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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문화 향기 러시아서 ‘솔솔’

    한국인들이 추석 차례상을 준비하느라 분주했을 지난 20일 러시아의 동쪽끝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다.연해주를 대표하는 아르세니예프 주립박물관에 러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실이 문을 연 것이다. 30평 남짓한 크기의 ‘한국민족문화실’이 꾸며진 곳은 아르세니예프박물관 국제전시센터.극동함대가 있는 군사도시답게 제2차세계대전 때 12척의 독일함정을 격침했다는 S-59잠수함을 전시한 잠수함박물관이 불과 100여 m 떨어져 있는 요지이다. 한국실 개관은 지난해 국립민속박물관이 연해주 6개 도시에서 연 ‘한국문화로의 초대’전이 계기가 됐다.이곳에 사는 고려인들에게 민족의 정체성을 심어주고,러시아와의 활발한 문화교류 토대를 만들어 보겠다는 취지가 이제 제대로 결실을 맺은 셈이다. 한국실은,전시공간을 아르세니예프박물관이 제공했을 뿐 우리 민속박물관이 전시내용을 구상하고 전문인력을 파견해 꾸몄다.비용 3억원도 우리가 부담했는데,주정부의 예산지원이 끊긴 아르세니예프박물관의 사정이 감안됐다. 개막식은 민속박물관 관계자들이 들뜬 표정을 짓기에 충분할 만큼 성황이었다.400여 참석자는 대부분 러시아인들로,음악가 바로닌이 이끄는 앙상블이 플루트와 러시아 전통악기 발랄라이카로 ‘고향의 봄’‘아리랑’을 연주한 것도 한국문화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전시는 ‘한국의 전통생활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과거와 현재 한국인의 삶을 보여주려 했다.전시실을 들어서면 먼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 도자기와 인쇄,금속공예 기술이 눈에 들어온다.이어 혼례복과 평상복,해주반과 놋쇠 반상기,반닫이와 평상 등 의식주 생활의 단면이 소개된다.사물놀이의‘사물’과 가야금 등 악기로 대표되는 놀이문화,무당의 신복·장군칼·작두 등 한국인의 신앙생활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러시아인들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스크린에 손을 눌러가면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를 러시아어·영어와 비교하여 보여주는 ‘한글 터치 스크린’.콤팩트디스크(CD)에 담긴 한국전통음악을 이어폰으로 듣는 ‘한국음악 체험’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인기 코너였다. 갈리나 알렉시우크 아르세니예프박물관장도 이 점이 마음에 드는 듯 “민속박물관의 전시기법이 세련되고 전시기술 수준이 매우 높은 데 놀랐다.”면서 “한국실 개관을 계기로 한국 박물관과 더욱 긴밀하게 협력관계를 발전시켰으면 좋겠다.”고 만족스러워했다. 한국실 개관은 한국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더욱 뜻깊은 듯했다.인가 파시코(18·극동대 한국학과 2년)는 “모두 재미 있지만 특히 한복이 아름다웠고,북같은 악기들도 흥미 있었다.”고 말하고 “같이 온 러시아친구들이 둘러보고는 한국학을 공부하는 나를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며 웃었다.한편 이번 한국실 개관을 주도한 이종철 민속박물관장은 개막식에 앞서 시베리아의 관문이자,한민족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이르쿠츠크의 유서깊은 향토박물관을 방문하여 관계자들과 한국실 개설 방안을 타진했다. 이 관장은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의 시발점인 블라디보스토크에 한국실이 마련됨으로써 러시아에 한국문화를 알리는 교두보가 확보됐다.”면서 “앞으로 이르쿠츠크와 모스크바,상트 페테르부르크 등 TSR의 거점 도시마다 한국실을 만들어 한국문화를 더욱 폭넓게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 서동철기자 dcsuh@
  • 서해교전 침몰 고속정 258발 피격

    6·29 서해교전 때 격침됐다가 지난 21일 해군이 인양한 고속정 357호는 북한 경비정으로부터 총 258발의 포탄을 맞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준(李俊) 국방장관이 26일 국회 국방위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357호는 대구경(85㎜) 5발,중구경(37㎜) 19발,소구경(14.5㎜) 234발 등 모두 258발을 맞았다.이 중 88%가 고속정 좌현에 집중됐다. 위치별로는 주갑판 상부에 122발,주갑판 하부에 136발씩 피격됐다.또 주갑판 하부중 선체에 치명적인 흘수선(바닷물과 선체가 접하는 부분)에 모두 42발의 피격 흔적이 있었고 특히 85㎜포에 의한 피격 5발중 2발이 흘수선 부근에 명중돼 축구공만한 구멍이 났다. 국방부는 지휘기능을 지닌 조타실,함교(59발),기관실(60발),흘수선(10발)부근에 포탄이 명중된 것으로 미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기습사격으로 판단하고 있다. 오석영기자 palbati@
  • 수백군데에 포탄흔적 긴박했던 상황 생생히…인양 서해교전 고속정

    6·29 서해교전에서 격침된 고속정 참수리 357호가 침몰된 지 53일째인 21일 인양됐다.인양장면은 취재기자단에 공개됐다. 해군은 오전 8시30분쯤 연평도 서쪽 25.2㎞지점 해저 28m에 가라앉은 357호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해난구조대(SSU)요원 60여명이 바다속으로 들어가 침몰 함정 밑바닥 앞쪽과 뒤쪽에 지름 5.7㎝ 체인을 감는 등 사전 작업을 해놓았다. 다목적 구조함인 청해진함 크레인은 1분당 20㎝씩 체인을 당기며,천천히 침몰 함정을 끌어올렸다.1시간 가량이 지나자,바다 위로 짙은 회색빛 물체가 치솟았다.이 물체가 고속정 돛임이 확인되자,해군 관계자들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뒤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청해진함 크레인은 더욱 빠른 속도로 돌아갔고,357호는 오후 12시쯤 물밖으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인양된 고속정은 예상대로 선체 곳곳에 수백군데의 포탄과 파편 자국이 나 있어 치열했던 전투상황을 잘 보여줬다. 특히 조타실 앞부분에 2군데,우측면에 1군데,선체 우측 흘수선(바닷물과 선체가 만나는 부분)에 1개 등4개의 축구공만한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포탄자국은 고속정 침몰에 결정적인 선체 좌우 흘수선 주변에 집중돼 있었다.고속정 함교 뒤에 있는 돛에는 교전 당시의 태극기가 그대로 걸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357호는 오후 3시5분 미리 준비된 탑재바지선으로 옮겨졌다.해군은 고속정을 탑재선에 실은 뒤 22일 오후 경기도 평택 2함대사령부로 옮길 예정이다.인양 작업중 군 당국은 부근에 초계함과 고속정 등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인양 현장으로부터 10㎞ 떨어진 북한 등산곶의 모습이 선명히 보였고,북측 해역에 경비정도 눈에 띄었으나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침몰 고속정이 북측의 암묵적 동의속에 무사히 인양된 셈이다. 오석영기자 palbati@
  • [굄돌] 서해바다에 평화를

    서해 교전이 있던 날 지방의 불교대학에서 재가불자들이 가정에서 조상님 제사를 어떻게 지낼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해 달라고 해서 전주에 다녀왔다.강의 시간보다 훨씬 전에 도착했는데 학생중의 한 분인 노 거사님이 서해교전 소식을 전해 주었다.미국 방송에서는 오전에 이미 보도했는데 우리는 오후에서야 알리기 시작했고 바보스럽게도 우리 젊은이들이 30명 가까이 사상 당했는데 어찌 그리 대응이 미온적이냐며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지난 99년에 당한 것을 보복이나 하듯이 하필 월드컵열기가 막바지까지 뜨겁게 타오르는 마당에 찬물을 끼얹는다며 안타까워했다.그래서 주변에 모여 있던 불자들과 보통사람들이 나눌 수 있는 수준의,작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재미라고 표현하기에는 좀 뭐 하지만 그래도 재미를 느낄 만큼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그 중에서 솔깃했던 것은 99년에는 북한 경비정이 너무나 힘없이 무너져서 오히려 우리 쪽에서 마음 상할 북측의 입장을 고려해 격침 장면을 여러 번 보여주지 않았다는 이야기와,이제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는 이야기였다.이미 6·25때부터 수없이 많은 피해를 서로 간에 보았으니 이번 월드컵에서도 남북이 하나되었더라면 4강이 아니라 우승까지도 넘보았을 지도 모르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계기로 이번 사태를 승화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이번 사태에서 불귀의 몸이 되어버린 젊은 청춘들의 넋을 위로하고 다시는 그러한 죽음에 오열하는 이들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남과 북이 마주한 모든 전선에서 서로에게 도움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그 방법중 하나가 어찌할 수 없는 전쟁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해바다와 임진강어구 등,공동 활용이 필요한 지역을 설정해 진지한 논의를 거쳐 자유로운 왕래와 공동 산업활동 가능 지역이 되게 하는 것이다. 더더욱 범위를 넓혀서 휴전선 전지역을 평화지대로 선포하고 우선적으로 군사작전이나 전쟁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의 상호 활동을 허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일도 바람직할 것이다.그것이 가능하게 되면 세계평화에도 도움이 되고 통일의 그 날도 머지 않아 우리 겨레의 앞에 찾아 올 것이다.현재 논쟁을 벌이고 있는 정치 세력들도 하루 빨리 그 가능성을 찾는 데 서로의 지혜를 모으고,그러기 위해 마음을 활짝 열고 방안을 찾는 데 앞장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서로를 인정하고 감싸는 자비심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때이다. 법 현 (불교종단협의회사무국장·스님)
  • [2002 길섶에서] 사격의 함수관계

    지난 1950년대 중반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 홉킨스대학의 의학부는 ‘전투중 사망자 수는 발사한 총탄에 비례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적들을 보다 많이 죽이려면 조준해 발사하는 것보다 다량의 발포가 더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당연히 군 관계자들이 발끈했다.이들은 신병들에게 적을 죽이려면 조준발사해야 한다고 가르쳐 왔다.또 훌륭한 군인은 총탄을 낭비하지 않는다고 훈시했다. 하지만 이 논문에 귀를 기울인 보병사관학교의 지휘관 와이먼 장군은 전투중 많은 양의 총알을 ‘낭비’하려면 총알이 작고 가벼워야 한다는 점에 착안했다.그 결과 오늘날 M16에 사용되는 5.56㎜ 총탄이 탄생했다.종전에 사용되던 M14의 총탄은 7.62㎜였다. 서해교전에서 수천발의 총탄을 퍼붓고도 북한군 경비정을 격침시키지 못했다고 아우성이다.북한군보다 몇 배나 많은 총탄을 발사한 만큼 북한군 전사자가 훨씬 많으리라는 추정이 위로가 될까. 우득정 논설위원
  • 서해교전/검열단 일분일답/北 이상징후 포착… 도발은 예상못해

    국방부는 7일 오전 서해교전 조사결과 발표에서 북한 경비정을 격침시키지 못한 것과 관련,“교전 당시 해군 고속정과 북한 경비정이 뒤섞여 있어서 초계함의 76㎜함포를 북한 경비정에 조준 타격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다음은 배상기(해병대 소장)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실장과 김병관(육군소장) 합참 전력기획부장,정동조(해군 준장) 합참 전력기획차장,안기석(해군 준장) 합참 작전차장,황의돈(육군 준장) 국방부 대변인과의 일문일답. ◆선제 사격한 북한 경비정(등산곶 684호)이 교전 이틀 전부터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나. (정 차장) 그렇다. ◆통상 북측 경비정은 어업 지도·단속을 하지 않는다.합참은 왜 지난달 28일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을 어업 지도·단속 차원이라고 발표했나. (황 대변인) 6월 들어 북한 경비정의 이상징후를 포착했으나 기습도발로는 연결하지는 못했다.교전후 정밀분석을 통해 북측이 6월 한달간을 기습도발 준비단계로 삼은 것으로 평가했다.상황판단이 미흡했다. ◆북측 경비정을 예인한 육도 388호에 대해 사격하지않은 이유는. (정 차장)가까운 표적에 대해 사격하는 것이 작전 관례이다.따라서 끌려가는 배(등산곶 684호)에만 집중 사격을 가했다. ◆북한의 선제공격이 의도적이라는데 정부와 군의 인식이 일치하나. (황 대변인) 북측의 의도적인 공격이라는 게 한·미 공동의 평가이고,정부의 입장이다. ◆북한 경비정을 격침시키지 못한 이유는. (김 부장) 북측 경비정을 격침시키려면 대구경포로 흘수선(선체와 수면의 접촉선)을 정확히 타격해야 한다.이는 근접거리에서만 가능한데 당시 우리측 초계함은 북측 경비정으로부터 8.2∼11.8㎞의 먼 거리에 있었다. 홍원상기자 wshong@
  • 서해교전/ 합참 조사 문제점

    지난달 29일 발생한 서해교전의 대응 방법을 놓고 제기된 몇몇 논란은 7일 합동참모본부의 진상 조사를 통해 분명한 해답을 얻었다.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남아 있고,문제점도 내포해 추가조사 또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전 도발의도 못 느꼈나 합참의 조사는 서해교전이 북한 해군의 기습적인 선제공격이었다는 사실만 적시했을 뿐,이같은 기습공격을 사전에 감지·예측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조사결과를 내놓지 않았다.정확한 정보분석은 기습공격일지라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여지를 주기 때문에 이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기습공격의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되었다.6월들어 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NLL) 침범이 부쩍 늘었으며,교전 당일인 29일 이전에 침범한 5차례 모두 이전과 달리 북한어선을 통제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합참은 북한이 6월11일과 13일 NLL을 침범했을 때에는 우리측의 반응을 떠보았다고 밝혔다.기습 직전인 27일과 28일에는 교전일과 마찬가지로 연평도 서북방 12.6㎞쯤에서 경비정 1척이 먼저 내려오고 몇분 뒤 서북방 25.2㎞쯤에서 1척 등 2개 방향에서 내려왔다. 국방부 황의돈(黃義敦) 대변인은 “올들어 북 경비정들이 조준사격 태세로 내려왔다.”면서 “그러나 그것이 이번처럼 기습도발로 이어질지는 판단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우리측 피해 왜 컸나 합참 조사단은 99년 서해교전 당시보다 우리측의 피해가 큰 것은 선제기습공격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교전 당일 연평도 서북방 25.2㎞에서 남하한 등산곶 경비정 1척에 대해 경고방송 및 ‘-’형의 차단기동을 하기 위해 고속정 2척이 910m까지 접근했을 때 북측은 이미 조준사격 태세에 들어갔고,선두에 있던 참수리 358호가 앞서 나간 뒤 뒤따라오던 357호를 노렸다.첫 발이 지휘부와 통신시설이 있던 조타실을 명중시켰고, 두번째 포탄이 기관실에 맞아 물이 새기 시작한 것이다.세번째 탄은 선체 후미 동력장치를 맞혔다.결과적으로 기존 서해상의 작전교전 지침이 북측에 대한 경고를 위해 1㎞ 이내로 근접하도록 규정한 점이이같은 기습을 불렀다고 판단,합참은 지난 2일 새로운 작전지침을 하달했다. ■북 경비정 격침 실패 이유 해군 고속정이 지닌 40㎜ 기관포와 20㎜ 벌컨포로는 215t에 이르는 북한 경비정을 쉽게 침몰시킬 수 없다.침몰을 위해서는 수면 아래 선체 하부를 명중시켜 물이 새도록 해야 하는데 벌컨포는 조준선이 높고,기관포는 화력이 약하다.따라서 경비정 침몰은 10여㎞ 거리에서 사격하는 초계함의 76㎜ 중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NLL 침범과 함께 19.1∼23.2㎞ 떨어진 덕적도에서 출발한 초계함 2척은 현장도착 시간이 5분 정도 늦었고,사격범위에 들었을 때에는 교전 현장은 우리 고속정 6척과 북한 경비정 1척이 뒤섞여 ‘마음놓고’격파사격을 하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특히 함참은 “사격 지점까지 도착하기까지 제천함이 17분,진해함이 21분 소요됐으나 곳곳에 주민들이버려둔 어망 때문에 지연됐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초기 보고가 아군의 피해보고는 경미한 반면,북 경비정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것으로 잘못 전달됐고,사격종료 직전인 당일 오전 10시48분 북유도탄정의 함대함 스틱스(STYX) 미사일의 레이더를 탐지,추격 공격을 중지시켜 격침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경운기자 kkwoon@
  • 北경비정 2척 7분간격 남하 등 이상징후 알고도 대응 안했다, 합참 현장조사 확인

    지난달 29일 서해교전 당시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을 때 작전을 지휘했던 2함대사령부(사령관 丁秉七 해군 소장)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전술적 초기대응이 잘못됐던 것으로 5일 군 조사결과 밝혀졌다. 경기도 평택의 2함대사령부와 연평도 교전 현장에서 조사를 벌이고 있는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실(실장 裵相基 해병 소장)은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서해교전 전술조사 보고서를 국방부장관 등에게 보고한 뒤 7일 오전 발표할 예정이다.전비태세검열실이 지적한 2함대 지휘부의 문제점은 북한 경비정이 27,28일에 NLL을 넘어 남하했을 때에는 북한 어선과 중국 어선을 단속하기 위한 것이었으나,교전 당시인 29일에는 NLL 근처에서 북한 어선들이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한 사실이다. 즉 경비정 2척이 7분 간격으로 남하하는 이상 징후를 한국해군전술정보시스템(KNTDS)을 통해 파악한 뒤에도 아무런 대응조치를 지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교전 당시 군에는 평소보다 한 단계 높은 ‘B+급’의 월드컵 대비태세 조치가 내려져 있었다.이 때문에 이날 오전 10시1분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한 직후 초계함에 출동지시를 내릴 때 ‘고속순항’명령을 내렸다면 도주하는 북한 경비정이 NLL을 넘기 전에 초계함의 유효사거리 안에 들어와 결정적인 포격을 실시,격침도 가능했을 것으로 조사 결론을 내렸다. 이와 함께 피격된 참수리 357호와 함께 기동하는 358호(편대장 소령 김찬)의 지휘부는 교전 직후 357호의 피해상황을 ‘부상자 4∼5명’으로 보고하는 바람에 경미한 충돌로 판단한 2함대사령부가 치명상을 입고 도주하는 북한경비정을 더 이상 뒤쫓지 못하도록 사격중지 명령을 내렸다고 결론지었다.그러나 연평도를 관할하는 해병 6여단이,어선들이 불법적으로 어로저지선 주변까지 조업하도록 방치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민들을 상대로 한 탐문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1차 조사에서는 결론을 유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운기자 kkwoon@
  • “서해교전 초기대응 미흡”합참 분석…승리 오판 전투기 요청 안해

    서해교전에서 최초 보고가 미흡했고 이에 따른 초기 전술대응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남신(李南信) 합동참모본부 의장은 5일 “해군 2함대사령부는 교전 현장으로부터 받은 최초 보고에서 우리측 피해는 경미한 반면 적의 경비정은 집중공격을 받고 화염에 휩싸여 우리가 승리한 만큼,굳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도주하는 북한 경비정을 격침시킬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 합참의장은 이날 오후 한나라당 서해무력도발 진상조사특위(위원장 姜昌熙 의원) 현장조사에서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의 조사내용을 토대로 이같이 말하고 “2함대사에서 해군 함정만으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보고 당일 합참에 전투기 지원요청을 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고 황의돈(黃義敦) 국방부 대변인이 전했다. 이 합참의장은 또 우리 군도 선제 사격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을 받고 “북측의 적대행위에 대한 자위권 방어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단순한 침범에도 선제 사격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그 근거로 ▲적의 적대행위에따른 자위권 방어 ▲우리측이 적성 선포시에 선제 사격을 할 수 있도록 명시한 ‘정전시 교전규칙(2급 군사기밀)’을 들었다. 특히 ‘적성 선포’는 유엔군사령관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고 있는 해군 함대사령관이 선포할 수 있다.따라서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이 우리측의 시위기동,경고사격 등을 무시하고 빈번히 NLL을 침범한다면 종합적인 판단에 따라 적성을 선포한 뒤 경고사격 없이 선제공격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경운기자 kkwoon@
  • “서해교전때 北사곶항서 미사일 레이더 가동했다”국방부 대변인 밝혀

    서해교전 당시 북한 유도탄정에 장착된 함대함 스틱스(STYX) 미사일의 레이더가 가동,추가 공격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져 우리 초계함들이 강경대응했을 경우 확전 가능성이 높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황의돈(黃義敦) 국방부 대변인은 4일 이와 관련,“교전 직후 우리 해군 초계함 2척이 현장에 접근하자 북한 해군기지인 사곶에 정박해 있던 유도탄정에 장착된 스틱스 미사일의 레이더가 가동됐다.”며 “평소에는 이 미사일의 레이더는 가동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 등산곶에 위치한 사거리 95㎞의 지대함 실크웜 미사일의 레이더가 가동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황 대변인은 덧붙였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유도탄정에서 스틱스가 발사됐다면 우리 초계함에서도 더욱 강력한 함대함 미사일 하푼이 발사됐을 것”이라면서 “이 경우 (더 큰) 군사적 충돌로 확전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진해함과 제천함 등 초계함들은 전투대응 규칙에 따라 스틱스 미사일의 레이더파를 교란시켜 피격을 모면하기 위한 ‘채프’(은박 금속편)를 함정 주변에 뿌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북한 유도탄정 미사일의 발사체는 움직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공격의사보다는 경계상태였던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이에 따라 강화 기지에 있던 우리 미사일도 레이더 작동은 물론 발사체도 움직여 적극적인 대응태세에 돌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북한 서해안에는 사곶 해군 기지에 경비정,어뢰정,유도탄 지원정 등 70여척이,장산곶과 해주 일대에 사거리 20∼27㎞ 해안포 수십문이 배치돼 있다.또 사거리 95㎞의 실크웜 지대함 미사일도 포진돼있다. 따라서 정치권 등 우리측 일각의 주장대로 해군 초계함들이 도주하던 북 경비정을 신속히 추격해 격침시키려고 했을 경우 북한이 유도탄정의 스틱스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확전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러나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99년 6월의 서해교전을 예로 들며 “이를 확전 가능성으로 바로 연결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스틱스 미사일-사정거리가 46㎞의 구 소련제 함대함 미사일로,북한이 보유중인 40여척의 유도탄정에 각각 2∼4기씩 장착돼 있다. 3년전 서해 교전 때에도 지대함 미사일 실크웜과 함께 이 미사일 발사체가 움직여 긴장감을 준 바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
  • [기고] 서해교전 냉정한 분석과 대처를

    남북한 관계의 이중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실감나는 요즈음이다.‘평화통일’이라는 7000만 민족의 절절한 염원을 이루기 위해 다방면에 걸친 대화와 회담을 진행하면서도 군사적으로는 155마일에 이르는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첨예한 대치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지난달 전 세계적 ‘꿈의 축제’라 일컬어지는 월드컵대회에서 터키와 3-4위를 겨루는,바로 그날(6월29일) 북측은 동족인 우리의 쾌거를 성원하기는커녕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함으로써 이런 ‘남북관계의 이중성’을 유감없이 재현(?)시키고 있다. 이 사태로 27명의 무고한 대한민국 군인들이 살상되고 고속경비정인 ‘참수리 357호’가 침몰돼 정부의 대북정책의 기조가 크게 흔들리는가 하면,북녘동포들을 돕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써 온 우리 국민 대다수의 마음을 안타깝고 비통하게 만들고 있다. 북한이 건전한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이상(異常)사회’라고는 하지만,도대체 무슨 연유로 이같은 군사적 살상행위를 했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더욱이 북측은해군사령부 및 외무성 대변인의 조선중앙통신(KCNA)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이번 사건이 “남조선 군사당국이 반북대결의식을 고취시키고 공화국의 국제적 권위를 훼손시키기 위해 저지른 조작극”이라고 왜곡하고 있으니,적반하장(賊反荷杖)이 극에 달할 정도다. 이런 가운데 우리사회 일각에서 “우리 군(軍)의 대응태세에 문제가 있어 패전(敗戰)한 것이 아니냐.”는 견해까지 대두돼 함정장병들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나 섣부른 예단은 위험하다.자칫 사태의 본말을 전도시킴으로써 국가를 위해 싸운 해군장병은 물론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의 ‘제2의 군사적도발’을 막기 위해 불철주야로 나라를 지키고 있는 전체 국군장병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다. 이번 교전은 일각의 판단처럼 우리만이 엄청난 피해를 본 일방적 ‘패전’이 아니라 오히려 북측의 기습도발로 ‘조타실’을 비롯한 함정의 치명적인 부분이 피격받았음에도 자동포 등 모든 화기들을 총동원해 결사항전한 전투로 볼 수 있다.기습공격을 감행한 북측의 경비정 1척이 파손되고 30여명으로 추정되는 인민군들이 사상한 것으로 알려져 ‘일방적 패전’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또 일각에서는 우리 군이 선제공격을 하지 않고 안이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엄청난 후과(後果)를 자초한 것이 아니냐는 견해,확전을 불사하고라도 북측경비정을 격침시켜야 했었다는 주장과 함께 관련자를 엄중처벌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러나 이런 견해나 주장은 대부분 한반도의 분단현실,다시 말하면 ‘이중적 특수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왜냐하면 정전협정 및 남북기본합의서의 관련규정에서 명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북한군의 의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면전 위험을 무릅쓰고 선제공격을 하는 것은 ‘국제평화유지’를 기본사명으로 하는 것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이 경고에서 사격에 이르기까지 5단계에 걸친 교전규칙을 준용한 것은 확전을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조치였으며,이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라고 본다.관련자에 대한 처벌문제 역시 관련정보를 충분히 분석·평가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그보다 먼저 고귀한 생명을 잃은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부상당한 장병들의 쾌유에 힘을 쏟아야 한다.지난해 9·11테러때 미국국민이 정부를 책망하기보다 유가족들의 아픔을 통감하며 여론을 결집,이들을 위한 후속조치 마련에 전력을 기울였던 점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한반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한 북측이 어떤 의도에서 이런 도발을 저질렀는지 그 저의를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아울러 이를 계기로 국론을 결집하고,북측에 대해 공식사과 및 책임자 처벌,재발방지책 마련 등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강석승/ 경기대 정치대학원 교수
  • 서해교전/ 전문가 시각

    우리 국민들은 월드컵축제가 한창이던 지난달 29일 서해상에서 발생한 북측의 어처구니없는 무력도발로 큰 충격을 받았다.그러나 일부 보수층과 정치권은 북측의 의도를 정밀분석하고 합리적 대응책을 찾기보다는 남북간 확전을 부추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학계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이번 ‘6·29서해교전’에서 불거진 논란들을 정리,무엇이 문제이며 바람직한 대안은 어떤 것인지 알아본다. ■北 도발이유는/“NLL 국제 이슈화 계략” 서해 교전 직후 우리 군은 북한 해군의 무력도발 의도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례적으로 85㎜ 중형포를 장착한 북측 경비정 2척은 직선 거리로 남하해서 ‘차단기동’을 위해 선체를 가로로 누인 우리측 경비정 2척 가운데 후미함을 공격했다.구형 함포지만 조준포격이었기 때문에 선체 전방인 조타실과 선체 하부인 기관실,동력이 있는 선체 후미를 차례로 타격했다. 그러나 군은 왜 북측이 어처구니없는 도발을 했고,그런 도발 징후를 감지 못했는지에 대해 적절한 대답을 못하고 있다.전문가들의 견해도 여러 갈래다. 외교안보연구원 이서항(李瑞恒·국제정치) 교수는 “북한 군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완전한 통제 아래 있지 않다는 증거”라면서 “99년 서해교전에 대한 북한 해군의 보복적 성격이 짙으며 남북 정상회담 이후 우리의 군 경계상태가 느슨한 것을 노린 도발”이라고 단정했다. 고려대 서진영(徐鎭英·정치외교학)교수도 같은 의견을 제시한 뒤 “북한의 군부 강경세력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경기대 김재홍(金在弘) 교수는 “북방한계선(NLL)을 드나들며 경계상황을 파악한 뒤 북·미 대화를 앞두고 NLL을 국제적인 이슈화하기 위한 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군의 정보력 부재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편이다.서 교수는 “6월에 꽃게철에 NLL의 단순침범 사례가 많아 우리측이 도발 징후를 감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김 교수는 “북한의 태도를 볼 때 월드컵 기간에 도발한 것은 매우 비전략적인 것이었다.”면서 “우리 군을 몰아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홍원상기자 wshong@塑냅奐敦?개정은/ “지휘관 재량권 늘려야” 1999년 서해교전 당시에도 합동참모본부가 정하는 군 법령인 ‘교전규칙’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들끓었다. 일부 정치권은 이번 6·29교전에서 우리 해군이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패전’한 것은 적절치 않은 교전규칙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비난을 퍼붓고 있다.합참은 2일 북방한계선(NLL)을 넘은 북측 선박에 대해 경고방송 없이 함포사격 거리에서 기동한 뒤에도 북측이 반응이 없으면 위협사격을 하는 것으로 ‘작전지침’을 바꾸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학계 전문가들의 견해는 엇갈린다. 외교안보연구원 이서항(李瑞恒·국제정치) 교수는 “군이 서둘러 작전지침을 바꾼 점은 잘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를 계기로 북측 선박이 NLL 이남으로 넘어오면 확실히 남측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대 김재홍(金在弘·정치학) 교수)는 “북한의 무력도발이 빈번히 일어나는데 단계적 대응이 너무 느슨하면 우리측에 위협이 될 수 있고,반대로 단계를 너무 생략해버리면 국지적인 일이 큰 사건으로 확전될 가능성도 커진다.”고 우려했다.아울러 “우리가 작전지침을 강화했다고 이 때문에 북한이 NLL 침범행위를 그만둘지는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반면 고려대 서진영(徐鎭英·정치외교학)교수는 “작전지침을 너무 급작스럽게 바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면서 “앞으로 작전지침의 상위 개념인 교전규칙을 바꾸기보다는 과거 현지 지휘관에게 선제발포권 등의 지휘 재량권이 적었기 때문에 번번이 당하는 사례가 많았던 만큼 그들에게 재량권을 주는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문책론/ “사태규명후 문책이 순서” 합동참모본부는 2일 현재 전비태세검열실에서 이번 6·29교전과 관련한 작전수행·정보판단·지휘체계 등 전반적인 면에 대해 분석작업중이다. 어느 부분에 군 작전상 문제가 있는지를 따져 이후의 교훈으로 삼고 오류에 대해서는 지휘책임자를 가려 문책하는 작업이다.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일찌감치 군 수뇌부의 사퇴론을 강력하게 들고 나오고 있다. 특히 도주하는 북측 경비정을 향한 사격중지 명령을 내린 것을 빌미로 2함대사령관을 문책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교전상황은 합참의 작전책임자와 국방부장관도 알고 있었던 만큼 사격중지 명령이 문책사항은 아니다.”라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외교안보연구원 이서항(李瑞恒·국제정치)교수는 “미국에서 9·11테러사태 일어났을 때 실수가 발견된 당사자들에 대한 책임론은 사태처리 이후에 나왔다.”면서 “국민의 피습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만큼 지금은 인책을 서두를 때가 아니라 점검과 리뷰를 한 뒤 정확한 판단에 따라 최소한의 문책을 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이 교수는 “이번에 그런 전례를 만들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경기대 김재홍(金在弘·정치학) 교수도 “책임 소재를 가리려면,먼저 무엇을 어떻게,왜 잘못했는지를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예전에는 군에서 사고가 나면 무조건 사단장을 문책했는데 최근에는 해당 부대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지휘자를 가려 책임을 묻는다.”면서 “무조건 고위 지휘자를 문책하는 것은 과거 발상이며 지금은 군수뇌부가 문제를 수습하는 데 신경을 쓰도록 놓아 두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경운기자 ■응전론/ “무분별한 대응은 더 위험” 국민은 군이 ‘무참한 공격’을 당한 뒤에 적극적인 반격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다. 의문은 “왜 자동사격통제시스템을 갖춘 초계함으로 낡은 북한 경비정을 제압하지 못했느냐.”“수원과 원주에 공대함 로켓을 장착하고 대기중이던 F-5전투기는 왜 출격시키지 않았느냐.”등으로 요약된다.함참은 “초계함의 경우 북측 경비정이 유효사격 거리를 벗어났고 전투기는 자칫 확전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기만 했다.”고 해명했다.학계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확전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시했으나 그 이전에 북방한계선(NLL)을 수시로 들락거리던 북한 선박에 대해 적극적인 경고를 하지 않은 것은 문제점라고 지적했다. 고려대 서진영(徐鎭英·정치외교학) 교수는 “사실 정부가 이런 사태에 대해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면서 “강하게 대응하면 국민 정서에 부응할 수는 있겠지만 자칫 또 다른 위험을 부를 수 있어 무차별 응전이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명지대 안영섭(安瑛燮·북한학) 교수도 “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는 군사적 조치나 행동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 상황에서 공군 전투기까지 출격시켜 북측 경비정을 격침시켰다면 문제가 상당히 꼬였을지도 모른다.”고 충고했다. 반면 경기대 김재홍(金在弘·정치학) 교수는 “평소 북측 경비정이 NLL을 넘어 우리 해역에 머물고 있을 때에도 제대로 공격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면서 “아울러 선제 공격을 받은 뒤에도 확전을 우려해서 자제했다는 것은 문책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홍원상기자
  • 서해교전/ 최초 피해보고 늦고 부정확

    ‘6·29 서해교전’당시 우리측 피해 규모가 최초로 보고된 것은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넘는 시점이었고,그 내용도 부정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 관계자는 2일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피해 보고가 2함대 사령부에 접수된 것은 29일 오전 10시50분쯤이었으며,그것도 ‘4∼5명이 다친 것 같다.’는 수준의 부정확한 보고였다.”고 밝혔다.첫 피해보고는 피격된 357호에서 300m 정도 떨어져 있던 고속정 358호가 했다.예인선이 도착한 뒤 357호의 승조원 27명 가운데 24명이 죽거나 다친 것으로 확인됐다. 해군 관계자는 “357호는 첫 포격이 조타실에 명중,통신이 두절된 데다 결사항전을 하느라 보고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358호도 교전중이라 더 일찍 보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전 사실과 남북한 함정들의 기동상황은 교전 직후인 오전 10시30분쯤 고성능 레이더를 갖춘 해군 KNTDS(첨단 지휘통제 장비)를 통해 2함대사령부와 합참 지휘통제실 등에 동시에 보고됐다. 따라서 북한 경비정을 뒤쫓던 초계함 2척이 조준사격으로 격침시키지 않은 것은 그 당시까지 우리측의 피해를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확전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김경운기자 kkwoon@
  • “함대사령관이 사격중지 명령”합참본부 서해교전 의혹 해명

    합동참모본부는 ‘서해교전 당시 북한 경비정이 예인될 때 격침시킬 수 있었는데도 함대사령관 이상의 고위장성이 사격중단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과 관련,함대사령관이 제반전투 상황을 판단해 사격을 중지시켰다고 1일 밝혔다. 합참은 “북한경비정이 29일 오전 10시50분 화염에 휩싸인 채 북상함에 따라 함대사령관이 10시56분 사격을 중지시킨 뒤 지휘계통을 통해 상급부대에 보고했으며,전투상황에서의 사격 중지명령은 현장 지휘관의 고유권한”이라고 설명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서해교전/ 우리 피해 왜 컸나/ 무방비상태 ‘虛’ 찔려

    29일 발생한 서해 연평도 부근 교전에서 우리 해군의 피해는 4명 전사,1명실종,19명 부상 등 고속정 1척에 타고 있던 승조원 27명 가운데 24명이 피해를 입었다.고속정은 예인중에 침몰했다. 이에 반해 우리 고속정을 선제 타격한 북한 경비정은 화염에 휩싸인 채 북쪽으로 도주했다.상당히 파괴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인명 및 함정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에 우리측 피해가 큰 것은 그동안 서해상에서 북한 경비정과 어선이 자주 우리측을 넘어왔고,이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북측 경비정에 근접해 경고방송을 하다 ‘허’를 찔렸기 때문이다.예상치 못한 상황과 450m에 불과한 거리에서 북측의 선제 함포공격 1발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이다.북한은 99년의 서해교전 이후 사거리 15.5㎞의 85㎜ 함포를 수동식에서 자동식으로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아울러 북측은 통상적인 경고사격도 없이 격침시키기 위한 조준사격을 한 것으로 보인다.합참 관계자는 “무방비 상태에서 선제기습공격을 받아 피해가 컸다.”고 말해 서해교전에 대한 보복성 공격이었다는관측을 낳고 있다. 따라서 이번 교전사태 이후 우리 군 당국이 상황판단을 너무 안이하게 한 것 아니냐는 책임추궁이 군 안팎에서 불거질 것으로 보이며,이후 서해상에서 조업하는 선박 등에 대한 경계태세가 크게 강화될 전망이다. 김경운기자
  • [오늘의 눈] ‘축제의 장’으로 승화된 금남로

    한국 축구팀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궈낸 광주 시민들의 감회는 남달랐다. 80년 5월,터질 듯한 긴장감과 분노의 함성으로 뒤덮였던 전남도청앞 금남로가 이날은 환희와 기쁨의 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누구도 드러내놓고 얘기하기를 꺼리며 비극의 현장으로만 각인돼 있던 이 거리에서 신바람나는 굿판이 벌어졌다.혀를 깨무는 울분이 아니라 모두 다함께 어깨춤을 추며 외쳐댄 한마당 축제의 장이었다. 이날 ‘한국 축구의 새로운 역사,빛고을 광주에서 쏘아올릴 것인가.’에 5000만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렸다.광주는 그때 5월처럼 들끓었다.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은듯,‘가자 금남로로,오라 도청앞으로’가 다시 한번 연출됐다.정오를 넘어서면서 20여만 인파로 금세 붉게 물들었다. 광주 시민들이나 전국 방방곡곡에서 달려온 붉은악마들이 민주화 성지에서 ‘히딩크 신화’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염원을 맘껏 토해냈다.마침내 태극전사들이 120분 혈투에 이어 승부차기로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침시키는 순간,지축이 흔들리는 함성이 활화산처럼 터져나왔다.감당할수 없는 붉은 열기는 금세 금남로와 충장로를 적시고 광주 시가지 전체를 온통 열광의 도가니 속에 빠져들게 했다. 금남로가 어떤 곳인가.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광주 민중항쟁의 불을 지폈던 역사의 현장이 아니던가.이곳에서 젊은이들은 민주화와 정의를 외치다 스러졌고 아직도 자식 잃은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귓가에서 망령처럼 떠도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22년의 세월이 흘러 꿈에나 그려보던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어 냄으로써 이제 광주는,아니 금남로는 희망과 공존의 마당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했다.종래의 ‘광주시민만의 행사’라는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어 ‘우리 민족은 하나’라는 거대한 외침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광주 월드컵 구장을 찾은 손님들이 “광주시민들은 정말 남다르다.”고 감탄했다.격정의 환희와 열정을 고스란히 가슴 속에 쓸어담는 지혜에 놀랐다고 혀를 내둘렀다.밤늦게까지 시내 곳곳에서 저마다 승리의 감격을 가슴에 안은 채 차에 올라타 태극기를 흔들며 질주하는 소동을 벌이고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오∼필승 코리아’를 외쳐댔지만 이날만은 그 흔한 안전사고 한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기창/전국팀 기자kcnam@
  • [월드컵뷰] 붉은전사의 끝없는 도전

    꿈이 아닌 눈부신 현실로 우리 앞에 다가온 월드컵 4강,세상의 모든 눈과 귀를 멀게 한 붉은 전사의 끝은 어디인가.부산에서 시작된 승리의 퍼레이드는 대구와 인천을 거쳐 ‘우리의 16강 소원’을 완성했고,그래도 여전히 승리에 굶주린 ‘어린 개떼’들은 대전의 기적과 빛고을 광주의 감격을 뒤로 하고 마침내 요코하마로 가는 마지막 고향역,서울로 입성하고 말았다. 처음 우리의 희망은 소박했다.월드컵 1승만으로도 가슴 벅찰 수 있었고,꿈의 16강 진출만으로도 그동안 참담했던 월드컵 출전의 수모를 모두 갚을 수 있었다.그러나 세계최강 아주리 군단을 넘고 무적함대 스페인까지 침몰시킨 지금,붉은 전사는 ‘발칙하게도’ 월드컵 64번째 마지막 경기의 주인공으로 다가오고 있다.끝이 다가올수록 기적의 마침표는 점점 더 우리의 희망을 조여오지만,우리는 이제 남은 두 경기를 축제의 끝이자,기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우리에게 요코하마가 마지막이 되건,대구가 마지막이 되건 이미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며,신화가 아닌 현실이기 때문이다. 월드컵은 늘기적의 팀을 만들어 내곤 했다.66년 영국월드컵에서 북한은 이탈리아를 꺾고 기적의 8강을 이루어냈고,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유럽의 변방 벨기에는 4강에 오르며 공포의 ‘붉은악마’신드롬을 낳았다.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카메룬은 전대회 우승국 아르헨티나를 격침시키고 아프리카 최초로 8강에 올랐다.94년 미국월드컵에서는 그 전까지 단 한 번의 승리도 없었던 불가리아가 4강에 진출하며 발칸반도의 혁명을 일으켰다.그리고 98년 프랑스월드컵에 처녀출전한 신생독립국크로아티아는 골잡이 수케르를 앞세워 3위에 올랐다. 따지고 보면 한국은 늘 있어왔던 월드컵 이변의 후계자인 셈이다.그러나 끝나지않은,현재진행형인 붉은 전사의 도전은 남다른 데가 있다.그것은 그 도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과거 돌풍 국가들이 한 번도 오르지 못한 결승전 파티가 강력한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도전은 우승을 향한 도전이며,반란은 완벽한 꼴찌의 반란이다.개최국이면서도 예선통과에 비관적이었고,당초 우승확률 100분의 1에 불과했던 한국은 그 1%의 가능성을 99%의 현실로 바꿔가고 있는 중이다. 요코하마로 가기 위한 독일전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도전을 약속해 놓고 있다.축구변방국의 전인미답의 결승전 진출,그것은 월드컵 역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폴란드·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에 이어 독일마저 넘어선다면,붉은 전사는 신세기에 유럽 중심의 축구지형을 새로 그리게 할 것이다. 그리고 요코하마에 붉은 물결이 넘실대며,일본 열도로 진군하는 대사건을 기다려보자.붉은 전사와 붉은악마의 끝은 더 이상 경기결과로 종료될 수 없는,지속가능한 시작을 보게 한다. 이동연/ 문화평론가
  • 월드컵/4강/스페인과 120분 사투 승부차기 극적 승리

    (오사카(일본) 황성기특파원·광주 김성수 김재천 안동환기자) 신화는 끝나지 않았다.500만명의 길거리 응원단과 600만명의 해외교민을 포함한 8000만 한민족의 온 열정을 에너지삼아 빛고을을 누빈 태극전사들이 ‘무적함대’를 자처한 스페인마저 격침시키고 아시아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월드컵 4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세계 5위 포르투갈을 꺾고 6위 이탈리아를 무너뜨린 한국축구의 거침없는 기세를 세계 8위 스페인이 막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태극전사들의 승리에 대한 목마름 앞에서는 바닥난 체력도,만신창이가 된 몸도 결코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한국은 22일 광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2002한·일 월드컵축구대회8강전에서 연장전 포함,120분간의 혈투를 득점없이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이운재의 수훈에 힘입어 5-3의 극적인 승리를 움켜쥐었다. 이운재는 피 말리는 승부차기에서 스페인의 네 번째 키커 호아킨의 킥을 막아 승리의 주역이 됐고 노장 홍명보는 다섯 번째 키커로 나서 월드컵 사상 최대의 이변을 확인하는 킥을 성공시켰다. 한국은 오는 25일 오후 8시30분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12년 만에 우승을 노리는 ‘전차군단’ 독일과 결승전 진출을 다툰다.독일은 우승 3회,준우승 3회의 관록을 지닌 강호지만 최근 위용이 반감한 데다 미국과의 8강전에서도 고전 끝에 1-0으로 이기는 등 허점이 적지 않아 한국이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50년 브라질대회 이후 52년 만에 4강 진입을 노린 스페인은 주포 라울이 결장한 데다 한국을 압도할 것으로 예상된 후반 체력에서도 오히려 뒤져 꿈을 접었다. **터키도 사상 첫 4강 48년 만에 본선 무대를 밟은 터키는 ‘월드컵 새내기’ 세네갈과의 오사카 경기에서 전·후반 90분 접전을 0-0으로 비긴 뒤 연장 4분 스트라이커 일한 만시즈가 골든골을 터뜨려 1-0으로 승리를 거두고 사상 첫 4강의 기쁨을 누렸다. 터키는 오는 26일 오후 8시30분 사이타마에서 통산 5회 우승을 노리는 호화 멤버의 브라질과 결승전 티켓을 놓고 한판 승부를 겨룬다. marry01@
  • [기고] 광주 ‘4강 성지’ 새역사를

    오∼필승 코리아,오∼대한민국,이순신 장군 후예들아,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침시켜라. 드디어 오늘이다.광주 월드컵 경기장.태극 전사들은 스페인 무적함대를 만나 4강진출을 놓고 대해전을 벌인다.무적함대는 서구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 과정에서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가 1588년 5월 영국 정복을 위해 전함 127척,수병 8000명,육군 1만 9000명,대포 2000개로 편성해 출전한 대함대다. 그러나 영국 엘리자베스 1세가 ‘바다의 영웅’으로 치켜올린 F 드레이크 제독에게 크게 완패해 본국으로 돌아갔던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다. 바로 이런 역사를 안고 있는 스페인 축구 대표팀을 맞아 광주는 지금 한국인들의 열망을 응집시켜 엄청난 빛을 내뿜고 있다.4700만 국민들이 하나되어 ‘코리아’를 외친다.1980년 5월,그때처럼 전세계의 눈과 귀가 한반도 남녘 땅 빛고을 광주로 모아지고 있다.그러나 오늘은 축제의 시작이다. “스페인의 젊은이들이여,오라 광주로.오라 코리아의 민주주의 성지 광주로.” 헤밍웨이의 작품인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에 나오는 현장.광주는 1937년 내란에 휩싸인 스페인을 알고 있다.일찍이 평화와 자유를 위해,인간의 아름다움을 위해 싸운 나라가 스페인이다.무력으로 정권을 강탈하기 위해 자국 국민들을 대량으로 학살했던 파시스트의 대명사 프랑코 장군에 맞섰다. 피카소가 “다시는 내 조국 스페인의 땅을 밟지 않으리라.”라고 통곡하며 그렸던 불멸의 대작 ‘게르니카의 학살’ 현장과 ‘5월 광주’는 너무나 닮은 모습이었다. 시인 로르카가 그렇게도 사랑하며 노래했던 나라 스페인,그리고 그의 고향 그라나다의 산과 강.조국을 너무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죄목 때문에 프랑코 장군의 병사에게 총살당했던 로르카의 시편은 그래서 지금도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벌거숭이 산 위에 홀로 선 십자가.아 눈물의 안달루시아 사라져버린 마을이여!’ 20세기를 넘어서면서 어쩌면 역사적 상처가 너무나도 유사한 스페인과 한국,이 두나라가 자랑하는 대표 선수들이 하필이면 ‘광주’에서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되었으니 기막힌 아이러니요,운명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그러나 이번사건은 비극이 아니라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축제 중의 축제가 아닌가. 부산에서 폴란드를 2대0으로 격파,2002 한·일 월드컵 주최국으로 멋지고 통쾌하게 출발했던 코리아.미국과는 대구에서 1대1로 멋진 싸움을 보여줬고 인천에서는 세계축구연맹(FIFA) 랭킹 5위인 포르투갈을 1대0으로 꺾고 목말라하던 16강에 올랐던 한국 대표팀.‘아주리 군단’이라 하던가,지중해 파도를 일으키며 달려든 ‘로마제국의 병사’를 2대1 역전승으로 물리치고 꿈에나 그리던 8강에 진출했다.전국은 연일 열광과 환희로 달구어진 도가니다. ‘Be the Reds’라고 새겨진 붉은 티셔츠를 입고 경기장과 경기장,거리와 거리를 채우며 거대한 바다인 듯이 출렁이는 코리아,코리아 사람들.도시와 농촌을 가리지않고 온 나라가 하나됨의 마음과 열정으로 넘실넘실 물결치는 모습을 볼 때,정말 그 누군들 감격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 올해 6월의 대한민국이다. 정말 어디에서 이런 저력,이런 폭발적인 에너지가 나오는 것일까.선수들은 물론이고,4700만 국민들 모두삶의 자신감으로 부풀어 오른다. 우리들 스스로도 알 수 없는,놀라지 않을 수 없는 빛나는 공동체 정신이 어디에 고스란히 숨겨져 있다가 저렇듯 아름다운 힘으로 솟구쳐 나오는 것일까? 축구 대표팀과 모두 하나가 된 코리아,코리아 사람들.그렇다,바로 오늘이다.한국이 80년 5월 광주를 통해서 한국 민주주의의 새 역사를 썼듯이,2002년 6월22일 오늘,한국은 광주에서 다시 ‘코리아 4강 진출’이란 새 기록을 월드컵 역사에 남길것이다.‘아아 우리 사랑 한반도,코리아 파이팅’. 김준태/ 시인.조선대 초빙교수
  • 캠프24시/대표팀 훈련장 해외언론 북적

    ◇우승후보 이탈리아를 격침시키며 8강신화를 이룩한 한국 대표팀의 훈련장에 해외언론이 대거 몰려들어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19일 오후 훈련장인 대전월드컵경기장에는 미국의 CNN과 이탈리아 국영 라이 텔레비전,일본의 NHK 등 각국의 취재진 수십명이 몰려 거스 히딩크 감독과 이탈리아전 골든골의 주인공 안정환 등을 집중 취재했다. 이기철기자 chu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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