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겨울밤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휴가비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행운이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김현수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참고인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75
  • 잠을 잊게하는 단편영화 ‘감칠 맛’

    “잠을 잊은 그대에게 아침이슬 같이 싱싱한 단편영화 두편을 선물합니다.” KBS-2TV가 봄 개편을 맞아 준비한 ‘단편영화전’(금요일밤 12시50분∼1시40분)이 잠을 잊은 영화 마니아들의 넋을쏙 잡아 끌었다. 심야에 방영된다는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9%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한 ‘독립영화전’은 극장 흥행영화를 그대로 답습하는 구태의연한 TV영화에 새로운 물꼬를 텄다는 평이다. 이번주에 방영될 첫영화는 한동네에 살지만 서로 모르는 세 여자가 겪는 세가지 이야기다.세 여성은 같은 날 각기 황당한 일을 당한다.집앞의 좁은 골목에 차가 가득 세워져 있어서 한참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전철 안에서 행패를 당하거나 남편이 귀가하지 않은 늦은 밤,생면부지의 술 취한남자가 막무가내로 들이닥치는 일이 생긴다.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세여성은 서로를 스쳐가지만 무기력하게 외면할 뿐이다.한가지 주제로 세 이야기를 묶는 치밀한 짜임새가 돋보인다. 두번째 영화는 첫번째 영화와 달리 이야기보다는 이미지를중시한 작품이다.겨울밤,어촌의허름한 가게가 배경이다.가게 앞에서 전화를 걸던 젊은 여자가 떠나가고 가게의 늙은여자는 전화를 떼낸 뒤 가게 불을 끈다.일상적인 하루를 지내는 가게의 여자와 한복집에서 일하며 하루를 보내는 젊은여자.젊은 여자가 퇴근길에 가게에 들러 전화를 걸다가 사라지면 늙은 여자는 전화기를 떼낸다.가게의 불은 꺼진다. ‘단편영화전’은 일반인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20분 내외의 짧은영화 두편을 보여준다.중앙대 영화학과 주진숙 교수가 진행하며 이효인 영화평론가가 특별출연해 감상할 때 유의할 점,영화의 의도,색다른 기법 등의 설명도 간단하게 덧붙인다. KBS는 프로그램에 소개된 독립영화를 ‘단편영화전’ 홈페이지에서 한달동안 다시 볼 수 있도록 했다. ‘단편영화전’의 최수형 책임 프로듀서는 “참신한 영화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려는 의도로 이번 프로그램을 계획했다”면서 “단편영화에 대한 제작환경을 지원하고 상업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송하기자 songha@
  • 교과서 문학 작품 “상당수 잘못 가르친다”

    우리 대부분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진정한 문학작품과 처음 만난다. 그러다 고교 졸업과 함께 ‘소설책’은 읽더라도 ‘교과서에 실릴’그런 문학작품은 더 이상 읽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이렇듯 중고교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작품에는 문학의 고전·정전(正典)이라는 후광과 의미가 실려 있다. 그러면 중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들은 과연 ‘실릴’만한 것들인가.또 교육현장에서 그 작품들을 제대로 가르쳐지는가.문학평론가이자 사범대에서 예비 국어교사들을 지도하는 이남호교수(고려대)는 최근 발간한 ‘교과서에 실린문학작품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현대문학)를 통해 이문제를 숙고한다. 이교수가 머리말에서 “중등학교 문학교육을 실질적으로개선하려는 목적을 갖는다”라고 밝힌 이 책은 제목처럼 중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26편의 현대작품(시 17,소설 9)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촛점을 맞추었다.이교수는 이를위해 각 작품마다 먼저 ‘배우기에 적절한 작품인가’와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를 일일이 따져묻는다. 특히 ‘어떻게’부분에서 일선 국어교사들의 학습내용 및교과서와 참고서 해설내용의 부정적 측면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앞서 ‘배우기에 적절한 작품인가’부분에서도 부정적으로 지적당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효과적인 문학교육이되기 위해서는 우선 대상 작품이 문학적으로 휼륭하고,학생 수준에 맞으며,학생의 흥미를 끌 만한 내용을 지닌 것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윤동주의 ‘참회록’은 그의 ‘서시’나 ‘별을 헤는 밤’에 비해 내용이 모호하기 때문에 고교생에게가르치기에 적당하지 않은 작품이며,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도 시의 묘미나 감동을 전달해 줄 만한 요소가 적은편이라 교과서에 실을만큼 휼륭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이교수의 견해다. 이런 지적은 박용래의 ‘겨울밤’,김동명의 ‘파초’,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등의 시 작품과,김동인의 ‘붉은 산’이나 이범선의 ‘학마을 사람들’등 몇몇 단편소설에도 해당된다.교과서에는 문학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충분히전달하는 휼륭한 작품을 수록해야 한다는 전제에 미달된다는 것이다. 물론 교과서에는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서정주의 ‘추천사’,유치환의 ‘생명의 서’,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김유정의 ‘동백꽃’,황순원의 ‘목넘이 마을의 개’등 중고생들이 꼭 읽고 배워야할 시·소설이 많이 실려 있다.그런데 교사와 교과서·참고서가 상당수 작품을 잘못 가르치고 있다고 저자는 비판해마지 않는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어교사들은 교과서와 참고서의 내용에전적으로 의존하는데,바로 그 내용의 많은 부분이 부정확하거나 틀린 해설이며 쓸모없는 지식이어서 학생들의 이해와감상을 오히려 방해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문학교육에서는 무엇보다 작품 자체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감상이 필요한데도 이를 무시한 채 도식적인 지식만을 주입한다.예를 들어 이상의 ‘거울’에 관해서 많은 고교 문학교과서와 참고서들은 ‘기이한 행적을 보인 작가의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식으로 해설한다.그러나 ‘거울’은 아주 상식적인 작품이고 고교생 수준에서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시로,학생들은 이작품으로 시적 사유와 문학적 상상력을 배우고 즐길 수 있다고 저자는 반박한다. 또 작품에는 없는 내용을 억지로 가져다 붙이는 교사와 해설이 많는데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육사의 ‘청포도’등이 그런 수난과 오해의 좋은 예라는 지적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김수영의 ‘풀’,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등도 교사나 교과서의 추상적이고 견강부회하는 설명이 시의 맛을 ‘가게’하고 만다는 것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쓴 좋은 작품에는 무조건 ‘일제에 대한 항거’나 ‘조국 광복에 대한 열망’등의 주제의식을 상투적으로 부여하는 버릇은 고쳐 마땅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김재영기자 kjykjy@
  • [대한광장] 상원사의 바람소리

    밤새 비바람이 불었다. 덜컹이는 문소리.밤에 듣는 바람에덜컹이는 문소리는 고요보다도 외롭다.그것은 마치 떠나고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자리의 안타까운 울음으로 나의 내부에 스며들어온다. 내 유년의 집 또한 겨울밤이면 문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간혹 아버지의 마른기침 소리와 그 문소리가 중첩될 때면어린 나의 가슴에는 묘한 파장이 일었다.외로움 같기도 하고슬픔 같기도 했던 그 소리의 파장을 좇아 나는 방안에 가득한 짙은 어둠을 소리없이 바라보아야만 했다. 절 집의 밤은 말 그대로 적요 그 자체이다.모든 소리가 다떠난 자리에 부는 바람 소리는 그 선명함으로 가슴이 시리다.속세에 두고 온 정한이 많을수록 바람 소리가 가슴에 머무는 시간은 길다….바람은 자유로운 것 같지만 자유롭지 못하다.그것은 내가 듣던 문 소리와도 같이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것들의 한을 표현한다. 언젠가 나는 상원사에서 깊은 겨울밤의 바람 소리를 들은적이 있다.초저녁 들었던 잠이 한밤중 덜컹이는 문소리에 깨었을 때 바람소리는 더욱 스산하게 다가왔다.잠결에 듣는 바람 소리.그 순간 문득 아버지의 마른기침 소리가 떠올랐다. 곁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바람은 먼 산에서부터 깊은 소리로 다가오다 앞산에 이르러서는 나뭇잎처럼 흩어져갔다. 바람 소리는 언제나 스산하다.그것은 머물러 있는 사람에게길을 떠나야 한다는 당위를 부여한다. 그 당위를 거역할 때존재의 밤은 뜬눈의 새벽을 맞이해야만 한다. 상원사의 겨울은 바람 소리 하나로 잠들어 있는 의식의 선명한 깨침을 요구한다.누구나 상원사의 겨울바람 속에 서면팽팽히 조여 오는 의식의 긴장을 실감한다.상원사에서 좌탈입망한 방한암스님의 열반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죽음마저도생을 방기할 수 없다는 것을 상원사는 방한암스님을 통해 여실히 일깨워 준다. 선객에게는 화두가 사라지면 길 또한 사라져 버린다.길 없는 막막함 속을 헤매지 않기 위해서 수좌들은 숨결과도 같이화두를 챙긴다. 화두가 성성할 때 선객은 비로소 길을 보는것이다.그 곳 청량선원에서 수좌들이 마음의 길을 찾는 것은어쩌면 그 도량 자체가 하나의 화두라는것을 전생의 긴 시간을 통해 익히 들어왔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 세상의 어느 것도 우연인 것은 없다.우리가 보거나 깨닫지 못했다 할지라도 모든 것은 다 존재의 이유를 지닌다.때로 우연인 것처럼 보여지는 것도 알고 보면 모두가 보이지않는 전생의 긴 인연에서 연유하는 것이다.내가 오늘 사람으로 태어난 것도,너와 내가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만난 것도,내가 이토록 바람 소리에 가슴을 저미는 것도 모두다 그래야만 하는 인연 때문인 것이다. 어쩌면 나는 전생에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골골을 떠돌다마른 나뭇가지에서 목놓아 울다 사라져 버리는 그런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바람이 불면 전신에 다가오는 말로 표현할수 없는 이 생생한 느낌과 그러다 마침내 바람처럼 흐느끼는울음이 되는 자신을 바라보면 나는 바람이었다는 먼 인연을생각하게 된다.지금 내가 출가 사문이 되어 산길을 걷다 산사에 잠이 드는 것도 산 골골을 떠다니던 먼 전생의 바람의자취가 내게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바람은 끝내 자유가 되지 못하는 설움을 지니고있다.자유가 되고 싶지만 끝내 자유가 되지 못하는 것이 바람의 한계다.지금 내가 출가 사문이 된 것은 그 한계를 뛰어넘어 다시‘자유’가 되라는 인연의 요구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시간은 금생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먼 전생과 긴 내세 역시 우리가 걸어 가야 할 시간의 길이다.조급하고 편협한 마음을 놓아 버리자.그리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며조금은 늦게 걸을 때 살아가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성전 조계종 옥천암 주지
  • 영덕 강구항 별미기행

    “자∼아∼아∼아아아” 먼동이 터오는 지난 3일 아침,경북 영덕의 강구항에 입찰시작을 알리는 경매인의 구호소리가 요란하다. 영덕 앞바다 왕돌잠에서 4시간을 달려온 대게잡이배 주변에 사람들이 그득하다.대게의 상품성을 열심히 훑는 장사꾼의눈썰미와 외지인들의 막연한 호기심이 교차한다. 다리 하나라도 잃을세라 조심스레 배에서 올린 대게를 포구 길바닥에 쫘악 펼쳐놓고 경매인이 왼쪽부터 가리킨다.“제일 큰 것 두마리” 경매에 응한 사람들은 행여 남들에게 들킬까봐 애써 감춘채 경매인에게 수신호를 보낸다. “6만5,000원.다음,좀 작은 것 열두마리”◆한마리 6만5,000원! 그 비싸다는 영덕대게가 6∼10월의 금어기를 거친 뒤,일년중 살이 가장 튼실하게 오른 제철을 맞았다.쫄깃한 속살은 물론,찬 밥을 넣어 10번은 비빌 수 있다는 게뚜껑밥은 군침을 흘리게 만든다.영덕대게가 대게 중의으뜸인 것은 역시 향.그윽한 뒷향이 입안에 오래 남아있다. 비싼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맨 오른쪽에 늘어 서있는 같은 모양의 대게는 달랑 3,000원.외지인들은 어안이 벙벙하다.소위 ‘물게’를 가려내는 경매인의 눈썰미가 대단하달 수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대게유통업자 이찬우씨는 “살이 꽉 찬 ‘박달대게’를 최상품으로 치는데 100마리 잡았을 때 2∼5마리 정도”라며 “그래서 ‘영덕대게 도소매해 돈 번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그는 곧바로 도소매업자조차 진품 영덕대게를제대로 가려내지 못해 속아 사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대게에 관한 진실과 거짓 대게는 흔히 ‘큰 대(大)’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게 아니다.이 게의 발이 대나무처럼 곧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본에 주로 수출하는 걸로 대개 알고 있느나 왠걸,우리가되레 수입한다.흔히 ‘빵게’라 불리는 암게를 잡지 않는 일본인들의 준법정신에 새끼게 양식까지 성공했기 때문이다.그물 등 어구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도 큰 몫을 했단다.출어때 가지고 나간 그물은 비록 망가지더라도 바다에 버리지 않고 반드시 되가져 와야 한다.바다밑에 가라앉은 그물은 게등 어류의 서식지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대게만 1만5,000t을 포획한다.우리는 겨우 300t에그치고 있다.국내 수요를 대기도 급급하다. 지난 99년 한일어업협정으로 독도 근처의 대화퇴어장을 넘겨준 것이 결정타였다.그래서 금어기에는 대화퇴산을 수입해 먹는다. 쪄냈을 때 위아래가 모두 붉은 빛을 띠는 홍게에 비해 대게는 아래가 허연 빛깔을 띤다. 마침 포구에서 막쪄낸 홍게를 먹어보니 영덕대게와 맛차이가 별반 없다.향기는 조금 떨어졌다.식었을 때는 맛차이가확연하단다.이곳 사람들은 “막 쪄냈다면 굳이 뭐하러 대게먹느냐”고 한다. 대게의 뚜껑은 가로가 세로보다 더 긴 것으로 알고 있으나가로 세로가 신기하게도 똑같다.9㎝미만인 것을 포구로 들여오거나 빵게를 잡았다가는 그대로 ‘빵’(감옥)에 간다. ◆봄내 ‘물씬’ 해안도로 강구항은 일제때부터 영덕대게 집산지로 이름났다. 태백산맥과 똑같은 형태로 동해 바닷속 깊숙이 산맥같은 바위덩어리가 있고,이 가운데 영덕 앞바다 것을 왕돌잠이라 불렀다.이곳 깨끗한 모래바닥에 대게들이 산다.요즘 영덕대게와 한판 원조싸움을 벌이고 있는 울진대게역시 이곳에서 잡힌다 하니 ‘게들이 웃을 일’이다. 남획에다 그물 등 어구를 함부로 왕돌잠 부근에 버리고 오는 어민들 탓에 대게들이 독도쪽으로 많이 빠졌다.그래서 한때 이곳 경매장에선 1㎏짜리 대게가 7만원을 호가하기도 했단다. MBC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로 뜬 이곳 강구항에는 갯내음 못지않게 돈냄새가 풀풀 난다.이곳의 다방만 60여곳.웬만한 도시 뺨치는 규모다.브라운관을 통해 보던 호젓한 포구를 그렸다가는 실망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조선시대부터 영덕대게를 드시고 싶어하는 임금님입맛을 맞추기 위해 벼슬아치들이 대게를 구하러 왔다갔다했다는 축산항과 강구항을 오가는 해안도로 21㎞를 훑는 재미는 쏠쏠하다.특히 영덕대게를 처음 진상했던 곳으로 알려진 차유마을 앞에 새로 만든 해상공원은 거친 바다와 봄기운,등대 등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손색없다. ◆‘대게만 있나’ 포항 구룡포와 함께 또하나의 원조싸움을 벌이고 있는 게 과메기.옛날 선비들이 과거 보러갈 때 나뭇가지위에 던져놓았다가 낙방하면 내려와 술안주로 삼았다는청어 ‘숙성회’.찬 겨울바람에 얼렸다 녹였다 하면서 만든이 안주감은 긴 겨울밤 출출한 속을 채우는 훌륭한 먹거리였다.과메기 생산 일성수산 (054)733-0600 청어가 요즘은 잘 안잡혀 주로 꽁치로 만든다.포항쪽이 기온이 올라가 과메기 산지로선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원조싸움의 골자.이밖에 오징어,물가자미,쥐치 등에 배와 야채를썰어넣은 뒤 육수와 초장을 부어 버무려낸 물회와 내장째 삶아낸 어린 오징어,흑산도 돌문어 등이 또한 입맛을 돋운다. 낚시터횟집 (054)732-5520 서울의 왕돌잠 광화문점(02-738-3331)과 여의도점,경기도성남시 분당점에서 영덕대게를 즐길 수 있다. ◆가는 길=두갈래 길을 생각할 수 있다.중부고속도로로 안동에 이른 뒤 진보를 통해 동해안 7번국도를 타는 것을 생각할 수 있지만 경부고속도로로 경주와 포항에 이른 뒤 영덕으로 빠지는 게 더 쉽다.둘다 6시간은 각오해야 한다.포항에서영덕가는 버스는 수시로 있고 포항공항에서도 강구행 버스가 있다. 포항의 또다른 자랑거리,내연산 입구에서 나와 강구항에들어서기 직전에 개인박물관으로선 꽤 규모가 큰 경보화석박물관이 있어 어린이와 함께 들를 만하다.(054)732-8655영덕 글 임병선기자 bsnim@
  • 문화광장 포커스

    ■알과핵 소극장 ‘해마’. 알과핵 소극장 무대에서 공연중인 ‘해마’는 언뜻보면 통속적인 연극으로 비쳐지지만 평범하지 않은 중년 남녀의 관계를 통해 사랑과인생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선술집 해마에서 벌어지는 여주인 거티(이동희)와 뱃사람(선원) 해리(곽동철)의 사랑 이야기가 큰 줄거리.평탄치 않은 가정과 결혼생활의 아픈 상처를 갖고있는두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고 진정으로 이해하는 연인의 관계로발전하는 과정을 그린다. 미국의 버논 라이스 드라마 데스크상 수상작.그동안 대관공연에 치중했던 알과핵 소극장의 첫 극장 자체 기획공연으로 극장장 임수택이 직접 연출을 맡았다.2월4일까지 평일 오후7시30분 토·일 오후4시·7시(02)745-8833김성호기자 kimus@. ■송정미 새달2·3일 콘서트. 국내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을 대표하는 가수 송정미가다음달 2·3일 서울 문화일보홀에서 콘서트를 연다.‘보리떡 다섯개물고기 두마리’란 제목의 프롤로그로 시작되는 이번 무대도 소외계층에 대한 애정을담은 노랫말들로 채울 계획이다.송정미는 교회음악쯤으로 인식돼온 CCM을 자연스럽게 대중 속으로 끌어들인 주인공.연세대 성악과에 재학중인 지난 88년 뮤지컬 ‘가스펠’로 데뷔했다.직접 작사·작곡한 ‘축복송’은 세계 16개국에서 번안돼 불린다.2일오후7시30분 3일 오후5시.(02)539-0303. 황수정기자 sjh@. ■국립국악원 청소년 특별공연. 겨울방학이 끝나간다.슬슬 방학숙제를 챙겨야 할 때. 음악공연을 보고 감상문을 내야 하는 과제가 있다면 가볼만한 곳이 있다.‘한겨울밤의 꿈’이라 이름붙은 국립국악원의 청소년 특별공연.29일부터 2월2일까지 매일 오후5시 예악당에서 열린다.국립국악원 단원들이 출연하는만큼 수준은 최고.‘여민락과 봉래의’ 등 궁중 음악 및 무용에서 서도민요와 남도민요,산조,국악관현악 ‘신모듬’까지 국악의 세계를 섭렵할 수 있다.5,000원 균일.(02)580-3333서동철기자 dcsuh@
  • 성탄절·아듀! 2000 “겨울밤 추억을 드립니다”

    12월은 콘서트 ‘대목’이다.목하 열심히 인기몰이중인 스타들이야말할 것도 없고,근황이 뜸했던 중년스타들도 너나없이 무대를 마련하는 시즌.성탄절을 즈음해 크고작은 공연들이 봇물터진다.친구 혹은연인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위로가 되는 이즈음.곱씹을 추억거리 하나 만들기로 일찌감치 계획해두자.‘그래! 그 겨울 그 밤엔 그랬었지…’◆20대를 위하여: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오는 23일엔 서울 등촌동이한바탕 소란에 휩싸이겠다. 최근 50억원에 일본 음반진출 계약을 성사시킨 서태지가 이날 KBS 88체육관 무대를 시작으로 내년 1월17일까지 전국 투어콘서트에 들어간다.또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6집 앨범을발표한 김장훈이 ‘만화열전’이라는 이색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60인조 오케스트라가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을 달굴 공연에는 탤런트차태현이 래퍼로 찬조출연한다.‘흔들린 우정’으로 단박에 무명의그늘에서 벗어난 홍경민도 무대를 꾸민다.허스키하면서도 부드러운록보컬에 댄스를 곁들인 3집의 새 음악들을 집중소개한다. 2집 수록곡 ‘사슬’로 정상의 여성로커로 우뚝 선 서문탁은 느지막히 29∼31일 무대를 펼친다.자우림도 스탠딩 콘서트를 열고 특유의장난기와 넘치는 상상력으로 새롭게 편곡된 곡들을 들려준다.장소는스탠딩 전용극장인 ‘트라이포트홀’. 언더록의 대표주자 크라잉넛도 조용히 연말을 넘기진 않을 작정이다. 5년째 해마다 300회가 넘는 라이브 공연을 해온 이들은 부담없는 입장료(1만5,000원)로 기발하고 에너지 넘치는 록페스티벌을 선사한다. ◆30대를 위하여:30대를 겨냥한 콘서트 프로그램들이 모처럼 줄을 잇는다.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갈등을 좀 해야할 것같다.이름만 들어도가슴설렐 들국화와 올해로 데뷔 10년이 된 신승훈이 나란히 무대를펼친다.2000년 마지막날 밤은 김현식 10주기를 추모하는 대형 콘서트로 접어도 근사하겠다.조성모 김경호 김종서 등 30여명의 후배·동료가수들이 한무대에 선다.또 이선희,김경호,이은미도 기억에 남을 밤을 선사한다. ◆40대를 위하여:구구한 설명이 필요없는 ‘국민가수급’스타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트롯트의 여왕’이미자와나훈아,김수희가 올해도 어김없이 디너쇼를 마련한다.곧 데뷔 40주년을 맞게 되는 하춘화도 22∼23일 이틀동안 공연을 준비했다.반가운 무대 또하나.왕년에포크무대를 휩쓸었던 송창식,윤형주,김세환이 29일 ‘포크 빅3 디너쇼’를 열어 옛추억을 더듬는다.마음을 정했다면 서둘러 예매해두자. 황수정기자 sjh@
  • [대한광장] 겨울잠을 자기전에

    그 현란하던 나뭇잎들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가을이 깊어가는가 했더니 어느덧 겨울이다.나무에 안간힘을 다해 붙어 있던 잎들이찬 바람에 견디다 못해 결국에는 떨어져 땅바닥에 나뒹군다.길가에선 나무들은 현란함을 자랑하던 푸른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서 있다.이처럼 맨 모습으로 추운 겨울을 어떻게 견디어 낼 작정인가?나무들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지혜는 놀랍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들은 찬란한 봄을 준비하기 위해 깊은 휴면(休眠)에 들어갈 준비를서두르는 것이다.긴 겨울밤의 침묵 가운데서 뿌리를 북돋우며 찬란한봄의 창조를 위한 힘을 축적하려는 것이다. 나무들의 지혜를 배우는 구도자의 마음을 강조하고 싶은 심정이다.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실은 겨울잠을 준비하기에는 너무나 각박한 것을어찌하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영역 중 한곳도 성한 곳이 없고,사회적 분위기는 IMF와 같은 위기가 다시 닥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불안감이 확산되어 간다.모든 분야에서 누적된 문제들이 분출하는 상황에 직면하여 무엇보다도각 분야 지도자들의 각성과 자각이 필요한때이다.공교롭게도 오늘 한국 사회 지도층들의 무기력과 불감증에 직면하여 떠오르는 교향곡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에스터하치(Esterhazy)공(公)은 대단한 음악 애호가였다.저택 안에 오케스트라를 30년 동안 유지했고,하이든을 지휘자로초빙할 정도였다.비록 음악 애호가이기는 하였지만 그는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안락의자에 파묻혀 잠에 곪아떨어지기 일쑤였다.이것을 안 하이든은 한번은 공에게 골탕을 먹이리라마음 먹었다. 1791년 어느날 밤 하이든은 신작 교향곡 연주회를 가졌다.에스터하치공은 귀족과 친지를 많이 초청했다.예측했던 대로 1악장의 느린 템포로 된 칸타빌레에서 벌써 공은 깊은 잠에 빠졌다.청중 속에서는 수다쟁이 귀족 부인들이 잡담을 하고 있었다.공과 마찬가지로 잠들어 있는 부인이나 귀족들도 많았다.이때였다.“꽝”하는 제2악장에서의 모든 악기의 대성(大聲)!장내를 진동하는 큰 소리에 공과 귀족,귀족 부인네들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이들은 언제 그랬느냐는듯이 시치미를 떼고 마지막악장까지 잔소리나 코고는 소리 없이 조용히 경청했다.그로부터 몇년후 하이든은 영국의 초청을 받아 같은 곡을 연주했다.이때에도 그는이 교향곡을 가지고 고기와 술로 포식한 후 연주회에 참석하여 잠든귀인들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였다.심지어 놀라 의자에서 떨어진 귀부인도 있었다 한다.하이든은 이 교향곡을 놀라게 하는 목적으로 작곡했기 때문에 ‘놀람 교향곡’(Surprise Symphony)이라 명명하였다. 시대의 징조를 알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지도자들을 나태와무기력으로부터 깨어나게 하는 묘책은 없을까? 오늘의 절박한 정치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에서 비롯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시대를이끌어가는 사람을 함께 모아놓고 새롭게 ‘놀람 교향곡’과 같은 음악을 연주해야 효과가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초겨울을 맞이한 우리는 아직 겨울잠에 빠져들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었던찬란한 나무들의 향연에 비길 만한 힘차고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어내지 못한 우리이기에겨울잠을 자기 전에 해결해야 할 산적한 과제들과 더불어 한동안 힘겹게 씨름하지 않으면 안된다.바람직하지 못한삶을 엮어온 과거를 청산하고 아름다운 봄이 가능한 역사를 만들 때까지 아직은 겨울잠에 들어가서는 안된다.다시 한번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지도자들과 전국민이 떨쳐 일어나 암세포처럼 퍼져가는 부조리와 모순들을 과감하게 척결하고 시정하는 운동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된다. 참된 자유와 평화가 지배하는 새로운 역사를 위해 서로 나누고 사랑하는 삶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봄에 싹을 틔우고 여름에 푸른 잎사귀를 펼치고 꽃을 피우며 가을에는 열매를 맺는 나무들처럼 평화로운삶을 구가하기 위해 산성화된 토양을 알칼리성 토양으로 새롭게 개간해야 할 때이다. 김원배 목사·기독교목회자협 상임총무
  • [외언내언] 통일과 문학

    “뒷동산 동백나무 우에 올라/밀짚대로 꽃속의 꿀을 함께 빨아먹던/추억속에 떠오르는 어린 날의 그 얼굴들/눈오는 겨울밤 한이불 밑에서 서로 껴안고/푸른 하늘 은하수를 부르던 혈육입니다”(‘다시는헤어지지 맙시다’중에서) 북의 계관시인 오영재씨(64)가 이산가족 상봉단의 일원으로 지난 15∼18일 서울에 왔다가 남겨놓은 시 가운데 한편이다.이 시를 남쪽 어느 시인의 작품이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북을 대표하는시인의 작품에 흐르는 정서가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북한 문학작품이 모두 우리 정서에 맞는다고 강변하려는뜻은 아니다.계간지 ‘21세기 문학’ 최신호가 소개한 북한시 몇편은 50여년 분단이 자아낸 그쪽 시 세계를 남쪽 보통사람이 이해하기 쉽지 않음을 깨닫게 해준다.“온 한해/오곡을 위해/성실한 땀을 다 바치고도/장군님 이끄시는 우리의 강성대국/쌀로 받들 한마음 불타올라…”(박해출의 ‘흰눈 덮인 대지는 잠들었어도’) “…우리 장군님인덕으로/서로 돕고 이끌며/정에 묻혀 사는 사람들의/너무도 평범한자랑이여”(박옹전의 ‘사람들이 좋지요 뭐’) ‘조선문학’ 지난해와 올해 수록분에서 인용한 북한의 시 구절들이다. 그런가 하면 북의 한글학자 류렬씨(82)는 남쪽 거리의 인상을 말하면서 “여기에 와보니 거리에 써붙인 글이 외래어·외국어투성이다. 민족 주체성이 없다”고 말했다.또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선물’(북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하사품에만 사용),‘애무하다’(이성간의 신체적 접촉을 뜻하는 말이 북에서는 ‘쓰다듬다’는 폭넓은 의미로 사용) 등 많은 단어들의 의미가 달라진 사실도 확인했다. 남과 북을 하나로 이어주는 바탕은 공통된 민족정서와 이를 담아내는 우리 말글이다.이번 이산가족 상봉에서 혈연의 힘이 무엇보다 강하다는 점이 입증되긴 했으나 이는 세월이 흐르면 어쩔 수 없이 퇴색하는 부분이다.남과 북은 정서상으로나 언어상으로나 폭넓은 공통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질화의 위기에 처해 있다. 마침 남의 시인 고은씨(67)와 북의 시인 오영재씨가 지난 17일 하얏트호텔 만찬장에서 만나 남북 시인이 함께 문학지를 만들자는 의견을 나누었다.개인적인 의견 나눔이지만 ‘남북 문학지’ 만들기가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그동안 달라진 서로의 삶을 이해하며,이질화하는 남북 언어를 재통합하기에 문학만한 수단이 또 있겠는가.남북 문인들이 힘 합쳐 만든 문학지가 민족통일을 밝히는 작은 촛불이돼 서가를 밝힐 날을 기대한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北영웅시인‘상봉감격’노래

    ■다시는 헤여지지 맙시다. 만나니 눈물입니다다섯번이나 강산을 갈아 엎은50년 기나긴 세월이 나에게 묻습니다너에게도 정녕 혈육이 있었던가아,혈육입니다. 다같이 한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난 혈육입니다한지붕 아래 한뜨락 우에서 다같이 아버지,어머니의 애무를 받으며 자라난 혈육입니다뒷동산 동백나무 우에 올라밀짚대로 꽃속의 꿀을 함께 빨아먹던 추억속에 떠오르는 어린날의 그 얼굴들 눈오는 겨울밤 한이불 밑에서 서로 껴안고 푸른하늘 은하수를 부르던 혈육입니다정이란 그렇게도 모질고 짓궂어 헤여져 기나긴 세월때없이 맺히는 눈물속에 조용히 불러보는 그 이름들승재형 형재동생 진이 흥이 필숙아 영숙아이렇게 만났으니 다시는 헤여지지 맙시다평양에서 서울까지 한시간도 못되게 그렇게도 쉽게 온길을 어찌하여 50년동안이나 찾으며 부르며 가슴을 말리우며 헤매였습니까다시는 다시는 이 수난의 력사,고통의 력사,피눈물의 력사를 되풀이하지 맙시다또다시 되풀이된다면 혈육들이 가슴이 터져 죽습니다 민족이 죽습니다반세기 맺혔던 마음의 응어리도 한순간의 만남으로 다 풀리는 그것이 혈육입니다그것이 민족입니다정견과 신앙이 다르면 통일은 못합니까만나서 얼싸 안으니 그 뜨거움도 같고 눈물도 같은데 이것이 통일이 아닙니까우리가 우리지 남은 우리가 아닙니다우리 힘으로 우리 손으로 통일합시다그 누가 이날까지 우리의 이 길고 긴 아픔을 알아주었습니까누가 우리에게 통일을 선사했습니까누가 우리의 통일을 바라기나 했습니까다시는 헤여지지 맙시다 형제들이여 동포들이여영원히 리별이라는 것을 모르고(중략) 오늘의 이 만남의 길을 통일의 길로 이어갑시다북과 남 두 수뇌분들이 힘겹게 솟구쳐 주신 통일의 그 샘줄기가 순조로이 흐르도록 물길을 크게 내여 갑시다아,7천만이 바라고 바라던 민족의 새장이 펼쳐졌습니다위대한 력사가 흐르고 있습니다반목과 대결의 얼음장을 녹이며 막혔던 분렬의 장벽을 부시며 화해와 협력,대단결의 대하가 흐릅니다 통일의 대하가 흐릅니다이밤이 가고 또 한밤이 또 한밤이 가면 우리는 돌아갑니다그러나 헤여질때 형제들이여 울지 맙시다 다시는 살아서 못보는 그런 영원한 리별이 아닙니다서로가 편지하고 서로가 전화하고 서로가 자유로이 오고 갈 통일을 한시바삐 앞당깁시다통일만이 살길입니다 더 늙기 전 더 늙기 전에 우리가 어린 날의 그때처럼한지붕 밑에서 리별없이 살아 봅시다우리 다시는 헤여지지 맙시다 다시는 헤여지지 맙시다 8월15일 서울에서오영재
  • 겨울밤 우주에는 무슨일이…

    신화와 별자리의 세계를 이어주는 ‘풀코스 별자리여행’과 태양계 가족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풀코스 우주여행’이 현암사에서 출간됐다. 안성천문대 대장 김지현씨 등 3명이 공동저술했다. ‘풀코스 별자리여행’은 별자리 탄생의 역사적 배경과 별자리 찾는 방법,황도12궁,별지도 익히는 법 등을 담고 있다.또 봄 여름 가을 겨울철 별자리이야기가 신화와 함께 소개되며 각 장에 등장하는 천체사진과 환상적인 하늘 그림은 우주의 신비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 ‘풀코스 우주여행’에서는 태양을 비롯한 수성 지구 토성 소행성 혜성 유성 등과 관련된 이야기가 사진 및 일러스트와 함께 펼쳐진다.수성의 하루가2년인 이유와 금성의 모양과 크기가 바뀌어 보이는 원인,화성탐사의 매력 등 태양계와 관련된 지식들이 제시된다.각권 9,800원. 정기홍기자
  • [외언내언] 평양 군고구마 장수

    도시서민들에게는 겨울철 군고구마가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진다.추운 겨울밤 가족들과 오순도순 나눠먹던 군고구마는 다정한 인정이 어울려 그 맛을더해주고 있다.가난할때는 요기가 됐으며 여유가 생긴 지금도 그 맛을 잊지못해 퇴근길에 군고구마 장수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구마 하나를 더주는군고구마 장수의 따뜻한 인정은 예나 다름이 없다.그래서 겨울밤 군고구마장수는 도시서민들에게 친근한 이웃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그런데 올 겨울들어 평양시내에 30여년만에 군고구마 장수가 등장해서 눈길을 끌고 있다. 북한정권수립 이후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평양을 비롯한 여러도시에서 볼 수 있었던 군고구마 장수가 일제히 자취를 감추었다.군고구마 뿐만아니라개인사업이 허용되지 않고 있던 북한에서 당국의 단속으로 군고구마 장수를볼 수 없었다.지난 26일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 방송은 평양시내 네거리마다 야외 군고구마 판매대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이 야외 판매대설치는 김정일(金正日)총비서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며 평양시안에 구수한 군고구마 냄새가 한껏 풍기고 있다고 전했다.인민군 부대에서 맛이 좋은 강령고구마 수백t을 공급했다고 덧붙였다. 올해 평양시내에 고구마 장수가 다시 등장한 것은 북한 사회변화의 실상을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또한 지난 5년간 북한 지하경제의 대표적 기능으로 작용했던 암시장의 확산으로 이해되며 특히 지난해 헌법개정에 따른 개인사업의 허용이라는 측면에서 시사하는바 크다.북한이 감자를 제2의 주식으로한 농업정책에 따른 고구마 생산의 증산도 군고구마 판매대를 허용한 배경으로 볼 수 있다.아무튼 평양시내에 군고구마 장수가 다시 등장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이어온 서민생활의 정서가 되살아 났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변화로 인식된다. 필자가 92년 제8차 남북총리회담 지원단으로 평양을 방문했을때 만난 안내원이 군고구마 장수를 모른다고 했던 점을 감안하면 북한변화의 격세지감을확인할 수 있다.우리 서민생활의 정서가 담긴 사회변화가 더욱 확대됐으면하는 바람이다.획일적인 북한사회에서 다양한 생활환경의 변화는 시대흐름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라는 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겨울밤의 정막을 깨며 외쳐대는‘메밀묵과 찹쌀떡’장수의 애잔한 목소리를 들을 날도 머지 않을 것같다.아무튼 동토(凍土)의 평양시내에 민족의 생활정서가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며 남북관계 개선에도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다. 張淸洙논설위원 csj@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田允喆 공정거래위원장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고 어느 시인은 고백했지만,나를 키운 것은 온통 어머니였다.아득한 옛날 고려의 어느 가객(歌客)이 ‘사모곡’(思母曲)에서 비유로 읊었듯이 호미(아버지)도 날이건만 낫(어머니)같이 들리는 없는 것일까.MBC TV의 주간 연속극 ‘육남매’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시야가 흐릿해지는 적이 있다. 연속극 속의 어머니는 올망졸망한 육남매를 모두 혼자 거두면서 떡장사,묵장사,남의 집 빨래 해주기 등으로 생계를 이어간다.역시 육남매를 두었던 우리 어머니는 막내인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는 남편과 함께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하지만 그 여인에게도 상부(喪夫)와 함께 지독한 인고(忍苦)의 세월이 찾아든다. 막내가 중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자 일단 학비는 면제받게 되었다며 기뻐하시던 어머니는 이내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시골집을 버리고 시내로 나왔다. 출가한 셋째딸네 집에 잠시 맡겨두었던 솜털 송송한 신입생 막내아들을 당신 품으로 다시 불러들인 어머니는 목포역 앞 도로변에 판잣집을 짓고 짐꾼들을 상대로 밥장사를 시작했다.우리의 첫번째 ‘판잣집시대’ 3년은 도무지잠을 모르던 억척스러운 어머니가 사시장철 입었던 몸뻬로 지금도 내 기억의 액자에 담겨 있다. 중학교를 마친 아들을 서울로 유학 보낸 어머니는 목포 둘째딸네 집으로 거처를 옮겨 가끔 사위의 눈치도 보면서 서울의 아들을 편지로 원격훈육(遠隔訓育)하였다.딸이 꼭두새벽에 집을 나서는지라 식구들 아침밥 준비는 어머니 차지였는데,어머니는 뒤주에서 바가지로 퍼낸 쌀에서 매일 한줌씩을 덜어따로 항아리에 모았다가 그것을 팔아 고학하는 막내에게 학비에 보태라며 부쳐주곤 하였다.그러면서 어머니는 짬짬이 고향에서 도붓장사를 했고 고등학생 아들은 서울에서 겨울밤 군밤장사를 했다. 대학 4학년때 어머니와 나는 서울에서 두번째 ‘판잣집시대’를 열었다.7년 만에 모자가 함께 살게 된 것이다.가정교사로 모은 약간의 돈으로 청량리홍릉 산기슭에 판잣집을 짓고 이번에는 아들이 어머니를 모셨다.이 집에서는 어머니와 바로 위의 형,그리고 나,세 사람이 살았다. 같은해 가을 나는 친구와 함께 고시공부를 위해 고향의 어느 절에 들어갔다.역으로 가려고 청량리 집을 나서려는데 어머니가 몸뻬를 뒤적거리시더니 꼬깃꼬깃한 지폐 두 장을 꺼내 내 손에 쥐어 주셨다. 사흘 뒤 절에서 소복 입은 어머니 꿈을 꾸었다.날이 밝아 다시 책을 붙들고씨름하고 있는데 어머니의 부음이 날아들었다.바로 추석날이었다.
  • [변혁으로서의문학과역사] (15) 예술활동 보장하라 문화인 성명

    작품에서 ‘나’는 고결한 예술가상으로 부각되어 국민들이 고통을 당하는판에 음악가라고 잘 살 수는 없다고 여기며 부당한 이익이 주어진대도 거절할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다.‘나’는 선전부장관 부인의 우아한 자태 앞에서도 속으로는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나의 아내보다 손톱만치도 어여쁘다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고 할 정도였는데,이런 시각으로 본 전시하의 부패타락상에 대하여는 자못 비장하다.“나는 도학자도 아니고,또 무슨 수신선생님도 아니고 노래를 즐겨부르는 성악가입니다.춤인들 왜 싫어하겠습니까! 천만에! 싫어할 이가 있습니까! 나도 이십대 대학생 시대에는 춤에 미쳐서 세상을 모르고 날뛰던 시절도 있었습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피난지에서의 그 광란의 겨울밤을 ‘나’는 “미쳤다! 미쳤어! 모두 머리가 돈 세상이다! 사움은 누가 해주기에.....우리나라 장관이나 고관이나,그리고 그들의 귀부인들은 반드시 댄스 파티를 가지고 거기 도취해야 하는 것인가?”라고 고발한다.“버터나 잼이 맛이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그러나 나는 지금 빵이나 버터 보다는 김치 깍두기를 더 소중히 생각해야할 시대와 환경에 있습니다”라는 것이 성악가 ‘나’의 가치관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선전부장관 부인 ‘너’는 댄스홀에서 “어떤 외국 장교같은 사람의 품에 안기어서 미친 듯이 빙빙 내앞을 지나가면서 나에게 던진눈짓”인 “추파”를 보내는 여인으로 그려지는데,그 순간 ‘나’는 “드러운 연!” “일국의 장관의 부인이라는 연이.....”로 명칭을 바꾼다.그러면서도 ‘나’는 ‘너’에게 “온 백성이 다같은 운명에서 괴로운 삶을 이어나가는 것입니다.당신만이 슬프고 당신만이 외로운 것이 아닙니다”고 거듭 충고하며,육욕의 본능에서 헤어날 것을 종용한다. 소설이 이렇고 보면 50년대적인 계엄령 하의 문화풍토에서는 발칵 뒤집힐만한 일이다.그런데 정작 현실비판 의식에 대한 반성은 사라져 버리고 모델문제만 폭력으로 부각되어 버린건 한국적 권위주의 사회의 반영이기도 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작가에게 폭행을 행사하고 난 뒤의 처리방법이다.변호사와 언론인과 문화인들에 의한 헌법 제14조(학문과 예술의 자유)에 근거한 부당한 처사라는 항의가 잇따랐다.심지어는 현직 대검찰청 검사까지도 폭행사실을 위법이라고 힐난했는데,당국은 아랑곳 없이 이 작품 게재 잡지에 대한압수를 시작(2월 18일)했고 이에 한국기자협회에서 항의하고 나섰다.그러나이철원 처장은 이 소설에서 ‘선전부장관 부인’이란 어휘 중 ‘선전부장관’이란 다섯자만 삭제하고 계속 발매하도록 타협했다는 공문을 보내는 한편으로는 각신문사 편집국장 앞으로 이 기사를 다루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는공문(2월19일)도 보내 더욱 사건을 복잡미묘하게 만들어 버렸다.당연히 비밀로 내려졌을 이 공문은 정부 기관지였던 ‘서울신문’이 사진판으로 그대로공개(2.22)해버림으로써 이 필화는 드디어 언론계에까지 확대되었다. 당시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에서는 이 사건을 둘러싸고 김광섭·모윤숙의 불문에부치자는 주장과 절대다수의 강경대응책이 맞섰는데,위원장 박종화는 중립적인 입장이었다.이 사건으로 믿던 도끼인 ‘서울신문’에 발등을 찍힌 공보처는 박종화사장의 경질을 노려 경무대 비서 김광섭을 천거했으나 표대결에서박종화에게 고배를 마셨다.그러나 공정보도의 의지를 지녔던 오종식 주필은물러났고,이 사건의 취재를 주도했던 사회부장 역시 일찌감치 퇴사했다는 후일담은 한국 현대언론사의 또 하나의 흑막을 보여준다. 이에 대한 다른 문화인들의 자세는 어땠을까.우선 재구(在邱.대구로 피난한 문화인들)문화인 45명(전숙희·김팔봉·최정희·박두진·조지훈·박목월·정비석·홍성유·박인환 등 문인과 김동원·이해랑·최은희·김승호 등 예술인)은 성명서를 발표(2.21)했는데 그 요지는 인권유린의 폭력범 처벌과,이철원 처장 부인 이씨는 “김광주씨를 비롯하여 전국 문화인에게 신문지상을 통하여 사죄하라”는 것,그리고 “진정한 민주예술 활동의 발전과 보장”이 포함되어 있었다.전시 아래서 이만한 성명이 나온 것은 가히 기념비적인 사건이라 하겠다. 문학예술을 재단하는데 익숙한 권력은 바로 이런 성명이 발표되던 날 돌연정책을 바꿔 ‘광무신문지법’에 의거해 잡지 ‘자유세계’에서 ‘나는 너를 싫어한다’가 실린 16쪽 전체를 삭제토록 지시했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親日의 군상:9/시인 金東煥(정직한 역사 되찾기)

    ◎名詩 남긴 민족 시인 끝내 변절의 길로/“聖戰 나가 죽는것이 충성의 길” 전국 돌며 강연회/‘삼천리’ 등 각종 친일매체에 논설·평론 게재 앞장/1941년 임전대책 협의회 결성 주도… ‘황민화’ 실천/해방후 반민특위에 자수/6·25때 납북후 행방불명/3男 부친 행적 대신 사죄 “아하,無事히 건넜을까/이 한밤에 男便은/豆滿江을 탈없이 건넜을까?//저리 국경 강안을 경비하는/외투 쓴 검은 巡査가/왔다- 갔다-/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넜을까”//소곰실이 密輸出馬車를 띄워놓고/밤새가며 속태이는 젊은 아낙네/물레 젓던 손도 脈이 풀려서/파!하고 붓는 漁油등잔만 바라본다,/北國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가는데.(‘국경의 밤’ 제1부 첫머리에서) 새벽마다/고요히 꿈길을 밟고와서/머리마테 찬물을 솨- 퍼붓고는/그만 가슴을 드듸면서 멀니 사라지는 北靑물장수.//물에 저즌 꿈이/北靑물장수를 부르면/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온 자최도 업시 다시 사라진다.//날마다 아츰마다 기대려지는/北靑물장수.(‘北靑물장수’ 전문)‘시인은 가도 시는 영원한가?’ 낯익은 두 편의 시를 보면서 우리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한 시인을 그리워하게 된다.파인(巴人) 金東煥(1901∼?,창씨명 白山靑樹).바로 그다.흔히 그를 ‘북국(北國)의 시인’이라고도 부르는 것은 그가 함경북도 경성(鏡城)출신인데다 북방지역의 정서를 담은 시를 여럿 쓴 때문이다. ○한때 민족시인으로 각광 위에 첫번째 소개한 ‘국경의 밤’은 우리 국문학사에서 ‘최초의 장편 서사시’로 평가받고 있다.당시 북방지역 조선인들의 애환을 담은 이 시는 작품 저변에 흐르는 민족적인 색채로도 특별한 평가를 받고 있다.두번째 시 ‘북청(北靑)물장수’는 ‘북청’이란 지명을 유명하게 만들었다.당시 경성(京城·현 서울)에는 물장수를 하면서 아들이나 동생의 학비를 대는 북청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문단생활 초창기 토속적인 정서로 식민지하 조선인들의 삶과 애환을 노래한 ‘민족시인’ 김동환.일제말기 그의 변절은 이래서 더욱 안타까운 것이다. 김동환의 첫 출발은 신문기자였다.서울 중동중학교를 마치고 1921년 일본 동양(東洋)대학에 입학한 그는 23년 9월1일 도쿄 일대를 강타한 ‘관동(關東)대지진’이 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그는 1924년 고향 경성에서 발행되던 ‘북선일일신문(北鮮日日新聞)’기자로 입사,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이 신문은 일본인이 발행하던 지방신문으로 일문판(日文版)과 조선문판을 발행하고 있었는데 그는 여기서 조선문판 기자로 있었다. 입사 한 달만에 그는 동아일보로 일자리를 옮겼는데 여기서도 1년을 채우지 못했다.당시 좌익기자들이 주도하던 파업에 참여했다가 결국은 그도 사표를 내고 동아일보를 떠나야만 했다.이후 시대일보·중외일보를 거쳐 27년 5월 조선일보에 자리를 잡았다.그의 5년 남짓한 신문기자 생활은 조선일보에서 막을 내렸다. 그는 신문기자보다는 시인·문필가로 더 유명하다.그의 문단활동은 신문기자 생활보다도 앞선다.24년 5월 梁柱東의 추천으로 ‘금성(金星)’지에 ‘적성(赤星)을 손가락질 하며’를 발표하면서 그는 문단에 데뷔하였다.대표작중의 하나인 ‘북청물장수’는 그가 동아일보 입사 1주일만(24년 10월13일)에 동아일보 지면에 발표한 것이다.첫 시집 ‘국경의 밤’은 이듬해 3월 한성도서(漢城圖書)에서 출간됐다.2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그의 시작활동은 40년대 초반까지 계속됐다. 신문기자,시인에 이어 그를 상징하는 또 하나는 잡지 ‘삼천리(三千里)’발행인(사장).‘삼천리’는 1929년 6월에 창간하여 42년 1월까지 통권 152호를 발행한 월간 종합잡지.(42년 5월1일자부터 ‘대동아(大東亞)’로 바뀜) ○中日전쟁 계기 친일 선회 ‘삼천리’ 창간배경에는 재미있는 일화 한토막이 있다.원래 그는 자본가는 아니었다.그가 이 잡지를 창간한 밑천은 ‘촌지’였다.당시 그는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차장)로 총독부를 출입하고 있었다.그해 가을 조선총독부는 경복궁에서 ‘조선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출입기자들에게 300원씩(액수에 대해선 일부 주장이 엇갈림) ‘촌지’를 돌렸는데 당시 쌀 한가마 13원 하던 시절이니 꽤 큰 돈이었다.대부분의 기자들은 ‘공돈’이라며 옷을 사 입거나 유흥비로 날렸으나 그는 이 돈을 ‘사업자금’으로 활용한 셈. 초창기 ‘삼천리’는 우리 국토를 상징하는 제호(題號)만큼이나 민족적인 색채가 강한 잡지였다.당대의 거물 문사·논객들이 단골필자로 참여하여 조선의 역사·문화와 당대의 시대상을 주요 테마로 다루곤 했다.‘삼천리’는 당시 민간신문사들이 발행하던 종합잡지 ‘신동아’‘조광(朝光)’ 등과 어깨를 겨룰만큼 인기있는 잡지였다. 3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그는 잡지 발행 이외에도 신문과 다른 잡지 기고를 통해 왕성한 문필활동을 했다.그러나 그에게도 이른바 ‘시국(時局)’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37년 7월 중일전쟁 발발을 분수령으로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이 전개되자 여타 문사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이 친일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시국은 점점 긴장하여 가고 장기전(長期戰)의 체제는 점점 굳어가고,그리하여 국민총동원의 추(秋) 다다랐도다.우리는 일체의 힘을 합하여,‘전쟁에 이깁시다.국책(國策)의 선(線)에 연(沿)하여 일체의 동작을 합시다’…” ○학병 참가 촉구 詩 발표 38년 5월 ‘삼천리’ 창간 10주년호 ‘편집후기’에서 그는 자신의 향후 친일노선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였다.같은 호 기명칼럼 ‘시평(時評)’(‘권문세가의 반성을 촉(促)함’)에서 그는 “…이제 제국은 아세아의 번영과 행복을 위하여 대지(對支)응징의 전쟁을 기(起)하고 있다.…자식과 조카(侄)를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군문(軍門)에 보내야할 것”이라며 지원병으로 나갈것을 독려하였다.그가 친일로 전향한 배경에는 ‘삼천리’의 재정난이 한 요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보다는 기득권 유지와 ‘대세순응주의’가 주된 요인이었다고 보여진다. 그의 친일시는 이듬해부터 노골적으로 시작된다.지원병을 찬양한 ‘1천병사(兵士)의 삼(森)’에서는 ‘저마다 폐하의 무궁한 성대(聖代)를 노래부르는 젊은 건아’로,‘고란사에서’라는 시에서는 ‘대화(大和)의 처녀가 사라져 가버린 뜰에 나홀로 서성거리며 어조영(御造營)의 망치소리에 천년 역사를 회상’하며 부여신궁(扶餘神宮) 근로봉사의 감격을 읊었다.(두 편 모두 ‘삼천리’39년12월호) 조선인 학병 동원이 시작되자 그는 ‘매일신보’에 ‘권군취천명(勸君就天命)’(43년 11월6일)이라는 시를 통해 ‘번듯하게 사는 길이란­ 제 목숨 나라에 바쳐,…군국(軍國)에 바칠 때일세 ’라며 ‘성전(聖戰)’에 나서라고 촉구하였다.이 밖에도 그는 각종 친일매체에 다수의 친일논설·평론 등을 남겼다. ○각종 단체서 背族행위 그의 대표적인 친일행적은 그가 주동이 돼 41년 8월25일 ‘임전대책협의회’를 발족시킨 일이다.이 단체는 임전(臨戰)체제하에서 자발적으로 황민화운동을 실천하기 위해 조선내 친일인사를 총망라하여 구성한 단체로 발족 1개월 후인 9월에는 尹致昊 중심의 친일단체인 흥아보국단 준비위원회와 통합,‘조선임전보국단’으로 재출발하였다.그는 이 단체의 핵심요원인 상무이사로 활동하였다.이 밖에도 그는 조선문인협회 발기인,조선문인보국회 상임이사,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대화동맹 위원 등을 지내면서 일제말기 친일대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해방후 그는 자신의 친일행각을 뉘우치며 반민특위에 자수하였다.반민재판에서 공민권 정지 5년을선고받은 그는 6·25때 납북됐다.94년 그의 3남 英植(65)은 부친의 전기를 펴내면서 부친의 친일행적에 대해 대신 사죄한 바 있다. “문인이 지켜야 할 절개에 두 가지가 있다.…믿던 부류의 사람까지 이(利)에 팔리고 지위에 움직임을 받아서 부끄러운 처신을 취한다면 대중이 그를 버릴 것이요,예술은 그를 타기(唾棄)할 것이다…”.아직 민족혼이 살아 숨쉬던 시절 그가 쓴 이 한 구절이 가슴을 치는 것은 왜일까. ◎金東煥­崔貞熙 ‘사랑의 행로’ ‘같이한 친일’/유부남­미망인의 동거/7년 산뒤 딸 둘 낳아/崔貞熙 일제말 친일 전향 巴人 金東煥과 여류소설가 崔貞熙(90년 작고)의 ‘불륜’은 한국문단에서 잘 알려진 이야기다.두 사람 모두 문인이자 일제말기 친일행적도 똑같이 남겼다. ‘시대일보’ 기자 시절인 1926년 원산(元山) 출신 신여성 申元惠(93년 작고)와 결혼한 파인은 이 사이에서 3남1녀를 두었다. 파인이 崔貞熙를 처음 만난 것은 1931년 초가을.중앙보육학교장 朴熙道(33인중 1인으로 나중에 친일로 변절함)의 취직부탁을 가지고 삼천리사를 찾아 온 崔貞熙를 파인은 당일로 ‘부인(婦人)기자’(여기자)로 채용하였다.당시 崔貞熙는 결혼한 몸이었다. 두 사람이 동거를 시작한 것은 43년초.이무렵 崔貞熙는 남편과 사별한 상태였다.두 사람은 50년 파인이 납북될 때까지 7년간 동거하면서 두 딸을 낳았다.崔貞熙는 생전에 전 남편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을 파인의 호적에 올렸다가 申元惠측으로부터 피소된 적도 있다. 34년 ‘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사건’으로 9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崔貞熙.그러나 그 역시 결전부인대강연회(41년 12월27일)에 연사로 참여하는 등 일제말기 친일로 전향하였다.대표적 친일작품으로는 소설 ‘장미의 집’(‘대동아’42년 7월호),‘야국초(野菊抄)’(‘국민문학’42년 11월호),수필 ‘동아(東亞)의 새아침’(‘매일신보’42년 2월21일) 등이 있다.
  • 야생동물 사육(黑龍江 7천리:27)

    ◎밀렵 금지령속 작년 호랑이 7마리 희생/96년 주민의 총기 당국서 모두 압수/곰 사육장 곳곳에… 쓸개즙 빼내 판매/2마리 수입 임업공무원의 6배 이상 임강향 향장은 조선족 김용일(金龍日)이다.김향장은 우리에게 부천촌까지 향정부 두신(杜臣)비서를 안내토록 했다.박촌장네 집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앉았는데 두신이 당서기 도성수(都聖洙·47)를 모시고 왔다. 개털모자 쓰고 검정 왕바신(王八鞋·솜신을 이르는 말)을 신은 도서기는 손에 꿩을 들었다.그는 “마침 잘 오셨습니다.아침에 총을 메고 새밭으로 나갔다가 잡았습니다.올해는 가을에 눈이 와서 녹은뒤 지금까지 눈이 없어서 사냥이 잘 안됩니다”라고 말했다. 이곳에는 꿩이 많다.눈이 내린 날이면 집마당 닭무리 속에 꿩이 끼어서 모이를 먹는다고 한다.임강평원은 10년 전만 해도 꿩이 참새떼처럼 많았다고 한다.총을 쥐고 나가면 하루에 수십마리는 쉽게 잡혀 마대에 넣어서 실고 왔단다. ○“꿩으로 만든 요리 일품” “갓 이사왔을 때는 꿩사냥이 정말 재미있었지요.눈이 많이 내린 후면 꿩망태를 짊어지고 지팡이 삼아 방망이 하나 들고 나가 밭에서 굶주리고 언 채로 숨어 있는 꿩들을 잡았지요.겨울밤에 등불 밑에서 윷판,화투판을 벌여놓고 놀다가 아낙들은 물을 끓이고 남정들은 마을앞 새밭으로 가 꿩을 잡지요.한 밤중에 꿩고기를 안주해서 따끈따끈 데운 술을 마시는 맛이란 세상 별미랍니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술상이 차려졌다.감자에 꿩고기를 넣어 끓인 구수한 꿩탕이 올랐다.천하 일미였다.아침을 먹고 동강을 떠나서 반나절 차를 달렸고 벌써 하오 2시가 지난 때라 별미였다. 도서기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꿩탕에 메밀국수를 말아 먹는 맛도 좋지만 꿩밥은 진짜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답니다.꿩밥은 꿩의 내장을 꺼내 버리고 살점을 저며내 콩기름에 볶다가 물을 넣어 끓이지요.얼마간 익었다 싶으면 그 국물에 찹쌀을 얹어서 밥을 짓는 겁니다.밥 뜸을 들이면 고기도 익어서 꿩밥이 되는 겁니다.밥 속의 꿩고기를 간장에 찍어서 한번 먹어보면 평생 그 맛을 잊지 못한답니다” 어떤 때는 새끼곰이 마을앞으로 어슬렁어슬렁 지나가기도 한다.그러나 마을에 들어온 짐승은 안잡는다는 이곳 사람들의 사냥규칙이 있다. 중국에서 사냥금지령을 내리고 총을 몰수한 것은 1996년 1월 26일부터다.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총을 소지하고 대낮에 지프를 타고 보호동물을 잡는 일도 있다.지난해 연변에서는 호랑이사냥 사건이 다섯 번 있었는데 호랑이 7마리가 생명을 잃었다.곰,노루,사슴,멧돼지 사냥은 1천309건이라는 게 연변공안국의 통계이다. 부화촌의 최기선(崔基善)은 야생동물로 벼락부자가 되었다.그는 너구리 80마리,곰 7마리를 사육하고 있다.새끼를 사서 번식시키기도 하지만 곰은 함정을 파고 사로 잡은 것을 키운 것이다.92년부터 해마다 5만원 수입을 올렸다는 그는 곰사육기술자로 소문이 났다. ○“뭐든지 잘먹고 잘커요” 가목사시 임업설계원에 근무하는 허태호(許太浩·43)씨는 삼림경찰 출신의 부친 허길(許吉·65)이 퇴직을 하자 아버지를 계승해서 1988년 임업설계원에 배치를 받았다고 한다.그런데 월급 491원에 아내 김옥란(金玉蘭·43)은 직업이 없어서 살림이말이 아니었다.아내가 재봉일을 해서 돈을 조금씩 벌기도 했지만 천정 높은줄 모르고 오르는 물가에 도저히 살림을 영위해 나갈수가 없었다.그래서 생각한 것이 곰사육.허씨는 5년전에 최기선에게 찾아가서 사육기술을 배운뒤 통화로에 가서 불곰새끼 두 마리를 만원을 주고 사왔다고 한다. “잘도 크데요.먹이는 강냉이가루,우유,사과,달걀,설탕,꿀,채소,생선 등 속이고 명태껍질도 준답니다.곰은 1년씩 쉬게 하면서 윤번으로 쓸개를 받습니다.매일 100㏄의 쓸개즙을 받는데 말리면 7g의 가루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쓸개즙은 50g당 80원,가루는 1g당 25원을 받습니다” 허씨의 말에 따르면 하루에 두 마리 곰이 50원어치를 먹고 150원어치의 쓸개즙을 만들어내 순수입이 100원이 넘는다고 했다. 중국에서 곰사육은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허씨의 집을 방문했을 때 흑룡강성 임업청(林業廳)에서 발급한 국가의 중점보호 야생동물 사육허가증서(許可證)를 보여주었다. 흑룡강성에서 곰사육에 성공한 사람은 하얼빈시 태평구 민주향 우의촌에사는 강진룡(姜鎭龍·40)씨이다.곰사육을 해온지가 11년,곰 20여 마리가 있다.건조기에 쓸개즙을 넣고 섭씨 60∼65도의 온도에서 40시간을 건조시키면 가루가 된다고 한다.그는 곰쓸개를 상품화해서 ‘흑룡강성 동북양웅장(東北養熊場)’이라는 이름으로 인쇄한 보증서를 고객한테 준다.흑룡강성 약품검험소에서 검사한 결과 각종 웅담 성분이 국가표준에 부합되고 담즙함량이 높다는 등 내용의 글을 보고나면 자연 마음이 동한다. 강씨의 웅담은 허씨의 것보다 값이 20%나 더 비싸다.그의 특기도 허씨처럼 소의 쓸개주머니에 넣어서 포장하는 것이다.소 쓸개주머니의 겉가죽을 벗겨낸 얇은 주머니에 믹서로 간 웅담가루를 넣은 다음 다시 건조기에 넣었다 꺼내면 제법 그럴듯한 곰쓸개가 된다는 것이다. 강씨의 소 쓸개주머니에는 25g의 담즙이 들어있는데 부르는 값이 500원 또는 400원이나 된다.어떤 한국인은 장사를 하려고 100여개씩 사간다고 한다.
  • 중진작가 김주영씨 새 장편 ‘홍어’ 펴내

    ◎만남은 곧 헤어짐… 기다림의 미학 중진작가 김주영씨(59)가 새 장편소설 ‘홍어’(문이당)를 내놓았다.90년대 들어 5권으로 된 대하소설 ‘야정’을 펴내기는 했지만 한권짜리 장편소설로는 ‘고래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이후 10년만에 선보인 것.지난해 ‘작가세계’에 중편으로 발표했던 것을 다듬어 장편으로 꾸몄다. 소설의 무대는 태백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산골마을. “명절 대목을 앞둔 겨울밤 작은 자갈돌이 바위 위로 굴러가는듯한 아늑한 재봉틀 소리가 자정을 넘기고 있을 때,… 하얀 가르마가 지나가는 어머니의 쪽진 머리카락 위로 쓰다만 실타래 몇 가닥이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게 얹혀있고,골무 낀 손은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도 언제나 하얗게 반짝거리는 재봉틀 바퀴를 돌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난봉이 나 집을 나간 뒤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 가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열세살 소년 세영의 시점으로 소설은 전개된다.어머니는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 부엌 문설주에 홍어 한마리를 걸어둔다.홍어는 아버지의 별명.또 겨울이면 세영에게 가오리연을 만들어줘 날리게 한다.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서다.그러나 정작 기다리던 아버지가 돌아오자 어머니는 말없이 떠나버린다.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기다림의 미학’을 말하려는 듯하다.그러나 최소한의 소설적 복선 없이 진행되는 이야기는 읽는 이를 곤혹스럽게 한다.이 작품만을 놓고보면 만남은 곧 헤어짐이다.
  • 태양계 7개 행성 ‘우주쇼’

    ◎오늘부터 10일까지 화·수·토·목성 나란히 지구의 태양계의 7개 행성이 진주목걸이처럼 일렬로 늘어서는 우주장관이 초겨울밤을 수놓는다. 천문대는 3일부터 오는 10일까지 수성과 금성이 지구와 태양 사이로 진입한다.이에 따라 이 두 별과,사수자리와 산양자리를 향해 줄지어 있는 화성·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모두 7개의 행성이 서쪽에서 동쪽방향의 하늘에 일렬로 늘어서는 우주쇼가 초저녁 밤하늘에 펼쳐질 것이라고 밝혔다.또한 초승달도 같은 방향에 떠서 이 우주쇼에 금상첨화를 이룬다. 이 우주쇼는 전세계에서 관측이 가능하며 특히 수성·금성·목성·토성은 육안으로 볼 수 있다.우리나라에서는 해가 진 직후인 6시쯤 남서쪽 하늘에서 관측할 수 있다.
  • “청소년에 과학적 사고를”/학교밖 겨울과학캠프 풍성

    ◎중앙·서울과학관 등 개설 유·무료 교실 안내/물리 화학 생물 실습·공작교실에 탐조여행도/생명과학 테모 탐구·컴퓨터 등 첨단강좌 눈길 청소년에게 과학적 사고와 창의력을 일깨워 주려는 겨울철학교밖 과학캠프가 다채롭게 마련된다. 이 캠프들은 ‘과학이 신나고 흥미롭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프로그램 대부분을 현장 체험학습 위주로 구상하고 있는 것이 특징.따라서 평소 학교생활에서 어려웠던 과학과의 생생한 만남이 기대된다. 국립증앙과학관은 1월6일부터 네차례 나흘간 일정의 겨울방학 학생과학교실(042-861-2526)을 운영한다. 초등학교 5~6년생과 중학교 1~2년생에게 물리·화학·생물 과목의 주제별 실험실습과 과학공작을 교육할 계획이다.천체 관람과 과학영화 상영,과학강연회 시간도 마련된다.수강료와 교재비는 무료.12월 25일 상오 9시30분부터 10시30분까지 한시간 동안만 신청을 받는다. 국립중앙과학관은 또 1월9일,1월13일 두차례 금강하구에서 가족단위 겨울철 탐조여행(042-861-2520)을 한다.이곳에서는 4만여 마리의 가창오리떼와 수백 마리의 고니류,수천 마리의 기러기류를 쌍안경 없이 관찰할 수 있다.참가자 접수는 12월23일. 국립서울과학관도 ‘과학공작교실’‘학생과학교실’‘컴퓨터강좌’ 등의겨울방학 과학캠프를 연다. 초등학교 4~5년생의 ‘과학공작교실’은 12월23일부터 이틀씩 아홉차례 열린다.교육내용은 ‘내가 만든 정수기’‘양초 만들기’‘구리 도금하기’‘마그네슘 리본의 연소’‘과일전지’‘유리세공’ 등. ‘학생과학교실’은 중학교 1∼2년생에게 1월5일부터 사흘씩 네차례 개설된다.‘공기의 성질 알아보기’‘콜라에서 카페인 추출법’‘화장크림 만들기’‘자기장의 변화로 생기는 전류’‘크로마토그래피’ 등을 실습한다. 12월15일부터 8일씩 네차례 열리는 ‘컴퓨터강좌’에서는 윈도95,워드프로세서 활용법과 인터넷기초를 가르친한다. 12월11,12일 이틀 동안 희망자를 모으며 참가비는 받지 않는다.(02)762-5205~6. 한국과학문화재단(02-555-0838)은 겨울방학동안 ‘전국순회과학차’를 운영한다.가지가지 과학기자재를 실은 대형차로 초등학교를 돌며 ‘탐구실험’(3~6년)‘과학놀이’(3∼6년)‘과학공작’(1∼2년) 활동을 지원한다.아울러 로켓 발사와 기상관측,과학영화 상영도 한다. 중앙교육문화(02-858-2221)는 ‘공룡과 함께 과학을 배우자’라는 주제로 12월22일부터 사흘씩 네차례 강원도 횡성 둔내유스호스텔과 경남 양산 해운청소년수련장에서 겨울과학캠프를 연다. ‘공룡알 부화시키기’‘공룡의 발자취 탐험’과 같은 프로그램과 겨울 숲속 관찰,전기미로 탐험,겨울밤 관측 등의 행사가 마련된다.참가비는 8만4천원. 한국생명과학연구소(02-762-5076)도 4박5일동안 생명과학에 관한 주제별 탐험학습을 하는 ‘겨울철 생명과학캠프’를 개최한다.초등학교 4년∼중학생을 위한 ’실험기구의 이해’‘마이크로의 세계’‘동물해부의 세계’‘세포의 세계’‘유전자의 세계’‘표본제작’ 과정을 열 예정이다.참가비는 단계별로 8만∼12만원이다.
  • 중공군(외언내언)

    1950년 겨울은 참으로 혹독했다.그래서 미국에서 한국전에 참전했던 참전용사들을 만나 한국에 대한 인상을 물으면 하나같이 “추운나라”라고 말한다.한국전쟁이 발발했던 50년 그해 겨울만이 아니라 전쟁이 계속됐던 51,52년 겨울도 매섭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참전용사들에게 또하나 잊혀지지 않는대목이 있다.중공군이다.추운 겨울밤 전선에서 잠시 눈을 붙일라치면 징을 치고 피리를 불어대며 개미떼처럼 중공군이 고지를 향해 달려들었다.죽여도 죽여도 밀려드는 인해전술앞에 미군은 물론 한국군도 진저리를 쳤던 것이다. 당시의 한국군중에 아직까지 피리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그들은 지금도 피리소리를 들으면 몸서리가 쳐진다는 것이다.중공군이 얼마나 전근대적 전술을 구사했는지는 전사자 수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3년동안 중공군 전사자가 약90만명.북한군 전사자 52만명의 거의 두배,유엔군 전체전사자 9만5천800명(한국군 5만9천명 포함)의 9배를 넘는 희생자 숫자다. 중국인민해방군이 1일로 창군 70돌을 맞았다.북경 창군기념행사장에 나타난 중국군의 모습은 아주 산뜻해 보인다.50대 이상의 한국사람들에게 각인된(각인)된 중공군에 대한 인상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아직도 중공군은 서구 선진국 군대에 비교되지는 않는다.병력수에서는 세계 최대지만 장비나 현대전의 전반적인 훈련도에서 처진다.그래서 중국에는 병력규모가 오히려 짐이 되고 있다.오는 2000년까지 병력수를 2백만(현재2백93만)으로 줄이는것이 급선무다. 대신 장비의 현대화에 주력하고 있다.핵무기에 미사일을 갖췄으나 전체적으로 중국군은 아직도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세계는 지금 성장하는 중국의 군사력에 적지않이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중국군의 잠재력때문이다.중국이 열정적으로 추진중인 중국군현대화 계획이 2020년 일단 마무리됐을 때가 문제인 것이다.
  • 반딧불 살리기(외언내언)

    「호박꽃에 반딧불/호박넝쿨에도 반딧불/옷 축이러 나갔더니 풀밭에도 반딧불」 어른들은 누구나 유년시절에 반딧불이를 가지고 놀았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날씨가 어두워지면 숲속에서나 냇가에서 그리고 고향의 뒷산 그늘자락에 무리지어 나르는 반딧불이는 마치 화려한 등불잔치다.반딧불이는 혼자서 놀면서도 빛을 발하고 풀잎에 앉아서도 빛을 발한다.혼자서 날면 고형,무리지어 날면 군형,어디론가 날아가면 비형이고 별처럼 반짝인다고 해서 성형으로도 불린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고화로는 중국 동진의 거윤이 여름밤 반딧불이를 모아 그 빛으로 책을 읽었다는 「차윤취형」과 역시 진의 학자인 손강이 겨울밤에 창을 열어놓고 눈부신 흰 눈빛에 책을 읽었다는 「손강영설」이 있다.이를 합해 열심히 공부한 결과와 보람을 「형설의 공(형설지공)」이라 말한다. 그런 추억의 반딧불이가 우리의 산야에서 멸종위기에 있다는 것이다.맑고 차가운 계류에서 다슬기와 이슬만 먹고 사는 청결한 곤충이지만 반딧불이의 서식지에 개발이 끊이지 않자 오폐수에 오염되어 반딧불이는 차츰 그 빛을 잃어간 것이다.천연기념물 제322호로 지정된 전북 무주군 설천면의 경우 남대천 약 2㎞구간에서 지난 90년 시간당 200마리 이상 관찰되던 반딧불이가 7년이 지난 지금은 90%이상 급감된 20여마리가 겨우 명맥을 잇고 있는 실정이다.그 일대 무주 구천동의 관광단지화로 수질이 오염되어 먹이사슬을 잃은 탓이다. 일본은 지난 62년 다마동물원에서 반딧불이 인공번식을 시작한후 인공증식장을 설치,학교교육과정에서도 반딧불이 축제와 반딧불이 글짓기를 실시하는 등 전국적인 보호활동과 반딧불이 상품화에 나서 오이타현(대분현)의 경우는 반딧불이 관광지로 보전되어 있다. 반딧불이가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분명히 밝혀져있지 않지만 해충이 아닌 것만 봐도 메마른 인간의 정서에 시적 감흥을 주는 자연의 경이에 틀림없다. 「반딧불이 되살리기」「추억 되살리기」로 삭막한 게임기나 텔레비전에 빼앗긴 동심에 서정어린 추억을 대물림해주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다.이는 결국 다음 세대와의 동질성을 추구하는 뜻깊은 일이기도 하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