 결혼한다. 그의 인생에서 최초의 큰 좌절은 33년에 찾아온다.강서성 위원회 서기로 취임하지만 그가 모택동파라는 이유만으로 곧 해임되고 「엄중경고」처분을 받는다.당시까지만해도 모가 전권을 잡지 못하던 시절이다.이것이 그이 첫번째 실각으로 기록되고 있다.설상가상으로 그의 처 김유영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그녀는 당시 중공중앙조직부장이던 이유한과 재혼해서 현재의 경제체제개혁위주임인 이철영을 낳았다. 34년10월 중국공산당은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의 끈질긴 소탕전에 견디다 못해 대장정에 나섰다.물론 등은 참여했다.이 장정도중 모는 준의회의에서 중공당 최고지도자로 부상하게 되고 당시 홍군기관지 「홍성보」 편집장 자격으로이 회의에 참석했던 은등 당중앙비서장(당사무총장격)이라는 중책을 맡게 돼 모파의 유력한 간부지위에 올랐다. 약 1년간의 대장정이후 계속된 붉은 공산혁명과 항일운동을 거치면서 등은 계속 모의 신임을 쌓아 가다가 38년8월에는 팔로군의 제129사단 정치위원으로 임명돼 사단장인 류백승과 함께 유등대군(제2야전군)의 기반을 닦아간다.그후 45년에는 군부내에서 주덕·팽덕회 다음으로 3번째의 지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군부내 기반과 인맥을 형성해나갔다. 그는 이에 앞서 39년9월 세번째이자 마지막 부인인 탁림과 결혼,지금까지 2남3녀를 둔채 반백년도 넘게 해로해왔다. 50년대말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극심한 가뭄등으로 수백만명이 굻어죽는 사태가 발생하자 그는 그 유명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론」(흑묘백묘론)을 내놓았다.『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사상이야 어떻든)쥐만 잘 잡으면(생산만 많이 하면)좋은 고양이(인민)다』는 의미의 이 주장으로 그는 자본주의 추종자라는 이른바 주자파로 주목받게 된다. 60년대 중반부터문화대혁명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그의 주변에도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홍위병들로부터 주자파라는 비판을 받아온 그는 류소기 국가주석과 함께 67년8월 모든 공직에서 해임,강서성 신건현에 유배돼 강제노동에 동원되어야 했다.2차 실각이었다. 그로부터 7년뒤인 73년3월 그는 국무원 부총리로 임명됨으로써 화려하게 복권,오뚝이의 면모를 과시했다.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남쪽 언덕이든 북쪽 언덕이든 꼭대기에만 오르면 된다』는 의미의 「남파북파논」을 내놓아 골수 공산주의자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결국 76년4월 주은래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난동사건(일명 4·5사건)때 사인방(모택동을 등에 업은 강청 장춘교 왕홍문 요문원등 강경파)으로부터 「난동의 배후조종자」로 몰려 또다시 실각했다.3차 실각이었다.주추모집회에서 은등 추도사를 읽었었다. 이윽고 모사망과 사인방 실각 이듬해인 77년 그는 다시 부활,실각 당시의 모든 직책을 회복했다.이때 그의 재기용여부를 놓고 중앙공작회의는 격렬한 찬반논쟁을 벌였다.그런데등이 스스로의 과오를 시인,이미 당주석과 중앙군사위주석이었던 화국봉의 지위를 인정하는 편지를 씀으로써 부활하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때 화는 의등 부활에 반대했었다. ○강경책 내며 위기극복 이렇게 되살아난 등은 78년12월 당11기3차중앙위전체회의에서 향후 20년간에 걸친 「4개(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현대화계획」선포를 주도함으로써 당의 최고 실권자임을 과시했다.이때부터 중국이 야심찬 개혁개방시대로 들어선 것이다.이는 곧 실사구시를 중심으로한 실용주의 「등시대」가 시작된 시점이기도 했다. 그는 이때부터 자신이 최고실권자였음에도 당주석이나 국가주석과 같은 최고 자리에 오르지 않는채 호요방(당)과 조자양(정부)을 앞세워 화에 대한 문책과 강등에 착수,마침내 82년9월 화를 당중앙 위원이외의 일체의 요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권력투쟁에서의 기나긴 「장정」을 매듭지었다. 89년4월 전총서기 호요방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 민주화시위는 그에게 닥친 마지막 시험이었다.그러나 그는 이 시험문제를 시위대군중에 대한무자비한 발포와 함께 시위대의 추앙을 받던 총서기 조자양을 「폭란의 배후책임자」로 몰아 제거하는 방법으로 풀었다.13년전의 천안문폭동때 자신이 당했던 방법을 이번에는 자신의 심복이었던 조에게 그대로 되풀이한 셈이다.어쨌든 이로써 사회주의체제를 전복시켰을지도 모를 자유화물결을 일단 잠재울 수 있었다. 등은 그동안 자신의 후계자로 호요방과 조자양을 잇따라 내세워 봤지만 「홀로세우기」에 실패했다.그 뒤 가장 적절한 후계자라고 꼽은 인물이 강택민.강은 천안문사태 이후 상해시에서 혼란을 신속히 수습했고 그동안 의등 개혁개방노선을 가장 능숙하게 실천해온 것으로 평가되었다. ○강택민 지목한 뒤 은퇴 강을 후계자로 내세운 그는 89년 11월9일 당중앙위의 허락을 받아 당중앙군사위주석직에서 퇴임함에 따라 공직에서 은퇴,평민으로 돌아왔다.그러나 그가 은퇴한 뒤에도 배후에서 한동안 강체제를 지원하고 후견인역할을 해와서 최근까지도 「최고지도자」또는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라는 칭호를 들어왔다. 특히 그는 동구공산체제가붕괴된데 이어 소련마저 무너져 중국이 망당망국의 위기의식에 휩싸이자 심천 주해 등 남부 개혁개방지역을 돌며 이른바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개방을 보다 적극화할 것으로 주창함으로써 사회주이체제붕괴의 도미노현상이 중국대륙에 밀어닥치지 못하게 했을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모방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당노선으로 채택케함으로써 중국이 21세기 아시아 태평양시대를 이끌어갈수 있도록 새로운 용기와 힘을 불어넣기까지 했다. 중국경제가 이같은 시장경제체제 도입에 힘입어 연10%가 넘는 경이적인 고도성장을 지속하며 전진을 계속하자 그는 『기회를 잃지 말고 성장을 계속하라』는 말을 남기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등소평 연보 ▲1904.8.22=사천성 광안현에서 3남매중 맏아들로 출생 ▲1918=중경에서 프랑스유학을 위한 예비학교 입교 ▲1920=프랑스 유학 떠남 ▲1924=파리에서 주은래와 중국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1926=모스크바의 중산대학으로 옮겨 수학한뒤 연말에 귀국 ▲1927=광서성에서 공산당 게릴라 조직.첫부인 장서원과 결혼 ▲1931=홍군제1군단 정치부주임.두번째부인 김유영과 결혼 ▲1933=강서성위서기로 취임직후 모택동파라는 이유로 해임.1차실각 ▲1934∼35=대장정 참가,준의회의에서 당중앙 비서장으로 선임 ▲1938=국공합작으로 홍군이 팔노군으로 개편될때 129사정치위원이 됨 ▲1939=세번째부인 탁림과 결혼 ▲1945=제7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으로 선출 ▲1952.8=국무원 부총리에 임명 ▲1954=당중앙위원회 비서장,국무원 부총리,국방위원회 부주석에 선출 ▲1956=정치국상무위원겸 당총서기 선임 ▲1966=문화대혁염 시기 홍위병으로 부르주아 반동파로 비판받음 ▲1967.7=모든 당·정 직무에서 해임.2차 실각.남창으로 하양 막노동 ▲1973.3=주은래 천거로 국무원 부총리에 복직 ▲1974=당정치국원 승진.유엔총회 특별회의에 중국대표 단장으로 참석 ▲1975.1=당중앙 부주석,정치국 상무위원,국무원 제1부총리,중공군 총참모장 등에 선임 ▲1976.4=천안문사건이 발생하자 4인방에 의해 배후조종자로 지목,모택동의 제의로 모든 직무에서 물러남.3차실각 ▲1977.7=중공당 10기3중전회에서 당중앙정치국상무위원,당중앙부주석,군총참모자 등으로 복직 ▲1978.12=당11기3중전회에서 당최고영도자 지위 획득,향후 20년간 4개 현대화 추진계획 선포 ▲1979=핑퐁외교로 미국과 국교수립후 공식 방미,개혁·개방정책을 당지도노선으로 정식 출범시킴 ▲1980=경제특구제 시행 결정,호요방·조자양체제 출범토록 지원 ▲1981.6=당중앙군사위우너회 주석으로 권권장악 ▲1987.10=당정치국원,정치국상무위원직 사임 ▲1989.6=천안문사태 유혈진압 지시 ▲1989.11=당중앙군사위 주석자리를 내놓고 정치일선에서 은퇴 ▲1992.1=남부개방지역 순시중 담화(남순강화)로 개혁·개방 가속화와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도입 역설 ▲1992.10=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당원로들을 은퇴시키고 강택민체제 구축토록 지원 ▲1993.8=막내딸 용등,「나의 아버지 등소평」전기 출간 ▲1993.11=「등소평문선 제3집」 발간 ▲1993.12=북경시 순시중 「기회를 잃지말고 계속 성장추진」역설 ▲1997=92세를 일기로 영면
  • 황장엽 망명­56년 저서 「사회발전사」

    ◎초기이론 김일성 우상화 내용 없어/정치·경제 등 민주적 절차를 강조/남녀평등론 등 개혁 필요성 역설 북한의 사상적 지주이자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뒷받침,북한의 정치사상을 집대성한 학자로 널리 알려진 황장엽비서의 초기 이론전개에는 김일성 우상화나 신격화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민주적 절차를 강조했던 것으로 13일 미의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황의 저서 「사회발전사」에서 밝혀졌다. 황은 1956년 김일성대학 철학강좌장으로 있으면서 학생들은 물론 일반 지식층의 정치학습용 교재로 펴낸 이 책에서 북한건설의 견인차가 될 4요소를 「인민정권」「인민군대」「조선노동당」「김일성 원수」 순으로 지적했으며 정치 경제 문화 등 각분야에서의 생활이 민주주의적 기초 위에서 개조되는 것과 이를 위한 남녀평등권 노동법령 등 일련의 민주주의 개혁이 필요함을 역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정치의 「고전」으로 알려진 이 책은 170페이지 분량으로 도쿄 천대전구 부사견에 위치한 조선노동당의 도쿄 소재 출판사인 학우서당에서 출판된 것으로김정일을 비롯,노동당 역사연구소장 강석승 등 50,60년대 황의 강의를 들었던 현 북한지도층들이 재학당시 교재로 배운 책으로 알려져 있으며,특히 40년동안 저자의 사상적 고뇌가 정치적 망명이라는 「백기투항」으로 결말지어진데 대한 북한정치사상의 과오를 비교해볼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류사회는 어떻게 발생하였으며 발전하여 왔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제1장 「인류사회의 발생과 인류의 첫사회­원시공동체사회」,제2장 「계급사회」,제3장 「사회주의 사회 및 공산주의 사회」의 3개 장으로 나뉘어 국가사회 발전과정을 설명했으며 북한의 건설은 마지막 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황이 최근 망명과정에서 편지와 석명서 등을 통해 밝힌 사상적 동요 내용들과 이 책에 나타난 그의 초기 견해들을 비교해 본다. 〔북한과 같은 1인 독재,세습체제가 없다〕:부르좌들과 그의 앞잡이들은 인류역사는 어떤 위대한 인물(왕이나 영웅)이 변화 발전시킨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이것은 통치계급의 지배를 강화하며 근로 대중의 힘을 무시하고 그를 억제해 보려는 수작이다. 〔북한은 사회주의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사회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정반대로 전체 근로 인민들이 행복스럽게 살수 있는 사회라는 것이 명백하다. 〔북한은 노동자와 농민이 굶주리고 있다〕:우리의 투쟁은 정치,경제,문화 각방면에서 거대한 성과를 거두었고 공화국 북반부에서 인민들의 물질문화 생활수준은 나날이 향상되어 갔다. 〔북한은 봉건주의나 마찬가지다〕:자본가들이 영도한 부르좌혁명은 철저하게 봉건적 잔재를 숙청할수 없었으며 노동자와 농민들을 가혹하게 착취하고 그들의 혁명적 투쟁을 탄압하기 위해 봉건세력들과 협력하게 됐다. 〔북한은 무자비한 탄압과 허위와 기만으로 충만된 암흑의 땅이다〕:공산주의 사회에 가면 문화가 최고도로 발전하여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본질적 차이가 없게 된다.특히 기계가 고도로 발전되어 적은 시간 일을 하고도 더많은 생산물을 얻을수 있으며 따라서 여유시간을 즐길수 있게 된다. 한편 황은 이 책에서 소련에 대해 『사회주의 사회를 이미 완전히 건설한 소련 인민은 현재 벌써 공산주의를 건설하는 길에 들어서고 있다』면서 최고의 이상향으로 소개해왔기 때문에 그같은 소련의 붕괴는 그의 이론을 뿌리채 흔드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임이 분명하다. 또한 북한이 인민민주주의를 건설할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튼튼한 민주기지가 있고 김일성 원수의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적 전통을 계승한 인민군대와 조선인민을 승리에로 조직 동원하는 조선노동당과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원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에는 『제국주의자들이 제아무리 낡은 자본주의제도를 옹호,유지하려고 최후의 발악을 다하여도 그 멸망은 피할수 없으며 사회주의 진영은 반드시 승리하고 착취없고 행복스러운 근로자들의 사회인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가 전 지구상에 건설될 것은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 경제지표 빨간불 일색/파업·한보 여파/30대그룹 설비투자 첫감소

    ◎1분기 성장률 4%대 급락­실업률 2.5% 예상 어려운 우리경제가 노동법 개정에 따른 파업 및 한보사태의 충격으로 헤어나기 어려운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한보사태 이후 가중되는 불안심리로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극도로 위축되고 있고,금융기관들의 대출기피로 부도율이 치솟는 등 거시경제 전반에 비상등이 켜지고 있다. 11일 재정경제원과 통상산업부 등에 따르면 최근 30대 재벌그룹 소속 2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국내기업의 설비투자액은 38조8천37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2.1%가 감소할 것으로 집계됐다.〈해설 2면〉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하는 설비투자 증가율이 5년만에 감소세로 반전될 경우 경제성장이 급격히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설비투자증가율은 93년 0.2%,94년 47%,95년 40.4%,96년 21% 등이었다. 금융연구원과 삼성경제연구소 등 국내 연구기관들은 파업 및 한보사태와 엔저현상이 지속될 경우 올 1·4분기 성장률이 4.6%로 급락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기업들은 고임금과 공장입지난 등을 피하기 위해 해외투자를 가속화하고 있어 산업의 공동화가 가속화될 전망이다.국내기업들이 올해에 계획하고 있는 해외투자액은 지난해 대비 106.3%가 증가한 2조3천99억원으로 전체 투자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6%로 지난해의 갑절에 이를 전망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경기침체 및 부도사태로 인한 실업자 양산이다. 재경원 관계자는 『남편 대신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산업전선으로 뛰어드는 여성이 늘어나는 등 경제활동인구는 급증하고 있으나 일자리를 쉽게 찾지 못해 실업률을 끌어올리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통계청에 따르면 남자의 실업률은 지난해 11월 2.3%에서 12월에는 2.4%로 0.1%포인트 높아진 반면 여자는 1.7%에서 2.0%로 0.3%포인트나 뛰었다.경기침체가 실업률 증가로 이어지는 시점이 9∼10개월 이후인 점을 감안하면 향후 실업률은 2.5% 이상으로 높아질 공산이 크다. 어음부도율도 서울의 경우 지난해 말 0.19%였으나 올들어 지난 달 23일에는 0.40%,27일에는 0.46%,31일에는 0.49% 등으로 치솟았다.
  • 실업률 2년4개월만에 최고/통계청 산업활동 동향

    ◎작년 12월 2.3%… 1년새 10만명 늘어/도산매 판매증가율 급락·설비투자 위축 경기불황 여파로 인한 기업의 감량경영 등으로 산업전선에 뛰어드는 여성은 급증하고 있는 반면 일자리를 제대로 찾지 못함으로써 여성실업률이 눈에 띄게 높아지는 등 실업률이 치솟고 있다.또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설비투자 및 민간소비가 위축되고 있어 「저성장­실업자 양산」 사태를 촉발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96년 12월중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이 기간중 계절조정 실업률은 2.3%로 전년 동기 대비 0.4%포인트가 증가,94년 8월 이후 2년4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총실업자 수는 47만9천명으로 1년 사이 10만명이 늘어났으며 12월 한달동안에 3만6천명의 실업자가 새로 생겨났다.특히 95년 12월 2.4%였던 고졸실업률은 3.2%로,여성실업률은 1.5%에서 2.0%로 각각 높아졌다. 연령별 실업률은 15∼19세가 9.6%로 가장 높았으며 20∼24세(7.1%)가 뒤를 이었다. 도산매 판매는 승용차 판매감소 등으로 4.6%가 증가하는데 그쳐 93년 1월 이후최저수준을 보였으며 국내기계수주 증가율도 0.6%에 머물렀다.제조업 부문에서의 기계수주는 마이너스 5.2%의 증가율을 보였다. 산업생산은 석유정제설비 증설·혹한기의 난방연료 등 일시적 특수요인으로 인해 8.9%가 증가,괜찮은 모습이었으나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8.5%로 노사분규가 있었던 지난해 6월에 이어 70%대로 떨어졌다. 통계청 관계자는 『체감경기보다 지수가 높게 나타나는 거품은 점차 없어질 것』이라며 『올 1월에는 파업사태 여파 등으로 실업률이 다소 뛸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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