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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 한국의 20년, 스페인의 30년/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 교수

    [특별기고] 한국의 20년, 스페인의 30년/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 교수

    서울신문이 지난 4월부터 12회에 걸쳐 연재한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기획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즈음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가 특별기고를 보내왔다.1987년 6월 항쟁을 독일에서 지켜봐야 했던 송 교수는 “일반적으로 지난 일을 수직적으로 고찰하는 글들이 많아 수평적인 비교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싶었다.”며 스페인 민주화 30년을 통해 한국 민주화 20년을 성찰했다. 특히 그는 “6월 항쟁 20주년은 서울 땅을 37년 만에 밟았던 2003년 당시 절박하게 느꼈던 ‘더 많은 민주주의’의 과제를 상기시킨다.”고 역설했다. ●다방(茶房)의 광고문과 오웰의 기록 20년전 6월 민주항쟁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사진이 한 장 있다. 어느 다방에서 “오늘 기쁜 날, 차 값은 무료입니다.”라고 내건 광고를 담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보면서 나는 ‘동물농장’,‘1984년’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을 떠올렸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시민전쟁(1936∼1939)에 ‘공화파’를 지원하기 위하여 참전, 목에 관통상까지 입었다. 프랑코가 이끄는 파시스트들에 의하여 압살되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총을 들었던 ‘인민전선’의 초창기 승리를 추억하며 그가 남긴 글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드디어 자유와 평등의 시대에 와 있다. 인간적 존재는 인간적 존재로서, 그래서 더 이상 자본주의의 부속품으로 남아 있지 않으려 했다.” 스페인도 독재의 어두운 길을 벗어나고 내전의 상흔을 치유할 수 있는 전기(轉機)를 마련한 1977년 6월을 지금 기념하고 있다. 올해로 스페인의 민주화가 30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는 서유럽에서 스페인뿐만 아니라 그리스, 포르투갈에서도 한국처럼 불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민주주의는 많은 시련을 겪었다. 이 사실은 한편으로는 자기위안도 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확립이 얼마나 힘든 과제라는 것도 상기시킨다. 이러한 나라들과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성숙 과정과 조건들은 달랐지만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의미는 분명하다. ●정책에 기초한 중도통합의 정치 한국 사회의 지난 20년 민주화과정 자체를 아예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세력이 엄존하고 있다. 현실과 시대가 요구하는 감각을 잃고 ‘유신’의 향수에 완전히 젖어 지난 20년의 시간을 단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해온 역사로 폄하하는 세력도 있다. 이 세력은 특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시간을 순전히 ‘잃어버린 10년’으로만 평가하려 든다. 2005년 봄 의회의 결정으로 마드리드시내에 있는 7m 높이의 프랑코동상 철거와 함께 프랑코 시절의 흔적들이 공공장소나 공공건물로부터 지워졌으며 정치 무대에서도 프랑코 지지세력(팔랑헤)도 이미 사라진 사실과 비교해 보면 한국사회의 민주화의 현주소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무엇보다도 민주화의 과정이 가져오는 혼란과 충격을 완화하며 중심을 잡는 중정무편(重正無偏)의 개인이나 정치 집단의 역할에 달려있다.1977년 12월에 사망한 프랑코를 추종했던 일부 민병대 대원들이 일으킨 1981년 2월 쿠데타 시도를 단호하게 좌절시켰던 후안 카를로스 국왕의 역할은 컸다. 또 비록 의회의 과반수에 항상 미달하지만 국민당(PP) 중심의 중도우파와 사회노동당(PSOE) 중심의 중도좌파는 정권 교체를 이루면서 정치사회의 균형을 이루어 왔다. 스페인도 지역주의 또는 지방주의가 강하다.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비록 남북한의 분단 정도는 아니지만 그 정도는 심하다. 특히 바르셀로나를 수도로 하는 카탈루냐 지역이나 바스크 지역은 중앙 정부와 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바스크 지역의 일부 분리주의자들은 테러를 수단으로까지 삼고 있다.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도 위에 말한 정권 교체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좌우세력이 중도를 합리적으로 견인해내는 데 있다.200명 이상의 무고한 시민이 사망한 2005년 3월의 마드리드 테러사건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반(反)테러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곧장 걷잡을 수 없는 정치사회의 불안정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한국사회에는 테러문제가 아니라 햇볕정책이나 포용정책을 둘러싼 이른바 남남갈등이라는 문제가 있다. 냉전시대의 색깔론에 갇혀 있는 사회적 갈등이 어떻게 합리적 정책에 기초한 중도통합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지는 한국사회가 직면한 숙제다. 또 과거와는 달리 북의 핵실험에 대해 남쪽 국민이 차분하게 대응했던 것을 예로 들면서 남쪽 사회도 이제는 분단 문제에서 파생된 갈등으로부터 자유스러워졌다는 낙관론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도 현재의 남남갈등의 심각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결국 중도통합의 과제를 지나치게 만들 수 있다. ●신자유주의와 민주화 자유무역협정과 사회 양극화로 집약해서 표현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의 결과물이 지금까지 구축해온 민주화의 구조를 허물 수 있다는 우려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를 오히려 하나의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계몽적인 주장이 많다. “민주화보다 경제가 중요하다” “분배보다 성장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여기에 속한다.“민주화가 밥을 먹여주는가.”라면서 개발독재의 향수에 젖어있으면서도 세계화 시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민주화가 바로 경제발전을 추동(推動)하였던 스페인의 경우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인구는 남한보다 조금 적지만 지금 국내총생산은 더 큰 스페인은 민주화 과정 속에서 유럽연합의 평균 성장률보다 높은 착실한 경제성장을 해왔다. 현재 진행 중인 유럽통합과 세계시장이라는 이중적 세계화의 과제 앞에 선 스페인은 기술개발, 높은 실업률과 이주민 문제를 안고 있다. 영미나 북구와는 달리 사회 성원의 안전을 지향하는 보수주의적인 복지체계를 구축해온 스페인도 세계화의 도전을 받고 있다. 또 농업과 관광, 서비스분야 중심의 스페인이 세계화에 대처하는 전략은 자동차·선박·전자산업 위주의 남한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경제규모를 지닌 두 나라의 경제사회의 미래를 서로 비추어 볼 수 있다. ●자만과 자조를 넘어 프랑코독재의 잔영(殘影)이 드리웠던 1981년 봄, 국방색 전투복에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민병대가 순시를 했던 바르셀로나시의 중심가 람브라스를 필자는 2001년 봄 꼭 만 20년 만에 다시 찾았다.1992년 올림픽을 치렀던 바르셀로나의 분위기는 너무나 부러웠다. 자유스러운 사회의 숨결이 도시의 곳곳에 스며들어 만들어 낸 발랄한 분위기와 화려한 색조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필자는 2003년 가을 37년 만에 서울 땅을 밟았다. 당시 쓰라렸던 경험 속에서 필자가 절박하게 느꼈던 ‘더 많은 민주주의’의 과제를 6월 민주항쟁 20돌이 상기시킨다. “이미 민주화됐다.”라는 자만이나 “엽전이 별수 있나.”라는 자조를 넘어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는 하나의 거울로서 스페인의 지난 30년을 떠올리게 된다.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 교수
  • 아프리카에 ‘중국 바람’ 거세다

    아프리카에 ‘중국 바람’ 거세다

    아프리카 빈국 중 하나인 수단 시민들에게 요즘 최고로 인기있는 제품은 10단짜리 기어가 달린 자전거이다. 아이들에겐 사과맛 사탕이, 가정에서는 녹차맛이 나는 치약도 인기 품목이다. 수단 등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날개돋친 듯 팔리는 상품은 모두 ‘메이드 인 차이나’이다. 반군이었다가 자전거 수리공으로 변신한 야콥 마리알은 “중국인들이 이곳에 공장을 세웠고 밤낮으로 가동한다. 그건 우리에게도 쇼핑할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다.” 중국과 아프리카 대륙간 지난해 무역액이 전년보다 40%가 폭증한 550억달러로 집계됐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중국은 프랑스(470억달러)를 제치고 아프리카의 두번째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했다. 단일 국가로 볼때 1위는 910억달러의 미국이다. 현 추세라면 5년 이내에 중국이 최대 교역국이 되는 건 대세다. 미 일간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25일 내전과 기아, 난민으로 얼룩진 ‘빈곤의 대륙’ 아프리카에 새롭게 도래하는 ‘대량소비 시대’의 진원지는 ‘중국 바람(中風)’이라고 소개했다.CSM은 중국의 값싼 소비재가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축복’으로 칭송받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아프리카 무역액 규모는 질주하고 있다.1980년대 말 1200만달러였던 무역액은 지난해 550억달러로 치솟았다. 중국의 직접투자 규모는 1991년 연간 500만달러에서 지난해 연간 12억 5000만달러로 늘었다. 중국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경제 발전의 최대 견인차이다. 그야말로 중국 덕분에 살림살이가 펴고 있다. 반면 중국은 잠비아에서 구리, 콩고로부터 코발트, 라이베리아에서는 원목, 가나로부터 망간을 수입한다. 남아공은 중국의 최대 철광석 수출국이다. 중국 선풍은 중국어와 중국 문화로 확산되고 있다. 우간다, 나미비아 등 아프리카 대학마다 중국어과를 개설했다. 남아공, 케냐, 르완다에는 중국어 및 문화를 가르치는 ‘공자 센터’가 설립됐으며 내년에만 10개 이상이 추가로 생긴다. 수단의 하르툼에서 남아공 케이프타운까지 학교마다 중국어 인사인 ‘니 하오(안녕)’가 울려퍼지고 있다. 아프리카 25개국에선 중국 수입품에 ‘완전 무관세’ 특혜를 부여하고 있다. 중국의 아프리카 잠식에 대해 경계론도 나오고 있다. 가나와 레소토에서는 중국 회사들이 아프리카 전통문양이 새겨진 옷까지 대량 수출하면서 현지 업체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잠비아 야당도 중국이 저가품 덤핑 공세로 자국 무역을 교란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新 라이벌전] (2) 첨단 IT 이끄는 휴대전화의 ‘맞수’

    ‘휴대전화 한 대 사려고 하는데요, 미니스커트폰과 샤인폰 중에 어느 것이 나은가요.’(네이버 아이디 mjkim9001)‘저라면 생각할 필요없이 샤인폰을 사겠습니다.’(parkny69),‘무조건 미니스커트폰이 더 좋습니다.’(happymsg)미니스커트폰과 샤인폰 중 어느 것이 더 좋으냐는 질문은 인터넷에 수도 없이 올라온다. 한 사람이 샤인폰이 좋다고 하면 그 뒤엔 미니스커트폰이 좋다는 답변이 달린다. 소비자들의 선택이 라이벌 상품을 만든다. 이런 점에서 삼성전자의 ‘미니스커트폰’과 LG전자의 ‘샤인폰’은 휴대전화 단말기의 양대산맥이다. ●성능과 가격대 비슷 미니스커트폰과 샤인폰은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슬라이드 방식이다. 화면크기(2.2인치)나 카메라 화소(200만 화소)도 똑같다. 가격대도 거의 비슷하다. 출고가를 기준으로 미니스커트폰은 55만 5000원, 샤인폰은 58만 3000원이다. 업체 관계자는 “디자인이나 기능은 물론 가격도 거의 비슷해 두 모델간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샤인폰은 지상파 디지털미디어방송(DMB)을 지원한다. 소재도 종전의 플라스틱이 아닌 스테인리스다. 촉감과 스타일을 차별화했다는 평이다.LG전자는 올해 말 지상파DBM의 전국 상용화가 이뤄지면 판매량이 급신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면 미니스커트폰에는 홈이나 나사막음 자국 등을 최대한 없앴다. 미니멀리즘이라는 특성에 걸맞게 깔끔함이 특징이다. 또 전국 지도가 들어간 GPS 기능이 내장돼 있다. 네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판매경쟁도 치열하다. 미니스커트폰은 해외에서 ‘울트라에디션 10.9’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올 4월 유럽시장에 처음 출시됐다.2개월만에 100만대가 팔렸다. 텐밀리언셀러(1000만대)를 기록한 ‘이건희폰’‘벤츠폰’보다 판매 속도가 훨씬 빠르다. 지난해 10월에 선보인 샤인폰도 현재까지 해외에서 150만대 등 200만대가 나갔다. 두 모델은 삼성전자의 ‘울트라에디션’시리즈와 LG전자의 ‘블랙라벨’시리즈를 대표한다. 두 시리즈 모두 텐밀리언셀러 고지에 올랐다. 휴대전화 제조업체마다 해마다 150여종의 휴대전화를 쏟아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1000만대 이상 팔린 제품은 시장에서 ‘메가히트’제품으로 통한다. 삼성전자에서도 텐밀리언셀러 제품은 ‘이건희폰’,‘벤츠폰’,‘블루블랙폰’등 3개 모델에 불과하다.LG전자는 ‘초콜릿폰’이 유일하다. ●프리미엄 브랜드간 경쟁도 치열 두 회사 모두 제품군을 표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의 울트라에디션 시리즈는 올 4월 1000만대가 팔렸다. 대표 모델이 미니스커트폰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울트라에디션 시리즈는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첨단기능을 사용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제품군”이라고 설명했다. 블랙라벨 시리즈는 현재 LG전자 휴대전화의 얼굴이다. 지난 4월 텐밀러언셀러로 등극했다. 시리즈엔 샤인폰이 중심에 서 있다.LG전자 관계자는 “블랙라벨 특히 초콜릿폰이 LG전자의 위상과 수익성을 올리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면 샤인폰은 초콜릿폰의 후광으로 글로벌 히트 기세를 이어가는 명품”이라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이춘성의 건강칼럼] 디스크 치료법 多岐亡羊

    어떤 사람이 허리 디스크에 걸리면 너무나도 많은 치료방법이 있어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어떤 의료 분야도 디스크처럼 많은 치료 방법이 난무(亂舞)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치료법들이 소개되고 있고, 각 방법을 주장하는 의사들마다 자신의 방법이 가장 좋다고 목소리를 높이니 척추를 전공하는 의사들조차 감(感)을 잡기가 힘들 정도이다. 비슷한 치료법을 서로 다른 이름으로 선전해대 사람들을 더욱 헷갈리게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척추를 잡아당겨주는 견인치료가 ‘무중력 감압치료’나 ‘IDD치료’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소개된다. 또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치료법을 ‘세계가 주목하는 치료법’ 등으로 과장하여 혼란을 부추기는 부류도 없지 않다. 이런 광고들은 멀쩡하게 잘 사용되고 있는 기존의 치료법이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면서, 자신들 치료법의 장점만을 늘어놓고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작금(昨今)의 디스크치료 분야는 너무나 길이 많아 어떤 길이 진정 옳은 길인지를 결정하지 못하는 다기망양(多岐亡羊)의 상태에 있다. 이런 난세(?)에서는 환자들 스스로가 올바른 길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원칙에 충실하면서 정도(正道)를 따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원칙이고, 무엇이 정도인가? 디스크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전체 환자의 80%는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아도 한두 달 안에 증상이 호전된다.’는 자연치유의 원칙이다. 또 정도(正道)란 ‘검증된 치료방법만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는 “말 잘하고(巧言), 얼굴빛을 좋게 하며(令色), 달콤한 말을 하는 재주”를 가장 싫어했다. 디스크치료를 둘러싼 온갖 교언영색과 혹세무민(惑世誣民)의 광고 홍수 속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바른 길을 찾는 것이 자신의 디스크를 지키는 첫걸음이다.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교수 ●알림 이두한 대항병원장에 이어 이번 주부터는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이춘성 교수께서 ‘이춘성의 건강칼럼’을 집필합니다.
  • [주말탐방] 공군 조종사 생환교육대

    [주말탐방] 공군 조종사 생환교육대

    최악의 추락사고에도 마음대로 죽을 수조차 없는 게 공군 전투조종사들이다. 이들에겐 죽는 것 자체가 군과 국민에 대한 불충이다. 비행경력 10년의 교관급 조종사 1명을 길러내는 데만 평균 87억원대의 국민세금이 소요되는 탓이다. 무인지경의 심산유곡이든 일망무제의 망망대해든 비행기가 떨어지면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와야 하는 게 조종사들의 지상 과제다. 이 ‘900만불의 사나이들’에게 ‘불사의 비급’을 전수하는 곳이 공군 생환교육대다. 조종학생 시절 2주간의 초급 생환교육을 수료한 조종사들은 4년 6개월마다 육상과 해상에서 1주일간 보수교육을 받아야 한다. 낙하산 조종과 비상 착륙, 해상 강하와 헬기 유도, 음식물 취득과 은신처 구축, 암벽등반, 독도법 등 교과과정만 봐선 그 힘들다는 특전사 훈련도 ‘저리 가라’다. 지난 12일 찾은 경남 남해군 미조항 앞바다에서는 조종사들의 여름철 해상 생환훈련이 한창이었다.2대의 25t 함정에 나눠 탄 36명의 사내들. 조종사 경력 2년의 20대 신참부터 하계 훈련만 세 번째라는 40대 베테랑까지 다양했지만 발밑의 검푸른 해수면을 응시하는 사내들의 표정에선 한결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입수” 교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조종사들이 차례로 바다로 뛰어든다. 초여름이라지만 남해의 수온은 냉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주황색 구명대에 의지한 채 구조를 기다리길 10여분. 탐색구조전대 소속 HH32 구조헬기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수면 위로 접근한다. 헬기와 수면의 거리는 20m 남짓. 로프를 타고 내려온 잠수복 차림의 구조요원이 조종사의 몸에 구조장비를 두른 뒤 헬기를 향해 수신호를 보낸다. 로프가 감기며 천천히 상승하는 두 사람. 프로펠러가 회전하며 만들어내는 강한 바람과 얼굴을 때리는 물보라 탓에 조종사의 얼굴은 고통으로 한껏 일그러져 있다. 헬기 구조훈련을 마치고 모선으로 옮겨 탄 조종사들은 “춥다.”를 연발했다. 갑판에 오르기 무섭게 담배부터 빼무는 사람도 있다.F-4E를 조종하는 한성우(29) 대위는 “입수한지 10분이 넘어가자 냉기 때문에 치아가 부딪칠 정도였다.”면서 “로프에 끌려 올라가는 순간 ‘살았구나.’하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 조종사들이 바다로 추락했을 때 가장 큰 위험은 추위다. 겨울철엔 입수 뒤 40분이 넘어가면 저체온증이 찾아온다. 지난 2월 사격훈련 도중 서해바다에 추락한 KF-16기 조종사도 구조가 조금만 늦어졌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뻔했다는 게 생환교관들의 전언이다. 다행히 조종사는 추락 직후 인근에서 조업하던 주꾸미 어선에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생환교육대엔 모두 3척의 함정이 배속돼 있다. 공군에서 배를 보유한 부대는 충남 대천의 방공포대와 이곳 남해의 생환교육대 2곳뿐이다. 해상훈련시 모선 역할을 하는 216t짜리 ST-845함은 2대의 철선을 횡으로 붙인 뒤 가로 12m, 세로 24m의 대형 갑판을 위에 얹어놓았다. 갑판 후미 오른쪽엔 작은 함교가 설치돼 있어 먼 거리에서 보면 미니 항공모함을 연상시킨다. 헬기구조 훈련에 이어 해상 착수시 대처능력을 기르기 위한 패러 세일(para sail) 교육이 시작됐다. 시범은 생환교육대의 ‘홍일점’ 오윤미(24) 하사의 몫이다.‘특별함 속의 특별함’을 찾아 생환교관에 지원했다는 당찬 여성.2005년 공군 부사관인 오빠의 권유로 군문(軍門)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종합병원의 응급구조사로 일했다. 낙하산 견인줄을 매단 25t 함정이 모선을 지나쳐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팽팽해진 견인줄에 이끌려 갑판 위를 내달리던 오 하사가 낙하산의 양력에 힘입어 가뿐하게 바닥을 차고 이륙한다.30m 남짓 상승했을까. 견인 줄이 풀리고 상공을 두어 차례 선회한 오 하사가 수면 위로 떨어진다. “동남아 여행가면 다 하는 것 아닙니까. 신혼여행 예행연습하는 셈 치죠.” 실습을 앞둔 이제남(28) 대위의 말이다. 교관들의 도움을 받으며 갑판을 내달리던 이 대위. 아슬아슬하게 이륙에 성공했다. 그런데 긴장한 탓일까. 엉거주춤 다리를 벌린 자세가 어색하기만 하다.“발목과 무릎 붙이세요.” 교관이 소리쳐 보지만 소용 없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진다. 다음달부터 최신기종인 F-15K로 갈아탈 예정이라는 안영환(28) 대위는 이륙도 못해보고 갑판 아래 수면으로 곤두박질쳤다. 바람이 약해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은 탓이다. 훈련이 어렵다고 판단한 교관들이 바람이 부는 곳을 찾아 함정들을 이동시킨다. 올해로 해상훈련만 세번째라는 오충일(42) 중령은 “매번 훈련 때마다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생각대로 몸이 안 따라준다는 것이다. 오 중령이 꼽는 생환교육의 백미는 산악훈련. 나침반과 지도만 들고 산짐승을 잡아먹으며 인적 없는 산 속을 헤매야 한다. 겨울철엔 눈 속에서 낙하산을 덮고 자는 일도 다반사다.“그래도 견뎌야죠. 제 몸뚱아리 하나가 공군과 대한민국의 재산인걸요.” 불혹을 넘긴 오 중령의 겸손함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조종사의 은근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글 남해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사진 남해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생환 교육대는 어떤 곳 “오늘 훈련한 내용을 써먹어야 할 상황이 오지 않길 기원합니다.” 생환교육대 교관들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말이다. 이곳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조종사들이 맞닥뜨려선 안 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관복 가슴에 새겨진 영문마크 ‘SERER’엔 유사시 조종사들에게 요구되는 행동지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Survival(생존),Evasion(도피),Resistance(저항),Escape(탈출),Recovery(복귀)가 그것이다. 모든 교육은 혹독한 실습 위주로 진행된다.20여개 교과목엔 낙하산 강하와 해체, 해상생존, 은신처 구축 및 음식물 습득, 불 피우는 법, 암벽 등반과 헬기유도법, 심지어 적의 포로가 됐을 때 신문에 대처하는 방법까지 포함돼 있다. 공군의 모든 조종사들은 조종사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선 나이·계급을 불문하고 4년 6개월마다 고된 생환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생환교육대는 1953년 인천에서 공군 첩보부대 산하부대로 창설됐다. 공군 첩보부대라면 과거 ‘실미도부대’를 운영했던 곳으로 악명높다. 현재 본부는 충북 청원에 있다. 해상교육을 위해 1984년 남해도 최남단 미조면 송남마을에 마련된 하계 훈련장은 4월부터 9월까지 운영된다. 부대 주변이 유명 휴양지인 탓에 성수기인 7∼8월엔 주민들의 생업을 위해 훈련을 중단한다. 교육대는 17명의 교관과 지원요원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교관들 대부분 경력 10년이 넘는 부사관들로 낙하산 강하는 물론 스킨스쿠버, 응급구조 등 전문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 이들은 ‘군 최고 엘리트’라는 조종사들을 교육시킨다는 점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교관경력 17년의 신재권(38) 중사는 “사정이 허락한다면 군 생활을 교육대에서 마치고 싶다.”고 말했다.
  • 고유가·환율하락에도 농식품 수출 호조

    고유가·환율하락에도 농식품 수출 호조

    고유가와 환율하락에도 불구하고 농식품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농림부는 22일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농식품 수출은 9억 2380만달러(약 8557억원)어치,58만t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액수는 7.6%, 물량은 5.2%가 증가한 수치다. 품목별로 보면 화훼류와 과실류, 김치가 이같은 수출 호조를 견인했다. 화훼는 중국 시장의 수요 회복으로 59.6%, 과실류는 53.5% 증가했다. 김치도 꾸준한 한류 바람과 해외 홍보에 힘입어 11.5% 늘었다. 특히 김치의 경우 홍콩과 미국에서는 각각 67.6%,35.8%가 급증했다. 채소류는 전체적으로는 7.9% 감소했지만, 파프리카는 일본 수출 호조로 8.2%가 증가했다. 반면 돼지고기는 71.1%, 인삼은 11.3%가 급감했다. 국가별로는 엔화 하락으로 수출이 3.3% 감소한 일본을 빼고는 대부분 국가에서 증가했다. 농림부는 김치, 인삼, 파프리카, 전통주, 고추장 등 ‘30대 수출 유망 농산물’을 선정해 집중 지원하는 등 수출 촉진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기고] 전기도 국경이 없어진다/이원걸 한국전력 사장

    오늘날 세계경제는 공동의 이익을 위한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하나로 통합되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칠레의 농민이 생산한 포도주와 농산물을 우리 안방의 식탁에서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세계경제의 글로벌화·통합화는 경제분야는 물론이고 국가간 상호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모든 분야로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 경제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전력산업분야는 어떨까? 농산물이나 공산품과 같이 전기를 생산하고 사용하는 것도 국경이 없어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서 여름철에 캐나다의 풍부한 수력자원을 이용하여 생산된 전기는 미국 국민들이 값싸게 사용하고 있으며, 반대로 겨울철에는 미국의 화력발전으로 생산한 전기가 캐나다에서 사용되고 있다. 북미의 경우는 약 100년 전인 1901년부터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하여 캐나다∼미국∼멕시코간 전력계통망을 연결해 전력을 공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 국가들도 오래전부터 국가간에 전력계통망을 연결하여 전력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와 남아프리카 지역에서도 활발한 전력계통망 연결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국가 경제발전을 견인하는 중요한 전력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보다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에너지안보를 확립하며 국가간 상호협력을 통해 상생을 도모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우리나라가 속한 동북아지역에서도 이러한 국가간의 공동이익을 추구하고 전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전력계통망의 상호 연결이 긍정적으로 고려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남북 분단으로 인한 지역적인 특수성 때문에 전력을 독자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고 이는 전력의 효율적인 이용에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향후 우리나라의 인접국가인 중국·일본·북한·러시아 등과 협력하여 상호 전력계통을 연결함으로써 전력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발전설비의 신·증설을 억제할 수 있고 투자비 절감은 물론 이산화탄소 배출도 줄일 수 있어 막대한 환경개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동북아지역은 에너지 자원의 지역적 편재가 심해 전력계통망 연결에 상당할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러시아는 극동지역의 풍부한 천연가스와 수력발전 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중국은 동북부에 충분한 양의 석탄을 갖고 있는 반면 한국·일본·북한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거의 없어 해외에서 연료를 조달해야 하는 실정이다. 여기에 서로 다른 전력수요의 특성(하계 최대부하형-한국·중국·일본/동계 최대부하형-러시아·북한)과 국가간 상당한 경제수준의 차이로 동북아지역의 전력계통망 연결은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양호한 여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동북아지역은 국가간 전력계통의 특성(전압, 주파수 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국가간에 보다 안정적으로 전력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직류 송전기술의 발전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가 동북아 전력계통 연결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100년 이상 축적된 세계 최고 수준의 우수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직류 초고압 송전기술에 대한 향후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개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동북아지역의 전력계통망 연결은 에너지의 효율적인 이용을 통해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고 상생협력의 틀을 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 국가간 윈-윈을 통해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전략적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원걸 한국전력 사장
  •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12)끝 좌담 “절차적 민주 진전에 안주말고 더많은 ‘운동’ 필요”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12)끝 좌담 “절차적 민주 진전에 안주말고 더많은 ‘운동’ 필요”

    “6월 항쟁의 성과로 이룩한 최소한의 민주화가 지체되고 악화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일상 생활부터 변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범주의 운동이 필요합니다.” 서울신문이 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기획 연재한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시리즈를 마치면서 마련한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6월 항쟁의 평가와 우리 사회가 6월 항쟁을 어떻게 계승·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지난 20일 서울신문 4층 편집국에서 열린 좌담회는 지역 ‘풀뿌리운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하승수(39·변호사) 제주대 법학부 교수의 사회로 정해구(53)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인권운동가인 오창익(39)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노동문제 전문가인 은수미(44·노동사회학 박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참석했다. -하승수 교수 많은 언론 매체와 시민·사회단체들이 6월 항쟁과 관련해 다양한 평가를 했다. 물론 올해가 6월 항쟁 20주년이 되는 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한국 사회를 돌아본다는 의미도 있다. -정해구 교수 절차적 민주주의 측면에서는 성공적이었다.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살아 있고 인권보장이 안 되는 면이 분명히 있지만 전체적으로 자유라는 면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참여라는 틀로 보면 형식적 참여는 늘었지만 실질적 참여는 미흡하다.1997년 외환 위기를 계기로 평등은 지체됐고 악화되는 측면도 있다. -은수미 연구원 많게는 800만명, 적게는 240만명이 비정규직이다. 그들이 느끼는 6월 항쟁 20년이 바로 민주화의 현재 모습을 보여 주는 단면이다.6월 항쟁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수준까지 나아가지 못했고 구(舊)질서에 정당성을 쥐어 줬다.6월 항쟁 이전에 권위를 가졌던 사람들은 형식적인 정당성에 입각해서 지금도 여전히 그런 권위를 누린다. ●‘박제가 돼 버린’ 6월 항쟁 기념 -오창익 사무국장 각종 기념행사들이 별 감흥을 못준다. 올해부터 국가기념일이 되면서 6월 항쟁도 이제 ‘박제(剝製)’가 돼버린다는 느낌도 받는다.‘절차적 민주화는 많이 이뤘지만 실질적 민주화는 미흡했다.’는 평가에 반대한다.6월 항쟁을 계기로 우리는 야만에서 벗어났다. 그걸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범국민운동본부에 연속으로 집회 금지 통보를 한 것에서 보듯 국민들은 여전히 실질적인 집회시위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이제 고문은 없어졌다고 하지만 20년 전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다 숨졌던 남영동 보안분실을 빼고는 지금도 보안분실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하 교수 그 부분은 나도 고민이 있다. 자유권(시민적·정치적 권리)이 확고하게 뿌리내린 것도 아니고 사회권(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은 더 열악해졌다. 최근 사회경제적 문제가 한국 민주주의를 지체시키는 근본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어떻게 보나. -정 교수 정치적 민주화가 사회경제적 민주화로 연결돼야 하는데 한국은 정치적 민주주의 진전이 실생활로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 결과 민주주의가 ‘형해(形骸·내용없는 뼈대)화’되고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일정한 회의를 가진다.‘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느냐.’는 말은 굉장히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말이다. 그것이 바로 민주화 20년이라는 지금 시점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문제다. -오 사무국장 ‘자유는 진전, 평등은 부족’이라는 이분법으로 평가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미 구질서에 편입됐고 집회나 시위를 할 필요가 없어진 ‘전직 민주화 운동가’들은 후일담 소설을 쓰듯이 굉장히 편하게 말한다.6월 항쟁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남은 과제를 제대로 보려면 ‘빵과 장미’를 분리해서 보면 안 된다. -은 연구원 80년대와 똑같은 풍경을 지금도 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들의 이해를 대변할 어떤 장치도 없다. 곧바로 크레인으로 올라가는 식으로 ‘불법저항’을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더 심한 경우 분신 자살을 한다. 더 슬픈 건 사람들이 그런 문제에 별 관심을 안 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다같이 고생했으니까 공감이라는 게 있었다. 지금은 먹고 사는 수준이 양극화되듯 자유나 권리도 양극화되고 있다. ●‘기억과 계승’인가 ‘단절’인가 -정 교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6월 항쟁 20년 기업사업을 하면서 사람들이 6월 항쟁을 잊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이 많았다. 새로운 세대에게 역사적 사실을 기억시키고 그걸 통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가르쳐야 한다. 기억과 기념을 민주시민교육과 연결시켜야 한다. 현재 문제도 중요하지만 과거 기억과 단절되면 안 된다. 과거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기억하고 의미를 새기고 문화나 교육으로 남겨야 한다. -오 사무국장 지금 필요한 건 공공성과 연대성을 회복하는 민주화운동이다. 그런데 양극화의 원인인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소위 ‘전직 민주세력’이 주도한다는 게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그들이 대중에게 민주주의와 운동에 대한 염증과 피로감을 불러 일으킨다. 한때 민주화운동세력이었지만 지금은 요직을 차지하거나 운동 기득권층이 된 사람들과 지금 민주화운동세력을 명확하게 구별해야 한다. 기념과 계승이 아니라 단절이 더 급하다. -하 교수 경험을 공유하고 의미도 되새겨야 하지만 현재 부딪치는 문제와 연결되지 않으면 6월 항쟁의 의미가 퇴색해지고 박제화된 기억으로만 남게 된다. 제주에선 해군기지 문제와 6월 항쟁을 연결시킨 행사를 했다. 현재와 과거를 연결시켜 고민하게 하는 기획이었다. 그럼 지금까지 했던 평가를 바탕으로 이제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논의해 보자. -은 연구원 87년 민주화 이후 10년 만에 외환 위기가 있었다. 그로 인한 구조조정은 대규모 실업 사태를 뜻했다. 당시 실업을 경험한 사람과 그걸 지켜본 사람의 경험은 지금도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그 상처가 지금의 모든 걸 설명해 준다. 노동시간과 급여를 줄이려는 논의도 있었지만 결국 노동계조차 ‘같이 죽고 같이 살자.’를 택하지 않고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자.’를 택했다. 밀려난 사람은 비정규직이 되거나 노숙자가 됐고 남은 사람들은 ‘나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눈 앞에 있는 임금만 신경 쓰게 된 10년이었다.87년에 함께 길거리에 모이면서 작게나마 형성됐던 연대의식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정 교수 누적된 모순이 6월 항쟁으로 폭발했듯이 97년 체제가 만들어낸 양극화 압력도 언젠가 폭발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운동보다 오히려 정치가 더 중요하다. 과거 운동이 맡았던 역할을 이제는 정당이 해야 한다. 민주세력의 연장선에 있는 중도개혁 정당들이 서구의 사회민주당 같은 구실을 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서구의 보수당 구실을 하면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구별이 없어졌다. 특히 민주세력의 연장선에 있는 중도개혁세력이 혼란에 빠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정치권을 재정립해야 한다. -오 사무국장 중도개혁세력이라는 말에 의문을 제기한다. 지금 정권이 무슨 개혁 성과가 있는가. 과거사정리를 예로 들어 보자. 피해자를 위한 진상규명이나 명예회복, 책임자 처벌 같은 과거사정리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 보안분실에서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안분실을 없애고 보안경찰을 민생경찰로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나는 민주 대통령이니까 오용하지 않는다.’는 말로 실질적인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는다. 2004년엔 20만명이 현행법상 불법인데도 야간에 아무 제약 없이 탄핵반대집회를 했다. 참석 인원이 5000명도 안 되는 한·미 FTA 반대집회는 계속 금지당한다. 대통령지지 집회는 되고 대통령 반대 집회는 못하게 한다. 그런 기본적인 것도 안 되는데 뭐가 개혁인가. 개혁이 아니라 ‘개혁 이미지’가 있을 뿐이다. 지금 정권 핵심부가 민주화운동을 계승하는 세력인가? 범여권에서 이른바 운동을 했던 사람이 얼마나 되나. 실제로는 구체제 관료들, 전문 집단들, 상공인들이 주도한다. -정 교수 큰 흐름을 봐야 한다. 민주화 이후 흐름을 볼 때 나는 그들이 중도개혁세력이라고 본다. 중도개혁세력은 자유, 인권, 더 나아가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이바지했다. 특히 평화라는 측면에선 헤게모니를 갖게 됐다. 문제는 그런 측면과 경제적 측면이 다르다는 것이다. 중도개혁세력이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이다. 신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오 사무국장 인권 상황이 좋아졌다는 건 착시 효과다. 그 착시를 ‘전직 민주화운동가’들이 부추긴다. 평화정착과 인권·개혁을 위해 중도개혁세력이 중요하고, 그러니까 한나라당 집권을 반대한다? 그건 난센스다.6월 항쟁 이후 문제는 민주화운동세력이 정책을 견인하거나 통제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투항하면서 전선이 무너졌다는 데 있다. 그들이 말하는 민주화 진전은 박제화된 민주화일 뿐이다. 가령 보안경찰은 이제 아무나 잡아들이지 않는다. 교보문고에서 ‘태백산맥’을 사는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다. 이 책을 헌책방에서 사고 파는 사람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한다. 사실 내가 일하는 인권연대만 해도 집회·시위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회를 하려 하면 집회 신고조차 안 받아 준다. -하 교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 모습을 명확히 평가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와 인권 진전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얘기하면서 마무리해 보자. ●“더 많은 민주화운동이 필요하다” -은 연구원 비정규직 관련 입법이라는 정치 과정을 보면 2.8%밖에 안 되는 비정규직 조직률을 그대로 반영한다.‘비정규직이 스스로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87년 이후 20년간 운동에서 정치로 너무 많이 간 게 아닐까 싶다. 이제는 운동과 정치가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전직 민주화세력’은 ‘국가와 민족’ 같은 정치적 문제만 생각했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생활에서 묻어난 고민들을 모으지 못하고 추상적인 고민만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중도개혁이든 아니든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운동 영역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를 개방해야 한다. 국가도 집회시위를 다 보장해 줘야 하고 시민들도 눈 앞의 불편을 참아 줘야 한다. -오 사무국장 운동이 종횡(縱橫)으로 훨씬 더 활성화돼야 한다. 이제는 절박하게 밑바닥부터 다지는 ‘진지전’을 해야 한다. 자녀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학교 통학로에 인도와 차도를 나누는 운동도 학부모와 주민들이 스스로 조직하면 가능하다.‘현실적인 힘’이 되도록 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아파트 주민이건, 비정규직이건, 학부형이건 자기에게 필요한 운동을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조직하는 것이다. 조금 더 이기적이어도 좋다. 우리에겐 훨씬 더 많은 운동이 필요하다. 운동은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하게 돼있다. 시위를 해야 할 절박한 필요를 못 느끼는 사람은 시위를 안 한다. 나이에 따른 세대가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운동이 필요한 사람들이 새로운 운동 주체가 된다. 운동은 계속 이어진다. -정 교수 운동도 중요하고 공론장도 중요하지만 정치도 중요하다. 운동이나 공론장에서 나온 얘기를 정치가 정책으로 다듬고 그걸 다시 토론하는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정당이 사회와 단절돼 있다. 운동과 공론장, 정치가 다 단절돼 있다는 건 민주주의 시스템이 고장나 있다는 걸 뜻한다. 무너진 시스템을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 그것이 한국사회의 과제다. 과거에는 독재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형식적으로는 민주정부가 됐다. 그런데 자기 지지 기반에 반하는 정책을 편다. 그래서야 어떻게 민주정부라고 하겠나. 한·미 FTA가 대표적이다. ●“노동·시민운동 등 분야별 힘 모아야” -은 연구원 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사회가 양산하고 있다. 지원은 안할지언정 그들을 막지는 말아야 한다. 그게 정치가 해야 할 역할이다. 운동간 소통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시민단체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참석자들이 내 발표에 다들 생소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에 많이 놀랐다. 그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사회적 양극화는 시민·노동운동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인데도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다른 길을 너무 오랫동안 걸어 왔다. -하 교수 동시에 변하면 더 좋겠지만 나는 운동이 더 중요하다는 데 방점을 둔다. 요즘은 시민운동은 시민운동의 논리만 있고, 노동운동은 노동운동의 논리만 있고, 정치는 정치논리만 있다. 다양한 목소리가 서로 오고 가면서 하나로 모여야 하는데 그게 부족하다. 다양한 운동이 서로 힘을 모으지 못하면 정치로 이어지지 않는다. 정리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6월항쟁 세력 평가’ 엇갈린 시각 서울신문이 마련한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좌담회에서는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과 단절하자는 주장이 뜨거운 논쟁거리로 부각됐다. 좌담회에서는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이 먼저 이 문제에 대한 포문을 열었다. 오 사무국장은 “한때 민주화운동 세력이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요직을 차지한 채 ‘과거운동’을 회고하고 찬양하지만 현재의 운동에 대해서는 경제발전 저해와 시민불편, 교통체증, 사회불안이란 이유로 폄하하고 있다.”면서 “6월 항쟁 정신을 계승하고 지체된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과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87년 이후 국민의 의지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는 측면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성공했다고 본다.”면서 “중도 개혁세력은 평등이란 관점에서는 부족했지만 국가인권위원회 설립과 6·15회담 등 자유와 인권, 평화 정착에는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다소 엇갈린 평가를 내렸다. 이에 대해 오 국장은 “자유가 진전됐다는 데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현재 집회·시위에 대한 중도 개혁세력이라 불리는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들의 행태를 꼬집었다. 오 국장은 “2004년 탄핵 반대집회를 야간에 20만명이 했는데도 경찰은 제지하지 않았지만 현재 2000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를 하면 사전에 봉쇄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정 교수는 “민주화 흐름 속에서 한국 민주화 세력이 다 진보 세력은 아니지만 중도 개혁 세력으로는 볼 수 있다.”면서 “이들의 역할을 인정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재반박했다. 오 국장도 “운동 진영에서 전직 민주화운동가들이 과잉 대표성을 띠면서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했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더 이상 집회·시위를 할 필요가 없는 ‘전직 민주화운동가들’과 단절을 명확히 하지 않는 한 6월 항쟁의 정신은 기억과 계승이 아닌 박제화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좌담 참석자 하승수 제주대 교수(사회자) 정해구 성공회 교수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내 공약, 네 공약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내 공약, 네 공약

    참 말들은 잘한다. 한반도 대운하 보고서 변조 의혹 파문이 그렇고, 한나라당 이명박 경선후보의 위장전입 시인에 따른 논란이 그렇다. 관계자들은 너나 없이 한마디씩 하며 자기 주장을 펼친다. 전방위로 펼쳐지는 검증 공방에서 범여권이 하는 얘기나, 박근혜 경선후보 캠프가 하는 문제 제기, 또 이명박 캠프에서 내놓은 해명 및 반박 이 모두가 솔깃하게 들린다. 하지만 국민들은 어지럽다. 그리고 짜증난다. 공방전이요, 소모전인 탓이다. 앞으로 그것 말고도 얼마나 많은 검증 거리가 있고, 무수한 난타전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대선이 끝나는 12월20일까지 대한민국은 ‘시계(視界) 제로’라는 비판론이 더욱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철저한 검증은 필요하고 당연하다. 그러나 자질과 능력도 함께 검증하는 종합적 검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로지 과거에 뭘 했는지, 그것이 도덕성에 큰 흠결을 남겼는지에만 초점이 맞춰져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과거사 캐기에만 집중돼 있는 양상이다. 그렇다 보니 ‘카더라’는 근거없는 흑색선전과 구체적 해명없이 회피로 일관하는 구태가 난무한다. 이런 상태라면 ‘누가 깨끗하냐.’는 문제가 아니라 ‘누가 안 들키냐.’의 문제로 변질되고 말 것이다. 이건 검증이 지향하는 목표점이 아니다. 검증과 흑색선전은 가려져야 한다. 범여권에선 십수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거나 던질 예정이다. 후보 난립이다. 지금은 모두 ‘도토리 키재기’ 상황이어서 조용하지만, 적어도 단일후보로 좁혀지는 과정에서 ‘빅3’니 ‘빅2’니 하며 유력 후보군 간에 지금과 같은 검증 공방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또 다른 검증 폭탄이 예고돼 있다. 국민들은 ‘짜증 곱빼기’에 놓여질 것이다. 이제라도 자질과 능력 검증에 들어가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이 정책 대결이요, 공약 검증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명심해야 할 게 있다. 도덕성 검증처럼 무조건 상대방을 비방부터 하는 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의 허물은 외면하고 상대방의 허점만 파고 들어서야 되겠는가. 상대 후보의 공약에 대해 우선 긍정적 측면을 얘기하고, 그런 후에 현실적인 실천방안은 무엇인지, 국가 발전과 미래 가치 견인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인지 등을 조목조목 따지는 게 순서라고 본다. 토론 과정에서 상대방의 좋은 방안은 언제든 수용할 수 있어야 하고, 문제점이 드러나면 수정하면 될 것이다. 상대방을 누더기로 만들어야 내가 승리한다는 방정식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이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든 박 후보의 열차페리든,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한반도 평화경영이든 여야의 각 후보군이 자기 공약을 마케팅한다는 차원에서 치열한 홍보전을 벌였으면 한다. 내 공약, 네 공약을 놓고 국가적인 대토론회를 열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것이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접고 통합의 미래를 여는 길이 되지 않을까. 조선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주고받았다는 대화가 문득 떠오른다. 어느 날 이성계가 “스님은 인상이 돼지처럼 보입니다.”라고 도발적 질문을 던지자, 무학대사는 웃으면서 “상감께서는 인상이 부처님처럼 보입니다.”라고 답변했다. 어리둥절해하는 이성계에게 무학대사의 답변은 이어진다. “부처님 같은 사람 눈에는 상대방이 부처님처럼 보이고 돼지 같은 사람의 눈에는 상대방이 돼지같이 보이는 법입니다.” 오늘날 검증 공방에 한창인 경선 후보들과 측근들이 새겨들을 얘기다. jthan@seoul.co.kr
  • [길섶에서] 재주는 곰이 넘고/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작가 지망생이었다. 글 쓰는 것도, 호구지책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소설을 냈다. 선배 작가의 도움이 컸다. 출판사를 주선해 줬다. 고료까지 직접 챙겨줬다. 눈물이 났다. 제법 알려질 때까지 든든한 후견인이었다. 그는 한참 뒤 진실을 알게 됐다. 출판사가 내놓은 액수의 절반도 전달이 안 됐더란다. 어느 작가의 이야기다. 그는 이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작품의 인세(印稅)도장을 직접 찍어봤다고 했다. 집에서 수만장 찍었다. 재미가 쏠쏠하더란다. 지금도 선배 앞에선 무명시절 고료 일화를 모른 척한다고 했다. 문학만 그럴까. 미술가도 고달프긴 매일반이다. 전업작가는 더하다. 창작 고통은 업보니 그렇다 치자. 판로는 더욱 막막하다. 조각이나 그림을 아예 화랑에 맡겨두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 돈이 돼 돌아올지 기약이 없다. 어떤 이는 화랑 기호에 맞춰 작품 스타일을 바꿨다고 했다. 작가 몫은 줄어들어, 작품 값 절반이 화랑 몫인 경우도 많다고 소개됐다.‘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중국사람이 챙긴다.’ 지금도 통하는 속담이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한국건설 60년]”해외 수주 올 200억弗”…지구촌 대역사의 주역

    [한국건설 60년]”해외 수주 올 200억弗”…지구촌 대역사의 주역

    ●현대 65년 태국 고속도로 공사 해외수주 1호 해외 건설은 현대건설이 1965년 11월 태국의 파타나∼나라타왓 고속도로 공사를 따내면서 본격화됐다.80년대 성장기와 90년대 중반 도약기를 거쳤다가 외환위기 직후에는 침체했다. 하지만 최근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 금액은 165억달러로 사상 최대였다. 올해는 5월 말 124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91%나 증가했다. 올해 200억달러 이상 수주가 예상된다.20일 건설의 날을 맞아 외화 획득의 효자인 해외건설을 기념비적 사업을 통해 짚어봤다. 현대건설이 완공한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유전지대인 주베일항은 국내 건설업계에 의미가 깊다. 선진국 업체의 독무대였던 해상유조선 정박시설(OSTT) 시장에 진출, 성공리에 공사를 마쳤기 때문이다. 단일 업체가 수주한 단일 공사로는 당시 세계 최대였다. 공사 금액 9억 4400만달러는 계약한 76년 당시 환율로 따져 원화로 4600억원 정도였다. 이는 그해 우리나라 예산의 25%에 가까운 금액이다. 이 공사는 ‘20세기 최대의 역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현대는 또 81년 말레이시아가 발주한 페낭대교(총길이 7958m)를 수주했다. 입찰에서 2위였지만 공기를 30주 앞당기겠다는 제안으로 공사를 따냈다. 당시 동양 최장, 세계 세번째로 긴 다리였다. 완공은 85년 8월. ●삼성 버즈 두바이 세계 최고층 건물 ‘등록´ 삼성물산이 한창 공사 중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버즈 두바이도 빠질 수 없는 건축물이다.2009년 완공되면 800m(170층)가 넘는 세계 최고층 건물이 된다. 높이에 걸맞게 건물 연면적도 어마어마하다. 잠실종합운동장 56배 넓이인 15만평이다. 삼성물산은 앞서 세계 최고층인 말레이시아의 KLCC빌딩(452m·92층)를 세웠다.2004년 타이완의 타이베이 101(101층·509m) 이전 완공되기 전까지 세계 최고층 빌딩이란 칭호를 들었던 쌍둥이 건물이다. 쌍용건설이 지은 싱가포르의 래플즈 시티 복합건물은 국내 업계의 해외건설사업 반세기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꼽힌다.80년 착공한 건물은 당시 세계 최고층(73층)과 최대 객실(2065개)로 진기록을 세웠다. 공사금액은 4억 1000만달러였다.86년 6월 완공됐다. 쌍용이 2000년 완공한 두바이의 에미리트 타워호텔은 여전히 두바이의 3대 건축물로 불린다.‘중동의 홍콩’ 두바이에서 쌍용의 명성을 높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쌍용 에미리트 타워호텔 두바이 3대 건축물로 대우건설이 97년 완공한 파키스탄 고속도로는 단일 업체가 시공한 세계 최장의 고속도로이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와 산업도시인 라호르(357㎞)를 잇는다.21세기 ‘실크로드’로 불린다. 공사금액은 11억 6000만달러나 됐다. 대우는 이 공사를 설계부터 관리까지 턴키방식으로 진행했다. 뒤늦게 해외건설에 눈을 돌린 롯데건설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롯데루스’를 한창 공사 중이다.4억달러짜리 공사로 1단계인 백화점과 사무실은 올 하반기 완공할 예정이다. 동아건설의 리비아 대수로,GS건설의 오만 아로매틱스 플랜트,SK건설의 멕시코 카데레이타 정유소 등도 한국건설의 위상을 높인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한강의 기적’ 견인… 시장규모 520배 성장 한국 건설산업은 1947년 조선토건협회가 창립되면서 태동했다.1950년 현대·극동 등 61개였던 건설업체는 지난해말에는 5만 3329개사로 늘어났다. 건설시장도 1973년 3000억원에서 지난해에는 156조원으로 520배가 증가했다. 외형은 커졌지만 불합리·불투명하다는 오명(汚名)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70~80년대 국가경제 이끈 ‘효자´ 건설은 50년대에는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국토를 복원하면서 ‘산업’으로 자리를 매김했다.60년대 들어 건설인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국토개발을 중심으로 경제개발이 본격화됐다. 당시 치수사업과 전국 주요도로의 포장, 항만, 상하수도 등으로 사업이 확대됐다. 65년 제2한강대교와 섬진강댐이 준공됐다. 국내 첫 고속도로인 경인고속도로(23.89㎞)는 68년 12월 준공됐다. 70년대는 전국 고속도로와 지하철 건설의 골격이 마련됐다.70년 중반이후 중동 건설시장의 붐으로 건설이 국가 경제의 ‘효자’로 한단계 더 성장했다. 이에 맞춰 75년 해외건설촉진법이 만들어졌다.70년 7월에는 경부고속도로(425.48㎞)가,74년 6월에는 서울지하철 1호선이 각각 개통됐다. 한국 건설은 80년대에는 국가 경제발전의 1등 공신 역할을 했다는 말도 들었다. 국내에서 주택 200만 가구와 올림픽 경기장 등 사회간접자본이 활성화됐다.87년 건설업 고용자는 100만명을 돌파했다.84년 88올림픽경기장이 완공됐고,88올림픽고속도로가 개통됐다. 한국 경제의 상장이자 서울의 랜드마크인 63빌딩은 85년 7월 준공됐다. ●90년대 UR·성수대교 붕괴 등 시련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로 건설시장이 개방됐다. 또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등 부실시공의 뼈저린 교훈을 얻은 시기이다. 외환위기에 따른 경영난과 연쇄부도 사태로 건설산업은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90년 분당신도시가 착공돼 96년 입주됐다.96년 국내 최대 규모의 LNG생산기지인 인천LNG생산기지가 완공됐다. ●2000년대 선진 경영기법 도입 재도약 외환위기 이후 건설산업은 선진경영 기법을 도입하고 수주전략을 합리적으로 짰다. 단순 시공을 넘어 수익성 분석을 통한 수주와 고부가가치 사업에 치중하게 됐다.2001년 3월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했으며, 같은해 12월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됐다.2002년 10개의 월드컵 축구경기장이 건설됐고, 단군 이래 최대 역사로 불리는 경부고속철도가 2004년 4월 개통됐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현대산업개발 본사사옥(아이파크타워)도 랜드마크로 꼽힌다.2004년 11월 완공한 이 건물의 외관이 특이하다. 설계의 기본 컨셉트는 ‘탄젠트’이다.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변하는 기술을 상징하는 직선과 세계와 자연을 상징하는 원, 인간을 표현한 사각형을 건물 외관에 투영했다. 또 롯데건설은 서울 잠실에 112층(555m)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구상하고 있다. 경주의 첨성대를 모티브로 한 제2롯데월드는 사업비 1조 7000억원을 계획하고 있다. 추진여부는 곧 결정된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100엔=750.87원’

    엔화 약세와 주가 강세 등 영향으로 원·엔 환율이 100엔당 750원으로 뚝 떨어졌다. 1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지난 주말보다 달러당 0.20원 하락한 928.3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주가 급등 영향으로 환율이 약보합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이 3500억원가량 주식을 순매도했지만 주가가 견조한 오름세를 보이면서 원화 강세를 견인했다. 반면 엔·달러 환율은 일본은행의 금리동결과 당분간 정책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 같은 발언으로 달러당 123엔대로 급상승했다. 이에 따라 원·엔 환율은 지난 주말보다 3.80원이 하락해 100엔당 750.87원을 기록했다.1997년 10월8일 747.90원 이후 최저치다. 한국은행은 “일본은행에서 정책금리를 동결하면서 전세계 통화에 대해 엔화가 약세가 되니, 원·엔 환율도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범여·朴 연계공세” “李측 조급한 모양”

    “범여·朴 연계공세” “李측 조급한 모양”

    한나라당의 양대 대선 주자인 이명박·박근혜 진영이 정치적 금도(襟度)를 벗어난 난타전을 펼치고 있다. 이 후보측이 ‘청와대 배후설’과 ‘범여권-박근혜 정보공유설’을 제기하면서 재점화됐다. 이 후보측은 청와대 및 박 후보측을 싸잡아 비난하며 강도높은 공세를 퍼붓고 있다. 범여권과 박 후보측의 공세를 조기에 차단하지 않을 경우, 치명적인 내상을 입으며 당내 경선통과를 낙관할 수 없다고 우려한 듯 초강경 대처로 방향을 틀었다. 박 후보측은 청와대와 이 후보측의 맞대결 구도로 흘러가도록 방치할 경우, 국민의 관심에서 자칫 멀어질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 전 시장측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이 후보측은 18일 친노 사조직이 ‘이명박 죽이기’를 기획하고 박 후보측이 범여권과 연계해 공세를 펼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나섰다. 장광근 캠프 공동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을 후견인으로 하는 친노그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원군으로 하는 반노·비노 세력이 각자 독자후보를 낸 뒤 대선을 목전에 두고 극적 단일화라는 정치쇼를 통해 반전을 시도할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이명박 죽이기 공작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표와 최태민 목사의 관계를 다룬 월간조선 최신호를 언급하면서 “정수장학회·영남대·육영재단 등 박 전 대표와 관련된 의혹의 중심에 늘 최 목사가 있었다.”며 의혹을 부추겼다. 그는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될 경우 최씨 일가에 의해 국정이 농단될 개연성이 없겠는가.”라며 인신공격에 가까운 공격도 가했다. 박 후보측은 이 전 시장의 ‘여권과의 정보공유’ 발언에 대해 “금도를 넘어섰다. 좌시하지 않겠다.”며 적극 응전에 나섰다. 캠프 내 일각에선 “이 전 시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홍사덕 공동 선대위원장은 이날 여의도 캠프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우리는 같은 당의 후보니까 이명박을 지켜줬다. 그런데 이게 뭔가. 박 후보가 아무리 만류해도 또다시 이렇게 나오면 나까지는 참아도 입은 많다. 이 후보가 왜 이렇게 모질게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개탄했다. 홍 위원장은 “이 후보가 그동안 높은 지지율이 며칠새 빠지니까 조급하긴 한 모양”이라면서 “박 후보는 지지율이 이 후보의 절반이었으나 이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차별성을 내세웠다. 그는 그러나 “정치 세계에 있었던 일을 법으로 끌고 가는 것은 아주 싫어한다. 공동위원장 맡는 동안 힘을 다해 막을 것이다. 이명박은 결국 본선에서 우리와 어깨동무를 해야 할 아주 소중한 자산이다.”고 말했다. 이혜훈 공동 대변인은 이 전 시장이 시인한 위장전입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분명한 불법행위”라면서 “대통령이 되기에 부적절한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했는데, 이 정도는 괜찮은 것이냐.”며 대통령 부적격론을 제기했다. 홍희경 김지훈기자 saloo@seoul.co.kr
  • ‘위풍당당’ 한국증시

    우리나라 코스닥과 코스피 지수가 올해 지수 상승률로 세계 3,5위를 차지했다.1,2위는 중국이 휩쓸어 한국과 중국이 상위권을 장악했다. 17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세계 43개국 46개 주가지수의 올해 주가지수 상승률을 조사한 결과 코스닥이 지난해 말 606.15에서 지난 14일 783.02로 29.18% 올랐다. 코스피 지수는 같은 기간 1434.46에서 1769.18로 23.33% 상승했다. 중국의 선전종합지수가 같은 기간 550.59에서 1221.17로 무려 121.79% 뛰어 1위를 지켰다.2위는 2675.47에서 4115.21로 53.81% 증가한 상하이 종합지수가 차지했다. 4월 이후의 지수 상승률만 보면 코스피 지수가 21.80%, 코스닥 지수가 20.65%씩 상승해 각각 3,4위에 올랐다. 중국의 선전과 상하이 지수가 47.88%와 29.25%로 4월 이후 상승률에도 여전히 1,2위를 유지했다. 올 들어 지수 상승률 세계 10위권에는 중국과 한국, 말레이시아(4위), 필리핀(8위) 등 아시아권 이외에 룩셈부르크(6위), 포르투갈(7위), 멕시코(9위), 브라질(10위) 등이 포진했다. 한편 증시 전문가들은 지난해 코스피 지수가 4%, 코스닥 지수가 13% 오른 데 따른 ‘반사효과’가 있었으며 기업들의 실적 호조가 올해 지수 상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미친듯 놀 준비 됐나요?

    지난해 여름. 인천 연수구 송도유원지를 기억하는가. 시간당 30㎜의 물폭탄과 무더위를 뚫고 솟아 올랐던 록의 열기를.3만여 록 팬들의 환희를. ‘2007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1,2차 출연진 선정작업을 완료,7월27∼29일 인천 송도구 대우자동차판매 부지에서 축제의 장을 펼친다. 1999년 트라이포트 때도, 지난해 펜타포트 때도 무심한 하늘은 기록적인 폭우를 퍼부어댔지만, 진흙속을 뒹굴던 음악팬들의 열정만은 결코 식지 않았다. 행사 주최측 관계자는 “올해도 인천 송도는 용광로처럼 달궈질 것이다.3일 동안 쉬지 않고 펼쳐질 록의 제전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스트록스, 플라시보, 예 예 예스, 프란즈 퍼디난드 등 국내외 최고의 록 밴드들이 참가했던 지난해에 이어, 올해 라인업 또한 화려하다. 영국출신 현대 모던 록의 절대강자 뮤즈와 빅비트(big beat) 사운드의 창시자로 그래미 2회 수상을 기록한 최강의 일렉트로닉 듀오 케미컬 브러더스, 그리고 일본의 라르크 앙 시엘(L’Arc en Ciel) 등이 헤드라이너(주공연자)로 확정됐다. 이밖에 아일랜드 출신의 애시, 일본 펑크 록의 선두주자 아시안 쿵푸 제너레이션, 미국의 천재 일렉트로닉 뮤지션 BT, 북아일랜드 하드록 그룹 디 앤서, 미국의 헬로굿바이 등이 잇따라 공연을 펼친다. 한국에서는 인디밴드의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한 크라잉 넛을 비롯, 제 1세대 하드코어 밴드 바세린, 쟈니로얄, 레이니선, 보드카레인, 할로우잰, 바닐라 유니티 등 쟁쟁한 실력을 갖춘 팀들이 출연할 예정이다. 특히 세계 최고의 일렉트로닉 듀오 케미컬 브러더스의 첫 내한 무대와 영국 드럼 앤드 베이스 장르의 선구자 런던 일렉트리시티, 음유시인으로 통하는 데미안 라이스 등이 올 해의 펜타포트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메인무대가 될 ‘빅 톱 스테이지’는 어떠한 기후조건에도 완벽하게 시설을 공연을 치러낼 수 있는 20m 규모의 대형 스틸 트러스 무대로 세워진다. 올 해도 그 시설 그대로 공수해 올 예정이다. 제2무대는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고집해 온 국내외 주류, 비주류 아티스트의 다양한 음악적 실험 무대로 꾸며진다. 심야 프로그램으로 5000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레이브 파티를 통해 국내외 유명 DJ들의 신나는 음악도 감상할 수 있다. 3000개의 텐트 시설이 가능한 ‘캠핑 존’, 다양한 이벤트가 준비된 ‘펀 존’, 먹거리와 쇼핑을 즐길 수 있는 ‘푸드 존’ 등도 준비돼 있다. ‘2007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7월27∼29일 인천 송도구 대우자동차판매 부지에서 열린다.1일권 8만 8000원,2일권 13만 2000원,3일권 16만 5000원. 캠핑권 1인당 1만원.www.pentaportrock.com,(02)783-0114.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종로 주택가 주차 숨통 트인다

    종로 주택가 주차 숨통 트인다

    날마다 ‘주차전쟁’이 벌어지는 서울 종로구 주택가의 주차난이 다소 해소될 전망이다. 서울 종로구는 15일 만성적인 주차난 해소를 위해 올해 말까지 432면을 새롭게 확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종로구 전체 주차면적의 10%에 이른다. 현재 주차수급률(차량 등록대수와 주차장의 비율)은 지난해말 기준으로 90.3%. 그러나 주차면의 상당수는 도심 빌딩의 주차장으로, 실제 주택가 주차장의 수급률은 5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또 자동차 신규 등록대수가 연평균 3.3%씩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구는 지난 4월 중순부터 2개월에 걸쳐 주차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투리 땅을 찾았다. 그 결과 ▲거주자 주차면 236면 ▲국제고 남쪽 37면 ▲성균관대 북서쪽 19면 ▲사직터널 위 서쪽 36면 ▲열린마당 앞 30면 ▲평창동 견인보관소 24면 ▲하반기 공영주차장 추가 및 거주자 주차면 자투리 찾기 50면 등 모두 432면을 확보한 것이다. 이중 청운동, 효자동 등 119면은 구획선을 그어 주차공간으로 활용할 준비를 마쳤다. 국제고, 성균관대, 사직터널 등 3곳은 공영주차장으로 조성하기 위해 토지소유주의 동의를 받고 감정평가 중이다. 현재 주차공간으로 활용하는 지역 중 주차수급률이 높은 평창동(96%)은 거주자우선 주차구획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수급률이 낮은 효자동(54.3%), 삼청동(82.3%), 사직동(30.3%) 등은 담장을 허물어 주차공간을 조성하는 그린파킹 사업과 공영주차장 건설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주차면적 확보 사업에 연말까지 토지매입비, 공영주차장 건설비 등 40여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구 관계자는 “자투리땅을 조사한 결과 공영주차장을 지을 수 있는 공간이 23곳 정도 있었지만 감정평가액과 토지 매매액이 차이가 있거나 양도세 부담을 이유로 개발하지 못했다.”면서 “우선 확보 가능한 곳을 주차장으로 조성하고, 대상 토지를 추가 발굴해 주차 공간을 계속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한나라 경선레이스 점화] 李·朴 사활 건 승부만 남았다

    [한나라 경선레이스 점화] 李·朴 사활 건 승부만 남았다

    ‘드디어 루비콘강을 건넜다. 오는 12월19일 대선으로 가는 샛길은 없다. 사활을 건 승부만 있을 뿐이다.’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는 11일 대선 경선 후보로 등록,70일간의 경선 레이스에 들어갔다. 이제 현행 선거법에 따라 후보로 등록하면 다른 정당의 후보로 나서거나 독자 출마가 불가능하다.8월19일 경선에서 명운을 건 외길 승부를 펼쳐야 한다. 원희룡·고진화 의원은 12일, 홍준표 의원은 마감일인 13일 후보 등록을 하고 경선레이스에 공식 가세한다. ■이명박 “지도자 못될만큼 살지 않아” 이 전 시장의 출마 선언문은 박 전 대표와 달랐다.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의 딸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유산이자 부담인 점을 장점으로 활용하려고 접근한 반면 이 전 시장의 선언문에는 이렇다 할 인간적인 풍모나 체취를 담지 않았다. 이 후보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당 안팎의 도덕적 시비에 대해서 단호하게 반박하는 데 오히려 초점을 맞췄다.“저는 살면서 실수와 잘못도 있었겠지만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지 못할 만큼의 도덕적 기준을 갖고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거의 포기할 뻔했지만 야간인 포항 동지상고에 수석 합격, 돈 한푼 내지 않고 고교 생활을 무사히 마쳤다. 이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 온갖 잡일을 하면서도 대학 진학의 꿈을 잃지 않아 고려대 상대에 합격했다. 학생운동으로 복역한 전과 때문에 취직이 어렵게 되자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편지로 호소하기도 했다. 결국 현대건설에 입사해 29세에 이사, 35세에 현대건설의 사장이 됐고 이후 최장수 CEO의 역사를 쓰면서 샐러리맨의 신화를 일궈냈다. 그러나 ‘정치인 이명박’은 만만치 않았다.1995년 서울시장 경선에 나섰으나 실패했고, 이듬해 총선에서 ‘정치 1번지’ 종로구에 출마해 이종찬씨를 누르고 당선됐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1998년에 다시 서울시장 경선에 도전, 최병렬씨와 경쟁했지만 선거법 재판으로 의원직을 사퇴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2002년 삼수만에 서울시장으로 재기해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 체제 개편으로 강력한, 추진력있는 정치인 이미지를 굳혔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박근혜 “내겐 오직 대한민국만 있다” 박 전 대표는 ‘대통령의 딸’로 살아온 얘기로 출마 선언문을 풀어갔다. 먼저 “철들기 시작할 무렵, 밥상에서 가난한 국민의 모습을 보면서 목이 메어 밥을 넘기지 못하시는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고 말했다. 이어 “평생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시다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육영수 여사)의 삶을 대신하여, 어려운 이웃들을 도우며 살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10년 전 IMF(국제통화기금) 위기가 터졌을 때, 국민의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 제 한 몸을 아낌없이 바치겠다고 정치에 뛰어들었다.”면서 “이제 다 쓰러져가는 한나라당에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호소 드렸던 그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소신과 정치 철학에 대해서는 “일평생 저의 삶을 견인해 온 것은 바로 ‘정직과 신뢰’였다.”면서 “단 한 번도 ‘국민과의 약속’을 가벼이 생각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에게 부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치적 자산이자 부담이기도 하다. 박 전 대표는 1952년 군인이던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 사이의 2녀 1남 중 장녀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청와대에 입성한 것은 11살.1974년 피습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뒤를 이어 1979년 10·26 때 아버지를 잃을 때까지 퍼스트 레이디로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이때부터 가슴에는 조국, 민족, 국가라는 단어들이 깊이 각인됐다고 한다. 지난해 피습을 당하고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 ‘내공’을 쌓은 시절이다.“저에겐 부모도, 남편도, 자식도 없다. 저에겐 오직 대한민국만 있다.”고 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李 국정운영 방향 “청계천 살렸듯이 경제 살릴것” “청계천을 살려냈듯이 대한민국 경제도 살려내겠습니다.” 이명박 전 시장은 향후 5년간 국정운영 포부를 이렇게 밝혔다. 경제 성장을 요체로 하고 있다. 이 후보는 “당이 나서 국정을 바로 세우고 헌정 질서를 지켜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며 “잃어버린 10년을 끝내고 대한민국 선진화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려는 모든 세력의 지지를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어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선진화세력, 미래지향적 실용주의 세력이 모두 모여야 한다.”며 “이를 위해 한나라당뿐 아니라 뉴라이트와 중도·보수 시민세력, 정치세력을 포괄하는 ‘대한민국 선진화 추진회의’(가칭) 구성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는 “청계천을 살려냈듯 대한민국 경제도 살리겠다.”며 “‘대한민국747 비전’(7% 경제성장·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세계 7대 강국)을 성공시켜 대한민국을 세계 일류국가의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고 공약했다. 특히 주요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 이 후보는 “중도하차 가능성은 완벽하게 없다.”며 “수질을 좋게 하고 수량을 보존하는 운하를 계속 국내외 전문가와 협의,3만∼4만달러 경제적 효과의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朴 국정운영 방향 “나라 근본 세워서 선진국으로” “나라의 근본부터 바로 세워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을 만들겠습니다.” 박 전 대표는 ‘원칙을 통한 선진한국’을 향후 5년간 국정운영 목표로 제시했다. 박 전 대표는 “아버지께서 못다한 두가지를 꼭 하려 한다.”며 “하나는 대한민국의 선진화이며, 또 하나는 그 시절 고통을 받았던 분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라며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나라를 잘 살게 하는 것만이 보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작은 정부, 큰 시장의 철학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며 “공교육을 살려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고 가난의 대물림을 막겠다.”고 다짐했다. 또 “원칙있는 대북정책으로 북한 핵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것”이라며 “대한민국을 외교강국으로 만들어 치열한 경제경쟁, 국가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대처리즘 공약’에 따른 복지예산 감축지적에 대해선 “대처리즘이 경제를 살리고 번영을 구가하는데 지금도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세금 감면과 규제 개혁을 통해 작은 정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제가 추구한 바와 같지만 제가 복지를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다르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李 검증 역공 논리 “朴·범여권서 ‘李죽이기’ 대연정” 이 전 시장 측은 검증 공세에 대해 “박 전 대표와 범여권의 ‘이명박 죽이기’ 대연정”이라고 역공을 펴고 나섰다. 박 전 대표측이 제기한 각종 의혹들이 ‘여권발(發)’이 아니냐는 의심을 드러냈다. 이 전 시장은 경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나쁜 상상으로 그림을 그려놓고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를 하면서 ‘없는 땅’ ‘없는 재산’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 과연 같은 식구가 할 수 있는 짓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박 전 대표 측에 직격탄을 날렸다. 진수희 캠프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이명박 후보를 음해하려는 일련의 작업들을 여권에서 제조, 유통시키는 역할은 박근혜 캠프 핵심 의원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며 “이적 행위를 해서라도 경선에 승리하겠다는 것이 ‘박근혜식 원칙’인가.”라며 거들었다. 이 전 시장 측이 검증 공방에 대해 전에 없이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각종 의혹 제기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은 한때 50%를 넘는 지지율을 보이다, 지난달 박 전 대표 측의 검증 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부터 지지율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이 전 시장과 20% 이상 격차를 벌렸던 박 전 대표와의 격차가 10%대까지 좁혀졌고 일부 조사에서는 한 자릿수대로 바짝 좁혀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는 정두언 의원은 “박영선 의원이 열린우리당을 대표해서 지지율 1위 후보 죽이기에 나선 것”이라며 “최근 상황을 보면 범여권과 박 전 대표 진영의 합작품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朴 검증 역공 논리 “국민 알권리 李측서 본질 호도” 박 전 대표는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검증 공방과 관련,“자꾸 공방 정국으로 몰고가려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 전 시장 측에서 검증공세를 네거티브 전략으로 몰아붙이는 것에 대해서는 “실체 없는 얘기를 하면 네거티브가 되겠지만 실체가 있는 것은 국민이 확실히 알 권리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는 “(검증 문제는)캠프간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의구심에 대해 국민에게 해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전 시장측이 ‘여권과의 연계 의혹설’을 제기하며 역공을 가한 데 대해 이혜훈 공동대변인인은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박 전 대표 측은 이날 추가적인 의혹 제기는 하지 않고 한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이 전 시장에 대한 의혹 제기가 이슈화에 성공했고, 이날 경선 후보 등록을 신호로 여권에서도 파상 공세를 퍼붓기 시작하면서 일단 사태를 관망하겠다는 분위기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정책토론회와 검증을 통해 역전을 꾀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여론조사에서 미묘한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고, 철저한 검증이 이뤄진다면 이 전 시장의 ‘거품’도 빠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측은 ‘6·7월 검증 총공세’를 통해 반전의 발판을 마련, 내달 열리는 후보 검증 청문회까지 승부를 걸겠다는 계획이다. 캠프의 이정현 공보특보는 “외부에서 계속 새로운 의혹이 나오고 있다. 검증위가 새롭게 제기되는 여러 의혹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리라 믿는다.”고 기대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李·朴, 경선 등록부터 ‘신경전’ 한나라당 경선 후보 접수를 둘러싼 이­박 진영의 장외 신경전도 뜨거웠다. 누가 먼저 경선 후보로 등록하느냐에 적잖은 관심이 쏠린 가운데 박근혜 전 대표가 한발 앞서 후보로 등록했다. 박 전 대표는 선거대책위 구성을 공식 발표한 데 이어 이날 후보 등록 1호를 기록한 뒤 공식 출마 선언을 하는 등 세몰이를 가속화했다. 그러자 지난달 10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이명박 전 시장도 후보 등록 후 기자회견을 갖고 출사표를 던졌다. 박 전 대표측 유정복 비서실장은 오전 9시에 접수가 시작되자마자 후보 등록을 했다. 박 전 대표는 30여명의 국회의원과 캠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사 주변에는 아침 일찍부터 박사모 회원과 박 전 대표 지지자 등 2000여명이 모여 박 전 대표를 응원했다. 이 전 시장은 오전 11시에 백성운 캠프 종합행정실장을 통해 후보 등록을 하고 오후 2시에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홍문표·이윤성 의원 등 30여명의 국회의원과 100여명의 취재진이 몰린 가운데 이 전 시장은 ‘출마선언문’을 읽으며 결의를 다졌다. 홍준표·원희룡·고진화 의원 등은 12∼13일 각각 후보 등록을 한 뒤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이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朴 “아버지 시대 희생자에 죄송” 박근혜 전 대표는 ‘대국민 선언문’에서 ‘과거와의 화해’ 의지를 천명했다. 먼저 “아버지 시대에 불행한 일로 희생과 고초를 겪은 분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항상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 시절에 불행을 당한 분들께 사과를 드리는 것은 진심과 충정을 담은 말이다. 진실하게 다가갈 때 마음을 열고 화해가 이뤄질 수 있다.”고 사과했다.“산업화, 민주화 세력이 손을 잡아야 경제도 살리고 선진한국 건설도 이룰 수 있다. 국민 모두가 화합해서 하나가 되는 100%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는 이유도 댔다. 캠프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그동안에도 사과의 뜻을 내비쳐 왔지만 공개적으로 진심어린 사과의 마음을 표시한 것은 선친의 부채를 짊어진 국민 대화합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표를 의식한 정치적 제스처’라는 시각에는 “정치하면서 단 한 번도 표를 의식해서 거짓을 말하거나 거짓된 행동을 한 적이 없다.”면서 “국민들이 더 잘 아실 것”이라고 일축했다. 열린우리당 유은혜 대변인은 “진심이라면 참으로 다행스럽고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위선과 이율배반의 전형”이라고 깎아내렸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민주화를 향한 그 몸짓…20년만에 첫 정부행사로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민주화를 향한 그 몸짓…20년만에 첫 정부행사로

    6월 항쟁은 정치적으로 ‘불완전한 승리’였다. 직선제 개헌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보했지만, 군부독재 정권의 6·29선언과 타협하면서 20여년 동안 ‘위로부터의 정치민주화’에 머물렀다. 높아진 시민들의 정치 의식과 변화된 사회상을 정치가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이 점점 고착화됐다.87년 대선 당시 양김의 분열이 이같은 현상의 전초전으로 지적되고 있다. 조희연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는 이를 ‘정치 지체’라 표현했다. 민주화의 세례를 받고도 정치 발전은 더디게 진행됐다. 특히 불안정한 정당체계는 정치 지체 현상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꼽힌다. 정치권은 87년 민주화투쟁 이후 국민들의 높아진 정치의식과 사회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조 대표는 “6월 항쟁으로 형식적 정치민주주의는 완성됐지만, 민주화 이후 한국 정당체제는 권위주의 시절과 유사했다.”고 지적한 뒤 “지배세력은 교체되지 않았고, 국가보안법 등 억압적 기제도 그대로 엄존한 상태에서 사회 변화와 괴리돼 왔다.”고 분석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권위주의 시절 정당은 특정계층이나 세력을 대표하지 못한 채 사회적 기반을 갖지 못했다. 강력한 보스에 근거해 정당의 운명이 좌우됐다. 성공회대 조현연 교수는 “한국 정당은 냉전 반공주의와 성장제일주의를 중심으로 유지돼 왔다.”면서 “단지 국가 권력의 장악 여부만을 놓고 여야의 차이가 있어 왔다.”고 지적했다.6월 항쟁을 주도했던 반독재 민주화세력은 권위주의 시절의 정당 질서를 재편하지 못한 채, 사회의 다원성을 포괄하는 데도 실패했다. 노동과 평화 등 핵심 이슈를 책임지는 정당질서를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최근 범여권의 정계개편론, 유력 대선 주자의 탈당 등 취약한 정당정치는 여전하다. 정상적인 정당정치 부재는 지역주의와 ‘재야 엘리트 수혈’에 기반한 변형적인 정치 구조를 만들었다. 특히 지역주의는 민주화 이후 정당정치를 대표하는 말로 굳어졌다. 이는 민주 대 반민주, 진보 대 보수라는 정상적인 정치 경쟁을 부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조 교수는 “이념적 스펙트럼이 협소한 조건에서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이해관계를 대표하지 못할 때 정당체제는 지역대표의 성격만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지역주의는 역으로 선거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는 여러 변수를 소외시키는 요인이 됐다. 군부정권은 87년 대선에서 김영삼·김대중씨의 분열을 계기로 저항세력을 지역주의 세력으로 격하시켰다. 더 큰 문제는 국민들이 서로를 지역적 관점에서 적대시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안한 정당정치를 뒷받침한 또 다른 축은 ‘외부인사 수혈’이다. 집권세력이 지배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제도권 밖 운동진영을 흡수해 온 것을 말한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당정치가 변신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러나 수혈의 정치는 불행히도 실패했다. 보수정당을 개혁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함에도 보수적 정당체제의 틀에 묶여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8) 당시 외신기자가 본 6월 항쟁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8) 당시 외신기자가 본 6월 항쟁

    시위대와 전투 경찰의 벼랑끝 대치, 호헌철폐 구호와 최루탄으로 뒤덮였던 1987년 6월의 거리에는 언제나 푸른 눈의 기록자들이 있었다. 독재 정권에 재갈이 물렸던 국내 언론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현장을 누비며 민주화에 대한 한국 민중의 목마름을 전세계로 타전했던 외신 기자들이 그들이다.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한국을 다시 찾은 스펜서 애덤 셔먼(51) 전 UPI통신 한국지국장과 로렌스 슈크 맥도널드(53) 전 AFP통신 기자를 7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나 87년의 뜨거웠던 여름에 대해 들어봤다. 두 전직 저널리스트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가 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8∼9일 개최하는 ‘국제언론인 세미나’의 토론자로 초대됐다.87년 봄 나란히 종로구 안국동 사무실에 부임하면서 20년 지기의 정을 이어온 이들은 “인터뷰는 많이 해봤지만 인터뷰 당하기는 처음이라 떨린다.”며 말문을 열었다. ●“87년 6월은 내 생애 가장 극적인 기억” 87년 6월은 이방인들의 뇌리 속에 어떤 잔상으로 남아 있을지가 가장 궁금했다. 셔먼은 “6월23일쯤부터 이상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제2의 광주 사태가 될 것이라는 등 갖가지 소문에 뒤숭숭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하지만 29일 노태우씨가 6·29선언을 했고 군사 독재는 종식됐다. 한국인의 바람이 실현되고 자유를 얻은 그날이, 한국인뿐 아니라 내 인생에서도 가장 극적이고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맥도널드는 울산 등에서 파업 현장을 취재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경찰이 최루탄을 쏘아대며 각종 진압 장비로 압박하면 노동자들도 중장비를 동원해 맞섰다. 마치 전투를 앞두고 두 나라의 군대가 대치한 것 같았다. 중간에서 숨가쁘게 취재를 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느끼곤 했다.”고 회상했다. 군부독재가 막바지로 치닫던 당시 한국의 상황은 외신기자에게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셔먼과 맥도널드는 “정보요원(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이 한 달에 한 번씩 사무실에 들러 동정을 살피곤 했다. 그들은 늘 우리를 의심했고 어떻게든 통제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소속사의 한국인 동료들과 기자들이 시위 현장으로 안내하곤 했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학생·가정주부 등 민중의 힘 크게 작용” 6월 항쟁의 성과에 대해 두 사람은 의견을 같이했다.“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피플파워로 민주화를 이뤄냈다고 본다. 학생들은 물론 회사원, 가정주부, 상인 등 민중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고 입을 모았다. 다른 아시아의 독재정권들이 꿋꿋하게 버틴 것과 달리 한국에서 어느 정도 민주화 운동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으로 88서울올림픽을 꼽았다. 맥도널드는 “전두환(전 대통령)은 서울올림픽 유치가 자신에게 ‘왕관’을 씌워줄 거라고 생각했다(장기 집권의 든든한 견인차가 될 것이라는 의미). 하지만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올림픽을 앞두고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면서 군사 정권이 어쩔 수 없이 수용한 측면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수출지상주의 경제정책도 본의 아니게(?) 민주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셔먼은 “내수 위주의 폐쇄적인 경제정책을 유지한 필리핀 등과 달리 수출에 목숨을 건 한국의 독재자들은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美 언론의 잘못된 길을 답습하지 않길…” 두 사람이 90년대초 항공편 환승을 위해 하루 정도 머물렀던 것을 제외하면 20년 만에 다시 찾은 한국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지난 4일밤 입국해 서울 곳곳을 누비며 옛 기억을 더듬었던 셔먼과 맥도널드가 가장 놀란 점은 일본 식민지배의 잔재인 건축물들이 철거되고 도심이 ‘리빌딩’됐다는 점이다. 반면 80년대 후반 허허벌판에 가까웠던 강남이 역설적으로 일본 도쿄의 긴자처럼 변한 것 같다고 이들은 밝혔다. 기자실 통폐합 논란에 대해서는 일본에서 기자 생활을 했던 셔먼이 입을 열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기자실 시스템이 비슷하다고 알고 있다. 일본의 기자단은 경쟁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며 정부와 유착돼 있는 끔찍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맥도널드는 “정확하게 알지 못해 말하기 곤란하다.”면서도 “인터넷 매체의 발달 등에 따라 변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 사회와 언론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셔먼은 “미국의 미디어는 거대 자본에 잠식되면서 독립성을 잃어가고 있다. 자본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면서 “역동적인 민주 사회인 한국은 미국 언론이 저지른 과오를 답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맥도널드도 “저널리스트는 일체의 외부 간섭으로부터 독립된 영혼을 가져야 하며 자유를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글 사진 임일영 류지영기자 argus@seoul.co.kr ■‘6·10항쟁’ 통한 언론 반성과 역할 “6월 항쟁은 ‘정부는 언론을 장악할 수도 없고 장악하려고 시도해서도 안 된다.’는 내용의 6·29선언을 이끌어 냈습니다. 이제 언론은 6월 항쟁의 정신을 되새기고 그 부채를 갚아야 할 시점입니다.”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는 7일 언론재단·기자협회·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6·10항쟁 20주년, 언론의 반성과 역할’ 토론회에서 한국 언론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했다. 김 교수는 ‘6·10항쟁의 정신과 한국언론의 오늘과 내일’이라는 글에서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통해 언론이 진실을 찾는 모습을 보였고 이후 5공 보도지침에 대한 작은 반란이 시작됐다.”면서 “앞으로 언론은 정의 구현과 진실 추구, 인권 수호, 민주주의로 요약되는 6월 항쟁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기자협회가 지난해 8월 전국 기자 3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신뢰하는 언론사가 없다.’는 답변이 무려 45%에 달하는 등 일선 기자들조차 언론을 불신한다면 누가 언론을 신뢰하겠느냐.”면서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로 언론인을 위한 윤리강령과 보도강령 준수를 고용의 전제 조건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6·10항쟁 정신 계승을 위한 5가지 제언’을 통해 언론의 자기 반성과 다짐을 요구했다. 그는 “세월이 바뀌었지만 권력 기관이나 출입처 보도자료에만 충실하며 영웅 만들기와 신화 창조에 앞장서는 관행은 여전하다.”면서 “그런 보도 태도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 ‘육사의 혼이 빚은 지도자’로 홍보했던 5공 시대 언론이 떠올라 참담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진실 추구는 게을리하면서 호들갑만 떠는 것은 한순간 눈길을 잡을 수는 있지만 6월 항쟁 정신에는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역설했다. 그는 지난해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된 장민호씨나 2003년 송두율 교수 구속 사건에 대해 일부 언론들은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간첩’이라고 단정짓는 보도를 내보냈다고 지적하면서 “정치적 편향이나 이념 문제로 인권이 무참하게 짓밟혀 여론 재판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언론은 어떤 경우에도 인권 수호의 보루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영방송이 상업주의에 물드는 것 아니냐는 뼈아픈 충고도 있었다. 그는 “5공화국 당시 공영방송은 ‘땡전뉴스’로 시청자를 기만했고 이런 권언유착의 폐해는 국민이 떠안아야 했다.”면서 “이제는 권언유착 문제가 해소된 대신 일부 상업주의 폐해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내부감시 시스템 구축과 조직내 대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 교수는 “언론사는 홍보기관이 아니고 진실 추구를 생명으로 한다.”면서 “6월 항쟁의 이면에는 언론으로부터 진실에 목말라했던 시대적 배경이 있었던 만큼 진정한 민의의 대변자, 주장보다 사실에 충실하고 과장보다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말을 맺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소비가 올 1분기 성장 ‘견인’

    소비가 올 1분기 성장 ‘견인’

    올 1분기(1∼3월) 경제 성장의 절반은 민간 소비가 끌어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의 성장 기여율이 50%를 넘어선 것은 2년만에 처음이다. 소비를 좀 더 확실히 살리기 위해서는 소수공제자 추가소득공제 등을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6일 내놓은 ‘최근 소비 추세와 소비 활성화를 위한 정책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 소비의 1분기 경제성장 기여율은 51.7%였다. 소비 기여율이 50%를 넘어선 것은 2005년 2분기(4∼6월,53.1%)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은 줄곧 수출이 성장을 견인해왔다. 보고서는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치 상승이 소비를 끌어낸 부의 효과(wealth effect)로 보인다.”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소비를 자극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주가가 10% 오를 때 민간소비는 0.6%포인트 늘어난다. 민간 소비 증가율은 지난해 1분기(5.2%)를 정점으로 계속 떨어지다가 올 1분기(4.0%)에 1년만에 상승세로 반전했다. 보고서는 “처분 가능한 소득 증가율보다 소비지출 증가율이 더 빨라 소비 회복세가 지속될 여건은 갖춰졌다.”면서도 “가계빚 부담, 세금·연금 등 비(非)소비 지출 증가 등 걸림돌도 상존한다.”고 우려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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