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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여행 | S-트레인 타고 광주도 가고 부산도 가고

    국내여행 | S-트레인 타고 광주도 가고 부산도 가고

    오래된 철길은 굽이굽이 굴곡이 많고 속도도 느려 찾는 사람이 드물었다.이제 사람들은 그 느린 속도와 평화로운 풍경을 먼저 찾아 나선다.경전선을 타고 전라도 광주에서 경상도 부산까지, 남쪽 고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S-트레인에 올랐다.경전선의 새로운 발견우리나라 남도의 끝과 끝을 이으면 경전선의 길이 된다. 영남과 호남 사이에서 한때 수많은 사람을 실어 날랐지만 점점 그 이용률이 떨어져 중간의 수많은 역들이 사라졌고 운행일정도 느슨해졌다.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멀어지는가 했는데, 섣부른 생각이었다. 새 옷을 입고 단장을 마친 S-트레인이 경전선의 새 출발을 알렸기 때문이다. 지난 9월27일 첫 운행을 시작한 S-트레인은 부산에서 여수엑스포(250.7km), 광주에서 마산(212.1km)을 잇는 두 코스로 달린다. 하루 한 번씩 호남과 영남을 왕복하는 기차는 구불구불한 남South도의 해안 모습과 바다Sea, 느림Slow의 뜻을 가지고 S-트레인이라 이름 붙여졌다.동백꽃 가득 핀 S-트레인기차 앞머리는 거북선의 모양을 본땄고, 내부는 남도를 상징하는 동백꽃과 학, 쪽빛 문양으로 가득하다. 기차에 들어서자마자 빨강과 초록, 파랑의 강렬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자리잡는다. 다소 화려한 색감의 내부는 디자인 각각에 의미를 담고 있다. 한옥의 서까래 이미지를 옮긴 천장이나 섬진강 조약돌 이미지를 옮긴 바닥, 전통 교자상으로 만들어진 카페실의 테이블 등 구석구석 눈여겨볼 것들이 많다.S-트레인은 힐링실, 가족실, 카페실, 다례실, 이벤트실 등 기능에 따라 총 5개 구역으로 나뉘어진다. 다례실에서는 전통차를 내리는 다도법을 시연하고 시음도 할 수 있는 이벤트가 열린다. 제대로 우려낸 보성 녹차의 맛은 깊이부터 남다르다. 이벤트실에서는 마치 깜짝선물처럼 공연이 열린다. 통기타연주, 오카리나연주, 판소리, 마술 등의 공연은 여행시간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지역 예총에서 재능기부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규 일정이 짜여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정규 프로그램도 다채롭게 만들어 나갈 예정이라고.남도를 진하게 느끼는 방법S-트레인과 연계된 여행 프로그램은 좀더 깊이 있는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트레킹, 레일바이크, 관광지 등 역별로 즐길 수 있는 19개 코스를 코레일 홈페이지(www.korail.com)에서 소개하고 있다.무엇보다 여행에서 먹거리가 빠질 수 없는 법. 특히 음식으로 유명한 남도지방을 여행할 때는 더욱 그렇다. 지역별 대표적인 먹거리를 중심으로 검증된 맛집 46곳을 확인하면 실패 없는 미식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긴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31곳의 우수 숙박업소를 참고하면 된다.게다가 카셰어링 서비스를 이용하면 더 자유롭고 편리하게 일정을 짤 수 있다. 부산, 광주, 순천, 하동, 보성, 진주, 마산, 광주송정, 창원중앙, 득량 등 10개 역에서 카셰어링을 이용할 수 있는데 총 32대가 운영되고 있다. 대여료는 1시간에 6,000원(연료비 190원/km 별도)으로 저렴하다. 멈춰가자 남도 구석구석S-트레인의 정차역은 이름만으로도딱 떠오르는 이미지를 가진 곳이 많다.그만큼 관광지도 매력적이다.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남도 구석구석을 살펴보자. 벌교역‘꼬막’ 하면 떠오르는 그곳, 벌교. 손꼽아 주는 남도 음식에 쫄깃쫄깃하고 탱탱한 벌교꼬막을 곁들이면 이보다 더 맛있는 게 있을까. 5일장이 서는 날에는 울긋불긋 파라솔을 친 전통시장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보성역한국 차 생산의 40%를 담당하고 있는 보성. 초록의 차밭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은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놀랍도록 아름다운 풍경 31선’에 들기도 했다. 매년 5월에는 보성녹차대축제가 열리니 시기를 맞춰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순천역바람에 누웠다 일어나는 갈대숲의 소리를 들어 보자. 때묻지 않은 순천만의 풍경은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을 때 소화제가 된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낙안읍성 등 즐길거리가 많은 것도 특징.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즐긴다면 더욱 좋은 장소다.득량역1970년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 온 듯한 역 앞의 풍경은 추억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낭만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디자인프로젝트로 특색을 입게 된 이곳은 그 시절의 학교, 문방구, 이발소 등으로 꾸며졌다.북천역하루 이용객이 10명도 채 되지 않아 폐쇄될 뻔했던 북천역은 그곳만의 비밀병기로 폐쇄 위기를 극복했다. 바로 역 주변에 지천으로 펼쳐진 코스모스. 가을이면 새파란 하늘에 형형한 코스모스의 빛깔들이 눈을 부시게 한다고.창원중앙역진해군항제, 주남저수지, 해양박물관, 팔용상돌탑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창원. 특히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주남저수지에서는 때가 되면 찾아드는 수많은 철새들이 만들어내는 우아한 날개짓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 연꽃단지, 코스모스길 등이 꾸며져 있어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부산역부산의 매력이야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부산역에서 나와 길만 건너도 유서 깊은 중국요리를 맛볼 수 있는 차이나타운, 시원한 밀면집, 유명한 초량동 돼지갈비, 산책하기 좋은 초량동 이바구길 등의 숨은 명소가 지천이다.☞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S-트레인을 이용하는 똑똑한 방법 뚜벅이 여행보단 자전거 여행 조용하고 한적한 남도의 작은 마을들은 자전거를 타고 곳곳을 둘러볼 때 그곳만의 진한 향기를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기차여행에 자전거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S-트레인에는 10개의 자전거 거치대가 설치돼 있다는 사실. 척 걸어놓기만 하면 되니 이 기회에 자전거를 여행 친구로 만들어 보자. 카셰어링이 대세 자동차로 이동하는 편리함을 누가 싫어할까? S-트레인 정차역 10곳에서 이용할 수 있는 카셰어링 서비스는 특별히 더 머물고 싶은 정차역이 있을 때 더욱 유용하다. 정차역 주변의 관광지를 미리 알아두는 센스를 발휘한다면 구석구석 알뜰하게 돌아볼 수 있다. 표시된 곳에서 가능하다. 별표 세 개 S-트레인 패스 중부권에 사는 사람들 혹은 중부권 여행도 함께하고 싶은 여행자라면 S-트레인패스를 기억하자. 호남선, 전라선(익산 하행역부터 이용 가능), 경부선(동대구 하행역부터 이용 가능)과 연계된 일반열차(KTX 제외)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 또한 숙박, 관광지 입장, 렌터카 등에서 할인도 받을 수 있다. 성인 기준 1일권 4만8,000원, 2일권 6만3,800원. 글 차민경 기자 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코레일 www.korail.com 지금 트래비 이벤트에 참여하시면 S-트레인 탑승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응모는 11월 15일까지>>
  • [중국통신] 비키니 입고 영화보러 온 젊은 여성들 왜?

    [중국통신] 비키니 입고 영화보러 온 젊은 여성들 왜?

    1년에 한번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을 맞아 대형 영화관에서 이색 이벤트를 벌여 화제가 되고 있다. 진양왕(金羊網) 등의 14일 보도에 따르면 음력 7월 7일이었던 지난 13일, 중국 저장(浙江)성 취저우(衢州)시의 한 영화관에서 비키니를 입은 여성에게 영화 무료관람권을 주는 이벤트를 열었다. 다소 민망할 것 같은 이벤트였지만 이 날 하루 영화관은 각양각색의 비키니를 입은 여성 고객들로 붐볐고 이벤트는 성황리에 끝이 났다. 한편 영화관의 이벤트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일부는 “참신한 이벤트”, “재미있다. 나도 갈걸”하며 환영하는 입장인 반면 또다른 누리꾼들은 “성을 상품화한 악덕 상술”, “칠석과 비키니가 무슨 관계냐”며 질타의 목소리를 냈다. 중국통신원 홍진형 agatha_hong@aol.com
  • ‘부대 재배치’ 연예병사 명단은

    ‘부대 재배치’ 연예병사 명단은

    국방부가 18일 연예병사 제도를 전격 폐지하기로 하면서 현재 연예병사로 복무 중인 이들의 거취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국방홍보원에 따르면 최근 가수 비(정지훈)가 전역하면서 현재 국방홍보지원대원은 모두 15명이다. 가수 세븐(최동욱), 상추(이상철), 이석훈, 이특(박정수), 견우(이지훈), 정준일, 김경현, KCM(강창모), 이혁기와 뮤지컬 배우 김호영, 배우 류상욱, 김무열, 이준혁, 최재환, 개그맨 김민수 등이다. 국방부는 연예병사 제도 폐지와 함께 기존 연예병사 15명 전원을 다음달 1일부터 복무부대를 재분류해 배치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남은 복무기간이 3개월 이내인 3명은 국방부 근무지원단에 잔류시켜 일반 병사와 동일하게 근무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들 가운데 복무기간이 3개월 이내인 병사들은 KCM, 김경현, 정준일 등 3명이다. 이들은 국방부 근무지원단에서 일반 보직을 받아 근무하게 된다. 나머지 12명은 중 징계대상자가 아닌 6명은 다음달 1일부로 복무부대를 재분류해 배치하고, 징계대상 6명은 징계절차가 끝난 후 야전부대로 배치된다. 군 관계자는 “복무기간이 3개월 이상 남은 12명은 전원 강원도인 1군사령부와 경기도인 3군사령부로 재배치될 예정”이라며 “야전부대에 배치되면 일반 현역 병사들과 똑같이 생활하고 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지현우, 연예병사도 아닌데 왜 갑자기…

    지현우, 연예병사도 아닌데 왜 갑자기…

    국방부가 18일 연예병사 제도를 전격 폐지하기로 발표한 가운데 연예병사가 아닌 일반 사병 출신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는 배우 지현우가 덩달아 화제가 되고 있다. 지현우는 지난해 8월 춘천 102 보충대를 통해 현역으로 입대했다. 하지만 지난 1월 군 뮤지컬 ‘더 프라미스’에 가수 이특(본명 박정수), 배우 김무열 등과 함께 출연하면서 연예병사가 아니냐는 착각을 일으켰다. 하지만 지현우는 현재 일반 사병으로 뮤지컬 출연은 ‘파견 근무’ 형식으로 이뤄졌다. 지현우는 지난 2월 뮤지컬 홍보차 YTN에 출연, “일반 사병으로 지내면서 군악대와 국방홍보원에 대해 생각해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국방부는 연예병사를 폐지하고 현재 소속 중인 인원 전원을 재배치하겠다고 밝혔다. 국방홍보원에 따르면 최근 가수 비(정지훈)가 전역하면서 현재 국방홍보지원대에는 가수 세븐(최동욱), 상추(이상철), 이석훈, 이특(박정수), 견우(이지훈), 정준일, 김경현, KCM(강창모), 이혁기와 뮤지컬 배우 김호영, 배우 류상욱, 김무열, 이준혁, 최재환, 개그맨 김민수 등 15명이 소속돼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븐 팬카페 “강퇴설 사실 아니야”

    세븐 팬카페 “강퇴설 사실 아니야”

    지난 21일 위문열차 공연 뒤 안마시술소를 들러 물의를 일으킨 가수 세븐(본명 최동욱)이 자신의 펜카페에서 강퇴를 당했다는 소문에 대해 운영진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세븐의 팬카페 운영진은 게시판에 “항간에 떠도는 세븐 강퇴설은 사실이 아니며 일부 팬들끼리 대화하다 나온 해프닝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자세한 사항은 금일 내부회의 후 공식입장을 밝히는 형태로 하겠다”면서 “이번 일에 유감을 표하며 팬카페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사절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25일 방송된 SBS ‘현장21’에서는 연예병사의 군생활 실태가 공개됐다. 취재진은 연예병사들은 위문공연 후 군부대 내 시설이 아닌 모텔에 머물고 밤 늦게까지 회식을 즐기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또 일부 연예병사들이 밤늦게 숙소를 이탈해 개인행동을 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특히 세븐과 가수 상추(본명 이상철)은 취재진과 몸싸움을 벌이고 카메라를 파손하기도 했다. 방송 직후 온라인에서는 세븐과 상추는 물론 회식을 함께 한 가수 비(본명 정지훈), KCM(본명 강창모), 김경현, 견우(본명 이지훈)등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반면 탤런트 최필립(본명 최필순)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딴 사생활 캐서 어쩌자는 거지? 미친 XX들”이라는 글을 올렸다가 “방송을 시청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솔하게 글을 올렸다”고 사과했다. 국방부는 이날 연예병사 운영 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특별감사를 한 뒤 잘못이 드러나면 폐지까지 포함하는 고강도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관련 보고를 받은 뒤 격한 감정을 나타내며 고강도 특별감사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가수 출신 연예병사들 복무중 안마시술소

    가수 출신 연예 병사가 복무 중 심야에 안마시술소를 출입해 충격을 주고 있다. SBS ‘현장 21’은 25일 연예 병사의 군 복무 실태를 담은 ‘연예 병사들의 화려한 외출’ 편을 방송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지난 21일 춘천시 수변공원에서 열린 ‘위문열차’ 공연에 참여한 연예 병사들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날 공연에는 가수 견우와 세븐, 상추, KCM 등이 참여했다. 공연을 마치고 숙소인 춘천시내 모텔로 간 이들은 밤 10시쯤 사복 차림으로 숙소를 나와 식당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가장 크게 문제가 된 부분은 가수 출신 연예 병사 두 명이 심야에 마사지 업소를 찾아간 장면이었다. 오전 2시 30분 숙소를 나온 이들은 안마시술소에 갔다 10여분 뒤 다시 나왔고, 택시를 타고 또 다른 안마시술소를 찾아갔다. 30분 뒤 안마시술소를 나오는 이들에게 제작진이 접근하자 이 중 한 명은 제작진의 팔을 꺾고 마이크를 뺏으려 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제작진의 해명 요청에 “술은 한 잔도 안 마셨다”며 “맹세코 불법을 한…”이라고 말하다 말끝을 흐렸다. 방송에서 국방홍보원 관계자는 “죄송하다”며 당사자가 안마시술소를 간 것은 치료 목적이었다고 해명했다. 방송이 나간 후 인터넷은 해당 연예 병사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들을 질타하는 목소리로 들끓었다. ‘일반 병사는 잠도 못 자고 근무 서는데 쟤들은 사복에 술에 안마방까지 너무한다’, ‘법적 처벌해야 한다’, ‘연예 병사를 왜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등의 의견이 잇따랐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감사실에서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면서 “관련 규정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연예 병사의 과도한 특혜는 지난해 말 가수 비가 공무 외출 중 연인 김태희를 만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비는 이후 근신 기간을 가졌고, 국방부는 지난 1월 말 홍보지원대 특별관리지침을 마련해 연예 사병을 엄격하게 관리하기로 약속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안마방 파문에 ‘말년’ 비까지…

    안마방 파문에 ‘말년’ 비까지…

    지난 1월 군 복무 중 특혜 논란으로 구설에 올랐던 가수 비(본명 정지훈)이 전역을 2주 앞두고 또 논란에 휩싸였다. SBS ‘현장 21’은 25일 연예 병사들의 복무 기강 태만 실태를 보도했다. 취재진이 포착한 영상에서 연예병사들은 위문 공연을 마친 뒤 사복을 입고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특히 가수 세븐(본명 최동욱)과 상추(본명 이상철)는 안마시술소에 들어기도 했다. 이날 논란이 되고 있는 연예 병사들 비와 세븐 상추를 비롯해 가수 김경현과 KCM(본명 강창모), 견우(본명 이지훈) 등이다. 특히 비는 지난 1월 배우 김태희와 열애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혜 논란을 일으켰었다. 비는 부대에 복귀하기 전 김태희를 만나는가 하면 외출 중 복장 규정을 지키지 않아 7일간 근신 조치를 받았다. 이번에는 안마시술소에 간 장본인은 아니었지만 밤늦게까지 후임병들과 술을 마시는가 하면 안마시술소에 가는 것을 묵인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재입대까지 거론하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비는 다음달 10일 전역을 앞두고 있는 ‘말년 병장’이다. 논란이 거세지자 국방부는 해당 연예병사들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의 유흥업소 출입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관련 법규에 따라 처리할 전망이다. 맹수열 기자 guns@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소리인생 75년…‘배뱅이굿’ 무형문화재 이은관 옹

    [김문이 만난사람] 소리인생 75년…‘배뱅이굿’ 무형문화재 이은관 옹

    거침이 없다. 결코 쉬는 일도 없다. 남성의 바리톤 같은 저음에서 여성의 소프라노 목소리까지 시공을 뛰어넘으며 우리 가락을 잘도 버무려 낸다. 때로는 웃음과 슬픔, 때로는 깊은 곳에 묻혀진 회한을 꺼내 달래고 어루만진다. 희로애락, 그 가슴을 후벼파고 쥐어짜기도 한다. 95살, 5년 후에는 100살이 된다. 서도소리 명인 이은관(중요무형문화재 29호)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배뱅이굿’을 가장 잘 부른다. 현재까지 ‘배뱅이굿’에 관한 한 그를 따를 자가 없는 명창이다. 그 나이에도 여전히 제자를 가르치고 매달 4~5회씩 공연을 하는 등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27일 서울 서대문 주변에 위치한 ‘이은관 민요교실’을 찾았다. 이 선생은 제자 전옥희(배뱅이굿 이수자)씨와 함께 앉아 다음 공연에 대해 얘기하다가 “내가 다리가 조금 불편해서 일어서지 못해 미안하다.”며 앉은 채로 반긴다. 빨간 티셔츠에 짙은 회색 상의 차림이어서 그런지 한복을 입었을 때보다 훨씬 더 젊어 보였다. “오늘은 한복을 집에 두고 왔으니 뭐 어때. 이런 모습도 좋지 않아요?”라며 사진 촬영에 응했다. 대신 장구를 잡더니 공연 때 하는 것처럼 배뱅이굿 중 한토막을 즉석에서 흥겹게 읊어댄다. “옛날 서울 장안에 이 정승 김 정승 최 정승 삼 정승이 재산은 많으나 아들 딸이 없어서 명산 대찰에 불공을 드려서 아들 딸 좀 낳아 보겠다고 삼 부인 삼 정승이 명산 대찰을 찾아가는데 삼 부인이 그냥 매일같이 아들 딸 낳게 해 달라고 빌고 정성을 드렸더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삼 부인이 아마 그달부터 뱃속에 뭐 하나씩 생겼던가 봐요. 하루는 말이요. 삼 부인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서 꿈 야기판이 벌어졌어요. 제일 먼저 이 정승 부인께서 한마디 해보이는데 아이고 난 저번에 꿈을 꾸었는데 그저 꿈에 하얀 백발 노인이 머리달비 한쌍을 주길래 그 달비 받아서 치마폭에다 배배 틀어연 꿈을 꾸었는데 어찌 그런지 요즘은 그저 머리가 자끈자끈 아픈게 그저 시큼털털한 개살구나 한 그릇 먹었으면 좋겠어~” 이 선생은 “이제 그만 됐습니다.”라고 할 때까지 한 호흡도 쉬지 않고 계속 이어나간다. 100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도대체 그런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하여 건강에 대한 얘기부터 나왔다. 이 선생의 웃음은 여전히 어린아이의 웃음처럼 해맑고 환하다. 그 자체만 해도 건강 유지 방법 중 하나이다. “나 말이오? 건강하죠. 그러니까 이때까장 노래부르잖아요. 전화 목소리는 잘 안들리고 가끔 다리가 아파서 걷는 것을 조심하고 있어요.” 병원에 입원한 적은 한번도 없으며 다만 건강검진을 위해 3일 정도 입원한 적이 있다고 옆에 있던 제자가 거들었다. 그렇다면 75년의 소리인생을 살아오면서 지금도 무대를 휘어잡는 진짜 건강비결은 무엇일까. “나는 말이에요. 생활이 규칙적이죠. 식사를 하루에 다섯 번 해요. 먹고 싶을 때 조금씩 다섯 번을 먹는 습관이 있어요. 소식이지요. 하루 세 끼가 아니라 다섯 끼이기 때문에 혼자서 해먹지요. 기본 반찬은 며느리가 갖다 주는데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동네 슈퍼에 가서 미리 사놨다가 혼자 요리를 해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선생의 자택은 서울 황학동이다. 사업을 하는 아들 부부가 2층에서 살고 이 선생은 아래층에 혼자 산다. 주로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원래 고기를 좋아해요. 소고기도 좋아하는데 돼지고기 사다가 김치에다 라면을 넣고 끓여 먹으면 아주 맛있어요. 그래저래 고기는 한 달에 20일 이상 먹는 편이지. 소식으로 여러 번 먹고, 또 고기를 자주 먹는 그런 습관이 30년이 넘었어요. 요즘에는 잠을 잘 자요. 낮이건 밤이건 자고 싶을 때 1시간이나 3시간씩 여러 번 잠을 자요. 밤에 자다가 일어나 출출하면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도 해 먹고 다시 자고 아주 편해요. 잠이 안 오면 악보 그리고 작사하고, 심심할 시간이 전혀 없어요(웃음).” 그는 지금도 작사 작곡을 한다. 세상에 드러내놓지 않는 자작곡(신민요와 민속민요)만 100여편에 이른다. 또 색소폰, 전자오르간, 아코디언 등 서양악기는 물론이고 피리, 가야금 등 대부분의 국악기도 다룬다. 이 선생의 말대로 ‘심심할 틈’이 도저히 없다. 올해는 어떤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까. 이 선생은 “나는 잘 몰라요. 우리 제자한테 물어보세요.”라고 대답한다. 옆에 있던 제자 전씨가 얼른 얘기한다. “10월 9일 소월아트홀(서울 행당동)에서 공연이 있어요. 제자들과 함께하는 무대이지요. 그리고 10월 16일 밀양에서 있고, 연말까지 10회 정도 공연을 할 예정입니다. 선생님(이은관)의 열정은 정말 대단해요. 지금도 한 달에 큰 행사만 2~3회 정도 합니다.” 화제를 옛날 얘기로 돌렸다. 어떻게 소리를 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이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신불출(만담가이자 연극인)의 ‘대머리 영감’이나 ‘엉터리’, ‘견우직녀’, ‘홍길동’ 같은 ‘유성기’를 동네 사랑방에서 어른들과 함께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농부였던 부친이 노래를 잘 불렀다고 회고한다. “아버님 따라 밭에도 가고 산에도 갔지요. 그때마다 아버님이 ‘나무하러 가세 나무하러 가세, 상상 마루에 올라가세’ 하는 산타령을 지게 작대기로 장단을 맞추면서 아주 잘 불렀어요. 내가 그걸 따라 부를 때마다 흥이 납디다. 아마 내 노래 소질은 아버님을 닮은 것 같아요.” 초등학교 시절 배운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라는 창가,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 등의 동요를 불러 학예회에서 우등상을 받기도 했다. 17살 때 강원도 철원극장에서 콩쿠르가 열렸다. 주위의 권유에 못이겨 출전해 ‘창부타령’과 ‘사설난봉가’를 불러 일등상을 받았다. “그때 상을 받는 바람에 얼씨구나 하고 좋아했지요. 이젠 노래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갔어요. 왜냐하면 서울에는 방송국도 있고, 서울에 가면 출세하는 줄 알았지요. 결국 어떻게 해서 경성방송국에 출연했어요. 그게 소문이 나서 더욱 우쭐했지 뭡니까. 고향에 다시 갔더니 여기저기에서 노래를 불러 달라고 요청하더군요.” 하지만 그는 노래실력을 탐탁잖게 생각했다. 수소문 끝에 황해도 황주에 있는 이인수 명창에게 찾아가 배뱅이굿과 서도소리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그는 “3개월 동안 스승님 집에서 먹고 자고 하며 노래를 배웠는데 아주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셨다.”면서 “재담이 아주 길고 다양하셨다.”고 술회한다. 이후 이 선생은 서울로 다시 와 조선가무단에서 유랑극단 생활을 했다. 이때 특유의 높고 고운 소리의 구성진 창법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1957년 양주남 감독의 영화 ‘배뱅이굿’에 출연해 배뱅이굿 1인자라는 얘기를 들었다. 원래 배뱅이굿은 굿이 아니라고 이 선생은 강조한다. 남도의 판소리처럼 소리꾼이 장구 반주에 맞춰 배뱅이 이야기를 서도소리로 풀어내는 1인 창극이라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탁발 나온 상좌중과 사랑에 빠진 정승의 딸 배뱅이가 상사병을 앓다 죽자 부모가 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팔도에서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데 건달 청년이 거짓 무당 행세로 횡재한다는 줄거리다. ‘배뱅이굿’은 경쾌하고 장조가 많은 특징이 있으며 이 선생이 이런 장단을 처음으로 정립했다.1984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는 슬하에 6남매를 두었다. 16살 차이 나는 맏딸만 먼저 세상을 떠났다. 가족 얘기가 나오자 잠시 눈시울이 붉어진다. “소학교 시절이었지요. 하루는 부모님이 결혼하라고 해서 선을 보러 말타고 20리를 갔습니다. 얼굴도 제대로 못봤는데 방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신부 목소리가 아주 곱더군요. 아이 셋 낳고 먼저 갔습니다. 내가 자식들 공부를 제대로 못 시켰어요. 그게 한이 됐지요. 출세하려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고 나중에 돈이 생기니까 ‘공부값’으로 자식들한데 얼마씩 주었습니다.” 그는 가족들과 매년 초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난다. 증손자까지 모두 20여명이라며 웃는다. 다복하지 않으냐는 표정이다. 인간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꿈이 있기 마련이다. “5년만 있으면 100살입니다. 남은 인생 잘 마무리해야지요. 뒤돌아보면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고 먼저 세상을 떠난 처가 생각납니다. 내가 제자를 많이 받아들이는 것도 그런 한이 있어서 그래요. 정신이 또렷할 때까지 열심히 가르치고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제자를 키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민속악도 그냥 소리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악보를 보고 쓸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일어섰더니 “추석 잘 보내시고 일어나지 못해 미안해요.”라며 파안대소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이은관 옹은 고교시절 마을 콩쿠르서 1등 후 소리공부…‘배뱅이굿’은 이인수 명창에게 배워 1917년 11월 27일 강원도 이천에서 8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나온 뒤 철원고등학교 시절 마을 콩쿠르대회에 나가 ‘창부타령’과 ‘사설난봉가’를 불러 1등을 차지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과 황해도를 오가며 본격적인 소리공부를 했다. 14살 때 4살 연상과 결혼했지만 떠돌이생활로 소리인생을 시작했다. ‘배뱅이굿’과 ‘서도명창’은 황해도 황주에서 스승 이인수 명창에게 배웠다. 1957년 양주남 감독의 영화 ‘배뱅이굿’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1984년 배뱅이굿으로 중요무형문화재 29호로 지정받았다. 2002년 제9회 방일영국악상, 1990년 보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지금도 한 달 평균 큰 행사만 2~3회를 치를 만큼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슬하에 6남매를 두었으며 서울 황학동에서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다.
  • [김문이 만난사람] 별과 함께 30년… ‘별박사’ 이태형

    [김문이 만난사람] 별과 함께 30년… ‘별박사’ 이태형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노랫말이든, 시나 소설이든 사랑을 표현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를 꼽는다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겠다. 추억과 사랑, 행복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그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거야.’라고 했고,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라고 읊었다. 우리나라에서 1년 중 하늘이 가장 청명한 계절은 가을이다. 그만큼 별이 잘 보이고, 또 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 맑게 갠 가을 저녁 잠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이라는 노랫말이 흘러나오면서 누구나 시인이 되고 우주 탐험가가 된다. 특히 영화나 만화에 자주 등장했던 ‘안드로메다 은하’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은하철도 999’를 타고 즐겁게 우주 여행을 하는 상상을 할 수 있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어떻게 하면 가장 즐겁게 별과 만날 수 있을까. ‘별박사’로 소문난 이태형(49)씨. 그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몇 가지 있다. 대학 때부터 별이 좋아 별을 쫓아다니다가 1989년 국내 처음 별자리 여행 안내서인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을 펴내 베스트셀러(30만부) 작가가 됐다. 또한 1998년 한국인 최초로 ‘통일’이라는 우리말 이름의 소행성을 발견해 화제가 됐다. 아울러 1999년 국내 최초로 시민천문대(영월, 대전, 김해 등)의 기획과 기본 설계를 맡아 과학기술부 선정 ‘신지식인’으로 뽑혔다. 요즘에도 또 하나의 최초를 만들어내고 있다. 200자 원고지 1800쪽 분량의 책 ‘생활천문학’ 발간을 앞두고 있는 것. ‘생활천문학’은 그가 맨 처음 개척한 분야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는 11년째 충남대 겸임교수로 있으면서 국내 유일의 ‘생활천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그는 백령도, 독도, 백두산과 한라산 등 국내는 물론 극지방의 오로라, 킬리만자로의 밤하늘 등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별을 관찰해 오고 있다. 이쯤 되면 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별따라 30년’인 셈이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이씨를 만났다. 먼저 ‘생활천문학’에 대한 얘기부터 나왔다. “대개 ‘천문학’이라고 하면 어렵게 생각하잖아요. ‘생활천문학’은 딱딱한 물리나 수학 없이 생활과 근접시켜 하늘과 우주를 이해해 보자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하늘이 왜 파란색을 띠는지, 별은 수소이기 때문에 스스로 탄다고 해서 스타(star)라는 것, 블랙홀은 뚱뚱한 돼지의 시체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달을 보고 시간을 계산하는 방법 등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가 ‘생활천문학자’로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설명이 다시 이어진다. “밤하늘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의 질문에 좋은 부모가 되려면 귀찮다고 아무렇게나 대답하면 안 됩니다. 부모와 함께 시골에 놀러 가면 아이들이 별을 보고 ‘별이 몇개나 돼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있지요. 그러면 부모들은 ‘아주 많아’라고 대충 넘어가려 합니다. 궁금한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럴 땐 이렇게 대답해 줘야 좋습니다. ‘아빠도 세어 본 적이 없는데 우리 같이 세어볼까’라고 한 뒤 같이 누워서 별을 세어 보는 것입니다. 육안으로 셀 수 있는 반짝이는 별은 1000개가 넘지 않습니다. 그런 다음 별자리를 알고 또 별자리 지도를 그려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지요. ‘생활천문학’의 출발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다음 단계로 달이 지구의 자전을 일정하게 방해하기 때문에 하루 24시간이 유지되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음력의 시간이 정해지는 과정을 알면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가을철 별자리는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하잖아요. 별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하늘 높은 곳에 살찐 말의 별자리가 있는 계절’로 번역됩니다. 가을 밤 하늘의 중앙 높은 곳에는 살찐 말의 별자리가 늠름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든요. 그 주인공이 바로 천마 페가수스입니다. 말이 있으면 백마탄 왕자와 공주가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페르세우스 왕자와 안드로메다 공주 두 별자리가 페가수스 자리 바로 앞에 나와 있습니다.” 이를 알면 나머지 별자리는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공주와 왕자가 결혼한 뒤 맑게 갠 어느 날 사랑하는 천마 페가수스를 타고 바닷가로 놀러 간 모습을 떠올리면, 어렵지 않게 남쪽 바다에 물병자리, 물고기 자리, 고래 자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여름에는 견우와 직녀성이 별자리 여행의 중심축이라면 가을에는 페가수스 자리를 찾으면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다고 이씨는 강조한다. 아울러 추수 때가 되면 풍성한 수확의 계절을 알리는 것처럼, 은하수 역시 우리의 머리 위에서 가장 풍성하게 자리한 것을 관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화제를 바꿨다. 천왕성을 발견한 사람이 별에 관심이 많은 오르간 연주자였던 사실을 상기하면서 ‘통일’이란 소행성을 발견하게 된 과정을 물었다. 우주에는 행성보다 작은 소행성이 무수히 많으며 지금까지 명명된 것만 6000여개에 이른다. “1998년 9월이었지요. 날씨가 너무 좋아 얼른 비무장지대 인근의 경기도 연천으로 달려갔습니다. 조용한 시골일수록 별이 더 밝게 보이거든요. 그날 따라 유난히 반짝거리는 별 2~3개를 보게 됐습니다. 못 보던 별이었지요. 이튿날 밤 같은 시간에 다시 그곳으로 가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며칠 후 대전에서도 똑같은 별을 발견한 뒤 자신감을 얻어 국제천문연맹(IAU)을 통해 고유번호를 받았고 나중에 ‘통일’이라는 명칭을 붙이게 됐지요.” 이전에 일본인 천문가들에 의해 발견된 ‘세종’, ‘관륵’ 등의 한국명 소행성이 있었지만 한국인이 최초로 발견한 소행성은 ‘통일’이 처음이었다. ‘통일’로 명명한 이유에 대해 그는 “휴전선 부근에서 발견한 것도 있지만 별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생각은 똑같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천문연구원들에 의해 ‘보현산’, ‘최무선’, ‘이천’, ‘장영실’, ‘이순지’ 등의 소행성을 잇따라 발견하게 됐다. 이씨는 어떻게 별과 인연을 맺었을까.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랄 때에는 항상 많은 별을 봤기 때문에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생활을 하면서 밤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자 별의 소중함을 깨닫고 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대학 2학년 때 ‘별보는 동아리’에 가입한 뒤 한 달에 한 번씩 시골에 가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밤을 새웠다. 이런 과정을 대학노트에 깨알같이 적어 놨다가 책을 펴낸 것이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이었고 뜻하지 않게 베스트셀러가 돼 유명해졌다. 원래 그는 대학 때 화학을 전공했고 도시행정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하지만 별의 대중화에 앞장서기 위해 박사과정은 전공을 바꿔 천문학을 공부했다. “요즘 성폭행이며 묻지마 범죄 같은 각종 사건이 생기고 있잖아요. 그런데 천문대 주변에서 사건이 생겼다는 얘기는 못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것은 별을 바라보는 천문대에는 정서적으로 꿈과 낭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별을 보게 하고 별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고 분명 더 좋은 꿈을 이룰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별 이야기만큼 세대를 뛰어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사람은 별의 부스러기’라고 표현했다. 별에서 뻥 터져나온 물질이 지구가 됐고 인간은 그런 지구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별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아무리 ‘웬수 같은’ 사람이라도 본질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또한 별은 자신에게 변치 않는 믿음이요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언제 어디에 가든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연구소를 나서면서 ‘어린 왕자’의 대목이 새삼 떠올랐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이태형 박사는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 베스트셀러 저자… 시민천문대 기획 신지식인에 1964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화학과에 입학한 뒤 동아리 ‘아마추어 천문학회’에 가입해 과학캠프에서 초등학생을 상대로 별에 대해 상담을 해주었다. 대학 3학년 때에는 ‘전국 대학생 아마추어천문회’ 회장을 맡아 여러 행사를 주도했다. 대학 졸업 후 동대학 환경대학원에서 도시행정을 전공했고 경희대 우주과학과에서 천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8년 한국인 최초로 소행성 ‘통일’을 발견했으며 1999년 국내 처음으로 시민천문대(영월, 대전, 김해)를 기획해 과학기술부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사단법인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장(2001~2005)과 대전시민천문대장(2001)을 지냈다. 과학기술부 차세대 교과서 집필위원(고등학교 지구과학, 2004~2006), 교육과학기술부 교육과정 심의위원(지구과학, 2005~2008) 등을 지냈다. 지난해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월하정인 제작일자를 고증했으며 지금은 천문우주기획 대표이사, 충남대학교 천문우주과학과 겸임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1989, 김영사), ‘별밤 365일’(1990, 현암사), ‘쉽게 찾는 우리 별자리’(1993, 현암사), ‘YTN 사이언스플러스 어린이우주백과 10권’(2005, 리틀어문각), ‘별난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주견문록’(2009, 사이언스주니어) 등이 있다.
  • 견우·직녀 만남 가까이서 보세요

    노원구가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씩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애틋한 전설을 간직한 칠석을 맞아 가족과 연인들을 위한 특별한 행사를 마련한다. 노원구는 24일 오후 7시 30분부터 중계동에 위치한 서울시민천문대에서 가족과 연인 50명이 참여하는 ‘칠월칠석, 별과 함께하는 음악회’를 열기로 했다. 50석 규모 천체 투영실에서 천장에 설치된 직경 9m의 반구형 스크린을 통해 견우성과 직녀성을 관찰하는 것을 비롯해 견우와 직녀를 소재로 한 시 낭송, 동화구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21:00~21:05’ 22일은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남산타워 등 63만곳 소등 행사

    22일 오후 9시부터 5분간 서울 시내 전역에 불이 꺼진다. 서울시는 ‘제9회 에너지의 날’을 맞아 공공시설, 일반 가정집, 업무용 빌딩 등 총 63만 곳이 소등 행사에 동참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고 20일 밝혔다. 이에 따라 남산타워, 코엑스, 63빌딩 등 서울의 랜드마크와 시내 상가 건물들이 경제활동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간판과 경관 조명을 끄기로 했다. 자치구별로는 종로 무악현대아파트 등 시범아파트는 30분간, 세종로 좌우측 건물·상가 등 시범가로는 5분간 조명을 끈다. 시범아파트와 시범가로에는 시·자치구 직원들이 지도 점검을 나가 소등 상태를 점검할 방침이다. 더불어 시는 에너지 사용 피크 시간대인 오후 2시부터 20분간은 에어컨 끄기를, 그 이후 1시간 동안은 에어컨 설정 온도 2도 올리기 행사를 진행한다. 에너지의 날 행사는 2003년 8월 22일 에너지 소비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을 계기로 에너지시민연대가 이날을 에너지의 날로 정하면서 시작됐다. 에너지시민연대, 지식경제부, 서울시가 협력해 행사를 개최한다. 올해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서울광장에서 열리며, LED조명 전시, 인간 동력 발전, 별빛 음악회, 견우·직녀성 관측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중국통신] 칠월칠석 맞이 ‘인간 오작교’에 네티즌 ‘후끈’

    견우와 직녀가 일년에 한번 만난다는 7월 7일(8월 24일)이 가까워지고 있는 가운데 서로 떨어져 생활하는 ‘농민공’부부를 위해 대학생들이 ‘인간 오작교’를 자처하고 나섰다. 다허왕(大河網) 20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16일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시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 12명은 인터넷을 통해 직접 기획하고 준비한 ‘자선활동’ 공지를 냈다. ”여름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로 번 돈 1만 8000위안(한화 약 320만원)으로 여관 객실 200개를 예약했으며 칠월 칠석 떨어져 있는 농민공 부부를 위해 무료로 제공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3일이 지난 19일까지 35쌍의 농민공 부부가 신청을 해왔으며 한 여관은 대학생들을 돕기 위해 20개의 방을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학생들은 전했다. 한편 해당 글은 사회문제로 대두한 농민공 문제에 대해 대학생들이 주목했다는 점에서 농민공 당사자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로부터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신화왕(新華網) 런민왕(人民網) 왕이(網易) 등을 비롯한 주요 사이트를 비롯해 신문과 라디오, TV 프로그램에까지 소개되었으며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百度)에서는 관련 검색 수만 100만 건을 돌파했을 정도. ’인간 오작교’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구상한 왕쉬(王旭)는 “관련 보도가 나간 이후 전국각지로부터 수백통의 문의 전화를 받았다.”며 “한 농민공은 정부조차 나몰라라하는 농민공의 성(性)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어 고맙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대부분의 네티즌 및 시청자들이 왕쉬 등에 격려와 지지의 뜻을 보내왔지만 그러나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여관까지 가는 교통비가 더 들겠다.”, “유명해지고 싶어서 쇼하는 것!”이라며 쓴 소리를 뱉는 사람도 상당수. 심지어 한 농민공은 “그 의도가 궁금하다. 사기 같고 믿지 못하겠다.”며 강한 불신을 나타내기도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중국 통신원 홍진형 agatha_hong@aol.com
  • [저자와 차 한 잔] ‘밤하늘의 문을 열다’의 1호 민간천문대 대표 이세영

    [저자와 차 한 잔] ‘밤하늘의 문을 열다’의 1호 민간천문대 대표 이세영

    여름밤은 은하수의 계절이다. 직녀와 견우가 빛나고 그 사이에 물 흐르듯 하늘을 가로지른 별의 무리, 그 위를 유유히 날아다니는 백조가 아름답다. 말 그대로 별들의 축제가 벌어진다. 여름에 볼 만한 별은 전갈의 심장인 안테레스와 직녀성이다. 특히 직녀는 1등성보다 더 밝은 0등성이다. 천구상의 좌표는 적위 38도인데 우리나라 서울의 위도가 37.5도이기에 바로 우리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다. 아울러 여름에는 수평으로 별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반짝반짝 빛난다. 이 반짝거림이 초여름 새벽에 피어 오르는 산 안개와 어우러지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창출해 낸다. 이럴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뛰는 멋진 여름밤이다. 이런 내용으로 최근 ‘밤하늘의 문을 열다’(계명사 펴냄)라는 책을 낸 이세영(59)씨.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천문과 관계없는 세라믹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어느 날 문득 본 밤하늘에 매료돼 1997년 경기도 가평에 ‘코스모피아’라는 민간 천문대 1호를 열었다. 따라서 15년 동안 밤하늘을 본 경험을 토대로 책을 썼다. “20년 전이지요. 밤하늘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천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아울러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별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 잘못 알고 있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느꼈지요. 특히 초등학생은 더 그랬습니다. 이런 부분에 고민하다가 천문대를 생각하게 됐지요.” 이씨는 여름밤 별들에 대한 감상법을 잠시 소개한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직녀성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직녀성 왼쪽에는 백조의 꼬리별이 있지요. 다시 말해 직녀와 견우 사이에 은하수가 있고 그 사이를 백조가 날아다니는 것이지요. 생각만 해도 아주 멋진 광경이 아닙니까.” 이 책은 일반인들의 잘 모르는 천문상식, 특히 여름밤 별들의 움직임에 대해 궁금해하는 부분, 그리고 밤하늘의 어려운 주제를 나름대로 쉽게 풀어 썼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의 대표적인 별자리와 남반구 여행을 통해 경험한 새롭고 신기한 현상을 소개했다. 특히 ‘12’라는 숫자를 목성의 움직임과 연계하면서 그 뜻을 흥미롭게 푸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목성의 태양 공전주기 12년은 우리가 사용하는 12진법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내용이다. 기존의 천문 책에 있는 백과사전식 내용을 탈피해 화성과 지구 거리 측정 방법, 수성과 상대성 이론, 금성의 태양 통과, 화성과 탐사 로봇, 명왕성의 진짜 그럴듯한 퇴출 이유, 코페르니쿠스의 장례식 등은 이 책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는 천문대가 100여곳 있어요. 저의 천문대는 별과 1대1로 대화할 수 있는 곳입니다. 별과의 거리는 어떻고, 별의 생김새는 어떻고, 별이 얘기하고자 하는 모습은 어떻고 그런 것을 감상할 수 있지요. 책 내용도 그런 것입니다.” 별은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고 대화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책 안에는 천문학 박사인 염범석씨가 찍은 천체 사진이 다양하게 실려 있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노원 “도심 속 별자리 여행 떠나요”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자리 속으로 빠져보는 건 좋은 추억이 된다. 하지만 천문시설이 대부분 산이나 지방에 있어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반면 노원구에는 버스나 지하철만 타면 한번에 시내에서 별자리를 관찰할 수 있는 천문대가 있다. 노원구가 오는 29일까지 중계동에 위치한 서울시민천문대에서 ‘별자리와 함께 떠나는 여름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10일 밝혔다. 교과서에 나오는 별자리를 망원경으로 직접 관찰하면서 가족끼리 별자리로 얘기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여름철 별자리 교육, 별자리 안내 프로그램을 활용한 시뮬레이션, 견우성과 직녀성 이야기 등 다채롭게 구성했다. 여름철 대표 별자리에 대한 설명을 전문 강사로부터 듣고 종이에 그리는 ‘야광 별자리판 만들기’도 기대를 모은다. 참가비는 성인 1000원, 어린이와 청소년 500원이다. 천문대 홈페이지(www.seoulstar.or.kr)에서 신청을 받는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6) 최우와 하급무사들

    [선택! 역사를 갈랐다] (6) 최우와 하급무사들

    고종 18년(1231) 음력 8월에 살리타이가 이끄는 몽골군이 압록강을 넘어 고려를 침략했다. 이에 고려의 재상은 9월에 무인정권의 집권자 최우(최이)의 집에서 의논해 삼군(三軍)을 출동시켰다. 삼군은 중군, 우군, 후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0월에 고려의 삼군이 북상해 청천강 하안의 안북성(안주)에 주둔했다. 몽골군이 도전해도 삼군은 성 밖으로 나가 싸우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후군 지휘자 대집성이 나가서 싸우기를 강력히 요구하니 삼군이 성 밖으로 나가 진을 쳤다. 하지만 정작 중군과 우군 지휘자는 나가지 않고 성에 올라 관망하다 대집성 역시 성으로 도로 들어왔다. 고려의 삼군은 고위급 지휘자도 없이 성 밖에 진을 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몽골군이 고려군을 추격해 무찌르자 고려군의 절반 이상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다. 대집성이 삼군을 안북성 밖으로 나가게 해 싸우도록 만든 행위는 완전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몽골군은 기마병이 세계 역사상 가장 강했으니 그러한 몽골군의 주력과 성 밖의 벌판에서 전면전을 벌인 것은 너무나 무모한 짓이었다. 안북성을 지키면서 몽골군의 배후를 치거나 몰래 기습하는 전법을 구사했어야 했다. 대집성은 과부가 된 미모의 딸을 최우에게 보내 패배의 책임에서 벗어난다. 몽골군이 물밀듯이 고려의 수도 개경으로 향했다. 11월에 몽골군이 개경의 길목인 평주성을 도륙하더니 개경성의 서문인 선의문 밖에 주둔하면서 약탈을 자행하자 개경이 흉흉했다. 최우와 사위 김약선이 사병으로 자신을 지킨 반면 개경성을 지킨 자는 대개 노약 남녀였다. 12월에 몽골군이 개경을 포위하자 최우가 몽골군에 화친을 요청했다. 몽골 사절단이 개경성으로 들어와 고려 임금 고종을 만나 화친이 성립되었는데 고려가 항복을 한 모양새였다. 고려의 재상이 고종 19년(1232) 2월 20일에 모여 도읍 옮기기를 의논했다. 5월 21일에 재상이 몽골 방어를 의논했고, 23일에도 재상과 4품 이상이 몽골방어 책략을 의논했다. 거의 모두가 개경성을 지켜 적을 막아야 한다고 했는데, 오직 재상 정무(鄭畝)와 대집성이 도읍을 옮겨 난을 피해야 한다고 했다. 고종 19년 6월에 최우가 재상을 그 집에 모아 천도를 의논했다. 당시 고려는 오랫동안 태평을 누려 개경은 호(戶)가 10만에 이르고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한 집이 서로 바라볼 정도로 번성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정서가 이 편안한 곳에 살고 싶어 천도를 어렵게 여겼지만 최우를 두려워해 감히 말을 꺼내는 자가 없었다. 이때 재상 유승단이 나서서 이의를 제기했다. “작은 것이 큰 것을 섬김은 이치이니 예(禮)로써 섬기고 신(信)으로써 외교하면 저(몽골) 역시 무슨 명분으로 매번 우리를 곤란하게 하리오. 성곽을 포기하고 종묘사직을 버리고 섬에 달아나 숨어 구차하게 세월을 연장함으로써 장정을 적의 무기에 모조리 죽게 하고 노약자를 포로가 되게 하는 것은 나라를 위한 좋은 계책이 아니오.” 유승단이 이처럼 과감하게 발언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고종 임금의 사부이기 때문이었다. 천도 예정지는 섬이 언급된 것을 보면 강화로 정해져 있었다. 고려 정부가 백성을 버리고 섬으로 도망가서는 안 된다는 유승단의 발언은 가슴을 울리지만 예의와 믿음으로 몽골을 사대(事大)하면 몽골이 고려를 괴롭히지 않으리라는 해결책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었다. ●최우, 천도 반대 무관 베고 임금 협박… 수레 100개로 재산 운반 유승단의 발언으로 회의장이 술렁이는 사이에 야별초지유 김세충이 문을 밀치고 들어와 최우에게 따졌다. “송경(개경)은 태조 이래로 지켜온 지 무릇 200여 년이라, 성(城)은 견고하고 무기와 식량은 풍족하니 힘을 다해 지켜 사직을 보위해야 마땅한데, 이를 포기하고 떠나 장차 어디에 도읍하려 하시오.” 야별초는 최우가 치안을 위해 만든 부대로 훗날 삼별초의 모태인데 그 중간급 지휘자가 용감하게 최우를 윽박지른 것이었다. 최우가 개경성을 지키는 책략을 묻자 김세충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집성이 최우에게 김세충이 감히 큰 의논을 저지하니 베어서 내외에 본보기로 보여야 한다고 요청했다. 무반을 대표하는 상장군도 대집성의 뜻에 맞추어 그렇게 하기를 요청했다. 이에 최우가 김세충을 끌어내 베게 했다. 김세충의 발언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개경성 방어책을 대답하지 못한 데에서 드러나듯이 구체적이지 못했다. 개경성의 무기와 식량은 풍족했을지라도 개경성이 견고했는지는 따져볼 문제이다. 개경 나성(외성)은 현종 때 거란의 침략으로 개경이 불탄 다음에 축조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때때로 수리하기는 했지만 훼손이 진행되어 여기저기 허물어져 있었다. ●당시 수도 개경 성곽, 거란침입에 이미 훼손된 상태 인종 초에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송의 서긍은 여행기 ‘고려도경’에서 고려의 왕성(도성)이 지형을 따라 모래와 자갈을 섞어 축조되었는데 호참(壕塹·해자)과 여장(女牆·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없고 그리 견고하지 않아 성의 낮은 곳은 적을 감당할 수 없어 지키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로 보아 개경 나성은 그리 견고하지 않았다. 또한 개경 나성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성곽이라 수리하기도 벅찼고 병력이 많지 않으면 지키기도 어려웠다. 최우는 김세충을 죽이면서 강화로의 천도를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최우가 그날에 고종에게 아뢰어 속히 강화로 행차하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임금은 미적거리며 결정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고종이 임금으로서 백성을 육지에 버려두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작용했겠지만, 왕권을 무력화시켜 권력을 행사해 온 무인정권을 몽골군의 힘을 빌려서라도 무너뜨려 왕권을 회복하고 싶은 속내도 작용했을 것이다. 최우는 천도를 강행하고 수레 100개 정도를 동원해 자신의 재산을 강화로 운반하니 개경이 흉흉했다. 최우는 담당관청에 명령해 개경성 안에 방을 게시해 기한 내에 강화로 출발하지 못한 자는 군법으로 논한다고 했다. 또한 관원을 여러 도(道)에 파견해 백성을 산성과 섬으로 이사시키도록 했다. 최우는 6월 16일에 임금에게 강화로 천도하도록 위협했고, 다음날에 2000명의 군인을 동원해 강화에 궁궐을 조영하도록 했다. 7월 6일에 임금도 어쩔 수 없이 개경을 출발해 승천부(강화도 북쪽 맞은편 고을)에 머물렀다가 다음 날인 7일에 바다를 건너 강화 객관에 들어갔다. 고려 임금과 정부가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7월 7석에 강화로 들어온 것이었다. 비가 열흘 넘게 내렸기 때문에 개경에서 강화로 가는 동안 사람과 말이 진창에 빠져 넘어지곤 했다. 높은 벼슬아치와 양가집 부녀 중에도 맨발에 짐을 이고 멘 자도 있었다. 홀아비와 과부, 고아와 홀몸 노인이 길을 잃어 울부짖었다. 이렇게 강화 천도가 마무리됨으로써 약 38년 동안의 강도(江都) 시대가 시작되었다. 몽골군은 이를 빌미로 고려에 대한 제2차 침략을 단행했는데, 이것은 몽골과의 전쟁 재개를 의미했다. 강화로 천도한 이후 최우는 강화도의 동쪽과 동북쪽 해안을 따라 외성을 쌓았다. 그리고 아들 최항은 도성인 중성을 쌓아 방위를 더욱 강화했다. 당시 강화도 일대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물살이 거세고 갯벌이 발달해 배를 댈 만한 곳이 몇 군데 되지 않았다. 그러니 몽골군은 김포반도에 와서 강화도를 향해 소리만 지를 뿐 건널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만약 몽골군이 고려군의 화살을 뚫고 강화도 연안에 진입한다고 해도 외성과 중성을 넘어야 하고 고려 최고 정예부대와 싸워야 했다. 강화도는 세계 최강의 몽골군에게도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러했기 때문에 고려는 몽골과 30년 동안이나 싸울 수 있었다. ●강화 거친 물살 덕에 ‘난공불락’… 방치된 육지 백성 삶은 참혹 대신에 본토에 남겨진 고려 백성은 무인정권이 간간이 보낸 지휘자와 병력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거의 자신의 힘으로 고향을 지켜야 했다. 광주산성(남한산성) 전투, 용인 처인성 전투, 충주성 전투, 죽주(안성 죽산) 전투 등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기도 했으며, 특히 처인성 전투에서는 몽골군 총사령관 살리타이를 화살로 쏘아 죽이는 엄청난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몽골군은 30년 동안 6차례에 걸쳐 집요하고 빈번하게 고려를 침략해 강산을 유린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포로로 끌어갔다. 최우는 한편으로는 몽골과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몽골과의 전쟁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자신은 강화도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린 반면 백성을 육지에 방치해 온갖 참상을 겪게 만든 악당으로 비난받는다. 최우의 강화 천도는 그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임은 분명하지만, 그의 선택이 옳았는지 글렀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강화로 천도했기 때문에 몽골과 오랫동안 싸울 수 있었고 그 항쟁을 인정받아 몽골에 항복한 이후에도 나라는 망하지 않았다. 강화로 천도하지 않았다면 오래 저항하지 못하고 항복했을 가능성이 크며 그랬다면 고려 백성의 고통은 그리 심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고려국이 망해 몽골인이나 중국인으로 살아갔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몽골족 원과 만주족 청의 판도가 오늘날 중국의 판도에 거의 계승되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최우의 선택에 대한 가치판단은 독자 여러분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김창현 연구교수(고려대 한국사연구소)
  • 강원도 첫눈 내리던 날 정선 ‘하늘길-새비재 코스’

    강원도 첫눈 내리던 날 정선 ‘하늘길-새비재 코스’

    눈은 세상의 온갖 허물을 덮어줍니다. 그 덕에 늘 보았던 길 위로 새 풍경이 돋아나기도 합니다. 강원도에 첫눈이 내리던 날, 정선 ‘하늘길-새비재 코스’를 다녀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운탄고도’(運炭高道)라 불리는 산길이지요. 화절령(꽃꺾이재)에서 새비재를 잇는 편도 16㎞짜리 트레일입니다. 철쭉 명산으로 알려진 두위봉의 어깨를 짚으며 내려갑니다. 길이는 일반적인 트레킹 코스에 견줘 긴 편입니다. 트레킹 초보자라면 힘에 부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길에 지루할 틈이란 없습니다. 당신의 허리춤에 줄곧 보석 같은 풍경을 매달고 가기 때문이지요. ●풍경을 옆구리에 끼고 걷는 운탄고도(運炭高道) 정선에 운탄(運炭)길이 있다. 과거 석탄을 운반했던 길이다. 운탄길의 전체 길이는 100㎞가 조금 못 된다. 이 가운데 정선에만 80㎞ 조금 넘는 구간이 남아 있다. ‘하늘길’은 이 운탄길을 토대로, 함백산과 두위봉 등 주변의 명산을 하나로 잇는 프로젝트다. 하이원 리조트가 정선군청, 산림청 등의 협조를 얻어 조성중이다. 총길이는 160㎞ 남짓. 평균 고도 1000m 내외의 길을 따라 산 아래를 굽어보며 걷는다. 새비재 코스는 ‘하늘길’의 여러 갈래 가운데 하나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길의 이름은 ‘운탄고도’다. 중국에서 티베트를 거쳐 인도로 이어지는 ‘차마고도’(茶馬古道)에 빗댄 표현이다. 화절령에서 시작해 백운산과 두위봉, 질운산의 어깨를 짚고 새비재로 넘어간다. 이 길의 미덕은 능선을 따라 돌아 내려가는 동안 줄곧 풍경을 허리에 끼고 간다는 것이다. 오른편은 기세 좋게 솟은 두위봉, 왼편은 깎아지른 벼랑 너머로 태백준령을 이룬 산의 바다다. 흰 눈을 뒤집어 쓴 채 능선의 윤곽만 남긴 산들이 마루금을 좁히며 다가서는 데, 여간 장관이 아니다. 산행 들머리는 화절령이다. 강원랜드 폭포주차장에서 오를 경우 화절령 오른쪽, 도롱이 연못 쪽에서 오를 경우는 가운데 길로 간다. 해발 1100m의 화절령까지 오르는 게 쉽지는 않다. 강원랜드 폭포 주차장에서 3.6㎞ 남짓 걸어 올라야 한다. 체력적인 부담을 느낀다면, 하이원 리조트에서 곤돌라(1만 2000원)를 타고 백운산 ‘마운틴탑’까지 오른 뒤 걸어 내려 오는 방법도 있다. 길은 조붓하다. 폭도 넓고 노면도 순하다. 그 위에 밀가루처럼 고운 눈이 쌓여 있다. 첫눈 위로 첫 발자국을 찍는다. 무릎 언저리까지 푹푹 빠진다. 발을 들면 눈구덩이가 연한 파란빛으로 반짝인다. 순결한 파란빛이다. 길은 곧장 고갯길로 이어진다. 첫번째이자 사실상 마지막 ‘깔딱고개’다. 고갯길 위에 쌓인 눈은 깊이가 고르지 않다. 어떤 곳은 발바닥만 적실 정도인 반면, 어떤 곳엔 스키장 모글 코스처럼 울퉁불퉁 눈이 쌓여 있다. 하이원 리조트의 신경옥 대리는 “화절령은 바람골이라 불릴 정도로 바람이 많다.”며 “눈이 쌓일 틈 없이 바람이 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누군들 이곳에 서면 사진작가 못 되랴 고갯마루에 올라 서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눈 쌓인 전나무와 낙엽송, 그리고 관목들이 저마다 다른 자태로 겨울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길도, 산자락도 순백의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아무 곳에나 카메라를 대고 셔터만 누르면 ‘그림’이 된다. 이런 곳에서라면 뉘라서 사진작가가 못 되랴. 푹신한 눈 위로 드러누워 보시라. 그대로 영화 ‘러브 스토리’(1970)의 한 장면이 된다. 운탄길엔 급하게 굽어지는 구간이 없다. 각이 지고 날카로우면 탄차가 오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인네의 목선을 연상하면 알기 쉽다. 산 능선을 따라 휘어졌다 풀어진다. 그런 길이 리듬 있게 반복된다. 게다가 높낮이 차도 크지 않다. 다만 조성공사가 끝나지 않아 방향이나 현재 위치 등을 알 수 있는 표지판이 없다. 산림청에서 세워둔 ‘임반’ 표지판이 고작이다. ‘임반’은 국유림에 대한 일종의 지번으로, 거리로는 1~1.5㎞ 정도라고 보면 된다. 첫 고개가 ‘45임반’과 ‘44임반’의 경계가 되는 지역이니, 30번대 임반 언저리가 되면 종착지 새비재가 멀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보면 된다. 화절령과 새비재 사이 식생에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 화절령 쪽은 전나무와 낙엽송, 참나무류 등이 주를 이룬다. 전망도 확 트인 편. 반면 새비재 쪽엔 소나무가 많다. 대개가 쭉쭉 뻗은 적송들이다. 사방으로 트였다기 보다는 숲을 이뤄 안온하게 감싸고 있는 느낌이다. 여기에 30㎝ 정도의 눈이 쌓였으니, 당연히 숲그늘에 드는 느낌도 다를 수밖에. 오른쪽이 두위봉 산자락이니 당연히 왼쪽은 깎아지른 벼랑이다. 어지간한 산 하나쯤은 잠길 정도로 품이 깊다. 그 덕에 길을 걷는 내내 탁월한 풍경이 따라온다. 흰 파도처럼 물결치는 백두대간의 산들을 보느라 헛발 짚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사실 16㎞는 짧은 길이 아니다. 또, 내리막길이라고는 하나 무릎 언저리까지 쌓인 눈 위로 새 길을 내며 걷는 게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평상시 4~5시간이면 충분하지만, 눈 쌓인 상황에서는 최소 7시간은 족히 걸린다. 한 유명 개그맨의 표현대로, ‘숨만 쉬고’ 걸어도 그렇다. 따라서 눈 덮인 새비재 코스를 돌아볼 경우, 아침 나절에 출발할 것을 권한다. 트레킹 초보자라면 구간을 나누는 것도 좋겠다. 화절령에서 ‘44’ 혹은 ‘43 임반’ 언저리까지 다녀오는 게 적당하다. ●추억을 묻는 로맨틱 명소 ‘전지현 소나무’ 운탄고도의 끝은 새비재(850m)다. 산세가 새가 날아가는 형상이라 해서 ‘조비치’(鳥飛峙)라고도 불리는 고갯마루다. 새비재의 으뜸 볼거리는 광활한 고랭지 배추밭이다. 하지만 정작 이곳을 세상에 알린 건 새비재 중턱의 작은 소나무였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2001)에서 ‘그녀’(전지현)가 ‘견우’(차태현)와 함께 타임캡슐을 묻었던 곳이 바로 여기다. 당시 영화에 등장했던 소나무는 지금도 ‘전지현 소나무’라 불린다. 소나무 주변엔 얼마 전 타임캡슐 공원이 조성됐다. 타조알처럼 생긴 캡슐에 추억의 물건들을 담아 100일~3년 가운데 원하는 기간을 선택해 묻어 둘 수 있게 했다. 준비된 타임캡슐은 5860개다. 소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굽어 보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정선 최고봉인 두위봉(1466m)을 비롯한 고산준봉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다. 한 그루 소나무와 사방을 뒤덮은 눈, 그리고 검은색 윤곽만 드러낸 산들이 농담(濃淡) 또렷한 산수화를 펼쳐낸다. 이른 아침, 또는 해질 무렵 분위기가 특히 로맨틱하다니 연인들이라면 꼭 한 번 방문할 일이다. 글 사진 정선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중앙고속도로→제천 나들목→38번 국도 영월방면→정선 강원랜드→화절령 순으로 간다. 화절령까지 차로 오를 수도 있지만, 비포장길이어서 승용차로는 어렵다. 게다가 겨울철엔 눈길일 경우가 많아 지프차도 오르기 어렵다. 화절령~산죽나무길~산철쭉길~마천봉~하이원 골프장을 잇는 4시간 짜리 코스, 초보자용 2~3시간 짜리 하늘길 코스도 있다. 강원랜드 골프장에서 무료셔틀버스를 탈 수 있다. 새비재까지는 승용차도 오를 수 있다. 대중교통은 함백역까지 걸어 내려와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강원랜드(www.kangwonland.com, 1588-7789)에 문의하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캡슐공원 안내소 375-0121. ▲맛집 윤가네 한우마을 (592-2920)은 질 좋은 한우로 유명한 집. 된장찌개에 소면을 넣은 된장소면도 별미다. 고한읍 고한시장 내에 있다. 산돌솥밥(591-5564)은 곤드레밥을 잘 한다. 사북 읍내 용석집(592-6615)은 손으로 빚은 만둣국이 일품이다.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5) ‘만세전’의 작가 염상섭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5) ‘만세전’의 작가 염상섭

    염상섭(1897~1963)은 널리 알려진 ‘국민작가’다. 염상섭이 ‘국민작가’인 것은 물론 그의 걸출한 문학작품 덕분이지만, 그의 삶이 근대 이후 한국사의 중요한 맥락들과 궤를 같이해 온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철들 무렵 조선은 식민지가 되었고, 그는 한일병탄 2년째인 1912년 일본 유학생활을 시작한다. 1930년대에는 만주로 건너갔다가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38선을 간신히 통과해서 서울로 돌아왔고, 이후 종군작가로 한국전쟁을 체험한다. 이처럼 식민지 조선과 제국 일본, 해방과 한국전쟁을 마주했던 염상섭의 삶의 국면들은 100편이 훨씬 넘는 그의 장·단편 소설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가히 문제적 시대를 살아낸 문제적 작가인 셈이다. 그러나 역사와 시대가 문제적이었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적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한국문학사에서 염상섭을 일컬어 ‘리얼리즘의 최고봉’이라 하는데, 이 찬사 속에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생생하게 재현해냈다는 평가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염상섭이 바라본 ‘있는 그대로의 사실’은 어떤 것이었을까. ●선망과 자괴 사이에서 일본 유학생 시절, 그는 식민지인이라는 피해자의 입장과 제국 일본을 선망하는 학습자 사이에 놓여 있었다. 이른바 ‘친밀한 적’을 마주해야하는 고통, 즉 일본을 본받고 따라하면서도 그런 자신을 경멸하고 자책하는 이중적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일본에 유학한 조선인이라면 누구나 다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염상섭의 경우는 좀 더 특별난 데가 있었다. 그의 유학이 일본군 육군 중위였던 맏형의 보살핌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맏형 염창섭은 대한제국 시절, 영친왕이 유학이라는 명분 아래 일본으로 인질처럼 끌려갈 때 그 시종으로 따라갔다. 이후 염창섭은 대한제국의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다. 하지만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그는 일본군대로 편입하는 길을 선택한다. 곡절 많은 내력이지만, 현실에서 일본군 장교라는 위치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 형 덕분에 염상섭도 사립학교나 학원가를 전전하던 조선유학생들과는 달리 정규 일본 명문중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이후 염상섭은 동아일보 정경부 기자(일본특파원)를 비롯해서 시대일보, 조선일보, 심지어 총독부기관지였던 매일신보, 만주국의 홍보지 역할을 했던 만선일보에서까지 두루두루 일한다. 할 일 없이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는 가난한 식민지 지식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게다가 염상섭만큼 일본어와 일본문학에 정통한 문인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염상섭에게는 ‘군복자락 콤플렉스’, ‘현해탄 콤플렉스’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일본군 장교인 형은 든든한 버팀목이었지만 부끄러운 존재였고, 조선과 일본 사이의 바다 현해탄을 오가는 것처럼 일본을 선망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식민지인임을 자각하고 괴로워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콤플렉스를 잘 보여주는 것이 오사카 독립선언서 사건이다. 염상섭은 2·8독립선언서, 기미독립선언서에 영향을 받아 1919년 3월 18일 오사카에서 단독으로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거사를 꾀하다가 체포되어 3개월의 미결수 생활을 겪는다. 이 독립선언문에는 ‘오사카 한국 노동자 일동 대표 염상섭’이라고 쓰여 있다. 그 전해에 병으로 대학을 자퇴했고, 작은 신문사의 기자생활을 하긴 했지만 그가 노동자 대표라기엔 다소 억지스럽다. 게다가 정규 일본 명문 중학을 졸업하고, 귀족자제들이 다니던 게이오 대학 문과에 입학했던 그의 이력을 떠올리면 생뚱맞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노동자를 자처하고 나선 것은 그의 깊은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염상섭의 내면에는 일본 육군장교의 동생, 안온한 일본유학생이라는 자괴감이 늘 존재했고, 그 반작용의 심리로 자신을 노동자대표로 내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군복자락으로부터 야차의 길로 식민지 상황에 대해 어떤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받아들이고 체념했다. 또 어떤 이는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해 일본과 투쟁하는 것만이 최선이라 했다. 어떤 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을 부끄럽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 괴로움으로 현실을 등지거나 스스로 자기 파멸로 내몰아가기도 했다. 물론 자기이익만을 챙기기에 급급한 무리들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염상섭은 자기 삶을 글쓰기로 옮겨놓음으로써 자괴감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세계와 대면하고자 한다. 염상섭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만세전’(1924)은 자전적 경험이 깊이 투영된 일본 유학생 ‘이인화’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인화’는 답답한 현실에 대해 맹렬하게 발작을 일으킬 정도이면서도 딱히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는 괴로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기변명과 자기연민, 자조가 뒤범벅인 소설 속 인물. 그런 인물을 그려놓는 일, 바로 글쓰기를 통해 염상섭은 새로운 길을 만난다. 그는 1923년 첫 창작집 ‘견우화’를 발간하면서 자신의 소설쓰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소설이란 것이 인생과 그 종속적 제상을 묘사하는 것인 이상 인간이 어떻게 고민하는가를 그리는 것은 물론이다. 소설에 예술적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연극적·음악적·회화적·조각적 요소를 어떻게 약배하며 약동하도록 그리겠느냐는 문제이지만, 기초적 조건은 역시 사람은 어찌하여, 어떻게, 얼마나 고민하는가, 또는 그 고민이 어떻게 전개되며 어떻게 처리되는가를 묘사함에 있다. (중략) 이러한 의미로 나의 처음 발간하는 단편집에 대하여 야차(夜叉)의 마음을 가진 보살을 의미하는 ‘견우화’라는 표제를 택하였거니와…….” (‘견우화’의 서문) 그에게 소설쓰기는 세련된 기교를 펼쳐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술적 사명감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내면을 가차 없이 속속들이 살펴보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오죽하면 첫 단편집을 “야차의 마음을 가진 보살을 의미하는 ‘견우화’”라고 이름 붙였다고 스스로 해명하는 것일까. 혼란스럽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 일은 스스로 야차(악마)가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야차되기를 선택함으로써 그는 군복자락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다. 일본 육군장교의 동생이자 독립선언을 하는 식민지 조선인, 총독부 기관지의 정치부장이자 조선인 소설가. 이러한 극단들을 오가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 그러한 자신이 속해있는 두 세계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기. 그것이 염상섭의 작가적 출발이자, 글쓰기의 의미였다. 물론 두 눈으로 세계를 똑똑히 본다고 해서 쉽게 해답을 발견할 수는 없다. 오히려 염상섭의 작가적 두 눈은 해답보다는 일상적 삶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삶의 미세한 진실을 바라보고자 했다. 일상 속에서는 아무도 순결하거나 정의롭지 않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박쥐 같은 양면성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가족들조차도 핏줄보다는 돈(욕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등. 1930년대 ‘삼대’가 그려낸 풍경은 그러한 삶의 이면에 대한 해부였다. 그래서 염상섭의 작품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거나, 마치 외눈박이처럼 하나로만 바라보는 것을 온전히 다 보여준다. 해방 이후, 이데올로기의 각축장이 되었던 역사적 현장이나 전쟁 상황에서도 염상섭의 이러한 자세는 계속 이어진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서 1·4후퇴 때까지의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드러낸 ‘취우’(1953)는 전쟁의 극한상황이나 고통을 묘사하기보다는 그 와중에도 노골적으로 돈에 집착하는 인간의 욕망을 그려내고 있다. 이 지점에 이르면, 왜 염상섭이 국민작가로 회자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역사와 삶을 대면하는 방식으로서의 글쓰기. 그리고 단면적인 세계, 양가적인 판단을 넘어서는 복잡다단한 세계를 그려내는 작가. 그의 글쓰기는 현실의 복잡함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두 눈 크게 뜨고 자신과 자신의 삶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자기 삶의 응시가 그로 하여금 글쓰기로 나아가게 했고, 그것이 국민작가 염상섭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일 터이다. 김연숙 남산강학원
  • [한가위 TV-애니메이션]

    [한가위 TV-애니메이션]

    추석 연휴, 어린이나 애니메이션 팬들은 지상파 방송보다는 케이블 채널에 주목하자. 지상파 3사의 경우 어린이·애니메이션 프로그램 편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데 반해 케이블 채널에서는 애니메이션 팬들을 위한 특집이 풍성하기 때문이다. 어린이 오락채널 니켈로디언은 10~12일 오전 9시~오후 1시 ‘스폰지밥 네모바지’와 ‘티미의 못 말리는 수호천사’ ‘마다가스카의 펭귄’ 등 인기 프로그램들의 극장판을 모은 ‘무비 스페셜’을 방송한다. 같은 기간 오후 1시에는 ‘레고 히어로 팩토리’ ‘닌자고 미니 무비’ 등 레고 캐릭터들이 출연하는 애니메이션을 모은 ‘레고 스페셜’이 전파를 탄다. 기존 단편 에피소드들보다 스케일이 큰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만화 채널 투니버스는 매일 밤 9시 훈훈한 가족영화와 함께하는 특별한 시간을 마련했다. 10~14일 밤 9시 가족 애니메이션 ‘파이스토리’ ‘아따맘마 극장판’ ‘날아라 허동구’ ‘개와 나의 10가지 약속’ ‘마리와 강아지 이야기’ 등이 차례로 전파를 탄다. 24시간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 애니맥스는 1980년대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꼽히는 추억의 애니메이션 ‘머털도사’와 그 후속작인 ‘머털도사와 108요괴’를 방영한다. 애니메이션이란 장르적 한계에도 54.9%의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머털도사’는 국내 최고의 애니메이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어린이는 물론이거니와 추석 명절 준비로 지친 부모님들에게도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BS에서도 추석 특선 애니메이션을 만나볼 수 있다. 12일과 13일 오후 6시에 애니메이션 ‘도라도라’를 방영한다. 12일에는 1편 ‘도라의 댄스댄스’, 13일에는 2편 ‘도라의 해적 체험’이 전파를 탄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소녀 ‘도라’가 빨간 장화를 신은 원숭이 친구 ‘부츠’와 함께 수수께끼와 흥미진진한 모험이 가득한 탐구 여행을 떠난다. 숫자, 음악, 춤, 신체 동작 등 유아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영어로 배울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KBS 1TV는 13일 정오에 지난달 18일에 열린 ‘2011 국악동요제’를 방송한다. 국립국악원이 수상작을 선정, 발표했다. 국악동요 창작곡 부문에서는 박주만 작사·작곡의 ‘견우직녀’가, 국악동요 부르기 부문에서는 이성동 작사, 최옥선 작곡의 ‘꽃이 피었네’(2003)를 부른 어보원(천호초 5)양이 대상을 거머쥐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청계광장에 ‘칠석 행사’ 재현된다

    일제강점기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잊혀진 우리 고유의 축제 ‘칠석제’가 서울의 중심 청계광장에서 재현된다. 한국여성향토문화연구원은 ‘제8회 7·7 칠석 연인의 날’ 행사를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서울 청계광장일대에서 개최한다고 4일 밝혔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은 이번 행사는 우리 고유의 축제인 칠석을 계승하자는 의미로 시작됐다. ‘견우와 직녀’의 눈물겨운 사랑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는 칠석은 원래 직녀에게 제를 올리던 날을 뜻하며 대표적인 우리 민족 고유의 행사다. 한국여성향토문화연구원은 행사기간동안 ‘칠석’의 의미를 알리는 한편 다양한 전통행사를 시민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매일 저녁에는 무형문화재가 ‘칠석굿판’을 선보이고 ‘물청소’(물속 쓰레기 줍기), ‘책말리기’, ‘연인식’(곶감은행알 나누기)도 열린다. 이와 함께 칠석제 삼행시 짓기, 소원 풍선 날리기, 풍물놀이, 판소리 공연 등의 다채로운 행사들도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칠석 연인의 날’ 행사는 칠석을 세계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록하기 위해 여성향토문화연구원이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민족 고유의 행사인 ‘칠석’에 대한 정부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목표다. 여성향토문화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최근 중국이 우리의 문화유산인 ‘농악’을 먼저 유네스코에 등록하고 ‘아리랑’은 중국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등록하는 등 우리 문화재 보존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서 국민들의 관심과 함께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한국여성향토문화연구원 차옥덕 원장은 “고등학생들이 한국사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대학생이 되는 것이 지금 한국의 현실”이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특히 젊은 사람들, 특히 학생들이 우리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철쭉 명산 전북남원 ‘바래봉’

    철쭉 명산 전북남원 ‘바래봉’

    개화 시기에 맞춰 봄꽃을 완상하기란 여간 까다롭지 않습니다. 여러 일들에 매인 도시 직장인이라면 더욱 그렇지요. 봄꽃 향연의 마지막 주자는 철쭉일 겁니다. 철쭉 명산으로 꼽히는 전북 남원 바래봉(1167m)에서는 이제야 철쭉들이 진분홍 아우성을 토해 내고 있습니다. 절정입니다. 바래봉과 팔랑치, 세걸산 등 3∼4㎞ 이르는 등산로를 따라 ‘산상 정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오가는 길에 ‘춘향전’의 주무대인 광한루원(廣寒樓苑)은 꼭 들르는 게 좋겠습니다. 흔해 빠진 유명 관광지와는 다른, 범상치 않은 풍모를 갖고 있습니다. ●향단로·방자교차로 해학 가득한 남도의 여행길 남원 땅에 접어드니 이름도 살가운 춘향로와 향단로가 이방인을 맞는다. 휘휘 돌아가는 방자교차로에선 설핏 웃음도 나온다. 도로 이름만으로도 즐거움을 안겨 주는 남도의 해학이다. 철쭉 산행은 운봉읍 용산리 지리산 허브밸리에서 시작된다. 남원시에서 허브를 주제로 조성한 테마파크다. 매발톱과 기린초 등 화초류 300여종과 라벤더 등 30여종의 허브가 식재됐다. 특히 풍차포토존 주변으로 케모마일과 꽃양귀비, 매발톱 등이 절정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예년의 경우 허브밸리 끝자락, 그러니까 바래봉 등산로와 연결되는 오솔길에서부터 철쭉 군락이 시작됐다. 시차를 두고 피기 시작한 철쭉은 근 한 달 동안 바래봉까지 면적을 넓혀 갔다. 하지만 올해는 꽃을 거의 볼 수 없다. 냉해 등으로 개화가 늦어지면서 제대로 피지도 못한 채 시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웃한 가축유전자시험장의 너른 목장 풍경 덕에 꽃을 잃은 아쉬움이 가뭇없이 사라진다. 울퉁불퉁 흙길을 2.6㎞쯤 걷다 보면 박석 깔린 길이 시작된다. 본격적인 오르막이다. 철쭉꽃이 많아져선가. 산제비나비가 자주 눈에 띈다. 꽃을 탐하던 나비는 흑단 같은 날개를 팔랑대며 길라잡이를 자청한다. 등산로는 잘 정비된 반면, 숲그늘은 다소 빈약하다. 게다가 바래봉까지 줄곧 오르막이다. 땀은 비 오듯 하고, 숨은 턱까지 찬다. 내려오는 사람마다 붙잡고 묻는다.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냐고. 산 못 타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때마다 좀 더 가야 한다는 대답만 들을 게 뻔한 것을. 대구에서 온 양서진씨는 “힘들여 올라 광대한 철쭉 군락지의 자태를 보니 온몸이 재충전되는 느낌이더라.”며 토닥여 주기까지 한다. ●꽃불 밝힌 팔랑치 능선… 사람이 가꾼 듯 정연한 자태 두 번째 포인트다. 정상까지 1.6㎞ 남았다. 전나무들이 울울창창이다. 한껏 숨을 들이켠다. 상큼하다. 피톤치드가 밀려 들어오는 듯하다. 바래봉 삼거리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바래봉 정상, 오른쪽은 팔랑치로 향하는 길이다. 철쭉 군락지는 예서부터 1.5㎞ 떨어진 팔랑치 사이에 펼쳐져 있다. 산자락 한 구비 돌 때마다 진홍빛 철쭉꽃의 아우성이 이어진다. 능선도 유순한 편. 소의 등처럼 부드러운 산길이 팔랑치와 세걸산을 거쳐 정령치까지 이어진다. 발치 아래 오른쪽으로 운봉읍의 너른 들녘이, 왼쪽으로는 지리산의 장쾌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이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고맙고 감동적이다. 발품 판 것에 비하면 차고도 넘치는 보상이다. 철쭉 군락은 팔랑치 어름에서 절정을 이룬다. 온 산이 꽃불로 타오르는 듯하다. 지대가 높고 사계가 뚜렷해 다른 철쭉 명산에 견줘 꽃색이 붉고 진하다. 산길 양편으로 어른 키만큼 자란 철쭉이 꽃 터널을 이루고 있다. 남원 땅의 성춘향과 이몽룡도 진분홍 꽃 터널에 숨어 들어 정염을 불태우곤 했을까. 바래봉 철쭉은 인위적으로 가꾼 듯 정연하다. 그 덕에 산 전체가 하나의 분재 정원처럼 보인다. 박연임 남원시 관광 가이드는 “목장에서 재배하던 면양이 잡목과 풀은 먹고 독성이 있는 철쭉만 남겨 이처럼 군락지가 생성됐다.”고 설명했다. 면양이 정원사 노릇을 한 셈이다. 늦은 오후에 산행을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주말이면 정체 현상까지 빚을 만큼 몰리는 등산객을 피할 수 있어 한결 고즈넉하다. 사람 떠난 산엔 그동안 울지 않았던 산새 소리가 가득하다. 아울러 오후 햇살을 받은 철쭉의 빛깔도 한결 차분하고 요염해진다. ●성춘향·이몽룡 ‘즉석 만남’ 명소 광한루원 빼놓으면 섭섭하다 남원은 춘향전의 땅. 성춘향과 이몽룡이 ‘즉석 만남’을 가졌던 광한루원을 찾지 않고 남원을 말할 수는 없다. 광한루원은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인지가 항아(姮娥)가 사는 월궁(月宮)처럼 아름답다는 뜻에서 칭한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에서 유래됐다. 문화재청 홈페이지는 광한루원을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을 표현한 우리나라 제일의 누원’이라 적고 있다.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가에 월궁을 상징하는 광한루를 짓고, 연못 가운데엔 전설의 삼신산(三神山), 봉래·방장·영주섬을 조성했다. 연못 위엔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오작교’도 설치했다. 조선의 조경문화에 문외한이더라도 광한루원에 들면 단박에 범상치 않은 풍경이란 것을 직감하게 된다. 세월의 흔적 켜켜이 쌓인 전각들과 수백 년을 헤아리는 왕버들, 그리고 연못 위로 난 홍예교를 따라 걷다 보면 생면부지의 남녀라도 쉬 정분이 날 법하다. 게다가 때는 만화방창의 계절 봄이 아니던가. 광한루원을 나와 승월교를 건너면 남원관광단지다. 춘향전테마파크와 놀이공원 등이 조성돼 있다. 글 사진 남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3)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호남고속도로→익산분기점→익산~포항 고속도로→완주분기점→완주~순천 고속도로→남원분기점→88고속도로→남원나들목→운봉읍 순으로 가는 게 가장 빠르다. 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에서 17번 국도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철쭉 산행의 경우 지리산 허브밸리(620-4892)에 차를 두고 원점 회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차료 2000원. ▲묵을 곳 그린피아모텔(636-7209)이 깨끗하다. 한국관광공사의 우수 숙박업소 ‘굿스테이’로 선정된 집이다. 주천면에 있다. 금요일 4만원, 토·일요일 5만원. 운봉읍에선 지리산대덕리조트(634-6700)가 깔끔한 편. 5만원선. ▲맛집 광한루원 인근에 추어탕 거리가 형성돼 있다. 새집추어탕(625-2443)과 남원추어탕(625-3009) 등이 유명하다. 황산토종정육식당(634-7293)은 흑돼지구이가 맛있다. 옛날식 순대로 끓인 순대국밥도 맛있다. 운봉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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