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겨울나무
    2025-12-14
    검색기록 지우기
  • 신혼부부
    2025-12-14
    검색기록 지우기
  • 임진강
    2025-12-14
    검색기록 지우기
  • 임시국회
    2025-12-14
    검색기록 지우기
  • 불체포특권
    2025-12-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1
  • 겨울공원 두배 즐기세요

    겨울공원 두배 즐기세요

    겨울 준비를 시작한 무당벌레와 왕잠자리유충 등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물가에서 겨울새의 발자국을 찾아보는 등 서울의 겨울 공원을 ‘두 배’더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서울시공원녹지관리사업소는 시민들이 공원을 찾아 겨울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도록 ▲상암동 월드컵공원▲남산공원▲여의도공원▲양재동 시민의 숲▲길동자연생태공원▲수목학습원(사릉·갈매)등 6개 공원에 18개 겨울공원이용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24일 밝혔다. 먼저 월드컵 공원에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연그리기’(매주 수요일)와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토요가족관찰회’(매주 토요일),‘조류탐사교실’(매주 토·일요일) 등이 준비돼 있다. 시민의 숲에서는 다음달 4일과 18일 ‘어린이 숲교실’이 열리며, 사릉·갈매 수목학습원에서는 다음달 4·5일 이틀동안 ‘겨울나무 친구하기’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참가비는 없으며, 참가를 원하는 사람은 25일 오전 10시부터 서울의 공원 홈페이지(parks.seoul.go.kr)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단, 각 프로그램에 따라 시간, 장소, 대상, 인원 등이 다르기 때문에 예약하기 전 반드시 확인이 필요하다. 공원녹지관리사업소 송명호 팀장은 “월드컵 공원, 길동생태공원 프로그램이나 시민의 숲에서 열리는 어린이 숲교실 등은 인기가 높아 조기 마감될 수 있다.”면서 서둘러 예약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문의)02-771-6133∼4.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한여름밤 숲자락 우리소리 한가락

    소나기에도 무더위는 가시지 않았다.하긴 오후에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여 퍼붓던 빗줄기가 가신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었다. 일요일인 20일 저녁.공연은 아직 한 시간 남짓이나 남았지만 우면산 자락의 국립국악원 별맞이터는 벌써부터 술렁이고 있었다.무대 위에서는 리허설이 한창이라,흐드러진 가락이 고성능 스피커를 타고 퍼져나가고 있었고,그 틈에 음향이며 조명을 감당하는 이들도 마지막 점검에 한창이었다. 부지런한 관객들은 아이들을 걸리거나,혹은 무동을 태운 채 일찌감치 무대를 찾아 ‘명당자리’를 잡았다.사회를 맡은 젊은 소리꾼 김용우는 광장 분수대에서 소녀팬들에 둘러싸여 사진을 함께 찍으며 한동안 헤어날 줄 몰랐다. 오후 8시,아직도 조명이 필요없을 만큼 환한 야외무대에는 어느새 앙상블 ‘상상’이 자리를 잡았다.뒤늦은 관객들이 자리를 잡느라 분주하고,아이들의 발소리가 조금은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일요 열린 국악무대-휴일 오후의 소리공감’은 시작됐다. ●기침소리도, 반바지 아저씨도 OK 국립국악원과 국악방송이매달 세번째 일요일에 마련하고 있는 ‘소리공감’은 어린 아이는 집에 두어야 하고,기침도 참아야 하는 고상한 음악회 하고는 달랐다.가벼운 차림으로 마실 나온 듯한 젊은이는 물론이거니와 중년 남성의 반바지도 허물이 되지 않았다. 이날의 주제는 창작 실내악으로 꾸며진 ‘숲,저녁,꿈’.‘휴식 같은 음악’으로 한여름 밤의 열기를 식혀주겠다는 취지였다.‘상상’과 ‘정(情)가악회’‘그림’ 등 젊은 창작 실내악 그룹 세 팀이 무대에 올랐다.김용우는 “성황당에 와 있는 느낌”이라고 농담을 했지만,고전미가 넘치는 의상을 입고 나온 여성 트리오 ‘상상’은 정악과 시나위의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는 ‘윤회’로 미처 정돈되지 않은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해금의 강은일,거문고의 허윤정,철현금의 유경화 등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연주가들로 구성된 ‘상상’은 ‘윤회’에 이어 실험성과 즉흥성을 주조로 하여 이날 연주곡 가운데 가장 현대적인 ‘상상-자유’를 선보였다. 두번째로 나온 정가악회는 이름처럼 관람객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거는 앙상블은 아니었다.정가에 기반을 둔 새로운 우리 노래를 만들어내겠다는 이상을 가진 단체답게 박노해 시 ‘강철새잎’과 황지우 시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를 들려주었다.단원의 한 사람인 이태원이 편곡한 ‘풍년가’에서는 영상까지 준비하여 역설적으로 ‘풍년의 그늘’을 보여주기도 했다. ●황새란 놈은 다리가 기니… 다소 무거워진 분위기를 풀어준 것은 김용우를 따라 민요를 배우는 순서.관람객들은 불과 서너번을 따라했을 뿐인데도 ‘황새란 놈은 다리가 기니 우편배달을 돌리고,앵무새는 말씀을 잘하니 변호사쟁이를 돌려라’는 재미있는 가사의 통영민요 ‘동그랑땡’을 거진 외우다시피 하며 즐거워했다. 반주를 마친 ‘정가악회’가 물러나고,‘그림’이 무대장치를 하는 몇분 사이 관람객들은 소리꾼 사회자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김용우는 악기의 설치가 조금 늦어지자 “소리꾼이 소리 안하고 사회만 보니 답답해서 못살겠다.”며 ‘한곡조’를 뽑았다. 자칫 분위기가 느슨해 질 수 있는 그 순간 관람객들은 “영감은 할멈 치고,할멈은 애 치고,애는 개 치고,개는 꼬리 치고,꼬리는 마당 치고,마당가에 수양버들은 바람을 휘몰아 치는데∼,우리 집에∼ 저 멍텅구리는 낮잠만 자∼네”하는 정선아라리에 손박자를 맞추며 파안대소할 수 있었다. ‘The 林’을 ‘더 림’이 아닌 ‘그림’이라고 읽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무지개색 조각보 바지를 입은 서커스단의 피에로를 연상시키는 차림에 피아노,소금 등 관악기,거문고,해금,가야금,베이스기타,어쿠스틱기타,타악기 등 동서양의 악기가 혼합된 이들의 음악에 관람객들은 환호했다. ‘그림’이 무대에 오른 것은 지난 4월 공연에서 워낙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한다.‘국악’이라기보다는 ‘국악기가 포함된 뉴에이지 음악’으로 분류해야 할 이들의 음악은 무엇보다 편안했다.리더인 신창렬이 만들었다는 멜로디에서는 창작국악에서 가장 부족하다고 지적되는 영감이 느껴졌다.이들은 어느 사이 1200여명으로 늘어난 관람객들의 박수장단 속에 앙코르에 응한 뒤에야 무대를 떠날 수 있었다. ●11월까지 공연… 입장료는 무료 맨 뒷자리에서 공연을 지켜본 윤미용 국립국악원장은 “왜 이런 음악회가 필요한가.”라는 우문(愚問)에 “제아무리 ‘수제천’이 명곡이라 한들 하루아침에 좋아지기는 쉽지 않을 일”이라고 했다.그는 “초보자들도 이런 쉬운 공연을 찾다보면 듣는 능력도 조금씩 생기게 될 것이고,그것이 쌓이면 ‘수제천’에 기뻐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그것이 국립국악원이 할 일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지난 4월 시작한 ‘휴일 오후의 소리 공감’은 오는 11월까지 계속된다.8월에는 ‘한여름밤의 타악기 이야기’를 주제로 17일 오후 8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입장료는 없다.(02)580-3300. 글 서동철기자 dcsuh@ 사진 도준석기자 pado@
  • [마당]봄은 공짜로 오지 않는다

    봄은 눈물로 왔다. 지난 겨울에는 자주,유독 눈이 많이 오고 추웠기 때문에 봄을 간절하게 기다렸다.설거지를 하다가,찌개 냄비를 올려놓고 방 청소를 하다가,빨래를 해서 널다가,방학인데도 학원에 다니는 아이를 기다리다가,자주 부엌에 달린 작은 창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어둡고 흐린 바깥에는 눈이 내렸다.하염없이 내렸다.내렸다 쌓이고 쌓였다 녹은 눈은 빙판을 이루었고 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겨울나무 가지 사이로 튀어 올랐다.나무들은 눈보라 속에서 묵묵부답이었다.이렇게 겨울이 두꺼운 걸 보니 봄은 많은 선물을 가져올 거야.처마 끝에서 고드름이 급한 전보처럼 철푸덕 떨어졌다.한낮이면 토닥토닥 얼어붙은 땅의 어깨를 다독이며 낙숫물이 떨어지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우수 경칩도 오기 전에,입춘을 맞기도 전에,바람이 달라졌다.바람 코끝도 바람 뒷덜미도 바람 아래도 마알갛게 혈관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안개는 자주 들이닥쳐 늦게까지 머물고 난 다음 느릿느릿 사라졌다.어디선가,찌뿌드드한 몸 속에 여드름 돋아나듯 어떤 기운이,어떤 뿌리가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니 숲 속에서는 산비둘기가 울기 시작했다.버들강아지와 목련이 어머니 젊었을 적 손길처럼,꿈 속에서 만난 여인의 피부처럼,부드럽게 바람을 타 넘는 것이 보였다.젖은 바람이 땅과 숲 속을 헤집고 다니자 땅은 비릿한 냄새를 토해내며 기지개를 켜고 숲 속 나무들은 새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소름 돋은 몸을 뒤채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예 비가 내렸다.밤이 들면서 함석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거세졌다.봄비가 이렇게 사나워서야,묻어놓은 김치 항아리가 걱정이 돼서 문을 열고 나가봤다.밖은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두움이었다.비바람에 나무도 울고 거대한 송전탑도 울고 산도 바다도 아우성치고 있었다.하늘을 우러러 큰소리로 애원하기 시작했다.하느님,우리는 봄이 오기까지 충분히 참아냈습니다.우리에게 무엇을 더 바라고 계십니까.그렇게 많이 울었으면 됐지,또 무엇을 요구하는 겁니까.이제는 울려고 해도 힘이 없어 울 수도 없습니다.반만년을 이어온 우리 겨레가 단 한순간이라도 울지 않고 산적이 있습니까.지금 이 순간 대구에서,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장에서,텔레비전 화면 속에서,헤어진 가족을 찾아 울부짖는 피붙이들이 꼬박 비바람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우리 문단의 큰 어른이신 소설가 이문구 선생님께서 끝내 돌아가셨다.향년 62세,작가들 평균 수명이다.충청남도 보령땅 관촌마을,뼈대있는 한산 이씨 집안에서 태어난 선생님은,온 나라의 비극인 한국전쟁 때,좌익운동을 한 부친 때문에 집안이 거덜났지만 외가로 피신을 해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았다.아버지와 삼촌들과 형들이 총살을 당하거나 산 채로 보령 앞바다에 수장이 되는,억장 무너지는 순간을 숨어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졸지에 집안 가장이 된 소년 이문구는 무작정 상경,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할 수 없는 일을 닥치는 대로 하면서 작가가 되었다.작가가 된 다음에도 항상 힘없고 ‘빽’ 없고 가진 거 없는 사람 편에 섰다. 맨 밑바닥보다 더 아래에 계시려고 겸손해하셨다.문단에 마당발로 소문난 선생님은 온갖 애경사와 궂은 일을 도맡아 하시다가 몹쓸 병을 얻어 쓰러지신 거다.그 건장한 체격으로 한 십 년은 너끈히 버티실 줄 알았는데,너무 아깝고 억울하고 분하다.봄은 공짜로 오는 법이 없는 모양이다.충분히 앓고 충분히 운 다음에야 비로소 봄은 오는가 보다.선생님 영전에 엎드려 통곡하며 술잔을 올린다.
  • [길섶에서] 새순

    또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옷속으로 스며드는 바람결이 다르다.가끔 옷깃도 여며보지만,고개 든 봄바람 기운에 겨울이 맥을 출 리 없다.계절은 정말 정직하다. 눈을 들어 가로수에 초점을 맞춰 본다.가지마다에 새순 봉오리가 조금씩 돋아나고 있다.그 겨울을 이겨내고 새 살을 돋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찬란한 생명력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경외심마저 들 지경이다. 아직 발가벗은 모습 그대로 행인들의 시선을 받지만,내일을 기약하는 희망이 가득하다.이제 얼마 안 있으면 파란 싹이 부끄러워하는 몸을 덮어 줄 것이다.그토록 매섭던 동장군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정신력의 승리리라.남도에는 동백꽃이 막 붉은 입술을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고,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고 하잖는가.지금 음지에 있어 춥고,오르막 길이어서 숨이 턱에 찬들 얼마나 가겠는가.의지에 달려 있다.겨울나무의 정신력을 배워야겠다. 이건영 논설위원
  • [2002길섶에서]겨울나무

    크리스마스,연말,세모(歲暮)분위기가 그런대로 와닿는다.우리들 마음과는달리 도심은 그런대로 나름의 멋을 현재진행형으로 내고 있다.낮엔 모르다가도 밤이 되면 “아,연말은 연말이구나.”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노란 전구를 머리에 인 나무들이 늦가을의 은행나무를 보는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의 나무들은 유난히 두꺼운 옷을 입고 서있어 안쓰럽기까지 하다. 나무들이 겨울에도 샛노란 은행잎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연말 기분을 탐하는 세상사람들 때문일 것이다.나무는 그래서 애써 싫은 기색을 감추고 은행잎을 보였다,감췄다 하며 우리들을 유혹한다.그러다 우연히 밑을 지나는 우리들에게 하소연을 한다.“너희들은 예쁘다고들 하겠지만 나는 죽을 맛이야.밤중 내내 맨몸으로 뜨거운 불전구와 씨름하느라 온 몸이 화상투성이라구.” 사람들은 외눈 하나 깜짝이지 않는다.“반짝하는 불빛도 없다면 도대체 무슨 연말 재미가 나겠어.” 남의 처지나 입장을 생각하는 것도 능력이다.나무들의 뜨겁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역지사지(易地思之)하자. 이건영 논설위원
  • 조운제 고려대 명예교수 별세

    조운제(趙雲濟) 시인(고려대 영문과 명예교수)이 25일 오후 4시3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72세. 조 시인은 1930년 경북 예천에서 출생,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공주사대 부교수, 고려대 영문과 교수를 지냈다. 시집 ‘샘물’‘시간의 말’‘겨울나무’,시평집 ‘한국시론’‘한국시의 이해’,수필집 ‘흰 목련’ 등을 냈고한국현대시인협회 부회장 및 회장 직무대리를 역임했다.시문학상,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류시남(柳時男·74)씨와 아들 경래(京來·대우건설 국내영업본부이사),일래(溢來·한국은행 선임조사역),방래(芳來·동부화재 콜센터장)성일(晟一·현대투자증권 감사실 차장)씨와 딸 지영씨,사위 정양기(鄭亮基·넥스컴 대표)씨 등이 있다.주택공사 부사장을 지낸 철제(徹濟),강남대 교수인 승욱(昇昱)씨가 동생이다. 빈소는 서울중앙병원 영안실.발인 27일 오전 6시.장지 경북 예천군 지보면 지보리 선영.(02)3010-2239
  • [임영숙 칼럼] 희망의 씨앗

    새해 첫 날 매봉산에 올랐다.전국 각지,아니 서울에만도여러 곳에 매봉산이란 이름의 산이 있는 것을 보면 매봉산은 평범한 산이다.그러나 서울 남산 자락인 우리 마을 앞산 매봉산은 참 아름다운 산이다. 산에서 새해 첫 해돋이를 보겠다는 욕심도 없이 아침을먹고 느긋하게,등산이라기보다 산책하는 마음으로 오르는산길은 상쾌했다.평소엔 많은 사람들이 아침 산책을 나오는 곳인데,유명한 해돋이 명소로 발길을 돌린 탓인가 오히려 새해 첫날 매봉산은 한적했다.밤새 내린 눈으로 겨울나무 가지마다 하얗게 핀 눈꽃이 맑은 햇살에 반사돼 눈부셨고 키 작은 철쭉 잎에 내려앉은 눈송이들은 목화꽃처럼탐스러웠다. 산 정상의 팔각정에 올라서니 남쪽 처마에 고드름이 달렸다.처마의 고드름은 어린 시절 정월 풍경의 하나였다.푸근한 마음으로 팔각정을 한바퀴 돈다.이 팔각정에 서면 마치 서울의 중심에 선 듯한 느낌이 항상 든다.남쪽으로는 관악산과 우면산,구룡산,대모산 연봉이 병풍처럼 둘러싼 강남의 빌딩 숲이 보이고 발 아래엔 한강이 유유히 흐르며북쪽으로는 북한산,도봉산,수락산 연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차가운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어느해인가 설악산과 동해에서 맞았던 새해를 떠올린다.그때처럼 멀리 떠나지 않고도 맛보는 이 여유와 조용함을 올 한해 계속 간직하고싶다. 팔각정에서 내려와 올라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산을 내려가는데 저쪽에서 누군가 나를 보며 웃는다.아는 사람인가하고 보니 아니다.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삽으로 땅을 고르고 있었다.밭 한 뙈기 정도의 땅을 삽으로 파 엎고 돌멩이와 나무뿌리를 골라내고 수평을 고르는 중이었다.눈 속에서 뒤엎어진 땅의 속살이 부드럽게 눈을 찌르고 흙냄새가 싱그럽게 코에 와닿는다. 새해 첫날 한껏 열린 마음이 낯선 사내에게도 스스럼 없이 말을 건네게 한다.“무얼 하세요.” “오는 2∼3월에꽃을 심으려고 화단을 만드는 중이오.” 그는 산기슭 땅을 미리 고르게 해놓아야 봄에 꽃을 심기 좋다면서 이곳 저곳을 가리키며 자신이 속한 동호회에서 심은 나무들이라고 말한다.주목이나 영산홍 같은,야산에서는 보기 힘든 정원수들을 이 산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그러고 보니 이 사내처럼 나무를 심고 산을 가꾼 사람들 덕택이었던 것이다. 올 한해도 지난해처럼 어지러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2년을 ‘전쟁의 해’로선언하고 지난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여온전쟁을 확전할 뜻을 여러차례 밝혔다.미국 주도의 새로운세계질서 재편과 함께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으로 치솟은 부시 대통령의 인기를 오는 11월 미 의회 중간선거까지 계속 유지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으니 올 한해 세계는 전쟁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없을 듯싶다. 나라 안 상황도 복잡하다.6월에 지방자치 선거,8월에 국회의원 재·보선,12월에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5∼6월에월드컵 축구대회를,9∼10월에 아시안게임을 개최해야 한다.특히 선거 과정에서 지역갈등과 이념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풀린 돈과 정치가 모처럼 회생기미의 경제 발목을잡아 민생이 더욱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없지 않다. 그러나 새해 첫날,봄날의 꽃을 위해땅을 고르는 사람은내게 희망을 안겨주었다.그가 장 지오노의 아름다운 소설‘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는 아닐지라도 우리 사회엔 우리들이 모르는 사이에 희망의 씨앗을심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그렇다. 〈…세상은/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그러나 세상은 살만한 곳.//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것을 생각한다./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한해가 가고/또 올지라도//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고운 이빨을 보듯/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을지로 입구에서 무교동으로 꺾어지는 길 모퉁이에 세워진 김종길 시인의 ‘설날 아침에’ 시비를 아침 출근길에 다시 읽는다. 임영숙 /대한매일공공정책연구소장 ysi@
  • 대한매일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작-최하림론(2)

    *역사와 개인이 만나는 시의 자리-최하림론. 4.풍경의 미학 정신. 최하림의 시는 역사와 실존이 부딪치는 자리에서 수행되는 치열한시적 사유의 세계이다.두 테마에 대한 집요한 천착 과정을 통해서 그가 보여준 절제와 균형의 미학은, 그의 시세계에 시적 긴장을 유지할수 있는 동인이었다.질곡의 한국현대사를 통과하면서,그리고 그 현실에 부단한 시적 대응을 견지하면서도 특정한 관점에 경도되거나 생경한 직설의 형식을 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그의 시가 자신을 시적 사유의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자신에 대한 성찰에서 시적 사유를 시작한다는 것은,세계와의 정서적 거리두기를 가능케 하는 미적전략이다.관조와 응시를 통해 세계에 접근하는 최하림의 시적 방식은,심미적 거리를 확보하려는 시적 태도인 셈이다.역사와 현실에 대한집요한 시적 장고(長考)는 그의 시가 기초한 진지한 미학 정신에서연유한다. 이 미학정신을 구현하는 시적 형식으로 최하림은 풍경화(風景化)의방식을 사용한다.그것은 ‘겨울’,‘골짜기’,‘밤’,‘눈’,‘개’,‘새’,‘강’,‘어둠’,‘바다’,‘사내’ 등 시대적 상징성을 확보하고 있는 소재들을 동원하여 현실을 암시하는 상황을 설정하고,그상황을 시인의 내면적 정서나 정신적 지향과 겹쳐서 하나의 압축된풍경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이러한 그의 시적 방법은 현실에대한 내적 관조와 깊은 침잠이 선행되어야 하는 창작 방법이다. 현실에 대한 직설적 토로나 생경한 비판의 형식이 아닌,그것을 하나의 형상으로 구축하는 최하림의 미학 정신은 그의 시가 발딛고 있는 기지이자 오늘의 시점까지 그의 시를 추동시킨 문학적 원동력이다.그 심미적 시정신은 자신과 현실적 사태에 대한 반성적 사유의 토양인 셈이다. 큰 나무들이 넘어진다 산과 산 새에서/강과 강 새에서 마을 새에서/길을 벗어난 사람이 어디로인지 달리고/길러진 개들이 일어서서/추운겨울을 향하여 짖는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작은 강을 따라/우리들은 입을 다물고 걸어간다/저녁 그림자처럼 걸어간다 마을도/나루터도 사라지고 과거도 현재도/보이지 않는다/날아가는 새들의/불길한울음만 공중에 떠돌며/얼어붙은 겨울을 슬퍼하고/// 언덕도 상점도폭설에 막히고/거리마다 바리케이트 쳐져/사람들이/어이어이어이 울부짖고/갈색 옷을 입은 사내 몇,들리지 않는 소리로/진정하라고 말하고 또 다른 소리로/진정하라고 말하고 그 소리들이 모여/겨울나무를넘어뜨린다/// 꽁꽁 언 새벽 여섯 시,地靈처럼 걷는/사람들 새로 우리들은 걸어간다/살얼음의 아픔이 여울마다/경천동지하며 뛰어올라갈기를 날리고,/우리와는 다른 방향으로 일단의 사내들이/사냥개를끌고 온다 개들이 짖는다/이제는 얼어붙은 우리들의 꿈이여/눈과 같은 결정체로 三韓의 삼림에 내리어오라/기다리는 노변에서 상수리숲도 우어이우어이/울고 겨울새도 울고 우리도 울고 있다.― 「겨울 精緻」 전문 암담한 시대적 상황이 구체적인 풍경으로 형상화된 작품이다. 시 전체를 물들이고 있는 음울한 절망의 정조가 ‘우리’라는 대명사와 결합되고 등장하는 소재들이 암울한 시대적 상징으로 수렴되면서, 시는비극적 현실을 환기하는 한 반영으로 읽힌다. 산에서는 숲을 숲이게만드는 ‘큰 나무들이’ 사라져 가고 ‘한 방향으로 흐르는 작은 강을 따라’ 사람들이 ‘그림자처럼’ ‘입을 다물고 걸어가는’ 상황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몰수된 황폐하고 암담한 현실이다. 폭설로 봉쇄된 암담한 겨울,새의 울음과 숨죽인 통곡만이 가득한 강제와 감시의 현실을 시인은 ‘地靈처럼 걷는 사람들’이라는 섬뜩한죽음의 형상으로 그리고 있다.‘경천동지하며 뛰어올라 갈기를 날리는’ 듯한 것으로 생생하게 경험되는 현실의 고통은,출구에 대한 욕망의 절실함만큼이나 격렬한 것으로 감각된다.꿈마저 얼어붙은 전망부재의 현실에서 ‘우리들’은 눈을 부르고 있다.하늘을 향해 ‘내리어오라’고 주술처럼 되뇌이는 사람들의 바람 속에는 일말의 가시적인 가능성이라도 확인하고자 하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우리의 암울한 질곡의 현대사를 최하림의 시는 이렇게 묘사한다. 당대 현실에 대한 아무런 직설적 비판이 없는데도 이 시가 보여주는 암담하고 폭압적인 상황은,상황 자체로써 이미 현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수행한다. 구체적 풍경을 통해 형상화된 현실은그것이 그리는대상 자체보다 생생하며,그것의 문제적 국면은 증폭되어 표출된다.구체적 풍경이 발휘하는 형상력은 시적 정서와 의식을 보다 직핍하고절실하게 드러내는 기능을 감당한다.문학의 본질적인 힘은 바로 이구체성에서 발원하는 것으로서,삶과 현실에 대한 섬세한 사유와 그것의 미적 형상화는 문학을 다른 제도와 구별짓는 힘의 원천이다.심미주의의 좌절은 야만주의를 부른다. 거친 육성과 생경함 속에 건설된시는,시간의 거센 물살을 견뎌낼 수 없으며,시대가 지나간 자리에 조잡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구체적 풍경을 통해 현실을 형상화하는 최하림의 시적 태도는, 사실적 풍경도 정신화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다음의 시에서 우리는 풍경과 의식이 상호 작용하여 삶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구체적 형상으로드러내는 최하림 시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눈이 내리니/나뭇가지들이 무게를 이기지/못하고 포물선을 그리며휘어지다가/눈을 털고 일어나고,/다시 눈을 털고 일어나고 한다/오후 내내 그 일을 단조롭게/반복한다 우리가 날마다/아침을 시작하고또/시작하는 것과 같으다/// 이런 날/하늘은 지붕 가까이/내려와 멈추고 세상 길도/들녘에서 모습을 지운다/나는 천근 무게로 눈꺼풀이/내려 앉아 꿈속처럼 눈을 감는다/아이의 속뼈같이 여린 가지들이/사라지고 또다시 가지들이/사라지고 또다시 가지들이/떠올라 머나먼 마을에/차곡차곡 쌓인다/// 나는 사나운 짐승처럼 눈벌판을/마구 쏘다니고 싶지만/나는 결코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지/못한다 눈은 나를 덮고 또 덮으며/종일 내려 쌓인다 ― 「아무 생각 없이 겨울 풍경 그리기」전문 이 시에는 오랫동안의 응시를 통해서만 포착할 수 있는 눈 내린 겨울 풍경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최하림의 [바라보는 시]가 빈번하게 펼쳐 보이는 눈여겨보지 않은 사물들의 아름다운 움직임이 정겹게그려진 작품이다.나뭇가지들이 ‘눈을 털고 일어나고 다시 털고 일어난다’는 묘사 속에는 순진무구의 서정성이 담겨 있다.비어있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정경들이 시인의 투명한 시선에 의해 포착된다.최하림의 최근시가 보여주는 정결한 세계는 이러한 시선에 의해 확보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하림의 시적 특질은 그러한 맑은 시선이나 그 시선에 포착된 자연 대상의 아름다움보다,오히려 그것을 정신성의 세계로 고양시키는 시의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눈내린 상황을 인간의 일상으로전환시키고,그것을 다시 보편적 시간의 세계로 확대하는 방식은,사물의 정경을 정신의 풍경으로 환치하는 최하림 시의 특징이라 하겠다. 여기서 눈의 의미는 일상성으로,그리고 다시 시간의 무게로 전이되면서,‘지붕’과 ‘길’과 ‘들녘’에 내린 눈은 사람과 마을을 지우는무화(無化)의 상징으로 자리를 옮긴다. 시인이 ‘눈을 감고’ 의식의심층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개별적 존재들을 지워버리는 시간의 냉혹함이다.명멸하는 ‘아이의 속뼈같은’ 가지들이 ‘차곡차곡 쌓이’는‘머나먼 마을’이란, 존재들이 묻힐 시간의 영원한 심연을 의미한다.이 마을의 광경은 시인의 의식이 형상화한 정신의 풍경인 것이다.말할 수 없는 비극성을 삼키고도 저토록 평화로운 마을의 풍경,고요 속에 잔혹함을 내포한 시간의 벌판을 시인은 ‘사나운 짐승’이 되어‘마구’ ‘마구 쏘다니고’ 싶다.그것은 모든 인간의 삶 속에 내재하는 존재의 비극적 충동이다.시간의 고요한 위력 앞에 선 무력한 인간의 보잘 것 없음,정화된 풍경 속에 내재한 동적 충동의 이유인 것이다.외부의 풍경을 정신화하고 정신을 풍경화함으로써,이 시는 생의비극성을 구체적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최근의 시들을 중심으로 최하림의 많은 시들은 정적(靜寂)의 풍경을노래한다.투명하고 정결한 정서를 보여주는 이 시들 속에는 사물과의화해를 꿈꾸는 생의 충동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 꿈꾸기가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바라보는 일이 종내에는 어둠으로 귀착될 것임을 시인은 안다.어둠은 죽음이고,어둠은 무(無)이다.삶에 내재하는 비극성이 동적 충동을 부른다.그가 보여주는 정화의 풍경은존재의 비극성이 미만한 시간의 풍경이며,그래서 생의 충동으로 가득한 허무의 비가(悲歌)이다. 최하림의 역사적 상상력과 실존적 고뇌는 구체적 풍경을 통해서 생생하게 형상화된다. 반성적 거리에 뿌리를 둔 이 풍경의 형식 속에는세계에 대한 깊은 응시와 성찰의 정신이 내재되어 있다.이러한 정신에 기초한 시적 사유의 세계는 그 깊이만큼의 집요함과 강인함을 내포한다.역사와 인간에 대한 비극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미학정신이 최하림의 시세계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5.다시 꿈꾸는 아침의 역사 현재적 삶이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의의있는 연결이라는 신념이 없다면,인간은 생의 종말을 단순히 불길하고 허무한 상징으로밖에 인식할 수 없다.고통스러운 역사와 유한한 존재들을 모두 삼켜버린 시간의 냉혹함 앞에서,최하림은 인간의 자세를 생각한다.절망적인 역사와실존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역사 밖에 존재할 수 없다. 이는최하림이 끝내 포기하지 않은 시적 사유의 대전제이다.최하림에게 역사와 실존은 삶이 끌고 갈 두 개의 테마이다.‘지옥 같은 역사’의기억과 질병을 통해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그는 황폐한 삶의현장을 다시 응시한다.“보이지 않는 들판을 간다는 것은 어려운일이다”.(「들판」) 냉엄한 역사적 현실과 인간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안고 건너야 하는 그 들판은, 정신의 강인함이 요청되는 고되고 지난한 삶의 현장이다.최하림은 들판을 건너는 방법에 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길의 줄기찬 모색과 그 모색의 매력을 이야기한다. 내 눈이 너를 보고/내 귀가 너를 듣는 동안에/감추인 아침이 차츰차츰 열리고/감당할 수 없이 세상이 밝아온다/경이로운 아침이여 새벽부터 길들은/사립을 나서서 숨소리 깊은 들로 간다/내가 처음의 나그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부지런한 농부들은 벌써 몇 사람째 이슬을 털고 갔다/그들의 발걸음이 들을 깨우고 비린내음 물씬한/밭고랑옥수수들을 흔든다 옥수수들이/눈 비비며 일어나 제 모습 본다/우리도 어느 날,들을 가면서 우리가 지나는 모습/볼 것이다 긴 낫 들고,그림자 드리우며,/존재하는 것들이 밝게 얼굴 드러낼 것이다/언덕으로 올라가는 도랑에서,나는 잠시,햇빛에 싸여,/걸음이 미치지 않는곳의 신비를 본다/가려고 하지 않는 길들은 매력있다 ― 「밭고랑 옥수수」전문 건강한 아침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들을 깨우고 새벽을여는 농부들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역사의 모색을 그리고 있는 이 시에는 역사의 운동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 담겨 있다.‘차츰차츰 열리’는 역사의 새벽을 ‘감추인 아침’이라고 적고 있는 표현에는,[숨겨져 있던 것이 드러나는] 의식의 개안을 통해 아침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시인의 인식이 내재되어 있다.‘감당할 수 없이 밝아오’는 ‘경이로운 아침’은 그것을 향해 눈과 귀를 열어두고 있는 ‘동안’,다시 말해 정화된 응시의 시간이 있고 나서야 찾아오는 국면인 것이다.이는 ‘오래오래’ ‘멈춘 평화’의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보이지 않는 들판’을 건널 수 있다는 「들판」의 사유와도 상통한다.이응시의 시간은 ‘처음의 나그네’를 ‘부지런한 농부’로 전환시키는인식의 계기이다. ‘이슬을 털고’ ‘들을 깨우고’ ‘밭고랑 옥수수들을 흔’들며 역사의 새벽을 걸어가는 이 부지런한 농부들의 발걸음에서,‘숨소리 깊은 들’은 건강한 생명력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가개인에게 의식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러한 상상력 속에는,역사란 개인의 고통과 반성을 통해서 성취되는 변증법적 삶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들을 찾아 나서는 ‘농부들’은 바로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통해 굳건한 존재로 선 역사적 주체들인 것이다.‘걸음이 미치지 않는 곳’의 ‘신비’함과 그 길의 매력은 바로 이러한 고통과 반성을 거친 자들의 가슴 속에 찾아온다.역사는,아니 역사적 삶은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패배 속에서 다시 꿈꾸는 것임을,최하림은 새벽을 여는 농부들의 힘찬 발걸음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역사적 세계에 대한 염원은 최근 시들에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아침 이미지]에서 잘 드러난다. “미소 속으로 아버지가 쇠스랑을 메고/온다 이슬 젖은 잠방이 바람으로 온다/(오오 고통스런 세상으로 오시는 아버지!)/노동으로 빛난얼굴을 하고 아버지는/사립으로 온다 우리 가족은 모두/아침의 유대속에서 아침의 빛을 뿌리며//온다 새로운 아이들이 따뜻한 유대 속으로/온다 무성한 시간의 숲을 헤치고/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포르릉포르릉 날며”(「아침 유대」,5·6연)에 그려진 것처럼,찬란한 역사의아침은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노동을 통해서 열리는 세계이다. 황폐한대지를 갈고 고르는 노동을 통해서 이룩되는 역사, 그 노동으로 다져진 아버지의 ‘빛난 얼굴’은, 고통을 통해 새로운 전망을 열어가는역사의 변증법적 운동력을 상징한다.개인의 고통과 줄기찬 노동이 역사를 일구어 간다.역사의 아침은,고통을 견디고 또다시 꿈꾸는 강인한 정신 속에 깃드는 것임을 최하림의 시는 보여준다. [농부의 대지적 상상력]이라 부를 수 있는 최하림의 역사 의식은 인간적 실존에 기초한 공동체의 연대를 모색한다.그 삶이란 “모서리들이/조금씩 조금씩 부서지고 모서리들이/닳아지고 모서리들이 정다워지면서/죽음 가까이 죽음처럼 둥글”(「모카커피를 마시며」)어 지는조화와 화해의 삶이며, 모든 존재의 동질적 비극성에 기초한 관용과사랑의 정신에서 연유하는 삶이다.아울러 이러한 개인의 유대가 지향하는 공동체적 삶은 ‘목적이 없고 관객이 없으므로 그들 자신이 춤이고 즐거움’(「즐거운 딸들」)이 되는,과정 자체가 하나의 목적을이루는 삶이다.존재에의 연민에 뿌리를 둔 공동체의 유대는,개인의실존과 역사가 만나는 인간적 역사의 모습이며,냉소주의와 자기아집에 대항하는 부단한 투쟁의 역사인 것이다. 집요하게 존재와 역사의 막막함을 들여다보는 최하림의 질긴 시적고투의 역정은,속도와 효용성이 주도하는 현실세계에 있어서 시의 역할을 재고하게 하는 육중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 ‘밤새도록 죽지를눈에 박고 졸며 혼몽 속을 헤매’(「눈을 맞으며」)는 굴뚝새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실종된 역사를 고통스럽게 견뎌내는 최하림의 고독한 견인주의는 우리에게 시와 시인의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시의 진정한 자리는 인간적 진실을고민하고 탐색하는 반성적 사유와 그것을 구체화하는 미학 정신 위에서 건설되며,인간적 진실은 경험과 존재가, 사색과 생이 만나는 자리위에 구축된다. 시의 위의(威儀)는 준엄한 자기 반성과, 그 반성을 통해 한 단계 나아간 진실에의 깨달음에서 발현된다.최하림이 한 작은 글에서 ‘창조적 정신을 잃고 관성에 의지하는 시’가 ‘지상의 평화를 헤친다’고했던 고백은,시적 정신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시사한다.새로운 세기의시의 모습이 인간과 역사를 보다 창조적인 시각으로 열어 보일 길찾기가 될 것이라면,최하림의 시적 작업은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하고극복해야 할 언덕이다.더불어 그의 시가 현재를 넘어서 또다른 세계에 도달할 것을 믿는 것은,그의 진지하고 강인한 정신의 역투에 대한믿음에서이다. 김문주
  • 고성 화암사 “설악 깊숙한 절집… 외로움 달래네”

    가을을 떠나보낸 설악(雪岳)은 그리움에 몸을 떨었다. 그 외로움을 달래는 것은 산정에 쌓인 흰눈이 아니었다.외려 늦가을정취를 품에 안은 고즈넉한 사찰과 황량한 들판에 일렁이는 억새가떠나는 가을의 고독에 답하고 있었다. 설악이라면 모두들 제 손바닥 보듯 안다고 지레짐작한다.그만큼 서울이나 타관 사람들의 발길이 일년내내 끊이지 않는다.하지만 설악 자락에 이처럼 예쁜 절집이 웅크리고 있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않다.화암사(禾岩寺).44번 국도가 확장돼 길이 많이 짧아졌다고는 하나 서울에서 3시간을 쉼없이 달려야 미시령.흰눈 덮인 고개를 넘어 20여분 조심스럽게 내려오면 대명콘도 안내판과 함께 ‘금강산가는 길’이란 표지판이 들어온다.화진포를 거쳐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길이라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이 곳을 스쳐 지나간다.하지만 화암사로 발길을 돌린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겨울나무의 열병식을 구경하며 5분을 더 내쳐달리면 왼쪽에 군부대가 보이고 그 뒤로 큼직한바위가 눈에 확 들어온다. 꼭 두꺼비 같기도 하고 계란을뒤엎은 것 같기도 하다.수(秀)바위.그아래 널찍한 평지에 절집이 틀어 앉아있으니 수바위는 곧 이 절집의얼굴인 셈이다. 신기하게도 이 절집은 바위를 향해 들어앉아 있다.절집에선 바다가보이지 않고 마당에 내려와야 동해 바다가 훤하다.절과 바다 사이 영랑호가 있고 양양과 간성의 모든 산줄기와 평원이 절집의 품에 들어온다.절 앞으로는 신선골이 흐른다.무려 30리를 흘러흘러 동해로 접어든다.그 물은 결코 많지 않지만 내는 소리는 벽력같다.시원하다. 신선봉이라 불리운 이 산자락은 미시령의 바로 오른편 봉우리.금강일만이천봉이 시작되는 봉우리로 오래전부터 여겨져왔다.이를 반증하듯 절집의 서북쪽 삼성각에는 상팔달,세존봉 등 금강산 봉우리를 그린 그림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찾을 수 없다. 금강에는 8만9개의 암자가 있었다하니 이 절집은 그 암자군의 첫째인격. 신라 진흥왕때 지장율사가 화엄경을 설법했다 하여 처음에는 화엄사로 불렸단다.추사 김정희의 글씨체로 쓴 현판 ‘무량수’가 완당이라는 호와 함께 새겨져있어 눈길을 끈다. 또 이 절집에는 한가지 특이한 게 있다.신선골 계곡에 기둥을 곧게박고 전통찻집 ‘란야원’(033-633-9998)이 들어선 것.요사채에 절집이라니.단청은 적당히 퇴색해 낯선 이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그저푸근하게 차향의 감미로움에 빠져들게 한다. 안에 들어앉아 동해바다를 감상하며 차를 마실 수 있다.눈이라도 내리면 그 삼삼한 정경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절집을 나와 500m를 달리면 세계잼버리대회가 열렸던 신평벌.농사를짓던 땅이 분명한 구릉에 억새물결이 일렁인다.때마침 울산바위에 해가 얹어지자 그만 억새는 눈이 되고 만다.하늘하늘 춤추다가 이내 서로 부둥켜 안고 울음을 토하고 만다.“눈이 부셔.”이곳은 강원도 양양의 여운포 억새밭(대한매일 10월19일 18면)과 함께 드라마 ‘가을동화’를 찍었던 곳으로 알려져있다.극중 준서(송승헌)와 은서(송혜교)가 키스를 나누던 장면이란다. 산봉우리에 걸친 햇살은 더욱 예광을 발하고 그 빛을 받은 억새는 더슬프게 흐느낀다.자동차를 몰고 억새밭을 누빌 수 있다. 다음날 낙산 앞바다에서 일출을 만끽함으로써 산과 계곡,사찰,평원,바다가 어우러진 여정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어떻게 가나] 설악산 가는 길이야 다 아는 것이고,미시령 넘어 20여분 달린다.금강산 가는 길에 들어서 5분 정도만 조심스럽게 내려가면왼쪽으로 수바위가 눈에 들어와 쉽게 찾을 수 있다. 수바위가 가까워질 무렵,화암사 일주문도 눈에 들어온다. 군부대 앞에서 3분 정도를 더 달리면 신평벌 억새밭.여기에서 15분정도 더 내려가면 방포항.방파제에 부서지는 거친 파도를 보며 겨울바다의 진미를 만끽할 수 있다. [가을동화의 위력]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의 ‘순례’인파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우리여행사(02-335-7137)는 2∼3일(무박) 화암사를비롯,가을동화 촬영지를 돌아보는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열린답사(02-2282-0624)와 옛돌(02-2266-1233)도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 속초 임병선기자 bsnim@
  • 창공을 날며 키운 ‘시인의 꿈’

    ‘팬텀조종사에서 시인으로’ 공군사관학교 초등비행훈련 교관 이영순(李永淳·55) 교수가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이 교수는 월간 문학세계 제69회 신인문학상 공모에 ‘돌밭 낙동강’‘나의 기도’,‘겨울나무 아래에서’,‘시심’,‘땅심’ 등 5편을 출품,당선작에 뽑혔다. 이 교수는 지난 71년 공사 19기로 임관,F-4 팬텀 전투기 조종사로 근무하다 95년 공군대령으로 예편했다.98년 25년간의 전투 조종사 생활을 정리한 첫저서 ‘하늘이 받아준 사람’이 국방부 선정 진중문고로 채택되기도 했다. 이 교수는 “문단 등단을 앞으로의 임무수행과 창작활동을 위한 에너지로삼겠다”며 “특히 올해말부터 교육을 받는 여성 조종학생들을 잘 가르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조종사를 탄생시키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노주석기자 joo@
  • [대한매일 신춘문예 당선] 심사평

    한 세기를 접고 시간은 흘렀다.‘꿈의 21세기’벽두를 화려하게 장식한 ‘새 얼굴’을 발굴해내는 자리는 용호상박(龍虎相搏)의 격전장을 방불케 했다. 응모작 수준이 상향 평준화를 이루어 그 어느 때 보다 각축이 치열한 가운데 1차 관문을 통과한 작품은 무려 아홉편이나 되었다. 다른 매체와 ‘겹치기 투고’작품을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한 다음 ‘초당기행’(곽지원),‘만년설 1’(이운정),‘다운동 고분’(임석),‘길’(신수현)등 네편을 놓고 당락을 결정하게 되었다. ‘만년설 1’은 은유의 문법 속에 시대정신을 가미했지만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지는 못했다.상징과 은유가 때로는 겉돌며,발상법이 기발하지만 그 재기가 경이로움을 이끌어내지 못했다.‘초당기행’과 ‘다운동 고분’은 고전과 현대의 뒤섞임이라고 할까.옛스러운 것과 새로운 것이 절묘하게 버무려져 있었다.복고 스타일과 첨단 스타일,발랄한 감성과 비판적 시각이서로 뒤섞여 시적 긴장미를 연출해냈다.그러나 뼈대있는 메시지와 서정성 곁들인 힘찬 목소리가 서로 행복한 악수를 해야 하는데,그것이 그만 설득력을지니지 못해 언어 유희로 흐르고 말았다. 당선작 ‘길’은 언어 조탁 능력이 탁월했다.톡톡 튀는 맛은 없었으나 결코서두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면서 끈적거리는 점액질(粘液質)같은,언어의 찰기와 흡인력을 거느리고 있었다.‘겨울나무에게’‘겨울 한계령에서’ 등 당선자가 접수한 일련의 작품 곳곳에 녹아있는 그 ‘풋풋한 감성’을 검출해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숱한 굴절과 신산의 지난 세기를 넘어 새 천년을 펼치는 오늘 ‘길’을 만나게 된 것도 행복이라면 그지없이 오롯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근배·윤금초
  • 속초 토박이 이성선 신작시집‘山詩’

    속초를 지키는 시인 이성선(58)에게는 오래된 버릇이 하나 있다.벌써 10년째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설악산을 향해 세번 절한다.아침만이 아니라,언제고 산만 보면 두근거려 합장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에게 산은 글로써 표현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산을 붓 하나로 들어올리려는 사람은 미친 자(者)”라고 까지 말한다.그런 그가 새시집 ‘산시(山詩)’(시와 시학사)를 펴냈다. 그는 설악산 북쪽,금강산의 맨 아랫 봉우리라는 신선봉(神仙峰) 기슭에서 태어났다.어린 시절,세수대야를 들고 마당에 나서면,물에 비친 산 그림자를 떠서 얼굴을 씻곤 했다. 지금도 산속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하다.해질녘이면 산은 어떤 울림을 주고,그 울림은 견딜 수 없도록 자신을 부르는 것 같다는 것이다.이 시집에 실린‘산달(山月)’은 그런 산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을 담고 있다. 당신을 껴안고 누운 밤은/잠이 오지 않았습니다돌 하나는 품어도/사리가 되었습니다그의 시에는 이처럼 여백이 많다.그는 산시를 ‘가지를 친 겨울나무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성긴 나뭇가지 사이로 읽는 사람이 각자 자신의 삶과 연결시켜 읽으면 된다는 것이다. 연장선상에서 ‘산시’에는 평론가가 쓴 ‘해설’이 없다.그는 거창한 이유를 붙이지 않는다.다만 “어릴 적 박목월의 ‘나그네’를 읽을 때 무슨 해설이 필요했느냐”고 되묻는다. 시인 고은은 “동해에 시인이 없다면,그 동해에 죄짓는 일이 될 것”이라며이성선을 지목한 바 있다.그런 평가를 받는 우리 문단의 대표적 서정시인이정신주의에 탐닉하게 된 동기는 그러나 뜻밖에도 소외감인듯 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국문과에 진학하고 싶었으나,홀어머니가 강권하는 대로 농학과에 갔다.소외감 속에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된 뒤,지난 8월 명예퇴직할 때까지 국어 아닌 농업이나 기술 과목을 가르쳐야 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되지않는 삶속에서 아침저녁으로 산과 바다를 바라보며 나무와 풀잎같은 ‘살아있는 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생명체 하나하나가 자신과 똑같은 우주안의 공동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시도 중요하지만,생명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자신의 시를 다른 사람과 조금은 다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96년 속초·고성·양양 환경운동연합을 결성하는 데 참여하여 현재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현실’이 모든 것을 우선하던 70∼80년대에도 순수 서정시만 고수하던 시인에게는 의외의 직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시를 쓰는 것과 같은 맥락일 뿐”이라고 말한다.“산과 자연이 훼손되는 것은 곧 내 어머니,내 가족이 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천혜의 자연이 눈앞의 경제적 이유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그가 이른바 ‘운동’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오히려 선시(禪詩)에 가까운 산시에서,인간내면의 세계를 탐구하는 신비주의쪽으로 더욱 기울어져 가고 있다.현재 그가 35박 36일 일정으로 인도와 티베트를 여행하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옛동요에 실려오는 아스라한 추억

    동요는 아이들을 위한 노래지만,한때 아이였던 어른들에게는 아스라한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는 주문(呪文)이기도 하다.통기타 가수 이성원(37)이 낸 동요음반 ‘뒷문밖에는 갈잎의 노래’(굿인터내셔널)는 어린 시절 낡은 풍금반주에 맞춰 목청을 높였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옛동요집이다. ‘겨울나무’,‘엄마야 누나야’,‘구두발자국’,‘나뭇잎배’,‘오빠생각’….금방이라도 따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왠지 목에서 자꾸 걸리는 노래들이 이성원의 편안한 음색에 실려 실타래처럼 풀려나온다.처음과 마지막에 실린 ‘따오기’는 강원도 춘천 두메산골의 추곡초등학교 전교생 30여명이 불렀다. 15년째 통기타 가수생활을 하고 있는 이성원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지는않지만 한번 들으면 쉽게 잊을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가수이다.지인들은 그의 노래를 편안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동시에 명상적이라고 평한다.지금까지 두장의 음반을 내면서 한번도 오선지나 펜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기타에 손이 가는 대로 곡을 만들고,입에서 노랫말이 나오는 대로 가사를 붙이면 그냥 그게 노래가 되고,음반이 된다. 그는 같은 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같은 노래라도 부르는 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같은 사람이 같은 노래를 부르더라도 순간순간 다르다는것.그가 부른 동요를 듣다 보면 이말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어릴때 아무 생각없이 흥얼거리던 노래들이 세월의 흐름을 건너뛰어 깊은 울림으로 되돌아오는 경험은 낯설면서도 기분좋은 일이다.
  • 독서로 꿈키우고 영상으로 情키우고

    ◎방학중 볼만한 유아·청소년 도서­비디오 안내 논술시험에 대비하려면 어릴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지만 시험·숙제에 바쁜 학교생활에 쫓기느라 평소 책 한권 마음놓고 읽을 시간이 없다.방학동안만이라도 학교공부에서 해방,좋은 책과 비디오를 보며 간접 경험을 넓히도록 도와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다. 방학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자녀에게 권할만한 책과 비디오들이 많다.어린이도서연구회와 서울YMCA 건전비디오문화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의 추천을 받아 소개한다. 도서는 창작동화가 주를 이루며 옛이야기와 우리문화를 테마로 했다.비디오는 최신작이 대부분이다. ■도서 ●유아 누구야 누구(보리) 꿀꿀돼지(웅진)하늘이랑 바다랑 도리도리 짝짜꿍(보림)호롱이 잡은 피리(보림) 고릴라(비룡소) ●1∼2학년 아재랑 공재랑 동네 한바퀴(길벗어린이)세상이 처음 생겨난 이야기(사계절)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웅진) 별님동무 고기동무(우리교육)땅속나라 도둑귀신(보림) 화요일의 두꺼비(사계절) ●3∼4학년 콩,너는 죽었다(실천문학사)잔디숲 속의 이쁜이1,2(웅진)고기잡이(보림)진희의 스케치북(산하)머리속의 난쟁이(사계절) ●5∼6학년 버들붕어(현암사)제주도 이야기(창작과 비평사)오디세우스의 방랑과 모험(국민서관)고향솔잎(미리내)장준하(사계절) ●청소년 스물 네개의 눈동자(자유포럼)사랑하는 젊은 친구들에게(작가정신)잡초는 없다(보리)아버지와 아들의 꿈(생명의 말씀사) ■비디오 ●극영화 아미스타드(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매튜 매커너히,안소니 홉킨스 출연) 어느 어머니의 아들(테리 조지 감독·헬렌 미렌,피오눌라 플라나간 출연) 비욘드 사일런스(카롤리네 링크 감독·실비 테스튀드,타타냐 트립 연출)호스 위스퍼러(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출연) 가베(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샤하예 조다,아바시 사야히 출연) 레인메이커(프랜시스 포드 코플라 감독·맷 데이먼,클레어 데인즈 출연) 매드 시티(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존 트라볼타,더스틴 호프만 출연) 마더 나이트(키스 고든 감독·닉 놀테,세릴 리 출연) 위대한 유산(알폰소 쿠아론 감독·에단 호크,기네스 팰트로 출연) 아들을 위하여(짐 에이브라함 감독·메릴 스트립,프레드 워드 연출) 알래스카(프레이즈 헤스톤 감독·빈센트 카타이저,찰톤 헤스톤 출연) 가타카(앤드류 니콜 감독,에단 호크,우마 서먼 출연) 딥 임팩트(미미 레더 감독·테아 레오니,모건 프리만 출연) 나폴레옹(마리오 안드레치오 감독) ●애니메이션 아나스타샤(돈 부르스 감독) 하얀 꼬마곰 라스(한스 드 비어 감독) 고마워요 우체부 아저씨(영국 링크 엔터테이먼트사 제작) 녹색나라 삐삐의 모험(무시 프로덕션제작) 투포야 놀자(이탈리아 미저리 스튜디어 제작)또또와 유령친구들(한·대만 합작).
  • 도서출판 좋은날 ‘사랑시 시리즈’

    ◎사랑노래와 함께 깊어가는 늦가을…/“사랑이란 어느날 문득 찾아오는 것/나에게 사랑은 한편의 시”/서정시인 서정주 김남조 오세영 시세계 담아/국내문단의 가벼운 사랑타령 반성에서 출발 〈…이젠 자네와 내 주름살만큼이나 많은 그 골진 사랑의 떼들을 데리고/우리 어린날같이 다시 만나세/갓트인 연오리에 낮 미린내도 실었던/우리들의 어린날같이 다시 만나세〉(서정주의 ‘편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서정시인들의 사랑을 주제로 한 시들이 세 편의 시선집으로 묶여 나왔다.도서출판 좋은날이 ‘좋은날 사랑시’ 시리즈 1차분으로 펴낸 미당 서정주의 ‘견우의 노래’,김남조의 ‘외롭거든 나의 사랑이소서’,오세영의 ‘너,없음으로’.이 선집은 우리 문학에서 사랑이라는 주제가 때로는 너무 가볍게,때로는 너무 쉽게 장난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반성에서부터 출발한다.때문에 수록된 시들은 부박한 사랑타령을 주로 하는 요즘의 사랑시들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다. “사랑이란 어느날 문득,갑자기 찾아오는 것.늙은 나에게 사랑은 한편의 시”라고미당은 언젠가 말했다.미당은 60년이 넘는 시작 과정을 통해 사랑의 의미와 표현방법은 달리 해왔지만 사랑에 관한 관심만은 노년의 작품에까지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이번에 나온 ‘견우의 노래’에서는 사랑에 관한 미당의 시적 정조가 어떻게 변모해왔는가를 한 눈에 살필수 있다.금기와 욕망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미당의 초기시에서부터 정신적 사랑에 관심을 보인 ‘귀촉도’이후의 시편들,검은 땅밑과 도솔천의 하늘에 이르는 우주적 사랑의 시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드러낸다.〈님이 자며 벗어놓은 순김의 반지/그 가느다란 반지는/이미 내 하늘을 둘러 끼우고/그의 꿈을 고이는/그의 벼갯모의 금실의 테두리 안으로/돌아 오기 위해/나는 또 한 이별을 갖는다〉(‘님은 주무시고’) 미당 시에 등장하는 순금의 반지 속에는 바다와 구름,피리소리뿐 아니라 드넓은 무,곧 하늘까지 담긴다.‘지금,여기’에의 집착을 털어버리는 순간 사랑은 영원으로 승화한다. 김남조 시에서의 ‘사랑세계’는 작은 사랑,침묵의 사랑,못 부친 사랑의 편지 등으로 구체화한다.그 사랑의 세계는 신을 향한 기도에서 절정을 이룬다.〈안식의 정령이여/산 이와 죽은 이를/한 품에 안아 주십사 비노니 …큰 촛불,작은 촛불처럼/겨울나무와 내가/나란히 기도한다 하리라〉(‘안식을 위하여’) 세상에 진실 아닌 사랑이 어디 있으랴.시인은 신앙의 진실을 바탕으로 하는 사랑의 진실이야말로 〈생금보다 귀한 아침햇살〉(‘아침은총’)같은 존재임을 신심넘치는 시구로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내게 있어서 사랑은 시의 화두이다.그것은 영원에 대한 그리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시인 오세영.그의 사랑관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이 바로 ‘찻잔’이다.〈육신은/영혼이 갈할 때만/켜지는 등불/그 등불 앞에서/입술을 적시고/잔을 비운다/진실로 사랑이란/비움으로써 가득 차는 공간〉(‘찻잔’) 비울수록 가득 차오는 사랑의 역설….사랑의 존재론적 테마를 천착하는 그는 시집 ‘무명연시’ 이후 연작시 ‘그릇’을 잇따라 발표했다.이 작품은 ‘그릇’ 연작시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1차분 출간에 이어 허영자 정진규 강은교 장석주 이수익 등 시인의 시선집이 12월중에 나올 예정이다.
  • 제 15회 서울현대도예 공모전/대상 권용미씨 「열린 마음으로」

    ◎우수상엔 요선구씨 「자화상Ⅱ」/특선 이유미씨 등 7점… 입선 56점/새달 24일부터 서울갤러리서 전시 서울신문사 주최 제15회 서울현대도예공모전에서 영예의 대상은 「열린 마음으로」를 출품한 권용미(27·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효자촌 동아아파트 202­302)씨가 차지했다. 우수상은 「자화상Ⅱ」를 출품한 여선구(36·경기도 고양시 성사동 698의2 리스맨션 403호)씨에게 돌아갔고 특선은 ▲이유미(25·경기도 광명시 하안아파트 10 01­605)씨의 「고달픈 기다림」 ▲김영기(28·서울 동작구 상도2동 69의99)씨의 「현대장군◎」 ▲이정석(25·서울 동작구 사당동 우성아파트 204­11 05)씨의 「태초의 둘째날에」 ▲정자은(39·서울 도봉구 창1동 서울가든아파트 103­502)씨의 「무제」 ▲이용필(27·서울 강남구 도곡2동 우성4차아파트 2­507)씨의 「겨울나무Ⅰ·Ⅱ」1쌍 ▲김일용(32·서울 구로구 구로3동 781의4 401호)씨의 「진화」 ▲박은정(24·서울 강남구 청담동 26의14)씨의 「깊은 나무 옹달샘」이 차지 했다.이밖에 입선작 56점이 선정됐다.상금은 대상 5백만원,우수상 2백만원,특선 1백만원이,입상 및 입선작은 10월 24일부터 29일까지 서울갤러리에서 전시된다. ▷입선자 명단◁ △곽노훈 △최석진 △전미선 △정진원 △민경익 △이정란 △심지수 △박미란 △배기용 △최혜진 △김창욱 △김민선 △전숙영 △김지혜 △안병진 △박해진 △김인선 △민홍동 △김수현 △송영철 △최경화 △박진희 △윤정선 △정미정 △전상호 △서병호 △최은영 △이진희 △김종윤 △이윤섭 △황도영 △서미경 △곽상희 △박철찬 △최규영 △김율식 △한정열 △정유근 △최휘연 △유제성 △안형숙 △이성권 △신윤희 △김동회 △양상근 △이영민 △이호상 △김이진 △남지원 △이정열 △이현희 △김희정 △심재복 △김수형 △한영석 △김정숙 ◎대상 권용미씨 “맛이 살아있는 작품 만들고파”/“실제의 자보다 또다른 에너지를 표현” 최고영예의 대상을 거머쥔 권용미(27)씨는 『작품이 크지않아 대상은 예상못했다』면서 『아직 어리다는 기분만 있는데 도예계의 큰 상이 주어져 송구스럽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서울대 미술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논문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그는 석사논문 작업으로 준비한 「열린 마음으로」 연작의 마무리 작품을 응모,뜻밖의 대상을 따냈다. 그의 작품은 최근 현대도예의 대작취향과 거칠고 무거운 경향을 벗어나 형태와 색감에서 밝고 생동감있는 형태로 심사위원들의 호감을 샀다.『실제의 나보다 폭넓은 사고를 하는 내속에 있는 또다른 나를 이끄는 에너지를 표현했다』는 이 작품은 작고 정교하지만 새로운 사고의 장으로 향하는 작가의 욕구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 『서울예고를 다니면서 흙만지는 것을 좋아해 조소를 전공하려 했는데 몸이 약해 도예로 전공을 바꾸었어요.그런데 막상 해보니 힘드는 건 더한 것 같아요』 『다만 선택한 길에서 잘 풀려나가고 있는데다 건강에도 무리가 가지않아 감사하다』면서 『원래 성격이 날카로웠는데 기다리면서 꾸준한 정성이 필요한 도예가 성격까지 좋게 바꿔가는 것 같다』며 도예예찬론을 폈다. 『앞으로도 작지만 맛이 살아있는 작품에 정성을 들이겠다』는 그는 『유학 계획은 없고 한국에서 학위를 끝마친후 작업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다복한 집안의 3녀1남중 2녀이며 결혼을 약속한 상대가 제대할 때를 기다리는 예비신부.상금 5백만원은 이탈리아등 『정취있는 곳에 머물며 견학하는』 여행경비로 쓰겠다고 밝혔다. ◎뽑고 나서/제작 재료·기법·조형능력 평가에 비중/대상은 밝은 행동감·적절한 소재 호감 일상생활의 구체적인 쓰임이라는 구속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운신하게 된 현대도예는 그 제작의 동기와 제작과정,기법,제작도구 그리고 재료에서 조차도 다양하게 변화를 보이며 전개되고 있다.따라서 근자에 와서 현대도예가 어떤 것인가를 한마디로 말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고 어떤 작품이 비교 우위를 갖게 되는가를 평가하기는 더욱 어렵게 되었다.이러한 점은 서울현대도예공무전과 같이 우열을 가리고 등수를 매기는 경우에 더욱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제한된 전시공간의 감안과 등수매김이라는 조건충족의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심사를 하게 되고 심사의 틀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따라서 심사위원들은 다음의 점들에 유의하면서 심사를 하였다. 첫째,작가의 제작동기는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나 우리 시대와 사회의 절실한 문제들과 연결이 되어 있는가.또는 넓게는 현대예술이나 좁게는 현대도예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가.더불어 이를 높은 수준의 조형적 능력으로 표현하고 있는가. 둘째,순수한 형태창조를 통해 새로운 조형언어를 만들거나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 또는 밀도 있는 관찰을 통해 참신하고 개성적인 표현을 하고 있는가. 셋째,제작과정에 있어서 재료,도구의 사용과 기법등이 적절하고 유기적으로 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들을 개선,발전시킨 흔적이 있는가 등이다. 심사결과 전체적으로 작가들의 제작동기 또는 의도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많았다.특선이상을 뽑는 경우에는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설명문을 참고로 하였는데(물론 좁은 지면에 충분한 의견을 쓰기에는 어려웠겠지만)실망이 컸다.앞으로 모든 출품작들은 제작의 의도,작품의 성격을 처음부터 심도있고 분명하게 하여 제작을 하여야 할 것이다.더구나 제작의도가 형태로 표현될 때 재료,기법,형태,색깔 등이 적절한가의 여부는 깊이 생각해야 될 과제라고 본다.또한 성형의 방법이 다양하지 못하고 좋은 유약을 잘 사용한 작품이 드물었던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상수상 작품은 근자의 대작취향과 거칠고 무겁고 어두운 경향 일변도의 작품들과는 달리 형태와 색감에서 밝고 생동감이 있는 유기적 형태로서 심사위원들의 호감을 샀지만 성형방법에서 미흡한 점이 지적되었다.우수상을 받은 작품은 분명한 이야깃거리를 적절한 소재로 소화시킨 점에서 점수를 얻었으나 묘사능력이 다소 부친 점이 아쉽다는 평을 받았다.
  • BAM철도 시발지/타이셰트(시베리아 대탐방:31)

    ◎마을 간격 수백㎞… 끝없는 삼림지대로/쿠즈바스탄전 연결 철도,지난 65년 건설/9월초까지 휴가시즌… 가족 여행객 많아 시베리아 여행중 관광지마다 졸업여행을 온 단체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중학교만 졸업하면 여학생의 경우는 곧바로 결혼적령기(16∼18세)가 되고 남자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니 졸업여행이다 사은회다 해서 요란하게 기념식을 갖는 것이다. 모스크바를 떠난지 꼭 열흘째 되는 날 현지시간으로 상오10시10분 크라스노야르스크역을 떠났다.모스크바에서 출발한 특급 「러시아2호」를 다시 탔다.다음 행선지는 세계최대의 담수호를 만날 이르쿠츠크.시베리아여행중 최고의 경관을 구경할 구간을 지나게 된다.이르쿠츠크주로 진입하면서 모스크바와의 시차는 5시간으로 늘어나 마침내 한국과 같은 시간대가 됐다.모스크바와 한국과의 시차는 원래 6시간이지만 러시아전역에서 3월말부터 9월말까지 서머타임을 실시하기 때문에 시차가 지금은 5시간이다. ○차창밖은 초봄 풍경 크라스노야르스크 역을 벗어나며 차창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본격적인 타이가지대이다.크라스노야르스크 이전에 나타난 타이가는 숲이 아주 촘촘했다.반면 이제는 아주 성긴 숲이 계속되고 있다.베료자는 아직 잎을 달지 못해 헐벗은 겨울나무 풍경이다.체료무하도 꽃을 달지 못했고 타이가 침엽수 「리스트니차」는 이제 갓 연푸른 잎을 내밀기 시작했다.크라스노야르스크 시내를 벗어나며 차창밖으로는 갓 초봄의 정경이 펼쳐지고 있다.숲의 밀도가 떨어진 타이가 곳곳에 산불흔적이 보이고 철로변 양지쪽의 잔디밭에는 점심휴식시간인듯 철도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초봄의 따스한 햇살을 즐기고 있다.동시베리아로 접어들며 느끼는 여행의 또다른 맛은 곧은 철길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기차는 구릉과 산허리를 이리저리 휘감으며 나아가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다.서시베리아에서는 그저 막막한 숲,대지만 보며 길이 일직선으로만 나있었다. 차창밖 타이가지대에는 사람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시베리아 인구의 80%는 중소,대도시에 모여있다.그래서 철로변에도 인가를 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타이가지대로 들어가면 작은 마을들이 같혹 있지만 마을간 간격이 보통 수백㎞씩 된다.대시베리아철도가 완공되기 전인 18 90년 시베리아횡단여행을 했던 작가 안톤 체호프는 여행기에서 『타이가의 위력과 신비는 그것의 무서운 침묵이 아니라 그 끝을 알고 있는 생명체가 철새들 뿐 이라는 사실에 있다』고 썼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탄 열차는 객실 한칸에 양옆 2층으로 된 4명이 타는 침대차였다.2명씩 타는 최고급보다는 한결 서민적이고 값도 싸다.그런 탓인지 양옆으로 러시아인 이웃들이 많이 탔다.대부분 휴가를 받아 다른 도시의 부모친척을 만나러 가는 가족단위 여행객들이었다.러시아에서 휴가철은 보통 5월말부터 시작해 9월초까지 이어진다.직장마다 차이는 있지만 1개월∼2개월씩의 휴가가 주어진다. ○최고 2개월간 휴가 출발 30분만에 남부 아바칸에서 BAM철도의 출발점인 타이셰트로 연결되는 지선과 만나는 우야르역을 지났다.우야르에서 타이셰트까지는 두 선로가 1백㎞거리를 두고 거의 평행되게 달려가 타이셰트에서 합쳐진다.남쪽의 이 아바칸­타이셰트선은 시베리아철도가 붐비면서 지난 19 65년 건설됐는데 서쪽으로 쿠즈바스탄전과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산업철도다.아바칸에서 서쪽으로 사이아나산맥을 넘어 쿠즈바스까지의 구간은 많은 터널을 지나며 주변 경관이 빼어난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아바칸을 지나고 얼마 안 있으면 칸스크역이 나타난다.「칸강변의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인구 10만명 내외의 작은 마을이지만 16 28년 요새로 건설돼 매우 오래된 마을로 유명하다.처음에는 변경수비를 맡은 에니세이 코작이 살았으나 17 17년부터 모스크바∼이르쿠츠크를 연결하는 시베리아 트랙(길)이 통과하면서 급작히 발달했다.「스파스카야」「페트로파블로프스카야」등 유서깊은 교회건물들이 많은데다 섬유·양초·비누 생산지로 꽤 이름높은 곳이다.아울러 이글스트롬·모자렙스키·살라비요프·발렌베르크등 이름난 데카브리스트들이 이르쿠츠크 유형길에 머문 것으로도 유명해진 마을이다. ○바이칼호 부근 도착 이튿날 상오8시30분 마침내 「자(뒷쪽)오제르느이(호수)」지역에 진입했다.드디어 바이칼호수와 연관된 이름이 나타난 것이다.낮12시40분에 클루치역을 지났다.모스크바로부터의 거리는 44 67㎞를 가리켰다.클루치는 「열쇠」라는 뜻으로 크라스노야르스크주가 끝나는 마지막역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마침내 여행을 시작한 뒤 13번째 주인 이르쿠츠크주로 들어섰다.비류사강을 지나며 곧바로 타이쉐트역을 지났고 이어서 기차는 다시 방향을 틀어 이르쿠츠크까지 한동안 남진을 계속한다.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도 훨씬 따뜻해졌다. 옆칸에는 북극해에 연한 튜멘주 영토내 야말­네네츠키 자치구에서 일하는 노동자 일가족이 타고있었다.부부가 8살난 딸아이를 데리고 있었는데 휴가를 맞아 하바로프스크에 사는 노부모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했다.47살이라는 이 건장한 노동자는 북부 혹한지대에 사는 노동자들의 애환과 생활을 재미있게 들려주었다.사진을 찍자고 하니까 기다리라고 한 뒤 문을 걸어잠그고는 무려 30분 이상 전가족이 옷치장을 하고난 뒤에야 사진촬영에 응하는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그는 지난 77년 콤소몰(청소년동맹)로부터 튜멘북부 건설현장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고 그곳에 간 뒤 도로·철도·공항건설·유전·가스개발등에 참여했는데 점점 더 북쪽으로 올라가 지금은 거의 북극해 바로 밑인 노브이 우렌고이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당시 오지 건설공사장 참여자들은 「까라차예바」라고 불렀는데 모두들 건설영웅 대접을 해주어 우쭐한 기분으로 일했다고 했다.지금도 「시베리아 나트바브카」라고 부르는 오지 특별수당 덕분에 타지역에 비해 월급이 2백50%나 된다.그러나 그동안 힘들게 벌어 저축한 돈이『최근 몇년 사이의 인플레로 제로가 됐다』고 그는 한탄했다. 그곳은 지금도 겨울이면 영하 50도를 밑도는 날이 많다고 했다.반면 한여름에는 영상 40도나 되는 무더위에 모기가 들끓어 일하기가 보통 힘드는 게 아니라고 했다.겨울에는 자고 나면 눈치우는 게 제일 큰 일이고 공기중 증기가 얼어붙어 불과 2∼3m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날이 많다고 한다. 이런 오지에 살면서도 전가족이 구김살 없이 활달하고 친절한 심성을 지키고 있는 게 퍽 인상적이었다.발랴라는이름의 어린딸은 학교에서 배운 푸슈킨의 시를 졸졸 외워보였다.
  • 「낙법­놀이·33」으로 본사제정 공초문학상 수상 홍윤숙 시인

    ◎“나이 70에 받는 복된 선물 기뻐요”/47년 등단… 인간의 아픔 보듬어 안는 자세로 시작 『나이 칠십 먹어 새롭게 상을 타려니 공연히 쑥스럽네요.하지만 제 문학 일생에 주시는 복된 선물로 알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서울신문사가 제정한 공초문학상 제3회 수상자로 선정된 홍윤숙(70)시인은 마냥 기쁘기보다 옷 매무시를 가다듬게 된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지난 47년 스물셋 나이로 시단에 데뷔,끊일듯 끊일듯 이어온 문학과의 인연이 어느새 50년이 다 되었다.문학과 함께 젊은 날과 중년을 보내고 문학에 기대 황혼을 맞게 된 셈.오랜 나날의 두터운 온축으로 시인은 이제 기쁨과 슬픔에도 큰 진폭으로 흔들리지 않는 무심의 영토에라도 들어선듯 하다. 『물론 상을 타면 좋기 한량없지요.하지만 우리 문학하는 사람 가운데 상받으려고 글쓰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우리는 목소리가 우러나는 대로 그저 시집을 쌓아가는 것 뿐이고 그러다 찾아오는 상이란 뜻밖의 횡재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시인의 시세계는 수굿하고 초연한 평상시의 모습과 전혀다르다.그의 시는 사람으로 태어난 아픔을 누구보다 크게 앓으면서도 흠집난 그 삶을 결국 품어안고 마는 「치열한 사랑」의 세계다.시인의 이런 실존적인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기는 이번 수상작「낙법­놀이·33」도 마찬가지.사람된 삶의 아픔을 터득했기에 「돌무더기 무너지는 아슬한 석양의 벼랑에 서서 떨어지는 모과의 향기를 아름답게」 느끼는 역설이 가능한 것. 『젊을 때는 사는 일에 허덕여 나이 먹고 났을 때를 챙겨볼 여가가 없지요.그러나 막상 인생의 하류에 당도하고 보니 그때 그렇게 허둥대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회한이 절로 밀려오데요.담담하게 고백하는 심정으로 시를 썼어요.인생에 자신만만한 구두점을 찍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시를 포함,놀이 연작시 65편 등 78편을 수록한 시집 「낙법놀이」는 「낙화」의 아찔한 절망감과 싸워온 시인의 삶의 자취다. 이처럼 지난날을 회한속에 돌아보는 시인이지만 젊은 작가들에겐 너그러운 점수를 주고 싶단다. 『요즘 작가들의 실험적인 시나 소설들을 나름대로 뜻있다고 생각합니다.문학이란 본디 다양성을 먹고 자라는 것 아니겠어요.하지만 마지막엔 문학의 본원적인 자리,원형으로 돌아가게 될거라고 생각합니다.제가 써온 정통시만이 유일한 원형은 아닐테지만 결국 문학도 고향을 꿈꾸니까…』 최근엔 윤대녕의 「은어낚시 통신」을 재미있게 읽었다고.후배의 작품에 대해 『단순한 듯하면서도 상식을 뛰어넘는 소재와 시각이 산뜻했고 필치도 신선했다』고 촌평한다.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탤런트를 갖고 있고 우연한 계기로 이것이 싹트면서 삶의 길을 결정하는 것 같다』는 시인은 『지나고보니 나도 스스로의 선택보다는 우연에 더 큰 부채를 진 것 같다』고 문학에 꿈을 품었던 스무살 무렵을 에둘러 회고했다. 『아무튼 문학이 없었으면 뭘 먹고 살았을지 막막해요.글쓰는 것 빼고는 재주라곤 없었으니….다시 태어나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겠지요』 「독실한」이라는 단서를 접고 카톨릭 신자라고 밝히는 홍시인은 『늘 회의하고 구속에 투덜거리는 「불량」신앙인이었다』면서도 『이처럼 끊임없이 묻고 싸웠기에 오히려 절대자에게 한발 더 다가갈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 나이에 욕심이 있다면 그건 허욕일테지요.그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쓸수있는 데까지 쓸 생각이에요』 무성했던 잎을 떨쳐버리고도 거칠 것 없이 곧게 선 겨울나무와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시인의 문학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다. ◎심사평/40여년 쓴 작품서 묵은 포도주 향기/수상작 「낙법…」뛰어난 상상력 발휘 시인 홍윤숙이 우리 시단에 등장한 것은 19 50년대 중반기로 알려져 있다.그러니까 이 시인의 시력은 줄잡아도 40년이 넘는다. 한 시인이 오랜 세월 시작활동을 했다는 것은 두가지 의미를 갖는다.긍정적인 각도에서 볼때 그의 시는 오래 묵은 포도주처럼 좋은 방향을 가질수 있다.그러나 이런 경우 끼어 들 수 있는 부작용도 생각될 수 있다.자칫 그의 시가 안이해질지도 모른다는 부정적 그림자가 그것이다. 시인 홍윤숙은 후자와 같은 우리 생각을 문자 그대로 기우에 그치게 하는 경우다.오랜 시력에도 불구하고 사물을 포착하는 그의 눈길은 여전히 매섭고 맵짜다.또한 그것을 도마위에 올려 요리하는 손길 역시 날래고 훌륭하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수상작으로 추거된 「낙법놀이」에는 한국시단이 가져야 할 좋은 시의 또하나 자격요건이 내포되어 있다.널리 알려진대로 현대에 와서 시는 서정시를 가리킨다.그런데 서정시는 그 속성이 사적인 세계를 노래하는 것과 함께 형태가 축약적인데 있다.이런 속성 때문에 서정시는 자칫 편향된 노래가 되기 쉽고 소수 호사가들의 애장품으로 떨어질 공산도 크다. 그런데 시인 홍윤숙은 그런 부정적 가능성을 정서의 보편성 확보로 극복했다.또한 신선한 시상제시로 그의 시가 많은 사람에게 애송될 수 있게 해주었다.특히 「낙법­놀이·33」에서 시인 홍윤숙은 모과향기의 「낙하」를 우리 자신의 한계의식과 일체화시키기에 성공했다.이 기법,상상력에 박수를 보내면서 이번 수상을 축하한다.
  • 춤·창·가곡·명시의 이색 만남/시축제 초여름밤 수놓는다

    ◎오늘 하오 국립극장 야외특설무대서/박두진·김남조·신달자씨 등 출연… 시 낭송 춤과 창과 가곡이 명시와 만나 초여름밤을 시의 축제로 수놓을 「청소년을 위한 시와 노래와 춤」행사가 12일 하오4시부터 8시까지 4시간동안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분수대앞 광장 특설무대에서 열린다. 문화체육부가 주최하고 국립중앙극장과 색동회가 공동주관하는 이 행사에는 국립무용단,국립발레단,국립합창단,국립극단등 국립극장전속 6개단체와 창무회등 민간단체를 비롯, 시인 서정주,탤런트 김혜자씨,국악인 안숙선씨등이 참가해 시와 음악,춤이 함께 어우러지는 수준 높은 공연무대를 청소년들에게 선사한다. 특히 이날 행사의 주제를 이루는 시낭독을 위해 서정주 박두진 구상 홍윤숙 김남조 황금찬 박재삼 신달자 이근배 오세영 이가림등 시인 12명이 나와 자작시를 청소년들에게 직접 들려줄 계획이다. 시인들이 자작시를 낭송하는 사이 사이를 이용해 창작무용극(창무회),시를 위한 합창(국립합창단),시가곡독창(국립오페라단),시와 발레와의 접목(국립발레단)등국립극장전속단체들과 초청인사들이 펼치는 노래와 춤프로그램이 계속 이어진다. 시축제의 앞풀이는 황지우시인의 시를 춤으로 형상화한 창무회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가 맡는다.이어 국립합창단원들이 정지용시인의 「향수」,김동명시인의 「내마음은 호수」등 명가곡을 합창으로 들려준다.국립창극단의 안숙선씨는 서정주의 「국화옆에서」를 시창으로 부르는 특별한 순서를 마련한다.김광섭시인의 「마음」이 낭송되는 동안 국립발레단은 「백조의 호수」중 「4마리 백조」를 춤춘다. 명시낭송코너에는 국립극단장인 백성희,원로배우 장민호,김성녀씨가 나와 자신이 평소 애송하는 「광야」「그 먼나라를 아십니까」「논개」를 각각 낭송한다.
  • 전국시립무용단 한자리에/새달 6일부터 국립극장서 “춤의 대결”

    ◎한국무용·현대무용·발레 등 8편 경연 지방춤의 활성화와 시립무용단들의 춤경연을 위해 매년 열리는 「’92전국시립무용단 무용제」가 다음달 6일부터 5일동안 국립극장 대극장(274­1151)무대에 오른다. 이 무용제는 9월의 「전국무용제」,10월에 열릴 예정인 「서울국제무용제」등 큼직큼직한 춤행사들이 가을공연장을 수놓고 있는 것과 때를 같이해 열리는 행사.전국의 8개 시립무용단이 모두 참가 한국무용·현대무용·발레등 3개춤장르와 전국의 춤을 한자리에 펼쳐놓는다. 올해로 4회째를 맞고 있는 이번 행사는 재정적 자립도가 낮은 지방무용단체들에게 중앙무대에서 전문적인 춤관객들에게 평가와 재점검을 받을수 있는 연례행사로 자리를 굳혔다.이번 무용제의 특색으로는 8개 시립무용단중 유일하게 현대무용을 선보이고 있는 대구시립무용단과 발레를 공연하는 광주시립무용단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무용에 치중돼있다는 점.그리고 「다시 자갈치에 와서」를 공연하는 부산시립무용단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간의 내면적 아름다움이나 자연과 인간의교감등 다소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었다.이는 지방적 특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흠으로 지적되기도 한다.「춤대중화작업」을 표방하고 있는 서울시립무용단(단장 배정혜)이 9일 공연하는 「춤,그리고 대중음악의 서정」은 14명의 단원들이 공동안무로 무대를 꾸몄다는 점이 특징.또 대중가요가수인 정태춘,박은옥,임지훈,이주원등이 특별출연해 춤과 대중가요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가장 눈길을 끌고있다. 첫날(6일) 창원시립무용단은 1부에서 일상속에 함몰된 자신을 객관화하고 역사화하는 인간의 주체적 노력을 그린 「하늘아 하늘아」(안무 이남주)를 공연한다.대구시립무용단(단장 구본숙)은 2부에서 시인 이태수씨의 대본을 바탕으로 한 「그를 기다리며」(안무 구본숙)을 선보인다.이어 7일에는 광주시립무용단(단장 박금자)이 「백조의 호수」전막을 공연한다. 8일에는 얼마전 프랑스 리용댄스페스티벌에 참가,호평을 받은 대전시립무용단(단장 김란)이 「겨울나무」를 공연하며 이와 함께 목포시립무용단(단장 0영례)이 「도라지,그 산천」을 춤춘다.마지막날인 10일에는 인천시립무용단(단장 이청자)과 부산시립무용단(단장 홍민애)이 함께 꾸민다.레퍼토리는 지난 4월 한국무용제전무대에서 초연한 「누가 채송화 꽃밭을」(안무 이청자)과 부산항을 중심으로 여러 인간들의 다사다난한 삶의 역정을 그린 「다시 자갈치에 와서」로 돼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