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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교육자의 태극기사랑/李炫熙 성신여대 교수·한국사(서울광장)

    ‘나는 그때 마지막으로 국기를 바라보며…조국은 잃었으나,너만은 잃지 않고 광복의 앞날을 위하여 나의 애국지성을 바치겠다고 되새겨 다짐하였다’. 어느 저명한 교육자가 약관일때 국권이 피탈되자 태극기를 땅속에 묻을 생각을 굳히고 이러한 애국적 의지를 표했다.그는 ‘나는 남몰래 널빤지와 못을 얻어 손수 만든 조그마한 나무상자에 고이고이 접어서 넣은 국기를 장롱속에 깊숙이 간직하였다.기회있을 때마다 장롱속을 엿보던 나의 가슴에는 항상 뜨거운 조국애의 그리움이 용솟음쳤다’고 말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그는 30대 초반으로 손수 설립한 동원(동덕)여학교의 교장이었다.사회저명인사가 된 그 분은 일제의 감시를 받아 장롱속에 숨겨둔 국기가 발각될까 염려하여 장독대 밑을 파고 국기상자를 달밤에 은닉하였다.얼마뒤 묻어 둔 국기상자를 파내 보니 나무상자는 퇴색하고 뒤틀려서 국기만 꺼내 다시 정성스레 함 속에 보관하였다. ○국기만 지닌채 피난 광복이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함 속의 국기를 꺼냈다.햇빛을 못본 국기는 좀이 먹어구멍이 뚫렸으나 형체는 그대로였다.‘나는 너무나도 감격하여 국기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 아래 엎드렸다’고 그는 소감을 피력하였다.그리하여 곧 학교로 달려가 태극기를 게양대에 올리고 독립만세를 서울이 떠나가라고 외쳤다. 그러나 광복의 기쁨도 잠시,남북분단 속에서 6·25 전쟁이 일어났다.서울이 남침 3일만에 붉은 군대에 짓밟히자,그는 다시 국기를 숨겨야 했다.국기를 옷속에 넣어 꿰맨 후 괴나리봇짐 속에 넣어 생명같이 모시고 어루만지며 9·28 수복을 기다렸다.1·4후퇴(1951)때는 가재도구 속에 국기만 넣어 부산으로 피난갔다. 이 태극기는 1908년 춘강 조동식(1887∼1969)이란 교육자가 손수 제작해서 눈물겨운 정성을 쏟아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금년 그 국기의 나이는 90인 것이다.약 1세기 가까운 긴 세월 속에 천도 낡고 좀먹은 구멍도 있는 그 국기는 헝겊으로 꿰매져서 지금은 동덕여대 박물관에 액자로 모셔져 있다. 이 국기야말로 고난·역경과 애국의 상징으로,춘강이 서거한 지 30년이 가까워지는 요즘도 위용과 광채를 발하고있다.이 태극기는 가로 174㎝,세로 160㎝ 규모의 견직으로 제작되었는데,국권피탈 이전(1908)에 제작되어 국가 상징물로서,그리고 한 애국인사의 지성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라사랑 강인한 집념 마침 소장자쪽에서 그 국기를 국가지정 문화재로 검토해줄 것을 문화재관리국에 요청하여 문화재전문위원인 필자가 그 곳을 방문,조사한 일이 있었다.그 국기를 보고 너무나 감격적이었다. 춘강의 태극기는 태극이 청색이 아니고 검정색이며 건곤감리의 순서도 지금의 표준형과는 다른 양상이다.그렇지만 교육자 춘강의 숨은 애국의지,독립정신,나라사랑의 강한 집념을 읽어볼 수 있어 옷깃을 여미게 한다.춘강의 국기는 국가상징물로 널리 홍보할 필요가 있겠다.대한민국 건국 50주년의 아름다운 나라사랑의 삽화인 것이다.
  • 국민의 정부 출범­취임식 이모저모

    ◎목메인 취임사 “지금은 땀·고통·눈물 필요”/16개 시도 흙·물 섞어 소나무 기념식수/보통시민 단상 초대 ‘국민의 정부’ 실감/“아 모범선진국 마지막 소원” 경축연 연설 25일 김대중 대통령의 첫날은 검소하면서도 엄숙하게 시작됐다.상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뜰에서 4만5천여명의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 15대 대통령 취임식은 경제난 속에서도 화합과 도약의 새출발을 선언하는 데 초점을 맞춰 성대하고 내실있게 진행됐다. ○“파탄책임 규명” 일순 긴장 ▷취임식◁ ○…상오 9시59분 김대통령이 참석자들의 박수속에 단상에 오르면서 시작됐다.김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대통령 전용승용차로 단상 뒤의 의사당 현관에 도착,국악 ‘방아타령’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단상에 오르자 단상과 단하의 참석자들은 모두 기립박수로 김대통령 내외를 맞았다. 김대통령은 취임선서를 통해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창달에 노력하며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수행할 것을 국민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다짐했다.김대통령의 취임선서가 끝나자 21발의 예포가 발사되면서 15대 대통령을 상징하는 1천500마리의 비둘기가 일제히 비상,취임식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이어 성악가 조수미씨가 등단,‘겨레의 노래’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오,동방의 나라’를 열창했다. 김대통령은 다시 연단으로 걸어 나와 ‘국난극복과 재도약의 새시대를 엽시다’라는 제목의 취임사를 22분간에 걸쳐 단호하면서도 호소력있는 음성으로 차분하게 읽어 내려갔다. 김대통령은 먼저 “정부수립 50년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진 여야간 정권교체를 여러분과 함께 기뻐하면서 온갖 시련과 장벽을 넘어 진정한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킨 국민여러분께 찬양과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인사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현 경제위기를 지적하면서 “정치,경제,금융을 이끌어온 지도자들이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에 물들지 않았던들,그리고 대기업들이 경쟁력없는 기업들을 문어발처럼 거느리지 않았던들,이러한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김대통령이 강한 어조로 ‘지도층’의 잘못을 지적하며 경제난 책임규명의지를 밝히는 순간 단상의 분위기는 다소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군장성·생도 일제히 경례 김대통령의 취임사가 끝나자 성악가 조수미,고성현씨와 연합합창단이 ‘내 나라 내 겨레’를 합창하는 가운데 김대통령의 군통수권을 상징하는 여단급이상 군기수단,전국 시·군·구기수단,63개국 해외동포 기수단 및 민간단체 기수단 등이 16개 시·도 및 이북5도 풍물패와 함께 의사당앞 광장에서 행진을 벌였다. ○…폐식선언이 끝나자 김대통령은 행진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단상에서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환송했다.이어 김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 내외와 단상 아래로 내려와 잠시 악수하며 이·취임을 축하한 뒤 참석자들의 박수속에서 김전대통령 내외를 환송했다. 이어 김대통령 내외는 국회의사당 앞뜰의 국기게양대 뒷편에 ‘화합의 나무’로 명명된 12년생 소나무를 기념식수했다.기념식수에는 전국 16개 시·도에서 모아 담은 합토함의 흙과 합수병의물을 사용,국민화합을 기원했다. ▷취임식장 주변◁ ○…‘화합과 도약’을 주제로 한 취임식은 국내외 귀빈뿐 아니라 환경미화원 택시기사 등 평범한 시민들도 단상에 초대돼 새정부가 ‘국민의 정부’임을 분명히 했다.취임식이 진행되는 동안 국회의사당 주변은 예년보다 3∼4도가 높은 영상 8도의 포근하고 화창한 날씨를 보여 ‘국민정부’의 출발을 축하했다. ○…취임식이 열린 국회의사당 주변은 행사 3시간 전인 상오 7시부터 줄을 이은 초청인사들로 분주했다.국회의사당 벽면에는 2개의 대형 태극기와 황금색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날아 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엠블렘이 휘날렸다.행사장 정면에 마련된 단상은 부채꼴 모양의 내외 귀빈석과 전현직 대통령이 자리한 중앙단상으로 나뉘어 마련됐다.중앙단상은 이번 취임식의 주제인 ‘화합’과 ‘도약’을 상징하기 위해 원형으로 제작됐다.중앙단상에는 정면을 향해 오른쪽 중앙에 김대통령 내외,그리고 왼편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부인 손명순 여사가 자리했다.또 뒤로 왼편에는 김수한 국회의장과 윤관대법원장,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대통령,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대통령이,오른쪽에는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김용준 헌법재판소장이 앉았다. 850명의 내외빈이 자리한 중앙단상 뒤쪽 부채꼴 단상에는 국민회의 조세형 총재권한대행과 자민련 박태준 총재,국민신당 이만섭 총재 등 국내 정관계 인사들과 나카소네 야스히로,다케시타 노보루 전 일본총리,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장,팝 가수 마이클 잭슨 등 외국 축하인사들이 참석했다.이날 참석한 외국 축하인사들은 이들 외에 도이 다카코 전 일본중의원의장,피에르 모루아 전 프랑스 총리,토머스 맥라티 미국 대통령 특사를 비롯해 역대 최다인 2백40여명에 이르렀고 암치료 때문에 참석치 못한 미국의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축하메시지를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보내 눈길을 모았다.당초 참석이 기대됐던 넬슨 만델라 남아공대통령과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대통령등은 개인 일정 등의 이유로 참석치 못했다. ▷식전 행사◁ ○…취임식 1시간 전에 시작된 식전행사는 ‘DOC와 함께 춤을’‘젊은 그대’‘성주풀이’‘신뱃노래’ 등 대중가요와 국악,무용이 어우러지며 흥겨운 분위기속에 진행됐다.특히 지난 대선때 김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도왔던 그룹 코리아나가 ‘빅토리’를 노래하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하기도 했다. 식전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국민 대화합과 민족의 도약을 상징하는 합토합수제.전국 16개 시·도의 흙과 물을 담은 합토함과 합수병을 남녀대표가 단상에 올라 보여준 뒤 국립무용단과 함께 화합의 축원무를 추면서 행사는 절정에 이르렀다. ○영광의 순간 대파노라마 ○…이날 취임식은 국내외 보도진 8백여명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인 가운데 국제적인 뉴스전문방송인 미국의 CNN이 취임식 행사를 생중계,김대통령 취임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도를 나타냈다. ▷일산자택 출발◁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새벽 5시40분쯤 잠자리에서 일어나 새정부 출범을 알리는 조간신문을 읽는 것으로 대통령으로서의 하루를 열었다.김대통령은 부인 이여사가 “당신 축하해요”라고 덕담을 건네자 “당신도 축하해요”라고 화답했다고 박지원 공보수석이 전했다. 상오 8시 자택을 나선 김대통령은 주민 30여명으로부터 꽃다발과 함께 장도를 축하하는 인사를 받은 뒤 이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10여분 동안 석별의 정을 나눴다. ▷국립묘지 참배◁ ○…일산 자택을 출발한 김대통령은 곧바로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했다.상오 8시35분쯤 김중권 비서실장 등 청와대비서진 8명과 함께 국립묘지에 도착한 김대통령 내외는 현충탑을 찾아 헌화하고 1분간 묵념했다. 이어 김대통령은 현충문 앞에 마련된 방명록에 ‘대통령 김대중’이라고 서명한 뒤 상오 8시40분 청와대로 향했다. ○생애 처음으로 훈장받아 ▷청와대 집무◁ ○…김대통령은 청와대 직원들의 박수속에 상오 9시 청와대 본관에 도착,15대 대통령으로서의 첫 집무를 시작했다. 김대통령은 김중권 비서실장 등 수석들과 2층 집무실에 올라가 잠시 환담한 뒤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심우영 총무처장관으로부터 무궁화대훈장을 전달받았다.김대통령이 국가로부터 받은 첫 훈장이다. 김대통령은 이어 김종필 총리와 한승헌 감사원장 지명자의 국회임명동의안 제출안에 서명하는 것으로 대통령으로서의 공식 집무에 들어갔다. ○세종회간 1천여명 성황 ▷취임 경축연◁ ○…김대통령 내외는 하오 4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정부 주최로 열린 대통령 취임 경축연회에 참석,대통령에 취임한 소회를 피력했다.30분동안 진행된 이날 경축연회는 정·관계,언론계,주한외교사절 등 국내외 각계 인사 1천명이 참석하는 등 성황을 이뤘으나 때마침 한나라당의 반대로 김종필 총리지명자에 대한 국회의 임명동의가 무산된 때문인듯 다소 무거운 분위기였다. 김대통령은 인사말에서 “마지막으로 내게는 꼭 한가지 소원이 있다”며 “그것은 대통령임무를 성실하고 능력껏 잘 수행해 이 나라를 구하는 동시에 세계 각국과 협력하고 자랑스러운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 아시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발전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임축하 만찬◁ ○…김대통령은 이어 다시 청와대로 돌아와 6시30분부터 부인 이여사와 함께 본관 1층 충무실에서 취임축하 만찬을 가졌다. 이날만찬에는 3부요인와 정관계 주요인사 27명,취임축하외빈 57명 등 80여명이 참석했다.
  • 김대중 대통령 취임­미리 본 취임식

    ◎남북 합수·합토로 통일기원 기념식수/민족 웅비 그린 파노라마 영상에 “다시 뛰자”/식후 어가행렬·동래학춤 등 퍼레이드 장관 제15대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이 25일 상오10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거행된다. ▷식전행사(상오 8시30분∼10시)◁ 초청인사들은 이른 아침부터 식장에 몰려든다.초청인사는 4만여명.지위의 높낮음에 따라 자리가 구분돼 있지 않아 취임식을 잘 보려면 앞자리에 앉아야 한다. 단상 초청인사가 자리에 앉으면서 식전행사가 시작된다.서울시향이 ‘DOC와 함께 춤을’‘젊은 그대’같은 대중적인 노래를 하고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성주풀이’‘선뱃노래’ 등의 전통음악을 들려준다.그룹 코리아나의 취임축하 공연에 이어 다듬이 소리,광복의 환희,88 올림픽개최의 순간 등을 편집한 파노라마 영상 ‘민족의 터전’이 상영된다. 코라손 아퀴노 전 필리핀대통령,폰 바이체커 전 독일대통령,마이클 잭슨,나카소네 전 일본수상,사마란치IOC위원장 등 세계 유명인사들도 단상에 자리한다.북타악 주자 30명이 북을 연주하고 무용‘도약을 향한 맥박’이 참석자들의 흥을 돋운다.이어 식전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합수·합수제가 열린다.16개 시·도와 이북 5도의 흙과 물을 함께 섞어 겨레의 화합을 기원하는 순간이다. ▷취임식(10시∼11시) 김새대통령은 국립묘지 참배(상오 8시35분)와 청와대 도착 및 훈장수여(9시20분)에 이어 청와대를 떠나 상오 10시 취임식장에 도착한다.김신임대통령은 참석자들의 우뢰같은 박수를 받으며 단상에 올라 대통령 취임선서를 한다.21발의 예포가 발사되고 ‘15대’를 상징하는 1천500마리의 비둘기가 하늘을 힘차게 비상한다.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소프라노가수 조수미씨가 ‘오,동방의 아침나라’를 열창한다.이 곡은 겨레의 노래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곡. 김새대통령은 국난극복,지역차별철폐,남녀평등,민족화합,안보의 중요성,인권보장 등의 메시지를 담은 취임사를 22분동안 낭독한다. ▷식후행사(11시∼12시) 김새대통령은 단상에서 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환송한뒤 떠나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단 아래로 나란히 내려와 김이임대통령을 환송한다.김새대통령은 이어 국회의사당 앞마당 국기게양대 뒷편에서 12년생 소나무 한그루를 기념으로 식수한다.식전행사에서 만들어진 합수·합토가 여기서 뿌려진다. 이어 김새대통령이 중앙통로를 따라 행진하면 군장성단은 새로운 군 통수권자에게 거수경례를 한다.김새대통령이 국회의사당 바깥에서 기다리던 국민화합대행진에 합류하면 각 시·도에서 올라온 퍼레이드가 여의도를 꽃피운다.1천9백여명의 퍼레이드단은 서울시의 어가행렬,부산 동래학춤,울산의 처용무,경남의 통영 승전무,충북의 평화의 꽃,인천의 은율탈춤,경기의 남사당패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마포대교까지의 퍼레이드가 끝나면 김새대통령은 청와대로 돌아와 정식으로 집무를 시작한다. ◎여야 표정/2여 자축… 한나라 “야 실감나게/거야선 소야될까 우려속 취임식 참석 “알아서” 김대중 새 대통령의 취임을 하루 앞둔 24일,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야당으로의 마지막 날을 ‘기쁨과 부담’이 교차하는 가운데 보냈다.반면 한나라당은 취임식을 하루앞두고 야당을 실감하는 표정이었다. 국민회의는 이날 조세형 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간부간담회는 당비 납부를 의무화하는 당헌개정안이 상정됐다.앞으로 집권여당의 살림은 당원들의 ‘헌금’으로 운영하겠다는 방침인 동시에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는 단호한 의지표현이었다. 조대행은 “오늘이 마지막 간부회의인가”라며 잠시 감회에 젖는 듯했지만 IMF위기 속에서 집권여당을 기념하는 행사도,당원들에 대해 감사의 표시도 못하는 점에 대해 ‘서운함’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만들기에 앞장섰던 동교동 측근들도 “평생 소원이 이뤄졌다”고 기뻐하면서도 내심 ‘이별’의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였다. 자민련은 JP총리 인준이라는 ‘발등의 불’ 때문에 여당으로의 변신을 즐길 겨를이 없었다.야당으로서 마지막 당무회의도 7분만에 종결하고 소속의원들을 한나라당 의원설득을 위해 현장으로 급파시켰다. 이에반해 한나라당은 15대 대통령 취임식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정권교체를 실감하는 분위기.특히 고난의 연속인 앞으로의 야당생활에 대해서도 우려가 교차하는 표정이며,김대중 새 대통령측이 여소야대 정국 탈피를 위해 의원빼가기를 본격화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그러나 당지도부는 의원들의 취임식 참석문제는 자유의사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해외 반응/“한국 정치·경제 대변혁 돌입”/각국,남북관계 진전 점치며 우호지속 희망 대선때부터 이례적 관심을 가져왔던 미국을 비롯한 아시아각국·유럽 등 각국정부와 언론들은 25일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은 한국이 정치 경제 등 여러방면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반응들을 보였다. 미국의 뉴욕타임즈가 1면에 김대통령의 칼라사진과 함께 장문의 소개 기사를 게재한 데 이어 뉴스위크도 최근호에 김대통령에 관한 기사를 싣고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로 불리는 그는 추방자에서 대통령으로의 놀라운 대장정을 마무리했다’고 전했다. 또 미 평화연구소의 한반도 전문가인 스캇 스나이더는 24일 워싱턴포스트에 ‘오늘 김대중 당선자의 새 대통령 취임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정착 노력은 지난 수십년간보다 훨씬 전도가 밝아 보인다’며 희망섞인 보도를 했다. 유럽의 경우 한국이 현재 경제위기에 처해있으나 김대통령은 경제개혁에 대한 신선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한반도 최대현안인 남북관계 있어서도 전임대통령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새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표명했다. 중국은 특히 김대통령의 취임으로 한중 선린우호협력관계가 유지,발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히면서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를 통해 제시한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개국의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선언구상을 면밀히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언론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권이 여러가지 어려움 속에 출범하게 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 국호·상징물 제정(대한민국 50년:2)

    ◎48년 7월1일 제헌국회서 ‘대한민국’ 확정/제헌국회 헌법기조위원회/대한민국·고려공화국·한·조선 논의/이승만 의장 ‘대한민국’ 상요 대세로 1948년 7월1일 제21차 회의가 열린 제헌국회 본회의장.의원들은 헌법기초위원회가 제출한 헌법 초안을 놓고 2차 독회에 들어갔다.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 신익희 부의장이 사회를 보는 가운데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항목부터 축조심의에 들어갔다.이승만 의장(독촉)이 먼저 발언권을 얻었다. “국호개정이 제일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국호는 차차 국정이 정돈되어 가지고 거게에 민간의 의사를 들어가지고… 그러니까 국호문제에 있어서는 다시 문제 일으키시지를 말기를 또 부탁하는 것입니다”(국회 속기록) 이에 대해 최운교 의원(무소속)이 헌법기초위에서 심의한 국호가 몇가지며 그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요청했으나 반대에 부딪쳤다.이어 1조를 원안대로 통과시키자는 동의를 재청·삼청까지 얻어냈다.이때 조봉암 의원(무소속)이 제동을 걸었다.조의원은 “우리민족이 다 그렇게 만족치 않을 것이니 다음에 제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의했다.그는 1차 독회에서도 “대한민국이란 말은 역사적 합리성으로 보거나 체제로 보거나 형식적 법통으로 보거나 천만부당하다”며 반대했었다. ○찬성 163·반대 2로 통과 이승만 의장이 다시 발언에 나서 고칠 필요가 있으면 다음에 하고,일단 원안대로 통과시키자고 무마했다.의회는 거수표결에 들어가 제1조를 재석 188명에 찬성 163명,반대 2명으로 통과시켰다.한민족의 새 역사를 열어 나갈 신생국의 이름은 이같은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확정됐다.1948년 8월15일 정부가 출범하기에 앞서 한달 보름전 일이다. 새나라 출발에는 국호 제정이 선결과제지만 이승만의 모두 발언에서 알 수 있듯 나라이름을 짓는 데는 많은 진통이 따랐다.국호가 갖는 상징성이 지대한데다,당시 좌우가 갈리고 정당·사회단체가 난립한 상태에서 각기 주장하는 바가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미군정 때 장차 수립할 우리 민족의 국가 이름으로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지지를 받았다.좌우대결이 치열해지면서는 남한지역과 우파는 대한민국을,북한지역과 좌파는 조선을 지지하는 ‘남대한·북조선,우대한·좌조선’으로 굳어져 갔다. ‘대한’이라는 국호는 대한제국 때 처음 쓰였다.1897년 고종이 중국 청나라로부터의 독립국임을 강조하느라 황제를 칭하면서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었다.1919년 상해에 자리잡은 임시정부도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다.따라서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은 당연한 우리나라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를 부인하는 세력들이 해방후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예컨대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는 1945년 9월6일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함으로써 ‘대한’이라는 국호를 부정했다. 1947년 5월 미소공동위원회는 남북한 각 정치세력에게서 임시정부 수립대강에 관한 답신서를 받았다.이에 따르면 한민당이 결성한 임시정부수립대책협의회와 신익희 주축의 입법의원은 ‘대한민국’을,좌우합작위원회가 주도한 시국대책협의회는 ‘고려인민공화국’을 주장했다.민주주의민족전선은 건준이 선포한 ‘조선인민공화국’에 집착했고,건준을 부정하는 북조선노동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국호를 규정했다.각 정치집단은 국호제정을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다툼의 방편으로 이용한 것이다. 제헌국회가 구성된 뒤 헌법기초 위에서 논의한 국호로는 ‘대한민국’‘고려공화국’‘한’‘조선’ 등이 있었다.이때도 일부에서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국호를 제정하자고 주장했다.그런데 5월31일 열린 국회 개원식에서 의장으로 선출된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사용함에 따라 이 이름은 제헌의원들간에 대세로 자리잡았다. 국호에 관한 찬반 논의는,이승만 행정부가 1950년 1월16일 국무원 고시 제7호인 ‘국호 및 일부 지방명과 지도색 사용에 관한 건’을 법률로 제정하자 자연 소멸됐다.“우리나라의 국호는 대한민국(또는 한국)으로 하고,북한 괴뢰정권과의 확연한 구별을 위해 조선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45년 12월 첫 태극기 게양 국호외에 국가의 상징인 국기·국가도 제정과정에서 많은 논의를 거쳤다.태극기는 대한제국이 정식 인정해 상해임정이 이어받은 국기였다.태극기는 1945년 12월24일 처음으로 미군정청(옛 조선총독부 건물)에 성조기와 함께 게양됐다.당시 조선성냥회사 사장인 신창균이 하지 장군의 보좌관에게 부탁해 성사시킨 것이다.미군정은 이듬해 1월14일 군정청 광장에서 태극기 게양식을 가짐으로써 국기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이무렵 만담가 신불출은 공연에서 태극기가 국기로서 적당하지 않다고 비아냥거렸다가 포고령 위반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이처럼 좌파세력을 포함한 일부에서 거부하긴 했지만 민심은 태극기 사용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다만 그 도안이 다양한 데 문제가 있었다.독립문에 새긴 것,구왕실 소장품,미군정 문교부에서 공포한 도안,우리국기보양회가 제안한 모양 등 여러가지 태극기가 뒤섞여 사용됐던 것이다.현재의 태극기는 1949년 10월15일 문교부고시 제2호로 공포됐다. 그리고 애국가 가사는 1910년쯤 거의 완성됐으며 안익태가 곡을 붙인 현재 애국가는 1946년 5월 ‘임시 중등음악 교본’에 실려 널리 알려졌다.그러나 제헌국회에서는 “국가는 적당한 시기에 남과 북 전체 민족의 의사로서 제정하자”며 논의를 유보했다.따라서 애국가는 사회관행상 국가로서 불릴뿐 아직도 법적으로는 공인받지 못한 상태이다. ◎“성조기와 함께 미군정청에 태극기 게양하자”/45년 하지 장군보좌관에 요구 성사 시킨 신창균옹 미군이 서울에 진주한지 석달여만인 1945년 12월24일 미군정청 국기게양대에 태극기가 성조기와 나란히 게양됐다.일제의 사슬에서 벗어났다고는 하나 과연 독립을 이룰 것인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웠던 그때 이는 국민에게 크나큰 위안을 준 ‘사건’이었다. 그같은 선물을 국민에게 전한 신창균옹(90)은 1940년부터 마카오에서 임시정부의 연락책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였다.45년 4월 귀국한 그는 미군이 진주하자 9월 중순 하지 장군의 보좌관인 윌리엄스 중령을 찾아갔다.중령의 아버지는 선교사로 입국해 공주 영명고교 교장을 지냈고,그 때문에 중령은 한국땅에서 태어나 소년기를 보냈다.신옹은 윌리엄스 교장에게 세례를 받은 인연으로 동갑내기인 중령과 친하게 지냈다. 중령을 만난 신옹은 “미군정청에 성조기가 휘날리는데 이곳은 조선땅 아닌가.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도 함께 게양하자”고 요구했다.중령은 그의 말에 찬성하면서 “혼자 결정할 사항이 아니니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12월 중순 신옹이 군정청의 연락을 받고 가보니 중령은 이미 귀국했고 후임자가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태극기를 게양하기로 결정했으니 태극기를 빨리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한국사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태극기는 미군정 당국으로부터 당당하게 국기로서 대우받게 됐다. 신옹은 이후 조선성냥공장의 사장으로 새나라 경제부흥에 힘쓰는 한편 임정 요인들이 귀국해 만든 한국독립당에서 연락부장 등을 맡으며 활약했다.1948년 김구가 남북협상차 평양을 방문할 때 수행하기도 했다.이후 일관되게 진보정치운동을 벌였으며 현재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남측본부 의장을 맡고 있다. □특별취재반 황규호(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문화부 차장) 최병렬(문화부 차장급) 김종면(문화부 기자) 박정현(정치부 기자) 서정아(정치부 기자) 강선임(DB부 기자)
  • 천안문광장 10만명 환호성/북경 표정

    ◎0시정각에 특구시대 개막 타종/국영TV 72시간동안 연속 중계/밤새 불꽃놀이… 전대륙이 불야성 ○…북경 혁명역사박물관 앞 대형 홍콩반환 시계탑의 대형전자시계가 마침내 ‘0’을 가리키는 순간,천안문광장과 시계탑 앞에 모여있던 10만명의 북경시민은 환호성을 울렸다.동시에 북경 대종사의 종탑과 전보대루의 종탑도 새로운 홍콩특구시대가 열렸음과 식민지 치욕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을 타종했다. 이들의 만세와 환호성은 곧 주위에 펄럭이는 오성홍기속에서 국가의 합창으로 바뀌었고 장내 분위기는 더욱 고조돼갔다. ○…자정이 지나자 불꽃놀이가 시작됐고 천안문광장 상공엔 홍콩특구의 새로운 상징인 자형꽃과 홍콩의 중심가인 센트럴의 모습이 불꽃으로 아로놓였다. 천안문광장과 교통이 통제된 천안문앞 광장에 몰려있던 별도의 수만명의 시민들은 손에손에 오성홍기와 홍콩특구의 새로운 상징기발을 들고 흔들며 환호성이었다. 천안문광장 주위로는 대형전광판을 통해 홍콩주권이양 의식이 생중계되고 있었고 영국의 유니온잭기가 내려오고 오성홍기가 내걸리는 순간,천안문의 10여만 군중들은 하나같이 중국의 국가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일어나라,일어나라,노예됨을 원치않는 이들이여∼”. 이들은 상오 2시18분 세번 째 불꽃놀이가 끝난 뒤에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동이 터온 상오 4시47분 천안문과 광장사이 큰길 옆의 국기게양대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장엄한 군악대의 연주에 맞춰 대형 오성홍기가 천안문광장에 걸리자 10만여명의 관중들은 또다시 환호하며 국가를 따라 불렀다. ○…전날 천안문의 주제는 용들의 승천이었다.10만여명이 그득한 광장가운데로 대형북과 징소리에 맞춰 용춤과 사자춤등 전통 놀이가 진행됐고 북경시장의 축사와 함께 천안문광장에 설치된 가장 큰 무대라는 1천2백㎡의 무대위에 서 연예인과 음악가들이 홍콩의 반환을 축하했다. ○…이에 앞서 30일 중국국민들은 전국에서 국영 중앙(CC)TV를 통해 중국인민해방군 선발대가 오성홍기를 앞세우고 심천의 록마치우 항을 출발,39대의 무장트럭을 타고 홍콩의 섹콩 군사기지로 입성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날 5백9명으로 구성된 선발대는 39대의 무장트럭을 타고 홍콩으로 들어갔다.중국인들은 이날 하오에도 홍콩에서 마지막 총독 크리스 패턴이 총독집무실에서 떠나는 장면과 영국정청이 홍콩철수 행사를 갖는것도 위성을 통해 동시에 방안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물론 이날 자정 홍콩에서 거행됐던 주권이양·정권교체 의식과 심야에 천안문에서의 불꽃놀이도 밤을 잊은채 브라운관을 통해 같은 시간에 볼 수 있었다. 국영 중앙TV는 이날 상오5시59분 국가를 시작으로 7월2일 정규프로그램이 시작되는 상오6시까지 72시간동안 단 1초도 쉬지않는 연속방송 체제로 들어갔다. ○…북경에서는 홍콩 반환행사에 중국대표로 참석한 강택민 국가주석의 위상이 보다 확고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1일 북경 공인체육관에서 거행되는 축하행사에서 강주석이 쓴 ‘환경향항회귀(홍콩귀속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라는 대형 붓글씨가 스타디움 정 중앙에 내걸렸다.또 모택동에 이어 강주석이 주창한 구호가 8만 관중의 열렬한 환호속에 울려퍼지도록 한 점 등이 강주석의 위상을 등소평과 같은 반열로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 분향소에 애도발길 줄이어/등소평 사망 중 대사관·화교 표정

    ◎화교들 대륙정세 변화에 촉각 중국의 최고지도자 등소평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20일 서울의 중국대사관과 부산의 영사관은 하루 종일 가라앉은 분위기였다.대사관·영사관 직원들과 유학생 등 교민들은 「위대한 혁명가」의 죽음에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대만 출신 화교들은 담담해 하면서도 앞으로의 중국 정세 변화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날 하오 서울 중구 명동의 주한 중국대사관 본관 건물에 설치된 분향소에는 등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문객들이 줄을 이어 손에 흰 국화를 들고 등의 죽음을 애도했다.부산의 영사관에도 분향소가 설치됐다. 분향소 주변은 각계에서 보낸 조화로 가득 찼다. 하오 5시쯤에는 김영삼 대통령을 대신해 청와대 김광일 비서실장과 반기문 외교안보수석이 조문한 뒤 장정연 중국대사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이수성 국무총리와 유종하 외무부장관 등 정·관·재계의 주요 인사들도 잇따라 방문했다.대사관측은 일반 조문객들은 21일 상오 10시부터 받는다고 밝혔다. 대사관측은 이날 상오 7시30분쯤현관 앞 국기게양대에 오성홍기를 반기로 내걸었으며 대사관은 평소보다 늦은 상오 9시45분쯤 문을 열었다. 대사관의 김연광 공보관은 『이른 아침 비보를 접했다』면서 『장정연 대사 주재로 대책 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대만쪽 화교 자녀들이 다니는 서울 중구 한성화교학교 장성위 훈육처장은 『중국 현대사의 큰별이 떨어졌다』면서 『대만과 중국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 서울중부서 「무범죄」 백기/새해 첫날 20년만에 게양(조약돌)

    ○…새해 첫날인 1일 서울 중부경찰서가 관내에 범죄자가 없음을 상징하는 백기를 내걸어 눈길. 중부서는 경범죄처벌법 위반혐의로 구류 2일 처분을 받은 뒤 홀로 유치장에 수감됐던 박모씨(27)가 1일 상오9시쯤 석방되자 곧바로 현관 앞 게양대에 백기를 게양. 수사계 손영현 경사(51)는 『중부서에서 경찰관생활을 시작한 뒤 20년만에 처음으로 백기를 내걸었다』며 『새해 첫날이어서 더욱 감격스럽다』고 자랑.
  • 「수도 예고제」 첫 시행/서울시/3월부터 수질·단수 등 예보

    ◎절수 필요땐 깃발 달아 홍보/물의 날 정해 절약 생활화 「서울 강북의 수돗물 공급이 조만간 끊길 위기에 놓였으니 물을 아껴씁시다」.TV드라마가 방영되는 도중 이같은 안내자막이 화면밑에 흐른다.비슷한 시각,상수도사업본부와 각 수도사업소 옥상에는 방송과 같은 내용의 글씨가 쓰인 황색 애드벌룬이 떠오른다. 서울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행키로 한 「수도예고제」의 시나리오다. 서울시가 26일 전국적으로 몰아치고 있는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오는 3월부터 「수도예고제」를 실시키로 하는 등 수돗물 절약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기로 해 주목되고 있다. 수도예고제란 수도에 관한 모든 정보를 시민들에게 예고 및 통보함으로써 협조를 구하는 것이다.지금까지는 단수가 필요할 경우 행정기관이 하루이틀전 언론을 통해 갑자기 알려 미처 대비하지 못한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어왔다. 이 제도는 원수의 저장상태·방류량 등을 알리는 수질예고,갈수기 또는 물수요 급증시 물을 아껴쓰도록 알리는 절수기간예고,마지막 단수예고등 3단계로 나뉜다. 1단계인 수질예고는 언론홍보 및 반상회 등을 통해 정기적으로 한다.절수가 필요할 경우 상수도본부·수도사업소·정수사업소 옥상에 안내자막이 쓰인 황색애드벌룬을 띄우고 동사무소·아파트관리사무소 국기게양대에는 황색깃발을 달아 홍보한다. 서울시는 이같은 수도예고제 이외에 매주 수요일을 「물의 날」로 지정해 절수가 생활속으로 파고 들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 러군 「그로즈니 장악」 고전/도심서 퇴각… 공습 재개

    ◎시가전서 탱크·장갑차 60여대 뺏겨/체첸대통령,“러 병사 처형” 위협 【그로즈니·모스크바 AFP AP 로이터 연합】 구랍 31일 그로즈니에 대한 대공세에 참가했던 러시아군 탱크 60여대가 그로즈니에 발이 묶여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러시아군은 3일 대포와 전투기들을 동원,그로즈니에 대한 공격을 다시 감행했다. 이날 공격으로 체첸공화국 대통령궁 옥상에 있던 국기 게양대가 부서졌으나 체첸공화국군은 러시아군의 공격에 저항하면서 그로즈니 중심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1일과 신년 1월 1일 그로즈니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고도 결국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러시아군은 재집결한 뒤 이날 그로즈니 동북방향에서 포격을 퍼부었다. 또 새벽에 2대의 러시아 전투기들이 그로즈니 상공에서 4발의 폭탄을 투하한 데 이어 낮에는 러시아 전투기 1대가 고공비행을 하면서 그로즈니와 시외곽지대에 2발의 폭탄을 투하했다. 이날 공습으로 민간차량이 파괴되면서 차에 타고 있던 최소한 10여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로즈니 시내에서 폭격을 받은 한 건물의 지하실에서 10여명이상의 어린이들의 시체가 발굴됐다고 이타르 타스 통신이 전했다. 확인되지 않은 한 지하본부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조하르 두다예프 체첸대통령은 체첸공화국군이 수많은 러시아군 병사들을 억류하고 있다고 말하고 러시아측이 자신을 축출하기 위한 군사적 행동을 중지하지 않을 경우 이들이 살해될 수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고 말하고 『체첸군이 일단의 러시아군 병사와 장교들을 붙잡아두고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살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올해의 공무원상」 수상/서종환 공보처 방송매체국장(인터뷰)

    ◎“「0점 가장」 보상된것 같아 흐뭇”/지역민방선정 청문회도입해 잡음없애 94년도 「올해의 공무원」으로 선정된 공보처의 서종환방송매체국장(49)은 23년동안 문화공보부와 공보처에만 근무해온 정통 「공보맨」이다.서국장은 올해 방송가에 혁명적인 변화를 촉발한 종합유선방송 사업자 선정,지역민영방송 허가 과정의 실무총책으로서 별다른 잡음 없이 선정을 마무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서국장은 『새정부 들어와 공직자들이 복지부동 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면서 『오히려 소신을 갖고 성실히 일하는 공무원들에게는 가능성이 많은 시기』라고 강조했다. ­수상 소감은. ▲군생활까지 모두 26년간 공직생활을 해오면서 이처럼 영광스런 일이 없었다.일에만 몰두하다보니 가족들에게 늘 미안했는데 보상이 된 것 같다. ­평소의 업무 습관은. ▲우선 일찍 출근한다.보통 7시30분이면 사무실에 도착한다.맡은 분야에 몰두하다 보니 주위에서 「학위없는 방송박사」라고도 부른다.저녁에는 조간신문 가판을 보고서야 퇴근한다. ­공직생활중 보람있던기억은. ▲유엔대표부 공보관으로 5년동안 재직하며 한국의 유엔가입 당위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결국 91년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게돼 국기게양대에 태극기가 올라가던 순간은 아직도 있지 못한다. ­종합유선방송과 지역민방 선정 과정에 예상보다 잡음이 없었는데. ▲정부의 인·허가 행정에 새로운 모델을 정립한다는 생각으로 세밀하게 준비를 해왔다.허가 신청자가 모두 참가하는 인허가 청문제도를 도입했던 것이 주효한 것 같다. ­향후 예측되는 우리나라 방송 환경의 변화는. ▲지금은 21세기 정보화시대로 들어가는 중요한 시기다.우리는 아직 지상파 방송이 중심이다.일단 방송의 「사회간접자본」인 종합유선방송과 지방화 시대에 대비한 지역민방을 허가했다.앞으로 국제위성방송을 통해 한민족공동체를 확대해나갈 시기가 올 것이다.
  • (주)청구 김시학사장(태극기를 사랑합시다:7)

    ◎입주민에 국기7천여장 배포/방미때 개인회사 정문 성조기에 감명/신축아파트 베란다엔 꼭 게양대 설치 『지난 80년대초 미국 휴스턴시의 어느 개인회사를 방문했던 일로 기억됩니다.그 회사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정문앞에 설치된 높이 30여m에 이르는 6개의 국기게양대마다 대형 성조기가 펄럭이는 장면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이것이 바로 미국인의 애국심이며 이 속에서 위대한 미국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아파트 건설업체로 입주민들에게 태극기 보급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는(주)청구 김시학사장(54). 그는 『당시 귀국후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의외로 국경일에조차 나라의 상징인 태극기를 달지않는 가정이 많아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청구는 건설업체로는 처음으로 80년대초부터 신축 아파트 베란다에 국기게양대를 설치하고 현관옆에는 국기보관함을 따로 만드는등 입주자들의 국기게양 유도에 남다른 정성을 쏟아오고 있다. 지난 8·15 광복절에도 신시가지인 분당·일산지역과 대구·경북지역청구아파트 입주자들에게 7천6백장의 태극기를 보급했다.또 대구지방보훈청과 함께 「국기게양 작은실천,다져지는 나라사랑」이라는 전단 5만장을 제작,반상회등을 통해 배부하기도 했다. 청구는 오는 개천절 이전까지 5천여장의 태극기를 더 보급하는 것은 물론 점차 기존 청구아파트 입주자및 태극기가 없는 가정집에도 보급해 나갈 예정이다. 이같은 청구의 남다른 태극기 보급운동에 힘입어 최근 입주를 마친 대구시 수성구 지산동 지산청구타운과 경산시 옥산청구타운에서는 지난 광복절 모든 가구가 태극기를 내걸어 인근 아파트지역과 좋은 대조를 보였다.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청구빌라에 사는 이주형씨(32·회사원)는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지않고는 인근 주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청구아파트 입주민들은 태극기를 내거는 일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며 『한 개인회사에서 이같은 국기사랑 정신을 갖고 이를 실천하고 있다는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청구의 이같은 태극기 보급운동은 회사의 경영방침에서 우러나온 것으로주위에서는 지적한다. 청구에서는 요즘도 매일 상오 7시와 하오 6시에 어김없이 국기 게양식과 하강식 행사를 계속하고 있다. 김사장은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30∼50대 사이에서 최근 태극기에 대한 사랑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애국심이 없는 사회활동은 무의미하고 태극기를 사랑하지 않는 애국심이란 있을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 서울 성동구 광희중학교(태극기를 사랑합시다:6)

    ◎등교때 「국기에 대한 경례」 생활화/월요일 조회시간 애국가 4절까지 제창/새학기부턴 전담교사가 국기예절 교육 서울 성동구 응봉동 광희중학교(교장 정여기·62)의 1천7백여 학생들은 새학기들어 등교때마다 교문앞에서 「작은 의식」을 치르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하루한번 꼭 실천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바로 눈에 띄는 국기게양대 앞에 멈추어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국기게양대 앞을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지나치던 학생들이 이제는 하루에 한번씩은 꼭 태극기를 마주하고 나라에 대한 사랑을 다짐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광희중학교는 뿐만 아니라 이번 2학기부터 매주 월요일 조회때 애국가를 4절까지 모두 부르고 학급회의나 명상의 시간,대의원회의 등과 같은 공식적 행사에서는 반드시 국기에 대한 경례와 함께 애국가를 제창하고 있다. 광희중학교가 이렇게 태극기에 대한 사랑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게 된 계기는 『교육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올바른 국가관이 확립되어야 하며 국기에 대한 사랑은 곧 나라사랑의 바탕』이라는 정교장의 남다른 교육관에서 비롯됐다. 돈에 눈이 멀어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군 사건 등에서 보듯이 우리사회가 갈수록 물질만능주의에 젖어들고 인륜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늘 안타깝게 여겨온 정교장은 이같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묘안을 궁리하다가 나라의 구심체라 할 태극기와 애국가에 생각이 이르렀다고 한다. 교육의 최일선인 학교에서 주인의식을 길러주고 민족혼을 불어넣을 수 있는 지름길은 태극기와 애국가에 대해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해주는 것이라고 착안했다. ○자율적 동참 유도 적어도 하루에 한번은 학생들이 스스로의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을 마련해 주기로 했다. 정교장과 교사들은 새학기부터 본격적인 국기사랑교육을 하기 위해 「국기연구전담교사」를 두고 여름방학동안 국기예절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는 등 남다른 열성을 보였다. 학교측은 그러나 아무리 좋은 교육이라도 학생들에게 강요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에서 개학직후 열린 각 학급회의를 통해 학생들이 태극기에 대한 주제를자체적으로 다루도록 적극 유도했다. 학생들은 지난달 29일의 학급회의에서 국기사랑에 대한 세부적인 실천사항을 논의한 뒤 전체 대의원회의를 열어 등교때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것과 학급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애국가를 부를 것 등을 스스로 정했다. ○학생들 호응 높아 3학년 오민교군(15)은 『새학기들어 국기에대한 경례를 할 때마다 나라사랑은 곧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학생들의 반응이 예상외로 좋다고 말했다. 정교장은 『학생들이 스스로 결정한 일인 만큼 국기사랑에 대한 교육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만족스러워 했다.
  • 관광서 등 찾아 「바로달기」 역설 28년(태극기를 사랑합시다:3)

    ◎「국기박사」진무상씨의 집념/사재털어 경찰서에 게양대 설치/예식장 축의금 국기함으로 대신 처음 만나는 사람으로부터 『하는 일이 무어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뜸 『태극기 사랑 운동』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주변에서는 그를 「국기 박사」라고 부른다. 진무상씨(56·자영업·서울 은평구 녹번동 162의14)는 결혼식장에 가서도 축의금 대신 태극기와 국기함을 들고가 예물로 내놓는 별난 사람이다. 그는 국기에 대해 끈질긴 애정을 갖고 평생동안 국기바로달기운동에 외로운 집념을 쏟아 부었다. 진씨는 현재 한국국기선양연구원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지만 사무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지금 살고 있는 집이 곧 사무실이고 직원도 없다. 그러나 국기바로달기운동에 관한 한 진씨는 다른 어느 단체 못지 않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우선 길을 가다가 태극기가 잘못 걸려 있는 것을 보면 만사 제쳐놓고 관계자를 찾아가 이를 지적해 주고 반드시 바로 잡는다. 지금까지 관공서·회사등 서울시내의 웬만한 건물치고 진씨의 지적을 받지 않은 곳이 드물다고 한다. 구로구의 K전철역이나 집근처에 있는 서부경찰서에는 사재를 털어 국기게양대를 직접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가 태극기 바로달기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은 66년 첫딸을 보고부터. 출생을 기념할 만한 일을 찾다가 국기사랑운동에 착안,문헌 등을 뒤져 가장 적합한 형태를 알아내 태극기 3개를 직접 만든 뒤 이 가운데 하나를 「국기제작의 모델로 삼아달라」며 청와대로 보냈고 그 국기가 비무장지대에 있는 대성동 마을에 보내지기도 했다. 또 같은해 4월 국기게양방법을 명시한 국무총리고시가 대통령고시로 바뀐 것이나,85년8월 국기게양대 설치방법을 규정한 건축법시행령이 공포된 것,그리고 87년1월 국기가 정부조달품목에 새로 지정된 것 등은 모두 진씨의 숨은 노력의 결실이라고 한다. 진씨의 국기에 대한 애정은 실로 눈물겨울 정도여서 서울시내 대형건물들의 국기게양대 위치와 게양대 파손여부 등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꿰뚫고 있을 정도이다. 광복절인 지난 15일에도 그는 카메라를 들고 서울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주요건물의국기게양 실태를 36장짜리 필름 5통에 담았다. 그동안 이렇게 찍은 사진이 수천장이며 이를 토대로 지금까지 청와대·총무처·문교부 등 관계기관에 보낸 질의서 및 건의서와 그에 따른 회신서가 스크랩북 5권 분량이나 된다. 국기는 국가의 상징이고 구심체라는 단순한 논리가 그의 국기에 대한 철학이다. 따라서 그는 국기는 마음껏 휘날려야 하고 나무나 건물에 가리워도 안되며 비나 눈이 온다고 내려져셔도 안된다고 주장한다. 현행 국기게양법은 비나 눈이 오면 내렸다가 날이 개면 다시 올리도록 규정돼 있지만 한번 내려간 국기는 다시 올라가기 힘들다는 것이다.진씨는 국기게양 및 하강작업을 하는 건물 경비원 등 실무자 1천여명을 직접 만나 이같은 현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는 『국기에 몰두하다 보니 가장으로서의 점수는 낙제점』이라며 개인적인 주변얘기에는 굳이 대답을 않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 대학생들 민방위 반대시위/1천여명 가두진출… 유인물 배포

    15일 민방위훈련이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속에 진행되던중 연세대·조선대등 전국 12개대 학생 1천여명이 민방위훈련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여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연세대등 서울 시내 6개대 학생 3백50여명은 이날 하오 2시쯤 민방위훈련 시작에 맞춰 소속 대학과 신촌로터리등에서 「전쟁분위기 고조시키는 민방위 훈련반대」등의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단국대 학생 20여명은 하오 2시쯤 민방위 공습 경보 사이렌이 울리자 대피훈련을 하는 것처럼 용산구 한남동 외인아파트안으로 들어가 국기게양대에 걸려있는 성조기를 끌어내린뒤 달아났다. 조선대 학생 3백여명은 이날 하오 2시쯤 교문앞에서 「UR비준 반대·미국 반대」등의 피켓을 들고 『민방위 훈련중지』등의 구호를 외치며 가두진출을 꾀하다 경찰의 저지를 받았다. 제주대 학생 10여명도 이날 제주시내 버스를 탄채 『사라졌던 공습훈련을 재개하는 것은 미국의 전쟁위기 조장이며 민방위 훈련은 내 민족을 적으로 규정하는 행위』라는 내용의 유인물 50여장을 뿌렸다.
  • 김영삼대통령 취임후 첫 해외 나들이

    ◎검소한 의식… 환송행사 달라졌다/대형현판·시민­공무원 동원 없애/태극기·성조기 광화문 등 3곳만 17일 하오 서울공항 청사2층에서 열린 김영삼대통령내외 미국방문 환송행사는 과거 그 어느때보다 검소하게 진행됐다. 1천여명에 이르렀던 환송단이 일체 동원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공식환송인사도 60명으로 크게 줄었다.이에따라 행사시간도 10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10분만에 행사 “끝” 취임후 첫 해외나들이로 이번 방미가 지니는 외교적 의미를 감안할 때 이같이 간소한 환송행사는 문민정부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구름이 낮게 깔린 이날 서울공항의 옥내에 마련된 환송식장에는 이만섭국회의장,윤관대법원장,황인성국무총리등 3부요인과 조규광헌법재판소장,김종필 민자·이기택 민주당대표,국무위원등 60명이 나와 김대통령내외의 성공적인 방미를 기원했다. ○…하오 4시20분 승용차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한 김영삼대통령과 부인 손명순여사는 육군 팡파르단의 연주속에 황인성총리와 최창윤총무처장관의 영접을 받으며 환한표정으로 환송식장에 입장. ○꽃다발 받고 인사 김대통령은 곧바로 3군의장대를 사열한 뒤 단상에 올라가 간단하게 출국인사. 김대통령은 『이번 방미는 세계로,미래로 나아가는 우리 국민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며 『변화와 개혁이라는 세계사적인 흐름을 선도하고 있는 우리 국민의 헌신적인 노력과 긍지를 세계의 이웃들과 우리 동포에게 자랑스럽게 전하겠다』고 다짐. 김대통령 내외는 최성진군(11·서울사대부국5년)과 임현진양(11·〃)등 두 어린이로부터 축하꽃다발을 전해받은 뒤 환송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특히 김 민자,이 민주대표와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밝은 표정으로 덕담을 나눠 눈길. 김대통령 외는 이어 공항청사 밖으로 출영나온 환송객들에 손을 흔들어 답례한 뒤 특별기에 탑승. ○비용도 절반 줄여 ○…김대통령 내외에 대한 이번 환송행사에 소요되는 비용은 오는 25일에 있을 귀국환영행사와 합쳐 2천만원에도 못미칠 것으로 추산.이는 역대대통령들의 외국방문때 든 공식비용이 평균 4천만원에 이르렀던 것과 비교할 때 절반 가까이 줄어든 규모. 정부는 출범이후 줄곧 추진해온 행사간소화방침에 따라 이번 환송행사에는 대형현판을 일체 생략했다.아울러 대통령의 외국방문때마다 정부종합청사 둘레에 요란스레 설치했던 울타리기도 생략했다.다만 서울공항과 서울시청,정부종합청사등 3곳의 게양대에만 태극기와 성조기를 내걸어 상징적인 예의만을 갖추었다. 학생·부녀당원등 많게는 1천명에 가까운 인원을 환송식장에 동원했던 관행이 없어진 것도 이번 환송행사의 특징.덕분에 수기와 점심값등 과거 이들에게 들었던 1천만원정도의 비용이 절감됐다는 것이 총무처 관계자의 설명. 한편 청와대직원들은 이날 김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필요한 인원을 제외하고는 이날 환송식에 불참.대신 비서실과 경호실 직원 2백여명은 김대통령 내외가 청와대를 나서는 때에 맞춰 청와대 정문앞에 도열,박수로 김대통령 내외의 장도를 축원.
  • 평화협정 성패의 요지(평화 싹트는 중동:5)

    ◎골란고원 유태농민들,“반환 안될 말”/포도주 양산… 이스라엘시장 10% 점유/“시리아에 내주게 되나” 불안속의 평온 중동의 화약고인 골란고원에서 포도주 향기를 얘기한다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는지 모른다.그러나 오늘의 골란고원엔 군데군데 지뢰밭 사이로 파란 포도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비놋 야코프 다리.갈릴리호수로 흘러드는 북요르단강 중간쯤에 놓여있는 이 다리는 시리아와의 국경검문소가 있던 곳.다리 아래 계곡에선 많은 소풍객들이 한유를 즐기고 있어 살벌하단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가 없다.그러나 다리를 건너자마자 계속되는 오르막길 양옆으로 널려있는 지뢰밭과 위험을 알리는 노란 표지판이 이제는 지도에서조차 없어진 옛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국경이었음을 말해준다.지뢰밭 곳곳에 널부러져 있는 파괴된 장갑차 등도 전쟁을 말해준다. 1967년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에 전격적으로 점령당한 골란고원은 서울시의 두배 정도 넓이인 1천1백50㎦에 인구는 3만명.갈릴리호수와 북요르단강 계곡 평원을 한눈에 내려다 보고 있는 전략요충인 이 땅은 81년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병합과 적극적인 유태인 정착촌 건설로 이제 과거 시리아 알쿠나이티라주의 분위기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2만여명의 드루즈인 원주민과 30여개 정착촌에 1만여 유태인들이 살고 있는 골란고원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직접 거주하거나 피란민 캠프가 있지는 않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 성패의 열쇠를 쥐고 있는 곳으로 국제적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그 까닭은 평화협정이 시리아의 협조없이는 추진이 불가능하고 또 시리아의 협조는 골란고원의 반환없이는 기대할 수 없다는 논리전개 때문이다. 이스라엘측도 몇차례 반환을 위한 협상용의를 비치기는 했으나 아직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은 없다.그러나 막상 골란고원 주민들은 국제적 관심이 쏠린 긴장지역으로 중동의 시한폭탄처럼 외부에 인식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동안 골란고원은 세계적으로 향기 좋기로 유명한 야르덴포도주의 산지인 포도의 고장으로 바뀌었다.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팀들이 이곳의 화산암 토양과 서늘한 기후에 맞는 품종을 개발,10여년전에 이식시킨 포도나무가 이제 상당한 수확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현재 이스라엘 포도주시장의 10%를 점유하고 있는 야르덴포도주는 국외주문은 없어서 못팔 정도라는 것. 골란고원 중부의 소읍 에인지반에 있는 포도주공장에서 만난 세게브 예로보암공장장(45)은 『피땀흘려 가꾸어 놓은 이 포도밭과 공장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면서 『골란고원의 시리아 반환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는 『최근 이스라엘정부 무역사업부의 투자센터로부터 94년부터 97년까지 1천7백만세켈(약6백만달러)이 소요되는 3개년 확장계획을 승인받아 우선 5백만세켈을 지원받기로 했다』고 말하고 『이 땅을 돌려줄 것 같으면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골란고원의 중심도시인 카자린으로 가는 길에는 이스라엘 깃발이 길옆에 쭉 꽂혀 있었고 시가지 공터마다에 마련된 국기게양대에도 서너개씩의 국기를 꽂아 놓고 있었다.어느날 저 깃발들이 시리아 깃발로 바뀐다는 것은 좀처럼상상키 어려웠다. 갈릴리호수의 남단에 있는 베트 가브리엘은 과거에는 갈릴리호수 동쪽의 골란고원으로 갈라지는 국경도시.검문소가 있고 바리케이드가 쳐있던 곳에 대형 슈퍼마켓과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오늘날에는 갈릴리호수에서 캠핑을 즐기려는 수많은 이스라엘 레저인파들이 들러서 장을 봐가는 곳으로 변했다. 슈퍼마켓 주인인 예후다 사라부인(38)은 『이곳에 다시 바리케이드가 쳐지고 국경검문소가 생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빈정거리듯 말했다. 골란고원의 유태인들은 큰 소리는 치면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정을 보는 눈이 곱지 않다.행여나 자신들의 땅이 평화의 담보로 시리아에 주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일말의 두려움이 있는 듯했다.갈릴리호수의 잔잔하고 파란 물살같은 평화까지는 아직도 많은 산들이 놓여 있었다.
  • 빗속 「선열추념가」… 유족들 오열/임정 5위 영결·안장식 이모저모

    ◎울음섞인 추모사에 참석자들 목메어/소복차림 후손 “할아버지” 절규… 숙연 ○…10일 상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거행된 임정선열5위의 영결식은 전날에 이어 계속내린 비로 더욱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 현충문옆 국기게양대에 걸려있는 태극기가 빗속에 펄럭이는 가운데 국화로 장식된 선열 5위의 제단은 새삼 처연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분위기 시종 엄숙 국민제전위원측은 이날 영결식행사장 주변에 천막30개를 설치했고 참석자들에게는 미리 준비한 우의를 나누어 줘 빗속행사에 만전.또 식순및 행사내용등이 인쇄된 팸플릿이 비에 젖는 것을 막기위해 비닐봉지에 싸 배포하는등 역사적인 행사에 차질을 빚을까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흔적이 역력. ○…이날 영결식장의 종교의식행사에서는 천주교와 불교,기독교외에 대종교가 이례적으로 참석해 눈길.특히 김선적 종무원장(67)은 선열들의 명복을 비는 「봉안 원도문」을 유독 큰소리로 낭송,비교적 낮은 목소리로 의식을 진행하던 다른 종교와 대조를 보여 주목. 김종무원장은 박은식선생등의 독립운동 행적과 대종교의 역할등을 중심으로 추모사를 울음섞인 목소리로 낭독해 유가족들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종교의식 시간 걸려 ○…이날 영결식에서 선열추념가를 부른 합창단 1백20명이 무궁화무늬가 새겨진 한복을 입어 눈길. 국립합창단과 함께 조가를 부른 이들은 대전무궁화 합창단(단장 정인자·51)으로 이들은 어제 가사를 팩시밀리로 받아 이날 상오5시 서울에 버스편으로 도착할 때까지 버스안에서 가사와 리듬을 열심히 익혔다고. 정 단장은 『지난7월 26일 효창공원에서 열렸던 백범 선생 추모식 때도 추도가를 불렀다』고 자랑. ○…이날 영결식행사는 당초 예정보다 30분가까이 늦어진 상오 11시 10분쯤 국군 조포대의 조포 21발이 울리는 가운데 종료. 이는 추모사와 종교의식이 예정시간보다 배이상 길어진데 따른 것이라고 행사 관계자가 설명. ○…상오 11시30분쯤 시작된 안장식은 흰보자기에 싼 옥함을 유택에 넣은뒤 가로30㎝,세로90㎝ 정도의 세조각으로 된 「횡대」라는 나무조각으로 옥함을 덮은 다음,횟가루를 유족대표들이 횡대위에 뿌리는등 헌토작업과 봉분을 쌓는 성분작업및 잔디를 입히는 절차로 약20여분동안 진행됐으나 흙바닥이 질어 인부들과 유족들이 애를 먹기도. ○시아버지유택 큰절 ○…소복차림의 박은식 선생의 자부 최윤신 할머니(77)는 비가 와 진흙땅으로 변한 잔디밭에서 시아버지의 유택을 향해 절을 올리며 오열했는가 하면 노백린 선생의 묘역에서도 흰소복차림의 여자 유족이 『할아버지』하며 오열하는등 안장식장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나와 더욱 숙연한 모습. 또 이날 영결식행사에 참석한 중국교포 이소심씨(55·여·의사·중국 사천성거주)는 『오늘 영결식을 보면서 한국인으로서 부러움과 감격스러움을 느꼈다』면서 『앞으로 정부당국이 아직 환국하지못한 다른 선열들의 유해 봉환에도 관심을 기울여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 대전엑스포기 내일부터 게양/청와대·공공기관

    청와대는 26일 상오 10시 신관 국기게양대에서 박관용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및 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전엑스포기 게양식을 가질 예정이다. 이날 행사는 박실장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도열해 청와대 신관게양대에 엑스포기를 게양하고 동시에 엑스포주제가 「그날은」을 방송하며 엑스포마스코트인 꿈돌이인형도 참가해 행사분위기를 돋울 계획이다. 청와대는 대전엑스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부족하다는 김영삼대통령의 지적에 따라 엑스포행사가 끝날때까지 신관게양대에 엑스포기를 게양,분위기를 북돋울 방침이며 각급 공공기관도 이날부터 일제히 엑스포기를 게양한다.
  • 민관합동 첫 추모제/「5·18」 13주/수만인파 「민주혼」 위로

    【광주=박성수기자】 5·18민주화운동 13주기를 맞이한 18일 광주에서는 문민정부 출범에 따라 80년 이후 13년만에 처음으로 민·관이 함께 참여한 추모제가 열려 민주화 투쟁을 하다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기렸다. 이날 상오 10시 망월동 묘역에는 5·18단체회원을 비롯,시민과 전국에서 찾아온 1만여 인파가 묘역을 메운 가운데 추모제 및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추모제에는 특히 80년 5·18 이후 13년만에 처음으로 강영기광주시장이 참석했다. 대회를 마친 시민·학생들은 도청 앞에서 4㎞ 떨어진 광주역까지 촛불행진을 벌이며 80면 당시의 횃불시위를 재연했다. 5·18민주항쟁연합은 추모제에서 『5·18은 오늘의 민주발전을 이루어 낸 동력이었으나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며 진상규명,당시의 군사재판 파기,특별법 제정,특별검사제 도입 등 4개항의 실현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쟁해 나간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날 망월동 묘역에는 지난 80년 이후 13년만에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김영삼대통령의 화환이 제단 한가운데 놓여 눈길을 모았다. ◎도청에 조기 게양 【광주=박성수기자】 전남도청 옥상국기게양대에 80년 5·18이후 13년만에 처음으로 당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조기(조기)가 게양됐다.
  • 부시,6·25참전기념비 기공 “첫삽”/링컨기념관 잔디광장서 착공

    ◎2천여평 조성… 미군행진 모습 조각/현 주미대사·체니등 5천여명 참석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미국의 한국전참전기념비기공식이 14일 하오 워싱턴중심지의 관광명소인 링컨기념관앞 우측 잔디광장에서 부시미대통령을 비롯,체니국방장관 파월합참의장등 행정부인사와 돌 상원의원등 의회인사 그리고 현홍주주미대사와 한국전참전노병·시민등 5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미해병군악대의 연주속에 진행된 이날 기공식에서 부시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우리의 의무를 이행할것이며 또한 한국에 남아있을것』이라고 강조하고 『미국의 아들과 딸들은 오직 자유를 위하여 한국의 부산과 인천,피의 능선에서 공산독재주의자들과 싸웠다』고 술회했다. 노태우대통령은 현대사가 대독한 부시대통령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한국전쟁당시 유엔군의 주력으로서 참전한 미군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에 대해 미국정부와 국민에게 항상 깊이 감사하고있다』면서 『용감한 미군장병들이 한국전에서 보여준 숭고한 희생은 우리 두나라가 함께추구하는 자유와 민주주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크게 공헌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미국국기의 날」인 이날 부시대통령이 첫삽을 뜸으로써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게된 이 한국전참전기념조형물은 잔디광장 7·5에이커(9천2백평)중 2·2에이커(2천7백평)에 건립되며 내년 11월11일(재향군인의 날)에 완공될 예정이다. 이 조형물은 완전군장에 판초우의를 입은 16명의 미군병사들이 성조기를 향해 두 줄로 행군하는 모습의 조각공원형태를 이루고있고 성조기게양대주변을 따라 연못이 있어 성조기와 병사들의 모습이 수면에 비치도록 설계되어있다.연못둘레에는 참피나무를 심어 원형숲을 만들어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게된다.전체적인 조감도는 V자형의 꼭지에 반원형의 연못과 숲이 연결돼 마치 훈장모양을 연상케 하고있다. 이 기념물의 당초 조형설계는 공모에 의해 당선된 펜실베이니아 주립대교수 4명의 작품이었으나 미연방기념비위원회,연방미술위원회,수도도시계획위원회등의 심의과정에서 몇차례 설계변경의 우여곡절을 겪어 지난 3월에야 최종 승인이 났다. 지난 89년6월 부시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직접 발표했던 처음의 당선작에선 미군병사들이 38명이었고 그들의 모습이 다소 추상적이었으나 최종설계에선 16명으로 줄였고 병사들의 조각을 훨씬 구상화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기념물건립비용은 전부 개인이나 단체의 기부금으로 마련되었으며 현재 확보된 기금은 공사비(1천만달러)와 시설관리운용비(5백만달러)를 약간 웃도는 1천5백40만달러에 달한다고 로버트 한센 사업추진사무국장이 밝혔다.기념주화판매방식으로 마련된 이 건립비용모금에는 한국의 기업도 일부 희사했다. 링컨기념관과 미의회의사당 사이의 기다란 공원광장에 월남참전기념물과 대칭을 이루게 되는 한국전참전기념조형물은 미국민은 물론 워싱턴을 찾는 세계인들에게 유엔군의 한국전참전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었음을 다시한번 새겨줄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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