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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의 향기 흐르는 안성

    문화의 향기 흐르는 안성

    속절없이 깊어만 가는 가을이다. 소슬한 바람이 불면 애써 묻어뒀던 가슴 속 애잔함이 스멀스멀 새어나온다. 더이상 멈칫거릴 수 없다. 세상은 남자의 가을을 단순히 치기어린 감상(感傷)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매일 잔소리로 들볶던 아내라면 남편을 위해, 용돈타령 일삼던 자식이라면 아버지를 위해, 장가 안 가서, 아들을 안 낳아서 늘 걱정이던 노모라면 아들을 위해,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애인이라면 자신의 남자를 위해, 뭔가 슬쩍 눈감아 줘야 하는 계절이다. 간단히 배낭 꾸리고 꼭꼭 씹어 읽을 시집 한 권 집어넣고 떠나는 나만의 여행을 가져보자. 멀리 떠나도 좋지만 가까워도 나쁘지 않다. ‘지금, 여기’의 나는 ‘그때, 거기’의 나로 인해 만들어진 모습이다. 가을은 나를 직시(直視)하는 여행의 시간이다. 이것저것 재지 말고 훌쩍 떠나라. 중요한 것은 한 걸음, 한 걸음 나를 찾아가는 그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남자의 가을이다. 안성이 바로 안성맞춤이다.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닿는 가까운 곳에 있다. 코스는 칠장사, 또는 석남사 들러 고삼 호수 언저리가 좋다. 멀리 떠나도 금세 돌아와야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그리 바쁘게 돌아다니지 않아도 애써 하룻밤 머물러 볼 필요가 있는 곳이 있다. 안성이 바로 그런 곳이다. 물안개 자욱히 피어오르는 고삼 호수의 새벽 풍경은 꼭꼭 묻어둔 인생의 비의(秘意)를 다시금 되새겨보게끔 만든다. 가을 남자의 여행에 빠트릴 수 없는 절실한 것 아닌가. 늘 그렇듯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걸어야 한다. 빛바래고 너덜너덜한 표지의 박두진 시집을 들고 아련했던 문청의 기억을 떠올려볼 수도 있다.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어느 숲 어귀에서, 호수 언저리에서 ‘해’ 또는 ‘호수’를 떠올리며 박두진의 시 감성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고은의 시집 또한 어떤가. 23년에 걸쳐 쓰였으며 30권 완간으로 치닫고 있는 ‘만인보’ 중 아무거나 하나 움켜쥐고 다니다가 고은의 사람들을 나의 사람으로 끄집어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되겠다. ●조병화·박두진… 시인들의 흔적을 따라서 안성은 시인의 고향이다. 어디를 가도 조병화(1921~2003), 박두진(1916~1998)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 박두진은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시인이자 화가였던 조병화 역시 안성에서 태를 묻고 뼈를 묻었다. 조병화의 거의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난실리 조병화 문학관에는 그의 육필 원고, 만년필, 모자, 럭비공(그는 럭비를 무척 좋아했다.) 등 여러 유품, 생활했던 공간 등이 잘 보존돼 있다. 며느리 김용정씨가 대표로서 문학관을 관리하고 사람들을 안내한다. 늘 공개하지는 않는 집필실을 김 대표를 따라 들어가 보니 마치 글을 쓰다가 잠시 자리를 비운 듯 책상 위에는 원고지와 펜이 놓여 있고, 옷걸이에는 코트와 모자가 편안하게 걸려 있다. 벽난로를 좋아했다는 시인의 취향대로 문학관 실내마다 벽난로가 만들어져 있다. 추운 겨울밤 창밖의 삭풍 몰아치는 소리 중간중간에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 섞이면 참 운치있었겠구나 하는 부러움이 슬며시 든다. 안타깝게도 박두진의 문학관은 아직 온전히 마련되지 않았다. 안성문예회관 자료실에 관련 자료들이 있고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는 정도다. 아쉬움을 달래려 금광면 오흥리 생가를 찾았지만 이곳 역시 이정표 되는 간판만 있을 뿐 외부인에게 친절한 내용을 갖고 있지는 않다. 오후 저물어가는 햇살에 반짝거리는 금광호수만이 그 어느날 시인의 발걸음을 말없이 기억해 내고 있는 듯했다. 뿐이랴. 매년 노벨문학상을 발표하는 10월 즈음이면 문학기자들이 진을 쳤다가 아쉬움에 발길 돌리던 시인 고은이 지내는 곳이 있다. 벌써 십수년 넘게 살고 있으니 아예 안성 사람이 다 됐다. ●고즈넉한 칠장사 은행나무길 걸어보셨나요 칠장사는 여러 얘깃거리를 품고 있는 아주 재미있는 절이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칠현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게다가 산 속에 푹 안겼으면서도 내려다보이는 넉넉한 전망까지 함께 갖고 있어 그저 휙 둘러보는 맛도 충분하다. 칠장사까지 다다르는 길은 호젓하기만 하다. 17번 국도에 올라선 뒤 차창 열고 상쾌한 공기를 10분 남짓 들이켜다 보면 칠장사 외곽 주차장과 함께, 제법 예술을 이해할 법한 근사한 일주문과 은행나무길이 나온다. 대웅전 바로 아래쪽까지 차로 갈 수 있지만 이곳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오르는 것이 칠장사를 즐기는 첫걸음이다.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알고 보니 이곳은 대구 팔공산 갓바위 못지않은 수험생들의 단골 기도 장소란다. 천안 살던 ‘과거 수험생’ 박문수가 한양 가는 길에 하룻밤 묵으며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며 기도를 올리고 잠이 들었는데 그날 밤 꿈에 시험의 시제(試題)를 보았다고 한다. 장원급제는 당연지사였다. 이른바 ‘몽중등과시(夢中登科詩)’의 전설이다. 수능시험을 코앞에 둔 수험생들의 어미들은 혜소국사비 앞의 나한전에 모여 치성을 드리고 있다. 이 밖에 갓바치 스님의 제자였던 임꺽정이 공들여 깎았다고 전해지는 ‘꺽정불’ 이야기, 어린 궁예의 활 연습장 터, 혜소국사에게 교화돼 일곱 도적에서 일곱 나한으로 해탈한 이야기 등 천천히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석남사 역시 여름철 무성하던 물과 사람은 간데없고 고즈넉하다. 석남계곡 물줄기를 따라 만들어진 차 한 대 간신히 지나갈 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면 오밀조밀 예쁜 가람배치를 보여주는 석남사가 나타난다. 경내에서 노스님을 만나면 누군지 몰라도 일단 살갑게 인사하고 한 말씀을 구해 보라. 주지인 정무 스님의 재미있는 말씀과 맛난 차를 얻어먹을 수 있다. 이때 즈음이면 슬슬 혼자보다는 누군가 함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치민다. ■가족과 함께라면 훌쩍 떠난 것이 가족에게, 애인에게 미안했다면 아쉬워하지 말라. 미리 가족 여행 답사 다녀왔다고 씩씩하게 얘기하면 된다. 나를 찾을 수도 있는 절대적 모색의 시간을 만들 수도 있는 곳이지만 아이와 함께 즐겨도, 애인과 서로 어깨 나눠주며 다니기에도 모두 좋은 곳이지 않은가. 사실 그들 역시 당신의 짧은 일탈을 충분히 이해하고 눈감아주고 있다. 고독과 사색의 공간이었던 칠장사가 아이들과 함께라면 오랜 시간의 역사를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이야기 보따리가 되고 박두진, 조병화 등 시인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은 함께 읊조려도 충분히 흥겨운 것들이다. 특히 너리굴 문화마을은 하룻밤 머물면서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천연비누 등 각종 문화예술 체험 프로그램이 많다. 사슴 목장과 산책로 등은 자연 생태계를 바로 곁에서 볼 수 있어 더욱 좋다. ‘대안미술공간 소나무’가 만든 호랑이가 우글우글하는 복거 마을도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곳이다. ●여행 Tip 매주 토요일 안성시에서 운영하는 당일치기 시티투어가 있다. 남사당 공연, 각종 볼 곳들을 둘러볼 수 있다. 또한 역시 매주 토요일 그린투어가 진행된다. 관광보다는 주로 인삼조합, 포도농원, 배농장, 한우농장 등 농촌체험이다. 시티투어는 1만 8000원(어린이 1만 5000원)이고, 그린투어는 2만원(어린이 1만 7000원)으로 오전 9시 서울남부터미널 앞에서 출발한다. 예약 (02)588-7464. 글 사진 안성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이성 사로잡는 생물들의 ‘작업’ 소개

    이성 사로잡는 생물들의 ‘작업’ 소개

    멋지고 섹시한 춤, 정성이 담긴 선물 등 이성을 유혹하는 기술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번식의 본능은 동물이라면 똑같은 것, 세상에는 생물 종의 수만큼 다양한 ‘유혹의 기술’이 있다. 18일 오후 10시55분에 방송하는 MBC 스페셜 ‘유혹의 기술’편(연출 임완호)은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펼치는 생물들의 다양한 ‘작업기술’을 공개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유혹의 기술은 향기, 바로 ‘유혹의 화학물질’인 페로몬이다. 방송은 날개가 퇴화해 날지 못하지만 페르몬으로 수컷 나방들을 불러 모으는 암컷 겨울자나방의 생태를 국내 최초로 카메라에 담았다. 암컷 겨울자나방은 겨울밤이면 나무 중턱에 매달린 채 페르몬을 뿌리며 짝을 기다린다. 유혹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뒤따른다. 방송은 페르몬을 흉내내 사냥을 하는 ‘여섯뿔가시거미’도 함께 소개한다. 이 거미는 암컷 나방의 페로몬을 흉내내서는 향기에 홀려 다가온 수컷 나방들을 거미줄로 휘감는다. 방송은 암컷을 위해 다양한 선물을 준비하는 생물들도 소개한다. 춤파리들은 화려한 꽃잎이나 꽃받침 조각으로 먹이를 싸서 암컷에게 건네기도 한다. 쇠제비갈매기나 밑들이벌레도 마찬가지. 이들도 입맛에 맞는 먹이를 준비해 암컷에게 건넨 뒤에야 짝짓기를 시도한다. 이외에도 제작진은 번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유혹의 기술을 사용하는 ‘남가뢰’(딱정벌레의 일종)의 생태를 소개하고 얼레지, 긴꼬리벌레 등 국내 토종벌레와 식물들의 유혹의 기술도 함께 전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제20회 김달진문학상] 시인 황동규 “삶과 부딪쳐 작품 만들겠다”

    [제20회 김달진문학상] 시인 황동규 “삶과 부딪쳐 작품 만들겠다”

    올해로 20년째를 맞는 김달진 문학상이 최고의 문학상을 향한 진화(進化)를 거듭하고 있다. ‘김달진문학상 운영위원회’와 서울신문이 공동 주최하는 제20회 김달진 문학상 시 부문에는 황동규(71·서울대 명예교수)의 시집 ‘겨울밤 0시 5분’이, 평론 부문에는 최유찬(58) 연세대 국문과 교수의 평론집 ‘문학과 게임의 상상력’이 각각 수상작으로 뽑혔다. 올해 심사위원회는 김달진 문학상 심사를 앞두고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 번째로 비슷한 연배나 특정 경향의 문인들을 중심으로 수상자를 결정해온 문단의 관행을 깨보자는 것이고, 두 번째로 최고의 문학상의 권위에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뽑자는 것이었다. 시 부문 상금이 2500만원으로 상향조정(종전 2000만원, 평론은 2000만원)된 배경이고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인 ‘황동규’라는 원로 시인이 수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던 근거가 됐다. 또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우직하게 매진하며 평론에서 일가를 이뤄낸 최 교수가 수상자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시 부문-시인 황동규 ‘겨울밤 0시 5분’ “끊임없이 삶과 부딪쳐 작품 세계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삶과 부딪칠 때는 늙음도, 젊음도 따로 없습니다. 사람과 삶, 세상에 대해 애정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죠.” 시집 ‘겨울밤 0시 5분’으로 제20회 김달진 문학상 시 부문을 수상한 황동규(71·서울대 명예교수)의 51년 시 세계에는 매너리즘이 끼어들 틈이 없다. 화려했던 어느 시절을 돌이켜보거나, 나이가 많다고 하여 삶을 관조하는 듯한 작품은 책상에 눌러 앉아 머리로만 시를 쓰는 이들의 몫이라고 잘라 말한다. 황동규의 시가 가진 미덕은 추상적 사유에 구체성을 불어넣는 것, 세상을 관조하지 않지만 관조되어지는 것, 그래서 자연스러운 시 읽기를 이뤄냈다는 것이다. ●삶과 부딪쳐 쓴 ‘현장파’ 시집 원로급인 황동규의 수상은 김달진 문학상이 주로 중견 시인들이 받아 왔던 전례에 비춰 이례적이다. 하지만 오로지 삶과 부대끼며 사람과 세상 속에서 새로운 이미지와 서정의 샘을 파헤쳐온 ‘현장파’의 시집이 이견없이 수상작품으로 뽑힌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도 하다. 그는 “시집 낸 직후 독자들과 선후배 동료들이 이메일 등을 보내 잘 읽었다고 하더라.”면서 “그동안 냈던 14권의 시집 중 반응은 제일 좋았고 김달진 문학상까지 받게 돼 더욱 흐뭇하다.”고 말했다. ●사랑의 정신으로 시어 이끌어 특히 그가 강조하는 점은 ‘계획없이’ 얽매이지 않고 부딪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는 “얼마 전 어느 후배에게 이제 시집 1, 2권 더 내고 끝내야겠다고 했더니 79살 된 미국 영화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든 영화 제목을 줄줄이 들이대며 혼내키더라. 죽을 때까지 계속 써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다.”고 말했다. 시 부문 심사를 맡은 이숭원(서울여대 교수) 문학평론가는 “사소한 자연의 변화, 사람 마음의 미세한 기미까지 놓치지 않고 관찰하여 ‘몸의 맛’과 ‘삶의 맛’, 그리고 ‘시의 맛’을 살려내려는 사랑의 정신이 그의 시를 이끈다.”고 평가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시인 황동규 ▲1938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58년 ‘현대문학’에 ‘시월’, ‘즐거운 편지’, ‘동백나무’가 추천되어 등단 ▲시집으로 수상작 ‘겨울밤 0시 5분’(2009)을 비롯해 ‘꽃의 고요’(2006), ‘풍장’(1995) 등 14권이 있음 ■평론 부문 - 최유찬 교수 ‘문학과 게임의 상상력’ ‘소설 토지’와 ‘게임서사’,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이 두 개의 키워드를 붙잡고 꽤 오랫동안 작업을 해왔다. 둘 사이에 연결점을 찾기가 힘들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문학평론가 최유찬 연세대 교수는 그 작업의 결실 중 하나인 ‘문학과 게임의 상상력’(서정시학 펴냄· 2008)으로 이번 제20회 김달진 문학상(평론부문)을 수상했다. ●토지 독법 게임서사에도 적용 소설 ‘토지’에 대한 최 교수의 애정은 십년 세월을 넘어섰다. 1996년 ‘토지를 읽는다’부터 시작해 지난해까지 토지 관련 서적을 꾸준히 내고 있는 그는 “토지를 통해 작품을 읽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체득했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소포클레스’로, 루카치가 ‘도스토예프스키’로 문학이론을 정립했듯이 최 교수는 토지로 작품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 셈이다. 실제로 그 방법을 다른 작가와 작품에 적용한 대표적 예가 2006년 나온 채만식론인 ‘문학의 모험’을 비롯, 수상작에 수록된 ‘신석정론’과 ‘오영수론’이라고 한다. 최 교수는 토지의 독법을 문학작품을 넘어 게임서사에도 적용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게임서사는 그가 토지를 통해 정립한 ‘상(象)을 읽는 독법’을 적용하기에 가장 알맞은 서사 형태다. ●우리 비평 너무 서구이론에 경도 그는 “이 독법은 텍스트를 읽은 후 눈을 감고 차례로 전체 텍스트를 떠올릴 때 남아 있는 영상의 형태를 연구하는 방법으로, 게임서사가 그런 식의 지각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앞으로도 이 방법으로 문학작품과 게임서사 등 폭넓은 분야를 연구해 갈 생각이다. “동·서양 전통을 융합한 비평방식을 개척하고 싶다.”는 그는 최근의 비평 경향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서양에서는 오히려 동양 전통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있는 상황인데, 최근 우리 비평들은 너무 서구 이론에 경도돼 있다.”고 비평계의 각성을 요구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평론가 최유찬 ▲1951년 전북 부안 출생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저서로 ‘한국근대문화와 박경리의 토지’(2008), ‘컴퓨터게임과 문화’(2004), ‘문학텍스트 읽기’(2004) 등 ▲2007년 연세대학교 학술상, 1996년 간행물윤리위원회 저작상 등
  • [제20회 김달진문학상] 비슷한 연배 중심 수상 관행 깨

    ■ 진화하는 김달진문학상 황 시인이 지난달 출간한 시집 ‘겨울밤 0시 5분’은 심사위원들(김인환, 김명인, 조정권, 이숭원, 최동호·이상 존칭 생략)로부터 한목소리로 “감각과 감성으로 쌓은 언어의 금자탑에 정신의 높이까지 자리잡은 최상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여기에 “‘삶을 살아낸다는 것’이라는 형이상학적 주제를 몸 전체의 감각으로 표현한 한국문학사 최초의 시인”이라는 극찬까지 더해져 이견의 여지없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또한 문학평론가인 최 교수는 그동안 꾸준하고 우직하게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 천착하며 평론 연구의 깊이와 영역을 심화시켰다. 특히 이번에 수상작으로 선정된 ‘문학과 게임의 상상력’은 그의 ‘토지’에 대한 연구 성과를 컴퓨터 게임의 스토리텔링을 읽고 해석하는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켜온 독보적인 작업이 높게 평가받았다. 김윤식, 김종회, 문흥술, 유성호, 최동호(이상 존칭 생략) 등으로 꾸려진 평론 부문 심사위원들은 “‘토지’라는 단 한 작품을 줄기차게 파고들어 그 작품을 보편성의 영역으로 밀어올린 비평적 치열성은 그가 만들어낸 비평적 지형도의 탄탄한 얼개를 확인시켜 줬다.”면서 “디지털 시대의 상상력은 ‘토지’의 논의와 구체적으로 연결지어야 하는 과제도 함께 안게 됐다.”고 평가했다. ●문학상 빛낸 역대 수상자들은… 월하 김달진(1907~1989)을 기리는 문학상이 제정된 1990년 첫 수상자는 박태일(경남대 국문과 교수)이었다. 당시에는 평론 부문이 없었고 상금도 없었다. 세속의 가치에 초연했던 김달진의 높은 동양 철학과 숭고한 정신세계를 기리는 데는 굳이 상금이 필요없었다. 그 명예만으로도 가슴 벅찰 일이었다. 이후 이준관, 김명인, 이하석, 송재학, 이문재, 고진하 등으로 이어져오는 역대 수상자들은 한결같이 김달진의 고고한 시 세계를 따라 배우려는 이들로 엄선됐다. 그리고 1998년 평론 부문으로 영역을 넓혀 신덕룡 광주대 교수를 첫 수상자로 뽑았다. 생명과 생태, 환경의 가치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이후 내처 시인으로 등단, 활동하고 있다. 특히 2000년에는 나이 마흔 살에 늦깎이로 등단, 중앙 문단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시인 문인수를 ‘발굴’해 그의 아름다운 시어와 해맑은 감수성의 이미지를 널리 접할 수 있게 했다. 문인수는 일곱 권의 시집을 내는 동안 미당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을 받기도 했다. 오는 6월5일 고려대 국제관에서 역대 수상자들과 함께 기념 시낭송회를 갖고, 시상식은 오는 9월19일 김달진 문학제가 열리는 경남 진해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71세 노시인 멈춤없는 열정 보여주다

    ‘그래, 젊음 뒤로 늙음이 오지 않고/ 밝은 낙엽들이 왔다.…늙음을 제대로 맞으려면/ 제대로 착지법을 익혔어야.’(‘밝은 낙엽’) 71세의 황동규가 ‘꽃의 고요’ 이후 3년 만에 신작 시집 ‘겨울밤 0시 5분’(현대문학 펴냄)을 내놓았다. 열네 번째 시집이다. 그는 여전히 젊다. 시어(詩語)만 젊은 게 아니라 실제 삶도 젊다. 어느 겨울날 ‘사흘간 내리 마셔댄 줄 술’로 밤새 고생하다가 젊은 시절처럼 ‘다시 한 번’, ‘오른 주먹 불끈 쥐고’ 헛된 금주의 맹세를 남길 줄 안다.(‘다시 한 번’) 시에 대한 멈춤 없는 청년의 열정, 의지가 시편들 곳곳에서 포착된다. 한 걸음 떨어져 일상을 들여다보며 애정을, 연민을, 희망을 남긴다. 하지만 아무리 ‘사당동패’들과 어울려 10년 단골 지하호프 피카소나 남원집, 봉화집을 다녀도, 다도해로, 통영으로, 중국으로 쏘다녀도 감추지 못할 부분은 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자 등단 50년을 넘어선 시인의 삶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농익은 관조, 번뜩거리는 실존적 성찰은 하릴없이 드러난다. 자신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글은 시편마다 절로 배어 있다. ‘밤꽃 냄새’에서는 ‘아직 뭔가 더 베낄 일이 있다고 이렇게 폐허에서/ 두리번대며 사람 숨 쉬던 자취 찾아다니는 일/ 흉물스럽지 않은가?’라고 자신을 객관화하더니 시인은 한적한 임실 시골길을 운전하며 들꽃에 한눈팔다 ‘길 한가운데로 당당히 걸어오는,/ 손끝이 거의 땅에 닿도록 허리 굽었으나/ 조금도 두리번대지 않던 노인’을 치일 뻔한 상황을 맞았다. 하지만 그 노인은 ‘그가 차 바로 앞에서 걸음 멈추고/ 나를 향해 천천히 수직으로 허리를 들’며 그윽히 시선을 내려보낸다. 깊고 길고 오래된 것의 힘이다. 황동규가 경험한 빛나는, 또 다른 자아와 만남의 순간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정끝별은 “그의 시는 다양한 경험과 추억력(기억에 상상력이 가미된 회상)을 근간으로 하는 시공간적인 연장 혹은 연속의 논리 속에서 서술은 유연하게 흐른다.”고 설명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데스크 시각] ‘용산 특검’ 與 당당히 수용해야/박찬구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용산 특검’ 與 당당히 수용해야/박찬구 정치부 차장

    그날, 무너진 건 망루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답게 살고, 또 그렇게 죽을 수 있다는 빈자(貧者)의 믿음과 최소한의 권리가 외면당했다. 국가가 서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줄 것이라는, 소박한 바람이 사그라졌다. 망루의 절박한 사투는 공권력과 용역이 합작한 몰상식한 진압 작전에 사위어갔다. 그날 이후, ‘실용’과 ‘경제’의 구호로 포장된 정부를 향한 신뢰와 기대도 무너졌다. “이런 나라에 정말 살기 싫어요.” 유족의 외침에는 메아리가 없다. 오히려 참사의 본질을 왜곡하고, 호도하려는 시도와 징후가 불거지고 있다. 정부는 그들이 왜 망루에 올랐는지 고민하기보다, 망루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만 놓고 되돌이표를 그리고 있다. 신뢰가 곤두박질치고, 본질이 가려진 시대에 다시 정치의 본연을 생각한다. 격랑과 비바람에 시달리는 뱃사람에게 365일 일관되게 직선의 불빛을 비춰주는 등대의 희생과 헌신에서 정치의 역할을 떠올린다. 그날 이후, 권력의 출혈을 감수하고라도 여권이 참사의 본질과 진상을 제대로 짚어나갔다면 시위대가 도심 거리에서 겨울밤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집권 여당의 지도자들이 제 몸을 사리지 않고 권력 핵심과 공권력에 직언하고 잘잘못을 따졌다면, 스스로 그토록 중요하다고 되뇌던 2월 입법국회가 지금처럼 ‘용산 국회’로 점철되지 않았을 것이다. 되레 여권은 정권의 안정을 얘기한다. 야당이 용산 참사를 빌미로 위기를 부추긴다고 강변한다. 집권 2년차의 속도전과 효율을 강조한다. ‘실용’이 대북 정책에서 빛이 바래고, 믿음을 잃은 정부의 경제정책이 참화를 부를 것이라는 경고가 빗발쳐도, 여권은 마이동풍이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가치가 무엇이고, 권리가 무엇이냐며 일상(日常)을 좇는 무감각한 행태와 다르지 않다. 유한한 정권의 위기보다 더 치명적인 건 신뢰 상실의 위기이며, 5년간의 권력보다 더 준엄한 건 국민과 생명의 가치라는 이성적인 판단을 현 여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청와대 홍보지침 이메일 파문에서 정부는 “모른다.”, “사실무근이다.”, “공문이 아니다.”라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렸다. 국민을 우습게 알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메일을 보낸 청와대 행정관 한 사람의 사퇴로, 정부는 5공(共)식 여론 조작을 연상시키는 엄청난 사안을 서둘러 덮으려 한다. 온당치 않다. 일개 청와대 행정관이 개인 아이디어 차원에서 공조직인 경찰에 홍보지침을 내려보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하기 위해 말맞추기가 자행됐다는 의혹과 제보가 야당에 쏟아지고 있다. 이마저 반(反)이명박 세력의 정치 공세로 몰아붙일 것인가. 귀를 닫고 눈을 감는다고 진실이 영원히 묻히는 건 아니다. 불신과 의혹은 고스란히 현 정부에 ‘성난 민심’이라는 재앙으로 부메랑처럼 돌아갈 것이다. 이미 늦었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여권이 지금이라도 야당의 특검과 국정조사 요구를 당당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야당의 주장에 공감하는 익명의 다수도 엄연히 여권이 안고 가야 할 국민이다. 특검이든, 국정조사든 피할수록 의혹은 쌓여가고 불신은 깊어진다. 털어서 문제가 없다면, 도려낼 건 도려낸다면, 여권의 정책 행보가 한결 가뿐해질 것이다. 굳이 의혹 덩어리를 안고 위험한 질주를 감행할 이유가 있는가. 70, 80년대 개발의 속도전은 90년대를 붕괴의 시대로 만들었다.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동강나고, 건물이 내려앉았다. 죽어간 사람의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망루의 붕괴는 신뢰와 가치를 상실한 21세기형 속도전의 결말을 예고하는 불길한 단초일 수 있다. 무엇을, 왜 망설이는가. 박찬구 정치부 차장 ckpark@seoul.co.kr
  • 너무 강한 노래에 지친 당신… 눈 감고 들어보아요

    너무 강한 노래에 지친 당신… 눈 감고 들어보아요

    차가운 날씨에 마음까지 얼어붙기 쉬운 계절. 이럴 때일수록 한잔의 커피처럼 따뜻한 여유를 주는 음악과 마주해 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해 내내 귀청을 후벼 파던 중독성 가요에 지쳤다면, 오랜만에 들어 보는 편안한 목소리에 지친 심신을 달래 보는 것도 좋겠다. 지난해 제대해 3년만에 새 앨범을 발표한 포크듀오 ‘재주소년’(사진 위·유상봉, 박경환)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하고 포근하다. 소품집 형식의 미니앨범에는 기타 위주의 소박한 편곡에 화려하지 않지만 멜로디가 돋보이는 보컬로 편안함을 강조했다. 타이틀곡은 은희경의 동명 소설 제목에서 따온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먼곳의 연인을 떠올리며 치열했던 지난날을 회상하고 관조한다는 쓸쓸한 내용의 가사와는 달리 경쾌한 리듬과 담백한 목소리가 돋보인다. 자신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준 팬들을 위한 ‘두번째 룰’, 연주곡인 ‘아침을 기다리며’와 ‘센드’(Send)는 눈내리는 겨울밤의 풍경처럼 평온한 느낌을 준다. 소속사인 파스텔뮤직 측은 “‘재주소년’의 음악이 청년기에 접어들었지만, 급변하는 음악계의 추세를 느림과 여백으로 역행할 수 있는 때묻지 않은 과감함은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2일 사랑을 테마로 한 스페셜 음반 ‘러브 챕터1’을 발표한 ‘소울계의 대부’ 바비킴의 목소리도 정겹다. ‘고래의 꿈’, ‘파랑새’ 등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한 그는 데뷔 16년만에 처음으로 자작곡에서 벗어난 앨범을 꾸몄다. 가수 박선주가 작곡한 타이틀곡 ‘사랑…그놈’은 샘리(기타), 이태윤(베이스), 최태완(피아노) 등 국내 정상급 연주자들이 참여해 바비킴 특유의 편안하고 농밀한 보컬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어머니의 눈물겨운 사랑을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한 ‘마마’(MaMa)는 하광훈의 곡으로 보컬그룹 ‘헤리티지´가 코러스로 참여해 맛깔스러운 화음을 연출했다. SBS ‘패션 70’s’의 ‘약한 남자’와 ‘넌 모르지’, MBC ‘하얀 거탑’의 ‘소나무’ 등 그가 부른 인기 드라마 OST도 실려 있다. ‘나는 문제없어’로 199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가수 황규영의 목소리도 반갑다. 연극제작자와 음반프로듀서로 활동한 그는 6년만에 5집 정규앨범을 내놓는다. 그는 이 앨범에서 전반적으로 리듬적인 요소를 강조하면서 재즈, 블루스, 포크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녹슬지 않은 음악 실력을 과시했다. 타이틀곡인 ‘가시처럼’은 과거의 샤우트 창법을 자제하고 부드럽고 성숙한 보컬을 선보였다. 소속사측은 “전자음향을 절제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미디엄템포로 곡들을 꾸몄다.”면서 “2월부터 본격적인 음반 및 방송활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팝계에서는 미국 흑인음악의 메카로 불리는 ‘모타운’ 레이블의 50주년을 기념해 발매된 ‘마이클 잭슨&잭슨 5’(아래)가 눈길을 끈다. ‘모타운´은 취임을 앞둔 버락 오바바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나에게 있어 단 한명의 팝의 영웅”이라고 밝힌 스티비 원더를 비롯해 마이클 잭슨, 마빈 게이, 다이애나 로스, 보이즈 투 멘 등 걸출한 흑인 아티스트들의 앨범을 배출한 음반사. 그 첫번째 시리즈인 이번 앨범에서는 ‘ABC’ 등 잭슨5의 히트곡들과 잭슨의 모타운 시절을 대표하는 ‘벤’(Ben), 템테이션스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마이 걸’(My Girl) 등 그의 히트곡들이 3장의 CD에 망라되어 있다. 변성기를 거쳐 점점 목소리가 변해가는 마이클 잭슨의 성장과정은 그 시절에 대한 향수는 물론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모타운’의 음악적 발자취를 되짚어 보게 한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19일 TV 하이라이트]

    ●가요무대(KBS1 오후 10시) 마음으로 전하는 노래, 따스함이 느껴지는 사연과 신청곡으로 긴 겨울밤을 함께한다. 현철의 ‘봉선화 연정’, 혜은이의 ‘진짜 진짜 좋아해’, 김상배의 ‘몇 미터 앞에 두고’, 서주경의 ‘당돌한 여자’, 이영숙의 ‘그림자’, 강민주의 ‘바다가 육지라면’, 홍주의 ‘님은 먼 곳에’, 김국환의 ‘미워 미워 미워’ 등을 들어본다.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50년을 정신과 의사로 살아온 이시형 박사를 만나본다. 산속에서 자연친화적 삶을 누렸던 그동안의 근황과 본인만의 특별한 건강비법을 들어본다. 화병을 정신의학질병으로 명명한 그가 말하는 화병 다스리는 법, 그가 현대의학에서 자연치유를 택한 까닭과 자연치유란 무엇인지도 들어본다. ●닥터스(MBC 오후 6시50분) 120㎝에서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작은 키와 점점 더 휘어져 가는 척추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한 여인이 있다. 남들처럼 예쁜 옷을 입어 보지도 못하고, 달콤한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한 스물여덟의 홍선실씨. 예쁜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작은 여인, 홍선실씨의 사연을 만나본다. ●TV로펌 솔로몬(SBS 오후 8시50분) 연하의 진우와 세 번째 결혼을 한 선숙. 진우는 아내의 재산이 전남편들의 사망으로 탄 보험금인 것을 알게 되고 아내가 돈을 노리고 전남편들을 살해한 거라 의심하던 차에 그를 뒤따르는 사고들. 진우는 자신 앞으로 선숙이 보험을 들어놓은 사실을 알게 되며 자신마저 죽이려 한다고 믿게 되는데…. ●60분 부모(EBS 오전 10시) 나날이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논술’. 초등학생 시절 기초는 어떻게 다져야 할까? 초등생을 둔 어머니들이 현재 논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들어보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지, 정독과 다독 중 어떤 독서법을 위주로 훈련하는 것이 효과적일지 등 학부모들의 궁금증을 풀어본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30분) 스페인은 장기기증자도 많고, 장기기증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어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요즘은 교통사고가 줄어들면서 사고를 통한 장기기증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사고가 줄어든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로 인해 장기기증자의 연령대가 높아지게 됐고, 국제이식센터는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 별빛 쏟아지는 정원 추억도 사랑도

    별빛 쏟아지는 정원 추억도 사랑도

    겨울이면 초목은 무채색의 깊은 잠을 자야 하는 것이 상식일 터다. 그런데 경기도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과 포천의 평강식물원은 겨울잠에 빠지길 거부하며 상식의 틀을 깨고 있다. 오색별빛정원전과 체험학습 프로그램 등으로 여름만큼이나 뜨거운 겨울을 보내는 중이다. 내방객들도 긴 명상에 잠겨 있는 초목들에 행여 방해가 될세라 차분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나직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다. 겨울 정원 특유의 적막감 속에 산새소리만 간간이 들리는 겨울 수목원에 다녀 왔다. 오색별빛정원전은 아침고요수목원 전체(33만㎡)의 절반에 이르는 면적에 흰색·노란색·빨간색·파란색·녹색 등 다섯가지 빛깔로 주제에 맞춰 장식하고 있는 야간 조명행사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꽃처럼 아름다운 겨울밤을 만들기 위해 나무들에 발광다이오드(LED) 옷을 입혔다는 게 수목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히 이번 축제에는 ‘달빛정원’이 새로운 빛의 풍경으로 추가되면서, 연인과 가족단위 방문객을 즐겁게 하고 있다. 나무의 생장에는 별 문제가 없을까. 수목원 관계자는 “LED는 열이 없고 전력소모도 극히 적어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겨울을 나기 위해 수액의 통로까지 동면 상태로 만들곤 하는 나무들이 스스로에게 덧씌워진 LED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그들만이 알 터다. 사용된 LED는 대략 100만개쯤 된다. 최근 유행하는 ‘루체비스타’ 등 도심의 조형물들이 건물과 도로 등을 기반으로 했다면, 오색별빛정원전은 수목과 화단, 곡선 산책로를 따라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 빛의 축제를 테마로 삼았다. 정형화된 도심의 가로수 조명에 견줘 고저장단의 운율과 형태의 다양함 등이 한 수 위다. 오색별빛정원전은 빛의 정원과 추억의 정원, 사랑의 정원 등 세 가지 테마로 조성됐다. 각각의 테마는 또 하경정원을 비롯해 고향집정원, 분재정원, 달빛정원 등으로 세분화했다. 매표소를 지나면서 첫번째 테마인 빛의 정원이 시작된다. 고향집정원과 능수정원 등 빛으로 치장한 다양한 나무들과 화단이 방문객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다양한 별빛 꽃들이 곳곳의 정원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노란 융단을 덮은 듯 빛으로 수 놓은 대형 아치는 한겨울의 차가움을 잊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각각 초록색과 주황색 LED로 장식된 소나무와 능수버들. 수목원내 어디서 보든 풍경의 주인이 된다. 빛의 다리를 건너면 두번째 테마 추억의 정원이다. 초가집과 장독대 등으로 시골마을의 정취를 한껏 표현하고 있다. 곳곳에 자리잡은 호박마차와 아기사슴, 해, 달, 별 등 장식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관람객들의 가슴에 빛나는 추억이 새겨지는 듯하다. 추억의 정원에 있는 하경정원은 축제의 하이라이트.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다는 뜻을 담은 하경정원은 축제장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빼어난 풍경을 선보인다. 다양한 색상의 조명이 초목들의 특성과 조화를 이루며 낮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현란한 밤의 정원으로 다시 태어난다. 리듬을 타며 고저장단의 곡선을 이루고 있는 조명들은 내나라의 산하를 축소해 놓은 듯하다. 세번째 테마인 사랑의 정원은 추억의 정원 위쪽 산자락이다. 새롭게 꾸며진 달빛정원은 작은 교회와 새하얀 꽃들로 낭만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낙엽송 가로수 끝자락의 하얀 교회는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면 이루어진다 해서 ‘사랑의 교회’로 불린다. 연인들의 잦은 발걸음이 이어지는 곳. 공식 예배가 열리지는 않지만, 개인적인 예배나 명상은 가능하다. 46번 경춘국도→청평 검문소 좌회전→수목원, 혹은 47번국도→서파검문소 우회전→현리→수목원. 개장시간은 오전 9시~오후 8시30분, 점등시간은 오후 5시30분~오후 8시30분이다. 입장료는 어른 4000원, 청소년 3000원, 초등학생 이하 2000원. 정문 안에 펜션이 있다.7만~22만원. www.morningcalm.co.kr, 1544-6703. 평강식물원은 겨울이면 또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서울시교육청이 공인한 체험학습장이다. 겨울방학 체험학습 프로그램으로 각종 약재와 허브를 이용한 평강 쿠키 만들기, 전통 가오리연 만들기, 모닥불에 고구마 구워 먹기 등으로 새롭게 구성했다. 또 한방비누 만들기(유치원), 솔방울 거북이 만들기 (초등학생), 씨앗그림 그리기(중·고등학생) 등 연령대별로 프로그램을 구분했다. 생태복원의 산실인 고층습원과 살아 있는 작은 생태계 습지원 등 12 테마 가든 체험은 평강식물원 의 핵심이다. 특히 눈이 소복이 쌓인 잔디광장과 습지원의 나무데크를 걷는 즐거움은 겨울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추억이다. 잔디광장 위 작은 연못에서는 썰매도 탈 수 있다.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퇴계원 나들목→47번 국도 일동방면→수입교차로 좌회전→387번 지방도→삼팔삼거리 우회전→노곡 2리 좌회전→78번국도→낭유고개→평강식물원. 인근에 겨울 정취 가득한 산정 호수와 동장군 축제가 열리고 있는 백운계곡 등이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어른 3000원, 어린이 2000원. 체험행사 비용 1만~2만원(식사 포함). www.peacelandkorea.com, (031)531-7751. 글 사진 가평·포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삶이 퍽퍽할수록 그리운 ‘당신’

    깊은 겨울밤,야근 끝나고 퇴근하는 골목길의 88만원 세대도,그마저도 되지 못해 차가운 도시락 싸서 도서관 다니는 눈칫밥의 백수도,회사의 구조조정 윽박지름에 잔뜩 기죽어 있는 중년의 아버지도,시장통에 노점 펼쳐놓고 하루 2만~3만원 벌이도 못하는 시래기 할머니도,가슴 속에 한 사람을 품고 산다.삶이 퍽퍽하고 힘겨우면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그 사람’을 떠올린다.‘어머니’다.아니다.‘엄마’다. 등단 30년째를 맞은 소설가 노수민이 ‘엄마’ 소설을 냈다.‘울엄마교’(하이비전 펴냄)다.지난달 나온 신경숙의 신작 소설 ‘엄마를 부탁해’ 이후 ‘어머니 신드롬’이 불어닥칠 조짐이다.10년 전 IMF 위기 때 ‘아버지 신드롬’이 일었던 것처럼 또다시 유례없는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소설은 수백억원의 유산을 남기고 숨진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 강필녀’의 장례를 치르는 사흘을 시간적 배경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많은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여장부형,억척형,울보형,기도형 등 상조회원 10명의 어머니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준다. 노수민은 “자식을 버리고 떠나간 어머니를 원망하면서 스무 살 때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었다.”면서 “이런 어머니를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소설을 구상했고,그 간절함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울엄마교 십계명’을 넣는 등 계몽적인 데다가 감성을 과다하게 자극하려 하는 점은 아쉽다.끄트머리에 영화감독 권남기,국회의원 김을동 등 ‘울엄마교 대표신도’ 10명의 또 다른 ‘사모곡(思母曲)’도 붙어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책꽂이]

    ●Mr.후회남(둥시 지음,홍순도 옮김,은행나무 펴냄) 제1회 노신문학상을 받은 작가 톈다이린의 신작이다.‘둥시(東西)’는 그의 필명으로 ‘하찮은 물건’을 뜻한다.소설은 문화대혁명 시기와 개혁,개방 등 중국 현대사 격동의 시기를 관통하며 지내온 한 소년의 삶을 보여준다.우스꽝스러운 문혁의 풍경을 풍자하고,자본과 물질의 굴레에 스스로 포박시키는 세태를 준엄하게 비판한다.중국 최고의 이야기꾼 위화에 못지않은 이야기 솜씨를 자랑하며 낄낄대게 만든다.1만 2000원. ●끊어진 현(박일환 지음, 삶이 보이는 창 펴냄)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 박인환의 두 번째 시집.학생들에 대한 따뜻한 정,사회 주변부로 내몰린 이들에 대한 연민이 담겨 있다.하지만 연민에서 그치면 박일환이 아니다.버려진 복숭아나무,닥트공 최씨,사금파리 같은 노숙자 얼굴 등 세상의 모든 내몰린 이들,내몰린 것들의 곁에 묵묵히 있어 주려는 연대의 의지가 불현듯 서려 있다.어디를 펴서 읽어도 가슴 훈훈해진다.날 추운 겨울밤 읽기 좋을 법하다.6000원. ●크리스마스 1초전/크리스마스를 구해줘(로맹 사르두 지음,전미연 옮김,문학동네 펴냄)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소설 2권이 동시에 출간됐다.프랑스판 크리스마스 캐럴(찰스 디킨스)이다.‘크리스마스 1초전’은 가난한 고아 소년이 산타 할아버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고,‘크리스마스를 구해줘’는 악마의 손아귀에 놓인 크리스마스를 구해내는 모험이 담겨 있다.모험과 마법,웃음,감동을 버무린 크리스마스 시리즈이지만 별개의 작품이다.‘…구해줘’ 9000원,‘…1초전’ 1만원.
  • [길섶에서] 겨울밤의 추억/이호정 사진부 차장

    하얀눈이 골목길 외등갓에 소복이 쌓일 즈음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뜨뜻한 아랫목에서 이불에 옹기종기 다리를 파묻고 수다를 떨던 우리는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소리에 후다닥 튀어나갔지요.손에 들린 누런 종이봉투.기대한 대로 봉투에는 따끈한 군고구마며 달콤새콤한 귤이 들어 있습니다. 메주 뜨는 냄새에,외풍이 심한 안방에서 우리가 야참을 먹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밤새 아궁이에서 타오를 새 연탄을 갈려고 슬그머니 나가셨습니다.제 몸뚱아리보다 큰 배터리를,고무줄로 칭칭 감은 라디오에선 노래가 흘러 나왔죠.눈가루가 조그만 창틀에 하얀 테두리를 만들고 방안의 훈기가 창문에 부딪혀 얼면서 겨울밤이 깊어갔습니다. 그 해 겨울의 잔영이 따뜻한 온기를 지닌 흑백 화면으로 남아 있습니다.눈을 툭툭 털고 들어오시던 아버지,벌겋게 달아오른 연탄만큼이나 따뜻하게 웃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연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릅니다.더이상 세상에 없는 두분의 젊을 때 모습이 그 시절 겨울의 흑백필름 속에서 아련합니다. 이호정 사진부 차장 hojeong@seoul.co.kr
  • 겨울철 길거리 별미 집에서 요리조리 ‘쿡’

    겨울철 길거리 별미 집에서 요리조리 ‘쿡’

    호떡,군고구마,붕어빵,다코야키까지…. 겨울철 발길을 멈추게 만드는 따뜻한 길거리 간식들이 주방으로 들어왔다.온라인으로 클릭해 주문한 뒤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와 직접 길거리 간식을 만들 수 있는 DIY 제품이 인기다. 온라인 쇼핑몰들이 발빠르게 ‘묶음 상품’을 내놓았다.옥션은 유기농 찰 호떡믹스(420g)와 호떡 누르개,호떡속(1㎏)으로 구성한 ‘호떡 만들기 세트’를 판매한다.디앤샵은 누름판과 끌개,모형과 국자를 함께 묶어 ‘달고나 뽑기 세트’로 판매한다.이 제품들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단품으로도 살 수 있다. 길거리 음식의 ‘고전’인 호떡과 달고나 외에 비교적 최근 인기를 얻은 다코야키와 와플도 집에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는 ‘샌드위치맨 간식 제조기’는 원래 샌드위치를 그릴판으로 누르는 제품이지만,함께 들어있는 와플판과 붕어빵틀을 이용해 길거리 음식들을 즐길 수 있다.붕어빵의 경우 틀에 반죽을 붓고 10~15분 정도 있으면 붕어빵이 완성된다.인터파크 주방조리기구 주간 베스트 8위에 올랐다.전기로 와플을 구울 수 있도록 고안한 토스트마스터의 ‘와플베이커’도 판매된다. 11번가에서 판매하는 다코야키팬은 가정용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한 번에 14개의 다코야키를 만들 수 있는 제품이다.하루 평균 100여개가 판매된다고 한다.감자를 얇게 저며 만드는 감자칩을 만들 수 있는 ‘칩 메이커’(사진 위)도 하루 300여개 가까이 팔린다고 11번가 관계자가 전했다. 직화냄비와 찜기 등 다양한 조리기구들도 베스트셀링 제품으로 자리잡고 있다.고구마와 밤,가래떡 등을 불 위에 바로 구울 수 있도록 한 ‘고구마 직화 냄비’(아래)는 인터파크 주방조리기구 주간 판매순위 7위를 차지했다.옥션에서는 하루 1200여개가 판매된다.강화유리 뚜껑을 채택해 조리 과정을 볼 수 있다.호빵과 만두를 쪄서 먹을 수 있는 ‘웰빙 천연대나무 찜기’와 만두피나 국수면 등을 뽑을 수 있는 ‘포스웰 반죽’ 등도 이 쇼핑몰에서 인기를 얻는 제품이다. 11번가의 김지연 리빙 담당 카테고리매니저(CM)는 “먹거리 파동에 이어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집안에서 간단히 길거리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제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면서 “가정 내에서 맛과 함께 만드는 재미를 즐길 수 있는 제품의 판매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겨울밤은 길다는 얘기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줌] 최전방 GOP병사들 24시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줌] 최전방 GOP병사들 24시

    구세군 자선냄비와 크리스마스트리가 거리에 등장하면서 연말분위기를 성큼 느낄수 있다. 세모(歲暮)의 사회 분위기가 들뜰수록 한층 긴장의 고삐를 조여야 하는 곳이 있다.무자(戊子)년의 끝자락인 12월 초순,찾아간 곳은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최전방 일반전초(GOP). “노리쇠 후퇴전진~조정간 안전~탄창결합.” 군장검사를 마친 병사들이 소초장 배춘호(25) 중위에게 야간 경계근무 투입을 위한 신고를 하고 있다.“EENT(End of Evening Nautical Twilight:해질 무렵) 30분 전부터 30분 후까지 전반야(前半夜) 합동근무를 명(命)받았습니다.” 기나긴 겨울밤 야간근무가 시작됐다. jongwon@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 풍속사] (47) 기녀와 하룻밤

    [그림이 있는 조선 풍속사] (47) 기녀와 하룻밤

    ‘밤길’(그림 1)은 신윤복의 작품인데,신윤복 풍속화 치고는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다.나는 조선 후기 풍속화를 논하는 자리에서,혹은 풍속화로 만든 달력이나 기념품 등에서 이 그림을 본 적이 없다.하지만 이 그림은 퍽 꼼꼼히 따져볼 만한 것이다.그림 위쪽에 하현달이 떠 있는 것을 보면 밤이 분명하다.또 담뱃대를 문 기생이 팔에 털토시를 끼고 있는 것을 보면 겨울밤이 틀림없다.참고로 말하자면,조선시대 여자는 몸 전체를 가리는 방한의(防寒衣)가 없었으므로 단지 팔에 털토시만 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이 된다.여자의 털토시 말고 방한구(防寒具)는 또 있다. ●화려한 옷차림 기방의 운영자 대전별감 등불을 들고 앞서서 길을 인도하는 어린 사내종이 오른쪽 팔에 끼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털가죽으로 만든 이 물건은 위쪽에 끝을 죄는 줄이 있다.곧 펼친 상태에서 착용하고 끈을 죄어서 오므리는 것이다.끈이 있는 방한구로는 풍차나 만선두리 같은 것이 있지만,이 그림만으로는 어떤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어쨌거나 방한구를 착용하거나 들고 나선 추운 겨울밤인 것이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왼쪽의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별감이다.이 사람을 순라군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결코 아니다.이 사람은 앞서 ‘기방의 난투극’에서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는,기방의 운영자 대전별감이다.대전별감은 옷차림이 화려하다 했는데,이 그림의 복색을 보아도 과연 그렇다.대전별감만이 입을 수 있는 홍의(紅衣) 안에 푸른 색,분홍색,갈색 누비옷을 겹쳐 입고 있다.신발 역시 가죽신이다.또 초립 아래는 방한구인 털가죽으로 만든 ‘풍뎅이’를 쓰고 있다.과연 서울 시내 복색의 유행을 주도하는 별감답게 잔뜩 사치한 모양이다.  기생과 대전별감 사이에 있는 남자는 양태가 넓은 갓을 쓰고,중치막을 입고,가죽신을 신었다.양반이다.기생과 기부(妓夫)인 대전별감,그리고 이 양반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그림 속의 인물이 말을 하지 않으니,알 수가 없다.하지만 추측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인물들의 동작을 보자.중치막을 입은 양반은 오른손으로 갓의 양태를 잡고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고,대전별감은 왼손으로 앞을 가리킨다.저 쪽으로 가라는 신호로 보인다.기생은 대전별감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양반 왼쪽에 있다.즉 기생은 대전별감과 떨어져 양반과 함께 밤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양반과 기생이 같이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것은,그들의 앞에 사방등을 든 어린 사내종이 길을 인도하고 있음을 보아서도 알 만하다. 자,그렇다면 어떤 장면인가.이렇게 추측할 수 있다.원래 기부는 기생과 동침을 원하는 손님이 있으면 그날 밤을 손님에게 양보하였다고 한다.나는 이 그림이 기부인 대전별감이 고객에게 기생을 딸려 보내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 생각한다.이의가 없으신지? ●기녀제도 양반들의 성욕 위해 500년 유지 기생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다.하지만 기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생겼는지는 알 수가 없다.조선조에 와서 기생을 없애려고 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고 중종 때에는 조광조 일파의 거듭된 요청으로 일시 기생이 없어지지만,기묘사화로 인해 조광조 일파가 실각하자,다시 기생제도가 부활하였다. 전에 언급했듯 기생은 두 가지 목적으로 존재하였다.춤과 노래를 익혀 궁정과 양반들의 잔치에 동원되는 것,그리고 하나는 양반들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즉 조선 양반 체제는 양반-남성의 결혼이란 합법적 방식을 벗어난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갑오경장 때까지 거의 500년 동안 관기제도(官妓制度)를 유지시켰던 것이다.  그림(2) 역시 신윤복의 작품이다.제목은 ‘국화 옆에서’.서정주의 시 제목을 가져온 것이다.그림의 왼쪽에는 국화꽃이 피어 있고,오른쪽에는 사내와 늙은 할미가 있다.그리고 그 앞에는 댕기머리를 늘어뜨린 젊은 처녀가 있다. 사내는 아직 앳된 기운조차 느껴지는 젊은 나이고,여자는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옆모습만 보아도 젊은 처녀임을 알 수 있다.남자가 웃통을 벗고 있는 것으로 보아,조금 전까지 남자는 옷을 벗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그리고 이제 막 대님을 치는 것으로 보아,바지도 벗었다가 이제 다시 주워 입는 것이다.여자의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그 분위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여자는 부끄러워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남자와 여자는 이미 하룻밤을 지낸 것으로 보인다. 곧 이 사내는 여자의 초야권을 샀던 것이다.흔히 ‘머리 얹어준다.’는 말은,기생의 초야권(初夜權)을 사서 땋은 머리를 위로 틀어 올릴 수 있게 해 준다는 뜻이다.동기(童妓)의 초야권을 사는 사람은 이부자리와 의복과 당일의 연회비를 담당해야만 했는데,아마도 젊은 오입쟁이는 그 비용을 지불했을 것이다. ●기생의 성을 판매하는 조방군 이 그림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있는 늙은 할미다.얼굴이 검고 깡마르고 약간 간교하게 보이는 할미는 입을 가리고 여자에게 소곤대고 있다.내용이야 확인할 수 없지만,여자를 어르고 달래는 말이 아니었을까. 이 할미는 도대체 누구인가?어두운 성의 거래에는 반드시 중개인 역할을 하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수호지’에서 바람둥이 서문경과 유부녀 반금련 사이에 다리를 놓아 간통을 성사시킨 것은 이웃에 사는 늙은 여자 왕파였다. 그렇다면 그런 역할을 하는 여자가 과연 있었던가.19세기의 가사 ‘우부가(愚夫歌)’에 그런 여자가 나온다. ‘우부가’는 세 사람의 어리석은 사내의 행각을 그린 작품이다.개똥이·꼼생원·꾕생원 세 사내는 돈을 펑펑 써대며 온갖 놀이와 황당한 행각으로 결국 재산을 거덜내고 파멸하고 만다.그 중 꼼생원의 행각을 그린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리 모여 노름 놀기,저리 모여 투전질에/기생첩 치가(治家)하고,오입장이 친구로다/사랑에는 조방군이,안방에는 노구할미”   보다시피 꼼생원이 하는 일은 패가망신하는 일이다.맨 끝부분의 조방군과 짝을 이루고 있는 노구할미란 부분에 주목해 보자.조방군이란 기부를 말하는 것으로 기생의 성을 판매하는 역할을 하는 자다.따라서 노구할미 역시 그런 성의 판매를 중개하는 사람임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노구는 한자로 쓰면 ‘?’가 된다.문자 그대로 직역하면,‘늙은 할미’ 뜻이지만,사실은 뚜쟁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노구장이’란 말이 있는데,이것은 뚜쟁이 노릇을 하는 늙은 할미라는 뜻이며,‘노구질’이라고 하면 뚜쟁이 노릇이란 뜻이다. 이해조의 신소설 ‘빈상설(?上雪)’에 장안 계집을 깡그리 노구질하다 못 해서 조카딸까지 팔아먹는 것이로구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곧 노구질이란 늙은 할미가 하는 뚜쟁이 노릇을 말하는 것이다.그림(2)의 할미의 정체는 밝히자면 이런 것이다.  물론 뭔가 찜찜한 구석은 있다.나는 그림(2)의 젊은 여성을 기생으로 보았는데,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서울의 기생과 지방의 기생의 출신 성분이 같지만,기생업의 경영 방식에 다른 점이 있다.즉 서울의 기생은 기부(妓夫),즉 남자가 기생을 지배한다.그림(1)에서 등장하는 대전별감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하지만 지방의 기생은 기모(妓母),즉 기생의 어미가 지배한다. 기모의 경우는 춘향이와 월매를 떠올리면 금방 답이 나올 것이다.신윤복의 그림에 등장하는 기생은 모두 서울의 기생들이다.그렇다면 기부가 나오지 않고 노구할미가 난데없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이상한 일인 것이다. 물론 젊은 여성이 기생이 아닐 수도 있다.여염집의 가난한 젊은 처녀 혹은 어떤 사정이 있어서 돈이 필요한 여성일 수도 있다.이럴 경우 그림(2)의 할미는 돈 많은 남자에게 여자를 소개해 주는 역할을 한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추측은 가능하지만 어떤 쪽도 확언할 수는 없다.그렇다면 우선 덮어둘 수밖에.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무화과 年 2차례 수확 성공

    전남 영암 등 서남해안 지역이 주산지인 무화과를 연간 2차례 수확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전남도 농업기술원 과수연구소는 18일 ‘웰빙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무화과 2기작 기술개발에 성공, 농가 보급에 나섰다고 밝혔다. 농업기술원 연구팀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무화과를 재배해 지난 9월 중순 1차 수확을 마친 뒤 가지 자르기 작업을 통해 새로운 가지에서 열매를 맺는 데 성공했다. 여름철~가을철 수확이 끝난 뒤 다시 열매를 맺어 이듬해 3~5월 2차 수확이 가능해진다. 특히 봄철은 단경기라서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만큼 농가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현재 영암군 삼호면 이모(44)씨가 무화과 2기작 재배기술을 이전받아 재배하고 있으며, 내년 봄 10a당 5000만원의 소득이 기대된다. 이는 2006년 기준 10a당 소득이 가장 높았던 시설오이가 1357만원, 무화과 관행 재배 335만원, 쌀 47만 9000원 등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 재배법은 겨울철 난방비가 많이 드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농업기술원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태양열을 저장한 축열 물주머니와 지하수를 이용한 수막재배 방법 등을 통해 겨울밤 온도를 무화과 생육에 적합한 15~17도로 유지하는 방법도 고안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씨줄날줄] 아이슬란드/구본영논설위원

    북구의 섬나라 아이슬란드(Iceland)는 국토의 대부분이 얼음으로 덮여 있다.865년 경 바이킹이었던 프로키가 얼음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명명한 국명이다. 그런 열악한 자연환경이야말로 북유럽 문학의 정수인 사가(Saga)를 꽃피운 배경일 듯싶다. 영웅들의 모험담을 들으며 오로라만 번쩍이는 긴 겨울밤을 보내야 했기에…. 특히 풍부한 지열 이외엔 변변한 자원도 없는 나라다. 산업이라고 해야 어업, 관광업 정도였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는 최근까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의 하나로 꼽혔다.1인당 소득이 6만달러대로 최상위권이었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소득뿐 아니라 평균수명과 교육수준 등을 종합평가한 인간개발지수(HDI)도 세계 최고였다. 이처럼 인구 31만여명의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가 단기간에 부국으로 발돋움한 비결은 무엇일까. 해외 자본 유치를 통한 알루미늄 제련업과 금융산업의 육성이 일차적 해답이다. 특히 중앙은행은 지속적 고금리 정책으로 아이슬란드 국내기업과 가계의 적극적 해외자본 차입을 유도했다. 그런 모범적 강소국(强小國)이 요즘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했다고 한다. 로이터 통신은 그제 아이슬란드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신청했다고 보도했다. 물론 아이슬란드 정부는 아직 이를 공식화하고 있진 않다. 그러나 자국 화폐 크로나화가 폭락을 거듭하자 갖가지 자구책을 강구 중이다. 러시아에 수십억 규모의 유로화 지원을 요청하는가 하면, 주요산업인 어업을 보호하기 위해 망설이던 유럽연합(EU) 가입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금융산업으로 일어선 아이슬란드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형국은 퍽 역설적이다.AP통신은 “이번 위기는 아이슬란드인의 뿌리깊은 부채문화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인이나 정부 할 것 없이 은행빚이나 외채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얘기다. 냉엄한 국제경제질서 하에서 웬만큼 거센 바람에도 끄떡없으려면 뿌리가 튼실해야 함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우리 또한 얼마 전 무분별한 차입경영으로 IMF위기를 자초하지 않았던가. 구본영논설위원 kby7@seoul.co.kr
  • [20 & 30]청춘들이 겪은 아찔한 삼각관계

    [20 & 30]청춘들이 겪은 아찔한 삼각관계

    인간의 눈에 가장 안정적인 구도는 삼각구도라는 말이 있다. 세 꼭짓점을 잇는 세 변이 이루는 각이 흔들림 없이 무게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위태로운 삼각구도도 있다. 바로 ‘사랑의 트라이앵글’이다. 절친한 동성 친구가 동시에 한 이성에게 ‘필’이 꽂히는가 하면, 우연히 만난 이성 친구의 친구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삼각관계는 상처 끝에 맞게 될 파국을 예감하듯 불안한 기운이 감돈다.2030 청춘 남녀들이 겪은 아찔한 삼각관계의 기억을 들어봤다. ●잘못된 만남에 사랑도 우정도 모두 잃어 은행원 조모(34·여)씨는 7년째 변변한 연애 한번 못 해본 ‘노처녀’다. 참한 성격에 배려심도 깊어 주변에서 곧잘 맞선을 주선한다. 하지만 조씨는 남자들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한 채 혼자 생활하고 있다.‘싱글생활’이 길어지고 있는 데는 20대에 겪은 ‘삼각관계의 악몽’ 탓이 크다. 대학 새내기 시절 만난 같은 과 동기 오모(34)씨와 7년간 열애한 조씨는 학교에서 ‘열녀’로 이름났었다. 남자친구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면 달려가 ‘며느리’처럼 일을 도왔고, 장교로 군복무한 남자친구 오씨를 2년 넘게 기다리기도 했다. 남자친구와 결혼까지 생각하던 조씨는 어느 날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박모(34·여)씨를 남자친구 오씨에게 소개했다.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어느 겨울날. 조씨는 남자친구에게 아찔한 고백을 들었다. 친구 박씨와 첫 만남을 가진 뒤 서로 좋은 감정을 품어 몰래 만나 왔다는 것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친구인 박씨가 임신까지 했다는 것.“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져요. 새로운 남자를 만나 좋은 감정을 느끼다가도 ‘이 남자도 나를 배신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하고 있죠.” 대학생 김모(22·여)씨와 곽모(20)씨는 같은 과 선후배 사이로 만났다. 곽씨는 같은 학회 활동을 하는 김씨의 당찬 성격과 리더십에 왠지 끌렸다. 결국 곽씨는 어느 겨울밤 김씨의 자취방에 찾아가 마음을 고백했다.“누나를 위해 직접 준비했다.”며 손수 구운 쿠키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전달했고 김씨는 이런 곽씨의 노력에 감동해 교제를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데이트를 즐기던 어느 날, 학회 뒤풀이 자리에서 곽씨의 이중생활이 탄로나고 말았다. 김씨는 동기 이모(22·여)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서로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얘기를 하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알고 보니 둘의 남자 친구는 바로 곽씨 한 사람이었던 것. 곽씨는 김씨와 교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씨에게도 “누나를 위해 직접 준비했다.”는 말과 함께 쿠키를 건넸다.“설마설마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결국은 절친했던 동기와도 멀어져 버렸어요.” ●“연인 사이에 끼어든 불청객”으로 전락 직장인 이모(27·여)씨는 졸지에 연인 사이에 끼어든 ‘나쁜 여자’가 된 경험이 있다.2년 전 입사한 회사에서 선배 김모(29)씨는 밤늦게까지 회사에 적응 못해 힘들어하는 이씨의 고민을 들어주며 다독거렸다. 이씨는 이런 다정한 선배의 모습에 반해 버렸다. 셔츠에 머리카락이라도 붙으면 살포시 떼어 주기도 하며 끊임없이 선배에게 관심을 보였던 것. 선배도 이런 이씨의 마음을 어느 정도 짐작했던 터라 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주말이면 데이트를 즐겼고, 야근이 있는 날이면 선배는 이씨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이씨는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평소 젠틀하기로 소문난 김씨가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던 3년차 여자 선배에게 유독 까칠하게 대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회식 자리가 끝나고 이 둘은 같은 방향이라며 함께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다음 날 택시를 함께 타고 갔던 여선배가 나타났다. 둘은 1년 전부터 사귀고 있었다고 했다. 여선배는 “우리 둘 사이가 요즘 소원해진 틈을 타 네가 끼어든 것이니 이제 그만 정리해 달라.”고 했다. 문제는 회사 안에 도는 소문들이었다.‘신입이 선배를 꼬셨다.’,‘원래 그렇고 그런 애였다.’ 순식간에 회사에 퍼진 소문들이 억울하긴 했지만 이씨는 달리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결국 이씨는 회사를 그만두었다.“‘힘들 때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됐어요.” 정부부처 사무관 박모(29)씨는 고시공부하던 시절의 허탈했던 연애 경험을 아직 잊지 못한다. 고시공부를 하며 외로움을 많이 느끼던 박씨는 겨울 계절학기 수업을 듣던 중 같은 대학 2년 선배인 이모(31·여)씨에게 한눈에 반했다. 박씨는 학교 도서관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그녀와 같이 밥을 먹으며 함께 공부를 하는 일이 잦아졌고 둘은 자연스럽게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하지만 박씨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이씨에게는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같은 동아리 내에서 사귀어 오던 남자친구 권모(32)씨가 있었고 헤어진 뒤에도 간간이 만남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박씨는 “어차피 헤어진 관계인데 별일 없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행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로부터 갑자기 헤어지자는 통보를 듣게 된다. 급히 그녀에게 매달리게 된 박씨는 그녀가 전 남자친구를 잊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수많은 소개팅 기회가 있었으나 여전히 그녀를 잊지 못하던 어느 날 박씨는 우연히 이씨의 개인 홈페이지를 발견했다. 박씨는 그녀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다가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 옆에 권씨가 서 있었다.“나는 헤어진 옛 남자친구를 잊기 위한 ‘대체재’였던 것 같아요.” ●삼각관계 극복하고 더 깊은 사랑으로 삼각관계가 반드시 ‘잘못된 만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학생 장모(24·여)씨는 동갑내기 남자친구 김모(24)씨와 고등학교 때부터 7년간 만나고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 ‘닭살커플’로 유명한 둘은 삼각관계에 빠져 헤어질 뻔한 위기를 극복한 케이스.2년 전 남자친구가 군대에 간 사이 장씨는 잠시 다른 남자와 만남을 가졌다.“3대3 미팅인데 한 명이 부족하거든. 너밖에 나갈 사람이 없어.” 친구의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간 미팅 자리에서 한 남학생이 장씨를 마음에 들어 했고, 장씨도 상대방의 세련된 매너에 반해 교제했던 것. 넉 달간 밀회를 즐기던 둘은 공식적으로 사귈 것을 약속하고 말았다. 며칠 후 장씨는 강원도 양구에서 복무하던 남자친구 김씨를 찾아가 “유학을 가게 돼 더 이상 교제하기 어렵다.”는 거짓 이유를 둘러대며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했다. 그 순간 끝날 것 같던 두 사람의 인연은 커피값을 내는 과정에서 극적으로 다시 이어졌다. 서로 “내가 계산하겠다.”며 티격태격하던 중 장씨가 지갑을 떨어뜨렸고, 이를 주워 주려던 김씨가 펼쳐진 지갑 안에서 장씨와 다른 남자가 어깨를 겯고 다정히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몇 초간 말을 잇지 못하던 김씨는 마음을 추스르곤 “잘생겼네. 행복하길 빌게.”라며 장씨의 어깨를 토닥였다. 순간 ‘이렇게 멋진 남자를 놓치면 안 되겠다.’고 느낀 장씨는 김씨에게 그동안 일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했다.“그때 남자친구를 떠나보냈으면 어쩔 뻔했어요. 우연히 떨어뜨린 지갑 덕분에 (김씨와) 아직도 사귀며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가고 있죠.” 직장인 박모(36)씨는 삼각관계를 극복하고 결혼에 성공했다. 박씨는 대학시절 단짝친구였던 김모(36)씨와 동시에 같은 동아리의 한 여자를 좋아했다. 소심한 박씨는 좋아하는 내색을 못 했고, 활달한 김씨는 대놓고 그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박씨는 김씨와 ‘마음속의 여인’이 다정하게 걷는 모습을 대학 내내 가슴 아프게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그 여인은 졸업 후 취직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인생을 쉽게 살려는 김씨에게서 서서히 멀어졌다. 여인의 마음은 우직하게 자신의 인생을 사는 박씨에게 쏠리고 있었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던 박씨는 결국 사랑을 택했고, 친구 김씨 몰래 데이트를 시작했다. 박씨는 용기를 내 김씨에게 결혼 예정 사실을 알렸다. 김씨는 긴 침묵 끝에 “나보다는 네가 더 행복하게 해줄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 친구도 좋은 사람 만나서 잘살고 있어요. 우리의 우정도 회복됐고요.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그때 내가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행복한 상황이 연출됐겠어요?” ●비밀연애 생기는 애매한 삼각관계(?) 대학원생 조모(31)씨는 요즘 같은 과 선배 유모(33)씨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다. 유씨가 자꾸 눈치없이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작업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조씨는 현재의 여자친구와 사귄 지 반년이 조금 넘었다. 알고 지낸 지는 꽤 됐는데 같은 공부를 하고 같은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는 일도 잦다 보니 서로 자연스레 끌려 사귀기로 한 것이다. 물론 과 내에 소문이 퍼지는 게 두려워 둘 사이의 연애 사실은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선배 유씨가 여자친구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선배는 비밀연애를 하고 있는 둘 사이의 관계를 알 리가 없었다. 조씨는 유씨의 태도가 못마땅해도 비밀연애가 폭로되는 게 싫어 그냥 참고 있다. 며칠 전에는 대학원 회식 모임에서 유씨가 조씨의 여자친구를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언젠가 말을 해야지 했는데, 이제는 너무 늦어서 말하기도 민망해요. 왜 그리 눈치가 없는지….” 김정은 장형우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고향의 추억과 도회적 삶의 애환

    이재무(50) 시인이 시력(詩歷) 25년의 내공이 고스란히 담긴 시선집 ‘오래된 농담’(도서출판 북인)을 펴냈다. 시인의 첫 시집인 ‘섣달 그믐’부터 2004년 ‘푸른 고집’까지 7권의 시집에서 뽑은 90여편의 대표시들이 실렸다.‘농촌청년’에서 ‘도시중년’이 되기까지 시인의 삶의 궤적이 투영돼 있다. “싸락눈이 내리고 날은 저물어/길은 보이지 않고/목쉰 개 울음만 빙판에 자꾸/엎어지는데 식전에 나간 아부지/여태 돌아오시지 않는다”(‘겨울밤’ 중에서) 초반부의 시편들은 시적 출발점이 된 유년 시절과 고향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담아낸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인은 도시의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든다.“그는 오늘도 산 속의 지혜/찾아나설 것이다 8기통 코란도에 시동을 걸고/국토신성론자인 그가 빼어난 경관/구석구석 밟지 않는 곳이란 없다”(‘어느 지식인의 주말’ 중에서) 도회적 삶의 애환과 좌절을 체험한 시인은 이내 자연과 생태쪽으로 마음의 눈을 돌린다. 시인은 “내 시의 어법과 내용의 변화는 내 생활의 차이에 따른 대상과 세계에 대한 인식 변화가 가져온 것”이라고 말했다.7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아버지의 장화 발자국

    아버지의 장화 발자국

    칠흑같이 어두운 겨울밤, ‘삐걱’ 하고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단잠을 주무시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에 벌떡 일어나 “이제 오는교?”라며 마중했다. 방문을 열자 눈은 마당을 하얗게 덮었고 아버지의 장화 발자국만 또렷이 남아 있었다. “아이고! 또 넘어졌는교? 괜찮은교?” “실산 모퉁이를 돌아오는데 길이 안 보이는 바람에 그만….” 아버지의 무릎과 어깨 언저리에는 아직도 눈길에 넘어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 눈 올 때는 그냥 맨몸으로 오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디, 다리도 옳지 않은 사람이….” 아버지가 퇴근하실 때는 항상 시커먼 얼굴에, 동발 서너 개가 어깨에 실려 있었고 손에는 도시락 보자기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당시 우리에겐 낯설지 않은 가장 친근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고 오신 동발은 막장에서 쓰다 남은 나무토막으로 유일한 우리 집 땔감이었다. 아버지는 막장에서 채탄 작업을 하시는 광부였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 일을 했다고 하니 30년은 훨씬 넘게 하신 모양이다. 집에서 20리 남짓 떨어진 곳으로 매일 걸어서 출퇴근을 하셨고 야간 일이 돈이 더 된다며 밤을 낮 삼아 일하셨다. 몸이 피곤하고 감기 기운이 있을 때면 약 대신 흑설탕을 양은 냄비에 타서 훌훌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오늘도 어머니가 타주신 흑설탕물을 드셨고 나도 아버지가 드시다 남은 달콤한 설탕물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 동지가 지난 이튿날, 밤 10시가 넘었을 무렵 이웃집 아저씨로부터 전갈이 왔다. 아버지는 아직 일이 좀 남아 있어 내일 아침에 퇴근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급히 밤참 도시락을 쌌고 몸이 불편하여 못 가니 나보고 다녀오라고 하셨다. 어두컴컴한 밤, 신작로에는 아직 간간히 눈이 내리고 있었고 어제 내린 눈이 얼어붙어 발을 옮기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꽁꽁 얼어붙은 타이어 자국을 뽀드득 뽀드득 밟으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오구니재를 지나 청벽에 다다르자 전봇대 사이로 ‘휘휘’ 하며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소리가 귀신의 휘파람 소리 같아 발걸음을 더듬거리게 했고 절벽에서 간간이 돌이 굴러 떨어질 때면 머리끝이 하늘로 치솟았다. 한 시간 남짓 걸었을까?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작업장에 도착해보니 모두가 시커먼 얼굴에 똑같은 헬멧을 쓰고 있어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자 삐그덕 삐그덕 레일 소리가 들리더니 석탄을 싣고 나오는 활차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너 명이 함께 밀고 있었는데, 다리를 절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분명 아버지였다. 막장에서 무너진 돌에 맞아 다리가 골절되어 늘 절고 다니셨고 눈이라도 오면 곧잘 넘어지셨던 아버지. 그래도 왼쪽이 다쳐 천만다행이라며 하루도 일을 빠지시는 날이 없었다. “아버지!” 부르며 가까이 가자 “추운데 여까지 우에 왔노? 집에 가서 묵으면 되는데. 빨리 가그라” 하며 도시락을 받아 드셨다. 뒤돌아선 아버지의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나는 멀찍이 떨어진 전등불 아래서 시커먼 얼굴로 도시락을 드시는 아버지를 보았다. 다른 몇몇 사람들은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난로에 끓여 먹는데 아버지는 한쪽 귀퉁이에서 온기가 가신 찬밥에 김치 몇 조각으로 식사를 하셨다. 내가 볼까 애써 감추려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아 한참 동안 허공만 바라보았다. 그날 밤 아버지 얼굴을 떠올리며, 달그락 달그락 밤길을 걸어오니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체구도 키도 작은 우리 아버지, 남을 탓할 줄도 시기할 줄도 모르고 동네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셨던 아버지는 동네에서 늘 부지런함의 표상이었다. 아버지의 삶의 공간은 우리 동네와 일하던 막장, 읍내 시장이 전부였다. 학교에서 아버지 직업을 조사하면 ‘광부’라고 써가는 것이 싫었고, 시커먼 얼굴로 동네 앞을 지나실 때 꼬마들이 돌을 던지며 놀리는 것도 싫었다. 그러나 이젠 잔소리도 들을 수 없고 그 모습도 볼 수 없게 되었다. 불혹이 넘은 지금, 눈 내리는 겨울밤이 오면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다. 우리 집 대문이 ‘삐걱’하고 열리며 동발을 한 아름 메고 들어오실 것만 같다. 그 작업장으로 달려가 힘껏 안아보고 싶다. 아버지 팔짱을 끼고 하얀 눈길을 따라 밤새껏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밤길을 따라 굽이굽이 새겨진 장화 발자국은 저 눈꽃만큼이나 아름다운 아버지의 인생이었다.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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